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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핵우산과 에너지우산/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북한 핵실험 이후 최근 핵우산 논쟁을 지켜보며 ‘아직도 냉전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한반도’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 몇년간 필자는 대부분의 시간을 21세기의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중심축이 냉전기의 핵우산에서 에너지우산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 규명에 할애해 왔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에너지우산이라는 개념도 생소하거니와 에너지를 국가안보 차원에서 인식하는 풍토도 미약한 것이 현실이다.2차세계대전시 일본군이 즐겨 사용한 ‘석유 한 방울은 피 한 방울과 같다.’라는 말은 자원 때문에 전쟁을 해본 역사적 경험이 없으면 체득하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안보분야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에너지안보를 일종의 외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아마도 안보라는 개념 자체가 군사안보에 치중되어 왔고 지역적으로도 동북아 주변4강의 틀에서 형성된 고정관념이 우리 풍토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는 점이 중요한 원인일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변하고 있고 에너지우산은 동맹을 재편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로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러시아·이란·사우디아라비아 등이 중국의 가장 취약점인 에너지공급 국가로서 동맹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가운데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 연대만을 중요하게 보고 나머지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대목에서 1993년 베이커 전 국무장관이 “우리는 중국의 아킬레스건이 에너지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라고 한 발언은 많은 점을 생각하게 한다. 냉전이 종식되자마자 일찌감치 향후 국제질서 형성에서 에너지안보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국가안보 차원의 전략 구사를 암시한 말이다. 실제로 미국은 1990년대 이후 중앙아시아·중동·아프리카 등 중국에 에너지우산을 제공할 만한 지역에 적극 개입하는 선점 전략을 구사했다. 이라크전은 결과와 무관하게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이다. 중국 역시 미국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에너지안보 문제에 집요한 노력을 해왔다. 장쩌민 전 주석이 1999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에너지 동반자 협정을 체결한 점이나,2004년 이란과 1000억달러 규모에 달하는 장기 에너지 공급에 합의한 것도 에너지우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의 일부분이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도 따지고 보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거부권을 행사하는 보호막과 더불어 언제든지 에너지우산을 걷어들일 수 있는 칼자루를 쥐었다는 점이 핵심을 이룬다. 그렇다고 막대한 재원을 사용한 것도 아니다. 중국의 대북 석유지원은 1990년대 이전에는 5개년 석유공급 협정에 따라 시장가격의 50% 수준인 t당 58달러 수준에서 매년 약 150만t정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1990년에는 t당 126달러 수준으로 인상되었으며 공급량도 최근 50만t 규모로 축소되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대북한 에너지 공급에 대한 중국과 러시아의 차이점이다. 러시아는 1991년부터 구상무역 대신 에너지 공급에 대한 대가로 경화 결제를 요구하였고, 북한이 이를 이행할 능력이 부족해 이후 공급 규모는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중국 역시 경화 결제를 요구하긴 했지만 북한이 무연탄이나 시멘트 등 구상무역으로 결제를 못하는 상황에서도 원유 공급을 지속했다. 에너지 초강대국 러시아와 수입국 중국의 입장이 북한지원에 있어서만큼은 반대가 된 셈이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북한에 대한 에너지우산을 확보함으써 미국으로 하여금 협조 요청을 하도록 했으며, 이는 자신의 우산이 될 이란 문제 해결과정에서 또 다른 영향력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면한 북핵문제를 앞에 두고 에너지우산이라는 이야기가 공허하게 들릴지는 모르나 작은 비용으로 칼자루를 쥔 중국의 행보는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지금 핵우산에서 에너지우산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살고 있다. 김재두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 서울의 마지막 ‘모팔모 야장’ 박경원씨 부자

    서울의 마지막 ‘모팔모 야장’ 박경원씨 부자

    “땅, 땅, 땅.” 화덕을 응시하던 백발의 노인이 벌겋게 달구어진 길다란 쇠막대를 집어 든다. 능숙한 솜씨로 구부리고 망치질하기를 몇번, 곧 손잡이가 생기고 집게가 모양을 드러낸다.“작지만 직접 모양을 만들어야 하는 연탄집게나 곡괭이 같은 것이 제일 어려워. 쇠도 때릴수록 손맛이 나거든. 이렇게 손으로 모양을 만드는 연장들은 쓰는 사람 손에도 착착 감기지.” 시간을 몇십년 되돌리기라도 한 듯 옛 대장간 풍경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곳은 서울 은평구 대조동 시외버스터미널 뒤쪽에 자리잡은 불광대장간.50년이 넘도록 대장 일을 하고 있는 박경원(68)씨가 19일에도 불과 쇠를 다루는 일터이다. ●젊은이들 3D 기피 제자가 없어 세평 남짓한 허름한 대장간에는 기계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쇠를 화덕에 넣어 달군 뒤 뽑아서 모루에 놓고 망치질을 하는 전통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씨가 처음 대장간과 인연을 맺은 것은 6·25 전쟁 당시 피란을 갔을 때였다. 고작 열네살이었던 박씨는 대장간에서 낫자루를 자르는 허드렛일을 해주면서 주린 배를 채웠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인 강원도 철원으로 돌아갔지만 농사가 잘 되지 않아 1년 만에 서울로 올라와 미아리고개 근처에 있는 대장간에 막내로 들어갔다. 화덕에 들어 있는 칼을 보다 졸아서 칼이 다 녹아버리면 스승의 손에 들려 있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았다. 그렇게 울면서 어깨 너머로 조금씩 일을 배웠다. 몇년 뒤 대장간이 모여 있는 을지로로 간 박씨는 그곳의 대장간에서 솜씨를 인정받게 된다. 다른 대장장이 선배들에게 술을 사주며 기술을 연마했다. 처음 풀무질을 시작한 지 12년 만이었다.40∼50대에나 망치를 집을 수 있는 대장장이 세계에서는 신동으로 대접받은 셈이었다. 당시 박씨가 받았던 월급은 1400원. 신발 한 켤레가 바로 1400원인 시절에 그것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었던 박씨는 곧 독립을 하게 됐다. 왕십리 중앙시장에서 허름한 리어카를 사서 꾸미고 진흙으로 화덕을 만들어 싣고 다니며 망치질을 했다. 장마철이라도 되면 한달 장사를 공치기 일쑤였지만, 부인까지 나서 대장일을 도운 끝에 불광동에 대장간을 차리게 됐다. 지금은 전만큼 대장간을 찾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과도 하나라도 써본 손님은 꼭 다시 찾아온다. 돌을 다루는 석공이나 연탄 배달부도 연장이 손에 꼭 맞는다며 단골로 애용하는 집이다. 요새는 주말농장을 가꾸는 주부들이 호미를 사가기도 하고, 벌초 철에는 가위도 잘 팔린다. 지금 내놓고 파는 연장은 칼과 망치 등 50여가지 정도이지만, 구석구석에 만들어 놓은 ‘작품’들은 수천가지에 이른다. 서울에서 유일하게 전통방식을 고수하며 쇠를 만지는 박씨에게 제자는 없다. 요즘 세상에 힘든 불일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칼·망치등 50여가지 연장팔아 대신 아들 상범(37)씨가 아버지를 도와 가업을 잇고 있다. 전통방식대로만 쇠를 다루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묻자 “수백번 때려서 조직을 촘촘하고 치밀하게 만든 쇠와 거푸집에서 그냥 찍어내는 쇠가 어떻게 같겠느냐.”며 손사래를 친다. 요새는 박씨 부자에게 지역축제에서 망치질을 보여 달라는 주문도 부쩍 많아졌다. 하지만 그건 절대 대장장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 박씨의 지론. “나는 사람이 쓰는 연장을 만드는 대장장이야. 시대가 바뀌면 연장도 따라 바뀌는 것이지 사라지는 게 아니잖아. 나도 바뀌는 연장을 계속 만들어야지.” 잠시 쉬면서 기자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던 박씨 부자는 화덕에 넣어 놓은 쇠가 알맞게 익었다며 급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나란히 망치와 집게를 잡고 쇠를 뽑는 부자의 뒷모습에서 화덕만큼이나 뜨거운 ‘얼’이 엿보였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연탄을 피워요 사랑을 피워요

    연탄을 피워요 사랑을 피워요

    “연탄 한 장으로 어려운 이웃에게 따뜻한 사랑을…” 독거노인, 소년소녀가장 등 어려운 이웃의 겨우살이를 도와주는 ‘사랑의 연탄은행’이 강원도 원주를 시작으로 차례로 문을 열고 영업(?)에 나섰다. ●300원 연탄으로 사랑 실천 지난달 29일 원주 원동 1호점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춘천 등 10여곳의 연탄은행이 문을 열었다.14일 서울, 다음주 동두천과 금산시에 이어 전국에 설립된 17곳이 이달 중에 모두 문을 연다.30일에는 충남 보령에 18호점이 또다시 개설된다. 모두 내년 4월 말까지 운영된다. 이곳에는 매일 200∼300장씩의 연탄을 비치해 극빈층 주민들에게 하루 3∼5장씩 제공하게 된다. 일반인이나 기업체들이 연탄이나 기탁금을 후원해주면 연탄으로 바꿔 무료로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주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연탄이 전달된 것은 지난 2002년 9월 원주에서 처음 문을 연 이래 지난 겨울까지 4년 동안 모두 160만장에 이른다. 장당 300원씩 따지면 4억 8000만원어치다. 혼자 사는 노인들이나 소년소녀가장, 어려운 영세민 등이 대부분이다. 연탄은행 운영은 창고(연탄은행)에 연탄을 쌓아놓고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직접 연탄을 가져가게 하고 있다. 하루 5장 이상은 안 된다는 나름대로의 규칙도 정해놓았다. ●자원봉사자도 온정의 손길 거동이 불편한 어려운 이웃에게는 자원봉사자들이 직접 연탄을 날라주기도 한다. 은행이 열리지 않는 여름철에는 어려운 이웃을 직접 찾아 다니며 배달해야 하는지 등을 미리 챙기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박출(85·원주) 할머니는 “어려울 때 빈 쌀독에 쌀을 채워 놓으면 배가 부르듯이, 빈 창고에 연탄이 쌓이면 불을 때지 않아도 등이 따듯하다.”면서 “해마다 연탄은행에서 무료로 연탄을 나눠주고 있어 겨울이 더 이상 춥지 않다.”고 고마워했다. 하지만 연탄은행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어려움도 많았다. 후원자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연탄을 한 장이라도 더 가져가려는 사람들,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오해의 눈초리까지 모두가 버거웠다. 그래도 지금까지 연탄창고에서 연탄이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한겨울 어려운 사람들의 따뜻한 아랫목 역할을 톡톡히 해오고 있다. 욕심을 내던 사람들도 이제는 하루 3∼5장씩의 규칙을 따르고 있고 후원자들의 발길도 늘었다. 지난 겨울에는 한 달에 20만장(6000만원어치)이 기탁되기도 했지만 삶이 팍팍해지면서 올해에는 실적이 좋지 않을 것 같아 걱정이다. ●전국 곳곳에 지점 개설 연탄은행은 최근 전국협의회(대표 허기복 목사)까지 만들었다. 전국 20개 지역에서 연탄은행 개설을 신청하고 있어 연내에 인천과 광주 등지에 추가로 설립할 예정이다. 전국협의회는 이번 겨울 전국의 빈곤층 주민들에게 모두 100만장의 연탄을 공급키로 하고 필요한 물량 확보를 위해 기업·단체 등을 대상으로 연탄 구입 저금통 전달과 지역별로 연탄찍기와 배달봉사 체험행사를 개최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 프로그램을 추진하기로 했다. 신미애(40) 연탄은행 총괄팀장은 “경기가 점점 어려워지면서 독거노인 등 어려운 분들의 생활이 더 쪼들리고 있어 걱정”이라면서 “후원자들과 자원봉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이 이들에게 힘이 돼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탄 후원은 전화(033-766-4933)나 은행계좌(기업은행 128-057814-01-022)를 이용하면 된다. 원주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코앞도 안보였는데…새 희망으로 눈부셔요

    코앞도 안보였는데…새 희망으로 눈부셔요

    “코앞도 제대로 안 보이니 연탄 구멍을 잘못 맞추는 일이 허다했지요.” 10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새빛안과병원 강남분원에서 백내장 무료수술을 받은 정경열(69) 할머니는 “그냥 안 보이는 대로 살아야겠거니 하고 지레 포기했었는데…이런 기회가 찾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서울신문이 창간 102주년을 맞아 새빛안과병원과 함께 추진하고 있는 무료 백내장 시술 행사를 통해 어두운 세상에서 불편을 겪어야 했던 소외계층들이 빛을 찾고 있다. 정 할머니는 새로운 세상을 보게 된 8번째 주인공이다. 정 할머니의 백내장 수술은 매우 우연한 기회에 이뤄졌다. 사실 서울 노원구의 추천을 받아 1차 시술 대상자로 선정된 것은 이웃집에 살고 있는 허련(70) 할아버지였다. 하지만 앞이 뿌옇게 보여 백내장이 심한 줄로만 알았던 허 할아버지의 병은 ‘익상편’으로 확인됐다. 미세먼지나 자외선 등의 자극으로 인해 눈 흰자에 살이 차오르는 것으로 ‘백태’로 알려져 있다. 정작 백내장 진단을 받은 것은 허 할아버지를 돕기 위해 병원을 함께 찾은 정 할머니였다. 안과에 온 김에 받아보자고 한 검사에서 양쪽 눈 모두 백내장이 심한 상태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정 할머니는 백내장뿐 아니라 좌우 시력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고도근시로 오랫동안 고생을 해오던 터였다. 기초생활수급권자인 정 할머니는 노원구 중계본동 달동네에서 월세 10만원짜리 단칸방에 혼자 살고 있다. 신발 한 켤레 들여놓을 곳 없는 3평짜리 방에 살며 연탄 한 장도 사회단체의 지원을 받아 겨우 겨울을 나는 형편이었다. 아파도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엄두를 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이날 왼쪽 눈에 백내장 초음파 유화술을 받은 정 할머니는 “일전에 안과를 갔을 때 백내장일지도 모른다는 진단만 받았고, 그저 노안이 심해지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다.”면서 “이제 수술을 받았으니 더이상 버스를 눈앞에 두고도 놓치는 일은 없겠다.”며 환하게 웃었다. 서울신문과 새빛안과병원의 도움으로 지난달 25일 왼쪽 눈의 익상편 수술을 받은 허 할아버지도 기초생활수급권자로 형편이 여의치 않아 병원에 가지도 못했었다. 허 할아버지는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5년 넘게 입원해 있다가 세상을 떠난 부인의 병수발을 하느라 재산을 모두 잃은 채 혼자 살고 있다. 정확한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 고생했던 허 할아버지는 “눈앞이 뿌옇게 보여서 항상 몸상태도 안 좋고 길 가다가 움푹 파인 곳에 걸려 넘어지기 일쑤였는데, 수술을 받고 난 뒤 너무 잘 보여 신기할 정도”라고 좋아했다. “우연한 기회에 큰 도움을 받게 돼 어떻게 다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처럼 경제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게 이런 좋은 기회가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어요.” 인생의 황혼에 접어들어 더 밝은 세상을 보게 된 두 노인의 얼굴에 어린 아이처럼 천진난만한 미소가 번졌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북 핵실험 임박했나] 국제사회 강경 대응 움직임

    |워싱턴 이도운·도쿄 이춘규·베이징 이지운특파원|국제사회의 북한 핵실험 선언에 대한 경고 및 경계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미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유엔안보리가 유엔헌장 7장을 포함하는 제재안 등 군사행동 불사까지 경고하고 있다. 경제적·외교적 제재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美 압박수위 높이며 공조 강화 미국은 대북 경제제재의 수위를 끌어올리기 위해 한국과 중국측에 북한에 대한 에너지공급 및 무역거래를 중단을 요구할 방침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 등이 8일 보도했다. 한국과 일본에 대한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 미국은 니컬러스 번즈 국무부 차관을 조만간 두 나라에 파견할 예정이다. 미국은 또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유엔 안보리 제재결의안을 제출하고 군사행동도 검토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철저한 봉쇄정책 준비하는 일본 일본은 북한이 핵실험을 실시하면 선박왕래 등 모든 수출입 등을 중단하고 철저한 봉쇄정책에 돌입한다는 강경 자세다. 또 일본은 미국과 함께 한반도 주변 공해상에서 핵 관련 물질을 적재한 혐의가 있는 북한 선박을 검문하는 방안에 관한 협의에 착수했다고 일본 언론이 8일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하면 북한 모든 선박의 일본 입·출항 금지 등 대북제재를 한층 강화할 방침이다. 기업들의 자발적인 대북제재 참여도 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신일본제철이 일본 정부의 대북제재에 동조하기 위해 최근 북한산 무연탄의 수입을 중단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중국 반응 중국의 대북 압력도 강화되고 있다. 중국은 지난 7월 북한 미사일에 대한 유엔 안보리 결의에 이어 지난 6일 북한 핵실험 계획 포기를 촉구하는 안보리 의장 성명에도 동참했다. 무엇보다 이번 의장 성명에의 동참 태도가 적극적이었던 점이 7월과는 다른 모습이다. 뉴욕타임스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에게 특사 파견을 요청할 계획인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대북 석유 및 식량 공급에 결정적 역할을 하고 있는 중국이 대북 경제제재에도 참여할 가능성까지 거론된다. jj@seoul.co.kr
  • [녹색공간] 유가가 50달러를 넘으면/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오랫동안 에너지 수요정책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소위 ‘에너지 맨’으로 세상을 살던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에는 세상 모든 것들을 에너지의 눈으로 보고, 석유환산톤(TOE)이니 에너지 절감이니 하는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 당시 했던 계산으로는, 이젠 오래된 통계이지만, 우리나라 산업계에서 석유 소비 1t을 줄이기 위해서 필요한 돈이 65만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난다. 그리고 교통 분야에서 줄이기 위해서는 80만원 그리고 가정에서 줄이는데 120만원 정도가 추산되었다. IMF를 즈음한 이 기간 동안에 원유 가격은 딱 한 번 있었던 배럴당 10달러대를 지나서 20달러대에서 가끔 30달러대를 왔다갔다 했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총에너지의 98% 정도를 수입하고 있었는데, 약간의 무연탄 생산과 폐기물 소각열에서 회수되는 지역난방 같은 것들이 우리나라에서 자체 공급되는 2%의 전부였다. 그 시절에는 풍력발전과 태양광 같은 것들이 조심스럽게 시범사업으로 추진되고 있었는데,‘재생가능에너지’ 혹은 ‘지속가능한 에너지’와 같이 미래 에너지의 주공급원으로 얘기되는 것들은 경제학의 시각으로 보면 ‘비싼 에너지’일 뿐이었다. 물론 환경개선과 같은 사회적 편익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개별 소비자에게 비싼 에너지를 사서 쓰라고 할 정도로 IMF를 넘어가던 우리나라 경제에 미래 에너지에 대한 고려는 서 있을 공간이 별로 없었다. 그 시절에 나와 동료들이 장관이나 총리 혹은 대통령 보고를 준비하면서 습관처럼 쓰던 말들이 “유가가 50달러를 넘으면….”이었다. 당시의 계산으로는 풍력발전이나 태양광 혹은 지열회수와 같은 기술에 공공 연구개발비를 투입하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원가계산과 수익률 계산을 할 필요가 있었는데, 유가가 50달러를 넘어서면 비로소 이런 기술들에 약간의 경제성이 생기기 시작하고, 태양광은 80달러를 넘어서면 경제성이 생기기 시작했다. 조금 긴 시각으로 본다면 이라크 전쟁이 전세계 경제에 미친 영향은 유가가 50달러를 넘어서고 70달러대에서 등락을 거듭하는,90년대에는 예측하지 못한 외부요소를 만들어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정도 유가라면 90년대에는 꿈의 기술로 불렀던 풍력발전이나 연비가 좋은 디젤의 환경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오염저감장치들이 대폭 보급될 것 같았고, 건물마다 분산형 전원을 설치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았지만, 사실 이런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 에너지가 일종의 ‘네트워크 산업’의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에서 의사결정을 미리 내리고 장기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면, 옳은 길이 어딘 줄 알면서도 단기간에 전환하기가 쉽지 않고, 과거의 균형에 갇히는 ‘잠김현상(lock-in)’이 벌어지는 대표적인 부문이다. 그래도 유가가 50달러를 넘어서면서 변화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민간 부문에서의 가장 큰 변화는 자전거가 자동차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전면에 등장하게 되고,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자출사’가 예전의 노사모만큼이나 하나의 세력으로 결집하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물론 그러다 보니까 서울과 같은 대도시에서 도로의 일부를 자전거에 양보하고, 위험한 커브길이나 교차로를 개선하자는 정책적 변화가 등장하게 된다. 민간의 변화다. 그런데 공공부문의 장관이나 정부출연기관의 CEO들의 관용차는 이 와중에도 더 커졌다. 시대의 흐름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100% 석유의존국인 우리나라에서 이 정도의 고유가를 이기기 위해서 관용차라도 크기를 줄이거나, 환경부장관이나 산업자원부 장관은 이제 곧 경차로 인증받을 ‘1000㏄ 경차’로 바꾸는 형식적인 노력이라도 해야 할 테지만 그런 논의는 거의 없다. 그런데도 세금 올리자고 하면 고개가 끄덕거려지지가 않는다. 우석훈 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 [사회공헌 우수기업 특집] 현대모비스-교통사고 유자녀에 장학금

    [사회공헌 우수기업 특집] 현대모비스-교통사고 유자녀에 장학금

    국내 최대의 자동차 부품 회사인 현대모비스는 2003년부터 ‘나눔의 기쁨’ 운동을 벌여오고 있다. 모든 임·직원들이 전국 사업장 인근의 사회복지시설과 자매결연을 맺고 매주 토요일이면 번갈아 봉사활동에 나선다. 고아원·양로원 등을 찾아 말벗이 돼주고 연탄도 배달한다. 해외법인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장쑤지역의 장쑤모비스 법인은 소리 없이 봉사활동을 벌여 ‘2004년 장쑤를 빛낸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매달 임·직원들의 월급에서 우수리를 뗀 금액과 이와 같은 금액을 회사에서 지원해(매칭 펀드) 만들어진 1억여원을 토대로 ‘사랑의 모비스 장학금’도 운영하고 있다. 부모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거나 1급 이상의 중증장애를 갖고 있는데도 정부나 사회단체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가정의 청소년들을 선발해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장학금을 지원한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이 거대한 ‘술통’속에선 술 한 방울 마실 수 없다

    이 거대한 ‘술통’속에선 술 한 방울 마실 수 없다

    글 박재곤《산따라 맛따라》저자, www.sanchonmirak.com ’대한민국 술박물관’에는 무려 34,000여 점의 민속주 자료와 전통 술 빚기 도구 등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다. 안성 서운산의 북쪽자락, 마둔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 313번 지방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스무 살 나이에 3·1독립선언서를 영역, 해외에 보내고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다’ 는 논개의 높은 절개를 노래한 수주 변영로(樹州 卞榮魯) 선생은 수필집 《명정(酩酊) 40년》을 남겼다. 명정(酩酊)의 명(酩)은 ‘술 취할 명(酩)이고, 정(酊) 또한 ‘술 취할 정(酊)’이다. 그러고 보면 ‘명정 40년’은 ‘술 취하고 술 취한 40년’이라는 뜻이겠다. 실제로 이 책을 읽어보면 몇 날 몇 밤을 앉은자리에서 꼬박 새우며 술을 마셨다는 얘기부터 배꼽을 잡고 웃어야만 할 ‘술 취한’ 얘기들이 수두룩하다. 조선일보에서 발행하는 월간 《山》에 등장하는 등산만화 ‘악돌이’도 이제 40의 나이로 접어 드는데 돌이켜 챙겨보니 어느 한 달 술 안 마셨던 달이 없었다. ‘악돌이’는 만화의 주인공이지만 만화를 그리는 박영래 화백 바로 그 사람이다. 악돌이는 천하에 이름 높은 술꾼이자 산꾼이다. 당연한 귀결이지만 그의 아내는 악처(惡妻. 岳妻)가 되었다. 홍두깨 같은 빨래방망이가 아니면 연탄집게를 하늘높이 쳐들고 남편의 뒤꽁무니를 따라 잡으려 악을 쓰는 악처다. 악돌이는 이 악처의 영역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친다. 그러고는 도망을 치듯 산으로 간다. 덕분에 악돌이는 세상이 알아주는 공처가가 되고 말았다. 등산 헬멧을 눈까지 가릴 정도로 깊숙이 내려쓰고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계속 범하면서도 어김없이 매달 산행을 하고 어김없이 술을 마신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장마 중의 나흘 동안 경기도 안성땅 서운산 주변을 헤매다가 마지막날 우리는 ‘대한민국 술박물관’이라는 거대한 술독으로 빠져들었다. ‘술박물관’이라는 ‘술독’에서 자꾸 떠오른 인물이 바로 수주 변영로 선생과 악돌이 박영래 화백이었다. ”술도 엄연한 하나의 문화인데 자취를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던 ‘대한민국 술박물관’에는 무려 34,000여 점의 민속주 자료와 전통 술 빚기 도구 등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다. 서운산의 북쪽자락, 마둔호수에서 멀지 않은 곳 313번 지방도로변에 위치해 있다. 국호 대한민국을 술박물관 이름으로 쓰고 있다기에 첫 느낌은 ‘지나치구나’ ‘건방지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랬지만 박물관을 둘러보고 박영국(朴泳國. 51) 관장을 만나보고서는 금방 그런 생각의 경솔했음을 뉘우쳤다. 슈퍼마켓과 술 도매점을 운영하며 술에 관한 남다른 애착을 가졌던 박 관장은 세상에 태어났다가 스스로 무엇 한 가지라도 남겨야겠다는 신념에서 23년 전부터 이 일에 매달렸다고 한다. 버려진 양조장이나 고물상을 닥치는 대로 뒤져가며 자료를 찾아 다녔다. 고물상에서 술병 하나를 찾으면 2~3일 동안 일을 도와 주고 그 병을 얻어 왔다고 한다. 남들이 하찮게 보는 병마개 하나 얻으려 외진 시골을 찾아가느라 십만 원 정도의 교통비를 뿌린 경우는 부지기수로 꼽았다. 이러한 과정을 거친 그에게 지금은 전국 각지의 고물상이 자료수집의 창구가 되어 있고 돈독한 친분이 쌓이게 되었다고도 한다. 참으로 엄청난 일을 한 그가 이제사 건물을 북향으로 지어 술병의 상표가 빛에 바래지지 않도록 하는 등 독특한 형태의 2층 건물에 박물관의 문패를 걸었다. 대한민국 술박물관에는 우리 술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박물관 1층에는 쳇도리(깔대기)와 소주를 받는 증류기인 소줏고리, 내린소주를 보관하는 기기인 술춘 등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 술빚기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고두밥을 짓고 발효시켜 청주와 소주를 만들어내는 전통주 제조과정도 한눈에 볼 수 있다. 2층에는 소주·맥주·와인·양주·전통민속주 등 다양한 술의 광고와 홍보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우리의 근대사에서 술이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한눈에 볼 수 있게 되었다. 민속주에 대한 기록이 담긴 조선주조사(朝鮮酒造史)와 조선시대 술에 대한 예법을 그린 향례합편(鄕禮合編) 같은 희귀본도 소장해 놓았다. 대형 술항아리들이 옹기종기 놓여 있는 옥외 전시장에서는 술꾼들의 추억과 흥미를 돋우는 장면들이 즐비하다. 전통주를 직접 빚을 수 있는 부뚜막 시설과 발효와 숙성과정을 거치는 술방에서 술빚기 시연을 보고 스스로 체험도 해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거대한 ‘술통’속에서는 술 한 방울도 마실 수 없다. 어디까지나 박물관일 뿐, 술을 마시는 주장(酒場)은 아니다. 전시된 34,000여 점의 자료들은 지금까지 모아 온 자료의 일부에 지나지 않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은 태산보다도 더 크다며 즐거워하는 박영국 관장. 그는 전통주를 보존 계승하는 일에 계속 몸과 마음을 다 바칠 것이며 술체험관광단지를 조성하겠다던 원대했던 꿈이 눈앞으로 다가오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수주’나 ‘악돌이’같은 당대 최고 주당들의 면면들도 자신의 술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임을 밝혔다. 문의: 031-671-3903     월간 <삶과꿈> 2006.09 구독문의:02-319-3791
  • [사회공헌 우수기업 특집] 신한은행-모든 영업점 릴레이 나눔사랑

    [사회공헌 우수기업 특집] 신한은행-모든 영업점 릴레이 나눔사랑

    신한은행은 2005년부터 은행 최초로 ‘사회책임보고서’를 발간하며 사회책임경영을 실천해 오고 있다. 신한은행은 ‘따뜻한 세상,‘밝은 세상,‘함께하는 세상’이라는 구호 아래 사회복지, 학술교육, 자원봉사, 환경보전, 문화예술, 체육진흥, 공익상품 개발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공헌 사업을 통해 기업의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지난 2004년 ‘신한은행 봉사단’(단장 신상훈 은행장)을 설립했다. 봉사단은 전통문화 보존, 아름다운 동네 가꾸기, 미래세대 육성이라는 기본 방향을 설정하고 모든 영업점에서 문화재지킴이 활동, 사회복지시설 자원봉사, 인간사랑 참여 캠페인, 결식아동 지원, 사랑의 연탄·김장 나눔, 긴급 재해복구 지원 등 릴레이식 나눔사랑을 실시하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삶의 기력이 쇠하걸랑 오세요

    삶의 기력이 쇠하걸랑 오세요

    # 왜 가을 전어인가 예로부터 전어는 맛좋은 생선으로 명성을 떨쳤다.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 보면 ‘가을전어 대가리에는 깨가 서말’이라는 말과 함께 ‘맛이 너무 좋아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는다 하여 ‘전어(錢魚)’라 불렀다.’고 기록해 놓았다. 그뿐인가.‘가을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가을전어는 며느리 친정 간 사이에 문 걸어 잠그고 먹는다.’‘전어 한 마리가 햅쌀밥 열 그릇 죽인다.’는 등의 속담도 전해내려 온다. 최근에는 ‘죽을 결심을 하고 강둑에 오른 사람이 가을 전어굽는 냄새에 자살을 포기한다’는 다소 엽기적인 말조차 들린다. 전어를 둘러싼 말의 성찬이 자못 대단하다. 왜 하필 가을 전어일까. 생선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지방함량. 즉, 지방이 가장 많은 철이 맛도 제일 좋은 때라는 말이다. 전어의 전체적인 영양성분은 계절별로 별다른 차이가 없지만, 유독 지방성분만은 가을이 되면 봄이나 겨울에 비해 최고 3배 가까이 높아진다. 봄철에 살코기 100g당 2g에 불과하던 지방이 가을이면 6g으로 올라가는 것. 가을에 먹는 전어가 유독 고소한 이유다. 충남 서천의 홍원항과 마량항 등에서는 전어축제가 열리고 있다. 싱싱한 자연산 전어를 맛볼 좋은 기회다. 오는 29일까지. # 달빛 한 쌈에 전어 한 쌈 전어는 15㎝내외로 자란 놈이 가장 맛이 좋다. 이보다 잔 놈은 물러서, 좀 더 큰 놈은 ‘터석해서’(푸석푸석하다의 서천지방 사투리) 맛이 덜하다. 전어를 먹는 방법은 회·무침·구이 등 세가지. 회로는 비늘과 내장만 제거하고 뼈째 먹는 ‘세코시’가 일반적이다. 그러나 간교한 것이 인간의 세치 혀. 세코시로 먹을 때 무엇을 첨가해서 먹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상추에다 고추·마늘을 얹고, 초고추장을 듬뿍 발라먹는 것이 좋다는가 하면, 초장과 상추는 아예 식탁에서 내려놓으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상추는 전어의 비린내를 전달해 주기 때문이고, 초장은 고소함의 상극인 식초가 들어갔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깻잎에 재래식 된장을 얹어 먹는 것이 좋단다. 입맛이야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아무래도 후자쪽에 점수를 주고 싶다. 깻잎, 양배추, 미나리, 배, 당근, 오이 등을 잘게 썰고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 내놓는 전어무침은 매콤달콤한 맛이 일품. 초고추장에 무채를 넣고 비벼 먹는 방법도 있다. 무에서 단맛과 물기가 나오기 때문에 전어가 더 고소해지고 맛있어진다. 무엇보다 전어요리의 최고봉은 소금구이. 내장째 구워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반드시 숯불이나 연탄 등 위에서 바로 굽는 직화구이여야 한다. 집나간 며느리를 ‘컴백홈’시킬 만큼 고소한 전어굽는 냄새는 바로 불포화지방산이 타는 냄새.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전어는 뒷지느러미를 제외하고는 어디하나 버릴 것이 없다.‘깨가 서말’이나 든 머리부터 뜯어먹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달빛 한쌈에 전어 한쌈’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여유있는 마음으로 전어요리를 맞이해야 함은 물론이다. # 어떻게 유통되나 전어는 다른 생선들처럼 수협공판장을 통해 위탁판매하지 않고, 대부분 소위 ‘배떼기’라는 독특한 판매방식으로 팔려 나간다. 중간상인이 특정한 배의 전어판매권을 독점하는 것. 일종의 입도선매다. 정정호 서면발전위원회 사무국장은 “전어는 뭍에 올라오면 얼마못가 죽어 버리기 때문에 판로가 없으면 아무리 많이 잡아도 소용이 없죠. 그래서 전어철이 시작되기 전 중간상인이 선주에게 전어대금은 물론, 선박의 유지·보수 등의 명목으로 선수금을 건네고 특정한 배와 독점계약을 맺습니다. 선주는 판로를 걱정하지 않아서 좋고, 상인은 전어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으니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유통경로가 늘어나면서 전어값도 덩달아 오른다는 것. 정 국장은 “항구에 배가 들어와도 미리 계약한 물차외에는 전어를 살 수가 없어요. 배에서 1㎏당 5000∼6000원에 받은 전어가 물차에 실려 몇 미터만 이동해도 1만∼1만 2000원까지 올라요.”라며 안타까워 했다. 전어를 실어나르는 물차에도 돈의 논리는 어김없이 적용된다. 한 배에 딸린 물차는 보통 3∼4대. 시급을 다퉈 배달해야 하는 전어의 특성상 가장 먼저 전어를 받을 수 있는 1번 물차는 그만큼 계약금도 많이 내야 한다. ● 여행정보 # 가는 길 : 서해안 고속도로 춘장대 나들목→21번국도 서천방향 우회전→3㎞→607번 지방도로→춘장대 해수욕장→홍원항 # 숙박업소 : 전어철이 되면서 홍원항과 마량항 주변의 숙박업소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장급 여관의 숙박료가 1박에 5만원 수준. # 가볼 만한 곳 :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마량리 동백정이나 한산모시관 등 널리 알려진 관광명소외에 가봐야 할 곳이 신성리 갈대밭. 영화 JSA의 촬영장소였던 곳이다. 금강을 따라 10만평에 달하는 광대한 갈대밭이 펼쳐져 있다. 바람이 갈대밭을 휘몰아 갈라치면, 쏴아∼하며 서로의 몸을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여름철 소나기 소리처럼 들린다. 간간이 우짖는 개개비의 울음소리와 어우러져 가을의 정취를 만끽하기에 그만이다. 서천군청 문화관광과 (041)950-4225.
  • 금강산관광단 1000여명 北측, 40분간 출발 막아

    금강산 관광단이 북한측에 의해 출발이 지연되는 일이 빚어졌다. 17일 현대아산과 금강산 방문객 등에 따르면 새천년생명운동 소속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북한측 초병과 불필요한 접촉을 했다는 이유로 조사를 받아 이날 오후 금강산에서 출발하려던 관광객 1000여명의 출경 수속이 40분쯤 지연됐다. 차 의원은 새천년생명운동의 연탄 보일러 공장 기공식 행사 참석차 방북했다. 이날 금강산 온천에서 온정각으로 향하는 중간 길목에 있는 북한측 초소 병사들에게 아이스크림과 땅콩 등을 전달하려다 북측의 반발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차 의원은 호의로 북한 병사들에게 아이스크림 등을 전달하려 했지만 북한측은 차 의원이 금품을 제공하려 한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제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강산에서는 북측 초병과 주민들과의 불필요한 접촉은 금지돼 있다. 이후 북측은 차 의원이 초병에게 아이스크림 등을 전달하려 한 경위를 조사했다. 남측으로부터 재발방지 약속 등 사과를 받는 선에서 사태를 마무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해프닝으로 관광객들은 당초 출발시각보다 40분쯤 늦어진 오후 5시40분 출발하는 불편을 겪어야 했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백내장 14명 새빛 찾는다

    서울신문이 창간 102주년을 맞아 경기도 일산의 새빛안과와 함께 추진하는 무료 백내장 시술의 1차 대상자가 14일 선정됐다. 서울의 자치구 추천으로 선정된 14명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권자와 독거노인 등으로 경제적인 이유로 어두운 세상에서 불편을 겪어야 했던 소외계층이다. 서초구 염곡동에 사는 김고방여(81) 할머니는 아들의 사업실패로 가족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지게 된 뒤 혼자 비닐하우스에서 생활하고 있다. 고혈압과 뇌졸중 등으로 고생하고 있는 김 할머니는 지난해 백내장 수술이 시급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자녀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할머니로서는 엄두도 낼 수 없었지만, 이번에 무료로 수술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광진구 중곡동에 사는 이오석(70) 할머니는 백내장 진단을 받은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하지만 자녀의 도움 없이 남편과 함께 연간 10만원을 내는 구유지에 거주하는 이 할머니는 아파도 그저 참을 수밖에 없었다. 겨울마다 연탄을 피우면 더욱 침침해지는 눈 때문에 불편을 겪었던 할머니도 이제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 일곱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백내장을 앓고 있는 중구 만리동 노진욱군도 이번에 수술을 받는다. 진욱이는 지난해 누나를 따라 안과에 갔다가 눈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간호사가 검사를 권해 백내장 진단을 받게 됐다. 하지만 허리 디스크가 있는 어머니가 일용직으로 버는 돈은 월 80만원뿐. 가족 6명이 먹고 살기도 빠듯한 형편이었다. 진욱이의 어머니는 “빨리 수술을 받지 못하면 실명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걱정만 하고 있었는데 무료로 수술을 받을 수 있게 해준다니 고마울 뿐”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이르면 다음주초부터 하루 5명씩 차례로 시술을 받게 된다.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멀쩡한 사람에 ‘시체 처리비’를 청구한 내막

    “나의 아버지는 이미 병이 다 나아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 멀쩡히 잘 계시는데,‘시체 처리비’를 청구하다니 이게 말이 됩니까?” 중국 대륙에 연탄가스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했다가 다 나아 퇴원한 사람에게 ‘시체 처리비용’를 청구한 ‘정신 나간 병원’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인민일보(人民日報) 자매지 경화시보(京華時報)는 베이징(北京)시 펑타이(豊台)구 둥톄잉(東鐵營)에 살고 있는 왕(王)모씨가 최근 연탄가스 중독으로 입원한 아버지가 퇴원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데,병원측이 ‘시체 처리비’가 미납됐다며 완납하라는 독촉장을 받아 주변 사람들이 황당해 하고 있다고 14일 보도했다. 이 사건은 지난 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왕씨의 아버지는 연탄가스에 중독돼 톄잉의원에 입원했다.그의 아버지는 병이 다 나아 퇴원하면서 병원비를 내고 영수증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전 톄잉병원으로부터 이상한 청구서를 한 장이 날아들었다.그 청구서에는 병원비중 ‘시체 처리비’가 미납됐으니,완납하라는 내용이었다. 왕씨는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 영수증을 살펴보니,‘시체처리비’ 1000위안(약 12만원)이 내지 않은 것으로 돼 있는 것이 아닌가.고대 톄잉병원으로 달려가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따졌다. 이에 병원측 관계자 리(李)모씨는 매일 많은 환자들이 퇴원하는 탓에 입원비 정산 자료가 섞여서 이런 혼란을 불러온 것 같다.”며 “그러나 영수증이 발행된 시간이 너무 오래돼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할만한 입원비 정산 자료를 찾을 수 없는 만큼 항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화가 난 왕씨는 “입원해 있던 아버지가 지금 멀쩡히 생활하고 계시는데 ‘시체 처리비’를 청구했다는 사실 자체에 분노가 치민다.”며 “마땅히 잘못 됐으면 고쳐야지,자료가 없다는 핑계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병원측이 이렇게 나오는 마당에 나도 더이상 두고 볼 수만 없다.”며 “이는 아버지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 행위인 만큼 명예회복을 위해 5000위안(약 60만원)의 배상금을 법원에 청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염주영 칼럼] 北광산 사재기, 제2 동북공정인가

    [염주영 칼럼] 北광산 사재기, 제2 동북공정인가

    구한말 서세동점(西勢東占) 시기에 우리는 외세로부터 숱한 약탈을 당했다. 약탈의 주된 목표물은 광산채굴권과 철도부설권, 항만조차권 등이었다. 약탈의 선봉에 러시아와 일본이 있었다. 그 때를 연상케 하는 일들이 한 세기가 더 지난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중국이다. 북한 내 주요 광산의 채굴권과 철도부설권, 항만개발권들이 하나둘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다. 심각한 경제난을 견디지 못한 북한이 부존자원들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있는 것이다. 경제협력이라는 미명 하에 경제침탈이 자행되고 있는 건 아닐까. 올들어 지금까지 중국에 넘어간 광산채굴권만도 10여건에 이른다. 아시아 최대 노천 철광인 무산철광, 북한 최대 무연탄광인 용등탄광, 혜산 구리광산, 만포 아연광산, 회령 금광, 평양 인근의 몰리브덴광 등이다. 특히 무산철광은 50년간 채굴할 수 있는 권리가 중국에 넘어갔다. 지린성 훈춘시는 나진항 3·4호 부두 50년 독점사용권을 확보했다. 투먼(圖們)∼함북 남양∼나진∼청진간 철도부설권도 들어 있다. 북한은 중국식 경제특구 모델 도입과 ‘7·1조치‘를 통해 경제재건에 안간힘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내자 동원은 불가능하고 외자유치 실적은 미미하다. 외화가 바닥나 사실상 국가부도 상태다. 경제재건에 필요한 외자조달을 위해 북한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마땅치 않았을 것이다. 자금난에 몰린 북한은 지금 부존자원을 헐값에 내다 파는, 하지 않아야 할 선택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문제는 팔려나간 이권들이 모두 민족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이라는 점이다. 팔아먹은 이권들은 북한이 그대로 안고 있어도 지금 당장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통일이 되면 남북한의 공동 번영을 위한 밑거름으로 한 몫을 해낼 자원들이다. 지금이라도 북의 풍부한 부존자원을 남쪽의 자본력·기술력과 결합시킨다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부도위기에 몰린 기업이 재고정리 왕창세일을 하듯 부존자원을 허겁지겁 내다 팔고 있는 북한의 모습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상황이 이런데도 마땅한 대처 수단이 없다는 이유로 수수방관하고 있는 정부당국의 자세는 더욱 한심하다. 중국은 왜 북한의 자원을 사재기 하고 있는 걸까? 우선 이권사업들이 그 자체로 경제적 잠재가치가 큰 알짜배기라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잠재가치가 큰 자원들을 선점함으로써 북한에 대한 경제적 지배력은 물론이거니와 정치적 지배력도 한층 강화할 수 있다는 계산일 것이다. 북한 붕괴와 한반도 통일 이후까지를 내다본 중국의 전략을 엿볼 수 있다. 게다가 중국은 지금 상대적으로 개발이 낙후된 지린성, 랴오닝성, 헤이룽장성 등 동북 3성을 대대적으로 개발 중이다.2020년까지 이 지역을 남쪽의 주장(朱江) 삼각주 지역에 버금가는 대규모 공업지역으로 육성할 계획이다. 이 계획의 수행에는 막대한 자원과 원자재가 소요된다.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수출하려면 철도·항만 등의 인프라 시설도 있어야 한다. 동북3성 경제권이 필요로 하는 원자재 공급기지와 수출품 수송 인프라를 북한에서 확보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북한을 동북3성 경제권에 편입하려는 것 같다. 고구려 유적지를 대대적으로 복원해 자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역사왜곡에 이은 제2의 동북공정이 아닐까. 관계당국의 심층적인 분석과 대응을 촉구한다. 논설실장 yeomjs@seoul.co.kr
  • [2006 세제 개편안] 年소득 1700만원이하 31만가구 최대 80만원 지급

    재정경제부가 21일 발표한 2006년 세제개편안은 저출산 대책과 사회안전망 확보를 염두에 둔 참여정부의 정책 의지가 담겨 있다. 자녀가 많은 근로자 가구일수록 소득공제 혜택을 많이 보게 한 것이나 저소득층 근로자를 위한 장려세제(EITC)를 도입한 게 대표적인 예다. 또한 변호사와 의사 등 고소득 전문층을 겨냥해 증세 논란을 희석시키면서 복지정책 재원을 마련하려는 의도가 깔렸다. 그럼에도 독신 가구나 자녀가 적은 맞벌이 가구 등은 세부담이 증가, 적지 않은 반발이 예상된다.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한 관세율 개편은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 눈길 끄는 개편안을 짚어본다. ●세파라치 도입·가산세 강화 내년부터 신용카드 사용이나 현금 영수증 발급을 거부하는 업소를 신고하면 건당 5만원의 포상금을 받는 이른바 ‘세(稅)파라치’ 제도가 도입된다. 신용카드로 거래할 때 추가요금을 요구하는 행위도 포함된다. 신고자는 증빙자료를 첨부해야 한다. 또한 탈세 제보도 신고 대상이 현행 5억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확대된다. 포상금은 1억원 한도에서 징수된 세액의 2∼5%이다. 아울러 세금을 신고하지 않았거나 적게 신고한 불성실 납세자에게는 가산세가 2∼4배 오른 40%로 중과된다. ●신규주택 비과세 특례제도 축소 외환위기 이후 침체된 건설경기를 활성화하기 위해 98년 5월부터 2003년 6월까지 지어진 주택에 부여한 비과세 특례 가운데 1가구 1주택 비과세 혜택은 내년 말까지만 인정된다. 즉 감면대상 신축주택 이외에 다른 주택을 1채 보유하고 있어도 지금은 1주택으로 간주, 양도시 세금을 물리지 않고 있지만 2008년 1월부터는 2주택자로 보고 양도세를 물린다. 다만 신축주택 구입 이후 5년간 발생한 양도차익에 대한 감면제도는 그대로 유지된다. 재경부는 감면대상 신축주택은 서울과 5대 신도시 등에 걸쳐 60만가구에 이르지만 현재 특례축소 대상 가구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양도시 실거래가가 6억원 이상의 고가주택은 감면대상이 아니다. ●근로장려세제(EITC) 도입 연간 총소득이 1700만원 이하인 근로자 가구는 해마다 최대 80만원을 현금으로 받을 수 있다. 차상위 계층의 근로 유인을 높이기 위한 것으로 생활보장제도 보호를 받는 기초 수급자는 대상에서 뺐다.EITC는 내년부터 도입하되 세금을 환급받는 세액공제의 일종이기 때문에 실제 지급되는 시기는 이듬해 8월이 된다. 무주택자이면서 18세 미만의 자녀를 2명 이상 부양하고 일반 재산 합계액이 1억원 미만인 31만가구가 우선 대상이다. 소득파악이 어려운 자영업자와 농어민 가구는 2013년부터 적용된다. 소득구간별 지원금액은 ▲800만원 이하이면 근로소득의 10% ▲800만∼1200만원은 80만원 ▲1200만∼1700만원은 1700만원에서 근로소득을 뺀 금액의 16%로 정했다. ●경조사 공제 확대 등 서민층 지원 부양 가족의 혼인이나 장례 비용은 건당 100만원까지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혼인은 20세 이하, 장례는 60세(여자는 55세) 이상으로만 제한하고 있다. 정부는 불합리한 조항이라며 연령 제한을 삭제,20세 초과의 혼인이나 60세 미만의 장례도 소득공제 대상에 포함시켰다. 내년 65세 이상인 고령자가 역모기지 대출을 받을 경우 이자 비용을 연간 200만원 범위에서 소득공제해 주기로 했다. 내년 1월1일 이후의 대출부터 적용된다. 아울러 상속받는 농지에 대한 증여세를 5년간 합산해 1억원까지 면제해 주고 3자에게 양도할 때에는 물려준 증여자의 취득가액을 기준으로 양도세를 과세하도록 했다. ●기본관세율 개편 국내 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품목간 세율의 불균형을 고치기 위해 1999년 이후 처음 개편했다. 수입에 의존하는 철광석과 아연, 유연탄 등은 1%에서 0%로 내리는 등 기초원자재 310개 품목을 조정했다. 이에 따라 관세가 없는 원자재 품목의 비중은 23.9%에서 54.5%로 높아진다. 원유, 액화천연가스(LNG), 액화석유가스(LPG)의 기본 관세율은 5%에서 3%로 인하되지만 유가가 안정될 때까지 원유 1%,LNG 1%,LPG 1.5%의 할당·잠정 관세율을 유지하기로 했다. 또 디지털 캠코더와 현상하지 않은 필름의 관세율을 8%에서 0%로 내리고 설탕은 40%에서 30%로 조정하기로 했다. 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부엌에 달린 베란다-Q여사에게 물어보셔요(53)

    며칠 전에 새로 지은 「아파트」에 이사했읍니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베란다」가 좀 마음에 안듭니다. 한방의 연탄아궁이가 이 「베란다」에 나 있기 때문에 「베란다」의 평면이 방보다 낮고 바닥이 「시멘트· 콘크리트」여서 맨발로는 나가기가 힘듭니다. 마루를 깔자니 아궁이 처리도 문제지만 물청소가 힘들어 곤란합니다. 부엌에 달인 「베란다」이기 때문에 물 청소를 하지 않으면 지저분합니다. <서울 용산 K > [의견] 아궁이 부분 이동식으로 마루를 고정시켜 깔지 말고 나왕으로 된 이동 「프로링」을 하는게 어떨까요. 「베란다」가 너무 깊이 내려 앉은 경우가 아니라면 아주 편합니다. 청소 때는 들어내고 할 수 있으니까요. 「베란다」가 아주 넓다면 옮기기가 불편할 테니까 1m 사방쯤의 크기로 여러쪽의 마루를 만들고 쪽을 맞추어 까는 것도 재미 있겠지요. 아궁이를 덮는 부분도 물론 따로 들어 낼수 있도록 합니다. 이 「프로링」이 귀찮으면 각목(角木)을 얼기 설기 버티고 그 위에 「베니어」판을 덮은 뒤 「아스·타일」을 까는 「프로링」도 권할만 합니다. 이 경우 바닥에 딱 붙여야 하므로 평면(平面)을 높일수는 없읍니다. 물 청소에 「아스·타일」은 적격입니다. 이경우도 아궁이 부분만은 들어 낼 수 있도록 이동식 마루가 돼야겠지요. 나왕은 1평에 인건비 포함 2천원쯤, 「아스·타일· 프로링」은 역시 인건비 포함 2천원쯤입니다. <Q> [선데이서울 69년 12/7 제2권 49호 통권 제 63호]
  • 사진으로 제2인생 허형구 전 법무부장관

    사진으로 제2인생 허형구 전 법무부장관

    노을이 산과 벌판을 덮기 시작한 저녁. 백로 한 마리가 석양을 물고 둥지로 돌아온다. 새끼는 목이 빠져라 고개를 들어 어미를 부르고 기다림 끝에 짝을 만난 백로 한 쌍은 정에 겨운 듯 고개를 한껏 젖힌다. 온종일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허형구(80) 변호사는 그때를 놓칠세라 렌즈의 초점을 맞춘다. ●검찰 근현대사의 산증인 허 변호사는 1926년 김해에서 태어났다. 김해평야로 유명한 그의 고향은 겨울이면 넓은 벌판을 가로질러 찬바람이 쌩쌩 불던 곳이었다. 수문을 넘어가 조개를 줍고 가을이면 도랑에서 미꾸라지를 잡아 끓여 먹던 추억이 깃든 곳이기도 하다. 책읽기를 좋아했던 그는 초등학교를 마친 뒤 가정형편 때문에 진학을 포기하고 공장에서 직공생활을 했다. 그후 독학으로 부산대학에 들어갔으며 제2회 고등고시에 합격했다. 부산대 출신으로 고시에 합격한 것은 허 변호사가 처음이었다. 6·25 직후인 1953년 부산지검에서 검사로서 첫발을 뗀 허 변호사는 “법과 원칙을 무엇보다 중시했던 시절이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부산에 근무할 때 3·15 부정선거와 관련해 시위를 벌이던 김주열군이 진압하던 경찰이 쏜 최류탄에 맞아 사망한 사건을 수사해 공산당의 폭동선동이라는 조작·은폐 시도를 파헤쳤다. 그는 “말못할 압력도 있었지만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수사했다. 그뒤 4·19혁명을 보면서 민중의 힘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30년간의 검사생활 끝에 1981년 제17대 검찰총장과 88년 제38대 법무부장관을 지낸 그는 검찰 근현대사의 산증인이다. 그는 “민주화와 사회발전, 통치권자의 생각도 진보해나가고 발전해가는 측면도 있지만 요새 검찰이 중립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검찰의 중립은 밥그릇 문제가 아니라 헌법정신의 기본인 삼권분립 차원에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5공화국 시절 검찰총장으로 근무하면서 이른바 ‘저질연탄 사건 수사’로 9개월 만에 총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던 그가 강조하는 검찰의 중립성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는 “수사에 대한 뒤숭숭한 소문이 있은 뒤 얼마 전까지 수사를 칭찬했던 대통령이 어느날 검찰에 책임을 물으라는 지시를 내렸다. 검찰 고위간부가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게 좋겠다고 했으나 결국 물러나기로 했다.”며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이후 6년가량 변호사로 활동하다 다시 노태우 정부 때 다시 나라의 부름을 받았다. ●백로와 사랑에 빠진 팔순의 사진작가 허 변호사는 사진을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검사 생활하는 틈틈이 사진을 즐겨 찍었다. 답답한 도심을 떠나 복잡한 사건을 잊고 자연의 품에 안겨 스트레스를 풀어보자고 시작한 사진이었다. 하지만 공직에서 떠난 그에게 사진은 제2의 인생을 선물했다.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난도 길러봤지만 사진만 한 매력은 없었다. 사진동호회에 가입해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아직은 아마추어’라며 겸손해하지만 좋은 풍경과 벗할 수 있다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을 만큼 열정만은 프로다.“법률은 강직하게 사회를 지켜야 하고 예술은 부드럽게 세상을 보듬어줘야 한다. 사진 한 장에 낭만을 담고 싶다.”며 사진에 대한 철학을 밝혔다. 허 변호사의 사무실에는 각종 법률서적과 더불어 사진관련 서적, 필름뭉치와 벽에 걸려있는 풍경 사진들이 눈에 띈다. 어려서부터 문학 책을 좋아했던 터라 그의 사진에는 ‘토지’,‘메밀꽃 필무렵’ 등 문학작품의 무대가 자주 등장한다. 또 안개에 둘러싸인 숲, 이슬을 머금은 꽃 등 자연도 단골손님이다. 팔순의 사진작가는 특히 백로와 사랑에 빠졌다.“백로 사진은 상당히 찍기 어렵습니다. 좋은 장소에서 오래 참고 기다린 사람에게만 그 자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단순한 사진 한 장이 아닙니다.”자신의 일생을 회상하듯 “고고하면서도 거만하지 않고 거만하지 않으면서도 올곧은 자태를 렌즈에 담고 싶었다.”고 말하는 노신사의 머리에도 백로가 내려앉았다. 백로를 사진에 담기 위해 밟아보지 않은 서식처가 없을 정도로 여행을 많이 다녔다. 그는 백로 사진을 위주로 전시회를 세 차례나 열었고 지난해 7월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백로와 무학 그리고 사계비경’이라는 제법 규모있는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올초에는 대검찰청 로비에서 전시회를 열고 후배 검사들에게 그동안 갈고 닦은 사진실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그는 현재 한국사진작가협회 운영자문위원직도 맡고 있다. 허 변호사는 “3∼4월이면 백로가 오기 시작해 5∼6월초까지 많이 찍는다. 하지만 요즘은 백로 서식지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백로가 사람을 피해 숨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디카’보다는 아날로그가 더 매력 허 변호사는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지금은 손자·손녀만 20여명이 넘는다. 자신의 손자·손녀 또래의 젊은이들이 월드컵을 맞아 거리에서 펼치는 응원을 보고 있자면 그들이 조국에 애착을 갖고 있는 것 같아 기쁘다. 그의 눈에 비친 젊은 세대는 ‘열정’ 그 자체다. 해방과 6·25, 산업화와 민주화를 겪어온 허 변호사는 이들에게 “기다릴 줄 알아라.”고 조언한다. 허 변호사는 “디지털 카메라도 좋지만 필름으로 찍어서 현상하며 기다려야 하는 아날로그에도 비교할 수 없는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좋은 사진은 시간과 장소가 맞아야 하며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참아야만 찍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좌우명은 “물방울이 돌을 뚫는다.”는 수적천석(水滴穿石)이다.“물 방물 하나하나는 약하지만 수없는 세월 동안 견디고 노력하면 언젠가는 돌을 뚫듯 하고자 하는 일을 이루려면 참고 노력할 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팔순에 접어든 허 변호사는 요금 건강이 예전같지 않아 오전에만 법무법인 사무실에 나와 근무하고 오후에는 산보 등을 하며 건강을 관리한다. 그는 “사진에 빠져 곁을 비웠어도 지금까지 싫은 내색을 안한 아내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검찰과 법무부의 총수까지 지낸 그에게 욕심은 없다. 다만 “다시 한번 기회가 주어지면 일생을 정리할 수 있는 전시회를 열고 싶다.”는 게 그의 작은 소망이다. ■ 허형구 변호사는 ▲1948년 부산사범학교 졸업 ▲1952년 부산대 법과대 졸업 ▲1953년 부산지검 검사 ▲1966년∼서울지검부장, 대전·부산지검·서울지검 차장검사 ▲1974년 청주지검장 ▲1981년 검찰총장 ▲1988년 법무부 장관 ▲1990년 변호사(현) ▲저서 검찰실무, 주석형사소송법(3권)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Book & Life] 열화당 35주년과 베스트셀러

    [Book & Life] 열화당 35주년과 베스트셀러

    지난 2일 출판사 열화당이 창립 35주년을 맞았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놀란 게 세 가지 있다. 기념책자에 실린 출판 총목록의 면면이 그 첫째요, 그런 면면으로 수익을 내며 굳건히 생존해 있다는 게 두번째, 그리고 조촐한 출판사 규모가 세번째다. 열화당이 미술과 전통문화 관련 양서를 많이 냈다는 것 정도야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다. 하지만 출판사도 수익을 내야 하는 기업인데, 그 오랜 기간 이른바 ‘베스트셀러’라고 명함을 내밀 만한 책이 눈에 띄지 않으니 어찌된 일인가. 미술 출판사의 길을 모색하던 시절 ‘주머니속의 꽁트’ 등 ‘주머니속∼’시리즈 수십권을 내 10만부쯤 팔았다는 게 최고 기록이다. 70년대 중반 미술이란 게 영 생뚱맞게만 느껴지던 시절,‘한국에도 이런 출판이 가능한가.’란 놀라움을 주었다는 ‘미술문고’와 ‘미술선서’ 시리즈를 시작으로, 열화당의 책들은, 한결같이 상업주의와는 거리를 두었다. ‘한 권을 내도 단단하게 내자.’‘섣불리 다른 데 눈돌리지 말자.’는 지극히 단순한 철학으로 책을 만들어왔다는 이기웅 대표. 요즘도 ‘한국기층문화의 탐구’‘현대미술운동총서’‘열화당 사진문고’ 등의 시리즈들을 내고 있는 걸 보면 변덕스러운 트렌드에 눈 돌리지 않는 그 고집과 강단이 놀랍다.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저자의 내공과 지적 향기 가득한 책들을 찾는 마니아들이 적지 않으니 출판사가 망할 리 없다. 그렇다고 큰 돈을 벌지 못하니 덩치를 키우기도 어려울 것이다. ‘열화당’의 식구는 이 대표까지 총 10명.35년 역사와, 그간 우리 문화예술계에 쌓아온 평판으로 볼 때 사실 예상치 못했던 작은 규모다. 하지만 열화당은 ‘작아서’ 아름답게 느껴지는 출판사다. 규모를 지향해왔다면 지금과 같은 고순도의 출판목록이 가능하기나 했을까. 섣부른 추측일 수 있으나 이 대표는 어쩌면 규모의 논리에 의해 열화당의 순도가 떨어질까봐 작은 덩치를 고집하는지도 모른다. 무한경쟁의 환경에서 소신에 의한 출판을 찾아보기 어려워진 요즘, 베스트셀러 없는 열화당 35주년은 보기 드문 경사다. 서양화가 임옥상이 그린 축하 그림 속의 연탄불 같은 온기로 차갑게 식은 우리사회의 지적 풍토를 따뜻이 덥혀주었으면 한다. 열화당과 이기웅 대표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낸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 서초 법조단지 주변 고도제한 완화

    서초 법조단지 주변 고도제한 완화

    서울 서초동 법조단지 인근 주택·사무실 지역의 고도제한이 현재 5층 이하에서 7층 이하로 완화됐다. 서울시는 지난 5일 제12차 도시계획위원회를 열어 서초동 법조단지 남쪽의 서초동 1702 일대 11만 3700㎡(3만 4394평)의 고도제한을 완화하는 내용의 도시관리계획 변경안을 통과시켰다고 6일 밝혔다. 이에 따라 현재 ‘5층,18m 이하’인 이 일대 고도제한은 ‘7층,28m 이하’로 변경됐다. 이 일대는 1980년 법조단지가 들어선다는 이유로 ‘최고고도지구’(고도 제한이 있는 지역)로 묶였다. 이 일대는 제2종 주거지역으로 본래 7층 높이까지 지을 수 있었지만 이 일대 ‘랜드마크’인 20층짜리 법원·검찰청 건물을 가린다는 이유로 5층 이하로 묶어 놓은 것이다. 이번 결정으로 인해 이 일대에 건물을 새로 짓거나 증축할 때 지금보다 높이를 더 올릴 수 있게 된다. 시 관계자는 “법조단지가 원래 7층 이하인 제2종 일반주거지역인데다 영동 부도심의 발전 추세와 법조단지 일대의 높은 개발 수요를 반영해 고도제한을 완화했다.”고 설명했다. 위원회는 또 중랑구의 새로운 중심지 기능을 담당할 중랑구 상봉동 73의 10 일대 ‘망우 균형발전 촉진지구’의 일부를 1·3종 주거지역 및 준공업지역에서 근린상업지역으로 바꾸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이 지역은 서울시가 청량리 부도심 보조기능과 경기 동북권의 광역중심지 기능을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 12월 균형발전촉진지구로 지정했다. 이 일대는 강원산업연탄공장 부지로 망우 균형발전 촉진지구 50만 5738㎡(15만 2985평) 가운데 3만 5000㎡(1만 587평)가 근린상업지역으로 바뀐다. 시 관계자는 “이 지역이 경춘선 시발역사가 될 망우역 민자역사 추진과 함께 중랑구의 새로운 중심지 기능을 담당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주변지역의 활성화와 중심성 강화를 위해 근린상업지역으로 변경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이와 함께 중구 만리동 2가 176의 1 일대 만리 제2주택재개발 예정구역 5만 9054㎡(2만 888평)의 용도지역을 일부 변경하는 내용의 도시관리계획 변경안도 통과시켰다. 이로 인해 1·2·3종 일반주거지역과 일반 상업지역이 혼재된 이 일대를 2종(층고 12층) 주거지역 중심으로 통일한 뒤 용적률 190%, 최고 15층까지 아파트를 지을 수 있도록 했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서울 자치구 새얼굴] 정동일 중구청장 당선자

    정동일 중구청장 당선자는 ‘자수성가’한 중견 기업의 최고 경영자(CEO) 출신이다. 중학교를 중퇴한 뒤 상경해 자동차 정비사·운전기사와 과일행상 등을 하며 학업을 마쳤고, 지금은 전세계에 체인점을 둔 굴지의 중견 기업인으로 성공했다. 성공한 CEO가 일선 구청장으로 변신한 것은 ‘배 고팠을 때 보리밥 한 그릇 준 사람의 은혜를 절대 잊지 말라.’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말씀 때문이다. 그의 성공 발판이 된 ‘제 2의 고향’인 중구 발전을 위해 뭔가 보탬이 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다. ●유년시절의 고생이 인생의 전환점 그는 5살 때 어머니가 오랜 투병 끝에 돌아가시면서 궁핍하고 힘든 어린시절을 보냈다. 집안형편 때문에 국가재건사업의 일환으로 만들어진 재건중학교에 진학했지만 학교가 문을 닫아 중학교도 마치지 못한 15살 때 상경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날’(현재 어버이날)이 되면 아이들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았는데, 어머니가 있는 아이들은 빨간 카네이션을,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은 하얀 카네이션을 달았죠. 친구들이 ‘너 엄마가 없구나.’라는 말을 할 때마다 너무 서러워 아직도 가슴에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집안이 넉넉했다면 아마 지금의 내가 아닌 평범한 삶을 살았겠지요.” 이런 어려움들이 자신을 강하게 만든 것은 물론, 어려운 이웃들을 돌아보게 했다. 그는 당선 직후 맨 먼저 양로원과 고아원 등 관내 사회복지시설과 재래시장을 방문하기도 했다. ●아내는 내 인생의 등대 서울로 올라온 그는 월급도 없는 자동차정비소에서 일을 하며 기술을 배웠다. 당시 운전면허자가 귀했던 탓에 군입대해 장성의 운전병으로 발탁됐고, 제대후 모 기업 이사의 운전기사로 취직했다. 여기서 같은 직장에 근무하던 아내 용옥화씨를 만났다. 당시 돈 한푼 없었던 자신을 택한 아내는 단칸방에서 신접살림을 하며 하루 연탄 한 장으로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도 자신을 믿고 따라줬다. 그는 과일행상과 안주 배달 등을 하며 돈을 모았고,1990년 명동에 ‘둘둘치킨’이라는 조그만 치킨점을 냈다. 이 가게는 전국에 300여개가 넘는 체인점과 미국과 일본 등 전세계 7개국에 진출한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아내는 제 인생의 ‘등대’입니다. 지난 27년 동안 내가 힘들어 좌절할 때면 올바른 길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할 때도 제 뜻을 믿고 따라줬습니다.” ●세계적인 중심구로 만드는 게 목표 그는 1998년 중구의회 제 3대 구의원에 당선되면서 지역사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2002년에는 서울시의회 보궐선거에서 당선되는 등 지역사회 봉사에 앞장섰다. “구 발전을 위해 그동안 쌓아온 경영 노하우를 풀어놓을 생각입니다. 낙후된 중구를 대한민국, 더 나가 세계적인 중심구로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구민들이 저에게 기회를 준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먼저 도심 재개발 사업을 통해 도심에 미국 맨해튼의 록펠러센터처럼 중구를 상징할 초고층 빌딩 건설을 추진할 생각이다.70∼80층 이상 초고층 건물을 만들어 강북의 ‘랜드마크’를 만든다는 복안이다. 또 특목고 유치, 사회보장 시스템 확대, 남산에 테마공원, 청계천에 자전거 도로 설치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는 구민들과 더 많은 유대관계를 갖기 위해 구청장실을 1층으로 옮길 생각이다. 조현석기자 hyun68@seoul.co.kr ■ 프로필 ▲출생 1954년 전북 무주 ▲학력 동국대 경영학과, 북한학과 졸업, 동국대 행정대학원 석사 3학기(지방자치 전공), 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 3학기(정치행정 리더십 전공) ▲경력 일동인터내셔널(프랜차이즈 둘둘치킨 회장), 동국대 총동창회 부회장, 중구경제포럼 이사장, 중국 옌볜대 객좌교수, 중국 지린대 겸직교수, 제 3대 중구의원,5·6대 서울시의원, 한나라당 서울시당 부위원장 ▲저서 희망을 튀겨내는 치킨 아저씨 ▲가족관계 용옥화씨와 1남2녀 ▲취미 등산, 독서 ▲존경하는 인물 이병철, 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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