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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김영란法’ 세밀히 다듬어 위헌소지 없애야

    세월호 참사 관련 후속조치로 주목받아 온 ‘김영란법’, 즉 ‘부정청탁 금지 및 공직자의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안이 결국 5월 임시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어제 국회 정무위가 법안심사소위를 열어 몇몇 쟁점들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으나 끝내 여야 간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우리 사회의 고질적 부패 구조를 끊기 위한 목적의 ‘김영란법’은 굳이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관피아’의 해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 당위성에 있어서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2012년 8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입법예고한 뒤로 2년 가까이 논의를 이어온 만큼 공론화의 과정도 충분했다고 본다. 여야가 5월 국회 처리에 실패하고 다음 달 새로 구성될 19대 후반기 국회에 처리를 넘긴 것은 그래서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다만 ‘김영란법’은 그 내용이 워낙 중차대할 뿐더러 국민 일상에 미칠 영향이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신속한 처리 못지않게 실효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따라서 기왕 법 제정을 늦춘 만큼 세월호 정서나 시간에 쫓기기보다는 남은 쟁점들을 더욱 면밀하게 가다듬어 위헌 소지나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어제 국회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여야가 합의한 내용은 대체로 평가받을 만한 수준이다. 쟁점인 법 적용 대상에 있어서 국·공립학교 교사뿐 아니라 사립학교, 사립유치원 교사를 포함시키고 언론기관도 정부가 출자한 KBS·EBS뿐 아니라 모든 민간 언론사 종사자로 확대하기로 한 점은 교원 간 형평성과 언론 본연의 공익성을 감안할 때 마땅하다고 본다. 이 합의로 법 적용 대상자 수가 186만명에 이르고, 이들의 가족까지 포함하면 최소 550만명에서 최대 1786만명가량에 이른다니 사회 전반에 미칠 법안의 영향력이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대가성이나 직무 관련성이 없더라도 공직자가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하도록 한 국민권익위 원안을 여야가 수용하기로 한 것도 환영할 대목이다. 그동안 법무부는 대가성 없는 금품수수까지 처벌하는 것은 헌법의 ‘죄형법정주의’나 ‘과잉금지원칙’에 어긋난다며 반대했으나 관피아의 토양이 돼 온 비리 대부분이 직무대가성 입증이 어려운 맹점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이는 반드시 관철돼야 할 사안이다. 다만 어제 여야가 마땅한 해법을 찾지 못한 ‘이해충돌 방지’ 방안과 ‘부정청탁 금지’ 관련 조항은 ‘김영란법’ 원안이 위헌적 소지를 지니고 있는 만큼 향후 면밀한 보완이 요구된다. 공직자가 본인 및 가족, 친족 등과 이해관계가 있는 직무를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이해충돌 방지 조항은 공직자 가족의 직업 선택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헌법상의 ‘연좌제 금지’와 명백히 충돌하는 것으로, 위헌 소지가 없도록 제한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 부정청탁 금지 역시 관피아 척결에 있어서 필수적이나 국민의 청원권을 제약하고 정당한 민원 제기를 위축시키는 일이 없도록 세밀하게 다듬어야 한다. 공직후보자의 불법은 엄격히 법으로 규제하면서 정작 공직자의 불법을 규율할 법안은 변변찮은 모순된 현실, 공직자 비리에 국민 안전이 위협받는 현실은 이제 끝내야 한다. 여야는 다음 달 후반기 국회 구성직후 위헌 소지가 없는 ‘김영란법’을 제정할 수 있도록 내부 논의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제주도지사] 원희룡 vs 신구범

    [광역단체장 유력후보 분석-제주도지사] 원희룡 vs 신구범

    ■ 원희룡 후보, ‘島心’ 택한 중앙통 원희룡 새누리당 제주지사 후보는 16대 총선에서 서울 양천갑에 출마해 당선된 이후 내리 3선을 했다. 2007년 대선과 2010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번번이 당내 경선에서 고배를 들었다. 그런 그가 이번 6·4 지방선거에서 수도권이 아닌 고향 제주에 출마하자 대권을 향한 우회로를 택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이에 원 후보는 “중앙 정치에서 쌓은 정치적 자산을 제주를 먼저 변화시키는 데 활용한 뒤 나중에 국가 발전에 매진해 달라는 도민들의 염원에 따른 것”이라는 논리로 응수했다. 원 후보는 1964년 제주 서귀포시 중문동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쌀밥 구경을 하기 힘들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웠다. 그의 부모는 고무신 장사, 잡화상, 농약방, 서점 등을 운영하다 망하기를 반복하며 빚 독촉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원 후보는 어릴 적 리어카 바퀴에 오른쪽 발가락이 끼어 거의 잘릴 뻔한 사고를 당하고도 돈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때 발가락 2개가 뒤틀리는 장애를 얻어 ‘군 면제’를 받았다는 것이다. 원 후보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길이 ‘공부’라고 믿었다. 변변찮은 책상 하나 없어 사과 상자를 책상 삼아 공부했다. 여건은 열악했지만 그의 학업 성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학창 시절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1982년 제주제일고를 졸업한 원 후보는 학력고사 전국 수석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화제가 됐다. 그는 대학 시절 학생운동에 참가하면서 6개월간 유기정학을 당하는 등 잠시 학업에 소홀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 스타일의 원 후보는 1992년 사법시험에서 수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도 정치권에서는 원 후보의 학창 시절 공부 실력 얘기가 나올 때마다 “시험 성적으로 대통령을 뽑는다면 원 후보가 당선될 것”이라는 우스개가 따라붙을 정도다. 원 후보는 거대한 사회악과 싸워 보겠다는 각오로 법원이 아닌 검찰행을 택했다고 한다. 1995년부터 4년간 서울지검·수원지검·부산지검 검사로, 이후 2년간 변호사로 활동했다. 그 시점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 동시에 영입 제의가 들어왔다. 선택을 놓고 고민하던 그에게 운동권 출신으로 한나라당에 몸담고 있던 김부겸 전 의원(현 새정치민주연합 대구시장 후보)이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넘치는 민주당에 한 방울 더 보태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며 한나라당행을 권유했고 원 후보도 “보수 정당을 개혁하는 게 한국 사회에 던지는 파장이 더 크겠다”는 판단 아래 제의에 응했다고 한다. ‘우등생 중의 우등생’ 출신이었던 원 의원은 초선 때부터 정치권의 기대를 모으면서 ‘잘나가는’ 정치인 반열에 올랐다. 이회창 당시 총재로부터 “당의 개혁을 주도해 달라”는 주문을 받기도 했다. 재선 의원이었던 2004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시 3선 의원이었던 박근혜 대통령에 이어 2위를 차지하며 40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최고위원에 오르는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는 이어 당 사무총장 등의 주요 요직을 거쳤으며 2007년 대선 후보 경선에서는 당시 후보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 대통령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2011년 6월 전당대회에서는 2012년 19대 총선 불출마라는 배수진을 쳤고 4위로 최고위원에 당선된다. 그러나 그해 10월 재·보선 때 일어난 디도스(DDoS)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유승민, 남경필 의원과 함께 최고위원 자리에서 물러났다. 원 후보가 고향인 제주로 ‘정치적 회귀’를 감행한 것은 ‘첫 제주도 출신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 삼기 위한 결단이라는 게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해석이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신구범 후보, ‘安心’ 품은 제주통 “신구범은 제주의 자존심을 대표하는 선한 싸움꾼입니다.” 신구범 새정치민주연합 제주지사 후보는 늘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신 후보는 1942년 제주 북제주군(현 제주시) 조천읍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찢어지게 가난했던 그는 학비를 벌기 위해 무작정 상경해 서울 용산역에서 손님을 끄는 호객꾼(삐끼) 노릇을 하기도 했다. 제주 오현고를 나와 육사에 진학했으나 4학년 때 결혼하기 위해 중퇴했다. 육사 생도는 재학 중에 결혼을 할 수 없다. 신 후보는 낙향해 농사를 짓다가 1967년 독학으로 행정고시에 합격해 제주도청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제주도 기획관, 지역계획과장으로 재직하면서 중문관광단지 개발 계획, 한라산국립공원 지정 등의 지역 숙원 사업들을 해결했다. 1974년에는 6년간 제주도청 근무를 끝내고 중앙 부처인 농림부로 전근한다. 축산국장, 농업정책국장 등의 요직을 거쳐 기획관리실장에까지 올랐지만 공직 생활이 순탄했던 것만은 아니다. 친·인척 가운데 일본 조총련에서 활동했던 사람이 있던 탓에 공직 생활 초기에는 ‘신원 특이자’로 분류돼 승진에서 계속 누락되는 쓴맛을 봤다. 그는 이 같은 연좌제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유학을 통해 역량을 강화한 그는 이후 주이탈리아 대사관 농무관으로 발령받았다. 이탈리아에는 유엔식량농업기구(FAO)가 있어 농무관 겸 FAO 한국 측 교체수석대표로 활동하는 기회를 잡는다. 이는 농림부 축산국장에 오른 배경이 됐다. 축산국장 때인 1989년 말 한·미 소고기 협상 한국 측 수석대표를 맡은 그는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다. 당시 미국은 자국산 소고기 수입을 밀어붙였지만 그는 끈질긴 협상력을 발휘해 저지시켰고 축산농가와 축산업자들의 열렬한 환영과 지지를 받았다. 이 덕분에 그는 뒷날 축협중앙회장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1993년 그는 관선 제주도지사로 금의환향했다. 1995년 첫 지방선거 때는 무소속으로 출마해 임기 3년이던 첫 민선 제주도지사에도 올랐다. 그는 관선과 민선 도지사 4년 3개월간 제주도지사로 재임하면서 제주삼다수, 관광 복권,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제주 교역, 제주세계섬문화축제 등의 업적을 남겼다. 1998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당이던 국민회의(새정치연합의 전신) 경선에서 패하자 탈당해 무소속으로 도지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2002년에는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역시 낙선했다. 축협중앙회장 때인 1999년 농·축협 강제 통합 입법에 반대하며 국회에서 할복하기도 했다. 친환경 농축산물 매장 ㈜삼무(三無)를 설립하기도 했으나 ‘30억원 뇌물 수수’ 혐의로 그가 2년여를 감옥에서 보내는 사이 도산했다. 그는 이번 지방선거 전 제주도 내에 퍼져 있는 ‘제주도지사 세대교체론’의 퇴진 대상 인물로 꼽혔다. 그러나 “도지사선거를 겨냥한 신종 공작 음모”라며 출마를 단행했다. 국민회의를 탈당했던 전력과 보수 정당인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한 이력들이 야권 후보로서의 대표성에 흠이 된다는 지적을 받는다. 신 후보는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에서 ‘새 정치’를 표방하고 있다. 안철수 새정치연합 공동대표 측 인사로 분류되는 그는 “낡은 정치판에 뛰어들어 원칙과 정의의 싸움을 불사하고, 밟히고 상처받으며 패배의 길을 감내한 정치적 경험을 가질 때 비로소 새 정치는 가능하다”는 논리로 호소하고 있다. 신 후보는 외교, 국방, 사법을 제외한 국가의 모든 권한을 제주지사가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받는 완전 분권과 읍·면·동장은 주민자치의회를 구성해 자치의회에서 선출하는 완전 자치 시대를 열어 특별자치도를 완성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춘규 선임기자 taein@seoul.co.kr
  • 자녀 복수국적 땐 대사·총영사 못 한다

    자녀 복수국적 땐 대사·총영사 못 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올해 춘계 재외공관장 인사에서 복수국적(이중국적)자인 자녀를 둔 고위 외교관 4명에 대해 자녀의 한국 국적 회복과 병역의무 이행을 조건으로 특명전권대사에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재외공관장(대사 및 총영사) 인선에 자녀의 복수국적 문제를 연계한 건 처음이어서 이 같은 방침이 정무직 등 정부 인사 전반으로 확대될지 주목된다. 청와대는 정기 공관장 인사에서 현재 미주·유럽 등의 공관에서 차석대사로 재직 중인 공관장 후보 4명으로부터 자녀들의 국적 정리와 병역의무 ‘이행 확약서’를 제출받고 대사에 내정한 것으로 9일 확인됐다. 이 확약서는 인사 기록으로 남으며, 이들 내정자의 자녀들은 미국 국적을 보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역대 정부의 대사·총영사 인사 과정에서 자녀의 복수국적 정리와 병역이행을 확약받은 사례는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안보와 외교 기밀을 다루는 공관장의 경우 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한다는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와 정부 등의 복수 관계자는 “자녀의 복수국적 취득 논란이나 병역 회피 가능성이 있는 경우 이를 정상화하지 않으면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거나 배제한다는 정책적 판단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녀의 복수국적 문제가 공관장 인선의 검증 요인이지만 이를 명문화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헌법상 기본권 침해와 연좌제 논란 등을 감안해 제도화하기보다는 개별 인사의 판단 요인으로 선별 적용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 국가공무원법에는 인사 당사자가 복수국적자인 경우만 국가안보 및 보안·기밀 분야, 외교 등 국가 간 이해관계가 관련된 분야는 국가 기관장 임용을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공개한 병무청의 ‘고위공직자 직계비속 중 국적 상실 병적 제적자 명단’에서 현 정부의 고위공직자 15명의 복수국적자 아들 16명이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병역을 면탈한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우리나라는 복수국적을 제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현 국적법상 만 20세 전에 복수국적자가 된 경우에는 만 22세까지, 남성은 병역의무를 위해 만 18세 3개월까지 하나의 국적만 선택해야 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자녀 이중국적도 고위직 검증 잣대로

    박근혜 대통령이 재외공관장 임명에서 공직자 자녀의 복수국적(이중국적)과 병역이행 문제를 연계한 건 ‘비정상화의 정상화’ 정책 기조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직업 특성상 자녀가 복수국적을 갖게 된 외교관뿐만 아니라 타 부처 공직자, 국회 동의를 요구하는 정무직 인사에서 자녀의 복수국적과 이를 악용해 병역을 회피하는 문제가 개선돼야 한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대사와 총영사 등 재외공관장 인사권자인 박 대통령이 처음으로 복수국적 및 병역이행 문제를 검증한 것 자체가 앞으로 자녀의 외국국적 취득 논란이 제기되거나 병역 회피 문제가 불거지는 인사는 원천 배제할 수 있다는 경고로 풀이된다. 아울러 외국 국적의 자녀를 둔 경우 공관장 임무 수행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될 때는 불이익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9일 “국회와 국민 여론으로도 지적된 외교관 자녀들의 국적 문제를 방치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의 이 같은 기조가 재외공관장뿐 아니라 총리와 장관 등 정무직 인사와 타 부처 인선에도 확대될지 관심이다. 공관장 인사에만 불이익을 주는 건 타 부처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또 국회 동의 과정을 거치는 총리 및 장관 등 정무직 발탁에서 자녀의 복수국적과 병역이행 문제가 검증 요인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역대 인사청문회에서 총리와 장관 직계비속의 복수국적 문제는 늘 도마에 오를 정도로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고위 공직자 아들들이 국적 이탈을 통해 병역을 회피하는 건 국민 정서상 용납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핵심 검증 사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일반 재외동포의 복수국적 문제와 복수국적을 가진 공직자 아들의 병역 문제는 별개의 사안이라는 인식이다. 하지만 정부는 자녀의 복수국적 문제를 제도화해 고위직 인사에 적용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개별적으로 복수국적 취득 상황이 다양하고, 자녀 문제로 부모에게 책임을 묻는 건 연좌제 논란에다 위헌적 요소도 있다는 판단이다. 이 때문에 별도 규정으로 제도화하기보다는 대통령 재량으로 검증 과정에서 엄격한 기준을 적용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2011년 국적법 개정으로, 해외 우수 인재의 국내 유입을 위해 복수국적의 허용 범위를 확대한 것처럼 지속적으로 개선할 방침이다. 현재 만 65세 이상 재외동포에게는 복수국적이 허용되며, 연령을 더 낮추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사설] 2금융권 대주주심사 채근하는 동양·효성사태

    금융감독원이 어제 동양증권의 회사채 및 기업어음(CP) 부실판매 의혹에 대한 국민검사 청구를 받아들였다. 검찰의 효성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도 속도를 내고 있다. 동양·효성 사태는 금융 계열사가 모기업의 사(私)금고로 전락하면 국민경제가 어떤 고통을 겪게 되는지 여실히 일깨워줬다. 따라서 이제라도 증권·카드 등 2금융권 대주주의 자격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 금융사를 거느릴 자격이 있는지 주기적으로 점검하자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는 현재 은행과 저축은행에만 적용되고 있다. 이를 2금융권까지 확대하자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금융위원회가 관련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실현되는 듯했으나 재계의 거센 반발 등에 부딪혀 표류 중이다. 동양그룹은 망하기 직전까지 동양증권, 동양캐피탈, 동양파이낸셜대부 등을 동원해 수조원대 자금을 끌어모으고 돌려막았다. 효성그룹의 조석래 회장 일가는 효성캐피탈에서 200억원대 부당대출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로 인해 수만명의 개인투자자들이 피눈물을 쏟고 있다. 자금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유동성 위기가 거론되는 다른 대기업들도 저마다 금융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제2의 동양이 나오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믿을 구석은 사전에 위험을 차단하는 것이다. 근본 해법은 산업자본과 금융자본 간 칸막이를 치는 금산분리다. 금융지주사 설립이든 의결권 제한이든 금산분리는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일단 대주주 적격성 심사라도 먼저 도입해야 한다. 그룹 오너가 친인척이나 제3자를 앞세워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한 사례를 숱하게 봐 온 만큼 특수관계인 배제 등이 포함된 원안에서 대폭 후퇴한 수정법안은 다시 손봐야 한다. 연좌제나 재산권 침해 등 재계의 우려도 충분히 감안해 결격사유와 처분내용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것이다. 어떤 핑계를 대건 안이한 감독과 뒷북 규제로 동양사태 피해를 키웠다는 책임론에서 자유롭지 못한 금융당국이 조금이라도 잘못을 벌충할 기회다. 재계도 지분 매각 명령 등 극단적인 경우를 앞세워 마치 적격성 심사가 도입되면 당장 삼성이 삼성생명을 팔아야 하는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자체 투명성 확보 노력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 재계가 그토록 강조하는 글로벌 잣대로 견줘봐도 영국, 일본, 독일 등은 이미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상)민간인 학살 경산코발트광산 르포

    [정전협정 60년] 현재진행형 비극 (상)민간인 학살 경산코발트광산 르포

    장맛비가 퍼붓던 지난 4일, 경북 경산시 평산동의 폐(廢)코발트광산. 일제가 군사용 코발트를 확보하려고 1930년대 채광을 시작해 1942년 폐광된 동굴 입구는 냉동 창고 문이라도 열어 놓은 듯 한기를 쏟아냈다. 안전모를 쓴 채 몸을 잔뜩 웅크리고 들어선 갱도 바닥에는 광산 내부에서 흘러나온 물이 고여 있었다.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고 침침한 전구 불빛에 언뜻언뜻 드러나는 붉은색의 갱도 옆 벽면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꼭 온도 때문만은 아닌 듯했다. 100여m를 더 들어가자 수직으로 뚫린 또 하나의 굴과 연결됐다. 동행한 경산코발트광산유족회 박의원 대표가 말문을 열었다. “수직 동굴 저 위쪽에서 6·25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들이 사람들을 줄줄이 묶은 채 총으로 쏴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수직 동굴 높이가 50m 정도인데 시체로 가득 차 더는 못 떨어뜨리게 되니까 나중에는 골짜기 이곳저곳에 시체들을 묻었다고 해요. 동굴에서 기관총 탄피나 수류탄 흔적도 발견됐어요. 산 채로 떨어진 사람들을 확실하게 처리했던 모양이에요.” 1950년 7~8월, 이곳에서 민간인 3500명이 군경에 의해 집단 사살된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들은 경산, 청도 등지의 국민보도연맹원 1000여명, 대구형무소 수감자 2500여명 등이다. 앞서 1949년 이승만 정부는 좌익에 전향 기회를 주겠다는 명분으로 보도연맹을 만들었다. 1년 만에 보도연맹원 숫자는 30만명을 웃돌았다. 지역 할당제가 떨어지자 빨치산의 짐을 날라 주고 밥을 해 주고 심부름을 해 줬던 이들까지 보도연맹원으로 엮어 넣은 탓이다. 하지만 전쟁이 터지자 이승만 정부는 보도연맹원이 인민군과 동조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동시다발적으로 집단 학살에 나섰다. 1950년 여름, 남한 전역 수십여 곳에서 벌어진 학살 중 대전 산내 골령골과 더불어 가장 희생자가 많은 곳이 바로 경산이다. 1990년대부터 경산코발트광산 사건 규명에 천착해 온 최승호 경산신문 대표는 “정말 논매고 밭매다 붙들려 간 억울한 분들도 있겠지만 희생자 대부분이 보도연맹원인 것은 맞다”면서도 “하지만 살아남으려고 어쩔 수 없이 단순 부역을 했던 분들이다. 전쟁 중이라고 해도 법적 근거 없이 죽임을 당할 죄는 결코 아니었다”고 설명했다. 1960년 4·19혁명 이후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면서 국회는 진상 규명에 착수했다. 하지만 이듬해 5·16쿠데타가 일어나면서 ‘없던 일’이 됐다. 유족들은 군사정권의 서슬에 ‘빨갱이’로 몰릴까 봐 숨을 죽였다. 2000년대 들어 유족회와 시민단체 등이 유해 발굴에 나섰지만 정부와 경산시는 뒷짐만 졌다. 2005년 비로소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기본법’이 제정되면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발굴에 나서 420여구를 수습했다. 이전까지 유족회가 발굴한 유골이 80여구다. 그동안 이곳에는 골프장과 노인요양병원이 들어섰다. 하지만 수십~수백m 떨어진 폐광과 골짜기에는 여전히 3000여구의 유골이 방치된 상황이다. 2010년 특별법 종료와 함께 발굴은 중단됐고, 그나마 유족들이 발굴한 80여구마저 임시 컨테이너에서 조금씩 부식되고 있다. 2010년 진실화해위 보고서는 ‘5·16 이후 유족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받으며 현재까지 사회적 약자로 살아오고 있으며, 특히 연좌제로 인한 사회적 차별로 정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유가족 300여명은 지난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121억여원의 배상 판결을 받았다. 하지만 국가의 항소로 2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남편을 잃은 10여명의 부인들을 비롯한 유족들은 정전 60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의 비극을 겪고 있다. 나정태 유족회 부회장은 “3000여구의 유골도 수습해야겠지만 시급한 건 컨테이너에 보관된 탓에 빠르게 훼손되고 있는 80여구를 처리하는 문제”라면서 “충북대에 보관 중인 420여구도 내년까진 옮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국군 유해 발굴 사업처럼 하기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우리도 똑같은 국민”이라면서 “유골을 모아 합동 화장을 하고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장소와 작은 기념관 정도는 세울 수 있도록 정부가 나서 주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경산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개인 신용등급의 오해와 진실

    소득이 낮은 사람은 당연히 신용등급도 낮을까. 그렇지 않다. 신용등급을 결정할 때 소득 수준이나 수신정보(예금·펀드 등)는 고려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28일 신용평가업체인 코리아크레딧뷰로(KCB)에 따르면 개인 신용등급은 연체 여부(25%), 부채 수준(35%), 거래 기간(16%), 신용 형태(24%) 등에 따라 결정된다. 나이스신용평가정보도 연체 여부(40.3%), 부채 수준(23.0%), 거래 기간(10.9%), 신용 형태(35.8%) 등에 따라 신용등급을 매긴다. 연체를 적게 하고 과도한 빚을 지지 않는 게 신용등급 관리의 기본이다. 금융기관과의 거래 기간이 길고 저축은행보다는 시중은행을 이용하는 게 유리하다. 금융회사들은 대부분 두 신용평가회사의 신용등급을 동시에 활용한다. 2001년 10월 이전에는 신용조회 이력이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개인신용평가 때 신용조회 이력 정보를 반영하지 않기로 했다. 신용등급을 여러 차례 조회하면 신용등급이 떨어진다는 얘기는 틀린 얘기라는 뜻이다. KCB 관계자는 “최근 3년간 신용거래가 전혀 없던 사람이 자기 신용등급을 조회할 경우에만 일부 평가에 반영한다”면서 “그 외의 사례라면 2011년 10월부터는 신용평가를 여러 차례 조회하더라도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세금이 체납된 경우엔 어떨까. 핵심은 500만원이다. 법원의 공공기록 정보가 신용등급에 영향을 미친다. 국세·지방세·관세를 500만원 이상 체납하면 여기에 등록된다. 499만원을 체납했다면 신용등급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500만원을 체납하면 신용등급에 악영향을 미친다. 신용등급에 ‘연좌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남편의 신용등급이 낮더라도 부인의 신용등급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금융기관이 대출 심사를 할 때 신용평가는 개인에 국한된다. 연체 대금을 다 갚았다고 해서 신용등급이 곧바로 오르는 건 아니다. 연체 기록은 일정 기간 보존돼 신용평가에 영향을 준다. 10만원 이상의 금액을 5영업일 이상 연체할 경우 이 정보가 금융회사에 공유된다. 90일 이상 연체했을 경우 신용정보법에 따라 상환일로부터 5년간 신용평가에 활용될 수 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사설] 재계, 경제민주화 탓만 말고 투자 성의 보여야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엊그제 경제5단체장과 만났다. 국세청장, 관세청장, 공정거래위원장 등 경제사정기관장들을 대동하고서다. 객관성과 중립성 시비를 야기하기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부총리는 회동을 강행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때려잡자’는 식의 세무조사와 불공정행위 조사를 자중하겠다는 공개 약속이다. 경제민주화 속도조절론을 사실상 수용한 셈이다. 앞서 정부는 SK종합화학의 울산 공장 설립을 가로막던 ‘손톱 밑 가시’ 등 투자 관련 규제를 대거 풀어주었다. 융·복합산업과 서비스 관련 규제 완화 중심의 2단계 투자 활성화 대책도 곧 내놓을 방침이다. 이제는 재계가 성의를 보일 차례다. 삼성·현대차 등 국내 10대 그룹의 올 3월 말 현재 현금성 자산이 147조원으로 집계되었다. 지난해 말 대비 10.9% 늘어난 수치다. 반면 투자는 18조 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7% 줄었다. 여전히 현금을 쌓아놓은 채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부총리와의 회동 자리에서도 재계는 경제민주화 탓에 투자를 할 수 없다는 예의 주장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을과 함께하는 경제’는 재계도 공감했던 명제다. ‘라면상무’가 시끄럽고 ‘막말우유’가 문제 되니 순간의 비난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내뱉은 허언(虛言)이 아니라면 경제민주화 부작용 타령은 그만두어야 한다. 총수 일가 회사에 무조건적으로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행위는 뿌리 뽑아야 할 병폐다. 이를 법과 제도로 규제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표현대로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로잡는 과정이다. 물론 과잉입법은 걸러내고 자의적 규제가 되지 않도록 법망을 촘촘히 짜야한다. 어제 국회 정무위를 통과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만 하더라도 재계가 반발했던 ‘30%룰’(총수일가 지분이 30%가 넘으면 일감 몰아주기에 총수가 관여한 것으로 간주)은 빠졌다. 금융연좌제 논란을 낳고 있는 대주주 적격 심사제의 친인척 및 특수관계인 조항도 빠질 공산이 높다. 우리는 또 한 명의 재벌총수가 검찰에 불려가는 것을 보았다. 비자금 조성 등 ‘비리 백화점’이라는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혐의 앞에서 국민들의 반감은 커져가고 있다. 조세피난처로 간 기업인들의 이름이 나올 때마다 평범한 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과 분노도 높아지고 있다. 반(反)기업 정서의 책임에서 재계도 결코 자유롭지 못한 만큼 ‘탓’은 그만하고 투자와 고용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
  • 법 체계와 국민정서 사이… 與 ‘전두환 추징법’ 딜레마

    새누리당이 ‘전두환 딜레마’에 빠졌다. 야당이 내놓은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한 추징법안 처리를 놓고 ‘법 체계’와 ‘국민적 정서’ 사이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새누리당은 ‘부정축재’를 저지른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을 추징·몰수하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고 있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의 장남 전재국씨가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의혹 등이 추가로 나오면서 국민적 반감이 더욱 커지고 있어서다. 법제사법위 소속 김도읍 의원은 “우리나라 국민 중에 전 전 대통령의 불법재산에 대한 추징금을 환수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라고 말했다. 이런 점만 보면 전두환 추징법의 국회 처리에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야당이 내놓은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안’ 등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에 담긴 ‘범인의 직계존비속에 대한 추징안’에는 반대하고 있다. ‘연좌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당내 율사(律士)들의 반대가 세다. 검사 출신의 김 의원은 “민주당은 전 전 대통령이 반역죄인이니까 그의 가족의 재산까지 털어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법만큼은 비정치적으로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판사 출신의 홍일표 의원은 “전 전 대통령 한 명의 재산을 몰수하기 위해 법 도입하면 다른 일반 국민들의 법적 안정성과 사유재산권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해당 법이 전 전 대통령만 타깃으로한 ‘감정이 담긴’ 입법안이라는 지적이다. 새누리당은 검찰에 추징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을 새롭게 부여하는 방향으로 공무원범죄몰수법을 고쳐 입법화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이에 민주당은 “불법으로 취득한 재산이 가족에게 넘어갔다는 개연성이 클 때에 한해서만 추징한다”면서 “위헌 소지가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민주당 법사위 간사인 이춘석 의원은 “전 전 대통령의 추징시효가 오는 10월 만료되지만 검찰이 양복 한 벌이라도 가져오면 시효가 다시 3년이 더 늘어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그렇더라도 국민의 법 감정에 따라 조속한 처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여야 ‘전두환 추징법안’ 논의 시작…가족 추징 놓고 “연좌제 성격” 이견

    여야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기 위한 법안 처리를 놓고 처음으로 머리를 맞댔다. 그러나 추징 범위에 대한 의견이 엇갈려 6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19일 법안심사1소위를 열어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안’에 대한 논의를 본격화했다. 관련법은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을 비롯해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 부패재산 몰수 및 회복 특례법 개정안 등 8개로, 모두 야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몰수·추징 시효 10년으로 연장 ▲가족에 대한 몰수·추징 ▲100일 이내 노역장 유치 또는 감치 명령 등의 내용이 담겼다. 여야는 법안소위에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을 총괄하는 대안을 만드는 것에는 합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정된 8개 법안의 내용이 상당수 겹치기 때문이다. ‘추징금 미납자를 노역장에 유치한다’는 조항은 민주당 측이 일단 안건에서 제외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중 처벌 논란 탓이다. 추징 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연장하는 것은 새누리당이 ‘검토’ 의견을 내비치며 민주당 제안을 사실상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족에 대한 추징안과 관련해서는 견해가 갈렸다. 새누리당 위원들은 “가족에 대한 추징은 연좌제 성격이 짙어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에 검찰이 추징할 수 있는 권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민주당 위원들은 “추징 범위에 가족을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고 맞선 것으로 알려졌다. 여야는 오는 25일 법안1소위를 다시 열어 논의를 이어 가기로 했다. 한편 환경노동위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를 정부가 지원토록 하는 내용의 ‘가습기 살균제 흡입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제정안’을 여당의 반대 속에 상정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행복한 100세를 위하여] (2부) 일하는 노년을 꿈꾸다 ⑦4대 적을 극복하라

    [행복한 100세를 위하여] (2부) 일하는 노년을 꿈꾸다 ⑦4대 적을 극복하라

    10평 남짓한 작은 임대 아파트에는 전자기타 2대와 통기타 1대가 놓여 있었다. 군데군데 악보들도 눈에 띄었다. 지난 11일 인천 부평구 삼산동 집에서 만난 지연영(79·여)씨는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던 사람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밝은 표정이었다. 기타와 음악 이야기를 하는 1시간 내내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지금이요? 우울할 틈이 없어요. 신곡 나올 때마다 악보 새로 따야죠, 기타 연습해야죠, 살림도 해야지. 하루가 얼마나 빨리 가는데요.” 일산노인종합복지관에서 호수실버밴드를 창단한 것은 2001년 5월이었다. 이곳에서 밴드 활동을 하기 전 지씨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개인파산 신청을 한 직후였다. “괴로웠죠. 세상이 날 버린 거 같았어요. 난 왜 태어났나. 세상이 원망스러웠고….” 지씨는 연좌제의 그늘에 묶여 결혼하지 않고 홀로 살았다. 예순줄에 들어서자 갑자기 외로움이 밀려왔다. 자식은커녕 친척붙이 하나 없었다. 가난도 그를 괴롭혔다. 집도 없이 친구네 집을 전전했다. 수렁에서 구해준 것은 음악이었다. 지씨는 1965년 국내 최초의 여성밴드인 ‘세븐 시스터즈’의 창단멤버다. 10년 동안 음악을 했지만 멤버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그만뒀다. 이후에는 꽃꽂이, 일본어 번역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극심한 우울증에 세상과 동떨어져 살던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노인복지관에서 밴드를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밴드 연습을 하는 목요일에는 인천에서 버스와 전철을 몇 차례 갈아타고 3시간 걸려 일산에 도착한다. 그래도 지치지 않는단다. 지씨는 “밴드 연습하러 갈 때마다 친구들도 만나고 기타도 칠 생각에 신이 난다. 절대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밴드는 66~87세 노인 6명(남자 4명, 여자 2명)으로 구성돼 있다. 지씨는 밴드의 터줏대감이다. 몇몇 멤버들은 세상을 떠났다. 호수실버밴드는 흘러간 가요부터 최신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를 연주한다. 지씨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베사메무초’다. 한 달에 세 번 정도 노인복지관 등 각종 행사에 공연을 가는 그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고등학교에 공연하러 갔을 때다. “학생들이 우릴 보고 환호하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우리 같은 늙은이들도 쓸모 있다는 게 신나잖아요.” 지씨는 지금도 수입이 없고 봉양해 줄 자식도 없지만 “행복하다”고 말한다. 공연을 하고, 무대에 서고, 음악을 흥얼거리는 생활이 그를 지탱하게 한다. 지씨는 “이제는 우울증이 다가올 틈이 없다”면서 “아파도 자연 치유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지씨는 시간이 남아돈다고 경로당에서 고스톱만 치지 말고 뭔가를 배우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한다. “저는 인터넷 사용법도 자진해서 배웠어요. 100세까지 산다고 하잖아요. 70세 노인이 지금부터 배우면 30년은 써먹을 수 있어요.” 100세 시대의 필수 조건은 건강이다. 그중에서도 노년의 4대 적으로 ‘우울증’, ‘비만’, ‘술’, ‘담배’가 꼽힌다. 우울증은 정신건강을 해치고, 비만·술·담배는 각종 성인 질환을 일으킨다. 지난 12일 찾아간 서울 마포구 창전동의 시립 마포노인종합복지관은 진지한 수업 열기로 가득했다. 이곳에는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이 있지만 ‘건강’ 관련 강좌가 단연 인기다. 신주애 사회복지사는 “건강체조, 에어로빅, 댄스스포츠, 라인댄스, 한국무용, 요가 수업에는 수강생이 항상 몰린다”면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이 짝을 이루는 춤 종류가 특히 인기”라고 귀띔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한 시간 동안 열리는 건강체조 교실은 강사도 노인이다. 주옥남(78·여)씨는 13년째 이곳에서 체조를 가르치고 있다. 시작할 때만 해도 수강생 중 한 명이었던 주씨는 어느 날 강사가 “할머니 정말 잘하시는데 앞에 나와서 해보시라”고 말하면서 보조 강사가 됐고, 얼마 후 정식 강사로 자리잡았다. 고혈압을 앓고 있어 혈압약을 꾸준히 먹어야 하지만 건강체조를 하면서부터 악화되지 않았단다. 주씨는 “과도하게 무리하지 않으면서 운동할 수 있어 건강에 좋다”면서 “체조를 배우는 학생들의 표정을 보면 나도 신난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건강체조는 단순 동작으로 구성돼 있지만 노래마다 동작을 달리해 노인들에게 인기다. 차차차, 트위스트, 탈춤, 에어로빅 등을 접목했다. 가수 DJ DOC의 ‘DOC와 함께 춤을’에 맞춰 체조할 땐 어깨와 팔을 양쪽으로 흔드는 가수의 춤을, 설운도의 ‘사랑의 트위스트’에서는 트위스트 춤을 추는 식이다. 뾰족구두를 신거나 치마를 입은 노인들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간단하고 쉽다. 강좌에 참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노인들은 어깨춤을 추면서 스트레스를 풀기도 한다. 무대에서 시범을 보이는 주씨는 연신 “힘껏 쭉쭉 펴세요. 잘 못해도 괜찮습니다. 자신있게!”를 외쳤다. 한 시간 동안 체조를 하고 나면 땀에 흠뻑 젖는다. 심근경색을 앓다가 친구의 추천으로 건강체조를 시작한 이현규(75)씨는 “올해 초부터 체조를 했는데 폐활량이 늘어나 심근경색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면서 “노인에게 건강보다 중요한 것이 있겠느냐”고 말했다. 김채(76·여)씨는 며느리의 추천으로 올해 초부터 건강체조 강좌를 들었다. 시장 다녀오는 것도 힘들 정도로 다리 힘이 없었던 김씨는 최근에 부쩍 근육이 붙은 것을 느낀다. 김씨는 “우리끼리 단체로 체조하고 끝나고 수다도 떠니까 정신까지 맑아지는 기분”이라면서 “또래 노인이 강사를 하니까 더 친근하게 느껴지고 열심히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여야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해야”

    여야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해야”

    국회 대정부 질문 마지막 날인 13일 교육·사회·문화 분야에서는 ‘역사 교육’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여야는 한국사 교과서 이념 논란에 대해 공방을 벌였지만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있어서는 한 목소리를 냈다. 새누리당 이노근 의원은 “보수 성향의 학자들이 집필한 검정 교과서에 김구 선생이 테러리스트로 표현됐다는 뜬소문을 민주당이 사실인 양 퍼뜨렸다”고 꼬집었다. 이 의원은 “최근 검정 심의를 통과한 교과서를 놓고 ‘극우 교과서’라는 루머가 유포되고 전교조는 불매운동을 벌일 태세”라면서 “여기에 야당까지 나서서 해당 교과서를 ‘왜곡 교과서’로 낙인찍으려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앞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지난 10일 대정부 질문에서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백범 김구 선생이 테러리스트냐”고 질의한 뒤 “뉴라이트 교과서에 이렇게 적혀 있고 이것이 통과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교과서는 올해 8월 말 최종 채택되기까지 검정 결과를 공개할 수 없는 상황이고 해당 내용도 허위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최근 검정 과정 중인 일부 고교 한국사 교과서가 ‘12·12 군사쿠데타’를 ‘12·12 사태’로 표기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붙은 ‘역사 왜곡 논쟁’도 국회로 옮아왔다.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대부분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는 5·18 당시 계엄군이 시민군을 향해 발포한 사실을 게재하지 않고, 고교 교과서들은 12·12 군사쿠데타를 12·12 사태로만 표기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이런 역사 왜곡을 방조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로 반(反)민주 세력의 역사 왜곡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면서 “역사 논쟁이 불거지면 박근혜 정부 임기 내내 극심한 분열과 갈등만 생길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사를 대학수학능력시험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야 모두에서 나왔다. 이용섭 의원은 “아이들이 이완용의 매국 행위에 분노하고 성삼문, 안중근의 충절을 배우면서 정의감과 애국심을 키워 가야 함에도 대학입시에 매몰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대입에서 외면받고 있는 한국사를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누리당 이명수 의원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면서 “말로만 역사가 중요하다고 할 게 아니라 정부가 청소년들의 역사관 확립을 위해 ‘한국사 수능 필수과목 지정’을 직접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말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환수 문제도 잇따라 제기됐다. 민주당 안민석 의원은 “전 전 대통령 자녀의 재산을 모두 합치면 1000억원이 넘는다”면서 “국회에 제출된 추징금 시효를 연장하는 ‘전두환 추징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추징금은 징역 등 본형에 대한 부가형인데, 본형을 집행하고 부가형인 추징을 집행하면서 그게 안 됐다고 해서 징역(형)을 내리면 이중처벌 금지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고 답했다. 이어 “가족에게 책임을 물리는 문제도 연좌제나 자기책임주의에 반하지 않느냐는 이론적 논란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16세에 고문 당해 정신질환까지… 45년만에 풀린 연좌제 족쇄

    ‘베트남전 국군포로 1호’ 안학수 하사의 동생 용수씨가 45년만에 법정에서 억울함을 풀었다 1964년 베트남에 파병된 안 하사는 66년 사이공(현 호찌민)으로 외출했다가 실종됐다. 이듬해 정부는 ‘자진 월북했다’는 북한 평양방송 보도만을 근거로 안 하사가 탈영해 월북했다고 단정하고 안 하사 가족들의 동향을 살피기 시작했다. 보안사 요원들은 당시 16세 불과했던 용수씨에게 감당하기 힘든 폭력을 휘둘렀다. 보안사 사무실로 끌려가 머리에 양동이를 덮어 쓴 채 발길질을 당하기 일쑤였다. 고교에 진학 뒤에도 어김없이 보안사 요원들이 찾아왔다. 요원들은 용수씨의 머리채를 잡아 고춧가루를 탄 물에 집어넣거나 야전삽으로 구타했다. 집에 쌀이 늘어난 사실을 말하면서 접선하는 간첩이 누구냐며 윽박지르기도 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요원들이 찾아오지 않으면서 고통은 사라지는 듯했다. 하지만 연좌제의 덫에 걸린 상처는 그대로 남았다. 초등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는 강제로 사직당했고, 용수씨는 서울교대를 졸업해 교사 자격증을 따고서도 교단에 설 수 없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와 반복성 우울장애 등 정신질환과 함께 고문 후유증도 앓았다. 용수씨는 형이 실종된 지 33년만인 2009년 월북자가 아닌 ‘베트남전 국군포로 1호’로 인정받자, 그동안 보안사로부터 받은 고문에 따른 정신질환을 이유로 납북피해자 보상 및 지원 심의위원회에 보상금 지급을 신청했지만 객관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용수씨의 정신질환은 1993년 발병해 보안사 요원들의 폭행과 인과관계를 밝히기가 쉽지 않았음은 물론 당시 수사기록 등 직접적인 근거도 없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2부(부장 윤인성)는 30일 안씨가 심의위원회를 상대로 “납북피해자 불인정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안씨가 보안사로 수시로 호출됐고 정신을 잃은 적도 있다는 당시 교사와 급우들의 사실확인과 증언, 3년 동안 조퇴 3번·결석 72번 한 것으로 기록된 생활기록부 등만으로도 가혹행위를 당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황용주의 진지한 믿음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황용주의 진지한 믿음 그대로 보여주고 싶어”

     여기 문제적 인간이 있다. 족적만 살펴보자.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다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독서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간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해방 조국에 돌아와 교육에 매진하다 부산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이 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을 용기있게 보도해 4·19 혁명에 불을 당긴다.   대구사범 동기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나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 공분, 5·16 쿠데타와 이후 조국 근대화의 밑그림을 그린다. 미국의 반대 따위는 없을 것이라며 박정희를 부추긴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방송사 사장에까지 오른다. 곧바로 주체세력의 암투에 휘말려 나락을 경험한다. 1964년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 등을 월간 ‘세대’에 실었다가 구속된다. 이후 40여년의 삶은 ‘함께 혁명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에 오롯이 바쳐진다.  황용주(1918-2001년) 전 문화방송 사장. 그가 평생 남긴 40여권의 일기를 유족에게서 건네받은 안경환(65) 서울대 법대 교수가 여러 인사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쓴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까치 펴냄)를 냈다. 진보진영에 속하며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 교수이기에 의외로 비칠 여지도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책을 내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10년도 전에 일기를 입수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산 지식인이 그렇게 무덤도 없이 간 것에 대해 아련한 마음이 있었죠. 우리 문화나 정체성이 4·19 이후에야 시작됐다고 보며 일제시대는 우리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게 대세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윗세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나 일제 말기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학병 세대들을 전체적으로 엮어서 시대사를 써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려니까 벅차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그런데 (황용주씨) 부인(이창희 여사·프랑스 거주) 나이가 90이 넘었으니 기왕 하는 거 10주기에 맞춰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제 평가를 배제하고 그 사람 목소리를, 그 분 입장에서 재현해봐야겠다 그렇게 된 거고요. 그래서 ‘인물전기’라고, ‘평(評)’ 자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의 기록들을 보니까 다행히 그 시대 분위기를 공부해야 하고, 특히 일본 관련 책들을 많이 봤죠.   일제 말기 사람들의 지적 역량이나 스케일, 능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높더라. 일본 제국의 지적 수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잘못됐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후세대들은 내가 모르는 옛날 건 중요하지 않은 거고, 나쁜 거다,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됐어요. 후속 세대는 더하더라고요.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그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운동가나 정치가는 그럴 수 있겠지만 지식인들이 정보나 지식을 선택적으로 취해 경박하게 판단하는 것을 보고 전 많이 불편했습니다. 요새 말로 좌든 우든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공부를 덜하는구나, 균형 감각이 덜하구나, 우리는 완전히 체화되기 전에 들어오면 말로 다 풀어버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그렇듯 이 작업에만 매달린 건 아니고 다른 책도 준비하면서 조금씩 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쯤 낼 수 있었는데 박정희 문제가 걸려 있기에 선거전에 이슈가 되는 건 원치 않아 이번에 내게 된 것입니다.  →황용주와의 첫 만남은?  -1987년에 처음 교수가 된 뒤 찾아 뵜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느라 비었던 공백을 채우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 왜 저런 구호를 내걸까 궁금증이 있었고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랄까, 그런 차원에서 이문열도 그때쯤 다시 만났고요.  당시 이미 황 선생은 형편이 어려워 제가 ‘문예춘추’ 몇개월치 모아서 드리기도 하고 프랑스 문학 얘기도 나누며 일년에 서너 번, 명절 뒤 인사도 드리고 바둑도 두고 했습니다.  →두 분이 (경남 밀양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정치 얘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이 학생 때도 문학을 공부했고, 부산일보 시절 영화제도 만들고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제가 공유한 취향을 한 세대 앞서 가지신 분입니다. 난 내 얘기하고, 응 그러냐 그런 거죠. 황용주 하면 떠오르는 게 박정희니까,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으로나 교양인으로서의 제 이미지와 제가 만나본 많은 원로 가운데 가장 잘 맞는 분이었어요.   →역시 자료 수집하고 증언 채취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10년 동안 꾸준히 조금씩 하신 것이네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묻기도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기도 했습니다. ‘세대’지 관련해서는 많이 증언을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으려 노력했고 정 안될 때는 그냥 증언만 실었지만.  인권위원장 그만 둔 뒤인 2010년, 사모님(이창희 여사) 증언 받으러 프랑스를 며칠씩 두 차례 다녀왔죠. 딸(황용주는 프랑스를 동경해 이름을 ‘란서’라 지었다)에게는 단편적으로 한 게 아니라 너 써라, 무조건 써달라고 해서 대학노트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 양반에게는 단순한 딸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이상의 표현이자 상징이었잖아요. 그런 딸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데도 프랑스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도록 한 것도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라는 뜻이었을 정도였다.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정희야, 란서야’라고 외친 것도 상징성이 크다.  →10년을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과 열정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거겠지요.  -네, 크게 보면 김윤식 교수가 해온 일과 비슷합니다. 제가 진보진영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황용주는 나쁜 인간으로 평가돼 있습니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그렇지만 그 사람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만약 법률가로서 누구의 변호를 맡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다른 얘기를, 판사의 판단을 받기 위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책을 쓰면서 100% 공감이 안 가서 힘든 구석은 없었는지.  -예를 들어 5.16은 어쨌든 헌법학자 입장에서는 쿠데타입니다. 헌법이 그렇게 정리가 되고. 그걸 혁명이란 이름으로 내세워서, 군인이 권력을 잡아 출세를 하겠다, 사심을 채우겠다고 달려든 사람도 있었겠지만, 황용주는 적어도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한 국가를 전체적으로 개발하는 로드맵으로서 높게 생각하고 정당화시키는데 헌법학자로선, 쿠데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쿠데타의 결과로서 산업화에 기여한 역사는 현 시점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또 10월 유신(등에 눈 감거나 박정희가 죽은 뒤에) 추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두환을 찬양하고 나아가 노태우까지 그러는 건 동의할 수 없었죠.  →다투거나 한 건 아니시죠.  -그러진 않았고요. (웃음) 일제시대의 훌륭한 군인들 얘기 많이 하잖습니까? 그 때 장군들의 스케일과 지적 역량, 신화같은 얘기들.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박정희의 유업을 이어가려면 군인이 더 집권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전혀 용납할 수 없죠. 서로 시대가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거니깐.  그 때마다 바둑이나 두고, 뭐 이렇게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웃음) 저도 대학생 때 1급이었는데 나이 차도 있으니까 제가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안 그렇더라고요.  →프랑스를 동경해 딸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일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분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얘기한 것은 극히 모순되는데.  -그건 이해가 가는 것이 한국이란 사회가 식민 지배 이후 아무것도 없었지 않습니까.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누가 먼저 썼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군대가 집권해서 공업화를 서두르고 남북한이 유엔 동시가입한 뒤 통일로 간다, 이런 로드맵을 만든 것은 완전히 황용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다. 사회 변혁을 이끌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은 군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신생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그 사람은 본 거지요. 4·19 다음에 대한 기대가 많았겠죠. 당당히 4·19의 연장이란 주장을 하게 되고 당시 그런 생각에 호응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황용주는 평생 ‘국민’이나 ‘시민’이라 하지 않고 ‘한반도 주민’이라 불리길 열망했다. 그렇게 평소에 증오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즈음에 그가 흥분했던 모습을 안 교수는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책을 읽으면서 1947년 마크 게인(281쪽)과 1979년 황용주(459쪽)의 경고는 지금 정확히 들어맞는데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전 역사를 길게 보고 낙관하는 쪽이에요. 연초에 이문열씨와 한 케이블 채널에 출연해 대담하면서 느낀 건데 결국은 진보와 보수 모두 역사의 완결성을 믿지 않잖습니까. 우리 역사가 이만큼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성공한 양상과 속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더 괜찮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옆으로 챙기고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전 박근혜 시대에 반감 같은 건 없어요. 개인적으로 박정희 체제에 당했느냐와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연좌제 피해를 받은 사람이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니까 안된다’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건 정치적 연좌제인 거죠. 반대로 박근혜씨는 아버지의 영광만 누리려 하지 말고 ‘그늘’도 같이 받아라고 칼럼에 적었던 것이지요.  →이병주(1921~92년) 평전을 내겠다고 했는데 마음의 빚이라도 있나.  -앞에 학병시대를 얘기한 것처럼 그를 작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평론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며칠 잠을 못 잘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는데 지금 보면 문단에 그의 자리는 없다. 중학교 다닐 때 주필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당시 국제신문 주필이 이병주였다. 부산일보 사설과 비교하며 읽고 친구들에게 떠들곤 한 기억이 있다.  대학 때 건방지게 문단에서 대들고 한적도 있는데 다 받아주고 했다. 그런데 5·16 이후 문단이 완전 진보 쪽으로 정리돼 경상도 출신 작가는 모두 전두환과 도매금이 됐다. 또 이병주씨는 문단이나 대학에서 패거리를 이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뚝 서 있던 거인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를 정리하는 건 좌와 우가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가장 맞춤하다는 데 공감대가 맞춰져 있고 은근히 압력도 가해지곤 한다.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그는 “아무 것도 안하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느라 무척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거리라면 그동안 읽은 책들을 처분하는 문제, 저자 서명이 담긴 수천 권의 책을 어떻게 처분하느냐 고민하고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저자와의 차 한잔]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펴낸 前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저자와의 차 한잔]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 펴낸 前국가인권위원장 안경환

    여기 문제적 인간이 있다. 족적만 살펴보자. 대구사범학교를 다니다 사회주의 서적을 읽고 독서회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한 뒤 일본 와세다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중국에 끌려간다. 광복군의 일원으로 해방 조국에 돌아와 교육에 매진하다 부산일보 주필 겸 편집국장이 돼 마산 앞바다에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을 용기있게 보도해 4·19 혁명에 불을 당긴다.   대구사범 동기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을 다시 만나 조국의 암울한 현실에 공분, 5·16 쿠데타와 이후 조국 근대화의 밑그림을 그린다. 미국의 반대 따위는 없을 것이라며 박정희를 부추긴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방송사 사장에까지 오른다. 곧바로 주체세력의 암투에 휘말려 나락을 경험한다. 1964년에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 남북한 상호 체제 인정” 등을 월간 ‘세대’에 실었다가 구속된다. 이후 40여년의 삶은 ‘함께 혁명했던’ 친구에 대한 그리움과 추모에 오롯이 바쳐진다.  황용주(1918-2001년) 전 문화방송 사장. 그가 평생 남긴 40여권의 일기를 유족에게서 건네받은 안경환(65) 서울대 법대 교수가 여러 인사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쓴 인물전기 ‘황용주: 그와 박정희의 시대’(까치 펴냄)를 냈다. 진보진영에 속하며 국가인권위원장을 지낸 안 교수이기에 의외로 비칠 여지도 있다.  지난 25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자택에서 만난 안 교수와의 일문일답.    →책을 내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10년도 전에 일기를 입수했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는지.  -한 시대를 치열하게 산 지식인이 그렇게 무덤도 없이 간 것에 대해 아련한 마음이 있었죠. 우리 문화나 정체성이 4·19 이후에야 시작됐다고 보며 일제시대는 우리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게 대세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윗세대에 대해 우리가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고, 특히나 일제 말기 최고의 지식인이라 할 수 있는 학병 세대들을 전체적으로 엮어서 시대사를 써볼 생각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려니까 벅차기도 하고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그런데 (황용주씨) 부인(이창희 여사·프랑스 거주) 나이가 90이 넘었으니 기왕 하는 거 10주기에 맞춰 해야겠다고 결심했죠.  제 평가를 배제하고 그 사람 목소리를, 그 분 입장에서 재현해봐야겠다 그렇게 된 거고요. 그래서 ‘인물전기’라고, ‘평(評)’ 자를 넣지 않은 것입니다. 개인의 기록들을 보니까 다행히 그 시대 분위기를 공부해야 하고, 특히 일본 관련 책들을 많이 봤죠.   일제 말기 사람들의 지적 역량이나 스케일, 능력이 우리가 알고 있는, 우리 세대보다 훨씬 높더라. 일본 제국의 지적 수준 영향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인정하기 싫어하거든요. 그러니 잘못됐다고 생각해버립니다. 후세대들은 내가 모르는 옛날 건 중요하지 않은 거고, 나쁜 거다, 은연 중에 생각하게 됐어요. 후속 세대는 더하더라고요. 심정적으로 동조하면서도 그에 대해 불편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운동가나 정치가는 그럴 수 있겠지만 지식인들이 정보나 지식을 선택적으로 취해 경박하게 판단하는 것을 보고 전 많이 불편했습니다. 요새 말로 좌든 우든 마찬가지입니다. 요새 사람들이 공부를 덜하는구나, 균형 감각이 덜하구나, 우리는 완전히 체화되기 전에 들어오면 말로 다 풀어버리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쓰는 사람들이 그렇듯 이 작업에만 매달린 건 아니고 다른 책도 준비하면서 조금씩 하느라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난해쯤 낼 수 있었는데 박정희 문제가 걸려 있기에 선거전에 이슈가 되는 건 원치 않아 이번에 내게 된 것입니다.  →황용주와의 첫 만남은?  -1987년에 처음 교수가 된 뒤 찾아 뵜습니다. 외국 생활을 하느라 비었던 공백을 채우고 싶은 욕망 같은 게 있을 것 아닙니까. 학생들이 왜 저런 구호를 내걸까 궁금증이 있었고 한국 사회에 대한 총체적 이해랄까, 그런 차원에서 이문열도 그때쯤 다시 만났고요.  당시 이미 황 선생은 형편이 어려워 제가 ‘문예춘추’ 몇개월치 모아서 드리기도 하고 프랑스 문학 얘기도 나누며 일년에 서너 번, 명절 뒤 인사도 드리고 바둑도 두고 했습니다.  →두 분이 (경남 밀양 출신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적지 않을 것 같은데.  -정치 얘기는 많이 나누지 않았습니다. 다만 그분이 학생 때도 문학을 공부했고, 부산일보 시절 영화제도 만들고 칼럼니스트로 일하면서 제가 공유한 취향을 한 세대 앞서 가지신 분입니다. 난 내 얘기하고, 응 그러냐 그런 거죠. 황용주 하면 떠오르는 게 박정희니까, 저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지식인으로나 교양인으로서의 제 이미지와 제가 만나본 많은 원로 가운데 가장 잘 맞는 분이었어요.   →역시 자료 수집하고 증언 채취하는 일이 가장 힘들었을 것 같다. 10년 동안 꾸준히 조금씩 하신 것이네요.  -사람들 만날 때마다 묻기도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던지기도 했습니다. ‘세대’지 관련해서는 많이 증언을 들었습니다. 가능하면 증언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찾으려 노력했고 정 안될 때는 그냥 증언만 실었지만.  인권위원장 그만 둔 뒤인 2010년, 사모님(이창희 여사) 증언 받으러 프랑스를 며칠씩 두 차례 다녀왔죠. 딸(황용주는 프랑스를 동경해 이름을 ‘란서’라 지었다)에게는 단편적으로 한 게 아니라 너 써라, 무조건 써달라고 해서 대학노트 한 권을 받았습니다.  그 양반에게는 단순한 딸이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이상의 표현이자 상징이었잖아요. 그런 딸이 문학을 공부하고 싶어하는데도 프랑스에서 이공계를 전공하도록 한 것도 조국 근대화에 기여하라는 뜻이었을 정도였다. 마지막 운명의 순간에 ‘정희야, 란서야’라고 외친 것도 상징성이 크다.  →10년을 매달릴 수 있었던 원동력은 그 시대 사람들의 고민과 열정을 젊은 세대에게 전달하고 싶었다는 거겠지요.  -네, 크게 보면 김윤식 교수가 해온 일과 비슷합니다. 제가 진보진영에 서 있다는 평가를 받는데, 황용주는 나쁜 인간으로 평가돼 있습니다. 정수장학회를 만들고. 그렇지만 그 사람의 입장을 들을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지 않습니까. 만약 법률가로서 누구의 변호를 맡았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의 다른 얘기를, 판사의 판단을 받기 위해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책을 쓰면서 100% 공감이 안 가서 힘든 구석은 없었는지.  -예를 들어 5.16은 어쨌든 헌법학자 입장에서는 쿠데타입니다. 헌법이 그렇게 정리가 되고. 그걸 혁명이란 이름으로 내세워서, 군인이 권력을 잡아 출세를 하겠다, 사심을 채우겠다고 달려든 사람도 있었겠지만, 황용주는 적어도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던, 한 국가를 전체적으로 개발하는 로드맵으로서 높게 생각하고 정당화시키는데 헌법학자로선, 쿠데타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쿠데타의 결과로서 산업화에 기여한 역사는 현 시점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말입니다. 또 10월 유신(등에 눈 감거나 박정희가 죽은 뒤에) 추모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전두환을 찬양하고 나아가 노태우까지 그러는 건 동의할 수 없었죠.  →다투거나 한 건 아니시죠.  -그러진 않았고요. (웃음) 일제시대의 훌륭한 군인들 얘기 많이 하잖습니까? 그 때 장군들의 스케일과 지적 역량, 신화같은 얘기들. 일정 부분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박정희의 유업을 이어가려면 군인이 더 집권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건 전혀 용납할 수 없죠. 서로 시대가 다른 사람 얘기하는 거니깐.  그 때마다 바둑이나 두고, 뭐 이렇게 하면서 넘어갔습니다. (웃음) 저도 대학생 때 1급이었는데 나이 차도 있으니까 제가 나을 거라 생각했는데 전혀 안 그렇더라고요.  →프랑스를 동경해 딸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일반적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이 확고했던 분이 한국적 민주주의를 얘기한 것은 극히 모순되는데.  -그건 이해가 가는 것이 한국이란 사회가 식민 지배 이후 아무것도 없었지 않습니까. 민족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누가 먼저 썼는지는 여러 의견이 있지만 군대가 집권해서 공업화를 서두르고 남북한이 유엔 동시가입한 뒤 통일로 간다, 이런 로드맵을 만든 것은 완전히 황용주의 머릿속에서 나온 겁니다. 사회 변혁을 이끌 지식인 역할을 할 수 있는 그룹은 군대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신생국가의 보편적인 현상이기도 하고, 그렇게 그 사람은 본 거지요. 4·19 다음에 대한 기대가 많았겠죠. 당당히 4·19의 연장이란 주장을 하게 되고 당시 그런 생각에 호응하는 이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도 엄연한 사실이지요.    황용주는 평생 ‘국민’이나 ‘시민’이라 하지 않고 ‘한반도 주민’이라 불리길 열망했다. 그렇게 평소에 증오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던 즈음에 그가 흥분했던 모습을 안 교수는 어제 일처럼 떠올렸다.    →책을 읽으면서 1947년 마크 게인(281쪽)과 1979년 황용주(459쪽)의 경고는 지금 정확히 들어맞는데요. 우리 사회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다면.  -전 역사를 길게 보고 낙관하는 쪽이에요. 연초에 이문열씨와 한 케이블 채널에 출연해 대담하면서 느낀 건데 결국은 진보와 보수 모두 역사의 완결성을 믿지 않잖습니까. 우리 역사가 이만큼 성공했다고 보는 사람이에요. 지금까지 성공한 양상과 속도는 아닐지 모르지만 앞으로도 더 괜찮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필요한 게 무엇이냐? 앞으로 나아가는 것보다 옆으로 챙기고 같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전 박근혜 시대에 반감 같은 건 없어요. 개인적으로 박정희 체제에 당했느냐와 역사적으로 평가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박정희 시대에 연좌제 피해를 받은 사람이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니까 안된다’라고 어떻게 생각할 수 있습니까. 그건 정치적 연좌제인 거죠. 반대로 박근혜씨는 아버지의 영광만 누리려 하지 말고 ‘그늘’도 같이 받아라고 칼럼에 적었던 것이지요.  →이병주(1921~92년) 평전을 내겠다고 했는데 마음의 빚이라도 있나.  -앞에 학병시대를 얘기한 것처럼 그를 작가 측면에서 종합적으로 정리하는 평론을 해보고 싶은 것이다. ‘소설 알렉산드리아’를 읽고 며칠 잠을 못 잘 정도로 큰 감명을 받았는데 지금 보면 문단에 그의 자리는 없다. 중학교 다닐 때 주필실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었는데 당시 국제신문 주필이 이병주였다. 부산일보 사설과 비교하며 읽고 친구들에게 떠들곤 한 기억이 있다.  대학 때 건방지게 문단에서 대들고 한적도 있는데 다 받아주고 했다. 그런데 5·16 이후 문단이 완전 진보 쪽으로 정리돼 경상도 출신 작가는 모두 전두환과 도매금이 됐다. 또 이병주씨는 문단이나 대학에서 패거리를 이루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우뚝 서 있던 거인이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다. 그를 정리하는 건 좌와 우가 함께 한다는 의미도 있다. 내가 가장 맞춤하다는 데 공감대가 맞춰져 있고 은근히 압력도 가해지곤 한다.    오는 8월 정년퇴임하는 그는 “아무 것도 안하는” 자유로운 삶을 꿈꾸느라 무척 행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걱정거리라면 그동안 읽은 책들을 처분하는 문제, 저자 서명이 담긴 수천 권의 책을 어떻게 처분하느냐 고민하고 있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유엔, 北인권 결의안 표결없이 합의 채택

    유엔 총회 본회의가 20일(현지시간) 북한 인권 결의안을 표결 절차 없이 ‘합의’로 최종 채택됐다. 앞서 지난달 27일 유엔 총회 제3위원회는 결의안을 합의로 채택해 본회의에 공식 상정했다. 북한 인권 결의안은 2005년부터 매년 유엔 총회에 상정돼 표결로 채택돼 왔으며, 유엔 총회 제3위원회와 본회의에서 표결 없이 통과된 것은 처음이다. 북한 인권 결의안은 북한 내 고문과 불법적·자의적 구금, 정치범 수용소, 연좌제 등에 대한 인권 침해에 우려를 표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난해 결의안과 비교해 이번 결의안은 계속 악화하는 북한 인권 상황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정치범 수용소에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자행되고 있다는 내용 등이 추가됐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유엔, 北인권결의안 첫 ‘컨센서스’ 채택

    유엔 총회 제3위원회가 27일(현지시간) 북한의 인권 상황을 우려하는 결의안을 처음으로 표결 절차 없이 컨센서스(의견일치)로 채택했다. 결의안이 표결 없이 채택된 것은 북한의 인권 상황이 심각하다는 국제사회의 공통된 인식이 반영된 결과로 평가된다. 결의안은 고문과 불법적·자의적 구금, 정치범 수용소, 연좌제, 사상과 표현 및 이동의 자유 제한, 여성·어린이 등 취약 계층의 인권침해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또 탈북자에 대한 ‘강제 송환 금지의 원칙’을 존중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희망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지난해 결의안과 비교하면 북한 인권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으며, 특히 정치범 수용소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가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 등이 추가됐다. 북한 인권 결의안은 2005년부터 매년 유엔 총회에 상정돼 표결로 채택됐으며 컨센서스로 통과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결의안은 찬성 112표, 반대 16표, 기권 55표로 채택됐다. 컨센서스는 투표를 거치지 않는 의사결정 방식으로, 개별 국가가 불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만장일치와 다르다. 북한과 중국, 쿠바, 베네수엘라 등은 이번 컨센서스에 참여하지 않았다. 북한 인권 결의안은 매년 유럽연합(EU)과 일본이 주도하고 한국과 미국, 캐나다, 호주 등 50개국 이상이 공동 제안국으로 참여하고 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그의 숨결·호흡 그대로 ‘현대사 질곡’ 투영하다

    그의 숨결·호흡 그대로 ‘현대사 질곡’ 투영하다

    20대에 연좌제에 좌초돼 한국 사회를 쓸쓸하게 또는 필사적으로 떠돌아다닌 그는 소영웅주의자일까, 아웃사이더일까. 한국의 대표적인 번역자, 저자, 소설가로 살다간 이윤기(1947~2010)의 이야기다. 그는 ‘그리스 로마 신화’ 시리즈(2000년)의 저자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1986년)과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1981년)의 번역자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삶은 유명세만큼이나 화려(?)하다. 그는 별스러운 사람이었다. 경북 군위 출신인 그는 대구 칠성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북중에 이어 경북고에 진학했으나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그만뒀다. 이후 검정고시로 대학 진학 자격을 얻어 1967년 신학대학에 진학하지만 역시 도중에 그만뒀다. 그 후 유학 자격시험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기회를 얻었지만, 재일교포였던 그의 큰아버지가 조총련계로 재일교포 북송단 모집책이었던 탓에 연좌제에 걸려 포기해야만 했다. 연간 1만 5000장을 번역하는 고달픈 번역 노동자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이유이자, ‘온갖 똥폼을 다 잡는 스타일리스트’였지만 죽는 날까지 학력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이유였다. 2010년 8월 27일 심장마비로 사망한 이윤기 사후 2주기를 맞아 그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던 출판사 열린책들이 그의 첫 소설 ‘하늘의 문’을 재출간했다. 원래 3권으로 나왔던 책인데, 읽다가 졸리면 목침으로도 쓸 만한 1085쪽 두께의 한 권으로 내놨다. 1994년 펴낸 이 책은 권당 5500원으로 3권이면 액면가가 1만 6500원이지만, 중고책 시장에서 7만 5000원의 고가에 거래된다. 이번 신간은 2만 8000원이니, 더이상 중고책을 구하려 애쓰지 않아도 되겠다. 이윤기의 첫 소설을 재출간하려고 애쓴 책 디자이너이자 이윤기의 경북고 3년 선배인 정병규(66)는 지난 22일 기자간담회에서 “소설처럼 윤색됐으나 그의 삶을 아는 나로서는 이 책이 소설로 읽히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삶을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는 한국 현대사의 묘한 얼룩이 삶에 스며든 근대인의 삶으로 이 소설이 읽힐 것이므로, 이른바 ‘한국 현대사 교양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재출간의 이유를 말했다. 가난한 어린 시절과 철저한 양반의식, 연좌제로 좌절된 유학, 베트남 파병 군인의 삶과 공사판을 전전하며 노동자로 살아간 이윤기의 이야기들이 들어 있다. 이어 정병규는 “이 소설에는 사전에 안 나오는 말들이 많은데, 노동자들의 현장의 목소리, 지방의 사투리 등이 고스란히 들어 있어 한국 밑바닥의 진솔한 삶을 직접 만날 수 있다.”고 했다. 친구이자 문학평론가였던 황현산 고려대 불문과 명예교수도 이날 “이윤기가 서사가 뛰어난 작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문장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이 소설은 ‘자기 자신을 번역했다’고 할 만한 책”이라고 말했다. 이윤기는 197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단편 ‘하얀 헬리콥터’로 등단했지만 번역일에 휘둘리다가 이 책을 내놓고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문단 데뷔 20년 만의 ‘중고 신인작가’였던 셈이다. 정병규는 “자신의 속살을 다 드러낸 뒤에야 스스로 본격 소설가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의미들이 부여된 까닭에 재출간된 ‘하늘의 문’은 원본을 그대로 살렸다. 강무성 열린책들 편집주간은 “출판 당시의 오자만 바로잡았지, 사전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새로 교정하거나 국문법상으로 쉼표가 올 수 없는 부분에 놓여 있는 쉼표라고 해서 없애거나 하지 않고, 이윤기의 숨결과 호흡 그대로 살려 놓았다.”고 말했다. 180㎝ 가까운 키에 터무니없이 큰 발, 그리고 큰 체구를 지닌 이윤기는 건강이 나빠진 말년에도 하루에 조니워커 레드를 2병씩 마실 정도로 술도 셌다. 심장마비를 일으키기 전에 몸이 비쩍 말라갔지만, 병원에 다니며 병명을 찾고 몸에 주삿바늘을 꼽는 것은 인위적인 삶이라며 거부한 이가 이윤기다. 정병규는 “파커 만년필의 촉이 닳아 날카로운 칼처럼 돼 수북이 꽂혀 있고, 손바닥에 굳은살이 박일 것 같아 손가락 부분을 잘라낸 골프장갑을 낀 채 번역하는 그의 모습이 징그러우면서도 그립다.”면서 “문학적 감수성을 가지고 삶을 기록한 이윤기의 모습과 느낌을 ‘하늘의 문’ 표지를 통해 고스란히 살리고 싶었다.”고 했다. 이번 책표지를 그가 디자인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野 “법무부가 왜 강탈 부정하나” 權장관 “소송 진행중” 답변 거부

    野 “법무부가 왜 강탈 부정하나” 權장관 “소송 진행중” 답변 거부

    22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법무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전날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발언으로 논란이 된 ‘정수장학회’ 문제를 놓고 여야 간 공방이 이어졌다. 야당 의원들은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부일장학회 창립자 고(故) 김지태씨 유족이 제기한 정수장학회 주식반환 청구소송과 관련, 권재진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법무부가 정수장학회 강탈을 부인한 이유 등을 집중적으로 질타했다. 박범계 민주통합당 의원은 “법무부는 소송에서 김씨에 대한 국가의 위법한 강박행위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면서 “진실과화해위원회의 판단을 무시하고, 법 위에 존재하는 법상부가 되려 하나.”라고 말했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도 “아버지가 강탈하고 딸은 사회환원을 거부했다.”면서 “특히 박 후보의 정수장학회 관련 기자회견은 불타고 있는 곳에 기름을 부은 격”이라고 말했다. 같은 당 이춘석 의원은 “정수장학회가 국가에 헌납됐으면 국가가 관리했어야 하는데 사유재산처럼 관리가 이뤄진 게 맞다고 보나.”라고 질문했다. 이에 권 장관은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이라면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 의견을 표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답변했다. 여당 의원들은 김씨의 친일행적과 부정축재 의혹 등을 거론하며 방어에 나섰다. 김도읍 새누리당 의원은 “김씨는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일하면서 농민을 수탈했던 사람”이라면서 “장관에게 의견을 묻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같은 당 김학용 의원도 “정수장학회 문제를 박 후보 탓으로 돌리는 것은 정치적인 공세로만 보일 뿐이다. 연좌제를 적용하지 말라.”고 거들었다. 이에 민주당 박 원내대표는 “더 지독한 친일파 박정희가 덜 지독한 친일파 김지태의 재산을 빼앗은 것이 국가정의인가.”라고 대응했다. 한편 법무부의 출입국 로그인 관리 기록 등 부실한 자료제출을 놓고 야당 의원들의 질타가 이어졌으며, 오후 국감에서는 이 문제로 2시간 동안 정회하는 등 파행을 겪기도 했다. 홍인기기자 ikik@seoul.co.kr
  • “인혁당 피해 유가족이 동의하면 찾아뵙겠다? 얼마나 오만방자한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가족들에게 “수차례 위로의 뜻을 전했고, 사과한 건 사과로 받아들여 달라.”고 밝혔지만 민주통합당은 여전히 “박 후보의 역사 인식은 전혀 변함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위로와 사과는 엄연히 다르며, 박 후보에게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사과를 받아 달라’가 아니라 ‘사과로 받아들여 달라’는 것은 사과해야 할 자의 태도가 아니며 고압적인 자세에서 비롯된 적반하장의 표현”이라는 규정에서 이런 기류를 읽을 수 있다. ●박지원 “제대로 사과한뒤 인혁당 유족 만나라” 지난 13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최고위원들은 일제히 박 후보의 역사 인식을 거듭 비판했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역사를 부인하고 5·16 쿠데타, 유신, 인혁당 사건을 미화하고 ‘아버지 박정희’의 명예회복을 꾀하려고 하는 것은 국민과 역사가 용납할 수 없다.”고 힐난했다. 그는 박 후보가 “인혁당 사건 피해자 유가족들이 동의하면 찾아뵙겠다.”고 밝힌 것에 대해 “얼마나 오만방자한 말인가.”라면서 “진정으로 사과하고 역사를 바로잡은 뒤 유족을 찾는 게 순서”라고 비판했다. 추미애 최고위원은 박 후보의 과거 행적을 거론하며 “박 후보의 머릿속에 있는 유신체제에 대한 뿌리깊은 신봉과 확신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연좌제 차원에서 딸이라는 이유로 책임을 묻자는 것이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유신체제 시절 아버지와 함께 국정을 논의하는 등 국정운영 경험을 자부하는 박 후보는 당시 구경꾼이 아니었고 정부의 최정점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했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조국 “유신의 딸이냐, 대통령 될 사람이냐” 민주당 지도부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고 있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박 후보의 사과가 진심이 아니며 “떠밀려서” 한 사과라고 봤다. 조 교수는 이날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박정희 대통령과 유신체제에 맹목적 신앙 수준의 옹호심을 갖고 있는 박 후보의 사과는 유족이 울부짖고 대법원에서도 무죄판결이 확실히 난 현 상황에서 표를 얻는 데 불리하다는 판단에 따른 전술적 후퇴”라면서 “박 후보는 박정희의 딸 혹은 유신의 딸인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 사람인지를 선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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