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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해협:한 재일 사학자의 반평생(이진희 지음,삼인 펴냄) 1972년 일본이 광개토왕릉비문을 변조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이 주장은 일본 야마토 정권이 4세기 후반 한반도에 진출해 백제와 신라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을 정면으로 반박한 것으로 한일 역사학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다.이 책은 당시 비문 변조설을 제기한 재일 사학자인 저자의 자서전.조총련을 탈퇴하고 전향한 뒤 한국국적을 취득하게 된 경위,한·일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계간 ‘삼천리’ 창간에 얽힌 이야기 등이 실렸다.1만 5000원. ●엣센스 영어숙어사전(손봉돈 지음,민중서림 펴냄) 코리아타임스 편집위원인 저자가 14년에 걸쳐 집필한 영어숙어 대사전.1만2000여개의 이디엄을 풍부한 예문과 함께 풀이해 영작과 회화에 도움이 되도록 꾸몄다.저자는 스포츠서울에 ‘시험에 꼭 나오는 영어’를 연재,화제를 모았던 인기 필자이자 영어학자다.4만원. ●버리고,행복하라(비노바 바베 지음,사티시 쿠마르 엮음,김문호 옮김,산해 펴냄) 간디가 인도 독립의 날 인도 국기를 맨처음 게양할 사람이라고 말했으며,간디의 후계자로 받아들여졌던 사회개혁가 비노바 바베.영국에 정착해 농사를 지으며 국제적 생태공동체인 ‘슈마허 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인도 출신의 국제 평화운동가 사티시 쿠마르가 그의 스승 비노바의 진리와 비폭력에 관한 지혜를 담은 말과 글을 발췌해 묶었다.9000원. ●한권으로 보는 서양 미술사 이야기(임두빈 지음,가람기획 펴냄) 구석기시대 미술의 기원으로부터 현대미술에 이르는 서양 미술의 역사를 개관.저자(한국미학미술사연구소 소장)는 스텐실 판화가 이미 구석기시대 동굴벽화에서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을 밝혀 눈길을 끈다.구석기시대 화가들은 가죽에 적당한 크기의 구멍을 뚫은 후 그 가죽을 동굴 벽면에 가까이 대고 입으로 씹은 물감을 구멍을 통해 뿜어내어 크고 작은 점들을 그렸다는 것.이런 방법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스텐실 판화기법이라는 것이다.2만 5000원. ●세계의 통화전쟁(하마다 가즈유키 지음,곽해선 옮김,경영정신 펴냄) 세계는 환율인하경쟁의 갈림길에 서 있다.원인은 달러 하락이다.기축통화국인 미국은 1980년대의 ‘강한 달러’정책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채무국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지만,‘의도적 무시(Benign Neglect)’와 ‘강경한 개입(Hawk Engagement)’이라는 그들의 정책기조를 양날의 검으로 사용하면서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해 왔다.이 책은 달러 일극체제에 도전장을 내민 유로와 위안 그리고 엔의 통화파워를 점검하고 그들 통화정책의 실체를 밝힌다.9800원. ●미국 인터넷 산업의 지도(한광야·송규봉 지음,한울 펴냄) 미국은 지난 30년 동안 거대한 정보기술(IT)벤처의 인큐베이터였다.이 책에서는 미국의 IT산업을 이끌어가고 있는 뉴리더 도시들을 소개한다.항공·운송·데이터 산업으로 거듭난 시애틀,컨트리뮤직의 도시 내슈빌,영화산업의 중심지 할리우드,라틴음악의 교두보 마이애미,남미 정보통신 시장의 전진기지 샌안토니오 등을 살펴본다.1만 4000원.
  • “스포츠 분야 통해 또다른 세상에 도전”/스포츠 기고가 변신 ‘오체불만족’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

    |도쿄 황성기특파원|통유리의 탁 트인 창밖으로 차가운 가을비가 추적추적 뿌리는 24일 오후 도쿄 시부야의 호텔 5층 카페는 빈자리 하나없이 사람들로 붐볐다.하필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했을까.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주차장이 카페와 이어지는 같은 층에 있었다.차에서 내리면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도 곧바로 올 수 있는 편리함이 시끄러운 이 곳을 그가 인터뷰 장소로 지정한 이유일 터이다.이런 곳을 찾아내기까지 얼마나 ‘시행착오’를 겪었을까. 약속보다 5분쯤 늦게 나타났다.예의 전동휠체어를 타고.대단히 죄송하다는 표정이다.인사를 나누자 “30분 정도 다른 일을 먼저 봐도 괜찮느냐.”고 이쪽이 황송할 정도로 미안한 얼굴로 동의를 구한다. 새롭게 원고를 쓰게 될 회사 관계자와의 협의가 있다고 했다.얼핏 보니 몇걸음 떨어진 자리에서 서류를 놓고 (그의 표현에 의하면)10㎝ 밖에 되지 않는 양 손을 흔들어가며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얼굴을 알아본 중년부인들이 힐끗힐끗 그를 쳐다보기 바쁘다. 1시45분부터 45분간으로 예정된 ‘오체불만족’의 저자 오토다케 히로타다(乙武洋匡)와의 인터뷰는 이렇게 해서 30분 가량 늦어진 2시15분쯤 시작됐다. “하루를 보내는 패턴은 세가지 있는데,첫째가 오늘같은 일 협의나,인터뷰 같은 것이고 둘째가 취재하러 가는 날,셋째가 전혀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원고를 쓰는 날입니다.” 기자를 기다리게 한 원고협의,기자와의 인터뷰를 포함해 아침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5건의 일이 있다고 했다.행동이 불편한 그로서는 가급적 이동을 줄이고 한 곳에서 몇가지 일을 처리하는 것이 당연한지 모른다. ●작년 운전면허 따 한달에 두번쯤 운전 그는 작년 여름 운전면허를 땄다.그 면허로 차를 몰고 왔을까. “한달에 2번쯤 운전하는 정도입니다.휴일이 그렇게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은 매니저가 운전해 주는 차를 타고 다닙니다.오늘도 매니저 신세를 졌구요.”그는 손수 운전하면서 과거에는 몰랐던 운전의 위험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고 했다. 와세다 대학 정경학부를 졸업한 2000년 오토다케는 스포츠 전문잡지 ‘넘버’에 선수 인터뷰 연재를 시작하면서 스포츠 라이터의 길을 걷는다.작년 한·일 월드컵 때에는 두 나라를 오가며 TV 리포터로도 꽤 얼굴을 비쳤으나 올들어 TV 활동은 뜸하다. “쓰는 일을 제대로 몸에 익히려고 TV쪽은 삼가고 있습니다.잡지 기고에 힘을 쏟고 있어 상대적으로 TV 출연은 많이 줄었습니다.” 500만부를 넘은 초대형 베스트셀러 주인공의 자유 기고가로의 변신,그 이유는 무엇일까. “대학 3학년(1998년) 가을 ‘오체불만족’을 낸 뒤 놀랄 정도로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어요.책의 저자라는 이유로 여러 매스컴에서 저를 다루어 주었구요.의외였습니다.나쁘게 말하면 주위에서 추어올려 준거죠.굉장히 무서웠습니다.그때도 이미 언론이라는 것이 금방 달아오르고 금방 식는 속성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요.영화화하자,입사해라,CD를 만들자는 얘기들이 많았어요.그 물결을 탔으면 재미는 있었겠지만,그냥 그렇게 흘러가 버리면 언제가는 질리는 날이 반드시 올거라고 생각했어요.그런 날이 됐을 때 내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몸에 익혀두지 않으면 나만 혼날 거라고 판단했습니다.몇가지 책을 낸 경험을 살릴 수 있는 것이 바로 라이터였습니다.” ●한·일 월드컵때 TV리포터로도 활동 스포츠를 택했던 것은 “나를 바라보는 세상의 이미지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는 뜻밖의 대답. “장애자 운동의 기수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실은 그런 운동에는 별 흥미가 없었습니다.그냥 전동의자를 타고 22년을 살아왔을 뿐이었거든요.그러면 장애자 운동의 정반대에는 무엇이 있는지,했더니 스포츠였습니다.어릴 때 부터 좋아해서 관심도 지식도 있어서 스포츠 분야에서 승부를 내볼까 생각했습니다.” 축구와 야구가 메인이지만 특정종목을 전문으로 취재한다기보다 특정 선수에 흥미가 생기면 그 선수를 인터뷰하기 위해 해당종목을 공부하는 그런 패턴으로 지금은 유도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말해준다. 화제를 돌려본다.2001년 3월 대학후배인 히토미(당시 22세)와 결혼했다는 보도가 나왔다.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구청에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대신했다는 짤막한 보도였다. “집 사람은 기본적으로 집안 일을 합니다.경리라든가 그런 부분에서는 제 일을 도와주고 있지만 바깥 일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전업주부인 셈이다. “와세다 대학의 어떤 서클이 개최한 세미나에 제가 강사로 불려갔는데 그때 만났습니다.21살 때였으니까,1997년 알게 돼 4년 만에 결혼한거죠.” 결혼한 지 2년 반.아직도 신혼이라고 할 수 있는 결혼생활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해진다. “결혼을 정했을 때 결혼한 선배들이 ‘너무 빠른 것 아니냐,결혼 그거 그렇게 좋은 게 아닌데’라고 충고는 해줬어요.그렇지만 나는 결혼생활을 꽤 좋아합니다.야구선수들이 결혼 문제로 상담을 해 올 때마다 꽤 권유합니다.”(그는 이 대목에서 ‘꽤’라는 말을 두 번이나 사용했다) 결혼이 글쓰기에 변화를 주었냐고 묻자 그는 “그런 건 없지만 인생의 시점이 하나 늘어난 것은 분명 메리트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혼 전 TV에 출연했을 때의 에피소드.그에게 사회자가 ‘거리에서 느끼는 불편'을 물었다.그는 “러브호텔의 엘리베이터는 (좁아서)전동 휠체어로는 타기 힘들다.”고 대답했다.짓궂은 사회자가 “러브호텔에도 가느냐.”고 재차 질문하자,그는 “가지요,23살의 남자인데요.”라고 응수해 좌중을 웃기게 한 적이 있었다. 그때의 얘기를 꺼내자 오토다케는 깔깔거린다.당시 그의 대답이 진실이라면 러브호텔에 같이 간 상대가 부인이라는 심증이 짙었으나 그는 교묘하게 피해나간다. “장애자는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일반적 생각 때문에 (실제로 장애인들도 많이 찾는)게임센터,노래방 같은 곳에 의외로 장애자를 위한 시설이 되어 있지 않다.”는 말로 대신한다. ●결혼한지 2년반 “꽤 즐거워요” 한국 선수로는 축구의 홍명보,이동국,박지성,안정환을 취재했다는 오토다케.“홍명보가 가장 인상에 남는다.”는 그는 “무거움이라고 할까,인간으로서의 깊이가 느껴졌다.”고 덧붙인다. ‘넘버’(576호)에 실린 안정환 인터뷰 기사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상대와의 거리감을 잘 재면서 깊이 들어오는 것을 절묘한 타이밍으로 피해간다.그것이 후천적으로 익힌 재능이라면 분명 슬프다.”인터뷰 내내 마음을 열지 않는 축구스타 안정환의 심리분석이 독특하다. “스타가 되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고 매스컴의 주목을 받으면서 마음에 벽을 쌓는다면,원래 천진하고 순수한 청년이던 안정환은 좀 아깝고,불쌍한 것 아닌가요.자기만의 자유대로 살아가면 보다 매력적이지 않은가 생각했어요.”분야는 다르지만 ‘오체불만족’으로 유명인이 됐던 자신은 벽을 쌓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지. 27살의 청년,오토다케는 만 3년이 된 스포츠 라이터로서의 자신을 어떻게 채점하고 있을까. “글쎄요.처음 30점이던 것이 70점이 됐다고 할까요.지금부터 (점수를 올리는데 시간이)오래 걸리겠지요.” 모자라는 30점이라면.“기자로서의 착안력,취재력,문장력 3가지 능력이 있다고 할 때 취재력은 다른 사람보다 그리 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역시 첫째와 셋째,그 중에서도 압도적으로 셋째(문장력)”라고 말한다. ●“글쓰기가 재미있어 정치 관심 없어요” 2년간의 산고 끝에 따낸 운전면허와 같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생각은 아직 없다고 한다.“기본적으로 기자로서 미숙하니까,더 힘을 쏟고 싶습니다.혹시 여유가 생기면 스포츠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기자로서 도전하고 싶은 마음이 싹튼 것은 사실입니다.”예를 든다면 기타노 다케시(한국에 ‘하나비’로 알려진 영화감독)에 수개월간 밀착해 어떤 발상으로 영화를 만드는지 그 과정을 취재하고 싶다고 했다. 얼마 전 어떤 주간지가 11월로 예상되는 일본 총선거에 오토다케가 공명당(연립여당) 후보로 출마할 것이라는 소문을 보도했었다.‘정치가 오토다케’ 과연 사실인가. “생각해 본 적 없습니다.글쎄요,그런 기사가 왜 나왔을까요.”거세게 부인한다.“어쨌건 지금 일이 너무 재미있어서 다른 것은 생각할 수 없다.”는 오토다케.어엿한 가장으로 성장한 그에게서 글쓰기에 온몸을 던져 세상의 인정을 받고 싶다는 열정과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marry01@ ●오토다케는 1976년생.팔다리가 없는 ‘선천성 사지절단’ 장애를 안고 태어난 그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일반 초·중·고교를 거쳐 와세대 대학을 졸업했다.밝은 웃음을 잃지 않는 감동적인 삶을 다룬 ‘오체불만족’이 한국,중국,미국 등에도 번역돼 일약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오토다케 리포트’,‘월드컵 전사×오토다케 히로타다’ 외에 그림책 ‘선물’ 등의 저서가 있다.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못다 쓴 이야기

    열 분의 문학지성을 만나는 일은 어렵고도 신이 나는 일이었습니다.무엇보다 저의 경험 폭으로 전혀 얻을 수 없는 사상과 지식과 지혜를 얻어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돌이켜보니 가파른 두 달이었습니다.숨가쁘게 돌아다니다 보니 밝히지 못한 얘기들이 많이 떠오릅니다. 최인훈 선생과의 만남은 연재 첫 회가 되다 보니 여러모로 부족한 것이 있었습니다. 김윤식 선생 댁에 갔을 때 여름이라서 소나기가 내리는데 장대비가 밑도 끝도 없이 죽죽 쏟아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이청준 선생을 어느 구민회관 앞에서 만나 뵙기로 하고 우리 일행이 오히려 늦어 선생을 기다리시게 한 일도 있었군요. 김우창 선생의 낡은 승용차를 보고 일순 감동했던 일도 있었고요.신경림과 현기영 선생께 염치 불구하고 갈비를 배불리 얻어먹고 즐거워했던 일이 떠오릅니다.주머니 생각 안 하시고 후배를 아껴주는 자상하신 분들입니다. 이어령 선생을 만나 누구보다 참신한 전후세대의 현주소를 목격한 일도 있었지요.조동일 선생을 만나 뵙고 인터뷰를 한 녹음테이프를 도둑 맞는 바람에 선생께 어렵게 다시 부탁을 드렸으니 밤손님도 이 연재에 참여하신 셈입니다. 김지하 선생과 박경리 선생께서는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많이 수척해 보이셨습니다.오래 좋은 작품 많이 남겨 주시기 바랍니다. 사진을 맡아주신 김상영 선배,녹취하느라 여름 다 보낸 김신우씨,대한매일의 기자님들 고생하셨습니다.저도 이제 얻어들은 이야기를 새기는 시간을 마련해야겠습니다. 방민호(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 [21세기 한국을 읽는다]방민호 교수가 만난 문학지성 (10)박경리-물질문명 시대, 생명의 가치 회복

    진영은 연기가 바람에 날려 없어지는 것을 언제까지나 쳐다보고 있었다.“내게는 다만 쓰라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무참히 죽어버린 추억이 남아 있을 뿐이다!” 진영의 깎은 듯 고요한 얼굴 위에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겨울 하늘은 매몰스럽게도 맑다.잡나무 가지에 얹힌 눈이 바람을 타고 진영의 외투 깃에 날아내리고 있었다.“그렇지,내게는 아직 생명이 남아 있었다.항거할 수 있는 생명이!” 진영은 중얼거리며 잡나무를 휘여잡고 눈 쌓인 언덕을 내려오는 것이었다.-소설 ‘불신시대’중에서 혹시라도 선생을 그냥 찾아뵙는 것이 결례가 될 것 같아 근방에서 슈퍼마켓을 찾는데 퍽이나 외진 곳이라 그런지 갖추어 놓은 게 없다.선생은 당뇨가 있다고 했던가.단 것을 드시지 못한다니 무과당 음료수 박스를 사들고 결전의 준비라도 마친 양 용감하게 토지 문화관으로 들어섰다. 선생의 집 문턱이 높은 것은 어제 오늘 소문이 아닌데 미리 약속을 얻은 탓인지 선생은 무척 친절하게 일행을 받아주신다.감읍할 지경이다. ●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화두 “건강이 안 좋으시다고 들었는데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소설을 쓰시다 무리하신 것은 아닌지요.” “내가 ‘현대문학’ 잡지를 참 곤란하게 하고 있어요.‘나비야,청산 가자’ 연재를 시작해서 석 달,3회까지 연재했거든요.한 회 한 회 원고 분량이 많아서 3회까지 하니까 무척 힘들었어요.재작년에 넘어져서 다친 허리가,연재 시작하면서 더 안 좋았어요.절실하게 써보려 했는데.이걸 쓰면서 혈압이 200까지 올라갔어요.도저히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요.결국 쉬고 있어요.독자들에게 제일 죄송해요.” “…….” 나는 선생의 무릎 위에 앉은 고양이를 바라보면서 선생의 다음 말씀을 기다린다. “몸이 그러니까 의욕이 없어지고,그러면서 내 존재가 뭔가,굉장히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새삼스럽게 문학이 무엇인가 하는 의문도 들고.” 선생을 만나는 자리에서 우연히 새로운 문학지 ‘숨소리’를 편집하고 계신 연세대학교의 최유찬 교수를 만나뵙게 되었다.두 분에게 번갈아 시선을 옮기는 나로 인해 설명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하셨는지선생은 ‘숨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주신다. “문학이라는 것도 인류 전체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만 생태계 없는 문학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지요.최유찬 선생에게 부탁 드려서 ‘숨소리’라는 책을 내는 까닭도 그런 데 있어요.지금 이 토지 문화관도 다른 분들은 다 문학관으로 오해하고 있어요.내가 문학을 하니까 문학관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나는 처음부터 그건 반대고 문화관으로 하자고 했어요. 생태계,환경이라는 말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아요.생태계 문제가 오늘의 중심이 되어야 해요.거기에서 문학도 있고 모든 게 있을 수 있는 거죠.작년 초엔가,‘자연과 시인’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했을 때 제가 이런 말을 했어요.시인 선생들이 환경 문제에 대해서 선도가를 불러 달라,그런 의식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고 내가 당부를 드렸어요.예술가들이 그렇게 해야 되지 않을까요? 무슨 정치적인 문제 같은 것은 사람들 임의에 따라서 참여도 하고 안 할 수도 있지만 환경문제라는 건 예외가 있을 수가 없잖아요. 모든 사람들과 관련이 되니까.하다못해벌레 한 마리나 풀 한 포기도 다 관련이 있잖아요.지구의 생명을 받은 것은 다 의무가 있는 거지요.” “예전에 손수 농사를 지으시는 걸 보았습니다.여기로 옮기고 나서도 계속하고 계신지요.” “물론이에요.여기는 농사가 더 많아요.밑에 밭뙈기가 상당히 있고 산 안에도 밭이 있어요.여기로 와서는 농사가 더 절실한 게,작가들 와서 묵는 창작실에 부식을 대야 하니까요.전부 다 댈 수는 없지만 대체로 야채는 내가 농사지어 대고 있어요.금년에는 부토를 했는데 흙이 잘 안 맞아서 농사가 좀 시원찮게 됐어요.여기 와서도 농약과 화학 비료는 절대 안 쓰고 작으면 작은 대로 땅 힘을 기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기왕이면 작가들도 공기 좋고 풍경 좋은 데서 먹거리도 무공해로 먹는 게 좋지 않겠어요. 감자와 옥수수를 많이 하는데 올해는 옥수수와 배추를 실패하고.그래서 토마토,고추,상추 이런 것 좀 더 대고 했어요.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대줄 수 있을 것 같아요.또 자연적으로 나는 것들이 있거든요.두릅이라든지.산에 도라지도 많이 심어놨어요.더덕,취나물,이름도 모르는 다른 나물들도 많아요.봄에는 냉이나 두릅 등 계속 농사지은 걸 먹죠.” 선생의 말씀에는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는 리듬과 흥취가 있었다. 이 글을 쓰려니 며칠 전 멕시코의 칸쿤에서 농민운동가 이경해씨가 심장에 칼을 꽂고 자결하던 장면이 떠올라 가슴이 아프다.우리들은 모두 땅의 자식들인데 내가 무관심하던 사이에 농민들의 삶은 나날이 수척해지고 있었던 것이다.인터뷰를 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지만 선생의 말씀과 정신이 새삼스럽게 와 닿는다.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을 순 없어 “선생님께서 농사를 지으시는 것은 자연과 접촉을 유지하기 위한 작가적 방법이라고 할 수도 있을 듯한데요.” “그게 우리 삶의 본질 아니겠어요? 땅에서 가꿔서 우리가 존재한다는.농부를 찬양하는 말이 될지도 모르지만 도시에서 살아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보면 생산성이 아니고 전부 소비성이거든요.땅을 가꾼다는 것은 규모가 손바닥만 하더라도 거기에는 생산이 있어요.그건 뭐냐면,생산하지 않으면 살수 없는 땅의 본질적인 속성 때문이에요.지난번에 내가 여기 중·고등학교 캠프에 갔었어요.사실은 내가 어디 나가서 얘기를 잘 못해요.어지러워서.그래도 애들이니까 한마디 필요하겠다 싶어서 나가서 이야기를 했어요.첫마디는 예절에 대한 것이었어요.예절이라는 것은 휴머니즘이다,상대방을 배려하는 거다,그것은 오랜 세월동안 정제된 데서 나오는 아름다움이다.그리고 또 하나가 이것이에요.옛날 농부들이 말하기로 내 자식 목에 젖 넘어가는 소리하고 내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좋다고 했는데,그것은 땅도 내 자식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땅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겁니다.땅을 사랑하고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기본이고 본질적인 거예요.지금 지구 온난화 현상도 있고 지구가 사막화되는 현상도 나타나는데,앞으로 곡식이 참 귀하게 되면 배고플 때 다이아몬드나 화폐를 먹고 배를 불리겠어요? 한줌의 쌀이 있어야만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거죠.그런데도 없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습니다.옛날 말로 사람들이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한다고,많은 분들이 그저 설마 설마하면서 남은 죽어도 나는 살아남겠지,내 당대에는 괜찮을 거야,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계신데,하지만 우리 자손들이 있잖아요. 프랑스에서는 이례적인 폭염으로 사람들이 죽고 스위스에서는 만년설이 몇년도에 가면 다 녹는다고 그래요.이거 다 녹으면 노아의 홍수 일어나는 거 아니겠어요? 그런데도 그런 소식을 들으면서 남의 일 같이 생각들 하신단 말이에요.들으면 그때뿐이고 돌아서면 잊어버린단 말이에요.일반 대중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지도자들부터 인식을 해야 되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끌고 나가야 할 지도자들이 일반 대중들보다 더 못해요.대중들은 절실히 인식하는데 지도자들은 표밭만 생각하니까.사람이 먹고 사는,곡식 나는 밭 생각은 안 하고 표밭만 생각하거든요.그렇게 생존하고 관계 없는 일이 앞서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생존해야 할 일은 뒷전에 밀리고 어떤 때는 그런 일이 아무 것도 아닌 무관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거든요.” 나는 연방 머리를 끄덕일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단적으로 얘기하자면 우리가 시장을 가봅시다.둘러보면 직접 생존하는 데 필요한 물건보다도 없어도 되는 게 더 많아요.없어도 되는 게 더 많다는 것은 말도 못할 낭비예요.낭비하면 쓰레기가 나와요.낭비와 쓰레기 이중적인 문제지요.쓰레기는 뭡니까.숨통을 막는 거예요.새만금이나 시화호,이런 문제는 그렇게 야만적일 수 없는 일이에요.나 혼자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해요.몇 사람의 이득,화폐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생명을 학살하는 겁니까.그렇게 많은 생명을 학살하고 그것을 영구히 없애버리면 다시 재생을 할 수도 없는 거잖아요. 대한민국이 얼마나 야만국인가를 입증하는 것이죠.지금 있는 농지도 농사 안 짓는 방향으로 가고 있으면서 새만금,그걸 죽여서 농지를 만든다는 이런 모순이 어디 있어요.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어요.내가 살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또 사람만 살자는 이야기도 아니에요.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이 다 살아야 해요.” “선생님 말씀을 들어보면 세상 일을 소상히 알고 계신데요.어떻게 이렇게 먼 곳 원주에서 세상 돌아가는 일을 다 듣고 보시는지요?” “서울이 시골보다 더 좁아요.직장이라든지 아파트라든지 하는 공간은 넓어도 좁아요.나는 공간이 없으니까 산 보고 하늘 보고,그러니 알죠.” “옛날에는 물질이 없어서 고통을 겪었다면 요즘에는 오히려 물질이 더 많아져서 고통인 것 같습니다.우리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뭔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생명이란 가두지 않고 풀어주는 것 “그렇죠.모든 생명이라는 것은 하나의 순환이거든요.순환이라는 것은,먹이사슬도 하나의 순환이지만 우리 한 개인으로 보아도 일을 하고 또 그렇게 해서 먹고 하면 이게 순환이거든요.그럼 일은 뭐냐? 이렇게 물을 수 있는데,증권 주식 한다고 앉아서 하루 종일 컴퓨터 보고 있는 것,그것도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그것은 엄격히 말해서 죽어 있는 일이지 살아있는 일이 아니에요.살아 있는 생명을 다스리는 일,그것이 일이에요.예술가도 생명이 주예요,사실은.문장 하나,상황 하나,인물 성격 하나,이게 살아 있어야 하거든요.정치라는 것도 살아있는 게 보장되는 방향으로 나가야지 죽음의 방향으로 가면 안 되죠.이 시대엔 전쟁과 핵무기가 있어요.이건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이에요. 대한민국만 보더라도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모든 게 죽음으로 몰려가고 있어요.모두 다 잘 살려고 한다는데 과연 그게 잘 사는 건지 모르겠어요.농약 주고 화학비료 주고 해서 질적으로 망가진 음식을 먹는 게 잘 사는 건지……모든 걸 가둬 놓는 것…… 생명이라는 건 가두는 게 아니라 풀어주는 거예요.이런 제도 속에서 사람들이 생존한다는 게 정상일 수가 없죠. 농촌에도 얼마나 이상한 병들이 많은지 몰라요.농약 때문에 그러는지.지금 이런 상황의 먹거리가 절대 좋은 게 아니거든요.그런데도 잘 산다는 게 이게 전부 양(量)으로 말하는 거죠.사람이 원래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거든요.행복의 축이라는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에요.그런데 지금 질은 점점 나빠지고 마치 옛날의 그 질을 옆으로 펴다 보니까 얇아져서 그게 양이 된 거예요.어떤 면에서 보면 더 생겨나는 건 없어요.있는 것에서 얇아지면양이 늘어나는 거고 양이 좁아지면 질이 좋아지는 걸 보여주는 거고.” 나는 사투리 억양이 강한 선생의 말씀을 교정하는 지금의 내 행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선생의 말씀을 들을 때 그것은 앞으로 나갔다 뒤로 가고 중복되거나 건너 뛰면서도 살아 있는 생생한 감동이 있었다. “선생님 옛날의 초기 작품을 읽어보았습니다.창작집 ‘불신시대’,장편소설 ‘시장과 전장’…… 그런 작품들을 읽다 보면 선생님 작품의 여주인공이 아주 결백한 성격을 갖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그것은 마치 선생님의 자화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는데요.”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하기는 싫어요.결백하다기보다는 자유롭고 싶은 거죠.얽매이기 싫고.” 이하의 내 물음과 선생의 말씀은 생략이다.안타깝게도.그러나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은 그렇게 많이 서운해하지 않으셔도 된다.내가 여쭈어 본 것은 더 내밀한 선생의 과거며 인생살이 같은 것이었으니까.선생의 사상에 관한 것이 아니니까.그러나 나는 선생의 사상만큼이나 선생의 인생을사랑하는 것 같다.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다 듣고 기록하고 싶은 것은 나의 감상벽인지? 탐구벽인지? 문학평론가·국민대교수 방교수가 본 작각 박경림 ●가혹한 운명 딛고 선 문학사 거봉 박경리는 1920년대가 낳은 가장 대표적인 한국의 작가이자 광복 후 한국문학사에서 가장 높게 빛나는 설봉(雪峰)이다. 1927년 통영에서 출생,진주고녀를 졸업하고 잠시 후 결혼,황해도 연안에서 교사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며 1950년에 ‘계산’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다. 박경리를 오늘의 박경리로 만든 하나는 선생의 작중 인물만큼이나 결벽하고 의지적인 선생의 성품이며 다른 하나는 가혹한 운명이다.한국전쟁의 와중에서 남편을 잃고 이후 아들을 잃고 다시 생명의 위기를 넘기면서 여성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고통 속에서 문학의 길을 걸어왔다.가혹한 고통은 선생 문학의 산실이다. 창작집 ‘불신시대’(1963)와 장편소설 ‘표류도’(1959),‘김약국의 딸들’(1962)‘시장과 전장’(1964),‘성녀와 마녀’(1967),‘파시’(1967) 등으로 이어지는 선생의 초기 소설은피폐하고 불순한 현실을 배경으로 결벽성 있고 의지가 강한 여성 주인공의 삶을 그려나가면서 운명과 맞서는 삶의 가능성을 펼쳐 보인다. 1969년에 집필하기 시작하여 1995년에 이르기까지 5부작으로 완성을 본 대하소설 ‘토지’는 누구나 인정하는 선생의 대표작이자 한국소설의 한계를 시험하는 의지의 극점이다.세대를 누적하면서 생을 이어가고 새로운 생을 모색하는 ‘토지’의 인물들은 삶의 만화경이자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다 보여주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를 반영한다. 생명은 어디서 오는 것이며 어디로 가는 것인가 같은 질문에 대해 인간은 속수무책의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피안의 진실을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박경리의 근본적인 사상은 모든 살아 있는 것의 근원인 우주를 향해 열려 있는 구경적 세계관이다.그것은 종교가 아니되 감히 종교와 ‘맞먹는’ 힘을 갖는다. ●시집에 담긴 또렷한 이미지 박경리 선생 댁은 몇 년 전에 찾아 뵈었을 때는 허허벌판 가운데 있었는데 이번에는 토지문화관 바로 옆에 있어 한결 찾기가 쉬웠다.그때 허허벌판 가운데 약간 둔덕진 곳에 덩그러니 서 있는 선생의 자택을 찾아갔을 때 나는 그것이 평생 외로운 삶을 살아온 선생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었다. 보통 사람들은 선생을 소설가로 생각하고 또 인정하지만 내 마음 속에는 시인으로서의 선생의 이미지가 또렷하다.나는 선생의 시의 애독자여서 몇 권 안 되는 선생의 시집을 새책방,헌책방에서 다 사보았고,그 간결한 어휘,담담한 어조,비약의 미(美),삶의 태도를 절절한 심정으로 내 것으로 만들었다.사상가이자 소설가인 박경리가 아니라 인간 박경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생의 시집을 읽어야 하리라. 몇 년 만에 뵙는 선생은 무척 힘들어 하셨지만 연세에 비해 정정하시다.예전보다 따뜻해 보이는 실내가 나로 하여금 안도감을 갖게 한다.나는 선생의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의지적이고 결벽성이 있으면서도 외로움을 타는 한 여인을 사랑하는가 보다.
  • 쉬어가기˙˙˙

    1984년 동아 마라톤에서 우승했던 전 국가대표 마라토너 이홍열씨가 마라톤의 노하우를 담은 ‘마라톤 완전정복’(강주배 그림)을 펴냈다.부제 ‘무대리와 이홍열의 신나는 마라톤 교실’.스포츠서울에 연재되는 ‘무대리 용하다 용해’의 주인공 무대리와 이씨의 질의문답 형식으로,마라톤에 관한 기본상식과 한국인에 맞는 마라톤을 위한 정보들을 담았다.이씨는 은퇴 후 전문 사이트(www.runjoy.com)와 무료교실을 운영해왔다.
  • [화제의 사이트] www.akzine.co.kr

    만화는 ‘허구’로 세상을 그리지만 그곳에는 ‘진실’이 담겨 있다.사회의 한 단면을 꼬집고,비틀어 해석하는 만화는 단순한 오락거리만은 아니다. ‘악진닷컴’(www.akzine.co.kr)은 ‘악소리나는 만화’를 표방한다.종이 만화책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만화를 제공하겠다고 다짐했다.단순히 재미있는 만화책을 넘기듯이 읽다가는 작가가 뜻하는 것을 놓칠 수도 있다.꼼꼼하게 곱씹으면서 읽어야 제 맛을 볼 수 있는 것. 눈길을 끄는 코너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아마추어 작가가 올린 ‘단편만화’.‘75년생,낮에는 모범교사,밤에는 만화가’라는 식으로 톡톡 튀는 자기소개를 올린 뒤 개성적인 시각으로 세상의 한 단면을 읽어 만화로 그려낸다. 만화를 올리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내용에 관계없이 작품을 그려 이메일로 보내면 된다. 무엇보다 인기있는 코너는 프로 작가들이 차례로 연재하는 ‘릴레이 만화’.지금은 ‘공주이야기’가 연재되고 있다.이미 작가 9명이 차례로 만화를 그렸는데 앞에 나온 내용을 묘하게 비틀고 저마다 입맛에 맞게 등장인물을 죽이기도,살리기도 한다. 우아한 모습으로 등장한 공주가 회를 거듭하면서 정체불명의 산삼을 먹고 이상한 생명체를 계속 낳는 괴물로 변해 우주전쟁을 일으키더니 갑자기 살인범을 추적하는 미스터리의 주인공으로 변신했다. 이처럼 이 사이트는 기막힌 아이디어로 승부를 내는 곳이다.사이트 운영자는 “만화를 아끼는 네티즌에게 새로운 놀이문화를 선보이고 싶다.”고 밝혔다. 박지연 기자 anne02@
  • 소설로 살아난 ‘열사 전태일’/김정환 소설 ‘남자, 여자, 그리고 영화’

    2002년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에 연재할 당시 ‘읽는 영화’라는 평을 받으며 눈길을 끌었던 시인 김정환의 ‘남자,여자,그리고 영화’(웅진북스 펴냄)가 출간됐다. 이 소설은 ‘전태일에 대한 명상’이란 부제가 말하듯 청계천 피복노조를 이끌다 분신한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 전태일의 삶을 조명한 작품이다.작가는 그의 생애를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면서 운동권 대학생의 이야기와 교차시키며 입체적으로 그린다. 소설의 한 축은 학생운동으로 수배,잠행중인 서울대 법대 68학번 주인공 ‘화자’와 애인인 음대생 여자의 이야기. 고(故)조영래 변호사를 모델로 한 듯한 ‘화자’의 긴박한 도바리(수배를 피한 잠행)생활을 중심으로 암울했던 70년대의 학생운동권 풍속도를 정밀하게 재현한다.그 속에서 전태일의 삶이 학생운동권에 드리운 그림자 등 그를 통해 잊어서는 안될 역사의 물줄기를 오롯이 복원시킨다. 작품의 다른 축은 전태일의 삶이다.세 동생을 책임져야 했던 개인적 고난을 딛고 열악한 사회현실에 눈떠가는 노동운동가의 내면세계를 점진적으로생생하게 그려낸다. 두 축이 교차하는 작품은 ‘읽는 영화’라는 평에 걸맞게 파격적 묘사가 많이 등장한다.음악을 들려주는 듯한 표현 속에 시나리오 지문 같은 배경을 깔면서 전태일과 ‘화자’ 등 주인공의 움직임을 영화보듯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 지은이는 “전태일의 삶과 글은 남한 노동운동뿐 아니라 민주화운동 전체의 지도력 부재를 웅변하고 죽음으로 역전시켰다.”며 “이 작품은 전태일에게 선구자만이 아니라 현대적 인간의 전형성을 주기 위한 문학적 욕망에서 비롯했다.”고 말한다.작품에 질박한 그림을 보탠 임옥상 화가는 “김정환 소설을 그리는 것이기도 했지만 나는 ‘전태일’을 그렸다”며 “전태일 정신의 부활을 흙에서 발견했다.”는 감동을 들려준다. 이종수기자
  • 특별재해지역 얼마나 지원되나/사망·실종자 가구주 2000만원

    정부가 22일 전국 14개 시·도의 156개 시·군·구,1657개 읍·면·동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함에 따라 지원대상과 규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별위로금 한도액 500만원 먼저 사망·실종자 가구주에게는 자연재해대책법에 따른 보상금 1000만원에 보건복지부 국고 및 의연금 1000만원을 더해 모두 2000만원을,가구원에게는 1000만원을 지급한다. 피해종류에 따라 차별지급되는 특별위로금은 주택이 전파된 경우 500만원,반파는 290만원을 받을 수 있다.또 침수주택과 가내공장·점포 등을 운영하는 소상공인은 각 200만원,농·수산물의 80% 이상 피해를 본 농·어가 이재민은 500만원,50∼80%의 피해를 본 농·어민은 300만원의 특별위로금을 지급받는다. 관계자는 “사망·실종자에 대한 보상금을 제외한 특별위로금은 중복지급되지 않기 때문에 500만원이 최고한도액”이라면서 “재산피해가 큰 수해민은 가장 유리한 특별위로금을 택일해야 한다.”고 밝혔다. ●복구비 자부담비율 대폭 축소 주택을 비롯한 농·수·축산시설 등에 대한 피해복구비 기준액이 일반수해지역보다 20∼278% 상향조정됐으며,복구비용에 대한 본인부담비율도 국고나 지방비 보조로 대폭 전환했다. 전파된 주택의 복구비용 기준액은 3600만원,반파 주택은 1800만원이다.농작물 대파대의 경우 1ha당 일반작물은 314만 9000원,엽채류는 414만원, 과채류는 514만 6000원 등이 기준액이다. 이같은 각종 사유시설에 대한 복구비용 부담비율은 주택 전파 또는 반파의 경우 현재 국고 20%·지방비 10%·융자 60%·자부담 10% 분담에서,국고 25%·지방비 15%·융자 60%로 본인부담 비율을 없앴다.또 농작물 대파대(본인부담 15%)와 가축·누에입식(〃 10%),소규모 수산증양시설(〃 10%)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복구비용에서 본인부담 비율(현행 10∼30%)도 없앴다. 관계자는 “자부담 비율을 축소했더라도 기준액을 초과한 복구비용은 피해자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면서 “기준액에 못 미치는 복구비를 사용하더라도 국고와 지방비,융자 등의 부담비율은 일정하다.”고 설명했다. 장세훈기자 shjang@
  • ‘정전방지지역’ 지정 건의/울산시, 산자부·한전에

    울산시와 울산상공회의소는 22일 석유·자동차·조선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이 위치해 있는 울산지역을 ‘정전방지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할 것을 산업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에 건의했다고 밝혔다. 시는 태풍 ‘매미’에 따른 정전으로 공장가동이 중단돼 많은 피해가 난 것과 관련,자연재해에 따른 정전으로 공장가동이 중단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특별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별관리지역으로 지정해 현재 초속 50m 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돼 있는 송전탑 설계기준을 70m로 강화하고 송전탑을 비롯,노후된 전력공급설비 교체와 전선지중화 사업을 우선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건의했다.또 정전예방을 위해 주요 기업체까지 전력공급을 복선화할 것을 요청했다. 울산지역에서는 이번 태풍에 따른 정전으로 석유화학업체 등 28개사에서 모두 325억원의 피해가 난 것으로 집계됐다. 울산 강원식기자 kws@
  • [사설] 재해 지원 신속·공평하게

    정부가 어제 태풍 ‘매미’로 피해를 입은 전국 전지역을 특별재해지역 대상지역으로 선포했다.이들 지역들은 통상적인 지원 기준에 의한 것보다 많게는 150%에서 적게는 50%까지 지원금을 더 지급받게 된다.고통을 겪고있는 수재민들에게 지원의 손길이 고루 닿게 돼 불행중 다행이다.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지역별 선정시비를 없애기 위한 고육지책의 측면도 있는 것 아닌가 여겨진다. 어쨌든 정부가 이달 말쯤 선포하려던 계획을 1주일 정도 앞당겨 신속하게 지정한 것은 시름에 잠겨있을 수재민들의 재기 의욕을 북돋우는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이다.이제 주민들이 안심하고 피해복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신속하게 집행하는 일만 남았다.예전처럼 언론을 통해 발표는 해놓고 정작 지원금은 겨울 찬바람이 날 때 전달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될 것이다.차제에 국민성금도 정부 지원금과 동시에 전달되도록 신경을 써야 할 일이다. 그러나 특별재해지역 선포로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이 제도는 지난해 태풍 ‘루사’ 이후 정부가 자연재해대책법을 개정해 신설된 것이다.강원도 정선읍 일대는 지난해 입은 피해보상 협의가 지연됨으로써 복구공사가 채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또다시 매미가 할퀴고 지나갔다.제도 도입이 일천한 탓도 있겠지만,엄청난 예산 지원이 아무런 실효를 거두지 못함으로써 엎친 데 덮친 격이 된 경우이다.결국 국민세금만 낭비한 꼴이다. 따라서 특별재해지역 선정을 만병통치약쯤으로 여겨서는 안 된다.신속하고,공평한 지원 못지않게 지원금이 적재적소에 쓰여 피해주민들로부터 불만의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우선순위를 미리 정해놓아야 할 것이다.무엇보다 제방·도로 등 기간시설은 항구적인 피해복구가 이뤄지도록 신경을 써야 할 것으로 본다.재난 뒤처리에 급급한 수해행정은 이제 종언을 고해야 할 때이다.특히 국민의 조세부담률 증가 등을 이유로 특별재해지역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없지 않음을 유념하기 바란다.
  • 편집자에게/ “수해복구 인터넷 적극 활용하자”

    -‘자원봉사자 수재민 찾아 떠돈다’기사(대한매일 9월20일자 10면)를 읽고 해마다 반복되는 태풍이지만 피해 당사자 외에 우리 대부분은 쉽게 그 재난을 잊고 평소와 같이 생활하는 데 익숙하며,자연재해를 예상한 대비 또한 지나치게 안이하고 겉치레에 그치지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정부부처는 물론 각 단체 등에서 신속하게 나섰지만,예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자원봉사자들이 수해복구에 참여하고자 피해지역을 방문하거나 지역 재해대책본부에 신청하면 마땅한 일거리를 안내받지 못하여 헛걸음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IT(정보기술)강국이라는 점을 살려 이번 수해복구에도 인터넷을 최대한 활용했으면 한다.수해지역의 지자체에서는 그동안 활용이 미흡하던 자원봉사센터 사이트에 수해현장과 복구상황 등을 동영상과 함께 올리고 필요한 인력·장비·물품 등을 소상하게 알렸으면 한다.이를 통해 신청·접수 및 안내 등이 자동으로 이루어지면 수해지역 출향민이나 뜻있는 자원봉사자들이 필요한 도움을 제때에 쉽게 줄 수 있을 것이다.이는 주5일제 근무제와 관련해 자원봉사가 활성화하는 데도 큰 몫을 할 것이다. 덧붙여 전국 30개 보호관찰소(www.probation.go.kr)는 사회봉사명령을 부과받은 대상자를 매일 3000∼4000명 규모로 수해복구 지원에 참여시키고 있으므로 수해지역 주민들은 인근 보호관찰소에 도움을 요청하기를 적극 권한다. 노청한 서울남부보호관찰소장
  • [녹색공간] 자연을 생각하는 재해복구

    올 여름 지루하게 내린 비로 인해 생활의 불편은 물론 농작물 수확량이 예년에 비해 급격히 떨어져 농민들이 힘들게 됐다.태풍 ‘매미’가 휩쓸고 지나간 제주도와 경상도,전라도,강원도 농민들은 더 큰 상처를 입었다.특히 강원도의 경우 지난해 태풍 ‘루사’로 인한 피해 지역이 또다시 피해를 입었다. 자연재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그동안 급박하게 이뤄진 인간 위주의 개발은 근시안적인 개발로 치달아 자연환경을 심하게 훼손시켜 왔다.이렇게 진행된 개발은 만드는 것에만 그치고,이를 친환경적으로 관리하지 못해 각종 사고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저수지의 뚝이 터지고,하천에 설치된 편의 시설은 매년 침수되고 있으며,천편일률적인 하천의 제방축조로 인한 빠른 유속은 하천과 인접한 도로와 시설물,그리고 농경지를 연례행사처럼 송두리째 앗아가고 있다.이 때문에 복구비용 역시 매년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끊지 못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아닐 수 없다. 지난해 태풍 ‘루사’는 강원 정선의 최상류부터 남한강의 최상류인 동강하류까지피해를 입혔다.특히 정선읍과 영월읍의 침수는 제방이 붕괴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생해 자연재해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그런데 올해 또다시 정선읍의 하수갑문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아 조양강의 물이 역류하여 침수됐다.지난해 ‘루사’가 할퀴고 지나간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시 생채기가 난 것이다.지난해에 이어 거푸 수마(水魔)에 당한 주민들의 분노는 위험 수위다. 반면 영월읍 일대 처럼 친환경의 항구적인 공사가 완료된 지역은 지난해와 거의 비슷한 양의 비가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큰 피해를 벗어날 수 있었다.지난해 끊겼던 도로가 역학조사를 거쳐 보다 튼튼하게 이어지고,하천 제방도 유속에 맞게 견고하게 복구됨으로써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해낸 것이다. 이처럼 하천 상류에서부터 관리의 부재는 매년 반복적으로 대규모의 피해를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자연재해가 엄청난 재앙으로 변하지 않도록 종합적인 관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이를 위해 먼저 하천의 폭을 좁혀 유속을 높이는 각종 시설물들을 과감하게 철거해야 한다.또한 하천과 그 주변에 설치된 철도·교량·도로에 대한 철저한 안전 검사를 실시해야 할 것이다.아울러 복구를 위한 민·관의 모든 지원이 빠른 시일내에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이러한 문제는 앞으로 시스템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도록 차제에 근본적인 방안이 강구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나아가 태풍피해로 인해 이재민들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자원봉사단 네트워크를 보다 활성화하고 상시적인 모금활동으로 시민들의 참여폭을 넓히는 것도 좋은 방안이 될 것이다. 환경의 변화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이제는 문제가 발생하면 허겁지겁 뒷처리나 하는 안일한 복구방식에서 탈피해야 한다.자연에서 단절되어 버린 강,또 사람과 더불어 문화의 한 공간으로 자림매김하는 데 실패한 강은 결국 인간으로부터도 외면당한다.그 사이 환경의 파괴는 더욱 가속화되고,더이상 사람과 공유할 수 없는 공간이 되어버린다.그 단절의 아픔이 재해를 재앙으로 만든다.항구적인 해결방안을 진지하게 모색할 때다. 엄삼용 동강보존본부 사무국장
  • 순종女와 악착女의 사랑 방정식/MBC 새 아침극 ‘성녀와 마녀’ 박경리 소설 원작 22일 첫 방송

    MBC 소설극장 ‘성녀와 마녀’(연출 강병문 백호민,극본 소현경)가 22일 오전 9시 첫 전파를 탄다.‘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의 후속작이다. 순종적이고 희생적인 ‘성녀’ 하란(서유정)과 적극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마녀’ 형숙(최유정)이 수영(정찬)을 사이에 두고 보여주는 사랑이 기둥 줄거리다. 얼핏 전형적인 여성상 이분법에 기대는 통속 드라마 같지만,작가 박경리가 1960년 여성지 ‘여원’에 연재했던 같은 이름의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1년 정도는 멀리서 바라만 보는 성녀 같은 사랑을 할 수도 있겠죠.상황에 따라서는 남의 애인을 뺏을 수도 있겠고.”(서유정)“원하는 것을 쟁취하는 게 마녀라면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최유정) 실제로는 어느쪽이냐는 질문에 두 여자 주인공은 모두 “당연히 섞였다.”고 입을 모은다.“대부분 여성들이 양면성을 가지고 있지 않나요?어느 한쪽만 단순화시켜서 말할 수는 없죠.”(서유정) 게다가 캐릭터들이 그냥 단면적으로 끝까지 가진 않는다.원작처럼끝부분에서는 ‘성녀’와 ‘마녀’가 각기 ‘정반합’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예정이라는 것. 정인 책임 프로듀서는 “주인공들이 모두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제대로 된 사랑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면서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스스로도 행복한 사랑,상호 보완 관계에서 출발해 서로 신뢰를 쌓아가는 사랑이 가장 옳은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사실상 묻혀 있던 박경리의 첫 연애소설 ‘성녀와 마녀’는 최근 43년만에 책으로 나왔다.발표됐을 당시 파격적 자유연애 스토리로 화제를 모으며 영화화되기도 했지만,정작 단행본으로 출간되지는 않았다. 채수범기자 lokavid@
  • 기고/ 안전은 우리의 권리이자 의무

    풍성해야 할 추석을 풍마(風魔)와 수마(水魔)가 덮쳤다.태풍 ‘매미’로 해일이 발생하고 건물은 무너지고 잠겼다.농어촌은 만신창이가 됐고,대형 크레인들은 고철덩어리로 변했다.남부지방의 약 200만명이 전기 없는 암흑의 밤을 보낸 가운데 쓰레기 더미 위에 이재민의 눈물방울이 낭자하다. 사망 또는 실종자가 130명에 이르고 재산피해만 4조원을 훌쩍 넘은 이 지옥도(地獄圖)는 낯설지 않다.지난해 이미 GDP(국내총생산) 기준 경제성장률의 0.3∼0.8%포인트를 감소시킨 것으로 추정되는 태풍 ‘루사’를 겪은 바 있고 똑같은 피해가 1년 단위로 재발하는 탓이다. 지난 10년간 자연재해로 인한 우리나라의 피해 규모는 한 해 평균 사망 106명,이재민 1만 6726명,재산피해 6800억원을 넘어서는 엄청난 규모에 달한다.그리고 그 피해는 대부분 농어민과 영세상인 등에게 집중되고 있으며 매년 증가 추세로 경제성장에 막대한 타격을 입히고 있는 실정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발생하는 자연재해를 겪으면서 우리 국민의 반응은 즉각적으로 격렬하게 들끓어 올랐다.그러나 한 때 반짝 달아오른 여론일 뿐,피해 가족의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똑같은 사고나 재해가 발생하곤 했다. 태풍의 엄습은 통제할 수 없는 비정한 자연의 몫이며,토지나 건물은 움직일 수 없는 부동산이므로 어쩔 수 없다고 치더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중장비·자동차 등은 움직일 수 있는 동산임에도 불구하고 저지대나 해일 위험지역에서의 비상식적인 인명 및 동산 피해가 발생했다.반면 해일이 강타하기 직전 150척의 선박을 뭍으로 끌어 올려 해안마을에 피해가 전혀 없게 만들었던 울산지역 어느 공무원의 대비는 이번 피해 역시 철저한 사전 대책이 시행되고 안전의식이 있었다면 규모를 상당부분 경감시킬 수 있는 인재(人災)였다는 뼈아픈 교훈이 되고 있다. 또 같은 태풍이 지나간 일본의 경우 그 위력이 더욱 강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망 1명,부상 90명에 그쳤다는 언론보도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가운데 재난에 대한 선진국의 대처 역량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뇌하게 한다. 막을 수 있는 피해가 재발된다는 사실은 정부와 국민 모두가 예외 없이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점이다.우리 모두는 안전불감증이라는 집단 고질병과 어제의 비극을 금방 망각하는 위험한 기억상실증,방재대책을 철저하게 시행하지 못하는 무사안일 증후군을 참회하는 심정으로 반성해야만 한다. 재난방지는 쉽고도 어렵다.우선 사고가 어디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철저히 조사하고,그러한 재난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의 대책을 수립하고 그대로 실천하면 된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는 쉬운 해법이다. 반면 어제의 비극을 끝까지 망각하지 않는 일은 어렵고,방재 대책을 끝까지 철저히 시행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그런데 이 어려운 일은,노력하는 그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만약 막을 수 있는 재난을 방치했다면 이 부분에 대한 엄정한 조사와 함께 책임소재를 분명히 따져 묻는 일도 이뤄져야 할 후속 조치다.그 임무를 과연 철저히 수행했는가,혹여 안일한 사전사후 대처로 인명과 재산피해를 확대시키지 않았는가,피해를 막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를 철저히 따져 사회기강을 바로잡고 비극의 재발방지를 위한 추상 같은 교훈으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치산치수(治山治水)’는 수천 년전부터 변치 않는 지도자의 가장 큰 의무였다.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인 현재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안전제일의 전향적 리더십이 필요한 시점이다.동시에 국민 모두가 자연재해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을 척결하고,무엇보다도 안전을 우선시하는 광범위한 공감대를 도출해야 할 것이다. 불행을 당한 분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사후수습이나마 잘 되길 바라면서,유가족의 오열과 태풍 ‘매미’의 교훈을 또다시 망각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자 한다.안전은 국민의 기본권이자 의무로,우리는 과오로부터 학습하는 인간이며,그동안 ‘피와 눈물’이라는 가혹한 수업료를 진저리나도록 대단히 많이 지불해 왔기 때문이다. 오상현 대한손해보험협회 회장
  • [열린세상] 태풍 ‘매미’의 교훈

    기상관측 이래 최고의 강풍과 집중호우를 동반한 태풍 ‘매미’로 또 다시 129명의 인명피해와 5조원에 가까운 재산피해를 입었다.과연 피해를 줄일 수는 없었는지 차분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먼저 태풍 ‘매미’에 관한 기상예보부터 살펴보자.태풍 ‘매미’가 지난 6일 필리핀 부근 해상에서 발생한 후 기상청은 비교적 정확한 예상진로를 내놓았다.11일 오전 기상청은 태풍이 남해 사천 부근에 상륙했다가 동해 울진으로 진출하는 것으로 진로를 예측하였다.12일 저녁 상륙시점이 한 시간정도 빨라진 것 외에는 기상청의 예상진로가 적중하였다.이같은 태풍예보의 정확성은 1987년 태풍 ‘셀마’가 내습할 당시 기상특보가 발표되었을 때 이미 태풍이 통과하면서 조업 중이던 어선 등에서 엄청난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에 비하면 크게 개선된 것이다. 방송은 예상되는 태풍의 위력을 보여주면서 국민들의 경각심을 높였고,컨테이너 크레인의 안전성과 송전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점,주민들의 철저한 대비책이 필요하다는 점을 반복하여 강조하였다.이처럼 예고된 재난에서 정부·자치단체·주민들이 재난방지 프로그램을 어떻게 갖추고 있었는지,역할분담은 적정한지,재난관리시스템은 제대로 실행되었는지 면밀히 검토하여 앞으로의 재해에 대비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를 보자.미국에서는 태풍‘매미’와 맞먹는 초특급 허리케인 ‘이사벨’이 18일 노스캐롤라이나 북동부 지점에 상륙할 것으로 예보되면서 각 기관은 철저하게 대비하였다.이미 15일에는 애틀랜타의 미국연방재난관리청(FEMA) 동부지역센터에서 허리케인의 상륙예정지역으로 긴급구조장비와 구호품을 트럭으로 수송하기 시작하였다.15일 버지니아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주방위군과 주경찰에 경계태세를 지시했으며 다른 주들도 위험 지역 주민소개 등 재난 대비 프로그램을 가동했다.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14만명,버지니아주에서는 16만명 이상의 위험지역주민들을 지방자치단체에서 마련한 대피소로 사전에 대피시켰다.주민들은 전지와 손전등,비상식량을 구입하고 철저하게 대비하였다.이같은 철저한 대비 덕분에 초대형 허리케인에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 태풍 ‘매미’의 피해가 커진 것은 선진국 수준의 예보에도 불구하고 후진국형의 안이한 대처 때문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지방자치단체는 태풍의 상륙이 예고된 후 경보발령 및 전달,피난권고 및 지시 등 철저한 대비활동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그 책임을 다하였다고 볼 수 없다. 경남 마산에서 해일이 오는 줄도 모르고 있던 시민 12명이 목숨을 잃은 것은 행정당국의 사전경보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부산 서구와 영도구에서 해일에 대비한 강제대피령을 내려 주민들의 인명피해가 없었던 것과는 대비되는 결과이다.지역주민들도 위험한 물건들을 점검하고 외출을 자제하는 등 철저하게 대비했는지도 의문이다.태풍 경보 이후 짧은 시간동안이라도 정부와 주민들이 철저하게 대비하였다면 피해를 상당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중앙정부는 재해발생 이후 막대한 예산을 들여 보상하는 소극적 행정에서 벗어나 재해발생에 대비하는 적극적 행정으로 전환하여야 한다.재해 예방활동을 강화하여 시설의 계획단계에서부터 방재개념을 도입하는 재해영향평가제,건물 내진설계의 의무화,태풍과 홍수 등에 대비한 재해보험 도입,각종 안전규제장치 강화 등의 적극적인 예방정책이 반드시 필요하다.이를 위해서는 재난관리의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하는데,미국의 연방재난관리청과 같은 통합재난관리기구인 소방방재청의 설치가 시급하다.자연재해와 인위적 재난의 예방,대비,긴급구조,복구 등 전 단계에서 지방자치단체를 지원하는 한편 행정 각부처의 재난관리활동을 종합하고 조정하는 기능을 담당할 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남 궁 근 서울산업대 교수 IT정책대학원장
  • [오늘의 눈] 비교되는 재해대책

    자연재해가 선·후진국을 가려서 일어나지는 않는다.그러나 인명피해는 후진국일수록 크다.아프리카나 중국,인도 등에선 홍수나 지진으로 수백명씩 사망했다는 소식이 연례행사가 됐다.유럽이나 미국 등지에서는 그같은 떼죽음이 흔치 않다. 18일 미 동부지역을 강타한 허리케인 ‘이사벨’에 대처하는 미국의 모습을 보면 어렴풋이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태풍의 이동 경로 등을 예보하고 주의보를 발동하는 당국의 목소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그러나 19일 현재 사망자는 1명에 불과했다.당국의 경고가 말로 그치지 않았기 때문이다.노스 캐롤라이나에 ‘이사벨’이 상륙한 시간은 18일 오전 8시(현지시간),워싱턴 일대를 지나친 시간은 이날 저녁.워싱턴에서 ‘이사벨’이 상륙한 지점까지는 자동차로 10시간이 넘게 걸린다.따라서 워싱턴의 낮 시간대에는 그렇게 위험하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럼에도 워싱턴 지하철과 버스의 운행은 18일 오전 11시부터 정지됐다.당국은 갑작스러운 돌풍에 의해 정전이 되거나 승객들이 지하철 선로에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바람으로 인해 가로수가 무너져 버스를 덮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대부분의 학교는 이틀간 쉬었다.각 가정에 전달된 대피 요령은 지나칠 정도다.집 밖에 놓인 작은 가구나 쓰레기통까지 바람에 날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내 연방정부 청사는 모두 문을 닫았다.“공무원이 놀아서 되느냐.”는 비판보다 누구에게든 안전이 우선이라는 인식이다.백악관은 외부 창문과 지붕을 점검했고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캠프 데이비드 별장으로 이동,국민들의 경각심을 돋우었다.연방재난관리청은 일주일 전부터 피해예상 지역에 재해장비와 수색구조팀을 급파했다. 태풍에 앞서 5개주와 워싱턴시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데 이어 당일에는 노스 캐롤라이나와 버지니아주를 즉각 재해지역으로 선포하는 등 연방 차원의 재해지원 시스템도 신속했다.태풍 ‘매미’의 위력이 컸다고 하지만 우리도 이같은 준비를 했다면 100명이 넘는 목숨을 잃었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든다. 백문일 워싱턴 특파원 mip@
  • [사설] 재난·재해기금 운용 개선해야

    지방자치단체들이 자연재해와 재난에 대비해 적립하도록 돼 있는 재해대책기금과 재난관리기금을 부실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각 시·도별 기금 관리실태를 보면 재해대책기금의 적립률은 87%이며 재난관리기금은 지난 6년동안 전국적으로 109억여원밖에 집행되지 않는 등 자치단체의 재해·재난 예방활동이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이 때문에 주민 안전교육과 시설물 보강,안전진단 등 예방활동을 강화해 왔다면 태풍으로 인한 피해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자치단체는 재해예방의 일차적 책임을 지고 있다.재해예방활동을 소홀히 한 것은 주민들을 안전하게 돌봐야 하는 기본적인 의무를 저버린 것이다.또 관련법상 반드시 적립하도록 돼 있는 재해·재난 기금의 적립률이 낮고 사용실적마저 저조하다는 사실이 매년 지적됐음에도 불구하고 파행적 운용을 사실상 방치해 온 정부의 책임 또한 작지 않다. 재해·재난 기금의 적립 및 사용이 저조한 것은 자치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이 자신들의 임기중 생색이 나지 않는다는이유로 기금의 적립과 사용에 소극적으로 임해왔기 때문이다.평소에는 지방자치 확대를 주장하면서도 재해가 발생하면 중앙 정부가 도와 주거나 국민성금이 답지할 것이라는 의타적 사고를 갖고 있는 것도 문제다. 정부는 자치단체가 제대로 기금을 적립,사용하도록 강제조치근거를 마련하고,이를 따르지 않는 자치단체에 대해서는 불이익 조치를 취하는 등 자치단체의 안전불감증을 적극 시정해 나가야 한다.또 재해대책기금,재난관리기금,재해구호기금 등으로 나눠진 유사 성격의 기금을 통합하거나 융통성 있게 사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통합적인 재해관리가 이뤄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자치단체는 기금을 활용,주민 비상대피 훈련,피난체계 구축,피해 조사기법 개발,안전체험관 건립 등 재해예방을 위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정비,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해 나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 태풍 피해액 ‘뻥튀기’ 보고

    제14호 태풍 ‘매미’의 재산피해액이 하룻밤 새 눈덩이처럼 불어난 이유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지난 16일 오후 4시 현재 중앙재해대책본부가 발표한 재산피해액은 1조 8540억원.그러나 이날 밤 11시쯤 2조 7123억원으로 9000억원 가까이 늘었다.피해액은 다음날인 17일 오전 6시 3조 4601원으로 불었고 이날 오후 6시 현재 4조 169억원으로 4조원대를 훌쩍 넘어섰다. 행정자치부는 이에 대해 수해 발생후 긴급복구에 매달리던 공무원들이 뒤늦게 피해집계에 나섰기 때문이라고 해명했지만 이 말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는 실정이다. 재해대책본부가 15일의 경우 2∼6시간 간격으로 하루 8차례,16일은 8시간 간격으로 3차례씩 방재속보를 통해 피해액을 속속 추계해 발표한 근거가 무엇이냐는 지적이다.또 피해액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시점이 정부가 특별재해지역을 전국으로 확대 선포키로 한 지난 15일 이후라는 점도 수상쩍다는 것이다. 총 15개 분야 20만 250건 피해에 재산피해액을 5957억원으로 잠정집계한 부산시 관계자는 “정부의 지원을한 푼이라도 더 받기 위해 피해액을 부풀린 지자체가 더러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히고 “부산시도 보상에서 제외되는 생선횟집과 아파트 유리창 파손 등의 피해액을 피해현황에 일부 포함시켰다.”고 시인했다. 전남의 경우 태풍이 지나간 이튿날인 13일 이후 태풍 피해액은 14일 159억원,15일 457억원,16일 1200억원,17일 1503억여원으로 불어났다. 조사인원이 부족하고 시간이 촉박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부풀리기식 피해집계가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여수시는 현장조사 등을 통해 17일까지 피해액이 1514억여원이라고 집계했다.하지만 전남도에 보고한 액수는 993억여원이었다.무려 521억여원의 차이가 났다.시 관계자는 “전산입력을 각 실·과에서 하다보니 맞지 않았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경남의 경우 지난 15일 피해액이 5600억원이었다가 불어나기 시작해 16일 오전 6시 현재 1조 3012억원,같은 날 오후 6시에는 1조 562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17일 오전 6시 현재 1조 9569억원으로 늘었다. 도 관계자는 “초기 거제지역 정전으로 사태파악이 안됐고,통영·사천지역 도서지역의 통신불량으로 피해조사가 안됐다.”면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액은 행자부의 정밀조사 때 깎이기 마련이므로 각급 자치단체는 미리 피해액을 부풀려 보고하는 것이 통례”라고 털어 놓았다. 경북도 재해본부는 “조사가 진행되면서 피해액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피해지역 대부분이 재해지역으로 선포된다고 해도 보상금을 더 주지 않는 공공시설이기 때문에 부풀릴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행자부 방기성 방재관은 “피해집계가 하루 만에 대폭 증가한 것은 긴급복구에 매달리던 공무원들이 피해액 집계에 본격적으로 나섰기 때문”이라면서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낮에는 피해지역 실사조사에 나서고 밤을 이용해 컴퓨터 입력 작업을 하다보니 액수가 한꺼번에 급증한 것”이라고 해명했다.행자부는 또 지난해의 ‘루사’ 등 재해사례를 감안할 때 앞으로 2∼3일 정도 이런 추세가 지속되다가 차츰 소폭 증가로 돌아설 것으로 내다봤다. 부산 김정한 대구 한찬규 광주 남기창 장세훈기자 shjang@
  • ‘자연재해보험’ 안하나 못하나

    태풍 등 대형 재해가 일어날 때마다 정부는 피해액의 상당부분을 보험으로 보상해주는 자연재해보험제를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재해대책의 단골메뉴로 내놓고 있다.자연재해보험제 도입방침이 나온지 올해로 7년째지만 시행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보험 적용대상과 방식 등을 두고 정부와 보험업계간 이견이 좁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도입을 서두르더라도 빨라야 2∼3년이 더 걸릴 전망이다. ●자연재해보험만이 현실적인 대책 태풍과 우박,서리 등으로 사과와 배,포도,감,복숭아,귤 등 6종의 과실류가 피해를 입으면 피해액의 70∼80%를 보험으로 보상해주는 ‘농작물 보험제’가 운영되고 있다.이는 재해발생으로 인한 재정부담을 정부가 짊어지던 방식에서 탈피해 정부와 보험업계,국민이 함께 분담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제한적인 보험만으로는 대규모 자연재해시 충분한 피해보상이 불가능하다.이에따라 정부는 폭설과 홍수,태풍,지진,가뭄,호우 등 8개 자연재해로 인한 주택과 비닐하우스,축사 등 226종(재해복구비 지원대상)의 시설물 피해에대해 자연재해보험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자연재해보험제도가 도입되면 정부는 예비비로 재해복구 관련 재원을 확보하는 현재의 방식보다 훨씬 안정적으로 재정운영을 할수 있고,국민은 실질적인 피해액에 근접한 수준의 피해보상을 받게 된다. ●여전히 좁혀지지 않는 견해차 자연재해보험 적용대상과 방식,보험료율 산정 등에서 정부와 보험업계간 이견으로 보험제도 도입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다.보험형태를 의무보험으로 할 경우 정부가 무상지원하던 재해복구비 일부를 국민이 보험료로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반발이 예상된다. 반면 임의보험으로 하면 상습피해지역 주민들만 가입해 적자운영이 불가피하다는 보험업계의 반대와 이로 인한 높은 보험료율 문제가 걸림돌이 되고 있다. 보험료율 산정을 위해서는 각종 시설물에 대한 지역별 위험도 등 재해통계자료가 갖춰져야 하지만,이같은 자료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실정이다.보험업계의 한 관계자는 “연이은 대형 자연재해로 농작물 재해보험만으로도 적자를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라면서 “자연재해로 확대할 경우 적용대상과 보험료율 산정에서 보다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행자부는 상대적으로 현황파악 등이 쉬운 비닐하우스와 축사 등을 대상으로 자연재해보험을 단계적으로 도입한다는 계획이다.행자부 관계자는 “연말까지 국민과 보험업계 등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보험료율 및 분담비율 산정을 위한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라면서 “관계부처 협의와 법 제정 작업을 고려하면 최소 2∼3년은 있어야 도입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세훈기자 shjang@
  • 태풍피해 강원·경남 르포 / 빈사상태 빠진 어민들

    태풍 ‘매미’가 남해안 어업생산 기반을 송두리째 삼켰다.강풍에 휩쓸린 가두리양식장은 흔적만 남았고,수하(垂下)식 양식장도 양식줄이 뒤엉켜 못쓰게 됐다.방파제도 파도에 무너지고,어선은 침몰하거나 파손됐다. 얼마 전까지 적조와 씨름하던 어민들은 망연자실 희망을 잃었지만 쥐꼬리 같은 정부의 지원도 ‘선 복구 후 지원’이어서 실의에 빠져있다. ●붕괴된 어업생산 기반 17일 경남도에 따르면 이번 태풍으로 인한 수산피해는 이날 현재 3600여억원.가두리 등 양식장이 2544억원의 피해를 입었고,각종 어선 2000여척이 침몰 또는 파손됐으며,어항시설 등 관련 시설 230곳이 파손됐다. 특히 피해가 심한 가두리양식장의 경우 허가된 169건 중 137건이 피해를 입어 양식어류 1억 1500여만마리가 달아났거나 폐사했다. 양식시설이 밀집한 경남 통영시 산양읍일대 해역은 태풍 매미의 날갯짓에 초토화됐다.중화어촌계 정경림(76)씨는 “5㏊에 이르는 양식장 80% 이상이 파손됐다.”면서 “그물이 찢어지는 바람에 물고기는 대부분 유실됐고,남아있는 고기도 지느러미 등이 손상돼 곧 폐사할 것”이라고 말했다.이 어촌계는 내년 5월쯤 출하할 참돔 5만여마리를 잃었다. 해수어류 양식수협은 이번 태풍으로 통영연안의 가두리양식장 9600조(1조(組)는 가로·세로 5m) 가운데 80%인 7700여조가 파손됐고,양식장에서 키우던 어류 1억 1000여만마리 가운데 8000만마리가 유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굴·우렁쉥이·미더덕 등 수하식양식장도 쑥대밭으로 변해 648억여원의 피해를 입었다.굴양식업계는 어장 2만 8600여대(1대는 양식줄 100m) 중 50%가,멍게는 8680대 중 60%가 파손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권이(52) 통영시 어업생산과장은 “2∼3년 전부터 어려움을 겪어오던 수산업계가 이번 태풍으로 빈사상태에 빠졌다.”며 “정상으로 회복하려면 5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전남지역도 1503억원의 수산피해를 입었다.어선 110척이 침몰되거나 파손됐고,증·양식시설 8500여개가 강풍에 날아갔다.전남 여수시 화정면 김현철(30) 어촌계장은 “마을 전체 50가구에서 기르던 가두리양식장이 모두 망가져 자식처럼 길렀던 우럭이나 돔 등이 모두 죽거나 사라져 버렸다.”고 하소연했다. ●눈덩이 피해에 지원은 쥐꼬리 자연재해대책법은 시설복구비의 경우 중·소규모 양식장은 국비 40∼25%,지방비 10%,융자 30∼55%이고 나머지는 자부담이다. 대규모는 국비와 지방비 지원은 없고,70% 융자가 고작이다.어류에 대한 지원은 더 형편없다. 보상차원이 아니고 생계기반을 마련해 준다는 취지로 치어 입식비 정도만 지원한다.어종과 크기에 따라 마리당 400∼4200원씩 지원된다.남해안의 주 양식어종인 우럭의 경우 크기가 7㎝ 미만은 마리당 600원이고,큰 고기는 1760원이다.출하시 가격이 ㎏당 7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지원액이 너무 적다는 지적이다.이마저도 지급시기는 복구계획 수립 후 1개월이 지나야 되고 ‘선 복구 후 지원’이다.자력으로 복구해야 지원토록 규정돼 있어 어민들의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이에 따라 경남도는 보조금의 70%를 선급금으로 지원하고,이를 180일간 활용토록 제도개선을 건의했다. 통영 이정규·여수 남기창기자 j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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