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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기·인천 “수도권 대체매립지 조성, 정부가 나서야”

    인천시와 경기도가 25일 수도권 쓰레기 처리 문제와 관련해 공동 협력을 통해 해결책을 찾기로 했다. 박남춘 인천시장과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이날 ‘공정사회·자원순환 일류도시를 위한 공동발표문’에서 중앙정부가 생산·유통 단계부터 폐기물의 발생을 원천적으로 줄일 수 있는 혁신적인 정책을 추진할 것과 수도권 공동 대체매립지의 조성에 중앙정부(환경부)가 사업추진 주체로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새로 조성되는 매립지는 폐기물 감량 및 재활용 극대화, 직매립 금지 등 친환경적 자원 순환 정책을 도입해 소각재 및 불연재 폐기물만을 최소 매립하는 친환경매립지로 조성·운영하기로 했다. 특히 대체매립지 조성이 지연되거나 조성된 후에도 폐기물은 발생지 처리원칙에 따라 지자체별로 처리대책을 마련하도록 노력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축구 덕에 결혼하고 축구 에세이까지 낸 ‘성덕’ 부부

    축구 덕에 결혼하고 축구 에세이까지 낸 ‘성덕’ 부부

    SNS에 여자축구 체험기 쓰던 회사원 金 잡지에 글까지 쓰며 축구 사랑의 길 실천 “느리고 알아서 노는 詩적인 매력이 재미” 2002년 한일월드컵서 K리그 천착한 朴 “월드컵 통해 세계와 이어주는 것도 마력” 축구를 통해 서로에게 ‘입덕’(덕후가 되다)한 부부가 나란히 축구 에세이를 냈다. 김혼비(필명·38)·박태하(39) 부부다. 순서대로 지난해 아내가 먼저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민음사)를, 남편이 최근 ‘괜찮고 괜찮을 나의 K리그’(민음사)를 출간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부부는 사진 촬영을 위해 부부가 응원한다는 성남FC 유니폼과 축구공을 챙겨 왔다. “이거 어제 ‘직관’(직접 관람하다) 가서 사온 거예요.” 어쩐지 공 표면이 반짝반짝했다. 두 사람이 축구 에세이를 쓴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데는 잡지 릿터 서효인(38) 편집장 공이 컸다. 15년차 출판편집자인 박태하는 2015년 출간한 ‘책 쓰자면 맞춤법’(엑스북스) 예문을 성남FC 얘기로 도배하고, 평범한 회사원이었던 김혼비는 페이스북에 여자축구 체험기를 주기적으로 올렸다. 이들 부부 글은 야구 에세이를 썼던 ‘스포츠 친화 편집자’인 서 편집장의 레이더망에 포착됐다. 그렇게 박태하는 ‘릿터’ 창간 때인 2016년 8월부터, 김혼비는 다음해 ‘릿터’에 지극한 축구 사랑을 읊는 것으로 에세이스트의 길을 걷는다. ‘왜 하필’이라는 말이 무색한, 둘의 축구 입덕 경로는 ‘어려서부터’다. 그 가운데서도 박태하가 해외 축구가 아닌, K리그에 천착하게 된 데는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붉은 악마가 수놓았던 ‘CU@K리그’가 한몫했다. 연고도 없는 성남을 응원하게 된 건 어디까지나 자발적 선택이었다. 서울에 살긴 하지만 직관하기 부담스럽지 않은 거리에 위치한 성남FC를 응원하게 된 데에는 특히 황의조라는 신인 스트라이커에 대한 애정과 기대가 컸다. ‘스텝 오버(헛다리 짚기) 달인’ 브라질 호나우두를 좋아했던 김혼비는 박태하를 만나 처음 축구장에 갔다가 직관의 매력에 사로잡혔다. 축구 리듬을 내 몸으로 직접 타고 싶다는 충동은 그를 직접 그라운드에서 뛰게 하는 데까지 이끌었다. 이토록 두 사람을 하나 되게 만드는 축구의 매력, 아니 마력은 무엇일까. “공간의 미학이 다른 어떤 운동보다 잘 구현돼요. 다양한 유형의 패스와 움직임으로 상대방의 공간을 뚫어내야 하는 게 가장 매력적입니다. 자기 지역과 내 팀에 강한 정체성을 갖고 그것이 국가 버전으로 확장된 월드컵까지 이어지며 세계와 이어지는 점도 좋아요.”(박태하) “야구는 스트라이크인지 볼인지 바로 바로 알 수 있고 농구는 패스가 빠르죠. 축구는 뭔가 느리고, 그라운드에 저 혼자 던져져서 ‘알아서 놀아봐라’ 하는 느낌이어서 낚시같이 지루한 면이 있어요. 보는 사람이 찾아서 적극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게 재밌었어요.”(김혼비) 그런 점에서 “축구는 시(詩)적이다”고 김혼비는 말했다. 한 가지 대상을 향한 둘의 글은 비슷한 듯 다른 부분이 있다. 박태하는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이렇게 지극할 수 있을까 싶게 K리그를 향한 덕심을 결결이 썼다. 김혼비의 글은 호나우두의 ‘스텝 오버’처럼 휘몰아치는 비유가 ‘꿀잼 모먼트’다. 그러나 글 전반에 흐르는 마이너리티에 대한 애착은 공통점이다. K리그도 KBO나 월드컵, 해외 유명 리그에 비해서는 ‘마이너’하고, 여자축구는 말할 것도 없기 때문. “K리그도 여자축구도 인기가 없지만 이 사람들 세계에서는 우주잖아요. 이 격차가 주는 감동이 있어요.”(김혼비) “가지려고 가진 게 아니라, 어떤 감정이 와서 나를 흔들 때 보면 그게 ‘마이너리티’였어요. 매끈하고 잘 굴러가는 세계에는 크게 매력을 못 느껴요.” 이어 박태하는 덧붙인다. “성정이에요, 성정.” 축구 얘기에 이어 지난 6월부터 부부는 릿터에 팔도 축제 유람기 ‘전국 축제 자랑’을 연재한다. 둘이서 함께 에세이를 쓸 때 보통은 분량을 나눠 쓰거나 돌아가며 쓰지만 이들은 다르다. 휘몰아치는 김혼비가 초고를 쓰면, 꼼꼼한 박태하가 손보고, 이를 다시 김혼비가 수정하는 식이다. 이 비효율적인 글쓰기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두 사람 문투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 한 사람 호흡처럼 느껴져요. 기본적으로 비효율적인 방식이지만 둘한테는 어울려요. 둘 다 비효율적인 인간이고요. 하지만 그들에겐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죠.” 옆에 있던 서 편집장이 첨언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MBC성우 양희문, ‘팩트완전정복’으로 컴백

    MBC성우 양희문, ‘팩트완전정복’으로 컴백

    중후한 중저음에 위트있는 화법으로 10여년 전 TV광고와 예능오락프로그램에서 선풍적 인기를 누리던 MBC 성우 양희문(52)씨가 정부의 유튜브 방송 ‘팩트완전정복’의 목소리 주인공으로 다시 돌아와 화제다. 그의 대표적 CF 출연작은 2007~2008년 총 80여 편으로 제작된 ‘SK텔레콤 영상통화 완전정복’ 시리즈 이다. 24일 ㈜네오터치포인트에 따르면 ‘팩트완전정복’은 정부의 여러 정책을 쉽고 정확하게 전달해 국민들이 잘못알고 있는 오해를 바로잡는 유튜브 동영상이다. 일부 유투버와 언론에서 잘못 유포한 ‘경제위기론’을 반박하는 첫회 방송분은 유튜브 공개 하룻만에 2만 조회수를 넘겼다. 밋밋하고 재미없을 것같은 정부 정책 홍보물로서는 일단 성공한 콘텐츠로 평가받는다. 앞으로 경제, 노동, 복지 등 각 분야별로 국민들에게 잘못 알려진 내용을 바로잡는 ‘팩트완전정복’도 연재할 예정이다. 서울 마포에서 후학양성을 위한 성우학원을 운영중인 양씨는 “사실의 왜곡은 사회통합을 해치고 우리나라를 큰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며 “맡겨진 소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양씨는 지난 2017년 대통령 보궐선거 때는 문재인 대통령후보 캠프에 있으면서 ‘대한민국이 묻고 문재인이 답하다’를 녹음했으며, 사상 처음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대선공약을 녹음해 시각장애인협회에 전달하기도 했다. 홀트아동복지회에서 일주일에 3~4시간씩 장애우 돌봄 봉사도 하고 있는 양씨는 중산고 미술부 학생들의 도움을 받아 ‘홀트얼굴전’을 기획, 장애우 40여명의 인물사진 그려주기 등의 자원봉사도 하고 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양축 트래커 기술로 세계시장과 국내 태양광사업을 선도하고파”

    “양축 트래커 기술로 세계시장과 국내 태양광사업을 선도하고파”

    2000년에 코스닥에 등록한 벤처 1세대로서 양축 트래커로 세계 시장을 놀라게 한 전남 순천의 영농형 태양광 기술전문업체 ㈜파루의 강문식 대표. 특허받은 실시간 태양 추적 시스템을 가진 파루의 단축 (Single-Axis)/양축 (Dual-Axis) 태양광 트래커는 세계 40여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특히 미국 텍사스주 샌안토니오 지역에 세계 최대인 400MW 규모의 알라모 태양광 발전소 건설에 양축 추적식 시스템을 제공함에 따라 전 세계 태양광 시장에서 선도적인 기술력으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평소 ‘기업과 지역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생각하는 강문식 대표는 매년 순천대에 장학금 2억원을 기부하고, 지역아동센터 지원사업 등을 왕성하게 하며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강문식 대표는 “지역기업으로 역할을 할 뿐이다”라고 담백하게 말한다. 어려운 태양광업계의 진로에 대해 ‘기술력을 중심으로 한 세계시장 공략과 국내의 새로운 시장으로의 진출’을 주장하고 이를 앞장서 모범을 보이는 ㈜파루의 리더 강 대표를 통해 ‘아는 것을 실천하는 실수실행(實修實行)의 리더십’을 엿 볼 수 있다. 편집자 주-파루의 차별화 된 경쟁력은 무엇인지. “파루는 코스닥 상장기업으로 2015년 12월 글로벌 강소기업인 ‘월드클래스 300’ 기업으로 선정되고 2016년 12월 ‘1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추적장치 기술과 관련해 국내외 각종 기술특허와 12개국에 1GW 이상의 태양광발전 시스템 실적을 보유하고 있는 글로벌 태양광 기술 기업으로 특히, 양축 트래커 부문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독보적인 기술력을 자랑한다. 전 세계 12개국 이상에서 열악한 환경조건의 품질테스트와 각종 국내외 특허 및 인증, 3차원 구조해석(CAE)을 통한 최적화된 구조설계, 신뢰성 및 품질에 대한 국제실사를 최우수등급으로 완료하는 등 각종 품질테스트를 마쳤다.” -양축 트래커 태양광발전소는 무엇인가. “파루의 양축 트래커는 태양을 따라 고개를 돌리는 해바라기처럼 태양광 모듈이 상하좌우로 움직이면서 태양의 위치를 따라 이동하는 최첨단 양축 추적식 시스템이다. 실시간 추적방식의 광센서가 실시간으로 태양의 위치를 추적하여 태양광 모듈이 발전량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일사각을 유지해준다. 그렇기에 일반 고정식 대비 발전효율이 30% 이상 높다. 태양광 위치에 따라 모듈이 이동하면서 방위각은 변하고 일사각은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되기 때문에 그늘이 적어 농지 활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것도 고정식 시스템 대비 추적식이 갖는 장점이다. 파루 양축 트래커는 단일 기둥형태이며 높이도 높아 대형 농기계도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어 편리하며 기둥부 간섭으로 인해 농기계를 활용하지 못하는 구간이 거의 없다.” -고정식에 비해 양축 트래커 태양광발전소의 경쟁력은. “고정식은 모듈 그림자가 다른 모듈을 가리는 것을 막기 위해 모듈 간의 간격을 넓게 유지해야 해 농지 효율이 떨어지고 다수의 지지대로 설치하는 구조라 대형 농기계의 통행과 원활한 회전이 불편하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직접 사람이 수동 작업을 해야 하고 그만큼 작업시간은 늘어난다. 실제로 농촌진흥청에 양축 트래커와 고정식시스템을 43.2㎾ 규모로 동시 설치했는데 용량은 동일하지만 부지면적은 양축 트래커가 217평, 고정식시스템이 267평으로 양축 트래커가 약 8% 이상 면적이 적게 소요된다. 설치된 기둥수는 양축 트래커가 3개이며 고정식시스템은 44개로 고정식에 비해 양축 트래커가 농기계 활용 경쟁력이 탁월하다.” -양축 트래커의 또 다른 기술력은. “정밀한 추적기술 외에도 영농형 태양광은 자연재해에 대비한 안전기능들도 갖추고 있다. 태풍 등 악천후 시 태양광 모듈이 수평 상태로 자동 전환되는 ‘윈드 모드’기능은 모듈부를 수평으로 자동 전환하여 바람의 영향을 최소화하므로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태풍이 많은 한국과 일본 등의 기후와 지형에 강하고 적합한 구조라 할 수 있다. 폭설에 대비하는 ‘스노우 모드’기능은 눈이 오면 추적을 멈추고 모듈부의 경사각을 주어 눈이 쌓이지 않고 흘러내리도록 하여 적설하중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적설로 인해 태양광구조물이 붕괴되는 사례가 있으며, 또한 겨울철에 눈이 쌓이는 동안은 발전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또한, 발전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한 ‘백트래킹’ 기능으로 양축 트래커의 강점을 극대화 하였다. 기술은 일출 또는 일몰시 모듈부 그림자로 인한 발전 손실을 최소화하고 조도가 3000럭스 이하가 되면 자동으로 수평모드로 전환하여 산란되는 빛을 흡수하는 기능을 한다. 양축 트래커는 사업부지의 방향이나 형태에 영향을 받지 않고 설치가 가능하다. 우리나라 지형은 남향과 형태가 일정하지 않은 부지가 대부분이기에 양축 트래커는 모듈부가 회전하는 단일기둥 형태로 부지의 방향과 형태에 관계없이 비정형 부지도 시설이 가능하고 공간활용을 극대화 할 수 있다. 반면에 고정식은 모듈부를 남향으로 설치해야만 정상적인 효율을 얻을 수 있다. 부지방향 및 형태가 남향이 아닐 경우 모듈부는 부지의 방향과 틀어져 설치되고 농기계 사용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지적소유권이 많다. “국제특허 28건, 국내특허 241건, 의장특허는 379건을 보유하고 있다. 중소기업이 기발한 아이디어나 차별화된 기술을 기반으로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도태되거나 사업의 실패로 이어지기 쉽다. 중소기업의 핵심기술은 항상 유출 위험에 노출되어 잘못되면 큰 위기에 봉착하고 기술을 빼앗기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파루는 끊임없이 R&D에 투자해 왔고 그간 다양한 분야에서 관련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다. 국내외 특허등록에 의한 권리 선점은 산업현장에서 기업의 생존과 시장 확보를 위해 매우 중요한 전략이라고 생각된다.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되더라도 우리가 개발한 핵심기술 보호를 위해 노력해 왔고 앞으로도 핵심 업무로 추진할 예정이다.”-태양광 발전의 원스톱 토탈서비스 사업은. “태양광발전소를 시공하려면 무엇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사업분석과 관련 인허가 등 발전사업주는 태양광발전에 관련된 전문지식이 없으면 사업을 진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태양광발전사업은 무엇보다 빠르게 투자비를 회수하고 이익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태양광발전에 있어 수익은 발전량과 비례한다. 최고의 발전량을 얻기 위해 중요한 것은 시스템의 최적화된 패키지를 구성하는 데 있다. 소규모 태양광업체는 A/S에 대한 대응이 어렵고 회사 운영이 힘들어져 사업을 중단하는 경우 사업주는 태양광발전소의 유지보수 리스크를 부담하게 된다. 파루의 토탈솔루션은 추적식 기술을 적용하여 주요 기자재의 효율을 극대화 시켜주는 시스템과 발전소의 시작단계인 설계에서부터 시공, 유지보수 등 관련된 모든 서비스를 사업주에게 제공하는 것을 ‘원스톱 토탈서비스’라 한다.” -태양광발전소를 미국 텍사스에 건설했다. “세계 최대 400㎿ 양축 추적식 태양광 발전소가 미국 텍사스주에 파루 양축 트래커로 완공했다. 파루의 세계 특허기술이 접목된 양축 트래커를 자체 생산하여 미국에 수출한 것이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4529억원에 알라모6 발전소를 인수하였고, 미국 NBC 뉴스에서 텍사스의 대표적인 태양광발전소로 집중 보도하는 등 파루 양축 트래커의 수익성뿐 아니라 제품의 우수성과 신뢰성이 입증된 사례라 할 수 있다. 알라모 프로젝트에 설치된 양축 트래커는 약 3만여대로 발전소 면적은 총 500만평으로 축구장 1600여개, 여의도 면적의 6배 규모이다. 400㎿ 규모 발전소는 미국 지방정부의 태양광 프로젝트 중에서도 최대 규모이자 미국 내 역대 2번째 규모인 대형 프로젝트로 알려져 있다.”-국내에서도 영농형 태양광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고 있는데. “파루는 농촌진흥청, 농어촌공사, 한국서부발전, 군위군, 순천대학교, 영남대학교 등과 기술 및 업무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양축 트래커를 기반으로 영농형 태양광사업의 다양한 사업화와 실증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파루는 순천시에 자체 실증단지를 구축하였고,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연구단지 내에 영농형 태양광 트래커와 고정식 영농형 태양광시스템을 설치하였다. 설치된 영농형 태양광 실증단지는 국내에서 영농형 태양광 시스템으로 양축 트래커와 고정식시스템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다. 영농형 태양광을 통해서 천재지변으로 매년 변수가 생기는 농업인들의 수입이 안정화가 될 것이며 귀농, 귀촌한 농업인들에게도 안정적인 수입원이 될 것이다. 이는 영농형 태양광을 통해서 고령화된 농촌경제에 이바지할 것이다.” -국내 태양광업계가 힘들다. 타개책은. “2011년 6월부터 태양광 발전장치의 조달우수제품인증, 성능인증 등을 획득하여 조달청의 나라장터를 통한 지방보급사업과 같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의 조달입찰을 병행하여 경쟁이 치열한 국내시장에서 점유율 확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영농형 태양광 트래커는 농촌현장에 최적화시켜 일반 고정식 대비 뛰어난 강점요소를 가지고 있기에 공기관, 공기업, 대기업, 학교 등과 다양한 협력관계를 구축하여 영농형 태양광사업에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 염해 및 간척지 태양광, 신축 건물에 대한 설치 의무화 등 친환경에너지 발전을 증가시키기 위한 지속적인 정부의 지원정책들이 나오고 있다. 영농형 태양광에 대한 정부의 지원과 규제 완화로 지속적인 시장 확대가 이뤄질 전망이다. 국내 태양광발전 구조물공사 부문은 최상위에 위치해 있고 시장점유율도 높다. 또한 파루가 추진했던 턴키 공사들의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이를 병행하여 추진하고 있다. Post-Alamo를 대비해서 신규해외 프로젝트 개발을 위해서 해외사업팀은 주요 시장이었던 미국 및 일본 시장을 벗어나 인도, 중동, 호주, 아프리카 시장에서 대규모 유틸리티 프로젝트 개발을 위한 공격적인 영업을 진행하고 있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 강문식 파루 대표 ● 1993.07 現 ㈜파루 창업 및 대표이사 ● 1998.11 벤처기업 대상 (중소기업진흥공단) ● 2000.05 모범중소기업인 표창 (김대중 대통령 표창) ● 2000.07 코스닥 상장 ● 2000.09 지본코스메틱 창업 ● 2003.10 줌톤 창업 ● 2012.12 지본 창업 ● 2014.03 파루 USA 설립 ● 2006.03 광양만권 혁신기업협의회 회장 ● 2009.11 전라남도 녹색성장위원회 위원 ● 2010.04 국립순천대 명예공학박사 ● 2010.05 한국생물환경조절학회 이사 ● 2011.07 한국인쇄전자산업협회 부회장 ● 2015.07 ‘월드클래스 300’ 대상기업 ● 2015.07 나노산업기술상 수상 (국무총리상) ● 2015.08 나노융합산업연구조합 이사 ● 2015.12 ‘5000만불 수출탑’ 수상 ● 2016.12 ‘1억불 수출탑’ 수상 ● 2018.11 지식재산혁신기업협의회 부회장
  • 제작자유화·외화 직배·비디오 흥행… 영화산업 패러다임 바뀐 90년대

    제작자유화·외화 직배·비디오 흥행… 영화산업 패러다임 바뀐 90년대

    1990년대는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약이 진행되던 시기다. 영화 역시 중요한 산업이라는 인식이 힘을 받았고,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해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를 만들기 위해 주력했으며, 젊은 관객들은 해묵은 ‘방화’의 외피를 벗은 한국영화 앞으로 다시 돌아왔다. 이러한 긍정적인 에너지들은 2000년대 한국영화가 르네상스의 시기로 진입하는 기반이 됐다. 1990년대 한국영화가 이전의 제작 방식과는 결별하는 두 가지 결정적인 순간을 ‘결혼이야기’(1992)와 ‘쉬리’(1998)가 만들어냈다. 두 영화는 각각 ‘기획영화’의 효시, 그리고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성공작으로 평가받는다. 이번 연재는 우선 1990년대 한국영화가 ‘기획영화’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통해 어떤 산업적 변화를 만들어갔는지 살펴본다.●위기가 기회로, ‘기획영화’의 등장 1990년대 초입 한국영화계는 변화의 기로에서 요동쳤다.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 투쟁의 강도를 높여갔지만, 외화 직배로 상징되는 글로벌 기업의 시장 진입은 한국영화가 산업화의 길을 택하면서 마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기도 했다. 1989년 110편, 1990년 111편, 1991년 121편, 1992년 96편 제작된 한국영화는 1990년대 중반 들어 60편대로 제작편수가 줄었고, 한국영화 점유율 역시 1990년 28.7%에서 1993년 15.4%로 준 이후 1994년부터 힘들게 20%대를 회복하는 수준이었다. 특히 할리우드 직배 영화가 보여준 흥행 파워는 시장 개방의 결과를 명백히 보여줬다. 상영 외화 중 직배 비중은 15% 내외였지만, 동원 관객수로 치면 50%를 훨씬 넘겼기 때문이다. 지방 흥행사라는 전통적인 흥행 자본과 연계한 기존 영화사들도 당연히 한국영화 제작보다 외화 수입에 열중했다. 이때 두 가지 요인이 한국영화 판을 새로 짜는 기반이 되었다. 바로 제5차 개정영화법(1985년)과 제6차 개정영화법(1986년)으로 열린 제작자유화와 외국영화사의 국내 진출이다. 특히 비디오 시장은 극장 흥행 외에도 수익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파라마운트와 유니버설이 합자한 비디오 회사 CIC가 한국 시장 공략에 나서자, 비디오 판권 확보에 다급해진 삼성 등 대기업들이 직접 투자 방식으로 영화 제작에 뛰어든 것이다. 이때 제작자유화 조치로 생겨난 신생 영화사들이 제작 주체로 나섰다. 1980년대 후반 대다수 프로덕션들이 비디오용 에로티시즘 영화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1990년대 초반 영화 기획과 마케팅 영역의 중요성을 입증한 제작사들이 속속 등장한 것은 제도의 변화가 가져온 순기능이었다. 1993년 문민정부가 출범했고, 대통령 연례보고에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 공원’(1993) 한 편으로 벌어들인 수익이 자동차 150만대의 판매수익과 맞먹는다는 보고가 올라가면서 영화는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과거 ‘흥행업’으로 비하받던 충무로 영화산업이 혁신적인 변화를 맞이한 계기는 비디오와 케이블TV 프로그램이라는 창구 효과(window effect)를 기대한 대기업이 속속 영화산업에 진출하면서다. 지방흥행업자의 돈을 모아 영화를 만들던 방식에서 면밀한 기획을 거치고 대기업의 결재 라인을 통해 자금이 집행되는 제작 환경으로 바뀐다. 정부도 이제까지 서비스산업으로 분류해온 영화산업을 ‘제조업 지원 서비스산업’으로 새로 규정하고, 일반 제조업 수준의 세제·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이러한 변화의 흐름과 맞물린 게 바로 ‘기획영화’라는 새로운 제작 방식이다. 제작자유화 물결을 타고 1980년대 후반 영화판에 들어온 젊은 기획자들은 비디오 판권 형식으로 대기업 투자를 이끌어내며 한국영화가 산업화의 길로 들어서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든다. 그 시작은 1992년 신씨네(대표 신철)의 기획으로 익영영화사가 지방배급업자와 삼성으로부터 제작비를 투자받아 만든 ‘결혼이야기’(김의석)다. 영화는 서울에서만 52만 이상 관객을 동원하며 그해 흥행 1위를 차지했고, 한국영화의 ‘산업’적 모델을 제시했다. 현대 한국영화의 특징을 특유의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로 정의할 수 있다면, 바로 이 영화가 출발점일 것이다.●‘기획영화’를 일군 사람들 이처럼 영화산업의 판도를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 ‘결혼이야기’는 어떻게 젊은 관객들의 취향을 파악하고 영화관으로 불러 모을 수 있었을까. 신씨네는 10여 쌍의 신혼부부를 밀착 인터뷰해 새로운 세대의 사고방식과 결혼 생활의 디테일한 에피소드들을 시나리오에 녹여냈고, 이는 할리우드 영화 장르인 로맨틱 코미디가 한국 것으로 토착화되는 데 일조했다. 원룸형 주거 공간 등 신세대 라이프스타일을 포착한 영화 미술뿐만 아니라, 지금의 간접광고(PPL)처럼 투자 기업의 가전 일체를 화면 속에 배치한 것도 도시적 감수성을 만들어내는 데 주효했다. 그간 에로티시즘 영화에서 관음증적 시각으로 묘사되던 ‘성’은 신혼부부의 일상을 통해 당당히 전면으로 나섰고, 세련된 유머까지 덧입혀져 대중의 감성과 정확히 조우했다. 당시 홍보실장을 맡았던 심재명의 “잘까 말까 끌까 할까” 같은 재치 있는 카피도 관객 동원에 큰 몫을 했다. 감독의 감성보다는 기획자의 이성으로 제작된 예술적 접근보다는 관객과의 소통을 염두에 둔 완성도 높은 상업영화를 지향한 기획영화는 영화계의 판도를 바꿔나갔다. 특히 기획영화의 관객 전략은 20대 중후반 여성을 핵심 관객층으로 설정했고, 이 계층을 포함한 젊은 관객들은 “한국영화인데도 굉장히 재밌다”며 열정적으로 화답했다. 현재의 젊은 관객들로서는 ‘한국영화는 재미없는 영화’라는 기획영화 이전 평가가 오히려 생소할 것이다. 늘 한쪽으로는 예술영화 강박에 시달렸던 충무로의 감독들도 떳떳하게 대중적 상업영화로서의 완성도를 고민할 수 있게 되었고, 화면의 ‘때깔’도 할리우드 영화의 만듦새에 익숙해진 관객의 눈높이에 맞춰 점점 좋아졌다. 할리우드뿐만 아니라 유럽 예술영화로 영화적 감각을 단련해 온 ‘영화 청년들’ 역시 새로운 한국영화를 꿈꾸며 충무로로 모여들었다. 바야흐로 한국영화의 새로운 판이 형성된 것이다.‘결혼이야기’가 남긴 성과는 이뿐만이 아니다. 신철, 유인택, 오정완, 심재명 등이 이 영화를 통해 배출됐고, 신씨네가 대우의 투자를 받아 직접 제작한 ‘미스터 맘마’(강우석, 1992)를 통해서 차승재, 김선아, 김무령 등이 활동을 시작했다. 젊은 감각의 기획자, 프로듀서의 등장은 1990년대 중반 새로운 영화사의 설립으로 이어졌고, 투자와 제작이 분리된 프로듀서 시스템이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 강우석이 주축이 된 ‘시네마서비스’, ‘기획시대’가 통합된 이춘연·유인택 공동 체제의 ‘씨네2000’, 차승재의 ‘우노필름’, 심재명·이은의 ‘명필름’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강우석이라는 존재를 주목해야 한다. 그는 영화감독, 제작자, 투자배급사 대표 그리고 극장주 등 1990년대 중반부터 10여 년간 줄곧 충무로 파워맨 1위 자리를 지켜온 인물이다. ‘달콤한 신부들’(1988)로 감독 데뷔한 강우석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1989)로 충무로에 이름을 알린 후, 7번째 연출작인 ‘미스터 맘마’의 흥행 성공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이후 강우석 프로덕션을 설립해 직접 영화제작에 착수했는데, 바로 한국영화의 흥행력을 증명한 ‘투캅스’(1993·1994년 한국영화 흥행 1위)이다. 1995년 제작, 투자, 배급을 일원화한 충무로 영화인 기반의 첫 메이저영화사 시네마서비스를 출범했고, 2000년대 초반까지 대기업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지키며 저력을 과시했다. ‘대중의 심리를 정확하게 읽고 스크린에 끄집어내는’ 연출자로서의 타고난 능력과, 빠른 결정과 강한 추진력으로 성공적인 투자를 이끄는 승부사로서의 기질을 두루 갖춘 강우석은 2003년 ‘실미도’로 한국영화 천만 관객 시대를 연 장본인이 되었다.●1990년대 장르 공식, 로맨틱 코미디·코믹 액션 ‘결혼이야기’ 흥행 성공에 힘입어 한국영화는 음습하고 어두운 에로티시즘을 벗어나 발랄하고 세련된 로맨틱 코미디의 공간으로 진입했다. 로맨스와 코미디의 합성어인 로맨틱 코미디는 연애담이 중심으로 삼는 할리우드의 대표 장르다. 특히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When Harry Met Sally…)(1989)가 한국에서 성공한 것이 로맨틱 코미디 제작 붐에 일조했다. 1990년대 초중반 흥행 시장을 압도한 로맨틱 코미디 장르는 이후 한국영화의 특징적 경향인 캐릭터 중심의 영화를 이끌었다. 대체로 고학력의 전문직 여성과 가부장적 의식이 남아 있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이들이 티격태격하는 에피소드를 늘어놓는 이야기 방식은 1992년 ‘미스터 맘마’(강우석), ‘아래층 여자와 위층 남자’(신승수), 1993년 ‘그 여자 그 남자’(김의석), ‘가슴 달린 남자’(신승수), ‘사랑하고 싶은 여자, 결혼하고 싶은 여자’(유동훈), 1994년 ‘마누라 죽이기’(강우석), 1995년 ‘닥터봉’(이광훈) 등으로 재차 반복됐다. 로맨틱 코미디가 보여준 경쾌한 이야기 전개와 마치 광고를 보는 듯한 깔끔한 영상은 20대 젊은 관객이 한국 대중영화를 다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장르의 힘이 늘 그렇듯 로맨틱 코미디는 1990년대 중반 ‘닥터봉’을 정점으로 시들해졌고, 복고풍 정서 혹은 신세대의 감수성을 담은 멜로드라마로 흥행의 기운이 옮겨갔다. 관객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대중적 멜로드라마 ‘고스트맘마’(한지승, 1996), ‘편지’(이정국, 1997), ‘약속’(김유진, 1998) 등이 전자의 경향이라면, 후자는 도시적 감수성으로 관객과 소통한 ‘접속’(장윤현, 1997)과 절제의 미학을 보여준 ‘8월의 크리스마스’(허진호, 1998), 정적인 미장센이 돋보인 ‘정사’(이재용, 1998)를 들 수 있다. 한편 전통의 액션영화 장르는 임권택의 ‘장군의 아들’(1990)로 복권했다. 이 영화는 단성사 단관 개봉으로만 67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 1977년 ‘겨울여자’가 달성한 59만 기록을 14년 만에 경신했다. 젊은 감독들은 새로운 감각의 액션영화를 선보였다. ‘걸어서 하늘까지’(1992)로 데뷔한 장현수는 ‘게임의 법칙’(1994), ‘본투킬’(1996)을, ‘런어웨이’(1995)로 데뷔한 김성수는 홍콩 누아르 스타일을 청춘·성장영화 속으로 흡수한 ‘비트’(1997)로 신세대의 감수성과 접속했다. 로맨틱 코미디가 멜로드라마의 가지치기 장르이듯 액션영화 역시 코미디 혹은 멜로드라마와 결합해 ‘코믹 액션’, ‘남성·액션 멜로’로 진화했다. 1994년 ‘투캅스’의 흥행 성공이 코믹 액션 장르 붐을 일궜다면 1998년 ‘남자의 향기’(장현수), ‘태양은 없다’(김성수) 등은 액션과 결합한 남성 멜로를 내세웠다. 한편 송능한의 ‘넘버3’(1997)는 액션 장르를 풍자적 감각으로 변형시키며 ‘코믹 액션’ 장르의 의미 있는 성취를 이뤘다. 이 영화는 2001년 개봉한 ‘조폭마누라’(조진규), ‘달마야 놀자’(박철관), ‘두사부일체’(윤제균) 등 이른바 2000년대 ‘조폭 코미디’의 원조가 되기도 했다.1990년대 중반 새로운 세대가 주도한 영화계는 한국영화도 외화만큼 볼만하다는 인식의 전환을 만들어냈다. 멜로, 액션, 코미디 3대 장르에 머물던 한국영화는 컴퓨터그래픽을 성공적으로 드라마에 녹인 판타지 영화 ‘은행나무침대’(강제규, 1996), 청소년 영화 장르에 여름 시즌 귀신이야기를 부활시킨 ‘여고괴담’(박기형, 1998), ‘코믹잔혹극’을 표방한 블랙 코미디 ‘조용한 가족’(김지운, 1998) 등 다양한 장르로 만개했다. 산업의 성장이 가져오는 긍정적 효과는 상업주의적 영역의 확대뿐만 아니라 예술로서의 영화에 대한 관심까지 환기시킨다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을 다룰 다음 연재는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양적 성장의 정점뿐만 아니라, 1990년대 작가주의 감독군 그리고 영화문화의 형성 등을 살펴볼 것이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동영상] “화성이 아닙니다” 산불 연무에 핏빛으로 변한 인도네시아

    [동영상] “화성이 아닙니다” 산불 연무에 핏빛으로 변한 인도네시아

    화성의 풍광이 아니다. 대형 산불로 인한 연무로 뒤덮인 인도네시아의 하늘 색이다. 잠비주 메카르 사리 마을에 사는 주민 에카 울란다리(21)가 지난 22일 한낮에 핏빛을 연상시키는 하늘을 촬영했는데 눈과 목이 따금거렸다고 털어놓았다. 매년 이맘 때 인도네시아 산불은 늘 연무를 일으켜 동남 아시아 전역으로 번져나가는데 그녀는 그날은 유독 심했다고 털어놓았다. 페이스북에 이 사진들을 올렸더니 가짜 아니냐는 댓글이 여럿 달린 모양이다. 그녀는 휴대전화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라고 강조하며 23일에도 여전히 연무 상태가 심각했다고 전했다. 다른 유저 주니 쇼피 야툰 니사가 올린 동영상도 비슷했다고 BBC 인도네시아는 전했다. 그는 “여긴 화성이 아니다. 잠비주”라면서 “우리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깨끗한 공기지, 연기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싱가포르 사회과학대의 기상학자 코 티에 용 교수는 레일리 산란(Rayleigh scattering) 현상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산불 연무에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입자는 크기가 1마이크로미터 정도인데 이걸로는 하늘색을 바꾸지 못한다. 반면 0.5 마이크로미터 아래라면 방향에 따라 붉은 빛을 파란 빛보다 더 많이 산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나아가 사진을 정오쯤 찍었다면 훨씬 붉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확실히 인도네시아 연무는 근래 몇년 동안 최악 가운데 하나라고 방송은 전했다.인도네시아는 거의 전역이, 말레이시아는 일부 지역이 연무에 뒤덮이고 있다. 7월부터 10월까지 건기라 더욱 심해진다. 인도네시아 자연재해 당국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달까지 32만 8724 헥타르의 토지가 벌써 불에 탔다.산불의 원인은 아직도 화전으로 개간하는 소작농들이 놓는 것이 태반인데 최근에는 흙이 마를수록 유리해지는 팜오일, 펄프, 종이 플랜테이션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나무를 땔감으로 쓰는 일은 인도네시아에서도 불법이지만 최근 몇년 동안 지방 관리들의 부패 탓에 슬그머니 허용되거나 정부 감시가 소홀한 것이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편 태국 남부의 일부 주(州)에서도 주말 동안 ‘적색경보’ 수준까지 대기오염 농도가 치솟았다고 일간 방콕포스트와 신화통신 등이 23일 전했다. 태국 오염관리국(PCD)은 인도네시아 산불 연무로 인해 대기 중 초미세먼지(PM -2.5) 농도가 90㎍/㎥이 넘을 경우, ‘적색경보’를 발령할 것이라고 전날 밝혔다. 남부 송클라주 핫야이시의 이날 초미세먼지 농도가 79㎍/㎥에 이르러 인도네시아 산불 연무 사태 이후 가장 심각한 대기 오염이 발생했다고 PCD는 밝혔다. 사뚠주 무앙 지역에서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21일 39㎍/㎥에서 하루 만에 66㎍/㎥으로 치솟았다. 뜨랑주 내 여러 지역은 52㎍/㎥를 기록하면서 ‘안전’ 수준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돼지열병, 가축보험 적용안돼 “법정전염병 보장 제외”

    돼지열병, 가축보험 적용안돼 “법정전염병 보장 제외”

    20일 경기 파주시 파평면과 적성면에서 추가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의심 신고가 접수됨에 따라 ASF 확산에 따른 피해 농가의 시름도 깊어지고 있다. ASF는 예방백신이나 치료제가 없고 치사율이 100%에 달해 발병시 농가에 타격이 클 것으로 보이지만 가입한 가축재해보험으로는 피해를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책성 보험인 가축재해보험은 현재 NH농협손해보험, DB손해보험, 현대해상, 삼성화재, KB손해보험, 메리츠화재 등 6개사에서 판매하고 있지만, 이들 가운데 ASF를 담보하는 상품은 없다. 가축재해보험 약관상 가축전염예방법에서 정한 가축전염병은 보장범위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축재해보험 약관은 ‘가축전염예방법 제2조에서 정하는 가축전염병에 의한 폐사로 인한 손해와 정부, 공공기관의 살처분 또는 도태 권고로 발생한 손해는 보상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ASF 뿐만 아니라 기존에 피해가 컸던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등의 가축전염병도 모두 보험 보장범위 밖이다. 보험사 측은 기본적으로 가축재해보험은 태풍이나 지진, 폭우, 폭염 등 자연재해나 화재, 전기장치 고장에 따른 손해 등을 보장하는 게 기본이라고 설명한다. 질병을 보장하는 것은 소·사슴·양 등의 경우 가축전염병 외 다른 질병으로 가축이 폐사했을 때, 돼지의 경우엔 유행성설사병(TGE), 전염성위장염(PED), 로타(Rota)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폐사했을 때 보장이 가능하다. 가축 전염병 발병시 피해는 주로 당국의 살처분으로 발생하는데 이는 예방 차원의 조치로, 피해를 사후에 보상하는 보험의 개념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보험으로는 보장되지 않지만 돼지가 살처분된 농가는 정부에서 산지 가격의 100%로 보상받을 수 있다. 세종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돼지열병 확산 우려에도 중대본 안 꾸린 행안부 왜?

    돼지열병 확산 우려에도 중대본 안 꾸린 행안부 왜?

    ‘구제역 중대본’ 등 장관 결단에만 의존 비상대응 단계 기준 만들어 대비 필요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경기 파주에 이어 연천에서도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연이은 ASF 발생으로 전국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는데요. 재난안전 총괄부처인 행정안전부는 아직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를 구성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중대본보다 한 단계 아래 수준인 범정부 대책지원본부를 만들어 가축 전염병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를 지원하는 중입니다. 행안부 내에서도 ‘중대본을 꾸리자’는 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난 17일 파주에서 ASF 첫 확진 이후 바로 다음날 연천에서 확진 판정이 이어지자 당일 오전에 “중대본으로 갈 듯하다”는 말이 나왔죠.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에 따르면 행안부 장관은 ‘대규모 재난’(자연재난·사회재난)의 경우 자신의 권한으로 중대본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후 장관은 중대본 본부장으로서 ‘재난사태’를 선포해 재난경보 발령, 인력·장비 및 물자의 동원 등 다양한 권한을 직접 행사할 수 있게 됩니다. 지난 4월 강원 산불 때처럼 말이죠. 아무래도 범정부 대책지원본부나 농식품부의 중앙사고수습본부보다 더 긴밀한 통합대응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총리실을 비롯한 관계부처와 협의를 거치면서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 거죠. 행안부 관계자는 “농식품부가 지금 수준은 충분히 대처할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다. 우리가 중대본을 꾸리면 컨트롤타워가 두 개가 되는 문제가 생긴다”면서 “추후 상황에 따라 중대본 설치를 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오히려 국민들에게 과잉 대응을 하는 것처럼 비쳐 공포심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죠. 그동안 중대본 설치에 대한 행안부의 판단은 그때그때 달랐습니다. 특히 사회 재난에서요. 사회재난에는 가축 전염병, 화재, 붕괴, 폭발, 교통사고 등이 포함되는데요. 기준 없이 장관의 결단에 상당 부분 의존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구제역(2010~2011년)과 조류인플루엔자(AI·2016~2017년)는 가축 전염병으로 동일하게 분류되지만 구제역만 중대본이 설치됐죠. AI는 범정부 대책지원본부 수준에서 대응했습니다. 자연재난이 비상단계 기준을 1~3단계로 나눠 중대본을 신속히 꾸릴 수 있도록 한 것과 대비됩니다. 사회재난은 자연재난과 비교해 예측하기 까다롭다는 점이 고려돼야겠지만 리더의 결단에 의존해야 하는 현 상황에서 벗어나 지금부터라도 비상단계 기준을 구체화하는 첫발을 떼면 좋겠습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세 옛 절의 향기는 여전… 정릉시대 구가하던 문예촌은 흔적만

    세 옛 절의 향기는 여전… 정릉시대 구가하던 문예촌은 흔적만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1차 정릉천 따라’ 편이 추석 다음날인 지난 14일 성북구 정릉동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추석 연휴 주말을 북한산의 맑은 계곡물이 쏟아지는 정릉천에서 보냈다. 참가자들은 이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북한산보국문역에 집결, 경국사에 들어가 고찰의 향기를 즐겼다. 주말이라 문을 열지 않는 명원민속관(한규설 가옥)을 보지 못한 게 아쉬웠다. 정릉천변은 1950~1970년대 쟁쟁한 문인·예술가들이 ‘정릉시대’를 구가하며 살던 ‘문예촌’이었다. 화가 이중섭·박고석·한묵·박세원·김병기, 소설가 박경리·박화성·박연희·박계주·최정희·계용묵, 시인 고은·조영암·신경림, 조각가 최만린, 작곡가 금수현·김대현, 극작가 차범석, 시사만화가 김성환 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최서향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명절증후군에 시달린 주부 참가자들에게 피로를 씻어 주는 해설을 들려주기 위해 애썼다.정릉 박경리 가옥으로 가는 골목 어귀에는 ‘박경리 가옥’이라고 쓰인 표지판이 있고, 담벼락에 그려진 해바라기 그림과 책 표지가 길손을 안내한다. 그러나 ‘보국문로 29가길 11’이라는 도로명주소판이 붙은 집엔 서글프게도 ‘박경리’ 문패가 아니라 ‘서울 정릉 발도르프학교’라는 낯선 대안학교 간판이 걸려 있다.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됐지만 서울시가 예산 부족으로 매입하지 못한 까닭이다. 참가자들은 안타까움에 발길을 돌리지 못하고 문 앞을 자꾸 서성거렸다. 정비석의 ‘자유부인’ 속 댄스장이자 고급 요정이었고, 한때 신혼여행지였던 옛 청수장을 개조해 사용하는 북한산탐방안내소에 들어가 과거의 영화를 떠올렸다. 북한산 정릉골은 1971년 북악터널이 개통된 뒤 2007년 내부순환도로 국민대입구 램프가 추가 개통되기 전까지도 백악산~보현봉 자락이 장벽처럼 막아서서 개발의 손길을 거부하는 청정의 숲이었다. 청수장으로 대표되는 정릉유원지는 추억과 안식의 공간이었다. 정릉천을 따라 청수장으로 가노라면 경국사가 나타난다. ‘경국사적기’에 따르면 1325년(고려 충숙왕 12년)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 청봉 아래에 있다고 해서 청암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정릉의 옛 지명이 ‘살을 에듯 추운’ 사을한리이고, 정릉천이 청수라고 불리고, 청수장이 정릉유원지의 랜드마크가 된 배경에는 모두 청봉이라는 자연 지명의 힘이 작용했다. 청암사는 1546년(명종 1년) 문정왕후가 사찰을 중창하면서 ‘부처님의 가호로 국가에 경사스러운 일이 있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경국사라고 개명했다. 1669년(현종 10년)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의 정릉을 복원하면서 흥천사, 봉국사와 함께 능을 수호하는 원찰로 지정돼 부흥했다. 우연의 일치일까. 정릉이라는 능이 사라졌다가 260년 만에 부활한 것처럼 능을 지키는 3개 원찰의 이름이 모두 바뀌는 변고를 겪었다. 봉국사는 본래 약사여래를 모시는 약사사였지만 현종 때 ‘나라를 받든다’는 봉국사로 개명해 명맥을 이었다. 또 1409년 정릉이 정동을 떠나 정릉동으로 이장됐을 때 신흥암이라는 암자를 신흥사로 개창, 원찰로 삼았는데 1865년 흥선대원군이 흥천사라는 휘호를 내리면서 이름을 바꿨다.조계종 본산 흥천사는 신덕왕후가 처음 묻혔던 지금의 중구 정동 영국대사관 자리에 있던 170여칸 규모의 대가람이었다. 태조가 죽은 지 9년 만에 능이 지금의 정릉동으로 이장되고, 1510년 유생들이 이단을 없애 버린다며 불을 질러 폐사의 비운을 맞았다. 흥천사 종은 덕수궁에 남아 있다. 태종 이방원은 종묘에 신주를 모실 때 친어머니 신의왕후 한씨만 모시고, 계모 신덕왕후는 후궁으로 격하시켰다. 이방원의 앙갚음에 정릉동 정릉은 황폐화했다. 172년이 흐른 1581년(선조 14년) 신덕왕후의 후손인 강순일이 군역을 면제받고자 상소를 올린 것을 계기로 조정에서 정릉의 위치를 백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겨우 찾았다. 1669년 송시열의 상소에 의해 종묘에 배향되고, 능의 위상을 되찾았다. 정릉을 개수하고 제사를 지내는 날 소낙비가 내려 정릉골을 흠뻑 적셨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 비를 신덕왕후의 원한을 씻어 준 ‘세원우’라고 반가워했다. 조선의 사실상 첫 왕후인 신덕왕후를 모신 정릉 흥천사에는 조선의 마지막 왕비인 순종 비 순정효황후 윤씨가 한국전쟁 때 거주했던 기록이 남아 있다. 흥천사는 조선 첫 왕비와 마지막 왕비가 동시에 깃든 기구한 운명의 장소다. 정릉의 터줏대감은 서양화가 박고석이었다. 1955년 정릉에 자리잡은 박고석을 따라 부산 피난 시절 삼총사를 이뤘던 이중섭, 한묵이 가세했고, 청수장 물줄기를 따라 김병기, 김대현, 최정희, 박경리, 금수현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가가 집을 지으면서 형성됐다. 이중섭이 죽자 유골은 삼등분됐는데 일부는 일본의 부인(이남덕)에게 보내고, 또 일부는 시인 구상에 의해 망우리 묘지로 갔다. 나머지는 박고석이 보관하다가 정릉에 뿌려졌다. 북한산행의 기점 청수장은 1910년대에 세워져 일본인 별장으로 이용되다가 1945년 해방 뒤 민간인이 인수해 사용했다. 한국전쟁 발발 후엔 특수부대 훈련 숙소로 사용됐다. 그 후 고급 요정 ‘청수장’으로 탈바꿈하면서 정비석 소설 ‘자유부인’의 댄스홀로 등장한다. 1974년 이후 제법 기품 있는 음식점, 여관으로 운영되다가 1983년 4월 2일 북한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여기에 편입됐다. 개축 공사를 거쳐 2001년부터 북한산탐방안내소로 바뀌었다. 유럽풍 카페를 연상케 하던 청수장 본관만 남겨 두고 등산로와 맞닿아 있던 담과 부속 건물은 허물어 아담한 정원으로 꾸몄다.1950년대 후반 돈암동 셋방에 살던 박경리(1926~2008)는 1965년부터 2002년까지 정릉동 골짜기 집에 머물렀다. 이 집에서 1969년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대장정을 담은 장편 대하소설 ‘토지’ 집필을 시작했다. 1980년 사위 김지하의 옥바라지를 위해 강원 원주로 이사할 때까지 삶의 터전이었다. 이웃사촌 박고석이 삽화를 그린 ‘노을진 들녘’은 1961년 10월부터 연재를 시작해 총 250여회를 이어 나갔다. 장편 ‘김약국의 딸들’을 출간한 뒤 대표작 토지 1부 집필에 들어갔다. 정릉은 그의 대표작들이 잉태되고, 외동딸 김영주의 연애와 결혼이 이뤄진 행복한 장소였지만 고통도 담긴 곳이다. 피신해 있던 사위가 체포된 정릉 집은 차라리 유배지였다. 유고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에서 선생은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사위는 서대문 형무소에 있었고/우리 식구는 기피 인물로/유배지 같은 정릉에서 살았다/천지간에 의지할 곳이 없이 살았다/수수께끼는/우리가 좌익과 우익의 압박을 동시에 받았다는 사실이다/그리고 인간이 얼마만큼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뼈가 으스러지게/눈앞에서 보아야 했던 세월/태평양 전쟁 육이오를 겪었지만/그런 세상은 처음이었다/악은 강렬했고 천하무적이었다/아 참, 그 얘기는/저승에나 가서 풀어놔야지/그 끔찍한 사실들을/측천무후인들 믿을 것인가”라고 절규했다. 정릉시대의 쓰라린 편린이다. 선생의 무덤에는 비석이 없다. ‘이 나라에 이런 사람들이’(기파랑, 2017년 간)에 실린 김형국의 ‘박경리, 포한이 원력이던 소설문학’에 따르면 “이전에 무덤 앞 상석에 당신 필체로 ‘박경리’라고 성명 석 자만 달랑 새겼다던데 나중에 다시 가족이 당신 이름도 빼고 그냥 민짜 상석을 놓아 달라 했단다. 고사로 치면 아무 글자도 새기지 않는 백비(白碑)를 말함이었다. 더 할 말이 없다는 뜻이었다”고 썼다. 실제 통영 박경리기념관 선생의 묘소에는 상석 하나만 달랑 놓여 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2차 서울의 문학3(윤극영의 반달) ■일시 및 집결장소 : 9월 21일(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4·19민주묘지역 2번 출구 구내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www.suci.kr)
  • “다 안다고 믿는 나, 사실은 거의 빵점” 한스 로슬링 테스트

    “다 안다고 믿는 나, 사실은 거의 빵점” 한스 로슬링 테스트

    기자가 이렇게 형편 없는 점수를 받아본 문제지는 일찍이 없었다. 제법 식견을 갖췄다고 자신하는 이들도 망신 당하기 십상이다. 한스 로슬링(2017년 2월 사망)과 올라 로슬링, 안나 로슬링 뢴룬드 등이 함께 쓴 책 ‘팩트풀니스’에 나오는 일종의 맛뵈기 퀴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 세계에 대해 실제로는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일깨우는 테스트 같은 것이다. 일단 풀어보시라. 물론 빌 게이츠나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등이 극찬한 이 책을 한번 사서 읽어보길 권한다. 답은 안 가르쳐 줄거냐고? 19일 오후 5시에 기사를 업데이트하면서 알려드리겠다고 약속했는데 사정이 생겨 20일 오전 9시 34분 공개한다. 1. 오늘날 세계의 모든 저소득 국가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여성은 얼마나 될까? A 20% B 40% C 60% 2. 세계 인구의 다수는 어디에 살까? A 저소득 국가 B 중간 소득 국가 C 고소득 국가 3.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A 거의 두 배로 늘었다 B 거의 같다 C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 4. 오늘날 세계 기대 수명은 몇 세일까? A 50세 B 60세 C 70세 5. 오늘날 세계 인구 중 0~15세 아동은 20억 명이다. 유엔이 예상하는 2100년의 이 숫자는? A 40억 B 30억 C 20억 6. 유엔은 2100년까지 세계 인구가 40억명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주로 어떤 연령층이 늘어날까? A 아동 인구(15세 미만) B 성인 인구(15~74세) C 노인 인구(75세 이상) 7. 지난 100년 동안 연간 자연재해 사망자 수는 어떻게 변했을까? A 2배 이상 늘었다 B 거의 같다 C 절반 이하로 줄었다 8. 오늘날 세계 인구는 약 70억 명이다. 아래 지도 가운데 70억의 거주 분포를 가장 잘 나타낸 것은?(사람 한 명이 10억 명이다) 9. 오늘날 전 세계 1세 아동 가운데 어떤 질병이든 예방 접종을 받은 비율은 얼마나 될까? A 20% B 50% C 80% 10. 전 세계 30세 남성은 평균 10년 동안 학교를 다닌다. 같은 나이의 여성은 평균 몇 년 동안 학교를 다닐까? A 9년 B 6년 C 3년 11. 1996년 호랑이, 자이언트 판다, 검은코뿔소가 모두 멸종위기종에 등록되었다. 이 셋 가운데 몇 종이 오늘날 더 위급한 단계의 멸종위기종이 됐을까? A 두 종 B 한 종 C 없다 12. 세계 인구 가운데 어떤 식으로든 전기를 공급받는 비율은 몇 %일까? A 20% B 50% C 80% 13. 세계 기후 전문가들은 앞으로 100년 동안의 평균 기온 변화를 어떻게 예상할까? A 더 더워질 것으로 예상한다 B 그대로일거라고 예상한다 C 더 추워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정답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CBC CCB CAC ACC A 필자는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첫째는 이 책을 읽으면 훨씬 나아질 것이며, 둘째는 그런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180cm인가, 185cm인가…조국 키까지 팩트체크 해봤다

    180cm인가, 185cm인가…조국 키까지 팩트체크 해봤다

    “실제 키 180cm인데 185cm로 속였다” 주장조국, 2010년 인터뷰서 “키는 180cm” 밝혀알고리즘이 수집한 구글 인물정보상 185cm진중권 교수, 방송서 말한 키 얘기 와전된 듯가족을 둘러싼 여러 의혹에 시달린 조국 법무부 장관이 뜬금 없이 ‘거짓으로 키를 부풀렸다’는 논란에 휘말렸다. 실제 키가 180cm 정도인데, 185cm라고 속였다는 것이다. 보수 유튜버들이 촉발한 키 논쟁에 민경욱 의원 등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까지 가세하면서 조 장관을 거짓말쟁이로 몰았다. 조 장관을 흠집내려는 의도가 다분한 이 의혹은 사실관계(팩트)가 틀린 가짜뉴스로 파악됐다. 조 장관은 과거 인터뷰에서 자신의 키가 180cm라고 밝혔을 뿐, 키를 부풀려 말한 적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보수 유튜브 채널 ‘가로세로연구소’를 운영하는 강용석 변호사는 이날 생방송에서 조 장관이 지난 10일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할 때 “보통 신사화와 다른 키높이 구두를 신었다”며 “굽이 최소 7cm는 돼 보인다”고 주장했다. 강 변호사는 “많이 봐줘야 177~178cm인데 185cm라고 뻥을 치고 (키를 부풀렸다는 논란이) 마음에 걸리니 키높이 구두를 신은 것”이라며 “연예인이나 프로필에 키를 써 넣지, 누가 키를 써 넣는가”라며 비웃었다.민경욱 한국당 의원도 이날 페이스북에서 조 장관의 키를 언급했다. 그는 같은 당 정진석 의원과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곤 “정진석 의원의 키가 184cm다. 남들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신 분”이라며 “조국이 185cm라면 얼마나 커야 하는지를 잘 안다. 만약 자기 키까지 과장을 한 거라면 그의 병이 깊다”고 적었다. 앞서 14일 강연재 한국당 법무 특보도 페이스북에서 “중요한 건 아니지만 조국씨 키가 185? 인생 포장을 그렇게까지 하며 살고 싶을까. 키도 XX칠 정도면 연예인을 했어야지. 연기도 실력도 최상급”이라며 비속어를 써가며 조롱했다.이들은 조 장관의 포털 인물정보를 문제 삼은 것으로 보인다. 구글에서 조 장관의 이름을 검색하면 오른쪽에 인물정보가 표시된다. ‘대한민국 법학자’로 소개된 조 장관의 출생, 가족 관계, 학력 등의 정보가 노출되는데 특이하게도 키가 185cm로 표기돼 있다. 구글 인물 정보 편집은 사람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정보를 수집해 배열한다. 조 장관이 직접 등록한 정보가 아니라는 얘기다. 구글 알고리즘은 위키백과나 주요 뉴스 사이트 등을 토대로 인물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구글 인물정보 신뢰도는 논란 대상이다. 지난해 1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고 문옥주 할머니를 ‘매춘부’로 표기해 문제가 불거졌다.구글코리아는 당시 발표한 성명에서 “알고리즘이 인물 정보를 생성하는 과정에서 유감스럽게 사실과 다른 내용이 반영되는 경우가 있다”고 오류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그렇다면 구글 알고리즘은 어떤 근거로 조 장관의 키를 185cm라고 파악했을까. 단서는 지난 2017년 5월 16일 방송된 채널A 프로그램 ‘외부자들’에서 찾을 수 있다. 정치 이슈에 대한 보수, 진보 측 패널의 토론을 다룬 이 프로그램에서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민정수석에 임명된 조 장관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조 장관과 대학 때 가까운 친구였다는 진 교수는 당시 방송에서 조 장관에 대해 “얼굴이 잘 생겼죠. 거기다가 키도 커요. 185인가 그래. 공부도 잘 하잖아요”라고 말했다.진 교수의 이런 평가를 여러 언론이 인용해 기사화하면서 구글 알고리즘이 이 정보를 사실로 착각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조 장관은 스스로의 키를 180cm라고 밝혔다. 지난 2010년 12월 6일 경향신문에 실린 ‘[이종탁이 만난 사람] 대담집 진보집권플랜 펴낸 서울대 조국 교수’ 인터뷰에서 조 장관은 키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180cm입니다”라고 말했다.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확인하지 않고 한국당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 조 장관을 ‘키까지 부풀린 사람’으로 매도하는 것은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오늘 도쿄 낮 온도는 섭씨 25도, 그런데 눈이 내렸습니다

    오늘 도쿄 낮 온도는 섭씨 25도, 그런데 눈이 내렸습니다

    내년 도쿄하계올림픽 조정과 카누 경기가 열리는 시포레스트 워터웨이 경기장은 13일 한때 섭씨 25도였다. 그런데 눈발이 날렸다. 물론 이상 기후가 아니었다. 도쿄올림픽이 극심한 무더위 속에 열려 최악의 대회가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들이 많은데 온도를 조금이라도 낮춰 쾌적한 관람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인공 눈을 내리는 실험이 실행된 것이다. 대략 300㎏ 무게의 인공 눈이 관람석 위에 뿌려졌다. 도쿄의 7월 평균 기후는 섭씨 35도에 습도 80%다. 그런데 2000명을 수용하는 이곳 경기장의 절반은 지붕에 덮이지 않아 직사광선을 그대로 받아내야 한다. 건설 경비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지붕 크기를 절반으로 줄여서다. 이날 대회 조직위원회 관계자들이 카누 스프린트 테스트 이벤트에 관람객으로 초빙돼 5분 남짓의 인공 눈 실험을 지켜보며 나름 즐거워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었는지 곧바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일단 눈 내리기 전이나 후나 섭씨 25.1도의 온도에는 변함이 없었다고 영국 BBC가 전했다. 오카무라 다카시 조직위 커뮤니케이션 및 지휘통제국장은 예상했던 대로는 아니지만 눈이 내려 다른 이점을 누릴 수 있었다며 “이 기계의 장점은 스프레이 장비를 갖춰 관람객들의 기분을 다시 상쾌하게 만드는 데 도움이 되며 오락거리도 된다”고 말했다. 이 장비는 이전에 음악 축제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데 얼음을 갈아 눈을 만들어 이를 공기와 섞어 날려 바람 부는 여건이라면 15m 떨어진 곳까지 뿌릴 수 있다. 가동 비용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조직위가 이 장비를 대회 기간 가동할지 확정된 것은 아니며 이날 한 차례 더 실시하고 앞으로 몇 차례 더 실험할 계획이다. 도쿄가 올림픽 유치에 성공한 2013년부터 날씨를 시원하게 만드는 프로젝트는 ‘미스티(물안개) 머신’부터 커다란 우산 모양의 모자까지 거의 모두 시도해본 상황이다. 지난해 일본 정부는 일주일 동안 적어도 65명 이상이 열파와 관련해 숨지자 자연재해로 선포했고 올해 7월에는 5000명 이상이 무더위를 호소하며 병원 치료를 원하기도했다. 지난달 국제트라이애슬론연맹(ITU)은 도쿄올림픽 예선 경기 날, 수은주가 섭씨 32도까지 치솟자 코스를 단축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일찍부터 지구력이 요구되는 경기를 가장 시원한 시간에 치를 수 있도록 아베 신조 총리에게 서머타임을 시행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반면 마라톤 레이스는 일찌감치 새벽 6시에 출발하도록 이미 확정된 상태다. 마라톤 풀코스(42.195㎞) 도로는 표면 온도를 섭씨 8도 이상 오르지 못하게 열을 흡수하는 소재로 코팅하도록 했는데 휠체어를 이용해 훨씬 더 표면 가까이에서 호흡해야 하는 장애인올림픽(패럴림픽) 육상 선수에게는 더욱 절실한 문제가 되고 있다. 장애인 선수들은 비장애 선수들보다 체온이 2~3도는 더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마라톤 등 도로 경기를 즐기는 관람객들에게 가능한 그늘을 더 많이 제공할 수 있도록 하고 에어컨이 가동되는 건물의 창문을 모두 개방하도록 하는 조치들이 거론되고 있다. 또 조직위는 스폰서십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해 경기장 안에 관람객이 물병을 갖고 입장하지 못하게 하는 관례를 깨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은 내년 7월 24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패럴림픽은 8월 25일부터 다음달 6일까지 개최된다. 그 전에 일본 럭비월드컵이 열려 40만명 정도가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오는 20일 도쿄에서 개막식이 열리고 12개 경기장에서 경기가 이어져 지역 관광 활성화를 기대하고 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소문난 도박꾼, 숨겨진 독립운동…웹툰으로 뭉클한 역사와 만나요

    소문난 도박꾼, 숨겨진 독립운동…웹툰으로 뭉클한 역사와 만나요

    3·1운동, 임정 100주년 기념 프로젝트 ‘난봉꾼 위장’ 반전의 매력에 더 끌려 개인적 고뇌·숨겨진 활동 다뤄 볼 것“독립투사라고 하면 신화 속 영웅처럼 왠지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이번 웹툰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 곁에 늘 가까이 있는 친근한 이웃처럼 다가갔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5월까지 서울신문에서 장애인식 개선 만화 ‘함께 걸어요 비단길’을 연재했던 이정헌(43) 작가가 지난 5일 새 웹툰 ‘파락호 김용환’을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성남문화재단이 진행하고 있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 가운데 한 작품이다. 이 작가가 그리는 독립운동가는 일제강점기 난봉꾼으로 유명했던 김용환(1887~1946) 선생이다. 의성 김씨 학봉종가의 13대 장손인 김용환 선생은 요즘 돈으로 수백억원에 달하는 가산을 노름으로 탕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세상을 뜬 뒤에야 노름이 독립군 군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위장이었던 사실이 공개됐다. 지난해 여름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변요한이 연기한 캐릭터 김희성이 김용환 선생에게서 모티브를 따왔다. “김용환 지사는 다른 독립운동가들과는 달리 살아 있을 동안에는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어요. 만화와 같은 반전의 매력이 있는 분이라 작업을 하며 더 애착을 갖게 됐습니다. 유교적 분위기가 강했던 안동 지역 한 가문의 대표이자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느꼈을 개인적 고뇌와 또 다른 숨겨진 활동 등도 다뤄 보려고 합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작품 준비에 들어간 이 작가는 역사학자들로 구성된 프로젝트 자문위원단은 물론 김용환 선생의 후손들을 인터뷰하고 안동 지방에 대한 여러 글을 써 온 곽병찬 서울신문 논설고문을 만나 공부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프로젝트 참여 작가들과 함께 독립운동가를 양성했던 중국 만주와 백두산을 찾아 가슴 뭉클함을 가슴속에 품고 돌아왔다고. 이번 작품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작품을 주로 그려 온 이 작가에게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가족 만화를 주로 그려 와 예쁘고 귀엽고 명랑만화 그림체였는데 이번에는 독자들에게 몰입감을 주기 위해 극화체에 가깝게 그림체를 새로 시도하고 있어요. 만화가로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셈이죠.” 지난달부터 포털사이트 다음을 통해 1, 2차로 나뉘어 공개 및 연재되고 있는 독립운동가 웹툰 프로젝트에는 백성민(김구), 김진(홍범도), 권가야(김상옥), 박건웅(김산). 김금숙(김알렉산드라), 김성희(김마리아), 김수박(이봉창) 등 33명(스토리 작가 포함 45명)이 참여하고 있다. 의열단장 약산 김원봉을 다룬 허영만 작가의 작품도 조만간 연재를 시작한다. “원래 이번 프로젝트는 만화가 100명이 독립운동가 100명의 삶을 그려 보자는 취지에서 출발했어요. 올해 첫발을 뗐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홍릉 없는 홍릉길… 숲내음과 연구단지가 공존하다

    홍릉 없는 홍릉길… 숲내음과 연구단지가 공존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20회 홍릉숲길 산책’ 편이 지난 7일 동대문구 청량리 일대에서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서울미래유산을 사랑하는 참석자 40여명은 한반도를 강타한 제13호 태풍 ‘링링’의 북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려대역에 집결했다. 이날 코스는 정릉천~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홍릉수목원(국립산림과학원)~KAIST 경영대학~옛 한국농촌경제연구원~세종대왕기념관 순이었다. 그러나 역대 태풍 중 최대 순간 풍속 5위를 기록한 링링의 맹렬한 기세 앞에 홍릉수목원은 폐장됐고, 정릉천 입장도 통제됐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된 건축가 김수근의 설계작 KIST 본관과 옛 농촌경제연구원 건물은 공사 중이어서 직접 볼 수 없었다. 전북 나주로 이전한 옛 농촌경제연구원 건물은 서울바이오허브로 변신하기 위해 마무리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다. 참석자들은 홍릉수목원 해설을 위해 특별 초빙한 임혜란 숲 전문가에게서 듣는 숲과 생태 이야기로 아쉬움을 달랬다.1922년 만들어진 우리나라 최초의 제1세대 수목원 홍릉수목원이 자리한 동대문구 청량리는 조선시대 흥인지문(동대문) 밖 청량리계에서 기원한다. 신라 말에 창건된 고찰 청량사에서 이름을 땄다. ‘동국여지승람’과 ‘고려사절요’ 등 옛 문헌에 따르면 청량사는 삼각산 아래 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지금의 홍릉수목원과 영휘원 일대가 옛 절터였다. 명성황후가 묻혔던 홍릉을 조성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비켜났다. 일제강점기 만해 한용운이 잠시 머물기도 했다. 조선시대 흥인지문과 혜화문, 광희문에서 중랑천까지 10리를 동교라고 불렀다. 이 중 성북천과 정릉천, 석관천을 낀 청량리에는 왕실소유의 논(적전)을 두고 왕이 농사를 짓는 선농단과 국립 구휼기관이자 공용숙소였던 보제원을 뒀다. 용두동, 제기동, 전농동이라는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청량리는 제례의 공간이었다.청량리는 능행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선왕의 무덤을 찾아가는 능행은 ‘조선 최대의 정치쇼’였다. 왕은 능행을 통해 선왕의 권위를 물려받기를 원했으며, 백성들은 능행에서 왕의 존엄을 실감했다. 청량리는 왕실 최대의 묘역 동구릉으로 향하는 길목이었기에 행차 구경 기회가 많았다. 능행길은 대개 창덕궁~흥인문~우장현(장위동 고개)~안락현(봉화산 뒷길 화랑로)~동구릉으로 이어졌다. 통상 3000명에서 6000명의 인원이 동원됐으니 동시대인에게는 엄청난 구경거리였다. 그 장관과 화려함은 청계천변 광교와 삼일교 사이에 조성된 ‘정조대왕 능행 반차도’에서 짐작할 수 있다. 청량리는 명성황후의 홍릉과 더불어 유명세를 떨쳤다.명성황후가 비명에 간 지 2년째 되던 1897년 11월 21일에야 국장이 거행됐다. 이날 새벽 4시 100개의 황등롱과 2600개의 홍등롱, 40개의 대철촉롱 불이 밝혀진 상태에서 상여는 경운궁(덕수궁)을 출발했다. 상여는 청계천 신교~혜정교~이석교~초석교를 차례로 지나 흥인문을 통과한 뒤 동관왕묘(동묘)~보제원(안암동 로터리)~한천교(중랑천 다리)를 거쳐 청량리 홍릉에 도착했다. 1907년 10월 7일 순종의 능행기록에는 오전 8시에 경운궁 대한문을 나서 종로~흥인문~안감천(성북천)~용두리~청량리를 거쳐 홍릉에 도착했으며 오후 6시에 환궁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1919년 고종 국장 때 명성황후의 능이 남양주 금곡 홍유릉으로 이장돼 합장될 때까지 22년간 능행 때마다 청량리 일대는 인파로 북적였다. 홍릉의 신화는 짧았지만 강렬했다.청량리의 장소성은 전차의 등장과 함께 변모했다. 1899년 개설된 청량리선 전차는 1911년 경원선, 1939년 경춘선 및 중앙선 철도 개통과 함께 청량리의 장소성을 서울 동부지역 교통요충지로 바꿨다. 1974년 지하철 1호선의 개통은 또 한 번의 변신이었다. 서대문~종로~동대문~청량리를 연결하는 8.1㎞ 구간의 청량리선 전차는 고종의 능행 편의와 능행 비용을 줄이려고 부설한 것이었다. 정작 고종은 전차가 상여를 닮았다는 이유로 탑승을 꺼렸다. 실제로 고종이 전차를 타고 홍릉에 행차한 기록이 거의 없다. ‘독립신문’ 1899년 10월 17일 자에 “금번 능행하실 때 전차를 타신다는 말이 있다더라”는 기사가 남아 있을 뿐이다. 1994년에 발간한 ‘동대문구지’에 따르면 명성황후의 국장이 치러질 무렵 혜화동 주민 홍태윤이 자비를 들여 동대문 밖에서 홍릉에 이르는 길의 양편에 배롱나무를 심었는데, 이 가로수는 성 안팎을 통해 유수한 가로수길로 손꼽혔다고 한다. 아쉽게도 1933년 도로를 넓히면서 모두 베어 버렸다. 1917년 ‘신문계’ 제5권 제2호에 발표된 ‘경성유람기’라는 글에 함경남도 금성에 사는 이승지가 평양역에서 경원선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내린 뒤 전차 편으로 종로까지 가는 행로가 그려져 있다. 미국인 여행가 버튼 홈즈가 쓴 ‘홈즈의 동방나들이’에도 옛 청량리 전차풍경이 일부 묘사돼 있다. 정류장도 없이 아무 곳에서나 전차를 타려는 사람들이 많아 사고가 빈발했다고 한다. ‘홍릉시대’는 옛말이 됐다. 동대문~신설동 로터리~경동시장~청량리 로터리에 이르는 간선도로의 이름은 홍릉로가 아니다. 1966년 시내 35개 주요 가로의 이름을 정하면서 1908년 13도에서 모인 항일의병을 이끌고 ‘서울진공작전’을 지휘한 의병장 허위의 호를 따 왕산로라고 명명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던 홍릉은 축소됐다. 지금의 흥릉길은 왕산로와 청량리 로터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좌회전하면 나타나는 500m의 샛길에 불과하다. 명성황후가 떠난 홍릉에는 임업시험장, 영휘원(순헌황귀비 엄씨의 능)과 숭인원(영친왕의 맏아들 진의 능)이 스며들었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1966년), 세종대왕기념관(1970년), 한국농촌경제연구원(1978년), 한국국방연구원(1979년), 카이스트 경영대학원(1996년), 한국콘텐츠진흥원(2009년) 등 각종 기관단체가 속속 들어서면서 교육과학안보연구단지로 변모했다. 문학작품 속의 청량리는 어떤 모습일까. ‘벙어리 삼룡’의 작가 나도향은 1924년 ‘개벽’에 실린 ‘전차 차장의 일기 몇 절’에서 “오늘은 동대문서 청량리를 향해 떠나게 되었다. … 시골 나무장사와 소몰이꾼들의 ‘어디여, 이놈의 소’하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탑골승방 영도사 또는 청량사 들어가는 어구는 웬일인지 전보다 더욱 쓸쓸해 보인다”고 1920년대 어느 전차 차장의 시선을 통해 한적한 시골동네 청량리를 묘사했다.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도 1935년 ‘삼천리’에 발표한 ‘이성 간의 우정론’이라는 글에서 “… 날도 따뜻합니다. 우리 청량리로 산보나 가십세다. … 맑고 푸르고 높은 늦은 봄날 오후에 청량리 공기는 시원하였다”라고 청량리를 예술가들의 인기 산책코스로 소개했다. ‘탁류’의 작가 채만식은 1932년 ‘동광’에 실린 ‘청량리의 가을’에서 “청량리를 나가서 지금 경기도 임업시험장이 된 숲속으로 들어섭니다. … 내가 이곳을 처음 간 것이 작년 가을인데 미상불 서울 근교에서 하루의 산책지! 더욱이 가을날로는 매우 좋은 곳인 줄 여겼습니다”고 청량리의 가을을 예찬했다. 1960년 ‘사상계’에 연재된 황순원의 장편소설 ‘나무들 비탈에 서다’에는 “… 청량리 밖 떡전거리에다 양계장을 꾸며 놓은 것은 지난해 이른 봄이었다. … 후생주택을 비롯해 인가들이 들어서서 한 해 동안에 일대가 아주 변모해 버렸다. … 양계장에서 가깝대야 회기동 파출소 앞까지 한참 나가야만 다방이 있는 것이다”고 서술하고 있다. 이 작품은 1950년대 후반 공공주택의 공급과 함께 양계장에서 주거지로 조성되기 시작하는 청량리의 변화상을 보여준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 제21차 정릉천 따라 ■일시 및 집결장소 : 9월 14일(토) 오전 10시 우이신설선 북한산보국문역(서경대) 2번 출구 구내 ■신청(무료) :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문의 : 서울도시문화연구원
  • ‘쌉니다 천리마마트’ 정혜성 “웃다가 진지…모든 감정 경험할 것”

    ‘쌉니다 천리마마트’ 정혜성 “웃다가 진지…모든 감정 경험할 것”

    개성으로 똘똘 뭉친 연기를 선보여온 배우 정혜성이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웃다가 설레다가 또 눈물이 왈칵하는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라고 말해 첫 방송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상승시켰다. tvN 새 금요드라마 ‘쌉니다 천리마마트’에서 권영구(박호산)의 명령으로 정복동(김병철)을 감시하기 위해 천리마마트로 파견된 DM그룹 초엘리트 첩자 조미란 역을 맡은 정혜성. “원작 캐릭터가 굉장히 재미있었고 또 나의 본모습과 비슷한 면이 있다”며 “재밌게 잘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는 자신이 넘치는 작품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이러한 그녀의 자신감에는 캐릭터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남다른 준비가 바탕이 돼 있었다. 4개국어를 마스터한 만능 대리 조미란을 연기하기 위해, 대본 연습 때부터 유창한 영어로 대사를 준비해 와 모든 이들을 깜짝 놀라게 한 것. 또한, 원작을 꼼꼼히 읽고 캐릭터를 철저하게 비교, 분석했다. “드라마 속 조미란이 더 다채롭다고 생각했다. 불같은 성격이면서도, 새침하고 도도한 느낌, 그리고 여성미와 인간미까지 갖추고 있다”며 “이런 캐릭터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천리마마트의 다른 직원분들과 잘 어우러지는 데 중점을 두고 연기하고 있다”고. 조미란 또한 천리마마트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겪게 되는 인물이다. DM그룹에서 그녀는 사내 정치는 물론 대인관계에도 별 관심 없는 사람이었다. 첫째도, 둘째도 실적과 실력이 제일이라 생각하는 “일 잘하는 커리어 우먼”이었던 것. 그러나 천리마마트에서 근무하며 “인간미 있는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 정혜성 역시 캐릭터 관전 포인트로 “천리마마트로 발령받고 난 뒤 조미란이 어떻게 바뀌게 될지 지켜봐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이와 함께 드라마에 대한 흥미로운 감상도 전했다. “웃다가 설레다가 또 눈물이 왈칵 하는 모든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드라마가 바로 ‘쌉니다 천리마마트’”라고. “순간 훅 빠져들어서 빵빵 웃음이 터지다가도 진지해지고 또 감동하게 되는 기이한 체험을 하시게 될 것이다. 이 즐거운 경험을 꼭 함께 해주시길 바란다”며 9월 20일 첫 방송에 대한 기대에 불을 지폈다. ‘쌉니다 천리마마트’는 DM그룹의 공식 유배지이자 재래 상권에도 밀리는 저품격 무사태평 천리마마트를 기사회생시키려는 엘리트 점장과 마트를 말아먹으려는 휴먼 불도저 사장이 만들어내는 사생결단 코믹 뺨타지 드라마다. 원작은 다채로운 캐릭터들이 이끌어가는 재기발랄한 이야기로 네이버웹툰 연재 당시 누적 조회수 11억 뷰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세우며 남녀노소 모두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김규삼 작가의 동명 웹툰. ‘잉여공주’, ‘배우학교’, ‘SNL코리아’, ‘막돼먹은 영애씨’ 등 예능과 드라마를 넘나들며 개성 넘치는 작품을 만들어온 백승룡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오는 9월 20일 금요일 밤 11시 tvN에서 첫 방송된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직배·스크린쿼터… 뉴웨이브 감독들, 시대정신 담다

    직배·스크린쿼터… 뉴웨이브 감독들, 시대정신 담다

    1980년대 중반 한국영화계는 큰 변화를 맞게 된다. 바로 제작 자유화 물결 그리고 할리우드 직배(직접배급) 영화의 상륙이다. 1985년 7월 제5차 개정영화법 시행으로 자유롭게 영화사를 만들고 영화를 제작할 수 있게 됐지만, 그 활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1986년 12월 제6차 개정영화법의 공포로, 외국영화사의 국내 진출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추석 시즌에 개봉한 ‘위험한 정사’(Fatal Attraction, 에이드리언 라인, 1987)가 할리우드 영화사의 첫 직배 영화였다. 영화인들은 격렬한 직배 저지 투쟁에 나섰고, 이는 청년 영화인들의 영화계 민주화 투쟁, 또 스크린쿼터 투쟁으로 이어졌다.이 시기 한국영화에는 새로운 물결이 일었다. 충무로에서는 이장호와 배창호의 후예들이자 영화운동 세대라고 할 수 있는 박광수, 장선우, 정지영, 이명세 등이 등장해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에서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는 1980년대의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일련의 사회비판적 영화들을 내놓았다. 바로 ‘코리안 뉴웨이브’(Korean New Wave)로 명명된 작품 경향이다. 또 대학과 사회운동단체 등 제도권 영화계 밖에서는 한국 특유의 영화운동이라고 할 ‘독립영화’가 등장했다. 이번 연재에서는 1990년대의 르네상스를 예비한 1980년대 한국영화의 새로운 기운을 포착해 본다.●제작 자유화 그리고 직배 저지 운동 제5공화국 정권은 절차적 정당성과 도덕성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인지 혹은 올림픽이라는 정권 차원의 과업 때문인지 문화예술 영역을 강조했고, 예산 지원과 규제 검열이라는 당근과 채찍을 동시에 가동했다. 1984년 영화시책부터 반영된 영화예술 및 영화산업 활성화 방안도 당시 문화정책과 동일한 맥락에 놓여 있었다. 1962년 1월 제정부터 1973년 제4차 개정에 이르기까지 그간의 영화법이 국가의 통제를 위해 존재했다면 1984년 12월 공포된 제5차 영화법은 개방 영화법이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다. 영화제작업은 허가제에서 등록제로 전환됐고, 전격적인 독립제작제도까지 신설됐다. 영화업자가 아니더라도 영화제작 신고만 하면 누구나 연 한 편의 영화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1986년 하명중영화제작소를 시작으로 그해 27곳이 신고한 독립제작사는 1980년대 후반 100여곳에 달할 정도로 영화계의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특히 남프로덕션(대표 정지영), 파랑새(윤명오), 새빛영화제작소(주경중), 흙바람(장경기), 장산곶매(이은) 등이 충무로 시스템의 안팎에서 독립제작에 열중했다. 문화공보부의 영화 검열 업무도 심의제로 이름을 바꿨고, 주관자 역시 반관반민 기구인 공연윤리위원회로 이관됐다. 표면적으로는 자유롭게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것이다. 이 같은 한국영화 육성 및 자율화 정책이 추진된 배경에는 1985년부터 시작된 한미 영화협상이 있었다. 미국영화수출협회(MPEAA)의 끊임없는 압력 끝에 한국영화는 전면적인 시장 개방이 예고된 상태였다. 결국 제6차 영화법 개정(1986년 12월 31일)으로 1987년 7월 미국 영화사들이 한국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올림픽 기간인 1988년 9월 추석 프로그램으로 UIP(유나이티드 인터내셔널 픽처스, 미국 메이저영화사의 연합배급사) 직배 1호 ‘위험한 정사’가 개봉했다. 영화인들은 한국영화의 존립 기반이 무너졌다며 격렬히 저항했다. 대부분의 영화사는 여전히 한국영화 제작보다 외화 흥행 수익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1988년 9월 19일 영화인협회 감독분과위원회 철야농성으로 시작된 미국영화 직배 반대 운동은 9월 24일 수백명의 영화인이 ‘위험한 정사’를 개봉한 신영극장과 코리아극장에서 점거농성을 하며 더욱 격앙됐다. 직배 저지 투쟁은 해를 넘기면서 더욱 과격해졌다. UIP 직배 영화가 상영되는 영화관 관람석에서 암모니아 통과 뱀 자루가 발견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고, 극장 안에 최루가스를 살포하거나 불을 지르는 사건들이 이어졌다. 1990년까지 영화인들의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지만 결국 직배 반대 운동은 한계를 드러내며 멈출 수밖에 없었다. 영화 창작자, 제작자, 영화관 소유주 등 각자의 입장에 따라 너무나도 이해관계가 상이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96년, UIP 직배를 둘러싼 일련의 사태 이면에 직배 영화 배급권을 둘러싼 극장주들의 암투가 있었음이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도전·실험 기반한 ‘코리안 뉴웨이브’ 등장 한국영화의 새로운 물결, 코리안 뉴웨이브는 1988년 ‘칠수와 만수’로 데뷔한 박광수, ‘성공시대’의 장선우,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명세 그리고 1988년 직배 반대 운동을 통해 영화운동가로서의 면모를 보인 ‘남부군’(1990)의 정지영 등 다소 유화적인 사회 분위기에 등장한 새로운 감독군과 작품 경향을 지칭하는 용어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코리안 뉴웨이브의 등장은 제작, 검열 등에 관한 영화정책의 변화와 맞물린 결과였고,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성취한 사회변혁의 기운 덕분에 탄생할 수 있었다.뉴웨이브의 선두주자는 박광수였다. 그는 데뷔작 ‘칠수와 만수’에서 장기수 아버지를 둔 만수(안성기 분)를 통해 연좌제 문제를 언급했고, ‘그들도 우리처럼’(1990)에서는 탄광촌으로 도피한 운동권 대학생을 다루며 주제 의식에서도, 영화 미학에서도 한국영화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장선우는 영화적 화두와 미학적 스타일을 고정하지 않은 채 다양한 모습을 선보였다. 선우완과 공동 연출한 ‘서울황제’(원제 서울예수, 1986)로 검열의 수난을 겪은 그는 실질적인 데뷔작 ‘성공시대’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우화적으로 묘사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그는 ‘우묵배미의 사랑’(1990)과 ‘경마장 가는 길’(1991)에서 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발언에서 물러나 사람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연출 방향을 전환했다.박광수와 장선우가 예민한 사회적 이슈들을 건드리면서도 영화언어에 대한 실험을 놓치지 않았다면, 정지영은 전통적인 영화 화법을 기반으로 한국 현대사의 묵직한 주제들을 다루는 쪽이었다. 그는 3년 동안 매달린 ‘남부군’을 통해 한국전쟁 시기 남한에서 활동한 빨치산을 정면으로 다뤘고, ‘하얀전쟁’(1992)에서는 베트남전이 어떻게 개인들을 파멸해 갔는지 그려 내며 사회파 감독으로서의 입지를 구축했다. 두 작품은 한국 현대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시각을 한국영화에서 가장 먼저 담아냈다고 할 수 있다. 정지영의 과감한 행보는 이후 한국영화가 소재와 검열의 한계를 벗어나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한편 이명세는 사회 비판의 장에서 물러나 영화 매체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열중했다. 데뷔작 ‘개그맨’(1989년 개봉)은 갱스터와 코미디 장르의 관습을 흥미롭게 비트는 동시에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특별한 구성을 축조해 냈다. 이후 그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1), ‘첫사랑’(1993) 등 특유의 스타일리시한 미장센(감독의 화면 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지평을 넓혔다. 이처럼 코리안 뉴웨이브 감독들은 단일한 범주로 묶기 힘든 다양한 스타일과 주제 의식을 갖고 있었다. ●한국영화 세대교체이자 르네상스의 가교 사실 코리안 뉴웨이브가 공식적인 운동이나 영화 사조로서의 집단적인 흐름을 이룬 것은 아니다. 이장호, 이원세, 배창호 등으로부터 비판적 리얼리즘 시각을 계승하며 영화언어의 자각을 통한 미학적 실험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1980년대 전체 혹은 1990년대 중반까지로 범위를 더 넓힐 수도 있다. ‘바람 불어 좋은 날’(1980)의 이장호, ‘꼬방동네 사람들’(1982)의 배창호, ‘만다라’(1981)의 임권택부터,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1989)의 배용균까지 포함할 수 있는 것이다. 1996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발간한 영문 자료집 ‘Korean New Wave’에서 대상 작품들의 시기를 1980년에서 1995년까지로 설정한 것 역시 동일한 맥락이다. 크게 보면 코리안 뉴웨이브는 1980년대 한국영화가 이룬 세대교체를 의미한다. 1980년에 활동을 재개한 이장호를 비롯해 배창호, 정지영, 신승수, 장길수, 박철수 등이 충무로의 새로운 주류로 자리잡은 것과 영화운동 세대인 장선우, 박광수, 박종원, 이정국 등이 1980년대 후반 충무로에 입성한 것을 아우르는 것이다. 또한 이장호의 조감독 출신이 배창호, 장선우, 박광수 등이고 배창호의 조감독 출신이 신승수, 이명세 등이라는 점에서도 새로운 세대가 형성되는 흐름을 엿볼 수 있다.시대정신을 새기며 새로운 영화 스타일에 대한 고민을 놓치지 않았던 1980년대의 새로운 물결은 1990년대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를 예감하게 한 것이었다. 1990년대 중후반 ‘장미빛 인생’(1994)의 김홍준, ‘세상 밖으로’(1994)의 여균동, ‘세 친구’(1996)의 임순례, ‘넘버3’(1997)의 송능한, ‘초록물고기’(1997)의 이창동 등이 등장했고, 이들 작품은 한국사회에 대한 비판적 주제 의식을 계승했다는 점에서 ‘포스트 뉴웨이브’로 명명됐다. 물론 장선우를 위시해 박광수, 정지영, 이명세 역시 1990년대 내내 진가를 발휘했다. 그들의 작업은 1990년대 한국영화가 작가주의 미학과 대중적 감각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는 데 모범이 되는 것이었다.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선임연구원
  • 김성환 별세, ‘2001년 한국 기네스북 등재’ 별이 지다

    김성환 별세, ‘2001년 한국 기네스북 등재’ 별이 지다

    김성환 별세 소식이 전해졌다. 김성환 화백이 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1932년 10월 8일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난 김성환 화백은 1949년 해방 후 창간된 연합신문에 네 칸 만화 ‘멍텅구리’로 데뷔했다. 김성환 화백의 대표작은 ‘고바우 영감’이다. ‘고바우 영감’은 한국의 대표적인 만화이자 만화 캐릭터다. 김성환 화백은 1955년 2월 1일자 동아일보 연재를 시작으로 1963년까지는 외부 기고형태로 작품을 발표했고, 1964년에는 신문사에 입사해 ‘고바우 영감’ 연재를 이어갔다. 1980년 8월 9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한 뒤 1980년 9월 11일부터 1992년 9월까지 조선일보, 1992년 10월부터 2000년 10월까지는 문화일보에 ‘고바우 영감’을 연재했다. 이렇게 연재한 ‘고바우 영감’은 총 1만 4139회를 연재하여 한국 최장수 연재만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고바우 영감’의 국내 최장기 연재 기록이 의미하듯 한국 시사만화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캐릭터를 활용해 1958년 조정호 감독이 김승호, 김희갑, 노경희가 출연한 영화 ‘고바우’로 제작하기도 했다. ‘고바우 영감’ 전집이 네 차례에 걸쳐 출간됐고, 1977년에는 노이스턴대의 C. 파울 드레즈 교수가 ‘고바우의 언어’로 박사학위를, 2006년에는 교토세이카대학의 정인경 박사가 ‘고바우작가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 등 연구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반세기 동안 시사만화 작가로 활동한 작가답게 동아 대상, 소파상, 서울언론인클럽 신문만화가상, 언론학회 언론상, 한국만화문화상, 보관문화훈장 등을 수상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사재를 털어, ‘고바우 만화상‘을 제정, 한국만화계에 기여한 만화가들에게 상을 수상했다. 윤태호 사단법인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은 “김성환 화백은 한국만화의 큰 어른이었다. 특히 고바우 만화상을 통해 후배 만화가들을 격려하는 모습은 감동적이었다. ‘고바우 영감’을 더는 신문에서 볼 수 없을 때도 안타까웠지만, 이제 김 화백도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더 아쉽다”며 한국만화의 큰 어른 김성환 화백을 추모했다. 김성환 화백의 장례는 만화인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빈소는 분당제생병원장례식장 특8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11일 오전 7시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하늘로 떠난 ‘고바우 영감’

    하늘로 떠난 ‘고바우 영감’

    한국 최장수 시사만화 ‘고바우 영감’을 그렸던 김성환 화백이 8일 오후 별세했다. 87세. 황해도 개성 출신의 고인은 경복고를 졸업하고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을 수료했다. 남다른 그림 솜씨로 1949년 17세의 나이로 연합신문에 ‘멍텅구리’를 연재하며 데뷔했다. 한국전쟁 후 한국 만화계를 세우고 이끌었다. 그의 대표작 ‘고바우 영감’은 1950년 만화신보에서 첫선을 보인 이래 동아일보, 조선일보, 세계일보를 거쳐 2000년 문화일보에서 연재를 마치기까지 총 1만 4139회를 기록, 우리나라 최장수 시사만화로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위처럼 단단한 민족성을 상징하는 이름인 ‘고바우 영감’은 격동기 세태를 풍자하고 국민들의 애환을 대변하는 시사만화로 자리매김했다. 1950년대 말에는 당시 부패한 자유당 정권의 실상을 “경무대(현재 청와대)라면 변소의 똥을 푸는 사람마저도 엄청난 빽을 자랑한다”며 신랄하게 비판,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이에 경찰이 내사에 들어가는 등 고인에 대한 탄압이 가해지기도 했다. ‘고바우 영감’ 원화는 2013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됐다. 고인은 동아대상(1973), 소파상(1974), 서울언론인클럽 신문만화상(1988), 언론학회 언론상(1990), 한국만화문화상(1997), 보관문화훈장(2002) 등을 수상했다. 2001년에는 고인이 전액 출연한 기금으로 ‘고바우 만화상’이 제정됐다. 빈소는 분당재생병원 장례식장 8호실이며, 발인은 10일 오전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20대 스타들의 ‘퓨전 사극’ 가을 안방극장 노크

    20대 스타들의 ‘퓨전 사극’ 가을 안방극장 노크

    올 하반기 안방극장은 ‘20대 스타들의 퓨전사극’이 장식한다. JTBC가 월화극 ‘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과 금토극 ‘나의 나라’를 오는 16일과 다음달 4일 각각 첫 방송한다. KBS 2TV 월화극 ‘조선로코 녹두전’은 30일 방영을 예정하고 있다.‘조선혼담공작소 꽃파당’은 조선 최고이자 최초의 남자 매파당이 활약하는 로맨틱 코미디 사극이다. 남성 매파 3인방으로는 김민재(23·마훈 역), 박지훈(20·고영수 역), 변우석(28·도준 역)이 ‘꽃파당’ 멤버로 활약한다. 대장장이에서 하루아침에 왕이 된 남자 이수는 서지훈(22)이, 왕의 첫사랑인 털털한 개똥이는 공승연(26)이 연기한다. ‘조선 중매 로맨스’를 표방하는 드라마는, 연애와 결혼에 대해 ‘융통성’ 없던 조선시대에 왕의 혼담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맹랑하게’ 그렸다. JTBC의 또 다른 사극 ‘나의 나라’는 고려 말 조선 초를 배경으로 한 묵직한 액션 사극이다. 27세 동갑내기 양세종, 우도환과 함께 아이돌 그룹 AOA의 설현(24)이 주연을 맡았다. 양세종과 우도환은 2017년 지상파에서 남자 신인연기상을 받았고 설현은 영화 ‘안시성’과 ‘살인자의 기억법’ 등에 출연하면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과부촌이라는 독특한 배경을 설정한 ‘조선로코 녹두전’은 장동윤(27)과 김소현(20)이 남녀 주연을 맡았다. 2014년 말부터 네이버에 연재된 웹툰 ‘녹두전’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는, 여장남자 전녹두와 기생이 돼야 하는 동동주의 기상천외한 로맨스를 그린다. 곱게 화장한 장동윤의 포스터는 공개되자마자 “눈빛마저 아름답다”는 찬사를 받으며 기대감을 높였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 별세…독재에 굴하지 않은 풍자

    ‘고바우 영감’ 김성환 화백 별세…독재에 굴하지 않은 풍자

    ‘고바우 영감’ 최장수 시사만화…한국기네스 등재 우리나라 시사만화의 상징인 ‘고바우 영감’을 탄생시킨 김성환 화백이 8일 오후 별세했다. 87세. 1932년 황해도 개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타고난 그림 솜씨로 17세에 연합신문 전속 만화가로 데뷔했다. 고인이 그린 네 컷의 ‘고바우 영감’은 격동기 세태를 풍자하고 우리 국민의 애환을 대변하는 시사만화로 자리매김했다. 고인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위처럼 단단한 민족성을 상징한다는 뜻에서 시사만화 제목과 주인공의 이름을 고바우로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고바우 영감’은 1955년부터 2000년까지 1만 4139회 연재돼 단일 만화로는 우리나라 최장수 시사만화로 2001년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원화는 2013년 2월 근대 만화 최초로 등록문화재(제538호)가 되는 영광을 안았다. 고인은 1950년 12월 30일 전쟁 와중에 육군본보의 잡지 ‘사병만화’에서 고바우 영감을 처음 그렸고, 이후 1955년 2월 1일부터 동아일보에서 공식적으로 첫 연재를 시작했다. 이후 조선일보, 문화일보로 옮겨가면서 2000년까지 작품 연재를 이어갔다. 독재 정권 하에서 시사만화를 그려오면서 여러 차례 탄압을 겪었는데 이른바 ‘경무대 똥통 사건’으로 처벌까지 받았다. 1958년 1월 23일자 ‘고바우 영감’에서 김 화백은 ‘경무대(이승만 당시 대통령 관저)는 똥 치우는 사람마저 권력을 휘두른다’는 내용을 그렸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앗! 저기 온다./귀하신 몸 행차하시나이까?/저 어른이 누구신가요? 쉬-/경무대서 똥을 치는 분이요.당시 이승만 독재 정권을 풍자한 것인데, 이 내용 때문에 김 화백은 연행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박정희 정권 하에서도 국가 권력의 검열을 풍자했다가 벌금형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허금자 씨와 아들 규정 씨, 딸 규희·규연 씨가 있다. 고인의 빈소는 분당재생병원 장례식장 8호실이며, 발인은 11일 오전이다. (031)708-4444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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