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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 보랏빛 군무… 그 달콤한 유혹

    저 보랏빛 군무… 그 달콤한 유혹

    “어느 총각 꼬시려고, 꿀단지 열 개 스무 개 향긋한 그 내음 여기 저기 퍼뜨려 벌 나비 모두 불러 잔치 또 잔치 이른 봄 꽃 피어 잠시 꿈꾸다 여름이면 말라 죽는 夏枯草 (하고초) 신세” 시인 이종원이 지은 시 ‘꿀풀’의 한 대목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한번쯤 맛보았을 꿀풀에 관한 헌사지요. 들로, 산으로 노닐다 꽃잎 따서 입에 물면 다디단 꿀물이 나오던, 바로 그 꽃입니다. 지금 경남 함양 하고초마을에는 꿀풀이 무리지어 피어나고 있습니다. 마을 뒷산의 다랑논마다 벼 대신 꿀풀들이 가득 차 보랏빛 융단이라도 깔아 놓은 듯합니다. 도깨비 방망이를 닮아 생김새는 어쭙잖은 것이 꽃 빛깔은 어찌 그리 고운지요. 파란 하늘과 어우러진 보랏빛의 유혹이 제법 마음을 흔듭니다. 그뿐인가요. 함양은 ‘정자의 고향’이라 할 만큼 정자가 많습니다. ‘선비문화 탐방로’라 해서 함양의 대표적인 정자를 둘러볼 수 있는 트래킹 코스도 만들어 뒀습니다. ‘보라색 꿀단지’ 꿀풀로 눈을 즐겁게 하고, 화림동 계곡의 정자에 누워 달게 오수를 즐긴다면 금상(錦上)에 꽃을 꽂는 격이겠습니다. ●다랑논 가득 펼쳐진 보랏빛 향연 ‘주변 사람들을 배불리는 못 먹여도 배를 곯게 하지는 않는 산’이 지리산이라 했다. 벼농사를 짓건, 밭을 일구건, 지리산에 기댄 마을마다 요족하지는 않아도 ‘이밥에 고깃국’쯤은 먹고 산다는 뜻일 터다. ‘하고초마을’로 알려진 함양군 백전면 양천마을도 그 중 하나. 2003년 재배하기 시작한 꿀풀이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면서부터 제법 쏠쏠한 수익을 내는 마을이 됐다. 예전이라면 특용작물 수준에 머물렀을 꿀풀이 요즘엔 관광자원으로 효자 노릇하는 셈이다 꿀풀은 꽃이 지는 여름이면 누렇게 말라 죽는다 해서 하고초(夏枯草)라고도 불린다. 마을 이름도 거기서 유래됐다. 꿀풀은 어디 하나 버릴 데가 없다. 밀원식물(蜜源植物)인 덕에 꽃은 꿀을 얻는 데 쓰고, 대궁은 말려 진액을 뽑거나 약재로 내다 판다. 요즘처럼 ‘하고초 축제’를 벌일 때면 꽃잎을 따 부침개, 산채비빔밥 등을 만드는 식재료로 쓴다. 하고초마을도 예전엔 다랑논에 벼농사를 짓던 평범한 마을이었다. 대부분 천수답이었던 논은 비가 오지 않으면 흉작으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하늘만 바라보고 살던 주민들은 2003년 다랑논에 벼 대신 하고초를 심었다. 꽃이 필 무렵 축제도 벌였다. 하고초축제가 입소문을 타면서 주민 39명의 생활도 변했다. 지난해 이 산골마을에서 하고초로만 벌어들인 수입은 3억원 남짓. 정진상 전 작목반장은 “벼농사를 지을 때보다 3배가 늘었다.”고 했다. 하고초축제는 올해도 어김없이 열리고 있다. 예년같으면 벌써 꽃이 지기 시작했을 터. 그러나 올해 유독 심했던 불순한 일기 탓에 이제 겨우 만개하고 있다. 하고초마을 초입부터 보랏빛 군무(群舞)가 시작된다. 꿀벌들이 붕붕대며 바삐 날아 다닌다. 꿀풀이 1년에 한 번 베푸는 ‘화분(花粉)의 성찬’에 빠져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화려한 장미며 수수한 감자꽃 등도 활짝 피어 자태를 뽐내고 있다. 마을 언덕엔 400년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거대한 가지를 뻗어 마을 주민과 여행자들에게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당산목이다.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자면 스치는 바람이 청량함을 넘어 차가운 느낌마저 든다. 여기에 마을 주민들의 인심이 듬뿍 얹혀진 부침개와 하고초 꽃잎이 동동 떠다니는 농주 한 잔 곁들이면 여행의 피로쯤은 어느새 남의 일이 되고 만다. 이것저것 주문해도 만원을 넘지 않으니, 가격마저 참 착하다. ●24일까지 흥겨운 하고초축제 속으로 야트막한 마을 뒷산을 넘으면 꿀풀들의 향연은 절정에 달한다. 꿀풀 재배지역만 약 11만㎡(3만 3000평). 산자락 골골마다 다랑논이 빼곡한데, 개화가 늦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온통 보랏빛 일색이다. 화분을 먹은 벌들이 만드는 하고초꿀은 2.4㎏짜리 4000되 남짓. 올해는 5000되가 목표다. 하고초가 만들어내는 풍경 포인트는 대략 세 곳으로 압축된다. ‘아들 낳는 옹달샘’ 바로 위 고갯마루가 첫 번째, 여기서 고갯마루를 한 굽이 더 넘어 만나는 산길이 두 번째, 그리고 원두막이 세워진 마을 끝자락이 세 번째다. 하고초와 더불어 천천히 한 바퀴 도는 데 2시간이면 충분하다. 하고초축제는 24일까지 이어진다. 메기잡기 체험, 감자삶굿 등의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특히 감자삶굿은 방문객들에게 가장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프로그램. 불에 달궈진 돌 위에 감자를 얹고 삶는 동안 한바탕 춤판이 벌어진다. 감자를 찌면서 습도를 조절하기 위해 간간이 물을 넣는데, 이때마다 ‘뻥뻥’ 소리가 터지는 희한한 장면이 연출된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찐감자의 맛. 박종회 이장은 “감자를 삶는 과정이 다소 복잡하긴 해도 감자의 맛만큼은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곧추세웠다. 감자삶굿은 주말에만 펼쳐진다. ●홍조 띤 얼굴은 화림동 계곡물로 식히고 ‘좌 안동, 우 함양’이라 했다. 내 나라 안에 대표적인 양반 고을이 두 곳 있는데, 나라님 보시기에 왼편은 안동, 오른편은 함양이란 뜻이다. 쉽게 말해 대쪽 같은, 혹은 꼬장꼬장한 양반들이 많이 살았던 고을이란 얘기다. 그 기질은 오늘날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변강쇠와 옹녀’ 설화의 주무대이면서도, 드러내놓고 관광상품화하지 못한다니 말이다. ‘남녀상열지사’에 대한 것을 함양 관광의 앞줄에 내세우기 낯뜨겁다는 뜻일 터. 다른 지방자치단체들이 심청전 등 고전이나 구전 설화의 주무대가 어디냐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에 견줘 참 이례적이다. 변강쇠와 옹녀가 세인의 눈을 피해 정착한 곳은 함양군 마천면과 휴천면의 경계인 오도재 부근이었다고 전해진다. 오도재 정상 아래 지리산조망공원에는 변강쇠와 옹녀를 주제로 테마공원도 만들어 뒀다. 어린 자녀와 함께 가면 살짝 얼굴을 붉힐 수도 있겠다. 변강쇠와 옹녀의 설화와 만난 뒤엔 함양 선비 문화의 진수를 둘러보는 게 순서다. ‘새끈한’ 이야기에 얼굴이 화끈거린다면 시원한 화림동 계곡물로 식힐 일이다. 함양은 ‘정자의 고향’답게 80여개에 달하는 정자와 누각이 군 내 경승지마다 빼곡히 차 있다. 특히 남덕유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돌아가며 만든 안의면 화림동 계곡에 가장 아름다운 정자들이 밀집해 있다. 함양군은 거연정, 군자정 등 빼어난 자태의 정자를 둘러 볼 수 있는 ‘선비문화 탐방로’를 최근 일반에 개방했다. 황암사에서 출발해 남천정과 동호정 등을 지나 봉전교에서 끝난다. 길이는 5.8㎞. 계곡 트래킹을 겸하고 싶다면 농월정터에서 출발하는 것도 좋겠다. 짬짬이 시원한 계곡물에 발 담그며 걷는 맛이 각별하다. 원래 코스는 농월정터를 포함한 6.2㎞였으나, 약 400m 구간의 트래킹로가 아직 정비되지 않았다. 글 함양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 :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자가용으로 출발할 경우 경부(중부)고속도로→대전~통영간고속도로→함양 분기점→88고속도로→함양 나들목 순으로 간다. 고속버스는 동서울종합터미널에서 하루 11회 운행. 첫차는 오전 8시20분. 어른 1만 6600원, 중고생 1만 3300원, 어린이 8300원. →주변 관광지 : 함양 주민들이 보물처럼 여기는 곳이 상림(上林)이다. 언제 가도 시원한 나무 그늘과 맑은 공기를 내준다. 최근 하림(下林)도 복원공사를 끝냈다. 아직은 빈약한 수준. 하지만 함양토속어류생태관 등 관람시설을 조성해 자녀들과 함께 둘러볼 만 하다. 지리산 칠선계곡 자락의 서암정사는 사찰 전체가 조각공원처럼 꾸며진 석굴법당이다. 함양군청 문화관광과 960-5163. →잘 곳 : 산간마을에서 휴식을 원한다면 송전산촌생태마을휴양소(www.songjunri.com)가 좋겠다. 형제간 우애를 깨지 않기 위해 주웠던 황금을 다시 버렸다는 고려말 이억년·조년 형제의 전설이 서린 엄천강 주변에 있다. 6만~10만원. 식사는 직접 해결하거나, 휴양소에 딸린 식당을 이용하면 된다. 정식 6000원, 토종 흑돼지 바비큐 1만원. 963-7949. 읍내에서는 하야트 모텔이 깨끗하다. 3만원. 962-9696. →맛집 : 옥연가는 고(故) 노무현 대통령이 찾아 유명해진 집. 연잎으로 만든 백연밥상 등이 일품이다. 963-0107. 늘봄가든은 오곡밥 잘 짓기로 입소문 났다. 963-7722. 두 곳 모두 상림 인근에 있다.
  • [길섶에서] 법정 스님 찻잔/함혜리 논설위원

    차를 즐기시던 법정 스님은 다기에 대한 안목도 뛰어났다. 차는 좋은 그릇을 만나야 비로소 그 차가 지닌 빛과 향기가 맛을 제대로 낼 수 있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법정 스님은 지헌(知軒) 김기철 선생의 연잎 다완을 특히 아끼셨다. 때깔이 아름답고 무엇보다도 정성스럽게 손으로 빚은 까닭에 만든 이의 인품이 배어 있다고 칭찬하셨다. 이 찻잔에 ‘법정 스님 찻잔’이라고 이름이 붙은 내력이다. 지헌 선생과 법정 스님의 인연은 30년 전 시작됐다. 스님께서 서울 인사동에서 마음에 드는 다기가 너무 비싸 그냥 나오고 말았다는 글을 읽고 스님께 다기 한 벌 선물하고 싶다고 지인에게 지나가는 말을 했는데 어느날 지인이 스님을 작업실에 모시고 왔더란다. 차 문화에 맹문이었던 자신이 어엿한 다기를 만들게 된 것도 법정 스님의 가르침 덕분이었다고 지헌 선생은 말씀하신다. 오랜만에 선생께 안부전화를 드렸다. “법정 스님께서 보잘것없는 찻잔을 늘 곁에 두고 아끼셨다.”며 고마워하신다. 찻잔이 맺어준 인연이 참 아름답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겨울문턱… 山寺에서 나를 찾다

    겨울문턱… 山寺에서 나를 찾다

    조지훈의 시 ‘승무(僧舞)’는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려 있습니다. 국어시간에 꾸벅거렸건, 땡땡이를 쳤건 어지간한 이라면 띄엄띄엄이나마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 나빌레라’ 한 구절 정도씩은 읊조릴 수 있죠. 국민시에 가깝습니다. 밑줄 그어가며 ‘속세의 번뇌, 종교적 승화’ 등을 적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큰 느낌이 있었던 것 같네요. 그것은 바로 가슴 한편에 뭔가 기구한 사연을 품고 있음직한 느낌의 비구니에 대한 첫 심상이었습니다. 겨울이 오는 초입, 비구니 스님들을 만났습니다. 비구니 수행 도량인 경상북도 문경시 사불산 중턱에 있는 윤필암(閏筆庵)입니다. 허리춤 꼬깃꼬깃한 돈으로 손자에게 과자 사주는 외할머니처럼 푸근한 느낌의 암주(庵主) 은우 스님부터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여쁜 누이 같은 자성 스님까지 여섯 분이 모여 공부하며 생활하는 곳입니다. 다음달 1일(음력 10월15일)부터 시작될 동안거(冬安居) 준비에 여념이 없으시더군요. 겨우내 땔 장작도 마련해야 하고, 매 끼니 공양할 메주도 떠놓아야 합니다. 연잎, 감자 등으로 만든 전통 사찰식 부각과 유과 등 주전부리도 빼놓을 수 없는 것들이죠. 비구니 스님들 서른 명 남짓 모여 석 달을 지내야 하니 준비할 게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수수 찬바람은 산사의 겨울나기 준비를 더욱 부추기네요. 인생도 이처럼 예측 가능해 미리미리 준비할 수 있으면 오죽 좋을까요. 힘들어도 웃으며 견딜 수 있을텐데 말이죠. 올 겨울 산중 암자 문 두드려 스님들의 마음 공부 요령을 한 번 배워가도 좋겠습니다. 아무쪼록 북방삭풍 몰아치는 날 괘념치 않도록 두둑하게 인생 겨울나기 준비하시기 바랄게요. ●겹겹이 펼쳐진 산세 가슴까지 후련 나그네는 길 자체의 아름다움에 혹하기 십상이다. 허나 진짜 아름다운 것은 길 너머에 있다. 감동을 아껴둬야 만날 수 있다. 바로 1인 수행도량인 묘적암과 윤필암, 그리고 거기까지 오르는 길이다. 윤필암은 본 사찰인 대승사와 묘적암의 갈림길 즈음에 있다. 왼쪽으로 가면 묘적암, 오른쪽으로 가면 대승사가 나오는 곳이다. 차를 갖고 왔다면 윤필암 아래쪽에 세우고 호젓한 산길의 정취를 느껴볼 만하다. 1㎞ 남짓 넘어가니 다리야 약간 퍽퍽하겠지만 쭉쭉 뻗어올라간 삼나무며, 상수리나무 등을 보노라면 눈이 맨 먼저 시원해진다. 인적 드문 호젓한 길 여기저기서 다람쥐들과 연신 맞닥뜨리게 된다. 사람을 무심히 쳐다보는 모양이 속계와 불계를 오가는 존재인양 영물스럽기까지 하다. 진짜 아름다운 풍광은 적멸 스님이 홀로 수행하고 있는 묘적암 앞에 펼쳐져 있다. 멀리 사불산의 사면석불이 내다보이고 겹겹이 펼쳐진 산세가 가슴 속에 시원함을 안긴다. 비라도 올라치면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안개는 신비로움까지 더해준다. 적멸 스님은 “며칠 동안 사람 구경 못할 때도 많아 먼 발치에서 등산객만 보여도 반갑다.”고 했다. 낯선 이라도 불쑥 차 한 잔과 한 말씀 청하면 기꺼워하시겠다. 묘적암을 내려오다 보니 길 초입에 우체통이 하나 있다. 사불산 깊은 곳에 자리잡아 우체부 오토바이가 오르기 힘겨워하는 탓에 마련해둔 것이다. 넉넉한 마음씀씀이에 흐뭇해진다. 묘적암, 윤필암을 다녀온 발걸음은 전통의 향기 넘쳐나는 곳으로 향한다. 관광지가 아니어서 발길은 뜸하지만 문경에는 또다른 매력이 숨겨져 있다. 도예 무형문화재 32호 천한봉 선생의 문경요는 우리나라보다 일본에서 훨씬 유명하다. ‘한국방문의해위원회’ 홍보대사인 영화배우 배용준이 쓴 책 ‘한국의 아름다움을 찾아 떠난 여행’에 등장한 뒤 일본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배용준은 이곳에서 5일간 머물며 도자기를 굽고 도자기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다. 굳이 배용준이 아니더라도 천 선생의 작품은 찻사발 하나가 1000만원에 달할 정도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일본에서만 연 2억원 넘게 판매되고 있다. 지난해엔 일왕이 사절을 파견해 훈장을 줬을 정도. 여기에 방짜유기 중요무형문화재 77호 이봉주 선생 역시 장인의 기품을 보여주고 있다. 안산에 있던 공방을 옮기기 위해 산좋고 물맑은 곳 찾아 헤매다 2004년 문경으로 접어들었다. 주물로 만드는 안성유기와 달리 방짜유기는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것이다. 현대식 공장은 물론, 전통 방식 유기 대장간을 구경할 수 있다. ●경북의 또 다른 맛은 낙동강 줄기에 뱃사공의 뱃길은 사라진 지 오래다. 새로 놓인 다리는 튼튼하기만 하다. 하지만 그때 그 뱃사공들의 갈증과 허기, 하루의 고단함을 풀어주곤 했던 그 강변의 주막만큼은 그대로 남아 있다. 낙동강과 내성천, 금천 등이 만나는 곳이라 이름 붙여진 경북 예천군 풍양면의 삼강(三江) 주막이다. 1900년 무렵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명실상부한 조선시대 마지막 주막이다. 여기저기 떠도는 장돌뱅이들, 찌그덕거리며 노젓는 뱃사공들이 컬컬한 막걸리 맛을 못잊어 삼강주막을 찾았다. 주막 안팎에는 오랜 세월의 흔적이 역력하다. 까막눈의 주모는 술상 내주던 부엌 흙벽에다 빗금을 긋는 식으로 외상장부를 남겼다. 마지막 주모였던 유옥련 할머니는 2005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고, 뱃사공들도 이제는 없지만 텁텁한 술트림이 여기저기 맴돌고 있는 듯하다. 주막 뒤편엔 450년 된 홰나무가 우람한 몸집을 자랑하며 서 있고, 싸릿대 얼기설기 빙 둘러쳐진 ‘통시(뒷간)’가 옛 주막의 운치를 더한다. 손두부와 도토리묵은 각 2000원, 배추 지짐이는 3000원, 동동주는 한 주전자에 5000원이다. 한 상을 시키면 에누리 없는 1만 2000원이다. 게다가 술상 내오는 것도, 내가는 것도 모두 ‘셀프’다. 주막 운영을 마을부녀회가 맡고 있다. ●여행 Tip ▲먹을 거리 문경은 약돌돼지석쇠구이가 유명하다. 약돌(거정석)을 사료에 섞어 먹인 돼지에 고추장 양념을 발라 연탄불에 구웠다. 비계는 쫀득쫀득하고 살코기는 야들야들하다. 문경새재 가는 길 어귀에 약돌돼지를 파는 식당이 많이 있다. ‘탄광촌(054-572-0154)’과 ‘새재할매집(054-571-5600)’이 유명하다. 밑반찬도 맛있다. 예천에서는 용궁시장 순대국밥을 꼭 먹어보자. ‘1박2일’에 등장하며 유명해진 박달식당도 좋지만, 식사 때 1시간 남짓 기다리는 것은 기본이다. 차라리 입소문으로 이름이 알려진 단골식당(054-653-6126)을 찾으면 기다리는 수고로움 없이 3500원짜리 순대국밥 한 그릇으로 행복한 포만감을 누릴 수 있다. 글·사진 문경·예천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HAPPY KOREA] 저수지 메운 백련… 마을 복덩이 되다

    [HAPPY KOREA] 저수지 메운 백련… 마을 복덩이 되다

    전남 무안군 하늘백련마을 60여년 전 마을 주민이 심은 백련(白蓮) 12그루가 지금은 10만평이 넘는 연못을 가득 메우고 인근 주민의 소득증대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남 무안군 일로읍의 백련집단서식지인 ‘하늘백련마을’. 해마다 여름이면 ‘연 산업 축제’가 열리는 등 지역발전의 한 축이 되고 있다.서해안고속도로 일로 나들목을 나와 5㎞를 더 가자 마을에 들어선다. 마을 안길을 따라 넓게 자리잡은 논을 지나자 하얀 연꽃과 둥그런 연잎이 끝도 없이 눈앞에 펼쳐졌다. 행정안전부와 무안군, 복용리 주민들이 힘을 합쳐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에 나서고 있는 하늘백련마을. 그 중심에는 회산(回山) 백련저수지를 가득 메운 백련이 있다. 회산 백련저수지는 인근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일제시대에 축조됐다. 영산강 하굿둑이 생기면서 농사용으로는 사용하지 않는다. 저수지를 만들 당시 인근 마을 주민 한 사람이 저수지 가장자리에 백련 12그루를 구해 심었는데 해마다 번식을 거듭해 지금은 10만평이 넘는 백련 군락지가 됐다. 1997년부터 연꽃축제를 개최하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0여년전부터 연꽃축제 개최 백련 저수지 주변 복룡리와 산정리는 바로 이 백련을 매개로 2007년 행정안전부의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시범지역으로 선정됐다. 백련은 그 자체로 관광상품일 뿐 아니라 연잎과 연근 등을 이용한 다양한 제품을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처음 백련을 심었던 주민이 꿈을 꾸었는데 두루미 12마리가 내려와 앉은 모습이 흡사 백련이 피어 있는 것 같았다는 전설처럼 백련은 마을 주민들을 먹여 살리는 복덩이인 셈이다. 하늘백련마을은 사업 첫 해에는 기본계획을 세우고 다목적 마을회관인 ‘하늘백련의 집’을 신축했다. 이곳을 중심으로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아 나가면서 지난해에는 하늘백련마을 조성공사를 마무리지었다. 올해에는 노후불량주택정비와 공동육묘장을 끝냈고 농산물판매장과 공원을 조성하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저수지에 자라는 백련 이외에도 주변에 백련 재배지를 더 늘려 현재는 18만평에 이른다. 특히 저수지 밖의 8만평에 이르는 백련 재배지에선 관련 상품을 주로 생산하고 있다. 하늘백련마을은 백련이 수출상품이 되면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8월 초 미국, 일본, 호주, 독일 등 11개국 바이어가 연 산업축제가 열린 무안을 방문했다. 무안에서 생산한 백련 관련 제품 152만달러(약 19억원)어치를 수출하기로 계약을 맺었다. 백련차, 백련라면, 백련소금, 백련김, 백련된장 등 60여가지 제품이 본격적인 수출길에 나서고 있다. ●육묘 수익금 마을발전 기금으로 하늘백련마을 조성으로 주민들은 지역공동체에 대한 자부심과 함께 자신감이 충만해졌다. 배희철 무안군 지역개발과장은 “마을 공동사업을 추진하면서 주민들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모이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2007년 지은 마을회관이 주민들이 모이는 쉼터 구실을 하면서 이곳에서 마을의 미래가 자연스레 대화주제가 된다. 지난 6월 완공된 공동육묘장이 제 몫을 해나가고 있다. 주민들로 구성된 추진위원회가 공동운영하는 공동육묘장은 벼 1만 5000판을 육묘해 주민들에게 통상 가격 3000원의 절반도 안 되는 1200원에 판매했다. 벼뿐만 아니라 배추와 고추 등을 육묘해 올해 1800만원을 벌었다. 이 돈은 마을발전을 위한 기금으로 적립했다. 무안군 지역개발과 행복마을담당자인 김영씨는 “처음에는 그저 쳐다보는 주민들이 많았다.”면서 “주변 환경이 바뀌고 소득원도 생기니까 주민들이 생각을 달리 하게 되더라.”고 회상했다. 하늘백련마을에 속하는 산정리와 복룡리 일원 6개 마을 인구는 326가구 758명이다. 이 가운데 40세 이하는 282명에 불과한 반면 60세 이상 노인 인구가 261명에 이를 정도로 노령화가 심각하다. 하늘백련마을 추진위원으로 활동하는 박창석 복룡리 이장은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사업을 통해 마을에 젊은이가 되돌아오는 희망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마을이 젊은이들로 붐비는 예전 모습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털어놨다. 무안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 시흥 연꽃 테마파크] 연꽃에 대한 명상

    [길따라 바람따라 맛따라 | 시흥 연꽃 테마파크] 연꽃에 대한 명상

    연잎은 접시안테나처럼 잎을 펼친 채 태양을 읽는다. 무수히 쏟아져 내리는 햇살과 교신해온 연꽃 향기는 그야말로 청량한 기호들이다. 강렬한 한낮의 태양빛 아래 연꽃은 그래서 100만 년 전 상징을 간직하고 있다. 태양 중심부에서 문득, 하나의 생각이 에너지가 되어 이렇게 인연을 광합성하는 것이리라. 경기도 시흥시 관곡지에 위치한 연꽃 테마공원, 이곳에 오리라고 마음먹은 건 일종의 숙명이다. 이 초록의 집단 무의식에 연결되어 있는 원형은 100만 년을 산 사람의 기억과도 같다. 연꽃들은 깊은 차원에서 이미 하나의 정점에 맺혀 있다. 그러니 눈물을 믿는다는 건 나와 그리고 한때 나였던 것들에 대한 경배이다. 어쩌면 지금의 현실보다 연꽃의 자태가 더 우주적인 질서일지도 모른다. 시간이라는 너른 밭에 생명의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다 보면, 어느덧 나도 접시안테나를 펼친 채 누대의 생을 받아내고 있다는 생각. 연꽃은 6월부터 9월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여느 정치의 허세처럼 소란스럽게 일제히 피지 않고 조금은 사소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시즌을 지난다. 연꽃 탐방 길을 걷노라면 이러한 연꽃들 개개의 성격과 마주한다. 마치 알고 지냈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하나씩 만나게 되는 인연처럼, 꽃의 표정이 다양하다. 활짝 핀 채 제 안의 노오란 속내를 점점이 드러내는 꽃이 있는가 하면, 완전히 시들어 너른 연잎 한가운데 떨어져 말라가는 꽃도 있다. 인생은 이렇게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서로 다른 나를 만나게 한다. 수많은 가능성에 스스로를 의지하며 이날까지 살아왔으니, 연꽃의 생은 신념이 이뤄놓은 쓸쓸한 사건이다. 결국 나와 당신은 봉오리의, 만개된, 떨어진, 연꽃이 뒤섞인 지상의 시차를 견뎌야 한다. 후회는 내가 조금 더 누추해졌었길 바랄 뿐. 비망록 윤성택 시간을 겹겹 접으니 견고하게 뚫립니다 생생한 과거를 이제 펼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과거에 이르는 속성은 당신에 의해 결정된 것이니 내 청춘은 고백에 가깝습니다 이 불안하고 어리숙한 나를 되돌아보게 하는 것은 무모한 기대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많은 것이 사라졌다고 이해하겠습니다 한때의 결의도 사랑도 헌책에서 뜯겨져 나간 속지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곳의 공기에게 예감은 선물입니다 시간과 공간이 사라진 기억이란 운명을 은유하면서 일생을 떠돌게 마련이니까요 태연한 그 여백을 오늘이라고 적겠습니다 칠흑 같은 내 안의 추억은 악취뿐이었으나 당신은 그 악취에 뿌리 내린다. 나는 더욱더 썩길, 썩어가길 원했어야 했다. 그러나 온통 침전된 불행의 지층 사이로, 부끄러운 나를 휘저으며 더 깊은 곳까지 따뜻한 슬픔이 온다. 막막한 깊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혼탁한 내 안의 덩어리를 놓아주는 것. 그리하여 나는 살아가는 것이다. 무수한 입자들 속에 나를 분해하면서, 아니 용해되면서 가닥가닥의 촉감에 의지하면서. 그렇게 나에게로 다가오는 당신은 누구인가. 나를 흡수하고 지상의 높은 곳까지 끌어올리는 당신은 누구인가. 나를 꽃의 향기로 흩날리게 하는 당신은 누구인가. 흰색 사이로 번진 분홍의 홍련(紅蓮), 순수한 백옥빛 백련(白蓮), 연못이 막 피워낸 것 같은 수련(垂蓮)…. 연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왠지 경건해진다. 연꽃이 진흙 속에서 피어난다는 사실보다, 연꽃 씨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썩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연꽃이 불성을 상징한다는 말보다 더 이끌리는 건 연꽃이 어쩐지 사람 같다는 생각 때문이다. 사람에게도 향기가 있고 색깔이 있다. 곁에만 있어도 은은한 이끌림으로 마음이 환해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몇 마디 대화에도 지독한 이기심이 서려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찌하랴. 우리는 어차피 이 지구의 시간 속에서 뿌리 내리며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다만 일찍 피었다 질 뿐, 아니 늦게 피느라 아직 준비가 덜 되었을 뿐.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관곡지의 연꽃이 되어 그렇게 이 계절을 살다갈 것이므로.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뒤, 나는 그때 당신이 향기로웠다는 것을 첫 눈빛으로 기억하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당신에게서 잊혀진 사람이다. 그리고 오늘 이 시간 속에서 막연한 타인이다. 나는 늘 그 자리에 있었다.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비가 오고 그렇게 시간이 지났을 것이다. 오늘 당신이 읽는 건 선택이 아니라 선택되어진 것일지도 모른다. 한때 그토록 이루지 못했던 것들, 그리고 나로 인해 함께했던 것들이 우리를 관곡지에 머물게 했을 것이다. 그런 간절한 소망 하나가 관곡지의 바람이 되어 서성이는 건 아니었을까. 미처 알아보지 못하고 스치듯 지나간 마음이 얼마나 많은가. 헤어지지 말자고 죽어서도 잊지 말자고 했던 다짐이, 지금은 오후의 햇볕으로 고요하게 내려앉는다. 노란색 유치원복을 입은 아이가 되어, 양산을 든 자글자글한 할머니가 되어 인연이라는 테마파크에서 해후하는 것처럼. 이제 당신은 주위의 어둠에 물들지 않고 고고해지길, 연잎에서 그대로 굴러가는 빗방울처럼 악과 거리가 멀기를, 고인 물에서 향기를 길어내듯 훈훈한 사람이 되기를, 바닥이 아무리 더러워도 늘 청정하기를, 둥근 연꽃처럼 늘 온화하기를, 연의 줄기와 같이 부드럽고 융통성이 있기를, 연꽃 꿈처럼 길한 일이 함께하기를, 반드시 맺히는 연꽃 열매처럼 좋은 결실을 맺는 사람이기를, 활짝 핀 연꽃마냥 인품과 마음이 열려 있기를, 연꽃의 넓은 잎과 긴 대와 같이 기품이 늘 함께하기를……. 글·사진_ 윤성택 시인 TIP 시흥 연꽃 테마파크 경기도 시흥시 하중동 219번지 일원에 위치해 있다. 조선 중기 농학자인 강희맹(1412∼1483) 선생이 세조 9년 진헌부사가 되어 명나라 남경 전당지에서 연씨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연 재배지가 되었다. 22㏊ 면적에 조성한 연근 생산단지로 시흥시 농가 소득 자원으로도 꼽힌다. 연꽃을 둘러보려면 햇볕을 가릴 양산이나 모자는 필수. 연못에 피는 연꽃이라 야외 천막 외에는 그늘이 없다. 자동차로 가려면 접이식 자전거를 싣고 가면 더없이 좋다. 인근 시흥갯골생태공원에서 물왕저수지까지 연결된 7.5km에 이르는 시흥시 그린웨이가 자전거 도로로 잘 꾸며져 있다. 같은 색을 맞춰 입은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 꼬리를 물고 20여 대로 지나가는 것은 기본. 호젓한 시골길과 가을 풀숲의 정경이 자전거 페달보다 가볍고 경쾌하게 펼쳐진다.
  • [길섶에서]백련/함혜리 논설위원

    인사동의 갤러리에 들렀다가 조계사 앞쪽으로 걸어 나오는 길이었다. 늦더위의 무거움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려고 걸음을 재촉하던 나는 눈을 의심하며 걸음을 멈췄다. 발길을 되돌렸다. 한 건물 앞. 커다란 고무 대야가 몇개 놓여 있고 무성한 연잎 사이로 쭉 뻗은 꽃대에서 흰색 연꽃 한송이가 눈부시게 피어 있었다. 도심에서 백련을 만난다는 것은 뜻밖이었다. 조화겠거니 하면서도 혹시나 싶어 코끝에 끌어당겨 봤다. 제법 그윽한 향기가 났다. 황금색 꽃술도 진짜였다. 얼마 전 해남 윤씨 고택 ‘녹우당’ 앞의 연못에서 본 백련이 떠올랐다. 소나무밭과 어우러진 연못에서 소담스럽게 피어있던 백련에 비교하면 이 탁한 도시의 공기와 소음 속에서 고무 대야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연꽃의 처지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이런 나의 생각과는 달리 백련은 그런 푸대접에 무심한듯 말없이 피어 있었다. 하찮은 환경에서도 막힘없이 곧게 자라 각박한 세상에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연꽃을 보며 옛 성현들이 얻었던 교훈을 되새겼다.중통외직(中通外直).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더위 싹~ 웰빙국수 강추!

    더위 싹~ 웰빙국수 강추!

    몸뿐만 아니라 입맛도 처지기 시작하는 여름이 찾아왔다. 해마다 이맘때면 연례행사처럼 떨어진 식욕을 복구시키려고 시도하지만 영양과 맛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특단의 처방을 찾기란 참으로 어렵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과 국이 부담스러울 때, 속을 시원하게 뚫어 주는 차가운 국수 요리를 강추한다. 누구는 ‘국수 먹은 배’라는 속담을 들먹이며 몇 가닥 면으로 한여름 떨어진 체력을 어떻게 보충하냐고 딴지를 걸기도 하겠다. 하지만 자연산 청정 재료에 정성스런 손맛, 여기에 독특한 경험까지 골고루 들어간 영양 가득한 면들은 까다로운 입들을 다물게 하기에 손색이 없을 듯. 서울 웨스틴조선호텔 일식당 스시조에서는 주말마다 은은한 메밀향이 식욕을 자극한다. 이곳의 한석원 조리장이 직접 손님 앞에서 소바를 반죽해서 내는 독특한 행사를 벌이기 때문이다. 가이세키 요리가 전문인 그가 일본의 이름 난 소바 전문점에서 틈틈이 배워온 솜씨를 발휘한다. 동그랗게 반죽해 밀대로 종잇장처럼 얇게 민 뒤 칼로 촘촘하게 잘라내는 전 과정을 지켜 볼 수 있다. 봉평 메밀가루와 밀가루(중력분)를 8대2 비율로 섞은 ‘니하치’ 반죽이 스시조 소바의 비결이다. ‘니하치’는 2와 8이라는 뜻으로 밀가루와 메밀의 비율이 2:8이란 뜻. 메밀의 향을 살리면서 면의 탄력을 유지하는 ‘니하치’가 소바의 황금비율로 통한다. 면의 색깔은 훨씬 연하다. 바로 반죽해 뽑은 면발은 탱글탱글하지만 뚝뚝 끊긴다. 진한 갈색을 띠고 전분을 함유해 쫄깃함이 특징인 우리나라 메밀국수에 길들여져 있어 처음엔 낯설 수 있다. 하지만 메밀 본연의 향과 맛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메밀·밀가루 8대2로 반죽… 진한 장국 일품 장국도 색이 진하고 더 짭짤하다. 에도(지금의 도쿄)식이다. 사무라이의 도시였던 에도의 음식은 검술을 즐겨 땀을 많이 흘리는 사무라이들의 나트륨 보강을 위해 대체로 짜고 강한 맛이 특징이다. 무즙은 제공되지 않고 파만 나온다. 먹을 만큼 집어 살짝 적신 뒤 먹어야 한다. 다 먹고 난 뒤 메밀 삶은 물을 장국에 넣어 먹으란다. 여기에 메밀을 볶아 차로 끊인 메밀차가 마무리를 장식하니 속이 한결 개운하다. 직접 만든 두부 요리, 샐러드, 스시모듬, 소바가 제공되는 주말 세트 메뉴는 점심 6만·8만원, 저녁 10만·12만원이다. 세금·봉사료 별도. (02)317-0373. 최근 서울 조계사 앞에 문을 연 사찰음식전문점 바루에서는 대지의 기운이 가득한 백련냉면을 선보여 식객들을 끌어 들이고 있다. 이름에서 보듯 연잎과 연근을 넣어 면을 뽑았다. 충남 당진 정토사가 제조원이다. 연근과 연잎은 항산화작용이 탁월해 피로회복, 노화 방지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툼한 면발은 쫄깃하고 아삭한 맛까지 지녔다. 냉면 육수는 100% 식물성. 일체의 동물성 단백질 섭취를 거부하는 골수 채식주의자들이 반색할 일이다. 산나물 가운데 가죽이란 것이 있는데 연한 잎만 따먹고 뻣뻣한 줄기(대)는 보통 버리는데 바루에서는 그 줄기가 냉면 육수의 주재료가 된다. 가죽의 대와 집간장을 넣어 끓인 뒤 다시마와 표고를 우려낸 농축액, 5년간 숙성시킨 산야초 효소, 열무김치국물, 과일즙을 섞어 육수를 만든다. 식초를 넣지 않아도 새콤하니 간이 맞는다. 비빔냉면의 다대기 또한 ‘물건’이다. 마른 표고버섯을 고기 대신 다져 넣어 고춧가루, 배즙, 산야초 효소, 고추냉이 등을 넣고 살짝 볶은 뒤 3일간 숙성시킨 다대기에서는 윤기가 좔좔 흘른다. 텁텁함 없이 칼칼하고 새콤달콤한게 까다로운 입맛도 사로 잡을 만하다. 보통 냉면 그릇보다 훨씬 큰 발우에 나오는데 양도 푸짐하다. 비빔, 물냉면 모두 1만원으로 시중보다 값이 더 나가는 것은 청정 자연의 맛을 담은 네 가지 반찬들이 곁들여지기 때문이다. (02)2031-2081. 곰취는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산나물 가운데서도 효능과 맛에서 손꼽힌다. 그냥 따서 쌈처럼 먹기도 하고 무쳐 먹기도 하는데 쌉싸름한 맛이 식욕을 돋우는 데 그만이다. 가래, 기침을 완화하고 혈액순환을 도우며 항암작용까지 탁월하다고 한다. 태백시에서 농촌활력증진사업의 일환으로 개발한 곰취 냉면은 면발에 곰취 특유의 쌉쌀하고 독특한 향이 잘 배어 있어 이미 ‘전국구’로 올라선 칡냉면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색소나 방부제를 첨가하지 않고 천연의 색과 효능을 살려 최근 인기가 높아가고 있다. ●곰치 특유 쌉싸름한 향 식욕 돋워 태백 지역에 가면 웬만한 식당에서는 곰취 냉면을 메뉴에 올려놓고 있는데 황지동에 있는 ‘02정 식당’이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휴가 계획이라도 있다면 현지에서 맛을 즐겨 보는 것도 좋을 듯. 여의치 않더라도 섭섭해할 필요없다. 11일부터 13일까지 경기도 일산 킨텍스에서 열리는 농어촌박람회 ‘메이드 인 그린’에서도 곰취 냉면을 맛볼 수 있으며 태백시가 보증한 기업에서 만든 곰취 냉면을 구입할 수도 있다. (033) 552-6106. 글 사진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공원 내 흡연·음주 꼼짝마”

    ‘공원 내 흡연 음주 꼼짝마!’부산 연제구가 노인 일자리 사업과 연계, 지난 3월부터 운영하고 있는 ‘연제 실버 건강수호대’가 주민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지역 노인 20명으로 구성된 연제실버건강수호대는 ‘금연권장·음주 청정구역’에서 홍보 및 계도 활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 노인의 활동 무대는 부산의 대표적 휴식처인 온천천 시민공원, 거제1동 한마음공원, 연산2동 연화공원 부산 사랑 터, 연산4동 연봉공원, 연산5동 꿈나무 체육공원, 연산8동 과정공원, 연산9동 주공 체육공원, 연산9동 연잎공원 등이다.매주 월·수·금요일, 하루 4시간, 3인 1조로 구성돼 시민공원 등을 돌며 흡연과 음주를 감시하고 있다. 금연과 금주를 권장하는 어깨띠를 두르고 캠페인과 함께 시민공원 등에서 담배꽁초를 줍는 등 노인들의 솔선수범하는 모습에 주민들도 공감하고 금연과 금주에 참여하고 있다. 이위준 연제구청장은 “연제 실버 건강수호대의 활약으로 공원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줄어 인근 주민들이 반긴다.”며 “연제구가 금연권장 음주 청정구역으로 자리 잡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한편 부산 연제구는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최초로 ‘건강환경조성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하고 올해 초부터 온천천 시민공원 등 체육공원과 어린이공원 등 총 13곳에 금연권장 음주 청정구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을 설치했다. 표지판에는 걷기 좋은 코스와 스트레칭 요령 등 운동관련 건강정보가 나와 있다.부산 김정한기자 jhkim@seoul.co.kr
  • 지친 도심 속 ‘무념의 밥상’

    지친 도심 속 ‘무념의 밥상’

    ‘절밥’이 저잣거리로 내려온 지는 오래다. 먹을거리에 대한 불신과 건강에 대한 높은 관심으로 스님들의 소박한 ‘무념(無念)의 밥상’을 엿보는 중생이 많아진 까닭이다. 철저하게 채식 위주로 짜여지는 식단은 그저 배만 불리기보다 건강도 함께 챙기려는 웰빙(well-being) 트렌드에 부합한다. 소식(小食)으로 채우지만 동시에 비우는 식사법은 가리지 않고 넘치게 먹어 오히려 병을 부르는 현대인들에게 꼭 필요한 처방이 아닐 수 없다. 때문에 요즘 시중에서도 사찰음식 전문점을 표방한 식당들을 만나기 어렵지 않다. 호텔 뷔페 레스토랑들도 특별 건강식으로 사찰음식을 메뉴에 올리기도 한다. 멀리 있는 산사를 찾아가지 않아도 절밥을 손쉽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반갑다. 하지만 불교에서 식사도 수행의 하나일진대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음식점에서 ‘발우공양’에 담긴 뜻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서울 종로구 조계사 맞은 편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건물 5층에 자리한 사찰음식 전문점 ‘바루(BARU)’. 새달 1일 문을 여는 이곳을 그저 또 한군데 사찰음식 식당이 생기나 보다 하고 쉽게 볼 일이 아니다. 승려의 밥그릇을 뜻하는 ‘발우’에서 비롯한 ‘바루’는 조계종에서 운영하는 첫 사찰음식 전문점. 템플스테이와 더불어 사찰음식을 포교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종단에서 제대로 된 사찰 음식을 선보이고자 만들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한 일부 음식점에서 오신채(파, 마늘, 부추, 달래, 흥거 등 자극이 강하고 냄새가 많이 나는 다섯가지 식물)를 슬쩍 넣는 등 사찰음식 문화가 변질되고 있다는 염려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바루’의 총책임을 맡아 중생의 식습관을 바로 잡고 사찰음식의 정통을 바로 세우는 중책을 띤 이는 이미 사찰음식연구가로 이름 높은 대안 스님이다. 경남 산청의 금수암 주지승으로 ‘금당 사찰음식 연구원’을 운영해 온 스님은 출가 이후 쌓아온 음식에 대한 철학과 솜씨를 부려 ‘바루’의 식단을 짰다. 불가(佛家)의 전통을 철저히 따르면서 일반인들의 마음까지 채울 만한 음식들이다. 식재료에 쏟은 정성은 말로 다 못한다. 금수암 주변의 자연과 텃밭에서 자란 신선한 무공해 채소들을 직접 공수해 왔다. 젓갈, 파, 마늘을 넣지 않아 담백하고 시원한 김치와 ‘장아찌 달력’에 따라 절기마다 담근 각종 장아찌, 제철에 거둔 계절 나물들이 기본으로 상을 채운다. 코스 요리로 가을에 채취한 능이버섯을 말려 은행가루와 두릅을 넣고 끓인 담백한 능이죽, 닭고기살보다 쫀득하고 상큼한 더덕 샐러드, 새콤한 산야초 초밥, 그윽한 향기가 입맛을 자극하는 연잎밥, 자연송이의 향이 뜨거운 김과 함께 솔솔 피어 오르는 송이 누룽지탕 등 쉽게 접해 보지 못했던 음식이 선보여진다. 코스 메뉴는 저녁에만 해당되며 8합, 12합, 15합 발우 등 세가지로 제공된다. 바쁜 직장인들을 위해서 점심에는 4합 발우 세트를 선보이는데 주 요리는 날마다 달라진다. 점심은 1만원선, 저녁은 2만~5만원으로 정해 놓고 있다. 바루의 식기 또한 남다르다. 불가에서 신성하게 여겨지는 느티나무를 재료로 7차례 옻칠 끝에 탄생한 발우는 인간문화재 김을생 선생이 직접 제작한 것이다. ‘ 바루’의 실내는 건물을 지은 유명 건축가 승효상씨가 디자인했다. 작은 산사에 온 듯 아늑하다. 총 좌석이 68석으로 그리 크지 않다. 건물 외부와 내부가 연결된 직선 계단을 통해 1층에서 5층 ‘바루’까지 108 걸음을 걸어야만 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고 한다. 습관적으로 엘리베이터로 향하겠지만 몸은 물론 마음을 채우는 ‘영혼의 음식’을 먹기 위한 의식을 치른다는 의미로 한 계단씩 밟아 올라가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02)2031-2081. 글 사진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지방시대] 지역축제 바람직한 주민잔치 되려면/임재해 안동대 민속학 교수

    [지방시대] 지역축제 바람직한 주민잔치 되려면/임재해 안동대 민속학 교수

    지금 한국에는 축제 사태가 났다. 지역마다 갖가지 축제로 야단법석이다. 언론에서도 축제소식을 전하고 홍보를 하느라 부산하다. ‘양구곰취축제’처럼 소박한 축제에서, ‘안산국제거리극축제’처럼 국제성을 표방하는 거창한 축제들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인천에서는 아예 온갖 축제를 다 끌어모아서 ‘축제박람회’를 하는가 하면, 축제가 다른 축제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영덕 대게축제장에서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과 상주동화나라축제, 문경전통찻사발축제, 영주선비문화축제 등 경북 북부지역 11개 자치단체의 축제들이 함께 홍보부스를 설치하고 홍보를 공동으로 했다. 축제판을 찾아다니며 축제홍보를 하는데 더러는 홍보를 위해 해외출장까지도 간다. 일제강점기 이후 축제전통이 사라지는 듯했는데 최근 15년 사이에 3000여개의 크고 작은 축제들이 생겨났다. 대부분 자치단체와 문화기획사가 결합해 만들어낸 이벤트로서, 축제라기보다 일종의 관변행사이다. 지역 자치단체장이 축제조직위원장 노릇을 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이미 ‘축제공화국’이라 할 만큼 축제 과잉상태에다가 재정 낭비까지 지적되고 있지만 올해도 새 축제가 여럿 만들어졌으며 앞으로도 축제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고 인간해방을 실현하는 게 축제의 본디 목적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축제들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크고 거창한 행사로 자치단체장 낯을 내고 언론보도에만 온통 신경을 쏟는다. 축제가 관변행사로 잘못 가고, 소비적 행사에 주민들의 혈세와 행정력을 낭비하는 것이 문제이다. 연간 축제 경비만 7000억원 정도 지출되는데 2003년 이후 매년 17%씩 증가하고 있다. 연간 100억원 이상 쓰는 자치단체도 9곳이나 된다. 경북도에서는 시군별 축제의 구조조정에 나서기도 했다. 그렇다고 소비적 관변행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하는 알짜 축제도 있다. 얼마 전에 안동 남선면 이천리 샘들에서 ‘새총문화마당잔치’라는 이름의 마을축제가 열렸다. 마을에 거주하는 공예가 김진일(새총연구회장)과 마을어른들이 중심이 돼 새총문화를 주제로 1박 2일의 작은 축제를 벌인 것이다. 전국에서 새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새총놀이를 체험하고 강의도 듣고, 전통차와 떡을 나눠 먹으며 음악잔치도 벌였다. 경로회장은 전자오르간으로 ‘갈대의 순정’을 연주해 갈채를 받고, 색소폰 연주에 맞춰 모두 신바람나게 춤을 즐겼다. 마을 아이들은 새총놀이에 푹 빠졌다. 회원들끼리 새총문화 발전에 관한 논의도 이루어졌다.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축제여서 경비지출도 거의 없었다. 푸짐하게 나누어 먹은 떡과 차, 술, 안주, 과일 등은 대부분 협찬으로 마련됐다. 멀리 침향헌이 약주를 보냈고, 연화사는 연잎밥을 넉넉하게 만들어 왔다. 죽평다관과 희가원에서 차를 계속 제공했으며, 꾸밈광고는 현수막을 무료로 달아줬다. 음악마당에 참여한 연주자들도 모두 찬조출연이었다. 어른들은 찾아온 손님들에게 경로회관을 잠자리로 내주고 축제준비를 함께 거들었다. 어른들께 사례비를 드렸으나 되돌려주어서 인정이 더 두터워졌다. 이러한 마을잔치야말로 주민이 주체로 참여하는 자발적인 축제이자, 작고 실속 있는 마을축제, 재정지원 없는 자립적 축제, 독창적 내용을 지닌 창의적 축제의 바람직한 본보기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소비적 행사,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상업축제가 아니라 주민들 스스로 즐기는 자족적 잔치여서 더욱 축제다웠다. 소박하되 실속 있는 주민잔치로 가야 축제문화가 한층 성숙해질 것이다. 임재해 안동대 민속학 교수
  • [만나고 싶었습니다] 도예가 김기철

    [만나고 싶었습니다] 도예가 김기철

    자연을 빚는 도예가 지헌(知軒) 김기철(金基哲·77) 선생. 전통적인 조선 백자의 맥을 현대적인 조형미로 이어 가고 있는 선생의 작품들이 자연을 닮은 것은 그의 삶이 자연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흙을 좋아하고 꽃과 나무 가꾸기를 즐기는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뒷동산과 산기슭에 온갖 향기나는 식물들을 심어 놓고 계절따라 피고지는 꽃들을 들여다 보고, 새 소리를 들으며 행복에 젖는다. 팔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여 농사를 짓고 거둬 들인 수확물로 손님들에게 식사대접을 하며 뿌듯해 한다.그렇게 30년을 살다 보니 그도 어느 덧 자연의 일부가 되어 버렸다. 그런 그의 삶은 작품 속에 오롯이 담긴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봄을 주제로 오는 13일부터 동숭동 샘터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갖는 선생을 만나러 경기도 곤지암의 양지바른 산기슭에 자리한 보원요(寶元窯)를 찾았다. 한창 물이 오른 매화나무가 줄지어 선 언덕길을 오르니 가득 쌓아 놓은 장작더미가 인상적이다. 가마에 땔 소나무 장작이다. 바람 결에 실려 오는 향긋한 나무 냄새가 기분좋게 코끝을 스친다.대문도 없이 나무 등걸을 가로 세운 마당 입구를 지나 돌너와지붕을 얹은 돌집이 작업실 겸 생활공간이다. 마당 저편으로 산 언덕에 자연스럽게 배를 깔고 엎드려 있는 가마가 눈에 들어 온다. 조선시대의 전통가마를 그대로 재현한 재래식 용가마다. 그는 편리한 가스나 전기가마 대신 재래식 가마에 우리의 소나무인 좋은 육송만을 지펴 도자기를 굽는다. 소나무 땔감을 구하기도 힘든 요즘이다. 그가 소나무 장작을 고집하는 이유는 살아 숨쉬는 제대로 된 백자를 만들기 위해서다. “잘 만들어진 백자가 빛의 방향과 세기, 보는 사람의 기분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백자가 숨을 쉬기 때문이죠. 소나무 장작의 불기운과 그을음, 공기의 조화만이 그런 오묘한 효과를 지닌 살아 숨쉬는 도자기를 구워 낼 수 있습니다. 가스나 전기로 구워 낸 것은 도자기라고 할 수 없지요.” ●가스·전기가마 대신 소나무 땔감만 고집 소나무 장작은 단순히 도자기를 익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불기운이 도자기 살 속까지 파고 들었다가 다시 내뿜기를 반복하는데 그 힘든 과정을 견딘 도자기만이 맑고 윤기있고 단단한 작품으로 탄생하는 것이다. 그의 백자가 시간이 지날수록 청아해지는 것은 이런 조화에서다. 백자는 가장 만들기 어려운 도자기로 꼽힌다. 특히 불때기가 까다롭다. 산소가 들어가면 도자기가 산화돼 누렇게 변색되는데 이런 낭패를 당하지 않으려면 연기와 그을음을 적당히 만들고 불길이 끊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불때기는 도자기 빚는 것보다 더 고난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장작 가마는 전기나 가스가마에 비해 실패율도 높다. 대작의 경우 열개 중에서 두세개 건지면 성공이다. 그럼에도 백자를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백자는 도자기 중에서 가장 가치있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물론 청자도 좋지만 백의민족과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자기는 역시 백자입니다. ” 백자와 함께 보원요의 또 다른 트레이드마크로 꼽히는 옅은 적갈색 도자기도 소나무 장작불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자연스러운 흙빛이 윤기있게 살아나는 독특한 작품들은 유약을 바르지 않고 불의 힘으로 유약의 효과를 얻는 자연유(自然釉) 방법을 사용한 것들이다. 초벌구이를 한 뒤 도자기 안쪽에만 유약을 바르고 바깥은 유약을 생략해 재벌구이를 한다. 1350도 이상의 고온에서 이틀간 굽는데 이때 육송의 송진이 타면서 자연스럽게 유약 역할을 한다. 자연유의 푸근한 번짐과 이리저리 튀면서 만들어 내는 무늬 또한 볼수록 신비롭다. ●흙장난 하듯 해학 넘치는 연잎·청개구리 그저 흙과 자연이 좋아 평생 소박한 농사꾼으로 사는 것이 꿈이었던 작가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모두 자연에서 온 것들을 소재로 삼고 있다. 식물의 잎이나 꽃, 열매, 연잎과 연꽃이 피어 있는 연못의 이미지를 좋아한다. 새, 물고기, 청개구리, 두꺼비, 사슴 같은 동물 이미지도 자주 등장한다. “천성이 촌놈이라 화초 가꾸고 농사짓는 것을 좋아합니다. 들판이나 계곡의 돌틈에 핀 이름모를 꽃들을 보면서 우주가 숨쉬고 있는 것을 느끼지요. 그런 모습들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주고 싶은 마음에서 흙장난으로 하듯이 작품을 빚습니다.” 연잎 위에서 세월 모르고 앉아 있는 청개구리는 그가 특히 좋아하는 소재다. 흙으로 빚은 조그마한 청개구리는 그의 작품에 포인트처럼 놓여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 넣는다. “청개구리는 전래동화에서도 있듯이 우리 민족의 눈물나는 감성과 해학의 상징이에요. 해학의 미학이 있는 것이 최상의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은 물레를 쓰지 않고 모두 손으로 작품을 빚는다. 번잡스러운 기교가 없음에도 날아갈듯 자유스럽고 살아 숨쉬는 것 같은 특유의 분방함이 느껴지는 이유다. “살아 숨쉬고 쓸수록 정이 피어 나는 유정의 도자기를 만들고 싶어서입니다. 물레 위에서 뽑아 내는 것은 무정의 정물에 불과합니다. 불균형 속에 균형이 있는 그런 자연의 형태를 물레 작업으로는 표현할 수 없어요. 손으로 빚어야 불균형 속에 균형이 조화를 이루는 자연의 형태에 좀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습니다.” ●흙 고르기부터 굽기까지 전통방법 고수 그는 흙을 고르는 작업부터 고온에서 구워 내는 작업까지 철저하게 조선 백자의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한다.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 도자기를 빚은 뒤 정성껏 가마에 넣고 그 다음은 불의 몫으로 남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을 다하고 하늘의 도움을 기원하는 옛 도공의 모습 그대로다. “고되고 비능률적이며 고도의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기 때문에 실패율도 높습니다. 하지만 전통적인 방식으로 빚어 내는 도자기가 첨단 과학과 기계 문명으로 잃어가고 있는 인간성 회복에 일조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자연의 숨결을 온전히 품은 나의 작품들이 쓰는 이의 마음을 즐겁게 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요.” ■ 도공 김기철의 세계 시골서 만든 ‘장작불 도자기’ 교황청·대영박물관까지 퍼져 충북 괴산 출생으로 고려대 영문과를 나온 영문학도였던 그는 원래 직업이 고등학교 영어교사였다. 스코트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을 동경하며 서울의 변두리에 살면서 텃밭에 꽃과 나무를 가꾸는 낙으로 살던 그는 마흔 중반이라는 늦은 나이에 도예가이자 농사꾼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허리를 다쳐 쉬던 중 우연히 일민미술관을 지나다 나전칠기 중요인간문화재 김봉룡 선생의 고희 회고전을 보게 됐어요.정성을 기울여 만든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에 감동을 넘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분은 이렇게 기막힌 것을 해서 사람을 감동시키는데 나는 마흔 중반이 되도록 아무 것도 한 것이 없으니 인생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에 앞이 캄캄해졌습니다.” 무언가 창조적인 일을 해보고 싶었는데 생각난 것이 도자기였다. 도자를 배우던 아내의 친구가 심심풀이 삼아 흙이나 만지라고 가져다 준 청자 흙덩어리로 꽃병이랑 단지를 만들었는데 보는 사람마다 재주가 있다고 칭찬을 하던 터였다. 모교에서 교수로 임용될 가능성도 있었지만 그는 모든 것을 내려 놓고 도자기에 매달리기로 뜻을 세웠다. 겨울방학에 무작정 가마가 있는 이천의 도요에 가서 사정 사정해서 도자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만난 도공이 그의 재능을 알아 보고 내친 김에 같이 재래식 용가마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가마터를 물색한 지 석달 만에 지금의 보원요 터를 찾아냈다. 도예가로서 그의 예술적 감각과 재능은 1년 뒤 공간대상 도예상 수상(1979년)으로 입증됐다. 그해 선화랑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도예 평론가이기도 했던 초정 김상옥 시인은 1979년 4월17일자 서울신문 전시평을 통해 “한때 단절될 위기에 놓여 있던 백자가 김기철씨의 집념의 결과로 시대적인 전승이 가능함을 보여 줬다.”고 평했다. 눈코뜰새 없이 휘몰아치는 세상살이에서 벗어나 시골 구석에서 천수답처럼 살고 있지만 그의 작품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가까이는 국립현대미술관부터 멀리는 로마 교황청과 대영박물관, 스웨덴 에벨링박물관까지. 법정 스님을 비롯한 선승들의 다실에서도 손으로 빚어 장작불에 구운 그의 다기는 아낌을 받는다. 한때 소설가 지망생이기도 했던 그는 수필집 ‘꽃은 흙에서 핀다’(1993년)와 ‘고향이 있는 풍경’(2006년)을 냈으며 엘리아수필집과 포 단편집도 번역했다.
  • 미술관서 만나는 그림책

    미술관서 만나는 그림책

    국내에서는 동화책에 실리는 그림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봤자 어린이 그림책인데….’라면서 홀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트렌드는 그렇지 않다. 그림책 원화에는 어린이의 상상력과 창의력, 책읽는 능력을 길러주는 힘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 힘있는 동화책만이 엄마와 아이들 세상에서 살아남는다. 그림책 원화에 새롭게 접근할 수 있는 두 개의 전시회가 준비돼 있다. 우선 2008년 볼로냐 국제그림책원화전에서 입상한 작가 99명의 작품 495점과 2007년 원화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아이너 투르코프스키의 작품 19점이 서울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3월1일까지 공개된다. 볼로냐 국제그림책 원화전은 이탈리아 중북부 볼로냐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 최대 규모의 아동도서전 기간 동안에 열리는 그림책 원화 공모전. 일러스트업계의 ‘노벨상’이라고 할 수 있다. 세계 유명 출판사 관계자와 작가 및 일반인이 참관하는 행사로, 다양한 소재와 기법의 현대미술과 맞닿은 작품들이 선보인다. 전시작은 리자 난니의 ‘그곳에는 숨겨진 소중한 것이’, 마리안나 풀비의 ‘고귀하신 폐하’, 글렌다 스브렐린의 ‘재즈 가족’이 있다. 한국작가로는 이경국의 ‘바보 이반’이 포함돼 있다. 전시기간 동안 5~12세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미술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02)797-0263. 성곡미술관에서는 칼데콧상 최다수상자(3회)인 데이비드 위즈너의 그림동화 원화를 전시한다. 날아다니는 양배추, 연잎을 타고 하늘을 나는 개구리, 고래 모양을 한 구름 등 마치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나 마그리트의 작품을 보는 듯하다. 위즈너는 CJ문화재단이 개최한 제 1회 그림책 축제의 초대작가다. 원화 이외에도 성곡미술관 별관 1층에는 위즈너의 ‘허리케인’에 영감을 얻은 설치작가 노동식의 ‘민들레 홀씨되어’, 2층에는 위즈너의 ‘구름공항’에 영감을 얻은 ‘구름이 되다’가 설치돼 있다. 본관에는 ‘CJ그림책 축제’에 응모한 전 세계 46개국의 원화작가 50명의 수상작품 150점이 전시돼 있다. 한 작가당 세 작품이 전시돼 각 나라만의 문화적 특징이 드러나기도 한다. 한국에서는 고경숙의 ‘위대한 뭉치’가 수상했다. 이와 별도로 미디어아트작가 최승준의 ‘디지털 방명록’, ‘반딧불의 숲’ 등도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3월1일까지.(02)737-7650.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북한강변 15개 관광마을 개발

    북한강변 15개 관광마을 개발

    경기 남양주시는 2011년 세계유기농대회 개최를 앞두고 북한강변 마을(지도)을 테마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30일 밝혔다.관광특화 대상은 와부읍 팔당리부터 북한강을 따라 화도읍 구암리까지 24㎞ 구간에 있는 마을 15곳으로,상수원보호 등 각종 규제가 허용하는 범위에서 개발된다. 남양주시는 우선 내년에 능내리 연꽃 테마단지,오디 재배단지와 조안리 한국형 농촌마을을 조성한다. 능내리 연꽃테마단지에서는 연꽃의 생산과 분양을 포함해 연밥,연차,연 공예품,연꽃초,연꽃 화장품의 판매 활동도 벌인다.연꽃체험장에서는 연뿌리 캐기와 연잎비누 만들기교실 등을 운영한다.다산유적지 주변 하천부지와 야산을 이용해 운영한다. 현재 단순 습지형태로 방치되어 있는 공간의 적극적인 활용도 모색한다. 오디재배단지에서는 오디음식,오디술,오디김치,오디가공 식품개발 및 판매를 담당한다. 조안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로 탈바꿈된다.방치된 시골길이 꽃길로 조성되고,담장도 흙으로 쌓아 옛모습을 재현한다.경작지를 보존하고 농로주변의 유휴토지도 새로 정비해 관광지화한다. 연차적으로 팔당1·2리는 생태공원,진중1·2리 생태체험공간,송촌1·2리 마을 숲 조성,구암2리 간판 정비,금남1·2·3리 자동차 테마파크,삼봉1·2리 꽃밭조성,시우리는 한옥마을 등 마을별 특화사업이 추진된다. 시 관계자는 “이번 사업은 주민들이 직접 특화 요소를 선정하고 주도한 것에 의미가 있다.”며 “북한강을 따라 사계절 꽃이 만발하고 테마가 있는 마을이 조성될 것”이라고 밝혔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홍두식의 루어낚시 따라잡기] 전북 부안 청호지

    [홍두식의 루어낚시 따라잡기] 전북 부안 청호지

    손맛 보기 쉽지 않은 겨울낚시 시즌.원거리 낚시터가 아니더라도 제법 마릿수 조과를 기대할 만한 곳이 있다.전북 부안의 서해안고속도로 부안나들목과 인접한 지역 일대는 소류지를 비롯해 많은 배스낚시터가 산재한다. 특히 저수지와 바다를 막아 농업용수로 사용하는 담수호가 제법 많은데,그 중 하서면 청호리의 청호저수지는 힘 좋은 배스를 쏟아 내는 일급 배스낚시터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직사각형 모양을 한 청호지는 2㎢ 정도의 평지형 저수지로,넓은 수면적이 바다를 방불케 한다.전지역 도보낚시가 가능하지만,포인트가 될 특이한 지형이 없어 처음 출조하는 사람들을 난감하게 만들곤 한다.현재 북서쪽 취수탑 제방 근처에서 좋은 조과를 보이고 있는데,중간중간 보이는 폐그물이 일급 포인트 구실을 한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둥이가 긴 롱빌 미노에 50㎝가 넘는 배스가 자주 낚였다.수온이 더 내려간 지금은 미노보다는 지그헤드를 이용한 웜이나 다운샷,또는 메탈 지그 등이 우세하다.수온이 낮고 활성도가 저조한 이 시기 배스의 움직은 수평이동이 아닌 수직이동을 주로 하기 때문에 루어의 움직임이나 범위도 수직 액션이 가능한 것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 깊은 수심을 겨냥해 낚시를 할 경우,청호지는 구조물이나 수중 능선 등이 발달해 있는 계곡형 저수지에 비해 포인트 선별하기가 무척 어렵다.이 때는 저수지 전체의 전반적인 특성에 주안점을 두고,출조 전에 마을 주민이나 현지 낚시인에게 상황을 문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겨울에는 수초나 연밭 등이 추위에 삭아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전 정보를 꼼꼼히 체크해야 한다. 서쪽에는 연안도로가 이어져 있다.그 아래로 연밭이 형성돼 있어 일급 포인트 구실을 한다.연잎이나 줄기가 삭기는 했지만,그래도 노싱커 채비가 최상이다.수온을 일정하게 유지하는데 다른 곳보다 더없이 좋은 여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겨울철에도 의외의 대물을 기대할 수 있다.튼튼한 채비가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배스는 수온이 10도 이하로 내려가면 먹이 활동을 하지 않는 온수성 어종이라고 알려져 있지만,오랜 기간 우리나라 호수에 적응하면서 ‘윈터 배스’에 대한 새로운 자료나 현장 조행들이 하나둘씩 알려지고 있다.근거자료가 거의 없는 혹한기 배스낚시에 대해 자신만의 패턴으로 공략해 보는 것도 또다른 도전이 되지 않을까. (사)한국스포츠피싱협회 홍보이사
  •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8) 홀로 있는 기녀의 속마음

    [그림이 있는 조선풍속사] (48) 홀로 있는 기녀의 속마음

    기생을 한 번 클로즈업 시켜 보자.그러면 신윤복의 ‘전모를 쓴 기생’(그림 1)처럼 된다.이 여인이 기생인 것은 머리에 쓴 모자를 보고 알 수 있다.이 둥글고 누런 모자를 ‘전모’라고 부른다.전모의 용도는 햇볕을 가리는 것이다.예나 지금이나 여성은 피부 관리에 지극한 정성을 들인다.오늘날 생산되는 엄청난 종류의 화장품은 기본적으로 여성의 피부를 어린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직사광선은 피부를 거칠게 하는 주범이다.전모는 곧 얼굴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쓰는 것이다.   ●햇볕 가리는 ‘전모’ 기생 외엔 거의 안써 그런데 풍속화를 보면 꼭 기생만이 이 모자를 쓰고 다닐까?조선시대 여성들은 남편이 당상관 이상의 벼슬을 하면,그 아내는 외출 때 유옥교,곧 지붕이 있는 가마를 탈 수 있는 것이다.앞서 기생이 단풍놀이를 떠나는 신윤복의 그림을 본 적이 있는데,그때 그 기생은 뚜껑이 없는 가마,즉 가마바탕을 타고 있었다.가마바탕은 햇볕을 차단하지 못한다.  조선시대의 신분제도는 사람들의 의복이나 장신구까지도 간섭하고 있었다.예컨대 상민 부녀자는 비단옷에다 금은주옥으로 만든 장신구로 자신을 치장할 수 없었다.그것이 법이었다.기생만은 이 제한에서 예외여서 사치스런 옷과 장신구로 자신을 꾸밀 수 있었다.하지만 기생에게 유옥교만은 허락되지 않았다.이 때문에 외출할 때 햇볕으로부터 얼굴을 가리기 위한 도구가 절실히 필요했던 것이다.곧 전모가 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사실 옛 풍속화를 보면 기생 외에는 전모를 쓰는 경우가 거의 없다.물론 의녀도 전모를 쓰지만,의녀가 곧 기생이었으니,그게 그거다.  이 기생이 전모 아래 쓴 것은,가리마다.이번 기회에 가리마에 대해 좀 더 소상히 알아보자.유득공은 ‘경도잡지’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의원,혜민서에는 의녀가 있다.또 공조와 상의원에는 침선비가 있다.모두 관동 지방과 삼남(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서 뽑아 올린 기생들이다.잔치가 있을 때는 이들을 불러다가 노래하고 춤추게 한다.내의원 의녀는 검은 비단의 가리마를 머리에 쓰고 나머지는 검은 베의 가리를 쓴다.가리마는 우리나라 말로 하자면 ‘가리는 물건’이다.그 모양은 편지봉투처럼 생겨서 머리를 덮을 수 있다.”    가리마는 편지봉투처럼 생겨 머리를 덮을 수 있다고 했으니,아마도 이것은 기생의 가발,곧 가체(加髢, 다리머리)를 덮어서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재미있는 것은 원래 내의원의 의녀는 가리마를 비단으로 만들게 했으니,내의원 기녀를 옥당기생이라 해서 가장 높은 축으로 친 사정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다시 그림을 보자.‘전모를 쓴 기생’에서 기생이 입은 저고리는 소매의 끝동만 흰 색이고 나머지 동정과 깃,고름은 모두 자줏빛 천으로 댄 반회장 차림이다.치마를 올려서 끈으로 질끈 묶어 바지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신발은 붉은 가죽신이다.다른 유별난 장신구는 없지만 젊고 무언가 새치름한 표정이 사람의 시선을 끈다.  이 그림은 범상해 보이지만,당시의 맥락으로는 결코 범상하지 않다.배경을 일체 없애서 여성만 도드라지게 만들었는데,이렇게 여성의 표정까지 잡아내면서 여성의 모습을 클로즈업 하는 것은 전에 없던 것이다.그림 오른쪽에 ‘전인미발가위기(前人未發可謂奇)’라 적혀 있는데,‘예전 사람들이 그린 적이 없는 것을 그렸으니,기이하게 여길 만하다.’는 뜻이다.한국 회화의 역사에서 여성을 전면에 클로즈업 시키는 것,그리고 그 여성이 기녀라는 사실은 놀라운 사건이다.   ●신분제에 의해 강요된 신신한 삶 역시 신윤복의 작품인 그림(2) ‘연못가의 기생’을 보자.그림의 아래쪽은 연못이다.연잎이 너푼너푼 하고 활짝 핀 연꽃 한 송이,그리고 그림의 중앙 부분에는 아직 봉우리로 있는 연꽃 둘이 있다.연못이 연못인 것은 연꽃이 있어서 연못이다.연꽃이 없어도 연못이라 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정약용은 ‘아언각비’서 비판했지만,이 그림의 연못은 연꽃이 있는 명실상부한 연못이다.여자는 마루 끝에 홀로 앉아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무엇인가 주시하고 있다.조용한 한낮이다.여자의 옷차림은 수수하다.그림(1)의 기생처럼 외출 중이 아니기에 수수한 차림으로 있는 것이다.여자는 왼손에는 장죽을,오른손에는 생황을 쥐고 있다.문득 찾는 이 없는 조용한 한낮에 무료하여 생황을 꺼내 한바탕 불었다.여자의 왼손 바로 위에 약간 튀어나오게 그린 것이 생황의 취구(吹口)다.생황을 불고 나니,담배 생각이 난다.하여,장죽을 물었던 것이다.  나는 이 그림을 볼 때마다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기생은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 날 무엇을 하며 하루를 보냈을까?기생은 한가로울 때가 있었을 것인가?한가하다면 무엇을 하는가?또 기생은 평소 자신의 직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이런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이 물음에 대한 답은 아직 얻지 못했다.정말이지 장죽으로 빨아들인 담배 연기를 내뱉은 뒤 저 기생은 어떤 생각에 골몰하고 있는 것일까?  혹 그것은 자신에게 강요된 직업에 대한 싫증이 아닐까?기생이란 직업은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신분제에 의해 강제된 것이다.기생의 업은 남자를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이니,기생은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이 아니다.기생은 오직 강제에 의해 타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살아야 하는 타율적 존재다.흔히 기생이라 하면 아름답고 호사스럽고 잘 생긴 남성과의 로맨스를 떠올리지만,그것은 현대인의 생각,특히 남자의 생각일 뿐이다.기생은 어떤 한 남자와 가정을 꾸리고 살 수 없다.결혼을 하고 가정을 가져야 행복하다는 보장은 없지만,일반적으로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사회에서 어떤 남자와도 영원히 삶을 함께 할 수 없는 데서 오는 괴로움은 엄청나게 컸다.기생의 삶은 실로 신산(辛酸)했던 것이다. ●기생의 내면 엿볼 수 있는 가사 ‘청루별곡’  기생의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자료로 ‘청루별곡(靑樓別曲)’이란 가사가 있다.청루는 기방이니,곧 기방 기생의 심사를 노래한 것이다.일부분을 읽어보자.“이팔청춘 이 내 몸이 나비 눈에 꽃이로다/한궁(漢宮)에 비연(飛燕)이오,초대(楚臺)의 신녀(神女)로다/ 함양(咸陽)의 유협객과 오릉(五陵)의 귀공자로/가무를 수작하니,천금이 일소(一笑)로다.”여자는 자신을 한나라와 초나라의 전설적인 미인에 견주며 협객과 귀공자와 어울려 놀았던 세월을 회고한다.그러던 중 사랑하는 정인(情人)이 생긴다.“마음 안에 풍류랑을 황혼 가약 굳이 맺고/연리지(連理枝)에 천년 기약 운우몽(雲雨夢)이 잦았어라/은하수 오작교에 견우랑이 건너는 듯/앵무배에 자하주를 월하에 흘려 부어/금루의(金縷衣) 한곡조로 나 잡고 님 권하니/부용장(芙蓉帳) 비취금(翡翠衾)에 봄도 깊고 밤도 짧다.”봄날 정인과 함께 보내는 밤은 짧기만 하다.사랑은 깊어져서 용천검 같은 날카로운 보검으로도 끊을 수 없고,시뻘건 화로불로도 태울 수가 없다.해서 “공명도 허사이오,부귀도 꿈밖이라/굶고 <먹고,먹고 굶고,떠나 살지 마쟀더니.”라고 하면서 세상의 부귀공명을 모두 초개처럼 여기고 굶든지 먹든지 오직 헤어지지 말자고 약속한다.하지만 조물주가 시기를 하는지 귀신이 장난을 치는지,“금석 같이 굳은 맹세,구름 같이 흩어진다.”남자는 떠나고 소식이 영원히 끊어진다.이후 ‘청루별곡’은 남자를 기다리지만,영원히 만나지 못하는 여성의 고통을 길게 노래한다.“보고지고 님의 거동 듣고지고 님의 소리/전생에 무삼 죄로 우리 양인 생겨나서/천리에 걸어두고 주야상사(晝夜相思) 그리는고?/박명(薄命)한 이내 인생 이별할 제 왜 살았노?”하지만 한 번 떠난 정인은 돌아오지 않고 여자는 “금생에 그리던 님을 후생에나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청루별곡’과 비슷한 내용의 가사는 여럿 전한다.작품이 그리고 있는 기생의 삶과 내면이 공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일 것이다.나는 늘 ‘연못가의 기생’을 볼 때마다 홀로 있는 기생의 속생각이 궁금했고,또 ‘청루별곡’ 기생의 하소연이 떠오르곤 하였다. 강명관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
  • 한성백제 지배층 中청자 애용

    한성백제 지배층 中청자 애용

    한성백제는 고구려나 신라보다 활발하게 중국과 교역했으며,중국에서 수입된 최고의 사치품인 청자가 지배층의 일상 생활에서도 널리 쓰였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풍납토성에서 나왔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최근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의 직사각형 창고 구덩이에서 나온 대형 항아리 안에서 중국제 청자음양각연판문완(靑磁陰陽刻蓮瓣文盌) 한 점이 확인됐다고 3일 밝혔다.음양각연판문완이란 연잎 무늬를 돋을새김하거나 오목새김한 그릇을 뜻한다.  두 조각으로 깨진 채 발견된 이 청자는 원형의 4분의3 정도가 복원됐다.지름 10㎝,높이 5.9㎝ 정도로 사발 또는 잔(盞)으로 분류할 수 있는 이 청자는 백색 태토에 투명한 연청색의 유약을 입힌 것으로 표면에 가느다란 금(氷裂·빙열)이 나 있고 전체적으로 양감이 풍부한 모습이다.  문화재연구소는 풍납토성에서 나온 청자와 비슷한 남북조시대의 중국 도자기가 한성백제 중심지역은 물론 당시 지방 수장층의 무덤이 있는 경기 오산 수청동,충남 천안 용원리와 공주 수촌리 등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고 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나온 청자는 서울대박물관이 소장한 천안 용원리 고분군의 장방형 석실분 출토 청자와 닮은꼴이다.다만 용원리 것은 전체적으로 연녹색을 띠고 있어 풍납토성의 맑은 청색과 비교된다.  문화재연구소는 풍납토성 청자가 중국 남조의 송(宋) 영초 원년(420년)의 것과 원미 2년(474년) 사이에 중국 절강성 월주요(越州窯)에서 생산됐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번에 발견된 풍납토성의 청자는 지배층이 실생활에서 사용한 그릇으로 보인다.특히 이런 모양의 완은 주로 술이나 차와 같은 음료를 따라 마시는 그릇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대형 항아리에 담겨 있는 내용물도 술 등의 음료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화재연구소 신희권 학예연구관은 “그동안 풍납토성에서 청자가 조각 형태로 나온 사례는 많았지만 만들어진 시기나 장소를 추정할 수 있을 정도로 거의 완벽한 형태로 복원할 수 있도록 출토된 것은 처음”이라면서 “고분이 아닌 백제 도성터에서 중국 청자 조각들이 발견되는 것으로 봐서 중국과 활발한 교류가 있었고 지배계층의 외국 문물 선호 취향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풍납토성에서는 그동안에도 청자조각과 유약을 입힌 3~4세기 그릇 조각이 많이 발견됐고,특히 경당연립터에서는 한변에 70㎝에 이르는 대형 시유도기 조각도 나왔다.”면서 “아무리 교역이 활발했다고 해도 당시 이처럼 큰 그릇을 중국에서 배에 실어오기는 쉽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번 발굴을 계기로 시유도기들의 태토와 유약의 성분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풍납토성 출토 그릇들의 원산지를 규명해 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연잎 본뜬 코팅기술 개발

    물방울이 스며들지 않고 굴러떨어지게 하는 연잎 표면의 성질을 응용한 재료 코팅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한국전기연구원 한중탁·이건웅 박사팀은 8일 높은 빛 투과도와 전기전도성을 갖고 있으면서도 물을 뿌리면 쉽게 먼지가 제거되는 ‘자가 세정능력’을 가진 재료 코팅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인 ‘어드밴스드 머티리얼스’ 최신호에 게재됐다.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Local] 무안, 백련제품 510만달러 수출

    전남 무안군의 백련(白蓮)축제가 올 들어 처음으로 백련산업 축제로 치러지면서 산업화 기반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난달 끝난 이 산업 축제에서 독일, 중국, 일본 등 해외 11개국 18명의 구매자들이 백련제품 510만달러를 사기로 서명했다. 백련 뿌리를 갈아 만든 라면과 차, 냉면 등이 구매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무안군 내 가공업체인 범우가 320만달러, 다연 120만달러, 성지농산 50만달러, 청수식품이 15만달러를 수출하기로 이들과 계약했다. 또 국내 구매자들도 이 회사들과 연뿌리와 이를 재료로 만든 음식 등 27억원어치를 사기로 했다. 이번 백련산업 축제 주제관에는 삼성에버랜드, 한국인삼공사, 연잎 가공업체 등이 참여해 관심을 보였다. 무안군은 내년부터 우수구매자 초청 수출 상담회와 백련제품 홍보활동을 강화하기로 했다. 무안군은 정부의 신활력사업 평가에서 3년 연속 우수군으로 선정돼 107억원을 확보했고 이를 기반으로 32가지 백련 관련 제품을 개발했다.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21)강릉시·정선군 석병산

    [현진오의 꽃따라 산따라](21)강릉시·정선군 석병산

    강릉, 동해, 삼척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회암지대다. 백두대간도 이 일대를 지날 때, 강릉 석병산을 시작으로 자병산, 두타산을 거쳐 삼척 덕항산까지 여러 개의 석회암 산봉들을 거느린다. 이 산들은 석회암지대가 보여주는 독특한 풍광과 함께 석회암지대에 특수하게 적응한 특이한 식물들을 키워내고 있다. 강릉과 정선의 경계를 이루며 달리는 백두대간에 솟은 석병산(1055m)은 정상 일대에 발달한 석회암벽이 마치 병풍을 둘러친 것 같다는 데서 이름 붙여진 산이다.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는 35번 국도가 지나는 삽당령에 이르고 남쪽으로는 산계령을 거쳐 자병산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경동지괴 지형으로 북쪽으로는 아찔한 벼랑을 이루고 있고, 동쪽 일대도 급경사 벼랑을 형성하고 있다. 동해 쪽으로는 절골, 상황지미골 같은 좁고 가파른 협곡이 발달해 있다. ●칼슘·탄산이온 많은 토양에 적응한 식물 많아 석병산은 아직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비경과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정상 근처의 일월문은 병풍 같은 바위 중간에 큰 구멍이 뚫려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강릉시 옥계면 절골에는 강원도기념물로 지정된 석화동굴이 자리잡고 있으며, 상황지미골 중앙에서는 쉰 길이나 되는 쉰길폭포가 허공으로 물줄기를 뿜어낸다. 산 동쪽 자락의 성황뎅이에는 호랑이에게 물려 화를 당한 사람들의 무덤인 호식총(虎食塚)이 있다. 겉으로 봐서는 석회암벽이 드러난 정상 일대와 석회암반으로 이루어진 동해 쪽 골짜기들만이 석회암의 성질을 가진 듯해 보이지만, 석병산 전체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지역이다. 대간의 남쪽과 서쪽, 즉 내륙 쪽을 이루는 곳이 임계면인데, 이 임계면이 바로 그 유명한 임계카르스트 지형이라는 말이 생겨난 곳이다. 곳곳에 크고 작은 돌리네가 형성되어 석회암지대의 전형적인 특징을 드러낸다. 이 일대는 지형적으로뿐만 아니라 식물학적으로 보면 석회암지대의 특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사는 식물종들 가운데 석회암지대가 아니면 자라지 못하는 식물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석회암이 풍화된 토양은 칼슘과 탄산이온이 많아 수소이온농도가 중성 또는 약알칼리성이며, 배수가 잘 되어 건조해지기 쉽다. 이런 특성에 적응한 식물들을 호석회암식물이라고 하는데, 석병산에는 가는대나물, 방울비짜루, 백리향, 벌깨풀, 분꽃나무, 뻐꾹채, 사창분취, 산조팝나무, 산토끼꽃, 솔체꽃, 자병취, 자주쓴풀, 장대냉이, 절굿대, 회양목 등 매우 많은 종류가 자라고 있다.(이들 가운데 이맘때 꽃을 피우는 것으로는 나무지만 키가 10㎝쯤밖에 되지 않아서 풀로 착각하기 쉬운 백리향이 있다. 정상의 바위지대에서 개회향, 돌양지꽃, 돌마타리, 자병취 등과 함께 발견된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 4종류나 살아 석회암지대에는 북방계식물들이 저지대에서 잘 자라는 현상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 살고 있는 두메닥나무, 들완두, 바위구절초, 바위솜나물, 시호, 큰제비고깔 등은 북방계식물로서 남한에서는 드물게 발견되는 것들이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희귀식물도 많다.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야생식물만 하더라도 노랑무늬붓꽃, 연잎꿩의다리, 솔나리, 한계령풀 등 4종류나 살고 있다. 솔나리는 석병산 여러 곳에서 널리 자라고 있어 개체수가 많다. 다른 곳에서는 고산지역에서만 발견되지만 이곳에는 해발 300m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는 점도 이채롭다. 법정보호종 이외에도 전문가들조차 보기 어려운 희귀식물이 많다. 꼬리겨우살이, 등대시호, 마키노국화, 벌깨풀, 좁은잎덩굴용담, 참작약 등이 여기에 속하는데, 모두가 보호해야 할 것들이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특산식물도 여러 종류가 자라고 있는데 만리화, 세잎승마, 참배암차즈기, 털댕강나무 등이 대표적이다. ●이웃 자병산은 시멘트 생산으로 파괴돼 유의해야 정상 북동 능선의 노간주나무들은 천연기념물급이다. 높이 15m, 지름 60㎝에 이르는 커다란 노거수 10여 그루가 자라고 있는데, 보통 2∼3m 높이로 자라는 노간주나무는 큰 것이라 하더라도 높이 8m, 지름 20㎝쯤이 고작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곳에 자라는 개체들의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상황지미골 쉰길폭포 일대에 발달한 까치박달 군락도 인상적이다. 폭포 아래쪽 급경사 사면에 다른 나무가 섞이지 않은 채 까치박달들만이 군락을 이루어 자라는 모습이 독특하다. 이맘때에 더위를 이겨내고 정상에 오르면 돌마타리, 돌양지꽃, 백리향, 시호 등이 바위지대에서 꽃을 활짝 피워 반갑게 맞아준다. 계곡에서는 노랑물봉선, 물레나물, 산꿩의다리가 피어 있고, 능선에서는 동자꽃, 속단, 참배암차즈기가 꽃을 피우고 있다. 석병산을 찾아가 귀한 식물들을 만날 때마다 이웃한 자병산의 운명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시멘트 생산이라는 국가적 대의명분 때문에 완전히 파괴되어 옛 모습을 잃어버린 백두대간 자병산에서는 그곳에 살던 귀한 석회암 식물들도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자병산 파괴와 같은 전철이 다른 석회암 산지에서 다시금 일어나지 않기를 빌고 또 빈다. 동북아식물연구소장
  • 예뻐진 홍삼 가볍게 마신다

    예뻐진 홍삼 가볍게 마신다

    건강기능식품 부문 판매 1위인 홍삼 제품이 보약 개념에서 여성의 미용과 건강을 겨냥한 차(茶)음료로 대거 출시되고 있다. 중·노년 제품으로 여겨졌던 홍삼이 웰빙 바람을 타고 소비층이 20, 30대로 낮아진 만큼 인기 음료군(群)을 형성할지 관심거리다. 한국인삼공사의 홍삼 브랜드인 정관장은 최근 연(蓮)잎과 홍삼이 함유된 차음료인 ‘인연보다 깊은 연인의 차’를 출시했다. 인삼공사측은 “가볍게 물처럼 마실 수 있는 제로 칼로리(0㎉) 음료로 순수 국산 연잎과 볶은 현미를 가미해 홍삼의 쓴맛을 없앴고 부드럽다.”고 밝혔다. 연잎은 피부미용, 혈액순환, 노화방지 등에 효과가 있다는 동의보감의 기록을 내세워 젊은 여성들을 집중 겨냥하고 있다. 홍삼 관련 건강기능식품을 취급하는 대형 식품 업계도 홍삼 음료를 적극 밀고 있다. 롯데칠성음료는 100㎖짜리 미니캔 스타일의 ‘롯데 홍삼진액’을 내놓았다. 결정과당을 넣어 홍삼의 쓴맛을 줄였으며 성인 남성과 여성 모두 즐기기 좋다는 설명이다. 이밖에 홍삼과 궁합이 좋은 꿀을 더한 제품으로는 남양유업의 ‘위풍당당 홍삼벌꿀’, 웅진식품의 ‘꿀홍삼’ 등이 있다. 홍삼에 초(醋)를 함께 넣어 만든 동원F&B의 ‘마시는 홍삼초’, 샘표식품의 ‘마시는 홍삼 흑초’도 나와 있다. 물에 타서 마시는 희석식이다. 비트로시스재팬은 롯데백화점과 산삼배양근 추출물이 함유된 ‘산삼수’를 공동 개발해 출시했다. 산삼수는 산삼배양근 추출물이 들어 있는 건강음료로, 물처럼 가볍게 마실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인삼공사 옥순종 홍보실장은 “국내 홍삼 시장은 지난해 7767억원에서 올해 9044억원 수준으로 불어날 전망”이라면서 “2010년까지 해마다 10%이상 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옥 실장은“여성·어린이 계층까지 핵심 고객으로 확보하기 위해 업체들이 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홍삼 시장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주현진기자 jhj@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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