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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CCK 단합이냐 파국이냐… 24일이 분수령

    ‘새 도약을 위한 단합대회? 아니면 분열의 파국 현장?’ 최근 개신교계의 이목이 오는 24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강남교회에서 열릴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제63차 정기총회에 쏠리고 있다. 제63차 총회는 NCCK가 창립 90주년을 맞아 전기의 계기로 삼자고 단단히 별러 온 자리. 하지만 차기 총무 인선을 둘러싼 내홍의 파고가 높아 총회가 어떻게 치러질지 알 수 없는 안갯속 형국이다. NCCK는 일찍부터 이번 정기총회의 주제를 ‘흔들리는 교회, 다시 광야로’로 정해 “참생명의 가치로 견인해 낼 구원의 방주로서의 사명을 다짐한다”는 선언문까지 미리 밝혔다. 총회 당일에는 “금번 총회를 통해서 다시 한번 이 땅에 하나님의 저의와 평화 생명의 터전을 확장해 나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을 가고자 한다”며 다짐을 선포할 예정이다. 그런데 예장통합 측은 지난 18일 ‘NCCK 제63차 총회에 즈음하여’란 성명을 내 “NCCK 일부 인사가 최근 총무 인선 과정에서 NCCK의 신앙적 유산과 전통, 공공성에 심각한 손상을 야기했다”고 주장했다. 선언은 “일부 인사가 김영주 현 총무의 연임을 위해 NCCK 헌장과 회원 교단 법규를 무시한 채 일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NCCK 실행위원회 총무제청 결의 무효 가처분신청을 서울중앙지법에 낸 입장을 밀어붙이겠다고 천명한 것이다. 예장통합 측은 NCCK가 일부 실행위원을 무리하게 교체해 김영주 현 총무의 연임을 성사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NCCK는 이에 대해 “관례와 교단 형편에 따른 실행위원 교체였다”며 인선 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오는 24일 총회에서는 교회일치·연합을 위한 예배와 90주년 축하·추모, 100주년기념사업위원회 조직 등 굵직굵직한 일들이 예정돼 있다. 이와 관련해 서울중앙지법은 정기총회가 열리는 24일 전에 총무제청 결의 무효 가처분신청 소송 결과를 양측에 전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법원의 판단에 따라 새 총무 결정을 위한 선거가 치러질 수도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단독] 차기 우리은행장에 이광구 급부상

    [단독] 차기 우리은행장에 이광구 급부상

    이순우(왼쪽) 우리은행장의 연임 가도에 ‘빨간불’이 켜졌다. 다음달 이 행장의 임기 종료를 앞두고 차기 행장 선출 작업이 진행 중인 가운데 이광구(오른쪽) 부행장이 유력 후보로 부상하고 있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14일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군이 이순우 행장, 이동건 수석부행장, 이 부행장, 김정한 전 우리금융 전무, 김양진 전 우리은행 수석부행장 등 5명으로 압축돼 인사 라인에서 검증 작업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안다”면서 “인선 작업 초기에만 해도 이 부행장이 그렇게 주목받지 못했으나 최근 급격히 (이 부행장에게) 무게가 쏠리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이 부행장은 이덕훈 수출입은행장, 정연대 코스콤 사장 등과 함께 대표적인 ‘서금회’ 인맥으로 분류된다. 2007년 서강대 출신 경제·금융인들이 모여 만든 서금회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 이후 금융권 주요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도 서강대 출신이지만 본인은 서금회 멤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 부행장은 정통 은행원 출신으로 개인적인 ‘스펙’은 행장 후보로서 별문제 될 게 없지만 서금회라는 이유로 막판에 되레 역차별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잇단 ‘보은 인사’ 논란으로 정권의 부담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권의 의중이 박영빈 전 경남은행장에 가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우리은행의 1대 주주는 정부(예금보험공사)다. 지분 57%를 갖고 있다. 금융 당국 고위 관계자는 “우리은행장 인선은 아직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이 행장이 ‘무난하게’ 연임할 것으로 봤다. 민영화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차기 행장의 임기 보장 여부가 확실치 않은 데다 이 행장이 대과 없이 행장직을 수행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에 갑자기 난기류가 생긴 것이다. 우리은행 이사회는 지난 12일 차기 행장 선임을 위한 행장추천위원회를 구성했다. 다음달 초쯤 최종 후보를 뽑을 예정이다. 이 행장이 옛 상업은행 출신이어서 우리은행 내부에서는 행장이 바뀐다면 한일은행 순서가 될 것이라고 예측해 왔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호세프, 산 넘어 산

    호세프, 산 넘어 산

    미국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브라질 최대 국영 석유기업인 페트로브라스의 임직원 뇌물 수수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0일 보도했다. 특히 뇌물 수수 의혹이 불거진 시기가 최근 재선에 성공한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이 이 회사 대표로 재직하던 시절이라 조사 결과에 따라 브라질 역사상 최악의 부패 스캔들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미 수사 당국은 페트로브라스 임직원이나 중개인, 도급업자가 ‘해외부패방지법’(FCPA)을 위반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FCPA는 외국 관리에게 뇌물을 주는 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 법이지만 협약에 따라 외국 기업도 처벌할 수 있는 광범위한 관할권을 지닌다. 이에 대해 페트로브라스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브라질 최대 정유 기업인 페트로브라스는 자국 내에서도 장비업체로부터 임직원이 뇌물을 받았다는 의혹과 관련해 연방 경찰과 검찰의 수사 선상에 올랐다. 페트로브라스 비리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은 전 페트로브라스 임원인 파울루 호베르투 코스타와 이미 유죄선고를 받은 암시장 금전거래업자 알베르토 유세프 등 2명이다. 이들이 사법당국과의 양형 거래 협상에서 “집권 노동자당 정치인이 계약금의 3%를 뇌물로 받았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었다. 그러나 노동자당과 연정 협력 정당은 이런 의혹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고 신문은 덧붙였다. FT는 지난달 26일 연임에 성공하며 경제 살리기와 사회 통합에 나서야 할 호세프 대통령에게도 큰 부담이 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서울시장, “공무원은 모두 도둑” 호통치더니…

    서울시장, “공무원은 모두 도둑” 호통치더니…

    ●서울특별시장 변천사 ‘정부 속의 정부’ 서울특별시와 흔히 ‘소통령’(小統領)으로 일컬어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변천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률적으로 파악하기엔 우리 근현대사의 진로가 너무나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외세강점기와 독립 쟁취가 아닌 강대국 협상의 산물인 미 군정 과도체제는 정부수립 전후 극단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이 땅을 휩쓸었다. 서울특별시장의 역할은 특별했다.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수도 서울의 독특함이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시장의 위상 변화는 대략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조선 500년을 관통한 한성부와 한성판윤의 명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경성부와 경성부윤으로의 위상 격하, 한국전쟁과 두 번의 정변 과정에서 맞은 서울시정의 공백, 30년간 지속한 군사정권 아래 관선시장,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출직 빅2’로 꼽히는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 등이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서울시정을 획일적으로 관선과 민선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구분 짓기엔 미흡하다. 왕조의 유물인 한성판윤과 일제 잔재인 경성부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겠으나 관선과 민선시장을 뭉텅 그려 역대 서울시장(1~36대)으로 묶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같은 서울특별시장이지만 임명직 시장과 선출직 시장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의 위상 변화에 따른 구분과 아울러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크게 1기와 2기로 떼는 것도 방법이다. 관선 1기는 1대 김형민(1946년 9월 29일~1948년 12월 14일) 시장부터 10대 장기영(1960년 5월 2일~1960년 6월 30일) 시장 재임기로 볼 수 있다. 이어 4·19 혁명의 희생으로 쟁취한 최초의 민선 시장인 제11대 김상돈(1960년 12월 30일~1961년 5월 16일) 시장을 민선 1기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5 ·16 군사정변으로 임명직 관선시장 시대로 되돌아간 제12대 윤태일(1961년 5월 20일~1963년 12월 16일) 시장부터 제29대 최병렬(1994년 1월 3일~1995년 6월 30일) 시장까지가 관선 2기이고, 본격 지방자치시대를 연 제30대 조순(1995년 7월 1일~1997년 9월 9일) 시장부터 제36대 박원순(2011년 10월 27일~현재) 시장까지를 민선 2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관선과 민선시장이 혼재된 서울특별시장사를 정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민선 서울특별시장사에 발자취가 뚜렷한 김상돈의 민선시대를 빼버리고 조순 시장을 민선 1기로 계산해 현 박원순 시장을 민선 6기로 치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엄연하게 서울시민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시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관선으로 모는 격이다. 말로는 ‘첫 민선 시장 김상돈’이라면서 민선시장 계보에서는 빼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최초의 민선 시장기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의 영욕사 관선 서울특별시장은 권력의 꼭두각시였다.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연임하거나 장수했다. 제1대 김형민은 미군정이 임명한 구색갖추기용 한국인 시장이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귀국, 영어교사를 거쳐 석유상을 하다 미군정 관계자와 인연을 맺어 해방 이후 첫 한국인 경성부윤인 이범승(1945년 10월 25일~1946년 5월 9일)에 이어 제2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했다가 얼떨결에 벼락출세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역대 최연소인 39세 시장이다. 미군정청은 미군 시장 윌슨 중령이 한국인 시장을 지휘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김형민 시장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살아남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미군정청 군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제정토록 하고,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는 일본식 동명과 가로명, 도로명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일도 했지만 일제 잔재 탈피에 급급해 서두르는 바람에 옛 우리말 지명 되찾기에 실패하는 우도 범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은 건국기의 혼란 와중에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시’(雩南市)로 이름을 바꿨을 개연성이 높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추종자들의 압력을 이겨냈다는 후일담이다. 이승만도 집권 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해 은연중 자신의 아호를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으면서 남산에 25m 높이의 세계 최대 동상을 세우고, 시민회관을 우남회관, 남산 팔각정을 우남정이라고 작명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이름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다. 관선 시장의 면면을 보면 관선 1기에는 정치인출신(윤보선, 이기붕, 고재봉, 허정, 임흥순, 장기영)이 대부분 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윤태일, 김현옥, 구자춘)과 경찰(정상천, 박영수, 염보현)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서울시 행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행정관료(양택식, 김성배, 김용래, 고건, 이해원, 이상배, 이원종, 우명규) 출신이 자리를 잡았다. 일화도 많이 남겼다. 제2대 윤보선(1948년 12월 15일~1949년 6월 5일)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쓰레기를 청소하라”라고 지시했다. 제8대 허정(1957년 12월 14일~1959년 6월 11일)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모 야당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며 호통을 친 뒤 수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신당동 동회장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하수인 임흥순(1959년 6월 12일~1960년 4월 30일)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전원이 도시락을 싸오도록 해 ‘도시락 시장’으로 통했다. 첫 민선 시장이자 마지막 민선 시장이 될 뻔했던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이 낳은 비운의 스타였다. 등록상표인 카이저수염에 국민복을 차려입고 엄청난 거구를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전임 관선 시장 장기영을 꺾은 그가 얻은 표는 서울시 총유권자의 19.5%에 불과해 ‘2할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임식장에서 터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일갈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서울시는 복마전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이라는 이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서울시는 복마전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시민과의 면담은 대부분 청탁이므로 면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로 취임한 제12대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채 시장직에 취임했고 그만둘 때까지 군복차림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한신(육군 소장) 장군과의 라이벌의식이 지방자치사를 바꿨다. 자신의 전용 지프 번호가 26번이고 한신 장관이 12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울시 번호판을 아예 바꿨다. 앞에 지역명을 넣어 ‘서울 1000번’으로 바꾼 것이다. 한신 내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떼를 썼다. 이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위가 승격되고,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장관급이 됐다. 제14대 김현옥(1963년 3월 31일~1970년 4월 15일) 시장에서부터 15대 양택식(1970년 4월 16일~1974년 9월 1일) 시장, 16대 구자춘(1974년 9월 2일~1978년 12월 21일) 시장 등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5년 동안 서울의 지형이 바뀌었다. 이 시기 서울은 ‘한강의 기적’ 기반을 닦았고,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강남 아파트공화국’이 됐다. 제18대 박영수(1980년 9월 2일~1982년 4월 27일) 시장 이후 제21대 김용래(1987년 12월 30일~1988년 12월 4일) 시장까지 4대에 걸친 서울시정의 모든 것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마감하고 1990년대를 연 제23대 박세직(1990년 12월 27일~1990년 2월 18일) 시장부터 마지막 관선 시장 제29대 최병렬 시장까지는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각종 비리사건으로 얼룩졌고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마감됐다. ●관선 서울특별시장들의 진기록 관선시장이 세운 기록도 다양하다. 최연소는 김형민(39) 시장이 유일한 30대를 기록하고 있고, 이어 김현옥(40), 구자춘(42), 윤태일(43), 양택식·김상철(46), 정상천(47), 김태선(49) 시장이 40대였다. 외세강점기와 전쟁,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젊은 인재 등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형민 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이자 초대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보유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 이기붕(1949년 6월 6일~1951년 5월 8일) 시장이 제3~4대를 연임했고, 미국 유학파로 경찰출신이던 김태선(1951년 6월 27일~1956년 7월 5일) 시장이 5~6대 시장을 연임했다. 이후 관선 시대에 연임은 없었다. 김태선 시장의 재임기간은 4년 11개월로 관선시장으로선 최장수이지만 관선과 민선을 합쳐 6년을 재직한 고건 시장에게는 뒤진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의 잔여 임기 2년 8개월을 채운 박원순 시장이 두 번째 임기 4년을 무사히 채우면 6년 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최단명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로 부임 7일 만에 물러난 제26대 김상철 시장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임명됐다가 성수대교 부실 시공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물러난 제28대 우명규 시장과 수서택지개발 특혜비리로 53일 만에 도중 하차한 제23대 박세직 시장이 뒤를 잇는다. 성수대교 붕괴 수습용 시장을 맡았던 마지막 관선시장 최병렬 시장은 이임식을 하러 가던 길에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제2대 윤보선 시장이 대통령에 올랐고, 제4대 이기붕 시장은 부통령에 선출됐다. 제8대 허정 시장은 4·19 혁명 직후 과도내각 수반, 대통령직무대행, 국무총리를 각각 맡았고, 제22대 고건 시장은 2년간의 관선 시장직에서 무사히 물러나고 나서 제3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3년 다시 제35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다가 8년 만에 민선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정 시장과 고건 시장이 세운 시장,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의 3관왕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이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였다면, 이후 전개될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시민들의 명을 받드는 대신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자리가 되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6) 서울특별시장(중)

    [노주석의 서울택리지 테마기행] (16) 서울특별시장(중)

    ●서울특별시장 변천사 ‘정부 속의 정부’ 서울특별시와 흔히 ‘소통령’(小統領)으로 일컬어지는 서울특별시장의 변천사를 제대로 살펴보려면 몇 가지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일률적으로 파악하기엔 우리 근현대사의 진로가 너무나 복잡다단했기 때문이다. 왕조의 몰락과 함께 찾아온 외세강점기와 독립 쟁취가 아닌 강대국 협상의 산물인 미 군정 과도체제는 정부수립 전후 극단적인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전쟁 이후 혁명과 반혁명을 거치면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격변의 파노라마가 이 땅을 휩쓸었다. 서울특별시장의 역할은 특별했다. 중앙부처도 아니고 지방자치단체라고도 할 수 없는 수도 서울의 독특함이 서울특별시장이라는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서울시장의 위상 변화는 대략 5단계로 나눌 수 있다. 조선 500년을 관통한 한성부와 한성판윤의 명멸, 일제강점기와 미군정기 경성부와 경성부윤으로의 위상 격하, 한국전쟁과 두 번의 정변 과정에서 맞은 서울시정의 공백, 30년간 지속한 군사정권 아래 관선시장, 19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선출직 빅2’로 꼽히는 민선 서울시장의 탄생 등이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서울시정을 획일적으로 관선과 민선으로 이분화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를 구분 짓기엔 미흡하다. 왕조의 유물인 한성판윤과 일제 잔재인 경성부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하겠으나 관선과 민선시장을 뭉텅 그려 역대 서울시장(1~36대)으로 묶기엔 무리라는 뜻이다. 같은 서울특별시장이지만 임명직 시장과 선출직 시장의 위상은 하늘과 땅 차이기 때문이다. 서울특별시장의 위상 변화에 따른 구분과 아울러 민선 서울특별시장을 크게 1기와 2기로 떼는 것도 방법이다. 관선 1기는 1대 김형민(1946년 9월 29일~1948년 12월 14일) 시장부터 10대 장기영(1960년 5월 2일~1960년 6월 30일) 시장 재임기로 볼 수 있다. 이어 4·19 혁명의 희생으로 쟁취한 최초의 민선 시장인 제11대 김상돈(1960년 12월 30일~1961년 5월 16일) 시장을 민선 1기로 따로 평가해야 한다. 5 ·16 군사정변으로 임명직 관선시장 시대로 되돌아간 제12대 윤태일(1961년 5월 20일~1963년 12월 16일) 시장부터 제29대 최병렬(1994년 1월 3일~1995년 6월 30일) 시장까지가 관선 2기이고, 본격 지방자치시대를 연 제30대 조순(1995년 7월 1일~1997년 9월 9일) 시장부터 제36대 박원순(2011년 10월 27일~현재) 시장까지를 민선 2기로 보는 것이다. 이것이 관선과 민선시장이 혼재된 서울특별시장사를 정리하는 한 방법이 아닐까 한다. 민선 서울특별시장사에 발자취가 뚜렷한 김상돈의 민선시대를 빼버리고 조순 시장을 민선 1기로 계산해 현 박원순 시장을 민선 6기로 치는 것은 잘못된 계산법이다. 엄연하게 서울시민의 손으로 뽑은 첫 민선 시장을 대통령이 임명한 관선으로 모는 격이다. 말로는 ‘첫 민선 시장 김상돈’이라면서 민선시장 계보에서는 빼버렸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주주의 역사의 중요한 한 장인 최초의 민선 시장기를 되살릴 필요가 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의 영욕사 관선 서울특별시장은 권력의 꼭두각시였다. 최고 권력자의 하수인 역할을 충실히 하면 연임하거나 장수했다. 제1대 김형민은 미군정이 임명한 구색갖추기용 한국인 시장이었다.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딴 뒤 귀국, 영어교사를 거쳐 석유상을 하다 미군정 관계자와 인연을 맺어 해방 이후 첫 한국인 경성부윤인 이범승(1945년 10월 25일~1946년 5월 9일)에 이어 제2대 경성부윤으로 취임했다가 얼떨결에 벼락출세했다. 관선과 민선을 합쳐 역대 최연소인 39세 시장이다. 미군정청은 미군 시장 윌슨 중령이 한국인 시장을 지휘하는 ‘투 톱 체제’로 운영했다. 비록 허수아비였지만 김형민 시장은 ‘서울’이라는 지명이 살아남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미군정청 군인들과의 친분을 이용해 ‘서울시 헌장’(Charter of The City of SEOUL)을 제정토록 하고, 경성부를 서울특별시로 승격시킨 것이다. 그는 일본식 동명과 가로명, 도로명을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명으로 바꾸는 의미있는 일도 했지만 일제 잔재 탈피에 급급해 서두르는 바람에 옛 우리말 지명 되찾기에 실패하는 우도 범했다. 그가 나서지 않았다면 서울은 건국기의 혼란 와중에 우남(雩南) 이승만 대통령의 아호를 따 ‘우남시’(雩南市)로 이름을 바꿨을 개연성이 높다. 끝까지 고집을 부려 추종자들의 압력을 이겨냈다는 후일담이다. 이승만도 집권 후 국무회의에서 “우리나라 지명 중 유일하게 한자로 표시가 안 되는 서울이라는 지명은 문제가 있다”면서 지명 변경 검토를 지시해 은연중 자신의 아호를 도시명으로 정하고 싶은 의도를 드러냈다. 국부(國父)로 추앙받으면서 남산에 25m 높이의 세계 최대 동상을 세우고, 시민회관을 우남회관, 남산 팔각정을 우남정이라고 작명했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수도이름을 바꾸는 데 비용이 너무 많이 들뿐더러 자신의 손으로 바꾸기엔 민망하다며 차일피일 미루다 4·19를 만나 없었던 일이 됐다. 관선 시장의 면면을 보면 관선 1기에는 정치인출신(윤보선, 이기붕, 고재봉, 허정, 임흥순, 장기영)이 대부분 이었다가 5·16 군사쿠데타 이후 군인(윤태일, 김현옥, 구자춘)과 경찰(정상천, 박영수, 염보현) 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1970년대 이후 서울시 행정이 복잡해지고 전문화되면서 행정관료(양택식, 김성배, 김용래, 고건, 이해원, 이상배, 이원종, 우명규) 출신이 자리를 잡았다. 일화도 많이 남겼다. 제2대 윤보선(1948년 12월 15일~1949년 6월 5일)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쓰레기를 청소하라”라고 지시했다. 제8대 허정(1957년 12월 14일~1959년 6월 11일) 시장은 시장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온 모 야당의원에게 “깡패 같은 놈”이라며 호통을 친 뒤 수위를 불러 시청 밖으로 끌어냈다. 신당동 동회장 출신으로 자유당 정권의 마지막 하수인 임흥순(1959년 6월 12일~1960년 4월 30일) 시장은 서울시 공무원 전원이 도시락을 싸오도록 해 ‘도시락 시장’으로 통했다. 첫 민선 시장이자 마지막 민선 시장이 될 뻔했던 김상돈 시장은 4·19 혁명이 낳은 비운의 스타였다. 등록상표인 카이저수염에 국민복을 차려입고 엄청난 거구를 흔들며 지팡이를 휘둘렀다. 민주당 후보로 나서 전임 관선 시장 장기영을 꺾은 그가 얻은 표는 서울시 총유권자의 19.5%에 불과해 ‘2할 시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취임식장에서 터진 “민나 도로보데스(모두 도둑놈이다)”라는 일갈은 서울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어록이다. 서울시는 복마전이고, 서울시 공무원들은 전부 도둑놈이라는 이 한마디 때문에 지금도 서울시는 복마전의 그림자를 벗지 못하고 있다. 시민과의 면담은 대부분 청탁이므로 면회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5·16 쿠데타로 취임한 제12대 윤태일 시장은 육군 소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은 채 시장직에 취임했고 그만둘 때까지 군복차림이었다. 당시 내무장관이던 한신(육군 소장) 장군과의 라이벌의식이 지방자치사를 바꿨다. 자신의 전용 지프 번호가 26번이고 한신 장관이 12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서울시 번호판을 아예 바꿨다. 앞에 지역명을 넣어 ‘서울 1000번’으로 바꾼 것이다. 한신 내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을 수 없으니 서울시를 내부무 산하가 아닌 총리실 산하로 바꿔달라고 박정희 의장에게 떼를 썼다. 이 덕분에 1962년 ‘서울특별시 행정에 관한 특별조치법’이 만들어져 서울시가 국무총리 직속으로 지위가 승격되고,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장관급이 됐다. 제14대 김현옥(1963년 3월 31일~1970년 4월 15일) 시장에서부터 15대 양택식(1970년 4월 16일~1974년 9월 1일) 시장, 16대 구자춘(1974년 9월 2일~1978년 12월 21일) 시장 등 3명의 시장이 재임한 15년 동안 서울의 지형이 바뀌었다. 이 시기 서울은 ‘한강의 기적’ 기반을 닦았고, 지하철시대를 열었고, ‘강남 아파트공화국’이 됐다. 제18대 박영수(1980년 9월 2일~1982년 4월 27일) 시장 이후 제21대 김용래(1987년 12월 30일~1988년 12월 4일) 시장까지 4대에 걸친 서울시정의 모든 것은 서울아시안게임과 서울올림픽에 맞춰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를 마감하고 1990년대를 연 제23대 박세직(1990년 12월 27일~1990년 2월 18일) 시장부터 마지막 관선 시장 제29대 최병렬 시장까지는 개발시대의 후유증으로 말미암은 각종 비리사건으로 얼룩졌고 결국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로 마감됐다. ●관선 서울특별시장들의 진기록 관선시장이 세운 기록도 다양하다. 최연소는 김형민(39) 시장이 유일한 30대를 기록하고 있고, 이어 김현옥(40), 구자춘(42), 윤태일(43), 양택식·김상철(46), 정상천(47), 김태선(49) 시장이 40대였다. 외세강점기와 전쟁, 혁명 등의 격변기를 거치면서 젊은 인재 등용이 상대적으로 많았다. 김형민 시장은 마지막 경성부윤이자 초대 서울시장이라는 전무후무한 진기록을 보유했다. 이승만 대통령의 그림자 이기붕(1949년 6월 6일~1951년 5월 8일) 시장이 제3~4대를 연임했고, 미국 유학파로 경찰출신이던 김태선(1951년 6월 27일~1956년 7월 5일) 시장이 5~6대 시장을 연임했다. 이후 관선 시대에 연임은 없었다. 김태선 시장의 재임기간은 4년 11개월로 관선시장으로선 최장수이지만 관선과 민선을 합쳐 6년을 재직한 고건 시장에게는 뒤진다. 그러나 보궐선거로 오세훈 시장의 잔여 임기 2년 8개월을 채운 박원순 시장이 두 번째 임기 4년을 무사히 채우면 6년 8개월이라는 최장수 기록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최단명 시장은 그린벨트 훼손 문제로 부임 7일 만에 물러난 제26대 김상철 시장이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수습을 위해 임명됐다가 성수대교 부실 시공 책임을 지고 11일 만에 물러난 제28대 우명규 시장과 수서택지개발 특혜비리로 53일 만에 도중 하차한 제23대 박세직 시장이 뒤를 잇는다. 성수대교 붕괴 수습용 시장을 맡았던 마지막 관선시장 최병렬 시장은 이임식을 하러 가던 길에 삼풍백화점 붕괴 소식을 듣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가야 했다. 제2대 윤보선 시장이 대통령에 올랐고, 제4대 이기붕 시장은 부통령에 선출됐다. 제8대 허정 시장은 4·19 혁명 직후 과도내각 수반, 대통령직무대행, 국무총리를 각각 맡았고, 제22대 고건 시장은 2년간의 관선 시장직에서 무사히 물러나고 나서 제30대 국무총리를 지냈고, 2003년 다시 제35대 국무총리직을 수행하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대행을 맡았다가 8년 만에 민선 서울시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허정 시장과 고건 시장이 세운 시장, 총리, 대통령권한대행의 3관왕 기록은 앞으로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관선 서울특별시장이 최고 권력자의 명을 받드는 꼭두각시 최고 집행자였다면, 이후 전개될 민선 서울특별시장은 시민들의 명을 받드는 대신 차기 혹은 차차기 대권을 예약하는 자리가 되었다. 선임기자 joo@seoul.co.kr
  • [부고] 美의회에 처음 위안부 알린 에번스 前의원

    [부고] 美의회에 처음 위안부 알린 에번스 前의원

    미국 의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제기하고, 남북 이산가족과 한국계 혼혈인의 인권을 위해 노력한 레인 에번스(일리노이·민주) 전 연방하원의원이 별세했다. 63세. 6일(현지시간) AP통신 등에 따르면 오래전부터 파킨슨병으로 투병해온 에번스 전 의원은 전날 밤 고향인 일리노이주 록아일랜드 인근 이스트몰린 요양원에서 눈을 감았다. 그는 31세 때인 1982년 미 연방하원의원에 처음으로 당선돼 12선을 연임했으나 병세가 악화되면서 2006년 은퇴를 선언하고 2007년 의회를 떠났다. 약자를 위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의회에 입성한 에번스 전 의원은 한국인들에게 일본군 위안부와 남북 이산가족, 한국계 혼혈인의 권리 확보를 위한 법안 마련을 위해 노력한 대표적 친한파 의원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한국인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동원 사실을 1999년 하원 의사록에 처음 남겼으며 2000년부터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지속적으로 제안했다. 그가 은퇴한 뒤 이를 이어받아 2007년 하원 본회의에서 위안부 결의안 채택 결실을 맺은 마이크 혼다 연방하원의원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위안부 문제를 미 의회에 알리기 위해 오랫동안 힘든 싸움을 해온 에번스 전 의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한다”고 밝혔다.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지금&여기] 재선 동기로 본 통일 대박/안석 정치부 기자

    [지금&여기] 재선 동기로 본 통일 대박/안석 정치부 기자

    “4년 연임제 대통령이라면 가능했을까.” 올 초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 발언을 들었을 때 처음 떠오른 생각이다. 연임제라면, 다시 말해 재선 지향적 동기가 있는 대통령이라면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는 2년차에 통일이 국정의 화두가 되도록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임기가 5년인 경우와 ‘4년 더하기 4년’, 즉 8년을 일할 수 있는 경우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4년 연임제에서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첫째도, 둘째도 경제일 가능성이 크다. 다른 일을 아무리 잘해도 경제 성적이 탐탁지 않으면 국민들은 전망적이기보다 회고적이기 쉽고, 재선 가능성은 낮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보수와 진보 간 입장이 뚜렷해 절반의 지지만 얻을 수 있고, 북한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남북 관계는 전면에 내세워도 그다지 얻을 게 크지 않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만약 4년 연임제였다면 박 대통령은 올해 초 통일 대박이 아닌 ‘경제 대박’을 외치며 2016년을 준비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임제 대통령은 재선이란 압박에서 자유롭다. 대신 임기 안에 성과를 내기 위해, 역사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 행동한다. 역대 대통령에게 역사에 이름을 남길 만한 아이템은 정치·사회 개혁이나 남북 관계였다. 박 대통령은 그 가운데 ‘통일 대박’을 들고나왔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노력 의무’를 다하기 위해 통일 대박을 외쳤는데, 이게 단지 재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싱겁게 말하면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주변에 물어보라. 김대중 전 대통령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극복한 대통령으로 기억하는가, 역사상 처음으로 남북 정상회담을 한 대통령으로 기억하는가. 박근혜 정부가 경제성장률을 0.01%라도 올린다면 좋은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국민이 대통령의 이름을 기억해 주리라 장담하긴 어렵다. 결국 우리 대통령은 거시 담론이나 그와 관련된 대형 이벤트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쩌면 통일대박론은 통일이 우리의 소원이자 사명이기 때문이 아니라 5년 단임제 대통령이 생각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에 나온 얘기일지도 모른다. 재선 지향 의지만으로 상·하원들의 행태를 완벽하게 설명한 미국의 정치학자 데이비드 메이휴처럼 ‘재선 동기’만으로 우리 대통령의 행태를 얼마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임기 5년에 ‘갇힌’ 대통령의 행동 패턴을 이제는 한꺼풀 벗겨 생각해 볼 때도 되지 않았을까. ccto@seoul.co.kr
  • 부르키나파소 군부, 말뿐인 정권 이양

    부르키나파소 군부, 말뿐인 정권 이양

    대통령 연임 반대 시위를 틈타 지난 1일(현지시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부르키나파소 군부가 “여론을 수렴해 과도정부를 구성하겠다”면서도 사실상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는 등 혼란이 지속되고 있다고 3일 BBC, CNN 등이 보도했다. 전날 수도 와가두구의 국영TV 방송국에서는 여러 발의 총성이 들렸다. 군부가 과도정부 수반으로 이삭 야코바 지다 중령을 지명하자 이에 반발한 시위대들을 해산하기 위해 발포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원 1명이 숨졌다고 BBC는 전했다. 군인들은 방송국에 모인 시위대를 해산한 뒤 중앙 광장인 ‘민족의 장소’에도 바리케이드를 설치했다. 군이 시위대를 해산하기 직전 국영TV 방송국에는 시위대의 지지를 받고 있는 크와메 로그 전 국방장관과 여성 야권 지도자 사란 세레메가 도착했다. 시위대는 세레메가 과도정부를 이끌겠다고 선언하길 기대했다. BBC는 전직 군인인 로그도 자신이 나라를 이끌겠다고 선언할 의도로 방송국에 갔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군부의 무력 진압에 방송국에 있던 인사들과 시위대는 뿔뿔이 흩어졌다. 이날 저녁엔 지다 중령이 핵심 야권 인사들을 모아 회의를 했다. 야당 대표와 전직 장관들이 참석했다. 그러나 세레메는 회의 직전 자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고 로그 전 장관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군 동료들에 의해 배제됐다고 밝혔다. 회의에서 어떤 이야기들이 오갔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오로지 민족에만 관심을 두고 있을 뿐 우리는 권력에 흥미가 없다”던 군부는 민주 정부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무력 진압하며 권력에 대한 야심을 숨기지 않았다. 앞서 쿠데타를 주도한 오노레 트라오네 육군참모총장이 아니라 대통령 경호대 부사령관이었던 지다 중령이 과도정부 수반으로 지목되면서 군 내부에 암투가 있었다는 정황을 드러냈다. 이 같은 상황에 국제사회는 앞다퉈 우려를 표명했다. 무함마드 이븐 캄바스 유엔 서아프리카 특사는 유엔이 부르키나파소에 제재를 가할 수 있다며 민간으로 권력을 이양하라고 촉구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개신교 진보 교단 연합 NCCK 분열 위기?

    개신교 진보 교단 연합 NCCK 분열 위기?

    한국 개신교의 진보적 교단 연합체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NCCK)가 위기 상황에 빠졌다. 지난 23일 실행위원회에서 재임이 결정된 현 총무 김영주 목사의 인선을 둘러싼 내홍 탓이다. 교회협 최대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총회장 정영택)이 선출 과정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재선 논의를 요구하고 나선 가운데 교회협 에큐메니컬 진영의 반발 기류도 번지고 있어 주목된다. 예장통합 측이 김 총무의 재임 결정에 반발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압축된다. 우선 재임을 결정한 실행위원회의 실행위원이 14명(예장통합 2명 포함)이나 전격적으로 교체됐다는 점을 들고 있다, 김 총무의 재임을 위한 무더기 위원 교체가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실행위에서 김 총무는 재적 80명 중 44표를 얻어 선출됐다. 또 하나는 김 총무의 자격에 대한 논란이다. 김 총무는 1952년 12월생으로 임기 중 65세 정년퇴임을 맞아 다음 임기를 모두 채울 수 없다는 것이다. 통합 측은 정년을 채울 수 없는 자는 임원 지원을 할 수 없도록 명기한 가입 교단들의 규정을 교회협이 어겼다고 주장하고 있다. 통합 측은 김 총무의 연임 인선 과정을 인정할 수 없다며 지난 27일 교회협에 공문을 보내 긴급 임원회의 개최를 요청했다. 선출과 관련한 재논의를 하기 위한 임시 실행위원회 개최를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이와 함께 총무 연임의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교회협은 선거에 앞선 실행위원 무더기 교체라는 통합 측 주장은 교회협의 관례와 가입 교단 입장에 따른 적법한 조치를 외면한 억지에 가깝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김 총무의 자격에 대한 논란 역시 교회협 헌장에 정년과 관련한 별도 규정이 없다는 점을 들어 일축했다. 교회협은 예장통합과 교회협 간 갈등이 확산되자 일단 다음달 7~12일쯤 긴급 임원회의를 열어 통합 측 요구인 실행위 개최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교회협 내부에서 찬송가 편찬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한국기독교연합(한교연) 분열 과정에 얽힌 반(反)예장통합 기류가 적지 않은 만큼 총무 선출과 관련한 재논의를 위한 실행위 개최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여기에 총무후보추천인선위원회에서 김 총무와 경합을 벌였다가 탈락한 류태선 목사가 예장통합 소속이란 점도 그런 관측에 무게를 더한다. 김 총무는 2010년 총무 연임에 도전한 권오성 목사를 제치고 총무에 당선된 인물이다. 중임에 성공할 경우 2017년 12월 정년을 맞아 총무 4년 임기 중 11개월을 채우지 못하게 된다. 김 총무는 다음달 24일 교회협 총회에서 재적 과반수 출석과 출석 과반수 찬성을 얻어야 차기 총무 선출이 확정된다. 총회 관례상 실행위에서 선출한 신임 총무를 박수로 추대하지만 예장통합 등의 반발이 지속될 경우 김 총무의 재임 여부가 투표로 결정지어질 수도 있다. 특히 교회협의 이념적 지주인 에큐메니컬 진영 12개 단체의 모임인 기독교사회선교연대회의(기사연)도 선거를 둘러싼 계파 간 세 대결 양상을 경고하고 나서는 등 반발 움직임이 적지않아 다음달 총회의 결과를 쉽게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브라질, 성장보다 복지 택했다… 연임 성공 호세프 “뭉치자”

    브라질, 성장보다 복지 택했다… 연임 성공 호세프 “뭉치자”

    26일(현지시간) 브라질 대선 결선투표에서 집권 중도좌파 노동자당의 지우마 호세프(66·여) 대통령이 승리했다. 최종 개표 결과 호세프 대통령은 51.6%를 얻어 중도우파 브라질사회민주당의 아에시우 네베스(54) 후보(48.4%)를 간신히 이겼다. 불과 300만 표 차이였다. 심지어 95% 개표 상황에서도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접전이었다. 로이터통신 등 주요 외신은 “1989년 이후 25년 만에 가장 치열한 선거”라고 보도했다. 1989년 대선에서 노동자당은 처음으로 후보를 냈는데 당시 후보였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은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달리다가 막판에 400만 표 차이로 역전패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연임이 확정되자 단결을 촉구했다. 대선 과정에서 서민층과 부유층의 지지 후보가 나뉘면서 갈등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호세프 대통령은 2003년부터 집권한 노동자당의 빈민 구제 프로그램 덕분에 연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달에 700달러 이하의 소득으로 사는 약 40%에 달하는 브라질 서민층의 지지가 힘이 됐다. 호세프 대통령과 노동자당은 1400만 빈곤 가구에 현금 보조금을 지급했고 공공 주택 278만채를 제공했다. 로이터통신은 “호세프 대통령이 4000만명을 빈곤에서 구제하고 실업률을 낮췄다”면서 “브라질 국민은 경제 침체보다 복지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보도했다. 호세프 대통령은 네베스에 대해 “(저소득층에) 무신경하고 잘난 체하는 인물”이라며 가난한 국민의 혜택을 빼앗을 것이라고 비난해 왔다. 변화를 요구하는 나머지 절반의 목소리를 호세프 대통령이 외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호세프 대통령은 경제성장률을 높이고 부패를 척결하겠다고 약속했다. 전문가들은 원자재 가격이 내려가는데 유류보조금 지급, 전기 요금 상한제, 재정지출 확대 등의 정책이 경기 둔화를 심화시킨다고 우려하고 있다. 호세프 대통령이 재선하면서 브라질 증시 보베스파는 27일 개장하자마자 6% 급락했다. 뉴욕 UBS웰스매니지먼트의 호르헤 마리스칼은 “브라질은 현재의 정책을 유지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호세프가 취임한 2011년부터 4년간 브라질 경제성장률은 1~2%대로 부진했다. 인플레이션은 6.75%로 상승했고, 브라질 헤알화는 2011년 이후 달러 대비 30% 이상 평가절하됐다. 브라질 증시도 25%가량 떨어졌다.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 등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은 신용등급을 강등했다. 국영 석유회사 페트로브라스의 부패도 문제로 꼽힌다. 호세프 대통령은 기술 관료 출신으로 1970년대 초반 군부에 반기를 들어 투옥된 경험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브라질로 건너온 불가리아 이민자 2세다. 룰라 전 대통령이 후계자로 선택하면서 스타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일각에서는 룰라 전 대통령이 2018년 대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은행권 CEO 지각변동 시작됐다

    은행권 CEO 지각변동 시작됐다

    은행권 최고경영자(CEO)들의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올해 연말과 내년 초 시중은행 6곳의 행장이 교체될 예정이다. KB사태로 이건호 전 행장이 자진 사퇴한 국민은행을 비롯해 불명예 조기 퇴진하는 행장, 임기 종료를 앞두고 연임이라는 시험대를 통과해야 하는 행장까지 이유도 제각각이다. 한국씨티은행은 27일 행장추천위원회와 이사회, 주주총회를 열고 신임 행장으로 박진회 수석 부행장을 선임했다. 하영구 전 행장이 KB금융 회장 선출 레이스에 뛰어들면서 행장직을 던졌기 때문이다. 지난해 3월 5연임에 성공했던 하 전 행장의 당초 임기는 2016년 3월까지였다. ‘5연임 행장’이란 타이틀이 따라다닐 만큼 장기집권했던 하 전 행장이 물러나고 박 신임 행장이 선임되면서 한국씨티에도 오랜만에 변화가 예상된다. 박 신임 행장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경기고와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 한국씨티은행 서울지점에 입행한 뒤 자금담당본부장, 한미은행 기업금융본부장 등을 지냈다. 이건호 전 행장의 자진사퇴로 두 달 가까이 대행체제가 유지되고 있는 국민은행장 자리는 윤종규 KB금융 회장 내정자가 겸임할 것으로 보인다. 윤 내정자는 앞서 “흐트러진 조직 분위기를 조속히 추스르기 위해 회장이 행장을 겸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겸직 시기는 최소 1년으로 예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행장과 서진원 신한은행장은 각각 올해 12월과 내년 3월 임기가 끝난다. 다음달 28일 예비입찰을 앞두고 있는 우리은행은 민영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 이 행장이 당분간 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우리은행의 매각 성공 여부와 주인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이 행장의 향후 운명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서 행장은 무난하게 연임에 성공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서 행장 임기 내에 리딩뱅크(업계 1위) 자리를 꿰찰 정도로 안정적인 조직 운영 능력을 인정받아 연임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내년 3월 임기가 종료되는 김종준 하나은행장은 연내 하나·외환은행 통합 시점에 행장직에서 물러난다. 통합은행장으로는 김한조 외환은행장이 거론된다. “통합은행이라는 대의를 위해 행장직을 내려놓겠다”는 것이 김종준 행장의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임기 종료를 불과 얼마 앞두지 않은 상태이고, 올해 4월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고도 행장직을 유지하며 무리를 일으킨 바 있어 김 행장의 ‘진의’가 빛을 바랬다는 지적도 있다. 올해 4월 취임한 아제이 칸왈 SC은행장은 불명예 퇴진을 앞두고 있다. 수십억원대 대저택에 거주하고 VVIP 골프회원권 구매 논란이 최근 불거지면서 취임 6개월 만에 사실상 경질됐다는 게 금융권 시각이다. 후임으로는 박종복 부행장이 거론된다. 박 부행장이 행장에 선임되면 그는 SC은행 최초의 한국인 은행장이란 타이틀을 갖게 된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하프타임] 임태희 대한배구협회장 사의

    임태희(58) 대한배구협회장이 22일 “배구계가 심기일전해 더 큰 도약을 준비할 때”라며 “아시안게임에 최선을 다한 후 물러나겠다고 한 지난 1월 총회의 약속을 지키겠다”면서 사의를 밝혔다. 임 회장은 2008년 10월 제35대 회장에 취임한 뒤 지난해 1월 연임됐다. 박승수 부회장이 직무를 대행한다.
  • [ITU전권회의 개막] “디지털혁명 따른 IT 격차 우려… 국제협력 강화를”

    [ITU전권회의 개막] “디지털혁명 따른 IT 격차 우려… 국제협력 강화를”

    TV를 쌓아 만든 백남준의 작품 ‘로그인을 할수록’에 불이 켜지자 전 세계 170여 개국 3000여명의 정보통신기술(ICT) 대표들이 숨을 죽였다. 로봇 모양의 작품이 팔을 흔들자 감각적인 음악과 함께 ICT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담은 영상이 대형 화면에 펼쳐졌다. 유엔 산하 국제전기통신연합(ITU) 회원국이 모두 참석하고 4년마다 열려 ‘ICT올림픽’으로도 불리는 ITU 전권회의가 20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에서 화려한 막을 올렸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아시아에서는 1994년 일본 이후 두 번째로 열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개막식 기념연설에서 “ICT 신기술 발전으로 가속화되고 있는 초연결 디지털 혁명의 기회와 혜택을 모든 인류 사회가 고루 누릴 수 있도록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개막식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영상 메시지를 보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핵심 요소로서의 ICT 중요성을 강조했다. ITU 전권회의는 193개 회원국의 ICT 분야 장관이 대표로 참석하는 ITU 최고위 의사 결정 회의다. 하지만 이 회의는 ICT의 발전만이 아니라 ICT가 인류 전체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논의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뜻깊다. 주최국인 우리가 제시한 핵심 의제는 ‘ICT 융합’과 ‘사물인터넷 촉진’이다. 각국 대표단은 다음달 7일까지 본회의와 분과위원회 회의를 통해 이 같은 ICT 환경의 급속한 변화 속에서 인터넷 공공정책, 선진국과 개발 도상국 간의 정보 격차 해소, 장애인의 ICT 접근성 확보 등을 집중적으로 고민한다. 전권회의에서 논의된 결과는 폐회식에서 최종의정서 형태로 채택해 발표한다. 한편 이번 회의에서는 이동통신, 인터넷(IP)TV 등 ICT 국제 표준을 다루는 ITU 표준화 총국장 자리에 이재섭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 IT융합연구소 연구위원이 출마했다. 터키, 튀니지와 경합 중이며 23일 회원국 투표에서 과반수의 지지를 받아야 한다. 이 연구위원이 선출될 경우 임기는 4년이지만 연임이 가능해 최장 8년 동안 글로벌 ICT 표준화 부문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날 개회식에서 “초연결 디지털 혁명이 국가 간, 지역 간 정보통신 격차를 더욱 확대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전기 및 정보통신이 지역과 국가, 성별과 계층을 뛰어넘어 모든 인류의 인권 향상과 복지 증진을 위한 기술이 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정보통신 격차 해소를 위해 적극 나서자”고 제안했다. 부산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 종식

    국정감사 이후 ‘예고된 핫이슈’인 개헌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검토가 진행 중인 대통령 4년 중임제와 이원집정부제 등을 실현하려면 대통령(임기 5년)과 국회의원(4년)의 임기와 함께 선거일도 하나로 맞춰야 한다. 그러려면 이 둘의 임기 중 하나를 줄이거나 늘릴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 모색 중인 신헌법 적용 타임 테이블은 어떻게 될까. 앞서 12대 국회는 1985년 2월 총선으로 구성됐지만, 1987년 개헌의 영향으로 1988년 4월에 13대 총선이 치러지면서 출범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개헌을 위해 의원들이 스스로 임기를 1년 줄이는 결단을 내린 것이다. 1.20대 국회 임기 2년 단축… 대통령 임기말 레임덕 불보듯 2018년 19대 정부 적용 내년 한 해 개헌 논의가 마무리되면 빠르면 다음 정권부터 신헌법이 적용될 수 있다. 2017년 12월 치러질 19대 대선에서 21대 총선을 동시에 치른다는 구상이다. 그러면 2016년 4월 총선으로 꾸려질 20대 국회의 임기가 2년 짧아지긴 하지만, 2년 만에 선(選) 수를 하나 더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는 점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현재 달아오른 개헌 논의의 수위와 시기 등을 볼 때 가장 실현 가능성이 높은 시나리오로 꼽힌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말 권력 누수 현상이 가중될 수 있고, 친박(친박근혜)계와 청와대의 극심한 반발이 불을 보듯 뻔해 좌초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2. 박 대통령 반발 감안하면 가능성… 21대 국회임기는 1년 줄어 2023년 20대 정부 적용 박근혜 정부 내 개헌 작업이 실패할 경우 개헌은 다음 정부 몫이 된다. 현행 헌법 체제하에서 선출된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단축하기 쉽지 않다면, 2022년 12월에 20대 대선과 22대 총선을 함께 치를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러면 2020년 4월 총선으로 출범하는 21대 국회의 임기는 1년 줄어들게 된다. 현재 개헌 총론에 대해 여야가 상당한 공감대를 이루고 있고 그 추진 의지 또한 하늘을 찌르는 상황에서 신헌법 적용이 너무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여야 이견이 적지 않고, 여전히 50%에 육박하는 지지율을 받고 있는 박 대통령의 반발 등을 감안한다면 불가능한 시나리오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3. 타이밍은 적절… 차기 대통령 임기 3년 단축은 걸림돌 2020년 21대 국회 적용 신헌법 적용을 위해 박 대통령의 임기를 줄이거나 늘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단축하는 것은 여당이, 연장하는 것은 야당이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야권에서는 “아무리 개헌을 하더라도 박 대통령의 임기를 단 1분 1초도 연장해 주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에 따라 2020년 21대 총선에서 대선을 함께 치르는 방안이 도출된다. 현재 정치 시계를 감안하면 가장 그럴듯하고 타이밍도 적절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2018년 2월 취임하는 차기 대통령의 임기를 3년이나 줄여야 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그를 신헌법 체제 첫 대통령으로 연임시키며 6년 임기를 하게 하는 방안도 거론되지만, 여야 출신 성분에 따라 진통의 크기가 달라질 수 있어 아직은 구상으로만 남아 있다.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경제 덕분에… 남미 최고 성장률 이끈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 3선 성공

    경제 덕분에… 남미 최고 성장률 이끈 볼리비아 모랄레스 대통령 3선 성공

    에보 모랄레스(54) 볼리비아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로 3선에 성공했다. 2006년 처음 대통령에 당선된 모랄레스는 이번 승리로 2020년까지 임기를 보장받아 볼리비아 최장기 대통령의 기록을 세우게 됐다. 현지 ATB방송은 12일(현지시간) 치러진 대선에서 좌파 정당인 사회주의운동(MAS)의 모랄레스 대통령이 60.5%, 야권 유력후보인 중도보수 국민통합당(UN)의 사무엘 도리아 메디나(55)가 24%를 득표해 모랄레스가 승리했다고 보도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번 승리는 반제국주의, 반식민주의의 승리”라고 선언했다. 남미의 대표적 좌파 대통령인 그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피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에게 승리를 바친다고 밝혔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재임기간 빈곤율 58%→26%로 뚝 동시에 치러진 상·하원 의원 선거에서도 사회주의운동은 상원 36석 중 25석, 하원 130석 중 111석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대통령 연임 제한 철폐를 위한 개헌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야권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2019년 대선에 또 출마해 볼리비아 독립 200주년인 2025년까지 집권 연장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모랄레스의 인기 비결은 경제 성장에 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볼리비아는 모랄레스 취임 이후 남미 최고 경제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모랄레스 집권 전 평균 2.9% 수준이던 경제성장률은 이후 5%대로 꾸준히 상승했다. 2000년 58%를 넘었던 빈곤율은 2012년 26%로 떨어졌다. 모랄레스는 특히 교육 보조금, 노인 연금, 공공사업에 힘썼다. 석유, 가스, 광업, 통신, 수도를 국유화해 천연가스와 석유 생산량을 늘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등 해외로 수출해 국내총생산(GDP)을 2배 이상 늘렸다. ●집권 연장 개헌·부정부패 비난도 첫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모랄레스는 인구의 65%에 달하는 원주민들로부터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다. 세계 최고 높이 케이블카를 수도 라파스에 설치하거나 첫 인공위성 발사 등 인기영합주의 정책도 인기에 한몫했다고 AFP는 분석했다. 부정부패에 대한 비난도 여전하다. 국제투명성기구는 지난해 볼리비아를 베네수엘라, 파라과이에 이어 남미에서 세 번째로 부패가 심한 국가로 지정했다. 수백만 달러의 정부 돈을 선거 자금으로 유용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한편 볼리비아와 함께 좌파 남미를 대표하는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재선이 불투명해졌다. 1차 투표에서 3위에 그친 마리나 시우바 후보가 결선 투표(26일)에서 아에시우 네베스 후보를 지지한다고 12일 밝혔다. 1차 투표 득표율이 호세프 41.49%, 네베스 33.55%, 시우바 21.32%로 시우바와 네베스가 연합하면 호세프를 이길 가능성도 있다. 현지 여론조사업체 다타폴랴와 이보페가 지난 9일 동시에 발표한 조사 결과에서 무효표와 기권표를 뺀 결선투표 유효 득표율은 네베스 51%, 호세프 49%로 전망됐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금융 CEO 줄줄이 공석… 인사 전쟁 예고

    금융권 최고경영자(CEO)들이 줄줄이 임기 종료를 앞두고 있어 치열한 인사 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은행연합회장과 우리금융지주 계열사 사장을 비롯해 주택금융공사, 생명보험협회, 서울보증 등이 후임자 인선을 앞두고 있다. 이달 중 선임절차를 마무리하는 KB금융지주 회장과 국민은행장의 향방도 금융권 인사 태풍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주택금융공사는 지난 10일 사장 공모절차를 시작했다. 주금공 사장자리는 지난 1월 서종대 전 사장이 물러난 뒤 공석인데, 지금까지 한국은행 출신의 김재천 부사장이 사장직무대행으로 일해 왔다. 새 사장에는 김 부사장과 최순웅 하나캐피탈 사장, 이윤희 전 IBK캐피탈 대표 등이 후보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보증보험은 지난 10일 차기 사장 후보 접수를 마쳤다. KB금융지주 회장 후보에서 최근 사퇴한 김옥찬 전 국민은행 부행장의 ‘낙점설’이 돌고 있다. 여기에 김희태 전 우리아비바생명 사장과 내부 출신으로는 채광석 수석 전무가 경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임기가 종료되는 박병원 은행연합회장의 후임으론 KB금융 차기 회장 유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이종휘 전 우리은행장과 조준희 전 기업은행장의 각축이 점쳐진다.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과 우리금융그룹 계열사 사장들도 오는 12월 임기가 모두 끝난다. 민영화가 진행 중이라 이 회장이 다음달 1일 지주와 은행의 통합 작업을 마무리한 뒤에도 우리은행장으로서 연임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전직 우리은행 고위 임원들이 차기 행장직을 노리고 있어 교체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생명보험협회도 김규복 회장의 임기가 12월에 끝난다. 은행연합회처럼 생보협회도 기존의 관료 출신을 배제하고 회원사 전·현직 대표나 고위 임원이 회장에 선임될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KB금융 회장직 지원을 공식화한 하영구 한국씨티은행장은 KB금융 회장직 도전에 실패할 경우 한국씨티은행장 직을 내려놓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가야문화권 공동 번영 위한 특별법 제정에 힘 쏟을 것”

    “가야문화권 공동 번영 위한 특별법 제정에 힘 쏟을 것”

    “가야문화권의 공동 번영과 발전을 위해 앞장서 더욱 노력할 작정입니다.” 최근 열린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에서 의장으로 3선 연임된 곽용환(경북 고령군수) 의장은 6일 “무엇보다도 가야문화권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특별법 제정에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는 오는 10일 경남 합천박물관에서 ‘가야문화권 실체 규명을 위한 학술세미나’를 열고 내년 3월쯤에는 국회에서 가야문화권 출신 국회의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특별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대대적으로 개최할 계획이다. 가야문화권 특별법 제정을 위한 학술적·논리적 근거 확보와 분위기 조성이 전제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어 곽 의장은 “지난해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으로 등재된 고령 지산동 대가야고분군을 가야 문화 최초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기 위한 노력도 함께 전개해 나가겠다. 우선 내년 1월 고령군에 대가야고분군 세계유산추진단을 신설해 가동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구~광주 간 88고속도로 확장 사업과 남부내륙고속철도(김천~진주~거제)의 가야문화권 통과가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고 가야문화권 관광자원 공동 개발과 문화탐방 등 다양한 분야의 발전과 활발한 교류를 위해 협의회 차원에서 공동 노력을 전개해 나갈 방침이다. 곽 의장은 “영호남을 아우르는 가야문화권 지역은 1600여년 전 고구려·백제·신라 등과 함께 고대사를 이끌었던 곳으로 우수한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다”면서 “이런 자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가야문화권의 제2의 도약과 함께 새로운 국가성장 축을 형성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2005년 가야의 문화와 역사성을 지닌 10개 시·군으로 발족한 가야문화권 지역발전 시장·군수협의회는 현재 5개 시·도(대구·경북·경남·전남·전북) 15개 시·군(고령·성주·달성·합천·거창·함양·남원·산청·의령·장수·창녕·하동·함안·광양·순천)이 참여하는 전국 최대 규모의 협의회로 운영되고 있다. 고령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브라질 호세프 불안한 1위… 2위 네베스와 26일 결선

    1억 4000만 명의 브라질 유권자들이 새 대통령을 선택하기 위해 표를 던졌다. 1차 투표의 주인공은 지우마 호세프(66) 대통령과 브라질사회민주당의 아에시우 네베스(54) 후보다. 5일(현지시간) 실시된 브라질 대선에서 호세프 대통령과 네베스 후보는 각각 41.6%와 33.6%로 1·2위를 차지해 오는 26일 결선 투표에서 맞붙게 됐다. 블룸버그는 “네베스가 놀랄 만한 역전승을 거뒀다”고 전했다. 선거 초반 돌풍을 일으켰던 브라질사회당의 마리나 시우바(56·여) 후보는 21%의 표를 얻는 데 그쳤다. AP통신은 “시우바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12년 동안 집권당이 쌓아 놓은 사회 복지 프로그램이 모두 무너질 것처럼 묘사한 호세프 진영의 전략이 승리했다”고 전했다. 선거 전문가들은 호세프의 재선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한다. 호세프 대통령이 결선투표에서 승리하면 브라질 사상 세 번째로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호세프 대통령의 승리를 장담할 순 없다. 영국 텔레그래프는 시우바가 네베스 후보를 지지할 경우 예측하기 어려운 승부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부와 외조부, 아버지가 모두 정치인인 네베스는 2002년 미나스제라이스 주지사, 2010년 연방상원의원에 당선되는 등 차기 지도자로 주목받아 왔다. 백민경 기자 white@seoul.co.kr
  • [좌파 정권 사수냐 교체냐…남미 ‘심판의 계절’ 10월] 볼리비아, 모랄레스 ‘15년 집권’ 눈앞… 우루과이, 前대통령 VS 前대통령 아들

    브라질과 함께 ‘좌파’ 남미를 대표하는 볼리비아와 우루과이 대선도 10월에 열린다. 볼리비아는 12일, 우루과이는 26일에 투표를 한다. 볼리비아에서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르 대통령과 더불어 남미 강경좌파 3인으로 꼽히는 에보 모랄레스(54) 대통령의 승리가 확실시되지만 우루과이는 여야가 대접전을 벌여 정권 교체 가능성도 거론된다. 5일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볼리비아는 사회주의운동(MAS)의 모랄레스(54) 현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지난 1일 발표한 조사에서 모랄레스는 59%를, 중도보수 야당인 국민통합당(UN) 후보 사무엘 도리아 메디나(55)는 13%의 지지율을 얻어 무려 46% 포인트의 격차를 보였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2005년 말 대선에서 승리해 집권했으며 2009년 재선에 성공했다. 올해 대선에서 승리하면 2020년까지 집권한다. 모랄레스는 집권을 연장하기 위해 2007년 대통령 1회 연임을 허용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고, 헌법재판소가 모랄레스의 3선 시도를 허용하는 해석을 내렸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가난한 자의 투사’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전력회사를 국영화해 천연가스, 석유 생산을 늘리면서 재임 기간 국내총생산(GDP)을 2배로 늘렸다. 1차에서 50%가 넘지 않으면 12월 7일 결선투표를 실시해야 하지만 1차에서 결론이 날 가능성이 크다. 우루과이 상황은 좀 다르다. 중도좌파 프렌테 암플리오의 타바레 바스케스(74) 후보와 중도우파 야당 국민당(PN) 루이스 라칼레 포우(39)가 치열한 대결을 벌이고 있다. 여론조사기관 옵시옹 콘술토레스가 2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직 대통령인 바스케스는 41%를 얻어 포우(34%)를 앞섰다. 문제는 바스케스의 지지율은 1년 전 43%에서 떨어진 반면 포우는 27%에서 올라 격차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여론조사기관 인터컨설트는 바스케스가 47%, 포우가 46%로 박빙이라고 발표했다. 바스케스는 2004년 10월 대선에서 승리한 이후 2010년 호세 무히카 현 대통령에게 정권을 넘겼다. 현역 하원의원인 포우는 루이스 알베르토 라칼레 전 대통령(1990∼1995년 집권)의 아들이다. 남미 언론 메르코프레스는 11월 30일 결선투표를 치를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했다. 이민영 기자 min@seoul.co.kr
  • [글로벌 시대] 한국과 타이완의 닮은꼴 정치/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글로벌 시대] 한국과 타이완의 닮은꼴 정치/민재홍 덕성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쌍십절(雙十節)로 불리는 10월 10일은 타이완의 건국 기념일이다. 1949년 공산당에 패한 국민당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타이완으로 쫓겨와 철권통치를 시작하게 된다. 이후 타이완은 건국 출발부터 우리나라와 매우 유사한 정치사를 전개해 가고 있다. 비슷한 시기 한국과 타이완에 자유민주체제와 반공이라는 국시(國是)를 가진 보수 우파 정부가 등장한 것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1960년 하와이 망명 때까지, 장제스 총통은 1975년 사망 때까지, 두 지도자는 건국 초기 국부(國父)의 호칭을 받으며 절대적 지도자의 위치를 차지하였다. 이후 한국은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부 정치를 이어갔고, 타이완은 장제스의 사망 이후 아들 장징궈(蔣經國)가 총통을 물려받아 장씨 일가의 세습 통치 체제를 만들어 간다. 이 시기 양국은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우선으로 하고 민주발전과는 거리가 있었던 통제적 권위적 리더십이라는 유사성을 보인다. 1980년대 한국과 타이완은 각각 군사정권과 장씨 일당 철권통치에 반대하는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분출하기 시작한다. 1986년 타이완 최초의 정치적 야당인 민진당(民進黨)이 설립되었고 1987년 계엄령이 해제되었으며, 한국에서도 1987년 6월 항쟁을 통한 대통령 직선제 쟁취와 6·29선언으로 민주화가 첫발을 내딛게 된다. 민주화 결과 타이완의 1990년 리덩후이(李登輝) 정부와 한국의 1992년 김영삼(YS) 정부가 출범하였다. 국민당과 민자당이라는 여당 출신 대통령이었지만, 리덩후이는 대륙에서 온 장씨 일가와는 달리 중도 성향의 타이완 토박이 출신이었고, YS는 야당 총재로 민주화를 상징하던 지도자였다. 비슷한 시기에 두 나라의 군사정부가 무너지고 개혁적인 문민정부가 등장한 것이다. 이어 두 나라는 50년 만에 야당으로의 첫 역사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데 그 과정도 똑같은 모습이다. 1997년 한국은 김대중(DJ) 정부에 의해 50년 보수 정당 체제가 깨지고 최초의 야당 정부가 탄생하였다. 이회창 후보는 강력한 여당주자였으나, 당시 개혁적 신인 이인제 후보의 탈당과 신당 창당으로 여권표가 분산되면서 DJ가 승리한 것이다. 2000년 타이완 선거에서도 국민당의 롄잔(連戰) 후보를 민진당의 천수이볜(陳水扁) 후보가 누르고 타이완 최초로 여야 정권 교체에 성공하는데, 이때도 국민당 쑹추위(宋楚瑜)가 탈당하여 여권 분열이 일어난다. 양국에서는 진보정권이 연임에 성공하는데, 이회창 후보를 극복한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롄잔 후보를 누른 2004년 천수이볜 총통이 진보의 두 번째 정부를 이어간다. 연패당한 이회창 후보와 롄잔 후보는 양국에서 불운의 보수 정객으로 기억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부산 시장, 천수이볜 총통은 타이베이 시장 선거 패배를 극복하고 당선되었다. 진보 세력의 확장, 다원화 세상의 개척, 참여 정치의 실현이라는 긍정적 측면이 많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과 보수의 저항, 천수이볜 총통은 임기 말 부패와 비리에 연루되어 각각 수사 중 자살과 19년 구형이라는 안타까움으로 마감되었다. 2007년과 2008년 양국은 경제회복을 내세운 이명박 대통령과 마잉주(馬英九) 총통이 보수정권의 재탈환을 이루었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과 마잉주 총통의 연임으로 연속 보수정권을 이어가고 있다. 건국과 군사정부, 문민정부와 민주화, 평화적 정권교체와 진보정권, 보수정권의 재탈환으로 대별되는 타이완과 한국은 2016년 총통선거와 2017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다. 과연 이번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일지 2016년 타이완 선거를 지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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