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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J는 깨끗” 「이종찬 발언」 논란

    ◎검찰 “노씨 신문중 그런말 나온적 없다”/“김대중 총재 향한 과잉충성” 민자 비판 국민회의 이종찬 부총재의 「김대중 총재 추어올리기」가 「과잉충성」으로 정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노태우 전 대통령이 검찰신문에서 야당후보에 대한 선거자금 지원문제와 관련한 추궁에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김총재는 깨끗하다』고 말했다고 주장한 이부총재의 발언을 검찰측이 정면 부인했기 때문이다. 이부총재가 「깨끗한 김총재」발언을 한 것은 지난 3일 당무위원및 의원연석회의에서다.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대선 당시 노씨가 자기를 돕지 않았다는 김영삼 대통령의 주장은 거짓말이며 노씨를 토사구팽 하자는 것』이라고 김 대통령을 겨냥해 직격탄을 쏘아올렸다. 노씨 발언 진위여부에 대한 기자들의 확인에 안강민 대검중수부장은 4일 『(노씨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이부총재 주장은)거짓말』이라고 잘라 말했다. 당연히 민자당은 발끈했다.이신범 부대변인은 『이부총재 발언은 검찰에 확인한 결과 작문(꾸며낸 얘기)인 것으로 밝혀졌다』며그의 「근거없는」 주장들을 비난했다. 여권의 반박에 대해 이 부총재는 『검찰이 그렇게 자신있으면 노씨의 진술 조서를 공개해야 할 것』이라고 되받아쳤다.그는 『김 대통령을 비난한 것도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한 것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민자당의 한 당직자는 『검찰이 수사중 진술조서를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은 여권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던 이 부총재가 누구보다 잘 아는 사실』이라고 일축했다.이 당직자는 당지도부가 법적 대응까지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부총재는 5공때 정치를 시작,6공때까지 사무총장과 원내총무,정무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쳤고 92년에는 민정계의 단일후보로 민자당 대통령후보 경선에까지 참여했었다.누가 뭐래도 그는 5·6공의 「수혜계층」이다. 따라서 국민회의로 옮긴뒤 대여 비판의 최선봉에 서 있는 이 부총재의 이런 변신에 오랜 야당생활을 한 인사들조차 고개를 갸우뚱거릴 정도다. 당내에선 김총재가 「구여권 끌어안기」 전략에 따라 이부총재를 편애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의 소리도 들린다.이부총재로서는 그만큼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결국 이부총재의 강성 발언도 김총재의 김대통령 비난발언을 뒷받침하는 「보조공격수」로서의 책임감 때문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야당인으로의 이미지 전환을 위해 조금은 과격한 제스처를 보일 필요도 있고 노씨의 부정축재로 직간접적인 피해를 입고 있는 다른 5·6공 인사들과의 차별성을 꾀해 보려는 계산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분석도 있다. 이부총재의 강성 발언이 김대중 총재에게 궁극적으로 도움을 줄 것인지,그리고 5·6공에서 많은 혜택을 누렸던 과거를 하루아침에 씻고 야당투사로 만들어 줄 것인지 주목된다.
  • 합당이후 자금지원 내역 청와대에 공개 질의/국민회의,해명촉구

    국민회의와 민주당 등 야권은 3일 노태우 전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엄정한 수사와 김영삼 대통령의 대선자금 공개를 거듭 촉구하며 대여공세를 계속했다.야당들은 특히 재계에 대한 검찰수사와 관련,재벌기업들의 적극적인 수사협조를 요구했다. 국민회의 김대중 총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무위원및 소속의원 연석회의에서 『노씨가 비자금을 조성할수 있었던 것은 3당합당 때문』이라고 말하고 『당시 여권의 2인자로서 당무를 맡았고 매주 노씨와 당정협의를 한 김영삼대통령이 어떻게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있느냐』고 선거자금 지원의 전모를 밝힐 것을 촉구했다. 국민회의는 이날 지난 90년 3당합당 이후 김대통령이 노전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자금지원내역을 묻는 공개질의서를 청와대에 전달했다. 민주당도 이날 노전대통령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내 전체비자금 규모와 조성경위,사용내역등을 낱낱이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 피납북자들의 비극(새로 쓰는 한국 현대사:42)

    ◎총 8만여명… 김규식·안재홍 등 각계 명사 다수/귀향길 막혀 고난의 세월… 대부분 비참한 최후 유엔군과 공산군이 한국전쟁을 마무리짓기 위해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던 무리가 있다.그들은 바로 납북인사들이다.전쟁의 와중에 북으로 끌려가 휴전후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던 이들이야말로 영원한 에트랑제였다.그래서 더욱더 관심과 동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서만 2만여명 한국전쟁 기간중 북한군에 납치당한 사람들은 서울 2만7백38명을 비롯해 전국에 걸쳐 8만4천5백32명이나 됐다.이 납북자들은 대부분 북에서의 삶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고 있다.남과 북으로부터 모두 소외된채 베일에 싸인 이들이 만난 비극적인 운명은 전쟁 발발 3일째인 1950년 6월28일로 거슬러 올라간다.한강철교 폭파로 미처 피란을 못했던 요인들이 북한 노동당 군사위원회 결정에 따라 우선 포섭대상에 들어갔다. 이 계획은 7월4일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일성 등이 참석한 연석회의에서 최종 결정됐다.북한군이 서울을 점령한후 피란하지 못한서울과 점령지역의 주요 정치·종교·경제·문화인 등 각계 인사를 찾아내 포섭하려는 것이었다.군사위원회는 이 결정에 따라 남한의 저명인사를 친·반공의 정도에 따라 5개 부류로 분류했다. 북한은 7월4일부터 김응기 이주상 방학세 김창주 김춘삼 등 실무 집행자들로 하여금 이를 추진시켰다.이에따라 서울시 인민위원회(서울시청)와 성남호텔(서울 광교부근)에 납북 대상자 심사장이 설치됐다.국회의원과 정당·사회단체의 저명인사,임정요인에 대한 심사를 거쳐 이들을 북으로 연행해가기 시작했다.이들 중에는 김규식 조소앙 조완구 김붕준 류동열 최동오 윤기섭 오하영 원세훈 엄항섭 등 임정요인이 들어있었다.안재홍 박열 백관수 정인보 이광수 최규동 방응모 등 전현직 국회의원과 정당 사회단체,문단 인사들이 포함됐다.납북 인사들은 대부분 평양을 거쳐 만포로 들어갔다.도중에 정인보와 이광수,최규동,방응모,김붕준,류동열이 미공군의 폭격과 지병으로 숨졌다. 해방정국에서 미국이 장래의 한국 지도자로 꼽았던 김규식은 만포에서 16㎞ 정도가 떨어진 별오동이라는 마을에서 1950년 12월10일 세상을 떠났다.납북인사들과 당시 함께 생활했던 북한 조국통일민주전선 부국장 신경완의 증언에 따르면 김규식의 최후는 너무 비참했다.별오동에는 유엔군에게 쫓겨온 북한의 주요기관이 모두 있었는데,김규식은 지병인 해소와 노환으로 생명이 경각을 다투었다. 그러나 서울을 떠날 때 지니고 간 약이 모두 거덜났다.당시 상황으로 약을 구할 수 없어 해소에 좋다는 토끼똥까지 달여 먹였다는 것이다.주변의 강력한 요구로 별오동에서 8㎞를 더 들어간 군병원에 입원했으나 병세는 점점 더 악화되었다.홍명희를 만나 중국에라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끝내 실현되지 못했다.그리고 결국 숨을 거두었다.그날 압록강변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고 한다. 그의 장례식에는 전쟁을 일으킨 김일성의 꽃다발이 개인 이름으로 도착했다.추도사를 맡은 조소앙은 날씨가 하도 추워 말을 이어나가지 못할 정도였다.김규식의 시신은 상여에도 오르지 못하고 군 트럭에 실려 장지에 갔다.땅이 얼어붙어 내려놓은 관을 땅에 제대로 묻지못하고 가장을 하다시피 장례절차를 마쳤다.김규식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그렇게 한만국경에서 막을 내렸다. ○독자 휴전운동 불발 납북자들의 일관된 관심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철저하게 정보가 차단됐던 납북자들은 전쟁이 끝나 남한으로 하루빨리 돌아가는 것을 학수고대하면서 고난의 세월을 보냈다.1951년부터 시작된 휴전회담은 이들의 환향의지를 더욱 부채질한 것은 물론이다. 1951년 6월23일 소련의 말리크 유엔대사가 휴전과 관련한 토의를 제의한후 시작된 휴전회담은 납북인사들에게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었다.납북자 대표들은 휴전회담이 답보상태에 빠졌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독자적인 휴전운동에 나설 것을 결의한 적도 있다.북한측 연락장교들의 인솔로 안재홍 조소앙 김약수 원세훈 윤기섭은 51년 1월25일 판문점까지 오기도 했다.그러나 북한의 조종을 받은 이들은 유엔군측 연락장교 키니대령을 만나는 선에서 활동을 끝냈다. 1953년 7월27일 휴전이 됐지만 납북자들은 여전히 환향의 길이 막힌채 감금에 가까운 상태로 북에서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휴전협정 체결 90일만인 19 53년 10월26일 판문점에서 정치회의 예비회담이 열렸으나 회의 초반부터 미국측과 북측이 회담방법 등 정치문제를 놓고 팽팽히 맞섰다.그러나 미·영·소·불 등 4개국이 1954년 4월부터 제네바에서 정치회의를 열어 한반도 문제를 토론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납북자들은 조소앙이 주창한 「중립화 통일론」을 제네바회의에 직접 전달할 수 있도록 주선해줄 것을 북한당국에 건의했다.북한은 납북자들의 의도가 자신들의 통치속셈에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그럼에도 표면적으로 이를 거부하지는 못했다.54년 4월 중순 엄항섭과 권태양 등 납북자 대표는 제네바로 들어가기 위한 입국사증을 받기 위해 소련 외무성의 안내를 받아 모스크바로 떠났다.그러나 소련주재 북한대사는 결국 이들을 제네바 국제회의에 보내지 않았다.스위스 정부가 입국사증을 발급해주지 않는다는 핑계로 이들을 되돌려보냈다.처음부터 북한당국이 납북자들을 제네바 회담에 참가시킬 의도가 추호도 없었다는 사실을 입증시킨 것이다. ○제네바회담 참가 무산 1955년부터 김일성은 평화통일과 평화이미지 선전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이를 계기로 북한은 납북인사들에게 자신이 내세운 평화통일 방안에 서명할 것을 강요하기 시작하는 등 이들의 정치적 이용을 서둘렀다.그래서 1955년 11월13일 납북요인들의 첫 공동성명으로 알려진 11·13성명을 발표하는데 납북자들이 실제 이용됐다.이 성명에는 납북인사들의 주장은 철저히 배제된채 전쟁 직전까지 북한이 내세운 정치적 허구라 할 수 있는 선전문구만 나열되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납북자들은 이후 북한에서의 독립적인 정치활동 보장을 위한 조직체 구성을 시도했다.1956년 7월2일 평양 모란봉극장에서 「재북 평화통일 촉진협의회」 결성대회가 그것이다.각지에서 모인 납북 및 월북 인사 4백여명 등 7백여명이 참석한 이날 대회는 조소앙 안재홍 오하영을 최고위원으로 선출하고 합법적 통일정부 구성과 국제적 중립화 선언,남북의 자유로운 내왕 등을 내용으로 하는 7개항의 행동강령을 채택했다. 그러나 이협의회에는 북한의 노동당 등 친공세력이 깊숙이 관여하고 있었다.또 분열이 이미 고질화돼 있었던 만큼 납북자들의 구심체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결국 이 협의회는 1958년 9월9일 지도자인 조소앙이 숨을 거둔후 본래의 취지와는 멀어진채 북측의 대남 위장 정치선전기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도쿄대 「납북자 행적」 단행본/“북,납북 인사들 협박… 대남공세 악용”/56년 조국 통일전선 중앙위에 “동원”/“총일 앞장” 조소앙 등 강요된 맹세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은 일본 도쿄대학 동양학연구소에서 한국전쟁 중 북한으로 끌려간 인사들의 족적을 기록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하여」란 단행본 책자를 입수했다.이 단행본은 1956년 5월24일부터 25일까지 열린 북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확대회의의 주요문헌과 참가자들을 정리한 것이다. 이 책자는 지금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납북 임정요인과 인사들의 행적을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이들 재북인사들은 1956년 4월23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된 조선노동당 제3차대회에 참가한 것으로 돼있다.특히 당대회 직후인 같은해 5월24∼25일의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확대회의에는 재북평화통일협의회를 준비하고 있던 재북인사들을 대부분 초청한 것으로 밝혀져 이들을 여러 수단으로 회유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홍명희의 보고와 토론으로 진행된 이날 회의에 남한출신 정치인 조소앙 안재홍 오하영 윤기섭 엄항섭 송호성 김약수,국회의원 출신 노일환 김병회 황윤호 박윤원 이구수 강욱중 최태규 김옥주 배중혁 구덕환 이문원 신성균이 참석했다.이밖에 남한의 각 정당 사회단체 인사들의 명단이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남한 정치인을 대표해 토론에 나선 송호성 조소앙 안재홍 등의 토론 내용을 소개했다.이들은 분단의 원인과 평화통일의 방책에 대해 토론한후 자신들이 앞장설 것을 맹세했다고 전하고 있다. 어떻든 이 자료는 납북인사들이 철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됐음을 보여 주었다.더구나 휴전 이후 정치공세를 강화한 폐쇄사회의 실상을 어느 정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사 자료로도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 논산 관촉사 고려 미륵보살상(한국인의 얼굴:49)

    ◎일자로 꽉 다문 입·굳은 표정 “특이”/네모꼴 넓은 턱·어깨까지 내려온 귀 인상적 고려의 석조불·보살상들은 지역별 특성을 지니고 있다.그 대표적 케이스가 오늘날 충남지역에 전해오는 보살상들이다.모두가 거상인데,간략한 표현기법이 구사되었다.이는 관촉사미륵보살입상으로 시작하여 대조사미륵보살입상과 삽교보살입상으로 이어졌다. 이들 석조보살입상들 가운데 관촉사미륵보살상이 맨 먼저 조성되었다.이 보살입상의 백호를 수리할 때 발견한 먹글씨 쪽지에는 고려 광종 5년(서기968년)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충남 논산군 은진면 관촉리 관촉사 경내에 자리한 미륵보살입상은 키가 자그마치 18m에 이르는 거구다.몸뚱이는 거대한 돌을 원통형으로 깎아 만들었다.그래서 우람한 인상이 강하게 다가올 뿐 미적 조형감각이 넘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관촉사 미륵보살입상의 얼굴은 지난 시대 신라의 불·보살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이마가 좁고 턱이 넓은 네모꼴인데,얼핏 삼각구도라는 느낌도 안겨준다.눈은 옆으로 길게 찢어졌다.그러나 눈을비교적 크게 떠 왕눈을 했다.코는 실상 크고 높으나 콧방울이 유난히 넓고 펑퍼짐해서 날카로워 보이지 않는다.일자로 꽉 다문 입이 얼굴 표정을 굳게 만들었고 턱 밑에다 선을 둥글게 그어 두 턱이 졌다. 보관바로 아래서 시작한 귀는 크게 과장되어 목주름이 뚜렷한 목언저리를 지나 어깨까지 내려왔다.그 길이가 2m나 되니 큰 귀임에 틀림없다.보관 사이로 도안화한 머리카락이 약간 흘러내려 백호 위쪽 이마로 돌아갔는데,머리에 쓴 보관은 원통형이다.그 보관 꼭대기에다 네모꼴 덮개돌(보개)두쪽을 이중으로 올리고 네 귀퉁이에 구리방울을 달아맸다. 보살입상이 입은 옷 천의는 몇가닥의 옷주름을 얇게 조각하는 형식으로 표현했다.옷 바깥으로 드러내 보인 손은 몸에 비해 너무 크다.두 손을 가슴높이까지 들어올렸다.오른손은 위로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금속으로 만든 연꽃을 잡았다.왼손은 아래로 내려 엄지와 중지를 맞댔다.그러니까 손가짐은 아미타불의 이른바 중품중생인인 것이다.좌대는 따로 없고 자연석을 활용했다. 이 보살상은 은진미륵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사기나 인상으로 보면 미륵보살이라기 보다는 관세음보살이다.원통형보관에는 본래 90㎝(3자)가량의 화불인 금동불상이 달려있었다고 한다.보관의 화불은 이 보살상이 관세음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보관의 화불은 구한말에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그런데 무슨 연유로 미륵보살이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조선시대 후기의 문신 권륜이 영조19년(서기17 34년)에 쓴 「관촉사사적」에는 이 보살상을 세운 재미나는 사연을 적어 놓았다.보살상은 37년에 걸쳐 만들었으나 상체와 하체를 따로 만들었기 때문에 결합할 방법이 없었다는 것이다.이때에 한동자가 흙장난을 통해 상하체를 합뜨려 세우는 방법을 일깨워주었다.그대로 해서 거대한 보살상을 세웠는데,동자는 문수보살의 화신이었다는 이야기다.
  • 민자 “사법처리” 결의 당무회의/국민회의·민주 “즉각 소환”요구

    ◎노 전대통령에 전모공개 등 4개항 촉구 여권은 26일 신한은행과 제2금융권에서 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 5백5억원이 새로 발견됨에 따라 노전대통령에 대한 소환조사 및 사법처리 쪽으로 방침을 굳히고 구체적인 시기및 방법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전대통령측은 그동안 여권이 요구해 온 대국민사과및 비자금 전모 공개에는 동의하면서도 노전대통령을 사법처리하지 않는다는 보장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노전대통령측은 특히 검찰의 수사결과가 일부나마 발표되거나 오는 28일 귀국하는 김영삼 대통령의 의지가 분명히 밝혀진 이후에 대국민사과및 거취표명을 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아 여권과 갈등을 빚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민자당의 한 고위 당직자는 이날 『비자금문제는 5공청산과 같이 정치적 흥정이 불가능하다』면서 『노전대통령은 즉각 비자금의 전모를 밝히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것』이라고 정치적 해결 가능성을 배제했다. 민자당은 이날 당무회의에서 노전대통령의 자발적인 비자금 전모공개와 대국민사과를 거듭 촉구하고 검찰수사결과에 따라 사법처리도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정리,4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민자당은 결의문에서 『노전대통령은 당국의 수사진행과는 별도로 스스로 비자금의 전모를 한푼의 숨김도 없이 밝히고 국민앞에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결의문은 또 『이 사건과 관련해 어떠한 은폐·축소도 있을 수 없으며 수사결과에 따라 사법처리의 불가피한 대상이 되는 비리가 밝혀지면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되어야 할 것』이라고 사법처리 방침을 강조했다. 국민회의도 이날 국회에서 소속의원과 당무위원 연석회의를 열고 7개항의 결의문을 채택,노전대통령에 대한 즉각적인 소환조사와 함께 축재재산을 전액 몰수할 것을 주장했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상오 노전대통령 비자금 파문의 진원지인 신한은행 본점을 방문,자체 진상조사활동을 벌였다. 강창성 의원등 민주당 진상조사위원들은 이날 박용건 전무 등 신한은행 임원들을 상대로 4백85억원외의 추가 비자금 여부와 돈세탁 경로등을 추궁했다. 그러나 신한은행측은 검찰수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구체적 답변을 거부했다. □결의문 전문 1.정부당국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해 한점의 의혹도 없이 철저히 수사해 줄 것을 촉구한다. 2.노태우 전대통령은 당국의 수사진행과는 별도로 스스로 비자금의 전모를 한푼의 숨김도 없이 밝히고 국민앞에 사과할 것을 요구한다. 3.이 사건과 관련해 어떠한 은폐·축소도 있을 수 없으며 수사결과에 따라 사법처리의 대상이 되는 비리가 밝혀지면 법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돼야 할 것이다. 4.이 사건을 계기로 모든 정치적 비자금과 비리는 낱낱이 국민앞에 밝혀져야 하며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의 철저한 단절을 통해 새로 태어나는 정치권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지 않으면 우리 모두가 국민으로부터 외면 당할 것이라는 인식하에 확고한 개혁의지로 이 사건에 임할 것을 결의한다.
  • 민자 3차 조직책 인선 본격착수/사고·신설·원외지구당 45곳대상

    ◎총선서 두번이상 낙선한 원외지구당 정비/서울 「참신성」­대구·경북 「TK 주류」 영입 총선에 대비한 민자당의 3차 조직정비작업이 활기를 띠고 있다. 민자당은 16일부터 15개의 사고 및 신설지구당에 대한 조직책 인선에 나서 김영삼 대통령이 유엔과 캐나다 순방을 마치고 귀국하는 이달말쯤 확정한다는 방침이다. ○감사따라 폭 늘듯 또 서울의 7∼8곳 등 전국적으로 30개에 이르는 부실 원외지구당에 대한 정비작업을 함께 벌여 나가기로 했다. 민자당은 현재 위원장이 사퇴의사를 밝히고 있는 지구당을 비롯,현역 위원장이 총선에서 두번 이상 떨어졌거나 한번 떨어졌더라도 3등 이하로 밀린 곳을 부실 지구당으로 판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민자당은 이와 함께 그동안 전국 지구당을 대상으로 벌인 당무감사 결과를 종합하는 작업을 병행,물갈이를 위한 기초자료를 확보하기로 했다. 이번 작업의 결과는 특히 원외지구당은 물론 현역의원의 재공천여부를 결정하는 최대변수가 된다는 점에서 당 안팎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사고 및신설지구당 가운데 경기 평택은 최근 입당한 이자헌 의원,경북 성주·고령은 이상희 전건설부장관으로 굳히고 있다.서울 강북을도 이철용 전의원이 확정단계이나 당내 반발이 만만치않아 고심하고 있다. 송철원 전위원장이 사퇴한 서울 성북갑은 현승일 국민대총장과 심의석 국민연금관리공단감사가 경합하고 있고,이순재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한 중랑갑은 전국구의 이연석 의원이 희망하고 있다. ○서울지역은 유동적 그러나 서울지역은 당선 가능성있는 참신한 인사를 우선으로 한다는 원칙에 따라 유동적이다. 대구와 경북은 「민자당이 TK의 주류」라는 것을 상징할 수 있는 인물의 영입에 힘을 쏟고 있다. 이에 따라 현재 조직책 자리가 비어있는 대구 북갑에는 사공일 전경제부총리와 김만제 포철회장,이종구 전국방부장관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경기 고양갑은 이상일 전청와대비서관과 김재석 산업안전관리공단이사장,이근진 전민주산악회고양지부장이 뛰고 있는 가운데 김영환 대우부회장이 전문경영인 차원에서 영입이 거론되고 있다. ○일부지역당내 반발 안산을은 김진억 서부공단이사장과 정진일 정보문화센터사무총장,노석기 중앙교육연수원교수의 경합속에 정씨가 다소 앞서간다는 평이다. 박준병 의원이 탈당한 충북 옥천은 김건 서울신문 깨끗한산하지키기 본부장이 홀로 뛰고 있으나,탈당지역에는 거물급 인사를 배치한다는 원칙에 따라 의외 인물의 영입도 배제할 수 없다.
  • 5·18 특별법 촉구/경실련 등 가두서명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과 환경운동연합·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 등 「5·18 책임자처벌 특별법 제정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 소속 11개 시민·재야단체는 12일 하오 서울역 광장을 비롯,전국 1백여곳에서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가두서명 운동을 벌였다. 이 연석회의는 『이번 가두서명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시민·사회단체가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해 공동으로 노력한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 「5·18 위증」 수사 반대/민자 “고발주체는 국회”

    민자당은 5일 전두환 전대통령등의 5·18관련 위증 여부에 대한 검찰수사 문제에 대해 『국회에서의 위증수사는 국회의 고발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수사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민자당은 이날 고위당직자회의를 열어 이같이 입장을 정리했다. 민자당의 이같은 해석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지난 89년 국회 청문회에서 전전대통령과 이희성 전계엄사령관,주영복 전국방장관등 7명이 행한 증언을 위증이라며 지난 7월 검찰에 고발한 것을 기초로 검찰이 수사 움직임을 보이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그러나 야당측은 전 전대통령등에 대한 위증처벌을 요구해온 상황이어서 5·18특별법과 함께 여야간에 이 문제와 관련한 새로운 법리공방이 예상된다. 민자당의 이연석 부대변인은 고위당직자회의가 끝난 뒤 『국회에서의 증언·감정법상 위증고발의 주체는 국회 뿐』이라고 검찰수사의 적법성에 문제를 제기하고 『국회차원에서 고발을 검토할지에 대해서는 당으로서 검토해본바 없다』고 부정적 방침을 시사했다.
  • 5·18 특별법 공방/쟁점과 배경

    ◎여­청산합의 잊었나/야­진상규명 덜끝나/“용서” 동의한 DJ 해명 요구­민자/총선호재 판단… 몰아붙이기­국민회의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다소 처진 분위기속에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야당이 주장하는 5·18 관련 특별법 제정 문제가 시시각각 정기국회 최대 쟁점으로 부상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그러나 여야의 시각차가 워낙 큰 데다 내년 총선을 겨냥한 정치적 이해까지 개입하는 듯한 징후도 나타나고 있어 정치권의 공방은 갈수록 치열해질 전망이다. ○…민자당은 「용서」에 동의했던 새정치국민회의 김대중 총재의 발언번복을 들어 야당측의 요구를 「정치목적의 선전공세」로 치부하며 학생·교수 등과의 연계가능성 차단에 나섰다. 손학규 대변인은 3일 『김총재는 정부를 공격하기에 앞서 5·18관련자 처벌문제에 대한 자신의 입장변경에 관해 납득할만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특별법제정 및 관련자 처벌 요구의 논리적 모순을 거론했다. 한마디로 지난 89년 여야가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청문회 증언과 정호용 의원의 의원직사퇴,보상법제정등으로 종결짓기로 합의했던 사안이라는 것이다. 김총재도 당시 평민당총재로서 합의에 참여해 놓고 이제와서 이 문제를 다시 들고 나오는 것은 정치도의에 어긋나고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하는 처사라는 얘기다. 특히 김총재가 14대 대선 직전인 92년 12월2일 관훈클럽토론회에서 『불행한 과거를 청산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과거를 과감히 용서하고 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말한 대목을 상기시키고 있다. 또한 국민회의가 『정부는 진상규명이나 관련자 처벌,피해자들의 명예회복도 외면하고 있다』고 비난한데 대해 민자당은 『진상규명은 검찰의 5·18수사로,명예회복은 광주관련자 전과말소와 보상법제정 등으로 이루어진 상태』라고 반박했다.전직대통령 등의 처벌여부와 직결된 검찰의 불기소처분 문제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이 제출돼 있으므로 헌법재판소의 최종판단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사법적 영역이지 정치적인 타협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민자당의 한 중진의원은 『야당은 진상규명을 위한 기소를 얘기하지만 진상규명은 국회와 검찰수사에서 이루어진 상태』라면서 『사법부는 재판을 하는 곳이지 진상규명에 동원되는 기관이 아니다』고 말했다. 강삼재 사무총장도 『우리는 냉정한 판단으로 당당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이라고 말해 정기국회에서 「정면돌파」 의지를 분명히 했다. ○…국민회의 등 야권은 「5·18」의 진정한 진상규명은 법의 심판이 내려질 때만이 완결된다는 주장이다.관련자들을 우선 재판에 회부,유죄여부를 가린 뒤 처벌여부를 따지자는 것이다. 이미 5공청문회와 검찰수사등으로 진상규명이 이뤄졌다는 여권의 주장에 대해서는 5공특위가 공식 종결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또 김대중총재가 태도를 바꾸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서는 김영삼대통령도 과거 야당 총재 때 5·18관련자에 대한 처벌을 주장했다는 논리로 대응하고 있다. 국민회의와 민주당은 일단 국회에 제출한 5·18관련 특별법을 회기안에 통과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나 실현 가능성에 대해서는 스스로도 회의적이다.다만 학생시위 등으로 5·18문제가 사회이슈화하고 있는 만큼강도 높은 투쟁 자체가 그만큼 내년 총선에 유리한 고지를 확보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5공청산」 89년 1노3김 합의로 매듭/6공때 피해보상… 문민정부서 「민주의거」 규정 5·18의 아픈 상처를 달래려는 노력은 87년 7월1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대표의 광주사태 치유책 마련 지시로부터 시작됐다.노대표의 이같은 지시는 그가 그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선된 후 88년 1월11일 민주화합 추진위원회(민화위·위원장 이관구)발족으로 이어졌다. 민주발전·민주화합·사회개혁등 3개 분과위로 구성된 민화위는 2월13일 ▲광주 위령탑 건립및 망월동 묘지 공원화 ▲사상자 재신고 접수 ▲유가족 및 부상자에 대한 조속하고 충분한 보상과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 및 취업 알선 ▲광주어린이공원 관리권의 유가족단체 이관등 4개 항을 노대표에게 건의하고 해산했다. 노대통령 정권이 출범한 뒤 4월1일 정부는 광주사태 치유방안을 발표하면서 광주사태를 「민주화를 위한 노력」으로 규정했다.4월15일 광주를 방문한 노대통령은 『광주시민의 명예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노대통령은 11월26일 특별담화를 통해 광주특별법 제정을 발표했다. 88년 7월25일 첫 전체회의를 갖고 활동을 개시한 국회 광주특위(위원장 문동환)는 11월18일 청문회를 시작했다.광주특위는 11월19일 전두환 전 대통령을 증인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하고 당시 백담사에 머무르고 있던 전전대통령을 89년 12월31일 광주특위·5공특위 연석회의에 증인으로 세우기도 했다. 광주특위는 89년 2월24일까지 모두 6차례 청문회를 열어 65명의 증인을 신문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들었다. 89년 2월27일 정부는 중앙에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지원협의회」,광주에 광주시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심의회」를 각각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등에 관한 법률안」을 마련,본격적 보상작업에 착수했다.3월10일 노대통령과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양자 회동에서 상무대의 시민공원화 등 치유책에 일부 합의했다. 드디어 89년 12월15일노대통령과 당시 김대중 평민당·김영삼민주당·김종필 공화당 총재 등 네 정치지도자들은 5·18을 비롯,과거청산에 대한 대타협의 내용을 담은 11개항의 합의문을 도출해 냈다.이 합의문에 따라 그해말까지 전전대통령의 국회 증언과 정호용의원의 공직사퇴가 이루어졌다.정치적으로 5·18문제가 매듭된 것이다.그 바탕위에 90년 1월 전격적인 여야 3당 합당이 단행되기도 했다. 90년 4월20일에는 5·18 사상자들에 대한 생활안정금 지급이 시작됐다.사망자 유족과 중상자 2백78명에게는 3천만원씩,일반 상이자 5백85명에게는 1천만원씩,일반 경상자 4백39명에게는 5백만원씩이 지급됐다.7월30일에는 광주보상법이 국회를 통과해 8월17일부터 보상신청 접수가 시작됐다.8월29일 광주보상지원위원회가 구성돼 광주사태 피해자들에 대해 모두 1천5백87억원의 보상금이 지급되었다. 93년 문민정부 출범과 함께 광주사태는 광주민주화운동의 차원을 넘어 광주의거로 규정됨으로써 4·19와 같은 수준으로 대접받게 됐다.정부는 5월2일 5·18을 민주의거로 규정하기로 했다.5월4일에는 광주사태와 관련해 형을 선고받은 6백16명에 대한 전과를 말소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다.김대통령은 5월13일 5·18과 관련한 특별담화를 통해 광주사태 관련자 전과기록 말소와 전남도청 이전등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5·18」처리관련 일지 ▲87·7·1 노태우 당시 민정당대표 광주사태 치유책 마련 지시. ▲88·1·11 민화위발족. ▲〃2·23 민화위 4개항 건의문 노대통령 당선자에게 제시하고 해산. ▲〃4·1 정부,광주사태 치유방안 발표.광주사태를 「민주화를 위한 노력」으로 규정. ▲〃4·15노대통령 광주방문,「광주시민 명예회복 최선」다짐. ▲〃11·18 광주특위 광주청문회 시작. ▲〃11·26 노대통령 특별담화 통해 광주특별법 제정 발표. ▲89·2·24 광주청문회 마감. ▲〃2·27 「광주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등에 관한 법률안」 마련. ▲〃3·10 노대통령·김대중 당시 평민당총재 회담에서 치유책 합의. ▲〃12·15 민정·평민·민주·공화 4당 총재 11개항 합의. ▲〃12·31 전두환 전대통령 광주특위·5공특위 연석회의 증언. ▲90·7·30 광주보상법 통과. ▲〃 5·13 김영삼 대통령 5·18관련 특별담화 발표.전남도청 이전하고 그 자리에 기념공원 조성,광주사태 관련자 전과기록 말소 등.
  • 전국 3만여명 「5·18 시위」/「동맹휴업」 이틀째

    ◎13개 도시서 「문민」 들어 최대/시민단체·서명교수 등 동참/서울 도심 한때 전면 마비… 최루탄 해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소속 전국 1백20여개 대학의 동맹휴업 이틀째인 30일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전국 13개 도시에서 5·18 특별법 제정을 위한 제5차 국민대회가 일제히 열렸다. 전국에서 3만여명이 참가,문민정부이래 최대 규모인 이날 대회에는 학생·재야단체는 물론 사회·시민단체도 가세해 하오 늦게까지 도심 곳곳에서 거리행진과 시위가 이어졌다. 특히 전국 99개 대학 교수 6천4백여명이 이날 상오 서초동 변호사회관에서 「5·18 서명교수 모임」을 발족하고 전국 초·중·고 교사 1만여명도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서명에 동참하는 등 5·18 불기소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한총련도 「5·18 책임자 체포결사대」 2천∼3천여명을 조직하고 학생의 날인 다음달 3일 총궐기하기로 해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이날 하오 서울 장충공원에서는 전국연합과 경실련 등 20여개 재야·시민·사회단체들로 이뤄진 「5·18특별법제정시민사회단체 연석회의」와 「5·18진상규명과 광주항쟁 정신 계승 국민위원회」 주최로 시민·학생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회가 열렸다. 이날 「국민위원회」 등은 오는 15일 지역별로 국회의원들에게 특별법 제정을 위한 서약서를 받은 뒤 16일부터 이틀동안 민자당사를 항의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23일에는 5·18 기소촉구와 관련,70여만명의 2차 서명부를 국회에 전달하기로 했다. 참석자들은 집회를 마친 뒤 동대문로터리를 거쳐 종묘공원까지 3㎞구간에서 거리행진을 벌인데 이어 하오 7시쯤 종묘공원 앞 왕복 8차선 도로를 점거,시위를 벌였다.경찰은 하오 9시쯤 최루탄을 쏘아 이들을 해산시켰으나 별다른 충돌은 없었다.이 시위로 동대문과 광화문 양쪽 차량통행이 2시간남짓 전면마비돼 청계로와 을지로 등 주변도로까지 극심한 정체현상을 빚었다. 또 정기 연·고전을 마친 연세대와 고려대생 1만여명은 지하철 2호선 아현역 주변에 모여 신촌로터리까지 거리행진을 벌인 뒤 하오 8시쯤 연세대에서 폐막제행사를 가졌으며 이 행사로 신촌로터리일대의 교통체증이 3시간남짓 계속됐다. 이에 앞서 휴업 이틀째인 이날 1백25개의 강의가 있던 서울대에서는 자체 휴강과 낮은 출석률로 1백여개 강좌가 무산되는 등 대부분의 대학에서 정상수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경찰은 이날 전국 집회 및 시위장소에 1백35개 중대 1만6천여명을 동원,시민·학생들의 과격 시위에 대비했다.
  • 눈시울 적신 부녀보호소 시찰/백문일 정치부 기자(국감현장)

    28일 상오 강원도 춘천시 석사동의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마리아부녀보호지도소는 때아닌 손님들을 맞아 시끌벅적했다.국회 보건복지위소속 의원들이 부녀보호소를 시찰하러 왔기 때문이다. 미혼모의 안전분만을 돕는 보호소라 주변의 시선이 곱지 않은터에 국회의원들의 방문은 이들에게 반갑기 그지 없었다. 물론 국회의원들이 왔다갔다고 당장 지원이 늘거나 일반인의 인식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그러나 주마간산식 시찰이라도 보호소와 미혼모 입장에서는 사회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측면에서 큰 힘이 되는 것이다. 이같은 분위기는 40여분간 진행된 업무보고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특히 의원들의 자세는 예전의 유람식 시찰과는 판이했다.보호소를 운영하는 천주교 춘천교구의 임홍지신부가 현재 20명의 미혼모를 수용하고 있는 보호소에 대한 업무보고를 할 때는 숨소리조차 들을 수 없을 만큼 진지했다. 임신부가 15세의 미혼모도 있었다고 말할 때는 모두 『저런…』하며 가슴아파했다.양문희 의원(민주)의 『시설운영비는 충분하냐.종사자들의 인건비는어느 정도냐』는 질문에 1인당 지원비가 월4만원이라고 대답하자 의원들은 『지금까지 헛 일을 했다』며 안타까워 했다. 한광옥 의원(국민회의)은 『어떤 분들이 이 곳에 오게 되는냐.아이 아버지를 찾아주기도 하느냐』고 물었으며 송두호·이연석 의원(민자)은 『분만아동들과 산모는 어떻게 되느냐』고 관심을 나타냈다.주양자의원(민자)은 직접 미혼모를 만나 5분간 대화를 나눈뒤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의원들의 면면에서는 하나라도 알고 가겠다는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국정감사장이 아닌데도 질문이 끊이지 않자 박상천 위원장이 『예산심의때 배려하자』고 말문을 막을 정도였다. 이곳에서 종사자로 봉사하는 한 수녀는 『이번 시찰로 이들을 이해하기란 어렵겠지만 조금씩 관심을 가져준다면 이들의 재활에 도움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이날 시찰이 다음 선거를 의식한 전시용 제스처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 1달러 1백엔 유지/G­7 재무 합의할듯

    【도쿄 연합】 서방선진7개국(G­7)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는 다음달 초 워싱턴에서 열릴 연석회의에서 현재 달러당 1백엔을 오르내리고 있는 외환시세를 안정적으로 1백엔선으로 정착시키자는데 합의할 전망이라고 일 교도통신이 25일 국제금융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 소식통은 일본의 경기 침체가 세계 경제의 안정 성장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위기감이 G­7 안에서 고조되고 있다면서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연석회의는 현재의 외환시장을 「질서있는 반전과정」으로 인식하고 협조를 강화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G­7 회의는 의장성명 등으로 이같은 상황 인식을 강조할 것이라고 이통신은 설명했다.
  • 불 베르사유 궁전(세계의 명소/걸작건축감상:22)

    유럽에 첫 나들이를 가는 여행자들은 우선 파리에 대한 기대감에 젖게된다.그러나 파리에 첫 발을 딛게 되는 순간 「프랑스 혁명」의 대상이었던 화려한 왕궁문화의 흔적은 눈에 보이지 않고,낮게 펼쳐진 소박하고 아담한 가로의 표정을 접하고는 왠지 실망감 마저 느끼게 된다. 파리는 「로망스」라는 그들의 노랫말처럼,『파리라는 말이 「로맨스」를 뜻하고,파리는 그어떤 사람의 것도 아니지만,갖기를 원하면 언제나 당신의 것이 될수 있는』 서정적 모습이다.물론 파리가 「도시화」나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이렇듯 본연의 모습을 지켜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파리의 건축법은 매우 까다롭기로 소문이 난지 오래다.모든 공간은 문화재 차원에서 철저히 관리되고 있다.경제적 이익을 위해서 집 안팎을 뜯어 고치는 행위는 그들에게 파리의 역사와 문화에 도전하는 무모함으로 받아 들여질 것이다.그러나 파리 여행코스에서 절대로 빠지지 않는 「베르사유 궁전 관광」에 나서보면 파리에서 느낀 정서적 분위기와는 완전히 딴판의 무대,즉 사치의 극을달리는 귀족문화의 현장에 들어서게 된다. ○왕권의 상징적 건물로 베르사유 궁전은 1623년 루이13세의 계획으로 시작되어 2백년간에 걸쳐 증·개축 되었다.처음에는 파리 서남쪽으로 약 20㎞ 떨어진 곳에 「사냥」을 위한 별궁의 형식으로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그후 귀족계급이 몰락할 때까지 지속된 왕권의 상징적인 과업이었다. 관광버스가 루브르 박물관 옆의 발착장을 출발하면 베르사유 궁전의 역사에 대한 안내방송이 시작된다.재미있는 것은 프랑스인 그들이 타도한 귀족문화의 상징을 세계인을 상대로 판매(?)하는 어색함에 대한 그들다운 변명의 방식이다.만약 자신들의 『우리의 선조는 이렇게 혹세무민을 하였던 것입니다』라고 하면 누워서 침뱉는 일이 될 것이고,『이렇게 훌륭한 건물을 짓고 잘 살았습니다』하면 프랑스 혁명의 정신에 어긋나는 일이 될 터이니 그들도 나름대로 요리조리 궁리를 했음에 틀림없다.안내방송에서 흘러나오는 『우리 프랑스인들은 이들 귀족의 사치를 용납하지 않았습니다.그러나 이제와서 보면 이들 귀족은 베르사유궁전이라는 명작을 우리에게 유산으로 남겨줌으로써 막대한 관광수입을 가져다 주고 있습니다.그들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은 결국 당시의 국민 세금으로 후대를 위해 저축을 한 결과를 낳게 되었던 것입니다』라는 절묘한 넋두리가 일품이다. 앞서 언급했듯이,베르사유 궁전은 사냥용 별장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신축 당시에는 아주 평범한 작은 별장이었다.그러나 이후 확장을 거듭해서 지금은 전체 면적이 1백50만평에 이르고 있다.수렵광으로 알려진 루이13세는 6개 정도의 방이 있는 이 작은 궁전에 소동물원을 만들었다.이곳에서는 초기에 좀처럼 구경할 수 없었던 타조나 펠리컨등 진기한 조류가 사육되었는데,점차로 동물의 종류도 다양해져서 낙타나 코끼리도 그 모습을 나타내었다고 한다.절대권력과 파탄적 귀족문화 공간의 초기 모습이 「진기한 동물원」이었다는 사실이 이채롭다. ○화려한 분위기에 매료 루이 14세에 이르러 베르사유는 당대 최대의 궁전이자 귀족들의 공동주택으로 변모한다.당시의 상황에서 귀족들은 매일 아침 자신의 집을 출발하여수십리 떨어진 베르사유의 제왕에게 충성을 서약한다는 것이 큰 고역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요즈음 말로 「눈도장」찍는 고달픈 일과를 겪고 있던 것이다.그들은 궁전의 규모를 키워가면서 객실수를 대폭 늘려잡아 자신들의 거처를 확보하는 묘책을 택했다.이때부터 베르사유는 「귀족 아파트」가 되었고 밤낮으로 연회가 열렸으며,이른바 「귀족의 반항」이라는 프랑스 혁명의 시초까지 가장 사치스러운 축제공간이 되었다. 역사적으로 베르사유는 지탄받아야 할 타락의 상징임에 틀림없다.그러나 궁전 건축에 동원된 당시의 건축술에는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예술성과 정교함이 가득하다.목욕탕에는 18세기 당시에 이미 보일러를 이용해서 가동되는 독립된 급탕설비가 갖추어져 있었으며 벽화 이외의 건축재료는 천연석을 정교하게 조합하여 사용함으로써 수백년이 지난 지금도 퇴색되지 않은 선명한 색상을 간직하고 있다.특히 대리석과 유리가 조화된 실내는 낮에는 자연채광을 구석까지 고루 반사시켜 주며,밤이되면 샹들리에 빛을 받아 보석같은 분위기를 연출해준다. 혁명후 베르사유는 무용지물이 되었다.그러나 결코 「폐허」로 변하지는 않았다.혁명가들은 부패한 절대권력의 상징인 이 건물을 파괴하지 않고 고스란히 보전하는데에 동의했다.그들은 단지 일부의 왕권을 상징하는 물건들,이를테면 백합꽃이나 왕관등을 없애버리는 것으로 만족했다.가구나 장식품은 경매에 부쳐졌다. 빈집이 된 궁전은 19세기에 들어서 루이 필립왕에 의해 프랑스역사박물관으로 변모되었다.그리고 이곳에 프랑스 건국에서 근대까지에 이르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을 수천점의 벽화와 조각으로 전시하였다.전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칸막이 벽을 변경하고,전시품을 제작하는데만 4년의 세월이 소요되었다. ○「로코코시대」전기 이뤄 베르사유를 떠난 귀족들은 각자 자기집으로 돌아갔다.이들은 베르사유의 화려함에 대한 향수를 달래며 그동안 방치했던 자신들의 집을 단장하기 시작했다.곳곳에서 주택의 설계와 증·개축,인테리어공사가 활발해졌다.베르사유 궁전의 장식적 분위기에 집착한 이러한 경향은 건축사적으로 「로코코」시대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중요한 모티브가 되었다. 총독부 건물의 해체를 지켜보면서 후련함과 아쉬움이 교차한다.물론 총독부 건물과 베르사유 궁전은 타락한 선조의 유산이 아니라 침략자의 상징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갖는다.하지만 역시 우리 땅에서 우리의 피땀으로 시공된 우수한 건축물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우리 것을 찾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단순 해체로만 만족하지 말고 해체과정을 기술 발전의 계기로 삼기위한 지혜와 노력이 더욱 가치있는 것이 아닐까.아울러 우리의 궁전 건축 유산을 보전하기 위해서 입장을 제한하는 방식의 「보호」그 자체 보다는 당시의 기술적·예술적 지혜를 현대에 널리 활용할 수 있는 발전적인 개방의 장으로 관리해나가기 위한 발상의 전환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 민자 중간당직 대폭 교체/세추위장 정재문/연수원장 김동근

    ◎기조위장 강용식/조직위장 최재욱/2정조위장 유흥수/3정조위장 하순봉 민자당은 26일 세계화추진위원장에 정재문의원을 임명하는 등 상당수 중간당직자들을 교체했다. 민자당은 이날 당직개편에서 중앙연수원장에 김동근 의원,기조위원장에 강용식 의원,조직위원장에 최재욱 의원을 임명했다. 또 제1정책 조정위원장에 유흥수 의원,제3 정조위원장에 하순봉 의원을 임명했으며 이상득 제2 정조위원장은 유임시켰다. 민자당은 배명국·김한규·장영철·이택석의원과 김식강진·완도지구당위원장을 당무위원으로 추가 임명했다. 이와 함께 지방자치발전 위원장에 황윤기 의원,민원위원장에 김형오 의원,운영기획 위원장에 유승규 의원,국제협력 위원장에 정영훈 의원을 임명했으며 임정규 부대변인을 중앙교육원 부원장에,이용삼·이연석 의원과 최문휴 고흥지구당 위원장,이준호 대표위원 보좌역을 부대변인에 각각 기용했다. 김영광 국책자문 위원장,박명환 평화통일 위원장,유돈우 당기위원장,장영철 재정위원장,정필근 재해대책 위원장,김길홍홍보위원장,주양자 여성위원장·김영주 정세분석 위원장,권해옥 원내기획 위원장,노승우 정책평가 위원장,성무용 교육평가 위원장은 유임됐다.
  • 눈으로 보는 로켓 이야기/항공연 채연석 박사 책 출간

    ◎중국 불화살이 시초… 최무선의 「주화」 소개/미·러 「우주개발 경쟁」 묘사한 저서도 함께 국내 최초의 상업위성 무궁화호의 발사와 「향후 20 15년까지 20기의 위성발사 계획」발표로 우주개발에 대한 관심이 한껏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의 대표적인 로켓 과학자에 의해 우주과학 이야기책 2권이 한꺼번에 출간돼 관심을 끌고 있다.항공우주연구소 우주추진기관 그룹장 채연석박사(43)가 (주)나경문화에서 펴낸 「눈으로 보는 로켓이야기」와 「눈으로 보는 우주개발이야기」가 그것. 채박사는 과학로켓 1,2호를 성공적으로 발사시켰던 장본인이면서도 「우리것」에 대한 애정을 연구를 통해 실천하고 있는 별난 과학자이다.그런만큼 그의 책 「눈으로 보는 로켓이야기」도 관점이 색다르다.종전의 서구 중심적인 관점이 아니라 로켓의 시초인 중국의 화전(불화살)에서부터 이의 유럽 전래 과정과 우리나라 고대의 로켓 역사를 함께 소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는 13 77년 최무선에 의해 「주화」라는 로켓이 처음으로 만들어졌고세종때에는 이미 세계 최대의 종이통 로켓인 길이 5.5m의 「대신기전」이 제작됐을 정도로 자랑할 만한 로켓개발 역사를 갖고 있다.채박사는 대학때부터의 꿈이었던 이 「신기전」의 복원발사 실험을 대전엑스포때 해보인 바 있다. 중국에서 서구로 전래된 로켓은 계속 수정,보완 개발됐으며 시간이 흐를수록 추력과 정확성이 더해져 마침내는 2차대전에서 영국을 공포로 몰아넣은 독일의 현대적 로켓 V­2로 발전하는 과정도 재미있게 소개됐다. 이책은 또한 로켓이 어떻게 인공위성 발사로 발전하고 우주선을 달에 보낼 수 있게 됐는지,미래의 로켓은 어떤 모습이 될지도 보여주며 현대 로켓의 개척자 지올코프스키와 미국 로켓의 아버지 고다드,우주여행의 이론을 세운 물리학자 오베르트등 우주개발에 평생을 바친 과학자들의 열정적 삶을 묘사해 독자의 감동을 자아낸다. 「눈으로 보는 우주개발 이야기」는 러시아의 세계 최초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의 발사로 촉발된 러시아와 미국간의 숨막히는 우주개발 자존심 대결을 생생히 묘사했다.또 일본과 중국프랑스 영국등 그밖의 강대국들의 우주개발 실태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러시아의 달로켓 개발계획,우주정거장 건설계획등도 자세하게 언급해 자료적인 가치도 높아 보인다. 『로켓과 우주개발 이야기는 이제 소수 전문가들의 독점물이 아니라 21세기 우주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상식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책을 썼다는 채박사는 특히 청소년들에게 우주개발의 꿈을 갖도록 소망했다.경희대 물리학과 출신의 채박사는 87년 미국 미시시피주립대에서 항공우주공학 박사학위를 받고 88년부터 천문우주과학연구소­항공우주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해 왔다.
  • 한국­격동의 반세기 발자취/1945∼95:1

    ◎분단대결 구도속 민주주의 꽃피우다/동족상잔의 전쟁 발발… 전국토 초토화­1950년/5·16 쿠데타… 본격 개발독재시대 돌입­1961년/유신 선포… 장기집권의 「정치암흑기」로­1972년 95년 8월15일.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 통치에서 벗어나 자주독립을 되찾은지 쉰번째 맞는 광복절이다.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민족상잔의 비극과 국토의 허리가 꺾이는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분단을 원죄 삼아 정치·사회등 각부문에서 여러가지 사건들이 꼬리를 물었으며 최근들어서는 고속성장의 후유증으로 붕괴·폭발등 인재가 속출,광복 반세기사에 깊은 골이 패이게 했다.그러나 한민족은 이같은 역사의 도전을 끈질김과 슬기를 갖고 성공적으로 극복,전쟁의 폐허속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눈부신 꽃봉오리를 피워냈다.광복 및 분단 반세기동안 빚어진 영욕의 역사를 연도별로 간단히 정리해본다. ▷1945년◁ 8월15일 한민족은 36년간의 일제강점에서 벗어났다.그러나 얼마뒤 9월2일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소양군의 한반도 분할점령이 발표돼 분단의 씨앗이 심어졌다.김일성은 9월19일 원산항을 통해 북한에 들어왔다.이 가운데 10월25일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을 중심으로 2백여 정당대표가 회합해 조선독립 촉성중앙협의회를 발족시켰다.김구등 임정요인들은 11월23일 개인자격으로 뒤늦게 환국했다.연합국은 12월28일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 조선 신탁통치를 결정,12월31일 반탁운동이 대대적으로 전개됐다. ▷1946년◁ 조선공산당은 1월2일 입장을 급선회,신탁통치 지지에 나섰다.5월23일에는 군정장관의 허락없이 38선을 무단 월경하는 것이 금지돼 분단이 사실화됐다.이에 따라 이승만은 6월3일 남한단독정부 수립을 천명했으며 소련은 7월2일 서울영사관을 철수했다.대구에서 쌀배급요구를 내세운 10·1폭동이 일어나 3천7백명이 체포돼고 16명이 숨졌다. ▷1948년◁ 2월26일 유엔은 남한단독 총선거 실시를 결의했다.김구등 한독당 대표들은 이에 반발해 4월19일 38선을 넘어 김일성과 남북연석회의를 갖고 통일방안을 논의했다.또한 제주도에서 4월3일 남한단정에 반대하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그러나 결국 5월10일 유엔 한국위원회의 감시 아래 남한단독 첫 국회의원 총선거가 실시됐다.총선 이후 첫 소집된 국회는 7월1일 대한민국을 국호로 결정했으며 원내 선거로 초대대통령에 이승만을 선출했다. ▷1949년◁ 5월20일 남로당 국회프락치사건이 일어나 국회의원들이 체포됐다.미국은 같은날 미군철수를 발표했으며 6월29일 철수를 완료했다.이에 앞서 6월26일 민족지도자 김구선생이 안두희에 의해 피살,국민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1950년◁ 미 애치슨 국무장관은 1월12일 미방위선에서 한국이 제외된다고 말했다.반면 1월26일에는 외침시 미군의 개입을 보장하는 한미상호방위원조협정이 체결됐다.마침내 6월25일 한국전쟁이 발발,53년7월27일 정전협정이 체결되기까지 3년여간 전국토가 전화에 휘말려 폐허화됐다.3일만인 6월28일 서울이 인민군에 함락됐으며 같은날 새벽 3시 한강인도교가 폭파됐다.미국은 6월27일 참전을 결정하고 유엔 안보리에 연합군 결성을 제안,7월7일 안보리에서 유엔군 최고사령부 설치를 채택됐다.부산까지 계속 밀리던유엔군은 9월15일 새벽 인천상륙작전을 감행,9월26일 서울을 수복한데 이어 38선을 돌파하고 북진에 들어갔다. ▷1951년◁ 중국군은 1월1일 6개군단으로 38선을 넘어 남하했고 정부는 다시 1월4일 부산으로 후퇴했다.이 가운데 공비토벌을 이유로 거창양민 6백63명을 국군이 학살한 사건이 벌어졌다. ▷1953년◁ 이승만은 미측의 조기 휴전 추진에 반발해 6월18일 반공포로 2만7천여명을 석방하는등 미측에 압력을 가했다.그러나 7월27일 유엔과 북한·중국이 당사자로 서명한 가운데 휴전협정이 조인됐다.북한에서는 8월7일 박헌영등 남로당 계열을 간첩혐의로 사형을 집행했다고 밝혔다. ▷1960년◁ 전년의 사라호 태풍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은 것을 간신히 수습하고 3월15일 정부통령 선거가 실시돼 4대 대통령에 이승만대통령이 당선됐다.그러나 부정선거였음이 밝혀져 거센 항의시위가 빚어졌다.4월11일 마산에서 최루탄에 맞아 숨진 김주렬군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됐다.4월19일 서울에서 2만명의 학생들이 대대적인 도심시위를 벌여 4·19혁명의 불길이 당겨졌다.4월26일 이승만대통령은 마침내 하야성명을 발표했다.이에 따라 4월28일 과도내각이 구성됐으며 이승만은 5월29일 하와이로 망명길을 떠났다. ▷1961년◁ 5월16일 박정희소장의 주도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다.전두환대위가 이끄는 육사생도들은 18일 쿠테타지지 시위를 벌였다.박정희는 20일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결성하고 의장에 취임했다.이어 용공분자와 깡패 6천2백여명을 검거했다고 발표했다.7월27일 미측은 한국군사정부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 ▷1962년◁ 한일양국은 3월12일 외무장관 회담을 개최했다.또 3월19일 최고회의는 63년 민정이양을 발표했으며 정치활동정화법을 공포했다.이에 따라 윤보선대통령이 사의를 표명하자 박의장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취임했다.또 6월10일에는 10환을 1원으로 평가절하하는 화폐개혁이 단행됐다.10월15일에는 한미행정 협정실무자회담이 학생들의 반대속에 18개월만에 재개됐으며 11월12일 김종필은 일본 오오히라와의 비밀메모를 작성했다. ▷1963년◁ 1월18일 민주공화당이 발기선언을 가졌으며 박정희는 민정불참을 발표했다.25일 김종필은 순회대사 자격으로 자의반 타의반 외유길에 올랐다.11월26일 실시된 6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공화당은 압승을 거두고 이어 박정희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1964년◁ 4월1일 국회에서 김종필과 오히라간의 비밀메모가 공개되면서 학생시위가 격렬해지자 정부는 6월3일 각급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1965년◁ 국회는 1월26일 베트남에 대한 국군공병단의 파견동의안을 통과시켰다.또 2월20일에는 한일기본조약이 가조인됐다.군은 한일조약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가 날로 거세지자 4월19일 위수령을 발동했으며 정부는 6월22일 한일협정을 정식조인했다. ▷1966년◁ 6월18일 장창선이 세계아마레슬링 플라이급 자유형에서 금메달을 땄다.1주일 뒤인 6월25일에는 김기수가 국내 처음으로 주니어미들급으로 세계챔피언에 올랐다. ▷1967년◁ 3월22일 북한 중앙통신부사장 이수근이 위장 귀순했다.5월3일 제6대 대통령선거가 실시돼 박정희후보가 당선됐다.7월8일 중앙정보부는 동베를린 간첩단사건 관련자1백94명 가운데 1백4명을 구속했다. ▷1968년◁ 1월21일 김신조를 비롯한 무장공비31명이 청와대기습을 위해 서울에 잡입했다.1월23일에는 푸에블로호가 납북됐다.4월 파라과이와의 이민협정에 체결됨으로써 남미 이민의 막이 올랐다. ▷1969년◁ 2월5일 서울시 중학교 무시험 전형이 실시됐다.3월22일에는 3·1고가도로가 개통됐다.3월28일 김수환대주교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추기경에 선임됐다.10월17일 3선 개헌안이 국민투표에서 가결됐다. ▷1970년◁ 3월17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강변로에서 정인숙이 피살,배후를 놓고 전국이 들끓었다.4월8일 와우아파트가 무너져 33명이 사망했다. 11월13일 평화시장 재단사 전태일이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해 노동운동의 험난한 앞길을 예고했다.
  • 민주당/「제2 분당」 위기/KT,「연말 총재사퇴」 거부

    ◎전당대회·당직인선 예정대로­KT측/강행하면 정치·법적대응 불사­구당파 당정상화 방안을 놓고 갈등을 겪고 있는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와 구당파가 핵심사안인 이총재의 거취문제로 첨예하게 대립,제2의 분당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민주당은 14일 서울 마포당사에서 총재단회의를 열고 전당대회 개최 및 당직 인선 등 당무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으나 당수습방안에 대한 양측의 근본적인 시각차로 의견접근을 보지 못했다. 이총재는 회의에서 지구당위원장의 3분의 2 이상이 당헌에 명시된 전당대회를 개최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므로 예정대로 전당대회를 오는 28일 열 수밖에 없으며 사무총장을 비롯한 주요당직도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원기 부총재를 비롯한 구당파는 준비절차가 미흡한 상황에서 전당대회나 당직인선을 강행한다면 정치적·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일단 오는 16일 당사에서 신당사태 이후 처음으로 당무회의를 소집,전당대회 개최문제를 논의하는데 이어 17일에는 소속 의원 및 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를 열기로 잠정합의했다.그러나 양측간의 뚜렷한 견해차로 서로의 분명한 입장만 확인한 채 각자 「제갈길」로 나아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양측은 지난 13일 잇따른 접촉을 가졌으나 이총재가 제의한 대로 8월 전당대회를 예정대로 치르되 12월 전당대회에서는 이총재가 당권경쟁에 나서지 않겠다는 점을 약속해 달라는 구당파의 요구를 이총재가 거부,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민주 내분 수습협상 무산 안팎/4시간 격론… 분위기 험악/양측 실력대결 태세… 「분당이후」 더 관심/17일 원내­외 연석회의가 최대고비 될듯 민주당의 이기택 총재와 구당파간의 내분사태가 점차 분당위기로 치닫고 있다.이총재와 구당파의 김원기·이부영·노무현 부총재,홍영기 국회부의장,중도파의 이중재·박일 고문 등이 참석한 가운데 14일 열린 총재단회의에서 양측은 당수습방안을 놓고 4시간 동안 격론을 벌였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첫 공식협상이 무위로 끝난 셈이다. 예상된 결과이면서도 보다 심각한 것은양측이 이날 회의를 거치면서 감정의 골이 더욱 깊어졌다는 점이다.더욱이 양측은 저마다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분당 이후의 행보에 더 관심을 쏟는 모습이어서 특별한 전기가 마련되지 않는 한 분당은 시간문제로까지 비쳐지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이총재는 위기에 처한 당의 상황을 들어 우선 오는 28일의 전당대회를 예정대로 개최,당체제부터 정비하자고 주장했다.그런 다음 당세확장특위를 구성해 외부인사들을 대거 영입,당의 면모를 일신한 뒤 오는 12월 전당대회를 다시 열어 내년 총선 등에 대비한 당의 진용을 갖추자는 것이다.이총재는 『나보고 물러나라고 하는 데 이는 김대중씨가 신당을 만들 명분으로 들고 나온 요구』라면서 『여기서 물러나면 정치생명이 끝나는데 누가 물러나겠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이에 맞서 구당파측은 『아무리 총재라도 당내 합의를 무시하고 전당대회를 강행할 수는 없다』며 이총재가 전당대회를 강행하면 실력행사와 함께 법적 대응까지 불사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노무현 부총재는 『전국의 대의원들을모아 전당대회장을 이총재 규탄대회장으로 만들겠다』고 윽박지르기도 했다.구당파는 이어 12월 전당대회 때 당권경쟁에 나서지 않겠다는 보장을 확실히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이총재는 『당권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면서도 『12월 전당대회에서 경선에 참여하는 문제는 그때 가서 결정하겠다』고 즉답을 회피했다.이중재고문이 제안한 공동대표제 도입방안도 이총재에 의해 거부됐다.이런 과정에서 양측은 고성을 주고받으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양측은 결국 난상토론 끝에 16일 당무회의를 열어 8월 전당대회의 적법성 문제를 따진 뒤 개최여부를 결정짓기로 했다.하지만 당헌에 대한 해석이 서로 달라 어떤 결론이 나든 양측 모두가 이를 수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부영부총재는 회의가 끝난 뒤 『이총재는 전혀 협상할 의지가 없다』고 비난하고 『이제 힘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대결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이와 관련,양측은 오는 17일 소속의원 전원과 원외지구당위원장이 참석하는 연석회의를 열어 8월전당대회 개최문제 등을 포함한 당수습방안을 논의한다는 계획이어서 수습이냐,분당이냐의 최대고비가 될 전망이다.
  • 멋진 환경/쾌적 환경/아파트 건설 새바람

    ◎건설사,다양한 부대시설로 고객 유혹/조깅코스·정수시설·공기정화기는 기본/정자·인공수로 꾸미고 광섬유 조명까지 아파트를 단순 주거공간으로서가 아니라 환경과 건강으로 승부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4계절 식수,산책로,조깅코스,이벤트행사장,휴게소,분수,계곡,인공수로,광섬유를 이용한 조명시설 설치 등 높아진 수요자들의 입맛에 맞추려는 주택업체들의 관련 상품은 다양하다.깨끗한 수돗물과 맑은 공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의 취향에 따라 정수설비나 공기정화 시스템을 설계에 반영하는 것은 이미 기본에 속한다. 현대산업개발은 이달 31일 입주예정인 고양시 화정 현대아파트 단지에 30m의 계단식 인공수로와 분수대를 설치했다.수로바닥은 5색의 모래를 깔았으며 앞에는 대나무를 심었다. 또 기존의 수은등 대신 광섬유를 이용한 조명시설을 설치하고 단지내 곳곳에는 10평미만의 소규모 공원을 만들었다.서울 대림동을 비롯,인천 목련2차와 김천 신음지구에는 5백㎡의 롤러스케이트장을 설치했다. 선경건설도 부산해운대,울산 우정 2차,대전 엑스포아파트에 롤러스케이트장을 설치했다. 금호건설은 인천 부평에 짓는 아파트 단지에 차별화된 조경시설을 선보인다.진입로 곳곳에 휴게소를 만들고 단지 중앙에는 정자와 산책로가 있는 테마공원을 꾸미는 한편 생태공원인 자연학습장,아크로폴리스 형태의 야외이벤트 행사장과 씨름장도 마련했다.이와함께 벽천,분수,실개천 등을 곳곳에 배치했다.유실수와 향토수목을 심어 전원풍의 아파트가 되도록 했다. 「그린홈,클린아파트」를 내세우는 대우건설은 올해부터 단지마다 「대우동산」이라는 단지공원을 조성하고 있다.입구에 담쟁이를 올린 돌담과 대형유실수를 심고 공원 내에는 육각정자를 설치하고 자연석과 마사토로 꾸며 한국적 분위기를 내는 공원이다. 삼성건설은 수원시 율전아파트에 충격흡수용 특수바닥재를 깐,길이 2㎞ 폭90㎝의 조깅코스를 설치할 예정이다.한신공영도 이미 부산 괘법 2차단지에 6백m의 조깅코스를 만들었다. 두산건설은 4계절 조경으로 차별화를 시도한다.단지내 가로수는 느티나무를,입구에는 벚나무를 심는 등 소나무 일색인 기존의 식재에서 벗어나 1백여종의 수목을 심어 계절마다 자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동아건설은 의정부 장암아파트에 분수대와 시계탑,그리고 수영장을 만들어 분양 1백%의 실적을 올렸다. 아파트 외관을 독특하게 꾸며 조경의 멋을 한껏 살리기도 한다.LG건설은 부산 개금동에 짓는 아파트 꼭대기층 발코니 천장을 하늘이 보이도록 반투명유리를 사용했고 계단벽체도 유리를 써 멋을 냈다.
  • 정치개혁의 과제와 방향/정책기획위 정책포럼 중계

    대통령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회(위원장 서진영)는 11일 프레스센터에서 한국정당정치 현실과 개혁방향과 선거제도 문제와 개선방안을 주제로 제2차 정책포럼을 가졌다.이날 정책포럼의 주제발표 및 토론 요지는 다음과 같다. ◎정당정치 현실과 개혁 방향/최한수 교수 건국대·정치학/분당·탈당땐 의원직 박탈/이합집산 철새 발못붙이게 정당의 성격변화에 따른 정당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정당의 핵심기능은 후보추천과 그의 당선을 돕는 「선거기능」이며 이른바 「정책정당」은 허구다.정당의 정책은 정당 차원이라기 보다는 후보(의원) 개인의 아이디어에서 출발한다.따라서 사실상 가부장적이고 권력배정적인,당의 이름을 빈 의원들에 대한 통제력이 약화되고 더 나아가 해제되어야 한다.우리나라의 정당 개혁은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국정당이 안고 있는 대표적인 문제는 정당구도와 운영의 취약한 민주성,지역주의를 배경으로 하는 가부장적인 사당화,지역주의 토대의 지역당과 지역패권적 1당 지방정부,하루살이 단명정당,무소신 무정견속에 이해에 따른 합종연횡의 이합집산에 의한 불안정한 정당체계 및 전근대적인 당원구조등이다. 정당의 제도화를 촉진하고 정당체계의 안정화를 기하며 당리당략과 사리사욕에 의해 이합집산하는 정당문화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분당 및 탈당하는 의원은 의원직을 박탈,즉시(45∼50일이내) 보궐선거를 해야한다.지역주의타파를 위한 응급조치로 중대선거구제로 바꿔야 한다.여당의 안정적인 다수의석 확보를 위해서는 다당구도를 통한 정책연합을 유도한다. 여소야대 국회에 대비하여 여권연합 또는 통합의 정치관행이 필요하다.지역주의 구도에서의 내각제는 정책연합 대신 지역연합으로 인한 망국적인 지역주의 심화를 초래할 것이 분명하다.연합이 필요한 상황이 초래되면 내각제적 요소가 가미된 우리 현행제도를 「대통령­수상제」 형태로 적절히 운영하는 것도 고려의 대상이다. 중대선거구제하에서 소수당 난립을 방지하고 정당연합을 촉진하여 대정당 중심의 국회가 구성되도록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을 강화하여 현재의 20명을 60명으로 상향조정해야 한다.또 교차투표를 제도화하고 유권자들의 의원에 대한 감시·평가수단으로 대부분의 표결은 기명으로 해야한다.대통령으로부터 여당이 조화로운 자율성을 확립해야 한다.여당이 정부에 예속화되면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야당은 결국 정부의 전위대인 여당을 공격하지 않을수 없다. 정당원의 구조를 연고주의에서 이익지향적으로 탈바꿈하기 위해 이익집단과 노조의 정당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부정과 투쟁,야누스적 술수의 정치꾼들은 이제 자리를 비켜주어야 한다.토론과 타협,양심과 전문성을 갖춘 새 정치인들이 파격적으로 충원되어야 한다.과도한 국고보조로 인하여 비생산적인 군소정당의 난립과 정당불신풍조를 막기위해서 정치자금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정당의 조직개혁방향과 관련,현행 지구당구조를 선거구협의회로 전환해 대의원을 직접 선거의 득표율,활동당원수 등을 기준으로 할당선정하는 경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국회의원후보 공천은 지역별 특성을 고려하여 광역시와 도를 분리해 선출방법을 다양화해야 하는데 광역시 후보는 협의하향식으로,도급 후보는 하향식 제한경선,상향식 선정,중앙당·지역구 연석협의 확정 등의 방법으로 선출할 수 있다.건실한 지구당의 정당활동을 통한 선거운동이 가능하도록 선거법을 개정해야 한다. ◎선거제도 문제와 개선방안/김선종 교수 강원대·정치학/중대선거구제·비례제 도입/「지도자중심의 붕당」 탈피해야 실천적 민주주의를 달성하고 민주주의 제도화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의회와 정당같은 정치적 하부구조의 민주화에서부터 그 출발점을 찾아야 한다.특히 당의 하부구조의 민주화와 자율성을 향상시키는 것이 지방정치시대에 지역정당의 역할과 그에 따른 위상을 강화할 수 있게 해주며 이는 나아가서 중앙당의 당내 민주주의를 활성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한국 선거제도의 개혁은 3가지 필요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첫째,참신하고 유능한 정치세력이 정치권으로 진입하는 제약이 되는 권력과 정치의 독과점 현상을 구조적으로 개선하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둘째,정책중심의 정치적 경쟁이 부재한 상황에서 인물과 지역중심의 투표성향이 고질적으로 구조화 되고 있는 정치구조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새로운 차원의 정치적 경쟁의 장을 열어가는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셋째,표의 등가성과 대표의 정확성 및 정치적 안정과 같은 민주주의의 보편적인 가치를 이땅에 뿌리내리는 데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아울러 선거구의 재획정 과정에서는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와 한국적 특수성을 가장 효과적으로 절충하기 위한 기본원칙과 기준이 설정돼야 한다.국회의석은 3백석이내로 하되 지역구 대 비례대표 의석의 비율은 2대1을 유지할수 있도록 명문화할 필요성 등을 제도적·구조적으로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필요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이상적인 선거제도는 중대선거구제와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결합하는 형태다.중대선거구는 전국을 57개의 선거구로 재획정하여 전체 2백명의 국회의원을 선출한다.지역의 특성과 민주주의적 보편성의 가치를 체계적으로 고려하여 한 선거구에서 2∼6명을 선출하며 이럴 경우 각 지역구별로 선출되는 의원은 평균 3.5명이 된다.유권자는 후보자 가운데서 1인에게 투표하고 당선자는 선거구의 크기에 따라 각 정당별 득표비율에 따라 결정한다. 위로부터의 주체적 역량을 결집해 「미완성의 정치혁명」을 완성시키기 위한 정치개혁적 차원에서 획기적으로 도입되는 정당투표제는 국민과 정당,국민과 정부 및 시민사회와 정치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시키는 전환점이 되리라고 생각한다.정당의 기능과 역할 및 업무수행 능력에 대해 국민이 표로써 지지 또는 응징을 표출한다는 것은 정당을 길들이기 위한 국민적 견제가 제도화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권위주의적 유산과 잔재에 안주해온 기존의 정당을 「지도자 중심의 붕당」으로부터 「정책중심의 대중정당」으로 환골탈태하도록 강제하는 제도적 장치가 될 것이다. 이제는 개혁지향적이고 참신한 정치세력과 전문적 지식을 갖춘 인재를 과감하게 영입하여 지배집단 내부로부터 새로운 활력소를 불어 넣고 또한 정당의 이익 결집 능력과 정책개발을 통한 업무수행 능력을 배가시킴으로써 「국민과 함께 하는 정당」 「생활정치를 구현하는 정당」 그리고 「세계화를 주체적으로 선도하는 정책정당」으로서의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 국민적 지지를 확대하는 최선의 방안이 될 것이다. ◎정책기획위 토론 요지/내각제는 관료 권한강화만 초래/공동선 추구 시민단체 정치참여 중요 ▲이광훈 경향신문 논설주간=우리 정치의 후진성으로 정치충원 채널의 전근대성을 들 수 있다.가방심부름하는 수행비서로서 오랜 도제적 관계를 견디어야 하는 정치입문 풍토에서 자라온 국회의원들은 아직도 능력보다는 선수를 중시한다. 정당 사무처에서 오래 몸담아도 정치에 입문할 길이 없어 집권하면 국영기업체에 「취직」하는게 고작이다. 이익집단의 정치참여도 중요하지만 법과 정의,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단체 등 가치집단의 정치참여가 더 중요하다.비례대표가 야당의 공천장사와 여당의 나눠먹기에 악용되지 않기 위해서는 직능대표성 확보가 전제돼야 한다. ▲이삼열 숭실대교수=권력의 독과점 현상을 막고 합리성·규범성의 지배를 확대해야 한다.이를 위해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 우리나라대통령제는 세계에서 가장 비대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권력을 잡겠다는 욕심에서 파당과 이합집산,보스중심의 정치가 만연한다. 입법부나 사법부의 구성에 대통령이 사실상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어서 모든 일에 대한 책임과 비난이 대통령에 집중된다.따라서 대통령의 권한은 약화시키되 대신 4년을 임기로 한차례 중임을 허용해야 한다.그리하여 대통령은 외교·안보·통일문제 등에 연속성을 갖고 집중해야 한다. 정당구조는 각계 전문대표와 지역대표들에게 당원자격으로 참여를 허용,상향식 운영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의석의 3분의 1은 비례대표를 허용해야 하지만 중·대선거구제는 우리 현실에서 또다른 소지역 대표들의 나눠먹기를 양산할 수 있다. ▲서경석 전경실련 사무총장=정치개혁의 방향상실로 국민들은 허탈감,무력감에 빠져 있다.정치개혁은 더 이상 정치의 공급자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지난 임시국회에서 여야가 야합으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정치에 대한 환멸이 정치개혁의 유리한 여건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법으로만 되는게 아니다.분당이나 탈당시 의원직을 법으로 박탈하자는 주장은 정치개혁을 위해 탈당하는 의원을 제약할 수 있다.정치는 자유경쟁의 원리를 기본으로 해야지 또다른 규제로는 안된다. 중·대선거구제엔 반대다.이는 내각제를 조성하며 내각제는 지역할거주의가 팽배한 우리 풍토에서는 관료의 권한강화만을 가져올 것이다. 대도시에서는 대선거구제를 채택하되 농촌지역은 귀속의식을 고려,소선거구제를 배합하는 방식은 고려해봄직하다. 단체의 선거운동 금지조항 폐지에 적극 찬성이다.여당은 재야단체를 야당은 관변단체를 제어하기 위해 이 조항을 만들었지만 이는 정치를 둘러싼 주변단체들의 비판과 위협을 봉쇄하고 기득권,특권을 유지하려는 정치권의 인위적 진입장벽이다.참신한 개혁세력의 역할에도 장애가 되고 있다. ▲손학규 민자당의원=개방성,민주성이라는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는 이 정부가 효율성,경쟁력을 높이는데 최대의 장벽은 지역분할구도다.이를 타파하기 위해 선거제도는 단기적으로 중·대선거구제가 돼야한다.도폐지를 포함한 지방행정구조 개편도 추진해야 한다. 책임정치와 정치의 연속성을 위해 중임제를 실시,집권자에게 국민의 심판을 받을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새로운 사고,축소·분산된 역할을 수용할수 있는 탈권위주의적 인물로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한다. ▲박상섭 서울대교수=비례대표도 우리 풍토에서는 보스의 권한강화만을 가져올 수 있다.정치권력과 사회의 단절은 정치충원의 파행성을 가져오고 있다.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 북한 대학과 서신교환/전남대 조통위장 구속

    전남경찰청은 10일 북한 대학 등과 팩시밀리로 서신을교환한 전남대 총학생회 조국통일위원장 유연석씨(24·농생물학과 4년)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긴급구속했다. 유씨는 지난달 27일 전남대 교내에서 열렸던 남·북한 및 재일교포 학생 동시집회를 추진하면서 북한의 김책공대 학생위원회,조총련 산하 일본 조선대 학생회 등과 2차례 팩시밀리 서신을 교환하고 집회장에 김책공대와 일본 조선대의 깃발 1개씩을 설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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