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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 공화국과 관계 강화/정부/자원개발·합작 직접협상

    정부는 소련의 쿠데타실패 이후 소련연방내 각 공화국의 위상이 격상되는 추이를 보임에 따라 소연방과의 관계강화와 병행해 각 공화국과의 협력관계도 증진시켜 나갈 방침이다. 정부는 특히 고르바초프소연방대통령과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사실상 연정형태로 소련의 대내외정책을 수행해 나갈 것으로 보고 러시아 공화국과의 관계강화를 위해 옐친대통령의 방한을 적극 추진키로 하는 한편 민간부문에서 러시아공화국과 경제협력을 증진시켜나가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25일 『소련사태를 계기로 각지방공화국정부의 독자성강화가 예상되므로 기존 30억달러 대소경협은 연방정부와 계획대로 이행하되 자원개발및 합작투자사업 등은 해당공화국들과의 협력을 통해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말하고 『특히 시베리아지역을 관할하는 러시아공화국과의 협력관계를 우선 염두에 두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 옐친에 사실상 대권 이양/“공산당 해체” 무엇을 의미하나

    ◎반공 대세에 고르비 “정치적 패배”/개혁발걸음·공화국독립 가속화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이 공산당서기장직 사임을 선언하고 공산당 중앙위의 해체를 촉구하면서 공산당 재산 몰수를 선언한 것은 이미 몰락의 길로 접어든 공산당이 최후의 보루마저 상실하는 동시에 고르바초프의 입장에서도 앞으로의 어떤 상황도 감수하겠다는 정치적 패배선언을 의미한다. 고르바초프는 쿠데타가 실패로 끝난 뒤 공산당 반대 분위기가 팽배한 가운데 대통령직에 복귀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보수반동세력을 제거해 공산당으로 하며금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추역할을 맡도록 하겠다고 서슴없이 밝혔었다.공산당이 민주적인 국민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이 아직까지 남아있다고 믿었고 이제 개혁의 대세가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에게 넘어가 버린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그의 유일한 지지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공산당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가 불과 이틀만에 사실상 공산당과의 결별쪽으로 방향을 급선회할 수 밖에 없었던 데는 급격히 확산되는 공산당에 대한 소련국민들의 거부감과,특히 이같은 기류를 등에 업은 옐친의 거센 압력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핵심각료 인선과정에서 옐친에게 끌려다니며 그의 요구에 전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었고 러시아공화국의회에서 연설을 마치고 나오다 군중들에게 야유를 받는 등 수모를 겪고있는 고르바초프로서는 더이상 버티기에 한계를 느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공산당원 전체가 무차별적으로 비난받아서는 안된다』고 말해 여운을 남기기는 했으나 그의 의도에 관계없이 공산당은 이미 붕괴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따라서 이제 소련 공산당은 더이상 집권당이 아닐 뿐 아니라 일부 동구권국가에서 처럼 불법화될 위기에 직면해있으며 소련의 실질적인 대권행사는 사실상 옐친의 손으로 넘어간 셈이다. 칼자루를 손아귀에 쥔 옐친은 시장경제로의 점진적인 전환을 추진해오던 고르바초프와는 달리 급진적인 전환을 추진하고있다.옐친의 측근인 실라예프현러시아공화국총리가 연방총리로 임명돼 정부구성위원회와 경제계획위원회를 이끌고 확고한 시장경제 신봉자들이 경제계획위원에 포함된 것은 향후 소련경제개혁의 가속화를 짐작케한다.소련의 보수회귀 가능성을 우려해 대소경제지원을 머뭇거려오던 서방세계의 태도도 적극적인 방향으로 돌아설 것으로 보인다.개혁 이외의 다른 대안도 없지만 그렇다고 소련경제의 앞날이 장미빛만은 아니다. 경제보다도 당장 더욱 큰 혼란에 휘말리게 되는 문제는 연방체제의 변화이다.과거 고르바초프의 연방정부는 발트3국 등 산하 공화국들의 독립추진에 대해 어떻게 해서든지 연방으로부터의 이탈을 저지하려는 입장을 취해왔다.그러나 옐친은 실세로 부상한 뒤 발트3국의 독립을 승인한다고 입장을 밝혔다.일부 공화국들의 탈소독립이 기정사실화단계에 들어간 것이다.이에 자극받아 2번째로 규모가 큰 우크라이나공화국도 24일 독립을 선언하는 등 소연방에서의 독립이 유행처럼 번질 전망이다.옐친이 이같이 여유있는 자세를 보이는 것은 자신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이 소련전체면적의 3분의2를 차지하는 등 대세를 좌우하고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된다.그러나 독립열기가 군소자치주로까지 파급돼 걷잡을 수 없는 연쇄반응을 일으킬 경우 이 또한 만만치않은 문제로 대두될 수 밖에 없다. 소련은 비공산정권시대를 맞음으로써 개혁에의 최대장애물을 일단 제거하기는 했으나 개혁의 앞날은 아직도 험난하기만 하다. □소 공산당 약사 ▲1898년=러시아 사회­민주 노동당(RSLDP),민스크에서 1차 당대회 개최. ▲1903년=RSLDP 2차 당대회.레닌당이 직업적 혁명가로 철저하게 구성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소속한 볼셰비키(다수파)와 멘셰비키(소수파)의 분열을 주도. ▲1917년=RSLDP,11월7일의 혁명에서 볼셰비키가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임시정부를 타도하고 권력을 장악함. ▲1918년=RSDLP,러시아 공산당으로 개칭. ▲1921년=레닌,10차 당대회에서 민간기업을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신경제정책(NEP) 제안. ▲1924년=레닌 사망.이후 수년간 당내투쟁이 전개되나 스탈린이 당권을 장악,트로츠키는 망명길에 오름. ▲1929년=스탈린,신경제정책 폐지.공업화및 농업의 집단화 운동에 착수함. ▲1934년=스탈린,17차 당대회에서 독재통치 강화. ▲1964년= 흐루시초프가 실각.레오니드 브레즈네프와 알렉세이 코시긴의 집단지도 체제 시작. ▲1982년=브레즈네프 사망.유리 안드로포프가 권력승계. ▲1984년=안드로포프 사망.브레즈네프의 측근이었던 콘스탄틴 체르넨코가 권력승계. ▲1985년=체르넨코 사망.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권력 승계. ▲1986년=고르바초프,27차 당대회에서 조심스런 개혁과 당지도부 개편 시작함. 보리스 옐친,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름. ▲1987년=옐친,고르바초프및 정치국원들과의 불화끝에 당직 사임. ▲1990년=대통령제가 신설돼 고르바초프 인민대표대회에서 새로운 대통령에 선출됨.
  • 고르비,오늘 중대 연설/“소 정치적 장래 결정”/대통령대변인

    ◎옐친과 상의… 최고회의서 발표/몰다비아·백러시아공 곧 독립선언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26일 상오10시(현지시간)열리는 소련최고회의 특별회의에서 소련의 정치적 장래를 결정할 중요연설을 할것이며 이를 위해 25일 고위개혁주의자들과 회담을 가졌다고 비탈리이그나텐코 크렘린궁대변인이 밝혔다. 이그나텐코는 이날 미 CNN­TV와의 회견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대통령및 이반 실라예프 러시아공총리와 공동작성한 계획들이 26일 연설에서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안드레이 표도로프러시아공외무차관은 이날 옐친이 수일내에 소연방내 15개공화국들중 더많은 공화국들에 대해 독립을 승인하는 포고령을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러시아공화국은 연방정부의 권한을 국방과 통신,수송및 에너지분야로만 국한시키는 방향으로 새 연방조약의 수정을 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소연방 15개공화국가운데 러시아공화국에 이어 2번째로 큰 우크라이나공화국이 24일 독립을 선언한데 이어 25일엔몰다비아공화국이 루마니아와의 재통일을 위한 첫단계 조치로서 몰다비아의 독립을 선언할 특별의회를 27일 개최한다고 밝혀 소연방체제의 급속한 붕괴가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모스크바 AFP 연합】 몰다비아와 우크라이나등 소련내 공화국들의 독립선언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백러시아 공화국 비체슬라프 케비치 총리가 『국가독립선언문』 초안을 의회에 제출했다고 인테르팍스통신이 25일 보도했다.
  • 유럽국,발트3공과 속속 수교/덴마크·노르웨이 “독립인정”

    ◎영·독서도 대사교환 추진/리투아공,비자 첫 독자 발급 【코펜하겐·본 AFP UPI 연합】 소련 보수강경파들의 쿠데타 실패 이후,리투아니아와 라트비아·에스토니아 등 발트해 연안 3개 공화국이 연방으로부터의 독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25일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이들 공화국의 독립 승인을 공식 발표하는등 서방 세계의 3개국 승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노르웨이는 발트 3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이들 국가와 외교관계를 개설키로 결정했다고 토르발 스톨텐베르 외무장관이 25일 밝혔다. 그는 노르웨이가 25일 아침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밝히고 조만간 발트 3국에 대사들을 파견할 것이라고 말했다. 덴마크는 국제사회에서는 사실상 처음으로 24일 발트 3국과 외교관계 수립 방침을 발표하고 「가능한 한 빠른 시일안」에 대사를 파견할 것이라고 밝혔다. 독일은 모스크바 중앙정부가 발트 3국의 독립을 인정할 때까지 이들 공화국의 독립을 승인하지 않겠다는 기존방침을 철회하고 25일 이들 3개공화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준비중에 있으며이를 위해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이 오는 27일 발트 3국의 외무장관들과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더글러스 허드 영국 외무장관도 25일 발트3국의 독립은 빨리 이뤄질수록 더 좋다고 말하고 영국과 발트3국간의 외교관계수립을 위해 빠른 시일내에 외무부고위관리가 발트3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헝가리도 MTI통신을 통해 발표한 성명에서 『발트 3국의 독립을 인정하고 있는 러시아공화국이나 다른 국가와 마찬가지로 헝가리는 주권을 회복하려는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리투아니아 국민들의 노력이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이들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모스크바 AFP 연합】 리투아니아공화국은 소공화국으로는 처음으로 26일부터 독자적으로 비자를 발급하기로 결정했다. 리투아공이 최고회의 결의를 실행에 옮길 경우 소연방정부는 처음으로 입·출국관할권을 잃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러시아공,사실상 연방정부 기능/「정변」이후 입지강화의 안팎

    ◎공당 불법화­쿠데타세력 처리 관장/「신연방조약」에 특수지분 요구나서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주도한 반쿠데타운동이 성공함에 따라 향후 소연방에서 차지하는 러시아공화국의 위상이 강화됨에 따라 고르바초프대통령의 지도력은 이번 사건으로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되었다.따라서 향후 고르바초프의 연방정부와 발언권이 강화된 러시아공화국과의 관계가 어떤 식으로 정리될 것이냐에 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고르바초프가 쿠데타군의 동향을 일체 보고받지 못하고 구금되기직전까지 휴가를 즐겼다는 사실은 지도자로서의 그의 이미지에 치명적인 흠이 될것으로 지적한다.반면 러시아공화국은 쿠데타 기간동안 갖가지 포고령을 발표하며 사실상 연방정부의 기능을 대신했다. 지난21일부터 열리고있는 러시아공화국 의회는 이런 투쟁에 대한 대가로 벌써 갖가지 요구사항을 내놓고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3일부터 단행하고 있는 내각개편및 요직인선을 모두 옐친러시아대통령과 협의하에 결정하고있다.고르바초프는 또 앞으로연방정부의 총리를 러시아정부인사로 임명하기로 약속함으로써 러시아정부의 연정요구를 사실상 받아들였다. 대통령 궐위기간중 러시아공화국 의회가 채택한 제포고령에 대해서도 이들의 요구대로 추후 별도의 포고령을 통해 이를 공식 추인하겠다고 약속했다. 연방정부가 쿠데타의 후유증에서 벗어나 정상을 되찾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현재 러시아정부가 거의 연방정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는 형국이다.공산당 불법화·공산당 재산몰수·쿠데타 주도세력에 대한 처리문제 등 거의 모든 현안들이 러시아정부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신연방조약이 당초 안대로 처리될 경우 연방정부는 국방·외교·교통·조세·화폐관리 등을 관장하고 나머지 권리는 연방공화국들에 대폭 이양토록 돼 있다. 즉 경제생활면 등에서 사실상 독자 권리를 인정해주되 연방정부의 권위만은 유지토록 돼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는 23일부터 시작된 신연방조약 지지 9개 공화국 모임에서 러시아의 특수지위를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6월 옐친을 민선대통령으로 선출한뒤부터 러시아공화국은 사실상 외교·경제면에서 독자노선을 거의 걷고 있고,독자군대창설 계획까지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러시아 외무부는 옐친대통령에 대해 국가원수의 예우를 해줄것을 외국에 요구하고 있다.러시아는 이번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여타 연방공화국들과 독자적으로 경제·우호조약들을 맺어왔고 극동지방의 석유개발 등 에너지 관할권도 모두 러시아정부로 이양했다. 독립요구중인 발트해 3국 등은 연방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러시아와 독자적으로 각종 조약을 맺어왔다.적어도 경제적으로 연방정부의 존재는 이미 모호해진 상태이다.러시아정부는 여기에 덧붙여 연방정부총리를 러시아정부출신이 맡는다는 등 사실상의 연정약속을 고르바초프로부터 받아냈다. 지난해말 고르바초프가 보수파들과 손을 잡기 시작한 이래 개혁파인사들이 대거 옐친 진영으로 넘어감으로써 인재면에서도 러시아정부가 연방정부에 뒤지지 않는다는 지적들이 있다. 지금까지 러시아는 연방과 거의 같은 개념으로 통했다.예를들어 다른 공화국들은 형식적이나마 자체 수도·자체 공산당·자체 대학들이 있었지만 러시아공화국은 모든게 연방정부에 소속돼 있었다. 러시아공화국 주민들에게는 이점이 불만이었고 신연방조약이 추진되면서 자기들도 지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러시아에서도 독자공산당이 조직됐고 독자 국기,심지어 KGB까지 독자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번 쿠데타 세력을 몰아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함으로써 러시아정부와 주민들은 신연방을 구성하되 그 안에서 대러시아국으로서의 당연한 지분을 요구하게 된 것이다.요구의 상당부분은 러시아 민족주의의 성격을 띠고있다.러시아가 새연방조약에서 특수지위를 고집할 경우 여타 조약참가 공화국들이 반발,자칫 조약참여 공화국수가 줄어들 가능성도 일부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23일 러시아의회에서 러시아의 특수지위를 요구하는 대의원들에게 『모든 공화국들의 의견이 중요하다』며 일단 거부의사를 밝혔다.이에대해 한대의원은 고르바초프에게 『우리는 당신이 필요없지만 당신은 우리가 필요할 것』이라고 반박,러시아공화국 사람들이 갖고있는 인식의 한단면을 극명히 보여주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가능한한 이른 시일내에 신연방조약을 체결하겠다고 밝혔다.신연방조약이 체결되기전 연방정부의 위상등에 관해 어떤 수정이 가해질지에 일차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신연방조약의 내용과 관계없이 앞으로 러시아정부의 입김은 연방정부 및 다른 연방공화국들을 압도할 것이라는게 이곳 관측통들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 소 권부의 새 얼굴/바라니코프 내무

    ◎옐친 측근… 경찰서 잔뼈 굵어 러시아공화국의 내무장관이었던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의 측근으로 내무장관에 임명되기 바로전까지 러시아공화국 내무장관으로 있으며 공화국 내무부에 대한 공산당의 통제를 제거하는데 크게 이바지했다. 그는 개혁적인 성향으로 연방정부 내무장관이며 쿠데타 주모자였던 푸고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왔다. 경찰과 지방 내무행정기관에서 승진을 거듭한 후 지난 83년에 소련 연방정부 내무부에 들어왔다.
  • 새 권력구조 어떻게 짜여질까(크렘린 대지진:5)

    ◎개혁파가 권부 전면에 등장한다/의회등 요직에 신진학자등 대거 등용/군부·KGB의 권한 대폭 제한할듯 실패로 끝난 쿠데타의 여파로 대규모 숙청과 함께 소련 권력구조의 대대적인 개편이 불가피하게됐다.쿠데타 주도세력인 연방총리와 KGB의장 및 국방·내무장관의 해임은 엄청난 개편작업의 신호탄에 불과하다. 이 권력구조개편은 KGB와 군부 등 과거 냉전시대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던 핵심기구의 입지를 약화시키고 파블로프전총리를 중심으로 했던 경제팀도 시장경제로의 신속한 전환을 주장했던 학자와 관료들로 교체되는 등 신진 개혁파인사들을 대거 등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다.공산당의 위상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이러한 개편과정에서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을 비롯한 각공화국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집무복귀 직후 쿠데타 주도세력인 3개부서의 책임자를 해임,잠정적인 후임자를 임명했다.그러나 하루만에 또다시 이들 3개부처의 책임자를 온건개혁파로 교체하면서 옐친의 의견을 따랐다.무소불위의 힘을 행사했던 KGB와 군부의 권한과 역할을 법률에 의해 명백히 제한하는 입법도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는 후임자 인선과정에서 옐친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상의한 것으로 알려졌다.옐친은 고르바초프와 23일 회담을 갖고 KGB의장과 국방장관 등 요직의 정식인선문제를 논의했다.옐친은 이자리에서 「연정」을 제의,쿠데타 저지에 공로가 큰 러시아공화국의 인사들을 연방정부에 많이 참여시켜줄 것을 요구,고르바초프의 수락을 얻어냈다. 요직인선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고르바초프연방대통령과 옐친을 비롯한 각공화국 지도자들간에 어느정도 갈등이 예상됐으나 의외로 수월하게 해결됐다.오히려 연방과 공화국간의 위상정립과정에 더 큰 마찰요인이 도사리고있다.지난 20일 조인할 예정이었던 신연방조약이 조만간 정식으로 조인되면 그렇지않아도 공화국들의 권한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옐친이 독자적인 러시아공화국 군대를 창설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있기 때문에 연방정부가 그야말로 껍데기만 남게되는데 대해고르바초프의 반발이 예상된다. 어쨌든 물갈이는 대폭이 될 수 밖에 없다.루키아노프최고회의의장이 이번 쿠데타의 배후인물로 지목됨에 따라 인사태풍은 연방정부에 국한되지않고 의회를 포함한 전역으로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개편의 바람은 공산당에도 밀어닥칠 수 밖에 없다.이번 쿠데타에 동조한 인사들이 상당수 숙청되고 온건 개혁파 인사들이 대거 요직에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공산당의 향후 위상정립방향은 아직도 불확실한 상황이다.대부분의 소련국민들은 공산당이 이번 쿠데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며 격분하고있고 일부에서는 공산당 폐기론까지 제기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공산당의 입지가 약화될 것만은 분명하다.그러나 공산당이 개혁정당으로 변모할지 아니면 개혁파 인사들이 모두 빠져나가 버리는 가운데 유명무실한 3류정당으로 전락하게 될지는 알 수 없다. 개혁신당 합류 가능성이 반반으로 예측돼오던 고르바초프는 복귀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제1의 과제는 보수반동세력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밝혔으나 『나는 아직도 공산주의자이며 공산당은 앞으로 페레스트로이카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아야한다』고 말해 혁신적인 메스를 가하면서 공산당과 운명을 같이 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셰바르드나제전외무장관과 야코블레프전보좌관 등 개혁파 핵심인사들이 이미 상당수 공산당을 떠나 민주적인 개혁신당창당작업에 열을 올리고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국민들의 인기가 앞으로 더해갈 것으로 보여 공산당이 환골탈태를 거쳐 국민정당으로 변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이번 사태를 거치면서 나자르바예프 카자흐공화국대통령도 겸직하고있던 공화국공산당 제1서기직을 포기하는 등 연방전역에 걸쳐 반공산당 분위기는 확산일로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르바초프가 공산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데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공산당이 아직도 상당한 영향력을 갖고있는데다 그의 유일한 지지기반이며 이제와서 공산당을 버리고 민주신당으로 당적을 옮길 경우 남들이 차려놓은 잔치에 손님으로 끼어드는 결과밖에 안돼 결국 스스로 정치생명의 목줄을 끊는 셈이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대대적인 권력구조개편이 이뤄진다 하더라도 과거 70여년간 권력주변에서 맴돌던 보수파들을 완전히 거세시키기는 어렵다.극심한 경제난이 지속될 경우에는 또다시 극적인 상황변화가 이뤄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결국 소련은 이제 본격적인 다원화사회로 접어드는 셈이다.새로운 다원화시대로 전환하는 혁명은 아직도 진행중이며 최후의 승자가 누가 될지를 단정짓기에는 아직도 이른 시점이다.
  • “대소 경협차관 예정대로 제공”/정부,소 사태 진정따라

    ◎민간투자도 적극지원/각공화국과 경제교류 확대추진/은행/수출어음매입·보험인수 재개 소련의 쿠데타가 3일만에 실패로 끝나고 미·일·EC 등 서방각국이 긴급 대소경제지원에 나서는 등 대소경협여건이 급속히 호전됨에따라 정부와 금융계 및 관련업계는 22일 이번 사태로 일시 유보했던 상품수출과 경협자금제공 관련업무를 재개했다. 경제기획원·재무부·상공부 등 관계부처는 이날 소련쿠데타 실패 이후 대소경협추진대책을 협의,소비재 전대차관과 은행차관 등 대소경협차관을 당초 예정대로 집행키로 했다. 이와 관련,재무부관계자는 『내달부터 연말까지 8억달러규모의 소비재 전대차관을 집행,차관자금을 이용한 대소상품수출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말하고 『은행차관 2차분 5억달러도 차관제공에 관한 양측간의 실무협의를 거쳐 오는 9∼10월중에 집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특히 이번 쿠데타의 실패로 소련의 개혁정책추진속도가 빨라지고 우리 기업의 진출여건도 오히려 좋아질 것으로 예상됨에따라 민간기업의 대소투자도 적극지원키로 했다. 또 소련내의 정정불안으로 무산된 어업협정체결 문제를 비롯,합작투자 자원공동개발,기술협력 등 각 분야의 교류협력도 당초 계획대로 추진키로 했다. 은행·보험등 국내 금융기관은 지난 며칠동안 중단했던 소련수출환어음 매입과 수출보험인수 업무를 이날 하오부터 재개했으며 산은등 국내10개 은행차관단은 소련에서 신용장이 오는 대로 소비재 전대차관을 집행키로 했다. 삼성물산·대우·럭키금성상사등 관련업계는 이날 상오 상사별로 긴급 대책회의를 갖고 대소교역여건이 정상화함에따라 그동안 선적을 미루었던 상품수출을 다시 시작하고 대소투자 문제 등도 활발히 추진키로 했다. 특히 의류·신발·가전제품등 소비재 선적및 생산업무를 잠정 중단했던 업체들은 쿠데타 발생 이후 대외결제업무를 보류했던 소련대외경제은행의 업무가 정상화되는대로 소비재 수출이 재개될수 있도록 선적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합성수지원료인 ABS소재의 선적을 보류했던 럭키금성상사의 경우 이날 하오 대소수출에 대한 은행의 자금결제가 이루어짐에따라 다시 선적을 재개했다. 그러나 일부 수출기업들은 이번 쿠데타로 드러난 소련내부의 정정불안과 후유증 등을 감안,대소교역과 투자진출에 대한 보다 세심한 검토가 선행돼야 한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사태로 옐친이 이끄는 러시아공화국등 소련내 15개 공화국의 지위가 크게 강화될 것으로 보고 연방정부 뿐만 아니라 각 공화국과도 경제유대를 강화해 나가기로 했다.
  • 고르비,지도부 개편/옐친 연정제의… 오늘 요직인선

    ◎새국방·KGB의장·내무 임명/“공산당도 개혁세력으로 교체”/고르비 회견 【모스크바=이기동특파원】 모스크바로 돌아와 집무를 시작한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은 22일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과 함께 공석이 된 지도부의 요직인선에 착수,1차로 국방장관에 미하일 모이세예프참모총장을 임명했다.또 국가보안위원회(KGB)의장에 레오니드 셰바르신을,내무장관엔 바실리 투르신을 발령했다.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국방차관에 보리스 파안코프대장을 임명했는데 타스통신은 쿠데타 주동자의 체포로 자리가 빈 일부 핵심요직의 임명이 「임시적」인 것이라고 전했다. 고르바초프는 이날 모스크바로 귀환한 뒤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공산당안의 반동세력을 몰아내고 개혁지지세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정변을 계기로 급부상한 옐친러시아공대통령은 보수파 제거에 본격 착수함으로써 자신의 세력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옐친대통령은 그와 고르바초프대통령이 23일 만나 정부구성문제를 비롯한 「대단히중요한」사안들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그는 3인의 요직인사와 관련,『앞으로 러시아공화국이 연방정부구성에 보다 많이 대표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그 이유는 어려운 시기에 민주주의를 수호한 것이 러시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옐친은 또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연금돼있었던 크리미아휴양지에서 모스크바로 돌아온 직후 그에게 자신의 지지세력들과 연정을 구성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모스크바 라디오방송이 보도했다. 이에앞서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모스크바공항에서 크렘린관저로 돌아온 직후 발표한 첫 성명에서 『나를 축출하려던 쿠데타가 실패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승리』라고 강조하고 『쿠데타가 성공했더라면 소련은 큰 재난을 겪게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시 미국대통령은 그동안 주저해왔던 대소직접경제원조 제공 가능성을 처음으로 시사했고 유럽공동체(EC)와 일본등도 소련에 대한 지원을 재개하겠다고 발표했다.
  • 쿠데타 실패이후 권력변화 예진(크렘린 대지진:4)

    ◎소 권력구조 지각변동 온다/보수파 숙청되면 개혁파 급부상할듯/“공산당,이념고수땐 소수당전락”경고 소련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소련의 「피플파워」는 강경보수파들의 「역사의 반복」을 거부하고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지지를 분명히 했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도 이번 쿠데타의 실패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승리라고 선언했다.그는 소련의 개혁과 개방정책은 결코 후퇴할 수 없는 시대적 요구임을 천명했다.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은 이미 소련사회의 성격을 크게 변화시켰음이 이번 쿠데타로 증명되었다.민주와 자유의 실체를 체험한 소련국민들이 보수화를 거부한 것이다.이는 소련사회에서도 「힘의 이동」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소련의 권력은 전통적으로 공산당·군부·KGB에 의해 장악되어 왔다.그러나 이번 쿠데타는 민중의 힘이 소련의 새로운 힘의 원천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강경보수파들은 쿠데타 실패로 몰락의 길을 스스로 재촉했다고 볼수 있다.물론 쿠데타 실패가 아직도 소련사회각 부문에 뿌리깊게 박혀있는 보수화 성향을 일거에 청산시킬수는 없을 것이다.더욱이 보수세력들은 쿠데타 실패에도 불구하고 상당수 군부·공산당·KGB관료체제에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다.그러나 강경보수세력의 영향력이 크게 약화될수 밖에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군부나 KGB는 이번 정변을 계기로 변화할 것으로 전망된다.우선 쿠데타 주도 세력이었던 야조프국방장관과 크류치코프 KGB의장이 법의 심판을 받을 것이며 군부와 KGB내의 숙정작업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고르바초프대통령도 쿠데타 주도세력의 제거를 서두르고 있다.그러나 실제로 쿠데타를 지지한 군부나 KGB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근본적인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산당내에서의 보수파들의 영향력도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고르바초프의 전보좌관이었던 야코블레프는 공산당이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지향정당과 기존의 공산당으로 분열될 것으로 전망한다.그는 공산당이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를 고집할 경우 수구파만의 소수 정당으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미국 컬럼비아대의 마셜 슐먼교수도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이제는 보수세력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더이상 보수와 개혁파간의 줄타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수세력의 영향력 위축을 전망한다.고르바초프는 그러나 보수와 개혁파간의 완충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는 지적도 적지않다. 고르바초프가 과연 어느정도의 지도력을 발휘할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미지수이다.일부 분석가들은 고르바초프가 상징적 대통령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한다.또 고르바초프는 점차 독립을 추구하는 공화국들에 권한을 내어주고 약화된 연방정부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미듀크대의 제리 휴교수는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고르바초프와 옐친이 전략적 제휴를 통해 개혁의 구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고 전망한다.고르바초프와 옐친은 각각 자신들의 직책을 유지하는 비공식적 공동지도체제 이른바 「이중적 권력구조」를 형성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옐친도 단기적으로는 고르바초프를 지지할 것으로 전망된다.그러나 옐친은 이번 쿠데타를 저지시킨 피플파워의 구심점이 되며 소련의 새로운 지도자로 부상하고 있다.국민들의 직접선거에 의해 러시아공화국대통령으로 선출된 옐친은 쿠데타를 저지시키는데 선도적 역할을 함으로써 소련국민들 뿐만아니라 서방세계지도자들로부터도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옐친은 서방국가들에게 위대한 민주주의의 희망으로 떠올랐다.과거 어릿광대 취급을 하던 부시 미대통령도 『나는 세계의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그의 위대한 용기를 찬양한다』고 강조했다. 고르바초프는 모스크바로 다시 돌아왔지만 그는 쿠데타 후유증의 치유와 경제난 해결이라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경제적 혼란이 쿠데타의 주요 원인이 될 만큼 소련경제상황은 악화돼 있다. 고르바초프의 경제개혁은 아직 가시적 결실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많은 정치분석가들은 미국을 비롯한 서양세계는 소련의 보수화를 막기위해서도 대소경제지원을 적극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소련에 대한 경제지원 강화는 소련과 서방세계와의 관계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물론 쿠데타실패로고르바초프와 부시대통령이 추진하는 동서화해의 새로운 국제질서는 더욱 공고해질 것이다.그러나 소련과 서방세계와의 관계강화로 소련이 서방세계 경제권으로 통합될 경우 국제정치의 화해무드는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가 추진하는 신연방조약에 따라 소련은 새로운 연방체제로 다시 탄생할 것이다.조약체결을 약속한 9개공화국 외에 어느 공화국이 새로이 조약체결에 동참할지는 미지수이다.그러나 적어도 발트해 3개공화국은 그들의 독립움직임을 더욱 가속시킬 것으로 전망된다.에스토니아공화국과 라트비아공화국은 쿠데타의 와중에서 독립을 선언했다.라우치스틴 에스토니아의회부의장은 『발트해 공화국의 실질적인 독립이 예상보다 빨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신연방조약은 소련의 분권화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크렘린의 집중됐던 권력이 공화국으로 분산되는 것이다.소련의 분권화는 소련사회의 민주화를 촉진시킬것으로 전망된다.쿠데타에 저항한 피플파워는 이같은 전망을 뒷받침해주고 있다.소련은 시민사회로 가고 있는 것이다.
  • 옐친 결국 해냈다/선봉서 「반쿠데타」주도… “정신적 지주역”

    ◎국내외 지지 급상승… 「고르비이후」예약 고르바초프를 축출한 강경보수파의 이번 쿠데타를 실패로 이끄는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보리스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이다. 그는 19일 쿠데타 발생직후 러시아공 의사당앞에 진주한 탱크위에 올라가 국민들에게 총파업과 시민불복종을 외치며 신군부의 보수회귀를 끝까지 막아내는데 성공했다. 더욱 극적인것은 그가 지난 6월 러시아공화국 최초의 민선대통령에 선출된 이후 고르바초프의 미온적인 개혁정책을 강력히 비난하며 사임요구까지 해왔기 때문에 쫓겨난 고르바초프의 원상회복을 위해 쿠데타세력에 과감히 맞선 그의 행동은 소련국민뿐 아니라 미국 등 우방국에도 소련내 「마지막 희망」으로 간주돼 왔다. 그는 쿠데타군의 탱크로 둘러싸인 러시아공 의사당안에서 자신이 러시아공화국의 통제를 계속할 것을 선언하고 쿠데타에 가담했던 모든 군인들과 KGB요원들에게 대열 이탈을 촉구하는 등 반쿠데타세력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왔다. 이같은 옐친의 용감한 행동에 힘입은 광원들이 파업을 단행했으며 전국적으로 수십만의 시민들은 쿠데타 저지시위에 가담함으로써 쿠데타세력이 발붙일 곳을 잃게 했던 것이다. 따라서 옐친은 이번사태로 말미암아 국내적으로는 러시아공화국뿐만 아니라 다른 공화국에서도 엄청난 지지를 얻게됐으며 더욱이 서방지도자들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얻어냄으로써 「고르바초프 이후」의 자리를 굳혔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고르바초프와 동갑인 1931년생으로 우랄산맥의 한 농가에서 출생한 그는 우랄공과대학에서 공부했으며 55년 건설기술자로 졸업했다.61년 공산당에 입당,67년부터 85년까지 지방당에서 일하던중 81년 중앙위원으로 승진했다. 고르바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 추진을 위한 심복으로 85년 그를 모스크바로 불러온후 그는 급속도로 지위를 높여 정치국의 소장멤버가 되었고 농업분야의 총책임자로 승진됐었다.그러나 개혁의 속도를 가속화하라는 그의 끈질긴 요구때문에 고르바초프로부터 멀어지게 됐고 87년에는 모스크바시 당위원장직에서 해임됐으며 90년 7월에는 공산당을 탈당하기까지 했다.이같은 그의 과감한 행동은 국민들 사이에서의 인기를 더욱 높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지난 4월부터는 고르바초프와 일종의 공동전선을 구성,민주적이고 시장경제지향적인 새로운 소련을 건설하는데 힘을 모아왔다. 공개적인 상호비난은 중단됐고 옐친은 연방정부와 소련공화국간에 새로운 연방조약을 체결하려는 고르바초프의 노력에 가장 큰 지지를 보냈었다.고르바초프는 이에대한 보답으로 공화국들의 주권을 확대하고 그들에게 권력을 이양하는데 동의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번 쿠데타에서 강력하게 고르바초프를 지지한 옐친의 용감한 행동은 러시아공화국뿐 아니라 소련전체의 대중지도자로,또 국제적인 지도자로 그를 변신케 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 소 강경보수파의 「막후」/“검은대령” 알크스니스

    ◎김영만기자가 만났던 “소유즈의 얼굴”/“고르비식은 혼란만… “비상조치 역설/“「60년대 한국」,경제난 타개의 모델” 소련쿠데타세력이 지향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독재」가 아닌가 싶다.그들이 구체적 모델로 설정하고 있는 것은 「박정희형독재」라는 유추도 가능하다. 서울에서 이같은 추론이 가능한 것은 쿠데타세력의 의회내 기반으로 보이는 소유즈그룹이 한국의 「박정희독재」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고 이들이 현 쿠데타세력의 아이디어뱅크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지기 때문이다.실제로 8인국가비상위원회의 실세로 알려진 푸고내무장관은 소유즈그룹의 「도움」으로 개혁파인 전내무장관 바딤 바카틴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지난 4월 검은대령 알크스니스를 정점으로 한 소유즈그룹은 『파국의 소련을 구하기 위해 소련전역에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일찌감치 쿠데타세력에게 거사의 명분을 제공한 바 있다. 기자는 지난 4월23일 알크스니스대령의 숙소인 모스크바 호텔에서 2시간동안 그와 단독인터뷰를 했다.당시 그들은 비상사태선포를 주장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으려는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축출하려는 운동을 공공연히 벌이고 있었다.그들의 소련정세에 대한 시각과 그들이 바라고 있었던 소련의 미래상을 다시 되새겨 보는 것은 현 쿠데타세력의 이념적 기초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알크스니스는 고르바초프가 말하는 시장경제로 가기위한 혼란과 경제침체가 「일시적」이라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그는 공산당과 연방정부가 강력한 힘을 행사해 전권을 장악하지 않을 경우 소련경제는 3류 빈민국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며 보혁갈등이 조기에 종식되지 않음으로써 끝내는 내전에 빠질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알크스니스는 박정희와 한국경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그는 『보수세력이 개혁자체에 반대하느냐』는 질문에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우리는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에 개혁을 위한 정치안정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한국은 우리가 따라야 할 주요한 모델이다.한국은 정치적 안정이 있었기때문에 경제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정치적 안정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은 없었을 것이다』 알크스니스의 소련정치관을 요약하면 이렇다.우선 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해 소련경제를 희생시켜야한다.그러나 그방법은 현재와 같은 연방정부의 무기력화로는 빈곤과 내전만이 있을 뿐이며 연방정부가 강력한 통제력을 행사하면서 하나씩 개혁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알크스니스 일파가 현재 어느정도의 쿠데타 핵심세력인지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이같은 알크스니스식 논리가 핵심세력의 이론적 기초임에는 틀림 없어 보인다. 그들은 유혈사태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감내해야 할 희생」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민주화가 어느정도 진행된 시점에서 비상사태선포와 같은 강경책은 필연적으로 유혈이 따를 수 밖에 없다는 한국의 경험을 알크스니스에게 이야기해주자 그는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이야기했다.그는 『생명의 가치는 무한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자신은 유혈적인 방법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그러나 다른 생명을 보호하기위해 국가는 때때로 힘을 사용할수 밖에 없고 소련은 개혁정책이 실시된이래 민족분규 등으로 1천명이상이 사망했다』고 덧붙였다. 알크스니스 일파가 직접 쿠데타에 연루돼있는지는 지금 확인할 수는 없으나 다만 당시의 보수파들은 쿠데타가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었다.알크스니스는 쿠데타가 가능할 것으로 믿느냐는 질문에 『불가능하다』고 한마디로 잘랐다.한국과 달라서 쿠데타를 지휘하고 의견일치를 보아야 할 장군의 숫자가 너무 많고 나라가 커서 쿠데타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그는 『장성만 모여도 크렘린궁으로는 자리가 모자란다.또한 우리는 쿠데타를 일으켰던 프랑코나 피노체트,주코프원수 같은 대중에게 익숙한 장성도 없다』고 말했다.그럼에도 소련에는 쿠데타가 일어났다.모스크바에 진주해 있는 군부대간에도 알력이 있고 비상위원회와 친고르바초프쪽으로 세가 나누어져 있는 것을 보면 알크스니스의 쿠데타 불가능론은 어느정도 맞아들어간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알크스니스는 독립운동이 가장 활발한 발트3국중 라트비아 출신이다.그는 출신배경과 현재의 정치적견해 사이를 어떻게메울수 있느냐는 질문에 『민족주의자들이 내놓는 것은 「배고프지만 자유롭게」이다.경제적 독립이 불가능한데도 연방탈퇴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것은 정치적 이해 때문에 인간의 생존권을 희생시키는 지나치게 무책임한 처사다』라는 말로 대신했다. 당시 모스크바는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개혁파가 시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을 때였다.그럼에도 알크스니스는 매우 확신에 찬 어조로 비상사태를 선포해야한다고 이야기해 나갔다.
  • 소 사태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긴급대담

    ◎“당분간 과실송금·자본회수등에 지장”/진출기업 정상조업… 경협에 급변 없어/연방정부로 수출입창구 단일화 가능성/“미의 대소정책도 변수… 유연한 대응방안 수립을 소련사태가 혼미를 거듭함에 따라 소련에 진출한 기업을 비롯한 경제계의 관심도 온통 소련에 쏠려있다.현재 활발히 추진되고 있는 대소경제협력은 어떻게 될 것인가,소련과의 경제관계는 과연 계속될 것인가.앞으로 소련정국의 향방이 우리 경제에도 지대한 영향을 줄것이기 때문이다.소련진출의 선두인 진도의 정효현 소련담당상무와 소련경제전문가인 현대경제사회연구원 이기영박사와의 대담을 통해 소련사태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과 진출기업들의 현황,우리의 대처방안 등을 알아본다. ▲이기영실장=소련의 정국혼미가 3일째 계속되고 있습니다.현 상태로 봐선 군부를 등에 업은 강경보수파의 쿠데타의 성공여부를 점치기는 어렵습니다.그러나 다른 나라의 사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듯이 국민들의 반발이 완강하지 않는한 군부 쿠데타는 성공해왔고 미국 또한 결국 그 정권을 인정해왔습니다. 만에 하나 고르바초프가 재집권하거나 옐친등과 같은 제3의 인물이 소련의 새지도자로 떠오를 가능성도 배제할수는 없는 상황입니다. ▲정효현상무=고르바초프 실각이후 현지 지사로부터 들어오는 연락으로 보아 소련의 쿠데타 상황이 외신이나 국내언론을 통해 알려진 것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모스크바나 레닌그라드등 큰 도시를 제외한 대부분 소련 국민들은 정치적 격변에도 불구하고 예전대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고 밖에서 느끼는 것만큼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오늘 아침에는 크렘린궁의 통행이 통제되고 러시아공화국 청사 부근에는 2천여명의 시민이 몰려있으며 유혈충돌도 있었지만 일상생활에는 별지장이 없다는 연락이 왔습니다.따라서 현재로선 쿠데타의 성공여부나 내전확산등을 점치기는 어렵다고 봅니다.앞으로 2∼3일이 고비인것 같습니다. ○소련인들 정상생활 ▲이실장=어쨌든 쿠데타세력은 국민들의 소요에 대비해 미국등 외국의 반응을 포함,대내외 경제문제까지도 충분히 고려한 단계에서 고르바초프축출을 시도했을 것입니다.경제문제에 국한해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부분은 소련경제의 현실인식입니다.소련은 지난 5년간 고르바초프가 추진해온 페레스트로이카 정책과는 상관없이 3년째 경제성장이 감소하는 추세에 있으며 이기간동안 3백%이상의 인플레이션과 심각한 실업문제로 고민하고 있습니다.특히 식량문제는 심각합니다.따라서 앞으로 누가 집권하든 대내적으로 물가의 동결을 비롯해 생필품및 식량의 배급제등 강력한 통제경제정책을 추진하고 대외적으로는 국내 경제의 피폐를 막기 위해 상당부분 개방하는 유화책을 쓸 것으로 보입니다. ▲정상무=현재 소련에 투자를 하고 있는 기업은 우리 진도를 비롯 현대종합상사·삼성물산 등 7개업체입니다.진도는 지난 83년부터 중개상을 통해 레닌그라드에 모피시장을 개척했고 85년에는 우리 정부 및 소련 정부의 허가를 받아 현지 공장을 세웠습니다.진도가 소련에 본격 진출한 것은 「JIN DO RUS」현지 법인을 설립한 89년부터입니다.그동안 주로 소련을 찾는 외국 관광객을 대상으로 상품을 판매해큰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이실장=한소간 경제협력은 지난 89년이후 급격히 증가했습니다.교역규모만 해도 88년 3억달러에서 지난해는 9억달러로 늘었습니다.특히 양국간 시베리아개발사업이 추진되면서 대소교역은 급진전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5월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방한이후 30억달러 차관약속은 나름대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일부에서는 이미 건네준 5억달러에 대한 회수가 어렵지 않을까 우려하는 시각도 있지만 사태가 어떻게 진행되든 멀리보아 계획대로 주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30억달러는 우리에게 무척 큰 돈입니다.그러나 소련측으로선 별 것 아닐 수도 있습니다.우리가 안주겠다면 그들로선 「주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가볍게 여길 수 있는 규모입니다.그러나 장기적인 안목에서 대소수출의 전망과 원만한 정치·경제적 협력관계를 위해 30억달러정도는 충분히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상당부분 개방할것 ▲정상무=보수파와 군부가 집권에 성공하더라도 이들 신집권층은 소련이 자체적으로 물자 및 자원 등을 조달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서방과의 경제협력 및 타협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글라스노스트(개방)를 표방한 고르바초프가 지난 85년 집권한 뒤 소련인들의 외국여행과 외국인들의 소련방문이 급증,많은 소련인들이 자유와 자본주의의 좋은 점을 맛보았기 때문에 보수파가 기왕의 개혁정책에서 후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번 쿠데타로 인해 한소경제교류 및 협력이 지장을 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봅니다.그러나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당분간 통제정책을 실시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과실송금 투자자본의 회수가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레닌그라드에 있는 지사 직원들에 따르면 현지 공장은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답니다.현지 직원들도 평소와 다름없이 모두 출근해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실장=소련에 진출한 다른기업들도 예정대로 일을 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이번 쿠데타가 성공한다면 새로운 집권층은 국내적으로는 1∼2년간 물자관리를 하고 가격통제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는등 강경한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되며 4∼5년간의 내부진통이 전망되지만 대외적으로는 외국과의 경제협력을 위해 유화정책을 펼것으로 전망됩니다. 국내기업으로서는 소련의 상황보다는 오히려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야하는 문제가 있습니다.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내기업이 소련에 계속 진출하는것은 한미관계상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상무=고르바초프가 재기하게 되면 기업들의 어려움은 없겠지만,군부가 실권장악에 성공할 경우에는 그들의 통제경제나 자유경제에 대한 정책기조에 따라 기업들의 대응방안이 좌우될 것입니다.진도의 경우는 고르바초프가 집권하기 전부터 소련에 진출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겠지만 다른 기업들은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그들이 유화조치를 취하더라도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차관약속 지키도록 ▲이실장=보수파의 등장으로 한소우호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소련은 동북아에서 미국및 일본의 영향력을 막을 필요가 있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것은 원치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한소경제관계도 큰 틀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경제관계는 큰 타격이 없을 것이며 오히려 이런 기회가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위험은 있지만 장기적인 견지에서 투자효과는 클 가능성도 높기 때문에 기업들이 이번 사태로 서둘러서 대소진출을 포기하거나 지나치게 관망만 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입니다. 당분간은 대소수출이 격감될것이 불가피하겠지만 장기간이 필요한 자원개발과 관련된 진출은 별로 큰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봅니다. 이번 사태로 보수파가 집권할 경우 시계의 추는 분명히 뒤로 가겠지만 그 시계는 이미 스탈린시대의 것이 아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것이며 오히려 이번 사태를 통해 연방정부로 진출창구가 단일화될 가능성도 있기때문에 투자가 용이해질수도 있다고 봅니다. 보수파의 경제정책은 중요한 핵심상품및 기업에 대한 통제이기때문에 현재와 큰 차이는 없을 것입니다. ○장기적으로 유리해▲정상무=소련은 방대한 나라입니다.모스크바 주변 큰 도시 몇개를 제외한 다른 지역 주민들은 아직까지도 자유시장경제가 어떤 것인지조차 모르고 있습니다.그들에게 있어서 중앙정부가 자유시장체제를 택할 것이냐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할 것이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실장=「소련은 일반적으로 못사는 나라」라고 평가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빵과 생필품을 사기 위해 몇시간동안 줄을 서야하는 겉모습만 보고 평가해서는 안된다는 뜻이지요.이것은 자본주의 국가들의 고물가·고임금정책과는 달리 저물가·저임금정책의 차이일 뿐입니다.소련은 어디까지나 미국 다음의 강국이며 그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정상무=동감합니다.소련의 잠재력은 시장성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큽니다.지금은 생필품등 실생활에 필요한 제조업이 뒤떨어져 우리에게 기술협력을 요청하고 있지만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이 분야에서도 무서운 저력을 과시하게 될것입니다.그런 의미에서 정치적 격변상황이 문제되더라도 대소경제관계는 계속 발전적으로 이끌어가야 합니다.최근 몇년사이 우리의 황금시장으로 떠오른 동구권에 대한 진출을 위해서도 단기적으로는 손해가 되더라도 꾸준히 교역량을 늘려 나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이기영 현대경사연 소련실장·경제학 박사/정효현 주식회사 진도 소련담담상무)
  • 내전몸살 유고/경제난도 심화

    ◎입국자 작년의 40%… 관광수입 크게 줄어/대외채무 1백50억불 육박… 파산기업 속출 공화국들의 이탈로 내홍을 겪고있는 유고는 민족갈등보다 더욱 심각한 재정파탄에 직면해 있다.내전으로 인해 산업이 침체한데다 한해 1천여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렸으나 휴가철을 맞고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겨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재정이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있다. 올해초 민족갈등이 표면화되면서 입국자의 수가 전년도보다 60%나 줄어든데 이어 내전이 시작된 이후에는 그나마 남아 있던 5만여명의 관광객들이 모두 철수,피서철을 맞은 요즈음에는 아드리아해변으로 몰리던 유럽피서객들이 이탈리아나 스페인으로 발길을 돌렸다.유고를 찾는 관광·피서객들의 3분의1은 독일인들이었으나 유고관광을 알선하던 독일관광회사들은 예약취소로 문을 닫는 사태까지 맞고있다.유고의 관광수입은 연국가예산 1천6백만디나(약 90억달러)의 3분의1이상인 37억달러였으나 민족분규로 가장 큰 수입원이 갑자기 말라버린 것이다.아드리아해안을 중심으로 한 피서지는 대부분 크로아티아공화국에 속해있으며 이탈리아쪽 일부가 슬로베니아공화국에 포함되어 있는데 예년같으면 관광객들로 붐빌 해변가 호텔의 객실이 지금은 텅텅비어 마치 버려진 건물의 모습을 띠고 있다.독일인 피서객들을 알선해온 유고의 베멕스여행사 마체빅이사는 『내전이후 많은 숙박업소가 문을 닫았으며 관광경기가 다시 살아날지도 현재로서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내전으로 인한 재정악화는 관광업뿐만 아니라 공업생산고가 올상반기 23%나 줄어드는등 전산업이 황폐화되고 있어 국가존립의 위기를 맞고있다. 지금까지 4개민족으로 구성된 유고를 결속시켜온것은 티토이즘경제구조로 각공화국이 독자적인 경제운영을 하지만 재정적인 조정은 연방정부가 맡음으로써 공화국들의 이탈을 막아왔다.그러나 티토가 유산으로 남긴 티토이즘국가졍제는 내전상태에 빠지면서 기능이 마비됐고 연방정부뿐만 아니라 각 공화국들도 재정적인 어려움이 최악의 상태에 이르렀다. 유고의 재정운영방식은 연방정부와 각공화국의 수입원을 구분,연방정부는 예산을 중앙은행의 교부금과국경 및 공항의 관세징수금만으로 충당하고 있으며 각종세금은 각공화국이 거둬들여 사용하도록 되어있다.내전이 한창 치열할때 슬로베니아 민병대가 정부청사 또는 방송국등 주요시설물을 점령하기위해 시가전을 벌이기보다 국경초소를 장악하려고 치열한 전투를 벌인 이유도 국경 세관의 업무를 마비시켜 연방정부의 수입원을 봉쇄,연방정부의 기능을 마비시키자는 의도였다. 유고는 민주화이후 수입이 계속 줄어들고 있으나 마치 곶감 빼먹듯이 얼마 안되는 국고에서 행정기관운영비와 공무원들의 봉급을 지출하고 군대를 운영해오고 있어 얼마동안 버텨나갈지가 의문이다.연방정부의 마렌딕재무장관은 유고의 대외 채무는 1백46억달러에 이르고 있다고 밝히고 당장 외국으로부터 30억달러의 차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각공화국들도 최악의 상태에 직면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여서 파산하는 기업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연방정부로부터의 지원은 물론 외국자본의 도입마저 막혀있다. 런던의 은행들이 유고에 공여한 72억달러를 현재로서는 상환받을 수 없는상황에서 재정상태가 호전될 전망도 없고 정치적인 장래가 불안한 나라에 차관을 제공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는 처지이다. 유고의 장래를 더욱 어둡게 하는 것은 부유한 서구국가들이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소련의 경제적인 파탄은 세계평화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지원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유고의 파탄은 강건너 불보듯 구경만하고 있다는 점이다.
  • 소 새 연방 「민주 주권공화국」 시대로

    ◎「신연방조약」 서명행사 일정발표의 저변/발트3국등 제외 9∼10개공 참여/군사·조세만 연방정부서 관할/20일 러시아·우즈베크공 첫 서명… 10월까지 계속 새로운 소련방의 탄생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볼셰비키혁명뒤인 1922년 구성된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연방」이 공식적으로 깃발을 내리고 「소비에트 민주주권 공화국연방」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소련의 언론들은 9일 15개공화국 가운데 9개 공화국이 새연방협정에 서명키로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베풀어질 첫 서명행사는 오는 20일에 실시되며 러시아·카자흐·우즈베크공화국이 테이프를 끊는다. 이어 9월2일에는 백러시아와 타지크가,9월20일에는 키르기스 및 투르크멘공화국이 서명하며 아제르바이잔과 우크라이나공화국은 10월10일로 서명일자를 잡아놓고 있다. 다만 리투아니아·라트비아·에스토니아등 독립을 추구하고 있는 발트3공화국과 그루지야·아르메니아·몰다비아등 6개공화국은 서명을 않겠다는 입장이나 이중 아르메니아가 서명가능성을 비치고 있어 불참공화국은 5개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레본 페트로시얀 아르메니아공화국 최고회의의장은 7월말 크렘린과 신연방참여 9개공화국이 모스크바교외 고르비의 별장지 「노보 오가료보」에 모인 자리에 갑자기 참석,이같은 뜻을 밝혔다.페트로시얀의장은 이 자리에서 조만간 국민투표를 실시해 연방참여여부를 가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투표결과가 연방불참 쪽으로 나오더라도 크렘린이 요구하는대로 향후 5년간의 독립유예기간을 거치겠다고 했다.이 유예기간동안은 새 연방의 정회원이 되든지 아니면 준회원으로 남아 독립에 필요한 정치·경제적 기반을 다지겠다는 것이었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이 말했듯 소련은 현재 공화국들의 주권요구가 높아지면서 중앙정부와 공화국간에 일종의 「법률전쟁」이 벌어지는 형국이다.모든 것이 연방 따로 공화국 따로이다. 공화국간 식품공급도 제대로 안되고 기계부품공급이 안돼 트랙터·농기구들이 수십대씩 정비공장에 방치돼 있다.모스크바 TV방송들은 연일 이런 장면을 방송하며 신연방조약체결의 필요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새연방조약의 기본정신은 군사·조세권을 비롯해 통화관리·세관 등은 연방정부가 맡고 나머지 권리는 대폭 공화국 정부에 넘긴다는 것이다.연방공화국들은 외국과의 교역도 자유로 하고 영사관계까지 맺을수 있도록 했다. 또한 신연방내에서는 단일 화폐를 사용하고 최혜국 대우를 하는등 경제적으로는 단일국가 형태를 유지한다. 문제는 독립의사를 굽히지 않고있는 발트3공화국의 태도이다. 크렘린은 신연방조약이 체결돼 경제적 고립을 겪을 경우 발트3공도 입장이 완화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하는 것같다.페트로프스키연방외무차관은 최근 이즈베스티야지와의 회견에서 발트공들이 원할 경우 유엔가입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바 있다.독립 외에는 다 들어주겠다는 것이다. 크렘린이 발트3공에 이같이 집착하는 이유는 우선 이런 식으로 떨어져나가 반소정부가 영토 한쪽옆에 들어설까 우려되고 이들의 전략적 가치도 포기할수 없기 때문이다.당장의 문제는 현재 이들 공화국내 독립찬성·반대세력간의 대립으로 언제 또 유혈충돌이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벌써 여러차례 있었지만 이들 공화국내 「구국위원회」등 독립반대세력이 연방군과 합세해 공화국군·시민단체와 충돌,사상자를 낼 경우 의외의 사태악화를 불러올 우려가 있다.지난달 31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에서 발생한 리투아니아공 경찰·세관원 피살사건은 조약체결을 앞두고 이러한 우려를 더욱 짙게 한다.진상조사가 진행중이지만 독립문제와 관련한 테러쪽으로 혐의가 모아지고 있다. 이곳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크렘린이 결국 양보할 것이라는 견해와 발트공들이 결사독립의 자세를 버리고 자결권 영역을 차차 확대하는 쪽으로 후퇴할 것이라는 견해가 엇비슷하게 거론되고 있다. 이들 외에 서명거부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그루지야·몰다비아공도 문제가 간단치는 않다. 그루지야·몰다비아에는 공화국 정부의 입장과 달리 신연방참여를 원하는 자치공·자치구들이 있어 새로운 불씨로 등장하고 있다. 예를들어 압하지야 자치공은 결사적으로 연방참여를 주장하는데 특히 이 자치공은 1931년까지 연방공화국이었다가자치공으로 지위가 격하됐기 때문에 그루지야가 끝까지 서명을 않을 경우 연방공화국 자격을 새로 얻어서라도 가입하겠다는 기세이다. 소련방의 총인구는 1990년말 현재 약2억8천8백만으로 집계돼 있다.그중 서명공화국들의 인구를 합치면 약2억6천만명이고 서명거부 공화국 인구는 2천만명이 채 안된다.크렘린의 의도를 엿볼수 있게 하는 대목이다.차선책으로 발트3공들을 제외하고 새연방을 만들어도 전혀 「제국의 위세」에 손상이 오지 않는다는 계산을 했을 법하다. 레닌은 혁명뒤 새 연방을 만들면서 구차르시대의 러시아제국을 「민족들의 감옥」이라고 욕했다. 모든 민족들의 권리가 동등하게 존중되는 새 연방을 구상했던 것이다.그러나 그 구상은 70여년동안 「공산당 통치」라는 멍에에 묶여 엉뚱하게 변질돼 버렸다. 공산주의의 멍에를 벗으면서 소련에선 또 한번 새로운 연방이 약속되고 있다.그 새연방이 처음부터 절름발이로 시작될 운명에 놓인 것이다.
  • 가 퀘벡주 독립권 인정/집권당/연방정부에 개헌추진 결의

    【토론토 UPI 연합】 캐나다의 집권 진보보수당은 9일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퀘벡주의 독립추구 권리를 인정,연방이탈권을 부여함으로써 당수인 브라이언 멀로니총리가 획기적인 정책전환을 도모할 수 있도록 했다. 진보보수당은 오는 93년 총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 이날 당대회에 2천5백명의 대의원들이 참가한 가운데 92%의 찬성으로 헌법상에 부여돼 있지 않은 퀘벡주의 연방이탈권을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대의원들은 또 통일 캐나다를 보장하는 한편 캐나다의 분리를 위협해 온 주들로부터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 실시 필요성을 제거』할수 있도록 연방정부가 헌법수정을 추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결의안도 아울러 채택했다.이 결의안은 캐나다 헌법이 어떻게 개정돼야 할지에 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퀘벡주는 이 지역에서 사용되는 프랑스어가 공식언어로 인정되는 등 언어와 의사소통에 관한 자체 관할권이 확보되지 않을 경우 내년에 독립을 위한 투표를 실시하겠다고 그간 위협해 왔다.
  • 세르비아­크로아공/포로교환 극적 합의/유고

    【베오그라드 AP 연합 특약】 유고슬라비아 크로아티아공화국내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인들은 9일 연방정부의 중재로 포로교환에 극적으로 합의했으나 포로교환이 늦어지고 있다. 양민족간의 포로교환은 당초 9일 밤(현지시간)에 실시하기로 계획됐었으나 10일에도 이루어질지 불확실하다고 크로아티아 관리들이 밝혔다. 이들은 크로아티아는 58명의 포로명단을 제출했으나 1백여명의 크로아티아포로를 억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세르비아인들이 포로명단 제출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민족간의 휴전은 불안하지만 4일째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슬로보단 밀로세비치 세르비아공화국 대통령이 추진중인 것으로 전해진 「세르비아연방」 구성과 관련,12일 소집예정인 유고지도부 회담에서 다시 격렬한 마찰이 예상되며 자칫 유고의 회교세력까지 탈연방을 선언하고 나올 가능성까지 엿보이는 등 여전히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한편 유고연방군은 9월말까지 슬로베니아공화국으로부터 철수할 것이라고 보르바지가 10일 보도했다.
  • 독,세르비아에 경제제재 경고

    ◎콜총리,“휴전협정 위반땐 좌시않겠다”/유고,어제 전면 휴전돌입 【본 로이터 연합 특약】 독일은 7일 유고슬라비아 세르비아공화국에 대해 크로아티아공화국과의 휴전협정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계속할 경우 경제제재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이날밤 TV인터뷰에서 헬무트 콜 총리는 『분쟁을 대화로 해결하기를 거절하는 자는 누구든지 서방측의 경제 지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고 『나는 특히 세르비아공화국측에 대해 책임을 묻고 싶다.만일 스스로 해결할수 있는 기회를 탱크로 깨뜨려버린다면 EC로부터 어떤 경제적 원조도 받을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한스 디트리히 겐셔 외무장관도 세르비아의 포격 뉴스가 전해지기 전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만일 세르비아가 휴전을 깬다면 EC의 경제제재조치등 가능한 제재를 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제재조치에는 세르비아로부터의 수출신용보증 유예와 같은 조치가 있을 것이며 8일 정부관계자들이 회의를 열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크로아티아의 안테치신 사인 중앙은행장은 『세르비아에 대한 경제제재는 수출차단,세르비아은행및 기업체들에 대한 외환동결등 강력한 조치가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파리 로이터 연합 특약】 프랑스는 7일 유고슬라비아의 고조되고 있는 분쟁해결을 위해 국제감시하에 총선거를 실시할 것을 제안했다. 정부대변인인 쟈크 랭문화장관은 이날 강의에서 있었던 미테랑대통령의 말을 인용,『유고사태를 해결하는 방법은 국민 스스로가 민주적 절차를 통해 해결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고 말했다. ◎일부선 교전 계속 【베오그라드 AFP 연합】 유고슬라비아 연방 정부가 중재한 휴전이 7일 상오6시(한국시간 7일 하오1시)를 기해 정식 발효된 이후에도 세르비아 민병대들은 크로아티아인들에 대해 수백발의 포격을 가했다고 크로아티아공화국의 한 관리가 비난했다. 밀란 브레자크 크로아티아내무부차관은 연방정부의 휴전이 발효된 지 3시간이 지난 상오9시까지도 크라지나와 슬라보니아 지방의 수개 지역에서 포격이 계속됐다고 말했다. 한편 크로아티아공화국과 공화국내세르비아인 지도자들이 6일 휴전을 준수하기로 합의함에따라 7일 상오7시(한국시간 7일 하오1시)를 기해 휴전이 정식으로 발효됐다. 이날 휴전발효로 지난 6월25일 크로아티아공화국이 독립을 선언한 이후 상황이 악화,전면적인 내전으로 확대될 위험성이 있었던 유고위기를 일단 진정시키고 지속적인 휴전상태가 정착될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 급한 불 껐으나 「완전평화」까진 먼길/휴전선포 이후의 유고

    ◎적대감 여전… 재충돌 불씨 남겨 산발적인 유혈충돌이 거듭됐던 크로아티아공화국에서 7일부터 휴전이 발효됨에 따라 전면전으로 비화될 위험을 안고있던 유고슬라비아사태는 일단 급한 불을 끄고 진정국면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제까지 크로아티아가 전투를 벌인 상대는 비록 연방군의 지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화국내 세르비아인일 뿐 연방군과의 싸움은 아니었다는 점에서 이번 휴전이 공화국독립을 향한 진일보라고 단정짓기는 어렵다.연방군과의 전투를 거쳐 연방군의 철수라는 「승리」를 얻어낸 슬로베니아공화국의 경우와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또 교전당사자들간의 적대감이 한껏 고조돼있고 양측의 민병대가 해체되지 않은 상태인데다가 연방군마저 계속 크로아티아에 주둔할 예정이어서 앞으로 독립협상진전여하에 따라 재충돌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는 셈이다. 끝없는 전투를 계속할 것처럼 보이던 양측이 이처럼 선뜻 휴전에 합의한 이유는 각자가 나름대로 성과를 얻었고 더이상 싸움을 계속해서 득될 것이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것으로 보인다.크로아티아입장에서는 중재에 나선 EC사절단에게 평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세르비아라는 인식을 심어주는데 성공했다.세르비아게릴라들도 자신들의 통제지역을 확장시켜놓은 상태다.연방군을 통해 공공연하게 세르비아게릴라들을 지원해온 세르비아공도 무력충돌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주변국들이 공화국 독립을 승인하는 불행한 결과를 자초하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크로아티아에서의 유혈충돌이라는 샛길로 빠졌던 관심의 초점은 이제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지난 6월25일 독립을 선언한 크로아티아 및 슬로베니아공과 연방정부간에 벌어질 독립협상의 귀추가 주목되는 것이다. 그러나 유고슬라비아가 자발적으로 공화국 독립허용과 연방해체라는 합의를 도출해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유고의 주도권을 쥐어온 세르비아공 등은 공화국의 권한을 다소 강화해 느슨한 연방체제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고 있다.양공화국도 한때 느슨한 연방제 수용의사를 갖고있는 듯 했으나 독립선언 이후 연방군과의 충돌을 겪으면서 독립추구 외길노선을 걷고있다.세르비아공은 연방유지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 차선책으로 서북쪽에 치우쳐있고 규모도 작은 슬로베니아에 대해서만 독립을 허용하거나,그것마저 안된다면 크로아티아공내 60만 세르비아인들의 집단거주지역이라도 할양받겠다는 태도다.그러나 크로아티아는 영토의 일부도 빼앗길 수 없다는 자세다. 따라서 무력이나 거센 국제압력이 있기 전에는 정상적인 방법에 의한 문제해결은 지극히 어려운 현실이다.연방군에 의한 무력사용은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오히려 공화국 독립을 앞당겨주는 자충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상당한 한계를 안고있다. 연방군이 무력진압을 시도하지 않는 한 국제적인 압력이나 섣부른 독립승인도 기대하기 어렵다.유럽을 위시한 국제사회에서도 자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민족자결원칙과 국경불변경원칙을 둘러싸고 의견이 분분한 실정이다. 결국 유고는 지난해초 독립을 선언했던 소련의 발트3국처럼 이변이 없는 한 독립협상을 지지부진한 개점휴업상태로 남겨놓을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 소련/주권 공화국시대/러시아공,리투아니아 승인의 의미

    ◎연방대선 앞두고 개혁의지 과시/부시 맞는 고르비엔 정치적 타격/“소련법 저촉”… 법률논쟁 비화조짐도 소련내 15개 공화국들이 지난주 연방정부를 배제한 채 경제의정서에 서명하고 러시아와 리투아니아공화국이 29일 상대방의 주권을 인정하는 협정을 체결한 것은 소련이 「주권공화국시대」로 접어드는 서막으로 받아들여지고있다. 또 시기적으로 공교롭게도 부시미대통령의 방소에 때맞춰 이뤄졌다는 점에서 볼 때 고르바초프소련대통령과 「협조속의 경쟁」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옐친 러시아공화국대통령이 벌인 신경전의 성과인 반면 신연방조약안의 체결을 서두르고 있는 고르비에게는 다소 정치적인 타격인 것으로 풀이된다. 옐친은 주권공화국연방으로의 전환을 내용으로 하는 새로운 연방조약안에 대해 지난 4월 고르바초프와 합의함으로써 급진개혁에 반대하는 보수강경파들의 저항에 직면해있던 고르바초프의 위상을 높여주는 등 페레스트로이카라는 한 배에 탄 고르비가 심각한 곤경에 처할 때마다 「경쟁속의 협조」자세를 취해왔다.그러나 공산당 중앙위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의 포기를 골자로 하는 당강령개정안이 당대회에 상정할 안건으로 거의 만장일치로 채택돼 일단 대세가 개혁쪽으로 완전히 기운 상황에서 고르비와 9개공화국대통령,소위 「9+1」회담에서 합의된 새 연방조약안에 의해 멀지않아 실시될 연방대통령 직선을 앞두고있는 옐친으로서는 냉전종식이후 세계유일의 초강대국인 미국의 부시대통령앞에서 자신의 입지강화를 과시할 필요를 느꼈을 수 밖에 없다. 부시대통령도 이번 소련방문에서의 주된 대화상대는 어디까지나 고르바초프라고 말하면서도 정상회담이 끝난 뒤 옐친과 별도로 회담을 갖고 우크라이나공화국도 방문하는 등 양다리걸치기작전을 구사하고있다.외교·군사면에서는 중앙정부가,경제는 공화국이 주도권을 갖는 형태로 소련연방체제의 존속을 원하고있는 미국은 연방체제의 급격한 변화에는 반대하면서도 자연스럽고 평화적인 공화국독립에는 거부감을 보이지않는 등 어정쩡한 논리를 앞세워 소련내의 민족문제와 고르비·옐친의 라이벌관계를 대소정책의 지렛대로 최대한 활용하고있다. 이번에 체결된 경제의정서는 소련 전체면적의 76%를 차지하면서 엄청난 양의 천연자원을 보유하고있는 러시아공화국의 지위를 상대적으로 높여주는 결과를 가져왔다.옐친은 현재 각공화국 최고회의의 심의과정에 있는 신연방조약안의 징세권을 둘러싸고 공화국이 조세를 거둬 일부를 연방정부에 납부할 것을 주장,연방정부가 직접 세금을 거둬야 한다는 고르비와 아직까지 의견대립을 보이고있는 상태다. 또 러시아와 리투아니아공화국이 상대방을 주권공화국으로 인정한 것은 신연방조약안이 주권공화국연합을 명시하고있기 때문에 문제될게 아무것도 없지만 리투아니아의 지난해 3월 독립선언을 러시아공화국이 최초로 인정한 대목에서는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있다.연방정부는 리투아니아의 독립선언을 불법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옐친의 리투아니아공화국 인정은 러시아공화국내에서 공산당세포조직의 활동중지를 명한 옐친의 포고령에 대해 고르비가 공산당 중앙위에서 모든 조치를 동원해 대응하겠다고 밝히고 연방헌법위원회가 포고령 유보를 촉구한 문제와 함께 연방정부와 러시아공화국 사이의 법률논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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