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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지모리 ‘억지 권력’ 무너지는가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의 10년 아성이 무너졌다.후지모리대통령은 16일(현지시간) 대통령 선거와 의회 선거를 새로 실시하되자신은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 권좌에서 물러날 뜻을 표명했다.선거의 구체적 시기는 밝히지 않았지만 후지모리의 퇴진은 기정사실화한 것. 후지모리 대통령은 야당의원 매수 사건으로 물의를 빚은 국가정보부(SIN)를 해체하고 당국에 철저한 수사를 지시했다고 밝혔다.그러나야당의원 매수의 장본인인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 SIN 부장의 거취문제는 언급하지 않아 군부 쿠테타를 포함한 갖가지 추측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후지모리 대통령이 이끄는 ‘페루 2000’은 4월 총선에서 120석의의석 중 53석 획득에 그쳤으나 이후 야당의원 영입을 통해 70석 가까운 절대 과반수 의석을 획득,야당측으로부터 공작정치를 중단하라는끊임없는 시위에 시달려왔다. 그런 가운데 후지모리의 최측근인 몬테시노스 정보부장이 야당인 ‘페루의 가능성’ 소속 루이스 알베르토 쿠오리 의원을 돈으로 매수하는 장면이 15일 현지 케이블 TV에방영된 것.공개된 58분짜리 비디오 테이프에는 몬테시노스 정보부장과 쿠오리 의원이 매수금액과 탈당시기를 놓고 흥정하는 대목 등이 담겼다. 야당은 테이프가 공개되자 “후지모리 정권의 밀실정치와 철권통치및 부정부패의 실상이 분명히 드러났다”며 대통령의 즉각 사임과 정보부장의 구속,과도정부의 구성 등을 주장했다.당시 1만5,000달러를현금으로 받은 것으로 알려진 쿠오리 의원은 TV 방영 직후 “돈을 받았지만 빈민자들에게 생선을 나눠주기 위한 냉동트럭 구입용으로 1만달러를 빌렸을 뿐”이라고 수뢰를 부인했다.그는 야당인 ‘페루의 가능성’ 소속에서 지난달 후지모리가 이끄는 여당 ‘페루 2000’으로당적을 옮겼다. 후지모리 대통령이 TV 방영 하루만에 선거를 다시 실시하겠다고 밝힌 것은 10년 철권통치에 비하면 극히 이례적이다.국민과 야당의 요구에 굴복한 셈이지만 선거 일정 등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일각에선 쿠테타가 일어나 축출됐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야당 의원들은 “군부의 지지를 받았더라면 후지모리가 방송연설을하지 않았을것”이라고 말했다. 페루는 5월 치러진 대선의 부정의혹 시비로 최근까지 시위가 끊이지 않다 미주기구(OAS) 등 국제사회의 요구에 따라 여야간 민주화 일정에 합의한 뒤 정국은 소강상태에 빠졌다. 리마 시민들은 후지모리의 연설 이후 수천명이 거리로 몰려나와 “독재가 무너졌다”며 승리의 환성을 지르고 자동차 경적을 울렸다.경찰들도 이들을 제지하지 않았다. 지난 대선에서 야당후보로 나섰던 알레한드로 톨레도는 새 대통령선거에서는 야당 단일 후보를 내세워야 하며 대통령의 퇴진 결정에어떠한 외부요인도 가로막아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백문일기자 mip@. *몬테시노스는 누구. 몬테시노스 국가정보부(SIN) 부장(53)은 지난 10년간 SIN 부장으로재직하면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 ‘대통령인 후지모리를 능가하는 권력자’라는 평을 들어온 인물. 92년 친위쿠데타 당시 의회 해산과 법원 봉쇄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95년 후지모리의 재선 성공뒤에도 그의 능수능란한 공작정치가 있었다.96년 코카인 밀반출을 묵인해주는 대가로 매달 5만달러씩 받았다는 폭로 이후 끝없는 마약조직과의 연루설에 시달려왔으나 매번 사법당국의 철저한 보호로 위기에서 벗어났다.그가 후지모리에 관한 정보를 너무 많이 갖고 있어 사실상 제거가 불가능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77년 육군 대위 시절 미 정보요원에 국가기밀을 팔아넘긴 혐의로 불명예제대했다. 유세진기자 yujin@. *후지모리 대통령은 누구. [리마 연합] 알베르토 후지모리(62) 페루대통령은 일본인 이민 2세출신으로 대통령에 3번이나 계속 당선됐다. 지난 5월 야당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결선투표를 강행,3선에성공한 그에 대해서는 ‘정치·경제적 안정을 달성한 실용주의자’,‘철권통치를 자행한 독재자’ 등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 페루로 이민온 나오치 후지모리와 마츠에 이노모토 부부의 5남매중 차남인 그는 리마 출생으로 대학총장을 지냈으며,대학총장연합회장으로 피선된 것을 계기로 정치에 입문했다. 1990년 ‘캄비오(개혁) 90’이라는 신당을 급조,같은 해 실시한 대선에서 여당후보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근소한 표차로 따돌리고권좌에 올랐으며 95년에는 유엔 사무총장 출신인 하비에르 데 케야르후보를 물리치고 재선됐다. 그는 첫 임기 중반이던 92년 정국불안이 심해지자 군부의 지지아래계엄을선포,친위쿠데타를 일으켰으며 에콰도르와의 국경분쟁이 발생하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등 철권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를 굳혔다. 1996년 좌파 반군들이 4개월간 일본 대사관저를 점거했을 당시 군대를 진두지휘,인질 71명을 구출함으로써 전세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계진출 선언으로 파문을 일으킨 부인 수사나 히구치 여사의 영부인 자격을 박탈,딸 케이코를 영부인으로 임명한 뒤 부인과 이혼했는가 하면 97년에는 자신의 3선 연임에 걸림돌이 되는 헌법재판관 3명을 제거했을 정도로 앞뒤를 가리지않는 냉정하고 권위적인 독재자의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기도 했다.
  • [대한광장] 섬김이 아닌 것은 도둑질이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만인 사제론’을 주장하면서 중세 천여년 동안 당연시되어왔던 교회내부의 계급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하였다.성직자단이든 일반신자들이든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구별없이 봉사를 하기 위해서 뽑힌 일꾼들이라는 것이다. ‘만인 사제론’은 일반신자들의 지위를 상향조정하고 있기보다는 특권의식에사로잡힌 성직자그룹을 하향 조정하고 있는 것이다. 루터는 사제들과 주교들,그리고 교황의 직무를 파워나 권위의 문제가 아닌 봉사의 직무로 정의내린다.그는 계속해서 “그리스도인은 만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주인이지만 만물에 종속된 모든 사람들을섬겨야 하는 충실한 종이다”라고 역설한다.이러한 이해의 바탕 위에서 루터는 이 세상의 모든 제도나 직무는 이웃을 섬기고 사랑하기 위해 세워진 것들이라고 주장한다.세상의 모든 질서는 이웃을 섬기기위한 제도적인 장치라는 것이다.마침내 루터는 우리에게 충격적인 말을 남겼다.“섬기는 것이 아닌 것은 도둑질이다”.루터는 ‘이웃을섬겨야 한다’는 윤리적 명제를 철저화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종교개혁자의 말을 지금 이 시점에서 되새기는 것은,오늘의한국을 이끌어가고 있는 지도자들의 삶 속에서 ‘섬김’의 윤리가 정착되기는커녕 오히려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더 많이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섬김이란 복음의 능력으로 새로 태어난 사람의 실존이다.섬김은 한 인간을 얽매던 과거의 가치관으로부터 해방된 현실과 새로운 삶을 향한 방향전환이 교차하는 길목에서 이루어지는 새 창조이다.과거의 가치관과 삶의 방식은 존재 깊숙이 각인된 죄 때문에 하나님과 동시대인들의 원수가 돼 특정한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이 현대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삶 한 가운데 커다란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그 자신의 욕망과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쓰이던 자유가 이웃을 향한 사랑의 자유로 전환된 것이다.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요 변화된 사람의 실존이다.우리를 선택하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 은사의 특혜들을 타인을 위해 쓰도록 요구하시는 분이다.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은사를 이웃을 섬기는 데 쓰지 않았을 때 그 특권은 도둑질로 화해 버리고 만다.‘도둑질한다’는 말은 본래 ‘사유화한다’라는 말에서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하나님의 은사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특혜들은 더이상 우리들의 사적소유물이 아니라 이웃을 향한 우리들의 섬김의 가능성이다.그런데 요즘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가? 배타적이고 독선과 아집의포로가 되어가고 있다.종교적인 경험을 절대화해 쉽게 이웃을 정죄하고 사회를 심판하려 든다. 다름을 용납하려 하지 않고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다.포용과 관용과는 전혀 반대로 나가고 있는 느낌이다. 또 세상 가운데서 빛과 소금이 되라는 예수의 말씀을 실천하기는커녕 우리사회에서 터져 나오는 부정부패의 비리 가운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연루되어 있음을 확인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커다란 충격이아닐 수 없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은사를 자신의 탐욕과 이기심을채우는 데 쓰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일에 쓰게될 때 우리 사회는 한결 맑고 깨끗한 사회가 될 것이다. ‘섬김’의 윤리를 실천할 때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중증의 병들,선거부정시비,각종 비리에 연루된 그리스도인들의 추태,사이비 이단 기독교의 사회적인 물의로부터 치유될 수 있다.예수는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는 세상에 오셔서 전혀 다른 권력의 원천을 지시하고 있다.즉 ‘참된 힘’이란 남을 지배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남을 섬기는 데서 나온다는 것, 섬김이야말로 참된 힘의 원천이라고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섬김의 종교이다.교회가 섬김의 자리보다 권력의 자리에있을 때 기독교는 물론 사회도 부패하고 타락했다는 사실은 역사가가르쳐주는 교훈이다.한국의 모든 종교지도자들과 한국을 이끌어가고있는 지도자들이 무대 위에서 주인공이 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객석에 앉아서 박수를 보낼 줄 아는 섬김의 도리를 배워야 할 것이다. 섬김이 아닌 것은 도둑질이라는 경고를 경청하면서 우리 모두가 삶의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김원배 목사·목회자협 상임총무
  • 서울 강서구 위생업무 직원들 민원 신속처리·청렴 서약

    서울 강서구(구청장 盧顯松)는 15일 식품접객업소 인·허가업무 등각종 위생업무와 관련,민원을 접수하는 민원인에게 ‘민원도우미 카드’를 나눠주며 신속한 민원 처리 및 청렴을 서약하기로 했다. 노란색 민원도우미 카드 뒷면에는 ‘민원도우미 서약서’란 제목 아래 민원을 신속·친절하게 처리하고,금품이나 향응을 사양한다는 글귀와 담당 공무원의 서명이 담겨 있다. 카드 앞면에는 담당 공무원의 부서명 및 직급,성명, 민원명과 함께뒷면의 서약내용을 실천하도록 민원인 협조를 구한다는 내용이 씌어져 있다. 위생 담당 공무원은 민원을 접수하거나 상담할 때 자필 서명과 함께카드를 민원인에게 건네게 된다.민원도우미 카드는 위생업무 담당 공무원의 비리 연루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도입됐다. 구 관계자는 “우선 위생 분야에서 실시한 뒤 성과가 좋으면 건축·세무 등 다른 민원 분야에도 확대,시행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임창용기자 sdragon@
  • 학교 안전사고 피해 전액 보상

    이르면 11월부터 교내 학생 안전사고에 대한 피해 보상비가 전액 지급되고 학내 문제로 소송을 당한 교사에게 변호사 및 소송 비용이 지원된다.[대한매일 2월1일자 1면 보도] 또 노부모를 모시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운 교사들에게는 전세금이나자녀결혼비용 등을 연 5% 안팎의 저리로 융자해준다. 교육부는 14일 교사들이 교육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이같은 내용을 담은 ‘교원안전망 구축방안’을 확정했다. 교육부는 이를 위해 앞으로 3년 동안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346억원을 추가로 조성해 16개 시·도의 학교안전공제회 기금 규모를 모두 799억원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 방안은 현재 시·도별로 학교 안전사고 발생 때 2,000만∼9,000만원까지만 지급하던 보상 한도를 피해 전액으로 넓혔다. 특히 안전사고나 학생들의 싸움 등에 연루돼 교사가 소송에 걸렸을때는 학교안전공제회의 고문 변호사로 하여금 소송을 대행토록 하고소송비용도 지원하도록 했다.교사가 봉급을 가압류당하면 공탁금을대납해 압류가 해제되도록 했다.교권을 침해당하거나 침해당할우려가 있는 교사는 본인이 원하면 긴급 전보시키기로 했다. 경제형편이 어려운 교사에 대해서는 1,000만원 이내의 전세금과 500만원 이내의 자녀결혼자금을 시중금리의 절반수준인 연 5% 정도로 대출받을 수 있게 했다.가족과 장기간 떨어져 생활하는 교사들의 고충을 덜기 위해 시·도간 인사 교류를 확대하기로 했다. 교사·학부모·학생간에 일어날 수 있는 갈등과 분쟁을 초기 단계에서 해결하기 위해 학교별로 ‘학교교육분쟁조정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학교내 안전사고는 지난 97년 9,265건,98년 1만4,481건,99년 1만5,983건으로 증가했다. 99년 사고는 공휴일과 방학을 제외한 수업일수 기준으로 하루 평균73건 꼴이다. 박홍기기자 hkpark@
  • 단재 신채호선생의 항일 일대기

    구한말 일제강점기의 역사학자이자 언론학자,독립운동가였던 단재 신채호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 ‘꽃뫼연’이 오는 12∼17일 서울 종로연강홀에서 공연된다. 1905년 26세의 나이에 성균관박사가 될 정도로 학식이 뛰어났던 단재는 일찍이 관직의 길을 버리고,‘황성신문’기자,‘대한매일신보’주필로 나서 당당한 시론으로 항일언론운동을 전개했으며,신민회·임시정부·의열단 등 민족과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몸을 사리지않고 뛰어들었다. 연극은 1928년 5월 단재가 대만에서 외국위체 위조사건(外國爲替僞造事件)연루자로 체포된 뒤 1930년 대련지방법원에서 10년형을 선고받기까지의 과정과 과거의 사건들에 대한 회상장면을 교차해서 보여준다.작가 이해제는 “스스로에게 지지않으려했던 위인으로서의 면모를부각시키고자 했다”고 말했다. 손현석이 연출하고 신국,강승원,양형호 등이 출연한다.(02)708-5001이순녀기자 coral@
  • 과학문화재단 이사장 낙하산인사 반발

    한국과학문화재단 새 이사장으로 과학기술부 1급 간부가 선임된 데대해 재단측 직원들이 노조를 중심으로 강력 반발하고 있다. 5일 과기부 등에 따르면 과학문화재단은 지난 2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지난달 기술복권 담당직원의 비리혐의에 연루돼 물러난 전 조규하(曺圭河) 이사장의 후임으로 전의진(全義進) 과기부 과학기술정책실장을 선임했다. 그러나 재단노조는 “과기부가 자체 인사숨통을 트기 위해 산하기관을 이용하려는 전형적인 낙하산 인사”라며 신임 이사장의 출근 저지투쟁을 벌이고 있다.이에 앞서 4일 예정됐던 이사장 취임식도 무산됐다.한국과학문화재단은 과학기술혁신을 위한 특별법을 근거로 하는특별법인으로,국민의 과학기술 이해 제고와 과학기술 문화진흥·보급시책 추진 등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한편 과기부는 1급 한 자리를 포함,연쇄적인 인사가 예정돼 있어 인사숨통이 트일 것으로 보인다. 함혜리기자 lotus@
  • 白南治 前의원 법정구속

    지난 97년 국회 건설교통위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아온 자민련 소속 전 의원 백남치(白南治) 피고인이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서울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 崔炳德)는 1일 김포매립지 용도변경과관련,동아건설로부터 1억2,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징역 7년을 구형받은 백 피고인에게 뇌물죄를 적용,징역 5년에 추징금1억2,000만원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백 피고인은 이날 오후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비리 정치인 법정구속은 지난 5월 청구비리와 관련,5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된 민주당 전의원 김운환(金운桓) 피고인에 이어 두번째다. 이같은 법원의 잇따른 엄정한 사법처리는 현재 각종 비리에 연루된전·현직 국회의원을 포함한 정치인들의 재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인이 받은 돈은 직무관련성과 대가성이모두 인정되는데도 피고인은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행위를 반성하는 빛이 없다”면서 “중형을 선고받은 만큼 도주우려도있어 법정구속한다”고 밝혔다. 이상록기자 myzodan@
  • 국제투명성기구 제의 “세계 부패기업 블랙리스트 만들자”

    [베를린 연합] 국제사회의 부패 현황을 감시하는 기구인 국제투명성기구(TI)는 31일 부패 연루기업을 척결하기 위해 부패기업 블랙리스트를 만들자고 제의했다. 베를린에 본부를 두고 있는 TI의 페테 아이겐 의장은 그러나 부패로 경제발전이 저해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됨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부패가 감소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아이겐 의장은 과거 기업들이 수출 과정에서 뇌물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이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그런 관행이 줄어들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부패 관행을 척결하기까지 아직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면서 9월중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TI 연차총회에서 세계은행의 부패 퇴치 운동을 비롯해 다양한 부패 방지 방안이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아이겐 의장은 부패기업의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TI의 주요 사업 목표라면서 특히 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과 동유럽의부패를 척결하는데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 민주 전당대회/ 권노갑.한화갑 향후 행보는

    민주당 권노갑(權魯甲)·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이 8·30 전당대회를 계기로 다시 한번 ‘용틀임’의 기회를 맞았다.당내 확실한 두 축(軸)으로 자리매김한 ‘양갑(兩甲)’의 향후 행보는 그래서 정치권의주요 관전포인트다. *권노갑 최고위원. ‘동교동계의 맏형’‘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분신’‘여권내 2인자’…. 숱한 수식어가 붙어다니는 민주당 권노갑 상임고문이 최고위원으로화려하게 정치 일선에 복귀했다. 오랫동안의 막후생활을 털고 ‘무대’에 복귀했다는 사실은 권고문에게 벅찬 감회일 수밖에 없다. 지난 97년 한보사건에 연루돼 징역을 살고 의원직까지 잃은 아픔은‘전주곡’에 불과했다.그토록 기대했던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외유를 떠났고,심지어 16대 총선과 최고위원 경선 출마의지마저 접는 일을 겪었다. 그런 권고문이 민주당 지도부의 일원이 됐다는 점은 상당히 함축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선 정상궤도 진입과 동시에 정치적 복권의 완결로 읽혀진다.따라서그의 당내 역할이나 비중도 배가될 것으로 점쳐진다.김대통령의 집권 2기를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정권 재창출을 이뤄내는 문제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다. 권고문은 최고위원 지명후 기자들과 만나 “40년의 정치 경험을 바탕으로 당내 단합과 화합을 이끌어내겠다”고 다짐했다.그러면서 “내가 중심에 서서 정권 재창출을 위해 헌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킹 메이커’ 역할을 공식화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권고문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면서 막판 경선 쟁점으로 떠올랐던‘보이지 않는 손’의 진위여부에 대해서도 “(동교동계)식구들은 의견 차이가 있을 수 있으나 모두 협력해 대통령을 보좌하는 점은 똑같다”며 “전혀 감정이 없다”고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켰다.권고문이당 안팎의 산적한 난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된다. 한종태기자 jthan@. *한화갑 최고위원. 민주당 권노갑(權魯甲)·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이 8·30 전당대회를 계기로 다시 한번 ‘용틀임’의 기회를 맞았다.당내 확실한 두 축(軸)으로 자리매김한 ‘양갑(兩甲)’의 향후 행보는 그래서 정치권의주요 관전포인트다.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날개를 단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의 제1목표는 집권 2기를 맞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안정적 국정운영에 맞춰져 있다.한최고위원은 “집권 후반기를 맞아 국정운영을 안정적으로 뒷받침하고 강한 여당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대통령을 보좌하는 일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는 차기 대권 행보다.그가 차기 대권후보 또는 ‘킹 메이커’로 자리매김했다는 데 이견은 없다.그러나 그는 “이번 경선은 당권·대권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거듭 강조한다.대통령 임기가 2년 이상 남아 있는 상황에서 대권에 대한 꿈은 아직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라는 시각이다. 아울러 당내 갈등이나 분화 조짐을 잠재우는 데도 적극성을 보일 것으로 읽혀진다. 특히 ‘동교동계 맏형’인 권노갑(權魯甲)최고위원과의 관계 복원이 관심이다.한최고위원은 “대통령을 위해 일한다는 자세에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다”고 말했다.이어 “나에게 맡겨봐라.이름이 화합을 이룬다는 뜻”이라며 관계 복원에 자신감을 보였다. 한최고위원은 말투와 제스처가 김대통령을 빼닮아 ‘리틀 DJ’로 통한다.그러나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정권교체 이전에는 정치의 전면에나서지 못했다. 하지만 정권교체는 도약의 발판이 됐다.‘나이 60에 능참봉’이라는말을 들으면서 지난 98년 ‘집권당 원내총무 대행’이라는 꼬리표를달고 정치의 전면에 나섰다.정직과 성실성을 바탕으로 여야 의원들의신뢰속에 진가를 발휘했다.자연스레 당내 실세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강동형기자 yunbin@. * ‘또다른 승리’ 클린선거.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는 돈과 조직을 동원하지 않은 조순형(趙舜衡)·이협(李協)후보의 ‘클린 선거’가 돋보였다.비록 13위,12위로 떨어졌지만 사실상 ‘또다른 승리’를 거뒀다는 평가다. 조후보는 지난 12일 경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돈과 조직을 동원하지않을 것임을 공약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15일간의 선거운동에 쓴비용이 9,000만원에 그쳤다.그에게 점심이라도 대접받은 지구당위원장은 단 한명도 없다.이후보도 못지 않게 깨끗한 선거를 펼쳤다.다른후보들이 지구당별로 조직책을 두고 후보간 연대에 부심하는 동안 이후보는 단기필마로 전국을 누볐다. 합동연설회에서도 다른 후보들이 선거운동원 수십명을 동원,세를 과시할 때 이후보는 부인과 자녀 등가족 서너명이 나서 고군분투했다. 이들이 선거기간 당 지도부를 가차없이 비판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도덕적 우위에서 가능했다는 지적이다. 진경호기자 jade@. *미풍에 그친 ‘바꿔바람’.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줄곧 ‘바꿔 바꿔’를 외쳤던 ‘소장파’김민석(金民錫)·추미애(秋美愛)의원이 결국 바꾸는 데 실패했다. 개혁과 변화를 기치로 일으켰던 바람이 득표로는 그다지 연결되지 않은것이다. 김의원은 1,666표(19.1%),추의원은 1,627표(18.7%)를 얻어 각각 9위와 11위에 머물렀다.당내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들 두 의원은 줄곧 정대철(鄭大哲)최고위원,김기재(金杞載)의원 등과 7위 진입을 다퉜다. 그러나 막판에 접어들어 뒷심을 발휘한 정위원의 조직력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당 일각에선 그러나 최고위원당선자의 면면을 감안하면 다른 중진들을 제치고 중위권에 오른 것만으로도 선전한 것이라는 평가도 나온다.비록 최고위원 진입에는 실패했지만 소장층 내에서는 확고한 입지를 굳혔다는 것이다. 진경호기자
  • 神의 눈으로 세상을 보다 ‘아름다운 영혼‘

    ‘신의 빛으로 세상을 본 예언자’ 시인이며 철학자이자 화가였던칼릴 지브란(1883∼1931)은 그의 대표작 ‘예언자’로 우리에게 친숙하다.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된 ‘예언자’는 서양에서 성서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있는 책.‘지브란 숭배자’는 미국에서만 500여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예언자’의 주인공 알무스타파처럼그는 하나의 신화요 전설이 됐다.그렇기에 오히려 지브란의 생애와작품을 종합적으로 바라본 책은 찾아보기 힘든 지도 모른다. 미국 메릴랜드대 칼릴 지브란 연구소장인 수헤일 부쉬루이와 지브란연구가 조 젠킨스가 함께 쓴 ‘아름다운 영혼의 순례자, 칼릴 지브란’(이창희 옮김,두레 펴냄)은 ‘인간’ 지브란에 주목한 최초의 지브란 평전이다. 지브란은 아름다운 삼나무 숲이 향기를 내뿜는 ‘예언자의 땅’ 레바논의 비샤리에서 태어났다.숨막히도록 아름다운 비샤리의 전원풍경은 그에게 꿈과 환상의 날개를 달아줬다.하지만 12세때 지브란은 레바논을 떠나야했다.세무서 직원이었던 아버지가 부패사건에 연루되면서 미국보스톤으로 이민을 간 것이다.지브란은 동부 런던의 악명높은 슬럼에 비교되는 ‘철길 건너’라는 이민자들의 군락에서 살았다. 가난과 이민자에 대한 편견,인종차별 등으로 얼룩진 지브란의 보스톤 시절은 그의 표현대로 ‘비참했다’.영어로 쓴 첫 작품 ‘광인’에는 그 때의 혼란스러웠던 삶의 정황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이 평전은 지브란의 전 생애를 관통하는 영성적(靈性的) 태도와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지나온 정신적 순례의 과정을 살핀다.마론파 그리스도 가정에서 태어난 지브란은 “가슴의 반쪽에는 예수를,다른 반쪽에는 마호메트를 품고 있다”고 스스로 말했을 만큼 종교적으로 열린 자세를 취했다.그는 작품을 통해 이슬람의 수피(신비주의 교파)전통과 그리스도교의 신비주의적 유산을 결합하고자 했다.결국 ‘예언자’에서 알무스타파라는 인물을 그려내 자신의 꿈을 이뤘다.알무스타파는 그리스도와 마호메트가 하나로 된 인물이며 수피에 나오는 ‘완전한 인간’의 화신이다.‘계곡의 님프’‘반항하는 영혼’등 지브란의 젊은 시절 작품들은권력과 돈에 집착하는 교회와 정부뿐만 아니라 모든 형태의 불의와 극단주의,제도화된 폭력을 비판한다.‘반항하는 영혼’은 마침내 금서가 돼 베이루트 광장에서 불태워졌다.그는자신의 조국 레바논을 침략한 오토만 투르크의 압제에 맞서 싸운 ‘반항하는 정신’이었다. 지브란에게 누구보다 깊고 오랜 영향을 끼친 사람은 파리 유학시절만난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다.블레이크의 서정적 독창성에 매료된 지브란은 블레이크를 “내 영혼과 형제간인 영혼”이라고 불렀다. 지브란이 사랑하고 또 사랑을 받았던 여인들에 관한 이야기도 자못흥미를 끈다.이루지못한 젊은 시절의 사랑 할라,‘수호천사’ 메리하스켈,영적으로 하나였던 아랍 여인 마이 지아다,지브란의 모델이됐던 미셸린….이 중에서도 특히 지브란을 위대한 시인으로 만든 메리 하스켈과의 사랑은 아름다운 지적 동반자 관계의 전형으로 꼽힌다. 이 책은 단순히 전기적 사실을 기술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초기작‘반항하는 영혼’에서부터 마지막 작품 ‘방랑자’에 이르기까지,지브란의 대표작들을 그의 생애와 연관지어 다룸으로써 지브란에 대한총제적인 이해를 돕는다.책에 실린 24쪽의 화보는 화가로서의 지브란의 면모를 짐작케 한다. 지브란의 작품이 시공을 초월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저자는지브란의 메시지에는 영적인 ‘치유의 힘’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말한다. 김종면기자 jmkim@
  • [21세기 중국의 변신] (3)부정부패 척결 투쟁

    지난22일 베이징(北京)시 고급 인민법원 재판정.뇌물수수와 직권남용 혐의로 재판을 받던 청커제(成克杰) 전(前) 전국인민대표대회 (全人大) 부위원장(국회부의장에 해당)이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재판장이 자신의 수뢰 혐의를 일일이 적시한 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사형을 선고했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당이 부정부패를 발본색원하겠다는단호한 의지를 다시한번 내외에 천명하는 순간이었다. ‘청커제 사건’은 중국 대륙에 매섭게 부는 ‘반부패 투쟁’의 대표적 예.중국 최고인민법원에 따르면 97년 이후 적발된 부정부패사건은 10만3,000여건.현재 조사중인 사건만도 2만4,200여건에 이른다.이처럼 부정부패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78년 개혁·개방정책 이후 고도성장에 따른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돈이면 최고’라는 물질 만능주의가 사회 전 분야로 확산됐기 때문.특히 부패의 만연은 중국 사회의안정을 저해하는 사회불안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반부패의 칼날을 곧추세우지 않고는 집권 기반이 뿌리째 흔들릴 것이라고 중국 공산당은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부패건수가 많은 만큼 연루된 관리들도 말단에서부터 최고위직까지광범위하게 퍼져 있다.청커제 전인대 부위원장 외에 부패를 척결해야할 공안(경찰)까지도 부패고리와 연결돼 있다.그 대표적 사례가 1949년 건국 이래 최대의 사건으로 불리는 푸젠(福建)성 샤먼(厦門) 위안화(遠華)밀수사건.샤먼 세관장 등 300여명의 관리들이 조사받고 있으며,규모는 무려 500억위안(약 6조5,000억원)이다. 리지저우(李紀周) 공안부부장도 이 사건에 연루돼 당적을 박탈당하고 구속돼 있고,80년대부터 20년 가까이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을보필하던 자팅안(賈廷安) 주석판공실 주임 역시 관련돼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당황한 중국 정부는 올해의 최우선 목표를 ‘반부패 투쟁운동’으로 정했다.중국 최고 지도부가 최근 열린 베이다이허(北戴河) 회의에서 2002년 제16차 당대회에서 순조로운 정권교체를 위해 올 하반기부터 반부패 투쟁을 벌이기로 결의한 것으로 전해졌다.이를 위해웨이젠싱(尉健行)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류시룽(柳錫榮) 중기위부서기·류리잉(柳麗英) 중기위 부서기·차오칭쩌(曹慶澤) 중기위 상무부서기 등을 팀장으로 하는 4개팀을 부패 다발지역에 급파,부패 척결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웨이 중기위 서기는 경제적 번영으로 부패 다발지역이라고 소문난광둥(廣東)성 등 화난(華南)지역과 허베이(河北) 등 화베이(華北)지역을 담당,선전(深천) 등 경제특구와 허베이성의 부패를 뿌리뽑는다. ‘철의 여인’으로 불리는 류리잉 중기위 부서기는 상하이(上海)·푸젠(福建) 등 화둥(華東) 지역을 담당하면서 샤먼 위안화그룹 밀수사건을 전담 처리한다. 류시룽 부서기는 스촨(四川)·산시(陝西) 등 시베이(西北)지역을 담당,산샤(三峽)댐 이주와 서부개발과 관련된 독직 행위를 일소하고,차오칭쩌 상무 부서기는 헤이룽장(黑龍江)·지린(吉林)·랴오닝(遼寧)성 등 둥베이(東北)지역의 부패를 발본색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khkim@kdaily.』com. * 成克杰·李平의 부정·불륜 커넥션. 베이징 고급법원 2심재판에서도 사형선고를 받아 사실상 사형이 확정된 청커제(成克杰·66) 전 전인대 부위원장은 중국의 55개 소수민족중 하나인 장족(壯族) 출신.광시(廣西)장족 자치구 상린(上林)에서태어난 그는 중국내 소수민족의 인재가 성공하는 전형적인 코스를 밟았다. 1957년 베이징 철도학원 철도관리학과를 졸업한 청은 류저우(柳州)철도국 난닝(南寧)분국 철도기술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류저우 철도국 부국장·국장 등을 거치며 86년 광시장족자치구 부주석에올랐다.89∼98년 자치구위원회 부서기·자치구 주석 등을 역임한 그는 98년 전인대 부위원장에 선출됐다. 하지만 올 4월 중순 재직 당시 직권남용 등의 방법으로 4,109만위안(약 53억4,17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체포됐다.청이 부패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21살 연하의 미모의 여성 리핑(李平·45)을 만나면서부터.리핑은 광시 난닝(南寧)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고중(고교)을 졸업한 뒤 여공으로 사회에 진출했다.일본인피가 조금 섞인 그녀는 타고난 미모를 바탕으로 사교력을 발휘, 당시자치구정부 주석 아들과 결혼했다.이를 계기로 자치구정부 외사판공실 산하의 호텔에 직장을 옮겨 근무했다. 이때 자치구 부주석에 오른 청은 업무상 이 호텔을 자주 드나들면서리핑과 눈이 맞아 불륜의 관계를 맺게 됐다. 이후 두사람은 각자 이혼한 후 결혼하기로 약속했으며 리핑은 전 주석의 아들과 이혼하고홍콩으로 건너가 무역회사를 설립,청의 도움을 받아 돈을 모았다.그는 자치구내 국유지를 헐값에 넘겨주고 리베이트를 받거나 융자를 알선해주고 커미션으로 챙긴 돈을 모두 리핑에게 전달했다.그녀는 이돈으로 홍콩의 호화저택을 구입하고 자신의 딸을 호주에 유학시켰다. 지난 10여년 동안 ‘불륜의 곡예놀이’에 탐닉하던 청은 올초 광시장족자치구 시찰단을 이끌고 마카오를 방문했을 때 리핑과 몰래 만나다가 이를 본 시찰단 수행원이 중앙기율검사위에 고발함으로써 꼬리가 잡혔다.‘광시의 장칭(江靑·마오쩌둥 부인)’이라고 불리며 권력과 쾌락의 삶을 추구하던 리핑도 9일 무기징역을 선고받아 한평생을싸늘한 감옥에서 보내게 됐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 中 경제특구 도입 20년/ 개방당시·현주소 비교

    ‘덩샤오핑(鄧小平) 개혁·개방정책의 기수’를 자임하는 중국 경제특구가 26일로 20주년을 맞는다.경제특구로 지정된 남동부 연안의 5개 소도시들은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며 중국경제의 고도성장을 견인해왔다.중국식 자본주의의 실험장인 경제특구 20년의 오늘을 조명해본다.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추녀면서 미인처럼 행동해서는 안된다.뒤떨어짐을 인정해야 희망이 생긴다”.78년10월 개방노선을 구상중이던 덩샤오핑이 한 말이다.이 말은 49년 사회주의 중국 건설 이후 대약진운동 등 거듭된 경제정책의 실패로 만신창이가 된 중국 경제에 돌파구를 마련한 경제특구의 조성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1980년8월 ‘광둥(廣東)성 경제특구 조례’가 통과돼 정식 개발된 경제특구는 광둥성의 선전(深?)·주하이(珠海)·산터우(汕頭)가 처음 지정됐으며,10월 푸젠(福建)성 샤먼(厦門),88년3월 하이난(海南)성이 각각 추가지정됐다. 특구지정 이후 중국 경제는 10%대의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여 98년국내총생산(GDP)이 9,600억달러(약 1,056조원)를 기록,개방 원년인 78년보다 20배 이상 늘었다.교역액도 99년 3,607억달러로 급증하며 세계 10위권으로 도약했고,외환보유고는 78년 1억6,000만달러에서 올해 1,500억달러를 넘어 세계 2위를 기록중이다.5대 경제특구가 중국의고도성장을 주도한 일등공신인 셈이다. ◆선전 인구 3만의 소도시였던 선전은 1,000여개의 금융기관과 세계1,6000여개의 기업들이 앞다퉈 진출,400만명의 대도시로 탈바꿈했다. 특구로 지정된 이후 선전은 저렴한 노동력 등 최적의 사업환경으로 20%대의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다.하지만 선전도 왕쥐(王炬) 전인대부주임이 부패사건에 연루돼 조사를 받고 있는 등 ‘고도성장의 쓴맛’도 보고 있다. ◆주하이 중국 최고의 인프라 모범도시로 꼽히는 주하이는 50억달러이상의 외국인 투자액을 유치,안정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지난해 주권반환된 마카오와 인접하고 있어 ‘마카오 특수’도 기대된다.그동안 연평균 10%대의 성장을 하며 98년의 GDP는 32억1,900만달러.반면무모한 인프라시설 투자로 시정부 재정이 파탄위기에 몰리고 있다. ◆산터우 정보통신·전자산업 육성에 주력한 결과 휴대폰 및 TV보급률 등이 중국 최고수준을 자랑하고 있다.97년말 현재 GDP는 전년보다 16%가 늘어난 45억4,800만달러.하지만 밀수 다발지역으로 꼽혀 96년 이후 중앙정부의 본격적인 밀수 단속으로 외국기업들이 줄줄이 이탈,어려움을 겪고 있다. ◆샤먼 푸젠성이 자존심을 내걸고 4,500여개의 외국기업을 유치하는등 총력을 기울여 20%대의 성장을 기록하며 쾌속항진을 거듭하고 있다.99년의 GDP는 55억8,000만달러를 기록.반면 60억달러의 건국 후최대 규모의 밀수사건이 적발돼 관리들이 구속되는 바람에 외국인들이 발길을 돌려 산업 전반에 걸쳐 타격을 입고 있다. ◆하이난 섬 전체가 경제특구인 하이난은 관광지여서 공업의 기초가취약하다는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파격적인 특혜조치를 제공,짧은 기간내 산업기반을 확충했다.98년말 현재 GDP 규모는 53억5,000만달러. 그러나 관광지로 보호하려는 중앙정부의 제한적인 산업정책으로 우대정책이 폐지돼 특구의 의미가 퇴색됐다. khkim@. * 창바오화학 姜永求사무소장의 진단. [주하이(광둥성) 연합] 인접한 중산(中山)이나 포산(佛山)지역만 해도 외국 기업인들로 북적대는데 반해 경제특구인 주하이(珠海)는 외자기업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습니다.전자산업등에 주력하겠다고 호언했던 당국의 노력이 허사로 돌아간 듯합니다.” 1994년 선경 매그네틱(주) 사원으로 주하이에 진출한 뒤 2년 전부터 한국 기업들을 상대로 교역사업을 하고 있는 강영구(47·姜永求) 창바오(常寶)화학 주하이 사무소장은 주하이가 5∼6년 전에 이미 선전과의 외자 유치 경쟁에서 뒤졌다고 말했다. ◆주하이 특구는 실패했다고 보나.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다만 중국정부가 최근 5대 특구외에연안 도시들과 서부 개발 진출 기업들에게도 똑같거나 유리한 세제정책을 펴고 있어 특구도시로서의 생명력을 잃은 게 사실이다. ◆투자가들의 외면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과도한 규제와 시정부의 재정 고갈로 투자환경이 한층 약해졌다.예를 들어 공장 하나 건설할 때 도로를 50% 포함시키도록 강제하는 등규제가 심각,건실한 기업들에게도 투자지로적합하지 못하다.까다롭기로 유명한 주하이 세관이나 행정당국의 지나친 규제나 이상에 치우친 외자기업들의 노무관리 등도 걸림돌이다. ◆‘특구 폐지론’ 및 ‘무용론’이 한동안 제기됐는데. 보수파의 견제로 한참 떠들썩했던 ‘특구 무용론’이 현실화된 느낌이다.주하이 시정부의 재정이 고갈돼 시정부의 대외 공약인 중공업도시개발이 지연되고 있다.중국 최대 규모인 공항에 국내선뿐 아니라 국제 여객기들이 운항하고,항만 건설을 통해 컨테이너 선박들의 입항 여건이 조성되지 않는 한 외자기업들의 눈길을 끌기 힘들 것이다. *한국기업 진출 현황. [베이징 김규환특파원] 한국기업들은 90년대 초반부터 외국기업들과 함께 중국의 5대 경제특구에 본격 진출했다.1992년8월 한·중 수교를 전후한 ‘중국 특수’바람에 힘입어 한국기업들의 현지 진출이 크게 늘어나며,지금은 400여개사가 왕성한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한국 기업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곳은 중국 광둥(廣東)성의 선전(深?) 특구와 선전의 인근지역인 바오안(寶安)공업구,룽캉(龍崗),둥관(東莞),후이저우(惠州) 등.삼성 SDI(구 삼성전관) 및 삼성전기,삼성전자와 LG전자,대우전자,금호금속 등 대기업과 전자부품업체인 광성전자,완구업체 조선무역 등의 중소기업 등 280여개사의 한국기업들이진출해 있다. 광둥성의 주하이(珠海)의 경우 오디오 생산업체인 선경 매그네틱과완구업체인 (주)세모,한국업체를 상대로 교역하는 창바오(常寶)화학등 3개사만이 진출,그다지 한국기업들의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다.하지만 주하이 인근의 배후도시인 중산(中山)·포산(佛山) 등에는 전자통신 부품업체인 성환 차이나 등 30여개 업체가 들어가 생산활동에전념하고 있다. 광둥성의 산터우(汕頭)는 중국 정부가 홍콩과 태국 등 동남아 거주화교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지정한 특구.따라서 94년 현지 진출한선경글로벌과 한화종합화학,대우 등만이 진출,한국기업들의 진출이대체로 미미한 편이다. 타이완(臺灣)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해 특구로 지정한 푸젠(福建)성의 샤먼(厦門)에는 한중수교 전인 89년 진출,세계적 텐트업체로 성장한 노스폴(구 진웅)을 비롯해 현대종합상사·수산기계설비·한진해운·일양약품 14개사가 진출해 있다. 88년 후발주자로 특구로 지정된 중국 최대의 경제특구인 하이난(海南)성에는 유일한 한국업체였던 (주)대우의 투자사인 하이위(海宇)석판공업이 7월 하이난성의 우대정책 철폐로 손을 털고 철수하는 바람에 한국기업은 전무한 상태다.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6) 孫貞道목사 활동지 吉林

    중국 길림성의 성도(省都) 장춘(長春)에서 ‘장길(長吉)고속도로’를 타고 동쪽으로 45분쯤 달리면 길림(吉林)에 도착한다.길림은 중국의 동북지방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도시 가운데 하나로 만주국 시절일본인들은 길림을 일본의 고도 경도(京都)에 빗대 ‘소경도(小京都)’라고 불렀다.백두산 천지에서 발원하여 길림 도심을 ‘S자’로 휘감아 도는 송화강(松花江)은 엄동설한에도 얼지 않는다.이는 근처에풍만(豊滿)발전소가 있기 때문이다.겨울철 송화강에 피어오르는 수증기는 찬공기와 어우러져 강 주변의 나무에 은백색의 얼음꽃을 피우는데 이는 길림의 대표적인 겨울 풍물로 꼽힌다. 길림은 일제강점기 우리 항일투사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곳이기도 하다.특히 정의부 계통의 독립운동가들은 이곳을 본거지로 삼았고참의부나 신민부의 거두들도 이곳에서 활약했다.독립운동가들이 길림에 운집하게 된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당시 길림은 북만주 일대에서 우리 동포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던 곳이었다.일제의 탄압을 피해 고국땅을 떠나 만주행에 오른 동포들은 대개 길림선을 통해 만주오지로 들어갔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길림에 주저앉았다. 또 하나는 길림이 심양,장춘,연길 등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충지이면서도 남만주철도와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어서 외부의 영향이 덜미치는,소위 ‘소왕국’과 같은 곳이었다.길림이 한 때‘비적(匪賊)의 소굴’로 불린 것은 이 때문이다.게다가 이 지역의 중국 군벌들은일제에 항거하는 조선인 독립운동가들에게 호의를 갖고 있어서 독립운동가들에게는 ‘천혜의 요지’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1924년 11월 만주 길림성 유하현(柳河縣)에서 조직된 정의부의 간부 가운데 상당수는 이곳 길림에서 활동하였다.집행위원회 위원장 현익철(일명 현묵관)을 비롯해 지방부 위원장 김리대,군사부 위원장 이웅,그리고 별동대 대장 이동훈,경무과장 김구(金球)등이 모두 길림에서활동하였다. 길림은 또 1919년 11월 창립된 의열단(단장 金元鳳)의 창립지이자고려혁명당 역시 1926년 4월 이곳 길림에서 창립됐다.의열단의 창립지인 길림성 파호문(把虎門)밖 중국인 농부 반(潘)씨집은 이미 헐린상태며,고려혁명당 창립지인 길림성성(城) 영남반점은 현재 길림시북경로 179번지 길림시건축설계원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김이삼(金利三) 기자가 피살된 동아여관은 현재 정춘집단공사 길림시 분공사(分公司,길림시 회덕가 90호 소재)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길림에서 활동한 항일운동가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해석 손정도(孫貞道·1872∼1931) 목사를 들 수 있다.평남 강서출신인손 목사는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10년 선교사로 만주에파견된 이후 1931년 길림에서 병사할 때까지 일생을 오점없이 독립운동에 투신한 애국자다.1912년 선교활동을 벌이던 하얼빈에서 일제가조작한 ‘가쓰라(桂太郞)공작 암살모의사건’에 연루돼 전남 강진에서 ‘거주제한 1년’의 유배형을 산 손 목사는 1919년 3·1의거에 참여하였다가 상해로 망명하였다.그 해 4월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이 구성되자 이동녕 초대 의장에 이어 의장에 선출되었으며,21년에는 임시정부 임시국무원 교통총장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손 목사는 임시정부가 여러 파벌로 나뉘어 세력다툼이 치열해지자 이듬해 임정을 박차고 나와 북만주 길림으로 향하였다. 길림시내 우마항(牛馬巷) 서광(曙光)골목에 예배당을 건립한 손 목사는교회를 거점으로 선교사업과 함께 애국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당시 손목사는 길림지역 조선인들의 정신적 지주였으며 그의 예배당·자택은독립운동가들의 비밀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취재팀이 손 목사의 집터와 예배당을 찾았을 때 이들은 모두 헐린 뒤였으며, 일대는 아파트단지 공사가 한창이었다.(예배당은 인근에 새로 건립돼 있음)현재의주소로는 길림시 선영구(船營區) 청도가(靑島街) 춘광호동(春光胡洞)일대로 동네이름마저 서광호동에서 춘광호동으로 바뀌어 있었다. 한 주민에 따르면,“2년전 서광호동 골목이 헐리면서 동네이름도바뀌었다”고 했다. 손 목사의 길림 시절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하나 있다. 바로 북한의 김일성(본명 김성주) 주석이다.당시 손 목사는 ‘소년김성주’의 후견인이자 그를 항일운동의 길로 안내한 정신적 스승이었다고 할 수 있다.1926년평양의 창덕학교(소학교)를 졸업한 김성주 소년은 민족주의 단체인 정의부가 화전(樺甸)에서 설립한 화성의숙(華成義塾)에 입학했다.당시 숙장(塾長)은 천도교도이자 항일운동가인 최동오(崔東旿)선생이었는데 최 선생은 86년 월북한 최덕신(崔德新) 전외무장관의 부친이다.(금년 8·15 이산가족 상봉때 북측 단장을맡은 류미영씨는 최 전장관의 부인이다.)그러나 그해 6월 부친의 갑작스런 별세의 충격으로 학업을 중단한 그는 이듬해 길림으로 건너와 육문(毓文)중학에 입학했는데 그는 당시 부친의 친구인 손 목사의지도와 후원을 받으며 생활하였다. 특히 공산주의 성향의 독서회를 이끌던 그가 중국 군벌에 체포되자손 목사는 감옥으로 사식과 침구를 제공하는 한편 군벌에게 뇌물을주면서까지 그의 석방을 위해 노력하였다.그 덕에 그는 감옥에 들어간지 7개월만인 30년 5월초에 출감했다.김 주석은 생전에 남긴 자신의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제2권첫머리의 ‘손정도 목사’편에서 “손 목사의 도움으로 제 때에 감옥에서 석방되지 않았더라면 10년쯤 감옥생활을 더 했을 것”이라며 “손 목사는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회고했다. 길림시내 송화강변에 위치한 육문중학에는 그가 다닌 옛 육문중학의 구지(舊址)가 신관 뒷편에 원형대로 보존돼 있다.길림시는 92년 이곳을 ‘중점 문물 보호단위’로 지정,관리하고 있다.350평 규모의 ‘구지’에는 당시의 교사(校舍)·온실 등이 거의 원형대로 남아 있다. 마당 한가운데는 92년에 건립한 김 주석의 동상이 서 있다.동상 뒷편에 위치한 교사에는 당시 김 주석이 공부하던 교실이 ‘김일성동지독서기념실’로 꾸며져 있다.‘구지’ 관리자인 왕쑹린(王松林·52)주임은 “김일성 동지는 1927∼30년 이곳에서 공부를 했으며 당시 키가 작았던 탓인지 자리가 제일 앞줄이었다”고 말했다.왕 주임은 취재팀에게 “중국에 파견나온 북한 공직자들이 더러 방문하는 예는 있지만 남한 국적자가 방문하기는 처음”이라고 밝혔다. 한편 손 목사의 후손들은 해방후 김 주석과는 ‘서로 다른 길’을걸었다.장남 원일씨(元一·작고)는 초대 해군참모총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냈으며,3녀인실씨(仁實·작고)는 YWCA 회장,통일원 고문,한국적십자사 부총재 등을 지냈다.길림시절 김 주석과 형제처럼 지낸 차남 원태씨(元泰·86)는 의대 교수출신으로 현재 미국 네브래스카주오마하에 거주하고 있는데,그는 지난 91년 방북해 김 주석과 60년만에 극적으로 상봉한 바 있다. 길림(중국) 정운현기자 jwh59@
  • 한민족 하나로 남북 이산상봉/ 北 류미영 단장의 딸 최순애씨

    “그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어머님이 연락을주셨으면 좋겠는데…” 역사적인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북녘 방문단을 이끌고 남쪽을 찾은류미영(柳美英·78·천도교 청우당 중앙지도위원장)단장의 딸 최순애(崔淳愛·49)씨는 주위에서 뭐라든 24년 세월 동안 변함없는 그리움의 대상이었던 어머니를 만나고 싶은 마음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아버지 고 최덕신(崔德新)전 외무장은 동백림사건에 연루되는 등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다가 정치적 탄압을 받자 76년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86년 4월 북으로 넘어갔다.망명 당시 최씨는 26세였다. 이 때문에 최씨를 포함해 남한에 남아 있던 2남3녀는 10여년 동안정보기관의 감시에 시달리는 등 ‘형언하기 힘든 고초’를 겪었다.현재 장남 건국씨(58)가 독일에 있고,차남 인국씨(51)와 세 자매는 한국에 살고 있다.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분단된 한국 사회에서 ‘월북자의 딸’이라는 딱지는 떼어버릴 수 없는 낙인이었다.하지만 최씨 등 형제들은 믿고 존경했던 부모님의 ‘이해하기 쉽지 않은 선택’을 인정했다고 한다.항상 반듯한 모습,의연히 원칙을 지키는 삶을 보였던 부모님이었기에 변함없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한다. “처음 미국으로 망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믿어지지 않았고그 뒤 정보기관과 주위의 시선으로 겪은 고생은 지긋지긋할 정도였습니다.하지만 원망보다도 큰 믿음과 그리움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겪었던 고생과 켜켜이 쌓인 그리움을 생각하면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토로할 법도 했지만 최씨의 반응은 의외로 의연했다. 최씨는 “뵐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상봉장으로 달려가 어머니를껴안고 펑펑 울고 싶지만 어머니가 원하시지 않을지도 모르겠다”면서 “부담스러우시더라도 어머니가 연락을 꼭 주셨으면 한다”고 가없는 그리움과 믿음을 털어놓았다. 박록삼기자 youngtan@
  • 8·15특사 3,586명 석방 2만3,730명 공민권 회복

    55주년 광복절을 맞아 8·15 특별사면 대상에 포함된 공안사범과 모범수 등 3,586명이 15일 오전 10시 수감 중인 전국 교도소에서 일제히 석방됐다. 한보 ·청구사건에 연루돼 2년9개월 동안 복역한 홍인길(洪仁吉)전청와대 총무수석은 수감 중인 의정부교도소에서,‘깐수’로 알려진남파 간첩 정수일(鄭守一)전 단국대 교수는 대전교도소에서 각각 형집행정지로 출소했다. 한편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와 이명박(李明博)·홍준표(洪準杓)전 의원을 포함한 선거사범,IMF 생계형사범,정치인 등 2만3,730명이 이날 복권돼 피선거권 등 공민권을 되찾았다. 이상록기자 myzodan@
  • 김현철 복권·홍인길 형정지

    정부는 14일 8·15 광복절을 맞아 3만647명에 대한 특별 사면·복권 및 가석방조치를 15일자로 단행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면조치에는 사형수 2명이 무기징역으로,10년 이상 복역한 무기수 140명이 징역 20년으로 각각 감형됐다. 정부는 과실범과 부정수표단속법 등을 위반한 IMF 생계형사범,행정법규 위반사범 2만2,235명을 사면·복권,경제회생에 동참토록 했다. 역대 광복절 사면중 최대규모로 이뤄진 이번 사면·복권에서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가 복권되고 한보·청구사건에 연루돼 3년간 복역한 홍인길(洪仁吉) 전 청와대 수석이 형집행정지로 풀려난다. 공안사범 중에는 남파간첩 ‘깐수’로 알려진 정수일 전 단국대 교수와 지하가족당사건의 심정웅씨,석치순 전 지하철노조위원장,한총련 4·5기 의장 정명기·강위원씨 등 1,101명이 석방·감형 또는 사면·복권됐다.장기복역하다 석방된 우용각씨 등 비전향 장기수 19명의남은 형기도 면제해줬다. 또 96년 4·11 총선때 선거사범으로 기소된 홍준표(洪準杓)·이명박(李明博)·최욱철(崔旭澈)·박계동(朴啓東)·이기문(李基文)·김화남(金和男) 전 의원은 형선고실효로 복권되는 등 선거사범 382명이 사면·복권됐다. 이에따라 실형이 확정돼 복역중인 3,586명은 15일 오전 10시 전국교정기관에서 일제히 풀려나고 선거사범 등 2만3,730명이 복권돼 공민권을 회복한다. 김정길(金正吉) 법무장관은 “남북대립 상황에서 발생한 공안사범과 선거사범,일반형사범 등에 대한 광범위한 혜택으로 남북화해와 협력을 통한 민족대화합의 분위기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 대규모 사면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박홍환기자 stinger@
  • ‘8·15대사면’ 특징·주요인사

    14일 발표된 ‘8·15 대사면’은 새천년 첫 광복절이라는 ‘상징’과 최근의 남북화해기류라는 ‘현실’을 모두 감안해 내린 결단이라는 평이다. 과거의 어둠을 씻고 민족대통합의 길을 모색하기 위해 일반형사범을 비롯,시국·공안사범,선거사범,비리 정치인 등에 대해 대폭적인 사면·복권의 혜택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특징과 배경=우선 남북 화해·협력 분위기를 감안,공안사범을 대거 포함시켰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이번에 석방되거나 사면·복권된공안사범은 1,101명.법무부 설명대로라면 복역기간이 짧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석방하거나 사면·복권됐다. 특히 무기수로 40년동안 복역하다 풀려나 곧 북한으로 돌아갈 우용각씨 등 장기수 19명에 대해서는 잔형집행면제 조치로 ‘족쇄’를 풀어줬다. 15대 총선사범과 그 이전 선거사범에 대해 복권 조치가 내려져 다음 선거 출마 기회를 준 것도 큰 특징이다.법무부측은 “이들이 이미동종선거에 한차례 출마를 못하는 등 징벌을 받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번 특사에서는 특히 국민의 정부 출범 이전 비리사건 관련자에 대해 대규모 사면·복권이 이뤄져 눈길을 끈다.한보사건 연루 정치인,비리 공직자 등 부정부패 관련자와 비리 경제인 등이 ‘은전’을 받았다. 법무부 관계자는 이에 대한 비난 여론을 의식,“새천년 첫번째 광복절을 계기로 불행했던 역사를 벗고 민족대통합의 시대를 열기 위한조치로 이해해달라”고 말했다. 이밖에 지난해에 이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모범적인 수형생활을 하고 있는 사형수 2명을 무기수로 감형,갱생의 길을 열어줬다.법무부는 이번 조치는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형폐지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이와 함께 IMF체제 하에서 부득이하게 부도를 내 부정수표단속법 위반 혐의로 처벌받은 중소기업인과 IMF 생계형 사범,민생과 직결되는 과실범 등에 대해 ‘국민통합’ 차원의 은전이 베풀어졌다. ◆사면·복권 주요인사=지난해 8·15특사때 잔형집행면제로 사면된김현철(金賢哲)씨는 이번 특사로 복권됐다.한보·청구사건에 연루돼징역 6년을 선고받고 복역중인 홍인길(洪仁吉) 전 청와대총무수석은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문민정부 시절 현철씨 인맥으로 전횡을 휘두르던 김기섭(金己燮) 전 안기부기조실장도 형선고실효 조치와 함께복권됐다. 노태우비자금 사건의 이원조(李源祚),한보사건의 노승우(盧承禹) 전의원 등 비리 정치인과 우찬목 전 조흥은행장,신광식 전 제일은행장,손홍균 전 서울은행장,이수휴 전 보험감독원장,김경회 전 철도청장,정홍식 전 정보통신부차관 등 대출비리 은행장과 뇌물수수 공직자에대한 복권 조치도 이뤄졌다. 탈세혐의로 기소돼 지난 5월 대법원에서 징역 3년,집행유예 4년의확정판결을 받은 홍석현(洪錫炫) 중앙일보회장,홍두표(洪斗杓) 전 KBS사장도 복권됐고,12·12사건 관련자인 박희도(朴熙道) 전 육군참모총장과 장기오(張基梧) 전 총무처장관은 형선고실효로 사면됐다. 선거사범은 한나라당의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4월 영수회담에서 복권을 요청한 홍준표(洪準杓)·이명박(李明博)·최욱철(崔旭澈)·박계동(朴啓東) 전의원 등과 함께 민주당 이기문(李基文),자민련 김화남(金和男) 전의원이 포함되는 등 모두 382명이 복권됐다. 공안사범 가운데는 일명 ‘깐수’로 알려진 정수일(鄭守一) 전 단국대교수와 서울지하철 고정간첩사건의 심정웅씨가 형집행정지로 풀려났고,지난 98년 한총련대표로 밀입북한 황선씨,영남위사건으로 기소된 방석수씨 등도 석방됐다.영남위사건 관련자인 김창현(金昌鉉) 전울산동구청장도 복권됐다.이밖에 강위원(姜渭遠·한총련 4기 의장),정명기(鄭明基·〃5기 의장)씨는 감형됐다. 박홍환기자 stinger@
  • 환경박람회 136억 날렸다

    경기도 일부 지자체가 철저한 사업계획도 없이 대규모 국제행사를 치러 예산을 낭비하거나,부동산 매매과정에서 취득세 등 세금을 부당하게 줄여주는등 지방자치단체의 무계획성 및 위법·탈법행위 사례가 적지않은 것으로 드러났다.감사원은 올 상반기에 광역단체 한곳과 기초단체 24곳에 대한 정기감사를 벌여 징계 및 문책 79건에 136명,고발 15건에 21명 등의 행정조치를 내렸다고 9일 밝혔다. 지난 2∼3월 하남·군포·이천·의왕시 등 경기도 4개 시에 대한 일반감사에서만 모두 51건의 부당행위를 적발,해당 단체장에게 주의조치토록 행자부에 요청하는 등 7명을 징계하고 14건은 시정,8건은 주의조치를 했다고설명했다. ◆하남 국제환경박람회 문제점=지난해 9∼10월 하남 국제환경박람회를 개최하면서 계획성 없이 행사를 추진,136억7,112만여원의 예산을 낭비했다.환경박람회의 총 사업비는 219억2,387만여원이었으며 이 중 시가 부담한 액수는156억7,112만여원이었다.감사원은 시장에게 주의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현행법으로는 민선 단체장이 비위에 연루된 경우를 제외하고 선심성 행사 추진과정에서 예산을 낭비했을 때 제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주의조치만 했다. 감사원은 환경박람회가 국고보조와 민자유치 등 재원확보가 불투명한데도불구하고 행사규모를 무리하게 키우면서 당초 118억원에서 163억원으로 예산을 증액해 총 219억2,387만여원을 집행했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또 환경박람회조직위 관계자 등이 행사경비 1억1,327만여원을 개인용도로 사용하는 등 모두 1억3,727만여원의 시 보조금을 행사 목적 외에사용한 사실을 적발했다. ◆취득세 부당감면,허가업무 부당처리=이천시는 관내 기업이 지난해 화성군에 있는 기업에 토지와 건물을 15억여원에 판 뒤 이 돈으로 부당하게 은행부채를 갚았는데도 세금 7,702만여원을 감면해 줬다. 경기도 도세감면조례에는 97년 6월30일 이전의 금융부채를 상환하기 위해 부동산을 팔 때만 이를 취득한 자에게 취득세 등 세금을 감면해 준다고 돼있다. 감사원은 관계자 2명을 징계토록 하고 가산세 등 1억597만원의 세금을 추가징수토록 했다. 또 하남시가 90년부터 올 2월말까지 개발제한구역에 허가해준 축사 1,491동(97만4,843㎡) 가운데 1,338동(38만6,468㎡)이 창고 공장 작업장 등으로 불법으로 용도변경한 사실을 지적했다. 정기홍기자 hong@
  • 8·15대사면 윤곽

    3만명을 상회하는 ‘8·15 대사면’ 대상자 가운데 상당수는 IMF 생계형 사범과 일반 형사범인 것으로 알려졌다.15대 총선 선거사범과 일부 경제사범은물론,남북화해 분위기를 감안해 시국·공안사범들도 대거 포함될 전망이다. 남파간첩 ‘깐수’로 알려진 정수일(鄭守一) 전 단국대교수,지난해 지하철파업을 주도한 서울지하철공사노조의 석치순(石致淳) 전 위원장,나창순(羅昌淳) 범민련 남측본부 고문,영남위원회 사건으로 복역한 김창현(金昌鉉) 전울산동구청장 등 200∼300여명의 시국·공안사범이 사면·복권 대상으로 검토되고 있다. 민혁당 사건의 말지 기자 김경환(金京煥)씨와 강위원(姜渭遠),정명기(鄭明基) 전 한총련의장 등도 거론된다. 선거 사범 가운데는 여·야 각 당이 건의한 15대 총선사범 중 이명박(李明博),최욱철(崔旭澈),박계동(朴啓東),홍준표(洪準杓),이기문(李基文),김현욱(金顯煜),변웅전(邊雄田) 전의원 등이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반면 98년 6·4지방선거 사범들은 동종선거에 1차례 출마 기회를 박탈하는 ‘1기 배체 원칙’에 따라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사범으로는 한보그룹 정태수(鄭泰守) 전 총회장의 3남 보근(寶根)씨와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으로 6년째 수감중인 이준(李俊) 회장 등 재계 인사들과 기업 운영 중 자금난으로 부도를 낸 부정수표단속법 위반자 등이 특사 대상에 포함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5월 대법원에서 조세포탈 혐의로 유죄가 확정된 홍석현(洪錫炫) 중앙일보회장에 대한 사면도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있어 “대사면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무분별한 조치’”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8·15 특사 때 잔형집행 면제로 사면된 김현철(金賢哲)씨의 복권과한보·청구사건에 함께 연루된 홍인길(洪仁吉) 전 청와대총무수석의 사면도확실시 되고 있다. 박홍환기자 stinger@
  • [휴먼 카페] 간통으로부터의 해방

    남편이 바람이 나 다른 여성과 실림을 차렸다는 30대 여성이 내게 상담하러왔다. 고등학교때 공부를 잘 했지만 가난해서 대학을 포기하고 중매로 결혼을 한 여성이었다.결혼 후 겨우 아이 둘을 낳고 중풍으로 몸져 누운 시아버지를 돌아가실 때까지 간병해온 억척같은 여성이었다. 그녀에 따르면 남편의 바람을 눈치채고 짐을 싸서 친정으로 갔다가 아이들걱정에 돌아오니 남편이 그 여성과 함께 집에서 살고 있더란다.그러다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남성에 이끌리고 그 남성을 통해 남편을 혼내줬으면 하고 부탁을 할까,묻는 등 다소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그 여성에게 우선 취직을 하라고 권했다.또 남편을 간통죄로 고소하지도 말라고 했다.그 죄로 남편을 고소하면 남편의 사회생활은 파괴되고 어차피 자식들 때문에 남편과 다시 연루되기 때문에 무익한 일이 될 거라고 했다.그리고 딴 살림을 차린 남편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한 그 여성에게 보석은많이 깎일수록 빛이 나는데 이번 어려움을 극복하면 훨씬 아름다운 사람이될 것이라고 다독여줬다.남편에게 매달리는 현재의 마음을 접고 혼자서도 행복한 사람이 얼마든지 될 수 있다고 자신감을 키워줬다. 우리의 삶에서 솟아나는 모든 희로애락,생각,행동 중에는 반드시 무엇인가를 발전시키고 도우는 것이 나오고 또 제거해야 되는 것이 나온다.간통을 한남편,그 반대의 경우에 의해 상처받은 현대의 생활인들은 그 불행에 매여 있지 말고 그걸 현실로 빨리 인정하고 해방되는 것이 필요하다.그 주변의 사람들도 간통이나 바람에 흥분하거나 실의하기보다 그 이후의 유쾌한 삶을 위해차분히 도와주어야 한다. 양천구보건소 소아과 의사 안병선 quasy@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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