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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카메라의 눈’으로 그렸다

    ‘카메라의 눈’으로 그렸다

    ‘절규’의 뭉크 대신, ‘셀카의 달인’ 뭉크를 내세웠다. 2013년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탄생 150주년을 맞는 노르웨이 오슬로 뭉크박물관은 ‘모던 아이’(The Modern Eye)전을 내세웠다. 기괴하고 우울한 뭉크보다 유쾌하고 재밌는 뭉크의 면모를 확인해볼 수 있는 자리다. 뭉크 하면 가장 많이 떠올리는 작품은 ‘절규’(Scream)다. 이 작품은 올해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1억 1990만 달러(약 2166억원)라는 역대 최고액으로 낙찰돼 화제를 모았다. 최고액 기록 자체는 물론, 그림의 테마가 글로벌 경제위기와 맞물려 해석되면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절규’풍의 작품은 뭉크의 특징이긴 하다. ‘절망’(Despair), ‘불안’(Anxiety) 같은 작품들도 비슷한 형식이다. 또 널리 알려진 것은 자신을 악마처럼 묘사한 ‘지옥에서의 자화상’(Self-Portrait in Hell)이나 다비드의 걸작에서 모티프를 따온 ‘마라의 죽음’(Death of Marat) 같은 작품들이다. 이 작품들도 주제는 다르지만 전반적인 톤은 ‘절규’와 비슷하다. 북구의 차갑고 혹독한 겨울 날씨에다 모계 쪽은 폐질환이 많았고 부계 쪽은 정신질환이 많았다는 가족력, 스스로 정신질환을 앓기도 했고, 여자 문제 때문에 약하긴 해도 총상을 입기도 했었다는 정황들이 겹쳐지면서 뭉크 하면 대개 이런 어둡고 침울한 작품들을 많이 떠올린다. ●당대 최첨단 카메라로 사진 찍어 회화에 접목 그런데 이번 전시는 포인트를 달리했다. 내성적이고 수동적이기보다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뭉크다. 실제 뭉크는 당대에 파격적인 작품들을 선보였던 화가들과 달리 평생 큰 어려움 없이 살았다. 괜찮은 집안에 태어났고, 생전에 이미 화가로서 일정한 명성을 얻어 작품활동하는 데 크게 지장을 받은 적도 없다. ‘절규’를 4가지 버전으로 그릴 수 있었고 그 외 다른 작품들도 여러 가지 버전으로 반복해서 그려놓을 수 있었던 까닭도, 그림이 잘 팔려서 그와 비슷한 작품을 다시 만들어 소장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다.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처음 보여주는 것은 뭉크가 썼던 옛날 구식 카메라다. 돈에 크게 쪼들리지 않았던 뭉크는 당대 최첨단 미디어랄 수 있는 카메라를 직접 사서 열심히 찍어댔다. 그리고 이 카메라로 셀카도 열심히 찍었다. 전시장에는 그가 자신을 직접 찍은 영상과 셀카 사진들이 즐비하다. 그러니까 오늘날 작가들이 컴퓨터 프로그램 같은 최첨단 기술을 작품 속에 응용하려 했듯, 뭉크도 사진이나 영상을 회화에다 적용하려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 전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귀가하는 노동자들’(Workers on their Way Home)이다. 이 작품은 언뜻 특별한 점이 눈에 띄지 않는다.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웅성대며 퇴근하는 장면을 그린 그림인데, 인물 묘사는 뭉크 특유의 필체로 가득차 있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을 관찰해서 그리는 뭉크의 눈이 ‘사람의 눈’이 아니라 ‘카메라의 눈’임을 확인할 수 있다. 화가의 시점 자체가 자연스러운 사람의 시점보다 훨씬 높은 위치에 있는데다, 그림 하단으로 갈수록 인체의 왜곡 정도가 훨씬 심해진다. 이 작품 옆에 나란히 틀어놓은 영상은 ‘리옹의 뤼미에르 공장 출구’다.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선보인 최초의 상업영화다. 러닝타임은 1분도 채 안될뿐더러, 따로 말할 내용이랄 것도 없이 그냥 어느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퇴근하는 장면이다. 두 작품 간의 유사성을 굉장히 강조하는 셈이다. 그래서 헨리크 입센의 연극 ‘유령’ 세트작업 그림도 눈길을 끈다. 알려졌듯 입센은 젊은 시절 뭉크를 격려한 바 있고, 입센 역시 가출하는 여자 노라를 내세운 ‘인형의 집’에 이어 가부장제를 더 혹독하게 비판한 ‘유령’을 발표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런데 뭉크는 이 ‘유령’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유령’을 위해 그린 작품들을 보면, 캔버스 앞에 사람의 눈이 아니라 카메라의 눈으로 섰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볼 수 있다. ●내년 탄생 150주년… 6월부터 대규모 회고전 전시 제목이 모던 아이, 그러니까 최첨단 기술에 무관심하다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부인하고 무시한다기보다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탐구한다는 의미에서 프랑스풍의 모던 아이다. 이번 전시는 파리, 프랑크푸르트, 런던을 순회전시하면서 관객 100만명 이상을 동원한 기획전이다. 오슬로에서의 전시는 내년 2월 17일까지. 탄생 150주년을 기념한 대규모 회고전은 내년 6월부터 시작된다. 오슬로(노르웨이)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연극리뷰] 그와 그녀의 목요일

    [연극리뷰] 그와 그녀의 목요일

    “시원한 거 없어?” “없어.”, “주스 없어?” “없다니까.”, “나갈까?” “싫어.”, “갑자기 웬 풀이냐?” “난()이거든!” 아옹다옹하는 중년 남녀가 꽤나 귀엽다. 주변을 뱅글뱅글 돌면서 재잘대는 정민(조재현)과 톡톡 쏘아붙이는 말투로 응대하는 연옥(배종옥)의 관계는 오랜 친구로 포장돼 있지만 그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 속이 쓰리다는 연옥에게 낙지볶음을 권하는 무심한 정민이 대뜸 “진지하게 만나보자.”면서 매주 목요일 만날 것을 제안하고 훌쩍 떠났다. 연옥은 “한번 휘젓고 사라지면 몇 달이고 연락도 없는” 정민과 목요일마다 다른 주제를 놓고 정기적으로 만나기로 30년 만에 처음 ‘약속’했다. 둘은 연구실, 야구장, 전시회 등에서 다섯 차례 목요일을 보내면서 비겁함, 역사, 죽음 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 속에 정민과 연옥의 과거가 있고 복잡 미묘한 둘의 관계가 담겼으며 금성과 화성만큼 다른 심리 상태가 녹아들었다. ‘그와 그녀의 목요일’은 달콤한 로맨틱 연극으로 한정하면 곤란하다. 가까워질수록 복잡해지고 서로 차이점을 더 극명하게 느끼게 되는 남녀 관계를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품는다. 1970년대 프랑스 대표 작가로 꼽히는 마리 카르디날(1929~2001)의 소설 ‘샤를르와 룰라의 목요일’을 한국 상황에 맞춰 만들었다. 원작에서 프랑스 북부 출신의 역사학자이자 자유주의자인 샤를르는 역사학 교수 서정민이 됐고 알제리 출신 저널리스트 룰라는 은퇴한 국제분쟁 전문기자 정연옥으로 태어났다. 룰라는 프랑스 제국주의를 향해 분노를 표출하고 연옥은 1980년대 서슬 퍼런 군부독재를 비판한다. 룰라와 샤를르가 40년 동안 친구와 연인 사이를 오갔다면 연옥과 정민은 30년 동안 그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했다. 두 작품 사이에는 다른 시공간의 배경이 놓여 있지만 남녀 관계의 그 애매하고 혼란스러운 관계, 다른 말과 표현에서 비롯되는 오해와 갈등은 여전하다. 정민과 연옥이 서로에게 터뜨린 불만의 핵심이 거짓말과 무책임이라는 점도 많은 이들이 세차게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사랑은 사랑일 뿐 사랑할 나이가 따로 있다거나 나이에 따라 사랑이 다르게 느껴지지는 않는 것 같다. 중년의 사랑을 다룬 것이 아니라 삶의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다.”라는 배종옥의 말에 공감이 간다. 인물 심리 묘사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은 황재헌 연출의 공도 커 보인다. 차분하고 지적인 연옥은 배종옥과 정재은이, 유쾌하지만 다소 철없어 보이기도 하는 정민은 조재현과 정웅인이 연기한다. 연극열전과 예술의전당이 공동 제작했다. 12월 30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3만 5000~5만원. (02)580-1300.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관객 1억 한국영화계 기형적 현실을 꼬집다

    관객 1억 한국영화계 기형적 현실을 꼬집다

    중학생 시절 여배우들을 보러 극장을 드나들던 할리우드 키드였다. 재수 끝에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지만 연극만 하는 분위기에 질려 고려대 불문과로 옮겼다. 데뷔작 ‘안개는 여자처럼 속삭인다’(1982)를 비롯해 멜로영화를 주로 찍던 그는 1987년 검열의 족쇄가 풀리면서 사회성 짙은 작품을 내놓기 시작했다. 금기시되던 빨치산을 다룬 ‘남부군’(1990), 베트남전의 참상을 고발한 ‘하얀 전쟁’(1992), 한국 영화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담은 ‘할리우드 키드의 생애’(1994)로 감독상을 휩쓸었다. 정지영(66) 감독이다. 하지만 ‘블랙잭’(1997)과 ‘까’(1998) 이후 관객과 만나지 못했다. 혁명가 김산의 일대기를 그린 님 웨일스의 소설 ‘아리랑’을 영화화하는 데 8년을 투자했지만 좌초했다. 이후 두 작품이 더 엎어졌다. 그가 주춤한 새 강제규,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등 젊은 감독들이 충무로의 주력으로 등장했다. 정 감독은 관객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13년이 흘렀다. 재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들 했다. 하지만 웬걸. 지난 1월 ‘부러진 화살’(343만명)로 대박을 터뜨리더니 열 달 만에 ‘남영동 1985’를 내놓았다. 고(故)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수기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개봉 1주일 만에 30만을 육박하는 관객을 모으고 있다. 또 한편이 새달 6일 개봉한다. 그가 기획·주연을 맡은 다큐멘터리 ‘영화판’(작은 감독 허철)이다. 정지영, 허철 감독은 2009년 하반기부터 이듬해 겨울까지 100여명을 인터뷰했다. 촬영 분량만 200시간에 이른다. 정 감독과 함께 배우 윤진서가 인터뷰어로 동참했다. 1960년대부터 한국 영화가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 현미경과 메스를 들이댔다. 의외로 재밌다. 딱딱한 다큐를 떠올리면 오산이다. 배우들의 밴(승합차)을 볼 때마다 속이 뒤틀린다는 감독이나 노출을 강요하며 윽박지르는 감독에 대한 여배우의 ‘뒷담화’ 등 재미가 쏠쏠하다. 두 편의 1000만 관객 영화 감독(최동훈, 추창민)이나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감독(김기덕) 못지않게 2012년 한국 영화계가 기억해야 할 거장을 만나 못다 한 얘기를 들어봤다. →2009년 봄에 ‘영화판’을 기획했다던데. -미국 뉴욕대에서 한국 영화 교재로 쓴다는 다큐를 봤다. 조악했다. 허 감독과 함께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고 얘기했다. 미국에서 활동한 허 감독과 충무로에 몸담았고 다시 영화를 해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되고 있던 정지영, 내일모레면 서른이고 후배들한테 밀려 애매한 위치에 놓인 배우 윤진서가 함께 ‘도대체 한국 영화가 뭔데’란 공통분모로 뭉치면 재밌겠다 싶었다. →대기업 수직계열화 등 현안에 대한 비판은 생각보단 약했다. CJ와 롯데 관계자의 인터뷰도 담긴 건 의외였는데. -정지영의 시각이 아니라 객관적인 상황을 보려고 했다. 내 목소리를 담기보단 객관적인 인터뷰어가 되려 했다. 결정적으로 ‘영화판’ 촬영을 끝낼 무렵 ‘부러진 화살’을 시작했다. 다큐를 찍을 때는 이것저것 다 찍지만 어떤 작품이 되느냐는 편집에 달려 있다. 허 감독이 약았다. ‘부러진 화살’ 찍을 때 후다닥 편집을 끝냈다. 함께 하면 후배니까 밀릴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 하하하. →허 감독이 편집해서 (정 감독에게) 껄끄러운 인터뷰도 포함된 건가. 이창동, 임상수 감독의 말이 재밌더라. 영화에서 이 감독은 “극장에 뱀을 왜 풀어요?”라고 면박을 준다. 임 감독은 “정 감독님에 대한 존경심은 있지만 작품에 대해 존경심을 갖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퍽 노’(Fuck No).”라고 했다. -나라도 넣었을 거다. 그래야, 재밌지. 임 감독 인터뷰는 (허 감독이) 술자리에서 진행했는데 술이 오르니까 더 심한 말도 했다고 하더라. 아예 한국 영화계를 난도질했다고 하더라. 하하하. →1988년 UIP 직배 반대 투쟁 당시 ‘위험한 정사’ 상영 때 극장에 뱀을 푼 사건은 지금도 비난하는 이들이 있다. 후회는 없나. -멍에다. 비난을 달게 받아야지. 그렇다고 창피하다고 생각하거나 후회하는 건 아니다. 정지영 개인의 선택이 아니고 투쟁을 함께 하던 분들의 선택이었다. 당시의 상황 논리가 있었다. →영화계 밖 이슈인 국가보안법 폐지, 이라크 파병 반대에도 적극적이었다. 일부에선 ‘운동권 감독’ ‘좌파 감독’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한다.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감독이 무슨 정치적 발언을 해? 영화나 찍지.’란 생각은 극복돼야 한다. 정치는 정치인에게 맡겨 두라는 건 기득권층의 논리다. 대중까지 권력의 논리에 길든 것 같다. 미국 대선을 봐라. 배우, 감독, 제작자까지 명확하게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드러낸다. →노무현, 이명박 정부에서 영화계가 보혁, 신구 대결로 홍역을 앓았는데. -한 번쯤 겪어야 할 통과의례였다. 1987년 민주항쟁 이전까지 영화계는 문화예술계의 다른 분야를 허겁지겁 뒤따르기에 바빴다. 그만큼 다양한 목소리도 묻혀 있었다. 우리 윗세대의 생존 전략이 정부와 각을 세우지 않는 것이라면 우리 세대의 생존 전략은 예컨대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이고 직배 반대였다. →한국 영화 관객 1억명이라고 축제 분위기다. -샴페인을 터뜨릴 일만은 아니다. 시장에 할리우드 영화만 있으면 안 되는 것처럼 대기업이 투자, 배급한 영화만 넘쳐나도 곤란하다. 다양한 영화들이 설 자리를 잃게 한다면 그 영화의 국적이 한국이라도 옳지 않다. 대기업의 투자, 배급을 분리해 수직계열화를 해결해야 한다. 상생 공존을 해야지 CJ 혼자만 하려고 하면 큰일 난다. 업계에선 ‘이 XX, 헛소리하고 있네.’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하하.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고졸 공무원의 천기누설] (4) 출입국관리직 9급 합격 김거중씨

    [고졸 공무원의 천기누설] (4) 출입국관리직 9급 합격 김거중씨

    “기업에서는 고졸 공채와 대졸 공채를 따로 뽑는데, 유리천장이 있어요. 사원식당에서 대졸 관리자와 고졸 생산직은 겸상을 안 해요. 공무원 시험은 나이도 보지 않고, 정확하게 자기가 공부한 것으로만 평가하기 때문에 공정하다고 생각해서 응시하게 됐습니다.” 김거중(25)씨는 올해 9급 공무원 공채시험 출입국관리직에 합격해 경기 용인시 법무연수원에서 연수를 마쳤다. 내년 1월 2일 시보 발령을 받게 된다. 전남 순천 효천고등학교를 졸업한 김씨는 모대학 법학과에 1년 정도 다니다 군복무를 마쳤다. 대학을 계속 다녀도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자퇴하고 낮에 배관공 일을 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수험기간은 모두 1년 반 정도다.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김씨를 만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비법을 들어보았다. “회사에 다니면서 공부할 때는 오후 5시쯤 집에 들어오면 7시까지 씻고 저녁을 먹고 나서 매일 밤 11시까지 하루에 한 과목씩 공부했습니다. 9급 공무원 시험은 다섯 과목을 보니까요. 토요일에는 아침 9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집이나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했고, 일요일에는 쉬었습니다.” 김씨는 필수과목인 국어, 영어, 한국사와 출입국관리직 선택과목인 행정법과 국제법 다섯 과목의 시험을 치렀다. 그는 다섯 과목 가운데 영어가 가장 힘들었다고 밝혔다. 영어는 7~9급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 대다수가 가장 어려워하는 과목이다. ☞<정책·고시·취업>최신 뉴스 보러가기 “영어는 1년 반 동안 공부하면서 점수가 5점 올랐어요. 행정법과 국제법은 70~80점 올랐는데. 영어를 20년 가까이 배웠는데도 어려웠습니다. 출제위원들이 좀 치사하게 느껴질 정도로 일부러 틀리라고 내는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풍토병’이란 단어는 한국어로도 모르는데 영어 시험에 나왔어요.” 행정법과 국제법은 아예 모르니까 어렵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고 한다. 오히려 몰랐던 만큼 책을 보면 성적이 쑥쑥 올랐다. 대학을 1년 정도 다니긴 했지만, 거의 수업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도움이 되진 않았다. 군대에서 행정병으로 일했던 것이 많이 도움됐다고 김씨는 털어놓았다. 밤에 전깃불이 있고 따뜻한 데서 일하니까 일과가 끝나면 영어 단어를 조금이라도 볼 수 있어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영어 공략법에 대해서는 “포기는 빠를수록 좋아요. 절대로 맞힐 수 없는 문제가 2~3개 있는데 영어는 만점이 85점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과목을 더 열심히 하는 것이 나아요.”라고 조언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내신 성적이 398명 가운데 380등 정도로 좋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좋은 대학을 못 갔기 때문에 ‘그냥 대학 다니지….’란 말을 들을 때마다 학벌이 좀 떨어진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바텐더, 술집 매니저, 배관공, 일용직 근로자, 에어컨 설치 보조 등 다양한 사회 경험을 쌓으면서 ‘평등한 기회’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됐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학벌을 제외하고 정당하게 평가받는 건 공무원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경기 부천에서 친구와 자취하면서 서울 노량진의 공무원 시험 대비 학원에서 넉 달 동안 수업을 들었다. 노량진 학원에 다닐 때는 수험생활에 찌든 사람들을 보는 게 오히려 힘들었다고 김씨는 이야기했다. 그리고 노량진의 컵밥이 맛있게 느껴지고 노량진 생활이 익숙해지면 절대 안 된다고 강조했다. 컵밥은 노량진 학원가의 명물 음식으로, 바쁘고 돈 없는 수험생을 위해 밥과 반찬을 컵에 섞어 싸게 판다. “노량진 학원가는 ‘노량도’라는 섬으로 불리기도 해요. 합격배를 타고 나가야 합니다. 노량진은 물가가 싸기 때문에 공부하는 게 재밌고 편하다고 주저앉으면 안 돼요.” 김씨가 국어와 한국사를 공부한 과정은 재미있지만 눈여겨볼 만하다. 일상 생활과 공무원 시험 공부를 접목시켰다. 국어 공부는 노래방을 자주 가면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9급 시험의 국어 과목에는 생활 국어가 꼭 나오는데 이번에는 국어사전의 배열 순서가 출제됐다. 노래방에서 노래를 리모컨이 아니라 책으로 찾은 덕을 톡톡히 봤단다. 한국사는 사극의 열혈팬인 어머니와의 대화가 큰 밑천이 됐다. 김씨의 어머니가 역사드라마를 볼 때마다 악당들 욕을 했는데, 실제로 아자개란 악역이 문제로 나와 도움이 됐단다. 하지만 사극은 시간 날 때나 봐야지 공부는 하지 않고 드라마만 보면 안 된다고 김씨는 덧붙였다. 면접은 하나의 잘 짜인 연극과 같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에서 면접 준비팀을 직접 조직해 실제 면접처럼 준비했는데, 같은 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합격했다고 한다. “출근카드를 찍는 줄이 밀렸는데 출근 시간은 2분밖에 남지 않았다. 어떻게 하겠는가?”란 질문에 “최대한 빨리 출근카드를 찍어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더니 일찍 출근할 생각은 없느냐는 반박 질문이 면접관으로부터 날아왔다. “꼭 일등으로 출근하겠다.”란 패기와 재치가 넘치는 김씨의 대답에 결국 면접관도 흡족한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법무연수원의 교육 과정도 그에게 큰 자극이 됐다. “보통 공무원이라고 하면 철밥통, 복지부동, 무사안일을 이야기하는데 절대 아니고,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걸 느꼈습니다. 더 노력하면 더 쓰임이 많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외국어 능력이 되면 해외 영사로도 파견 나갈 수 있고, 출입국관리직 공무원이 성실하게 일하면 오원춘 사건과 같은 외국인 범죄도 예방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부모님은 김씨에게 대학을 다시 가라고 했지만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는 빠른 길이 있다.’며 오히려 그가 부모님을 설득했다. 돈이 없어 책을 못 사볼 때 적금을 깨서 도와준 친구 백수민씨도 고마운 존재다. 내년부터 고등학교 교과목이 선택과목으로 도입되면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기존 수험생은 지옥문이 열린다고 걱정한다. 김씨는 시험에 일찍 합격해서 손해 보는 기분은 없느냐는 질문에 “군대가 아무리 좋아졌다고 해도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며 씩 미소 지었다. “고졸이라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데,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서 남들보다 빨리 출발하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인생은 곱셈으로 자신이 ‘0’이 아니라 ‘1이나 2’를 갖고 있어야 합니다. 준비된 사람이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을 위한 조언을 남긴 김씨는 발령받기 전에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무료 과외를 할 계획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아름다운예술인상 대상 김기덕 감독

    재단법인 신영균예술문화재단(이사장 안성기)은 27일 제2회 아름다운예술인상 대상에 베니스국제영화상 황금사자상 수상작인 ‘피에타’의 김기덕감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 공로예술인상은 원로 배우 최은희, 신인예술인상은 ‘은교’의 김고은, 연극예술인상에는 ‘고곤의 선물’에 출연한 김소희가 각각 뽑혔다.
  • [사이버대 특집] 서울문화예술대학교

    문화예술 분야를 특성화한 사이버대인 서울문화예술대가 다음 달 1일부터 30일까지 내년도 신입생 원서를 접수한다. 연극예술학·미용예술학·실용음악학과 등 문화예술계열에서 510명, 사회복지학·호텔조리외식경영학·공무원학과 등 인문사회계열에서 270명 등 모두 780명을 선발한다. 2012학년도 신입생 모집에서는 문화예술계열 학과가 6대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고교 졸업 및 졸업 예정자 또는 이와 동등한 학력이 인정될 경우 수능시험 성적과 관계없이 지원할 수 있다. 서울문화예술대는 최근 많은 사이버대에서 실시하고 있는 온라인, 오프라인 병행 수업을 가장 먼저 도입했으며 중장년층에 머물러 있던 사이버대학의 수요층을 고등학생으로까지 확대했다. 또 성적우수장학금, 북한이탈주민과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복지장학금, 예체능 특기자를 위한 장학금 등 20여종에 이르는 다양한 장학제도가 마련돼 있다. 입학 상담은 1588-7101이나 홈페이지(www.scau.ac.kr)로 하면 된다.
  • [보고 듣고 즐기세요]

    [연극·뮤지컬] ●연극 ‘숲속의 잠자는 옥희’ 12월 2일까지 서울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대학로 연극계 명콤비 최치언 작가와 이성열 연출이 손잡고 동화 ‘숲속의 잠자는 미녀’를 비틀어 우리 사회의 단면을 이야기한다. 여배우 옥희는 그의 친구이자 배우인 애경의 자살을 접한다. 인터넷에 둘에 대한 소문과 유언비어가 퍼질 때쯤 소설가 옥희가 오랜 절필 끝에 내놓은 새 소설이 옥희·애경의 이야기와 교묘하게 일치하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2만 5000원. (02)814-1678. ●뮤지컬 ‘아이다’ 27일부터 2013년 1월 31일까지 서울 신도림동 디큐브아트센터. 팝과 뮤지컬 음악의 거장으로 불리는 엘턴 존과 팀 라이스가 만나 누비아의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 장군 라다메스의 사랑 이야기를 스펙터클하게 살려냈다. 소냐·차지연이 아이다를, 김준현·최수형이 라다메스, 정선아·안시하가 암네리스를 맡았다. 6만~12만원. (02)577-1987. [국악·클래식] ●풀림 앙상블 ‘화이트 포레스트 콘서트’ 29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퓨전국악그룹 풀림 앙상블이 국악과 양악으로 구성한 공연. 포레스트(forest)는 숲(forest)과 휴식(rest)의 의미를 품었다. 비워둔자리, 아침향기, 해금산조, 대금·가야금 독주, 꿀벌의 비행, 리베르탱고 등 다양한 음악으로 편안한 쉼터를 만든다. 2만~5만원. (02)585-2934~6. ●다비드 포르미자노 플루트 독주회 12월 1일 오후 7시 서울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 이탈리아 라스칼라 오케스트라 수석 플루티스트 다비드 포르미자노가 3년 만에 내한공연한다. C.P.바흐의 트리오 소나타, J.S.바흐의 플루트를 위한 파르티타, 루셀의 ‘플루트 연주자’ 등을 연주한다. 3만~5만원. (02)461-6712. [무용] ●국립현대무용단 ‘소셜 스킨’ 30일부터 12월 2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국립현대무용단이 마련한 해외안무가초청공연. 2010년 모스크바국제무용제에서 최고안무상을 수상한 유리 이브기와 요한 그레벤이 가장 일상적인 소재 중 하나인 옷을 두고 새로운 사유와 강렬한 신체언어를 표현한다. 한국 무용수 13명이 참여한다. 1만 5000원. (02)3472-1420. [미술·전시] ●‘회화의 예술’전 12월 30일까지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베르메르의 그림 이름에서 따온 기획전시다. 남경민, 서상익, 이동기, 정수진, 홍경택 등 5명의 작가가 그린 50편의 그림을 집중적으로 선보인다. 최첨단 시대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이고 그런 시대에 그림이란 또 어떤 의미인지 함께 모색해 보는 자리다. (02)720-1524. ●‘나도 아티스트이다’전 내년 3월 31일까지 서울 양재천로 아트센터 이다. 신화를 바탕으로 다채로운 작업을 보여준 제럴드 맥더멋 등 세계적 그림책 작가들의 작품을 3개의 주제로 나눠 전시한 뒤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꾸민 전시다. 일반 1만원. 어린이 1만 5000원. 어린이에겐 그림책을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재료와 워크북을 제공한다. (02)3143-4360.
  • 오달수 “연기하는 이유 나랑 다르니까”

    오달수 “연기하는 이유 나랑 다르니까”

    “내년에 올리는 우리 극단(신기루만화경) 작품으로 무대에 오르려고 했는데 (동이향)연출이 써주질 않아서 이 작품을 선택했다.” 처음에는 시원하게 농담을 질렀다. 영화 속 감초, 코믹 이미지로 잘 알려진 터라 이 모습이 익숙했는데, 연극판 얘기로 돌아서자 사뭇 진지하다. 한 해 개봉작 너덧 편에 얼굴을 비추는 빠듯한 일정에도 매년 연극 무대를 거르지 않았다. 1990년 극단 연희단거리패에 입단했으니 올해로 연극 무대 데뷔 22년째인데 “연극은 훈련 삼아서라도 꼭 해야 한다.”는 신념이 있다. “연극계는 2000년대 들어 해마다 (1920년대에 시작된) 신극 이후 최대 위기라는 말을 들고 있다. 재미있고 작품성 있는 연극이 많아져야 연극계가 살아날 수 있다.”고 무게감 있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지난 20일 서울 대학로에 있는 한 극장에서 만난 배우 오달수(44)는 시종 예상을 깨는 답변으로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를 이끌어갔다. 그가 29일부터 첫 출연하는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은 지난해 6월에 초연한 일본 번안극이다. 모두가 인정하는 ‘개성 있는’ 얼굴의 소유자인 그는 이번 연극에서 아이돌 스타 미키짱의 팬클럽의 맴버로 닉네임이 기무라 다쿠아인 역을 맡았다. ‘다쿠아’의 실제 모델은 잘생긴 일본 스타 기무라 ‘다쿠야’이다. 다쿠아는 미키짱이 죽은 지 1년이 되는 날, 열혈 광팬들을 모아 추모식을 주선한다. 또 미키짱의 죽음에 의혹을 제기하고 비밀을 풀어나간다. 광팬인 다쿠아는 냉철하지만 미키짱에 대한 이야기 앞에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흥분하는 다혈질 캐릭터다. 주인공과 성격이 닮은 건가. “다혈질도 아니고, 솔직하지도 않고, 안으로 삭이는 스타일이라 비슷한 점이 하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작품이나 인물에 대한 ‘공감’을 바탕에 깔고 작품을 선택할 줄 알았는데, 그는 굳이 접점을 찾으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와 완전히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편하다.”고 했다. “나를 집어넣어야 하는 역할이 있는데 나와 비슷하면 연기가 잘 안 된다. 나와 다르기 때문에 연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연기는 그야말로 연기’라는 말이다. 그는 만화 ‘유리가면’을 들어 설명했다. “연극은 유리가면을 쓰는 것이라고 해요. 그것이 깨지는 순간 자기가 드러나고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거죠.” 대신 그가 넣는 노력은 “최대한 오달수스럽게”이다. 그래야 관객이 편안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캐릭터도 이질적이고, “굉장히 힘이 넘치는 작품이라 연습할 때 힘이 달려 초콜릿을 먹어야” 한다. 심지어 이해제 연출은 오달수가 작품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초연이 아니니….”라며 말렸다고 했다. 그런데도 출연을 결심한 것은 작품의 매력이 컸다. “제목만 접하고는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2011년 공연을 보고 나서 끌렸다.”며 “타인을 통해 나의 존재를 깨닫고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감동이 있는 소동극”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연극을 자주 보지 않죠. 익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객들이 연극에 대한 재미를 느끼게 만들어야 해요. 연극을 처음 볼 때 재미있어야 계속 보죠. 연극 ‘키사라기 미키짱’이 바로 그런 작품입니다.”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키사라기 미키짱 29일부터 서울 대학로 컬쳐스페이스 엔유. 오달수를 포함한 키사라기팀를 비롯해 미키팀, 짱팀 등 3개 팀이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3만~4만 5000원. 1544-1555.
  • 착착 감기는 강릉 사투리 연극·오페라로 보드래요

    구수한 강원 강릉 사투리가 연극·오페라·인형극 등 새로운 문화콘텐츠로 개발된다. 강릉사투리보존회는 22일 지역 극단들과 강릉 사투리 오페라, 연극 제작을 위한 협약을 차례로 맺고 강릉 사투리를 관광 상품화한다고 밝혔다. 강릉사투리보존회는 먼저 23일 단오문화관 세미나실에서 강릉오페라단과 사투리오페라 제작을 위한 협약을 맺는 데 이어 오는 29일에는 사투리연극 제작을 위해 백향씨어터와 협약을 맺는다. 인형극단과는 이미 협약을 맺고 공연도 펼쳤다. 이번 연극·오페라 극단들과의 협약은 최근 강릉사투리보존회가 강릉단오제보존회와 함께 강릉 사투리 인형극 ‘명주가’를 함께 제작해 성공적으로 공연을 펼친 게 계기가 됐다. 또 강릉 사투리가 강릉의 지역문화를 이끌어 가는 주요 키워드가 되고 있다는 인식이 깊어지면서 새로운 문화콘텐츠를 만들어 보급하자는 데도 뜻을 함께해 이뤄졌다. 사투리보존회는 그동안 강릉 사투리를 바탕으로 다양한 문화예술 공연을 시도했다. 강릉오페라단은 지난 5월 공연에서 강릉 사투리를 구사해 재미를 높였고 백향씨어터는 지난해 문화의 달 행사에서 강릉 사투리 연극 ‘홍장야우’와 ‘별방’ 공연을 펼쳐 극찬을 받았다. 조남환 강릉사투리보존회장은 “강릉 사투리를 친근감 있게 전달하는 계기를 마련하고 문화관광상품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인형극, 연극, 오페라 등 다양한 문화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이라면서 “단오문화관 등을 상설 공연장으로 만들어 강릉 사투리를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강릉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 송파 ‘책 읽는 택시’ 인문학에 길을 묻다

    송파구에는 승객에게 책을 읽어주는 특별한 택시가 있다. 송파구가 EBS와 손잡고 지난 9월부터 시작한 ‘책 읽는 택시’다. 책 읽는 택시에서는 EBS 라디오 ‘책 읽어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들으며 승객들이 자연스럽게 책을 접하게 된다. 또 책 읽는 택시의 기사들은 운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승객을 위한 ‘독서 길잡이’ 역할도 한다. 이를 위해 기사들은 매달 인문학 강좌까지 들으며 독서 전도사로서의 각오를 다지고 있다. 지난 21일 송파구 장지동 ㈜삼광교통 교육장에서는 삼광교통 소속 기사 100여명이 인문학 공부를 위해 모였다. 이날 강사는 박영철 숭실대 도서관팀장이었다. 박 팀장은 ‘책 읽는 택시 속의 책’이라는 주제로 프로그램을 통해 자주 접할 수 있는 책의 종류, 주요 내용과 감상 등을 전했다. 또 독서 전도사의 역할과 가져야 할 마음가짐도 함께 짚었다. 강의에 참석한 책 읽는 택시 기사 김성환(46)씨는 “인문학은 딱딱하고 어렵다는 편견을 깨는 시간이었다.”며 “앞으로 승객들과 책 얘기를 할 때 유머를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구는 지난 8월부터 기사들을 대상으로 인문학 강의를 해 오고 있다. 김경집 전 가톨릭대 교수, 개그 작가 신상훈 한양대 교수,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 대표 김수연 목사 등 다양한 분야의 강사들이 인문학적 감성과 지식을 전수했다. 새달에는 연극 배우 이주실씨가 강단에 선다. 기사들은 강좌뿐 아니라 독서 문화 확산을 위한 자체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박길서 도서관리팀장을 중심으로 사내 북카페, 독서 클럽 등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서찬수 교육협력과장은 “책 읽는 택시가 대표적인 독서 운동으로 번져 나가길 바란다.”며 “택시가 안전하고 지적인 이미지로 거듭나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연기인생 50년 연극 ‘보물’로 감동 준 배우 전무송

    [김문이 만난사람] 연기인생 50년 연극 ‘보물’로 감동 준 배우 전무송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을 떠올려 본다. 63살의 세일즈맨은 오늘도 장거리 출장을 갔다가 아무런 소득도 없이 밤늦게 귀가한다. 오랜만에 집에 들어온 아들과 만나지만 계속 사소한 언쟁을 벌인다. 힘겨운 하루를 마감한 그 다음 날 세일즈맨은 평소 꿈이었던 자동차를 과속으로 몰아 죽음의 길을 택한다. 24시간의 일을 포착해 다룬 이 연극은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20세기 최고의 작품으로 꼽힌다. 아버지의 역할, 가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의미를 담아내 언제 봐도 진한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세일즈맨의 죽음’ 하면 생각나는 연기자가 있다. 전무송(71)씨. 1983년 이 연극에 처음 출연한 이후 지금까지 수십 차례 출연했다.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그는 지난 4월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이 ‘세일즈맨의 죽음’을 한국식으로 각색한 ‘아버지’와 지난달 대구시립극단에서 올린 원작 무대 등 올해에도 여러 차례 출연했다. 23일에는 ‘아버지’로 속초 무대에 선다. 이처럼 ‘세일즈맨의 죽음’은 전씨의 대표작이나 다름없다. 이외에도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해럴드 핀터의 ‘생일파티’ 등도 전무송과 함께 걸어온 작품들이다. 연극에서는 고뇌하는 캐릭터를, 영화와 드라마에서는 아버지 같은 인자한 역할을 자주 맡았다. 전씨는 최근 연기 인생 50년을 맞아 자녀들이 헌정한 무대 ‘보물’(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또 한번 명품연기를 펼쳐 관객들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했다. 특히 딸 전현아가 극본을 쓰고 사위 김진만이 연출했으며 아들 전진우는 아버지와 함께 배우로 무대에 올라 훈훈한 화제를 만들어냈다. 연기 인생 50주년에 이보다 더 뜻깊고 행복한 일이 어디 있을까. 인생에서 새로운 ‘보물’을 얻은 전씨를 지난 19일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연극 ‘보물’을 마치고 난 하루 뒤여서 자연스럽게 뒤풀이 얘기가 나왔다. 예술의전당 인근 식당에서 삼겹살로 ‘쫑파티’를 했는데 동료 배우와 소설가, 불교계 인사 등 여러 사람이 참석해 자리를 빛내 줘 기분이 좋았다며 웃는다. 특히 외국에서 소식을 들은 팬들까지 찾아와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다. “공연 기간 내내 좌석을 채워주신 관객들에게 더없이 감사하죠. 딸과 사위, 아들에게 50년 기념이다 뭐다 하지 말고 그냥 차분하게 해 나가자고 했지요. 우리네 인생살이에는 희로애락이 담겨 있잖아요. 객석과 함께 웃고, 울고, 호흡하며 인생의 소중함, 사람의 소중함을 느끼도록 해주는 울림이 있는 시간을 갖자고 했지요. 그런데 언론에서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고 관객들로부터 예상밖의 축하를 받았습니다.” 주변에서 그동안의 대표작들로 50주년 무대를 꾸미라고 했지만 내놓을 만한 뭐가 없어 안 하려고 했는데 자녀가 후배 입장에서 만들어 준다고 해서 할 수 없이 기념공연을 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오랜만에 동료인 오영수씨와 함께 호흡을 맞춘 것도 의미 있는 일이었다. 앞으로 자신의 연극인생에서 ‘보물’처럼 뜻깊은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이번 공연을 앞두고 언론과 많은 인터뷰를 한 터여서 전씨에게 되도록 같은 질문을 안 하려고 했다. 그랬더니 무엇을 물어봐야 할지 고민이 됐다. 문득 신문배달원 때의 일을 꺼냈다.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만 했던 시절, 그는 인천에 있는 서울신문 보급소에서 1년 남짓 근무했던 적이 있다. 그 생각이 나서 반갑게 “서울신문 전직 사우가 되는 셈이네요.”라고 했다. 전씨는 “그걸 어떻게 알았느냐.”고 웃으면서 말한다. “당시 보급소 사장님이 시조작가이자 인천시 역사를 연구하는 분이셨죠. 제가 결혼할 때 주례까지 봐 주시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그 사장님이 남산 드라마센터의 개관작인 연극 ‘햄릿’ 티켓을 주셨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배우라는 직업 자체를 동경했고 ‘햄릿’을 꼭 보고 싶어 했거든요.” ‘햄릿’ 출연진은 장민호, 김동원, 황정순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어서 더욱 마음을 들뜨게 했다. 그리스 시대의 원형극장을 축소한 것 같은 무대를 보며 놀라고 사람들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연기를 펼치는 광경에 감탄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나고 나서 팸플릿을 몇 번 들여다봤다. 이때 뒷면에 쓰여 있는 공고가 눈에 번쩍 들어왔다.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서울예술대학 전신)에서 학생을 모집한다는 내용이었다. 망설일 것도 없이 원서를 내고 오디션을 본 다음 아카데미 1기생으로 입학했다. 당시 희곡작가 동랑 유치진은 연중무휴 공연하는 극장을 목표로 드라마센터를 세웠고 배우를 제때 구하기 어렵자 배우 양성소로 연극 아카데미를 만들었던 것. 이때가 1962년으로 신구, 반효정, 이호재, 민지환씨 등이 동기생이었다. 극작·연출로는 윤대성, 오태석, 노경식씨 등 많은 인물이 1기생으로 출발했다. 전씨의 연기인생도 이렇게 시작됐다. “당시 유치진 선생님의 가르침을 많이 받았지요. 아마 처음에는 겉멋으로 연극을 하려 했던 것 같았나 봐요. 유치진 선생님이 ‘좋은 배우가 되려면 먼저 훌륭한 인간이 돼라’고 하셨지요. 배우는 무대에서 말하는 데 10년, 연기하는 데 10년 걸린다고 하셨지요. 저에게는 큰 숙제였고 그 숙제를 풀려고 하다 보니 벌써 50년이 됐습니다. (잠시 생각하고 나서)선생님은 지금도 어려운 연중무휴 공연을 내걸 만큼 연극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1964년 동랑 레퍼토리 극단에 입단해 유치진의 ‘춘향전’에서 이몽룡역을 맡아 프로 무대에 데뷔, 지금까지 배우의 길을 걸어오게 된다. 그동안 후회는 없었을까. 몇 번 고비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연극인이라고 하면 춥고 배고픈 직업으로 인식됐다. 딸을 낳았을 때 우윳값도 없어 연극을 때려치우고 풀빵 장수나 하겠다고 하자 부인이 “연극배우 전무송과 결혼했지 풀빵 장수랑 결혼했느냐.”고 하면서 적극 말렸다. 또한 부인이 이 장사 저 장사를 하면서 전씨가 연극할 수 있도록 열심히 도왔다. 그의 아들과 딸이 연극계에 뛰어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부인이 일을 나가면 어린아이를 집에 혼자 놔둘 수 없어 연습실에 자주 데리고 다녔다.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경찰도 되는 사람, 의사도 되는 사람으로 비쳤다. 전씨는 그런 고마운 가족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연기를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어떤 것일까. 1977년 뉴욕 라마마 극장에서 햄릿을 번안해 무대에 올린 ‘하멸태자’를 떠올린다. 연극 역사상 첫 해외 나들이로 공연이 끝나자 관객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는 물론 ‘브라보’를 외쳤다. 언론에 ‘뉴욕 하늘에 샛별이 떴다’는 제목의 기사가 나가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를 계기로 여권이나 비자 받기도 어려운 시절에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순회공연까지 했다. ‘하멸태자’는 지난해 똑같은 극장에서 다시 한번 공연돼 언론과 비평가들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아마 오늘날의 한국 연극 발전에 작은 씨앗이 됐을 것”이라고 술회한다. 그가 간직한 ‘연기자의 끼’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외가 쪽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어릴 때 어머니가 태어나고 자란 충남 서산에서 자주 놀았다고 추억한다. 인천에서 통통배를 타고 7시간 만에 도착하면 외삼촌이 늘 반겼다. 함께 논두렁에서 물을 푸기도 하고 저녁이면 외삼촌한테 옛날이야기와 구전민요를 들었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게 그려진단다. “삼촌은 이야기꾼처럼 재미있게 잘 풀어나갔고 소리 또한 아주 잘했다.”고 회고한다.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우리 사우끼리 만났으니 소주 딱 한 잔 어떤가.”라며 정겹게 웃는다. 그의 법명은 다정(茶亭)이다. 영화 ‘만다라’와 TV드라마 ‘원효대사’등에 출연하면서 지관스님과 인연을 맺어 법명을 받았다. 비록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일지라도 올곧게 연기자로서 반백 년 살아온 인생. 다정처럼 여유가 담긴 행복한 미소에서 그동안 연극과 가족이라는 큰 ‘보물’을 얻었다는 것을 문득 느낄 수 있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 전무송은 남산 드라마센터 연극아카데미 1기·1964년 ‘춘향전’ 데뷔 1941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황해도 해주, 어머니는 충남 서산 출신이다. 인천중과 인천공고를 나왔다. 중학교 때는 야구부, 고등학교 때는 밴드부 등에서 활동했다. 1962년 남산 드라마센터 부설 연극아카데미(현 서울예술대) 1기생으로 입학해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프로 무대 데뷔작은 1964년 유치진의 ‘춘향전’이다. 이후 ‘하멸태자’ ‘세일즈맨의 죽음’ ‘고도를 기다리며’ ‘생일파티’ 등의 연극, ‘만다라’ ‘길소뜸’ ‘아부지’, ‘원효대사’, ‘왕과 비’ 등 수십 편의 영화와 드라마에도 출연했다. 1977년 연극 사상 첫 해외공연인 뉴욕 라마마 극장을 시작으로 유럽 순회공연을 가졌다. 주요 수상으로는 제1회 연극비평가상 연기상(1978), 백상예술대상 연기상(1986년), 이해랑 연극상(2005), 동아연극상 연기상(2006) 등이 있다. 딸과 아들, 사위가 모두 연극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국내1호 뇌성마비 행위예술가 국제무대에

    국내1호 뇌성마비 행위예술가 국제무대에

    “늘 장애인 예술가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데 그냥 한국을 대표하는 행위예술가로 불러주시면 안 될까요.” 국내 1호 뇌성마비 행위예술가 강성국(32)씨가 작품 ‘오! 베이비’(Oh! Baby)로 국제 무대에 선다. 지난 16일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개막한 ‘식스센스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23~24일 공연을 펼치게 된 것이다. 2001년 이후 올해 9회째를 맞는 이 행사는 아시아의 장애인 행위예술가들을 초청해 무대를 꾸미는 자리다. 강씨는 “장애인의 몸짓이 아닌 인간 강성국의 몸짓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지만 외부의 시선은 그렇지 않은 게 현실”이라면서 “이번 행사는 나의 작품을 장애의 결과물이 아닌 순수한 몸동작으로 이해해 주는 전시회이기에 큰 의미를 가진다.”고 말했다. 강씨가 연출한 ‘오! 베이비’는 본인의 2세가 자기보다 더 잘생기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평범한 바람을 담은 작품이다. 그는 “대사 등 연극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몸짓과 무대 분위기만으로 관객과 소통하는 방식을 택했다.”면서 “외국 관객이 이 작품을 ‘장애인 이야기’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성 예술가가 여성 이야기를, 노동자 예술가가 노동자 이야기를 하듯 저도 저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이지요. 그 과정에서 장애라는 요소가 일부 반영됐지만 결혼과 2세 문제에 대한 고민은 전 세계인이 똑같을 겁니다.” 1급 뇌성마비 장애인인 강씨는 2003년 우연한 기회로 행위예술에 입문해 춘천마임축제와 한국실험예술제, 외국 순회공연 등에 참여하며 국내외 행위예술계에서 독특한 입지를 다져 왔다. 명희진기자 mhj46@seoul.co.kr
  • ‘K- 아트홀’ 올림픽공원에 21일 개관

    태권도와 전통 가락, 한국무용, 사물놀이 등을 연중 상설 공연하는 ‘K-아트홀’이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안에 마련돼 21일 문을 연다. 20일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광식)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이사장 정정택)에 따르면 지난해 4월 첫 삽을 떠 지난 6월 완공한 이 공연장은 지하 1층, 지상 2층에 연면적 2647㎡ 규모로 가변 무대를 운영할 수 있는 점이 특징이다. 기본이 되는 돌출무대(369석)는 3면 또는 반원 형태로 객석을 둘러싸 관객과 출연진이 일체감 속에 태권도공연 타악 댄스 등을 즐길 수 있고, 389명까지 들어가는 프로시니엄 무대는 이동식 객석을 설치, 뮤지컬과 일반 공연 마셜아츠를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493명이 앉을 수 있는 아레나 무대는 360도 모든 방향에서 관람할 수 있는 8각 무대로 무용, 마당놀이, 복합무용, 연극 등을 입체감 있게 연출하도록 했다. 공연장 건설에는 97억여원이 들어갔다. 오후 2시 개관 축하공연에는 지난 2008년부터 5대륙 120여개 도시를 순회하며 태권도를 세계에 알린 ‘탈’(TAL) 공연을 하이라이트로 선보인다. 앞으로 이 공연장에서는 탈 공연이 늘 펼쳐지는 것은 물론 공모와 대관 심사를 통해 선정된 한국적 소재의 비언어극과 한국문화와 융합된 발레, 뮤지컬 등 특색 있는 복합 장르의 공연을 펼칠 계획이다. 문화부 등은 지난 3월 올림픽공원을 포함한 잠실지구가 관광특구로 지정됨에 따라 신축 중인 롯데월드타워(123층) 등과 연계해 21일 1000만명을 돌파할 것으로 보이는 외래 관광객에게 한국과 우리 문화를 알리는 거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최병규기자 cbk91065@seoul.co.kr
  • 남보라 “성폭행 피해 소녀의 처참함 촬영 끝나도 눈물이 안 멈춰”

    남보라 “성폭행 피해 소녀의 처참함 촬영 끝나도 눈물이 안 멈춰”

    쏟아지는 성폭력 대책을 비웃기라도 하듯 성폭력 범죄는 날로 흉포화하고 있다. 성범죄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성폭력 가해자가 미성년자인 경우 대부분 무죄 또는 집행유예가 선고되는 법적 현실을 고발한 영화가 나왔다. 22일 개봉을 앞둔 ‘돈 크라이 마미’다. 지난 2004년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는 점에서 장애 아동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던 ‘도가니’와 비견되면서 주목받고 있다. 이 작품에서 은아 역을 맡은 남보라(23)를 지난 16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첼리스트를 꿈꾸는 밝고 명랑한 여고생 은아는 이혼한 엄마 유림(유선)을 먼저 걱정하는 속 깊고 든든한 딸이다. 하지만 새 출발을 하려는 모녀에게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다. 전학 온 학교에 적응하던 은아는 1년 유급한 같은 반 오빠 조한(동호)에게 고백하러 갔다가 조한과 어울려 다니던 동급생들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이후 해맑던 은아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운다. 엄마 유림은 딸이 끔찍한 사고를 당하고도 가해자들에 대한 법적 처벌이 미약한 것을 보고 직접 복수를 하기로 결심한다. 남보라는 왜 이처럼 쉽지 않은 역할에 도전했을까. “제 이미지에 대한 고민은 거의 하지 않았고 오히려 저를 선택해 주기를 바랐어요. 지금은 저에게 투자하는 단계이니까 여러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은아의 행복했던 시절부터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까지, 감당하기 힘든 고통을 겪고 결국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분노하는 장면까지 여러 모습이 담겨 있었고, 은아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점이 좋았어요.” 남보라는 개봉 전부터 성폭행 장면에만 관심을 갖는 일각의 시선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에 “워낙 민감한 소재이다 보니까 그런 면도 있지만, 이 영화는 청소년 성폭력이 한 사람의 영혼을 파괴하고 그 가족을 처참하게 붕괴시키는 과정을 보여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폭행 장면도 노골적으로 보여 주기보다 상상에 맡기는 부분이 더 많다.”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선정성·폭력성 등의 이유로 19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받았지만, 수위를 재조정한 뒤 15세 이상 관람가 등급을 확정해 청소년들도 관람할 수 있게 됐다. 대신 남보라는 은아의 감정선을 연기하기가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대본을 읽을 때 은아가 불쌍했고 모녀가 너무나도 안타까웠어요. 가해자 학생들에 대한 분노도 치밀었구요. 한 사람의 소중한 인생이 무너지고 평생 안고 가야 할 상처가 너무 깊고 무거워 정말 속상했어요. 촬영 때도 계속 눈물이 나고 끝나고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지만 제가 힘들수록 은아와 더 가까워지는 느낌이었죠.” 은아가 무너져 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잘 표현하고 싶었다는 남보라는 일상이 워낙 힘들어 오히려 현장에서 연기할 때 후련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부산영화제 때 관객과의 대화에서 눈물을 쏟은 것도 촬영할 때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은아를 연기하는 것은 제 감정을 소모하는 외로운 싸움이었어요. 그동안 홀로 받아들이고 꾹꾹 참아 온 감정이 울컥했던 것 같아요. 은아의 처참한 모습을 연기하면서 제 자신이 어디까지 힘들고 무너질 수 있는지 실험했던 것 같아요.” 남보라는 성폭력 가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처벌이 미약한 데 대해서도 “미성년자라고 처벌이 가벼워지는 것은 옳지 않은 것 같다. 그 학생들이 미성숙한 단계에서 사건을 저지른 것은 어느 정도 고려해야겠지만, 저지른 범죄에 합당한 처벌이 가해져야 하고, 그 원인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본질적인 개선이 필요하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밀양 성폭행 사건 이후 피해자 학생이 서울로 전학을 갔지만, 여러 학교에서 받아주지 않아 결국 행방불명됐다는 기사를 읽고 안타까웠습니다.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왜곡된) 사회적 시각도 아쉽구요. 성폭력은 특성상 정확한 피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피해자의 육체뿐 아니라 마음에도 큰 상처를 주는 만큼 절대로 가볍게 다뤄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쉽지 않은 연기 이후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그런 감정이 연기 인생에 큰 자산이 된 것 같다고 했다. 13남매의 둘째로 장녀인 남보라는 나이에 비해 어른스럽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그는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어릴 때부터 동생들을 키우다 보니 육아에서는 달인 수준”이라면서 웃었다. 남보라는 2005년 당시 11남매의 일상을 다룬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연예계에 데뷔했다. “당시 촬영 날 집에 잘 안 들어갈 정도로 연예인이 될 생각이 없었어요. 원래 성격이 조용한 편이거든요. 그러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데뷔했지만 대학 수시 모집에서 7개 대학의 연극영화과에 지망했다가 다 떨어져 대학 진학을 포기할 뻔한 적도 있었죠.” 결국 수능을 다시 치른 뒤 동덕여대 방송연예학과에 입학한 남보라는 소속사를 나오면서 연기보다 대학 생활에 매진했다. 자신의 진로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하던 남보라는 결국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연기라는 것을 확인하고 연극 극단에서 표 파는 아르바이트부터 다시 시작했다. 연기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뒤 독하게 준비했지만, 오디션에 줄줄이 낙방했다. 우여곡절 끝에 2010년 MBC ‘로드 넘버 원’에 캐스팅됐다. 소지섭·김하늘 등이 주연을 맡은 드라마에 출연할 기회를 얻었지만 주목받지 못하다가 올해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 민화공주 역으로 인지도를 높였다. ‘해품달’ 이후 한동안 음식점에서 ‘공주님’ 대접을 받아 좋았다는 남보라의 고민은 동글동글한 얼굴과 다소 어려 보이는 외모. 그 덕에 아직도 누군가의 여동생, 학생, 딸 역할의 캐스팅이 많단다. 다수의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연을 맡았던 그는 이제 여주인공에 대한 욕심을 조심스레 품어 본다. “그동안 힘든 역할을 많이 했으니까 정통 멜로물의 여주인공을 해 보고 싶어요. 비련의 여주인공보다는 달달한 사랑 이야기가 있는 작품요. 앞으로는 외모보다 연기 잘하고 단단한 여배우라는 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이은주 기자의 컬처K] ‘국민 여동생’ 이미지의 굴레

    지난 10일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을 발칵 뒤집었다. 사진은 한 시간 만에 내려갔지만 그 여파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바로 ‘국민 여동생’ 아이유와 슈퍼주니어 은혁의 셀카 사진이다. 잠옷을 입은 아이유와 상의를 벗은 듯한 은혁의 모습은 팬들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아이유의 소속사에서는 곧바로 “올여름 은혁이 아이유를 병문안하러 왔을 때 찍은 사진으로 둘은 가깝게 지내온 선후배 사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네티즌들은 사진 속 두 사람의 차림새나 소품들로 봤을 때 병문안으로 보기 힘들다며 열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인터넷에는 ‘아진요’(아이유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와 ‘아믿사’(아이유를 믿는 사람들의 모임)까지 등장했다. 한창 연애할 수 있는 나이인데 왜 이 사진이 문제가 되는 것일까. 그동안 아이유가 쌓아온 이미지 때문이다. 아이유는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소녀 같은 이미지에 청아한 목소리의 가창력까지 뒷받침되면서 일약 ‘국민 여동생’으로 떠올랐다. 어린 여성에 대한 ‘롤리타 콤플렉스’를 자극하며 남성팬들을 대거 끌어모았다. 하지만 그런 순수함의 결정체였던 아이유가 남자 연예인과 흐트러진 모습의 사진이 찍히자 그녀를 ‘국민 여동생’으로 느꼈던 삼촌팬들의 환상과 기대 심리가 일거에 무너지면서 일종의 배신감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처럼 자의든 타의든 연예인에게 부여된 이미지는 스타성을 이루는 중요한 요건이지만, 그들의 발목을 잡는 굴레로 작용하기도 한다. 원조 ‘국민 여동생’으로 군림했던 문근영은 여동생 이미지를 벗으려고 노력했지만 대중은 그녀의 변신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했다. 급기야 문근영은 연극 ‘클로저’에서 담배를 피우고 섹시한 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스트리퍼 역을 맡아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당시 문근영은 ‘국민 여동생’이라는 이미지가 짐으로 느껴진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런 이미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생긴 것이기 때문에 한번에 쉽게 달라지기 어렵다. 평생 연기를 하면서 풀어가야 할 숙제”라고 말했다. 그녀는 2년 전 드라마 ‘신데렐라 언니’에서 어둡고 차가운 은조 역을 맡아 성숙한 연기로 마침내 여배우로 재탄생하는 데 성공했다. 아이유는 사진 파문이 있기 전 한 방송에서 “(팬들을) 실망시킬까 봐 부담이 있다.”면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기도 했다. 호시탐탐 국민 여동생과 남동생의 자리를 노리는 아이돌 그룹의 경우도 이미지는 ´양날의 칼´이다. 젊고 순수한 이미지는 때론 그들의 음악성에 관대할 만큼 강점으로 작용하지만, 이미지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경우 후폭풍도 만만치 않다. 왕따설로 그룹 이미지에 타격을 입은 티아라나 일본 유명 잡지에 보도된 사생활 스캔들이 논란이 된 빅뱅의 승리가 대표적이다. 아이돌 그룹의 소속사에서 가수들의 사생활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나선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 가요계 관계자는 “특정 이미지로 인해 사생활에까지 굴레가 씌워지는 것은 안타깝지만 한번 이미지가 추락하면 회복이 어렵고 ‘유명세’라는 말이 있듯이 롱런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기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 있는 자세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erin@seoul.co.kr
  • [보고 듣고 즐기세요]

    연극·뮤지컬 ●댄스뮤지컬 ‘번 더 플로어’ 25일까지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30일~12월 1일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각종 댄스 선수권대회를 석권한 무용수 20여명이 살사, 탱고, 룸바 등 춤과 이야기의 향연을 펼친다. 베르사체·돌체앤가바나·모스키노의 디자이너들이 참여한 의상 300여벌이 더해져 화려함이 배가된다. 3만~15만원. 1544-1555. ●뮤지컬 콘서트 드림인(Dream人) 20일~12월 22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 ‘스프링 어웨이크닝’, ‘그리스’, ‘지킬 앤 하이드’ 등 많은 사랑을 받는 뮤지컬 음악으로 꾸몄다. 뮤지컬 배우의 연기와 작품 설명을 곁들이는 해설이 있는 공연이다. 1만원. (02)796-7831~2. 국악·클래식 ●서원숙 가야금 독주회 20일 오후 7시 경기도문화의전당. 서원숙 단국대 교수가 가야금 산조의 명인 중고제 심상건의 음악을 재현한다. 정악적 변풍에 주법이 까다로워 음반으로만 전해지는 심상건 음악을 다양하게 만날 기회. 서한범 단국대 국악과 명예교수가 해설하고, 이건석(대금) 단국대 교수와 단국대 현악합주단이 협연한다. 무료. (031)8005-3926. ●소프라노 손순남 독창회 23일 오후 8시 서울 삼성동 포니정홀. 한국인 최초로 미국 피츠버그 오페라단에서 활약하고 국내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손순남이 ‘오래된 나의 노래들’이라는 주제로 독창회를 연다. 나운영의 ‘가려나’, 김성태의 ‘동심초’, 조르다니의 ‘나의 다정한 연인’, 글룩의 ‘오 감미로운 나의 사랑’등 노래를 선사한다. 3만원. (02)2051-0734. 미술·전시 ●정제화 ‘일탈·회귀’전 21일부터 27일까지 서울 관훈동 인사아트센터 4층 특별관.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 그래도 현실로 되돌아올 수밖에 없는 인생의 현실을 묘사한 작품들이다. 작가가 이런 점을 강조하기 위해 택한 소재는 연꽃. 연꽃이 있는 연못이 속세이며 극락이니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로 낙원이라는 메시지다. (02)736-1020. ●‘클래스 올덴버그 & 코셰 반 브루겐 작품’전 내년 1월 15일까지 서울 청담동 PKM트리니티갤러리. 청계천변에 위치한 소라 모양의 거대한 공공 설치작품으로 유명한 두 작가의 협업 작품을 대거 선보인다. 영등포 타임스퀘어에는 3m가 넘는 대작 2점을 따로 전시해 뒀다. (02)515-9496.
  • “범인 잡을 땐 폼은 덜 나도 막 싸우는 거죠”

    “범인 잡을 땐 폼은 덜 나도 막 싸우는 거죠”

    “형사라고 다 양복바지에 흰 운동화만 신어야 하나요?” 18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서대문경찰서 강력5팀. 베레모와 무통재킷, 갈색 구두를 조화시킨 세련된 패션의 형사가 피의자 조서를 꾸미고 있다. ‘꽃중년’이라고 불리는 김성욱(44) 경사다. 2004년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 특별수사팀원으로 연쇄 살인마 유영철 검거에도 공을 세웠던 베테랑 형사지만 그는 충무로에서 ‘형사 연기 자문가’로 유명하다. 대학에서 연극영화를 전공한 경험을 살려 ‘연가시’(2012년) 등 영화 10여편에서 경찰 역할 배우의 연기를 자문하고 극본도 감수했다. 지금도 영화 시나리오 두 편을 감수 중이다. 강력 범죄와 범죄 영화가 늘어날수록 김 경사는 바빠진다. 부산이 고향인 그는 학창 시절 유명한 사고뭉치였다. 싸움 때문에 얼굴 성할 날이 없던 그에게 미국 명감독 머빈 르로이의 영화 ‘애수’는 전환점이 됐다. 친구들보다 2년 늦게 89학번으로 경성대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제대 뒤 서울로 온 그는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계약커플’(1994년)에 조연으로 출연했지만 그게 끝이었다. 1년 만에 부산으로 돌아갔다. 방황하던 그에게 알고 지내던 형사가 무술경관이 돼 보라고 했다. 태권도와 유도가 각 2단. 완력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1997년 경찰복을 입었다. 바쁜 형사 생활에 연기는 모두 잊었다고 생각할 때쯤 전공을 살릴 기회가 왔다. 2003년 드라마 ‘눈사람’에 강력계 형사로 출연한 배우 조재현이 대학 후배인 그에게 형사 연기를 자문했다. 이후 “연극영화과 출신 형사가 있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한석규, 이성재, 김정태, 김민준, 김동완 등 형사 역을 맡은 배우마다 그를 찾아와 수사·탐문·잠복 현장의 ‘리얼리티’를 배워 갔다. 영화 ‘미스터 소크라테스’(2005년) 등은 시나리오 작업에도 참여했다. “우리 경찰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며 대가 없이 일해 줬다. 김 경사는 대본과 연기에 대해 조언할 때 현실성과 섬세함을 강조한다. “범인을 ‘잡았다’는 표현 대신 실제 우리처럼 ‘땄다’는 표현을 쓰라고 말해 주지요. 또 범인을 쫓을 때 총 쏘고 날라차기하는 일도 거의 없어요. 애들처럼 그냥 막 싸우는 거죠. 폼은 덜 나도 그게 더 진짜 같아요.” 그는 영화인으로서의 자부심이 크다. 현장 속 자신의 눈빛과 표정, 행동이 배우에게 입혀져 관객을 숨죽이게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연가시처럼 자문해 준 영화가 히트하면 뿌듯하지만 흥행이 잘 안 되면 마음이 많이 안 좋죠.” 경찰에서 은퇴한 뒤에는 나이 지긋한 베테랑 형사 전문 배우로 활동하는 게 그의 꿈이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전화 한통하면 아이들이 달라져요… 우리가 뽀느님”

    “전화 한통하면 아이들이 달라져요… 우리가 뽀느님”

    “이른 아침, 에디와 친구들이 뽀로로와 크롱을 찾아 도시를 헤매고 있어요.”(구자형·내레이션) “대체 어디 있는 거야.”(함수정·에디) “저기 과일이 잔뜩 있어!”(김환진·포비) 지난 14일 서울 논현동의 한 녹음실. 30~60대 중년 남녀가 한데 어울려 부르르 떠는 시늉까지 해보이며 쉼 없이 목청을 돋웠다. 때론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때론 진짜로 뛰어다니며 소리를 덧입히는 작업에 열중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녹음실에서 웃음이 터져 나았다. “나미 엄마 어디 있어요?” 잠시 뒤편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던 여성 성우가 ‘치고 나갈’ 시기를 놓친 채 겸연쩍게 웃어 보였다. 김래경 EBS 프로듀서(PD)가 눈길을 잠시 왼쪽 모니터로 돌리더니 이내 “선배님들, 호흡 끊기는 데부터 다시 갈게요.”라고 외쳤다. 다시 잠잠해진 녹음실 분위기…. ●브랜드가치 4000억원… ‘시즌4’도 인기 성우들은 5분짜리 단편 하나를 녹음하는 데 1시간 넘는 시간을 할애했다. 초겨울 날씨를 무색케할 정도로 녹음실 안은 푹푹 쪘고 성우들은 연거푸 물을 들이켰다. ‘뽀로로’의 제작사인 ㈜아이코닉스 관계자는 “오늘 녹음은 해외에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한 번외편 제작”이라며 “뽀로로는 이미 세계 110여 개국에 수출됐다.”고 설명했다. 2003년 11월 처음 방영한 풀 3D 애니메이션 ‘뽀롱뽀롱 뽀로로’가 내년 데뷔 10주년을 맞는다. ‘뽀통령’ ‘뽀느님’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이 프로그램은 올 2월, ‘시즌 4’로 옷을 갈아입고 변함없는 인기를 과시하고 있다. 브랜드 가치만 4000억원, 서너 살 이상 아이를 둔 부모에겐 이미 대통령에 버금가는 영향력을 발휘한다. 뽀로로, 크롱, 에디, 루피, 패티, 포비, 해리…. 온통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사람이란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작은 숲 속 마을을 배경으로 아이들을 사로잡은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KBS와 EBS 등 지상파 방송의 공채 성우 출신인 이들은, 경력 20년 안팎으로 대한민국 대표 목소리를 품고 산다. ‘알프스 소녀 하이디’의 하이디, 아기공룡 둘리의 ‘둘리’ 등 ‘아! 이 목소리’ 하면 딱 알게 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들이 ‘뽀로로’ 속 캐릭터처럼 ‘꽃중년’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 올해 환갑을 맞은 백곰 포비 역의 김환진(60)은 36년차인 극 중 최고참 성우이다. 굵직한 목소리가 돋보여 외화에선 조지 클루니나 짐 캐리의 목소리 단골 대역이다. 그런 그도 포비 목소리가 잘 안 나올 때면, 녹음실을 나와 담배 한 대 맛나게 피우고 돌아오곤 한다. 김환진은 “2003년 EBS에서 수개월간 비밀리에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첫 방영을 앞두고 파일럿 프로그램 녹음까지 마친 ‘뽀로로’ 출연 성우들이 모두 바뀌었다. 앞서 교체된 성우들과의 의리 때문에 출연을 망설이다 수락했다.”고 전했다. 이렇게 ‘우연하게’ 이곳에서 만난 베테랑 성우들은 9년째 한 식구처럼 살갑게 지내고 있다. 그는 “30대 중반의 두 아들이 어서 장가들어 손자 앞에서 포비 목소리로 연기해 보고 싶다.”며 환하게 웃었다. 뽀로로 역의 이선(40)은 스스로 ‘성우테이너’라 부를 만큼 화제의 주인공. 지난해 KBS ‘탑밴드’에서 성우밴드의 보컬로 얼굴을 내밀었고, 연극무대를 오가며 배우로도 활약 중이다. 외화에선 앤절리나 졸리나 캐머런 디아즈의 목소리를 도맡는다. 그는 ‘유기농’ 성우로도 알려져 있다. 1992년 스무 살 나이에 KBS 성우로 출발해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성대 결절을 겪은 뒤 그때부터 아침저녁 소금 가글에 술·담배 안 하고 맵고 짠 음식 안 먹고 탄산음료 안 마시고 한여름에도 미지근한 물만 먹기 때문이란다. 그는 “뽀로로 목소리를 내려면 성대를 최대한 좁혀서 소리가 삐져나오도록 쥐어짜야 한다.”면서 “실제로 뒤뚱뒤뚱 펭귄 발걸음을 옮기며 목소리를 연구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결혼 5년차를 맞은 이선의 집과 차에는 단 한 개의 뽀로로 인형이나 스티커도 없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인형 같은 걸 두고 보는 성격이 아니거든요. 그렇다고 유아 팬들이 선물로 인형을 주는 것도 아니잖아요!”(웃음) 녹음실 안에선 뽀로로로 완벽하게 ‘빙의’되지만 현실에선 펭귄처럼 살 수 없다고도 했다. 반면 여우 에디 역의 함수정(50)은 아예 ‘뽀로로’로 외아들을 키웠다.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이 지난 9년간 엄마가 출연한 ‘뽀로로’를 일일이 모니터링해 주며 컸다.”면서 “밥 잘 안 먹는 친구 아이들이 전화로 제 에디 목소리를 들으면 밥 먹는 속도부터 달라진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그의 음색은 ‘아기공룡 둘리’의 둘리, ‘구름빵’의 엄마 목소리로도 귀에 익숙하다. 비버 루피 역의 홍소영(41)은 녹음실 안팎의 모습이 그대로다. 루피 얼굴을 보는 순간 너무 행복하고, 대본만 봐도 벌써 손가락을 세 개로 오므려 완벽하게 변신한다는 것이다. 그는 “놀이동산에 가서 루피가 새겨진 큰 풍선 뒤에 숨어 ‘이모가 루피야.’하면 아이들이 자지러진다.”면서 “뽀로로 첫 방영 뒤 6~7개월이 지나 유모차와 놀이공원에 내걸린 뽀로로 인형을 보면서 ‘빵 터졌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벌새인 해리 역의 김서영(35)도 “발성할 때 입모양까지 해리에 맞춰 ‘개굴개굴개구리~’ 노래를 부른다.”면서 “조카들이 자랑스러워할 때 가장 즐겁다.”고 말했다. ●“밥 안먹는 아이, 목소리 듣고 달라져 보람” 니콜 키드먼과 샌드라 블럭의 목소리로 알려진 정미숙(50)은 털털한 성격의 펭귄 소녀 패티 역. “5분짜리 한편 녹음하는 데 4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 초창기에는 반쯤 정신 나간 상태로 살았다.”면서 “주변 아이들이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사건·사고 등으로 동질감에 호소하는 게 인기 비결”이라고 말했다. 맏딸인 이선영(24)도 영화 해리포터의 헤르미온느 목소리 연기로 알려졌다. 아기공룡 크롱과 로봇인 로디의 목소리를 동시에 내는 이미자(54)는 “다른 애니메이션은 보는 사람만 보지만 ‘뽀로로’는 아이부터 부모, 할아버지·할머니까지 가리지 않고 보는 게 특징”이라고 말했다. 내레이션을 맡은 구자형(47)은 “이제 그만~”으로 유명한 텔레토비의 내레이션부터 다양한 다큐멘터리 해설까지 도맡아 온 전문가다. 그는 “군더더기 없이 에피소드에 집중하게 만드는 게 뽀로로의 힘”이라면서도 “뽀로로의 성공신화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 애니메이션 관련 산업의 고용창출과 근무여건 등이 그리 좋아진 것 같지 않아 아쉽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일까. “수년 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한 여배우의 다섯 살배기 딸과 한 달간 하루 20분씩 친구가 돼 통화한 적이 있어요. 너무 큰 슬픔에 빠진 아이에게 마치 제가 뽀로로인 양 얘기해 줬는데, 20일쯤 지나자 아이가 물었어요. ‘뽀로로야, 그런데 넌 엄마가 있어?’라고…. 울컥했지만, 마음을 터준 아이에게 너무 고마웠어요.”(이선)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대작 뮤지컬과 한판 붙는다”… 색깔 있는 연극들

    “대작 뮤지컬과 한판 붙는다”… 색깔 있는 연극들

    연일 폭죽이 터지는 듯한 ‘대작 뮤지컬’의 화려함에도 기죽지 않고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는 연극들이 관객을 기다린다. 독특한 연출과 깊이 사색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으로, 놓치면 아깝다. 문화생활을 즐기는 송년회를 준비하고 있다면 후보에 올려놓을 만하다. 연극 거기는 탄탄한 구성과 화려한 캐스팅으로 관심을 끈다. 아일랜드 극작가 코너 매퍼슨의 ‘둑방’을 이상우 연출가가 한국식으로 개작했다. 강렬한 한방이나 대단한 드라마가 있는 것도 아닌데 연장공연 요청이 이어진다. 매력은 ‘여운’이다. 강원도 강릉 아래 ‘부채끝 마을’에 있는 작은 카페를 배경으로, 마을 노총각들과 젊은 서울 여자의 이야기가 잔잔하게 흐른다. 술을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마치 쉼터에 온 듯 편안하다. 소소한 이야기들 속에 외로움과 아픔, 후회를 꺼내 들고 극복과 치유를 날리면서 관객들에게 ‘힐링연극’으로 떠올랐다. 강신일, 민복기, 김승욱, 김중기, 이대연, 이성민, 정석용, 오용, 송선미 등 연기파 배우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도 강점이다. 서울 대학로 아트원씨어터. 3만원. (02)762-0010. 김민기 연출의 청소년극 더 복서의 주제 역시 치유다. 1998년 독일 청소년 연극상 수상작 ‘복서의 마음’을 김민기가 번안했다. 왕년에 복싱 세계챔피언이었지만 이제는 파킨슨병 환자 행세를 해서라도 요양원에 들어가야 하는 ‘칠십 세’ 노인과 학교에서 셔틀(일진들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는 ‘십칠 세’ 문제아의 만남에서 희망을 끄집어낸다. 요양원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아이는 노인과 속내를 나누고 서로의 소원을 이루고자 돕는다. “어느 한쪽에서 외롭게 마음의 병을 앓고 있을 10대들의 모습과 우리 사회 노인문제를 보여주고 싶었다.”는 게 김민기의 의도다. 암울한 사회가 드러나지만, 너무 무겁지도, 또 가볍지도 않게 녹아들었다. 새달 20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3만원. (02)763-8233. 뮤지컬 ‘빨래’에서 이주노동자, 청년실업 등 사회문제를 조명한 연출가 추민주가 나쁜 자석을 통해 인간 본연의 쓸쓸함에 접근한다. 스코틀랜드 작가 더글러스 맥스웰의 2001년 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에 처음 공연을 올렸다. 네 남자의 9살, 19살, 29살 시절을 좇으며 이들이 간직한 비밀과 기억에 다가간다. ‘나쁜 자석’은 사랑하는 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자성(磁性)을 없앤 자석을 이야기하는 극 중 동화이자, 같은 극을 밀어내며 고독을 택하는 우리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송용진, 장현덕, 정문성, 이동하 등 뮤지컬에서 활약하는 배우들이 출연해, 연주와 노래가 자연스럽다. 내년 1월 27일까지 서울 아트원씨어터. 3만 5000~5만원. 1566-7527. 독특한 구성을 만끽하고 싶다면 소설가 구보씨의 1일을 떠올려도 좋겠다. 소설가 구보가 서울 중심가를 배회하며 사색하고, 다른 이를 관찰하는 것을 통해 그의 내면과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1934년에 발표한 박태원 작가의 중편소설을 그대로 옮겼다. 지문과 대사의 구분이 없다. 배우는 소설의 내용을 그대로 읽고, 또 그대로 몸으로 표현한다. 성기웅의 연출과 여신동 미술감독이 만들어낸 완벽한 조화는 관객들을 자유연애와 무성영화, 전차가 있는 1930년대 경성으로 끌어들인다. 27일부터 12월 30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3만원. (02)708-5001. 최여경기자 kid@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서편제’ 데뷔 20년 오정해

    [김문이 만난사람] ‘서편제’ 데뷔 20년 오정해

    ‘큰 소리꾼이 되어라, 마음의 한을 품어라, 큰 소리꾼이 되어라.’ 20년 전 영화 ‘서편제’는 그렇게 심금을 울렸다. 아버지가 딸을 진정한 소리꾼으로 만들기 위해 눈을 멀게 하는 장면이다. 앞이 안 보이는 딸은 ‘이제는 소리밖에 할 수 없지요.’라고 애절하게 울부짖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한국 영화 최초 100만 관객 돌파라는 신기록을 세우면서 그야말로 영화의 한 ‘신드롬’을 일으켰다. 판소리와 소리꾼에 대해 잘 몰랐던 사람들도 이 영화를 통해 새롭게 이해하게 됐다. 그만큼 사회적 이슈였고 눈부신 영상에 녹아든 여주인공 송화의 목소리에 울고 감동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정서와 한을 토해내는 장면이 압권이었다. 이 영화는 1993년 상하이영화제 최우수감독상(임권택), 최우수 여우주연상(오정해), 제31회 대종상 최우수작품상·감독상, 제14회 청룡영화상 최우수작품상·남우주연상(김명곤), 제4회 춘사영화예술상 대상·작품상·감독상·여우주연상(오정해), 청룡영화제 최다관객상·대상·작품상·촬영상·신인여우상·남우주연상·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많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오정해(41)씨에게는 요즘 ‘서편제’(아래 사진)가 각별하게 다가온다. 20년 전 미스 춘향 ‘진’으로 뽑히면서 임권택 감독에 의해 ‘서편제’ 여주인공으로 발탁됐다. 얼떨결에 출연했지만 영화가 대박을 터뜨릴 줄 몰랐다. 지금 생각해도 울면서 연기를 했던 기억이 선하다고 말한다. 연기 생활 20년을 맞은 그를 만났다. 지난 13일 오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경기 안양의 한 중국집 2층에서 마주 앉았다. 중국집은 ‘퓨전 중식’ 메뉴로 남편이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남편을 도와 중식당에 가끔 나왔지만 지금은 바빠서 거의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 오씨와는 구면이어서 오랜만이라고 인사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세월이 좀 지났는데도 얼굴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자 “저는 숫자를 잘 몰라요, 나이를 세면 뭐해요.”라며 웃는다. 그는 원래 솔직 털털한 성격이다. 책 읽는 것, 조근조근 대화하는 것도 좋아한다. “지난주 토요일 경기 광주에서 ‘오정해의 소리이야기’(부제, 당신이 있어 고맙습니다)라는 제목으로 관객들과 편하게 만났습니다. 그때 그랬지요. 지난 세월을 살아오면서 데뷔 20주년이라는 말을 처음 꺼냈습니다. 전화를 주시지 않았으면 그조차도 잊고 살았을지 몰라요(웃음).” 원래부터 숫자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는 “나이든 몇 월 며칠 세는 것이 중요한지 모르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얼마 전 결혼 15주년인 것도 잊었었고 생일도 가끔 ‘까먹는’ 경우가 있단다. 정말 그렇게만 지냈을까. 따지고 보면 세월의 무게, 세월의 힘이란 무시할 수 없다. 최근 철학박사 학위를 땄고 ‘오정해의 소리이야기’라는 새로운 무대도 시작했다. 또 판소리 다섯 마당과 아리랑 연구에 관심을 갖고 자료수집 등 책자 발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오씨와 만나면서 ‘서편제’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개인적으로 보더라도 인생의 중요한 전환기였기 때문이다. 그 영화를 떠올릴 때 가장 생각나는 것은 무엇일까. “서편제는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른 것 같아요. 자기 안에서 찾는 영화의 장면이 달라요. 화면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요. 제 개인적으로는 영상과 음악이 아주 잘 어울리는 완벽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의 한과 정서가 잘 함축된 음악, 그리고 북을 치는 동호와 회포 푸는 장면 등 제가 불과 22살 때 겪었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는 당시가 더 어른스러웠다며 웃는다. 지금은 아이 낳고 엄마가 되었지만 그때는 뭣도 모르고 자신만만하게 모든 일을 했던 것 같다고 술회한다. 또한 주위에서 많이 이끌어 주었기에 더욱 그랬단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미스 춘향’ 시절로 돌아갔다. 타고난 노래 솜씨를 보이던 그는 주변의 권유로 판소리를 시작했다. 13살 때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에서 최연소로 장원을 하면서 명창 김소희(1995년 작고)의 제자가 됐다. 이후 KBS 국악마당에 두 번 출연하면서 한복 연구가 허영(2000년 작고)과 인연을 맺었다. 결국 한복이 너무 잘 어울린다는 칭찬에 ‘미스 춘향’ 대회에 나가게 되면서 ‘서편제’를 찍게 됐다. “어디 대회나 무슨 행사에 나갈 때마다 주위에서 제 손을 꼭 잡아 주셨던 분들이 많았습니다. 어린 나이에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되는 엄청난 행운이었죠. 도움을 많이 받았고 따라서 책임감 또한 컸습니다. 소리꾼 오정해로서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어왔다고나 할까요. 또 ‘서편제’라는 명찰이 붙어 있으니 부담이 없어요. 어떤 무대든, 어떤 장소든 그 명찰로 100% 편하게 다가갈 수 있어요. 관객들의 기대치도 그런 것 같고요.” 그는 지난 20년 세월을 돌아보면서 아이 낳고 딱 한 달 집에서 쉰 것 외에는 거의 매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것 같다고 회고한다. 관객들과 호흡할 수 있는 라이브 무대를 꾸준히 가졌다. 월요일에 한복을 입으면 이튿날에는 드레스를, 또 그다음 날에는 연극 무대복으로, 일주일 동안 매일 옷을 갈아입으며 관객들과 만났다. 그럴 것이 ‘서편제’ 이후 영화, 연극, 뮤지컬, 방송진행, 학생, 선생으로 살아 왔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박사학위까지 땄다며 수줍게 웃는다. 내용을 묻자 대단한 일은 아니라면서 부각시키지 말아 달라고 했다. 그래도 연기자 중에는 보기 드믄 철학박사가 아니냐고 거듭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원래 저는 다도(茶道)에 취미가 있어요. 우리나라에는 엄마문화가 없잖아요. 교육문제도 그렇고 아이를 학교에만 맡긴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음식, 예절, 꽃, 그릇, 사물에 대한 관심을 갖다 보니 원광대에 계신 교무님을 알게 되면서 원광대에서 동양철학을 공부하게 됐고 7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의 논문 제목은 ‘판소리 심청가의 예술성 연구’이다. ‘심청가’를 모성애적 차원에서 새롭게 풀어 써 관심을 끌었다. 인당수 자체가 곧 ‘모성’이라는 것이다. 그는 논문을 쓰고 나서 아쉬운 점이 많았다. 많은 자료들을 모았지만 논문에 다 풀어내지 못해 좀 더 연구하면서 책으로 펴낼 준비를 하고 있다. 내친김에 심청가에 이어 판소리 다섯 마당까지 접근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 있다. ‘아리랑’을 연구하겠단다. “외국 사람들이 ‘아리랑’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선뜻 대답을 잘 못합니다. 지방마다 다르고 외국 교포사회에서의 아리랑도 다르고 그렇잖아요. 누군가 쉽게 정리해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우리 것에 대한 관심이 새삼 더 생겼다고나 할까요.” 공부하면서 느꼈던 고충도 털어놓는다. 익산까지 오고 가느라 직접 운전(지프 형식의 SUV 차량)을 하는 것도 그렇고 멀미하는 것, 방송과 무대 출연하는 것, 특강 시간을 쪼개 가며 공부하는 것 등이 힘들었다고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에 충실하려는 버릇’ 때문에 무사히 공부를 마친 것 같다며 웃는다. “저는 단기 기억상실증처럼 살자는 주의입니다. 오늘에 충실하는 것이지요. 과거는 흘러간 것이고 다가올 미래에 대해 미리 불안해할 필요도 없잖아요. 또 어느 순간 일이 많다고 생각하면 그냥 놔 버려요. 오늘 다 움켜쥘 필요가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놔 버렸던 것이 다시 오거든요. 20년 전에는 책임감으로 살았지만 지금은 놔 버릴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어요.” 겨울이 되면 길가의 가로수가 나뭇잎조차 내려놓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고 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그는 20년 전에 입었던 옷을 지금도 입는다고 했다. 중간에 ‘돼지’처럼 살찌기도 했지만 지금은 당시에 직접 만들었던 옷을 입을 수 있게 됐다고 했다. 그의 집에는 애지중지하는 재봉틀이 있다. 본인의 옷은 물론이고 아들 옷, 조카들 옷까지 손수 만들어 주기도 한다. 시간이 되면 동대문 시장에 가서 원단을 직접 고른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머릿속으로 20년을 다시 정리했다. 소리꾼 오정해는 판소리를 예술적으로 접근하는 일을 시작했고, 또 ‘오정해의 소리이야기’라는 특별한 무대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으며 내년에는 본인이 작사한 노래로 음반을 낸다. 아울러 집착이라는 단어를 버리고 편안하게 ‘오늘주의’로 홀가분하게 살아가고 있다. 꿈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행복한 오정해가 되는 것이며 오늘이 행복해야 미래가 있는 것 아니냐. 철학을 공부하다 보니 대답이 모호해진다.”며 웃는다. 동갑인 남편과는 친구처럼 지낸다. 영화, 독서 등 취미도 비슷하다. 17년 전 뮤지컬 ‘쇼 코미디’에 출연했을 때 동료 배우 최정원씨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다. 슬하에 중학생인 아들이 있다. 선임기자 km@seoul.co.kr 판소리 신동 오정해 철학박사 되기까지 1971년 전남 목포에서 태어났다. 6살 때 고전무용을 시작했다. 한복을 뒤집어쓰고 사극을 흉내내는 것을 좋아했다. 이후 주위의 권유로 국악과 판소리, 가야금을 배웠다. 13세 때 전주대사습놀이에서 최연소로 장원, 주목을 끌었다. 이때 인간문화재 김소희 선생의 직계 제자가 됐다. 중학교 2학년 방학 때부터 서울과 목포를 오가며 판소리를 공부했다. ‘춘향가’ 이수자인 그는 학창시절부터 국악경연대회나 명창대회에서 여러 차례 수상했다. 1992년 미스 춘향 ‘진’으로 선발되면서 임권택 감독에 의해 영화 ‘서편제’(1993년)로 데뷔했다. 한국영화 사상 처음으로 서울관객 100만명 돌파 등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운 ‘서편제’로 스타가 된다. 이후 영화 태백산맥(1994년), 축제(1996년), 천년학(2007년) 등에 출연했다. 2008년에는 마당극 ‘학생신위부군’에 출연, 호평을 받았다. 중앙대 국악예술학 석사를 거쳐 최근 원광대에서 동양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방송 진행, 특강, 연극, 뮤지컬 등에 출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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