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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사의 복수 결투 보듬는 민중 한국 관객 공감하고 좋아하길”

    “무사의 복수 결투 보듬는 민중 한국 관객 공감하고 좋아하길”

    일본의 거장 연출가 니나가와 유키오(79)의 작품을 일컬어 ‘눈의 연극’ 또는 ‘3분 안에 관객들을 사로잡는 연극’이라고 한다. 연극 ‘무사시’의 내한 공연을 앞둔 18일 서울 세종로 코리아나호텔에서 만난 니나가와는 이런 평가의 바탕이 된 자신의 연극관부터 명쾌하게 풀었다. “관객이 어떤 마음으로 극장을 오는지 생각해 봤죠. 고된 일을 끝낸 사람, 슬픈 연애를 하는 사람, 여유를 즐기고 싶은 사람 등 객석에 다양한 사람들이 있어요. 이 사람들을 극의 세계로 빨리 끌고 와 극을 즐기도록 해야 했던 겁니다.” 2009년에 초연한 이노우에 히사시 원작의 ‘무사시’는 17세기 일본의 전설적 무사인 미야모토 무사시와 숙명의 라이벌 사사키 고지로가 벌이는 진검승부를 다룬다. 일본의 전통으로 가득한 무대가 과연 한국 관객에게 다가갈 수 있을까. 그는 “보이는 것은 복수를 꿈꾸는 무사의 치열한 결투이지만 큰 가치는 그것을 보듬는 민중의 역할”이라면서 “한국 관객들도 그 점을 공감하고 좋아해 주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무사시’에서는 붉게 타오르는 거대한 보름달과 출렁거리는 푸른 파도의 대비가 관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긴장감이 휘감도는 간류섬 결투의 배경이다. 그가 “주의 깊게 봐주길 바란다”고 한 것은 무대를 장식하는 대나무들이다. “극작가 이노우에의 집에 있던 대나무 정원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대나무가 소리 없이 이동하면서 장면 전환이 되고, 반사되는 빛까지 섬세하게 연출했죠.” 그 대나무는 마루와 마당으로도 연결되면서 작품 속에서 중요한 배경으로 활용됐다. “1분은 몰라도 2분은 지각하면 안 된다”는 말에서 극 초반의 이 장면에 대한 그의 애정이 스쳤다. ‘무사시’가 관심을 끄는 것은 일본 연예계의 젊은 스타들과 베테랑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점이다. 영화 ‘데스노트’로 잘 알려진 배우 후지와라 다쓰야, 차세대 스타 미조바타 준페이가 각각 무사시와 고지로 역을 맡았다. 스즈키 안, 가무사카 나오마사, 요시다 고타로 등이 무대에 오른다. 이노우에 작가는 다쓰야를 염두에 두고 ‘무사시’를 쓰기도 했다. 니나가와 연출은 “다쓰야는 연극병에 걸린 배우이고, 준페이는 그 병이 전염된 친구”라고 극찬하며 “그런 젊은 배우를 중견 배우들이 서로 도우면서 작품을 만들고 있다”고 덧붙였다. 영국 여왕이 CBE(대영제국 커맨더 훈장)을 수여하고 일본에서 문화훈장을 받은 거장인 그는 “3년 안에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10편 정도 연극화하고 싶다. 늘 조금 더 좋은 연출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는 겸손의 덕을 보였다. ‘무사시’는 오는 21~23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 (02)2005-0114.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전통 춤 인생 50년… 이 시대의 춤꾼 국수호

    [김문이 만난사람] 전통 춤 인생 50년… 이 시대의 춤꾼 국수호

    그저 손 끝 하나가 나풀거릴 뿐인데 지나간 세월이 아지랑이로 나타나고 다가올 미래를 살며시 열어젖힌다. 또한 꺼져가는 한 자락의 영혼에 생명을 불어넣어 하늘 높이 솟아올린다. 조지훈이 ‘승무’에서 읊었던 한 구절이 떠올려진다.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올린 외씨버선이여/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먼 하늘 한개 별빛에 모두오고~’ ●농악소리에 혼이 팔려… 16세때 처음 장구춤 1964년, 그러니까 전주농고 1학년에 막 입학했을 때였다. 우연히 농악소리에 혼이 팔려 농악대에 들어갔다. 북 치고 장구 치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그저 신이 났다. 전주 권번의 춤사범 출신인 정형인 선생이 이런 그를 보고 미래의 춤꾼으로 확실히 점지하고 지도를 했다. 그리고 몇달 뒤 덕수궁 석조전 앞에서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가 열렸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관객들 앞에서 처음으로 장구춤을 췄다. 이때부터 그의 춤 인생길은 손짓과 몸짓을 휘휘 감아돌며 시작됐다. 중요무형문화재 27호 ‘승무’ 이수자이자 이 시대의 춤꾼으로 유명한 국수호(66)씨. 먹고살기 어려웠던 시절, 여자도 아닌 남자가 춤에 빠져 살다 보니 어느덧 50년 세월이 후딱 지나갔다. 하여 그냥 보낼 수가 없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아르코 예술극장에서 ‘춤 인생 50주년’을 기념하는 무대(춤의 귀환)에서 다시 한번 그의 진가를 발휘했다. 그는 이 무대를 통해 하나의 ‘화두’를 던졌다. 아직도 우리 전통춤이 기거할 ‘집’이 없다는 안타까운 현실과 이제는 ‘전용극장’이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는 절박함을 호소했다. 많은 문화예술인들도 공감하는 무대가 됐다.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있는 ‘디딤무용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 ‘화두’부터 꺼낸다. “우리나라에는 우리의 전통예술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무대는 없고 오페라 등 서양식 무대만 있습니다. 창(판소리)만 하더라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데 전용극장이 없잖아요. 한국인에게는 의식주가 삶의 버팀목입니다. 그렇듯이 우리 정신의 버팀목은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가(歌), 무(舞), 악(樂)에 있지요. 집도 없이 공연한다는 것은 빈터에 공염불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50년 동안 그렇게 춤을 추다 보니 항상 마음 놓고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 절실했습니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순수예술의 집’이다. 국립극장이나 국립국악원, 예술의전당 등도 있지만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대부분 서양의 공연을 염두에 두고 지어졌다는 것이다. 이웃나라 중국의 경극만 하더라도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도시는 물론 지방마다 전용극장이 수없이 많으며 일본의 가부키(歌舞伎)와 노(能) 역시 국립극장을 비롯해 여러 지방에서도 마음 놓고 공연할 수 있는 전용극장이 있어서 전통의 맥을 제대로 이어나가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우리나라는 국립은 고사하고 도립이나 시립에서 운영하는 전통 극장조차도 없다고 말한다. 우리 춤이 지지부진하고 대중에게 잊혀 가는 이유가 바로 특성화된 ‘순수예술의 집’이 없기 때문이며 이는 춤뿐만 아니라 음악, 창극 모두에 해당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한국의 음악과 소리, 그리고 춤은 한국인의 기호품이 아니라 한국인한테 필수적인 의식주에 해당되는 영혼의 양식이라는 것이다. “순수예술 문화는 우리의 정신적 샘입니다. 따라서 한국인은 그 물을 마시고 살아가야 하며 그것이 튼튼해야 대중문화도 튼튼해지는 것이지요. 일본이 국가차원에서 전통예술에 관심을 갖고 융성시키는 것은 바로 국가를 위한 국민의 정신적 힘이 강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 문화융성위원회가 있지만 이러한 부분을 간과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구려 당시 동맹제나 무천제 등을 보십시요. 이는 곧 고구려의 정신이었고 광활한 땅을 거느릴 수 있는 국가권력의 튼튼한 발로였습니다.” ●정형인·박금슬 선생은 춤인생 최고의 스승 이와 관련된 얘기를 더 나누다가 화제를 바꿨다. 춤인생 50년을 잠시 돌아보자는 의미에서 어린 시절로 돌아갔다. 그는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3~4세 때 비봉면 마을에 전주댁이라는 무당이 있었다. 쾌자 자락을 휘날리며 꽃을 들고 길길이 뛰는 무당과 옆에서 장구와 꽹과리를 치면서 경을 읽는 모습이 어린 그에게 강렬하게 다가왔다. 그의 예술적 끼는 주변 환경도 한몫 거들었다. 봉황이 난다는 비봉마을 골짜기마다 꽃가지 사이로 지저귀는 산새들의 소리를 들으면서 어깨가 저절로 으쓱으쓱해졌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에는 단상에 올라가 아리랑 춤을 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이에 대해 “그런 시골의 정취 속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는 것이 지금 생각해도 큰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서울 같은 곳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대단한 기억으로 남는 시절이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부친은 토지개량조합장 등을 거쳐 1960년대초까지 민선 면장을 지냈다. 이런 집안 분위기 때문에 그는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주 서중학교에 진학한 그는 혼자 하숙을 하면서 브라스밴드부에 가입했다. 북을 치고 서양의 악보를 아버지 몰래 공부했다. 음계와 악보를 알고 분석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진 것도 이때였다. 졸업 무렵 아버지가 농고에 진학할 것을 권유했다. 할 수 없이 전주농고 토목과에서 측량을 공부했다. 하지만 몸속 깊이 내재돼 있는 끼는 주체할 수 없었다. 정규수업이 끝나자마자 농악대에 가서 북과 장구, 한국 음악과 무용 등을 익혔고 18세까지 정형인 선생한테 승무와 북춤, 남무 등 남자춤을 배웠다. 서라벌예술대학에 진학해서는 송범과 김백봉 선생한테 강의를 들었고 특히 박금슬 무용연구소에서 3년간 숙식을 함께하며 박금슬 선생이 오세암 천월스님으로부터 사사한 바라 승무를 익혔다. 정형인과 박금슬 선생은 그의 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밖에도 한영숙, 은방초 등 당대 무용계를 주름잡던 전통춤꾼들을 사사했다. 1971년 군 복무 시절이었다. 전북도지사의 부탁으로 1사단장한테 특별휴가를 얻은 그는 전주농고 농악대에서 잠시 안무를 하게 됐다. 얼마후 그의 지도를 받은 전주농고 농악대는 전국대회에 출전해 대통령상을 받았다. 대회가 끝나자 전국의 고등학교에 농악대가 생기는 붐이 조성됐고 그의 안무실력은 자연스럽게 인정받는 계기가 됐다. 1973년 2월 제대한 그는 때마침 국립무용단이 생기자 남자로는 처음으로 입단하면서 월급받는 직업무용수가 됐다. 이때부터 ‘국립무용단 남자 무용수 1호’라는 꼬리표가 항상 붙어다녔고 매스컴에서 집중조명을 받았다. ●국립무용단 남자 무용수 1호로 주목받아 “제가 국립무용단에 들어갔을 때 송범 선생께서 단장을 맡고 있었지요. 10년동안 여자 단원이 20명쯤 있었는데 남자는 저 혼자였지요. 남자라는 이유로 일주일에 한 번씩 언론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날마다 주인공이었죠 뭐.” 이 무렵 남자무용수 시대를 예상하고 중앙대 연극영화과 3학년에 편입해 춤극을 공부했다. 기존의 무용에 극적인 요소를 결합시켜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이어 대학원에 진학해 민속학을 전공했고 ‘한국 민속 연희연구’라는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이론적 행위는 그의 춤 인생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예술적 바탕이 됐다. 직접 무대 출연은 물론 대본, 안무, 연출, 음악 등 여러 영역으로 넓혀나가는 작업을 꾸준히 해나갔다. 대학원 졸업과 동시에 27세에 서울예대 교수로 임용됐고 이후 중앙대에서 26년간 교수직을 겸하면서 30년 가까이 국립무용단에서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러면서 130여개국 순회공연을 통해 한국의 전통춤을 어떤 식으로 추고 어떤 식으로 창작할 것인가를 고민했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부터 김만중의 ‘구운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로 세계인이 공감할 작품을 만들어냈다. 특히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2002년 월드컵 개막식 등에서 총괄 안무를 맡아 세계인들에게 여러 감동을 선사했다. ●“1년에 한두편 창작 춤극으로 관객과 소통하고파” 그는 지난 50년 세월을 뒤돌아보면서 “춤도 춤이지만 자료수집하느라 참 바쁘게 지냈다. 이사할 때 무용 관련 책만 트럭 10대분이 넘었다. 이런 것들이 작품의 골격을 세우고 무너지지 않게 하는 튼튼한 인문학적 토대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가 생각하는 춤의 매력은 진정 무엇일까. “인간이면 지닐 수 있는 핏빛 움직임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 공들여닦여지고 정신이 들어간 움직임을 통해 미학적으로 보여질 때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력을 쌓은 실 하나가 내 가슴에서 저쪽 사람의 가슴으로 건너갈 때 금실이 되는 것처럼 춤의 매력은 세련미와 정성들여 쌓은 공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나이가 60대 중반이지만 무대 위에서는 여전히 청춘이다. 건강비결을 묻자 “걷기를 주로 하고 불필요한 생각을 하지 않으며, 예술과 관련되지 않는 불필요한 곳에는 되도록 가지 않으려 한다”면서 “가끔 식구들과 먹거리가 좋은 데 찾아가는 것을 작은 행복으로 여긴다”고 대답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1년에 한두 편씩 창작 춤극을 만들어 가급적 소극장 무대에서 관객들과 더 가까워지겠다고 말한다. 선임기자 km@seoul.co.kr ■국수호는 88올림픽 개막식 등 안무가로도 명성 춤극의 지평 넓혀 1948년 전북 완주에서 태어났다. 1964년 전주농고 1학년때 스승 정형인 선생한테 농악과 한국음악, 장단 등을 익혔다. 그해 공식무대인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장구춤을 췄다. 이후 서라벌예대에서 무용을 전공하고 중앙대에서 연극영화를, 중앙대 대학원에서 민속학을 전공했다. 1973년 국립무용단에 입단했고 이듬해 ‘왕자호동’을 시작으로 30여 편의 작품에서 주역을 맡았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안무를 병행해 안무가로도 명성을 쌓았다. 88올림픽 개막식과 2002년 월드컵 개막식 공연의 안무를 맡았고 국립무용단 단장, 서울예술대 교수, 중앙대 교수 등을 역임했다. 1987년에는 국수호디딤무용단을 창단해 ‘무녀도’ ‘대지의 춤’ ‘한국 환상’ ‘봄의 제전’ ‘명성황후’ 등으로 춤극의 지평을 꾸준히 넒혔다. 주요 수상으로는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전북농악지도 대통령상(1971년), 88올림픽 개회식 안무 ‘화합’(국무총리표창), 최우수 예술가상 한국예술평론가협회 작품상(1988년), 한국 예술평론가협회 선정 20세기를 빛낸 인물(1999년), 제16대 대통령 취임식 총괄안무 대통령표창(2003년), 올해의 예술가상 춤극 ‘고구려’(2006년) 등이 있다. ‘세계 춤 기행문집- 춤 내사랑’ ‘국수호 춤 작품집-국수호의 춤’ 등의 저서를 펴냈으며 현재 국수호디딤무용단 예술감독 겸 이사장을 맡고 있다.
  • 무엇을 고르리까, 그것이 문제로다

    무엇을 고르리까, 그것이 문제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는 세계 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독백이다. 숙부의 패륜, 어머니의 변절을 알게 된 덴마크 왕자 햄릿의 혼란과 분노, 갈등을 압축한 말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햄릿’을 최고의 작품으로 꼽는 것은 단순한 복수를 넘어서 인간 심리를 깊이 통찰하고 삶과 죽음의 본질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연극평론 1세대로 오랫동안 ‘햄릿’을 강의해 온 여석기 고려대 명예교수는 ‘나의 햄릿 강의’(2008)에서 “‘햄릿’은 온통 수수께끼투성이”라고 했다. 햄릿이 복수를 망설이는 것, 오필리어가 자살한 이유, 거트루드(햄릿의 어머니)가 독이 든 잔을 알고 마셨을까 하는 것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작품 해석의 관점에서도 다양하고 흥미로운 화제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늘어나고 있다”는 여 교수의 평가대로, 여기에 올해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이라는 계기가 얹어져 ‘햄릿’에 대한 변주가 공연계를 휘감고 있다. 국악뮤지컬집단 타루의 ‘판소리 햄릿 프로젝트’(연출 박선희)는 ‘햄릿’에 대한 기발한 접근이다. 똑같은 복장과 분장을 한 여성 소리꾼 4명이 햄릿이자 오필리어, 거트루드, 클로디어스가 돼 갈등을 빚고 이야기를 풀어 간다. 전라도 사투리로 판소리의 말맛을 살리고 칼싸움으로 긴장감을 끌어낸다. 타루의 정체성인 판소리와 우리 가락뿐만 아니라 스윙, 왈츠, 탱고 등 다양한 음악이 녹아 있다. ‘햄릿’의 역사·시대상을 재치 있게 우리 사회상과 접목해 이 시대의 자화상을 투영시킨다. 서울 중구 장충동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다음 달 13일까지 공연한다. 2만 5000원. (02)6481-1213. 연극, 무용, 음악, 영상 등 다양한 예술 장르를 활용한 ‘햄릿’이 다음 달 3~6일 서울 종로구 동숭동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오른다. 현대적인 감각과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바라본 ‘햄릿, 여자의 아들’(연출 송현옥)이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라고 한탄한 햄릿의 여성관은 다소 비관적이다. 극단 물결은 이런 햄릿의 사고에서 벗어나 거트루드의 처지와 욕망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한다. 2만~5만원. (02)3668-0007. 햄릿을 사랑한 여인 오필리어에 초점을 맞춘 창작뮤지컬 ‘오필리어’가 5월 16~25일 서울 세종로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이 작품에서 오필리어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아 목숨을 끊는 유약한 존재가 아니다.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김명곤 전 문화부 장관은 “연극을 시작하던 스무 살 시절부터 세계인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싶다는 꿈을 간직해 왔다. 초심으로 돌아와 ‘햄릿’을 읽다 보니 청순가련하고 순종적인 여성의 상징 ‘오필리어’의 모습에 의문이 갔다”고 했다. 이 작품에서 오필리어를 사랑에 적극적이고 당찬 매력을 지닌 여성으로 표현한 이유다. ‘오필리어’의 음악과 안무를 각각 최우정 TIMF앙상블 예술감독과 주목받는 현대무용가 차진엽이 담당해 관심을 끈다. (02)515-0405.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서울대 추천 도서 100선-읽어라, 청춘] 미겔 데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얼마 전 부산 지하철에서 술에 취한 승객이 선로에 떨어졌다. 그때 이름 없는 시민이 선로로 뛰어들어 승객을 구해 냈다. 한 시민의 용감하고 신속한 구조로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사람을 돕는 훌륭한 사람을 ‘기사’에 비유한다. “저 사람은 기사도 정신이 투철해”, “정말 정의로운 기사야” 라고 말하곤 한다. 언젠가부터 정의롭고 용감한 사람의 상징이 된 ‘기사’. 우리가 상상하는 기사는 아서 왕처럼 건장한 체격에, 화려한 갑옷을 입고, 방패와 창으로 무장한 채 말위에서 질주하는 모습이다. 군주에게 충성하고 약자를 구하는 멋진 그 이름 ‘기사’. 여기에 그러한 삶을 꿈꾸는 사람이 있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의 주인공이다. 스스로 자신을 편력기사로 부르며 정의를 위해 지칠 줄 모르는 도전을 했던 돈키호테. 그는 누구인가. 그동안 ‘돈키호테’는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고, 오페라와 뮤지컬, 연극, 영화, 무용 등으로 만들어졌다. 심지어 돈키호테를 닮은 사람을 돈키호테형이라고 하거나 키호테시즘(돈키호테적인 성격이나 생활태도)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돈키호테’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을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이를 위해 먼저 작가 세르반테스가 살았던 스페인의 상황을 살펴보자. 세르반테스가 태어난 1547년은 카를 5세(1500~1558)가 지배한 시대로 ‘황금시대’라 불릴 만큼 번영을 누렸다. 신대륙에서 값싼 은이 대량 유입되었고, 식민지를 수출시장으로 한 모직물 공업이 번창했다. 카를 5세의 뒤를 이은 필리페 2세(1527~1598)가 레판토 해전(1571년 오스만튀르크와 기독교 연합 함대가 코린트 만의 레판토 앞바다에서 충돌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면서 그 기세는 점점 높아져 갔다. 절대왕정을 확립한 필리페 2세는 무적함대를 만들어 해상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영국 엘리자베스 1세에게 패하면서 점차 쇠퇴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유럽에서 스페인이 최고의 강자로 이름을 날리던 16세기 초에 기사도 소설이 인기를 끌었다. 기사도 소설에서 불가능이 없을 것 같은 스페인의 자신감을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1547년 카를 5세 치하에 태어난 세르반테스는 필리페 2세 때 레판토 해전에 참전했고 이후 몰락해 가는 조국을 보았다. 레판토 해전에서 한쪽 팔을 잃은 그의 인생은 고난과 좌절의 연속이었다.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 안에 자기가 겪은 스페인의 영광과 쇠퇴를 담으려 했다. 그 결과 기사도 소설에만 존재하는 영광의 세계를 현실에서 찾고 있는 돈키호테가 탄생한 것이다. 1605년 출판된 ‘돈키호테’ 주인공의 본명은 알론소 키하노다. 그는 스페인 라만차라는 작은 마을의 가난한 귀족이었다. 그는 기사와 아름다운 아가씨, 마법사, 용, 마법에 걸린 숲, 신비한 검이 등장하는 모험담에 푹 빠진 나머지 하루 종일 서재에 틀어박혀 환상적인 모험의 세계에 빠져들곤 했다. 그리고 세상을 유랑하는 편력기사가 되어 나라를 위해 봉사하고 명예를 드높여야겠다는 생각으로 산초 종자와 함께 모험을 떠난다. 모험을 찾아 세상을 떠돌면서 악을 바로잡고, 불행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기로 다짐하였다. 자신의 이름을 ‘라만차의 돈 키호테’라고 붙인다. 그가 떠난 편력은 온통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행동의 연속이었다. 풍차를 거인이 둔갑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갤리선에 노역을 하러 가는 죄수들을 풀어 주고 억울한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만족한다. 지나가던 우리에 든 사자와 대결하기도 한다. 그는 시종일관 주위 사람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지만 결코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았다. 세르반테스는 기사도 소설에 사로잡힌 돈키호테를 이용하여 당시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귀족의 행태를 풍자했다. 죄수를 풀어 주는 이야기도 기존사회 질서에 대한 도전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로테아와 돈 페르난도의 사랑을 통해 신분을 뛰어넘는 자유로운 사랑을 말하고, 섬의 영주가 된 산초에게 충고하는 모습에서 그가 바라는 이상사회를 보여 주기도 한다. 이는 당시 중세사회를 넘어 문예부흥기 르네상스로 넘어가는 근대적 자유주의자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 ‘돈키호테’는 쉽게 읽히는 책이지만 인물을 이해하기엔 어려울 수 있다. 그 이유는 돈키호테가 꿈꾸는 이상과 행동이 모순되기 때문이다. 돈키호테가 열망하는 이상은 이미 쇠락해 버린 스페인에 대한 정의로 볼 수 있고, 광기 어린 행동은 새로운 르네상스가 추구한 자유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돈키호테가 현실의 정체성을 깨달았을 때 죽음을 맞는 부분에서 혼란을 느낄 것이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의 철저한 논리와 행동의 일치, 주변의 눈에 아랑곳하지 않는 정의감에 대한 열망, 불의와 부조리에 대한 저돌적인 공격, 더할 수 없는 덕행에 빠져드는 광기 어린 행동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맞아 방황하는 전환기 지식인의 고뇌와 실천력을 이해하게 된다. 이것이 돈키호테가 주는 문학적 가치이자 묘미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짚어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산초에 대한 재인식이다. 우리는 항상 문학작품에서 주인공에만 주목한다. 하지만 문학작품 속에는 주인공과 대조되는 주변 인물이 존재한다. ‘돈키호테’의 산초가 그렇다. 그동안 산초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인물로 인식되어 왔다. 단순하고 솔직해서 배고픔과 추위 등 본능에 충실한 산초. 하지만 그는 처음부터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돈키호테의 여정에 참여한다. 그를 움직이게 한 것은 돈키호테가 언젠가 섬의 영주가 되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그리고 허황된 행동을 하는 돈키호테를 적절히 통제하며 돕는다. 돈키호테가 물레방아를 괴물로 생각해 공격하려하자 로시탄테의 뒷다리를 묶고 마법사가 한 짓이라고 속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여인 둘시네아를 만나러 가겠다는 돈키호테를 막기 위해 지나가는 못생긴 시골 아가씨들을 마법에 걸린 둘시네아라고 둘러대기도 한다. 섬의 영주가 되어 모자에 대한 명판결을 내리고, 노인들의 분쟁을 해결하여 섬 주민들에게 현자라고 칭송받기도 한다. 자유의 소중함을 알고 스스로 영주의 자리를 내놓은 뒤 돈키호테에게 돌아가 임종을 지키며 숭배하는 현명한 휴머니스트의 모습으로 변모되어 간다. 산초는 주인공이 되고 싶어 하는 평범한 우리 자신과 많이 닮아 있다. 돈키호테의 꿈을 향한 용기와 실천은 전환기 지식인이 가져야 할 필수적인 자세이다. 많은 고뇌와 지식을 가지고 있더라도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결코 현실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이렇게 끝내기에는 2% 부족하다. 돈키호테가 그토록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산초를 통해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산초는 실현 가능한 꿈을 가지고 돈키호테를 돕는다. 산초와 같이 현실에 대한 명확한 인식과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여 돈키호테처럼 끝없는 열정을 가지고 실천해 간다면 그것이 바로 21세기에 적합한 효과적인 추진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씨줄날줄] 인사동의 고층호텔/서동철 논설위원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문화 거리인 인사동에 호텔을 비롯한 고층 상업시설이 들어서게 될지도 모르겠다. 서울시가 일부 구역이기는 하지만 4층 이하 건물에 전통문화업종만 들어설 수 있도록 한 기존 규제를 푸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고 19층 건물을 지을 수 있는 내용의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계획 변경안’은 이미 지난달 서울시문화지구심의위원회의 심의를 한 차례 거쳤다고 한다. 인사동이 문화지구로 지정된 것은 2002년이다. 전통문화 보호와 육성을 위한 업종 규제와 용도 제한, 건축 및 개발 제한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서울시가 지난해 공평 도시환경정비계획을 발표하면서 문화지구 일부를 정비대상에 포함시킨 것이다. 탑골공원 서쪽의 남인사마당에서 덕원갤러리가 있는 인사동 네거리에 이르는 문화지구 남동쪽 구간이다. 사실 인사동 문화지구는 지정부터가 전통문화 거리의 급격한 해체를 조금이라도 막아보겠다는 고육지책이었다. 인사동을 찾는 외국 관광객이 크게 늘어났음에도, 막상 보여줄 전통문화가 사라져 가는 추세는 이미 1990년대부터 본격화하고 있었다. 문화지구 지정 이후에도 정체성은 끊임없이 훼손되어 인사동의 상징이었던 골동품 가게와 표구점, 서화용품점은 이미 오래전에 뒷골목이나 2층, 3층으로 내몰렸다. 대신 그 자리는 옷 가게, 화장품 가게와 다국적 브랜드 커피 전문점이 차지했고, 이런 현상은 이번에 정비대상으로 지목된 곳에서 가장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러니 서울시의 고민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디든 문화의 거리가 명성을 얻으면 부동산 값이 뛰어오르기 마련이다. 인사동은 물론 연극의 메카 대학로와 인디 문화의 본거지 홍대앞도 같은 길을 걸었다. 상업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원주민’은 갈 곳을 잃는다. 하지만 특정 문화에 대한 집착만 아니라면 인사동, 대학로, 홍대앞은 여전히 문화의 거리다. 실제로 문화지구가 휴식을 겸비한 관광지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오히려 일정한 상업성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우리와 달리 문화와 소비, 오락 기능을 한데 묶어 문화지구를 지정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부와 서울시는 인사동의 쇠퇴를 방관만 해서는 안 된다. 인사동을 뛰어넘는 새로운 전통문화 거리가 태어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인사동 주변에는 전통문화 거리의 기능을 확장해 나갈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있지 않은가. 인사동과 국악의 거리를 문화적으로 이어 거대한 전통문화 중심지로 가꾸어 가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의도한 곳에 필요한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공세적 문화지구 정책을 기대해 본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자발적 죽음을 보는 유럽인들의 시각은

    자발적 죽음을 보는 유럽인들의 시각은

    자살의 역사/조르주 미누아 지음/이세진 옮김/그린비/516쪽/2만 9000원 세계적인 자살률, 처지를 비관한 자살, 나약한 의지의 발로…. 연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소식이 들려오고 그 원인을 분석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이어진다. 생활고, 실연, 치욕, 폭력, 이런저런 이유에 우울증까지 갖다 붙이면서 자살을 선택한 이유를 꼽아낸다. 그러나 자살이라는 것은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햄릿의 말처럼 이유를 단순화할 수 없다. 오히려 알베르 카뮈의 말대로 자살은 “심각하고 유일한 철학적 문제”다. 과연 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철학의 근본적인 문제로 소급되기 때문이다. 프랑스 역사학자 조르주 미누아가 쓴 ‘자살의 역사’는 자발적 죽음에 대한 오랜 논쟁 중에서도 16~18세기 유럽의 자살에 초점을 맞췄다. 저자는 이 시기를 ‘자발적 죽음에 대한 성찰이 각별했던’ 때로 봤다. 중세 말인 16세기까지 자살은 신의 섭리에 대한 불복종이자 살인으로 여겨졌다. 때문에 자살자의 시신은 가혹행위를 당하고 재산은 몰수됐다. 감춰야 할 일이었던 탓에 당연히 기록도 파편적으로 남아 있다. 시인 루크레티우스, 정치가 브루투스나 세네카 같은 유명한 자살 사례가 중세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그렇다고 자살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귀족에게는 간접 자살이라는 대체행위가 있었다. 유희적 자살이라고 불리는 마상시합이나 자발적 순교로 포장한 전쟁이다. 르네상스 시기에도 자살은 대체로 비난을 받았지만 문학과 연극판에서는 그에 대해 다른 시선을 보였다. 인쇄기술의 발달로 루크레티우스, 브루투스, 세네카 등의 전기물이 읽히면서 존경할 만한 인물들이 ‘왜 자살하는가’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햄릿’과 같은 연극무대를 통해 생과 사를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이 거듭 투영되면서 자살이 하나의 개인행동이라는 의식이 싹텄다. 계몽주의로 넘어가는 18세기 초 영국에서 처음으로 ‘자기 살해’를 ‘자살’(suicide)로 불렀다. 영국에서 매주 ‘사망 내역’을 실은 신문이 발간됐고 유서가 유행처럼 번지면서 실연, 가정불화, 수치, 회한 등 일반적인 인생사가 자살과 연결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자살에 대한 평가는 다른 양상이었지만 시대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있다. 자살의 ‘계급 차별’이다. 귀족이나 지성인의 자살은 명예 회복의 길이요, 지적 성찰과 회한의 결과로 봤다. 그러나 평민의 자살은 비참하고 지난한 현실의 결과나 책임 회피로 치부됐다. 책은 19~20세기 자살의 원인과 평가도 언급하면서 차근차근 핵심으로 다가간다. 자살 논쟁이 치열했던 16~18세기에는 인간의 자유라는 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을 했지만, 19~20세기에는 자살에 사회·심리학적 잣대를 들이대면서 개인의 죄의식을 부추기고 집권층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자살을 은폐해 오히려 논쟁과 고민이 퇴행됐다고 분석한다. 죽음보다는 삶이 낫다는 전제로 고통을 견디고서라도 살아야만 한다고 강요하지는 않는지, 자살의 과거사를 탐구하면서 ‘죽음 윤리’를 환기시킨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커버스토리] 인생 2막 실패기

    [커버스토리] 인생 2막 실패기

    스포츠 스타들의 인생 1막은 화려하다. 일거수일투족이 세간에 오르내린다. 모든 인간관계가 호의 속에서 형성된다. 하지만 현실의 세계는 속고 속이는 약육강식의 ‘차가운 정글’이다. 또 스포츠 스타들은 회사원, 자영업 등 다른 직업에 비해 생명력이 매우 짧다. 운동 선수들은 체력적 문제, 부상, 또는 경기력이 후배들보다 떨어지는 상황 등 다양한 이유로 대략 30대 중·후반에 은퇴를 맞게 된다. 그러나 은퇴 뒤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차분하게 준비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래서 스타들은 인생 2막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보는 경우가 많다. 좌절감 속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자살을 하는 경우까지 있다. ●프로야구 4번타자 이호성 ‘비운의 스타’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의 4번 타자 이호성은 인생 2막 최대 실패자로 꼽히는 비운의 스타다. 골든 글러브 2회 수상에 빛나는 이호성은 은퇴 뒤인 2004년 웨딩사업에 뛰어들었다. 연매출 70억~80억을 올리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하지만 화상 경마장 사업에 투자해 110억원대의 부도를 맞았다. 그로부터 3년 뒤 이호성은 내연녀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신도 투신, 생을 마감했다. 전 프로농구 선수 정상헌도 지난 1월 법원에서 처형 살해 혐의로 징역 25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다. 농구스타 현주엽은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했고 농구천재 방성윤은 동업자 폭행 혐의로 구설에 올랐다. 선수 시절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돈을 인생 2막을 시작하며 무리한 욕심을 부려 한순간에 잃은 스타들도 많다. 한국인 최초로 프로복싱 세계챔피언 벨트를 찼던 박종팔 역시 은퇴 뒤 큰 실패를 맛봤다. 선수생활을 끝낸 그는 술집경영 등 사업 실패, 스포츠센터 투자 실패, 지인의 배신 등을 겪으며 90억원대의 재산을 날렸다. 이로 인해 박종팔은 아내를 잃었고, 자신 역시 화병으로 인해 당뇨, 심장병, 뇌졸중을 앓았다. 1988년 서울올림픽의 유도스타 김재엽도 은퇴 뒤 사업가로 변신했으나 역시 20억원을 날렸다. 그는 한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혼 등 악재가 겹쳐 노숙생활까지 했고 이후 자살을 기도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복싱교실을 운영하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스포츠 스타들의 인생 2막 실패기는 해외에도 부지기수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스타 커트 실링은 2009년 은퇴 뒤 현역 시절 자신의 등번호를 딴 게임회사 ‘38스튜디오’를 설립해 사업가로 변신했다. 하지만 회사의 부도로 투자금 5000만 달러와 로드아일랜드주로부터 대출 보증받은 7500만 달러마저 허공에 날렸다. 그 결과 실링은 주 정부 보증을 통한 은행 대출 과정에서 담보로 등록했던 2004년 챔피언십시리즈의 더 유명한 ‘핏빛 양말’까지 지난해 경매에 내놨다. 실링은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인 2004년 챔피언십시리즈에서 발목 인대 수술을 받은 불완전한 몸 상태로 마운드에 올라 역투했다. 흰 양말에 피가 맺혀 팀의 상징인 ‘레드삭스’로 변하자 팬들은 그의 핏빛 투혼을 칭송했다. 소장가치 1억원 이상의 의미가 있는 양말마저 빚 청산을 위해 팔아버린 실링은 이후 다시 방송 해설위원으로 변신해 활동해 왔으나 지난달 암 발병 사실을 밝히며 투병 중이다. 선수 시절 복잡하고 화려한 사생활 때문에 인생 2막의 시작부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1980년대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미남 스타로 이름을 날린 스티브 가비는 점잖고 지적인 외모로 야구장을 찾는 여성팬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야구장에선 좋은 매너와 팬 서비스로 ‘미스터 클린’이라고 불렸지만 유니폼을 벗기만 하면 카사노바로 변했다. 1983년 대학시절 만난 부인과 이혼한 그는 사업가인 주디스 로스와 동거에 들어갔고, 여비서와도 관계를 맺었다. 세일즈우먼 셰릴 몰턴도 만나고 있었다. 세 여자의 구혼 요청에 시달리던 그는 문란한 사생활 때문에 선수로도 신통찮은 성적을 거뒀다. 1988년 은퇴를 결심한 가비는 이듬해 결혼식을 올렸는데, 상대는 또 다른 여자인 캔디 토머스였다. 이후 가비는 수많은 여인들의 양육비 청구소송에 시달려야 했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 핵이빨로 전락하더니…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미국 프로농구(NBA)를 풍미했던 앨런 아이버슨은 필라델피아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득점왕을 네 번이나 차지한 슈퍼스타였다. 2000~01시즌 필라델피아를 챔피언결정전에 올려놓고 자신은 MVP에 선정되는 등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특히 플레이오프까지 포함해 19연승을 달리며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LA 레이커스를 상대로는 1차전에서 48점을 쏟아붓는 맹활약을 펼치며 레이커스의 연승 행진을 멈추게 하기도 했다. 필라델피아 프랜차이즈 사상 최다인 40점 이상 득점 기록(76경기)을 보유하고 있고 팀 내 3점슛 최다 성공 기록(885개)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이버슨은 악동 기질과 낭비벽으로 실패를 거듭했다. 필라델피아 래리 브라운 감독과 끊임없이 충돌하며 잡음을 만들었고, 결국 필라델피아를 떠나 덴버, 디트로이트, 멤피스 등 여러 팀을 전전했다. 그가 NBA에서 벌어들인 돈만 무려 1억 5400만 달러(약 1700억원). 하지만 돈이 들어오는 대로 흥청망청 쓰는 버릇을 버리지 못했고 2012년 NBA를 떠나기 직전 법원으로부터 한 보석상에게 진 빚 86만 달러를 상환하지 못해 은행계좌를 압류당했다. 이 틈을 놓치지 않은 미국 메이저 실내축구리그 소속 뉴욕 로체스터 랜서스로부터 게임당 출전료 2만 달러의 계약을 제의받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결국 돈이 급했던 아이버슨은 은퇴하지 않고 터키리그로 떠났고 지난해 은퇴했다. ●스포츠 이외 분야 교육 전혀 안 이루어져 스포츠 스타의 인생 2막 실패의 ‘아이콘’으로 마이크 타이슨 이상의 인물이 있을까. 1986년 20세에 최연소 헤비급 세계챔피언이 된 뒤 현역 시절부터 범죄와 기행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던 타이슨은 1997년 WBC 타이틀전에서 에반더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어 ‘핵주먹’에서 ‘핵이빨’로 전락했다. 이후 마약 중독에 빠진 끝에 2006년 은퇴했다. 독보적인 권투 실력으로 엄청난 갑부가 됐으나 방탕한 생활과 마약 복용으로 추락을 거듭하다 파산 신청까지 했다. 정신을 차린 타이슨은 2009년 라키하 스파이스와 결혼한 뒤 돈 관리를 아내에게 맡겼다. 타이슨은 최근 “100일 동안 술을 마시지 않았고 약물을 사용하지 않았다”면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지독한 알코올 중독으로 죽음 직전에 있는데 술에 취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타이슨은 현재 연극배우로 변신한 상태다. 이처럼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이 화려한 인생 1막을 마치고 인생 2막에서 많은 좌절을 겪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 선수로서의 성공만을 위해 한 분야에 올인, 인성이나 사회화 등 스포츠 이외의 분야에 대한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화려한 선수 시절의 허명에만 갇혀 전업이나 사업에 필요한 태도와 자세를 보이지 않는 것도 인생 2막에서 실패하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프로야구 두산의 투수 출신 이경필 해설위원은 “인생 2막을 시작할 때는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장형우 기자 zangzak@seoul.co.kr
  • 김고은, 순수와 광기의 공존

    김고은, 순수와 광기의 공존

    “아저씬 왜 약한 사람들만 괴롭혀요? 아저씨 개XX예요?” 시골 마을에서 야채 노점상을 하는 복순은 정신연령이 8세 수준의 지적장애를 가졌지만, 자신을 위협하는 철거반원들에게는 식칼을 휘두르며 맞선다. 연쇄살인마의 손에 유일한 가족인 동생을 잃고 복수의 칼을 갈며 그와의 맞대결을 준비한다. 이 심상찮은 인물은 배우 김고은(23)이 선택한 캐릭터라는 데서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데뷔작인 ‘은교’(2012)에서 청순과 관능을 오가며 노 시인과 청년을 파멸로 이끈 여고생 역할로 신선한 충격을 줬던 그는 두 번째 작품 ‘몬스터’(13일 개봉)에서도 쉽지 않은 선택을 했다. 시사회가 끝난 뒤 “역시 파격”이라는 반응들이 쏟아졌다. “글쎄요, 파격이라면 파격이랄 수 있겠죠. ‘은교’도 시나리오가 재미있어서 하게 됐었죠. 이번에도 마찬가지였어요. 복순은 캐릭터가 매력 있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시나리오가 무척 독특했어요.” ‘몬스터’의 복순은 여러모로 낯선 캐릭터다. 스릴러 영화의 여주인공이되 희생자는 아니고, 지적장애인이면서도 누군가의 돌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복순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인마에게 1대1로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마음에 들었어요. 스릴러 영화에서 ‘왜 여자만 당할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거든요.” 살인마 태수(이민기)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끝에 벌어지는 마지막 대결은 복순의 광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채 실컷 소리를 질러본 느낌이 어떻냐고 묻자 “시원했다”면서 웃었다. 복순이 지적장애인이라기보다는 순수하면서 광기어린 인물로 그려진 건 캐릭터를 이리저리 뜯어보고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노력 덕이다. “복순을 특정 장애가 있다고 설정하기에는 복순의 모습이 너무 다양했어요. 그래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생계에 내몰린, 정신연령이 8~9세에 머문 아이라 생각하고 접근했죠.” 그러면서 “자신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에 대한 책임감만큼은 여느 어른들보다도 성숙한 아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데뷔작 ‘은교’로 2012년 신인상을 휩쓸었지만 그는 스타덤을 누리기보다 자신을 좀 더 연마하는 길을 택했다. ‘은교’ 이후 다시 학교(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로 돌아가 수업을 듣고 연극 무대에 섰다. 학사관리가 까다로운 만큼 연기 공부에 더욱 매진할 수 있는 기회였다. “파트너와의 연기, 즉흥 연기 등 여러 연기 실습을 수없이 하다 보니 어떤 급박한 상황에서도 제 안에 쌓인 재료를 바로 꺼내 연기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학교가 괜히 학교가 아니었어요.” 김고은의 행보를 지켜봐 온 팬들은 그에게서 여느 20대 여배우들과는 다른 아우라를 기대한다. 화려하게 예쁘지는 않지만 다양한 매력을 한데 품은 얼굴부터 쉽지 않은 연기에의 도전까지, ‘예쁘지만 평범한’ 여배우의 대열과는 다른 길을 걷기를 바라는 것이다. “저도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물에서 제 나이에 맞는 예쁜 순간들을 연기해 보고 싶어요. 하지만 20대 여배우라는 틀에 저를 한정 짓다 보면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뭐가 남을까요? 장르나 캐릭터의 구분 없이 뭐든 다 부딪쳐 보고 싶어요.” 그러면서 ‘예쁜 캐릭터’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내비쳤다. “‘몬스터’를 찍으면서 외모에 대한 생각은 많이 내려놨어요. 그렇게 해서 완성된 인물의 표정과 몸짓, 행동들이 오히려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이지 않을까요?”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정두홍 무술감독 한양대 강사에

    정두홍 무술감독 한양대 강사에

    한양대(총장 임덕호)가 12일 무술감독 겸 액션배우 정두홍(48)씨를 연극영화학과 강사로 선임했다. 정 감독은 연영과 고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움직임1’ 과목을 강의할 예정이다.
  • 우봉식·정하율·김수진·김지훈…그들은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

    우봉식·정하율·김수진·김지훈…그들은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

    우봉식·정하율·김수진·김지훈…그들은 왜 극단적 선택을 했나 KBS 드라마 ‘대조영’ 등에 출연한 배우 우봉식이 지난 9일 서울 개포동의 월셋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3세. 1971년생인 우봉식은 1983년 MBC드라마 ‘3040유격대’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베테랑 배우다. 이후 ‘불타는 별들’(1990), ‘모노드라마-팔불출’(1990) 등 연극과 ‘산책’(2001), ‘어티스틱브레인차일드’(2004) 등 단편영화, ‘사랑하니까, 괜찮아’(2006), ‘6월의 일기’(2006), ‘플라스틱 트리’(2003), ‘싸이렌’(2000) 등 장편영화에 비중이 적은 배역으로 출연한 영화배우다. 우봉식은 2001년에 유명 고추장 CF에서 비빔밥을 비벼 먹는 남자로 단독 출연하기도 했다. 유작으로는 2007년 KBS 2TV 드라마 ‘대조영’으로 극중 팔보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대조영’ 종영 후 차기작을 정하지 못한 우봉식은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현실 속에 우봉식은 극심한 우울증으로 지난 수년간 치료에 매달렸지만 끝내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우봉식은 숨지기 전날인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 것도 위로가 안된다”는 글을 올렸고, 10일 오후엔 외로움과 힘든 상황을 토로하는 글을 게재했다. 우봉식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최근 몇 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역 배우들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2년 6월 삶을 마감한 배우 정아율의 자살 원인도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그녀는 KBS 2TV ‘TV소설 사랑아 사랑아’에서 단역배우로 활약했지만, 생활고와 우울증, 불안정한 미래 등의 이유로 생을 마감했다. 정아율의 어머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아율이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10원도 벌지 못했으며, 죽기 전 군대에 있는 남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 김수진 또한 지난해 4월 생활고를 비관해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김수진은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 재기가 힘들면서 우울증과 함께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무명은 아니지만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을 겪어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 가수 김지훈의 소식이 지난해 말 전해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우봉식 정아율 김수진 김지훈 등 생활고로 자살한 연예인들에 대해 네티즌은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김지훈 생활고로 안타까운 선택을 했네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김지훈 다음 세상에서 활짝 웃길 빕니다”,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김지훈 부디 좋은 세상 가세요”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우봉식·정하율·김수진·김지훈 극단적 선택…도대체 왜?

    우봉식·정하율·김수진·김지훈 극단적 선택…도대체 왜?

    우봉식·정하율·김수진·김지훈 극단적 선택…도대체 왜? KBS 드라마 ‘대조영’ 등에 출연한 배우 우봉식이 지난 9일 서울 개포동의 월셋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3세. 1971년생인 우봉식은 1983년 MBC드라마 ‘3040유격대’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베테랑 배우다. 이후 ‘불타는 별들’(1990), ‘모노드라마-팔불출’(1990) 등 연극과 ‘산책’(2001), ‘어티스틱브레인차일드’(2004) 등 단편영화, ‘사랑하니까, 괜찮아’(2006), ‘6월의 일기’(2006), ‘플라스틱 트리’(2003), ‘싸이렌’(2000) 등 장편영화에 비중이 적은 배역으로 출연한 영화배우다. 우봉식은 2001년에 유명 고추장 CF에서 비빔밥을 비벼 먹는 남자로 단독 출연하기도 했다. 유작으로는 2007년 KBS 2TV 드라마 ‘대조영’으로 극중 팔보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대조영’ 종영 후 차기작을 정하지 못한 우봉식은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현실 속에 우봉식은 극심한 우울증으로 지난 수년간 치료에 매달렸지만 끝내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우봉식은 숨지기 전날인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 것도 위로가 안된다”는 글을 올렸고, 10일 오후엔 외로움과 힘든 상황을 토로하는 글을 게재했다. 우봉식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최근 몇 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역 배우들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2년 6월 삶을 마감한 배우 정아율의 자살 원인도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그녀는 KBS 2TV ‘TV소설 사랑아 사랑아’에서 단역배우로 활약했지만, 생활고와 우울증, 불안정한 미래 등의 이유로 생을 마감했다. 정아율의 어머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아율이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10원도 벌지 못했으며, 죽기 전 군대에 있는 남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 김수진 또한 지난해 4월 생활고를 비관해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김수진은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 재기가 힘들면서 우울증과 함께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무명은 아니지만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을 겪어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 가수 김지훈의 소식이 지난해 말 전해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우봉식 정아율 김수진 김지훈 등 생활고로 자살하는 연예인들이 늘어나면서 네티즌은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김지훈 생활고 때문에 자살했다니 너무 슬프고 안타깝다”,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김지훈 다음 세상에서는 주연배우로 거듭나시길”,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김지훈 우울하네. 좋은 세상으로 가시길 빕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생활고 자살’ 우봉식, 정하율·김수진·김지훈 누구?…생전 활동 보니

    ‘생활고 자살’ 우봉식, 정하율·김수진·김지훈 누구?…생전 활동 보니

    ‘생활고 자살’ 우봉식, 정하율·김수진·김지훈 누구?…생전 활동 보니 KBS 드라마 ‘대조영’ 등에 출연한 배우 우봉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43세. 우봉식은 지난 9일 서울 개포동에 위치한 월셋집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1971년생인 우봉식은 1983년 MBC드라마 ‘3040유격대’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베테랑 배우다. 이후 ‘불타는 별들’(1990), ‘모노드라마-팔불출’(1990) 등 연극과 ‘산책’(2001), ‘어티스틱브레인차일드’(2004) 등 단편영화, ‘사랑하니까, 괜찮아’(2006), ‘6월의 일기’(2006), ‘플라스틱 트리’(2003), ‘싸이렌’(2000) 등 장편영화에 비중이 적은 배역으로 출연한 영화배우다. 우봉식은 2001년에 유명 고추장 CF에서 비빔밥을 비벼 먹는 남자로 단독 출연하기도 했다. 유작으로는 2007년 KBS 2TV 드라마 ‘대조영’으로 극중 팔보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대조영’ 종영 후 차기작을 정하지 못한 우봉식은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현실 속에 우봉식은 극심한 우울증으로 지난 수년간 치료에 매달렸지만 끝내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우봉식은 숨지기 전날인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 것도 위로가 안된다”는 글을 올렸고, 10일 오후엔 외로움과 힘든 상황을 토로하는 글을 게재했다. 우봉식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최근 몇 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역 배우들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2년 6월 삶을 마감한 배우 정아율의 자살 원인도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그녀는 KBS 2TV ‘TV소설 사랑아 사랑아’에서 단역배우로 활약했지만, 생활고와 우울증, 불안정한 미래 등의 이유로 생을 마감했다. 정아율의 어머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아율이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10원도 벌지 못했으며, 죽기 전 군대에 있는 남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 김수진 또한 지난해 4월 생활고를 비관해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김수진은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 재기가 힘들면서 우울증과 함께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무명은 아니지만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을 겪어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 가수 김지훈의 소식이 지난해 말 전해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우봉식 정아율 김수진 김지훈 등 생활고로 자살하는 연예인들이 늘어나면서 네티즌은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이렇게 삶의 마지막에 검색어에 오르는 거 너무 슬픈 일입니다”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톱배우에 묻힌 단역배우들의 아픔 돌아보는 기회 되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극장, 시대를 말한다

    남산예술센터는 극장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은 ‘남산 도큐멘타: 연극의 연습-극장편’(연출 이경성)으로 올 시즌의 문을 연다. 서울 중구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의 전신은 1962년 극작가이자 연출가였던 동랑 유치진 선생이 세운 ‘드라마센터’다. ‘햄릿’을 공연하면서 최초의 현대식 극장은 힘차게 개관했지만 재정난으로 1년여 만에 문을 닫고 결혼식장이나 미군연주단의 공연장으로 활용됐다. 1970년대 들어 유덕형 연출의 ‘초분’, 오태석의 ‘태’ 등 화제작이 연이어 무대를 장식하면서 드라마센터는 한국 연극사에서 의미 있는 공간으로 부활했다. 작품은 이런 극장의 역사와 의미를 되새기면서 극장 밖으로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이경성 연출은 “드라마센터의 역사는 한국 현대사의 흐름과 맞물리는 지점에 있다”며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일들이 극장 밖에서 벌어지고 있었음”에 주목했다. 남산 자락 한쪽에서 공연과 리허설이 진행되는 동안 다른 한쪽(1970년대 안기부 본관)에서는 연극보다 더 연극적인 조작과 고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남산 도큐멘타’는 연극에 인터뷰, 다큐멘터리, 토론 등을 결합해 극장을 통해 시대를 조명하는 시도로 확장된다. 공연 전 프로그램으로 극장 주변 장소들을 살펴보는 ‘유령산책’이라는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15~30일. 2만 5000원. (02)758-2106.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극단적 선택’ 우봉식·정하율·김수진·김지훈…어떤 어려움 있었나

    ‘극단적 선택’ 우봉식·정하율·김수진·김지훈…어떤 어려움 있었나

    ’극단적 선택’ 우봉식·정하율·김수진·김지훈…어떤 어려움 있었나 KBS 드라마 ‘대조영’ 등에 출연한 배우 우봉식이 지난 9일 서울 개포동의 월셋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3세. 1971년생인 우봉식은 1983년 MBC드라마 ‘3040유격대’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베테랑 배우다. 이후 ‘불타는 별들’(1990), ‘모노드라마-팔불출’(1990) 등 연극과 ‘산책’(2001), ‘어티스틱브레인차일드’(2004) 등 단편영화, ‘사랑하니까, 괜찮아’(2006), ‘6월의 일기’(2006), ‘플라스틱 트리’(2003), ‘싸이렌’(2000) 등 장편영화에 비중이 적은 배역으로 출연한 영화배우다. 우봉식은 2001년에 유명 고추장 CF에서 비빔밥을 비벼 먹는 남자로 단독 출연하기도 했다. 유작으로는 2007년 KBS 2TV 드라마 ‘대조영’으로 극중 팔보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대조영’ 종영 후 차기작을 정하지 못한 우봉식은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현실 속에 우봉식은 극심한 우울증으로 지난 수년간 치료에 매달렸지만 끝내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우봉식은 숨지기 전날인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 것도 위로가 안된다”는 글을 올렸고, 10일 오후엔 외로움과 힘든 상황을 토로하는 글을 게재했다. 우봉식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최근 몇 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역 배우들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2년 6월 삶을 마감한 배우 정아율의 자살 원인도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그녀는 KBS 2TV ‘TV소설 사랑아 사랑아’에서 단역배우로 활약했지만, 생활고와 우울증, 불안정한 미래 등의 이유로 생을 마감했다. 정아율의 어머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아율이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10원도 벌지 못했으며, 죽기 전 군대에 있는 남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 김수진 또한 지난해 4월 생활고를 비관해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김수진은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 재기가 힘들면서 우울증과 함께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무명은 아니지만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을 겪어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 가수 김지훈의 소식이 지난해 말 전해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우봉식 정아율 김수진 김지훈 등 생활고로 자살하는 연예인들이 늘어나면서 네티즌은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김지훈 생활고 정말 안타깝네요. 명복을 빕니다”,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김지훈 하늘나라에서 좋은 배역 맡으시길”,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김지훈 오늘 하루 종일 우울한 소식이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조영 팔보역 배우 우봉식 사망…정아율·김수진·김지훈까지 극단적 선택 왜?

    대조영 팔보역 배우 우봉식 사망…정아율·김수진·김지훈까지 극단적 선택 왜?

    대조영 팔보역 배우 우봉식 사망…정아율·김수진·김지훈까지 극단적 선택 왜? KBS 드라마 ‘대조영’ 등에 출연한 배우 우봉식이 지난 9일 서울 개포동의 월셋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43세. 1971년생인 우봉식은 1983년 MBC드라마 ‘3040유격대’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베테랑 배우다. 이후 ‘불타는 별들’(1990), ‘모노드라마-팔불출’(1990) 등 연극과 ‘산책’(2001), ‘어티스틱브레인차일드’(2004) 등 단편영화, ‘사랑하니까, 괜찮아’(2006), ‘6월의 일기’(2006), ‘플라스틱 트리’(2003), ‘싸이렌’(2000) 등 장편영화에 비중이 적은 배역으로 출연한 영화배우다. 우봉식은 2001년에 유명 고추장 CF에서 비빔밥을 비벼 먹는 남자로 단독 출연하기도 했다. 유작으로는 2007년 KBS 2TV 드라마 ‘대조영’으로 극중 팔보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대조영’ 종영 후 차기작을 정하지 못한 우봉식은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현실 속에 우봉식은 극심한 우울증으로 지난 수년간 치료에 매달렸지만 끝내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우봉식은 숨지기 전날인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 것도 위로가 안된다”는 글을 올렸고, 10일 오후엔 외로움과 힘든 상황을 토로하는 글을 게재했다. 우봉식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최근 몇 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역 배우들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2년 6월 삶을 마감한 배우 정아율의 자살 원인도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그녀는 KBS 2TV ‘TV소설 사랑아 사랑아’에서 단역배우로 활약했지만, 생활고와 우울증, 불안정한 미래 등의 이유로 생을 마감했다. 정아율의 어머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아율이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10원도 벌지 못했으며, 죽기 전 군대에 있는 남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 김수진 또한 지난해 4월 생활고를 비관해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김수진은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 재기가 힘들면서 우울증과 함께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무명은 아니지만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을 겪어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 가수 김지훈의 소식이 지난해 말 전해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우봉식 정아율 김수진 김지훈 등 생활고로 자살한 연예인들에 대해 네티즌은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김지훈 연예계도 정말 비정한 곳이네”,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김지훈 힘든 시간을 보냈겠지만 하늘나라에서는 편히 쉬시길”,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김지훈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영화 多樂房]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영화 多樂房]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다큐멘터리 영화는 ‘실제로 있었던 사건’을 다루고 ‘실존 인물’을 등장시킨다는 점에서 극영화가 갖지 못한 권력을 행사한다. 다큐멘터리가, 리얼리티 쇼가 ‘전혀 가공되지 않은 것’이라는 신화는 깨진 지 오래이건만 최소한 ‘진실과 가까울 것’이라는 믿음은 여전히 남아 있는 것이다. 그 믿음은 이야기에 호소력과 감동까지 실어 준다. 사라 폴리 감독의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가 특별한 것도 이 작품이 그녀 자신의 가족사를 다룬 자기 반영적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이다. 극영화였다면 다소 평범할 수도 있는, 여느 멜로드라마와 유사한 서사를 다큐멘터리라는 형식으로 드라마틱하게 엮어낸 그녀의 영민함은 과연 유수의 영화제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사라 폴리 감독의 어머니인 다이앤 폴리다. 이미 20여년 전에 암으로 숨을 거둔 그녀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은 가족들조차 알지 못했던 그녀의 비밀이 최근에 밝혀진 까닭에 있다. 물론 그보다 앞서, 다이앤의 막내딸이 자라 영화감독이 됐다는 것은 숙명이랄까. 감독은 가족들과 어머니의 지인들을 한 명씩 앉혀 놓고 모든 것을 처음부터 이야기해 달라는 요구로 인터뷰를 시작한다. 얼핏 평범해 보이지만 이것은 한 인물 혹은 동일한 사건을 여러 사람의 시각으로 조명하려는 의도가 잘 반영된 도입부다. 열명이 넘는 인터뷰이(interviewee)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다이앤에 관한 추억들을 끄집어낸다. 기억의 불완전성과 개인의 경험 차로 인해 영화가 진행될수록 ‘진짜’ 다이앤의 모습은 오히려 희미해져 가기도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다시 환조처럼 입체적으로 조각된 그녀의 과거가 드러난다. 가공된 기억들의 교집합 속에서 출생의 비밀을 풀어 나가는 과정 또한 관객들에게 미스터리 장르처럼 흥미진진한 영화적 경험을 제공한다. 감독은 내용뿐 아니라 형식적인 측면에서도 진실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인터뷰 가운데 삽입된 과거 영상들에는 홈비디오 녹화 자료와 슈퍼 8미리 카메라를 통해 재연된 장면이 혼재돼 있다. 재연분이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게 촬영되고 편집된 탓에 관객들은 녹화 자료와의 차이를 별로 느낄 수 없을 정도인데 이는 객관성과 주관성을 넘나드는 다큐멘터리의 본질에 대해 인식하게 만든다. 불현듯 가공된 장면을 발견하면서 느끼게 되는 긴장감과 거리감은 의외로 짜릿하고 상쾌하다. 감독 스스로가 이미 다큐멘터리의 한계, 즉 ‘진실’이라는 허울을 벗기로 결심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감독의 아버지인 마이클의 내레이션을 들려주고 그 녹음 과정을 보여준 구성은 이 영화에서 가장 뛰어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배우였던 마이클의 낭독이 훌륭한 것은 물론이요, 때로 부끄럽고 당황스러운 가족사까지 여과 없이 읽어 가는 동안 그의 목소리에 속속들이 묻어나는 다층적인 감정들이 절절하고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결국 감독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혼돈 속에서 발견한 진실은 후회와 그리움 그리고 남겨진 가족에 대한 사랑이 담긴 아버지(!)의 목소리에 있는 것이 아닐까. 13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윤성은 영화평론가
  • 배우 우봉식 사망, 대조영 출연..일용직 노동자로 생계유지 ‘도대체 왜?’

    배우 우봉식 사망, 대조영 출연..일용직 노동자로 생계유지 ‘도대체 왜?’

    배우 우봉식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9일 서울 수서 경찰서에 따르면 우봉식은 이날 오후 8시경 자신의 월셋집에서 목을 매 생을 마감했다. 향년 43세. 주인집 딸이 이를 최초로 발견했으며 경찰 조사 결과 우봉식은 이미 하루 전에 생을 마감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고인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날 사망한 우봉식은 1983년 12세 때 MBC 드라마 ‘3840 유격대’를 통해 데뷔했다. 연극 영화 드라마 등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연기자의 꿈을 키웠다. 이후 그는 2007년 KBS 1TV ‘대조영’에 팔보 역으로 출연했으나 이후 배역을 맡지 못해 연기 활동을 잇지 못했다. 결국 일용직 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했고, 꿈이 좌절되자 극심한 우울증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우봉식은 몇 해 전부터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왔으며 지인들에게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 우봉식 사망 소식을 접한 네티즌은 “배우 우봉식 사망, 꼭 그래야 했을까” “배우 우봉식 사망, 애도를 표합니다” “배우 우봉식 사망, 하늘에서 연기 마음껏 펼치시길” “배우 우봉식 사망..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배우 우봉식 사망..너무 안타깝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사진 = 서울신문DB (배우 우봉식 사망) 연예팀 seoulen@seoul.co.kr
  • ‘생활고 자살’ 우봉식, 정하율·김수진·김지훈 누구?…생전 활동 보니

    ‘생활고 자살’ 우봉식, 정하율·김수진·김지훈 누구?…생전 활동 보니

    ‘생활고 자살’ 우봉식, 정하율·김수진·김지훈 누구?…생전 활동 보니 KBS 드라마 ‘대조영’ 등에 출연한 배우 우봉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43세. 우봉식은 지난 9일 서울 개포동에 위치한 월셋집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1971년생인 우봉식은 1983년 MBC드라마 ‘3040유격대’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베테랑 배우다. 이후 ‘불타는 별들’(1990), ‘모노드라마-팔불출’(1990) 등 연극과 ‘산책’(2001), ‘어티스틱브레인차일드’(2004) 등 단편영화, ‘사랑하니까, 괜찮아’(2006), ‘6월의 일기’(2006), ‘플라스틱 트리’(2003), ‘싸이렌’(2000) 등 장편영화에 비중이 적은 배역으로 출연한 영화배우다. 우봉식은 2001년에 유명 고추장 CF에서 비빔밥을 비벼 먹는 남자로 단독 출연하기도 했다. 유작으로는 2007년 KBS 2TV 드라마 ‘대조영’으로 극중 팔보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대조영’ 종영 후 차기작을 정하지 못한 우봉식은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현실 속에 우봉식은 극심한 우울증으로 지난 수년간 치료에 매달렸지만 끝내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우봉식은 숨지기 전날인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 것도 위로가 안된다”는 글을 올렸고, 10일 오후엔 외로움과 힘든 상황을 토로하는 글을 게재했다. 우봉식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최근 몇 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역 배우들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2년 6월 삶을 마감한 배우 정아율의 자살 원인도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그녀는 KBS 2TV ‘TV소설 사랑아 사랑아’에서 단역배우로 활약했지만, 생활고와 우울증, 불안정한 미래 등의 이유로 생을 마감했다. 정아율의 어머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아율이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10원도 벌지 못했으며, 죽기 전 군대에 있는 남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 김수진 또한 지난해 4월 생활고를 비관해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김수진은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 재기가 힘들면서 우울증과 함께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무명은 아니지만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을 겪어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 가수 김지훈의 소식이 지난해 말 전해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우봉식 정아율 김수진 김지훈 등 생활고로 자살하는 연예인들이 늘어나면서 네티즌은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이렇게 삶의 마지막에 검색어에 오르는 거 너무 슬픈 일입니다”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톱배우에 묻힌 단역배우들의 아픔 돌아보는 기회 되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조영 팔보’ 우봉식, 안타까운 죽음…정하율·김수진·김지훈은 누구?

    ‘대조영 팔보’ 우봉식, 안타까운 죽음…정하율·김수진·김지훈은 누구?

    ‘대조영 팔보’ 우봉식, 안타까운 죽음…정하율·김수진·김지훈은 누구? KBS 드라마 ‘대조영’ 등에 출연한 배우 우봉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43세. 우봉식은 지난 9일 서울 개포동에 위치한 월셋집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1971년생인 우봉식은 1983년 MBC드라마 ‘3040유격대’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베테랑 배우다. 이후 ‘불타는 별들’(1990), ‘모노드라마-팔불출’(1990) 등 연극과 ‘산책’(2001), ‘어티스틱브레인차일드’(2004) 등 단편영화, ‘사랑하니까, 괜찮아’(2006), ‘6월의 일기’(2006), ‘플라스틱 트리’(2003), ‘싸이렌’(2000) 등 장편영화에 비중이 적은 배역으로 출연한 영화배우다. 우봉식은 2001년에 유명 고추장 CF에서 비빔밥을 비벼 먹는 남자로 단독 출연하기도 했다. 유작으로는 2007년 KBS 2TV 드라마 ‘대조영’으로 극중 팔보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대조영’ 종영 후 차기작을 정하지 못한 우봉식은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현실 속에 우봉식은 극심한 우울증으로 지난 수년간 치료에 매달렸지만 끝내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우봉식은 숨지기 전날인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 것도 위로가 안된다”는 글을 올렸고, 10일 오후엔 외로움과 힘든 상황을 토로하는 글을 게재했다. 우봉식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최근 몇 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역 배우들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2년 6월 삶을 마감한 배우 정아율의 자살 원인도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그녀는 KBS 2TV ‘TV소설 사랑아 사랑아’에서 단역배우로 활약했지만, 생활고와 우울증, 불안정한 미래 등의 이유로 생을 마감했다. 정아율의 어머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아율이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10원도 벌지 못했으며, 죽기 전 군대에 있는 남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 김수진 또한 지난해 4월 생활고를 비관해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김수진은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 재기가 힘들면서 우울증과 함께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무명은 아니지만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을 겪어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 가수 김지훈의 소식이 지난해 말 전해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우봉식 정아율 김수진 김지훈 등 생활고로 자살하는 연예인들이 늘어나면서 네티즌은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이렇게 삶의 마지막에 검색어에 오르는 거 너무 슬픈 일입니다”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톱배우에 묻힌 단역배우들의 아픔 돌아보는 기회 되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대조영 팔보’ 우봉식, 사망 뒤 안타까운 뒷이야기…정하율·김수진·김지훈 사연은

    ‘대조영 팔보’ 우봉식, 사망 뒤 안타까운 뒷이야기…정하율·김수진·김지훈 사연은

    ‘대조영 팔보’ 우봉식, 사망 뒤 안타까운 뒷이야기…정하율·김수진·김지훈 사연은 KBS 드라마 ‘대조영’ 등에 출연한 배우 우봉식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43세. 우봉식은 지난 9일 서울 개포동에 위치한 월셋집에서 목을 매 목숨을 끊었다. 1971년생인 우봉식은 1983년 MBC드라마 ‘3040유격대’를 통해 스크린에 데뷔한 베테랑 배우다. 이후 ‘불타는 별들’(1990), ‘모노드라마-팔불출’(1990) 등 연극과 ‘산책’(2001), ‘어티스틱브레인차일드’(2004) 등 단편영화, ‘사랑하니까, 괜찮아’(2006), ‘6월의 일기’(2006), ‘플라스틱 트리’(2003), ‘싸이렌’(2000) 등 장편영화에 비중이 적은 배역으로 출연한 영화배우다. 우봉식은 2001년에 유명 고추장 CF에서 비빔밥을 비벼 먹는 남자로 단독 출연하기도 했다. 유작으로는 2007년 KBS 2TV 드라마 ‘대조영’으로 극중 팔보 역을 연기했다. 하지만 ‘대조영’ 종영 후 차기작을 정하지 못한 우봉식은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이런 현실 속에 우봉식은 극심한 우울증으로 지난 수년간 치료에 매달렸지만 끝내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고 말았다. 우봉식은 숨지기 전날인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무 것도 위로가 안된다”는 글을 올렸고, 10일 오후엔 외로움과 힘든 상황을 토로하는 글을 게재했다. 우봉식의 사망소식이 전해지자 최근 몇 년 동안 스스로 목숨을 끊은 단역 배우들에 다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 2012년 6월 삶을 마감한 배우 정아율의 자살 원인도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이었다. 그녀는 KBS 2TV ‘TV소설 사랑아 사랑아’에서 단역배우로 활약했지만, 생활고와 우울증, 불안정한 미래 등의 이유로 생을 마감했다. 정아율의 어머니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아율이 연예인 생활을 하면서 10원도 벌지 못했으며, 죽기 전 군대에 있는 남동생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말한 바 있다. 배우 김수진 또한 지난해 4월 생활고를 비관해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김수진은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지만 이후 재기가 힘들면서 우울증과 함께 생활고에 시달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무명은 아니지만 생활고로 인한 우울증을 겪어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한 가수 김지훈의 소식이 지난해 말 전해져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우봉식 정아율 김수진 김지훈 등 생활고로 자살하는 연예인들이 늘어나면서 네티즌은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이렇게 삶의 마지막에 검색어에 오르는 거 너무 슬픈 일입니다” “정아율 우봉식 김수진, 톱배우에 묻힌 단역배우들의 아픔 돌아보는 기회 되길” 등의 반응을 보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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