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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기완 빈소 이튿날... 권영길, 홍세화, 이부영 등 민주화 운동 동지들 조문

    백기완 빈소 이튿날... 권영길, 홍세화, 이부영 등 민주화 운동 동지들 조문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마련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빈소에는 이튿날에도 노동·사회·정치 각계 인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3층 장례식장 입구에는 조문객들이 하얀 리본 모양의 종이에 쓴 추모 문구로 가득했다. 지난 15일 고인이 폐렴으로 별세한 뒤 50여개 시민단체가 주축이 돼 구성된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18일까지 일반 시민에게도 빈소를 개방하고 공식 조문을 받는다”며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춘천, 제주 등 전국 13곳에 분향소를 차렸다”고 밝혔다. 장례 마지막날인 19일 오전 8시 발인 뒤 오전 9시 대학로 거리에서 노제를 하고 오전 11시 서울광장에서 영결식을 연 뒤 장지인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으로 이동해 오후 2시 하관식을 한다. 장례식장을 찾은 권영길 전 민주노동당 의원은 “혁명을 꿈꿨던 로맨티스트였다”면서 “통일운동가라는 단순한 한마디로 단정짓기 힘든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민주화 운동 동지로서 오랜 세월 함께 했다. 특히 권 의원은 1997년, 2002년, 2007년 대통령 선거에서 진보 후보로 출마했고, 백 전 소장은 1987년과 1992년 대선에서 민중 후보로 출마했다. 그는 “고인은 투병 중에도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청와대 앞 기자회견에 참여했다”며 “(살아계셨다면)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해고 노동자들의 편에 섰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1시쯤 장례식장을 찾은 홍세화 장발장은행 대표는 “우리 시대의 큰별이 가셨다”며 “고인이 지은 노랫말대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가셨다”고 애도했다.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도 “살아계실 때 너무 힘들게 애 많이 쓰셨는데 이제 뒷사람들이 이어서 잘 할테니 하늘에서 편히 쉬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수 전인권 씨는 흰 상복을 입은 고인의 딸 백원담 성공회대 중어중문학과 교수와 인사를 나눴다. 그는 “생전에 고인께서 공연도 자주 보러 오셨다”며 “어제 백 교수에게 전화해 건강을 꼭 챙겨야 고인도 마음이 편하시다고 당부했다”며 유가족에 대한 걱정을 했다.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 박수현 전 청와대 대변인, 임순례 영화감독, 정현백 전 여성가족부 장관, 김두관·양이원영·김영주·이학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근식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 위원장, 최열 환경재단 이사장 등도 차례로 빈소를 찾았다. 정근식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장은 “백기완 선생님은 70년대 중반 긴급조치 등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오·남용을 이겨낸 증인”이라며 “진실화해위원들과도 큰 별을 잃었다는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김두관 의원은 “정치적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이뤄졌지만 사회경제적 민주화라는 고인이 남기신 과제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날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전두환 정권 당시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규탄대회를 주도하다 고인이 구속되자 미 하원의원들이 주미 한국대사와 주한 미국대사에게 보낸 외교전문 2건을 공개했다. 최영권 기자 story@seoul.co.kr
  • 못다 한 ‘임을 위한 행진’… 저 하늘에서 계속되리라

    못다 한 ‘임을 위한 행진’… 저 하늘에서 계속되리라

    한일협정 반대로 민주화 운동 전면 나서YMCA 위장결혼 사건 등 수차례 옥고백원담 “父 마지막 글귀는 ‘노나메기’”“김미숙·김진숙 힘내라” 병상 메시지도 “그 돈 이웃 도와야” 유지… 靑조화 거부전국 16곳 분향소… 19일 대학로 노제“내 이야기를 듣고 발을 구르던 젊은이들은 지금 다 뭘 하는지. 그러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슴에 심어 주는 것 자체가 성공의 역사라고 믿는 것, 그게 진보사상이고 이야기예요.”(2013년 4월 22일자 서울신문 인터뷰) 백기완(88)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새벽 폐렴 투병 끝에 별세했다. 평생 민중·민족·민주 운동의 불쌈꾼(혁명가)이자 큰 어른으로 살아온 그는 민중의 장쾌한 수호자 ‘장산곶매’가 돼 하늘로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원담(성공회대 교수)·미담(화가)·현담(출판사), 아들 일(울산과학대 교수)씨가 있다. 90년 가까운 그의 삶엔 외세의 압제와 분단, 군부독재 등 질곡의 현대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 못 배우고 못 가진, 그리하여 배우고 가진 자들에게 압제받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앞서서 나가는’ 삶을 선택했다.백 소장은 1933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정규교육이라고는 국민학교 4학년까지 다닌 게 전부인 데다 분단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겪었지만 독학으로 통일 문제와 사회 모순에 대한 인식을 키워 나갔다. 6·25전쟁 중 해외 유학을 권유받았으나 ‘조국을 두고 나 혼자만 유학을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1964년 함석헌·계훈제 등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을 벌이며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투옥과 고문은 일상이 됐다. 장준하 등과 ‘유신헌법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엔 ‘YMCA 위장결혼 사건’을 주도했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당시 옥중에서 썼던 시 ‘묏비나리’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이 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치러진 13대 대선에서는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기 위해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직전에 사퇴했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노동자 민중후보로 추대됐지만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인생의 막바지까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살았다.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등의 현장에서 맨 앞자리를 지켰다. 송경동 시인은 “백 선생이 병상에서 쓰신 마지막 글귀는 ‘김미숙 어머니 힘내라’, ‘김진숙 힘내라’였다”고 전했다. 백원담 교수는 “아버지가 마지막 남긴 글귀는 ‘노나메기’였다. 너도나도 일하되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는 평소 지론답게 여러 권의 수필집과 시집을 냈다. 우리말 사랑도 남달랐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장산곶매 이야기’, ‘젊은 날’, ‘버선발 이야기’ 등을 출간했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장례는 오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전국 16개 지역에 분향소 및 온라인 추모관(baekgiwan.net)도 운영한다. 발인일인 19일 오후 종로구 대학로에서 노제가 진행된다. 장례위원회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조화를 받지 않는다. 선생님은 (생전) 조화를 보낼 값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부터도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여야는 모두 고인을 애도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영원한 민중의 벗, 백기완 선생님의 정신은 우리 곁에 남아 영원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우리가 누리는 평등한 세상은 고인의 덕분”이라 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사회적 약자들을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의 주인으로 호명했다”고 추도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33년전 신문 광고에 나란히 실린 백기완과 트럼프

    33년전 신문 광고에 나란히 실린 백기완과 트럼프

    15일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부고를 맞아 33년전 한겨레신문 창간호에 실렸던 책 광고가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1988년 5월 15일 창간호를 발행한 한겨레신문 22면 광고에는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백 소장에 관한 책 ‘가자 민중의 시대로’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쓴 ‘트럼프’란 책의 광고가 나란히 함께 실렸다. 두 책 모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인물에 대한 책으로 한 명은 끝내 당선의 꿈을 이뤘다. ‘가자 민중의 시대로’는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백 소장의 삶에 관한 책으로 ‘민중후보 백기완의 발자취’가 부제다. 백 소장은 두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는데 1987년 대선과 1992년 대선이다. 민중운동 진영은 그를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추대했다. 군사정권 종식이란 국민적 염원 속에 치러졌던 1987년 대선에는 김영삼·김대중 ‘양김’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후보직을 내려놨으나, 1992년 대선에선 독자 민중후보로서 일명 ‘백선본’과 함께 완주했다.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최초로 국민 직선제로 치러진 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득표율 36.6%로 김영삼 후보 28.0%, 김대중 후보 27.0%를 누르고 당선되면서 백 소장의 단일화 열망은 무산되고 말았다. ‘가자 민중의 시대로’ 책 광고에 ‘군정끝장을 위한 백기완의 몸부림’이란 문구가 있지만 끝내 몸부림에 그쳤다.반면 당시 42세로 미국의 대통령감으로 지목받는 인물로 소개됐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결국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내 나이에 이보다 더 큰 것을 이룬 사람은 누구냐”고 큰소리치는 오만과 배짱의 사나이’란 ‘트럼프’ 책의 광고 문구는 30여년 전의 트럼프 대통령이 시종일관 같은 자세와 태도로 대선 가도를 달려왔음을 보여준다. 한국 진보운동의 버팀목이었던 백 소장의 영결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고인은 10대 때 대한민국으로 내려온 뒤, 1950년대부터 일생을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에 투신했다. 통일문제연구소를 세우고 반독재와 민주화 투쟁에 청춘을 불사른 재야인사로, ‘재야’란 말을 처음 썼다. 1992년 14대 대선 때 민중후보로 출마해 민중당 등 진보정당 창당에 힘썼던 그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전두환 정권 당시 ‘백기완 선생 석방 촉구’ 옛 미 외교문서 공개

    전두환 정권 당시 ‘백기완 선생 석방 촉구’ 옛 미 외교문서 공개

    지난 15일 폐렴 투병 끝에 별세한 백기완(88) 통일문제연구소장이 과거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규탄대회를 주도하다 경찰에 체포돼 투옥됐을 당시 미국 하원의원들이 그의 석방을 요구한 외교 문서가 16일 공개됐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7년 2월과 3월 미 하원의원들이 각각 당시 주미 한국대사와 주한 미국대사에게 외교전문 2건을 이날 공개했다. 앞서 1986년 7월 16일 부천서 성고문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검찰은 “사건 당시 성모욕 행위는 없었다”면서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 사건 피해자인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성고문을 가한 문귀동 경장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이에 사흘 뒤인 1986년 7월 19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당시 야당과 여성단체,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고문·성고문·용공조작 범국민 폭로대회’가 열렸고, 당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이었던 백 소장은 이 대회에서 개회사를 하며 ‘군부 독재·폭력 정권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쳐 시위를 선동한 혐의로 수배됐다. 결국 백 소장은 1986년 12월 7일 경찰에 검거돼 같은 달 10일 구속됐다. 평소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좋지 못했던 백 소장은 건강 악화로 1986년 12월 29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1987년 2월 28일 다시 수감됐다. 당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 시기(1983년 12월~1985년 2월)에 미국에서 조직한 한국인권문제연구소는 이 문제를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알렸다. 연구소와 소통하며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미 하원의원들은 외교전문을 통해 백 소장의 석방과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먼저 미 하원의원 8명은 1987년 2월 13일 당시 김경원 주미 한국대사에게 백 소장의 구속에 유감을 표명하여 양심수인 백 소장의 즉각적인 석방과 인권 회복을 한국 정부에 촉구하는 외교전문을 보냈다. 미 하원의원들은 특히 과거 고문 후유증으로 백 소장의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사안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미 하원의원 7명은 1987년 3월 5일 제임스 릴리 당시 주한 미국대사에게 백 소장의 석방을 위해 전두환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내용의 외교전문을 보냈다. 이들은 백 소장의 건강이 나쁘기 때문에 최소한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요청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포토] ‘고 백기완 선생 빈소’ 각계 조문 행렬

    [포토] ‘고 백기완 선생 빈소’ 각계 조문 행렬

    가수 전인권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뒤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포토] ‘고 백기완 선생 빈소’ 각계 조문 행렬

    [포토] ‘고 백기완 선생 빈소’ 각계 조문 행렬

    가수 전인권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뒤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전두환 정권 당시 ‘백기완 선생 석방 촉구’ 옛 미 외교문서 공개

    전두환 정권 당시 ‘백기완 선생 석방 촉구’ 옛 미 외교문서 공개

    지난 15일 폐렴 투병 끝에 별세한 백기완(88) 통일문제연구소장이 과거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 규탄대회를 주도하다 경찰에 체포돼 투옥됐을 당시 미국 하원의원들이 그의 석방을 요구한 외교 문서가 16일 공개됐다. 연세대 김대중도서관은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7년 2월과 3월 미 하원의원들이 각각 당시 주미 한국대사와 주한 미국대사에게 외교전문 2건을 이날 공개했다. 앞서 1986년 7월 16일 부천서 성고문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한 검찰은 “사건 당시 성모욕 행위는 없었다”면서 당시 대학생이었던 이 사건 피해자인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성고문을 가한 문귀동 경장에게 기소유예 처분을 했다. 이에 사흘 뒤인 1986년 7월 19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당시 야당과 여성단체, 종교단체를 중심으로 한 ‘고문·성고문·용공조작 범국민 폭로대회’가 열렸고, 당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부의장이었던 백 소장은 이 대회에서 개회사를 하며 ‘군부 독재·폭력 정권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쳐 시위를 선동한 혐의로 수배됐다. 결국 백 소장은 1986년 12월 7일 경찰에 검거돼 같은 달 10일 구속됐다. 평소 고문 후유증으로 건강이 좋지 못했던 백 소장은 건강 악화로 1986년 12월 29일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로 1987년 2월 28일 다시 수감됐다. 당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국 망명 시기(1983년 12월~1985년 2월)에 미국에서 조직한 한국인권문제연구소는 이 문제를 미국의 정치인들에게 알렸다. 연구소와 소통하며 한국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던 미 하원의원들은 외교전문을 통해 백 소장의 석방과 인권 회복을 위한 활동을 전개했다. 먼저 미 하원의원 8명은 1987년 2월 13일 당시 김경원 주미 한국대사에게 백 소장의 구속에 유감을 표명하여 양심수인 백 소장의 즉각적인 석방과 인권 회복을 한국 정부에 촉구하는 외교전문을 보냈다. 미 하원의원들은 특히 과거 고문 후유증으로 백 소장의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에 사안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미 하원의원 7명은 1987년 3월 5일 제임스 릴리 당시 주한 미국대사에게 백 소장의 석방을 위해 전두환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해달라는 내용의 외교전문을 보냈다. 이들은 백 소장의 건강이 나쁘기 때문에 최소한 입원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줄 것을 요청했다.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33년전 신문 광고에 나란히 실린 백기완과 트럼프

    33년전 신문 광고에 나란히 실린 백기완과 트럼프

    15일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부고를 맞아 33년전 한겨레신문 창간호에 실렸던 책 광고가 뒤늦게 화제를 모으고 있다. 1988년 5월 15일 창간호를 발행한 한겨레신문 22면 광고에는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백 소장에 관한 책 ‘가자 민중의 시대로’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쓴 ‘트럼프’란 책의 광고가 나란히 함께 실렸다. 두 책 모두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던 인물에 대한 책으로 한 명은 끝내 당선의 꿈을 이뤘다. ‘가자 민중의 시대로’는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가 쓴 백 소장의 삶에 관한 책으로 ‘민중후보 백기완의 발자취’가 부제다. 백 소장은 두번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는데 1987년 대선과 1992년 대선이다. 민중운동 진영은 그를 두 차례에 걸쳐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추대했다. 군사정권 종식이란 국민적 염원 속에 치러졌던 1987년 대선에는 김영삼·김대중 ‘양김’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후보직을 내려놨으나, 1992년 대선에선 독자 민중후보로서 일명 ‘백선본’과 함께 완주했다. 1972년 10월 유신 이후 최초로 국민 직선제로 치러진 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득표율 36.6%로 김영삼 후보 28.0%, 김대중 후보 27.0%를 누르고 당선되면서 백 소장의 단일화 열망은 무산되고 말았다. ‘가자 민중의 시대로’ 책 광고에 ‘군정끝장을 위한 백기완의 몸부림’이란 문구가 있지만 끝내 몸부림에 그쳤다.반면 당시 42세로 미국의 대통령감으로 지목받는 인물로 소개됐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결국 대통령의 꿈을 이뤘다. ‘“내 나이에 이보다 더 큰 것을 이룬 사람은 누구냐”고 큰소리치는 오만과 배짱의 사나이’란 ‘트럼프’ 책의 광고 문구는 30여년 전의 트럼프 대통령이 시종일관 같은 자세와 태도로 대선 가도를 달려왔음을 보여준다. 한국 진보운동의 버팀목이었던 백 소장의 영결식은 사회장으로 치러진다.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난 고인은 10대 때 대한민국으로 내려온 뒤, 1950년대부터 일생을 노동운동과 통일운동에 투신했다. 통일문제연구소를 세우고 반독재와 민주화 투쟁에 청춘을 불사른 재야인사로, ‘재야’란 말을 처음 썼다. 1992년 14대 대선 때 민중후보로 출마해 민중당 등 진보정당 창당에 힘썼던 그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못다 한 ‘임을 위한 행진’… 저 하늘에서 계속되리라

    못다 한 ‘임을 위한 행진’… 저 하늘에서 계속되리라

    한일협정 반대로 민주화 운동 전면 나서YMCA 위장결혼 사건 등 수차례 옥고백원담 “父 마지막 글귀는 ‘노나메기’”“김미숙·김진숙 힘내라” 병상 메시지도 “그 돈 이웃 도와야” 유지… 靑조화 거부전국 16곳 분향소… 19일 대학로 노제“내 이야기를 듣고 발을 구르던 젊은이들은 지금 다 뭘 하는지. 그러나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슴에 심어 주는 것 자체가 성공의 역사라고 믿는 것, 그게 진보사상이고 이야기예요.”(2013년 4월 22일자 서울신문 인터뷰) 백기완(88)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새벽 폐렴 투병 끝에 별세했다. 평생 민중·민족·민주 운동의 불쌈꾼(혁명가)이자 큰 어른으로 살아온 그는 민중의 장쾌한 수호자 ‘장산곶매’가 돼 하늘로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원담(성공회대 교수)·미담(화가)·현담(출판사), 아들 일(울산과학대 교수)씨가 있다. 90년 가까운 그의 삶엔 외세의 압제와 분단, 군부독재 등 질곡의 현대사가 아로새겨져 있다. 그는 못 배우고 못 가진, 그리하여 배우고 가진 자들에게 압제받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앞서서 나가는’ 삶을 선택했다.백 소장은 1933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났다. 정규교육이라고는 국민학교 4학년까지 다닌 게 전부인 데다 분단으로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비극을 겪었지만 독학으로 통일 문제와 사회 모순에 대한 인식을 키워 나갔다. 6·25전쟁 중 해외 유학을 권유받았으나 ‘조국을 두고 나 혼자만 유학을 갈 수 없다’며 거절했다. 1964년 함석헌·계훈제 등과 함께 한일협정 반대운동을 벌이며 민주화 운동의 전면에 나섰다. 투옥과 고문은 일상이 됐다. 장준하 등과 ‘유신헌법 개헌청원 100만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가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엔 ‘YMCA 위장결혼 사건’을 주도했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뒤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됐다. 당시 옥중에서 썼던 시 ‘묏비나리’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원작이 됐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치러진 13대 대선에서는 김영삼·김대중 후보 단일화를 압박하기 위해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직전에 사퇴했다. 1992년 14대 대선에서는 노동자 민중후보로 추대됐지만 현실 정치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는 인생의 막바지까지 사회적 약자를 위한 삶을 살았다. 2014년 세월호 진상규명 집회, 2016년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등의 현장에서 맨 앞자리를 지켰다. 송경동 시인은 “백 선생이 병상에서 쓰신 마지막 글귀는 ‘김미숙 어머니 힘내라’, ‘김진숙 힘내라’였다”고 전했다. 백원담 교수는 “아버지가 마지막 남긴 글귀는 ‘노나메기’였다. 너도나도 일하되 모두가 올바로 잘사는 세상이라는 뜻”이라고 밝혔다.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선다’는 평소 지론답게 여러 권의 수필집과 시집을 냈다. 우리말 사랑도 남달랐다.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장산곶매 이야기’, ‘젊은 날’, ‘버선발 이야기’ 등을 출간했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는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리고 장례는 오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전국 16개 지역에 분향소 및 온라인 추모관(baekgiwan.net)도 운영한다. 발인일인 19일 오후 종로구 대학로에서 노제가 진행된다. 장례위원회는 “선생님의 뜻에 따라 조화를 받지 않는다. 선생님은 (생전) 조화를 보낼 값으로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이어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으로부터도 (문재인 대통령 명의의) 조화를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거절했다”고 덧붙였다. 여야는 모두 고인을 애도했다. 더불어민주당 신영대 대변인은 “영원한 민중의 벗, 백기완 선생님의 정신은 우리 곁에 남아 영원할 것”이라고 했다. 국민의힘 김은혜 대변인은 “우리가 누리는 평등한 세상은 고인의 덕분”이라 했다. 정의당 정호진 대변인은 “사회적 약자들을 역사상 처음으로 정치의 주인으로 호명했다”고 추도했다. 이두걸 기자 douzirl@seoul.co.kr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 소식에 北, 조의 전할까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 소식에 北, 조의 전할까

    北, 고 문익환 목사 때부터 10여 차례 조전 보내 15일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면서 북한이 고 문익환 목사 때처럼 조전 등을 보내 조의를 표할지 관심이 쏠린다. 북한은 1994년 1월 문 목사가 별세했을 때 처음 김일성 주석 명의로 조전을 보낸 이후, 남북 관계 진전에 영향을 미친 남측 인사가 사망하면 조전이나 조문단을 보내 조의를 표하기도 했기 때문이다.마지막까지 통일문제연구소장으로 활동했던 고인은 1933년 황해도 은율에서 태어났다. 1945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내려왔다가 분단으로 실향민이 된 고인은 1950년대부터 민주화와 민족운동, 통일운동에 투신했다. 황해 출신 故人 “서해 뱃길로 고향 가겠다” 황해도 장산곶에서 똑딱배를 타고 내려왔던 것처럼 서해 뱃길을 통해 고향 땅을 다시 밟기를 늘 소원했던 고인은 2000년 10월 노동당 창건 55주년 기념행사에 초청 받아 비행기를 타고 평양을 방문할 수 있었다. 당시 누나 인숙 씨와 해후했다. 고인은 “분단은 원래 주어진 상황이 아니며, 강요된 현실은 현실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한다”(2019년 9월 경향신문 인터뷰)며 마지막까지 통일을 염원했다. 고 문 목사와 함께 재야에서 통일운동을 이끌었던 만큼 북측에서도 고인의 별세 소식에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지난해 6월 이후 남북 연락채널이 단절된 상황이어서 북측에서 조전을 보낸다면 남북 연락망이 아닌 일반 팩스 등을 통해 곧바로 유가족에 조의를 전달할 가능성도 있다. 과거 사례를 보면, 북한은 2001년 3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별세했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 명의로 조전을 발송했으며, 2003년 8월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별세 땐 금강산 관광을 담당하는 북한 아시아태평양협의회가 현대아산 앞으로 조전을 보냈다. 2009년 5월 노무현 대통령 서거, 같은 해 8월 김대중 대통령 서거 때에도 각각 김 국방위원장이 조전을 보냈으며, 김 대통령 서거 땐 조전과 별도로 김기남 당 비서와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등 조문단까지 파견했다. 故 박용길 장로 별세 땐 일반 팩스로 조전 2011년 9월 고 문 목사의 부인이자 6·15남북공동선언실천을위한통일연대 공동위원장을 역임한 박용길 장로가 별세했을 때에도 유가족 앞으로 김 국방위원장의 명의의 조전이 왔다. 북한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박 장로의 별세 소식을 전하고, 남북 간 채널이 아닌 일반 팩스를 통해 조전을 보내 왔는데, 애초 북한은 개성에서 남측 장례 관계자들과 만나 조의를 전할 방법을 논의하고자 했으나 우리 정부가 거절하면서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비교적 최근인 2019년 6월 고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인 이희호 여사가 별세 했을 땐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부부장이 판문점에서 조화와 함께 김 위원장 명의의 조전을 전달했다. 같은 해 10월 문재인 대통령의 어머니 강한옥 여사 별세 때에도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 앞으로 조의문을 보내 위로의 뜻을 전했다. 이 밖에 김양무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 본부 상임부의장 별세(2000년 1월) 때와 신창균 범민련 공동의장 별세(2005년 3월) 때에도 북측에서 조전을 보낸 바 있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서울포토] ‘고 백기완 선생 빈소’ 이어지는 조문 행렬

    [서울포토] ‘고 백기완 선생 빈소’ 이어지는 조문 행렬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경선 후보(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가 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빈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리며 조문하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라’던 백기완 선생”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라’던 백기완 선생”

    “나는 한 마디로 소개하면 됩니다. 나는 내 눈앞에서 마음에 안들면은 그냥 놔두지 않았어.” 2019년 3월 13일. 그의 마지막 저서가 된 ‘버선발 이야기’의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1950년대부터 농민·빈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한 그의 평생은 부조리에는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15일 투병 끝 별세한 그를 수많은 여성 정치인들도 기렸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부천서 성고문 사건규탄대회를 여시려다 감옥에 갇히시기도 했다”며 “제가 경험한 사람 중 가장 특별한 연설능력을 가지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백 소장은 권 의원이 성고문 피해를 입었던 1986년 ‘부천서 성고문 사건 규탄대회’를 주도한 혐의로 체포됐다. 그 일을 회상하며 권 의원은 “논리력, 선동력, 이야기하듯 엮어내는 구수한 문장력과 멋진 목소리가 엄청난 조화를 이루었고 87년 대통령 선거에 후보로 나왔을 때 많은 지지자와 함성을 모으셨다”며 조의를 표했다. 선생의 뒤를 이어 진보진영의 대선 후보로 나섰던 심상정 정의당 의원도 그의 뜻을 기렸다. 심 의원은 페이스북에 “심상정이, 비틀거리지 말고 똑바로 가. 이 썩어 문드러진 세상, 뒤집어엎어버리란 말이야!”라던 선생의 생전 호령을 적었다. 이어 “수많은 진보 정치인, 운동가, 지식인들이 선생의 둥지에서 태어나 진보정당의 초석이 되었다”고 썼다.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전직 이사장을 지냈던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수요시위에 나섰던 백 소장의 모습을 기억했다. 그는 “수요시위에 참석하시고 김복동 할머니 떠나시던 날 빈소에 들러 할머니 명복 빌어주시며 함께 해주시던 모습들, 가슴에 찡하게 남아있다”며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고 그래서 너도 나도 잘 살되 올바르게 잘 사는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뚜벅뚜벅 걸어가겠다”고 했다. 서울시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경선 후보는 대학로에 있는 통일문제연구소에 들렀던 기억을 소환했다. 박 후보는 “저에게 ‘시원시원하고 단호해서 좋다’고 하셨던 선생님. 참 고생 많으셨습니다”라며 “선생님 영전에 ‘임을 위한 행진곡’ 원작시를 바칩니다”라고 썼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가 백 소장이다. 선생의 맏딸 백원담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1979년 선생이 출간한 책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를 언급했다. 책에서 선생은 ‘자주고름 입에 물고 옥색치마 휘날리며’ 말을 타고 달리는 고구려의 여성상을 예로 들며 현모양처의 허상과 수동적 역할을 벗고 역사의 전면에 나서는 여성이 될 것을 강조했다. 백 교수는 “1979년 딸에게 주는 편지를 책으로 엮어 평생을 살아가는 길라잡이를 일러주셨다”며 “예순 두 해 동안 아버님과 맏딸로, 사회운동의 선후배로, 끊임없는 긴장의 일상이 쉽지 않았지만 더없이 빛나고 참으로 벅찬 세월이었다”고 말했다. 2019년 그날의 간담회에서 선생은 자기 소개에 이어 별안간 ‘미투’ 이야기를 꺼냈다. 소싯적 술을 먹다가도, 여성 옆에서 추태를 부리려는 남성들에 대한 일갈이었다. “‘야, 이 자식아. 술 먹고 술에 취하지. 왜 여성이라고 하는 특수한 사람에 취하려고 그래. 집어치워, 인마.’ 말 안들으면 술상 뒤집어 엎고 그랬어. 내가 그런 것도 실천인 줄 알았다니까. 내 젊은 날에 그랬어.” 젠더연구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기득권의 벽, 두려움 없이 맞설 것”…이재명, 백기완 선생 추모

    “기득권의 벽, 두려움 없이 맞설 것”…이재명, 백기완 선생 추모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15일 별세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을 추모하며 “선생께서 평생 맞섰던 철옹성 같은 기득권의 벽, 두려움 없이 마주하겠다”고 말했다. 이 지사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선생께서 작사하신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처럼, 그리고 전 생애로 실천하셨던 것처럼, 앞서서 나가시는 님을 산 자로서 충실히 따르겠다”며 이같이 추모했다. 그는 “고문으로 앙상해진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쩌렁쩌렁한 기백이 아직도 생생하다”며 “삶 자체가 대한민국 현대사이셨던 분. 민주화와 평화통일 운동의 선두에서 온갖 모진 고난을 감내하셨던 분. 그러면서도 늘 우리 사회 보통 사람들, 낮은 자들의 유쾌한 연대를 꿈꾸셨다”고 했다. 이어 “영원한 스승 백기완 선생님, 편히 쉬시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덧붙였다.백기완 선생, 투병 끝에 별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은 15일 투병 끝에 별세했다. 서울대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이날 오전 입원 중 영면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해왔다.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부터 농민·빈 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백 소장은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선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 대선에도 독자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왔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포토] ‘건장한 청년’ 백기완 선생… 치열했던 삶 접고 영원한 안식

    [포토] ‘건장한 청년’ 백기완 선생… 치열했던 삶 접고 영원한 안식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이 15일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89세.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태어난 그는 1950년대부터 농민·빈민·통일·민주화운동에 매진하며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참여했다. 백 소장은 1964년에는 한일협정 반대운동에 참가했고, 1974년에는 유신 반대를 위한 1백만인 서명운동을 주도하다 긴급조치 위반으로 투옥됐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1987년 대선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 대선에도 독자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왔다. 사진은 1985년 3월 노동운동 탄압 규탄 및 최저임금 쟁취대회에 참석한 민통련 백기완 의장. 연합뉴스
  •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주인공…백기완 별세 눈물로 추모(종합)

    ‘임을 위한 행진곡’ 가사 주인공…백기완 별세 눈물로 추모(종합)

    15일 영면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1932∼2021)에 정치인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독재 정권과 싸운 ‘투사’이자 한국 민주·민족·민중운동의 ‘큰 어른’이었던 백 소장은 황해도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피신하던 백범 김구 선생을을 돌보았고, 이후 백 소장은 백범을 스승처럼 따랐다. 민중운동 진영은 그를 2차례에 걸쳐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추대했다. 군사정권 종식이란 국민적 염원 속에 치러졌던 1987년 대선에는 김영삼·김대중 ‘양김’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후보직을 내려놨으나, 1992년 대선에선 독자 민중후보로서 일명 ‘백선본’과 함께 완주했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하면서 통일운동에 헌신했다. 하지만 2011년 부산 한진중공업, 2013년 울산 현대자동차와 경남 밀양 송전탑 반대 현장, 2014년 충북 옥천 유성기업 등으로 가는 ‘희망버스’에 빠지지 않고 올라 백발에 한복 차림 투사는 힘을 보탰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백 소장에 대해 “내 청춘 시절의 큰 별”이셨다며 “박종철 추모식때 내 손을 꼭 잡아주셨던 두툼한 손을 언제나 기억할 것”이라고 슬퍼했다. 강기정 전 민주당 의원은 이날 백 소장과의 추억을 회고했다. 강 전 의원은 백 소장이 직접 노랫말을 쓴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해 “내 청춘의 노래이자 험난한 시대를 넘어서야 했던 동지들의 노래. 그리고 끝내 국회 본회의장에서 불렀던 노래”라고 밝혔다.이어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백 소장의 시 ‘묏비나리- 젊은 남녘의 춤꾼에게 띄우는’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전 의원은 ‘재야’란 단어도 백 소장이 처음 썼으며 그 뜻에 대해 “인권이 침해당하고 자유가 박탈당하는 거친들에 곡식과 나무를 심는 사람들”이라 풀이했다고 덧붙였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도 “돌이켜보면, 선생님께서는 항상 앞에 서 계셨던 것 같습니다”라며 “그 그림자를 좇아가기에도 벅찼던 분. 시대의 등불을 이렇게, 또 잃었습니다”라고 애도했다.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은 “평생을 노동자 민중이 주인되는 통일세상을 위해 투쟁해오신 백기완 선생님이 첫 새벽에 운명하셨습니다”라며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 소중한 가르침 잊지않겠습니다”라고 부고를 전했다. 그는 “파렴치한 권력에 맞서는 길은, 모든걸 걸고 제대로 싸우는것이 왕도다. 우리가 힘들면 기득권 간나새끼들도 힘드니 더 힘을 내라”라고 했던 백 소장의 생전 말씀을 눈물로 새겼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고문으로 몸이 반쪽이 돼도…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종합)

    고문으로 몸이 반쪽이 돼도…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종합)

    고문으로 몸이 반쪽이 될지언정 일제와 싸우고 독재 정치에 맞섰던 민주화운동의 큰 어른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5일 투병 끝에 영면했다. 그는 통일운동가이자 민주화운동가, 시인, 작가 그리고 민중정치인이었다. 백기완 선생은 1932년 황해도 은율군 장련면 동부리에서 아버지 백홍렬과 어머니 홍억재 사이에 4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인 백태주는 천석꾼의 부자로 장련면의 유지로 있으면서 3.1 운동 당시 수천장의 태극기를 제작하여 사람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 등 민족운동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아버지 백홍렬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재직했고, 청년운동에도 나섰다. 두 부자는 각각 1923년 평안도와 황해도 지방에 수해와 지진피해가 있었을 때와 1934년 삼남지방 수재 당시에 의연금을 기부하고 구휼에 힘쓰는 등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지만 조부 백태주가 독립군에 군자금을 대어주다가 발각돼 고문 끝에 옥사당한 이후 가계가 급격히 몰락했다. 백기완 선생은 백범 김구 선생과 깊은 인연이 있다. 조부가 백범을 자신의 집으로 피신시키고 극진히 돌보았고, 이후 백기완 선생 역시 백범을 따랐다.백기완 선생은 1960년대 한일협정 반대투쟁을 계기로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3선 개헌 반대와 유신 철폐등 민주화 운동에 많은 활동을 했으며 1974년 유신헌법철폐 100만인 선언 운동을 주도하여 긴급조치 1호 위반 혐의로 12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75년 형 집행 정지로 석방되었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40대까지 거구였지만 혹독한 고문으로 그의 몸은 반쪽이 되었다. 1987년 대선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다가 김영삼·김대중 후보의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1992년 대선에도 독자 후보로 출마했다. 이후에는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으로 활동해왔다. 열렬한 국어순화론자로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되도록 순우리말을 썼다고 한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달동네, 새내기, 동아리’ 등의 같은 순우리말이 성공적으로 사회에 안착했다. ‘장산곶매 이야기’ 등 소설과 수필집을 낸 문필가이자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 원작자이기도 하다.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해왔고 2021년 2월 15일 새벽 4시 88세의 나이로 영면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백미담·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2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속보] 민주화운동 큰 어른…백기완 선생 별세

    [속보] 민주화운동 큰 어른…백기완 선생 별세

    진보진영 원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89)이 15일 투병 끝에 영면했다. 서울대학교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이날 오전 입원 중 운명을 달리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앞서 백 소장은 2018년 4월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같은달 23일 혈관이 불안정해 심장수술을 받은 뒤 퇴원하기도 했다. 1932년 황해도 출생인 백 소장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한 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1974년 2월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로 옥고도 치른 바 있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속보] 진보원로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

    [속보] 진보원로 통일운동가 백기완 선생 별세

    진보진영 원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89)이 15일 투병 끝에 영면했다. 서울대학교병원 등에 따르면 백 소장은 이날 오전 입원 중 운명을 달리했다. 그는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앞서 백 소장은 2018년 4월9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다가 같은달 23일 혈관이 불안정해 심장수술을 받은 뒤 퇴원하기도 했다. 1932년 황해도 출생인 백 소장은 1964년 한일회담 반대운동에 참여한 뒤 박정희·전두환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1974년 2월 긴급조치 1호의 첫 위반자로 옥고도 치른 바 있다.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 노랫말의 모태가 된 장편시 ‘묏비나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비교과’ 사라진 예비 고1 “원격수업에서도 역량 드러내야”

    ‘비교과’ 사라진 예비 고1 “원격수업에서도 역량 드러내야”

    오는 3월 고등학생이 되는 예비 고1 학생들은 대입 수시모집에서 큰 폭의 변화를 겪는 세대다. 지난 2019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비리 의혹으로 ‘대입 공정성’ 요구가 거세지면서 교육부는 이른바 ‘비교과’ 영역을 대입에서 사실상 폐지했는데, 변화된 제도의 첫 번째 타자가 당시 중학교 2학년이었던 예비 고1이다. 자율동아리나 교내대회 등 스스로 찾아서 해야 했던 비교과가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 대신 학생들에게는 내신 성적과 더불어 과목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세특)’이 중요해졌다. 특히 올해부터는 세특 기재의 폭이 크게 넓어지면서 학생들은 모든 원격수업과 대면수업이 세특에 기재될 수 있음을 염두하고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비교과’ 사실상 사라지고 자기소개서 폐지 교육부가 지난 2019년 11월 28일에 발표한 ‘대입제도 공정성 강화 방안’에 따르면 예비고1이 치르는 2024학년도 대입부터는 학생부의 ‘비교과’ 영역이 사실상 대입에 반영되지 않는다. 정규 교육과정 외에 자율동아리와 개인 봉사활동 실적, 교내대회 수상경력, 독서활동, 영재?발명교육 실적은 대입에 반영되지 않으며 방과후활동 수강내용과 청소년단체 활동은 학생부에 기재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자신의 지망 학과와 진로에 맞춰 자율동아리를 조직해 운영하거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아서 할 필요가 없게 됐다. 학교에서도 자율동아리와 교내대회 등의 활동이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비교과영역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자율활동과 정규 동아리활동, 학교 교육계획에 의한 봉사활동, 진로활동 등 이른바 ‘자·동·봉·진’은 기재 분량이 축소됐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이들 ‘창의적 체험활동’은 고교 이수단위(204단위) 중 24단위(408시간)를 차지하는 정규 교육과정이라는 점에서 ‘비교과’라는 용어가 적절하지 않다. 점차 축소되고 있는 자기소개서는 2024학년도 대입부터 완전히 폐지된다. ●원격수업에서의 태도도 세특에 기재 비교과의 영향력이 작아진 만큼 수시모집에서 ‘세특’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전공적합성을 드러낼 수 있는 자기소개서마저 폐지된 만큼 학생의 입장에서 자신의 자기주도학습 역량을 발휘할 통로는 사실상 세특 뿐이다. 특히 올해부터는 세특 기재의 폭이 넓어졌다는 데에 유의해야 한다. 교육부가 지난달 발표한 ‘2021년 학사 및 교육과정 운영 지원 방안’과 ‘2021학년도 학생부 기재요령’에 따르면 올해부터 모든 교과에서 세특 기재가 의무화된다. 이른바 ‘복불복 세특’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세특 기재가 의무화됐는데, 지난해 기초·탐구교과에서 올해 모든 교과로 범위가 확대됐다. 원격수업에서 드러난 태도와 역량도 세특에 기재될 수 있게 됐다. 지난해까지는 실시간 쌍방향(화상)수업에서 학생들의 수행 과정을 교사가 직접 관찰할 수 있을 때만 기재가 가능했지만, 올해부터는 원격수업의 활동을 등교수업에서 연계해 다룰 경우에도 기재가 가능해졌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 가지 활동을 놓고 원격수업에서 중간 과정까지 진행한 뒤 나머지 과정을 등교수업에서 마무리했다면, 교사가 등교수업에서의 활동을 바탕으로 원격수업에서 학생이 어떤 역량을 발휘했는지 평가할 수 있다면 기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원격수업에서 학생들이 모둠별로 단편극을 창작했다면 등교수업에서 이를 활용한 활동을 하고, 교사가 각 학생들의 창의성과 협동성 등을 평가해 학생부에 기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또 올해부터는 기초·탐구교과에서도 학생의 수행 동영상으로 평가해 기록할 수 있게 됐다.●정규동아리·교과활동 적극 참여해야 … 독서는 모든 공부의 기본 비교과가 사라졌다고 내신 등급만 챙기는 것은 금물이다. 정규 동아리와 세특은 학생 개인의 역량을 드러낼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통로이므로 학생들은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자신의 진로나 전공 적합성을 고려해 정규 동아리를 선택하고 동아리 활동을 통해 협동성과 리더십 등 역량을 발전시켜야 한다. 수행평가나 프로젝트 등 교과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자기주도적 학습역량을 발휘해야 하며, 원격수업이라고 출석 체크만 한 채 소홀히해서는 안 된다. 채팅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댓글 등 학생들에게 익숙한 소통 방식이 십분 활용되는 원격수업의 교과활동은 학생들이 교실 수업에서 드러내지 못했던 역량들을 오히려 더 잘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하다. 독서나 교내대회 참가도 교과 공부의 뒷받침으로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교과 공부를 하며 갖게 된 지적 호기심을 주제 탐구나 독서로 채울 수 있고, 이같은 노력은 자기주도학습 역량의 바탕이 된다. 우연철 진학사 입시전략연구소장은 “학생부의 비교과 기재 축소는 학종을 위한 무리한 활동 대신 가장 기본적인 학교생활에 충실하라는 의미”라면서 “양보다 질에 중점을 두고 자신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인사]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키움증권,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국토교통부

    ■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 부원장 박종현 △ 지능화융합연구소장 김형준 △ 기획본부장 박세명 △ 소재부품원천연구본부장 서동우 △ 사업전략부장 이강주 △ 창의원천기술기획실장 김형환 ■ 키움증권 ◇ 팀장 임명 △ 영업부팀장 최태환 △ 키움금융센터CS운영3팀장 김좌묵 △ 키움금융센터CS운영2팀장 이용훈 △ 글로벌DMA팀장 백승훈 △ 패시브솔루션팀장 겸 법인대차팀장 홍완기 △ FICC운용팀장 김동완 △ 법인영업팀장 직무대행 강병현 ■ 국무조정실·국무총리비서실 ◇ 과장급 △ 행정관리총괄과장 김민성 △ 정부합동부패예방추진단 총괄과장 파견 이용주 △ 해양수산부 해양영토과장 파견 김완수 ■ 국토교통부 ◇ 국장급 전보 △ 대변인 김상문 △ 국가균형발전위원회 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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