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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년 만에 또… ‘야구 입시비리’ 연고전

    대학 야구부 입시 비리를 수사 중인 경찰이 연세대에 이어 고려대 야구부 감독의 금품수수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두 대학은 불과 3년 전에도 같은 이유로 수사를 받았지만, 고질적인 비리 관행을 떨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돈을 받고 고교 야구선수를 입학시켜준 혐의로 고려대 야구부 감독 우모(58)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15일 밝혔다. 또 서울의 한 야구 명문고의 학부모 A(47)씨와 해당 고교 동문회 관계자 B(69)씨도 불구속 입건했다. 우씨는 지난해 고려대에 고교 3학년생을 입학시켜준 대가로 A씨로부터 4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 역할을 한 B씨는 학부모에게 “아들이 고려대에 합격하게 해 주겠다”며 돈을 받아 우씨에게 건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B씨가 돈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양측 모르게 돈 일부를 빼돌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우씨가 다른 학부모로부터도 돈을 받았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관련 계좌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다. 최근 연세대를 압수수색해 자료를 분석한 경찰은 이번 주중 연세대 야구특기 지원생을 전원 조사하기로 했다. 이르면 다음주 연세대 감독 조모(44)씨, 서울시 야구협회 고위임원 2명, 고교 야구부 감독 2명, 학부모 1명 등 피의자 6명을 소환할 방침이다. 연세대는 최근 수년간 야구 특기자 정원과 지원자 수가 1대1로 맞아떨어졌지만 올해는 지원자 수가 정원보다 3∼4명 많다는 점에서 비리 의혹이 불거졌다. 현재 경찰 수사 선상에 오른 대학은 연세대와 고려대 등 6곳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추가 제보가 접수돼 서울 소재 대학 2곳, 수도권 소재 대학 2곳 등 전체 10곳으로 수사가 확대될 수도 있다. 한편 2012년 불거진 입시비리 사건으로 양승호(55) 전 고려대 야구부 감독, 정진호(59) 전 연세대 감독, 천보성(62) 한양대 감독 등 프로 지도자 경력이 있는 전·현직 대학야구 감독들이 구속돼 실형 혹은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바 있다.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 ‘문·강·이 50점’ 고대, 대학농구 3연패 -1승

    ‘문·강·이 50점’ 고대, 대학농구 3연패 -1승

    ‘안암골 호랑이’ 고려대 농구부가 전통의 라이벌 ‘신촌 독수리’ 연세대를 또 한 번 울리고 대학리그 챔피언 등극에 한 걸음만 남겼다. 고려대는 12일 모교 화정체육관에서 열린 2015 대학농구리그 챔피언결정전(3전2선승제) 1차전 연세대와의 경기에서 문성곤(20득점)과 강상재(16득점), 이종현(14득점 14리바운드) 삼각편대의 활약에 힘입어 68-58로 이겼다. 2013~14년 우승팀 고려대는 남은 2경기 중 한 경기만 잡으면 3연패의 금자탑을 쌓는다. 1쿼터 문성곤과 강상재의 득점포로 25-18로 앞선 고려대는 2쿼터 초반 최준용에게 연속 득점을 허용해 추격당했다. 그러나 최준용이 2쿼터 후반 무릎 통증으로 잠시 코트를 떠난 사이 이동엽과 이종현이 릴레이 득점에 성공, 전반을 41-31로 마쳤다. 3쿼터에서도 점수 차를 유지한 고려대는 4쿼터 초반 위기를 맞았다. 허훈에게 3점슛과 가로채기에 이은 득점을 내줘 순식간에 2점 차까지 쫓겼다. 그러나 문성곤의 득점포가 재가동됐고, 이동엽까지 가세하면서 다시 두 자릿수 점수 차로 달아났다. 특히 문성곤은 상대 수비가 없는 찬스에서 호쾌한 덩크를 꽂아넣어 기세를 올렸다. 앞서 전국대학농구대회와 정기 고연전(연고전)에서 잇따라 고려대에 패한 연세대는 이번에도 설욕에 실패했다. 자유투 성공률이 43%로 좋지 않았고, 4쿼터 들어 최준용의 체력이 떨어지면서 추격의 동력을 잃었다. 2차전은 13일 오후 2시 연세대 체육관에서 열린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연세우유·고대빵과 함께하는 연고전 10~11일

    연세우유·고대빵과 함께하는 연고전 10~11일

    고려대학교와 연세대학교는 오는 10일부터 11일까지 2014 정기 연세대학교·고려대학교 친선 스포츠 대회(연고전)를 개최한다고 7일 밝혔다. 이번 연고전에 응원하러 온 양교 학생들에게 지급되는 고대빵과 연세우유. 사진 고려대 제공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고연전(연고전)에서도 빛나는 깜찍함

    리듬체조 요정 손연재, 고연전(연고전)에서도 빛나는 깜찍함

    국가대표 리듬체조 선수 손연재(19·연세대)가 27일 ‘2013 정기 고연전(연고전)’에 참석해 눈길을 끌고 있다. 이날 손연재는 야구 경기가 열린 서울 송파구 잠실동 잠실야구장에서 학우들과 함께 모교인 연세대를 응원했다. 손연재는 챙이 큰 파란 모자를 옆으로 비스듬히 쓰고 하얀색 반팔티에 멜빵 청바지를 입어 연세대의 상징색인 파란색(로얄블루)을 적절히 매치시켰다. 손연재 고연전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손연재 연고전 응원하러 갔나보다”, “손연재는 고연전이라 안 부르고 연고전이라 부르겠지?”, “손연재 리듬체조 요정답네” 등의 반응을 보였다. 손연재는 올해 연세대 스포츠레저학과에 입학했다. 한편 정기 고연전(연고전)은 연세대와 고려대가 매년 9월말 야구, 농구, 럭비, 아이스하키, 축구 등 5종목을 놓고 겨루는 스포츠 축제로 정식 명칭을 홀수해에는 고연전, 짝수해에는 연고전으로 정해놓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요정·여왕… 오글거려요 그냥 ‘연아 선수’가 좋아요”

    “요정·여왕… 오글거려요 그냥 ‘연아 선수’가 좋아요”

    “숙소에 들어가서 라면 끓여먹고 잤어요.” 4년 만에 세계선수권을 제패하고 돌아온 ‘피겨 여왕’ 김연아(23)가 온 국민에 큰 기쁨을 안긴 대회 직후 가장 먼저 뭘 했느냐는 질문에 답한 내용이다. 후원사 E1이 시즌을 마친 김연아와 팬들의 만남을 마련하기 위해 25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밀레니엄광장에서 주최한 팬 미팅 자리에서였다. 방송인 전현무씨의 사회로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김연아는 이번 대회에서 카롤리나 코스트너(이탈리아)의 코피가 묘하게 자신의 좋은 성적으로 연결됐다는 풀이를 내놓았다. 그녀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미신에 의지하곤 하는 다른 선수와 달리 특별한 징크스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약간 의외로 비칠 수 있는 발언이었다. 김연아는 “흔히 ‘피를 보면 운이 좋다’고들 하지 않느냐”고 되묻고는 “코스트너가 코피를 흘리는지 모르고 있었는데, 연기를 하려고 링크에 들어가 보니 얼음판에 피가 떨어져 있더라”고 전했다. 이어 “특별히 징크스를 만들지 않으려고 하는 편인데, 이렇게 좋은 쪽으로는 가져다 붙이게 된다”며 웃었다. ‘강심장’으로 유명한 그녀지만 준비가 만족스럽게 되지 않으면 긴장하게 되고 곧바로 경기력에 영향을 준다는 여느 선수와 다름 없는 면모도 비쳤다. 김연아는 “긴장할 때면 표정이 굳고 스케이트끈을 자주 고쳐 매는 등 여러 곳에 신경을 쓰곤 한다”며 “주변에서도 내가 스케이트끈을 만지는 걸 보면 긴장했다는 것을 눈치채더라”고 귀띔했다. 또 고려대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않고 세계선수권을 준비했던 그녀는 “고연전이나 축제 등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한 뒤 연세대 출신인 전현무와 ‘고연전’인지 ‘연고전’인지를 놓고 입씨름을 벌이기도 했다. 김연아는 ‘피겨 요정’이나 ‘피겨 여왕’ 등의 별명에 대해 “오글거린다”는 표현을 쓰면서 “그냥 ‘김연아 선수’가 가장 나다운 호칭 같다”고 털어놓았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日열도가 들썩… 고교축구선수권 결승전 가보니

    日열도가 들썩… 고교축구선수권 결승전 가보니

    고교 축구 결승에 4만 관중이 몰렸다. 물론 국내 얘기가 아니다. 1월의 둘째주 월요일인 9일은 성인의 날로 일본인들은 사흘 연휴의 끝을 즐긴다. 특히 이날은 수많은 고교 축구대회 가운데 가장 명성이 높은 전국고교축구선수권대회 결승전이 열리는 날이다. 이날 아침부터 1964년 도쿄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이었던 도쿄 국립경기장은 가족과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등록선수 ‘89만’… ‘2만’ 한국과 대조 겨울답지 않은 영상 8도의 날씨 덕에 5만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 좌석은 오후 1시가 되자 빈곳을 찾기 힘들었다. 공식 집계된 관중은 4만 3884명. 국가대표팀 경기도 아니고 아마추어 고교대회에 관중이 몰리는 모습은 부럽기만 했다. 4174여개의 고교 축구팀들이 지역예선을 거친 뒤 48개 본선 진출 팀이 지난달 30일부터 피말리는 혈전을 벌였다. 지바현 후나바시 시립고와 도쿄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미에현 요카이치 중앙공업고가 이날 결승에서 맞붙었다. 응원 열기는 대단했다. 치어리더들이 나왔고 브라스밴드, 응원도구가 동원돼 연고전을 연상케 하는 뜨거운 응원전을 벌였다. 흰색 유니폼의 요카이치 중앙공업고 응원단은 영화 ‘로키’의 주제 음악을, 푸른색 유니폼의 후나바시 시립고는 모교의 응원가로 맞섰다. ●결승전 유료입장도 3만 7000여명 국내의 이런 대회라면 공짜 손님이 다수겠지만 이 경기의 성인 입장권값은 3000엔(약 4만 5000원)인데도 유료 관중이 3만 7000명이나 들었다. 안내하던 일본축구협회 관계자는 등록된 선수만 89만명을 넘는다고 했다. 국내 고교축구는 137개팀에 등록된 선수가 2만 6000명밖에 되지 않는다. 2009년부터 열리고 있는 대교 초중고리그의 왕중왕전 관중이 고작 3000여명이니 그 격차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일본에서 고교축구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이 관계자는 “국민성에 기인한다.”며 “일본인들은 프로보다 아마추어의 순수한 분위기를 더 좋아하고 선수들이 경기를 하며 느끼는 꿈과 투혼을 공유하려는 경향이 짙다.”고 풀이했다. 현지 방송과 신문들이 분위기를 띄우는 것은 물론 스폰서들의 후원도 부러운 대목이다. 경기장 안에서 후지제록스, 코카콜라, 퓨마 등의 광고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광고·홍보·스폰서 프로경기 못지않아 유명 축구선수를 홍보대사(마스코트)로 위촉해 선수들에게 힘을 불어넣는데 이번 대회에는 독일프로축구 분데스리가 샬케04에서 활약하는 우치다 아스토(24)가 주인공이었다. 신문과 팸플릿, 경기장에 그의 사진이 도배됐다. 외모가 뛰어난 여고생을 뽑아 대회 홍보를 맡기는 방송사도 있었다. 지역 예선은 지역 방송이, 준결승부터는 니혼TV가 생중계했다. 이날 결승 시청률은 국내 K리그 시청률의 곱절인 6%로 낮 시간대 시청률치곤 높은 편이다. 후나바시 시립고가 연장 후반 10분에 터진 극적인 골로 2-1로 승리,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우승팀에 주어지는 건 트로피밖에 없다. 학교의 명예를 걸고 싸우는 순수함을 높이 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여기에 우치다를 비롯해 히라야마, 나가모토, 하세베, 오쿠보 등을 배출한 자부심이 곁들여진다. 특혜라면 베스트 멤버로 11~18명을 뽑아 스위스나 독일 등으로 연수 보내는 정도다. 대한축구협회 이원재 홍보국장은 “순수하게 명예를 걸고 나서는 경기에 박수를 보내는 관중이 많아지는 날이 우리에게도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글 사진 도쿄 강동삼기자 kangtong@seoul.co.kr
  • “꺄악~ 오빠” 농구 고연전 OB스타들 16년전 명승부 재현

    “꺄악~ 오빠” 농구 고연전 OB스타들 16년전 명승부 재현

    뜨거웠던 그날이 돌아왔다. 1995년 한국 농구의 전성기. 농구대잔치의 시대. 겨울이면 농구 코트는 관중들의 함성으로 먹먹했다. 길거리엔 농구공과 씨름하는 까까머리 남학생들이 가득했다. 그때 그 시절 한국 최고의 스포츠는 단연 농구였다. 그 가운데 연세대와 고려대의 라이벌 구도가 있었다. 절정은 1994~95시즌 농구대잔치였다. 정규리그 마지막 날. 12연승 연세대와 11승1패를 기록한 고려대가 맞붙었다. 당시 연세대는 이상민-우지원-서장훈-김훈이 중심이었다. 고려대는 현주엽-김병철-전희철-양희승이 버티고 있었다. 경기는 대접전이었다. 외곽에선 우지원-양희승이, 골밑에선 서장훈과 현주엽이 혈전을 벌였다. 경기 종료 1분 6초 전까지 77-67로 연세대 리드. 그러나 이상민이 부상으로 실려 나가면서 분위기가 뒤집어졌다. 종료를 4초 남기고 75-75 동점이 됐다. 마지막 공격 기회는 연세대. 그리고 서장훈의 버저비터가 성공했다. 77-75 연세대의 승리였다. 농구 역사에 남을 명승부였다. 그날의 명승부가 26일 재현됐다. 한 케이블 방송사가 기획한 ‘Again 1995! 농구 고연전(연고전)’ 행사였다. 그때 그 선수들이 대부분 모였다. 이상민과 김병철이 부딪쳤고, 우지원의 수비를 뚫고 양희승이 외곽슛을 쐈다. OB전이지만 16년 전 그날처럼 치열했다. 팬들은 콘서트장처럼 들썩였다. 승부는 당시와 달리 고려대가 72-60으로 이겼다. 고려대 김병철은 “16년 전 흥분을 다시 느꼈다. 그날 지고선 잠도 못 잤지만 오늘은 잘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관가 포커스]공무원 석사과정 연세대만 편애?

    공무원들의 대학원 선호도에 ‘연고전’이 있다면 연세대 판정승이 될 것 같다. 중앙부처 공무원들이 지원하는 국내 대학원 야간 석사과정 위탁교육이 연세대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1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부 내에서 올해 야간 석사과정 신규지원을 받는 20명 중 연세대 지원자는 16명이나 됐다. 이어 고려대가 2명, 경희대·성균관대가 각각 1명이다. 연세대를 제외한 대학은 소수(?)였다. 연세대 지원자들의 전공은 일반행정을 비롯해 도시계획, 지방도시, 산업정보경영, 공학경영, 방재안전관리 등 다양하다. 고려대는 전자컴퓨터공학, 도시 및 지방행정 전공이었다. 경희대와 성균관대 지원자는 각각 행정학, 국정관리학을 선택했다. 대학원 지원이 연세대에 집중되는 현상에 대해 부처 내부에선 ‘일리가 있다.’는 반응이다. 학교가 위치한 신촌이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가깝고, 행정학, 경영학 등 공직관련 전공이 특화돼 있기 때문이다 . 이런 현상은 정부대전청사 공무원들도 마찬가지. 대전 청사와 상대적으로 가까운 충남대, 고대 서창캠퍼스에 지원자가 몰리는 현상이 몇 년째 지속되고 있다. 반면 고려대는 출신 공무원은 많지만 의외로 대학원은 이들로부터 기피되는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고대의 경우 행정학과는 전통적으로 강세지만 대중교통이 혼잡해 주경야독(晝耕夜讀)엔 큰 도움이 안 되는 학교로 꼽힌다.”고 평가했다. 이 때문에 공무원들 사이에선 “고대 졸업생들이 대학원 입학 땐 모교를 외면한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비슷한 논리로 지리적으로 ‘가까이 하기에 너무 먼’ 서울대는 올해 행안부 내에서 지원자가 한명도 없었다. 행안부는 대학원 지원이 특정학교에만 편중되는 현상을 피하기 위해 학교 다변화(?)에 나름대로 힘을 쏟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매년 진행하는 직원역량교육 위탁 코스에 최근 이화여대 리더십 개발원과 계약을 맺어 포함시키는 등 다른 대학들을 직원들에게 적극 알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피플 인 스포츠]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 1순위’ KT&G 박찬희

    [피플 인 스포츠]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 1순위’ KT&G 박찬희

    “자신과 타협하는 순간 지는 거죠.” 내성적으로 보이는 말끔한 외모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키(189.5㎝)에 비해 마른 체구다. 눈빛만은 예사롭지 않다. 나이는 어려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희열을 경험한 듯했다. 경희대 역사상 최초로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KT&G에 입단한 박찬희(23)다. 4년 전 경복고 초특급가드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과감히 경희대 진학을 택했다. 연세대·고려대·중앙대 등 농구 명문대 감독들의 스카우트 제의를 모두 뿌리친 것. 어릴 적 이런 대학에서 뛰는 게 꿈이었을 텐데 왜 그랬을까. “아버지가 해 주신 말씀 때문이었죠. 아버지는 출전시간이 많아야 한다면서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되라.’고 조언해 주셨어요. 특히 경희대 최부영 감독님의 인품을 믿으셨던 거죠.” 박찬희가 농구계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고2 때다. 2004년 4월 그는 정통 포인트가드 역할을 충실히 해내며 경복고를 4년 만에 고교농구 협회장기 우승으로 이끌었다. 이어 8월에 열린 쌍용기대회에서도 우승을 거머쥐며 2관왕에 올랐다. 이때부터 그의 이름 석자가 세간에 알려졌다. 최부영 감독은 이때 박찬희를 주목했다. 평소 농구의 장신화를 주장하던 최 감독에게 고교 무대를 평정한 장신 포인트가드 박찬희는 구미가 당기는 선수였다. 최 감독은 박찬희를 경희대로 진학시키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였다. 어머니 양경희(49)씨는 “고2 때부터 감독님이 항상 집으로 찾아와서 설득하는 노력을 보여주셨어요. 일주일에 두세 번씩은 꼭 찾아오셨죠.”라고 돌아봤다. 최 감독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주전으로 뛸 수 있게 해주겠다면서 끈질기게 부모를 설득했다. 결국 박찬희는 경희대를 선택했고, 농구계는 술렁거렸다. 박찬희는 “결과적으로 신인드래프트 1순위로 프로에 입문했으니 잘된거죠.”라며 배시시 웃었다. 박찬희의 어린 시절 꿈은 경찰이었다. 하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 우연히 TV중계로 접한 농구대잔치 연고전이 그의 꿈마저 농구선수로 바꿔 놓았다. “(여수 한려) 초등학교에 농구부가 없어서 쓰레기통 바닥을 뜯어서 전봇대에 매달아 놓고 농구를 했죠.” 이듬해 전학 간 학교에서 농구부에 입문했다. 처음에 반대하던 부모도 그의 열정을 꺾을 순 없었다. 중1 때 아버지 직장을 따라 인천으로 올라온 그는 농구부가 있는 삼선중학교로 옮겼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농구선수로서의 길을 밀어주기로 한 부모의 열정은 대단했다. 농구 연습을 위해 항상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이사했을 정도. “부모님께서는 제가 농구 연습을 게을리할 것을 염려하신 것 같아요.” 맹모삼천지교가 따로 없었다. 또 아버지 홍길(50)씨는 훈련이 없는 주말엔 아들을 데리고 항상 학교 체육관을 찾았다. 대학 3학년 때 발가락 부상으로 핀 고정수술을 받았던 그는 대학 2학년 때는 팀의 중심이 됐다는 부담감에 짓눌려 슬럼프를 경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프로 무대에 서게 된 그의 각오는 남달랐다. “박찬희가 KT&G와 잘 맞는다는 소리를 듣는 게 목표예요. 다음 시즌에는 팀이 6강에 올라가도록 꼭 보탬이 되고 싶어요.” 글 사진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박찬희는 누구 ▲출생:1987년 4월17일 여수 ▲체격:189.5㎝, 80.6㎏ ▲학력:여천쌍봉초-삼선중-경복고-경희대 ▲가족관계:아버지 박홍길(50), 어머니 양경희(49), 동생 찬웅(20) ▲취미:영화감상, 수영 ▲닮고 싶은 선수:이상민 ▲좌우명:즐기면서 생활하자 ▲주요경력:2004년 고교농구 협회장기·쌍용기 대회 2관왕, 2006·2009년 대학 1차 농구연맹전 우승, 2007년 하계유니버시아드 국가대표
  • 중앙대 50연승 “패배를 잊었다”

    중앙대 50연승 “패배를 잊었다”

    중앙대가 국내 농구 사상 최초로 50연승 신화를 썼다. 중앙대는 6일 경기도 용인 명지대체육관에서 열린 제45회 전국 대학연맹전 2차대회 6강전 둘째날 경기에서 오세근(26점 12리바운드) 등 주전들의 고른 활약으로 고려대를 86-61로 꺾었다. 2006년 11월 42회 대학연맹전을 시작으로 2년여 동안 50경기에서 전승을 거둔 것. 그 동안 농구계에는 암묵적으로 고려대의 49연승(77~79년)을 최다연승 기록으로 간주해 왔다. 그러나 그 기간 고려대는 연고전과 전국체전 서울시 예선에서 패한 기록이 있다. 두 경기를 공식경기로 간주하지 않더라도 77년 10월 대통령배에서 한국은행에 83-90으로 패한 기록이 6일 뒤늦게 발견됐다. 결국 그 동안 49연승으로 알려진 고려대의 기록은 2무승부를 포함한 44연승인 셈. 고려대 기록과 관계없이 중앙대의 50연승은 한국 농구역사의 새로운 장을 연 셈이다. 남자프로농구 SBS(현 KT&G)가 04~05시즌에 세운 15연승,2000년 여자프로농구 신세계의 16연승을 훌쩍 뛰어넘은 대기록. 신화는 2006년 말 시작됐다. 박성진(22)과 강병현(23·전자랜드), 윤호영(24·동부)이 주축을 이룬 중앙대는 연승에 시동을 걸었다.2007년 센터 함지훈이 졸업했지만,‘괴물’ 오세근(21)이 입학하면서 공수 밸런스는 더욱 탄탄해졌다. 김상준 감독이 추구하는 ‘런 앤드 건(강력한 수비를 바탕으로 쉴 새 없이 속공을 펼치는 전술)’ 과 창의적인 플레이가 뿌리내리면서 고공행진은 이어졌다. 고비도 있었다. 지난해 MBC배에서 졸전 끝에 건국대에 2점차로 신승을 거둔 것. 또 지난해 1차연맹전에선 주전 4명이 국가대표와 청소년대표로 차출됐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활약으로 극복했다. 2006년 9월 취임 이후 55승1패의 가공할 승률(.982)을 기록한 김상준 감독은 “고려대에서 기록을 지키기 위해 총력전으로 나올 것을 예상했다. 오늘이 고비였는데 선수들 덕분에 50연승을 했다.”며 선수들에게 공을 돌렸다. 그는 이어 “우리의 기록은 그 동안 뿌린 땀만큼 앞으로도 계속 진행형”이라면서 “저학년 아이들의 발전 가능성이 좋아서 내년이 더 기대된다.”고 말했다. 앞서 중앙대가 1차 연맹전과 종별선수권에 불참해 연승 기록으로 공인할 수 없다는 대학농구연맹의 입장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다. 우리가 출전한 대회에서 50번을 연속 이겼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기 때문에 협회의 공인은 무의미하다.”고 말했다. 용인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정도 넘은 사이버 연고전

    “고려대 법대는 서울대 법대와 동급이다. 그런데 어떻게 로스쿨 배정인원이 연세대와 같을 수 있나.”(아이디 ‘고대생’) “고대가 법대 말고 연대보다 나은 과가 어디 있나.”(아이디 ‘아카라카’) 로스쿨 인원배정 문제가 불거지면서 눈꼴 사나운 ‘사이버 연·고전’이 한창이다. 고대생들은 “고대 법대의 명성에 비해 로스쿨 인원배정이 형편없이 적다. 연대는 우리의 적수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연대생들은 악성 댓글로 대응한다.‘학벌논란’으로까지 이어질 조짐이다. 심지어 연대생들은 한 입시 학원에서 나온 수능점수까지 게시판에 올리며 “고대는 오래전부터 연대보다 하수”라고 거들먹거리고 있고, 고대생들은 “동문 대통령 재임기간 중 ‘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리겠냐.”는 황당한 글을 올린다. ‘사이버 연·고전’은 하루 이틀 얘기가 아니지만 로스쿨로 인해 훨씬 심해졌다. 이들은 악성 댓글을 다는 상대 학생들을 ‘연대 훌리건’,‘고대 훌리건’이라고 부른다. 문제는 이런 논쟁이 두 대학의 단순한 감정싸움이 아니라 ‘학벌주의’로 노골화된다는 데 있다. 평소 가지고 있던 ‘학벌 우월주의’가 로스쿨 문제로 더 심각해졌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최고의 명문사학’이라고 치켜세우려는 암묵적인 인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입시폐지·대학평준화 국민운동 나영 사무처장은 “로스쿨 배정인원과 학교 순위가 직결된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면서 “로스쿨을 통해 학벌과는 무관한 법조인력을 양성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하는데 학생들마저 서열경쟁에 매몰돼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글_ 장영희 그림_ 유준재 <샘터>의 오랜 독자들은 나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2003년 12월 ‘아름다운 빚’이라는 글로 나는 당시 4년간 연재하던 ‘새벽의 창’을 닫았다. 그리고 꼭 3년 만에 나는 이렇게 다시 나타났다. ‘다시 나타났다’는 말을 쓰니 정말 홀연히 바람처럼 사라졌다가 불현듯 모습을 드러낸 느낌이 드는데, 어쩌면 나의 ‘공백기’를 설명하기에 가장 적합한 말인지도 모른다. 그리 짧지도, 그렇다고 그다지 긴 시간도 아닌 3년. 젊은 사람들에게 3년은 인생의 드라마를 창출할 만큼 긴 시간이다. 새로 군대에 간 남학생이 전역할 만한 시간이고 새 신부가 아기 둘을 낳을 만한 시간이고, 신참 사원이 잘하면 대리가 될 수 있는 시간이고, 아, 그리고 우리 학생들을 보면 누군가를 만나 사랑하고 아픈 이별을 하고 또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하기에도 충분한 세월일 만큼, 3년이라는 기간은 의미심장할 수 있다. 하지만 내 나이에 3년이란 세월은 그렇지 않다. 신상에 무슨 커다란 변화를 기대하기보다 이미 오랜 세월에 걸쳐 설정된 삶의 자리가 그냥 ‘조금 더’ 깊어지는 기간이다. ‘조금 더’ 늙어가서 ‘조금 더’ 눈가에 주름살이 잡히고 ‘조금 더’ 내 살아가는 모습에 길들여지고, ‘조금 더’ 포기하고 ‘조금 더’ 집착의 끈을 놓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샘터>에서 사라졌던 지난 3년 동안 나는 내 인생의 가장 큰 변화를 겪었다. 칼럼을 닫고 나서 얼마 후에 나는 척추암 선고를 받고 2004년 9월 8일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했고, 2006년 5월, 도합 스물네 번의 항암치료를 마칠 때까지, 거의 2년에 가까운 시간을 나는 긴긴 투병생활로 보냈다. 돌아보면 그 긴 터널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새삼 신기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지난 3년이 마치 꿈을 꾼 듯, 희끄무레한 안개에 휩싸인 듯, 선명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통증 때문에 돌아눕지도 못하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던 일,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백혈구 수치 때문에 애타 하던 일, 온몸에 링거 줄 떼고 샤워 한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일, 방사선치료 때문에 식도가 타서 물 한 모금 넘기는 것이 고통스러워 밥그릇만 봐도 헛구역질하던 일, 그런 일들은 마치 의도적 기억상실증처럼 내 기억 한편의 망각의 세계에 들어가서 가끔씩 구태여 끄집어내야 잠깐씩 회생되는 파편일 뿐이다. 그 세월은 단지 가슴 뻐근한 그리움으로만 기억될 뿐이다. 네 면의 회벽에 둘러싸인 방에 세상과 단절되어 있으면서 나는 바깥세상이 그리웠다. 밤에 눈을 감고 있을라치면 밖에서 들리는 연고전 연습의 함성소리, 그 생명의 힘이 부러웠고, 창밖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 아래 드넓은 공간, 그 속을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무한한 자유가 그리웠고, 무엇보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늦어서 허둥대며 학교 가서 가르치는, 그 김빠진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다. 그리고 그런 모든 일상--바쁘게 일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을, 그렇게 아름다운 일을, 그렇게 소중한 일을 마치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태연히 행하고 있는 바깥세상 사람들이 끝없이 질투 나고 부러웠다. 하루는 저녁 무렵에 TV를 보는데 유명한 보쌈집을 소개하는 프로가 방영되었다. 보쌈 만드는 과정을 소개한 다음, 손님 중 어느 중년 남자가 목젖이 보일 정도로 입을 한껏 크게 벌리고 큰 보쌈을 입에 가득 넣고 씹어서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상갓집에 가면 보통 육개장, 송편, 전 등, 자금자금한 음식들이 나오고 상추쌈이나 갈비찜처럼 큰 덩어리 음식은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는데, 상갓집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 먹는 것은 죽은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련을 남긴 채 이 세상을 하직하고 이제는 아무리 하찮은 음식일지라도 하나도 먹을 수 없는 망자 앞에서 보란 듯이 입을 크게 쩍 벌리고 어적어적 먹는 것은 무언의 횡포라는 것이다. 그만큼 나도 보쌈을 먹고자 입을 크게 벌리는 그 남자의 탐스러운 식탐, 꿀꺽 삼키고 나서 그의 얼굴에 감도는 그 찬란한 희열, 그 숭고한 삶의 증거에 지독한 박탈감을 느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난 바깥세상으로 다시 나가리라. 그리고 저 치열하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리라. 그리고 난 이렇게 다시 나타났다. 나의 본래 자리로 돌아왔다. 다시 강단으로 돌아왔고, 아침에 밥 먹고 늦어서 허겁지겁 학교 가는 내 일상으로 돌아왔고, 목젖이 보이게 입을 크게 벌리고 보쌈도 먹고 상추쌈도 먹고 갈비찜도 먹는다. 뿐인가, 2007년의 시작과 함께 그동안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이렇게 3년 전에 끝냈던 ‘새벽 창가에서’ 칼럼까지 다시 시작한다. ‘어부’라는 시에서 김종삼 시인은 말했다. “ 바닷가에 매어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중략)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맞다. 지난 3년간 내가 살아온 나날은 어쩌면 기적인지도 모른다. 힘들어서, 아파서, 너무 짐이 무거워서 어떻게 살까 늘 노심초사하고 고통의 나날이 끝나지 않을 것 같았는데, 결국은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열심히 살며 잘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그런 내공의 힘으로 새해에는 더욱 아름다운 기적을 만들어갈 것이다.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다시 만난 <샘터> 독자들과 함께 삶의 그 많은 기쁨을 누리기 위하여…. 장영희_ 서강대 영문과 교수입니다. 번역자이자 수필가, 칼럼니스트로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수필집 <내 생애 단 한 번>에 이어, 문학이 세상을 아름답게 한다는 믿음을 나누고자 <문학의 숲을 거닐다> <생일> <축복>을 펴냈습니다. 월간<샘터>2007.1
  • [박기철의 플레이볼] 롯데팬의 독특한 응원문화

    볼카운트 2-2, 주자 2·3루의 기회다. 투수가 던진 높은 커브를 타자가 받아친다. 타구는 우중간으로 날아가고 ‘와’하는 관중의 함성이 터진다. 그러나 타구는 미리 방향을 예측한 중견수가 겨우 세 발짝만 움직여서 손쉽게 잡아낸다. 관중의 함성은 ‘에이’하는 탄식으로 바뀐다.‘와’에서 ‘에이’로 바뀌는 시간은 관중들의 관전 경력을 보여준다. 필자의 기억으론 이 시간이 가장 짧았던 구장이 과거 부산의 구덕구장이다. 다른 구장은 타구가 정점에서 내려온 다음 그 자리에 수비하는 중견수가 있음을 보고 실망한다. 심한 곳은 혹시 공을 떨어뜨리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인지 중견수가 공을 잡을 때까지 함성이 계속된다. 그러나 구덕 팬들은 타구가 정점에 이르기도 전에 잡힐 것을 미리 알고, 실망의 탄식소리를 내뱉는다. 프로야구 초창기에는 홈팀이 질 경우 관중의 소요사태가 염려될 정도로 야구 자체보다는 팀의 승패에 목을 맨 관중(야구팬이 아닌)들이 상당수 있었다. 상대팀은 물론 심판들도 관중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숨어 있어야 했다. 그러나 구덕구장에서는 홈팀이 지더라도 상대팀이나 심판들이 마음 놓고 경기장을 나올 수 있었다. 롯데가 홈구장을 사직으로 옮긴 다음 이런 ‘야구도사’ 팬들의 비중은 줄었지만 독특한 응원문화를 개발해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파도타기 응원은 세계적으로 번졌다. 이전 파도타기 응원은 연고전식으로 리더가 있는 응원에서나 가능했다. 관중들이 자발적으로 파도를 탄 것은 사직 팬들이다. 보스턴이나 시카고의 팬들은 상대팀이 친 홈런공은 구장으로 다시 던져준다. 상대팀이 친 공을 갖지 않는다는 자부심의 표현이다. 하지만 부산 팬들은 그 이상의 좋은 문화를 만들어냈다. 파울볼이 관중석으로 날아오면 서로 잡으려고 싸우는 것은 똑같다. 하지만 누가 잡더라도 주변 관중들은 ‘아 주라!’를 외친다. 어린이에게 공을 선물하라는 압력이다. 부산의 골수팬들은 인기 경기의 입장권을 확보한 다음에는 구장에 들어가기를 서두르지 않는다. 주변의 ‘먹자 골목’에서 그날 경기를 예상하며 즐기다 시간에 임박해서야 들어간다. 그들은 야구장 안이라면 구태여 자리를 가리지 않고 즐길 줄 안다. 이밖에도 신문지나 야간 경기에서 라이터를 이용한 응원은 모두 부산이 원산지다. 이런 부산 팬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보스턴 레드삭스나 시카고 컵스의 팬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매일 “다시는 안 오겠다.”고 욕하며 경기장을 떠나지만 다음날 멀쩡하게 응원하는 한신 타이거스 팬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아무리 열성 팬이라도 1997년부터 8년간 6년을 꼴찌하는 팀 경기에 계속 와달라고 하기에는 염치가 없다. 올시즌에는 어느 팀과도 해볼 만하다. 경기력의 부활과 함께 사직의 독특한 응원도 다시 살아나기를 기대한다. ‘스포츠투아이’ 전무이사 tycobb@sports2i.com
  • [결혼이야기]조동기(28·현대모비스)·임미선(28·하남 동부여중 기간제 교사)

    [결혼이야기]조동기(28·현대모비스)·임미선(28·하남 동부여중 기간제 교사)

    1999년 여름, 우리는 실로 우연한 기회에 만났다. 여름방학때 학교(연세대) 도서관을 오가던 어느날 저녁 스타크래프트에 열중해 있던 친구와 PC방을 찾았다. 채팅을 하려고 유니텔에 접속했다.‘추억 만들기’라는 방에서 대화를 나누다 만난 사람이 ‘임미선’이라는 여학생이었다. 그녀는 대학 4학년, 고향은 울진이라고 했다. 대구에서 대학을 다니던 그녀는 여름방학을 이용해 임용시험 준비차 서울 고모댁에 올라 왔다는 등등 이야기를 나누기는 했지만, 그녀는 무척 냉랭하게 대했다.“참 잘났다.” 싶었지만 마음 한구석엔 왠지 만나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 그녀는 내 제안에 쉽게 동의했고, 다음날 2시쯤에 신촌에서 만났다. 처음엔 그녀가 쉽사리 마음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이 더위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거 하며, 까무잡잡하던 피부색이랑 비슷한 케이크를 먹는 것도 그랬다. 게다가 머리는 답답할 정도로 어찌나 길게 늘어뜨렸던지 손수 귀넘이를 해 주고 싶었다. 시간이 무척 더디 가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영화나 보자면 먼저 일어섰다. 영화를 보고 나자 그녀는 5시밖에 되지도 않았는데 집에 가야 한다며 휑하니 가버렸다. 첫 만남은 그렇게 엉성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녀가 내 안으로 자꾸 들어왔다. 모습이 머릿속에서 뱅뱅 돌았다. 한 번 더 만나자고 제안을 했고,8월 마지막 날 한강변에서 두 번째 만남을 가졌다. 여전히 분위기는 서먹했지만 선물로 준비했던 휴대전화를 주고서 헤어졌다. 그 후에도 그녀에 대한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내 안에 똬리를 틀고 앉았다. 연고전 때였다. 좋은 기회다 싶어 친구들과 함께 가자며 부탁을 했지만 한사코 거절했다. 안 되겠다 싶어 대구로 내려갔다. 몇 시간 동안 그녀와의 시간속으로 흠뻑 빠져버렸다. 그녀의 고모집을 향하는 택시 안에서 살며시 손을 잡았다. 그제서야 내 손에 ‘작은 우주’가 하나 들어왔다,‘그녀’라는. 무궁화호를 타고 서울로 향하는 내내 함께 했던 시간을 곱씹어 보았다. 그녀는 언제나 가슴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그녀 앞에 서면 봄날의 새털처럼 마음이 푸근해지고 가벼워지곤 했다.“넌 이제 내 꺼야!” 그녀는 졸업을 하고 큰 고모댁에서 임용시험 준비를 했고, 이후 6년 동안 가을날 알밤처럼 실한 사랑을 가꿔 왔다. 마침내 우리는 이번 주 일요일 결혼을 앞두고 있다. 결혼으로 새로운 사랑을 만들어가자고 약속했다. 그래서 우리의 사랑 만들기는 진행형이다.
  • [씨줄날줄] 동대문운동장

    나이가 들면 역사의 현장에서 퇴장해야 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닌가 보다.70년 넘게 스포츠 승부를 통해 한국인에게 환희와 탄식의 즐거움을 안겨주었던 서울 동대문운동장 축구장이 내년부터 주차장으로 바뀐다고 한다.낡고 작아 이용자가 거의 없는 시설을 거액의 수리비를 들여 유지하기보다는 폭주하는 주차장 수요를 충당하는 편이 훨씬 효율적일 것이란 판단을 서울시가 내린 모양이다. 한때 국내 최고의 종합경기장으로 명성을 날렸던 동대문운동장이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1984년 서울 잠실에 올림픽주경기장이 완공되면서부터다.서울을 대표하는 시설로서 걸맞았던 ‘서울운동장’이란 이름이 ‘동대문운동장’이란 이름으로 격하됐던 것도 이때부터다.그 이전까지 ‘서울운동장’은 육상,축구,야구,테니스,배구,수영 경기의 종합시설로 한국 스포츠의 요람이었다.월드컵 열기로 이어진 프로 축구의 열기가 시작된 곳도 이곳이었고 한국 프로야구를 탄생시킨 곳도 이곳이었다.프로 경기뿐만 아니라 프로 야구의 밑거름이 된 고교야구대회와 한국 엘리트 스포츠의 근간이었던 연고전(延高戰)등 아마추어 스포츠에도 동대문운동장은 문호를 활짝 개방하였다.그 시절 뜨거웠던 경기의 순간은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축제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뿐인가.수만명을 수용할 만한 공간이 없었던 광복 직후 동대문운동장은 대규모 군중 집회 장소로 유일한 곳이었다.이 때문에 1945년과 1946년에는 찬탁대회와 반탁대회가 열리기도 했다.또한 석가탄신일 연등대회가 이곳에서 시작되는 등 각종 시민축제의 중심이 되기도 했다. 현재 동대문운동장은 야구장은 고교야구나 실업야구 경기장으로,축구장은 생활체육공간이나 학생 체력측정 장소 정도로 활용되는 상황에서 향후 활용방안이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남산과 동대문패션타운을 잇는 문화상업지구의 중심축으로 교통광장화하자는 의견,동대문패션상가의 중심광장으로서 도시공원화 하자는 의견,현재와 같은 생활체육시설로 유지·발전시키자는 의견들이 그것이다. 이번 축구장의 주차장화는 한시적인 조치로 오는 2005년 이후 활용 계획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는 게 서울시측의 설명이다.1926년 ‘경성운동장’으로 출발한 체육시설 동대문운동장 자체가 살아있는 체육의 역사일 것이다.그 역사성을 살린 활용방안 논의를 기대해 본다. 신연숙 논설위원 yshin@
  • EBS 다큐3부작 ‘한국영화’, 한국영화 100년 과거와 미래

    1903년 6월23일자 황성신문에 한국 최초의 영화 광고가 실렸다.이를 기점으로 하면 새해는 영화가 본격적으로 상영된 지 꼭 100년 되는 해다.EBS는 이를 기념하여 13∼15일 50분 짜리 3부작 다큐멘터리 ‘한국영화’로 우리 영화의 과거를 돌아보고,미래를 조망한다.오후 11시30분. ‘한국영화’는 ‘국민배우’안성기가 자신의 체험을 곁들이며 진행할 예정.EBS 영화걸작선으로 방송된 150여편의 영화 자료말고도,20세기 초의 미공개 다큐멘터리와 일제강점기 극영화 등 귀중한 자료들을 선보인다.감독 배우 촬영 조명 편집 의상 등 각 분야의 원로에서 신예에 이르는 영화인 100여명과 인터뷰하여 숨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1부 ‘스크린 속의 영원한 빛,스타’(13일)는 한국영화 100년이 탄생시킨 스타를 소개한다.스크린 스타가 탄생한 것은 50년대 이후.영원한 ‘서민 아버지’김승호와 한국여인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최은희로부터 최무룡 김진규 신영균 김지미 신성일 엄앵란 등 60년대 스타들이 향수를 되살리고,70년대이후 대표적인 배우들도 소개한다.특히문희 윤정희 남정임 등 70년대의 ‘여배우 트로이카’등장을 영화사적으로 해석하고,80∼90년대 배우의 성장을 영화산업적으로 접근하는 등 영화 스타의 의미도 분석한다. 2부 ‘한국영화의 그림자,검열’(14일)은 검열의 아픔을 겪은 영화사를 돌아보고,그 해악을 공개한다.‘오발탄’은 세차례나 개봉·상영중지를 거듭했고,‘7인의 여 포로’는 인민군 군복이 멋있게 보인다는 이유로 감독이 구속됐다.‘바보들의 행진’은 시위장면 대신 연고전으로 메꿨으며,‘여왕벌’은 반미감정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아예 상영금지됐다.영화인들에게서 기막힌 사연을 들어보고,96년 헌법재판소가 검열을 위헌으로 판정함에 따라 만든 등급심의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안도 조명한다. 3부는 ‘한국영화의 힘,아리랑에서 친구까지’(15일).지난 99년 ‘쉬리’이후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40%의 관객점유율을 훨씬 넘어선 우리 영화의 문제점을 짚는다.영화자본의 변화와 영향을 살펴 보고,영화산업이 나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을 전문가와 현장 종사자들에게서 알아본다. 주현진기자 jhj@
  • [16대 국회 初選 대해부](1)민주화운동 그룹

    16대 국회에 진출하는 초선 의원은 모두 111명이다.민주화운동 그룹을 비롯,법조·행정·언론·기업·군 출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망라하고 있다. 이들은 하나같이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탈 보스정치·탈 계보화와 국회개혁을 다짐하고 있다.이들의 면면을 살펴보고 포부를 들어본다. 16대 국회의 새 인물 가운데 가장 관심을 끄는 그룹은 70·80년대의 민주화운동 그룹이다.숫자는 10여명에 불과하지만 소속 정당과 정파를 초월해 새로운 정치를 다짐하는 등 정치권에 새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민주화운동 그룹은 크게 재야 출신과 학생운동 출신으로 나눌 수 있다. 재야운동가 출신으로는 민주당의 이창복(李昌馥·강원 원주)·심재권(沈載權·서울 강동을)·이호웅(李浩雄·인천 남동을)·배기선(裵基善·부천 원미을)·이재정(李在禎·전국구)·한명숙(韓明淑·전국구) 당선자가 꼽힌다. ‘마지막 재야’로 불리는 이창복 당선자는 한 시대를 관통하며 재야 세력의 구심체 역할을 했다.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민주개혁국민연합 등 재야단체에서 공동의장 또는 상임대표라는 직책을 맡은명실상부한 재야운동권의 중심 인물이다.그는 “당과 정치권의 쇄신을 위해중요한 역할을 하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 심재권 당선자는 70년대 민주화운동의 최선봉에 섰다.수배와 구속,도피,망명생활로 젊은 시절을 보냈다.서울대 상대 재학중이던 71년 내란음모예비죄,80년 김대중내란음모사건에 연루돼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그는 “정의가강물처럼 흐르는 사회,평화가 강물처럼 흐르는 조국을 만드는 데 헌신하겠으며 정치꾼이 아닌 정치인의 모습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이재정·한명숙 당선자 역시 항상 민주화운동의 중심에 서 있었다.이 당선자는 “참여민주주의 정착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학생운동 출신으로는 민주당의 송영길(宋永吉·인천 계양)·임종석(任鍾晳·서울 성동) 당선자,한나라당의 김부겸(金富謙·경기 군포)·심재철(沈在哲·경기 안양 동안)·김영춘(金榮春·서울 광진갑)·이성헌(李性憲·서울 서대문갑) 당선자 등이 포진하고 있다. 맏형격인김부겸 당선자는 유신 반대와 광주민주화운동 관련 시위로 제적·구속·복학을 반복했다.민추협 부대변인을 거쳐 15대 때 민주당 후보로 과천·의왕에 출마했으나 쓴잔을 마셨다.김 당선자는 “무조건 당론에 따르는 거수기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심재철 당선자는 서울대 총학생회장출신으로 80년 ‘서울의 봄’때 김 당선자와 함께 학생운동을 이끌었다.그는 “옳은 것은 옳고,그른 것은 그르다고 말하는 정치를 하겠다”고 강조했다. 고대 총학생장 출신인 김영춘 당선자와 연대총학생장 출신인 송영길 당선자는 84년 연고전이 끝난 뒤 반독재 시위를 주도하는 등 학생운동을 이끌었다. 김 당선자는 “인사청문회 도입,특별감사제 도입 등 제도 보완에 힘쓰겠다”고 밝혔고,송 당선자는 “1인 보스정치를 극복하고,상식이 통하는 정치 풍토를 만드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16대 최연소 당선 기록을 세운 임종석 당선자는 89년 전대협의장 출신으로민주화운동을 통일운동으로 전환시키는 데 기여했다.그는 “민주화운동은 이제 시민운동으로 맥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참여정치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시민단체들의 정치 참여 확대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강동형 주현진기자 yunbin@
  • 대학가 가을 축제 ‘썰렁’/‘최악’ 취업난 영향 분위기 가라앉아

    ◎학교지원금 줄어 행사도 대폭 축소/도서관만 북적북적 “이런 분위기에서 축제는 무슨 축제입니까” 대학가 가을 축제가 썰렁한 분위기속에 치러지고 있다.학교 예산도 부족한데다 외부의 지원도 거의 없어 행사가 대폭 축소됐다.학생들의 관심도도 크게 떨어졌다.최악의 취업난으로 취업준비생 뿐 아니라 학교 전체의 분위기가 가라앉았기 때문이다. 지난 21일부터 27일까지 열린 ‘98 정기 연고전’도 마찬가지다.응원에 참가한 학생수가 예년의 절반으로 줄었다.고려대의 연습 응원전에는 800여명만이 참가했고 연세대는 300명이 채 안됐다.연세대가 개최한 ‘연고제맞이 길놀이’와 ‘개막제’ ‘가을문화제’등의 행사 참가도 저조했다. 이달 말까지 ‘청파문화제’를 여는 숙명여대는 단과대별 행사 외에 총학생회 주최 행사를 모두 없앴다.학교의 공식 지원금도 지난해에 비해 30%이상 줄었다.축제때마다 문을 열던 교내 주점도 사라졌다.스크린 설치에 돈이 많이 드는 영화제는 비디오 상영으로 바꿨다.문과대는 ‘대자보 전시회’만 열었다.대자보 내용도 실업자 문제를 담은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25일 끝난 동국대 ‘백상예술전’에서는 대부분의 단과대가 주점,학술제,문화제 등을 생략하고 체육대회만 열었다.한때 1,000만원에 이르던 학교 지원금이 올해는 300여만원에 불과했다.지난 24일과 25일 각각 끝난 동덕여대 대동제와 성신여대 문화제도 ‘취업박람회’ ‘여성실업대토론회’ 등의 행사가 주종을 이뤘다. 반면 대학 도서관은 빈자리가 없다.고려대 도서관 2,300여석은 학생들로 꽉 차고 있다.朴모양(24·경영학과 2년)은 “재학기간동안 가장 재미있는 행사가 고연전이지만 올해는 참가하지 않고 도서관에서 공부했다”고 말했다.
  • 연세대 춤 동아리 ‘하리(HARI)’

    ◎젊은이의 순수·발랄함 신명나는 율동으로…/재즈·록·브레이크댄스 등 종합 힙합 앤드 록댄스 개발/주2회 교내 잔디밭서 연습… 끝나면 록카페 찾아 ‘복습’/연고전 폐막식때 진가 발휘… 새달 첫 정기공연 앞두고 비지땀 “젊은이의 순수함과 발랄함을 춤으로 표현해 보세요” 연세대 춤동아리 ‘하리(HARI)’.국내 대학 가운데 처음으로 생긴 춤을 좋아하는 대학생들의 모임이다. ○오디션 거쳐 회원 선발 지난 4월 소규모로 시작한 동아리가 현재 63명의 회원으로 늘어났다.이들은 지금까지 교내에서 비공식적 공연을 여러번 했다.학생들의 호응은 의외로 좋았고 회원으로 가입하겠다는 학생들이 쇄도했다.급기야 오디션을 거쳐 회원을 선발하기에 이르렀다. 이들의 목적은 최신 유행곡에 맞춰 나름대로의 춤을 개발하는 것.하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춤은 힙합 앤드 락댄스.이는 재즈,락댄스,솔댄스,브레이크댄스 등 모든 춤을 합친 종합적인 춤이다. ○타대학생도 가입 문의 회원 홍희정양(19·인문학부 2년)은 “기존 가수들의 춤 흉내를 내고있는데불과하다는 비난의 말을 듣고 있어 앞으로는 새로운 춤 연구에 더 몰두할 생각”이라며 “학생들의 관심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하리의 진가는 지난달에 열린 고려대와의 정기전에서 나타났다.폐막식날 연세대 삼거리에서 펼쳐진 이들의 공연에 수많은 학생과 시민이 몰려 대성황을 이루었다.공연중 연발하는 실수를 보며 관객들은 그들의 순수함에 더욱 뜨거운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하리의 소문은 금새 퍼졌다.다른 대학 학생들도 가입하겠다며 문의를 해오고 있다.심지어 몇명의 고려대생이 가입했다. ○“춤은 생활의 활력소” 일주일에 두번 교내 잔디밭에 모여 연습을 한다.소형 카셋트에서 흘러 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다 보면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서로서로의 춤동작을 봐주며 하나하나 배우고 있다. 연습이 끝나면 뒷풀이로 락카페를 찾는다.여기서 회원들은 자신들이 그날 연습한 춤을 시험해보기도 한다.현재 회원들은 다음달 4일에 있을 첫 정기공연을 위해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회장 이준우군(22·경영학과 3년)은 “가무를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춤은 생활에 꼭 필요한 활력소”라며 “건전한 춤을 통해 대학생들의 자유스런 사상을 표현하고 싶다”고 말했다.
  • 연세대 소나기/“분위기 확실히 띄워줍니다”(동아리 탐방)

    ◎연·고전 등 학내외 행사 반주 단골/입단경쟁률 20대1… 입학보다 힘들어/작년 대학가요제 은상 배출 실력파 「2만 연세인이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소나기가 내린다?」 일기예보가 아니다.연세대 행사 때면 흥겨운 음악을 선사하는 동아리 「소나기」를 설명하는 수식어다. 소나기의 주임무는 매년 가을에 열리는 최대의 행사인 연고전에서 반주를 맡는 것이다.연고전이 열리는 경기장마다 흥을 돋우는 「분위기 메이커」의 역할을 톡톡히 해 학우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소나기는 지난 86년 창단된 열살의 소년동아리지만 지금까지 여러 차례 대외적인 음악제에 출전해 입상한 적이 있다.지난 해에는 「엇갈림 속에서」라는 곡으로 대학가요제에서 은상을 차지했고 지난 90년에는 「누군가」라는 곡으로 대학가요제에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하기도 했다. 소나기에 입단하기는 연세대에 입학하기보다 더 힘들다는 것이 주변의 평가다. 매년 학기초가 되면 소나기는 대대적으로 신입생을 모집한다.12명 정도 모집하는데 2백명 이상이 몰려 평균경쟁률도 20대1을웃돈다. 엄선된 학생이니 만큼 실력도 쟁쟁하다.소나기 출신 학생들이 음반을 내거나 사회에 진출,전문분야에서 활동하는 경우도 많다. 지난해 대학가요제 은상곡인 「엇갈림 속에서」의 보컬을 맡았던 이원석군(23·신학과 3년)은 올해 안에 독집앨범을 내기 위해 준비중이다. 또 소나기의 멤버인 표건수군(25·경영학과 4년)과 김상엽군(25·정외과 4년)이 주축이 된 「할리퀸」이라는 그룹은 지난주에 독자적인 음반을 냈다. 소나기의 총무 박주원군(22·도시공학과 2년)은 『연고전이 무산돼 아쉽지만 함께 모여 연습하는 것에 더욱 의미를 두고 있다』며 『올해는 소나기가 10주년이 되는 해로 더욱 더 열심히 노력해 훌륭한 음악인을 배출하는 동아리가 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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