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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산위 3개월 밀실작업/정년단축 뒷얘기

    ◎현안 산적한 교육부 대신 ‘총대’ 메/교육부 반발 우려 ‘3년’ 단축 검토 교원 정년단축 문제는 성격상 교육부가 맡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획예산위가 지난 3개월 동안 조심스레 추진해왔다.교육부가 대학입시제도 개혁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데다 주무 부처에서 추진할 경우 모양새가 좋지 않아 기획예산위가 ‘총대’를 메게 됐다. 이에 따라 대통령 직속기관인 기획위는 ‘윗분’의 뜻에 따라 3개월 전부터 태스크포스를 구성,은밀히 작업을 해왔다.공기업 민영화 등 공공부문 개혁작업이 기대에 못미친다는 비판을 의식하기도 했다. 기획위는 정년단축의 필요성에 대한 폭넓은 여론 검증작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교육부 예산으로 한국갤럽과 한국교육개발원에 찬반 여론조사를 의뢰했다.또한 자체적으로 나라살림 대화방에 접수된 의견을 살피고 전교조로 부터도 설문결과를 받았다. 대체적으로 학부모와 여론 선도층으로부터 70% 이상의 지지를 받고 교사들로부터도(연령 차이는 있지만) 과반수 이상의 찬성을 얻어냈다.그러나 외부에 미리 노출될까봐 내년도 예산편성시에도 정년단축에 따른 예산삭감분을 반영하지 않는 등 허허실실 작전을 쓰기도 했다. 陳稔 기획예산위원장은 사석에서 정년단축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고충을 털어놓기도 했다. 陳위원장은 최근 수시 협의를 해온 李海瓚 교육부 장관과 최종적으로 정년 5년 단축안에 합의했다.교육부에서는 교사들의 반발을 고려,당초 3년 정도 줄이길 희망했었다.기획위는 또한 대학교수의 정년단축 문제도 심도있게 검토했으나 재임용제도 등 자체 견제기능이 있다는 이유로 제외했다.
  • 정무위/國監 하이라이트

    ◎‘공정위 게좌추적권’ 뜨거운 논쟁/“돈세탁 적발위해 필요”“무분별한 사용 우려”/부당 내부거래 이의신청 “개혁 거부하는 태도” 질책 2일 열린 국회 정무위의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정감사에서는 여야 의원들이 공정위의 계좌추적권 부여와 재벌기업의 부당 내부거래를 놓고 입씨름을 계속했다. 특히 계좌추적권 부여에 대해서는 공동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 의원들 사이에 이견을 드러내 눈길을 끌었다. 국민회의 의원들이 하나같이 계좌추적권 부여 등 공정위 조사권한 강화를 주장한 반면 자민련 의원들은 시큰둥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소극적인 반대입장을 보였다. 국민회의 安東善 의원은 “공정위의 조사권한 강화는 민주적 시장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첫번째 준비작업”이라면서 “내부거래에 대한 계좌추적권이 없으면 금융기관을 통한 돈세탁을 적발하기 어렵다”고 도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하지만 자민련 李麟求 의원은 “계좌추적권 요구는 위험한 발상이며,예금자 비밀보호 등에 상당한 문제점이 있다”면서 “금융실명제법상 허용된 기관 외에도 선관위와 감사원·검찰청(마약)·공직자윤리위에도 제한적이나마 인정되고 있어 무분별한 사용이 우려되는 만큼 도입은 불가하다”고 주장했다. 재벌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관행에 대한 질문도 국감장을 뜨겁게 달궜다. 증인으로 채택된 孫炳斗 전경련부회장과 李龍煥 상무를 상대로 상호채무보증 해소방안과 빅딜의 지지부진,과징금 부과에 대한 이의신청 경위 등을 따졌다. 국민회의 蔡映錫 의원은 “5대그룹에 대한 1차 부당 내부거래조사 결과에 불복한 기업들의 이의신청을 분석해 보면 한결같이 관행화돼 왔던 거래이니 인정해 달라는 주장”이라며 “잘못된 관행은 타파해야 하는데도 이의신청을 하는 것은 개혁을 거부하겠다는 태도”라며 질책했다. 田允喆 공정위장은 “계좌추적권 등 공정위의 조사권한 강화는 시장경제를 달성하기 위한 첫번째 조건”이라면서 “기업들의 부당내부거래 근절을 위해 협조해 달라”고 말했다.
  • 규제개혁의 당위성(金在晟의 정가산책)

    “여러 지표상으로 볼 때는 살아나야 할 분위기인데도 경제가 기지개를 켜지 못하고 있어요. 중하위직 공무원의 태업과도 관계가 있지 않나 싶어요.” 국민회의 정세분석위 한 실무자의 푸념이다. 중하위직 공무원들이 ‘안 먹고 안 해준다’는 자세를 고수한다는 지적이다. 후진국형 경제발전에 적용되는 ‘부패의 역할’을 생각케 하는 분석이다. “규제가 많은 후진국에서는 부패가 경제발전에 일정부분 기여한다”는 역설(逆說)과도 연결된다. 우리의 경우 △정경유착은 해방후 대자본 형성을 가능케 했다 △뇌물이 생산활동에 걸림돌이 되는 각종 규제를 무력화했다 △권력의 보호가 성공을 보장하므로 투자촉진 효과도 가져다 주었다는 논리들이다. 그러나 역설이 영구적으로 통할 수는 없는 법. 게임의 룰이 지켜지지 않는 시장경제는 결국 IMF 체제를 불렀다. 이쯤되면 국민의 정부가 강도 높은 사정과 규제개혁을 동시에 추진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사정과 규제개혁은 동전의 앞뒷면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윤활유(뇌물)를 필요로 하는 불필요한 제도를 없앤다는 것이다. 그러나 관료집단의 칼자루인 규제를 없애기란 결코 만만치 않다. 칼자루를 놓치지 않으려는 이들의 수법은 다양하다. 이를테면 “팔당호 수질이 악화된 것도 주변지역 규제를 풀었기 때문”이라는 등 부작용 사례를 흘리는 것도 그중 하나다. 또 변리사회·세무사회·의사회 등 118개 사업자 단체를 앞세우기도 한다. 변호사회가 규제개혁위원회와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1,974건의 규제개혁 속에는 이들의 복수단체 허용,의무가입 폐지 등으로 이익집단화를 막는 것도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이들 사업자 단체는 각자 다양한 인맥을 통해 공동여당인 자민련과 국민회의 내부,심지어 내각에까지 영향력을 끼친다. 이에 국민회의는 관료집단의 반발을 무력화하기 위해 규제개혁위원회(공동위원장 金鍾泌 총리·李鎭卨 안동대 총장)에 힘을 실어 주어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고 있다. 규제개혁이 곧 우리사회의 부패사슬을 끊는 출발점이라는 뜻이다.
  • 金 대통령 “部處 위원회 여성 20%로”/국무회의

    ◎열띤 토론끝에 출연연 운영법안 보류 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진념 기획예산위원장이 발의한 ‘정부 출연 연구기관 등의 설립 운영 및 육성에 관한 법률안’이 보류돼 다음주 국무회의에 상정하기로 했을 정도였다고 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이 전했다. ○…金大中 대통령은 陳위원장이 발의한 법률안이 朴相千 법무장관의 이의제기로 보류되자 “59개 정부 출연기관에서 1만8,000명이 2조3,000억원을 쓰고 있다”고 지적한 뒤 “국무총리실에서 총괄하는 것은 좋지만,장관들의 의견을 조정할 필요성이 있다”며 재상정을 지시했다.또 田允喆 공정거래위원장에게는 “20∼30%의 국고낭비와 부실공사가 담합에 의해 생기고,공무원과 정치인의 부패가 뒤따른다”며 철저한 단속을 지적했다.기업의 내부거래에 대해서도 “이를 철저히 막아 경쟁력있는 기업만 살아나도록 해야 할 것”이라며 “경제개혁의 성패가 내부거래를 막는 것에 달려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尹厚淨 여성특위 위원장이 여성의 사회 진출방안에 대해보고하자 金대통령은 “정부 각 부처의 위원회에 연말까지 여성위원을 20% 배치토록 하라”고 지시했다.그는 “여성의 30% 진출은 대통령 공약사항”이라고 못박고 “여성특위 위원장은 필요한 여성명단을 만들어 추천토록 하고,각 부처도 이에 협력하라”고 당부했다. ○…끝으로 金대통령은 “국정감사를 볼 때 야당이 집권때 잘못한 일을 현정권이 한 것처럼 공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장관들은 책임소재를 밝히는 노력과 함께 답변요지를 언론에 배포하라”고 지시했다. 이날 처리된 안건은 다음과 같다. ■법률안 ▲공증인법 개정안 ▲한국국방연구원법 개정안 ▲지방문화원진흥법 개정안 ▲인삼산업법 개정안 ▲부정경쟁방지법 개정안 ▲컴퓨터프로그램보호법 개정안 ▲생활보호법 개정안 ▲폐기물 처리시설 설치 촉진 및 주변지역 지원법 개정안 ▲장애인고용촉진법 개정안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개정안 ▲한국노동교육원법 개정안 ▲한국산업인력공단법 개정안 ▲연안관리법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의 적용이 제외되는 부당한 공동행위등의 정비에 관한 법률안 ▲행정심판법 개정안 ■대통령령안 ▲국채법시행령 개정안 ▲학점인정 등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 ▲뇌연구촉진법 시행령안 ■일반안건 ▲중소기업은행에 대한 국유재산 현물출자안 ▲중국과의 형사사법공조 조약안 ▲이란과의 투자 증진 및 보호 협정안 ▲순직 소방공무원의 국립묘지 안장안 ▲영예수여안(박찬호·박세리 선수)
  • 새만금 간척사업 방향·환경문제 토론회 주제발표

    ◎“방조제공사 중단땐 오염 더 악화 생태계 손실 보완장치 수립 시급” 21C 전북발전연구원은 26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새만금 프로젝트 2020포럼’을 열고 새만금 간척사업의 개발방향과 환경문제 등에 대한 토론을 가졌다.‘환경문제는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새만금사업의 환경문제와 대응방안을 발표한 군산대학교 鄭炳坤 교수의 발표내용을 요약한다.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갯벌 잠식이 진행되면서 어획고가 격감하고 기후변화와 해수면의 상승 등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이에 따라 일부 환경단체들이 새만금사업의 백지화를 주장하면서 갯벌의 가치를 역설하고 있다.하지만 갯벌의 가치평가는 매우 복잡하다. 개발론자와 보호론자가 모두 동의할 수 있는 정확한 평가가 힘들다.특히 새만금지구의 해안습지 대부분은 일제 때 간척사업으로 사라졌으며 오늘날 육지로부터 유기물 및 각종 중금속의 유입이 늘고 있는 상황에서 그냥 방치해도 갯벌의 생산성 유지가 어렵다. 또 물막이 공사가 32% 진행된 상태에서 방조제공사를 중단하면 매립이상의 환경오염을 불러올 수 있다. 이미 방조제 축조에 따라 갯벌의 황폐화는 진행되고 있다.따라서 대안 없는 공사중단 주장은 무의미하며 생태적 손실을 보완할 면밀한 검토와 대응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 그러나 기존 하수처리시설이 불량한 상태에서 현재 추진중인 환경기초시설로는 수질오염의 주범인 영양염류 제거가 어려우며 금강호의 오염도를 감안하지 않은 희석수 도입계획도 효과를 거두기 힘들다. 무엇보다 새만금 내부개발계획을 확정하지 않고 수질보전대책을 시행하는 일은 예산낭비의 우려가 크다. 따라서 새만금지구가‘제2의 시화호’가 안되려면 환경관련 정책의 대폭 보완과 중앙정부의 재정지원을 통해 방조제공사를 끝내기 전에 수질보전을 위한 시설을 마무리해야 한다. 우선 수질보전을 가장 위협하는 영양염류 농도를 감소시키기 위해 유역내 비료사용의 제한,축산농가의 집단화,인공습지의 조성사업이 무엇보다 요구된다.하수관거 정비로 차집률을 늘리고 소규모 폐수처리시설을 유역 특성에 맞게 배치하여 다양한 오염원을 관리해야 한다.오염 가능성이 있는 주변지역을 특별대책지역으로 지정하여 질소·인 배출기준을 강화하는 등 환경오염 저감대책에 새만금사업의 성패가 달려있다는 인식과 실천이 따라야 한다.
  • 부패척결과 국민의식/李炫熙 성신여대 교수·한국사(서울광장)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는 말이 있다.로마문화의 위대성을 지적하는 의미다. 그런 로마가 망한 것이 무슨 이유인가.부정부패와 퇴폐·타락 때문이었다. 북송(北宋)의 왕안석은 신법(新法)을 통해 국가 부강을 제시했다.그중 주목되는 것은 부패척결이 선행되어야 나라를 온전히 유지할 수 있다고 하면서 부정 공직자는 상하 구분없이 철저히 색출,엄벌하고 백성(국민)도 부정부패의 연결 소지를 근절해야 한다고 역설한 대목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찬란했던 신라의 멸망이나 고려의 최후,조선조의 피침(被侵) 등도 따져보면 총체적 부정부패가 주요 원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결국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 볼 때 한 나라가 최후를 맞았던 근본 이유중 부정부패가 그 으뜸을 차지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오랫동안 문제가 돼왔음에도 해결하지 못한 부정부패를 어떻게 척결하여 대외적으로 한국의 신인도를 올릴 수 있을까. ○규제완화로 ‘관행’ 차단 첫째,각종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여 원천적으로 국민들이 담당 공직자와 업무상 은밀한 교섭·거래를 할 필요가 없도록 해야 한다.담당자가 칼자루를 쥐고 눈을 크게 뜨며 관련 서류를 몇번이고 다시 고쳐오게 한다든가 접수를 거부·지연시키는 등 공포적 분위기를 표출해서 ‘부정거래’를 유도하는 듯한 과거의 관행을 이제는 완전 차단해야 한다.각종 규제가 안 풀리기 때문에 공직자에게 아쉬운 거래를 부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인·허가 등 업무를 민영화해서 중하위직과의 상담 자체를 제도적으로 격리할 필요도 있다.많은 규제가 부패의 온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왕안석의 신법에서 지적됐듯이 부정부패를 일삼는 무리를 적발하면 법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일벌백계주의로 엄히 처벌하여 이런 부정한 일을 범하면 개인적으로 크나큰 불이익이 돌아온다는 자각심을 심어놓아야 한다.이 점은 다산 정약용도 ‘목민심서’에서 지적한 바 있다. 부정부패 관련자들을 얼마간 사회로부터 격리 수용해서 회개케 하는 것도 중요하다.그러나 그런 사람일수록 로비에 천재이기 때문에 상하 담당자와 막후 교섭으로 잠시뒤 원상복귀하는 사례를 목격하곤 한다.기소유예·보석·가석방·주거제한 형식으로 일단 풀려나 거리를 활보하는 파렴치한들을 볼 수 있다.뇌물받은 것을 숨겼다가 복역하고 나와 다시 잘 살 수 있다는 삐뚤어진 생각이 이런 악순환을 연출시키는 것이다. ○일벌백계주의 처벌을 셋째,아무리 공직자가 청렴하게 양심적으로,법대로 하려 해도 국민이 공직자를 악의 구렁텅이로 끌고 들어가는 경향도 있다.뇌물을 주어야 일이 잘 되고 빨리 된다는 빗나간 이기주의를 갖고 있는 국민의 의식이 개혁되거나 발상의 전환이 있지 않고서는 어느 정부이건 깨끗한 사회,맑고 명랑한 순리의 사회를 만들 수 없다.국민들이 정당한 절차와 방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려는 생각이 정착되어야 된다. 국민의 정부에서 마침 중하위 공직자에 대한 부패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매우 적절한 시기에 핵심적으로 착안한 것이다.위의 세가지 부정부패 척결 제안은 올바른 역사의식이 온 국민들에게 확산될 때 더욱 큰 힘을 발휘할 것이다.
  • 소선거구제 유지 시사/金 대통령 강원일보 회견

    金大中 대통령은 23일 “중선거구제를 실시하게 되면 당내에서 서로 다투고 돈도 훨씬 많이 드는데다 참신한 인사나 여성의 국회진출이 어렵다”면서 “소선거구제가 국제적으로나 국내적으로 지지를 받고있다”고 말해 정당명부제가 도입되더라도 소선거구제를 유지할 뜻임을 역설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창간 53주년을 맞은 강원일보와의 특별회견에서 “부정부패 척결과 함께 선거·정당 등 각 분야별 제도개혁을 통해 고효율 저비용의 생산적이고 투명한 정치를 구현해 나가겠다”고 강조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 황성신문과 동지적 관계(다시 태어난 ‘대한매일’:7)

    ◎일제 강점기 민족 이끈 ‘두바퀴’/친일비판·을사조약 반대 등 배일 역설/애국계몽·국채보상운동도 함께 주도/1910년 폐간때까지 항일의 구심점역 是日也放聲大哭(시일야방성대곡).흔히 을사조약이란 비극적 상황의 대명사로 통하는 황성신문의 논설이다.그러나 정작 ‘시일야방성대곡’에 얽힌 비참한 사연을 적나라하게 파헤쳐 국민의 반일 감정을 자극한 신문은 대한매일신보였음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이처럼 대한매일과 황성신문은 일제 강점기 험한 가시밭길을 함께 헤쳐간 민족의 양바퀴였다. 1905년 을사조약을 전후해 발간된 당시 신문들은 각각 뚜렷한 색채를 갖고 나름대로 목소리를 냈다고 할 수 있다.대한매일과 황성신문,그리고 제국신문 만세보 대한민보 국민신보 대한신문 경향신문 등이 그 대표적 매체들이다.신문 성격만큼이나 을사조약과 일제 침탈을 둘러싼 논조에선 극명하게 대립했다.또 의병활동과 애국계몽운동에 대해서도 현격한 논조 차이를 보였다.그러나 이 가운데 대한매일과 황성신문은 처음부터 일관되게 반일 논조를 확연하게드러낸 양대 산맥이었으며 공동운동도 마다하지 않았다. 1905년 11월3일 유신회와 진보회가 합동한 친일 단체 일진회가 발표한 이른바 ‘일진회선언서’에 대한 공박에서부터 같은 논조를 벌인 두 신문은 을사조약에 대한 무효화 투쟁에선 그야말로 하나가 됐다.조약 체결의 속사정과 강점 과정을 앞다투어 파헤쳐 격변기 상황을 객관적으로 읽어냈다고 평가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을사조약을 앞둔 시점에서 일진회 준동에 대한 공동보조는 그 시초랄 수 있다.일진회가 일본 침략 행동을 찬동·지지하고 이를 반대하는 여론을 공격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내자 두 신문은 이를 통렬히 반박하는 논설을 일제히 실었다.당시 정부에서도 선언서에 현혹되지 말 것을 훈령으로 고시할 정도였으나 일제의 득세에 따라 국민신보 대한신문 등 친일지들이 나타나고 언론도 완전한 대립 상태에 빠진다. 을사조약에 반대한 황성신문이 위기에 빠졌을 때는 대한매일이 유독 황성신문의 논조를 적극 지지했다.그해 11월20일 ‘시일야방성대곡’이 나간 뒤 張志淵 사장이 붙잡혀가고 정간 조치가 내려졌을 때였다.대한매일은 ‘황성의무’란 논설을 통해 저간 사정을 통렬히 비난하고 황성신문을 적극 찬양하고 나서 일반인에게 진실을 알렸다.조약 체결의 속사정을 파헤친 황성신문의 ‘신조약청체전말’을 호외로 발간해 세세하게 다시 싣고 무효화선언을 하기도 했다. 당시 제국신문이 을사조약에 대해 ‘한때 분함을 참으면 백년 화근을 면함이라’는 글을 싣고 대한일보가 황성신문의 ‘시일야방성대곡’ 논설을 ‘경거망동’으로 비난한 것을 보면 당시 대한매일의 강경한 논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의병운동에 대한 관점에선 다소 차이를 보인 게 사실이다.대한매일이 강한 논조를 편 데 비해 황성신문을 비롯한 나머지 신문들은 민중의 혁명적 변혁과 대중투쟁을 간과한 것으로 학계는 평가한다.대한매일이 지방소식란에 매일 의병투쟁 소식을 실은 데 비해 타지들은 ‘무익한 폭거’‘부질없는 행동’으로 돌렸다.황성신문조차도 1906년 5월20일자 논설 ‘의병들의 소요는 마땅히 빨리 진압돼야 한다’는 논설을 실을 정도였다.그나마 황성신문은 일본군의 의병 진압과 민간인 학대까지 찬성하지는 않았다. 애국계몽운동과 경제사정에 관해서는 두 신문이 한 길을 택했다.특히 교육발전과 일제의 경제적 침투에 반대하는 자주적 산업건설 대목에선 철저하게 같은 논조를 폈다.황성신문이 먼저 1906년 2월13일자 논설 ‘경고동포’에서 지식 보급,대중계몽의 의의와 그 절박함을 지적했다.대한매일도 이어 8월3일자 논설 ‘한국의 실업’에서 실업국민(實業國民)이 되기 위해 △자국 비용품은 자국에서 공급할 것과 △국산품 수출자가 될 것을 역설한 것은 그 대표적 예다.이같은 계몽운동은 두 신문이 국채보상운동의 최일선에 나서는 것으로 연결된다. 황성신문과 대한매일 두 신문은 1910년 폐간될 때까지 나라의 운명과 사회흐름을 예리하게 감지해 운동력을 키운 시대의 견인차인 것이다. ◎당시 親日紙 행각/을사조약이후 제국신문 등 변절 일제옹호 앞장 대한매일과 황성신문이 을사조약 무효화선언 등 항일투쟁의 기치를 올린 것과는 달리 친일 신문들은이같은 민족지들에 결사코 반대하며 일제를 옹호하고 나서 대조를 보인다. 일본인 경영의 국문지인 대한일보는 황성신문의 ‘시일야방성대곡’ 게재를 경거망동이라고 비난한 대표적 신문.張志淵이 구속에서 풀려나고 황성신문이 복간되자 ‘황성기자패론’과 ‘여장지연군’이란 제목의 글로 오히려 장지연의 논조가 그릇되며 고쳐야 한다고 강조하고 나섰다. 제국신문의 경우 자주독립을 주장한 민족지 성격이 강했으면서도 이때는 논조의 일관성을 잃은 것으로 비쳐진다.이 신문은 1904년 2월 강압적으로 체결된 한일의정서에 대해 “시정개정의 충고권이란 결국 침략의 제일보”라고 비판했다.그러나 을사조약이 체결된 뒤에는 태도를 바꿔 11월22∼23일 이틀에 걸쳐 ‘한때 분함을 참으면 백년 화근을 면함이라’는 글을 실었다.황성신문 정간사태에 대해서도 “과격한 논조로 나가면 탄압을 받아 신문 없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논조를 폈다. 1906년 1월 친일파의 영수 宋秉畯 李容九 등이 일진회 기관지로 발행한 국민신보는 처음부터 열렬한 친일로 나섰다.1906년 9월2일자 2면에 게재한 ‘궁문파엄’(宮門把嚴)이란 글은 단적인 예다.이 글은 “궁궐 문을 지키는 일을 힘써 수행해야 한다.혹시 협잡배가 각종 수단을 부려 군주의 총명을 막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대궐을 지키는 일본군에게 을사조약을 반대하는 신료의 침입을 막아 고종황제의 뜻이 외부로 퍼져나가지 못하도록 경계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민족지의 하나인 천도교계의 만세보는 경영난으로 친일 진영에 넘어가 대한신문으로 탈바꿈한 다음엔 입장을 바꾸었다.이 신문은 언론기관의 필요성을 인식한 李完用이 인수해 李人稙에게 발행을 맡긴 것으로 친일 내각의 옹호와 그 선전에 적극 나섰다.
  • 중하위직 공직자 기강/하늘이 무너져도 확립/金 대통령

    金大中 대통령은 22일 서울시청을 방문,高建 시장으로부터 업무현황을 보고받고 “공직사회의 부정부패를 척결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시장경제·사회정의·국가안보 등 아무 것도 안된다”고 지적하고 “하늘이 무너지는 한이 있더라도 없애겠다”며 중하위직 공무원들의 공직기강 확립을 역설했다. 金대통령은 또 “공무원은 반드시 봉급을 갖고 살아야 하고 정치인도 정상적인 돈을 갖고 정치를 해야 하며,정당도 합법자금으로 운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경찰 부정부패 척결 앞장서야”/金 대통령 경찰의 날 치사

    金大中 대통령은 21일 “경찰은 우리 사회의 불법,부조리와 부정부패를 척결함으로써 사회기강을 바로잡는 데 앞장서고 동시에 엄격한 자기개혁을 통해 스스로 기강을 확립함으로써 공직자로서의 수범을 국민 앞에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오전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경찰의 날’ 기념식에 참석,“국민이 ‘제2건국운동’의 국정개혁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협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법과 질서가 존중되고 사회 기강이 바로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경찰은 인권을 존중하고 권한을 남용하는 일이 절대 없어야 하며,다시는 이 땅에서 경찰의 정치개입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연설에 앞서 金대통령은 치안질서 확립에 공헌한 李大吉 경찰청 정보국장 등 5명에게 훈·포장을 수여하고,충남지방경찰청을 비롯한 5개 경찰관서를 표창했다.
  • 金宇中 회장 빅딜 ‘물밑 조율’/구조조정 급진전 뒷얘기

    ◎이건희 회장에 기아 포기 설득/현대엔 철도차량 등 양보 유도 ‘金宇中은 킹 메이커이자 재계의 총리’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재계의 7대 사업 구조조정이 지난 19일 철도차량과 발전설비의 일원화를 끝으로 ‘비교적’ 원만하게 일단락됐다.여기에는 金宇中 전경련 회장의 숨은 노력이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金회장은 외유중에도 짬을 내 막바지 빅딜을 조율했다.그는 지난 15일 중국 및 동유럽 출장을 떠났다.그러나 이 와중인 17일 오후 중국에서 극비리에 귀국했다.성사 직전에서 진통을 거듭하는 철도차량,발전설비 부문의 일원화를 조율하기 위해서였다.도착 즉시 서울 힐튼호텔에서 孫炳斗 전경련 부회장으로부터 사업구조조정 현황을 보고받았다.이어 5대 그룹 구조조정본부장들과 접촉을 갖고 협상을 완전 타결지었다.18일 오후 1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동유럽으로 출국했다. 金회장은 전경련 회장 직무대행을 맡은지 3개월만인 지난 9월16일 정식 취임했다.이후 정부와 재계를 잇는 다각도의 대화채널을 만들어 양측을 연결해 왔다.재계에는 신속한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역설했고,정부에는 구조조정에 필요한 시간을 달라고 양해를 구했다.특히 그는 기아차의 입찰과 관련,결과가 나오기 한참 전에 李健熙 삼성회장으로부터 ‘명예로운 퇴진’ 의사를 이끌어내기도 했다.鄭夢九 현대회장과는 별도 모임을 갖고 철도차량과 발전설비 부문에서 현대가 양보할 것을 요청,마침내 빅딜의 성사를 일구었다. 지난 15일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이례적으로 대상자 17명 가운데 16명이 나온 것도 金회장의 친화력이 빚어낸 산물이었다.그는 짧은 시간내 7대 업종의 구조조정을 이뤄냈다.자동차산업도 지론대로 2사 체제를 엮어냈다.
  • “경찰 깨끗해야 사회부패 척결”/내일 53주년 경찰의 날

    ◎金 대통령­모범경찰관 300명 청와대 초청 오찬 “부정부패는 용서하지 않고 쉼없이 척결해 나갈 것이다. 경찰도 국민들로부터 신임을 받도록 자체 기강을 확립해야 한다” 金大中 대통령이 19일 ‘제 53주년 경찰의 날(21일)’을 앞두고 모범 경찰관 300여명과 청와대 오찬을 함께 한 자리에서의 언급이다. 국민과 직접 접촉하는 중하위직 공무원의 핵심이 경찰이라고 판단해서인지 특히 이 부분을 강조하려고 했던 것 같다. “국민의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통령을 포함해 각료 등 상층부는 달라진 행정을 하고 있으나 아직도 중하위권 공직자는 문제가 있다”고 말문을 연 데서도 이를 감지할 수 있다. 金대통령은 “가끔 경찰관의 부정부패 등 불미스런 내용이 나올 때마다 온국민이 전체 경찰관을 불신한다”며 유치장에 수감된 폭력배와 경찰관이 함께 술을 마신 일 등 비위사실을 적시했다. 적은 봉급으로 생활하는 것이 안타까워 가슴이 아플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먼저 기강을 세우고 깨끗한 경찰이 되어야 사회의 부패도 척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경찰이 국민의 도움을 받으려면 국민의 신뢰를 먼저 얻어야 할 것”이라고도 역설했다. 金대통령은 이를 위한 경찰의 2가지 사명을 적시했다. 하나는 사회안녕 유지 및 민생치안 확립이었고,다른 하나는 국민의 기본권을 위한 민주경찰이었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경찰이 지난해 대선과 올 지방선거,국회의원 재·보선에서 정치개입과 야당탄압 시비에서 벗어나 민주경찰이 된 데 대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격려했다. 金대통령은 격려사를 마친 뒤 특별 초청된 5형제 경찰관의 모친인 李春秀 할머니(76·속초시 금호동)에게 고맙다는 뜻을 전하면서 “아들들을 경찰에 보낸 것을 보면 경찰이 좋기는 좋은 모양”이라고 말해 좌중을 웃겼다. 5형제는 강릉경찰서장인 金仁永 총경을 비롯 智永(포천경찰서장·총경),孝永(속초경찰서 경사),德永(강동경찰서 경감),俊永씨(동해경찰서 경장)이다.
  • 공직시험 여성 채용비율 20%로/내년부터

    ◎김 대통령 내일신문 회견/남북정상회담 언제든 환영 金大中대통령은 28일자 주간 ‘내일신문’과의 회견에서 “여성의 정치참여를 위해 여성에 대한 비례대표 후보 30% 할당제를 법제화할 예정이며 내년부터 각급 공직시험에서 여성채용 비율을 20%로 정하는 등 여성의 공직진출을 크게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0일 발매되는 이 주간지 회견에서 金대통령은 사정(司正)과 관련,“이는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국가사회의 체질과 구조를 갖추는 데 목적이 있다”고 강조한 뒤 “정부는 부정부패 척결작업을 일상적이고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나 대통령을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검찰을 앞세워 정치보복을 하는 일은 결코 있지 않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남북 정상회담 추진문제에 대해서는 “정상회담이 전부는 아니나 북한에서 모든 문제를 놓고 대화하자고 한다면 평양이든 서울이든 어느 곳에서나 정상회담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경제정책 결정 과정에 대해서도 언급,“경제장관들이 공동으로 결정하고 책임을 지는 현재의 의사결정 체계가 장기적으로 정책수립의 합리성과 자발성을 높이는 데 큰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TJ,칼럼니스트 데뷔/자민련보에 고정 코너 마련

    ◎첫 칼럼서 ‘하면 된다’ 역설 자민련 朴泰俊 총재가 ‘펜’을 들었다.18일 당보인 자민련보에 ‘TJ칼럼’을 처음 실었다.계속 쓸 생각이다.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고정칼럼이 된다.칼럼니스트로 데뷔한 셈이다. 첫 칼럼 제목은 ‘다시 일어서는 한국’으로 했다.‘하면 된다는 정신(Can do spirit)’이 주제다.부드러운 필치에 신경을 쓴 눈치다.한 측근은 “朴총재는 당원이나 국민들에게 솔직 담백하게 하고 싶은 얘기를 전달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朴총재는 이 글에서 여성 프로골퍼 朴세리선수의 ‘프로정신’을 거듭 강조했다.‘포철신화’도 은근히 곁들였다.“위기 속에서 양말을 벗어던지고 물 속에 들어가 끝내 기적 같은 역전타를 날린 朴선수의 스토리는 포철신화와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우리들의 과거로부터 얼마든지 풀어낼 수 있는 추억담”이라고 말했다.
  • 5대그룹 구조조정 여권 시각

    ◎與,‘제맘대로 빅딜’ 3각 협공 나섰다/청와대·2與,재계 ‘자율개혁’ 주장에 발끈/“빅딜에 경제사활 달려”… 정부개입 초읽기 여권이 ‘재벌 압박’에 착수했다.청와대,국민회의,자민련이 동시에 나섰다.15일 입을 맞춘 듯 일제히 직격탄을 쏘았다.3각 협공(挾攻)이다.대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정부 개입이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다.재벌들에게는 최대고비다. 전경련은 전날 ‘자율개혁’을 주장했다.정부 개입 기류에 대한 반발이다. 여권은 발끈했다.재계를 경제개혁의 걸림돌로 규정했다.구조조정 부진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강공으로 전환했다.개입에 앞서 사실상 ‘최후통첩’이다. 개입 시점은 12월이 될 전망이다.5대그룹은 11월 말까지 자율합의를 이뤄내도록 되어 있다.반도체와 발전설비 계열사에 대한 단일 경영주체를 선정하는 일 등이 핵심이다.그 때까지 직접 개입은 자제할 것 같다.그러나 현 단계에서부터 비교적 가벼운 금융제제 조치들은 충분히 예상되는 분위기다.재벌과의 힘겨루기에서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청와대가 먼저 나섰다.朴智元 청와대대변인은 “정부는 5대그룹의 구조조정에 대해 시장경제 원리를 존중한다”고 전제했다.“직접적인 간섭은 없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자율합의 시한까지는 맡겨두겠다는 뜻이다. 朴智元 대변인은 그러나 “정부가 할 수 있는 금감위 등을 통한 은행과의 관계는 행사하겠다”고 분명히 했다.간접적인 개입 의사를 내비친 대목이다. 여신중단,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대상 선정 등 강력한 제재조치가 예상된다. 朴대변인은 여론을 개입 명분으로 내세웠다.“재벌을 개혁하지 않으면 안된다” “재계가 시간을 벌어 개혁을 회피하려는 속셈이다”는 등 국민들의 항의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자민련 朴泰俊 총재는 연일 지원사격이다.이날도 “재벌들이 나라를 위해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꾸짖었다.이어 “경제를 살리고 국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규정했다. 朴총재는 이런 논리를 정부 개입 불가피 주장으로 이어갔다.“재벌들이 자율적으로 개혁하지 않으면 국가가 나설 도리밖에 없다”고 못박았다.“국가가 이를 방치하면 국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국민회의에서는 朴光泰 제2정조위원장이 ‘나팔수’로 나섰다.朴위원장은 “대기업들이 버티기로 일관하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어 “대기업 구조조정에 경제회생의 사활이 걸린 만큼 재벌들은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공급과잉 해소를 위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 풍전등화의 대한제국과 창간(다시 태어난 ‘대한매일’:2)

    ◎‘排日護國’ 민족혼 일깨운 횃불/여론조작 친일紙 득세하던 1904년/치외법권 혜택 裴說 발행인 내세워/첫호부터 日 야욕 고발한 민족지로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이하 대한매일)가 한국사 무대에 등장한 1904년은 일본의 한반도 병탄 야욕이 막바지에 달한 때였다.그해 2월8일 일제는 인천항에 정박한 러시아 군함 2척을 격침해 러일전쟁을 도발한다. 이를 빌미로 서울을 점령한 일본군은 한일의정서 체결을 강요,한반도에 주둔하면서 자유롭게 군사활동을 하는 권한을 획득한다.이어 7월20일에는 ‘군사경찰 훈령’을 공표해 ‘집회나 신문이 치안을 방해한다고 인정할 때는 그 정지를 명령하고 관계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마련한다. 배일(排日)민족언론의 숨통을 죌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이같은 올가미가 드러나기 이틀 전인 7월18일 대한매일은 그 거대한 족적의 첫걸음을 내디뎠다.당시 국내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발행하는 신문이 뒤섞여 있었다.한국인 신문(민족지)으로는 ‘황성신문’‘제국신문’이,일본인 신문(친일지)으로는 ‘한성신보’‘대한일보’‘대동신보’가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민족지들은 일본군 주둔 이후 갖가지 탄압에 시달려 활기를 잃은 반면 수적으로도 우세한 친일지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일제는 19세기 말 한반도 침략을 시작하면서 여론 조작수단으로 일본인 경영의 신문을 많이 발간했다.1881년 이래 한반도 전역에서 발간한 한글·일본어·영자 신문이 총 30여종에 이를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매일 창간은 한민족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은 희망을 주었다.발행인인 배설(裴說)이 치외법권을 누리는 영국인이어서 일제의 검열을 피할수 있을 뿐더러 발간 즉시 ‘한민족과 대한제국의 편에 서서 일제침략에 맞서는’태도를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한매일의 영문판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는 당시 유일한 일간 영자지여서 한반도 정세를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지지를 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크게 작용했다. 대한매일 창간 무렵 한민족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은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였다.일본은 6월6일 ‘한국인이 명백하게이용·경작하는 토지를 제외한 전국토’를 개간해 50년 동안 경영하는 권리를 달라고 대한제국 정부에 요구했다.표면상 개간권을 요청한 자는 일본 각료 출신인 나가모리(長森藤吉郞)였지만 실제로는 일제의 치밀한 ‘식민지화’ 계획의 하나로 추진된 것이다. 이 일이 알려지자 한반도는 당연히 들끓었다.요구를 받아들이면 적어도 국토의 6분의 1(당시 일본 외상의 발언)에서 많게는 3분의 2(윤치호 주장)까지 일본에 넘어가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아울러 황무지 개간을 내세워 일본인들이 떼지어 한반도로 몰려올 것도 불보듯 뻔한 사실이었다. 민족지들은 일제히 일본의 야욕을 비난했고 농광회사(農鑛會社),보안회(保安會)등의 단체가 생겨나 조직적인 반대운동을 시작했다.이같은 상황에 제동을 걸고자 일제는 ‘군사경찰 훈령’을 공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대한매일도 당연히 ‘황무지 개간’건 보도의 일선에 나섰다.현재 대한매일의 창간호부터 15호까지는 남아 있지 않고 제16호(1904년 8월4일자)가 가장 오래된 지면이다. 그 날짜 영문판 톱기사는일본의 영자지 ‘고베 크로니클’의 논설 ‘프로텍팅 코리아(Protecting Korea)’를 절반 가까이 전재했다.‘일본 정부는 외국인의 토지 소유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코리아에는 부당한 요구를 한다’는 기사를 자세히 소개한 뒤 대한매일은 ‘이같은 고발에 대해 일본 정부는 무슨 말로 대답할 것인가’라고 비판했다.이어 16일자에도 ‘나가모리 어게인(Nagamori Again)’(18일자 한글판 제목 ‘장삼씨의 문제 갱론이라’)이란 톱기사로 이 문제를 계속 거론한다. 대한매일이 배일 논조를 뚜렷이 하자 친일지들은 즉각 대한매일과 배설(裴說)을 비방하는 기사를 실었다.대한일보 10월5일자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이 신문은 ‘영국인 배설이 경성에서 발행하는 대한매일신보는…번번이 일본이 패전한다는 설을 논하고,러시아의 제2군이 이미 일본군의 후방을 차단하여 포위했으므로 머잖아 일본군이 대패하리라는 등의 거짓말을 싣고 있다’고 비난했다.이어 ‘이 영국인은 (일본)고베에서 장사꾼으로 생활하던 천인(賤人)이기로 전국(戰局)을 알 리가 없다’고 인신공격을 달았다. 이 신문은 이밖에도 11월10일자,12월23일자 등에서 대한매일을 ‘일본에게 공정하지 못하다’거나 심지어 ‘친러시아 기관지’라는 등의 악의에 찬 비난을 거듭 퍼부었다. 창간하자마자 민족지의 대표로 떠오른 대한매일신보.민족과 국가의 명운을 두 어깨에 짊어진 대한매일이 6년여 동안 일본제국주의를 상대로 벌인 대전쟁은 이처럼 막을 올렸다. ◎대한매일신보 발행 체제/영문·순한글 6면 합쇄/타블로이드판으로 출발 대한매일신보(1904.7.18∼1910.8.28)는 6년여 동안 4가지 체제로 발행됐다.창간시에는 영문판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The Korea Daily News) 4면과 순한글판인 대한매일신보 2면 등 모두 6면을 합쇄 형태로 냈다.지면 비율로는 2대1일이지만 영문판 4면 가운데 2면은 광고였으므로 처음부터 한글·영문 기사의 비중은 같게 출발했다.판형은 타블로이드판이다. 그즈음 영문으로 나온 정기간행물은 미국인 헐버트(Homer B.Hulbert)가 내는 월간지 ‘코리아 리뷰(Korea Review)’뿐이어서 일간지인 코리아 데일리 뉴스는 처음부터 널리 주목받았다. 영문·한글판 합쇄 체제는 다음해 5월10까지 이어졌으나 인쇄시설에 문제가 생겨 다섯달 동안 휴간한다.1905년 8월11일 속간하면서는 영문판과 국한문혼용판을 분리해 발행했다.2년쯤 뒤인 1907년 5월23일에는 한글판을 부활해 영문판·국한문혼용판·한글판 세 가지가 동시에 나왔다.우리 언론 사상 유일한 사례다. 裴說이 영국인 만함(Alfred Weekly Marnham)에게 신문사를 넘긴 며칠 뒤 영문판 발행이 중단돼 1908년 6월1일부터는 국한문판과 한글판 2종만을 내었다.영문판은 이듬해 복간되지만 곧 사라진다. 이같은 발행체제의 흐름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독자층이 넓어지면서 국한문판·한글판으로 점차 확대하다가 후기에는 일제의 압박이 거세지면서 영문판이 사라짐을 알 수 있다.1900년대 초 시대요구에 부응해 다양한 독자층의 욕구를 수용한 대한매일의 발행체제는 진실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대한매일신보 연구 현황/韓末 담아낸 시대그릇/각 분야별 연구 활발 대한매일신보에 대한 연구는 100여년 한국 언론사 연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대한매일신보가 이같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첫째 정치적 압력에 굴하지 않고 언론의 소임을 다한,우리 언론사에 거의 유일한 신문이었다는 원론적 의미에서다.둘째는 한말 우리의 사회상과 국제정세를 가장 정확하게 알려주고 있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대한매일에 대한 지금까지 연구는 우리 언론사 연구에서 항일과 관련,독립적으로 다뤄져온 부분도 많다.언론 자체 문제뿐 아니라 한말 우리의 시가(詩歌),한글,산업진흥,광고,자주의식,국제 외교사 등 다양한 분야로 연구 영역이 확대돼왔고 특히 80년대와 90년대 들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현재 대한매일신보만을 독립적으로 다룬 단행본은 △‘제국주의와 언론­배설·대한매일신보 및 한·영·일 관계’(구대열·이화여대출판부 1986) △‘대한매일신보 연구’(이광린 유재천 김학동 공저·서강대출판부 1986)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정진석·나남 1987) 등이 있다. 한말 저항시가연구서는 가장 많아 ‘대한매일신보 가사연구’(조현경·전남대 석사논문 1995),‘대한매일신보소재 가사문학연구’(유정선·이화여대 〃 1990),‘개화기의 저항시가연구’(박을수·경희대 박사논문 1984),‘우국가사 연구­대한매일을 중심으로’(김준태·고려대 석사논문 1980) 등이 있다.한글 신문에 대한 연구로는 ‘대한매일신보 국문판 연구’(오선화·이화여대 〃 1988)가 있다. 한말 대한매일신보가 산업진흥을 역설한 논설들에 대한 연구로 ‘대한매일신보의 논설에 나타난 실업진흥론’(이윤정·서울시립대 〃 1997)이,당시의 신문광고에 대한 연구로는 ‘대한매일신보에 나타난 광고에 관한 연구’(김영희·효성여대 〃)가 있다. 그밖에 ‘대한매일신보의 항일 자주의식연구’(김영애·성신여대 〃 1979),‘대한매일보에 나타난 의병 동향’(윤경숙·인하대 〃 1988),‘대한매일신보의 항일 언론활동’(권만용·건국대 〃 1993) 등이 있다. 또한 한말 국제관계를 다루는 논문들에는 특히 영국과 일본과의 관계에서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을 다루고 있다.
  • DJ 농촌사랑과 벼베기(청와대 취재수첩)

    네 차례의 대통령선거 때마다 金大中 대통령이 농촌에 쏟아부은 열정은 대단하다.지난 87년 평화민주당 대통령 후보때도 한복을 입고 경기 평택·송탄역 부근에서 “우리 평화민주당은 농민을 위한 정당입니다…”라고 외치던 모습이 생생하다.표를 얻기 위해 당연한 일 아니냐고 여길 수도 있겠지만 일찍이 농·어촌 부채탕감과 같은 과감한 공약을 내걸어 선거판을 요동치게 했던 적도 있다.‘어디서 어떻게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라며 허황한 공약으로 거세게 몰아붙이던 상대 후보 진영의 공세를 반추해보면 위협적이긴 위협적이었던 모양이다. 金대통령이 15일 경기 화성군 향남면 상신리 벼베기 현장을 찾은 일이 나름의 의미를 갖는 것도 이러한 ‘전력’ 때문이다. 그는 이날 농민들과 들녘에서 나락(金대통령은 벼를 이렇게 부른다)을 베고 얘기도 나눴다.돌아오는 길엔 축산농가인 팔탄면 해창리 홍원목장을 방문, 자동 젖짜기 시설 등 기계화 현장도 들러봤다. 金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3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에게 쌀의 자급자족은 무엇보다 국가안보와 직결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그리고 북상하는 태풍이 오기 전에 공무원,군인,학생들이 모두 나서 빨리 벼베기를 마치도록 하라는 독려도 잊지 않았다.또 애정을 갖고 일반농가는 물론 축산농가를 돕겠다는 다짐도 곁들였다. 이제 우리 농촌에서도 황금들녘의 논두렁에 앉아 농주(農酒)를 어울려 마시는 정취를 찾아보긴 어렵다.그래도 5,000년을 면면히 이어온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의 정신은 여전한 국정 현장이었다.
  • 善政을 누릴 권리/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서울광장)

    당신은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요? 최근 프랑스 주간지 ‘피가로 마가진’이 일반 국민 1,000명에게 물어본 질문이다.89%가 행복하다고 답변했고 8%는 불행하다고 응답했다고 한다.지금 같은 질문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던져진다면 결과는 어떻게 나올 것인가?그 답변의 내용이 두렵다. IMF 위기상황에서 당장 생존이 문제되는 다수의 한국인이 행복하다고 답변할리 만무하다.직장에서 쫓겨나고 임금이 깎이는 사람들에게 행복은 거리가 멀다.그러나 개인의 실업과 빈궁만이 불행의 지표는 아니다.우리들에게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불행감을 주는 일단의 책임은 사회전체의 분위기에도 있다. 부산 다대­만덕동 17만평 택지전환 특혜의혹 특별감사,퇴출은행 임직원 77명 수사의뢰,아이스하키 협회장 수뢰혐의 구속영장 청구,정덕진의 외화밀반출 눈감아준 공항경찰 구속….최근 며칠 사이 신문지면을 장식한 부패사건들.끝도 없이 이어지는 부정부패에 많은 국민들은 신물이 난다.스트레스를 절로 받게 되어 있다.모든 것이 썩었다는 느낌은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꺾어 놓는다. ○신물나는 ‘부패리스트’ 서양의 여러나라들은 언젠가부터 개인의 인권 리스트에 ‘선정을 누릴 권리’(right to good governance)를 올려놓기 시작했다.좋은 정치,좋은 통치를 누릴 권리를 온 국민들이 갖고 있다는 뜻이다.좋은 정치란 의문의 여지없이 정치인들이 국민에게 위임받은대로 공무를 깨끗하고 공정하게 처리하는 것을 의미한다.좋은 정치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고 삶의 질을 높인다.부패와 비리를 저지르고 나라의 곳간을 축내는 상황에서 좋은 정치를 기대하기란 불가능하다. 일본을 방문하고 돌아와 처음으로 국무회의를 주재한 金大中 대통령은 “국민은 모든 것을 참을 수 있으나 부정부패는 참지 못한다”면서 “전 내각이 총력을 다해 본격적으로 부정부패 척결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고 한다.정확한 현실진단이라고 할 수 있다.그러면서 대통령은 서울시의 한 공무원이 200억원을 부정축재한 사례를 “현정부에서 일어난 일은 아니지만”이라는 전제하에 인용하였다고 한다.대통령은 여전히 이런 전제를달면서 아직은 ‘자유’와 ‘여유’를 느꼈을지 모른다.그것은 단지 지난 정부에 모두 일어난 일들이므로. 그러나 새정부가 출범한지 이미 8개월째다.반년이 넘어 이제 ‘새 정부’라는 단어를 쓰기조차 어색하다.5년 단임의 8개월이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다.언제까지나 과거정부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언젠가부터 새정부에서 일어난 부패사건이 보도되기 시작할지 모른다.마음껏 수사하고 힘대로 비판할 수 있던 지난 정부하의 비리와는 차원이 달라진다.이제 입이 있어도 함부로 말하기조차 어려워질 것이다. ○부패방지법·특검제 도입을 그런 상황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비상한 노력이 필요하다.시민단체가 그토록 요구하는 부패방지법이 하루빨리 제정되어야 한다.반부패의 ‘만병통치약’이라는 그 법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지금 충성하는 검찰을 믿지 말고 독립된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단지 대통령 한 사람의 의지와 지시만으로 부패가 사라지고 공정한 수사가 이루어질 리 만무하다.대통령의 지시가 없더라도 부패 있는 곳에 수사는 이루어져야 마땅하다.이 왕도를 두고 비켜가는 새정부의 정책이 닿는 곳이 어디일지 두고 볼 일이다.우리 국민들도 이제 선정(善政)을 누릴 권리를 갖고 싶다.더 이상 줄지어 공직자들이 검찰청사로 불려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 조계종 훼불방지 특별법 추진/“법 이전 양심문제” 타종교 반대

    송월주 조계종 총무원장이 타종교 시설물에 대한 훼손범죄를 막기 위해 특별법 제정을 정부에 촉구하겠다고 밝힌데 대해 타종교지도자들은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어 그 귀추가 주목된다. 宋원장은 최근 불교주간지 「현대불교」가 창간4주년 기념으로 마련한 ‘종교화합 모색’ 주제의 종교지도자 지상좌담에서 “공경의 대상이자 민족문화유산인 종교시설물의 파괴행위는 엄중하게 처벌,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지덕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은 “현행 법령에 의해서도 처벌이 가능하며 법을 초월한 종교인들의 이해와 화합정신이 중요하다”고 반대의사를 내비쳤다. 김광욱 천도교 교령도 “종교의 본분은 사람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인도하는 것인데 법령을 만든다면 세상은 더욱 어지러워질 것”이라며 지덕회장의 발언에 동조했다. 김몽은 신부(한국종교인평화회의 회장) 역시 “종교는 초월적이고 내면적인 가치를 실현시키는 것인데 법률적인 제도에 의존하게 된다면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라며 특별법 제정에 반대했다. 이밖에 최근덕성균관장은 “자신의 종교를 내세워 누구나 개종의 대상으로 선택하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역설했으며 조정근 원불교 교정원장은 “서로 신앙하는 종교가 다르다 하더라도 배울 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 金 대통령 국제관함식 해상 사열 받아/우리 대통령으론 처음

    ◎“초전 필승” 안보 역설/美 등 12개국 61척 참가 金大中 대통령은 13일 정부수립 및 건군(建軍) 50주년을 맞아 진해만에서 실시된 해군 국제관함식에 참석했다.이번 관함식에는 한국형 구축함인 광개토대왕함과 잠수함 등 40여척과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호주 뉴질랜드 인도네시아 인도 등 11개국 21척의 함정이 참가했다. 관함식이란 국가원수가 자국의 군함을 한곳에 집결시켜 검열하는 의식으로 우리나라 대통령이 외국 함정까지 참여한 가운데 해상 사열을 받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행사는 진해군항 2부두에서 예포 21발이 발사되고 군악대의 연주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金대통령의 해군의장대 사열로 시작됐다. 각계 인사 8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의장행사에서는 金대통령이 탄 광개토왕함이 함정 앞을 지나갈때 각국의 승조원들은 자국 특유의 경례로 인사했다. 金대통령은 함상 오찬 자리에서 “군통수권자로서 국토방위에 한치의 허술함도 없이 국가안보를 확립하겠으며,만일의 경우 초전에 승리하는 태세를 갖추겠다”고 강조했다.○…관함식에서 단연 눈길을 끈 것은 미 항공모함 키티호크(8만1,000t급)와 일본의 최신예 미사일구축함 이지스함(7,250t급)의 위용. 행사 하이라이트는 한국 해군의 해상 사열과 화력 시범.한국 함정 40여척과 20여대의 항공기는 진해에서 부산 태종대 근해까지 운항한 뒤 1만여명의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대함 및 대잠사격,고속정과 헬기 기동시범 등 모든 해상훈련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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