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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클리 비즈] KT·포스코 새 CEO 스타일과 과제는…

    [위클리 비즈] KT·포스코 새 CEO 스타일과 과제는…

    국내 굴지의 기업인 KT와 포스코가 조직 혁신의 한 가운데에 섰다. KT는 이석채 사장이 키를 잡자마자 변화 속도를 내고 있다. 정준양 포스코 회장 후보자 역시 오는 27일 취임하면 대대적인 조직 다잡기에 나설 전망이다. 두 기업의 처한 상황이 비슷하다는 점에서 최고경영자(CEO)의 경영 스타일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두 기업의 CEO는 우선 선임(최종 후보 결정)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자격 시비, 도덕적 흠결 의혹에 휘말렸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전임 수장이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떠난 자리에 올랐다는 점도 같다. 민간 기업이지만 태생적으로 정부의 입김에서 아직은 완전하게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도 비슷하다. 조직을 이끌고 갈 방향과 해결해야 할 과제도 엇비슷하다. 기술혁신과 조직을 쇄신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두 CEO의 경영 스타일과 중점 추진 과제를 알아 본다. ■이석채 ‘속도경영’ 이석채 KT 신임 사장이 속전속결식 경영을 펼치고 있다. 지난달 14일 취임한 이 사장은 취임 일주 만인 20일 올해 통신업계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인 KT와 KTF의 합병을 전격 선언했다. 취임 뒤 합병 선언을 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다. 이같은 빠른 속도로 인해 당초 “시내망 분리 등의 조건이 붙어야 한다.”고 말했던 SK텔레콤도 “전제조건 없이 KT-KTF 합병 절대반대”로 입장을 바꿨다. 이에 앞서 이사장은 취임 당일 조직개편과 임원 인사를 했고 다음날에는 비상경영을 선포하며 ‘올 뉴 KT(All New KT)’를 만들자고 강조했다. 이 사장의 초반 속도경영은 취임 전부터 어느 정도 예상되기는 했다. 사장 취임 전 서울 우면동 KT연구소에 사장직 인수를 위한 ‘경영디자인 태스크포스(TF)’를 만들며 취임 이후를 준비해 왔다. 하지만 일련의 속도는 예상을 넘는 수준이다. 때문에 KT 내부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을 추구하는 이 사장 스타일답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 사장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추진력·기획력이다. 심사 숙고해서 결정하지만 일단 결정되고 나면 밀어붙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장 후보추천위원회도 이 사장의 KT 비전실현에 필요한 기획력, 성장동력을 위한 전략적 사고능력, 경영혁신 추진력, 정보통신 산업에 대한 이해도를 고려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사장은 정통 경제관료 출신으로 경제기획원 예산실장, 농림수산부 차관, 재정경제원 차관, 정보통신부 장관,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등 요직을 거치며 승승장구하다가 1996년 정보통신부 장관 시절 개인휴대통신(PCS) 사업자 선정 비리에 연루되면서 2002년에 구속됐지만 2006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하지만 힘들게 얻은 명예회복의 기회인 만큼 그만큼 더 철저히 준비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사장의 첫번째 도전인 ‘KT-KTF’ 합병은 아직까지는 순조롭게 진행하고 있다. 합병 승인여부를 결정할 방송통신위원회의 분위기는 KT에 유리한 상황이다. 이병기 방통위 상임위원은 개인 의견이지만 “합병으로 인해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면 정부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시내망 분리에 대해서도 “좀 더 논의해 보고 분석해야 할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취했다. 또다른 방통위 고위 관계자도 “기업이 살기 위해 결정한 것으로 정부에서 나서서 반대하기는 힘들다. 합병 뒤 독점 가능성도 크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SK텔레콤, LG텔레콤 등 경쟁사의 반발은 큰 상황이다. 때문에 신사업 투자와 경쟁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인가조건을 부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방통위가 60일 내에 합병심사 및 승인을 완료할 것을 전제로 KT는 5월18일을 ‘통합 KT’의 출범일로 목표로 하고 있다. 합병 뒤에도 조직개편 등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기존의 상품별로 되어 있던 조직을 홈고객부문, 기업고객부문 등 고객군 중심으로 재편했다. 사장의 경영지원을 위한 코퍼레이트센터(CC)도 신설했다. 아울러 11개 지역본부를 없애고 18개 마케팅단을 신설했다. 경영 지원 분야 인력 3000명을 현장으로 돌렸다. 조직개편의 핵심은 조직 슬림화다. 조직 슬림화를 통한 비용절감 때문이다. 이 사장은 취임사에서도 “단기적으로 본다면 생산성 향상과 비용 절감이 KT 부활의 유일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합병 뒤에는 SK텔레콤의 사내독립기업(CIC)을 도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개인, 홈고객부문, 기업부문을 CIC로 만들어 부문별 사장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 사업부문에서는 KT는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집 전화를 인터넷전화(VoIP)로 전환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음성통화를 할 수 있는 휴대인터넷 와이브로도 있다. 또 미디어본부를 이번 조직개편에서 독립부문화하는 등 인터넷TV(IPTV) 사업에도 무게를 두고 있다. 김효섭기자 newworld@seoul.co.kr ■정준양 ‘혁신경영’ #1:2007년 초 포스코 본사. 당시 정준양 포스코 사장(생산기술 부문장)은 이구택 회장에게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윤활유 부패 방지 기술 도입’에 관한 제안이었다. 이 회장은 고개를 갸우뚱한 뒤 한 마디 던졌다. “돈 되는 거냐? 돈 되는 것 위주로 해야 돼.” 정 사장은 단호했다. “신기술이란 돈이 될지 안 될지 따져서는 안됩니다. 고유의 기술이 있어야 중국을 따돌리고 일본을 따라 잡을 수 있습니다.” 결국 이 기술은 포항과 광양제철소에 적용돼 원가 절감 및 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2:정 사장은 새해를 맞아 포스코 건설 임직원들에게 메시지를 돌렸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혁신적인 자세가 필요하다.”며 글로벌 불황 속에서도 미래 성장사업 개척에 소홀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낭비를 줄일 것과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것도 강조했다. #3:정 사장은 90년대 초반 광양제철소 근무 당시 한 직원의 사연을 접했다. 연극인 출신의 이 직원은 사내 연극 동호회를 결성해 지역 주민들을 위한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땅한 장소가 없어 발을 굴렀다. 정 사장은 이례적으로 사내 백운아트홀을 무대로 쓰도록 도와 줬고, 이후 포스코는 지역 친화 기업으로서 이미지를 굳히는 계기를 마련했다. 포스코 호(號)의 새 선장이 될 정준양 포스코 사장의 향후 경영 전략을 엿볼 수 있는 일화들이다. 재계의 관심이 집중된 ‘정준양식 경영’은 ▲신기술 발굴 ▲내실 경영 ▲윤리 경영 ▲글로벌화 등이 핵심 화두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 사장은 지난달 29일 사외 이사들로 구성된 최고경영자(CEO) 추천위원회를 통해 차기 회장 후보로 추대되자 마자 포스코의 불황 타개책을 구상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포스코 관계자는 “사내 계열사 등의 실적 및 현황을 살피는 한편 이구택 회장으로 부터 경영 조언도 듣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정 사장은 기자들과 만나 “경제상황이 좋지 않아 걱정이 많고 책임감이 들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면서 “이 회장을 자주 만나고 있으며 앞으로 포스코 사옥(대치동)과 포스코건설 사옥(역삼동)을 오가며 업무인수 인계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 내부에서는 정 사장이 회장에 취임하면 최우선적으로 기술 혁신을 통한 내실 경영의 고삐를 죌 것으로 보고 있다. 정 사장은 34년간 철강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철강 엔지니어로 신기술 개발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 2004년 광양제철소장 시절부터 6시그마 등 혁신 조업기술 개발과 고부가가치 전략 제품 기술을 생산현장에 확대 적용해 왔다. 포스코 관계자는 “올해 7조 5000억원 투자 목표액 중 상당 부분을 포항 및 광양제철소 현장 신기술 개발에 쏟아 부을 것”으로 내다 봤다. 최근 정 사장은 포스코 건설 임원들에게 비용 절감을 목표로 “극한적 원가 절감 활동을 추진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포스코의 글로벌 경영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99년 유럽지역 EU사무소장으로 근무한 바 있는 정 사장은 직원들에게 ‘글로벌 기술 교류’를 강조해 왔다. 이에 따라 최근 착공을 앞두고 예정지를 바꿔야 하는 상황에 처한 베트남 제철소 및 인도 제철소 사업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기업 모토인 ‘윤리 경영’과 ‘사회공헌’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정평이 나 있는 정 사장은 최근 3개월간 포스코 건설 사장으로 있으면서 “경영 정책 수립과 프로젝트 추진을 포함한 모든 의사 결정은 엄정하고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며 그 성과는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면서 “어려운 때일 수록 소외된 이웃을 보살펴야 한다.”고 역설했다. 한편 포스코 사외 이사인 안철수 박사는 이구택 회장 사임 및 정 사장의 회장 후보 추대를 둘러싼 ‘정치적 외풍’의혹과 관련,“정치권의 개입에 관한 어떠한 조짐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폭력방지법 vs 날치기방지법

    폭력방지법 vs 날치기방지법

    지난 임시국회 당시 국회 폭력 사태를 계기로 촉발된 여야간 입법 신경전이 가열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28일 각각 토론회와 간담회를 갖고 각당의 이해관계가 반영된 법안 제출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한나라당은 폭력을 행사한 국회의원의 의원직 상실을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폭력방지특별법 제정을 주장했고, 민주당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발동을 어렵게 하는, 이른바 ‘날치기 방지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후 국회도서관 회의실에서 당 지도부가 참석한 가운데 ‘국회폭력 추방을 위한 토론회’를 가졌다. 국회폭력방지특별법 제정을 주도한 이범래 의원은 “국회폭력을 미화하고 ‘훈장’쯤으로 생각하는 의원들이 있다.”면서 “여야를 떠나 폭력 의원을 반드시 처벌하고 공직 사회에 영원히 진출할 수 없도록 공감대를 넓혀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자로 나온 한양대 이영해 교수는 “특별법뿐 아니라 국민소환제 도입 등 강력한 통제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2월 국회에 특별법을 제출할 방침이다. 민주당은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발동 요건을 대폭 강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29일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현행 직권상정 제도가 여야간 입법 대치과정에서 ‘다수당의 횡포에 날개를 달아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개정안은 국가 비상사태나 재난 등으로 상임위원회가 법안심사를 할 수 없는 경우 등에만 국한해 직권상정을 발동하고, 안건제안부터 직권상정까지 최소 30일의 기간을 두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주현진 구혜영기자 jhj@seoul.co.kr
  • [오바마정부 출범] “직면한 도전은 실제…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

    [오바마정부 출범] “직면한 도전은 실제…그러나 우리는 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는 ‘위기(crisis)’로 시작한다. 전임 대통령에 대한 감사 등 처음 몇 마디의 수사가 끝나면 바로 냉엄한 현실이 등장한다. ‘위기의 한 가운데’ ‘위기의 징후’ 등 네차례의 위기를 거론한다. 그리고는 “우리가 직면한 도전은 실제”라고 거듭 강조한다. “집들을 잃었고, 일자리가 사라졌고, 사업장들이 문을 닫았다….”는 대목에선 비장감까지 들게 한다. 그러나 뒤이어 ‘재건(remaking)’을 선언한다. “오늘을 시점으로 주저앉았던 우리 자신을 일으켜 세워, 먼지를 털고 미국을 재건하는 일을 다시 시작하자.”고 호소했다. 웬만한 문장은 ‘우리(We)’ ‘우리의(Our)’라는 단어로 시작할 만큼 공동체 의식을 고양하려 했다. “우리는, 미국은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어려운 시절 건국의 아버지들이 외우던 구절을 상기하자.”면서 ‘미래를 생각하자. 희망도 보이지 않는 추운 겨울이지만….’이라는 구절을 읊었다. ‘국가(nation)’라는 단어는 15번이나 썼다. ‘아메리카(America)’도 9번, ‘국민(people)’과 ‘일(work)’도 8번씩 사용했다. ‘희망(hope)’과 ‘경제(economy)’는 3차례만 나온다. 문장은 짧았고, 수사적 표현도 적었다. 외교에 대해서는 패권주의적 일방외교였다는 비판을 받았던 전임 조지 부시 행정부와 차별화했다. 미국이 미래의 평화와 인간의 존엄을 추구하는 모든 나라의 친구임을 선언하고, “다시 한번 (세계를) 이끌 자세가 돼있다.”고 강조했다. 경제에는 ‘빠른 행동’을 약속했다. “경제 상황은 대범하고 신속한 액션을 요구한다.”면서 취임 후 실행에 옮길 경기부양책의 골격을 재차 설명했다. 구체적인 실행계획으로 도로와 교량, 전력공급망, 디지털 회선 구축 등으로 대표되는 인프라 건설, 과학기술의 진흥과 보건의료의 질적 향상,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가능 에너지의 활용 확대 등을 예로 들었다. 이어 “경제의 성공은 단순히 국내총생산(GDP)의 규모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번영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부의 공정한 분배와 함께 개인의 성공을 위한 기회를 부여하는 데 중점을 둘 것임을 역설했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오바마 대통령 취임…美 새 희망의 시대로

    │워싱턴 김균미특파원│버락 후세인 오바마(47)가 20일(현지시간) 제44대 미국 대통령에 취임했다. 미국 233년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의 탄생이라는 새로운 역사의 장이 펼쳐졌다. 오바마 신임 대통령은 전 세계가 주목하는 가운데 행한 취임 연설에서 미국이 처한 경제적·외교적 어려움을 헤쳐나가기 위해 미국인들이 책임감을 갖고 하나가 될 것을 강조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이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몇년이 걸릴 수도 있고, 해결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있을 수 있지만 대통령부터 국민 한명 한명이 인내심을 갖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한다면 극복할 수 있다며 희망과 통합의 메시지를 던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400여년 전 건국의 아버지들이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딘 이후 독립과 건국, 남북전쟁, 2차례의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 미국인들이 극복했던 역경 등을 상기시키며, 건국 이념을 바탕으로 현재의 위기를 현명하게 대처해 나가는 데 힘을 모아 달라고 역설했다. 그는 또 인종과 이념, 세대 갈등의 골을 넘어 새로운 미국을 만들기 위해 국민들의 화합을 강조했다. 오바마 당선인은 이날 정오 워싱턴 시내 국회의사당 서쪽 건물에 마련된 취임식장에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의 주재로 취임 선서를 마친 뒤 대통령에 취임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자신이 정치 사표로 삼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의 성경에 손을 얹고 앞으로 4년간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성실히 나라를 이끌 것을 국민앞에 다짐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통합과 변화의 새로운 미국이 출발하는 역사적 현장을 보기 위해 미 전역에서 찾아온 200여만명의 시민들이 의사당 주변 야외공원(내셔널 몰)을 가득 메웠다. 오바마 신임 대통령과 미셸 여사는 백악관 입성 후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저녁에는 워싱턴 시내에서 열리는 10개 파티에 참석한다. 오바마 대통령은 21일부터 공식 업무를 시작한다. kmkim@seoul.co.kr
  • [서울광장] 그래도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우득정 논설위원

    [서울광장] 그래도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우득정 논설위원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올 초 ‘위기의 가정이 마침내 지갑을 닫기 시작했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금융위기가 불러온 미국 중산층의 생활변화를 집중조명했다. 이 신문은 아이다호 주 보이시에 사는 두 가정이 각종 생활비를 줄여 저축에 나서는 것을 사례로 들어 미국의 가계부채가 56년만에, 소비지출은 17년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며 ‘절약의 역설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침체로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으면서 업체들의 매출이 타격을 받는 등 근검절약과 저축률 상승이 도리어 미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학자 케인스가 70여년 전 설파한 절약의 역설현상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로 우리 경제가 지난해 4·4분기 큰 폭의 감소세로 돌아선 것으로 추정되는 가운데 올 1분기와 2분기에는 실물위기가 더욱 가시화될 전망이다. 한국은행은 올 상반기 4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했으나 지난 12월에 이미 1만 2000개의 일자리가 증발했다. 올해에는 일자리 소멸속도가 훨씬 가속화될 것 같다. 성장률도 당초 예상한 2%를 한참 밑돌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경기하강과 일자리 증발 속도를 제어하기 위해 감세와 재정 확대 등 내수진작책 총동원령을 내렸다. 하지만 추경 카드를 만지작거릴 정도로 수정예산안을 통해 마련한 실탄은 한 달만에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잇따른 공세적 금리인하로 금리정책 여력도 한계에 직면했다.  이명박 정부는 경제팀을 전면 교체하는 등 ‘전투모드’에 돌입했다. 이 대통령은 지하벙크에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주관하며 각부처 장관들을 독려하고 있다. 위기의식이 미흡하다고 수시로 질타한다. 동시에 ‘내복예찬론’을 펼치는 등 절약을 주문한다. 어린시절부터 몸에 밴 근검절약 습관이 발동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재계도 앞다퉈 조직을 슬림화하고 임직원의 월급을 깎는 등 절약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축소지향 풍조 확산은 경제주체들의 심리를 필요 이상으로 위축시키는 등 부작용이 더 크다.  따라서 당장 어렵다고 모두가 움츠려선 곤란하다. 재정 확대의 정책 목표는 내수진작이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부터 확장 투자는 아니어도 수요 회복에 대비한 선점 투자와 여유층의 소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희망 분위기를 유도해야 한다. 미국 일각에서는 주택가격 하락이 2006년부터 본격화된 점을 들어 구조조정 3년째를 맞는 올 하반기에는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경제의 70%를 차지하는 소비는 금융의 자금중개기능이 회복되면 빠른 속도로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국가경제 전체적으로 볼 땐 부차적인 필요조건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먼저 기업이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 교육·의료·관광 등과 같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의 투자가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 지금처럼 공무원들이 밑그림을 그린 뒤 기업더러 투자하라고 윽박지르는 식이어선 곤란하다. 투자의 주체인 기업에 주도권을 부여하고 정부는 규제 완화 등으로 뒷받침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시장논리다.  우리 경제가 절약의 역설이라는 늪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 대통령부터 지하벙크에서 벗어나야 한다. 침체의 골이 아무리 깊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끝나기 마련이다. 우리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다.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환경&에너지] “각국 자연환경 최대 활용 차별화된 개발 전략 필요”

    [환경&에너지] “각국 자연환경 최대 활용 차별화된 개발 전략 필요”

    │런던 이도운특파원│“나라에 따라 자연환경이 다른 만큼 주어진 환경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카본트러스트의 에너지 전문가인 데이비드 빈센트박사는 지난 연말 런던을 방문한 서울신문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국가마다 각각 차별화된 신·재생에너지 개발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카본트러스트는 영국 정부가 설립한 에너지 및 기후변화 관련 비즈니스의 연구, 개발, 투자 및 컨설팅 업체이다. 빈센트 박사는 카본트러스트의 프로젝트 담당 이사이다. ●에너지 구조 갖춰지지 않은 아프리카라면 태양광 빈센트 박사는 “아직 에너지 인프라스트럭처가 갖춰지지 않은 아프리카 국가라면 태양광 발전이 가장 적합하다.”고 말했다. 송전선을 새로 설치할 필요가 없이 전력이 필요한 곳에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면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빈센트 박사는 “따라서 아프리카 국가의 태양광 프로젝트는 대규모보다는 소규모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빈센트 박사는 또 “해안이 길고, 파도가 일정한 칠레의 경우라면 파력(Wave Energy)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서 “연구결과에 따르면 개발이 가능한 칠레의 해안 지역에서만 적어도 40기가와트(G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고 전했다. 화산지대인 아이슬란드가 지열로 전력과 난방을 해결하고, 바닷바람이 센 덴마크가 풍력 기술을 발전시키고, 물이 많은 노르웨이가 수력으로 발전량의 대부분을 충당하는 것 등이 모두 주어진 환경을 제대로 이용한 결과라고 빈센트 박사는 강조했다. ●해안 길고 파도 일정한 칠레는 파력 이용해야 빈센트 박사는 영국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전략을 묻자 “향후 5~10년은 풍력, 특히 해상풍력 발전소 건설 쪽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섬나라인 영국은 해안선이 길고, 바람도 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영국은 영토가 큰 국가가 아니어서 육지에서는 대형 풍력발전소를 건설할 만한 부지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현재 카본트러스트에서 3세대 태양전지라는 유기태양전지와 해조류를 이용한 바이오연료 등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대부분 국가 절약만으로도 에너지 소비20%↓” 그는 이어 “아직도 대부분의 신·재생에너지는 화석연료에 비해 비싸다.”면서 “우선은 모든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테크놀로지 개발을 통해 가격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빈센트 박사는 신·재생에너지와 달리 세계의 모든 나라가 공통된 전략을 가져야 하는 에너지 분야도 있다고 말했다. 바로 에너지 효율 향상이다. 빈센트 박사는 대부분의 국가가 절약만으로도 에너지 소비를 최소한 20% 줄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dawn@seoul.co.kr
  • [정윤수의 종횡무진] 하루키가 달리는 이유

    ‘인간실격’으로 유명한 일본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가 지독한 자기 환멸과 근원적인 절망감 때문에 자살했을 때, 동시대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는 이를 경멸하면서 말했다. “그런 성격 결함의 절반쯤은 냉수마찰이나 기계체조로 고칠 수 있다.” 그렇게 말한 미시마 유키오 역시 자살을 했다. 그런데 그 사유는 다자이 오사무와 다르다. 다자이 오사무가 내면에 대한 불안의식과 일본 사회의 과잉된 우경화에 시달리다 자살했다면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파시즘 부활을 외치며 할복 자살했다. 미시마 유키오의 대표작은 ‘금각사’. 이 소설은 유일무이한 미를 영원히 간직하기 위하여 불을 지르고 만다는 지극히 일본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을 쓴 뒤 미시마 유키오는 보디빌딩으로 제 육체를 단련하기 시작했다. 강력한 힘,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 세계, 군더더기 하나 없는 완벽한 힘과 미와 열정이 충일된 세계. 그것을 동경한 미시마 유키오는 현실 속에서 이를 충족하기 위해 군국주의 부활 운동에 뛰어들었다가 마침내 할복자살했다. 육체에 대한 과도한 몰입, 스포츠에 대한 지나친 열병, 강한 힘에 대한 한없는 동경. 이러한 것이 때로는 치명적으로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미시마 유키오는 보여준 것이다. 스포츠를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대단히 유연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역설적으로 가르쳐 준 것이다. 스포츠는 힘 자랑이 아니며 남에게 으스대기 위한 행동이 아니다. 완벽하고 강한 힘을 추구하는 것 못지않게 여리고 시들고 병든 것을 사랑해야 하는 것 역시 인간의 의무다. 건강한 스포츠 정신이란 이처럼 상반된 것에 대하여 균형 있는 시각을 갖는 것이다. 또 한 명의 일본 소설가가 있다. ‘상실의 시대’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다. 그는 널리 알려진 마라토너이다. 마라톤 풀코스를 25회나 완주하고 100㎞ 울트라마라톤에도 성공한 작가다. 소설가하면 골방에서 담배나 연신 피워대야 어울릴 법한데 하루키는 지금도 매일 같이 달리는 작가다. 전업 작가가 된 32살 때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하루 두 갑 이상 담배를 핀 체인스모커였으나 마라톤을 시작하면서 담배를 끊어 버렸다. 그는 매일 달린다.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은 하루 23시간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나머지 1시간은 달리기 위해 빼놓았다. 그는 예술이란 몸 안에 든 독을 빼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독을 빼내기 위해서 소설가는 건강해야 하는데 랭보, 다자이 오사무, 아쿠다가와 류노스케 같은 소설가는 그 독에 물려 죽은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최근 발간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문학사상 펴냄)에 보면 하루키는 언젠가 죽고 나면 묘비명에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고 써주길 바란다고 했다. 한번은 어느 친구가 “신체 장애가 있고 스포츠를 못하는 사람도 좀 생각하라.”고 지적을 했다. 하루키는 이에 대해 건강한 몸을 갖고 있으면서 그것을 무신경하게 함부로 다루는 사람이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1998년 6월 호놀룰루에서 열린 시각장애인 마라톤 15km 코스에 동반자로 참가한 적이 있다. 어느 시각장애인과 끈 하나로 연결를 마주 잡고 달린 것이다. 그 ‘행복한 경험’을 마친 후 하루키는 썼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장애가 신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신체를 진정으로 의식하는 것이다.” 이 겨울, 땀 흘리며 스포츠에 몰두하고 있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새해 덕담이다. 스포츠 평론가 prague@naver.com
  • 李대통령 “해머가 민주주의 때려”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최근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간 폭력적 대립과 관련, “회의실 문을 부수는 해머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때리고 제 머리와 가슴을 때리는 것같이 아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새해 들어 처음으로 가진 라디오연설에서 “어떻게 이룬 민주주의인데 이렇게 국제적 경멸의 대상이 되다니 대통령으로서 정말 부끄러웠다.”며 정치권, 특히 야권을 비판했다. 이 대통령은 “이번 국회 폭력사태는 우리 자부심에 찬물을 끼얹었을 뿐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불안케 만들었다.”면서 “온 국민이 지켜야 할 법을 만드는 국회에서 법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는다면 과연 어떻게 법치주의가 바로 설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혹시 아이들이 보면 어쩌나, 외국인들이 보면 어쩌나 마음 졸인 것이 비단 저만이 아닐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작심한 듯 국회를 향해 쓴소리를 거침없이 쏟아냈다. 이 대통령이 전에도 국회를 비판한 적이 있지만 노골적으로 국회를 향해 고강도 정치개혁 필요성을 역설한 것은 처음이다. 지난해 말 방송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등 핵심 쟁점법안 처리를 둘러싼 여야 대치과정에서 발생한 국회 폭력사태를 겨냥한 것이지만 국회 운영 전반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게 청와대측의 설명이다. 이 대통령이 야당의 반발을 예상하고도 이처럼 국회를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은 집권 2년차를 맞아 강력한 국정 드라이브를 걸려는 사전포석의 의미가 담겨 있다. 폭력국회에 대한 ‘싸늘한’ 국민의 시선을 우군 삼아 국회를 확실하게 견제하고 개혁함으로써 국정장악의 강력한 추동력을 확보하려는 뜻이 깔려 있다. 일각에선 이 대통령이 거대 여당으로서 각종 민생·개혁 법안 처리과정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이고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한나라당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이라는 시각도 없지 않다. 실제로 올해 첫 라디오연설의 주제를 정치 문제로 정하는 데 대한 부담도 있었지만 이 대통령이 연설팀에 강한 메시지를 주문하고 실제로 강한 문구를 직접 넣었다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 대통령이 그동안 수차례 국회에 법안 처리의 협조를 요청했는데도 결과는 좋지 않았다.”면서 “이 대통령이 야당인 민주당은 물론이고 한나라당에도 불만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 해외반출 회암사 유물 되찾기 청신호?

    해외반출 회암사 유물 되찾기 청신호?

    해외로 나간 문화재를 되찾으려는 움직임이 미국에서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불법으로 반출된 문화재를 반환받고자 미국을 방문하고 있는 혜문 스님(‘문화재 제자리찾기’ 사무총장)은 12일 “불교 문화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국보급 문화재가 해외에 흩어져 있는 상태인데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이곳에서 두세 달 더 머물며 보스턴 박물관, 뉴욕 버크 컬렉션, 하버드대학 박물관 등 관계자들과 환수 및 임대 협상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버크 컬렉션 소장 석가삼존도 확인 그는 서울신문과의 전화통화에서 “조선왕조실록 오대산사고본의 반환 노력이 ‘영구 기증’으로 봉합된 사례 등을 보면 현재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의 저항만큼이나 국내 학계 등의 부정적 인식이 문제가 되는 것 같다.”면서 “사회적·종교적 측면에서 패배주의를 벗어던지고 문화재가 본래 있던 자리를 찾도록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라고 말했다. 혜문 스님을 포함한 ‘해외 반출 문화재 반환을 위한 미국 방문단’은 지난 8일 미국에 도착했다. 뉴욕, 보스턴 등 미주 지역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의 현황과 보존 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경기 양주 회암사터에 세워지고 있는 박물관이 내년에 개관함에 따라 관련 유물을 돌려받거나 임대를 요청하는 작업 등을 벌이고 있다. 방문단은 일단 뉴욕 버크 컬렉션이 소장하고 있는 회암사 ‘석가삼존도’를 확인했다. 1565년 문정왕후가 회암사에 시주한 불화 400점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은 6점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조선 전기 불교미술의 정수로 꼽히는 이 불화는 현재 국내에는 국립중앙박물관에만 1점이 있을 뿐, 일본에 4점, 미국 버크 컬렉션에 1점이 있다. 뉴욕의 ‘석가삼존도’는 1990년 일본에서 발견돼 버크 컬렉션 측이 ‘합법적’으로 구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버크 컬렉션이 소장한 회암사 불화가 사진으로나마 국내에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방문단은 미국 버크 컬렉션과 접촉해 2010년 회암사지 박물관 개관에 맞춰 ‘석가삼존도’의 임대를 요청, 긍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이렇게 될 경우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회암사 불화 6점이 모두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인류 유산 제자리 돌려놓기 필요성 역설 이와 함께 미국 보스턴 미술관에 있는 ‘금은제 라마탑형 사리구’의 환수도 방문단 활동의 핵심적 과제다. 이 사리구는 회암사 또는 개성 화장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부처님 진신 사리 등 3여래 2조사의 사리가 함께 모셔져 있다. 1939년 도굴돼 일본에 반출된 뒤 미국 보스턴 미술관이 일본 도쿄에서 매입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혜문 스님은 “보스턴 박물관 관장을 만나 일단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얘기를 진행했다.”면서 “오는 3월까지 인류의 유산이 제자리에 있어야 할 필요성 등을 설명하고 협상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으로, 사회적·종교적 당위성을 가진 만큼 잘 진행될 것이라 믿고 있다.”고 기대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사설] 금속노조 대화제의 불씨 살려야 한다

    민주노총 산하 최대 산별조직인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이 정부와 재계에 대화를 제의하고 나섰다. 연간 2537시간에 이르는 세계 최장노동시간을 2200시간 이하로 제한해 일자리를 지켜 나가자는 것이다. 또 최저생계비 증액, 고용안정기금 조성, 재벌기업 잉여금 10% 사회 환원, 제조업 은행대출 의무화 등도 제안했다. 정부와 기업이 재원을 부담해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기본 생활급을 보장하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무리한 요구가 적지 않으나 노동계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이후 법과 원칙을 앞세워 민주노총과 소통을 거부해 왔다. 그 결과 이 대통령이 고통분담을 위한 노사정대타협을 역설했음에도 진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곤 했다. 더구나 올 상반기에는 비정규직보호법을 다시 손질하고,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 등을 담은 노사 핵심쟁점에 대해 합의점을 도출해야 한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노동부는 청와대의 눈치를 보느라 민주노총과의 대화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재벌친화적인 노동정책만 쏟아내 노동계와 단절의 골을 더욱 깊게 하고 있다. 정부가 진정 일자리 지키기에 열의가 있다면 노동계와 대화에 나서야 한다. 노사정의 한축인 노동계를 백안시해서는 해결책이 나올 수 없다. 금속노조의 요구가 과도하더라도 대화의 불씨마저 꺼뜨려선 안 된다. 대립적 노사관계의 극복을 위해서도 노사정이 조건없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 [단체장 새해 설계] 김태환 제주지사

    [단체장 새해 설계] 김태환 제주지사

    김태환 제주 도지사는 8일 “올해 내국인 관광카지노 도입을 본격 추진하고 지난해 무산된 영리법인 병원 허용도 재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지사는 “관광객 카지노는 사행성 등 일부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관광업계와 상공인 등이 지속적으로 도입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면서 “카지노 도입에 따른 관광 및 경제효과와 운영주체, 운영방법, 부작용 최소화 대책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도의회와 협의해 제주특별법 제4단계 제도 개선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난해 도민 반대 등으로 무산된 영리법인 병원에도 김 지사는 강한 애착을 드러냈다. 김 지사는 “제주가 국제자유도시가 되려면 교육·의료 인프라 등 외국인이 살 수 있는 여건을 개선해야 하지만 제주의 의료 인프라는 빈약해 특화된 전문병원을 비롯한 우수 의료기관의 유치가 절실하다.”면서 “요즘 의료관광산업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주목을 받고 있어 영리법인 병원을 도입하면 휴양과 관광이 어우러진 제주형 의료관광산업을 육성하는 데 큰 힘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군기지 문제 대화·설득으로 풀 것 특히 그는 “영리법인 병원은 공공 의료시스템에 변화를 주는 게 아니라 의료기관에 대한 투자가 개방된다는 의미에서 ‘투자개방형 병원’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며 “영리라는 용어에서 오는 오해와 우려들을 불식시켜 나가겠다.”고 역설했다. 사상 첫 관광객 600만 시대를 여는 등 제주 관광의 청사진도 제시했다. 김 지사는 “관광요금 인하, 풍성한 축제와 이벤트, 항공노선 증편 등으로 올해도 관광객을 적극 유치해 관광객 600만 시대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며 “세계자연유산 신상품 개발과 컨벤션센터 시내 면세점 활성화, 외국 전세기의 이·착륙료 지원 확대 등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제주 해군기지 관련된 갈등에 대해서 김 지사는 “해군기지는 오랫동안 사회적·정치적 갈등을 겪으면서 너무 큰 비용을 치렀고 이 문제를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은 모든 면에서 바람직하지 않고 그렇게 할 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올해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와도 만나 대화와 설득으로 해군기지 갈등을 풀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영어도시·해외 명문고 유치 주력 다음달 중 착공 예정인 제주영어교육도시 해외 명문고 유치에도 발벗고 나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지사는 “그동안 외국 명문 사립학교 4개국 10개교를 대상으로 실무협의를 한 결과 영국의 ‘노스 런던 칼리지어트 스쿨’ 등 3개 학교 관계자들이 제주를 방문했다.”면서 “‘킹스 칼리지 스쿨’ 관계자도 이달 중 제주를 방문하는 등 조만간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감귤 판매 지난해보다 14% 증가 제주 경제가 위기라는 지적에 대해 김 지사는 “지난해 관광객은 2007년보다 7% 늘었고, 감귤은 10㎏ 상자당 7000∼8000원 하던 것이 1만 3000원 안팎으로 크게 올랐고 건설 분야도 투자 유치가 호조를 보이며 지난해와 비교하면 실적이 14% 이상 좋아졌다.”면서 “무조건 ‘위기다.’, ‘바닥이다.’라고 과장되게 평가를 하는 게 오히려 지역 경제 회복을 더디게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지사는 “왜곡되거나 편향된 시각이 제주 경제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아닌지 새해를 맞이하며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김형준 정치비평] 경제살리기 보·혁합작 구상 제시하라

    [김형준 정치비평] 경제살리기 보·혁합작 구상 제시하라

    이명박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비상경제정부 구축을 포함한 국정운영의 4대 기본 방향을 제시했다. 비상경제정부와 관련해서는 대통령이 주재하는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신설했다. 문제는 누가 비상경제정부를 구성하느냐에 따라 실효성이 크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동아시아연구원이 경제·경영학자 100명에게 “이명박 정부가 경제위기를 잘 헤쳐 나갈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더니 부정적 응답이 34%로 긍정적 답변(29%)보다 많았다. 지난 1년 동안 경제정책에 대한 평가는 100점 만점에 48점에 그쳤다. 현 정부 집권 초기 72점과 비교해 볼 때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비슷한 시기에 코리아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경제 위기 대처 등 국정 수행을 잘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잘하고 있다.’ 32.8%, ‘잘못하고 있다.’ 53.2%로 부정적 평가가 여전히 우세했다.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강만수 장관과 현 경제팀을 바꿔야 하는지에 대해선 ‘찬성’ 55%, ‘반대’ 25%로 교체를 바라는 답변이 두 배 이상 많았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들이 주는 함의는 현 경제팀 가지고는 비상경제정부 자체를 구성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국민과 전문가들의 인식 속에 현 정부의 경제 운용에 상당히 문제가 있고, 위기극복 능력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없다는 믿음이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단순히 대통령이 의장이 되고 기획재정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대통령 경제특보,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고정 멤버로 해서 비상경제대책회의를 운영할 경우에는 국민을 감동시키기는커녕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비판과 조롱을 받을 수도 있다. 대통령이 진정 경제위기 극복에 정권의 운명과 미래를 건다면 시장과 여론으로부터 신뢰를 잃은 현 경제팀이 주축이 되는 비상대책회의보다는 강력하고 놀랄 만한 ‘경제 드림팀’을 만들어 운영할 필요가 있다. 이념, 계파, 지역, 연령, 과거 전력 등에 얽매이지 말고 경제를 살릴 수 있다면 악마와도 동침할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천하의 인재를 모아 드림팀을 구축해야 한다. 대통령이 진정성을 갖고 야당 대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전직 대통령들과 정치적 담판을 짓고 그들로부터 유능한 인재들을 천거받아 초당적이고 초계파적인 드림팀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한·미 FTA가 경제살리기의 알파요 오메가라면 이를 체결한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 정치적 오해를 풀고 협조를 구하는 일에도 주저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은 국정연설에서 경제를 살리기 위해 1분1초를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 연설에서는 여권의 인적 개편 문제를 포함한 ‘정치’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경제를 살리려면 일각이 여삼추일 텐데 폭력과 상쟁으로 얼룩진 국회를 방치하고서는 위기극복은 백년하청이 될 것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위기를 기회로 삼자.”고 외쳐도 “대한민국은 위기 때마다 성장했다.”고 역설해도 정치권이 대립과 공멸의 벽을 넘지 못하면 한국 경제의 재도약은 불가능할 것이다. 100년 만에 도래하는 세계적 경기 침체라는 비상한 상황에서 경제를 살리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경제수단이 아니라 국민을 감동시키는 정치 리더십이다. 대통령이 “이제 국회만 도와 주면 경제 살리기에 박차를 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정치권을 압박하는 자세로는 감동의 리더십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대통령이 쟁점 법안 처리에 대한 고압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정치권의 허를 찌르는 담대하고 깜짝 놀랄 만한 정치 구상을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진보세력에게 대담한 양보를 통해 ‘경제살리기 보·혁 합작’을 성사시킬수 있는 파격적인 구상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비우고 버림으로써 다시 채울 수 있는 지혜가 절실히 필요한 때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 교수
  • [단체장 새해 설계]박준영 전남지사

    [단체장 새해 설계]박준영 전남지사

    2009년 새해들어 박준영 전남지사가 던진 화두는 ‘일자리 만들기’다. 미래성장동력인 젊은층을 붙들어서 인구감소를 막겠다는 에두른 표현이다. 6일 집무실에서 만난 박 지사는 올 정부부처 시책 발표에 따른 전남도의 발빠른 대응방안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요약하자면 ‘선택과 집중’이다. 예산을 쪼개서 생색을 내는 반짝효과 대신에 미래를 내다본 가치투자로 부가가치를 키우는 쪽에 방점을 찍겠다고 했다. 도는 올 예산 4조 6000억원 가운데 상반기에 2조 8000억원을 조기집행한다. ●혁신·기업도시 등 성장거점 본격화 전남도가 천혜의 자연자원을 바탕으로 미래 가치투자의 최적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는 물론 조선산업 집적화단지 조성, 생물산업 등 친환경식품산업 육성, 해양리조트 개발, 실버산업 분야가 이미 뜬 상태다. 도는 경제대책추진협의회를 통해 공공물자 조달 때 지역제품 우선구매, 지역건설사 하도급 우선참여의무화 등을 결의했다. 상반기에 예산을 조기집행하기 위해 긴급입찰제, 선급금 확대 등 공공투자를 확대한다. 박 지사는 “공공투자 확대로 미래산업과 연구개발기업 육성, 혁신도시와 기업도시 등 성장거점 5대 신도시 본격 건설, 생명산업 확대, 농·식품 브랜드 가치 향상, 미래에너지 산업화 기반구축 등에 중점을 둔다.”고 강조했다. 도는 지난해 462개 기업 유치로 일자리 2만 3000개를 창출했다. 박 지사는 경제난으로 가장 타격을 받을 서민과 노인, 위기가정 등 8만여명에게 17개 지원사업(1조 2500억원)을 편다는 점에 주목해 달라고 주문했다. 또 서남권종합발전계획 국책사업 확정, 영산강 살리기 착공, 서남해안관광레저기업도시 개발 가시화, 무안산업교역형 기업도시 연말 착공, 광양항 서측배후단지 자유무역지대 확대, 나주에 들어설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에 탄소배출권 거래소 유치 등을 지역균형 발전의 추진체로 설명했다. ●2012여수박람회… 해양관광도시 기대 박 지사는 “전남의 섬과 바다, 해안선, 갯벌, 해조류, 어패류 등은 전남 발전의 동력이자 자산”이라며 해양시대를 맞는 전남의 미래상을 확신했다. 2012년 여수 세계박람회와 2010~16년 영암 포뮬러원 국제자동차경주대회 개최 등 2개 국제행사를 해양 관광산업 도약의 전환점으로 기대했다. 또 남해안권발전 종합계획을 연안권 개발을 위한 밑그림으로 완성해 정부의 선(SUN)벨트 구상과 연계하고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구체화를 하겠다고 역설했다. 박 지사는 “서남해안에 신재생 에너지벨트를 조성하고 조선산업, 해양관광, 해양생물 등 해양자원 개발과 산업화, 사회간접자본 확충을 통한 해양경영을 통해 지역의 부와 가치 창출로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강조했다. ●목욕탕 등 편의시설 있는 보건소 건립 올해 전남도는 174억원을 들여 시·군 보건소와 보건지소 41곳을 새로 짓는다. 박 지사는 “공직자들이 선출직 단체장을 의식해 주민의 요구대로 보건소를 늘릴 게 아니라 여기에 운동시설과 목욕탕 등 복합시설을 넣어 주민들이 편리하게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기존의 행정집행 관례를 지적했다. 나아가 해조류 공동처리장 보다는 저장시설이나 가공시설을 짓거나 재래시장 시설현대화 사업도 한 곳을 집중지원해 현대식 할인마트로 바꾸는 선택과 집중 식으로 행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지사는 “전남은 잠재력을 갖춘 ‘기회의 땅’에서 희망이 넘치는 ‘역동의 땅’으로 운명이 바뀌어 가고 있고 도민들이 ‘우리도 잘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자신감을 갖고 당장의 성과보다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무안 남기창기자 kcnam@seoul.co.kr
  •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연애시의 두 형식,기쁨의 윤리와 슬픔의 윤리 - 이병률과 김행숙의 시/박슬기

    1 잘못 보내진 연애편지 - 소통 불능이라는 아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있어서 나는 그에게 편지를 쓴다.날씨 이야기이거나 나의 일상 이야기이거나하는 내용의 편지다.그런데 편지는 며칠 후 수신자 부재라는 빨간 도장을 얹고 되돌아온다.혹은 망설이고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는데 잘못된 번호라는 안내 방송만이 내게 대답해 줄 때,나는 망연히 슬퍼진다. “면아 네 잘못을 용서하기로 했다”(‘별’)라고 어느 날 문자메시지 하나가 도착한다.그런데,받아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다.나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제가 아닙니다, 제가 아니란 말입니다.”라고 문자를 보낸다.이번엔 감옥에 면회를 와 달라는 내용을 담은 “어느 먼 지방 우체국 사서함번호가 적힌 편지”(‘아무것도 아닌 편지’)가 나에게 배달된다.봉투에는 버젓이 내 주소가 적혀 있지만,내 이름이 아니기에 나는 답장을 보낼 수가 없다.어찌할까 망설이며 오래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가,나는 “새 봉투에 또박또박 그의 주소를 적고 편지를 밀어넣고 풀칠을 하”여 되돌려 보낸다. 며칠 뒤 편지는 되돌아온다.이유는 알 수 없지만,편지를 보낸 이가 출옥했거나 아니면 그가 편지를 받는 것을 거부했기 때문일 것이다.그래서 나는 “그가 출감한 것으로 치자”라고 생각한다.편지를 받을 사람이 사라진 일로 그가 “모두를 미워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문자는 잘못 보내지고,편지는 받을 사람이 없다.당신이 떠났거나,죽었거나,혹은 나의 말을 거부하기 때문이다.나는 그래도 열심히 쓴다. 그러므로 이병률(‘당신은 어딘가로 가려한다’(2003),‘바람의 사생활’(2006))의 시는 붉은 도장을 얼굴에 찍고 울먹이는 편지다. 이런 경우도 있지 않을까? 나는 당신이 보고 싶고,당신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정성껏 썼다.답장이 오기는 왔는데 거기에는 비웃음과 냉소만 가득하다.전화를 걸었는데,그는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장광설을 늘어놓는다.그럴 때 나는 당신이 미쳤다고 생각해서 무서워지거나,당신에게 상처를 받아서 화가 날 것이다. 소년이 손에 칼을 꽉 쥐어서 피를 낸 다음에,은밀히 그것을 소녀에게 보여준다.자해하는 사람이 대개 그러하듯 다만 위로를 받고 싶을 뿐인데 소녀는 “연필이나 깎지 그러니?”(‘칼-사춘기 3’)라고 비웃어버린다.소년은 “아무것에도 놀라지 않는” 소녀가 무서워진다. 아이들이 울자 “공기가 가시처럼 찌르나봐요”(‘우는 아이’)라고 무심히 말할 때,“우수수 이별 눈물/ 받아도 마음의 용수철은 움직이지 않”(‘정석가’)을 때, 건네진 마음의 신호는 당신의 표면에서 미끄러져버린다.김행숙의 시집 ‘사춘기’는 당신의 표면에서 튕겨 나와 당신과 나 사이에서 떠도는 언어들이다.귀신들과 여자들과 사춘기 소년 소녀들이 서로에게 보내는 무수한 ‘사.랑.해.요.’와 ‘&.%.*.#’,그 어디로도 스며들지 못하고 떠도는 독백이자 대화.여기에는 내가 미쳤는지 당신이 미쳤는지 혹은 둘 다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하여간에 서로가 존재하는 양식이 너무 달라서 결코 서로를 알아 볼 수 없는 사태가 있다.“우편물을 잘못 배달했을지도”(‘다섯 살을 떠나며’) 모르지만,무슨 상관이랴.어차피 전달되지도 못할 말인 것을.그래서 “그뿐입니다.언제나 그뿐이에요.그뿐.”이라고 털어버릴 수밖에 없는 체념이 여기에 있다.그래도 나는 열심히 신호를 보내고 모르는 신호를 받는다.그러니 김행숙(‘사춘기’(2003),‘이별의 능력’(2007))의 시는 외계어로 쓰인 편지다. 한 편에서 편지는 도달점을 찾지 못하고 영원히 떠돌고 있고,한 편에서는 누구도 해독하지 못할 내용을 담은 편지가 마구잡이로 보내지고 받아진다.즉,둘 다 편지를 잘못 보낸 것이다.자신의 마음을 전달하려는 의도는 다르지 않은데,결코 마음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이 둘은 소통 불능이라는 아픔에 빠져 있다.그러나 타인에게 건네는 말이란,늘 잘못 보내지는 편지가 아닌가? 소통 불능의 아픔은 애당초에 해결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그래도 이들은 또 다시 편지를 보낸다.어떻게 하면 당신의 응답을 들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그러니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이들의 시는 연애편지다. 잘못 보내진. 2 김행숙, 기이한 변신담 - 함께 사라져 희미해지기 당신이 미쳤거나 귀신들이어서,즉 나와 전혀 다른 존재 방식을 가진 존재들일 때 나는 그에게 도달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그러나 그에게 도달하고자 한다면,존재를 겹쳐 놓는 방법밖에 없을 것이다.이러한 방법을 동일화라고 부르되,여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하나는 내가 그들이 되는 방법이고,또 하나는 그들로 하여금 나를 닮도록 만드는 방법이다.전자의 방법을 취하는 자가 있어,그가 귀신의 언어로 말하고 귀신의 흉내를 낸다면 우리는 그를 광인이라고 부른다.그러나 광인은 아직 ‘인간’,즉 미쳤을 뿐인 인간이기에 귀신의 존재 형식을 따르지 못한다.그는 다만 ‘흉내’만을 낼 뿐이다.만일에 정말로 전자가 되고자 한다면,죽는 길밖에 없다.죽어서 귀신이 될지 어떨지는 알지 못하므로,여기에는 존재를 건 도박이 있다.그러나 존재를 걸고 도박을 할 수 없기에 우리는 오랫동안 후자의 방법을 취해왔다.그것을 ‘계몽’이라고 부르거니와,계몽이란 나와 다른 존재 형식을 가진 타자들로 하여금 나의 존재 형식을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그것은 ‘귀신들린 남자에게서 귀신 쫓기’다. 예수가 귀신들린 남자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려 할 때,그들은 살려달라고 울부짖었다.귀신들을 불쌍히 여겨,예수는 그들로 하여금 근처에 모여 있던 돼지떼들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귀신들이 돼지떼 속에 들어가자,남자는 살았으되 미친 돼지떼는 스스로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복음서가 전하는 이 이야기는 계몽이 미신을 몰아낸 서사이자,예수라는 동일성이 어떻게 “미친 것”들을 세상 밖으로 몰아내었는가에 대한 서사이다.그런데, 돼지의 몸 속에 들어가 스스로 바다에 빠져 죽었던 그 미지의 타자들이 “목욕하는 여인”에게 돌아와서,뻔뻔하게도 “그대와 내가 복수이니 우리네”(‘귀신 이야기 3’)라고 말한다. 귀신이 말하는 이야기란,이런 식이다.“너는 십 년 만에 비춰보는 내 거울이야.난 그때 네가 꼭 죽을 줄만 알았는데,그래서 유감없이 탈출했는데,같이 죽기에는 피차 지겨웠으니깐,이해해?”(‘귀신 이야기 1’) 귀신은 나에게서 10년 전에 탈출했다.아니 정확하게 10년 전엔 귀신과 나는 한 몸이었다.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해할 수 없다.또한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지 알 수 없으므로 나는 “등을 구부릴 때,나는 의문형”(‘귀신 이야기 8’) 이 되는 방식으로 말한다.나는 왜 귀신의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으며,왜 귀신에게 내가 아는 언어로 대답할 수 없는가? 그것은 귀신이 나에게서 쫓겨난 존재이므로,그로 인해 그와 나의 세계가 너무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행숙의 시에서는 모든 존재하는 것들이 각각 다른 세계에 존재한다.그들은 결코 만날 수 없고 서로 소통할 수 없다.내가 보는 것은 “그를 비껴간 것”일 뿐이고,라디오에서 웃긴 이야기를 떠들어도 그 이야기를 알아들을 수 없기에 나는 “왜 웃는지 알 수 없”(‘타일’)다.마치 우리가 함께 모여 있는 공간에 여러 겹의 층이 있는데,우리는 각각 다른 층에 있어서 결코 만날 수 없는 것과도 같다.우리가 서로를 “총총히 관통해”도 “아무도 흔들리지 않”는 세계,이 세계에서 나는,그리고 당신은 다만 “분명히 장애물이 아니다.”(‘사소한 기록’)라는 정도의 인식만을 할 수 있을 뿐이다.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귀신들’인 것이다. 남자에게서 쫓겨나 울며 사라졌던 귀신들은 복음서의 명령을 어기고 돌아와 몰래 속삭인다.‘너와 나는 하나이니라’.돼지떼 속에 몰아 넣어 그들을 쫓아버린 계몽의 역사가 있었다.이를 니체를 따라 역사적 기억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내가 이 분리의 아픔을 넘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이다.그것은 망각이되,아픔을 반복적으로 각인시키는 역사적 기억을 잊는 일이다.너와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사태를 망각하고,나아가 나에게 혹은 당신에게 붙여진 이름들,계몽의 전략이 구사한 ‘이름붙이기’의 역사를 망각하는 일이다. “매일 밤 나는 눈을 감으면서 세상이 감기는 걸 느끼”고,“이렇게 간단히 세상이 바뀌는 걸 뭐,”(‘기억은 몰래 쌓인다’)하고 중얼거린다.망각을 통해 세상은 눈을 감는 것과 함께 도르르 감긴다.물론 이러한 망각은 백치의 그것이 아니다.당신과 내가 결코 만날 수 없다는 조건 자체를 망각함으로써 아픔의 기원을 ‘거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이 기원은 이미 ‘나’라는 주체의 존재 조건이 되었기 때문에 망각이란 나의 존재 자체를 망각하는 일과 동일해진다.나의 차원을 망각하고,당신의 차원을 망각해서 당신과 나 사이에 놓인 무한한 거리를 마치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버릴 때 비로소 나와 당신이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잊음,망각은 새로운 행위를 위한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눈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심 때문에 나는 점점 이상해진다는 말을 들었다.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자세히 좀 말해줄래? 요즘은 거울도 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나는 아직 남아 있는데 마치 다 녹았다는 듯이.(‘눈사람’) 밤의 정원.저녁의 정원에도 정혜,은혜,미혜 같은 명찰이 붙여진 나무들이 잎사귀,그림자,잎사귀,그림자를 드리우나.정원의 여자들은 어디로 다 흩어졌나.//우리들은 어디에 모여서 한 사람이 되었나.우리는 이곳까지 달려오면서 많은 이름들을 붙였다,뗐다,붙였다,투명테이프처럼.안녕.안녕.금방 버려진 이름들과 함께하였던 우리의 유머와 블랙.사랑과 블랙.우리들은 사랑스럽고 드디어 모호해진다.(‘한 사람3’) 눈사람에 대한 애정 때문에 눈사람을 닮아 가는 화자는 눈사람에 한없이 가까이 가고 있는 중이다.눈사람이란 태양이 비치면 녹아버리는 것,눈사람이 녹아서 사라지자 그에게 가까이 가 있는 나는 “마치 다 녹았다는 듯이” 거울이 얼굴을 비춰주지 않는다.눈사람과 나는 이런 식으로 만난다.나는 녹아내려서 눈사람이 되고,나의 정체성의 상징인 얼굴은 사라지지만 여전히 나는 “남아 있는” 존재다.그러나 나로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눈사람들에게 얼굴을 나누어 준 형태로,즉 눈사람들 속에 남아 있다.이 눈사람들은 “은혜,정혜”와 같은 이름표들을 달고 있는 “나무”와도 같은 존재들이고,우리는 서로를 만나기 위해 달려온다.붙였던 이름표들은 떼어도,붙여도 상관없는 얼굴들일 뿐이다.우리는 우리의 얼굴과 이름을 다 갖다 버리고서 서로에게 “달려오”고,그렇게 만나서 “우리들은 사랑스럽고 드디어 모호해”진다. 이 모호해짐,이것이 김행숙의 시에서 만남의 사태다.여기에는 당신과 나 사이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좁혀 버리는 시도가 있다.그러나 이 만남의 사태는 내가 당신-사물을 끌어당겨서 나를 닮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내가 당신-사물들에게 가서 나를 버리고 당신-사물이 되는 것도 아니다.그것은 다만 이미 녹아내려 주체라고 부를 수 없는 존재들,타자라고도 부를 수 없는 존재들이 서로를 향해 “양팔을 벌리고 한없이 다가가”서 “함께 희미해”지는 일(‘다정함의 세계’)일 뿐인 것이다. 함께 희미해지는 방법,당신과 내가 동시에 사라지는 일이 망각의 능동적 행위와 결부될 때,이는 “어쩌면 포개질지도 모를”(‘귀신이야기 8’) 가능성을 겨냥한다.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포개진다는 것,그것은 둘이자 하나이고 하나이자 모든 것이 되는 방법이다.나는 점점 작아지고 점점 사라져서 아이들의 말을 끝까지 다 들을 수 없는 상태로 그리고,“끝까지 다 듣지 못했”다는 말조차 완결할 수 없는 상태로 사라지지만(‘더 작은 사람’) 나는 소멸되지 않는다.나는 “더 작은 사람,더 작은 개,더 작은 도마뱀”에서 “파동의 굴절,만져지는 빗방울,빗방울”이 되다가 “돌풍과 함께 지나가는 소나기”가 되는 변신의 끝에 모든 것이 되어 세계를 뒤덮어 버린다.이러한 만남의 사태에서 사람과 사물의 존재 형식의 구별이란 없다.끝없이 그 존재 형식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그러니 한 사람은 한 “개찰구”도 되고,“안내 방송”도 되고,“주차장”도 되고, “기둥”도(‘한 사람 2’) 된다.그리고 ‘고양이’가 된다. 어쩜 너는 고양이처럼 생겼구나.죽은 고양이 미미,죽은 고양이 샤샤,죽은 고양이 쥬쥬,저 골목과 함께 사라지면서 그림자가 되는 고양이 라라를 정말이지 군데군데 닮았어.그런 고양이는 불멸의 이름이야.그들은 희미하게 사라졌기 때문이지. (‘소녀 고양이군을 만나다’) 고양이가 되겠다고 집을 뛰쳐 나온 ‘고양이군’은 한 고양이이면서도 여러 고양이이다.죽은 고양이 미미,샤샤,쥬쥬,라라를 “군데군데” 닮은 고양이이기 때문이다.이 고양이는 고양이들이 서로 달려와 함께 희미해졌을 때 나타나는 고양이이다.고양이군은 미미이자 샤샤이고, 쥬쥬이며 라라인 동시에 그 어느 고양이도 아니다.이 고양이들을 합쳐 놓는다고 해서 고양이군이 되지도 않는다.즉,고양이군은 고양이군이면서도 다른 모든 고양이인 것이다.이러한 ‘변신’은 그러므로 한 고양이의 변태 양상이 아니다.애당초에 ‘고양이군’이라는 변신의 원천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고양이군이 고양이가 되기 위해 집을 뛰쳐 나오기 전에도 “원래 고양이 새끼”(‘고양이군의 수업시대’)였던 것처럼 하나의 변신의 원천이 있어서,그것이 끊임없이 다른 것으로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하나에 여럿이 덧붙여져서 나타나는 고양이인 것이다.그러므로 고양이군이 “불멸의 이름”(‘고양이군의 25시’)이 된다고 했을 때,이는 고양이를 초월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고양이의 존재를 덮어씀으로써,덮어쓴 채 사라지면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 것이다. 그러므로,사라지면서 생성되는 많은 것들은 오직 그 ‘흔적’들일 뿐이다.그것은 나의 흔적이자 나에게 덧붙여진 타자의 흔적이고,동시에 타자에게 덧붙여진 나의 흔적이다.나와 타자는,이 둘은 서로의 기원이 혼종되어 있다는 점에서 동일하지만 결코 같지 않다.이는 실로 변신하되 변신하지 않는 변신,기이한 변신담인 것이다.김행숙의 시에서 이 기이한 변신의 최종 형태는 “해변의 얼굴”이다. 이 얼굴은 “코는 한없이 옆으로 펴지고”,“귀는 늘어져 늘어져”(‘얼굴의 몰락’) 있는 이상한 얼굴이고,녹아내렸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얼굴의 높이”를 회복할 수 없는 얼굴이다.“녹아내리는,끝없이 다가오는,웅웅웅웅 끓어오르는,” 얼굴(‘소수점 이하의 사람들’)은 이렇게 녹아내려서 한없이 펼쳐진 평면이 된다.이는 “얼굴로부터 넘친 얼굴”이자,우리 모두가 밟고 지나가고 그 위에서 휴가를 보내는 “해변”(‘검은 해변’)인 것이다.이 얼굴은 나의 얼굴이 깨어지는 순간,즉 사라지는 순간 나타나는 얼굴이고 ‘다른 모든 것’이 들어 있는 해변으로서의 얼굴이다.그것은 나의 얼굴이자 다른 모든 것의 얼굴이다. 우리의 현재를 구성해 온 과거의 역사를 접어버리면,새로운 미래가 열린다.세계를 깜빡 “정전”(‘정전’)시켜 버리고 당신과 나는 그 암흑의 거리를 넘어서 만난다.마구 달려와 잠깐 숨 죽였다가 팡!팡! 터져서 조각조각 떨어지는 얼굴들의 축제.분리의 사태라는 아픔의 기원을 망각하고,기어이 서로를 만나려는 열정에 찬 기쁜 얼굴들이 밤하늘의 폭죽처럼 마구 터져 쏟아져 내리는 것이다. 3 이병률, 바람의 삶 - 당신에게 가지 않는 방랑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이 세계가 아예 마치 없는 것처럼 깜빡 잊어버릴 수 없다면,아니,서로 다른 언어로 떠든다는 사실은 모른 체하더라도,나의 말을 전할 수 있는 당신이 ‘거기’에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이번 어느 가을날,/저는 열차를 타고/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편지를 띄웠습니다//5시 59분에 도착했다가/6시 14분에 발차합니다//하지만 플랫폼에 나오지 않았더군요/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뺀 십오 분 사이/겨울이 왔고/가을은 저물 대로 저물어/지상의 바닥까지 어둑어둑했습니다(‘장도 열차’) 나는 당신에게 편지를 보냈다.“열차를 타고 당신이 사는 델 지나친다”고 쓴 편지에는 아마 이런 내용이 덧붙어 있었을 것이다.‘부디 나와 주길 바랍니다’라고,혹은 ‘안 나와도 괜찮지만,혹시 시간이 된다면’.이 편지를 당신이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당신은 나오지 않는다.나는 오지 않는 “당신을 찾느라 차창 밖으로 목을” 길게 빼고 당신을 기다린다. 5시 59분에서 6시 14분까지,15분 동안 길게 뺀 삶 위로 가을이 내리고 겨울이 내려 마음이 어둑어둑해진다. 이병률에게 삶은 온전히 한 사람을 만나고 잊는데 바쳐진다.“만나는 데 삼십 년”,“잊는 데 삼십 년”(‘생의 절반’)이 걸린다면,생의 절반은 “홍수이거나 쑥대밭”이어서 이 삶이란 온전히 슬픔의 삶이 아닐 수 없다. 그러니 이 아픔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당신을 적극적으로 만나야 할 것이다.혹시 당신이 그 자리에 없어서 나의 편지를 받지 못했을지도 모르니,당신을 찾아 내 편지가 도달하는 곳에 앉혀 놓아야 할 것이다.그러나 이병률의 시는 전혀 다른 방식을 택한다. 당신을 향해 가는 열차가 아니라,당신을 지나치는 열차를 탄 것처럼,그는 당신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더라도 가급적 피한다. 그는 “깊은 밤 쓰레기 자루를 뒤지던 눈과/사랑을 하러 가는 눈과 마주”치자 “뒷걸음질”(‘累(루)’)을 치고,“이야기 좀 할 수 있을까요”(‘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을 건네는 당신에게 가지 않는다.낯선 타국에서 만난 동양 사내가 말을 건네자 “고개를 저을 뿐 그에게 왜 혼자냐고 묻지 않”(‘동유럽종단열차’)음으로써 대화를 거부한다. 나는 당신과의 거리를 좁히기를 원하지 않는다.당신과 만나기를 원하지 않고,오히려 당신이 더 “멀리 먼 곳으로 갔으면 하고”(‘겹’) 그래서 “어디 더 더 먼 곳에서 자신을 데리러 와달라고 했으면”하고 바란다.행여나 약속을 하더라도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다가 “한 한 시간 돌처럼 앉아 있다 돌아온다면/여한이 없겠다”면서,“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화분’)라고 고백한다.당신과 이별한 사태,멀리 있는 당신을 더 멀리 보내고 당신을 결코 만날 수 없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화자는 당신과의 거리를 점점 더 벌려 놓는다.이러한 방식을 아픔에 대한 ‘승인’의 방식이라도 해도 좋겠다.당신과 내가 이별한 상태,결코 만날 수 없는 존재론적 조건 자체를 승인함으로써 출발하는 것이다.여기에 걸려 있는 것은 오지 않는 당신에 대한 그리움과 이후의 만남의 약속에 대한 열망을 무한히 확대하는 것이다.그러니 이러한 방식은 아픔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다.아픔에 복종하는 자는 아픔의 원인을 설정해 놓고 끊임없이 여기에 비난을 가하는 자이기 때문이다.비난은 아픔을 낳고,아픔은 다시 비난을 낳으니,이 사람은 결코 아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아픔을 ‘승인’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수용하려는 자세,당신의 어떠한 존재 조건도 받아들이겠다는 일종의 결의가 있다.나는 당신과 나의 거리를 좁히지 않는다.당신을 내가 원하는 자리에 놓겠다는 것은 당신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존재하도록 만들겠다는 폭력이기 때문이다.나는 당신을 그렇게 다루기를 원하지 않는다.그러나 이는 내가 당신에게 한량없이 베푸는 호의가 아닌데,당신이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존재하기 때문이다. 애초 내가 맡은 일은 벽에 그려진 그림의 원본을 추적하여 도화지에 옮겨 그리는 일이었다(…)처음 한 일은 붓으로 벽을 터는 일이었다 벽에다 말을 걸듯 천천히//도저히 겹치지 않는 다른 그림이 나왔다(…)벽을 찔러 조심스레 들어내어 박물관으로 옮기면서 육백여 년 동안 그려진 그림이 수십 겹이라는 사실에 미어지는 걸 받치느라 나는 가매지고 무거워진다 책 냄새를 맡는다 살 냄새였던가 (‘별의 각질’) 한 오만 년쯤 걸어왔다며 내 앞에 우뚝 선 사람이 있다면 어쩔테냐 그 사람 내 사람이 되어 한 만 년쯤 살자고 조른다면 어쩔테냐(…) 그 사람이 걸어왔다는 오만 년이, 오만 년 세월을 지켜온 지구의 나무와 무덤과 이파리와 별과 짐승의 꼬리로도 다 가릴 수 없는 넓이와 기럭지라면 그때 문득 죄지은 생각으로 오만 년을 거슬러 혼자 걸어갈 수 있겠느냐 (‘인기척’) 벽에 그려진 그림의 원본을 추적하여 옮겨 그리는 일을 맡은 한 사람이 있다.그는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먼지 밑에 숨어 있는 그림의 원본을 조심스레 드러내고 싶었기에,“벽에다 말을 걸듯 천천히” 붓질을 한다.이토록 당신을 만나고 당신의 깊은 곳까지 알기 위해서는 조심스럽게,천천히 말을 걸어야 하는 법이다.그런데 이렇게 말을 걸자,예기치 못하게 “도저히 겹치지 않는 다른 그림이” 출현한다.한 그림 밑에 그림이 있고,또 그 그림 밑에 다른 그림이 있어서 벽에 그려진 그림은 “수십 겹”인 것이다.여기서 그림의 원본을 추적하는 일은 불가능하다.애초에 원본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이러한 수십 겹의 그림을 무시하고 하나의 원본을 찾아내어 도화지에 옮겨 그린다면,그림은 파괴되어 버릴 것이다. 당신을 아는 일이 그러하지 않겠는가.당신은 오랜 세월 동안 겹겹이 쌓여 온 존재이니,섣불리 ‘이것이 당신이오’라고 말할 수 없다.말할 수 없기에,당신을 일러 수십 겹의 각질을 가진 ‘별’이라고 부른다.내가 볼 수 있는 것은 다만 별을 둘러싸고 있는 ‘각질’일 뿐이다.그러니 화자는 그림을 도화지에 옮기지 못하고 벽 전체를 들어내면서 “미어지는 걸 받치느라” “가매지고 무거워진다”.당신을 알 수 없는 상태,결코 당신을 만날 수 없는 사태에 대한 슬픔의 무거움이 여기에 있다. 당신은 도저히 내가 알 수 없는 존재로 나에게 모습을 드러낸다.육백여 년 동안 겹이 된 그림처럼 “한 오만 년쯤 걸어”서 나에게 온다.당신은 나에게 “내 사람이 되어 한 만 년쯤 살자고” 조르지만,나는 망설이고 망설인다.당신이 짊어진 그 오만 년의 세월이 온 세상을 다 걸어도 가릴 수 없는 “넓이와 기럭지”를 가졌기 때문이다.내가 당신의 제안에 혹하여 냉큼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나는 “죄지은 생각으로 오만 년을 거슬러 혼자 걸어가”는 일을 떠맡아야 한다.그 죄란 당신이 걸어온 오만 년을 한순간에 없애버리는 일을 가리킬 것이며,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는 당신이 나에게 걸어 온 오만 년의 시간 동안을 다시 거슬러 걸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오만 년의 세월과 육백 여년의 시간을 등에 짊어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당신과의 온전한 만남은 완전히 불가능하다.그것은 당신의 존재 조건이 그러하기 때문이며,그런 한에서 나는 이 이별의 사태를 나 자신의 존재 조건으로 받아들인다.이병률의 시가 이 이별의 아픔을 ‘승인’한다는 것은 바로 이 지점에서 가능하다.이 무한한 거리,만남의 불가능성을 온몸으로 승인할 때,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당신의 주변을 끝없이 배회하는 일 뿐이다.그것은 당신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똑바로 나아가는 여행이 아니고,당신을 나의 목적지에 데려다 놓는 일도 아니다.차라리 당신을 지나치는 ‘방랑’이라고 부를진대,그 방랑은 “무심히 당신 앞을 수천년을 흘렀던”(‘바람의 사생활’) 바람의 삶이다.유럽과 아시아 대륙을 떠도는 이 거대한 방랑은 마치 “서너 달에 한 번쯤 잠시 거처를 옮겼다가 되돌아오”(‘여전히 남아 있는 야생의 습관’)는 것처럼 사소해 보이는 일이지만 “한 대접의 붉은 물을 흘려야 하는 운명”이되 “자신을 타이르는” 일이다.그렇지 않고서는 당신과 만날 수 없다는 이 아픔을 도저히 견뎌낼 수 없기 때문이다.뿐만 아니라 끝없이 당신을 지나치는 방랑이,당신과 나의 거리를 끝없이 벌려 놓는 방랑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의 경로”이자,“문득 부닥친 한 목숨에게/뼈가 아프도록 검고 차가운 피를 채워넣는 일”(‘피의 일’)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내가 알고자 하는 자리에 있지 않을 때,그래서 결코 도달할 수 없을 때 오히려 나는 당신에게서 점점 더 멀리 가고자 한다.그것은 당신을 떠나고자 하는 방랑이자 아주 먼 곳에서 당신을 만나고자 하는 방랑이어서,오직 당신을 스쳐 지나갈 뿐인 바람의 방랑인 것이다. 4 연애편지 전하기 - 사랑을 실현하는 윤리적 주체들 아픔의 사태가 있다.당신에게 전해지지 않는 편지를 열심히 쓰고 있는 자의 삶이 매달려 있는 고통이다.나는 마음을 담아 보내는데,마음이 전달되지 않는다.나의 사랑은 수신자를 찾지 못해 영원히 허공에서 떠돌거나,결코 응답받지 못한 채 당신의 마음을 비껴나간다.결코 만날 수 없는 당신과 만나고자 하는 노력,이를 두고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주체들은 결코 사랑을 실현할 수 없다는 고통과 마주친다.고통을 벗어나고자 하는,사랑을 실현하고자 하는 주체들 앞에는 두 가지의 방법이 놓일 것이다. 당신과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사태를 수긍하고,아픔의 사태를 ‘승인’하는 방식과 아픔의 기원을 망각하여,아픔의 사태를 ‘거부’하는 방식이 그것이다.이병률의 시를 아픔을 승인하고 당신의 주변을 떠도는 바람의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김행숙의 시는 아픔을 거부하고 당신을 향해 달려가는 변신담의 세계다.그러나 그것은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두 가지 방식일 뿐이다.그러므로 이상하게 들리겠지만,이들의 시는 연애시다.당신을 향한 사랑을 실현하는 방식인 것이다. 김행숙의 시에서 사랑은 오직 ‘사랑하라’라는 내면의 명령을 끝까지 추구할 때 실현된다.당신과 나의 거리를 극단적으로 좁혀서,당신과 만나고 싶다는 주체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주체는 당신을 향해 가는 길을 방해하는 모든 것을 없애버리는 파괴적인 주체다.내가 거주하는 세계를 접어 버리고,그 동안 나라고 믿어 왔던 나의 정체성인 얼굴마저도 없애버린다.아무것도 계산하지 않고,그것이 나에게 어떤 이득을 줄 것인지도 생각하지 않는다.그것이 나에게 어떤 파멸을 가져다 줄 것인지도 고려하지 않는다.이런 주체에게는 ‘사랑’이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것이 있어서,이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다.그리고 모든 것을 한순간에 희생함으로써 사랑을 실현한다.그러므로,‘사랑하라’라는 마음의 명령만을 향해 달려가는 이 주체는 윤리적이다. 그러나 당신에게 달려가 만나고 싶지만 당신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 자 역시 사랑을 실현한다.이 사람에게도 ‘사랑’이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 가지 것이 있다.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이 ‘사랑’이라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도 포함된다.나는 모든 것과 함께,사랑마저도 포기하면서 역설적으로 사랑을 실현한다.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자에게 사랑만은 최후에 남는다.그것은 그가 가진 마지막 것이자 유일한 것이다.그러나 이 사랑마저 버리는 자에게는 사랑마저도 남지 않는다.그는 아무것도 가질 수 없는 것이다.그러나 바로 이 자리에서 사랑이 솟아오른다.사랑의 ‘절대성’을 포기함으로써,부정적으로 사랑을 실현하는 이 주체 역시 윤리적이다. 이 두 윤리적 주체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아픔의 사태를 넘어선다.당신을 향해 달려가는 자의 내면에는 오직 열정적 기쁨만이 자리하기 때문에 아픔에 포섭되지 않는다.또한 모든 것,결코 버릴 수 없는 것마저도 버린 자에게는 무한한 슬픔만이 있지만 그 슬픔을 기꺼이 받아들이기에 그는 아프지 않다.이를 두고 각각 기쁨의 윤리와 슬픔의 윤리라고 부를 수 있다면,이 윤리적 주체들은 아픔의 밖에 거주하는 자들이다.이들은 ‘도덕’적이지는 않지만,윤리적이다.이는 새로운 ‘감정 윤리’라고도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이 새로운 윤리적 주체들은 자신들의 기쁨과 슬픔으로 우리 시의 지도 위에 뚜렷한 기압도를 그려 넣는다.소통 불능의 언어를 주고 받는 모든 ‘포스트 모던’한(이렇게 이름붙일 수 있다면) 시들이 그려 넣는 것은 아마 기쁨의 기압도일 것이다.자신의 욕망을 결코 양보하지 않는 시,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당신과 만나고자 하는 시들이 거칠고 파괴적인 이미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마도 우연한 일은 아닐 것이다.그들은 결코 다른 것들을 되돌아보지 않기 때문이다.다른 한편에 한없이 슬퍼하는 시들이 있다.그들은 체념하고,그 체념으로 인해 슬퍼한다.그러나 이 체념은 패배적이지 않다.그들은 기쁨을 포기함으로써,당신과 만나는 사랑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들은 기쁨의 기압도 옆에다 슬픔의 기압도를 그려넣는다.그러니 그 기쁨과 슬픔의 강도와 모양에 따라 크거나 작거나 네모나거나 동그랗거나 하는 다양한 기압도가 지금,현재 그려지고 있는 중이다.
  • [2009 이슈] 체육단체장 물갈이 바람

    ‘낙하산’이냐,‘자율’이냐.새해 들어서자마자 체육단체장 물갈이가 화두인 가운데 정치권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눈길이 쏠린다.일각에선 정치권 인사가 체육 수장을 맡는 데 대해 운동의 ‘운’ 자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비아냥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물론 한쪽에서는 “경기를 잘 알아야 한다.”고 하고 다른 쪽에선 “힘 있는 사람이 맡아야 좋다.”고 하는 논란은 여전하다.앞서 대한배구협회는 지난해 10월 한나라당 임태희(53) 정책위의장을 새 수장에 앉혔다. ●KBO 총재 인선일정 못잡아 이번 체육단체장 선거에도 자천타천 개혁 적임자를 자처하며 정치권 인물이 가세하고 있다.아직도 진행형인 한국프로야구위원회(KBO) 총재 추대 파문 못잖은 잡음을 배제할 수 없다. 지난달 ‘자율 총재’를 뽑으려던 프로야구 8개 구단 사장단은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 발목을 잡힌 뒤 아직 일정조차 잡지 못한다.논란이 워낙 거세 이젠 누구도 건드리기 쉽잖은 뜨거운 감자가 됐다. 추대된 후보가 문화부 언질을 받자마자 포기한 탓에 시비에 휘말리기 쉬워서다.한번 뜨거운 맛(?)을 본 사장들이 자율 총재를 계속 밀어붙일지 낙하산을 받아들일지 결론을 내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농구협회는 정치권 인사가 또 총재가 될지 주목된다.다음달 2일 총회를 열고 이종걸(52·민주당 의원) 회장의 후임을 뽑기 때문.정봉섭(66) 전 부회장과 강인덕(52) 중고연맹 회장,방열(67) 전 경원대 교수,한나라당 조전혁(49) 의원이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정 전 부회장은 “숙원인 전용체육관 건립에 힘쏟겠다.”고 했고,강 회장은 “8년간 연맹을 이끈 경험을 살려 협회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겠다.”고 강조했으며 방 전 교수도 “농구 발전을 꾀할 청사진을 곧 발표하겠다.”고 말했다.반면 조 의원은 “학교·생활체육이 행정력 침체에서 벗어나는 데 한몫 하려고 한다.”며 제도 개선을 언급했다. ●포스트 정몽준 3파전 대한축구협회는 정몽준(58) 전 회장의 후임자를 오는 22일 뽑는다.이번 선거는 ‘공부하는 학원 스포츠’를 슬로건으로 한 학교 리그제 도입을 둘러싸고 갈등이 이어져 관심을 끈다.허승표(63) 축구연구소 이사장은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출사표를 던질 계획이며,조중연(63) 협회 부회장과 민주당 강성종(43·경기도협회장·의정부) 의원도 뒤따를 것으로 알려졌다.허 이사장은 유소년 축구 저변과 인프라 확대,중앙 중심에서 벗어난 지역축구 활성화 등 축구 발전계획엔 새 인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조 부회장은 “축구 발전계획을 장기적으로 이끌려면 경기인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며 화합론을 폈다.유소년·여자·프로축구를 통틀어 이미 가동된 프로그램을 지속하려면 행정 경험이 가장 먼저라는 것이다. 대한체육회 역시 이연택(73) 회장을 이을 수장을 다음달 뽑는다.올림픽위원회(KOC)와의 분리 문제로 정부와 마찰을 빚고 있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후보로는 김정행(66) 용인대 총장과 이승국(63) 한국체대 총장,이명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천신일(66) 레슬링협회장이 거론된다.여기에 정몽준 전 회장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노리고 도전할 것이란 추측도 나돈다.이 회장의 재출마 가능성도 여전히 잠복해 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은행장들 눈길 끄는 신년화두

    은행장들 눈길 끄는 신년화두

    정부가 ‘비상경제정부체제’로 전환함에 따라 ‘구조조정 주역’인 은행장들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워졌다.2일 이들이 내놓은 신년화두에는 이같은 부담감과 각오가 고스란히 녹아 있다.비단 해당은행 임직원들에게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니다.경제주체 모두를 향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민유성 산업은행장은 “익숙한 오솔길을 버리라.”고 주문했다.전례없는 경제위기의 비상경보가 울린 만큼 낡은 사고방식과 관행을 전면적으로 바꾸라는 의미다.민 행장은 “개척자의 불굴의 의지로 앞에 놓여진 가시덤불을 헤치고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자.”고 강조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긍정의 힘’을 앞세웠다.업계 1위 은행을 이끌고 있는 강 행장은 “아무리 어려워도,아무리 큰 시험에 들어도,아무리 실망스러워도 정상까지 올라간 사람은 희망을 잃어버린 적이 없다.”면서 “같은 상황도 대처 방식에 따라 위험이 되기도 하고 기회가 되기도 하는 만큼 결코 주저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비슷한 시간,신상훈 신한은행장도 약속이나 한 듯 똑같은 얘기를 했다.신 행장은 시무식에서 “비관론자는 기회 속에서 어려움을 찾아내고 낙관론자는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아낸다.”는 윈스턴 처칠의 말을 인용한 뒤 “반전의 기회는 가슴시린 바닥의 어려움을 눈물로 견뎌내고 힘을 기른 자들에게만 허락됨을 잊지 말자.”고 호소했다.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타이타닉호의 비극을 다시 생각하자.”고 해 눈길을 끌었다. 김 회장은 “타이타닉호의 비극은 앞서가던 메사바호로부터 온 빙산 경보를 무시하지만 않았어도 막을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당시 타이타닉호의 전신 담당자는 승객과 육지를 오가는 엄청난 전보더미에 묻혀 정작 중요한 빙산 경보는 책상 위에 처박아 둬 대형 참사의 단초를 제공하게 됐다.”고 상기시켰다.타성에 젖은 생각과 행동이 엄청난 대가를 야기했다는 얘기다.김 회장은 “모든 사고에는 전조 현상이 있게 마련”이라면서 “리스크(위험) 촉수를 바짝 세우자.”고 촉구했다. 긴축을 통해 힘을 비축하자는 주문도 잇따랐다.이종휘 우리은행장은 “풍년 쌀은 모자라도 흉년 쌀은 남는다는 말이 있다.”면서 “사람 부족,시간 부족을 탓하지 말고 불필요한 일은 과감히 잘라내라.”고 당부했다.줄일 것은 줄이고 합칠 것은 합쳐 고비용 저효율을 저비용 고효율로 바꿔야만 살아남는다는 고강도 주문이다.“제값 주고 제값 받는 영업을 통해 수익성을 높이라.”고도 주문해 엄격한 기업 선별 지원도 예고했다. 윤용로 기업은행장은 ‘히든(숨겨진) 챔피언’에서 위기 탈출의 해법을 찾았다.윤 행장은 “세계에서 수출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는 미국,일본,중국이 아니라 바로 독일”이라면서 “세계적으로 이름난 대기업이 별로 없는 독일이 수출 1위를 차지하게 된 원동력은 숨겨진 챔피언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파했다.히든 챔피언은 휴대전화 칩 접착제를 만드는 독일 델로(Delo)처럼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세계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는 매출액 40억달러 이하의 기업을 가리키는 말이다. 미래의 히든 챔피언인 유망 중소기업들을 적극 지원해 경제 활력을 되살리겠다는 의지다. 진동수 수출입은행장은 “녹색성장 산업이 신(新) 수출동력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신속한 지원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혀 대통령의 ‘녹색화두’를 뒷받침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女談餘談] 새해 결심 하셨습니까/박상숙 문화부 기자

    [女談餘談] 새해 결심 하셨습니까/박상숙 문화부 기자

    얼마 전 후배가 봉사단체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의 회원이 됐다.불우한 환경에 처한 어린이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는 곳이다.회원들의 크고 작은 능력은 아이들의 소원 성취를 위해 쓰인다.후배는 요즘 젊은 친구들이 남을 위하는 삶에 이토록 관심이 많을 줄 몰랐다며 뒤늦게라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는 사실을 뿌듯해했다. 미용사로 일하는 친구는 틈틈이 장애인 시설을 찾아 수년째 봉사를 해오고 있다.기자의 언니는 지인의 소개로 멀리 아프리카 우간다의 농촌에 우물을 설치하는 사업에 후원자로 이름을 올렸다. 새해를 맞아 사람들은 늘 새로운 결심을 한다.올해 리스트에는 그 흔한 금주,금연,살빼기와 더불어 ‘봉사 또는 기부 실천’을 올려 놓으면 어떨까.IMF 때보다 더 혹독하다는 경제 한파가 시작된 지난해였다.이에 비례해 힘들지만 다같이 이겨내자고 희망과 용기를 주는 메시지가 눈 돌리는 곳마다 흘러 넘치기 시작한 해이기도 했다.구세군 냄비 모금액이 사상 최고를 돌파하고,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ARS 전화 모금액도 급증했다.길을 가다 휴대전화만 갖다 대는 것만으로 나눔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손쉬운 시스템도 등장했다. 어려울 때일수록 선한 마음이 작동한다는 것은 자연계에서도 확인됐다.김종철 선생의 ‘간디의 물레’에 실려 한때 심금을 울렸던 철새의 가르침을 되새겨 보자.북유럽 철새들은 지중해를 건너 아프리카의 나일강까지 이동한다.독수리나 매처럼 덩치 크고 힘센 큰 새들도 나가떨어지는 험난한 여정.그렇다면 작은 새들은 어떻게 그 먼 곳까지 갈 수 있을까.평소 먹고 먹히는 관계인 이 철새들 사이에서 기적 같은 평화공존이 시작된다.즉 작은 새들은 나일강의 물결이 바라다보일 때까지 큰 새들의 등에 업혀 하늘을 날아가는 것이다. 작은 어깨라도 남에게 내어 줄 수 있다면 인생은 충만해진다.비웠는데 도로 채워지는 느낌은 봉사가 주는 역설이자 미덕이다.‘기부왕´ 가수 김장훈은 예전 인터뷰에서 말했다.“세상에서 뭘 해도 다 허무했는데 오로지 봉사만 그렇지 않았다.”고. 박상숙 문화부 기자 alex@seoul.co.kr
  • 고유가 직격탄 올해엔 없다

    고유가 직격탄 올해엔 없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고(高)유가로 날린 돈만 335억달러 이상인 것으로 집계됐다.외환위기 이후 11년만의 경상수지 적자 반전을 야기한 주범이다.역설적이게도 올해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전망을 끌어낸 주역이기도 하다. 1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에너지류 수출입차(수출액-수입액) 누적 적자액은 962억 2000만달러다.전년 같은 기간(-627억달러)보다 적자액이 335억 2000만달러나 늘었다.이 적자액은 고스란히 상품수지에 반영된다. 2007년 1~11월 동안 275억달러의 흑자를 냈던 상품수지가 지난해 46억 5000만달러 흑자로 쪼그라든 이유다.상품수지는 서비스수지와 더불어 경상수지의 주된 구성항목이다.따라서 경상수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양재룡 한은 국제수지팀장은 “에너지류 수출입차가 335억달러 적자났다는 것은 고유가로 날아간 돈이 이만큼이라는 의미”라면서 “이 돈만 날리지 않았어도 경상수지 적자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지난해 경상수지는 50억달러대의 적자가 예상된다. 올해는 정반대의 상황이 기다리고 있다.원유도입 단가는 배럴당 평균 55달러로 점쳐진다.지난해(100달러 추산)보다 배럴당 45달러 낮다.우리나라가 연간 도입하는 원유 물량은 9억배럴.이 가운데 가공을 거쳐 수출용으로 다시 내보내는 물량이 3억배럴 가량이다.우리나라가 순수하게 쓰는 물량이 6억배럴이라고 치면 270억달러(6억배럴×45달러)의 흑자 요인이 생기는 셈이다.한은이 올해 220억달러 경상수지 흑자를 전망한 배경이다.양 팀장은 “중동 정세 등 불안 요인이 존재하지만 그래도 지난해 우리 경제를 애태웠던 고유가가 올해는 효자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다.”고 내다봤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신년사 사자성어로 본 경제

    신년사 사자성어로 본 경제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새해 메시지를 내놓으면서 “이렇게 어두운 신년사는 처음”이라고 털어놓았다. 다른 수장(首長)들의 신년사도 예외는 아니다.유난히 사자성어가 많은 것도 눈에 띄는 특징이다.환란 때보다 더하다는 경제위기 상황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고 경제주체들의 마음가짐을 다잡는 내용이 대부분이다.그만큼 올해 경제가 녹록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일궤십기(一饋十起)와 강의목눌(剛毅木訥)을 인용했다.일궤십기는 중국 우(夏)나라의 시조인 우(禹) 임금이 어려운 시절에 처한 공직자의 자세를 일깨우며 남긴 고사다.“진정한 관리는 밥 한 그릇을 다 비우기 전에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백성이 찾아오면 열 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다.”는 뜻이다. 강의목눌도 위기시대의 처신법이다.전란의 시대에 태어난 공자가 ‘지혜로운 처신법’을 언급하며 “강한 마음(剛)과 의연한 태도(毅),묵묵하게 정진하는 꾸밈없는 진실함(木訥)”을 제시했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가 “80년대 미국 월스트리트를 누비고 다녔던 천재”라고 치켜세웠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영어를 많이 인용했다.“전례없는(unprecedented) 세기적 위기” “생존경쟁(survival game) 격화” “역사적인 권력이동(historic power shift) 시작” 등을 언급했다.우리 경제가 안팎의 격변기에 놓였음을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그런 강 장관도 마무리는 한자(漢字)로 끝냈다.“국가든 기업이든 살아남는 자가 강자가 되는 상황”이라고 환기시킨 뒤 “국민,기업,정부,노사 모두가 노력해 제2의 국운융성(國運隆盛) 시대를 열어나가자.”고 역설했다. 장태평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독수리’ 얘기를 통해 ‘전화위복’(轉禍爲福)을 강조했다.“독수리는 70년까지 산다고 한다.그러나 보통 40년이 되었을 때 부리와 발톱이 무뎌져 (더이상 먹잇감을 낚아채지 못해)죽게 된다.이때 바위에 가서 스스로 발톱을 부러뜨리고 부리를 쪼아 뽑으면 다시 새 부리와 발톱이 자라나 30년을 더 살게 된다.” 장 장관은 “(독수리처럼)처절한 자기반성을 통해 낡은 것을 버리면 변화와 혁신을 통해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서 “우리 국민 모두도 지혜를 모으고 버리는 용기를 가진다면 위기를 기회로(전화위복) 반전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철휘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은 ‘만전지책’(萬全之策)과 ‘응형무궁’(應形無窮)을 신년화두로 제시했다.만전지책은 조금의 허술함이 없는 완전한 계획을,응형무궁은 바뀌는 상황에 맞춰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이 사장은 “위기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유연하고 변화하는 조직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신동규 은행연합회장은 ‘임중도원’(任重道遠·책임은 중하고 갈 길은 멀다)이란 말로 금융권의 부담감을 토로했다.신 회장은 “그 어느 해보다 (기업·금융 구조조정 등으로)금융권의 어깨가 무겁다.”면서 “소처럼 쉬지 않고 걷다 보면 멀지 않아 밝은 미래가 반드시 올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안미현기자 hyun@seoul.co.kr
  • [미리보는 2010 단체장선거] 서울시장 자리가 뭐기에

    한국 정치에서 서울시장이 갖는 상징성과 정치적 의미는 각별하다. 인구 1000만명이 넘는 서울의 수장으로서 풍부한 행정경험을 쌓을 수 있고,이는 곧 ‘대권 등용문’이라는 인식과 연결된다. 국가 지도자로 행정의 달인을 선호하는 세계적인 추세도 예비 주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서울시장 경험이 결과적으로 대권의 징검다리 역할을 했다.역대 미국 대통령 가운데 상원의원보다 주지사 출신이 많았다는 점을 참고했다는 후문이다. 지자체장이 민선으로 바뀐 이후 서울시장 선거는 여야가 당운을 걸 정도로 치열하게 전개됐다.그러다 보니 여야의 후보군은 대선주자급 중량감을 요구받았다. 민선 1기 조순 전 시장은 1997년 대선에서 막판 다크호스로 부상해 여야 후보들을 긴장시켰다.민선 2기 시장인 고건 전 국무총리 역시 2002년과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때 유력한 주자로 떠올라 한동안 지지율 선두를 달렸다. 이명박 정권의 국정 운영을 두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이전보다 더욱 뜨거운 격전장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차기나 차차기 대선을 노리는 인물들의 출사표도 점칠 수 있다.시사평론가 김종배씨는 31일 “각당의 외부 인사 영입에 서서히 시동이 걸리면서 해당 인사에 대한 전국적인 호응도가 주목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특히 경제위기가 가속화되면서,지도자로서 후보의 정책대응 능력이 표심의 향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이는 내년 서울시장 선거를 단순히 ‘정치 경력’ 정도로만 여겨서는 민심에 부합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는 역설이기도 하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기존처럼 이념과 정체성보다는 시대정신과 자기 철학에 대한 요구가 높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혜영 김지훈기자 kj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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