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역설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생존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구청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우연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 안산
    2026-08-07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4,699
  • 인천, 남북 화해 물꼬트기 앞장

    천안함 폭침 및 연평도 피격사건 이후 남북교류사업이 전면 중단된 가운데 인천시가 남북관계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10일 인천시에 따르면 지난해 9월 6개 대북지원단체와 함께 북한 어린이와 임산부, 노인 등을 위한 식료품, 옷, 의약품 등의 생활필수품을 지원했다. 정부의 5·24조치로 지자체 차원의 대북교류사업이 중단된 이후 첫 지원이었다. 송영길 시장이 5·24조치에도 불구하고 정부 측에 북한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역설한 결과였다. 하지만 지원품이 북한의 고아원과 양로원, 장애인학교 등에 전달되던 중 그해 11월 연평도 피격사건이 발생하자 지원이 중단됐다. 당초 시와 대북지원단체는 2011년 3월까지 24억원 상당의 생필품을 북한에 지원하기로 협약을 맺은 터였다. 시는 협약대로 지난 5∼7월 말라리아 예방약과 방충망 등 방역물품 2억원어치를 전달했다. 강화지역 말라리아 환자의 70%가 북한에서 온 모기로 인해 감염되는 점 등을 들어 통일부를 설득했다. 물품은 강화도와 가까운 해주시와 강령군 등 황해남도 7개 지역에 전달됐다. 이 밖에 시는 다양한 방식으로 남북 간 화해를 꾀하고 있다. 올해 2월에는 송 시장이 구단주로 있는 프로축구팀 ‘인천유나이티드’가 중국 쿤밍(昆明)시에서 남북유소년이 참가하는 ‘인천평화컵 유소년 축구대회’를 열었다. 지난 7일에는 이 축구팀이 중국 단둥(丹東)시에 북한 근로자들을 고용하는 한·중 합작 축구화 공장을 준공해 국내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을 결합하는 남북경협 모델을 선보였다. 이미 개성공단 진출 희망 기업들을 대상으로 ‘남북경협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인천시는 지난달에는 또 10·4남북정상선언 기념식과 국제학술회의를 열어 한반도 평화체제의 미래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인천시는 2005년 ‘남북교류협력 조례’를 제정한 이후 지난해까지 100억원의 기금을 조성, 대북교류사업을 벌여 왔으며 현재 40억원의 남북교류협력기금이 남아 있다. 송 시장은 “현재로선 지자체가 직접 재원을 투입하는 물품지원사업은 승인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며 “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남북한 평화정착에 밑거름이 되는 사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김학준기자 kimhj@seoul.co.kr
  • [문화마당] 홍대로 간 스티브 잡스/주원규 소설가

    [문화마당] 홍대로 간 스티브 잡스/주원규 소설가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만약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다면? 그리고 그가 한국에 거주한다면 과연 어디에 있을까. 주로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필자는 스티브 잡스가 가장 먼저 홍대를 찾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기억하는 스티브 잡스가 ‘혁신’이란 한 마디로 정의될 수 있는 인물이라면 분명 그럴 것이다. 혁신이란 무엇일까. 단어의 뜻만으로 보면 혁신은 기존 질서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갈망하는 원동력으로 볼 수 있다. 전 세계가 기억하는 스티브 잡스의 삶 역시 그가 남긴 공과를 차치하고라도 혁신의 전위에 선 인물인 것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스티브 잡스의 정신은 한국사회에서도 여전한 효력을 갖고 오랜 시간 그 역동성을 존중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역동성을 표현하는 장소로 홍대를 떠올리는 것 역시 자연스러운 반응일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홍대는 맹목적인 긍정의 의미로부터 험악하게 배신당한다. 홍대가 젊은 청춘들의 창의성이 살아 숨쉬는 장소라는 사실에 무조건 높은 점수를 주고자 하는 맹목성 같은 거 말이다. 여전히 젊음의 창의력과 순수성을 말할 수 있는, 시대의 아이콘 같은 곳으로 홍대를 꼽는 게 가능하다면 위의 명제, 혁신하면 떠올리는 곳으로 자신 있게 홍대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2011년 늦가을의 홍대는 그보다 다른 의미에서 혁신의 의미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단적으로 말해 오늘의 홍대는 더 이상 낭만 가득한 젊음의 장소가 아니다. 오히려 이제는 그 반대 지점에서 말해야 한다. 젊음이란 이름의 창조성을 갈수록 잃어가는 사태에 대한 절박한 질문을 던지는 문제적 장소로서 홍대를 이야기해야 할 지경이 된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지금도 여전히 홍대는 젊은 청춘들의 정거장 같은 곳이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럽다. 홍대 거리의 표정은 다소 우울하며, 해명하기 어려운 불안의 기운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홍대가 진설해 놓은 도시의 외관은 화려하기만 하다. 하지만 건물마다 하나씩 자리 잡은 프랜차이즈 커피숍, 대규모 자본을 쏟아부은 작은 마천루 같은 다국적 브랜드 패션숍, 청춘을 소비주체의 다른 이름으로만 기억하고자 하는 갖가지 상업주의 시설의 난립이 가져온 결과는 모순적이게도 청춘의 진짜 이름인 새로움을 위축시키는 위협의 도구로 기능하고 있다. 갈수록 치솟는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홍대에 자리하던 문화의 아이콘들이 하나둘씩 홍대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다. 공원과 다리 밑에서 비보이 공연과 그라피티를 즐기던, 자연 발화된 문화 활동 역시 대규모 쇼핑 브랜드 이벤트 행사로 대치되고 있다. 그리고 오늘, 청춘의 이름을 가진 홍대는 불안을 소비한다. 자신만큼은 도태되지 않고 무슨 수를 쓰든 경쟁에서 밀려나지 않고 살아남아, 문화 아이콘을 소비와 시장논리로 뒤바꾸어 버린 홍대 쇼핑몰 어딘가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욕망하는 청춘들에게 참된 혁신을 요구하는 게 과연 합당한지 묻고 싶은 지경이 된 것이 문화 아이콘 홍대의 현주소다. 여기서 필자는 다시 묻는다. 달라진 홍대, 지극히 자연스러운 분방함의 사유 속에서 형성된 홍대가 아닌, 모든 것이 변해가는 홍대에도 스티브 잡스는 올 것인가? 정답은 예스다. 혁신은 역설적이게도 새로움의 가치가 배반당한다고 느껴지는 각성의 시점에서부터 본격적인 시작을 선고한다. 스티브 잡스의 가치도 그렇지 않던가. 현실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더 나은 새로움을 열망하는 치열함. 그 치열함이 오늘의 홍대에 명징하게 살아 있음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모든 것이 달라졌어도 홍대는 홍대여야 하는 이유, 항구적인 새로움이어야 한다는 그 신비로운 당위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구하는 청춘들이 24시간 커피숍 한구석에서 식은 커피와 노트북을 앞에 두고 씨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거역하기 어려운 이유 때문에라도 스티브 잡스가 살아 있다면 홍대로 갈 것이다. 새로움을 찾기 위해 새로움을 잃어가는 홍대를 찾고 또 찾을 것이다.
  • 父가 뿌린 ‘포퓰리즘 씨앗’이 몰락 불렀다

    父가 뿌린 ‘포퓰리즘 씨앗’이 몰락 불렀다

    국가부채의 덫에 걸려 집권 2년 만에 중도 사퇴한 게오르기오스 파판드레우(59) 총리의 뒤를 이어 난파하고 있는 그리스호를 이끌 새 선장으로 루카스 파파데모스 전 유럽중앙은행(ECB) 부총재가 유력시된다. 파파데모스가 새 총리로 임명되면 내년 2월 총선 때까지 유럽연합(EU)의 그리스 2차 구제금융안과 긴축재정 패키지에 대한 의회 비준을 이끄는 중책을 짊어지게 된다. 정국 혼란을 수습하는 몫도 남았다. 파파데모스는 중앙은행 총재 시절 그리스가 드라크마(옛 화폐)를 포기하고 유로존에 가입하는 과정을 주도했던 인물로, 역내 경제 소국들이 외부충격을 피하기 위해서는 단일통화인 유로를 택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유로존 옹호론자’로 유명하다. 정부 부채 문제에 대해서는 ECB의 과도한 개입 대신 해당국 정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물리학 학사와 전기공학 석사를 전공한 뒤 경제학 박사학위를 딴 특이한 이력을 지닌 그는 이후 컬럼비아대학과 그리스 아네테대학에서 20년 가까이 교수 생활을 했다. 1990년대에는 그리스 중앙은행 총재를,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ECB 부총재를 지냈다. 또 다른 총리 후보로 꼽히는 에반겔로스 베니젤로스 재무장관은 법학 교수 출신으로 1993년 국회의원이 된 이후 교통·법무·국방·문화장관을 두루 거친 노련한 관료다. 파판드레우의 낙마로 3대에 걸쳐 모두 6차례 총리직을 수행한 파판드레우 가문도 몰락하게 됐다. 아버지의 후광 덕에 그리스 정계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았던 파판드레우는 역설적이게도 부친이 남긴 그림자 탓에 스러졌다. 그의 불행은 부친인 고(故)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총리가 뿌려놓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씨앗’에서 비롯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회당을 창당한 아버지 파판드레우 전 총리는 1981~1989년, 1993~1996년 두 차례 총리를 지내며 주요 기업을 국유화하고 공무원에 대한 복지를 크게 늘렸다. 덕분에 인기를 누렸지만 이 탓에 나랏빚이 쌓여갔고 멍에는 아들이 고스란히 지게 된 것이다. 아들 파판드레우 총리는 취임 직후 애초 공약과는 상반된 ‘역주행’을 시작했고 아버지가 짜놓은 복지 시스템을 수술대에 올렸다. 공무원 월급을 깎고 연금을 줄였다. 의료 등 복지 지출을 축소하는 대신 세금은 올렸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과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을 받으려면 모두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곧잘 “(긴축정책이) 나라를 살리려고 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자신의 진정성을 강조했지만, 지난달 파판드레우 총리의 지지율은 23%로 곤두박질쳤다. 결국, 파판드레우 총리는 “2차 구제금융을 수용할지를 국민에게 직접 묻겠다.”며 ‘승부수’를 던졌다. 하지만 이 정치적 도박 탓에 그는 끝내 총리 자리에서 물러나게 됐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데스크 시각] 진정한 반값 등록금 시대를 열려면/박현갑 정책뉴스부장

    [데스크 시각] 진정한 반값 등록금 시대를 열려면/박현갑 정책뉴스부장

    감사원의 대학등록금 중간감사 결과 발표를 계기로 대학가가 내년도 등록금 인하 수준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법정부담금을 교비회계에 뒤늦게 채워넣는 법인이 있는가 하면 구체적인 등록금 인하 폭은 선도대학의 움직임을 보고 결정하려는 대학들도 적지 않다. 서울시립대의 경우, 내년부터 등록금을 말 그대로 반값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 대학들이 등록금을 반값으로 내리기란 현실적으로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반값 등록금 논쟁은 정부가 고등교육 재정부담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고 사학의 체질 개선을 유도하지 않는 한 역설적으로 대학교육의 질을 떨어뜨릴 부작용이 있음도 감안해야 한다. 대학교육은 중등교육에 비해 공공재 성격이 약하다. 수익자 부담원칙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등록금이 말썽거리가 된 것은 본질적으로 대학에 가지 않을 수 없는 우리나라 구조에 있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대학진학률이 50% 안팎이다. 우리는 80%가 넘는다. 반값 등록금 논쟁에서 알 수 있듯 비싼 등록금을 부담할 여력이 없는데도 다들 대학에 목을 매고 있다. 대졸자 10명 가운데 절반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대학 진학률은 여전히 기세등등하다. 대학으로 상징되는 학력과 학벌을 갖추지 않고서는 한국사회에서 견뎌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학력을 능력의 일부가 아닌 능력의 전부로 받아들이는 학벌 사회다. 반값 등록금 주장은 이러한 부조리를 개선해 달라는 요구와 다르지 않다. 진정한 반값 등록금 해법은 등록금 고지서상의 숫자를 반으로 낮추는 대증요법이 아니라 대학에 가지 않고서도 사회생활을 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인력시장의 수급 구조를 바꾸는 데 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정부의 정책추진 의지와 방향성이 중요하다. 이명박 대통령이 마이스터고 등 전문계고 졸업자들의 취업 확대를 외친 것은 바람직하다. 정부가 확대하기로 했다는 기능인재 추천채용제는 그 대상이 전문계고교 졸업생이다. 일반고 학생들의 진로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지난해 정부통계를 보면 중학교 졸업생 가운데 진학자는 66만여명이다. 이 가운데 일반계 고교 진학자는 50만여명이고 나머지 15만여명은 전문계고교로 갔다. 일반·전문계고에 관계없이 상급 학교로 진학하는 학생 비율이 70%가 넘는다. 일반·전문 구분의 의미가 없는 셈이다. 전문계고교를 졸업해도 전문인이 되는 게 아니라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경우가 10명 중 7명이나 된다. 정책당국은 고등교육 정책과 직업교육의 딜레마를 여기에서부터 풀어야 한다. 중학생 시절부터 진로 설정에 신중을 기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그래야 ‘대학 지상주의, 학벌 지상주의’로 인한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학력차별금지법 제정도 필요하다. 이 법은 기업은 모집이나 채용, 임금, 임금 외의 금품 지급 및 복리후생, 퇴직·해고의 분야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이 학력을 이유로 근로자 또는 근로자가 되려는 자를 차별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기업에서는 채용할 때 학력 이외에 능력 측정을 대신할 지표가 없는 상태에서 학력표시를 없애면 채용비용이 많이 든다며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기업운영의 자율권 침해라는 원론적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런 부작용이 있다 하더라도 법제화를 통해 ‘학력차별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다.’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면 제도 도입은 타당하다. 고졸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현실을 감안, 대학학력에 대한 차별적 제한조치보다는 대학 진학을 하지 않은 사람을 채용이나 모집 시 우대하는 방안을 시행하는 업계에 대한 세제상의 추가 혜택 등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학벌이라는 이름으로 상징되는 대학 간의 위상이나 서열에 따른 차별도 문제인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한 블라인드 면접 비중 확대 등 바람직한 채용 시스템의 개발 유도도 필요하다. eagleduo@seoul.co.kr
  •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1) 中 혁명의 아이콘 마오쩌둥

    [고전 인물로 다시 읽기] (31) 中 혁명의 아이콘 마오쩌둥

    1966년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이 천안문 광장을 가득 채운 홍위병들을 사열하는 순간 문화혁명은 중국 전역으로 퍼졌다. 그리고 10년 동안 중국은 상처로 얼룩져 갔다. 1976년 마오의 죽음과 함께 문화대혁명은 종결되었고, ‘마오’라는 아우라에 지배되던 중국 현대사도 일단락됐다. 마오는 중국 공산당 창립(1921년) 멤버 12인 중 한 사람으로, 혁명의 씨앗을 뿌린 ‘대장정’(1934년)을 이끌었던 홍군의 일인이었다. 아울러 국공합작을 이끌어 중일전쟁(1937년)에서 승리하고, 1949년 10월에는 중화인민민주주의공화국 성립을 선포하는 천안문 광장에 섰다. 신중국 성립 이후 많은 지식인들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 ‘내란’ 문혁 때도 마오는 홍위병 곁에 있었다. ‘마오쩌둥 어록’은 홍위병들의 성경이었다. 이렇듯 중국 현대사는 마오의 족적을 빼고는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마오가 걸어간 길은 곧 중국혁명이 걸어간 길이다. 그렇기에 지금도 마오에 대한 역사적 평가와 인민들의 평가는 양가(兩價)적일 수밖에 없다. 마오에 대한 평가는 바로 중국 인민인 ‘나’, ‘우리’에 대한 평가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혁명은 현실에 대한 ‘나’의 저항서 시작 마오쩌둥은 후난(湖南)성 샹탄(香潭)현 출신으로, 소작농에서 자수성가하여 중농이 된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배를 곯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머슴과 마찬가지로 호되게 어른 몫의 일을 해야 했다고 한다. 마오의 어린 시절 학업은 3년 정도의 서당 공부가 전부인데, 부친이 수를 셈하고 장부를 정리할 정도의 지력만 키우고, 소송에 대처할 수 있는 고문만 배울 것을 원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과 관련해서 마오는 자신이 저질렀던(?) 두 가지 일을 자랑스레 이야기하곤 했다. 하나는 권위적이고 위압적인 서당 훈장에게 저항하여 수업을 거부하고 땡땡이쳤던 일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력과 힘으로 가족을 억누르는 부친에게 목숨을 걸고 대들면서 반항했던 일이다. 어찌 보면 평범한 경험이라고 할 수 있지만, 마오는 그 사건들을 의미 있는 것으로 기억했다. “공개적인 반항으로 나의 권리를 지키려고 할 때면 아버지가 누그러지고, 내가 온순하게 복종하는 태도를 보일 때는 그가 오로지 욕만 하면서 때린다는 사실을 알았다.”(‘마오쩌둥 자서전’) 마오는 경험을 통해 약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체득했다. 혁명이란 다른 누구로부터 선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저항을 통해서만 획득된다는 것. 그것은 중국 인민 전체에게 적용되는 문제였다. 마오는 신해혁명을 창사(長沙)에서 맞았다. 하지만 신해혁명의 성공 이면에서 혁명의 ‘덧없음’을 경험했다. 그는 빈자와 피억압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후난의 혁명가들이 상인, 학자, 부르주아지 및 돌아선 군중에 의해 살해당하는 현장을 보게 된다. 혁명이 반혁명으로 변질되던 1910년대에 베이징의 한 처량한 회관에서 탁본을 베껴 쓰면서 적막감을 토로했던 루쉰처럼 마오도 학교로, 도서관으로 돌아갔다. 몇 해 동안 점심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을 도서관에서 서구와 중국의 근대 지식을 흡수하는 데 쏟았을 정도다. 그러다 5·4운동(1919년)이 일어날 즈음 마오는 베이징도서관 사서의 조수로 일하면서 마르크스주의와 접하게 된다. 오랜 적막 뒤 마오가 깨달은 것은 노동자와 농민에게 혁명을 수행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었다. 인민 스스로가 자신을 해방하고 혁명의 주체가 되는 것, 그것이 혁명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혁명가의 임무란 무엇인가. 공산당원은 어디에 서야 하는가. 인민을 계몽하거나 그들에게 혁명의 열매를 시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혁명의 주체로 서게끔 실마리를 풀어 주고, 옆에서 뒤에서 그들을 돕는 것, 그게 혁명가의 임무였다. ●‘인민에 의한’ 혁명을 꿈꾸다 “지식을 얻으려면 현실을 변혁하는 실천에 참여하라.”(‘실천론’, 1937년)는 말대로 마오는 혁명에 관한 지식과 이론을 현실의 농민들에게서 ‘몸으로’ 배웠다. 그에게 ‘몸으로’는 결코 은유가 아니었다. 학창 시절에는 ‘신체단련’이라는 명목으로 한겨울에 들판을 누비거나 산을 오르내리는가 하면, 남중국 일대를 무전여행하기도 했다. 걸어 다니면서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직접 보고 들을 기회를 가졌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중농 출신인 마오는 스스로를 인민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지식인들과는 달랐다. 마오는 ‘인민을 위한’ 혁명이 아닌, ‘인민에 의한’ 혁명을 꿈꿨다. 그리고 스스로를 그 ‘인민’이라고 생각했다. 마오는 소련의 사회주의 이론이나 강령에 중국 현실 꿰맞추기를 거부하고, 혁명의 현장에 대한 정확한 장악과 실제적인 조직화 사업을 통해 ‘중국적 사회주의 이론’을 정립했다. 그는 먼저 농촌 근거지를 만들고 농민운동을 조직화하는 일에 참여했다. 그 경험의 결과물이 ‘후난성 농민운동 시찰보고서’(1926년)인데, 여기서 마오는 농민의 실생활을 직접 조사하고, 농촌에서의 혁명 가능성을 객관적인 자료로 보여 줬다. 농촌 경제의 모순과 농민의 계급분화 및 갈등은 혁명의 도화선이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이런 판단하에 그는 소유 토지 면적이나 높은 이자율뿐만 아니라 돼지기름, 소금, 석유, 차, 종자, 비료, 장작, 가축, 농기구 유지 비용까지 자세히 분류한 후, 그 소유 정도에 맞춰 농민계급을 보다 세분화했다. 이런 실천적 분석을 통해 마오는 농민을 중심으로 하는 중국혁명을 구상해 냈는데, 이것이 바로 ‘중국식 사회주의’의 탄생이었다. 몇 차례 계속된 국민당의 포위공격을 피해 장시(江西)성 징강(井岡)산에서 활동하던 공산당원들은 근거지를 버리고 ‘도주의 길’을 떠났다. 그러나 도망으로 시작한 ‘대장정’은 승리로 귀결되었다. 1년 동안 공산당은 18개의 산맥을 넘고(그중 5개의 산은 만년설로 덮여 있었다), 24개의 강을 건넜으며, 12개의 성을 통과했다. 또 62개의 마을과 도시를 점령했으며, 전투를 치르고 돌파한 지방 군벌의 포위망이 무려 10개에 달했다. 지나가는 곳마다 대중 집회를 열어 노예를 해방하고 토지개혁을 실시했다. 이 초인적인 고난의 행군을 가능하게 했던 규율은 가난한 농민들로부터는 어떤 것도 빼앗지 않는다는 것, 지주들에게 몰수한 재산은 소비에트 정부에 전달해서 처분한다는 것, 농민들과의 모든 거래는 정직하고 예의 바르고 정중하게 한다는 것 등이었다. 지도자라고 해서 특별대우를 받는다거나 하는 일은 아예 없었다. 마오는 이들과 똑같이 자기 ‘몸으로’ 산을 넘고 강을 건넜다. 대장정을 마치고 섬서 지역에 마련된 근거지에서 마오가 다른 홍군에 비해 특별대우를 받은 것이 있다면 모기장 정도였다고 한다. ●주어는 ‘나’가 아니라 ‘우리’다 1938년 미국 언론인 에드가 스노는 대장정을 마친 공산당의 근거지를 찾아가 직접 보고 들은 중국공산당의 실체와 역사를 담은 ‘중국의 붉은 별’을 출간했다. 여기에는 마오를 비롯한 공산당원들의 자전적 이야기가 포함돼 있다. 스노는 마오의 회고담을 들으면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마오가 행한 역할은 선명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개인적인 마오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는 점을 의아해했다. 어느 순간부터 마오의 진술에서 사용되는 주어는 더 이상 ‘나’가 아니라 ‘우리’였기 때문이다. 어느 혁명가가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 자신의 모든 것을 잃지 않았겠는가마는 마오는 자신을 온전하게 인민 속으로 던졌다. 때문에 역사적 현장에서 마오는 비인칭으로 존재했다. 자신의 이름을 잊고 혁명의 흐름에 몸을 던지면서 인민과 함께 걸어간 혁명의 동반자 마오의 혁명은 실패였을까 성공이었을까. 한마디로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을 내 삶의 지침으로, 나의 앎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 변혁의 순간에 자신을 던져야 한다는 것, 그것이 마오의 삶이 일관되게 보여 주는 메시지다. 마오는 어떤 일이든 자신을 온전히 그 현장에 넣지 못하면, 몸으로 전력으로 저항하지 않으면 어떠한 열매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마오쩌둥이 중국 현대사의 선봉에 선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였음은 분명하지만, 그에게는 정치가라는 이름보다 혁명의 순간에 자신을 내던져 자신을 산 혁명가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최정옥 남산 강학원 연구원
  • 너무 조심스러운 성 김

    너무 조심스러운 성 김

    지난 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의 한국 특파원들에게 미 국무부로부터 이메일이 도착했다. 그동안 한국 언론의 숱한 인터뷰 요청에 난색을 표해 온 성 김 신임 주한미국대사가 부임(10일)을 코앞에 둔 4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갖는다는 통보였다. 그런데 ‘비보도’(오프더레코드)라는 전제가 달려 있었다. 기자들은 독자들에게 알릴 수 없는 간담회는 무의미하다며 정정을 요청했고, 승강이 끝에 다음 날 간담회 시작 1시간 전에야 ‘보도용’으로 한다는 답신을 받았다. 국무부 담당 직원은 “부임 전 기자 간담회를 갖는 건 예외적인 경우”라고 강조했다. 이에 기자들이 “캐슬린 스티븐스 전 대사도 2008년 9월 부임 전에 간담회를 갖지 않았느냐.”고 지적하자 직원은 “그것도 예외였다.”고 말했다. 이윽고 간담회가 시작됐지만 성 김 대사는 “주재국 정부의 신임장을 받기 전에는 정책 관련 발언을 하지 않는 게 관행”이라며 질문을 가벼운 신상 문제로 제한했다. 하지만 스티븐스 전 대사는 부임 전 간담회에서 쇠고기 파동, 북한 문제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성 김 대사는 한국어 통역을 대동했으며 영어로만 간담회를 진행했다. 3년 전 스티븐스 대사는 간담회에서 “안녕하십니까.”, “감사드립니다.”, “추석 잘 보내십시오.”라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고, 일문일답에서는 “인수인계”, “사고방식” 같은 한국어를 사용하며 친근감을 과시했다. 간담회가 30분 정도 진행됐을 때 국무부 직원은 “정해진 시간이 다 됐다.”며 종료시켰다. 참석 기자의 절반 정도가 한마디도 질문을 하지 못했다. 부임에 앞서 스티븐스 전 대사가 가진 간담회 시간은 50여분이었다. 또 그는 부임 직전 로스앤젤레스 한인회에 들러 재미교포들과 간담회를 갖기도 했다. 외교 소식통은 “성 김 대사는 원래 처신을 극도로 조심하는 스타일인 데다 역설적으로 한국계이기 때문에 미국 정부에 한국과 너무 가깝게 비치는 걸 경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재계총수들 B20 서밋 주도적 목소리

    재계총수들 B20 서밋 주도적 목소리

    국내 재계 주요 총수들이 글로벌 비즈니스 무대에서 ‘별’로 떴다.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의 부대 행사로 열린 ‘재계의 유엔 총회’ 비즈니스 서밋(B20)이 그 현장이다. 이들은 비즈니스 서밋에서 글로벌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며 주목받았다. 4일 재계에 따르면 비즈니스 서밋은 3∼4일(이하 현지시간) 프랑스 칸에서 개최되는 ‘G20 정상회의’에 앞서 2∼3일 열린 행사다. G20 주요 기업인들이 세계 경제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고, 그 결과를 G20 정상들에게 제안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3일 비즈니스 서밋 라운드테이블에 참석, 저개발국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는 사회적 기업 설립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저개발국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글로벌 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면서 “이들 국가에 진출한 외국 기업들이 사회적 기업을 설립하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녹색성장 분과’에 참석해 녹색성장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이를 위해 화석연료 보조금을 점진적으로 폐지할 것을 제안하면서 주목받았다. 김 회장은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는 차세대 후손들에게 친환경적인 미래를 물려줄 수 있는 중요한 해결책인 만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경제를 저탄소사회로 바꿔야 한다.”면서 “에너지 취약계층 보호도 중요하기 때문에 화석연료 보조금보다는 직접 지원이 더 효율적인 정책”이라고 대안을 제시했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앞서 2일 한국 경제계를 대표해 비즈니스 서밋 개막식에서 특별 연설을 했다. 허 회장은 “경제위기 속에서 기업들이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고 선제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특파원 칼럼] 임기말 지지율 올리는 법/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임기말 지지율 올리는 법/김상연 워싱턴 특파원

    자기 부하가 자기보다 인기가 높거나, 심지어는 자기를 대신해 그 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여론이 높을 때 그 상사는 얼마나 일할 맛이 떨어질까. 지난 8월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심정이 딱 이랬을 것 같다. 재정적자 감축을 둘러싼 벼랑끝 협상에서 “공화당에 지나치게 소심한 모습을 보였다.”는 민주당 지지층의 비판과 함께 오바마의 지지율은 급전직하했다. 그러면서 나온 것이 ‘힐러리 대안론’이다. ‘오바마 카드’로는 내년 대선에서 공화당에 대권을 헌납할 우려가 있으니 차라리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을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내보내는 게 낫다는 여론이 저잣거리의 구시렁거림을 넘어 언론에까지 보도됐다. 이렇게 불쾌하기 짝이 없는 여론을 접한 오바마는 어떻게 했을까.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을까. 아니다. ‘2008년의 민주당 대선 후보 오바마’로 돌아가는 쪽을 택했다. 그는 양복 저고리를 벗어던지고 셔츠 소매를 걷어올린 차림으로 버스를 타고 전국을 누볐다. 경호상의 위험성도 아랑곳없이 연일 타운홀 미팅을 통해 유권자들과 만나고 정제되지 않은 거친 질문에 답했다. 개인적으로, 처음엔 오바마의 셔츠 차림 민생탐방을 보면서 ‘저렇게 한다고 지지율이 올라갈까.’라고 냉소했었다. 정치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지지율 회복을 위한 ‘쇼’라고밖에 할 수 없는, 식상한 전략으로 비쳤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거의 매일 오바마가 국민들과 부대끼며 뭔가를 설파하는 것을 자꾸 듣다 보니 그의 말이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경제가 아주 안 좋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통령이 “우리는 할 수 있다.”라고 주문처럼 영감을 불어넣으니 완전히 절망적인 상황은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공화당의 잘못이 더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을 일종의 세뇌현상이라고 일컬어도 좋은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마침내 눈을 비비고 볼 만한 결과가 나왔다. 지난 2일 퀴니피액 대학 여론조사 결과 한때 41%까지 떨어졌던 오바마의 지지율이 47%까지 오른 것이다. 오바마가 갑자기 국민한테 예쁘게 보일 만한 가시적 ‘호재’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2일 발표를 보면, 살림살이는 더 나빠졌다. 성장률 전망치는 더 낮아졌고, 실업률 전망치는 더 올라갔다. 미국이 별로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않은 리비아 내전이 종료됐다고 해서 먹고살기 팍팍한 미국 국민들이 돌연 오바마 지지로 돌아섰을 것 같지도 않다. 결국 오바마가 국민들한테 겉으로라도 열심히 하는 성의를 보인 게 지지율을 끌어올린 근인이 아닐까. 오바마는 지난 몇달간 고고한 현직 대통령이 아니라 겸손한 대선 후보로 변신했다. 시골 마을 식당에 불쑥 들어가 손님들을 놀라게 하는가 하면 농촌 고등학교를 방문해 신세대 질문에 답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현직 대통령의 카리스마가 훼손될 우려가 있는 심야 코미디 토크쇼에도 나가 서슴없이 망가졌다. 단임제인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재선에 출마할 일이 없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보기 힘들다. 한국의 대통령들은 임기 말이 되면 국정의 대단원을 정리하거나 외교적 치적에 상대적으로 열중하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단임제는 나름대로 장점이 많다. ‘포퓰리즘’에 영합하지 않고 나라의 비전을 멀리 내다보며 소신 있게 임기를 마무리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대통령의 지지율이 너무 떨어지면 우선 본인 스스로가 일할 맛이 안 날 테고, 이건 결과적으로 국가적 손해다. 또 대통령의 지지율은 영원히 역사에 남는다. 임기말의 대통령이 높은 보료 위에서 내려와 마치 내일 선거를 앞둔 후보처럼 절박하게 국민들에게 손을 내민다면 어떤 기적이 일어날까. 오바마는 2일 셔츠 차림으로 포토맥강의 냄새나는 다리 밑에 서서 “경제회복”을 역설했고, 워싱턴DC 시민들은 그런 대통령의 모습을 스마트폰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carlos@seoul.co.kr
  • 孫 야권 통합정당 로드맵 ‘역풍’

    孫 야권 통합정당 로드맵 ‘역풍’

    손학규(얼굴) 민주당 대표가 전날 선언한 연내 범야권 ‘민주진보 통합정당’ 건설 로드맵이 당내외의 거센 역풍을 맞고 있다. 4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저지를 위해 마련된 민주당 긴급 전국지역위원장 회의는 손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사퇴를 촉구하는 성토장이 됐고,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 당권주자들도 한목소리로 지도부를 비판했다. 손 대표는 이날 확대간부 회의와 지역위원장 회의 등에서 민주진보 통합정당의 당위성을 거듭 역설했다. 손 대표는 “통합은 시대의 요구”라면서 “통합에 참여할 야권의 모든 세력이 모이는 대표자 연석회의에서 조속한 시일 내에 통합의 원칙, 범위, 일정을 합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야권통합 전당대회는 12월 18일(당헌당규상 선거일로부터 1년 전 당 대표직 사퇴기한) 이내 추진하고자 한다.”며 전대 이전에 사퇴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대표직에서 물러날 경우 사실상 통합 전대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손 대표 측의 판단이다. 손 대표를 포함한 친손(친손학규)계 의원들은 지역위원장 회의에 앞서 여의도의 한 식당에 모여 원내외 지역위원장들을 설득하기 위한 비공개 작전 회의를 가졌다. 회의 직후 친손계 의원들은 이들에게 전화를 걸어 반발 분위기를 돌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험악한 분위기를 가라앉히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영등포 당사에서 열린 지역위원장 회의에는 100여명의 위원장들이 몰려들었다. 이들은 당 지도부가 인사말에 이어 회의를 비공개로 전환하려 하자 “왜 지도부 말만 언론에 공개하느냐.”며 발언권을 요구했다. 지도부를 비판하는 고성도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왔다. 조경태 의원은 “통합이 아니라 야합이며 민주당을 선거자원봉사조직으로 전락시킨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지도부 사퇴를 촉구했다. 유력 당권주자인 박 전 원내대표는 “당헌당규대로 전대를 준비해야 하며 즉각 전대준비위를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이종걸 의원은 11일 전대를 요구하며 “민주당을 죽이는 시간끌기용”이라고 비난했다. 강주리기자 jurik@seoul.co.kr
  • 라가르드 “그리스 국민투표는 딸꾹질” 비난

    3일 프랑스 칸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는 그리스가 전격적으로 유럽연합(EU)의 구제금융안 수용 여부에 대해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하면서 이 문제로 각국 정상들의 관심이 급속히 쏠렸다. 이에 따라 당초 주요 의제였던 글로벌 경제의 장기적 개혁논의는 뒤로 밀릴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일 칸에 있는 마르티네스 호텔 앞 백사장에서 열린 G20 주요 기업인들의 정상회의격인 비즈니스 서밋(B20) 만찬에 참석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연설을 마친 뒤 서둘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등과 긴급 회동을 갖고 그리스 국민투표 사태를 논의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그리스 국민투표를 ‘딸꾹질’(hiccup)이라고 표현하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B20 만찬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글로벌 위기극복을 위한 기업의 역할’이란 주제의 기조연설을 했다. G20 정상 중 만찬에 참석한 이는 이 대통령이 유일하다. 이 대통령은 “오늘날과 같이 전례없는 글로벌 위기상황에서는 도전 정신과 창조적 혁신을 추구하는 기업가 정신이 특별히 중요하다.”면서 “세계의 모든 훌륭한 기업은 불경기 때 더 혁신하고 과감하게 투자함으로써 더 큰 성장을 이뤄왔다. 고용과 투자·기술혁신에서 기업가들이 더 큰 역할과 과감한 행동을 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3일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 만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교착상태에 빠진 데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 대통령은 “미국 의회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막 싸우는데 우리 일(한·미 FTA)에는 협조를 했다.”면서 “거의 그런 기회(상·하원 합동의회 연설)를 안 주는데 나를 공식적으로 초청을 해줬다.”고 설명했다. 반 총장은 이 자리에서 “남수단 상황이 대단히 심각한 상황”이라면서 이 대통령에게 남수단에 평화유지군(PKO)을 파병해달라고 공식요청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헤르만 반롬푀이 EU 정상회의 상임의장 등과 가진 한·EU 정상회담에서 FTA 효과가 조기에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역설했다. 지난 7월 1일 한·EU FTA 잠정 발효 이후 7~9월 한·EU 간 교역액은 253억 56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226억 6800만 달러)보다 11.8% 증가했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어 가진 업무오찬에서 “(경제)위기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으므로 위험요인과 징후를 조기에 발견하고 제거하는 위기관리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빌 게이츠는 이날 사르코지 대통령의 요청에 따라 G20 정상회의에 참석해 개발재원에 관한 보고를 했다. 빌 게이츠는 “G20 중 15개 국가가 이미 증권거래소 형태의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주식거래 등에 세금을 매기면 연간 480억 달러를 조성해 개도국 개발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칸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영화리뷰] 발리우드 틀 깬 ‘청원’

    [영화리뷰] 발리우드 틀 깬 ‘청원’

    14년 전. 이튼은 당대 최고의 마술사였다. 여인의 입김을 불어 넣어 촛불을 양초에서 분리한 뒤 공중으로 몸을 띄워 촛불과 양초를 다시 결합시키는 마술은 그의 전매특허. 하지만 마술을 선보이다 공중에서 추락하고 만다. 수차례 대수술을 받았지만 끝내 전신마비가 된다. 삶을 끝내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지만 그의 곁에는 12년간 한결같이 돌봐주는 간호사 소피아가 있다. 코끝에 앉은 파리 한 마리도 떼어내지 못하는 그는 그녀의 도움으로 삶을 이어간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라디오 DJ로 제2의 삶을 살아간다. 불행을 감춘 채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이튼은 어느 날 오랜 친구인 변호사 데비아니를 불러 한 가지 부탁을 한다. 인도에서는 불법인 안락사를 할 수 있도록 법원에 청원해 달라는 것. 3일 개봉한 ‘청원’(원제: Guzaarish)은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소녀와 그를 세상 밖으로 나가도록 돕는 헌신적인 스승의 이야기를 다룬 ‘블랙’(2005)으로 강한 잔상을 남긴 산제이 릴라 반살리 감독의 ‘발리우드’(인도 영화 산실인 봄베이와 할리우드를 합친 말) 영화다. 올해 극장가에 흥행 폭풍을 몰고 온 ‘세 얼간이’가 진화한 인도 영화의 전형을 보여준다면 ‘청원’은 다른 길을 걷는다. 발리우드 영화의 상징 같은 군무(群舞)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로지 이야기의 힘으로 승부를 건다. 반살리 감독은 “삶과 가깝지만 별로 이야기되지 않는 주제를 다루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전신마비 환자의 안락사라는 민감한 주제와 법정 드라마라는 딱딱한 소재를 감독은 철저하게 감정에 호소해 풀어 나간다. 지붕에서 비가 새는 탓에 밤새 이마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몸서리치는 이튼의 모습은 전신마비 장애인의 고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가슴이 먹먹해지는 순간도 많지만 불편하지는 않다. 어느 순간에도 유머를 잃지 않는 이튼의 성격 덕이다. 침대에서 떨어져 목뼈가 부러질 위기에 처한 이튼은 소피아에게 “당신의 다리를 볼 좋은 기회였는데 천막처럼 긴 치마를 입었다.”며 농을 건다. 전신마비 환자 이튼 역을 맡은 리틱 로샨(오른쪽)은 역설적으로 발리우드 최고의 몸짱 배우이자 ‘댄싱 머신’이다. ‘인도의 ○○○’란 별명을 붙이기 좋아하는 현지에선 그를 ‘인도의 마이클 잭슨’으로 부른다. 장면 대부분에서 침대에 누워 있거나 휠체어에 의지하지만 표정만으로도 많은 이야기를 한다. 남편의 학대를 받으면서도 이튼을 위해 헌신하는 간호사 소피아 역은 아이시와라 라이(왼쪽)가 연기했다. 미스 월드(1994년) 출신인 라이는 인도 최초의 프랑스 칸 영화제 심사위원, 인도 최초의 미국 타임지 표지 모델로도 유명하다. 빼어난 외모는 조금 퇴색했지만 고혹적인 표정과 눈빛은 여전하다.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고야 지방에서 촬영된 장면들은 아름답다는 말 외에는 적당한 형용사를 찾기 어렵다. 특히 이튼이 법원에 출두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바닷가에 들러 발끝에 물을 적시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아무런 감각이 없는 이튼은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삼성 사장단, 경쟁사 LG 트윈스 이택근 선수에 박수 갈채 왜?

    삼성 사장단, 경쟁사 LG 트윈스 이택근 선수에 박수 갈채 왜?

    삼성그룹 사장단이 LG트윈스 선수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경쟁사의 선수지만 팀을 위해 헌신하는 그의 자세를 높이 산 것이다. 2일 삼성에 따르면 야구해설위원으로 유명한 하일성 스카이엔터테인먼트 회장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프로야구 600만 관중의 성공비결’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를 예로 들며 헌신과 희생,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었던 하 회장은 김경문 야구국가대표팀 감독과 선수 선발 기준을 놓고 격한 언쟁을 벌였다. 김 감독이 “(능력보다는) 팀에 헌신하고 희생하고 협력할 줄 아는 선수를 뽑겠다.”고 밝히자 하 회장이 “올림픽이 무슨 인간성 테스트하는 곳이냐.”고 맞섰던 것. 6시간이 넘는 싸움 끝에 하 회장은 올림픽 메달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김 감독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야구 대표팀은 미국과의 1차전을 시작으로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특히 하 회장은 당시 무명이던 이택근(현 LG트윈스) 선수에 대한 일화를 강조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이 선수는 잠도 안 자고 새벽마다 다른 선수들의 호텔방을 돌며 에어컨을 끄는 일을 했다. 그는 “자랑스러운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후보여서 팀에 기여하는 게 없다.”면서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다 선배들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뛸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하 회장은 “김 감독이 헌신, 협력, 희생을 할 줄 아는 선수를 뽑겠다는 게 이해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삼성 역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지시에 ‘S급 인재’ 찾기에 열중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회사를 ‘1등 기업’으로 발전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은 조직을 위해 기꺼이 융합하고 헌신할 줄 아는 인력이라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헌신, 협력, 희생’의 원칙은 앞으로 신입사원 선발 등 삼성의 다양한 인재 양성 과정에 폭넓게 적용될 전망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프로농구] ‘존슨+α’… SK, 3연패 탈출

    [프로농구] ‘존슨+α’… SK, 3연패 탈출

    시범경기를 치렀을 때 SK 알렉산더 존슨은 ‘퇴출 1순위’로 꼽혔다. 당당한 체격(208㎝·113㎏)에 미프로농구(NBA), 독일리그, NBA D-리그까지 다양한 경험을 쌓은 ‘물건’이지만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외국인 선수 규정이 올 시즌부터 1명 보유, 1명 출전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용병 농사는 곧 시즌의 성적을 좌우하는 중요한 포인트. 주변의 우려가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문경은 감독대행은 “괜찮다. 가능성 있는 선수”라고 감싸안았다. 그리고 1라운드 막바지를 향해가는 현재, 존슨은 9개 구단 감독이 탐내는 특급 외인으로 발돋움했다. SK는 지금 ‘존슨에 의한 팀’이다. 역설적으로 그게 오히려 딜레마다. 문 감독대행은 1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모비스전을 앞두고 “내가 상대팀 감독이라면 존슨만 막겠다. 우리팀 공격루트는 다 존슨”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외곽에서 터져줘야 할 김효범과 변기훈이 침묵하면서 SK는 3연패에 빠져 있었다. 존슨은 득점 1위(평균 29.71점)로 잘나갔지만 농구는 한 명으로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존슨은 이날 36점을 올렸다 평균치를 웃도는 점수. 하지만 이날은 ‘특급 도우미’들이 든든히 뒤를 받쳤다. 김선형이 18점, 김민수가 20점(6리바운드)을 거들며 존슨의 짐을 나눠졌다. 경기종료 1분10초 전까지 뒤지던 SK가 83-80으로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연패탈출도 기쁘지만 존슨이 아닌 공격루트를 발견한 게 수확이다. 창원에서는 전자랜드가 LG를 71-62로 꺾고 3연승을 달렸다.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SW경쟁력은 곧 미래 성장동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 “SW경쟁력은 곧 미래 성장동력”

    구본준 LG전자 부회장이 임직원들에게 소프트웨어 역량 강화를 다시 한 번 강조했다. LG전자는 최근 구 부회장이 서초R&D캠퍼스에서 열린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인증식에서 “소프트웨어 경쟁력은 곧 미래 성장동력”이라면서 “최고 전문가라는 자부심을 갖고 역량 향상에 매진해 달라.”고 독려했다고 1일 밝혔다. 인증식에서는 모두 14명의 연구개발 인력이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인증패를 받았다.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란 소프트웨어의 전체적인 구조를 이해해 거시적인 관점에서 설계하는 이 분야 최고 인력을 뜻한다. 소프트웨어 아키텍트 양성과정 대상자는 매년 초 미국 카네기 멜론대학 등에서 약 4개월의 교육 과정을 거친다. 선정된 소프트웨어 아키텍트는 사업 본부 내 별도 전담 조직에 소속돼 다양한 직무를 경험하고 연간 연구개발 활동비도 지원받는다.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를 계기로 소프트웨어가 정보기술(IT) 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로 부각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양사 최고 경영자들이 직접 나서 소프트웨어 전문 인력 양성을 역설하고 있다. 특히 경쟁업체에 비해 스마트폰 등 분야에서 소프트웨어 인력이 상대적으로 열세인 LG전자로서는 소프트웨어 인력 확보가 더더욱 절실할 수밖에 없다. 구 부회장의 발언 역시 이러한 현실 인식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삼성 사장단이 LG 야구선수에 박수갈채 보낸 이유는?

    삼성 사장단이 LG 야구선수에 박수갈채 보낸 이유는?

     삼성그룹 사장단이 LG트윈스 선수에게 박수갈채를 보냈다. 경쟁사의 선수지만 팀을 위해 헌신하는 그의 자세를 높이 산 것이다.  2일 삼성에 따르면 야구해설위원으로 유명한 하일성 스카이엔터테인먼트 회장은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에서 ‘프로야구 600만 관중의 성공비결’이란 주제의 강연에서 2008년 베이징올림픽 당시를 예로 들며 헌신과 희생, 협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당시 한국야구위원회(KBO) 사무총장이었던 하 회장은 김경문 야구국가대표팀 감독과 선수 선발 기준을 놓고 격한 언쟁을 벌였다. 김 감독이 “(능력보다는) 팀에 헌신하고 희생하고 협력할 줄 아는 선수를 뽑겠다.”고 밝히자 하 회장이 “올림픽이 무슨 인간성 테스트하는 곳이냐.”고 맞섰던 것.  6시간이 넘는 싸움 끝에 하 회장은 올림픽 메달을 포기하는 심정으로 김 감독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자 야구 대표팀은 미국과의 1차전을 시작으로 전승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작성했다.  특히 하 회장은 당시 무명이던 이택근(현 LG트윈스) 선수에 대한 일화를 강조했다. 올림픽 기간 동안 이 선수는 잠도 안 자고 새벽마다 다른 선수들의 호텔방을 돌며 에어컨을 끄는 일을 했다. 하 회장은 당시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할 선수가 잠도 안 자고 뭐하는 짓이냐.”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그는 “자랑스런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후보 선수여서 팀에 기여하는 게 없다.”면서 “뭔가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다 선배들이 최상의 컨디션에서 뛸 수 있도록 돕는 게 내 역할이라고 생각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답했다.  베이징의 여름 날씨가 후덥지근해 에어컨 없이는 잠들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밤새 에어컨을 켜놓고 자면 몸이 무거워져 경기력이 떨어진다는 점을 걱정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을 도맡아 한 것이다.  하 회장은 “김 감독이 헌신, 협력, 희생을 할 줄 아는 선수를 뽑겠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이해되면서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삼성 역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지시에 ‘S급 인재’ 찾기에 열중하고 있는 상황. 그럼에도 회사를 ‘1등 기업’으로 발전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은 조직을 위해 기꺼이 융합하고 헌신할 줄 아는 인력이라는 게 삼성의 설명이다. ‘헌신, 협력, 희생’의 원칙은 앞으로 신입사원 선발 등 삼성의 다양한 인재 양성 과정에 폭넓게 적용될 전망이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10·26 재보선 이후] “창당 수준 재창조”

    [10·26 재보선 이후] “창당 수준 재창조”

    보수진영의 잠재적 대권후보로 거론되는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이 30일 한나라당의 쇄신방향에 대해 “‘창당수준의 재창조’ 외에는 답이 없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이날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정당정치 불신과 관련해 “정신적으로 당을 해체해야 한다.”면서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결집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한 원인에 대해 그는 “민생 고통에 대해 정책대안도 없고 한마디로 이념과 정책, 리더십이 부족하고 내부분열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민심을 다시 얻으려면 초심으로 돌아가 창당 수준의 재창조를 하는 것만이 해답의 열쇠”라고 역설했다. 무소속 박원순 후보의 당선에 대해서도 박 이사장은 기존 정당의 역할 부재를 먼저 질타했다. 그는 “여야를 막론하고 진정한 의미의 근대정당·가치정당이 없다. 지역감정에 의지한 패거리 지역 붕당이었고 진정으로 정치적 소신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향후 한나라당을 대체할 범보수정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새로운 보수정당 창당도 필요할 수 있지만 극단 보수·진보를 제외한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손을 잡는 게 시급하다.”고 제안하면서 “그래야 현재와 같은 국민 갈등과 분열을 줄이고 나라를 미래로 끌고 갈 수 있다.”고 밝혔다. 제3 정당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일단 한발 물러서면서 “지금 우리 사회의 분열, 갈등이 너무 심한 만큼 극단적인 주장을 빼고 하나로 묶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본인이 상임의장으로 재임 중인 선진통일연합의 운신과 관련해 박 이사장은 “정치개혁운동의 필요성에 대해 앞으로 본격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씨줄날줄] 세계인구 70억 시대/구본영 논설위원

    18세기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만큼 포폄(褒貶)이 엇갈리는 인물도 드물다. 살아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마찬가지다. ‘인구론’에서 편 독특한 주장이 줄곧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에서다.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 데 비해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는 게 맬서스 이론의 핵심이다. 이로 인해 인류는 기근과 빈곤이란 대재앙을 맞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피하기 위해서 그는 출산율을 낮춰 인구를 줄이자는 ‘예방적 억제론’을 폈다. 문제는 빈민들에게만 과녁을 맞춰 결혼을 늦추거나 출산을 자제해야 한다는 ‘비인간적’ 주장이란 점이다. 당시 그의 불길한 예언에 놀란 피트 영국 총리는 빈곤층에 대한 생활보조금을 철회해 버렸다. “맬서스 장례식에 참석한 이들 중 일부는 애도하러, 나머지는 정말 죽었는지 확인하러 갔다.”는 은유가 그에 대한 평판을 함축한다. 오는 31일 지구촌은 인구 70억명 시대를 맞는다. 유엔인구기금(UNFPA)은 이런 추계에 맞춰 26일 ‘70억명의 세상, 사람, 그리고 가능성’ 보고서를 내놓았다. 맬서스 출생 직전인 1750년 세계인구는 8억명 수준이었다. 이후 1950년 25억, 1975년 40억, 그리고 2000년 60억명 규모를 찍고 11년 만에 70억명을 돌파한 셈이다. 하지만 맬서스가 우려했던 인류의 파국은 오지 않았다. 그의 예언이 빗나간 것은 무엇보다 농업기술 혁명을 간과한 탓이다. 미국의 헨리 조지 교수는 “매도, 사람도 닭을 먹는다. 다만 매가 닭을 잡아먹으면 닭의 개체 수가 줄지만, 사람이 먹으면 증가한다.”라는 비유로 맬서스 이론을 비판했다. 그렇다고 해서 맬서스의 예측이 100% 틀린 것은 아니다. 선진국에서는 낮은 출산율이 커다란 사회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아프리카나 서남아시아 등 저개발국을 중심으로 전세계적으론 인구가 여전히 폭증하고 있다. 이런 ‘인구 패러독스’는 빈곤층 출산 억제라는 맬서스의 불공평한 주문과 정반대란 점에서도 퍽 역설적이다. 더욱이 세계인구 70억명 중 15%인 9억 2000만명이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반면 이보다 많은 20%가 비만증을 앓고 있다니, 아이러니 그 자체다. 우리나라는 인구 폭발이 멈춘 데다 끼니 걱정은 면했다는 점에서 맬서스의 비극적 예언에서는 비켜났다. 하지만 신진대사가 안 되는 유기체는 시들어갈 수밖에 없다. 젊은 경제활동인구가 턱없이 부족한 ‘늙은 국가’가 안 되도록 출산율을 높일 획기적 대책이 긴요한 시점이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슈밋 구글 회장 새달초 4년만에 방한

    슈밋 구글 회장 새달초 4년만에 방한

    모바일 혁명의 신봉자로 구글 안드로이드 사업을 이끌어 왔던 에릭 슈밋 구글 회장이 다음 달 초 한국에 온다. 28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슈밋 회장은 다음 달 방한해 삼성·LG전자 등 국내 안드로이드 제조사 최고경영자(CEO)와 이동통신사·IT협력사 대표들과 만난다. 슈밋 회장이 한국에 오는 것은 2007년 5월 이후 4년 만이다. 그의 이번 행보에서는 삼성전자와의 접촉이 특히 관심을 모은다. 슈밋 회장은 지난 7월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구글의 모바일 혁명 간담회’ 기조연설에서 “안드로이드는 아시아 제조사를 위한 플랫폼”이라고 강조했었다. 구글 안드로이드가 삼성전자와 LG전자, 타이완 HTC 등 아시아 하드웨어 제조사를 강력한 우군으로 확보하며 급성장한 점을 상기한 것이다. 그러나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안로이드 연합군의 핵심축이자 최우선 파트너인 삼성전자와의 균열이 커지고 있다. 애플-구글 양강 구도를 형성해 온 글로벌 IT 판도는 마이크로소프트(MS)로부터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삼성전자가 MS와 특허 공유를 포함한 포괄적 제휴 관계를 구축하며 탈(脫)안드로이드 행보에 시동을 건 점도 슈밋 회장으로서는 우려되는 대목이다. 구글은 최근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차세대 운영체제(OS)인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를 처음으로 탑재한 레퍼런스폰인 ‘갤럭시 넥서스’를 공개하며 공고한 협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로 삼성전자와의 결속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슈밋 회장은 지난 1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모토로라에 특혜를 주지 않을 것”이라며 안드로이드 제휴사를 달래는 발언을 했었다. 그럼에도 구글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부문의 수평 생산체제를 구축하면 하드웨어 제조사인 삼성전자 등 안드로이드 제휴사는 소외될 공산이 크다. IT전문가들은 구글이 125억 달러를 들인 모토로라 인수전이 내년 초 마무리되면 안드로이드 진영의 내부 결속력이 크게 약화될 것으로 점치고 있다. 삼성전자는 MS와 손을 잡은 데 이어 인텔과의 OS 제휴, 독자적 플랫폼인 ‘바다 OS’의 입지 강화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자로서는 MS 특허를 활용해 애플을 견제할 수 있는 동시에 구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카드로 활용하려는 포석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IT 업계에서 급속한 파워 이동이 일어나고 있고 삼성 같은 하드웨어 업체에서 소프트웨어 업체로 파워가 넘어가는 데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슈밋 회장은 지난 4월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에게 CEO 자리를 넘기고 후선에 있다. 하지만 그 자신이 “안드로이드 사업이 구글의 가장 큰 기회”라고 역설해 온 만큼 삼성과의 균열 해소를 최우선 과제로 인식할 수 있다. MS가 세 확장을 위해 손을 뻗치고 있는 LG전자와 팬택 등 국내 안드로이드 제휴사와도 머리를 맞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슈밋 회장은 안드로이드 제휴사 경영진뿐 아니라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 이석채 KT 회장, 하성민 SKT 사장 등 모바일 업계 수장들과 비공개 회동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안동환기자 ipsofacto@seoul.co.kr
  • [시민단체 정치속으로] 시민단체의 뿌리는…

    [시민단체 정치속으로] 시민단체의 뿌리는…

    1987년 6월항쟁의 경험과 성과는 시민사회운동단체 설립의 토대를 마련했다. 1989년 경제정의실천 시민연합 출범을 시작으로 정치·경제·행정·환경·교육·여성·언론·문화·소비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이슈와 연결된 시민단체들이 봇물처럼 늘어났다. 이전까지 사회 변혁의 동력이 학생·노동운동에서 나왔다면, 1990년대 절차적 민주주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는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이 단연 돋보였다는 얘기다. 물론 1987년 이전에도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은 존재했다. 출범 배경과 목적, 운동의 방향과 양상이 시대적 좌표에 따라 달라졌을 뿐이다. 100여년 전 첫발을 뗀 이후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하고 있는 YMCA(기독교청년회)는 물론, YWCA(기독교여자청년회), 흥사단 등을 보면 시민단체들의 변화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시민사회운동의 시초로 평가받는 YMCA가 가장 먼저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란 이름으로 첫발을 디뎠다.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이 민족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설립한 흥사단이, 1922년에는 YWCA(당시 조선여자기독교청년회)가 뒤를 이었다. 일제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이 단체들은 근대화 및 민족 계몽과 더불어 독립운동의 인큐베이터 및 운영자금 조달 역할에 집중했다. 105인 사건(1911)과 2·8 독립선언, 3·1운동(이상 1919), 신간회(1927) 등이 대표적이다. 해방 이후 구호·부흥사업 등에 주력하던 시민단체들이 역사의 전면에 재등장한 것은 역설적으로 군사독재정권의 압제와 맞물려 있다. 흥사단이 1963년 한국사회의 지도자 배출을 목적으로 전국 대학·고교생을 대상으로 운영한 아카데미는 훗날 민주화 및 시민운동 인력을 키워내는 핵심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초 떠들썩했던 학림(전국민주학생연맹)사건의 주역 이태복(전 보건복지부 장관)씨와 이선근씨 등이 대표적이다. 1973년 발족한 ‘서울YMCA 사회개발단’은 시민의식 개발을 위한 시민논단, 시민권익 옹호를 위한 시민중계실, 양곡은행, 이동사회관 등을 통해 민중 속으로 다가가면서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모형을 제시했다. 1986년 YMCA 중등교사협회 소속 교사 600여명의 교육민주화선언은 훗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운동의 시발점이 됐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일본통신] 두산 베어스 새 수석코치에 이토 쓰토무 영입

    [일본통신] 두산 베어스 새 수석코치에 이토 쓰토무 영입

    두산 베어스가 수석코치로 이토 쓰토무(49)를 영입했다. 이토 코치는 일본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스 감독을 역임한바 있는 거물급 지도자다. 또한 지난 동계훈련(2월) 당시 LG 트윈스에서 포수 인스트럭터로 활동했던 전력이 있다. 이토 코치의 두산 영입은 새 사령탑인 김진욱 감독의 부임이 결정될쯤 함께 나왔던 소문이다. 당시 소문으로만 나돌았던 이토 코치의 영입 문제는 일본의 정규시즌이 끝나자 자연스럽게 다시 불거졌고 결국 두산 유니폼을 입게됐다. 이토는 2007년부터 NHK 야구해설 위원으로 활동 했고 그의 영입 소문이 나돌쯤엔 방송국과의 계약문제가 남아 있는 등 거취를 표명할 뚜렷한 입장이 아니었다. 이토 코치의 한국행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토는 현역시절 세이부 라이온스의 ‘황금시대’를 함께한 대표적인 포수였고, 은퇴 후 지도자로서 이룬 업적역시 대단했기 때문이다. 1981년 세이부 라이온스에 입단한 이토는 22년동안 팀의 간판 포수로 활약했다. 1980년대 일본야구를 세이부 시대라고 일컫는 것도 이토를 비롯, 기요하라 카즈히로, 곽태원, 아키야마 코지(현 소프트뱅크 감독)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토는 현역시절 베스트 나인 10차례, 골든글러브 수상 11회, 퍼시픽리그 우승 14회, 일본시리즈 우승 8회, 그중 선수로서는 일본시리즈에서 센트럴리그 6개 구단을 모두 상대해본 유일한 선수로 기록돼 있다. 뿐만 아니라 포수는 느리다는 편견을 깨고 1984년 20도루(퍼시픽리그 포수 기록), 덧붙여 통산 134개의 도루(일본 기록)를 성공시킨 포수다. 그가 기록한 통산 305개의 희생타는 퍼시픽리그 역대 1위, 포수로서 2,327경기 출장은 역대 3위에 해당된다. 은퇴 한 이듬해인 2004년 세이부 감독에 취임한 이토는 그해 팀을 일본시리즈 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이토는 포수 ‘플래툰시스템’을 신봉하는 스타일로 2009년 사와무라상 수상자인 와쿠이 히데아키가 선발 등판하면 포수 스미타니 긴지로, 그리고 지금은 미국에서 활약하고 있는 마쓰자카 다이스케(보스턴)가 선발 일때는 호소카와 토오루(소프트뱅크)와 같은 조합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현재 일본최고의 수비형 포수는 호소카와 토오루다. 호소카와는 지난해말 세이부를 떠나 소프트뱅크로 이적했지만 이토가 세이부에 있을때 애지중지하며 키운 포수가 바로 호소카와다. 흔히 일본에서 포수계열을 논할때 노무라 카츠야-후루타 아츠야와 모리 마사아키-이토 쓰토무의 계보를 말하곤 한다. 전자가 공격력과 수비를 모두 겸비한 조합이라면 후자는 공격력은 이들보다 떨어지지만 그걸 상쇄하고 남음이 있는 수비력의 대명사로 지금까지 알려져 왔다. 이토는 자신의 등번호 27번을 호소카와에게 물려줬을 정도로 그에 대한 기대, 그리고 포수론의 대가로 공히 인정받고 있는 지도자다. 이토 코치가 LG 인스트럭터로 있을때, 좋은 포수의 3가지 조건을 언급한적이 있다. 첫째는 상대가 싫어하는 포수가 좋은 포수라는 점, 둘째는 실패를 잊지 않아야 한다는 점, 그리고 세번째는 포구때 움직임이 적은 포수가 훌륭한 포수의 기본이라고 역설했다. 당시 이토는 일본도 좋은 포수 코치가 부족하고 그래서 일본야구도 발전이 느리다고 했다. 좋은 볼배합의 기준은 없으며 상대 타자를 잡았을때보다 얻어 맞을때를 결코 잊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특히 그는 현역시절에도 포구능력이 매우 뛰어난 포수로 정평이 나 있듯 좋은 캐칭(포구)은 몸과 팔꿈치는 움직이지 않은채 손목으로 자연스럽게 공을 포구해야 한다는 이론을 역설한바 있다. 두산은 신임 김진욱 감독을 보좌해줄 인물이 필요한 구단이다. 어떻게 보면 선수로서의 명성이나 지도자로서 검증된 이토 코치가 합류하게 되면 감독직을 수행하는데 있어 훨씬 더 수월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특히 이토 코치를 통해 양의지를 비롯한 두산 포수진들의 일취월장, 그리고 팀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마인드로 꽉찬 이토 코치의 야구론도 같이 스며들 가능성도 크다. 한편 이토가 두산 베어스 수석코치로 영입됐다는 소식은 28일 일본 스포츠지 ‘스포츠닛폰’을 통해서다. 하지만 두산 관계자는 ‘영입 의사를 전달한건 맞지만 아직 확정된건 없다’ 고 기존의 입장만 되풀이 했다. 아마도 아직 이토가 일본내에서 방송해설위원과 평론가로 활동중이기에 정리가 필요하다는 점, 그리고 일본은 이제서야 포스트시즌이 시작됐기에 일본시리즈가 끝날때까지 시간적 여유를 두고 있는듯 싶다. 사진=현역시절 이토 쓰토무(우)와 마쓰자카 다이스케(좌) 서울신문 나우뉴스 일본야구통신원 윤석구 http://hitting.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