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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농협, 온정주의와 결별… 성과 보상 강화”

    “농협, 온정주의와 결별… 성과 보상 강화”

    “출범 5년차를 맞는 농협은행은 일류 은행으로 비상하느냐 삼류 은행으로 추락하느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경섭 농협은행장은 4일 서울 중구 통일로 농협은행 본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경기 침체와 국내 경제의 저성장·저금리 기조 지속, 인터넷전문은행 출현 등으로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면서 “(그렇다 해도) 농협은행은 출범 이후 한 번도 경영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 원인으로 “농협 특유의 온정주의 문화와 글로벌 파생상품에 대한 무리한 투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특정 산업에 대한 과도한 여신 지원” 등을 지목했다. 이 행장은 강한 어조로 “이러한 과거와 결별하자”고 일갈한 뒤 “적당주의, 연공서열, 지역 안배 같은 인습을 타파하고 우수한 성과를 낸 직원에 대해서는 보상을 강화하겠다”고 역설했다. 이어 “일류 은행이 되고자 하는 비전도 실천하지 않으면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다”며 “직원 모두가 마음을 모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자”고 주문했다. 이 행장의 임기는 2017년 12월까지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한국경제 CEO 2016 인터뷰] (2) 윤종규 KB금융 회장

    [한국경제 CEO 2016 인터뷰] (2) 윤종규 KB금융 회장

    “대우증권을 인수했다면 비은행 부문 강화를 수월하게 이룰 수 있었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에 아쉬운 마음도 있죠.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우증권 인수가 우리가 가야 할 성장전략 중 한 가지 방법이었을 뿐이지 전부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윤종규(61)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에게 2015년은 의미가 남달랐다. 2014년 말 KB금융지주 회장으로 ‘금의환향’한 뒤 처음 맞는 한 해였기 때문이다. 그는 지난해 ‘KB 내분사태’를 수습하고 LIG손해보험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었다. 실적 면에서도 ‘1등’ 신한금융을 맹추격했다. 윤 회장은 KB금융 조직원들에게 “1등 DNA를 깨우쳐 다시 뛰어 보자”는 자신감을 심어 준 한 해로 자평한다. 하지만 지난해 끝자락에서 날아온 대우증권 인수 불발 소식은 씁쓸한 대목이다. 윤 회장은 4일 서울신문과의 신년 인터뷰에서 대우증권 인수 실패에 대한 심경을 담담히 밝혔다. 그는 “KB금융지주와 이사회가 비은행 부문 강화를 위해 대우증권 인수 필요성을 충분히 공감했고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런 강력한 의지에도 대우증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미래에셋(2조 4000억원)보다 3000억원이나 낮은 입찰가를 써 냈던 부분에 대해 윤 회장은 “내부 최고 인력들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에서 대우증권 실사를 토대로 합리적인 가격을 선정했다”고 설명하며 ‘가격 적정성’을 거듭 강조했다. 이제 KB금융은 대우증권 인수 실패를 뒤로하고 ‘플랜B’를 추진하고 있다. 그룹 계열사 중 31~32%대 수준인 비은행 부문 수익을 중장기적으로 40%대까지 확대해 1등 금융그룹을 달성하겠다는 전략이다. 윤 회장은 “증권부문과 관련해 중장기 성장 모델로 제시한 자산관리(WM), 기업투자금융(CIB)의 시너지를 구현하기 위해 KB투자증권의 유기적 성장에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추가적인 인수·합병(M&A)에 대해서도 가능성을 열어 두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외부 M&A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검토할 것”이라면서 “다만 인내심을 가지고 그룹 시너지 등을 고려해 신중히 의사 결정을 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룹의 지속 성장과 더불어 “부실 쓰나미에 대비하는 방파제를 높이 쌓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내실 다지기의 중요성도 역설했다. 윤 회장은 “저성장이 고착화되는 시대에는 수비 능력을 높이는 것 역시 중요하다”며 “선제적으로 리스크 관리 역량을 키우고 자산의 질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산업의 가장 큰 변화로는 올 하반기 출범 예정인 인터넷 전문은행을 꼽았다. KB금융은 카카오 컨소시엄에 참여해 ‘카카오 뱅크’ 출범을 준비 중이다. 그는 “국내 3800만명의 고객을 지닌 카카오와 소매금융 최강자인 국민은행이 만나 온·오프라인에서 금융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주도해 나갈 것”이라며 “국내뿐 아니라 해외 공동 진출도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취임 이후 줄곧 스스로를 모세에 비유했던 윤 회장. 정작 가나안(리딩뱅크) 땅을 밟지 못했던 모세처럼 자신은 임기 동안 리딩 금융그룹을 향한 반석을 하나씩 쌓아 가겠다는 의지다. 이 철학은 새해에도 변함이 없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집 지을 터를 닦고 기초를 다지는 일을 해 왔다”며 “새해에는 튼튼한 기둥을 세우고 멋진 지붕을 올릴 터”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국민은행은 전국 영업점을 권역별로 5~10개씩 묶어 연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윤 회장이 힘주어 도입한 ‘허브 앤드 스포크’(hub and spoke) 전략이다. 증권·은행이 연계된 복합점포도 선보였다. 윤 회장은 “고객 중심, 현장 중심, 직원 중심이라는 3원칙을 토대로 KB금융 재도약을 위한 초석을 확실하게 다지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오늘의 눈] ‘정명훈 이후’와 서울시의 과제/김동현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정명훈 이후’와 서울시의 과제/김동현 사회2부 기자

    정명훈 전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이 2015년 12월 31일 프랑스로 떠났다. 그 전날 마지막 공연에 쏟아진 기립 박수가 그를 배웅했지만, 지난 10년간 이룬 화려한 성과에 비해 퇴장은 씁쓸했다. 정 전 감독의 출국으로 2014년 12월 서울시향 사무국 직원 17명이 박현정 전 시향 대표를 성추행과 폭언 등의 혐의로 고소하면서 시작된 ‘서울시향 막장 드라마’는 막바지를 향해 가는 듯하다. 박 전 대표와 함께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정 전 감독이지만 그가 잃은 것이 더 많다. 10년 전 2005년 예술고문으로 정 전 감독이 온 이후 서울시향은 정기적으로 오디션을 했다. 김 빠진 사이다 같던 서울시향에 긴장감이 돌았고, 그 결과 2005년 39%에 불과했던 정기연주회 유료 관객 비율은 10년 만인 지난해 93%에 육박했다. 서울시향은 아시아 오케스트라 최초로 세계 최고 클래식 음반사인 독일 도이체그라모폰과 음반 계약도 맺었다. 수원시향이나 부천시향 등에 치여 국내서도 최고라는 소리를 못 듣던 서울시향이 아시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것이다. 놀라운 예술적 성과에도 정 전 감독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차갑다. 각종 의혹에 긴가민가했다가 ‘정 전 감독의 부인인 구모씨가 박 전 대표를 음해하라고 사주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돌아선 탓이다. 이 지경에 이른 데에는 서울시의 무책임도 한몫했다. 지난해 8월 서울시 감사에서 1300만원 상당의 업무용 항공권을 가족이 사용하고, 주변 인물들을 시향에 특혜 채용해 구설에 올랐을 때 서울시는 “이만한 인물을 찾기 힘들다”며 진위를 캐기보다 정 전 감독과의 재계약에만 신경을 썼다. 도덕성보다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던 탓이다. 당시 서울시 관계자는 “조조가 인재를 널리 구하면서 발표한 ‘구현령’(求賢令)에 청렴하고 결백한 선비가 아니면 안 된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으면 언제 현인을 찾을 것인가라는 문구가 있다”면서 “서울이라는 세계적인 도시 수준에 맞는 오케스트라를 만드는 데 작은 흠결을 따지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서울시가 간과한 것이 있다. 상향 조정된 시민의 눈높이다. 한 클래식 애호가는 “정 전 감독만 한 사람을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이고, 아마도 (서울시향의) 수준이 떨어질 것”이라면서도 “정 전 감독을 둘러싼 잡음을 고려하면 재계약을 시민이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가 능력을 선택했지만, 역설적으로 정 전 감독은 떠났다. 그러나 서울시가 그를 놓쳤다고 서울시향의 성취가 무너져선 안 된다. 어찌해야 할까. ‘세계적’인 수준의 서울시향을 유지하려면 세계적 수준의 지휘자를 영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울시향의 히딩크’가 필요할 수도 있다. 이보다 앞서 ‘관행’으로 남았던 예술감독의 처우를 계약서에 명문화하고 서울시향 운영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시민 정서에 반한다”는 이유로 관행을 남겨 두면 제2, 제3의 정명훈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시민에게 필요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일은 서울시의 몫이다. “시민에게 답이 있다”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발언이 서울시향 운영에도 반영돼야 한다. moses@seoul.co.kr
  • [2016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를 벗은 가벼움의 질주: -김지윤

    1. 속도에의 욕망과 잃어버린 것들 우리는 속도가 일상이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내연기관의 발명과 함께 시작되었던 근대적 속도가 낯설고 경이로웠던 시절에, 속도는 삶의 영역을 끝없이 확장하여 무한한 공간을 열어주는 듯했고, 그 가능성의 마력에 매혹된 도시의 길들은 질주하는 기계들로 가득 찼다. 그러나 인간사의 모든 매혹이 그렇듯, 익숙해진 후에는 무뎌짐과 권태가 찾아든다. 이제 빠른 것들은 도처에 흔하게 넘쳐나고 현대가 ‘속도의 시대’라는 말은 진부하게 느껴질 지경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주는, ‘더 빠른 것’을 계속 갈구해 왔다. 급기야 ‘클릭 한 번으로 어디든 닿을 수 있는’ 빛보다 빠른 통신망을 이루어내는 데에 이르렀고,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그러나 우리는 정말로 빨라진 것일까? 사실 ‘속도’의 이면에는 사람들이 간과해 온 진실이 숨겨져 있다. 속도에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현대인들은 줄곧 커다란 대가를 치러왔다. ‘움직임’을 상실하고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속도를 내는 대신, 인간들은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교통수단 안에 부동자세로 앉은 채, 혹은 컴퓨터 모니터나 핸드폰 화면에 얼굴을 묻은 채 속도에 자신을 내맡기고 있을 따름이다. 자기 자신의 움직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어디론가 ‘가는 것’이 아니라 사실 ‘옮겨질’ 뿐이다. 스스로 속도를 내 본 사람이라면 안다. 귀청이 먹먹하게 울부짖는 바람의 저항에 맞서 속력을 높인다는 것은 자신의 전 존재를 건 아찔한 일이라는 사실을. 자신의 몸으로 속도를 내는 이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여 속도가 주는 고통과 환희의 감각을 날카롭게 느끼고 견디며, 거센 바람 소리로 현재를 가득 채운다. 반면에, 이동하는 ‘탈것’ 안에 안전하게 앉아서 닫힌 창문 밖으로 내다보기만 하는 사람들은 어떤 감각도 느낄 수 없다. 지나치게 빠른 속도는 스쳐가는 모든 풍경들을 일그러지게 만든다. 밖을 내다보는 사람들은 그 일그러짐이 심하면 심할수록, 지나쳐가는 대상들이 금방 시야에서 사라질수록, 속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다. 그들의 몸이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바깥 풍경과 분리되어 있는 것처럼, 그들은 속도의 체험으로부터 사실상 단절된다. 결국 감각할 수 없는 풍경들은 개별적 장소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속도에 안전하게 ‘탑승’한 이들에게는 오로지 ‘빠르게 도착해야 하는 지점’만이 남아 있을 뿐이고 수많은 길목들은 소거된다. 이원의 세 번째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문학과 지성사, 2007)는 바로 이런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이 시집에 수록된 시편에서 시인은 속도와 질주에 대한 끈질기고 깊은 사유를 보여 준다. 이 시집에서는 가장 큰 모티프로 ‘오토바이’가 등장한다. 얼핏 생각할 때 또 하나의 ‘속도 제조기’로 느껴지는 오토바이에는 과연 다른 교통수단들과 무언가 차이를 만드는 점이 있는 것일까. 오토바이를 타는 행위 자체가 위험에 직접 노출되어 맨몸으로 겪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오토바이는 사실 매우 모순적인 존재다. 기계의 속도를 빌려 질주하면서도 강렬한 신체적 경험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오토바이가 속도를 올리며 나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이 기울어져야 하는데 그때마다 탑승자는 온몸을 함께 움직여야 한다. 또한 오토바이는 다른 ‘탈것’들과 달리 길이 아닌 데서도 달릴 수 있다. 자유롭게 길을 벗어나 오프로드를 달리기도 하고 수많은 길을 넘나들 수 있다. 그렇다면 이원 시 속 ‘가벼운 오토바이’와 그 오토바이의 질주는 다른 수많은 현대적 속도들과 구별되는 점이 있을 것이라는 예감을 가지게 된다. 1968년생인 이원 시인은 청년기에 사이버 문화를 접한 소위 ‘모니터킨트’ 1세대에 속한다. 80년대 도입되어 90년대를 풍미했던 PC통신은 사이버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새로운 정보소통의 길을 열어 보여주었다. 아날로그적 유년기와 디지털 청년기의 간극을 몸소 느낀 최초의 세대인 것이다. 필연적으로 이 두 가지 모순된 특징은 어떤 내면적 딜레마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자신을 형성해 준 유년기와 완전히 패러다임이 바뀐 청년기 사이의 간극과 자신의 이중적 정체성에 대한 인식은 시인의 시적 언어에 어떤 정신적 흔적을 남겼을까. 오토바이의 모순성은 바로 그러한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겹침’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겹침의 힘으로 인해 모든 장소를 사실상 ‘무장소’로 만드는 디지털 세상의 무감각성과 획일화에 대항하여 느낌과 의미, 그리고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우리는 거기에서 이 시대의 문학이, 그중에서도 가장 아날로그적인 장르라 할 수 있을 ‘시’가 어떤 응전력을 획득할 가능성을 찾을 수도 있지 않을까. 광속도의 디지털문명 속에 살면서 느리게 곱씹어 읽어야 하는 빈 여백투성이인 시를 쓴다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의 답에 다가갈 수도 있지 않을지. 이 글은 바로 그런 기대와 호기심에서 출발했다. 2. 파편화된 주체의 공백, ‘길 없음’과 찾을 수 없는 ‘나’ 일단 이 시집 제목의 ‘오토바이’ 앞에 붙어 있는 ‘가벼운’이라는 형용사에 눈길이 간다. 그냥 가벼운 것도 아니고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라는 것이다. 교통수단으로서의 오토바이가 ‘가볍다’는 것은 사실 상당한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요소다. 튼튼하고 무겁고 길에 잘 붙어 있을수록 안전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가볍다고 한 것은, 오토바이를 탄다는 것에 기본적으로 내재한 불안을 증폭시키기 위한 의도가 아닐까. 이 시집의 오토바이는 너무나 가볍기 때문에 바람결에 떠다니는 가랑잎만큼이나 위태롭다. 오토바이는 금방이라도 길을 벗어날 듯 불안한 주행을 하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길 자체가 불안하기 짝이 없고, 도무지 안전성을 확보할 수 없는 길이라면 그 위기감은 최고조로 증폭된다. 이원의 시세계의 근원을 살펴보기 위해 바로 전 시집인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2001, 문학과 지성사)를 먼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시집에서 ‘길’에 대한 인식이 이미 드러나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독특한 것은 ‘길’에 사막의 이미지가 덧입혀져 있다는 점이다. 사막이라는 공간의 특징 중 하나는 바로 뚜렷한 길이 없다는 것이다. 모래의 특성상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도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에 길이 만들어질 수 없다. 사막에서 끝없이 부는 바람은 모래바람을 일으키고, 바람결에 움직이는 모래로 인해 사막은 끊임없이 다른 지형으로 변모한다.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속의 시적 화자는 ‘인터넷을 가볍게 따닥 클릭’하는 행위로 많은 것들을 클릭하고, ‘세계를 연속 클릭’하기까지 한다. ‘클릭 한 번에 한 세계가 무너지고 한 세계가 일어선다.’ 그리고 수많은 클릭의 맨 끝에, 화자는 결국 ‘나를 클릭한다.’ 그러나 인터넷 공간 검색 엔진 안에 ‘나에 대한 검색 결과’로 나타난 수많은 사이트 어디에도 나라는 실체는 없다. 그러나 꼭 금방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나’는 자꾸만 ‘클릭’을 한다. 나는 나를 찾아 차례대로 클릭한다 광기 영화 인도 그리고 나… 나누고 …나오는…나홀로 소송…또나(주)… 나누고 싶은 이야기…지구와 나…… 따닥 따닥 쌍봉낙타의 발굽 소리가 들린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 계속해서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부분 검색하는 과정이 무한한 하이퍼링크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나라는 텍스트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끝없는 하이퍼텍스트를 참조해야만 한다. ‘오아시스가 가까이 있다’는 착각처럼 나를 찾으려는 욕망은 곧 실현될 것만 같지만, 점점 더 퍼져나가 무수한 파편이 되는 ‘나’를 찾아가는 길은 험난하기만 하다. 검색어와 연관어를 따라 클릭을 거듭하다 보면 때로는 처음의 검색어와 전혀 다른 것이 되곤 한다. 찾을수록 미궁에 빠지는 것이다. 마치 계속 모래바람이 불어 지형이 바뀌는 사막처럼, 길이 계속 생명체처럼 모습을 바꾸며 혼란시키기 때문이다. 결국 길은 없다는 것, 또한 원하는 목적지에 가 닿을 아무런 방법도, 지도도 없고 어떤 검색 엔진으로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이 시의 요지다. 그러니 이 시의 제목처럼 클릭함으로써 나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 클릭할수록 나는 ‘편재’한다. 점점 더 파편화되고 실체를 찾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결국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존재를 결코 확인할 수 없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는 셈이다. 이원 시인의 코기토가 디지털문명의 사유를 넘어서서 존재론적 사유로 확장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 ‘나는 부재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제목의 시로 변주되고 있음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는 클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결론이 결국 ‘부재’에서 끝났다면 이 시는 부재함으로써 존재한다는 패러독스를 보여 주면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존재론적 성찰을 담는다. 모든 부재는 존재를 드러낸다. 누군가의 빈자리가 그 사람의 존재감을 오히려 도드라지게 만드는 것처럼. 그러므로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공백이 필요해진다. 주체의 자리는 스스로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비워져야 한다. ‘나는 부재한다 고로 존재한다’에서 “생기는 순간마다 제 몸을 삼키는 것이 시간이며 그러므로 매 순간 다시 삼켜야 할 제 몸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 시간이며 그 시간의 몸이 바로 나이며”라는 시 구절은 이런 과정의 고통스러움을 드러내고 있다. 존재가 ‘없음’으로부터 유래한다는 것이 필연적으로 내적 불안을 동반하는 것처럼 이원 시에서의 ‘길’은 대부분 갑자기 끊기거나 모습을 바꾸는 등 ‘길 없음’과 별반 다를 게 없는 불안하고 위태로운 것으로 그려진다. 파편화된 주체의 공백이 존재를 찾으려는 욕망을 생성시키는 것처럼, 계속해서 변형되고 사라지며 다시 만들어지는 임시적이고 위태로운 길은 건너가고자 하는 욕구를 더욱 증폭시킨다. 그리고 이런 길을 건너가려면 길에 매달리고 집중해야만 한다. “내 앞까지 온 길은 거울 앞에서 접촉 불량 회로처럼 끊어졌다.” “내가 일어서자 거울 밖으로 나갈 노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녹슬고 구겨진 길들” 방금 나열한 구절들은 ‘야후!의 강물에 천 개의 달이 뜬다’의 수록시 ‘모니터, 캔산소, 거울’에 언급된 ‘길’에 대한 부분들이다. 이원 시에서 길들은 대개 이렇게 위태위태하고 불길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 길에 대한 그러한 인식은 더욱 심화된다. 이 시집 속에 나오는 길들은 위험을 배태하고 있는 지뢰밭과 같고, 안전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 그런데 이런 불안한, 사막과 같은 길에서 오토바이를 탄다고? 3. 휘발되는 불빛들 사이를 질주하는 오토바이 이 시집의 많은 주인공들은 오토바이를 탄다. 그들은 폭주족, 오토바이 배달부, 퀵서비스맨이다. 오토바이는 자동차 사이사이로 빠져나갈 수도 있고, 정해진 길이 아니어도 달릴 수 있다. 길이 없는 데서도 달릴 수 있다는, 바로 그 점에서 오토바이는 다른 모든 탈것들과 차별화된다. 폭주족들이 끊어진 길을 굉음을 내며 건너뛴다/ 뒤따라 달려오던 한 무리의 폭주족들은 끊어진 길 속으로 빠진다/ 끈적끈적한 괴성과 경적이 함께 묻힌다/ 봄밤이 눈물처럼 반짝이다 마른다 매몰의 시간을 잘 아는/ 길은 금방 아문다/ 시간의 만다라로 타오르며 폭주족들은/ 길을 꿀꺽꿀꺽 삼키며 달린다 하나의 길을/ 삼키는 순간 다시 두 개의 길이 생겨난다/ 휘발되지 않으려면 질주해야 한다 길과 폭주족들은 서로에게/ 로프처럼 매달린다/ 온몸이 구멍인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주족들이 히드라처럼 꿈틀거린다 길은/ 시체와 꽃이 함께 떠다니는 갠지스 강이 된다. ‘폭주족들’ 부분 그 다음 시의 제목이 ‘영웅’이고 역시 폭주족을 다루고 있듯, 폭주하는 이 오토바이족들은 ‘영웅’들로 간주된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사라지고 끊어질 듯 위태로운 길에서 불안을 딛고 달린다. 여기서 오토바이라는 소재는 빛을 발한다. 버스든, 기차든, 비행기든 대부분의 교통수단들에게는 도로, 철로나 항로와 같이 정해지고 계산된 길 안에서 안전하게 달릴 것이 요구된다. 그러나 오토바이는 주어진 길을 벗어날 수 있다. 그들은 오프로드를 달림으로써 규정된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존재들이다. 길은 자꾸만 단절되고 사라지지만, 수동적으로 길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길을 새로 만들어가며 필사적으로 계속 전진하려는 것이 폭주족들의 목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끊어진 길을 굉음을 내며 건너뛴다’. 이 도약은 늘 성공적인 것은 아니며, 전력을 다해 내질렀던 ‘괴성’ 같은 그의 시도는 바닥으로 고꾸라져 버린다. ‘매몰의 시간’이다. 하지만 ‘길은 금방 아문다’. 폭주족들은 길 안에 매몰되어서 그 길을 삼켜버리며,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안에서 길을 만들어 낳는다. 하지만 “하나의 길을 삼키는 순간 다시 두 개의 길이 생겨난다”라는 구절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시도가 절망스럽다는 것을 표현한다. 끝없이 길을 찾으려고 하지만 길은 계속 갈라지고 갈림길들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미로가 된다. 가면 갈수록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어진다. 하지만 점점 더 미로화되면서 결국 길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텅 빈 길’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절실해진다. 그래서 “길과 폭주족들은 서로에게 로프처럼 매달린다”. 이 지점에서 폭주족은 ‘왜 질주하는가?’란 질문에 “휘발되지 않으려면 질주해야 한다”라고 대답한다. 이 시집의 다른 시 ‘주유소의 밤’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등장한다. ‘세상의 모든 차들은 휘발되는 불빛을 믿고 길을 만들고’라는 이 시의 의미심장한 구절은 휘발되는 것이 ‘불빛’임을 보여 준다. 불빛은 길을 길답게 만드는 존재다. 길이 길일 수 있는 것은, 그 길을 따라가면 어디엔가 ‘도착’하리라는 기대 때문이다. 어딘가 도달하기 위해 전진하려면 길이 그쪽으로 뻗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사막처럼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길의 물질성이 사라진 곳에서 물리적인 길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불빛이다. 오랜 옛날부터 사막에서 길을 찾는 이들은 별빛에 의지했다. 길이 사라진 데서도 별빛은 오롯이 빛나며 길을 찾는 사람들을 인도했다. 별빛이 만드는 방향성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또 하나의 길이 된 것이다. 소위 ‘전자사막’인 도시의 밤, 어둠이 깔린 도로에서 길을 찾기 위해 필요한 것도 ‘불빛’이다. 신호등과 네온사인, 자동차 라이트 등이 만드는 불빛은 도시의 밤길을 길답게 만드는 필수 요소다. 그런데 시인은 이 불빛이 항구한 것이 아니라 ‘잠깐만 빛나는’, 즉 ‘휘발되는’ 것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는 꿈 역시 휘발되는 것이다. 언젠가 깨고 마는 꿈처럼 도시의 밤을 밝히는 불빛은 언젠가는 꺼지기 마련이다. 바로 여기에 질주의 이유가 있다. 휘발되어버릴 꿈, 비전을 사라지기 전에 잡아야 하므로 폭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든 길은 ‘휘발되는 불빛을 믿고 길을 만들고’ 그 길을 가는 모든 ‘탈것’들은 그 속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위태로워진다. 그래서 상당수의 폭주족들은 질주하다 ‘벽’을 만나고 결국은 ‘질주하던 몸은 날계란처럼 터지’고 만다. 그래서 ‘폭주족들’의 마지막 구절은 이렇게 끝난다. “길은 시체와 꽃이 함께 떠다니는 갠지스 강이 된다”고. 시체가 불타는 갠지스 강은 인도인들이 몸을 씻으며 기도하는 성스러운 강이다. 숭고한 구도의 마음으로 이 성스럽고 절망스러운, 찰나의 불빛을 따라 길을 만들고 또 만들면서 끝없이 전진하는 인간은 ‘영웅’이 된다. 시 ‘영웅’에서 낡은 오토바이 위의 시적화자는 ‘무서운 속도로’ ‘철가방을 싣고’ 달린다. 이 철가방은 그의 순수한 염원과 욕망을 표상한다. 그의 철가방은 ‘안팎이 똑같이 은색’이고, ‘겉과 속이 같은 단무지와 양파와 춘장’으로 상징되는 거짓되지 않은 절실한 욕망을 담고 있는 플라스틱 그릇들은 ‘불에 오그라든 자국’을 숨김없이 노출한다. ‘배달’은 곧 자신의 욕망이 어딘가에 도달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는 시간 안에 달려가려고 애쓴다. “오토바이가 기울어도 짜장면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생의 중력이야/ 아니 중력을 이탈한 내 생이야”라는 구절은 이 시를 관통하는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중력은 짜장면을 한쪽으로 쏠리지 않게 유지시켜주는, 말하자면 ‘현실원칙’인 셈이지만 중력을 이탈해버리면 아예 자유로워진다. ‘몸이 기운 쪽이 내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쪽으로 기울든 그쪽이 중심이 된다면 짜장면이 어느 쪽으로 쏠리든 상관없다. 그래서 ‘영웅’은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어/ 기울어진 내 몸만 믿는 나는/ 그래 절름발이야”라고 내뱉는다. 오토바이의 특징 중 하나는 강렬한 현장성이다. 달리는 행위 그 자체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것은 오토바이는 반드시 맨몸으로 타야 한다는 조건 때문이다. 즉, 그의 온몸, 전 생을 지금 이 순간에 걸었다는 뜻이 된다. 그래서 ‘기우는 오토바이를 따라 길도 기울고 시간도 기울고 세상도 기울고 내 몸도 기울’게 되는 것이다. 지제크의 책 제목과 같이 ‘삐딱하게 보기’가 가능해지는 순간이다. 지제크는 이 책에서 ‘비스듬한 왜상적 응시’로만 실제 세계를 명확하게 보는 것이 가능하다고 했다. 실체에 도달하기 위한 ‘길’이 비정상적이기 때문에, 진실을 바라본다는 것은 정상적인 응시로는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삐딱하게 보기를 결정하는 순간 그는 세상이 규정한 ‘정상’이라는 범주에서 나와야 한다. “삐딱한 내게 생이란 말은 너무 진지하지/ 내 한쪽 다리는 너무 길거나 너무 짧지/ 그래서 재미있지/ 삐딱해서 생이지 절름발이여서 간절하지/ 길이 없어 질주하지”라고 시적화자는 말한다. 비정상의 영역, 삐딱한 시선의 세상은 진지한 현실원칙들을 위배하는 ‘재미’를 선사한다. 하지만 이 ‘삐딱함’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세상이 허용하는 가치들에서 비껴나 ‘간절’함으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삐딱하게 보아야 볼 수 있는 저 ‘불빛’은 견고한 어둠에 가끔 생기는 균열에서 흘러 들어오는 것이며 현실세계가 아닌 저 너머의 ‘실재계’에서 오는 것이다. ‘영웅’ 폭주족은 그 사실을 알고 있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은 모두 이곳이 아니야/ 이곳 너머야 이 시간 이후야”라고 말하면서도 그는 반짝이는 찰나의 불빛이 가리키는 희미한 저곳을 향해 폭주하여 달려가며, 자신을 땅에 붙들어 놓았던 현실원칙인 ‘중력’을 이탈하려 한다. 하지만 과연 도착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 때문에 그는 더욱 비장해진다. “이유 없이 비장해지고 싶을 때가 있어/ 생이 비장해 보이지 않는다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온몸이 데는 생의 열망으로 타오르겠어/ 그러나 내가 비장해지는 그 순간/ 두 개의 닳고 닳은 오토바이 바퀴는 길에게/ 파도를 만들어주지/ 길의 뼈들은 일제히 솟구쳐 오르지/ 길이 사라진 곳에서 나는/ 파도를 타고 삐딱한 내 생을 관통하지” 이 지점에 이르면 도착한다는 것은 이미 그에게 의미가 없다. 도착할 수 없음이 너무 명확하게 의심되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질주이며 도약 그 자체이고, “무한한 진행”이다. ‘한 남자가 간다’에서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흔들린다 지금만 텅 빈다”라는 구절은 그래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비어 있다는 것은 채워짐을 욕망하므로 끝없는 현재로서 질주를 멈추지 않기 위해서 ‘지금’은 텅 비어야 한다. 4.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이원 시에서 없음, 허공의 이미지는 매우 강박적일 정도로 반복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다시피 부재는 역설적으로 존재를 드러내며, ‘없음’이 절실해지는 것은 존재에 대한 욕망 때문이다. ‘온몸이 구멍인 허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폭주족들’은 그 욕망에 자신을 전부 맡김으로써 폭주가 가능해졌다. 오토바이를 타고 속력을 높이다 보면, 공중의 허공으로 몸을 날리다 보면 필연적으로 가벼워진다. 속도가 줄 수 있는 쾌감은 마치 탈중력의 상태와 같은 지극한 가벼움이다. 노자는 유와 무의 관계를 통해 생명성을 강조했다. 특히 ‘무’와 ‘허’(虛)는 생명의 근원으로 해석되곤 한다. 노자는 바퀴의 가운데를 가리켜 ‘무의 쓰임’이라고 하고 바퀴는 바퀴살이 꽂혀 있는 ‘가운데의 없음’이 없다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내 한쪽 눈은 지금 감옥에 가 있다 내 몸속의 신이 깔고 누워 있던/ 죽음을 엿본 죄다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쳤던 눈은 내게서 파내졌으므로 나는 죽음을 모르므로 생의 시간으로/ 일렁인다 낯선 얼굴을 매달고 라면을 먹는다/ 낯선 얼굴도 입을 오물거린다 그 입에서도 고소한 스프 냄새가 난다/ 햇빛들이 창 속으로 빠르게 들어온다 부딪쳐 멈출 곳이 없는 둥그런 탁자는 쉴 새 없이/ 시간의 트랙을 돈다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다 ‘얼굴이 달라붙는다’ 부분 욕망은 실현되는 순간 ‘빈 곳’이 없어지기 때문에 결코 충족되지 않는 욕망이어야 끊임없는 추구가 가능하고, 영원히 지연되는 미완의 쾌락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채워짐’은 욕망의 끝이며, 곧 죽음을 의미한다. 이 시에서 화자는 ‘죽음을 엿본 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 있다. 이 시는 자연스럽게 오이디푸스를 연상시킨다. 오이디푸스의 눈이 파내진 것은, 삶을 계속하게 하기 위함이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그의 욕망이 끝나버렸음에도 오이디푸스는 죽지 않는다. 도려낸 눈구멍의 빈자리를 드러낸 채 그는 광야에서 계속 걸어간다. 이 시에서도 시적화자는 ‘욕망을 정면으로 마주쳤던’ 눈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다시 결핍을 만들었고 그 덕분에 그는 ‘생의 시간으로 일렁인다’. ‘빈 곳’은 삶을 지속시키는 필수 요인이다. 그는 계속 살아가려고 라면을 먹는다. 삶이란 무한한 진행이므로, 그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먹는’ 장소인 ‘둥그런 탁자는 쉴 새 없이 시간의 트랙을 돈다’. 또한 상징적 의미에서 ‘라면’은 ‘먹어도 먹어도’ 끝없이 줄지 않아야만 한다. 검은 비닐봉지 하나가 허공을 난다 울음 속에서 살을/ 쏙쏙 빼먹으며 난다 활짝 열어놓은 안이 불룩하다/ 보여주지 않는 안이 팽팽하다 보이는 밖이 남김없이 검다/ 위태로워 반짝인다 공기들이 비닐봉지의 천수관음으로 붙어간다/ 비닐봉지가 잉잉거린다 바람의 안쪽이 맥박처럼 터진다 천수관음이 된 비닐봉지에/ 시간의 모서리가 닳는다 사라지는 자리가 쌉싸름하다/ 그렁그렁하다 시간이 둥글어진다 천 개의 손이 눈이/ 다 둥글어진다 둥근 것은 뜨겁다 비닐봉지가 허공을/ 오므린다 허공이 주렁주렁하다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비닐봉지가 난다’ 전문 비닐봉지는 비어 있다. 그러므로 가벼울 수 있고, ‘살을 쏙쏙 빼먹으며’ ‘맥박처럼 터진’ 등의 표현에서 보듯 생명력을 충전하며, 터질 듯 생동감 있게 허공을 마음대로 날아다닌다. 시집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에서는 시 ‘비닐봉지가 난다’와 ‘매트리스, 매트릭스’ 두 편 모두에서 비닐봉지가 등장한다. 시 ‘비닐봉지가 난다’에 나오는 것은 ‘검은’ 비닐봉지다. 안을 들여다볼 수 없는 어두운 색이라 ‘보이는 밖이 남김없이 검다.’ 그런데 이 시는 바로 이어서 ‘위태로워 반짝인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날아다니는 비닐봉지는 분명 위태롭다. 그리고 어두컴컴하다. 그럼에도 이 비닐봉지가 어둠 속에서도 반짝임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오직 하나, ‘활짝 열어’ 놓은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열림, 이 균열로부터 새어 들어오는 한 줄기 불빛이 있기 때문에 이 비닐봉지에는 빛남이 존재할 수 있다. 그렇기에 완전히 어둡지 않은 것이다. 이원 시에서 유난히 많이 나오는 어둠의 이미지는 두 가지의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눈앞을 가리는 칠흑 같은 절망의 어둠- 시 ‘길’에서 ‘어둠이 길들을 천천히 멍석처럼 말아갑니다’라고 노래했듯 길을 없애고 ‘세계를 닫는’ 어둠, ‘점점 더 가파르’게 변해가는 ‘밤’으로 묘사된 그런 어둠-이기도 하고, 어떤 근원적인 것, 살아 있는 모든 것이 회귀하기를 꿈꾸는 자궁의 어둠을 말하기도 한다. 우리는 자궁에서 분리되어 이 세상에 던져진 순간, 필연적으로 분열을 겪어야 한다. 일체의 분열이 이루어지기 이전의 원초적인 나, 자궁 속의 어둠을 그리워하지만 그것은 회귀 불가능한 공간이다. 이원의 다른 시 ‘자궁으로 돌아가려 한다’는 이 ‘어둠’에 관한 어떤 처연한 광경을 보여 준다. 아기는 ‘제가 두고 온 어둠을 미끌미끌한 길을 빨아댄다.’ 아기는 ‘알몸으로 빠져나온 자궁으로 돌아가려 한다.’ 그러나 결과는 참담하다. ‘매장의 시간에 익숙한 여자의 손 안에서 아기의 머리통이 녹는다 순식간에 상한다 검어진다.’ 여기에서 ‘검어지는’ 것은 자궁의 어둠과는 다르다. 절망적이고 견고한 어둠 속에서 썩어가는 부패의 ‘검은색’이다. 이에 반해 자궁의 어둠은 어둠이되 ‘적막하고 환한 물속의 집’으로서 어둡지만 환한 곳이다. 그런데 어둠이 환하다면 과연 완전한 어둠이라 할 수 있을까? ‘어두운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니 때로 아름다운 것은 어두운 것이다’(‘사막에서는 그림자도 장엄하다’)라는 시 구절처럼 환함과 아름다움이 남아 있기에 자궁의 어둠은 불완전해진다. 어둠이되 어딘가에 구멍이 뚫려 있는 어둠인 것이다. 자궁에는 항상 산도(産道)라는 입구가 있고 ‘열림’의 가능성을 배태하고 있기에, 언젠가 열릴 것이거나 언젠가 열렸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회귀할 수 없는 원초적인 시간에 머물러 있기에 절망적이다. 자궁은 여전히 열린 틈새로 ‘환한 집’을 보여 주고 있지만 돌아가거나 닿을 수는 없다. 다시 시 ‘비닐봉지가 난다’로 돌아가 보자. 이 검은 비닐봉지의 어둠은 어떤 어둠인가. 이 비닐봉지는, 어쩌면 아기를 밀어낸 후 텅 비어 있는 자궁과 같이 활짝 열려 있다. 그러나 보여 주지 않는 비닐봉지의 안은 ‘저 너머의’ 세상이기에 그 안을 제대로 볼 수는 없다. 시인은 비닐봉지가 ‘천수관음’이 된다고 말한다. 천수관음의 천수천안은 모든 이의 괴로움을 천개의 눈으로 보고, 천개의 손으로 구제하고자 하는 염원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천수관음의 세상은 지옥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고 소원을 성취시키는 유토피아 그 자체이며 현상적 규정을 초월하는 영원불멸한 ‘저 너머’이므로 ‘시간의 모서리가 닳’아서 ‘시간이 둥글어진다’. 천수관음의 ‘천개의 손이 눈이 다 둥글’어진다는 표현은 불교의 ‘일원상’(一圓相)을 연상시킨다. 우주만유의 본원이며 시작도 끝도 없는 이 ‘一圓’은 가운데가 빈 허공이기도 하다. 허공을 나는 비닐봉지는 그 자체가 공(空)인 것이다. 반면에 ‘매트리스, 매트릭스’에서의 비닐봉지는 비어 있지 않고 오렌지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무겁다. 그런데 비닐봉지를 들고 가던 여자가 순간 봉지를 놓치고 만다. 아마도 꼭꼭 묶여져 있었을 비닐봉지는 여자가 손에서 놓지 않는 현실원칙이며 생명체를 살게 하는 음식은 그 현실과 직결되는 ‘무거운 것’이다. ‘젖이 불은 유방 같은 오렌지 하나가 매트리스 앞으로 굴러간다.’ 오렌지 하나가 비닐봉지를 탈출한 것이다. 묶여져 있는 비닐봉지에서 오렌지가 나오려면, 비닐봉지는 분명 터져 버렸을 것이다. 터진 틈새로 ‘몸을 놓칠세라 그림자가 앞서간다’. 집요하게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오렌지의 그림자는 나를 현실에 붙들어놓는 ‘중력’과 같은 것이다. 오렌지는 필사적으로 굴러가지만, 그림자는 오렌지를 붙들고 여자는 터진 비닐봉지의 틈새를 알아차린다. 이 균열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봉합할 것인가. 균열을 감수한다면, ‘위태로운 반짝’임이 쏟아져 들어올 것이다. 이 반짝임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어서 그녀를 현실로부터 일탈하게 하여, 어쩌면 미치게 할 수 있을 어떤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광기도 위태로움도 받아들일 수 없기에 ‘헤진 그림자로 온몸을 틀어막고 주저앉아’ 멈추어 있기를 선택한다. ‘매트리스, 매트릭스’에서 시인이 직접 주석을 달아 놓은 바와 같이 매트릭스는 고어로 자궁이라는 뜻이다. 결국 매트리스로 회귀하려는 오렌지의 시도는 실패한다. 그림자를 떨쳐내지 못한 오렌지는 땅바닥을 굴러 매트리스까지 가지 못하고 ‘매트리스와 여자 사이에서 멈춰 있다.’ 시 ‘비닐봉지가 난다’의 시의 결구는 의미심장하다. ‘나는 것들은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는 구절이다. 날아가는, 중심을 이탈한, 가벼워진 것들에는 그림자가 필요 없다. 그러나 ‘철망 같은 제 그림자를 온몸에 뒤집어쓰고’(‘광화문에서’) 있으면 결코 가벼움을 획득할 수 없다. 그림자를 떼어내어 버리고, 온전한 ‘텅 빔’이 되어서 그림자를 벗은 가벼움이 되어 질주하는 것이 주체의 소망이다. 이 시집에서 불로 뛰어드는 불나방과 같은 시적 화자들의 질주는 영웅적이라고 간주되며, 한계를 넘어가는 위반의 극치를 보여 준다. 모든 것을 ‘무’로 돌린다는 것은 새로운 생성의 가능성을 극단적으로 증폭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없음’은 에너지의 새로운 분출로 다시 시작하려는 근본적인 의지를 내부에 품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를 가져다주는 창조적인 행위이며, 현 상태에 안주하지 않고 부정함으로써 탄생한 ‘공백’의 상태에서 새롭게 시작하려는 의지의 표명이다. 5. 흔들리면서 ‘저 너머를 향해’ 가기 자아의 안락과 현실에의 순응을 추구하는 쾌락원칙이 맹렬한 힘을 발휘하고 있는데도, 그 너머의 금지된 희열을 향한 충동은 여전히 강하게 지속된다. 충동은 현실적인 삶이 부과한 경계 너머의 실재를 향한 욕망이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라캉은 모든 충동을 ‘죽음충동’이라 보기도 했다. 상징적이고 비유적인 죽음, ‘무’의 상태로 되돌려 공백의 상태에서 새로운 질서가 탄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창조의 의지인 것이다. 진정한 새로움은 무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다. 공백은 창조의 시작이다. 탈(脫)이데올로기의 시대를 맞았던 90년대 우리 문학은 어떤 세기말적 징후로 가득해 있었다. 방향성을 잃었다는 느낌, 어떤 ‘파국’이 도래하였다는 감각은 이전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복고지향이나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으로 나타났다. 거대담론이 사라지자 사람들은 자기 안으로 침잠했고 일종의 자폐성을 띤 2000년대 시는 1인칭의 내면 고백으로 가득 찼다. 2007년에 나온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오토바이’는 혼잣말 같은 메모장과 일기장 밖 현실 세상으로 나온 존재가 새로운 시작을 꾀하려 하는 모색의 지점을 보여준다. 방향이 없는 곳에서, 길이 없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만들고 저 너머로 넘어가려는 이 시집의 역동성은, 끊긴 길 앞에서 멈추어 정체되어 있던 걸음을 다시 옮기게 만드는 에너지를 분출한다. 가속되는 디지털화, 인문학의 위기와 경제 불황 등으로 인해 ‘문학의 종언’이 이야기되는 시대에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더 처절하게 고민하려는 것이 2000년대 중반 이후 새로운 문학의 흐름이라 할 수 있다면, 이원의 2000년대 시집들에서도 이런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이원의 시편들의 이런 문제의식은 앞서 언급했던 시인의 ‘모니터킨트 1세대’라는 특징과도 연관시켜 생각해 볼 수 있다. 소위 한국형 ‘X세대’의 맏형 격인 세대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적 변화의 시점에서 성인으로의 전환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완전히 새로워진’ 세계를 이해하고 인식하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강렬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60년대 이후 출생한 문학인들이 90년대에 활동을 시작하며 주목받았던 것은 탈냉전에 접어들며 가치의 혼란과 부재, 문학의 위기를 논하던 90년대 한국문단에 새 흐름을 형성했기 때문이었다. 장정일, 유하의 경우와 같이 60년대 이후 출생 시인들은 소비사회, 매스컴과 테크놀로지 등 변화하는 세태에 대한 새롭고 첨예한 감각을 보여 주었다. 1968년생이며 1992년 ‘세계의 문학’ 가을호로 등단하고 96년에 첫 시집 ‘그들이 지구를 지배했을 때’를 출간한 이원 시인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들이 유년기를 보내며 정체성을 형성해 갔던 시기는 인터넷과 디지털 문화가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시대가 아니었다. 이원 시에서 찾아볼 수 있는 기술과 소비사회에 대한 매우 예민한 반응 역시 디지털 시대에서 태어난 최근의 젊은 세대처럼 태생적인 디지털문화에서 자라나지 않은 까닭 때문일지 모른다. ‘초기 X세대’들은 디지털을 ‘학습한’ 세대이면서도, 처음으로 인터넷과 네트워크의 기본을 만들었던 세대라는 약간 이중적으로 보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런 세대적 특성은 이원 시에도 일련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원이 전자제품과 사이버문화를 광범위하게 시의 직접 소재로 삼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고찰하는 방식은 비교적 고전적이라는 점이다. 기술을 이야기하고는 있지만, 그에게 테크놀로지는 묵직한 존재론적 질문을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다. 기술의 혜택을 보고는 있지만 내면 깊은 곳에서 그 기술을 사용하는 자기 자신을 생경하게 바라보는 자아의 어떤 이질감 같은 것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난다. 디지털 환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살아가고는 있지만 후천적으로 익힌 것이기에, 디지털 문화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자신의 몸처럼 편안히 여기는 최근 세대들에 비해 때때로 불편하고 낯선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기에 그는 디지털 문명을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다. 세계의 변화에 대한 예민한 인식은 전망 부재의 시대에 ‘새로운 시작’을 모색하게 해주는 힘이 된다. 시를 쓰는 것은 물론 읽는 것 역시 ‘길 없음’ 속에서 계속 나아가는 일과 같지 않을까. 이원의 비유를 빌리자면 ‘가벼운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일이다. 의미에 도달한다는 것의 불가능성 속에서 간신히 앞으로, 점점 전진하는 일이나 다름없다. 2010년대에 도달하여 출간한 시집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2012) 표지 뒷면에 적혀있는 시인의 말은 뼈저리다. “넘어가지 못한다 해도 너머가 보이지 않는다 해도, 넘어가지 못하는 그곳에는 보이지 않는 너머에는, 닿아야 했다.” 시인은 ‘불가능한 종이의 역사’라는 의미심장한 제목의 시를 마치는 결구에서 이렇게 말한다. ‘첫 페이지는 비워둔다/ 언젠가 결핍이 필요하리라.’ 이원 시집에 등장하는 무수한 ‘오토바이를 탄 이들’은 바로 이 결핍 때문에 달린다. 그들의 목표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어차피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결국 목적은 달리는 것, 그 자체이고 현재를 사는 지금 이 순간, 질주와 속도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인 것이다. 불가능성 때문에 추구는 더 집요해지고, 시 ‘영웅’의 화자처럼 ‘온몸이 데는’ 것도 불사하는 경지에 이른다. 서커스에서 불타오르는 원형의 가운데를 뛰어넘는 오토바이 묘기와 같다. 이 불타는 허공으로 뛰어드는 묘기에 무슨 목적이 있겠는가? 단지 통과하는 것이 목적일 뿐이다. 삶은 지속되어야만 하는 무엇이다. 그렇기에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은 질주한다. 온몸을 걸고, 온 생이 기울어지고 흔들리면서. 목적지에 닿기 위해 정해진 길로 달리며 획일화된 ‘무장소’에서 체험을 상실하는 현대인들의 ‘속도’와 달리, ‘가벼운 오토바이’와 그 오토바이의 질주는 다른 수많은 현대적 속도들과 확실히 구분되며, 그 속성들을 거스를 수 있는 힘을 가진다. 결핍 속에서, 그 결핍을 채우려는 욕망 속에서 순간적으로 강렬해지는 삶, 그 강도 높은 삶의 기록을 끈질기게 추적하는 것, 도착하리라는 희망이 없는 상태에서도 계속 ‘보이지 않는 너머’에 닿고자 하는 것, 그것이 ‘문학’의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형편없이 미끄러지고 고꾸라지면서도 다시 또 오토바이 위에서 속력을 높이는 이원 시 속 화자들처럼, 끝없이 의미에 ‘미끄러지는’ 언어들로 계속 행간에 발을 헛디디면서도 이 미끄럽고 위태위태한 길을 속도로 넘어가 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끝없이 맴돌기만 할 뿐 영원히 실패한다고 해도, 계속 달려간다면 길은 끊어지고 또 새롭게 만들어질 터이다. 어차피 삶은 여정 위에 있다.
  • [한국경제 CEO 2016 인터뷰] (1)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한국경제 CEO 2016 인터뷰] (1)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새해엔 가계부채와 기업 구조조정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는 시점이 될 겁니다. 정부의 선제적 대응과 함께 금융권의 ‘부실 예방’이 함께 맞물려 돌아가야 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병신년(丙申年) 새해가 밝았다. 금융사 최고경영자(CEO)들도 새로운 밑그림을 짜고 구두끈을 다시 조여 매고 나섰다.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은 을미년(乙未年) 마지막 날인 3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해 가계부채와 기업 구조조정을 금융산업의 가장 큰 도전으로 지목했다. 그는 “가계부채는 주로 담보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가파른 증가 속도에도 불구하고) 10월 말 기준 연체율이 0.31%까지 내려와 있다”면서도 “과도한 증가는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가계부채 해소 방안으로 김 회장은 주거비용 줄이기를 제안했다. 김 회장은 “한창 자산을 축적해야 하는 30~40대가 주택 구매나 전세자금 확보를 위해 대출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면서 “건설사의 밀어내기식 분양으로 주택 구매 수요를 자극한 측면이 있고 이것이 가계부채 급증으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공급을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금리 상승에 대비해 가계대출의 고정금리와 원리금 분할상환 비중을 높이고 전월세 상한선을 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정부가 부실이 심각한 조선·해운·석유화학·철강·건설 등 취약 업종을 중심으로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김 회장은 “경기 회복이 지연될수록 기업의 부실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기업 구조조정이 선제적으로 적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정부의 면밀한 대응을 주문했다. 하나·외환 조기 통합을 통해 탄생한 KEB하나은행은 자산 규모 면에서는 국내 1등 자리에 올라섰다. 김 회장은 “은행산업에서는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가 중요한데 이 부문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면서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는 “새해 상반기 안으로 전산 통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인사 제도와 조직 문화를 최대한 이른 시일 안에 통합해 조기통합 시너지를 극대화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구체적인 복안은 하나·외환의 ‘강점 공유’다. 김 회장은 “하나은행은 프라이빗뱅킹(PB)과 자산관리(WM)가, 외환은행은 외환과 국제 업무가 강하다”면서 “전 직원의 프라이빗뱅커화와 외국환 전문가화를 이뤄 낼 작정”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김 회장이 생각하는 ‘정도경영’과도 맞닿아 있다. 김 회장은 “은행 간 경쟁에만 집착하다 보면 결국엔 금리나 수수료를 깎아 주는 출혈경쟁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면서 “고객에게 1등 수익률을 안겨 주고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는 등 기본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큰 차별화”라고 역설했다. 모든 금융그룹의 공통된 고민인 비(非)은행 부문 강화는 ‘하나멤버스’를 통해 공략할 생각이다. 하나멤버스는 하나금융이 지난 10월 선보인 통합 멤버십이다. 은행, 카드, 보험, 증권 등 하나금융 모든 계열사뿐 아니라 온·오프라인 가맹점 거래 실적을 통합 포인트(하나 머니)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출시 두 달여 만에 가입자 수가 170만명을 넘어섰다. 김 회장은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파트너들을 하나멤버스 제휴처로 영입해 나갈 것”이라며 “은행 이외에 금융투자, 보험, 카드 등 고객 기반을 확대하는 데도 중요한 연결 고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 1등을 넘어 세계 일류’를 꿈꾸고 있는 김 회장은 임직원들에게도 “이제부터는 국내 금융사가 아닌 해외 글로벌 선수들을 경쟁자로 생각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러다 보면 ‘한국판 웰스파고’의 꿈이 어느새 현실이 돼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2015 서울TV 화제영상 베스트 TOP 10

    2015 서울TV 화제영상 베스트 TOP 10

    2015년 한 해 동안 서울TV에서 가장 인기를 받은 영상은 무엇일까요? 1년 동안 서울TV 시청자분들이 가장 많이 본 화제영상을 정리해봤습니다. 1위 예술의 역설?…박물관 알몸女에 관람객 ‘깜짝’(조회수 913,663) 2위 길가에서 엎치락뒤치락하던 10대女, 급기야...(352,282) 3위 거대 지네에게 뱀 먹이로 줬더니…(331192) 4위 악어 떼 가득한 늪에 고양이 던진 남성들 ‘경악’(327,391) 5위 [한줄영상] 물놀이 중 발생한 ‘민망한 실수 모음’(322,877) 6위 계단 난간 미끄럼 장난치던 10대女 추락 순간(302,701) 7위 병 고친다며 여신도 성추행한 사이비 교주 체포(298,185) 8위 버팔로 사냥하던 사자의 끔찍한 최후 포착(292,657) 9위 암소 삼켰다 토해내는 거대 아나콘다 포착(238,996) 10위 경찰관이 독방 수감녀 허리띠 강제로...끝내 해고(224,820)
  • 檢 ‘김수남표 중수부’ 반부패 TF 새달 초 신설

    검찰이 권력형 비리 등 대형 부정부패 사건을 전담하는 수사조직을 다음달 초 검찰총장 직속으로 신설한다. 평상시에 소규모로 운영되다가 큰 사안이 터지면 일선 수사인력을 보충받는 식으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폐지 이후 약화된 수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28일 검찰 등에 따르면 대검찰청 반부패부(부장 박정식 검사장)와 법무부는 검사장급을 팀장으로 하는 특별수사조직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검찰이 특별수사조직 신설에 나선 것은 2013년 대검 중수부 폐지 이후 서울중앙지검 특수1~4부와 일선 검찰청 특별수사부서로 비리 수사 기능이 분산되면서 부정부패 수사 역량이 떨어졌다는 비판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과거 중수부처럼 일사불란한 수사조직을 신설해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한다는 취지다. 김수남 검찰총장이 총장 후보자 때 인사청문회에서 “대검 중수부와 같은 조직을 만드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해석된다. 조직의 수장은 방위사업 비리 정부합동수사단장인 김기동(51·사법연수원 21기) 대전고검 차장이 맡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해졌다. 새 조직은 상설기구가 아닌 태스크포스(TF) 형태로 운영된다. 평소에는 10명 안팎의 검사가 배치돼 있다가 과거 저축은행 비리나 최근 방위사업 비리처럼 전국 단위의 부패 범죄를 수사할 때 인적·물적자원이 집중 투입되는 식이다. 보고 체계는 TF 팀장에서 대검 반부패부장, 검찰총장으로 단순화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보고·지휘 체계처럼 일선 검찰청과 대검의 지휘 라인이 얽힌 구조로는 보안 유지나 수사의 신속성에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TF가 설치될 기관은 서울고검이 유력시된다. 국가정보원 증거 조작 사건과 ‘성완종 리스트’ 의혹 등 대형 사건을 맡았던 검찰 특별수사팀들이 서울고검에 사무실을 둔 전례가 있다. 서울 지역의 한 검사는 “일선 검찰청 특수부는 검사실 단위로 움직이기 때문에 수사의 생명인 보안성과 신속성이 지켜지기 어렵다”면서 “특수수사 TF가 생기면 과거 중수부처럼 부장검사급이 소팀장이 되고 그 밑에 검사들과 다수의 수사관이 밀도 있는 내사를 벌여 효율적인 대형 비리 수사가 가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또 다른 검사는 “부정부패 수사 역량이 강화되면 결국 국민이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라며 “제도만 잘 운영된다면 과거 중수부 체제의 단점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의 중수부 부활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적 편향성에 따른 하명 수사 도구’라는 비판에 따라 여야 합의로 폐지된 중수부를 검찰 내부 결정으로 되살리려 한다는 지적이다. 상설기구가 아닌 TF 형식을 취한 것 자체가 검찰 스스로 이런 비판을 의식한 결과라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이재화 변호사는 “대선 전에 국민적 합의에 의해서 결정된 사항을 백지화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한 검찰 관계자는 “중수부가 대형 사건들을 주로 맡게 된다면 중앙지검 내 특수부의 역할이 모호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송수연 기자 songsy@seoul.co.kr
  • 알코올중독예방치유법 제정으로 음주문화 개선 나서야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음주로 인한 경제, 사회적 비용이 연간 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주 관련 질병 진료비의 경우 2007년 1조 7057억원에서 2011년 2조 4336억원으로 급증했고, 2011년도 보건복지부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20세 이상의 국민을 기준으로 알코올중독자가 13.4%, 약 512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중증 알코올중독으로 분류되는 ‘알코올의존’은 5.3%로 무려 203만명에 해당한다. 중독예방시민연대 김규호 대표는 “우리나라는 음복문화, 회식문화 등 사회적으로 음주에 관대한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때문에 음주의 폐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부족한 편”이라고 지적하며 “폭행, 가정폭력, 성범죄, 음주운전 등 형사처벌형 범죄의 원인이 될뿐만 아니라, 직장과 가정 내 갈등, 건강상실로 인한 수명단축과 의료보험료 증가 등 알코올중독으로 인한 음주폐해가 사회 곳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다음 세 가지 내용이 포함된 ‘알코올중독예방치유법’ 제정을 통해 음주문화 개선을 위한 조치들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첫째로 주류산업체들이 년 수익의 0.5%를 분담하여 ‘알콜중독예방치유분담금제’를 시행해야 한다. 이미 도박중독분야에서는 학계와 관련시민단체들의 적극적인 노력에 힘입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을 제정한 결과 2013년부터 강원랜드, 마사회 등 사행산업체가 순매출 0.5%를 의무적으로 부담하게 하는 ‘도박중독예방치유분담금제’를 실시 중이다. 이에 따라 도박중독예방 전문기관인 한국도박문제관리센타가 신설되어 도박중독 예방치유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둘째로 청소년들의 알코올중독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도 시급하다. 알코올중독으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중독자들의 실태를 알려주고, 음주폐해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 또한 알코올중독을 피할 수 있는 행동지침과 알코올중독치료방법에 대해서도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학교에서 알코올중독예방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하며, 대한보건협회 등의 유기적인 공조를 통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익광고를 포함한 전방위적인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셋째로 알코올중독예방치유 정책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알코올중독예방치유위원회’가 신설돼야 한다. 원활한 정책운영을 위해 정부, 국회, 학계, 시민단체, 종교계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국가적인 협의기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특히 복지부 산하의 ‘파랑새포럼’을 법정기구인 ‘알코올중독예방치유위원회’로 격상시켜 전방위적인 활동을 맡겨야 한다. 필요하다면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와 같이 국무총리 직속기관으로 포함시켜 관련부처들의 협의를 이끌어내는 것도 방법이다. 김 대표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이며 이를 위한 법률을 제정하고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며 “정부와 국회는 알코올중독과 음주폐해로 인한 사회적 손실과 수명을 단축시키고 있는 국민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좀 더 적극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정부와 학계, 시민단체, 종교단체들과의 유기적인 공조활동을 통해 ‘알코올중독예방치유분담금제’를 골자로 하는 ‘알코올중독예방치유법’을 반드시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글로벌 큐레이터 이원일, 짧지만 굵은 삶의 궤적

    글로벌 큐레이터 이원일, 짧지만 굵은 삶의 궤적

    “세계사가 백인들을 중심으로 쓰인 것에 부당함을 지적하는 것이지요. 나는 아시아인이고, 한국인입니다.” 국제미술계에서 아시아 현대미술의 국제적 영향력을 키우는 데 열정을 바친 큐레이터 이원일(1960~2011)의 삶과 예술정신을 추적한 평전이 그의 5주기를 앞두고 출간됐다. 그의 대학 후배이자 미술평론가인 김성호가 쓴 ‘큐레이터 이원일 평전’(사문난적)은 1부에서 어린 시절 모습부터 학창시절을 거쳐 아시안 큐레이터, 글로벌 큐레이터로 활동한 짧은 삶을 다룬다. 2부에서 이원일의 큐레이팅 세계를 학술적으로 조명한 세 편의 글을 통해 그의 전문적인 큐레이팅을 분석하고 부록에서는 동료비평가들의 글과 연보, 생전에 촬영한 사진들을 선별해 실었다. 중앙대 회화과와 뉴욕대 대학원을 졸업한 이원일은 예술가와 큐레이터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다 군 제대 후 토탈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 전시기획자의 길로 접어든다. 이후 성곡미술관 수속 큐레이터,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장, 3회 광주비엔날레 전시팀장, 5회 광주비엔날레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일했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제2회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미디어시티’전, ‘청계천 프로젝트1-물 위를 걷는 사람들, ‘아시아현대미술프로젝트-시티넷 아시아’ 등의 전시를 기획·총괄했던 그는 2004년 2월 서울시립미술관을 나와 독립큐레이터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그는 아이러니, 상상, 구조적 모순, 해학과 풍자, 대비, 혼성 등의 개념을 내세워 ‘창조적 역설’에 대한 재해석과 조형적 실천을 감행하는 가운데 아시아 현대미술의 국제적 영향력을 촉진하는 데 집중했다. 2004년 5월 대만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디지털 숭고’전, 2006년 독일 칼스루에 미술관 ZKM의 글로벌뮤지엄 심포지엄, 제6회 상하이비엔날레, 2007년 폴란드 포잔미술관 ‘아시아-유럽 매개’ 전 등 국제전을 기획하며 아시아미술을 알렸다. 2007년 6월 독일 ZKM의 개관 10주년기념으로 열린 ‘미술인 터모클라인-새로운 아시아물결’전 큐레이팅을 계기로 글로벌 큐레이터로 발돋움해 2010년 이탈리아미술잡지 ‘플래쉬아트’가 선정한 세계큐레이터 101인 중 20위를 차지할 정도로 글로벌 큐레이터로 역량을 과시했다. 광주 아시아문화의전당에 기획위원으로 참여했던 그는 2011년 1월 11일 심장마비로 타계했다. 함혜리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복지에 공짜 없다… 高복지·低복지 선택 뒤 비용부담 합의해야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복지에 공짜 없다… 高복지·低복지 선택 뒤 비용부담 합의해야

    특별기획팀은 지난 두 달간 죽은 ‘김 노인’을 찾아 헤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노인 빈곤율 1위’, ‘노인 자살률 1위’라는 낯부끄러운 현실 앞에서도 둔감해져만 가는 우리 사회에 일말의 경각심을 던지려면 빈곤의 늪에 빠져 스스로 삶을 마감한 노인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불경스럽지만 김 노인의 심리 부검을 진행한 이유다. 노년층이 빈곤의 나락에 빠지는 경로를 찾고자 복지·통계·재무 전문가 집단에 의뢰해 맞춤형 세부 분석도 진행했다. 또 취재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일해야 하는 또 다른 김 노인과 조우했다. 4부의 ‘누가 김 노인을 죽였나’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우리 노인들의 현실을 되짚어 보고 노인복지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열었다. 지난 24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서울신문사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김선태 노년유니온 위원장, 이동욱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 정경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고령사회연구센터장,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나다순)가 참석했다. 이상과 현실, 재정과 복지 사이에서 팽팽한 격론이 있었지만 접점도 많았다. →통계상 국내 노인 2명 중 1명이 빈곤층이다. 일각에서는 현실보다 과하게 잡힌 수치라고 보는데. 김선태 위원장 과장된 수치가 아니다. 현재 노인 세대는 부모를 봉양한 마지막 세대이자 자식 봉양을 못 받는 첫 세대다. 노후 준비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막상 늙으니까 자녀에게 봉양을 받기는커녕 결혼시키고 대학 등록금 대느라 허리가 휜다. 가진 건 집 한 채뿐인데 이를 처분해 쓰다 보면 어느새 빈곤의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 답답함은 말로 표현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 정부가 노인 연령을 70세로 올려서 복지 혜택을 주는 시점을 늦추려 하거나 노인 빈곤 현실을 측정하는 지표인 상대빈곤율(중위 소득 50% 미만 가구 비율)이 과장됐다면서 대체할 지표를 찾으려 하는 건 꼼수다. 이동욱 실장 정부도 빈곤율 수치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우리 상대빈곤율이 47%대로 OECD 회원국 중 제일 높은 게 맞다. 다만 다른 나라와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선진국의 공적연금 체계는 길게는 100년 가까이 됐다. 이 나라의 노인들은 젊을 때 공적연금에 가입한 덕에 지금 충분한 혜택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국민연금제가 1988년 도입돼 27년밖에 안 됐다. 이렇게 역사적 차이가 나는데 현재 시점에서 뚝 잘라 다른 나라와 비교하며 우리 노인들이 받는 공적연금 혜택이 적다거나 상대적 빈곤율이 높다고만 하는 건 맞지 않는다. 또 전통적으로 부동산을 선호하는 우리 특유의 문화도 감안해야 한다. 상대빈곤율은 현재 버는 소득을 기준으로 얼마나 가난한지 보는 지표인데 우리 노인 세대는 자산의 80% 정도가 부동산이다. 돈을 깔고 앉아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 같은 비금융자산을 금융자산으로 바꿔 보면 우리 빈곤율이 조금 낮아질 수 있다. 정경희 센터장 우리 노인들이 자가 주택 등 부동산을 가진 비율이 높은 건 맞지만 자산으로서 가치는 크지 않다. 그래서 자산까지 합쳐 빈곤율을 계산해도 많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국내 노인 빈곤이 심각해진 건 급격히 인구 고령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공적연금제가 성숙할 시간이 없었다. 노년기 소득을 공적연금이 채워줄 수 없다면 자녀가 주는 용돈 등 사적이전소득이 공백을 메워야 하는데 19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노인의 사적이전소득이 급격하게 줄었다. 주은선 교수 국민연금제가 성숙하면 노인 빈곤이 해결될지를 잘 따져 봐야 한다.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 비율은 점점 늘겠지만 중요한 건 소득대체율(연금 가입 기간 평균 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 수준)이다. 국민연금이 성숙해져도 소득대체율은 평균 20%를 못 넘는다. 지금 가치로 45만원 수준에서 왔다 갔다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현행 국민연금제가 노인 빈곤을 해결할 괜찮은 제도가 될 거란 환상부터 버려야 한다. 이 실장 국민연금이 성숙해도 은퇴 이후 ‘소득 절벽’(퇴직 이후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별 소득 없이 버티는 기간)을 완전히 없앨 수 없다. 하지만 그 기울기는 지금보다 완만해질 것이다. 공적연금 등이 노년기 필요한 돈을 100% 채워줄 수는 없다. 선진국도 공적연금이 노후 필요 자금의 70~80% 정도만 맞춰준다. 나머지 여백은 사회적으로 함께 노력해 노후에 미리 대비하도록 해야 한다. →국내 노인 빈곤 대책의 핵심은 무엇인가. 주 교수 노후 소득 보장과 관련해 중요한 두 축은 노동권과 국민연금이다. 즉, 평생 적절한 임금 등 질을 갖춘 일자리가 보장됐는지와 노년에 괜찮은 수준의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가 노인 빈곤 문제의 원인이자 해법이 될 수 있다. 노후에 두 소득 중 연금소득이 높아야 정상인데 우리나라는 근로소득이 더 높다. 다른 나라 사례를 봐도 공적연금의 질이 높을수록 노인 빈곤은 떨어진다. 정 센터장 국내 노인 빈곤 정책을 세울 때 현재 노인과 미래 노인을 위한 전략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국민연금은 지금 당장 가난한 노인에게 즉각적인 도움이 될 수 없는 구조다. 노인들에게 당장 유용할 제도를 마련하는 동시에 미래 노인 세대를 위해서는 공적연금을 장기적으로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논의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두 차원의 논의가 섞여 있다. →현재 노인 일자리에 대해 평가한다면. 김 위원장 가장 흔한 게 경비직이다. 경쟁이 최소 5대1이 될 정도로 심하다. 그래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도 잘릴까 봐 불평하지 못한다. 정부의 공공일자리는 한 달에 36시간 일하고 20만원을 받는다. 월급여가 10년째 20만원으로 최저임금 수준이다. 예산은 적게 편성하면서 일하는 인원만 늘렸다. 주 교수 일자리 문제도 비정상을 정상화하는 방식으로 바로잡아야 한다. 평생 일한 일자리에서 퇴직하는 평균연령이 50대 초반인데 연금은 60대 중반이 돼야 받는다. 이 기간을 줄여야 한다. 또 중요한 건 ‘고용 없는 성장’, 즉 장기적으로 돈 받고 일하는 일자리가 점점 줄 것이라는 점이다. 노인 빈곤 해결에 있어 노인 일자리 정책이 연금의 역할을 대신해줄 수 있는 것처럼 믿어서는 안 된다. 정 센터장 중요한 건 50대냐, 60대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나 생산성을 가졌느냐다. 이에 따라 개별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이 실장 정부가 공적자금에 의존해 노인 일자리를 무한정 만들기는 어렵다. 그래서 기업이 노인을 뽑도록 해야 한다. 긍정적인 점은 통계 분석을 했더니 60~65세의 생산성이 청·장년층에 비해 확 떨어지지는 않았다. 노인을 고용하면 기업 입장에서 왜 유리한지 보여주고 공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 또 일자리 정책이든 연금 제도든 어느 하나로 모든 것을 대체할 수는 없다.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세대별로 상황에 맞게 노후를 준비하도록 해줘야 한다. 예컨대 노년까지 20년 이상 남은 세대는 그 기간에 어떻게 준비해야 연금을 받을 수 있는지 설계를 돕고 교육해야 한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는 국민연금 평균 가입 기간이 약 112개월인데 120개월(10년)을 채워야 연금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 연금 수령 최소 기간을 채울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현재 노인들에게는 국가가 지원비를 주거나 일자리를 주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다. →노인 빈곤 해결을 위해서는 가족의 역할도 중요하다. 재산 증여를 받은 뒤 부모 봉양은 하지 않는 자녀가 많은데. 정 센터장 요즘 언론에서 부모 공양을 소홀히 하는 자녀 얘기가 많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사회적 관점을 옮길 필요가 있다. 자녀 중심의 시각보다는 노인이 스스로 권리나 자주성을 강조하는 식 말이다. 모든 사람이 개인주의자가 되는 게 맞지 않나. 자산 관리 계획을 세울 때도 자녀의 관점이 아니라 내 노후를 염두에 두고 설계해야 한다. 정부는 공적 제도를 개선하는 역할을 해야 하고 노인 당사자들은 ‘내 것은 내가 지킨다’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한다. ‘자녀가 효도해야 한다’는 심정적 논리는 더이상 먹혀들지 않는다. ‘자산과 에너지를 어떻게 분배해 스스로 노후를 대비할 것이냐’ 하는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주 교수 자녀가 가난한 부모를 보살피지 않는 현상 이면에는 자식 세대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현실이 있다. →노인 빈곤 정책의 우선순위는 누구에게 둬야 한다고 보나. 정 센터장 재원이 제한된 만큼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 우선 절대빈곤층(가구소득이 최저생계비(2015년 4인 가족 기준 166만 8000원) 이하인 가구)부터 챙겨야 한다. 통계상 우리 노인 중 30% 정도가 절대빈곤인데 문제는 10%가량만 기초생활보장대상자라는 점이다. (부양의무 기준 등에 막혀 대상에서 빠진) 나머지 20%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와 관련한 대책을 재원 마련 등과 연계해 심각하게 얘기해 봐야 한다. 절대빈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한 채 상대빈곤을 끌어내리는 문제까지 논하려 하니까 정책적 우선순위가 정해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예컨대 도시 노인을 위해서는 주거비 부담 경감 대책을 마련하고 농어촌 노인을 위해서는 맞춤형 급여를 도입하면 절대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기초생활보장제와 기초연금제 등 각각의 제도가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좀 더 솔직히 밝힐 필요도 있다. 주 교수 지난해 7월부터 기초연금급여를 20만원씩 주고 있지만 절대빈곤율은 3~4% 정도 떨어지는 수준이다. 절대빈곤층이 얼마나 가난한지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어떤 정책 수단을 통해서든 최저생계 이상은 유지해야 한다는 당위가 있다. 김 위원장 기초생활수급자인 노인들은 기초연금 효과를 누릴 수 없어서 원망이 크다. 정부는 이중 지원이라는 논리로 기초연금을 준 만큼 기초생활 생계급여를 깎는다. →후기(75세 이상)노인과 여성, 독거노인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빈곤층 대책은. 이 실장 후기노인이 되면 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제때 치료받도록 돕고 입원비 부담은 줄여줘야 한다. 아픈데 돈이 없어서 집에 혼자 있게 해서는 안 된다. 이제 막 시작한 단계지만 정부도 독거노인 생활관리사 제도를 운용해 홀로 사는 노인에게 자주 찾아가거나 전화해 상황을 확인한다. 가장 급한 부분은 맞닥뜨린 질병에서 벗어나고 고독을 느껴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막는 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정 센터장 65세 이상 인구 중 8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아지는데 80세를 넘어가면 질병 등으로 인해 신체 능력이 급감한다. 늙을수록 노인의 경제적 양극화가 심해진다. 사실 가장 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애매한 상황에 놓인 노인들이다. 가난하고 아픈데도 요양시설을 이용할 장기요양등급은 받지 못한 노인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점점 늘 것이다. 주 교수 후기노인, 독거·여성노인 등 복지 사각지대 문제를 풀려면 결국 돈을 써야 한다. 빈곤 문제가 심각하면 공적 노후소득보장을 더 강화해야 한다. 고령 인구가 늘면 복지 수요도 커진다. 돈주머니가 한정돼 있다며 칸막이를 쳐 놓고 끝낼 문제가 아니다. 심각성을 인지하고 정책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제3차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대한 평가는. 이 실장 노인 빈곤을 낮추기 위해 주택연금(주택을 담보로 금융기관으로부터 매월 연금을 받고 대출자가 사망하면 주택을 처분, 정산해 주택가격에서 연금 수령액을 제하고 상속인에게 주는 제도) 가입률 끌어올리기 등 주택과 농지 얘기를 넣었다. 우리 국민들은 집, 땅에 대해 ‘자식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이라고 인식한다. 그런데 생각을 바꿔서 노후 준비에 활용하면 국민연금의 보완책으로 여러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정 센터장 최근 방점이 저출산에 찍히니까 고령화에 대한 종합적 시각이 약해진 것 같다. 이전에는 노인종합계획 등을 세워서 단기 성과에만 얽매이지 않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예컨대 노인 단독 가구가 증가하면서 우리 사회제도가 많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런 그림을 그리는 일에 관심이 적은 것 같다. 노인들이 다양해지면서 그들이 자율성과 독립성을 발휘할 가능성도 커졌다. 그래서 사회적 안전망을 어떻게 깔아주느냐가 더 중요해졌다. 주 교수 이번 대책을 보면 지나치게 노인의 자율성에만 기댄 내용이 많다. 주택연금 등 사연금 가입자 수를 늘리겠다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연대성을 촉진할 만한 대책은 미흡하다. 특히 소득 보장에서의 연대성, 즉 공적연금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가 어느 정도 수준의 복지를 해야 한다고 보나. 고비용 고복지인가, 저비용 저복지인가. 정 센터장 고복지와 저복지 중 하나를 택할 만큼 내 관점이 뚜렷이 서 있지는 못하다. 다만 확실한 건 비용 없이는 복지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도달해야 할 최소한의 복지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사회적 합의를 하고 그 선까지 가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 비용 부담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 복지 목표에 대해 합의하면서 비용 문제는 언급하지 않다가 나중에 비용 얘기가 나오면 합의가 없던 것이 돼 버리는 악순환이 있는데 이를 경계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의 절대빈곤은 어떻게든 공적으로 해결한다고 합의하고 이를 위해 제도의 수정과 보완이 필요하다고 본다. 주 교수 복지를 할 것이라면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지출은 필요하다. 많은 사람이 조세에 거부감을 느끼는 이유는 공정성에 대한 의심 탓이다. 조세 항목 중 그 돈을 사회보장 영역에서 쓴다고 하면 사회에서 어느 정도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납세자들이 세금을 내면 그게 어디에 쓰일지 모른다는 데 있다. 국가에 대한 오래된 불신이 있는 것이다. 그런 의심을 타개해줄 수 있는 선언과 행동이 필요하다. 진행 유영규 특별기획팀장 정리 유대근·윤수경 기자 dynamic@seoul.co.kr
  • [아하! 우주] 2015 우주에서 새롭게 발견된 ‘블랙홀’ 톱 7

    [아하! 우주] 2015 우주에서 새롭게 발견된 ‘블랙홀’ 톱 7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는 블랙홀에 빠져들어간 주인공이 가까스로 생존하는 장면이 나온다. 초고밀도에 의하여 생기는 중력장의 구멍을 뜻하는 블랙홀은 일반적으로 모든 것을 흡수하고 파괴하며 절대 헤어나올 수 없는 존재로 인식돼 왔지만 이와 달리 '킬러'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역설적이지만 블랙홀은 우주에서 가장 밝은 천체 가운데 하나로 그 자체는 빛을 내지 않지만, 그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물질이 빛과 에너지를 내놓는다. 대부분의 은하들은 그 중심부에 우리 태양 질량의 수백 만 배 심지어 수십억 배가 넘는 거대한 블랙홀을 품고있다. 우리 은하에도 역시 태양 질량의 약 400만 배가 넘는 거대 블랙홀이 '조용히' 존재하지만 어떤 블랙홀은 주변 물질을 게걸스럽게 잡아먹으며 요란을 떨기도 한다. 2015년 한해 학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블랙홀과 관련된 연구성과를 정리해봤다. - 충돌하는 두 은하 속 ‘괴물 블랙홀’ 탄생 포착   올해 초 미 항공우주국(NASA)의 누스타(NuSTAR) 우주망원경이 두 은하의 충돌로 인해 괴물 블랙홀이 탄생하고 있는 현장을 잡아냈다. 블랙홀 현상을 추적하기 위해 우주로 쏘아올려진 NuSTAR는 고에너지 X선 자기장 영역을 관측할 수 있는 위성 망원경이다. 충돌한 두 은하는 Arp 299로 통칭되는 것으로, 지구로부터 1억 3400만 광년 거리에 있다. - 별을 ‘호로록’ 빨아먹는 괴물 블랙홀 포착  지난 1월 미국과 헝가리 등이 참여한 국제 연구진이 지구로부터 약 30억 광년 거리에 있는 한 거대질량 블랙홀의 식사 장면을 확인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천문학자들은 이전에도 여러 블랙홀이 별을 먹은 과정을 목격해왔지만, 이번처럼 식사 중인 모습이 관측된 경우는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이 놀라운 광경은 2009년 1월 미국 텍사스주(州)에 있는 맥도널드천문대의 한 작은 망원경(ROTSE-IIIB)에 의해 처음 목격됐다. 이후 미 하와이 마우나케아 산에 있는 W.M.켁 천문대의 천체망원경과 구경 9.2m 호비-에버리 망원경, 스위프트 위성 등으로 관측한 데이터를 사용해 ‘비밀’을 밝힐 수 있었다. 22.5등급으로 분류되는 이 천문 사건은 가장 밝은 항성 폭발로 알려진 ‘초광도 초신성’보다 더 밝았다. - 태양 질량의 120억배 ‘초대형 블랙홀’ 발견 지난 2월 우주 퀘이사 중심에서 거대한 규모의 블랙홀이 발견됐다. 퀘이사는 지구에서 관측할 수 있는 가장 먼거리에 있는 천체로, 수많은 별들로 이뤄진 은하다. ‘SDSS J0100+2902’ 라고 명명된 이 블랙홀은 지구에서 128억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그 질량이 태양의 120억배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처음 발견한 오스트레일리아국립대학의 푸얀 비엔 박사 연구진은 이 블랙홀이 먼 우주에서 가장 밝은 광원체로서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에 따르면 퀘이사 중심에 있는 이 블랙홀은 엄청난 중력을 자랑하며, 태양보다 질량이 훨씬 큰 만큼 태양이 발산하는 에너지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의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블랙홀은 매우 짧은 시간 동안 거대한 질량의 초대형 블랙홀로 성장한 것으로 추측된다. - 초거대 블랙홀 제트 간 충돌 사상 첫 포착 초거대 블랙홀에서 제트끼리 서로 충돌하는 현상이 사상 처음으로 포착됐다. 지난 5월 미국 우주망원경연구소(STScI)측은 타원은하 NGC 3862 중심에 있는 블랙홀 제트의 충돌 모습을 유명학술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허블우주망원경으로 관측한 이번 현상은 지구로부터 약 2억 60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은하 NGC 3862의 중심부에서 포착됐다. 일반적으로 은하 중심에는 거대 블랙홀이 존재한다. 이를 증명하는 것이 바로 은하 중심에서 ‘물질’이 방출되는 현상인 제트(jets)다. 사실 모든 것을 집어 삼킨다는 블랙홀이 왜 제트를 뿜어내는지 또한 그 구성 물질이 정확히 어떻게 되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에너지가 강한 X선과 에너지가 약한 X선의 강도 비율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블랙홀이 인간의 머리로 상상하기 힘든 에너지를 엄청난 속도로 뿜어낸다는 것은 확실하다. - 태양보다 5000배 큰 중간급 블랙홀 발견 지난 9월 NASA와 메릴랜드 대학 공동연구팀은 지구 남반구 별자리인 그물자리 방향으로 약 1,350만 광년 떨어진 NGC 1313에서 중간급의 새 블랙홀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막대나선은하인 NGC 1313에 놓여있는 블랙홀 ‘NGC 1313 X-1’은 중간급이라는 수식어가 붙어있지만 사실 우리 태양보다도 무려 5000배 이상이나 질량이 크다. 일반적으로 블랙홀의 크기는 우리 태양과 비교해 크게 두 부류로 분류한다. 블랙홀이 우리 태양 질량의 100만 배 이상인 경우 ‘초질량 블랙홀’로, 10~100배 수준이면 ‘별질량블랙홀’ 로 구분하는 것.그러나 흥미롭게도 그 중간급에 속하는 블랙홀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한마디로 우주의 블랙홀이 작거나 크거나 ‘모아니면 도’로 존재하는 것도 이유지만 그만큼 찾아내기 힘든 것도 큰 원인이다. 그러나 지난 2012년 호주 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CSIRO)가 지구에서 3억 광년 떨어진 ESO-243-49 은하 중심부에서 질량이 우리 태양의 약 2만 배로 추정되는 중간급 질량의 블랙홀을 처음으로 발견한 바 있다 - 초질량 블랙홀, 다가온 별 잡아먹는 모습 관측   강력한 중력으로 빛 조차도 흡수한다는 블랙홀에 거대한 별이 가까이 접근한다면 어떤 현상이 발생할까?지난 10월 미국 미시간 대학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블랙홀이 별을 찢어 흡수하는 현상을 관측해 이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세계적인 과학지 ‘네이처’(Nature)에 발표했다. 이제는 영화로도 익숙해진 블랙홀은 대부분의 은하 중심부에 존재한다. 연구팀의 관측대상에 오른 지역은 지구로부터 2억 9000만 광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은하 PGC 043234 중심부에 놓인 초질량 블랙홀(ASASSN-14li)이다. 연구팀은 NASA의 찬드라 X-레이 우주망원경과 스위프트 위성, 유럽우주국(ESA)의 XMM-뉴턴(XMM-Newton)망원경을 동원해 문제의 지역을 관측한 결과 가깝게 접근한 별을 블랙홀이 쭉 빨아들이는 일명 ‘조석 분열’(tidal disruption) 현상을 관측하는데 성공했다. - ‘블랙홀’이 별을 통째로 ‘꿀꺽’ 첫 관측  지난달 천문학자들로 이루어진 다국적 팀이 블랙홀이 별을 통째로 꿀꺽하고는 트림처럼 고속 플라스마를 우주공간으로 방출하는 현장을 목격했다. 이 거대한 에너지의 흐름은 우리 태양이 1000만년 동안 생산하는 에너지와 맞먹는 것으로 보인다.문제의 블랙홀은 지구로부터 3억 광년 떨어진 PGC 43234 -300이라는 은하 중심에 똬리를 틀고 있는 것으로, 우리 태양 질량의 100만 배 정도지만, 초질량의 블랙홀에 비한다면 비교적 경량급에 속하는 것이다. 하지만 엄청난 중력을 갖고 있어 우리 태양 정도 크기의 별 하나 정도는 떡 먹듯이 먹어치울 수 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열린세상] 新기후체제, 산림 역할 강화해야/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新기후체제, 산림 역할 강화해야/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세계는 지금 기후변화라는 전대미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 거대한 적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거 세계대전이나 경제공황보다 무서운 기후 재앙을 겪게 될 것이다. 2007년 영국의 경제학자 니컬러스 스턴은 ‘기후변화 보고서’에서 “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 이후 도시화, 산업화, 산림벌채 등으로 온실가스 배출이 급증해 기후변화를 초래하게 됐다”고 지적하면서 이로 인한 손실액이 연간 1조 달러에 이른다고 경고한 바 있다. 계속되는 기후변화는 인류 문명의 붕괴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이전에 지구가 겪었던 몇 차례의 빙하기보다도 혹독한 생태계의 파국을 가져올 것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동안 산림의 사막화가 가져온 지구 생태계와 인류 문명의 소멸 과정을 지켜보았다. ‘문명의 붕괴’를 쓴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핵전쟁이나 새로운 질병보다 숲과 같은 환경파괴가 인류 문명의 더 큰 위협 요인”이라고 지적했고, 존 펄린도 ‘숲의 서사시’에서 “세계 문명은 숲이 풍부한 지역에서 번성해 숲의 소멸과 함께 종말을 고했다”면서 숲의 파괴 과정과 결과를 소상히 설명하고 있다. 고은 시인도 강연에서 “인류의 고향은 숲이다. 우리는 숲으로부터 은혜를 받으며 살아왔지만 인류는 문명이라는 미명 아래 숲을 파괴해 왔다. 그래서 지금 기후변화와 같은 재앙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벗어나려면 숲으로부터 사면(赦免)을 받아야 한다. 그 길은 지구의 숲을 복원하는 일”이라고 역설했다. 이처럼 기후변화에 적극 대처하는 길은 온실가스 흡수원인 숲을 잘 지키고 가꾸며, 훼손된 숲을 복원하는 것이다. 다행히 지난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 선진국뿐만 아니라 모든 당사국들이 평균기온 상승을 섭씨 2도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기 위해 자발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공약하고 이를 이행하기로 합의했다. 이제 세계 각국이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 저감 방법 중 산림 분야에서 가장 효과적인 것이 바로 REDD+(Reducing Emission from Deforestation and forest Degradation) 사업이다. REDD+란 개발도상국에서 산림 황폐 및 감소를 막아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활동으로 이에 필요한 재원은 선진국이 지원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후변화 대응 체제를 말한다. 신(新)기후체제에서도 산림은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의 흡수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산림도 산불이나 산사태, 산림병해충 피해로 훼손되고 망가지면 오히려 온실가스 배출원이 된다. 전 세계적으로 산림이 황폐화됨에 따라 배출되는 온실가스양이 전체 온실가스 배출의 20%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도 일부 열대 지역에서는 지역 주민들이 화전을 경작하기 위해 산림에 불을 놓아 숲이 망가지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감소를 위해선 우선 화전 경작부터 막아야 한다. 이번 파리기후협정에서도 산림을 포함한 온실가스 흡수원의 보전과 증진 활동을 분명히 밝히면서 특히 개발도상국의 REDD+ 사업을 강조했다. 앞으로 개도국의 REDD+ 사업을 평가하고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데 필요한 체계는 지난 10년 동안의 협상을 통해 이미 마련됐고,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국가들은 REDD+ 사업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다. 독일 민간연구소 저먼워치와 유럽기후행동네트워크(CAN Europe)가 발표한 2016 기후변화대응지수는 우리나라가 조사 대상 58개국 가운데 54위를 기록, 기후변화 대응 노력이 최하위권으로 평가됐다. 우리는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30년 배출전망치 대비 37% 감축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지 않는 듯하다. 물론 선언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새해부터는 과거 우리의 기적 같은 치산녹화 성공의 저력을 바탕으로 국제산림협력체계 구축과 저탄소 창조경제 모델을 제시해 기후변화 대응에도 모범 국가임을 보여 주기를 기대해 본다.
  • [구본영 칼럼] 몸에 맞지 않는 옷, 국회선진화법

    [구본영 칼럼] 몸에 맞지 않는 옷, 국회선진화법

    ‘세밑 국회’가 꽉 막혀 있다. 경제활성화 법안들도, 4대 구조개혁 법안들도 상임위에 계류 중이다. 안건들이 위나 장으로 내려가지 못하니 언제 체증이 풀릴지 기약도 없다. 정의화 국회의장은 요즘 소화제를 달고 산단다. 여당이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라고 여당 출신 국회의장을 압박하는 기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법안 소화불량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막후 대화를 선호하지 않는 박근혜 정부의 대야 소통 방식, 내분에 휩싸인 야당의 당내 사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큰 요인은 의결정족수를 과반에서 5분의3으로 올린 ‘국회선진화법’이다. 이는 예산안을 제외한 모든 의안에 대해 사실상 소수당에 무한대의 거부권을 쥐여 준 격이다. 19대 국회의 수명이 끝나가고 있지만, 차기 국회의 산실인 지역구 획정조차 못 하는 이유가 뭔가. 여야의 정략이 근본적 걸림돌이겠지만, 국회선진화법의 벽에 표결이란 출구조차 막혀 있다. 연말까지도 선거구 획정이 안 되면 ‘전 선거구 무효’라는 헌정질서 위반 사태가 빚어질 판이다. 국회의장이 현행 국회선진화법 위반 논란을 무릅쓰고 직권 상정을 하지 않는 한 이를 피할 묘책이 없어 보인다. 이쯤 되면 의회민주주의가 기로에 선 느낌이다. 국민이 선거로 선택한 다수당이 입법 주도권을 행사하고 만약에 잘못되면 다음 선거에서 심판을 받는 게 대의민주주의의 요체다. 소수 야당이 헌법 정신에 반하는 5분의3 의결정족수를 무기 삼아 입법 주도권을 나눠 갖는다고? 그러려면 뭐하러 선거에서 다수당이 되려고 하는지 근본적 의문이 제기된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그제 청와대·여당의 법안 처리 압박에 대해 “경제 불안 심리를 조작한 ‘경풍’(經風) 공작을 전방위적으로 펼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국민이 병신·바보인가”라며 막말까지 동원했다. 하지만 그가 ‘국정 발목 잡는 야당’이란 프레임에 걸려들까봐 제 발 저려 하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못할 만큼 국민이 바보는 아닐 게다. 책임 정치가 실종된 마당에 야권의 정권 심판론인들 먹힐 리가 없다. 생각해 보자. 소수 야당의 결재 없이는 다수당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정부·여당이 설령 국정에 실패한다고 해도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까닭도 없지 않은가. ‘수권 야당’이 ‘소수의 거부권’에 취해 있는 한 국회선진화법이 궁극적으로는 독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시쳇말로 “국회선진화법 실험은 이미 실패했다고 전해라”라고 해야 할 듯싶다. 한마디로 국회선진화법은 이름과는 딴판으로 한국 정치를 후진시키고 있는 셈이다. 다수당의 날치기와 소수당의 실력 저지가 부딪치는 의정 단상에서 몸싸움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도입했지만 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하면서다. 폭력적 ‘동물국회’를 막으려다가 아예 국회를 뇌사 상태로 빠뜨린 꼴이다. 국회법을 국회선진화법으로 바꾼 취지 자체는 아름다웠다. 미국 의회는 다수당의 독주와 소수당의 물리력 행사를 막는 차원에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의 경우 필리버스터 허용을 넘어 세계 의회 정치사에 유례가 없는, 의안 처리 시 5분의3 찬성이라는 초다수결 원리를 도입했다. 원내 1, 2당 간 간발의 의석 차가 관행이 되다시피 한 우리나라에서 표결은 포기하고 무조건 절충하라는 뜻이었다. 결국 국회선진화법은 몸에 맞지 않는 옷임이 드러났다. 합리적으로 토론·절충하는 정치문화적 토양이 아닌데 ‘선진’이란 허울을 억지 이식하려 했다는 점에서다. 더욱이 입법권을 전적으로 의회가 갖는 미국과 달리 우리 헌법은 의원내각제적 성격도 있다. 선진화법이 정부의 법률 제안권을 무력화하는 것도 문제다. 문제는 바로잡으려 해도 방법이 마땅치 않다는 사실이다. 국회법을 고치려 해도 5분의3이 찬성해야 하는 기막힌 역설 때문이다. 여당과 당시 비상대책위원장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법 개정을 주도했다는 것도 아이러니다. 그렇다면 여당과 박 대통령이 입법 실수를 솔직히 인정하고 재개정을 위해 여야에 대승적 협조를 호소하는 게 유일한 출구일 것 같다.
  • 조직 쇄신의 역설… 옷 벗는 베테랑 검사

    조직 쇄신의 역설… 옷 벗는 베테랑 검사

    지난 1일 서울 서초동 청사에서 열린 이득홍(53) 서울고검장의 퇴임식. 묵묵히 퇴임식을 지켜보던 한 부장검사는 “국가가 키운 베테랑 검사 한 명이 또다시 이른 나이에 검사 옷을 벗게 됐는데 이건 엄청난 세금 낭비”라고 말했다. 그는 “30년 가까운 기간 검찰 내부의 지원과 투자를 통해 얻어진 이 고검장의 경륜과 노하우가 50대 중반도 안 돼 더이상 활용되지 않는 것은 말할 수 없는 비효율”이라고 덧붙였다. 이 고검장은 퇴임 정년(63세)까지 10년이나 남은 상황이었다. 검찰 간부의 지나친 연소화(年少化)에 대해 지속적으로 우려가 제기돼 온 가운데 지난 21일 인사에서 고검장, 검사장급 수뇌부의 연령대가 더욱 떨어져 40대로 낮아졌다. 이번 인사에 따른 검사장급 이상 법무부·검찰 간부의 평균연령은 49.0세다. 2년 전 김진태 전 검찰총장 첫 인사 때의 평균 51.1세에 비해 2세 이상 내려갔다. 40대 검사장의 비중은 31.9%(15명)로, 법무부의 경우 장차관을 제외한 검사장급 참모진 전원이 40대로 나타났다. 최연소 검사장은 1969년생인 차경환(22기) 신임 서울고검 차장이다. 서울대 법대 87학번으로 이상호(22기) 신임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과 함께 학번이 가장 낮다. 이런 연소화는 ‘물갈이’, ‘발탁’ 등 잦은 파격 인사에다 특유의 ‘기수 문화’가 더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검찰은 ‘조직 쇄신’을 내세워 해마다 10명 안팎의 검사장 승진자를 배출해 왔다. 당연히 고속 승진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이는 은퇴 시기가 빨라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동기가 총장이 되거나 후배가 먼저 승진하면 옷을 벗는 검찰 특유의 기수 문화가 전체 조직의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 행정공무원들보다 훨씬 크다. 한 부장검사는 “25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검사’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용퇴 형식으로 공직을 떠나는 경우가 너무 많아졌다”고 말했다. 법원과 비교해 보면 검찰의 조로(早老)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검찰 ‘최고참’인 김현웅(56) 법무부 장관이나 김수남(56) 검찰총장은 사법연수원 16기다. 하지만 법원의 경우 박병대(58) 법원행정처장이 사법연수원 12기다. 법원과 검찰의 맞상대급 보직을 비교하면 박성재(52) 신임 서울고검장은 17기, 이영렬(57) 서울중앙지검장은 18기인 데 비해 심상철(58) 서울고등법원장은 12기, 강형주(56) 서울중앙지법원장은 13기로 다섯 기수씩 차이 난다. 어렵게 쟁쟁한 동기와의 경쟁을 통해 검사장으로 승진해도 이후 근무 기간이 4년 정도로 짧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이번 인사 때 용퇴한 정인창(51·18기) 전 부산지검장과 강찬우(52·18기) 전 수원지검장은 2011년 8월 검사장으로 승진해 4년 4개월 만에 옷을 벗었다. 모두 50대 초반이다. 법무부의 ‘사퇴 권유’를 끝까지 뿌리친 일부 검사장은 한직으로 밀려났다. 올 9월 구본성(63·8기) 전 서울고검 검사가 정년퇴직을 했는데 이는 2006년 이후 9년 만의 일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평생법관제가 도입된 법원은 검찰과 대비된다. 올 2월 조병현(60·11기) 서울고법원장이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복귀해 재판 업무를 하고 있다. 최재형(59·13기) 서울가정법원장, 최완주(57·13기) 서울행정법원장, 황한식(57·13기) 서울동부지법원장, 성백현(56·13기) 서울북부지법원장 등 법원장 4명이 임기를 마치고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돌아갔다. 서울시내 한 검찰청의 검사는 “검사장, 고검장이면 검사로서 최고위직에 오른 것인데, 심지어 검찰총장을 지냈는데도 50대에 불과하다”며 “그분들이 변호사 개업을 해 만나게 되면 후배로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검사는 “젊다고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면서도 “아무래도 너무 젊을 때 공직을 떠나게 되니 자리를 지키기 위해 외풍에 쉽게 흔들리는 경향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밝혔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도 “검찰의 잦은 인사와 기수 문화가 상명하복식의 비뚤어진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 같다”면서 “하명 수사 등의 논란이 자주 나오는 것도 이런 인사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서울교육청 공공건축물 장애물없는 시설로

    서울교육청 공공건축물 장애물없는 시설로

    서울시교육청 공공건축물에 대하여‘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인증취득이 의무화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의회는 21일 개회된 정례회 본회의에서 지난 11월 17일 서울시의회 교육위원회 김생환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노원4)이 발의한 ‘서울특별시교육청 공공건축물의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 조례안’을 가결했다.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arrier Free)’이라 함은 어린이·노인·장애인·임산부뿐만 아니라 일시적 장애인 등이 공공건축물을 이용함에 있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계획·설계·시공되는 것을 의미하며,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인증’은 보건복지부(한국장애인개발원)와 국토해양부(한국LH공사)가 이와 관련하여 건축물의 계획·설계·시공·관리 여부를 심사하여 공동으로 인증하는 제도이다. 조례안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서울특별시교육청 공공건축물’과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에 대한 의미 규정(안 제2조) ▲동 조례안이 적용되는 공공건축물의 범위 규정(안 제3조) ▲서울시교육감과 사립학교를 설치·운영하는 학교법인의 인증취득 의무 명시(안 제5조) ▲서울시교육감의 인증수수료 예산지원(안 제6조)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조례안을 발의한 김생환 의원은‘사회통합적인 의미에서 국민 모두가 다함께 불편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건축물의 물리적 환경 구축과 시설 접근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동 조례안 제정의 의미를 설명했다. 끝으로 김 의원은“누구나 이용 가능한 환경, 누가 이용하여도 불편이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작은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고 역설하며, “동 조례안 시행으로 향후 지역사회 전반으로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조성을 위한 관심과 노력이 확산되어 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에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30번 퇴짜 맞고 임시 경비로… 그렇게 한달 또 버틴다

    [누가 김노인을 죽였나] 30번 퇴짜 맞고 임시 경비로… 그렇게 한달 또 버틴다

    가장 오랫동안 일하지만 가장 가난한 노인들. 한국 노년층의 서글픈 ‘역설의 자화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실질 은퇴 연령은 72.9세로 가장 늦지만 65세 이상 노인의 평균 소득은 전체 근로자 평균임금의 3분의1 수준(서울 노인 기준)에 불과하다. 양질의 일자리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에다 운 좋게 일을 구해도 1년 이상 버티기가 힘들다. 이재갑(70)씨는 이런 대한민국 빈곤 노인의 초상이라고 할 만하다. 하루아침에 해고당했지만 낙담할 시간조차 없었다. 서울신문 특별기획팀은 이씨와 한달간 함께하며 그의 구직 분투기를 관찰했다. “모레가 이자 내는 날인데, 허 참….” 경비원 모자를 눌러 쓴 노인은 허공에 혼잣말을 뱉었다. 아파트 경비실 벽에 걸린 달력을 올려다 본다. 11월 23일. 취업한 지 고작 20일 만이었다. 이씨는 이틀 전 경비원 채용을 맡고 있는 용역회사 사장에게서 해고 통보를 받았다. 왜 잘린 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사장한테 그랬어. 무슨 일 때문인지 몰라도 무조건 내가 잘못했다고. 근데 막무가내야. 잘리는 이유라도 말해 달라고 했지. 그랬더니 그냥 이곳과 인연이 아니라고 생각하래.”  힘없는 노인을 일터 밖으로 밀어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채용 뒤 2개월은 수습 기간이어서 일방적으로 해고해도 된다는 논리였다. 이씨와의 동행은 이렇게 시작됐다. [업체 바꾼다고, 나이 많다고… 7번 해고] 해고 통보 다음날, 이씨는 이력서를 인쇄했다. 근로 경험만큼 눈에 띄는 건 여러 줄을 차지하고 있는 해고·퇴직 경력이었다. ‘2013년 12월 관리업체 변경으로 강동 ○○아파트에서 퇴직/ 2014년 6월 연령 초과로 송파 XX아파트에서 해직/ 9월 관리업체 변경으로 경기 △△아파트 퇴직….’ 2013년 처음 경비 일을 시작한 뒤 2년 새 7차례나 옷을 벗었다. “왜 그렇게 많이 잘렸나요.”  젊은 기자의 조심성 없는 질문에 이씨가 답했다. “이유야 만들면 다양하지. 용역회사 바뀌면 잘리고, 쏟아지는 졸음 참으려고 신문 보다가 잘리고, 모친이 아프다고 보고까지 했는데도 출근 안 했다고 잘리고… .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같은 경비원들끼리 음해를 하는 경우도 많아.” 그는 해고 사유들을 받아들일 수 없어 4차례 고용노동부 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냈고 모두 승소했다. 그러나 합의금 조로 업주로부터 건당 50만~60만원씩 받았을 뿐 복직하진 못했다. “나나 되니까 싸워서 돈이라도 받았지. 그냥 쫓겨나는 노인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 [사흘간 소개소 20곳 전화…대답 없어] 일자리를 찾으려고 가장 먼저 펴 든 건 생활정보지다. ‘청소 아주머니 급구’ ‘파출부 환영’ ‘노래방 도우미 모십니다’ ‘25~40세 어선 선원 모집’…. 노인을 위한 일자리는 보이지 않는다. 생활정보지조차 70세 노인은 관심 밖이었다. 겨우 ‘경비원 모집’이라는 문구를 발견했지만 밑줄 친 글이 이씨를 낙심하게 만든다. ‘67세 이하, 급여는 상담 후 결정.’ 이튿날부터는 민간 직업소개소에 무작정 전화를 돌렸다. “네, 안녕하세요. ‘이제 옵니다’가 아니라 ‘이제 갑니다’ 해서 이재갑이에요.” 60세 때 구청에서 퇴직한 뒤 일자리를 구하며 수백 번은 했을 법한 능숙한 자기소개였다. “사장님과 통화하니 좋은 일이 생길는지 오던 비도 그치네요. 우리 ○○인력 통해 꼭 취직하고 싶어요. 부탁합니다.” 그렇게 사흘간 직업소개소 20여곳에 전화했고, 그중 네 번은 사무실에 직접 찾아갔지만 모두 허사였다. 그의 바람은 단순했다. 직종 불문하고 월급 140만원을 받는 일. 모아 둔 돈 없이 마이너스 통장 이자와 카드 대금으로 월 50만~60만원씩 내야 하는 형편에 아내와 사는 원룸 월세 50만원이라도 안 밀리려면 사실 이 돈으로도 모자랐다. 치매를 앓는 구순 노모의 요양원 비용도 이씨의 몫이었다. 아들이 있지만 이제 막 취업한 아이에게 손을 벌릴 수는 없었다. [“이자·생활비 낼 월140만원이면 되는데”] 이씨도 ‘중산층’일 때가 있었다. 풍족하지는 않아도 급여가 끊긴 적은 없었다. 허투루 쓰지 않고 모아 서울 송파의 40평(132.2㎡) 아파트도 샀다. 하지만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받게 해 주면 매월 150만원씩 주겠다”는 말에 속아 집을 잡혔다가 수익은커녕 그 아파트마저 날렸다. 60세에 정년퇴직한 뒤로는 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1960년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40대 때 정당 중앙연수원에서 ‘교수’라는 직함도 가졌다. 50대에는 서울의 모 구청 연구위원 등으로 근무한 이씨지만 노인 구직자에게 ‘스펙’은 별 무기가 못 됐다. 고분고분한 태도와 한살이라도 젊은 나이,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 “먹고살려니까 늘 투잡(2개의 직장)을 뛰었어. 몇 년 전에는 아파트 2곳에서 동시에 경비 일을 했어. 밤새 일하고 다음날엔 다른 아파트에 출근해 근무하고. 새벽에는 4~5시간 쪽잠 잘 수 있으니 괜찮아.” [“65세 넘으면 일자리 없고 급여도 깎여”] 해고 20일째. 노인은 기자의 권유로 서울시가 운영하는 노인일자리센터를 찾았다. 일자리 주선 때 첫 월급의 10%를 떼어 가는 민간 직업소개소와 달리 공공 일자리센터는 수수료가 없다. 20대 후반쯤 된 여성 상담사는 경비나 청소 일을 원한다는 말에 사업장 1~2곳을 추천했다. 하지만 매일 9시간씩 주 6일을 일하고 나오는 돈이 110만원이라는 말에 이번에는 이씨 쪽에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대충 살 만한데 소일거리 찾는 거라면 50만~60만원 벌어도 좋아. 근데 나는 지금 그 돈 벌어서는 방세도 못 내고 밥도 못 먹어. 그래도 올해는 최저임금이 올라서 140만원짜리 경비 일자리가 있잖아. 나 잠 안 자도 되니까 더 일하고 더 받는 자리 좀 구해 줘.” 상담사는 난감해했다. 그는 “업체들이 60세부터 65세 사이에서만 뽑으려 하고 65세 넘어가면 급여 조건이 확 나빠진다”고 전했다. 30일 동안 이씨는 모두 30여곳의 직업소개소를 돌았다. 하지만 칠순 노인에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아준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그나마 한 민간 직업소개소가 임시로 아파트 경비직을 주선해 줘 한달은 더 버티며 일자리를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절망적일 만했지만 이씨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해 준다는데 뭐. 아프지만 않으면 버틸 수 있어. 아프지만 않으면….” 특별기획팀 tamsa@seoul.co.kr ■ 특별기획팀 유영규 팀장 whoami@seoul.co.kr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막내린 美 제로금리 시대] 국내 ‘소비절벽’ 막으려면

    미국의 금리 인상으로 국내에서 ‘소비 절벽’이 현실화될 것이란 우려가 크다. 금리 인상으로 가계부채 원리금 상환 부담이 증가하면 가계가 지갑을 닫고 내수 부진으로 이어지는 ‘빚 갚기의 역설’이다. 특히 가계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이자 부담만 커진다면 지난 9월 이후 민간소비 위주의 경기 회복흐름이 지속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올 3월 말 138.1%다. 2010년 말(127.7%)에 비해 10.4% 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부채 증가율은 6.5%로 가계소득 증가율(3.7%)을 크게 웃돌았다. 가계소득보다 부채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가계 소비성향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지난 3분기 처분가능소득 중 소비에 쓴 금액은 71.5%로 역대 최저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도 2008년 금융위기 직후 미국의 소비절벽과 경기 침체가 재현될 것이란 예측이 나오고 있다. 리먼 사태 이후 미국 정부는 주택담보대출 부실을 털어버리기 위해 가계부채 축소 정책을 실시했다. 하지만 이 여파로 내수가 위축되면서 상당 기간 경기 침체를 겪었다.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 교수는 “정부가 부동산시장 활성화로 경기를 살리기 위해 지난해 8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을 완화했지만 이 때문에 가계빚이 급증했고 원리금 상환 부담 증가로 가계의 가처분소득은 도리어 감소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규제완화’와 같은 경기 부양책은 ‘대증 요법’에 불과하고 부작용이 더 크다고 지적한다. 그보다는 가계부채 관리와 내수 살리기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보다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홍범 경상대 경제학 교수는 “좋은 아이디어가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하고 대기업들이 내부 보유자금을 투자할 수 있도록 정책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영무 연구위원은 “가계대출 심사를 강화해 가계부채 전체를 옥죄는 것보다는 상환 능력이 있는 고소득·고신용자에겐 은행에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도록 해 이 자금이 소비로 연결되게 해야 한다”며 소득군별로 세분화된 가계부채 대책을 주문했다. “당장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에 한계가 있다면 미분양 아파트를 장기 임대해 주는 방식 등으로 주거비 부담을 낮춰 저소득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줘야 한다”(강경훈 동국대 경영학 교수)는 의견도 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김헌주 기자 dream@seoul.co.kr
  • “페이스북을 떠나자” 이번엔 누군가 보니 저커버그 친누나네

    “페이스북을 떠나자” 이번엔 누군가 보니 저커버그 친누나네

    페이스북을 떠나 진짜 세상을 만나다/랜디 저커버그 지음/구본권 옮김/지식의날개/350쪽/1만 5000원 페이스북에 있는 수백명 혹은 수천명의 친구는 ‘진짜 친구’들이 아니라고 한다. 그것도 세계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페이스북의 설립 초기부터 마케팅·홍보 담당자로 수년간 성장을 이끈 최고경영자(CEO) 마크 저커버그의 누나인 랜디 저커버그가 토로하는 말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24시간 연결돼 있는 시대에 삶과 기술의 균형은 가능할까. 저자는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페이스북을 닫으라고 말한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삶이 기술과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출발점이라고 역설한다. 영국의 진화 인류학자 로빈 던바는 아무리 사교적인 사람이라도 의미 있는 관계를 형성할 수 있는 한계는 150명에 불과하다고 했다. 150, 이른바 ‘던바의 수’다. 이쯤되면 페이스북의 수많은 관계는 사실 포장만 그럴듯한 허상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는 우리가 실제 사랑하는 사람들과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한다.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은 멋진 일이지만, 만약 당신 친구들이 모두 식탁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페이스북 메시지를 확인하고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페이스북 이용자는 현재 14억명. 하루 평균 사용자 10억명 중 9억여명이 스마트폰을 통해 로그인하고 있다. 저자는 온라인 생활을 절제하고, 기술로부터 해방된 순간순간을 가까운 사람들과 즐겨야 한다고 조언한다. ‘당신이 그랜드캐니언에 있다면, 그리고 당신 앞에 대자연의 거대하고 압도적인 장관이 놓여 있다면 수시로 #canyongram이라는 해시태그를 달아 사진과 글을 올리는 행동부터 당장 그만두라.’ 저자는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당신이 담아 두고 싶은 사진 한 장을 업로드한 후 일상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스마트 기기를 쓰지 않는 ‘디지털 안식일’로 시도해 보는 것도 삶과 기술이 균형을 이룰 수 있는 한 방법이다. 이 책은 거대한 페이스북 제국의 중심에서 첨단 디지털 세례를 받다가 현실 세계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저자의 고백서에 가깝다. 그는 디지털 기기가 자신을 조종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고 사람이 기기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특파원 칼럼] 오바마와 트럼프, 그들의 ‘버킷리스트’/김미경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오바마와 트럼프, 그들의 ‘버킷리스트’/김미경 워싱턴 특파원

    송년회가 잦은 요즘이다. 미국 워싱턴DC 안팎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든 빠지지 않는 화젯거리가 있다. 바로 미국 대선 공화당 유력 후보이자 ‘막말의 달인’ 도널드 트럼프에 대한 얘기다. 대다수는 트럼프의 언행에 부정적이다. 보수적 성향의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 전 국무부 고위 관료는 기자에게 “만에 하나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다면 미국을 큰 보자기로 덮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밖에 알리지 말아야 한다”며 “특히 트럼프의 외교정책은 빵점이다. 한국과 북한, 중국 등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며 작금의 대선판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정치인은 본인의 부고 기사 말고는 어떤 기사가 나와도 좋다고 했던가.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있는 트럼프는 지난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한 뒤 지지율이 고공행진하더니 최근 41%를 얻어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러다가는 각종 미인대회를 소유한 부동산재벌 출신이 백악관을 처음으로 차지하는 이변을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워싱턴포스트와 CNN 등 미 언론에 트럼프 얘기가 빠지지 않는다면 그에 못지않게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 있다. 바로 임기가 1년 남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레임덕’에 빠질 만도 한데 여전히 굵직굵직한 뉴스들을 터뜨리고 있다. 이민개혁 행정명령,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 이란 핵협상 등을 마무리한 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 타결, 파리 기후변화협정 타결 등 그의 레거시(유산)가 쌓이고 있다.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최근 벌어진 캘리포니아주 샌버너디노 총기 난사 사건 이후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겠다며 연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테러 정책 강화를 역설하지만 공습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을 움직이는 ‘현재 권력’과 ‘미래 권력’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나 8년 만에 권력 교체기가 다가오면서 남은 1년도 분주하게 보낼 오바마 대통령과, 앞으로 1년간 어디로 튈지 모르는 트럼프의 ‘버킷리스트’(죽기 전에 해 보고 싶은 일을 적은 목록)가 궁금해졌다. 새해를 앞두고 버킷리스트는 종종 ‘새해 결심’으로 바뀌기도 하니 그동안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난 이들의 ‘할 일’ 목록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먼저 오바마 대통령은, 하루가 멀다 하고 발생하는 총기 사건을 막기 위한 총기 규제 강화, 난민 수용 확대,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 최저임금 인상, 남녀 동일임금 추진, 90년 만에 미 대통령으로서 쿠바 방문 등이 리스트에 있을 것이다. 또 IS 격퇴, 아프가니스탄 철군 등이 있지만 모두가 넘어야 할 산이 많은 힘든 과제들이다. 다음은 트럼프. 공화당 후보로 낙점돼 민주당 유력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을 누르고 대통령이 된다면 “라티노와 무슬림의 불법 이민과 무단 입국을 막을 것이며 시리아 난민도 차단할 것”이다. 그는 또 “안보 무임승차 국가인 한국과 일본, 독일로부터 돈을 더 뜯어낼 것이며 중국을 봉쇄하고 뺏긴 일자리를 되찾을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도, 트럼프도 너무 바빠 보인다. 그런데 그들의 버킷리스트에 있었으면 하는 ‘북한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이들 두 사람 모두 북한 김정은 정권과 상대를 안 할 것처럼 나온 지 오래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바마 대통령과, 외교에 무지한 트럼프가 북한 문제를 버킷리스트에 넣어 관여정책을 추진해 주길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chaplin7@seoul.co.kr
  • 우리 여인네들의 ‘누비 바느질’, 한·사랑 담긴 묘한 서정

    우리 여인네들의 ‘누비 바느질’, 한·사랑 담긴 묘한 서정

    소설가 김숨(41)이 재봉틀(미싱)의 등장으로 맥이 끊겼던 ‘누비 바느질’을 문학으로 오롯이 되살렸다. 일곱 번째 장편소설 ‘바느질하는 여자’(문학과지성사)에서다. 작가는 “바늘, 바느질 그 자체가 모티브가 됐다. 바늘은 그 자체에 무궁무진한 서사와 상징을 갖고 있고 바느질하는 행위도 묘한 서정이 있다”고 말했다. 소설은 3㎝의 누비 바늘로 3㎜의 바늘땀을 손가락이 뒤틀리고 몸이 삭도록 끊임없이 놓는 ‘수덕’과 그녀의 딸들이 우물집에서 살아가는 이야기가 기본 뼈대를 이루고 있다. 그 어느 누구보다 바느질을 잘하지만 덧셈이나 뺄셈을 하지 못해 명인이 되지 못한 여인, 염장이인 아버지가 죽은 사람의 육신을 씻는 덕을 쌓은 덕분에 명장의 자리에 오른 인색하고 욕심 많은 여인 등 바느질하는 여러 여성들의 이야기도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다. “소설 속 바느질하는 여인들은 평생 바느질로 자식도 키우고 가정을 꾸렸어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 전쟁을 겪은 격동의 세대 여인들은 바느질을 집에서 배웠고 바느질로 옷을 해 입었어요. 그 세대 여인들에서 주인공 수덕으로 넘어오면서 재봉틀이 등장하고 방직공장이 생기면서 옷이 흔한 시대가 됐죠. 바느질로 옷을 일일이 지어 입는 사람이 없어졌어요. 서양 바느질법인 프랑스의 자수가 유행하게 됐고요. 폐기처분된 바느질, 우리의 전통 바느질이 갖고 있는 귀한 미덕 같은 걸 얘기하고 싶었어요. 우리의 전통 옷감들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었고요.” 바느질은 그 종류가 여러 가지다. 작가는 작품에서 우리의 전통 바느질인 ‘누비 바느질’에 중점을 뒀다. ‘누비 바느질’은 지독한 인내와 절대고독,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로 하는 바느질법이다. 우리나라 여인들의 삶과 미덕과도 닿아 있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고달픈 인생의 한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도 이런 ‘누비 바느질’에 대한 묘사가 곳곳에 나온다. ‘누비 바느질의 세계는 심오해. 단순한 바느질이 아니라 삼라만상을 짓는 거지. 하나의 우주를 짓는 것하고 똑같다는 뜻이지.’(407쪽) ‘누비는 똑같은 바늘땀들의 반복을 통해 아름다움에 도달하지. 자기 수양과 인내, 극기에 가까운 절제를 통해 최상의 아름다움에 도달하는 게 우리 전통 누비야.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우리나라에만 있는 고유한 침선법이지.’(409쪽) 작가는 여러 해 전 누비 바느질 기법을 접했다. 고된 바느질 기법이라 어느 누구도 선뜻 배우려 하지 않아 역설적으로 관심이 더 갔다. 바느질하는 여자들이 갖고 있을 법한 인생의 굴곡들이 펼쳐낼 서사에도 마음이 끌렸다. 한복 전문가 엄숙희, 난곡 이숙자, 운정 이미경 등 바느질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자문을 얻었다. 기본적인 누비 바느질법도 배웠다. 내부에서 서사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지난해 초봄 집필에 들어갔다. “바늘 잡는 법도 몰랐고, 명주 천에는 명주실을 써야 한다는,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상식 같은 것도 없었어요. 그런 제게 여러 선생님들께서 기본적인 누비 바느질법도 가르쳐 주시고 도움 되는 말씀도 많이 해 주셨어요. 그분들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는 산문으로도 쓰려고 해요. 이번 소설이 바느질을 업으로 삼고 살아오신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작가는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이상문학상 등을 받았다. 내년 2월부터 현대문학에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을 연재할 예정이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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