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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토벤이 쓰지 않은 악기·다른 템포… 말러가 빚은 또 다른 베토벤 교향곡

    베토벤이 쓰지 않은 악기·다른 템포… 말러가 빚은 또 다른 베토벤 교향곡

    세상에는 다양한 베토벤 교향곡 연주가 있다. 지난달 8일 첫 내한공연을 한 스위스 체임버 오케스트라 ‘제네바 카메라타’의 베토벤 8번 교향곡은 ‘요즘 베토벤’ 연주가 얼마나 빠르고 가벼운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했다. 30명에 불과한 무대 위 단원들은 밀어붙이듯 빠른 템포로 무곡과도 같이 ‘날렵한 베토벤’을 선사했다.5일 부천 필하모닉이 준비한 베토벤 교향곡은 이 같은 연주와는 ‘체급과 속도’가 모두 다를 듯하다. 교향곡의 가능성을 극한으로 확대한 말러 편곡의 베토벤 교향곡 5번(운명)과 3번(영웅)을 선보이기 때문이다. 말러가 편곡한 베토벤 교향곡이 국내에서 연주되는 것은 처음이다. 말러는 이들 교향곡을 편곡하면서 2관 편성(목관을 2개씩 편성해 전체적으로 악기 편성을 확대하는 것)을 4관 편성으로 확장하는 등 오케스트라 규모를 늘렸다. “베토벤이 관현악이 더욱 발달한 자신의 시대에 살았다면 이렇게 작곡했을 것”이라는 전제로 현대의 공연장과 오케스트라에 적합하게 재해석한 것이다. 80~90명의 대규모 단원을 무대에 올린 과거 카라얀이나 번스타인의 연주를 떠올리게 하는 것으로, 말러는 20세기 클래식 음악의 상업화와 맞물려 베토벤 교향곡이 웅장해질 것을 예감했었는지도 모른다. 여기에 말러는 피콜로 클라리넷(클라리넷보다 작은 크기로 고음역을 내는 악기)과 같은 베토벤이 쓰지 않았던 악기를 쓰고, 본래 템포를 바꾸는 등 원곡을 ‘말러화(化)’했다. 말러의 편곡에 대해 당시 평론가들은 “베토벤의 색깔을 잃었다”고 혹평을 쏟아냈다. 1911년 뉴욕 공연 후 한 평론가는 지역일간지에 “청중들은 음악의 고전에 가해진 잔학무도한 난도질을 성경을 변질시키는 행위만큼 심각하게 여기는데 말러는 이런 사실을 모른다”고 비판했다. 평론가들이 뭐라고 하든지 신경 쓰지 않았던 말러였지만, 베토벤과 관련된 문제에서만큼은 목소리를 냈다. 김문경 음악평론가가 쓴 이번 공연의 해설서를 보면 말러는 당시 청중에게 “이 작품을 전체적으로 혹은 세부적으로 해석함에 있어 악보에 충실했으며 결코 변덕스러운 의도를 강요하거나 전통에서 길을 잃어 헤매게 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두 거장의 자취를 한번에 느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이번 공연은 기대된다. 서양음악 역사에 정점을 찍은 9개의 교향곡을 남긴 베토벤 사후 교향곡 역사의 후계자가 단연 말러라는 것에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공연은 국내 최초로 말러 교향곡 전곡을 연주하며 국내에 ‘말러 신드롬’을 일으켰던 부천 필하모닉이 창단 30주년을 맞아 ‘말러가 본 베토벤’ 시리즈로 마련했다. 지휘는 부천 필하모닉 상임지휘자 박영민이 맡는다. 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1만~3만원. (02)580-1300.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이은경의 유레카] 과학기술 선진국은 아카이브로부터

    [이은경의 유레카] 과학기술 선진국은 아카이브로부터

    흰 장갑을 낀 직원이 리본으로 묶은 종이파일을 들고 와서 매트가 깔린 책상 위에 올려놓는다. 오로지 연필만 쓰고 얇은 종이를 다룰 때 특히 주의하라고 말한다. 복사는 안 되지만 사진 촬영은 가능하다고 알려준다. 파일 속에는 한 과학자의 편지, 메모, 일기, 출판되지 않은 논문 초고 등이 들어 있다. 내가 문서들을 보는 동안 그 직원은 오며 가며 슬쩍슬쩍 나를 살펴본다.과학사(史)를 연구할 때 방문했던 영국의 한 과학기관 아카이브에서 겪은 일이다. 처음에는 직원의 진지함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할 정도였다. ‘조선왕조실록’ 같은 공식 기록도 아니고 대단한 실험 결과를 담은 논문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그저 낡은 메모 조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보존 노력 덕분에 살아남은 옛 문서들은 세계 곳곳에서 연구자들을 불러모으는 역할을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그 나라의 과학과 해당 기관의 역사를 풍부하고 의미 있게 재해석하는 수많은 연구의 밑거름이 되기도 한다. 선진국 사회에서 위상이 높다고 자부하는, 또는 자부하고 싶은 과학 관련 기관이나 단체는 어김없이 자신들의 역사와 관련된 기록물 보관소인 ‘아카이브’를 운영한다. 한국에서는 근대화, 산업화 시기에 과학기술의 옛 기록을 모으고 보관하는 데 그다지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다. 일단 먹고사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근대화, 산업화는 옛것과 결별하고 새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그러므로 옛것에 대한 관심은 한국의 고유함을 보이는 전통 시대의 문화유산에만 집중됐다. 반면 서구에서 들어온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은 현재와 미래에 집중됐다. 그 결과 우리의 과학기술과 산업화 과정을 뒤돌아볼 필요와 여유가 생겼을 때 실제로는 이를 생생하게 보여 줄 자료가 마땅찮다는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한국을 경제발전과 산업화의 모델로 삼으려는 아시아의 개발도상국들이 있다. 공식 기록에 바탕을 두고 우리가 펼친 정책의 내용, 설립한 기관, 투자한 돈의 규모, 도입한 기술의 내용을 전해줄 수는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현장에서 과학자들과 엔지니어들이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동기를 가지고 헌신했으며 어려움을 어떻게 돌파했는지를 전해줄 방법이 없다. 이런 내용을 담은 연구를 하기에는 남겨진 자료가 미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과학기술과 산업현장에서 활동한 사람들의 기록과 관련 자료를 열심히 수집, 관리해야 한다. 2000년대 들어 많은 공공연구소와 학회가 ‘○○기관 ○○년사’, ‘○○의 개척자 ○○○’ 같은 기록물들을 만들었다. 이런 기록물을 보면 집필 과정에서 문서, 사진, 구술 자료가 활용되었음을 알 수 있지만 해당 기관에 관련 자료에 대해 물어보면 대개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때 수집된 자료들은 어디로 갔을까. 20여년 전 이미 한국의 과학기술 아카이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고 일부 성과도 있다. 국립과천과학관의 경우 설립 초기부터 자료를 모아 ‘과학기술 사료관’을 만들었다.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는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한국 과학기술자 관련 자료를 광범위하게 수집하고 있다. 나중에 이를 토대로 한 한국 과학기술인물 아카이브 구축이 목표다. 이를 제대로 이루기 위해서는 많은 자료를 소장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공공·민간 연구소, 과학기술단체, 대학, 그리고 개인 과학기술자들의 도움과 참여가 중요하다. 옛 자료들 외에 현재 생산되고 있는 기록물에 대한 관심과 관리도 필요하다. 이런 일들이 잘만 이뤄진다면 2030년쯤에는 국내외 학자들은 멋진 아카이브 연구 경험을 하고 한국의 과학기술사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때도 여전히 후배 연구자들은 2010년대의 과학기술 자료를 찾아 여기저기 뒤지고 있을 것이다. 어느 쪽이 우리가 원하는 과학기술 선진국, 문화 선진국의 모습인지는 분명하다.
  • [교육개혁리포트-대한민국 중3] 문항당 1000만원짜리 수능… EBS 유형만 외워 푸는 ‘도로 학력고사’

    [교육개혁리포트-대한민국 중3] 문항당 1000만원짜리 수능… EBS 유형만 외워 푸는 ‘도로 학력고사’

    1993년(1994학년도) 태어나 올해 25살이 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이 수술대에 올랐다. 당장 현안은 현재 중학교 3학년이 치를 2022학년도 대입 때 수능 전 과목을 절대평가(기준 점수를 넘으면 무조건 높은 등급을 주는 제도)로 치를지 또는 지금처럼 과목 대부분을 상대평가(1등급 4% 이하·2등급 4~11% 등 비율을 정해 놓은 제도)로 볼지 여부다.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가 다음달까지 공론화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수능의 문제 유형에 칼을 댈지 여부다. 현행 수능은 학부모·학생 다수로부터 “대한민국에서 가장 공정한 시험”이라는 찬사를 받지만, 동시에 “암기식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학생들이 교실에서 EBS 문제집만 달달 외우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최초 수능 설계자인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는 2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과 같은 수능이라면 차라리 폐지하는 편이 낫다”고까지 말했다. 수능을 과연 어떻게 손봐야 ‘공정성’과 ‘미래 지향 교육’이라는 두 가치를 모두 잡을 수 있을까. 전문가 의견 등을 듣고 해법을 찾아봤다. <자료 : 이혜정 소장·책 ‘대한민국 교육 40년사’> “오지선다형 객관식 문제로만 보면 수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수능 출제에 참여했던 교육 전문가들이 내놓는 평가는 대체로 비슷하다. 엄청난 비용·인력을 투입해 만드는 가장 질 높은 객관식 문제라는 얘기다. 수능 출제 기관인 교육과정평가원이 관련 정보 공개를 꺼리지만 출제위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수능 한 문항을 만드는 비용은 최소 1000만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출제위원들은 하루 35만여원씩 한 달간 보수로 약 1000만원을 받는다. 여기에 숙소·행정 비용 등을 더하면 비용이 훨씬 불어난다. 또 출제위원 3분의2 규모인원이 별도 검토위원으로 참여해 문제의 오류 가능성을 차단한다. 수능 출제에 참여했던 한 교육계 인사는 “검토위원이 수학 문제와는 관련 없어 보이는 철학 이론까지 들이밀며 오류를 지적하더라”고 말했다. ●완벽해 보이지만… 객관식 덫에 갇혀 ‘완벽한 시험’처럼 보이는 수능의 문제는 따로 있다. 과연 이 시험만으로 학생들의 사고력을 온전히 평가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많은 교사·교수 등 교육 전문가들은 “장점만큼 단점이 분명한 시험”이라고 지적한다. 객관식이 가진 한계다. 수능은 애초 지식 암기력을 평가하는 학력고사를 버리고 창의력·문제해결력 등을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수능 초기인 1990년대에는 “암기만으로는 수능에 대비할 수 없다”며 학생들 사이에서 독서 열풍이 불기도 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뀔 때마다 거듭 개편되면서 ‘도로 학력고사’가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대원 경기 위례한빛고 교사는 “처음 수능은 종합 사고력을 측정하려는 취지에 맞게 통합교과 문제가 많이 나왔는데 점점 변질되고 사교육이 수능에 적응하면서 문제 유형을 아예 통째로 외워버리면 되는 시험이 됐다”고 말했다. 재수생 등 문제 유형에 익숙한 학생들이 많아지니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2%’만 맞출 수 있도록 꼬아 내는 문항까지 출제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수능 문제 10개 중 7개를 EBS 교재에서 연계 출제하는 ‘70%’ 룰은 여전히 논란거리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사교육 절감과 지역 교육 격차 해소 등을 목적으로 EBS 연계율을 70%까지 끌어올렸는데 이후 학생들이 학교 수업에 집중하기보다 EBS 교재의 복습에만 시간과 노력을 쏟아붓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수험생 사이에서는 ‘듄아일체’라는 은어까지 쓰인다. 수능 위주인 정시 전형을 노리려면 EBS(‘듄’은 EBS를 한글 자판으로 친 글자)와 한몸이 돼야 한다는 뜻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비판에 대해 “객관식 수능이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라고 지적한다. 이혜정 교육과 혁신연구소장이 해외 선진국의 대입 문제와 우리 수능을 비교, 분석한 결과를 보면 차이가 선명하다. 역사 문제를 보면 2018학년도 수능 한국사(짝수형) 시험 8번①은 “임진년부터 7년에 걸친 일본과의 전쟁”(임진왜란)에 대한 사실관계를 찾는 문항이었다. 반면 영국의 대입 시험인 A레벨의 역사 시험②은 서술형이다. ‘1912년 루스벨트의 대선 패배 원인을 분석’하라거나 ‘히틀러의 대외 정책은 독일의 1차 대전 패배를 복수하고 싶은 원한에 기반했다’는 주장에 대해 얼마나 동의하는지 묻는 문제였다. 이 소장은 “수능이 역사적 사실 관계를 외웠는지 확인하는 방식이라면 A레벨 문제는 역사적 행위에 대한 원인 분석과 해석을 묻는다”면서 “A레벨 유형이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사고 능력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건 명확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우리 수능과 비슷한 객관식 시험인 ‘대입센터시험’을 2020년부터 폐지하고 대신 ‘대학입학공통시험’을 도입하기로 했다. 지식 활용 능력을 묻는 문항을 낼 예정인데 국어·수학 과목에서는 서술형 문제도 일부 출제된다. ●현행 내신은 문제 질 더 떨어져 수능의 단점이 드러났다고 해서 현행 학교 내신을 대체재로 활용하기도 어렵다. 내신 문제는 똑같은 객관식이면서 문제의 질은 더 떨어진다. 서울의 한 고교 교사는 “수능은 출제위원이 출제에만 집중할 수 있지만 내신은 교사가 행정 업무를 병행하는 탓에 암기력 테스트 이상의 문제를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런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교육부는 지난 4월 국가교육회의에 넘긴 2022 대입개편 이송안의 ‘중장기 대학입시제도 방향’에서 수능에 논술·서술형 문항을 도입하겠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그러나 수시·정시 비율 논쟁 등에 가려 논의의 장에서 사라졌다. 수능과 내신 시험에 논술·서술 문항을 도입하려면 선결 과제가 수두룩하다. 사고력을 묻는 시험을 내려면 먼저 생각할 수 있는 수업을 해야 한다. 초·중·고교 교육 현장에서 주입식 대신 토론식 수업 요소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서울·대구교육청 등이 이를 위해 토론·논술식 교육과정인 인터내셔널바칼로레아(IB)를 일부 학교에 시범 도입하려고 검토 중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교육부가 우리 현실에 맞는 토론·논술형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또 고교 학점제(고교생이 희망 진로에 맞춰 필요 과목을 배우고 학점을 채우면 졸업하는 제도)와 내신 성취평가제(절대평가제) 등 새 평가 방식에 어울리는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정부는 초교 6학년이 고1이 되는 2022년부터 고교 학점제를 전국 모든 고교에서 시행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교사의 업무량 증가와 인프라 부족 등에 대한 대비책이 부족해 보여 현장에서는 4년 뒤 전면 도입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논술·서술형 문제를 도입할 때 불가피한 채점 공정성 문제를 해소할 제도도 논의해야 한다. 영국의 A레벨의 경우 대부분의 문제가 논·서술형이지만 각 문제에 대한 채점 기준을 명확히 하고 그 기준을 시험 후 모두 공개함으로써 공정성 논란을 최소화한다. 이 소장은 “IB의 경우 공인된 채점관들이 교차 채점을 통해 평가의 신뢰도를 유지하고 있다”면서 “수능 역시 향후 논·서술형 문제를 도입할 경우 채점 기준과 평가 방안 등을 체계적이고 투명하게 구축해 신뢰도를 쌓을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용어 클릭] ■인터내셔널바칼로레아(IB) 스위스에 본부를 두고 있는 비영리 교육재단 ‘국제바칼로레아 기구’(IBO)가 주관하는 교육과정·시험으로 객관식이 아닌 논·서술형 문제가 주를 이룬다. 현재 146개국 3700여개 학교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독일·스위스·캐나다 및 미국 일부 주(州)에서 대입 시험으로 활용하고 있다.
  • [세계문화유산 한국 산사] 수행·생활·신앙의 천년 고찰… 인정받은 ‘종합 문화 산실’

    [세계문화유산 한국 산사] 수행·생활·신앙의 천년 고찰… 인정받은 ‘종합 문화 산실’

    “韓 불교 전통 계승, 세계가 공감…자연과 동화·합일되는 구조물” 관광객 수요 증가 대응 방안 수립 7곳 통합관리단 등 기구 마련을이번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이하 ‘한국의 산사’)은 1000년 넘게 한국 불교의 전통을 이어 온 종합 승원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종교적 전통을 계승한 유형문화재로서의 가치뿐만 아니라 수행 공간으로서의 무형적 가치를 함께 지닌 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데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려면 OUV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의 머리글자를 딴 용어로 문화유산 6개, 자연유산 4개로 나뉜다. 이 가운데 하나만 충족해도 세계유산이 될 수 있다. 한국의 산사들은 이 가운데 세 번째 기준인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을 충족한다고 유네스코는 판단했다. 정병삼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한국의 산사는 일반인들에게는 신앙의 전당이자 승려에겐 수행의 장소이며 특히 수행, 생활, 신앙 기능이 모두 이루어진 종합 승원으로서 가치가 크다”면서 “한국 불교의 전통을 1000년 넘게 변함없이 잘 가꾸어 온 점을 세계가 인정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한국의 산사는 산을 함부로 변형시켜서 터전을 만들지 않고 지형을 따라 자연과 동화되는 구조물로, 자연과 합일되는 장소로서의 의미도 있다”면서 “건축, 공예, 조각 등 국가지정문화재만 수백점 넘게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종합 문화의 산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의 산사는 2013년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등재된 뒤 5년 만에 세계유산 등재라는 목표를 이뤘지만 앞으로 신경 써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산사를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하면서 네 가지 사항을 권고했다.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산사 내 건물 등에 대한 관리 방안과 산사의 종합 정비계획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또 등재 이후 증가하는 관광객에 대한 대응 방안을 수립하고 산사 안에 새로 건물을 지을 때 세계유산센터와 사전에 협의할 것을 주문했다. 문화재청은 “세계유산위원회의 요구는 비지정 문화재까지 포함해 산사 내 모든 구성요소들에 대한 보다 강력한 보존과 보호 관리를 주문한 것으로 해석된다”며 “세계유산위원회의 권고 사항을 충실히 수행해 세계문화유산적 가치가 잘 유지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앞으로 늘어날 관광객 수요에 대비해 종합적인 관리 계획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정 교수는 “문화재청, 지자체, 대한불교조계종 등이 협력해서 현재 사찰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 있도록 보존하는 큰 원칙을 세우되 각 사찰이 지닌 개별적인 특성도 살릴 수 있도록 종합적인 관리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사찰 7곳을 묶어서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세계유산관리단 등의 기구를 마련해 모니터링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위원인 명법 스님은 “건축물의 원형을 보존하는 것 역시 중요하지만 사찰은 지금도 아침저녁으로 예불을 올리고 수행을 하는 등 다양한 불교적 활동이 일어나는 공동체 공간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증가하는 관광객 수요와 사찰의 보존을 조화롭게 이룰 수 있는 실질적인 관리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산사가 세계유산에 등재되면서 한국은 2015년 ‘백제역사유적지구’ 등재 이후 3년 만에 13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1995년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등이 한번에 등재된 이래 창덕궁, 수원 화성(이상 1997년),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 마을:하회와 양동(2010년), 남한산성(2014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등이 등재 목록에 올랐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그림·영상… 시각예술로 풀어낸 페미니즘

    그림·영상… 시각예술로 풀어낸 페미니즘

    이미지 페미니즘/김영옥 지음/미디어일다/416쪽/2만원붉은 팥알 수천알이 알 수 없는 어떤 구멍 밖으로 쏟아져 나오는 그림이 있다. 제목은 ‘봇물’(outpouring), 민중작가 정정엽의 작품이다. ‘구멍 자체가 격한 통증을 견디며 터져 나오고 있는 듯한, 원초적 태곳적 남근적 어머니의 위력으로 관람객을 감응시킨다’고 저자는 표현한다. 이어 ‘붉은 팥알 하나하나는 이름 없이 광채 없이 범속한 삶을 사는, 그러나 안으로부터 터져 나오는 생기를 숨기지 못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해석을 꺼낸다. 문화이론가 쥘리아 크리스테바 식의 표현을 빌려 일종의 ‘비체’의 느낌이라는 분석도 덧붙인다. 책에는 페미니즘 문화연구자인 저자가 10여년간 시각예술 작업을 하는 작가들과 교류해 온 여정이 담겼다. 우리를 둘러싼 이미지들, 현대미술의 미학체계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삶의 흔적을 탐색하고 있다. 장소와 성, 타자와 성, 포스트 콜로니얼(식민지 이후)의 시공간, 디지털 구술문화로서의 스토리텔링, 그리고 여성미학의 가능성에 특히 집중하고 있다.가령 책의 4장 중 ‘고승욱의 동두천 프로젝트’를 다루는 부분에서는 해방 이후 한국이 미국과 맺어온 동맹 관계의 구조화가 구체적으로 드러난 공간에서 그동안 왜곡된 방식으로 보였던 기지촌 여성들이 가시성과 정당성을 얻은 과정에 주목한다. 고승욱의 비디오 작업에 역사학자 도미야마 이치로의 질문을 접목해 보다 깊이 있는 분석을 제시한다. 문화연구 방법론, 특히 젠더 관점과 페미니즘 인식론을 통해 시각예술과 정치·경제 이데올로기의 관계를 추적하는 서술방식이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20여 작가의 작품들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을 차근차근 좇아가다 보면 고립된 문법체계 안에 머물러 있는 한국의 예술 논의에 좀더 생산적인 접근이 가능해진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Q&A]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오해와 진실

    [Q&A]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 오해와 진실

    대체복무 요양시설·재난 복구 유력국방부, 복무 기간 30~42개월 검토“올해 안에 합리적인 안 만들겠다”병역기피 판단할 기구 설치…악용 방지 헌법재판소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처벌이 아닌 대체복무의 길을 열어 준 것과 관련해 국방부는 29일 “올해 안에 합리적인 대체복무제 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의 개념이 모호할 뿐만 아니라 대체 복무가 어떠한 방식으로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이 나오지 않아 각종 오해와 혼란이 확산하고 있다. 대체복무제가 어떤 형태로 모습을 드러낼지 궁금증들을 Q&A로 미리 짚어 본다. Q) 대체복무 기간은 얼마나 될까.A.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역과 보충역의 복무기간을 고려하면 적어도 30개월(2년 6개월)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현역병은 육군 21개월, 해군 23개월, 공군 24개월이며, 보충역인 사회복무요원은 24개월, 산업기능요원은 34개월(현역)·26개월(보충역) 등이다. 공중보건의와 공익법무관의 복무 기간은 36개월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군 복무자와의 형평성과 복무 난이도 등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복무 강도가 높을수록 기간이 짧아지고 약할수록 길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현행 육군 복무 기간인 21개월의 ‘1.5~2배’(31.5~42개월)를 검토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체복무제 도입에 반대하는 사람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는 필수 조건이다. Q)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가리는 기준은 어떻게 될까.A. 병역을 거부할 만하다고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과거 활동 기록이 핵심이다. 대체복무가 병역 회피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에 대해 국방부 고위 관계자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판정할 수 있는 절차나 기구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종교적인 이유로 군 복무를 거부하는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입증할 수 있는 종교 활동 기록과 가족·종교인 등 주변인의 진술을 확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Q) 비종교인도 ‘개인적 신념’으로 대체복무가 가능할까.A. 병역 기피 목적이 아님을 입증할 수 있으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헌재의 판단은 ‘선택의 자유’를 존중한다는 취지로, 종교적 신념의 유무를 판별해 복무 방향을 선별하겠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군은 폭력을 내면화하는 곳”이라며 병역을 거부해 재판을 받고 있는 홍정훈 참여연대 활동가처럼 자신이 ‘비폭력주의자’임을 증명할 수 있다면 대체복무를 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Q) 병역 기피자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지 않을까.A. 가능성은 있다. 과거 활동 기록만으로는 ‘선의’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양심의 자유에 따른 선택이 아니라면 상식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의 대체복무제를 만들겠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복무 기간을 늘리고 강도를 높여 기존 병역 의무자들이 ‘박탈감·상실감을 갖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Q) 대체복무는 어디서 하게 될까.A. 노인요양시설 등 사회복지 분야가 유력하다. 과거 국방부는 대체복무자의 근무지로 사회복지시설, 노인 요양시설, 정신병원, 재활병원 등을 검토한 적이 있다. 국회에 계류 중인 3건의 대체복무 관련 법안도 사회복지 분야를 복무지로 지정하고 있다. 이미 대체복무를 도입한 대만에서도 요양시설 중증장애인 간호 업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 밖에 인명을 구하는 119 구조·소방 업무에 대체복무자가 투입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Q) ‘양심’의 의미는 무엇인가. 군 복무자는 비양심적인가.A. 헌법재판소는 병역법 5조 1항에 대해 “과잉금지원칙을 위배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다”면서 일부 위헌 의견을 냈다. 이에 시민들은 헌법에서 말하는 ‘양심’의 개념이 혼란스럽다고 말한다. 법률상 양심의 자유란 사회에 통용되는 ‘옳고 그름’에 관한 의미와 달리 ‘신념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않을 권리’를 뜻한다. 교도소의 사상범이 ‘양심수’라고 불리는 것과 같은 의미다. 이런 ‘양심’의 해석과 관련해 오해가 잇따르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다른 용어로 바꾸자는 움직임도 있었다. 시민단체들은 ‘신념에 따른 병역거부자’ 등을 사용하려 했으나 사회적 동의를 얻는 데는 실패했다. 이용석 전쟁없는세상 활동가는 “이미 해당 사안이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는 용어로 굳어졌을 뿐만 아니라 헌법상 해당 권리를 ‘양심의 자유’라고 표기했기 때문에 다른 용어는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Q) 양심적 병역거부는 ‘여호와의 증인’ 한 종교만의 문제인가.A. 역사상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알려진 인물은 서기 295년 로마시대 누디미아(현 알제리 지역)에 당도한 로마군 징집에 거부한 개신교도 막시밀리아누스다. 초기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은 개신교나 퀘이커교를 중심으로 이뤄졌고, 이후 1차 세계대전 시기 ‘평화주의자’나 ‘반전주의자’를 중심으로 확산했다. 반면 한국에선 지난 60년간 양심적 병역거부로 교도소에 다녀온 것으로 추산되는 1만 9000명 가운데 약 70여명만이 여호와의 증인이 아니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한국전쟁을 겪었던 국내 정서상 ‘평화주의’가 서양보다 덜 확산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평화’라는 가치가 확산함에 따라 점차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특정 종교를 초월해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1호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알려진 오태양씨는 불교도로 “평화를 지향하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총을 들 수 없다”고 밝혔다. Q) 대체복무제가 도입되면 여성의 군 복무 문제도 논란이 되지 않을까.A. 현재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논의는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해야만 했던 ‘남성징병제’와 관련돼 있다. 전문가들은 여성의 군 복무 이슈를 이번 사안의 연장선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징병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상화 양성평등진흥원 정책실장은 “이번 사안은 군 복무에 관해 기존 법에 반했던 이들을 위한 대안을 마련하는 논의”라면서 “여성의 군 복무는 ‘여성은 어떤 형태로 사회에 의무를 다하는 것이 맞는가’를 논하는 또 다른 사회적 담론이기 때문에 별개로 논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재성 변호사는 “대체복무제가 마련되면 여성의 군 복무 문제로까지 논의가 확장될 수는 있겠지만, 시대적으로 군대의 효용이 없는 상황에서 추가 징집의 필요성은 없다고 본다”면서 “장기적으로 양심적 병역 거부나 여성의 군 복무 문제를 넘어 군 복무 자체의 의미나 역할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Q) 군 복무 강도에 상응하는 대체복무는 어느 정도 수준일까.A. 대만 등 대부분의 대체복무제 시행 국가에서는 군 복무와 대체복무의 등가성을 ‘복무 기간’으로 조정하고 있다. 현재 육·해·공군의 복무 기간이 각 군의 근무 여건 등 특성에 따라 다르다는 점과 같은 맥락이다. 전문가들은 합리적이고 타당한 대체복무 기간을 현 복무 기간의 1.5~2배 정도로 보고 있다. 이하영 기자 hiyoung@seoul.co.kr
  • 풍운아 JP의 말말말… ‘춘래불사춘부터 몽니까지’

    풍운아 JP의 말말말… ‘춘래불사춘부터 몽니까지’

    23일 별세한 JP는 화려한 정치이력 만큼이나 수많은 명언을 남겼다. 답답한 심경과 정치 현실을 은유적이고 시적인 용어로 표현하면서 사람들을 감탄시켰다. 그의 말 중에 원색적이고 직설적인 공격은 드물었다. 혹자는 그의 말에 산이 있고 바람이 있고 물이 있다고도 했다.1980년의 ‘서울의 봄’을 두고 JP는 ‘춘래불사춘’이라고 했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상당수 국민들은 어둡고 긴 유신의 터널이 끝났다고 믿었다. JP는 박 전 대통령을 이을 2인자로 주목받았고 이윽고 3김씨가 정치의 전면에 다시 나서면서 민주주의 시대가 온 듯 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신군부는 3김씨의 정치 활동을 금지시켰다. JP는 부정축재 혐의로 연행됐다. DJ도 소요 조종 혐의로 잡혀 갔다. YS는 공직을 박탈당하고 가택연금됐다. 당시 연행에 앞서 이미 시대현실을 직시하고 표현한 JP의 ‘춘래불사춘’은 그의 수많의 명언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1990년 3당 합당 뒤 당시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이른바 ‘마산파동’을 일으키자 JP는 이를 “틀물레짓”이라고 빗대어 비난했다. 행동이 어린애같이 서투르고 유치하다는 충청도 사투리다. 그러나 YS는 그냥 넘어갔다. 비난의 말임에도 불구하고 워낙 생소하고 왠지 구수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1995년 설움을 딛고 민자당에서 탈당해 거대 야당인 자민련으로 재기한 뒤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내놓은 “사랑에는 후회가 없습니다.” 발언도 대히트였다. 대권을 거머쥔 뒤 자신을 팽했던 김영삼 당시 대통령에 대한 절절한 질책과 충고 뒤에 나온 연설로 상대인 민자당 의원들의 박수 갈채를 받기도 했다. JP는 중학 3,4학년 때 독서의 절정기를 맞았다고 한다. 1야1권 독파주의라는 목표로 매일밤 하루 한 권씩 책을 읽었다. 자신의 독서 버릇을 가리켜 난독(亂讀)의 시대였다고 회상했다. 닥치는대로 읽은 것이다. 주로 읽은 책은 역사와 전기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후에도 수시로 사전을 뒤적이면서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그 뜻을 검토하는 세심한 준비 과정을 거친 것으로 유명하다. JP의 말 중 압권으로는 ‘몽니’가 꼽힌다. 1998년 12월 15일 당시 박준규 국회의장이 ‘내각제 개헌연기론’을 제기하고 국민회의 측이 ‘내각제 개헌 유보’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참을 때 까지 참는 게 지성이지만 그래도 안 되면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현장 기자들은 ‘음흉하고 심술궂게 욕심을 부리는 성질’이라는 몽니의 뜻을 몰라 해석을 부탁하는 해프닝이 일기도 했다. 이후 JP에게 ‘몽니 정치’는 수식어처럼 따라다녔다. 다음은 생전에 고인이 남긴 주요 어록. ▲ 제2의 이완용이 되더라도 한일 국교를 정상화시키겠다(1963년. 일본과 비밀협상이 국민적 반발에 직면하자) ▲ 자의 반 타의 반(1963년 2월. 증권파동 등 4대 의혹 사건과 관련한 외유에 나서면서) ▲ 파국 직전의 조국을 구하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 위해 5·16 혁명과 1963년 공화당 창당이라는 역사적 전기가 마련됐다(1987년. 저서 ‘새 역사의 고동’) ▲ 5·16이 형님이고 5·17이 아우라고 한다면 나는 고약한 아우를 둔 셈이다(1987년 11월 3일. 관훈토론회) ▲ 나는 대통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1990년 10월. 노태우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며) ▲ 있는 복이나 빼앗아가지 마시라(1995년 1월 1일. 민자당 대표시절 민주계의 대표퇴진론을 거론하는 세배객이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 덕담하자) ▲ 경상도 사람들이 충청도를 핫바지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아무말 없는 사람, 소견이나 오기조차도 없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다(1995년 6년 13일. 지방선거 천안역 지원유세) ▲ 역사는 끄집어 낼 수도, 자빠트릴 수도, 다시 세울 수도 없는 것이다. 역사는 그냥 거기서 배우는 것이다(1996년. 김영삼 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에 대해) ▲ 줄탁동기(1997년 자신의 대선 후원조직인 민족중흥회 회보에 사용한 신년휘호. 중국 송나라 선종의 대표적 전적인 벽암록 글귀. 병아리가 건강하게 부화하고자 알 속에서 두드려 나갈 때가 됐음을 알리고 어미닭도 이때를 놓치지 않고 밖에서 알을 쪼아 껍데기를 깨줘야 하는 것처럼 모든 일은 시기가 적절히 맞아야 한다는 뜻. 당시 대선 정국에서 적절한 시기의 결단이 필요함을 간접적으로 나타냈다는 해석) ▲ 내가 제일 보기 싫은 것은 타다 남은 장작이다. 나는 완전히 연소해 재가 되고 싶다(1997년 5월 29일. 자민련 중앙위원회 운영위) ▲ 이인제 후보가 우리를 늙었다고 하는데 나와 함께 씨름 한 번 했으면 좋겠다. 내가 결코 이 후보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젊다(1997년 12월 3일. 충북 괴산 정당연설회에서) ▲ 서리는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슬금슬금 녹아 없어지는 것이다(1998년 6월 27일. 총리 서리 당시 ‘서리’ 꼬리가 언제 덜어질 것 같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 시인 프로스트가 ‘잠들기 전 가야 할 몇 마일이 있다’고 한 것처럼 저도 앞으로 가야 할 몇 마일을 위해 발걸음을 재촉하겠다(1998년 10월 16일. 동의대 명예박사학위 수여식 특강) ▲ 미리 왕성한 상상력과 편협한 시각을 가지고 스스로의 행보를 좁히거나 의지를 약화시키는 일을 자초해서는 안 된다. 때를 맞춰야 하고 그러고도 안 될 때 몽니를 부리는 것이다(1998년 12월 15일. 자민련 중앙위원회 연수에서 김대중 대통령의 내각제 약속 불이행을 우려하면서 발언) ▲ 백날을 물어봐, 내가 대답하나(2000년 5월 2일. 일주일만에 당사에 출근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의 회동 가능성을 묻자) ▲ 나이 70이 넘은 사람이 저물어 가는 사람이지 떠오르는 사람이냐. 다만 마무리할 때 서쪽 하늘이 황혼으로 벌겋게 물들어갔으면 하는 과욕이 남았을 뿐이다(2001년 1월 9일. 민주당 이인제 최고위원이 4·13 총선 때 자신을 ‘서산에 지는 해’로 표현한 것을 두고)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새 역사교과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빠진다

    새 역사교과서 ‘한반도 유일 합법정부’ 빠진다

    자유민주주의→민주주의 변경 대한민국 수립→정부 수립으로 5월 집필기준 시안 그대로 유지 역사교과서 용어 논란 재연될 듯 각계 의견 수렴 뒤 새달 말 확정2020학년도부터 중·고등학생들이 쓰게 될 역사교과서에서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용어가 빠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는 ‘민주주의’로,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뀐다. 역사교과서 속 용어 관련 논란이 재연될 조짐이다. 교육부는 21일 이 같은 내용의 중등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을 행정예고한다고 밝혔다. 행정예고는 교육과정에 대해서만 실시하고 집필기준은 들어가지 않는다. 학습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교육과정은 교과서 집필의 ‘가이드라인’ 개념인 집필기준의 상위개념이다. 이번 행정예고에는 그간 논란이 된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와 관련한 언급은 빠졌다. 이에 따라 지난달 공개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의 집필기준 시안이 그대로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평가원이 지난 5월 공개한 새 교과서 개정안 집필기준 시안에는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용어가 빠져 논란이 불거졌다. 강규형 명지대 교수는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는 표현을 뺀 것은 현 정부가 1948년 유엔 결의 당시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면서 “이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교육부는 1991년 유엔에 남북이 동시 가입한 만큼 북한도 국제사회에서 국가로 인정받았고, 너무 구체적이었던 기존 교육과정을 포괄적으로 서술해 자율성과 다양성을 부여하기 위한 이번 개정안 취지에 따라 빠졌다고 해명했다. 이번 개정안에는 교육과정 분량이 기존 대비 중학교는 30%, 고등학교는 55%가량 줄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가 집필기준에 있었을 때도 당시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해당 용어가 안 들어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개정안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용어가 ‘민주주의’로 통일된다. 교육부는 “자유민주주의 용어는 민주주의가 내포하는 자유·평등·인권·복지 등 다양한 구성요소의 일부만 의미하는 것이어서 포괄적 개념의 민주주의로 용어를 통일했다”고 설명했다. 국정교과서 추진 때 논란이 됐던 1948년의 ‘대한민국 수립’은 다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용어를 바꿨다. 임시정부의 정통성과 독립운동의 역사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다. 교육부는 22일부터 7월 12일까지 행정예고 기간 동안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교육과정심의회운영위원회를 열고 7월 말 최종안을 확정·고시한다.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北 통신 “김정은·시진핑 현 정세에 대한 신중한 의견 교환”

    北 통신 “김정은·시진핑 현 정세에 대한 신중한 의견 교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방중 기간인 20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단독회동을 하고 ‘새로운 정세’에서 양국의 ‘전략·전술적 협동’을 강화하는 문제를 논의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중앙통신은 21일 “김정은 동지께서 습근평(시진핑) 동지와 20일 낚시터 국빈관에서 또다시 상봉하시었다”며 북·중 정상이 부부동반 오찬을 갖기에 앞서 담화를 나눴다고 밝혔다. 통신은 “조중(북중) 최고 영도자 동지들의 단독 담화에서는 현 정세와 절박한 국제문제들에 대한 신중한 의견교환이 있었으며 새로운 정세 하에서 두 당, 두 나라 사이의 전략 전술적 협동을 더욱 강화해 나가기 위한 문제들이 토의되었다”고 전했다. ‘새로운 정세’는 지난 12일 북미정상회담 합의 이후 양측이 비핵화와 대북 체제안전 보장을 교환하기 위한 협상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는 상황을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북중이 전략적 이해를 같이 하며 대응 전술을 긴밀하게 조율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김 위원장은 19일 시 주석이 마련한 환영연회 연설에서도 “조선반도(한반도)와 지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는 역사적인 여정에서 중국 동지들과 한 참모부에서 긴밀히 협력하고 협동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중앙통신은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에게 ‘특별한 환대’를 베풀었다며 양 정상 부부의 20일 조어대 오찬이 ‘단란한 가정적 분위기’에서 이뤄졌다고도 밝혔다. 통신은 “여러 차례의 의의깊은 상봉과 더불어 더욱 가까워지고 친숙해진 조중 두 나라 최고 영도자 동지들과 여사들께서는 시종 화기애애한 담화를 이어가시며 진정을 나누시었다”고 묘사했다. 김 위원장은 “(시 주석의) 세심한 관심과 배려 속에 훌륭하고 만족한 방문을 진행했다”며 중국의 환대에 사의를 표했으며, 북중 정상 부부는 ‘새로운 상봉’을 약속하며 작별인사를 나눴다고 통신은 전했다. 한편 중앙통신은 김 위원장이 리설주 여사와 수행원들을 대동하고 20일 오전 중국농업과학원 국가농업과학기술혁신원, 같은 날 오후 베이징시 궤도교통지휘센터 등 경제현장을 돌아본 내용도 상세히 전했다. 통신은 김 위원장이 국가농업과학기술혁신원에서 현대농업기술종합전시센터, 잎남새(채소)재배기술 연구센터, 열매남새재배기술 연구센터, 도시농업연구센터, 주민지구농업응용전시센터를 비롯한 여러 곳을 돌아보고 농업과학기술 연구에서 이룩한 성과와 경험을 진지하게 요해(파악)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이곳에서 “당신들이 이룩한 훌륭한 연구성과에 깊이 탄복합니다”라는 친필 방명록을 남겼다. 그는 베이징시 궤도교통지휘센터에서는 베이징시 지하철 운영 실태와 발전 전망 등을 알아보고 “자동화 수준이 높고 통합조종체계가 훌륭히 구축된 데 대하여 경탄하게 된다”는 소감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같은 날 오후 중국 주재 북한 대사관도 방문, 대사관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사업 실태와 생활형편을 알아봤다고 통신은 전했다. 그는 대사관 전체 관계자와 가족들, 중국 내 북한 유학생 등과 기념사진을 찍고 격려했다. 앞서 김 위원장은 이번 방중 첫날인 19일에도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하고 비핵화 문제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20일 전용기로 귀국, 북한 시간으로 오후 7시 30분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착했으며 비행장에서 그를 맞이하는 의식이 진행됐다고 중앙통신은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다시 태어난 ‘삼일로 창고극장’ 연극계 ‘마이너리그’ 계속된다

    다시 태어난 ‘삼일로 창고극장’ 연극계 ‘마이너리그’ 계속된다

    2015년 10월 문을 닫았던 국내 최초의 민간 소극장인 서울 명동의 ‘삼일로 창고극장’이 22일 재개관한다. 서울문화재단과 삼일로 창고극장 운영위원회는 2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경과보고와 함께 “지난 40여년간 279개 작품이 공연돼 많은 공연예술인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됐던 삼일로 창고극장을 재개관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소극장인 삼일로 창고극장은 세실극장과 함께 1970~1980년대 소극장 운동을 이끈 양대 메카로 알려졌지만 3년 전 운영난으로 폐관했다. 극장은 1958년 지어진 일반 가정집을 개조해 1975년 개관한 것으로, 6차례 극장 운영자가 바뀌며 2015년까지 운영됐다. 삼일로 창고극장은 개관 당시 형태를 최대한 보존해 60~80석 규모의 무대와 1층 갤러리, 2층 스튜디오를 함께 조성해 재개관한다. 2013년 극장을 서울문화유산으로 선정한 서울시는 시 출연기관인 서울문화재단에 운영 위탁하는 방식으로 재개관을 추진했다. 시는 건물주에게 극장을 10년간 장기 임차했고, 임기 2년으로 위촉된 운영위원회가 민관 공동 형식으로 극장을 운영하게 된다.삼일로 창고극장은 재개관을 기념하는 공연과 전시를 마련해 관객을 맞는다. 오는 29일부터 다음달 22일까지 극장의 대표 레퍼토리인 ‘빨간 피터의 고백’을 추모하는 의미의 기념극 ‘빨간 피터들’이 공연된다. 고 추송웅 배우의 1인극 ‘빨간 피터의 고백’은 초연 당시 4개월 만에 8만여 관객이 관람한 화제작이었다. 이번 기념공연에서는 4명의 연출가와 4명의 배우가 각각 다른 해석으로 작품을 올린다. 또 ‘K의 낭독회’, ‘관통시팔’ 등도 재개관 기념공연으로 무대에 오른다. 극장의 원래 이름이자 모태가 된 극단 ‘에저또’를 기념하는 기념전시회 ‘이 연극의 제목은 없읍니다’도 선보인다. 전시회 이름은 1969년 ‘에저또’ 극단이 무대에 올린 연극의 제목이다. 이 전시회에는 연출가 방태수가 소장한 자료와 1970년대 검열로 미처 무대에 올리지 못한 연극대본 등도 볼 수 있다. 또 극장을 시민에게 개방하고 예술가들에게 창작의 장소를 제공하는 ▲창고포럼 ▲창고사랑방 ▲창고공부방 등도 각각 열린다. 개관식에서는 1975년부터 2015년까지 삼일로 창고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이 모여 자신들의 추억을 얘기하는 ‘릴레이 토크’가 진행된다. 운영위원인 남산예술센터 우연 극장장은 “개관 당시 연극 ‘빨간 피터의 고백’을 보고 사귀어 결혼한 50대 부부가 참석해 당시 추억을 얘기하는 등 관객들이 동등하게 앉아 재개관을 축하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며 “특정한 사람에 의해 연극사가 쓰이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함께 연극의 역사를 만든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삼일로 창고극장은 연극계의 ‘마이너리그’처럼 과거 실험적 작품이 올려졌던 곳으로, 운영위는 그 정신을 계속 이어 가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서울문화재단은 당초 지난해 9월 극장 재개관을 목표로 준비했지만, 안전 점검 과정에서 문제가 발견돼 개관을 한 차례 연기한 바 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북·중, 냉전시대 혈맹관계 탈피…정상국가 외교 관계로 발전”

    “북·중, 냉전시대 혈맹관계 탈피…정상국가 외교 관계로 발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이은 세 차례 중국 방문은 북·중 관계가 ‘정상국가 외교관계’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낳았지만 그 시기와 목적에 있어서는 여러 해석이 이어진다. 뤼차오(呂超·왼쪽)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남북한연구센터 주임은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북은 냉전시대 혈맹관계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뤼 주임은 “중국과 북한의 군사동맹 관계는 냉전이 끝나면서 사실상 사라졌다”면서 “외신들이 중국이 북한을 미국과의 무역전쟁 국면에서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하는데 이는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완전한 주권을 가진 나라이며 중국은 북·미 정상회담을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의 대미 정책은 주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국은 간섭할 수 없고 북한을 이용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뤼 주임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편을 가르는 것은 미국의 냉전식 사고로 중국 외교는 자신의 세력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는다”고 강조다.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방중이 미국과의 무역전쟁 와중에 이뤄진 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렸다. 스인훙(時殷弘)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방중 초청은 미국의 무역전쟁 압박에 대한 중국의 직관적 반응”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차하얼(察哈爾)학회 덩위원(鄧聿文) 연구원은 “무역전쟁과 북한문제가 서로 연관관계를 갖기 시작했다”며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대북 밀착 과시는 ‘북한 카드’를 미국에 대항하는 수단의 하나로 삼아 미국에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덩 연구원은 북한은 중국의 지지 속에서 핵폐기 일정을 늦출 수 있고 중국은 미·중 무역협상의 카드로 삼고자 북한이 제한적 수준의 핵을 보유하는 것을 묵인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중국은 한 번도 미국과의 무역문제에 북한을 지렛대나 카드로 삼겠다는 언급을 공개적으로 한 적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주펑(朱峰·오른쪽)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 원장은 “중·미 무역문제를 경솔하게 북한 카드로 해결하려는 것은 매우 우둔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무역갈등과 북핵문제를 뒤섞으면 경제문제가 지역 안보 대치와 외교적 갈등으로 전이되어 미·중의 대립이 한층 격화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미·중 관계에 있어 전혀 좋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고 했으므로 긍정적 기대를 갖고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해외판 1면 전체를 털어 보도하면서 북·중 관계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극찬했다. 인민일보 해외판은 논평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면서 “북·중 간 소통과 협력 강화는 한반도 평화 안정 추세를 이어가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의도를 과도하게 해석해서는 안 되며 유관국들이 지지하고 호응해야 한다”며 “김 위원장의 방중이 미·중 무역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때 이뤄져 많은 추측이 나오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한·미 등 유관국들은 긍정적인 태도로 북·중 정상회담을 봐야 하며 역사적으로 중국이 북·중 관계를 이용해 한반도 안정을 파괴한 기록이 없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김정은·시진핑 “어떤 정세에도 북중 관계 굳건”

    김정은·시진핑 “어떤 정세에도 북중 관계 굳건”

    북중정상 부부, 두 달 만에 재회…양국 고위급 총출동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19일 3차 북중 정상회담을 열고 양국의 결속을 과시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 대화 등 어떠한 국제정세 변화 속에서도 북중 관계가 공고하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중국은 향후 북한 비핵화 과정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서 북한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하면서 ‘플레이어’로 참여할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에 따라 현재 남북한과 미국이 주도하는 비핵화 이행, 종전선언, 평화협정 등의 논의과정에서 중국이 북한을 등에 업고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관영 중국중앙(CC)TV에 따르면 시 주석과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 북중 관계 발전과 한반도 정세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고 북중 관계 발전을 더욱 공고히 유지하기로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면서 현재 한반도 평화 및 안정 추세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함께 노력하고 지역 및 세계 평화와 안정 유지에 적극적인 공헌을 하기로 했다. 시 주석은 이날 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비핵화 실현,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 체제 건설이라는 공동 인식을 달성하고 성과를 거둔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높이 평가한다”면서 “김 위원장의 이번 방중은 (북한이) 북중 양당과 양국 간 전략적 소통을 고도로 중시함을 보여줬다”고 밝혔다. 시 주석은 “불과 3개월 만에 김 위원장과 세 차례 회담을 통해 양당이 양국 관계 발전의 방향을 제시했고 북중 관계 개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면서 “국제 지역 정세가 어떻게 변하더라도 북중 관계를 발전시키고 공고히 하려는 중국의 확고한 입장과 북한 인민에 대한 우호, 사회주의 북한에 대한 지지에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경제 건설로의 전환이라는 중대한 결정을 한 것을 기쁘게 생각하며 북한 사회주의 발전 사업이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 진입했다”면서 “우리는 북한의 경제 발전과 민생 개선을 지지하며 북한이 자국 국정에 부합하는 발전의 길로 가는 것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 실현, 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했다”면서 “이번 북미 정상회담은 한반도 문제의 정치적 해결에 중요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미 양측이 정상회담 성과를 잘 실천하고 유관국들이 힘을 합쳐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함께 추진하길 바란다”면서 “중국은 계속해서 건설적인 역할을 발휘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김 위원장은 “시 주석을 다시 보게 돼 기쁘다”면서 “중국은 우리의 위대한 우호 이웃 국가로 시 주석은 존경하고 믿음직한 위대한 지도자로 시 주석과 중국 당, 정부, 인민이 나와 당, 정부, 인민에 보내준 우의와 지지에 감사한다”고 극찬했다. 김 위원장은 “북한 노동당 전체와 인민을 잘 이끌어 시 주석과 달성한 공동 인식을 이행하고 북중 관계를 더 높은 단계로 끌어올리겠다”면서 “북미 정상회담이 국제사회의 기대대로 적극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그는 “북미 양측이 정상회담에서 달성한 공동 인식을 한 걸음씩 착실히 이행한다면 한반도 비핵화는 새로운 중대 국면을 열어나갈 수 있다”면서 “북한은 중국 측이 한반도 비핵화 추진, 한반도 평화 및 안정 수호 방면에서 보여준 역할에 감사하고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중국 및 유관국들과 함께 영구적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추진하고 한반도의 영구적인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CCTV는 이날 방중한 김 위원장이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시 주석을 만나는 모습을 보도했다. 북중 외교 관례상 북한 최고 지도자가 귀국하기 전에 중국이 방중 장면을 공개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날 인민대회당에서는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가 나와 김 위원장과 부인 리설주 여사를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맞았다. 이날 인민대회당 실내에서 거행된 환영의식에는 양국 국가가 연주되고 김 위원장이 시 주석과 함께 중국군 3군 의장대를 사열했다. 인민대회당에서 중국 측은 시 주석 부부를 포함해 왕후닝 정치국 상무위원, 딩쉐샹 당 중앙판공청 주임, 양제츠 외교담당 정치국원, 왕이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쑹타오 공산당 대외연락부장 등이 참석해 김 위원장과 수행단을 맞았다. 북한 측은 김 위원장 부부을 비롯해 최룡해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박봉주 내각 총리,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리수용 노동당 부위원장 겸 국제부장, 리용호 외무상, 노광철 인민무력상, 박태성 노동당 부위원장 등 최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했다. 환영 의식 이후 열린 정상회담에는 북한 측에서 김영철 부위원장, 리수용 부위원장, 리용호 외무상 등 북미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인사들만 배석했다. 북중 정상회담이 끝난 뒤에는 시 주석 부부가 주최하는 환영 만찬이 열렸으며, 양국 정상 부부는 만찬 공연 등을 함께 관람했다. 이번 방중단에 지난달 북한 노동당 친선 참관단을 이끌고 중국의 개혁·개방 성과를 둘러 본 박태성 부위원장이 포함된 것으로 미뤄 북중 경협에 대해서도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 소식통은 “이번 방중단의 인적 구성으로 미뤄 김 위원장의 방중 목적은 북미정상회담 성과 설명과 후속조치 논의, 북중 경제협력 등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면서 “이번 회담에서 시 주석의 방북 시기에 대해서도 논의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탈분단 시대의 문학

    [유성호의 문학의 길목] 탈분단 시대의 문학

    6ㆍ13 지방선거의 결과를 두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우리 국민이 ‘분단ㆍ냉전’에서 ‘통합ㆍ탈냉전’으로 이월돼 가는 시대적 흐름에 적극적인 동참 의사를 밝힌 점일 것이다. 해방 이후 우리 민족 전체를 강력하게 지배했던 이른바 분단 체제는 그 점에서 명실상부한 황혼기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갈등과 상쟁으로 얼룩졌던 분단의 현대사가 이제 화해와 상생으로 전환되는 이행기에 접어든 것이다. 물론 현대사 곳곳에 우리가 치러 낸 중대한 이행기적 경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최근 우리가 겪는 상황은 이전 시기의 경험들과는 차원이 다른 매우 근원적이고 획기적인 것임이 틀림없다.문학 분야에서도 이러한 흐름에 대처하려는 움직임은 최근 활발하다. 그 가운데서도 특기할 만한 것은 분단 체제의 남쪽에서 생산돼 반체제적이라고 배척당해 왔던 이른바 분단 극복 지향의 작품들이 최근 제도교육 과정에서도 활력 있게 핵심적 영역을 구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북에서 생산된 작품들에 대해서도 체제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 역사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무엇보다 확연한 것은 중등 국어 교육에서 채택하고 있는 문학 작품의 내용이 지난 시대보다 상당 부분 분단 극복의 지향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난 시대의 문학 교과 과정이 반공 일색으로 편제돼 있던 것과는 첨예하게 달라진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분야 가운데 하나인 공교육 분야에서조차 이러한 시대적인 변화를 민감하게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분단 이후 펼쳐진 현대문학은 거대한 분단의 벽과 씨름해 온 흔적들로 충일하다. 아마도 분단 극복과 통일 지향의 세계를 담은 문학 작품을 모두 거론한다면, 그 목록만으로도 이 지면은 차고 넘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치적, 이념적 차원에서 남북 간의 상생과 평화 공존이 공론화되고 있는 만큼 예술을 통해 분단 체제를 극복하려는 노력을 경주해 왔던 작가와 작품들에 대해 정당한 역사적 가치 평가를 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우리의 무의식까지 철저하게 검열했던 냉전 이념과 피해 의식을 떨치고 탈분단의 도정을 묵묵히 지속하는 것이 우리 시대에 지워진 역사적 몫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문학적 형상 속에 나타난 분단 극복, 통일 지향의 속성들을 온전하게 귀납해 우리는 개념적이고 추상적인 통일 교육보다는 문학 작품 속에 살아 움직이는 인물들의 구체적인 상처와 열망에 공감하게끔 하는 교육을 진행해 가야 한다. 아울러 그 연장선에서 우리는 문학 작품을 통해 남북이 축적해 온 역사적 상흔이 결국 남북 모두에게 상처와 멍에가 될 뿐이라는 것과 통일이 가치 있는 시대적 과제라는 것을 동시에 인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70년이 가까워 오도록 상호 적의와 괴리감을 확대해 온 상황에서 문화나 문학을 통해 접점의 가능성을 키우고 그 부문에서 상호 교류를 넓힘으로써 남북 관계를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일은 더없이 중요한 현안이 아닐 수 없다. 물론 경제 교류나 군사 협약 같은 결정적 부분에 대한 접근은 꾸준히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문화적 소통도 서둘러 개진해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시야를 넓혀 재일(在日) 조선인 문학, 재러시아 고려인 문학, 연변 조선족 문학, 미국이나 유럽의 한인 문학 등 한민족 문화권 전반과의 포괄적인 관련 아래 남북한 문학의 접점을 찾아볼 필요도 느끼게 된다. 자료의 영성함과 유실이 걱정되는 바는 아니지만, 이러한 노력이 곧 남북의 문학적 통합을 궁극적으로 가능케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단 체제의 변화와 남북 문학의 과제를 복합적으로 성찰하고 실천하는 일은 모처럼 맞이하는 탈분단 시대가 우리에게 부여한 실존적, 역사적 부채일 것이다.
  • [사설] 남북미 3각 핫라인 구축해 비핵화 속도 높여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직접 연결되는 전화번호를 줬다. 그는 어떤 어려움이든 생기면 나에게 전화를 걸 수 있다. 나도 그에게 17일 전화하려고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미 정상은 지난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단독회담을 하던 중 세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과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을 잠시 회담장으로 불러 이들을 통해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북·미 정상이 직통 전화번호를 교환했다는 것 자체가 수시로 원활한 소통을 이어 가며 신뢰를 회복하고 관계를 개선하자는 의지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두 정상의 직통 전화번호 교환 자체를 북·미 간에 공식적인 핫라인(상설전화)을 설치한 것으로 보긴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를 위해 양국이 약속했던 조치들이 빠른 속도로 이행될 것임을 보여 주는 청신호로 해석된다. 주목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여러 차례 전화통화를 통해 신뢰를 쌓을 경우 두 정상 간 상설 핫라인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화 연결 방식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백악관 비서실과 북한의 서기실(김 위원장 비서실)을 연결하는 전화번호를 알려 준 것으로 관측된다. 과거 남북을 연결하는 핫라인은 국정원ㆍ통일전선부에 있었고, 최근 다시 개설된 남북 핫라인도 북한 서기실과 청와대를 잇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계기로 1963년 가동된 미국과 소련 간 핫라인도 미국 국방부와 소련 공산당본부를 연결했다. 북·미 정상 간 핫라인 가동은 비핵화 협상에서 첨예한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양측에 ‘신뢰 구축’의 발판을 마련하는 상징적인 조치다. 두 정상이 진심을 왜곡 없이 신속하게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비핵화, 대북 체제안전 보장과 관련한 대화에 속도감을 불어넣는 촉매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실무자들이 비핵화 협상이 난관에 봉착하면 두 정상은 언제든지 ‘톱다운’ 방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진다. 북·미 정상 간 직통 전화번호 교환을 계기로 남·북·미 3국 사이에 핫라인 구축이 이뤄졌으면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 위원장,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는 이미 핫라인이 연결돼 있다. 북·미 핫라인이 설치되면 남·북·미 3국 사이에 핫라인 구축이 완성되는 셈이다. 국가 관계에서 정상 간 핫라인은 보통 교류나 만남을 자주 갖는 친밀한 사이이거나 인접국 혹은 역사적으로 특별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경우에 개설된다. 일부러 찾아가 만날 필요 없이 전화로 현안을 조정하거나 합의를 도출해 낼 수 있다. 남·북·미 세 정상이 현안이 발생할 때마다 핫라인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소통한다면 비핵화라는 난제도 한결 속도감 있게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 악동 마라도나 한국팬 인종차별…아들 주려고 유니폼 바꾼 카바니

    악동 마라도나 한국팬 인종차별…아들 주려고 유니폼 바꾼 카바니

    벌써부터 국제축구연맹(FIFA) 러시아월드컵 경기장 안팎에서 연일 화젯거리가 쏟아지며, 지구촌 최고 인기 스포츠의 열기를 느끼게 하고 있다. ●마라도나 한국인 비하? BBC를 비롯한 외신들은 17일 아르헨티나의 축구 스타였던 디에고 마라도나(58)가 월드컵 도중 인종차별 행위를 했다고 보도했다. 마라도나는 후배들을 응원하고자 아이슬란드전이 열리는 모스크바의 스파르타크 스타디움을 찾았다가 문제의 행동을 벌였다. 한국 축구팬들이 마라도나를 알아보고 ‘디에고’라 소리치며 손을 흔들자 웃으며 화답한 뒤 돌아서서 두 손으로 양 눈을 찢는 행동을 했다. 논란이 되자 마라도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아시아에서도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이 멋지게 보였고 이를 표현하고 싶었을 뿐이다. 이것이 전부다. 모두들 진정하라”고 해명했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았다. 마라도나는 경기 도중 좌석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마라도나는 SNS에 또 다른 글을 써서 “(1-1로 비긴) 오늘은 아르헨티나인들에게 힘든 날이다. 월드컵 첫 경기라서 무척 긴장했다”며 “솔직히 말해서 경기장에서 흡연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몰랐다. 모든 사람과 조직위원회에 사과한다”고 밝혔다. ●경기 안 나온 살라 유니폼 교환 이집트의 에이스 무함마드 살라(26)는 어깨 부상으로 인해 우루과이전에 나서지도 못했지만 상대 선수와 유니폼 교환을 했다. 우루과이의 에딘손 카바니(31)가 경기가 끝난 뒤 살라에게 유니폼 교환을 제의한 것이다. 카바니는 우루과이 언론에 “내 아이들에게 기념품으로 주려고 티셔츠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보통 유니폼 교환은 경기 종료 시점에 그라운드에 남은 선수들끼리 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례적이다. 한편 살라의 부상 상태는 여전히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17일 훈련 도중 팀 동료 3명의 도움을 받으며 힘겹게 유니폼을 입는 살라의 모습이 확인됐다. 그럼에도 이집트 의료진은 “(20일 오전 3시에 열리는) 러시아와의 2차전까지는 100% 몸 상태가 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호날두 세리머니 해석 논란 지난 16일 난적 스페인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3·포르투갈)의 세리머니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당시 호날두는 후반 43분 회심의 프리킥으로 3-3 동점을 만들었다. 월드컵 개인 통산 6번째이자 역대 최고령(만 33세 131일) 월드컵 해트트릭이었다. 기쁨에 겨운 호날두는 자신의 턱을 쭉 빼고 오른손으로 매만졌다. 평소엔 볼 수 없던 행동인지라 축구팬의 관심이 쏟아졌다. 처음에는 자신의 프리킥에 손도 못 쓰고 당한 스페인 골키퍼 다비드 데헤아(28)를 도발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그러나 AP통신은 “턱을 만진 세레머니는 ‘(메시가 아닌) 내가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Greatest Of All Time·역사상 최고 선수)라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역사상 최고 선수의 영문 약자는 ‘GOAT’라고 쓰는데 염소라는 단어랑 철자가 같다. 메시의 용품을 후원하는 아디다스는 월드컵을 앞두고 메시와 염소를 함께 모델로 내세우며 메시야말로 진정한 ‘GOAT’라는 광고를 했는데, 이를 겨냥했다는 해석이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 [교육감 깜깜이 선거 막자] “교육감과 지방선거 분리 등 정부가 개선방안 공론화해야”

    [교육감 깜깜이 선거 막자] “교육감과 지방선거 분리 등 정부가 개선방안 공론화해야”

    “뜨거운 교육열의 나라인데 교육감에 대한 관심은 기초의회 의원보다 못했다.” 전국 17개 시·도 교육의 사령관 격인 교육감을 뽑는 6·13 지방선거가 진보 성향 후보들의 압승으로 끝났다. 또 재선·3선에 도전했던 현직 교육감들도 모두 당선됐다. 이러한 결과를 떠나 올해 교육감 선거도 무관심 속에 ‘깜깜이’로 진행됐다는 평가를 피하긴 어렵다. 한 해 60조원 예산권과 교원 37만명 인사권을 가진 교육감 자리의 무게를 감안할 때 아쉬운 대목이다. 서울신문은 현장과 이론에 두루 밝은 교육 전문가 11명으로 ‘2018 시·도 교육감 선거공약 검증위원회’(위원장 민경찬 연세대 명예특임교수)를 꾸려 서울·경기 등 8개 광역시 교육감 출마자들의 공약을 검증해 연속 보도했다. 민 위원장과 강소연 연세대 교수(교육심리학), 김성열 경남대 교수(교육학),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교육학), 임병욱 서울 인창고 교장, 조효완 광운대 교수(입학사정관협회장) 등 검증 위원들은 17일 서울역 프리미엄 라운지에서 마무리 좌담회를 갖고 “단순히 특정 세력의 대변자가 아닌 정말 능력 있는 인물을 교육감으로 뽑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다음은 일문일답.→당선된 시·도 교육감 17명 중 14명이 진보 후보인데. -배상훈 교수(배 교수) 이번 선거에 드러난 민심은 ‘변화’다. 국민 마음속에 있는 교육에 대한 불만이 임계치에 달한 것 같다. 첫 전국 직선제 교육감 선거였던 2010년 진보 후보가 6명 당선됐고, 2014년에 13명, 이번에는 14명 당선되며 그 수가 점점 늘고 있다. 반면 보수 후보들은 새로운 가치·의제를 못 던졌다. 진보 측에서 ‘무상교육, 혁신학교, 교육민주화’ 등을 앞세운 반면 보수는 ‘(외국어고·자율형사립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겠다는 진보 교육감에 맞서) 외고와 자사고를 현행 유지하겠다’는 정도만 보였다. -강소연 교수(강 교수) 우리 학부모들은 평등 의식이 강하다. 진보 교육감을 지지한 건 그런 성향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학교 간 교육 편차가 너무 벌어지는 등 불만이 커졌는데 진보 교육감이 해소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담긴 것 같다. -민경찬 교수(민 교수) 시장·도지사 등을 뽑는 선거와 함께 진행됐기 때문에 전체적인 선거 흐름이 교육감 선거에 영향을 준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보수 후보들은 ‘앵그리맘’(현 정부 교육 정책에 화난 엄마들) 프레임을 꺼내 진보·현직 교육감을 겨냥했다가 실패했다. -배 교수 화난 엄마들은 분명 있다. 하지만 보수 후보들이 그 대상을 잘못 생각한 것 같다. 현 교육감이나 정부의 교육 실정에도 화났겠지만, 정서의 밑바탕에는 그동안 오래 버티고 있었던 교육 기득권 세력에 대한 분노가 있다고 본다. 유권자들은 ‘보수=오래 해 온 사람들’이라고 인식한다. -김성열 교수(김 교수) 현 정부의 교육 분야 지지도가 낮은 건 결정적으로 대입 정책 때문이다. 이는 시·도 교육감의 역할이 아니다. 학부모들도 이 점을 이해하고 투표한 것 같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수준의 교육에서는 진보 교육감이 내세우는 ‘과도한 경쟁 완화’나 ‘아이들의 행복 교육’을 내세우는 정책이 통할 수 있다. →이번 교육감 선거 후보자들의 공약을 평가했는데 총평한다면. -배 교수 교육의 질을 높이려는 정책보다 ‘무상’ 정책이 더 많았다. 또 미래 대비 교육보다 현재에 중심을 두는 공약이 핵심이었다. 이는 각 후보들이 그동안 교육감 선거 때 학습한 걸 토대로 짠 전략이라고 본다. ‘어차피 교육감 선거에서 정책 대결은 이뤄지지 않는다. 특정 진영의 세를 규합해 지지를 얻고, 상대를 분란으로 이끌면 이긴다’는 것이다. -조효완 교수(조 교수) 교복을 무상 지원하겠다는 공약도 있는데 차라리 복장 자율화하면 되지 않나. 불필요해 보인다. 다른 후보가 준 것보다 무상 공약을 하나 더 추가하려는, ‘무상을 위한 무상’ 공약 같다. 포퓰리즘(인기영합) 공약은 많은데 구체적인 예산 계획은 없었다. 교육감 선거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지니 일단 눈에 띄고 보자는 심정이었던 것 같다. 후보들이 포괄적 약속만 하는 대신 공약 실현을 위해 구체적 계획을 제시하도록 해야 한다. -민 교수 학생의 미래를 고민해 공약을 만들기보다 표를 받기 유리하게 공약을 짰다. 학생들이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대한 관점이 없다. 예컨대 글로벌 시대에 맞는 아이들로 성장시키기 위한 정책, 세계관을 담은 공약이 없었다. 교육감은 학부모와 학생, 교사 등에게 큰 그림과 꿈을 보여 줘야 하는 자리인데 그런 본질적인 공약이 별로 없다. -임 교장 후보들 대부분이 공약 평가 항목 중 ‘교원 정책’ 분야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교사를 위한 정책이 없었다는 얘기다. 교육청의 교육 정책이 성공하려면 결국 현장 교사들이 실현해 줘야 한다. 하지만 교사에게 비전과 희망을 보여 주며 “한번 같이 가보자”고 설득하는 공약은 안 보였다. -강 교수 교육에 있어 단위학교와 지역 사회의 역할이 중요해졌는데 그런 공약이 굉장히 부족했다. 지역사회와의 협력을 통해 학교를 발전시키거나 학생들의 활동을 풍부하게 하는 것이 앞으로 중요하다. →낙선 후보자 공약 중 묻히기엔 아까운 공약은 없었나. -배 교수 민생 체감형 공약 중에 좋은 게 있었다. 예컨대 (경기교육감에서 낙선한) 임해규 후보는 사춘기 극복을 위해 ‘초등 6학년 전문 상담 교사 배치’ 같은 공약을 했는데 눈에 띄었다. 같은 지역 배종수 후보의 초·중·고교 학생에게 ‘1화분 키우기’, ‘1운동 익히기’, ‘1악기 다루기’ 공약도 학생들의 정서 함양에 도움이 될 것 같다. -임 교장 당선자들이 취임하기 전 낙선 후보 캠프의 정책 공약 담당자와 자신의 정책 담당자들을 한자리에 모아 허심탄회하게 말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떨어진 후보의 좋은 공약을 활용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번 교육감 선거도 유권자 관심도가 떨어졌다. 깜깜이 선거를 막을 방법은 없을까. -배 교수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면 교육감 선거를 아예 지방선거와 분리해 치러 교육에 대한 큰 담론을 얘기해 보는 장을 만들면 어떨까 싶다. 지금은 교육감 선거가 시·도 지사 선거 등에 압도당한다. 교육감보다 오히려 시·구 의원에게 관심이 간다는 사람도 있다. 교육 영역이 우리에게 정말 중요하다면 선거 때 온 국가의 관심이 교육에 모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두 번째는 선거 공영제다. 교육감 선거 치를 때 보통 30억원 정도 든다고 한다. 덕망 있는 교육계 인사도 비용 부담 탓에 나올 수 없는 구조다. 선거 비용 부담을 줄여줄 방안도 찾아야 한다. -강 교수 교육감 직선제가 무관심 속에 진행되니 예전처럼 학부모 대표 등만 참여하는 간선제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간선제 때 비리가 많았다. 답이 될 수 없다. 시장, 도지사 후보가 러닝메이트(선거 파트너)로 교육감 후보와 함께 나오면 오히려 교육 전문가들이 많이 나올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임 교장 문재인 정부 들어 출범한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가 교육감 선거 제도를 놓고 연구해야 한다. 지금 대입 정시·수시 비율을 정하는 걸로 공론화하고 있는데 진짜 공론화해야 하는 주제는 교육감 선거 같은 것이다. -민 교수 공론화는 국민이 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과정이기에 중요하다. (배 교수의 제안처럼) 교육감 선택의 시기를 시·도지사 선거와 떼어내 하는 등의 방안을 국가 차원의 이슈로 끌어올리면 좋겠다. -김 교수 교육감 후보자들은 정당 조직이 없기에 자신을 알릴 기회가 적다. 단일화나 한 번 해야 알려질까 하는 정도다. 선거관리위원회나 공공기관, 언론기관 등에서 주최하는 공개 토론회를 꼭 했으면 좋겠다. →새 교육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배 교수 당선자들이 선거 결과를 해석할 때 ‘아, 내 주변의 세력을 지지한 것이구나’ 하고 오판하면 안 된다. 단순히 진보를 지지했다기보다 기존 보수 세력을 벗어난 변화의 욕망이 투영된 결과다. 과거 어느 교육감은 측근들로 이뤄진 자문회의에서 주요 안건을 결정하기도 했었는데 소통을 막고, 주변을 세력화한 잘못된 예다. 보수들은 왜 외면받았는지 고민과 반성을 해야 한다. -강 교수 학부모 입장에서 본다면 학부모들의 의견에 귀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조금 더 넓게는 지역사회와 소통을 더 늘려야 한다. 아이들의 높은 자살률이나 번아웃(탈진 현상) 등의 중요 원인은 아이들이 집에 혼자 있기 때문이다. 지역사회와 호흡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민 교수 지금은 대전환기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고,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국제 정세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 초·중·고 학생들이 변한 사회를 주도할 세대인 만큼 학생 한 명 한 명의 미래를 대비할 수 있는 교육 정책을 펴줬으면 좋겠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박재홍 기자 maeno@seoul.co.kr
  • [사설] ‘고용쇼크’, 일자리 창출 더 매진해야

    고용대란, 고용쇼크다. 과장이 아니다. 일자리를 찾는 청년이 처한 상황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의 수준까지 추락한 것이다. 통계청이 어제 내놓은 5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자는 1년 전보다 겨우 7만 2000명 증가했다. 올 1월 취업자가 33만 4000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심각성을 알 만하다. 이어 2월에 10만 4000명로 추락한 뒤 3월 11만 2000명, 4월 12만 3000명으로 3개월 연속 10만명대라 걱정이 컸는데, 그마저 무너진 것이다. 8년 4개월 만에 최악의 고용 성적이다. 청년층(만 15~29세)의 실업난은 더 심각하다. 5월 실업률은 4.0%인데, 청년실업률은 10.5%로 전년 같은 기간 대비 1.3% 포인트 상승했다. 관련 통계가 집계된 1999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체감실업률도 23.2%로 2015년 이후 최고치다. 대기업 10곳 중 1곳은 올 상반기 채용 규모를 지난해보다 줄이거나 아예 뽑지 않고, 신규 채용을 하겠다는 중소기업은 전체의 15%에 불과하니, 청년이 체감하는 구직난은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 이 고용쇼크는 본격화된 자동차, 조선 등의 구조조정 여파도 크다. 하지만 더 직접적인 영향은 올해 두 자릿수로 상승한 최저임금제 시행과 다음달 52시간 근무제이다. 최저임금 상승과 고용시간 축소는 비용 증가 요인이다. 기업은 정부의 지원에도 직원을 더 늘리지 않는다. 고용 창출력이 큰 숙박·음식점업 취업자 수가 1년 전보다 4만 3000명이, 도매 및 소매업 취업자도 5만 9000명이 줄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어제 “충격적이다. 경제팀 모두가 책임을 느낀다”고 반성했지만, 10만명대 고용 수준을 우려하자 ‘인구 감소에 따른 일시적 현상’이라고 묵살한 과오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작용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청와대 경제팀은 물론이고, 속도조절론을 제기한 ‘김동연 경제팀‘의 책임론이 대두될 수도 있다.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역사적인 북ㆍ미 정상회담도, 지방선거도 지난 13일로 최종 마무리됐다.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 그리고 정부는 경제, 특히 일자리 창출에 더 매진해야 한다. 민주당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역대급의 압승을 거뒀지만, 혁신성장 등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소득주도성장 등으로 가계살림을 개선하는 등 경제분야에서 성과를 내야 외교안보 등의 국정운영에서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주 52시간 근무제도가 고용에 미치는 충격이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교한 대책도 필요하다.
  • [길섶에서] 자유의 송가/이두걸 논설위원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은 곡의 인기를 반영하듯 수많은 명연주가 존재한다. 다만 역사적 의의만 따지자면 미국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의 1989년 베를린 연주가 앞머리에 놓일 것이다. 그해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한 달 뒤 그는 서편과 동편에서 ‘베를린 축하 공연’을 가졌다. 미국과 영국, 프랑스, 소련, 그리고 독일 등 2차 세계대전 참전국의 교향악단 단원들이 동참했다. 번스타인은 4악장에 인용된 실러의 시 제목 ‘환희의 송가’(Ode to Joy)를 ‘자유의 송가’(Ode to Freedom)로 바꿔 청중들에게 소개하고, 이듬해 발매된 실황 앨범의 타이틀로 썼다. 그는 특유의 역동적인 몸짓과 드라마틱한 해석으로 악단을 이끌었다. 탁월한 음악가이자 평생 자유와 반전을 주창한 지성인이었던 번스타인은 그로부터 10개월 뒤 폐암으로 눈을 감았다. 지난 12일 미국과 북한의 두 정상이 싱가포르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 보장 등을 합의하는 모습을 보며 교향곡 9번의 베를린 실황을 떠올렸다. 남과 북, 미국, 중국 연주자들이 함께 서울과 평양에서 이 곡을 함께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그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일까. douziri@seoul.co.kr
  • 이낙연 “DJ 못다 이룬 꿈, 문재인 정부가 이룰 것”

    이낙연 “DJ 못다 이룬 꿈, 문재인 정부가 이룰 것”

    이낙연 국무총리는 14일 “6·15정상회담이 있었기에 4·27정상회담이 있었고,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정책도 있다”며 “김대중 대통령께서 못다 이루신 꿈을 문재인 정부가 이루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이날 오후 서울 63빌딩에서 열린 6·15 남북정상회담 18주년 기념식 축사에서 “정부는 결코 뒤돌아가지 않고 한반도 평화정착과 민족 공동번영을 향해 직진하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총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겠다”며 “그 길은 끝내 성공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그 길이 역사의 필연이고, 그것을 바로 여러분께서 앞장서서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날 축사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의 6·15남북정상회담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 싱가포르 센토사 섬에서 이뤄진 북미정상회담의 닮은 점과 다른 점을 함께 강조했다. 이 총리는 북미정상회담에서 두 지도자가 ▲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 한반도 평화체제 확립 ▲ 북한 안전보장과 완전한 비핵화 ▲ 미군유해 송환 등 4개 항에 합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센토사합의는 4·27판문점선언을 재확인한다고 명기함으로써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함께 간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며 “센토사 합의를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는데 그중 하나는 김대중 대통령께서 얼마나 멀리 내다보셨든가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후보로서 몇 가지 획기적 제안을 했다며 4대국 안전보장, 남북 교차승인과 유엔 동시 가입 등의 내용을 소개했다. 이 총리는 “그 제안들은 하나씩 구현됐다. 그러나 긴 세월이 필요했다”며 그간의 상황을 설명하고 “그중 하나와 관련되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이 이번 센토사합의 제1항에 등장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또 “6·15남북공동선언과 센토사합의가 닮았다”며 6·15선언의 5개항을 설명했다. 5개 항의 합의는 자주적 통일노력, 양측 통일방안의 공통점 인정, 이산가족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의 인도적 해결, 경제협력과 교류를 통한 신뢰구축, 남북대화 조속 개최이다. 이 총리는 “6·15선언은 후속 대화 추진을 문서에 포함했고 센토사합의는 후속 대화 계획을 구두로 발표한 것이 다를 뿐, 나머지 구성은 비슷하다”며 “많은 것을 함축하지만, 문서로 표현된 것은 선언적이고 압축적이다. 그 이유는 기적 같은 사상 첫 정상회담이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이제 본격화될 것“이라며 ”사상 첫 미중 정상회담인 1972년 닉슨-마오쩌둥 회담은 선문답을 주고받은 수준이었지만 그래도 그것이 세계사를 바꿨다”고 강조했다. 이 총리는 6·15회담과 판문점회담의 유사점으로 자주외교의 산물이며 미국 등 주요국의 협력으로 이뤄진 점을 꼽고 “김대중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은 축적된 철학과 일관된 신념, 오랜 준비와 미국 등의 협력으로 남북정상회담을 실현했다”고 말했다. 다른 점으로는 시대와 상대가 달라졌음을 꼽고 “북한사회는 예전보다 경제와 개인 생활을 더 중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며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전임자들과 다른 실용적 리더십을 담대하게 내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사설] 압승한 민주당, ‘6·13 민심’ 자만하지 말라

    6·13 지방선거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오후 11시 30분 개표 기준으로 17개 광역단체장 선거 중 부산·경남을 포함해 14곳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부산 해운대을 등을 포함해 11곳에서 앞섰다. 압승이다. 자유한국당은 대구·경북 2곳에서, 제주는 무소속 원희룡 후보가 당선됐다. 226곳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선 민주당이 150석을 석권했다. 한국당 56석, 무소속 16석, 민주평화당 4석에 그쳤다. 민주당 중심 또는 야권발(發) 정계 개편이 불가피하다. 민주, 부산·울산도 승리 지역주의 타파 성과 보수 세력의 영원한 텃밭으로 여겨졌던 부산과 울산에서 민주당의 승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만큼 민심이 과거의 지역주의에서 탈피했다는 점을 보여 주는 것이다. 투표율은 1995년 제1회 전국지방선거(68.4%) 이후 두 번째로 높은 60.2%(잠정 투표율)였다. 2014년 지방선거의 투표율 56.8%보다 3.4% 포인트 높았다. 특히 지방선거에서 60% 이상의 투표율을 보인 것은 첫 지방선거 이후 23년 만이다. 이번 지방선거는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로 6·12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되는 등 역사적인 세기의 담판이 성공적으로 열린 바로 다음날 치러졌다. 덕분에 한반도 평화와 마지막 냉전의 해체 등 외교안보 이슈가 선거 내내 지배했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높은 지지율을 바탕으로 치러지는 선거이면서도 후보자 간 네거티브 선거전 등 진흙탕 싸움이 벌어지면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정책과 공약 검증이 부진한 선거로 남게 됐다. 文정부, 경제 성과내야 안정적 국정 가능 그럼에도 투표율이 60%를 넘은 것은 유권자들이 ‘적폐청산’을 전면에 내건 정부·여당에 책임정치를 구현하도록 기회를 준 것으로 해석된다. 출구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의 국회 의석은 현행 119석에서 130석으로 늘어난다. 이는 민주평화당(14석)과 정의당(6석), 친민주 성향의 바른미래당 비례대표(3석), 무소속(2석) 등 진보적 정당 ‘범여권’을 포함하면 과반 의석을 넘기는 155석을 차지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하반기 국회 운영은 물론 문재인 정부의 국정을 뒷받침하기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된다. 이번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뒀지만,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놓인 앞으로의 과제는 결코 만만치 않다. 여권이 이번 선거에서 승리를 거둔 요인은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를 이끌어 국민의 마음을 얻은 데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이후 세부적인 협상으로 이어질 한반도 비핵화와 종전선언 여부, 이에 따른 한ㆍ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대책 등 풀어야 할 난제들이 쌓여 있다. 무엇보다 경제 챙기기가 시급하다. 경제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남북 관계나 외교·정치 분야의 화려한 성과도 빛이 바랠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일자리 우선’과 ‘소득주도성장’의 ‘J노믹스’ 기치를 내걸었지만, 결실을 거두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다음달부터 시작될 주 52시간 근무제는 고용시장을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야당도 포용하는 화합·통합정치 구현해야 여당은 “국민의 승리”라고 압승을 자축하지만, 자만하지 말길 바란다. 여당이 잘해서라기보다는 문 대통령에 대한 국민적 지지와 한반도 해빙에 편승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첫 1년이 적폐청산 시기였다면, 이제 당청은 야당과 반대 세력을 적극 포용하는 ‘통합적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문 대통령과 여당은 개각과 청와대 개편 등 인적 쇄신으로 국정 운영에 새바람을 불어넣길 바란다. 또 ‘범여권’ 등에서 인재를 널리 구하는 탕평책도 필요하다. 한국당을 포함한 야당들은 이번 선거가 ‘범보수 야당에 대한 심판’이었다는 점을 자각하길 바란다. 특히 한국당은 지난해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이후 국민에게 반성하고 쇄신을 다짐했다. 하지만 국민의 시선은 만족하지 않았던 것이 표심으로 드러났다. 이는 한국당 홍준표 대표 등이 외교안보 문제에서 초당적으로 협력하기보다 냉전수구적 태도를 견지한 탓이다. 한국당은 뼈를 깎는 자성과 반성으로 거듭나야 한다. 아니면 지방선거에 이어 2020년 총선에서도 참패를 각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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