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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떠나요, 나의 마을로

    사람들은 마을 곳곳을 누비고 다니지만 정작 마을에 어떤 장소들이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관심을 두고 들여다보면 뜻깊은 역사 공간, 자연생태 공간 등이 곳곳에 있다. 서울 영등포구가 전문 해설사와 함께 마을탐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유다. 영등포구가 초등학교 교과과정과 연계한 마을탐방 프로그램 ‘영등포 마을누리’가 큰 호응을 얻고 있다고 21일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올해 처음 영등포혁신교육지구 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됐다. 지난 3월 구내 초등학교들로부터 참가 신청을 받았다. 참가한 학교만 해도 16개교, 1300여명에 이른다. 참가자들을 상대로 이미 지난 6~7월 1학기 프로그램을 운영했고 지난 1일 시작된 2학기 프로그램은 내달 말까지 진행된다. 탐방은 방학곳지 부군당을 시작으로 영등포공원, 담근솥·영등포역 등에서 이뤄진다. 이어 샛강생태공원에서 생태관찰을 하고 양평유수지생태공원에서 유수지의 기능을 학습한다. 특히 탐방해설은 2015년 영등포혁신교육지구 사업으로 양성된 마을강사들이 마을해설사 역할을 도맡아 진행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조길형 영등포구청장은 “아이들이 마을로 나와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교육을 통해 영등포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용산팔경 명성 품은 물 마른 7.7㎞ 물길 역사가 대신 흘렀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용산팔경 명성 품은 물 마른 7.7㎞ 물길 역사가 대신 흘렀다

    내가 지금 사는 집도 서울미래유산이 될 수 있을까. 물론 기준에 적합하면 가능하다. 미래유산은 시민 손으로 발굴하는 것을 가장 큰 가치로 삼는다. 선정 과정은 시민 손으로 발굴한 미래유산에서 보전가치를 파악하고 그 가치를 시민들에게 알려주는 일련의 여정이다. 미래유산은 발굴·신청, 조사·심의, 선정·발표 단계로 지정된다. 최종 확정된 미래유산에는 인증서가 교부되고 5년마다 재발급 여부를 결정한다. 미래유산 시민제안은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에서 누구나 할 수 있다. 서울시는 이 같은 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서울신문·문화지평과 공동주관으로 매주 토요일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만초천(蔓草川). 무악재(길마재)에서 발원해 서대문사거리, 서울역, 서부역, 청파로, 원효로를 따라 흐르다 원효대교 밑에서 한강에 합수되는 물줄기다. 만초는 넝쿨이 무성한 풀을 말한다. 천변에 풀이 덩굴째로 무성히 자랐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일명 넝쿨내라고도 부른다. 폭염이 한풀 꺾인 지난달 27일 일곱 번째 서울미래유산 탐방답사는 만초천 물길을 따라 걸었다. 하늘이 눈이 부시게 푸른 날이었다. 지하철 3호선 독립문역 4번 출구 서대문독립공원에서 모였다. 물줄기 원천인 안산과 인왕산이 청명한 대기 때문에 한결 가깝게 보였다. 만초천 길라잡이는 전상봉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맡았다. 서울시민연대 대표이기도 한 전 해설사는 ‘전상봉의 서울 이야기’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등 서울시민의 인문학 소양을 높이는 데 힘쓰고 있다. 순국정신 깃든 ‘서대문독립공원’…떡 도매하던 영천시장 옥바라지의 흔적 서대문독립공원은 지금은 역사관으로 바뀐 서대문형무소가 있었던 곳이다. 이 밖에 순국선열추념탑, 서재필 선생 동상, 독립관(순국선열 위패봉안소), 3·1 독립선언 기념탑, 독립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이진아 기념도서관 등이 들어서 있다. 독립관은 조선시대 중국사신을 영접하던 모화관을 1996년 복원해 내부에 순국선열 위패 2327위를 모셨다. 그래서인지 독립관이란 현판 앞에 별도로 현충사란 현판을 걸고 있다. 전 해설사가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면서 해설이 시작됐다. 그가 펼쳐든 것은 수선전도(首善全圖) 실사출력물이다. 수선은 서울을 뜻한다. 수선전도는 서울시 지도인 셈이다. 대동여지도를 만든 고산자 김정호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지도다. 최근 답사에서 보충 교재가 자주 등장한다. 앞서 박광규 서울미래유산해설사는 노트북을 이용해서 잘 보이지 않는 서울미래유산을 설명했고, 배건욱 해설사도 파일에 옛 사진을 담아 나와 해설에 입체감을 더했다. 전 해설사도 사진파일은 물론 실사출력 지도를 준비해 와 이해를 도왔다. 바람이 몹시 심하게 불어서 수선전도를 세 명이 붙잡아야 했다. 안테나형 지시봉까지 챙겨 온 전 해설사는 지도에서 만초천 위치를 짚어가며 특유의 해박한 역사지식을 쏟아냈다. 전 해설사는 “만초천은 총길이 7.7㎞로 1967년 이후 복개가 시작돼 지금은 물줄기를 구경하기 힘들다”며 “청계천만큼 인지도는 없지만 과거에는 용산팔경 중 하나로 매우 경치가 아름다웠다는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답사팀에 뭉쳐 다니는 한 무리 ‘아줌마 부대’가 있다. 답사 전 화장실도 우르르 함께 몰려갔다 오는 의리(?)를 보여준 이들은 도봉구에 사는 김남숙(52)씨가 신청하고 친구들을 데려온 것이다. 함께 온 강혜린(52)씨는 “평소 한국사,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따라 나섰다”며 “여태껏 모르던 서울의 역사를 알게 되는 기쁨이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또 “서울미래유산을 알고 있었다”며 “주변에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들이 자꾸 사라져서 안타까웠는데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해서 보호한다니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영천시장에 들어서자 아줌마부대를 비롯해 중년 여성들의 두리번거림이 심해졌다. 시장은 여성, 특히 중년 이상 아줌마들의 안마당 같은 공간이기 때문에 이곳에 들어서면 자연스레 몸이 반응한다. 영천시장은 1960년대 자연발생적으로 형성됐다. 아마도 개천변에 있던 조그만 노점이나 점포가 복개 이후 물길 위에 시장을 형성한 게 아닐까 추측된다. 2011년 7월 전통시장으로 등록됐고 원래는 떡 도매시장으로 유명했지만 지금은 일반시장과 다름없다. 떡이 많이 팔린 이유는 서대문형무소 옥바라지 때문이었다는 속설이 타당하게 들렸다. 1916년 원형 그대로 ‘석교교회’…첨두아치 디테일 뛰어난 고딕양식 눈길 영천시장을 통과해 조금만 물길을 따라 내려가면 외관이 멋들어진 교회가 나온다. 1916년 세워진 석교교회로 서울미래유산이다. 지정 이유는 강당식 평면형식을 가진 고딕양식 건축물이 건립 당시 모습을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1층 회당 입구 첨두아치(Pointed Arch)에서 우수한 조적 디테일을 보여준다. 전 해설사는 “처음엔 한옥을 예배당으로 개조해 사용하다가 신도가 늘어나자 예배당 건립이 필요하게 됐다. 하지만 가난한 성 밖 주민들이 건축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며 “기적적으로 미국에서 헌금이 모아져 벽돌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석교교회는 감리교인데 우리나라에 이 교단이 들어온 것은 1884년 한미수호통상조약이 있던 해이고 최초 교회는 1987년 문을 연 정동교회 벧엘예배당이다. 아펜젤러가 대표적 감리교 선교사로 배재학당을 만들었다. ‘정거장호텔’ 흔적 지킨 회화나무…경인선 기차시발역이었던 서대문정거장 농협중앙회와 이화여자외국어고 사이에 표지석 하나가 있다. 서대문 정거장이 있던 자리를 표시한 것이다. 조선시대는 중국과의 관계가 현재 한·미관계만큼 중요했다. 한양에서 중국을 가기 위한 교통의 요지가 바로 서대문과 의주로였다. 중국 사신이 들어오던 영은문이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 때문에 서대문 정거장은 경인선 철도가 처음 개통됐을 때 시발역이 됐다. 역전에는 여행객을 위한 숙소가 있기 마련. 서대문 정거장 앞에도 정거장호텔(스테이션호텔)이 1901년 문을 열었다. 주인이 영국인 엠벌리에서 프랑스인 마르텡으로 바뀌면서 애스터하우스(Astor House)로 거듭났다. 전 해설사는 “정거장호텔 개업 직후 한 미국인 사진작가가 호텔을 방문해 찍은 사진을 보면 기와집 뒤쪽에 우람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며 “그 나무가 지금 이화여자외국어고 정문 앞에 있는 회화나무”라고 말했다. “5분간 휴식하겠습니다.” 더위는 한풀 꺾였지만 늦더위 기승은 여전했다. 전 해설사는 지친 답사팀을 그늘지고 앉을 수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답사팀을 자리에 앉히고 전 해설사는 가방에서 파일을 열어들고 정거장호텔과 회화나무 사진을 보여주면서 조금 전 해설에 숨결을 불어넣었다. 물은 곧게 흐르지 않는다. 만초천도 구불구불 완만한 물길을 냈을 것이다. 그것은 그 위에 지어진 집들의 위치와 형태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소문아파트는 오목렌즈처럼 곡선 형태로 지어졌다. 물길을 복개하고 그 위에 지었기 때문이다. 마치 하얏트호텔을 축소해 놓은 느낌이다. 오목렌즈 같은 ‘서소문아파트’…하천 위에 지어져 대지지분 없어 “서소문아파트는 하천 위에 지어져서 대지지분이 없는 게 특징입니다.” 전 해설사는 “1972년 지어진 서소문아파트가 이런 이유로 재개발, 재건축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아파트 거래가 실종된 것은 물론이다. 2013년 서울시가 이 아파트를 서울미래유산으로 추진했으나 주민들이 동의하지 않아 무산됐다. 한 참석자는 “소유주 입장에서는 재산권이 제한되고 집값도 안 올라 펄쩍 뛰겠지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저로서는 지금의 모습이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홍제천 위에 지어진 유진상가, 도로 위에 올린 낙원상가 등이 대지지분이 없는 대표적인 대형 건물들이다. 신유년, 기해년, 병인년 박해 때 순교한 천주교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서소문 역사공원은 사방이 펜스로 둘러싸여 있어 잘 보이지 않는다. ‘서소문 밖 순교자 현양탑’이 있는 이곳은 바티칸 교황으로부터 천주교 성지로 인정받았다. 천주교인을 박해하기 이전 조선 초기부터 죄인을 참수하는 형장으로 사용됐던 곳이기도 하다. 전 해설사는 “서대문 일대는 조선시대 풍수설에 따라 숙살지기(肅殺之氣)가 있다고 해 죄인 처형장으로 이용되고 감옥이 설치되기도 했다”면서 “성삼문, 허균 등이 이 언저리에서 처형됐고 동학농민혁명 당시에는 김개남, 안교선, 최재호 등이 효시된 곳”이라고 말했다. 전 해설사의 해설을 듣는 표정들이 편치 않다. 그리 오래지 않았던 시대에 단지 추구하는 바가 다르다는 이유로 무참히 참수당한 이들이 있었던 참혹한 역사 때문일 것이다. 90년 역사 지닌 ‘염천교 구두거리’…50년대부터 1층 상점·2층 공장의 형태 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염천교 고가도로 한편은 수제화를 만드는 구두거리다. 전 해설사는 “이른바 ‘염천교 구두거리’로, 일제강점기부터 형성된 90여년 역사를 가진 구두 전문 거리”라며 “한국 구두산업의 산 역사로서 보존할 가치가 있어서 미래유산에 지정됐다”고 설명했다. 이곳은 1925년 경성역이 생기고 피혁 밀거래가 이뤄지면서 자연스레 구두점포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에는 미군 중고 전투화를 수선하고 개조하는 점포들이 생겨나다가 1950년대부터 1층은 상점, 2층은 공장 형태의 구두거리가 형성됐다. 2000년대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들다가 서울역 일대 재개발 계획과 맞물려 변화를 맞을 전망이다. 답사팀 일원인 최일원(63)씨가 “나도 저곳에서 옛날에 구두를 사 신은 적이 있다”며 “싸다고 다 비지떡이지 않고 내구성이 좋아 오래 신었다”고 말했다. 드디어 서울역 광장에 도착했다. 이번 답사의 종착역이자 해산지다. 일제강점기 사이토 총독 저격사건, 1980년도 서울의 봄, 1987년 6·26국민평화대행진 등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배태한 공간이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서울시내에서 가장 교통이 혼잡했던 서울역 주변 교통을 완화하기 위해 1970년 8월15일 완공한 고가차도다. 1970년 5월 마포대교 완공과 함께 퇴계로와 만리재, 마포대교를 잇는 고가도로로 개설됐다. 노후화에 따른 안전 문제로 지난해 12월 폐쇄됐다. 서울시는 뉴욕 고가 철도를 공원으로 재생한 ‘하이 라인 파크’(High line Park)를 벤치마킹해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화하고 있다. 답사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이경수(53)씨는 “평소 주말답사를 취미로 삼고 안 다녀본 데가 거의 없을 정도로 아내와 함께 다닌다”며 “서울미래유산에 대한 사전 정보가 거의 없었는데 관심의 영역을 넓혀줘서 고마운 프로그램”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길섶에서] 공세리/서동철 논설위원

    자동차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는 공세리(貢稅里)였다.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세금으로 걷은 곡식을 도성으로 나르기 위한 조창(漕倉)이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공세곶창(貢稅串倉)이라 했다. 조창으로 역사가 무르익다 보니 입에 붙은 이름일 것이다. 고려시대에는 하양창(河陽倉)이라고 불렀다. 아산만 방조제가 끝나가는데 내비게이션의 젊은 여성은 바다 쪽이 아니라 자꾸 언덕으로 가라 한다. 그렇게 이리저리 시키는 대로 따라가자 저 앞에 성당이 하나 나타난다. 한국에서 첫손에 꼽을 만큼 아름다운 성당으로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나온다는 얘기는 벌써 들었다. 그런데 내 목적지인 조창터는 어딘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순교의 역사도 담겼다는 공세리 성당은 탐방객으로 넘쳐났다. 성지순례 길에 찾은 천주교 신자뿐만이 아닌 듯했다. 유서 깊은 절만 사람이 많은 줄 알았더니 성당도 역사가 깊어지면서 다르지 않았다. 성당은 조창이 폐지된 자리에 지은 것이라 했다. 간척 사업으로 지금은 바닷가였다는 사실을 짐작조차 어렵다. 의미 있는 역사의 중첩(重疊), 공세리에 가면 확인할 수 있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북촌의 기와 물결 아래 근대의료·독립史 숨결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북촌의 기와 물결 아래 근대의료·독립史 숨결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시가 2012년부터 보존정책을 펼치면서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서울시는 미래유산 보존정책을 통해 소유자와 시민들이 문화유산이 갖고 있는 고유의 가치에 눈을 뜨고, 스스로 가꿔나가는 일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기존의 문화유산 보존정책에 시민들의 자발적 역량을 더하자는 취지다. 이런 취지를 앞세워 2013년 284건, 2014년 53건, 지난해 45건의 미래유산을 소유자(관리자)의 동의를 얻어 선정했다. 서울시는 미래유산을 시민들과 공유하기 위해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공동주관으로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매주 토요일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를 확인하고 참가신청을 할 수 있다. “어? 여기 뒀던 플래카드 가방 못 봤어요?” 여섯 번째 서울미래유산 탐방일인 지난 8월 20일 집결 장소인 3호선 안국역 근처 서울노인복지센터 간판 옆에 뒀던 행사 플래카드 가방이 통째로 없어졌다고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가 중얼거렸다. 모임에 대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시설관리팀에 잠시 다녀왔더니 그새 사라진 것이다. 시설관리과 직원이 난감해하면서 찾아보겠다며 안으로 들어갔다. 잃어버린 가방을 쉽게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센터는 넓었고 어르신도 많았다. 시계 초침은 야속하게 답사 시작 시간인 오전 10시를 향해 지체없이 째깍거리며 돌아갔다. 답사 시작 3분 전 시설과 직원이 플래카드 가방을 들고 뛰어왔다. 잃어버린 돈을 되찾은 것만큼 기뻤다. ‘10시 정시 시작’ 전통을 깨지 않아서 무엇보다 다행이었다. 한 어르신이 주인을 찾아주기 위해 가방을 들고 들어간 것으로 해프닝은 마무리됐다. 이날 행사는 배건욱(45) 서울미래유산 해설사의 해설로 진행됐다. 옛 통계청 건물 ‘노인복지센터’…격자 패턴 등 건축가 이희태식 모더니즘 ‘발 담근 김에 멱 감는다’고 시설관리팀 직원에게 건물 외벽에 붙어 있는 ‘서울미래유산’ 현판 앞에서 사진 한 컷을 부탁했다. 서울노인복지센터는 1961년 준공돼 통계청으로 사용되어 온 유서 깊은 건물로 2014년에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이 서울시로부터 위탁을 받아 서울노인복지센터로 운영하고 있다. 하루 2000여명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1500여명이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손꼽히는 대규모 사회복지 시설이다. 시설관리팀 박충식씨는 “내부는 전면 리모델링해 옛 모습이 남아 있지 않다”며 “외부의 적벽돌, 머릿돌에서 그나마 옛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수관에 가려진 머릿돌에는 ‘준공 단기 4293년 11월 1일’, 1961년에 지어졌다는 표식이 뚜렷하다. 우수관을 꺾어서 머릿돌이 잘 보이게 만들면 명물이 될 만도 하단 생각이 들었다. 배 해설사는 “건축가 이희태의 모더니즘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표작으로 격자형 패턴의 디자인이 차양창과 함께 모던한 감각을 연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대그룹 계동 사옥 앞에는 굴뚝처럼 생긴 석조물이 있다. 관상감 관천대다. 조선시대 천문관측대로 사용됐다. 원래 옛 휘문중고 자리에 있던 것을 1984년 가을 지금의 자리에 복원했다. 이 관천대는 경주의 신라 첨성대, 개성 만월대의 고려 첨성대, 서울의 창경궁 관천대 등과 함께 우리나라 천문관측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사적 제296호로 지정돼 있다. 김기도 에스이앤티소프트 대표는 “그동안 지나다니면서 도대체 뭐하는 구조물일까 궁금해만 했지 적극적으로 알아보지는 않았다”면서 “천체 망원경도 없던 그 옛날에 이런 시설에서 하늘을 보고 천문을 읽었다니 참 신기하다”고 말했다. 첫 양방병원 ‘제중원’ 표지석…백인제 가옥 등 근대의학 태동지 북촌 현대 계동 사옥 앞에는 ‘제중원’터 표지석이 있다. 헌법재판소 안에 있는 표지석 자리는 제중원이 처음 세워졌던 곳이고 훗날 이곳으로 옮겨졌다. 제중원은 고종이 1885년 미 공사관 공의(公醫)인 알렌의 건의를 받아 설립한 양방 병원이다. 알렌은 1884년 갑신정변 과정에서 부상을 입은 민영익을 치료하면서 궁중의 전의(典醫)로 발탁됐다. 실록에는 고종이 혜민서와 활인서를 대신할 의료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정부의 건의를 받아들여 설치를 허락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면에는 알렌이 고종에게 서양의학의 보급과 서양식 의료기관의 설립을 건의해 제중원 설립을 이끌었던 사연이 숨어있다. 그러고 보면 북촌 지역은 우리나라 근대의학의 태동지다. 이날 답사에 참가한 김치중 한국일보 의학전문기자는 “연대세브란스 병원의 모태인 제중원, 1900년대 초기 우리나라 콜레라 방역대책을 세워 근대의학 도입에 공헌한 독일인 의사 리하르트 뷘시의 병원,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가옥 등 북촌 지역은 근대의학의 의향(醫香)이 짙은 곳”이라고 설명했다. 북촌팔경 중 한 곳인 북촌1경을 가기 직전 여운형 집터 표지석이 있다. 정확한 위치는 응암감자탕과 현대그룹 건물 사잇길 끝까지 가서 우회전한 뒤 안동칼국수 맞은편이다. 몽양 여운형은 우리나라 해방 정국에서 빼놓을 수 없는 민족주의 진영의 인물이다. 특히 1936년 조선중앙일보 사장 재직 시 손기정 사진에 있던 일장기를 말소한 사건의 주역이었고 광복 직후 건국준비위원회를 결성하는 등 해방 전후 공간에서 역사의 한가운데 서 있었다. 배 해설사는 “일장기 말소사건은 조선중앙일보와 동아일보가 1936년 하계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사진에서 일본 국기를 삭제해 보도하자 이를 조선총독부가 문제 삼아서 생긴 사건”이라며 “당시 조선중앙일보는 인쇄기 품질이 좋은 편이 아니어서 총독부가 알아차리지 못해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인쇄품질이 좋았던 동아일보가 검열에 걸리면서 결국 전모가 밝혀져 두 신문 모두 정간되고 여운형도 사퇴하고 만다. 조선중앙일보가 있던 건물은 현재 NH농협 종로지점으로 서울미래유산이기도 하다. 배 해설사는 답사단을 대동세무고 교정으로 이끌었다. 대동세무고는 김만수란 사람이 1925년 전국 인력거꾼의 자녀 교육을 위해 설립한 대동학원이 전신이다. 건학이념은 ‘불학위빈’(不學謂貧)이다. ‘배움은 곧 가난을 벗어나는 길이요, 배워야만 민족독립에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배 해설사는 “대동학원 설립은 일제강점기에 경제·교육·문화 면에서 민족 역량을 배양하고 민족 생존권을 수호하기 위한 지사들의 뜻있는 결합이었다”며 “서민들의 자구적 노력의 결정체란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배 해설사가 답사단을 대동세무고로 이끈 진짜 이유는 옆집인 인촌 김성수의 옛집을 보여 주기 위해서다. 독립 투사들 모였던 인촌의 집…지금은 굳게 닫혀 ‘단절된 유산’ 느낌만 김성수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의거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됐다. 3·1운동에도 참여했던 그가 1940년대에 학도지원병을 고무하고 징병제 참여를 독려하는 글을 매일신보 같은 매체에 실었다. 김성수는 이 집에서 1918년부터 1955년까지 살았다. 현재는 인촌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시는 ‘2·8 독립선언 준비, 3·1운동의 초기 준비 단계 등에서 항일 독립투사들이 모인 밀회 장소이자 중앙고보, 보성전문, 동아일보 설립을 구상하는 등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배후 지원, 민족 교육, 민족문화의 보급을 위해 노력했던 장소로서 보존 가치가 있다’며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그런데 서울미래유산이면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로 관리되고 있는 이 집 대문은 굳게 잠겨 있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 명의로 대문 옆에 ‘이곳은 개방된 관광구역이 아닙니다’란 안내문을 커다랗게 써 붙여 놨다. 서울미래유산은 서울시민 공통의 기억이어야 하는데, 닫힌 대문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굳게 닫힌 대문이 소통의 단절을 의미하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답사단은 만해 한용운이 불교잡지 ‘유심’을 발행한 유심사터를 지나 북촌 주민들의 용수원이었던 ‘석정보름우물‘에 들러 이곳의 역사를 전해 들었다. 옆에 아주머니 세 분이 모여서 두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살고 있는 우리가 이곳 역사를 가장 잘 알지. 우리한테 물어봐야지.” 맞는 말씀이다. 원래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분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하는 게 맞다. 문제는 그런 분을 찾아서 앞장세우는 것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 북촌팔경 핵심 ‘한옥마을’…관광객들 ‘북적’ 에티켓 ‘기본’ 본격적인 북촌 한옥마을로 들어서자 집집마다 대문에 ‘조용히 해 달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가회동 31 일대는 북촌 한옥마을의 메인 골목인 데다 북촌팔경 중 한 곳이라서 관광객이 늘 북적인다. 특히 주말에 많이 몰리는 관광객들로 인해 주민들은 휴식에 방해를 받고 있다. 안내문은 관광객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는 주민들의 고육지책인 것이다. 가회동 주민들의 성숙한 시민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한 무리의 외국인들이 안내문이 신기한 듯 사진을 연신 찍어대고 있다. 북촌 한옥마을 일대가 서울미래유산이다. 배 해설사는 “다양한 문화재와 역사적 의미를 담고 있는 다채로운 공간과 전통가옥인 한옥들이 독특한 경관을 형성하고 있어서 보존 가치가 높은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답사단은 백병원 설립자인 백인제 가옥에 들러 땀을 식히고 서울미래유산인 돈미약국을 거쳐 헌법재판소로 향했다. 헌법재판소는 1993년 지어져 건축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헌법수호의 최고기관으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 터는 조선말 좌의정을 지냈던 박규수 선생 저택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종합병원인 제중원이 있던 장소다. 최근에는 헌재 도서관 증축 부지에서 조선 영조의 막내딸 화길옹주(1754∼1772) 집터가 발견됐다. 이곳은 구한말 개화파 민영익의 집, 일제강점기 군국기무를 총괄하는 통리기무아문 자리이기도 하다. 배 해설사는 “사대문 안은 조금만 파내려 가면 거의 모든 곳에서 유구가 발견된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문화재청은 이를 인근으로 수평 이동해 보존하기로 했다. 답사에 참가한 박수현(39)씨는 “유물이 발견되면 공사를 중단하는 게 시민 눈높이”라며 “헌법기관이 법을 어기며 무리하게 공사를 강행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답사단은 탐방 시작 이후 처음으로 종로경찰서 옆 한식집 ‘금수저’에서 경후식(景後食)을 했다. 성준경(48)씨 부부가 막걸리를 샀다. 북촌답사가 운치 있게 마무리됐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정치 뒷담화] 우리 결심했어요… 정치인 수염은 정치다

    [정치 뒷담화] 우리 결심했어요… 정치인 수염은 정치다

    정치의 계절이 다가왔습니다. 19대 대통령선거일(2017년 12월 20일)까지 475일이나 남았지만 벌써 잠룡들의 비공식 대권 출사표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본격 대선레이스가 시작되면 여의도에는 ‘시대정신’으로 통칭되는 담론들이 넘쳐 날 겁니다. 여권과 야권 혹은 여야를 넘나드는 ‘합종연횡’도 시작될 겁니다. 어느 때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19대 대선을 앞두고 서울신문은 기존 정치 콘텐츠와는 조금 다른 접근을 해 보려 합니다. 정치인의 말과 행동의 ‘속살’에 주목하겠습니다. 요동치는 대선 정국의 뒷얘기를 친절하게 전하겠습니다. 팩트는 놓치지 않되 재미를 불어넣겠습니다. ‘진짜 정치’를 얘기해 보겠습니다. “죄지은 게 많은 것 같아서 수행 차원에서 수염을 안 깎고 있다.” 지난달 26일 국회에 나타난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의 수염은 덥수룩하게 자라 있었다. 그가 면도를 하지 않은 건 8월 초 전남 진도 팽목항부터 민생탐방을 다니면서다. 평소의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무성 대장)보다는 ‘털보 아저씨’에 가까웠다. 염색을 하지 않아 희끗희끗한 머리와 허름한 체크 남방 차림으로 방방곡곡을 누비는가 하면 러닝셔츠 차림으로 쪼그리고 앉아 직접 속옷 빨래를 하는 사진도 공개했다. 같은 기간 수염을 깎지 않은 또 한 사람이 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네팔에 머물렀던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다. 출국길의 문 전 대표는 푸른색 셔츠에 주황색 운동화를 신은 편안한 차림으로 인천공항에 나타났다. 연예인 못지않은 멀끔한 ‘공항 패션’은 화제가 됐다. 하지만 네팔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내내 면도를 하지 않아 턱 밑엔 흰 수염이 제법 자랐다. 부탄 총리를 만났을 때도 속세를 떠난 도인과 같은 모습이었다. ●서민적 모습·소탈함 부각하는 ‘이미지 정치’ 언제부터인가 대선 주자들에게 수염을 기르는 행위는 한번쯤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처럼 자리잡았다. 수염은 서민적이고 소탈한 이미지를 부각시킬 수 있는 ‘이미지 정치’의 대표 사례다. 대선 주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묵직함을 잠시 내려놓고, 흔히 마주칠 수 있는 옆집 아저씨와 같이 친근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비단 우리 정치인들만의 행태는 아니다.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억울하게’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패한 앨 고어 전 부통령은 이듬해 정치활동을 재개하면서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나타나 화제를 모았다. 패인으로 꼽혔던 하버드 출신의 ‘귀족정치인’ 이미지를 털어버리려 했던 것이다. 정연아 이미지테크연구소 대표는 “수염을 기르는 행위는 정치인들의 속성”이라며 “서민 이미지를 보여 주고 싶을 때 나타나는 상투적인 행위”라고 말했다. 허은아 한국이미지전략연구소장은 “무엇인가에 너무 몰두해 속세에 신경쓸 시간이 없었다는 점을 부각시키려고 할 때 정치인들은 수염을 기른다”고 했다. 앞서 더민주 손학규 전 상임고문은 2006년 ‘100일 민심대장정’과 이듬해 ‘2차 민심대장정’ 기간 수염을 길렀다. 당시 탄광에서 석탄가루를 뒤집어쓰고 땀과 수염이 뒤범벅된 채 찍힌 사진을 놓고 혹자는 ‘흑역사’라고, 다른 한편에선 ‘의도된 연출’이라고 평가했다. 수염은 고뇌에 빠진 정치인의 상징이기도 하다. 새누리당 이주영 의원은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인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이후 130여일간 진도에 머물며 수염을 깎지 않았다. 그의 수염은 참회의 의미로 해석됐다. ‘수염의 정치학’에는 득실이 공존한다. 허 소장은 “일단 언론에 자주 노출돼 인지도를 높여야 하는 정치인들은 시각적 효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인이 수염을 기른 채 공식 석상에 등장하면 플래시 세례가 쏟아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허 소장은 또한 “대선 출마 선언과 같은 중대 발표를 할 때 자신의 정치적 메시지를 대중에게 각인시키기에 상당한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실제 정치인들이 덥수룩한 수염을 깎고 공식 석상에 나타났을 때에는 ‘이 사람이 고심 끝에 결심을 했구나’라는 느낌을 준다. 민생 탐방을 마친 김무성 전 대표는 국회에서 ‘격차해소 경제교실’을 여는 등 본격적인 행보를 시작하기 전 수염을 깎았다. 문 전 대표도 네팔에서 기른 수염을 모두 정리한 채 귀국길에 올랐다. 두 사람 모두 대선 행보를 본격화하기에 앞서 마음가짐을 단단히 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진정성 전달 안 되면 ‘ 정치쇼’ 오해 부를 수도 물론 정치인이 수염을 기르거나 깎는 행위만으로 의도한 메시지가 오롯이 대중에게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진정성 있는 변화가 동반되지 않는다면 자칫 ‘쇼’나 ‘코스프레’라는 오해를 사 비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장은 “정치인들은 연례행사처럼 한 번씩은 수염을 기르는 것 같다”면서 “그렇지만 수염을 기른 정치인 치고 지지율이 오른 경우는 드물다”고 지적했다. 강 소장은 “이미지 정치를 통해 지지율이 올랐다면 국민도 진정성을 느낀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국 일종의 ‘코스프레’로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허 소장도 “정치인들이 ‘쇼한다’는 느낌을 지우려면 수염을 깎은 이후에도 진정성 있는 행보를 보여 줘야 한다”면서 “단순히 외모적으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했다. 수염을 이용한 이미지 정치에 성공한 사례로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꼽을 수 있다. 박 시장은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과의 후보 단일화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장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채 나타났다. 지리산으로 백두대간 종주를 떠났다가 당초 일정보다 앞당겨 귀경한 터였다. 당시 5%에 불과했던 박 시장의 지지율은 당시 안 의원의 양보로 50%대로 단숨에 뛰어올랐다. 안 의원과의 단일화 덕을 톡톡히 봤지만 박 시장의 서민적인 이미지와 ‘털북숭이’ 같은 모습이 맞아떨어져 순식간에 시너지를 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정 소장은 “자신이 본래 지닌 이미지 중 장점만을 뽑아내 재포장하는 게 이미지 메이킹의 핵심”이라면서 “본질은 80%의 비중으로 두고 나머지 20%는 개성이나 매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박 시장은 본래 친숙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수염이 잘 어울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도 최근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권 경쟁 과정에서 ‘밀짚모자’와 ‘잠바떼기’로 이미지 정치의 효과를 톡톡히 누린 경우다. 정 대표는 “이 대표 역시 농부처럼 밀짚모자를 쓰고 땡볕을 누비며 서민적인 이미지를 부각시켰는데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고 했다. ●추미애의 ‘노란옷’ 등 女정치인은 패션으로 어필 남성 정치인이 수염으로 정치적 메시지를 표현한다면 여성 정치인은 헤어 스타일이나 패션, 액세서리로 이미지 정치를 구현한다. 더민주 추미애 대표는 전대 과정에서 유독 노란색 재킷을 많이 입었다. 다른 경쟁 후보에 비해 화사한 옷을 입어 눈길을 끌기 위한 일종의 ‘전략’이었다. 동시에 노란색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징색이기도 하다. 노 전 대통령의 탄핵에 동참했다는 아킬레스건을 가진 추 대표로선 노란색 재킷을 입어 당내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 성향 대의원과 권리당원들을 향해 구애의 손짓을 내민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19대 국회 당시 통합진보당 김재연 의원 역시 ‘패션’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례로 꼽을 수 있다. 그는 19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당의 상징색인 보라색 미니스커트를 입고 하이힐을 신고 등장했다. 당시 비례대표 경선 부정 논란으로 거세졌던 사퇴 압박을 딛고 당당하게 ‘마이 웨이’를 걷겠다는 의지를 패션을 통해 나타낸 것이다. 미국 클린턴 정부 당시 국무장관을 지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항상 왼쪽 가슴에 브로치를 착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브로치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곤 했는데, 2000년 평양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날 때는 의도적으로 성조기 브로치를 꽂았다. 허 소장은 “강하고 굳센 이미지를 가진 여성 정치인은 눈물을 흘리는 등의 몸짓 하나로도 시선을 끌 수 있다”고 했다. viviana49@seoul.co.kr
  • 野는 잠깨는 룡 vs 與는 잠덜깬 룡

    野는 잠깨는 룡 vs 與는 잠덜깬 룡

    문재인 “정치 미래 위해 환영” 손학규, 오늘 지지자 모임 촉각 여권 잠룡들은 ‘눈치게임’ 열중 야권 잠룡들의 ‘대권시계’가 빨라지고 있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1일 페이스북에 “김대중·노무현의 못다 이룬 역사를 완성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역사를 한 걸음 더 전진시켜 내겠다”라며 대권 도전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그동안 ‘불펜투수’를 자처했던 안 지사가 정치적 스승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70번째 생일을 맞아 등판을 선언한 셈이다. 친노(친노무현)라는 한 뿌리에서 나온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경쟁은 물론 궁극적으로 친노 진영의 분화도 불가피하게 됐다. 지난달 30일 김부겸 의원이 “대세론은 무난한 패배의 다른 이름”이라며 도전을 공식화한 데 이어 8·27 전당대회 이후 야권의 대선레이스가 일찌감치 불붙는 양상이다. 안 지사는 이날 “동교동도 친노도 뛰어넘을 것이다. 친문(친문재인)도 비문도 뛰어넘을 것이다. 고향도 지역도 뛰어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대중과 노무현은 통합을 이야기했다. 그분들을 사랑하는 일이 타인을 미워하는 일이 된다면 사랑하고 존경하는 자세도 아니며 스승을 뛰어넘어야 하는 후예의 자세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의 못다 이룬 역사를 완성하고자 노력할 것”이라면서 “그 역사를 이어받고 그 역사를 한 걸음 더 전진시켜 낼 것”이라고 글을 맺었다. 안 지사는 ‘김대중·노무현 정신의 적자(嫡子)’임을 강조해 왔다. 안 지사는 2일에는 야권 심장부인 광주를 방문, 특강을 갖는 등 보폭을 넓혀 갈 계획이다. 안 지사의 최측근 의원은 “안 지사의 이날 글은 그동안 고민해 온 대권 도전을 하느냐 마느냐에 대한 결론과 또 무엇을 위해 도전하는지 그 방향을 명확히 밝힌 것”이라면서 “앞으로 안 지사가 자신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말할 기회가 계속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지사와 김 의원의 대권 도전에 대해 최대 경쟁자인 문 전 대표는 측근인 김경수 의원을 통해 “환영한다.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반응했다. 한편 또 다른 야권 대선주자로 꼽히는 손학규 전 더민주 상임고문도 2일 광주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에서 주최하는 ‘손학규와 함께 저녁이 있는 빛고을 문화한마당’에 참석하며 정계 복귀를 가다듬을 계획이다. 손 전 고문은 지난달 28일 전남 강진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와 배석자 없이 회동을 가졌다. 반면 여권 잠룡들은 아직은 ‘눈치게임’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남경필 경기지사, 원희룡 제주지사는 현직에서 관망 중이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과 김문수 전 경기지사는 총선 낙선 이후 재활 중이다. 그나마 김무성·유승민 의원은 민생 탐방과 강연 정치로 시동을 걸었지만 아직 ‘몸풀기’ 단계다.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이영준 기자 apple@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한용운·백석·윤중식 족적 따라 걸으면 예향이 ‘물씬’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한용운·백석·윤중식 족적 따라 걸으면 예향이 ‘물씬’

    서울미래유산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할까. 미래유산은 서울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집단 기억이나 감성 대상이면 모두 가능하다. 문화유산의 가치를 이미 평가받은 문화재일 경우에는 미래유산에서 제외한다. 즉 국가나 서울시 지정문화재·등록문화재로 선정되지 않은 유·무형 자산 중에서 서울 시민이 공감하는 동시에 미래세대에 전승할 가치가 있는 게 주된 대상이다. 건축물, 장소, 경관, 인물은 물론 서울 생활문화를 이해하는 데 현저하게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선정 가능한 셈이다. 서울시는 이렇게 선정한 미래유산을 홍보하기 위해 서울신문·문화지평과 함께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오는 12월까지 매주 토요일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답사 코스 확인과 참가신청이 가능하다. 아침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13일 성북구 성북동 지역 답사를 위해 모인 시민들 사이에서 할머니 한 분이 딸의 부축을 받으며 인사를 건넸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서촌에서 오셨다는 주복희(74) 할머니다. 날씨가 무더워 걷기에 다소 무리가 아닌지 물으니 손사래를 치신다. “매일 인왕산 산책로를 두 시간가량 걷기 때문에 이 정도는 문제없어요.” 맑은 눈매의 주 할머니 곁에서 손을 꼭 붙들고 있는 딸 이수영(46)씨도 괜찮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답사는 이씨가 신청해서 어머니를 모시고 나왔다. 일흔넷 할머니가 답사를 나오는 경우가 흔치 않았기에 사연이 있을 거라 짐작됐다. 나중에 물어보기로 마음먹고 문향(文香)의 거리 성북동 답사를 시작했다. 성북동 답사 코스는 시인 백석, 조지훈, 정지용, 이은상, 소설가 이태준, 이효석 등 근현대 문학의 기라성 같은 문인들의 족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곳이다. 또 만해 한용운, 혜곡 최순우, 법정 스님 등 근현대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들이 이웃과 살 비비며 살았던 집터를 둘러볼 수 있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미술가들의 집도 대거 운집해 있어 예향(藝香)이 물씬 풍기는 지역이다. 성북동 쪽에는 높은 담을 가진 집들이 많다. 서울의 전통적인 부촌 1번지로 지금도 재벌 총수들과 권력층이 많이 산다. ‘힘 있는’(?) 구민이 많이 사는 관계로 성북구는 구청, 문화원을 중심으로 문화유산을 비교적 잘 보존한 지역으로 꼽힌다. 시인·소설가 문향 가득한 골목길문화유산 잘 보존된 지역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조금만 걸으면 가로공원이 나온다. 이곳에는 한·중 평화의 소녀상이 세워져 있다. 최헌수(50·대한약사회 국장)씨는 “항일운동가 만해 한용운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마주친, 분노의 주먹을 움켜쥔 맨발의 소녀상이 의미 있게 다가왔다”며 “최근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건국절 논란은 일제강점기 질곡을 살아온 선조들을 욕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로공원에서 첫 방문지인 최순우 옛집을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자 나폴레옹 과자점이 있다. 1968년 삼선교에서 문을 열었다가 2007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미래유산은 아니지만 반세기 동안 한성대입구 사거리를 지켰다. 1972년 설립된 한성대보다 형님뻘이다. 나폴레옹 과자점 옆 골목으로 들어가 영양탕으로 유명한 정주집을 지나서 뒤편으로 가면 서울미래유산인 성북동 ‘국시집’을 만날 수 있다. 1969년 개업해 같은 장소에서 2대째 이어오는 안동식 칼국수 전문 식당이다. 한우사골로 우려낸 육수가 일품인데 그 때문에 국수치곤 가격이 만만치 않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주 찾은 곳으로 유명하다. 안동식 성북동 ‘국시집’김영삼 前대통령이 자주 찾던 곳 다시 나폴레옹 과자점으로 와서 조금만 오르면 골목 안쪽에 ‘최순우 옛집’ 이정표가 보인다. 이 집은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선생이 1976년부터 1984년 68세의 일기로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개발 과정에서 사라질 뻔한 것을 시민운동단체인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시민문화유산기금을 모금해 사들여 ‘시민문화유산 제1호’로 관리하고 있다. 이날 해설을 맡은 한선영(46·여) 서울미래유산 해설사는 “관이 아닌 민간 차원의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한 해설사를 도와 진행을 맡은 박광규(55) 해설사는 “집의 담벼락만 봐도 시대적 특성을 알 수 있다”며 이동 중에 깨알 같은 팁을 준다. 건너편 골목길로 들어서면 시 ‘승무’로 유명한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집터가 나온다. 누군가 표지석을 세웠는데 승무를 하는 비구니 모습과 시가 적혀 있다. 경북 영양 출신인 조지훈에게 30년을 살다 간 성북동은 제2의 고향인 셈이다. 발길을 조금 옮기자 선잠단지가 나온다. 선잠단은 누에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조선 정종 2년(1400년)에 설치된 제단이다. 한 해설사는 “일제강점기인 1908년 이후 잠신의 신위는 사직단으로 옮겨지고 현재는 터만 남은 상태”라며 “발굴 작업으로 인해 문을 잠갔고 곳곳이 파헤쳐져 있어 어수선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들르진 않았지만 성북구에는 가옥 형태의 서울미래유산이 제법 된다. 특히 이들의 공통점은 화가들이 살았다는 것이다. 서양 미술 도입에 선구적 역할을 한 화가 윤중식이 생전에 거주했던 가옥, 1965년 이후 반세기 이상을 버텨 온 서세옥 화가의 가옥은 정통 동양화를 현대적으로 표현한 주택으로 보존가치를 인정받았다. 화가 변종하의 집은 시적인 정서에 한국적인 이미지 결합을 추구해 온 화가가 생전에 거주했던 곳으로 보존가치가 있다. 동소문 2가 일대 한옥밀집 지역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이 지역은 1936년 돈암지구 토지구획 정리사업을 통해 조성됐다. 우리나라 근대기 주택유형 가운데 하나로 보존가치가 있다. 서양 미술 도입 선도 윤중식 옛집화가들 집 미래유산 많아 답사단은 성북지역 최대 규모 서울미래유산인 길상사에 다다랐다. 한 해설사는 ‘길이 고운 절집’이라는 책자를 낼 정도로 사찰에 전문성이 있다. 이날도 길상사 구석구석에 담긴 내력과 이야기를 술술 잘도 풀어냈다. 길상사는 조계종 송광사의 말사로 1997년 창건됐다. 원래는 삼청각(서울미래유산), 오진암과 함께 서울 3대 요정으로 손꼽혔던 대원각이었다. 1951년 무렵 기생 김영한(필명 자야)씨가 일제강점기에 ‘청암장’이라 불리던 별장을 매입해 1980년대 말까지 대원각을 운영했다. 시인 백석과의 로맨스로 유명한 그에게는 후사가 없었다. 그래서 198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있던 법정 스님에게 대원각을 시주하려 했으나 거절당했다. 한 해설사는 “김영한은 10년간 끈질기게 법정 스님을 설득해 마침내 1997년 길상사를 세웠다”며 “요정이라는 세속의 때를 벗고 선방(禪房)으로 거룩하게 재탄생한 의미 있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뒤늦게 최돈선 시인이 길상사에서 합류했다. 지난 3월 한강 발원지 태백 검룡소에서 강화까지 3년 계획으로 걷는 ‘한강수야’ 대장정을 시작한 그다. 시인은 “한 달에 한 번 탐사에 나서는 한강수야 답사도 언젠가는 서울미래유산답사단과 만날 수 있겠다”며 “길상사는 법륜 스님 법문 때 와 봤는데 사부대중이 인산인해를 이뤘다”고 회고했다. 출발 때 인사를 나눴던 주 할머니를 찾았다. 길상사에 이르려면 제법 오르막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노구가 걱정됐기 때문이다. 저 멀리 경내를 찬찬히 뜯어보는 주 할머니를 발견했다. 그의 얼굴엔 만감이 교차한 표정이 가득하다. 심우장을 가기 전에 작심하고 주 할머니에게 길상사와 무슨 인연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던 주 할머니 입에선 뜻밖의 답이 나왔다. “실은 제가 김 보살님(김영한) 수양딸 노릇을 했지요. 10대 때부터 스물일곱까지 있으면서 김 보살님이 아프면 미음도 끓여 주고 식사도 챙겼어요.” 주 할머니에 따르면 조모와 김씨의 친분이 두터웠다. 이 때문에 자신과도 인연이 닿았고, 김씨가 자신을 수양딸로 삼아 “결혼하면 집도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주 할머니의 조모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두 집안은 자연스레 멀어졌다. 공증되지 않은 구두로 이뤄진 약속은 공중으로 휘발되고 말았지만, 주 할머니는 “김 보살님을 살아생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며 “지금 이 자리가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길상사는 주 할머니에게 기억의 박물관이자 추억의 마중물이다. 백석 연인 ‘자야’ 수양딸 답사 나와길상사 경내서 만감 교차 답사단은 상허 이태준이 월북 전까지 머물며 많은 작품을 집필했던 수연산방과 만해 한용운이 살았던 심우장을 둘러봤다. 심우장은 만해가 1933년 지은 것으로 조선총독부를 등지기 위해 일부러 북향으로 지었다고 한다. 심우장에서 나와 오른편 골목길을 따라 올라가면 북정마을과 서울 성곽길로 이어진다. 애초 이 일대와 삼청각까지 둘러볼 계획이었지만 날이 더워 코스를 줄였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복자사랑 피정의 집이다. 원래 명칭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피정의 집이다. 1953년 자생적으로 설립된 한국의 첫 방인 남자수도회다. 건축물은 1954년 짓기 시작해 1959년 완공된 근대 절충주의 양식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건물 외벽에 성모상을 비롯해 순교 성인상 등 13개 부조가 붙어 있다. 한 해설사는 “부조는 원형 보존을 위해 따로 보관하고 있고 모조품을 부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무상 잦은 해외출장으로 외국인에게 한국문화를 소개할 일이 많다는 김유림(40·넥스나인 대표)씨는 “그동안 무심히 지나쳤던 곳이 많았는데 우리 역사나 문화를 좀더 깊이 알았더라면 외국 손님들에게 설명을 잘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느낀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조선시대 한 문인의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그전과 같지 않다’는 말이 떠올랐다”며 “무더위 속에서 1만 5000보를 걸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고 아쉬워했다. 답사를 마친 후 답사단 일부는 서울미래유산인 장수마을을 지나 서울 성곽길을 걸어 낙산공원을 거쳐 동대문으로 내려갔다. 한성대 입구에서 동대문으로 넘어가는 길이 빠르게 느껴지는 게 놀라웠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세계 문화·자연유산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세계 문화·자연유산 찾아 떠나는 시간여행

    한국관광공사가 9월에 가볼 만한 6곳을 선정, 발표했다. ‘세계유산 다시 즐기기’가 테마다. 하나같이 역사와 생태가 잘 보존돼 산책이나 휴식을 위한 공간으로 손색없다. 조선 왕릉의 박물관 만나다 ●조선 왕릉 9기 온전하게 보존 - 경기 구리 동구릉 조선 왕릉은 조선왕조 500여년에 이르는 역사를 품고 있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온전하게 보존된 문화유산이다. 특히 경기 구리 동구릉(사적 193호)은 조선 왕릉 가운데 가장 많은 9기가 모여 있어, ‘조선 왕릉 박물관’이라 불린다. 태조의 건원릉부터 가장 늦게 조성된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수릉까지 9기 17위를 모셨다. 동구릉을 대표하는 능은 태조가 잠든 건원릉이다. 고향을 그리워한 태조를 위해 태종이 함흥 땅의 흙과 억새를 가져다가 덮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아차산 일대의 고구려대장간마을과 아차산고구려유적전시관, 구리타워와 구리시곤충생태관, 구리한강시민공원 등을 묶어 돌아볼 만하다. 구리시 문화예술과 (031)550-8353. 백제인이 꿈꾸던 미래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 전북 익산 백제역사유적지구 왕궁리 유적과 미륵사지 등 전북 익산의 백제역사유적지구는 문화적으로 융성한 백제 후기를 대표하는 유산이다. 공주와 부여에 가려져 있다가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함께 등재됐다. 금마면 익산 미륵사지는 가람 배치가 독특한 백제 최대 사찰 터이고,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은 백제 무왕 때 건립된 것으로 알려진 국내 최대 석탑이다. 미륵사지 석탑은 복원 작업 중이며, 복원 과정을 참관할 수 있다. 왕궁면 왕궁리 유적은 백제의 궁궐터로 추정되는 곳이다. 직사각형 왕궁 터에서 정원 유적, 금을 가공하던 공방 터 등이 발굴됐다. 이웃한 보석박물관, 두동교회 등을 함께 둘러보면 좋다. 익산시 문화관광과 (063)859-5797. 고인돌에서 채석장까지 ●거석문화 진수 - 전남 화순고인돌 유적 고인돌은 선사시대 무덤이다. 우리나라는 고인돌이 세계에서 가장 많다. 영국의 스톤헨지나 이스터 섬의 모아이상 등과 함께 세계 거석문화의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남 화순은 강화, 고창과 함께 2000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다. 1995년 발견돼 가장 늦게 모습을 드러냈지만, 산기슭에 분포해서 보전 상태가 양호하다.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보검재 5㎞ 구간에 있어 탐방 동선도 편리하다. 도곡면 효산리에서 진입하는 게 수월하나, 춘양면 대신리 고인돌발굴지보호각을 먼저 들르면 고인돌 문화를 이해하기 쉽다. 운주사, 적벽투어 등과 연계한 돌 문화 여행도 좋다. 화순고인돌유적 대신리 발굴지 (061)379-3907. 정조의 효심이 낳은 성곽의 꽃 ●우리 건축역사 독보적 건축물 - 경기 수원 화성 과학적이고 실용적으로 건축된 경기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우리나라 건축 역사에서 독보적인 건축물로 꼽히며, ‘성곽의 꽃’이라고 불릴 정도로 빼어난 모습을 보여준다. 2016년은 ‘수원 화성 방문의 해’로 볼거리와 체험 프로그램이 더욱 다양하다. 성곽을 따라 이어진 길이 운치 있고, 옛 성벽과 도심의 빌딩이 어우러진 경치도 볼 만하다. 정조가 화성 행차 중에 머문 화성행궁에서는 장용영 무사들이 날마다(월요일 제외) 무예24기 공연을 선보이며, 일요일에는 장용영 수위 의식이 진행된다. 수원화성박물관, 수원시립아이파크미술관, 나혜석거리 등도 묶어서 돌아보면 좋다. 수원문화재단 (031)290-3600. 문무왕 만나러 가는 ‘왕의 길’ ●신라를 새롭게 만나는 길 - 경북 경주 신문왕 호국행차길 신문왕이 아버지가 잠든 경북 경주 대왕암(문무대왕릉)을 찾아간 ‘신문왕 호국행차길’ 걷기는 신라를 새롭게 만나는 방법이다. 통일신라 격동의 역사와 만파식적 신화가 담겨 있다. 신문왕 행차는 토함산과 함월산 사이 수렛재를 넘어 천년 고찰 기림사에 이른다. 수렛재는 울창한 활엽수림이 장관이고, 용연폭포는 용의 전설을 품고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걷기는 기림사에서 끝나지만, 문무왕이 용이 되어 드나들던 감은사지를 거쳐 이견대와 대왕암까지 둘러보자.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진 양동마을에선 조선시대의 풍경과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경주시 관광컨벤션과 (054)779-6077~9. 화산이 빚어낸 시간 속으로 ●성산·오조 지질트레일 7㎞ - 제주 세계자연유산 제주도의 한라산과 성산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산방산과 용머리해안 등 12개 명소는 2010년 세계지질공원에 각각 등재됐다. 성산·오조 지질트레일은 세계자연유산이자 세계지질공원인 성산일출봉과 성산리, 오조리를 두루 지나는 도보 여행 코스다. 내수면을 따라 7㎞ 남짓 걷는다. 거문오름은 만장굴을 비롯해 여러 용암동굴을 만든 모체다. 예약자에 한해 탐방이 허용된다. 해설사와 함께 신비한 화산지형, 곶자왈 등을 돌아볼 수 있다. 용암동굴인 만장굴엔 용암 유선, 용암 선반, 7.6m짜리 용암 석주가 남아 있다. 제주관광공사 (064)740-6074,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 1800-2002.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제공
  • [新국토기행] 전쟁 상처 서린 한탄강, 이제 낭만 안고 흐르네

    [新국토기행] 전쟁 상처 서린 한탄강, 이제 낭만 안고 흐르네

    70㎞가 넘는 비무장지대(DMZ)를 접하는 강원 철원은 6·25전쟁의 아픈 상흔을 간직한 ‘평화의 고장’이다. 철의 삼각지, 노동당사, 제2땅굴 등 수많은 6·25전쟁 전후의 아픈 상처와 훼손되지 않은 천혜의 자연자원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고통의 역사를 딛고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유치와 경원선 남북 연결, 금강산선 복원 연결로 통일시대 대한민국의 중심 도시를 꿈꾼다. 9세기 후반 후삼국시대 태봉국의 도읍지였던 철원은 도성의 성곽 등 유적지와 함께 궁예 왕과 관련한 전설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화산지대로 이뤄진 현무암 단층의 한탄강 절경이 있고 우리나라 중부 제1의 곡창인 철원평야에서는 명품 오대쌀이 생산된다. 한탄강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이야기가 있는 문화생태탐방로 10선’에 선정된 한여울길이 있어 한탄강의 기암절벽과 철원평야의 황금 들녘을 감상하며 자전거 등 레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명소로 자리잡은 지도 오래다. 폭염이 막바지 기승을 부리지만 자연은 가을을 준비하고 있다. 전쟁과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철원으로 떠나 보자. [볼거리] ●백마고지 전투 등 6·25 격전지 ‘철의 삼각지’ 6·25전쟁사에 길이 남을 철의 삼각지는 북위 38도선 이북에 있는 철원, 김화, 평강지역을 잇는 삼각지대로 백마고지 전투 등 치열한 공방이 펼쳐졌던 곳이다. 문혜리에서 시작해 지경리, 청양리, 와수리를 잇는 이 지역은 전쟁 때 공산군이 군수물자를 보급하던 전략적 요충지였다. 전쟁으로 미8군이 이곳 일대 철원평야를 빼앗은 뒤 김일성이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통곡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60여년이 지난 지금도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총부리를 겨누고 있는 비무장지대로 남아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도는 곳이다. 2007년에는 중부전선 최북단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철원평화전망대가 들어섰다. 2층 전망대에서 휴전선 비무장지대를 비롯해 평강고원과 북한선전마을을 조망할 수 있다. 초정밀 망원경시설과 최첨단 기술로 제작된 지형 축소판이 있어 민족 분단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이다. 편안하고 안전한 관광객 수송 시스템인 모노레일을 운행, 관광객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육단리에 있는 승리전망대는 휴전선 155마일에서 가장 중앙에 있는 전망대로 북한군의 이동 모습은 물론 오성산이 정면으로 보이고, 금강산철도, 광삼평야, 아침리 마을 등 남북분단의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한국군 초병이 경계근무 중 발견한 제2땅굴 철원 제2땅굴은 한국군 초병이 경계근무 중 땅속에서 울리는 폭음을 듣고 발견한 땅굴이다. 시추 작업으로 땅굴 소재를 확인한 뒤 수십일간의 끈질긴 굴착 작업 끝에 1975년 3월 19일 한국군 지역에서는 두 번째로 북괴의 기습 남침용 지하 땅굴을 확인했다. 땅굴은 견고한 화강암층으로 지하 50~160m 지점에 놓여 있다. 땅굴의 길이는 총 3.5㎞에 이르고 군사 분계선 남쪽으로 1.1㎞까지 파내려 왔다. 규모는 높이 2m의 아치형 터널로 대규모 침투가 가능하도록 특수 설계됐다. 땅굴 내부에는 대규모 병력이 모일 수 있는 광장이 있고, 출구는 세 개로 갈라져 있다. 제2땅굴이 발견될 당시 수색하던 한국군 7명이 북한군에 의해 희생됐다. 이 땅굴을 이용하면 1시간에 3만여명의 무장병력이 이동할 수 있으며 탱크까지 통과할 수 있다. ●北공산독재 시절 주민 착취 악명 떨친 노동당사 광복 이후 북한이 공산독재 정권 강화와 주민 통제를 목적으로 건립한 건물이다. 이곳은 6·25전쟁 때까지 북한 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사용되며 주민들을 착취했다. 북한은 노동당사를 지을 때 성금이란 구실로 이당 백미 200가마씩을 착취했고 인력과 장비를 강제 동원했다. 특히 건물의 내부작업 때는 비밀유지를 위해 공산당원 이외에는 동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시멘트와 벽돌로 쌓은 3층 건물로 6·25전쟁 당시 주변 다른 건물들은 모두 파괴됐지만 유독 이 건물만 남아 있어 얼마나 튼튼하게 지어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공산치하 5년 동안 북한은 이곳에서 철원, 김화, 평강, 포천 일대를 관장하면서 양민 수탈과 애국인사들의 체포·고문·학살 등의 소름 끼치는 만행을 수없이 자행했다. 한번 이곳에 끌려 들어가면 살아 나오지 못했을 만큼 무자비한 살육이 저질러진 곳이기도 하다. ●기암괴석·주상절리… ‘지질 표본실’ 한탄강 주상절리는 용암이 굳어지면서 기둥 형태를 이룬 모양으로 한탄강과 대교천 현무암 협곡층에서 발견된다. 한탄강 유역은 한반도 제4기의 지질과 지형 발달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교천은 한탄강의 지류이지만 하상에 현무암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옛 한탄강 주류 하천이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정한다. 대교천이 한탄강으로 유입되는 부근의 기반암은 쥐라기의 화강암이다. 쥐라기는 중생대를 3기로 나눴을 때 2기에 해당하며 1억 8000여만년 전부터 1억 3500여만년까지 4500여만년간의 시기이다. 대교천 현무암 협곡의 폭은 25~40m이고 높이는 30여m에 이른다. 강바닥과 강 주변 절벽들은 화강암이 부정합으로 덮여 있어 제4기 사력층 또는 추가령 현무암의 부정합면, 계곡지대에서 관찰할 수 있는 용암류와 주상절리 등이 있다. 이런 이유로 한탄강 유역에서도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뤄 천연기념물 제436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조선시대 의적 임꺽정의 근거지였다는 고석정 동송읍 장흥리에 있는 고석정은 철원 팔경의 하나로 한탄강 중류에 있다. 일반적으로 강 중앙의 고석(孤石) 정자와 그 일대의 현무암계곡을 아울러 고석정이라 부른다. 조선시대 명종 때 임꺽정이라는 문무를 겸비한 천인이 산적 무리를 조직해 강 건너편에 석성을 쌓고 함경으로부터 조정에 상납되는 공물을 빼앗아 서민들에게 분배해 줬다는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지금도 강 중앙에 위치한 20m 높이의 거대한 기암봉에는 임꺽정이 은신했다는 자연 석실이 남아 있다. 강 중앙에 약 23m의 높이로 우뚝 솟은 고석바위와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을 바라보고 있으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기암절벽 아름다운 순담계곡 래프팅 명소 각광 순담계곡은 한탄강 물줄기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계곡으로 알려진 곳이다. 기기묘묘한 바위와 깎아내린 듯한 벼랑, 연못 등이 수없이 이어지고 물도 많을 뿐 아니라 계곡에는 보기 드문 천연 하얀 모래밭이 형성돼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연중 끊임없이 찾는다. 특히 계곡 뒤쪽으로는 래프팅 최적지인 뒷강이 있어 여름철 래프팅 동호인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됐다. 근래 들어 수려한 주변 경관과 급하지 않은 물살로 인해 주말을 이용해 새롭게 래프팅을 배우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계곡 주변에 전문강사들이 운영하는 스포츠숍들이 많이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철원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먹거리] ●한탄강 최상류 메기로 끓인 풍미 가득한 매운탕 한탄강 메기매운탕은 철원지역 향토음식 가운데 가장 인기가 높아 철원의 대표음식으로 꼽힌다. 맵지 않고 깊게 우려낸 국물 맛이 기본이다. 계피, 감초 등 한약재로 달인 물을 육수로 사용해 민물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흙냄새를 제거해 비린내가 없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다. 한탄강 최상류에서 잡아 올린 메기에 게를 넣고 끓여 맛을 돋우고 두부, 미나리, 무, 대파 등을 아낌없이 넣어 풍미가 가득해 다른 곳에서 쉽게 맛볼 수 있는 매운탕과 사뭇 다르다. 메기는 단백질 함량이 풍부하고 비타민도 많이 들어 있으며 특히 당뇨병이나 빈혈이 있는 사람들에게 좋다. ●두릅밥·버섯잡채… ‘농가맛집 대득봉’ 한상차림 철원 역사를 배경으로 해 신라 금성(김화) 태수의 딸 혜원 비구니가 궁예에게 바친 산채 상차림을 현대에 대득봉 지킴이가 ‘농가맛집 대득봉’ 상차림으로 재현했다. 농가맛집 대득봉의 대표 메뉴인 오대두릅밥은 철원 오대쌀과 대득봉 자락에서 재배한 다양한 식재료로 음식을 만든 한식 상차림이다. 밥은 황기 등 건강한 재료로 우린 물을 이용해 두릅을 얹혀 짓고, 오가피 장아찌류와 도라지 튀김, 더덕구이, 산목이 버섯잡채 등이 상차림으로 나온다. 몸에 활력을 공급해 주고 피로를 풀어 주며 항암작용과 혈당조절 등에 효과가 좋은 두릅은 산채의 제왕이라고 부를 만큼 건강한 식재료로 알려졌다. ●깨끗한 물과 고지대 신선한 바람이 키운 오대쌀 철원오대쌀은 휴전 이후 인적이 끊긴 DMZ에서 흘러드는 깨끗한 물과 해발 250m 고지대의 신선한 바람, 기름진 황토흙, 깨끗한 자연환경이 그대로 보존된 천혜의 무공해 청정지역에서 재배, 생산되고 있다. 이렇게 좋은 철원오대쌀을 주원료로 만든 철원오대쌀국수 포포면은 멸치맛과 매운맛 등 두 종류로 생산되며 쫄깃한 식감과 쌀을 재료로 한 웰빙 식품이다. 또 철원오대쌀의 맛을 이어갈 가공식품전문점 ‘모락모락’에서는 우리쌀과 농산물을 기호 식품화한 쌀찐빵, 쌀쿠기, 쌀마들렌, 쌀와플, 쌀머핀, 쌀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먹거리를 개발하고 있다. ●‘비타민·철분·칼슘의 여왕’ 철원산 파프리카 철원산 파프리카는 주야간 온도 차가 크며, 겨울이 춥고, 논을 밭으로 만든 깨끗한 토양의 환경에서 재배돼 색깔이 곱고 선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향이 좋고 단맛이 강해 다양한 요리 재료로 이용되고 있다. 비타민, 철분, 칼슘 등이 풍부해 암과 비염 예방에 효능이 있어 일본으로 전량 수출되는 철원의 특산품이다. ●민통선 샘통에서 생산한 국내 유일 물고추냉이 철원 최전방 민통선 안에 있는 샘통은 사시사철 수온이 13도를 유지하며 변화가 거의 없는 천연암반수 용출지역으로 이곳에서는 국내 유일 물고추냉이가 생산된다. 물고추냉이 잎과 줄기를 활용한 고추냉이 고추장, 장아찌, 미용비누, 탈취제 등을 생산, 판매하고 있다. 철원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근현대 유통 핵심지 종로5가…111년 패션 1번지 광장시장…상인정신 숨쉬는 방산·중부시장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근현대 유통 핵심지 종로5가…111년 패션 1번지 광장시장…상인정신 숨쉬는 방산·중부시장

    서울미래유산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미래유산의 유형은 문화적 인공물, 문화적 행위·이야기, 배경으로 구분된다. 문화적 인공물에는 토목구조물, 건축물과 같은 건조물, 그림, 조각, 공예품, 공산품 등이 포함된다. 문화적 행위·이야기는 의식이나 기술, 전통과 명성, 이야깃거리 같은 무형 유산을 의미한다. 배경은 문화적 인공물이나 문화적 행위, 이야기 등이 만들어지는 배경을 의미한다. 서울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특색 있는 장소나 경관이 포함된다. 미래유산 선정에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것은 ‘보존이 필요한 공통의 기억과 감성’이다. 서울시는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함께 미래유산에 대한 보존과 홍보를 위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앞으로 남은 답사 코스를 확인할 수 있고 참가 신청도 가능하다. “전국에 전통시장이 몇 곳인지 아시는 분?” 이희준(29) 전통시장해설사이자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질문을 던졌다. 답사에 나온 시민들은 어림짐작으로 답해 보지만 정답 근처도 못 갔다. “서울부터 제주까지 1398개의 전통시장이 있고 그중 330여개의 시장이 서울에 집중돼 있습니다. 시장의 역사를 거슬러 오르면 선사시대 제전시가 열렸다는 기록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시장은 인류 역사와 함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7월 23일 서울미래유산 탐방답사 네 번째 시간은 서울의 전통시장인 광장, 방산, 중부시장이 주인공이었다. 20대인 이 해설사는 전국 전통시장 798곳의 방문기록을 가진 ‘시장덕후’이다. 이 해설사는 MBC 생활정보프로그램 ‘생방송 오늘 저녁’에서 전국 전통시장을 소개하는 시장 전문가다. 얼마 전에는 구로시장 영프라자에서 참기름, 들기름을 파는 방앗간 ‘청춘주유소’를 개업한 청년창업가이기도 하다. 설명은 50대 아저씨처럼 구수하게 술술 풀어간다. 광장시장은 서울 전통시장 1호…동문 옆 신발점은 미래유산 지정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통시장은 어디일까요?” 이 해설사는 질문하기를 좋아한다. 이날도 답사 내내 다양한 질문으로 시민들을 긴장(?)시키면서 전통시장 매력에 푹 빠져들게 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12년(490년) 오늘날 경주 지역에 국가에서 직접 설치한 시장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백제 가요 ‘정읍사’에도 시장의 존재를 짐작게 하는 구절이 있다고 한다. 지하철 1호선 종로5가역 7번 출구에 모인 서울미래유산 탐방답사단은 이곳에서 시장의 역사에 대해 선행학습을 하고 시장답사에 나섰다. 시장답사라서 그런지 앞선 답사 때보다 중년 여성분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이 해설사의 설명이 거침없이 이어진다. “조선 초 1414년 경복궁 앞 시전에 무려 2827개 가게가 있었다는 기록이 ‘세종실록지리지 한성부조’에 남아 있는데 이를 운종가라 불렀습니다. 조선 후기 무렵에 지금 남대문시장 자리에는 ‘칠패시장’이, 동대문시장 자리에는 ‘이현시장’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운종가는 지금의 광화문과 종로1가 인근을 말하는데 조선 왕조가 허용한 유일한 공식 시장 ‘육의전’이 있던 곳이고 칠패시장이나 이현시장은 이른바 ‘난장’이다. 답사팀은 광장시장 동문을 통해 시장으로 들어갔다. 동문 입구 옆에는 상호명이 서울고무상사(프로월드컵)인 신발가게가 있다. 1955년 개업해 주인은 몇 번 바뀌었지만, 60년 동안 신발가게로 한자리를 지켜온 이유로 서울미래유산에 선정됐다. 광장시장은 이현시장 후신으로 1905년 한성부에 등록된 서울 공식 전통시장 제1호이면서 최초의 사설시장이다. 청계천 광교와 장교 사이에 있어서 광장(廣長)시장으로 불렸다. 1905년 7월에는 동대문시장으로 이름을 확정했다가 나중에는 ‘넓게 저장한다’는 의미의 광장(廣藏)으로 정해졌다. 서울미래유산은 아니지만 문화재적 가치는 그 이상이다. 답사팀은 광장시장의 광장(廣場)에 모였다. 이곳은 먹거리 구간을 지나 견과물 구간에서 좌회전해서 포목부로 들어서면 만날 수 있는 시장의 중심이다. 포목을 사러오지 않는 이상 이 공간을 접해 보기 힘들다. 답사단은 광장에 다다르자 놀랍다는 반응이다. 이경윤(55·나눔마켓 대표)씨는 “지금껏 광장시장 하면 빈대떡이나 육회 같은 먹거리만 떠올렸지 이런 곳이 있는 줄 미처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포목부를 지나면서 이 해설사가 “뭔가 이상한 간판이 있을 것”이라며 궁금증을 유발했다. 주변을 살피자 포목점 간판들 사이에 ‘장안백화점’이란 간판이 낯설다. 이 해설사는 “과거 백화점들이 별도 건물을 짓는 대신 상권이 발달돼 있는 시장에 ‘숍인숍’(가게 안에 또 다른 작은 가게를 운영하는 것) 형태로 들어온 흔적”이라며 “지금도 수원 남문시장(글로벌명품시장, 팔달문시장 주변 9개시장 연합) 중 하나인 영동시장에는 영동백화점이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이창섭(47·중소기업진흥공단 홍보실장)씨는 “전통시장 안에 백화점이 있었다는 것도, 그 백화점이 지금은 초라하게 변한 것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며 “예전의 화려함이나 생기는 잦아들었지만, 그럼에도 전통시장은 그 나름대로 멋이 있다”고 말했다. 성은도서 서울미래유산 후보감…예지동 시계골목 보존가치 높아 광장에서 나선형 계단을 올라가면 2층에도 포목상점과 한복점들이 즐비하다. 구석진 상가 몇 곳은 셔터가 내려져 있다. 이에 대해 이 해설사는 “주인들이 고령화되면서 가업 승계가 이뤄지지 않은 점포”라며 “저곳에 청년들이 들어와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책이 마련되면 좋겠다”고 아쉬워했다. 중앙직물부 2층에 가면 ‘성은도서’라는 세 평 남짓한 허름한 책방이 있다. 이곳은 40년 넘게 패션 디자이너와 관련 학과 학생들에게 수입 패션도서를 공급하고 있는 곳이다. 사장님은 “작고한 앙드레 김도 단골이었다”며 “유명 패션디자이너 중 이곳을 거쳐 가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2층 한쪽에는 저렴함을 자랑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입 구제상가도 있다. 이현주 국립중앙박물관 홍보전문관은 “시장 답사를 통해 아주 오래간만에 전통시장의 정을 느끼고 왔다”며 “광장시장의 떡볶이 먹으러 꼭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다음 답사지인 방산시장을 가기 위해 예지동 시계골목을 지났다. 이곳은 시간이 멈춘 듯 옛 풍경을 간직한 골목이다. 고급 손목시계를 고치기 위해 일부러 외국서 찾아오는 곳이다. 시계태엽을 직접 깎아 만드는 장인들이 아직도 활동 중이다. 이 해설사는 “대부분 시계공들과 장인들이 예지동을 벗어나 인근 세운상가와 전국 각 지역으로 흩어지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며 “세계 어느 장인보다도 월등히 우수한 이들의 숙련된 기술과 시계 골목의 역사는 보존해야 할 가치가 크다”고 강조했다. 방산시장은 1976년 9월 폐교된 방산국민학교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방산이라는 이름은 여러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청계천에서 떠내려온 부산물과 흙이 쌓여 있던 걸 퍼 올려 산처럼 쌓아 놓았다고 해서 가산 또는 방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분뇨가 많이 쌓이자 향기로 덮기 위해 꽃을 심은 데서 유래한다. 방산시장의 주력 상품은 얼마 전까지 초콜릿과 제과제빵 재료였다가 지금은 공교롭게도 향수와 디퓨저다. 방산시장 이름과 어울리는 품목이 자리잡은 셈이다. 방산시장을 둘러보다가 비교적 보존이 잘 된 적산가옥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또 하나의 재미다. 시장 인접에는 김치찌개가 유명한 은주정이란 밥집이 있다. 답사단은 이날 은주정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었다. 은주정은 문턱이 없어 이동장애를 가진 이경윤씨의 휠체어가 쉽게 들어갈 수 있었다. 광장시장·방산시장·중부시장…모두 후대를 위해 보존할 곳 답사단은 서울미래유산인 중부시장을 가기 위해 길을 건넜다. 이 시장은 1950년대 후반 남대문과 동대문 인근에서 건어물을 팔던 상인들이 모여 만든 시장이다. 개설 당시 이승만 전 대통령이 개소식에 참석할 정도로 시장 규모와 거래액이 상당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해설사가 답사단을 이끈 곳은 50년간 황태 등 건어물을 판매하는 서울상회다. 정문교 사장은 개성 있는 필체로 갖가지 교훈이 되는 글을 써서 점포 밖에 걸어 뒀다. ‘정직·정확·정성’이란 상훈(商訓)도 써붙여 놨다. 정 사장은 이날도 성경을 붓글씨로 필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정 사장은 “장사는 모름지기 신용이고 사람은 됨됨이가 중요하다”며 답사단에 교훈이 되는 이야기를 몇 마디 건넸다. 답사단이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중부시장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는 서쪽 끝이다. ‘오신 손님 친절하게 소비자를 보호합시다’라는 오래된 간판이 보이고 회랑이 있는 오래된 건물이 서 있다. 이 해설사는 “시장은 아침, 점심, 저녁이 다르고 어제와 오늘, 내일이 다른 것처럼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전통시장의 역사와 상인들의 이야기, 특화된 상품에 대해 듣는 것만으로도 시장이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마무리했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경남도 - LH 윈윈…소외계층 지원 등 사회공헌협약

    경남 진주혁신도시에 입주한 대표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남도와 손잡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공헌활동을 추진한다. LH와 경남도는 이를 위해 17일 진주시 경남도 서부청사에서 사회공헌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LH는 경남지역 경제·문화 활성화와 지역 상생에 필요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발굴해 추진하고 경남도는 행정 지원을 하기로 했다. LH는 지역사회에 필요한 특색 있고 참신한 공헌 활동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 6월 진주 본사 직원들을 상대로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공모에서 소방서와 함께하는 소외계층 단독주택 소방안전시설 설치, 공용화장실 비상벨 설치, 우범지역 벽화 그리기, 지역 인재 교육을 위한 중학생 국토 및 기업 탐방, 다문화가정 학생교육 지원 등의 사업을 선정했다. 오는 10월에는 저소득 가정 부부 합동결혼식을 LH 진주 본사에서 개최한다. 산간 오지 마을에 사는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 점심을 주는 밥차를 제작, 11월부터 운행할 예정이다. 연말에는 사랑의 김장 담그기를 해 사회복지시설과 어려운 이웃에 전달할 계획이다. LH는 지난해 5월 진주혁신도시로 이전한 뒤 저소득층 청소년 환자 지원을 위한 행복기금사업을 비롯해 에너지 취약계층 돕기 연탄 10만장 지원, 농촌주택 방한·방풍사업 등의 사회공헌활동을 해 왔다. 박상우 LH 사장은 “도와 협력해 지역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규일 경남 서부부지사는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과 손잡고 지역사회에 나눔 문화가 확산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진주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LH와 경남도, 지역상생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 약속

    LH와 경남도, 지역상생 위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 약속

    경남 진주혁신도시에 입주한 대표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남도와 손잡고 지역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공헌활동을 추진한다. LH와 경남도는 이를 위해 17일 진주시 경남도 서부청사에서 사회공헌 업무협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LH는 경남지역 경제·문화 활성화와 지역 상생에 필요한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발굴해 추진하고 경남도는 행정 지원을 하기로 했다. LH는 지역사회에 필요한 특색있고 참신한 공헌 활동을 발굴하기 위해 지난 6월 진주 본사 직원들을 상대로 아이디어를 공모했다. 공모에서 소방서와 함께하는 소외계층 단독주택 소방안전시설 설치, 공용화장실 비상벨 설치, 우범지역 벽화 그리기, 지역 인재 교육을 위한 중학생 국토 및 기업 탐방, 다문화가정 학생교육 지원 등의 사업을 선정했다. 오는 10월에는 저소득 가정 부부 합동결혼식을 LH 진주 본사에서 개최한다. 산간 오지 마을에 사는 독거노인 등 취약계층에 점심을 주는 밥차를 제작, 11월부터 운행할 예정이다. 연말에는 사랑의 김장 담그기를 해 사회복지시설과 어려운 이웃에 전달할 계획이다. LH는 지난해 5월 진주혁신도시로 이전한 뒤 저소득층 청소년 환자 지원을 위한 행복기금사업을 비롯해 에너지 취약계층 돕기 연탄 10만장 지원, 농촌주택 방한·방풍사업 등의 사회공헌활동을 해왔다. 박상우 LH 사장은 “도와 협력해 지역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고 주민들에게 필요한 사회공헌활동을 강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규일 경남 서부부지사는 “혁신도시로 이전한 공공기관과 손잡고 앞으로 다양한 사회공헌 사업을 추진해 지역사회에 나눔 문화가 확산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진주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남산 유린한 日 흔적·실향민 삶 담긴 해방촌, 근대부터 해방후까지… 겹겹이 쌓여 온 역사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남산 유린한 日 흔적·실향민 삶 담긴 해방촌, 근대부터 해방후까지… 겹겹이 쌓여 온 역사

    서울시 전역에는 372개의 미래유산이 지정돼 있다. 4대문 안과 성저십리(성 밖 4㎞ 이내)에 많이 분포해 있지만, 서울 사방에 고루 흩어져 있다. 미래유산은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서울의 근현대 문화유산 중에서 다음 세대에 전달할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자산을 의미한다. 서울 사람들이 근현대를 살아오면서 함께 만들어 온 공동의 기억과 감성이다. 서울시는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함께 기존 미래유산에 대한 보존과 홍보를 위해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오는 9월 10일 김성수 가옥, 북촌 한옥 밀집 지역, 헌법재판소 백송(박규수 집터) 등 서울미래유산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가는 ‘북촌길 탐방’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세 번째 시간은 명동에서 시작해 남산 옆구리를 타고 넘어 해방촌을 거쳐 숙대입구역에서 마무리했다. 이번 역사탐방의 핵심은 남산과 해방촌이다. 남산에는 한양공원비, 남산도서관 등 미래유산이 있다. 해방촌은 해방교회 근처인 용산구 신흥로 11나길 22 일대를 중심으로 집단거주 지역이 모두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108계단도 미래유산이다. 이 탐방 코스에서는 일제강점기, 미군정 등 해방전후사와 근대화의 흔적을 퇴적층처럼 볼 수 있는 재미가 쏠쏠하다. 이날 해설은 손안나 서울미래유산 해설사가 맡았다. 손 해설사는 “저는 ‘히스토’(Histo)라는 휴먼 벤처기업을 운영하며, 아이들과 답사를 하면서 역사 교육을 할 때 내재한 잠재력이 개발된다고 믿고 있다”고 말했다. 박광규 해설사는 답사 시작부터 끝까지 안전을 책임졌다. 서울시 미래유산보존위원회 위원인 권기봉 작가도 3차 답사에 동행했다. 권 작가는 ‘서울을 거닐면 사라져 가는 역사를 만나다’, ‘다시 서울을 걷다’ 등의 저서를 통해 서울의 과거에서 미래의 방향성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앞으로 틈틈이 답사단에 합류하겠다고도 했다. 비공식 해설사 한 명이 더 생긴 것처럼 든든하다. 권 작가는 “급격히 변해 가는 서울에서 ‘지금의 우리’는 아직 깊은 의미를 이해하기 힘들지라도 다음 세대들이 ‘지금 우리 시대의 치열했던 풍경’을 톺아보고 비전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유산을 발굴해 관심을 환기하기 위한 발걸음”이라고 함께한 취지를 설명했다. 답사단은 명동역 인근 작은 공원에서 모여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의 취지와 코스를 설명들은 뒤 출발했다. 일행은 30m 정도 걷다가 퍼시픽호텔 옆에 멈춰 섰다. 호텔 안에는 한영양복점이란 서울미래유산이 있다. 서울에는 4개의 양복점이 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중구에 있는 종로양복점, 해창양복점과 은평구에 있는 청기와양복점 등이다. 이곳은 서울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나 멋쟁이 ‘모던보이’들의 단골이었다. 한영양복점은 1932년 중구 남대문로1가 201번지에서 박정재라는 사람이 창업했다. 이 거리 500m 일대에서는 한국전쟁 이후부터 70년대 초 무렵까지 35개 업체가 성행했다. 한영양복점은 이후 몇 차례 주인이 바뀌다가 2011년 현 대표인 김길수씨가 지금 위치인 호텔 안에서 개업했다. 주인은 바뀌었으나 같은 상호로 같은 지역에서 오랫동안 운영한 이유로 미래유산에 선정됐다. 퍼시픽호텔 왼쪽, 행정구역상 도로명인 퇴계로 20길은 ‘재미로(路)’란 이름을 가지고 있다. 명동역에서 서울애니메이션센터까지 450m 길을 오래된 만화부터 최근 웹툰까지 주제로 꾸미면서 붙여진 것이다. 재미로를 거쳐 남산순환도로로 올라서면 그 유명한 남산케이블카가 나온다. 남산케이블카는 한국삭도공업주식회사가 1962년부터 운영하는 미래유산 시설이다. 남산케이블카를 지나면 도로변에 동그마니 커다란 비석 하나가 놓여 있다. 한자로 ‘漢陽公園’(한양공원)이라고 새겨져 있다. 이 한양공원은 1876년 강화도조약에 따른 개항 이후 서울에 사는 일본인들이 증가하면서 일본 거류민단이 1897년 현 숭의여자대 자리에 왜성대공원(倭城大公園)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이 일대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이 주둔했던 곳이란 명목을 내세웠는데 1908년에 토지를 대여받아 1910년 3월 개원했다. 일본 거류민단은 이 공원에 남산대신궁을 세웠다. 1918년 조선총독부가 조선신궁을 건설해 ‘경성신사’로 이름을 바꾸면서 한양공원은 역사에서 사라졌다. 경성신사는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이면 ‘남촌의 작은 일본 마을’처럼 보였다고 한다. 당시 이 풍경을 담은 엽서도 찍어 냈다. 이런 이유로 1980년대 이후 일본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았다. 한양공원 전면 글씨는 고종 황제의 어필인데 표석은 1912년에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일 강제 합병이 된 지 2년 뒤에 고종은 왜 하필 한양공원이라고 이름을 지었을까. 비석 뒷면에는 공원 조성에 기여한 사람들로 추정되는 명단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훼손돼 알아볼 수 없다. 탐방에 참여한 시민 신자용(33)씨가 “누가 왜 명단 부분을 쪼아서 훼손시켰냐”고 묻자 손 해설사는 “기부자 명단일 경우 친일 행적으로 드러날까 두려워서 당대나 후손이 한 짓이 아니겠느냐”고 답했다. 어머니와 함께 나온 대학생 왕규원(21)씨는 “한양공원비 뒷면이 깨져서 정확한 기록을 알 수 없는 부분이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 비석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가 2002년 케이블카 승강장 인근 풀숲에서 극적으로 발견됐다. 손 해설사는 “남산은 태조 이성계가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민족 정기의 중심 역할을 했다”며 “일본은 일제강점기 때 이러한 남산을 일본화하면서 훼손했다”고 설명했다. 한양공원비 건너편에는 지구촌민속교육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이 계단은 일명 ‘삼순이 계단’이다. TV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주인공을 맡았던 탤런트 현빈과 김선아가 키스하며 해피엔딩을 맺은 곳이다. 지구촌민속교육박물관은 1970년 육영재단이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회관이다. 머릿돌에는 ‘1970. 5. 5 육영수’라고 적혀 있다. 개관 3일 만에 문을 닫았는데 이유는 하루에 3만명이란 예상치 못한 입장객이 몰렸던 탓이다. 1974년에는 국립중앙도서관으로 전환했다가 지금은 서울시교육연구정보원과 지구촌민속교육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손 해설사는 “이 건물 앞 일대에는 조선시대 전통 제당인 국사당이 있었는데 일제가 조선신궁을 세우면서 인왕산으로 옮겼다”며 “이는 한마디로 조선 개국의 정신을 보여 주는 상징적 건물을 없애는 말살 정책의 일환이었다”고 설명했다. 조선신궁 터 앞에는 결연한 표정의 안중근 의사 동상이 자리 잡고 있다. 남산에는 경복궁이 내려다보인다는 이유로 일제가 조선신궁을 비롯해 경성호국신사, 왜성대총독부청사, 총독 관저 등을 지었다. 이들을 모두 제압하듯 안 의사의 동상이 서 있는 모습이 더 의연해 보이는 것은 이 장소가 지닌 의미 탓이다. 손 해설사가 돌발 퀴즈를 냈다. 의사(義士)와 열사(烈士),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차이가 무엇인지. 일상에서 쉽게 듣고 쓰는 말이지만 답을 아는 사람은 없다. 손 해설사는 “모두 일제에 항거한 것은 같지만, 의사는 무력으로, 열사는 비무장으로 대항한 인물을 뜻하고, 순국선열은 일제에 목숨을 잃은 분들이고, 애국지사는 자연사한 분들”이라고 정리했다. 남산순환도로를 걸어 내려오다 만나는 남산도서관은 시립도서관이다. 역시 미래유산이다. 1922년 10월 5일 명동에서 경성부립도서관으로 개관한 후 1964년 12월 31일 현재 건물이 신축돼 옮겨졌다. ‘동장 이봉천 기적비(記蹟碑)’가 해방촌으로 들어선 답사단을 가장 먼저 반겼다. 실향민이었던 그는 1955년 해방촌 초대 동장이 된 후 관가의 도움 없이 지역 기반시설을 확충했다. 주민들은 그의 공로를 기록하기 위해 기적비를 세웠다. 권 작가는 “해방촌은 한국전쟁 이후 가진 것 없이 남쪽으로 내려온 피란민들과 전쟁 중 사망한 군경의 처자식을 위한 보금자리였다는 점에서 ‘소수자를 위한 인큐베이터’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신흥시장에 들어서자 소설가 김치(44)씨는 “이곳이 아트마켓으로 탈바꿈하는 것은 좋은데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날까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일제가 남산을 유린하기 위해 만든 경성호국신사는 터를 정확하게 찾을 수 없다. 다만 신사에 오르내리기 위해 만들었을 108계단을 근거로 위치를 어림짐작하게 하고 있다. 108계단에는 2012년 해방촌 예술마을 사업이 시작되면서 벽화와 조형물이 설치됐지만, 지금은 관리가 안 돼 퇴색하고 있다. 서울시는 108계단을 1960~70년대 해방촌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장소라는 이유로 미래유산으로 지정했다. 후암동 쪽으로 들어서자 ‘성의사’란 단출한 2층 건물이 눈에 띈다. 1953년 개업한 가운 판매점이다. 주로 교회 성가대 가운을 취급한다. 좀더 내려가니 ‘T. 본 스테이크’라고 간판을 단 음식점 ‘황해’가 나왔다. 1973년 개업한 부대찌개·스테이크 전문점이다. 정순자 대표는 “이 동네 부대찌개, 스테이크 원조는 우리 집인데 돈 주고 TV 나가는 것이 싫어서 안 했더니 주변 다른 집이 원조로 둔갑했다”며 “서울미래유산 현판도 번거로워 안 했는데 이번 기회에 꼭 달아 달라”고 부탁했다. 서울시 관련 부서 공무원이 동행한 덕분에 조만간 현판이 설치될 전망이다. 손 해설사는 중화요리 식당으로 미래유산에 지정된 덕순루를 마지막으로 설명을 마쳤다. 답사 내내 내리던 비가 거짓말처럼 갰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화산학 교과서’ 수월봉 펼쳐보니… 겹겹이 쌓인 역사와 전설

    ‘화산학 교과서’ 수월봉 펼쳐보니… 겹겹이 쌓인 역사와 전설

    ‘화산섬 제주 탄생의 비밀을 풀어 보세요.’ 제주 올레길이 아름다운 제주의 속살을 보여 준다면 제주 지질 트레일은 화산섬 제주의 모든 것을 보여 준다. 1만 8000년 전 제주 서쪽 고산리 앞바다 땅속에서 올라온 마그마는 지하수와 바닷물이 만나면서 격렬하게 폭발했다. 폭발과 함께 솟구친 화산재들은 화산가스, 수증기와 뒤엉켜 쌓이고 쌓여 ‘화산학 교과서’라 불리는 수월봉이란 지질 명소를 탄생시켰다. ●9일간 화산활동 변화 한눈에 체험 수월봉은 높이 77m의 작은 언덕 형태의 오름(기생화산)으로 화산섬 제주를 대표하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명소.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에 깎이면서 화산체 대부분이 사라지고, 1.5㎞에 이르는 해안절벽이 병풍을 두르듯 남아 지금의 수월봉이 만들어졌다. 수월봉 화산재층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층리의 연속적인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세계적인 지질 명소로 손꼽힌다. 11일 제주시에 따르면 화산섬 제주의 비밀을 찾아가는 2016 지질 트레일 행사가 오는 13일부터 21일까지 제주시 한경면 수월봉 일대에서 펼쳐진다. 13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9일간 수월봉 엉알길, 당산봉, 차귀도 등 3개 코스에서 지질 트레일 걷기 행사가 열린다. 수월봉 코스는 해경 파출소에서 출발해 용암과 주상절리, 갱도 진지, 화산탄, 수월봉 정상, 한장동 엉앙길, 검은모래해변, 해녀의집으로 들어온다. 당산봉 코스는 거북바위에서 시작해 생이기정, 가마우지, 당산봉수까지다. 차귀도 코스는 자구내 포구, 차귀도 역사, 장군바위, 차귀도 등대, 차귀도 지질로 이어진다. ●엉알길 태평양전쟁 당시 갱도 흔적 4.6㎞ 수월봉 엉알길 코스의 수월봉 정상 절벽 아래 ‘엉알’은 화산재 지층이 가장 잘 발달한 곳이다. 엉알길은 벼랑·절벽 등을 뜻하는 제주어 ‘엉’과 아래쪽을 이르는 ‘알’이 합쳐진 말로 ‘벼랑 아래 있는 길’을 뜻한다. 엉알에는 화산 분출 당시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분출물이 쌓인 화산재 지층이 70m 두께로 기왓장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어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엉알길 코스에는 아픈 역사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진 일본군 갱도 진지는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이 상륙을 시도할 것에 대비해 갱도에서 바다로 직접 발진, 전함을 공격하는 자살 특공용 보트와 탄약 등이 보관돼 있었다. 수월봉에는 어린 남매의 애틋한 전설도 전해 온다. 병을 앓던 어머니를 보살피던 수월이와 녹고 남매에게 누군가 100가지 약초를 구해 어머니를 구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남매는 백방으로 약초를 캐러 다닌 끝에 99가지 약초를 구했으나 마지막 한 가지 오갈피를 구하지 못했다. 수월이는 수월봉 낭떠러지 절벽 아래 있는 오갈피를 발견하고 홀어머니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을 내려가다 떨어져 죽었다. 동생 녹고도 누이를 잃은 슬픔에 17일 동안 눈물을 흘리며 시름하다 죽고 만다. 녹고의 눈물은 절벽 곳곳에서 솟아나 샘물이 됐다. 전설 속 녹고의 눈물은 비가 오면 수월봉 해안절벽 화산재 지층 옆으로 흘러내린다. ●희귀식물 82종 서식 차귀도 천연기념물 3.2㎞에 이르는 당산봉 코스에는 거북바위와 당산봉 가마우지, 당산봉수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자구내 포구에서 2㎞ 떨어진 무인도인 차귀도에는 다양한 수목과 양치식물 등 82종의 식물이 서식,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 중이다. 차귀도에는 옛날 중국 송나라 사람 호종단이 제주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을 경계, 제주의 지맥과 수맥을 끊고 돌아가려 할 때 한라산의 수호신이 폭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켜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 해 차귀도(遮歸島)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수월봉 일대는 제주 올레 12코스(무릉리~수월봉~용수포구)와도 겹쳐 지질 트레일과 올레길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엉알길 입구~자구내 포구(1㎞)는 장애인도 편하게 올레길을 즐길 수 있는 제주 올레 휠체어 구간이다. 수월봉 인근의 고산리 선사유적지에는 8000~1만 2000년 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수렵채집 생활을 했고 발굴된 사냥도구, 토기 등의 유물은 국립제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제주지오’ 앱 통해 역사·생태 탐방 스마트폰으로 제주 세계지질공원을 즐길 수도 있다. ‘제주지오’ 모바일 앱은 세계지질공원 제주의 지질학적 특성과 경관, 마을의 역사·문화·생태 이야기 등 다양한 문화자원을 탐방해 볼 수 있다. 지질트레일(Geo-Trail)과 지질트레일 내 이용할 수 있는 지오하우스(Geo-House), 지오푸드(Geo-Food), 지오액티비티(Geo-Activity) 등 지오브랜드 체험 정보를 담았다. GPS를 이용한 실시간 지질트레일 지도 안내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으며, 코스 내 주요 포인트 소개, 날씨 정보 등을 제공해 준다. 수월봉 지질명소는 한 해 40만여명이 찾는 등 도보여행객의 주목을 받고 있다. 행사 기간에는 전문가와 함께하는 특별 탐방도 마련됐다. 전용문(지질), 김완병(생태), 박찬식(역사·문화) 박사가 동행해 자연자원의 가치와 제주의 역사·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제주 세계지질공원 사생대회 및 사진공모전도 열린다. 세계지질공원수월봉트레일위윈회는 “수월봉은 자체로도 경관이 뛰어난 데다 화산이 만들어낸 지층을 가까이에서 연속성 있게 볼 수 있어 화산섬 제주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통일의 꿈·분단 아픔 싣고 칙칙 폭폭~

    통일의 꿈·분단 아픔 싣고 칙칙 폭폭~

    전쟁 겪은 세대부터 청년까지금강산 철도 등 DMZ 탐방 “원래 오늘 전북 무주로 가족여행을 떠날 생각이었는데, 넷이 모두 통일열차로 발길을 돌렸어요. 지난 6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통일박람회에 들렀다가 비무장지대(DMZ)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을 알게 됐습니다.” 10일 부인, 두 아들과 함께 ‘DMZ 통일열차’에 오른 박준영(42)씨는 “개인으로선 통일을 위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지만, 더 관심을 가져 하루라도 통일을 앞당겼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행정자치부는 이날 오전 9시 30분 서울역을 출발해 경원선 최북단 백마고지역을 거쳐 오후 6시 30분 되돌아오는 코스를 운영했다. 이금순(53·여) 통일교육원장과 2004년 탈북해 입국,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아 눈길을 끌었던 정은찬(48·여) 교수, 대학 통일연구 동아리, 공모로 선정한 국민 등 100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평화전망대, 6·25전쟁 때 끊긴 금강산 철로, 노동당사 등을 돌며 소감을 발표하고 전문가 특강도 들었다. 6·25전쟁 참전자인 박영근(86) 할아버지는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 등에서 숨진 전우를 기리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전쟁 때 태백산 동부전선 ‘351고지’, 38선 북방 김화~철원~평강을 잇는 ‘철의 삼각지’ 등 전략요충지에서 벌어진 전투를 생생히 기억했다. 전덕기(84·여) 한국통일문인협회 이사장은 “일제 강점기를 몸소 겪으며 나라의 소중함을 절실하게 느꼈다”며 “통일을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 참여했다”며 웃었다. 1968년 문단에 등단하면서 문학으로 통일에 한몫을 거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다가 2014년 협회를 설립했다. 미수복지구 철원에서 자란 실향민 최기향(84) 할머니는 “어릴 적 부모님 손에 이끌려 금강산 전차를 더러 탔다. 끊긴 길이라도 다시 보고 싶었는데 뜻을 이뤘다”고 귀띔했다. 서울여대 영문학과 2학년 이하은(21)씨는 우리나라 역사와 DMZ에 대해 궁금해하는 홍콩, 일본 친구 9명과 동행했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조선의 중심 ‘종로 뒷골목’… 계단 없어 휠체어 답사도 OK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조선의 중심 ‘종로 뒷골목’… 계단 없어 휠체어 답사도 OK

    서울시는 2014년 근현대 서울의 추억과 발자취가 담긴 유·무형 자산을 발굴·관리하는 ‘미래유산 보전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이맘때 ‘미래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시민들과 미래유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시는 미래유산 발굴보존 사업이 가능한 한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번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역시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함께 시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오는 9월 3일 장충단비, 국립극장, 장충체육관, 한양성곽, 족발 골목 등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가는 ‘장충단 성곽길’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다. 지난 7월 9일 오전 10시 보신각 앞에 한 무리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빨간색 손수건을 하나씩 목에 두르거나 손목에 묶고 2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출발을 기다리는 이들이었다. 이번 역사탐방로는 보신각부터 동대문까지다. 일직선으로 뻗은 대로가 아니라 잘 다녀 보지 않은 뒤안길이다. 보신각 길 건너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인사동을 거쳐 종로 뒷골목을 헤집는 코스다. 답사로는 발밑으로는 광화문역에서 동대문역으로 달리는 지하철 5호선과 거의 겹친다. 단 한 번도 대로로 나가지 않고 동대문까지 뒤안길만 누비는 오리지널 골목 답사다. 서울 종로 뒤안길 답사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뒷골목에 숨어 있는 수많은 근현대 역사 이야기와 미래유산을 만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답사로 전체가 평지로 이뤄져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도 무리 없이 동행할 수 있는 ‘무장애 답사로’란 점이다. 이 답사로는 이날 해설을 맡은 박광규(55)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개척한 코스다. 박 해설사는 “큰길에는 큰 역사가 존재하고 뒷골목에는 소소한 것만 있을 것이란 선입견을 날려 버리는 대단히 의미 있는 뒤안길”이라며 “특히 계단이 단 한 층도 없는 완벽한 무장애 코스로 장애인과 함께 역사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답사길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답사팀 안전은 손안나 해설사가 맡았다. 이날 답사에도 어김없이 이경윤 나눔마켓 대표가 가장 먼저 나왔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려고 일찍 서둘러야 해서 두 시간 전에 도착했다. 어릴 적 소달구지에 깔린 사고 때문에 전신마비로 이동장애를 가진 이 대표는 노원구 하계동 미성아파트 지하상가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답사 활동을 했을 것이다. 이날은 무장애 코스라서 그런지 그의 표정이 유난히 밝다. 이 대표는 “이 코스를 두 번째 가 볼 기회를 얻어서 행복하다”며 “길 끝 창신동 골목길 ‘장가네 보리밥집’에서 쓱쓱 비벼 먹는 비빔밥이 일품이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눔마켓은 책을 기증받아 온·오프라인을 통해 염가로 파는 책방”이라며 “기증은 책 종류와 수량에 관계없이 어떤 책이든 가능하다”고 깨알 같은 광고를 빼놓지 않았다. 박 해설사의 해설이 시작되자 모두 시선을 모으고 귀를 쫑긋 세웠다. “보신각 안 잔디밭에는 서울미래유산인 ‘지하철 수준점’이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하려고 기준을 잡은 것인데요. 앞으로 놓일 모든 지하철의 높이를 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박 해설사가 손으로 지하철 수준점을 가리켰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사방 25㎝ 정사각형 표지석 한가운데 직경 7㎝, 길이 12㎝ 놋쇠 못이 박힌 수준점은 높이가 20㎝밖에 되지 않아 한여름에는 잔디에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보신각이 보물 제2호로 지정된 문화재인 이유로 무작정 들어가 가까이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박 해설사가 이해를 돕고자 아이패드를 꺼내 근접해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자 그때야 시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답사에 나온 배현철(40·두루EDS 대표)씨는 “보신각 앞에서 숱하게 약속도 하고 그 앞을 지나쳤지만, 이 안에 지하철 수준점이란 게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했다. 지하철 수준점은 1970년 5월 도심 교통난을 해소할 대책을 마련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당시 양택식 서울시장이 지하철을 도입하면서 같은 해 10월 설정한 일종의 기준이다. 우리나라 해발 기준점(수준원점)은 어디일까. 인천 앞바다를 기준으로, 수준원점 시설물은 인하대 교정 안에 있다. 박 해설사의 해설을 토씨 하나 놓칠세라 꼼꼼하게 받아 적는 답사객이 있다. 1회차 때 대한문 앞에서 출발하는 답사단 무리를 보고 2회차 때 무작정(?) 참가한 김청길(74)씨다. 김씨는 파워블로거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문화와 답사 관련 포스트를 2200여개나 올렸단다. 김씨는 “일전에 대한문 앞에 갔다가 역사 탐방단이 출발하는 걸 보고 다음번 참석을 다짐했다”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 계속 나올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무임 승차’를 공언한 것이다. 보신각에서 길을 건너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 쪽으로 인사동 랜드마크 중 하나인 ‘동헌필방’이 보인다. 창업자 이동하씨가 1966년부터 반세기 동안 한자리에서 운영하고 있다. 원래 남계양행이라는 양판점이었다. 건물 자체가 1930년대 지어진 등록문화재감이다. 그런데 동헌필방만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동헌필방 앞에는 1926년 지어진 건물이 있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일제강점기 민간 3대 신문 중 하나였던 조선중앙일보의 사옥이었다. 박 해설사는 “동아일보와 함께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 보도한 신문”으로 “여운형이 사장이었는데 정간을 당한 후 그 다음해 폐간됐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는 자유당 중앙당사, 1970년부터는 농협중앙회 사옥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NH농협 종로지점이다. 건립 당시 모습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돼 건축사적 측면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 서울 근대건축물과 미래유산이다. 이들 건물은 자칫 옛 도시계획에 의해 멸실될 위기에 있었으나 상위법을 바꿔 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래서 종묘에서부터 직선이던 골목이 이들 건물을 피해 종로 쪽으로 살짝 굽었다. 여기서 시민 한 분이 추가로 무임 승차성 답사에 나섰다. 종로 뒷골목은 서울미래유산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이미 지나온 열차집, 동헌필방, NH농협 종로지점 이외도 이문설농탕, 구하산방, 서울중심점, 허리우드극장, 낙원악기상가, 낙원떡집, 유진식당, 피맛골 등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건물과 랜드마크가 즐비하다. 마치 ‘미래유산 종합선물세트’ 같다. 부모와 참가한 백은솔(9)·은채(7) 자매는 이문설농탕 벽면에 붙어 있는 서울미래유산 동판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자매는 “답사가 약간 힘들지만 견딜 만해요”라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이라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 있었는데, 이들 자매는 양볼이 발갛게 달아 올랐지만, 군소리 한마디 없이 동대문까지 완주했다. 이인선(52)씨는 “과거의 길을 오늘 걸으며 미래를 생각해 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체험”이라고 말했다. 앞서 가던 박 해설사가 태화빌딩 앞에 멈춰 섰다. ‘서울 3대 요정’ 중 하나인 명월관 별관 태화관 자리다. 태화관 전엔 매국노 이완용이 살았고, 매국 친일파들이 을사늑약, 경술국치 등을 모의했던 장소다. 1919년에는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자리다. 그 직후 총감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자수를 한 탓에 3·1 운동은 구심점을 잃고 실패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태화관 건물은 매국과 독립, 진정성과 모호성이 뒤섞인 역사의 아이러니를 품은 장소다. 태화빌딩 옆 건물인 하나로빌딩에도 깜짝 놀랄 만한 미래유산이 숨어 있었다. ‘서울 중심점 표지석’이다. 1층 로비 한쪽에 사방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채 보존돼 있는 표지석에는 ‘1층 로비에 있는 네모꼴 화강석은 서울의 한복판 중심지점을 표시한 지표석으로 대한제국 건양원년(1896)에 세워진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윤정배(48)씨는 “지금껏 서울 중심점이 남산에만 있는 줄만 알았는데 종로에, 그것도 빌딩 1층 로비라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답사자 중에 누군가 “지난 1회차 답사 때 들렀던 도로원표가 서울 중심인 줄 알았다”며 거들었다. 박 해설사는 “이 중심석은 조선시대 서울이 확장되기 전 당시 기준점이고, 지금 사용하는 중심점은 2008년 최첨단 GPS 측량을 해 지정한 곳으로 남산정상 N타워 인근에 있다”고 설명했다. 답사단은 어느덧 익선동 한옥마을로 접어들었다. 100년 전인 1920년 당시만 해도 생소했을 법한, 도시형 한옥집단지구로 형성된 한옥촌이다. 지금은 카페와 술집, 레스토랑 등이 들어선 서울의 명소다. 익선동 골목 끝은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고, 고기 누린내로 진동하는 갈매기살 구이집이 즐비하다. 고깃집 담벼락에는 ‘조루증을 치료하고 회춘시켜 준다’는 한약방 광고지가 세월의 때를 묻힌 채 붙어 있다. 익선동 골목에는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고 있다. 종묘 앞을 지나면서 남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멀리 세운상가가 보인다. 1960년대 획기적 도시개발의 표본이자 근대 건축 1세대 김수근의 작품이다.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가서 실패한 도시계획의 표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섭씨 33도 한증막 같은 날씨 속에 강행군한 답사팀은 어느덧 서울미래유산인 한국기독교회관을 지나 동대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국기독교회관은 1969년 준공돼 1974년 민청학련사건 인사 석방 운동 전개, 1978년 동일방직 노조원 생존권 보장 농성, 1980년 5월 서강대생 김의기 투신 자살 등 민주화 운동 성지로 손꼽히고 있다. 종로꽃시장에서 길이 좁고 복잡해 답사팀은 두 패로 갈렸지만 다시 만났다. 박 해설사는 한양도성박물관 앞에서 동대문을 바라보면서 폭염 속 2시간 30분 동안의 답사를 폭염만큼 뜨거운 박수로 마무리했다. “점심은 장가네 보리밥집 가요.”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순교’ 주기철 목사 77년 만에 명예 찾았다

    ‘순교’ 주기철 목사 77년 만에 명예 찾았다

    신사 참배 거부해 면직… 끝내 옥사 “일사각오 정신으로 복음 지킨 증인” “주기철 목사의 복권 복적을 선언합니다.” 일제 치하 신사 참배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면직된 소양 주기철(1897~1944) 목사가 77년 만에 완전히 복권 복직됐다. 4일 주기철목사기념사업회에 따르면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합동 총회는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산정현교회에서 주기철 목사의 복권과 복적을 선언하고 이를 감사하는 예배를 드렸다. 주기철 목사가 소속됐던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에 뿌리를 둔 7개 노회 노회장들은 선언문을 통해 “평양노회가 신사 참배를 강요하는 총회 결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산정현교회 주기철 목사를 면직 결의한 것은 성경과 신앙의 근본 원리에 어긋난 잘못된 결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주 목사의 성명을 노회원 명부에 원상태로 복적, 목사직을 복권할 것을 선언했다. 선언에는 경평노회와 남평양노회, 동평양노회, 서평양노회, 평양노회, 평양제일노회, (가칭)북평양노회 등이 참여했다. 경남 창원 출생인 주기철 목사는 평안북도 오산중학교와 평양 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부산, 마산, 평양에서 목사로 활동했지만 1939년 12월 19일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 임시노회에서 목사 면직과 함께 노회원 명부에서 이름이 삭제되는 불운을 겪었다. 끝내 신사 참배를 거부하다 일본 경찰에 검거돼 옥사한 한국 개신교계의 대표적 ‘순교 신앙’으로 꼽힌다. 주 목사는 특히 조선의 민족주의와 일본제국주의가 지향했던 민족주의를 모두 거부한 채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분명한 자기 결단에 따른 순교를 택했다는 측면에서 ‘외로운 단독자’이자 ‘진정한 순교자’로 불린다. 그의 신앙을 그린 영화 ‘일사각오’가 제작, 개봉됐는가 하면 경남 창원시는 주 목사 기념관과 손양원 목사 기념관을 잇는 주기철 목사 성지순례길 탐방 코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주기철 목사의 복권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지난해 열린 예장합동 제100회 총회 때였다. 일부 노회들이 주기철 목사의 복권 복적을 안건으로 총회에 상정해 만장일치와 기립박수로 복권, 복적이 결정됐었다. 예장합동 총회는 이후 복권 복적 상설역사위원회를 설치했으며 올해 초부터 평양노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노회들이 노회 차원에서 주 목사의 복권 복적을 선언하며 총회 결의를 실행에 옮겨 왔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평양노회가 2006년 주기철 목사 복권 예배를 드린 바 있지만 조선예수교장로회 평양노회에 뿌리를 둔 노회가 모두 동참해 선언한 만큼 주 목사의 완전 복권 복적이 이뤄진 셈이다. 박무용 예장합동 총회장은 이와 관련, “주 목사는 일사각오의 정신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지켜낸 앞서 가신 증인”이라며 “현재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세상의 염려와 욕심을 벗고, 고통 속에도 인내하며, 우리의 푯대인 예수님을 바라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족 대표로 참가한 주 목사의 손자 주승중 목사(주안장로교회)는 “늦은 감이 있지만 다음 세대에 바른 신앙의 유산을 물려줘야 한다는 점에서 (주 목사의 복권 복적이) 꼭 필요한 행사”라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김중업 건축혼·민주화 꽃핀 세실… 근현대 미래유산 보물창고 ‘정동’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김중업 건축혼·민주화 꽃핀 세실… 근현대 미래유산 보물창고 ‘정동’

    서울신문이 지난달 2일부터 매주 토요일 오전 서울시, 답사 단체인 ‘문화지평’ 등과 함께하는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을 시작했다. 근대 외교 중심가인 정동 일대 답사를 시작으로 올해 말 마포구 염리동 소금길까지 총 20회에 걸쳐 진행된다. 미래유산이란 현재는 문화재가 아니지만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가치가 있는 유·무형의 모든 것을 말한다. 서울미래유산탐방 홈페이지(http://seouldaily.webmaker21.kr)에서 오는 27일 서대문 영천시장과 서소문역사공원, 서울역고가 등에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가는 ‘만초전과 그 주변’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다. “자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이필용(47)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본격적인 답사 시작을 알렸다. 지난달 2일 오전 10시 서울시청 인근 대한문 앞에서 모인 서울미래유산 탐방 답사단 30여명은 이 해설사를 따라 발걸음을 세실극장으로 옮겼다. 장마 기간이었는데도 이날만 반짝 날씨가 화창했다. 이날 전상봉(30) 서울미래유산해설사는 안전을 책임졌다. 김중업 역작 ‘세실극장’ 답사단이 처음 마주한 세실극장(중구 세종대로19길 16)은 1976년에 건립된 소극장으로 대학로가 만들어지기 전 1970~80년대 연극의 메카였다. 건축가 김중업의 1970년대 작품 가운데 하나로 보존 가치가 높아서 2013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세실극장을 설계한 김중업은 김수근과 함께 우리나라 1세대 건축가로 삼일빌딩, 프랑스대사관, 드라마센터 등을 남겼다. 세실이란 이름은 일제강점기 대한성공회 4대 주교였던 세실 쿠퍼(한국명 구세실)에서 따왔다. 세실극장의 지하에 있는 세실 레스토랑은 1980년대 민주화의 성지였다. 이 해설사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인사들이 주로 이곳에서 만나 운동 방향을 논의했다”며 “한국 현대사를 흔든 각종 시국 선언과 기자회견 장소로 애용됐다”고 설명했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 민주 인사들이 덜 불안해하면서 세실 레스토랑을 애용한 이유는 이곳이 성공회성당과 연결된 덕분이다. 명동성당과 같이 해외에 본부를 둔 종교 시설은 군사정권이 발을 들이기가 쉽지 않았다. 세실극장은 당시 320석 규모로 개관했다. 세실극장에서 영국대사관으로 오르다 우측으로 접어들면 성공회 서울주교좌대성당 후문이 나온다. 매주 토요일이면 성당 안내 자원봉사를 하는 김선동(사무엘)씨가 반갑게 일행을 맞았다. 김씨는 “1922년 대성당을 짓기 시작했지만, 자금 사정 등으로 1926년 미완성인 채 70여년을 사용하다가 1993년 영국도서관에서 도면이 발견되면서 1996년 현재 모습으로 완공했다”며 “서울에서 보기 드문 로마네스크 양식 건물이면서도 한국적 정서의 처마장식, 기와지붕 등을 적용한 아름다운 건물”이라고 소개했다. 처마 품은 성공회 대성당 대성당은 1978년 12월 18일에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5호로 지정돼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 대성당 뒤편에 있는 전통적인 한옥 양식 건물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이 해설사는 “이 건물은 양이재(養怡齋)라고 하는데 과거 경운궁(덕수궁의 옛 이름) 내에 건립돼 왕족과 귀족 자녀들의 교육을 담당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1920년 성공회가 조선총독부로부터 사들여 지금 자리로 옮겼다. 양이재 앞에는 표지석 하나가 단단하게 박혀 있다. ‘6월 민주항쟁 진원지’를 나타내는 이 표지석에는 ‘유월민주항쟁이 이 자리에서 시작되어 마침내 민주화의 새 역사를 열다’라고 적혀 있다. 한혜경 가톨릭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는 이날 “종교란 개인의 구원을 넘어 전 인류의 안녕과 해방을 모토로 해야 한다는 평소 신념에서 바라봤을 때 대성당이 민주화운동의 진원지가 됐다는 사실이 매우 의미 있다”고 소회를 밝혔다. 대성당을 가로막고 섰던 국세청 남대문별관 건물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건물은 1937년 일제가 조선총독부 체신청(우체국) 청사로 지었다.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였던 귀비 엄씨 사당(덕안궁터)이 있던 자리다. 서울시는 담벼락 한쪽만 남기고 철거한 옥인아파트처럼 기둥이나 벽면 일부만 기념물로 남긴 채 없애 버리기로 했다. 그렇게 되면 대성당이 시청 앞 큰길에서도 훤히 보이게 된다. ‘ 근대사 굴곡’ 서울시의회 대성당 정문으로 빠져나온 답사단은 서울시의회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이곳은 근대사의 굴곡을 담은 경성부(京城府·일제시대 서울의 이름) 부립 부민관이던 곳이다. 일제가 다목적 회관으로 지은 건물로 일제 말기에는 전쟁을 독려하는 정치 집회 장소로 이용기도 했다. 해방 직전인 1945년 7월 24일 ‘애국청년 조만기, 류만수, 강윤국 등이 친일파 박준금 일당 연설 도중 폭파한 자리’라는 표지석이 남아 있다. 친일과 반일의 이데올로기가 첨예하게 대립했던 곳이다. 광복 후에는 미군이 사령부로 사용했고 한국전쟁 중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이후에는 입법의 중심 국회의사당으로 변모했다. 한때는 미래유산인 세종문화회관 별관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현재는 시의회 의사당과 사무처, 기자실 등이 들어서 있다. 답사단은 도로원표에 다다랐다. 영문으로는 ‘The zero milestone’다. ‘0’에서부터 뭔가를 시작한다는 의미다. 도로원표란 전국 시·군 간의 거리를 측정하는 기준점이다. 서울시 도로원표는 1914년 설치 당시 광화문 광장 중앙에 위치했다. 그러던 것이 1937년 교보빌딩 앞 칭경기념비전(고종 어극 40년 기념비) 안으로 옮겨 왔다. 도로원표는 2013년 지정된 미래유산이다. 구세군 중앙회관을 지나면 왼쪽으로 작은 골목이 하나 있다. 이곳을 조금 오르면 간판도 없는 한옥 두부 요리집이 있고 그 옆으로 굳게 닫힌 철문이 보인다. 다름 아닌 영국대사관으로 연결되는 덕수궁 돌담길 구간이다. 영국대사관 부지와 맞닿아 1884년부터 통행이 금지됐던 곳이다. 이 길을 복원하기 위해 시의회는 최근 적지 않은 예산안까지 통과시켰다. 이 철문이 열리면 대성당 후문, 세실극장 앞과 연결된다. 영국대사관이 길을 열어 줄지는 아직 미지수다. 영국대사관 건물은 1890년에 지어진 것으로 미래유산으로 지정돼 있다. 하비브하우스라는 별칭을 가진 미 대사관저를 지나 미래유산인 정동극장을 거쳐 답사단은 중명전에 이르렀다. 덕수궁 대화재로 인해 고종 황제가 머물렀던 중명전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을사늑약이 이뤄졌다. 중명전 뒤쪽 언덕 위에는 고종이 세자와 함께 건양 1년(1896년) 2월 11일 파천한 러시아공사관이 보인다. 이른바 ‘아관파천’한 고종은 1년 뒤인 1897년 2월 20일 덕수궁으로 환궁했다. 고종이 머물던 중명전 고종과 정동은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이 지역에서 많은 생활을 했다. 그래서 시의회는 고종의 흔적을 되살려 이번 답사로와 거의 일치하는 2.5㎞ 코스의 ‘대한제국의 길’을 조성할 계획이다. 정동 일대에는 서울미래유산이 대거 몰려 있는 문화 역사의 보고(寶庫)이자 근대 열강들의 외교 각축장이었다. 러시아공사관 맞은편에 있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 한국관구는 과거 외교관 구락부로 사용된 기록이 있다. 구한말 이 지역에는 러시아, 독일, 프랑스, 영국 등의 공사관이 밀집해 있었다. 독일공사관은 서울시청 서소문 별관에서 흔적을 발견할 수 있고, 프랑스공사관은 창덕여중 운동장 한쪽에 비석으로 덩그러니 남아 있다. 정동길을 따라 강북삼성병원 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왼편으로 미래유산인 중화기독교 한성교회를 만날 수 있다. 1958년 세워진 이 교회는 국내 화교 기독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열강 외교 각축장 ‘정동’ 답사단은 마지막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을 들렀다. 이 해설사는 “이곳은 일제시대엔 경성재판소, 해방 후에는 대법원 청사로 쓰이다가 대법 청사가 서초동으로 이전한 후 2002년부터 시민을 위한 미술관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설명을 마지막으로 첫 서울미래유산 탐방 답사를 마무리했다. “늘 서울 하면 강남과 강북으로 대변되는 풍요와 빈곤, 성공과 실패, 경쟁과 낙오의 이미지로만 각인돼 왔을 뿐 정작 이 도시가 품고 있는 역사성이나 문화적인 가치에 대해서는 무심하거나 간과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사는 이 도시를 제대로 알고 이해함으로써 자본의 논리에 의해 재단되는 도시가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토대 위에서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함께 어우러지는 살아 숨쉬는 도시로서의 인식을 공유하게 된다면 장차 서울에 대한 철학적 접근도 가능해질 것이다. 앞으로 진행될 서울의 미래유산 탐방 프로젝트가 더더욱 기대가 되는 이유다.” 한혜경 교수의 이런 답사 후기는 남은 19회차를 제대로 잘 달려가라는 채찍 같았다.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중·고교생 무료 역사 특강…강북구, 3·4일 온라인 접수

    ‘역사는 반복된다’, 널리 알려진 격언 중 하나다. 역사를 알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를 자연스레 얻을 수 있다. 서울 강북구가 중·고등학생을 상대로 무료 역사 특강에 나선 이유다. 강북구는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여름방학을 맞아 우리 역사를 바꾼 ‘그날’을 주제로 중·고등학생 특강을 마련했다고 1일 밝혔다. 고등학생은 3~5일, 10~12일로 나눠 6일간 총 12시간의 교육을 받는다. 중학생은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총 8시간의 특강이 예정돼 있다. 접수 신청은 고등학생 3일, 중학생은 4일까지 받고, 근현대사기념관 홈페이지(www.mhmh.or.kr)를 통해 하면 된다. 수업은 국치일(1910년 8월 29일), 3·1절(1919년 3월 1일), 광복절(1945년 8월 15일), 4월 혁명기념일(1960년 4월 19일) 등 역사적 사건을 기리기 위한 기념일이 언제, 어떻게 제정됐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그날’ 이후 우리의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청소년들에게 알려줘 우리 현대사를 올바르게 인식하는 시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여기에 3·1운동 선언서 만들기, 기념관 주변 순국선열묘역 탐방 등 그룹활동도 더해진다. 수업이 진행되는 근현대사기념관은 동학농민운동과 항일의병전쟁, 3·1운동과 임시정부, 독립투쟁과 해방 및 대한민국 정부수립 등 구한말에서부터 광복 이후 대한민국의 오늘까지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고 있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북한산역사문화관광벨트’의 가장 핵심사업인 근현대사기념관을 통해 청소년과 시민, 외국인들에게 한국의 근현대 역사를 정확히 알리고 지역사회 발전에도 힘써 강북구를 역사문화관광의 도시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우리동네 숨은 피서지… 아직도 몰랐어?

    우리동네 숨은 피서지… 아직도 몰랐어?

    본격 휴가철이 시작됐다. 전국 도로마다 몸살을 앓는 때다. 이럴 때는 도심권을 공략하는 게 틈새 전략이다. 이름난 피서지보다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한국관광공사가 8월에 가볼 만한 곳을 추천했다. ‘도시에서 만난 휴식’이 테마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서울] 오감으로 느끼는 한류… 심야 책방 ‘책맥’ 한 잔 케이스타일허브는 한국적인 멋과 맛을 체험하는 이색 피서지다. 지난 4월 서울 청계천의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에 문을 열었다. 2층은 최첨단 기술을 접목한 파노라마 갤러리, 한류 스타 디지털 체험 시설 등으로 구성됐다. 3층은 한식전시관, 4층은 전통차와 음료, 다과를 즐기며 쉬어 가는 공간으로 꾸몄다. 5층엔 무료 한복 체험 코너 등이 들어섰다. 인근의 영풍문고와 교보문고, 명동 북파크 등은 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 맞춤 피서지로 꼽힌다. 상암동 ‘북바이북’은 맥주와 책을 합한 이른바 ‘책맥’ 열풍의 주인공이다. 작가와의 만남, 미니 콘서트 같은 이벤트도 열린다. 북티크 논현점은 금요일 밤마다 ‘심야책방’을 연다. 나 홀로 도심 피서지로 제격이다. 케이스타일허브 (02)729-9496. [청주] 연꽃마을서 보내는 전원생활… 저녁엔 황토 찜질 청원연꽃마을은 충북 청주 시내에서 12~15㎞ 거리다. 2001년 연꽃을 심으며 새롭게 변모, 농촌 체험 마을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연잎칼국수나 연잎밥 체험, 전통 부채 민화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연꽃을 감상하려면 오전 중에 찾아야 한다. 연꽃은 주로 아침에 꽃봉오리를 열고 햇살이 뜨거워지는 정오쯤 오므린다. 황토 찜질 체험방에서 하루를 묵어 가며 마을 정취를 느끼는 것도 좋겠다. 마을 가까이 은적산도 볼거리다. 단군성전과 봉수대가 있는 청주의 해맞이 명소다. 이달 개관한 청주시립미술관, 수암골벽화마을 등 청주 시내와 연계하면 여름휴가 코스로 손색이 없다. 옛 청원군의 청남대도 여름 나들이로 알맞은 쉼터다. 청원연꽃마을 (043)232-8400. [대전] 장태산 휴양림의 나무 장벽을 걷는다 장태산자연휴양림은 대전을 대표하는 자연 관광지다. 휴양림 전체 면적 약 82㏊ 중 무려 20여㏊가 메타세쿼이아 숲이다. 이 덕에 숲에 들면 나무 장벽을 두른 듯 서늘한 공기가 여행자를 맞는다. 숲속삼림욕장에는 평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돗자리 하나 들고 찾아가 쉬기 좋다. 숲속어드벤처는 휴양림의 명소다. 메타세쿼이아 사이의 아슬아슬한 경사로를 지나 스카이타워 전망대까지 간다. 대전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식장산전망대, 태평전통시장에 있는 태평청년 맛it길, 음악과 미술, 스포츠를 한자리에서 즐기는 대전문화예술단지,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대전을 한눈에 살펴보는 대전역사박물관도 함께 돌아보면 좋다. 대전종합관광안내소 (042)861-1330. [광주·담양] 환벽당서 즐기는 남도 풍류… 무등산서 선비의 하루 광주 북구와 담양군 남면의 경계인 증암천에는 담양 쪽의 식영정, 소쇄원 등을 비롯해 이들과 쌍벽을 이루는 환벽당, 취가정 등 광주의 누정들이 늘어서 있다. 환벽당에서는 주말마다 풍류의 장이 펼쳐진다. 차향을 나누고, 판소리와 대금 연주 등 전통 공연이 펼쳐진다. 8월 20일부터는 환벽당, 소쇄원, 식영정 등을 중심으로 ‘풍류 남도 나들이’도 열릴 예정이다. 환벽당 인근에는 충효동 왕버들군과 광주호 호수생태원이 있다. 생태탐방로를 따라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충효동에서 무등산 자락으로 오르면 무등산수박마을, 탁족하기 좋은 원효계곡 풍암정 등을 차례로 만난다. 월봉서원에서는 ‘선비의 하루’ ‘살롱 드 월봉’ 등 선비 체험이 펼쳐진다. 광주시 관광진흥과 (062)613-3621. [포항] 밤에 더 아름다운 영일대… 크루즈 타고 누비는 낭만 운하 경북 포항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한 곳이 영일대 해수욕장이다. 반짝이는 모래밭은 넓고 또 곱다. 경관 조명으로 화려해진 포스코의 스카이라인은 다른 곳에서 보지 못한 빛의 향연을 펼친다. 올해는 모래 썰매장도 마련했다. 해수욕장 끝에 모래를 쌓아 어린이들이 즐길 수 있게 만들었다. 해수욕장 주변에서 설치미술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매주 토요일 오후 5~10시에는 수제 작품을 판매하는 포항문화예술시장이 열린다. 크루즈를 타고 낭만 가득한 운하를 누비는 기분도 특별하다. 죽도시장과 동빈내항 등 약 8㎞를 달린다. 내륙으로 들어가면 산책에 좋은 오어지둘레길, 덕동문화마을 숲길 등 보석 같은 곳이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포항시 문화관광과 (054)270-8282. [목포] 갓바위에 앉으면 별처럼 쏟아지는 분수쇼 전남 목포 갓바위 지구는 다양한 박물관과 전시관이 모여 있는 곳이다. 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여행객들에게 권할 만하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유물전시관, 목포자연사박물관, 목포문학관, 남농기념관 등을 돌다 보면 하루해가 짧다. 해양유물전시관은 1975년 신안군 증도 앞바다에서 건져 올린 유물이 전시된 곳. 목포자연사박물관은 공룡 화석 등을 전시한다. 목포 출신 문인들의 자료를 모아 둔 목포문학관과 한국 남종화의 거장 남농 허건의 작품을 전시한 남농기념관은 목포가 예향으로 불리는 까닭을 알려준다. 갓바위 주변엔 해상보도교가 조성됐다. 먹거리로 가득한 남진야시장과 화려한 분수가 밤바다를 수놓는 평화광장도 인기몰이 중이다. 목포종합관광안내소 (061)270-8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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