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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본영 칼럼] ‘고종의 길’에서 통일의 길 묻는다

    [구본영 칼럼] ‘고종의 길’에서 통일의 길 묻는다

    문화재청이 구한말 아관파천(俄館播遷) 당시의 ‘고종의 길’을 복원한다고 한다. 명성황후가 시해된 을미사변 이후 고종이 일본의 감시를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길이다. 광복절인 그제 저녁 덕수궁 뒷길을 걸었을 때 벽돌로 지은 그 르네상스식 공사관은 3층의 탑 부분만 남아 희미한 옛 자취를 드리우고 있었다. 현재 주한 미대사관저에 걸쳐 있는 ‘왕의 길’. 덕수궁 북서쪽에서 옛 러시아공사관까지 길이 약 110m의 이 통로를 내년에 되살린다는 소식이 처음엔 영 마뜩잖았다. 일국의 황제가 타국 공관으로 줄행랑친 길을 복원한다니 말이다. 더구나 고종의 1년간 공사관 더부살이 때 러시아는 우리의 금·은광과 산림 자원 등 온갖 이권을 삼켰다는데…. 하지만 치욕의 역사 현장을 체험해 교훈을 얻는 이른바 ‘다크 투어리즘’ 차원이라면 의미가 적잖다. 주한 미군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의 여진이 한반도를 뒤흔들고 있다. 중·러, 특히 중국의 반발로 인한 후폭풍이 거세다. 중국이 관영 매체를 총동원해 내정간섭에 가까운 압박을 가해 오자 우리 내부는 벌집을 쑤신 형국이다. 사드 배치 예정지인 성주 군민들의 반발은 그렇다 치자. 일부 야당 의원들은 미국 백악관 홈페이지 ‘사드 반대 청원’을 독려하고 있다. 열강의 침탈에다 조정마저 친중·친일·친러 등으로 갈려 국권을 상실한 구한말을 떠올리게 할 정도다. 하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국왕의 신변조차 외국 공관에 의탁해야 했던 대한제국에 비견할 수는 없다. 우리는 브레진스키 교수가 말한 것처럼 더는 서양 장기판의 졸은 아니다. 광복 후 지구촌 최빈국이 세계 11위 경제강국으로 발돋움했다면 자신감을 갖고 ‘중견국 외교’를 펼칠 때다. 물론 우린 아직 국제정치의 ‘슈퍼 파워’는 아니다. 그래서 주변 강국 중 너무 한쪽에 쏠리는 외교는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이 사드 문제로 각종 보복 가능성을 흘리는 지금 미·중 간 기계적 ‘균형 외교’의 효용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워싱턴의 따가운 시선을 무릅쓰고 톈안먼 망루에 오르고, 우리는 중국 주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에 4조 3000억원을 투자했다. 그런데도 한·미 동맹이 뒷받침되지 않는 대중 ‘짝사랑’은 별 소용이 없으라는 쓰라린 교훈을 얻었다. 윤영관 전 외교장관이 “한반도에 대해서 영토적인 문제와 관련해 야심이 없는” 미국과의 동맹의 중요성을 강조한 배경을 알 것 같다. 친중 경향성을 띠어 가던 참여정부 때 숭미파로 몰려 하차한 그의 ‘객관적 진단’이라면…. 그렇다면 ‘통일 한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주변 4강의 우리 영토에 대한 ‘야심’부터 경계해야 한다. 한반도를 병탄했던 일본이 남북 통일을 도울 것으로 기대하긴 어렵다. 광복 71주년인 올해 우리 국회의원들의 독도 방문에도 억지를 부리는 일본이 아닌가. 방어용인 사드에 대해 핏대를 올리는 중국은 또 어떤가. 북한의 핵 도발에 대한 유엔 제재에 동참하는 시늉만 하면서 곤궁해진 북한으로부터 동해 북방한계선(NLL) 북쪽 해상 조업권을 사들였다. 혹여 김정은 체제가 제 풀에 무너져도 ‘통일 한국’의 출현을 용인하긴커녕 이를 빌미로 중국군이 한·만 국경을 넘지 않으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러시아가 진화된 ‘영토 야심’을 보여 줘 다행인가. 부동항 확보는 ‘차르 시대’ 이래 러시아의 비원이었다. 이제 러시아가 북한의 나진항 이용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긴 하다. 하지만 남·북·러가 참여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북한 개방 효과를 거둔다면 통일의 징검다리가 될 수도 있다. 영토 야심에 관한 한 ‘일본=중국>러시아>미국’ 순이라는 부등식을 깨달아야 통일 방정식도 풀 수 있다. 다만 ‘중견국 외교’는 말은 쉽지만 고난도의 곡예다. 일치단결해도 될까 말까다. 그런데도 정부의 무기력한 ‘안보 리더십’에다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론’의 확성기 역을 맡아 총부리를 안으로 겨누는 일이 비일비재한 요즘. 분열로 자멸했던 구한말의 통한을 되새길 수만 있다면 25억원보다 더 큰 예산으로 ‘고종의 길’을 복원해도 아깝지 않을 듯싶다.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부천 삼정동 폐소각장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부천 삼정동 폐소각장

    경기 부천의 삼정동에 위치한 폐소각장을 방문했던 지난 8월 초. 무더위로 몇 발자국 걷기도 힘든 날씨였다. 이곳에서는 하루 200t의 쓰레기를 처리했다. 가동을 시작한 것은 1995년 5월. 그러나 팽창하던 도시의 쓰레기를 감당하기에는 규모가 적었고 다이옥신 농도가 기준치를 넘어서는 등 문제가 생겨 결국 15년 만에 가동을 중단했다. ●리모델링부터 주민 참여 ‘재생 프로젝트’ 굳게 닫힌 자물쇠를 풀고 소각장 사무동의 어두운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예상 외로 서늘한 공기가 감돈다. 밖은 폭염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푹푹 찌는데 안은 비교적 시원하다. 건물 안에는 지난 1년 반 동안 주민들의 문화예술 공간으로 시범 운영되었던 흔적이 건물 여기저기 남아 있다. ‘삼정동 지킴이’라고 부르는 삼정동 주민들을 예술 작품으로 형상화한 전시물이 눈길을 끈다. 20여 년 전 소각장 건설을 반대했던 주민들은 소각장이 문화공간으로 변신하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열성을 보였다. 그 사이 당시 아줌마들은 할머니가 되었다. 소각장이 있는 삼정동은 신흥동과 내동을 합친 행정동이다. 부천이 한창 서울과 인천 사이의 위성도시로 팽창하던 1990년대를 가장 충실히 반영하던 곳이다. 주거지와 공장지대가 큰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공존하고 있었고 당시엔 토박이보다는 뜨내기들이 많이 모이던 곳이기도 했다. 도시 외곽이었던 점이 소각장 건립 이유였지만 ‘뜨내기가 많다’는 것도 또 다른 이유였다. 예상과는 달리 앞장서 소각장 건립을 반대했던 이들은 떠나지 않고 이 마을 터줏대감이 되었다. 공장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벙커 공간. 소각되기 전 단계의 쓰레기가 집하됐던 대규모 공간이다. 거대한 셔터가 바깥세상과 이곳을 연결하고 있고, 이어 거대한 철문이 쓰레기를 모아 두는 벙커와 반입장을 연결하는 구조다. 도시의 오물들을 실은 쓰레기 차가 모이던 반입장은 높은 천고(8m)와 무채색의 거친 분위기로 인해 공연이나 파티장으로 손색이 없어 보였다. 실제 파일럿 프로그램이 운영되는 동안 공연장 또는 축제의 메인 행사장으로 사용됐던 곳이다. 파일럿 프로그램 중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삼정동 주민들과 함께 한 재활용 악기 워크숍의 연습과 공연도 이곳에서 열렸다. 반입장과 연결된 벙커는 높이가 39m나 되는 공간이다. 거인들이 드나들었을 법한 거대한 철문이 인상적이다. 이곳은 멀티미디어와 결합한 공연, 강연장으로 또 한번 변신할 예정이다. ●재활용 악기 워크숍 등 파일럿 프로그램 운영 2010년 5월 소각장 가동이 중단된 후 흉물처럼 남아 있던 소각장이 다시 활기를 찾은 것은 만 4년 반의 세월이 흐른 뒤였다.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실시한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선정되면서 재생을 위한 프로그램이 부천문화재단 주관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소각장 재생 프로젝트의 첫걸음은 ‘소각장 문화재생을 위한 시민토론회’였다. 무엇보다 삼정동 폐소각장 재생 프로젝트가 주목받아야 할 것은 미리 고쳐 놓은 뒤 주민들에게 이용하라고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리모델링 준비과정부터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향후 변신할 모습을 함께 그렸다. 각종 재생 프로젝트 진행 시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시민대토론회에서 시민들은 건물이 나아가야 할 방향의 키워드로 ‘소통, 경제, 역사, 참여, 환경, 창의’를 꼽았다. 무조건 급하게 뜯어고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었다. 주민들은 공간을 통해 소통하는 한편 이 장소가 가진 역사적 가치를 되새겨 부천만의 독자성을 가진 공간으로 재탄생하기를 바랐다. ●청소년 디자인 교육도… 융복합문화공간으로 파일럿 프로그램에는 마을기업, 사회적기업 등 11곳이 참여하면서 총 16개의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남녀노소 누구나 16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문화 예술인으로 거듭났다. 그 사이 삼정동 소각장도 이곳만의 개성을 가진 문화공간으로의 변신을 꿈꾸게 되었다. 벙커 공간을 지나 소각로를 포함한 대형설비 공간으로 갔다. 대형 설비들은 그 자체로 묘한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누아르 영화에서나 보았음 직한 거대한 시설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전시품이었고 인테리어였다. 특히 소각장의 역할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중앙상황실은 소각장 아카이브의 핵심 공간이다. 지난 7월 말 소각장에서는 향후 융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할 소각장의 역할을 가늠해 보는 ‘멀티미디어 예술축제’가 열렸다. 사운드, 프로젝션 매핑, 디자인, 스페이스디자인, 애니메이션 기법 등이 복합적으로 얽히며 향후 소각장이 변신할 모습을 그려 보는 행사였다. 전문기획자와 참가자 100여명이 이틀간의 워크숍을 거쳐 ‘고스트헌터’라는 예술과 문화가 결합한 현실증강 게임을 만들기도 했다. 이제 소각장의 변신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주민들이 함께하는 프로그램은 계속된다. 소각장의 이해를 높이기 위한 영상 만들기에도 주민들이 참여한다. 공모로 선발된 이들은 종이인형을 활용한 스톱모션으로 디자인영상을 기획하게 된다. 지역 청소년들이 참여하는 그래픽, 소프트웨어, 공간 디자인 등에 대한 교육도 지속된다. 미래를 향한 재생의 포문을 열겠다는 소각장과 지역 주민들의 변신이 더욱 기대된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여행수첩(지역번호 033) →가는 길:경인고속도로 부천IC 또는 서울외곽순환도로 중동IC에서 나가 부천 삼작로 방면으로 간다. 7호선 부천시청역에서 하차해 택시나 버스를 이용해도 10여분이면 도착한다. →함께 가볼 만한 곳:한국만화박물관(310-3090)은 한국만화의 역사를 시대별, 테마별로 꾸며 놓은 체험 공간이다. 26만권 규모의 만화도서관도 있다. 어린 시절 추억의 한 자락을 차지하던 주인공들이 나와 어른들이 더 좋아한다. 미생의 작가 윤태호 특별전이 10월 9일까지 열린다. 만화박물관 주변엔 상상놀이터체험마당, 한옥체험마을 등이 있어 함께 돌아볼 수 있다. 로보파크(070-7094-5479)는 부천에 특화된 로봇산업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공간이다. 모두 폐소각장과 가까워 한 번에 돌아보기 좋다. →맛집:삼작로와 중동로 교차점에 있는 다리원(673-6868)과 두미만두(674-8851)는 지역 주민들이 더 좋아하는 맛집이다. 중식당 다리원은 매운 삼선짬뽕과 향이 독특한 유슬짜장, 누룽지탕이 맛있다. 직접 만든 순두부와 만두, 빈대떡만을 파는 두미만두는 담백한 손맛으로만 승부한다. 나이 든 부부가 그날 만들어 판매해 이른 오후면 문을 닫는다.
  • [新국토기행] 천년 역사 품은 ‘호남의 한양’… 나주, 古都의 낭만 흐른다

    [新국토기행] 천년 역사 품은 ‘호남의 한양’… 나주, 古都의 낭만 흐른다

    전남 나주시는 우리나라 4대 강의 하나인 영산강이 시가지를 관통하고, 광주 산업권의 근교로 목포, 함평, 무안, 영암, 강진, 해남군 등 10개 시·군의 관문인 교통의 중심지다. 국난을 극복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선열이 많이 배출됐다. 임진왜란 의병장 김천일 선생과 조선의 석학 신숙주의 태생지로 광주학생독립운동의 진원지로 유명하다. 고려의 건국에도 토대 역할을 했다. 고려를 건국한 왕건의 부인은 나주 출신 오씨가문의 딸로 그가 낳은 아들은 2대왕 혜종이다. 왕건은 나주 오씨 세력과 손을 잡고부터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나주는 전국 12개 주요도시에 목이 생길 때 나주목이 돼 구한말까지 1000여년 동안 큰 도시의 지위를 이어갔다. 이로 인해 지금까지도 ‘천년목사 고을’로 불린다. 전라도 명칭이 ‘전주’와 ‘나주’의 머리글자를 따서 유래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의 향기와 자연의 감동이 살아 숨 쉬는 ‘호남의 천년고도’로 알려졌다. 나주는 영산강 고대문화의 중심지로 풍요한 맛과 멋, 여유를 주는 고장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도시의 지세가 한양과 비슷하다고 적었던 나주는 당시 한양 구경하기가 힘든 전라도 백성들에게 ‘나주읍성에 가면 한양 갔다 온 것과 같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작은 서울’로 불렸다. 이 같은 역사문화도시인 나주는 금천·산포면 일대에 한국전력공사 등 14개 공공기관이 들어선 ‘빛가람 혁신도시’가 건설돼 호남권 중심도시로 재도약한다. 서울 용산역에서 나주역까지 KTX로 1시간 30분 정도 걸려 수도권 등지 관광객들이 역사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가족 단위로 부담 없이 찾아온다. >>볼거리 ●영산강 추억 실은 ‘황포돛배’ 황포돛배는 바닷물이 영산강 물길을 따라 오르내리던 시절 과거 영산강 물길을 이용해 쌀, 소금, 미역, 홍어 등 생필품을 실어 나르던 황토로 물들인 돛을 단 배를 말한다. 영산강 황포돛배는 육로교통이 발달한 데다 1976년 상류에 댐이 들어서고 영산강 하굿둑이 만들어지자 1977년 마지막 배가 떠난 후 자취를 감췄다. 2008년 30여년 만에 웅장하고 위엄 있는 옛 모습 그대로 부활한 황포돛배는 추억을 싣고 영산강을 오르내린다. 영산강변을 따라 자연경관을 보면서 물살을 가르는 황포돛배 체험은 자연이 주는 큰 선물이다. 옛 목선을 그대로 재현한 빛가람 1호와 2호, 한옥 지붕이 멋스러운 나주호, 발굴된 고려시대 배 조각을 복원해 놓은 왕건호, 빠르게 물살을 가르는 영산강호까지 황포돛배 투어가 풍성하다. 영산강 비단 물결을 따라 유람하는 황포돛배투어는 나주 여행의 백미다. 영산강 선착장에서 출발하는 돛배를 타면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의 해설사가 맛깔스러운 이야기를 풀어놓고 미끄러지듯 배는 강을 거슬러 오르며 과거로의 여행을 시작한다. ●좋은 일 생기는 한옥 체험 ‘목사내아’ 나주목은 전남도를 관할하는 중심고을이었다. 전라도 최고의 곡창지대인 나주 일대를 관장하는 나주목사 자리는 조정의 정3품 당상관이 맡던 고위직이었다. 100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목사가 한양에서 나주로 내려왔다. 고려와 조선시대 때 나주목사로 내려온 중앙관리가 살던 살림집이 나주목사내아다. 문화재로 지정됐지만 사람이 살지 않으면서 훼손되자 한옥체험 공간으로 리모델링해서 ‘금학헌’으로 이름 지었고 명소로 자리잡았다. 목사내아는 정적인 문화재에서 관광객이 직접 숙박을 통해 보고, 배우고,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바뀌었다. 특히 나주목사 중에서 존경을 받았던 유석증 목사와 김성일 목사의 이름을 딴 특별한 방을 마련했는데 이곳에서 숙박을 한 뒤에는 좋은 일들이 생겨서 소원을 이루는 명당으로도 유명하다. ●체험부터 전시까지 ‘천연 염색박물관’ 나주는 예로부터 비단 직조 기술과 쪽 염색이 발달한 곳으로 오늘날에도 샛골나이와 염색장이라는 인간문화재가 활동하는 천연염색 문화의 중심지다. 영산강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리적 환경 덕에 쪽과 뽕나무를 재배하기에 좋았던 게 큰 이유다. 이러한 장점을 최대한 살려 건립한 천연염색 문화관은 다양한 전시와 교육, 염색 체험을 통해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지키고 계승 발전하고자 노력하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천연염색 문화를 알 수 있는 장소다. 200명이 동시에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체험관과 세미나실, 연구실 등을 갖췄다. 어린이 등 가족 단위 체험을 위한 상설 체험장을 운영, 천연염색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된다. 천연염색 상품을 전시, 판매하는 공방도 있다. ●고대왕국 반남고분군·복암리 고분군 반남고분군은 나주시 반남군 자미산(98m)을 중심으로 낮은 구릉지에 산재해 있다. 신촌리 8호분, 덕산리 14호분, 대안리 12호분 등 총 34호분으로 이뤄졌다. 이곳에는 대형 옹관고분 수십 기가 분포한다. 대형 옹관고분이란 지상에 분구를 쌓고 분구 속에 시신을 안치한 커다란 옹(항아리)을 매장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고구려의 적석총, 백제의 석실분, 신라의 적석목곽분, 가야의 석곽묘 등과 구별되는 영산강 유역 고대사회의 독특한 고분 양식이다. 대형 옹관고분은 기원전 3세기부터 6세기까지 4세기 동안 영산강 유역에서 크게 유행했다. 3세기쯤에는 옹관 절반을 지하에 묻는 반지하식이었으나 4세기 중반부터는 지상식으로 발전하며 이때에는 분구의 규모가 훨씬 대형화돼 그 규모가 40~50m에 이른다. 또 1996년 인근에서 발견된 총 4기의 복암리 고분군도 신비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복암리 고분군 중 제일 큰 3호분은 도굴을 당하지 않아 금동신발, 은제장식, 환두대도 등의 유물이 나왔다. 40여기의 다양한 묘가 한 봉분 안에 촘촘히 조성돼 일명 아파트 고분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반남면 고분로에 세워진 국립나주박물관은 신촌리 9호분 금동관을 비롯해 출토된 유물 1500여점을 전시한다. ●드라마 ‘주몽’의 감동 영상테마파크 나주시 공산면 일대 14만㎡의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나주 영상테마파크는 35억원을 투입해 특화한 영상촬영지다. 드라마 ‘주몽’ 촬영지로 유명한 이곳은 옛 고구려의 모습을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입구에 들어서면 그동안 이곳에서 촬영한 드라마 및 영화에 출연했던 송일국, 한혜진, 전광렬, 이계인, 진희경, 최정원, 정진영, 김정화, 오윤아 등 주연배우의 핸드 프린팅과 출연 사진을 배너로 표현한 ‘스타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테마파크 안에 들어가 고구려궁 맞은편에 있는 성루에 올라서면 S자로 굽이치는 영산강과 넓게 펼쳐진 다야뜰을 볼 수 있어 막혀 있는 가슴이 시원하게 뻥 뚫리는 청량감을 맛볼 수 있다. 2005년 건립 후 10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다녀갔다. 초가집으로 조성됐던 저잣거리를 너와 형태로 개조해 천연염색, 죽물, 소목, 한과, 한지, 비누, 점토공예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는 공방으로 조성했다. 세트장 입구에는 ‘삼족오의 비상’ 조형물과 광장이 조성됐고, 망루와 누각·성문 주변도 고증을 거쳐 복원했다. 실내 스튜디오 한쪽에는 밀레, 고흐, 뭉크, 마티스, 클림트, 신윤복, 김홍도 등 국내외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그대로 실사(實寫)한 그림을 내건 명화미술관이 있다. 규모가 방대해 테마파크를 제대로 돌아보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나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먹거리 ●맑고 담백한 국물 ‘나주곰탕’ 소뼈를 고아 낸 물에 소고기, 양지와 내장을 썰어 넣은 뒤 다시 푹 고아서 낸 국물로, 맑고 담백한 맛으로 유명하다. 윤기가 자르르한 나주쌀밥을 넣어 먹는 나주곰탕은 이제는 전 국민의 영양식으로 자리잡았다. 곰탕은 어디나 있지만 나주곰탕은 다른 지역에서 넘볼 수 없는 독특한 맛으로 유명하다. 흔히 곰탕 하면 우윳빛 뽀얀 국물을 떠올리지만 나주곰탕은 국물이 말갛다. 색깔부터 다르다. 소뼈를 우려내는 일반 곰탕과 달리 소뼈를 적게 넣고 양지나 사태 등 좋은 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 맛이 짜지 않고 개운하다. 소고기는 단백질과 양질의 지방이 풍부하며 소뼈에서 우러난 풍부한 칼슘이 성장기 아이들과 여자들의 골다공증 예방에도 좋다. 나주곰탕은 고기 누린내를 없애기 위해 무, 파, 마늘 등을 많이 넣기 때문에 비타민과 무기질도 충분한 영양식이 된다. 나주답사1번지인 금성관 인근에 곰탕거리가 조성돼 있다. 하얀집, 노안곰탕, 남평할매곰탕, 제일곰탕 등 전통 있는 음식점이 많이 있다. ●임금님 진상품 ‘나주배’ 나주는 배로 유명한 고장이다. 예로부터 임금께 올리는 진상품이었다는 기록(1454년 세종실록지리지)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우수성을 오래전부터 인정받았다. 2400여 농가가 매년 6만여t을 생산해 1200억원의 수익을 올린다. 영산강 유역 양질의 토양과 연평균 기온 14도 내외 최적의 기후조건, 오랜 경험으로 축적된 기술로 재배해 향이 좋고 당도가 높다. 연하고 부드러우며 과즙이 많고 색깔이 고운 게 특징이다. 전국에서 배 수확이 가장 빨라 추석 제수용품으로 나주배 생산량의 절반가량이 출하된다. 이때 전국으로 유통되는 배의 대부분이 나주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인들의 입맛도 잡으면서 미국, 대만, 베트남 등지로 수출된다. 지난해 미국에 1530t이 팔렸다. ●세상만사 좋을시구 ‘영산포 홍어’ 영산포는 홍어의 고장이다. 영산포 선창가 일대에는 홍어 전문점 30여곳이 성업 중이다. 톡 쏘는 홍어에 잘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 김치를 곁들이면 유명한 홍어삼합이 된다. 여기에 막걸리 한잔이면 ‘세상만사 좋을시구’가 절로 나온다. 과거에 흑산도에서 잡힌 홍어가 영산강을 따라 올라오는 일주일간 자연 발효되면서 독특한 맛의 홍어가 됐다. 지금은 웰빙식품으로도 많이 알려진 전라도 대표 음식이다. 홍어는 홍어회와 홍어무침, 홍어찜, 홍어탕 그리고 나주에서만 맛볼 수 있는 홍어애보릿국 등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참으로 이것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혀와 입과 코와 눈과 모든 오감을 일깨워 흔들어 버리는 맛의 혁명이다.” 소설가 황석영이 홍어를 처음 먹어본 후 토해낸 말이다. ●미꾸라지 먹고 자란 ‘구진포 장어’ 영산포를 지나 다시면 회진마을로 가는 길목에 구진포가 있다. 구진포는 영산강 뱃길이 끊기기 전까지 사람들과 물건을 실어 나르던 나루터였다. 구진포 장어는 구진포가 번성하던 시절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포구 주변에서 잘 잡히면서 유명해졌다. 특히 구진포 장어는 미꾸라지를 먹고 자라 맛이 뛰어나고 건강에도 좋다. 장어는 민물에서 살지만 산란을 위해 바다로 나가고 부화한 장어들이 민물로 들어온다. 포구는 기능을 잃었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옛맛이 그리워 구진포 장어집을 찾는다. 1940년대부터 들어선 장어 음식점들로 장어구이촌이 형성, 지금도 구진포 도로변에는 고소한 냄새가 끊이지 않는다. 나주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기억하라! 제주97번국도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기억하라! 제주97번국도

    “해 뜨는 구경 좋다는 성산은 끈 달린 주머니처럼 좁다란 육로로 본섬과 연결되어 있는 데, 옛 시인의 말대로 해중에 푸른 연꽃이 피어난 것같이 아름다운 자태로 솟아 있다” 제주 출신 소설가, ‘순이 삼촌’의 현기영(玄基榮·75)이 쓴 또 다른 작품 ‘바람 타는 섬’(창작과 비평사)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제주 제일 풍광이라고 일컫는, 성산일출봉을 단 번에 '연꽃‘으로 묘사할 수 있는 내공이 놀랍다. 진짜 제주 사람이다. 뭍은 하루 종일 폭염이다. 기록적인 더위여서, 매일 최고 온도 기록을 갈아 치운다. 나라가 올 여름 더위를 단단히 기록한다고 할 정도로 뜨겁다. 리우 올림픽 신기록 열기보다 더 후끈하다. 그래서인지 제주섬 바다를 보려는 사람들로 제주공항은 늘 북새통이다. 가수 ‘태연’이 제주의 푸른 밤을 보러 오라고 한다. 노랫말처럼 ‘모든 걸 훌훌 버리고’ 제주의 푸르메를 찾아 간다. 그런데, 제주 역시 뜨겁다. ● 제주 4·3사건을 넘어 세계적 관광지로 - 성산일출봉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1번지에 있는 성산 일출봉(城山日出峰)은 유명해도 너무 유명하다. 그러다보니 유네스코 세계 자연유산에 2007년에 일찌감치 등재되어 있을 정도이니 굳이 명성을 밝히지 않아도 될 듯 하다. 방문자 수에 있어서도 2016년 7월에만, 31만 명이 넘으니 이미 제주도 다른 관광지와는 일찌감치 비교 안 되는, 관광객 숫자로는 금메달 지역임은 확실하다. 성산일출봉은 큰 사발접시 모양의 분화구가 특징적인데, 분화구 내부의 면적은 12만 9774㎢에 달할 정도로 넓다. 또한 최고 높이가 해발 182m에 달해서 이곳에서 바라보는 해돋이가 고와 봉우리 이름도 일출봉(日出峰)이다. 초기에는 육지와 떨어져 있었는데, 파도에 의해 침식된 퇴적물들이 해안으로 밀려들어와 쌓이면서 육지와 연결되었고 이러한 지형을 육계사주(陸繫沙洲)라고 하는 데 성산일출봉이 그렇다. 그리고 흡사 거대한 성의 모습을 닮아 성산(城山)이라고도 불리게 되었다. 그런데 이토록 아름다운 성산일출봉 일대가 바로 제주 4·3사건의 비극적인 장소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성산포의 경우 제삿날이 같은 집이 많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제삿날에는 하루 종일 ‘광치기 해안’에는 아들 잃은 노모(老母)인, 수많은 ‘삼촌’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고 한다. 제주도에는 여자 친척도 ‘삼촌’이라고 부른다. 성산일출봉 아래, 바닷물 넘나드는 길목인 ‘터진목’이라는 곳이 있다. 바로 이곳이 ‘제주 서북청년회’에 의한 성산포 집단 학살이 이루어 진 곳이기도 하다. 그 때 이후 6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말보다 중국어가 더 보편화 된, 가게마다 중국인 점원이 있는 ‘글로벌’한 관광지가 되어 있으니 시대의 변화를 몸소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두 다리 불끈 힘 내어 일출봉 등산로를 올라서 제주의 역사를 느껴보자. ● 제주의 푸른 바다를 - 섭지코지 섭지코지는 독특한 이름값 톡톡히 본다. 누구든 이 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호기심 가득한 '특별한' 풍광이 있으리라 기대를 가지고 온다. 섭지코지의 어원을 살펴보자면, ‘섭지’란 훌륭한 인물, 즉 재사(才士)가 많이 배출되는 지세란 뜻이며 ‘코지’라는 말은 코의 끄트머리처럼 바다로 불쑥 튀어나온 곶이라는 뜻이다. 제주 산양해수욕장을 바라보면서, 양 옆으로 2Km에 걸쳐 바다를 향해 길게 나있는 해안가의 절경은 섭지코지의 명성을 드높인 일등공신이다. 해수욕장 옆 정지코지와 바닷가 해안을 따라 형성된 검은돌 고자웃코지로 나눌 수 있는 데, 이 중 고자웃코지의 풍광은 섭지코지 방문의 으뜸 절경임은 분명하다. 섭지코지 글래스하우스(Glass House)에서 바라보는 선녀바위와 붉은 화산재가 굳어 생긴 기암괴석들의 모양은 가히 절경이다. 특히 높이 30미터에 달하는 선녀바위는 용왕의 아들이 선녀에게 반하여 하늘로 선녀를 따라 올라가려다 노한 옥황상제가 그 자리에 선돌로 만들어버렸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이기도 하다. 가족 단위로 편안한 휴식을 원하는 관람객들에게 섭지코지의 절경은 표선해수욕장이나 쇠소깍, 중문의 주상절리, 애월의 힘찬 바다와는 달리 탁 트인 태평양 드넓은 풍경을 선사한다. 따라서 번잡함을 피해 제주에 온 뭍손님들에게는 늘 최고의 인기 장소이기도 하다. <성산일출봉과 섭지코지에 대한 여행 10문답> -아래 질문은 실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을 바탕으로 만든 10문답입니다.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인가요? -제주 방문에 있어서 성산일출봉 방문은 필수다. 그러나 서귀포나 중문단지, 공항으로부터 약 1시간 이상 떨어진 곳이어서 시간적 여유를 필요로 한다. 지금 이 곳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어 오히려 제주도가 아닌 듯 인상을 준다. 섭지코지는 성산일출봉과 붙어 있기 때문에 성산일출봉을 방문하는 관람객이라면 추천. 다만, 한 여름이나 겨울보다는 4월의 유채꽃 필 때가 보기 좋다. 2. 이 공간을 추천해주고 싶은 사람은? -가족 단위의 방문객, 60대 이상의 자연의 풍광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진 분들. 3. 숙소 등의 시설환경은 괜찮은가요 ? -제주도의 숙박시설은 가격 대비 천양지차이다. 하지만, 이 곳 성산포 지역의 민박집이나 게스트하우스 등의 경우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가성비가 적절하다. 방문 블로그 등을 참조하면 좋다. 4. 성산 일출봉이나 섭지코지의 실제모습은? -뜨거운 여름 뙤약볕 아래 성산 일출봉이나 섭지코지를 방문하는 것은 실제 생각만큼 즐겁지는 않다. 그늘이 없어 지금 시기는 기대를 맞추기는 힘들다. 힌트를 드리자면, 지금 시기는 해질녁 시간을 맞추어 가보길 권유한다. 5. 특별히 주의해야 할 점은? -숙소를 미리 정하고 여유있게 다녀야 한다. 성산 일출봉과 섭지코지는 글로벌한 관광지답게 넓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 6. 홈페이지 주소 및 도움되는 사이트 주소는? -성산일출봉(http://jejuwnh.jeju.go.kr/contents/index.php?mid=020202) -섭지코지(http://www.jejutour.go.kr/contents/?act=view&mid=TU&seq=248) 7. 입장료와 기타 관광지정보는? -성산일출봉 관람시간 : 오전 9시~18시/ 관람요금(어른 2000원, 청소년, 군인, 어린이 1000원)/ 버스 이용시 제주공항, 중문관광단지에서 약 70분, 서귀포에서는 약 60분 8. 주변에 가 볼만한 다른 공간도 있나요? -어르신과 같이 제주에 왔다면 에코랜드나 성읍민속마을을, 아이들과 같이 왔다면 승마체험을. 9. 이곳에서 꼭 추천하고픈 공간이나 체험은? -성산 일출봉의 해돋이. 허락되는 날씨가 생각보다 많지 않아서 일출을 볼 수 있다면 적극 추천함. 10. 총평 및 당부사항, 기타정보 -제주 관광은 너무나도 유명하다. 다만, 생각보다 제주도 내에서 이동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여행계획과 동선을 잘 짜서 온다면 알찬 여행이 가능하다. 유명 식당을 찾아 다니는 수고는 굳이 하지 말기를.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주민과 더 가까워진 중구청 로비

    주민과 더 가까워진 중구청 로비

    “구청 로비가 한결 환해졌어요.” 서울 중구청의 얼굴 격인 1층 로비가 새 단장을 했다. 공간을 주민들을 위한 ‘복합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 중구는 지난 12일 최창식 구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238㎡의 널찍한 공간은 차를 마시면서 책을 볼 수 있는 산뜻한 북카페, 중구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전시관, 체험존이 들어섰다. 카페는 주민·직원 누구나 소규모 회의, 모임을 할 수 있는 열린 곳이다. 기존에 구청 별관 4층에 있는 바람에 이용이 저조했던 작은도서관도 이곳으로 옮겨 북카페로 고급화했다. 역사전시관은 중구의 과거와 현재를 각종 사진과 그래픽, 영상으로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순신, 박지원, 이덕형, 이행, 강세황 등 중구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 24명의 영상, 필적도 모아 놓았다. 한국영화의 메카 충무로가 중구의 한 축임을 감안해 임권택 감독의 작품 100여 편을 디지털북으로 만들었다. 1950~60년대 거리 지도에서 당시 다방, 여관, 음식점, 영화사를 구경하거나 옛 영화 시나리오, 티켓 등 소품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역사전시관은 주민과 직원들의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탄생했다. 특히 중구의 주요 명소와 역사를 6개 코스로 스토리텔링한 ‘중구로 떠나는 테마여행’ 존은 체험거리다. 한쪽에 중구 옛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월을 만들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거리로 돌아가 볼 수도 있다. 최창식 구청장은 “중구청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고, 서울 600년 역사문화를 간직한 중구의 옛 모습을 느낄 수 있다”면서 “구민과 직원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동네 명소가 될 수 있게끔 많이 활용해 주시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서울 중구청, 로비에 북카페와 역사전시관 등을 주민과 공유합니다

    “구청 로비가 한결 환해졌어요” 서울 중구청의 얼굴 격인 1층 로비가 새 단장을 했다. 공간을 주민들을 위한 ‘복합 커뮤니티’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 중구는 지난 12일 최창식 구청장이 참석한 가운데 개관식을 열고 본격적인 운영을 시작했다. 238㎡의 널찍한 공간은 차를 마시면서 책을 볼 수 있는 산뜻한 북카페, 중구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역사전시관, 체험존이 들어섰다. 카페는 주민·직원 누구나 소규모 회의, 모임을 할 수 있는 열린 곳이다. 기존에 구청 별관 4층에 있는 바람에 이용이 저조했던 작은도서관도 이곳으로 옮겨 북카페로 고급화했다. 역사전시관은 중구의 과거와 현재를 각종 사진과 그래픽, 영상으로 한눈에 볼 수 있다. 이순신, 박지원, 이덕형, 이행, 강세황 등 중구에서 태어나거나 활동한 대표적인 인물 24명의 영상, 필적도 모아 놓았다. 한국영화의 메카 충무로가 중구의 한 축임을 감안해 임권택 감독의 작품 100여 편을 디지털북으로 만들었다. 1950~60년대 거리 지도에서 당시 다방, 여관, 음식점, 영화사를 구경하거나 옛 영화 시나리오, 티켓 등 소품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 역사전시관은 주민과 직원들의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탄생했다. 특히 중구의 주요 명소와 역사를 6개 코스로 스토리텔링한 ‘중구로 떠나는 테마여행’ 존은 체험거리다. 한 쪽에 중구 옛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월을 만들어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 거리로 돌아가 볼 수도 있다. 최창식 구청장은 “중구청은 서울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누구나 편하게 방문할 수 있고, 서울 600년 역사문화를 간직한 중구의 옛 모습을 느낄 수 있다”면서 “구민과 직원들의 관심과 애정으로 동네 명소가 될 수 있게끔 많이 활용해 주시라”고 말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춘천에 진종오 사격공원 설립 추진한다

    춘천에 진종오 사격공원 설립 추진한다

    사격부문에서 한 종목에서 3차례 연속 금메달을 획득하며 사격의 전설로 기록된 진종오 선수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고향인 춘천에 사격공원 설립이 추진된다.  춘천시는 15일 춘천이 고향인 진종오가 세계 사격역사를 새로 쓴 것을 기념하기 위한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동용 춘천시장은 11일 진 선수의 금메달 소식과 함께 고향인 남산면을 찾아 “진 선수가 올림픽 사격 종목 역사상 3연속 금메달을 딴 유일한 선수이고 국내 최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대기록을 갖게 돼 국가 차원의 기념사업 대상자로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춘천시는 강원도와 함께 조만간 정부 부처에 가칭 ‘진종오 사격 공원’ 사업화 방안을 건의키로 했다. 사격공원은 기념관, 사격장, 체험시설 등 진 선수와 사격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시설이다.  춘천시는 이미 올림픽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둔 김수녕과 황영조 선수의 활약을 기념해 김수녕 양궁장, 황영조 기념공원 등의 조성 사례를 들어 국비와 도비 지원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했다.  진종오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50m 권총 은메달, 2008년 베이징 올림픽 50m 권총 금메달, 10m 공기권총 은메달, 2012년 런던올림픽 50m 권총, 10m 공기권총 금메달 2관왕에 올라 이번 대회까지 포함해 금메달 4개와 은메달 2개를 땄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명인·명물을 찾아서] 맨발 황토 ‘힐링길’… 천년의 숲 ‘명상길’

    [명인·명물을 찾아서] 맨발 황토 ‘힐링길’… 천년의 숲 ‘명상길’

    강원 평창 오대산 ‘천년의 숲길’은 국내 최고 명품 숲길이다. 울창한 전나무숲으로 이어진 길을 걸으면 향기로운 피톤치드와 고요한 불교성지 오대산 바람이 몸과 마음을 씻겨 준다. 이 길을 따라 음악회와 설치미술전이 열리고, 스님들의 3보 1배가 이어진다. 월정사와 상원사를 찾은 불교 단기 출가자들과 체험 관광객들에게는 걷기 명상의 필수코스다. 14일 평창군에 따르면 길은 오대산 초입 일주문에서 시작해 월정사 금강교까지 1.1㎞에 이른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새소리, 바람 소리, 물소리 들으며 숲길을 걷다 보면 도시에서의 찌든 때가 어느덧 말끔히 씻긴다. 폭 7~8m의 황토길로 말끔하게 단장돼 맨발로 걷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오래전 버스가 다니던 아스팔트길을 걷어 내고 황토에 마사토를 섞어 배수가 잘 되는 걷기 전용길로 만들었다. 월정사 전나무숲길로도 불리는 천년의 숲길은 아름드리 전나무가 좌우로 에스코트하듯 뻗어 있다. 장쾌하게 솟은 전나무는 짙은 그늘을 만들지만 침엽수 특유의 잎 새로 볕이 잘 들어 음습하지는 않다. 전나무는 머리가 맑아지는 피톤치드 향기와 몸에 유익한 음이온까지 배출돼 숲길 전체가 싱그럽고 상쾌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걷고 싶은 길’ 가운데 하나로 꼽힌 월정사 전나무숲길의 나무들은 평균 나이가 80~100년에 이른다. 숲 전문가들은 최고령 나무를 370여년으로 점쳤지만 수년 전 태풍 때 쓰러진 전나무는 650년이 넘은 것으로 알려져 이곳 전나무숲의 역사를 대변했다. 숲길에 얽힌 전해오는 얘기도 재미있다. 고려 말 오대산에서 수행하던 무학대사의 스승인 나옹선사는 매일 월정사에 들러 부처님에게 공양을 드렸다. 그런데 어느 겨울날 소나무 가지에 있던 눈이 떨어져 공양이 못 쓰게 됐다. 이에 나옹선사는 부처님에게 드리려던 공양을 망치게 한 소나무를 크게 꾸짖었고, 호통을 들은 소나무는 참회하듯 자리를 비켜났고 그 자리에 소나무 대신 전나무가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이때 이곳에 자리를 잡은 아홉 그루의 전나무가 천년이 넘는 시간 오대산과 월정사를 지키며 씨를 뿌리고 숲을 이뤘는데 사람들에 의해 이곳이 천년 숲길, 전나무 숲길로 불리고 있다는 얘기다. 이렇게 자란 아름드리 전나무들은 보통 성인 2~4명이 팔을 벌려 안아야 닿을 만큼 장대하다. 어림잡아 300여 그루가 황토길을 따라 뻗어 있고, 주변에도 높이 10~15m의 전나무숲이 군락을 이룬다. 전나무숲은 언젠가 길을 따라 가로수처럼 심어졌지만 어느새 씨앗이 주변에 떨어져 군락을 이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나무 밑동에는 푸른 이끼들이 붙어 자라고, 숲길 주변에는 수달과 노랑무늬붓꽃 등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 340여종이 살고 있어 이곳이 생태가 완벽하게 살아 있는 보기 드문 청정 힐링 산책 코스임을 알리고 있다. 숲길 중간쯤에는 월정사와 역사를 같이하는 ‘부도 밭’이 있다. 고승들이 입적할 때마다 종(鐘) 모양의 부도탑이 하나씩 생겨나 지금은 밭을 이루는 모습이 장관이다. 사찰의 깊은 역사만큼 부도탑들도 이끼가 끼고 닳아 전나무숲과 어울림이 자연스럽다. 길섶에는 곳곳에 쉼터도 마련됐다. 걷기 명상을 하거나 자연풍광을 고즈넉하게 느끼고 싶은 누구나 쉬면서 자연과 교감할 수 있도록 했다. 이곳 숲길을 찾은 사람들은 세 번 놀란다. 우선 하늘을 찌르듯 솟아 있는 전나무숲의 웅장한 모습에서 놀라고, 황토길과 깔끔하게 단장된 주변 옛 시설들의 모습에서 놀라고, 숲속에서 펼쳐지는 정제된 불교행사와 음악회·자연설치미술전에서 또 놀란다. 자연설치미술전은 ‘선 지식을 찾는다’를 주제로 지난해 처음 13점을 선보이며 시작했다. 나무젓가락으로 만든 사슴, 풀로 엮어 걸어 놓은 줄 등 나무·풀·흙 같은 친자연 소재로 만들어 숲속에 설치했다. 4~5년 뒤면 자연스레 썩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설치미술전이다. 숲길에는 야간 걷기를 위한 조명시설도 마련됐다. 해가 져서 밤 9시까지 길을 걷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은은한 불빛을 길섶마다 설치했다. 한여름에는 푸른 숲속의 야경을 즐기고 한겨울에는 눈 덮인 순백의 숲속을 걸으며 명상할 수 있도록 했다. 건강한 숲을 간직하기 위해 사계절 밤 9시가 넘으면 소등한다. 천년의 숲길을 걷다 더 걷고 싶은 사람들은 상원사로 오르는 ‘선재길’을 걸을 수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까지 10㎞에 이르는 선재길은 비포장 트레킹코스로 인기다. 암반수가 흐르는 계곡과 폭포를 옆으로 두고 이어지는 3시간 코스 길이다. 상원사에 오르면 조선 세조와 문수동자에 얽힌 전설 같은 얘기가 전해진다. 부스럼(종기)으로 고생하던 세조가 상원사 계곡물에서 목욕하면서 문수동자를 만나 병이 나았고, 그 은혜를 고맙게 여겨 문수동자상을 만들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세조가 입었던 피고름 묻은 옷이 문수보살상 복장유물로 발견돼 현재 월정사 성보박물관 수장고에 보물로 지정돼 보관 중이다. 6·25전쟁 때 월정사 등 주변 사찰들이 불이 탄 가운데 상원사만을 오롯이 지켜낸 뒤 앉아서 입적한 방한암 선사, 1300년 동안 이어져 온 한국 불교 화엄경을 완역한 탄허 스님 등 걸출한 고승들의 숨결도 느낄 수 있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도 좋다. 3㎞ 남짓 1시간 동안 오르는 길은 순례길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만나 석가모니 진신사리를 받아 모셨다는 적멸보궁은 오대산 산세 가운데 용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명당 중의 명당으로 꼽히는 곳이다. 오르는 중턱, 중대사자암에 들러 약수인 용안수 한 모금을 마시며 갈증도 풀 수 있다. 이곳에는 방한암 선사가 꽂아 놓은 단풍나무 지팡이가 지금도 잘 자라고 있다. 월정사에서 상원사, 적멸보궁으로 이어지는 산길 옆에는 5대 암자가 자리잡아 스님들의 도량터전이 되고 있다. 북대 미륵암과 남대 지장암, 동대 관음암, 서대 수정암, 중대 사자암이 그곳이다. 이들 가운데 지장암은 비구니 선방으로 유명하고, 수정암은 세종실록지리지에 기록된 한강의 발원지 우통수가 있는 곳이다. 일주문에서 시작된 전나무숲길과 월정사를 지나 상원사까지 이어지는 숲길은 1960년대 말 도로가 나기 전 상원사까지 불교신도들의 순례길이었다. 지금도 해마다 봄이면 ‘천년숲 선재길 걷기’ 행사를 열고 있다. 월정사 행정실장 두엄 스님은 “오대산은 최고 명품길인 ‘천년의 숲길’을 비롯해 상원사 중창권선문, 월정사 팔각구층석탑 등 국보급 보물들이 많아 명상과 불교문화를 접할 수 있는, 추억 만들기에 최적의 장소로 꼽히는 곳”이라고 말했다. 평창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지독한 책사랑, 그 뒤엔 백성사랑

    지독한 책사랑, 그 뒤엔 백성사랑

    세종의 서재/박현모 외 지음/서해문집/344쪽/1만 7000원 조선 3대 임금 태종 이방원은 ‘철혈군주’였다. 정적과 형제들까지 가차 없이 죽였고,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구축해 태조 이성계의 뒤를 이은 실질적인 창업군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태종의 강력한 카리스마와 끝없는 권력 투쟁, 숙청 작업은 어린 세종에게 숨 막히는 삶이었을지 모른다. 세종이 책을 탐독한 이유도 책이 유일한 현실 도피처였기 때문이다. 세종은 역대 조선의 국왕 가운데 대표적인 다독가(多讀家)이자 직접 책을 만들기도 한 탐서가(探書家)였다. 그의 책 사랑은 세종실록 20년 3월 19일 스스로 밝힌 “책을 보는 중에 그로 말미암아 생각이 떠올라 나랏일에 시행한 것이 많았다”라는 독백에서 오롯이 엿볼 수 있다. 명종실록 1년 6월 9일 기사에는 특진관 신영이 “세종은 지나치게 학문을 부지런히 하시어 심신을 손상하게까지 되시니 태종께서 서책을 거두도록 명하셨습니다. 우연히 구소수간(歐蘇手簡)이 어안(御案)에 놓여 있었는데 이는 구양수(歐陽修)와 소식(蘇軾)의 서찰로 정회(情懷)를 쓴 것일 뿐 문의(文意)가 웅장하고 심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세종께서는 성심으로 학문을 좋아하셨으므로 천 번이나 읽으시어 지금껏 미담으로 전합니다”라고 밝힌다. 신간 ‘세종의 서재’는 그의 서재에 꽂혀 있던 애독서와 그의 시대에 그가 만든 책들을 선별해 소개한다. 마치 세종의 서재를 직접 둘러보며 그의 때 묻은 서책들을 엿보는 체험을 하는 듯한 느낌이다. 청년 세종이 100번, 1000번 읽었다고 회자되는 대표적인 애독서가 명종실록에 등장한 ‘구소수간’이다. 송나라 때의 문장가로 유명한 구양수(1007~1072)와 소식(1036~1102)이 주고받은 ‘척독’(짧은 편지)이다. 세종 스스로도 30번은 읽었다고 실록에 밝힌 책이다. 저자는 “구양수와 소식이 쓴 척독의 응축적, 미학적 문장이 훈민정음 창제의 동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한다. 그가 왕위에 오른 후 경연(經筵)할 때 처음으로 선택한 ‘대학연의’(大學衍義)와 조선 법관의 필독서인 ‘당률소의’(唐律疏議), 원나라 최후의 법전인 ‘지정조격’(至正條格) 등도 즐겨 읽었던 책으로 소개된다. 세종이 편찬한 책 가운데 으뜸은 단연코 ‘훈민정음(訓民正音) 해례본’이다. 세종이 직접 서문을 썼다. 해례본의 ‘정인지 서(序)’에는 “소리가 있으면 글자가 있어야 한다”, “새로운 문자는 신묘하고 전환이 무궁해 표기하지 못할 소리가 없다” 등 훈민정음의 역사적 의의가 담겼다. 세종은 ‘우리 것’을 높이 평가한 주체적인 왕이었다. 조선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는 조선 풍토에 적합한 조선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이라는 믿음에 조선의 처방전을 종합한 ‘향약집성방’, “풍토가 다르면 농법도 다르다”는 취지에 따라 중국이 아니라 한반도의 실정에 맞는 농사법을 설명한 ‘농사직설’, 우리의 음악 기록을 펴낸 ‘세종실록악보’, 우리나라의 첫 전쟁사이자 동아시아 전쟁사를 다룬 ‘역대병요’, 우리나라와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효자, 충신, 열녀의 행실을 논한 교화서인 ‘삼강행실도’ 등은 모두 세종의 독립적인 국가 경영론이 담겨 있는 책들로 꼽힌다. 세종 리더십 전문가인 박현모 여주대 교수는 “세종에게 책은 존재 그 자체였다”면서 “그에게 책은 기능적 의미를 훨씬 뛰어넘는 그 무엇이었다”고 말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상암 난지캠핑장에 3대가 함께 오세요

    상암 난지캠핑장에 3대가 함께 오세요

    서울 마포구가 조부모와 부모, 아이가 추억을 쌓는 캠핑 행사를 마련했다. 구는 다음달 23~24일 상암동 난지캠핑장에서 3대가 함께 사는 가족 120명을 초청해 1박 2일 ‘화통한 가족애 캠프’를 연다고 11일 밝혔다. 박홍섭 마포구청장의 공약사업으로 할머니·할아버지 손에 크는 손주들이 늘어난 현실을 반영, 세대 간 소통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기획됐다. 캠프 참여를 원하는 가정은 오는 19일까지 구 건강가정지원센터 홈페이지를 통해 선착순 접수하면 된다. 참가비는 무료다. 구는 경제적 사정 탓에 가족끼리 여행하기 어려운 저소득·한부모·다자녀·다문화 가정을 우선 모집할 예정이다. 캠프에서는 미니올림픽(2인3각 달리기, 딱지치기, 공 굴리기), 화채 만들기, 미꾸라지 잡기 체험은 물론 가족단위 바비큐파티도 열린다. 밤에는 가족 구성원이 소원을 각자 적어 풍등에 담아 띄우는 행사도 가진다. 이튿날에는 밥차에서 제공되는 아침식사를 한 뒤 캠핑장 주변을 청소하는 그린캠페인을 벌인다. 박 구청장은 “3대가 함께하는 이번 가족 캠프는 세대 간 격차를 줄이고 소중한 시간이 될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건강하고 행복한 가정과 지역사회를 만들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유네스코 인증 받은 세계지질공원 제주

    유네스코 인증 받은 세계지질공원 제주

    화산섬 제주는 섬 전체가 세계지질공원이다. 제주의 상징인 한라산, 수성 화산체의 대표적 연구지인 수월봉, 용암돔(여러 번의 용암유출로 형성된 돔 모양의 산)으로 대표되는 산방산, 제주 형성 초기 수성화산활동의 역사를 간직한 용머리해안 등이 대표 지질명소다. 또 주상절리(화산폭발 때 용암이 식으면서 부피가 줄어 수직으로 쪼개지면서 5~6각형의 기둥 형태를 띠는 것)의 형태적 학습장인 대포동 주상절리대, 100만년 전 해양환경을 알려주는 서귀포 패류화석층, 퇴적층의 침식과 계곡·폭포의 형성 과정을 전해 주는 천지연폭포, 응회구(수성화산 분출에 의해 높이가 50m 이상이고, 층의 경사가 25도보다 급한 화산체)의 대표적 지형이며 해 뜨는 오름으로 알려진 성산 일출봉,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가운데 유일하게 체험할 수 있는 만장굴도 지질명소다. 이들 9개 지질명소는 2012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받았다. 세계지질공원은 지구과학적으로 중요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장소로 자연, 인문, 사회, 역사, 문화, 전통 등이 결합돼 있어야 한다. 2010년 그리스 레스보스 섬에서 열린 유럽지질공원 총회에서 “지질공원이란 과거로부터 배우고 익혀서,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세계지질공원인 수월봉과 차귀도, 용머리해안 등을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도 등재하는 방안도 추진, 현재 대한지질학회가 관련 연구용역을 진행 중이다. 앞서 제주도는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 당시 유네스코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으로부터 제주도 화산적 특징을 추가로 세계유산에 등재할 것을 권고받았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화산학 교과서’ 수월봉 펼쳐보니… 겹겹이 쌓인 역사와 전설

    ‘화산학 교과서’ 수월봉 펼쳐보니… 겹겹이 쌓인 역사와 전설

    ‘화산섬 제주 탄생의 비밀을 풀어 보세요.’ 제주 올레길이 아름다운 제주의 속살을 보여 준다면 제주 지질 트레일은 화산섬 제주의 모든 것을 보여 준다. 1만 8000년 전 제주 서쪽 고산리 앞바다 땅속에서 올라온 마그마는 지하수와 바닷물이 만나면서 격렬하게 폭발했다. 폭발과 함께 솟구친 화산재들은 화산가스, 수증기와 뒤엉켜 쌓이고 쌓여 ‘화산학 교과서’라 불리는 수월봉이란 지질 명소를 탄생시켰다. ●9일간 화산활동 변화 한눈에 체험 수월봉은 높이 77m의 작은 언덕 형태의 오름(기생화산)으로 화산섬 제주를 대표하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명소. 오랜 세월 바람과 파도에 깎이면서 화산체 대부분이 사라지고, 1.5㎞에 이르는 해안절벽이 병풍을 두르듯 남아 지금의 수월봉이 만들어졌다. 수월봉 화산재층은 화산활동으로 생긴 층리의 연속적인 변화를 한눈에 보여주는 세계적인 지질 명소로 손꼽힌다. 11일 제주시에 따르면 화산섬 제주의 비밀을 찾아가는 2016 지질 트레일 행사가 오는 13일부터 21일까지 제주시 한경면 수월봉 일대에서 펼쳐진다. 13일 개막식을 시작으로 9일간 수월봉 엉알길, 당산봉, 차귀도 등 3개 코스에서 지질 트레일 걷기 행사가 열린다. 수월봉 코스는 해경 파출소에서 출발해 용암과 주상절리, 갱도 진지, 화산탄, 수월봉 정상, 한장동 엉앙길, 검은모래해변, 해녀의집으로 들어온다. 당산봉 코스는 거북바위에서 시작해 생이기정, 가마우지, 당산봉수까지다. 차귀도 코스는 자구내 포구, 차귀도 역사, 장군바위, 차귀도 등대, 차귀도 지질로 이어진다. ●엉알길 태평양전쟁 당시 갱도 흔적 4.6㎞ 수월봉 엉알길 코스의 수월봉 정상 절벽 아래 ‘엉알’은 화산재 지층이 가장 잘 발달한 곳이다. 엉알길은 벼랑·절벽 등을 뜻하는 제주어 ‘엉’과 아래쪽을 이르는 ‘알’이 합쳐진 말로 ‘벼랑 아래 있는 길’을 뜻한다. 엉알에는 화산 분출 당시 분화구에서 뿜어져 나온 화산분출물이 쌓인 화산재 지층이 70m 두께로 기왓장처럼 차곡차곡 쌓여 있어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엉알길 코스에는 아픈 역사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만들어진 일본군 갱도 진지는 태평양전쟁 당시 미군이 상륙을 시도할 것에 대비해 갱도에서 바다로 직접 발진, 전함을 공격하는 자살 특공용 보트와 탄약 등이 보관돼 있었다. 수월봉에는 어린 남매의 애틋한 전설도 전해 온다. 병을 앓던 어머니를 보살피던 수월이와 녹고 남매에게 누군가 100가지 약초를 구해 어머니를 구하라는 처방을 내렸다. 남매는 백방으로 약초를 캐러 다닌 끝에 99가지 약초를 구했으나 마지막 한 가지 오갈피를 구하지 못했다. 수월이는 수월봉 낭떠러지 절벽 아래 있는 오갈피를 발견하고 홀어머니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절벽을 내려가다 떨어져 죽었다. 동생 녹고도 누이를 잃은 슬픔에 17일 동안 눈물을 흘리며 시름하다 죽고 만다. 녹고의 눈물은 절벽 곳곳에서 솟아나 샘물이 됐다. 전설 속 녹고의 눈물은 비가 오면 수월봉 해안절벽 화산재 지층 옆으로 흘러내린다. ●희귀식물 82종 서식 차귀도 천연기념물 3.2㎞에 이르는 당산봉 코스에는 거북바위와 당산봉 가마우지, 당산봉수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자구내 포구에서 2㎞ 떨어진 무인도인 차귀도에는 다양한 수목과 양치식물 등 82종의 식물이 서식,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 중이다. 차귀도에는 옛날 중국 송나라 사람 호종단이 제주에서 중국에 대항할 큰 인물이 나타날 것을 경계, 제주의 지맥과 수맥을 끊고 돌아가려 할 때 한라산의 수호신이 폭풍을 일으켜 배를 침몰시켜 돌아가는 것을 막았다 해 차귀도(遮歸島)가 됐다는 전설이 전해 온다. 수월봉 일대는 제주 올레 12코스(무릉리~수월봉~용수포구)와도 겹쳐 지질 트레일과 올레길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엉알길 입구~자구내 포구(1㎞)는 장애인도 편하게 올레길을 즐길 수 있는 제주 올레 휠체어 구간이다. 수월봉 인근의 고산리 선사유적지에는 8000~1만 2000년 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신석기시대 유적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은 수렵채집 생활을 했고 발굴된 사냥도구, 토기 등의 유물은 국립제주박물관에서 볼 수 있다. ●‘제주지오’ 앱 통해 역사·생태 탐방 스마트폰으로 제주 세계지질공원을 즐길 수도 있다. ‘제주지오’ 모바일 앱은 세계지질공원 제주의 지질학적 특성과 경관, 마을의 역사·문화·생태 이야기 등 다양한 문화자원을 탐방해 볼 수 있다. 지질트레일(Geo-Trail)과 지질트레일 내 이용할 수 있는 지오하우스(Geo-House), 지오푸드(Geo-Food), 지오액티비티(Geo-Activity) 등 지오브랜드 체험 정보를 담았다. GPS를 이용한 실시간 지질트레일 지도 안내로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있으며, 코스 내 주요 포인트 소개, 날씨 정보 등을 제공해 준다. 수월봉 지질명소는 한 해 40만여명이 찾는 등 도보여행객의 주목을 받고 있다. 행사 기간에는 전문가와 함께하는 특별 탐방도 마련됐다. 전용문(지질), 김완병(생태), 박찬식(역사·문화) 박사가 동행해 자연자원의 가치와 제주의 역사·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제주 세계지질공원 사생대회 및 사진공모전도 열린다. 세계지질공원수월봉트레일위윈회는 “수월봉은 자체로도 경관이 뛰어난 데다 화산이 만들어낸 지층을 가까이에서 연속성 있게 볼 수 있어 화산섬 제주의 신비와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고 밝혔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한국형 산림휴양’ 해외 전수…산림청, 印尼에 생태센터 건립

    산림청이 인도네시아에 산림휴양·생태관광의 ‘한류’를 전수하고 있다. 11일 산림청에 따르면 한국의 산림복지 기술로 인도네시아의 해양 휴양지인 롬복 섬 투낙 지역에 생태관광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가 사업비(16억원)를 투자해 2018년 완공될 예정이다. 산림휴양시설을 비롯해 다목적센터와 나비 생태체험장, 숲속의 집, 둘레길 등이 조성된다. 휴양시설 설치와 별도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지난해부터 롬복 주민과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역량 강화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교육 프로그램에는 숲 해설·나비 사육 등 기초지식과 산림휴양 등에 대한 이론·실습을 담은 일반과정, 지역사회 협력과 소득 연계 방안 등이 포함된 지도자과정이 있다. 도입 첫해인 지난해 61명이 일반과정을 연수했고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10일까지 롬복 현지에서 진행된 상반기 교육에는 51명이 참가했다. 임하수 산림청 해외자원개발담당관은 “생태관광센터를 조성해 지방자치단체에 제공할 계획이며 주민들이 운영할 수 있도록 역량 배양 교육까지 전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여름방학 ‘보물’ 찾으러 부천 만화박물관으로”

    “여름방학 ‘보물’ 찾으러 부천 만화박물관으로”

    “얘들아, 보물 찾으러 만화박물관에 가자.” 한국만화박물관은 여름방학을 맞아 어린이 보물찾기 체험 프로그램인 ‘한국만화박물관 만화모험단’을 상시 운영한다고 10일 밝혔다. 만화모험단은 박물관 내 전시관을 찾아다니며 숨은 문제를 푼 후 추첨으로 보물을 획득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 행사는 한국만화의 역사와 유산을 학습할 수 있는 체험활동으로 차별화된 교육 경험이다. 또 오는 12일까지 ‘터닝메카드’ 주인공인 ‘나찬’과 함께 떠나는 여름방학 이벤트가 진행된다. 박물관 만화영화상영관에서는 ‘터닝메카드’와 ‘헬로카봇’ 특별판이 하루 5회 무료 상영된다. 박물관 입장권이 있는 관람객은 누구나 관람할 수 있고 선착순이다. 13일에는 지난해 독립영화 선정작인 ‘한여름의 판타지아’ 무료상영회와 장건재 감독과 대화 자리가 마련된다. 참가 신청은 박물관 페이스북(www.facebook.com/manhwamuseumedu)에서 하면 된다. 이 밖에 오는 14~15일 ‘웹애니메이션 특별전’을 통해 재능 있는 애니메이션 창작자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진다. 특히 2000년대 초 인기 웹애니메이션 ‘오인용’, ‘만담강호’, ‘달묘전설’ 등을 대형 스크린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조선의 중심 ‘종로 뒷골목’… 계단 없어 휠체어 답사도 OK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조선의 중심 ‘종로 뒷골목’… 계단 없어 휠체어 답사도 OK

    서울시는 2014년 근현대 서울의 추억과 발자취가 담긴 유·무형 자산을 발굴·관리하는 ‘미래유산 보전 종합계획’을 수립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이맘때 ‘미래유산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시민들과 미래유산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시는 미래유산 발굴보존 사업이 가능한 한 민간 주도로 진행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이번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역시 서울신문, 문화지평과 함께 시민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홈페이지(http://futureheritage.seoul.co.kr)에서 오는 9월 3일 장충단비, 국립극장, 장충체육관, 한양성곽, 족발 골목 등에 얽힌 이야기를 찾아가는 ‘장충단 성곽길’ 프로그램을 예약할 수 있다. 지난 7월 9일 오전 10시 보신각 앞에 한 무리 시민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빨간색 손수건을 하나씩 목에 두르거나 손목에 묶고 2회차 서울미래유산 역사탐방 출발을 기다리는 이들이었다. 이번 역사탐방로는 보신각부터 동대문까지다. 일직선으로 뻗은 대로가 아니라 잘 다녀 보지 않은 뒤안길이다. 보신각 길 건너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에서 인사동을 거쳐 종로 뒷골목을 헤집는 코스다. 답사로는 발밑으로는 광화문역에서 동대문역으로 달리는 지하철 5호선과 거의 겹친다. 단 한 번도 대로로 나가지 않고 동대문까지 뒤안길만 누비는 오리지널 골목 답사다. 서울 종로 뒤안길 답사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뒷골목에 숨어 있는 수많은 근현대 역사 이야기와 미래유산을 만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답사로 전체가 평지로 이뤄져서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들도 무리 없이 동행할 수 있는 ‘무장애 답사로’란 점이다. 이 답사로는 이날 해설을 맡은 박광규(55) 서울미래유산해설사가 개척한 코스다. 박 해설사는 “큰길에는 큰 역사가 존재하고 뒷골목에는 소소한 것만 있을 것이란 선입견을 날려 버리는 대단히 의미 있는 뒤안길”이라며 “특히 계단이 단 한 층도 없는 완벽한 무장애 코스로 장애인과 함께 역사와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답사길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답사팀 안전은 손안나 해설사가 맡았다. 이날 답사에도 어김없이 이경윤 나눔마켓 대표가 가장 먼저 나왔다. 장애인 콜택시를 타려고 일찍 서둘러야 해서 두 시간 전에 도착했다. 어릴 적 소달구지에 깔린 사고 때문에 전신마비로 이동장애를 가진 이 대표는 노원구 하계동 미성아파트 지하상가에서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그는 수많은 답사 활동을 했을 것이다. 이날은 무장애 코스라서 그런지 그의 표정이 유난히 밝다. 이 대표는 “이 코스를 두 번째 가 볼 기회를 얻어서 행복하다”며 “길 끝 창신동 골목길 ‘장가네 보리밥집’에서 쓱쓱 비벼 먹는 비빔밥이 일품이었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눔마켓은 책을 기증받아 온·오프라인을 통해 염가로 파는 책방”이라며 “기증은 책 종류와 수량에 관계없이 어떤 책이든 가능하다”고 깨알 같은 광고를 빼놓지 않았다. 박 해설사의 해설이 시작되자 모두 시선을 모으고 귀를 쫑긋 세웠다. “보신각 안 잔디밭에는 서울미래유산인 ‘지하철 수준점’이 있습니다. 지하철 1호선을 건설하려고 기준을 잡은 것인데요. 앞으로 놓일 모든 지하철의 높이를 정하는 기준이 됩니다.” 박 해설사가 손으로 지하철 수준점을 가리켰지만 잘 보이지 않았다. 사방 25㎝ 정사각형 표지석 한가운데 직경 7㎝, 길이 12㎝ 놋쇠 못이 박힌 수준점은 높이가 20㎝밖에 되지 않아 한여름에는 잔디에 묻혀 버리기 때문이다. 보신각이 보물 제2호로 지정된 문화재인 이유로 무작정 들어가 가까이 들여다보기가 어렵다. 박 해설사가 이해를 돕고자 아이패드를 꺼내 근접해서 찍은 사진을 보여 주자 그때야 시민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답사에 나온 배현철(40·두루EDS 대표)씨는 “보신각 앞에서 숱하게 약속도 하고 그 앞을 지나쳤지만, 이 안에 지하철 수준점이란 게 설치돼 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다”고 했다. 지하철 수준점은 1970년 5월 도심 교통난을 해소할 대책을 마련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당시 양택식 서울시장이 지하철을 도입하면서 같은 해 10월 설정한 일종의 기준이다. 우리나라 해발 기준점(수준원점)은 어디일까. 인천 앞바다를 기준으로, 수준원점 시설물은 인하대 교정 안에 있다. 박 해설사의 해설을 토씨 하나 놓칠세라 꼼꼼하게 받아 적는 답사객이 있다. 1회차 때 대한문 앞에서 출발하는 답사단 무리를 보고 2회차 때 무작정(?) 참가한 김청길(74)씨다. 김씨는 파워블로거다. 2013년부터 현재까지 문화와 답사 관련 포스트를 2200여개나 올렸단다. 김씨는 “일전에 대한문 앞에 갔다가 역사 탐방단이 출발하는 걸 보고 다음번 참석을 다짐했다”면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앞으로 계속 나올 예정”이라고 예고했다. ‘무임 승차’를 공언한 것이다. 보신각에서 길을 건너 서울아트센터 공평갤러리 쪽으로 인사동 랜드마크 중 하나인 ‘동헌필방’이 보인다. 창업자 이동하씨가 1966년부터 반세기 동안 한자리에서 운영하고 있다. 원래 남계양행이라는 양판점이었다. 건물 자체가 1930년대 지어진 등록문화재감이다. 그런데 동헌필방만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동헌필방 앞에는 1926년 지어진 건물이 있다. 1933년부터 1937년까지 일제강점기 민간 3대 신문 중 하나였던 조선중앙일보의 사옥이었다. 박 해설사는 “동아일보와 함께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워 보도한 신문”으로 “여운형이 사장이었는데 정간을 당한 후 그 다음해 폐간됐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는 자유당 중앙당사, 1970년부터는 농협중앙회 사옥으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NH농협 종로지점이다. 건립 당시 모습이 비교적 양호하게 보존돼 건축사적 측면에서 보존 가치가 있다. 서울 근대건축물과 미래유산이다. 이들 건물은 자칫 옛 도시계획에 의해 멸실될 위기에 있었으나 상위법을 바꿔 운 좋게 살아남았다. 그래서 종묘에서부터 직선이던 골목이 이들 건물을 피해 종로 쪽으로 살짝 굽었다. 여기서 시민 한 분이 추가로 무임 승차성 답사에 나섰다. 종로 뒷골목은 서울미래유산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이미 지나온 열차집, 동헌필방, NH농협 종로지점 이외도 이문설농탕, 구하산방, 서울중심점, 허리우드극장, 낙원악기상가, 낙원떡집, 유진식당, 피맛골 등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건물과 랜드마크가 즐비하다. 마치 ‘미래유산 종합선물세트’ 같다. 부모와 참가한 백은솔(9)·은채(7) 자매는 이문설농탕 벽면에 붙어 있는 서울미래유산 동판 앞에서 현수막을 들고 인증 사진을 찍었다. 자매는 “답사가 약간 힘들지만 견딜 만해요”라며 의젓한 모습을 보였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더운 날이라 어린이들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 있었는데, 이들 자매는 양볼이 발갛게 달아 올랐지만, 군소리 한마디 없이 동대문까지 완주했다. 이인선(52)씨는 “과거의 길을 오늘 걸으며 미래를 생각해 본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체험”이라고 말했다. 앞서 가던 박 해설사가 태화빌딩 앞에 멈춰 섰다. ‘서울 3대 요정’ 중 하나인 명월관 별관 태화관 자리다. 태화관 전엔 매국노 이완용이 살았고, 매국 친일파들이 을사늑약, 경술국치 등을 모의했던 장소다. 1919년에는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자리다. 그 직후 총감부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자수를 한 탓에 3·1 운동은 구심점을 잃고 실패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태화관 건물은 매국과 독립, 진정성과 모호성이 뒤섞인 역사의 아이러니를 품은 장소다. 태화빌딩 옆 건물인 하나로빌딩에도 깜짝 놀랄 만한 미래유산이 숨어 있었다. ‘서울 중심점 표지석’이다. 1층 로비 한쪽에 사방 유리벽으로 둘러싸인 채 보존돼 있는 표지석에는 ‘1층 로비에 있는 네모꼴 화강석은 서울의 한복판 중심지점을 표시한 지표석으로 대한제국 건양원년(1896)에 세워진 것이다’라고 새겨져 있다. 윤정배(48)씨는 “지금껏 서울 중심점이 남산에만 있는 줄만 알았는데 종로에, 그것도 빌딩 1층 로비라니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답사자 중에 누군가 “지난 1회차 답사 때 들렀던 도로원표가 서울 중심인 줄 알았다”며 거들었다. 박 해설사는 “이 중심석은 조선시대 서울이 확장되기 전 당시 기준점이고, 지금 사용하는 중심점은 2008년 최첨단 GPS 측량을 해 지정한 곳으로 남산정상 N타워 인근에 있다”고 설명했다. 답사단은 어느덧 익선동 한옥마을로 접어들었다. 100년 전인 1920년 당시만 해도 생소했을 법한, 도시형 한옥집단지구로 형성된 한옥촌이다. 지금은 카페와 술집, 레스토랑 등이 들어선 서울의 명소다. 익선동 골목 끝은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고, 고기 누린내로 진동하는 갈매기살 구이집이 즐비하다. 고깃집 담벼락에는 ‘조루증을 치료하고 회춘시켜 준다’는 한약방 광고지가 세월의 때를 묻힌 채 붙어 있다. 익선동 골목에는 과거가 현재와 공존하고 있다. 종묘 앞을 지나면서 남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멀리 세운상가가 보인다. 1960년대 획기적 도시개발의 표본이자 근대 건축 1세대 김수근의 작품이다.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가서 실패한 도시계획의 표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답사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섭씨 33도 한증막 같은 날씨 속에 강행군한 답사팀은 어느덧 서울미래유산인 한국기독교회관을 지나 동대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국기독교회관은 1969년 준공돼 1974년 민청학련사건 인사 석방 운동 전개, 1978년 동일방직 노조원 생존권 보장 농성, 1980년 5월 서강대생 김의기 투신 자살 등 민주화 운동 성지로 손꼽히고 있다. 종로꽃시장에서 길이 좁고 복잡해 답사팀은 두 패로 갈렸지만 다시 만났다. 박 해설사는 한양도성박물관 앞에서 동대문을 바라보면서 폭염 속 2시간 30분 동안의 답사를 폭염만큼 뜨거운 박수로 마무리했다. “점심은 장가네 보리밥집 가요.” 글 사진 유성호 ‘문화지평’ 대표
  • 몸으로 배우는 여객선 안전

    2013년 충남 태안군 해병대 체험장과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되 다시 바다로 나아가자는 캠페인이 펼쳐진다. 8일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경기 남부와 충남 북부의 34개 중·고교 학생들이 2만 4000t급 국제여객선을 타고 중국 산둥성으로 건너가 선조들의 문화 발자취를 돌아본다. 100명이 50명씩 1·2차로 나눠 각각 9~13일, 16~20일 참여한다. 무료다. 시민, 단체, 기업 후원 등 사회공동모금으로 해결한다. 학생들은 침수, 화재, 좌초, 충돌을 가상한 퇴선훈련을 세 차례 갖는다. 산둥성 웨이하이시에선 중국 내 우리 해양역사 등에 대한 특강을 듣고 해상왕 장보고 장군의 활동현장도 훑는다. 청일전쟁 유적지를 답사하고 직업 및 진로 코칭도 받는다. 이번 체험은 평택시와 평택해양경비안전서, 교육지원청, ‘황해연안 안전시민연합’의 노력으로 성사됐다. 굵직한 사고가 잇따르면서 바다를 통한 체험활동과 여객선을 이용하는 수학여행이 중단된, 이른바 ‘클로즈드 오션’(닫힌 바다) 인식의 확산에 따른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면서다. 1~2차 시범실시 뒤에도 체험 프로그램은 계속될 전망이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 생명과학자의 꿈, 직접 ‘실험’ 해볼래요

    생명과학자의 꿈, 직접 ‘실험’ 해볼래요

    서울대와 서울신문이 함께하는 2박 3일 ‘생명공학캠프’가 8일 본격적인 일정에 돌입했다. 이날 서울 관악구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허영인 세미나실에서 열린 생명공학캠프 1기 입소식에는 모두 중학생 45명과 부모들이 참가했다. 입소식 내내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은 김재원(14·서울 마포구 광성중)군은 “유명한 캠프라 꼭 참가해 보고 싶었다”며 “신청할 때 제출하는 자기소개서에 신경을 많이 썼다”고 했다. “생명공학 분야로 진출하는 게 꿈”이라는 김군은 “캠프에서 해 볼 실험들을 무척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명공학캠프는 2005년부터 매년 열려 올해로 12회를 맞았다. 이번 행사에는 2차례에 걸쳐 중학생 90명이 생명공학과 관련된 과학 콘텐츠 특강을 듣는다. 강의는 서울대 교수들이 직접 맡는다. 정철영 서울대 농업생명과학대학 학장은 이날 환영사를 통해 “창의적인 문제 해결 능력, 표현력, 비판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학생들을 격려했다. 윤여권 서울신문 부사장도 인사말에서 “특별한 경쟁을 뚫고 캠프에 참여하게 된 여러분을 환영한다”며 “단순히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우정을 쌓는 보람 있는 경험을 해 달라”고 강조했다. 입소식 이후 이상기 서울대 농생명공학부 교수가 특강에 나서 단백질의 특성과 분자구조 등을 소개했다. 학생들은 강병철 식물생산과학부 교수의 지도에 따라 고추에서 매운맛 성분을 직접 추출해 보고, 유전자 검사 방법을 배우는 등 다양한 실험을 했다. 서울신문 문화사업부와 함께 이번 캠프를 기획한 윤혜정(산림과학부 교수) 학생부학장는 “이번 캠프를 통해 미래 과학 문화를 리드하는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길 희망한다”고 설명했다. 남은 기간 학생들은 장판식 농생명공학부 교수, 배정한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 등과 함께 ‘생명공학과 효소공학’, ‘역사 속의 정원’ 등을 공부하고 재학생 조교들로 이뤄진 멘토들과 함께 상당 수준의 관련 실험을 체험할 예정이다. 명희진 기자 mhj46@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이용우 충남 부여군수

    [자치단체장 25시] 이용우 충남 부여군수

    충남 부여군은 재작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백제역사유적지구의 핵심 지역이다. 공주·익산과 함께 3개 시·군의 8개 유적 중 옛 백제 수도 사비(泗?)인 부여에 관북리 유적과 부소산성, 정림사지, 능산리고분군, 부여 나성(羅城) 등 절반인 4곳이 포함됐다. 계백장군의 장렬한 최후와 전설처럼 내려오는 삼천궁녀의 낙화암 투신으로 상징되는 백제 멸망의 슬픈 역사를 잊게 하는 사건이었다. 눈부시게 발전한 옛 신라의 수도 경주에 비해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백제의 고도 부여가 비상의 날개를 펴기 위해 꿈틀대고 있다. 아직 인구 7만여명의 한적한 농촌이지만 유적을 명품화하고 현대적 관광산업을 활성화하려는 노력이 한창이다. 이를 이끄는 지휘자가 이용우(55) 부여군수다. 이 군수는 “경주는 정부가 주체가 돼 보문단지 등을 조성했는데, 부여는 충남도 문화체육관광국장이 주체다. 정권을 창출하지 못한 탓이 아니겠느냐”며 “부여는 한국을 대표하는 역사문화관광지로 발전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은 다 갖췄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그는 조건으로 백제금동대향로로 대표되는 찬란하고 훌륭한 백제 유적, 국내 최고 품질의 농산물, 롯데아울렛·리조트·골프장 등 중국인 관광객이 열광하는 게 널려 있는 데다 인근 서산 등과 중국 간 뱃길이 다수 뚫린다는 점을 꼽았다. 일본인 관광객은 그들에게 문화를 전한 백제의 고도임을 알고 꾸준하게 더 찾는다. 이 군수는 부여군 규암면 합송리에서 농사꾼의 2남 1녀 중 맏이로 태어났다. 부여고와 단국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동국대 정치학 박사 과정을 거쳐 고 김학원 국회의원의 보좌관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이 군수는 “작고한 김 의원의 보좌관으로 서울에서 10년간 일하다 김 의원이 부여에서 출마하면서 같이 내려왔고, 2010년 고향 군수에 출마해 당선됐다”며 “당선돼 보니 시골 군수라는 게 국회의원, 도의원, 도지사는 물론 이장 역할까지 다 하는 힘든 직업이더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어 “재정이 나쁜 군의 단체장이라는 게 영락없이 살림은 어려운데 제사는 매일같이 돌아오는 ‘가난한 종갓집 며느리’ 같더라”며 “2010년 3000억원이던 군 예산이 올해 5000억원을 돌파했다. 국내 군 단위에서는 다섯 번째로, 국비 등을 확보하기 위해 부지런히 뛴 덕”이라고 자랑했다. 지난달 14일 기자가 이 군수를 따라나섰다. 부여서동연꽃축제가 한창일 때다. 이날 오후 3시 30분쯤 축제 행사장인 궁남지에 도착했다. 평일에 날씨도 찜통더위였지만 적잖은 관광객이 찾아와 활짝 핀 연꽃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 연못으로 가운데에 세워진 정자가 운치를 더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키지만 연꽃이 가득 피어 화려한 멋이 더해졌다. 이 군수는 “신라 선화공주와 백제 무왕 서동의 사랑이 어린 것이어서 다른 연꽃축제와 달리 의미도 커 외지 관광객이 무척 좋아한다”면서 “이 축제가 부여와 백제를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자평했다. 이 군수가 축제장 곳곳을 돌며 인사를 건네자 관광객들은 좀 놀라는 표정이었다. 이벤트가 열리는 때가 아닌데도 땀을 뻘뻘 흘리면서 축제장을 찾아 준 관광객을 맞는 단체장의 열정 때문인 듯했다. 이 군수는 만나는 관광객마다 손을 잡고 “연못이 10만평이다. 가지각색의 연꽃이 많으니 맘껏 보고 즐기고 가시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투박하지만 서글서글한 모습에 관광객들은 그를 정겨운 이웃처럼 대했다. 이 군수는 앞서 이날 열린 KBS 전국노래자랑 예심장을 찾고, 밤에 축제장에 다시 오는 등 연꽃축제에 많은 공을 들였다. 2014년까지 22만명 안팎에 그친 이 축제 관람객은 지난해 7월 초 세계유산 등재 후 지난해와 올해 모두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 군수가 소개하는 관광 인프라는 더 다채롭다. 그는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말한 대로 백제 문화는 ‘검이불루(儉而不陋·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이불치(華而不侈·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에 딱 맞는다”며 “지금 추진 중인 관광 인프라도 그런 특성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낙화암 아래로 흐르는 백마강을 이용한 ‘새로운 수상관광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먼저 2020년쯤 백마강에서 수륙양용버스가 운행된다. 규암면 합정리 롯데리조트에서 버스가 출발해 백마강 상류인 호암리 입수장에서 강을 타고 하류인 부여대교 인근 군수리 철수장까지 물길을 달린다. 이어 뭍으로 올라가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정림사지~관북리 유적·부소산성을 거쳐 리조트로 돌아오는 코스다. 전체 20㎞ 중 물길만 5㎞다. 군은 이 코스를 ‘백마강 너울옛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이 군수는 “리조트 근처 백제문화단지와 롯데아울렛·골프장을 찾는 관광객이 백마강을 타고 백제 유적을 돌아보게 하려는 것이다. 백마강에서 황포돛배가 운행되고 있지만 속도가 너무 느리고 이들 코스를 돌려면 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수륙양용버스가 제격”이라며 “유적을 관람하고 구도심인 부여읍도 살리는 데 획기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쾌속선도 띄운다. 백마강 등 금강 물길을 타고 논산 강경포구, 서천 신성리 갈대밭과 전북 익산 성당포구를 오가는 것으로 옛 금강 뱃길을 복원하려는 구상이다. 또 다른 관광상품이다. 부여군은 국비 지원을 받기 위해 이 사업을 정부에 적극 건의하는 중이다. 수륙양용버스 입수장이자 쾌속선이 오가는 호암리에는 2018년 이후 카페촌을 만든다. 호텔, 연수원, 펜션 등이 들어선다. 부여가 인기를 끌면서 롯데리조트 콘도가 미어터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토캠핑장은 이미 있다. 수륙양용버스 출수장인 군수리 백마강 둔치에서는 억새생태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야생화단지와 함께 33만㎡(약 10만평) 규모로 꾸며지며 모래비치, 자전거도로, 데크 등이 갖춰진다. 2019년까지 구드래 역사마을도 만들어진다. 10동의 한옥마을과 한방체험관, 옛 백제문화관, 백제식 음식점거리가 들어선다. 이 군수는 옛 백제 유적을 정보통신기술(ICT)과 연계해 가상현실로 복원한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세계유산이면서도 실물을 복원할 수 없어 아쉬운 유적을 존재 당시의 모습과 느낌을 관광객이 그대로 체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복원 대상은 정림사, 능산리고분군, 부여 나성이다. 예컨대 특수 안경 등을 착용하면 정림사를 드나들면서 스님이 오가는 장면을 현장에서 보는 것처럼 느낀다. 능산리고분군은 백제금동대향로에 나오는 동물이 뛰노는 등 당시의 현장에 와 있는 것처럼 느낄 수 있다. 이 군수는 또 한국전통문화마이스터고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그는 “전통문화를 지탱하는 하부구조, 즉 기술자가 부족해 이를 보완하려는 것이다. 문화재청도 긍정적”이라고 전했다. 부여에 있는 한국전통문화대학과 연계시킬 고교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때맞춰 교통망도 좋아지고 있다. 세종시~보령 간 충청산업문화철도, 평택~익산 간 제2서해안고속도로 모두 부여를 통과한다. 이 군수는 “백제 고도를 현대적이고 세련되게 바꿔 ‘부여’ 하면 역동적인 이미지와 희망과 행복을 떠올리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부여는 또 농업 강군(强郡)으로 최고 품질의 방울토마토, 멜론, 양송이버섯 등으로 가구당 농업소득이 전국 1위다. 아열대 기후화에 발맞춰 국내 최초로 ‘아열대작물개발TF팀’을 설치해 미래 농업에도 적극 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군수는 “‘현장에 답이 있다’가 내 행정철학이다. 시간만 나면 주민들을 만나 군 발전을 위한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얻고 있다”며 발걸음을 옮겼다. 글 사진 부여 이천열 기자 sky@seoul.co.kr
  •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강원도 평창 계촌 산골마을

    [김남경의 예술마을 기행] 강원도 평창 계촌 산골마을

    지휘 선생님이 단에 오르기 전, 아이들은 여느 초등학교 아이들과 똑같다. 여자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떠들고 남자아이들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있는 법이 없다. 악기는 저만큼 혼자 서 있거나 누워 있을 뿐이다. 30여명의 아이들이 만드는 부산함에 정신이 쏙 빠진다. 지휘를 맡은 이영헌 선생님이 들어서자 연습 채비를 한다. 음을 맞추기 시작하자 고학년생들은 조금 노련한 표정이 된다. 여름방학을 사흘 앞둔 그날은 1학기 마지막으로 전 단원이 모여서 연습하는 날이다. 다시 모이는 날은 축제 1주일 전쯤이다. 오늘 연습할 곡은 무대에 올리게 될 모차르트의 ‘작은 세레나데’. 선율은 누구나 들어 봤을 만큼 낯익다. 강원 평창군 방림면의 계촌초등학교는 2009년 전교생이 참여하는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유명세를 탄 곳이다. 이 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예비 단원이 돼 악기를 익히기 시작하며 2학년이 되면 정식 단원이 된다. 아이들은 1주일에 두 번 방과후수업을 통해 오케스트라 연습을 하고 필요에 따라 악기별로 추가 연습에 참여한다. ●쇠락한 마을의 변신… “음악하겠다” 전학 오기도 이 학교는 77회 졸업생을 배출한 역사 깊은 학교로 한때는 학생수가 많아 주변에 3개의 분교까지 냈지만 근래 계속 쇠락했다. 그러다 2008년 몇 개의 악기를 구입하며 시작된 오케스트라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지역에서 주목하면서 각종 행사에 초청돼 무대에도 오르고 언론과 방송도 탔다. 오케스트라 단원이었던 아이들이 졸업해 옆 계촌중학교 학생이 되자 중학교에서도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부모들도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되고 음악을 하기 위해 아이들이 전학을 오는 사례도 생겼다. 계촌은 이제 ‘클래식’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이상할 게 없는 마을이 됐다. 계촌마을은 해발 700m에 위치한 청정하고 작은 산골마을로 인구 1200여명이 산다. 고랭지 채소와 양상추, 고추 등을 기르고 산나물, 절임배추 등을 판매하며 생계를 이어 간다. 송어 잡기, 더덕 캐기, 산나물 채집 등 각종 체험상품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사실 올림픽이 열리는 무대나 평창의 주 관광지로 꼽히는 효석문화마을, 대관령목장 등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 큰 부가가치는 올리지 못하는 곳이다. 주민들도 그저 평범한 강원도의 산골마을이라고 말한다. 그러던 마을이 지난해부터 현대차정몽구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산학협력단이 주관하는 ‘예술세상 마을 프로젝트’의 대표 마을 중 하나가 되면서 날개를 달았다. 재단과 한예종이 참여해 아이들의 음악교육을 지원하고 여름에 ‘클래식’을 테마로 하는 마을 축제를 열게 됐다. 지난해 첼리스트 정명화와 음악가들이 참여해 첫 축제를 치렀다. 올해는 두 번째 계촌마을 클래식 거리축제를 오는 19~21일 연다. 정명화와 판소리 대가 안숙선 등 두 거장이 참여해 협연을 할 예정이라 전국의 음악 애호가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보다 많은 전문, 아마추어 음악가들도 참여한다. 마을 안에 3개의 무대가 세워지는데 특히 초등학교 운동장 느티나무 무대는 축제의 메인 무대가 될 예정이다. 두 거장도 축제 첫날 이 무대에 오른다. 계촌초, 중학교의 아이들도 축제의 주인공이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거장들의 협연에 앞선 개막식 오프닝 무대에 연주자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클래식 테마로 벽화·조형물… 상설 공연도 준비 지금은 이 축제가 일반인들이 찾아가 계촌의 클래식 아이들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장이지만 ‘클래식’을 테마로 다양한 변신을 준비 중이다. 클래식 마을을 알리는 조형물과 벽화, 무대 등이 들어서고 내년에는 좀 더 자주 마을을 찾을 수 있도록 상설 공연을 열 계획이다. 다시 아이들의 연습장. 부산한 불협화음으로 시작했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곡은 완성도가 높아 간다. 마지막으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선율이 신나게 울린다. 왠지 모를 긴장감이 서려 있던 모차르트와는 달리 아이들의 얼굴에 웃음이 돈다. 연습실 한편에는 아이들이 무대에 오를 때 신는 까만 구두가 신발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하얀 셔츠에 까만 바지와 치마를 차려입고 까만 구두를 신으면 무대에 오를 채비를 마친 것이다. 뒤축이 닳은 아이들의 구두가 정겹다. 연습이 끝난 후 아이들은 여느 초등학생처럼 운동장에 삼삼오오 모여 학원차를 기다린다. 연습 힘들지 않냐, 악기 배우는 게 재미있냐는 질문을 슬쩍 던져 봤다. 알 듯 모를 듯 수줍은 미소만 날리는 산골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 이 아이들이 반짝이게 구두를 닦고 올라설 무대에서의 모습이 너무도 궁금해진다. 글 사진 여행작가 enkaykim@naver.com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소설가 조정래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소설가 조정래

    “아유, 덥지? 자자, 이리 와. 빨리 웃옷 벗고 여그 에어컨 바람 좀 쒸여. 어서 어서.” 지난달 20일 오후 경기도 분당 집에서 만난 조정래(73)는 편안해 보였다. 신작 장편 ‘풀꽃도 꽃이다’ 집필 때문에 9개월 동안 이어졌던 ‘글감옥’에서 출소한 지 얼마 안 돼서였을까. “그란디, 뭐 인터뷰허고 자시고 헐 거시 뭐 있겄어? 태백산맥도 글코, 아리랑도 글코, 내 얘기야 많이들 알려진 것인디. 커피 한 잔씩 허면서 그냥 편하게 놀다들 가면 되제.” 서재에서 이어진 대화는 유쾌했다. 그리고 그의 이번 휴식이 길지는 않을 것임을 알게되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래야, 이제 그만 부처님 앞으로 가야겠다.” 고3 때인 1961년 9월 어느 날, 아버지는 나를 앉혀놓고 절에 들어가 승려가 되라고 하셨다. 아버지 손에는 ‘조계사 승적 168호’라고 일련번호가 매겨진 승적(僧籍)이 들려 있었다. 속명 ‘조정래’, 법명 ‘인천’(?天)이 눈에 확 들어왔다. 나는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우리 가족이 전쟁의 난리 속에서도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무사했던 것은 다 부처님의 가호 덕분이다. 형은 장남이어서 좀 그렇고, 차남인 네가 부처님 앞에 일생을 바치는 게 좋겠다.” 배신감이란 이런 것일까. 며칠 전 “남자가 장성하면 무릇 호(號)를 가져야 하는 법”이라며 갑자기 ‘하늘을 벗한다’는 뜻의 ‘인천’이란 이름을 주신 게 결국 아들을 중으로 만들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던 건가. “아, 아버지. 저, 저는 문학을 할 겁니다.” 하지만 그 정도 응수쯤은 이미 아버지의 계산 속에 들어 있던 듯했다. “그건 출가해서도 충분히 가능한 일 아니냐. 만해(한용운) 선생을 봐라. 종교도 문학도 다 이루시지 않았느냐.” 아아, 나는 과연 아버지를 설득할 수 있을까. “아유, 만해 선생은 100년에 한번 날까 말까 하는 엄청난 분이시잖아요. 어떻게 제가 감히….” 그 말에 아버지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일어나셨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남자로 태어나 연애 한번 못해 보고 중이 되는 위기를 간신히 모면할 수 있었다. -아버지 조종현(1906~1989)은 시조시인이자 승려였다. 예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의상대 해돋이’가 아버지의 작품이다. 열여섯에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출가한 아버지는 불법 공부의 높은 경지에 다다라 스물넷에 그 어렵다는 법사 시험을 통과했다. 설법을 전문으로 하는 일종의 교수가 됐는데, 승려들의 비밀결사 ‘만당’(卍黨)에 참여해 만해 스님과 항일운동도 함께 했다. 아버지는 선암사에서 결혼을 한 최초의 승려가 됐다. 당시 일제 총독부가 불교를 장악하기 위해 젊은 승려들을 결혼시켜 일본식 대처승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1943년 선암사에서 4남 4녀의 네째이자 둘째 아들로 태어난 것은 일제 황국화 정책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해방 후 좌익, 우익 투쟁의 소용돌이에서 빨갱이로 몰려 절을 떠나야 했는데, 이후 갖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부처님을 등지고 사는 것을 늘 안타까워하셨다. 나를 승려로 만들려고 하셨던 것도 그런 죄의식의 소산이었던 것 같다. -6·25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10월 아버지가 벌교상고 교사로 가면서 나는 벌교 북국민학교 3학년으로 전학을 했는데, 그때부터 최고의 낙은 형이 부잣집 친구에게서 빌려다 주던 학생잡지 ‘학원’을 받아보는 일이었다. 내 관심은 잡지 속의 중고생 문예투고였다. 그걸 보면서 동시를 짓고 동요를 지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면 이 잡지에 실린 나의 글을 볼 수 있겠지.’ -“이게 다 네가 지은 것들이냐?” 국민학교 4학년 어느 날,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아버지가 내가 쓴 작문을 들고 계셨다. 밥 먹을 때 쩝쩝 소리도 못 내게 했던, 늘 엄했던 아버지. 도둑질이라도 하다 들킨 양 어쩔 줄 몰라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낱장에 쓰면 되겠느냐”며 학교에서 버려진 시험 답안지를 수십장 묶어 이면지 공책을 만들어 주셨다. “여기에 적어야 글들이 안 없어지지.” 아버지는 잘 썼다, 못 썼다 단 한마디도 안 했지만, 조용히 공책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보며 ‘칭찬을 저렇게 표현하나 보다’ 하고 나는 생각했다. 당시는 종이가 거칠고 잘 찢어져 사람들이 그걸 ‘똥지’라고 불렀는데, 나는 그 종이 묶음을 ‘똥지 문집’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 즈음부터 학교에서 글짓기를 했다 하면 나는 수필이건 동요건 동시건 전교 1등을 했다. -1959년 서울 보성고에 입학하면서 방대한 양의 책읽기가 시작됐다. 학교 도서관에서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 같은 명작들을 타는 목에 냉수를 들이켜듯이 독파했다. 하지만 남들이 느끼는 만큼의 감동은 내게 오지 않았다. ‘좋은 작품이긴 하지만 가슴이 떨리지가 않아.’ 그럴수록 마음 한편에서는 ‘나도 좀더 나이 먹으면 이 정도는 쓸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차올랐다. 고1 나이에 꽤나 기가 승하고 방자했던 셈인데, 그런 내가 은근히 좋기도 했다. -미치도록 글을 쓰고 싶었지만 학교 문예반에는 갈 수가 없었다. 당시 우리 보성고 문예반은 보성중 문예반과 통합으로 운영됐는데, 지도교사가 하필 보성중에 교편을 잡고 있던 아버지였다. 한 교실에 앉아 아버지 지도를 받는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민망했다. 그래서 운동을 했다. 태권도부, 역도부, 등산반을 두루 섭렵했는데 그 덕에 요즘 말로 ‘몸짱’이 됐다. 가슴둘레가 1m가 넘고 턱걸이는 60개를 넘게 했다. -“너도 아버지처럼 굶어가며 살려고 그러니. 제발 상과대학을 가라.” 내가 국문과에 가겠다고 하자 어머니는 기함을 하셨다. 당시는 국문과가 ‘굶을과’로 통하던 때였다. 그러나 나는 “굶지 않고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몇 번을 어머니에게 다짐을 한 끝에 1962년 결국 동국대 ‘굶을과’에 입학했다. 그리고 정말로 결심했다. 아버지처럼 처자식 배를 곯리지 않을 것이다, 교사라는 직업을 가질 것이다, 아이를 여덟이나 낳은 부모님과 달리 하나만 낳을 것이다(아들이 태어나고 15년 후에 태백산맥이 그렇게도 잘 팔릴 줄 알았더라면 셋쯤은 낳았어도 됐는데, 내 인생에 가장 실패한 계획이 가족계획이다). -대학에 들어갈 때 내 꿈은 다른 대부분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소설가도 아니고 수필가도 아닌 시인이었다. 정말 열심히 시를 썼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 갔다. 남들은 일주일에 한 편 쓰기도 벅차다는데 나는 서너 편이 그냥 써졌다. 가장 큰 문제는 시가 자꾸 길어지고 늘어지는 데 있었다. 내 시의 함축과 절제는 대체 어디로 가버린 것인가. 교내 ‘문학의 밤’ 행사에서 1학년 동기 중 유일하게 시 낭독자로 뽑히기도 했지만, 뜻대로 시가 안 되는 데서 오는 우울감은 도통 가시지 않았다. “나는 시는 안 된다. 소설로 바꾸자.” 답답한 마음에 떠난 겨울방학 무전여행. 전남 구례 화엄사에서 사흘간 어지러이 내리는 눈발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나는 나의 시에 사형선고를 내렸다. -소설로의 전향은 꽤 괜찮은 성취로 이어졌다. 2학년 때 교내 문학상에서 단편 ‘비탈진 음지’로 장원을 했다. 그때 상금 탄 걸로 같은 과 친구들한테 술 한번 사고, 당시 뭇 남학생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입학 동기 김초혜(시인)에게 손지갑을 사줬다. 그녀와는 군 복무 중이던 1967년 평생의 언약을 맺었고 1970년 동구여상에 함께 교사로 들어갔다. 학생들은 우리를 ‘잉꼬부부’라고 불렀다. -문단 생활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나는 금세 공처가로 소문이 났다. 사람들에게 나는 한술 더 떠 “조정래는 공처가가 아니라 놀랄 경(驚)자를 쓰는 경처가다. 마누라만 보면 무서워서 깜짝깜짝 놀란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문학을 시작하기 이전부터 작가입네 예술가입네 하면서 방탕하게 살고 바람 피우는 것 같은 이상한 짓들을 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문학은 형식적인 몸짓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한 내용으로 해야 한다고 스스로 경고했고, 주색잡기 같은 걸로 아내의 속을 썩인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내가 눈부시지 않고 미우면 하루인들 어찌 살겠는가. 사람들에게 말한다. 내 왼팔은 50년 동안 아내가 잡고 다녀 망가졌고, 오른팔은 글을 쓰느라 망가졌다고. -1972년 동구여상을 떠나 중경고로 옮기고 얼마 안 돼 10월 유신이 선포됐다. 예비역 장성 출신인 교장은 “역사적 영단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며 흥분을 했는데, 나에게는 참기 힘든 압박의 시작이기도 했다. 당시 나는 미국을 비판한 ‘누명’, 연좌제를 비판한 ‘어떤 전설’, 월남전을 비판한 ‘청산댁’ 같은 작품으로 교장에게 미운털이 박혀 있던 터였다. 시시콜콜 트집을 잡는 바람에 위경련이 생겼고, 결국 죽지 않으려고 사표를 던졌다. 이후에는 출판사를 경영하기도 하고 차리기도 하며 경제적 여력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였는데, 어느 정도 굶지는 않겠다는 믿음이 선 뒤 나는 글쓰기로 다시 돌아와 방대한 양의 소설을 써내기 시작했다. -1983년 9월부터 1989년 10월까지 6년여에 걸쳐 월간 ‘현대문학’에 ‘태백산맥’을 연재했다. 위로 쌓아 내 키만큼 되는 200자 원고지 1만 6500매 분량이 쓰였다. 한국의 작가들, 특히 전쟁을 겪은 우리 세대에 있어 분단은 문학의 원류 내지 본류라고 할 수 있다. 분단이야말로 우리 삶을 옥죄는 고통의 핵심이다. 소년 시절에 겪은 상처와 고통, 같은 민족끼리 싸운 아픔, 여전히 분단돼 있는 상황은 내가 소설을 쓸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제공한다. 태백산맥 이전에도 내 작품의 70%가 분단을 소재로 했던 이유다. 단편이 호미로 골짜기 하나를 파는 정도라면 중편은 골짜기 2개, 장편은 골짜기 3개를 파는 데 비유할 수 있다. 하지만 단편이나 중편, 장편으로는 태백산맥에 있던 그들이 왜 짐승이 아닌 사람인지, 왜 그들이 그래야만 했는지를 도무지 담아낼 수가 없었다. 1986년에 ‘태백산맥’이 단행본으로 발간되고 나서 한 달 정도가 지나자 미처 인지를 찍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책이 팔려나갔다. 태백산맥을 쓰면서, 또 영화화되면서 겪은 우익단체 등의 협박과 훼방 같은 것들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1994년 4월 우익단체에서 고발당한 사건의 경우, 2005년 5월에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무려 11년 동안이나 나는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했다. -후배들이 나에게 왜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않느냐고 말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난 “나는 소설로 참여한다”고 말해 주었다. “나는 가투(가두투쟁)를 안 했으니 가투를 해 본 너희들이 그 소재로 소설을 써보라”고 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체험은 있지만 치열성이 없었고, 그래서 고민과 사명감과 역사의식을 작품에 담아내질 못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나는 “사람들을 감동시키려면 하루 8시간 노동하는 보통 사람들의 두 배, 하루 16시간의 노동을 바쳐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수십년 동안 글감옥에 갇혀 먹고 자고 쓰는 것이 연속되는 생활에서 16시간 노동을 다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나는 나와의 약속을 지켜 나 자신을 이기고 싶었다. 그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김태균 경제정책부장 windsea@seoul.co.kr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소설가 조정래 치열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시대와 사회의 아픔을 문학에 녹여낸 우리 시대의 대표 작가다. 탄탄한 구성과 깊은 통찰력, 실증적인 취재에 기반한 왕성한 활동은 작품의 수에서도 유례가 없다는 평을 받는다. 20세기 한국사 3부작 대하소설 ‘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은 1500만부 돌파라는 출판 사상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1943년 전남 승주군(현 순천시) 출생 ▲순천 남국민학교, 벌교 북국민학교, 광주서중, 서울 보성고, 동국대 국문학과 ▲197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단편집 ‘어떤 전설’, ‘20년을 비가 내리는 땅’, ‘황토’, ‘한(恨), 그 그늘의 자리’ ▲중편집 ‘유형의 땅’ ▲장편소설 ‘대장경’, ‘불놀이’, ‘비탈진 음지’, ‘황토’, ‘인간연습’, ‘사람의 탈’, ‘허수아비춤’, ‘정글만리’, ‘풀꽃도 꽃이다’ ▲산문집 ‘누구나 홀로 선 나무’, ‘황홀한 글감옥’, ‘조정래의 시선’, ‘조정래 사진여행: 길’(사진앨범) ▲청소년을 위한 위인전 ‘신채호’, ‘안중근’, ‘한용운’, ‘김구’, ‘박태준’, ‘세종대왕’, ‘이순신’ ▲현대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단재문학상, 노신문학상, 광주문화예술상, 만해대상, 현대불교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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