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역사 전쟁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스카이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청사 이전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회복세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 조회수
    2026-08-15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6,669
  • 가난한 자의 성자, 교황 프란치스코 1936.12.17~2025.4.21

    가난한 자의 성자, 교황 프란치스코 1936.12.17~2025.4.21

    2013년부터 12년간 14억 가톨릭 신자를 이끈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시간) 88세로 선종했다. 2000년 넘는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개혁적인 교황이라는 평가를 받은 그는 동성애 커플에 대한 가톨릭 사제 축복을 승인하는 등 소수자를 끌어안고자 노력했다. 이날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패럴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아침 7시 35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고 발표했다. 패럴 추기경은 “그는 삶의 전체를 주님과 교회를 섬기는 데 헌신했다”며 “우리에게 신앙과 용기, 보편적 사랑으로 복음의 가치를 실천하며 살아가라고 가르쳤다.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과 가장 소외된 이들을 지지했다”고 밝혔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도 “평생 복음과 사랑을 실천하신 교황님께서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며 “우리는 그분을 떠나보내지만 복음을 삶 속에서 실천하며 그분의 사랑과 자비를 이어가야 한다”고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 출신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일하던 양말공장에서 청소와 사무보조를 맡았다. 공업학교에 진학해 오전에는 공장에서 일하고 오후엔 학교에서 식품화학을 공부했다. 교황의 소박한 삶과 검소한 정신은 이때부터 몸에 밴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성요셉 신학교에서 공부해 사제 서품을 받고 2001년 추기경에 서임됐다. 2005~2011년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을 지냈다. 프란치스코는 사제가 되기 전부터 아르헨티나 빈민촌을 수시로 드나들었다. 마약을 유통하는 마피아가 있어 치안이 미치지 않았다. 총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봉사활동을 이어 갔다. 추기경이 된 뒤에도 빈민촌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가 교황에 선출되자 아르헨티나에서는 ‘빈민가의 교황’이 나왔다고 기뻐했다. 사제 되기 전부터 빈민촌 봉사활동여성 세족식·동성애 포용 등 진보적올해 초 건강 악화로 입원했다 퇴원2013년 베네딕토 16세가 건강상 이유로 교황직에서 스스로 물러나자 266대 교황에 선출됐다. 당시 언론들은 그가 기록한 여러 ‘최초’ 타이틀에 주목했다. 첫 아메리카대륙 출신 교황이자 첫 예수회 출신 교황,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사용한 첫 교황이었다. 시리아 출신 그레고리오 3세 이후 1282년 만에 탄생한 비(非)유럽권 출신 교황이기도 했다. 취임 뒤 그의 행보는 ‘파격’의 연속이었다. 2013년 로마 인근 소년원에서 소년원생 12명의 발을 씻겨 주는 세족식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들 중에 두 명은 여성, 두 명은 무슬림이었다. 가톨릭 남성만을 대상으로 했던 세족식 관습을 과감히 깼다. 美·쿠바 국교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러·우크라, 이·팔 전쟁 중단 목소리트럼프 반이민 정책에도 반대 표명같은 해 방송 기자회견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포용적 시각도 드러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로 신을 찾는다면 누가 그를 심판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가톨릭 내 보수세력은 동성애를 금지하는 교리와 배치된다며 프란치스코를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가톨릭 사제가 동성애 커플을 축복할 수 있게 허용하는 등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여성을 처음으로 교황청 장관에 임명했고 낙태·재혼자에 대한 성체성사 허용, 성직자의 독신 의무 등에 대해서도 진보적 입장을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분쟁으로 얼룩진 세계 곳곳에 평화와 공존의 메시지를 보낸 종교 지도자로도 평가받는다. ‘어부의 반지’ 파기 결정이 장례 시작통상 장례식 4~6일… 애도 기간 9일23일 운구… 일반 신도 경의 표할 듯적대적 관계에 있던 미국과 쿠바의 2015년 국교 정상화에 결정적 기여를 했고 2017년에는 로힝야족 추방으로 ‘인종청소’ 논란이 불거진 미얀마를 찾아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2000년 가톨릭 역사상 처음으로 2021년 이라크 땅을 밟아 무장테러 희생자들을 위로하기도 했다. 2022년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 전쟁이 발발하자 교황은 끊임없이 평화의 목소리를 냈다. 2023년 10월 시작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을 두고도 민간인 희생을 막고 분쟁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최근까지도 약자의 인권을 수호하기 위해 목소리를 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진행 중인 불법 이민자 추방 정책에 대해서도 “반대 의사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년 동안 건강 문제에 시달리다가 지난 2월 14일부터 로마 제멜리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다. 폐렴 진단을 받은 그는 입원 후에도 호흡 곤란 증세로 고용량 산소 치료를 받았고 혈소판 감소증과 빈혈로 수혈받기도 했다. 입원 중 상태가 악화하기도 했지만 지난 3월 23일 38일간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퇴원했다. 교황은 선종 전날 남긴 마지막 강론에서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과 분쟁에도 불구하고 평화가 가능하다는 희망을 가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교황은 부활절인 20일 전 세계에 전하는 축복과 강론 ‘우르비 에트 오르비’(로마와 전 세계에)에서 “우리가 ‘평화는 가능한 일’이라는 희망을 새로이 했으면 좋겠다”며 가자지구 전쟁 당사자들에게 “휴전을 선언하고 인질들을 석방하고 평화의 미래를 열망하고 있는 굶주린 사람들을 도우라”고 말했다. 그의 선종 이후 장례절차에 관심이 쏠린다. 케빈 페렐 궁무처장이 ‘어부의 반지’로 불리는 교황의 인장 반지 파기를 결정하면 장례가 시작된다. 과거에는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현대에는 교황의 임기 종료를 상징하는 절차가 됐다. 이후 애도 기간은 통상 9일이며 장례, 안장 일정은 추기경단이 정한다. 장례식은 통상 4~6일간 성바오로 광장에서 거행된다. 생전 프란치스코는 소박하고 검소한 성품대로 장례가 간소화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바티칸 성바오로 대성전에 안치된 전임 교황들과 달리 로마 시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지하묘지에 안장되기를 희망했다. 이날 교황청은 교황의 시신이 이르면 23일 오전 성베드로 대성당으로 옮겨져 신도들이 그에게 경의를 표할 수 있게 된다고 밝혔다.
  • 한국주교회의, 교황 일대기 발표…“세상 끝에서 온 목자, 하느님 품으로”

    한국주교회의, 교황 일대기 발표…“세상 끝에서 온 목자, 하느님 품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 이후 한국천주교주교회의가 21일 교황의 일생을 일대기 형식으로 정리해 발표했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세상 끝에서 온 목자, 하느님 품으로 돌아가다…1936.12.17. - 2025.4.21.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애로마 시각 2013년 3월 13일 저녁(로마 현지 시각)에 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추기경이 교황으로 선출됐다.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이었던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추기경, 바로 우리가 추모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이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는 1936년 12월 17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이탈리아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17세 되던 해 성 마태오 복음사가 축일에 성당에서 고해성사를 받던 중 하느님의 자비를 깊이 체험했고, 동시에 사제성소를 느꼈다고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사목 표어인 ‘자비로이 부르시니(Miserando atque eligendo)’는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오를 제자로 부르신 복음서 기록에 관한 베다 성인의 강론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베르골료는 1958년 가톨릭 수도회인 예수회에 입회하여 1969년 사제품을 받았다. 이후 예수회 아르헨티나 관구 수련장과 관구장, 산미겔 철학·신학 대학 학장 겸 산미겔 교구 파트리아르카 산호세 본당 주임 신부 등을 역임했다.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 보좌주교로 주교품을 받았고, 1998년 교구장 대주교로 임명됐으며, 2001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추기경으로 서임했다. 2005년부터 6년간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의장을 지내며 교황청 라틴아메리카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밖으로 나가는 교회, 세상을 향한 발걸음2013년 3월 13일, 베르골료 추기경은 로마 시스티나 성당에서 열린 콘클라베(교황 선출 비밀 투표)를 통해 제266대 교황으로 선출됐다. “저의 형제 추기경님들께서 [로마의] 주교를 찾으러 지구의 끝까지 가신 것 같습니다”(선출 직후 첫 강복 메시지)라는 소감처럼, 그레고리오 3세 교황(시리아) 이후 1282년 만의 비유럽 출신 교황 탄생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콘클라베를 위해 소집된 추기경 회의에서 그는 ‘밖으로 나가는 교회’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고 한다. 쿠바 출신 동료 추기경이 전한 그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신약성경 요한] 묵시록에서 예수님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신다고 전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 시대에 예수님은 안에 계시면서 밖으로 나가게 해달라고 문을 두드리신다고 생각한다. 자기중심적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 안에 가두고 그분이 밖으로 나가시지 못하게 한다.”(zenit.org, 2013.3.26.) 이는 그가 첫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2013년)에서 말한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라는 표현과 맥을 같이 한다. 그가 선택한 교황명은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평화의 사도이자,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과 평생을 함께했다. 성인의 삶을 닮고자 했던 프란치스코는 즉위 직후부터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즉위 후 9일 뒤 로마의 한 교도소에서 첫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를 봉헌하며 재소자들의 발을 씻겼다. 2013년 7월 람페두사에서 난민들의 죽음을 환기하며 “무관심의 세계화”를 질타하던 목소리, 2014년 한국 방문에서 보여준 고통받는 이들을 향한 연민, 2020년 3월 로마 성 베드로 광장에서 코로나19 팬데믹에 두려워 떠는 세상을 위해 기도하던 뒷모습은 세계인의 심금을 울렸다. 교황은 또 현대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위한 관심을 제도화하여 ‘세계 가난한 이의 날(11월, 전례력 연중 제33주일)’과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7월 마지막 주일)’을 제정했다. ●복음의 기쁨 전하며 공의회 정신 계승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이하 ‘공의회’) 이후 사제품을 받은 첫 교황으로서, 가톨릭의 현대화(아조르나멘토)를 이뤘다고 평가받는 공의회 정신의 계승에 심혈을 기울였다. 교황은 2015년 공의회 폐막 50주년 기념으로 거행된 ‘자비의 특별 희년’ 개막 미사에서 교회와 우리 시대 모든 이의 만남, 복음의 기쁨과 하느님의 자비를 전하는 선교 열정, 민족과 계층을 초월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자비를 실천하자고 권고했다. 2022년에는 9년간 준비한 교황청 기구 개혁을 단행했다. 개혁안을 담은 교황령 「복음을 선포하여라」(2022.3.19. 반포, 6.5. 발효)는 개혁의 지향을 공의회의 쇄신 정신, 착한 사마리아인의 영성, 친교 안에서의 공동 책임, 주교들의 사명에 대한 봉사, 보편성의 표현, 부(富)의 축소 등으로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파격적인 인사를 통해 유럽인 성직자 중심으로 여겨지던 교황청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재위 기간에 걸쳐 미얀마,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동티모르, 라오스 등 다양한 아시아 국가의 주교들을 추기경으로 발탁했으며,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복음화부 장관 직무 대행, 필리핀), 유흥식 라자로 추기경(성직자성 장관, 대한민국) 등 아시아 성직자, 시모나 브람빌라 수녀(수도회부 장관), 파올로 루피니 박사(홍보부 장관), 막시마노 카바예로 레도 박사(재무원장) 등을 교황청 관료로 등용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회칙 4편, 교황 권고 7편을 비롯해 자신이 반포한 공식 문헌들에서 기쁨, 자비, 생태적 회개, 형제애를 실천을 강조했다. 아울러 전 세계 13억 가톨릭 신자들에게 현대의 위험인 고립과 자아도취를 물리치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을 모두와 나누며(「복음의 기쁨」), 철저히 현실적이면서도 희망에 가득 찬 영으로 다른 이들을 비추자고 요청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2015년 자비의 특별 희년에 조명한 착한 사마리아인 정신은 「모든 형제들」(2020년)에서 구체화됐다. 교황은 「찬미받으소서」(2015년)를 통해 지구에 대한 인류의 관점을 쓰고 버리는 자원 창고가 아닌 ‘공동의 집’으로 전환시켰고, 창조 질서 수호를 위한 국제적 연대의 사명을 일깨웠다. 그는 정교회가 1989년부터 지내 온 9월 1일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을 2015년부터 가톨릭 교회 기념일로 지정해,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기도하고 행동하는 날로 만들었다. 시노달리타스, 곧 모든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에 대한 꿈은 그가 교회에 남긴 귀한 유산이라 할 수 있다. 시노달리타스의 어근인 ‘시노드’는 의미상 ‘함께+길’의 합성어이면서 교회 회의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는 성 바오로 6세 교황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무리하며 제정한 세계주교시노드가 지역 교회의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하도록 힘을 실었다. 그가 소집한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는 가정(2015년 제14차), 청년(2018년 제15차) 등 현대 교회와 사회의 관심사를 짚으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를 주제로 한 제16차 정기총회는 2021년부터 햇수로 4년간 이어졌다. 교회 자체를 성찰과 쇄신의 대상으로 삼은 이 정기총회 여정은 풀뿌리 교회 조직인 본당에서부터 교구, 주교회의, 대륙을 거쳐 두 차례 로마 총회(제1회기 2023년 10월, 제2회기 2024년 10월)로 수렴되었고, 폐막 후에도 전 세계에서 ‘이행 단계’로 이어지고 있다. ●희망과 평화의 사도한국인에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잊지 못할 존재다. 2014년 8월, 재위 2년차 교황은 첫 아시아 순방지로 한국을 택했다. 제6회 아시아 청년 대회(AYD) 폐막 미사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은 춤출 수 없다”는 말로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복 미사를 주례하면서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들인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123위’를 시복했으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만나 위로하며 깊은 울림을 남겼다. 국가 단위의 주교단이 교황에게 지역교회 현황을 직접 알리고 논의하는 ‘사도좌 정기 방문’(Visita ad limina)에서도 교황은 한국을 향한 사랑을 전했다. 2015년 방문 중에는 한국 주교들에게 한국 사회의 현안을 묻는 한편, 현지에서 봉헌된 124위 시복 감사 미사에 부쳐 “평신도에 의해 시작됐고 순교자들의 피와 땀으로 건설된 한국 교회가 안락한 신앙을 버리고 아시아 교회의 빛이 되”기를 당부했다. 2024년에는 “분단된 한국, 고통의 상황이 속히 개선되고 종결되도록 기도”할 것을 약속하며, “젊은이들에게 신뢰를 주는 교회, 열린 분위기의 교회”를 만들어 나가자고 독려했다. 교황은 재임 기간 내내 세계 평화를 위한 실천을 멈추지 않았다. 2013년 7월 브라질부터 2024년 12월 프랑스까지 70여 개국을 사목 방문했고, 전쟁 지역인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에 교황 특사를 파견했으며,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와 단식의 날’을 여러 번 선포했다. 교황은 2013년 9월 7일 시리아의 평화를 위해, 2018년에는 콩고민주공화국과 수단, 2020년에는 레바논, 2021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위해, 2022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해, 2023년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종식을 위해 전 세계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연대를 청했다. 평화를 위한 교황의 기도는 병상에서도 계속되었다. 교황은 서면으로 발표한 2025년 2월 23일 주일 삼종기도 연설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3년을 언급하며, 팔레스타인, 이스라엘, 중동, 미얀마, 수단 등 분쟁 지역의 평화를 위한 기도를 청했다. 병세가 완화된 24일에는 가자 지구의 본당신부에게 전화로 위로를 전하기도 했다. 2025년 3월 23일 로마 제멜리 병원에서 퇴원한 뒤에도, 교황은 생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주님의 양 떼인 신자들과 함께했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한 모습이었지만, 교황은 퇴원하던 날에도, 4월 6일 병자와 의료 종사자를 위한 희년 행사 현장에도, 성주간의 첫날인 4월 13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도, 17일부터 이어진 파스카 성삼일과 20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도, 그를 위해 기도하는 신자들에게 직접 찾아가 인사를 건넸다. 즉위 직후 2013년 3월 28일(성주간 목요일) 성유 축성 미사 때 사제들에게 권고한 대로, 교황은 끝까지 주님의 양(羊=신자)들 가운데에 있었던 “양 냄새 나는 목자”였다. 2025년 가톨릭 교회의 정기 희년(25년 주기)을 선포하며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세계인의 가슴에 새기고, 희년의 부활 대축일을 지낸 후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프란치스코 교황. 교황은 최근에 발행된 자서전 「희망」(Spera)에서 그가 사목 방문 때마다 찾아가 기도했던 로마 성모 대성전(Basilica Papale di Santa Maria Maggiore)에 묻히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 이순신대교 주탑 간 거리는 왜 1545m일까···이순신 장군 탄신일

    이순신대교 주탑 간 거리는 왜 1545m일까···이순신 장군 탄신일

    광양시가 이순신 장군의 탄신 제480주년을 일주일 앞두고, 관광랜드마크로 우뚝 선 이순신대교가 있는 광양여행을 추천한다고 21일 밝혔다. 웅장하고 유려한 자태로 광양만을 가로지르며 광양과 여수를 잇는 이순신대교는 건설 당시 최초, 최장, 최고라는 타이틀을 세우며 대한민국 현수교의 역사를 새로 썼다. 이순신대교는 총길이 2260m, 왕복 4차선 규모다. 설계, 시공, 장비, 감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최초’ 전 공정 국내 순수 기술로 건설돼 2013년 2월 개통됐다. 현수교 길이의 기준이 되는 주탑 간 거리 1545m는 이순신 장군이 탄생한 1545년의 상징을 구현한 것으로 국내 ‘최장’ 현수교라는 영예를 안겼다. 현수교 건설 기술의 핵심인 주탑 간 거리를 이순신 탄생연도로 설계한 것은 광양만이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승리로 장식한 최후의 전투 공간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주탑도 당시 최고를 자랑하던 덴마크 그레이트 벨트교보다 16m 높은 270m로 세계 ‘최고’를 경신했다. 해수면에서 상판까지의 높이 역시 80m도 국내에서 가장 높다. 하늘과 바다 사이의 평행선, 철로 만든 하프로도 불릴 만큼 아름다운 이순신대교를 건너다보면 광양제철소와 광양만이 한눈에 들어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김미란 광양시 관광과장은 “이순신대교는 대한민국 현수교의 역사를 다시 쓴 예술건축물이자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이순신 장군의 이름과 탄생이 고스란히 담겨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는 마인드마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교의 명칭, 주경간장(주탑 간의 거리) 등에 얽힌 스토리, 기록들을 알고 나면 이순신대교가 이전보다 훨씬 값진 의미와 느낌으로 다가올 것이다”며 “이순신 장군 탄신일을 맞아 광양만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만날 수 있는 광양여행을 계획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 ‘그날’의 위대한 언론인을 떠올린, 베트남 하롱베이 [한ZOOM]

    ‘그날’의 위대한 언론인을 떠올린, 베트남 하롱베이 [한ZOOM]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더 포스트’(The Post·2017)는 미국 정부가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기 위해 고의로 정보를 조작했던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미국 국방장관의 기자회견에서 시작된다. 당시 베트남전은 미국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국방장관은 기자들에게 승리할 수 있다고 장담한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정부 전략분석가 댄 엘츠버그는 명분도 없는 전쟁에서 젊은이들이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해 1급 기밀인 ‘펜타곤 페이퍼’를 뉴욕타임즈(NYT) 기자에게 전달한다. 이 문서에는 베트남전에 군사적 개입을 하기 위해 지난 30년 동안 미국 정부가 저지른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NYT 보도로 미국 사회는 일대 혼란에 빠진다. 궁지에 몰린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NYT의 후속보도를 중단시킨다. 이 시점에 워싱턴포스트(WP)도 펜타곤 리포트를 입수하고 편집장(톰 행크스)는 후속보도를 준비한다. 회사에 위협이 될 것을 우려한 이사진은 후속보도를 막지만 발행인(메릴 스트립)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마침내 진실이 세상에 드러난다. 진실을 위해 싸운 언론실제로 1971년 6월 13일 NYT가 펜타곤 페이퍼를 바탕으로 충격적인 내용을 보도했다. 1964년 8월 2일 베트남 통킹만에서 북베트남군 어뢰정이 미국 해군 구축함을 선제공격했고, 이 일을 계기로 미국이 베트남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됐다. 그런데 NYT를 보면 이 사건은 미 정부가 참전하기 위해 조작된 것이었다. 정치적 타격을 입은 닉슨 정부는 ‘NYT 보도는 미국의 국방이익을 훼손한다’라는 이유로 법원에 보도금지를 신청했고, 법원이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NYT는 3회만에 보도를 중단했다. 하지만 닷새 후 WP가 펜타곤 페이퍼를 입수해 6월 18일 후속보도를 이으면서 이 문제는 잊혀지지 않을 수 있었다. WP에도 이 보도는 모험이었다. 연방정부의 압력으로 대법원이 일련의 보도를 ‘미국의 이익 훼손’이나 간첩법 위반으로 판결한다면, 매체가 폐간되고 관련자들이 구속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언론인들의 용기 있는 결단으로 진실이 세상에 드러났고, 연방대법원도 ‘국가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라고 판결하면서 진실을 위해 싸운 언론인들의 위대한 승리로 끝났다. 펜타곤 페이퍼의 여파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닉슨 정부는 이 문서를 유출한 인물의 집에 도청장치를 설치해 그를 감시했다. 바로 미국의 전략분석가이자 평화운동가 다니엘 엘즈버그였다. 이미 닉슨 대통령 측근들은 197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민주당 선거본부가 있는 워싱턴 워터게이트 빌딩을 도감청하면서 상대 후보의 약점을 찾았다. 불법행위가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연방수사국 수사를 방해하고 입막음을 했다. 닉슨 정부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뤄진 불법행위는 WP 기자의 끈질긴 취재로 세상에 드러났고, 탄핵 위기에 몰린 닉슨 대통령은 1974년 8월 9일 하야했다. 세기의 정치스캔들인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 역사상 최초이자 유일한 대통령 사퇴를 끌어낸 일이다. 통킹만의 진주, 하롱베이이역만리 대국의 정치스캔들을 부른 통킹만은 베트남과 중국 사이에 있는 거대한 만이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의 옛 이름인 동낀(Đông Kinh, 東京)에서 유래한 이름이라고 한다. 통킹만 북서쪽에 있는 하롱베이는 바위섬들이 만들어 낸 아름다운 절경 덕에 오랫동안 베트남의 대표 관광지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1994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도 등재됐다. 하롱베이라는 이름도 용(龍)이 내려온다(下)는 의미로 붙여졌다. 오래전 외적의 침입으로 어려움에 처한 베트남에 신(神)이 용들을 내려보냈다. 용들은 보석과 구슬을 뿜으며 외적들을 물리쳤고, 이것이 바다 위 섬으로 남아있다고 전해진다. 베트남인들은 이 용들이 여전히 이곳에서 지켜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하노이에서 버스를 타고 동쪽을 향해 약 3시간을 달리면 투안짜우(Tuần Châu) 선착장에 도착한다. 다시 배를 타고 하롱베이 중심부에 있는 티톱섬(Ti Tốp Island)에 들어갈 수 있다. 티톱섬은 엄청난 규모의 종유석과 석순을 볼 수 있는 승솟동굴(Hang Sung Sot)로도 유명하다. 섬 입구에는 옛 소련의 우주비행사 게르만 티토프(Gherman Titov)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62년 호찌민 주석이 티톱이 이곳을 매우 마음에 들어 하자 섬에 그의 이름을 붙여주었다고 한다. 배를 타고 티톱섬을 향해 가는 뱃길에 놓인 바위섬들은 기대보다 조금 심심한 편이다. 한국 경남 거제에서 전남 여수에 이르는 한려해상도 절대 뒤지지 않는 수준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조금 더 바다로 들어가자 수많은 섬이 조화를 이루며 웅장함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함께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도 서서히 입에서 탄성을 쏟아낸다. 이 바다가 통킹만이라는 생각이 들자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영화 ‘더 포스트’가 갑자기 떠올랐다.
  • 중구 명동 ‘꽁초와의 전쟁’… 플로깅으로 청결한 거리

    중구 명동 ‘꽁초와의 전쟁’… 플로깅으로 청결한 거리

    서울 중구 명동이 지난 16일 다동무교동 음식문화거리 등 청계천 인근에서 쓰레기를 줍는 ‘플로깅’ 활동을 진행했다고 20일 밝혔다. 중구 관계자는 “2023년 명동에서 선포한 ‘꽁초와의 전쟁’ 캠페인의 일환”이라며 “명동은 유동인구가 많고 기업 밀집도가 높은 지역 특성상 담배꽁초 무단투기에 특히 취약하다”고 설명했다. 명동주민센터, 신한DS 직원과 클린코디 등 32명이 참여했다. 명동은 그동안 지역 기업들과 함께 기업 인근의 무단투기 취약지역을 중심으로 플로깅 활동을 이어 왔다. 기업 내 흡연자들의 인식 개선을 유도하고 지역사회 전반에 청결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서다. 명동은 주민협의체를 결성하고 후원금을 통해 담배꽁초 휴대함을 제작하는 등 담배꽁초와의 전쟁 캠페인을 해 왔다. 지난해에는 취약지역에 수거함 ‘꽁초픽’을 설치하고 5개 기업과 함께하는 캠페인을 통해 민관 협력의 기반을 다졌다. 누구나 손쉽게 플로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꽁초 수거 전용 집게를 별도로 지급해 참여자들의 호응을 얻기도 했다. 민관 협력에 참여하는 기업도 7곳으로 늘어났다. 김길성 중구청장은 “무단투기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에 한계가 있어 기업 등 지역 구성원들의 참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민간 주체들과 청결한 거리 환경 조성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 [책꽂이]

    [책꽂이]

    고흐의 귀, 퀴리의 골수(수지 에지 지음, 이미정 옮김, 타인의사유) 의학자이자 역사학자인 저자가 유명한 이들의 신체 부위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한다. 나폴레옹의 음경, 반 고흐의 귀, 마리 앙투아네트의 치아, 마리 퀴리의 골수에 이르기까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모았다. ‘몸’에 대한 숭배와 혐오의 시선은 시대를 지나 이어진다. 저자는 신체 부위와 관련된 여러 사례를 살피면서 ‘나와 다른 것’을 대하는 적나라한 욕망을 사회문화적으로 풀어낸다. 우리가 타인의 몸으로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320쪽. 2만 2000원. 혁신경제 4.0(김동열 등 8인 지음, 한울아카데미) 계엄과 탄핵, 여기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발 관세전쟁까지 겹치면서 우리 경제가 좀처럼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악화일로를 걷는 경제를 어떻게 다시 일으킬지에 대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인공지능(AI)이 주도하는 네 번째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경제 패러다임을 세우기 위해 통상산업정책부터 과학기술, 규제개혁, 창업, 금융혁신, 자본시장, 인구위기, 연금개혁 보완대책, 부동산 대책까지 분야별 과제에 대해 8명의 전문가가 대책을 내놓는다. 272쪽, 2만 6000원. 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조성권 지음, 황금알) 저자가 아버지에게 배운 고사성어를 자신의 실제 경험과 연결하고 이야기로 재구성해 들려준다. 아버지가 6·25전쟁 중 겪은 부상과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보여 준 강인한 모습을 들며 ‘벼랑에 매달려 물을 뿌린다’는 의미의 ‘현애살수’(懸崖撒手), ‘참된 나를 밝히려 공부한다’는 의미의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소개한다.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집중력 있게 나아갈 것, 천년은 갈 일을 할 것 등 아들에게 물려줄 만한 교훈을 고사성어 97개에 차곡차곡 넣었다. 344쪽. 2만원. Op.23(조가람 지음, 믹스커피) 세계적인 작곡가와 연주자의 이야기로 음악이 전하는 위로와 사유를 풀어낸 에세이집. 이보 포고렐리치, 디누 리파티,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알프레드 코르토, 백건우 등 피아니스트인 저자가 경애하는 피아니스트들의 이야기로 그들의 음악이 탄생한 삶의 배경과 연주자로서의 존재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이어 프레데리크 쇼팽,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프란츠 리스트 등의 작품으로 클래식 음악 속 감정의 조각들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음악가로 사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308쪽. 2만 3000원.
  • 황석영 “尹 비상계엄 선포, 자기 실패 인정 않고 반공 이념 들이댄 것”

    황석영 “尹 비상계엄 선포, 자기 실패 인정 않고 반공 이념 들이댄 것”

    원로 소설가 황석영(82)이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자기 실정과 부패에 실망한 국민에 의해 총선에 실패했음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케케묵은 반공 이념을 들이댄 것”이라고 비판했다. 17일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에서 열린 ‘조선공산당 100주년 기념식’ 기념사를 통해서다. 황석영은 “그동안 선진적인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해낸 대한민국의 근대화를 자랑삼던 우리는 이런 역사적 반동과 퇴행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고도 했다. 황석영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는 요소로 한반도의 정전 체제를 꼽으며 북한과의 평화 협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요소는 남북으로 분단돼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 체제 때문에 갖게 된 안보 국가의 성격”이라며 “이것에서 벗어나려면 가장 먼저 정전 체제를 종전 체제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이어 “분단 시대의 체제 경쟁 속에 남한이 북한에 비해 압도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은 여러 사회·경제적 지표로 이미 증명됐는데, 아직도 북한 때문에 민주적 개혁을 꺼린다면 이는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1925년 4월 17일 공산주의 정당이자 독립운동 단체인 조선공산당 결성 100주년을 맞은 이날을 기념해 열린 이번 행사에는 항일혁명가기념단체연합 이사장인 황석영과 김삼열 독립유공자유족회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 “문인 1000명 인장 어렵게 모았지만… 내 것이라고 생각 안 해요”[서동철의 노변정담]

    “문인 1000명 인장 어렵게 모았지만… 내 것이라고 생각 안 해요”[서동철의 노변정담]

    이재인 관장의 본업은 소설가베트남전 1년 참전 후 전쟁소설 구상1989년에 쓴 ‘악어새’ 10만부 히트연좌제 넘어 참전… 집필 약속 지켜서울신문·사상계 읽고 ‘문인의 꿈’오영수 권유로 경기대 국문과 입학장준하의 사상계社에서 알바 기회전국 대학생 백일장 詩부문서 당선서울·충북에서… ‘연설문의 달인’예산고 교사 부임… 어릴 때 꿈 이뤄충북교육위서 교육감 연설문 쓰고당시 문교부 장관 연설문까지 작성유치진·서정주… 인장 1200과 소장인장 찍힌 책 인지는 ‘정품 보증서’문인 인장 공간 생긴다면 기증하고향토문화 좀더 발전하도록 힘쓸 것 충남 예산의 한국문인인장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새삼스럽게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서해안고속도로를 벗어나 새로 뚫린 평택~부여 고속도로를 타고 예산 땅에 접어드니 추사고택 나들목을 알리는 푯말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의 옛집을 가리키는 표현이 고속도로 나들목 이름이 될 줄을 추사 김정희 선생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박물관으로 가려면 예산예당호나들목으로 나가야 한다. 강태공들에게 꿈의 낚시터인 예당저수지 얕은 여울목에는 새로 나는 물풀을 헤치며 백로며 왜가리가 그야말로 떼를 지어 먹이를 찾고 있었으니 눈이 씻기는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멀지 않은 곳에 한때 멸종됐던 황새를 번식해 보존하는 예산황새공원이 있다. 자신들의 안전이 보장된 고장이라는 것을 새들도 본능적으로 알고 있나 보다. 예당저수지가 있는 대흥면을 벗어나 광시면에 접어들면 한우마을이 나타난다. 작은 동네에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고깃집이 자리잡을 수 있는지 신기할 지경이다. 마을을 찾는 손님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겠다. 이재인 관장은 광시파출소 앞으로 마중 나와 있었다. 보령·청양으로 가는 길을 따라 달리다 오른쪽으로 접어든다. 좁은 길이지만 깔끔하게 정비돼 있다. 그런데 이 관장을 따르지 않더라도 박물관은 쉽게 찾아갈 수 있을 것 같다. 한우마을부터 10개가 넘는 표지판이 갈림길마다 방향을 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장에게 “지역에서 대접을 잘 받으시는 것 같다”고 했더니 “박물관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작은 공간을 고향분들이 존중해 주시고 있는 것 같아 고마울 뿐”이라며 웃었다. 이 관장의 본업은 소설가다. 그는 1985년 ‘예술계’ 신인상에 단편소설 ‘금이빨과 금지구역’이 당선돼 문단에 나왔다. 같은 해 교육신보사의 2000만원 현상 공모전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았다. 조금 나이가 있는 세대라면 그가 1989년 발표하고 10만부가 팔려 나간 장편소설 ‘악어새’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그에게 “동네에서는 선생님을 어떻게 부르느냐”고 하니 “여기선 교수님”이란다. 그는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1회 졸업생으로 모교에서 소설론을 가르치다 정년퇴임했다. “‘악어새’를 발표할 당시는 베트남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은 무엇이든 성공할 때였어요. 박영한의 ‘머나먼 쏭바강’, 이원규의 ‘훈장과 굴레’, 이상문의 ‘황색인’, 황석영의 ‘무기의 그늘’, 안정효의 ‘하얀전쟁’이 그렇지요. 그런데 ‘악어새’가 다른 것은 한국인의 시각이 아닌 베트남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쟁을 그린 겁니다.” 그는 대학 3학년 1학기를 마칠 무렵 군에 입대했다. 2학기 등록금 낼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논산에서 신병 훈련을 마치고 육군통신기지창에서 10개월 남짓 졸병 생활을 하던 중 베트남전 모병 소식이 들려왔다. 5개월 동안의 전투 훈련을 마치고 군수지원단에서 일하며 베트남의 이런저런 사정에 관심을 가졌다. 1년 동안의 베트남전 참전을 마치고 돌아와 제대할 때까지 전쟁 소설을 구상했다. 베트남에서 모아 고향에 보낸 ‘피 같은’ 전투수당은 그동안 농토와 송아지로 바뀌어 있었다. “베트남에 가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연좌제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큰아버지가 좌익 활동을 했는데 6·25 때는 장택상씨 집을 차지해 살았을 만큼 거물급이었다고 해요. 그러니 베트남전에 지원해도 보내 주지 않는 겁니다. 부대 방첩대장을 찾아가 “국문과를 다니다 입대한 소설가 지망생인데 베트남전에 참전해 꼭 작품으로 쓰고 싶다”고 간청했어요. 그랬더니 한참 듣고 있던 방첩대장이 부관에게 “저 자식 베트남에 보내 버려” 하는 것이었어요. ‘악어새’는 그 약속을 지킨 것이기도 합니다.” 그는 지금도 열심히 작품을 생산한다. 그동안 장편소설만 10권을 냈다. 하지만 소수의 작가만 팔리는 시대 ‘악어새’ 같은 반응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근작을 읽고 박물관으로 찾아오는 독자가 있다고 한다. 그때마다 작가는 ‘영원한 스타’라고 생각한다. 문학은 죽었다고들 하는데 작가와 독자가 이렇게 만나는 걸 보면 아직은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에게 “어떻게 문학을 하게 되셨냐”고 하니 “이야기가 긴데…” 하더니 보따리를 끌러 놓기 시작한다. “국민학교, 요즘 말로 초등학교에 열 살이 되어서야 들어갔어요. 이장댁에 배달된 서울신문이며 서울신문 어린이판을 첫 장부터 끝 장까지 읽었습니다. ‘학원’이나 ‘현대문학’도 닥치는 대로 찾아봤고 나이가 남들보다 많기는 했지만 초등학교 4학년짜리 아이가 ‘사상계’에 실린 문학작품도 탐독했어요. 그런데 집에서는 남의 집 머슴살이를 권했지요. 머슴을 살면 한 해 쌀이 두 가마이니 3년 여섯 가마면 논 세 마지기를 사서 초가삼간을 지을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머슴을 살기에는 꿈이 너무 자라나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는 예산군 경찰의 날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했다. ‘먹방’의 대명사인 예산 출신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의 할아버지가 당시 예산경찰서장이었다. 서울신문과 경향신문 독자란에 투고한 글이 실려 자신의 이름이 인쇄돼 나오던 시절이다. 그 언저리 이재인의 꿈은 문인이 돼 예산이나 홍성에서 중학교 교사로 자리잡는 것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16세 문학청년은 결국 가출해 서울에 왔다. 종로6가 어문각 언저리에서 구두닦이를 했는데 활자로만 뵈던 ‘갯마을’의 작가 오영수를 만나게 된다. 어디에 가면 누구를 만날 수 있는지쯤은 짐작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는 오 선생의 구두를 닦으며 “작가가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했다. 그는 “부탁을 하면서 구두 닦은 값은 그대로 받았으니 아직도 미안하다”며 웃었다. “청계천 헌책방에서 지나간 문예지를 헐값에 한 무더기 사서 고향으로 내려갔어요. 강의록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과정 검정고시도 공부했습니다. 이듬해 봄 오영수 선생으로부터 우편엽서를 받았어요. 공부하고 싶으면 올라오라는 겁니다. 경기실업초급대학이 경기대학교로 승격한 첫해 입학할 수 있었어요. 광시 양조장집 여주인이던 서창남 시인의 도움도 컸습니다. 서 시인은 오영수 선생에게 ‘시골서 공부를 열심히 시킬 테니 길을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기도 했지요.” 대학에 들어간 그는 존경하던 ‘사상계’ 발행인 장준하 선생에게 편지를 보냈다. “언론인이 되고 싶은데 사상계에서 근무하게 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장 선생은 엽서로 답장을 보내 왔는데 “공부를 열심히 해서 졸업하면 오라”는 것이었다. 사상계사로 인사차 찾아갔더니 정기 구독자에게 부칠 봉투에 주소를 쓰는 아르바이트 자리를 주었다. 사상계 알바생이 된 이 관장은 경기대 학보사 기자로 특채됐다. 이 관장은 글 쓰는 일을 시작하며 인생이 비로소 흐르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갖게 됐다고 했다. 경기대 시절 양주동, 박남수, 이형기, 홍기삼, 김광식, 이형기 선생 등 문단의 대표적 존재들을 만날 수 있었던 것도 행운이었다. 그는 이 무렵 영남대가 주최한 전국 대학생 백일장 시 부문에서 당선되면서 더욱 자신이 붙기 시작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잡지사 몇 군데를 거쳐 예산고 교사로 부임했다. 어린 시절 꿈이 이뤄진 것이다. 백종원 대표 집안에서 설립한 학교다. 부천 소명여고, 충북 영동중, 미원고, 충주상고에도 재직한다. 이 즈음 글쓰기 능력을 인정받아 충북도 교육위원회에서 교육감 연설문을 작성하게 된다. ‘연설문의 달인’이라는 소문이 서울까지 퍼지면서 당시 문교부 공보관실 교육연구사로 장관 연설문을 썼다. “청주 시절이었어요. 그때 고교 교사 보충수업 수당이 시간당 700원이었습니다. 집에서 개 한 마리를 키웠는데 어느 날 가방 하나를 물고 들어왔어요. 현금 500만원과 월급봉투가 들어 있었으니 놀랐지요. 봉투에 적힌 대로 도자기 회사에 전화를 걸어 주인을 찾아주었습니다. 그런데 얼마 뒤 도자기 회사 임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와 만나자고 하는 겁니다. 그분 도움으로 중국·러시아·중앙아시아 동포를 현지 조사하며 석사 학위를 마칠 수 있었어요. 도자기 회사가 옌볜 지린대에 거액을 지원하면서 그곳에서 박사 학위도 할 수 있었고요. 돌이켜 보면 제 길은 거기서부터 열렸는가 봅니다.” 지금도 박물관 마당의 강아지를 끔찍하게 챙기는 이유일 것이다. 문인인장박물관은 고향으로 돌아온 2000년 개관했다. 인장박물관은 1000명 안팎 문인의 1200과(顆) 남짓한 인장을 소장하고 있다. 그에게 “문인의 도장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요즘 책은 대개 인지를 생략하지만 과거엔 반드시 작가의 인장이 찍힌 인지가 붙어 있던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인지는 저작권 증지라는 표현으로 대체할 수 있어요. 책의 말미에 붙인 인지는 작가와 출판사의 약속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인지는 낙관처럼 ‘정품 보증서’를 뜻한다는 설명이다. 박물관 소장품은 유치진, 박종화, 서정주, 박목월, 조지훈, 박두진, 오영수, 조연현, 백철 등 우리가 아는 20세기 문인의 인장을 망라한다. 대부분은 직접 건네받았고 작고한 문인은 유족으로부터 기증받았다. 박물관을 찾아오는 문인에게는 입장료 대신 인장을 달라고 했다. 박물관은 봄가을로 명사 초청 강연회를 가졌는데 “사례금 영수증에 인장이 필요하다”며 자연스럽게 ‘기증’을 유도하기도 했다. “어렵게 모았지만 내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문인의 인장을 빛나게 하는 공간이 생긴다면 흔쾌히 기증하려 마음먹고 있습니다. 앞으로 국립한국문학관이 개관해 자리가 만들어진다면 함께 즐길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겠지요.” 인장박물관에는 충남문학관이라는 간판도 걸려 있다. 지역 문학유산을 좀더 부각시키겠다는 취지다. ‘근대예산풍류선’과 ‘홍주 역사 인물기행’을 펴내며 향토문화 발굴사업에서 힘을 기울인다. 박물관은 항상 문을 열어 놓고 있지는 않지만 이 관장이 자리를 지키는 낮에는 안내판에 적힌 대로 전화를 걸면 관람할 수 있다. “우리 박물관이 자리잡고 주변에 모두 9개의 박물관이 들어섰어요. 고향에 돌아왔으니 지역문화가 좀더 발전할 수 있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읽고 싶은 책이 너무나 많아요. 아직은 건강에 자신이 있는 만큼 이렇게 허송세월해서는 안 된다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 이재인 박물관장은 1945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경기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중·고교 국어교사와 문교부 공보관실 교육연구사로 일했다. 경기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이 대학 한국문화연구소장을 지냈다. 월간문학상, 한국평론가협회상, 한국박물관인상, 백제문화예술상을 수상했다. ‘악어새’를 비롯한 10편의 장편소설과 ‘오영수 문학 연구’ 등 연구서를 펴냈다. 현재 한국문학관협회와 한국박물관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글·사진 서동철 논설위원
  • 145% 치고, 125% 받고… 관세 폭탄 뜯어보니 ‘G2 패권 전쟁’ [딥 인사이트]

    145% 치고, 125% 받고… 관세 폭탄 뜯어보니 ‘G2 패권 전쟁’ [딥 인사이트]

    中 구매력평가 기준 GDP 37조弗美 29조弗에 그쳐… 세계 1위 내줘美무역적자 1309조원… 中 32% 차지 관세 전쟁에 전 세계 공급망 타격장기화 땐 글로벌 경기 침체 불가피 “중국은 미국을 더이상 속이지 못할 것이다.”(4월 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그 누구의 시혜에도 의존하지 않았기에 불합리한 억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4월 11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미중 관세전쟁이 무역 갈등을 넘어 패권 다툼으로 번지고 있다. 미국이 총 145%의 관세폭탄을 퍼붓자 중국은 125% 보복관세로 맞불을 놓았다. 기원전 431년부터 404년까지 지중해 패권을 두고 맞붙은 신흥 해상강국 아테네와 패권국 스파르타가 벌인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고대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원인을 “아테네의 부상이 스파르타를 두렵게 했고, 두려움이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고 규정했다. 고대 그리스의 모든 폴리스를 빨아들인 펠레폰네소스 전쟁처럼 미중 충돌도 두 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관세전쟁은 자유무역에 사망선고를 내렸고 글로벌 공급망을 옥죄고 있다. 1차 미중 무역전쟁(2018년 1월~2019년 10월)처럼 길어진다면 글로벌 경기 침체가 불가피하다. 확전 일로를 걷는 2차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을 짚어 봤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전쟁이란 ‘미치광이 전략’을 실행한 배경에는 ‘쌍둥이(무역·재정) 적자’가 있다. 16일 미국 상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규모는 9184억 달러(약 1309조 6000억원)에 이른다. 특히 대중국 무역적자가 2954억 달러로 전체의 32.2%다. 다른 교역국들은 온갖 장벽을 동원해 미국 제품의 수입을 막고 있는데 미국은 시장을 열어 산업 기반이 위태롭게 됐다는 게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이다.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모든 나라가 미국을 속여 왔다”고 했다. 백악관은 무역전쟁이 격화하더라도 결국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이 컸다. 일시적 고통을 견디면 상대의 항복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연간 6000억 달러로 추산되는 관세 세입으로 1조 8000억 달러의 연방 재정적자를 어느 정도 상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백악관의 기대보다 예민하게 반응했다. 지난 3~4일 뉴욕 주식시장에서 증발한 시가총액은 6조 6000억 달러에 달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지난 4일 연 3.9910%에서 11일 연 4.4970%로 뛰었다. 세계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의 평균적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도 11일 한때 99.01까지 떨어졌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제외한 전 세계 국가들에 대한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했다. 전략적 후퇴란 평가가 나왔지만 역설적으로 미중 패권 다툼이란 본질은 더 선명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면박을 주고, 러시아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온 배경에는 중국 견제 의도가 담겼다. 미국이 한국·일본·호주·영국을 비롯한 동맹국과 관세 협상에 속도를 내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011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피벗 투 아시아’(아시아 중시 정책)를 표명한 이후 트럼프 1기, 조 바이든 행정부에 이르기까지 집권당과 관계없이 대중 견제 기조는 이어졌다. 그럼에도 중국의 굴기를 막지 못했다. 지난해 단순 환율 기준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이 30조 3000억 달러, 중국이 19조 5000억 달러였지만 구매력평가(PPP) 기준 GDP는 중국이 37조 700억 달러로 29조 1700억 달러의 미국을 크게 앞섰다. PPP 기준 GDP는 각국 통화가 실제 구매할 수 있는 물건·서비스의 양, 즉 물가를 반영해 경제 규모를 비교한 것이다. ‘실질 경제력’에선 중국이 미국을 앞섰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중국은 믿는 구석이 있다. 1차 미중 무역전쟁이 터진 2018년 21.6%에 이르던 대미 수출 비중을 지난해 12.3%로 낮췄다. 또 미국산 원유와 옥수수·대두 등 농산물의 수입 비중을 줄이고 수입처를 러시아·중동·동남아·중남미 등으로 다변화했다. 중국이 ‘인질’을 잡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세계 시가총액 1위 애플, 세계 1위 전기차업체 테슬라, 미국 최대 유통업체 월마트의 중국 의존도를 빗댄 표현이다. 애플은 제품의 95%를, 테슬라는 40%를 중국에서 생산한다. 월마트에서 파는 상품의 60%가 중국산이다. ‘마이너스섬 게임’(득실의 합이 0 미만이 되는 게임)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고, 시 주석은 2027년 4연임 여부가 결정되기에 누구도 먼저 고개를 숙일 수 없는 상황이다. 양준석 가톨릭대 경제학과 교수는 “중국의 상대는 미국뿐이지만,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싸우고 있어 피해가 더 클 수밖에 없다”면서 “트럼프가 중국을 제대로 견제하려 했다면 모든 국가를 적으로 돌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미국인은 여론에 민감해 스마트폰 가격만 올라도 전 국민이 난리를 치지만 중국인은 자기가 불편해도 말로 표현하지 못하므로 미국이 패자가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반면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건설 경기가 침체했고 고용 문제가 심각한 수준이기 때문에 수출 의존도가 높은 중국이 받는 피해도 상당한 수준”이라면서 “결과를 예측하긴 어렵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내년 중간선거를 앞두고 어떻게든 성과를 내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녹지에 하얀 숲·340년 보전 숲… 지역 경제에 우거진 ‘희망의 숲’[숲은 희망이다]

    녹지에 하얀 숲·340년 보전 숲… 지역 경제에 우거진 ‘희망의 숲’[숲은 희망이다]

    영양군 죽파리 자작나무숲병해충 피해 소나무 대신 흰나무무모한 시도가 관광 자원 ‘변신’진입로 개설·숙박시설 등 확충코로나 때 탐방객 연 2만명 방문울진 금강소나무 최대 군락지조선시대부터 건축 자재로 보호심산유곡 위치해 日 수탈도 면해7개 숲길 개방… 대부분 재방문객국가유산 보수·복원 목재로 공급지난 11일 ‘대한민국 산림녹화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세계 유일 ‘치산녹화’ 성공국의 발자취에 담긴 가치를 국제사회가 인정한 것이다.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며 황폐해진 국토에 전 국민이 나서 120억 그루 이상의 나무를 심었다. 국민의 땀과 노력으로 대한민국은 녹색을 회복했고, 푸른 숲은 국민의 휴식처이자 생명의 보고가 됐다. 잘 가꾼 숲이 지역의 관광 자원으로 부상하면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소멸을 늦추는 효과로 이어졌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빈발해진 자연재해로 인해 산림 피해가 늘고 있다. 녹화 조림에, 관리하지 않아 빽빽해진 우리 산림은 재난에 취약했다. 산림 경영으로 목재 활용을 높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하며 관광 자원화할 수 있는 제2의 녹화 운동이 필요해졌다. ●병해충 피해 재난이 ‘기회’로 지난달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강풍을 타고 안동·청송·영양·영덕까지 휩쓸며 건국 이후 최대 피해가 발생했다. 영양군에서만 축구장(0.7㏊) 7240여개에 달하는 5070㏊의 피해가 났다. 화마가 덮친 숲은 절망의 흔적으로 가득하다. 산림 재난을 ‘기회’로 반전시킨 현장을 찾았다. 국내 최대 군락지로, 영양군을 대표하는 명소로 부상한 죽파리 자작나무숲(30.6㏊)은 30여년 전 병해충 피해 현장이다. 소나무가 베어진 자리는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자작나무가 대신했다. 녹색이 에워싼 공간에 흰색의 나무를 심은 것은 당시 무모한 시도로 평가됐다. 기억에서 사라진, 관심에서 멀어졌던 숲은 시간이 흘러 지역·마을 주민들이 찾는 쉼터가 됐다. 높이 6~20m, 가슴높이 지름이 6~30㎝의 다양한 자작나무가 건강한 숲을 이루고 있다. 숨겨진 숲이 모습을 드러낸 건 2019년. 2020년에는 국유림 명품 숲으로 지정되면서 코로나19 팬데믹 기간(2020~2022년) 연간 2만명이 방문했다. 박철우 영양군 산림자원개발팀장은 “마을 입구에서 4.7㎞로 1시간 30분을 걸어야 숲을 볼 수 있는 쉽지 않은 여정”이라면서도 “울창한 소나무 숲과 계곡이 있는 숲길을 지나 마주한 자작나무숲에서 탐방객들은 충분한 보상을 받았다고 평가했다”고 말했다. 산림청과 지자체가 산림 관광 자원화에 나섰다. 영양군은 2021년부터 2028년까지 638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가장 많이 신경을 쓴 부분은 진입로 개설이다. 접근성이 좋지 않아 온전히 보전될 수 있었던 숲을 세상에 선보이기 위해서는 아이러니하게도 길이 필요했다. 군도 개설과 숙박시설 등 부족한 편의시설을 주변 마을과 연계하기 위한 도로 개량·개설 등이 진행 중이다. 차량 운행이 전면 통제되면서 노약자들의 이동 부담을 고려해 23인승 전기버스 3대를 매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30분 간격으로 운행한다. 도보 여행 수요를 반영해 도로와 분리된 숲길도 조성했다. 2023년에는 핸드폰 통화도 가능해졌다. 지난해 방문객은 7만여명으로, 영양 인구(1만 5271명)의 4.6배에 달했다. 박 팀장은 “선배들의 도전이 지역에 지속 가능한 자산을 마련했다”며 “지역 주민 소득 창출과 일자리가 없어 지역을 떠난 젊은이들이 귀향해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잘 보전한 숲은 ‘역사가 되다’ 경북 울진 소광리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3705㏊)은 한반도에 자생하는 금강소나무의 최대 군락지다. 조선 숙종 6년인 1680년에는 조선시대 궁궐을 짓기 위해 사용하던 최상의 소나무인 황장목의 무단 벌채를 막기 위해 황장봉산으로 지정돼 보호·관리했다. 당시 사방에 4개의 금표를 세웠는데 남쪽과 동쪽에 세워진 황장봉계표석과 공계표석은 확인됐으나 서쪽과 북쪽 표석은 발견하지 못했다. 유전자원보호구역은 소나무림이 37.2%로, 지름이 60㎝가 넘는 200년 이상 된 금강소나무 8만 5000여그루가 터를 잡고 있다. 500년 이상 된 보호수도 32그루 있는데 세월의 무게는 어찌하지 못하는 듯 고정 와이어로 지탱해 자태를 유지하고 있다. 심산유곡에 위치해 일제의 대규모 벌채에도 접근 및 이동의 어려움으로 수탈의 피해를 피할 수 있었다. 해발 500~ 800m지만 기후변화의 위기까지 막지는 못했다. 소광리를 대표하는 대왕소나무와 남사면 능선부의 소나무들이 수분 스트레스로 고사가 이어지고 있다. 고사목은 베어내 후계목으로 재조림하고 있지만 소나무의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산림청은 2011년부터 7개 숲길을 개설해 4~11월 개방한다. 탐방객은 하루 80명으로 제한돼 누구나, 아무 때나 갈 수는 없다. 2019년 3만 7000여명까지 늘었던 탐방객은 코로나19 시기 절반으로 떨어졌지만 지난해 2만 3000여명이 찾아 회복세를 보인다. 국내에서 보기 힘든 거목이 자라는 현장은 재방문객이 대부분이다. 산림청은 숲해설가와 숲 관리인 등을 지역 주민으로 채용하고 인근 마을과 협력해 숲밥(도시락), 민박 등 지역과의 동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의미 있는 성과도 나타났다. 산림청 영주국유림관리소가 국가 유산 보수·복원을 위한 목재 2413그루를 국가유산수리재료센터(유산센터)에 공급했다. 2005년 국가유산청과 업무협약 후 문화재 보수용으로 공급한 목재는 288그루에 불과하다. 성균관 복원용으로 공급한 소나무는 70년생으로 지름 45㎝, 8~9m 길이의 대경재(큰 지름원목)로 기둥과 보로 사용할 수 있다. 활엽수는 민가와 전통가옥 복원용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박영환 영주국유림관리소장은 “그동안 정보 부족과 단목 공급 방식으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유산센터가 설치돼 저장공간이 확보되면서 국산 목재 사용을 확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 진안 중평마을의 산림녹화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진안 중평마을의 산림녹화 기록물,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전북 진안군 성수면 도통리 중평마을의 산림보존 노력이 가치가 있는 세계적 기록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진안군은 지난 10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집행이사회에서 진안군 중평마을의 산림계 자료가 포함된 ‘산림녹화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UNESCO Memory of the World)으로 등재 결정됐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세계기록유산에 등재 결정된 우리나라의 산림녹화기록물은 6·25전쟁 후 황폐해진 국토에 민·관이 협력해 성공적인 국가 재건을 이뤄낸 산림녹화 경험이 담긴 자료다. 자료는 세계의 다른 개발도상국이 참고할 수 있는 모범 사례이자 기후변화 대응, 사막화 방지 등 국제적 논점에 본보기가 되는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산림녹화기록물은 공문서·사진 등 총 9619건으로 구성됐고, 이중 진안 중평마을에서 이웃 점촌마을과 함께 공동산림을 보호하고 이용하기 위해 만든 마을공동체인 산림계(山林契)와 관련된 자료가 포함됐다. 진안 중평마을 산림계 자료는 산림계의 운영 규칙을 적은 정관(定款)과 그 운영내용을 상세히 기록한 수계기(修契記)다. 중평마을의 산림계 수계기에는 180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후반까지 산림계 조직의 운영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마을 공동산림의 보호와 이용을 위해 조직된 공동체인 산림계에서 마을 주민들의 생활 유지에 필요한 연료용 땔감과 퇴비 재료 확보를 위해 노력했고, 산림의 보호를 위해 몰래 나무를 베는 등 계의 규칙을 위반한 경우에는 벌금의 처벌을 내리는 기록 등이 확인되고 있다. 이 자료는 현재 진안역사박물관에 기증되어 보존·관리되고 있다. 전춘성 진안군수는 “이번 중평마을 산림계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로 지역 문화유산의 우수성과 이를 연구·보존하고 있는 지역박물관의 역할이 다시 한번 재조명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이번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지역 문화유산의 역사적 가치 규명과 보존을 위해 더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 제주4·3특별전에 ‘순이삼촌’ 오페라까지… 프랑스를 흔드는 4·3의 바람

    제주4·3특별전에 ‘순이삼촌’ 오페라까지… 프랑스를 흔드는 4·3의 바람

    제주4·3의 바람이 프랑스인들의 마음을 흔들고 있다. 제주4·3기록물이 프랑스에 본부를 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데 이어 ‘제주4·3 국제 특별전: 진실과 화해에 관한 기록’이 파리 현지에서 호응을 얻고 있다. 더욱이 제주4·3평화재단이 제작한 4·3창작오페라 ‘순이삼촌’ 영상도 상영돼 관심이다. #4·3특별전 프랑스 파리에 깊은 울림… “보복없이 화해·상생 정신으로 4·3 해결 깊은 인상”제주도는 프랑스 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에서 9일부터 15일까지 ‘제주4·3 국제 특별전: 진실과 화해에 관한 기록’ 특별전을 유네스코 등재를 앞두고 마련했다. 11일 등재가 최종 확정되면서 같은 날 개최된 개막식에는 주프랑스한국대사관과 주프랑스한국문화원, 파리한글학교 관계자 및 교민사회, 현지 외국인 등이 참석해 제주4·3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오페라 ‘순이삼촌’에서 예술총감독과 주역을 맡았던 소프라노 강혜명씨의 아리아 공연은 참석자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진실과 화해에 관한 기록’을 주제로 열린 이번 특별전에서는 2023년 11월 유네스코에 제출된 1만 4673건의 기록물 중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핵심 사료들을 선보였다. 특히 생존자 증언자료, 군법회의 관련 기록, 정부 공식 문서 등 4·3의 실상을 증언하는 주요 기록물의 복제본이 전시돼 관람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13일 기준 400여 명이 전시장을 찾아 제주4·3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겼다. 한 프랑스인은 “한국 현대사의 잘 알려지지 않은 비극을 알게 됐고, 피해에 대한 보복없이 화해와 상생의 정신으로 4·3을 해결해나가는 제주도민의 노력이 인상깊다”며 공감했다. 프랑스 한인회 관계자는 “이번 전시를 계기로 우리 가족이 4·3유족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이런 특별한 시기에 알게 된 사실이라 더욱 의미가 깊고, 4·3기록물의 유네스코 등재가 모두에게 중요한 경종이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고 전했다. #현기영 작가 “망각을 강요당한 30년 세월을 끝내는 계기가 된 작품 결실 맺어 기뻐”특별전 일정을 함께한 ‘순이삼촌’의 현기영 작가는 “제주4·3의 기억과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의미는 인류가 제주4·3을 통해 전쟁과 국가 폭력의 잔혹함을 되새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등재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은 제주출신 현 작가는 1978년 발표한 ‘순이삼촌’ 소설이 제주4·3기록물 가운데 유일한 문학작품으로 등재목록에 올려 감회가 새롭다. 4·3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전환시킨 소설 ‘순이삼촌’은 1949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 너븐숭이에서 400여명의 양민 집단학살을 다룬 작품이다. 현 작가는 15일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망각을 강요당한 30년 세월(그는 ‘망각의 정치’라고 표현했다)을 끝내는 계기가 된 내 작품이 불어로 번역되고 초판본과 영문번역이 전시되고 4·3기록물로 등재되면서 내 4·3문학의 결실을 보는 것 같아 기쁘다”면서 “인류가 제주4·3을 통해 전쟁과 국가 폭력의 잔혹함을 되새기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2년전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제주도민들이 앓고 있는 트라우마가 내게도 있었다”며 “3만 4·3영령들이 글을 쓰라고 한 듯 진실을 썼다”고 회상한 뒤 “4·3사건을 최초로 알린 용기의 대가로 군 정부 기관 연행돼 끌려가 3일간 모진 고초를 당했다. 지금도 그 후유증으로 몸이 시원찮다”고 고백한 바 있다. ‘순이삼촌’’에서 그는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년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떨어져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나왔다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고발할 용기는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이 지낼 뱃심조차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다만 합동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은 가해자가 쉬쉬해서 삼십년 동안 각자의 어두운 가슴속에서만 갇힌 채 한번도 떳떳하게 햇빛을 못 본 원혼들이 해코지할까봐 두려웠다’면서 그 망각의 세월, 4·3의 비극을 명징했다. # 4·3창작오페라 ‘‘순이삼촌’ 영상도 무료 상영… 현기영 작가와 한강 작가 현수막도 등장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한 4·3창작오페라 ‘순이삼촌’ 영상도 15일(현지시간) 프랑스 마르망드시 영화관(Cinéma Le Plaza)에서 무료로 상영된다. 프랑스 마르망드시 측은 “제주도에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을 조명하고, 프랑스 대중에게 알려줄 것이다”고 말했다. 영화관에서는 4·3홍보부스도 운영된다. 현 작가와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 소개 현수막을 게시하고, ‘한눈에 보는 4·3(불어)’과 동백 배지를 나눠준다. 현수막에는 최근 4·3기록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소식도 담았다. 김종민 제주4·3평화재단 이사장은 “프랑스 마르망드 시민 및 수준급 성악가들이 모이는 행사에서 4·3창작오페라 영상을 선보이게 되어 기쁘다”며 “4·3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의 역사지만, 그것을 극복해낸 제주4·3은 평화와 인권의 정신으로 승화된 자랑스러운 역사”라고 역설했다.
  • 트럼프, 시진핑 베트남 방문에 “미국을 속이려는 의도”

    트럼프, 시진핑 베트남 방문에 “미국을 속이려는 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18일 시진핑 중국 주석의 2025년 첫 해외 순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이 이날부터 1박 2일간 베트남을 국빈 방문하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저는 중국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베트남을 비난하지도 않습니다. 오늘 그들이 만나는 걸 봤습니다. 정말 멋진 만남이죠? 마치 미국을 어떻게 속일지(screw) 고민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저는 시진핑 주석을 비난하지 않습니다”라며 “저는 그를 좋아하고, 그도 저를 좋아합니다. 아시다시피, 누가 알겠습니까?”라고 덧붙였다. 시 주석은 베트남에 이어 15~18일 말레이시아와 캄보디아를 방문할 예정으로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최대한 우군을 확보하는 것이 이번 순방의 목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우회해서 미국에 수출하는 전략지로 이용되는 베트남에 대해서도 46%의 상호관세율을 적용했다. 베트남은 상호관세 발표 이후 미국과 재빠른 협상에 나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위대한 협상가” “위대한 사람들”이란 찬사를 들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그들은 우리에게 90% 관세를 부과하지만, 우리는 46%를 부과할 것”이라며 베트남과의 무역에 대한 불만을 보였다. 지난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145%로 인상한 뒤 협상을 희망하며 중국으로부터의 전화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은 미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125%로 올리며 보복에 나섰고, 아직 미중 간에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징후는 없다. 공산당 일당 통치 체제를 공유하는 베트남 방문 첫날 시 주석은 또 람 베트남 국가 주석을 하노이 공산당사에서 만났다. 중국은 베트남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으로, 두 나라 간 무역은 2024년에 전년 대비 14.6% 증가했다. 시 주석의 이번 베트남 방문은 네 번째로 그는 역사상 베트남을 가장 많이 방문한 중국 최고 지도자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1950년에 맺어진 베트남과 중국 간의 수교 75주년을 기념하는 해다. 시 주석은 2015년 베트남을 처음 방문해 젊은이들과 대화하면서 중국에서는 베트남 국부인 호찌민 주석을 ‘호 삼촌’이라고 부른다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전했다. 시 주석은 또 베트남 청년들에게 “중국인들의 마음속에 호찌민 주석은 항상 ‘중국인들의 가장 친한 친구’로 기억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시 주석은 2017년 베트남을 국빈 방문했을 60여년 전에 발행된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를 특별선물로 선사했다. 당시 시 주석은 호 주석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기사가 실린 인민일보 19부를 베트남에 선물하면서 “이 신문들은 1955년 호치민 주석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의 것으로 이를 찾는 데 많은 노력이 들었다”라고 설명했다.
  •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나폴레옹의 대륙봉쇄령

    1799년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 정부를 배신하고 쿠데타를 통해 종신 통령이라는 독재권을 손아귀에 쥐었다. 형식적으로는 여전히 공화정이긴 했지만, 역사가들은 1799년을 프랑스 혁명의 종식으로 평가하고 있다. 1804년 황제로 즉위한 나폴레옹은 유럽 대륙 여러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대승을 거두었다. 하지만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에서 나폴레옹은 넬슨이 이끄는 영국 함대에 대패했고 영국을 장악하는 데에는 실패했다. 1806년 예나 전투에서 프로이센에 대승을 거둔 나폴레옹은 폴란드와 러시아까지 굴복시키며 유럽 전역을 장악해 대제국을 건설하는 듯 보였다. 그사이 나폴레옹은 1806년 11월 영국을 경제적으로 고립시켜 굴복시킬 생각으로 대륙봉쇄령을 발표했다. 이 조치의 핵심은 유럽의 모든 나라에서 영국과의 교역과 통신 등 일체의 교류를 금지하는 것이었다. 이는 영국에 대한 압박이면서 동시에 유럽 전역에 대한 프랑스의 경제 패권을 확립하려는 시도이기도 했다. 이 조치로 영국은 일시적으로 경제적 타격을 입는 듯했다. 하지만 18세기 후반부터 영국은 산업혁명의 선두 주자로 세계 자본주의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분명히 유럽 대륙은 영국의 전통적인 주요 시장이긴 했지만, 유일한 시장은 아니었다. 오히려 영국은 이를 기회로 유럽 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아메리카와 아시아 시장을 확대하는 계기로 삼았다. 또한 우수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아메리카와 아시아에서 유럽대륙으로 향하는 상선들을 차단했다. 이렇게 해서 오히려 고통받는 쪽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이 됐다. 유럽 각국은 크건 작건 간에 영국과 다양한 방식으로 교역망을 유지하고 있었고, 그간 가성비 좋은 영국 물품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럽 내 생산과 교역이 오히려 마비돼 갔고 이러한 상황에서 프랑스의 경제 패권이란 것도 기대하기는 어려워져 갔다. 대륙봉쇄령은 영국에는 작은 상처에 불과했지만 오히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에는 치명타가 됐다. 당연히 이에 대한 불만이 유럽 전역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밀수가 성행했고 스웨덴이나 포르투갈, 러시아는 나폴레옹 체제에 저항했다. 나폴레옹 정부는 무익한 전쟁의 늪에 빠져 국력만 소진했다. 결국 그 유명한 1812년 러시아 원정은 나폴레옹 몰락의 서막이 됐다. 최근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관세 장벽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는 지금껏 미국의 동맹이었던 국가들의 거센 저항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기대와는 다르게 오히려 자국의 경제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리고 관세 장벽을 통한 주요 공격 대상인 중국은 오히려 이를 반등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과연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트럼프의 봉쇄령은 200년 전 유럽 대륙에 대한 나폴레옹의 봉쇄령과 어떻게 다를지 귀추가 주목된다. 홍용진 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 [서울광장] 관세 치킨게임, 체제 전쟁의 문을 열다

    [서울광장] 관세 치킨게임, 체제 전쟁의 문을 열다

    무역전쟁은 총성 없는 전쟁이다. 무역전쟁은 언제나 경제를 넘어 정치, 지정학 그리고 체제 경쟁으로 확대돼 왔다. 1930년 미국이 대공황 국면에서 단행한 고율 관세 정책, 이른바 ‘스무트 홀리 관세법’은 대표적인 사례다. 2만여개 품목에 관세를 물리며 자국 산업을 지키려 했지만, 주요 교역국들의 보복관세로 인해 오히려 글로벌 무역이 붕괴됐다. 3년 만에 세계 교역량은 절반 가까이 줄었고 이는 자본주의 질서 전반을 위협하는 충격파가 됐다. 결국 세계는 각자도생의 체제 경쟁으로 이어져 2차 세계 대전의 도화선으로 이어진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재집권과 함께 중국산 수입품에 최고 145%의 고율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도 이에 맞서 125%의 보복 관세, 희토류 수출 통제 등 총력 대응에 나섰다. 관세·무역전쟁의 외피를 둘렀지만 본질은 세계 패권을 지키려는 미국과, 그 질서에 도전장을 던진 중국 사이의 체제 전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미국의 의도는 분명하다. 미국은 중국이 미국과 동등한 국제 질서의 중심 세력으로 올라서는 것 자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려 있다. 중국의 제조굴기, 기술 자립, 디지털 위안화 확대, 해양 실크로드, 반도체 내재화 등은 미국이 설계한 세계질서의 위협이자 도전이다. 트럼프발(發) 무역전쟁은 중국의 굴기를 조기 차단하고 ‘패권 도전자’로서의 지위를 영구 박탈하려는 기획된 봉쇄전이다. 중국이 주요 2개국(G2) 체제를 넘어 ‘세계 1위’에 근접하기 전에 공급망을 자르고 시장을 고립시키고 자본 흐름을 틀어막아야 한다는 논리다. 이 판단은 2011년 오바마 전 대통령이 아시아 회귀전략을 선언한 이후 바이든, 트럼프 대통령으로 이어져 온 미국 정부의 확고한 최종 결론이다. 정권마다 방식만 다를 뿐 ‘중국 봉쇄’라는 전략목표는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 미국은 미래의 군사·지정학적 우위까지 영구히 확보하려 한다.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인공지능(AI) 알고리즘, 통신장비는 차세대 전쟁의 핵심 전략 자산이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산업을 고립시키고 동맹국까지 동원해 공급망에서 중국을 배제하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을 필두로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 등 핵심 참모들은 “중국이 도전자로 남아 있는 한 미국 중심의 국제질서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굳은 신념의 소유자들이다. 경제가 안보인 시대, 군사 전략의 통제력까지 확보하려는 것이다. 중국은 결코 물러설 수 없다. 이번 무역전쟁에 공산당 일당 체제의 존립이 걸려 있다. 중국은 아편전쟁 이후 100년 넘게 굴욕을 당한 역사적 기억을 되살리면서 이 싸움을 ‘중화민족의 최대 위기’로 몰아가는 중이다. 희토류의 무기화, 기술 자립화 가속, 국산 반도체 생태계 강화, 국유 자산을 활용한 자본시장 방어 등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응하고 있다. 결국 이 싸움은 세계 질서를 누가 설계하고 통제하느냐의 문제다. 관세는 도화선일 뿐 전쟁의 본질은 공급망의 무기화, 체제 우위의 판가름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군사적 전략자산을 둘러싼 주도권 경쟁으로 확장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중 체제 경쟁은 격전과 휴전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장기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중의 싸움이 격화될수록 세계는 가파른 양극화의 길을 걷게 되고 그 사이의 틈은 우리에게 위기이자 기회로 다가온다. 우리의 1, 2위 대외교역국인 미중의 무역전쟁 속에서 정교한 생존 전략이 절실하다는 의미다. 방향은 명확하다. 경제적으로는 공급망 분산과 첨단 기술의 자립을 가속화해야 한다. 미국과의 동맹을 기초로 하되 중국과의 핵심 산업 협력 라인을 절단하지 않는 정교한 외교 기술이 필요하다. 반도체, 이차전지, AI, 탄소중립 분야에서는 ‘첨단 핵심부품 공급국’으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하면서 유럽연합(EU)·인도·아세안 시장을 대상으로 한 수출 다변화 전략도 병행해야 한다. 지정학적 위기를 극복하면서 틈새의 기회를 잡아야 하는 고난도 생존게임은 피할 수 없다. 오일만 논설위원
  • 경기도 ‘DMZ 평화누리길’ 스토리 개발 등 명소화 추진

    경기도 ‘DMZ 평화누리길’ 스토리 개발 등 명소화 추진

    경기도가 ‘DMZ 평화누리길’에 얽힌 역사와 민담 등 이야기를 발굴하는 등 평화누리길 명소화를 추진한다. DMZ 평화누리길은 도가 김포 고양 파주 연천 등 접경지 4개 시군을 잇는 12개 코스(길이 189㎞)의 탐방로다. 도는 4개 지역 평화누리길을 중심으로 역사 민담 지명유래 등을 활용한 이야기를 개발해 관광에 활용할 방침이라고 14일 밝혔다. 이야기는 역사·문화,생태 자연,관광코스 등 3개 주제로 개발한다. 역사·문화는 연천 주상절리에서 진행된 금굴산 전투 등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한국전쟁길,김포 덕포진을 주제로 조선길 등 특정한 장소에 새로운 이름과 이야기를 붙이는 방식이다. 관광코스는 도가 지난해 선정한 평화누리길 주변 3개 관광코스에 이야기를 추가한다. 3개 관광코스는 김포 대명항과 지역 맛집을 비롯해 조선시대 군사 요충지였던 덕포진을 잇는 김포시 1코스,분단의 현실을 체감할 수 있는 파주 오두산통일전망대와 헤이리 예술마을을 잇는 파주시 6·7코스,연천 장남교와 옛 고구려 성인 호로고루를 비롯해 사미천교와 노곡리 쉼터를 잇는 연천 10코스 등이다. 도는 이야기 개발이 완료된 곳부터 안내판을 설치하고 해설사 등을 통해 탐방객에게 전파할 계획이다. 또 초청 홍보 여행인 팸 투어도 확대해 평화누리길을 국내외에 널리 알릴 방침이다. 오는 6월부터 언론인,평화누리길 카페 우수회원,학생 등을 초청하거나 원하는 시민을 모집해 1회당 40명씩 모두 8회에 걸쳐 평화누리길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할 예정이다. 평화누리길 12개 코스 안내 지도를 제작해 배포할 예정이다. 가방과 모자 등 현행 평화누리길 굿즈 3종에 손수건이나 물병 손잡이 등을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 신규 유치를 위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 등으로 제작한 다국어 홍보영상과 지도도 제작해 보급한다. 박미정 경기도 DMZ정책과장은 “평화누리길에 많은 관광객이 참여하도록 걷기 행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계획”이라며 “코스별 선택과 집중을 통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 평화누리길이 세계적 명소가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트럼프 관세 전쟁, 고도의 전략인가 충동적 행위인가[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트럼프 관세 전쟁, 고도의 전략인가 충동적 행위인가[노정태의 뉴스 인문학]

    계몽사상가, 자본주의 체제 옹호몽테스키외, 신흥 부르주아 지지사람에게 의존하는 정치 ‘불안정’절대 군주의 정념 억제 방법 고안자본주의 발전에 소외된 사람들자신을 대변해 줄 누군가를 찾아 트럼프, 그들의 분노·원망에 반응‘뜨거운 정념’의 복수를 대신 수행“나의 친애하는 미국인 여러분, 오늘은 해방의 날입니다. 2025년 4월 2일은 미국 산업이 다시 태어난 날로, 미국의 운명을 되찾은 날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만들기’ 시작한 바로 그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지난 4월 2일, 백악관 앞 잔디밭 ‘로즈가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기양양한 태도로 발표한 내용이다.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10%의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60여개 교역국에는 그보다 높은 관세를 ‘상호적’으로 부과하는 계획을 밝힌 것이다. 트럼프에 따르면 대한민국은 미국에 50%에 상당하는 관세를 부과하고 있었고 미국은 그 대응으로 ‘자비롭게’ 그 절반인 25%의 관세를 부과하게 될 터였다. ●트럼프, 오락가락 관세에 신뢰 흔들 이런 황당한 관세 정책은 트럼프가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공약했던 바다. 하지만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정치권과 언론의 예상을 뛰어넘는 일이기도 했다. 트럼프가 그걸 진짜로 실행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대국이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 통상 정책을 추진한다면 다른 나라뿐 아니라 미국 스스로도 큰 타격을 입을 게 분명하니 ‘하는 척’만 하다 말 것이라는 예측이 주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아예 관세 대상국에서 빠져 있었고, 반대로 남극 인근의 호주령 외딴섬이며 사실상 무인도인 허드 맥도널드 제도가 관세 부과 대상으로 올라 있었다. 이 황당한 관세 부과 정책으로 인해 4월 3일과 4일 이틀간 미국 주식 시장에서 6조 6000억 달러(약 9600조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공동 대통령’ 소리까지 듣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의 자산도 44억 달러(6조원)가량 줄어들었다. 뉴욕 증시의 3대 지수인 다우, 나스닥, S&P500에 고스란히 반영됐다. 모든 지수가 10% 내외로 폭락했다. 그 후의 전개 과정은 우리 모두가 아는 바와 같다. 지난 9일 트럼프는 중국을 제외한 국가들에 대한 상호 관세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밝혔다. 그러자 시장은 폭발적인 상승세로 화답했지만, 그럼에도 관세 전쟁을 시작하기 전 상태로 복귀하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 대통령과 달러에 대한 신뢰가 이미 한 번 크게 흔들렸기 때문이다. 관세 전쟁과 그 피해는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의 주류 언론과 금융계 종사자들은 이번 사건의 전개를 대체로 이렇게 바라보고 있다. 트럼프는 아무 계획 없이 충동적으로 그저 지지자들이 원하는 소리를 내질렀다. 지지자들의 인간적 감정의 총합, 즉 정념(passion)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이다. 반면 시장은 합리적이고 냉정하며 이해관계(interest)에 의해 작동한다. 이런 일은 역사 속에서 숱하게 찾아볼 수 있으며 이번 사건은 그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이해관계에 의한 정념 통제론’이라 불러 보자. 이것은 경제철학이기도 하지만 정치철학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이 각자 최선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자본주의가 권력자의 자의적 실력 행사를 방지하고 안정적인 지배 체제를 제공한다는 낙관적인 사고방식과 맞닿아 있으니 말이다. ●내면에 있는 정념은 변덕스러워 17~18세기 사이 서유럽에서는 전제군주정이 서서히 그 황혼을 향하고 있었다. 동시에 새롭게 싹터 오르는 자본주의가 사회 전체에 전에 없던 활기를 불어넣고 있기도 했다. 정치학과 경제학이 별개의 학문이 아니던 시절, 말하자면 ‘정치경제학’의 시대에 당대 최고의 지성을 자랑하던 계몽사상가들이 바로 그런 논리로 자본주의를 옹호한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몽테스키외다. 우리에게는 흔히 ‘법의 정신’을 통해 삼권분립을 주창한 인물로만 알려져 있지만 몽테스키외의 영향은 그보다 훨씬 더 크고 깊다. 몽테스키외는 자본주의 옹호 담론의 한 전형을 만들어 낸 사상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절대왕정 시대를 살고 있던 몽테스키외와 계몽사상가들은 상인 계층, 즉 신흥 부르주아의 성장을 지지했다. 문제는 절대군주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상업 행위가 가로막히거나, 납득할 수 없는 세금으로 기껏 벌어들인 돈을 빼앗기거나, 심지어 목숨을 위협당하는 등의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었다. 대체 어떻게 왕의 권력을 제어하고 상인의 이익을 지킬 수 있을까? 선한 군주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은 답이 될 수 없다. 누가 어떤 왕이 될지는 철저히 우연과 궁중 암투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설령 최고의 자질을 지닌 누군가 왕이 된다 한들 어떠한 계기로 인해 삐뚤어지고 말지 모르는 일이다. 역사 속에 그런 임금의 사례가 어디 한둘이던가. 요컨대 ‘사람’에게 의존하는 정치는 안정적일 수 없다. 그 사람의 내면에 있는 감정, 정념이 변덕스럽기 때문이다. 좋은 정치를 위해서는 정념을 억제할 방법이 필요하다. 몽테스키외는 왕에 쫓기던 유대인들이 재산을 지키기 위해 발명해 낸 환어음의 역할에 주목했다. 환어음은 금, 은, 토지와 달리 왕이 자의적으로 빼앗을 수 없었다. 그 덕분에 유대인, 상업 종사자들은 왕의 폭력을 모면할 수 있었고, 군주도 생각을 바꿔야만 했다. 변덕을 부리며 힘으로 윽박지르는 정치를 하면 자본이 모두 빠져나가 자신이 곤란해진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법의 정신’의 한 대목을 읽어 보자. “그때부터 군주들은 그들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현명하게 통치해야 했다. 권위를 휘두르는 것이 몹시 분별없는 짓이라는 것이 사건을 통해 드러났고 번영을 가져다주는 것은 올바른 통치밖에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정념 부추기는 일 많아 호기롭게 관세 전쟁을 선포했다가 ‘중국만 빼고 모두 유예’를 선언한 트럼프의 행보 역시 같은 방식으로 해석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트럼프도 결국 시장의 힘에 굴복했다. 사람의 마음은 변덕스럽지만 숫자로 적힌 돈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자본주의의 초기부터 지금까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이해관계에 의한 정념 통제론’이다. 이 아름다운 이론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18세기 이후 정치경제학의 학설 발전 과정, 더 나아가 현실 속의 역사가 진행된 과정을 보면 자본주의와 이해관계는 정념을 제어할 수 있다는 약속을 이행하지 못했다. 오히려 자본주의가 정념 그 자체에 끌려다닌 듯한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경제학자 앨버트 O 허시먼은 인생 자체가 ‘통섭’인 인물이었다. 독일 태생의 유대인으로서 나치 정권과 맞서 레지스탕스로 활약하고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에서 통역 장교로 활동한 후 미국 시민이 돼 세계은행에서 실무를 경험하고 학계에 몸담았던 것이다. 그가 정념과 이해관계의 갈등에 주목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이해관계로 정념을 다스릴 수 있다는 생각을, 이미 18세기에 등장한 그 아이디어를, 마치 새로운 것인 양 계속 떠올린다. 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 그 자체가 정념을 들쑤시거나 부추기는 일이 더 많지 않은가? 그 주제를 탐구한 책 ‘정념과 이해관계’의 한 대목을 읽어 보자. “자신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이들은 영원히 무해할 것이라는 생각을 최종적으로 포기하게 된 것은 자본주의적 발전의 현실이 온전히 가시화된 다음의 일이었다. 19세기와 20세기에 나타난 경제성장이 수백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삶을 뿌리 뽑고, 소수를 부유하게 만드는 가운데 수많은 집단들을 가난에 빠뜨리며,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불황기에 대규모의 실업을 야기하고, 현대 대중사회를 낳음에 따라, 이 같은 폭력적 전환 과정에 휘말린 사람들이 때로 강렬한 분노, 공포, 원망 같은 정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이 분명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이해관계에 의한 정념 통제론 ‘허구’ 그럴 리 없다고? 당장 ‘트럼프 현상’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글로벌 금융 경제의 시대에 소외된 사람들, 특히 쇠락해 버린 중서부 산업 도시 사람들은 그들을 대변해 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미국은 부자 나라가 되는데 나는 가난해지고 있다는 현실 인식이 분노, 공포, 원망 같은 정념을 낳았고 그것이 트럼프의 당선과 재당선으로 이어졌다. 미국의 주류 정치 세력과 엘리트의 낙관적인 ‘이해관계 우위론’은 허구로 드러났다. 자본주의의 발전은 전 세계를 더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으로 만들어 주지 못했다. 물론 많은 이들이 그 덕분에 빈곤에서 벗어났다. 단순 인구수로 보자면 중국이 가장 큰 혜택을 보았다. 한국전쟁의 폐허 위에 내던져졌지만 선진국으로 우뚝 선 대한민국 또한 전 지구적 자본주의 발전의 최대 수혜 집단 중 하나다. 그러나 누군가 이득을 보면 누군가는 적어도 상대적인 손해를 보게 마련이다. 세계화와 금융 경제와 국제 분업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지지를 받아 대통령이 된 트럼프는 ‘차가운 이해관계’를 향해 ‘뜨거운 정념’의 복수를 대신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와 시진핑의 관세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처칠의 유명한 표현을 빌리자면 ‘끝의 시작’은 고사하고 ‘시작의 끝’조차 요원해 보인다. 대한민국은 안보와 경제 등 수많은 영역에서 대외 여건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나라다. 평범한 국민은 매일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보낼 수밖에 없다. 이 와중에 대선 국면이 시작됐다. 태풍이 몰아치는데 선장을 새로 뽑아야 하는 격이다. 국가적 비극이 아닐 수 없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지금 주어진 조건을 수긍하고 긍정적으로 움직이는 것뿐이다.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비현실적인 안보관이나 경제관을 들이밀지 않는 사람, 대한민국호의 이해관계를 지켜내기 위해 차분하고 침착하게 파고를 넘을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온 국민이 힘을 낼 수 있도록 긍정적 정념을, 다시 뛰는 열정을 북돋울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기를 희망해 보자. 노정태 작가·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
  • 국회로, 영남으로…‘약점 보완’ 나선 국민의힘 잠룡

    국회로, 영남으로…‘약점 보완’ 나선 국민의힘 잠룡

    국민의힘 소속 잠룡들이 1차 예비경선(컷오프)을 앞두고 당내 우군 확보를 위해 바삐 움직이고 있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은 11일 국회를 찾아 현역 의원들과의 ‘스킨십 강화’에 나섰다. 힌동훈 전 대표, 안철수 의원, 유승민 전 의원 등 ‘찬탄파(탄핵찬성파)’ 주자들은 일제히 ‘보수 텃밭’인 영남을 찾았다. 5년 만에 복당한 김 전 장관은 이날 국회 의원회관을 방문해 의원과 보좌진을 만나며 현역 의원들과 접촉했다. 김 전 장관은 한기호·김정재·추경호·김종양·고동진 의원과 환담을 나눴다. 고 의원과는 첨단 기술, 한 의원과는 징병제, 김종양 의원과는 지역 현안과 관련해 논의했다. 청년층을 겨냥한 행보에도 나섰다. 김 전 장관은 의원회관 방문에 앞서 국회에서 열린 연금개혁 청년행동 주최 ‘연금개악 규탄집회’에 참석했다. 그는 “연금개혁을 했지만 청년들에게 가혹한 부담을 더 많이 지우는 개악이 돼버렸다”고 말했다. 국회가 지난달 ‘내는 돈(보험료율)’은 13%, ‘받는 돈(소득대체율)’은 43%로 올리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데, 해당 개정안이 청년층에게 불리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 전 대표는 이날 1박 2일 일정으로 부산·울산 일대를 방문해 자동차, 조선 업계 관계자들을 만났다. 한 전 대표는 “우리 정치가 말해야 할 건 계엄·탄핵이 아니라 블록화된 경제 전쟁에서 우리의 동력을 살려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해 “‘지역화폐를 뿌리겠다’는 식의 엉터리 정책으로는 자동차 산업을 지킬 수 없다. 자동차 산업을 성장시키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강점을 지키는 정치를 해내겠다”고 짚었다. 안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 역사관·다부동전적기념관·서문시장 등 보수 진영의 상징적인 장소를 연이어 찾았다. 안 의원은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다부동은 바로 21대 대통령 선거”라며 “정직하고 유능하며 나라를 책임질 수 있는 리더십을 선택하는 것만이 지금 대한민국을 지키는 유일한 길”이라고 했다. 안 의원은 타 후보를 향해 견제구를 날리기도 했다. 한 전 대표를 향해서는 “윤석열 정부에서 법무부장관을 하는 등 가장 많은 시혜를 입은 사람”이라고 비판했고, 오 시장과 홍 전 시장을 겨냥해선 “명태균 리스크로 공격받을 후보”라고 지적했다. 유 전 의원은 경북대를 찾아 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했다. 특강에 앞서 유 전 의원은 국민의힘 대구시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 방식은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기”라며 출마 여부를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대선 후보 선출 1차 컷오프에서 국민 여론조사 100% 방식으로 4인을 선출하는 방안을 확정했고, 모든 경선 과정에서 역선택 방지 조항을 적용하기로 했다. 한편 대권 도전을 선언한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시장직을 내려놨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오는 13일 공식 출마 선언에 앞서 막바지 준비상황을 점검했다.
  • 비단강 따라 흐른 희생…독립의 씨앗이 자라다

    비단강 따라 흐른 희생…독립의 씨앗이 자라다

    美 전킨·드루 선교사 군산에 도착구암동 일대 ‘궁멀’ 호남 선교 기지영명학교는 ‘3·5 만세운동’ 진원지한국 침례교회 역사 강경서 시작 ‘정사각형 기와집’ 강경성결교회병촌성결교회 ‘전우치 나무’ 유명 공주 영명학교의 사애리시 선교사유관순 열사 등 여성 지도자 길러내 시인 이상화 등 제일감리교회 인연 우리에게 근대는 어떻게 왔을까. 제힘으로 열어젖히지 못했다는 콤플렉스를 가진 우리로선 불편한 주제다. 우리의 개화에 일제의 공이 컸다고 신봉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더 민감하다. 기독교에선 달리 본다. 이 땅의 근대 성립에 선교사의 역할이 컸다는 것이다. 그 근거를 찾기 위해 한국교회총연합(한교총)과 함께 전북 군산, 충남 강경, 공주 등의 기독교 유적지를 차례로 돌아봤다. 지난해 전남 일대 순례에 이은 두 번째 발걸음이다. 여행의 기쁨 중 하나가 발견일 텐데, 기독교 유산 순례는 많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이끈다는 점에서 꽤 큰 기쁨을 안겨 준다. 왜 군산이고, 강경이고, 공주였을까. 당대의 시선으로 보자. 요즘처럼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는 상상도 못 하던 때다. 당시 고속도로 역할을 했던 것이 내륙에선 강이다. 충남과 전북의 경계를 두루 적시며 흐르는 ‘비단강’ 금강도 그중 하나다. 선교사들 역시 사역의 여정을 위해 당연히 금강을 눈여겨봤다. 꼬박 130년 전인 1895년 3월, 미국인 목사 윌리엄 전킨(한국명 전위렴·1865~1908)과 의사 알렉산드로 D 드루(유대모·1859~1926)가 군산의 금강 변에 뱃머리를 대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들은 인천 제물포에서 배를 타고 열흘이 넘는 항해 끝에 막 도착한 참이다. 1892년에 미국 버지니아항을 출발해 샌프란시스코, 하와이, 일본 요코하마, 부산 등을 거쳐 온 여정까지 포함하면 뱃길만 꼬박 3년이다. 군산 하면 대개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떠올린다. 히로쓰 가옥 등 군산 여정에서 들르는 대부분의 명소 역시 이와 연관된 것들이다. 한데 시선을 달리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기독교의 역사와 마주하게 된다. 전킨과 드루 선교사가 맨 처음 발을 디딘 곳은 일제강점기 군산세관 앞이다. 고색창연한 옛 모습 그대로여서 많은 이들이 이 건물 앞에서 인증샷을 찍는다. 바로 그 자리, 그러니까 사진을 찍는 이가 발 딛고 선 자리가 선교사들이 하선한 자리다. 자그마한 표지판 하나가 전부지만, 바야흐로 군산의 근대가 여기서 문을 열기 시작했다. 선교사들은 인근 수덕산 아래 두 채의 초가를 50달러에 사들여 교회와 진료소로 사용했다. 서종표 군산중동교회 목사에 따르면 “당시 50달러는 엽전으로 한 가마니” 정도 되는 돈이었다. 일제는 선교사들이 수덕산 아래서 군산 민중의 아픈 곳을 긁어주는 게 영 못마땅했다. 그래서 조계지 조성 운운하며 쫓아냈고, 이들이 새로 정착한 곳이 ‘궁멀’, 현재의 구암동 일대다. 여기에 당대의 유산들이 꽤 있다. 군산시에서 3·1운동 사적지로 신경 써 관리하는 곳이다. ‘궁멀’은 호남 최초의 선교 기지다. 선교사들은 교회와 병원 외에 학교를 더했다. 이른바 ‘선교의 삼각 구도’가 비로소 틀을 잡기 시작한 것이다. 수덕산에 꾸린 의료 시설이 진료소 수준이었다면 1899년 세운 야소(예수의 일본말)병원은 규모가 더 컸다. 하지만 일제의 탄압이 본격화되면서 ‘야소’란 표현을 쓰지 못하게 됐고, 결국 구암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1903년엔 전킨 선교사 부부가 학교를 세우고 영명(永明)이라 이름 지었다. 영명은 ‘영원한 생명의 빛’이란 뜻이다. 영명학교(현 군산제일중·고교)는 한강 이남 최초의 만세운동인 1919년 ‘3·5 만세운동’의 진원지다. 교사와 학생에 이어 주민이 가세하면서 군산의 만세운동은 호남 전체로 번졌다. 우리 독립운동사의 상징과 같은 3·1 만세운동은 하루 열리고 만 집회가 아니다. 경성에서 시작된 민중들의 봉기는 시차를 두고 각 지역으로 퍼졌다. 군산의 경우는 3월 5일이었다. 날짜는 달랐어도, 밑바탕에 깔린 정신은 당연히 3·1운동이다. 군산을 포함한 전국의 만세 운동 진원지를 모두 ‘3·1운동 유적지’라 통칭하는 이유다. 허은철 총신대 역사학과 교수는 “선교사들이 세운 교회와 학교가 독립운동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줬다”고 의미를 평가했다. 그러니까 선교사들의 사역 여정이 독립운동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다. 군산 야구계의 시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 처음 야구가 도입된 곳도 영명학교다. 공식적인 한국 야구의 역사는 1905년 시작됐다. 미국의 필립 질레트(1872~1938) 선교사가 서울의 황성기독교청년회(YMCA) 회원들에게 야구를 가르친 것이 시초다. 군산 야구계에선 만능 스포츠맨이었던 윌리엄 포드 불(1876~1941) 선교사가 1899년 군산 땅을 밟은 이후 야구가 시작됐을 것이라 본다. 영명학교에 야구부가 조직됐고 톱타자였던 양기준은 호남 최초의 야구인으로 기록됐다. 영명학교가 1903년 개교한 걸 고려하면 질레트 선교사에 앞서 불 선교사가 이 학교 학생들에게 야구를 전해줬을 개연성이 매우 높다. 공식 야구 역사로는 인정받지 못한다 해도 최소한 군산이 2009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V10을 일궈 낸 호남 야구의 발판이었던 건 분명해 보인다. 구암동산 가장 높은 곳, 그러니까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뒤에 선교사 묘역이 있다. 전킨 선교사는 군산에서 부인과 어린 세 아들을 잃었다. 그도 장티푸스에 걸려 43세에 목숨을 잃었다. 온 가족이 낯선 타국에서 생을 다한 것이다. 전킨 선교사는 생전 “나는 궁멀 전씨다. 내가 죽으면 궁멀에 묻어 달라”고 당부했다. 전주에서 사망한 그가 군산에 와 묻힌 이유다. 아쉽게도 현재 ‘궁멀’의 묘역은 가묘다. 6·25전쟁 등 혼란의 와중에 묘지가 멸실됐고, 대신 네 쌍의 선교사 부부 고향에서 흙을 가져와 묘소로 추정되는 곳에 안장했다. 유일하게 미국에 묻힌 드루 선교사의 유골은 현지 가족의 동의를 얻어 조만간 이곳으로 이장할 예정이다. 영명학교 후신인 군산제일고 출신으로, 이 일대 기독교 유적지 조성에 발 벗고 나선 소강석 새에덴교회 담임목사는 “전킨 선교사의 유해를 돌보지 못한 건 한국교회 모두의 책임”이라며 “100년 전 이 땅을 찾은 선교사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더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경은 군산과 지척이다. 군산이 작은 어촌이었을 당시 강경은 대구, 평양 등과 함께 조선의 3대 시장으로 꼽힐 만큼 큰 도시였다. 강경에서 눈여겨볼 곳은 옥녀봉 바로 아래 강경침례교회다. 우리나라 침례교회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당시 미국 보스턴의 부유한 가문의 딸이었던 엘라 싱이 어린 나이에 죽음을 앞두고 가장 선교가 덜 된 나라에 자신의 유산을 써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 유지를 받들어 조성한 곳이 강경침례교회다. 초기 교회가 대부분 그렇듯 강경침례교회 역시 남녀 출입구와 앉는 자리를 구분한 기역자 형태다. 한강 이남에서 가장 먼저 생긴 기역자 형태의 집이라고 한다. 옥녀봉 일대에 봉수대, 소설가 박범신의 문학관과 그의 소설 ‘소금’의 무대가 된 ‘소금집’ 등 볼거리가 있다. 옥녀봉 들머리의 강경성결교회는 국내 유일의 정사각형 기와집 교회다. 내부는 당시 유교적 생활 습관에 따라 기역자로 조성됐다. 현재 국가유산청이 해체, 수리 중이어서 관람할 수는 없다. 1933년 세워진 병촌성결교회는 6·25전쟁 당시 교인 66명이 북한군과 그 추종자들에게 목숨을 잃은 곳이다. 충남 지역에선 가장 많은 개신교 순교자이고, 전국적으로는 전남 영광의 염산교회에 이어 두 번째다. 이들을 기리는 기념관이 아름답다. 교회 앞의 은행나무도 볼거리다. 흔히 ‘전우치 나무’라 불린다. 조선시대 기인이자 실존 인물이었던 전우치가 꽂은 지팡이가 자라 은행나무 노거수가 됐다는 이야기가 담겼다. 공주로 넘어간다. 백제의 고도로만 알았던 공주에 뜻밖에 개신교 유적지들이 많다. 대표적인 곳은 영명학교다. 군산의 영명학교와 이름이 같다. 기독교에서 빛은 예수를 상징한다. 그러니 ‘영원한 빛’이란 학교 이름은 결국 예수를 지칭하는 표현이라 봐도 무방하겠다. 바로 이 학교에서 사애리시(史愛理施·1871~1972) 선교사와 만난다. 수많은 여성 우국지사와 지도자를 길러내는 등 이 땅의 근대 여성 교육에 헌신한 미국 여성 선교사다. 특히 독립운동의 상징적 인물 중 한 명인 유관순 열사와의 애틋한 관계로 요즘 주목받고 있다. 사애리시는 앨리스 샤프란 이름을 한국식으로 표기한 것이다. 성인 사는 샤프, 이름인 애리시는 앨리스를 음차했다. 애리시란 한문을 풀면 ‘사랑의 이치를 널리 편다’는 뜻이니, 그의 평생 행적이 이름에 고스란히 담겼다. 그는 캐나다에서 태어나 미국 뉴욕의 감리교 선교훈련원에서 선교사 교육을 받았다. 조선에 온 건 1900년이다. 이화학당 등에서 교사로 근무하던 그는 1903년 같은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 로버트 샤프(1872~1906)와 결혼한다. 그가 샤프라는 성을 갖게 된 건 이때부터다. 한국선교유적연구회 회장인 서만철 전 공주대 총장에 따르면 둘은 뉴욕에서 수련받을 때부터 연인 사이였다고 한다. 그러다 사애리시 선교사가 먼저 조선으로 왔고, 로버트 샤프 선교사도 뒤따라 조선행을 택했다는 것이다. 당시 충남 공주는 개신교의 선교지 협정에 따라 감리교단이 선교 대상지로 삼았던 곳이다. 샤프 선교사가 공주 지역 책임자로 임명되자, 사애리시 부부는 1905년에 아담한 양옥집을 짓고 공주로 이주했다. 이 집이 영명동산에 있는 문화유산 ‘공주 중학동 (구)선교사가옥’이다. 샤프 선교사는 당시 집 양편에 살구나무를 두 그루 심었다. 살구나무(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만나, 석판과 함께 기독교 언약궤 안에 있었다는 세 가지 보물 중 하나다. 성경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는 길(아론의 싹 난 지팡이)이요, 진리(십계명 석판)요, 생명(만나)이니”는 바로 이 세 가지 보물을 일컫는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랑의 매로 살구나무 가지를 쓰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샤프 선교사는 공주 제일감리교회에 부임한 지 채 6개월도 못 돼 소천하고 만다. 남편을 잃은 충격에 미국으로 돌아가 2년가량 안식년을 보낸 사애리시는 1908년 남편이 묻힌 공주로 돌아와 선교활동을 이어 갔다. 이 과정에서 만난 이가 유관순 열사다. 유 열사의 빛나는 자질을 알아본 사애리시는 그를 수양딸로 삼아 공주로 데려왔고, 영명학교에서 2년가량 가르친 뒤 이화학당에 편입시킨다. 유 열사의 인성 형성에 사애리시가 무척 큰 역할을 했을 거라는 추정이 가능한 대목이다. 사애리시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후임자로 파송된 우리암(禹利岩·프랭크 윌리엄스·1883~1962) 선교사도 빼놓을 수 없다. 1906년 공주영명학교를 설립하고 30여년간 교장으로 근무했다. 우리암 선교사 부부는 조선에서 다섯 자녀를 낳았다. 그중 장남 조지 윌리엄스(1907~1994)와 딸 올리브(1909~1917)가 영명동산에 잠들어 있다. 이 사연도 애틋하다. 조지 윌리엄스의 한국 이름은 우광복(禹光福)이다. 조선의 광복을 기원하며 지은 것이다. 서만철 회장은 “이름에 ‘회복할 복’(復) 자 대신 ‘복 복’(福) 자를 쓴 건 일제에 노출되는 것을 막으려는 방편”이라고 설명했다. 우광복은 광복 후 미군정에 군의관으로 파견됐다가 당시 군정사령관이던 존 하지의 통역으로 활동했다. 서 회장은 “미군정과 한국인 엘리트 그룹을 연결하는 가교 구실을 했으며 이념 대립이 치열하던 정국에서 우익 주도 흐름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여동생 곁으로 보내 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유해 일부가 영명동산에 모셔졌다. 이들이 얽혀 만들어 낸 역사는 공주제일감리교회(현 공주기독교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미 감리회 선교사들의 유품과 사진 등 자료가 전시돼 있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인 이상화와 서온순, ‘나그네’를 지은 박목월과 유익순이 이 교회에서 혼례를 올렸고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 공예의 선구자인 이남규가 개신교회 내 첫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이 교회 벽면에 조성했다. 유관순 열사의 영명학교 시절 모습이 담긴 사진, 사애리시와 함께 생활하며 사용했을 식기 등도 전시됐다.
  • 미국 션윈예술단 내한...월드클래스 공연 한국에서 만난다

    미국 션윈예술단 내한...월드클래스 공연 한국에서 만난다

    5월 대구ㆍ춘천ㆍ과천에서 8회 공연 예정...중국 아닌 뉴욕에서 제작되는 ‘미국’ 공연 미국 션윈예술단이 오는 5월 한국을 찾는다. ‘션윈(Shen Yun, 神韻)’은 높은 예술성과 고난도를 자랑하는 중국 고전무용, 동서양 악기가 결합된 독창적인 라이브 오케스트라, 눈부시게 아름다운 의상, 여기에 첨단 디지털 영상 기술로 제작된 무대 배경이 어우러져 신비롭고 환상적인 무대를 연출하는 ‘월드클래스’ 공연이다. 서유기, 삼국지 등 고대 역사와 신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을 소재로 구성된 20여 개 프로그램을 통해 중국의 5천 년 순수 전통문화를 무대 위에 완벽히 재현하고 있다. 미국 특허를 받은 3D 무대 배경은 광활한 몽골 초원에서 장엄하고 우아한 당나라 시대로, 흙먼지 날리는 전쟁터에서 드높은 히말라야산맥으로 무대를 무한히 확장시킨다. 관객들은 시공을 넘나들며 역사 속으로 환상적인 여행을 떠나게 된다. 션윈은 단원들의 탁월한 기량과 뛰어난 무대 연출을 인정받아 워싱턴 케네디센터, SF 오페라하우스 등을 비롯한 세계 정상급 공연장에 매년 초청받고 있으며, 특히 세계 최고의 문화센터이자 뉴욕시티발레단 전용 극장으로 사용되는 링컨센터 데이비드 코크 극장 무대에도 매년 올라 매진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2025년 시즌 역시 3월 26일부터 4월 12일까지 약 20일간 펼쳐지는 공연 대부분이 매진되고 있다. 션윈은 홈그라운드인 뉴욕뿐 아니라 전 세계 공연장에서도 대부분 매진을 기록하며 인기를 얻고 있다. 설립 18년째인 올해에도 션윈은 동일 규모 예술단 8개가 5개 대륙, 200여 개 도시에서 700여 회 공연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치며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아이러니한 점은 션윈이 중국이 아닌 뉴욕에서 제작된 ‘미국’ 공연이라는 것이다. 1949년 집권한 중국 공산당은 무신론을 내세운 문화대혁명을 통해 전통 가치관과 5천 년 문명을 대규모로 말살했다. 표현과 창작의 자유가 억압되자 많은 예술가들이 해외로 이주했고, 이들은 파괴된 전통문화를 복원하겠다는 사명으로 션윈예술단을 결성했다. 그러나 션윈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영향력이 커지자 중국 공산당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에 션윈의 중국 내 공연을 불허함은 물론, 해외에서도 집요하게 공연을 방해해왔다. 공연을 음해하거나, 극장에 공연 취소 협박을 가하거나, 심지어 단원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 타이어에 테러를 가하기도 했다. 한국도 이러한 방해 공작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07년부터 매년 션윈이 내한해왔지만, 중국대사관의 방해로 전국 지자체 공연장 대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심지어 지난 2016년 서울 KBS홀 공연 당시에는 중국대사관의 압력에 굴복한 KBS가 한창 광고 및 예매가 진행 중이던 공연을 취소하는 사태도 있었다. 영화 ‘아바타’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로버트 스트롬버그 미술감독은 션윈을 관람한 후 “정말 아름답고 환상적이다. 색채, 조명, 무용, 모든 것이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뛰어나다”고 호평했고, 뉴욕 공연 전문지 ‘브로드웨이 월드’도 “너무나 멋진 마법 같은 무대다. 꼭 봐야 할 공연!”이라며 극찬했다. 지난 12월 미국에서 개막한 ‘션윈 2025 월드투어’의 아시아 투어팀은 오는 5월 1일부터 10일까지 한국에서 8회의 공연을 펼칠 예정이다. 5월 1일~3일은 대구 수성아트피아 대극장에서, 5월 7일은 춘천 강원대 백령아트센터에서, 5월 9일~10일에는 과천 시민회관 대극장에서 내한 공연을 이어가며 티켓 예매는 션윈 예술단 공식 웹사이트에서 가능하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