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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책꽂이]

    냉면의 품격(이용재 지음, 반비 펴냄) 6~7년간 평양냉면 전문점 리뷰를 써 온 음식평론가 이용재가 서울과 경기 지방의 이름난 평양냉면 식당 31곳을 분석했다. 3대째 이어 온 노포부터 평양냉면을 응용한 메밀 면 요리까지 면, 국물, 고명, 반찬 등 냉면 한 그릇을 구성하는 각각의 요소들을 세밀하게 평가했다. 168쪽. 1만 2000원.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정유정·지승호 지음, 은행나무 펴냄) 소설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등을 쓴 스타 작가 정유정과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의 인터뷰집. 작가로서의 삶과 소설을 쓰고 싶은 이들에게 꼭 필요한 소설 쓰기 방법론에 대해 솔직 담백하게 조언한다. 264쪽. 1만 3000원.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델핀 미누이 지음, 임영신 옮김, 더숲 펴냄) 한달에 600여 차례의 폭격이 쏟아지는 시리아 내전의 중심 도시 다라야. 폐허가 된 이 도시를 돌아다니며 찾아낸 1만 5000여권의 책으로 지하 도서관을 지은 청년들이 참혹한 전쟁터에서도 독서와 강의를 이어간 감동 실화를 담았다. 244쪽. 1만 4000원.21세기 기본소득(필리프 판 파레이스·야니크 판데르보흐트 지음, 흐름출판 펴냄) 기본소득을 논의할 때 전 세계적으로 많이 인용되는 학자인 필리프 판 파레이스의 최신 저서. 저자는 기본소득이 어떻게 인류가 봉착한 위기를 기회로 바꿔 현실적인 유토피아를 건설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는지 작동 원리와 윤리적 정당성, 실현 방안에 대해 설명한다. 644쪽. 2만 8000원.수용소(어빙 고프먼 지음, 심보선 옮김, 문학과지성사 펴냄)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어빙 고프먼의 대표작으로 시인인 심보선의 번역으로 국내에 출간됐다. 정신병원, 교도소, 군대, 기숙학교 등 훈육과 통제가 일상화된 폐쇄적 공간에 수용된 사람들의 자아가 어떻게 파괴되고 재구성되는지 그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다. 456쪽. 2만 5000원.영화가 묻고 베네치아로 답하다(김영숙·마경 지음, 일파소 펴냄) ‘물의 도시’, ‘낭만의 도시’로 알려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매력에 사로잡힌 저자 두 사람이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영화 7편을 소개하고 영화에 등장한 미술 작품을 통해 베네치아의 역사를 설명한다. 312쪽. 1만 7800원.
  • 남북 장성급 회담에서 쏟아진 평화 구축 방안

    남북이 지난 14일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비무장지대(DMZ)의 평화지대 조성’을 위해 초기 수준의 군사적 신뢰 조치와 함께 구체적인 군축 방안까지 거론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양측이 다양한 평화 구축 방안을 제시하면서 한반도의 실질적 평화 구현을 위해 첫발을 뗀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DMZ 군축은 북한의 비핵화와 동시에 또는 최종 단계에서 진행돼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 전체적인 군축 논의 순서를 정리한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 관계자는 22일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북측은 군사분계선(MDL) 인근의 적대 행위 금지를 주장했고 우리 측은 한국 전쟁 유해 및 역사 유적 공동 발굴을 주장했다”고 밝혔다. 이번 회담은 상견례에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넘어 양측이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평화지대 조성 방안을 제의한 셈이다. 북측은 MDL 일대에서 비행 및 정찰 활동을 금지하자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북한 장사정포 및 남한 자주포의 후방 배치 문제 등과 함께 주요한 ‘DMZ 군축 의제’ 중 하나다. 북한의 이런 제안을 놓고 우리 군이 추진 중인 킬체인(북한 핵·미사일 감시 파괴)을 무력화하는 시도 아니냐는 의심도 보수층 일각에서 나온다. 북한이 비핵화를 완료하지 않은 상황에서 킬체인 무력화가 선행되면 우리가 핵 앞에 무방비 상태가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우려를 의식한 듯 정부 관계자는 “회담에서는 남북이 DMZ를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한 각종 생각을 제시해 보는 수준이었다”고 했다. 실제 남북 정상은 판문점 선언에서 ‘한반도에 더이상 전쟁은 없을 것’(서문)이라고 선언하고 ‘군사적 긴장이 해소되고 서로의 군사적 신뢰가 실질적으로 구축되는 데 따라 단계적으로 군축을 실현해 나가기로 했다’(제3조 2항)고 명시했다. 2000년 8월 합의된 개성공단도 북측의 군사시설 이전을 위해 2003년 6월에야 착공했을 정도로 군축 부문은 협의 및 이행에 긴 시간이 걸린다. 우리 군이 이번 회담에서 DMZ 공동 유적 발굴을 제안한 것도 군사적 신뢰를 구축하는 초기 조치에 무게를 두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우리 군이 염두에 두는 발굴 대상은 강원 철원군 흥원리에 있는 궁예도성이나 임진강·한탄강 유역의 구석기 유적 등이다. 제주도 면적(1849㎢)의 절반에 이르는 DMZ(907㎢)를 모두 평화지대로 바꾸려면 유해 및 유적 발굴을 통해 서서히 영역을 넓혀가는 게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다. 이수형 국가안보전략연구원 대외전략연구실장은 “남북이 군축 아이디어를 불쑥불쑥 던지면서 여론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데 포괄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초기 군사적 신뢰 조치를 시작으로 단계적인 군축을 진행하는 남북 간 군사 긴장 완화를 위한 로드맵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기고] 68번째 6·25전쟁일 단상/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기고] 68번째 6·25전쟁일 단상/오진영 서울지방보훈청장

    지난 4월 27일 남북의 정상은 ‘4·27 판문점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북한의 비핵화와 함께 연내 종전 선언이 주요 내용으로 명시됐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평화에 좀더 다가선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종전 선언이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의 한반도는 아직도 전쟁이 진행 중임을 의미하기도 한다.68년 전 한반도에서는 6·25전쟁이 일어났다. 그런데 이 전쟁의 연원은 1950년보다 훨씬 앞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대 말부터 유입된 사회주의(공산주의)에 의해 민족주의와의 대립이 생겼는데, 이것이 6·25전쟁을 낳은 이념 갈등의 시초가 됐다. 1945년 광복으로 조국 독립이라는 단일의 목표가 사라지자 좌우 이념 갈등은 파국으로 치달았다. 분단을 막기 위한 우리 민족의 염원과 노력은 냉혹한 외교 현실 속에서 미소(美蘇) 간 냉전으로 무산됐고, 결국 1948년 8월과 9월 한반도에 두 개의 정부가 들어서고 말았다. 이렇게 시작된 분단은 6·25전쟁을 계기로 돌이킬 수 없게 됐다. 3년 1개월, 1129일 동안 진행된 전쟁은 당시 한반도 인구의 5분의1이 넘는 600만여명의 피해를 남겼다. 도로, 철도, 항만 등 기간 시설과 주택이 파괴되어 국가 경제 기반과 국민 생활 터전이 황폐화됐다. 서로에게 깊게 새겨진 증오는 38선 철책보다 더 견고하게 남북을 갈라놓았다. 적화 일보 직전까지 갔던 극히 불리했던 전황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명운을 이어 가기 위해서는 90만 참전 유공자와 유엔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필요로 했다. 이렇듯 비싼 대가를 치르고 지켜낸 대한민국은 그간 놀라운 발전을 이룩했다.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고 있는 이 나라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해서는 많은 과제를 해결해야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68년이나 묵은 난제인 6·25전쟁의 완전한 종식을 선결 조건으로 한다. 비록 종전 선언 그 자체만으로 한반도에서 전쟁의 가능성을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엄격한 감시와 평가 속에 북한의 비핵화가 함께 이루어져 간다면 남북 공동발전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간 남북은 7·4공동성명을 시작으로 화해의 노력을 해 왔지만 많은 한계에 부딪혔다. 지금은 경각심을 유지한 채 조심스럽게 그 결과를 기다려 보는 시점이다. 한편 지난 6월 12일 북ㆍ미 정상회담을 통해 형성된 북ㆍ미 간의 화해 기류도 연내 종전 선언에 대한 기대를 높이고 있다. 만일 이러한 기류에 따라 4·27 판문점 선언이 이행된다면 역사는 2018년을 ‘6·25전쟁 종전의 해’로 기록할 것이다. 30년 이상의 이념 갈등이 곪아서 발발한 6·25전쟁이 완전히 종결되지 못한 채 67번의 6월 25일을 보내고 이제는 68번째 6·25전쟁일을 앞두고 있다. 보훈 공직자로서 이날의 감회는 언제나 남달랐지만, 두 달 전 연내 종전 선언 추진 소식을 들은 올해의 6월 25일은 더욱 특별하다. 나라를 살리고자 위국헌신의 길을 걷다가 이제는 천상에 계신 수많은 호국영령과 68년 전의 아픈 기억을 여전히 안고 살아가는 참전 유공자분들께 ‘전쟁이 완전히 끝났다’는 한마디를 전해 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렇게 이 땅에 평화와 번영의 서광이 깃들기를 기원한다.
  • 文대통령 “내가 자란 부산까지 시베리아 철도 다다르기를”

    文대통령 “내가 자란 부산까지 시베리아 철도 다다르기를”

    “한반도에 평화체제 구축되면 러시아와 3각 협력으로 확대 러·韓·北의 지혜가 합쳐지면 동북아 경제공동체 다져질 것”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통해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내가 자란 한반도 남쪽 끝 부산까지 다다르기를 기대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러시아 하원 연설에서 부산과 유럽을 잇는 철도 실크로드 구상을 밝혔다. 이날 러시아 모스크바를 국빈방문한 문 대통령은 한반도를 관통하는 남북 철도(TKR)를 구축해 시베리아 횡단철도(TSR)와 연결, 새로운 물류 대동맥을 완성하는 동북아 경제공동체 건설의 청사진을 제시했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러시아 하원에서 연설한 건 처음이다. 러시아 하원의원 450명 가운데 410명이 자리해 문 대통령의 연설을 지켜봤다. ●18분 연설… 러시아 의원들 수차례 박수 문 대통령은 18분 연설에서 7차례 박수를 받았다. 특히 “우리는 판문점 선언을 통해 완전한 비핵화와 함께 ‘더이상 한반도에 전쟁은 없다’고 세계 앞에 약속했다”고 말한 대목에서 예상치 못한 갈채가 나왔다. 문 대통령은 ‘한 명의 지혜는 좋지만 두 명의 지혜는 더 좋다’는 러시아 속담을 인용하며 “러시아의 지혜와 한국의 지혜, 여기에 북한의 지혜까지 함께한다면, 유라시아 시대의 꿈은 대륙의 크기만큼 크게 펼쳐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반도에 평화체제가 구축되면 남북 경제협력이 본격화될 것이며, 러시아와의 3각 협력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3국 간의 철도, 에너지, 전력협력이 이뤄지면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튼튼한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 간의 공고한 평화체제는 동북아 다자 평화안보협력체제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고 확신했다. 연설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러시아(58번), 한국(33번), 협력(23번), 평화(18번), 유라시아(17번), 경제(13번) 순이다. 문 대통령은 “나는 한반도와 유라시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공동 번영을 꿈꿔 왔다”며 “이 자리에 계신 의원 여러분께서도 그 길에 함께해 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이에 러시아 의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신(新)동방정책과 한국 정부의 신(新)북방정책이 맞닿아 있다며 한·러 협력 확대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특히 문 대통령은 러시아가 사랑한 대문호 톨스토이를 언급하며 “러시아 국민과 마찬가지로 한국 국민은 정신적으로 아주 강인하다. 나는 이것이 우리가 똑같이 톨스토이를 사랑하는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정서적 공감대를 넓혔다. 러시아로 망명해 국권 회복을 도모했던 한국의 독립투사들을 도왔던 나라도 러시아라고 언급하고 양국 간 역사적 교집합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이 연설을 끝내자 의원들은 30여초간 기립 박수를 보냈다. 연단 뒤쪽으로 이동해 하원 의장단 및 의원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환담하는 중에도 여러 번 박수갈채가 나왔다. 일부 의원들은 문 대통령을 둘러싸고 ‘셀카’ 촬영을 했다.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를 포함해 문 대통령은 러시아 의원들에게 3차례 기립 박수를 받았다. ●2차대전 ‘무명용사의 묘’ 헌화도 이날 문 대통령은 2차 대전 중 희생된 러시아인을 기리는 ‘애도의 날’(22일)을 앞두고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했으며, 러시아 정부청사에서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와 면담했다. 또 재외국민, 고려인 동포, 러시아 인사 등 200여명과 ‘한·러 우호 친선의 밤’ 행사를 했다. 러시아 무대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참석해 한·러 우호 친선의 의미를 더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임일영 기자 argus@seoul.co.kr
  • 11년만에 송환 재개...1988년부터 629구 미국 품으로

    11년만에 송환 재개...1988년부터 629구 미국 품으로

    ‘단 한 명의 병사도 적진에 내버려두지 않는다(Leave no man behind).’ 북한에 묻혀 있는 미군 전사자들의 유해 송환이 11년 만에 재개됐다. 북한이 6·12 북·미 정상회담 합의에 대한 첫 이행에 나서면서 북·미 후속협상도 급물살을 탈 전망이다. 미군의 유해 송환은 2007년 이후 11년 만이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20일(현지시간) “지난달 9일 북한에 억류됐던 한국계 미국인 3명이 석방된 데 이어 이번 미군 유해 송환은 전쟁의 상처를 보듬을 뿐 아니라 북·미 정상 간 합의의 첫 이행이라는 점에서 양국의 신뢰 회복에 결정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군의 유해 송환 역사는 북·미 관계가 출렁일 때마다 재개와 중단을 반복하는 북·미 관계의 리트머스 시험지”라고 말했다. 북한과 미국의 미군 유해 발굴·송환 문제 논의는 1988년 12월부터 시작됐다. 이어 1990년 4월 26일 중국 북경에서 열린 제8차 참사관급 외교 접촉에서 본격적인 논의됐다. 이후 20여 차례의 회담 끝에 1993년 ‘미군 유해 송환 등에 관한 합의서’가 발효됐다. 1993년 148구의 유해가 미국으로 첫 송환됐다. 이어 1996년 1월 하와이에서 열린 미군 유해 송환 회담에서는 ‘북·미 공동 유해 발굴단 구성’이라는 극적 합의가 이뤄졌다. 즉 미군이 북한에서 유해 발굴 공동 작업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북·미 미군 유해 공동 발굴 작업과 송환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북·미는 1996~2005년 33차례 합동 조사를 벌여 229구의 유해를 발굴했으나 이후 북핵 해결을 위한 외교 노력이 벽에 부딪히면서 추가 작업에도 차질이 빚어졌다. 특히 2005년 조지 W 부시 정부가 미군 유해 발굴 작업에 참여하는 미군의 안전을 앞세워 작업을 중단하면서 분위기가 180도 바뀌었다. 중단 2년 만인 2007년에는 발굴 작업이 가까스로 재개됐다. 그해 4월 당시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 주지사와 빅터 차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 등의 노력으로 6구의 유해가 판문점을 통해 송환됐다. 하지만 북·미 관계가 또다시 냉각하면서 유해 발굴 작업이 또 중단됐다. 2011년 북한의 제안으로 재개 움직임이 있었지만 북한이 2012년 ‘광명성3호’ 발사에 나서면서 미국이 논의에 응하지 않았다.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기관(DPAA)은 한국전쟁 기간 미군 7900명이 실종됐고, 이 중 약 5300명의 유해가 북한에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1988년부터 현재까지 629구의 미군 유해가 북한에서 발굴돼 미국으로 돌아갔다. 이 중 459구만 신원이 확인됐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염상진과 염상구를 만나다 -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염상진과 염상구를 만나다 - 벌교 태백산맥 문학관

    “사람덜이 워째서 공산당 허는지 아시오?...(중략)...가난하고 무식헌 것덜이 믿고의지헐디웂는 판에 빨갱이 시상 되먼 지주 다 쳐웂애고 그 전답 노놔준다는디 공산당 안헐 사람이 워디 있겄는가요. 못헐 말로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덜이 빨갱이 맹근당께요”(태백산맥 1권, 248p) 소설 태백산맥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장면 중의 하나다. 김범우 집안의 가복(家僕)이자 일자 무식꾼인 문서방은 공산당과 빨갱이를 ‘대놓고’ 말하고 있다. 문학과 영화에서조차도 빨갱이와 공산당을 ‘대놓고’ 말하기 힘든 시절이었던 1983년 9월, 소설 태백산맥은 처음으로 세상에 나왔다. 4년간의 자료조사와 6년간의 집필 끝에 원고지16,500매에 달하는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은 시대와 이념의 금기(禁忌)를 정면으로 다룬다. 광복 이후부터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애써 외면하였던 우리 현대사의 한 면을 과감히 드러낸 작품, 소설 태백산맥을 기념하는 벌교의 태백산맥문학관으로 가 보자. 소설 태백산맥의 내용은 이러하다. 1948년 10월, 여순사건과 함께 좌익에 의해 장악되었던 벌교가 다시 진압 세력인 우익 군경의 수중에 들어간다. 이 와중에 좌익과 우익의 갈등은 심해지고, 무고한 사람들까지 많은 피해를 입는다. 더구나 이승만 정권의 농지개혁안에 대한 소작인들의 반발은 날로 극심해진다. 이럴 즈음 1950년 6·25의 발발과 함께 벌교는 다시 좌익 세력들에 의해 장악되고, 이들은 인민의 해방을 감격스럽게 맞이하지만 또다시 살육의 참상을 겪는다. 전쟁이 고착화되자 퇴로가 막힌 인민군과 빨치산 세력은 지리산 일대에 근거지를 두고 무장 투쟁을 계속하지만, 군경의 진압 작전에 따라 이들의 투쟁은 점차 무력해지고 빨치산 대장 염상진은 퇴로가 막히자 결국 부하들과 함께 수류탄으로 자폭하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바로 이러한 소설 태백산맥의 강렬한 주제와 메시지를 다시금 곱씹을 수 있는 공간이 벌교에 위치한 태백산맥 문학관이다. 2008년 11월에 개관한 태백산맥 문학관은 자리 선정도 제대로다. 소설 첫 시작 장면인 현부잣집과 소화의 집이 있는 벌교 제석산 끝자락에 터를 잡아 개관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문학관은 소설 태백산맥이 땅속에 묻혀있던 역사 진실을 세상에 드러낸 주제의식을 형상화하기 위하여 산자락을 파내서 특이하게 설계된 건물로 세워졌다. 문학관은 총 1층과 2층으로 나뉘는 데, 연면적이 1,375.8㎡에 이르며 건축면적만으로는 979.7㎡에 달하는 넓이다. 이곳에는 작가 조정래의 육필원고 등 증여 작품을 포함하여 159건 719점이 전시되어 있다. 따라서 소설 태백산맥의 독자들에게는 작품의 깊이를 더더욱 음미하고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이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건물 내부는 총 6개의 마당으로 구역이 나뉘어지는 데, 첫째 마당에는 태백산맥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자료조사, 집필, 작품의 탄생을 알린다. 둘째 마당에는 16,500매에 달하는 작품의 육필 원고를 셋째 마당에는 작품을 둘러싼 이적성 시비와 논란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넷째 마당에는 작가 조정래의 문학 세계를 그리고 있다. 다섯째 마당에는 문학 사랑방이 있으며 여섯째 마당에는 작가의 방으로 꾸며져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 소설 태백산맥을 읽은 독자라면 한 번은 방문해도 좋을. 2. 누구와 함께? - 태백산맥의 배경을 이룬 역사적, 문학적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지인들과 함께라면 더더욱 좋다. 3. 가는 방법은? - 전라남도 보성군 벌교읍 홍암로 89-19. 벌교 버스터미널 지나자마자 좌회전(150M 지점) 4. 감탄하는 점은? - 태백산맥의 육필 원고와 치열한 작가의 고민의 흔적들.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 늘 한산한 편이다. 6. 꼭 봐야할 장소는? - 작가의 육필 원고. 건물이 지닌 건축학적 아름다움. 7. 토박이들이 추천하는 먹거리는? - 벌교는 꼬막정식이 유명하다. 원조수라상꼬막정식, 외서댁 꼬막나라, 제석꼬막회관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tbsm.boseong.go.kr/main.php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낙안읍성, 보성 녹차밭, 순천만 정원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소설 태백산맥을 읽은 독자라면 의미가 있는 장소다.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과 장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소설의 재미를 뛰어 넘어 우리 민족 역사가 건너온 질곡의 세월을 느끼게 해 준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세종로의 아침] 궈모뤄와 폼페이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궈모뤄와 폼페이오/김규환 국제부 선임기자

    지난 12일로 40주기(周忌)를 맞은 궈모뤄(郭沫若)는 ‘20세기 중국 최고의 지성’으로 불린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 작가이자 극작가, 시인이다. 다섯 살 때 사서오경을 줄줄 외워 신동 소리를 들은 그는 고교를 졸업한 뒤 일본 규슈대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장티푸스 후유증으로 청력을 잃어 의학을 포기하고 문학으로 삶의 방향을 틀었다. 문학단체 창조사(創造社)를 결성해 낭만주의 열풍을 일으켰고 여성 해방을 주창한 ‘3인의 반역적 여성’을 내놓으며 극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1927년 국민당 탄압을 피해 일본에 망명해 갑골문과 중국 고대사 연구로 학술 분야에서도 일가(一家)를 이뤘다. 1937년 중·일전쟁 때 귀국한 그는 항일에 참가하는 와중에도 희곡, 산문, 소설을 잇따라 발표하며 작가로서 성가를 높였다. 작가, 학자로 쌓은 탁월한 업적도 그의 끝없이 권력을 붙좇는 모습에 빛을 완전히 잃었다. 공산당이 반성하라면 반성했고 문단 동료를 비판하라면 앞장서 두들겨 팼다. 공자 등 역사 인물을 반박하라면 바로 반대 학설을 내놓았다. “1955년 한 농민이 ‘참새 때문에 농사를 못 짓겠다’는 탄원서를 정부에 보냈다. 농업부는 ‘참새 식성에 대해 연구를 한 적이 없어서 박멸이 필요한지 말할 수 없다’는 답변을 보냈다. 며칠 뒤 마오쩌둥(毛澤東)이 ‘전국 참새를 섬멸해야 한다’고 천명했다. 중국문화예술계연합회(文聯) 주석이던 그는 ‘수천 년간 우리 양식을 수탈하여 저질러 온 죄악, 이제야 관계를 청산할 때가 왔다’며 참새를 상대로 선전 포고를 했다.”(‘중국인 이야기’ 중에서) 이뿐만이 아니다. 문화혁명이 시작되면서 정치 풍향이 바뀐 것을 재빨리 알아채고는 “지금 보면 내가 이전에 발표했던 문장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며 수많은 저작을 직접 불태웠다. 소련 방문 때 마오를 수행한 궈는 그를 태양에 비유하는 시를 바쳤다. “1만미터 높은 하늘에서/104호 비행기 안에서/어쩐지 햇빛이 두 배로 밝게 빛나더라니/비행기 안팎에 두 개의 태양이 있구나!” 문혁을 찬양했던 그는 문혁 4인방이 체포되자 “통쾌하도다”라는 글을 썼다. 덕분에 정무원 부총리와 전국정치협상회의 부주석, 중국과학원장 등 정치·문화계의 요직을 섭렵하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권력을 누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72세 생일을 맞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친 헌사가 도마에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바를 재빨리 알아내 충실히 대변하고 실행해 온 그는 트위터에 ‘저희 부부는 대통령께서 국민을 위해 일하는 동안 힘과 불굴의 의지를 유지하시길 기원한다’며 ‘국가를 대표해 당신의 밑에서 일한다는 사실이 황송하다’고 썼다. 의회 청문회에선 “외교정책이 트럼프의 개인 사업과 이해 충돌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기이한 질문이다. 가짜 뉴스다”라고 전면 부인하며 트럼프 비호에 몸을 던졌다. 일개 하원의원이던 폼페이오가 중앙정보국(CIA) 국장과 국무장관 등 요직으로 승승장구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 일 것이다. 궈모뤄나 폼페이오를 보면 예나 지금이나 곡학아세가 처세의 무기임에 분명한 것 같다. 그렇지만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khkim@seoul.co.kr
  • 구석구석 찾는 재미…떠나볼까 시간여행

    구석구석 찾는 재미…떠나볼까 시간여행

    1905년 경부선 개통, 1914년 호남선 개통으로 ‘한밭’은 철도를 중심으로 한 사통팔달의 교통 중심지인 대전(大田)으로 급성장한다. 교통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행정 수요가 이곳으로 몰리는 결과로 이어진다. 대전 원도심에는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축물이 14개에 이른다. 그만큼 대전이 근현대사의 교통·행정의 중심 도시로 성장해 왔음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도 볼 수 있다. 대전 원도심 여행은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시작하는 것을 추천한다. 지하철 중구청역에서 내리면 바로 전시관을 찾을 수 있다. 대전역과 두 정거장 거리여서 외지인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전시관을 둘러본 뒤 중앙로를 따라 대전역으로 가는 길 곳곳에서 근현대사 건물과 빵집 ‘성심당’ 등 원도심 맛집을 만날 수 있다. 도시 곳곳에 숨은 근현대사 건물들을 하나하나 찾는 1920~1930년대로의 시간여행을 떠나 보자.①웅장한 유럽식 건축양식 ‘근현대사전시관’ 대전을 오랜만에 찾는 사람이라면 대전근현대사전시관보다는 충남도청이라는 명칭이 더 익숙할 수도 있다. 등록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된 옛 충남도청은 내포신도시로 도청이 이전된 후 현재 근현대사 전시관으로 탈바꿈해 시민들의 소중한 역사 공부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웅장한 유럽식 건축양식이 돋보이며 일본 시즈오카현 청사 본관과 비슷해 1930년대 관공서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자료로도 평가된다.건물 벽돌에 새겨진 일본의 상징인 벚꽃 모양을 본 이들은 다소 불쾌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또한 역사가 남긴 유산이다. 일제 잔재라는 이유로 벽돌을 제거하려 했지만, 너무 단단해서 결국 그대로 놔둘 수밖에 없었을 만큼 웬만한 현대 건축물보다도 튼튼한 내구성을 자랑하는 건물이기도 하다. 본관 1층은 구한말 이후 대전에 대한 다양한 자료가 전시돼 있고, 대전형무소에서 출옥하는 안창호 선생의 사진도 볼 수 있다. 영화 ‘변호인’ 등의 촬영 장소이기도 했던 고풍스러운 계단을 걸어 올라간 2층에는 역대 도지사들의 옛 물품과 1920년대 제작된 무게 1t짜리 금고 등이 전시돼 있다.②일제시대 건축 보고 싶다면 ‘관사촌거리’로 대전근현대사전시관에서 10분 남짓 거리에는 관사촌이 있다. 옛 충남도지사 공관과 부지사 관사, 국장급 관사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관사들이 이처럼 함께 모여 마을을 이룬 사례는 전국에서 유일하다. 조성 당시에는 일제 고위 관료들이 머물렀고, 6·25 전쟁 때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임시 거처로도 활용됐다. 서양식과 일본식이 혼합된 1930년대 건축양식을 보여 주는 건물로, 옛 충남도청과 함께 드라마, 영화의 촬영지로도 유명하다. 현재는 대전시가 충남도에서 공관을 매입해 도시재생 사업에 따라 ‘테미오래’라는 이름의 문화 공간으로 새로운 탄생을 준비 중이다. 올해 말쯤 시민과 관광객에게 공개된다.③도심 속 퍼지는 청아한 종소리 ‘대흥동성당’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형상을 한 대흥동성당은 고딕 양식의 적벽돌 구조가 대부분인 여느 성당 건축물과 달리 시멘트 벽돌로 마감해 기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서울 명동성당보다 큰 성당을 지으려고 했지만 완공하고 난 뒤 명동성당의 실제 크기를 잘못 측정한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명동성당보다 작게 지어졌지만, 개발이 더뎠던 주변 원도심과는 오히려 잘 어울려 보인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 당시는 대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 했다. 대전 원도심 투어를 하는 이들은 낮 12시나 오후 7시 대흥동성당의 종소리를 듣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기도 한다. 1969년부터 매일 같은 시간에 종을 치며 50년째 성당의 종지기로 살아온 조정형(71)씨는 이 동네에서 이미 유명인사다. 한번은 성당 종소리가 달라졌다며 주민들의 항의가 들어왔는데, 알고 보니 그가 성지순례로 자리를 비운 사이 ‘대타’가 종을 쳤던 것이다. 소리가 달라졌음을 금방 알 수 있을 만큼 그의 종소리는 주민들에게 친숙하고도 독특하다. 대흥동성당은 등록문화재 643호로 지정돼 있다.④예술 공간으로 재탄생 ‘옛 대전여중 강당’ 대흥동성당의 종소리를 들으며 마음의 위로를 얻은 이들은 인근 대전갤러리로 가보자. 무엇보다 한국 고유의 초가지붕을 연상케 하는 대전갤러리의 지붕은 부드러운 곡선미로 보는 이의 마음을 잔잔하게 한다. 이곳은 원래 1937년 대전여중 강당으로 지어진 건물이다. 2003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는 지역 예술가를 위한 문화전시관인 대전갤러리로 재탄생했다. 대전갤러리는 근대건축물이라는 역사적 의미와 함께 시대의 변화 속에서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창조됐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⑤슬픈 역사 홀로 지켜본 ‘옛 대전형무소 망루’ 대전 중촌동 옛 대전형무소 자리의 망루는 ‘왜 빨리 철거하지 않지’라는 생각이 들 만큼 흉측한 외관을 하고 있다. 이곳은 일제시대 때 우리 독립투사들이 목숨을 잃었고, 6·25 전쟁 때는 좌익과 우익이 번갈아가며 교도소를 장악해 서로를 죽인 학살의 장소였다. 슬픈 역사를 지켜봐 왔던 망루는 원래 동서남북에 1개씩 모두 4개가 있었지만 현재는 대전 자유회관 옆에 1개만 남아 있다. 시신을 생매장했던 망루 인근의 우물 자리도 참혹했던 역사의 증인이다. 옛 대전형무소 자리의 역사적 의미는 인근 아파트 주민들의 모임인 ‘중촌마을 역사탐험대 그루터기’에 의해 재조명됐다. 대전시가 옛 대전형무소 관광자원화 조성공사를 올해 말까지 진행하고 있다. 대전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사진 한국관광공사 대전충남지사 제공 ■여행수첩(지역번호 042) →맛집:대흥동성당 인근 원조진로집(226-0914)은 두부 두루치기의 원조로 알려진 식당으로 매콤한 두부 두루치기와 오징어 두루치기가 주메뉴다. 원래 가락국수를 팔던 조그만 포장마차에서 술안주로 두부 요리를 만들던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귀빈돌솥밥(255-9198)은 전주식 돌솥비빔밥 전문점으로 정갈한 맛이 일품이다. ‘모든 나물은 리필이 되니 많이 많이 드세요’라고 적힌 수저통 메모에서 식당의 인심이 전해진다.
  • 왕과의 산책… 경남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

    왕과의 산책… 경남 함안 ‘아라가야’ 고분군

    ‘아라가야’라는 이름 앞에 목소리가 작아지고 어깨가 움츠러듭니다.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인데도 우리는 아라가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교과서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나라, 1500년 전 경남 함안을 중심으로 창원, 진주, 의령 땅의 일부를 차지했던 나라, 철기 기술이 발달해 ‘철의 왕국’이라 불렸던 나라, 간결한 선의 토기에 불꽃무늬 구멍을 낸 나라…. 함안에는 아라가야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아라가야의 왕들이 잠든 말이산 고분군이 있기 때문이지요. 아득한 옛날에는 고개를 들어 눈도 마주칠 수 없었을 왕의 곁을 걷는 일이, 2018년에는 너무나 쉽습니다. 낮은 언덕을 설렁설렁 올라 산책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길을 안내하듯 고분이 줄줄이 나타나거든요. 연둣빛 고분 곁을 걸으며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것이 더 많은 왕국, 아라가야를 만나러 갑니다.아라가야의 숨결 품은 함안박물관 가야는 기원을 전후한 삼한 시대부터 신라에 멸망하는 6세기 중반까지 500여년 동안 낙동강 남쪽과 서쪽 일대에 있던 나라들이었다. 나라‘들’이라고 한 건 가야가 금관가야, 대가야, 소가야, 아라가야 등 여러 개의 나라로 이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토기와 철기를 만드는 기술이 뛰어났던 아라가야는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었고, 다른 가야국이 ‘형님의 나라’라고 칭할 만큼 가야를 대표하는 나라였다. 아라가야가 터를 잡은 곳은 지금의 함안이었다. 북쪽에 낙동강과 남강이, 남쪽에 진동만이 있으니 내륙과 바다로 진출하기 유리했다. 아라가야의 고도, 함안에서 1500년의 세월을 거슬러 낯설기만 한 옛 나라에 발을 들여놓는다.말이산 고분군에서 옛 가야의 왕과 귀족을 ‘알현’하기 전에 먼저 아라가야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예의다. 이를 위해 함안박물관으로 향한다. 박물관 구경 뒤에는 뒷길을 통해 말이산 고분군으로 바로 오를 수 있으니 동선도 효율적이다. 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함안의 역사뿐 아니라 아라가야의 다채로운 유물을 전시한다. 1시간이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는 아담한 규모다. 2층 전시실은 다섯 구역으로 나뉜다. 함안의 역사를 시대별로 정리한 제1전시실, 함안의 시기별 무덤 형태를 모형으로 보여 주는 제2전시실, 아라가야 멸망 후 함안의 역사와 문화재를 살펴볼 수 있는 제4, 5전시실 등도 볼만하지만 발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제3전시실이다. 불꽃무늬 토기, 수레바퀴 모양 토기, 새 모양 장식 미늘쇠, 말 갑옷 등 말이산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한데 모아 놓았다. 불꽃무늬 토기는 아라가야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라가야 사람들은 불꽃무늬를 좋아했다. 토기 다리에도 동그라미와 세모를 합쳐 불꽃을 형상화한 무늬를 뚫어 장식했다. 토기는 영남 지역은 물론 고대 일본의 중심지였던 긴키지역에서도 출토돼 당시 아라가야가 왜와 교류했음을 보여 준다. 밝은 회백색 토기는 무심히 빚은 양 담백하다. 대번 눈을 사로잡는 화려함은 적지만 계속 보아도 질리지 않는 은은한 멋이 있다. 말을 탄 무사 조형물에서 눈여겨봐야 할 건 무사보다 말이다. 말 갑옷은 아라가야가 철을 다루는 솜씨가 뛰어났음을 보여 준다. 1992년 우리나라 최초로 완전한 형태로 출토된 말 갑옷은 총 900장 이상의 작은 철판을 가죽끈으로 연결해 만들었단다. 아라가야의 용맹한 무사들은 말에게 물고기 비늘처럼 번쩍거리는 갑옷을 입히고 전쟁터로 달려나갔으리라.말이산 고분군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박물관 건물 뒤로 이어진 길을 따라가면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이다. 해발 68m밖에 되지 않는 낮은 언덕은 뒷동산을 산책하는 것처럼 경사가 완만하다. 말이산(末伊山)은 ‘머리산’의 소리음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우두머리의 산’ 즉 ‘왕의 무덤이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뜻이 참 잘 들어맞는다. 함안군이 번호를 붙여 관리 중인 고분은 37기지만 발굴되지 않은 고분까지 더하면 1000기 이상의 고분이 있다. 토기, 철기, 장신구 등 고분군에서 쏟아져 나온 유물만 해도 9500여점에 이른다(2016년 기준). 그야말로 아라가야의 역사가 담긴 타임캡슐이다. 고분군은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으며, 김해·고령의 가야 고분군과 함께 2020년 최종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아라가야의 고분은 시대에 따라 형태가 다양하다. 그중 덧널무덤과 구덩식돌덧널무덤에서 많은 양의 유물이 출토됐다. 덧널무덤은 구덩이 안에 나무로 만든 덧널을 넣은 무덤을, 구덩식돌덧널무덤은 구덩이를 파고 돌로 네 벽을 쌓은 뒤 시신과 껴묻거리를 묻고 널따란 뚜껑 돌을 덮은 무덤을 말한다. 37기의 고분을 전부 둘러보기는 힘들다. 1호분부터 13호분까지는 산책로가 이어지지만 14호분부터는 길이 나 있지 않아 험하다. 대형 고분은 북쪽에서 남쪽으로 뻗은 주능선과 서쪽으로 이어지는 가지능선 정상에 몰려 있는데, 산책로를 따라가면 고분 대부분을 둘러볼 수 있다. 유난히 위엄이 넘치는 고분은 규모가 가장 큰 4호분이다. 2, 3호분 사이의 샛길로 올라가면 높이가 아파트 3층과 맞먹는 초대형 고분을 내려다볼 수 있다. 4호분 맞은편에는 파란 천막으로 덮인 고분이 있다. 지난 5월 둥근고리큰칼과 덩이쇠 등의 유물이 출토된 5-1호분이다. 아라가야의 역사는 여전히 새로 쓰이는 중이다. 쉬어가기에 으뜸인 고분은 9, 10호분이다. 산책로에 서면 고분 너머로 함안 읍내가 어우러진 풍경이 한눈에 담긴다. 왕들의 무덤과 우뚝 선 고층 빌딩이 조우하니, 이때 고분의 둥근 선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선처럼 보인다. 9호분 옆의 팔을 늘어뜨린 소나무는 초여름의 훗훗한 볕을 피할 수 있는 그늘이 된다. 나무 옆 벤치는 한숨 돌리며 쉬어가기에 더할 나위 없다. 아라가야의 역사를 차치하고라도 말이산 고분군은 근사한 산책로다. 산 위에 두둥실 솟은 연둣빛 고분들이 풍경에 깊이를 더한다. 고분의 둥그스름한 곡선과 산책로의 직선이 중첩되니 걷는 길도 심심하지 않다. 느리게 걷고 고요히 둘러보기, 고분군 산책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아라가야 왕들이 영면에 들어 있다는 걸 알기라도 하는 걸까. 산책로는 소란스럽지 않다. 초여름 바람이 고분에 무성한 수풀을 스치더니 여행자의 머리를 훑고 지난다. 바람 한 자락에 1500년 전 가야국의 왕과 연결된 느낌, 사뭇 오묘하다. 고분군에는 그늘이 적어 여름에는 양산이나 모자를 챙기는 것이 좋다.얼큰한 함안 한우국밥 드셔보세요 열심히 걸었으니 빈속을 채울 시간이다. 북촌리에 있는 한우국밥촌은 말이산 고분군에서 차로 10분 거리다. 사실 ‘국밥촌’이라는 이름이 무색하다. 함읍우체국 맞은편에는 달랑 세 곳의 국밥집이 여행객을 맞는다. 세 곳뿐이라고 만만히 보아선 안 된다. 국밥집을 말할 때 함안 오일장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만큼 역사가 깊기 때문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함안 오일장은 큰 시장이었다. 함안 사람들과 봇짐을 멘 장사꾼들이 장에서 물건을 사고판 뒤 약속이라도 한 듯 모여든 곳이 장터 국밥집이었다. 세월이 흐르며 오일장은 자취를 감췄지만 국밥집에서 옛 장터의 정겨움을 추억하기에는 모자람이 없다. 국밥촌에서 가장 오래된 곳은 대구식당이다. 2대에 걸쳐 50년째 운영하며 함안 국밥의 명맥을 이어 간다. 함안 국밥은 얼큰한 소고기국밥이다. 한우사골, 양지, 사태 등을 넣고 3~4시간 동안 육수를 뽀얗게 우린다. 여기에 두툼한 소고기 사태, 뭉텅뭉텅 썬 선지, 콩나물, 무 등을 넣고 푸욱 끓여낸다. 얼핏 보면 육개장과 비슷하지만 맛은 훨씬 담백하다. 빨간 국물은 조선간장으로 간을 해 구수하다. ■ 여행수첩(지역번호 055) →가는 길:중부내륙고속도로 칠원분기점에서 ‘진주, 함안’ 방면으로 우회전한 후 남해고속도로를 따라간다. 함안톨게이트를 통과해 함안 나들목 삼거리에서 함안 방면으로 우회전한 뒤 함안대로를 따라가면 함안박물관이다. →맛집:한우국밥촌에는 대구식당(583-4026) 한성식당(584-3503) 시장한우국밥(583-5858)이 있다. 자매식당(582-4593)은 오곡 돌솥밥, 모둠생선구이, 다양한 밑반찬을 한 상에 푸짐하게 차려낸다. 황포냉면(582-2097)은 잘게 자른 육전에 계란 지단과 오이를 고명으로 올린 진주식 냉면을 판다. →잘 곳:함안버스터미널 근처에 숙박업소가 몰려 있다. 애플모텔(585-1515)은 함안시외버스터미널에서 가깝다. 함안군청 맞은편의 더문모텔(583-3838)은 공중위생서비스평가 최우수등급을 받았으며, JM모텔(583-5898) 역시 아늑하고 깨끗한 시설을 갖췄다. 글 이수린(유니에스 여행작가) 사진 김상곤(라운드테이블)
  • “북·중, 냉전시대 혈맹관계 탈피…정상국가 외교 관계로 발전”

    “북·중, 냉전시대 혈맹관계 탈피…정상국가 외교 관계로 발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연이은 세 차례 중국 방문은 북·중 관계가 ‘정상국가 외교관계’로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낳았지만 그 시기와 목적에 있어서는 여러 해석이 이어진다. 뤼차오(呂超·왼쪽) 랴오닝성 사회과학원 남북한연구센터 주임은 20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북은 냉전시대 혈맹관계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국가 관계로 발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뤼 주임은 “중국과 북한의 군사동맹 관계는 냉전이 끝나면서 사실상 사라졌다”면서 “외신들이 중국이 북한을 미국과의 무역전쟁 국면에서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하는데 이는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북한은 완전한 주권을 가진 나라이며 중국은 북·미 정상회담을 지지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북한의 대미 정책은 주권에 해당하는 것으로 중국은 간섭할 수 없고 북한을 이용할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뤼 주임은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편을 가르는 것은 미국의 냉전식 사고로 중국 외교는 자신의 세력을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시도하지 않는다”고 강조다.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방중이 미국과의 무역전쟁 와중에 이뤄진 점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의 견해도 엇갈렸다. 스인훙(時殷弘) 중국 인민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방중 초청은 미국의 무역전쟁 압박에 대한 중국의 직관적 반응”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차하얼(察哈爾)학회 덩위원(鄧聿文) 연구원은 “무역전쟁과 북한문제가 서로 연관관계를 갖기 시작했다”며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대북 밀착 과시는 ‘북한 카드’를 미국에 대항하는 수단의 하나로 삼아 미국에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덩 연구원은 북한은 중국의 지지 속에서 핵폐기 일정을 늦출 수 있고 중국은 미·중 무역협상의 카드로 삼고자 북한이 제한적 수준의 핵을 보유하는 것을 묵인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중국은 한 번도 미국과의 무역문제에 북한을 지렛대나 카드로 삼겠다는 언급을 공개적으로 한 적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주펑(朱峰·오른쪽) 난징대 국제관계연구원 원장은 “중·미 무역문제를 경솔하게 북한 카드로 해결하려는 것은 매우 우둔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주 교수는 “무역갈등과 북핵문제를 뒤섞으면 경제문제가 지역 안보 대치와 외교적 갈등으로 전이되어 미·중의 대립이 한층 격화될 가능성이 커진다”며 “미·중 관계에 있어 전혀 좋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고 했으므로 긍정적 기대를 갖고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김 위원장의 방중 사실을 해외판 1면 전체를 털어 보도하면서 북·중 관계 발전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고 극찬했다. 인민일보 해외판은 논평에서 “이번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절대 변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면서 “북·중 간 소통과 협력 강화는 한반도 평화 안정 추세를 이어가는 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민일보 자매지 환구시보는 “김정은 위원장의 방중 의도를 과도하게 해석해서는 안 되며 유관국들이 지지하고 호응해야 한다”며 “김 위원장의 방중이 미·중 무역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때 이뤄져 많은 추측이 나오고 있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한·미 등 유관국들은 긍정적인 태도로 북·중 정상회담을 봐야 하며 역사적으로 중국이 북·중 관계를 이용해 한반도 안정을 파괴한 기록이 없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월드피플+] 독재정권이 무너뜨린 대학의 꿈, 40년 만에 이룬 할아버지

    [월드피플+] 독재정권이 무너뜨린 대학의 꿈, 40년 만에 이룬 할아버지

    역사적 격랑기에 대학공부를 하다 결국 학업을 포기한 할어버지가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대학를 졸업하고 맺힌 한을 풀었다. 지난달 아르헨티나 국립기술대학(UTN)에서 졸업장을 받은 세라핀 멘디사발. 졸업식에서 유난히 뜨거운 박수를 받은 그는 1940년생으로 올해 만 78세다. 공부를 하려면 돋보기를 써야했지만 손자뻘 학생들과 어울리며 학업에 몰두한 그는 입학 13년 만에 졸업장을 받았다. 전공은 전자공학. 만학도의 스토리는 종종 언론에 소개되지만 할아버지의 사연은 약간 특별하다. 청년 시절 할아버지가 학업을 중단한 건 쿠데타 때문이었다. 아르헨티나 코르도바의 서민 가정에서 태어난 할아버지는 15살 때부터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지만 꼭 대학공부를 하고 싶어 일을 하면서도 학업을 포기하진 않았다. 무사히 고등학교를 마친 할아버지는 졸업한 뒤 돈을 모아 22살에 드디어 꿈꾸던 아르헨티나의 명문 6년제 국립기술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서도 할아버진 똑똑한 모범생으로 이름을 날렸다. 리더십도 뛰어나 4학년 땐 학생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런 그의 인생에 먹구름이 밀려온 건 1976년 대학 5학년 때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부가 반체제인사를 닥치는대로 잡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더러운 전쟁'의 시작이다. 반체제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지독한 고문을 받았지만 혐의가 없는 게 드러나면서 다행히 할아버지는 풀려났지만 이미 폐인이 된 상태였다. 학교로 돌아가지 않은 할아버지는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인생을 살았다. 그랬던 할아버지가 트라우마를 발견한 건 딸이 대학에 다닐 때였다. 딸의 친구가 '더러운 전쟁'에 대한 리포트를 써야 한다며 할아버지에게 증언을 부탁했다. 할아버지는 평생 잊으려 애썼던 기억을 되살리는 게 고통스러웠지만 기꺼이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당시를 회상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때부터 할아버지의 괴로움이 시작됐다. 당시의 기억이 할아버지를 밤낮 괴롭혔다. 복수의 심리학자를 찾아가 상담을 받아본 결과 할아버지에겐 대학 5학년의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선 다시 대학공부를 하는 게 좋겠다는 조언을 받았다. 한동안 고민하던 할아버지는 결국 결단을 내리고 2006년 대학으로 돌아갔다. 중도에 대학공부를 포기한 지 40년 만이다. 군부 독재정권 시절 재학기록이 통째로 사라져 1학년부터 다시 다녀야 했지만 할아버지는 낙심하지 않았다. 6년 과정을 끝내는 데는 꼬박 13년 시간이 걸렸다. 할아버지는 "다른 건 몰라도 컴퓨터는 정말 공부하기 힘들더라"면서 "펄펄 나는 젊은 친구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나시온 남미통신원 임석훈 juanlimmx@naver.com
  • “북한 개방 땐 베트남보다 발전… 한국 경제에도 청신호”

    “북한 개방 땐 베트남보다 발전… 한국 경제에도 청신호”

    대규모 감세·재정 적자 등 여파 미국 2020년 경제절벽 가능성 한국, 금리 격차 걱정 안 해도 돼미국 내 대표적인 경제전문가로 꼽히는 손성원(SS이코노믹스 대표) 캘리포니아주립대 석좌교수는 18일(현지시간) “미 경제는 2020년부터 경제절벽에 다다를 수 있다”면서 “원인은 대규모 감세로 인한 재정 적자 확대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의 금리 인상 가속화, 무역전쟁, 수익률 곡선 평탄화 등”이라고 경고했다. 손 교수는 이날 뉴욕 맨해튼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2차 대전 이후 역사적 통계를 보면 연준이 긴축을 시작하고, 18개월 후에 S&P500지수가 최고치에 도달하고, 이후 10개월 후에 경기 침체가 시작되는 패턴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2020년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 재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추경 등 추가 부양책을 도입하려 할 것”이라면서 “하지만 중간선거 결과에 따라 민주당이 하원 등을 장악하면 이도 여의치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는 또 연준의 금리 인상이 3%를 넘기지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연준은 경제전망이 좋고 실업률은 내려가는데 인플레이션은 오르지 않는다고 하고 있는데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3% 이상으로 금리를 높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과의 금리 격차도 우려할 필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손 교수는 “금리 차에 따른 자본 유출로 핫머니가 왔다 갔다 할 수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롱텀(장기투자) 머니”라면서 “장기적 투자자들은 한국 경제 전망이 얼마나 좋은지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금리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한반도 평화 분위기가 한국 경제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GDP(국내총생산)는 한국의 2.20% 수준, 수출은 한국의 0.50% 수준으로, 분명히 큰 차이가 있다”면서도 “광업 부분은 1986년 개방을 택한 베트남보다 크게 앞서 가고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베트남은 1986년 이후 성장률이 7~9% 수준”이라면서 “개방화된 북한의 발전 가능성이 베트남보다 훨씬 높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다만 북한 인권 이슈가 대북 투자와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글로벌 기업들, 특히 미 기업들은 인권 이슈에 민감한데 이런 리스크를 안고 북한에 투자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지자체 ‘곳간’ 잡아라… 선거 끝나자 바빠진 은행들

    지자체 ‘곳간’ 잡아라… 선거 끝나자 바빠진 은행들

    6·13 지방선거로 단체장들이 대거 교체되면서 금융기관들의 지자체 금고 쟁탈전도 치열하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된다.19일 전북도 등에 따르면 지자체는 3~4년 주기로 금고를 관리하는 은행을 선정하고 있다. 지자체의 제1금고는 일반회계, 제2금고는 특별회계와 기금 등을 관리한다. 광역·기초 지자체는 행정안전부의 예규에 따라 20개 항목으로 나눠 금융기관 평가를 실시, 금고를 선정하지만 협력사업비 규모 등에 따라 적지 않은 변수가 뒤따른다. 평가항목은 크게 ▲대내외 신용도 33점 ▲예금 금리 18점 ▲이용 편의성 21점 ▲금고업무 관리능력 19점 ▲지역사회 기여도 9점 등 10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 지자체 금고를 관리하는 금융기관으로 선정되면 예금이 대폭 늘어나는 등 이점이 많아 ‘곳간 전쟁’은 날로 격화되고 있다. 광역시와 도시지역 지자체는 대부분 시중은행이 금고를 차지하지만 농촌지역은 NH농협은행이 제1금고, 지방은행이 제2금고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다. 지점이 많아 이용 편의성과 지역사회 기여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중은행들이 호시탐탐 농촌지역까지 눈독을 들이고 있어 언제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특히 올해는 여당의 압승으로 끝난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정치 지형이 크게 변해 지자체 금고 선정에도 어떤 바람이 불지 몰라 금융기관들이 긴장하고 있다. 인천시는 8조원 규모의 금고 입찰공고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은행들의 유치경쟁이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 1, 2금고를 맡은 신한·NH농협은행을 비롯해 KB국민·우리·IBK기업은행·KEB하나은행 등도 입찰에 나설 예정이다. 전북의 경우 도청과 익산시, 고창군 등이 연말 금고 계약기간이 끝나게 돼 벌써 금융기관 간에 전운이 감돈다. 전북도는 연간 5조 1300억원을 관리하는 제1금고가 NH농협은행, 1조 3882억원을 관리하는 제2금고는 전북은행이 맡았지만 경쟁구도가 변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전북 군산시는 오랜 기간 NH농협은행이 독점해 온 금고를 국민은행에 빼앗겨 충격을 줬다. 향토은행인 전북은행도 NH농협은행이 차지한 제1금고에 도전장을 내밀 가능성이 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주목된다. 은행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 파격적인 협력사업비를 제시하고 금고를 차지할 가능성도 크다. 전북도 금고의 경우 2015년 평가 당시 NH농협은행은 60억원, 전북은행은 15억 5000만원의 협력사업비를 제시해 제1·제2 금고로 선정됐지만 자금력이 좋은 시중은행들이 더 많은 협력사업비를 제시할 경우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다. 최근에 지자체 금고로 선정된 금융기관들도 앞으로 전개될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부산시는 역시 일반회계인 제1금고는 부산은행이, 특별회계인 제2금고는 국민은행이 맡고 있지만 언제 뒤집힐지 모른다. 부산은행은 222억원, 국민은행은 75억원의 협력기금을 제시해 금고로 선정됐지만 다른 금융기관이 더 큰 금액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경북도는 지난해 금고 계약을 갱신했다. 계약기간은 내년까지 3년간이다. 일반회계 금고지기는 NH농협은행이, 일반회계보다 규모가 훨씬 적은 2금고(특별회계·기금)는 대구은행이 맡고 있다. 갱신 당시 도의 일반회계는 7조원, 2금고는 6000억원 정도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인천 김학준 기자 kimhj@seoul.co.kr
  • [기고] ‘공무원보호법’을 만들자/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기고] ‘공무원보호법’을 만들자/이근면 전 인사혁신처장

    지자체 선거가 끝났다. 많은 변화와 함께 전국 각지에 인사 태풍이 예상된다. 필연적인 업무 공백에서 오는 불편은 국민 몫이다.선거 관련 논공행상이라는 소리까진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다면 공무원에게 편 가르기를 강요하게 되고 줄서기를 조장하게 되므로 정당한 인사권의 남용도 우려된다. 내 편이 아닌 공무원에게 불이익을 주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얼마 전 교육부가 박근혜 정부 당시 ‘역사 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추진한 전·현직 공무원 13명과 일반인 4명을 직권 남용 등의 혐의로 수사 의뢰했다. 지난 4월 “정부 방침에 따랐을 뿐인 중·하위직 공직자들에게 불이익을 주면 안 된다”란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도 내린 결정이다. 대통령의 지시를 무시한 것일까. 부당 지시라고 자의적 판단을 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공무원을 아무도 보호해 주지 않는다면 과연 이런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공무원은 보호받아야 하는 대상인가 아닌가. 헌법 제7조 2항엔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로 보장된다고 규정하고 지방공무원법 제49조에는 공무원은 소속 상사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고 정의돼 있다. 즉 공무원은 직무상 정치적 중립을 지키고 명령에 따르게 돼 있다. 실제 업무 현장에서 어디까지 직권 남용에 해당하는지 확연히 구분하긴 어렵다. 또 모든 일엔 재량권이 존재한다. 판결 내용을 법으로 지정한다면 판사가 필요할까. 현실이 이런데 이전 정권의 정책을 수행한 실무 공무원에게 이러한 조치가 적용된다면 어떤 공무원도 기존 업무 외에 일을 하지 않으려 들 것이다. 가뜩이나 ‘복지부동’이다. “리스크테이킹(Risk taking)과 감사가 두려워 움직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이런 여건을 개선하기보다 되려 처벌을 강화하는 정책이 또 쓰인다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예측 가능하다. 처벌보다 예방이 중요하다. 예방하기 위해 첫째, 월권과 남용을 정의하자. 실제 직무 현장에서 월권과 남용을 구분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모든 지휘엔 ‘판단’이 들어간다. 전쟁터에서도 공격할지, 사수할지 지휘관이 결정한다. 결정이 원치 않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들 권한 남용이라 할 수 있는가. 기준은 미리 마련할 수 있지만 지휘관 판단엔 개입할 수 없다. 그렇다고 모든 일의 기준을 마련할 수 없다. 법률이 정할 수 있는 범위가 있다. 둘째, 명령권자를 교육시켜야 한다. 조직 붕괴까지 몰고 올 수 있는 하극상을 막으려면 올바른 지시를 하도록 윗사람을 교육시켜야 한다. 정책을 입안하고 업무를 지시하는 사람에게 준법과 정당한 직무의 범위, 권한의 한계를 가르치는 게 직무 명령에 따른 공무원을 처벌하는 것보다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공무원 직무는 보호받아야 한다. 공무원을 정권으로부터 자유롭게, 국민에게 봉사하도록 하자. 좌고우면하지 않고 법에 의해 주어진 직무를 충실히 수행할 수 있게 하려면 이런 것은 멈춰야 한다. 요즘 공무원 사이에 중요한 일에 가능한 한 빠지라는 이야기가 있다. 조직에서 중요한 일을 하면 보람도 있고 승진도 하는데 왜 그럴까 생각해 봐야 한다.
  • [데스크 시각] 네 번의 협상, 네 번의 실패/안동환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네 번의 협상, 네 번의 실패/안동환 국제부 차장

    1985년 11월 19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제네바 서쪽 호숫가의 19세기 저택에서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과 첫 정상회담을 했다. 당시 레이건이 74세, 그해 소련 최고 권력자가 된 고르바초프는 54세였다.회담 사흘 전 도착한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와의 첫 만남을 앞두고 피곤해했다. 그는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 체르넨코 같은 늙고 보수적인 소련 지도자들의 ‘복화술’ 같은 대화에 넌더리를 냈다. 그럼에도 레이건은 고르바초프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 내는 소련 전문가 잭 매틀록 주체코 미 대사와 정상회담 리허설까지 마쳤다. 두 사람은 첫날 회담부터 핵무기 경쟁을 놓고 격돌했다. 고르바초프는 핵군축을 원하면 미국의 전략방위구상(SDI)인 ‘스타워스 계획’부터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이튿날 회담에서는 흥분한 고르바초프가 “소련인을 순박한 민족 취급 말라”고 소리쳤다. 그날 밤 레이건은 “그는 정말 호전적이었고 젠장, 나도 단단히 버텼다”고 일기에 썼다. 마지막 날인 11월 21일 미·소 정상은 ‘핵전쟁 반대’라는 원론적인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제네바에서 단 하나의 핵탄두도 제거되지 않았다. 미국 언론들은 ‘실패한 협상’으로 치부했다. 그러나 레이건과 고르바초프가 처음 만난 제네바 회담은 후대에 냉전 종식의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그들은 1년 뒤 1986년 10월 11일 아이슬란드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다시 핵무기 감축 담판을 벌였다. 두 정상은 이틀간의 회담에서 ‘양국 핵무기 전량 폐기’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역사적 합의 직전까지 갔지만 결렬됐다. 조지 슐츠 당시 미 국무장관은 회고록을 통해 “백악관·국무부·국방부 관리들도 ‘핵무기 없는 세계’라는 대통령의 꿈(고르바초프도 동의한 꿈)은 완벽한 망상”이라는 비판을 쏟아냈다고 전했다. 4년 뒤 1991년 조지 H W 부시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에 서명하고, 마침내 ‘냉전 종식’을 선언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의 백악관 출입 기자였던 데이비드 호프먼이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를 인터뷰하고, 방대한 비밀문서들을 토대로 쓴 800쪽 분량의 책 ‘데드 핸드’(Dead Hand)가 복원한 ‘팩트’들이다. 데드 핸드는 소련이 구축한 ‘자동 핵보복 시스템’ 명칭이다. 호프먼은 그들의 협상은 실패했지만 처음으로 산더미 같은 문제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면서 합의의 단초가 됐다고 평했다.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1985년 겨울부터 1988년 봄까지 네 번 만났고 그 어떤 조약에도 서명하지 못했지만 냉전을 끝냈다. 두 사람은 훗날 “성급하지 않았고 속내를 털어놓으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만남”이었다고 회고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2일 세기의 회담을 통해 서로를 향한 한 발을 막 내디뎠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웃으며 돌아선 두 사람의 발걸음은 무거울 것이다. “우리한테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이 때로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모든 것을 이겨 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는 김 위원장의 인식은 정확하다. 한반도 냉전의 유물인 비핵화 협상은 이제 시작됐다.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남·북·미 간 극도의 상호 불신을 극복하려는 적극적 신뢰 구축 노력이다. ‘공포의 균형’은 전쟁을 억누를 뿐이지만 ‘이익의 균형’은 평화를 만들어 낸다. 하물며 미·소 정상은 서로의 ‘데드 핸드’로 악수했지만 역사적 전환점을 이끌어 냈다. ipsofacto@seoul.co.kr
  • [생각나눔] “난민, 인권국가의 책임”vs“자국민 안전부터 챙겨야”

    [생각나눔] “난민, 인권국가의 책임”vs“자국민 안전부터 챙겨야”

    6월 20일 ‘세계 난민의 날’을 앞두고 중동 국가 난민 유입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뜨겁다. 최근 예멘 난민이 제주로 대거 입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인권 국가를 표방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과 “우리도 먹고살기 힘든데 테러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난민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지난 13일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라온 ‘난민 신청 허가 폐지’ 청원은 5일 만인 18일 현재 동의 수가 22만건을 돌파했다. 청원 게시자는 “난민 허가는 시기상조다. 유럽은 난민 문제에 대해 사죄해야 할 역사적 과오가 있지만 한국이 난민을 받아 줘야 하는 이유는 없다”면서 “정부는 치안과 안전, 불법 체류 등 사회문제를 먼저 챙기고, 난민 입국 허가와 관련한 제도는 폐지하라”고 주장했다. 2015년 시작된 예멘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전 세계에 19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국내에는 올해 들어 519명이 제주로 유입됐다. 예멘 난민이 폭증하자 법무부는 지난 4월 30일 예외적으로 제주 외 지역으로의 이동을 금지(출도제한)했다. 이어 지난 1일엔 예멘을 무사증 입국 국가에서 제외했다. 인권 단체들은 이런 정부 조치에 강하게 반발했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시민 단체들은 체류비가 떨어져 노숙을 하는 등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예멘 난민에 대한 지원을 촉구했다. 또 출도제한 조치는 유엔의 난민 지위에 관한 협약(난민협약) 26조가 보장하는 ‘이동의 자유’에 위배되므로 이를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 이에 법무부는 예멘 난민 신청자들에 대해 어업과 요식업에 취업하는 것을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이처럼 법무부가 인도적 지원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자 반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는 “테러리스트가 난민으로 위장한 것 아니냐”, “이슬람 남성들은 여성을 애 낳는 도구로만 생각한다” 등 인종차별적인 주장이 넘쳐나고 있다. “한국에도 궁핍한 사람이 많다”는 주장도 나온다. 제주난민대책도민연대 등 일부 지역 단체도 “관광을 위해 만든 무사증 제도가 불법 난민의 창구로 악용되고 있다”고 반발했다. 전문가들은 난민에 대한 편견을 해소하는 데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 왓’ 소장은 “이렇게 대규모로 난민이 들어온 것이 처음이고 출도제한 조치도 처음이다 보니 혼란스러운 측면이 있다”면서 “정부가 문제를 제주에만 떠넘기지 말고 인도적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익법센터 어필의 전수연 변호사는 “난민에 대해 법률지원을 하는 단체로서 악플이나 혐오 섞인 반응을 많이 받고 있는데, 그런 시선은 우리가 이슬람 국가나 난민을 잘 모르는 데서 오는 공포감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6·25전쟁 때 외국의 도움을 받았고, 유엔 난민협약에 가입했기 때문에 정부가 꾸준히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우리는 그동안 국제적 위상에 비해 난민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면서 “세계 시민 의식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예 기자 jiye@seoul.co.kr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美민주 “북핵 여전히 위협”… 트럼프 “비핵화 딜, 亞서 칭찬”

    美민주 “북핵 여전히 위협”… 트럼프 “비핵화 딜, 亞서 칭찬”

    라이스 前백악관 안보보좌관도 “북·미 정상회담 승자는 김정은” ‘트럼프 오른팔’이었던 배넌 “평화 노력 너무 비난받아” 옹호 6·12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를 두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미 조야가 연일 목소리를 높이며 비난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미 조야는 싱가포르 북·미 공동성명뿐 아니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 북핵 위협 제거 등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까지 싸잡아 날 선 비판에 나섰다.잭 리드(왼쪽) 상원 군사위원회 민주당 간사는 17일(현지시간) 폭스뉴스에서 “(북핵 위협이 없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내가 볼 때 전적으로 터무니없다”면서 “북한은 핵위협이 맞다”고 주장했다. 리드 의원은 또 동맹들과 사전 논의하지 않고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에 나서는 건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건 엄청난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 동맹들엔 완전히 경악할 일”이라면서 “한국과 일본은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드 의원은 이어 “두 번째로 한·미 군사훈련은 전쟁놀이가 아니라 북한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억지력의 일부”라면서 “이런 상태(한·미 훈련 중단)가 오랜 기간 지속하면 우리는 지역 내 동맹들과 협력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잃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다. 수전 라이스(오른쪽)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이날 CNN에 북·미 정상회담의 승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무엇보다 김 위원장은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과 대등하게 국제무대에 설 기회를 얻었다”면서 “장식과 국기들은 그가 동등해 보이도록 배치됐다. 그의 부친과 조부가 수년간 바라면서도 이루지 못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라이스 전 보좌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으로부터 뚜렷한 대가를 얻어내지도 못하고 ‘한·미 군사훈련 중단’이라는 불필요한 양보를 했다”고 지적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도 자신의 트위터에 “우리는 (북·미 정상회담으로) 세계 평화를 위해 많은 것을 얻었고 최종적으로 더 많은 것을 추가할 것”이라고 회담 성과 띄우기에 나섰다. 그는 이어 “북한과의 ‘비핵화 딜’은 아시아 전역에서 칭찬받고 축하받고 있다”면서 “정작 미국의 일부 사람들이 이 역사적 거래를 ‘트럼프의 승리’가 아닌 ‘실패’로 보려고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구체적인 ‘북한 비핵화’ 성과 없이 일방적으로 북한에 양보했다는 미국 내 비판을 의식한 듯 “협상 기간 ‘워게임’을 중단하겠다는 것은 나의 요구였다”면서 “왜냐하면 훈련 비용이 아주 많이 들어가고, 선의의 협상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희망하지만, 만약 (북·미) 협상이 결렬되면 즉시 시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렸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도 이날 ABC방송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에 나선 것은) 북한과 평화를 이루려고 하는 것인데, 너무 비난받고 있다”면서 “공화당 의원들은 북·미 정상회담 성과물을 비판하기보다는 트럼프 대통령을 뒷받침해야 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거들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
  • ‘안철수 비판’ 장진영, 김어준과 설전 “김부선, 주진우 부른 적 있냐”

    ‘안철수 비판’ 장진영, 김어준과 설전 “김부선, 주진우 부른 적 있냐”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의 미국행을 비판했던 안 후보의 측근, 장진영 변호사가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인의 ‘여배우 스캔들’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시사평론가 김어준씨를 작심 비판했다. 6·13 지방선거에 바른미래당 동작구청장 후보로 나섰던 장 변호사는 18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했다. 뉴스공장 측이 장 변호사에게 출연 요청을 한 이유는 장 변호사가 전날 페이스북에 남긴 ‘안철수 후보의 미국행을 개탄합니다’라는 글 때문이었다. 장 변호사는 “빛나는 보석같은 후보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당이 헛발질만 안했더라도 너끈히 당선될 수 있는 후보들이었는데 모두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힘든 후보들과 함께 눈물 흘리고 아파해도 모자랄 판에 따님 축하 외유라니요. 역사의 어느 전쟁에서 패장이 패배한 부하들을 놔두고 가족 만나러 외국에 가버린 사례가 있나”라며 안 후보를 정면 비판했다.그러나 장 변호사가 뉴스공장 출연을 승낙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뉴스공장의 편파성을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장 변호사는 진행자인 김어준씨에게 “김부선씨가 여기 나온 적 있어요? 주진우씨가 나온 적 있어요?”라고 물었다. 김씨는 두 질문에 모두 “없죠”라고 답했다. 장 변호사는 “그런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 당사자들은 안 부르면서 바른미래당 이건 뭐 사실 별 얘기도 아닌데…”라고 지적했다. 이에 김씨는 “별 얘기 맞죠”라고 반박했다. 장 변호사는 재차 “뭐 이런 걸 이렇게 득달같이 불러서 갈등을 키우려고 하고…”라고 받아쳤다. 김씨는 “갈등은 본인이 말한 거 아닙니까. 우리가 뭘 키우려고 그래요. 본인이 직접 말을 해서 부른 건데…그럼 왜 나오셨어요? 나오지 말지”라고 말했다.이에 장 변호사는 “이 얘기 하려고 나왔다. 공정하지 않다. 그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장 변호사는 이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뉴스공장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유가 바로 이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였다고 재차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로 출마했다 압도적 표차로 당선된 이재명 당선인은 유세 기간 내내 여배우 김부선씨와의 불륜 스캔들에 시달렸으나 여러 차례 부인한 바 있다. 특히 김어준씨와 친분이 있는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지난 2016년 김부선씨에게 전화를 걸어 이 당선인과의 스캔들 무마를 시도한 통화 녹음 파일이 공개되는 등 진흙탕 논란이 벌어졌었다. 김영환 바른미래당 경기지사 후보는 이런 스캔들에 대한 진실을 요구하며 폭로전을 이끈 바 있다. 장 변호사는 김어준씨가 진행하는 뉴스공장이 지방선거 판을 흔들었던 이재명-김부선 스캔들을 외면한 것을 비판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장진영 “낙선 후보들 빚더미…안철수 딸 보러 미국 갈 때인가”

    장진영 “낙선 후보들 빚더미…안철수 딸 보러 미국 갈 때인가”

    서울시장 선거 낙선 뒤 미국으로 떠난 안철수 전 의원의 행보에 대해 바른미래당 내부에서 비판이 제기됐다. 바른미래당의 서울 동작구청장 후보였던 장진영 변호사는 17일 지산의 페이스북에 ‘안철수 후보의 미국행을 개탄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역사의 어느 전쟁에서 패장이 패배한 부하들 놔두고 가족 만나러 외국에 가 버린 사례가 있습니까”라고 비판했다. 장진영 변호사는 “몇 명인지 알 수도 없이 많은 우리 후보들이 전멸했다”면서 “당이 조금만 받쳐주었더라면, 아니 당이 헛발질만 안 했더라도 너끈히 당선될 수 있는 후보들이었는데, 그 많은 후보들 모두 실업자 신세가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설혹 떨어지더라도 선거비라도 보전받았을 후보들이 줄줄이 빚더미에 올라 앉아 망연자실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이렇게 힘든 후보들과 함께 눈물 흘리고 아파해도 모자랄 판에 따님 축하 외유라니요”라면서 “빚더미에 앉은 후보들은 안철수 후보의 외유할 형편이 부럽기만 하다고도 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이번 선거 패배에 대해서도 “아무 명분도 실익도 없는 노원, 송파 공천 파동은 후보들 지지율을 최소 5% 깎아먹었다”면서 “이기지도 못할 놈들이 자리싸움이나 하는 한심한 모습으로 비쳐졌다”고 비판했다. 또 “선거 후반 뜬금 없고 모양도 구린 단일화 협의는 또 다시 지지율을 최소 5% 말아먹었다”면서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에 목매는 모양새를 보인 것은 돌이킬 수 없는 패착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 두 가지가 참담한 결과를 만들었는데 안철수 후보가 이와 무관하다 말할 수 있나”라면서 “안철수 후보는 ‘모든 게 제 부덕의 소치’라고 했는데 진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 외유할 때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구청장 후보인 저도 낙선인사를 시작했다. 최소 열흘 정도는 하려고 한다. 지지해주신 분들 눈빛을 잊지 못해 낙선인사라도 드리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면서 “안철수 후보가 이 시점에 미국에 간 것은 또 다시 책임을 회피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보인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는 동지와 함께 울고 웃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 글이 화제가 되자 장진영 변호사는 3시간 뒤 “글에 대한 반응이 뜨겁다. 일부에서 글 쓴 의도를 물으니 답하겠다”면서 “2000명가량의 낙선자들이 울분을 삼키고 있다. 누군가는 그들을 위로하고 대변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다시 글을 남겼다. 이어 “99%라는 사상 최악의 낙선율을 기록한 2000명의 낙선자들은 망연자실한 가운데 대장의 미국행에 대해 분노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안철수 후보 또는 당에게 흠이 된다? 우리에게 흠집날 뭔가라도 남은 게 있나? 한국당에서는 당 해체 목소리가 나오는데 한국당보다 더 폭망한 우리 당에서 무릎을 꿇기는커녕 안철수 후보가 미국으로 가 버린 데 대해 국민들이 어떻게 보고 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이런 잘못된 행동에 쓴 소리 한 마디 안 나오면 바른미래당은 정말 희망이 없다 안 하겠나”라면서 “뭣이 중헌지를 분간하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장진영 변호사는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얼굴을 알렸고,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정치에 입문했다. 국민회의, 국민의당을 거쳐 바른미래당에 합류했다. 안철수 전 의원은 지난 15일 딸의 박사학위 수여식 참석을 위해 미국으로 떠나 오는 19일쯤 귀국할 예정이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태국에도 5·18 같은 역사… 민중 주도로 민주화 올 것”

    “태국에도 5·18 같은 역사… 민중 주도로 민주화 올 것”

    정부 저항단체 ‘NDM’ 조직 비판 기사 SNS 공유한 혐의로 ‘최대 징역 15년’ 왕실모독죄 기소 5·18 단체 지원으로 광주 체류 “한국 대학서 정치학 배우고파”“5·18 광주에서 대학생과 시민들이 군사정권에 맞서다 탄압받았던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세계 난민의 날을 사흘 앞둔 17일 서울신문이 만난 차노크난 루암삽(25)은 정치적 박해 때문에 고국을 등져야 했던 태국의 청년 활동가다. 한국에 온 지 5개월이 됐다. 현재 한국 법무부의 난민 심사를 받고 있다. 그는 “심사 통과율이 3% 미만이라고 들었지만, 한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를 희망한다”며 “정식으로 한국어를 배워 한국 대학에서 국제 인권법과 정치학을 더 공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태국은 2014년 5월 군부가 쿠데타로 집권한 상황이다. 이렇다 할 정부 비판 단체가 없는 점을 안타까워한 차노크난은 2년 전 군부에 저항하는 ‘신민주주의운동’(New Democracy Movement)을 만들었다가 탄압을 받았다. 지난 1월 왕실모독죄로 기소됐는데 군부는 2016년 12월 태국 왕실을 비판한 BBC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한 점을 문제 삼았다.기사를 공유한 사람은 2600여명이었다. 하지만 왕실모독죄로 기소된 사람은 차노크난을 포함해 단 2명뿐이었다. 나머지 한 사람은 차노크난과 NDM을 함께 세운 짜투빳 분빳따라락사(27). 그는 기사 공유 당일 경찰에 체포돼 지난해 2월 구속기소됐다. 또 2년 6개월형을 선고받아 현재 복역 중이다. “우리 둘 모두 군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상태예요. 군부는 인권에 어긋나는 왕실모독죄를 비판 세력을 탄압하는 정치적인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죠.” 왕실모독죄를 저지르면 태국 형법상 최대 15년의 징역을 살 수 있다. 그가 공소장을 본 뒤 불과 두 시간 만에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던 이유다. 난민 이동의 허브 역할을 하는 홍콩이나 유엔난민기구가 있는 필리핀행을 고민하다가 한국을 선택했다. 무비자로 15일밖에 머무르지 못하는 홍콩, 필리핀과는 달리 한국은 90일까지 체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또 한국에 도착하고 보니 옥중의 짜투빳에게 지난해 인권상을 준 5·18기념재단도 있어 더 믿음이 갔다. 차노크난은 현재 5·18 관련 단체들의 지원을 받으며 광주에서 체류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공익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아 난민 심사를 신청했다. 태국 명문 쭐라롱꼰왕립대학 정치학과 11학번인 차노크난은 교과서를 통해 5·18 민주화 운동과 6·10 민주항쟁을 배우는 한국이 마냥 부럽다. “태국에서도 5·18처럼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요구하다가 피를 흘린 역사가 있지만 중고등학교에서 한 번도 배운 적이 없어요. 왕들의 업적이나 전쟁에서 이겼던 이야기만을 암기하도록 해 왕족에 충성하도록 통제하고 있을 뿐입니다.”몸은 한국에 있지만 마음은 언제나 태국 민주화와 함께 하고 있다며 차노크난은 눈을 빛냈다. “당장 내일이나 내년은 아니겠지만, 태국에서도 변화가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분명히 왕실이나 군부 엘리트가 아닌 민중들이 주도할 겁니다.” 다음은 차노크난과의 일문일답. ⇒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대학에 입학해 강의를 듣던 중에 태국 역사와 사회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됐고,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다른 나라 역사를 공부했다. 다른 나라와 달리 중고등학교에서 배워온 태국 역사는 애국심과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는 왕족들의 이야기뿐이더라. 우리는 민중의 역사가 빠져있었다.   ⇒역사에 의문을 갖는 것과 행동하는 것은 다를텐데. →태국 정부는 학생들을 통제하려는 목적에서 대학에서마저 교복을 입게 했다. 1학년 2학기 때부터 사복을 입고 등교하며 저항했지만, 교복을 입지 않으면 시험장에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2학년 1학기 때는 잡지를 발행하던 친구의 아버지가 왕실모독죄로 잡혀갔다. 이 사건이 교복이라는 작은 문제에서 왕실모독죄라는 큰 문제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가게 된 계기였다. 10년형을 선고받았던 친구의 아버지는 7년을 복역하다가 2주 전에 가석방됐다.    ⇒한국에 오고 나서 어떤 마음이 들었나. →마음이 어려웠다. 지난 7년 동안 모든 민주화 투쟁 일정에 참석했는데 이제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다는 사실이 내 마음을 너무 어렵게 했다. 지금도 태국에서 투쟁하고 있는 동지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고 처음에는 고통스러워서 태국 뉴스도 볼 수 없었다.   ⇒광주 5·18 민주화 운동을 아나. →광주에 도착하고 5·18기념재단에서 제공한 영어로 된 5·18 책을 읽었다. 책을 읽지 않더라도 광주에 살다보면 모를 수가 없다. 5·18 기념공원, 5·18 자유공원, 5·18 민주묘지 등 광주는 온통 ‘5·18’이다. 심지어 ‘518’ 버스를 타면 5·18 관련된 곳을 다 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광주 여러 단체는 지금도 5·18 당시의 역사적 진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점이 부럽다.   ⇒부모님이 보고 싶을 것 같다. →지난 5월 18일 태국에서 아빠와 엄마, 동생과 친구가 광주를 방문했다. 지난 1월 가족과 헤어진 이후 첫 만남이었다. 미래에 대해 질문하는 부모님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오늘과 내일에 대해서 말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내 현재 신분이 그렇다. ⇒후회한 적은 없나. →한국에 와서 외로웠고 처음 두달간은 많이 울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운동에 참여한 것을 한 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다.    ⇒난민 심사가 걱정되지는 않나. →걱정되지만 희망을 갖고 있다. 그래도 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왕실모독죄 기소장이 있고, 정권에 탄압받았던 사실을 언론 기사로도 증명할 수가 있다. 옆에서 도움을 주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중동이나 미안마(로힝야족)에서 전쟁과 박해를 피해 급히 본국을 떠난 난민들이 걱정된다. 이들은 서류를 챙길 여유가 없었다.   ⇒평소에는 어떻게 지내나. →한국어를 배우고 싶은데 지금 신분으로는 대학에 있는 어학당에도 다닐 수 없더라. 학위 공부도 정식으로 할 수가 없다. 한국어를 못하다보니 사람들과 정치적인 문제를 토론하지도 못한다. 지난해 촛불집회 등 민주주의 투쟁이 있었다고 하는데도, 이를 제대로 토론해보지 못했다.   ⇒태국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운동에 참여할 것이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태국 시민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독재 정치의 나쁜 측면을 알아 가고 있다. 단지 지금은 두려워서 거리로 나오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군부 정권이 계속해서 선거를 미루면, 태국 시민들도 더이상 참지 못하고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태국 군부에 한 마디 한다면. →권력은 영원하지 않다. 언젠가 권력이 태국 시민들에게 돌아오는 날, 당신들은 시민들을 탄압했던 행동에 대한 값을 치를 것이다. 글 사진 기민도 기자 key5088@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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