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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자말 카슈끄지와 오사마 빈라덴의 인연

    [임병선의 메멘토 모리] 자말 카슈끄지와 오사마 빈라덴의 인연

    2018년 10월 2일(이하 현지시간) 터키 주재 사우디아라비아 총영사관에서 암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와 9·11 테러를 기획해 2011년 5월 8일 미군의 참수 작전에 스러진 오사마 빈 라덴이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1988년 5월 4일 영자지 아랍 뉴스에 실린 빛바랜 흑백사진부터 보자. 당시 아프가니스탄은 옛 소련의 침공에 맞서 싸우려는 이슬람 전사들이 모여드는 곳이었다. 젊은 기자로서 자말은 세계적인 특종에 욕심을 내고 있었다. 그를 초청한 사람이 같은 사우디인으로 나중에 좋은 친구가 되는 오사마였다. 해서 자말은 로켓발사기를 자랑스럽게 어깨에 건 채 오사마와 함께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기사 제목은 ‘아랍 젊은이들이 어깨를 결고 무자헤딘 전쟁에 나선다. 자말은 오사마의 이름을 ‘가명 아부 압둘라’라고 표기하며 아프간 전쟁이 무슬림 세계 전체로 번져 나가는 지하드(성전)의 첫 발이 될 것이란 그의 말을 인용했다. 우리가 9·11 테러의 기획자로 그의 이름을 듣기 13년 전의 일이다. 야후! 뉴스의 팟캐스트 ‘음모의나라(Conspiracyland)’는 21일 자말 카슈끄지를 다룬 세 번째 편 ‘자말과 오사마’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기사는 자말이 과연 아프간에 갔을 때 순수하게 특종 욕심에 눈먼 기자였을까? 아니면 아랍 전사들의 대의에 공감해 그곳에 갔던 것일까? 질문부터 던진다. 답은 둘 다인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그는 나중에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킨 오사마의 테러 음모를 용인하지 않았지만 오사마와 돈독했던 자신의 과거를 깎아내리지도 않았다. 오래 일한 동료는 자말이 죽는 날까지 오사마와 “갈등하고 있었다”고 돌아봤다.자말은 오사마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들은 몇 시간 뒤 트위터에 “아부 압둘라 당신의 가슴아픈 얘기를 듣고 쓰러져 울었다. 분노와 야심에 굴복하기 전 아프간에서의 아름다운 시절, 당신은 용감했고 아름다웠다”고 적었다. 자말은 1970년대 말 미국 인디애나주립대에서 유학했다. 사우디 출신 동창들이 수백명 있었다. 신문방송학 전공이었으나 전공보다 독실한 무슬림이 되는 일이 우선이었다. 테러호트의 이슬람 센터에서 오마르 파룩과 만났는데 이슬람 개종자였다. 자말은 사우디인들이 경원시하는 시아파 무슬림과도 곧잘 어울려 오마르의 걱정을 샀다. 자말의 태도는 이집트에서 불기 시작한 무슬림 형제단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그는 메디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 형제단 모임에 참석해 오사마와 처음 만났다. 오사마는 1957년생, 자말은 한 살 아래였다. 둘이 닮았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이 대목은 자말이 2005년 동료 기자 로렌스 라이트와 한 인터뷰에서도 밝힌 내용인데 라이트의 책 ‘루밍 타워(The Looming Tower)’에도 소개돼 있다. 훌루 TV에서 2018년 미니시리즈로 제작했으니 시청할 만하다. 자말은 라이트에게 “오사마의 꿈은 이슬람 국가(지금의 IS와 같은 듯 다른)의 창설이었으며 한 국가를 그렇게 만들면 다른 나라로 전파돼 도미노처럼 모든 나라가 바뀌어 인류의 역사를 뒤집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무자헤딘에 뒷돈을 대고 있었다. 라이트는 여러 번 자말에게 묻는다. 무엇이 그렇게 감동적이었느냐고? “우리가 동굴에 함께 있어 감동적이었다. 밤은 캄캄하고 촛불만 켜져 있다. 그는 무슬림에 충일했고 지하드 생각에 골몰했다. 신에 가까이 있었다. 올바른 일을 하고 있다고 알고 있으며 피칠갑을 한 소비에트 이교도와 싸우고 있었는데, 내게 그건 아름다운 일이었으며 특히 그 나이때는 그랬다.” 자말은 암살 당하기 4개월 전 버지니아주에서 이슬람식 성혼 선언을 한 이집트 승무원 출신 하난 엘아트르에게도 여러 차례 오사마와 보낸 시절 얘기를 들려줬다. 아트르는 자말이 “인간적으로 (오사마는) 친절한 사람인데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소련이 물러나고 탈레반이 득세하자 두 사람은 갈렸다. 오사마 특종 덕에 자말은 승승장구해 메이저 신문사인 알와탄 편집장에까지 올랐고, 사우디 왕가와도 친한 기자란 명성을 만끽했다. 오사마는 알카에다를 만들고 미군 주둔을 용인한 왕가를 규탄했다. 1990년대 중반 수단 하르툼으로 넘어가 아이만 알자와히리가 이끄는 이집트 출신 강경파들과 결합했다.자말과 오사마는 얼마 안 있어 다시 만났다. 빈라덴 가문이 자말에게 하르툼에 가서 오사마를 만나 사우디로 돌아오도록 설득하라고 부탁했다. 사우디 정보부가 뒤를 봐줬다. 자말은 나중에 라이트에게 털어놓길, 오사마의 집에서 사흘 연속 쌀과 양 요리로 융숭한 접대를 받았다고 했다. 자말이 오사마를 계속 밀어붙였고, 오사마는 주저주저했다. 때로는 폭력을 쓰지 않겠다고 했다가 나중에 오프더레코드로 하자고 했다. 또 미국인에 대한 성전을 벌여 아라비아반도에서 몰아내겠다고도 했다. 오사마의 말이다. “아덴만을 때렸더니 그들은 떠났다. 소말리아를 때렸더니 그들은 다시 떠났다.” 사흘째 밤에 자말은 답을 예, 아니오 중 하나로 달라고 재촉했다. 오사마는 이집트 동료들에게 달려간 뒤 되돌아와 되물었다. “넌 내게 뭘 해줄 건데(What’s in it for me)?” 자말은 낙담했다고 했다. 그는 ‘오사마, 넌 그 사람들, 사우디 사람들을 생각해야 해. 널 정말로 걱정해주는 사람들이야. 왜 그걸 모르는 거야’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오사마는 그 유명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는 것이다. 자말은 오사마가 정신줄을 놓았으며, 자신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정말 깨닫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고 털어놓았다. 런던 주재 사우디 대사관에서 근무하며 자말과 함께 일할 기회가 많았던 나와프 오바이드는 오사마와 함께 한 아프간에서의 시간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었다고 돌아봤다. 그에 따르면 자말은 오사마를 영웅으로 여겼다. 오바이드 역시 자말에게 오사마와의 친분을 과장했다고 지적하며 그렇게 수많은 인명을 앗아간 사람을 좋게 묘사해선 안된다고 했다. 어느날에는 뉴욕 세계무역센터가 붕괴하기 직전 뛰어내리는 사람들 사진을 자말에게 보여주며 “봐라. 이것이 빈라덴이 저지른 짓”이라며 “우리가 솔직히 고백하고 규탄하지 않으면 우리는 그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자말이 사진을 들고 조용히 있다가 몇 시간 뒤 오바이드를 보며 “맞아 네 말이”라고 말했다. 오바이드는 자말이 옛친구에 대해 내적 갈등이 심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이데올로기적인 인물이었으며 신학적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 둘은 내면에서 갈등했고.”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In&Out] 도쿄올림픽을 넘어 우리의 올림픽으로/김도균 한국체육학회 회장

    [In&Out] 도쿄올림픽을 넘어 우리의 올림픽으로/김도균 한국체육학회 회장

    도쿄 올림픽 개막 시계는 째깍째깍 움직이고 있는데 코로나19와 정치·경제·사회 문제로 일본은 참 불행하기만 하다. 1896년 첫 올림픽 이후 1914, 1940, 1944년 대회가 전쟁으로 취소됐고 1년 미뤄져 개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런데 취소와 연기의 흑역사에 일본이 모두 포함돼 있다. 도쿄올림픽은 전 세계인들이 기다려 온 최고 스포츠 무대인 동시에 코로나로 인해 단절된 지구를 단번에 연결시킬 수 있는 최고의 시험장으로 평가받는 자리가 됐다. 성공하면 코로나19 종식 모델이, 실패하면 감염의 본산이 될 수 있는 상황이다. 도쿄올림픽에 대해 국민들이 염려하는 여러 악재들이 있지만 최근 독도 문제로 보이콧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독도를 자국 영토로 표시한 것에 항의한 한국 정부와 대한체육회에 보여 준 일본 정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행동은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 올림픽 정신을 훼손한 일본의 행동과 이를 제재하지 않는 IOC는 규탄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 때문에 우리가 올림픽 보이콧을 주장하는 것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첫째, 올림픽 평화 정신을 우리 스스로 위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은 ‘화합과 전진’,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은 ‘하나 된 열정, 평화와 번영으로’라는 기치를 내거는 등 한반도에서 열린 두 대회 모두 평화를 실천했다. 잘 지켜 온 올림픽 정신을 스스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 둘째, 독도와 욱일기, 후쿠시마 원전 등은 갑자기 터진 문제가 아니다. 독도가 이슈가 되고 있지만 보이콧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올림픽 역사에 큰 오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셋째, 우리가 보이콧한다고 도쿄올림픽이 취소되고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과거 정치 문제로 인한 보이콧으로 1976년 몬트리올, 1980년 모스크바, 1984년 LA올림픽이 반쪽짜리로 열렸다. 이런 역사에 비춰 보면 우리만의 보이콧으로는 세계 여론을 이끌어 내기에 역부족이다. 넷째, 올림픽만 보고 5년 이상 피·땀·눈물을 흘려 준비한 선수들도 배려해야 한다. 다섯째, 올림픽에서 정정당당한 스포츠 경쟁으로 문제를 극복해야 한다. 올림픽 현장은 전쟁을 평화로, 평화를 공존으로, 공존을 행복으로 만드는 곳이다. 마지막으로 역대 올림픽은 늘 국민에게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 줬다. 선수들의 선전과 분투, 감동적인 이야기는 코로나19로 지친 국민에게 새로운 힘과 희망, 기쁨의 마중물을 만들어 줄 것이다. 이러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도쿄올림픽이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독도 문제는 IOC와 도쿄올림픽 조직위원회를 상대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국제 홍보와 정부의 노력, 그리고 민간 외교 등을 통해 압박해 일본이 수정하고 반성할 수 있도록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올림픽 현장은 평화, 공존, 희망으로 가득한 숭고한 곳이어야 한다. 정치적 이슈를 넘어 스포츠 경쟁으로 극복해야 한다.
  • 日은 틈나면 ‘역사 오리발’ 내미는데… 獨 “히틀러 소련 침공은 수치” 또 사죄

    日은 틈나면 ‘역사 오리발’ 내미는데… 獨 “히틀러 소련 침공은 수치” 또 사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9일(현지시간) 나치 독일의 구소련 침공 80주기를 앞두고 “독일인에게 이날은 수치스러움을 느끼는 계기가 되는 날이다. 우리는 희생자들과 그 후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며 사죄했다. 메르켈은 대국민 팟캐스트에 출연해 “아돌프 히틀러가 1941년 6월 22일 300만명의 독일군을 앞세워 소련을 침공했고 이로 인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등 구소련 지역에서 200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메르켈은 “우리는 몇 명 남지 않은 생존자들에게 겸허하게 고개를 숙이며, 화해의 손을 내밀어 준 많은 이들에게 깊이 감사한다”면서 “독일이 그들에게 한 짓을 생각하면 (화해는)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한편으로 메르켈은 “나치 독일의 범죄에 따른 독일의 변함없는 책임감에서 평화와 규칙에 기반을 둔 국제 질서를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생긴다”며 최근 러시아와 벨라루스에서 벌어지는 야권·언론 탄압상을 비판했다. 그는 “평화로운 시위자들과 야당이 차단된다면 우리 관계에 부담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독일과 유럽연합(EU)은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으로 국제법을 위반하고 유럽의 전후 질서를 불확실하게 하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독소전쟁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역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구소련에서만 민간인 포함 2900만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2차 세계대전 사망자 5000만명 중 60%가 동부전선에서 희생됐던 것이다. 구소련과의 불가침조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기습공격을 감행한 독일이 독소전쟁 초반 승기를 잡았지만, 독일군의 보급로가 막히고 혹한기가 찾아오며 전세가 역전됐다. 전쟁은 1945년 5월 9일 구소련이 베를린을 함락시킬 때까지 약 4년 동안 이어졌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6·19 흑인 독립기념일… “인종정의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

    6·19 흑인 독립기념일… “인종정의는 계속 나아가고 있다”

    올해 노예해방 기념일 연방 공휴일로美 전역서 흑인 역사 전시회 등 축제“첫 흑인 여성 부통령 등 달라졌지만경찰·사법 개혁 등 남은 과제들 많아”“텍사스주에서 마지막 노예가 해방된 ‘준틴스데이’(Juneteenth Day·6월 19일)가 156년 만에 연방 공휴일이 된 것을 자축하려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왔습니다. 미국이 이제야 변화의 시작점에 섰습니다.” 1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BLM(Black Lives Matter·흑인 목숨도 소중하다) 광장에서 만난 흑인 할림 프랫(45)은 “조지 플로이드를 무릎으로 눌러 사망케 한 데릭 쇼빈은 유죄를 받았지만 ‘흑인은 범죄자’라는 경찰의 편견은 여전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올해부터 ‘흑인의 독립기념일’로 불리는 준틴스데이를 12번째 연방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미 전역에서 각종 기념행사가 성대하게 벌어졌다. 현지에서 만난 흑인들은 지난해 5월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생긴 적지 않은 변화를 인정하면서도 경찰 개혁, 사법 개혁 등 남은 과제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날 국립 아프리칸 아메리칸 역사문화박물관 앞에서 만난 흑인 캔디스(17)는 “박물관 관람 예약이 마감돼 못 들어가 아쉽다”면서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흑인들이 권리를 투쟁하려 거리에 섰고 공부를 했다. 우리 자신에 대한 관심이 커진 증거”라고 말했다. 위스콘신주 라신에서 온 키샤 피비(31)는 “내가 사는 곳은 커노샤에서 15분 거리에 있다. 커노샤는 지난해 자신의 세 아이 앞에서 경찰의 총격을 맞은 제이컵 블레이크 사건으로 큰 시위가 있었던 곳”이라며 “경찰들은 불기소 처분을 받았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그는 커노샤 흑인 시위 때 자경단을 자처하며 총기를 발사해 흑인 2명을 사망케 한 백인 카일 리튼하우스에 대해 “옷이나 기념품을 판매하는 등 드러내 놓고 그를 돕자는 백인들이 여전히 많다”고도 했다. 10대인 리튼하우스는 지난해 11월 거액의 보석금(200만 달러·약 22억원)을 내고 풀려난 상태다. 그럼에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이날 흑인 대량학살이 있었던 오클라호마주 털사에서 재선 유세를 잡았다가 역풍으로 연기했던 것과 비교할 때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버지니아주에 사는 흑인 피치스(39)는 “아쉬운 점이 있어도 분명 인종 정의는 앞으로 나아갔고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했다. 이날 미 전역에서는 흑인 역사 전시회, 음악회, 퍼레이드 등이 열렸다. 연방공휴일 제정을 위해 수십 년간 이날마다 시민들과 ‘2.5마일 걷기’를 해 온 텍사스주 포트워스의 여성운동가 오팔 리(94)는 같은 행사에 참석해 “하얀 것도 검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미국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바이든은 전날 포고문에서 “미 국민에게 남북전쟁의 종식과 흑인들의 해방을 인정하고 축하하며 우리의 건국 이상과 공동 번영을 여전히 훼손하는 체계적 인종주의를 근절하기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전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것은 1863년이지만, 남부연합 소속인 텍사스주는 연방과 맞서며 1865년 6월 19일에야 노예해방을 선포했다. 이후 이날은 ‘6월’(June)과 ‘19일’(Nineteenth)을 합쳐 준틴스데이로 불려 왔다. 이듬해 6월 19일 텍사스주에서 기념행사가 열린 뒤 미 전역의 축제로 발전했고, 1980년 텍사스주가 처음 공휴일로 지정한 뒤 47개주 및 워싱턴DC가 대열에 동참했다. 그간 연방공휴일 지정 논의는 공무원의 유급휴가 증가로 인한 인건비 부담 등을 우려해 지지부진했지만, 지난해 흑인 시위를 계기로 급진전됐다. 이번 연방 공휴일 지정은 1983년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데이’ 후 38년 만이다. 워싱턴 이경주 특파원 kdlrudwn@seoul.co.kr
  • 이스라엘 “이란 대통령 당선인은 ‘테헤란의 도살자‘” 강경 보수로 회귀

    이스라엘 “이란 대통령 당선인은 ‘테헤란의 도살자‘” 강경 보수로 회귀

    이스라엘은 지난 18일(이하 현지시간) 실시된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강경 보수 성향의 세예드 에브라힘 라이시(61)가 핵무기 개발에 전념할 것이라며 경계했다. 야이르 라피드 이스라엘 외무장관은 19일 트위터에 “‘테헤란의 도살자’로 알려진 이란의 새 대통령은 이란인 수천명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며 “그는 이란 정권의 핵 야욕과 글로벌 테러에 전념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오는 8월 초 취임하는 라이시 당선인이 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이후 당시 최고지도자였던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의 지명을 받아 반체제 인사 숙청을 이끌었던 점을 지적한 것이었다.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에 따르면 그는 테헤란 근처 감옥들에 수감돼 있던 5000명 가량의 죄수들에 극비 사형 판결을 언도한 “죽음 위원회” 4명의 판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이들이 묻힌 공동묘지는 당국이 철저히 체계적으로 은폐했다. 그는 또 2009년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부정선거 의혹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인 ‘녹색 운동’을 유혈 진압하는 데도 앞장섰다. 당시 체포된 시위 가담자 가운데 일부는 국가 전복·간첩 혐의로 처형됐다. 1960년 이슬람 시아파 성지이며 이맘 레자의 영묘가 있는 마슈하드 인근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10대 시절 그는 정규 교육을 그만두고 중부 도시 콤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했다. 콤은 이란의 유서 깊은 종교도시다. 라이시는 현재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밑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70년대 팔레비 왕정 반대 시위에 참여했다. 그는 검찰 총장 등 요직을 거치며 2019년 삼부 요인 중 하나인 사법부 수장이 돼 대선 출마 직전까지 역임했다. 최고지도자가 사망하거나 유고 시 후임을 결정하는 권한이 있는 국가지도자운영회의 부의장이기도 하다. 이란 정가에서는 그를 유력한 차기 최고지도자 후보로 꼽는다. 서방은 이란의 사형 제도를 지지하며 반체제 인사 숙청에 앞장선 라이시를 잔혹한 인물로 묘사한다. 뉴욕에 본부를 둔 이란인권센터는 그에 대해 “국가 정책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감금하고 고문하고 제거하는 체제의 주축”이라고 비판했다. 중동 전문매체 알모니터는 그가 1980년대 후반 수천명의 반체제 인사 숙청에 있어서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행정부는 2019년 “청소년 시절 저지른 범죄에 대한 사형 집행, 죄수 상대 고문 등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조치“를 했다는 이유로 라이시를 제재 대상에 올렸고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AP 통신은 라이시에 대해 인권 활동가와 그들의 가족을 구금하고 이를 서방 국가와 협상 카드로 이용한 것을 감독한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2017년 대선에 출마한 라이시는 현직 하산 로하니 대통령과 대결해 38% 득표에 그쳐 패한 바 있다. 라이시는 이번 선거 운동 과정에서 “빈곤과 부패, 굴욕과 차별”을 뿌리 뽑겠다고 천명했다. 리오 하이앗 이스라엘 외무부 대변인도 성명을 통해 18일 이란 대선 투표율 48.8%와 관련,“절반도 못 미치는 이란 유권자들이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대통령을 선출했다”며 “라이시 선출을 통해 진실로 사악한 이란의 의도가 명확해졌다”고 주장했다. 성명은 이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은 즉시 그리고 영원히 중단돼야 한다.또 이란의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도 해체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대선을 관리한 이란 내무부는 라이시가 1792만 6345표(약 61.9%)를 얻어, 경쟁 상대인 개혁파 압돌나세르 헴마티(242만 7201표·약 8.4%) 후보를 크게 앞섰다고 밝혔다. 혁명수비대 출신 모센 레자에이 후보는 341만 2712표(약 11.8%)로 3위를 차지했다. 전체 유권자 5931만 307명 중 2893만 3004명이 선거에 참여해 최종 투표율은 48.8%로 집계됐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치러진 대선 투표율 중 가장 낮다. 2017년 대선 투표율은 70%에 이르렀다. 투표율이 저조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영향에다 일부 보이콧 열풍이 겹쳐서다. 당선 확정 후 라이시는 취재진에게 “현 정부의 경험을 활용해 국가의 문제들을 푸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며 특히 민생 문제를 챙기겠다”고 말했다. 로하니 대통령은 내무부 발표 직후 라이시를 찾아 회담하고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개혁파 후보 헴마티는 이날 인스타그램에 “제13대 대선에서 라이시 후보가 당선된 것을 축하한다. 당신(라이시)의 정부가 명예로운 이란인의 생계와 행복을 증진하기를 바란다”다고 썼다. 레자에이 후보도 이날 성명을 내고 라이시의 당선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어제 승리의 위대한 승자는 이란 국민이다. 이란 국민은 적의 용병 역할을 하는 미디어의 프로파간다에 직면해 봉기했기 때문”이라고 평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아랍에미리트(UAE) 총리 겸 두바이 군주 등도 라이시의 당선을 축하하는 메시지를 보냈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美하원, 대통령 무력사용권 폐지 가결…‘끝없는 전쟁’ 막아질까

    미국 하원은 17일(현지시간) 대통령이 전쟁 허가권을 사실상 갖도록 한 무력사용권(AUMF)을 폐지하는 조치에 들어갔다. 하원은 이날 2002년에 이라크 전쟁을 선언할 권한을 백악관에 준 AUMF 폐지에 대한 표결 결과 찬성 268표, 반대 161표로 처리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미국 헌법상 전쟁 승인 권한은 의회에 있지만 미국은 1991년 걸프전과 2001년 9·11 테러 직후 아프간전에 이어 2002년에 이라크 전쟁과 관련해 대통령이 적절한 모든 수단을 쓸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하는 AUMF 조항을 만들었다. 이후 미국 대통령은 이를 근거로 의회와 협의 없이 해외에서 군사력을 활용하면서 대통령이 미국의 ‘끝없는 전쟁’을 허용한다는 비판론에 휩싸이기도 했다. CNN은 “이날 표결 지지자들은 9·11 이후 대통령에게 부여된 광범위한 전쟁 권한을 억제하려는 첫 조치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표결은 백악관과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 일각에서도 대거 찬성표를 던지면서 초당적 지지를 반영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전했다. 최종적인 폐지를 위해서는 상원의 승인과 대통령의 최종 서명이 필요하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번 폐지 조치를 지지하면서 올해 안에 상원 표결을 위해 법안을 내놓겠다고 밝혀왔고, 바이든 대통령 역시 미 대통령의 전쟁 허가권과 같은 권한을 줄이기 위해 협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민주당 소속의 그레고리 믹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오늘의 역사적인 표결은 전환점이 될 것”이라며 “의회가 더는 우리나라가 내릴 수 있는 가장 중대한 결정들을 부차적인 것으로 두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 대통령에게 사실상 전쟁 허가권이 넘어간 뒤 의회가 거의 10년간 이를 없애려 했지만 버락 오바마,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는 이를 반대했었다. 의회는 대통령에게 주어진 이런 권한이 때론 존재하지도 않았던 테러 집단을 겨냥해 승인되는 등 원래 취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왜곡됐다고 주장해왔고, 행정부는 변화하는 위협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버텨왔다. 폐지 반대론자는 대통령 권한 제한으로 미국이 중동에서 손은 뗀다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라고 우려하는 등 상원 표결 전망은 불확실하다고 로이터통신은 전했다. 앞서 하원 외교위 공화당 간사인 마이클 맥콜 의원도 “AUMF를 이란이라는 역내 위협이자 현재의 위협을 반영해 업데이트할 필요가 있다”고 했지만, 믹스 의원은 “다른 것으로 대체할 필요가 없다. 제거만 하자”며 반대했다.연합뉴스
  • [책꽂이]

    [책꽂이]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존 돈반·캐런 주커 지음, 강병철 옮김, 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펴냄) 미국 언론인 출신인 두 저자가 지난 80년간 향상된 자폐증 어린이의 권리와 자폐아 가족들의 눈물겨운 희생의 역사를 조명했다. 자폐증은 여전히 수수께끼지만 최근에는 자폐 당사자가 자신을 대변해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등 변화의 움직임이 보인다고 설명한다. 864쪽. 4만원.관계의 미술사(서배스천 스미 지음, 김강희·박성혜 옮김, 앵글북스 펴냄) 미국 비평가의 시각으로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예술가 8명과 이들 간 라이벌 관계를 탐구한다. 마네와 드가, 마티스와 피카소 등 거장들이 창작 활동을 하게 된 원동력은 이들이 각자의 라이벌에게 느끼는 우정, 경외, 질투, 욕망 덕분이라고 주장한다. 440쪽. 2만 2000원.생명의 물리학(찰스 S 코겔 지음, 노승영 옮김, 열린책들 펴냄) 영국 우주생물학자이자 에든버러대 교수인 저자가 물리 법칙이 생명 현상에 관여하고 생명의 진화 과정에 미친 영향을 탐구했다. 저자는 생물마다 세포의 크기가 왜 비슷한지, 모든 생명이 규소 대신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이유 등이 모두 물리 법칙과 관련돼 있다고 밝혔다. 488쪽. 2만 5000원.사파 구하기(와리스 디리 지음, 신혜빈 옮김, 열다북스 펴냄) 소말리아 출신 여성 인권 운동가 와리스 디리가 아프리카 지부티의 한 빈민가 출신 일곱 살 소녀 사파 누르를 구한 여정을 담았다. 저자는 강제로 성기 훼손을 당할 위기에 처한 사파를 통해 아프리카·중동에서 매일 8000명의 여아가 할례 관습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고발한다. 408쪽. 1만 7000원.북극 이야기, 얼음 빼고(김종덕·최준호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북극전문가와 언론인 출신인 두 저자가 현지 조사와 연구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 사는 곳’으로서 북극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러시아 사하공화국 이누이트 사람들의 삶과 지구 온난화 문제, 자원을 둘러싼 각국의 경쟁 등을 살펴본다. 236쪽. 1만 5000원.붉은 마스크(설재인 지음, 아작 펴냄) 수학 교사 출신 설재인 작가의 SF 장편소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날 급속도로 퍼진 전염병 때문에 텔레파시를 얻게 된 새로운 존재들이 출연한다. 세상은 붉은 마스크를 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뉘어 멸망을 향한 전쟁을 치른다. 320쪽. 1만 4800원.
  • “교과서 밖 독립군 아시나요” 역사 해설 나선 강북구청장

    “교과서 밖 독립군 아시나요” 역사 해설 나선 강북구청장

    모든 직원들 특별사진전 관람 추진해외동포 독립운동의 흔적 더듬어 박 구청장 “모든 구민 함께 봤으면”“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이 일본군 무기보다 신식인 러시아와 체코제 무기를 사용할 수 있었던 건 다 최재형 선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는 최근에서야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로 조명을 받게 됐습니다. 이전까진 안중근 의사의 후원자 정도로밖에 알려지지 않았죠.” 박겸수 강북구청장이 지난 10일 수유동 근현대사기념관에서 한 장의 사진 앞에 선 직원들에게 다소 흥분한 목소리로 이같이 설명하고 있었다. 이날은 박 구청장이 전 직원에게 이곳에서 오는 8월 30일까지 열리는 쿠바 한인 이주 100주년 기념 특별사진전 ‘기억, 잃어버린 역사의 흔적을 찾아서’를 관람하게 한 첫날이었다. 박 구청장은 코로나19 방역을 고려해 직원들이 하루 2회 최대 20명씩 사진전을 관람하도록 추진했다. 관람하는 직원에겐 상시학습 교육시간으로 2시간을 인정한다. 이날처럼 박 구청장이 깜짝 해설사로 나서기도 한다. 일성 이준 열사, 의암 손병희 선생, 성재 이시영 선생 등 애국·순국선열 16위 묘역이 있는 강북구에서 박 구청장의 근·현대사에 관한 열정은 널리 알려졌다. 그가 앞장서 건립한 근현대사기념관에선 2016년 ‘백범 김구 독립운동 특별전’, 2019년 독립운동 특별전, 지난해 ‘신흥무관학교와 독립전쟁’ 학술회의 등 굵직한 행사가 열렸다. 초대 국회의장 신익희 선생, 1호 검사 이준 열사,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 최초의 국군인 광복군 합동묘소, 초대 부통령 이시영 선생 등 우리나라 ‘초대’를 역임한 선열의 묘역을 잇는 순례길인 ‘초대길’을 정비한 것도 박 구청장이다. 사진전에선 하와이 사탕수수밭, 멕시코 에네켄 농장, 중앙아시아 집단농장에서 모은 정성으로 독립운동 자금을 댔던 동포들의 흔적, 해외에서 활동하며 독립을 꿈꿨던 운동가들이 숨져 간 자리를 볼 수 있다. 연해주 우수리스크에 있는 최재형 가옥, 중국 왕청현 만주벌판 깊은 계곡에 있는 동굴에 그려진 태극기와 ‘대한독립군 이준, 양희, 지승호, 장태호’라는 글자도 사진전 한쪽을 차지하고 있다. 김동우 작가는 사진을 찍기 위해 쿠바, 멕시코, 미국, 네덜란드, 인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중국, 일본 등을 돌아다녔다. 박 구청장이 전 직원 관람을 지시한 것은 사진전이 교과서에 실리지 않은 독립운동 현장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는 “일제에 붙어 떵떵거리고 살던 사람들이 있었던 반면, 외국에 나가서도 오직 나라를 위해 삶을 바쳤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알면 가슴이 찌릿하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구청 직원뿐 아니라 구민 모두 관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기획] ‘수탈과 분단‘, 질곡의 역사 한눈에… 철원 ‘소이산’

    [기획] ‘수탈과 분단‘, 질곡의 역사 한눈에… 철원 ‘소이산’

    국내에서 아주 멀리 무한대 지평선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얻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온통 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지리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평지에서조차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가 숲을 이루고 있어 이 거대한 문명(?)의 벽을 뚫고 저 멀리까지 내다볼 도리가 없다. 최근엔 미세먼지까지 극성을 부려 맑은 날씨가 아니면 이마저도 볼 수 없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 ‘소이산’ 정상 무한감동 쓰나미…웅장한 평강고원, DMZ 한눈에 무의식 속, 이런 기회에 대한 체념이 굳게 자리 잡아가던 어느 날 남북 분단의 아픔과 긴장감을 실감할 수 있는 접경지역, 강원 철원의 한 나지막한 산에 다다랐다. 거친 호흡과 함께 제법 가파른 산길 오르기를 20여분, 정상에 서는 순간 홀연히 맞이한 놀라움에 온통 머릿속이 하얘졌다. 이 정도 높이에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수십 리가 뻥 뚫린 평야의 경이롭고 장쾌한 광경은 퇴화하던 눈마저 번쩍 뜨이게 하는 기적을 일으켰다. 동시에 체화(體化)됐던 체념의 벽도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막 정상에 오른 찰나였지만 감정의 흐름은 마구 요동쳤다. 예기치 못한 신선한 충격에 온통 정신이 혼미하고 멍해지기를 잠깐, 이젠 무한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그 순간이 지나 겨우 정신을 차리자 비로소 말문이 트이고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와~ 대단하다. 멋지다! 굉장하다!” 온갖 머리를 짜내 지금까지 살아오며 익히고 써왔던 모든 표현 중에 적절한 말을 찾아보려 애쓰지만 궁색하기 그지없다. 이런 대형 사고를 친 범인(?)은 민통선 바로 옆에 위치한 야트막하고 보잘 것 없는 ‘소이산’(362m) 이었다. 400m가 채 안되는, 이름조차 생경한 이곳 정상에서 바라본 드넓은 산야의 모습은 감동적이고 웅장했다. 거대한 대지와 무한의 하늘이 맞닿은 평강·철원고원의 경이로운 모습은 가히 장관이었다. 막힌게 하나 없어 사방 수십리가 탁 트인,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은 마치 만주 벌판에 온 듯한 착각에 빠트린다. 이런 감동의 맨 끝엔 ‘분단’이란 현실이 만들어 낸 오묘하고 복잡한 감정이 은연히 솟구친다. -사철 자연 옷 갈아입는 ‘멋쟁이’…열하분출 드넓은 용암대지 형성면적 600여㎢, 평균 해발 320m의 거대한 평강·철원평야 일대를 두루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곳 소이산. 그 정상에서 바라본 드넓은 평야는 철따라 자연의 옷을 갈아입는 ‘최고 멋쟁이’였다. 봄철이면 가둬 놓은 논물이 반사돼 은빛 세계를 이루고, 모내기가 끝난 드넓은 평야는 푸른 물결 일렁이는 바다가 된다. 한여름 한껏 무성해진 벼는 가을 접어들어 알알이 영글은 나락으로 바뀌며 황금 물결 친다. 겨울철 눈이 내려 순백의 세상으로 변한 들판은 월동을 위해 찾아온 멸종 위기종 재두루미 등 철새들의 천국으로 변한다. 이런 감동을 주는 거대한 용암대지는 언제, 어떻게 탄생했을까? 수천만 년 전 북녘땅 평강, 세포군 두 지역에서 일어난 미약한 화산 중심분출(中心噴出)은 그 형성의 시작이다. 평강 오리산(458m)과 세포 검불랑 북동쪽 680봉이 바로 그 폭발의 중심지역이다. 이후 몇 차례에 걸쳐서 평강, 철원 지역 추가령 열곡(길게 갈라진 틈)에서 열하분출(裂罅噴出)이 이어졌다. 검붉은 용암은 낮은 곳으로 흐르고 흘러 수백리에 이르는 지역을 뒤덮고 서서히 식어 광활한 대지를 형성했다. 화산 중앙에서 솟구치는 폭발이 아닌 길게 갈라지 틈에서 나온 용암이 대지를 뒤덮은 것이다. 기존 하곡이 용암에 묻히면서 하계망(河系網) 혼란과 분수계(分水界)에 변화가 일어났다. 중심분출이 있었던 두 곳은 북한 안변 남대천 그리고 임진, 한탄, 북한강 분수계의 중심지역이 됐다. 아주 오랜 세월 내린 비와 눈은 낮은 곳을 찾아 흐르며 침식작용을 일으켰고 마침내 하계망을 재편했다. 이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임진, 한탄강의 멋진 주상절리다. 중심분출이 일어난 평강에서 철원 방향 평야지대 경사는 2~3° 정도로 점차 낮아지는 지세를 이뤘다. 이 복잡하고 긴 과정이 평강·철원고원이 형성된 지리, 지형학적 역사의 대략이다. -북녘땅 평강, 철의 삼각지대 격전지 한눈에 조망60여년간 일반인 출입이 통제됐던 소이산 정상에 서면 북녘땅 평강 오리산과 읍 소재지 중심에 있는 호암산(574m), 한탄강 분수령을 이루는 백암산(1110m), 낙타고지(565m) 등을 조망할 수 있다. 궁예가 새 도읍 진산으로 정했던 일명 김일성고지 고암산(780m)도 또렷하다. 소이산에서 평강읍까지 직선거리로 대략 20km, 평야 지대여서 맑은 날이면 지척에서 보듯 북녘땅을 관찰할 수 있다. 갈래야 갈 수 없는 미지의 땅 언젠가는 꼭 가야 할 우리의 또 하나의 소중한 영토다. 남녘땅 철원 지역에도 볼거리는 다양하다. 일제 때 축조한 산명호저수지, 경원선 단절로 폐역사가 된 철원·월정리역, 최북단에 있어 비무장지대를 코앞에서 볼 수 있는 평화전망대를 정상에서 살펴볼 수 있다. 한때 철원역은 금강산행 기차를 타려는 관광객들로 붐볐던 곳이다. 철원에서 장안사가 있는 내금강역까지 운행하던 금강산전기철도 시발역이었던 까닭이다. 1924년 일제 강점기 때 개통했으나 6.25전쟁 발발 이후 군사분계선이 설치되면서 운행 중단됐다.동족상잔 비극의 현장인 철의 삼각지대, 6.25전쟁 주요 격전지도 살펴볼 수 있다. 6.25전쟁 당시 피비린내 나는 격전지였던 백마고지가 정상 왼쪽에 선명하게 보인다. 중공군의 대공세에 의해 10여일간 지속된 전투는 30만발의 포탄을 퍼부었고 고지 주인은 무려 20번이 넘게 바뀔 만큼 치열했다. 이 전투에서 국군 3000여명, 중공군 1만 4000여명이 전사했다. 백마고지 동쪽 8km 지점엔 또다른 격전지 아이스크림 고지가 있다. 높이가 223m였으나 집중포격으로 표고가 3m나 깎여 나갈 정도로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야생동물만 오가는 군사분계선‥무거운 정적만소이산 정상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비무장지대(DMZ)의 생생한 모습을 가까이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다. 금단의 아픔을 지난 비무장지대는 울창한 숲으로 뒤덮혀 넓고, 긴 녹색 띠를 형성하고 있다. 드넓은 평야지대를 두 동강 낸 비무장지대에는 젊은 남북의 초병들이 총부리를 들이대고 대치하고 있는 비극의 현장이다. 한민족의 아픔과 생채기를 간직하고 있는 분단의 상징은 보는 이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민간인 출입이 금지된 비무장지대는 남북의 군사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완충지대로 오랫동안 야생 상태로 방치(?)돼 왔다. 덕분에 자연환경과 생태계가 완벽하게 보전되는 특혜(?)를 누려 생명의 공간이 됐다. 2700종이 넘는 야생동식물과 80여종의 멸종위기종이 서식하고 있다. 하천과 습지가 잘 발달한 이곳에는 이념과 사상으로부터 자유로운 야생동물들만이 먹잇감을 찾아 자유롭게 군사분계선을 오갈 수 있을 뿐이다.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일촉즉발 긴장감이 반세기가 훨씬 넘게 무겁게 흐르고 있다. 남북 경계초소(GP)에 내걸린 태극기와 인공기가 서로 마주보고 노려보는 듯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DMZ 내 철원성 전각 사라지고 군 시설이 대체정상에 서자 ‘아는 만큼 보인다’는 격언이 새삼 와닿는다. 역사, 지리, 인문학적 소양이 없다면 정상에서 바라본 전망은 그저 기념사진과 동영상을 찍기 위해 필요한 아름다운 풍경일 뿐이다. 비무장지대 한가운데 태봉국 군주인 궁예가 세웠다는 궁궐터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모른다며 말이다. 둘레가 무려 13km(내성 7.7km)에 달하는 태봉국 도성 철원성은 무성한 숲에 덮여 방치된 채 비무장지대에 남아있다. 스스로 미륵불이라 칭했던 궁예가 철원으로 천도하면서 당시 풍천원(현 홍원리)에 건설한 대규모 도성이다. 이처럼 평지에 쌓은 성은 발해나 중국에서나 볼 수 있다. 해방 당시 내성에는 궁궐터 포정전지와 국보 118호였던 석등이, 외성 남벽에 남대문지와 석탑, 귀부 등이 남아 있었으나 지금으로선 확인할 방법이 없다. 도성 위치는 절묘하게도 비무장지대 안에 있으며 그 중간을 군사분계선이 지난다. 일제 강점기에 건설한 경원선은 외성 한가운데를 남북으로 통과한다. 현재 철재 궤도는 모두 제거되고 제방만 남아 있다. 남북이 양분하고 있는 도성의 조사와 연구는 한민족 공통 과제다. 하나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선 본격적인 발굴조사는 요원해 보인다. 궁궐 내 전각은 온데간데없이 모두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엔 군사시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안타까움만 더해진다. -질곡의 근현대사 지닌 철원‥일제 강점기, 6.25전쟁 아픔 간직민통선 내에는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된 일제 강점기와 해방 직후 지은 근대 건축물이 여럿 있다. 저수지 산명호 얼음을 저장했던 콘크리트 구조물 ‘얼음창고’, 수탈적 성격의 식민 금융기관인 ‘제2 금융조합’, 해방 직후 북한 통치하에 지역주민 노동력과 자금을 강제해 지어진 ‘노동당사’ 등 건축물과 터가 구 철원 시가지 민통선 안팎에 남아 있다. 일제 강점기와 6.25전쟁(한국전쟁) 당시 수탈과 만행의 현장이자 사라진 도시 철원의 자취를 보여주는 유적으로 전쟁의 상흔까지 남아 있어 역사적 의미가 크다. 점철된 질곡의 근현대사를 지닌 철원은 일제 강점기 경원선 개통과 근대적인 수리시설 축조로 교통·물류, 농업생산의 중심지로 급부상했다. 제대로 된 관개시설이 없던 철원평야는 알려진 바와 다르게 한탄강 수량 한계 때문에 척박했던 곳이다. 평강에 수리시설 ‘봉래호저수지’를 준공한 이후 비로소 땅이 비옥해져 농업 생산력이 한층 높아졌으나 일제의 수탈과 착취가 이어졌다. 1945년 해방을 맞았으나 철원은 북한에 편입되면서 주민에 대한 노동력 착취, 사상통제와 감시 등 고통은 계속됐다. 이후 6.25전쟁으로 폐허가 된 구 철원은 휴전협정으로 땅이 두 동강 나는 아픔까지 겪는다. 오래전 이곳에서 터전을 일궈온 주민들은 고향을 등지고 뿔뿔이 흩어졌고 그 고통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글·사진 남상인 기자 sanginn@seoul.co.kr
  • [월드피플+] 6·25참전 미군 71년만에 가족 품으로…北 유해 상자서 신원 확인

    [월드피플+] 6·25참전 미군 71년만에 가족 품으로…北 유해 상자서 신원 확인

    6·25전쟁(한국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유해가 71년 만에 가족 품으로 돌아갔다. WSPA 보도에 따르면 15일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앤더슨 출신 윌리엄 빌리 맥컬럼 상등병의 유해가 고향에 도착, 장례 절차가 시작됐다. 1931년 6월 19일 태어나 17살에 미 육군에 입대한 맥컬럼 상등병은 31연대전투단 32보병연대 1대대 도그중대원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1950년 12월 2일 미국 역사상 최악의 전투라 불리는 ‘장진호 전투’에서 실종된 것으로 보고됐다. 1953년 12월 31일 공식 사망선고가 내려졌으나 유해는 끝내 찾지 못했다.맥컬럼 상등병의 유해는 2018년 북미정상 간 싱가포르 합의에 따라 미국으로 송환된 55개 상자에서 일부 발견됐다. 같은해 8월 1일 추모식 직후 신원확인작업에 돌입한 미국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은 2019년 9월 11일 유전자(DNA) 분석을 통해 맥컬럼 상병의 신원을 확인했다. 이역만리 한국의 전장에 청춘을 바친 맥컬럼 상등병은 71년만인 15일 극진한 예우 속에 사우스캐롤라이나 앤더슨 고향집으로 돌아갔다. 여동생 프랭키 카인은 “마침내 오빠가 집으로 돌아왔다”면서 “공항에서부터 집까지 오빠의 유해가 운구되는 동안 참전용사에 대해 경의를 표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한다. 지역사회에서 이렇게 지지해주실 줄 몰랐다. 영광”이라고 말했다.맥컬럼 상등병의 유해는 현지 장례식장에 안치돼 있으며, 오는 17일부터 이틀간 추모식 후 고인의 생일인 19일 장례식이 거행될 예정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미군 유해송환에 합의했다. 북미정상회담 공동성명 제4항에 ‘북미는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전쟁포로, 전쟁실종자들의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고 명시됐다.미군 유해가 담긴 상자 55개를 인도받은 미국은 활발한 신원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 15일 현재까지 한국전 참전용사 76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KFVS 보도에 따르면 가장 최근에 신원이 확인된 사람은 미주리주 출신의 로이드 A. 앨럼보우 병장이다. 제7보병사단 7의무대대 앰뷸런스 중대 소속으로 한국전에 참전한 앨럼보우 병장 역시 1950년 11월 28일 장진호 전투에서 실종됐다. 현지언론은 병장의 유해가 6·25전쟁 71주년인 오는 25일 고향땅에 묻힐 예정이라고 전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中 역사미화 본격화…“마오쩌둥 아들 죽음, 볶음밥 때문 아냐”

    中 역사미화 본격화…“마오쩌둥 아들 죽음, 볶음밥 때문 아냐”

    중국이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과거사 미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5일(현지시간) 공산당 역사에 대한 허무주의 시각에 대응하라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시를 받은 중국역사연구원이 과거사 미화의 전면에 나섰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오쩌둥(1893~1976)의 장남 마오안잉(1922~1950)이다. 그는 한국전쟁 때인 1950년 11월 25일 평안북도 동창군 대유동에서 미군 전투기 폭격으로 숨졌다. 전날 두대의 미군 정찰기가 중국군의 위치를 탐지한 뒤 다음 날 정오에 4개의 네이팜탄을 투하했는데, 그 중 하나가 마오안잉이 있는 곳에 떨어졌다. 지금까지의 정설은 마오안잉이 막사에서 계란 볶음밥을 만들다가 위치가 노출돼 폭사했다는 것이다. 방공수칙을 어기고 불을 피웠다가 연합군 폭격기의 눈에 띄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계란 볶음밥은 지금도 중국인들에게 ‘마오안잉의 음식’으로 여겨진다. 지난 2003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공식 발간한 비망록에도 이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러나 중국역사연구원은 지난해 11월 소셜미디어를 통해 “계란 볶음밥을 만들다가 폭격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마오안잉의 죽음을 희화화는 헛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마오안잉의 위치가 알려진 것은 부대 사령부의 무전이 노출됐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마오안잉과 함께 사망한 가오루이신의 딸 양옌쿤도 현장 목격자인 작전실 주임 청푸에게 문의해 “당시 작전실에는 달걀이나 프라이팬이 없었다”는 답을 받았다. 마오안잉이 계란 볶음밥을 만들어 먹다가 사망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이와 함께 공산당은 역사를 비판하는 세력에 대한 단속도 강화한 상태다. 중국의 사이버 감독기관인 중국 국가사이버정보판공실은 “일부 저의를 품은 이들이 온라인에서 역사적 허무주의와 관련한 유해한 정보를 퍼뜨리고 당의 역사를 악의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산당의 역사나 지도부를 비판하다가 단속되면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WSJ는 전했다. 중국 내부에서도 정치적인 목적을 위한 역사 왜곡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분위기다. 베이징의 한 역사 교수는 역사 미화 작업의 전면에 나선 중국역사연구원에 대해 “공산당 지도부에게 아부하고 승진하고자 학문의 길을 따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류지영 특파원 superryu@seoul.co.kr
  • 왜곡된 교과서·영화… 봉오동전투서 사라진 영웅 최진동·최운산

    왜곡된 교과서·영화… 봉오동전투서 사라진 영웅 최진동·최운산

    “아니, 어찌 이러오? 봉오동 독립전쟁도 청산리전투도 우리 아버지 최운산이 창설한 부대가 치른 전쟁이고, 총사령관은 큰아버지 최진동이지 않소? 어찌 한국에서는 봉오동 전쟁 총사령관은 홍범도라고 하고 청산리 전투 사령관은 김좌진이라고 하오?” 중국에 살던 최운산의 첫째 딸 청옥은 1990년대에 한국을 방문했을 때 TV를 보고 이렇게 흥분했다고 한다. 역사가 왜곡되거나 폄하되는 일은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독립운동사도 사료 불충분에 정치적인 이유가 더해져 그런 일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그중에서도 봉오동 전투는 진실과 괴리된 측면이 많다. 홍범도만 영웅이 된 데는 정치적 배경도 있고 잘못된 교과서의 탓도 크다. 극적 효과를 추구한 영화 ‘봉오동 전투’는 왜곡의 정점을 찍었다.●독립운동사 사료 불충분·정치적 이유로 왜곡 청옥의 말처럼 봉오동 전투는 사령관 최진동과 동생인 참모장 최운산이 지휘한 대한북로독군부가 이끈 전투였다. 김좌진과 홍범도는 각각 제1연대장, 제2연대장이었다. 교과서는 홍범도가 사령관으로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고 가르쳤다. 국민의 뇌리에 두 사람만 화석처럼 굳어져 남아 있는 이유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홍범도와 김좌진의 활약은 분명히 있었지만, 그들만을 영웅화하면서 최진동·최운산은 사라져 버렸다. 굳어진 인식은 바뀌기 어렵지만 그래도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후손이 있는 경우는 다르다. 최운산의 맏아들 최봉우는 광복 후 평양방송국 아나운서로 일하다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내려왔다. 그의 딸 최성주씨가 큰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파묻힌 역사를 추적하고 있다. 최씨는 지난해 ‘최운산, 봉오동의 기억’이라는 책을 펴내 진실을 세상에 알렸다. 최씨를 만나 독립운동에 바친 비운의 가족사를 들었다. 최진동 형제의 아버지 최우삼은 함북 온성이 고향으로 1860년에 태어났고 1880년 무렵 만주 옌볜 도태(道台)로 봉직했다. 도태는 조선 말기에 옌볜 지역을 다스리던 관리였다. 일제가 조선을 강점하자 최우삼은 일가를 이끌고 봉오동으로 이주, 한인 마을을 건설했다.최진동은 중국인 부호 밑에서 일해 큰 재산을 물려받았다고 한다. 만주 군벌 장쩌림 부대에 있었던 최운산은 장쩌림의 목숨을 구해 주는 등의 각별한 인연으로 봉오동 일대에 부산 면적의 6배나 되는 땅을 갖고 있었다. 또 국수 공장, 콩기름 공장, 양조장, 성냥 공장, 비누 공장을 운영했다. 대규모 목장도 소유해 러시아 군대에 곡물과 소를 수출하는 등 간도 제일의 거부(巨富)였다. ●홍범도 영웅 묘사한 영화 봉오동전투 ‘정점’ 형제는 1912년 비적들로부터 동포들을 지킬 목적으로 독립군의 모태가 되는 100여명 규모의 자경단을 만들었다. 또 봉오동 사관학교와 사관연성소를 창설해 독립군 지휘관들을 양성했다. 1915년에는 연병장과 막사를 만들고 두께가 1m가 넘는 토성을 건설해 독립군 기지를 구축했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난 1919년이 되자 최진동 형제는 670명 규모의 대한군무도독부를 창설해 본격적으로 독립전쟁을 시작했다. 임시정부가 출범하고 통합 논의가 일어 1920년 대한군무도독부를 비롯한 북간도 일대의 독립군 부대는 조직을 합쳐 대한북로독군부로 거듭났다. 최진동이 부장(府長·사령관), 둘째 최운산이 참모장, 셋째 최치흥이 참모가 됐다. 막대한 재력을 가진 최운산은 각 부대에 주둔지를 제공하고 식량과 피복을 지급했다. 또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해주까지 진출했던 체코군의 무기를 사들였다. 독립군들은 신형 무기로 체계화된 군사훈련을 받았다. 독립군들은 1920년 초부터 봉오동 전투가 일어나기 직전인 5월까지 두만강을 건너 일제의 관서를 수십 차례 공격했다. 일제는 대대적인 토벌 작전에 나섰다. 최진동 형제는 보름 전 전투 준비를 완료하고 적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한 달 전부터 주민들도 이주시켰다.대한북로독군부는 참호를 파고 의무부대도 후방에 배치하는 등 만반의 대비를 했다. 1920년 6월 7일 새벽부터 일본군은 봉오동을 습격했지만 그들의 패배는 예고된 것과 마찬가지였다. 157명의 사망자와 300여명의 부상자를 내고 패주했다.총사령관 최진동 등 지휘부는 최고봉인 봉초봉에 자리잡고 전투를 지휘했다. 전체 작전은 사령관 최진동과 참모들이 세웠다. 뒤늦게 합류한 홍범도는 작전을 준비할 위치도 아니었고 시간도 없었다. 홍범도도 격렬히 싸웠지만 어이없는 결정을 내렸다. 갑자기 그가 이끌던 2중대를 퇴각시킨 것이다. 이 바람에 자리를 사수하던 신민단 대원들이 수적 열세로 전사하고 말았다. 일종의 전술일 수 있지만 최진동은 항명이라며 홍범도를 엄벌하려 했고 동생 운산이 말렸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당시 독립군은 영화에서처럼 찢어진 군복을 입고 굶주린 게릴라가 아니라 기관총과 대포로 무장했으며 사격술이 뛰어난 정예군이었다. 전투가 끝난 후 일본군은 “적(독립군)은 전부 러시아식 소총을 갖고 탄약도 상당히 휴대하였으며 사격도 상당히 훈련되어 있다. 거리 측량이 불확실한 700~800m 거리에서도 사격을 하며…”라고 ‘봉오동부근전투상보’에 썼다. 거기에는 최운산의 부인인 김성녀와 봉오동 주민들의 헌신이 있었다. 김성녀는 수천 독립군의 식사를 제공하고 군복을 제조한 병참 책임자였다. 재봉틀 8대로 군복을 만들었다고 한다. 군복 모자에는 태극 견장이 달려 있었고 매화형 금장이 박힌 견장을 단 예복이 있을 정도였다. 최운산은 1930년대에도 무장 세력을 유지하며 우수리강 전투, 대황구 전투, 안산리 전투, 대전자령 전투 등을 이끌며 독립 투쟁을 계속했다. 1945년까지 대황구삼림지역에서 무장독립군을 양성했다. 1937년에는 보천보 전투의 배후로 지목돼 투옥됐다. 광복 직전까지 6번이나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받았다. 매번 극심한 고문을 당해 수레에 실려 나오곤 했다고 한다. 최운산은 광복을 한 달 열흘 앞둔 1945년 7월 5일 평양으로 갔던 길에 고문 후유증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최진동은 일제와 싸우는 동안 부인과 맏아들, 맏며느리를 잃는 아픔을 겪다가 1941년 일제의 압박과 감시 속에서 병마로 사망했다. 최진동은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3등급)을 받았다. 공훈에 비해 등급이 낮다. 최운산은 1977년에야 서훈(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으로 서훈이 올려졌지만 역시 너무 낮다. 홍범도는 2등급인 대통령장, 김좌진은 1등급인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왜 이렇게 최진동 형제는 낮은 서훈을, 그것도 늦게 받고 공적이 파묻혔을까. 최운산의 손녀 최씨는 이렇게 말했다. “1961년 보훈 업무 담당 직원이 최운산에게 서훈을 주는 대가로 뒷돈을 요구하자 격분한 아버지(최봉우)가 주먹을 날렸답니다. 그 바람에 서훈도 취소됐다고 합니다.” ●부인 김성녀, 군복 제조 병참 책임자 활동 또 최운산의 부인 김성녀는 정부에 낸 진정서에서 이렇게 썼다. “독립운동 당시 하급 지휘관 및 졸병으로 생존한 독립인사가 자신의 공적을 과대 선전하기 위하여 허무맹랑한 사실과 왜곡되고 과장된 조작 사실로 인하여 오점을 남겼으며 일생을 독립운동과 조국 광복을 위해 생명과 재산을 총투입하여 투쟁하였으나 공적이 뒤바뀌어져 있기에 독립운동을 하시고 생존해 계시는 분들의 양심에 호소합니다.” 이때가 1969년이다. 하급 지휘관이란 철기 이범석을 지칭한다. 이승만과의 친분으로 광복 후 초대 국무총리와 국방부 장관을 지낸 이범석은 ‘우둥불’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자신을 청산리 전투의 영웅으로 과장하고 최진동 형제의 공적을 깔아뭉갰다. 이범석은 당시 20세의 군사학교 교관이었다. 최씨에 따르면 최진동의 자녀가 역사를 소설처럼 써서 왜곡했다며 출판을 말리고 이범석과 다투기도 했다고 한다. 최씨는 “얼굴을 보면 최운산의 서훈을 거절하지 못할 것 같아 엄마(최운산의 며느리)가 당고모(최진동의 딸)와 세 번 찾아갔는데 만나 주지 않았다”고도 했다. 최진동 형제의 공적이 매장된 배후에는 이범석이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진동의 후손들은 중국과 미국에 살고 있다. 일부는 한국으로 들어와 어렵게 살고 있다. 최운산의 자녀들도 만주와 북한으로 흩어졌고 최운산의 부인과 아들 최봉우만 남한으로 내려왔다. 최봉우는 1984년 KBS 이산가족찾기 방송을 통해 만주에 있던 누나, 동생들과 극적으로 상봉했다. 최운산의 딸 계순과 아들 호석은 한중 수교 후 한국으로 들어왔다. 거부였던 최진동 형제가 모든 재산을 독립운동에 쏟아붓고 빈털터리가 되었는데도 중국에 남았던 후손들은 지주의 자식이라는 굴레를 쓰고 핍박을 받으며 힘든 삶을 살았다.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처럼. 논설고문 sonsj@seoul.co.kr
  • 일본 전범 유골 바다에 뿌려져…증손자 “다행, 헌화할것”

    일본 전범 유골 바다에 뿌려져…증손자 “다행, 헌화할것”

    일본의 미국 진주만 공격을 지휘했던 전쟁 범죄자 도조 히데키 일본 전 총리의 유골이 바다에 뿌려졌다는 소식에 유족들이 다행이라고 밝혔다. AP통신은 14일 사형당한 도조의 유골이 어디 있는지는 세계 2차 대전의 가장 큰 미스테리였다면서, 일본 대학의 한 교수가 미국 군사 문서를 통해 답을 밝혀냈다고 보도했다. 그동안 그와 함께 처형당한 전범 6명의 유골은 순교자로 떠받들여지는 것을 막고자 일본 요코하마에서 50킬로미터 동쪽의 태평양에 뿌려진 사실은 철저한 비밀로 부쳐졌다. 일본에 전쟁 패배는 아픈 상처인데다 보수집권층이 역사를 꾸며내려 시도하면서 중국과 한국 등에서 마찰을 빚고 있다고 AP통신은 지적했다. 니혼대 히로아키 다카자와 교수는 2018년 미국 워싱턴의 국립문서기록관리청이 보유한 기밀 해제 문서에서 전범들의 유골이 뿌려진 곳을 찾아냈다. 도조의 증손자의 도조 히데토시(48)는 “유해가 없다는 것은 유족에게 오랫동안 굴욕이었다”면서 “유해에 대한 정보가 드러나 안심된다”고 말했다.이어 “만약 그의 유골이 일본 영해 안에 뿌려졌다면 행운”이라며 “친구들을 초대해서 만약 유해가 뿌려진 장소가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혀진다면 헌화하며 묵념하겠다”고 덧붙였다. 증손자는 “증조할아버지에 대한 모든 것이 봉인됐다”면서 “유해를 보존하지 않는 것이 전범재판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도조 히데키는 일본 보수층에서는 애국자로 존경받지만, 2차 대전을 연장한 혐의로 서구에서는 증오의 대상이다. 1945년 8월 15일 히로히토 일본 국왕이 일본의 패배를 선언했을 때 도조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도쿄의 집에서 체포됐다. 다카자와 교수는 전범으로 4000명 이상이 기소됐고, 이 가운데 920명이 사형에 처해졌다며 전쟁 재판에 대한 조사를 더 할 예정이라고 했다. 신조 아베 전 총리가 참배했던 일본 도쿄의 야스쿠니 신사에는 전범들의 유해가 없다. 하지만 도조를 포함한 전범들의 위패가 이 곳에 합사되어 아직까지 신성시되고 있다. 미국의 기밀 문서에서 사형 집행 현장을 참관하고 기록을 남겼던 루서 프라이어슨 미군 소령은 한 톨의 유해도 남기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밝혔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세계 4위의 헬기 전력 자랑’ 육군항공작전사령부

    [김대영의 무기 인사이드] ‘세계 4위의 헬기 전력 자랑’ 육군항공작전사령부

    ‘항작사’로 알려진 육군항공작전사령부는 지난 1999년 4월 20일 창설된 육군본부 예하의 기능 사령부로 육군 항공대에 대한 통합 지휘 및 관리를 전담하고 있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전 세계 171개국의 군사력을 평가한 ‘밀리터리 밸런스 2021’에 따르면 육군항공작전사령부는 세계 4위 규모 500대 이상의 헬기 전력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된다. 미 육군이 3900여대의 헬기를 보유해 세계 1위를 기록했고, 이어 중국 육군이 1000여대 그리고 러시아 공군이 800여대를 운용하고 있다. 참고로 북한 공군은 280여대의 헬기를 보유 중이다. 육군항공작전사령부는 공격헬기인 AH-64E 아파치 가디언, AH-1S/F 코브라와 기동헬기인 UH-60P, 수리온 그리고 대형기동헬기인 CH-47D 치누크를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정찰 및 공격임무를 맡은 소형헬기인 Bo-105와 MD500를 운용 중이다. MD500 헬기는 정찰 외에, 토우 대전차 미사일을 탑재하고 적 전차를 잡는 공격헬기의 임무를 수행하기도 한다.육군항공은 지난 1948년 5월 5일 통위부 예하 항공부대 창설을 기점으로 7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통위부(統衛部)란 국방부의 전신으로 미군정 당시 국방과 경비를 전담하던 기구였다. 1948년 9월 13일 육군항공사령부가 창설되었고, 1949년 10월 1일 육군항공사령부의 일부 병력이 분리되어 공군이 창설된다. 1973년 1월 30일 육군에 항공병과가 창설되었고 1999년 4월 20일에는 지금의 육군항공작전사령부가 만들어진다. 육군항공작전사령부는 유사시 북한의 기습공격을 효과적으로 차단하고, 공격헬기를 공세적으로 운용하기 위해 창설되었다. 이를 위해 군단단위로 분산된 육군항공 헬기부대를 하나의 사령부로 통합했다. 또한 육군항공작전사령부는 자체적으로 공중강습작전을 실시하기 위해, 육군의 제203특공여단을 육군항공작전사령부에 배속시켜 제1공중강습여단으로 개편했다. 육군항공작전사령부는 창설 당시 헬기의 뛰어난 기동성을 이용, 후방지원과 2차 공격을 위해 평양-원산선 이북에 대기 중인 북한군 제108기계화 군단 등에 대해 단독 공격작전을 감행, 북한군의 전쟁지속능력을 마비시키는 임무를 맡게 된다.하지만 핵심 무기체계인 AH-X 즉 대형공격헬기 도입 사업이 정치적인 이유로 지연되면서 작전능력 확충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4월 대형공격헬기 도입 사업에 따라 AH-64E 아파치 가디언의 도입이 결정됐다. 이후 2017년 1월 아파치 가디언 36대 도입이 완료되면서 육군항공작전사령부 예하에 2개 아파치 공격헬기 대대가 창설됐다. 향후 대형공격헬기 2차 사업이 진행되면 추가로 2개 대형공격헬기 대대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육군항공작전사령부는 공격헬기 및 기동헬기 여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밖에 항공정비여단과 '메디온'으로 잘 알려진 의무후송항공대를 갖고 있다. 하지만 창설 초기와 달리 항공단 야전 군단 배치 계획에 따라 기존 7개의 항공단이 각 군단 직할 부대로 변경되었다. 이밖에 2017년 12월 1일 창설된 ‘흑매부대’ 즉 특수작전 항공단은 2019년 육군항공작전사령부에서 육군특수전사령부 직할부대로 변경되었다. 김대영 군사평론가 kodefkim@naver.com
  •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한강하구 ‘지뢰’ 위험지역…“개방 섣불러”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한강하구 ‘지뢰’ 위험지역…“개방 섣불러”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경기 고양시 한강하구에서 지뢰 폭발사고가 잇따르고 있어 개방이 너무 섣불렀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2일 서울신문 취재 결과 한강하구는 지난 4일 종류 미상의 지뢰가 폭발해 환경정화활동을 하던 50대 남성이 다리를 크게 다치는 등 지뢰 관련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해 7월에는 김포대교 아래 고양지역 한강변에서 70대 남성 낚시객이 의자를 설치하던 중 북한에서 떠내려 온 대인지뢰를 건드려 다리를 크게 다쳤다. 추가 수색에 나선 군 당국과 민간 업체는 9월에도 고양대덕생태공원 한강변 쓰레기 더미 안에서 한국전쟁 이후 유엔군 측이 접경지역에 뿌린 M14 대인지뢰 1발을 발견해 회수하는 등 지난 1년 동안 모두 3발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뢰는 평소 장마나 홍수 때 접경지역에서 떠내려 오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대인지뢰는 어디에 얼마나 묻혀 있는지 정확한 통계가 없는 데다, 지름이 5.5cm 안팎으로 작고 플라스틱으로 제작돼 탐지도 쉽지 않다. ‘발목지뢰’로도 불리는 M14 대인지뢰는 물에 뜨는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져 물살에 휩쓸리면 쉽게 떠내려갈 수 있고, 북한의 목함지뢰 역시 마찬가지라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장마 후 임진강이나 한강하구에서 자주 발견되는 목함지뢰는 살상력이 높다. 지난 2010년 8월 연천에서 폭우로 쓸려 내려온 목함지뢰를 주웠다가 1명이 숨지고 1명이 크게 다쳤다. 이후 3~4년간 수거된 목함지뢰는 260여 발에 달한다.이번 폭발사고와 관련 고양시와 환경단체는 한강하구 장항습지를 포함해 대덕생태공원(가양대교~방화대교), 행주산성역사공원(방화대교~행주대교), 고양한강공원(행주대교~김포대교) 일대에 대한 추가 폭발물 수색을 군부대에 요청했지만 장마철 등의 영향으로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때문에 장항습지는 당분간 개방이 어려운 상황이다.고양시는 한강유역환경청에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 장항습지 탐방을 전면 통제할 것을 요청했다. 현재 군과 경찰은 폭발물의 정확한 종류 등을 파악하기 위해 폭발 당시 파편들을 모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분석을 의뢰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분석 결과가 나오려면 최소 2∼4주가 소요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민간인 출입통제지역이었던 한강하구가 지난 2018년 민간에 개방되고 생태탐방로를 건설중인 것이 너무 섣불렀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장은 “이번에도 양구 인제 화천 등 비무장지대(DMZ)에 매설하거나 뿌렸던 대인지뢰가 쓰레기더미와 함께 한강하구로 떠내려 왔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지뢰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발견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고양 김포 강화 등 한강하구에서는 늘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상봉 기자 hsb@seoul.co.kr
  • 강창일 “강제징용 해결책 12가지 이상 있다…韓 도쿄올림픽 지지”

    강창일 “강제징용 해결책 12가지 이상 있다…韓 도쿄올림픽 지지”

    강창일 일본 주재 한국대사가 11일자 아사히신문과의 단독인터뷰에서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소송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밝힐 수 없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만 해도 12가지 이상”이라고 말했다. 한국대사 취임 후 처음으로 일본 언론과 공식 인터뷰한 강 대사는 ‘한국 측이 고려하는 해결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하며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기 전에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은 내년 3월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고 오는 11~12월쯤 대선 선거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며 “(대선 기간) 일본 문제가 화두로 떠오를 텐데 반일 감정 문제도 나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 대사는 역사 문제와 관련해 한국 측이 생각하는 구체적 방안을 밝히진 않았지만 일본 측이 전제 조건을 붙이지 말고 우선 대화에 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정부가 역사 문제와 관련해 문 대통령이 먼저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함께 협상 테이블에 앉아 같이 선택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일본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했다. 이어 “일본 정부가 ‘이런 방안을 생각하고 있다’고 전하면 한국 정부도 ‘이는 국내 피해자의 설득이 어렵다’, ‘이는 실현 가능하다’ 같은 의견 교환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무엇보다도 ‘대화’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또 강 대사는 “외교는 전쟁이 아니다. 한쪽의 100% 승리는 있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올해 1월 8일 임명장을 받을 때, 문 대통령이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만나 흉금을 터놓고 대화하고 싶다고 한 만큼 일본 정부가 이에 답해야 한다고 했다. 강 대사는 “(일본 정부가) 언론을 통해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만나 구체적인 안을 알려주면 그것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돼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 내에서 반대 여론이 많은 7월 도쿄올림픽에 대해 “한국 정부는 개최를 바라고 있고 지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강 대사는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방한했던 점을 들어 문 대통령도 도쿄올림픽을 맞아 방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다만 그는 “경호 문제가 있지만 (코로나19 방역 대책으로) 인원 제한이 엄격해 한국대사관 직원을 동원할 수밖에 없는데 아직 백신을 접종하지 못한 직원이 많다”며 “이런 실무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가능하면 직원들이 먼저 백신 접종을 하고 지원할 수 있도록 일본 정부가 힘을 써주면 좋겠다”고 밝혔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황성기 칼럼] 역사의 굴레를 자르는 길

    [황성기 칼럼] 역사의 굴레를 자르는 길

    한미 정상회담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던 한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버리고 미국에 한발 다가선 데 포인트가 있다. 문재인 정부 4년간 아슬아슬하던 미중 밸런스를 정권 말기에 깬 것은 실용외교 면에서 평가할 만하다. 대미 자주 정체성을 고집하지 않고 ‘글로벌 동맹’을 만들어 냄으로써 향후 반세기는 지속될 미국 권력과 손잡는다는 결기를 대내외에 과시했다. 대중 외교의 적신호는 불가피하다. 미국과의 글로벌 동맹을 선택했으면 감수할 일이다. 한중 관계가 삐걱댈 수 있겠다. 그러나 미국, 일본, 호주, 일본의 비공식 안보협의체 쿼드(Quad)에 한국은 발을 담그지 않았다. 대중 레버리지는 여전히 한국이 쥐고 있음을 중국은 잘 알고 있을 터다. 이제는 한일 관계다. 해방 이후 한일에 청명한 날이 있었던가. 굴곡진 관계에 뚫린 구멍이 블랙홀처럼 커지면서 파국을 향해 간다. 국교 정상화 교섭에서 깔끔히 정리하지 못한 역사가 양국의 발목을 잡고 흔든 수십 년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일본 기업에 대한 법적 단죄는 2018년 10월 대법원 판결로 완성됐다. 1억원씩의 배상금을 못 내겠다고 피고 기업이 버티든, 버티는 기업 뒤에 일본 정부가 있든 말이다. 피해자들이 1997년 일본 법원에 제기했던 손해배상소송은 완패했다. 2005년 소송을 한국으로 가져온 피해자들은 13년의 우여곡절을 거쳐 국내에서 승소를 확정했다. 지난 7일 1심에서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강제동원 소 각하가 있었지만 대세와는 관계없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도 마찬가지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도쿄 재판을 비롯해 일본에서 연전연패하던 소송을 한국에 가져와 지난 1월 위안부 할머니의 승소라는 1심 판결이 확정됐다. 역시 법적 단죄는 완료됐다. 같은 안건에 다른 재판부가 주권 면제를 인정하면서 꼬였지만 할머니들 승리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다. 재판을 처음부터 무시한 일본 정부가 1억원씩의 배상금을 지불하든 거부하든 한국 역사에는 ‘단죄’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 4년간 한일 관계는 줄곧 뒷걸음질이다. 책임 소재를 가리자면 일본 쪽이 크지만 한국도 자유롭지 않다. 위안부 합의의 검증을 통해 합의의 무력화를 시도하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다. 그러고도 강경화 당시 외교부 장관은 합의 파기는 없다고 했고, 문 대통령은 합의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우왕좌왕이다. 강제동원 판결 직후 범정부 태스크포스가 모든 대책을 시뮬레이션해 봤다. 그러나 ‘피해자 중심주의’와 ‘사법부 판단 존중’에 걸려 무대응으로 그쳤다. 판결 1년도 되지 않아 일본의 무례하기 짝이 없는 반도체 부품 대한국 수출 규제라는 사태가 일어났다. 우리의 부품 경쟁력이 강화되는 계기는 됐지만 국제 분업의 효율을 생각하면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었다. 21세기 한일 관계는 ‘기승전·역사’다. 일본은 강제동원 판결을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라 한다. 판결이 발생한 한국에서 해결하란다. 아베든 스가든 정권 차원의 문제를 넘어섰다. 전쟁이라도 벌여 결판을 보지 않는 한 일본 변화는 바라기 어렵다. 총리를 넘본다는 일본 외무상이란 자가 위안부 피해자를 조롱한 망언에 동조했다. 그것이 역사에 퇴행적인 일본 집권층의 현실이다. 패전 후 76년간 한국을 보는 시선은 식민시대에 머물러 있다. 그들에게 언제까지나 식민지배는 합법이며, 5억 달러는 독립 축하금에 불과하다. 민사소송에 진 일본 기업이나 일본 정부에 배상은커녕 판결에도 없는 사죄를 받아 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런 일본과 외교로 역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은 일제 피해자나 국민에게 희망 고문이다. 역사의 화해를 위해 일본에 내밀었던 손을 이제는 거둬야 한다. 강제동원 판결 3년 시효도 다가온다. 이쯤 되면 역사 문제는 정부가 나서거나 국회 주도로 피해자를 구제하는 게 떳떳하고 현실적이다. 대위변제 방식은 피해자와 국민 설득이란 난관이 있다. 그게 부담스럽다면 21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으로 푸는 방법도 있다. 국가를 빼앗겨 일어난 강제동원·위안부 피해를 주요 11개국(G11)을 넘보는 한국이 스스로 구제하는 것은 피해자 중심주의, 사법부 존중을 넘어선 국가의 책무다. 역사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능력도 없는 일본에 면죄부보다 혹독한 건 ‘역사 후진국’ 낙인을 찍는 일이다. 역사의 굴레를 먼저 자르는 결단이 필요하다. 그것이 실용 아니겠는가.
  • [홍석경의 문화읽기] 선도국 된 한국의 운명

    [홍석경의 문화읽기] 선도국 된 한국의 운명

    한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성공이 상상하던 수준을 넘어선 지 꽤 됐다. BTS의 새 싱글곡 ‘버터’가 1년 안에 네 번째 빌보드 1위를 했다는 소식도 더는 뉴스거리가 아니라는 반응이다. 한국이 세계에서 “잘나가는 나라”가 된 것은 단지 대중문화뿐이 아니다. 그 방식에 대한 철학적 이견이 있음을 차치하고 한국 정부와 국민은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팬데믹을 엄격한 방역으로 억제했고, 그 결과 예상치를 넘어서는 빠른 경제성장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하이테크 산업에서 앞서가는 대기업이 있을 뿐 아니라 중소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건재하며 디지털 문화에 능한 국민이 유권자를 구성하고 시장을 받쳐 주고 있어서 정책이든 상품이든 부글부글 끓듯 토론하지만, 일단 결정하면 시행과 성공, 실패 또한 빠르다. 이 정도까지만 한국에 대한 사실을 기술해도 ‘국뽕’이라는 자조와 경멸이 어우러진 지적이 진보와 보수에서 동시에 터져 나온다. 한국이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 리스트가 이어지고, 분단국가의 역사적ㆍ지정학적 약점이 환기된다. 이렇게 한국 내의 문제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현미경 밖의 세계는, 특히 우리가 선진국으로 인정하고 모델로 삼아 왔던 나라들은 우리보다 문제 없이 잘 살고 행복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것은 관찰의 거리로 인한 착시일 뿐 우리가 부러워하는 선진국 민초들의 현실 또한 수많은 문제로 점철돼 있다. 가까이에서 보는 우리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지지만, 서구 청년들의 좌절이 한국의 2030보다 가볍다는 어떤 근거도 없다. 우리보다 먼저 도입한 사회복지 시스템이 보호막을 좀더 세련되게 깔아 놨을 뿐 가족 해체가 더 진행된 서구사회 청년이 느끼는 불안이 더 가볍고 그들의 장래가 더 밝은지는 알 수 없다. 무엇보다 한국인은 아직 얼마나 한국 중산층의 구매력이 높고 잘사는지, 한국의 일상이 안정된 시스템으로 보장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일상 속에 여유와 자선보다는 상실감과 이기심이 더 분출한다. 한국의 위상이 특별한 이유는 우리가 자조적으로 바라봐 온 한국의 역사적·지정학적 약점에 좌절하지 않고,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속도와 방식으로 그것을 극복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 민족을 무력으로 침략하거나 착취해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식민 착취와 탄압, 전쟁의 파괴, 가난과 군사독재의 폭력을 그 나름대로 극복하고 부유한 국가로 진입한 유일한 나라이며, 이 과정에서 민주주의를 희생하지도 않았다. 그것도 중국, 미국, 일본의 욕망이 부딪치는 이 전략적인 공간에서. 이러한 특수한 환경에서 성취한 부와 민주주의가 우리가 모델로 했던 선진국의 내용과 다른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끊임없이 두 마리 토끼를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지금도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끝없는 소음과 다툼과 갈등, 하루가 멀다고 소셜네트워크를 달구는 논란들. 우리가 만드는 영화, 드라마, 웹튠과 케이팝에는 있는 힘을 다해 두 세대 만에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가장 부자인 민주국가 그룹에 도달한 한국인의 꿈과 희망, 좌절, 경쟁, 스트레스, 강박, 불안, 추구하려는 가치가 묻어 있다. 세계의 관객이 한국산 대중문화에 열광하는 이유가 바로 우리의 이러한 특별한 선도국 위상이 그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기 때문이다. 서구 시스템이 안정되고 세련됐을지 모르지만, 그것을 가능케 한 물적 토대에 대부분의 나라는 도달할 수 없으며, 선진국이라는 가면 밑에는 해결되지 않은 인종주의와 후기식민주의적 상황들이 얽혀 있다. 새마을운동이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성공 모델이 되고, 광주시민항쟁과 촛불시위가 홍콩과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레퍼런스로 언급된다. 케이팝 팬덤 문화는 세계적 팬덤 문화의 참조가 되면서 음악산업의 구조를 뒤흔들고 있다. 일본인에게 한국 드라마는 더는 노스탤지어의 대상이 아니라 비교 불가능한 고급 콘텐츠이고, 한국의 문화 수출을 의심스럽게 바라보던 서구 지식인들은 자신의 태도를 수정하거나 정당화 논리를 찾아야 하는 처지이다. 선진이라는 형용사가 진부해진 팬데믹 이후의 세계에서, 새로운 길을 내며 걸어가는 선도국의 위상은 힘들지만 한국이 맡게 된 세계사적 운명이기도 하다. 세계가 한국을 주시하고 있다.
  • 홍성룡 서울시의원 “강제징용 판결, 대한민국 자존심과 민족정기 송두리째 저버린 처사”

    홍성룡 서울시의원 “강제징용 판결, 대한민국 자존심과 민족정기 송두리째 저버린 처사”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가 일제 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 등 85명이 일본 전범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각하하면서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서울시의회 친일반민족행위청산 특별위원회 홍성룡 위원장(더불어민주당·송파3)은 “이번 판결은 2018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과 정면으로 배치될 뿐더러 그나마 간신히 되찾은 역사적 진실과 정의에도 반하는 결정”이라며, “대한민국 자존심과 민족정기를 송두리째 저버린 처사”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홍 위원장은 이어 “재판부는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국내법적 해석일 뿐’이라고 하는가 하면, ‘자유민주주의라는 헌법적 가치를 공유하는 서방세력의 대표 국가들 중 하나인 일본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이는 결국 한·미 동맹으로 우리 안보와 직결된 미합중국과의 관계 훼손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거나 ‘청구권협정으로 얻은 외화는 이른바 한강의 기적에 큰 기여를 했다’고 하는 등 굴욕적인 표현까지 써가며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일본의 국익은 물론 심기까지 대변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홍 위원장은 “대한민국 국민 그 누구도 대한민국 주권과 자존심, 민족정기를 이번 재판부에 일임하지 않았다. 이번 재판부는 법관으로서의 최소한의 양심마저 저버린 반인권·반인륜, 곡학아세의 전형”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차라리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분들이 부지기수일 정도로 혹독한 노동환경 속에서 희생당한 강제징용 피해자와 유족의 처절한 절규를 철저히 외면한 재판부는 역사와 민족 앞에 석고대죄 하라”고 주장했다. 홍 위원장은 “전쟁범죄 피해자의 인권을 무시하고 사과와 배상을 거부해서는 한·일 관계는 한치도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 반인권·반인륜으로 점철된 이번 판결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뿐”이라며, “상급심에서 진실과 정의가 낱낱이 밝혀져 대한민국 자존심을 되찾고 민족정기가 바로 서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권오봉 여수시장, 돌산 ‘노량’ 영화 촬영장 격려

    권오봉 여수시장, 돌산 ‘노량’ 영화 촬영장 격려

    권오봉 여수시장이 지난 8일 영화 ‘노량’ 촬영이 한창인 돌산 진모지구 현장을 찾아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권 시장은 김한민 ㈜빅스톤픽쳐스 감독과 함께 영화촬영장 곳곳을 직접 둘러보며 설명을 들었다. 이 곳에는 거북선, 판옥선, 성곽, 이순신 처소, 운주당, 명군 진영 등이 실제와 같은 형태로 재현돼 있다. 영화 촬영 후 구조물 시설 존치와 사후 활용방안 등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나눴다. 권 시장은 “대규모 시설투자와 영화 촬영 스텝 등 유입에 따른 소비 증가로 지역경제 활성화가 기대된다”며 “이순신 장군의 일대기를 조명한 두 작품이 좋은 결과로 이어져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우리 지역의 역사적 가치가 한층 더 빛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여수 돌산 진모지구에서는 영화 ‘한산’이 지난해 6월부터 10월까지 세트장 조성과 촬영을 마쳤으나 코로나19로 개봉이 미뤄지고 있다. 다른 작품인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는 이달부터 다음달 까지 1598년 겨울철 노량 바다에서 벌어진 임진왜란 이순신의 마지막 해전을 촬영한다. 내년에는 드라마 ‘7년 전쟁’이 촬영될 예정이다. 여수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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