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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 호이 콴 “나는 보트 피플” 정작 베트남 당국은 “중국인 후손”

    키 호이 콴 “나는 보트 피플” 정작 베트남 당국은 “중국인 후손”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고 감격적인 소감을 밝히는 그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졌을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영예를 차지한 키 호이 콴은 어린 시절 베트남을 탈출한 ‘보트 피플’로 홍콩의 난민 수용소에서 일 년을 보낸 뒤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와 아메리칸 드림을 일궜다고 얘기했다. 오스카 트로피를 처음 거머쥔 베트남 출신 인물이라고 소개됐다. 사실 올해 후보로 지명된 베트남 출신 인물은 두 사람이었다. ‘더 웨일’에서 주인공을 돌보는 간호사를 연기한 홍 차우와 콴이었는데 역시 보트 피플 경험을 털어놓은 차우는 여우조연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베트남 관리들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국영 매체들은 콴의 배경에 대해 거의 언급하지 않고 있다. 몇몇은 콴이 베트남 핏줄이 아니라 중국 조상의 후손이라고 강조한다. 그가 1971년에 당시 수도였던 사이공에서 태어난 것은 맞지만 성공한 중국인 사업가 가문의 후손이었다는 것이다. 해서 어떤 매체도 콴이 난민이었다거나 보트 피플이었다고 소개하지 않고 있다. 탄 니엔(Thanh Nien) 신문은 “그가 1971년 호치민 시의 중국인 가정(아버지는 중국 본토 사람, 어머니는 홍콩 사람)에서 태어난 뒤 197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갔다”고만 보도했다. VN 익스프레스는 전통적으로 중국인들이 많이 살던 사이공 시내 상업지구인 초 론(Cho Lon)에서 중국인 부모 슬하에서 태어났다고 전했다.이에 따라 베트남 정부의 누구도 그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는다. 더욱이 보트 피플 얘기는 150만명 이상이 남지나해를 건너 홍콩 등으로 빠져나간, 위험천만한 행동이기까지 했다. 당시 적게는 20만명, 많게는 40만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유엔 난민기구(UNHCR)는 보고 있다. 해적들에게 희생된 이들도 있었다. 베트남 국민들에게는 잊고 싶은 얘기인데 콴의 오스카 수상은 그 우울한 기억을 되살리는 일인 것이다. 또 같은 공산주의 세력인 중국과의 불편한 기억까지 되살린다. 프랑스로부터 독립 전쟁을 벌일 때는 북베트남에 상당한 중국의 지원이 건네졌지만 1975년 4월 미군과 남베트남 정권을 궤멸시킨 이후 베트남은 오히려 옛 소련에 기울어졌고, 중국은 미국과 화해하는 등 정세가 완전히 바뀌었다. 이에 따라 베트남 정부는 중국인들을 재교육한다며 집단 수용소로 보냈다. 중국인들은 뇌물로 관리들을 매수하고 보트들을 사들여 1978년 9월 대규모 탈출을 감행했다. 보트 피플이 다 같은 부류가 아니었던 셈이다. 이듬해 2월 중국 군이 반중국 정서가 최고조에 이른 베트남 국경을 침공하자 탈출(엑소더스)은 더욱 규모가 커졌고, 10년 이상 계속됐다. 중국과 베트남의 불편한 관계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지만 중국인 탈출 난민들(Viet Kieu이라고 부른다)은 상당수가 베트남에 돌아올 수 있었고 사업도 가능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남중국해 섬들의 영유권 다툼과 경제적 압박 때문에 반중 정서가 불이 붙어 있는 상태다.BBC 베트남 지국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하나다. “그는 베트남 후손이 아니다. 그저 중국계 베트남사람일 뿐이며 베트남에서 태어났을 뿐이다. 이 점을 분명히 했으면 한다.” 다른 댓글이다. “중국계 미국인이며 과거에 베트남 국적이었을 뿐이라고 분명히 기재해야 한다. 난 (그에게서) 어떤 베트남 기원도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이런 댓글도 있다. “그가 베트남에서 태어났고 중국인 후손이기도 하므로 우리가 베트남인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 자신 보트 피플이었던 응우옌 반 투안 호주 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대학 의대 교수는 “국영매체들이 콴의 보트 피플 역사를 무시하는 방식은 후회할 법한 일이다. 1970년대와 80년대 난민 얘기는 우리 나라 역사에 비극적인 장”이라며 “당시 미국에 도착한 베트남 난민 대다수는 중국인 후손이건 순수 베트남 혈통이건 모두 매우 가난했고 영어도 할 줄 몰랐다. 그럼에도 그들은 살아 남았고, 뿌리를 내렸다. 오늘 베트남의 젊은 세대들은 당시 난민들이 겪은 어려움을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부분적으로는 우리 역사의 이렇게 슬프고 고통스러운 시기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전쟁은 인간의 가장 조직화된 행위, 마거릿 맥밀런이 던진 질문들

    전쟁은 인간의 가장 조직화된 행위, 마거릿 맥밀런이 던진 질문들

    진화심리학자 스티븐 핑커를 비롯한 학자들은 지난 두 세기에 서구는 덜 폭력적이 됐고 전쟁 희생자 수도 줄고 있다고 단언했다. 역사학자 존 루이스 개디스는 냉전 시대는 유럽이 가장 안정되고 평화로운 시기였다며 논문 제목에 ‘장기간 평화’라고 적었다. 전쟁이란 평화가 깨졌을 때 발생하는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은이는 전쟁에 의해 만들어진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늘 실감하지 못할 뿐이라고 지적한다. 전쟁이란 단어에 우리는 인명 피해, 자원 낭비, 폭력성, 예측 불가능성, 혼란 등을 떠올리는데 사실 전쟁이 얼마나 조직적인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다고 저자는 안타까워했다. 인류는 전쟁을 밀어내는 듯하면서도 매력과 위험한 힘에 이끌리곤 했다. 독일 시인 스테판 게오르게는 1차 세계대전 전 조용했던 유럽이 “쓰잘머리없이 시시껄렁하게 비겁한 세월”을 보낸다고 경멸했고, 이탈리아 작가 필리포 마리네이는 “전쟁만이 유일하게 세상을 청소하는 방법”이라 했다. 마오쩌둥은 혁명 전쟁이 “일종의 항독소로 적의 독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더러움도 씻어낼 것”이라고 했다. 역사를 도덕이나 이념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냉철하고 치우침 없이 바라보는 저자가 옥스퍼드 대학을 퇴임한 뒤 2018년 6월 런던의 BBC 라디오 극장, 요크대학, 레바논 베이루트 국립박물관, 벨파스트의 북아일랜드 의회, 오타와의 캐나다 전쟁박물관을 돌며 진행한 ‘리스 강연’ 내용을 가다듬어 2020년 10월 책을 펴냈다. 책이 출간되고 16개월 뒤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 전쟁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한다는 저자가 옳았음이 입증됐다. 책이 던진 질문은 도발적이면서도 예리하다. 인간은 원래 전쟁하도록 만들어진 건가? 과연 전쟁이 인류의 문명 발달에 기여했을까? 전쟁은 가장 야만적인 본성을 드러내게 하는가, 아니면 가장 선한 본성을 발휘하게 하는가? 미래의 전쟁은 어떤 모습일까? 그런데 당장 멈춰야 할 우크라이나 전쟁을 어찌하지 못하고, 또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한반도의 전쟁 기운을 어찌하지 못하고 있다. 저자의 답을 듣고 싶다.
  • [김동률의 아포리즘] ‘부루라이토 요코하마’와 죽창가/서강대 교수(매체경영)

    [김동률의 아포리즘] ‘부루라이토 요코하마’와 죽창가/서강대 교수(매체경영)

    ‘부루라이토 요코하마’를 모르는 이 땅의 기성세대가 있을까? 고딩 시절 내게는 이 노래가 일본의 전부였다. “마치노 아카리가 도테모 기레이네 요코하마/부루라이토 요코하마/아나타토 후타리 시아와세요”로 시작되는 노래는 그 시절 고딩들에게 청춘의 노래였다. 좀 논다는 친구들은 담배를 꼬나물고 기타를 치며 이 노래를 불렀다. 훗날 유학 시절 자동차 타이어를 바꿀 때 요코하마 타이어를 고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어를 모르니 당연히 뜻도 몰랐다. 그냥 무작정 따라 불렀던 고삐리 시절의 추억이 한몫했다. 험악했던 군사독재 시절 한국인이 참 좋아했던 일본 노래였다. 일본 문화가 전면 금지됐던 때였는데 도대체 이 노래가 어떻게 유행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대놓고 무시하던 일본을 처음으로 우호적으로 바라본 것도 이 노래 덕분이다. 사실 일본을 가장 싫어하는 나라는 우리보다는 중국이다. 나름 동아시아의 대국으로 자부하던 중국은 청일전쟁으로 항복한 치욕의 역사 때문에 일본을 정말 싫어한다. 사사건건 시비다. 치졸한 콤플렉스가 넘친다. 그러나 한국 사람은 일본을 싫어하기보다는 아예 ×무시한다. 그냥 깔보는 것이다. 싫어하는 것과 대놓고 무시하는 것은 엄청 차이가 있다. 싫어하는 것은 적어도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시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아예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는 의미다. 도대체 이 배짱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토종 한국 사람인 나도 모르겠다. 서양인들의 찬사와 부러움을 한껏 받고 있는 일본이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오랜 세월 비하와 조롱의 대상이었다. 기성세대의 일본관은 대장동 사건의 중심에 있는 유동규의 최근 고백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성남시장 시절 호주 출장길에 같이 라운딩했던 그가 언론에서 밝힌 에피소드다. 16번 홀이 끝날 무렵 이 대표가 “벌써 다 끝나 가네”라며 아쉬워하자 좀더 치기 위해 이미 지나온 옆 홀로 가서 다시 플레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근처에 있던 서양인들이 잘못을 지적하자 유씨는 “스미마센”(미안합니다)이라고 응답했다는 것이다. “호주에 힘들게 정착한 교민들에게 우리가 와서 민폐를 끼치면 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그래서 일본인 행세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유동규의 이런 대응이 한국의 기성세대가 가지는 일본에 대한 감정, 정서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십여년 전 나는 모 TV방송에서 당시 인기 드라마인 ‘불멸의 이순신’의 극 전개에 대해 비판했다. 아무리 드라마이지만 일본인들의 절대영웅인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사이코로 그린 것은 지나치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즉각 터졌다. 연구실로, 해당 방송사 홈페이지로 비난하는 전화, 메일, 댓글이 폭주했다. 친일파라는 점잖은 표현부터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이 방송사 홈페이지를 도배질했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상황에 나는 망연자실했고, 방송사는 해명성 팝업까지 띄우는 등 수습에 나섰다. 개학 직전 지난달 일주일 도쿄에 머물렀다. 넘치는 한국 젊은이들로 신주쿠 뒷골목은 홍대 입구 같은 느낌이다. 귀국 항공편엔 일본인들이 넘쳤다. 한국이 좋다고 야단들이다. 이쪽도 마찬가지다. 슬램덩크는 이 땅의 삼사십대들에게 화제가 되고 유명 스시집은 청춘들의 순례 코스가 된 지 오래다. 그러면서 양국이 드디어 정상적인 이웃 국가로 발전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조심스럽게 하게 된다. 죽창가를 외치며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악용하는 시대는 지금의 기성세대로 끝내야 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동시에 미래를 향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과거사를 이유로 친일·반일의 이분법으로 한일 관계에 접근하기에는 세상은 훨씬 중층적이고 복잡하다.
  • [씨줄날줄]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 시간/박록삼 논설위원

    [씨줄날줄]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 시간/박록삼 논설위원

    1994년 일왕 아키히토는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당시 59세)에게 문화훈장과 문화공로상을 수여하기로 했다. 그해 ‘만엔 원년의 풋볼’이라는 장편소설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을 치하하기 위함이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이은 일본 두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였다. 하지만 오에 겐자부로는 “나는 전후(戰後) 민주주의자이므로 민주주의 위에 군림하는 권위와 가치관을 인정할 수 없다”며 수상을 거부했다. 1958년 만 23세 5개월 최연소 나이에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젊은 작가의 치기와 패기가 남아서가 아니었다. 그의 작품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인간 존재의 본질에 대한 실존적 사유, 그가 바라는 사회와 공동체의 상이 교직되며 하나의 완성된 세계가 구축된다. 단편 ‘사육’에서 윤리와 순수성을 말살하는 전쟁의 끔찍함을 높은 수준의 문학적 완성도로 담아냈고, 장편 ‘만엔 원년의 풋볼’은 일본의 패전 이후 학생운동에서도 전향한 이들을 내세워 역사적 사실과 개인의 치유를 공동체의 과제로 그려 냈다. 또 르포 ‘히로시마 노트’는 원폭 피해를 고발하고 피폭된 이들의 존엄성과 그들이 만들어 낸 공동체의 위대함을 기술했다. 개인적 삶의 여정을 담담히 적어 낸 에세이집 ‘회복하는 인간’은 오에 겐자부로를 더욱 친숙하게 만든다. 그는 우리에게도 각별하다. 1975년 시인 김지하, 1993년 소설가 황석영 등의 구명운동에 앞장서기도 했다. 일본의 천황제와 국가주의 등에 대해 일관되게 비판해 온 작가로서 그는 2015년 반전 평화운동에 전념하겠다며 아예 절필을 선언했다. 그해 한국을 찾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이 충분히 사죄했다고 보기 어려운 만큼 계속 사죄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가로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야스쿠니 문제, 독도 문제, 난징대학살 그리고 일본의 군사 재무장 등 군국주의 회귀에 대해 타협하지 않은 ‘실천적 지식인’의 전형과도 같은 활동이었다. 지난 3일 세상을 떠난 오에 겐자부로(1935~2023)의 부고가 뒤늦게 알려졌다. 그는 떠났지만 울림 깊은 작품들은 우리 곁에 남아 있다. 남겨진 이들에겐 오에 겐자부로를 읽는 시간이 시작됐다.
  • [최보기의 책보기] 구로공단과 개성공단

    [최보기의 책보기] 구로공단과 개성공단

    개성의 옛 지명은 송악, 송도다. 신라가 한반도 북쪽 고구려와 서쪽 백제를 정복해 최초로 통일 왕국을 세웠지만 지도부의 국가 영역 인식은 동남부 경주에 머물렀다. 송악을 근거지로 세력을 키운 왕건이 고려를 세우면서 비로소 남북을 아우르는 한반도 전체로 국가 영역이 확장됐다. 5백년 왕국의 수도였던 황해도 개성, 기독교를 위시한 신문물이 중국을 통해 가장 먼저 도달하는 곳이었다. 1945년 일제로부터 광복을 맞았지만 미·소 냉전체제로 인해 남북한으로 분단 됐을 때 개성은 남한에 속한 도시였다가 6·25 동란을 거치면서 북한의 도시가 됐다. 우리 근/현대 역사에 개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막중한 배경이자 분단의 아픔이 특별히 깊게 서린 땅이 된 이유다. 6.25 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신생국이자 후진국이었던 대한민국에 경제부흥의 싹을 틔운 곳은 ‘구로공단’이었다. 서울의 남쪽 황무지에 제조업 공장이 하나둘 들어서자 가난했던 농어촌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몰려들었다. 세계적인 기술자와 과학자를 꿈꾸는 청년과 소설가를 꿈꾸는 청년이 그 안에 섞여 있었다. 그들은 속칭 ‘벌집’에서 새벽이면 공장에 출근해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미싱을 돌려 청바지를 만들었고, 밤에는 지친 몸을 이끌고 야간학교를 갔다. 그들은 몸이 부서져라 꿈을 향해 달렸고, 지금의 대한민국을 일으키는 주춧돌이 됐다. 『내 마음의 은행나무』를 펴낸 저자 윤석구 씨는 권한이 대단한 지위에 있거나 국가정책에 영향력이 큰 파워 리더와는 거리가 멀다. 우리은행에서 33년 근무한 금융맨 출신의 평범한 서민이다. 다만 그에게는 ‘개성공단’에 최초로 은행 지점을 개설해 운영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경험을 가진 남다름이 있다. 저자는 그때의 ‘개성공단 이야기’를 정치·경제·외교를 다루는 전문가적 시선이 아닌 서민의 눈으로 『내 마음의 은행나무』 1/3을 할애해 정리했다. “2013년 4월, 북한은 한미연합훈련을 빌미로 개성공단 근로자들을 철수시켰다. 이후 일부 재가동됐지만 2016년 초에 핵실험 등으로 완전히 폐쇄됐다. ‘아프리카의 희망봉’이라고 했던 우리은행 개성공단지점에도 커다란 자물통이 채워졌다. 김책공대 출신들이 많이 투입되어 만든 우수한 전기전자제품과 북한 노동자들의 노련한 손놀림으로 만든 양질의 봉제 제품은 서울 시내 백화점에서 국내 제품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팔렸다. ‘Made in korea’(메이드 인 코리아) 속에 ‘Gaesong’(개성)이 표기돼 있었다.” 아프리카 강의 지배자 악어와 하마는 서로 싸우지 않고 적당히 영역을 분배한다. 그것이 둘의 공멸을 막는 길임을 알기 때문이다. 지구적 세력을 다투는 강대국은 서로 싸우지 않는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맞서 미국은 참전 대신 지원만 한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사람은 직접 총을 들고 싸워야 하는 우크라이나 국민이다. 미국과 중국이 세계질서 재편을 놓고 곳곳에서 충돌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둘은 직접 전쟁으로 맞붙지는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대만과 한반도를 유력한 대리전 지역으로 꼽고 있다. 아주 옛날 고인이 되신 어느 원로 학자가 간곡하게 말했다. “강대국이 아무리 우리에게 자기들 대신 전쟁을 시키려고 해도 우리끼리 손을 꼭 맞잡고 친하게 지내면 그렇게 될 수가 없다. 남북평화체제만이 살길이다”. ‘개성공단’은 우리에게 바로 그런 곳이다. 아프리카의 희망봉! 최보기 북칼럼니스트
  • “러시아 ‘편드는’ 나라 오히려 늘었다”

    “러시아 ‘편드는’ 나라 오히려 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의 대(對)러시아 제재 및 고립 강화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를 지지하는 입장의 국가는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프리카와 남미, 중동 등지의 신흥국을 중심으로 서방 진영에서 이탈하는 나라가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분석이다. 영국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의 부설 경제분석기관인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최근 보고서에서 “점점 더 많은 국가가 러시아 편을 들고 있다”며 “중립적이거나 비동맹적 스탠스를 취했던 국가들이 입장을 바꿨다”며 이같이 지적했다. EIU는 전쟁 발발 이후 세계 여러 국가의 러시아에 대한 제재 집행, 유엔에서의 투표 성향, 국내 정치 상황, 공식 성명, 경제·정치·군사·역사적 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했다. 그 결과 러시아를 적극적으로 비난하는 국가의 수는 1년 전 131개국에서 일부 신흥국 이탈의 영향으로 122개국으로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국과 일본도 러시아를 비난하는 입장으로 분류됐다. 중립국은 32개에서 콜롬비아, 카타르, 튀르키예 등이 더해지며 35개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는 양쪽 모두로부터 경제적 이익을 얻고자 이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EIU는 설명했다. 러시아로 편향된 나라는 29개에서 35개로 증가했다. 이 가운데 중국이 여전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말리·부르키나파소·우간다 등 아프리카 국가들과 남미의 볼리비아, 중동의 이란 등에서 러시아 지지 성향이 강해졌다고 EIU는 분석했다. 북한도 여기에 속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을 중심으로 한 ‘반(反)러시아 블록’의 국내총생산 총합은 67.9%로, ‘친(親)러시아 블록’의 20.1%를 압도했다. 하지만 국가별 인구 합계로 비교해보면 반러 진영 36.2%,친러 진영 33.1%로 엇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브릭스(Brics·신흥 5개국)만 보면 러시아에 반하는 국가는 하나도 없었다. 브라질과 인도는 중립국으로 분류됐고, 중국과 남아공은 러시아에 기운 것으로 평가됐다. EIU는 “러시아와 중국은 대러 경제제재의 영향에 대해 의구심을 심고, 이전 ‘식민지 강대국’(과거 제국주의 국가)에 대한 분노를 활용하려 중립 성향의 국가들에 구애하고 있다”며 “아프리카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사설] 글로벌 전운 높인 시진핑 3기 강경파 체제

    [사설] 글로벌 전운 높인 시진핑 3기 강경파 체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10일 1949년 건국 이후 첫 3연임 국가주석이 됐다. 10년 임기를 마치고 5년이 추가됨으로써 15년간 국가주석으로 군림한다. 국가주석을 선출한 이번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를 ‘대관식’에 빗댄 이유다. 2018년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이 폐지됨으로써 시 주석은 ‘종신’ 가능성에 바싹 다가갔다. 전인대는 국무원 총리에 시 주석의 최측근인 리창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뽑았다. 측근들이 주요 보직을 독차지하면서 중국 역사상 전에 없이 강고한 시진핑 1인 체제가 구축됐다. 세계는 시진핑 3기 시대를 우려의 눈으로 보고 있다. 우선 군사와 산업 공급망을 놓고 전개되는 미국발 중국 포위망에 대해 시 주석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특히 서방의 중국 봉쇄ㆍ압박이 중국 경제 회복에 위협이 된다면 대만 침공 같은 군사적 모험도 감행해 중국 내 불만을 잠재우려는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처럼 세계 질서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을 것이다. 한반도에 군사적 불똥이 튀는 것은 물론이다. 중국의 올해 경제 목표치는 5%이다. 리창 총리팀은 올해 내수 활성화를 기반으로 성장 동력을 키워 작년 3%에 그친 성장률을 끌어올린다는 복안이다. 하지만 민간보다는 국영 기업을 편애하는 정책으로 인해 기대치를 이룰지는 미지수다. 그렇게 되면 중국의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에 기대를 거는 우리 경제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문재인 정권 때 ‘전략적 모호성’에 기댔던 대중 외교는 윤석열 정부 출범, 시진핑 3기에 맞춰 방향 전환을 요구받고 있다. 한미일 협력 증진, 중국 견제를 위한 4개국 협의체인 ‘쿼드’ 참여 시사 등 우리의 선택에 대한 중국의 견제는 가시화했다. 중국은 무력에 의한 대만해협 현상 변경에 반대한다는 박진 외교부 장관의 발언에 대해 “말참견을 허용하지 않는다”거나 쿼드 실무그룹 참여 움직임에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소그룹 활동을 하지 말기를 희망한다”면서 노골적으로 한국을 견제 중이다. 중국이 해외 단체여행 허용 국가를 40개국 추가하면서 한국을 제외한 것은 상징적이다. 시진핑 3기는 세계 질서의 변화를 예고한다. 한국은 ‘균형외교’로 포장했던 대중 줄타기로는 군사경제 안보를 지키지 못하는 전환점에 섰다. 정부의 정교하고도 당당한 대중 정책이 필요하다.
  • 정상회담 앞두고…日 “강제동원 없었다” “우리가 피해자”

    정상회담 앞두고…日 “강제동원 없었다” “우리가 피해자”

    어떤 것도 ‘강제노동에 관한 조약상’의 강제노동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강제노동이라고 표현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하야시 일본 외무상 발언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외무상이 강제동원을 부인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다. 일본 의회에서는 ‘일본은 되레 피해자’라는 발언까지 나왔다. 하야시 일본 외무상은 지난 9일 중의원 안전보장위원회에서 ‘강제동원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냐는’ 일본 의원의 질문에 위와 같이 답했다. 강제동원 배상은 과거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최종적으로 해결이 끝난 일”이라고도 강조하며 ‘새로운 사죄와 반성은 발표하지 않는 게 맞냐’는 질문에도 맞다고 답했다. 일본유신회 미키 게에 의원은 “징용공 소송 문제는 국제법 위반으로 일본은 말하자면 휘말려든 피해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2018년 대법원에서 배상 판결을 확정받은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이 판결금을 변제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박 장관은 “이번 해법은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력과 국익에 걸맞는 우리의 주도적인 그리고 대승적인 결단”이라며 “정부가 이 문제를 도외시하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과거사로 인한 우리 국민의 아픔을 보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 정부가 강제동원 배상 해법안을 내놓은지 사흘 만에 강제동원 자체를 부인하는 발언을 했다.양금덕 할머니 “동냥같은 돈 안받겠다” 일제강제동원 피해당사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정부의 제3자 변제 방식의 배상안을 두고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는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양금덕 할머니는 정부의 발표를 온라인 생중계로 지켜본 뒤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고 사죄할 사람도 따로 있는데 (3자 변제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그렇게 해서는 사죄라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돈을 받지 않아도 배고파서 죽지는 않을 것”이라며 “동냥해서 (주는 것처럼 하는 배상금은) 안 받으련다”고 말했다. 또 “노인들이라고 해서 너무 얕보지 말라”며 “반드시 사죄를 먼저 한 다음에 다른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양 할머니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국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모르겠다”며 “빨리 대통령이란 옷을 벗고 나가서 일반 시민들이 하는 행동을 보고 잘 뉘우치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양 할머니는 2018년 강제동원 관련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대법원의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14명 중 1명이다. 생존자는 양 할머니와 김성주 할머니, 이춘식 할아버지 등 3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피해자들은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이 법원 판단에 불복해 배상을 미루는 사이 숨을 거뒀다. 현재 국외 강제동원 피해 생존자는 1264명에 불과하다. 지난해에만 551명이 일본의 사죄를 받지 못한 채 사망했다. 생존자들은 2019년 4034명, 2020년 3140명, 2021년 2400명, 2022년 1815명 등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굴욕 외교” VS “한일관계 발전” 야권은 11일 정부가 발표한 제3자 변제 방식의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안에 대해 일제히 ‘굴욕외교’라고 비판했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국민적 비판을 알면서도 발전적 한일 관계를 위해 힘들게 내린 결단”이라고 맞섰다. 이재명 대표는 단상으로 나와 “역사의 정의를 배신했다가 몰락한 박근혜 정권의 전철을 밟지 말라”며 “지금 당장 굴욕적인 강제동원 배상안을 철회하고 국민과 피해자에게 사죄하라”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사죄도 없고 배상도 없고 전쟁범죄에 완전한 면죄부를 주는 것이 말이 되나”라며 “합의문조차 하나 없다. 우리만 일방적으로 일본의 요구를, 아니 요구하는 것 그 이상을 받아들였다”고 비판했다.이 대표는 “‘그따위 돈은 필요 없다’, ‘굶어 죽어도 그런 돈은 받지 않겠다’는 것이 피해자들의 살아있는 목소리인데, 이 굴욕적 배상안이 어떻게 피해자의 입장을 존중하는 것일 수 있나”라고 되물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강제동원 배상안에 대해 “국민적 비판을 알면서도 발전적 한일 관계를 위해 힘들게 내린 결단”이라고 설명하며 규탄대회를 ‘반정부 집회’라고 규정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원내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오늘 서울시청 앞에서 반일 시민단체와 민주당, 정의당, 진보당 등이 모여 정부가 발표한 일제 강제동원 배상안을 규탄하는 ‘국민 없는’ 범국민대회를 열었다”며 “정부가 발표한 배상안에 대해 온갖 막말을 서슴지 않고 쏟아냈다”고 밝혔다. 장 원내대변인은 “모두가 만족하는 현실적인 대안이 없었다”며 “이번 조치는 국민적 비판을 알면서도 발전적 한일 관계를 위해 힘들게 내린 결단”이라고 설명했다. 장 원내대변인은 “국가는 국민이 원하는 최선책이 없다면 차선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문재인 정부는 그것을 포기했고 윤석열 정부는 결단을 선택했다”며 “그것이 책임지는 대통령의 모습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 “욱일기 문제없다”던 日언론…한일전에 어김없이 ‘욱일기 응원’ 나왔다

    “욱일기 문제없다”던 日언론…한일전에 어김없이 ‘욱일기 응원’ 나왔다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한일전에 일본 제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가 어김없이 등장했다. 그간 국제대회에서 일본 관중들의 욱일기 응원이 빈번하게 이뤄졌는데, 이번에도 빠지지 않고 욱일기가 경기장 한 켠에 자리했다. 지난 10일 일본 도쿄돔에서는 WBC B조 본선 1라운드 2차전 한국과 일본의 경기가 펼쳐졌다. 이날 도쿄돔 외야 2층 좌석에서 한 일본 남성이 욱일기를 들어 보이며 응원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됐다. 욱일기 모양의 모자까지 쓴 이 남성은 욱일기를 들고 있다가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IOC·FIFA ‘욱일기’ 금지…WBC 명확한 규정 없어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국제축구연맹(FIFA)은 정치적 의도가 담긴 문구 사용을 엄격하게 금지하고 있다. 일본의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욱일기도 금지 대상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MLB) 사무국의 주도로 열리는 WBC에는 관련 규정이 명확하게 마련돼 있지 않다. 이에 일본 언론 히가시스포웹은 “욱일기를 사용한 응원은 대회측 이 금지하고 있지 않아 전혀 문제가 없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한일전에 욱일기가 또 등장할 것을 우려해 WBC 조직위원회(WBCI)와 일본 라운드 조직위원회에 2월과 3월 두 차례 욱일기 응원 제지를 요청했다. KBO는 욱일기를 발견한 뒤 즉시 대회 조직위원회에 항의했다고 밝혔다. KBO 관계자는 “WBCI 측에서 ‘욱일기 논란에 대해 알고 있으며 응원 도구 및 응원 깃발 규정을 적용해 반입을 제한할 수 있는지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며 “일본 라운드 조직위원회 역시 반입을 최대한 자제시키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 서경덕 “일본, 역사 부정하는 꼴” 항의 WBC 개막을 앞두고 욱일기 응원 퇴치 캠페인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던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한일전에 욱일기과 등장한 것과 관련해 WBC 측에 즉각 항의메일을 보냈다. 앞서 서 교수는 “지난 2016년 WBC 홈페이지에 욱일기 응원 사진이 게재돼 논란이 됐고, 2019년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에서 열린 한일전에 욱일기 응원이 등장해 큰 파장이 일었다”면서 “만약 이번에도 일본측 응원단이 욱일기로 또 응원을 펼친다면 즉각 WBC측에 고발하고, 외신 기자단을 통해 전 세계에 문제점을 알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서 교수는 WBC에 욱일기가 등장한다면 이를 세계적인 논란거리로 만들어 욱일기가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인 ‘전범기’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고 했다.서 교수는 “이번 항의 메일에서 ‘욱일기는 일본의 제국주의와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깃발로써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인 전범기’라고 고 설명했다”면서 “‘욱일기 응원은 과거 일본이 범한 침략전쟁의 역사를 부정하는 꼴이며, 아시아인들에게는 전쟁의 공포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행위’라고 덧붙였다”고 했다. 그러면서 항의 메일에 “이를 인정한 FIFA는 지난 카타르 월드컵에서 일본측 응원단이 펼친 욱일기 응원을 즉각 제지했다. 이처럼 WBC도 욱일기 응원을 반드시 금지시켜야만 한다”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외신 기자단에 이번 상황에 대한 자료를 보내 욱일기 응원의 문제점을 알릴 계획이다.
  • 트럼프 “北김정은, 올림픽 참가 원했다…나 아니었음 전쟁났을 것” 친서 공개

    트럼프 “北김정은, 올림픽 참가 원했다…나 아니었음 전쟁났을 것” 친서 공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과거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게 “(북한도)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정치매체 폴리티코의 9일(이하 현지시간)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전 대통령은 기업인 시절 유명 인사들로부터 받은 편지 150통을 담은 책 ‘트럼프가 받은 편지들’을 통해 해당 내용을 공개했다. 트럼프의 책에는 2018년 7월 30일자로 김 위원장이 보낸 편지의 모습이 실려있다. ‘대통령 각하에게’(Your excellency Mr. President)로 시작되는 이 편지에서 김 위원장은 “첫 정상회담 때 우리 사이에 맺어진 훌륭한 관계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그 역사적인 날에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 주신 각하께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전했다.  이어 “예상과 달리 전쟁 종식 선언을 하지 못한 것이 유감스럽지만 각하와 같은 강력하고 뛰어난 정치가와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어 기쁘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해당 편지와 관련, 폴리티코와 한 인터뷰에서 “그(김 위원장)와 많은 대화를 했고, 그를 잘 알게됐다. 그는 매우 똑독하고 기민했으며 물정에 밝핬다. 우리는 훌륭한 관계를 맺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김정은은 본인 책상에 빨간 버튼이 있고 그걸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내게도 빨간 버튼이 있고 당신 버튼보다 크며, 잘 작동한다고 응대했다. 이렇게 얼굴을 붉힌 일도 많았다”면서 “그러다가 그가 내게 실제로 전화를 걸어 올림픽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트럼프는 북한이 참가를 원했던 올림픽의 정확한 명칭과 개최 시기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서신과 전화가 오간 시기를 고려했을 때, 2018 평창동계올림픽으로 추정된다.  트럼프는 2020년 3월초, 김 위원장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면서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과와 함께 "북한측이 내게 전화로 올림픽 참가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한 바 있다. 다만 전화를 한 주체가 김 위원장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폴리티코는 김 위원장이 트럼프에게 보낸 편지 내용에 대해 “김 위원장과 트럼프가 주고받은 편지는 트럼프 재임 중 가장 기이하고 큰 위험 중 하나였기 때문에 가장 흥미로운 것 중 하나일 수 있다”면서 “이 편지들은 (트럼프를 향한) 북한 지도자(김정은)의 아첨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내가 대통령 안 됐으면 전쟁 벌어졌을 것” 트럼프는 2019년 1월 8일 김 위원장에게 보낸 편지에서 “생일을 맞았다고 들어 축하하고 싶다. 앞으로 많은 축하와 성공의 해를 보내게 될 것”이라면서 “당신의 나라는 곧 역사적이고 번영하는 길에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적었다.  트럼프는 해당 편지들에 대해 폴리티코에 “당시 (북한과의) 심각한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노력했다. 대통령 취임 직전 버락 오바마(전임 대통령)는 내게 북한은 미국과 전 세계의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면서 “내가 대통령이 되지 않았다면 전쟁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통제 하에서 전쟁은 없었다. 심지어 (전쟁에) 근접하지도 않았다”고 강조했다. 트럼프는 대통령 재임 기간 김 위원장과 세 번 얼굴을 마주했고, 27차례에 걸쳐 친서를 주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김 위원장의 편지 외에도 오프라 윈프리, 리처드 닉슨, 조지 H.W. 부시 조지 W. 부시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등 유명인사 및 기업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150통을 담은 트럼프의 책은 다음 달 25일 발매된다. 가격은 99달러(약 13만 1200원), 서명판은 399달러(한화 약 53만 원)이다.  트럼프의 첫 번째 책이자 대통령 시절 사진들을 모아놓은 사진집(Our Journey Together)은 발간 후 첫 2개월 동안 2000만 달러(한화 약 265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 1980년대 도쿄 한복판, 지극히 평양스러운 대학에서 이념 대신 사랑이 솟아났다

    1980년대 도쿄 한복판, 지극히 평양스러운 대학에서 이념 대신 사랑이 솟아났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아버지의 ‘조국’은 언제나 북한이었다. 조총련 간부였던 아버지는 세 아들을 모두 북한에 보낼 정도로 조국에 충실했다. 그러나 자유로운 삶을 꿈꾸던 딸은 아버지의 사상을 거부했다. 재일교포 2세인 양영희 감독은 캠코더를 들고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아버지와 대화를 시작했다. 그렇게 2006년 첫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을 찍었다. 2009년 북한에 있는 오빠네 식구 이야기를 담은 ‘굿바이 평양’을 거쳐 제주 4·3 사건을 겪은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룬 ‘수프와 이데올로기’(2022)로 마침표를 찍는다. 26년 만에 완성한 ‘가족 3부작’으로 여러 상을 받은 양 감독은 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로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조총련 산하 ‘민족교육의 최고 전당’으로 불리는 일본 도쿄 조선대학교를 무대로 한 1980년대 대학생의 삶이다. 주인공 미영은 졸업 후 극단에 들어가겠다는 꿈을 안고 조선대학교에 입학한다. 그러나 지나치게 엄격한 규율의 기숙사 생활과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정해지는 진로에 강한 반감을 가진다. 학교 억압에 반발하고 동급생과 마찰을 일으키며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면서도 자신을 굽히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바로 옆 미술대학의 일본인 남학생 구로키 유와 만나 조심스레 사랑을 키워간다.저자는 서문에서 “박미영은 1964년생인 나 자신을 모델로 삼았고, 그녀가 청춘을 보낸 1980년대 도쿄의 모습을 그리움을 담아 충실히 재현했다”고 밝혔다.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만큼 현실감이 뛰어나다. 예컨대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반성하고 동급생을 비판하는 매일 밤 11시 ‘생활총화’ 장면이나, 김일성의 빨치산 활동을 노래한 ‘조선문학’,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과의 생활 등으로 조선대학교의 내밀한 단면을 보여준다. 언니를 만나러 가는 과정에서 담아낸 북한 주민들의 참혹한 실상도 생생하다. 언니는 1학년 때 ‘위대한 김일성 수령님의 환갑을 축하하는 조선대학교생 축하단’ 일원으로 지명돼 북한에 갔다. “두목 환갑 선물로 딸을 바치느냐”는 작은아버지의 반대에도 아버지는 조국을 위해 기꺼이 딸을 보냈다. 그러나 미영이 평양에 도착했을 때 언니 가족은 이미 추방당해 신의주로 쫓겨난 상태였다. 미영이 평양에서 열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만난 남루한 북한 주민들과 꾀죄죄한 거리풍경 등에서 1980년대 북한을 볼 수 있다. 미영은 6월 25일 ‘6·25 조국해방전쟁’(한국전쟁) 승리 기념식에서 김일성의 치적을 담은 기록 영화를 보면서 나치의 히틀러를 떠올리기도 한다. 자신을 잘 대해주는 일본인들에게서는 묘한 위화감을 느낀다. 양 감독은 영화를 발표할 때마다 ‘북한을 지지하는 곳에서 자랐는데, 언제 어떤 계기로 자신이 처한 환경에 의문을 가지게 됐나’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 “학창 시절 진로 지도가 계기였다”고 답했는데, 소설이 이에 대한 충분한 답이 될듯 하다. 개인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소설이지만, 역사 속에서, 일본과 북한이라는 특유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는 한 인간의 삶, 그 이상의 것들이 보인다.
  • ‘친일파 논란’ 공세에도… 김영환 “언제까지 죽창가 부르나”

    ‘친일파 논란’ 공세에도… 김영환 “언제까지 죽창가 부르나”

    김영환 충북지사가 친일파 망언 공세에도 전혀 물러서지 않고 있다. 김 지사는 9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오늘은 죽창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한미일 안보 공조는 전쟁을 막고 충북의 생존을 위한 현실적이고 절박한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일본의 기술과 소재, 반도체와 배터리 장비 등은 충북 산업 생태계에 절실히 필요하다”며 “일본과 협력할 부분이 하나둘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언제까지 과거에 집착해 죽창가를 불러야 하냐”며 “일본과의 협력을 통해 경제난을 극복하자”고 호소했다. 김 지사는 “일본 젊은이들이 청주공항을 통해 줄을 지어 입국하고 우리 농산물이 고가로 대한해협을 건너가는 꿈을 꾸어 보자”고도 했다. 정부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 배상 해법을 옹호하며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는 자신의 SNS 글을 국가와 충북을 위한 뜻으로 봐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시민단체와 더불어민주당은 여전히 친일파 망언에 대한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충북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는 이날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의 강제동원 피해자 제3자 변제 방안 발표는 명백한 외교 참사”라며 “이런 정부를 두둔하며 기꺼이 친일파가 되겠다는 김 지사의 망언은 충북도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모멸감을 안겨 줬다”고 밝혔다. 이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며 “김 지사는 도민 앞에 석고대죄 심정으로 백배사죄하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충북도당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친일본색을 만천하에 드러낸 윤석열 대통령과 김 지사는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충북도당은 “굴욕 외교를 두둔하기 위해 친일파가 되겠다고 하고, 윤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을 애국자로 치켜세운 김 지사의 정신세계가 궁금하다”며 “아첨에만 급급하며 국민을 매도하는 시대착오적인 도지사는 더이상 도민에게 필요 없다”고 비난했다. 애국국민운동대연합 오천도 대표는 이날 정의봉을 들고 도청을 항의 방문했다. 오 대표는 “사과를 하든지 지사직에서 내려오든지 양자택일하라”고 압박했다.
  • ‘K 방산 기회의 땅’ 폴란드, 신형 보병전투차 협력 추진

    한국 방위산업의 ‘기회의 땅’으로 떠오른 폴란드가 대규모 신형 보병전투차 사업에서 한국과 협력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9일 군에 따르면 폴란드는 자국산 신형 보병전투차 ‘보르숙’ 1400대가량을 획득하는 사업을 추진하면서 한국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논의는 아직 초기 단계이지만 지난해 양국 간 21조원 규모 방산 계약에 이은 초대형 계약을 체결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보르숙은 폴란드어로 오소리를 뜻한다. 폴란드 역사상 최대 규모라는 평가가 나오는 차기 보병전투차 사업은 폴란드군이 1970∼1980년대 전력화했던 구소련제 보병전투차를 대체하는 것이다. 수륙양용 보병전투차 1000여대에 더해 정찰차량, 지휘차량, 의료구조차량 등 모두 1400여대를 2024∼2025년 도입할 예정이다. 폴란드 정부는 보르숙을 지난해 구매한 한국산 K2 흑표 전차와 함께 운용할 방침이어서 한국과 기술협력을 통해 상호운용성을 높일 가능성도 있다. 특히 마리우시 브와슈차크 폴란드 부총리 겸 국방부 장관은 지난해 보르숙의 ‘보완 수단’으로 한국산 차세대 전투장갑차 ‘레드백’ 구매를 검토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폴란드는 지난해 한국으로부터 K2 전차 980대, K9 자주포 648문, FA50 경공격기 48기, K239 천무 다연장 로켓 288문을 수입하기로 하는 초대형 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최근에는 한국산 전차 및 자주포 수입과 연계해 최근 국내 최대 탄약 제조업체 풍산과 한국 정부 측에 폴란드 현지 탄약 공장 건설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폴란드 요청 규모는 K9 포탄과 K2 전차탄을 연간 10만발씩 생산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한국도 관련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는 이웃 나라인 우크라이나가 지난해부터 러시아 침공을 받는 등 안보 위기감이 높아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무기체계와 호환성이 높은 한국산 무기 도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한국 무기의 장점은 가성비와 신뢰”라며 “성능은 다른 나라 무기들과 비교할 때 떨어지지 않는데 비용은 훨씬 저렴하고, 계약을 체결하면 납기일을 반드시 지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최경호 방사청 대변인은 “현재 논의가 진행 중”이라며 “세부적인 내용들을 지금 공개하긴 어렵다”고 밝혔다.
  • 쉿! 너만 알아… 챗GPT도 놓친 ‘별들의 섬’

    쉿! 너만 알아… 챗GPT도 놓친 ‘별들의 섬’

    다녀오고 나서도 대놓고 자랑을 못 하는 여행지들이 몇 곳 있다. 사이판도 그중 하나다. 주변에 사이판을 간다고 입소문을 내도 대략 “어이쿠 그러시냐”며 심드렁한 반응들이다. 한데 가 보고서야 알았다. 왜 대한민국 정부가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사이판과 트래블 버블(여행안전권역)을 진행했는지 말이다. 아름다운 데다 안전하고 깨끗하다. 한국의 ‘관광 영토’라 해도 좋을 만큼 우리 기업들의 진출도 눈부시다. 편의를 중시하는 가족, 젊은 연인들이 유독 많이 찾는 이유다. 물론 다소 느슨하긴 하다. 왁자한 시장, 이글이글 불타는 현지 음식 등을 기억하는 여행자에게 사이판은 다소 심심하게 비칠 수 있다. 하지만 ‘호캉스’(호텔과 바캉스의 합성어)를 즐기는 요즘 추세에 비춰 보면 느슨한 것도 꽤 강력한 매력이 된다. 그래서 이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네, 저 사이판 다녀왔습니다.”사이판은 산호섬이다. 섬은 섬인데 방파제가 없다. 산호초가 방파제 역할을 해서다. 산호초 밖은 심해다. 지구 행성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 해구가 저 산호초 너머에 있다. 이 거대한 바다를 막아 주는 게 산호섬의 수중 절벽이다. 그래서 사이판에선 파도가 두 번 친다. 수중 절벽에서 파고가 한 차례 확 꺾인 뒤 잔잔한 물결이 돼 해안으로 밀려온다. 먼바다의 파도가 해변과 곧장 만나는 우리와는 사뭇 다르다. ●비릿한 바다내음마저 없는 낙원이번 여정에선 종전의 여행 앱 대신 ‘글로벌 스타’로 떠오른 챗GPT의 도움을 받아 보기로 했다. 사이판이란 이름의 유래부터 물었다. 챗GPT는 이에 대해 흥미로운 가설을 제시했다. 첫째는 사이판 선주민인 차모로족 전설이다. 사이판 이웃 섬에 사이나라는 아름다운 차모로 여인이 살았다. 그의 미모에 끌린 스페인 선원들이 격렬하게 구애했지만 사이나는 강하고 용감한 남자를 기다리고 있다며 거절했다. 우리의 성춘향처럼 말이다. 이성을 잃은 스페인 선원들은 사이나를 보쌈할 음모를 꾸몄다. 사이나는 황급히 사이판으로 도피했다. 그리고 거기서 피앙세를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졌다. 훗날 스페인 선원들은 이 섬에 ‘아름다운 소녀의 장소’란 의미의 ‘사이판’이란 이름을 지어 줬다. 두 번째가 좀더 그럴듯하다. 역시 선주민인 캐롤리니안 말로 ‘섬’을 뜻하는 ‘사팡’이란 단어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스페인 등 이 섬을 처음 찾은 외지인들이 ‘사팡’을 ‘사이판’이라 알아들었고 그대로 이름으로 굳어졌단다. 고려에서 비롯됐다는 우리나라 이름 코리아처럼 말이다.이번엔 “사이판의 명소들을 알려 달라”고 했다.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는 북마리아나 관광청에서 제시한 것과 일치했다. 순위를 두지는 않았지만 가장 먼저 꼽은 곳은 마나가하섬이었다. 단연 사이판의 ‘원픽’으로 꼽히는 곳. 미국령인 사이판은 남북으로 길다. 21㎞쯤 된다. 동서 폭은 9㎞ 남짓이다. 울릉도의 두 배가 채 못 된다. 그 작은 사이판 서쪽에 조롱박처럼 매달린 섬이 마나가하다. 산호초가 둘러싼 마나가하의 바다는 바닥이 그대로 비칠 정도로 맑다. 산호초 사이로 크고 작은 열대어들이 헤엄치고 야자수를 스치는 바람은 청량하다. 끈적한 습기, 바다 특유의 비릿한 내음도 없다. 천국 안의 고갱이 같은 천국이랄까.사이판 북쪽의 그로토는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다. 스쿠버다이버뿐 아니라 스노클링 초보도 우르르 몰려든다. 바닷가 절벽에 둥근 암벽이 파여 있고, 그 아래 동굴이 여러 개 있다. 동굴은 모두 바다와 통해 있다. 동굴 너머에선 햇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볕을 받은 동굴 주변은 늘 그림 같은 형광색 빛깔이다. 프로급의 프리 다이빙 실력을 갖춘 이들은 여기서 하늘거리는 옷을 입고 수중사진을 찍는다. 카메라 버튼을 누를 힘만 있다면 누구나 인생샷을 건질 수 있다. 단 스노클링 초보는 어림없다. 위험한 아름다움에 이끌려 턱도 없는 시도는 하지 마시길.만세절벽과 자살절벽도 섬 북쪽에 있다. 1944년 태평양 전쟁 와중에 미군에 패퇴해 섬 끝까지 몰린 일본인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떨어져 죽었다는 곳이다. 바다 쪽의 만세절벽에선 부녀자와 노인들이, 안쪽 자살절벽에선 일본군이 뛰어내렸단다. 이 장면에 충격을 받아 미국이 원폭 투하를 결정했다는 관점도 있다. 전쟁을 끝내려면 지상군이 일본 본토에 상륙해야 한다. 한데 죽음으로 패배를 부정하려는 이들이 끝까지 맞서면 미군의 피해도 막대할 터다. 이런 이유로 전쟁지휘부가 원폭 투하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사이판 중심지인 가라판 시내 ‘아메리칸 메모리얼 파크’를 찾으면 당시의 상세한 전황을 알 수 있다. 산호 완충지대가 없는 만세절벽엔 쉼 없이 파도가 몰아친다. 바다의 침식 기세로 볼 때 머지않은 후대에 만세절벽도 무너지고 말 것이다. 역사의 무대 하나가 사라지는 것이지만 대신 우리는 아름다운 친구를 얻게 될 테다. 환초(環礁)다. 그때쯤이면 사이판은 지금과 전혀 다른 모습의 파라다이스가 돼 있을 것이다.●챗GPT의 감수성이 발견 못한 ‘별빛’ 챗GPT가 미처 꼽지 못한 것이 별빛투어다. 역시 녀석은 정서적인 면에 취약한 듯하다. 별 관찰 최적지인 만세절벽은 낮보다 밤에 몇 배 더 붐빈다. 멀리 수평선 바로 위에 뜬 별까지 눈에 담을 수 있다. 우리보다 미세먼지와 광해 등이 적기 때문이다. 북반구에선 보기 어려운 노인성(老人星·카노푸스)도 뜬다니 한번 찾아보시길. 우리 선조들이 세 번 보면 무병장수한다고 믿었다는 별이다. 사이판 남부로 내려오면 태평양 전쟁의 실체가 좀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티니안섬이 늘 눈에 들어와서다. 미군의 B29 폭격기 ‘에놀라 게이’가 히로시마에 원폭을 투하하기 위해 죽음의 날개를 폈던 섬. 코럴오션리조트의 시그니처 골프 코스인 7번홀에서도, 전지형차량(ATV)을 타고 아름다운 남부 해안을 돌아볼 때도, 티니안섬은 늘 눈에 밟혔다. 당시 일본인 못지않게 한국인도 많은 사상자를 냈다. 잊혀선 안 될 역사다.가라판 투어는 여행이라기보다 어슬렁대는 것에 가깝다. 사통팔달의 번다함은 없고, 이 집 저 집 기웃대다 노천 바에서 맥주 한 잔 들이켜는 게 전부다. 술집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치안 등 불안 요소가 별로 없다는 뜻이다. 현지 술꾼들이 킬킬대며 웃는 게 우리 일행을 보고 시덥지 않은 농담이나 던지는 게 분명하다. 그건 뭐 우리도 마찬가지다. 속으로 대낮부터 술추렴이냐며 낄낄댔으니 말이다. 시장이나 마트에 가서 귀국 선물을 살 수도 있다. 이렇게 어슬렁대다 보면 오후 한때가 금세 지난다.절대 강자 미국의 영토라지만 섬은 섬이다. 우리처럼 터부도 있고 행운에 대한 믿음도 있다. ‘굿 럭’을 가져다주는 건 세 가지다. 킹피셔란 새를 보거나 바다거북을 만났을 때, 그리고 (시늉에 불과하지만) 래더비치의 거북바위에 먹이를 줬을 때다. 킹피셔는 ATV를 타고 남부 해안을 돌다 만났다. 우리 물총새, 청호반새와 비슷하다. 크기는 좀더 큰 편. ‘굿 럭’을 가져다준다는 새가 혹시 이 녀석은 아닐까? 그래서 ‘마리아나 킹피셔’를 검색했더니, 빙고! 사이판 여정 내내 환상에 가까운 날씨(사실 현지인들에겐 평범한 하루 중 하나였을 뿐이다)를 가져다준 것도 이 녀석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바다거북을 만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마나가하섬 방문 때 흔히 볼 수 있다. 배가 지나가면 녀석은 머리만 내밀고 빼꼼히 쳐다본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번개처럼 물속으로 머리를 숨긴다. 그래도 녀석이 어쩌지 못하는 게 있다. 커다란 등짝이다. 바다 위에 노란 부유물 같은 게 보이면 십중팔구 바다거북이다. 단 머리를 보고 찾으려 하면 못 볼 확률이 99%다. 산호 이야기를 조금만 더 이어 가자. 사이판의 숨가쁜 역사와 적잖이 얽혀 있는 듯해서다. 남태평양의 산호섬들에 견줘 사이판은 산호의 개체수가 다소 적다. 태평양 전쟁의 상처에서 덜 회복된 것으로 여겨진다. 가라판 시내에 “산호가 우리의 미래”(Coral is our future)라는 벽화와 글씨가 그려진 것도 이를 의식한 조치로 읽힌다. 산호는 해양생태계의 번성에 필수다. 작은 물고기들의 은신처가 되고, 이들을 노리는 포식자들을 불러 모은다. 개중엔 산호를 먹고 모래 똥을 싸는 녀석도 있다. 파랑비늘돔이다. ‘샌드 메이킹 머신’이라 불리는 녀석인데 어렸을 때는 거무튀튀한 암컷(앵무고기)이었다가 성장한 뒤 무리 중 가장 체격이 좋은 개체가 에메랄드빛 수컷으로 성전환한다. 파랑비늘돔은 미세조류를 섭취하기 위해 산호를 긁어 들이켠 뒤 입자 고운 ‘모래’로 배출한다. 죽은 산호도 마찬가지다. 우리 해양수산부 누리집에 따르면 파랑비늘돔 한 개체가 1년에 배출하는 ‘모래’ 양이 무려 90㎏을 상회한다고 한다.한데 사이판 근해에선 이 녀석을 볼 수 없었다. 산호와 파랑비늘돔 개체가 늘면 지체됐던 섬의 진화도 빠르게 이어지겠지. 그리고 천국 같은 본연의 물 속 풍경도 갖게 될 터다. 챗GPT가 여러모로 요긴한 건 분명한데 가끔 상식 밖의 대답을 내놓는 경우가 있다. 가장 황당했던 건 사이판 최고의 숙소를 물었을 때다. 챗GPT는 오래된 다국적 자본의 리조트 이름만 주르륵 내놨다. 이런 뚱딴지가 없다. 현지인과 한국인 모두가 최고의 숙소로 꼽는 곳은 미크로네시아 리조트법인(MRI)이다. 순수 한국 자본의 기업이다. 사이판 북부의 켄싱턴호텔, 올 인클루시브 리조트로 이름난 PIC사이판, 최고의 골프 코스를 보유한 코럴오션리조트 등으로 이뤄졌다. 이 3곳의 리조트가 보유하고 있는 객실 수가 북마리아나 전체의 4분의1이 넘는다. 이는 북마리아나 관광청의 글로리아 카바나 부위원장이 확인해 준 수치다. 현지인들이 MRI에 ‘엄지 척’ 하는 것엔 정서적인 이유도 섞인 듯하다. 팬데믹 기간 내내 MRI 직원들은 주민들과 같이 굶고 같이 격리됐다. 문을 닫아건 다국적 자본의 리조트들과 달랐다. 그러니 이들을 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MRI와 같을 리 없다. ‘만인의 연인’인 배우 김태희, 일왕 등도 켄싱턴호텔에 묵었다는데 챗GPT가 관련 내용을 알지 못한다는 것도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혹시 은근히 ‘관광 영토’를 주장하는 한국을 경계하는 건가? 그렇다면 챗GPT는 정말 놀라운 녀석이다. 한데 그보다는 서양인들에게 익숙한 검색 사이트에서만 정보를 수집한 한계를 드러낸 게 아닐까 싶다. 그게 맞다면 녀석은 좀더 공부가 필요하다.요즘도 켄싱턴호텔 직원들은 주기적으로 백사장에 모여 ‘체’로 해변의 모래를 고른다고 한다. ‘체’는 이른바 ‘노가다’ 일을 해 본 사람만 아는 건설 현장의 도구다. 콘크리트 배합 등에 필요한 고운 모래를 거를 때 주로 쓴다. 이 일을 도맡아야 할 파랑비늘돔이 적으니 리조트 직원들이 대신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다. ■ 여행수첩 -‘아메리칸 메모리얼 파크’에서 상영하는 태평양전쟁 기록영화는 꼭 보길 권한다. 실제 일본인 여성이 만세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아주 충격적이다. -사이판도 몰디브처럼 리조트가 사실상 하나의 여행 목적지를 형성하고 있다. 사이판을 대표하는 MRI는 ‘사이판 플렉스’ 프로그램을 운용 중이다. 산하 세 개 호텔·리조트의 식음업장, 놀이시설, 나이트 풀파티 등 부대시설을 모두 즐길 수 있는 일종의 자유 이용권이다. ‘호캉스족’들에게 인기라고 한다. 켄싱턴호텔엔 어린이 동반 가족을 위한 키즈룸이 있다. 인기가 좋아 다른 숙소보다 예약이 빨리 마감된다. -마나가하섬 입도료는 왕복 뱃삯과 환경세를 포함해 1인 50달러다. 그로토는 입장료가 없지만 개별 스노클링은 제한된다. 현지 여행사 스노클링 상품은 55달러 정도다.
  • MZ노조,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반대

    MZ노조,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 반대

    정부가 6일 발표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양대노총을 포함해 노동계가 개편방안에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이른바 MZ세대 노조라 불리는 ‘새로고침 노동자협의회’(새로고침 노조)도 개편방안에 반대 입장을 내놨다. 최대 주 69시간 근무가 가능해지는 것을 두고 직장인의 공분도 갈수록 커지는 상황이라 당분간 개편방안을 둘러싼 비판이 지속될 전망이다. 새로고침 노조는 9일 논평을 내고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에는 근로조건 최저기준을 상향해온 국제사회의 노력과 역사적 발전을 역행 내지 퇴행하는 요소가 있다”고 비판했다. 새로고침 노조는 평균 근로시간이 긴 이유로 연장근로 상한이 높은 점을 꼽으면서 “주 52시간제로 기대했던 취지의 안착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장시간 노동과 과로에서 탈피하기 위한 제도적인 기반도 효과를 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연장근로 관리 단위 확대는 시기상조”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사업주와 근로자대표가 서면으로 합의해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조정하도록 한 점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고침 노조는 “노동자 개인으로서는 현행법상 보장된 근로조건이 집단적 의사결정과 의사표시만으로 저하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노총도 이날 용산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추진하려는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이 ‘과로사 조장법’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비혼 장려 정책이냐’, ‘다시 야근 공화국으로’라는 말이 회자가 되고, 청년들의 분노도 들끓고 있다”며 “과로사로 내모는 개편안을 즉각 폐기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 서경덕 ‘WBC 욱일기 응원’ 경고에…日언론 “규정 없어 문제없다”

    서경덕 ‘WBC 욱일기 응원’ 경고에…日언론 “규정 없어 문제없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개막을 맞아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일본 응원단의 욱일기 응원을 경고한 것과 관련해 한 일본 매체는 “규정이 없어 문제가 없다”고 보도했다. 일본 스포츠 전문 매체 ‘히가시스포웹’은 지난 8일 “한국 교수가 욱일기 배제 캠페인을 개시 ‘즉각 고발’ 대회측은 규정없음”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서 교수의 ‘WBC 욱일기 응원 퇴치 캠페인’을 비판했다. 앞서 서 교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난 2016년 WBC 홈페이지에 욱일기 응원 사진이 게재돼 논란이 됐고, 2019년 야구 국가대항전 ‘프리미어12’에서 열린 한일전에 욱일기 응원이 등장해 큰 파장이 일었다”면서 “만약 이번에도 일본측 응원단이 욱일기로 또 응원을 펼친다면 즉각 WBC측에 고발하고, 외신 기자단을 통해 전 세계에 문제점을 알릴 예정”이라고 밝혔다. 특히 서 교수는 WBC에 욱일기가 등장한다면 이를 세계적인 논란거리로 만들어 욱일기가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와 같은 의미인 ‘전범기’임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리겠다고 했다. 서 교수는 “지난 몇 년간 많은 네티즌들과 함께 꾸준히 FIFA측에 욱일기 응원의 문제점을 지적한 결과, 지난 카타르 월드컵 당시 일본측 응원단의 욱일기 응원을 제지할 수 있었다. 축구 월드컵에 이어 야구 월드컵에서도 욱일기 응원을 퇴출시켜야만 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WBC 현장 혹은 TV 및 모바일 중계화면으로 욱일기 응원이 포착되면 제보해달라고 요청했다. 서 교수의 활동을 보도한 히가시스포웹은 기사 말미에 “욱일기를 사용한 응원은 대회측이 금지하고 있지 않아 전혀 문제가 없다”면서 “한국 측의 일방적인 주장인 만큼 10일 한일전(도쿄돔)을 앞두고 논란이 예상된다”고 전했다. 해당 보도를 접한 서 교수는 “일본의 주요 스포츠 매체마저 욱일기 응원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건 과거 일본이 범한 침략전쟁의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일 뿐”이라면서 “이번 WBC에서 욱일기 응원이 또 등장한다면 지난 카타르 월드컵에서 욱일기 응원을 펼치려다 제지당한 것처럼 세계적인 망신을 또 당하게 만들어 줄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 국제구조위원회, ‘세계 여성의 날’ 맞아 인도적 위기에 처한 여성 범세계적 관심 촉구

    국제구조위원회, ‘세계 여성의 날’ 맞아 인도적 위기에 처한 여성 범세계적 관심 촉구

    전쟁과 분쟁, 재난, 기후 위기 등으로 인해 인도적 위기에 처한 난민을 포함한 사람들의 생존과 회복, 삶의 재건을 지원하는 세계적 인도주의 기구인 국제구조위원회(IRC·한국 대표 이은영)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전 세계적으로 인도적 위기에 처한 여성 현황과 범세계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전쟁과 분쟁, 재난, 기후 위기와 같은 인도적 위기는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하는 결과를 초래했고, 그 중에서도 특히 여성과 어린이들은 더 큰 어려움에 노출된다. 튀르키예·시리아 지진을 계기로 국제구조위원회가 지난 2월 11일부터 15일까지 시리아의 548가구(남성 207명, 여성 343명)를 대상으로 진행한 긴급필요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90.9%가 대피소에서 생활하고, 84%가 공용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런 가운데 여성과 소녀들은 화장실조차 안전하거나 쉽게 이용할 수 없고, 일부는 시설을 이용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괴롭힘을 당했다고 응답하는 등 폭력에 노출돼 있다. 또 이동에 관한 자유도 여성에게는 매우 제한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이 자유롭다”고 말한 응답자는 남성 52%, 여성 4%, 남아 21% 여아 18%라는 결과가 나왔을 정도로 여성의 자유로운 활동에 제약이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제구조위원회(IRC) 시리아 총책임자인 타냐 에반스는 “위기 상황에서는 여성과 어린이들은 폭력과 착취의 위험에 더 크게 노출되어 있으며, 따라서 안전한 공간과 의료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지원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여성이 처한 위험은 시리아 뿐만이 아니다. 오랜 분쟁과 가뭄으로 고향을 떠나온 난민들이 생활하고 있는 케냐 다다브 난민캠프의 여성과 소녀들도 성폭력, 괴롭힘, 학대 등 다양한 형태의 젠더 기반 폭력(GBV) 위험에 노출돼 있다. 국제구조위원회는 지난해 케냐 다다브 난민캠프에서만 젠더 기반 폭력 대응 서비스를 요청하는 400명 이상의 여성과 소녀들을 지원했다고 발표했다. 이 인원은 젠더 기반 폭력에 노출돼 있는 여성들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고 위원회는 설명했다. 케냐의 국제구조위원회 여성보호책임자인 암발레는 “남성과 남자 아이들이 물을 찾아 집을 떠나 이동했을 때, 여성과 여자 아이들은 젠더 기반 폭력 위험에 노출되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제구조위원회가 2020년부터 지난해까지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페루에서 2600여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한 인터뷰에서 가장 흔하게 경험하는 젠더 기반 폭력은 ‘정신적 학대’인 것으로 나타났다. 콜롬비아에서는 특히 40%의 여성이 정신적 학대만큼 신체적 학대도 경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피해가 심각하다. 한 예로, 콜롬비아의 오마이라는 젠더 기반 폭력의 생존자다. 그는 2008년 콜롬비아 내 분쟁을 피해 베네수엘라로 피난을 가던 중 폭력을 당했다. 젠더 기반 폭력에서 살아남은 오마이라는 현재 ECHO(유럽연합 인도지원사무국)에서 자금을 지원하는 국제구조위원회의 여성 보호 및 권리 증진 옹호 프로그램에 약 25명의 여성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국제구조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워크샵과 교육을 함께하면서 지역사회에 대해 주인의식을 가지고 지역사회 내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젠더 기반 폭력 사례를 예방하고 대응하는 방법을 식별할 수 있도록 훈련받고 있다. 모든 젠더 기반 폭력의 보편적인 근원은 성 불평등, 즉 여성과 남성 간의 불평등한 권력 관계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성의 보호는 물론 여성의 권리를 증진하고 성불평등을 해결해야 한다. 국제구조위원회는 인도적 위기에 대응하는 것과 동시에 각 지역의 여성과 소녀들을 위한 보호 서비스, 특히 심리적 지원과 경제 회복 프로그램을 더욱 강화하여 여성의 권리를 증진할 것을 국제사회에 촉구하고 있다. 이은영 국제구조위원회 한국 대표는 “여성과 소녀들은 국제구조위원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원 대상으로, 특화된 의료, 위생, 보호, 교육, 심리 지원 등의 지원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며 “인도적 위기에 놓인 여성과 소녀들이 특별히 불균형적으로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이들이야말로 더 안전하고 공평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한 모든 결정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인도적 위기에 놓인 여성과 소녀들에게 더욱 주목하고 이들을 도울 적극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 세계 여성·소녀들이 마주하고 있는 인도적 위기 상황에 대한 국제구조위원회의 자세한 지원 활동 내용은 위원회 웹사이트를 통해 확인할 수 있으며, 정기후원과 일시후원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한편, 국제구조위원회는 1933년 독일 나치 정권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떠난 천재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도움으로 설립됐다다. 1933년부터 현재까지 90년동안 전 세계 40개 이상의 국가와 28개의 미국 도시에서 인도주의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전 영국 외무부 장관이었던 데이비드 밀리밴드가 총재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해 11월, 아시아 최초로 한국에 후원국 사무소가 개설됐다. 이로써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는 미국, 영국, 독일, 스웨덴에 이어 다섯 번째 후원 국가가 됐다.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는 왜 식물에 낙서를 할까/식물세밀화가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우리는 왜 식물에 낙서를 할까/식물세밀화가

    ‘꺾지 마세요.’ ‘들어가지 마세요.’ ‘밟지 마세요.’ ‘가져가지 마세요.’ 산, 식물원, 공원, 정원 등 식물이 있는 장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경고 문구다. 나는 이런 문구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꽃을 꺾고, 화단에 들어가고, 식물을 밟았기에 굳이 품을 들여 경고문을 설치했을까 하고 말이다. 식물을 찾아다니다 보면 가끔은 이런 문구의 경고문도 볼 수 있다. ‘낙서하지 마세요.’건축물이나 시설물, 담벼락, 울타리 등지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이 문구가 식물들 사이에 있다. 우리는 식물에도 낙서를 한다. 내가 막 걷기 시작할 무렵부터 다닌 서울의 한 어린이공원에는 다육식물이 식재된 온실이 있다. 온실을 걷다 보면 ’낙서하지 마세요’라고 적힌 안내문이 보인다. 그리고 주변에는 수많은 사람 이름과 기호 낙서로 덮인 보검선인장이 있다. 선인장 중 오푼티아속 무리가 있는 곳에서는 낙서를 자주 볼 수 있다. 지난겨울 다녀온 강원도의 자작나무 숲에서도 어김없이 낙서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봤다. 직원이 말하길 자작나무 수피를 벗겨 가져가거나 아예 낙서할 펜이나 뾰족한 도구를 준비해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선인장의 줄기, 자작나무 수피와 대나무 줄기 모두 표면이 매끄럽고 면적이 넓으며 뾰족한 물건에 의해 쉽게 긁힌다는 공통점이 있다. 페인트나 펜도 필요 없다. 손톱과 뾰족한 돌, 나뭇조각만으로도 간단히 낙서를 할 수 있다. 인간, 호모 사피엔스는 훼손하기 좋을 만한 대상을 눈으로 고르는 데에 종 특유의 똑똑함을 발휘한다. 물론 식물에 낙서하는 건 최근의 사건도, 우리나라만의 특성도 아니다. 작년 선인장을 그리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느라 남아공 케이프타운의 다육식물 자료를 찾다가 1883년 발간된 한 잡지에 실린 그림을 봤다. 그림 속에는 낙서로 덮인 부채선인장과 젊은 남녀가 있는데, 남자는 선인장 잎에 무언가를 쓰고 있다. 아마도 본인의 이름이나 옆에 있는 여성에 대한 사랑 고백 메시지일 것이다. 그림 아래에는 ‘희망봉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다’란 문구가 쓰여 있다. 그림 속 풍경은 서울 남산에 있는 사랑의 열쇠와 크게 다르지 않다.인류의 역사는 기록의 역사와도 같다.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서 혹은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기록한다. 우리는 많은 것이 기록으로서 완성된다고 믿는다. 기록 도구는 종이나 전자기기 그리고 목재나 돌처럼 무생물인 경우가 많지만 간혹 살아 있는 생물인 경우도 있다. 동물의 피부, 식물의 수피, 잎, 줄기 등에 낙서하는 것은 인간 개인의 족적을 남기려는 기록 본연의 욕망에서 더 나아가 정복욕과 과시욕이 동반되기에 가능한 행위다. 물론 식물 중에는 낙서하기 좋은 식물로서 발전해 온 종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실내 분화로 흔히 재배되는 식물 크루시아의 영명은 ‘사인 나무’다. 보통 식물의 잎이 낙서판이 되기 곤란한 이유는 긁은 흔적대로 잎이 찢어지거나 변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데, 크루시아는 긁힌 자국에 의해 잎 형태가 변형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자국이 더 선명해진다. 옛 남미 사람들은 이런 크루시아의 성격을 이용해 잎으로 카드놀이를 했다고도 한다. 식물원과 온실 중에는 종종 크루시아에 낙서하는 걸 허락하는 곳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오히려 낙서를 권하는 순간부터 사람들은 낙서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들이 사인 나무라는 영명을 갖게 된 것은 1898년 미국ㆍ스페인 전쟁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윌리엄 매킨리가 쿠바 동부 산악에 파견된 아더 와그너 장군에게 승패를 이끌 중요한 메시지를 크루시아 잎에 써서 전달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진다. 워낙 이야기 만드는 데에 능통한 나라에서 시작된 내용이라 조금은 과장된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렇게 크루시아는 사인 나무로서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됐다. 크루시아 잎에 메시지를 써서 보낸 때로부터 백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에게는 고화질 사진, 고품질 녹음, 고용량 메모를 할 수 있는 휴대폰이 있고, 값싼 종이와 필기구도 있다. 굳이 선인장, 대나무, 자작나무에 낙서할 만한 이유가 없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누구도 타인이 내 몸에 낙서하길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식물도 마찬가지다. 종종 사람들은 내게 오랫동안 식물만 보고 살면 가끔은 식물이 질리지 않냐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식물을 공부할수록 식물에 대한 애정은 커지고, 이들 삶에 존경심이 든다. 내가 질리는 것은 식물에 비친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뿐이다.
  • 전란·화마 속 630여년 보존된 보물 기증

    전란·화마 속 630여년 보존된 보물 기증

    전란과 화마를 견디며 630여년간 보존된 조선왕조 개국 공신의 녹권이 시민들에게 공개된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강릉 최씨 대경공(흔봉)파 재경종친회가 기증한 ‘최유련 개국원종공신녹권’을 이달 전시할 예정이라고 7일 밝혔다. 공신녹권은 공을 세운 신하의 공적과 포상 내용을 적어 특권을 증명하는 상훈 문서다. 1392년 8월에 설치된 공신도감에서 조선왕조 창업에 공을 세운 이들을 개국공신과 개국원종공신으로 선정했다. 강릉 최씨 문중인 최유련은 고려 공민왕 때 문하시중평장사(門下侍中平章事)를 지냈다. 태조 이성계를 왕으로 추대해 왕조를 창업한 공으로 1395년 개국원종공신에 봉해져 공신녹권을 받았다. 이 공신녹권에는 받는 사람의 이름과 신분, 7회에 걸친 공신들의 공적과 포상 지시·처리 내용, 녹권을 받은 105명의 공신 명단·포상 내역, 녹권 발급에 관여한 담당 관원의 직함·성명·서명 등이 208항에 걸쳐 적혀 있다. 크기는 세로 31㎝, 가로 635㎝로, 닥종이 9장을 붙여 제작했다. 강릉 최씨 문중은 예로부터 이야기로만 전해져 내려온 공신녹권을 1990년대 경기 여주에 사는 종인(宗人) 최덕중씨가 자택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최덕중씨의 선조들은 한국전쟁 시기에 공신녹권을 항아리에 넣어 마당에 묻어 두는 등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다. 원문의 훼손이 거의 없이 보존 상태가 양호한 덕분에 희귀 자료로 가치를 인정받아 1998년 보물 제1282호로 지정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강릉 최씨 종친회와 협의해 지난달 28일 자료를 넘겨받았다. 공신녹권 고화질 사진 파일은 누구나 볼 수 있도록 박물관 홈페이지에 게시돼 있다.
  • 이재명 “일본 발밑으로 들어가나… 계묘늑약 진배없어”

    이재명 “일본 발밑으로 들어가나… 계묘늑약 진배없어”

    일제 강제징용 배상 정부 해법 비판“전쟁범죄에 면죄부 주는 외교 패착”“위안부 합의 朴정부 심판 기억해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7일 윤석열 정부의 일제 강제징용 배상 해법을 두고 “국가의 자존심을 짓밟고 피해자의 상처를 두 번 헤집는 ‘계묘늑약’과 진배없다”며 비판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당 평화·안보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정부가 발표한 배상안은 일본의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최악의 외교적 패착이자 국치”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수십 년 동안 투쟁해온 피해자가 원한 건 일본의 진정한 사죄와 배상”이라며 “가해자의 사과 없이 피해자가 피해자에 배상하는 건 불의고 비상식”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지금도 가해자인 일본은 어떤 문제도 인정할 수 없다는 오만한 태도로 일관 중인데도, 정부는 새로운 사죄를 받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고 말한다”며 “대한민국 정부인지 의문이 간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굴욕적인 배상안을 포함해 윤석열 정권의 외교·안보 자해, 자충수에 대해 국민의 분노가 크다”며 “소위 ‘다케시마의 날’에 동해상에서 한미 군사훈련을 강행하기도 하고, 미일이 훈련 후 동해를 일본해라고 표기해도 항의조차 제대로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북한의 도발 대비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일본의 재무장을 무비판적으로 용인하고 미일의 대중 공세 정책에 아바타를 자처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며 “자칫 대한민국이 미일 동맹의 하위 파트너, 즉 일본의 발밑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대표는 아울러 “과거 위안부 부당 합의와 비슷한 경로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된다”며 “앞으로 한일 관계가 종속 관계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3·1절 기념사에서 일본을 ‘공통의 가치를 공유하는 파트너’라고 규정한 것에 대해서는 “일본이 지금처럼 과거 침략 전쟁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평화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공유한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인류의 양심과 상식에 맞게 순리대로, 원칙대로 풀어야 한다”며 “정부는 굴욕적인 해법을 즉각 철회하고 피해자들에게 사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대표는 오후에 국회 본청 앞에서 열린 ‘강제동원 정부해법 강행 규탄 긴급 시국선언’ 행사에서도 “참으로 수치스럽다. 국가는 굴종하고, 국민은 굴욕을 느끼고, 피해자 국민들은 모욕을 느끼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과거의 잘못된 위안부 합의로 박근혜 정부가 어떤 심판을 받았는지 윤석열 정부는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며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의 반역사·반인권·반국가적 야합에 대해 끝까지 국민과 함께 싸우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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