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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기혁의 스포츠 스토리] 앰부시마케팅, 한국에서 꽃피우다

    [신기혁의 스포츠 스토리] 앰부시마케팅, 한국에서 꽃피우다

    그 유명한 중국의 삼국지를 보면, 적벽대전에서 패하고 도망가던 적장 조조는 화용도라는 곳에 매복해 있던 촉나라 장수 관우에게 잡히게 된다. 또한, 우리 역사의 고구려를 지켜낸 살수대첩에는 살수강가에 매복해 있다가 수나라 군대를 크게 물리친 을지문덕 장군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매복 작전이 오늘 날 기업의 마케팅에도 사용되고 있다. 바로 앰부시마케팅이다. 앰부시마케팅(Ambush Marketing, 매복마케팅)이란, 규제를 피해가는 마케팅 기법을 말한다. 주로 스포츠마케팅 시장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특정 스포츠대회의 마케팅 권리가 없는 기업이 대회 중계방송의 TV 광고를 구입하거나 공식스폰서인 것처럼 속이기 위해 개별 선수나 팀을 후원하는 등의 교묘한 수법을 동원해 광고/홍보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약간은 전문적인듯한 이 단어가 사실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 셀 수 없이 지나쳐갔을 정도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특히,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 시즌만 되면, 예외 없이 이 앰부시마케팅이란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 월드컵 마케팅 시장은 앰부시마케팅의 절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앰부시마케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그와 유사한 마케팅을 전개했던 사례들이 있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식할 수준은 되지 못했다. 2002년에 우리나라에서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이 개최되면서, 기업들은 월드컵이 주는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해서 눈뜨기 시작했다. 하지만, 월드컵 후원사가 아닌 이상, 월드컵이라는 대회명칭과 앰블렘, 마스코트, 트로피 등 월드컵과 관련된 어떠한 이미지도 사용할 수 없었다.따라서, 후원사가 아닌 기업들은 어떤 방법으로든 월드컵을 활용해서 자사의 기업이미지를 높이고 상품을 판매해야 하는 상황에서 앰부시마케팅을 선택하게 된 것이다.월드컵 앰부시마케팅이 쉬운 이유는 월드컵 시장이 워낙 크고 국민적 관심도가 높으며 거의 한달 동안 열리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라서 굳이 월드컵이라는 명칭이나 앰블렘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월드컵을 연상시키는 유사 명칭이나 이미지를 사용하거나 유명 선수를 광고모델로 활용하면 소비자가 자연스럽게 월드컵을 연상해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현재 본선 32강 경기가 진행중인 남아공 월드컵의 경우에도 공식후원사가 아닌 기업들의 광고효과가 공식후원사의 광고효과를 넘어섰다는 기사들이 이미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이러한 앰부시마케팅에 대하여 어떤 사람은 월드컵 열기를 붐업시키고 시장을 키우는 아이디어가 기발한 마케팅 활동이라고 긍정적으로 판단하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은 월드컵이라는 대형 마케팅 호재에 편승하려는 비열한 행위이며, 수백억원의 비용을 지불한 공식후원사의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월드컵이 끝나면 FIFA는 의례히 앰부시마케팅을 진행한 기업들 중에 법적으로 문제가 될 만한 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느라 분주하다. 이처럼, 앰부시마케팅은 법적 테두리 안에서의 적합성과 상도덕적 관점에서의 정당성을 모두 만족시키면서 진행해야 하는 어려운 점도 가지고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월드컵 공식후원사의 마케팅도 진행해봤고, 축구 국가대표팀 후원사로서 월드컵을 활용한 앰부시마케팅을 실행한 적도 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공식후원 마케팅과 앰부시마케팅의 효과를 단순히 비교하거나 잘잘못을 따질 수는 없다. 다만, 중요한 것은 앰부시마케팅도 결국 스포츠에 기댄 “스포츠마케팅”이라는 것이다. 스포츠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한다면 앰부시마케팅도 있을 수 없다. 공식후원사의 인적·물적 지원을 통해 개최되는 대형 스포츠 이벤트, 기업의 든든한 후원을 받으며 성장한 인기 스포츠 스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이겨내고 후원사의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세계 정상에 우뚝 선 아마추어 스포츠 선수들. 이러한 스포츠와 후원사 혹은 지원사의 파트너십이 없다면, 스포츠 시장자체가 형성되지 못할 것이고, 그에 따라서 앰부시마케팅의 기회도 만들어지지 않을 것이다. 단적으로 축구선수 한 명도 후원하지 않고, 작은 축구대회 한번도 지원하지 않는 기업에서 월드컵을 활용하여 마케팅을 전개한다는 것은 스포츠를 후원하고 있는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조금 너무하지 않나 싶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스포츠와 함께 윈윈(Win-Win) 하기 위해 가져야 할 앰부시마케팅의 본질은 무엇일까? 가장 중요한 본질은 법적인 규제보다도 더 중요한 스포츠마케팅 정신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의 앰부시마케팅, 즉 페어플레이 정신이 있는 앰부시마케팅일 것이다. 어떤 스포츠 이벤트를 장려하기 위해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투자한 후원사가 없다면 그 스포츠를 활용할 수 있는 앰부시마케팅의 기회도 없다. 이러한 스포츠와 후원사 사이의 파트너십을 이해할 수 있는 앰부시마케팅이야말로 정말 수준 높은 마케터가 지향해야 할 이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공식후원사의 스포츠마케팅이 아닌 비(非)후원사의 앰부시마케팅을 무조건 억제하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앰부시마케팅을 하게 된 계기로 축구 혹은 다른 어떤 스포츠종목에라도 조금이나마 관심을 갖게 되고, 후원의 손길을 뻗어주었으면 하는 것이 필자의 작은 바램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남아공 월드컵을 활용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앰부시마케팅을 전개하고 있다. 월드컵이 끝난 이후, 어떤 기업은 기발한 아이디어였다는 성공의 찬사를 또 어떤 기업은 너무 상업적이라는 비난을 받게 될 것이다. 어느 쪽이 올바른 선택인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본다.사진 = 아디다스(위), 나이키(아래) 월드컵 광고 ㈜케이티 신기혁 스포츠에디터
  • “오바마의 미국, 부시때보다 좋아”

    “오바마의 미국, 부시때보다 좋아”

    한국을 비롯한 세계 22개국 중 21개국의 미국에 대한 호감도가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 재임때보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들어 더 높아졌다. ●한국 58→70→79% 3번째로 높아 미국의 조사전문기관 퓨 리서치센터가 지난 4~5월 세계 22개국, 2만 4790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17일(현지시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18세 이상 남녀 706명 가운데 79%가 미국을 호의적으로 평가했다. 한국의 대미 호감도는 조사 대상국 중 3번째다. 대미 호감도는 참여정부 시절인 2007년 58%였으나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인 2008년 70%로 급등한 이후 계속 높아졌다. 미국에 가장 높은 호감을 나타낸 국가 1위와 2위는 아프리카의 케냐와 나이지리아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아버지 고향인 케냐에서는 94%, 나이지리아에서는 81%가 미국을 좋게 봤다. 미국과 함께 주요 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은 2008년에 비해 17% 오른 58%가 미국에 호감을 표시했다.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진 유럽을 구하기 위해 미국 재무부와 손을 잡은 독일과 프랑스의 대미 호감도는 2008년에 비해 각각 1%와 2% 떨어져 63%와 73%를 기록했다. 2008년 독일은 32%, 프랑스는 31%나 상승했었던 것과 비교, 다소 주춤한 편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파병에 대한 미국과 독일·프랑스의 입장 차이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케냐 94% 등 阿 호의적 역사적으로 미국과 마찰이 많았던 러시아도 2년 전 조사 때보다 호감도가 11% 오른 57%를, 일본은 7% 상승한 66%였다. 일본의 경우, 54년만에 정권교체를 이뤄 집권한 민주당이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를 둘러싸고 미국과의 마찰을 빚는 등 불편한 관계가 반영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집트 5%↓… 터키와 함께 최저 반면 터키와 이집트, 파키스탄의 대미 호감도는 각각 17%로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특히 이집트는 2008년 조사에 비해 호감도가 5% 하락, 조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부시 행정부 때보다 떨어진 국가다. 한편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 조사에서는 중국인의 91%가 자국의 사정이 좋다고 응답한 반면 한국인의 80%는 경제가 좋지 않다고 답했다. 또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 자국팀이 우승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브라질의 75%가 우승을 확신했다. 스페인은 58%, 아르헨티나는 43%, 독일은 36%, 프랑스는 24%만이 우승을 점쳤다. 박성국기자 psk@seoul.co.kr
  • “마오가 대장정 중 17번 통독한 책 삶의 지혜 일러주는 인생 제왕학 교과서죠”

    “마오가 대장정 중 17번 통독한 책 삶의 지혜 일러주는 인생 제왕학 교과서죠”

    2006년 1권을 내면서 이달 초 완간하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다. 번역 작업을 시작하기로는 13년 만이었고,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던 첫 만남인 대학원 석사 논문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에누리 없는 30년이다. 그가 평생을 다 바쳐 이뤄낸 대역사(大役事)는 이토록 기나긴, 고통스러운 시간을 요구했다. 총 1만 9566쪽에 원고지 8만장에 이르며 각주만 4만 5000개를 넘나든다. 교수 퇴직금을 몽땅 털어부었고, 아내는 은행 빚까지 내며 출판사를 만들어 유지했고, 작은 딸은 편집과 실무를 기꺼이 도맡았으니 그가 쏟아부은 노력이 에둘러 짐작된다. 최근 해설서를 포함해 서른 두 권짜리로 ‘자치통감(資治通鑑)’(삼화 펴냄)을 완역 출간한 권중달(69) 중앙대 역사학과 명예교수를 서울 봉천동 개인연구실에서 만났다. “이제 작은 산봉우리 하나를 넘었을 뿐이죠. 보통 사람들도 쉽게 자치통감을 접하고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자치통감 행간 읽기’ 같은 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완역본 역시 좀 더 섬세하게 개정 보완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고요.” 필생의 작업을 이뤄낸 뒤끝이건만 흥분과 희열보다는 덤덤함이 앞선다. 2006년 2월 정년퇴직한 뒤 더욱 치열하게 계획하고 모색해 놓은 학문의 길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자치통감은 ‘춘추(春秋)’, ‘사기(史記)’와 함께 중국의 3대 역사서로 꼽힌다. ‘춘추’가 포폄(褒貶) 사관으로 강한 주관을 담고 있고, ‘사기’가 기전체(紀傳體)로 인물을 중심으로 역사를 펼치며 중복된 데 반해 자치통감은 시간순으로 기술하는 편년체(編年體)를 택해 좀 더 객관적이고 총체적인 역사 기록으로 평가받는다. 북송의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사마광(司馬光·1019~1086)이 16개 왕조의 흥망성쇠를 20여년에 걸쳐 서술한, 294권으로 이뤄진 방대한 분량이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박제화된 과거 역사의 기록 정도로 치부하면 오산이다. 마오쩌둥(毛澤東)이 대장정 기간에도 손에서 놓지 않고 무려 열일곱 번을 통독한 책이었고, 1972년 중국을 방문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선물받은 책이기도 하다. 세종대왕이 직접 ‘자치통감 훈의(訓義)’ 편찬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이에 앞서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 또한 몽골어로 번역해서 자손들에게 읽도록 했다. 권 명예교수는 “좁게 보면 ‘살아 있는 제왕학 교과서’이고, 넓게 보면 개개인에게 삶의 지혜를 일러주는 ‘영원한 인생 교과서’이기도 하다.”면서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그 어떠한 것보다 실용적이고 교훈적인 책”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자치통감은 전국시대 주(周) 위열왕 23년(BC 403)부터 시작한다.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공자의 ‘춘추’가 끝나는 지점이다. 공자를 존중했으며 주의 예(禮)를 복원하고자 했던 사마광이 이어 쓴 그 시점부터 전국시대로 분류할 수 있다. 이후 진(秦), 한, 삼국시대, 위진남북조를 거쳐 오대 십국의 후주(後周) 현덕왕 6년(959)까지 1362년의 역사를 담고 있다. 단순히 중국 대륙의 역사만이 아니라 흉노, 선비, 거란, 토번은 물론 고구려, 백제, 신라의 역사까지 아우르는 실질적 동아시아 역사서에 가깝다. 그가 특히 주목하는 대목은 문화 콘텐츠로서 역사다. 권 명예교수는 “수많은 경험과 이야기가 집약된 것이 바로 역사이며, 역사야말로 미래 문화산업의 보고(寶庫)”라면서 “향후 10년 뒤 정도면 숱한 인물과 이야기를 품고 있는 자치통감이 문화산업을 먹여 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생을 과거의 기록인 역사학에 매달려온 학자건만 산업적 가치라는 측면에 대한 인식도 남다르다. “영화 아바타를 보세요. 서구는 고갈된 콘텐츠를 찾기 위해 인도로, 로마로, 아시아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습니다. 2만개가 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자치통감을 비롯한 전통 문화를 우리가 선점하면 미래 문화산업에서 앞서갈 수 있는 것이지요.” 역사학을 ‘지금 우리와 관계없는 것’으로 여기는 풍토에 대고 ‘역사학은 실용학’이라고 외치는 이야기다. 물론 학자로서 그의 관심은 더욱 학문적이다. 그는 “역사학계에 중국 중심 사관, 일본 사학계식 편향 등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한국 중심도, 중국 중심도 아닌 우리의 독자적인 동아시아 사관을 가질 것인가에 대해 중점적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1~31권 각권 2만 8000원, 해설서 3만 8000원. 32권 한 질 90만 6000원.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전쟁 名著] 주지안롱 ‘모택동은 왜 한국전쟁에 개입했을까’

    중국인의 눈으로 바라본 한국전쟁 발발의 배경을 알고 싶은 독자에게 권할 만한 책이다. 대미· 대소· 대북관계 그리고 중국 공산당 내부의 참전결정에 대한 여러 갈래의 분석이 자로 잰 듯 정교하고 때로는 통렬하기까지 하다. 공산당 지도부의 결정과정에 대한 추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이 책의 초판이 일본에서 나왔을 때 중국 내외를 통틀어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문제에 대한 가장 앞선 연구 중 하나로 평가받았다. 저자 주지안롱(朱建榮)은 선즈화, 천젠 등 다른 중국계 학자들과 함께 수준 높은 연구자로 소개됐다. 1991년 일본에서 첫 출판됐다. 일본어 판의 원제는 ‘모택동의 조선전쟁-중국군이 압록강을 넘을 때까지’이다. 중국출신으로 일본에 유학, 한국전쟁사를 연구한 독특한 경력의 소유자답게 한국이나 일본, 중국의 연구자와는 다른 글로벌한 시각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지안롱은 상하이에서 태어나 명문 화동사범대를 나왔다. 1986년 일본으로 건너가 연구원 생활을 했다. 도요가쿠엔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마오쩌둥의 베트남전쟁’도 그의 작품이다. 주지안롱은 한국전쟁의 주역은 미군과 중국군이라고 규정하면서 “한국전쟁이라기보다는 한반도에서 벌어진 미국과 중국 사이의 미·중전쟁”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중국군의 참전은 국제관계뿐 아니라 중국 내부적인 영향이 컸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한국전쟁을 계기로 중국 외교정책의 방향이 미국을 주적으로 삼고, 사회주의 대 자본주의의 대결구도를 바른 것으로 간주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중국의 개입을 결정했던 최고 지도부의 대외인식과 반응의 양식이 중국의 현대사에 크게 투영됐다.”라면서 “한국전쟁 참전 정책결정의 과정은 그 후 중국 지도부 내외정책의 기본노선을 규정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최근의 천안함 사태처럼 국내정치가 동요하거나 대외관계의 위기가 발생하면 한국전쟁 당시부터 이어져 온 특정한 대외반응 양식의 흔적이 표면에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초판본도 의미가 있지만 진가는 개정판에 있다. 저자는 2004년 새로 발굴된 자료와 연구성과를 바탕으로 개정판을 냈다. 1990년대 들어 러시아와 중국의 극비문서가 속속 해제돼 공개되면서 한국전쟁 연구의 전기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저자는 2002년 4월부터 6개월 동안 미국 조지 워싱턴대학에 머물면서 개정판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개정판에서 저자는 중국참전의 역사적 뿌리를 드러내는 데 주력했다. 1940년대 중국 공산당의 대미인식 변화에 대한 검증을 통해 역사적이고 실증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중일전쟁 이후 중국 공산당과 미국 사이에서 형성된 불신의 기억때문이다. 장제스 정권에 대한 미국의 일방적인 지지가 ‘목의 가시’였다. 베트남에 천겅 장군을 보내 대프랑스 항전을 도운 과정도 같은 맥락이다. 트루먼 대통령이 1950년 6월27일 제7함대를 보내 타이완해협을 봉쇄하자 폭발한 셈이다. 집단지도체제 아래 다른 지도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참전을 독단적으로 결정하다시피한 마오쩌둥의 생각은 ‘삼로향심우회(三路向心迂回)’로 정리된다. 미국이 한반도와 베트남, 타이완 등 3개 통로를 통해 중국본토를 침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중국의 참전이 대국의 위신과 국제적 영향력을 갖고 싶은 마오쩌둥 개인의 야망, 국내정치에 미칠 이익을 치밀하게 따진 결과라는 여러 학자의 견해도 소상하게 소개하고 있다. 무엇보다 당시 540만명에 이르던 인민해방군의 처리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중국은 국공내전이 끝날 즈음 과다한 해방군의 처리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140만명 정도를 제대시킨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었다. 해방군 내 조선인 사단 3만 5000명을 북한 인민군에 선뜻 내어 준 배경이다. 참전결과 중국군 60만~90만 명이 한국에서 희생됐다. 공식 전사자는 36만 명이지만 그 밖의 이유로 숨진 병사의 수도 엇비슷하다는 점을 과감하게 밝혔다. 이 책의 가치와 저자의 균형감각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 [국내 학자가 본 한국전쟁] “분단과 전쟁 사이에 필연성 없다”

    [국내 학자가 본 한국전쟁] “분단과 전쟁 사이에 필연성 없다”

    박명림 연세대 대학원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세계적 학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한국전쟁 권위자 중 한 사람이다. 박 교수는 17일 “한국전쟁은 우리 역사가 질주하는 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었으며, 1950년은 한국 근대화 혁명의 시기”라고 밝혔다. 또 전후 한국의 발전상에 대해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생산적·창조적으로 활용한 대표적 성공 케이스”라고 평가했다. 박 교수의 연구는 한국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자리매김해온 브루스 커밍스의 수정주의를 뛰어넘는 보편적 분석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한국전쟁의 발발과 기원이 ‘48년 질서’에서 시작됐다고 했는데. -내가 정의하는 ‘48년 질서’란 통일과 분단의 가능성이 공존하는 유동적 체제다. 이는 종전 후 남북간 적대가 강화되고 통일 가능성이 사라진 ‘53년 체제’와 명확히 구분된다. ‘48년 질서’는 한국인들의 주체적인 선택에 따라 분단의 고정으로 갈 수도, 통일의 성취로 갈 수도 있는 역사적 가능의 공간이었다. 그동안 한국전쟁을 설명하던 두개의 지배적 패러다임, 즉 김일성의 남침행위를 강조하는 전통주의와 식민시대부터 쌓여온 사회모순의 폭발로 보는 수정주의를 모두 극복하고 싶었다. →분단의 원인과 전쟁의 원인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나. -분단과 전쟁 사이에 필연성은 없다. 많은 나라에서 분단이 일어났지만 반드시 전쟁을 동반하는 것은 아니다. 남북 분단이 전쟁으로 이어지게 된 것은 목적과 수단이 분리돼 정치행위의 이성적 측면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수단을 택함으로써 통일이라는 선한 목적이 무(無)화됐다. 남북한 모두 마찬가지였다. 또 다른 원인은 한국문제의 국제성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역사 이래 한반도의 갈등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승만을 제거하면 통일할 수 있다는 김일성의 믿음과 달리 한반도의 분단에는 미국·소련 등이 깊숙이 연관돼 있었다. 전쟁은 민족 차원에서만 통일을 꿈꿨던 전략적 오류의 결과였다. →한국전쟁이 가진 의미는 무엇인가. -국제적·지역적·민족적 차원 3층 수준의 복합적 의미를 지닌다. 국제적 차원에서 한국전쟁은 사실상 세계 3차 대전을 대체하는 냉전시대 가장 큰 전쟁이었다. 미국·일본, 소련·중국 등 세계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한반도에서 벌인 전면전이었다. 지역차원의 의미는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이 복귀한 것이다. 북한의 든든한 후원자로 미국에 맞섰던 중국은 이후 동아시아 냉전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로 발돋움했고 일본은 미·일동맹을 통해 전범국가에서 국제사회 일원으로 당당히 복귀했다. 마지막으로 민족적 차원에서는 분단이 항구화·세계화됐다. 남북한이 스스로 통일할 수 없는 ‘53년 체제’가 구축된 것이다. →한국전쟁이 한국민들에게 미친 영향은. -한국전쟁은 역설적으로 ‘평화의 절대성’에 대한 확신을 심어줬다. 겉으로는 상대를 증오하지만 속으로는 상호상멸, 즉 전쟁을 일으키면 양쪽 모두 멸망한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한국전쟁은 적대와 증오도 낳았지만 분단상태의 평화질서를 가능케 했다. 또 한국전쟁은 삶에 대한 한국민들의 의지를 강화시켰다. 전쟁이 끝난 후 무수히 많은 교회·학교가 설립되고, 신문 발행부수도 급격히 늘어났다. 강력한 생존의지와 경쟁의지를 심어준 것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한반도 긴장상태가 고조되고 있다. 60년 전 상황과 비교한다면. -우발적·국지적 충돌의 우려는 있지만 전면전쟁의 위험은 사라졌다. 박정희 정권 때의 1·21사태, 노태우 정권의 KAL기 폭파사건 등 한국전쟁 종전 이후에도 남북간 긴장과 갈등은 계속해서 있었다. 그러나 보복과 맞대응을 하지 않고 분단을 평화적으로 관리해 옴으로써 북한은 남북 경쟁에서 나가떨어졌다. 남북간 경쟁은 이미 끝났다. 앞으로는 ‘비판적 포용’의 자세로 어떻게 통일로 갈 것인지를 연구해야 한다. →한국전쟁 발발 60년을 정리한다면. -60년 후를 생각했으면 좋겠다. ‘돌아보기’보다 중요한 것은 ‘내다보기’다. 지난 역사에 대한 성찰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비전과 각오를 새기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60년을 잘 성찰해서 전쟁을 막고, 평화·자유·민주주의 등 정신적 가치를 물질적 가치 못지않게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한·일 100년 대기획] 도요타 리콜 충격 탈출 안간힘

    [한·일 100년 대기획] 도요타 리콜 충격 탈출 안간힘

    일본의 자동차 역사는 비교적 짧다. 일본 자동차산업을 대표하는 도요타자동차가 대중적인 인기를 얻는 승용차 크라운을 첫 출시한 것은 1955년이다. 1968년 도요타의 카롤라는 미국 시장에 진출, 소형차 붐에 힘입어 성공을 거뒀다. 일본 자동차산업은 1980년 영원하리라 믿었던 세계 자동차생산국 1위인 미국을 밀어냈다. 자동차 강국으로 자리잡았다. 더욱이 1997년 하이브리드카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도요타의 ‘프리우스’를 통해 친환경자동차를 선도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도요타자동차의 리콜 사태는 ‘메이드 인 재팬’의 신화를 뒤흔들었다. ‘최고’, ‘제일’이라는 우월감에 빠진 탓이다. 도요타 사태를 계기로 일본 경제의 상징인 자동차산업을 되짚어 본다. 도요타자동차는 일본 기업의 상징이다. 때문에 ‘국민기업’이라는 명칭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지난해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 속에서도 791만대를 판매, 세계 1위의 자동차 기업을 지켰다. 일본인들은 도요타자동차의 경이적인 성과를 칭찬하는 데에 전혀 꺼림이 없다. 그러나 지난 2월24일 도요타그룹 100년사에 모욕적인 사건이 터졌다. 창업가문 출신의 도요타 아키오 사장이 미국 하원의 감독 및 정부개혁위원회 청문회에 불려 나갔다. 리콜(무상 회수수리) 대응이 늦어진 점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죄하고 눈물을 흘렸다. 도요타는 가속페달 매트와 브레이크 제어시스템 등의 결함으로 전 세계 1063만대의 자동차를 리콜조치해야 했다. 미국 정부는 4월20일 15억엔(약 195억원) 상당의 과징금 부과를 결정했고, 도요타는 승복했다. 리콜 사태로 인해 도요타는 2009년 10월~2010년 3월 사이의 손실이 무상수리비 1000억엔, 판매차질 700억~800억엔 등 최대 1800억엔에 달한다는 분석도 있다. 일본 사회는 혼돈에 빠져 있다. 자존심으로 여겼던 도요타가 행여 침몰하지는 않을까 우려해서다. 일본 산업의 대표적 아이콘인 도요타자동차의 리콜사태는 일본의 국가적 위상마저 멍들게 했다. 소니와 같은 일본의 다른 기업들은 세계 시장에서 뒤처졌지만, 도요타는 일본 제조업 및 디자인의 표상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도요타 리콜 사태가 일어났을 때 일본 사회 전체는 도요타를 겨냥한 비판이나 공격을 최대한 삼가며 감쌌다. 하지만 도요타 사태가 단순한 결함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일본 산업 전반에 걸친 생산 방식에 대한 의문이 잇따라 제기되고 있다. 도쿄 주재 칼리온 캐피털의 크리스토퍼 리히터 자동차 애널리스트는 “자동차산업은 일본 제1의 산업”이라면서 “일본에서는 국가 최고의 산업이 국민을 오히려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고 말했다. 다이와종합연구소에 따르면 도요타 사태로 일본 내 자동차 생산이 30만대 감소할 경우 1조 8529억엔 규모의 산업생산이 줄고 국내총생산(GDP)이 0.12%포인트 하락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요타가 생산과 판매에 있어 미국의 제너럴 모터스(GM) 자동차를 추월할 수 있었던 것은 생산과 품질개선 방식에서 우위에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도요타는 불량 부품의 사용으로 야기된 사망사고에 대한 원인규명을 소홀히 한 데다 그룹차원의 대처도 신속하지 못했다. 도요타는 아이치현 미카와(현재의 나고야) 지방의 제조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장인정신을 갖고 자신의 혼을 담아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낸다는 의미의 ‘모노즈쿠리’ 기질이 강하다. ‘혼을 불어넣어 만든 물건’에 하자가 있을 수 없다는 생각에 차 있다. 그러다 보니 결함이 났을 때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측면이 강하다. 이번 리콜 사태도 초기에 대응했어야 할 것을 “우리는 틀림이 없다.”는 과도한 자부심, 자만심이 사태를 키웠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시다 마사루 엠아이 종합연구소장은 “이번 리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품질에 자만해 소비자를 경시해 서둘러 대응에 나서지 않은 도요타의 태도에 있었다.”면서 “급속한 해외사업의 확대로 생산·관리체제 및 인재 교육의 부실화, 개발의 단기화, 계열외 부품조달 등이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국내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엄격한 검증 시스템에 의해 결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도요타의 글로벌화가 급속하게 이뤄지면서 해외 각지에서 생산하는 제품을 국내처럼 관리하지 못해 이뤄진 결과라는 지적이다. 한국의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최근 ‘도요타 리콜사태의 발생원인과 교훈’이라는 자료를 냈다. 자료에서 “도요타는 원가절감을 위해 약 50개 차종에 과도하게 부품 공용화를 추진, 일개 부품의 결함 발생시 파급효과가 증폭되는 맹점을 초래했다.”면서 “가격경쟁력확보를 위해 마른 수건 짜기식으로 부품업체에 단가인하를 요구, 부품업체가 비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등 품질을 저하시켰다.”고 분석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한국 학자가 본 한국전쟁]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명예교수

    [한국 학자가 본 한국전쟁]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명예교수

    전 세계적으로 한국전쟁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6·25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60년이 됐다. 그러나 지금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 이유는 6·25와 직접 연관이 있는 옛 소련의 비밀문서가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사건의 원인을 조사하면서 우방국 전문가는 물론 러시아와 중국 전문가도 초청했다. 공정하게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려는 태도때문에 국제적인 공신력을 높이고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안함 사건 조사처럼 6·25도 이제 스탈린과 김일성에 관한 자료가 완전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 천안함 사고원인 조사에서 보인 국제공조와 권위 있는 결론을 내릴수 있다. 이제까지 6·25에 관한 연구는 국내자료나 서방측의 자료에 의존해 왔다. 공정성이 결여돼 있다. 6·25는 공산진영의 종주국 소련과 스탈린이 직접 관련돼 무기를 지원하고, 공군과 군사고문관을 파견하여 작전을 총괄했다. 게다가 마오쩌둥의 해방군까지 끌어들였던 것이다. 러시아연방 외무성 문서 보관소 자료와 크렘린 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는 이들 문서가 빠짐없이 공개돼야 지금까지 한국이 주장해 왔던 북한의 남침설이 확정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와 다른 주장을 펴왔다. 그 주장이 무엇이든 한국은 참이냐 거짓이냐를 가리려 하지도 않고 무조건 거부해 왔다. 6·25는 스탈린의 승인과 마오쩌둥의 지원약속이 없었다면 발발이 불가능했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사실을 확인한다는 차원에서 러시아 측 자료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도 1994년 러시아 초대 대통령 옐친이 한국정부에 전달한 6·25 스탈린 관련문서가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많은 진실이 일반인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지 못한 채 의문으로 남아있다. 천안함 조사의 핵심이 공정성에 있다면 6·25는 역사적 진실에 있다. 진실이 올바로 밝혀지지 않거나 왜곡될 때 혼란이 야기되고 분열이 생기는 것이다. 이번에 6·25 6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을 통해 러시아 측 자료가 일반독자에게 공개되는 것은 큰 의미 있는 일이다. 광복 이후 일부 역사학자들은 민족주의 사관을 내세우면서 과거 식민지 사관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작 자신들은 일본 측이나 미국 측 사료에 의존하는 한계를 보였다. 스스로의 연구역량을 저하시켜 민족사관을 정립하지 못한 모순을 반복했다. 그러므로 이제 6·25는 물론 해방 이후 미소 냉전시기 및 남북관계와 기타 국제관계를 밝히는데도 러시아 사료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6·25 발생에 대한 책임이 북한 측에만 있다는 주장이 옳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6·25가 단순히 김일성의 요구로 스탈린이 승인을 하고 모택동의 후원약속으로 발생하게 된 것은 아닌 것이다. 멀리는 일제가 1910년 한국을 합병하면서 항일독립운동을 시작하던 초기에 마침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면서 그 영향을 받았다. 특히 러시아 극동지방을 무대로 한 항일애국단체와 중국 상해 및 동북지방에서 활동하던 항일애국단체들이 서로 민족주의 진영과 공산주의진영으로 분열돼 투쟁하기 시작했다. 1945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남북을 미소가 분할해 군정을 실시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주의 진영은 서울로, 공산주의 진영은 평양으로 집결했다. 미소 냉전이 시작되면서 서울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신탁통치문제를 놓고 충돌하기 시작한 뿌리가 있다. 결국 광복이 되면서 남북으로 귀국한 양대 세력이 각각 미소 군정의 비호 하에 정부를 구성하고 김일성은 스탈린의 공산주의 확장정책에 힘을 얻고 마오쩌둥이 중국 본토장악에 고무돼 미군이 한국에서 철군을 시작하자 통일의 기회로 보고 남침을 감행한 것이다. 러시아 측의 자료없이는 한국의 근현대사 연구는 물론 6·25에 대한 진실을 가려내기 어려운 까닭이다.
  • [문화마당] 한반도와 로마 제국/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문화마당] 한반도와 로마 제국/김기봉 경기대 역사학 교수

    천안함 사태로 우리가 새삼 깨닫는 것이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다. 한반도는 지리적으로는 대륙 세력인 중국과 해양 세력인 일본 사이에 끼여 있는 샌드위치 신세고, 정치적으로는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이 신냉전적 대결을 벌이는 전장이다. 한반도의 운명이 주변 세력의 판도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공식화하는 이론이 반도 사관이다. 반도 사관은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역사학적으로 옹호하는 식민 사관의 일종이다. 식민 사관은 전근대에서는 중국에 사대하여 왕조 국가의 정통성을 유지했던 조선이, 중국 대신에 일본이 동아시아의 맹주로 등장한 근대에서는 일제 식민지가 되는 것을 합리화하는 역사 이데올로기다. 해방 후 한국의 역사가들은 식민 사관에서 탈피하여 한국사의 독자성과 자주성을 재인식하는 과학적 한국사학을 정립하는 것을 제일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1945년 이후 한국사는 과연 독자적이며 자주적으로 전개됐는가? 일제로부터의 해방이 독립투쟁의 성과가 아니라 연합군이 승리한 결과로 주어진 것이었기에, 이후 한반도의 운명은 주변 열강의 세력관계 속에서 결정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시작된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해방을 기점으로 출발한 한국 현대사를 분단시대로 만들었다. 천안함 사태는 우리가 여전히 분단시대에 살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사건이다. 북한 어뢰를 맞고 천안함이 침몰했다면, 북한은 가해자고 우리는 피해자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의 동의와 협조 없이는 북한에 대해 어떤 효과적인 제재도 할 수 없는 현실이다. 북한과 남한은 같은 민족이다. 하지만 같은 민족이기 때문에 공동 운명체가 되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한국사의 비극이다. 이 같은 한국사의 비극은 삼국 시대부터 있었다. 삼국 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 사이에 ‘동족상잔’이 벌어졌다. 신라의 삼국 통일이 중국 당나라와의 연합을 통해 이룩됐듯이, 오늘의 한반도 통일도 미국과 중국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 모임인 주요 20개국(G20)의 주최국이 되는 위대한 국가를 이룩했다고 아무리 자랑해도, 강대국을 향해 사대외교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의 역사적 운명인가? 우리가 반도 사관을 반증하는 역사적 사례로 드는 것이 로마 제국이다. 이탈리아 반도의 작은 도시 국가로 출발한 로마는 시작은 미미했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이 같은 로마의 힘은 어디서 비롯했는가? 인종과 종교가 다른 민족에게 시민권을 부여한 관용이 로마를 보편 제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일반적 설명이다. 에이미 추아는 ‘제국의 미래’(이순희 옮김, 비아북 펴냄, 2008)에서 역사상 존재했던 모든 초강대국들은 관용을 토대로 하여 위대한 국가를 이룩했음을 밝혀냈다. 그녀는 어떤 시대와 세계에서도 가장 독창적이고 진취적이며 숙련된 사람이 한 지역과 민족에서만 나올 수는 없으므로, 어느 특정 국가가 세계를 제패하려면 자본과 인적 자원을 ‘세계’로부터 충원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분단시대 대한민국이 강대국이 되기엔 너무나 작은 나라다. 북한은 당위적으로는 같은 민족이지만 현실적으로는 가장 위험한 적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힘은 로마처럼 우리 공화국 안에 들어온 타자들을 대한민국 시민으로 포섭하는 것으로부터 나올 수 있다. 대한민국이 점점 다문화 사회로 변하는 것은 민족 정체성의 위기이자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회다. 이제 지방선거도 끝났다. 국민은 선거를 통해 여러 지역에서 기존의 정치가를 해고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했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은 정치가 가운데 로마 제국처럼 반도 국가를 선진 조국으로 디자인하는 위대한 지도자가 있기를 기원한다.
  •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첫 결실 7권 낸 박인성 단장

    ‘한글본 한국불교전서’ 첫 결실 7권 낸 박인성 단장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이 간행하는 ‘한국불교전서’는 신라 원효에서 1910년대 경허에 이르기까지 국내 승려들의 저작을 집대성한 총서다. 1970년 처음 목록 작업을 시작해 1989년 1차로 10권 간행했고, 2004년까지 4권의 보유편을 더했다. 이를 한글로 번역·간행한 것이 ‘한글본 한국불교전서’다. 이는 기존 불교전서에 추가 자료들까지 포함해 13년 동안 총 250권 분량을 엮어 내는 대대적인 작업이다. 3년 전부터 시작된 작업이 최근 1차 결실을 맺고 ‘인왕경소’를 포함해 7권이 먼저 나왔다. ●“10년 뒤 총서 완간되면 불교인식 바뀔것” 첫 수확을 맞아 9일 서울 인사동에서 기자들과 만난 박인성 한국불교전서역주사업단장은 “10년 뒤 총서가 완간되면 불교에 대한 인식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를 드러냈다. 그는 “총서에 포함된 책들 중 4분의1 정도만이 기존 번역본이 있을 뿐”이라면서 “그마저도 주석을 누락시키는 등 완전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 한국 불교에 대한 이해가 전체적으로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가 총 지휘를 맡고 있는 간행 작업은 현재 원고번역이 35% 정도 진행됐다. 그중 일단 출판 단계까지 마무리된 7권을 먼저 내놓은 것. 여기에는 중국에서 활약한 신라 고승인 원측이 호국신앙에 대해 쓴 ‘인왕경소’, 조선 후기 선승인 백파 긍선이 불교의례에 대해 쓴 ‘작법귀감’ 외에 균여의 ‘일승법계도원통기’, 백암 성총의 ‘정토보서’ 등이 포함돼 있다. 딱딱한 경전 해설서만 있는 건 아니다. 처음 번역·출간된 ‘일본표해록’ 같은 경우는 당시 일본 풍속을 흥미롭게 그려낸 여행기다. 저자인 풍계 현정 스님은 1817년 항해 중 풍랑을 만나 일본을 표류한 7개월간의 기록을 여기에 남겼다. ●“일본여인이 조선인 아이 낳으면 포상금” 책에는 당시 조선인을 바라보던 일본인의 재밌는 시선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은 조선을 ‘부처님의 나라’로 여겨 일본 여성이 조선인의 아이를 낳으면 관가에 신고하고 포상금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마도에서는 일본 여인들이 조선인 남자를 자주 유혹했다. 이외에 대마도는 조선 땅이라거나 대마도인들이 스스로를 조선인으로 생각했다는 증언이나, 대화할 때 ‘일본’이라 하면 좋아하고 ‘왜(倭)’라고 하면 싫어했다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이런 점 때문에 박 단장은 “총서는 불교뿐 아니라 국문학, 역사학, 철학에 끼칠 영향도 막대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번역 작업 역시 불교학자 외에도 국문학자, 사학자, 철학자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대거 참가했다. 지금까지만 약 200명 인원이 번역 및 감수 작업에 투입됐다. 작업은 2020년까지 계속된다. 향후에도 작업이 완료되는 대로 계속해서 결과물을 조금씩 내놓을 예정이다. 한편 11일에는 동국대 정각원에서 전서 출판을 기념하는 봉정식과 학술대회도 개최한다.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시·도지사 당선자에게 듣는다] 우근민 제주지사 “해군기지 착공 지금 하면 안된다”

    [시·도지사 당선자에게 듣는다] 우근민 제주지사 “해군기지 착공 지금 하면 안된다”

    “이대로 해군기지 공사 착공 안 된다.” 우근민 제주도지사 당선자가 해군기지 착공에 제동을 걸고 나서 해군기지 건설사업의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 당선자가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부와 해군, 제주도민이 모두 이해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우 당선자는 7일 최근 해군의 기지공사 착공 움직임과 관련 “지금 하면 안 된다. 그만두어야 한다.”면서 공사 착공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또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고 있는 강정주민들에게 “앞으로 모든 것을 공개적인 절차를 거쳐 투명하게 처리하겠다.”면서 “건의할 사항이 있으면 냉정하게 건의해 달라.”고 주문했다. 우 당선자의 이 같은 입장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사업이 국책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이 미흡하다는 인식에 따른 것으로 분석된다. 우 당선자는 “지역주민의 불만과 지역사회의 갈등이 많은데 그대로 공사를 강행하면 도정을 제대로 할 수 없다.”며 “다음달 취임하면 국방부 장관, 해군참모총장, 주민 등을 만나서 조정을 통해 해결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제주 해군기지는 올해부터 2014년까지 9587억원을 들여 이지스함을 포함해 해군 함정 20여척과 최대 15만t급 크루즈 선박 2척을 동시에 댈 수 있는 민·관복합형관광미항을 건설하는 사업이다. 한편 서울행정법원은 강정주민들이 국방부장관을 상대로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한 ‘국방·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승인 처분 무효확인소송’과 관련, 다음달 15일 선고할 예정이다. 제주 황경근기자 kkhwang@seoul.co.kr
  • 부녀회원, 결혼이민자 ‘친정엄마’ 된다

    일본에서 경북 영주로 시집와 초등학생 자녀 두 명을 키우고 있는 야마우리 아츠코씨. 그녀에게는 영주시 새마을부녀회원 유봉남씨 집이 든든한 친정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 5월 초 영주시 새마을회가 주최한 소속 회원들과 결혼이민여성 1대1 결연사업에서 만났다. 함께 시장도 가고 무료급식 봉사활동도 다니면서 한국 생활을 배웠다. 유씨는 가끔 한국 반찬도 장만해 줬다. 유씨의 결정적인 도움은 아츠코씨 남편의 치료다. 아츠코씨 남편은 결혼 전부터 정신질환 증상이 있었고 결혼 후 경제적 문제 등으로 증상이 심해졌으나 치료를 받지 못했다. 가족들은 가장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려 왔다. 유씨가 아츠코씨 집에 들렀다가 아이들의 행동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 뒤 사태를 파악했다. 유씨는 아츠코씨 남편의 무료 치료를 주선했다. 건강한 가정을 꾸리게 된 아츠코씨는 자신도 봉사를 하겠다며 새마을부녀회 활동을 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새마을운동중앙회와 협력, 다문화가족 친정가족 맺어주기 사업을 시작한다고 4일 밝혔다. 이에 따라 결혼이민여성 4640명이 아츠코씨처럼 국내에 ‘친정’을 갖게 되는 것이다. 전국 232개 시·군·구별로 각 20명씩 새마을 부녀회원이 결혼이민자와 1대1 결연을 맺는 방식이다. 부녀회원과 결혼 이민자가 가정을 상호 방문하며, 부녀회원이 결혼 이민자의 상담과 자녀교육 지원 등을 통해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하자는 취지다. 결혼이민자에 대한 한국 문화와 한국어 교육, 배우자 교육 등을 실시하는 디딤돌 교실도 운영한다. 김중열 여가부 다문화가족과장은 “이번 사업을 계기로 각 지역에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해당 지역 단체나 기관들이 네트워크를 구성, 다문화가족의 사회통합을 위한 다양한 협력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다문화가족 문제는 정부, 지방자치단체, 지역사회가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는 인식에서다. 여가부는 7일 새마을운동중앙회와 서울 대치동 소재 새마을운동중앙회 대강당에서 사업 발대식을 열고 업무협약을 체결한다. 다문화가족의 친정 가족이 되기로 한 새마을 부녀회원에게는 결연증서를 수여한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무욕·가난·고독 보여준 공초는 시인의 고향”

    “무욕·가난·고독 보여준 공초는 시인의 고향”

    “공초는 모든 시인들의 고향과도 같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보여준 무욕, 가난, 고독은 시인들이 갖춰야 할 고향 같은 본질적 속성입니다.” 4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8회 공초(空超)문학상 시상식에서 시인 이성부(68)씨는 “시를 쓴 시간만큼 고향을 떠나 있었고 하루도 고향을 잊은 적이 없었는데 ‘시인의 고향’과도 같은 오상순(1894~1963) 선생의 이름으로 된 문학상을 받게 돼 영광”이라고 당선 소감을 밝혔다. 이씨는 상금 500만원과 상패를 받았다. ●수상작 ‘백비’… 無爲而化정신과 닿아 이번 공초문학상 수상작은 올해 초 발간한 이씨의 시집 ‘도둑 산길’에 실린 ‘백비(白碑)’다. ‘백비’는 세월에 닳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감악산 정수리의 비석에 대한 감흥을 적은 시로, 공초의 무위이화(無爲而化) 정신과 맥이 닿는 절창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심사위원단(이근배, 임헌영, 신달자) 만장일치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구중서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은 “이성부 시인의 산행시는 단순한 등산의 감흥을 담은 것이 아니라 공초 선생의 심오한 동양정신의 맥락을 잇고 있고, 노장(莊) 철학의 사유를 담고 있다.”면서 “사회과학적인 도식을 넘어 민족과 역사에 대한 깊은 애정과 인식을 갖고 있기에 더욱 특별하다.”고 축사를 보냈다. ●공초 묘소 찾아 47주기 추모행사 이날 시상식에는 구 이사장을 비롯해 이건청 한국시인협회장, 성찬경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이근배 공초숭모회장, 양성우 한국간행물윤리위원장(시인), 신달자 시인 등 문단 관계자들이 참석해 이씨의 수상을 축하했다. 공초숭모회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은 시상식을 마친 뒤 서울 수유리 빨래골 공초 묘소를 찾아 47주기 추모행사를 가졌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감정으로 엿보는 지구의 미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 프랑스의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의 이 말 한마디는 서구 근대인의 사고 방식을 그대로 보여 준다. 인간은 ‘이성’(理性)을 가지고 있기에 생각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기에 ‘합리적으로’ 선택한다. 신(神) 앞에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라 믿었던 당시 사람들에게 인간 이성의 위대함을 설파했다는 사실은 서구 역사에 방점을 찍었다. 수학과 물리학, 경제학 같은 학문이 발전한 게 바로 이 합리성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됐던 까닭이다. 국제정치학이라고 다를까. 인간 개개인으로 구성된 국가는 철저히 합리적이고, 철저한 계산을 통해 합리적 의사결정을 내린다는 식의 전제는 아직까지 유효하다. 미국이 중동을 향해 전쟁을 일으킨 것은 ‘석유’ 자원에 대한 상대 우위를 점하기 위해 경제적으로 계산된 행동이라는 주장도 이런 식의 합리적 선택론을 전제한다. 하지만 곱씹어 보자. 과연 우리는 합리적으로만 선택하는 존재일까. 오히려 이성보다 감정에 휘둘릴 때가 많지 않은가. 프랑스 국제문제연구소 연구고문인 도미니크 모이시의 저서 ‘감정의 지정학’(랜덤하우스 펴냄)은 바로 이 질문에서 시작된다. 국제정치학과 지정학에서도 감정은 여전히 의사결정 과정에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다만 이성에 밀려 그 중요성이 인식되지 않을 뿐. 모이시는 아시아는 눈부신 경제성장으로 ‘희망’의 감정을, 이슬람은 역사적 몰락과 쇠퇴에 대한 두려움으로 ‘굴욕’의 감정을, 서구는 도전하는 아시아와 이슬람의 위협에 ‘공포’의 감정을 느끼는 이른바 ‘감정이 폭발하는 세계’가 돼 버렸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감정은 국가 혹은 지역의 흐름에 상당부분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저자의 분석 방식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의 충돌’과 유사하다. 하지만 헌팅턴이 아시아와 이슬람 문명 환경 속 서구 문명의 딜레마를 묘사하며 ‘문명’이라는 합리적 근거를 제시했다면, 저자는 노골적이고 원초적인 ‘감정의 충돌’을 설파한다. 합리성 중심의 전통적인 연구 흐름에 충분히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1만 3000원.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서울시교육감 후보 공약 실천 이렇게 곽노현 후보

    서울시교육감 후보 공약 실천 이렇게 곽노현 후보

    곽노현 서울시교육감 후보의 공보물 첫 장을 열면 “MB교육은 공정택과 함께 체포, 구속됐다.”는 제목이 눈에 띈다. 마지막 페이지에는 곽 후보를 추대한 195개 시민단체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진보 단일 교육감 후보인 곽 후보는 이처럼 정권과 대척점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일선 초·중·고교 교원 경험이 없는 곽 후보는 정권을 직접 비판하는 식으로 선거운동에 나서고 있다. 곽 후보는 이번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해 “획일적인 경쟁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일갈했다. 그는 “특히 소수만 혜택받는 체제를 만들면서 전 학생을 경쟁체제로 내몰고 있는 귀족학교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후보들에 비해 학생 인권과 자율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도 곽 후보 공약의 특징이다. ① 서울형혁신학교 구성원 자치 보장 정권을 싸잡아 비판하는 내용으로 그가 내세운 첫 번째 공약인 ‘혁신학교 300’은 현 정부의 ‘고교 다양화 300’과 명칭이 비슷하다. 하지만 인식에서부터 차이가 있는 공약이라고 곽 후보는 설명했다. 그는 “혁신학교의 정의는 학교 구성원의 자발적인 혁신의지와 교육청의 지원을 바탕으로 선진국형 수업을 실현, 공교육 혁신의 모범을 제시하는 학교”라고 말했다. 이어 “교육 여건이 열악한 지역의 학교와 자발적인 혁신 의지가 높은 학교부터 혁신학교로 지정하겠다.”면서 “학급당 학생수를 초등학교 25명 이내, 중·고교 30명 이내로 줄이고 학교별로 다양한 교육과정을 운영해 창의성·인성·적성 교육을 전면화하겠다.”고 덧붙였다. 혁신학교에서는 교장공모제와 우수 교원 초빙제를 본격 실시하고, 학교당 연간 2억원씩 지원해 교육여건 개선에 쓴다고 했다. 곽 후보는 혁신학교의 철학으로 ▲상명하달식 연구시범학교 방식이 아니라 학교장과 교사의 혁신 의지를 중시하는 자발성 ▲학교의 상황·특성에 맞는 운영계획을 제시하는 지역성 ▲‘소수를 위한 수월성 교육’에서 ‘다수를 위한 우수성 교육’으로 전환하는 원동력이 될 창의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고 학교가 민주주의와 인권 체험학습장이 되도록 하는 공공성을 들었다. 곽 후보측은 “학생과 학부모의 자치활동을 보장하고, 환경·인권·지역사회 공헌 등 학교의 사회적 책임 보고를 의무화할 것”이라고 했다. 곽 후보측은 임기 내에 서울형 혁신학교를 초등학교 150곳, 중·고교 150곳 등 300곳을 만들 계획이다. 예산은 교육청 자체예산과 지방자치단체 대응투자로 조달할 방침이다. ② 中운영비 폐지 등 공교육비도 절감 곽 후보는 또 사교육비와 더불어 공교육비도 절감시키겠다고 밝혔다. 역시 교육청 자체예산과 서울시 대응투자를 합산해 재원을 마련하겠는 것이다. 곽 후보는 “학습 준비물 지원금을 1인당 5만원씩 지원하고, 중학교 학교운영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사교육비 절감 대책과 관련해서는 “서울시교육청이 주관하는 무료 인터넷 가정학습을 EBS보다 훌륭하게 만들겠다. 일제고사 대신 기초학력 진단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외국어고·국제중·자율형사립고 등 특권교육을 바로 잡겠다.”고 했다. 곽 후보는 이어 “시도교육감-대학 협의체를 구성, 대학 서열화 완화와 대입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겠다.”고 강조했다. ③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 진보 진영 단일화 후보답게 곽 후보는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를 주요공약으로 비중있게 다뤘다. 곽 후보는 “2011년 초·중학교부터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면서 “사업 평가 뒤 2012년부터 고교로 무상급식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그는 “위탁급식을 직영급식으로 전환해 안전하고 위생적인 급식을 제공하고, 지역교육청에 급식지원센터를 설치해 학교급식 전반을 관리하겠다.”고 덧붙였다. 곽 후보의 친환경 무상급식 정책은 학생인권 조례 제정·학교폭력 근절·학생 자치활동 강화 등의 공약으로 연결된다. 곽 후보가 교육계와 인연을 맺은 계기 자체가 경기도 김상곤 교육감과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 점을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행보라는 평가를 받는다.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 [기고] 韓·日·中 정상회의의 의미/신각수 외교부 제1차관

    [기고] 韓·日·中 정상회의의 의미/신각수 외교부 제1차관

    제3차 한·일·중 정상회의가 29~30일 제주에서 열린다. 3국 정상이 동북아 지역협력의 현황을 점검하고 발전 미래상을 논의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모이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한·일·중 정상회의는 1999년 동남아국가연합(ASEAN)+3 정상회의를 계기로 역외에서 개최돼 오다가 2008년 이후 3국이 번갈아 여는 것으로 바뀌었다. 지난 10년간 한·일·중 3국 교류는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뤘다. 인적 교류는 650만명에서 1320만명으로 2배 이상, 교역액은 1300억달러에서 4380억달러로 3배 이상 증가했다. 1999년 이전에는 거의 없었던 3국 정부간 정례 협의체도 지금은 17개 장관급 회의를 포함, 총 50개 이상이 운영되고 있다. 협력 범위도 경제, 문화는 물론 재난 관리 등 비(非)전통적 안보 분야와 북핵 등 지역문제까지 포괄하게 됐다. 우리는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이번 한·일·중 정상회의를 준비함에 있어 크게 세 가지에 중점을 두고 있다. 첫째, 3국 협력의 ‘촉진자’ 역할을 해 온 우리나라는 올해 의장국으로서 지난 10년의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3국간 협력을 체계화하고 확대·심화시키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이런 맥락에서, 앞으로 3국간 협의체 및 협력사업 전반에 걸친 효율적인 운영·관리를 위해 상설적인 사무국 설립이 필요하다. 지난해 베이징에서 열린 2차 정상회의에서 한국 발의로 상설 사무국 설치에 합의했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에 있다. 내년 중 사무국이 한국에 설치돼 3국간 호혜적 동반자 관계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수행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둘째, 올해는 새로운 10년을 시작하는 만큼 중국·일본과의 협의를 통해 향후 동북아 지역협력발전의 바람직한 미래상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1994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보고르 선언과 유사한 맥락이다. 따라서 올해 한·일·중 정상회의는 앞으로 10년 동안 동북아 지역협력이 지향해 가야 할 비전과 미래상에 대해 건설적인 의견을 교환하는 유익한 장이 될 것으로 믿는다. 셋째, 3국 정상들은 이번 회의를 통해 북핵문제, 동북아정세를 포함한 지역문제 및 다양한 국제문제에 관해 폭넓은 의견 교환을 통해 공동 인식을 높이고 3국간 공조를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다. 아울러 11월 서울에서 개최되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및 2012년 개최될 핵안보 정상회의의 성공적 개최를 위한 일본과 중국의 협력을 확보하고, 여타 동아시아 지역협력, 경제위기 극복, 기후변화, 개발문제 등에 관해서도 협의할 예정이다. 이번 회의에서는 또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인 천안함 사태에 대한 논의도 이뤄질 전망이다. 우리로서는 천안함 사태 조사결과를 토대로 북한의 무력도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효과적이고 적절한 대응을 이끌어 내는 데 이번 회의를 활용할 계획이다. 한·중·일 3국의 상호관계는 역사·문화적으로 긴밀한 관계임에도 불구하고 이웃으로서 민감한 문제들을 안고 있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을 조심스럽게 호혜적으로 다루면서 인내심을 갖고 3국간 협력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
  • 식민지 시대 ‘뷔페식’으로 이해하기

    식민지 시대 ‘뷔페식’으로 이해하기

    17개 역사관련 학술단체가 참가한 가운데 28~29일 고려대에서 열리는 ‘전국역사학대회’는 뷔페다. ‘식민주의와 식민 책임’이라는 주제와 관련해 다양한 관점이 한꺼번에 노출된다. 식민지근대화론 논란을 불렀던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글을 실었던 박지향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는 ‘서양 식민주의의 유산’이란 논문을 발표한다. 최근 국내에 도입된 식민주의에 대한 수정주의적 해석을 소개한다. 제국주의가 식민지를 착취했다는 기존 논의에 대해 수정주의는 제국주의 국가들 간 거래가 식민지와의 거래보다 더 많았고, 문명개화의 사명을 중시했기 때문에 식민지배가 그리 가혹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그렇다고 식민지배 칭송은 아니다. 박 교수는 “탈식민 사회의 성장이나 실패가 식민지 경험 때문이라는 것은 도식화에 불과하고 역사적 진실은 ‘양극단 사이 어딘가’에 있다.”고 주장한다. 함동주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는 발표문 ‘일본형 식민주의의 형성과 구조’를 통해 박 교수의 주장을 반박한다. 일본을 식민지 자율성을 허용하는 자치주의 모델을 택한 영국과 비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일본이 식민지배한 곳 가운데 조선 총독부가 제일 강력했다는 데 주목했다. 1919년 3·1운동 뒤 일본 내부에서도 영국의 자치주의적 모델을 도입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모두 거부됐다. 영국은 영국, 일본은 일본이란 얘기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에 대한 반박으로 2006년 출간된 ‘근대를 다시 읽는다’(식민지근대성론)를 겨냥한다. ‘근대를’은 식민지근대화론이 결과론적 성장만 강조한다면서 근대성 자체가 성장과 수탈, 문명화와 개발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식민지 이중사회론’을 꺼내든다. 민족적·계급적 갈등 같은 근대적 갈등이 식민지적 상황 아래 더 커졌다는 점을 가리지 말라는 것이다. ‘식민지근대성’에서 방점은 식민지에 찍혀야 한다는 얘기다. 정태헌 고려대 한국사 교수는 조금 다른 차원의 주장을 내놓는다. 식민지 경험이 후대 발전에 도움이 됐느냐 되지 않았느냐를 따지는 기존 논쟁은 별 의미 없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시장과 기업을 뒷받침하는 국가의 역할이 효율적이기 위해서는 민주화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주화의 기초는 당연히 국가주권이다. 식민지배가 아무리 훌륭했어도,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으면서도 경제 성장보다 정치적 자유를 인간다운 삶의 첫째 조건으로 꼽은 아마르티아 센의 주장과 비슷하다. 역사학대회에서는 한·일병합 100년을 맞아 병합무효 선언 등이 담긴 공동성명서도 채택할 예정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시론] 천안함에서 국가안보의 엄숙함을 배우자/한희원 동국대 법대교수

    [시론] 천안함에서 국가안보의 엄숙함을 배우자/한희원 동국대 법대교수

    2001년 9월11일 아침 공중 납치한 4대의 항공기가 미국의 심장부를 강타했다. FBI가 펜트봄이라는 코드네임으로 실행한 방대한 수사결과 오사마 빈 라덴이 이끄는 19명의 알 카에다 요원들이 조종사 1명을 포함하여 네 팀으로 나누어 실행한 소행임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이들이 사용한 무기라고 해야 단단한 소형 자, 금속형 필기도구, 자극성 후추 스프레이 그리고 다용도 칼이 전부였다. 테러분자들은 근 1년 동안 미국 내에서 생활하면서 미국 항공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여러 차례 출입국한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은 경악했다. 총체적 안보 부실이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냉정했다. 국가안보 위협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행해지는 것으로서, 정찰위성이나 수많은 과학장비가 있다고 하여도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전 국민의 총화단결로만 대처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부시 대통령에게 국가비상사태에 대처할 전권을 위임하면서 의회차원에서 수많은 결의를 하고 필요한 법을 신속히 제정했다. 대표적으로, 테러를 당한 사흘 만인 9월14일 대통령에게 미국을 타격한 세력과 그에 동조하고 지원하는 어떤 세력에 대해서도 모든 수단과 방법을 사용할 수 있는 포괄적인 권한을 부여할 것을 결의하고 법으로 제정했다. 10월11일에는 오늘날 로스쿨 학습의 단골 메뉴인 애국법(USA PATRIOT ACT)을 제정했고, 10월25일에는 9월11일을 ‘애국의 날’로 지정하는 결의를 하는 등으로 10월까지 17차례의 의회결의를 통해 미국의 결속을 다져갔다. 2004년에는 정보개혁 및 테러방지법을 제정했고, 의회가 중심이 되어 국토안보부와 국가대테러센터(NCTC)를 창설했다. 우리는 어떤가? 세계평화와 안전 그리고 인권의 보호와 증진을 도모하며 안전한 삶을 이끌 국제질서의 핵심인 UN 체제에서 주권국가가 선전포고를 받음이 없이 군사적 도발을 당했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러한 비정상적인 도발에 대한 민주당의 인식이다. 민주당은 천안함 사건은 북한에 의한 기습타격이라는 국제사회의 공식적인 발표를 정부의 발표라고 깎아내리면서, 대통령은 즉각 사죄하고 내각은 총사퇴하라고 주장한다. 민주당의 경기도지사 공천자인 유시민 후보는 “합조단의 발표를 차마 믿기 어렵지만, 안 믿으면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라니까 믿어 드리겠다.”면서 “믿으면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북한 잠수정이 음향 탐지기에도 걸리지 않고 어뢰를 쏴 천안함을 두 동강 내고 도망가는데, 고속정은 출동도 안 했고, 총을 새떼에 쏘아댔다.”라고 말했다. 심지어 “지휘라인을 군법회의에 회부하고, 46명의 젊은이를 죽게 한 것에 대해 대통령이 국민 앞에 엎드려 사죄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가안보는 단절된 역사의 한 단면이 아니다. 정권을 거듭하면서 면면히 그 정신과 판단력을 이어가는 생명력 있는 국가의 정신이다. 주적(主敵)을 포함한 앞선 정권의 안보의지와 안보능력을 바탕으로 하면서 현재의 실질적인 국력을 통해 전개된다. 국력 또한 외교력, 군사력, 국가정보력, 민간방위 중심의 국가위기 관리능력, 경찰력을 포함한 효율적인 법집행 능력, 필요한 법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제정하는 입법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국민 총화력의 집결체이다. 국가안보는 국방력이나 국가정보력만으로 확보되는 것도 아니고, 집권세력의 전유물이나 책임대상은 결코 아니다. 여와 야를 초월한 책임 있는 정치지도자들과 국가 최고 책임자를 중심으로 한 국민총화 능력이 국가안보의 핵심이다. 그런데 국가안보 앞에 경건함을 보여야 할 정치인들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이 남의 일로 간주하고, 국가 강간행위를 한 강간범은 제쳐두고 왜 강간을 당했느냐면서 피해자를 다그치고, 국론을 오도하고 국가안보를 정치공세로 이어가며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다. 천안함 사건과 같은 주권국가의 존속과 위신에 대한 불의의 타격은 결코 정쟁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 “불법이민 1100만여명… 연방정부 이민개혁 시급”

    “불법이민 1100만여명… 연방정부 이민개혁 시급”

    │워싱턴 김균미특파원│“애리조나 이민단속법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피부로 느끼는 불법이민 문제가 심각한데도 연방정부와 의회가 이 문제를 너무 오랫동안 방치한 데 따른 불만의 표출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민문제 전문가로 워싱턴의 진보적 싱크탱크인 미국진보센터(CAP) 연구원인 지비 마르티네스는 “애리조나주 이민단속법이 오는 7월29일 실제로 발효되기는 어렵겠지만 연방정부와 의회가 이민 개혁에 하루속히 착수하지 않으면 애리조나주처럼 강경한 이민단속법을 제정하는 주들이 늘 것”이라고 경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애리조나주 이민단속법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법을 제정하려는 주들이 늘고 있는데. -애리조나주 이민단속법은 그동안 포괄적인 이민개혁 법안 제정에 미온적이었던 미 연방의회에 대한 경고라고 볼 수 있다. 미 의회가 불법이민 문제에 빨리 대응하지 않으면 애리조나주와 같은 주들이 더 늘어날 것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멕시코와 국경을 접한 주들이 애리조나 말고 여럿 있는데, 왜 유독 애리조나가 이민 규제에 앞장서나. -캘리포니아나 뉴멕시코, 텍사스와 달리 애리조나주의 히스패닉 이민 역사는 짧은 편이다. 또 멕시코와의 국경 사이에 사막이 있어 불법 이민자들이 그동안 위험을 무릅쓰고 굳이 애리조나주를 선택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다른 주들의 국경 단속이 강화되면서 상대적으로 국경 경비가 느슨한 애리조나 쪽으로 넘어오는 불법이민자들이 급증한 데다 마약 밀수가 따라 늘면서 여론이 악화됐다. 다른 주들에 비해 히스패닉 인구가 적어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약한 것도 한몫했다. →논란이 많은 애리조나 이민단속법의 시행 전망은. -헌법 소원이 제기돼 있기 때문에 법원이 결정을 내릴 때까지 시행을 유보할 것으로 본다. →미 연방의회가 11월 중간선거 전에 이민개혁법안을 처리할 수 있다고 보나. -솔직히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의회가 이민개혁법안을 연내에 처리하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포괄적인 이민개혁법안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 1100만명에 이르는 불법이민자들의 지위를 합법화하는 방안과 국경경비를 강화하는 내용 등이 제시돼야 한다. →경기회복이 더뎌지면서 반이민 정서가 확산되고 있는데. -그렇다. 경기회복이 늦어지면서 실업률이 올라가고 있다. 일자리가 늘지 않는 한 불법 이민자들이 일반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kmkim@seoul.co.kr
  • [이재오 권익위원장 인터뷰] “7월 은평을 재선거? 개인 뜻대로 되나” 여운

    이재오 위원장과의 인터뷰에서는 정치 문제에 대한 질문과 답변도 오갔다. 이 위원장은 예상대로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대부분 선을 그으려 했지만, 그동안의 발언보다 ‘진전된’ 내용도 많았다. ●“개헌? 내 생각 있지만 말하기엔 아직” 이 위원장은 6·2 지방선거 후 한나라당 전당대회, 당내 친이계 움직임 등과 관련한 질문에는 “당에서 알아서 잘 할 것”, “저는 정부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식으로 답변을 피해갔다. 특히 “23일부터 29일까지는 미국 출장 기간”이라면서 “선거 기간 대부분 국내를 떠나 있기 때문에 제가 선거 개입한다 않는다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그러나 개헌과 박정희 전 대통령 관련 질문에는 비교적 상세하게 답변했다. 개헌과 관련해 이 위원장은 “대통령도 순차적으로 필요성을 제기했고, 야당에서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기 때문에 지방선거가 끝나고, 보궐선거가 끝나면 개헌내용에 대해 여야가 협상을 할 것”이라면서 “내 생각이야 있지만 말하기는 적절치 않고…”라고 말했다. 지난 10일 박 전 대통령의 생가를 방문한 것에 대해 이 위원장은 “개인적으로 지난 45년간은 박 전 대통령의 과(過)의 부분과는 대척해 왔지만, 이제는 공(功)의 부분에 대해서도 역사적 인식을 가지려 한다.”면서 “그렇게 하려면 지난날의 내 마음속으로부터 박 대통령과 화해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을 계승하는 정치인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위원장은 “거기까지만 얘기하겠다.”고 끊었다. ●권익위, 본지 인터뷰 직전 선관위 문의 오는 7월28일 실시되는 은평을 재선거 출마 여부에 대해서는 “다음 역할을 아직 생각은 안 했는데, 한번 보자.”고 말하고 “지금은 지금 역할이 중요하고, 세상 일이 개인 뜻대로 되는 건 아니니까…”라고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권익위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전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선거 담당 판·검사 등을 상대로 이 위원장이 인터뷰에서 은평을 재선거와 관련해 어떤 얘기를 하는 것이 선거법에 위반될 수 있는가를 문의했다고 한다. 이 위원장이 은평을 선거에 나서지 않는다면 필요가 없었던 절차였다. 이지운기자 jj@seoul.co.kr
  •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1주기] “사람 배려하는 정치… 그분의 유지 받들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1주기] “사람 배려하는 정치… 그분의 유지 받들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주기인 23일을 앞두고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은 노무현재단 상임이사 문재인 변호사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다.”라고 말했듯, 문재인을 빼놓고 노무현을 이야기하기는 어려웠다. 서거 1주기 추모 행사를 준비하느라 문 변호사는 바빴다. 시간 내기가 어렵다며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했다. 무턱대고 조르니 지난 19일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묘역 언론 공개행사에서 짬을 내주었다. 부족한 부분은 이메일로 보완했다.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가 사퇴해 노무현재단 이사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문 변호사는 한사코 자신을 노무현재단 ‘상임이사’로 소개했다. ●“자신을 버려 국민 가슴 속에 부활” 500만이 넘는 추모 인파가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함께 슬퍼하고 마음 아파했다. 문재인 변호사는 “참으로 고마웠다.”는 말로 입을 열었다. “엄청난 추모행렬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을 버려서 국민들의 가슴속에 부활했구나…. 노 대통령다운 죽음이었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를 통해 국민들이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에 대해 다시 인식하게 됐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나를 새롭게 인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를 지키고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는 암묵적인 다짐들이 많은 사람들의 밑바닥에 자리잡게 된 것 같아요.” 1년이 지난 현재 추모열기가 많이 가라앉았다는 평가도 있지만, 문 변호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른 만큼 차분해진 겁니다. 국민들이 노 대통령의 서거를 겪으면서 가슴 한 편에서 치솟았던 뜨거운 분노, 가치와 진정성에 대한 새로운 인식같은 것들이 내면화되어 흐르고 있습니다. 때때로 분출되기도 하고요.” 노무현의 가치가 국민들에게 남아있는 것, 그것을 문 변호사는 ‘노 대통령의 부활’로 표현했다. ●“소외된 사람에게 희망 준 분” 노무현의 정신과 가치는 무엇일까. 그가 기억하는 노무현은 ‘끝까지 현실에 굴복하기를 거부한 이상주의자’다. 문 변호사는 “억압받고 소외되는 사람없이 누구나 사람 대접 받는 세상을 ‘사람사는 세상’이라고 표현했던 분이고, 그것이 노무현의 가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사람사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정치에 투신했다. 대통령이 됐을 때나 심지어 퇴임하고 나서도 끝까지 그 목표를 내려놓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년 동안 참여정부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 평가가 이뤄졌다. 문 변호사는 “노무현 대통령은 서민들, 지방 사람들, 권력에 연고가 없는 소외된 사람들에게 희망을 줬다.”고 평가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서민복지, 남북관계, 국가균형발전에 큰 발전을 이뤘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건국 이후 계속돼왔던 권위주의 체제를 해체하고, 진보적 민주주의에 대한 지향을 처음으로 분명하게 제시했습니다. 그것이 우리 역사에 가장 큰 업적으로 남을 것입니다.” 참여 정부 초대 민정수석, 시민사회수석, 비서실장을 거친 만큼 과오에 대한 의견도 궁금했다. 문 변호사는 “투쟁적이고 대결적인 정치풍토 속에서 개혁에 주안점을 두느라 국민들을 편안하게 하지 못한 점을 말할 수 있다.”면서 “언론과 싸우고 야당과 싸우느라 국민과 소통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정치현실 바로잡는 게 노 전 대통령 유지”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정치하지 마라.”는 내용의 글을 온라인에 게재한 적이 있다. 이에 대해 문 변호사는 “정치현실이 너무나 적대적이고 고통스러워서 하신 말씀이다.”면서 “나는 그 속에 들어가기 겁이나 하지 못하지만, 그런 현실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노 대통령의 유지 속에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한국 정치에 대한 문 변호사의 바람으로 인터뷰를 끝냈다. “지금보다 국민들을 통합하는 정치로 발전했으면 좋겠습니다. 뒤처지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따뜻한 정치로요.” 글 사진 김해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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