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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삼국유사 골든벨 주인공에 도전하세요

    “삼국유사 골든벨에 도전해 보세요.” ‘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군은 오는 9월11일 군위 삼국유사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릴 ‘제2회 삼국유사 골든벨’ 대회를 전국 고교생으로 범위를 확대해 개최키로 했다고 20일 밝혔다. 지난 해 첫 대회는 대구·경북지역 고교생들로 제한했었다. 군은 9월3일까지 군청 홈페이지(www.gunwi.go.kr)에서 참가자를 접수한다. 참가비는 없다. ‘제10회 삼국유사 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열리는 골든벨은 에듀테인먼트적 이벤트를 가미해 청소년들이 삼국유사가 지닌 다양한 가치를 일깨우도록 하기 위해 기획됐다. 대회의 문제는 삼국유사 권장도서를 중심으로 출제되며, 예선을 거친 50명의 본선 진출자 중에서 골든벨을 울리는 최후의 1인을 선발하게 된다. 입상자에게는 경북도지사상을 비롯해 경북도교육감상, 군위군수상 등과 함께 20만~70만원의 장학금이 주어진다. 권장도서는 ▲삼국유사(김원중·민음사)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삼국유사(고운기·현암사) ▲청소년을 위한 삼국유사(김봉주·두리미디어) ▲일연을 묻는다(고운기·현암사) ▲으랏차차 삼국유사(고릴라박스·비통소) ▲길 위의 삼국유사(고운기·미래MB) 등이다. 장욱 군수는 “삼국유사 골든벨은 자라나는 청소년에게 삼국유사에 나타난 인간, 예술, 역사의 존엄한 가치를 일깨우도록 하고 올바른 우리 민족의 뿌리를 인식케 하는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며 “앞으로 초·중학생 등으로 범위를 더욱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만선사관’ 식민사관이냐 아니냐

    딜레마다. 가령 광해군을 두고 벌어진 이덕일-오항녕 논쟁이 그랬다.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한국사를 왜곡한 식민사관의 뿌리를 조선 후기 노론사관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광해군을 끌어내린 인조반정을 그 시초로 꼽았다. 오항녕(수유너머 구로 연구원)은 광해군을 숭상하는 것이야말로 식민사관이라 되받았다. 광해군은 심각한 내치 실패로 인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정권이었는데, 명·청 교체기에 중립외교를 폈다는 이유만으로 광해군을 재평가한 것은 바로 일제 식민사학자들이었다는 주장이다. 상반된 주장이지만 공통점은 있다. 비판의 근거를 양측 모두 식민사학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이런 딜레마를 다룬 논문이 한국고대사학회 주최로 22~23일 충남 공주시 반포면 동학산장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식민주의적 한국고대사 인식의 비판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다. 고구려 별자리 연구자로 유명한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의 ‘일제 시기 고구려·발해사 연구 동향’이다. 김 교수는 일제시대 편찬된 ‘조선사(朝鮮史)’에 주목한다. 왕조가 교체된 뒤 뒷 왕조가 앞 왕조에 대한 기록을 남기듯, 삼국사기는 고려 때 지어졌고 고려사는 조선 때 지어졌다. 일제 역시 1925년 조선사편수회를 조직, 1932년부터 1938년까지 35권에 이르는 조선사를 펴냈다. 준비기간과 색인작업까지 합치면 편찬작업에 16년을 들였다. 그런데 이 과정을 들여다 보면 묘한 일이 있었다. 일단 초기에는 조선을 ‘깔아뭉개야’ 하는 일제의 입장이 반영돼 한국 고대사 깎아내리기에 열중했다. ‘조선반도사관’에 따라 고대사를 모두 조선반도 안에 구겨넣고 임나일본부를 지어냈다. ‘망인(亡人)의 관점’도 등장한다. 고조선은 중국에서 도망온 기자와 위만이 만들었고, 고구려는 부여에서, 발해는 거란에서, 청나라는 조선에서 도망간 사람들이 만든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다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면서 변화가 생긴다. 이제 일본은 만주로 조선인들을 이주시켜야 했다. 조선에 이어 만주 진출도 합리화해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만주와 조선은 역사적으로 하나였다는 만선사관(滿鮮史觀)이다. 일제가 조선을 먹었으니 원래 조선의 선조였던 고구려와 발해 영역은 당연히 일제에 귀속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중국,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서야 하는 우리에게 역설적인 상황을 준다. 김 교수는 “조선과 만주의 역사주권을 일본의 종주권 아래 두려 했던 만선사관이 식민사관의 극복이라는 점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통일적 다민족론에 따른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되레 만선사관과 비슷한 지점에 있어야 하는 역설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식민사관이냐 아니냐, 뜨거운 이분법이 만들어낸 역설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美 명문대 입학처장이 말하는 입학사정관제

    최근 국내 대학입시의 새로운 화두로 떠오른 ‘입학사정관제’ 논의를 위해 미국의 전·현직 대학입학처장들이 한국을 찾았다. 오랜 입학사정관제도의 역사를 가진 이들 대학의 경험과 사례를 통해 한국 대학입시의 과제를 짚어봤다. 지난 14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주최로 열린 ‘창의 인재 선발을 위한 입학사정관 전형사례 탐색’이란 세미나에서 첫 발표자로 나선 스튜어트 슈밀 MIT 입학처장은 “입시에서 학생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것은 미국에서도 여전히 어려운 과정 중 하나”라면서 “훌륭한 대학은 실패의 위험을 각오하고서라도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좋은 학생을 뽑으려는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입학사정관 평가에서 고교 성적과 SAT 등 객관적인 성적도 중요하지만, 학생 스스로가 주변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의사소통능력을 가졌는지, 호기심이 많거나 동기 부여가 제대로 된 학생인지, 열정을 갖고 도전하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지 등 다양한 잠재력을 평가하게 된다.”면서 “이 과정에서 입학사정관들의 공정성과 평가의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만큼 학교 스스로 자발적인 규약을 정해놓고 학생 정보보호나 선입견 금지 등에 대한 선서를 받는 과정을 반드시 거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슈밀 처장의 이같은 지적은 특목고 우대나 전형 과정이 상세히 공개되지 않아 여전히 불분명한 일관성 시비에 올라 있는 한국의 입학사정관제를 빗대어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어 등장한 리처드 쇼 스탠퍼드 입학처장은 “미국 대학 입학에서 학업성적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학생이 그동안 살아온 흔적과 열정 등을 잘 만들어진 에세이를 통해 제대로 평가하는 과정”이라면서 “개별 학생의 학습과정과 생활을 잘 아는 외부인의 추천서를 입학에 활용하는 것도 전형의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입학사정관제 조기 정착을 위한 과제에 대한 질문을 받은 슈밀 처장은 “한국은 제도 시행 초기인 만큼 입학사정관제가 기존 시험(수능) 평가에 비해 공정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수험생과 학부모에게 인식시키는 것이 첫째 과제”라면서 “이를 위해 대학교 입학관들은 입학사정관에 대한 교육과 투자를 지속적으로 확대해 우수한 사정관을 뽑는 것이 향후 각 대학에서 좋은 학생을 뽑을 수 있는 관건이다. 이를 위해선 대학별 사정 기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밝혀 학생들로부터 수긍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 [객원칼럼] 일본 참의원 선거와 한일관계/장제국 동서대 부총장

    [객원칼럼] 일본 참의원 선거와 한일관계/장제국 동서대 부총장

    지난 11일 실시된 일본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이 과반수를 획득하지 못하고 대패했다. 설상가상으로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로 갈등하던 사민당과의 연립이 깨지면서 민주당은 중의원에서조차 참의원의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3분의2 의석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었다. 민주당은 앞으로 다른 야당을 끌어들여 연립을 하지 않는 이상 쟁점 법안이 매번 참의원에서 부결되는 ‘식물 여당’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선거는 철저히 소비세 인상 문제나 민주당의 혼란스러운 정국 운영에 대한 불만과 같은 일본 국내문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에 민주당이 참패했다고 해서 한·일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대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일 정책을 입안하는 데 있어서 몇 가지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첫째, 수세에 몰린 민주당 정부가 과연 현재 ‘용기’를 가지고 시도 중인 한국에 대한 ‘창조’적인 정책을 자신감을 갖고 지속적으로 펼쳐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민주당 정부는 당내에 복잡하고 다양한 이데올로기적 스펙트럼이 존재함에도 역사문제에선 상당히 진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한일병합 100년이 되는 올해 과거사문제를 이제는 명확히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한국 측의 기대에 대해 민주당 정부는 상당히 ‘파격’적으로 응하고 있다. 선거운동이 한창이던 지난 7일 일본 내각의 2인자인 센코쿠 관방장관은 일제시대 징용피해자 등에 대해 ‘정치적 판단’에 근거해 개인보상을 할 필요가 있다는 뉘앙스의 발언을 했다. 이는 역대 일본정부가 전쟁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소멸됐다는 종래의 입장에서 크게 벗어난 인식이다. 또한 지난 16일에도 그는 오는 8월 과거사에 대해 사죄하는 ‘총리명의의 담화문이 내 머리 속에 있다.’고 말하는 등 과감한 행보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약진한 자민당과 신당 ‘모두의 당’은 보수적 색채가 강한 정당으로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참정권 부여에 반대입장을 갖는 등 민주당의 인식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민주당 정부의 살얼음을 걷는 듯한 ‘창조성’이 선거 실패라는 유탄의 영향으로 좌절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있는 것이다. 두번째는 유권자들의 지지를 잃어버린 민주당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진보적’ 한국정책이 일본의 일반 대중에 미칠 수 있는 부정적 시각이다. 지난달 한·일 언론사가 공동으로 조사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97%가 한국 식민지 통치에 대해 ‘일본의 사죄가 불충분하다.’고 대답한 데 반해 일본인들의 39%는 ‘사죄는 충분하다.’는 입장을 보인 것으로 보도되었다. 실제로 일본의 보수 언론들과 네티즌들은 민주당 정부가 현재 취하고 있는 역사문제에 대한 ‘진보적’ 입장에 대해 매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러한 민주당 정부가 처한 비우호적 정치 환경으로 인해 모처럼의 ‘진보’ 정책이 오히려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낳게 한다. 일본 정부가 과거사를 ‘직시’하고 문제 해결을 위해 상당히 파격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바람직하고 고무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의 기본은 국내정치 우선이라는 법칙에 따라 모처럼의 일본정부의 ‘용기’가 얼마든지 흔들릴 수 있는 성격이라는 것을 알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목청을 높여 일본에 공개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조용하면서도 세련된 외교의 추진이다. 그래야 우리가 얻고자 하는 알맹이를 실제적 성과로 일궈낼 수 있는 것이다. 괜스러운 감정이 섞인 강한 요구가 여기저기서 난무할 때, 그렇지 않아도 살얼음을 걷는 일본정부의 ‘창조’ 외교가 수몰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일병합 100년이 되는 올해가 양국 정부의 지혜로운 ‘프로급’ 외교를 통해 새롭고 성숙한 한·일관계의 원년을 여는 의미있는 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 日 간총리 새달 ‘한·일병합100년 담화’ 방침

    日 간총리 새달 ‘한·일병합100년 담화’ 방침

    일본 정부가 다음 달 한·일 병합 100년을 계기로 간 나오토 총리 명의의 담화를 발표한다는 방침 아래 문안정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시기는 8월15일 광복절(종전 기념일)이나 합방조약이 강제 체결된 8월22일쯤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카다 가쓰야 일본 외상은 “(한·일 병합) 100년을 맞아 정부로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검토하고 있다.”는 뜻을 밝혔다고 NHK방송이 17일 보도했다. 앞서 내각의 제2인자인 센고쿠 관방장관도 “총리 담화 발표를 검토하고 있다.”며 “뭔가 견해를 밝힌다면 어떤 내용이 될지 내 머릿속에는 들어 있다.”며 총리 담화를 기정사실화했다. 그러나 담화의 수위에 대해서는 한국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준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지난 7·11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민주당이 야당인 자민당과 보수파들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만한 획기적인 내용을 담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다. 일본 정부는 1995년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한다.”는 무라야마 담화가 나온 이후 이보다 진전된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나오지 않고 있다. 당장 산케이신문 등 보수 언론은 센고쿠 장관의 발언에 대해 정부의 신중한 대응을 촉구하고 나서는 등 일본은 여전히 이 문제에 대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다. 민주당의 핵심 브레인인 이이오 준 정책연구대학원대학 부학장은 “한·일 과거사에 대한 총리 담화는 민주당 전체로 봐서는 컨센스를 가지기 힘들다.”며 “총리가 자기 책임하에 적극적으로 하면 가능하지만 당내 합의를 이끌어 내기는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관건은 간 내각이 극우·보수주의자들의 반발을 뚫고 진전된 역사인식을 펼칠수 있는 돌파력을 보여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그러나 간 총리가 정치적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는 점에서 보수세력과의 정면충돌은 피하려 할 공산이 크다는 예상이 많은 실정이다. 간 총리는 지난달 취임 직후 이명박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한·일 관계와 관련해 “반성해야 할 역사는 반성하고 미래를 감안한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데 노력한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등단 6년차의 간단찮은 첫 소설집

    43세, 등단 6년차, 그리고 일곱 편의 단편이 담긴 첫 소설집. 지독히 과작(寡作)하는 늦깎이 소설가 혹은 소설가 문패만 걸어 놓고 유유자적하는 이의 이력 정도로 보여진다. 2004년 실천문학 중단편 신인상으로 등단한 유형수다. 그가 자신의 첫 소설집 ‘스윙 바이’(문학들 펴냄)를 내놓았다. 한데 심상치 않다. 그가 둘러보는 시선과 내딛는 발걸음은 진중하면서도 애써 경계를 짓지 않는 자유로움을 함께 지니고 있다. 남쪽 바닷가 어느 도시를 하릴없이 배회하는가 싶더니 어느새 게릴라와 민병대의 총격이 오가는 콜롬비아 산중으로 훌쩍 발길을 돌린다. 또한 ‘나’는 알파 켄타우로스 별에서 온 여인과 별빛 반짝이듯 사랑을 나누다가도 의뭉스럽게 벅수(장승)를 소개시켜주는 밥집의 당돌한 딸 ‘단감이’와 결혼한다. 1980년 5월의 고통스러움이 헌병대 군 영창의 현실로 또는 꿈틀대면서도 느릿느릿한 태권도장 간 대결로 현현되기도 한다. 종횡무진이다. 쉬 따라가기 힘겨울 정도다. 한 작가의 작품인가 싶게 일곱 편의 작품마다 풀어내는 실험적 문체와 주제의 매개물이 천변만화다. 간단치 않은 주제를 묵직히 부여쥐고 있건만 자칫 자기만의 스타일을 구축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남긴다. 그러나 모든 작품을 오롯이 관통하는 지점은 있다. 존재의 본질에 대한 끝없는 천착이다. 그리고 개인과 역사의 관계 맺기다. 그리고 일견 단단하고 견결해 보이는 문장 사이사이에 스며있는 먹먹함과 아픔의 정서다. 백인들의 침략에 고통스러워하는 남미 인디오의 의문을 얘기할 때도(‘세상의 아침들’), 북미대륙에서 인디언을 절멸시키는 백인의 뻔뻔함을 조소하면서도(‘모히칸족의 최후’), ‘끝없이 우주선을 쏘아올리자는 말일 뿐’으로 상징되는 경쟁 사회를 음울히 지적할 때도(‘혼잣말을 하는 사내’), 늘 우리 현실의 자장을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래서 군 영창이건, 이 나라건, 이 별이건, 속절없이 갇혀 있을 뿐이라는 자조적인 인식(‘구름의 파수병 셋’)이 드러나는 것은 필연적일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작가 자신이 직·간접적으로 체험했음직한 일련의 사건들과 지독히 현실적인 상상력이 빚어낸 우화와 한데 버무러진 뒤 역사의 골짜기를 지나 실존적 고뇌의 강까지 건너가 하나의 지점을 향해서 달려간다. 그는 아파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아픔과 생채기를 빠짐없이 차곡차곡 챙겨 풀어낼 준비를 이미 마친 이다. 소설가 한창훈은 “외롭고 고단함으로써 이렇게 아픈 언어를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라고 유형수의 첫 소설집을 평했다. 본명(유형석) 대신 필명을 앞세워 첫 책을 내놓고, 이제는 본격적으로 장편소설을 준비 중이다. 앞으로 어느 별을 헤매면서 ‘지금, 여기’를 조우하게 해줄까.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서울광장] 거꾸로 가는 법치주의/최광숙 논설위원

    [서울광장] 거꾸로 가는 법치주의/최광숙 논설위원

    “법치주의란 권력을 통제해 개인을 보호하는 것이 핵심인데 오히려 법을 어긴 국민들 혼쭐 낼 생각만 하더군요.” 진보 인사들의 쓴소리가 아니다. 지난해 말 청와대에서 열린 법무부, 권익위원회, 법제처의 대통령 업무 보고에 참석했던 이들은 가슴이 답답했다고 한다. 이날 장관들은 하나같이 법치주의를 강조했다. 그들의 법치주의에는 고위공직자들의 비리 엄단 등이 거론되긴 했지만 대부분 법을 지키지 않는 시민들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에 방점이 찍혔다. 법을 다루는 부처 장관들의 법치주의 인식에 참석자들은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고 한다. 불법파업을 엄히 다스리는 등 시민들의 법질서 확립 문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통제를 통한 국민 보호가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새뮤얼 헌팅턴도 ‘문명의 충돌’에서 “법치의 전통은 재산권을 포함한 인간의 권리를 권력의 자의적 횡포로부터 보호하는 제도”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총리실의 민간인 사찰 의혹 사건은 후진국에서나 일어날 일이다. 총리실은 법을 어겨 민간인을 사찰했다. 우리 사회에서 공무원은 권력층이다. 각종 규제와 인·허가권을 갖고 있어 부패·비리에 연루되기 쉽다. 공직감찰 활동을 통해 공직이라는 권력을 감시하라고 총리실에 권한을 준 이유가 거기 있다. 그런데 정부는 거꾸로 권력 남용으로 국민을 위협했으니 법치주의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것이나 진배없다. 권력의 속성은 참으로 무서운 것 같다. 권력에 취하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사람)에 의해 법과 제도가 무너지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닉슨 미 대통령은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정적을 도청한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미 역사상 최초로 임기 중 물러나는 수모를 당했다. 도청은 명백한 불법이지만 권력의 최정점에 있던 닉슨은 변호사 출신인데도 권력을 남용해 법을 뛰어넘는 무모한 행동을 했다. 법치행정은 정부의 신뢰 차원에서 중요하다. 법치행정의 근간인 법을 제정할 때 ‘좋은 법’을 만들어야 한다. 만든 법은 잘 지켜야 한다. 그럴 때 국민들은 정부를 신뢰할 수 있다. 최근 정부가 추진하는 가칭 ‘행정규제 피해규제 및 형평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을 놓고 법조계 안팎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 법은 규제로 인해 피해를 입은 민원인이 권익위원회에 규제완화 신청을 하면 권익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해당 부처에서 규제를 완화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국가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재계 등의 어려움들을 반영, 규제를 완화해 주자는 취지야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하지만 이 법은 형평성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이 법은 규제 내용이 담긴 시행령 등 현 규제 법령을 무력화하는 ‘법 위의 법’이다. 논란의 소지가 많은 것은 막강한 로비력과 짱짱한 법무실을 갖춘 대기업 등은 규제를 뚫고 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반면 개인 영세업자 등은 여전히 규제에 발이 묶일 수 있다. 강자에겐 규제 완화를 둘러싼 특혜 시비가, 약자에게는 좌절감만 주는 법이 될 수 있다. 자연 규제를 푸는 과정에서 부패와 비리가 생길 가능성도 없지 않다. 정부 내에서조차 이 법을 규제 완화의 ‘요술방망이’라며 걱정이 많은 이유다. 특히 이 법은 규제완화의 기준과 잣대가 명확하지 못해 정부의 재량권 남용 시비를 불러올 수 있다. 규제완화 기준이 모호하면 법 자체가 불신의 대상이 된다. 나아가 그런 법을 만들고 마음대로 법 적용을 하는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보통 친구들끼리, 아니면 동네 싸움이라도 벌어지면 하는 말이 있다. ‘법대로 해’라는 말이다. 정부든 개인이든 법대로 하지 않아 문제가 생긴다. 민주주의의 최후의 보루는 법치다. 정부가 법에도 없는 일을 하면 국민들은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게 된다. 법을 지키더라도 정부에 코웃음치게 된다. 개인의 불법도 문제지만 국가 권력층의 불법은 그 파장이 더 크다는 사실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bori@seoul.co.kr
  • ‘G2’ 중국, 하나의 국가모델로 분석하다

    ‘G2’ 중국, 하나의 국가모델로 분석하다

    11%가 넘은 중국의 상반기 경제성장률 앞에서 세계가 적잖이 놀라는 모습이다. 어디 경제뿐인가. 미국과 더불어 양강(G2)으로 일컬어지며 전 지구적 질서의 근간에 상당 부분 개입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과정에서 두 가지를 당연시 여긴다. 사유화와 시장화다.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경제가 발전할 수 있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오롯이 최근 30년 개혁개방의 성과 속에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명제를 다른 나라, 다른 상황과 비교하면 편견에 지나지 않음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지구상에는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있지만 저개발 국가에 머물고 있는 나라들이 즐비하다. 미국과 양강을 다투던 사회주의 수출 국가 러시아 역시 페레스트로이카니, 글라스노스트니 하며 20여년 전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했지만 지금의 중국에 비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설 이후 계획경제 30년을 후반부 개혁개방 이후의 30년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난센스에 가깝다. 1978년까지 이뤄낸 연평균 6.5%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후반부 30년의 높은 성장세(9.8%) 근간이 되었기 때문이다. ‘중국이라는 새로운 국가모델론’(판웨이 지음, 김갑수 옮김, 에버리치홀딩스 펴냄)은 이러한 인식과 의문, 현실의 부조화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토록 고속 성장을 이뤄낸 중국의 배경에는 해방 이후 60년 동안-덩샤오핑 이후 개혁개방 30년 만이 아닌-의 지속적인 발전과 그에 앞서 수천년 동안 경세제민(經世濟民)을 기본으로 해왔던 중국의 역사와 철학적 전통이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당대 중국의 현주소를 가감없이 진단하고, 한·중 관계를 새롭게 조망하겠다는 에버리치중국총서 시리즈의 첫 번째다. 베이징대 국제정치학과 교수인 저자 판웨이(潘維)는 서로 다른 역사와 환경을 갖고 있음에도 이를 무시한 채 서양의 체제를 수용해 사회정치적 변혁을 이뤄야 한다는 서구모델 전면 도입 주장도 조목조목 비판한다. 대신 국가모델의 하나로서 중국을 꼼꼼히 분석한다. 다소 거친 비유지만 “왜 자금성을 허물고 백악관을 짓자고 하는 것이냐.”며 서구 모델에 치우친 학자들을 몰아세운다. 그는 “중국이 지난 60년 동안 근현대사에서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기적을 창조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다른 나라에 의존하거나 침략하지 않고 이룩한 것은 더욱 특기할 만하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그는 “당정 간부의 집권 이념 다원화, 관료 사회 기강 문란 등을 지적하는 중국 내의 비관적 정서가 존재하고, 여전히 서양의 모델만을 따라가려는 일부 학자들의 오류 등이 있는 만큼 이 모두를 바로잡고자 한다.”고 밝혔다. 판웨이는 토지 국유를 근간으로 ‘국(國)’과 ‘민(民)’이 서로 보완하고 지탱하는 국민경제(國民經濟), 국민경제를 지탱하고 있으며 이익집단의 활동과는 궤를 달리하는 민본정치(民本政治), 가정이라는 기본단위로 건설된 지역공동체 사회그물망인 사직(社稷) 체제, 이 세 가지가 삼위일체로 중국 모델을 만들어 가고 있다고 설명한다. 책에서 ‘21세기형 중화주의’ 기운을 강하게 느끼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판웨이가 중국 모델을 적극 옹호하면서도 결함을 인정하듯 이를 부정하는 학자들의 목소리도 중국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책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중국 모델 그대로 따라하기가 당연히 아니다. 배워야 할 것은 부쩍 급부상한 중국을 좀 더 면밀히 알고 분석해야 한다는 필요성 자체다. 판웨이는 지난 5일부터 경희대 여름 프로그램에서 중국의 사회, 정치와 관련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30일까지다. 1만 8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성곽길 18.7㎞ 관광상품 개발

    성곽길 18.7㎞ 관광상품 개발

    종로구가 201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인 서울성곽 길에 스토리텔링 기법을 이용해 새로운 관광상품을 만들어 눈길을 끈다. 14일 종로구에 따르면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으로 이어지는 18.7㎞의 서울성곽 둘레를 걸으며 그 안에 깃든 역사와 문화, 생태를 느낄 수 있는 ‘서울성곽 스탬프투어’ 관광 상품을 개발했다. 이를 위해 각종 안내 표지판 정비와 안내지도 제작을 마쳤다. 북악산을 주산으로 한 서울성곽은 4대문인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숭례문(남대문), 숙정문(북대문)과 4소문인 혜화문(동소문), 소의문(서소문), 광희문(남소문), 창의문(북소문)을 잇던 도성이다. ●4대문 이름으로 스토리텔링 종로구는 흥인지문(興仁之門)의 인(仁), 돈의문(敦義門)의 의(義), 숭례문(崇禮門)의 예(禮), 숙정문(肅精門)의 지(智), 즉 조선시대 유교의 덕목인 ‘인의예지’를 의미하는 4대문의 이름을 따 재미난 이야기를 덧칠했다. 숭례문 앞에서는 안내지도 뒷면에 ‘남을 공경하고 양보하는 마음인 예(禮)’란 스탬프를 찍는다. 이렇게 관광객들이 성곽을 걷다가 4대문 앞에서 각각 의미를 알려주는 스탬프를 찍고, 4개의 스탬프를 모두 받으면 지정 장소에서 완주기념 배지를 받을 수 있다. 서울성곽 관광 안내지도는 구간별 거리와 소요시간, 성곽 진입지점 교통편, 성곽 주변 관광지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한국어뿐만 아니라 영어, 중국어, 일어로 번역된 지도까지 만드는 등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준비도 마쳤다. 특히 자치구 최초로 지도상에 QR코드(문자, 숫자 등의 텍스트는 물론 그래픽, 사진, 음성, 지문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를 모바일상에 담을 수 있는 국제표준 코드)를 표기해 스마트폰 사용자는 QR코드 인식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언제든지 모바일상에서 지도를 볼 수 있고 친구, 가족 등 주변 지인들에게도 ‘서울성곽 지도’를 손쉽게 전송할 수 있다. ●국내외 관광업 관련자 초청 홍보 구는 일본 현지 대형 여행사 등과 수학여행 코스로도 내놓는 방안을 논의 중이며, 프로그램 홍보를 위해 국내외 관광업계 관련자들을 초청해 팸투어를 진행하는 등 다각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조혜정 관광산업과장은 “서울성곽의 관광상품화와 보존이 조화를 이루도록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면서 “앞으로도 종로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데 주력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 [서울 G20 정상회의 2010] 국가원수급 35명 등 역대최대 1만여명 한국온다

    [서울 G20 정상회의 2010] 국가원수급 35명 등 역대최대 1만여명 한국온다

    오는 11월11일 서울에서 개최되는 5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 참여하는 외빈은 최소 1만여명으로 추산된다. 20개국의 정상과 유엔 사무총장 등 국가 원수급 35명을 비롯해 3500여명의 공식 수행원과 경호원, 3000여명의 취재진 등을 모두 망라한 숫자다. 더욱이 이번 정상회의는 비즈니스 부문 등 관련 당사국 간 회의도 함께 열려 역대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올해 G20 관련 주요 회의는 정상회의 2회를 비롯해 재무장관회의 4회, 재무차관회의 4회 등 10회로 예정돼 있다. 인천에서 열리는 G20 재무차관회의가 그 시작이다. 모두 8회로 예정된 재무장관·차관 회의 중 최소 4회는 국내에서 열릴 것으로 보인다. G20 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열리는 회의도 많다. 지난 12일부터 13일에는 서울에서 국제통화기금(IMF) 주최로 아시아 콘퍼런스가 열렸다. 도미니크 스트로스 칸 IMF 총재도 회의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았다. 정부가 G20 붐 조성을 위해 각국의 20개 대표기업, 400여곳 글로벌 기업들을 초청하는 B20 행사도 G20 정상회의 일정에 맞춰 추진된다. 정부안대로 행사가 열릴 경우 역사상 가장 많은 세계적 기업의 최고경영자(CEO)들이 한국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G20 창설의 계기는 우리에겐 악몽과도 같은 1997년도 아시아 외환위기였다. 그해 9월 IMF 연차 총회 당시 개최된 G7 재무장관회의에서 긴급한 경제위기에 대처하려면 주요 신흥국들도 참석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G20 창설에 합의했다. G20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각 10개국씩 균등하게 배분된 모임으로 결정됐다. 첫 모임은 1999년 12월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다. G20 참가 국가는 미국·일본·영국·프랑스·독일·캐나다·이탈리아(G7)와 한국·중국·인도·인도네시아 등 아시아 국가 4곳, 브라질·아르헨티나·멕시코 등 중남미 국가 3곳, 러시아·터키·호주·유럽연합(EU) 의장국 등 유럽 국가 4곳, 남아프리카공화국·사우디아라비아 등 아프리카·중동 국가 2곳으로 구성돼 있다. EU 의장국이 G7에 속할 경우에는 19개국이 된다. G20 국가의 총인구는 전세계 인구의 3분의2에 해당한다. 20개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세계의 90%에 이르며, 전세계 교역량의 80%가 이들 20개국을 통해 이루어질 정도로 세계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때문에 미니 유엔이라고도 불린다. 한편 G20 정상회의 준비위원회 측에 따르면 G20 서울회의에 참석하는 각국 정상들은 서울 시내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숙박할 예정이다. 현재 서울에 스위트룸이 마련된 특급호텔은 100여곳으로 추산된다. 준비위원회 측은 각국 국빈들의 숙소 해결을 위해 특급호텔과 긴밀히 협의 중에 있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특급호텔 수는 14개로 참가국 숫자보다 적은 상태다. 한 호텔에 2개국 이상의 정상이 머물 가능성이 높다. 김정은기자 kimje@seoul.co.kr
  • [이영선 경제프리즘] 대통령 단임제 이제는 바꿔야 한다

    [이영선 경제프리즘] 대통령 단임제 이제는 바꿔야 한다

    정치는 왜 필요한가? 국민들의 삶의 안녕과 복지를 위해서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보면 백성들의 삶에 도움을 준 성군보다는 폭군들이 더 많다. 백성들은 왜 폭군들에게 그렇게 오래 시달리면서도 왕정제도를 뒤엎지 않았을까? 아마도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폭군이나 탐관오리들은 외적이나 내부 도적과 마찬가지로 백성들을 수탈해 가니 백성들에게는 도적이나 다를 바 없었으나, 그래도 그들은 백성들이 목숨은 부지하고 살 수는 있게 해주었으니 폭정이나마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낫게 여겨졌을 것이다. 옛날의 큰 도적은 두 개의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말을 타고 이 마을 저 마을 휩쓸고 다니는 마적이고, 또 다른 하나는 마을 뒷산에 산채를 짓고 필요할 때마다 아랫마을에서 도적질해가는 산적이다. 이 두 도적 중 누가 더 잔인할까? 당연히 마적이다. 마적은 한 번 지나간 마을에 다시 올 일이 없다. 마을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고 약탈해 가면 그뿐이다. 산적은 그렇지 않다. 산적은 내년에 또 같은 마을에 와서 약탈해 가려면 마을 사람들이 다음해에 다시 농사 지을 수 있게끔 최소한의 식량과 씨종자는 남겨 주어야 한다. 좀 심한 비유이지만 세종대왕과 같은 성군을 제외한 임금들은 산적 두목이나 다름없었다. 백성의 입장에서 보면 산적이나마 있어서 외부의 도적을 막아 주고 내년 농사도 지을 수 있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그래서 백성들이 왕정을 뒤집지 않았던 것이다. 민주화가 되면서 국민들은 그들의 삶의 안녕과 복지를 향상시켜 달라고 자발적으로 위정자를 선출하고 또 세금을 내고 있다. 그러나 그 위정자가 너무 오래 자리를 차지하면 폭군으로 변할 우려가 있어 그의 임기를 제한하였다. 대통령제를 택한 나라는 4년 중임제가 보편적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면서 5년 단임제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과거 독재정권의 피해가 너무 커서 아예 한 번의 임기로 제한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단임제의 피해에 대해서는 깊게 고려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마적은 다시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잔인할 수 있었던 것처럼 한 번의 임기는 정치인들로 하여금 국민들의 장기적인 복리를 등한시할 위험성이 있다. 단임제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요란한 정책을 발표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추진하기 위해 강한 드라이브를 걸게 마련이다. 왜냐하면 임기 내에 자신의 정책 결과를 보아야 하고 또 조금 시간을 지체하면 곧 레임 덕 현상이 일어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안정적으로 발전해 가기보다는 5년 정도의 주기로 사이클을 이룬다. 정권 초기에 급격한 재정지출과 조급한 정책 분위기가 경제를 부양시키는 듯하지만, 조금 지나면 정책의 혼돈과 불안정이 오히려 경제를 어렵게 한다. 지금껏 5년 단임제 대통령들의 말기에는 항상 우리 경제가 침체 내지는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이 이를 말해 준다. 집권한 대통령이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정책을 추진하고 다시금 재신임을 얻을 기회를 주는 것이 국민의 복리 향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물론 정당제도가 있으니 집권정당이 재집권을 위해 노력하면 된다는 논리도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당보다는 사람 중심의 정치가 이루어지고 있고, 단임제의 경우 같은 정당 내에서 새로운 미래 세력이 형성되어 현 집권자를 일찍 레임 덕으로 만들 수 있어 5년 단임제의 불안정성을 피할 길이 없다. 정치제도는 정치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의 5년 단임제는 정치인들이 서로 돌아가며 정권을 잡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면이 있다. 그간 단임제의 폐해가 인식되어 왔고 4년 중임제 개헌의 필요성 역시 논의돼 왔으나 항상 대통령 임기말에 이 논의가 시작되었고 또 새로운 미래 권력은 우선 대통령에 당선되는 일에 집중하게 되어 개헌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제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제도를 만들어 내야 한다. 4년 중임 대통령제로의 개헌작업을 시급히 착수해야 할 것이다.
  • “교회의 계층화·세습 등 주류 패러다임 바꿔야”

    “교회의 계층화·세습 등 주류 패러다임 바꿔야”

    “1980년대 이후 개신교는 강남을 기반으로 한 부의 형성, 축적의 과정과 맞물려서 성장했습니다. 현재 기독교계의 주류와 그 가치가 형성되던 즈음이죠.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고, 부를 쌓아가고, 개인적 성취를 이루는 것이 ‘좋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인식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주류 교계 비판하는 전통적 복음주의자 양희송(42) 청어람아카데미 대표는 주류 개신교계를 비판하는 대표적 인물 중 하나다. ‘좌파’니 ‘자유주의자’니 하는 개신교의 비아냥을 기꺼이 감수하면서 그가 제기하는 비판의 언설은 진중하면서도 거침이 없다. 1987년 대학(서울대 전자공학과)에 들어간 뒤 서울대기독인연합을 만들고 학원복음화협회, 기독교 저널 ‘복음과 상황’ 등 여러 단체를 거치는 동안 한 차례도 ‘전통적 복음주의 활동’ 바깥으로 벗어난 적이 없다는 자부가 당당한 비판의 배경에 배어 있다. 지난 12일 오후 서울 명동 청어람아카데미에서 만난 양 대표는 “1960~70년대만 해도 한국 교회는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 낮은 곳에 있는 이들과 함께하며 봉사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흐름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1980년대 들어서 그전까지 존재하던 정치권력과 긴장관계도 해소되고, 사회 참여의 부담도 없어졌다.”고 지적했다. “예컨대 여의도에 있는 대형 교회에서는 과거 가난한 이도 장로, 집사를 했습니다. 계층을 떠나 함께 어울리곤 했죠.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요? 이제는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 때입니다.” 그가 일관되게 주장하는 것은 ‘포스트 2007 시대’의 준비다. 이는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으로 선출되는 과정의 공헌, 그로 인한 친권력성의 노골화, 공격적 해외선교 등으로 상징되는 외형적 성장의 패러다임이 2007년을 정점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양 대표는 내처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교회의 계층화, 대형교회 세습, 목회자의 윤리 문제 등 많은 무리수를 보면 몰락과 붕괴는 불가피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기독교 자체의 몰락이 아니라 현재 주류 패러다임의 몰락이 될 것입니다.” 그가 택한 것은 기독교 지성운동이다. 청어람아카데미(www.bluelog.kr)는 양 대표가 2005년 가을 설립했다. 기독교 사상과 인문학의 결합을 통해 기독교의 대중적 지성운동을 꾀하기 위한 거점이다. 궁극적 목적은 새로운 기독교적 담론의 형성이다. 그 방법으로는 기독교 사상에 대한 지성적 이해를 위한 활동과 함께 시민사회와 폭넓은 연대 활동을 첫손에 꼽고 있다. ●인문학으로 새로운 기독교 담론 형성 지난달 젊은 인문학자들의 연구모임인 ‘카이로스’, 인문학과 기독교 사상의 결합을 추구하는 ‘인문학과 성서를 사랑하는 모임’과 함께 ‘연구공간 공명’을 만든 것은 그 공식적 출발점이자 몇 년간 공들여온 노력의 결과물이다. ‘연구공간 공명’은 12일 제1회 지식수련회를 시작했다. 총론 격이라 할 수 있는 강영안 교수(서강대 철학과)의 ‘기독인문학’ 강연을 비롯해 알랭 바디유의 ‘사도 바울’, 손화철의 ‘토플러와 엘륄’ ‘마테오 리치 강독회’ 등 인문학과 기독교 사상을 통섭적으로 종횡무진 넘나드는 세미나, 강연 등이 16일까지 이어진다. 최소한의 학문적 호기심을 갖추고 있다면 기독교 믿음 여부를 떠나 일반 대중들도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다. 실제 세계사적 지성의 흐름으로 볼 때도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시작해 르네상스, 종교개혁 등 일련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신학과 인문학은 불가분의 상호보완 관계를 이뤄왔다. 그는 개신교 내에서 여전히 비주류지만 자신만만하다. “이제는 개신교의 변화를 준비할 때입니다. 아직은 소수에 불과해 보이지만 변화를 원하는 다음 세대의 요구는 분명하며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다음 세대가 준비해야 할 발판은 지성운동이라는 사실도 명확하고요. 스스로 왜 믿고, 어떻게 믿고 있는지 납득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글 사진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사설] 서울대와 공기업 ‘국사 살리기’ 반갑다

    서울대가 2014년 입시부터 고교에서 한국사를 이수한 응시자에게 가산점을 주기로 했다. 서울대 입시가 대학입시의 방향을 좌우하는 만큼 파급효과가 클 것이다. 2014년 대학입시라면 지금 중3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대상이다. 당장 내년부터 각 고교에서 국사교과 개설이 이어질 게 뻔하다. 고사 직전 상황에 처한 학교 역사교육의 전환을 이룰 만한 조치다. 앞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들은 지난 1일부터 직원채용 때 한국사 능력을 반영토록 한 인사운영 지침을 시행하고 있다. 늦게나마 역사의 중요성을 직시해 실천에 나선 움직임들이 반갑다. 역사는 그것이 어두운 과거이건 밝은 기록이건 있는 그대로를 가르치고 배운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각국이 역사·전통의 중요성을 인식해 역사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역사교육을 외면, 홀대하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해 확정된 개정 교육과정만 하더라도 시행될 경우 한국사 과목은 사회과목의 일부로 편입돼 사실상 실종될 판이다. 올해 수능시험에서 사회탐구 과목 중 국사시험을 선택한 응시자가 열 명 중 한 명 꼴에 불과한 것만 보더라도 우리 국사교육이 얼마나 뒷걸음질치고 있는지 극명히 드러난다. 글로벌 시대에 역사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중국이 동북공정에 열을 올리고 일본이 과거사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한 예이다. 글로벌 인재로 인정받아도 국제사회에서 제 나라 역사를 모른 채 경쟁에 뛰어든다면 패배는 뻔한 것이다. 대학입시며 취업에서 까다롭고 불편한 과목이란 인식 아래 우리 역사를 피하려 든다면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대다수의 우리 국민은 역사와 역사교육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있다. 얼마 전 국민권익위가 25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22곳이 채용 시험에 한국사를 반영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더 늦기 전에 역사교육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할 것이다.
  • “아동 성폭력 예방 강사 올 500명으로”

    “아동 성폭력 예방 강사 올 500명으로”

    일 욕심이 많은 백희영 여성가족부 장관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를 위해 많은 준비를 한 듯 보였다. 요즘 사회문제가 된 아동성폭력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아동성폭력 방지를 위한 복안들을 쏟아냈다. 나홀로 아동에 대한 대책과 가족보듬사업, 성범죄자 약물치료(화학적 거세)…. 취임 9개월째인 백 장관을 지난 9일 서울신문이 만났다. 교수에서 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국민이 필요한 것을 제대로 인식하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행정을 펴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담 김성곤 정책뉴스부장 →아동성폭력이 빈발하고 있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노는 토요일(놀토), 방과 후 학원으로 이동하는 시간 등 아동 돌봄의 사각지대가 발생한다. 현재 태스크포스(TF)를 구성, 해결방안을 찾는 중이다. 기존 긴급·일시도우미 사업을 아동 안전 사업으로 확대할 것이다. 지역 사회의 해결의지도 중요하다. 행정안전부의 지역일자리 사업과도 연계해야 한다. 12일 지방자치단체와 협의를 시작한다. ‘아동·여성보호지역연대’ 표준모델을 만들어 지역 내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한 아동성폭력 실시간 대응체제를 구축하겠다. 청소년 방과후 아카데미 지원대상을 빈곤아동 중심에서 맞벌이 가구의 나홀로 아동까지 포함할 수 있게 161개 아카데미를 내년까지 200개로 늘릴 것이다. 방과후 아카데미는 놀토는 물론 방학 중에도 운영된다. 나홀로 아동 보호사업은 예산 문제로 기획재정부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정부가 긴급성을 깨닫고 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 사업과 연계하면 수혜층은 더 늘어난다. 여가부가 파악하고 있는 나홀로 아동은 240만명이다. 이중 여가부를 포함해 정부 부처의 보호 아동·청소년이 28만명이다. 우선 이 가운데 3만 8000여명을 지역 일자리 창출 사업 등과 연계해 보호할 계획이다. →아동 성범죄 예방을 위한 인프라 구축도 중요한데. -아동성폭력 예방교육 전문강사를 지난해 400명에서 올해 500명까지 양성한다. 38개인 청소년 성문화센터는 내년에 47개로 늘린다. 성범죄자 대상 기존 프로그램 외에도 고위험군 등 대상별 치료프로그램을 올해 추가 개발한다. 청소년 가해자가 늘고 있는 것도 큰 문제다. 이는 가족문제와 연결돼 있다. 유연근무제 등 가족기능 강화가 필요하다. →유연근무제가 성폭력 예방과 연관이 있나. -아동 성폭력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면 부모가 등·하굣길에 동행할 수 있어 나홀로 아동이 줄어든다. 여성들이 근무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면 사회의 결혼·출산 기피현상과 경력단절여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얼마 전 가족 보듬 사업도 시작했다. -취임 후 해바라기아동센터(성폭력 피해 아동 보호센터)가 첫 방문지였다. 첫 방문에서 피해자뿐만 아니라 부모에 대한 상담도 지시했다. 부모가 충격에서 빨리 벗어나 어떻게 대응할지 아는 것이 피해자인 아동에게 매우 중요하다. →화학적 거세를 둘러싼 논란도 있다. -거세가 아닌 약물치료다. 혈압이 높으면 혈압약을 먹듯이 성호르몬이 지나치게 높으면 약을 먹어 불균형을 억제하는 것이다. 전문가가 엄격하게 검사해서 필요한 집단에 한해 실시한다. 전자발찌처럼 예방 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백 장관은 이 약물치료를 강하게 주장, 국회의 관련법 마련에 크게 기여했다.) →최근 유엔을 방문해 성과를 거둔 것으로 안다. -유엔경제사회이사회(ECOSOC)에 참석, 우리나라 사례를 발표했다. 방문 당시 유엔 여성통합기구 설립이 최종 확정돼 결의안까지 채택됐다. 통합기구가 내년 1월1일 출범한다. 여성통합기구 고위 조정관인 셸리 피건 와일스와 면담, 지역사무소와 연구개발(R&D)센터를 우리나라가 유치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을 부탁했다. 유엔에 한국 여성이 많이 진출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다. →보육을 보건복지부에 둬야 하나 여가부에 둬야 하나 논란이 여전하다. -복지부는 시설 중심의 보육이다. 여가부는 가족 중심의 보육이다. 자녀들을 모두 시설로 보낼 수는 없다. 양육의 중심은 가족이고 필요할 때 시설을 이용한다는,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소득과 시설 중심의 양육 논의에서 양육을 어떻게 할지 전체적 틀을 고민하는 시기로 넘어가야 한다. (그는 지난해 언론사 부장들과의 만남에서는 여성부의 기능확충을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지난 3월 가족기능을 가져왔기 때문인지 백 장관은 “가족 업무를 열심히 하다 보면 보육문제도 저절로 해결된다.” 면서 “필요하지만 시급한 것은 아니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리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백희영 장관은 누구 백희영(60) 여성가족부 장관은 한국영양학회 회장, 세계 영양학회 이사 등을 맡았던 영양학계의 권위자다. 그래서 지난해 9월 개각 당시 의외의 인선으로 평가받았다. 남편은 정용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다. 백 장관은 서울대 식품영양학과를 다니다 도미, 미시시피여대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다. 하버드대 이학박사 등을 취득했다. ‘한국인의 식생활과 질병’ 등을 저술했다. 취임 이후 유연근무제(퍼플잡)를 중점 추진했다. ‘퍼플잡(Purple Job)’이라는 용어도 그의 작품이다. 성폭력 관련법 개정 때 성폭력 피해 아동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공소시효 정지 조항을 관철시키는 등 추진력도 갖췄다는 평가다. 전경하기자 lark3@seoul.co.kr
  • [바른 자치행정, 이렇게 하자](6) “지자체 인사위 개방해야 비리 근절”

    [바른 자치행정, 이렇게 하자](6) “지자체 인사위 개방해야 비리 근절”

    서울신문은 민선 5기 지방자치시대 출범을 계기로 과거 자치행정의 폐해를 짚어 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바른 자치행정, 이렇게 하자’는 시리즈를 마무리하며 전문가 좌담을 가졌다. 오재일 한국지방자치학회장, 유문종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사무총장, 최동윤 서울시 감사관은 지난 5일 서울신문 회의실에서 사회2부 박현갑 기자(부장급) 사회로 열린 좌담회에서 인사비리 근절방안 등 풀뿌리 민주주의 정착을 위한 여러 대안들을 제시했다. →지방자치 민선 5기가 출범했다. 의미를 짚어 달라. -오재일 한국지방자치학회장(이하 오 회장) 금년은 민선 5기로 단체장 선거보다 먼저 치러진 지방의회가 20년 되는 해다. 지방자치가 성년이 됐다는 의미가 있다. 헌법 제8장에 지방자치단체는 헌법기관로 돼 있다. 그런데 시민들이 지자제를 헌법기관으로 안 본다. 생활행정이라고 할까, 우리의 모든 생활에는 중앙정부보다 지방자치, 특히 기초단체가 더 중요하다. 시민들이 이 부분을 다시 한번 인식해야 한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지자체에 교육과 경찰이 분리돼 있다는 것이다. 이런 나라는 드물다. 주민체감형 지방자치가 돼야 하는데 그렇게 못 되고 있다. -유문종 한국매니페스토 실천본부 사무총장(이하 유 총장) 민선 5기 지방선거 결과가 지방자치를 실현하는 데 굉장히 유리한 결과를 도출했다. 일부에서는 권력이 분점되면서 혼란스럽다고도 얘기하는데 오히려 지방자치는 그런 견제를 통해 활성화된다고 본다. 민선 4기까지는 서울이나 경기도의 권력이 대부분 광역단체장이 속한 정당에서 다수 기초자치단체까지 획득했다. 이번에 바뀌었다. 민선 5기에는 지방이 세계를 움직이는 ‘지세화(Loc-balization)’ 시대의 지방자치가 역할을 할 수 있는 토대가 열렸다. -최동윤 서울시 감사관(이하 최 감사관) 지방자치는 도로행정, 청소행정 등 시민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런 일을 잘 할 단체장으로 누굴 뽑느냐가 전반적으로 지방자치의 원칙에 맞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지 않고 선거에서 정치성이 강조되다 보면 현실과 다소 동떨어지게 된다.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에 종속돼 있지 않나 생각한다. →‘사삼서오’(사무관 승진 3000만원, 서기관 승진 5000만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사비리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오 회장 아쉬운 것은 행정안전부가 제대로 역할을 하는가이다. 각 지자체마다 인사위원회가 있는데 준독립적으로 운영된다면 제대로 역할할 수 있을 텐데 부단체장이 위원장을 맡으면서 사실상 단체장이 전횡을 일삼고 있다. 인사위를 단체장으로부터 분리시키면 인사문제가 많이 근절될 것이다. 가령 공무원 전보권은 단체장에게 주더라도 승진권은 인사위에 주도록 하는 게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 총장 민선 5기에서도 인사위 관련 공약들이 많이 나왔다. 인사문제를 비리의 핵심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개방형 인사를 많이 얘기한다. 인사위를 개방적으로 운영하고 그 과정에 대해 공개하는 것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공직사회 폐쇄성이 이런 비리를 낳지 않았나 생각한다. 인사위의 개방형 구성뿐 아니라 공직사회를 개방해서 민간인을 많이 채워 넣고 시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공무원법 등으로 민간인이 들어가는 데 제약이 있다. →공직사회를 개방하자고 여러번 얘기됐는데, 현직에 있는 최 감사관은 어떤가. -최 감사관 공직사회가 승진과정에서 돈을 주고받는 행태가 만연해 있는 것으로 일부에서 오해할 수 있는데, 내가 알기로 서울시에서는 그런 일이 단 한건도 없다. 서울시의 경우 국장급 이상 간부는 시장과 호흡 맞춰야 하니 어쩔 수 없다치더라도 과장급 이하 실무진은 상급자·하급자·동료 평가로 계량화돼 인사 대상자를 시장에 내놓고 그 사람을 선발한다. 선발 과정에서 능력 없는 3%는 자동 퇴출된다. 인사는 예측 가능성이 가장 중요하다. 그 방법은 경쟁을 통해 해야한다. -오 회장 대다수 인사가 정상이지만 일부 시스템에 문제소지가 있기 때문에 그걸 고치자는 거다. 특히 농촌으로 갈수록 의도된, 계획된 개방이다. 대개 광역단체는 그러지 않은데 규모가 작은 기초자치단체, 특히 농촌형으로 갈수록 관(官) 의존적 문화가 강하다. 각종 위원회의 위원도 서로 하려고 한다. 시장이나 군수가 의도적으로 개입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행안부가 제도적 개선을 해야 한다. →의회에서는 집행부 예산에 대해 낭비라는 비판을 많이들 한다. -최 감사관 예산을 어디에 쓸 것인가 하는 투입 문제인데 그건 정책과정이고 정치과정이다. 예산을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편성하는 것은 의회다. 예산 낭비의 문제라기보다는 선택의 문제라고 봐야 한다. -오 회장 우선순위의 문제다. 그걸 낭비라고 봐선 안 된다. 시민 입장에서 본다면 지방권력이 많이 바뀌었다. 중앙정치에서도 권력이 바뀌면 기존의 사업과 정책이 바뀌는데, 중앙은 괜찮고 지방은 안 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옹호할 생각은 아니지만 이런 면을 보자는 것이다. -유 총장 주민참여예산제를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당 후보자들이 공약으로 많이 내걸었는데 문제는 이걸 실질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예산 낭비도 줄이고, 지방자치 정신에도 부합된다. -오 회장 주민참여예산이 의도는 좋지만 우리 사회에 실효성이 있을까 생각한다. 지역사회에서는 목소리 큰 소수 적극자가 주도하게 될 우려도 있다. 아무리 작은 기초단체라도 예산이 1000억원이 넘는다. 시민단체가 공개된 예산을 시민이 알 수 있도록 어떻게 쉽게 설명해주느냐가 중요하다. 팔로미(follow me)가 아니라 시민에게 알기쉬운 용어로 알려 줘야 한다. 판단은 시민에게 맡겨야 한다. 미국 뉴욕시의 경우, 예산을 감시하는 NGO가 있는데 뉴욕 예산 일년치를 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해석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1년 예산이 25조원이다. 이걸 어떻게 다 분석할 수 있겠나. →제도적으로 단체장을 견제하는 수단이 미흡하지 않나. -유 총장 지방자치도, 민주주의도 대부분 효율성이라는 미명하에 민주성을 가볍게 보지 않나 생각한다. 직접 민주주의나 참여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고, 주민소환제도 긍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국가 차원에서도 재판에서 배심제가 도입됐고, 지방자치 차원에서도 직접민주주의를 확산시켜야 한다. -최 감사관 주민소환제는 대의민주주의의 근간을 뒤엎는 것이다. 일반적인 비리는 사법제도의 문제다. 주민소환제 대상은 단체장이 집행하고 결정하는 정책에 대한 평가로 이뤄져야 한다. 주민들이 이런저런 사업을 해줄 것이라고 믿고 뽑았는데 시행하지 않았을 경우에 한해야 한다. -오 회장 지방자치는 효율성보다 민주성에 방점을 두고 있다. 단체장에 대해서는 주민소환도 견제의 한 방법이다. 견제의 하나이지 그것이 전체는 아니다. 우리는 단체장 중심의 정치·행정이 너무 강하다 보니 의회가 약하다. 민주주의 역사는 의회 역량을 키워 나가는 것이다. 인사권과 공사(사업)권 등에 대해 단체장을 견제할 수단이 없다. 주민소환제는 정치적 효과가 큰 것이지, 실질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중앙정부와 마찰과 지자체 간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최 감사관 기본적으로 광역단체나 기초단체나 똑같이 법인격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다른 단체와 부딪히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게 없다면 지방자치가 아니다. 그 지역의 특수성을 감안하면서 행정하는 것 아닌가. -오 회장 갈등현상을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우선 갈등현상을 받아들이고 협상과 타협을 통해 풀어야 한다. 갈등을 해결할 장치와 제도는 있다. 다만 잘 운영되지 않을 뿐이다. 또 하나 공무원의 적극적인 인사교류를 들고 싶다. 하위직 공무원들에게 사무관 승진이 제일 중요한데 2년 이상 다른 단체 파견 근무 경험이 없는 사람은 승진대상에서 제외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공무원들 간의 지식과 정보 공유로 지자체 사이의 갈등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유 총장 전체적으로 공약 내용이나 정책방향 등을 인근 지자체와 지방의회와 검토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 그런 과정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정리 김지훈 손형준기자 kjh@seoul.co.kr
  • [사설] 하극상 경찰, 경찰대 존폐문제도 짚어보라

    일선 경찰서장이 직속 상관인 지방경찰청장에게 동반사퇴를 요구하는 사상 초유의 경찰 지휘부 항명사태는 언젠가는 터질 일이 발생한 것으로 인식된다. 유흥업소 유착, 부실수사, 허위보고, 가혹수사, 성과 포장을 위한 사건 쪼개기, 경찰대 출신과 비경찰대 출신 사이의 갈등 등 경찰을 둘러싼 추문은 어지러울 정도로 터지고 있다. 어느 부분의 환부를 도려내야 경찰이 온전하게 민중의 지팡이가 될 수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경찰 자체의 개혁 방안은 웃음거리가 됐다. 서울 강북경찰서장이 서울경찰청장과 동반 사퇴를 요구한 것은 위험한 하극상이다. 조직 내 규율이 생명인 경찰에서 이러한 일은 경찰조직을 뿌리부터 뒤흔들게 된다. 특히 성과주의를 비판하며 하극상을 일으킨 강북경찰서장은 경찰청의 감찰 조사까지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파문은 좀체로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점입가경이다. 자연스럽게 이번 파문도 툭하면 터지곤 하는 경찰대 출신의 돌출행동성 반발의 연장선으로 비친다. 하극상 차원을 넘어섰다. 이번 파문은 경찰 내부에 만연한 경찰대, 고시, 간부후보, 순경 등 출신에 따른 내부갈등 문제가 복합적으로 곪아터진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잠복해 있던 경찰대 비판론이 표면화되면서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고, 하극상도 터졌다는 분석이 있다. 우수한 경찰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도입된 경찰대가 이제 경찰의 발목을 잡는 지경이 됐다. 이에 따라 경찰대를 계속 끌고가야 하는지 존폐론까지 구체적으로 거론되기 시작했다. 상황이 심상찮다. 경찰대와 같은 해 출범했던 세무대학은 논란이 많아 역사 속으로 사라진 전례가 있다. 경찰대와 비경찰대 간의 충돌이라는 갈등 구조는 고질적인 병폐다. 최근들어 경찰 내 직위가 올라갈수록 경찰대 출신이 많아지면서 인사 때마다 특혜론과 역차별론이 불거지고 있다. 비경찰대 승진할당제까지 얘기된다. 경찰대 존폐 문제를 포함한 경찰의 전면 쇄신 목소리가 범상치 않게 들리는 이유다. 경찰의 진정한 자기반성과 개혁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경찰의 신뢰를 땅에 떨어뜨린 현 경찰 수뇌부가 조직을 담당할 수 있을지 불신도 극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인사 쇄신을 통해 국민 불신을 해소해주는 것이 급선무다.
  • “느리게 살자” 한국 亞 슬로시티 거점으로

    “느리게 살자” 한국 亞 슬로시티 거점으로

    ‘느리게 살기’를 목표로 친환경·전통문화 보존 운동을 벌이고 있는 슬로시티 시장 총회가 한국에서 열렸다. 26일 서울 역사박물관에서 열린 ‘2010 세계슬로시티 시장 총회’에는 슬로시티의 본고장인 이탈리아를 비롯, 독일, 폴란드 등 13개국에서 80여명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올해로 3회째인 슬로시티 시장 총회가 유럽대륙을 벗어나 개최되기는 처음이다. ●아시아 슬로시티 한국 6곳이 전부 세계슬로시티연맹 부회장으로 선출된 손대현 한국슬로시티본부 위원장은 “주로 유럽에 한정돼 있던 슬로시티 운동이 이제 아시아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면서 “한국이 대표성을 갖고 확산의 거점 역할을 맡게 된 것”이라고 평가했다. 아시아에 위치한 슬로시티는 한국의 전남 신안 증도, 완도 청산도 등 6곳이 전부다. 이웃 일본과 중국은 물론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딘 동남아시아 국가에도 아직 슬로시티로 지정된 곳은 단 한 군데도 없다. 이에 따라 아시아 지역권 내의 국가들은 앞으로 슬로시티 가입을 추진할 때 한국의 사례를 활발히 벤치마킹하게 될 전망이다. 이런 흐름을 반영하듯 총회에는 일본·중국 관계자와 취재진이 참석해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와코 히로토시 슬로푸드 저팬 회장은 “같은 아시아 국가로 한국에서 총회가 열린다는 건 매우 놀랍고 기쁜 일”이라면서 “일본도 이제부터 본격적인 슬로시티 운동을 시작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슬로시티 운동이 태동한 유럽에서도 한국 슬로시티의 ‘빠른’ 성장에 놀라워하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도 전통을 보존하고 유기농공동체를 형성하는 등 한국에 대한 서구사회의 고정관념과는 다른 모습들 때문이다. 전주·서울 북촌 등 슬로시티가 아닌 장소에도 한옥마을이 보존돼 있는 데다 고립된 전시품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살아있는 공간’이라 신선하다는 반응이다. 북촌 한옥마을을 둘러본 피에르 올리베티 세계슬로시티연맹 사무총장은 “거대도시의 한가운데에 옛 역사의 향기를 담은 장소가 그대로 살아 있다.”면서 “한국은 슬로시티 운동을 선도해 나갈 자격이 충분하다.”고 말했다. ●시민들 참여와 인식전환 우선돼야 한국 슬로시티 본부는 이번 총회를 계기로 아시아 지역 내 슬로시티 확산에 더욱 힘을 쏟기로 했다. 손 위원장은 “남도 지역 6곳뿐만 아니라 각 도에 한 군데씩은 슬로시티로 지정될 수 있도록 하고 일본과 중국에서도 슬로시티 운동에 동참하도록 적극적인 활동을 펴나가겠다.”고 밝혔다. 물론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무엇보다 운동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인식전환이 우선돼야 한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시민 스스로 느리게 살기의 미덕을 깨닫고 인식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총회 참석자들은 하루 동안의 서울 일정을 끝낸 뒤 27일 전남 함평을 거쳐 신안·하동을 둘러보는 ‘저탄소 기차여행’을 떠났다. 글 사진 남상헌기자 kize@seoul.co.kr
  • [G20 정상회의] 새 국면 맞는 한미 FTA 쟁점과 전망

    [G20 정상회의] 새 국면 맞는 한미 FTA 쟁점과 전망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수면 위로 재부상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한·미 FTA의 의회 비준에 앞서 양국 간 이견을 11월까지 해소하고 이후 몇 달 안에 비준동의안을 의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한·미 FTA는 2007년 6월30일 역사적인 서명식을 한 뒤 3년째 방치됐다.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은 몇 가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선 ‘재협상’이 아닌 ‘새로운 논의’로 협의 수준을 명확히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adjustment(조정)’라는 표현을 썼다. 기존의 틀에서 협의를 진행하자는 얘기다. 시점을 11월로 정한 것도 중요한 대목이다. 그만큼 의지가 강하다는 방증이다.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이 “오바마 대통령이 처음으로 (FTA비준을 위한) 시간 계획을 언급했다.”면서 “종전보다 강하고 구체성 있는 안을 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양국 간의 논의에서 가장 민감한 쟁점은 결국 자동차 부문이다. 그동안 미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민주당 핵심 인사들과 자동차 업계 관계자들은 자동차 통상 불균형을 지적하며 FTA 비준에 반대 목소리를 높여 왔다. 한국차의 미국 수출량은 연간 70만대에 달하는데 미국차의 연간 한국 수출량은 5000대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007년 FTA 체결 당시 한국은 자동차 전 분야의 관세 8%를 즉시 철폐하는 대신, 미국은 3000㏄ 미만 승용차 관세(2.5%)는 즉시 철폐하되 3000㏄ 이상은 발효 뒤 3년 내 철폐키로 했다. 하지만 미국 자동차업계는 한국 수출 때 세제상 차별과 규제 등 비관세장벽을 거론하면서 협상을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수입쇠고기도 또다시 현안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한·미 양국은 2008년 쇠고기 협상 당시 4월에 전면 개방을 합의했지만, 우리나라에서 촛불시위가 불거지자 추가협상을 벌여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우선 수입하고 추후 시장을 완전 개방키로 했다. 미국은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있어 결과에 따라 FTA 비준이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한·미 FTA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수입쇠고기 문제를 자동차와 끝까지 연계시킬 경우 논의가 어려워진다. FTA를 다루는 미 하원 세입위원회 위원장은 자동차 산업의 메카인 디트로이트가 있는 미시간주 출신이고, 같은 역할을 맡고 있는 상원의 재무위원회 위원장은 대표적인 비프벨트(쇠고기 생산지)인 몬태나주 출신이다. 한·미 간에 어떤 형태로든 가시적인 합의가 도출된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와 협의를 거쳐 한·미 FTA협정문과 국내이행법안 최종안을 패키지로 상·하원에 제출한다. 이렇게 되면 의회는 최장 90일 내 심의를 거쳐 통과시키고 대통령이 최종서명하면 비준은 끝난다. FTA의 법적인 효력은 협정문에 정해진 데 따라 양국 의회가 비준한 날을 기준으로 60일 이후부터 발생한다. 반대로 논의가 잘 마무리되지 않으면 의회 비준 동의 절차를 시작할 수 없어 표류하게 된다. 한·미 FTA비준안이 본회의에 계류돼 있는 우리나라는 미 의회의 심의과정을 지켜보겠지만 FTA와 수입쇠고기 문제를 연계시키는 데 대해 여·야 간 시각차가 커 진통이 불가피해 보인다. 일각에서는 본회의에서 표결에 부친다면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태호 통상교섭본부 FTA정책국장은 “미국 일부 의원들이 30개월령 이상 쇠고기도 수입하라고 주장하고 있다.”면서도 “그럴 경우 30개월령 미만 쇠고기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인식까지 나빠질 수 있기 때문에 미국 업계도 원하지 않는 터라 무리하게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엘리트? 아니 우리학교는 ‘평민’ 만들기가 목표”

    ‘평민 만들기’를 목표로 하는 학교가 있다면 어떨까. 말로는 다 ‘전인교육을 하자’고 하지만 사실상 ‘1등 만들기’와 ‘출세’를 지향점을 삼고 있는 한국 교육 현실에서는 깜짝 놀랄 일이다. 엘리트를 배출하기도 바쁜 마당에 굳이 평민 교육이라니. 하지만 그런 학교가 실제로 있다. 충남 홍성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일명 풀무학교)는 ‘더불어 사는 평민’이 교훈이다. 50년 역사, 대안학교의 원조로 불리는 이 학교는 지역을 떠나버릴 엘리트가 아닌 마을과 함께하는 공동체 구성원을 키워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곳에서는 마을은 학교를 지원하고 학교는 다시 마을 구성원을 배출하는 공동운명체 메커니즘이 작용한다. ●“학교는 마을 구성원 키워내는 곳”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는 이런 ‘모범 사례’를 들며, 교육은 아이들을 학교나 학원에만 몰아넣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그러면서 “진정한 교육은 온 마을이 함께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신간 ‘마을이 학교다’(검둥소 펴냄)는 그의 신념을 반영한 공동체 교육현장 보고서다. 박 상임이사는 전국 곳곳의 대안교육기관들을 찾아 다녔고, 기관장들은 물론 학생과 주변 마을 주민들까지 꼼꼼히 인터뷰했다. 전작 ‘마을에서 희망을 만나다’에서 건강·복지·교육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뤘던 그가 이번에는 교육에만 역량을 집중한 셈. 박 상임이사가 인식하는 한국의 교육현실은 참담하다. 그는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이 그 자리를 채우며 가계 부담을 키웠다.”고 말한다. 교육 현장도 황폐해져 약육강식과 경쟁 논리가 판을 치고, 기러기 아빠가 양산돼 가정마저 무너지고 있다. ●새로운 교육 모색하는 학교도 소개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새순처럼 솟는 희망이 바로 ‘대안교육’이다. 그는 풀무학교 같은 대안학교만 찾아간 게 아니다. 일반 학교들 중에서도 끊임없이 지역과 소통하며 새로운 교육을 모색하는 학교들을 모두 좋은 사례로 소개했다. 한 예가 경기 양평 세월초등학교. ‘마을로 나가는 학교’를 지향하는 이곳은 수업시간마다 기회를 만들어 교사와 학생들이 마을로 나간다. 거기서 마을 역사 쓰기, 영화만들기 등 활동을 벌여 마을과 사람들을 알아 간다. 책은 ‘학교’라는 형식을 완전히 벗어난 청소년 교육기관까지 폭넓게 다루고 있다. ‘청춘’ 같은 청소년문화공동체나 지역단위로 있는 주민·어린이도서관이 그런 곳이다.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등 교육을 두고 고민하는 집단을 찾아가 한국 교육의 새로운 길도 함께 모색한다. 1만 3000원.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국내 학자가 본 한국전쟁] “외세개입으로 무력통일 불가능 증명”

    [국내 학자가 본 한국전쟁] “외세개입으로 무력통일 불가능 증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역사에 대한 남다른 식견 때문에 설화에 휘말린 적이 많았는데, 6·25전쟁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한국 역사에서는 세 번의 통일전쟁이 있었는데, 삼국통일전쟁과 후삼국통일전쟁 그리고 6·25전쟁이 바로 그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으로만 여겨온 6·25전쟁에 통일전쟁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이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재향군인회 회원들로부터 거센 비난과 항의에 직면해야 했다. 독일의 전쟁사가 클라우제비츠가 설파한 것처럼 모든 전쟁은 정치의 연장인 것이 분명하다. 전쟁은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인 것이다. 이렇게 보면 6·25전쟁의 목적이 통일에 있었다는 해석이 그렇게 비난받을 만한 것은 아니다. 전쟁 발발 당시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면 남북의 지도자들은 모두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전쟁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라도 통일을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다. 김일성은 1949년에 들어서자 공공연히 ‘국토완정=공산화 통일’을 주장했다. 결국 6·25전쟁의 방아쇠를 먼저 당긴 것도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설득에 성공한 김일성이었다. 남한 지도자들의 북진통일 주장은 인민군의 기습남침으로 빛이 바래 버렸지만, 인천상륙작전 이후 반격에 나선 국군은 38선의 회복에 만족하지 않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해 자유의 깃발을 꽂으려 했다. 남북의 지도자들은 형태는 다르지만, 전쟁을 통해 통일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6·25전쟁을 통일전쟁이라고 보는 것은 행위자들의 주관적 의도만을 고려한 역사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는 행위자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전혀 다른 길로 전개되는 과정과 그 결과도 함께 고려해서 평가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전쟁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3년여에 걸쳐 폭력과 학살의 광기에 지배된 전쟁은 엄청난 인명의 손실을 초래했고,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물적 자원과 생산력도 파괴했다. 전쟁은 남북대립 및 좌우대립을 통해 서로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으로 몰고 갔다. ‘미제와 그 주구에 대한 적개심’ 및 ‘공산당에 대한 반감’은 극한적으로 증폭되고 내재화되었다. 전쟁은 남북화해와 좌우합작에 의한 통일을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분단을 더욱 고착화한 것이다. 이러한 전쟁의 결과를 놓고 보면 6·25전쟁을 통일전쟁으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안이한 역사인식이며, 전쟁으로 통일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 얼마나 무책임한 것이었는지 분명해진다. 전쟁이 통일이 아니라 분단의 고착화로 귀결된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가 6·25전쟁으로부터 얻어야 하는 교훈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문제는 지극히 단순하다. 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여건상 전쟁으로 어느 한 편을 말살하여 통일을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한반도는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각축하는 전략적 요충지, 사회주의진영과 자본주의진영이 각축하는 열전의 최전선이 되었다. 북한이 기습남침을 감행하자 미국은 신속히 참전해서 공산화 통일을 저지했고, 국군과 미군이 38선을 넘어 진격하자 중국은 신중국의 운명을 걸고 인해전술로 맞서 자유통일을 막았다. 6·25전쟁은 무력을 통해 한반도 전체에 통일 자본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나 반대로 통일 사회주의 국가를 수립하는 것이 그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불가능했음을 극명하게 증명한 전쟁이었다. 전쟁 초기에는 한반도 전체가 사회주의 체제로 통일될 뻔했고, 그 중반에는 반대로 자본주의 체제 아래 통일될 뻔했다. 그러나 한반도 전체가 그 적대 세력에 의해 통일되는 것을 반대하는 외세의 개입으로 남북의 무력통일 기도는 모두 실패하고 도로 분단상태가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상충하는 반도라는 지정학적인 위치와 남북의 이데올로기적 대립이 원인이 되어 분단된 한반도 지역에서, 적어도 1950년대의 상황에서는,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이지만, 분단국가의 어느 한 쪽 세력이 주도해 한반도 전체를 무력으로 통일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 바로 6·25전쟁이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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