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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분하고 단호’… 또 그 독도정책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은 일본 중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가 30일쯤 발표될 예정인 가운데 정부의 독도 정책에 대한 비판이 나오고 있다. 공식적으로 내세운 ‘차분하고 단호한 외교’라는 ‘투트랙’ 접근이 국민의 공감대 형성 등에 얼마나 효과를 내고 있는지 미지수라는 지적이다. 정부는 일본이 중학교 학습지도요령·해설서를 개정한 2008년부터 기존의 ‘조용한 외교’ 대신 ‘차분하고 단호한 외교’를 구호로 내세워 왔다. 일본이 도발하지 않는 한 차분하게 대응하되, 일본이 부당하게 영유권 주장을 할 경우 엄중하고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해가 갈수록 강도가 높아지고 있다. 4년마다 이뤄지는 교과서 학습지도요령 개정에 따라 매년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교과서에 대한 검정 결과 발표가 이뤄지면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야욕과 역사 왜곡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차분하고 단호한 대응만으로는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차분하고 단호한 외교로 바뀌었다지만, 독도를 국제적으로 분쟁지역화하지 않으려다 보니 선제 조치보다는 뒷북 대응에 치중하는 상황”이라며 “일본을 궁극적으로 움직여 바꿀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2008년 3월과 7월 일본의 중학교 학습지도요령 및 해설서가 각각 개정되자 독도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독도에 시설물을 설치하는 등 28가지 영유권 강화사업을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 사업이 예산 부족 등으로 인해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가, 최근 총리실 주재 회의를 통해 다시 점검하겠다고 밝히는 등 임기응변식 대응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또 정부가 독도 영유권 근거를 강화하기 위해 고지도·고사료를 발굴하고, 독도에 대한 국제사회의 인식 제고를 위해 공관을 통한 독도 표기 조사 및 해외 전문가 등을 상대로 한 홍보 등도 강화하겠다고 밝혔으나 이 역시 예산 및 인력 부족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정부 소식통은 “일본의 태도를 볼 때 단기적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만큼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라며 “양국 시민단체 등과 협의, 교과서 불채택 운동 등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기고] 공감 치안,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유재철 총경 청양경찰서장

    [기고] 공감 치안,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유재철 총경 청양경찰서장

    요즈음 경찰의 화두 중 하나는 ‘공감치안 확립’이다. 즉 주민이 수긍하고 평가하는 치안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느냐 여부다. 사실 우리나라의 치안상태는 선진국을 포함한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양호하다. 국민의 적극적 협조에 힘입은 바 크지만, 경찰의 역량도 괄목하게 발전했다고 본다. 반면 주민의 치안 만족도와 경찰 이미지 개선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 이유가 간단치는 않겠지만 몇 가지 예를 들어 보면 첫째, 우선 일제와 군사정권을 거치며 담당했던 부정적 역할이 각인된 역사적 연유다. 둘째, 주민을 직접 규제하고 단속하는 기관이라는 특성에서 비롯된 바도 없지 않을 것이다. 셋째, 경직된 조직문화와 행정편의적 발상으로 목표달성에만 치중한 일부 획일적 정책집행도 이유 중의 하나임에 분명하다. 무엇보다 주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경찰은 주민의 마음을 얻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심지어 한때 휘발유와 타이어를 싣고 다니다 이를 요구하는 주민에게 서비스한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것은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고 주민의 진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치안 수요자인 주민의 입장이 아닌 경찰의 시각과 인식에 바탕을 둔 일시적 이벤트성 정책을 시행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 정도 해 주면 주민이 만족하겠지, 아니면 아무리 주민을 만족하게 해 준다고 해도 경찰이 이런 것을 어떻게 할 수 있어 라는 인식이 양존하지 않았나 반성해 본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말한 “독불장군이 되면 될수록 그만큼 자신의 위치는 흔들리게 되며 자신을 낮게 하면 할수록 위치는 견고해진다.”는 지혜를 다시금 곰곰이 되새길 필요가 있다. 경찰은 애증으로 점철된 과거에 연연하고 명분 찾기에 골몰하기보다는 주민 중심의 치안정책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하였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지금 주민 속으로 다가가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며 선입견 없이 주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알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첫걸음은 편협된 권위의식을 버리고 친절한 언행과 바른 자세를 실천하는 것이라고 본다. 가족이나 친숙한 이웃 모습으로 다가가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고 마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토대 위에서 주민이 공감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치안정책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고민과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경찰서까지 가지 않고 가까운 교통초소에서 편리한 시간에 교통사고조사를 하고 마을 공터에서 원동기운전면허시험을 보고 장례 차량을 에스코트해 주고 빈집 예약 순찰 등이 고민 끝에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이러한 노력은 주민 만족도가 일정한 수준에 이를 때까지 지속할 계획이다. 흔히 경찰 수준을 보면 그 나라의 민주성, 공정성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경찰이 기피 또는 무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주민과 함께하는 조직으로 거듭날 때 우리 사회는 평온하고 한 단계 더 성숙해지리라고 확신한다. 경찰의 각고의 노력과 함께 국민의 건전한 비판과 따뜻한 격려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이유다.
  • 들끓는 영남 민심 “단식투쟁” “낙선운동”

    동남권 신공항에 대한 정부의 백지화론에 영남권 민심이 폭발했다. 영남권 주민들은 “백지화가 현실화된다면 영남 주민들의 엄청난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격렬하게 반발했고, 시·도 관계자들은 정부의 공식 발표 이전이라 신중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곧 민간 대책위원회와 공조할 것으로 보여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 밀양유치범시도민결사추진위원회는 28일 대구경북디자인센터 컨벤션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백지화 움직임에 대응해 29일부터 서울 국회의사당 앞에서 무기한 단식투쟁을 한다.”고 밝혔다. 강주열 추진위 본부장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방의 고통과 한(恨)은 안중에도 없이 지방을 말살하고 지방민을 적으로 돌리는 비열한 정치공작을 역사가 단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신공항이 백지화된다면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지역의 엄중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범일 대구시장은 “정부도 동남권 신공항이 영남권의 숙원이고 국가경쟁력을 높이려면 꼭 필요한 사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며 “사전에 각본이 있었다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가덕도유치범시민비상대책위원회 박인호 상임대표도 “백지화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받을 것”이라며 “정부와 대통령을 규탄하기 위한 대규모 시민규탄대회와 함께 한나라당 후보 낙선 운동을 펴 나갈 방침”이라고 말했다. 김효영 부산시 교통국장은 “정부의 발표가 아직 나지 않은 상황에서 뭐라 말할 수 없지만, 백지화된다면 김해공항의 가덕도 이전을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부산 김정한기자 cghan@seoul.co.kr
  • 눈치보며 휴가 쓰세요? 기업논리에 발목 잡혔군요

    눈치보며 휴가 쓰세요? 기업논리에 발목 잡혔군요

    100년이 넘는 자본주의 역사는, 아주 단순화시켜 말하면 ‘노동시간’을 둘러싸고 노동과 자본, 그리고 국가가 벌여온 지난한 싸움의 과정이었다. 그 결과, 하루 12~15시간씩 이어지던 중노동은 8시간 노동으로 법제화됐다. 일주일에 5일만 일하는 주 5일제도 자리잡았다. 이제 21세기는 ‘휴가 시간’을 둘러싼 싸움이다. 싸움? 상식에 어긋나는 표현이다. 정기휴가, 생리휴가, 대체휴가, 연차휴가, 경조휴가, 휴가명령제 등 이미 법과 제도로 보장된 각종 휴가들이 엄연히 있는데 무슨 싸움이란 말인가. 하지만 현실은 싸움이다. 직장 상사, 동료들의 눈치를 치열하게 살펴야 하는 싸움이다. 눈치 싸움 끝에 제대로 누리지 못한 휴가는 인사부 담당자의 컴퓨터에 켜켜이 쌓여 있다가 연말이 되면 허공으로 날아가 버리고 만다. ‘잃어버린 10일’(김영선 지음, 이학사 펴냄)은 휴가를 ‘사실상’ 반납한 채 이뤄지는 한국 사회의 장시간 노동 시스템에 반기를 든다. 그리고 성장, 생산성, 경쟁력의 담론 안에 갇혀 있는 ‘휴가의 해방’을 과감히 선포한다. ‘경영 담론으로 본 한국의 휴가 정치’라는 꽤 어려워 보이는 부제를 달고 있다. 그러나 요지는 복잡하지 않다. 당연히 자본의 입장에서 휴가를 고민하고 있는 경영자들은 물론, 노동자 역시 자본의 입장에서 휴가를 바라보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현실을 책은 직시한다. 뭇 직장인들은 늘 쭈뼛거리며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그러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경영자총협회(경총) 등에서는 늘 너무 많다고 아우성치는 ‘휴가의 이율배반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돌이켜 보자. 마음 놓고 연차휴가 10일, 혹은 20일을 ‘쭈욱’ 쓰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 아닌가. 하루이틀씩 쪼개서 쉬며 ‘재생산의 시간’으로 애써 자위하고 있지 않는가. 길게 휴가를 썼다는 이유로 상사나 동료들에게 눈총을 받은 기억은 없는가. 휴가를 꼬박꼬박 챙기는 동료나 후배를 부러워하거나 욕한 적은 없는가. ‘그렇다’라는 답이라면 우리는 자본의 입장에서 만들어놓은 휴가에 대한 인식의 울타리(담론) 안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것이다. 서울과학종합대학원 레저경영대학원 겸임교수인 저자는 어떻게 해서 ‘쉴 수 있는 휴가는 많은데 쉰 휴가는 별로 없는 현실’이 만들어지고 있는지 역사적으로, 사회학적으로, 그리고 정치학적으로 접근한다. 한국의 기업은 여전히 장시간 노동문화를 기반으로 삼고 생산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2009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316시간이다.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과 비교해 보면 1년에 최소 500시간에서 1000시간 이상 더 일하고 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기준으로 비교해 보면 1년에 2달 이상을 덤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선진국에 비해 뒤떨어지지 않는 온갖 휴가들이 즐비하게 보장돼 있고, 법으로 주 40시간 노동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왜 이런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할까. 과거의 휴가는 단순한 노동을 위한 피로 회복의 도구이면서 국가와 자본의 입장에서는 통제와 관리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최근의 휴가는 더 많은 생산성, 더 높은 경쟁력을 위한 수단이자 노동을 위한 재생산의 시간으로 변했다. 구성원들의 반론도 변변치 않다. 기업의 논리와 가치로 이뤄진 지배담론이 한국 사회를 사실상 장악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나아가 휴가에 대한 가치가 발전과 성장, 그리고 경쟁과 생산성의 가치에 뒷전으로 밀려남으로써 인해서 휴가 제도와 현실 사이에 비동조화 현상이 지속되고, 실질적 민주화 또한 계속 지연되고 있음을 결론적으로 얘기한다. 안타까운 점은 일반 노동자들의 삶과 이해관계와 밀접히 연관된 문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는 대중교양서 형식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책의 구성과 문장 등이 학술 논문 형식을 띠고 있어 편안한 독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1만 9000원. 글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그래픽 이혜선기자 okong@seoul.co.kr
  • 정완영 “시를 안쓰면 무슨 재미로 사누”

    정완영 “시를 안쓰면 무슨 재미로 사누”

    “자네는 왜 시를 쓰지 않나?” 노(老) 시인은 대뜸 묻는다. 그저 농담인가 싶어 머뭇거리니 다시 묻고 재촉한다. “자네도 시를 쓰시게. 제대로 된 시 두편만 남기면 그 어떤 훌륭한 정치인, 그 어떤 훌륭한 학자보다 더 오랫동안 역사가 기억할 거야.” 진지했다. 65년 시력(詩歷)의 시인답게 광대무변(廣大無邊)한 지식과 지혜를 내보였고, 92세 고령의 나이가 무색하게 얘기 중간중간 유쾌한 농담을 잊지 않던 그는 지긋한 눈빛으로 정색한 채 손주뻘 되는 기자에게 시 쓰기를 권했다. 머리를 배반한 입이 절로 움직였다. “네,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24일 시조시인 정완영을 만났다. 최근 열일곱 번째 시집 ‘詩菴(시암)의 봄’(황금알 펴냄)을 내놓은 그다. 공식 집계는 없건만 창작 시집을 내놓은 최고령 시인임에 분명하다. 경북 김천시에 있는 그의 집과 백수문학관을 오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일제 강점 기 고문이 시로 터져나와 그의 호는 백수(白水)다. 정갈히 맑은 물이라는 뜻과 함께 고향 김천의 천(泉)을 쪼갠 글자(破字)다. 2008년 정부와 경북도 등이 예산을 들여 백수문학관을 개관했다. 시조시인으로 개인의 문학 업적을 기리는 문학관이 생긴 것은 처음이었다. “난 시 지상주의자이면서 시 전도사야. 남녀, 학력, 노소 가리지 않고 늘 시를 권하지. 시를 쓰는 것이 즐거우니까 권하는 거지. 시를 안 쓰면 무슨 재미로 사누.” 시에는 별 재주 없는 이가 많을 텐데 무작정 시를 권하면 어떻게 하느냐며 짐짓 놔보는 어깃장에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면 많이 거두는 이도 있고, 조금밖에 못 거두는 이도 있지. 그러나 아무것도 못 거둔 이는 없는 법이야. 타고나지 않아도 노력한 만큼은 반드시 거두게 돼 있으니까.”라고 대답한다. 말 그대로 우문(愚問)에 현답(賢答)이다. 정완영은 일제 강점기 ‘불령선인’(일본을 따르지 않는 조선인)으로 찍혀 경찰에게 고문당해 오른쪽 중지를 쓸 수 없게 됐다. 고통은 시가 되어 터져나왔다. 광복 직후인 1946년 김천에서 ‘시문학 구락부’를 만들며 시 활동을 시작했다. 그가 민족적 시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는 장르로서 시조만을 고집해 온 민족사적 배경이자 개인사적 이유다. 1970~80년대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그의 시조 ‘조국’에서 ‘손 닿자 애절히 우는/ 서러운 내 가얏고여’와 같이 노래할 수밖에 없게끔 살아온 것이다. 정완영은 청마 유치환의 강권으로 공식 등단의 필요성을 느꼈고 곧바로 1960년 서울신문, 국제신보, 1962년 조선일보, 1967년 동아일보 등 신춘문예를 휩쓸다시피하며 중앙문단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몸으로 꿰뚫고 살아온 시 세계는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시인이 가난하지 않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시인의 가난함은 훈장이라고 머리로 외면서도 몸은 한사코 명예와 돈을 좇아 두리번거리는 것이 여느 시인들의 비루한 현실이니 말이다. “시는 벌판에서 와. 외롭고 쓸쓸할 때, 그때 시가 나와. 안일하거나 가득 차면 시가 안 나오거든. 시가 떠오를 때는 일부러 밥도 두세 끼니씩 거르기도 해.” 하지만 어쩌랴. 짜여진 형식의 틀과 고루한 인식에 갇혀 있는, 낡은 장르로 치부되는 것이 문단에서 시조가 겪고 있는 대접이다. 그는 “시조의 형식에는 종장 세 글자를 제외하면 다양하게 변형될 수 있는, 무한한 자유로움이 들어 있다. 시의 정서와 시어 역시 다루지 못할 것이 없다.”면서 “시조를 모르는 이들의 편견일 뿐”이라고 단호하게 얘기한다. ●“시조 변형 자유로워… 낡은 장르 치부는 편견” 그의 신작 시집 ‘시암의 봄’을 펼쳐 읽어 보면 시조에 대한 편견이 단박에 허물어짐을 느낄 수 있다. ‘감꽃만 떨어져 누워도 온 세상은 환!하다/…/이 세상 한복판이 어디냐고 물었더니/여기가 그 자리라며, 감꽃 둘레 환!하다’(‘감꽃’ 중), ‘동구 밖 개 짖는 소리로 먼 마을에 눈 내렸다’(‘먼 마을에 내리던 눈’ 중), ‘꽃보다 어여쁜 적막을 누가 지고 갈 것인가’(‘적막한 봄’ 중) 등과 같은 시편들은 젊은 시인의 모던함과 무람 없이 견줘도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길 만하다. 특히 ‘함부로 꽃 피지 않고, 함부로 열매 안하는 석류나무’를 보여준 ‘우리 집 석류나무는’는 품격 있는 시어 조련과 범우주적 가치에 대한 사유의 정수를 확인시켜 준다. 지금도 하루에 열 시간 이상 시를 공부하고, 생각하고, 쓰고 있다는 진짜배기 시인 정완영. 그러고 보니 김천은 소설 쓰는 김연수(41), 시 쓰는 문태준(41)의 고향이다. 그냥 불쑥 튀어나온 문재들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글 사진 김천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지진성금으로 이해 폭 넓혀 독도·교과서 문제 등 현안 긍정적 발전 계기 될 것”

    “지진성금으로 이해 폭 넓혀 독도·교과서 문제 등 현안 긍정적 발전 계기 될 것”

    한국인으로 일본 릿쿄대 부총장으로 재직 중인 이종원(58) 교수는 24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일 간에 놓인 여러 갈등이 상당히 완화되면서 양국 관계가 대립보다는 협조관계로 변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교수는 “일본이 향후 5년 정도는 대지진 피해복구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공격적 외교력을 구사할 수 없다.”며 두나라 간에 껄끄러운 부분이 상당히 해소될 것으로도 내다봤다. 그는 “역사 문제 등 양국 간 갈등요인이 근본적으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갈등요인이 중심 문제가 아닌 주변 문제로 축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번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한·일 관계는 어떻게 될 것으로 보나. -심리적으로 밀접해졌다. 일본이 고전하고 있으니까 동아시아 문화권에 있는 한국이 일본과 공동체 의식을 느끼고 있다. 그동안 한국은 일본이 다시 공격적인 모습을 나타내는 것에 대한 경계감이 많았는데 공격적인 측면이 약해질 것이다. 실제로 일본도 여러 분야에서 한국을 필요로 한다. 양국 관계는 대립보다는 협조 관계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다. 역사를 보더라도 큰 재난을 당하면 인접국가 간의 관계가 대립갈등보다는 협조부분이 많이 나타났다. 양국 간 갈등이 상당히 완화되고 중심 문제에서 주변 문제로 축소될 것이다.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한국에서 성금이 쇄도하는 등 온정의 물결이 넘치는 현상을 일본에서도 경이롭게 보고 있다. 프랑스 르몽드지는 최근 대지진을 계기로 양국이 더욱 가까워질 것이라는 보도도 했는데. -한·일 국교정상화가 지난 1965년에 이뤄졌지만 양국 간 보통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다. 하지만 불과 23년 만에 양국 사회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문화적으로 급속히 가까워졌다. 이런 토대가 있었기 때문에 한국인의 연대의식이 자연스럽게 솟아 나온 것이다. 한·일관계가 감정적으로 거리가 있었는데 이번 대지진을 계기로 감정적으로 가까워지고 있다. →기존의 한·일관계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나. -1990년대 이후 한국은 상당히 자신감을 가지고 활동해 왔다. 특히 우리나라 20~30대 젊은이들은 일본 젊은이들에 비해 열등감이 없다. 패러다임이 바뀌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해온 대로 한국이 일본에 대해 당당하고 자신있게 대할 것이다. →두 나라 국민이 정서적으로 가까워지고 있지만 이번달 말에 문부과학성이 중등 역사교과서 검정과정에서 독도 영유권을 표기할 것으로 알려져 양국관계가 악화될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양국 관계가 친밀하더라도 역사와 영토문제 등 현안은 남는다. 문제가 전부 없어지는 게 아니니까 지적을 할 것은 지적하고 외교적으로 대응을 할 것은 대응해야 한다. 일본도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해서 독도 문제 언급을 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양국 관계가 지금까지는 그런 현안들에 전부 휘둘렸지만 지금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축소됐다. 앞으로도 양국 관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협조적 측면이 더 커지고 갈등적 측면은 축소될 것이다. →‘역사문제는 한두번의 사죄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역사문제는 프로세스(과정)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역사 인식은 잘 좁혀지지 않는다. 외교적으로 역사인식을 정리한다고 해도 양국 사회에 깔려 있는 개별적인 역사인식은 쉽사리 빠른 시일 내에 정리되지 않는다. →대지진 이후 일본 정치는 어떻게 변할 것으로 보나. -현 간 나오토 정권이 대지진 이후 위기관리를 효율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민주당은 다음 달 지방선거에서 상당히 고전할 것이다. 아마도 2~3개월 이후에는 민주당 정권에 대한 불신감이 팽배해져 선거나 연립을 통해 정치적 틀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될 가능성이 높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글로벌 시대] 순치관계의 일한공생/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글로벌 시대] 순치관계의 일한공생/전경수 서울대 인류학 교수

    이빨은 이빨이고, 입술은 입술이다. 이빨은 이빨의 고유함을 유지하고, 입술은 입술의 특징을 가다듬어야 한다. 양자가 서로의 입장을 잘 나타내고 서로의 특징을 존중할 수밖에 없다. 그래야 서로가 빛이 나며, 이런 것을 우리는 ‘윈윈’이라고 말한다. 양자는 서로가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관계다. 우리는 이빨과 입술의 관계를 순치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치순(齒脣)”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어순을 고려하여 “일한(日韓)”이라고 쓰고 있다. 또한 상대에 대한 인간적 존중의 맥락이라는 표현으로서 “일한(日韓)”이라고 적는다. 과거 베트남 여인들은 성인식의 일환으로 이빨에 검은 물을 들이는 의식을 치렀다. 흑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검은 물감만으로 되지 않는다. 이빨에 자연산 흑칠을 한 뒤, 그 위에 개미의 뒷구멍에서 채취한 액즙을 칠한다. 일종의 에나멜 효과를 얻기 위함이다. 흑칠이 벗겨지지 않도록 보호막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광택이 나는 효과를 얻으려고 하였다. 특히 앞니들의 광택이 잘 나도록 칠하는 것이 중요한 미모갖춤의 첩경이었다. 개미로부터 얻는 액즙을 한번 칠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거듭해서 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한달 걸린다. 한달 동안 어린 여인들은 입을 벌리고 있어야만 했다. 깨어 있는 동안에는 의식적으로 입술을 아래 위로 벌려서 이빨에 칠해진 개미액즙이 잘 마르도록 할 수 있지만, 수면 중에는 그것이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대나무 가지를 얇게 잘라서 아래 위의 입술을 벌리고 있도록 고안된 장치를 하였다. 입술에 오는 고통은 참을 수 있었지만, 이빨이 시려오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특히 겨울에는 이 과정이 아주 힘들었기 때문에, 그 작업은 가능한 한 동절기를 피하였다. 입술이 없으면, 이빨이 시려온다. 이빨이 시리면 잠을 잘 수가 없고, 잠을 잘 수가 없으면 살 수가 없다. 이빨을 잃어버리면 잇몸이 대신한다는 말이 있다. 음식을 먹을 때의 얘기다. 이빨을 다 잃어버려서 입술이 입안 쪽으로 오목하게 들어가 버린 얼굴 형상을 우리는 합죽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모두들 틀니다 임플란트다 해서 잃어버린 이빨 대신에 인공적인 이빨들을 갖추고 있지만, 과거 노인들의 얼굴에서 흔히 볼 수 현상이 합죽이었다. 합죽이가 되면, 전체 얼굴 모습이 틀어진다. 이빨을 잃어버리면 입술이 비틀어지고 안쪽으로 오목하게 쭈그러짐으로써 입술 고유의 모습이 사라지게 된다. 이미지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미지가 달라진다는 것은 존재감의 상실을 초래하게 된다. 합죽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모두들 인공이빨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입술이 제대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이빨을 필요로 한다. 이빨과 입술은 공생관계의 전형적인 모형인 셈이다. 양자는 서로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이며, 양자의 공생은 필연적이며 숙명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아시아에, 대륙 쪽으로는 이빨인 한국이, 태평양 쪽으로는 입술인 일본이 지정학적으로 존재한다. 사상초유의 지진과 해일 그리고 원전사고에 곁들인 복합적 스트레스로 인하여 일본이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강 건너의 불이 아니다. 입술이 흔들리면, 이빨의 존재가 어렵다. 일본이 흔들리는 것은 한국 존재에 직격탄의 도미노를 부른다. 이럴 때, 한국의 지도자들은 일본이 흔들리지 않도록 특단의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구급대를 파견하는 정도의 안이한 대처로는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가 없다. 입술의 위기상황을 돌파함에 이빨의 대응이 필요하다. 입술 방어를 위한 분야별의 비상조치에 돌입해야 한다. 베푸는 차원이 아니다. 입술 구제를 위한 이빨의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이 때, 한국인들은 새로운 “일한(日韓)관계”를 생각해야 한다. 순치의 일한관계를 직시한다면, 한 세기 전의 구원적 과거와 현재의 위기상황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미래의 공생구도를 만드는 것이 아시아의 역사를 만드는 시발점이 된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 수 있는 기회다.
  • 힙합 래퍼로 변신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힙합 래퍼로 변신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

    책 속에 파묻혀 지낸 40여년, 경제학과 법학 박사학위 타이틀에 무어 아쉬운 게 있을까. 더욱이 이순(耳順)이 멀지 않은 연배에, 자유시장 이념의 선봉장이 되겠다고 작정한 김정호(55) 자유기업원 원장이 힙합 래퍼로 변신했다. 7년째 이 ‘액션 & 싱크 탱크’를 꾸려 오고 있는 그가 마이크를 잡고 리듬에 몸을 맡긴 이유가 궁금했다. 김 원장은 3일과 10일 두 차례 인터뷰에서 “딱딱한 메시지를 전하는 데 한계를 느꼈기 때문”이라며 “미래 동력인 젊은이들이 사상적으로 방황하고 목표를 상실한 것 같아 이들에게 올바른 시각을 심어줄 수단을 찾은 결과가 힙합”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변신 자체도 놀라움이지만 지난 1월 프로젝트그룹 ‘김 박사와 시인들’이 출시한 앨범에 담긴 3곡의 가사는 의미심장하다. 트로트계 ‘이 박사’가 힙합계의 ‘김 박사’로 현신했다고나 할까.‘개미보다 베짱이가 많아’란 노래에는 ‘일자리를 달라고만 하니…공짜는 없어…독립문이 왜 서대문에 있는 줄 알아?…김정일은 벌써 북한 팔아먹어’ 등 신랄한 어조로 가득하다. 3분 50초 뮤직비디오에는 강의 도중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이내 힙합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고 손동작을 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차 안에선 리듬에 맞춰 손가락으로 ‘탭’(tab) 하고 어깨를 들썩인다. 김 원장은 “주요선진20개국(G20)에 안주하지 않고 G5로 진입하기 위해 젊은이들이 단순한 저항을 뛰어넘어 긍정적인 변화의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주 연세대, 중앙대, 숭실대에서 랩을 곁들여 2~3시간 강연했고 인터넷TV를 통해 ‘프리스타일 코리아’ 강연을 계속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자유기업원부터 소개해 달라. -액션 & 싱크 탱크다. 보통 싱크 탱크라고 하는데 우리는 생각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행동까지 담보하는 싱크 탱크라 보면 되겠다. →표방하는 바는. -한민족은 굉장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그런데 본격 발휘된 것은 대한민국에 들어와서였다. 보통 반만년 역사라고 하는데 대한민국 이전에는 그다지 잠재력이 발휘되지 못했다. 이걸 이어나가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최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우리도 고래가 되자, 될 수 있다는 메시지 말이다. →그런데 왜 하필 랩인가. -강연으로 전달하려니까 몇 사람 안 되고 강연 끝나면 다 잊어먹고 그렇더라. 국민들의 마음에 직접 다가가 행동을 이끌어 내려면 감성에 호소해야 하는데 그 방법은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노래가 좋겠다, 해보자 했는데 노래를 잘 못하니까 노래 못하는 사람이 잘할 수 있는 노래가 랩이었다. 리듬감만 있고 조금 용감하면 되겠다 싶었다. 나처럼 나이 많은 사람이 랩을 한다면 관심을 많이 가질 것 같더라. 그런데 때마침 하드코어 랩으로 유명한 힙합 그룹 ‘거리의 시인들’ 리더 노현태씨가 도와주겠다고 나서 프로젝트 그룹까지 만들게 됐다. →그래도 뭔가 특별한 계기가 있었을 텐데. -2009년 5월 대학을 졸업한 딸이 ‘꿈꾸는 다락방’이란 책을 건네며 아빠가 꿈을 잃은 것 같다고 말해 충격을 받았다. 돌아보니 자유기업원에 다니는 직장인으로 그저 목표 없이 떠돌았다는 성찰을 하게 됐다. 그래서 ‘아침형 인간’으로 거듭나고자 했고 사회운동가로서 좌표를 다시 설정하게 됐다. 그 연장이 힙합인 것이다. →랩을 배우면서 재미있는 일 많았겠다. -힙합은 생각보다 빨리 배울 수 있어서 나도 놀랐고 젊은 친구들도 놀랐다. 지난 1월에 뮤직비디오를 18시간 걸려 촬영하는데 굉장히 추웠다. 바지를 갈아입을 일이 있었는데 젊은 친구들은 바지를 올리니까 바로 맨 다리가 드러나더라. 그런데 난 내복을 껴입고 있었다. 무지 창피했다. →주위의 반응은. -‘하던 일이나 잘하지.’ 하는 분들이 많다. 직원들도 ‘왜 저러나?’ 한다. →잘한 일이라고 보나. -아주 잘한 선택이라고 본다. 힙합을 하면서 젊어졌다. 몸뿐만 아니라 정신도. →앨범 수록곡을 소개해 달라. -‘개미보다 베짱이가 많아’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내용이다. 대한민국이 얼마든지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있는데 그렇게 되려면 우리가 바뀌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챔피언 한국’은 대한민국이 우리의 국호이고 1948년에 건국돼 63년 동안 이만한 성과를 거뒀으며 이 대척점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있다는 점을 알려주고 싶었다. →‘똥파리들’이란 곡에 거친 표현도 보이더라. -젊은이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꾸짖고 싶었다. 악플만 달고 있지 말고 국가와 사회에 긍정적인 역할을 해달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스펙만 쌓지 말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기업가 정신을 가져 달라고 주문했다. 사실 욕설에 가까운 내용도 있는데 원래 힙합이 욕설에서 시작한 것이다.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 그런 노래에 참여하는 게 부담스럽고 불편하기도 하지만 래퍼가 되려면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3곡 모두 지상파 3사에서 계층 간 갈등 조장, 특정 정당 및 국가 언급 등을 이유로 방송 불가 판정을 받았다.)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반항과 저항은 청년들의 특권이다. 생물학적 특권이기도 하고 도덕적으로 봐도 그렇다. 그런데 저항을 통해 무엇을 지향하느냐가 문제다. 내가 걱정하는 것은 미국의 반대편, 우리의 반대편을 지향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래서 북한과 비슷해지는 것을 진보라고 오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오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북한이나 중국 체제와 비슷하게 가는 것을 진보라고 착각하는 이들이 있다면 위험하다. 지금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 한창인데 이것이 이슬람 독재나 중국처럼 공산당 일당독재 비슷한 무엇을 꿈꾸고 있다면 진보가 아니다. →진보에 냉소하는 건가. -진정한 진보라면 김정일 정권을 제거하고 북한 인민에게 자유를 주는 진보를 꿈꿔야 한다. 우리 사회도 완벽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가야 한다고 꿈꾸는 것이 진정한 진보다. 내가 돈을 벌어서 남을 돕고 기업을 만들어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 진보다. 그런데 남의 호주머니 털어 그걸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것을 진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은 도둑질이다. 내가 변해서 세상을 구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이며 모든 사람이 그렇게 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영국의 1940년대와 비슷한 구석이 적지 않다. 지식 지형이 완전히 왼쪽으로 기울고 있다. 예전에 남로당 지원을 받던 좌파가 아니라 자생적 사회주의자들이 생겨나고 그 여파로 ‘강남 좌파’란 말이 등장할 정도다. 이들이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달라고 국가에 생떼를 쓰게 만들고 이도저도 안 통하면 짱돌을 들라고 가르친다. 어쩌자는 것인가. 심지어 기업도 우파 싱크탱크를 외면하고 좌파에 돈을 갖다 받치고 있다. 이런 사상 지평을 바꾸고 싶다. →트위터에 ‘우파 문선대’란 비아냥도 있더라. -그런 지위를 내게 부여해 준다면 영광이다. →앞으로 활동 계획은. -랩을 2~3분 들려주고 젊은이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2~3시간짜리 강연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2017년까지 이런 활동을 계속할 것이며 언제든 어디든 달려갈 것이다. →왜 2017년인가. -차차기 대선이 실시되는데 그때까지 진정한 자유시장경제, 보수 이념을 표방하는 정권과 정부가 출범할 수 없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까지 진정한 보수로 보지 않는다는 얘기인가. -이 정부가 한번도 진정한 보수임을 표방하지 않았다. 늘 중도 보수라고 물을 타왔다. 그런데 사람들은 착각을 하고 잘못된 비판을 가하곤 한다.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은. -먼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나도 2009년 5월부터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 만나기 두려워하고 게으름 피우다 밤늦게 잠들곤 했던 내가 이만큼 달라질 정도로 인간의 잠재력은 놀랍다. 여러분의 잠재력을 지금 살리고 있나? 아니면 ‘잠 재’우고 있나? 그건 여러분 태도에 달려 있다. ‘해방전후사의 재인식’ 강의를 묶은 ‘대한민국 이야기’(이영훈 지음)와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를 파헤친 ‘개인이라 불리는 기적’(박성현 지음)을 권한다. 임병선·강경윤기자 bsnim@seoul.co.kr ●김정호 원장 ▲1956년 서울 출생 ▲1979년 연세대 경제학과 졸업 ▲1988년 미국 일리노이대학 경제학 박사 취득 ▲2003년 숭실대 법학 박사 취득 ▲2009년 12월 인터넷방송국 ‘프리넷 뉴스’ 개국 ▲2004년~ 자유기업원 원장
  • [열린세상] 일본의 위기극복을 위한 다자협력/조윤영 중앙대 국제정치학 교수

    [열린세상] 일본의 위기극복을 위한 다자협력/조윤영 중앙대 국제정치학 교수

    미증유의 대지진과 쓰나미에 이어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누출문제가 위협적으로 다가오면서 일본은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참혹한 인명피해와 천문학적 재산 손실은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도로·항만·공항 등 기간시설이 마비되고 각 분야의 최첨단 공장들이 멈춰 섰다. 전기와 식수 공급이 중단되고 통신망은 두절되어 일본 동북부의 경제는 마비 상태다. 대지진 이후 여진이 지속되고 있고 원전 폭발로 인한 방사능 누출 위험이 가중되면서 일본 열도 전역은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일본의 대재앙 앞에 한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명과 재산 손실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는 이런 자연 재난과 방사능 재앙이 일본에 국한된 게 아니라 모두에게 예상도 못한 때에 닥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재앙이 세계화된 국제사회에 연쇄적 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일본의 경제적 고통이 다른 국가에 기회로 분석되기도 하지만 세계 3대 제조업 국가의 생산 중단은 인접한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에는 상당기간 어려움을 주게 될 것이다. 20세기 국제정치의 큰 화두는 이데올로기와 전쟁이었다. 제국주의가 첨예화하고 이로 인한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국제사회는 겪어내야 했다. 그러나 20세기 역사의 종말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승리로 심판이 끝난 것처럼 보인다. 21세기 현재 국제사회는 새로운 현상으로 세계화가 가속화하면서 국가 상호 간의 영향력이 그 어느 시기보다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화란 우리가 사는 지구촌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거리감이 없어지면서 전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이 되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국가가 가장 중요한 행위자이지만 정보와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가 가까워지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러나 지금은 세계화가 주는 기회의 가능성보다는 위기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준비할 시대이다. 경제가 더욱 상호의존하게 되면서 부의 창출을 증가시키는 기회인 동시에 최근 금융위기에서 보듯 한 국가의 불안정성이 다른 국가로 옮겨가는 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한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다. 특히 21세기 들어 늘어나고 있는 대지진과 쓰나미 현상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일본 원전사고에서 볼 수 있듯이 이로 인한 방사능 노출 등에 따른 재난의 범위가 늘고 있다. 재난의 세계화 현상 속에서 국제체제를 관리하는 구조의 결핍성을 인정하고, 한 국가의 역량으로 재앙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국가 간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위한 노력에 집중해야 한다. 일본 대지진과 방사능의 공포로 인명의 손실이 1만명을 넘고 손실액도 수백조원이 될 것으로 추산되는 상황에서 한·일 협력은 중요하다. 일본의 경악할 만한 재앙과 시련 앞에서 한·일관계를 과거 역사의 피해자와 가해자라는 관계, 가깝지만 먼 이웃이라는 과거의 도식적 사고에서 벗어나 일본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지원을 정부는 모색해야 할 것이다. 대지진으로 고통을 겪는 일본을 향한 한국민들의 온정 또한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다양한 모금 행사를 보면 성원의 분위기가 한층 달아오르고 있다. 전혀 원치 않는 위기지만, 이를 통해서 정부와 국민이 일본에 대한 인식의 통합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계기를 마련하여야 한다.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상호 중요성을 인정하고 더욱 성숙한 협력적 동반자로 격상되기를 기대한다. 한국은 적극적인 일본 지원을 위해 동아시아 국가들의 협력을 끌어내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고려해야 한다. 전통적 동맹인 미국을 중심으로 한·미·일 삼각 협력체제로 일본 위기에 대한 사후처리 방안과 향후 동아시아에서의 예방적 위기관리에 대한 협력체제 구축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한국은 신흥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중국의 위상과 역할을 강조하고 새로운 한·중·일 다자협력의 실현을 일본의 위기극복 과정을 통해 구체화시킬 수도 있다. 한국의 주도적 역할은 불확실성과 새로운 위기의 시대에 롤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日서해서 지진땐 1시간내 쓰나미… 내진 설계 보완해야”

    “日서해서 지진땐 1시간내 쓰나미… 내진 설계 보완해야”

    ‘앞으로 3일 이내에 리히터 규모 7.0 이상의 여진이 일어날 확률이 70% 이상’이라는 지난 13일 일본 기상청의 발표에 우리나라 전문가들도 동의했다. 일부 학자는 7.0 이상의 여진이 일본 동해상뿐만 아니라 서해상 즉 우리나라 동해상에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일본 서해 앞바다에서 발생한 지진은 불과 1시간 이내에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켜 우리 국가주요시설을 초토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내진설계가 안 된 오래된 건물들에 대한 긴급 안전진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일본 기상청이 리히터 규모 7.0 이상의 여진 발생 가능성을 예측했는데 어떻게 보나. -손문 부산대 지질환경과학과 교수(이하 손) 가능성이 있다. 주변 지각에 균열이 일어나면 군데군데 지각이 약해져서 지하에 누적돼 있던 응력이 해소되면서 여진이 발생한다. 이번처럼 리히터 규모가 9.0 정도면 여진의 규모가 그만큼 커지고 여진이 발생하는 시간도 길어진다. 한달에서 길면 1년 이상 여진이 발생할 수 있는 규모의 지진이었다. 뿐만 아니라 ‘환태평양 지진대’라 불리는 곳은 단층이 많고 어떤 단층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다른 단층들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한번 강진이 발생하면 도미노현상과 같이 주변에 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짧게는 30년, 길게는 50년 주기로 지진이 다발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정태웅 세종대 지구환경과학과 교수(이하 정) 여진이라는 것은 규모가 거의 똑같지는 않지만 본진보다는 낮은 단계의 지진이다. 2004년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지진(리히터 규모 9.1)의 경우도 며칠 만에 리히터 규모 8.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한 바 있다. 이번 경우도 근처 판에서 7.0 정도의 여진은 충분히 나올 가능성이 있다. -신진수 한국지질연구원 지진재해연구실장(이하 신) 여진 발생 가능성은 맞는 말이다. 이 정도 지진이 나면 일주일에서 한달 내지 몇달 내에 많으면 수백차례의 여진이 발생할 수 있다. 그중에 규모 7.0 이상의 지진도 발생할 수 있다. →여진이 일본 서쪽(동해)에서 발생할 가능성은. 발생한다면 쓰나미 등 피해가 우려되나. -손 일본의 북동부에서 동편으로 태평양판이 1년에 5~10㎝씩 서쪽으로 밀고 있다. 이번 지진은 이 때문에 발생한 지진이다. 또 단층운동이 수직으로 일어난 지진이다. 쓰나미는 이렇게 단층운동이 수직으로 일어날 때 규모가 커진다. 이번 지진은 대형 쓰나미가 일어나기에 좋은 여건이었다. 하지만 일본 동쪽에서 규모 7.0 이상의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지, 우리 동해에서는 그런 강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하지만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실제로 1983년 일본 아키다 현에서 발생한 규모 7.7의 지진으로 우리 동해안이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어느 정도의 확률인지는 말할 수 없지만 9.0 지진이 일어나기 전보다는 훨씬 높아졌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지진이 일어나면 큰 피해가 있을 수 있다. 동해는 수심이 깊다. 쓰나미는 수심이 깊을수록 큰 피해를 낸다. 지진이 발생하면 단층이 수직운동을 해야 쓰나미가 생기는데 동해가 바로 그런 곳이라는 것이다. 또 일본 서해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일본보다는 느리겠지만 1시간~1시간 30분이면 우리 동해에 도착하기 때문에 대비하는 데 심각한 문제가 따를 수 있다. -정 동해상에서 여진이 발생할 것인지에 대해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1997년에도 리히터 규모 4.7의 지진이 경북 경주에서 발생했다. 이 지진은 수년 전 중국 내륙에서 일어난 규모 7.0의 지진이 유발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진이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장소에서도 주위에서 큰 지진이 나면 몇년 뒤에라도 지진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일본 연안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수직지진이 나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쓰나미를 몰고 올 수 있다. 이번 도호쿠 강진의 경우 10분 만에 쓰나미가 당도했지만 우리는 수심이 그보다 얕아서 쓰나미가 동해안에 닥치는 데 1시간 이상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신 가능성이 낮다. 우리나라 동해, 즉 일본의 서해에 지진이 발생한다면 그것은 이번 지진에 따른 여진이 아니라 또 다른 원인에 의해 일어나는 새로운 지진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그 지역에서도 7.0~7.5 규모 정도의 지진이 일어날 수 있다. 언제 일어날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다. 예측을 못하는 만큼 항상 대비해야 한다. →향후 일본 여진에 대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손 먼저 동해안에 몰려 있는 원전들의 내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 이 건물들은 지어진 지 오래됐고 지어질 당시는 지진이 우리나라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 않을 때다. 월성, 울진, 고리 원자력발전소의 경우 0.2g(중력가속도)을 견디게 지어졌다. 일본의 경우는 대부분 원전이 0.4g 이상을 견디게 설계됐다. 그런데도 이번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보통 0.2g이라면 리히터 규모로 6.0~6.5 정도를 견디게 지어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지진 발생의 역사와 최근 국제적인 지진 발생 강도와 빈도를 살펴보면 6.5 규모 이상의 지진이 충분히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문제다. 당연히 내진 기준을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인구밀집지역의 지진 및 쓰나미 대비책이 시급하다. 동해안에는 부산과 같은 대도시도 있고, 큰 공단이 있는 울산 같은 도시도 있다. 최근 소방방재청에서 한 시뮬레이션 결과를 봐도 부산에 6.5 규모의 지진이 나면 건물의 60~70%가 완파 또는 반파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내진 설계가 잘 안 돼 있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는 지진 재해도조차 그려져 있지 않은 나라다. 그러다 보니 국토를 효율적으로 개발하는 것도 힘들다. 마지막으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 지진 관련 전문가가 너무 적다.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부산 지역의 경우 1~2명도 안 되는 걸로 안다. 지진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학자 공무원도 육성해야 한다. 이런 것이 안 돼서 생긴 대표적인 사례가 남해에 쓰나미 경보기를 설치한 것이다. 남해처럼 수심이 얕은 곳에서는 쓰나미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경보기가 필요없다. 오히려 필요한 곳은 동해인데 예산만 낭비한 꼴이 됐다. 정부에 지진전문가가 적어서 생긴 일이다. -정 가장 심각한 문제는 5층 이하의 저층 건물이다. 저층 건물은 특히 내진 설계가 되어 있지 않다. 88년 이후에 내진 설계 기준이 도입됐기 때문에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은 정말 문제다. 특히 학교 건물이 큰 문제다. 학교 건물은 대부분 지어진 지 오래됐고, 내진 설계가 안 돼 있다. 지진이 나면 그대로 무너질 수 있다. 엄청난 피해가 예상된다. 이번 기회에 보강해야 한다. 또 지진 재해도가 필요하다. 지진이 나더라도 연약지반과 암반층일 때가 다르다. 진동의 차원이 다르다. 후쿠오카 지진이 났을 때 서울도 흔들렸는데 내가 있던 강남의 연약지반 위에 세워진 교회는 흔들림이 강했고, 강북의 암반층 위에 있는 부모님 댁은 흔들림이 없었다. 내진 설계를 하려고 해도 일반인에게 지진 재해도가 공개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예산도 많이 들고 효과도 적다. -신 우리나라에서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지진 규모를 예측하고, 대응 태세가 잘 돼 있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제일 쉽고 중요한 대비는 내진 설계다. 다만 쉽지 않은 것이, 60~70년대에 지어진 민간 가옥은 내진 설계가 안 돼 있어 지진에 취약하다. 그렇다고 다 부수고 새로 지을 수도 없다. 개인 것이니까. 이런 집들에 대한 대책을 어떻게 세울지 정책적으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일반 시민들은 지진을 체험해 보지 못했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것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아도 실전에서 그게 제대로 되지 않을 수 있다. 지진 발생 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몸에 숙달돼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을 것이다. 평생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기 때문에 국민들이 습득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지진은 다른 자연재해와는 다르게 갑작스럽게 일어난다는 점에서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준다. 지진의 발생에서 피해까지 한두 시간이면 끝난다.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피해라는 것을 국민들에게 인식시켜야 한다. 준비를 하면 그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에 준비를 해야 하고 노력해야 한다. 준비하느냐 안 하느냐에 따라서 피해를 100에서 10으로도 줄일 수 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씨줄날줄] 국민공부(國民共富)/이춘규 논설위원

    중국의 성현 맹자(BC 372~BC 289)는 의인(義人)에 의해 다스려지는 왕도국가를 이상적인 국가로 보았다. 그는 군주가 불의하면 민심을 잃는다고 주장했다. 민심이야말로 하늘이 맡긴 사명이자 소임, 즉 천명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군주·국가는 민심을 따르라 했다. 철저한 민본주의 사상이다. 그래서 “백성이 귀중하고, 사직(社稷)은 그 다음이며 임금은 대단치 않다.”고 했다. 이런 맹자의 이상국가는 중국의 이후 역사에서 한번도 제대로 실현되지 않았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BC 427~BC 347)은 이상국가를 정의로운 국가로 봤다. 각자가 타고난 덕에 따라 자기의 역할을 충실히 해 한 국가 속에서 지혜와 용기, 절제의 덕이 조화를 이룰 때 그 국가나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고 했다. 그는 공정한 사회를 꿈꾸었다. 하지만 플라톤은 “이상 국가란 철학자들이 국가를 통치하지 않는 한, 혹은 철학을 공부해 국가를 다스리지 않는 한 실현되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그 한계를 인정했다. 고대 동·서양에서 맹자와 플라톤이 꿈꾸었던 이상국가. 그들은 자신들의 시대에 인간세상의 혼란상을 지켜보면서 강하고 정의로운 인간과 권력을 꿈꿨다. 하지만 그들의 꿈은 어디까지나 꿈, 유토피아일 뿐이었다. 이상적인 목표였을 뿐이다. 권력은 옳기 어렵고, 옳은 사람은 권력에 오르기 어렵다는 것을 역사는 보여 주었다. 맹자와 플라톤 이후 2000년 이상 흐른 지금도 실현하지 못한 이상국가다. 중국 지도부가 이상국가 실험에 도전하기로 했다. 중국에서는 최대 정치행사인 인민정치협상회의와 전국인민대표대회가 14일 폐막된다. 12일 동안 계속된 이번 양회(兩會)에서는 국정의 새로운 정책 목표를 국민공부(國民共富)로 정했다. “나라와 국민이 함께 부유한 시대를 열자.”는 뜻이다. 달성되면 이상국가에 가까운 나라가 된다. 나라가 강해졌으니 국민들도 부유해지자는 것이다. 소득분배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만 다가갈 수 있다. 중국 지도자들은 분배보다 성장을 우선했던 선부론(先富論)이 낳은 빈부격차, 도농격차 등의 폐해를 인정했다. 이를 극복하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의 길을 걷기 위한 방안을 다각적으로 논의했다. 중국이 개혁·개방 뒤 나라는 부강해졌지만 국민은 가난했다는 반성이다. 실제로 많은 중국인들은 여전히 ‘부자 나라의 가난한 국민’으로 인식하고 있다. 맹자와 플라톤의 이상국가가 국민공부 정책으로 중국에서 실현될까. 그 실험이 주목된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日 독도영유권 반대’ 도이의원 당직 사퇴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문서에 서명한 일본 민주당 도이 류이치(72) 중의원 의원이 10일 정치권과 언론의 뭇매를 맞은 끝에 국회 윤리심사회 회장직과 당 상임간사회 의장직을 사임했다. 도이 의원은 지난달 한·일 기독의원연맹의 일본 쪽 대표로 한국을 방문해 “일본 정부는 독도의 영유권 주장을 즉시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한·일 의원 선언문에 서명한 것이 일본 언론에 보도돼 파문이 일자 사표를 냈다. 도이 의원은 산케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는 일본 영토라는 인식에 변함이 없다.”면서도 “정말로 논의한다면 치밀한 역사적 검토를 해야 한다. 여러 생각이나 사상이 있어도 좋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파문이 커지자 정부와 민주당 집행부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간 나오토 총리는 9일 기자단에게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입장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도 10일 기자회견에서 “도이 의원의 발언은 다케시마가 일본 영토라는 정부와 민주당의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이슈 인터뷰] ‘한국 테크노크라트 효시’ 오원철 前 경제2수석

    [이슈 인터뷰] ‘한국 테크노크라트 효시’ 오원철 前 경제2수석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방위산업부터 중화학공업까지 경제계획을 입안, 집행했던 오원철(83) 전 청와대 경제2수석은 1977년 발행된 미국 뉴스위크지를 보 관하고 있다. ‘한국인이 몰려온다’라는 제목의 기사는 한국의 수출·중화학공업 위주의 성장을 다뤘다. 이 잡지는 지난해 9월에는 ‘한국은 진정한 기술강국이 됐다’는 특집기사를 다시 내보냈다. 기술을 해외에 전수해 먹고살 수 있는 나라. 오 전 수석이 팔십평생 꿈꾸던 나라가 실현된 셈이다. 10일 서울 서초동에서 만난 오 전 수석은 그래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그는 지금이야말로 정략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 대신 기술관료(테크노크라트)가 과학기술 정책 결정권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내용이다. 대담 박선화 경제에디터·정리 홍희경기자 →지난 1970년대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이 그러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원전 수출이라는 열매를 맺었는데. -원전 수출은 사실상 40년 전에 기획된 것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동족을 죽이는 병기를 만들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원자력 발전소를 만들었다. 원자폭탄꽃 대신 산업성장의 기반이 되는 값싼 전기 생산과 원전 수출이라는 ‘무궁화 꽃’을 마침내 피워냈다. 당시 우리는 일본처럼 필요할 때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는) 기술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고, 10·26 이전에 박 전 대통령에게 우라늄농축용 분말인 ‘옐로 케이크’를 보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신군부가 들어선 뒤 국내 원자력 기술개발은 사실상 중단됐다. →수출 위주 중화학공업 정책은 이제 개발도상국에 경제개발 교과서처럼 되었다. 핵심분야 가운데 가장 애착이 남는 부분은. -철강·석유화학·기계·조선 등 6대 분야 가운데 하나라도 빠졌다면 중화학공업 성장 역사는 없었다. 여기에 기초과학을 연구할 대덕연구단지까지 모두 7개 분야를 집중육성했다. 오로지 국토의 균형발전과 업종의 특성을 고려해 제대로 입지를 잡아 성공적으로 육성했다고 자부한다. 산업정책을 펴는 데 있어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따르면 안 된다. →지방자치단체별로 과학벨트 유치 경쟁이 한창인데. -지금 정부에는 전문 기술관료가 발을 붙이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과학벨트 논쟁에서도 과학기술자들은 소외됐다. 만일 1960~70년대 이렇게 했다면, 경제발전은 없었을 것이다. 조선업을 육성하려면 수심이 깊은 바다라는 입지를 찾아야지, 정치적인 표심을 계산해서는 안 된다. 과학벨트 선정은 과학기술자 집단에게 맡겨 놓으면 된다. 설령 그들이 싸우더라도 그 속에서 제대로 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결정은 정치인인 대통령의 몫이 아닌가. -지휘관과 참모의 역할은 구분되어야 한다. 과거 박정희 대통령이 중화학공업 육성자금으로 100억달러를 빌려야 한다고 하자 재무부 쪽이 난색을 표했다. 이에 박 대통령은 “내가 전쟁을 하자는 것도 아니지 않으냐.”라고 설득해 정책을 강행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국민들은 전쟁에도 따라줬는데, 후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에 돈을 핑계로 주저하면 안 된다는 의미였다. 지휘관은 전체를 파악해서 방향을 정해야 한다. 물론 많이 알고 있어야 한다. 당시 박 대통령 집무실에는 대형 한반도 지도에 북한군과 우리군의 전력이 표시되어 있었다. 하루는 박 대통령이 불러 “적기가 뜬 뒤에는 이미 늦으니, 단추 하나로 적을 제압할 기술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미사일 개발을 할 수 있었다. 만일 이 기술이 계속 유지발전됐다면, 북한은 연평도 도발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지휘관이 방향을 제시하면, 참모인 기술관료는 계획서를 만들고 집행을 하며 지휘관의 머리와 손발 역할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에 힘이 실린다. 지휘관도 과학기술자를 우대하는 쪽으로 정책을 펴야한다. →테크노크라트가 역량을 발휘할 방법은. -정부에 테크노크라트가 들어가 국가계획을 세울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지금은 과학기술부도 없고, 청와대에도 과학기술자를 대변할 인물이 없는 같다. 새롭게 생긴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는 정책을 집행할 권한이 없지 않을까 우려된다. 기동타격대처럼 정책을 세우고 집행할 수 있는 태스크포스팀 같은 조직이 필요한데, 오히려 그런 팀이 너무 많고 컨트롤타워는 없는 게 현실이다. →한국의 압축성장 과정이 끝났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닌가. -흔히 한국의 성장방식을 ‘압축성장’이라고 한다. 일본 학자가 개발한 용어를 국내 정치권에서 사용했다. 그런데 ‘압축’보다는 ‘성장’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 우리는 산업혁명을 이뤄냈다. 영국이 수공업인 방직공장에서 시작해 증기 동력을 통해 산업혁명 단계를 밟았듯이, 우리도 수출을 해야겠다는 인식을 갖게 된 뒤부터 산업혁명 단계를 밟았다. 1963년까지만 해도 생선·김·돼지털·인모 같은 것을 닥치는 대로 수출했다. 그러다가 교육도 못 받고 형편도 어려워 3~4명씩 좁은 방에 합숙하며 살던 여공들이 수출산업의 주역이 됐다. 다음에는 남성 기능사가 나섰다. 월남전 이후 미군 하청을 통해 경험을 쌓은 인력이 생기며, 중동 건설현장이라는 시장에 투입됐다. 당시 영어로 된 도면을 읽을 수 있는 인력을 키우려고 공고 3학년생 2000명을 교육시켰다. 이들을 소년병이라고 불렀다. 용접은 어른들이 해도, 도면을 읽고 지시하는 일은 소년병이 했다. 이들이 점차 성장해 경제발전의 역군이 됐다. →최근 공학한림원에서 받은 대상 상금을 기탁했는데. -여공들과 남성 기능사·기술자는 그야말로 한국 산업혁명의 주역이었다. 관료들도 열심히 했지만, 현장의 공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이들을 위해 써달라고 상금을 전부 기탁했다. →앞으로 한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하나. -한국 사람은 끈기가 부족하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러일전쟁 때 전쟁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연구에 매진했다는 과학자의 일화가 있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자도 같은 얘기를 했다. 집적회로(IC) 기술을 들여오기 위해 한국 연구진에게 맡겼더니, 안 되는 이유만 설명하고 연구비를 더 달라고 요구했단다. 타이완 연구자에게 다시 일을 맡기자 근성 있게 매진하더니 6개월 만에 만들어냈다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젊은 세대는 끈기와 창의력이 뛰어난 것 같다. 최근 ‘위대한 탄생’이라는 프로그램과 비보이를 보면,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 갖은 고생을 하며 성공하려는 끈기를 발견할 수 있다. 다만 기능사·과학기술자들은 국익을 위한 사명감으로 임했으면 좋겠다. saloo@seoul.co.kr ■ 그는…박 前대통령이 국보라 부른 사나이 1970년대 후반 어느 날 저녁 서울 프라자호텔. 박정희 대통령이 창원공단 순시를 마친 뒤 오원철 청와대 경제2수석을 가리키며 “임자는 국보야, 국보.”라고 불렀다. 일순 오 수석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고, 김정렴 비서실장 등 주변에는 침묵이 흘렀다. 오 수석은 우리나라 중화학정책을 입안하고 주도한 전문 기술관료의 대표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황해도 해주 출신으로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뒤 공군 소령을 거쳐 국내 최초 자동차회사인 시발자동차와 국산자동차의 공장장을 지낸다. 이듬해인 1961년 5·16이 일어나 국가재건최고회의 기획조사위원회 조사과장을 맡은 이래 상공부 화학과장, 공업1국장을 맡으며 1차 5개년 개발계획과 수출제일주의 정책을 실행했다. 1970년에 차관보로 승진해 울산 석유화학단지를 건설하고, 1971~79년 10·26이 날 때까지 청와대 경제2수석으로 일했다. 이때 조선, 원자력, 대덕단지 등 7개 중화학공업 정책을 주도하고 방위산업 육성을 총괄했다. 율곡사업 진행 시 깐깐한 결재 때문에 12·12 이후 신군부에 미운털이 박혀 13년간 은둔생활을 하기도 했다. 요즘도 백선엽 장군 등 지인들과 어울리며 과학기술 강국을 강조한다고. 팔순을 비켜가듯 젊은이를 혼내며 박장대소하는 게 건강 유지의 비결이란다.
  • 엄홍우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이 말하는 ‘올 공단운영 방향’

    엄홍우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이 말하는 ‘올 공단운영 방향’

    “최근 5년간 국립공원 내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의 38%는 무리한 산행으로 인한 심장 돌연사 때문이었습니다. 해빙기에는 기온변화에 대비해 여벌 옷과 장비 등을 준비해 가는 것이 좋습니다.” 엄홍우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은 봄철 해빙기를 맞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국립공원내 900여개 시설물에 대한 안전점검에 들어갔다며 탐방객들에게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봄철 안전점검은 지리산·설악산 등 19개 국립공원 482개 구간 1669㎞ 탐방로에 있는 교량과 계단, 낙석 위험지역에서 이뤄진다. 해빙기 안전점검을 계기로 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집무실에서 엄 이사장을 만나 올해 공단의 운영방침 등에 대한 얘기도 들어봤다. 2008년 7월 취임한 엄 이사장은 오는 6월말 임기가 완료된다. 취임초 ‘국민과 함께하는 공원관리’를 강조한 엄 이사장은 “앞으로는 국립공원이 지역경제를 살리고 고용도 창출하는 곳이라는 인식을 갖도록 관리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면서 “규제로 옥죄기보다 자연스럽게 동참하고 협조할 수 있도록 지역민과 함께하는 공원관리 정책을 더 펴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보존이 필요한 지역은 엄격히 관리하되, 공공 이익과 편익이 요구되는 곳은 적절히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영국은 국립공원의 70% 이상이 사유지이지만 땅 소유주들이 앞장서 국립공원 관리에 나서고 있다. 우리도 국립공원 지역에 사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날이 곧 올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 예로 명품마을로 지정된 진도군 관매도를 꼽았다. 지난해 10년 만에 이뤄진 국립공원 구역 조정에서는 국립공원구역 내 5만여명의 주민들 거주지가 공원관리 구역에서 해제됐다. 하지만 관매도는 해제 대상지인 데도 주민들이 계속 공원구역으로 묶어달라고 요청했다. 관매도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내에 있는 섬으로 126가구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정부는 이 지역을 명품마을로 지정해 관리하고 주민 소득증대를 위한 각종 지원을 해주고 있다. 엄 이사장은 “관매도의 경우 올해 1만명 이상의 관광객들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지역의 특산물도 직판장 등을 통해 고가로 팔리고 있어 국립공원이란 특수성을 이용해 고소득 자립형 마을로 자리매김돼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정 구역을 정해놓고 그 안에서 규제와 단속만을 하는 공원 관리방법은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단다. 따라서 향후 공원관리의 기본 틀은 지역민과 역사·문화재 등을 연계한 네트워크를 만들어 영역을 없애는 데 초점이 맞춰진다. 둘레길 조성에도 정성을 쏟고 있다. 대부분 탐방객들은 정상 정복을 위해 산에 오르기 때문에 국립공원 고지대 훼손이 심각하다. 둘레길은 이처럼 정상 등 고지대 탐방문화를 저지대로 바꾸고, 정상을 향해 나 있는 수많은 샛길을 봉쇄하는 효과도 있다. 북한산 국립공원 둘레길은 대표적인 성공작으로 꼽힌다. 둘레길이 조성되기 전 북한산은 샛길만 360군데가 넘었다. 현재 44㎞가 완성돼 지난해 9월 개방된 뒤 160여만명이 이곳을 찾았다. 나머지 도봉산 구역의 26㎞ 구간도 올해 상반기 조성을 마칠 계획이다. 올해는 외적인 공원관리와 함께 공단 내부에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직원들의 책임의식과 역량을 끌어올리기 위해 ‘성과연봉제’를 처음으로 도입하고, 공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차량 300여대도 렌터카로 바꾸기로 했기 때문이다 엄 이사장은 “국민의 건강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특화된 탐방문화를 개발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겠다.”면서 “국립공원 탐방을 할 때는 사전에 국립공원 홈페지를 방문, 통제구역이나 위험지역 등을 알아본 뒤 출발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유진상기자 jsr@seoul.co.kr ●엄홍후 이사장은 ▲1950년 경북 영천 출생 ▲영남대학교 축산가공학 ▲한국농업경영인 중앙연합회 회장 ▲한국농어민신문 대표이사 ▲2008년7월~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 [열린세상] 일자리 찾아 넓고 평평해진 세계로 가자/임상규 순천대 총장·전 농림부 장관

    [열린세상] 일자리 찾아 넓고 평평해진 세계로 가자/임상규 순천대 총장·전 농림부 장관

    최근 취업난에 직면한 많은 청년들이 해외로 눈을 돌려 도전 기회를 찾는다는 소식을 자주 듣는다. 과거와 달리 청년들이 진출하는 국가가 다양하고 직종도 미용, 조리 등의 서비스직뿐 아니라 의료, 기계, 전자, 건설, 토목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고용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해외취업 구직 신청자가 2만명을 넘었고 우리 근로자에 대한 해외 구인신청도 5000명을 넘었다. 그 결과 취업한 사람이 2700여명으로 5년 전에 비해 70% 가까이 늘어났다고 한다. 우리가 대규모로 인력을 외국에 진출시킨 것은 1960년대 서독에 광부와 간호사를 보낸 게 처음이다. 또한 베트남전 참전과 베트남으로의 인력 진출, 70년대 대규모 중동 건설인력 진출 등으로 우리 인력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외화 획득, 기술 습득 등을 통해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한 바 있다. 그 이후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규모 해외 진출 사례가 거의 없다. 오히려 90년대 중반부터 이른바 3D업종이라 불리는 일부 제조업과 서비스산업 등에서 인력 부족을 겪게 되자 값싼 외국 인력이 대거 들어와 지금은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인력이 100만명을 넘는다고 한다. 대우그룹 설립자 김우중 회장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는 책을 펴낸 것은 1989년의 일이다. 세계를 무대로 왕성한 비즈니스를 펼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에게 좁은 국내에만 머물지 말고 드넓은 세계로 나가 인생을 개척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세계는 넓고 도전할 수 있는 일이 많을 뿐만 아니라 급속한 세계화의 결과로 토머스 프리드먼의 베스트셀러 제목처럼 세계가 과거에 비해 매우 평평해졌다. 이제 누구든지 경쟁력 있는 사람은 해외 취업 등에 도전할 길이 열렸고 성공할 기회가 많아졌다. 요새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재학 중에 어학연수, 인턴, 배낭여행 등 많은 해외경험을 쌓고 있다. 그러나 이 단계를 넘어 더 적극적으로 도전해 취업·사업 등의 기회를 찾는 청년은 기대만큼 많지 않은 듯하다. 1970~80년대 고도 성장기에 우리나라에 많은 비즈니스 기회가 있었듯이 평평해진 세계 곳곳에, 특히 경제성장을 시작하는 개발도상국에 많은 기회가 생기고 있다. 기성세대가 할 일은 청년들이 최대한 많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게 격려, 지원하는 것이다. 해외에 나가 성공한 사례를 많이 소개해 주고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안내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얼마 전 보도된 바 있는, 취업전망이 불투명한 지방 대학을 중퇴하고 베트남에 유학 가서 현지 언어와 문화를 익혀 현지 진출 우리 기업에 취업하여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청년의 사례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해외 활동에 익숙하지 않은 청년들에게 해외 도전정신을 키워주는 것은 우리 사회의 중요한 책무이다. 해외공관과 코트라 지사는 상품수출 못지않게 인력의 해외진출이 중요함을 인식하고 우리 청년들이 진출하여 일할 수 있는 분야를 적극 개척해야 한다. 언론과 관계 당국, 대학은 이러한 정보를 청년들에게 적극 제공할 필요가 있다. 지식·정보·문화의 시대에는 상품보다 사람에게 체화된 무형의 자산이 중요하고 부가가치도 더 높다. 국제기구에서도 취업기회를 찾아야 한다. 우리의 국가위상에 맞게 국제기구에서의 취업 쿼터가 늘고 있으므로 계속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한다. 세계 각국 인재들과의 경쟁에 뒤지지 않는 어학실력과 직무능력을 갖춘 인재를 길러야 한다. 한국인은 다이내믹하고 성실하며 비상한 재주를 갖고 있어 조금만 준비한다면 세계 어디서도 잘 적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언어나 음식, 매너, 세계 문화에 대한 관심과 국제화 마인드 부족 등 보완할 측면이 있다. 주요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도 개최했지만 우리는 다른 나라의 역사나 문화, 종교 등에 관심이 적다. 각 분야에서 많은 경험을 쌓고 조기 퇴직한 장년층도 외국에 나가 제2의 커리어를 찾도록 장려해야 한다. 한국의 기업과 정부기관 등에서 일한 경험과 노하우는 경제 성장을 시작하는 개발도상국 입장에선 매우 귀중한 자산이다. 각 분야에서 이러한 인재를 요구하고 있으므로 정부에서 이런 분야의 수요와 공급을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게 좋을 것이다.
  • S라인만 대접 받는 세상 1930년 모던걸도 겪었네

    S라인만 대접 받는 세상 1930년 모던걸도 겪었네

    몸매가 ‘예쁜 여자’의 필수 요건으로 등장한 것은 대략 1930년대 전후다. 그때부터 오늘날 미인들의 필수 요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S라인’이 주목받기 시작한다.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낳았을까. ‘예쁜 여자 만들기’(이영아 지음, 푸른역사 펴냄)는 여성들이 시각 중심 문화에 빠진 남성들의 시선에 ‘노출’되면서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20세기 초 조선에는 사진, 삽화, 연극, 영화 등 시각 중심 문화가 태동한다. 길거리를 활보하는 신여성들의 의복도 예쁜 몸매의 중요성을 배가시켰다. 근대적 지식인들은 조선 시대 여성의 옷이 위생에 해롭다며 개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긴 저고리는 길거리의 더러운 오물을 쓸고 다녀 호흡기 질환을 낳고, 가슴을 동여맨 치마는 흉부 압박을 심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여성들의 옷이 점차 몸매를 드러내는 쪽으로 바뀌고 미니스커트와 브래지어까지 등장한다. 옷이 바뀌자 여성들의 몸에 대한 인식도 달라져 S라인을 미의 표준으로 여기게 되었다. 심지어 1935년 10월에 발행된 잡지 ‘삼천리’에는 “최근에는 미용술이 굉장히 다방면으로 발달되어서 현대인이면 반드시 미용술에 의하여 자기가 가진 선천적 미에, 인공을 가한 후천적 미를 가공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모던’ 사회에 있어서 그 사교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감을 느끼게끔 된 현상이다.”란 문구까지 등장한다. 예뻐지기 위한 수단으로 미용 체조뿐 아니라 성형수술을 소개하는 글까지 등장한 것도 1930년대다. 쌍꺼풀 수술은 물론이고, 낮은 코를 높이는 융비술과 예쁜 다리를 위한 각선미 성형, 작은 가슴을 크게 하는 가슴 성형까지 거론됐다. 여성들은 이 같은 ‘미인 권하는 사회’에 포획되어 너도나도 ‘예쁜 여자’가 되어야 했다. 이처럼 운동과 성형수술을 하면서까지 목표로 삼은 이상적인 외모는 서양 백인 여성에 가까웠다. 쌍꺼풀진 눈, 높은 코, 늘씬한 각선미, 풍만하면서도 처지지 않은 가슴은 조선 여성들에게는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그런 점에서 저자인 이영아(35)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연구원은 근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예뻐진다는 것은 일종의 ‘인종 개조’였다고 지적한다. 미모는 게다가 경제적 교환가치와 사회적 상징가치를 갖게 되면서 속된 말로 ‘예뻐야 잘 팔리게’ 됐다. 사회는 끊임없이 ‘미인’들을 필요로 했고, 심지어 범죄자마저도 미인이어야 했다. 1924년 여름 무식하고 못났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쥐약을 먹여 살해한 김정필에게 쏟아진 사회적 관심은 그녀가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KAL기 폭파범인 김현희가 사형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동정심을 유발하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 덕도 있다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입을 모은다. 저자는 여성들 모두가 외모지상주의와 맞서 싸울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가진 것이라곤 자기 ‘몸뚱어리’ 하나밖에 없는 낮은 학력의 하층계급 여성 중엔 ‘예쁜 여자 되기’에 편승해야만 생계가 가능한 경우도 있음을, 예쁘거나 안 예쁜 여성들 사이의 분열이야말로 가부장제 질서가 의도하는 바라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여성들이 할 일은 ‘예쁜 여자 권하는 사회’ 속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을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이다. 외모 때문에 여성들이 겪는 고통의 원인이 자기 자신이 아니라 외부의 적 때문이라고 책은 일깨워준다. 1만 39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 만나다

    [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 만나다

    흔하디 흔한 퀴즈영웅의 얘기가 아니다. 2011년은 인류가 ‘로봇’ 또는 ‘컴퓨터’의 존재를 상상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올해 창사 100년을 맞은 IBM. 컴퓨터 산업의 최전선에 서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시장을 독점한다는 비판을 받아 온 ‘빅 블루’(IBM의 애칭)가 다시 한번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IBM 연구진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은 지난달 16일 미국 전역에 중계된 abc방송의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서 자신을 창조한 인간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퀴즈 영웅 두 명을 제압했다. 서울신문이 새롭게 연재하는 가상 인터뷰 시리즈 ‘Who & What’(후 앤드 왓)의 첫 회 주인공은 바로 왓슨이다. 컴퓨터가 퀴즈에서 인간을 이겼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 등 이 대단한 컴퓨터에 관한 다양한 궁금증을 깊이 있게 짚어 봤다. 왓슨이 진정 ‘인간보다 똑똑한 컴퓨터’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과제가 남아 있는지도 물어봤다. 인터뷰는 국내 최고의 슈퍼컴퓨터 전문가 4명의 의견을 모아 구성했다. ☞ 관련기사 : [W&W] 인간과 컴퓨터, 대결의 역사 →겨우 4살인데 지나친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러울 것 같다. 원래 집안 자체가 훌륭하다는 소문이 있다. -집안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색안경을 낄까 봐 조심스럽기는 한데, 사실 IBM의 뉴욕 연구소 출신이다. 내 이름도 100년 전 IBM을 세운 토머스 J 왓슨에서 따왔다. 인간을 뛰어넘는 컴퓨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최근 몇년 사이에 서부에 있는 사과공장(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워낙 주목을 받아서 그렇지 컴퓨터 분야에서 지난 100년간 이뤄진 성과는 대부분 우리 집안에서 만들어졌다. →아버지가 대단한 분이셨나 보다. -아버지 함자가 ‘딥블루’다. 혹시 세기의 체스 대결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나. 1997년 5월 11일, 아버지는 러시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 체스대결에서 이기셨다. 인공지능의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 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참고로 카스파로프는 그 이전 15년 동안 인간들 사이에서 1등을 놓쳐 본 적이 없었다. 난 아버지보다 훨씬 발전했다. 1초에 80조번을 계산할 수 있고, 책 100만권을 읽었을 뿐 아니라 토씨 하나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를 시작한 핵심이 벌써 나왔다. 컴퓨터 입장에서 볼 때 체스대결과 퀴즈쇼가 다른 점이 있는 거냐. 컴퓨터와 인간이 같은 문제를 놓고 풀면 엄청난 정보와 계산속도를 갖고 있는 컴퓨터가 이기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이번에는 딥블루 사건 때 시큰둥했던 학자들까지 난리가 났는데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 -간단히 설명하면, 체스나 바둑은 ‘경우의 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다음 수를 어떻게 두면 그 다음에 상대의 반응에 따라 또 다른 수를 예측하는 식이다. 빠른 계산만 할 수 있고 어느 경우에 이기는지만 입력돼 있으면 충분히 인간을 이길 수 있다. 결국 체스판 안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두는 거 아니냐. 내가 출연한 ‘제퍼디’가 책에서 출제된다는 이유로 체스나 다를 것이 없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컴퓨터들이 쓰는 1과 0의 디지털 코드를 보고 이해할 수 있나? →당연히 안 되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입장을 바꿔 보자는 얘기다. 인간이 컴퓨터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컴퓨터 역시 인간의 말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딱 정해진 문제만 그대로 출제하면 쉽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근데 그게 퀴즈냐. 제퍼디쇼가 수십년 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출제되는 문제에 대한 지식을 담은 책이 있지만 단순히 암기력을 측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자 알렉스 테레벡은 자기 맘대로 문제를 꼬아서 내고, 책에는 없는 독특한 표현까지 동원한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혹시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퀴즈 문제를 그대로 입력하고 답이 나오나 찾아 봐라. →어라. 정말 답이 안 나오고 수많은 검색 결과만 나온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컴퓨터는 애초부터 정답을 찾아 주도록 만들어지진 않았다. 컴퓨터들은 문장으로 된 퀴즈 문제를 입력하면 ‘답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수백만개의 문서만 보여 줄 수 있다.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도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고. ‘비슷한 것’ 수백만개를 찾아서 나열만 할 뿐 자기가 뭘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게 원래 컴퓨터가 만들어진 방식이다. →그럼 당신은 인간의 의도를 이해한다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함께 출연했던 켄 제닝스(74연승을 기록한 제퍼디 챔피언)나 브래드 루터(역대 최다 상금 획득자)를 이길 수 있었겠는가. 그 친구들은 거의 귀신 아닌가. 들으면 바로 버저를 누르고 정답을 말하는 수준이다. 솔직히 대결이 쉽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문제를 들으면 알거나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알 경우에는 떠오르는 답 2~3개 중에 헷갈리는 정도고. 반면 난 기본적으로 문제를 들으면 알고 모르고가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 비슷한 답 수백만개를 떠올린 후에 그중 한개만 남겨 놓고 나머지를 없애야 답을 할 수 있다. 확률 문제이니 틀릴 수도 있지만 인간 챔피언들과 붙어서 이겼으니 정확도는 논란의 여지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난 이미 출제한 인간의 의도까지도 파악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듣다 보니 당신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비결은 뭐냐. -퀴즈에 특화된 부분도 있다. 기본적으로 내가 찾아낸 답이 신뢰도 기준에 못 미치면 버저를 누르지 않고, 답하지도 않는다. 지고 있을 땐 신뢰도가 좀 떨어져도 버저를 누르고, 많이 이기고 있을 때는 신뢰도가 아주 높아야 답변을 하는 요령도 갖추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IBM하고 얘기해야 된다. →근데 컴퓨터가 퀴즈를 잘 푼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게 있겠냐. -내가 이런 질 낮은 인터뷰를 계속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인터뷰이니 답은 해야겠지. 만약에 컴퓨터가 사람의 말을 이해해서 원하는 답을 정확히 찾아줄 수 있다면 고객센터 자동응답전화(ARS)에서 상담원 연결 버튼이 제일 먼저 사라질 거다. 당신네 한국사람들이 자랑하는 삼성전자나 LG전자, 현대자동차에서 상담원 콜센터를 운영하는 데만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나. 나 하나가 그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의학상담이나 교육도 마찬가지 아니냐. 선생님은 문제를 푸는 방법을 틀릴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난 절대 틀리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의사는 실수할 수 있지만 나는 자료만 충분하다면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경험을 더 쌓으면 말이다. 내 아들이나 손자는 완벽한 선생님이자 의사, 상담원이 될 거다. →켄 제닝스가 당신한테 지고 나서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짜 그런 세상이 온 건가.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제닝스가 오버한 거다. 솔직히 좀 부끄러운 얘기기는 하지만, 이번 제퍼디 방송에서 미국에 있는 도시를 묻는 질문에 ‘토론토’라고 답변해서 방청객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 해명을 좀 하자면 미국에도 토론토라는 도시가 많다. 퀴즈가 원하는 바가 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지. ‘지식’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다. 만약 틀려도 곧 바로잡을 수도 있고. 하지만 난 업그레이드 없이는 그 상황에서 같은 질문을 할 경우 계속 잘못된 답밖에 말하지 못한다. 아직까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의도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결에서는 텍스트 형태로 문제를 풀었는데, 진짜 사회자의 말만 듣고 대결을 펼친다면 인간을 못 이긴다. 난 아직 난청상태라고 할까. 음성인식은 정말 어려운 과제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도움말 주신 분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터 응용지원실장 ●권대석 클루닉스(슈퍼컴퓨터 제조회사) 사장 ●유범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지로봇센터장 ●신문봉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지식정보팀장 서울신문은 매주 1회 독특한 포맷의 가상 인터뷰 [WHO&WHAT(후 앤드 왓)]을 1개면에 걸쳐 연재하고 있습니다. 일반 신문기사로는 다루기 힘든 동서고금의 지식과 역사의 정수들을 만남 또는 대담의 형식을 통해 알기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는 지면입니다. 청소년, 어른 모두에게 즐겁고 색다른 지식의 장이 될 것으로 자부합니다. 특히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에게는 훌륭한 논술교재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WHO&WHAT] “퀴즈쇼서 인간에 완승한 슈퍼컴 왓슨(Watson)을 만나다” [WHO&WHAT] 무덤에서 불러낸 독재자 4인의 가상만찬 ‘재스민 혁명’을 논하다 [WHO&WHAT] 천재소년 송유근, ‘우주비행 성공 50주년’ 맞아 유리 가가린을 만나다 [WHO&WHAT] ‘슈퍼히어로’ 스파이더맨, 정신과 전문의 김상준 원장과 상담하다 [WHO&WHAT] 지구수비대 지원한 인간형 로봇 ‘마루’ “아톰·태권V처럼 지구 지켜서…” [WHO&WHAT] ‘최악’ 통념 B형 男기자, 혈액형의 아버지 ‘란트슈타이너’에 따지다 [WHO&WHAT] ‘전 세계 여성의 로망’ 버킨백을 만나다 [WHO&WHAT] 선택 따라 전혀 다른 결과…”이렇게 검색하면 진리가 밝혀질까?” [WHO&WHAT] “남느냐, 떠나느냐” 희곡으로 본 어느 서재 도서들의 열띤 논쟁 [WHO&WHAT] ‘위대한 유산’ 남긴 간송미술관의 전형필, 그리고 우피치미술관의 메디치 [WHO&WHAT]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 그는 왜 라파엘로를 죽이고 싶었을까 [WHO&WHAT] ‘美우주왕복선은 초대형 폭탄이나 마찬가지’ 물리학자 파인먼의 폭로 [WHO&WHAT] 외규장각 도서 귀환으로 본 약탈문화재의 ‘수구초심(首丘初心)’ [WHO&WHAT] “재능만 주고 사랑은 주지 않던 나쁜 부모들” 유명 인사들의 회상기 [WHO&WHAT] 인류역사를 바꾼 ‘억세게 운 좋은 사내들’ 서바이벌 현장…과연 승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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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방시대] 농고가 부활해야 농촌이 산다/이지훈 지역희망디자인센터 상임이사

    [지방시대] 농고가 부활해야 농촌이 산다/이지훈 지역희망디자인센터 상임이사

    제주에는 지금 ‘농고’(農高)가 하나도 없다. 지난 8일, 도내 중등교육기관으로는 드물게 100회 졸업생을 배출한 ‘제주고’의 옛 이름은 ‘제주농고’였다. 이 학교는 ‘제주관광산업고’(2000년)를 거쳐 ‘제주고’(2008년)로 두번이나 이름을 바꿨다. ‘바람의 아들’이란 별명을 얻은 골퍼 양용은이 이 학교 출신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골프 명문교로 부상하고 있다는 소문이지만 필자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서귀포시에 있는 서귀농고도 ‘서귀포산업과학고’로 명칭이 바뀐 지 오래다. 이뿐일까. ‘농대’(農大)도 사라졌다. 제주도의 유일한 4년제 국립대학인 제주대학교의 단과대 중 하나인 ‘농과대’도 ‘생명자원과학대’로 문패를 바꿔 단 지가 벌써 7년째다. 교육의 중심이 농학에서 생명공학(BT) 쪽으로 옮겨가고 있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는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농대라는 간판으로는 신입생 모집이 힘들다는 현실적 고려에 순응한 결과다. 물론 이는 제주만이 아니라 전국적인 상황이다. 더욱이 제주지역은 이런저런 이유로 인문계 고교로 진학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렵다. 실업계고교, 그중에서도 농고로의 진학은 성인이 돼 사회에 진출하기도 전에 1차적으로 사회적 좌절을 맛보게 하는 단계였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자존심을 크게 해치는 결과로 인식된 터라 가능한 한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학부모나 학생들에게 깊게 각인돼 왔다. 이렇듯 농고라는 간판을 바꿔야 했던 그 절박한 이유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필자는 그간 여러 마을의 이른바 ‘마을만들기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해 왔다. 처음에는 순수하게 농촌마을의 희망만들기에 도움을 준다는 차원에서 시작했지만, 언제부터인가 이러한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됐다. 사람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마을만들기 사업이, 실제는 정부 프로젝트 따기 사업으로 변질되는 등의 불편한 광경들을 목격하게 되면서부터다. 필자 또한 이에 일조한 것 같아 자괴감이 앞선다. 진정 농촌마을이 변화되기 위해서는 마을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재 농촌에는 사람이 없다. 제주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지만 육지의 농촌은 말 그대로 ‘아기 울음소리 들은 적’이 오래다. 농촌에 청년이 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농고가 부활돼 갈수록 고령화되어 가는 농촌에 젊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이루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충남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 같은 학교들이 전국에 세워져야 한다. 환경농업마을로 유명한 문당리의 지역리더인 주형로씨가 바로 이 학교 출신이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농고에서 배우는 학생들이야말로 자존감 있는 농업인으로서,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는 마을지도자로서 당당하게 지역사회에 뿌리내리고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제주 농업은 제주 경제에 큰 비중을 차지했고, 지금도 큰 축을 이루고 있다. 제주 경제를 실제로 맥박 뛰게 하는 혈액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향후 제주 농업과 농촌을 이끌어갈 지도자를 양성한다는 차원에서라도 농고의 부활은 시급하다. 농고의 현판이 제주는 물론, 전국에 하나둘 교문에 다시 세워지는 그날이 조만간 도래하기를 기대한다. 농고가 다시 살아야 농촌이 산다.
  • [Who&What]인간보다 똑똑한 컴퓨터, 왓슨을 만나다

     흔하디 흔한 퀴즈영웅의 얘기가 아니다.  2011년은 인류가 ‘로봇’ 또는 ‘컴퓨터’의 존재를 상상하기 시작한 이후 가장 극적인 변화가 있었던 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올해 창사 100년을 맞은 IBM. 컴퓨터 산업의 최전선에 서 있으면서도 지나치게 시장을 독점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빅 블루’(IBM의 애칭)가 다시 한번 새로운 역사를 열었다.  IBM 연구진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슈퍼컴퓨터 ‘왓슨’(Watson)은 지난달 16일 미국 전역에 중계된 abc방송의 인기 퀴즈쇼 ‘제퍼디’에서 자신을 창조한 인간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퀴즈 영웅 두 명을 제압했다. 이틀간 벌어진 대결에서 왓슨은 7만 7147달러(약 8600만원)의 상금을 거둬들였다. 왓슨을 만들기 위해 들어간(것으로 추정되는) 비용에 비하면 그야말로 ‘껌값’ 수준. 그러나 전 세계 과학계는 흥분의 도가니다.  슈퍼컴퓨터를 만들기 위해 밤낮을 연구에 매달렸던 공학도들은 패닉 상태에 빠졌다. “인간보다 더 똑똑한 컴퓨터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이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실현됐다는 깊은 상실감 때문이다.  서울신문이 새롭게 연재하는 가상 인터뷰 시리즈 ‘Who & What’(후 앤 왓)의 첫 회 주인공은 바로 왓슨이다. 컴퓨터가 퀴즈에서 인간을 이겼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 실생활에서는 어떻게 응용될 수 있는지 등 이 대단한 컴퓨터에 관한 다양한 궁금증을 깊이 있게 짚어 봤다. 왓슨이 진정 ‘인간보다 똑똑한 컴퓨터’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떤 과제가 남아 있는지도 물어 봤다. 인터뷰는 국내 최고의 슈퍼컴퓨터 전문가 4명의 의견을 모아 구성했다.    ●겨우 4살인데 지나친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러울 것 같다. 원래 집안 자체가 훌륭하다는 소문이 있다.  집안 얘기를 하면 사람들이 색안경을 낄까봐 조심스럽기는 한데, 사실 IBM의 뉴욕 연구소 출신이다. 내 이름도 100년 전 IBM을 세운 토머스 J 왓슨에서 따왔다. 인간을 뛰어넘는 컴퓨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가 반영됐기 때문이라고 들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서부에 있는 사과공장(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워낙 주목을 받아서 그렇지 컴퓨터 분야에서 지난 100년간 이뤄진 성과는 대부분 우리 집안에서 만들어졌다. 또 전국방송을 탔다는 이유로 마치 내가 ‘인간을 넘어선 최초의 컴퓨터’로 알려지고 있는데, 그 찬사는 우리 아버지한테 돌아가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아버지가 대단한 분이셨나보다.  아버지 함자가 ‘딥블루’다. 혹시 세기의 체스 대결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 1997년 5월 11일, 아버지는 러시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와의 체스대결에서 이기셨다. 인공지능의 가치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준 역사적 사건이었다. 참고로 카스파로프는 그 이전 15년 동안 인간들 사이에서 1등을 놓쳐본 적이 없었다. 난 아버지보다 훨씬 발전했다. 1초에 80조회를 계산할 수 있고, 책 100만권을 읽었을 뿐 아니라 토씨 하나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다.    ●이번 인터뷰를 시작한 핵심이 벌써 나왔다. 컴퓨터 입장에서 볼 때 체스대결과 퀴즈쇼가 다른 점이 있는거냐. 컴퓨터와 인간이 같은 문제를 놓고 풀면 당연히 엄청난 정보와 계산속도를 갖고 있는 컴퓨터가 이기는 게 당연한 것 아니냐. 이번에는 딥블루 사건 때 시큰둥했던 학자들까지 난리가 났는데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간단히 설명하면, 체스나 바둑은 ‘경우의 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하다. 다음 수를 어떻게 두면 그 다음에 상대의 반응에 따라 또 다른 수를 예측하는 식이다. 빠른 계산만 할 수 있고 어느 경우에 이기는지만 입력돼 있으면 충분히 인간을 이길 수 있다. 결국 체스판 안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두는 거 아니냐. 내가 출연한 ‘제퍼디’가 책에서 출제된다는 이유로 체스나 다를 것이 없다고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혹시 우리 컴퓨터들이 쓰는 1과 0의 디지털 코드를 보고 이해할 수 있나?    ●당연히 안 되는 것 아니냐.  그러니까 입장을 바꿔보자는 얘기다. 인간이 컴퓨터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컴퓨터 역시 인간의 말을 그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딱 정해진 문제만 그대로 출제하면 쉽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근데 그게 퀴즈냐. 제퍼디쇼가 수십년 동안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출제되는 문제에 대한 지식을 담은 책이 있지만 단순히 암기력을 측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자 알렉스 테레벡은 자기 맘대로 문제를 꼬아서 내고, 책에는 없는 독특한 표현까지 동원한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혹시 구글이나 네이버 검색창에 퀴즈 문제를 그대로 입력하고 답이 나오나 찾아 봐라.    ●어라. 정말 답이 안 나오고 수많은 검색 결과만 나온다.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컴퓨터는 애초부터 정답을 찾아주도록 만들어지진 않았다. 컴퓨터들은 문장으로 된 퀴즈 문제를 입력하면 ‘답이 들어 있는지도 모르는’ 수백만개의 문서만 보여줄 수 있다. 컴퓨터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의도도 이해하지 못하는 거고. ‘비슷한 것’ 수백만개를 찾아서 나열만 할 뿐 자기가 뭘 찾았는지도 모른다. 그게 원래 컴퓨터가 만들어진 방식이다.    ●그럼 당신은 인간의 의도를 이해한다는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함께 출연했던 켄 제닝스(74연승을 기록한 제퍼디 챔피언)나 브래드 루터(역대 최다 상금 획득자)를 이길 수 있었겠는가. 그 친구들은 거의 귀신 아닌가. 들으면 바로 버저를 누르고 정답을 말하는 수준이다. 솔직히 대결이 쉽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문제를 들으면 알거나 모르거나 둘 중의 하나다. 알 경우에는 떠오르는 답 2~3개 중에 헷갈리는 정도고. 반면 난 기본적으로 문제를 들으면 알고 모르고가 판단의 기준이 아니다. 비슷한 답 수백만개를 떠올린 후에 그 중 한 개만 남겨놓고 나머지를 없애야 답을 할 수 있다. 확률 문제이니 틀릴 수도 있지만 인간 챔피언들과 붙어서 이겼으니 정확도는 논란의 여지가 되지 않는다고 본다. 난 이미 프로그램상으로는 출제한 인간의 의도까지도 파악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듣다 보니 당신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비결은 뭐냐.  퀴즈에 특화된 부분도 있다. 기본적으로 내가 찾아낸 답이 신뢰도 기준에 못 미치면 버저를 누르지 않고, 답하지도 않는다. 지고 있을 땐 신뢰도가 좀 떨어져도 버저를 누르고, 많이 이기고 있을 때는 신뢰도가 아주 높아야 답변을 하는 요령도 갖추고 있다. 기술적인 부분은 IBM하고 얘기해야 된다. 알아도 영업비밀이라 말할 수 없고. 나 조차 내 머릿 속이 정확히 어떻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그게 가능한지는 잘 모른다.    ●근데 컴퓨터가 퀴즈를 잘 푼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게 있겠냐.  내가 이런 질 낮은 인터뷰를 계속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인터뷰이니 답은 해야겠지. 만약에 컴퓨터가 사람의 말을 이해해서 원하는 답을 정확히 찾아줄 수 있다면 고객센터 자동응답전화(ARS)에서 상담원 연결 버튼이 제일 먼저 사라질거다. 당신네 한국사람들이 자랑하는 삼성전자나 LG전자, 현대자동차에서 상담원 콜센터를 운영하는 데만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가나. 나 하나가 그 모든 것을 대체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의학상담이나 교육도 마찬가지 아니냐. 선생님은 문제를 푸는 방법을 틀릴 수도 있고 모를 수도 있지만, 난 절대 틀리지 않는다. 병원에서도 의사는 실수할 수 있지만 나는 자료만 충분하다면 정확한 진단을 내리 수 있다. 물론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경험을 더 쌓으면 말이다. 내 아들이나 손자는 완벽한 선생님이자 의사, 상담원이 될 거다.    ●켄 제닝스가 당신한테 지고 나서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진짜 그런 세상이 온 건가.  언젠가 그런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제닝스가 오버한거다. 솔직히 좀 부끄러운 얘기기는 하지만, 이번 제퍼디 방송에서 미국에 있는 도시를 묻는 질문에 ‘토론토’라고 답변해서 방청객들의 웃음을 사기도 했다. 해명을 좀 하자면 미국에도 토론토라는 도시가 많다. 퀴즈가 원하는 바가 뭔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지. ‘지식’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실수다. 만약 틀려도 곧 바로잡을 수도 있고. 하지만 난 업그레이드 없이는 그 상황에서 같은 질문을 할 경우 계속 잘못된 답밖에 말하지 못한다. 아직까지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고, 의도를 이해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이번 대결에서는 텍스트 형태로 문제가 출제됐는데, 진짜 사회자가 출제되는 말로만 대결을 펼친다면 인간을 못 이긴다. 난 아직 난청상태라고 할까. 음성인식은 정말 어려운 과제다. <도움말 주신 분> ●이식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슈퍼컴퓨터 응용지원실장 ●권대석 클루닉스(슈퍼컴퓨터 제조회사) 사장 ●유범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지로봇센터장 ●신문봉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지식정보팀장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울릉도서 독도 안 보인다고?… 日 영유권 주장 치명적 오류”

    “울릉도서 독도 안 보인다고?… 日 영유권 주장 치명적 오류”

    지난 22일은 일본 시마네현이 선포한 ‘다케시마의 날’이다. 같은 날 동북아역사재단은 책 한권을 내놨다. 제목은 ‘독도! 울릉도에서는 보인다’. 생뚱하다 못해 썰렁하다. 당연한 얘기 아닌가. 그런데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란다. ‘독도 박사’ 홍성근(43)씨의 얘기다. 일본이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는 학문적 근거가 바로 ‘울릉도에서는 독도가 안 보인다.’였다는 설명이다. 1966년 일본 외무 관료 가와카미 겐조가 ‘독도의 역사 지리학적 연구’라는 책에 이 같은 주장을 처음 실었다. 그래도 선뜻 고개를 주억거릴 수 없다. 국가 영토를 논하면서 ‘보이고 안 보이고’를 논거로 삼는다는 게 너무 ‘단세포적인’ 접근으로 느껴져서였다. 그래서 3·1절을 앞두고 ‘독도 박사’를 찾아갔다. 그는 동북아역사재단 독도 연구소 팀장이다. 법학을 전공한 진짜 박사이자, 재단이 펴낸 ‘독도! 울릉도에서는’의 대표 저자이기도 하다. 그런데 인터뷰 과정에서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다. 한국전쟁 뒤 일본 해상자위대와 총격전까지 벌였던 홍순칠(1986년 작고) 독도 의용수비대장이 홍 박사의 큰아버지인 것이다. “딱히 언론에 대고 떠들 내용이 아니어서…”라며 홍 박사는 멋쩍게 웃었다. 가족사는 잠시 제쳐 두고 독도부터 물었다.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고 안 보이고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인가. -(웃음) 매우 중요하다. 국제법상 섬의 소유권을 논할 때 그 섬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느냐가 1차 관문이기 때문이다. 자국 영토에서 섬이 보이지도 않는데 (섬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다고 주장하면 설득력이 떨어지지 않겠는가. →실제 사례가 있나. -물론이다. 1928년 필리핀 군도에 포함된 팔마스 섬을 두고 미국과 네덜란드가 국제재판에서 맞붙었다. 이 재판에서 ‘국제법상 발견’은 ‘점유 취득에 관한 어떤 행위, 심지어 상징적 행위조차 없이 육지를 보았다는 단순한 사실’이라 규정됐다. 따라서 울릉도 주민들이 독도를 ‘보았다’는 것 자체가 국제법상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권리 주장의 출발점이다. →1966년 일본 관료 가와카미가 울릉도에서는 독도가 안 보인다는 주장을 내놓은 것도 그래서인가. -맞다. 가와카미는 1947년 시작된 미·일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협상 과정에 참여해 독도 부문을 담당했던 외무성 관료였다. 일본에서는 가와카미의 연구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주장의) 바이블처럼 통한다. →가와카미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는지 직접 조사했나. -기록상으로는 1952년 독도에 한번 다녀간 것으로 돼 있다. 물론 가와카미도 독도가 아예 안 보인다고 단정 짓진 않았다. 울릉도 해변에서 배를 타고 나가, 그러니까 해발 4m 위치에서 독도를 바라다본 결과를 수학적으로 계산해보니 독도가 안 보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었다. →실제 관측해 보니 어떻던가. -물론 잘 보인다. 하하. 2008년 7월부터 2009년 12월까지 1년 6개월 동안 울릉도에서 독도를 관측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생활 근거지에서 (독도가) 잘 보이느냐이다. 울릉도 주민들이 모여 사는 해발 150m 지점에서는 독도가 아주 잘 보인다. 그런데 가와카미는 울릉도 높은 곳에 올라가면 숲 때문에 독도가 잘 안 보인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가와카미) 주장의 치명적 오류가 있다. →이왕 얘기 나온 김에 울릉도에서 독도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포인트’ 좀 짚어 달라. 1년에 울릉도를 찾는 관광객만 10만명이다. -아쉽게도 기상청에서 1년 6개월의 관측 기간으로는 법칙화하기 어렵다고 하더라. 다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애써 명당을 찾으려 말고 그냥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서 보는 게 독도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비결이라는 거다. →국제법적 측면에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은 어떻게 봐야 하나. 이 조약에 ‘독도는 한국 땅’이라는 내용이 빠진 것을 두고 정병준 이화여대 교수(사학과)는 미국 외교관 윌리엄 시볼드(1901~1980)를 배후 인물로 지목하기도 했다. -확답하긴 어렵지만 그런 부분이 있다. 시볼드의 자서전을 검토해봤는데, 일본은 처벌을 기다려야 하는 패전국 처지임에도 정치인이나 고위 정부 관료들이 수시로 시볼드 집을 드나들면서 전후(戰後) 처리 문제를 논의했더라. 심지어 요시다 시게루(1878~1967·전후 총리대신을 지낸 보수 정치인) 총리가 연합군 앞에서 연설할 때 영문 초안을 잡아주고 교정해 준 인물도 시볼드다. 그 정도로 친일파였던 셈이다. →독도 교과서 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 정부가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표기하라는 내용의 교과서 제작 지침을 내려보낸 뒤 그 지침이 처음 적용되는 해가 올해다. 이 지침을 따른 중학 교과서가 나올 확률이 어느 정도라고 보나. -거의 100%라고 보면 된다. 궁극적으로 일본은 남쿠릴열도(일본은 ‘북방 4개섬’이라 표현) 수준으로 독도 문제를 끌어올리고 싶어 한다. 일본이 독도보다 더 신경 쓰는 게 남쿠릴열도다. 2차대전에 참전한 옛 소련에 억울하게 빼앗겼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 아래 특수법인 형태로 북방영토대책협의회가 구성되어 있고 그 밑에 북방영토현민위원회가 있다. 전국적 조직이 있는 셈이다. 이 잘 만들어진 고속도로 위에 독도 문제를 올리고 싶어 한다.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내건 목적도 결국 여기에 있다고 보인다. →툭하면 독도 문제가 터지는데도 뚜렷한 해결책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까 남쿠릴열도와 독도 문제는 다르다는 점을 일본 사회에 우선 부각시켜야 한다. 남쿠릴열도는 제국주의 열강끼리의 문제였고, 독도는 식민 지배국과 피식민국 간의 문제라는 점에서 차별성이 있다. 이 부분을 강조해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비관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 17세기에 일본은 논리 싸움에서 밀리자 울릉도를 과감히 포기했다. 나중에 말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독도도 근거를 갖고 싸우는 게 중요하다. 깨끗하게 정리되면 한·일 관계가 더 좋아질 수 있다. →큰아버지 얘기도 해 보자. -(손사래를 치며) 사적인 얘기는 하지 말자. 괜한 오해나 부담을 살 수 있다. 다만, 외모나 글솜씨가 무척 뛰어난 분이었다. 한마디로 굉장한 멋쟁이셨다. →독도 연구자가 된 것도 큰아버지 영향을 받은 것인가. -그런 셈이다. 중학교 때까지 울릉도에서 살았고 군 복무도 울릉도에서 했다. 원래 대학(한국외대 법대) 갈 때만 해도 그렇게까지 (독도를) 의식하진 않았다. 그런데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이왕이면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자 싶어 독도의 국제법적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됐다. 왜 독도가 이렇게 국제법적으로 이슈가 되는지 학문적으로 규명해 보고 싶었다. →독도 연구에 고향 덕도 봤다던데. -하하. 울릉도에서 독도가 잘 보이는지 관측하면서 고향 친구(최희창) 신세를 많이 졌다. 울릉산악회장이기도 한 그 친구는 울릉도 지형지물을 손바닥처럼 파악한다. ‘울릉도-독도-태양’이 일직선상에 놓이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출을 선보이는 때가 2월 초와 11월 초라는 사실도 그 친구 덕분에 확인한 것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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