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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와 차 한 잔] ‘법의관이 도끼에… ’ 법의학 선구자 문국진

    [저자와 차 한 잔] ‘법의관이 도끼에… ’ 법의학 선구자 문국진

    범죄 수사에서 과학 수사는 이제 당연한 과정으로 여겨지고 과학 수사를 떠받치는 학문은 법의학이란 영역으로 통한다. 선진국에서는 법의학 연구와 수사상 적용이 오랜 역사를 갖지만 이 땅에 법의학 관련 사회적 기관이 세워진 건 1955년 발족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가 처음이다. 한국의 법의학 역사는 고작 56년이란 일천한 나이를 갖는 셈이다. 국과수의 창립 멤버로 참여한 뒤 줄곧 법의학에 천착해 사는 인물이 있다. 학술원 회원 문국진(86)옹. 한국 법의학을 불모의 영역에서 필수의 과제로 끌어올린 그가 낸 책 ‘법의관이 도끼에 맞아 죽을 뻔했디’(알마 펴냄) 출간에 맞춰 지난 13일 서울 여의도 자택을 찾았다. 자신의 책을 들고 찾아 온 기자를 반갑게 맞은 문옹은 책 제목에 얽힌 사연을 들어 잘못된 법의학 인식을 먼저 안타까워했다. “한국 법의학의 수준과 기술은 세계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문제는 실제 적용 과정에서 결정적인 결함이 있다는 것이지요. 검시와 부검의 상황에 처한 유족들이 ‘두 번의 죽음’이라 여겨 반발하는 경우도 많고요.” 법의관으로 변사체를 검시할 때 유족이 내려친 도끼에 맞아 죽을 뻔하고 돌팔매며 욕지거리를 당하기가 부지기수였다고 한다. 스스로 선택해 평생을 법의관과 법의학자로 살아왔지만 법의의 발전을 결정적으로 막는 사법적 토양은 답답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일제시대 한국의 의대엔 법의학 교실이 설치돼 법의 공부를 할 수 있었는데 해방 후 미국식 제도가 도입되면서 법의의 실종을 맞게 됐지요. 미국에는 단위 의과대학에 법의학 교실이 없지만 법의관(ME)제도가 정착돼 검사나 법원의 조치와 상관없이 의사가 변사 검시를 독립적으로 수행합니다.” 한국의 시찰단이 미국 의대에 법의학 교실이 없다는 이유만을 들어 의대에서 법의학을 배제시켜 지금의 상황이 됐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법의의 발전에는 의사들의 검시를 원천적으로 막는 형사소송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소견을 각계에 내고 여론을 환기시키고 있다. 서울대 의대 3학년 때 비를 피해 찾아든 청계천의 헌책방에서 일본인이 쓴 책을 보고 인생의 방향을 바꾼 문옹이다.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학이 임상의학이라면 사람의 권리를 다루는 의학은 법의학이다.’ 이 말에 요즘 말로 ‘필이 꽂혔다.’는 문옹이 의학 공부에서 줄기차게 강조하고 실천한 건 인권이었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법의관’ ‘한국 법의학의 태두’…. 그의 이름에 따라붙는 수식은 괜한 게 아니다. 국과수 창설 멤버였고 1967년 한국대학 중 처음으로 고려대에 법의학 교실을 창설한 주역이자 대한법의학회 창립자. 지금 전국 43개 의과대학 중 법의학교실이 설치된 대학은 13개에 달하며 법의관 과정을 밟는 이도 130여명이나 된다. “법의학은 범죄와 형벌만을 위한 형사 차원에서 탈피해 사고의 판단과 손해의 고정한 분배를 다루는 민사 쪽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가 요즘 매달려 있는 영역은 ‘법의 예술 병적학’. 세계적인 문호나 예술가의 사인이며 작품을 의학적 관점에서 규명하고 해석하는 이른바 북 오톱시(Book Autopsy)다. 미술작가와 음악가의 남아 있는 작품과 흔적을 추적해 정확한 사인이며 작품 속 의미를 밝혀내는 작업이다. 물론 그 작업의 바탕도 인권이다. “법의학 연구는 대학에 맡기고 이제 저는 저변의 인식 확산에 몰두해야죠. 법의학적 감정은 지식만 갖고 해결될 일이 아닙니다. 지혜가 필요하지요. 그런 점에서 사람이나 작품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침해된 권리나 오해를 바로잡는 일 또한 법의학이 당연히 해야 할 분야입니다.” 글 사진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열린세상] 대북정책 원칙과 유연성의 불편한 진실/유호열 고려대 교수 북한학과

    [열린세상] 대북정책 원칙과 유연성의 불편한 진실/유호열 고려대 교수 북한학과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2008년 12월 이후 중단되었던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남북 수석대표 회담이 이미 2차례 개최되었고 조만간 2차 미·북 간 회담도 성사될 전망이다. 집권여당의 대표가 처음으로 개성공단을 방문하여 운영실태를 파악하고 정부에 대해 보완책을 주문하였다. 7대종단의 대표단 역시 평양을 방문하여 북측과 지속적인 교류협력을 하기로 합의하고 돌아왔다. 러시아 천연가스 송유관의 북한지역 통과 등 남북한-러시아를 잇는 새로운 경협이 가시권에 들어오기도 하였다. 아직까지 이러한 일련의 변화 조짐을 놓고 현 정부의 대북정책 근간인 ‘비핵-개방-3000’이나 원칙 있는 대북 접근이 바뀌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연한 상호주의, 신축성 있는 접근, 실용적 대북정책 등 변화를 암시하는 수식어가 언론 매체를 통해 빠르게 확산됨으로써 불필요한 오해나 혼선을 초래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더구나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통일부장관이 교체되고, 싫든 좋든 조기에 선거 정국으로 접어든 이상 정부로서는 신속히 입장을 정리해야 그마나 레임덕의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대북정책의 원칙을 고수하고자 할 때 핵심은 천안함 폭침 이후 발표된 5·24조치의 존치 여부일 것이다. 천안함 폭침에 대한 시인, 사과, 책임자 처벌 등 북한 당국의 책임 있는 조치가 없으면 북한에 대한 제재를 해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또한 대규모 식량원조나 경협을 통해 북한의 비위나 맞추고 적당히 화해협력의 모양새를 갖추려 했던 방식은 남북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발전시킬 수 없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기도 하다. 반면 정책의 원칙보다 당면 과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 소위 유연한 접근이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면서도 천안함 폭침에 대한 출구전략을 모색해야 하고, 대화를 통해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어가되 이를 위한 우호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5·24조치를 부분적으로 완화함으로써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유도해 남북관계를 활성화하려는 복안인 것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개성공단을 방문한 뒤 우리 입주업체의 민원을 청취하는 형식을 빌려 개성공단 내 건축이나 금융제재 완화, 개성과 개성공단 간 도로 보수, 통근 버스 운행 등 5·24 조치를 완화하는 내용을 정부에 건의했다.이처럼 원칙을 고수하며 남북관계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려는 노력은 남북관계의 경색에 대한 안팎의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결국 북한이 변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러지 않더라도 임기말까지 원칙을 고수할 경우 차기 정부에 보다 유리한 입장에서 남북관계를 풀어갈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관점에서 역사적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유연한 접근은 남북관계의 경색과 이로 인한 한반도 정세의 긴장국면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이나 북한의 태도나 반응에 그 성패가 좌우된다는 점에서 타협책이다. 궁극적 목표인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남북관계의 안정적 관리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정부의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원칙의 고수가 역사적 접근이라면, 유연성은 보다 정치적이고 정무적 판단에 기초한 접근법이다. 대북정책의 원칙을 고수할 때 장단점이 있듯이 유연한 접근 역시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지금과 같은 대북정책의 전환기에서 원칙과 유연한 접근이 혼동되거나 무분별하게 혼용되어서는 안 된다. 원칙과 유연성을 단순 합성하여 중간자적 입장에서 문제를 풀려고 할 경우 자칫 냉탕, 온탕을 왔다갔다하며 죽도 밥도 아닌 상황이 되면 안 된다. 유연한 접근은 방법이자 전략이다. 원칙만 있고 전략이 없어서도 안 되지만 원칙 없는 전략은 더더욱 위험하다. 대북정책은 어느 한 정권의 임기 내에 완성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인도적 지원 확대, 사회문화 교류협력과 개성공단 활성화 등 새롭고 유연한 접근이 지난 3년반 동안 지속된 원칙의 일관성을 훼손하지 않는 수준에서 단계적이고 검증가능한 방식으로 거시적이고 역사적인 안목을 갖고 차분히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 黑 VS 黑?

    黑 VS 黑?

    미국 공화당 대선주자 가운데 유일한 흑인인 허먼 케인(왼쪽·65)이 여론조사에서 선두로 뛰어올랐다. 만약 케인이 이 여세로 공화당의 후보로 뽑혀 내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인 버락 오바마(오른쪽) 대통령과 맞붙는다면 ‘흑인 후보 대(對) 흑인 후보’가 대결하는 미국 역사상 초유의 그림이 펼쳐지게 된다. 케인은 13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의 공동 여론조사에서 27%의 지지를 얻어 1등을 차지했다. 전국 단위의 여론조사에서 케인이 선두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밋 롬니 전 매사추세추 주지사는 23%로 2위로 밀렸고, 16%의 릭 페리 텍사스 주지사는 3위로 떨어졌다. 특히 이번 조사는 공화당 프라이머리(예비경선)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후보 선출 민심과 직결됐다고 할 수 있다. 보수정당인 공화당에서 흑인인 케인이 선두주자가 되리라고 예상했던 사람은 사실상 없었다. 그는 단지 공화당의 다양성을 과시하는 ‘구색 갖추기’용으로 인식됐었다. 더욱이 그는 이렇다 할 공직 경험이 없는 피자회사 사장 출신이다. 하지만 토론회가 거듭되면서 케인의 진가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라디오 사회자에 ‘동기부여’ 연사로 활동해 달변인 그는 쉽고 소탈한 화법으로 유권자를 파고들었다. 교회 목사 설교톤인 그의 화법은 “정치인같지 않다.(참신하다)”는 반응을 얻었다. 유망주였던 페리가 토론회를 거듭할 수록 실망을 안겨준 것과 대비되면서 그의 진면목은 더욱 부각됐다. 실제 최근 그의 지지율 상승 몫은 대부분 페리한테서 떨어져 나온 것이다. 오바마는 어머니가 백인인 ‘반쪽 흑인’이지만 케인은 부모가 다 흑인이다. 그는 “내가 후보가 되면 오바마의 흑인표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하는 등 흑인임을 장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미 언론은 아직은 케인의 후보 선출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고 한때의 바람으로 평가하는 분위기다. 여기에는 공화당에서 과연 흑인이 대선주자가 될 수 있을까라는 편견이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리더 없는 시위가 美 역사 만들었다”

    미국 포드햄대의 헤더 고트니(사회학) 교수는 11일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칼럼에서 월가 점령 시위가 지도력 부재로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세간의 지적이 있지만알고 보면 지도부 없는 시위가 미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고트니 교수에 따르면 우선 1960~1970년대 여권 신장론자들이 사적으로 자행되는 여성에 대한 억압을 정치문제화하려는 목적으로 시작한 ‘여권 자각 운동’이다. 이 페미니스트 운동에는 리더가 없었다. 모든 여성이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동등하게 제시하면서 열띤 운동이 전개됐다. 개인적인 것이 사회적인 것이 된 것이다.이 여권 자각 운동은 이후 동성애자(게이) 인권 운동의 모태가 됐다. 골방에서 움츠려 있던 동성애자들이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의 스토리를 자유롭게 공유하는 것은 여권 자각 운동의 전개 과정과 비슷하다. 이 역시 리더 없이 강압적이지 않은 환경에서 전개됐다. 미국인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온 이 두 운동이 특정 지도부 없이 일어난 것이다. 1990년대 후반 세계화 및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도 비슷한 메커니즘이다. 특정인에 의해 주도된 것이 아님에도 이 운동은 전 세계적으로 번졌다. 지금 월가 시위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다고 고트니 교수는 주장했다. 미국 전역의 각 도시에서 각자 알아서 시위가 조직되고 있다. 오로지 “우리는 1%의 탐욕과 부패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99%다.”라는 인식이 이들을 단합시키고 있다. 맨해튼의 공원에서 진행되는 시위대의 회의에서는 누구나 의견을 개진할 수 있고 거수를 통해 의사를 결정한다. 이렇게 국민들이 리더를 자처하게 되는 현상은 의회가 국민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할 때 일어난다. 국민들이 더 이상 리더를 믿지 못하고 “우리가 더 잘할 수 있다. 우리가 모두 리더다.”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이다. 워싱턴 김상연특파원 carlos@seoul.co.kr
  • [테마로 본 공직사회] “中동북공정과 묶어서 개천절 행사 치르면 의전도 역사가 됩니다”

    [테마로 본 공직사회] “中동북공정과 묶어서 개천절 행사 치르면 의전도 역사가 됩니다”

    참석자들이 만족하고 감동받고 국민 통합을 이루는 것, 또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서로서로 존중하는 것이 의전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정현규 소방방재청 운영지원과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정 과장은 1981년 7급으로 공직을 시작, 7급부터 4급까지 총무처와 행정자치부의 의전담당, 의정팀장, 행정안전부 의정담당관으로, 30년 공직생활 가운데 거의 절반을 의전분야에서 근무한 ‘의전 베테랑’이다. 2008년에는 ‘글로벌시대의 의전행사 성공전략’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의전이라는 것도 결국은 예절이나 에티켓 같은 서로 존중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인 만큼, 의전을 제대로 한다면 국민이 국가를 존중하고 또 국민도 서로 존중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의전이 점차 간소화되고, 관련 규정들이 느슨한 이유에 대해서 “의전은 하나의 규정으로 묶어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자신이 직접 준비했던 1983년 아웅산 폭탄 테러사건으로 순국한 외교사설 17명의 합동 국민장, 1991년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제주도를 방문해 가졌던 한·소 정상회담, 2007년 노무현대통령이 육로로 북한을 방문할 때 열린 도라산역 환송행사 등 연간계획표에 없이 갑자기 생겨난 행사들을 예로 들었다. 그는 “이런 행사들을 미리 예측해서 세부적으로 규정을 만들 수는 없는 일”이라면서 “이런 갑자기 생긴 국가적 행사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의전의 묘미”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빠듯한 일정 속에 주어진 환경을 이용하고, 최대한 매끄럽게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진행상황을 점검하는 일이 힘들기는 하지만 행사가 만족스럽게 끝났을 때, 예정된 국경일 행사를 준비할 때 보다 더 큰 성취감을 느껴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다.”고 덧붙였다. 지난 30년 동안 의전 변화에 대해서는 “보다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변해가는 것 같다.”면서 “그전에는 훈장을 수여할 때 수상자가 대통령에게 가서 받다가 김영삼 대통령부터는 대통령이 직접 수상자 앞으로 가서 줬을 때나,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행사 때 다른 참석자들처럼 단하에 앉아 있다가 연설을 할 때만 단상에 올라갈 때, ‘의전이 참 많이 변하는구나’라고 실감했다.”고 말했다. 또 “향후 의전이 더 발전하려면 콘텐츠 개발과 의전 전문가 육성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를테면 개천절 행사가 중국의 동북공정과 맞물려 있을 때는 관련 부처가 국민들이 고조선 역사에 대해 한번 더 인식할 수 있는 부대행사를 계획해,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 “이런 것을 기획할 수 있는 의전전문가 육성이 필요하다.”고 재강조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씨줄날줄] 그린 밀리터리/이도운 논설위원

    미국의 퓨(Pew)공익신탁이 최근 발간한 ‘국가안보, 에너지, 기후변화에 대한 보고서’는 군사 분야에 ‘녹색성장’이 얼마나 깊이 파고들고 있는가를 상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며칠 전 이 보고서를 인용, “미군이 ‘녹색 군대(Green Military)’로 변모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미군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단일 기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군이 지난해 에너지 구입에 지불한 비용은 무려 152억 달러(약 18조 2400억원)에 이른다. 서울시의 1년 예산과 맞먹는다. 이 가운데 110억 달러(약 13조 2000억원)가 석유를 구입하는 데 들어갔다. 미군은 2009년 기준으로 하루에 30만 배럴의 석유를 소비했다. 석유에 대한 의존은 미국 경제뿐만 아니라 미군의 전투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원유값이 배럴당 1달러만 올라도 미 국방부는 1억 3000만 달러를 추가로 지출해야 한다. 또 보고서는 미군의 석유 의존이 비용 이외에도 전술적 차원에서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현재 미군이 전투를 벌이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실시되는 호송 작전의 80%는 바로 연료 호송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미군은 국가 안보는 물론 장병의 안전을 위해서도 재생에너지 및 이와 관련된 그린 테크놀로지를 적극 도입하기로 결정했다고 보고서는 전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2025년까지 전체 에너지의 25%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야심찬 ‘25/25’ 계획을 세웠다. 이에 발맞춰 미 육군은 기지 내부에서 운행하는 사무용 경차를 전기차로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2009년부터 작전용 교량은 재생 플라스틱으로 만들고 있다. 미 공군은 2016년까지 국내에서 훈련하는 전투기 연료의 50%를 바이오 연료로 대체하기로 했다. 해군도 2020년까지 함정에 사용되는 연료의 소비를 2010년에 비해 15% 절약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또 미 해군과 해병대는 2020년까지 에너지의 5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역사적으로 군은 테크놀로지 개발을 선도해왔다. 인터넷과 위성항법장치(GPS), 컴퓨터 소프트웨어 등이 군에서 출발해 글로벌 경제의 혁신을 이룬 기술들이다. 그린 테크놀로지 발전에도 군이 기여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녹색성장의 선도국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전시작전권 전환과 국방 개혁이라는 당면 과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우리 군에게는 아직 ‘녹색 군대’가 머나먼 고지처럼 보인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안중근 시복시성 추진해야”

    “안중근 시복시성 추진해야”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해 숨지게 한 토마스 안중근은 살인자인가 가톨릭의 예비 성인(聖人)인가.’ 28일 오후 1시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명동 가톨릭회관 7층 강당에서 여는 심포지엄에선 안중근(1879~1910) 의사와 관련한 흥미로운 논문 한 편이 발표된다. 두물머리복음화연구소 황종렬 박사의 ‘안중근의 시복시성 가능한가’가 화제의 논문. 황 박사는 안중근 의사의 생애에 대한 재인식을 통해 한국천주교가 안중근 의사를 가톨릭 최고의 명예인 복자와 성인의 품에 올릴 것을 진지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 박사의 논문은 최근 ‘안중근’에 대한 재조명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처음으로 안 의사의 성인 반열을 거론한 만큼 천주교계의 큰 반향을 부를 전망이다. 19세 때인 1897년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가족 친척과 함께 영세를 받은 안 의사는 황해도 일대를 돌며 전교활동을 한 신앙인이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이며 뤼순 감옥에서 형장으로 나아갈 때도 기도를 잊지 않은 신실한 신자로 기록된다. “사람을 죽이는 것은 천주교에서도 죄악이 아닌가.”라는 일본 검사의 신문에 “남의 나라를 탈취하고 사람의 생명을 빼앗고자 하는 자가 있는데도 수수방관하는 것은 더 큰 죄악이므로 그 죄악을 제거한 것뿐”이라고 응대했던 그다. 이토 저격 사건 당시 조선교구장이었던 뮈텔(1854~1933) 주교는 ‘살인죄’를 지었다는 이유로 사형에 앞서 마지막 성사를 원한 안 의사의 요청을 거부했고, 심지어 안 의사에게 성사를 베푼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빌렘(1860~1938) 신부에게는 미사 집전 금지조치를 내렸다. 황 박사는 안중근의 유년기부터 신앙 입문기, 교육 활동기, 의병 항거기, 동양 평화 수인기에서 최후까지를 거론하면서 독실한 신자로서의 신앙적 측면이 간과된 채 그저 ‘이토 살해자’로 부각돼 온 종전의 안 의사에 대한 평가는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황 박사는 “어떤 한 사건을 놓고 그 이전과 이후의 역사와 시공적으로 가능한 한 분리해 의도적으로 고립시켜 판단하려는 경우가 있다.”며 안 의사의 평가도 그런 예에 속한다고 말한다. 황 박사는 “안중근은 뤼순을 일본과 청나라, 한국이 형제국으로서 동양의 평화를 이루고 세계의 평화를 구현하는 데 함께 연대할 거점이 되게 할 것을 제안했다.”며 “그가 현대 가톨릭 교회의 모범이자 동아시아와 세계 가톨릭 교회, 전 지구 사회의 모델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고해성사를 통해 정화를 거친 영혼으로 상징되는 갈림 없는 마음으로 이토 저격 이후 일관되게 증거한 그의 믿음과 민중과 조국에 대한 투철한 사랑에 있다.”고 못박았다. 황 박사는 결국 “하느님의 종이나 시복시성 여부는 교회가 판단할 일”이라면서도 “안중근의 저격부터 죽음에 이르는 151일간 그의 생애를 다시 한번 믿음의 마음으로 만나자.”고 제안한다. 황 박사가 논문을 발표할 심포지엄은 천주교 서울대교구가 ‘조선왕조 치하의 순교자와 증거자’ ‘근현대 신앙의 증인’에 대한 2차 시복을 추진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 그 자리 자체가 뮈텔 주교 이후 한국 천주교에서 줄곧 배척당하던 안 의사의 위상 차원에서 큰 변화로 관측된다. 안 의사는 순국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 3월에야 정진석 추기경 집전으로 명동대성당에서 열린 추모미사를 통해 천주교 신자임이 공인돼 공식적으로 천주교의 품안으로 들여졌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북한, 안 망한다 북핵 포기 안해…中, 北 안 버린다”

    “북한, 안 망한다 북핵 포기 안해…中, 北 안 버린다”

    “북한은 붕괴하지 않을 것이며,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중국은 북한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2003년 초부터 2005년 초까지 북핵 6자회담 초대 수석대표를 맡았던 이수혁 전 외교통상부 차관보가 최근 펴낸 저서 ‘북한은 현실이다’(21세기 북스)에서 전제한 세 가지 가설이다. 이 전 차관보는 “이들 가설은 미래까지 지속되면 안 된다는 의미의 반어적이고 역설적인 것이지만 그동안 체험한 우리 민족의 거대한 벽을 상징하는 것”이라며 “북한 문제를 이념이나 감정의 문제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근본적인 체제 전환을 이룰 수 있는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의 묘수를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 통일한국 실현에 대한 확신과 당위, 추진력이 조화된 리더십이 필요하다.”면서 “분단 이데올로기를 이해하고, 깊은 정치철학과 뚜렷한 역사인식으로 무장된 지도자가 출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핵문제 전문가인 이 전 차관보가 제시한 정책 제언은 다음과 같다. 그는 “북한 내부 정세, 미·중의 세계적 힘의 변화, 남·북·미·중 4개국 간 상호 관계의 변화, 북한의 대남 군사 도발, 북핵 문제의 진전, 통일 전망 등 여섯 가지 한반도 핵심 관심사를 면밀히 관찰해 대응해야 한다.”며 “평화통일을 위해 무력 사용 불용, 북핵 불용, 국내 문제 불간섭 등 세 가지 원칙을 확인하고 일관되게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결연한 자위권 행사, 북핵 문제의 근본적 접근, 가치 공유와 공동체 실현 등 3개 전략 및 한·미 동맹 유지, 한·중 관계 강화, 남북 교류 발전 등 3개 실천사항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도심속 허파를 찾아서] (7) ‘걷고싶은 거리’ 만드는 가로수

    [도심속 허파를 찾아서] (7) ‘걷고싶은 거리’ 만드는 가로수

    청주가 고향인 남용석(45)씨는 플라타너스 길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대학시절 플라터너스 길을 걷다 주변에 있던 딸기밭에서 미팅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개발과 도시화로 어느 순간 사라졌던 가로수가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담양의 메타세쿼이아길과 하동의 십리 벚꽃길 등 지역을 상징하는, 명품 길도 등장했다. 가로수가 ‘걷고 싶은 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환갑 맞는 플라타너스 동굴 경부고속도로 청주IC를 빠져나와 시내 방향으로 좌회전하면 울창한 플라타너스 동굴(청주가로수길)을 만나게 된다. 나무마다 형형색색의 천이 달려 있다. 지난 21일 개막한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를 기념해 작가들이 나무 옷을 제작해 입혔다. 국도 36호(보령~울진) 중 청주 진입부에 조성된 청주가로수길은 흥덕구 복대동 죽천교까지 5.3㎞에 달한다. 1952년 녹화사업으로 조성했으니 내년이면 환갑이다. 높이 20~30m의 울창한 나무들이 보기 좋지만 병해충으로 수세가 약해지는 등 세월의 피로가 느껴진다. 조성 당시 1300그루였지만 수세회복사업과 고사목 교체작업 등을 거치며 1800그루로 늘었다. 청주가로수길은 영화 ‘만추’와 드라마 ‘모래시계’에 등장하면서 청주를 대표하는 명소로 부상했다. 1970년도 경부고속도로 개통에 따라 4차선으로 확장한 초기 가로수(2.82㎞)와 지난해 8차선으로 새롭게 단장된 구간(2.48㎞)이 공존하고 있다. 도로 확장을 결정하는 데만 6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확장된 강서동~휴암동 구간은 가로수를 보존하면서 6차선 도로에 양쪽으로 자전거와 트레킹 도로를 조성했다. 청주가로수길은 수많은 우여곡절과 시민들의 인내가 만들어 낸 역사다. 1970년도 도로 확장공사 당시 제거될 처지에 직면, 최대 위기를 맞기도 했다. 지역개발 단골 대상지로 거론되고, 교통사고와 재해로 고사목이 늘 때는 애물단지가 됐다. 주변 농민들은 그늘과 낙엽으로 해마다 피해를 입었지만 감내했다. 2001년 아름다운숲 경연대회 대상(거리숲부문), 2006년 살기좋은 지역만들기 지역자원 도로부문 대상, 2007년 한국의 아름다운 길, 청주자랑(10선)에 선정되면서 소중한 역사문화자산으로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중훈 청주시청 공원녹지과장은 “나무들이 노령화돼 병해충에 약하고 재해에 쓰러질 수 있어 철저히 관리하고 있다.”면서 “올해부터는 나무별로 이력관리도 실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가장 비싼 금강송 가로수 2008년 조성된 명품 소나무 가로수길은 강릉시의 관문으로 강릉IC에서 시청을 잇는 홍제동 경강로(1㎞) 구간이다. 이곳에는 높이 11~14m로 수령이 30~50년된 금강소나무 111그루가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소나무는 강릉시가 시유림에서 수형이 뛰어난 것 중에서 선발한 것으로 조경수 구입시 1그루당 1000만원을 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나무 가로수 조성 소식에 지자체들의 벤치마킹이 잇따랐지만 소나무를 구하지 못해 실행하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소나무는 공해에 약해 가로수로 부적합하다는 속설을 깬 ‘성공신화’를 만들어냈지만 조성하고 유지하는 데 들인 노력은 치열했다. 4차선 도로의 가드레일을 비롯해 감시카메라와 안전시설 등을 철거한 뒤 토양개량, 상수도 인입시설을 설치했다. 소나무는 이식이 어려운 대표적인 수종이다. 대형 트럭으로 실어와 크레인에 옮겨 심은 나무의 수분 증발을 막기 위해 새순따기 및 수분억제제, 영양제를 투여하고 뿌리 절단면에는 바세린 처방도 했다. 지표에 자갈을 깔고 다시 잔디를 식재했으며 유공관을 설치하는 등 토양 산소 공급에 만전을 기했다. 태풍과 바람이 심한 지역 특성을 고려해 나무마다 와이어 지주를 연결한 것도 눈에 띈다. 조성 후에도 해마다 네번씩 나무를 씻기고 나무종합병원을 통해 정기 검진도 받고 있다. 곽주린 산림청 동부지방산림청장은 “도로 중앙분리대에 소나무를 심어 ‘솔향’이라는 지역 상징성을 돋보이게 한다.”면서 “지역을 상징하는 수종 선택과 관리 노력은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대왕참나무·무궁화길 눈길 대구 공평네거리~중구청네거리 720m에는 대왕참나무 296그루가 수목 터널을 만들어내고 있다. 국채보상공원, 경북대에 인접한 국채보상가로수길은 도심 녹지 공간으로 110% 기능을 발휘한다. 여름에는 녹음과 그늘, 가을에는 단풍의 아름다움을 제공하고 있다. 주변 직장인 및 공원·병원 방문객들의 휴식, 산책코스가 되고 작품 전시회 공간으로도 활용된다. 연말에는 경관 조명을 설치해 이국적인 야경을 선사한다. 전남 진도의 주요 국도변 211㎞에는 무궁화길이 조성됐다. 2년여에 걸쳐 총 10만 2700여그루를 심어 관광객과 주민들에게 나라꽃 무궁화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2009년부터 무궁화가 피는 시기에 무궁화축제도 개최한다. 무궁화는 병해충이 많다는 일제식민사관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현장 학습장이다. 조성 후 가지치기와 비료주기 등 체계적인 관리에 나서는 등 ‘무궁화 메카’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청주·강릉 박승기기자 skpark@seoul.co.kr
  • [독거노인 사랑잇기] (3부)독거노인 복지제도 ③선진국에서 배운다

    [독거노인 사랑잇기] (3부)독거노인 복지제도 ③선진국에서 배운다

    독거노인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사안이 아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가 노인 인구의 급격한 증가로 이미 독거노인 문제를 경험했거나 현재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일본과 프랑스 등 일부 국가는 이미 10~20년 전부터 독거노인 문제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해 대책을 강구해왔다. 하지만 독거노인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각은 각 나라마다 다르다. 앞서 심각한 사회 고령화 문제를 경험한 선진국의 독거노인 정책을 통해 우리 사회에 필요한 정책 제안점을 찾아본다. ●日, 총리 수장 고령사회대책회의 운영 일본에서는 한해에 평균 1만 5000여명이 고독사할 만큼 고령화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다. 2004년 도쿄의 임대주택 등에서는 410명이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상태에서 고독사해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됐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수국가인 일본에서는 내년부터 이른바 ‘단카이세대’(1947~49년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퇴직하기 시작해 2020년에는 전체 인구의 3분의1이 노인으로 구성된 ‘노인대국’이 될 전망이다. 심지어 일본 법무성은 지난해 9월 “현주소를 확인할 수 없는 100세 이상 고령자 수가 23만명에 이른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일본 내 조사에서 자녀와의 동거율은 1980년 69%에 달했지만 점차 줄어들어 2008년에는 44.1%에 불과했다. 독거노인 및 부부단독 세대 비율은 1980년 28.1%에서 2008년 52%로 급증했다. 독거노인의 85%는 수면시간을 포함해 20시간 16분을 혼자 보내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일본은 빠른 고령화 속도를 감안해 1995년 고령사회 대책 기본법을 제정, 선제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했다. 내각 총리대신을 위원장으로 하고 각료를 위원으로 구성해 고령사회대책회의를 운영하고, 정책 개발과 홍보·연구조사 등을 담당하도록 했다. 지방공공단체와 학교, 민간단체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 고령자 취업은 물론 생활환경 개선, 학습 등 사회참여 등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룬다. 일본 정부가 고령사회 대책에 쏟아부은 예산 규모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2000년대 중반 이미 150조원이 넘는 예산을 지원했다. 일본의 고령사회 대책의 핵심으로 꼽히는 것은 ‘취업’ 분야다. 2006년 고령자 고용안정에 관한 법률을 마련해 기업 정년을 현 60세에서 2013년까지 65세로 연장하는 것을 의무화했다. 2004년 연금 개혁으로 연금 지급 시기가 60세에서 65세로 늦어짐에 따라 노인이 소득 없이 생활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정년을 60세로 늘리는 문제로 첨예한 갈등이 생기고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100세 시대를 염두에 둬 노인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지난해 6월 기준으로 65세 이상 고용자 수는 60만명으로 2005년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났다. 심지어 단카이 세대의 취업을 장려하기 위해 2007년부터 ‘70세까지 일할 수 있는 기업’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현재 일본 기업 가운데 정년을 70세로 정한 곳이 전체 기업의 20%에 달한다. ●佛, 1975년부터 지역 노인클럽 가동 한정란 한서대 노인복지학과 교수는 “일본은 정년을 근로자의 노동 권한을 보장하는 방향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면서 “그래서 단계적으로 65세 이상까지 연장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독거 노인의 문제는 소득이나 생활의 안정에 국한되지 않는다. 특히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독거노인을 위한 정책에 대해 일본 정부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고민을 해왔다. 이에 따라 지역의 ‘공민관’을 중심으로 도서관이나 박물관, 여성 교육시설 등의 사회교육시설이나 교육위원회를 통해 모든 연령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학습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노인이 직접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을 찾아 보람을 갖고 생활할 수 있도록 사회 참여활동의 대부분은 ‘노인클럽’을 중심으로 운영된다. 또 ‘밝은 장수사회 만들기 추진기구’를 통해 고령지도자 육성 및 고령자 네트워크 구축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이다. 유럽의 대표적인 선진국인 프랑스도 독거노인 문제에 국가 정책을 집중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60세 이상 인구가 12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21%에 달해 초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다. 프랑스는 어느 나라보다 빨리 인구 고령화를 경험한 국가다. 2050년 쯤에는 인구의 3분의1이 60세 이상 노인이 될 것이라는 충격적인 분석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프랑스의 여가문화 정책은 일본보다 앞선다. 지역단위의 노인클럽은 1975년 지역사회 노인보호 원칙의 일환으로 개발돼 현재 지자체 단위로 구성돼 있다. 일반적인 레크리에이션뿐만 아니라 전문 기술 습득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화 생활권 보장을 위해 연극과 연주회·극장·화랑·박물관 등을 이용할 경우 할인 및 무료 혜택이 제공된다. 프랑스 전역에는 노인대학(UTA)이 있어 노인에게 특화된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독거노인 지원 제도는 ‘가사원조서비스’다. 65세 이상 노인 가운데 건강상의 이유 때문에 자택이나 고령자 주택에서만 활동하는 노인을 대상으로 장보기·산책·요양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의 대부분이 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으며, 만족도도 비교적 높다. 특히 노인들의 자산을 파악해 생활실태에 따라 1대 1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다. 홍미령 한국노인복지진흥재단 회장은 “프랑스를 포함한 선진국에서는 독거노인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도록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사회복지사들이 노인 한명, 한명을 구분해 관리하면서 자산이 어느 정도인지, 소득이 얼마인지를 파악해 전반적인 인생 계획까지 짜는 스마트 복지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공공은 관리만… 민간서 운영” 민간과 공공의 역할 분담을 통한 복지서비스의 분배 정책도 우리가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영국은 최근 들어 공공부문이 직접 운영하는 서비스를 줄이는 대신 민간의 참여를 권장하고 있다. 공공부문은 복지서비스 관리와 지원자 역할만 담당하고 민간단체는 노인 요양 등의 직접적인 복지서비스를 담당하는 등 역할 분담이 잘 이뤄지고 있다. 홍 회장은 “공공의 역할만 계속 강조하면 국가 재정이 파탄날 수밖에 없다.”면서 “민간의 기능을 점차 강화해 시스템이 장기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제도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일제하 문인, 그들이 쓰지 못한 것들

    일제 말기 문학인들은 어떻게 글을 썼을까. 또 서로 만나서 무슨 얘기를 했을까. 일제 말기의 지식인들은 아마도 제국 권력의 ‘공포’에서 자유스럽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다들 그랬을까. 비록 문학의 암흑기였을지라도 그 속에서 미래적 가치를 창조한 작가와 시인, 비평가들은 있었을 것이다. 이런 궁금증으로 그때의 상황을 들여다본 책이 ‘일제 말기 한국문학의 담론과 텍스트’(방민호 지음, 예옥 펴냄)다. 서울대 교수인 저자는 머리말에서 “약 10년에 걸친 탐구의 결과이자 빚을 갚는 심정으로 책을 펴냈다.”고 하면서 “일제 말기라는 통념에 맞서 고통스러운 엄혹한 조건 속에서 문학인들의 작품이 있었음을 구체적으로 논증하고자 했다.”고 책을 낸 동기를 밝혔다. 책은 총 16편의 논문, 원고지 2400장으로 구성됐으며 일제 말기를 둘러싼 역사철학의 인식을 바탕으로 방대한 역사자료들을 동원했다. 당시 제국 권력의 공포 속에서 문학인들이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수 없었던 것, ‘있는 그대로’를 쓰지 못하고 ‘위장’과 ‘연기’와 ‘수사’로 피력한 것들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이광수, 박태원, 이상, 이태준, 김기림, 김남천, 임화, 오장환, 조지훈 등의 문학 세계를 분석해 일제 말기 문학의 새로운 미래적 가치를 발견하는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시 말해 ‘대일 협력’이 강요된 현실에서 문학활동을 해야 했던 당대 작가들의 ‘의식 이면’을 들여다봄으로써 그들이 차마 말하지 못한 것은 무엇이며 어떠한 위장방식을 선택했는지를 깊숙이 통찰하고 있다. 예를 들어 ‘한복 입은 이상’에서는 소설 ‘실화’와 ‘날개’의 비교분석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간 이후의 의식 궤적을 살펴봄으로써 그가 얼마나 보편적인 문학의 경지를 추구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또한 ‘문명비평론의 행방-김기림의 경우’에서는 동양과 서양이라는 구도로써 펼쳐온 김기림 비평의 전개과정을 통해 민족의 원리를 찾아나가는 행로를 분석했다. ‘이효석과 하얼빈’에서는 1940년 전후에 발표된 이효석 소설의 내면적 분석을 통해 그가 국민문학론이라는 정치주의적 담론과 일본적 오리엔탈리즘론에 엄격한 거리를 두었으며 독자적인 예술주의적 이상을 추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친일’이라는 장막을 걷어내고 한국문학의 진정한 가치를 발굴하려고 노력했으며 이광수의 ‘사랑’, 박태원의 ‘채가’, 김남천의 ‘등불’ 등을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면서 1940년대부터 나타난 ‘데카당스’와 ‘숭고’의 미학적 효능을 질펀하게 살피고 있다. 3만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檢, 합동수사단 구성 어떻게

    검찰이 저축은행 비리와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를 위해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 구성에 들어갔다. 각종 불법 사례와 비리의 백과사전과 같은 제2금융권 수사를 위해 상시적인 조직이 필요하다는 인식에서 합동수사단 구성이 나왔다. 17조원이 넘는 공공자금을 받고도 방만한 경영으로 또다시 국민 경제에 타격을 준 저축은행들의 관행적인 비리를 뿌리뽑겠다는 범정부 차원의 특별 조치인 셈이다. 합동수사단에는 전국의 특수부 검사들이 파견된다. 또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등의 금융감독기구도 참여한다. 단장은 고검부장급으로, 재경지검이나 서울 지역의 검찰 산하 기관의 여유공간에 본부를 둘 예정이다. 합동수사단의 구성과 운영방향, 향후 수사계획 등은 22일쯤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한상대 검찰총장도 20일 취임 후 처음 가진 전국 특수부장회의에서 “시간과 인력에 구애됨이 없이 수사에 총력을 기울여 다시는 비리의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며 저축은행의 비리에 강력한 대처를 주문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의 부산저축은행 수사가 6개월 이상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검찰 내부에서는 계속해서 이어질 저축은행 수사를 계속 중수부가 쥐고 있을 수 없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또 금융감독원이 영업정지된 7개 저축은행에 대해 수사를 의뢰한 상태로, 검찰로서는 조직화되고 상시적인 수사체계가 더욱 필요한 상황이다. 이번 수사 대상인 토마토, 제일(2포함), 프라임, 에이스, 대영, 파랑새 등 7개 저축은행의 총 자산 규모는 11조 5424억원 규모로 앞서 수사 중인 부산(2포함), 중앙부산, 대전, 전주, 보해, 도민, 삼화 등 8개 은행의 총 자산 규모(12조 6623억원)와 맞먹는다. 중수부는 이번 부산저축은행 수사를 거치며 제2금융권 수사에 대한 양질의 ‘노하우’를 축적했다고 자평한다. 이러한 경험들을 앞으로 다른 저축은행 수사에 활용할 수 있는 조직이 바로 이번 합동수사단인 셈이다. 실제 2001년 대검이 출범시킨 ‘공적자금비리 합동단속반’은 이 같은 형식으로 서울서부지검에서 4년여 동안 운영됐다. 중수부 산하 팀으로 운영됐던 합동단속반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부실화한 금융기관과 부실기업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기업들의 도덕적 해이를 수사하기 위해 구성됐다. 당시 합동단속반은 부실기업주 등 106명을 구속하는 등 모두 290명을 처벌하고, 76조원을 회수한 뒤 공식 해체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적자금 비리 단속반이 이번 합동수사단의 모델이라고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석·최재헌기자 ccto@seoul.co.kr
  • “1700년대 고지도 ‘Korea Sea’ 표기, 일본의 역사왜곡 사료 모아 맞서라”

    “1700년대 고지도 ‘Korea Sea’ 표기, 일본의 역사왜곡 사료 모아 맞서라”

    “문화 강국이라야 자국의 영토를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부의 이런 문화 인식이 부족해 아쉽습니다.” 19일 경기도 용인시 경희대 국제캠퍼스에 있는 ‘혜정박물관’에서 만난 김혜정(65·여) 관장은 대학 2학년 때 우연히 고서점에서 고지도를 보고는 한눈에 반했다. 그때부터 모은 고지도와 그림, 문서 등이 무려 수천점. 김 관장이 2002년에 그동안 모은 사료를 경희대에 기증하면서 국내 최초의 고지도 박물관인 혜정박물관이 만들어졌다. 김 관장이 고지도에 빠지게 된 데는 동양사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김 관장은 “처음에 고서점에서 본 고지도의 색깔이며 그림이 정말 아름답다고 느껴 관심을 갖게 됐다.”면서 “용돈을 긁어 모아 당시 8만엔(약 80만원)짜리 고지도를 샀더니 주변에서 ‘왜 돈 들여 이런 걸 사느냐.’고 야단들이었지만 아버지만은 달랐다.”고 돌이켰다. 이후 김 관장은 어렵게 고지도를 구할 때마다 아버지와 함께 살피며 그 세계에 빠져들었다. 김 관장은 “학교에서는 ‘Japan Sea’로 배웠는데 1700년대 고지도를 살피면서 ‘Japan Sea’가 아니라 ‘Korea Sea’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그에게 아버지는 “한국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살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할머니로부터는 일제 강점의 부당함을 귀가 아프도록 듣고 자랐다. 이런 자극이 고지도를 통해 한·일관계를 재조명해보고 싶다는 구체적인 학구열로 자리를 잡았다. 김 관장은 ‘문화 강국’이라야만 자극의 영토와 정체성을 지킬 수 있다고 역설했다. 문화의 역사적 해석을 통해 독도가 명백한 우리 땅이며, ‘일본해’가 아니라 ‘동해’임을 증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오래 살았던 그는 하찮은 사료일지라도 소중히 보관하는 일본과 일본인의 문화의식을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고 전했다. 이에 비해 사료를 모으고 보존하는데 지원이 부족한 정부의 정책이 항상 아쉽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500여평의 박물관에 전시된 고지도만 200여점. 나머지 사료들은 전부 수장고에 보관 중이다. 박물관을 새울 때 대학에서 적잖은 도움을 줬지만 여전히 전문인력이 부족하다. 보물급으로 여겨지는 사료가 묻혀있는 것도 안타깝다. 경기도가 지원을 약속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것은 없다. 김 관장은 “지도를 보는 것은 역사를 보는 것”이라면서 “앞으로도 계속 지도를 모으겠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려운 점이 많다. 역사를 지킨다는 생각으로 정부가 나서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진아기자 jin@seoul.co.kr
  • ‘천년의 지혜’ 대장경을 만나다

    ‘천년의 지혜’ 대장경을 만나다

    고려대장경 간행 착수 1000년을 기념해 그 역사를 한눈에 조망하는 행사가 다채롭게 열린다. 불교중앙박물관과 고려대장경연구소, 동국대도서관, 국립중앙박물관은 초조대장경 조성 1000년을 기념해 21일부터 11월 12일까지 마련한 특별전 ‘천년의 지혜 천년의 그릇’ 전을 연다.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으로 불리는 대장경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한꺼번에 살필 수 있는 흔치 않은 자리다. 전시는 대장경의 의미를 일반인의 눈높이에서 전달하도록 꾸민 게 특징. 전통 경전의 분류 방식을 따라 천·지·현·황의 ‘함차’로 구분해 ‘말씀을 담는 그릇, 대장경’, ‘고려에서 대장경을 처음 새기다-초조대장경’, ‘대각국사 의천 스님과 교장(敎藏)’, ‘우리 손으로 승화 재해석하다-재조대장경’, ‘고려대장경의 전승과 발전’ 등 총 5부로 구성돼 국보·보물 40여점을 비롯해 대장경 관련 유물 164점이 공개된다. 초조본 ‘신천일체경원품차록’(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을 비롯해 국보·보물로 지정된 초조대장경 인출본 다수와 재조대장경 목판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국보 32호·해인사 장경판전 소장), ‘대각국사문집’(국보 206-22호) 등 일반인에게 공개하지 않았던 유물도 나와 있다. ‘천(天) 말씀을 담는 그릇, 대장경’ 편에서는 부처님이 입멸한 뒤 조성된 대장경이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을 거쳐 동아시아로 확산된 과정을 보여 준다. 경판을 찾아보기 쉽도록 경판에 매달았던 ‘송광사 경패’(보물 175호)와 ‘패엽경’(고려대장경연구소)이 들어 있다. ‘지(地) 고려에서 대장경을 처음 새기다-초조대장경’은 불교문화의 핵심인 대장경 조성 과정을 담은 공간. 국보 제126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경전 목록인 ‘초조본 신찬일체경원품차록’(국보245호),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국보 256호)이 전시된다. ‘현(玄) 대각국사 의천 스님과 교장(敎藏)’에는 대각국사 의천이 대장경에 대한 각종 해설서와 연구 성과물인 연구주석서를 모아 펴낸 4000여권의 교장이 들어 있다. 대각국사 진영(선암사 성보박물관 소장·보물1044호)과 함께 해인사 보관 목판인 대각국사 문집, 기림사 성보박물관 소장 ‘대방광불화엄경소’, 안동 보광사의 ‘정원신역화엄경소’도 눈에 띈다. ‘황(黃) 우리 손으로 승화 재해석하다-재조대장경’ 편에서는 초조대장경 소실 이후 만들어진 대장경을 중심으로 대장경에 대한 전반적인 교정 내용과 사유를 밝힌 수기 대사의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을 볼 수 있다. 이 별록은 재조대장경 판각 시 초조대장경과 개보대장경, 거란대장경 등을 참고해 내용의 오류를 바로잡고 교정의 사유를 명시해 놓은 판본으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대장경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유물로 꼽힌다. ‘우(宇) 고려대장경의 전승과 발전’에서는 숭유억불 정책을 폈던 조선시대에도 대장경 간행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불교중앙박물관장 흥선 스님은 “대장경은 지금까지 전해지는 불교 문헌을 모은 불법(佛法)의 총체”라며 “이번 전시회를 통해 일반인들에게 대장경에 대한 명확한 정보를 제공, 대장경의 가치와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경남 합천 해인사와 인근 가야면 야천리, 창원컨벤션 센터에서는 23일부터 11월 6일까지 45일간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이 열린다. 주행사장의 대장경 천년관과 지식문명관 등에서 열리는 전시회와 국제학술심포지엄, 국내외 작가들이 참여하는 해인아트프로젝트를 통해 세계문화유산인 대장경의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린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 “독거노인 실질적 지원방안 확대”

    구자준 LIG손해보험 회장 “독거노인 실질적 지원방안 확대”

    “단순히 매출만 높은 기업, 돈만 많이 버는 기업은 결코 장수할 수 없습니다. 어려운 이웃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의 편에서 희망을 심어주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기업이 해야 할 진정한 나눔활동입니다. LIG손해보험은 ‘희망을 함께하는 기업’이라는 사회공헌 철학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와 소외된 이웃을 돕는 일에 적극 동참하고 있습니다.” 구자준(61) LIG손해보험 회장은 고령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독거노인이 사회 문제로 대두됨에 따라 기업이 앞장서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구 회장과의 일문일답.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는.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은 소외된 이웃이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가꿔 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사업으로 “진정한 의미의 희망파트너가 되겠다.”는 LIG손해보험 사회공헌 철학과 일치해 참여하게 됐다. 앞으로도 독거노인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마련해 전국에 있는 봉사팀과 함께 지속적인 나눔활동을 확대할 예정이다. →보험협회도 최근 ‘사회적 책임 가이드 라인’을 제시할 정도로 사회적 나눔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다. 기업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나. -과거 우리는 경쟁우위나 매출과는 관계없이 사라져 버린, 혹은 사회적 비난을 면치 못했던 많은 기업을 보았다. 그들이 장수하는 기업, 사회적으로 존경받는 기업이 되지 못한 이유는 ‘이윤창출’이라는 눈앞의 결과만을 좇았기 때문이다. 이제 기업은 단순히 매출이 높고 돈만 많이 번다고 해서 훌륭한 기업이라고 할 수 없다. 지역사회와 함께 호흡하고 성장하며 사회일원으로서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한다. →독거노인 사랑잇기 사업 외에 진행하는 사회공헌 활동은. -‘희망을 함께하는 기업’이라는 사회공헌 비전 아래 전국 118개 봉사팀이 매월 다양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미래의 희망인 어린이의 꿈을 키우기 위해 주거환경 개선 사업인 ‘희망의 집짓기 사업’을 하고 있고, 난치병인 척추측만증 아동의 수술비 및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이 밖에 교통사고 사망자의 유자녀도 돕고 있다. 지금까지 17채의 ‘희망의 집’을 지었으며, 100여명의 척추측만증 어린이에게 희망을 전달했다. 2006년부터 시작된 ‘LIG희망바자회’는 매년 5월 아름다운 가게와 함께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은 물품의 판매 수익금으로 소외된 이웃을 돕고 있으며, LIG문화재단은 우수한 신예 무용가를 발굴하고 있다. 또 배구단과 골프단 운영을 통해 국내 비주류 스포츠 분야를 후원함으로써 유망 신인을 육성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향후 계획은. -독거노인 사랑잇기 캠페인을 지금보다 확대해 보다 많은 독거노인들이 도움의 손길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이다. 매년 5월과 12월 열리는 ‘LIG희망봉사한마당’을 통해 독거노인을 위한 나눔캠페인도 진행할 계획이다. 특히 기업의 존재 이유는 사회적 책임 실현이라는 철학에 따라 고객 중심의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친환경 녹색보험의 신규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지속적인 책임 경영을 통해 고객과 사회, 주주와 임직원 모두에게 희망이 되는 기업, 경영성과와 더불어 사회로부터 존경과 사랑을 받는 기업이 되고자 최선을 다할 것이다. 임주형기자 hermes@seoul.co.kr
  • 보이소 ‘대구십영…서거정 한시 지도로 제작

    “조선시대 대구서 가장 경치가 빼어난 10곳, ‘대구십영’을 한 번 구경해 보세요.” 대구시는 조선시대 학자 서거정(1420∼1488)이 지은 한시 대구십영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풀이한 안내지도를 제작했다고 14일 밝혔다. 이 지도는 역사 속에 묻혀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대구십영을 누구나 쉽고 편리하게 찾아갈 수 있도록 사진과 그래픽으로 구성해 펴낸 것이다. 조선 중종 25년(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실린 칠언절구 형태의 한시다. 대구십영에는 복현나루터, 건들바위, 제일중 교정, 달성관, 영선시장, 도동 측백나무 숲, 동화사, 팔달교, 팔공산, 침산공원 등이 포함돼 있다. 대구시 김영대 도시디자인총괄본부장은 “누구나 대구십영을 찾아갈 수 있도록 안내 지도를 제작했다.”고 말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수행 외길 성철 스님 현실 도피 은둔자?

    수행 외길 성철 스님 현실 도피 은둔자?

    군사독재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민주화의 운동이 가파르게 진행될 때 종교인의 입과 몸은 희망이자 돌파구로 작용하곤 했다. 그 희망과 돌파구의 중심엔 김수환 추기경이며 강원용·한경직·문익환 목사 등이 있었다. 대중의 요구에 부응해 사회에 뛰어들었던 대표적인 종교인들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평생 수행에 전념했던 ‘가야산 호랑이’ 성철 스님은 불교계와 일반인 모두에게 존경받는 인물이면서도 사회현상엔 일절 관여하지 않아 구별된다. 성철 스님은 과연 현실도피의 은둔자였을까. ●“군사독재 시절 현실정치 방관” 비판 불교계에 성철 스님 재조명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사회적 방관자’로서의 성철 스님을 파헤친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끈다. 오는 23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서 있을 학술포럼에서다. 성철스님문도회가 주최하고 백련불교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성철 스님 탄신 100주년 기념 제3차 학술포럼이다. 이 자리에서 김성철 동국대 교수는 ‘현대 한국 사회와 퇴옹 성철의 위상과 역할’을 통해 그동안 접근이 흔치 않았던 성철 스님의 대사회적 인식을 낱낱이 분석해 발표한다. ●“불교 본질 회복이 급선무” 판단 김 교수는 미리 배포된 발제문을 통해 “많은 사람이 김수환 추기경이나 문익환 목사, 지선·진관 스님 등 한국 사회의 정치적 혹한기에 사회현실에 적극 관여했던 종교인들과 비교해 성철 스님의 은둔적 행동과 비현실적 법어를 비판한다.”며 실제로 성철 스님은 현실정치를 백안시했다고 못 박았다. 김 교수는 “1965년 김용사에서 첫 대중설법을 한 이후 1993년 입적할 때까지 성철 스님의 활동기는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 시기와 겹친다.”면서 “대중법문은 물론 1981년 조계종 종정 취임 이후 그 어떤 법문에서도 정치 현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적시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성철 스님이 1964년 도선사에 머물면서 청담 스님과 다짐했던 서원문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즉 성철 스님은 당시 한국의 출가자가 해야 할 일은 섣부른 사회 참여가 아니라 불교의 본질 회복이었다고 판단했다는 주장이다. ‘항상 산간벽지의 가람과 난야에 지주하고 도시 촌락의 사원과 속가에 주석하지 않는다.’ ‘항상 고불고조의 유법과 청규를 시법 역행하고 일체의 공직과 일체의 집회와 회의에 참여하지 않는다.’ ‘항상 불조유훈의 앙양에 전력하여 기타 여하한 일에도 발언 또는 간여하지 않는다.’ ●“불교적 사회 참여는 어떤 정형 없어” 김 교수는 결국 성철 스님을 20대의 청년기에서 세수 50이 넘은 중년이 될 때까지 화두를 들고서 참선 정진한 산승이자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고 인간성의 극한을 추구하는 철저한 수행자로 정의했다. 김 교수는 특히 “불교적 사회 참여에는 어떤 정형이 있는 게 아니라 상황과 상대에 따라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모습으로 몸을 나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포럼에서 발표될 동국대 불교사회문화연구소 문무왕 박사의 ‘현대 한국 사회에 투영된 퇴옹의 삶과 사상’, 성철선사상연구원 최원섭 연구원의 ‘불교의 현대화에 담긴 퇴옹 성철의 의도’도 불교계의 주목을 끌 만한 논문들이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수녀가 쓴 역사 팩션 절제·상상력의 진수

    역사적, 혹은 인간적 사실에 허구를 결합한 팩션은 문학에서도 까다로운 영역으로 인식된다. 상상력을 앞세우다 보면 사실의 왜곡, 변질의 해악에 빠지고 사실에 지나치게 충실하자면 문학적 작품성과 재미에서 멀어지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문단에서는 팩션의 모험을 선뜻 감행하려는 문인이나 작품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 차원에서 천주교 영원한도움의성모수녀회 소속인 임금자씨가 세상에 낸 장편소설 ‘파격’(다섯수레 펴냄)은 흔치 않은 역사 팩션으로 눈길을 끈다. 임금자씨는 타이완 푸런(輔仁)대학에서 중국철학을 전공하고 수원가톨릭대 교수를 지낸 수녀다. 그가 천주교 수도자 신분의 테두리를 넘지 않으면서 동원한 절제의 상상력이 범상치 않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서양 세력이 중국과 조선에 물 밀듯이 들이닥친 순조 34년(1834년)부터 헌종 13년(1847년)이다. 시대적 흐름에 눈뜨지 못한 채 서양 세력에 속수무책으로 지배받기 시작한 서세동침기에 사회 변혁을 꿈꾸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축을 이룬다. 사회적 변혁기엔 어느 사회든 현실에 안주하는 수구와 변화의 흐름을 받아들이자는 개혁의 충돌이 불가피하게 마련이다. 임 수녀는 그 변혁의 간극과 혼돈의 중심에 한국 천주교의 태동과 박해라는 역사적 사실을 충실하게 삽입했다. 한국 천주교는 자생적으로 태동한 흔치 않은 역사를 갖는다. 이 소설의 묘미는 한국 천주교의 시작과 정착의 과정에서 거듭됐던 박해의 사실을 변혁의 주체들과 연결해 실감나게 풀어 간다는 데 있다. 상하이와 광저우를 넘어 미국을 향해 배를 띄운 양반 출신 거상 정시윤과 역관 김재연, 목숨을 걸고 조선에 입국한 서양 성직자들, 조선 최초의 신부 김대건과 최양업 신부, 정약용·정약전 등 실학자들의 활동과 신도들의 순교가 생생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그 변혁의 주체들은 소설 제목 그대로 신분질서의 타파와 개선을 이루려는 파격의 인물들이다. 태동기부터 주로 실학자들에 의해 유입됐던 이 땅의 초기 천주교는 당시 사회질서를 유지하려는 집권자들에겐 독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시 배척과 타파의 우선적인 대상이었던 천주교는 평등과 신분질서의 개선을 주장하는 큰 이데올로기요 운동이었음을 이 작품은 또렷이 보여 준다. 실제 인물과 가상의 인물을 얽어 무리하지 않게 만들어 내는, ‘그럴 수도 있었다’는 역사의 개연성은 소설을 흥미 있게 만드는 또 하나의 덤이다. 한국 천주교사에 오랫동안 천착했던 수녀의 선 굵은 철학과 고집이 읽힌다. 1만 6800원.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저자와 차 한 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저자와 차 한 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음식은 자연에서 온다. 흙과 물에서 자라는 식물과, 그 식물을 먹고 사는 동물, 또 그 동물을 먹고 사는 또 다른 동물…. 인간이 먹는 음식의 재료이다. 따라서 모든 음식은 그 음식을 만들고 먹는 지역의 자연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의 음식에는 한반도의 자연이 담겨 있다.’ 맛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는 황교익(49)씨의 신간 ‘한국음식문화 박물지’(따비 펴냄)에 나오는 대목이다. 그러면서 황씨는 “반도의 사람들은 홍수와 가뭄 등으로 항시 굶주렸으며 이러한 굶주림이 오히려 음식의 다양성을 가져왔다.”면서 “평소 먹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재료들도 배를 채우기 위해 요리를 하게 되고, 그 음식으로 탈이 나거나 죽지 않으면 새로운 음식재료로 편입됐다.”고 말한다. 즉 한국음식은 전적으로 한국의 자연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음식이란 무엇일까. 황씨는 두 가지 조건을 전제한다. 한국의 자연이 만들어 낸 식재료로 만든 음식이 첫 번째요, 현재 한국 땅에 사는 사람들이 일상으로 먹는 음식이 두 번째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흔히 한국 음식이라고 할 때 수천년간 쌓인 한민족 음식전통이 녹아들어 있을 것으로 여기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지만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한국 음식의 형태는 그리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 않다.”고 말한다. 또 한국 음식을 밝히기 위해 ‘한국 음식을 먹는 사람들’이란 조건을 하나 더 붙이는 저자는 음식에서의 주체는 조리사가 아니라 음식을 먹는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비로소 그렇게 됐을 때 음식은 문화로 인식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향유자가 없는 문화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란다. 하여 한국 음식 그 자체보다 한국 음식을 먹고 있는 한국인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는 특히 “한국의 음식문화를 정리, 체계화했다는 책을 보면 대체로 조리법에 치중돼 있다.”면서 “한국 사람들이 왜 그런 음식을 먹었는지에 대한 고찰이 없어서 진정한 한국의 음식문화를 알리는 일을 해 보고자 책을 쓰게 됐다.”고 부연한다. 10년 전부터 자료 채집을 해 온 결과물이기도 하다. “한국 음식문화를 정리한다는 뜻보다 이 저술 자체가 ‘문화적인 일’이 될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결국 한국 음식을 한국인의 삶속으로 되돌리는 일이라고나 할까요.” 떡과 떡국의 경우 오래전 부족단위의 공동체로 꾸려지던 한민족의 삶과 기억이 녹아들어 있고, 그 삶의 기억을 놓지 않으려는 의지에서 추석과 설 명절에 꼭 해먹는 대표 음식으로 굳어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이 밖에 막국수, 새우젓, 부침개, 도토리묵, 간장과 된장 등의 기원을 추적하고 흔히 외국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소바, 오뎅, 짜장면, 단무지 등이 어떻게 한국음식으로 정착했는지 보여 준다. 저자는 그동안 ‘맛따라 갈까 보다’ ‘소문난 옛날 맛집’ ‘미각의 제국’ 등의 책을 펴냈다. 저자는 다음에는 ‘서울음식’을 주제로 한 책을 펴낼 예정이다. 글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문화마당] 큰들, 소풍, 놀이터/신동호 시인

    [문화마당] 큰들, 소풍, 놀이터/신동호 시인

    지루했던 여름 장마가 지나갔다. 때늦은 매미 소리가 여름의 기억을 자꾸 떠올리게 한다. 곳곳에 산사태가 있었고 또 홍수가 있었고, 느닷없는 불행에 자주 우울했다. 그런 와중에 인편으로 소식 하나를 들었다. 경남 사천의 ‘큰들문화예술센터’ 연습장으로 흙무더기와 아름드리 소나무가 밀려들었다는 얘기였다. 28년 동안 모은 공연 자료들이 그대로 파묻혔지만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그 시간 수십명의 단원들은 연습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이들을 살린 건 평소와 다르게 짖어대던 풍산개였단다. 큰들문화예술센터는 1983년 진주의 몇몇 문화인들이 모여 시작했다. 이들의 마당극은 해외 순회공연에 초청받을 정도의 예술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았고, 풍물 공연은 지역사회의 축제와 애환을 함께하며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귀한 활동은 전통문화교육과 예술캠프 같은 것들이다. 대규모로 구성하는 사물놀이단은 문화를 향유하는 데서 참여하는 데로 변화시키며 시민들의 문화수준을 높여가고 있다. 국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문화교육과 문화체험을 이끌어 가는 이들이야말로 21세기 문화의 전령사가 아닐 수 없다. 한때 영국의 문화정책 입안자들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에 아연실색했다.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였지만 국민들의 일상과는 동떨어진 작가였다. 문화 정책을 정비한 그들은 전국의 시민극단들을 조사했고 극단들이 공연장에 올리는 셰익스피어의 극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뒤에야 시민들은 셰익스피어가 탄생시킨 인물들을 인생의 친구로 여기게 되었다고 한다. 고귀한 문화적 품성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인천의 간석오거리 한쪽 낡은 건물의 지하에는 ‘소풍’이라는 조그만 소극장이 있다. 그 극장의 관장으로 있는 후배의 초청으로 공연을 보러 갔다가 그만 숙연해지고 말았다. 소극장 작은 로비에는 극장을 마련하기 위해 십시일반 지갑을 보탠 시민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거창한 후원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지자체의 까다로운 지원은 근처에 오지도 못했다. 자발적인 힘으로 만들어진 공연장이니 당연, 그들이 보고 싶은 공연에 초청하고 그들이 하고 싶은 공연을 올리는 것에도 자유로웠다. 마흔넷의 노총각인 후배의 삶도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낮 동안 증권회사에서 흘린 땀을 시민들의 문화공간을 위해 온전히 내놓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의 사업 중 중요한 것은 ‘어린이 연극교실’, ‘청소년 연극 캠프’, 시민연극 프로젝트 ‘누구나 연극하자’ 같은 것들이다. 여기에 참여했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흔쾌히 연극공연의 티켓을 구입할 것이라 나는 믿는다. 대학로의 전통연극이 침체기를 걸을 때 연극인들과 문화정책 입안자들이 무엇을 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대학로의 연극을 어쩌면 지방의 작은 소극장에서 살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숨과 더불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실로 문화는 넘치는데 향유는 일방적으로 강요당하는 형편이다. 관객 수를 세면서 자본주의적으로 검열되고, 현란한 치장을 위주로 한 미디어에 묶여 버린다. 거기에 익숙해진 문화는 더 강도 높은 자극으로 치닫는다. 그러다 보니 참여의 공간은 줄어들고 시민들은 문화를 소비하는 객체가 되어버렸다. 그 끝은 무얼까. 시민정신의 무장해제, 혹은 마르쿠제의 말처럼 ‘반대 없는 사회’는 아닐까. 그러면 대안은? 부평구 십정동에 가면 신나는 문화공간 ‘놀이터’가 있다. 수십개의 시민문화동아리가 활동 중인데 월 회비는 1만원. 3명이 모이면 동아리가 되고 ‘놀이터’에서는 따로 비용 없이 강사를 섭외해 준다고 한다. 여유가 없어서, 때론 돈이 없어서 다가가지 못했던 통기타를, 색소폰을, 사진을, 또 꿈을 그들은 여기서 배우고 있다. 큰들, 소풍, 놀이터. 그들이 스스로 문화인이 되어가고 문화의 저력을 키우는 동안 국가는 무엇을 하고 있나. 가을이 오기 전에 산사태로 무너진 그들의 희망이 온전히 복원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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