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역사 인식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앙코르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얼굴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안정성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 정례화
    2026-08-14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2,733
  • [새로운 50년을 열자] 한·일, 북핵 ‘공통 위협’ 인식…과거사·독도에 발 묶인 안보협력

    [새로운 50년을 열자] 한·일, 북핵 ‘공통 위협’ 인식…과거사·독도에 발 묶인 안보협력

    “양국 간 정보보호협정과 군수지원협정을 체결합시다.” (나카타니 겐 일본 방위상) “여건이 충분히 조성돼야 합니다. 북한은 대한민국 영토입니다. 자위대가 북한에 대해 군사적 행동을 할 때도 우리 정부의 사전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 “지금 이 자리에서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나카타니) 지난 5월 30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열린 한·일 국방장관 회담은 양국 안보협력 관계의 현 수준을 그대로 드러냈다. 양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라는 공통의 위협을 안고 있다. 하지만 과거사 문제와 독도 영유권에 대한 인식 차이는 안보협력의 가장 큰 걸림돌로 꼽힌다. 한·일 안보협력의 초석을 쌓은 시기는 1998년 2월 출범한 김대중 정부 때로 평가된다. 김대중 정부는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남북 화해와 교류협력을 기조로 삼아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협력을 얻고자 했다. 일본 측도 1998년 8월 북한이 발사한 대포동미사일이 일본 본토 상공을 지나 태평양 쪽으로 떨어지자 미국과 미사일방어(MD) 체계 공동 개발에 착수한다는 결정을 내렸고 한국과도 안보협력을 촉진할 필요성을 인식했다. 김 대통령과 당시 오부치 게이조 일본 총리는 1998년 10월 미래지향적인 한·일 파트너십을 선언했다. 이를 계기로 양국 간 장관급, 실무 국장급, 작전부대들의 교류와 공동 훈련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1999년 8월 일본 규슈와 한국 해역에서 양국 해군 함정들이 참가한 최초의 수색 구난 공동 훈련(SAREX)이 시작됐다. 양국은 격년으로 2013년까지 이 훈련을 총 8번 실시했다. 양국 국방 당국은 1999년 5월 해군과 공군의 작전사령부 간 직통전화(핫라인)를 구축했다. 김대중 정부는 이 같은 안보협력을 제도화함으로써 대북 화해협력 정책에 대한 일본 측의 이해와 협력을 얻어 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당시 일본과 역사 및 영유권 문제로 인한 갈등이 잔존했음에도, 정부가 절제된 메시지를 통해 일본 측의 시정을 요구하면서 안보협력을 진전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정부도 한·일 안보협력 관계를 격상시키고자 했다. 양국 국방 당국은 2011년 1월 정보보호협정(GSOMIA)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 체결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켰고 2012년 6월에는 일본 측과 이 협정에 공동 서명하려는 단계에 이르렀다. 우리 군 당국으로서는 일본과 북한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는 취지하에 정보보호협정을 추진했다. 상호군수지원협정은 유엔평화유지군 활동 시 군수물자를 상호 보완하는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밀실 추진 논란과 함께 국민 여론에 부딪혀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12월 미국을 매개로 북한 핵과 미사일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한·미·일 정보공유약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중국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강화하면서 얻는 이익이 일본과의 안보협력보다 더 크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현재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한·중 관계가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라고 해서 한국이 안보 문제에서 중국과 공조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북한의 공격 등 한반도 유사시 미군 증원 전력이 일본의 유엔사 후방기지를 통해 한반도로 들어온다는 점에서 한·일 안보협력은 여전히 중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는 2일 “일본이 군국주의로 회귀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일본과의 군사협력이 위험하다는 부정적 시각이 생겼다”며 “일본은 다시 군사대국화를 추구하거나 동아시아의 패권국가로 회귀할 자원과 능력이 부족하고 미국도 이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달 22일 일본 교도통신이 일본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일본의 군사력 보유와 교전권 등을 부인하는 평화헌법 개정에 대해 응답자의 60%는 ‘현행대로 존속해야 한다’고 답했다. ‘바꿔야 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32%에 그쳤다. 이는 아베 신조 정권이 집단자위권 행사 등을 담은 안보법제를 개정했지만 일본 국민들은 여전히 평화의 중요성을 갈구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문제는 한·일 안보협력이 한·미·일 3국의 안보협력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우리 정부가 처한 대외적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미동맹과 미·일동맹을 모두 관리하고 있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아시아·태평양 재균형 전략을 추진하고 한·일이 동맹으로서 이 역할의 일부를 담당해 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일본은 미국의 이 같은 기대를 바탕으로 집단자위권 행사를 합법화하는 길을 열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의 눈치를 모두 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현재와 같이 미국을 매개로 한·미·일 안보협력을 지속하되 중국을 자극하지 않도록 북한에 대한 억제력, 비전통안보 이슈 위주로 안보협력을 진행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종훈 기자 artg@seoul.co.kr
  • [열린세상] 광복 70주년, 무궁화/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열린세상] 광복 70주년, 무궁화/윤영균 국민대 특임교수·전 국립산림과학원장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년이 되는 해다. 그래서 연초부터 통일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높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사를 통해 “금년에 분단 70년을 마감하고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통일의 길을 열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김정은 또한 “올해 한민족이 힘을 합쳐 자주 통일의 대통로를 열어 가자”고 했다. 전 국민이 광복 70주년이라는 뜻깊은 한 해의 시작과 더불어 통일의 기운이 다시 싹트길 소망했다. 그러나 북한이 보여 주고 있는 모습을 보면 통일을 위한 진정 어린 대화 의지가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발표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민족의 동질성은 정치·사회·문화 등 사회 전반적으로 유사성이 높을 때 유지되는데, 남북한 주민 간 이질화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한다. 이는 70년간 단절돼 왔기 때문이다. 해마다 광복절이 다가오면 우리가 ‘한민족’임을 깨닫고 통일 의지를 다지는 다채로운 행사들이 열린다. 그럴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나라꽃 무궁화’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무궁화라는 꽃 자체도 잘 모른다고 한다. 무궁화는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있었을까. 중국 춘추전국시대 지리서인 산해경(山海經)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한반도에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군자의 나라에 훈화초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之國 有薰花草 朝生暮死)라는 부분이 있다. 군자국은 우리나라를 가리키며, 훈화초는 무궁화의 옛 이름이다. 또한 신라 효공왕 때 당나라에 보낸 국서(國書)에도 우리나라를 근화향(槿花鄕) 곧 무궁화의 나라라고 했다. 고려시대에도 무궁화는 전 국민으로부터 사랑을 받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조선 세종 때 강희안이 쓴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도 “우리나라에는 단군이 개국할 때 무궁화(木槿花)가 비로소 나왔기 때문에 중국에서 우리나라를 일컬어 ‘무궁화의 나라’(槿域)라 말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무궁화는 오래전부터 우리 민족의 삶에 뿌리를 내렸던 것이다. 물론 무궁화가 늘 사랑 속에 자란 것은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에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사랑을 받는 꽃이라는 이유만으로 심한 배척을 당했다. 일제는 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선다고 해서 ‘눈의 피 꽃’이라고 하거나 손에 닿기만 해도 부스럼이 생긴다 해서 ‘부스럼 꽃’이라고 했다. 심지어 보이는 대로 뽑아 없애 버리기까지 했다. 이런 고난에 맞서 애국지사들은 무궁화에 대한 애정을 키워 국민들에게 광복의 희망을 주었고 민족정신을 일깨웠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연설 때마다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 외쳤다. 애국가의 후렴에는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이라는 구절이 들어가며 나라꽃으로 인식됐다. 민족 교육자인 남궁억 선생은 강원도 홍천에 보리울 학교를 세워 민족 역사 교육에 집중하면서 직접 무궁화 묘포장(苗圃場)을 만들어 해마다 수만 그루의 묘목을 전국에 보급했다. 무궁화는 고조선 이전부터 우리 민족의 기쁨과 슬픔의 순간을 함께했다. 이런 무궁화를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 시절 애국지사들이 우리 민족의 상징으로 삼은 것은 당연한 결과다. 정부를 대표하는 각종 문서의 문양, 대통령 휘장, 국회의원 배지 등이 모두 무궁화 모양인 것만 봐도 ‘무궁화’는 곧 ‘대한민국’ 그 자체다.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어느 해보다 다양한 무궁화 관련 행사들이 열린다. 산림청과 각 지자체는 천안 독립기념관을 비롯해 홍천, 수원, 완주, 무안 등에서 ‘광복 70주년 나라꽃 무궁화 큰잔치’를 개최한다. 이를 위해 국립산림과학원은 국내외 100여 종의 무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무궁화 분화(盆花) 수백 점을 독립기념관 내 광복의 큰 다리 주변에 전시한다. 무궁화의 꽃말은 ‘일편단심’이다. 많은 시련을 겪어 오면서도 끝내 은근과 끈기로 극복해 온 우리 민족처럼 무궁화는 새벽 누구보다 먼저 꽃망울을 터뜨리고, 여름의 타는 듯한 더위를 이겨 내며 무궁(無窮)한 수천 송이의 꽃을 피워 우리 민족에게 희망을 보탰다. 광복과 분단이라는, 그 영광과 슬픔의 70년 시간 속에서 민족의 기쁨과 아픔을 함께해 온 무궁화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되새기며 백두에서 한라까지 무궁화 꽃이 만발한 한반도 통일의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 [정병석의 경제산책] 신상필벌과 법치국가

    [정병석의 경제산책] 신상필벌과 법치국가

    신상필벌은 공로 있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주자는 원칙이다. 공과에 따른 상벌을 시행해 공정한 사회를 만들자는 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까. 법치국가에서 법을 엄정하게 집행하자는 주장을 반대할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이런 기본적 질문에도 확신을 갖고 대답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불행히도 우리에게는 엄정한 법 집행이나 신상필벌을 경시하는 오랜 역사가 있다. 조선 성종 때 극심한 가뭄이 계속되자 조정에서 금주령을 내렸는데 어떤 재상이 이를 어기고 술을 마셨다. 임사홍이 경연에서 재상도 법을 어겼으면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승지들이 “‘재상도 금령을 범한 자는 반드시 벌하여 용서함이 없어야 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상앙(商?)의 정치와 같은 것이니, 어찌 유학자가 할 말입니까”라고 하면서 임사홍을 처벌하라고 반발했다. 훌륭한 정치가였던 성종 임금이 임사홍을 적극 보호함으로써 이 일은 무마됐다고 한다. 백성이 법을 어기면 엄벌에 처해야 되지만 재상이 어긴 것을 처벌하자고 하면 그 주장하는 사람을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 올바른 논리인가. 성리학을 교조적으로 신봉하는 조선 사대부 관료들의 법치 인식은 편협하게 치우쳐 있었다. 신상필벌의 법 제도를 엄정하게 시행해 변방 국가에서 급속하게 강대국이 되고 천하통일을 이루어 낸 대표적인 사례가 진나라다. 500년 넘게 지속돼 왔던 춘추전국시대를 마감하며 통일을 이룩한 진나라는 법치행정과 신상필벌의 성공 사례다. 춘추전국시대는 공자, 맹자, 순자, 장자를 비롯한 제자백가가 활동하던 시대로 그야말로 다양한 경세이론과 특출한 사상가들이 넘쳐나던 시대였다. 상앙과 한비자가 대표하는 법가는 다른 사상가들, 특히 유학자들과는 달리 강력한 국가는 군주의 도덕성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신상필벌의 법 제도와 엄격한 시행으로 만들어진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성공 사례를 만들었으나 조선의 사대부 유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과 다른 이론이나 사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이단으로 매도했다. 신상필벌과 법치행정을 토대로 한 부국강병론도 마찬가지였다.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외적의 침략에 대비하기 위해 강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의 당연한 책무인데, 조선에서는 유학의 원리에 어긋난 정책이라고 비판한다. 조선왕조실록에서 ‘부국강병‘을 검색하면 38건이 나온다. 주로 송나라 왕안석의 신법개혁이나 상앙의 법가와 연계해 왕도정치의 이념과는 맞지 않는다는 내용으로 기술돼 있다. 태조에서 성종 때까지 10회가 언급되고 중종 때 10회, 그리고 선조 이후에는 18회가 나온다. 대표적인 사림파 개혁론자인 조광조는 부국강병을 인의에서 벗어난 패술이라고 매도한다. 지금도 우리 사회에는 법과 원칙이 잘 지켜진다고 보기 어렵다. 사회적 약자는 법을 어기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더라도 묵인해 주자는 동정론이 생기는 한편 관행화된 정치적 특별사면으로 재벌, 정치인 등 힘센 집단들은 온갖 편법을 동원해 적당히 법을 회피한다. 그러니 법의 권위가 없고 법치행정이 되지 않는 것이다. 나라가 발전하려면 무엇보다도 법의 권위를 세우고 신상필벌의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능력과 실적에 의거하지 않고 지역이나 집단 간 적당히 안배해 좋은 것이 좋다는 식으로 나누는 것은 잘하려는 의욕을 저해하고 잘하는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는 후진적인 문화다. 잘하는 사람에게 상을 주고 잘못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는 것은 경제활동을 촉진하는 명확한 인센티브 제도인데 법치도 제대로 못하고, 신상필벌도 확립되지 않고 어찌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성과급이란 업무성과를 측정해 성과를 많이 낸 근로자에게는 많은 임금이나 상여금을 주고, 성과가 적은 근로자에게는 적게 주자는 것이다. 성과에 따라 임금을 주자는데 왜 우리나라 노조는 반대할까. 우리가 직면한 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특별한 대책을 모색하기 이전에 기본으로 돌아가 반드시 해야 할 원칙부터 제대로 지키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11]=항생제의 두 얼굴(1)

     만약에 항생제가 없었다면 아마 인류는 멸종했거나, 지금처럼 ‘만물의 영장’이라는 지배적인 위상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이 아무리 지혜롭고, 강인하다 해도 주변에 너무나 많이 있으면서도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냄새가 나거나 소리를 내지도 않는 유령같은 침략자들을 감당할 길이 없으니까요. 우리에게 익숙한 항생제의 대척점에 있는 존재, 바로 세균(germ)입니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비교적 가까운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콜레라가 한번 창궐하면 전국에서 한꺼번에 수만명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멸종’을 떠올릴만큼 전율을 느끼게 하지 않습니까. 멀쩡하던 사람이 픽픽 자빠져 나가는데, 대책은 없으니 엉뚱하게도 무당을 불러 굿을 하거나 부적을 만들어 위기를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렇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요.  ‘도성 한양에는 괴질로 죽은 사람의 시체가 도성 성벽보다 높게 쌓였으며, 그나마 살아남은 사람들은 굶주림에 내몰려 아버지가 아들을 죽여서 그 살을 먹고, 아들이 늙은 부모를 잡아먹고 연명을 했다’는 기록이 이수광의 지봉유설에도 전하거니와 이를 어찌 전쟁의 참화에 비기겠습니까.   ●세균이 왜 무섭나고요?  카이스트 한국과학문명사연구소 신동원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조선 영조 연간인 1730년에 수도 한양 일대에 역병이 퍼져 무려 1만 명이나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당시 한양 인구가 20여만 명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스무 명 중 한 명은 숨진 셈이지요. 이 역병은 홍역으로 추정되는데, 홍역이야 바이러스가 원인이니 그렇다 치고, 일반적인 세균에 의한 대표적 질병인 콜레라는 어땠을까요.  역시 신동원 박사의 저서인 ‘호열자, 조선을 습격하다’에 따르면, 콜레라(세균 모양은 사진 참조)가 처음 조선에서 유행한 것은 1821∼1822년으로, 사서에는 ‘신사년 괴질’로 기록돼 있습니다. 1821년(순조 21년) 8월 13일 평안도에서 올라온 장계에 따르면, “설사와 구토를 한 후 비틀리면서 순식간에 죽어버렸고, 열흘 안에 1000여 명이 죽었는데, 병에 걸린 10명 중 한둘을 빼고는 모두 죽었다.”고 했습니다. 이 괴질의 특징은 ‘심한 설사와 탈수로 인한 쇼크’였답니다. 또 “전염되는 속도가 불이 번지는 것과 같다”고도 했습니다. 심노숭의 ‘자저실기’에는 그 전파 속도를 “바람처럼 일어나 조수처럼 퍼져 항우의 군대가 휩쓸고 지나가는 것보다 더 빨랐다”고 표현하고 있지요. 이 콜레라 유행으로 수십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콜레라는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유행을 했는데, 1858년 유행 때는 50여만 명이 죽었고, 1886년, 1895년에도 수만 명의 희생자를 냈습니다.  다산 정양용은 이 신사년 괴질에 관한 기록을 ‘목민심서’에 남겼는데 “도광 원년 신사년 가을에 이 병이 유행했다. 10일 이내에 평양에서 죽은 자가 수만 명이요, 서울 성중의 오부에서 죽은 자가 13만 명이었다. 증상은 혹 교장사(攪腸沙) 같기도 하고 전근곽란 같기도 한데, 치료법을 알 수 없었다.”라고 적었습니다. 이 정도면 ‘시체가 도성 성벽보다 높게 쌓였다’는 기록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콜레라가 어찌 그 때에서야 처음 나타났을까만, 남아있는 기록은 많지 않습니다. 괴질 정도로만 기록된 것도 있어 정확한 병명은 추정할 뿐인 사료도 있고, 잃어버린 자료도 무척 많으니까요. ●도대체 얼마나 죽었길래…  우리나라에서 콜레라는 1660년 이후 집중적으로 발생합니다. 위력이 어느 정도였냐 하면 국가 인구통계를 바꿀 정도였습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79차례의 역병 기록이 전하는데, 이 중에서 한번에 10만명 이상 죽어나간 경우도 여섯 차례나 됩니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2005, 청년사)에 따르면, 어떤 해에는 전국에서 50만명 이상이 사망했는데 이는 전체 인구의 7∼8%나 되는 규모였습니다. 요즘 인구로 치자면 350만∼400만명쯤 되는 수치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염병으로 나자빠지니 인구 동향에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지요. 1807년 조신 인구는 756만 1463명으로 집계됐는데, 이후 역병이 집중적으로 돌아 28년 뒤인 1835년에는 661만 5407명으로 잡힙니다. 약 100만명 정도가 줄었는데, 이 기간에 큰 전화가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역병과 이에 따른 기근이 원인임을 쉽게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정도의 인구 감소는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때보다 큰 규모이지요. 조선왕조실록은 “구할 방도가 없다”는 기막힌 기록으로 그 때의 참상을 전하고 있습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많은 사람이 ‘인류 최대의 재앙’으로 기억합니다. 당시 프랑스에 주둔 중이던 미군 병영에서 시작된 독감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요. 이 바이러스가 제 1차 세계대전 참전병들이 귀환할 때 옮겨져 이후 한 달만에 미군 2만 4000명을 포함해 미국에서만 50만명이 죽어나갔으며, 이듬해에는 영국에서만 15만명이 죽는 등 이후 2년 동안 전 세계에서 최대 5000만명이 죽었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도 740만명이 감염돼 이 중 14만명 가량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 때 유행한 바이러스가 요즘 자주 듣는 ‘H1N1’형인데,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정이 이러니 항생제의 발견이 인류 문명에서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지 새삼 생각하게 됩니다. ●세균이 있는 곳에 항생제가 있다  아무튼, 파스퇴르가 세균의 실체를 알아내 현대 의학의 기틀을 다진 이후 인류는 귀신이나 마귀의 장난이라고 여겼던 이전의 무지몽매한 전염병 인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지만, 파스퇴르가 이룬 과학적 업적이 우리나라로 전파돼 괴질이 귀신의 장난이 아니라 세균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우치기까지 한 세기가 넘는 세월이 지나야 했습니다. 우리가 흔히 특정 질병의 예방책으로 활용하는 백신(vaccine)이라는 말은 파스퇴르가 예방용 접종을 위해 세균으로 만든 약을 뜻하며, 예방접종을 ‘vaccination’이라고 말하는 것도 여기에서 유래합니다. 물론, 그 전에 제너가 종두법을 개발해 인류를 천연두의 공포에서 구했지만, 임팩트가 파스퇴르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이후 수많은 세균들이 속속 실체를 드러냈고, 인류는 이런 세균들을 제압할 약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인류 역사를 통해 가장 많이 처방되고 사용된다는 항생제입니다. 어떻게 해서 ‘생명체에 맞선다’는 뜻의 항생제라는 이름이 붙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영국의 알렉산더 플레밍이 페니실린이라는 이름의 항생제를 만들어 제 1차 세계대전 중에 부상을 당한 군인들을 치료하기 시작한 이후 ‘항생제의 역사’가 곧 ‘문명의 역사’가 되었습니다. 이런 항생제가 본격적으로 질병 치료에 사용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쟁은 인명 살상 뿐 아니라 각종 세균을 전파하는 매개가 되기도 했으니까요.  이후, 항생제는 그 위력만큼 엄청난 속도로 진화를 거듭합니다. 세균이 세포분열을 할 때 세포벽을 만들지 못하게 함으로써 항균작용을 하는 페니실린류에서 시작해 세팔로스포린류,병원균의 단백질 합성을 억제하도록 만들어진 아미노글리코사이드류와 테트라사이클린류, 세균의 DNA에 작용하는 약제로 오늘날에도 흔히 사용되는 퀴놀론류 등 병원성 세균의 특성에 맞춘 다양한 항생제가 속속 계보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이런 항생제들은 매독을 비롯해 디프테리아, 결핵, 콜레라와 장티푸스 등 수많은 질병으로부터 인류를 지켜왔지만, 문제가 없지 않았습니다. 바로 내성균의 출현입니다.  [다음 주에 게재될 ‘항생제의 반란-2’에서 계속됩니다.]  jeshim@seoul.co.kr
  • 중세 건축물·모더니즘… 명저로 미술사 들여다보기

    중세 건축물·모더니즘… 명저로 미술사 들여다보기

    미술사를 만든 책들/리처드 숀·존 폴 스토나드 엮음/김진실 옮김/아트북스/448쪽/2만 5000원 학문의 역사는 저서들의 출간과 그 수용을 통해 발전해 왔다. 미술사 또한 예외가 아니다. 영국 미술 잡지 ‘벌링턴 매거진’ 편집장인 리처드 숀, 미술사가 존 폴 스토나드가 엮은 ‘미술사를 만든 책들’은 흩어져 있는 수많은 예술가와 그 작품들을 의미 있게 꿰어 낸 명저들을 통해 미술사 읽기를 제안한다. 책은 19~20세기 발간된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사 저서 가운데 16권의 책에 대한 에세이집이다. 선도적 연구를 이끌어 온 일군의 학자들과 큐레이터들이 집필한 에세이들은 주요 저작들을 재평가함으로써 미술사 독서를 위한 일종의 로드맵을 제시한다. 각 에세이는 해당 저서가 미술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고려하면서 책들이 탄생한 사회적 배경과 글이 쓰인 방식, 저자의 지적 발전 과정, 당대 맥락에 수용된 과정, 후대에 미친 영향과 현재적 의의까지 살피고 있다. 수록된 책들이 다루는 주제는 중세 건축물에서 비잔틴 도상학, 마티스, 포스트모더니즘 등으로 다양하다. 가장 오래된 책은 1898년 처음 출간된 13세기 프랑스 예술에 대한 에밀 말의 연구 ‘13세기 프랑스의 종교 예술-중세 도상학과 그 영감의 원천에 대한 연구’다. 프랑스 고딕 대성당의 의미를 당시의 미사전례 문헌들과 연관해 밝혀냈고, 도상학적 접근법을 처음으로 미술사 연구에 접목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다. 1903년 출간된 버나드 베런슨의 ‘풍부한 카탈로그 레조네를 통해 토스카나 예술의 역사와 인식의 문헌으로서 피렌체 화가들의 드로잉을 분류, 분석, 연구하다’(1903)는 르네상스 드로잉에 관한 한 우선적으로 참고해야 할 문헌으로 꼽힌다. 이 밖에 스위스 출신의 미술사가 하인리히 뵐플린의 책 ‘미술사의 기초개념’(1915), 독일 출신 건축사가 니콜라우스 페브스너의 ‘모더니즘 운동의 선구자들’(1936) 등 명저들이 소개된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시론] ‘머나먼 다리’ 건너 있는 한국의 지배구조/최중성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원장

    [시론] ‘머나먼 다리’ 건너 있는 한국의 지배구조/최중성 한국기업지배구조원 부원장

    자본시장의 역사와 함께했지만 투자자의 관심을 그다지 끌지 못했던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가 최근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을 계기로 세간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외국 투자자에게 우리나라에 투자할 때 고려하는 위험 요인에 대해 물으면 대부분 경영의 불투명성과 부실한 이사회 등 지배구조의 후진성을 지적한다. 일반적인 예상과 달리 ‘기술력 부족’이나 ‘남북 대치’라는 특수한 상황이 아닌, 기업 지배구조 문제를 먼저 지적하는 것이다. 기업 지배구조 전문평가기관인 아시아기업지배구조협회(ACGA)의 평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아시아 11개국 중 8위로 태국과 인도보다도 후진적 지배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선진국에 뒤지지 않는 훌륭한 제도를 갖추고 있음에도 제도가 원래의 목적대로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발생한 KB 사태, 현대차 본사 부지 매입 건, 대한항공 땅콩회항 사건 모두 전형적인 지배구조의 낙후성에 기인해 발생한 사례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은 이 사례들과 차원이 다른 중·장기적 파급 효과가 예상되는 만큼 국내적인 시각이 아니라 국제시장의 기준에 맞춰 객관적으로 시사점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합병 목적, 합병 비율, 이사회의 견제 기능, 엘리엇의 합병반대 의사 표명 이후 삼성의 대응 등 국제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한 채 진행된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았다는 얘기다.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 봤을 때에도 많은 교훈을 제공한다. 우선 삼성은 합병의 목적을 양 사의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의 극대화라고 주장하나 실질적으로는 자연스러운 경영권 승계가 주된 목적임을 부인할 수 없다. 본질이 이런데도 삼성 측은 현실화를 담보하기 어려운 미래 가치를 부각시키고, 지배주주 일가에 큰 혜택이 되는 경영권 승계 시 문제점과 비판적 시각을 피하려고만 하고 있다. 또한 이번 합병 건에서 가장 논란이 된 합병 비율의 경우도 법적인 문제는 아니지만 외국인 지분이 33%를 넘은 상태로 이미 글로벌 기업의 범주에 속해 있으면서도 외국인 주주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지 못하는 실수를 범했다. 예를 들면 외국에서는 합병 시 양사의 주가뿐만 아니라 자산가치도 고려하는데 이에 대한 배려가 부족했다. 국내법에서도 시가에 의한 합병 방식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계열사 간 합병의 경우 10% 범위에서 합병가액을 조절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다. 지배구조 모범 규준에 제시된 이사회의 역할 측면에서도 문제가 있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본격적으로 논의한 시간이 짧아 삼성물산 이사들이 합병의 실익을 제대로 검토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도 이사회의 경영 견제 기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흠결로 지적될 수 있다. 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 추세를 보이는 가운데 경영진이 주가 안정을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보기 어려운 점 등도 삼성물산 경영진이 주주들의 이익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하지 않았다고 여겨지는 이유다. 특히 엘리엇의 합병 반대 의사 표명 이후 삼성의 대응 과정 역시 아쉬운 점이 많았다. 이 기업이 국내 굴지의 대기업인 삼성이 맞나 싶을 정도로 의심스러운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상호 간 협의를 통해 엘리엇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책을 마련할 시간적 여유를 가졌어야 했다는 얘기다. 또 법이 보장한 주주권을 행사하는 주요 주주를 초반부터 ‘국제 투기꾼’이나 ‘먹튀 기업’으로 몰아 가면서 전면전을 선포함으로써 엘리엇의 퇴로를 차단한 것도 지적할 만하다. 이 점은 두고두고 추후 글로벌 기업 삼성의 발목을 잡을 것으로 우려되는 대목이다. 또 합병에서 야기되는 문제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고 헤지펀드 개입을 예측할 수 있었음에도 대비책이 부족했었다는 점은 비록 합병이 성사됐다 하더라도 꼭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안이다. 앞으로 삼성물산 출범을 위한 움직임이 분주히 진행될 것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개인투자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개별 접촉을 통해 한 표 한 표 모았을 때의 절박함을 새겨 국제사회에 모범이 되는 주주 친화 정책을 향후 시행하길 바란다.
  • [사설] 세계 지식인 지탄받은 아베의 과거사 왜곡

    한국과 일본, 미국, 독일 등 여러 나라의 지식인 524명이 아베의 과거사 왜곡에 반대하는 공동 성명을 그제 서울에서 냈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등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뿐 아니라 놈 촘스키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와 볼프강 자이테르트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 교수 등 미국과 유럽의 지식인도 다수 이름을 올렸다. 성명은 ‘한국 병합 100년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 발기위원회’가 주도한 것이다. 발기위원회는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 한 세기를 맞은 2010년 병합조약이 무효라는 내용의 성명을 낸 적이 있다. 당시에는 한·일 지식인 1100명이 참여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역사학자를 중심으로 하는 구미의 석학 37명이 동참한 것이다. 제2차 아베 내각이 출범한 2013년 이후 일본의 우경화 역주행이 당사국을 넘어 전 세계적인 우려를 낳고 있다는 방증이다. 공동 성명은 “과거는 공개하고, 사죄하고, 용서하여 극복되는 것”이라면서 “아베 총리는 과거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배에 대해 진정한 반성과 사죄의 뜻을 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아베가 무라야마 담화 이래 식민지배 반성 노력을 역전시키려 하고, 우파 정치가들이 역사 연구라는 이름으로 거짓 역사를 확산시키고 있는 것은 역사의 역류라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의 한국 강제 합병 조약이 체결 당시부터 무효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성의를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한국인 강제 노역도 ‘합법적 식민지배 정책’이라는 주장이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것을 전 세계 지식인의 이름으로 국제사회에 공표한 것이다. 그러니 성명이 “일본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신속히 나서야 하고, 탄광에서의 강제 노동을 명확히 인정해야 한다”고 촉구한 것은 당연하다. 아베는 자신의 과거사 인식이 왜 세계 지식인들로부터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지 직시해야 한다.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비뚤어진 역사 인식이 20세기에 그랬듯 이웃 국가는 물론 전 세계를 다시 한번 처참한 고통 속에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심각한 우려 때문이다. 그럼에도 8월에 발표될 예정이라는 아베 담화는 가해 사실은 인정하되 피해자의 아픔은 인정치 않는 방향이 될 것이라고 하니 딱한 노릇이다. 세계 지식인들은 아베가 양심적인 국제사회의 리더가 돼 달라고 당부한 것이 아니다. 다른 나라를 배려하는 최소한의 양식을 되찾으라고 충고한 것이다.
  •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8주년 기념식…눈물 흘린 이용수 할머니

    미 하원 위안부 결의안 8주년 기념식…눈물 흘린 이용수 할머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87) 할머니는 어느 순간부터 고개를 들지 못했다. 28일(현지시간) 한인 풀뿌리 시민단체 시민참여센터와 마이크 혼다(민주) 하원의원이 워싱턴DC 레이번 의원회관에서 개최한 미 하원의 일본군 위안부 결의안(HR 121) 채택 8주년 기념식에서 위안부를 다룬 영화 ‘귀향’이 상영되자 눈시울을 붉혔다. 결의안 채택을 주도한 혼다 의원은 결의안을 낭독한 뒤 연설에서 한국어로 ‘위안부’와 ‘성노예’를 말하며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며 “아베 정권은 위안부를 부정하는 역사 교과서 왜곡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 할머니는 한국 국회의원들이 정당외교 활동을 위해 워싱턴을 방문 중인 것과 관련해 “한국 정치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며 위안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일 것을 요청했다. 혼다 의원과 함께 행사에 참석한 빌 파스크렐(민주) 하원의원은 위안부 문제를 제기하는 일이 “보복이 아니라 진실을 인식하는 것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애덤 쉬프(민주) 하원의원은 “위안부 문제가 일본에 의해 완전하게 인정 받고 미국인, 그리고 전 세계 사람들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범죄 행위를 이해할 때까지 피해자들의 싸움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디 추(민주) 하원의원은 “아베 총리가 미 의회 합동연설에서 사과하지 않았다”고 지적한 뒤 “아베 총리가 사과할 때까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지지는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 사진 워싱턴 김미경 특파원 chaplin7@seoul.co.kr
  • [사설] 日 강제징용 몽니에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나

    일본 대기업 미쓰비시 머티리얼이 한국인 강제 징용자에 대한 사과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범 기업인 미쓰비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자사에서 강제 노역을 한 중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사과와 함께 피해 보상을 하겠다고 했다. 그에 앞서 미군 포로의 강제 노역에 대해서도 사과한 이 회사는 앞으로 영국, 네덜란드, 호주의 전쟁 포로에게도 사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런 편파적인 태도를 지켜보다 못한 국내 시민단체들이 연대해 미쓰비시 제품 불매 운동에 나섰다. 시민단체들은 국민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전달하고,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발주 사업에도 미쓰비시가 참여하지 못하도록 촉구할 계획이다. 미쓰비시가 중국인 보상에 돌연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 정치외교적 셈법에 따른 결과임은 여러 정황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9월 시진핑 주석의 방미 전에 중·일 정상회담을 추진하는 일본 정부로서는 미쓰비시의 사과 제스처를 십분 활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법하다. 과거사 부정, 집단자위권법 강행 등으로 악화된 국제 여론을 달래는 방편으로도 유효한 데다 민간기업 차원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부담도 덜했을 것이다. 현재 미쓰비시는 일본강점기 때 강제 노역한 한국인 피해자들과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사과를 통해 강제 동원을 인정하면 재판에 악영향이 미칠 것이므로 한국인을 논외로 밀어내려는 속내도 빤히 읽힌다. 그렇다고 일본 정부와의 교감이 전제됐을 미쓰비시의 이중적 태도를 두고 볼 수만은 없다.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고 주장하며 식민지 국가의 국민을 강제 노역시킨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역사 인식은 제동이 걸려야 마땅하다. 미쓰비시의 사과 행보에는 일관된 논리가 없다. 한국인을 애초에 편파적으로 대우하려는 의도가 짙다. 과거 한·일 청구권 협정이 있었다는 이유로 우리 정부는 강제 징용 사과와 보상 문제를 재론하기 난감해하는 눈치다. 외교 마찰은 최소화해야 하겠지만 국민들이 불매 운동까지 나선 마당이라면 뒷짐만 지고 있을 사안이 더는 아니다. 일제 강제 징용은 우리에게 결코 민간 차원의 문제일 수 없다. 일본 정부의 역사 인식과 완전히 판박이인 미쓰비시가 스스로 도의적 책임을 질 가능성은 앞으로도 전무해 보인다. 한·일 관계를 멀리 내다보고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가 엄중한 해결 의지를 보여야 한다.
  • [열린세상] 미래창조가 곧 후손들의 역사이다/소진광 가천대 대외부총장

    [열린세상] 미래창조가 곧 후손들의 역사이다/소진광 가천대 대외부총장

    인간을 다른 생물과 구분 짓는 기준은 관점에 따라 다를 것이다. 모든 존재의 차별성과 유사성은 마치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다. 인간도 이러한 사슬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역사인식에서 다른 동물과 확연히 구분된다. 역사는 단순히 시간상으로 지난 일과 상황의 다발(묶음)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과 미래의 개연성을 이어 주는 고리이다. 역사인식에서 과거의 사실에 대한 설명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미 지난 과거 자체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과거의 사실이 현재를 통해 미래로 이어질 가능성의 탐색이다. 역사를 특정 시점의 정태적 상황으로 한정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역사인식은 단순히 과거를 기억하고, 과거에 학습한 행태를 반복하는 것과는 다르다. 역사인식은 단순히 과거를 설명하기 위한 ‘틀’에 그치지 않고, 과거 경험을 현재 관점에서 미래로 이어줄 수 있는 교훈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시간 흐름을 역사라고 하지는 않는다. 모든 존재는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그러나 유독 인간은 과거를 현재의 관점에서 미래로 투영할 수 있는 인식능력을 타고났다. 인간에게 있어서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사실 자체가 아니라 과거를 현재의 관점에서 미래로 전환하기 위한 ‘도구’인 셈이다. 시간 흐름을 조절할 수 있는 ‘도구’를 갖추지 못한 인간에게 미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즉, 미래를 도모할 수 없는 역사는 죽은 과거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를 단순히 지난 시간 흐름에서 존재했던 사실로만 기억한다면 인류문명의 발전을 설명할 수 없다. 설명할 수 없는 과정은 미래에 아무런 소용이 없다. 따라서 바른 역사인식은 정확한 과거의 사실 설명과 도모하고자 하는 미래를 이어 주는 중요한 ‘연결고리’이다. 즉, 미래를 염두에 두지 않는 역사인식은 인간을 다른 생물집단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 메르스 때문에 주춤했던 해외여행이 요즘 다시 늘고 있다. 해외여행을 다녀온 많은 사람은 외국의 유물과 유적의 장대함과 화려함에 감탄한다. 이집트, 이탈리아, 그리스의 고대 유적을 둘러본 사람들은 흔히 그들 국가가 조상들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정작 여행객 눈앞에 나타난 장엄하고 화려한 유물과 유적은 엄청난 시간의 흐름을 간직하고 있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기원전 8세기에 시작해 서기 395년 동·서로 양분되기까지 고대 로마제국은 1200여년의 시간 동안 존재했다. 세계 최대의 석조건물인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고대 이집트의 제3왕조 때부터 제5왕조 때까지 지어졌다고 하니 300여년이란 시간의 차이를 지니고 있다. 불국사도 528년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화려했던 백제의 유물과 유적도 특정 시점의 전유물이 아니다. 유물과 유적을 원형대로 복원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서 지난 사실을 설명할 수 있고, 이러한 설명이 다가올 미래에 주는 교훈도 클 것이다. 문제는 원형을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불국사의 역사적 가치가 528년 창건 당시의 원형에만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시대별로 덧칠되고 가감된 과정 자체가 과거를 미래로 연결하기 위한 ‘고리’인 것이다. 단순한 과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재를 통해 미래로 이어지는 역사인식이 중요한 것이다. 1900여년 전 지어진 로마의 콜로세움이 부러우면 지금부터 1900여년 후의 미래세대에게 보여 줄 수 있는 콜로세움 같은 유적을 남겨 줘야 한다. 1400여년 전의 백제문화를 원형대로 복원할 수 없어 안타깝다면, 1400여년 뒤의 세대가 현 세대처럼 후회하지 않고도 이 시대를 찬양할 수 있는 문화를 일구고 물려주어야 한다. 역사는 과거를 설명하고 미래를 설계하는 것이다. 과거의 사실만을 고집하지 않고 현재의 관점에서 과거를 미래로 이어줄 수 있는 연결고리를 찾는 것이 올바른 역사인식이다.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는 시간 흐름보다 현재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시간 흐름이 더 중요하다. 되살릴 수 없는 과거에 집착하기보다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역사인식과 다음 세대를 위한 배려가 아쉽다. 바람직한 미래창조가 곧 후손들을 위한 역사가 될 것이다.
  • 매너가 리더를 만든다… 베풂·절제·정의의 리더십

    매너가 리더를 만든다… 베풂·절제·정의의 리더십

    리더의 나침반은 사람을 향한다/공병호 지음/해냄/272쪽/1만 4500원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난세에 영웅이 난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 노릇한다’…. 문제가 발생할 때 구성원 개개인의 역할과 책임이 중요하다지만 결정적인 해결자는 리더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대를 막론하고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하며, 리더십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따지는 저술이 넘쳐나기 마련이다. 기원전(BC) 5세기 고대 아테네에서 활동한 역사가 겸 철학자인 크세노폰이 지은 ‘키로파에디아’는 서양 리더십 분야의 전범으로 꼽힌다. 기원전 6세기 페르시아 제국을 창건한 키루스(BC 585?~BC 530) 대왕의 일대기를 그린 역사소설이다. 그리고 ‘리더의 나침반은 사람을 향한다’는 ‘키로파에디아’의 주인공 키루스 대왕에서 리더십의 정수를 끄집어내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키루스 대왕은 인류 문명의 발상지였던 메소포타미아와 중근동 지역 국가들을 정복해 통일한 위대한 군주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냉철한 현실 인식, 유연한 상황 판단으로 사람 마음을 움직이고 이끌었던 탁월한 리더로 회자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를 ‘민중을 압제로부터 해방시킨 자’로 평가했고, 서양 최초의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아버지 같은 왕’이라 쓰고 있다. 르네상스기 정치사상가로 ‘군주론’을 썼던 마키아벨리는 ‘키루스야말로 이상적인 군주’라 극찬한다. 성경엔 ‘고레스’라는 이름으로 열아홉 번이나 등장한다. ‘리더의’ 저자는 키루스 대왕의 리더십 중에서도 ‘사람의 중시’에 눈독을 들였다. 이란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왕’으로 불렸고, 알렉산더 대왕도 그의 무덤인 파사르가드만은 파괴하지 않았을 정도로 존경심을 나타냈던 키루스 대왕의 리더십은 뭘까. 그는 사람의 이기심과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호소하는 것이야말로 사람을 움직이는 효과적인 방법임을 간파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으뜸의 방편은 베풂과 절제, 정의의 강조로 집약된다. 사냥터에서도 각자 승리를 위해 경쟁토록 해 모든 사람이 제 몫 이상을 하도록 했고, 팀 단위 경쟁을 효과적으로 성과에 연동시켰다. 병사들을 헤아릴 때는 아버지 같았고, 위기가 닥칠 때는 앞장서 희생했다. 부하들에게 정중한 말을 사용했고 이름을 불러 부탁했다.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모든 리더에게 적용할 수 있는 보편성’이다. 모든 조직, 하물며 가정에서도 리더의 본질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책 말미에 쓴 맺음말이 도드라진다. “리더의 자리에 서는 사람은 절대 잊어선 안 된다. 리더로 누리는 영광과 보상에 상응하도록 ‘내가 이끄는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지불해야 하는가’를 늘 생각하는 것이다. 누리는 게 있는 만큼 리더에게는 큰 희생과 헌신이 요구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中·日, 겉으론 비난전 물밑으론 유화책

    중국과 일본이 비난과 성명전 등 상호 견제 수위를 높이면서도 정상회담 개최 등 하반기 외교현안을 위한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두 나라는 지난 21일 일본 방위백서 공개에 이어 중국의 동중국해 가스전 건설을 놓고 상호 비난 성명을 내는 등 신경전을 한 단계 높였다. 일본은 22일 동중국해 양국 중간선 지역에 중국이 새로 건설하는 가스전 관련 12개 시설 사진을 외무성 홈페이지에 전격 공개했다. 그러나 23일 도쿄의 외교소식통들은 두 나라가 올 8월 초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발표할 전후 70주년 담화(아베 담화)와 9월 중·일 정상회담을 둘러싼 물밑 조율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 측이 오는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미국을 의식, 일본 측에 역사인식에 대한 요구수준을 누그러뜨리면서 유화정책을 펴고 있다. 일본 역시 중국과의 갈등을 고조시킬 생각은 없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가스전 관련 시설이 군사용도로 쓰일 수 있는 등 중국의 위협을 강조해 견제하면서 집단 자위권 법안의 당위성을 역설하려는 국내 정치용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이 9월 아베 총리가 중국을 방문, 정상회담을 하려면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지 않기로 약속하는 등 3가지 조건을 제시했다는 마이니치신문의 보도 역시 중국도 일본에 대해 유화정책을 쓰는 등 대화를 우선하고 있다는 분석을 뒷받침한다. 양제츠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지난 16일 베이징에서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과 만난 자리에서 이 조건과 함께 ▲국교정상화 당시 중·일공동성명(1972년), 중·일 평화우호조약(1978년) 등 4대 정치문서를 준수 ▲무라야마담화 계승 등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성수동, 낡은 옷 벗고 새로운 브랜드로 재탄생

    성수동, 낡은 옷 벗고 새로운 브랜드로 재탄생

    낡은 공장이 밀집한 지역으로 인식돼 온 서울 성수동이 새로운 ‘브랜드’로 다시 태어난다. 서울 성동구는 동 단위로는 전국 최초로 성수동의 ‘BI’(Brand Identity) 선포식을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BI는 상품 선호도를 높이기 위해 기업이나 단체 등에서 활용하는 브랜드 이미지다. 공공부문에서는 자치단체별로 일부 BI를 사용하고 있지만 지역 최소단위인 동(同)을 도시 브랜드로 인식해 제작, 홍보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선포식은 오는 24일 성수동에 있는 ‘사진창고’ 카페에서 열린다. 구는 ‘성수동’ 그 자체를 브랜드화하기 위해 동적이고 건강한 느낌을 바탕으로 BI를 만들었다. 슬로건은 ‘성수동이여 플랫폼이 되자’(Be Platform)로 정했다. 성수동을 소통·성장·도시재생의 중심으로 만들려는 의지를 담은 것이라는 설명이다. 성수동은 최근 서울시의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정됐다. 구는 이번에 제작한 BI를 성수동 도시재생 사업의 대표 이미지로 활용할 예정이다. 성수동 홍보물과 현수막 등에 삽입하고, 주요 지역에는 가로기를 만들어 알릴 계획이다. 또 지역사업이나 축제, 행사 등에 활용하며 성수동 BI의 상표권 등록도 추진한다. 성수동은 최첨단 IT 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산업 센터와 수제화, 봉제 등 기존의 전통산업이 혼재된 준공업 지역이다. 2012년부터 성수동에는 젊은 예술가와 디자이너, 사회적기업들이 모여들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들이 모여 마을이 유명세를 타면서 임대료가 상승하고 이 때문에 다시 예술가가 떠나게 된다.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다. 구는 이 같은 현상을 막고자 전국 최초로 관련 조례 제정을 추진하는 등 다양한 방안을 마련 중이다. 정원오 성동구청장은 “성수동이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과 새로 유입되는 예술가, 창업가들 간 상호신뢰가 전제돼야 한다”면서 상생을 위한 노력을 강조했다. 최지숙 기자 truth173@seoul.co.kr
  • 일본 방위백서, 독도는 우리땅 ‘황당’ 주장 11년째..국방부 경고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

    일본 방위백서, 독도는 우리땅 ‘황당’ 주장 11년째..국방부 경고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

    일본 방위백서, 독도는 일본땅? 읽어보니 “우리나라 고유 영토인 다케시마..” 황당 ‘일본 방위백서’ 일본 방위백서에 독도가 일본 영토로 명시돼 있어 화제다. 일본 정부가 21일 공개한 2015년 방위백서에서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반복했다. 일본 방위성이 작성해 이날 일본 각의에 보고한 2015년 방위백서 ‘일본의 방위’에는 “우리나라 고유의 영토인 북방영토(쿠릴 열도 남부에 대한 일본식 표현)나 다케시마의 영토 문제가 여전히 미해결된 채로 존재하고 있다”는 표현이 담겨있다.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이 일본 방위백서에 명기된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때인 지난 2005년 이래 11년째다. 독도에 대한 서술과 지도 표시도 지난해 방위백서와 같다. 부대 소재지를 표시한 지도와 일본 방공식별구역(ADIZ)을 표시한 지도에도 독도는 ‘다케시마’라고 표기됐고, 일본 땅으로 소개됐다. 국방부는 21일 일본 정부가 2015년 방위백서에 독도는 일본 땅이라는 주장을 실은 것과 관련해 주한 일본 국방무관을 불러 강력하게 항의했다고 밝혔다. 박철균 국방부 국제정책차장은 이날 오전 고토 노부히사(後藤 信久·육군 대령) 주한 일본 국방무관을 국방부 청사로 초치해 항의하고 항의문을 전달했다. 국방부는 항의문에서 일본 방위백서가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기술한 데 대해 “강력히 항의하는 바이며, 이에 즉각적인 시정 조치는 물론, 이러한 부당한 행위가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할 것을 엄중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항의문은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라며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지속하는 한, 미래지향적인 한일 군사관계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국방부는 독도 영유권을 훼손하려는 어떠한 시도에 대해서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며, 독도에 대한 우리의 주권을 빈틈없이 수호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항의문은 일본 방위백서가 지도에서 독도를 일본 영역으로 표시한 것과 “합의되지도 않은 배타적 경제수역(EEZ) 경계선을 표시한 것”에 대해서도 항의의 뜻을 밝혔다. 항의문은 “일본 정부가 2005년 방위백서부터 매년 독도 영유권 주장을 반복하며 우리 정부의 강력한 항의와 시정조치 요구에 응답하지 않고 있는 점에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덧붙였다. 사진=서울신문DB(일본 방위백서)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일본 방위백서, 11년 연속 ‘독도 영유권’ 주장…정부 국장급 항의

    일본 방위백서, 11년 연속 ‘독도 영유권’ 주장…정부 국장급 항의

    ‘일본 방위백서’ 일본 방위백서가 11년 연속 독도 영유권 주장을 되풀이했다. 정부는 이에 대해 강력히 항의했다. 정부는 21일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성명을 내 “일본 정부가 2015년도 방위백서에 또다시 독도에 대한 허황된 주장을 포함시킨 것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한반도 침탈 역사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이같이 비판했다. 정부는 특히 “이런 도발은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일본이 역사를 직시하는 가운데 한일 양국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가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을 무실화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국장은 이날 오후 가나스키 겐지(金杉憲治) 주한 일본대사관 총괄공사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로 불러 구두 및 문서로 항의 입장을 공식 전달하고 해당 내용의 삭제 및 재발 방지를 촉구했다. 국방부도 이날 오전 박철균 국방부 국제정책차장이 오전 고토 노부히사(後藤 信久·육군 대령) 주한 일본 국방무관을 청사로 초치해 항의하고 항의문을 전달했다. 국방부는 항의문에서 “일본 정부가 독도 영유권에 대한 부당한 주장을 지속하는 한, 미래지향적인 한일 군사관계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독도가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주장이 일본 방위백서에 명시적으로 들어간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내각 때인 지난 2005년부터 11년째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 농업, 물 논의가 필요하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열린세상] 한국 농업, 물 논의가 필요하다/김한호 서울대 농경제학과 교수

    4년 연속 가뭄에 미국이 벌이는 물과의 전쟁이 처절하다.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지난 4월 물 사용 25% 감축을 요구하는 행정명령을 공포했다. 주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물 사용 감축 강제 명령은 역사상 처음이다. 이 명령에 따라 캘리포니아 수자원관리위원회는 지금까지 물 절약 실적에 근거해 지역별로 9가지 등급을 부여한 후 2013년 물 사용량 기준 최대 36%부터 최저 4%까지 감축을 요구하고 6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벌금이 따르는 강제 명령이다. 거기에 지난 6월 12일 예외 대상이었던 ‘시니어’ 물 권리자 100여명에게도 강과 지류의 물줄기 바꿈을 통한 물 공급 중지를 명했다. 캘리포니아에는 ‘시니어’와 ‘주니어’ 물 권리자가 있다. 주정부가 공식적으로 물 소유권 제도를 도입한 1914년을 기준으로 그 이전 수자원 개발에 따른 권리 보유자를 시니어, 그 이후 권리 보유자를 주니어로 구분한다. 시니어 권리자 대부분은 물을 직접 사용하는 농민이거나 농민들에게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관개 조직이다. 1세기 전 법적 제도 이전에 확보한 권리마저 제한하는 것에 비판이 호되지만 상황이 그만큼 심각하다. 주정부의 이런 조치에 농민 일부가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 7월 10일 캘리포니아 상급 법원은 일단 농민 손을 들었다. 법원은 물 권리를 재산권으로 보고, 주정부가 재산권을 제약하면서 공청회 등을 거치지 않아 중대한 절차상 하자를 범했다고 판단해 집행정지 가처분 판정을 내렸다. 물론 주정부의 대항도 계속된다. 4년 연속되는 이 가뭄을 두고 미네소타대와 매사추세츠 우즈 홀 해양연구소 공동 연구진은 1200년 만의 최악 가뭄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캘리포니아 일부 단체는 이번 행정명령으로 약 25만㏊에 이르는 농경지의 폐농을 전망하고 있다. 심각한 물 문제 앞에 당국과 농민은 분열되고 농업은 타들어 가고 있다. 하지만 지금 미국에서는 농업에 대한 새로운 역할과 구조에 관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지금 겪는 고통은 논의를 통해 농업의 새로운 역할 정립과 구조 개혁으로 이어질 것이다. 지난달 농업정책 조사차 방문한 남미의 칠레 역시 물 문제가 농정 중심이었다. 남북 4300㎞의 긴 나라, 기후대가 다양하고 농업 자원이 풍부한 세계적 농업 강국이다. 한국과 처음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나라로서 농식품 수출 경쟁력은 잘 알고 있다. 농가 수입 가운데 정부 정책 기여율을 보여 주는 ‘생산자보조추정치’가 3%에 불과하다. 농가 수입 100 가운데 3 정도가 정부 정책에 기인한다는 의미다. 한국 56%,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 19%에서 알 수 있듯이 농업 부문에 정부 개입이 가장 낮은 국가군에 속한다. 이렇게 경쟁력이 높은 칠레도 물 부족이 심각하다. 특히 과수·원예 작물 주산지인 중부 지역은 잦은 가뭄으로 물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 예산 지출의 대부분은 소농 생계활동 지원에 집중된다. 나머지 예산은 수자원 개발과 효율적 활용에 초점을 맞춘 관개시설 투자에 집중되는데 전체 예산의 22%를 차지한다. 물의 최종 소비 단계에서는 철저하게 시장원리를 적용한다. 지역별 경작 형태별 표준 물 사용량에 근거해 농가별로 물을 할당한다. 할당량 사용의 과부족은 물 시장을 통해 농가 간 거래를 허용한다. 농민들은 물 문제 해결 없이는 농업 경쟁력 유지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정부의 경쟁적 물 사용 정책에 적극적으로 따른다. 한국도 오랜 가뭄으로 많은 저수지가 바닥을 보였다. 마른장마에 태풍도 고맙게 여기며 기다려야 할 지경이다. 수년째 반복되지만 물 문제는 농업에서 벗어나 있다. 한 예로 명백한 국제 규정에 따라 움직이는 쌀 통상 문제가 불확실성이 더해 가는 물 문제를 압도하고 있다. 전문가와 협상가의 역할이 커야 할 쌀 통상 문제가 일반 농업계를 휘두르고 있는 것을 보면 우선순위가 바뀐 것 같다. 한국 농업의 궁극적 목적과 비전 정립을 위한, 그리고 그 속에서 한국적 농업용수 활용 체계 구축을 위한 광범위한 논의가 필요하다. 물 절약과 효율적 활용을 강조하는 미국의 규제적 접근과 물의 희소가치 인정을 강조하는 칠레의 시장 경쟁적 접근을 모두 참고해 늦지 않게 한국식 접근법을 찾아야 한다. 문제가 분명한데 논의가 없는 것은 큰 위험이다.
  • 동탄2신도시 높은 프리미엄, 나도 한번 투자해볼까

    동탄2신도시 높은 프리미엄, 나도 한번 투자해볼까

    올해 들어 입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동탄2신도시. 분양 아파트들의 전매도 속속 풀리면서 프리미엄(웃돈)이 상당하게 붙어 있다. 높은 프리미엄에 대한 기대감으로 투자수요까지 몰리면서 지난 3월 최고 경쟁률 기록이 새로 수립됐을 정도. 그런데 동탄2신도시의 높은 프리미엄도 입지에 따라 희비가 갈리고 있었다. KTX와 GTX가 개통 예정인 동탄역을 중심으로 프리미엄의 정도에 차이를 보이고 있는 것. 역을 도보로 이용할 수 있는 단지를 중심으로 거래도 활발하고 프리미엄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동탄1기신도시에서 검증된 시범단지의 인기가 2기신도시에도 이어졌으며, 그 중에서도 동탄역과 가까운 단지들의 프리미엄이 더욱 높았다. 동탄2신도시 중개업소에 따르면 현재 프리미엄이 가장 높은 단지는 포스코더샵(A102블록)과 우남퍼스트빌(A15블록)이다. 평균 8000만원 이상 형성된 상태다. 두 단지는 공통적으로 KTX동탄역을 도보로 이용 할 수 있다. 직선거리로는 500미터 이내다. 반면 동탄역과 거리가 멀어질수록 프리미엄은 낮았다. 역과 1km이상 떨어져있는 블록에 위치한 아파트의 경우 프리미엄이 평균 4500만원에서 3000만원 정도 형성되어있다. 특히 2km이상 떨어진 K아파트의 프리미엄은 평균 2000만원 선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 6월 발표된 추가 금리인하 소식으로 부동산 투자열기가 더욱 뜨거워 질 것으로 점쳐지면서, 상반기 뜨거웠던 동탄2신도시 분양시장이 더욱 뜨거워질 전망이다. ▶ 동탄2 커뮤니티 시범단지 마지막 아파트 공급, 동탄역 초역세권은 물론 센트럴파크와 바로 접해 있어 프리미엄 기대 수도권에서 가장 뜨거운 열기를 보이고 있는 동탄2신도시에서도 가장 핵심으로 꼽히는 시범단지에 마지막 아파트가 분양한다. 금강주택이 분양하는 ‘동탄2 금강펜테리움 센트럴파크Ⅲ’가 주인공. ‘금강펜테리움 센트럴파크Ⅲ’는 앞서 공급된 1차분(827세대)과 민간임대로 공급된 2차 물량(908세대)의 성공에 이은 3차 공급이라는 점에서 더욱 높은 인기가 예상된다. 지하 1층~지상 19층, 5개동, 총 252가구로 전용면적 기준 84㎡ 126가구, 99㎡ 126가구로 구성된다. 동탄2신도시 커뮤니티 시범단지 중에서도 가장 핵심블록에 위치하는 이번 분양은GTX•KTX의 이용이 가능한 광역환승센터역사인 동탄역(예정)에서 도보 거리의 초역세권을 자랑하며, 첨단산업 및 문화, 생활인프라가 복합적으로 구축된 광역비즈니스콤플렉스와 동탄역 중심상업시설을 통한 원스톱 생활이 가능하다. 단지 인근에는 도보로 안전하고 편리하게 통학할 수 있는 초•중•고교가 바로 인접하고 있어 교육여건이 매우 우수하다. 또한, 단지 바로 남측에는 약 27만㎡ 규모의 대형 센트럴파크를 내집 정원처럼 누릴 수 있게 조성되어 있으며 단지 내 넓은 중앙공원과 산책로, 다양한 커뮤니티 광장과 연계된 오픈스페이스의 단지구성으로 쾌적함을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금강주택이 앞서 공급한 단지들은 모두 우수한 상품력을 바탕으로 동탄 주민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높은 인기를 끌었다. 특히, 민간임대로 공급한 ‘동탄2 금강펜테리움 센트럴파크Ⅱ’의 경우 임대 아파트임에도 일반분양 아파트보다 뛰어난 설계로 호평을 받기도 했다. 금강주택 관계자는 “동탄2신도시에만 세차례 선보이는 단지인만큼 수요자들의 기대감에 충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특히 앞서 공급된 단지들의 특화 설계 외에도 이번에는 3면 개방형 설계 등도 선보일 예정으로 우수한 단지로 인식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동탄2 금강펜테리움 센트럴파크Ⅲ’의 모델하우스는 화성시 능동 471-3번지에 위치해있으며, 분양일정은 7월 21일(화) 특별공급을 시작으로 ▲1순위 청약 22일(수) ▲2순위 청약 23일(목)에 진행된다. ▲당첨자 발표는 29일(수) ▲정당 계약일은 8월 4일(화)~6일(목)까지 3일간 진행된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새로운 50년을 열자] “우리가 먼저 일본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새로운 50년을 열자] “우리가 먼저 일본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유홍준(66) 명지대 석좌교수가 1993년 처음 내놓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파천황(破天荒)적인 책이었다. 7권을 내는 동안 무려 340만부가 팔린, 한국 출판계의 대표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다. 그의 답사 행보는 국내에만 머물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완간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편’(전 4권)도 22만권이나 판매됐다. 뿐만 아니라 지난 1월 일본에서도 이와나미쇼텐 출판사가 1, 2권을 번역 출간했다. 곧 3, 4권도 나올 예정이다. 최근 명지대 연구실에서 만난 유 석좌교수는 한·일 관계의 전향적 발전을 위한 한국의 노력을 먼저 촉구했다. “한·일 관계가 이렇게 꼬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일본이 일방적으로 잘못됐다고 규정하기 전에 우리는 언제 일본을 알려고 노력했느냐, 그것을 우리 스스로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는 “일본에 대해 기본적인 이해와 앎이 있는 사람들은 일본 얘기가 나오면 ‘다 우리가 해줬어’라고 말할 줄만 알았지, 실제로 속은 허망했다”면서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경험이 우리에게 자꾸 정신승리에 치중하게 하는 콤플렉스를 줬다”고 말했다. 그가 한·일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은 학문적 방법론에서 내재적 접근에 가깝다. 기존의 외부 시선과 인식이 아닌 일본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얘기다. 일본을 바라봄에 국민적 감정, 민족적 정서에 기반하지 않는 것 자체가 다수의 한국인들에게는 불편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의 논리와 사고를 친일파류의 인식 혹은 식민사관의 언저리쯤으로 치부할 이는 없다. 또한 다수의 일본인 역시 혐한 흐름이 팽배한 속에서 고대사에 대한 역사적 사료를 짚고 얘기하며 분석하는 그의 입장이 달갑지만은 않을 것이다. “예컨대 도래인(渡來人·고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사람들) 3세 이상으로 넘어가면 더이상 한국사람이 아닌 것이에요. 그런데 마치 백제, 신라가 고대 일본을 지배했고, 일본 문화는 모두 한국 문화 덕분에 만들어졌다는 듯 생각하는 것은 편협한 인식입니다. 폐쇄적 민족주의 입장에서 일방적으로 세계와 역사, 일본 등을 바라보지 말고 동아시아 차원에서 우리 문화와 역사를 이해해야 합니다. 일본도 그렇게 봐야 하는 것이고요.” 일본에 대해 심도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는 그의 주장에 충분히 수긍이 가면서도 현재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는 한·일 관계를 생각하면 결코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님은 분명하다. 유 석좌교수는 “일본은 고대사 콤플렉스가 있고, 한국은 근대사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것이 상호 협력을 가로막는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일본은 노벨상 수상자만 21명이고 많은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인데, 사실 일본과 경제 협력이 안 되면 우리는 죽는다. 아쉬운 것은 결국 우리 쪽”이라면서 “제 책의 일본어판 번역을 바랐던 것도 문화의 힘을 믿고, 문화에서 정치와 경제 분야의 어려움을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위해서는 일본에 대한 연구자가 많이 나와야 하고, 일본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책도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그것이 일본이 한국을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되는 것이죠. 일본 우익정권의 입장이 보편적인 국민들의 생각은 아닐 테니 우리의 노력이 선행돼야 일본의 양식과 양심 있는 지식인들의 활동 공간도 더욱 넓어지겠죠.”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폭주하는 아베] ‘전쟁 가능 나라’ 한발 더… 아베, 국민·야당 반발에도 軍國 야욕

    [폭주하는 아베] ‘전쟁 가능 나라’ 한발 더… 아베, 국민·야당 반발에도 軍國 야욕

    아베 신조 정권이 16일 집단자위권을 허용하는 무력공격사태법 개정안 등 11개 안보 관련법 제·개정안을 일본 중의원(하원)에서 야당의 반발과 퇴장 속에 표결, 통과시켰다.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는 안보 관련법안의 입법화가 9부 능선을 넘은 것으로 평가된다. 위헌 논란과 시민사회의 반발 속에서 법안은 이날 최종 관문인 참의원으로 보내졌다. 참의원에서 표결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집권 자민·공명당 양당은 60일 안에 출석의원 3분의2 찬성으로 재가결할 수 있다. 법안은 오는 9월 27일 정기국회 폐회 직전까지 처리될 것으로 보인다. 연립 여당은 중의원 본회의에서 자위대법 개정안을 비롯한 11개 안보 관련법 제·개정안을 여당 단독으로 가결시켰다. 이를 반대했던 민주·유신·공산·사민·생활당 등 주요 5개 야당 의원들은 표결 직전 퇴장했다. ●껍데기만 남은 日 평화헌법 아베 총리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정적인 견해가 더 강한 집단자위권 법안 등의 안보법안 개정안에 대해 수적 우위를 앞세운 ‘정면 돌파’를 택하며 승부수를 던졌다. 집단자위권을 골자로 한 안보 관련법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방어를 위해서만 무력을 행사한다’는 전수(專守)방위 개념에 따라 자위대에 부과되던 각종 제약이 사라지게 된다. 자위대의 무력행사가 가능해져 평화헌법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 자위대의 활동 범위도 전 세계로 확대된다. 무력공격사태법 개정안은 타국에 대한 무력 공격이라도 자위대가 무력행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제3국이 공격당할 경우 자국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고 반격하는 권리인 집단자위권 개념을 담은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나카타니 겐 방위상은 지난 5월 “일반적으로 해외 파병이 금지돼 있지만 (무력행사의) 조건에 합치하면 타국에서 무력을 행사하는 것도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유사시 미군 후방 지원을 상정한 현행 주변사태법을 대체할 중요영향사태법안은 ‘방치할 경우 일본에 중대한 영향을 줄 수 있는 사태’ 때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자위대가 미군 등 외국 군대를 후방 지원할 수 있도록 하는 조문을 담았다. 사실상 미군의 후방 병참기지 역할을 떠맡은 것이다. 이들 법안에 대해 국제 분쟁 해결 수단으로서의 교전권을 부정한 헌법 9조에 위배된다는 헌법학자들의 지적과 시민사회의 반발이 확산되면서 아베 정권의 인기도 40% 이하로 떨어졌다. 반대 여론도 50%에 육박한다. 절차상, 내용상 위헌 논란 속에서도 아베 내각은 지난해 7월 1일 종래의 헌법 해석을 변경해 집단자위권 행사가 가능하다는 방침을 각의에서 결정했다. 안보 관련법안을 국회에 제출해 이번 회기 내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자민당 측은 “국가의 안전 보장 환경이 매우 까다롭게 변화하고 있고, 억지력과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관련 법안을 고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연립 여당인 공명당의 후쿠시게 다카히로도 “국제 정세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의 군사대국화와 남중국해에서의 공세적인 활동이 안보법제 제·개정의 주요 배경이 되고 있지만 일본 일반 여론은 아베 정권의 무리수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민 8할 “안보 법안 이해 못 해” 법안이 중의원을 통과한 뒤 아베 총리는 기자들과 만나 “일본을 둘러싼 안보 환경이 더욱 엄중해지고 있다는 인식 속에서 일본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전쟁을 미연에 막기 위해 꼭 필요한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또 “참의원에서 논의에 대한 국민의 이해가 깊어지도록 설명에 힘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의 집단자위권 법안 강행 처리에 대한 야당과 시민의 반발도 확산 일로에 있다. 법안이 중의원을 통과한 이날 밤 국회 주변에는 수만명의 시위대가 모여 중의원 통과를 규탄했다. 집권 여당의 안보법안 강행 통과에 반발하고 있는 오카다 가쓰야 민주당 대표는 “국민 8할이 정부 설명이 부족하다고 하고, 과반이 위헌이라고 보거나 법안에 반대한다고 답하는 와중에 강행 처리하는 것은 전후 일본 민주주의의 큰 오점”이라며 “아베 총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즉각 법안을 철회하는 것뿐”이라고 비판했다. ●中 “안보법 본질은 우릴 적으로 삼는 것” 아베 정권의 폭주에 대해 중국은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관영 환구시보는 이날 ‘자신의 망상에 취한 아베’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아베는 자위대가 해외에서 전투할 권리를 얻어 ‘정상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변하지만 안보법의 본질은 중국을 가상의 적으로 삼는 것”이라면서 “일본이 미국 뒤에 숨어 도발한다면 중국은 일본에 치명적인 반격을 가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양제츠(楊潔?)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보국장은 이날 오후 베이징에서 아베 정권 출범 이후 첫 중·일 고위급 정치대화를 가졌으나 안보 법안 문제로 분위기는 싸늘했다. 양 국무위원은 회담에서 “일본 중의원이 안보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전후 일본이 군사안보 영역에서 채택한 사상 유례없는 행동”이라며 “우리는 엄중한 항의와 엄정한 입장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일본이 역사적 교훈을 깊이 새기고 평화 발전의 길을 지속적으로 걸을 것을 정중히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현장 블로그] ‘여성 혐오’ 보도 댓글도 와글… 농담인데 과민 반응한다구요?

    남성은 여성에게, 여성은 남성에게, 아니면 남녀 간의 갈등을 자극하고 확산시키는 사람들에게 그렇게도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걸까요. ‘여성 혐오’의 실태와 문제점을 다룬 서울신문 기획 시리즈 ‘여성 혐오 판치는 사회’ 1회가 16일 오전 네이버, 다음 등의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오르자 폭발적인 반향이 일어났습니다. 네이버의 경우 기사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단 댓글이 1만 1000개 이상 붙었습니다. 어지간히 논쟁적인 기사라 해도 네티즌 댓글이 2000~3000개 붙은 경우가 드물다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인 현상입니다. 댓글 중에는 여성에 대한 혐오를 드러낸 글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네티즌 A씨는 “요즘 개념 없고 자기 새끼만 귀하다는 엄마들이 바로 2000년대 초반의 ‘된장녀’ 세대들”이라고 여성들을 공격했습니다. “얼마나 남자들 지갑을 털고 다니면 그러겠냐. 온갖 화장품에 비싼 명품백 사서 폼 잡고, 문제는 돈도 없는 여자들이 그러니까 혐오하지”라고 쓴 네티즌도 있었습니다. 상식 이하의 글도 떴습니다. B씨는 “여자가 종족 번식과 잠자리할 때 빼놓고 필요할 때가 있습니까”라는 글을 남겼고 C씨는 “군바리 지나가면 비웃는 김치×들은 아스팔트에 눕혀서 군화로…”라는 눈살 찌푸리게 만드는 표현을 구사했습니다. 여성 혐오를 향한 비판에 맞서 일각에서는 “김치녀, 된장녀는 농담으로 하는 말인데 왜 이렇게 과민 반응을 보이는지 모르겠다”고 반문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가부장적 사회에서 오랫동안 남성과 동등한 대우를 받지 못했던 여성들의 고된 역사를 생각할 때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사물, 그것도 음식에 비유되고 패러디가 된다면 불쾌감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김치녀, 된장녀 등의 ‘○○녀’라는 말은 여성들의 다양한 개인적 특징을 무시하고 이분법적인 잣대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그릇된 편견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성 혐오를 정당화하는 또 다른 논리로 ‘여성의 지위가 전보다 나아졌음에도 결혼할 때 여전히 남성들이 혼수 비용을 대부분 부담하고, 데이트할 때도 남성이 밥값을 전적으로 지불할 때가 많다’는 것이 있습니다. 이는 남성이 생계를 책임지는 부양자이고 여성은 피부양자라는 과거의 고정된 성 역할에 대한 인식이 주를 이뤘을 당시 만연했던 모습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남성과 여성이 함께 혼수를 부담하고 밥값을 나눠 내는 모습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과거보다 여성의 지위가 개선됐을지는 몰라도 여성은 지금도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사회·경제적으로 약자에 속합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남녀 임금 및 취업률 격차가 가장 큰 나라입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