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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욱동 창문을 열며] 현란한 수사 뒤에 숨긴 진리

    [김욱동 창문을 열며] 현란한 수사 뒤에 숨긴 진리

    자칫 잊기 쉽지만 언어는 진실을 드러내는 것 못지않게 진실을 감추기도 한다. 특히 진실은 화려하고 현란한 수사에 몸을 숨기기 일쑤다. 그래서 플라톤은 일찍이 비유를 속 빈 강정처럼 겉모습만 번지르르하고 실속이 없다고 비판했다. 동양의 플라톤이라고 할 공자도 ‘논어’에서 “교언영색 선의인”(巧言令色鮮矣仁)이라고 하여 그럴듯한 말로 발라 맞추는 말이나 알랑거리는 낯빛을 하는 것은 어진 사람이 취해야 할 도리가 아니라고 가르쳤다. 말을 그럴듯하게 하고 낯빛을 아름답게 꾸민다는 것은 지나치게 외모를 치장하는 것처럼 어디까지나 본래의 모습을 감추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패전 70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에 발표한 담화 내용을 읽노라면 새삼 플라톤과 공자의 말이 떠오른다. 일본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지배를 받으며 고통을 당한 한국과 중국 정부에서는 그동안 식민 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촉구해 왔다. 아베 총리는 식민 지배를 받은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외교 관계, 일본 안팎의 비판 여론을 고려해서인지 무라야마 담화의 핵심 어구를 모두 사용했다. 가령 ‘식민지배’, ‘침략’, ‘사죄’, ‘통절한 반성’ 같은 말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자신이 직접 사과를 한 것이 아니라 마치 복화술자처럼 무라야마 총리가 한 말을 빌려 간접적으로 사과하는 것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면서 역대 총리들이 사죄를 했으니 일본 인구의 8할이 넘는 젊은 세대들은 선조들이 저지른 일에 대해 이제 더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아베 총리의 담화에서는 그동안 한국과 중국이 요구해 온 식민 지배에 대한 진정한 사죄와 반성은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일본이 자행한 만행을 온갖 현란한 수사로 교묘하게 가리고 있다는 인상을 떨칠 수 없다. 가령 ‘침략’에 대해서는 “힘에 의한 곤궁의 타개를 시도했다”는 말로 슬쩍 넘어가 버렸다. 아무리 언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힘에 의한 곤궁의 타개’라는 표현을 침략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할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더구나 아베 총리는 과거 식민 지배와 침략의 주체를 명시하지 않음으로써 그 책임을 교묘하게 비켜 갔다. ‘침략’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위안부’와 관련한 구절이다. 아베 총리는 ‘위안부’라는 낱말을 피하기 위해 무척이나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그는 “전장의 그늘에서 명예와 존엄을 깊이 상처받은 여성들이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전쟁 속에서 명예와 존엄성에 큰 상처를 입은 여성이 어찌 비단 위안부에 그치겠는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재산을 잃은 여성도, 부모를 잃은 여자 아이들도, 심지어 전쟁터로 자식이나 남편을 떠나보낸 어머니나 아내도 하나같이 전쟁의 희생자들이다. 한마디로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여성치고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할 것이다. 일본의 제1야당인 민주당의 오카다 가쓰야 대표도 아베 총리의 담화 속에 무라야마 담화의 주요 표현이 인용이라는 형태로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베 총리 자신의 표현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AP 통신도 “아베가 과거의 사과를 언급했지만, 스스로 공식적 사과는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우리는 숨을 죽이며 아베 총리의 담화에 실릴 내용을 기다려 왔다. 오죽하면 며칠 전 일본 대사관 앞에서 80대 노인이 일본을 비판하면서 분신자살을 시도했을까. 아베의 담화는 결국 일본 식민 지배의 피해국들에 아픈 상처만 되새기게 해줬을 뿐 이렇다 할 치유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무라야마 담화의 역사 인식에서 오히려 후퇴한 것 같다. 그러고 보니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각각의 인생이 있고, 꿈이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음미할 때 지금 말을 잃고, 그저 ‘단장(斷腸)의 염’을 금할 수 없다”는 아베 총리의 말이 왠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 [해설] 박 대통령, 대북·대일 ‘확고한 원칙과 유연한 대응’ 의지 표명

    [해설] 박 대통령, 대북·대일 ‘확고한 원칙과 유연한 대응’ 의지 표명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절 70주년 경축사는 ‘70주년’이라는 상징적 의미도 한껏 담았다. 긴장 국면의 남북관계, 꼬일대로 꼬인 한일관계에 대해 분명한 원칙을 밝혔다. 그러면서도 새로운 틀과 관계 구축이라는 미래를 염두에 뒀다. 박 대통령의 말마따나 “확고한 원칙과 유연한 대응”인 셈이다. 광복절에 앞서 북한의 DMZ 지뢰도발이나 일본 아베 신조 총리 담화의 과거형 사죄는 박 대통령에게 커다란 압박으로 작용했다. 때문에 박 대통령의 대북, 대일 메시지는 대내외적으로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북한의 지뢰도발에 대해 “겨레의 염원을 짓밟은 행위”, 아베 총리의 담화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짚어야할 부분은 짚어야 한다는 원칙에서다. 그러면서도 북한에게 “지금도 기회가 주어져 있다”며 대화와 협력의 길을 요구했다. 일본에 대해서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겠다는 입장을 주목한다”면서 ‘행동으로 뒷받침’해 신뢰를 얻을 것으로 촉구하고 나섰다. [남북관계] 북한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대화·협력은 지속하겠다는 북한에 대한 투트랙의 정책 기조를 재확인했다. 획기적인 깜짝 대북 제안 보다는 기존 정책 틀 속에서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내비쳤다. 박 대통령은 북한 지뢰도발과 관련, “정전협정과 남북간 불가침 조약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광복 70주년을 기리는 겨레의 염원을 짓밟았다. 북한의 거듭 남북관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만약 북한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오면 민생향상과 경제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기회’가 열려있음을 제시한 것이다. 북한에 대한 ‘기회’를 적시했다. 인도주의적 사안, 안전·문화·체육 교류 등 비정치적 사안에 대한 교류는 지속적으로 밀고 나가겠다고 했다. 또 DMZ 세계생태평화공원 조성,남북간 철도·도로 연결 등의 추진에 대한 입장도 다시 언급했다. 특히 이산가족 생사확인의 절박함을 거듭 강조했다. ‘6만여명의 남한 이산가족 명단 일괄 전달,연내 명단교환 실현’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임기 후반기에 남북관계를 개선시킬 수 있는 끈을 놓치지 않고 능동적, 주도적으로 상황을 뚫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평화 통일의 비전과 관련,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기적’을 이뤄낼 수 있다”고 했다. [한일관계] 일본에 대해서는 역사문제와 경제·안보 문제를 분리해 대응한다는 정책의 기본 틀을 재차 밝혔다. 박 대통령은 아베 총리의 전날 담화 발표와 관련,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그렇지만 “비록 어려움이 많이 남아 있으나 이제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할 때”라며 미래의 방향을 제시했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한다”고 말했다. 담화 자체를 전면 부정하거나 무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아베 정부의 실질적인 행동을 요구했다. “일본이 동북아 평화를 나눌 수 있는 대열에 나오길 진심으로 바란다”, “일관되고 성의있는 행동으로 뒷받침해 이웃나라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이라는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을 잊지 않았다. “조속하고 합당한 해결”을 주문했다. ‘과거형 사죄’에서 벗어나 역사를 똑바로 보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한을 가해자로서 풀어야 한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다. [국내 문제]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광복 70주년의 의미도 평가했다. 박 대통령은 “불굴의 의지로 창조의 역사,기적의 역사를 함께 써온 우리 국민과 함께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의 대장정을 나서고자 한다”며 창조경제,문화융성,4대 개혁 완수 등의 추진 의지도 밝혔다.박 대통령은 창조 경제와 문화 융성을 “21세기 시대적 요구”,“경제 도약을 이끌 성장 동력”이라고 규정하면서 창조경제혁신센터와 문화창조융합벨트를 통해 새 경제적 가치와 일자리 창출 등을 이루겠다고 했다. 또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개혁에 대해 “성장 엔진에 지속적 동력을 제공하는 혁신의 토대”라고 정의한 뒤 미래세대에 희망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해 “국민 모두가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야할 때”라면서 지지를 당부했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박 대통령 “아베 총리 담화, 아쉬운 부분 적지 않다” 비판

    박 대통령 “아베 총리 담화, 아쉬운 부분 적지 않다” 비판

    박근혜 대통령은 15일 “고노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담화는 한일관계 근간 지켜왔다”며 “어제 아베 총리 담화 우리로서 아쉬운 부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역사는 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사람들의 증언으로 되는 것”이라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당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제70주년 광복절을 맞아 남북 및 한일관계 비전 등을 담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 여러나라 국민들에게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점에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거로 한 역대 내각 입장 분명히 밝힌데 주목한다”며 “일본 정부는 역대 내각 역사 인식 계승 일관되고 성의있게 해 이웃나라 국제사회 신뢰를 얻어야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고노담화,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일본 내각이 밝혀온 역사 인식은 한일 관계를 지탱해 온 근간이었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일본이 이웃국가로써 열린 마음으로 동북아 평화를 나눌 수 있는 대열에 나오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특히,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비록 어려움이 많이 남아 있으나 이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때”라며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양국의 위상에 걸맞게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번영을 위해 함께 공헌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 [특파원 칼럼] 아베의 선택, 일본의 선택/이석우 도쿄 특파원

    [특파원 칼럼] 아베의 선택, 일본의 선택/이석우 도쿄 특파원

    일본의 8월은 패전과 죽은 자에 대한 기억으로 이어진다. 지난 6일 히로시마와 9일 나가사키에서는 각각 원폭 투하 70주년 위령제가 열렸고, 그날의 참담함과 절망감을 기억하면서 다시는 전쟁과 원폭 투하 같은 일은 없어야 된다는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등 여러 전쟁과 침략을 촉발한 가해자로서의 반성과 책임보다는 피해자로서의 희생과 수난이 강조되고 부각되고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찾은 아베 신조 총리가 유일한 피폭 국가임을 강조하면서 유엔에서 새로운 핵무기 폐기 결의안을 제출하겠다고 말한 것도 피해자로서의 입장을 강조하는 측면이 강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과거사를 잘못 인식해 왔다”,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면서 수정주의 역사관을 전면에 등장시켰다. 그는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일본 과거사의 재인식”을 주장해 왔다. 이런 시각에서 “젊은이의 생각과 그들에 대한 교육을 바로잡아야 한다”며 교과서를 뜯어고치려 했고, 교육재생위원회라는 것을 만들어 과거사에 대한 반성보다는 피해를, 국제사회에서 책임보다는 권리 및 역할을 강조하는 쪽으로 국민 여론과 국민 교육을 움직이려 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집권 다음해인 2013년 4월 22일 국회에서 “(무라야마 담화를) 아베 내각이 그대로 계승하지 않겠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대내외적인 반발 속에서 아베는 “과거 담화를 전체로서 계승하겠다”면서도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인정하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피해 왔다. 제국주의 시대에 세계 각지의 침략이 있었고, 그런 행위는 이제는 용납될 수 없다는 식의 언급은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일본의 침략 행위에 대한 사과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모호하게 처리해 왔다. 그런 아베 총리에게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가책이나 죄책감 같은 진정성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른 서구 열강도 다 그렇게 해 온 시대적 추세였는데 우리는 다만 힘이 없어졌을 뿐”이라는 식의 생각을 깔고 있는 탓이다. “사죄를 언제까지 해야 하냐”는 그동안의 그의 반문도 그의 생각을 보여 준다. 전후 70년을 맞아 올 초부터 전쟁으로 인한 피해가 부각되고 강조돼 왔지만, 일본과 일본인이 왜 그런 참혹한 피해를 입게 됐고 동아시아 전체가 왜 그런 전화에 휩싸이게 됐는지에 대해선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14일 발표된 전후 70주년 담화, 아베 담화는 지난 70년에 대한 아베 내각의 입장과 역사관이 반영된 담화란 점에서 관심이 컸다. 지난 12일 아베 자신의 표현대로 “지난 전쟁에 대한 반성과 전후의 행보, 앞으로 일본이 어떤 나라가 돼 갈지를 세계에 알리는 내용”이란 의미와 무게를 지닌다. ‘문명의 대전환기’라고 불리는 현시점에서 아베의 일본이 어떤 선택을 할지를 보여 주는 지표란 점에서도 그렇다. 100여년 전 국제 정세의 기로 속에서 일본의 위정자는 서양을 답습하는 근대화를 통해 물질적 부국강병과 군사주의를 추구했고, 힘의 대결을 좇다가 종국에는 파멸했다. 일본 국민을 참혹함과 비탄의 구렁텅이로 끌어넣었고, 동아시아 전체를 전화에 휩싸이게 했다. 군사주의와 힘의 대결을 추구했던 일본이 100년 전 근대화 성공 신화에서 벗어나 지역 공존과 평화 등 새로운 시대의 개척자가 됐으면 한다. 그 첫 발걸음으로 형식을 넘어선 담화의 진정성을 담아 내고 실천하려는 노력을 기대해 본다. jun88@seoul.co.kr
  • 생각을 뒤집었다 여름입맛 잡았다

    생각을 뒤집었다 여름입맛 잡았다

    주워 담을 수 없는 그것. 엎질러진 물이 재앙이라면, 뒤집혀 땅에 꽂힌 아이스크림콘은 참사다. 엄마 명에 따라 하루 한 개 이상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간 우르르르 배가 아프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 아이는 땅에 처박힌 아이스크림을 보며 큰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구내식당 디저트로 ‘작은 사치’라며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던 직장인이라면, 일순 자신이 머피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질지 모른다. 프러포즈용 반지라도 숨겨져 있었다면, 아이스크림의 폐허 속에서 사랑의 징표를 찾으려 체면 불구 바닥에 무릎 꿇을 일이다. 그런데 올여름 뒤집힌 아이스크림콘이 디저트 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이른바 ‘참사형 디저트’의 인기다. ‘거꾸로 아이스크림콘’(거꾸로 콘)의 인기에 아연실색한 미국 작가 데이브 브라이는 최근 영국 가디언에 자신의 당혹감을 고백하는 칼럼을 썼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발견이었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제조 기계를 발명한 톰 카블의 탄생 100주년이 겹쳤던 아이스크림의 달, 7월이 저문 뒤였다. 한 사람당 평균 연 12㎏의 아이스크림을 먹어 치우는 미국에서 거꾸로 콘을 파는 매장엔 이미 사람들이 어색함 없이 긴 줄을 섰다. 거꾸로 콘은 한국에도 상륙해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시작해 커피 전문점의 여름 메뉴로,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같은 기념일용 상품에서 시작해 평소 먹는 디저트로 거꾸로 콘의 쓰임새는 다양해졌다. 여전히 빙수에 한 스쿠프 떠넣은 아이스크림 위에 고깔모자 형태의 콘을 올리는 게 대중적인 형태이지만, 최근에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외양을 지닌 디저트도 인기다. 유명 체인 매장에서 팝콘에 아이스크림을 쳐박은 제품이 인기다. 잔디밭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연상시키듯 검은 접시에 녹차가루를 뿌린 뒤 거꾸로 콘을 올린 디저트를 내놓은 서울의 한 카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여름 맛집 리스트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튀기 위한 상술’ 소비자의 입을 유혹하다 콘을 뒤집은 이유에 대해 마케터들은 하나같이 “튀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녹으면서 흐를 때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아이스크림 위에 고깔 모양 콘으로 시선을 잡으며 깔끔한 느낌을 노렸다는 설명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는 소비 트렌드인 ‘작은 사치’와 ‘실속’을 모두 잡은 측면도 있다. 밥보다 비싼 디저트로 작은 사치를 즐기면서도, 빙수에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하나 올린 외양이 ‘원 플러스 원’(1+1) 상품을 사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얘기다. 미국 거꾸로 콘의 형태는 한국과 다소 다르다. 콘에 아이스크림을 한 스쿠프 떠서 담은 콘 제품을 컵에 쑤셔 넣은 형태다. 아이스크림콘과 아이스크림 컵의 컬래버레이션인 셈이다. 먹는 방법은 두 가지다. 콘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문 뒤 도로 컵에 담아 놓을 수도 있고, 컵 제품을 먹을 때처럼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떠먹은 뒤 콘을 따로 먹을 수도 있다. 대부분은 후자의 방식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러니 20세기 방식의 아이스크림 섭취법, 즉 콘 또는 컵 중 선택해 먹는 방식에 익숙한 미국 작가 브라이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거꾸로 콘을 시식한 뒤 브라이는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동안 왼손으로 위태롭게 공중에 매달린 콘을 붙잡고 있어야 했고 콘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질 것 같았다”며 컵에 담겨 있기에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지 않아 깔끔 하다던 인식을 공격했다. 단, 브라이는 “흐르지 않도록 편하게 컵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지만, 바삭한 콘도 포기할 수 없었다”던 한 여성 고객의 답변에 수긍하기도 했다. ●‘거꾸로 콘’에 대한 비판은 전통에 대한 그리움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거꾸로 콘의 유행에 합류한 뒤 브라이의 비판의식은 최고조에 달했다. 바이든 부통령이 지난달 콜로라도에서 시민과 함께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왼손에 거꾸로 콘을 들고 있었던 것. 사진에 등장하는 시민은 ‘마리화나 합법화’를 주장하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브라이는 거꾸로 콘 시식기와 함께 쓴 관찰기에서 “흔들리는 콘을 붙잡으며 여러 색깔이 뒤섞인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마치 마리화나를 탐닉하는 모습 같았다”며 바이든 부통령을 정조준해 비판했다. 이쯤 되면 브라이의 비판 대상이 거꾸로 콘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넘어 정치·사회적 쟁점으로 옮겨 붙는 느낌이다. 단순히 독특하게 생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이유로 콘과 컵을 모두 가지려는 탐욕가로 치부되거나, 깔끔함을 추구했지만 오히려 더 불안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바보 취급을 받거나, 마약 옹호자로 오인받는 게 합당한지의 문제에 대해 브라이는 “노먼 록웰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노먼 록웰(1894~1978)은 미국 중산층의 생활모습을 주로 묘사한 일러스트레이터로 브라이의 말을 한국적으로 푼다면 “1·4후퇴 때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라는 얘기가 된다. 결국 브라이는 표면적으로 거꾸로 콘을 비판했지만, 이면엔 미국 문화에 대한 향수가 담겨 있었던 셈이다. 잠깐, 우리는 영화 ‘로마의 휴일’을 알고 있다. 전체 줄거리보다 오드리 헵번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장면이 더 유명한 영화다. 기원전부터 중세까지 귀족만 먹던 셔벗 형식의 아이스크림 대신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아이스크림은 18세기 후반의 이탈리아에서 개발됐다. 그런데 왜 미국인이 아이스크림 섭취 문화가 달라졌다고 격분하는 것일까. 그것은 200여년 동안 부유층만 접근할 수 있던 아이스크림을 대중화시킨 게 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1851년 농장을 경영하던 미국인 제이컵 휘슬이 남는 유지방을 얼려 보관했고, 개발을 거듭해 1904년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만들었다. 이어 미국의 업자들은 1939년 즉석 소형 아이스크림 제조기 개발에 성공했다. ●美선 1980년대부터 먹어온 역사 오래된 디저트 공교롭게도 아이스크림의 대중화에 성공한 뒤 미국은 대공황 이후 긴 호황기를 맞이했다.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은 성장하던 미국 중산층의 디저트이자 간식이 됐다. 유제품으로 영양가와 열량이 높으며 콘이나 컵에 담아 간편하게 먹도록 한 ‘미국식 아이스크림’이 달걀 노른자와 생크림을 써 진한 맛을 낸 ‘유럽식 아이스크림’보다 우위를 점한 것도 이때부터다. 한동안 아이스크림콘이 일상화되는 모습은 미국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지표였고, 그 콘을 뒤집은 모습에 브라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실상 브라이가 거꾸로 콘을 보며 ‘미국 중산층 식문화의 전복’을 걱정하며 호들갑을 떤 것과 별개로 미국에서 거꾸로 콘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다국적 기업인 배스킨라빈스는 “1980년대부터 생일파티 고객을 대상으로 아이스크림 스쿠프 위에 콘을 올려 주는 이벤트를 벌여 왔다”면서 “우리는 그것을 ‘왕관 콘’이라고 부르며 특별한 날을 기념했다”고 밝혔다. 거꾸로 콘을 보며 ‘중산층의 몰락’이란 우울한 느낌 대신 ‘혁신과 재미’라는 긍정적인 기운을 받은 미국 조각가도 있다. 2001년 독일 쾰른의 한 쇼핑센터 건물에는 거꾸로 콘 조형물(큰 사진)이 건물 옥상 귀퉁이에 내걸렸다. 한국의 청계천 발원점에 선 ‘스프링’의 작가이기도 한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와 부인인 코샤 밴 브룽겐의 공동 작품이다. 올덴버그는 “종교적 상징으로 가득한 쾰른의 스카이라인에 변화를 주는 작품”이라면서 “작품을 이곳에 둔 것은 쾰른(Koln)과 콘(Cone)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콘이 거꾸로 처박혔을 때의 허탈감과 당혹감을 호소한 브라이와 다르게 올덴버그는 거꾸로 콘이 처박히는 장면이 대체로 우스꽝스러워 박장대소를 부른다는 점을 잊지 않은 듯하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민주주의 ‘창’으로 본 3·1운동 ~ 임시정부

    민주주의 ‘창’으로 본 3·1운동 ~ 임시정부

    민주주의를 향한 역사/김정인 지음/책과함께/408쪽/2만 2000원 사관(史觀)은 역사를 바라보는 창이다. 어떤 사관을 통해 역사를 접하느냐에 따라 시대에 대한 이해, 분석, 역사적 사건에 대한 원인과 결과 등의 해석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또한 역사에서 추출해내는 현재적 의미 역시 사실과 아주 멀리 떨어지게 된다. 식민주의 사관, 영웅주의 사관, 왕조주의 사관이 득세하던 시절, 사학계에서는 사관의 균형추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민중사관, 민족사관을 통한 역사인식과 연구에 힘썼다. 그러나 민족-반민족, 민중-지배세력의 대결구도로 바라보는 역사 인식에는 여전히 부족한 지점이 있었다.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었다. 특히 19세기, 20세기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은 학계 전반에서 외래에서 온 제도이자 사상쯤으로 치부하며 도외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춘천교대 교수면서 한·중·일3국공동역사편찬위원으로 활동하는 젊은 사학자인 저자는 ‘민주주의 사관’이라는 창을 통해 1919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출범까지의 역사에서 한국의 자생적인 민주주의의 기원을 살핀다. 명명되지 않았고 구체적으로 제도화하지 않았을 따름이지, 민주주의는 이미 우리 안에 그 가치와 내용을 담은 문화와 문명으로서 실재했음을 ‘인민’, ‘자치’, ‘정의’, ‘권리’, ‘도시’ 등 핵심 개념으로 명쾌하면서도 깊이를 놓치지 않고 풀어간다. 민주주의를 핵심 사관으로 삼아 바라보면 19세기를 조선후기사와 근대사로 분리하는 방식이 아닌 연결되는 총체적 역사 흐름으로 살필 수 있고, 그때 비로소 민중과 지배계급의 대결, 개화와 척사의 갈등 등 도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분절된 삶이 존재할 수 없듯 분절된 역사도 존재할 수 없음은 자명한 진리다. 소외와 배제의 대상에 불과하던 노비와 여성 등 기층계급이 추구한 해방의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끌어 갈 주체인 인민이 탄생됐다. 그리고 천주교, 동학 등 평등지향적 종교 공동체 속에서 인민들은 스스로 사회 운영 제도를 만들고 규율을 습득하는 자치의 과정을 겪었다. 자치의 원리를 기반해 벌어진 농민항쟁 등은 신분세습, 사회적 자산 분배의 불평등, 과세 불평등, 소수자 차별 등 사회의 여러 구조적 문제를 극복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투쟁으로 민주주의의 내용적 충실성을 다지기 시작한 걸음이었다. 부제가 ‘시대의 건널목, 19세기 한국사의 재발견’이다. 인민을 상징하는 전봉준과 개화를 상징하는 김옥균이 역사적으로 조우하는 지점을 확인할 수 있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아베 진정성 없는 ‘과거형 사죄’

    아베 진정성 없는 ‘과거형 사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종전 70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또 반성과 사죄는 과거형으로 표현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임시 각의(국무회의)를 거쳐 결정한 담화에서 “일본에서는 전후 세대가 인구의 80%를 넘었다.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아들과 손자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러·일전쟁은 식민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에게 용기를 줬다”고 미화했다. 아베 총리는 또 “전후 70년을 맞아 돌아가신 모든 사람들 앞에 깊이 고개를 숙이고 통석의 마음을 표시한다”며 “전쟁터의 그늘에서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을 이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된다.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해서는 주체를 불분명하게 표현했다. 아베 총리는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협과 행사도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두 번 다시 써서는 안 된다. 식민 지배와 영원히 결별해야 한다”며 “일본은 전쟁 중의 행위에 대해 마음 깊은 사죄와 유감을 반복적으로 표명해 왔다”고 밝혔다.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로써 아베 총리는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에 들어 있던 4가지 핵심 표현인 식민 지배, 침략, 반성, 사죄를 거론하며 역대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표현이 과거형이거나 행위의 주체를 불분명하게 해 사죄의 진정성이 떨어졌다. 아베 총리의 담화와 관련해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이날 윤병세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아베 총리가 언급한 것과 같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외교부 관계자가 전했다. 기시다 외무상은 이날 오후 7시 15분쯤 윤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이 같은 내용을 설명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윤 장관은 이에 대해 “기시다 외무상의 설명 내용과 함께 (아베 총리의) 담화 내용을 면밀히 검토해 우리 입장을 곧 밝힐 것”이라면서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서울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日, 中 관용으로 국제사회 복귀”… 한국 식민 지배는 언급 안 해

    “日, 中 관용으로 국제사회 복귀”… 한국 식민 지배는 언급 안 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14일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는 침략과 식민지 지배에 대한 구체적인 사죄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포괄적인 반성과 사과를 거론하면서 오히려 일본의 향후 입장과 자세에 초점을 맞췄다. 담화에는 과거 전쟁에 대한 일본의 행동을 반성하면서 ‘무라야마의 50주년 담화’의 주요 키워드인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를 포괄적으로 다 담았지만 아베 총리 자신의 입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직접 사과하지는 않았다. 무라야마 담화 및 ‘고이즈미의 60주년 담화’가 일본의 책임을 밝히면서 분명한 사죄의 뜻을 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무라야마 담화, 고이즈미 담화는 현직 총리의 입을 통해 당시 시점에서 일본 정부가 가해 행위를 명확하게 밝히고 사죄했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았었다. 가해 원인이 침략과 식민지 지배였다기보다는 “당시 국제 정세와 상황에 따라 피할 수 없었던 전쟁”이었다는 점을 은연중에 강조하면서 일본의 책임과 죄과를 줄이려 한 시도도 엿보인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발표한 각각의 담화에서는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이 아시아 국민의 고통을 가져온 원인”이었음을 분명히 했다는 점과 비교할 때 크게 후퇴한 것이다. 또 중국에 대한 침략 행위 등에 대해선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잘못된 길을 가게 됐다며 보다 구체화한 반면 한국을 지칭하는 식민지 지배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었다. 아베 총리는 또 일본의 국제사회로의 복귀는 전쟁 고통을 당한 중국 등의 관용으로 가능해졌음을 적시하는 등 중국에 대한 배려와 구애의 신호를 숨기지 않았다. 담화에서 식민 지배와 침략이 거론됐지만 이를 일본의 행동으로 명시한 대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게다가 조선 합병의 발판이 된 러·일전쟁을 미화하기까지 했다. 아베 총리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최초로 입헌정치를 세우고 독립을 지켜냈다”며 “일·러전쟁은 식민지 지배하에 있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줬다”고 치켜세웠다. 아베 총리는 “무고한 사람들에게 셀 수 없는 고통과 손해를 끼쳤다”면서 과거 전쟁에 대해 사과했다. “셀 수 없는 많은 젊은이들이 일본과 싸우느라 목숨을 잃었고, 중국, 동남아 등이 전쟁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앞선 대전(大戰)에서의 행위에 관해 반복해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해 왔다”고 과거형으로만 반성과 사죄를 언급했다. 무엇에 관한 반성과 사죄인지도 모르게 모호하게 표현했고, 현 총리로서 자신의 입장이 무엇인지도 밝히지 않았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두루뭉술한 원론적 입장만 있었을 뿐이다. 아베 총리는 역대 내각의 과거 인식을 계승한다고 했지만 역시 포괄적인 표현에 그쳤다. 아베 총리는 “일본이 반복적으로 사과를 표명해 왔다”면서 “그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표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필리핀을 포함한 동남아 국가들과 대만, 한국, 중국 등 이웃의 아시아인들이 걸어온 고난의 역사를 마음에 새기고 전후 일관되게 그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을 다해 왔다”고 말했다. 오쿠노조 히데키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당초 침략과 식민 지배 및 이에 대한 사죄 단어를 담기 거부했던 아베 총리가 중국, 미국 등의 압력과 연립여당 공명당의 압박 속에서 절충안을 선택한 것”이라면서 “진정성이 의심된다”고 평가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아베 진정성 없는 ‘과거형 사죄’

    아베 진정성 없는 ‘과거형 사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종전 70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서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해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또 반성과 사죄는 과거형으로 표현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임시 각의(국무회의)를 거쳐 결정한 담화에서 “일본에는 전후 세대가 인구의 80%를 넘었다. 전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아들과 손자 아이들에게 사과를 계속할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또 “러·일전쟁은 식민 지배하에 있던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 사람에게 용기를 줬다”고 미화했다.  아베 총리는 또 “전후 70년을 맞아 돌아가신 모든 사람들 앞에 깊이 고개를 숙이고 통석의 마음을 표시한다”며 “전쟁터의 그늘에서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은 여성들이 있었던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을 이었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언급으로 해석된다.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해서는 주체를 불분명하게 표현했다. 아베 총리는 “사변, 침략, 전쟁, 어떠한 무력의 위협과 행사도 국제 분쟁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두 번 다시 써서는 안 된다. 식민 지배와 영원히 결별해야 한다”며 “일본은 전쟁 중의 행위에 대해 마음 깊은 사죄와 유감을 반복적으로 표시해 왔다”고 밝혔다.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이로써 아베 총리는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에 들어 있던 4가지 핵심 표현인 식민 지배, 침략, 반성, 사죄를 거론하며 역대 담화를 계승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표현이 과거형이거나 행위의 주체를 불분명하게 해 사죄의 진정성이 떨어졌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아베 담화 직후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과의 전화 통화에서 “일본의 진정성 있는 행동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밝혔고 기시다 외무상은 “아베 총리가 언급한 것과 같이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은 앞으로도 흔들림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서울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생각을 뒤집었다 생활이 뒤집힌다

    생각을 뒤집었다 생활이 뒤집힌다

    주워 담을 수 없는 그것. 엎질러진 물이 재앙이라면, 뒤집혀 땅에 꽂힌 아이스크림콘은 참사다. 엄마 명에 따라 하루 한 개 이상 아이스크림을 먹었다간 우르르르 배가 아프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 아이는 땅에 처박힌 아이스크림을 보며 큰 울음을 터뜨릴 것이다. 구내식당 디저트로 ‘작은 사치’라며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던 직장인이라면, 일순 자신이 머피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빠질지 모른다. 프러포즈용 반지라도 숨겨져 있었다면, 아이스크림의 폐허 속에서 사랑의 징표를 찾으려 체면 불구 바닥에 무릎 꿇을 일이다. 그런데 올여름 뒤집힌 아이스크림콘이 디저트 업계를 강타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이른바 ‘참사형 디저트’의 인기다. ‘거꾸로 아이스크림콘’(거꾸로 콘)의 인기에 아연실색한 미국 작가 데이브 브라이는 최근 영국 가디언에 자신의 당혹감을 고백하는 칼럼을 썼다. 하지만 늦어도 너무 늦은 발견이었다. 소프트 아이스크림 제조 기계를 발명한 톰 카블의 탄생 100주년이 겹쳤던 아이스크림의 달, 7월이 저문 뒤였다. 한 사람당 평균 연 12㎏의 아이스크림을 먹어 치우는 미국에서 거꾸로 콘을 파는 매장엔 이미 사람들이 어색함 없이 긴 줄을 섰다. 거꾸로 콘은 한국에도 상륙해 인기를 얻고 있다.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시작해 커피 전문점의 여름 메뉴로, 아이스크림 케이크와 같은 기념일용 상품에서 시작해 평소 먹는 디저트로 거꾸로 콘의 쓰임새는 다양해졌다. 여전히 빙수에 한 스쿠프 떠넣은 아이스크림 위에 고깔모자 형태의 콘을 올리는 게 대중적인 형태이지만, 최근에는 다소 그로테스크한 외양을 지닌 디저트도 인기다. 유명 체인 매장에서 팝콘에 아이스크림을 쳐박은 제품이 인기다. 잔디밭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연상시키듯 검은 접시에 녹차가루를 뿌린 뒤 거꾸로 콘을 올린 디저트를 내놓은 서울의 한 카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여름 맛집 리스트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다. ●‘튀기 위한 상술’ 소비자의 입을 유혹하다 콘을 뒤집은 이유에 대해 마케터들은 하나같이 “튀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녹으면서 흐를 때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아이스크림 위에 고깔 모양 콘으로 시선을 잡으며 깔끔한 느낌을 노렸다는 설명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는 소비 트렌드인 ‘작은 사치’와 ‘실속’을 모두 잡은 측면도 있다. 밥보다 비싼 디저트로 작은 사치를 즐기면서도, 빙수에 아이스크림을 통째로 하나 올린 외양이 ‘원 플러스 원’(1+1) 상품을 사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는 얘기다. 미국 거꾸로 콘의 형태는 한국과 다소 다르다. 콘에 아이스크림을 한 스쿠프 떠서 담은 콘 제품을 컵에 쑤셔 넣은 형태다. 아이스크림콘과 아이스크림 컵의 컬래버레이션인 셈이다. 먹는 방법은 두 가지다. 콘을 잡고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문 뒤 도로 컵에 담아 놓을 수도 있고, 컵 제품을 먹을 때처럼 숟가락으로 아이스크림을 떠먹은 뒤 콘을 따로 먹을 수도 있다. 대부분은 후자의 방식으로 먹는다고 한다. 그러니 20세기 방식의 아이스크림 섭취법, 즉 콘 또는 컵 중 선택해 먹는 방식에 익숙한 미국 작가 브라이가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거꾸로 콘을 시식한 뒤 브라이는 “아이스크림을 떠먹는 동안 왼손으로 위태롭게 공중에 매달린 콘을 붙잡고 있어야 했고 콘 과자 부스러기가 떨어질 것 같았다”며 컵에 담겨 있기에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지 않아 깔끔 하다던 인식을 공격했다. 단, 브라이는 “흐르지 않도록 편하게 컵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지만, 바삭한 콘도 포기할 수 없었다”던 한 여성 고객의 답변에 수긍하기도 했다. ●‘거꾸로 콘’에 대한 비판은 전통에 대한 그리움 조 바이든 미국 부통령이 거꾸로 콘의 유행에 합류한 뒤 브라이의 비판의식은 최고조에 달했다. 바이든 부통령이 지난달 콜로라도에서 시민과 함께 찍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왼손에 거꾸로 콘을 들고 있었던 것. 사진에 등장하는 시민은 ‘마리화나 합법화’를 주장하는 문구가 쓰인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브라이는 거꾸로 콘 시식기와 함께 쓴 관찰기에서 “흔들리는 콘을 붙잡으며 여러 색깔이 뒤섞인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이 마치 마리화나를 탐닉하는 모습 같았다”며 바이든 부통령을 정조준해 비판했다. 이쯤 되면 브라이의 비판 대상이 거꾸로 콘을 선호하는 소비자를 넘어 정치·사회적 쟁점으로 옮겨 붙는 느낌이다. 단순히 독특하게 생긴 아이스크림을 먹는다는 이유로 콘과 컵을 모두 가지려는 탐욕가로 치부되거나, 깔끔함을 추구했지만 오히려 더 불안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 바보 취급을 받거나, 마약 옹호자로 오인받는 게 합당한지의 문제에 대해 브라이는 “노먼 록웰이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고 일갈했다. 노먼 록웰(1894~1978)은 미국 중산층의 생활모습을 주로 묘사한 일러스트레이터로 브라이의 말을 한국적으로 푼다면 “1·4후퇴 때는 상상할 수조차 없던 일”이라는 얘기가 된다. 결국 브라이는 표면적으로 거꾸로 콘을 비판했지만, 이면엔 미국 문화에 대한 향수가 담겨 있었던 셈이다. 잠깐, 우리는 영화 ‘로마의 휴일’을 알고 있다. 전체 줄거리보다 오드리 헵번이 이탈리아 로마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장면이 더 유명한 영화다. 기원전부터 중세까지 귀족만 먹던 셔벗 형식의 아이스크림 대신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아이스크림은 18세기 후반의 이탈리아에서 개발됐다. 그런데 왜 미국인이 아이스크림 섭취 문화가 달라졌다고 격분하는 것일까. 그것은 200여년 동안 부유층만 접근할 수 있던 아이스크림을 대중화시킨 게 미국인이었기 때문이다. 1851년 농장을 경영하던 미국인 제이컵 휘슬이 남는 유지방을 얼려 보관했고, 개발을 거듭해 1904년 아이스크림 제조기를 만들었다. 이어 미국의 업자들은 1939년 즉석 소형 아이스크림 제조기 개발에 성공했다. ●美선 1980년대부터 먹어온 역사 오래된 디저트 공교롭게도 아이스크림의 대중화에 성공한 뒤 미국은 대공황 이후 긴 호황기를 맞이했다. 자연스럽게 아이스크림은 성장하던 미국 중산층의 디저트이자 간식이 됐다. 유제품으로 영양가와 열량이 높으며 콘이나 컵에 담아 간편하게 먹도록 한 ‘미국식 아이스크림’이 달걀 노른자와 생크림을 써 진한 맛을 낸 ‘유럽식 아이스크림’보다 우위를 점한 것도 이때부터다. 한동안 아이스크림콘이 일상화되는 모습은 미국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지표였고, 그 콘을 뒤집은 모습에 브라이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것이다. 실상 브라이가 거꾸로 콘을 보며 ‘미국 중산층 식문화의 전복’을 걱정하며 호들갑을 떤 것과 별개로 미국에서 거꾸로 콘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다국적 기업인 배스킨라빈스는 “1980년대부터 생일파티 고객을 대상으로 아이스크림 스쿠프 위에 콘을 올려 주는 이벤트를 벌여 왔다”면서 “우리는 그것을 ‘왕관 콘’이라고 부르며 특별한 날을 기념했다”고 밝혔다. 거꾸로 콘을 보며 ‘중산층의 몰락’이란 우울한 느낌 대신 ‘혁신과 재미’라는 긍정적인 기운을 받은 미국 조각가도 있다. 2001년 독일 쾰른의 한 쇼핑센터 건물에는 거꾸로 콘 조형물(큰 사진)이 건물 옥상 귀퉁이에 내걸렸다. 한국의 청계천 발원점에 선 ‘스프링’의 작가이기도 한 팝아티스트 클래스 올덴버그와 부인인 코샤 밴 브룽겐의 공동 작품이다. 올덴버그는 “종교적 상징으로 가득한 쾰른의 스카이라인에 변화를 주는 작품”이라면서 “작품을 이곳에 둔 것은 쾰른(Koln)과 콘(Cone)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콘이 거꾸로 처박혔을 때의 허탈감과 당혹감을 호소한 브라이와 다르게 올덴버그는 거꾸로 콘이 처박히는 장면이 대체로 우스꽝스러워 박장대소를 부른다는 점을 잊지 않은 듯하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기대 안 한 만큼 실망감 덜해…방중·방미로 외교 입지 구축을”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에서 무라야마 담화의 4대 키워드인 식민 지배와 침략, 사죄, 반성이 애매하게 표현되면서 이에 대한 분석도 난도가 높아졌다. 다만 지난 4월 아베 총리의 반둥회의 연설이나 미국 의회 연설, 최근 아베 총리의 행태 등을 봤을 때 이번 담화에서 과거 침략과 식민 지배에 대한 획기적인 사죄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던 만큼 기대치가 높지 않아 실망의 수준도 낮았다. 정부 관계자는 “기대가 낮아서 그런지 실망스러운 수준은 아니다”라며 “그래도 위안부 문제 등에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 6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관계 개선 분위기를 띄웠지만 아베 담화를 기점으로 일정 부분 냉각기를 갖는 것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12일 아베 담화에 대해 “향후 양국 관계 개선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며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보다 더 혹독한 평가를 내렸다. 한국이나 중국을 향해 명확하게 과거를 반성했던 무라야마 담화와 달리 아베 담화의 경우 행위자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무라야마 담화의 경우 통절한 반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진정성을 보인 반면 이번 담화에선 진정성이 엿보이지 않는다”며 “자신의 얘기가 아닌 기존 담화를 인용하는 간접화법 역시 민감한 부분을 비켜 가기 위한 수법”이라고 말했다. 특히 러·일전쟁을 예로 들며 일본이 독립을 지켜 냈다고 한 부분에 대해 양 교수는 “러·일전쟁은 조선이 식민지가 되는 계기가 됐다”면서 “이런 아베 총리의 인식은 우파 지식인인 새역사를 연구하는 모임(새역모)의 역사관과 가까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일 간에 쉽사리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난제’까지 있어 관계 개선을 이끌어 내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다음달 3일 중국의 ‘항일 승전 70주년’ 기념행사에 박 대통령이 참석하기로 하고 아베 총리 역시 참석을 검토하고 있어 하나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정부는 박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계기로 답보 상태를 거듭하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담 개최를 놓고 중국 측에 참석을 요청할 가능성이 높다.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는 중국을 설득해 한·중·일 정상회담을 열고 이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도 개최해 양국 관계를 풀어 보겠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담화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우리만의 외교 주도권을 갖고 한·일 관계를 풀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전문] 박근혜 대통령,제70주년 광복절 경축사

    [전문] 박근혜 대통령,제70주년 광복절 경축사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0만 재외동포 여러분, 그리고 자리를 함께 하신 내외 귀빈 여러분, 오늘은 광복 70주년이자 건국 67주년을 맞는 역사적인 날입니다. 70년 전 오늘의 벅찬 감동을 온 국민과 함께 나누며,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건국을 위해 헌신하신 애국지사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독립 유공자와 유가족 여러분께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국민 여러분, 지난 70년은 대한민국을 굳건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참으로 위대한 여정이었습니다. 70년 전 오늘, 우리 민족은 독립을 향한 열망과 헌신적인 투쟁으로 마침내 조국의 광복을 이루어냈습니다. 순국선열들의 불굴의 의지와 애국심은 오늘의 위대한 대한민국을 건설한 토대가 되었습니다. 67년 전 오늘은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한 날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우리 대한민국은 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정통성을 계승하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왔고, 국가경제와 국민경제의 항구적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토록 기다렸던 광복의 기쁨은 반쪽의 기쁨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분단의 비극과 6.25 전쟁의 참화는 우리 삶의 기반을 송두리째 앗아갔고, 얼마 되지 않던 산업기반마저 모두 붕괴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국민들의 단합된 의지와 힘으로 새로운 도약을 일궈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경험도 없었지만, 황량한 모래벌판에 제철소와 조선소를 세웠고, 모진 난관을 뚫고 국토의 대동맥인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전자제품과 자동차, 철강, 조선,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고, 수출규모 세계 6위의 경제 강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인구 5천만 이상 되는 국가 중에 국민소득이 3만불을 넘는 소위 ‘5030 클럽’ 국가는 지구상에 여섯 나라뿐입니다. 저는 머지않아 대한민국이 일곱 번째 5030 클럽 국가가 될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신장된 경제력과 국력을 바탕으로 국제사회에서 당당하게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최초의 나라가 되었고,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발전 경험을 개발도상국들과 공유하면서, 번영을 이루려는 많은 나라들의 ‘희망의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세계가 한강의 기적으로 부르는 대한민국 성취의 역사는 우리 국민들의 피와 땀, 불굴의 도전정신이 만들어낸 결실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그 불굴의 의지로 창조의 역사, 기적의 역사를 써온 우리 국민들과 함께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대장정’에 나서고자 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광복 7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는 세계적인 경기 침체와 국내외적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이 이러한 도전을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21세기 시대적 요구이자 대안인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두 날개를 완성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 정부는 창조경제를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고, 이의 구현을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지난달에 17개 광역시도에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모두 구축되어 이제 창의적 아이디어가 있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최고 수준의 창업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역의 혁신 주체와 기관들이 협력하여 우수한 지역 인재들과 특화산업을 키워내고 지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미 4,600여명이 멘토링을 받고 200여개의 기업을 보육하고 있으며, 235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앞으로 창조경제가 우리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여 세계경제를 주도하고 우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앞으로 정부는 창조경제가 개인과 지역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도록 적극 지원해 갈 것입니다. 또 하나의 날개는 문화융성입니다. 문화는 언어와 국경을 넘어 세계인을 하나로 만들고, 열광하게 하며, 가치를 공유하도록 하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화는 무궁무진한 경제적 가치를 지닌 국가경쟁력의 핵심 원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지금 세계는 문화영토 확장을 위해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은 오천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찬란하고 독창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광복 이후 우리의 급속한 발전도 그 근간에는 면면히 이어져 온 우리의 창의적 기질과 문화적 역량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제,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우리의 유구한 문화를 세계와 교류하며 새롭게 꽃피울 때, 새로운 도약의 문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전통문화를 재발견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내서 산업과 문화를 융합하여 우리 경제를 일으키는 한 축으로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정부는 그 시작을 문화창조융합벨트로 열어갈 것입니다. 이제 오픈을 하여 각 문화인들의 입주를 기다리고 있는 문화창조융합벨트를 통해 문화와 아이디어, 기술을 융복합하여 새로운 경제적 가치와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추진해 나갈 것입니다.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 경제의 도약을 이끌 성장엔진이라면, 공공개혁과 노동개혁, 금융개혁과 교육개혁 등의 ‘4대 개혁’은 그 성장엔진에 지속적인 동력을 제공하는 혁신의 토대입니다. 저는 반드시 이 ‘4대 개혁’을 완수해서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희망의 대한민국을 물려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 국민 모두가 다시 한 번 한마음으로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짐을 나눠지고 함께 나아갈 때, 개혁과 혁신의 험난한 여정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우리 선대들이 불굴의 도전정신으로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듯이 자신감과 희망을 가지고 한마음으로 뭉쳐서, 또 다른 도약의 역사를 이루어냅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금년은 광복과 함께 남북 분단 7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광복은 민족의 통일을 통해 비로소 완성될 것입니다. 남과 북은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미래를 향해 함께 나가야 합니다. 최근 미국-쿠바 수교와 이란 핵협상 타결에서 볼 수 있듯이 국제사회는 변화와 협력의 거대한 흐름 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그와는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은 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숙청을 강행하고 있고, 북한주민들을 불안에 떨게 하고 있습니다. 북한은 우리의 거듭된 대화 제의에 응하지 않으면서, 평화를 깨뜨리고 남북간 통합에 역행하고 있습니다. 핵개발을 지속하고 사이버 공격을 감행해서 우리와 국제사회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DMZ 지뢰 도발로 정전협정과 남북간 불가침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하고, 광복 70주년을 기리는 겨레의 염원을 짓밟았습니다. 정부는 우리 국민의 안위를 위협하는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단호히 대응할 것입니다. 북한은 도발과 위협으로 체제를 유지하겠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도발과 위협은 고립과 파멸을 자초할 뿐입니다. 그러나 만약, 북한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민생향상과 경제발전의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1972년 남북한은 분단 역사상 최초로 대화를 통해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당시 남북간 대립과 갈등의 골은 지금보다 훨씬 깊었고, 한반도의 긴장도 매우 높았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기에 남북한은 용기를 내어 마주 앉았습니다. 지금도 북한에게는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북한은 민족 분단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도발과 핵개발을 즉각 중단하고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의 길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번 DMZ 도발을 겪으면서, DMZ에 새로운 평화지대를 조성하는 것이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남북한의 젊은이들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며 역설적으로 세계에서 가장 중무장되어 있는 DMZ에, 하루속히 평화의 씨앗을 심어야만 합니다. 저는 취임 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에 생명과 평화의 공원을 만들자고 여러 차례 제안하고, 그 구상을 가다듬어 왔습니다. 이제 남북이 함께 첫 삽을 뜨는 일만 남았습니다. DMZ에 세계생태평화공원을 조성하고 남북간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면, 한반도 백두대간은 평화통일을 촉진하고 유라시아 차원의 협력을 실현하는 새로운 축으로 발전할 것입니다. 북한은 도발과 위협을 내려놓고, 생명과 평화의 한반도를 만드는 길에 동참하기 바랍니다. 또한, 지난 70년 눈물과 고통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이산가족의 한을 풀어드리는 일에도 북한은 성의 있는 자세로 나와야 할 것입니다. 부모없는 자식이 없듯이 북한의 지도자들도 이산의 한은 풀어주겠다는 전향적인 자세로 문제를 풀어가 주길 바랍니다. 이산가족 문제만큼은 아무리 정세가 어렵고 이념이 대립한다고 해도, 인도적 견지에서 남북이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찾아야 합니다. 이산가족들의 생사확인이 그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6만여 명의 남한 이산가족 명단을 북한 측에 일괄 전달할 것입니다. 북한도 이에 동참하여 남북 이산가족 명단교환을 연내에 실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아가 남북 이산가족들이 금강산 면회소를 이용하여 수시로 만남을 가질 수 있도록, 북한의 협력을 촉구합니다. 한반도의 자연재해와 안전문제도 함께 대응해 나갑시다. 홍수나 가뭄, 전염병 등의 반복되는 문제에 일회적 상황관리로 대응하기보다는, 남북간 보건 의료와 안전협력체계를 구축해 근본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민족의 장래를 위해 보다 나은 길이 될 것입니다. 지난 번 중동호흡기증후군 대응과정에서 남북한은 개성공단의 검역 관리에 협력한 바 있고, 현재 금강산 산림재해 대응을 위해서도 협력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보건·위생·수자원·산림관리를 비롯한 남북 공동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힘을 모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70년 분단으로 훼손된 민족의 동질성도 회복해야합니다. 민간차원의 문화와 체육교류를 통해 남과 북이 만나고 마음을 열어간다면, 민족 동질성도 서서히 회복될 것입니다. 남북간 장벽에도 불구하고 현재 진행 중인 역사유적 발굴조사와 겨레말 큰 사전 편찬 사업과 같은 학술 문화 교류, 축구와 태권도를 비롯한 체육교류는 중단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나갈 것입니다. 남과 북, 해외의 8천만 동포 여러분, 비록 북한의 거듭된 도발로 남북관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지만, 광복 70주년을 맞는 역사의 길에서 분단의 역사를 마감하고 평화통일을 이루는 길은 우리 민족이 반드시 가야할 길입니다.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면, 희망과 기적의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한강의 기적’을 넘어, ‘한반도의 기적’을 이뤄낼 수 있습니다. 평화통일을 이룬 새로운 한반도는 핵과 전쟁의 공포에서 벗어나, 8천만 모두가 자유와 인권을 누리는 나라가 될 것입니다. 통일 한국은 동아시아의 평화를 촉진하며, 세계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지구촌의 새로운 성장엔진이 될 것입니다. 남북한의 장점을 결합하고, 한반도 교통망을 대륙으로 연결하여, 유라시아 대륙과 태평양 경제권을 연계함으로써, 우리 기업들은 물론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큰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평화통일의 꿈이 이루어진 광복 100주년을 내다보며,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통일을 준비하고 이루어 나갑시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6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맞아 새로운 협력과 공영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밝힌 바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의 긴밀한 우호협력은 양국은 물론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역사인식 문제에는 원칙에 입각하여 대응하되 두 나라간 안보, 경제, 사회문화 등 호혜적 분야의 협력관계는 적극 추진해 나간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습니다.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고노담화, 무라야마 담화 등 역대 일본 내각이 밝혀온 역사 인식은 한·일 관계를 지탱해 온 근간이었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어제 있었던 아베 총리의 전후 70주년 담화는 우리로서는 아쉬운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역사는 가린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살아있는 산증인들의 증언으로 살아있는 것입니다. 어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지배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 국민들에게 많은 손해와 고통을 준 점과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준 데 대한 사죄와 반성을 근간으로 한 역대 내각의 입장이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국제사회에 분명하게 밝힌 점을 주목합니다. 앞으로 일본이 이웃국가로써 열린 마음으로 동북아 평화를 나눌 수 있는 대열에 나오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앞으로 일본 정부는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계승한다는 공언을 일관되고 성의 있는 행동으로 뒷받침하여, 이웃나라와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조속히 합당하게 해결하기를 바랍니다. 비록 어려움이 많이 남아 있으나, 이제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새로운 미래로 함께 나아가야 할 때입니다.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양국의 위상에 걸맞게 동북아와 세계의 평화, 번영을 위해 함께 공헌해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70년 전 오늘, 우리는 잃어버렸던 조국을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불굴의 의지와 하나 된 마음으로 온갖 역경을 딛고 성취와 희망의 대한민국을 건설해왔습니다. 선대들의 애국심과 그 위대한 뜻을 이어받아,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이루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도약을 이룩하는 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소명입니다. 저와 정부는 중단 없는 혁신으로 지속적인 성장의 토대를 마련하여 세계의 반열에 우뚝 설 수 있는 부강한 나라와 원칙이 바로선 투명한 나라를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확고한 원칙과 유연한 대응으로 통일시대의 문을 열어나가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 ‘100년의 기적’을 완성하고 한반도의 통일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국민 여러분께서 힘을 모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하나가 되어, 한반도의 평화 통일을 이루어 세계와 지구촌의 번영을 선도하고, 문화로 인류에게 행복을 선사하는 대한민국의 빛나는 미래를 만들어 나갑시다. 감사합니다. 정치부 정리 iseoul@seoul.co.kr
  • [시론] 아베는 ‘과거회귀’의 헛꿈을 버려야/정일성 근현대 한일관계사 연구가·‘일본을 제국주의로 몰고 간 후쿠자

    [시론] 아베는 ‘과거회귀’의 헛꿈을 버려야/정일성 근현대 한일관계사 연구가·‘일본을 제국주의로 몰고 간 후쿠자

    일본이 8월 15일로 ‘패전 70주년’을 맞이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에 즈음하여 ‘전후 70년 총괄담화’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번 담화는 특히 아베의 최근 극우 행보에 따른 동북아시아 안보질서 문제와 맞물려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냉전 후 어렵게 조성된 동북아의 평화질서가 계속 유지되느냐, 아니면 또다시 긴장 국면을 맞게 되느냐는 실마리가 그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중대한 갈림길에서 아베 담화가 동북아 평화유지의 ‘지렛대’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일본이 잘못된 과거사에 대해 사실(史實)을 솔직히 시인하고 사죄하는 데 있음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는 평화를 사랑하는 전 세계 지식인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요즘 미국의 일본 연구자들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역사학자와 석학들이 아베 정권을 향해 잇달아 역사왜곡 중단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한 점 등을 헤아려 보면 아베한테서 독일과 같은 솔직한 반성과 사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아니 어쩌면 1995년 8월 일본 패전 50주년에 나온 무라야마 담화 수준에도 미치지 못해 동북아 화해의 길은 영영 멀어질지도 모른다. 하나의 예로 위안부 문제만 해도 그렇다.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은 산케이신문이 1983년 책으로 낸 ‘이제 털어놓는 전후비사’(いま明かす戰後秘史)에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당시 일본 육군 경리장교였던 시카나이 노부다카 전 후지산케이그룹 회장은 책에서 “군대가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전지(戰地)에 가면 속칭 ‘피야’(위안소)가 있었다. 피야는 질서를 지키려고 설치 요강에 병사들이 위안부와 멍석을 깔고 놀다 나올 때까지 ‘갖는 시간’을 장교는 몇 분, 하사관은 몇 분, 졸병은 몇 분 등으로 세밀하게 규정하지 않으면 안 됐다. 요금도 등급을 매겼다. 경리학교가 이런 위안소 운영 요령을 가르쳤다”고 털어놓고 있다. 이 증언은 해군 경리장교로서 3000명의 군인들을 위해 위안소를 만들었다고 자랑한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의 회고와 쌍벽을 이룬다. 이는 일본군이 위안소를 계획적으로 설치·운영한 사실을 여실히 보여 주는 명명백백한 증거다. 그럼에도 아베 정권은 위안부 강제동원 사실을 보도한 일본 언론매체와 기자들을 탄압하며 위안부 존재 자체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3월에는 도쿄를 국빈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아베 총리에게 과거 독일의 경험을 들려주는 형식으로 ‘과거사 직시’를 충고하자 관방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반박하는 외교적 실례를 범하기까지 했다. 왜 그럴까. 혹시 메이지시대 ‘국가는 개인과 달리 한 번 잘못을 보여 주면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오명을 씻기 어렵고, 과오를 수정하려면 나쁜 평판이 나오며, 후회하여 사죄하면 죄는 더욱 명백하게 되는 것이다’라고 설파한 후쿠자와 유키치의 ‘외교론’ 영향은 아닐까. 어쨌거나 일본의 작태를 독일의 사례와 견줘 보면 하늘과 땅 차이로 느껴진다. 독일이 전후 70년 동안 얼마나 처절한 자기반성과 사죄 과정을 거쳐 전쟁 피해 당사국들의 신뢰를 쌓고 오늘날 유럽의 중심 국가로 다시 우뚝 서게 됐는지에 대해서는 지면상 설명을 생략한다. 또 아베가 극우보수인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자들과 역사 인식을 같이하고 있는 점도 과거사 반성과 사죄의 기대감을 저버리는 요인이다. 이들 극우 세력은 일본의 전쟁 도발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도쿄재판이 부당하다며 명예회복을 요구한다. 나아가 잘못된 침략 역사를 반성하자는 의견을 자학사관이라 폄훼하고 역사의 객관성을 추구하는 학자들을 ‘국적’(國賊)으로 매도하며 배타와 경쟁을 강조하는 닫힌 군국민족주의를 부르짖는다. 이는 일본의 비극이자 아시아의 비극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희망의 끈을 완전히 버리지는 않는다. 아베의 말대로 자신의 큰 꿈인 정치대국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식민지 피해 당사국과의 화해가 선결 과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과거 피지배 민족의 응어리를 풀지 못한다면 설령 경제대국의 목표는 이룩했다 하더라도 절대로 정치대국은 될 수 없다. 섬 안에 폐쇄된 정치소국일 뿐이다. 침략을 미화하는 역사수정주의와 군사력 증강으로는 넘어야 할 산이 너무 높고 많은 까닭이다.
  • [광복70주년] “통일국가 만드는 게 후손들이 할 일”

    [광복70주년] “통일국가 만드는 게 후손들이 할 일”

    엄혹했던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편에 섰던 일본인 변호사 후세 다쓰지(1880~1953)의 외손자 오이시 스스무(80)씨는 할아버지를 대신해 광복 70주년 인사를 남겼다. 그는 “한국의 광복 7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도 “축하에 이어 가장 먼저 드는 소회는 한반도 분단에 대한 슬픔”이라고 전했다. 그도 우리나라 독립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인 중에서는 유일하게 2004년 건국훈장을 받은 할아버지처럼 한국에 각별한 관심을 보였다. 오이시는 “통일국가가 되는 것이 독립운동에 목숨을 아끼지 않은 분들에게 드리는 최대의 공양(供養)”이라는 표현을 쓰며 남북한 통일을 기원했다. 이어 아베 신조 정부의 수정주의 역사관에 대해 “진실을 부정하려는 자세는 정당하지도 않고 국제정치적 관점에서도 현명하지 않아 보인다”고 날 선 비판을 했다. 위안부 소녀상이 세워진 지 얼마 안 될 무렵 직접 한국을 찾아 수요집회에 참석했다는 오이시는 “나는 위안부에 끌려간 여성의 불행을 인식하며 고노 담화를 지지한다”는 말로 위안부 할머니들의 고통을 위로했다. 최근 친일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박근령씨를 언급하기도 한 그는 “한국 정부는 일본에 대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가지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진정한 사죄는 한국의 요구가 아닌 일본의 자발적 행위일 때 의미가 있지 않겠느냐”는 말로 일본 정부의 노력을 촉구했다. 1980년부터 2008년까지 일본평론사라는 출판사를 운영한 오이시는 ‘후세 다쓰지와 조선’ 등 4권의 책을 쓰며 역사 속에 묻힌 후세 변호사의 삶을 되살려 왔다.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아베 담화 살피고 北 속셈 따지고… 박대통령 메시지 퇴고 중

    아베 담화 살피고 北 속셈 따지고… 박대통령 메시지 퇴고 중

    박근혜 대통령의 광복 70주년 경축사 원고는 15일 아침까지 계속 수정될 가능성이 크다. 주요 원고는 퇴고를 거듭하는 박 대통령의 습관 때문이기도 하지만, 광복 70주년을 둘러싼 환경에 유동성과 모호성이 커진 탓이다. 70주년 경축사의 핵심은 일본과 북한을 향한 메시지에 있다. 행사의 성격으로나, 시의성으로나 그렇다. 국내 문제는 앞서 노동개혁을 중심으로 한 대국민 담화를 통해 한 차례 다뤘기 때문에 시급성을 덜었다. 일본을 향한 메시지는 아무래도 14일 저녁으로 예정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담화문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박 대통령은 앞서 “일본 정부가 역대 내각의 역사 인식을 확실하게 계승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가이드라인을 여러 차례 제시했었다. 아베 담화를 평가해야 하는지부터 평가의 수위 조절, 나아가 메시지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한다. 아베 담화에 대한 주변국들의 반응도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대북 메시지는 북의 지뢰도발이라는 변수로 복잡해졌다. 당초 박 대통령은 대화와 평화 구축 방안에 무게를 두고 상당히 ‘전향적인’ 대북 메시지를 준비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사건 이후에도 영국 외무장관을 만나서는 “대화 재개 노력”을 이야기했고, 독립유공자 및 유족 초청 오찬에서도 “평화 구축”을 거론했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13일 “원래 큰 뉴스거리들이 예고돼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안타까워했다. ‘뉴스거리’는 그간 박 대통령이 강조해 온 대화를 통한 실질적인 통일준비, 동질성 회복을 위한 교류 협력 등을 진전시킬 만한 구체적인 방안들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으로 관측된다. 다만 이 뉴스거리들이 아직 완전히 소멸된 것 같지는 않다. 청와대는 이날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도발에 대한 응징과 평화적 협력을 위한 설득 노력이 두 기둥”이라며 그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정부는 북의 도발이 어느 선에서 추진됐고 수행됐는지를 판단하는 등 종합적인 분석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거리의 질과 양은 이 분석에 좌우될 전망이다. 이번 8·15 경축사는 종전 70주년 기념 이후 본격화될 한·중·일 간 각축에 우리의 주요 지침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오는 10월 16일 미국을 방문해 한·미 정상회담을 갖기로 확정했으며, 앞서 9월 초 중국의 항일 전승기념식도 참석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지운 기자 jj@seoul.co.kr
  • 아베, 담화 오늘 오후 6시 낭독… 침략 인정·사죄 여부 촉각

    아베, 담화 오늘 오후 6시 낭독… 침략 인정·사죄 여부 촉각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을 하루 앞둔 14일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를 발표한다. 아베 담화는 각의(국무회의)를 거쳐 일본 정부의 공식 견해가 된다. 아베 총리가 이날 오후 발표할 담화에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일본 총리가 ‘전후 50년 담화’에서 천명했던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반성과 사죄”가 포함될지에 국제적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담화 내용에 따라 향후 한·일 관계 및 중·일 관계는 물론 일본 국내 정치도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아베 총리는 지난 12일 지역구인 야마구치 현에 머무르며 담화와 관련, “지난 전쟁에 대한 반성과 전후의 행보, 앞으로 일본이 어떤 나라가 되어 갈지를 세계에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곳에서 담화 문안을 정리 중인 아베 총리는 14일 도쿄로 돌아가 오후 5시 임시 각의를 거쳐 문안을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교도통신이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각의 결정 후 14일 오후 6시부터 총리 관저에서 기자회견을 개최, 담화를 직접 낭독하고 담화에 대한 입장을 밝힌다. 이와 관련, 노광일 외교부 대변인은 13일 정례 브리핑에서 “(담화라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무슨 단어를 쓰고 무엇을 하라고 얘기하고자 하지는 않는다”며 “그간 일본 내각의 역대 담화에서 표명된 역사 인식은 후퇴돼서는 안 되고 계승돼야 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해 왔다”고 말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서울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데스크 시각] 영화 ‘암살’과 ‘국제시장’/이순녀 문화부장

    [데스크 시각] 영화 ‘암살’과 ‘국제시장’/이순녀 문화부장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독립을 위해 헌신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암살’이 1000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13일까지 기록으로 본다면 광복절인 15일에 1000만 스코어를 찍을 가능성이 99%다. 제작진이 개봉 시점을 정할 때 당연히 광복절을 염두에 뒀겠지만 뚜껑을 열기 전까지 흥행 여부나 관객 숫자는 누구도 예측 못할 일이니 우연치고는 너무나 절묘한 타이밍이다. 올 들어 ‘암살’ 이전에 1000만 관객을 넘은 한국 영화는 ‘국제시장’(1425만명)이 유일하다. 공교롭게도 이 두 편의 1000만 영화 사이에도 ‘우연치고는 절묘한’ 연관성이 있다. 우선 눈에 띄는 공통 분모는 ‘애국 코드’다. ‘국제시장’은 부부싸움 와중에도 국기 하강식 의례를 지키는 장면을 두고 지나친 애국심 강요라느니, 강압적인 시대상에 대한 풍자라느니 하는 지엽적인 논란이 있었지만 이와 별개로 무에서 유의 기적을 만들어 낸 부모 세대에 대한 존경심과 그들이 힘겹게 일으켜 세운 나라에 대한 자긍심을 가슴 벅차게 확인시켜 줬다. ‘암살’은 부모 세대보다 두어 세대 앞선 시기 독립의 일념으로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며 친일파를 처단하는 항일 무장독립군의 분투를 통해 나라를 잃는다는 게 무엇인지, 그리고 그 나라를 되찾는다는 건 또 어떤 의미인지를 절절히 깨닫게 해 줬다. 영웅이 아닌 이름 없는 민초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점도 닮았다. ‘암살’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이끈 백범 김구 선생과 항일 무력독립운동단체 의혈단을 조직한 약산 김원봉이 등장하지만 조연에 불과하다. 이들의 지시를 받아 친일파 암살에 나선 세 명의 독립군은 자신의 안위 따위는 아랑곳없이 ‘누군가 일제에 맞서 계속 싸운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불리한 싸움을 계속한다. 하지만 역사는 이들의 이름을 온전히 남기는 데 게을렀고, 후세는 남아 있는 독립 후손들을 기리는 일마저 소홀했다.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도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지만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묵묵히 나라 경제를 일궈 온 수많은 산업역군 가장들을 대변하는 인물이다. ‘암살’에 나라 잃은 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국에서 활동하는 무명의 독립군이 있다면 ‘국제시장’에는 가난의 설움을 떨치기 위해 독일로 건너간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이 있다. 두 작품의 연관성은 광복 이전과 이후를 다룬 작품이란 점에서 가장 도드라진다. 1930년대부터 광복 이후 수립된 대한민국 국회의 반민족행위자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 활동까지를 담은 ‘암살’은 1950년 12월 흥남 철수를 시작으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시대상을 담은 ‘국제시장’의 전사(前史)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런 점에서 ‘암살’과 ‘국제시장’의 동반 ‘1000만 클럽’ 가입은 이념과 사상, 이해관계에 따라 여러 갈래로 찢기고 나뉘어진 지금 우리 세대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미완의 친일 청산이 드리운 그림자를 세월이 흘렀다고 해서 무조건 덮어서도 안 되며, 1960~70년대 누구도 부인 못할 눈부신 산업화의 성과를 애써 폄하해서도 안 된다는 걸 두 영화의 흥행은 보여 주고 있는 게 아닐까. 과(過)는 과대로, 공(功)은 공대로 냉정히 인식하고 평가하는 성숙한 국민 의식이 필요한 때다. 특히 올해는 광복 7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가 아닌가. 그러려면 먼저 박근혜 대통령부터 지난 1월에 ‘국제시장’을 관람했듯 ‘암살’도 관람하시길 기대한다. coral@seoul.co.kr
  • “北도발 단호히 대응… 대화문은 열어둬 통일 대비해야”

    “北도발 단호히 대응… 대화문은 열어둬 통일 대비해야”

    서울신문은 12일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서희외교포럼(대표 장철균 전 스위스 대사)과 공동으로 ‘분단을 넘어 통일로, 이제는 외교다’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마련했다. 장 대표의 사회로 조태용 외교부 1차관, 염돈재 성균관대 초빙교수, 김태현 중앙대 국제대학원 교수(한국국제정치학회장), 여인곤 통일연구원 명예연구위원 등이 참석한 좌담회에서 참석자들은 북한의 도발에 단호한 대응을 주문하면서도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남북 관계 개선을 모색해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 한반도 통일보다 어렵다던 독일 통일이 이뤄진 지 벌써 25년이 됐다. 아직도 우리의 통일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하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북한의 정세와 향후 진로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염 교수:남북 관계 개선과 통일의 가장 큰 장애 요인은 북한의 3대 세습 체제다. 북한 정세는 장기적으로 볼 때 갈수록 불안정성이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소위 ‘급변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적다. 결국 북한의 개혁·개방과 한반도의 통일은 김정은 3대 세습 체제가 무너진 후에야 실마리가 풀릴 것이다. -조 차관:경제적으로 평양은 종전에 비해 활발하고 휴대전화 확산과 먹거리의 증가가 목격되는 등 일부 나아진 점도 보이지만 물자나 재화가 상대적으로 풍부해진 것은 생산량이 증대됐기 때문이라기보다 수확량의 일부를 경작자가 가져가도록 하는 분조제나 장마당을 통해 유통, 분배 측면에서 나아졌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정치·경제 상황이 근본적으로 개선되기 위해서는 북한이 보다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핵·경제 병진 노선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의 길로 나가야 한다. 북한의 전략적 도발은 외교적 고립과 경제적 고난을 더욱 가중시키게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여 위원:북한의 목표는 김정은 정권의 공고화, 만성적인 경제난 극복, 외부 체제 위협 세력의 억제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은 동북 3성, 러시아는 자국 극동 지역의 경제 발전을 위해 한반도 통일보다는 분단을 선호하고 있어 단기간 내에 한반도가 통일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본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 준비와 노력에 대한 평가는. -조 차관:정부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입각해 대화와 협력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등 북한 주민과의 접촉면을 넓힐 수 있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남북 관계에 있어 북한은 예외적으로 취급해야 한다는 ‘북한 예외주의’를 극복하고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을 도입하는 일관된 노력도 함께 기울이고 있다. -김 교수:통일대박론은 1990년대 소위 ‘통일비용론’으로, 식은 우리 사회의 통일 열기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통일은 쌍방적 과정이고 우리 사회에서 통일 열기가 살아났다는 것은 오히려 북한에 대한 위협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통일이 남북한 모두에게 대박이어서 결국 한민족 전체에 대박이라는 점이 충분히 납득됐는지는 의문이다. -염 교수:큰 틀에서 박 대통령의 정책이 옳은 길로 가고 있다. 문제는 이런 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동북아평화협력구상은 미국, 중국, 북한이 외면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이 적고 통일준비위가 구상한 통일헌장 제정도 성사될 가능성이 없는 제안이다. →한반도에서 실현 가능하고 바람직한 통일 한국의 비전은 무엇인지. -조 차관:박근혜 정부는 ‘작은 통일에서 큰 통일로’ 나아가는 점진적, 평화적 통일 방식을 지향한다. 정부는 이를 위한 일관된 노력을 기울여 나갈 것이며 북한의 부정적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입각해 북한의 도발에는 단호히 대응하되 대화의 문은 계속 열어 두고 남북 관계 개선을 모색하는 가운데 통일을 준비해 나갈 것이다. -김 교수:중국식 일국양제처럼 통일의 의미를 보다 확대하는 식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두 개의 주권국가가 하나의 주권국가로 통합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이 통일에 관한 한 남북 관계를 제로섬으로 만들어 오히려 통일의 가능성을 저해한 것은 아닌지 반성하고 정치적 ‘통일’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통합’도 통일의 한 과정 또는 한 유형으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염 교수:한반도 통일은 불가피할 경우 민족공동체 통일 방안대로 단기간의 국가 연합 과정을 거칠 수도 있으나 가급적 독일처럼 평화통일, 흡수통일 및 단일체제하의 통일 방식으로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민주화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여 위원:일부에서는 통일 한국의 중립국화를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초기에 중립국이었던 덴마크와 노르웨이가 독일군의 공세로 단기에 점령당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통일이 되더라도 중립국화된 통일 한국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남북 관계는 경색되고 중국의 부상으로 한국 외교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는데 바람직한 방향은. -염 교수:한반도 통일에 주변국의 동의가 필수 요소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주변국의 태도에 너무 민감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한반도 통일을 적극 지지할 것이고, 러시아는 통일을 적극 방해해야 할 이유가 없고, 일본은 대미 관계 및 한·일 관계에 비춰 함부로 어떤 시도를 할 수 없는 처지다. 중국에 대한 공공외교를 확대하면서 주한 핵무기의 한시적 재배치 등을 추진해 나간다면 중국이 북한을 포기할 가능성도 많다. -조 차관:현재 동북아시아는 각국의 안보정책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가운데 역사, 영토 등의 요인마저 겹치면서 갈등이 심화되는 등 정치적 협력이 경제 협력 증진에 역행하는 ‘아시아 패러독스’ 현상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과의 포괄적 전략 동맹과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조화롭게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우리 외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다. -장 대표: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면서 한국이 ‘주변부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따라서 우리에게는 주변 이해당사국에 통일의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정적인 효과를 최소화하는 방향의 ‘균형외교’가 요구된다. 균형외교를 위해서는 한·일 관계도 안정화시키고, 러시아와는 자원 중심의 경제 협력을 도모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 비무장지대에 유엔 제5사무국을 유치하는 외교적 노력을 추가할 필요가 있다. 유엔은 세계 평화 유지를 목표로 하고 있고 유엔 사무국은 현재 미국 뉴욕, 스위스 제네바, 오스트리아 빈, 케냐 나이로비 등 네 곳에 있다. 세계 인구 60%를 넘는 아시아에는 없다. 비무장지대의 유엔 사무국은 남북 평화뿐 아니라 세계 평화에도 기여한다는 당위성이 있다. →북한 핵 문제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외교 전략은. -조 차관:정부는 한·미 동맹에 기초한 맞춤형 억제 전략을 강화하고 도발 저지를 위한 예방외교를 강화해 나가고 있다. 아울러 한·미·일·중·러의 5자 공조 강화를 위해 적극적인 외교를 전개하고 있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미·일과의 긴밀한 공조를 강화하는 가운데 한·중 전략적 협력 관계 속에서 중국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게 함으로써 북한 비핵화 진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도록 유도해 나가고 있다. -여 위원:북핵 문제는 김정은 정권이 병진 노선을 채택함으로써 해결 가능성이 적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차선책은 북한의 핵 개발을 동결시키는 것이고, 13년을 끌어 오던 최근의 이란 핵 합의가 해결 방안이 될 수 있다. -김 교수:미국과 우리나라를 포함한 관련국 사이에 ‘북핵 피로감’이 만연해 있다. 협상을 통한 북한 비핵화에 대한 기대를 접고 차라리 북한의 붕괴, 그 뒤를 이은 남한에 의한 흡수통일이 첩경이라는 인식이 성장하고 있다. 우리 전략과 외교는 보다 다차원적일 필요가 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한 비핵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돌발 상황 발생 시 우리나라의 주도권 확보가 필요하다. 남북 관계 개선, 북한 비핵화를 위한 꾸준한 대화 제의와 노력의 외교적 효용이 여기에 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의 자세는 무엇이고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김 교수:대한민국이 독립변수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의 파워로 인정받아야 한다. 이 파워를 영토, 인구, 경제, 군사 등의 하드파워라고만 이해하면 적어도 동북아 지역에서 한국이 설 땅은 없어진다. 법과 규범, 문화와 지식 등 소프트파워로서 파워를 규정할 때 우리나라의 입지가 커진다. MIKTA와 같은 중견국 외교가 대표적인 예다. -염 교수:통일을 위해 북한과의 화해, 협력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 통일을 위해서는 우선 북한 3대 세습 체제의 붕괴에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통일 문제와 관련해 국민적 합의를 이룰 수 있다는 환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전망이 매우 불투명하고 접근 방법이 다양한 중요한 국가적 문제에 대해 국민적 합의를 이룬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여 위원:해방 70년을 맞는 우리에게 가장 안타까운 일은 정권 변화에도 불구하고 지속성을 가진 대북·통일정책이 없다는 것이다. 대북·통일정책은 분단 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교류 협력을 확대하는 한편 통일에 대비하는 정책이어야 한다. -장 대표:통일 준비의 종착역은 통일 한국이다. 독일처럼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고 통일을 이뤄 낼 수 있는 내부적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북한이나 주변 환경을 우리의 희망대로 바꿀 수는 없지만 통일 역량을 강화하는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가능하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정권 교체에 관계없이 일관성 있는 대북·통일정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정리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 [동정] 박원순 서울시장 ‘동아시아 평화국제대회’ 동참

    [동정] 박원순 서울시장 ‘동아시아 평화국제대회’ 동참

    박원순 서울시장은 13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리는 ‘2015 동아시아 평화국제대회’에 참석해 각국 인사 100여명이 아베 담화에 대응해 발표하는 ‘동아시아평화선언’에 동참한다. 박 시장은 환영사에서 14일로 예고된 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담화가 고노 담화와 무라야마 담화 등의 역사인식을 계승하고 과거사에 대한 진심어린 성찰과 사죄를 담아야 한다고 밝힌다. 박 시장은 이어 오후 7시30분에는 서울광장에서 열리는 ‘이이제이와 원순씨가 함께하는 광복70주년 특집 토크콘서트’에 출연한다.
  • 해외여행 | 중국 구이린Guilin-풍경 그 너머의 고장

    해외여행 | 중국 구이린Guilin-풍경 그 너머의 고장

    억만년의 시간이 빚어낸 경치를 시인묵객들은 천하제일이라 예찬했고, 구이린계림, 桂林을 보지 않고 산수를 논하지 말라고 누군가는 으스댔다. 그러나 마주한 그곳에서 시선을 파고든 건 산과 물의 품에 안긴 사람들이었다. 장엄한 풍광도 삶의 터전일 뿐인 그들은 전통을 잇고 현재를 수긍하며, 리장리강, 漓江처럼 담담히 흐르고 있었다. 순한 웃음을 주던 그 얼굴들이 쉽게 잊혀질 것 같지 않다. 구이린桂林을 여행하기 전 기원전 214년, 진나라 시황제가 처음 도시를 세운 구이린은 광시좡족자치구 북동부에 있다. 수려한 경관은 익히 유명하고 특히, 몇년 전부터는 수십 개의 풍경구를 새로 개발하고 교통까지 편리해져 국제관광도시로의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 주고 있다. 구이린은 아열대 기후라 기온이 높고 일 년 내 비가 자주 온다. 크게 덥지도 춥지도 않은 곳이라지만 실제 체감 온도는 그렇지 않다. 습기 탓에 훨씬 덥게 느껴지고 비가 내린 후에는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 5월 말의 기온이 34℃ 정도였는데 체감온도는 40℃처럼 느껴졌다. 종잡을 수 없는 날씨이기 때문에 가볍게 보지 말고 여행시에는 계절에 맞는 준비물을 잘 챙기도록 한다. 흔히 계수나무 꽃이 피는 가을을 여행의 최적기로 꼽는다. 룽지티톈의 경우 10월 둘째 주쯤 추수를 하기 때문에 황금 논을 보기 위해서는 중국 내 인파가 몰리는 첫째 주는 피하는 것이 좋다. ●구이린桂林 계수나무의 숲 잦은 비에 하늘을 볼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고작 60일이라는 구이린. 출국 전부터 중국 기상청 예보에 온통 신경이 쏠렸건만. 6월을 앞둔 구이린의 하늘은 머리 위로 폭염을 쏟아내고 있었다. 이동하는 내내 차창에 코를 박았다. 종일 집안으로 향기가 스민다는 꽃이 피기에는 이른 시기였지만 계수나무는 초여름 무성한 녹음을 뿜고 있었다. 건물 사이 기괴한 봉우리들이 시선을 끌었고 수많은 오토바이들이 그 사이를 무심히 내달렸다. 구이린은 몇년 사이 빠르게 변화해 왔다. 특히 광시廣西좡족자치구의 교통 요지로서, 잘 정비된 도로에 리장漓江, 샹장湘江의 물길은 광저우와 홍콩, 마카오까지 이어진다. 숲을 이룰 만큼 계수나무가 많다는 뜻을 가진, 구이린에서 가장 오래된 수령 110년의 계수나무 부부수가 있는 곳은 징장왕청靖江王城이다. 징장은 구이린의 옛 지명으로 명나라 태조 주원장은 왕위에 오르면서 장손인 주수겸을 왕으로 임명해 구이린에 파견했다. 왕청은 징장왕의 저택으로 명나라 5년에 착공해 완성까지 20년이 걸렸다. 현재 광시사범대학 왕청캠퍼스로 사용 중인 징장왕청은 시내에서도 중심에 있었다. 견고한 성벽과 네 개의 성문은 당시 그대로지만 종묘, 정자, 누각 등 대부분의 건물들이 중일전쟁1937~1945년 때 파괴되어 1947년 재건한 것이다. 역사전시실로 꾸며진 청윈뎬承云殿에는 12대에 걸친 성의 역사를 모아 놓고 있으며 한 켠에서는 작은 공연도 펼쳐진다. 그 뒤 국학당으로 사용 중인 침궁 앞으로 학생들이 오간다. 우거진 나무터널을 지나 걸음은 두슈펑獨秀峰에서 멈췄다. 66m 높이에 불과한 이 석회암 봉우리는 이름처럼 홀로 우뚝 솟아 있는데 정상에서 보이는 멋진 전경은 과거 명인들의 동경이었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석각이다. 당나라 이래 136개나 되는 석각이 봉우리 곳곳에 숨은 그림처럼 새겨졌는데 가장 유명한 것이 송나라 후기 때 문인이던 왕정공王正功이 직접 새긴 시다. ‘구이린의 산수가 천하의 으뜸桂林山水甲天下’이라는 유명한 문장이 그 시 속에 있다. 젊은이들과의 연회에서 흥에 겨워 쓴 시의 한 구절이 구이린을 대표하는 말로 대대손손 기억되리라는 것을 왕정공은 짐작이나 했을까.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더위에 지쳐 있다 쾌재를 부른 것은 루디옌蘆笛岩에서다. 루디옌은 시내에서 7km 떨어진 광명산에 있는 동굴로 전체 2km 중에 개방된 곳은 500m 정도다. 18℃를 유지한다는 동굴 안은 정말 시원했다. 눈사람, 부처, 사자, 수정궁 등 기이한 형상의 종유석과 석주, 석화가 색색의 조명 아래 영롱한 자태를 드러냈고 안내원의 설명이 어김없이 이어졌다. 동굴은 정말 신비로웠지만 여기저기 판매를 목적으로 잘려 나간 종유석을 보는 기분은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대자연의 예술궁전’이라는 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분명하다. 구이린의 밤은 낮보다 아름답다 평범했던 낮과 달리 밤의 구이린은 화려하게 변신한다. 대표적인 곳이 량장쓰후兩江四湖다. 량장쓰후는 시내를 감싸 흐르는 리장과 타오화장桃花江의 물줄기를 도심의 룽후龍湖, 산후杉湖, 구이후桂湖, 무룽후木龍湖와 연결해 만든 해자라고 할 수 있다. 네 개의 호수는 당나라 당시에도 구이린의 해자였다. 샹산象山공원도 량장쓰후 부근에 자리한다. 흔한 유원지를 떠올리는 분위기 탓에 명성과 달리 조연으로 전락했던 그 코끼리 모양의 돌산은 차라리 밤이 되자 주연의 자리를 되찾은 듯 보였다. 산후 앞 선착장에서 유람선의 차례를 기다렸다. 물 위로 량장쓰후의 랜드마크인 일월쌍탑日月月雙塔이 반짝인다. 금탑은 태양, 은탑은 달을 뜻한다. 유람선이 제 속도를 내고 룽후를 지나는 오른쪽으로는 룽후공원의 밤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이 조명에 파묻혀 웃고 있다. 함께 손을 흔들었다. 속도가 줄어든 것은 중간 지점 구이후 부근에서다. 재현된 옛 선박모형 앞에서 가마우지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전통낚시 퍼포먼스가 연출되고 있었다.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하는 가마우지는 긴 목과 주둥이를 이용해 재빠르게 물고기를 잡는다. 배는 다시 미국 금문교 모양의 다리 아래를 지난다. 모두 열 아홉 개나 되는 량장쓰후의 다리 중에는 이처럼 세계 유명 다리를 본뜬 것도 많아 교량박물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뱃놀이의 풍류는 당을 거쳐 송宋대에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많은 호수와 강이 있는 구이린은 수로가 발달해 뗏목과 배를 이용한 뱃놀이가 꾸준히 이어져 왔다. 하지만 경제성장을 위해 개발이 진행되면서 수질은 나빠지고 하천의 체계는 무너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작된 것이 1998년의 량장쓰후 프로젝트다. 강과 호수를 연결하고 공원 녹지를 조성했으며, 다리와 길을 만들고 수질을 정화하는 작업을 거쳐 2002년, 지금의 량장쓰후를 탄생시켰다. 덕분에 도심의 생태환경 질은 높아졌고 오늘날 쾌적하게 밤의 풍류를 즐기게 된 것이다. 유치하다 싶을 만큼 화려한 조명들로 몽롱한 사이, 수변 무대 앞에서 유람선이 갑자기 멈춰 선다. 음악과 함께 민속공연이 한창이었다. 감상도 잠시, 출발 지점을 향해 다시 뱃머리를 돌린다. 배 안. 어여쁜 한족 아가씨가 익숙한 우리 노래를 비파로 연주하는 동안 한 시간여의 현대판 뱃놀이가 끝나 가고 있었다. ●룽성 龍勝 눈물로 일군 천국의 계단 구이린에서 77km. 광시와 후난湖南성 접경에 자리한 룽성으로 향한다. 정확히 말하면 룽성 각족各族자치현 허핑和平향, 그곳에 있는 룽지티뎬龍脊梯田이 목적지다. 룽지티톈은 우리가 흔히 다랭이 논이라 부르는 계단식 논이 산 전체를 덮고 있는 곳이다. 두 시간 반 만에 버스가 매표소 앞에 도착했다. 여기서 버스를 갈아타고 30분을 또 가야 한다. 세차게 비가 내렸고 험한 산길 아래는 물줄기가 운무에 쌓인 계곡을 휘감았다. 멀미가 슬슬 올라올 무렵 멈춘 곳은 훙야오红瑶족의 부락인 황뤄야오자이黄洛瑶寨. 60가구, 약 500명이 이곳에 모여 산다. 야오족은 수난의 역사를 가졌다. 원명元明시대 봉건통치자들의 압박을 피해 대규모 야오족이 남쪽으로 이동했고, 특히 명대 97년간은 군대까지 동원한 유혈진압에 시달렸다. 훙야오족이 룽지티톈에 정착한 것도 이 무렵이다. 다채로운 자수를 수놓은 붉은색 옷을 입는 훙야오족은 여인들의 긴 머리가 유명하다. 머리카락 평균 길이는 1.7m, 가장 긴 사람은 2.1m나 된다. 다섯살 때부터 기른 머리를 성인식 때 귀밑까지 자르고는 다시 평생 기른다. 자른 머리카락은 뭉치로 잘 보관해 뒀다가 결혼 후 자녀를 낳으면 틀어 얹는데 그것을 반발盤髮이라 한다. 그리고 머리를 손질할 때 빠지는 머리카락을 모아 뒀다가 또 하나의 반발을 만든다. 예쁘게 틀어 올린 머리는 지금의 머리에 두 개의 머리채를 묶어 비로소 완성된 스타일이다. 훙야오족이 이토록 애지중지 머리를 기르는 이유는 다름 아니라, 머리카락이 부귀영화와 장수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부락으로 가기 위해서는 먼저 흔들다리를 건너야 했다. 10여 명씩 우산을 든 채 한 손으로 출렁대는 다리를 부여잡고 뒤뚱대며 건넜다. 발아래로 비에 불어난 물살이 아찔했다. ‘천하제일장발촌’이라는 표지석을 지나 들어선 민속공연장에는 훙야오족 문화의 면면이 공연으로 펼쳐진다. 전통차인 유차를 마시며 여인들이 그 긴 머리를 풀어헤치고 감아올리는 퍼포먼스를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남성 관객과 함께 연출하는 결혼 풍습도 흥미롭다. 마음에 드는 남성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꼬집고 남성이 여성의 발등을 살짝 밟는 것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면 그 다음은 일사천리다. 공연은 부락에서 가장 나이 많은 81세의 할머니가 창가에서 긴 머리를 빗는 것으로 막바지에 이른다. 놀랍게도 흰머리가 하나도 없다. 훙야오족은 쌀뜨물을 발효시킨 물로 계곡에서 머리를 감는다는데, 일평생 검고 윤기 나는 머릿결을 지니고 있는 비법일지도. 노동이 흐르는 산등성이 풍경 71.6km2라는 가늠하기도 힘든 면적의 룽지티톈은 해발 1,916m 룽지산 자락을 380m부터 높게는 1,180m까지 뒤덮고 있다. 크게 진컹티텐金坑梯田과 핑안티텐平安梯田으로 나뉘는데, 핑안은 좡壯족의 거주지이고 진컹은 훙야오족의 거주지다. 그들은 13세기 원나라 때부터 이 방대한 개간 작업을 시작해 청나라 초기에 완성했고, 지금까지 대를 이어 살고 있다. 방향은 진컹티톈 쪽이었다. 3년 전 설치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기로 했다. 천천히 고도가 높아지고 창밖으로 논이 물결친다. 20분 후, 드디어 가장 높은 진푸딩金佛頂 전망대다. 막 비가 그친 희뿌연 산자락에 온통 용이 춤을 춘다. 논 사이사이 다자이, 신자이, 좡지예 등 부락들이 그림처럼 박혀 있고, 장대한 선율로 흐르는 곳곳에서 모심기가 한창이다. 룽지티톈에는 ‘황금빛 부처의 정수리’라는 진푸딩 외에도 8개의 전망대가 더 있다. ‘달과 일곱 개의 별’, ‘천국으로 향하는 천개의 계단’ 등 저마다 낭만적인 이름을 지녔다. 위대한 이 풍광은 땀과 정성으로 일군 것이라기보다 척박한 자연환경 속에서 생존하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의 결과라고 하는 것이 차라리 옳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카메라를 내려놓기 힘든 매력적인 예술작품이기 전에 돌투성이 산을 일구며 죽음과 맞서 온 이들의 삶의 터전인 것이다.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이 역설적인 아름다움 앞에서는 그저 말을 잊을 뿐이다. ●싼장 三江 시의 고향, 노래의 바다 또 하나의 소수민족을 만나러 싼장 둥족자치현으로 향한다. 소수민족들이 흔히 그렇듯 이들 또한 한족, 몽고족, 만주족 등 주류의 핍박을 피해 이 변방의 산간벽지에서 거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8개의 부락이 모여 산다는 정양촌 입구. 촌락 입구에서 제일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청양펑위차오程陽風雨橋, 이름 그대로 바람과 비의 다리다. 길이 64.4m에 폭 3.4m, 높이는 10.6m에 이르는 이 다리는 실용성을 넘어 뛰어난 조형미와 아름다운 자태로 세계적으로도 건축양식의 걸작이라 평가받는다. 1916년부터 12년이 걸려 완성됐는데 중국 정부의 중점보호대상문물로 지정되어 있다. 청양펑위차오는 맨 아래에 5개의 청석으로 기둥을 받치고 그 위에 삼나무로 몸체를 만든 후 탑 모양의 정자를 지붕으로 올린다. 다리 내부는 긴 복도 형태다. 놀라운 것은 쇠못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서로 맞물려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런 펑위차오風雨橋는 둥족 마을 어디에나 있다. 현에만 모양이 다른 다리가 100개도 넘는다. 부락과 부락의 경계, 강이 있는 자리에 세우는 펑위차오는 교량의 기능 외에도 영혼을 달래고 액을 막아 복을 기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다른 펑위차오인 허룽河龍교를 지나니 핑자이平寨다. 이 부락에는 고루鼓樓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펑위차오와 함께 둥족 문화를 상징하는 고루는 공동체의 중심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고루를 지을 때는 모두가 힘을 보태고 돈이나 물건을 기부하기도 한다고. 점심은 관샤오冠小촌에서 바이자옌百家宴을 베풀어 성대한 대접을 받았다. 바이자옌은 귀한 손님이 오면 집집마다 대여섯 가지의 음식을 만들어 모여 접대하는 손님맞이 잔칫상인데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전통복장을 한 둥족 여인들이 줄을 맞춰 서서 고음과 저음이 섞인 음색으로 환영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들의 환대는 노랫가락을 타고 둥족은 노래하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아무 때고 권해도 막힘없이 한 자락을 뽑아낸다. 고유문자가 없는 그들이 노래 속에 역사와 신화를 담아 문화적 전통을 이어온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둥족 사회가 ‘시의 고향이자 노래의 바다’라는 서정적 칭호를 갖게 된 것도 민족의 서사를 전승하는 방법이 노래였기 때문이다. 고루 앞 광장. 군무와 함께 연회가 시작된다.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인 루성蘆笙이 갖가지 소리를 내며 광장을 울리고, 이들이 모시는 대모신 싸마薩瑪를 상징하는 우산을 들고서 여인들이 질서정연하게 춤을 춘다. 햇살처럼 사방으로 퍼진 우산살이 마을의 재앙을 막아 준다고 믿는다. 공연이 끝날 때쯤 여인들이 서둘러 음식을 나르기 시작했다. 상 하나에 두 가정이 만든 음식이 놓이는데 얼핏 봐도 백 가족은 돼 보인다. 둥족은 자신의 집에서 만든 음식상 앞에 앉아 그 자리에 마주 앉은 손님과 함께 식사를 나눈다. 특이한 것은 한자리에서 식사를 마치는 것이 아니라 젓가락을 들고 상을 돌면서 각각의 손맛을 볼 수가 있다. 개구리튀김이나 메뚜기볶음이 앞에 있다고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는 거다. 상마다 반겨 주는 얼굴들을 외면할 수 없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연신 받아먹었다. 여기저기서 권주가가 끝날 때까지 권하는 술잔을 연거푸 들이켜 곤혹을 치르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배를 두드릴 때쯤 마지막 순서는 뚜어예多耶다. 강강술래처럼 음악에 맞춰 모두가 손을 잡고 도는 춤으로 화합의 뜻이 담겨 있다. 연회가 끝났다. 돌아 나서는 등 뒤에서 그들이 또 이별 노래를 부른다. 괜히 목이 메어서 결국 뒤돌아 손 한 번 흔들지 못했다. 바람소리 같고 새소리 같은 그 노래 때문이다. 소수민족 중국에는 한족 외에도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인구의 90% 이상을 차지하는 한족에 비해 다른 민족들은 10% 미만에 불과하다. 중국 정부는 1952년 소수민족정책 시행 이후 5개 자치구와 30개 자치주, 120개 현에서 소수민족 자치를 허용하고 있는데 가장 인구가 많은 민족은 1,800만 의 좡족으로 광시에 많다. ▶travel info GUILIN Airline 아시아나항공 ‘인천-구이린’ 직항편이 현재 매주 목, 일요일 20:30에 출발하고 ‘구이린-인천’은 04:55 인천 도착이다. 에어차이나항공은 김포에서 베이징을 경유해 구이린까지 운항한다. 직항 소요시간은 약 4시간, 경유시 ‘김포-베이징’은 1시간 40분, ‘베이징-구이린’은 약 3시간이 소요된다. TEA 유차油茶 좡족, 둥족, 묘족, 야오족은 복장이나 음식 등 비슷한 풍습이 많다. 그중 하나가 유차다. 구이린의 유차는 궁청 야오족유차, 룽성 둥족유차, 신안유차로 나뉘는데 유차를 만들고 마시는 것을 ‘타打유차’라고 한다. 만드는 방법은 보통 현지에서 나는 차를 살짝 볶아 생강, 마늘, 쪽파 등을 넣고 물을 부어 끓인 후 걸러낸다. 그리고 기름에 튀긴 찹쌀 위에 부어 낸다. 감기를 치료하고 고된 노동 후, 체력회복을 위해 마셔 왔다는 유차는 손님이 오면 꼭 권한다. 훙야오족과 둥족 모두 환영의 뜻으로 유차를 냈는데 둘 다 비슷했다. 맛은 마치 식용유가 섞인 누룽지처럼 약간 애매하다. MUSICAL 둥족의 사랑이야기, 줘메이坐妹 <줘메이>는 둥족의 풍속을 연출한 대형 뮤지컬이다. 현 중심에 자리한 공연장, 둥샹냐오차오侗鄕鳥巢는 새의 둥지를 형상화한 둥근 형태로 천장이 없다. 줘메이는 둥족 젊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서막을 포함, 전체 6장의 구성 안에서 전통과 현대적인 감각을 조화시켜 춤과 노래로 엮어낸다. 특히 펑위차오와 전통가옥, 흐르는 강 등 둥족의 생활터전을 연출한 무대와 출연자들의 화려한 의상이 볼거리다. www.zuomeisj.com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이세미 취재협조 중국국가여유국 www.visitchina.or.kr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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