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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구의 인종차별 발명품 ‘황색 몽골로이드’

    서구의 인종차별 발명품 ‘황색 몽골로이드’

    황인종의 탄생/마이클 키벅 지음/이효석 옮김/현암사/348쪽/1만 6000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살색. 흑인이나 백인의 살색은 어떤 색이라고 말해야 할까. 2000년 네 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특정 인종의 피부색을 표기하는 것은 차별행위’라는 진정서를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02년 “크레파스와 수채 물감의 특정색을 ‘살색’으로 이름 붙인 것은 헌법 제11조의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며 기술표준원에 한국산업규격(KS)을 개정하라고 권고한다. 우리 사회에서도 살색은 오랫동안 ‘살구색’이 아니라 특정 피부색을 가진 황인종, 즉 우리 스스로 우리 몸의 색깔로 인식해 왔다. 그건 흑인이나 동남아시아인에 대한 차별이 내포돼 있다는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우리의 피부색이라고 생각하는 황인종이라는 말 자체도 뿌리 깊은 인종 차별의 단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 책은 황인종이라는 단어의 생성부터 확산, 재생산, 전파 과정을 동서양의 다양한 문헌을 통해 되짚어 나간다. 그 과정에서 황인종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서구 중심적이고 자의적이며 폭력적인지 파헤친다. 황인종이라는 표현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7세기까지 서구인들은 아시아인들을 ‘진짜 백인’이라고 불렀다. 중세 초기 동아시아를 다녀온 기행문 작가들은 중국·일본인들에 대해 “우리처럼 백인이며 상당수가 무명과 비단을 입고 다닌다”고 기록했다. 포르투갈 관료였던 두아르트 바르보자는 “중국인 거상들은 백인이며 풍채가 좋았다. 그 아내들 역시 미인이지만, 남녀 모두 눈이 작았다. 남성들의 수염은 서너 가닥 정도가 났을 뿐”이라고 평가했고, 프란체스코회 선교사인 오도리크는 1330년 중국을 방문한 여행기에서 “잘생겼다”고 묘사했다. 딱히 피부색이 백인이라고 하기도 어려운데 왜 그랬을까. 당시는 피부색을 묘사한 게 아니라 유럽인의 이기심과 아시아에 대한 가치 평가가 반영된 것이었다. 특히 동아시아의 경우 아프리카나 인도와 달리 양말과 신발을 신는 등 세련된 문화를 갖고 풍요롭게 살고 있어 유럽인처럼 ‘문명화’가 가능하다는 의미였다. 유럽의 ‘대항해 시대’ 초기에 동양에서 백인 기독교도를 발견하고 싶어 하는 유럽인의 욕망이 투영된 것이라는 게 저자의 분석이다. 검은색은 더러움과 사악함으로, 죄와 우상 숭배의 의미를 응축하고 있었고, 백인종의 흰색은 순수한 색상으로 여겨졌다. 서구인들이 아시아인에게 황색을 덧칠하기 시작한 건 18세기 ‘생물 분류학’이 등장하면서다. 칼 린네는 1735년 ‘자연의 체계’라는 저서를 통해 인종을 유럽인, 아메리카인, 아시아인, 아프리카인 등 네 가지로 분류했다. 초판에서 아시아인의 피부색은 ‘어두운 색’으로 표현했지만 10판에 이르자 돌연 질병의 색깔을 가리키는 ‘누런’, ‘창백한’, ‘송장같은’ 등 다의적으로 해석되는 단어가 등장한다. 바로 ‘황인종’의 첫 탄생이다. 서구에서 황인종이라는 단어가 급속히 확산된 건 독일의 해부학자인 블루멘바흐가 1795년 ‘몽고인종’이라는 새로운 인종 범주를 발명한 게 계기가 됐다. 서구 중심의 인류학은 아시아에 대한 혐오와 부정이 덧씌워지면서 황색과 몽고인종이 결합한 ‘황색 몽골로이드’로 정립됐다는 게 저자의 연구다. 아시아인이 몽골 계통의 황인종으로 자리잡는 데는 역사적으로 채 200년도 걸리지 않았다. 유럽은 나치 독일이 게르만 민족의 우월성을 우생학으로 정당화한 것처럼 ‘백색’을 순수한 혈통으로, 그 이외의 피부색은 열등한 존재로 여기는 오만을 드러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몽고눈, 몽고점, 몽고증(다운증후군) 같은 단어다. 동아시아인만의 특징이 아닌 보편적인 현상인데도 말 속에 ‘미개함’이라는 낙인을 찍기 시작한 것이다. 몽골 정부가 세계보건기구에 항의했지만 불과 30여년 전의 논문에도 “다운증후군을 앓는 아이들은 몽고인처럼 생겼다”고 적었다. 과학적으로 인류의 유전자는 인종에 관계없이 99.9% 일치한다. 저자는 “황인종이라는 말은 자신을 타인과 다르다고 구분짓고 차별시한 배척의 역사를 담은 표현”이라고 지적한다. 근대 유럽의 이 같은 경계 짓기는 인간을 피부색으로 범주화하고, 위계화한 야만과 폭력의 잔재로 이해된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신흥종교는 모두 사이비 취급… 일제 문화정책 탓”

    “신흥종교는 모두 사이비 취급… 일제 문화정책 탓”

    “한국 신종교에는 종교뿐 아니라 한국의 사상, 문화가 담겼습니다. 한국 신종교를 알고 연구하려는 이들이 늘어나야 합니다.” 이 땅에서 생겨나고 뿌리내린 한국 신종교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한국신종교대사전’(모시는 사람들)을 펴낸 김홍철(78) 원광대 명예교수. 김 교수는 지난 20일 서울 중구 음식점에서 1240쪽짜리 방대한 사전을 들고 기자들과 만나 “한국 신종교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이 녹아 있다”며 신종교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확산을 거듭 강조했다. ‘한국신종교사전’은 원광대 교학과를 졸업한 김 교수가 평생 천착했던 한국 신종교를 집대성한 역저다. 교단, 교주 및 주요 인물·개념·사건·도서 등을 상세히 해설하고 신종교사 연표를 부록으로 붙인 한국 최초의 신종교사전이다. 전체 항목이 2300여개에 이르고 해설 교단 수가 500개, 미집필 교단으로서 교단명과 창립자만 밝힌 교단이 200개, 교단 이름 변경 사용으로 해설 없이 표시한 교단이 200개에 달한다. 인명만도 570명, 사진 280장이 수록됐으며 전체 분량이 200자 원고지 1만 5000매에 이른다. “한국의 신종교는 최대 900개까지 있었던 것으로 파악돼요. 그 많던 신종교 중 지금 남은 건 고작 70~80개 정도에 불과합니다. 신종교의 흥망성쇠를 들여다보면 한국의 사상과 문화, 사회 변천사를 알 수 있지요.” 종교의 흥망성쇠는 대개 5개 정도의 요인에 좌우된다고 한다. 인물·제도·교육의 정비와 시대 흐름 포착과 적응, 외부 영향이 그것이다. 한국의 신종교 역시 숱한 우여곡절과 파란을 겪어 왔다고 김 교수는 강조한다. “한국 신종교는 1860년 수운 최제우의 동학 창도를 기점으로 150년 역사를 헤아립니다. 수운계, 증산계, 단군계, 불교계, 유교계, 선도계, 기독교계, 무속계 등 13류로 분류되지만 중심 사상은 후천개벽(後天開闢)과 원융회통(圓融會通), 민족주체, 인간중심, 사회개혁으로 압축됩니다.” 구한말 많은 종교가 융성했던 이유는 뭘까. “18~19세기는 전 세계적으로 신종교가 많이 생겨났던 시기입니다.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인디언이 퇴박당하면서 수백개의 종교가 생겨났지요. 우리의 경우 외세가 밀려들면서 전통문화가 무너진 데 대한 반성이 일었고 그 흐름을 사상적으로 결집한 게 신종교라고 봅니다.” 한국의 신종교는 근대 개화기를 전후해 150년간 이 땅에서 있었던 민중의 애환과 전통문화의 계승, 외국 문물의 수용 자세를 모두 담고 있는 한국 정신문화의 보고인 셈이다. 그렇게 중요한 신종교사전이 이제 처음 나온 이유는 뭘까. “일제의 영향이 그대로 이어진 탓입니다. 조선총독부는 한국에서 생겨난 모든 종교를 사교, 사이비 취급했지요. 해방 이후 기독교 편향 지도층이 집권하면서 일제시대의 종교관이 그대로 이어지다가 1980년대 중반 들어서야 학자들이 한국 신종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지요.” 지금 신흥종교에 쏠리는 좋지 않은 인식도 따져 보면 일제의 문화정책 탓이다. 한국 신종교 실태조사보고서는 앞서 4차례에 걸쳐 나온 바 있다. 조선총독부의 ‘조선의 유사종교’(1936년)와 ‘한국신흥 및 유사종교 실태조사보고서’(1970년 장병길 외 공저),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1985년 한국종교학회 윤이흠 외 공저),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의 ‘한국신종교실태조사보고서’(1997년)가 그것으로 모두 실태조사일 뿐 사전 출간은 처음이다. 그것도 원광대 실태조사보고서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1980년대 초반 10여종의 신종교사전이 출간됐던 일본과 비교하면 한국의 신종교 연구는 불모지대나 다름없다. 지금 한국에선 도덕재무장이나 힐링·건강에 치우친 신종교가 적지 않게 궐기하고 있다는 김 교수. 원광대 교학대학원장과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장, 한국종교학회장을 지낸 그는 이 땅의 모든 종교는 한국 신종교의 부침을 돌아볼 때 큰 교훈을 찾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종교가 민중들에게 삶의 지혜와 보람을 주지 못하면 도태하기 마련입니다. 지금도 많은 종교가 세상 사람들에게 답을 주지 못한 채 자기 갈등과 이익에 휘둘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울시의회 이명희의원 국학원서 ‘국학 진흥 공로’ 감사패 받아

    서울시의회 이명희의원 국학원서 ‘국학 진흥 공로’ 감사패 받아

    서울시의회 이명희 서울시의원(새누리당, 비례대표)이 7월 20일 서울국학원 주최로 서울시 신청사 지하2층 시민청 이벤트홀에서 열린 ‘서울시민 역사문화 콘서트’에서 감사패를 전달 받았다. 서울국학원측은 “이명희 의원님께서 우리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창달하고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국학 진흥활동을 지속적으로 후원해 오셨기에 그 감사의 마음을 담아 이 감사패를 드리게 되었다”고 전했다. 이명희 의원은 서울시민역사문화 콘서트에 앞서 축사를 통해 “우리민족의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청소년에서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시민을 상대로 역사강좌와 역사현장 답사 등의 프로그램을 꾸준히 펼쳐온 국학원의 활동을 치하”하는 한편 “2000년 역사도시 서울 추진사업에 시민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시민교육과 홍보에 함께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서울시민 역사문화 콘서트는 서울시와 참한우리역사모임의 후원으로 서울국학원이 주최하며 2016년 7월 6일부터 12월 14일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2시에 서울시민청에서 개최되고 있다. 프로그램은 ‘요하문명의 발견과 중국의 상고사 재편’ 등 고대사에서부터 ‘조선후기 서울의 모습’ 등 18개 강좌와 3회의 현장답사로 이루어져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송혜민의 월드why] 아이언맨 수트, 투명망토…군복이 과학을 만나면

    [송혜민의 월드why] 아이언맨 수트, 투명망토…군복이 과학을 만나면

    군복은 인류 역사에서 인종‧국가를 막론한 집단 전투와 싸움의 역사와 궤를 함께하며 발전해왔다. 특히 전투복은 단순히 군인의 신분을 드러내는 유니폼의 성격이 아닌, 적에게 최대한 적게 노출되는 동시에 전투력을 향상시키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전략적 도구로 인식된다. 시기와 장소, 지형과 기후에 따라 군복은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다. 때문에 군복은 인류의 오랜 전쟁과 군대의 역사를 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군복 역시 진화했고, 이제 단순한 ‘군복이 아닌 과학’을 입고 전투에 나서는 시대가 도래했다. 때로는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 때로는 평화를 위해 투입되는 세계 각국의 군대가 활동하는 한 ‘영원히’ 진화를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군복의 과거와 현재,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군복이 필요치 않았던 군대, 드레스보다 화려했던 군복 군인이라면 전투 시 군복을 입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위에 언급했듯 군복은 지형과 기후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 해 왔다. 예컨대 기원전 2500년, 수메르의 병사들은 사막지형을 걸어서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거추장스러운 군복은 입을 필요가 없었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근접 전투에 필요한 칼과 방패가 전부였으며, 거추장스러운 의복은 벗어던지는 것이 승전률을 높이는데 훨씬 도움이 됐다. 그런가 하면 기원전 300년 알렉산더 대왕의 보병은 화려한 깃털이 달린 투구를 쓰고 번쩍이는 청동보호구로 가슴을 보호하는 군복을 입었다. 이렇게 화려한 군복은 수많은 장병이 합세한 대규모 전투 속에서 적군과 아군을 명확하게 식별하는 동시에 군대와 군인의 용맹스러움을 표현하는 도구로 활용됐다. 현재와 같은 위장술이 등장한 것은 1800년대 중반이다. 1400년대부터 화려한 군복을 고집해 오던 영국군은 흰색 군복이 적의 저격병의 쉬운 표적이 되자, 고육지책으로 흰 군복에 흙먼지를 마구 묻혀 위장했다. 이것이 현재 ‘군복 색깔’로 대변되는 카키색의 시작이다. 카키색은 탁한 황갈색을 뜻하며, 페르시아어의 흙먼지의 뜻인 ‘khak’에서 파생된 힌두어 ‘khaki’에서 유래했다. 위장의 시작과 함께 군복은 ‘실용노선’을 걷게 된다. 특히 창과 쇠몽둥이로 근접전투를 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근대에 들어서는 총이나 화약 등 휴대 무기를 통한 원거리 전투가 가능해지면서 적과 아군을 혼동할 위험이 줄어든데다, 명분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분위기가 짙어지면서 기능성이 강화된 현대의 군복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화 속 아이언맨 수트와 투명망토의 현실화, 코앞으로 현대의 전투복은 디자인뿐만 아니라 소재에서도 다양한 변화를 꾀했다. 미국 플로리다의 한 연구소는 미 육군의 의뢰를 받아 무거운 방탄조끼를 걸치지 않아도 신체를 보호할 수 있는 거미줄 소재의 방탄복 개발에 성공했다. 일명 ‘드래곤 실크’라 불리는 이것은 인장 강도가 높고 탄성이 매우 좋으며 현재까지 알려진 직물 중 가장 강한 직물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이용하면 군용 속옷과 장갑 및 방탄 기능을 갖춘 군복 생산이 가능하다. IT 분야의 비약적인 발전은 그야말로 ‘맞춤형 군복’의 생산을 가능케 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본사를 둔 한 벤처기업은 8대의 3D카메라를 통해 인체를 스캐닝하고, 이 데이터를 이용해 인체에 꼭 맞는 옷을 제작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은 군복 제작에도 적용됐고, 이미 미군 육군은 약 4만 벌에 달하는 군복 및 군용 의류를 이 기술로 찍어냈다. 미래 군복의 ‘끝판왕’ 중 하나는 영화 ‘아이언맨’에 등장하는 수트일 가능성이 높다. 영화 속 주인공인 토니 스타크가 개발한 이것은 인체에 착용해 근력을 강화하는 일종의 웨어러블 로봇이다. 로봇으로 분류되긴 하나 아이언맨 수트는 총알과 폭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군인의 생명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전투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군복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 않다. 미국은 지금까지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군복, 즉 웨어러블 로봇 개발을 위해 2001년부터 5년간 연구비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그 결과 현지의 한 군수업체는 무려 15년 전인 2001년 군인의 팔과 다리, 몸통을 감싸는 외골격 형태의 웨어러블 로봇 개발에 성공했고, 2010년에는 하루 평균 7000㎏에 달하는 군수품을 운반할 수 있는 로봇이 실전 투입 준비를 모두 마쳤다. 실제 아이언맨 수트와 가장 유사한 웨어러블 로봇은 일본이 개발한 ‘구라타스’(Kuratas)다. 세계 최초의 인간 탑승형 거대 로봇인 구라타스는 내부 좌석에 인간 조종사가 앉도록 고안돼 있으며, 스마트 기기로 연결해 사용자가 외부에서 원격으로 조종할 수도 있다. 미래의 군인이 작은 총탄은 거뜬히 막아낼 뿐만 아니라 거대하고 단단하며 똑똑하기까지 한 강철 군복을 입는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영국 육군은 영화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투명 망토와 유사한 위장재의 야전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이 위장재를 이용한 군복을 입으면 군인이 시야에서 사라지거나 적외선‧열추적 장비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도 있다. 오징어나 문어 등 바다생물이 포식자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몸체 색을 바꾸는 모습에서 착안한 이 기술은, 주변 색상을 탐지한 뒤 수천 개의 감광전지 및 감열성 색소를 이용해 물질의 표면을 주변색과 같게 바꾸는 원리다. 올해 초 테스트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은 일명 ‘스텔스 군복’은 향후 5년 동안 추가 연구를 통해 실전 배치 될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평화 유지와 자국의 안보를 위해 존재하는 군대에서 군인은 그 어떤 무기와도 비교하기 어려운 강력한 전력(戰力)이다. 또 군인에게 있어 군복, 특히 전투복은 생명과도 직결된 무기의 일종이다. 미래에는 더 많은 군인의 생명을 보호할 수 있는 군복 개발의 연구와 투자가 강한 군대의 비결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창간 112주년-파워! 코리아] SK, ‘인재보국’ 교육·장학사업 이어와

    [창간 112주년-파워! 코리아] SK, ‘인재보국’ 교육·장학사업 이어와

    SK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원칙 아래 긴 호흡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 그룹의 사회공헌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분야는 인재양성, 교육 분야다. SK는 인재를 통한 사회 기여, 즉 인재보국(人材報國) 철학에 따라 1973년부터 ‘장학퀴즈’를 후원했다. 당시만 해도 고교생 대상 퀴즈 프로그램은 성공하기 힘들다는 인식이 팽배했지만, 인재가 자원이라는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을 실천하기 위해 뚝심 있게 후원했다고 SK는 설명했다. 44년째에 접어든 장학퀴즈는 올해 ‘장학퀴즈-학교에 가다’로 제목을 바꿨다. 일부 학생들이 스튜디오에서 지식 대결을 벌이던 형식에서 벗어나 전국에 있는 고등학교를 제작진이 직접 방문하는 식으로 포맷도 바꿨다. SK가 지원하는 장학재단인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인재양성도 42년째 지속적으로 이어지며 대표적인 인재양성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재단은 지금까지 3300여명의 장학생과 664명의 박사를 배출했다. 재단 출신 석학들은 전국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전공과 진로 탐색을 돕는 ‘드림 렉처’를 진행하고 있다. 학자들이 중·고교를 방문하는 ‘너만의 꿈을 키워라’와 학생들을 재단으로 초청하는 ‘더 넓은 세상으로’ 프로그램 등 두 가지 형태의 드림 렉처에 참여한 학생들은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6만 7000명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일본의 위험한 야망

    일본의 위험한 야망

    전쟁국가의 부활/고모리 요이치외 4인 지음/김경원 옮김/책담/324쪽/1만 6000원 천황 그리고 국민과 신민 사이/박삼헌 지음/알에이치코리아/320쪽/1만 8000원 “국민투표를 통해 헌법 개정을 묻겠다.” 일본 아베 신조 총리가 지난 10일 참의원 선거에서 압승한 직후 던진 말이다. 집권 자민당 등 이른바 ‘개헌파 4당’은 중의원에 이어 참의원에서도 3분의2 이상의 의석수를 차지한 만큼 개헌 발의 정족수를 확보했다.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전환시켜 ‘전쟁 가능한 나라’를 만들려는 아베 신조와 그 지지 세력의 ‘위험한 야망’이 현실에 한층 더 가까워진 셈이다. 일본 우익 세력이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개헌 몰이의 실상과 그 연원을 살펴볼 수 있는 책이 나란히 출간돼 눈길을 끈다. 일본의 진보 지식인 5명이 함께 쓴 ‘전쟁국가의 부활’과 건국대 박삼헌 교수가 19세기 중후반 일본을 탐색한 ‘천황 그리고 국민과 신민 사이’가 그것이다. ‘전쟁국가의 부활’이 아베 총리와 지지 세력의 헌법 개정 의도며 배경을 샅샅이 파헤쳤다면 ‘천황…’는 일본 국가 정체성의 뿌리를 추적해 알기 쉽게 전달하는 흐름이 흥미롭다. 지금 일본 개헌 몰이의 핵심은 1945년 태평양전쟁 패전 후 연합국 최고사령부(GHQ)에 의해 구축된 ‘전쟁과 군사 보유를 포기한다’는 일본 헌법 제9조(평화헌법)의 내용을 없애는 것이다. 여기에는 ‘군사 보유야말로 국가 고유의 주권이자 보통국가라면 당연히 갖춰야 할 조건’이라는 인식이 내재되어 있다. ‘전쟁국가의 부활’은 이 대목을 조목조목 짚어 그 야합의 모순과 폭력성을 생생하게 지적한다. 평화헌법 수호를 위한 이른바 ‘2015 안보 투쟁’에 앞장섰던 고모리 요이치 도쿄대 대학원 교수를 비롯한 대학교수 5명이 압축해 정리한 아베와 지지 세력의 역사인식은 명쾌하게 정리된다. 한마디로 “대일본제국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 인식에 따라 1954년 창설된 자위대의 해외 파견 형태 변화를 샅샅이 추적했다. 미·일 군사동맹 체제 아래 진행돼 온 평화헌법 조항의 점진적 침식이 생생하게 다가온다. 법적인 테두리에서 보자면 일본은 ‘군대 없는 나라’이다. 하지만 실상은 2000년대 이후 군사비 지출 순위에서 세계 6위권을 수호해 온 ‘군사강국’이다. 우익은 줄곧 “미국 도움 없이 일본 안전을 지킬 수 없다”고 되뇌면서 ‘군사 소국’임을 자평하지만 미국과의 공동작전까지 감안해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키워 왔다. 그 군사대국화 흐름을 주도하는 데 일본 재계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일본 재계를 대표한다는 일본 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총회가 작성한 ‘일본의 기본 문제를 생각한다’를 포함한 문서들은 그 단적인 증거이다. 이 문서들은 헌법의 평화조항(9조2항)을 개정해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미국에 대한 지원 활동을 강화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게이단렌의 핵심 위원회 중 하나인 방위생산위원회가 자본의 논리에 따라 군사산업의 발전을 정부에 촉구하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와 관련해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추천의 글을 통해 이렇게 경고한다. “일본의 개헌은 전쟁할 수 있는 체제를 완성시킬 것이다. 일본의 전쟁은 미국이 참전했을 때 일본군이 동원되는 형태로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러면 지금 일본의 군사대국을 포함한 우경화의 연원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천황…’는 바로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근거로 다가온다. 박 교수는 메이지유신으로 막부를 폐지하고 근대적 의미의 국가를 탄생시킨 19세기 중후반 일본을 샅샅이 살폈다. 책은 무엇보다 태평양전쟁에 이르기까지 50년 넘게 이어진 일본제국 체제에서 일본인은 일왕의 신하인 신민(臣民)으로 규정됐음에 주목한다. 실제로 1889년 제정된 메이지 헌법의 시작은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万世一系)의 천황이 통치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일본에서 부라쿠민(部落民)이라 불리며 차별받았던 불가촉천민 에타(穢多)와 히닌(非人)이 1871년 천칭폐지령으로 평민이 된 과정에 주목한다. 이들의 차별 폐지는 천부인권의 존중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외국과 교류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방치하는 것을 국가적 모욕이자 왕정의 큰 결함으로 봤다는 것이다. 저자는 러일전쟁 전후 일왕과 신민은 혈연의 연결고리로 더욱 강하게 묶였다고 주장한다. 바로 ‘입헌적 족부통치국’이라는 개념이 그것이다. 그 개념에 따라 일왕은 일본 민족의 아버지가 될 수 있었다. 일본 지도부는 잇따라 일으킨 청일전쟁과 대만 침공을 통해 일본인에게 애국심과 봉사·희생정신을 심어 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지금 일본 우경화의 핵심 세력이 갖고 있는 국가관은 바로 그 정신의 계승이라 봐도 과언이 아닌 셈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인·건축가 모두 감탄한 ‘잘 늙은 절’ 이상의 가치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시인·건축가 모두 감탄한 ‘잘 늙은 절’ 이상의 가치

    전북 완주의 화암사가 오늘날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데는 시인 안도현의 역할이 작지 않다. 1997년 펴낸 ‘그리운 여우’라는 시집에 담긴 ‘구름에 들키지 않으려고 구름 속에 주춧돌을 놓은 잘 늙은 절 한 채’라는 구절이 바로 화암사를 가리킨다. 이후 산간의 절집을 두고 곱게 늙었다느니 하는 표현이 흔해진 것은 ´화암사 내 사랑’이라는 이 시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호남의 금강산’이라는 대둔산 자락의 불명산 화암사를 찾아가려면 금산과 전주를 잇는 17번 국도를 거쳐야 한다. 여기서 농로와 다름없는 작은 샛길을 한참 달리면 절골 주차장이 나타난다. 화암사까지는 다시 20분 남짓 산길을 걸어 올라야 한다. ‘마을의 흙먼지를 잊어먹을 때까지 걸으니까 산은 슬쩍, 풍경의 한 귀퉁이를 보여주었습니다’라는 시 구절처럼 절은 모습을 드러낸다. 화암사를 두고 한 건축가는 ‘환상적인 입지와 드라마틱한 진입로, 그리고 잘 짜여진 전체 구성만으로도 최고의 건축’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시인에 이어 건축가까지 다투어 감탄하는 절이라면 무언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화루 왼쪽의 쪽문으로 들어서 절 마당에 서면 허세를 부릴 일도 없지만, 체모도 잃을 수는 없다는 듯 품격있는 절집의 면모가 눈에 들어온다. ●화암사 극락전, 우리나라 유일 ‘하앙식 구조’ 화암사가 중요한 이유는 그러나 사람에 따라서는 매우 주관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요소에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잘 알려진 대로, 화암사 극락전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중국 건축의 전형인 하앙식(下昻式) 구조를 갖고 있다. 처마를 길게 빼내고자 할 때 쓰는 이런 구조는 7세기 초반의 나라 호류지(法隆寺)를 비롯해 일본 건축에는 흔하다. 화암사 극락전이 없었다면 ‘일본 건축은 중국에서 곧바로 받아들인 것’이라는 일본 학계 일부의 주장도 반박할 길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화암사 극락전이 하앙식 구조를 썼다고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남아 있는 절집 가운데 하앙식 구조가 드문 것은 우리 조상들이 그런 방법을 쓰지 않더라도 조화로운 처마를 만들 수 있는 기술을 일찍부터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던 것은 극락전 현판이었다. 극(極)·락()·전(殿) 세 글자를 각각 한 글자씩 새겨 걸어 놓았다. 물론 이렇게 만든 것도 지붕 부재를 바깥으로 길게 내밀도록 하는 하앙식 구조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시적 아름다움이나 건축적 가치가 아니더라도 조선시대 불경의 필사(筆寫) 및 판각(板刻)의 중심지로 화암사는 매우 중요하다. 극락전에서 보아 왼쪽에는 한 칸짜리 작은 사당이 보인다. 조선 초기의 무신 성달생(1376~1444)의 위패를 모신 철영재(?英齋)다. 당대 명필로 이름을 떨친 그는 태종 5년(1405) 돌아가신 아버지의 명복을 빌고자 화암사에 머물며 법화경을 필사했다. 성달생은 사육신의 한 사람인 성삼문의 할아버지이다. 세종은 태종의 후궁 신녕궁주 신씨가 ‘법화경’을 금() 글자로 필사하는데 정서하는 역할을 그에게 맡기기도 했다. 불교에 조예가 매우 깊었던 그는 당시 왕실의 불사(佛事) 대부분에 깊이 관여했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성달생은 당시 많이 읽히고 있던 불경을 필사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세종 6년(1424)부터 작업에 들어간다. 오늘날 ‘육경합부’(六經合部)라는 이름으로 전하는 불서(佛書)로 ‘금강경’, ‘화엄경’, ‘능엄경’, ‘아미타경’, ‘법화경’, ‘관세음보살예문’의 주요 대목이 한 권에 담겨 있다. 화암사에서 멀지 않은 안심사에서 처음 간행된 이후 폭발적인 수요로 오늘날까지 전하는 판본만 50종 남짓에 이른다. 모두 성달생의 원본을 판각한 것이니 조선시대 불경은 그를 빼놓고는 말할 수 없다. ●조선 불경 간행의 중심지… 은중경·장수경 판각 성달생은 이런 인연으로 화암사에 막대한 시주도 약속하는데, 중창 불사는 세종 22년(1440) 무렵 마무리 짓게 된다. 화암사는 기념이라도 하듯 이듬해부터 ‘은중경’과 ‘장수경’을 판각했고, 세종 25년(1443)에는 성달생이 직접 필사한 ‘능엄경’과 ‘법화경’을 간행하기도 했다. 그러니 화암사는 안심사와 함께 조선시대 불경 간행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절이다. 철영재 현판 글씨는 자하 신위(1769~1845)가 썼다. 성달생과는 수백 년의 시차가 있는 조선 후기 문인이다. 추사 김정희와 비교되는 시(詩)·서(書)·화(畵) 이 삼절(三絶)로 평가받는 자하는 ‘금강경’을 직접 쓰고 감상을 적은 ‘서금강경후’(書鋼經後)를 남겼을 만큼 불교에 심취한 인물이었다. 당연히 성달생이 필사한 경전을 탐독하면서 불교에 대한 인식 수준을 높여 갔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자하가 철영재 현판을 쓴 직접적 이유는 알 길이 없다. 하지만 철영재와 자하가 남긴 현판의 존재는 화암사가 과거에는 결코 산중에 숨어 있는 작은 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dcsuh@seoul.co.kr
  • 佛, IS 공습 주도·무슬림 차별… 작년 이후 12차례 테러 ‘일상화’

    佛 인구 10% 차지하는 무슬림 2등 국민 대접·실업 겹쳐 불만 IS에 포섭돼 무차별 테러 감행 세계적 휴양지인 니스에서 14일(현지시간) 벌어진 트럭 테러로 프랑스가 또다시 ‘희생양’이 됐다. 프랑스는 지난해 1월 7일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파리 사무실 총기 난사 이후 같은 해 11월 13일 파리 동시다발 테러, 이번 니스 참사까지 겹치며 테러가 일상화된 나라가 되고 있다. AFP는 지난해부터 프랑스 내 주요 테러 혹은 테러 기도 사건이 모두 12건에 이른다고 전했다. 세 달에 두 번꼴로 크고 작은 테러가 이어지고 있다. 이제 프랑스는 테러조직 이슬람국가(IS)의 주무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프랑스는 지난해 파리 테러 이후 대테러 수사권을 강화한 데 이어 올해 5월에도 사법당국의 도·감청 권한을 대폭 확대한 ‘테러방지법’을 마련하는 등 테러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써 왔다. 그럼에도 이번 사태를 막지 못해 프랑스인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프랑스에 테러 공격이 끊이지 않는 원인을 프랑스의 역사적·사회적 과오에서 찾는다. 프랑스는 과거 제국주의 시절 북아프리카와 시리아, 레바논 등을 지배하면서 본국의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식민지 주민들을 대거 징용해 갔다. 이들이 현재 프랑스 인구(6600만명)의 10% 정도를 차지하는 무슬림(600만명 안팎)의 근간이 됐다. 하지만 ‘톨레랑스(관용)의 나라’라는 별명과 달리 프랑스 내에서 아랍계에 대한 사회적 차별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슬림 이민자들은 프랑스가 세계 5~6위 경제대국이 되는데 밑바탕이 됐음에도 ‘2등 국민’으로 대우받으며 차별과 실업이라는 이중고를 겪는다고 느낀다. 이런 현실에 절망감을 느끼는 일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자연스레 IS 등에 포섭돼 ‘지하드’(이슬람 성전)라는 이름으로 죄의식 없이 테러에 나선다는 것이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이번 테러의 진짜 배후는 IS가 아니라 서양의 백인중심주의와 무슬림 혐오”라면서 “서구 국가들이 아랍계 이민자들에 대한 차별을 인정하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인식과 제도의 전환에 나서지 않는 한 상황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랑스가 IS 박멸에 사활을 걸고 나서는 점도 테러의 타깃이 되는 이유로 분석된다.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장은 “프랑스가 이라크에서 미국 주도 IS 공습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프랑스 내 테러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면서 “현재 프랑스는 리비아 등 중동과 북아프리카 전쟁에도 간여하고 있어 이슬람 과격단체의 주요 표적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서울시의회 오경환의원 “경의선 책의 거리, 마포구 발전에 긍정적”

    서울시의회 오경환의원 “경의선 책의 거리, 마포구 발전에 긍정적”

    경의선 공유지 시민행동은 지난 12일(화) 오후 2시,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3층 바실리홀에서 시민과 학계․관계기관 전문가 등 5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연속토론회를 개최했다. 박선영 문화연대 대표의 사회로 홍우주사회적협동조합 정문식 이사장의 기조발제와 자리를 함께한 각계 전문가들은 경의선 책의 거리 대한 개선의견과 성공을 위한 종합토론을 진행했다. 이날 토론에서는 김남균 그문화갤러리 대표가 ‘홍대앞 젠트리피케이션과 경의선 책의 거리 사업’, 책읽은 사회문화재단의 안찬수 상임이사가 ‘마포구 책문화 정책과 경의선 책의 거리 사업’, 도시연대의 조은혜 간사의 ‘도시공간에서 시민의 권리와 책의 거리 사업’, 주대관 문화도시연구소 건축가가 ‘경의선 공유지 운동의 관점에서 본 책의 거리 사업’, 오경환 서울시의원의 ‘경의선 책의 거리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제언’이라는 주제로 참여하였고, 현장의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하기 위한 각계각층의 청중들이 직접 참여했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오경환 의원(마포구, 기획경제위원회)은 “현재 마포구가 추진하는 본 사업과 관련해 우선 경의선 사업부지의 활용과 관련해 출판문화와 관련한 주제를 선정한 것은 마포의 발전을 위한 적절한 판단이었다고 사료된다” 면서, “홍대주변과 신촌, 연남동 일대가 최근 지나치게 상업화되고 클럽을 비롯한 유흥 문화중심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점에서 주변 주민들이나 서울시민들에게 마포구와 해당 지역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전해 줄 것이다”라고 밝혔다. 오경환 의원은 “장점이나 기대효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우려되는 점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면서 “책의 거리 조성사업이 예상하지 못하게 해당 지역 출판업계나 지역 서점들에 피해를 줄 가능성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대책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또한 사업의 지속성을 지적하며 “앞으로 3년간 매년 약 2억 5천만 원의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이라 마포구와 위탁사업자인 한국출판협동조합이 자생력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마포구는 출판산업의 발전과 독서문화의 진흥을 위해 경의선 홍대역사 사업부지 일대에 약 250미터 길이의 ‘경의선 책의 거리’ 사업을 추진중에 있으며. 2012년 책을 주제로 하는 테마공원 조성을 위한 민간사업자의 제안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고 지난 6월에는 책의 거리 운영을 위한 위탁사업자(한국출판협동조합)까지 선정한 상태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양천구 수화통역센터 확장 이전

    서울 양천구가 청각장애인들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나섰다. 수화통역센터를 확장하는 등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기로 한 것이다. 양천구는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양천구 수화통역센터 사무실을 확장해 이전한다고 13일 밝혔다. 구 관계자는 “양천구에는 전체 장애인의 11%에 해당하는 1900여명의 청각장애인이 있다”면서 “청각장애인들에게 원활한 수화통역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접근이 편리한 장소로 이전하고, 편리한 시간에 방문할 수 있도록 시스템도 정비할 계획”이라고 설명한다. 2010년 만든 신월동의 양천구 수화통역센터는 수화통역사 3명, 청각장애인통역사 1명 등 5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청각장애로 불편을 겪는 사람들에게 일상통역, 법원통역, 병원통역, 육아통역 등 다양한 수화통역서비스를 제공해 청각장애인의 손과 발 역할을 하고 있다. 또 청각장애가 없는 일반인과의 원활한 소통과 문화적 차이를 좁히기 위한 노력도 한다. 그러나 33㎡(11평) 규모로 좁은 양천구 수화통역센터는 공간 부족으로 상담실이나 교육장이 따로 없다. 상담을 할 때는 개인정보 보호가 어려울 뿐 아니라 수화 보급과 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교육장소가 없어 수화통역센터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오는 9월부터 구청의 각종 업무에 대한 수화 상담을 받을 수 있도록 구청 1층 민원과 안에 수화통역사 한 명을 배치할 계획이다. 김수영 양천구청장은 “청각장애인들의 쉼터인 수화통역센터가 그동안 열악한 환경으로 제 역할을 다할 수 없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한준규 기자 hihi@seoul.co.kr
  • 가슴 저미게 때론 코믹하게… 우리가 몰랐던 스페인 음악

    가슴 저미게 때론 코믹하게… 우리가 몰랐던 스페인 음악

    “스페인 음악은 흥겹고 열정적이라는 게 외부의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하지만 스페인 음악은 다양합니다. 가슴 저미는 사운드부터 코믹한 사운드까지 모두 아우릅니다. 한국 관객분들에게 스페인 음악의 진수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오는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첫 내한공연을 갖는 ‘스페인 내셔널 오케스트라’(ONE) 지휘자 안토니오 멘데스(32)의 각오다. 멘데스는 스페인 출신 파블로헤라스 카사도, 콜롬비아 출신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와 함께 가장 촉망받는 라틴 지휘자로 꼽히고 있다. ONE는 라틴 음악의 권위를 자랑하는 스페인 대표 오케스트라로, 1940년 창단됐다. 마드리드 심포니, 스페인 방송교향악단과 함께 서반아 관현악 역사를 일궈왔다. 이번 공연에선 호아킨 투리나의 ‘환상적 무곡’, 마뉴엘 데 파야의 ‘삼각모자’ 등을 들려준다. 멘데스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ONE는 스페인 출신인 투리나와 파야의 전문 오케스트라”라고 소개했다. “오케스트라는 서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저마다 고유의 스타일과 강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 작곡가의 곡들은 ONE가 가장 잘 연주할 수 있고 다른 오케스트라와 선명하게 구별되는 ONE만의 저력을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스페인어는 제 모국어라 자연스럽습니다. ONE에게 두 작곡가의 작품은 모국어와 같습니다. 그들의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단원들에게 어떻게 연주하라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휘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힘과 자신감을 불어넣어주는 열정을 꼽았다. “저는 공연마다 제 모든 것을 쏟아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단원들에게 주고 단원들의 에너지를 끌어냅니다. 그리고 훌륭한 음악을 만들기 위해 항상 열린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음악에 헌신할 수 있고, 훌륭한 아티스트들과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멘데스는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태어났다. 마요르카와 마드리드 음악원에서 바이올린과 피아노, 작곡, 지휘를 배웠다. 2006년 독일 베를린으로 이주해 베를린예술대학, 바이마르리스트음대에서 공부했다. 현재 라이프치히에 살고 있다. 그는 “지금 독일에서 살고 있고 독일에서 받은 상급 교육이 제 음악적 삶에 영향을 미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마요르카는 제 모든 것이자 제가 항상 돌아갈 곳이며, 스페인 음악은 그 어떤 설명이나 통역이 필요치 않다”고 설명했다. 이번 공연에선 건반 위의 구도자로 일컬어지는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협연자로 나서 파야의 ‘스페인 정원의 밤’, 라벨의 ‘피아노 협주곡 G장조’를 연주한다. “백 선생님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분과 함께 협연했던 다른 오케스트라 동료들이 백 선생님은 정말 훌륭하다고 하더군요. 백 선생님과 함께 연주하게 돼 영광입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불안한 금융시장에 안전자산으로 인기… 갈아타야 하나

    불안한 금융시장에 안전자산으로 인기… 갈아타야 하나

    세계 금융시장 불안이 지속되면서 금과 은이 말 그대로 금값에 거래되고 있다. 특히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이 나온 뒤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심화되면서 이들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金, 온스당 1258.4달러… 27.34% 올라 미국 뉴욕상품거래소(COMEX)에서 금 선물은 지난 8일 연초보다 27.34% 오른 온스당 1358.4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같은 기간 은 선물은 45.23%로 두 배 가까이 오르며 온스당 20.10달러를 기록했다. 가장 대표적인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는 금보다도 훨씬 빠르게 상승한 것이다. 금과 은은 최근 전 세계 자산시장에서 거의 유일하게 호황기에 진입한 자산이다. 이 둘은 물리적인 기준에서는 금속에 해당되고 산업소재 등의 용도로 쓰이지만 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화폐로 쓰였다. 이 때문에 지금도 달러화 등 기축통화와 함께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인식된다. 화폐와 달리 실물자산으로서 가치가 있기 때문에 안전성이 더욱 부각된다. 가격이 많이 올랐지만 여전히 안전자산에 대한 관심이 식지 않는 까닭에 ‘금도끼’와 ‘은도끼’ 투자에 대한 다양한 전망과 조언이 나온다. ●銀, 온스당 20.10달러… 45.23% 올라 조병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금과 은은 안전자산으로서의 가치뿐 아니라 인플레이션, 저금리, 달러 약세 기대감에도 가격이 오를 수 있다”며 금·은 투자는 여전히 긍정적이라고 전망했다. 조 연구원은 은 투자에 조금 더 무게를 두면서 “미국, 중국, 유럽 등이 재정지출 확대를 이어 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오는 4분기 이후 투자 사이클이 찾아올 수 있다”며 “산업소재 측면에서 효용성이 더 높은 은에 대한 수요가 더 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반면 은 투자 수익률이 더 높지만 안전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훈길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은은 역사적으로 금보다 2배 이상의 가격 변동성을 갖는 특성이 있다”며 “위험 회피를 해야 할 현시점에서 은에 대한 투자는 또 다른 형태의 위험을 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도 상승폭이 더 클 수는 있겠지만 안전성을 우선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 제주 정착인구 꾸준한 증가... 수익형 부동산으로 관심 이어져

    제주 정착인구 꾸준한 증가... 수익형 부동산으로 관심 이어져

    제주도는 매년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고 있는 관광객과 신규 이주가 거듭되면서 사람이 몰리고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이에 신규 개발호재와 지역경제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고 있어 부동산 업계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불리고 있다. 제주도 관광협회와 호남지방 통계청 자료 등에 따르면 지난 해 제주도를 방문한 관광객은 역대 최대치인 총 1,360만여 명에 달했다. 이는 2014년(1,227만 명) 대비 11% 이상 급증한 것으로 국내외 관광수요는 지속적인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다. 관광 등의 일시적 방문이 아닌, 제주도 정착 인구 증가도 꾸준하다. 행정자치부 주민등록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08년 56만618명이던 제주도 인구는 7년 연속 순증하며 2015년 기준 61만9,655명으로 약 11% 가량 크게 늘었다. 제주도 지역 공인중개사는 “제주도는 현재 급증하는 관광객뿐만 아니라 정착을 통한 거주를 원하는 내륙 수요가 상당하다”며 “매년 관련 문의와 실제 매매 수요가 꾸준하게 이어지고 있으며 특히 수익형부동산과 상가 등 월수익형 상품에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제주도는 제2공항 개발과 노형동 드림타워 그리고 동북아시아 최대 복합리조트가 들어서는 신화역사공원 등 대형 개발호재가 이어지고 있다.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일대의 제2공항 건설추진 계획은 지난 해 11월 발표돼 제주도 전역의 호재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42조 원 규모의 천문학적인 경제적 효과가 예상되는 신화역사공원 개발 사업이 지난 해 2월 착공, 본격적인 동북아시아 최대 한국형 복합리조트 사업이 본궤도에 올랐다. 최근에는 5월에 착공 예정인 노형동 ‘드림타워 카지노 복합리조트’ 개발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세계 최대 건설사가 시공할 예정인 노형동 드림타워는 2만3,300㎡ 부지에 지하 5층~지상 38층 규모로, 호텔과 외국인전용 카지노, 스카이라운지, 복합쇼핑몰, 전망대 등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이런 가운데 올 초 1차 분양이 조기 마감된 가운데 2차 물량을 분양 중인 제주 연동 디오션시티는 제주시 연동 274-64번지 일대에 들어선다. 천마종합건설의 시공이 예정돼 있는 ‘제주 연동 디오션시티 2차’는 지하 3층~지상 15층, 총 412개 객실로 구성돼 랜드마크 단지로 부상하고 있다. 제주시 연동 디오션시티는 제주공항이 차량 10분~15분 거리에 위치할 만큼 최적의 공항 접근성을 갖췄다. 또한 삼무공원과 연동근린공원, 한라수목원 등이 가깝고 롯데마트와 이마트, 제주한라병원, 신라면세점, 제주도청 등 편리한 생활 인프라 등 연동 최고의 입지여건을 갖췄다는 평가다. 주변으로 약 4만6천여 명이 상주하는 탄탄한 임대수요가 갖춰져 공실률을 최소화할 수 있는 조건이 부각되며 투자자들의 관심도 집중되고 있다. 연동의 수익형부동산 랜드마크 상품답게 프리미엄급으로 구성된 풀옵션 및 커뮤니티 등도 눈길을 끈다. 건물 입주민들은 휘트니스센터와 실내골프연습장, GX룸, 고품격 1층 로비와 옥상정원 등을 활용해 웰빙 라이프를 실현할 수 있으며 실내에 보관하기 힘든 물품을 별도로 보관할 수 있는 계절보관함과 셀프빨래방 등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실내에 럭셔리형으로 구성될 예정인 풀옵션 인테리어는 삶을 더욱 풍요롭게 업그레이드 할 전망이다. 1~2인 가구의 편리한 생활을 위한 빌트인 냉장고와 드럼세탁기, 레인지와 레인지후드 등 빌트인 전자제품 그리고 대형 붙박이 옷장, 고품격 샤워부스, 상부책장과 매립형 의자, 수납형 빨래건조대 등이 조성될 예정이다. 분양 관계자는 “제주시 연동 1370번지, 제주은행(연동타운지점) 인근에 위치한 제주 연동 디오션시티 2차 홍보관에는 현재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는 가운데 빠른 분양 진행이 예상된다”면서 “입주는 2018년 6월 예정”이라고 밝혔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자치광장] 용산공원은 용산 주민의 뜻 반영해야/성장현 용산구청장

    [자치광장] 용산공원은 용산 주민의 뜻 반영해야/성장현 용산구청장

    “그저께 하오 2시쯤 일본 헌병 몇 명이 이태원 등지 둔지미·사촌리·와서·서빙고에 사는 동민 10명을 체포하여 명동 군사령부로 이송하였다.”(1904년 8월 11일자 대한매일신보) 용산 주민이 일본 헌병에게 체포된 이유를 설명하자면 1905년 러일전쟁 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군은 용산에 군대를 주둔하기로 하고, 그해 8월 용산 일대 가옥과 무덤을 이전하겠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전답을 빼앗기고 가옥을 철거당한 데다 조상 대대로 섬겨 온 분묘를 이장해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한 주민들이 한성부 앞으로 몰려갔다. 일본은 헌병을 동원해 주모자들을 체포하고 강제 해산시켰다. 선조의 고통이 110년이 지난 현재에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용산공원이 조성되는 이 땅은 40년간 일본군에게 점령당한 것도 모자라 다시 70년 세월 동안 미군부대가 주둔해 ‘금단의 땅’으로 인식됐다. 용산구 면적의 8분의1을 차지하고 중앙에 있어 용산 주민이 감내해야 할 고통도 컸다. 미군부대가 들여다보인다고 고층 건물을 못 지었다. 아무리 급해도 부대를 중심으로 돌아가야 했다. 용산 주민이 미군들과 마주치며 받았을 직간접적 피해도 무시할 수 없다. 용산기지가 이제 역사의 한 페이지로 남게 된다. 미군이 떠난 자리에는 아픔을 치유할 공원이 들어설 예정이다. 대한민국의 한 국민으로서 반긴다. 우리 용산구는 용산기지가 지닌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반영된 공원이 조성될 수 있도록 다양한 역사 사업을 추진해 왔다. 향토사학자와 함께 역사적인 공간을 발굴하고 기록한 ‘용산의 역사를 찾아서’는 용산공원 조성의 방향을 정하는 데 적지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또한 미군부대 내 근현대 역사 유적지들을 둘러보는 탐방 프로그램들도 운영 중이다. 평생학습 프로그램의 일환인 ‘용산학 강좌’를 시작으로 7월부터는 용산문화원 주관으로 매달 1회 ‘미리 가보는 용산공원 역사문화 탐방’을 이어 가고 있다. 전문가와 대학교수, 언론인, 향토사학자 등과 함께하는 학술포럼도 준비하고 있다. 포럼을 통해 나온 의견들을 수렴해 용산구의 주장을 구체화하고 우리의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는 계획이다. 4월 말 국토교통부에서 용산공원 내 7개 기관 8개 시설을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토부의 안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국토부는 공원 활용 방안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용산공원은 용산의 도시 패러다임을 바꿔 놓을 것이다. 용산구청장으로서 용산의 100년 미래를 위해 공원이 제대로 조성되기를 바란다. 용산공원의 과거와 현재를 바로 옆에서 지켜봐 왔고, 미래를 함께할 사람은 용산 구민이다. 우리 구민들에게는 공원 조성에 따른 정보 공유는 물론 공간 활용에 대한 고민까지 함께할 권리가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 용산 주민의 목소리가 반영될 소통 창구가 중앙정부에 마련되기를 촉구한다.
  • 검찰 수사 한달만에 드러난 ‘비리 백화점 롯데’…수사팀 증원

    검찰 수사 한달만에 드러난 ‘비리 백화점 롯데’…수사팀 증원

      지난달 10일 정책본부·호텔롯데 등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 이후 검찰이 수사를 진행한 한달 동안 롯데그룹의 비리 백태가 속속 공개됐다. 국가를 상대로 수백억원대 세금 환급 사기를 벌이는가 하면 ‘상품권 깡’으로 로비자금을 마련하고 총수 일가는 물론 내연녀에게까지 계열사들이 동원돼 부(富)를 몰아준 정황까지 드러났다. 검찰도 심각성을 인식, 수사 인력 증원으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10일 검찰에 따르면 롯데그룹 비리 사건 수사에 현재 투입된 서울중앙지검 수사부는 특수4부(부장 조재빈), 첨단범죄수사1부(부장 손영배), 방위사업수사부(부장 박찬호) 등 이다. 여기에 특수3부와 강력부 소속 검사들이 차출돼 수사를 지원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검찰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기업수사일 것”이라면서 “그만큼 롯데그룹의 비리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롯데케미칼(옛 호남석유화학)이 KP케미칼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 비정상 경영이 일상화한 대표 사례다. 롯데케미칼은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허위 자산을 근거로 국가를 상대로 법인세 소송을 벌여 270억원을 환급받았다. 검찰 관계자는 “대기업이 국가를 적극적으로 속여 거액을 뜯어낸 것을 수사하는 건 처음”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최근 당시 재무·회계 담당 임원이였던 김모(54)씨를 구속기소하는 한편, 당시 윗선이었던 허수영(65) 롯데케미칼 대표와 신동빈(61) 회장을 소환조사할 계획이다.  롯데홈쇼핑은 임직원들에게 준 급여를 돌려받고, 상품권을 할인가로 현금화하는 ‘상품권깡’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도 포착됐다. 지난해 4월 채널 재승인 심사를 담당한 미래창조과학부 담당 공무원들에 대한 로비용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역시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개입 없이는 실행 불가능한 행위로 검찰은 보고 있다.  신영자(74·구속) 이사장이 네이처리퍼블릭 등으로부터 롯데면세점·롯데백화점 매장 입점 대가로 35억원을 받아 챙기고, 차명 소유한 회사를 통해 40억원을 횡령 일도 이사회 등 정상적인 기업 의사결정 과정이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 이 밖에도 신격호(94) 총괄회장과 내연 관계에 있는 서미경(57)씨 소유 회사에 롯데시네마가 팝권 판매매장 등의 운영권을 주고 연 200억원 가까운 매출을 올릴 수 있도록 한 점, 서씨와 롯데건설의 불투명한 부동산 거래 등도 검찰 수사 한달만에 백일하에 드러났다. 롯데 계열사들이 동원돼 신 총괄회장의 부동산 주식 등을 고가에 사들인 점 등도 수사 대상이다. 검찰은 이런 비정상적인 경영행위가 일본 계열사를 통한 불투명한 지배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김양진 기자 ky0295@seoul.co.kr
  • 댁의 가족은 안녕하세요?

    댁의 가족은 안녕하세요?

    가족은 잘 지내나요?/앨리 러셀 혹실드 지음/이계순 옮김/이매진/336쪽/1만 8000원 #1. 무척 이성적으로 보이는 엄마와 아빠가 식탁보를 잡아당겨 접시와 컵을 마구 깨뜨리는 아들을 보고 놀란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다. ‘유모가 올 때까지 기다리세요.’ #2.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아버지가 생일 선물을 받은 아들을 기대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 아들은 아버지에게 이렇게 말한다. “선물, 정말 마음에 든다고 비서에게 전해주세요.” 미국 뉴요커지에 실린 요즘 가정 세태의 풍자 만화들이다. 얼핏 봐도 가족보다는 제3의 도우미들에게 가정의 무게 추가 쏠렸다. 먹고살기 위해 가족 아닌 도우미들에게 내 가족의 일을 대신 하게 하는 ‘가족 아웃소싱’이 넘쳐나는 세태. 가족붕괴의 징후로 여겨지는 그 아웃소싱은 왜 그렇게 범람하는 것일까. ‘감정사회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미국 사회학자 앨리 러셀 혹실드는 가족 아웃소싱의 원인을 자유시장 체제에서 찾아낸다. 그가 명명하는 세태의 이름은 바로 ‘패멕시트’(Familexit)이다. 가정이라는 울타리와 사랑이라는 감정을 벗어난 가족의 오늘을 압축해 담은 조어. 그 키워드에 실어 풀어내는 지론이 흥미롭다. ‘자유시장의 확산이야말로 시장과 가정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고 그 폐해는 바로 가정붕괴의 주원인이다.” 자유시장 옹호론자들은 ‘자유시장에 좋은 일은 가족에도 좋다’고 주장한다. 기업 지원정책을 강하게 펼수록 시장은 더 자유로워지고 가족도 더 튼튼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유시장이 확산될수록 가정의 행복도 덩달아 높아져야 하지만 각종 통계는 정반대의 양상이다. 자유시장 정책을 받아들인 나라에서 자라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나라에서 자란 아이들을 비교 분석한 2007년 유니세프 평가서를 보자. 아동 행복순위가 낮은 나라에는 자유시장 정책들을 강력히 밀어붙이는 미국, 영국 같은 나라들이 포진해 있다. 두 나라는 아동행복 수준을 나타내는 6개 핵심 분야 중 5개가 하위 3위 안에 들었다. 아이들이 아침을 거르고 비만하거나 대마초를 피우고 임신할 확률은 미국, 영국이 다른 나라들보다 크게 높았다. 2010년 이 평가서를 추적 조사한 결과에서도 미국은 빈곤아동 비율에서 꼴찌 슬로바키아를 겨우 제치고 24개국 중 23위를 차지했다. 이렇게 유럽 대부분의 국가들과 미국의 가족 행복이 크게 차이 나는 이유는 바로 ‘시장 압박’ 때문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 권력을 갖게 된 기업의 문화적 영향력이 개인 삶의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 교류에 필요한 감정마저도 시장의 규칙을 따르라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요즘 세태는 ‘가정은 비정한 시장에서 벗어난 안식처’라고 주장했던 역사학자 크리스토퍼 래시의 지론과는 사뭇 다르다. 대부분 감정노동자로 분류되는 도우미들은 전방위로 뻗쳐 있다. 가사 도우미, 유모, 아이 돌보미, 노인 돌보미, 러브 코치, 친구찾기 서비스, 웨딩 플래너, 가족 앨범 정리가, 정리 컨설턴트, 아동 배변훈련가, 육아 설계사, 유아 작명가, 캠프 상담사…. 저자는 이 대목에서 단호하게 말한다. “그야말로 가족, 나와 우리의 삶은 시장이 됐다.” 책은 가족 속으로 파고드는 시장의 폐해에 많은 부분을 할애했다.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척추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도장공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의료비 청구서에 나온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집에 있던 아내가 저임금 일자리를 찾아 감정 노동에 나선다. 문제는 이런 패맥시트가 전 세계로 빠르게 확산된다는 점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선 감정노동이 필요한 직업 중 몇몇에만 미국인이 일하고 나머지는 이주노동자의 몫이다. 늘어나는 돌봄 노동자들은 부유한 북반구 선진국에 사는 어린아이와 노인들을 잘 돌보는 일을 하려고 나이 든 부모와 어린아이를 가난한 남반구 고향에 두고 떠난다. 심지어 인도의 상업 대리모는 북반구 선진국에 사는 불임 부부에게 자궁을 빌려준다. 저자는 “모든 ‘나’들은 ‘우리’ 안에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아르헨티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브로디의 보고서’에서 말한 대목을 인용하기도 한다. “모든 이야기에는 눈에 띄는 사람과 잘 안 띄는 사람, 그리고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등 수천명의 주인공이 있다.” 결국 결론은 공감의 형성과 확산으로 귀결된다. “대안은 보육시설, 요양원, 병원 등 가정 유지에 필요한 감정노동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는 데서 시작된다. 개발이 덜 된 ‘공감 지도’를 다시 기록한다면 이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동심과 휴식, 그 뒤엔 평생 ‘관람용’으로 살다 죽는 동물들

    [송혜민 기자의 월드 why] 동심과 휴식, 그 뒤엔 평생 ‘관람용’으로 살다 죽는 동물들

    어린 시절이나 어른이 된 지금, 동물원은 여전히 신기하고 재밌는 곳이다. 호랑이·사자 등 맹수부터 해양 동물까지, 책이나 텔레비전 또는 영화에서나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동물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마치 다른 세계에 당도한 듯한 신기한 기분마저 든다. 하지만 동물원의 존재가 한없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동물보호단체는 동물들을 좁은 우리에 가두거나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노출시키는 행위 자체가 동물학대에 해당한다고 목소리를 높여 왔다. 어린아이들에게는 생생한 교육이 되고 어른에게는 작은 휴식을 가져다주는, 하지만 동물들에게는 본성과 자유를 박탈당한 공간, 동물원의 과거와 현재를 들여다보자. ●동물원의 오랜 역사 인류의 농경사회가 시작된 뒤 인간은 더욱 높은 생산성을 위해 동물의 힘을 필요로 했다. 농경사회의 발달로 소유물의 개념이 생겨난 뒤 인간에게 동물 역시 하나의 소유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이는 더 나아가 권력의 상징으로까지 변모했다. 다양한 설이 있으나 일반적으로 가장 오래된 동물원은 기원전 3500년경 고대 이집트 수도였던 히에라콘폴리스의 동물원이 꼽힌다. 히에라콘폴리스 지역의 한 터에서만 코끼리와 원숭이, 하마 등 112종의 동물 뼈가 발견된 바 있다. 이 지역이 고대 이집트 귀족들의 무덤이 있는 곳인 만큼 동물원은 지배계층의 향락과 매우 밀접한 관계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기원전 275년 로마에서는 동물끼리 시합을 하거나 전투사와 동물이 싸우는 쇼가 인기를 끌었고, 15세기 들어 유럽에서는 동물의 사육과 전시를 동시에 하는 현대 개념의 동물원이 선을 보였다. 18세기에는 동물을 끌고 지방 곳곳을 순회하며 보여 주는 서커스단이, 19세기 중반에는 상업적인 수익을 위한 동물원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동물원의 진화는 시간이 지나면서 처참하고 잔혹한 문화를 낳았다. 야생에서 살아가도록 태어난 동물들의 경우 인간에게 포획당한 뒤 비좁은 우리에 갇힌 채 죽음을 맞이하기 일쑤고, 일부 야생동물은 태생과 다르게 아예 동물원 안에서 태어나 평생을 ‘관람용’으로 살다 세상을 떠나야 한다. 인간의 호기심과 소유욕은 더 많은 동물의 감금으로 이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멸종되거나 멸종위기를 맞이해야 하는 동물들이 빠르게 늘어났다. ●전쟁터에 버려진 동물원부터 옥상 동물원까지 한 사람을 또 다른 사람의 소유물로 인식한 노예제도는 거의 사라졌지만, 하나의 동물이 한 사람의 소유물이 될 수 있다고 여기는 인식은 여전히 팽배하다. 마치 물건처럼 동물을 돈으로 사고팔거나 돈을 받고 이를 공개하는 행위 역시 그러한 인식이 낳은 결과 중 하나다. 국적을 막론하고 동물과 동물원이 상업적 수단으로 인정받으면서 동물원의 수는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는데, 그중에는 인간에게 포획돼 갇힌 것도 모자라 자신들과 전혀 상관없는 싸움에 휘말려 종말을 맞이한 곳도 있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위치한 동물원이다. 2007년 개장한 칸유니스 동물원은 가자지구 내에 위치한 5곳의 동물원 중 한 곳이다. 170만명의 주민에게 즐거움을 주던 이 동물원은 얼마 전 ‘세계 최악의 동물원’이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2008년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폭격과 이에 맞선 무장 조직 하마스의 전쟁으로 수천여명의 주민들이 죽어 나가는 상황에서 동물들이 그대로 방치돼 상당수가 굶어 죽은 것이다. 동물원 곳곳에는 죽은 동물의 사체가 미라처럼 굳은 채 버려져 있는데, 가자지구의 동물원 5곳 중 또 다른 한 곳인 알비산 동물원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역시 내전으로 버려진 이 동물원의 동물들은 극심한 배고픔과 트라우마에 몸부림쳤다. 내전과 굶주림에 지친 원숭이 한 마리가 이미 죽어 부패가 진행된 또 다른 원숭이 동족 사체 곁에서 넋을 놓고 있거나 일부가 무너진 우리 안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무기력하게 늘어져 있는 사자의 모습 등은 죄책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비슷한 참상은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지난해 국내 한 지방 백화점의 옥상 동물원을 담은 동영상 한 편은 인간의 호기심과 욕심이 얼마나 잔혹한 결과를 낳았는지를 보여 주면서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옥상 동물원은 백화점 등 쇼핑센터가 고객 유치를 위해 제공하는 볼거리로서 현재도 유통업계에서 자주 활용되는 마케팅 방식 중 하나다. 당시 공개된 동영상은 좁은 옥상 동물원의 우리 안에서 사슴 한 마리가 머리를 찧거나 흔드는 행동을 반복하고 자신의 분변을 먹는 모습 등을 생생하게 담고 있으며, 전문가들은 이것을 좁고 단조로운 공간에서 동물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일으키는 정신병적 증세라고 단언했다. 동물보호단체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비난이 쏟아졌지만 국내에는 관련 법조항이 없어 처벌도 어려운 실정이다. ●동물권 그리고 동물원의 미래상 동물에게도 인권과 유사한 ‘동물권’이 있다. 호주 철학자 피터 싱어가 제시한 개념인 동물권은 동물이 그저 실험용이나 식량, 향락을 위한 도구로 쓰여서는 안 되며 하나의 생명체로서 인간과 마찬가지로 최소한의 도덕적 권리를 가진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서식 습성을 무시한 환경의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라면 동물권을 침해받았다고 봐도 무방하다. 동물원의 아픈 현실은 여전하지만 동물권의 확대와 함께 유의미한 움직임도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예컨대 15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동물원은 동물과 역사적 건축물을 보호하자는 취지에서 동물원 폐쇄를 결정했다. 대신 이곳에 친환경 생태공원을 세우겠다고 발표한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은 “동물들이 자연이 아닌 건물에서 산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면서 동물들을 서식지로 돌려보내겠다고 밝혔다. 지난 5월 국내에서도 전주동물원이 동물들의 서식환경을 고려해 생태동물원으로 탈바꿈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동물의 습성을 가까이에서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이를 통해 다방면에서 더 나은 인간의 삶을 추구하는 것이 무작정 잘못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역시 생명체인 동물에게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더 나은 삶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배제한 채 호기심으로 소유하려 한다면, 그것은 동물을 향한 ‘갑질’에 불과하다. 동물원이 동물 삶의 종착지가 되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겠다. huimin0217@seoul.co.kr
  • 전설의 아름다운 퇴장

    전설의 아름다운 퇴장

    ‘아름다운 퇴장’을 앞둔 박세리(39·하나금융그룹)가 마지막 기자회견을 가졌다. 2016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물러나는 박세리는 여자골프 시즌 세 번째 메이저대회인 US여자오픈에 특별 초청을 받아 1라운드를 하루 앞둔 7일(한국시간) 현지 언론을 상대로 작별 인사를 했다. 박세리는 대회장인 캘리포니아주 샌마틴의 코르데바예 골프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번 대회가 미국에서 출전하는 마지막 대회가 될 것”이라면서 “내가 이 대회에서 우승한 뒤 한국에서 그저 특별한 스포츠로 인식됐던 골프가 큰 인기를 끌었고 많은 후배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에 진출했다. 벌써 18년이 흘렀다”고 돌아봤다. 박세리는 1998년 US여자오픈에서 한국 선수로서 처음으로 우승하는 쾌거를 이뤘다. LPGA 투어에서 25개의 우승컵을 수집하면서 한국 선수 중 최다 우승 기록을 남겼고, 2007년에는 한국 선수로서는 처음으로 LPGA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다. 그러나 박세리는 “내가 LPGA 투어에서 우승하기 전 구옥희 선배가 나보다 먼저 LPGA 투어에서 우승했지만 당시에는 그 사실을 한국에서 아무도 알지 못했다”면서 한국 여자골프의 역사가 자신보다 훨씬 이전에 시작됐음을 설명했다. “골프 선수로는 성공했지만 개인으로서는 그리 행복하지는 못했다”는 박세리는 “골프장을 벗어나면 다른 무엇인가를 생각하라”며 후배들에게 조언을 던지기도 했다. 박세리는 8일 0시 11분 최나연(29·SK텔레콤), 유소연(26·하나금융그룹)과 1라운드를 시작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와글와글 북한통신]미국의 北 김정은을 겨냥한 사상 첫 제제 의미와 파장

    [와글와글 북한통신]미국의 北 김정은을 겨냥한 사상 첫 제제 의미와 파장

    미국 정부가 6일(현지시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자국민에 대한 ‘인권유린 혐의’로 첫 제재대상에 올리면서 현재도 껄끄러운 북·미관계가 겉잡을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휘말릴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이번 미국의 제재가 김정은을 비롯해 북한 당과 군부에서 김정은에게 부역하는 실세들을 겨냥했다는 점에서 북한 내 간부층들의 이반과 동요도 상당할 것으로 관측된다. 미 국무부는 이날 미 의회에 북한의 인권유린 실태를 나열한 인권보고서를 제출했으며, 재무부는 이를 근거로 개인 15명과 기관 8곳에 대한 제재명단을 공식 발표했다. 김정은 이외에 제재대상에 오른 인사는 리용무 전 국방위 부위원장, 오극렬 전 국방위 부위원장, 황병서 국무위 부위원장,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박영식 인민무력상,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등이다. 기관은 국무위원회, 조직지도부, 국가보위부와 산하 교도국, 인민보안부와 산하 교정국, 선전선동부, 정찰총국 등이다. 미 국무부가 제재 대상으로 지정한 인물이나, 기관들은 북한 김정은 정권을 떠받치는 주요 핵심 권력기관이란 점에서 북한 체제의 인권유린이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이루워졌다는 그간의 국제사회의 여론을 반영한 결과로 볼수 있다. 또한 올초 북한의 4차 핵실험에 따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 이후에도 북한이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를 무시하고 자체적인 핵무장력 강화를 천명하는 등 핵능력 향상에 속도를 내는 것에 대한 징벌적 제재 측면도 있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김정은을 위시한 권력층들이 ‘인권유린’ 행위로 국제형사재판소(ICC) 등 국제사회로 부터 사법처리를 받도록 할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것은 성과로 거론된다. 향후 이 같은 범죄를 저지르는 북한 간부들에게 동일한 죄목을 적용해 처벌할수 있는 근거가 될수 있어 주목된다. 아울러 이번 조치가 중요한 것은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은까지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서 북한 내 누구도 인권유린에 가담한 경우 예외없이 처벌될 수 있다는 것을 공표하는 선언적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북한 간부들 사이에서 인권유린을 지시, 동조, 이행과 같은 행태들이 줄어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소장은 7일 “북한에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인권유린에 가담하고 있는 중간급·말단 간부들에게는 보호막이 사라진 것으로 느껴질 것”이라며 “북한 내부에서 부역자들이 평소 생각없이 행해지던 인권유린도 이젠 보복을 걱정해야하는 단계에 진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의 강도 높은 독자 제재가 마련되면서 남북관계도 그 영향을 받을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간 북한이 최고존엄과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강력 반발한 점을 미뤄볼 때 향후 5차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잠수함탄도미사일 시험발사와 같은 군사적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정부도 북한이 비핵화 논의에 대해 진전된 자세를 보이지 않는다는 판단아래 독자제재를 비롯해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천명한 상태다. 이 때문에 남북관계도 당분간 냉각기가 지속될 전망이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한국자유총연맹 회장단과 오찬에서 “역사가 우리에게 분명하게 알려주는 사실은 북한 정권의 인식과 태도에 근본적 변화가 없는 한 어떤 만남과 합의도 일시적인 이벤트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라며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하는 도발과 보상의 악순환 고리를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끊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서동철 칼럼] 헌법재판소와 새 도서관

    [서동철 칼럼] 헌법재판소와 새 도서관

    지난주 서울 종로구 재동에 있는 헌법재판소 청사의 도서관 건축 예정지 지하에서 18세기 후반에서 20세기 후반에 걸친 다양한 건물군(群)이 확인됐다는 소식이 TV뉴스에서 들렸다. 재동이라면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 북촌(北村)의 중심지다. 의미 있는 유적이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인 조선시대 도성(都城) 내부의 핵심 주거지라 할 수 있다. 이 자리는 영조와 숙의 문씨 사이에서 태어난 화길 옹주가 1765년 능성위(綾城尉) 구민화와 혼인하고 하사받은 능성위궁 터다. 이후 개화파 지식인 민영익이 이곳에 집을 지었고, 1882년 외아문(外衙門)이라고도 불린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統理交涉通商事務衙門)이 들어섰다. 여기에 1922년 지어진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 건물과 1960년대 축조된 창덕여자고등학교 시설 일부도 포함되어 있다. 발굴 조사에서는 이렇듯 다양한 역사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건물 6동의 유구가 드러났다고 했다. 조선 초 분청사기 조각과 중기 이후 백자 조각, 기와 조각 등도 출토됐다. 특히 ‘건물터 1호’로 이름 지어진 능성위궁 터에서는 건물의 장대석과 초석, 그리고 온돌 등이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조선 후기 궁집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뉴스를 보면서 이런 유적이 헌법재판소 부지에서 발견된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민간 개발의 경우 지하에서 확인된 유구의 역사성에 공감하기보다는 ‘어디에나 있는 하찮은 돌 몇 개’로 치부하기 일쑤다. 최소한의 유적 보존 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을 요즘 유행하는 표현으로 ‘밀당’에 쏟아야 한다. 그러니 행정부나 지방자치단체라도 청사 신축 과정에서 중요한 매장 문화재가 발견됐다면 민간 건설 업자와는 차원이 다른 보존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 정상일 것이다. 하물며 헌법재판소임에랴.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뉴스 말미의 소식은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아쉬웠다. 헌법재판소는 유적 보존을 논의하면서 ‘건물터 1호’의 일부인 15㎥는 보존이 가능하지만, 역사성 있는 유구가 드러난 일대 150㎥를 모두 보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고 한다. 서울시를 비롯한 문화재 당국이 ‘보존 및 활용 가치가 크다’며 ‘원위치 보존’을 요구한 넓이는 실생활에서 흔히 쓰는 단위로 45.5평 정도이니 넓다면 넓고 좁다면 좁을 것이다. 하지만 헌재가 새로 지을 도서관 내부에 보존하겠다는 4.5평은 누가 봐도 문화재 보호에 대한 기본적 의지가 있다고 평가할 수 없는 면적이 아닐까 싶다. 헌재의 경우가 아니더라도 지금 땅속 문화재 보존과 관련해서는 가슴 아픈 일들이 수없이 벌어진다. 개발 과정에서 역사성 있는 지하 유적이 발견되면 그 모습 그대로 보존이 이루어지는 경우란 거의 없다. 결국 최소한의 보존으로 결론이 내려지면, 유적은 아파트 단지 귀퉁이나 대형 건물의 작은 유리창 아래 지하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하지만 보존 조치가 내려졌다고 영구 보존이 되는 것도 아니다. 땅속 문화재는 발굴해 햇빛을 보는 순간부터 파괴가 시작한다. 복원을 한다고 해 놓지만 흙은 깎여 나가고 돌은 기울어지게 마련이다. 지속적인 유지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제 모습을 잃는 데 긴 시간이 필요치 않다. 이렇게 문화재 가치를 잃었다는 이유로 문화재청의 ‘매장문화재 보존조치 유적 재평가위원회’에 회부되는 유적은 한 해 수십 건에 이른다. 헌법재판소는 유적이 발견된 것을 축복으로 여기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다른 시설도 아닌 도서관을 짓는다고 한다. 지하에 조선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역사가 켜켜이 쌓인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도서관이란 멋지지 않은가. 능성위궁의 장대석은 앉아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용도로 활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헌재는 그렇게 역사성과 현대적 감각이 조화를 이루는 세계적인 성공 사례를 새 도서관에 구현했으면 한다. 상당한 면적을 지하에 보존해야 하는 만큼 서울시는 건물 높이와 층수에서는 과감하게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예산 당국도 어디에나 있는 도서관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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