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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꽂이]

    [책꽂이]

    부모공부(고영성 지음, 스마트북스 펴냄) 아이큐, 독서, 사고방식, 호기심, 애착, 사회성 등 아이 양육과 관련된 22가지 분야를 중심으로 아이의 미래와 성장, 행복을 위해 부모가 꼭 알아야 할 사실을 담았다. 328쪽. 1만 4800원. 도넛을 구멍만 남기고 먹는 방법(오사카대학 쇼세키카 프로젝트 지음, 김소연 옮김, 글항아리 펴냄) ‘도넛을 구멍만 남기고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오사카대 교수들의 대답을 책으로 엮었다. 296쪽. 1만 6000원. 독수리의 꿈(김종경 지음, 북앤스토리 펴냄) 우리나라 겨울 철새인 독수리만을 다룬 생생한 생태사진 보고서다. 멸종 위기종 보호를 포토 메시지로 전한다. 95쪽. 3만 5000원. 라플라스의 악마, 철학을 묻다(최훈 지음, 뿌리와이파리 펴냄) 형이상학, 인식론, 윤리학 등 철학의 주요 분야 중 선택한 117가지 사고실험을 통해 철학의 중요한 문제들을 섭렵할 수 있도록 꾸민 입문서. 412쪽. 1만 5000원. 해방의 비극 중국 혁명의 역사 1945~1957(프랑크 디쾨터 지음, 고기탁 옮김, 열린책들 펴냄) 중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긴 여정인 ‘인민 3부작’ 중 첫 번째 이야기로 오늘날의 중국 정권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528쪽. 2만 5000원. 나 혼자 먹을 거야(이승환 글·그림, 그림북스 펴냄) 엄마에게서 받은 사탕을 혼자만 먹고 싶어 숨을 곳을 찾아다니는 주인공을 통해 나눔의 즐거움을 일깨우는 작품이다. 41쪽. 1만 2000원.
  • 동물원, 사람·도시의 역사 공존하는 ‘기억 공간’

    동물원, 사람·도시의 역사 공존하는 ‘기억 공간’

    동물원 기행/나디아 허 지음/남혜선 옮김/어크로스/408쪽/1만 7000원 한국에서 동물원의 역사를 연 곳은 창경원이었다. 일제강점기였던 1909년 창경궁이 ‘창경원’으로 격하될 때 함께 진행됐던 문화 말살 정책의 아픈 사례였다. 이 탓에 ‘창경원=동물원’이란 부끄러운 인식이 광범위하게 형성됐지만, 1984년 서울대공원 이전 이후에도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추억의 공간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다. 새 책 ‘동물원 기행’이 말하려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소재는 동물원이지만 담고자 한 내용은 동물과 인간의 공존에 관한 인문학적 성찰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런던부터 상하이까지 지구 반 바퀴를 돌며 세계 각지의 동물원을 여행했다. 동물원은 근대에 만들어진 인위적 공간이다. 나라마다 건축양식이 천차만별이듯, 동물원도 구성과 특징이 모두 다르다. 창경원에서 보듯, 일부 동물원은 제국주의나 전쟁 등과 관련된 역사적 이야기도 품고 있다. 저자는 동물원을 사람과 동물의 크고 작은 기억이 보존된 ‘기억장치’에 비유한다.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동물원의 시간은 늘 그 자리다. 바로 그 덕에 동물원은 도시의 역사적 성격을 무엇보다 잘 보존해 낼 수 있었다. 저자가 유럽에서 처음 찾은 동물원은 세계 최대 규모인 영국 런던동물원이다. 1828년 대중에게 처음 개방된 런던동물원에는 800여종, 2만 마리의 동물이 서식한다. 런던동물원은 사실 약탈의 상징과도 같은 곳이었다. 제국주의 시대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빼앗아 온 동물들이 여전히 한몫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런던동물원은 오락적 기능만 추구하지 않았다. 학자의 연구 활동을 장려했고,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했다. 그 결과 짜임새 있는 운영과 충실한 정보가 가득한 최고의 동물원이 됐다. 외교와 교류의 장으로 활용된 동물원도 있다. 청나라 황실에서 조성한 베이징동물원이 그 예다. 코끼리, 코뿔소, 호랑이, 표범, 산양, 비버 등이 ‘평화’를 위해 오갔고, 각국 정치인들은 베이징동물원을 방문해 이를 ‘증명하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저자는 이 밖에 프랑스대혁명의 불길 속에서 태어난 파리동물원, 일본군에서 국민당, 인민해방군 등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며 파괴와 재건을 거듭했던 중국 창춘동식물공원, 냉전과 동서독 통일을 온몸으로 겪어 낸 동베를린동물공원 등 시대의 흐름에 적응해 가는 동물원의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삶과 도시의 기억들을 그려 낸다.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고분벽화서 찾은 고구려 흥망성쇠

    고분벽화서 찾은 고구려 흥망성쇠

    고구려 벽화고분/전호태 지음/돌베개/448쪽/3만 5000원 쌍영총, 안악3호분, 덕흥리고분, 장천1호분, 개마총…. 많은 이들이 역사책에서 만났을 고구려 벽화고분들이다. 그런데 이 고분들에 대한 일반 인식은 이름과 존재의 알음 수준에 머물러 있고 학계의 연구 진전도 그 일천함을 크게 넘지 못한다. 이 책에선 30년 넘게 고구려 벽화고분에 천착한 울산대 교수가 절박함을 토로해 눈에 띈다. ‘고분벽화는 종교·신앙의 세계를 담은 동시에 무덤 주인이 살던 세계의 모습을 그대로 옮긴 그림’ 그 정의대로 저자는 고구려 고분벽화를 고구려인의 생활상과 세계관, 내세관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타임캡슐로 본다. 그리고 그 타임캡슐을 미술영역에 가두지 않고 있다. 대표적인 벽화고분 10기의 양식 발전에 얹어 당대의 정세며 역학관계를 세밀하게 들춰 흥미롭다. 가장 도드라진 점은 대표 벽화고분들을 시기별, 지역별로 명쾌하게 구분 지은 것이다. 안악3호분과 덕흥리벽화분으로 대표되는 4세기~5세기 초 무렵 생활풍속 중심의 초기 벽화들을 보자.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고 일상생활을 묘사한 듯한 화풍이 특징이다. 무덤 주인이 현재와 큰 차이 없는 세계에서 내세 삶을 꾸린다고 믿었던 경향과 관련이 깊어 보인다. 실제로 현세보다 내세에서 더 나은 생활을 하기 바랐던 때문인지 인물이 다소 과장되게 표현되기도 한다. 고구려 전성기랄 수 있는 5세기 중엽~후반기 수십 기가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벽화고분은 불교와 전통신앙의 공존을 강하게 드러낸다. 안악2호분, 수산리벽화분, 쌍영총, 삼실총, 장천1호분이 그것들이다. 그 무덤들에선 불교의 여래(如來·완전한 깨달음을 얻어 자유로운 존재)가 주관하는 정토를 그린 그림과 함께 음양오행론에 바탕을 둔 사신도(四神圖)가 두드러진다. 당시 동아시아를 관류하던 보편적 문화요소와 고구려적 개성이 함께 묶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멸망 무렵인 7세기 전후의 후기 무덤 속 벽화들은 사신도 일색이다. ‘사신도 무덤’으로 불리는 개마총, 진파리1호분, 통구사신총이 그것들이다. 그런데 이 사신도들은 화려하지만 일관성과 방향성을 찾아보기 힘들다. 장수왕 서거 후 피지배층의 불만과 불안이 곳곳에서 피어났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상징처럼 느껴진다. 현미경 들이대듯 구조, 양식의 변화상을 세밀하게 풀어 놓는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고분들에 스며 있는 개연성에 자연스럽게 눈뜨게 된다. 북에서 1949년·1957년 발굴한 안악3호분과 1976년 수습한 덕흥리벽화분은 대표적 사례이다. 무덤 주인공에 따라 고구려가 지금의 베이징, 서쪽으로 시안까지 이어지는 유주지역의 지배 여부를 가릴 수 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안악3호분 한문 묵서명 속 ‘동수’라는 인물이 당시 전연의 왕위계승 다툼에서 밀려나 고구려로 망명한 장군 동수와 같은 인물인지, 고구려 미천왕이나 고국원왕인지를 따지는 논쟁이 진행 중이다. 덕흥리벽화분 묵서명 속의 유주자사 진이라는 무덤 주인공이 고구려로 망명한 북중국 왕조 관료였는지 고구려 출신 대귀족이었는지도 결론짓지 못한 상태이다. 그 결정에 따라 고구려 영역이 크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고구려 벽화고분은 고구려가 멸망한 뒤 1000년 넘게 잊혔던 문화유산이다. 1897년 대한제국이 선포될 무렵 벽화 속 그림이 알려져 뒤늦게 관심을 끌게 됐고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과 2004년 북한·중국 소재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화제가 됐다. 하지만 고구려 벽화고분을 중심 연구과제로 삼은 연구자는 국내외를 통틀어 몇 손가락에 꼽힐 정도라고 한다. “고대의 특정시기 세계를 가시적으로 보여 주는 뛰어난 미술이자 건축물이 광범위한 지역에 이토록 많이 다채롭게 남은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라는 저자는 이렇게 안타까움을 털어놓는다. “여전히 기초 조사와 발굴보고 정리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유물들은 급속도로 훼손되어 가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한길 큰길 그가 말하다]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국립현대미술관 첫 출근일은 1981년 9월 23일, 결혼 날짜는 1982년 12월 20일입니다. 아직 기사 마감 전이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뷰 다음날 그가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인터뷰 때 정확한 날짜를 얘기하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던 모양이다. 이후로도 여러 차례 도움 될 만한 정보와 자료들을 문자와 이메일로 알려 왔다. 참 꼼꼼하고 철두철미하다 싶었다. 김달진미술연구소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이끌고 있는 김달진(61) 관장은 그런 사람이다. 아마도 이런 섬세함과 집요함이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 수집과 연구 분야의 독보적 존재로 지금의 그를 있게 했으리라. -“신문 쪼가리 모아서 밥은 어떻게 먹고살려는지…쯧쯧.” 어른들은 하나같이 혀를 찼다. 그럴 만도 했다. 한창 공부에 집중해야 할 고등학생이 신문이건 잡지건 서양 명화가 실린 자료라면 닥치는 대로 오려서 스크랩하는 데 정신이 팔려 있으니 나중에 밥벌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을 게다. 나도 앞날이 걱정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당장은 좋아하는 취미가 우선이었다. 비록 인쇄물이긴 해도 르누아르, 피카소, 천경자, 박수근의 그림을 모으는 기쁨은 컸다. 고교를 졸업할 때 내가 모은 미술자료는 스크랩북으로 10권이나 됐다. 결과적으로 이 자료들이 내 밥벌이의 든든한 밑천이 됐다. -충북 옥천에서 5남 1녀의 막내로 태어난 나는 초등 4학년 때 어머니를 여읜 뒤 셋째 형님을 따라 대전의 중학교로 진학하면서 수집에 관심을 갖게 됐다. 시작은 껌종이, 담뱃갑, 우표 등이었다. 기념우표가 나오면 가장 먼저 우체국 창구로 달려가곤 했다. 그러다 ‘주부생활’ ‘여원’ 등 잡지에 실린 세계 명화를 접하며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서울로 올라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본격적인 수집에 나섰다. 틈만 나면 헌책방이 많았던 청계천 6, 7, 8가를 돌며 미술전집 등을 샀다. 서점 주인에게 그림 한 장을 뜯어서 팔라고 조르기도 했다. 1972년 고 3 여름 경복궁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본 ‘한국근대미술 60년전’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인쇄물로 된 서양의 명화만 보다가 우리 근대미술의 주옥같은 작품을 실물로 보니 그 감동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걸 네가 직접 다 모은 거냐? 참으로 기특하구나.” 고 3때 당시 홍익대박물관장이던 이경성 교수님을 만나 뵈었다. 막연하나마 미술 관련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미술계와 학계, 출판계에 계신 분들에게 무작정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뜻밖에도 이 교수님이 한번 보자고 하셔서 한달음에 달려갔다. 떨리는 가슴을 애써 누르며 큰절을 한 뒤 가방에 싸 간 스크랩북 10권을 보여 드렸다. 교수님은 깜짝 놀라시며 “열심히 하라”는 격려의 말씀과 함께 등을 두드려 주셨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다. 이때의 만남이 나중에 큰 인연으로 이어졌다.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 인사동 전시장을 돌며 자료를 수집하던 시절 동대문도서관에서 월간 ‘전시계’라는 잡지를 알게 됐다. 잡지사에 편지를 보내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최학천 사장이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더라. 지금의 남대문경찰서 인근 초원다방에서 만났는데 대뜸 “잡지 일은 어렵다. 사환으로 심부름도 하면서 취재하러 다녀야 한다. 월급은 따로 없고 교통비 정도만 줄 수 있는데 그래도 하겠느냐”고 물었다. 두말없이 하겠다고 했다. 그때가 1978년이다. 취재해서 기사 쓰고, 미술자료 기획물도 연재하고, 편집일도 배우며 신나게 일했다. 하지만 1980년 언론사 통폐합 바람으로 잡지가 폐간되면서 일자리를 잃게 됐다. -“청소부라도 좋습니다. 미술관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전시계’가 폐간된 뒤 청주에서 누님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서 일을 도우며 지내던 1981년 이경성 교수님이 정년퇴임하고 민간인으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취임하셨다는 기사를 봤다. 당장 편지를 썼다. 관장님은 흔쾌히 나를 받아 주셨다. 당시 미술관 직원은 30명에 불과했다. 전시과, 서무과 2개만 있었고 큐레이터란 직제는 아예 없었다. 나중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오광수 선생이 그때 전문위원으로 큐레이터 역할을 했는데 전문위원실에 책상 하나를 얻어 자료 수집을 담당했다. 하루 4500원 일당의 임시 일용직이었지만 세상을 다 얻은 듯 기뻤다. -매주 금요일마다 출근부에 사인한 뒤 인사동, 사간동을 돌아다니며 자료를 모았다. 그전까지 미술관은 보내오는 자료만 수집했는데 그렇게 해선 안 될 것 같았다. 그때 얻은 별명이 ‘금요일의 사나이’다. 한쪽 어깨엔 가방을 메고, 다른 손엔 쇼핑백을 든 채 신문사와 전시장을 쏘다녔다. 화랑 관계자들은 “뭐하러 이걸 가지고 가느냐. 다 보내줄 텐데”라고 의아해했지만 내 눈으로 직접 전시장에 걸린 그림과 도록에 실린 작품을 하나하나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 하도 집요하게 파고들다 보니 모 신문사 기자로부터 “편집광적이다”라는 말까지 들었지만 그런 사소한 오류들이 자꾸 눈에 띄는 걸 어쩌겠나. 한 번 잘못 기록되면 계속 확대재생산되기 때문에 처음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었다. 그때 하도 몸을 혹사한 탓인지 2011년 척추에 종양이 생겨 두 차례 수술을 받았다. -정년퇴직 때까지 미술관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는데 그러지 못했다. 1996년 1월 미술관을 그만뒀다. 일한 만큼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응어리가 지더라. 처음 별정직 7급 계약직으로 들어가 8년을 일했는데 그다음에 기능직 10급으로 강등됐다. 미술 잡지에 내가 쓴 미술자료 관련 글이 여럿 소개되고, 신문에도 인용 보도되면서 미술자료 전문가로 인정받았지만 승진은커녕 월급도 오르지 않았다. 당시 아들이 몸이 약해 큰돈이 들어가야 하는 처지였던 데다 좌절감까지 더해져 결국 미술관을 떠나게 됐다. 마침 가나화랑 이호재 사장과 인연이 닿아 자료실장으로 발탁됐다. 5년 10개월 근무하는 동안 ‘가나아트’ 잡지 편집회의에 참석했고, 기획물과 인터뷰 기사를 썼다. 이 사장이 프랑스에서 가져온 미술 정보지 ‘파리스코프’를 견본으로 포켓용 전시회 가이드를 만들기도 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가나에서 독립한 뒤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내게 됐다. -2001년 12월 직장 생활을 끝내고 마침내 내 이름을 건 ‘김달진미술연구소’를 열었다. 이듬해 1월에는 월간 ‘서울아트가이드’를 창간했고, 그해 9월 미술정보 포털 사이트 ‘달진닷컴’도 오픈했다. 그리고 2008년 40여년 가까이 수집한 자료들을 한곳에 모은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을 개관했다. 각종 희귀 자료와 기증 자료, 단행본, 정기간행물, 학회 자료 등이 하루가 다르게 쌓이면서 공간은 점점 부족해졌다. 평창동, 통의동, 창성동, 창전동 등지를 옮겨 다니며 전월세 생활을 한 끝에 지난해 3월 상명대 입구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오래된 건물을 매입해 박물관 겸 사옥을 마련했다. 건물 사느라 은행에 빚을 많이 졌는데 건축가 김원이 재능 기부로 리모델링을 맡아 준 덕에 비용을 아낄 수 있었다. -미술자료를 수집·정리하면서 기록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잡지 미술 연재물 기록을 시작으로, 미술단체카드, 미술인명카드, 주제별 미술기사 색인 카드 등을 정리했다. 1980~90년대 중반까지 내가 발표한 글이 신문에 자주 인용 보도되면서 ‘자료 하면 김달진’이란 인식이 서서히 자리잡았다. 평론가를 비롯해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없었다. 특히 미술자료 기록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선미술’ 1985년 겨울호에 쓴 ‘관람객은 속고 있다-정확한 기록과 자료 보존을 위한 제언’이란 글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료의 힘이랄까, 자료의 활용도와 중요성을 널리 알린 게 나의 공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으로 미술인 하면 창작 활동을 하는 작가만을 생각하지만 나는 비창작 미술인인 미술평론가, 미술사가, 큐레이터, 미술행정가, 작품 보존 및 수복전문가 등에 대한 기록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울아트가이드’ 미술계 인명록에 이런 인물에 관한 내용을 수집해 꾸준히 연재했다. 그리고 이를 보완해 2010년 ‘대한민국미술인 인명록 1’을 발간했다. 조선시대 초상화가 채용신부터 1850년 이후 태어난 4900명을 실었다.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1000부를 비매품으로 찍었는데 이 책을 보고 “우리 할아버지가 화가였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이 책에 약력이 실려 있어 깜짝 놀랐다. 가보로 삼겠다”는 반응을 들었을 때 가장 뿌듯했다. 밤하늘 별 중에 왜 일등별만 기억해야 하느냐. 이등별, 삼등별 자료도 남겨야 우리 미술계가 풍부해진다. 인명록에 숫자 1을 붙인 건 언젠가 2권을 꼭 만들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현재 달진닷컴에서 7800명의 미술인이 검색되니 곧 나오지 않을까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 왔으니 후회는 없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크다. 아내(최명자씨)는 전시계에서 일할 때 같이 근무한 동료였는데 책을 좋아하고, 서예가 취미인 점 등이 나와 잘 맞았다. 박봉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일할 때 아내가 아침마다 신문 배달하고, 우유 배달해서 살림에 보탰다. 직장이든 집이든 자료에만 매달려 있다 보니 아이들과 놀아 준 기억이 별로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 관악구 남현동의 오래된 예술인 마을에 살았는데 자료를 놓아 둘 데가 없어서 라면 박스와 사과 박스에 담아서 안방에 침대 매트리스처럼 깔아 놓고 그 위에서 잤다. 어느 날 무게를 못 이겨 마룻바닥이 휜 것을 본 주인이 방을 빼라고 하더라. 할 수 없이 앞집의 빈 지하실을 얻어서 자료를 옮겼는데 여름 장마철에 습기가 차서 자료를 몽땅 버려야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 기억하지 못할 줄 알았는데 언젠가 그때 얘기를 하는 걸 듣고 마음이 아팠다. 딸 영나(32)와 아들 정현(29)은 지금 나와 함께 일하고 있다. 딸은 대학에서 만화창작을 전공했고, 아들은 미술경영학을 공부했다. 일부러 시킨 건 아닌데 자기들이 스스로 아빠가 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고 대를 잇겠다고 하더라. 미술계 지인들이 다 부러워한다. 아내도 서울아트가이드 발행인을 맡고 있다.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를 창립했다. 전시, 학술, 뮤지엄 분과로 나뉘어 있고 3권의 자료집을 발간했다. 라키비움(라이브러리+아카이브+뮤지엄) 강의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이우환, 천경자 화백의 위작 논란 등을 해결하기 위해선 작품 이력과 같은 객관적 정보들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부가 비엔날레 같은 대형 전시 등 눈에 보이는 지원에만 신경쓰지 말고 자료 수집과 보존, 디지털화, 공공 수장고 확보 등 미술계 토양을 튼튼히 하는 인프라에 좀더 지원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하신 일도 많으시지만 하실 일도 많으십니다.” 김영나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2005년 11월 연구소를 방문했을 때 방명록에 남긴 글이다. 국내 미술계가 직면한 한국 미술의 정체성 문제, 미술계 위작 시비, 미술시장 활성화, 한국 미술의 해외 진출 등 많은 문제들의 단초가 오늘 내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작은 전시 리플릿 한 장, 메모 한 줄에 담겨 있다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30년 전 ‘관람객은 속고 있다’에 쓴 글 “오늘의 정확한 기록이 내일의 정확한 역사로 남는다”는 신념은 한 치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순녀 문화부장 coral@seoul.co.kr ■미술자료전문가 김달진 관장 46년간 한국 근현대 미술자료 수집과 보존, 연구에 매진해 온 자타공인 국내 미술자료 전문가 1호다. 미술계 안팎에선 오래전부터 ‘걸어다니는 미술사전’, ‘미술계 인간 자료실’로 통했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데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전문 분야를 개척해 온 그는 스스로를 “한국 근현대 미술의 기록과 공유를 지향하는 아키비스트(기록관리자)”라고 부른다. 2013년부터 라키비움 프로젝트를 통해 아키비스트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1955년 충북 옥천 출생 ▲서울과학기술대 금속공예과 졸업(1993), 중앙대 예술대학원 문화예술학과 졸업(1999) ▲월간 전시계(1978~1981), 국립현대미술관 자료실(1981~1996), 가나아트센터 자료실장(1996~2001) ▲2001년 김달진미술연구소 개관 ▲2002년 월간 서울아트가이드 창간 ▲2008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개관 ▲2013년 한국아트아카이브협회 창립 및 협회장, 한국박물관협회 홍보위원장, 서울시박물관협의회 이사, 종로구사립박물관협의회 회장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2010), 한국미술저작출판상(2014), 홍진기창조인상(2016)
  • 보수 “정부 수립한 1948년이 건국일” 진보 “헌법, 임시정부 법통 계승 명시”

    박근혜 대통령의 8·15 광복절 경축사로 불거진 ‘건국절’ 논쟁은 보수와 진보 양쪽이 해마다 공방을 벌여 온 사안이다. 보수 성향 학자와 단체들은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일을 공식적인 ‘대한민국 건국’으로 주장하며 정당성을 부여한다. 반면 진보 성향 학자와 광복 단체들은 대한민국이 3·1운동 후 설립된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는 헌법 내용에 따라 1919년 4월 11일 임시정부 수립일부터 건국일로 따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2006년 이영훈 교수 신문 기고가 발단 국민 생활과 큰 관련이 없는 건국절 논쟁이 정치적 성향에 따라 첨예하게 엇갈린 데는 한 교수의 기고문이 발단이 됐다. 뉴라이트 계열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2006년 한 일간지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라는 글을 기고한 후 보수 진영이 응답했고, 매년 광복절마다 불거지는 논란이 됐다는 점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논쟁은 아닌 셈이다. 건국절 논란이 정치권에서 불붙은 건 2008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일부 의원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부터다. 같은 해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행사 이름을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및 광복 63주년 경축식’으로 추진하다 광복회, 임정기념사업회 등이 강력 반발하며 헌법소원을 제기하자 전격 취소한 바 있다. ●2008년 한나라당서 법 개정안 제출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에도 건국절 제정 문제는 비영리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제기돼 왔다. 정부도 대한민국사랑회와 대한민국건국회에 매년 보조금을 지원했다. 건국절을 주장하는 쪽은 일제강점기 당시 임시정부가 국가로서 실효적 지배를 하지 못했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기점으로 국가로서 본격적인 출발을 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이 교수에 따르면 1945년 8월 15일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날이고, 1948년 8월 15일에 대한민국이 성립한 것을 광복조국이라고 부르는 만큼 건국절이 따로 제정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건국절 주장 단체 보조금 지원 이에 대해 진보 쪽은 임시 정부를 폄하하는 식민사관으로 반역사적·반헌법적 인식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헌법 전문에 명시된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문구가 대한민국의 뿌리와 법통이 임시정부에서 시작됐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는 해석에 무게를 둔다. 특히 1948년 정부수립 기념사와 1948년 국회 개회사에 ‘대한민국 30년 8월 15일’로 기록돼 있다는 점을 역사적 근거로 삼고 있다. 한시준 단국대 사학과 교수는 “1945년 8월 15일 해방과 1948년 8월 15일 정부수립을 모두 기리기 위해 1949년 10월 1일 국회에서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정을 통해 광복절을 공식적인 국가 기념일로 정하게 된 것인 만큼 별도의 건국절이 필요 없다”며 “실제로 제헌국회 속기록에도 건국이라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열린세상] 사드 배치와 함께 한반도 평화선언 발표하자/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열린세상] 사드 배치와 함께 한반도 평화선언 발표하자/조화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정부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의 한국 배치를 발표한 이후 찬성과 반대로 국내 여론이 나뉘어 대립하고 있다. 반대론자들은 사드를 설치하지 않는 것이 북한을 자극하지 않아 궁극적으로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것이며 대북 제재에 대한 중국의 공조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찬성론자들은 북한이 핵무기와 탄도미사일 위협을 고조시키고 있어 방어용 사드 배치는 불가피하며 중국의 경제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국가 안보를 포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사드 배치를 둘러싼 이러한 대립은 냉정한 계산과 전략은 없고 다분히 이념지향적 갈등으로 점철돼 온 한국 정치 풍토를 그대로 투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이 북한의 체제를 위협하는 수준으로 대북 제재를 가할 의도가 없다는 것은 이미 사드 배치 결정 이전에도 명백히 드러났음에도 마치 새롭게 공조 체제가 위협받는 것처럼 주장한다. 혹은 사드 배치는 중국을 견제하는 미국의 미사일 방어 전략에 한반도가 편입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점은 외면한 채 방어용이라는 것만 강조하고 있다. 미사일 방어 체계를 둘러싼 과잉 군비경쟁의 위험은 경계해야 하지만 현실을 무시한 유화론만으로 이미 가시화된 북한의 탄도미사일을 저지하고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수많은 전쟁의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 사회는 사드 배치 결정에 대해 사생결단의 공방을 벌일 것이 아니라 한국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생존의 전략을 모색해야 한다. 생존과 평화를 위한 전략은 먼저 사드 배치에 대한 국론 분열을 극복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미 2014년 스캐퍼로티 주한 미군사령관이 사드 도입을 언급한 바 있고 우리 정부와 상당 기간 협의를 진행해 왔을 텐데도 정부의 사드 배치 발표는 준비가 부족했고 수세적이었다. 국민에게 당위성을 납득시키고 불필요한 불안과 의구심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정보를 제공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어야 했다. 북한의 핵무장과 미사일 위협은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이지만 전후 세대인 국민이 이것을 무력분쟁의 가능성으로 인식하는 데는 차이가 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능력 수준과 무력 도발 가능성이 어떤 정도이고, 사드 배치가 가져올 방어 능력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고 사실 기반의 공감대를 형성할 때 비로소 튼튼한 안보 전략이 마련된다. 아울러 사드와 연계해 한반도 평화 선언을 발표해야 한다. 평화 선언은 단순히 북한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미·중을 포함한 주변 국가를 포괄해야 한다. 평화 선언은 주변 국가에 사드는 당면한 위협에 대한 생존권 차원의 방어 조치이며, 한반도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사드 배치 결정의 진정한 전략 목표라는 것을 인식시키는 것에서 먼저 시작해야 할 것이다. 북핵과 미사일 위협은 단순히 남북 간의 문제가 아니고 동아시아 나아가 세계 평화와도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주변국과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를 천명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다. 평화 선언에는 사드 배치 기간을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의 위협이 제거되는 시점과 연계한다는 내용을 포함해야 한다. 평화 선언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 사드 배치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가속화되고 있는 미·중 대립과 군비경쟁에 한반도가 편입되지 않도록 제한하는 데 유용하다. 둘째, 한반도 평화를 위해 포괄적이고 전략적인 동반자로서 중국의 역할을 강조할 수 있다. 중국은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한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압력과 다양한 보복을 시사하는 외교적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경제적 상호의존성이 극대화된 미·중, 한·중 국제관계에서 장기적인 대립은 중국의 전략 목표가 될 수 없다. 북한의 핵과 군사 도발의 확실한 억제 없이 한반도에서 평화를 유지하기는 어렵고 한반도의 평화 정착은 중국의 전략적 이해와도 일치한다는 설득을 다양한 채널을 통해 할 필요가 있다. 명백하고 현존하는 군사적 도발 위협 속에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과 동북아의 평화를 확보하려면 당위적 사드 배치론과 이상적 사드 반대론의 절묘한 전략적 조화가 필요하다.
  • [현장 행정] 태극기 휘날리며… 강북에 부는 ‘애국 열풍’

    [현장 행정] 태극기 휘날리며… 강북에 부는 ‘애국 열풍’

    주민봉사단이 태극기 꽂이 설치 박겸수 구청장도 직접 거리 홍보 전국 최고 광복절 게양률 이뤄내 4·19문화제 등 애국사업 진행도 광복절을 앞둔 지난 12일 서울 강북구청 앞 수유역 일대가 태극기 물결로 넘실댔다. 박겸수 강북구청장도 한 손에 태극기를 꽉 쥔 채 “국경일에 태극기를 답시다”라고 우렁차게 외쳤다. 시민들에게 직접 다가가 태극기를 건네주는 모습도 보였다. 할머니의 손을 잡고 지나가던 한 어린이는 태극기를 받고 이리저리 흔들어 보며 활짝 웃었다. 박 구청장은 “태극기 달기는 구민들이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애국 중 하나”라고 말했다. 박 구청장의 태극기 사랑은 유명하다. 전 구민 태극기 달기를 목표로 2014년 1월부터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항상 태극기 달기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게 대표적 예다. 같은 해 4월 수유사거리 ‘교통섬’(보행섬)에는 태극기 광장을 조성해 대형 태극기와 구내 13개 동을 상징하는 태극기 13개를 일년 내내 게양하고 있다. 이 외에도 동별로 주민간담회, 직능단체회의를 열어 구민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올해 광복절의 태극기 게양률이 70.1%에 이를 만큼 주민들의 참여도 활발하다. 지난해 광복절(71.1%)보다 조금 하락했지만 태극기 게양률이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라는 게 강북구의 설명이다. 김준영 자치행정팀장은 “순수한 시민운동으로 이뤄진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지난 2년간 민간에서 기증한 태극기와 태극기꽂이도 7월 말 기준으로 각각 2만 2358개, 1만 7890개에 이른다. 지난 11일에도 한국마사회가 강북구에 가정용 태극기 1200개를 기증했다. 구내 13개 동별로 태극기꽂이 설치봉사단이 구성돼 주민들의 태극기꽂이 보수·설치 작업을 돕기도 한다. 강북구는 태극기 달기 외에도 여러 애국사업을 진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매년 4·19혁명 국민문화제를 개최하고 관련 학술자료집을 발간해 4·19혁명 정신을 계승, 기념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난 15일에는 수유동 근현대사기념관 앞마당에 누리꾼들의 모금으로 만들어진 독립민주기념비를 세웠다.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강북구의 태극기 달기 운동은 태극기와 태극기꽂이 등의 기증과 보급, 캠페인 등 전 과정이 주민과 시민단체, 기업 등의 자발적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지역의 태극기 운동과 차별화된다”면서 “역사문화관광의 도시로서 앞으로도 사명감을 갖고 구민들과 함께 태극기 달기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전 가정에 태극기가 모두 게양되는 그날까지 노력을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열린세상] 다시 김영란법을 생각한다/민만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다시 김영란법을 생각한다/민만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9월 28일로 확정된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의 본격 시행을 앞두고 아직 여론이 분분하다.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청탁 관행 및 고질적인 접대 문화를 근절하기 위해 제정된 김영란법이 시행도 되기 전에 각종 이해 집단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끝에 헌법재판소가 문제가 된 쟁점에 대해 모두 합헌 결정을 내린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헌법재판관들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에 대해 제대로 된 인식을 바탕으로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으로, 높이 평가할 만한 결정이다. 서구에서와 같은 근대 시민사회의 전통이 일천한 우리 사회는 그동안 혈연, 지연, 학연 등 온갖 인연을 바탕으로 한 연고주의가 팽배하고, 사적인 인연을 앞세워 개인 또는 소집단의 이익을 위해 공익을 저버리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결속력이 강하기로 유명한 ○○대학교 동창회, △△전우회, XX향우회 등이 막상 끈끈한 인연을 바탕으로 공익에 기여하기보다는 끼리끼리 문화를 강화해 우리 사회 전체로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특히 투명하고 공정한 의사 결정이 이루어져야 할 공직사회에서 이러한 연고를 바탕으로 한 청탁은 뿌리 뽑아야 할 병폐다. 또한 지위 고하를 가리지 않고 공무원의 뇌물 사건이 매일같이 지면을 새롭게 장식하는 현실은 참으로 우울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부패의 개념은 사회의 역사적·문화적 배경이나 시대에 따라 달리 인식돼 왔으며 사회가 복잡다단해지면서 새로운 유형의 부패가 끊임없이 발생한다. 그동안 아름다운 인간관계로 포장돼 왔던 스폰서 문화, 과도한 접대 관행, 떡값, 전별금 등의 금품 수수 행위도 더이상 용납될 수 없는 전형적인 부패 현상으로 인식되고 있다. 김영란법의 핵심은 고질적인 연고주의에 바탕을 둔 부정청탁을 근절하고, 사회 상규에서 벗어나는 과도한 접대 및 선물 관행을 타파하자는 것이지만, 기존 형사법과 관련해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직무와의 관련성이 없더라도 100만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수수한 한 경우에는 형사처벌하도록 한 점이다. 형법에서 규정하는 뇌물죄는 ‘직무에 관하여’ 뇌물을 수수할 것을 요건으로 하는데, 그간 재판 단계에서 이 직무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해 금품 수수가 명백한 경우에도 무죄가 선고되는 경우가 많았다. 김영란법이 헌법재판소에서 합헌 결정을 받자 이번에는 시행령에 규정된 식사·선물·경조사비 상한액을 증액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즉 현재의 상한액인 3만, 5만, 10만원으로는 농수축산물의 소비가 크게 줄어 농수축산인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식당 등의 매출 하락으로 국민 경제에도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시행은 직접 적용 대상인 공무원이나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의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단기적으로 농축산물 등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고급 식당이나 유흥주점, 골프장 등의 매출에 타격이 불가피할 것이다. 혹은 공무원들이 민원인과의 접촉을 기피함으로써 필요하고도 적법한 민원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고 공무원들의 복지부동 현상이 심화될 우려도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부정한 청탁이 크게 줄고, 투명하고 공정한 법집행이 이뤄져 한 단계 높은 경제 활력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도하게 흥청거리는 우리의 밤 문화가 건전하고 절제 있는 유흥으로 바뀔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 경제와 국민 생활에 엄청난 긍정적 변화가 예상된다. 우리 헌법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대한국민은 …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라고 규정하며 부정부패의 척결을 헌법적 사명으로 삼고 있다. 아무리 좋은 법을 만들어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없느니만 못하다. 김영란법이 잘 정착될 수 있도록 국민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 [World 특파원 블로그] 도쿄의 8·15… 잊혀져가는 침략의 역사

    [World 특파원 블로그] 도쿄의 8·15… 잊혀져가는 침략의 역사

    대부분 A급 전범 합사 몰라 “총리부터 참배” 촉구 집회도 일본 도쿄 중심부 지요다구에 있는 야스쿠니신사는 15일 하루 종일 긴 참배 행렬로 붐볐다. 일본의 71번째 종전(패전)기념일인 이날 이른 아침부터 오후 늦은 시간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검은 옷을 입은 유족들은 물론 일장기, 욱일기 등을 들고 북을 치고 나팔을 불며 행진하는 군복 차림의 백발노인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은 일본인이 조상의 명복을 비는 ‘오봉’ 기간의 피크타임이었다. 한국의 한식과 추석을 합친 것과 같은 명절 및 휴가 기간의 최절정 시기다. 이런 연유로 이맘때 야스쿠니신사를 찾아 참배하고 산화한 조상과 지인의 명복을 비는 것은 일본인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메이지시대부터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전몰자 246만 6000여명의 영령을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인 까닭이기도 하다. 아야코 시모무라처럼 “회사에서 해마다 이날 이곳을 찾아 산화한 분들의 명복을 빈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다. 신사에서 만난 사와키 마코토는 “할아버지 영령을 추모하러 왔다”며 “일본 총리와 각료들이 전몰자 명복을 비는데, 한국과 중국이 뭔 권리로 비난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도조 히데키 전 총리 등 A급 전범 14명이 1978년 10월 몰래 합사됐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일본인들은 의외로 적었다. 기억하는 이들도 “조국을 위해 싸우다 죽은 이들”쯤으로만 여긴다. “10여명 때문에 246만여명에 대한 추모를 중지해야 하느냐”고 반문하는 일본인도 있었다. 집권 자민당은 이날 종전기념일 담화를 통해 “일본을 둘러싼 안보환경이 엄혹해졌다”면서 지난 3월 시행된 안보 관련 법안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중국의 공격적인 해양영유권 주장과 행동을 강조하면서 불안해진 국민을 설득하려는 투다. 헌법을 고쳐 전쟁 가능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의도도 엿보였다. 거친 중국의 행보,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등은 일본 국수주의 세력에 힘을 더해 주는 아이러니한 모양새다. 그런 가운데 전쟁을 기억하고 경종을 울려 왔던 전쟁 경험 및 양심세력은 사라져 가고 있다. 전쟁 기억의 풍화 속에서 가해와 침략 사실은 희미해져 가고, 피해자라는 상처는 부각됐다. 요미우리신문은 이날 “위안부가 일본군에 강제 연행됐다는 등 여러 전쟁 사실(史實) 왜곡에 정부가 반론을 제기해야 한다”고 억지 주장을 폈고 극우 산케이신문은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를 촉구했다. ‘일본회의’ 등 국수주의 단체 회원 1600여명은 이날 야스쿠니신사 안에서 총리·각료의 참배를 요구하는 행사를 갖고 힘을 과시했다. “71년간 이어온 평화가 앞으로 80년, 90년 계속되려면 역사에서 배우는 힘을 비축해야 한다”는 마이니치신문의 지적처럼, 집권 세력은 누가 일본 국민 310만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는지 다시 대면해야 할 때다. 이날은 도쿄신문 표현처럼 “전쟁 죄과를 깊이 생각하는 날”이며 아사히신문 지적처럼 “전쟁 기억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책임”을 다시 뼈저리게 기억해야 하는 날이다. 한쪽으로 치우쳐 가는 일본의 역사인식과 이를 바로잡는 일본 내 교정력의 약화는 갈등이 커가는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서도, 일본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너무나도 안타까운 일이 되고 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취업 장애인 53% “사회적 차별 경험했다”

    신체 장애인 직업유지 11.4년 직장 차별 많을수록 취업 짧아 직장 내 장애인 인식 개선 절실 장애인에 대한 직장과 사회의 차별이 장애인으로 하여금 어렵게 얻은 직장을 그만두게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장애인이 지각한 사회적 차별경험이 직업유지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보면 취업한 20세 이상 장애인 1632명을 조사한 결과 직장 내 차별을 많이 겪은 사람일수록 직업유지 기간이 짧았고, 생활만족 수준이 높을수록 직업유지 기간도 길었다. 조사 대상 장애인의 생애 직업유지 기간은 신체장애인이 11.4년, 내부기관장애인이 11.6년이었으나 정신장애인은 5년을 간신히 넘겼다. 설문조사에선 1632명 가운데 53.8%(878명)가 사회적 차별을 경험했고, 20.3%(332명)는 그중에서도 직장 내 차별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사회적 차별은 직장생활, 운전면허 취득, 보험 계약, 의료기관 이용, 정보통신 이용 등 지역사회 밖에서 받는 다양한 유형의 차별을 말한다. 사회적 차별 경험은 여성보다 남성이 2.8배 많았다. 지역 사회 내 차별도 여성보다 남성 장애인이 많이 겪었는데, 이는 상대적으로 남성 장애인의 외부 활동이 더 활발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연령별로 보면 한창 사회 활동을 할 시기인 40~50대 장애인이 사회적 차별을 가장 많이 경험했다. 50대 15.6%, 40대 15.3%, 60세 이상 10.0% 순으로 차별을 받았다. 보고서는 “직장 내 승진, 임금, 비장애 동료와의 관계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해 결국 안정된 직업 생활을 하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사례가 많다”면서 “성폭력·가정폭력 예방교육과 더불어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과 차별예방교육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 [글로벌 시대] 대중국 외교의 기본 인식/박한진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장

    [글로벌 시대] 대중국 외교의 기본 인식/박한진 코트라 타이베이무역관장

    “뒤처지면 얻어맞고, 가난하면 굶주리며, 실언하면 욕먹는다.” 국제 관계의 이치는 냉혹하다. 앞서가면 부유해지고, 부유해지면 영향력을 키우려 한다. 국제 관계의 귀결엔 변함이 없다. 개혁개방으로 중국은 부강해졌다. 두 차례의 글로벌 금융위기는 중국을 우뚝 솟게 만들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프로젝트는 중국의 파워를 한층 키우고 있다. 육상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해상으로는 동남아와 아프리카, 유럽을 연결하는 대역사다. “중국의 철길이 닿는 곳이 곧 중국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의 말처럼 중국은 일대일로를 통해 영향력을 한껏 확대하려 한다. 중국은 이미 아시아 거의 모든 국가에 최대 교역 대상국이자 1위 해외 투자국이다. 국제적인 마찰과 충돌이 있을 때마다 중국은 평화적인 수단과 대화를 강조한다. 평화공존을 존중한다.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때는 어땠는가. 거대 시장을 제공한 세계경제의 구세주였다. 한발 더 나아가 “앞으로도 세계 각국은 중국의 발전에서 기회를 잡으라”고 말하는 중국이다. 그런 중국에 글로벌 친구가 많지 않은 건 아이러니다. 중국은 14개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인접국들도 많아 주변국 외교를 중시한다. 그럼에도 주변국들과의 마찰이 자주 목격된다. 중국 중앙당교 중국외교연구실 주임인 뤄젠보 교수는 그 이유를 외교의 핵심 가치관이 결여됐기 때문이라고 본다. 유럽 국가들이 해외 식민지 건설에 나섰을 때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성경을 들었다. 땅을 차지할 땐 검을 사용했고 현지의 마음을 얻고자 할 땐 문화를 보급했다.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에 차례로 진출한 미국은 경제와 안보만 제공한 게 아니었다. 민주적인 제도와 가치관을 보급했다. 중국은 오랫동안 개발도상국과의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강조했다. 이것은 외교 준칙이자 기본 원칙이며 외교적 선언일 뿐 결코 외교의 핵심 가치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뤄 교수의 지적이다. 핵심 가치관은 성경과 문화, 민주제도처럼 자국의 문화적 특징을 담았으되 글로벌 차원에서는 보편적 수용의 의미를 지닌 것이어야 한다. 세계의 발전을 이끌고 상호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중국도 국제 관계의 민주화와 법치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그것이 국제사회에서 통용되는 의미의 민주화와 법치화인지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있다. 많은 국가에 중국은 당분간 프레너미(frenemy·친구이자 경쟁자인 이중적 관계)로 남게 될 것이다. 중국 외교에 유연하고 보편 타당한 핵심 가치관이 정립되기 전까지는 그럴 것이다. 외교의 신 헨리 키신저는 미국과 중국의 프레너미를 ‘전투적 공존’이라는 개념으로 풀었다. 서로 다투면서도 격전을 치르기보다는 함께 사는 길을 택할 것이라는 얘기다.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로 초긴장 상태에 있던 중국과 필리핀이 대화 채널을 가동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중국 관영 매체가 “한·중 관계는 역사상 가장 좋은 시기”라고 표현하자 우리가 이를 입버릇처럼 따라 하던 때가 있었다. 국제 관계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 절대적 친구도 없고 절대적 적도 없다. 우리나라 대중국 외교의 기본 인식이 돼야 한다.
  • 박대통령 광복절 메시지 ‘자긍심·국민단합 강조’

    박대통령 광복절 메시지 ‘자긍심·국민단합 강조’

    박근혜(얼굴) 대통령은 15일 열리는 제71주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경축사를 통해 국민적 자긍심 내지 자신감을 특히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취임 후 네 번째인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임기 말로 접어드는 시점에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대내외적인 갈등이 계속되는 때에 나온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4일 청와대 참모들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이번 경축사에서 우리나라가 광복 71년 만에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강의 기적 등을 통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당당히 올라선 위상에 대해 평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 대통령은 최근 사드 배치 논란을 보면서 국민적 자신감과 자주(自主) 의식에 대해 각별히 숙고하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관계자는 “일부 국민 사이에 몸집이 큰 중국에 밉보이면 큰일 난다는 막연한 중국 공포증과 우리의 국력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열등감이 결합돼 우리의 생명을 지키는 기초적 방어체계(사드) 배치까지도 주저하는 심리로 이어지는 것을 보면서 박 대통령은 국가 최고지도자로서 자신감을 심어 주는 게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새누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우리 국민이 지금보다 큰 긍지를, 자신감을 갖고 힘을 내도록 이끌어 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했고, 다음날 독립유공자 초청 오찬에서는 “국가는 스스로 지켜야 하며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고 강조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또 경축사에서 변화와 혁신을 통한 제2의 도약을 위해 국민적 단합도 비중 있게 강조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창조경제와 문화 융성의 추진,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부문 개혁 완수 등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에 대해 박 대통령은 핵을 포기할 때까지 대북 제재가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충실한 이행과 함께 일본의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토대로 함께 미래로 나아가자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朴대통령, 내일 광복절 메시지…“자긍심과 단합이 핵심 포인트”

    朴대통령, 내일 광복절 메시지…“자긍심과 단합이 핵심 포인트”

    제71주년 광복절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전달할 메시지가 주목 받고 있다. 취임 후 4번째인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친(親) 박근혜계인 이정현 대표 체제로 재편되면서 남은 1년 반 임기 동안 국정과제 추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를 놓고 대내외적인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도 경축사 메시지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14일 경축사 메시지에 대한 막판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자긍심과 단합’이 이번 경축사의 핵심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전언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과 국민적 단합을 주요하게 강조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자긍심’과 관련,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광복 71년 만에 6·25 전쟁 등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 10권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것에 대해 평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이를 토대로 “기적의 역사”(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새누리당 신임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우리 국민이 지금보다 큰 긍지를, 자신감을 갖고 힘을 내도록 이끌어 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또 경축사에서 변화와 혁신을 통한 제2의 도약을 위해 국민적 단합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추진,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부문 개혁 완수 등도 강조할 가능성도 있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북한·일본 문제에 대해 기존 원칙을 재확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에 대한 메시지와 관련,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 입장과 함께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판단을 바꾸기 위해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 제재·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안전과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해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결정됐다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다시 거론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사드 문제에 대해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점도 같이 강조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사드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와 함께 우리 국민들을 향해 사드 배치 문제에 있어 단합을 호소하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사드 배치와 같은 기초적인 방어체계조차 마련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겠느냐”고, 12일 독립유공자 오찬에서는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나라를 만드는 길밖에 없다”고 각각 강조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일본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충실한 이행과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함께 미래로 나가자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10억엔 신속출연 약속 등 합의 이행 상황도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3월 31일 미국 워싱턴에서 핵안보정상회의 계기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행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바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日전문가 “위안부 합의, 끝이 아니라 시작…발전시켜야”

    일본 정부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재단(‘화해·치유재단’)에 곧 10억 엔(약 109억 원)을 낸다는 뜻을 밝힌 것에 대해 일본 전문가는 한일 양국 정부가 합의를 궤도에 올리려고 하는 것으로 해석했다. 양국 정부 간 합의에 반대하고 이를 부인하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합의로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며 이를 발판으로 다양한 노력을 이어가야 한다고 전문가는 제언했다. 일본 정부가 10억 엔을 내는 것은 합의 사항이라 당연한 일이며 이보다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죄한다는 합의의 본질을 분명히 하고 계승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다음은 일본의 전문가들이 14일 연합뉴스에 밝힌 의견의 요지. ◇ 기미야 다다시(木宮正史) 도쿄대 교수(한국학 연구부문장) 박근혜 정권은 광복절 전에 어느 정도 매듭짓는 것이 국내적으로 좋다고 생각했고 일본도 소녀상 문제 등 내부 불만이 있으나 어떻게 든 작년 말 합의를 궤도에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 것 같다. 양국 정부가 비슷한 인식을 지니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한일 정부 합의에 대해 한국 내에 반대론이 꽤 강하다. 일본에서는 합의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크지만, 소녀상을 이전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의견도 강하다. 이에 관해 양측이 명확히 정하지 않았으며 앞날이 불투명한 측면도 있다. 한국의 여론을 생각할 때 즉시 이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일본이 내는 10억 엔은 우선 피해 당사자를 위해 사용돼야 한다. 다만 가능하다면 전쟁 때 여성의 인권이 짓밟히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세계에 내보내는 사업을 한국과 일본이 협력해서 하면 좋겠다. 예를 들어 기념비를 만들거나 기념관을 건설하는 방법이 있다. 기념관 건설은 10억 엔으로 어려울 것이니 한국 정부의 (자금) 협력이 필요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아직 완전히 해결됐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국에는 불만의 목소리가 있다. 일본은 대사관 앞에 소녀상이 남아 있는 것은 곤란하다고 보고 있다. 물론 정부 간의 약속이므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해 다시 문제 삼으면 국제적으로 비난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부 간 합의가 아직 사회적 합의가 된 것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정부 간 합의가 사회적 합의, 국제 사회에서의 합의로 이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일본에서는 한일 양국 합의로서 일본군 위안부가 끝난 문제이며 더 얘기할 일이 아니라는 일부의 목소리가 있다. 이는 매우 잘못된 것이다. 반면 한국에는 양국 정부 간 합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나도 그 이유는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합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을 건설적인 움직임으로 이어갈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합의를 전제로 하되 그 정신을 살리는 방법, 발전시키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끝이 아닌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 와다 하루키(和田春樹) 전 아시아여성기금 전무이사(도쿄대 명예교수) 8월 15일 전에 뭔가를 내놓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다만 일본 측의 일방적인 태도에 매우 놀랐다.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일본이 국가의 가해 행위에 대해 사죄하고 이에 따라 일본 정부가 돈은 낸다는 것이 합의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이번에 전화 회담 후에 발표한 내용을 보면 그런 메시지가 이미 지워진 것 같다. 마치 일본이 돈을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것만 하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 같은 인상을 심으려고 하는듯했다. 사죄와 관계가 없는 돈을 일본이 내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이런 방향으로 돈을 쓰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매우 이상하다. 일본 정부가 돈을 내는 것은 애초에 약속한 것이다. 당시 합의에 명시하지 않았으므로 이를 소녀상 철거와 연결짓지 않는 것(전제로 삼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국 정부는 아베 총리의 사죄가 합의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므로 일본이 이에 관해 표명하고 이를 문서로 피해자에게 줄 수 있도록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돈을 낼 때 그 돈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돈은 일본이 사죄했다는 것을 드러내야 한다. (의료·복지 사업 외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한 사업, 존엄 회복을 위한 사업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해 위령비 건설이나 역사 기념관을 만드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기념관은 일본이 낸 돈만으로는 불가능하므로 한국 정부 예산도 필요하다. 위령비 건설은 일본 정부가 낸 돈으로도 가능하다. 연합뉴스
  • 朴대통령, 내일 광복절 메시지…‘자긍심’ ‘국민단합’ 강조 전망

    제71주년 광복절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전달할 메시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취임 후 4번째인 이번 광복절 경축사는 여당인 새누리당이 친(親) 박근혜계인 이정현 대표 체제로 재편되면서 남은 1년 반 임기 동안 국정과제 추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시점과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THAAD·사드) 문제를 놓고 대내외적인 갈등이 계속되는 상황도 경축사 메시지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 박 대통령이 14일 경축사 메시지에 대한 막판 고심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자긍심과 단합’이 이번 경축사의 핵심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전언이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과 국민적 단합을 주요하게 강조하실 것 같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자긍심’과 관련, 박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광복 71년 만에 6·25 전쟁 등 어려움을 극복하고 세계 10권의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선 것에 대해 평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이를 토대로 “기적의 역사”(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11일 새누리당 신임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우리 국민이 지금보다 큰 긍지를, 자신감을 갖고 힘을 내도록 이끌어 주기를 부탁한다”고 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또 경축사에서 변화와 혁신을 통한 제2의 도약을 위해 국민적 단합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의 추진, 노동개혁을 비롯한 4대 부문 개혁 완수 등도 강조할 가능성도 있다. 박 대통령은 경축사에서 북한·일본 문제에 대해 기존 원칙을 재확인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에 대한 메시지와 관련, 도발에 대한 단호한 대응 입장과 함께 핵·미사일 문제에 대한 북한의 전략적 판단을 바꾸기 위해 국제사회와 함께 대북 제재·압박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안전과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해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사드의 한반도 배치가 결정됐다는 점을 직·간접적으로 다시 거론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사드 문제에 대해 우리 스스로에 대한 자긍심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는 점도 같이 강조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사드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견제와 함께 우리 국민들을 향해 사드 배치 문제에 있어 단합을 호소하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국무회의에서 “사드 배치와 같은 기초적인 방어체계조차 마련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겠느냐”고, 12일 독립유공자 오찬에서는 “나라를 빼앗기는 아픔을 다시 겪지 않으려면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강한 나라를 만드는 길밖에 없다”고 각각 강조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일본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군 위안부 합의의 충실한 이행과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토대로 함께 미래로 나가자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의 10억엔 신속출연 약속 등 합의 이행 상황도 평가할 가능성이 있다. 앞서 박 대통령은 3월 31일 미국 워싱턴에서 핵안보정상회의 계기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합의 이행의 중요성을 재확인한 바 있다. 연합뉴스
  • [특파원 칼럼] 궤도 이탈한 사드/이창구 베이징 특파원

    [특파원 칼럼] 궤도 이탈한 사드/이창구 베이징 특파원

    기자가 중국에서 만나는 우리 교민 대다수는 한국에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정부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는 외교관을 제외하면 보수적인 기업인까지 “배치하지 말거나, 결정을 최대한 미루어야 했다”며 안타까워하고 있다. 이들이 ‘친중파’ 혹은 ‘반미파’여서 사드를 반대하는 게 아니다. 성주 주민만큼은 아니겠지만, 사드가 가져올 실질적인 피해가 두렵기 때문이다. 교민들이 지금 특히 안타까워하는 것은 국내 사드 논란이 본질을 이탈해 한·중 갈등의 골을 생각보다 훨씬 넓고 깊게 판다는 점이다. 역사상 최상이라던 양국 관계가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모습을 현장에서 지켜보며 허탈해하는 이들이 바로 교민이다. 청와대 비서관을 지낸 김충환씨와 경남대 이상만 교수가 잇따라 인민일보에 사드 반대 입장을 기고했을 때 박사 과정의 한 유학생은 “이건 좀 오버”라고 촌평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의 일부 매체는 “언론 자유도 없는 국가의 공산당 기관지와 손을 잡고 조국의 등에 칼을 꽂았다”고 비판했다. 최근 만난 중국 관영매체의 기자는 “한국 언론이 너나없이 인민일보와의 교류를 자랑하고, 시진핑 주석의 기고문을 받으려고 혈안이 됐던 게 엊그제 아니냐”라고 되물었다. 김 전 비서관과 이 교수는 기고에 앞서 한번 더 생각했어야 했다. 이들의 기고를 비판하는 언론과 정치권은 중국의 통치 체제까지 싸잡아 비판할 필요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초선 의원 6명의 방중도 마찬가지다. 밋밋한 방중 결과가 보여 주듯 이들의 목적은 세미나를 겸한 외유성 방문이었다. 하지만 일부 언론이 “이 와중에 방중이냐”라며 거세게 몰아붙이자 보수세력은 이들에게 ‘매국노’ 딱지를 붙였다. 대통령까지 나서 의원들을 비판하자 야당은 “색깔론을 중국 문제로까지 확대시키고 있다”고 반발했다. 애초에 관심도 없던 중국 언론은 이들의 방중을 막는 것은 중국에 대한 ‘외교적 선전포고’라고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여섯 의원은 귀국 뒤 자신들의 방중이 침소봉대됐다고 말할 게 아니라 그런 분위기를 미리 알아차리고 언론에 보도되기 전에 방중을 연기하거나 취소했으면 어땠을까. 여당과 대통령은 이들의 중국 방문을 정치 쟁점화하기보다는 무시하는 게 옳았다. 베이징에서 교수 생활을 하는 교민은 “사드 반대론자를 모조리 안보 위협세력 또는 사대주의 세력으로 내몰면 우리가 힘겹게 쌓았던 중국과의 관시(關係·관계)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토론회에서 “중국은 절대로 한국을 제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던 중국 싱크탱크 소속 중국인 학자는 엊그제 통화에서 “서로 배척하는 분위기가 이렇게 심화될 줄은 몰랐다”면서 “중국 정부가 나서지 않더라도 중국 국민이 알아서 등을 돌릴 수도 있겠다”며 기존 견해를 바꿨다. 중국 관영매체의 한국 위협은 분명히 도를 넘어섰다. 한류 제재와 같은 보이지 않는 보복도 치졸하다. 그렇다고 우리가 똑같이 중국에 맞설 필요는 없다. “경제 보복할 테면 해 보라”라고 외치면 속이야 시원할지 모르지만, 가뜩이나 중국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어 가는 우리 기업의 명을 재촉할 뿐이다. “친중파는 반미·친북”이라는 주장은 중국을 적으로 돌리는 비전략적 프레임이다. 경제를 위해서라도, 통일을 위해서라도 우리에게 중국은 여전히 활용도가 높은 국가다. 사드 배치를 결정하면서 이 정도 반발은 예상했던 것 아닌가. window2@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미켈란젤로도 반한 ‘미술 보물창고’

    [함혜리 기자의 미술관 기행] 미켈란젤로도 반한 ‘미술 보물창고’

    ‘신성한 마리아의 새로운 성당’이라는 뜻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은 겉보기에는 참 심플하다. 피렌체 역 바로 건너편에 위치한 이 성당은 도미니크회 최대 규모의 성당으로 1278년 착공해 1350년 건물이 완공됐다. 파사드(건물 정면)는 100년이 지난 1456년 피렌체의 거부인 루첼라이 가문의 지원을 받아 공사가 시작됐다. 1470년 완성된 성당의 파사드는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설계를 맡았다. 알베르티는 금융업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쌓은 알베르티 가문의 서자로 태어나 볼로냐 대학에서 24살에 법학 박사 학위를 받은 수재이면서 음악, 수학, 희곡, 그림, 건축을 섭렵한 르네상스형 인간이었다. 그는 두 개의 유명한 저서를 남겼다. 피렌체 대성당의 두오모를 완성한 브루넬레스키에게 헌정한 ‘회화론’에서는 2차원 화면 위에 3차원 공간을 보여 주기 위한 수학적인 설명과 함께 회화와 조각에서 어떻게 이를 구현하는지를 세세하게 설명했다. 최초로 건축이론을 정립한 비트루비우스의 책을 참고로 쓴 ‘건축론’에는 조화와 균형, 비례의 규칙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 양식 조화 이룬 건물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의 파사드에는 군더더기 없는 형태만으로 조화와 균형을 추구하는 알베르티의 건축철학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파사드에는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양식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이런 조화로운 배치를 통해 알베르티는 간단명료하면서도 장식성이 있는 독특한 화면을 만들었다. 은은하고 정결한 아름다움을 지닌 이 성당을 미켈란젤로는 “나의 신부여” 라고 부르며 특히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원근법 정수 ‘성 삼위일체’ 벽 뚫은 듯 착시 일으켜 안으로 들어가 보자. 바실리카 양식의 성당에는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 조토의 ‘십자가형’, 기를란다요의 ‘마리아와 성 요한의 생애’, 보티첼리의 ‘ 동방박사의 경배’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마사초(1401~1428)의 ‘성 삼위일체’는 브루넬레스키가 발명한 수학적 선원근법을 적용한 혁신적인 작품으로 르네상스 회화의 문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토스카나 지방의 산조반니 출생인 마사초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피렌체와 로마에서 후원자들의 가족 예배당 프레스코화를 제작하거나 성당의 의뢰로 제단화를 그리던 그가 27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일 수 있다. 그럼에도 그는 건축에서 브루넬레스키, 조각의 도나텔로와 함께 회화에서 인간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출발한 르네상스 양식의 창시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마사초는 착시 현상을 이용한 중앙 원근법을 능숙하게 구사해 2차원의 평면이지만 물체는 3차원의 공간에 있는 듯이 보이도록 했다. ‘성 삼위일체’는 완숙한 원근법의 정수를 보여 준다. 이 작품은 교회당의 왼쪽 벽 중간쯤에 그려져 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자연광의 효과까지 계산에 넣은 이 그림은 평면에 그렸음에도 가장 안쪽처럼 보이는 천장의 아치모양이 사실적으로 표현돼 있어서 마치 벽을 뚫어 놓은 듯 착시를 일으킨다. 기품이 넘치는 부드러운 색조에 화면 전체는 완전한 대칭을 이루며 가운데에 위치한 그리스도의 얼굴에 시선을 집중시킨다. 이를 소실점으로 삼아 그리스도의 뒤에 서 있는 하느님으로부터 빛이 퍼져 나가는 효과를 냈다. 그림 속 건물 안쪽에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의 발 아래에는 마리아와 요한이 있다. 이들은 마리아와 요한이 입은 것과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이다. 마사초는 당시 이탈리아 남자의 평균키 162㎝에 맞춰 눈높이(약 153㎝)를 기준으로 그렸다고 한다. 그 높이가 기증자 부부가 무릎을 꿇고 있는 면과 일치한다. 그림 하단 양쪽(화면 속 예배당 바깥쪽)에는 이 그림을 주문하고 기증한 도메니코 렌지와 그의 아내가 무릎을 꿇고 있다. 그림 아래쪽에는 해골이 누워 있는 석관이 그려져 있다. 해골 위에는 이탈리아어로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과거에 현재의 당신이었으며, 당신 또한 나와 같이 되리니.’ ●한가운데 걸려 있는 조토의 십자가도 볼거리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 한가운데 걸려 있는 조토의 십자가 맞은편 벽에 걸린 브루넬레스키의 십자가도 눈여겨볼 거리다. 발길을 붙잡는 또 다른 작품은 도메니코 기를란다요(1449~94)의 아름다운 프레스코화다. 질서와 균형이 돋보이고 우아하고 고요한 아름다움이 볼수록 매력적이다. 기를란다요는 미켈란젤로의 스승으로 이탈리아 전역에서 귀족들로부터 부름을 받을 정도로 인기 절정의 화가였다. 메디치가와 사돈 관계인 토르나부오니 집안에서도 최고 인기 화가에게 예배당을 장식할 벽화를 외뢰했다. 기를란다요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중심으로 위쪽에는 성모마리아의 대관식 장면을, 오른쪽에는 마리아의 일생을, 그리고 왼쪽에는 세례 요한의 일생을 그려 넣었다. 인물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리는 데 뛰어났던 기를란다요의 손끝을 통해 완성된 프레스코화에는 르네상스 여성들의 우아함이 그대로 살아 있다. lotus@seoul.co.kr
  • 한일 시민단체 손잡고 아베 총리에 ‘야스쿠니 신사 문제’ 공개 질의

    한일 시민단체 손잡고 아베 총리에 ‘야스쿠니 신사 문제’ 공개 질의

     한국와 일본의 시민단체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입장을 묻는 공개 질의서를 전달한다.  12일 민족문제연구소에 따르면 야스쿠니반대 공동행동 한국위원회 이희자 공동대표와 일본위원회 즈시 미노루 사무국장은 이날 오후 2시 일본 총리 관저를 찾아 ‘야스쿠니 문제 공개 질의서’를 전달할 예정이다. 질의서에는 “야스쿠니 신사의 전시관인 유슈칸에는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성전이라 주장한다”며 야스쿠니 신사의 이러한 역사인식에 아베 총리가 동의하는지를 묻는 내용이 담겨있다. 이어 “야스쿠니 신사가 미국의 알링턴 국립묘지와 같은 시설이라는 아베 총리의 주장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준이나 상식 차원에서 수용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공동행동 한국위원회 관계자는 “아베 총리가 답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부와 야스쿠니 신사의 관계를 공개적으로 묻는 것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공동행동은 13일 도쿄 재일본한국 YMCA에서 ‘평화의 촛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를 주제로 촛불 집회도 열 계획이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한일NGO “야스쿠니 무단합사 어떻게 생각하나” 아베에 공개질의

    A급 전범을 신으로 받드는 야스쿠니(靖國)신사에 한국인이 합사된 문제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에게 공개 질의서를 보냈다. 야스쿠니신사의 한국인 합사 철회를 요구하는 소송을 낸 원고단체, ‘야스쿠니 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평화의 등불을! 야스쿠니의 어둠에 촛불 행동 실행위원회’ 등 한국과 일본 단체 관계자는 12일 오후 일본 내각부를 방문해 야스쿠니신사의 합사 문제에 관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보내는 질의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야스쿠니신사에 한반도 출신 전쟁 희생자 2만여 명이 합사되는 등 유족의 의견에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전사자를 합사하는 문제를 거론하고서 “야스쿠니신사가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와 같은 시설이라는 주장을 수용할 수 없다. 이에 대한 견해는 무엇이냐”고 따졌다. 아베 총리는 2013년 5월 미국 외교전문매체인 ‘포린 어페어스에 보도된 인터뷰에서 “미국 국민이 전사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장소인 알링턴 국립묘지를 생각해 보라”며 자신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미 대통령이 알링턴 묘지에 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양국단체는 야스쿠니신사가 태평양전쟁이 침략전쟁이 아니라 식민지 해방을 위한 싸움, 즉 성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아베 총리는 이런 역사 인식에 동의하느냐”고 물었다. 이들은 아베 정권이 안보관련법을 제·개정함에 따라 일본이 전쟁하는 국가가 됐다고 규정하면서 전사자가 발생하면 이들을 또 야스쿠니 신사에 합사할지 아니면 다른 계획이 있는지 밝혀달라고 요청했다. 일제 강점기에 징병 돼 전사한 아버지의 이름을 야스쿠니신사 합사자 명부에서 빼달라며 소송 중인 이희자(73·여) 야스쿠니 반대공동행동 한국위원회 공동대표는 질의서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가족도 모르게 아버지를 합사한 것이 정당한 일인지 묻고 싶다”며 “이름을 빼달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우냐”고 물었다. 야스쿠니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이들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이며 이곳에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246만 6천여 명이 합사돼 있다. 연합뉴스
  • 몸으로 배우는 여객선 안전

    2013년 충남 태안군 해병대 체험장과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되 다시 바다로 나아가자는 캠페인이 펼쳐진다. 8일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경기 남부와 충남 북부의 34개 중·고교 학생들이 2만 4000t급 국제여객선을 타고 중국 산둥성으로 건너가 선조들의 문화 발자취를 돌아본다. 100명이 50명씩 1·2차로 나눠 각각 9~13일, 16~20일 참여한다. 무료다. 시민, 단체, 기업 후원 등 사회공동모금으로 해결한다. 학생들은 침수, 화재, 좌초, 충돌을 가상한 퇴선훈련을 세 차례 갖는다. 산둥성 웨이하이시에선 중국 내 우리 해양역사 등에 대한 특강을 듣고 해상왕 장보고 장군의 활동현장도 훑는다. 청일전쟁 유적지를 답사하고 직업 및 진로 코칭도 받는다. 이번 체험은 평택시와 평택해양경비안전서, 교육지원청, ‘황해연안 안전시민연합’의 노력으로 성사됐다. 굵직한 사고가 잇따르면서 바다를 통한 체험활동과 여객선을 이용하는 수학여행이 중단된, 이른바 ‘클로즈드 오션’(닫힌 바다) 인식의 확산에 따른 문제의 심각성을 공유하면서다. 1~2차 시범실시 뒤에도 체험 프로그램은 계속될 전망이다. 송한수 기자 onekor@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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