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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과반 득표’ 기선 잡기냐 vs 헤일리 ‘2위 진격’ 돌풍 시동이냐

    트럼프 ‘과반 득표’ 기선 잡기냐 vs 헤일리 ‘2위 진격’ 돌풍 시동이냐

    미국 공화당의 첫 대선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를 1주일 앞둔 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과반 확보, 2위 그룹에선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격차를 좁히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다. 의회전문매체 더힐이 이날 330개 전국 단위 여론조사를 분석한 결과 트럼프는 64.1% 지지율로 헤일리(11.3%), 디샌티스(11.0%)를 50% 포인트 이상 크게 앞섰다. 아이오와에서도 트럼프는 51.6%로 1위를 달렸고, 뒤이어 디샌티스(18.0%), 헤일리(17.1%) 순이었다그럼에도 트럼프 캠프는 지지자들에게 연일 위기감을 고조시키며 ‘투표하라’고 독려하는 등 초기 기선 제압에 주력하는 분위기다. 자칫 과반 미달 1위를 할 경우 2위권 후보들에게 추격 기회와 명분을 허용하게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공개된 팟캐스트 인터뷰에서는 “미국 경제가 12개월 내 붕괴되길 희망한다. 내가 재선되면 (대공황으로) 경제 불황일 때 취임한 허버트 후버 대통령처럼 임기를 수행하고 싶지 않다”며 조 바이든 행정부의 경제 성과를 깎아내렸다.헤일리 전 대사나 디샌티스 주지사 측은 트럼프 전 대통령의 기세를 뒤집긴 어렵지만 의미 있는 비율의 득표나 깜짝 이변을 내면 트럼프의 조기 후보 확정을 저지하고 새 인물론에 가속페달을 밟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상승세를 타고 있는 헤일리 전 대사가 아이오와에서 디샌티스 주지사를 제치고 2위를 한다면 다음 경선지이자 또 다른 돌풍지인 뉴햄프셔에서 1위도 넘볼 수 있다고 폴리티코 등은 내다봤다. 헤일리 측은 지난달부터 디샌티스 공격용 선전에 1300만 달러를 투입하는 등 막판 화력을 쏟아붓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디샌티스 역시 첫 경선부터 3위로 추락 시 정치적 타격이 큰 만큼 배수진을 치고 있다. 앞서 가가호호 방문하면서 아이오와에 집중해 온 만큼 ‘1위를 못 해도 사퇴는 없다’며 표 다지기에 총력전을 펼쳤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의 이매뉴얼 아프리칸 감리교회 연설에서 공화당 후보들을 비난하며 흑인 표심을 공략했다. 이곳은 2015년 백인 우월주의자의 무차별 총격으로 9명이 희생된 유서 깊은 흑인 교회다. 그는 “노예제가 남북전쟁의 원인이었다. 이것은 협상 대상이 아니었다”면서 “패배한 대통령이 이끄는 마가(MAGA·극우 공화당) 세력이 선거를 훔치려 했고, 이제 역사를 훔치려 한다”고 비난했다. 헤일리가 남북전쟁 원인으로 ‘노예제’ 언급을 회피하고 ‘정부 운영의 문제’라고 해 구설에 오른 데 이어, 트럼프 역시 “협상으로 전쟁을 피할 수 있었다”고 발언한 것을 동시 겨냥한 것이다.
  • [열린세상] 지자체·대학 협력으로 지역 혁신을/이창원 한성대 총장·한국행정개혁학회 이사장

    [열린세상] 지자체·대학 협력으로 지역 혁신을/이창원 한성대 총장·한국행정개혁학회 이사장

    지난주 서울 도봉고 폐교 소식과 성동구 덕수고의 마지막 졸업식 소식이 화제였다. 특히 덕수상고는 야구로 유명한 명문 상업계 고등학교였는데 이미 몇 년 전 위례신도시로 일반계고를 이전하고, 특성화고 계열은 경기상업고로 통폐합을 완료한 뒤 서울 시내 캠퍼스는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서울에서도 인구절벽의 전조 현상을 넘어 실제 사례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대학도 인구 문제의 직접적 영향을 받고 있다. 2024학년도 수시모집에서 대학 10곳 중 6곳이 미달이라고 한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의 소멸이 점점 현실화되고 있다. 대학은 지역의 경제·사회·문화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대학의 소멸은 지역의 소멸을 의미하기도 한다. 대학이 지자체와 함께 이 난제를 풀어 나가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하는 이유다. 이제 지자체와 대학은 동반성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지역의 발전이 대학의 발전이 되고, 대학의 발전이 지역의 발전이 돼야 한다는 의미다. 대학은 인재를 양성하면서도 지식을 창출해 지역의 지식사회 발전과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하는 기관이다. 대학이 지역사회·산업과 함께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고 창업을 지원해 새로운 기업이 지역에 정착하는 선순환 구조가 확립된다면 지역경제 활성화는 물론 정주 인구의 증가도 자연스럽게 뒤따라올 것이다. 미국 서부에 있는 스탠퍼드대학은 과거 졸업생들이 미국 동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연구·산업단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제는 초등학생들도 알고 있는 실리콘밸리 시작의 중심에 스탠퍼드대학이 있었다. 한성대도 2017년부터 현재까지 ‘서울시 캠퍼스타운 사업’을 수행하면서 지역상권 활성화를 위해 노력했으며, 창업 기업 육성을 지원했다. 또한 입학 단계부터 예비 창업가를 발굴하는 교육과정을 활성화하면서 최근 3년간 재학생 1000명당 학생 창업자 수가 수도권 평균의 약 3배에 달한다. 대학이 지자체와 협력해 지역 주민, 산업체 재직자, 성인 학습자에 대한 평생교육을 활성화한다면 지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대학을 중심으로 유동인구가 늘어나면서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는 것은 물론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확산해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도 기여할 것이다. 대학은 이제 고등교육 기관으로서 인재를 양성하고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는 역할뿐만 아니라 평생교육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오늘날 평생교육은 과거의 야간대학이나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인문·예술학적 지식을 단순히 공유하고 전파하는 수준을 넘어 첨단기술 분야에서 재직자의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산업체의 요구를 반영해 특별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계약학과나 한성대의 ‘미래플러스대학’과 같은 성인학습자 단과대학이 대표적인 예다. 대학이 창출하는 인문·예술학적 자산이 평생교육을 통해 지역 주민이 향유하는 문화로 활용될 수 있다면 지역사회의 문화 인프라도 향상될 것이다. 대학의 기능이 학생 교육을 넘어 지역의 경제와 사회・문화에 기여하는 것은 대학으로서는 새롭고 벅찬 임무다. 그러나 지역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고는 대학 역시 학령인구 감소의 위기를 벗어날 수 없으므로 공존을 통한 혁신은 필수 전략이다. 지자체는 지역사회의 문제 해결을 위한 파트너로 지역에 소재한 대학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역의 당면한 인구, 경제, 사회 문제를 제시하고 대학의 특화된 분야와 특장점을 살려 해결 방안을 제시하면 된다. 이제 지역의 문제는 대학의 문제이고, 대학의 문제는 지역의 문제다. 벽을 허물고 지역으로 나가 지자체와 협력하는 대학이 성공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영구평화/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홍용진의 역사를 보는 눈] 영구평화/고려대 역사교육과 교수

    2024년이 밝았다. 하지만 새해란 단지 숫자에 불과할 뿐일지도 모르겠다. 이전의 많은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고한 양민을 전쟁의 참화로 몰아넣은 러시아ㆍ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ㆍ하마스 전쟁이 대표적이다. 게다가 중국과 대만 간의 갈등, 특히 한반도 문제 등 무시할 수 없는 국제적 갈등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인류는 언제나 평화를 기원했지만, 인권과 민주주의를 당연한 목표로 설정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도 국가 간 충돌과 갈등은 반복돼 왔다. 사실 국가 간의 끊임없는 경쟁과 충돌은 근대 서구사회에서 극심하게 전개됐다. 14세기에 시작된 프랑스와 잉글랜드 간의 백년전쟁 이후 양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서구 각국은 줄기차게 전쟁을 벌였다. 그렇기에 서구의 근대국가는 기본적으로 전쟁 국가라는 성격을 지닌다. 17세기까지 서구에서 승전은 국왕이나 여타 집권 세력에게 정치적 영광과 물질적 보상을 의미했다. 하지만 18세기 초에 이르러 이러한 생각에 근본적 이의를 제기하는 사상가가 등장하기도 했다. 바로 프랑스의 샤를이레네 카스텔(1658~1743)이라는 생피에르 수도원장이었다. 그는 1708년 ‘유럽 영구평화 확립안’을 저술했다. 전 유럽 내 각국이 에스파냐 왕위 계승 전쟁이라는 국제전에 국력을 총동원하고 있을 때였다. 흥미로운 점은 당시 전쟁광으로 평가받았던 루이 14세의 왕국 프랑스에서 이른바 ‘영구평화’가 주장됐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전쟁에 대한 전통적인 생각에서 탈피해 전쟁을 백해무익한 것으로 규정했다. 이어서 전쟁은 국가에 영광과 전리품을 보장해 준다기보다는 막대한 인구 및 경제상의 손실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각국은 번영과 발전을 위해 최대한 전쟁을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전쟁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 유럽 각국이 대표를 파견해 일종의 회의체를 구성하며 이를 통해 각국의 이해관계를 조정함으로써 전쟁을 막자는 내용이다. 그리고 이 회의체에 가입하지 않는 국가는 유럽 공동의 이익을 해치는 세력으로 간주하고 가입국이 이 국가를 제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서로가 으르렁대며 싸울 기회만 엿보던 18세기 유럽에서 과연 가능한 것이었을까. 실제로 계몽사상가 볼테르는 그의 영구평화론을 순진한 이상주의로 폄하하기도 했다. 그리고 서양에서 갈등과 전쟁이 멈춘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카스텔의 사상이 당대에 아무 영향을 주지 못한 채 사장된 것은 아니었다. 루소는 그의 사상을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저작을 출간했고, 루소의 영향을 받은 칸트 또한 1795년 ‘영구평화론’을 저술했다. 그뿐인가. 영구평화라는 ‘이상주의’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윌슨이 제창한 국제연맹으로, 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루스벨트가 조직한 국제연합(UN)으로 현실화했다. 오늘날 영구평화라는 이상은 또다시 등장한 각자도생의 국제적 이해관계 앞에서 무력화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그럼에도 카스텔의 이상이 현실화되기까지의 지난한 역사를 기억한다면 평화에 대한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 우주항공청법 국회 통과...경남 각계 “대한민국 우주경제 시대 선도할 것”

    우주항공청법 국회 통과...경남 각계 “대한민국 우주경제 시대 선도할 것”

    경남 각계각층이 ‘우주항공청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특별법(우주항공청법)’ 국회 통과에 환영 목소리를 냈다. 경남도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우주항공청법이 가결되자, 기자회견을 열고 법 통과 의미와 향후 계획을 발표했다.박완수 경남도지사는 “대한민국 우주항공 강국 도약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한 여야 간 대승적 합의로 국회 통과를 이뤄낸 것에 330만 경남도민과 함께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우주항공청은 대한민국 우주경제 비전 실현을 앞당기고 우주강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 우주경제를 선도할 분명하고 확실한 길을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향후 10년간 우주항공산업 세계시장 규모는 폭발적으로 성장해 우주산업은 현재의 5배인 1320조원, 미래 항공교통은 현재의 200배인 1960조원으로 성장할 것이라 한다”며 “그 중심에 경남이 있고 모든 과정을 경남도가 주도하겠다”고 밝혔다. 박 지사는 우주항공복합도시 준비단 가동 등 경남도가 중점적으로 추진할 후속 조치도 제시했다. 이달 출범 예정인 건설 준비단이 경제부지사를 단장으로 하고 도·사천시 공무원, 한국토지주택공사, 한국산업단지공단 관계자 등 13명이 참여하는 기구다. 준비단은 정부 주도 추진단 구성에 앞서 우주항공청 청사 건립, 도시개발 관련 인허가 사항 확인, 기업 유치 계획 등을 미리 세우고 검토하는 역할을 할 예정이다. 도는 우주항공복합도시 조성계획도 수립 중이다. 박 지사는 우주항공복합도시 건설과 도시 건설을 국가에서 직접 시행할 수 있도록 정부 전담조직 신설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우주항공 분야 유수한 기업과 우수한 전문인력이 우리 지역에 찾아오고 머물 수 있도록 다양한 정책을 발굴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2024년이 대한민국 우주경제 시대 개막 원년으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도록 경남도 역할과 책임을 다하겠다”며 “대한민국 우주경제 시대를 여는 데 경남도가 앞장서겠다”고 말했다.도의회·사천·진주·창원시도 환영·기대감“본격적인 우주항공 분야 육성 나설 것”경제계도 환영 “국가균형발전 힘 보탤 것” 이날 경남도의회도 우주항공청법 통과를 환영했다. 김진부 경남도의회 의장은 “대통령 공약과 국정과제인 우주항공청은 경남경제 번영을 위한 숙원사업이다”며 “법 통과를 환영하며 성공적인 개청, 우주항공산업 도약을 기원한다”고 밝혔다. 김 의장은 정부, 경남도, 사천시가 긴밀한 협조체계를 구축해 우주항공청 설치, 운영 준비에 나서 달라고 요청했다. 또 경남도의회 차원에서 우주항공청 설치, 우주강국 실현, 우주항공산업 발전을 위해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도 약속했다. 우주항공청 유력 입지로 꼽히는 사천시와 인근 지자체도 기대감을 드러냈다. 박동식 사천시장은 “늦은 출발이지만, 대한민국 우주개발은 오래 기다린 만큼 더욱 빨리 나아갈 것”이라며 “우주항공청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우주항공 분야의 육성을 통해 대한민국도 당당히 우주항공 선도국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경남도와 함께 우주항공복합도시 건설준비단 가동 등 우주항공청 시대를 철저히 대비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조규일 진주시장도 성명을 내고 “우주항공청이 개청된다면 진주시는 우주항공도시 위치를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미 추진 중인 다양한 사업들을 차질 없이 진행하여 우주항공도시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이라고 말했다.우주항공청 특별법 통과 촉구 릴레이 캠페인에 동참하기도 했던 홍남표 창원시장은 “창원시는 우주항공산업에 필요한 연구인프라, 부품, 엔진, 장비 등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며 “앞으로 우주항공산업이 창원에서도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우주항공청과 긴밀히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건의문 발송 등을 통해 법안 통과를 촉구한 경제계에서도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최재호 경남상공회의소협의회 회장은 “법적 근거가 마련된 만큼 우주항공청이 하루 빨리 지역 내에 개청돼 우리나라 우주산업 성장과 국가균형발전을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며 “경상남도상공회의소협의회는 지역균형발전과 지역 성장을 위해 필요한 일이라면 적극 앞장서겠다”고 강조했다.
  • 박은식 국힘 비대위원 “김구? 폭탄 던지던 분이 나라 돌아가는 시스템 알까?”

    박은식 국힘 비대위원 “김구? 폭탄 던지던 분이 나라 돌아가는 시스템 알까?”

    박은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 과거 소셜미디어(SNS)에서 백범 김구 선생에 대해 “폭탄 던지던 분이 국제 정세와 나라 돌아가는 시스템을 잘 알까?”라고 쓴 것으로 9일 확인됐다. 박 위원은 SNS 계정을 비공개로 전환했다. 박 위원은 2021년 자신의 SNS에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막장 국가 조선시대랑 식민지를 이제 막 벗어난 나라의 첫 지도자가 이 정도면 잘한 거 아니냐”며 “그래도 이승만이 싫다면 대안이 누가 있나?”라고 썼다. 그는 “김구? 폭탄 던지던 분이 국제 정세와 나라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 잘 알까? 여운형 암살에 김구가 관련돼 있다는 건 들어 봤냐?”라고 썼다. 박 위원은 이날 경향신문 통화에서 “김구를 비하하는 의도는 전혀 없었다”며 “국제 정세에 대해서는 이승만이 훨씬 더 잘 아는 건 사실이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그는 “취약한 국가에 국제 정세를 잘 아는 지도자가 필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이승만을 좀 더 도드라지게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위원은 당시 작성한 다른 글에 “노예제에 의존하던 조선과 근대화된 대한민국 사이의 큰 간극에 결국 일제강점기가 있었음을 확인했다”며 “조선이 갑오개혁 이후 노비도 폐지하고 형법대전도 만들어냈다고는 하나, 나라가 망해 의병을 일으켰을 때도 상놈이 양반에 말대꾸하다가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당했던 역사를 보면 지금 대한민국의 선진 법률 시스템 수준으로 도약할 가능성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이어 “그런 생각을 가진 채로 수강했던 고려사이버대 민법총칙 강의는 내게 큰 충격을 주었다. 우리 민법의 기원으로 일제강점기 ‘조선민사령’을 언급했고 교과서에도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며 “조선민사령의 영향에 대해서는 이론(異論)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냥 일베(극우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에서 나오는 주장으로 치부하기에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다”고 했다. 조선민사령은 일제강점기 무단통치시기인 1912년 제정된 기본법규다. 박 위원은 경향신문에 “내 전체적인 의도는 절대 그게 아니다. 차라리 전문을 기사에 실어 달라”고 말했다. 아래는 박 위원의 SNS 게시글 전문.<광주청년의 좌파 탈출기 #3> 5.18의 아픈 기억 때문에 신군부와 맥을 같이하는 정치집단에 반감이 큰 광주에서 태어나, 건국대통령의 과오만 서술해 놓은 교과서를 보며 자란 나는 이승만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해방전후사의 인식’ ‘백년 전쟁’같은 컨텐츠에서 볼 수 있는 교묘하게 짜여진 퇴보좌파/수정주의 역사관에 찌들어 민주당만을 지지하던 2014년... EBS에서 방영된 허동현 교수님의 ‘21세기에 다시 보는 한국근현대사’를 보고 마치 매트릭스의 모피어스가 건넨 진실의 빨간약을 먹은 듯 큰 충격을 받았다.나의 역사인식이 「특정 정치집단이 추구하는 이념을 지지하도록 필요한 사실만 선택주입된 결과물이구나」 하는 일종의 배신감이 들어 닥치는 대로 세계사 관련 책들을 읽고 부족한 부분은 인터넷을 참고해가며 공부하게 되었다.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이승만이라는 정치인을 진심으로, 아주 많이 존경하게 되었다.정치에 관심이 있던 광주친구들, 좌파성향인 친구들과의 술약속이 불편해진 게 바로 이 때부터였다.술을 마시면 정치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었고 나는 흥분해서 이렇게 말했으니까.“야, 우리 해방될 땐 국민 80프로가 글을 모르고, 제주4.3, 여순사태, 대구사태 이런 거 맨날 생기고 정치인들끼리 서로 테러하고 조폭이 주름잡던 시대라니깐?경제규모도, 군대도 북한의 절반도 안되는데 김일성이가 쏘련이 지원해준 탱크로 막 밀고 내려와브러.그 상황에서 일본이랑 일 좀 했다고 치안이랑 국방 전문가들 다 내쳐블믄 나라가 어떻게 되겄냐?그렇게 되믄 문재인/박원순/유시민/기타 민주당 국회의원 아빠들 다 실업자 되어가꼬 얘네들이 태어나긴 했을랑가 모르겄다.이거는 북한도 동유럽 국가들도 마찬가지여.프랑스? 야 비교할 걸 비교해라.전세계에 식민지 경영하는 초강대국이 잠깐 독일한테 졌어도 본토가 다 점령되지도 않았고 미국이 도와줘서 금방 되찾을 수 있는 상태로 4년 정도 점령 당한 거랑 우리처럼 지지리 못살다가 총 한방 못 쏘고 고종이 나라 팔아 36년간 지배당한 거랑 같냐?그래 프랑스처럼 재판 대충해서 ‘저놈이 독일협력자 년놈이요’ 하면서 칼로 막 쑤셔블고 여자들 삭발시켜다가 ‘부역자들’팻말 목에 걸고 거리 행진하게 시키믄, 그게 식민잔재 청산이냐?이승만은 미국에 있을 때부터 일본이 곧 쳐들어올거고 망할거라고 ‘japan inside out’ 책 내서 베스트셀러 되가꼬는 엄청 유명해졌어.해방 뒤에 독도가 아직 누구 건지 애매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선그어서 막 뺏어와블고 대마도도 우리꺼라고 난리치다 대한해협에서 일본어선들 막 잡아들였다니깐!이래도 이승만이 친일이냐? 아니잖아.독재를 했다는데, 야 세상 어느 독재자가 국민의 재산 소유권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만드냐?국민의 재산을 국유화 해놓고 지가 맘대로 하는 게 독재자야.북한이 했던 무상몰수/무상분배가 바로 그거라고.공짜로 땅 받은 게 아니라 모조리 김일성 맘대로 하는 땅이라고.이승만은 농지정책전문가인 조봉암을 사회주의자였어도 발탁해서 유상몰수/유상분배 추진해서 몇 천년 내려온 지주제를 없애고 시장경제를 지키면서, 국민에게 「지켜야 할 나의 것」을 만들어줬잖아.이 분들이 북에서 쳐들어온 놈들 목숨 걸고 막아서 지금 대한민국이 있는 거 아니겠어?마지막에 있었던 부정선거도, 이승만은 경쟁자였던 조병옥 사망으로 이미 당선확정이었어.부통령 선거에서 밑에 애들이 장난친거지.그리고 어느 독재자가 시위 좀 한다고 하야하냐?심지어 시위하다 다친 학생이 있는 병원까지 가서 ‘부정을 보고 일어서지 않는 백성은 죽은 백성이다, 학생들이 참으로 장하다’ 이런 말을 하는 지도자가 독재자일까?국민이 한사람이라도 더 똑똑해지길 바라며 없는 재정에 초등의무교육을 도입한 사람이?우리랑 비슷한 수준이던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동남아 국가들 독립할 때 이디아민, 폴포츠같은 독재자들 보면, 너 절대 이승만한테 독재자 소리 못할거다.그쪽 나라들 아직도 군부독재에 막장정치 허고 있잖어.그렇다고 선진국은 뭐 얼마나 더 선진적인 정치했간디?미국은 1965 흑인한테 처음 투표권 줬고 스위스는 1971에 여자한테 처음 투표권을 줬다니까.그 시대가 원래 그런 상황이었다고.지금이랑은 비교가 안 돼.해방될 때 동아일보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믄, 국민의 80프로가 공산+사회주의를 원하고 있었어.미국마저 쏘련이랑 마찰을 피할라고 좌우합작 지지하고 유럽 신경쓰느라 한반도에서 철수준비 할 때, 김일성은 이미 쏘련 지원 받아가꼬 군대 만들고 법 만들고 정부 만들어브렀다니까?이러는데 김구/김규식이 김일성 백날 만나봐야 남북협상이 되것냐?이승만이 천만다행으로 김일성 장난질에 안 넘어가서 남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단독선거를 진행한게 반민족적인건가?난 전세계 절반이 공산화되는 이 거대한 물줄기를 쪼매난 반도 끄트머리에서 온몸을 바쳐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낸 게 민족을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봐.6.25때 전쟁났다고 뭣하러 먼나라에서 지원군 보내주겄냐.다 이승만이 외교력 발휘해서 UN승인받아 합법성 인정됐으니까 자유세계 국가들이 도와준 거잖어.그렇다고 이승만이 미국 따까리만 한 게 아니여.불리하게 휴전협정이 진행되니깐 반공포로를 석방해버리는 벼랑끝 전술을 써가지고 미국도 빡쳐서 이승만 없애버릴까 하다가 결국 이승만 달랠라고 ’한미상호방호조약‘체결 해줘서 대한민국 침범은 곧 세계최강대국 미국침범과 같게 되는 시스템을 만들어놓은거야.중국/일본/러시아 강대국들 사이에서 언제 먹힐지 모르던 나라가 안보문제를 해결해버린 거라고.경제원조는 당연하고.국익을 위해서 미국과 싸워가며 「대한민국 건국을 쟁취」한거지.막장국가 조선시대랑 식민지를 인제 막 벗어난 나라의 첫 지도자가 이 정도면 잘한 거 아니냐?물론 잘못한 점도 많지만 넌 구구단도 버벅이는 상태에서 미적분 바로 가능하냐?안 되잖어.그래도 이승만이 싫다고 하믄 대안이 누가 있냐?- 김구? 폭탄 던지던 분이 국제 정세와 나라 돌아가는 시스템에 대해 잘 알까? 여운형 암살에 김구가 관련되있는건 들어봤냐?- 김규식. 응. 엘리트 유학파지. 근데 김규식 묘지가 어디있는지 알아? 북한 열사릉이야 북한.- 여운형? 아이고 김일성한테 이미 남한 뺏기고 숙청당했을거다.이승만이랑 건국세대 어르신들 아니었으믄, 우리가 이렇게 빛나는 불이 들어오는 술집에서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술이랑 안주를 치안 걱정 없이 즐길 수 있었을까?난 아니라고 봐.그냥 전기도 안들어오는 김씨 세습왕조 밑에서 노예로 굶주리고 있겄제.「이승만이 최선」이었다고!”내 말이 끝나면 친구들은 대부분 반박하지 못하고 주제를 돌리거나, 그래도 이승만은 아니다는 대답을 했고 다시는 나와 정치이야기를 하지 않았다.이런 생각을 가진 나는 일베/뉴라이트/극우파일까? 아니면 옳은 생각을 가진 걸까?전 세계가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인정한 시기에 과거를 분노의 시선으로만 바라보진 않았으면 좋겠다.비록 건국/산업화/민주화 과정에서 상처받은 분들이 많지만, 조금만 분노를 내려놓고 당시 우리의 상황과 세계정세를 같이 공부해보면 고향 광주의 어르신들과 나랑 술자리를 피하게 된 친구들도 나라를 조선으로 퇴행시키는 저 민주당을 향한 지지를 멈추고 정권 교체에 힘을 보태줄 것이라 믿는다.**마지막 사진으로 이승만 청년시절 의회민주주의를 주창하다가 고종에게 잡혀 사형선고를 받아 한성감옥에 복역하던 시절 사진을 올린다. 이승만은 운동권의 원조였다. 대한민국의 존경을 받을만한 분이다.**< 광주청년의 좌파탈출기 #8 >2014년, 친구랑 술을 마시며 정치이야기를 하다 보니 일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다.민주당식 역사관을 신봉했던 나는 일제의 만행과 식민지근대화론의 허구성에 대해 침까지 튀겨가며 열변을 토했다.이에 친구는“야, ㅅㅂ 민족이 뭐고, 나라가 뭔데?내가 개고생해서 번 돈으로 와이프랑 딸래미 먹여 살릴 수 있으면 지배자가 일본인이든 외계인이든 뭔 상관이야?상놈으로 태어나면 돈 벌어봤자 임금한테 ㄱ무시당하면서 굶어죽도록 세금 뜯기고,조선말에 30%나 있었다는 노비로 태어나면 내 딸래미까지 노비돼서 양반들 노리개짓이나 해야 되는데내가 왜 그 나라에 충성하고 독립운동 해야 되냐?조선은 망해도 싼 나라였다니깐?ㅈㄴ굴욕이긴 해도, 그런 한심한 조선이 근대화되는데 일본 영향이 하나도 없었겠냐?”분위기가 험악해질까봐 더는 반박하지 않고 집에 돌아 오는 길에 ‘식민지 근대화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그럼 근대화란 뭘까?’ 생각을 해봤다.(어려운 말 다 빼고)- 나를 제약하는 신분이란 게 없고- 산업이 발전해 생산물이 풍족해져 배곯지는 않아야 하고- 열심히 일해 모은 재산을 나라가 멋대로 빼앗아가지 않고- 개인 간의 계약이 존중되는 시스템이 갖춰진 사회일 것이다.조선이 갑오개혁(1894)이후 노비도 폐지하고 형법대전(1905)도 만들어냈다고는 하나, 나라가 망해 의병을 일으켰을 때도 상놈이 양반에 말대꾸하다가 그 자리에서 즉결 처분당했던 역사를 보면 지금 대한민국의 선진 법률시스템 수준으로 도약할 가능성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 생각을 간직한 채로 수강했던 고려사이버대 민법총칙 강의는 내게 큰 충격이었다.우리 민법의 기원으로 일제강점기 「조선민사령」을 언급했고 교과서에도 명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노예제에 의존하던 조선과 근대화된 대한민국 사이의 큰 간극에 결국 일제강점기가 있었음을 확인했던 순간이었다.굴욕적이긴 했지만, 그게 ‘역사’였다.조선민사령의 영향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겠지만, 적어도 그냥 일베에서만 나오는 주장으로 치부하기엔 어느 정도 근거가 있었던 것이다.이런 경험을 한 뒤 비슷한 류의 주장들을 접했을 때는 친일/일베라 단정짓지 않고 직접 자료들을 찾아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고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면서 결국 민주당식 역사관에서 탈출하게 되었다.법학뿐이었을까?나라를 이끄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서울대의 전신이 ‘경성제국대’였음을 떠올려 보면 과학, 인문학 분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그렇다고 일제가 조선을 근대화「시켜줬다」는 주장에 전부 동의하진 않는다.* 김성수는 일제강점기에 학교와 기업세우며 실력을 키웠고*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자유세계로 편입시켰고* 박정희는 산업화를 성공시켰고* 전두환/노태우는 폭발적 경제성장을 해냈고* 김영삼/김대중은 국민의 열망을 담아 민주화를 이뤄낸 것에 더해* 우리 국민이 공산정권과의 전쟁과 독재정권과의 투쟁을 불사했기에 근대화에 성공한 것이지 누군가 시킨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진정한 근대화를 이룬 우리나라에 자부심을 가지되, 일제강점기 사료를 해석할 때는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고 객관적으로 접근했으면 좋겠다.그래야 역사에서 뭔가 배울 것 아닌가?
  • “美 중심 세계 질서 흔들… 한미일 협력, 美 아닌 한일이 주도해야” [해외석학 인터뷰]

    “美 중심 세계 질서 흔들… 한미일 협력, 美 아닌 한일이 주도해야” [해외석학 인터뷰]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 질서 유지는 이제 끝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세계에서 일어난 두 개의 전쟁이 그 현실을 보여 줬습니다. 미국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캠프 데이비드 성명’으로 한국과 일본에 도움을 요청한 겁니다. 한일이 힘을 합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미국 정치 및 국제관계 전문가인 나카바야시 미에코(64)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대학 연구실에서 진행한 인터뷰 내내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혼란스러운 국제 정세”라고 말했다. 이달 중순 대만 총통 선거를 시작으로 4월 한국 총선, 11월 미국 대선이 기다리고 있다. 일본도 올해 상반기에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중의원(하원)을 해산할 가능성이 크다. 기시다 내각은 위기 대응력이 약화하고, 자민당은 비자금 수사로 어수선한 처지라 일본 정치 지형의 앞날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나카바야시 교수는 지난해 한미일이 추구한 협력 관계가 이런 격변의 시기를 거치면서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고 봤다. 특히 미국에서 자국 중심주의를 내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높아지면서 우려는 더욱 커진다. 그는 “한국과 일본이 자국 정치, 역사적 사정에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라면서 “미국 주도로 가까워진 한일 관계를 이제는 양국, 특히 정부가 아닌 민간이 주도하는 방식으로 한 단계 끌어올려야 하며 이는 곧 지역 안보에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올해 국제 정세를 어떻게 전망하나. “2024년은 한마디로 민주주의 국가의 ‘시련의 해’라고 하겠다. 한국과 미국, 일본에서는 특히 그렇다.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있고 미국의 지원을 받는 우크라이나는 고전 중이다. 미국이 힘을 잃는 것을 넘어서 세계 질서 유지가 힘든 상황이다.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가 세계 각국에 미칠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 국가의 평화가 유지될 것인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한국과 일본은 이러한 국제 정세 속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준비해야 한다.” -미국 일극화가 아예 끝났다고 보는 이유는. “지난해 8월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의 의미는 미국이 혼자서는 안 되니 서로 도울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보여 준 것이다. 장관급 회의 정례화 등 정권이 바뀌어도 3국이 공조할 수 있는 틀을 유지하기로 했다. 미국으로서는 패권 국가로서 힘이 약해진 것을 실감하고 있으니 아시아 지역에서의 안정을 한국, 일본과 함께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 목적을 공동성명으로 정리했다. 미국은 현재 중국과 북한을 상대하기도 벅차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비롯해 가자지구 등 중동 문제까지 신경 쓸 게 너무 많다. 이 때문에 미국은 한국과 일본이 미국과 협력해 아시아 지역 내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으며 한일에 대한 기대가 크다.” -최근까지도 미국에 다녀왔는데 대선 분위기는 어떤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상당한 지지를 받는 것은 사실이다.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 등 다른 공화당 후보들이 주목받고 있다는 언론 보도도 있지만 아직은 약하다. 현재로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정권 교체를 우려하는 이유는. “문제는 사상 처음으로 한미일이 만난 회담이 트럼프 전 대통령 당선 시에는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협력을 강조했지만 (캠프 데이비드 당시 합의한 게) 법률상 의무나 권리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아메리카 퍼스트’를 외친다. 동맹국에 대해서는 주한미군 감축 같은 압박을 했고 중국에 대해서는 미국 경제에 해를 끼친다며 엄격하게 대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경제 이외의 부분에서는 불확실성이 크다. 이런 정치 변화 가능성은 미국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있다. 4월 총선 이후에도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국과 일본이 관계 진전에 대한 틀을 고민해야 하는데 일본 정부가 그런 준비를 하지 않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는 크게 다가오지 않는 부분이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하면 우크라이나 지원을 끊을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가 패배하게 되면 이후 러시아가 더욱 득세하며 미국은 더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민 문제, 대외 지원 문제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나. 그런 그가 또 대통령이 됐을 때의 상황은 예상 가능하다.” -자민당 아베파 비자금 의혹 등 국내 상황이 복잡해 기시다 내각에서 외교 문제가 후순위로 밀려난 게 아닌가. “국내 문제가 있어 복잡한 상황이긴 하지만 정권 교체가 빈번한 한국과 달리 일본은 정권 교체가 발생하지 않는다. 기시다 총리가 물러난다고 해도 야당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같은 자민당 의원이 총리가 될 가능성이 큰데 각 파벌의 인정을 받지 않으면 총리가 되기 어렵기 때문에 기존의 컨센서스를 흔들지는 못한다. 무엇보다 일본은 관료의 나라다. 한번 방향을 정하면 그것을 따른다. 이는 한일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일본은 슬로(느린) 국가라 결정하는 데 시간이 걸릴 뿐이다.” -한일 관계 개선의 영속성을 어떻게 이어 갈 수 있을까. “한국도 일본도 정치와 선거가 양국 관계를 지나치게 좌지우지한다. 표를 얻기 위해 한국에서는 반일을, 일본에선 혐한을 이용해 왔다. 하지만 정치에 휘둘리지 않는 한일 관계, 정부에만 맡기지 않는 관계를 만들기 위해 국민 레벨에서 친교를 깊이 하는 게 필요하다. 예컨대 경제가 그렇다. 경제 분야에서 민간이 주도해 한일 간 협력의 틀을 만들어 놓는 게 바람직해 보인다. 최근 삼성전자가 요코하마에 반도체 연구시설을 설립하기로 하고 일본 정부가 보조금을 주기로 한 게 하나의 경제적 협력 사례가 될 수 있다. 또 한국이 (일본 주도의)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가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CPTPP하에서 다른 국가들과의 경제적 협력으로 공통 문제에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일 간 경제협력의 틀을 공고히 만들어 낸다면 정치와 선거 문제가 있어도 한일 관계 개선을 완전히 흔들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지나치게 미국에 의존한다는 우려가 크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한 마리 토끼도 못 잡는다’는 속담이 있다. 지금 국제 정세가 그렇다. 미국과 중국 양쪽을 잡으려고 하면 둘 다 놓친다. 지금의 국제 정세는 강권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 간의 힘겨루기가 진행 중이다. 우크라이나 뒤에 서방 국가가 있지만 우크라이나는 전쟁에서 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도 일본도 한 국가의 힘으로 지금의 질서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처럼 한국과 일본이 자원이 풍부한 나라도 아니지 않나. 현재 미국을 중개자로 삼아 한일 관계 개선을 추진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한일이 주체적으로 관계 개선에 나서야 하는 시대가 될 수밖에 없다.” ■나카바야시 교수는 나카바야시 미에코 일본 와세다대 교수는 미국 연방의회 상원 예산위원회 보좌관을 10년 동안 지낸 미국 정치 및 국제관계 전문가다. 미 의회에서 일한 유일한 일본인이기도 하다. 오사카대 대학원 국제공공정책연구과 박사 학위를 땄고 2009년 중의원(하원) 총선 민주당 후보로 출마 후 가나가와현 제1구에서 당선돼 3년간 의정활동을 했다. 이후 와세다대 교수로 재직하며 마이니치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 등 일본 주요 언론에 미국 정치 등에 대해 기고하고 있다. ▲1960년 출생 ▲1992년 미국 워싱턴주립대 대학원 석사 ▲1993~2002년 미국 상원 예산위원회 보좌관 ▲2002~2005년 경제산업연구소 연구원 ▲2006~2009년 아토미여대 준교수 ▲2009~2012년 중의원 ▲2013년~ 와세다대 교수 ▲주요 저서 ‘가라앉는 미국 패권’ 등 다수
  • 역사는 경계 넘나든 이주·이산의 기록… 공존의 가치를 기억하라[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역사는 경계 넘나든 이주·이산의 기록… 공존의 가치를 기억하라[차용구의 비아 히스토리아]

    한국 이주의 역사고려, 난민·이방인 받아들여 공존재외동포 700만명… 세계 네 번째1900년대 하와이·간도·연해주로1960~1970년대 독일·베트남으로세계 속의 이주칸트, 이방인 ‘환대의 권리’ 강조트럼프 “이민자, 미국의 피 오염”불법 이민자 증가에 불안감 표출상호 존중·포용의 가치 회복되길갑진년 새해가 밝았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기쁨이 클 법하지만 막연한 기대감에만 젖어 있기에는 불안과 근심이 지구촌 곳곳에 서려 있다. 코로나19의 충격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우크라이나와 중동 전쟁이 연이어 일어났다. 대량 학살, 난민 발생, 기아로 묵시록적 세계가 재현되는 듯하다. 암울한 신년을 맞으면서 다시 한번 상호 존중·포용·공존의 가치를 생각해 본다.●난민으로 태어난 아기 예수 얼마 전 성탄절이 있었다. 크리스마스는 그리스도(Christ)와 축제(mass)의 합성어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아기 예수는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예수의 부모는 본래 나사렛에서 살았으나 당시 이스라엘을 통치하던 로마제국 황제의 칙령에 따라 본적지에 호적 등록을 하러 가던 중이었다. 만삭인 마리아에게 산기가 보이자 남편 요셉이 아기를 낳을 곳을 찾아 헤맸지만 마땅한 곳을 구하지 못했고, 결국 아기는 외양간 한구석에서 태어났다. 막 태어난 아기를 누일 곳도 없어서 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구유에 포대기로 싼 아기를 뉘어야 했다. 이렇게 예수는 낯선 타향의 차가운 땅에서 이방인으로 이 세상에 나왔다. 예수의 삶은 박해와 이주의 연속이었다. 이스라엘의 정치권력은 예수가 장차 ‘유대인의 왕’이 될까 봐 두려워한 나머지 베들레헴과 그 인근에 사는 두 살 이하 사내아이를 모조리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아기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부부는 서둘러 아기를 데리고 이스라엘의 통치권이 미치지 않는 이집트로 떠났다. 급변하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난민이 된 가족은 낯선 땅에서 망명자로 살아가야 했다. 예수 탄생 이야기는 추운 겨울에 하룻밤을 보낼 곳을 찾아 헤매는 이방인 가족을 떠올리게 한다. 정치적 박해로 어쩔 수 없이 험난한 길을 떠나는 수많은 사람의 발자국도 보인다. 예수는 성인이 된 다음에도 정처 없는 나그네 삶을 살았다. 그래서 스스로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고 했다. 그는 끊임없이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유랑자로 살았다.●역사 속의 이주 ‘인생은 나그네길’이라는 표현이 있다. 삶이란 구름이 흘러가듯 길을 가는 것임을 말한다. 인류의 역사는 곧 이주의 역사라고 할 정도로 역사는 이주와 함께 시작됐다. 때로는 원하지 않는데도 강제 이주를 당하기도 했다.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강제 이주를 당하지 않았는가. 역사는 경계를 넘나든 사람들의 기록이기도 하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 국가이지만 남북한 사이에 군사분계선인 비무장지대(DMZ)가 만들어지면서 지난 70년간 사방이 꽉 막힌 섬나라와 같았다. 자연스럽게 우리의 사고도 편협해졌고 순혈주의와 민족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곤 했다. 국내 체류 외국인 수가 200만명이나 되는 시대를 살아가지만, 한국 사회에 정착한 이주민을 대하는 우리 태도는 여전히 배타적이다. 하지만 사실 한국인의 역사 또한 국경을 넘나드는 이주와 이산의 연속이었다. 고려시대만 보아도 송나라·원나라 이주민, 발해 유민·거란인, 여진인, 왜인 등이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으로 고려 사회에 들어와 정착했다. 자발적으로 이주해 고려 조정에서 외교 사신으로 활약하거나 전문 군인으로서 무관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발해 유민과 거란인은 어지러운 정세 변동을 피해 난민 신분으로 들어온 이들로, 고려에 정착한 후 황무지를 개간해 농업 발전에 이바지하기도 했다. 당시는 경작할 수 있는 땅은 많았지만, 개간할 인구가 턱없이 적었다. 따라서 이들의 대규모 집단 이주는 노동력을 크게 늘리고 집약적 농법을 발달시키는 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일부 재능 있는 이들은 개경에서 기술자로 수공업 발전에 이바지했다. 고려의 이러한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이주 정책은 궁극적으로 국가 재정 확대에 도움을 주었다. 한국은 재외교포 수가 화교(중국), 유대인, 이탈리아인 다음으로 네 번째로 많은 나라다. 중국, 러시아(구소련), 일본, 미국 등지에 재외동포가 700만명 넘게 살고 있는데, 이는 남한 인구의 15%이고 남북한 인구를 합치더라도 전체 인구의 약 10분의1에 해당한다. 1903년부터 1905년 사이에는 조선인 약 7500명이 이민선을 타고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노동자로 일하러 갔다. 1910년 무렵 간도를 비롯한 만주 지역에는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이주한 조선인이 20만명을 넘었다. 비슷한 시기에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등 연해주 곳곳에 8만명이 넘는 한인이 100여개에 이르는 신한촌(新韓村)이라는 마을을 세우고 집단으로 거주했다. 1945년 해방 당시 해외에 거주하는 한인 인구는 한반도에 거주하는 인구의 20%에 육박했다. 한인이 해외 이주를 많이 했다는 것은 그만큼 한국 근현대사가 파란만장한 굴곡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1960~70년대에는 해외 노동 이주가 본격화됐다. 광부와 간호사의 독일 파견,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월남특수기’에 베트남 노무 인력 파월(派越), 중동 건설 붐에 따른 노동 이주였다. 이들이 한국으로 송금한 돈은 국가 산업 발전의 초석이 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야 한국은 인력 송출국에서 인력 유입국으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한국 역사에서 이방인의 존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찾을 수 있다. 1000년 전인 고려 사회도 난민과 이방인을 받아들여 지혜롭게 공존했다. 공존은 두 가지 이상의 개체나 집단이 시간과 공간을 공유하면서 함께 존재하는 것을 뜻한다. 공존은 또한 비폭력적 상태가 유지되는 것을 상정하기에 역사적으로 평화적 공존에서부터 경쟁적 공존까지 그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형태가 어떻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니 공존은 숙명이기도 하다.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인도 이주노동자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해외에서 온 ‘파한’(派韓) 근로자·이주민·난민을 대했으면 한다.●호모미그란스 인간은 역사적으로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끊임없이 이주했다. 그래서 이주하는 인간이라는 호모미그란스(Homo Migrans)라는 신조어가 등장하기도 했는데, 이는 인간이 이주하는 본성을 지녔다는 말이다. 그러나 유목민적 삶의 방식은 무질서와 혼란을 일으키는 침략과 같은 것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이주가 기존의 권력 위계를 교란하고 파열음을 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동성보다 정주와 부동성이 정상적인 역사로 받아들여지면서 이주는 재앙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졌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영구평화론’에서 “환대는 이방인이 누군가의 영토에 도착했을 때, 적대적으로 취급받지 않을 권리”라며 ‘환대의 권리’를 강조한 바 있다. 세계 시민적 덕목인 환대는 주인이 찾아온 손님을 적대 없이 안전하게 머무르게 해 준다는 의미다. 최소한의 친절을 베푸는 환대의 권리가 보장될 때만 인류가 영구 평화를 향해 지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는 배타적이고 자국 이기주의에 기초한 민족주의의 망상을 일축하고 그 대신 열린 세계 시민적 애국주의를 주창했다. 그는 타 민족을 향해 개방적 지향성을 추구하는 열린 민족주의를 강조하면서 국가 간에 평화로운 공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최근에 미국 공화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주민을 겨냥해 “이민자가 미국의 피를 오염시킨다”고 말했다. 미국의 (백인) 대중은 불법 이민자 수가 많이 증가한 것에 대한 불만과 불안감을 트럼프를 통해 표출한다. 이것이 트럼프가 여전히 건재하는 이유다. 트럼프도 이러한 위기의식을 자신의 정치 선거에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강경한 반이민 정책은 오히려 미국 사회를 ‘진정한’ 백인 미국인과 ‘주변화된’ 유색인으로 구분하면서 사회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했습니다.” 이는 신약성경의 한 구절이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는 사람에게 마실 것을 주며 나그네를 따뜻이 맞아들이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난민으로 태어나 이방인이자 나그네로 살았던 예수는 외지인 환대는 물론 고난받는 사람과의 연대를 설파했다. 하지만 그의 고향 이스라엘에서는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전쟁 때문에 고통받으며 낯선 곳에서 난민 생활을 하고 있다. 세상은 여전히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도 따르지도 않는 듯하다. 중앙대 교수·작가
  • ‘G밸리기업’ 수출·자금 지원… 금천 ‘일취월장’ 이끈다[현장 행정]

    ‘G밸리기업’ 수출·자금 지원… 금천 ‘일취월장’ 이끈다[현장 행정]

    “일자리 많이 만들어서 취업률 올리고, 월급 많이 드려서 장가·시집 보내 출생률을 높입시다.” 지난 2일 G밸리를 찾은 유성훈 서울 금천구청장은 ‘일취월장’으로 즉석에서 4행시를 선보였다. 일자리가 풍부한 도시를 만들어 청년 삶의 질을 높이고 인구 소멸에 대응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유 구청장이 새해 벽두부터 G밸리를 찾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천구는 올해 경제성장률이 3%대를 밑돌 것으로 예상되면서 중소기업 지원 수요가 더 늘 것으로 보고 G밸리 입주기업에 해외 수출지원 온라인 플랫폼을 제공하고, 중기육성기금 융자지원을 확대해 기존 1.5%의 금리 부담을 0.8%로 낮춰 사업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오는 4월 G밸리 2단지에 2번째 G밸리 기업지원센터를 개소해 행정 민원 처리 역량을 강화한다. 유 구청장은 이날 G밸리 인프라 개선사업도 점검했다. 출근 시간대 평균 3만명이 내리는 가산디지털단지역은 서울에서 혼잡도가 가장 높은 역이다. 이에 구는 국가철도공단과 함께 23억원을 들여 1호선 하행 플랫폼 남측에 3번 출입구를 신설했다. 기존 7호선 4~6번 출입구를 이용하던 4000여명의 승객이 3번으로 드나들게 되면 역사 혼잡도가 크게 낮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15분 간격으로 2시간 동안 G밸리 현장 5곳을 찾은 유 구청장은 마지막으로 지난달 준공한 현대지식산업센터 ‘가산 퍼블릭’을 둘러봤다. 전체면적 3만㎡, 1933실 규모의 센터에는 노동자종합지원센터, 디자인 전문 도서관 등이 공공기여 공간에 들어설 예정이다. 유 구청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현장중심 업무 보고회를 개최해 사흘간 핵심 구정 사업을 살폈다. 둘째 날인 3일에는 ‘약자동행’을 주제로 노인 일자리 현장인 금빛택배 분류소와 청소년문화의집, 독산1동 가족센터 건립지 등을 둘러봤다. 셋째 날인 4일에는 ‘안전’을 주제로 제설대책 현장과 독산4동 하늘다리 공사 현장 등을 점검했다. 유 구청장은 “갑진년 새해 청룡처럼 날아오르는 금천을 만들기 위해 모든 공직자가 현장에 맞는 구정을 고민하고 추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 돈가스와 단팥빵에 숨겨진 역사적 사실들 [한ZOOM]

    돈가스와 단팥빵에 숨겨진 역사적 사실들 [한ZOOM]

    일본 제40대 천황 덴무(631~686)는 상징적 존재를 넘어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행사였던 천황이었다. 그는 일본(日本)이라는 국호와 천황(天皇)이라는 호칭을 도입했다. 그리고 천황이 되기 전 승려였던 경험을 살려 불교를 국교로 삼았다. 덴무는 오늘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육식금지령’을 내렸다. 5가지 짐승(소, 말, 개, 원숭이, 닭)의 고기를 먹지 못하도록 하는 덴무 천황의 육식금지령(675년)부터 메이지 천황의 육식금지령 해제(1872년)까지 약 1200년 동안 일본은 고기를 먹지 않았다. 일본인들에게 고기를 먹이기 위해 등장한 돈가스 1867년 메이지 유신을 시작으로 일본은 서구식 근대화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도층에게는 여전 히 고민이 남아 있었다. 서양인들에 비해 일본인들의 체형이 너무 작고 왜소했던 것이다. 그 해결책으로 찾은 것이 바로 육식이었다. 하지만 약 1200년 동안 육식을 하지 않은 일본인들에게 고기를 먹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천황까지 직접 고기 먹는 모습을 보여주며 육식을 장려했다. 하지만 고기를 먹었다는 이유로 자식과 인연을 끊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일본인들의 육식에 대한 거부감은 여전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돈가스(とんかつ)’였다. 육식 장려를 위해서는 고기 특유의 비린내를 잡는 동시에 고기로 만든 음식이 아닌 것처럼 보여야 했다. 돼지고기에 두꺼운 빵가루를 묻혀 튀긴 돈가스는 그런 의미에서 최적의 대안이었다. 돈가스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영국 커틀릿에서 유래했다는 것이 가장 널리 인정된다고 한다. ‘커틀릿’(Cutlet)은 얇은 고기에 빵가루를 묻혀 굽거나 튀긴 서양식 음식이다. 일본은 돼지고기로 커틀릿을 만들어 돼지고기 커틀릿(Pork Cutlet), 일본식 표현으로는 ‘포크가쓰레쓰(ポークカツレツ)’라는 이름으로 팔기 시작했다. 이 음식은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다가 1959년 이후 돈가스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호빵맨이 아니라 단팥빵맨(앙팡맨) 서구식 음식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빵이다. 동양 사람들의 주식이 밥이라면 서양 사람들의 주식은 빵이다. 빵이라는 이름은 포르투갈어 ‘팡(pão)’이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생긴 것이다. 커틀릿과 함께 서양음식인 빵 역시 일본인들 사이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서양식 딱딱한 빵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쉽게 자리를 잡지 못했다. 1869년 하급무사 출신 키무라 야스베에(木村安兵衛)가 네덜란드 유학생 출신 요리사 ‘우메키치(梅吉)’로부터 제빵기술을 전수받아 도쿄에 빵집을 차렸다. 하지만 이 가게는 두 번의 화재로 불타버렸다. 마지막으로 키무라는 수익금과 대출금을 합쳐 벽돌식 신식건물에 세 번째 빵집을 차렸다. 1874년 키무라는 서양식 빵에 일본식 팥소를 결합한 단팥빵을 만들어 냈다. 그는 효모 대신에 술누룩을 이용해 부드러운 새로운 빵을 만들었고, 단팥빵은 서양식 딱딱한 빵에 거부감이 있었던 일본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히트를 쳤다. 여담이지만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애니메이션 ‘호빵맨’은 사실 호빵맨이 아니라 단팥빵을 모티브로 만든 캐릭터다. 일본 이름도 단팥빵을 의미하는 앙팡맨(アンパンマン, Anpanman)이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 군산 이성당 1906년 아들의 군복무를 피해 우리나라로 넘어온 히로세 야스타로가 전북 군산에 ‘이즈모야’(出雲屋)라는 빵집을 열었다. 당시 군산은 호남지역에서 생산한 쌀을 수탈하여 군산항에서 일본으로 옮기던 도시였다. 그래서 군산에는 수많은 일본인들이 살고 있었다. 이즈모야 빵집을 차린 히로세는 당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단팥빵을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팔았다. 히로세는 단팥빵으로 엄청난 수익을 거두었고 군산에서 유력 인사로 자리를 잡았다. 1945년 광복 이후 히로세 가족은 모든 제빵장비를 버리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후 이석우씨가 이 곳을 불하받고 '이(李)씨 성을 가진 사람이 번성(盛)하는 집(堂)'이라는 의미를 담아 이성당(李盛堂)이라는 이름의 빵집을 열었다. 현재 이성당은 대한민국에서 현재까지 운영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현재 이성당은 군산을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들려야 하는 핫 플레이스이자 빵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성지로 인정받고 있다. 이성당 입구에는 매일 단팥빵과 야채빵을 사려는 사람들로 길게 줄을 서있고, 가게 안에는 발을 디딜 틈이 없을 만큼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제는 흔한 음식이 되어버린 돈가스와 단팥빵에 이런 웃지 못할 숨겨진 역사가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게만 느껴진다. 
  • 수원시 6개 전통시장, ‘2024년도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 지원사업’ 선정

    수원시 6개 전통시장, ‘2024년도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 지원사업’ 선정

    수원시 6개 전통시장이 중소벤처기업부가 주관하는 ‘2024년도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돼 국비를 지원받는다. 5일 수원시에 따르면 북수원시장·장안문거북시장이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 정자시장·남문로데오시장이 ‘디지털전통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됐다. 장안문거북시장·못골종합시장·북수원시장·화서시장은 ‘시장경영 패키지지원’ 대상지로 선정됐다.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은 시장이 보유한 자원과 지역의 역사·문화·관광 자원을 연계해 지역 특색이 가미된 쇼핑·문화체험이 가능한 테마형 관광시장으로 육성하는 것이다. 시장별로 최대 10억 원(국비·시비 각 50%)을 지원한다. 디지털전통시장 육성사업은 전통시장의 온라인 진출을 위한 ▲운영조직 구성 ▲역량 강화 ▲상품 발굴·입점·마케팅 ▲배송 인프라 구축 등 디지털 기반 구축을 종합지원하는 것이다. 시장별 최대 4억 원(국비·시비 각 50%)을 지원한다. 시장경영 패키지지원은 온라인 마켓의 배송인력 인건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된 북수원시장은 캠핑특화시장으로 브랜딩해 주변 캠핑장 연계 상품을 개발할 계획이다. 장안문거북시장은 시장의 역사적 의미를 담은 환경을 조성하고, 특화 콘텐츠를 활성화해 관광객을 유치할 예정이다. 디지털전통시장 육성사업에 선정된 정자시장, 남문로데오시장은 ▲온라인 전용상품 발굴 ▲배송 인프라 구축 ▲온라인 마케팅 등으로 온라인 마켓에 진출할 계획이다. 수원시 관계자는 “전통시장이 온라인 쇼핑 증가, 대형유통업체 확산 등 급격한 유통환경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자생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수원시는 전통시장 활성화 지원사업을 지속해서 추진해 왔다”며 “전통시장 및 상점가 활성화 지원사업으로 수원시 전통시장이 다른 전통시장들과 차별화되는 시장으로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박다솜 작가 ‘건강을 위한 정화, 조화 형상 연구’ 展, visaza에서 1월 5일까지 연장

    박다솜 작가 ‘건강을 위한 정화, 조화 형상 연구’ 展, visaza에서 1월 5일까지 연장

    visaza에서 개관전으로 열린 박다솜 작가의 ‘건강을 위한 정화, 조화 형상 연구’가 휴식 및 재정비의 시간을 가진 후 5일까지 연장된다. 전시 공간인 visaza는 작가가 작업하는 실험실이자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다. 해당 전시는 지난해 봄 이화여자대학교 잔디밭에서 열렸던 박다솜 작가의 ‘치유의 문자, 스텔레토 힐, 즐거움의 소리’의 후속 전시다. 전시 관계자는 “흙을 함께 배치하여 자연의 향을 실제로 맡을 수 있는 ‘發芽’ 5점은 흙에서 솓아 오르는 생명의 에너지를 표현했다. 발아의 과정에는 공기, 적당한 빛과 온도, 습도가 필요하며, 호흡 작용이 활발하게 일어난다. 작업은 이 모든 것들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 전시된다. 작가가 마치 작품이 실제로 발아하기라도 하듯 작품이 존재하는 공간을 정성껏 닦고 가꾸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박다솜 작가는 꾸준하게 문자도 시리즈를 작업해 왔다. 이번에는 새롭게 무지개를 표현한 작품 ‘守心正氣 Rainbow’와 ‘치유 힐’(Healing Heel) 시리즈, ‘Catharsis Circle’, 그리고 시간성과 주파수의 조화를 표현하는 ‘안아주고 싶은, 오래된 건축’, ‘The Happy Sound Collection’을 전시한다. 또 오랜 시간의 기억이 축적된 작가의 유년 시절 방 안 사물들과 작가가 4살부터 직접 연주하던 바이올린들을 오브제로 전시한다. 해당 전시는 5일까지 연장돼 마무리된다. 한편, 박다솜 작가는 치유문자, 스텔레토 힐, 오래된 것, 즐거움의 소리를 통하여 건강을 위한 정화와 조화의 형상을 표현한다.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 후 이화여자대학교 동양화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다음은 작가의 전시 전문. 인간의 단단하고 자유로운 내면은 맑은 안색과 긴밀하다. 생기 있고 또렷한 눈빛은 건강한 정신에 기인한다. 세계 보건 기구는 1948년 헌장에서 건강에 대해 “단순히 질병이나 허약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완전한 안녕 상태”라고 규정하였다. 몸과 마음이 튼튼하고 안녕한 나날들 만이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 까. 그러나 완전한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불완전함의 표면에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인간은 자신만의 연고를 바르게 된다. 연고로는 낫지 않는 상흔도 있다. 육체와 정신이 모두 무너지는 순간이 있다.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그저 상처를 계속 지니고 함께 살아가는 것뿐임을 깨닫는다. 어떻게 하면 몸과 마음을 탄탄히 다시 쌓을 수 있을 까. 처음부터 다시금 찬찬히 생각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이 모든 것이 정화되고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나의 작업은 인간의 내면과 외면을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치유 혹은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찰과 위 물음에 대한 방법을 크게 ‘정화’와 ‘조화’로 나눈 후 이를 조형적 언어로 풀어나가는 과정이다. 활자 언어를 통한 내면 정화의 경험은 본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첫 지점이 되었다. 그 중에서도 마음을 지키고 기운을 바르게 하는 守心正氣는 단순하게 글자 그 자체의 의미로서 삶과 작업의 동력이 되었다. 수천 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동양의 養生에서도 마음을 보호하고 좋은 기운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은 건강에 이르는 방법의 중심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양의 오래된 의학서인 『황제내경』에서는 “정신이 안에서 지키면 병이 어디로 들어오겠는가.”라고 했다. 정화와 조화의 표현은 나의 마음을 지켜주고 정신을 고요히 만드는 데에 기여한다.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며 스마트 기기로 인한 더 빠르고 스마트해진 세상은 아날로그 시대에서의 인간 중심적이고 촉각적인 경험의 부재를 가져왔다. 건강에 있어서는 스크린을 보는 시간이 더 길어지면서 몸의 움직임은 줄어들었고 스트레스와 불안, 집중력 저하, 뇌 기능 저하 등 신체 · 정신적 건강 측면의 스마트하지 않음을 초래했다. 정신이 고요해지기보다는 마주하는 정보가 많아지고 세상이 더 빠르게 변화하면서 인간의 마음은 더 산만하고 복잡해졌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정화와 조화의 표현이 사람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면서 좋은 기운을 서로가 평화롭게 받아들이며 나눌 수 있게 하고 그리하여 마음의 건강이 몸의 건강으로까지 이르게 하는 매개체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스마트 기기가 없던 시대를 쉽게 상상하지 못할 현재 태어나는 세대는 보다 건강과 스트레스에 취약하며 마음을 정화하거나 조화를 살필 여유가 부족하다. 건강을 위한 정화와 조화의 표현을 통해 예술의 방식으로 다른 이들과 이후의 세대들이 치유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작업하는 것의 목적이다. 치유의 문자, 스텔레토 힐, 오래된 것, 즐거움의 소리를 통한 정화와 조화의 표현이 부드러운 연고로서 기능하여 누군가의 아픔이 조금이나마 경감되는 데에 기여가 될 수 있다면 혹은 상흔의 회복에 있어 작은 씨앗이 되어 건강의 열매를 꿈꿀 수 있게 한다면 그것이 나의 작업과 논문의 의의이다.
  • 14년간 연재했던 전설적 웹툰 속편…고품질 개그 여전, 과거 영광 재도전[웹툰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4년간 연재했던 전설적 웹툰 속편…고품질 개그 여전, 과거 영광 재도전[웹툰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2024년이 시작됐다. 새해가 되면 누구나 다짐한다. 지난해보다 더 나은 해를 꿈꾸며, 건강부터 성공까지 다양한 소망을 담아 새롭게 시작하겠다고 말이다. 물론 작년이란 개념은 우리 모두에게 아쉽고 부족하기만 했던 시간이겠지만,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면 어쩌면 가장 좋았던 시절일 수도 있다. 지나간 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안타깝지만, 인생 전체에서 보면 그때가 나의 최고 시간, 전성기였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에 최고의 영광을 누렸던 전설적인 웹툰의 속편인 ‘마음의 소리 2’(글·그림 조석)를 소개한다. 2006년 9월 8일 네이버 웹툰에서 연재를 시작한 ‘마음의 소리’는 2020년 7월 28일 총 1233화를 끝으로 14년의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네이버 웹툰을 현재의 위치로 끌어올린 작품 중 하나라는 평가를 받는 ‘마음의 소리’는 작가의 주변 인물들과 그들이 만들어 내는 일상의 모습을 소재로 그간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신선한 개그를 선보였고, 독자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일상툰이라는 장르를 대표한 작품이기도 한 ‘마음의 소리’는 당시의 인기를 반영하듯 완결 당시 ‘네이버 웹툰 황금 감사패’, ‘유퀴즈 인터뷰’, ‘네이버 메인 작별 인사’ 등등 성대하게 축하를 받았다. 박수 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마음의 소리’는 수많은 찬사와 함께 막을 내렸다. 조석 작가는 그 후 ‘문유’, ‘행성 인간’, ‘조의 영역’, ‘묵시의 인플루언서’ 등 개그만화인 ‘마음의 소리’와는 작품의 결이 아예 다른 여러 장르의 서사 웹툰을 선보였다. 이에 작가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기도 했지만, 스스로가 ‘마음의 소리 2’를 시작하며 회고했듯이 인기는 ‘마음의 소리’를 연재했던 예전만 못했다. 2023년 8월 28일 ‘너는 그냥 개그만화나 그려라’라는 제목으로 연재가 시작됐다. 제목은 달랐지만 작가는 조석이었고, 주인공은 바로 ‘그분’이었으며, ‘그분의 가족들’도 그대로였다. 첫 화부터 독자들의 반가운 댓글이 가득했다. ‘이건 누가 봐도 마음의 소리 2 아냐?’라는 많은 독자의 반응에,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여러분들이 마음의 소리 2라고 부를 거 다 알고 있습니다’라며 작품의 정체성을 일찌감치 드러냈다. 결국 2023년 11월 13일, 12화 ‘몽타주’ 편에서 아예 작품의 제목을 ‘마음의 소리 2’로 바꿔 버리는, 웹툰 역사 최초로 연재 도중 제목을 변경하는 기상천외한 시도를 선보이며 독자들을 한 번 더 웃겨 주었다. 작가는 ‘마음의 소리 2’의 연재를 시작하면서 자신이 ‘마음의 소리’를 종료할 때 받았던 수많은 찬사가 얼마나 부담스럽고 놀라웠는지에 대해 연재 초반 대부분의 지면을 할애해 열심히 표현했고, 너무도 익숙한 전설로 다시 돌아온 자신을 스스로 적당히 비하하면서, 여전히 웃기는 하이퀄리티 개그를 매주 선보이고 있다. 전작보다 ‘마음의 소리 2’가 인기가 있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지만 어쨌든 그는 새롭게 이야기를 시작하며 용기 있게 독자들 앞에 섰다. 설령 작년이 나의 전성기였더라도, 혹은 아직 전성기가 오지 않았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한 건 조석 작가가 보여 주는 용기 아닐까? 3년 전의 영광에 도전하는 ‘마음의 소리 2’를 보며 모두 함께 신년을 맞이한 우리의 마음을 다잡아 보자.백수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팀장
  • [책꽂이]

    [책꽂이]

    물욕의 세계(누누 칼러 지음, 마정현 옮김, 현암사) 쇼핑 중독처럼 물건을 사들이던 소비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저자가 우리는 왜 미치도록 ‘그 물건’을 사고 싶은지를 탐구한다. 친환경이라는 이름으로 팔려 나가는 상품의 본질, 최신 트렌드를 내세워 세계의 절반을 파괴하는 패스트패션의 폐해 등도 낱낱이 전한다. 328쪽. 1만 8800원.미중 통화전쟁(다무라 히데오 지음, 정상우 옮김, 오픈하우스) 일본 산케이신문 기자이자 경제전문가인 저자가 2012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부터 현재까지 미중 통화전쟁의 시작과 현재, 앞으로의 전개 양상을 방대한 데이터로 분석했다. 통화전쟁의 여파에 휘말릴 가능성이 높은 한국이 취해야 할 입장에 대해서도 숙고하게 한다. 276쪽. 1만 9800원.그 겨울의 찻집(양인자 지음, 신재흥 그림, 비향서원) ‘그 겨울의 찻집’, ‘립스틱 짙게 바르고’ 등 세대를 넘어 사랑받아 온 명곡의 노랫말을 쓴 양인자 작가가 명곡의 탄생 비화를 들려준다. 오랜 사진첩에서 당대의 음악인들이 담긴 사진들을 꺼내 추억에 생기를 더한다. ‘샘터’에 연재했던 수필도 골라 묶었다. 328쪽. 1만 8000원.컬렉터처럼, 아트투어(변지애 지음, 한스미디어) 전 세계 아트페어를 오가며 세계 미술 시장의 ‘현재’를 읽어 내는 아트 컨설턴트가 ‘좋은 컬렉터’가 되고 싶은 이들이 알아야 할 이야기를 펴냈다. 컬렉터라면 꼭 알아야 할 국내외 대표 작가들과 1~12월 매달 예술 여행을 떠나기 좋은 도시 미술관과 아트페어 등을 소개한다. 260쪽. 2만원.오스틴과 디킨스 다시 읽기(오정화 지음, 그린비) 본래 한 몸이었던 종교와 문학의 관계를 되짚으며 제인 오스틴과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다시 읽는다. 종교를 배제했다고 비판받은 두 작가의 작품이 신앙, 기독교 세계관과 밀접히 이어져 있음을 밝히고 작품 속 종교의 의미를 풍부하게 찾아낸다. 312쪽. 1만 7800원.미래의 기원(이광형 지음, 인플루엔셜) 이광형 카이스트 총장이 역사 속에서 일어난 환경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주목해 5년간 분석한 우주와 인간의 역사, 미래 문명사. 138억년의 우주 역사와 과학자들이 예견한 미래를 살펴보며 인본주의적 평화를 유지하는 새 질서 ‘휴머니즘 2.0’을 구축하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556쪽. 3만 3000원.
  • “12·12 군사반란 신군부, 돈 뿌려 충성심 사” 美 보안문서 공개

    “12·12 군사반란 신군부, 돈 뿌려 충성심 사” 美 보안문서 공개

    12·12 군사반란 당시 전두환 등 신군부 세력이 사실상 돈으로 충성심을 샀다는 내용이 담긴 미국 정보당국의 보안 문서가 공개됐다. 문서에는 신군부가 군대 내 충성심 회복과 자기 행동 정당화를 위해 많은 돈을 지출했다는 첩보가 기록됐다. 4일 5·18 민주화운동기록관에 따르면 기록관은 지난해 11월 30일 ‘5·18 민주화운동 기록물 자료 총서’ 3권을 발간했다. 2017년 팀 셔록 미국 기자로부터 기증받은 미 정보당국의 비밀 해제 문서를 신동일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조사관이 번역했고, 이 번역본을 토대로 12·12 군사반란부터 5·18 민주화운동까지 미국 정부가 바라보는 한국 정세 등 내용을 총서에 담았다. 12·12 당시 한국에서 첩보 활동을 한 정보당국 요원·주한 미 대사관이 작성한 보안 문서에는 군사반란이 일어난 주요 동기와 과정을 추론할 수 있는 내용들이 적혀 있었다. 1979년 12월 13일 주한미국대사관이 미 국무부 장관에게 발송한 전문에는 ‘12·12 군사반란은 의심할 여지 없이 신군부 세력의 권력욕, 늙은이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젊은 장교들의 자만심,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복수 등으로 일어났을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12·12 군사반란은 완전한 쿠데타’라는 내용과 함께 군사 반란을 주도한 신군부 세력을 ‘말썽꾸러기 장교들’(A group of young turk officers)라고 희화화해 표현하기도 했다. 특히 군사 반란 뒤 흔들리는 군대 내 서열·충성심 회복을 위해 신군부 세력이 돈을 사용했다는 첩보도 담겼다. 주한 미 대사관은 전두환이 자신을 추종하는 부하에게 매달 활동비를 지급하고, 12·12 군사반란과 그 이후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많은 돈을 지출했다고 합동참모본부에 보고했다. 총서를 검수한 이재의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전문위원은 “국내 문서 대부분이 신군부 세력에 의해 왜곡·조작됐다는 점에서 미국 정부 문서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며 “미국 입장만을 다뤘다는 한계도 존재하나 국내 문서를 통해 알 수 없는 유의미한 정보가 많이 담겼다”고 말했다. 5·18 기록관에서 발간한 총서 3권은 기록관 누리집에서 볼 수 있다.
  • 전남도, 노인 일자리 확대로 소득 증대

    전남도, 노인 일자리 확대로 소득 증대

    전라남도는 초고령사회의 다양한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올해 노인 일자리 사업을 대폭 강화했다. 먼저 지난해 5만 7천 개였던 노인 일자리 사업을 올해는 역대 최대 폭인 7천 개를 늘려 6만 4천 개의 노인 일자리를 제공한다. 이와 함께 노인 일자리 보수도 지난해에 비해 공익활동형은 2만원, 사회서비스형은 4만원을 더 인상해 지급하기로 했다. 노인 일자리사업은 어르신들의 다양한 경력과 경륜 등 상황에 맞춰 공익활동형과 사회서비스형, 민간형(시장형·취업알선형) 일자리로 구분된다. 공익활동형은 노노케어와 취약계층 정서 지원, 공동시설 봉사 등 지역사회 공익 증진 활동을 하는 일자리로 참여자에게는 지난해보다 2만 원 인상된 월 29만 원의 활동비를 지급한다. 사회서비스형은 노인시설과 장애인시설, 보육시설 등에서 노인의 활동 역량을 활용해 취약계층 전문서비스와 공공서비스 영역을 보완하는 일자리로 지난해보다 4만 원 인상된 월 76만 원을 받는다. 특히 민간형은 실버 카페와 특산물판매, 영농사업, 식품 제조 등 어르신의 수익 창출을 지원하는 시장형 사업과 주유원, 경비원, 미화원 등 취업 알선형으로 구분되며 급여는 근무시간과 근로계약에 따라 지급돼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이밖에 경로당 공동작업장 운영 지원 30여 개소와 시장형사업 초기 투자비 지원, 어르신 생산품 판매 촉진 지원 등 다양한 도 자체 노인 일자리 사업도 발굴해 지원한다. 이상심 전남도 보건복지국장은 “노인 일자리는 어르신의 노년기 소득에 큰 보탬이 될 뿐만 아니라 삶의 만족도 증가, 우울감 개선, 의료비 절감 등 측면에서 성과가 크다”며 “사회적으로도 의미 있는 역할인 만큼 많은 분이 사업에 참여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문화마당] 시산리 아리랑/이은선 소설가

    [문화마당] 시산리 아리랑/이은선 소설가

    “(중략) 내가 스스로 나섬은 중국을 깨우쳐 나라를 지키고자 함이요, 장차 내가 겪을 고초는 명옥을 얻고자 함이니 그것이 자유와 평등 아니겠습니까?”(강희진, ‘소설 윤봉길’ 중에서) 훙커우공원에서의 거사를 의결할 적에 윤봉길이 외쳤다던 출정의 말이다. 나라를 위한 충절의 마음과 말이 곧게 박힌 문장이다. 새해 벽두에 가져오기에는 다소 의미심장할 수 있으나, 나는 윤봉길의 이 ‘모수자천’(毛遂自薦) 고사를 따라 일생을 토종 씨앗 지킴이와 소설 쓰기를 해 온 작가의 발자취를 용의 그림자라도 따라가 볼 심산이다. 마을 주민들의 창고와 벽장, 전국 방방곡곡 골짜기마다 찾아다니며 한국 토종 씨앗을 모아 온 사람이 있다. 우리 씨앗들의 DNA를 지키는 일이라면 농군, 마름, 청소부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제주도부터 헤이룽장성 모처까지 가서 토종과 관련된 씨앗들을 가져왔다. 아내가 해 오던 슬로푸드운동과 토종 씨앗 모으기를 처음에는 본인의 집에서 시작해 아예 터를 닦고 박물관을 차렸다. 이름하여 한국토종씨앗박물관. 고향의 노인들이 양로원에서 돌아가시는 것을 안타까워하여 지역 공동체를 꾸리고 ‘내 집에서 운명하기’ 프로젝트를 마을 사람들과 함께 진행한다. 주민들의 일상을 촬영해 시산리 영화제도 꾸린다. 무엇보다 토종 씨앗이 있는 곳이라 하면 그곳이 어디여도 가고야 만다. 동서 끝쪽의 섬들인 가의도와 울릉도까지 톺았단다. 저인망으로 헤집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고, 도무지 열려고 들지 않는 할머니들의 벽장 속을 열 수 있던 그 힘은 바로 토종의 근간을 지키고자 하는 출정사의 마음 그 자체를 씨앗의 주인들에게 가감 없이 보여 준 덕분이다. “세포를 억지로 변화시켜서 생산량만 늘리는 곡물들을 먹은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건강하게 살 수 있단 말입니까? 웰빙과 힐링을 외치면서 유전자조작식품들을 먹어요. 통탄할 노릇입니다. 게다가 이십여 년 후에는 우리 마을에서 공동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노인들에게는 시간이 별로 없어요. 자식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곳에서 나고 자라 여기의 땅으로 돌아간 것을 지켜본 사람들이 술 한잔하는 축제의 장이 돼야지요. 토종 곡물로 빚은 막걸리와 청주 정도면 음복하기에 걸맞춤이 아니겠습니까.” 평생 함께 음식과 삶을 나누며 함께 산 이들이 돌아간 하늘 쪽으로 우리 쌀로 빚은 청주 한 잔 올리는 것, 그것을 영화로도 제작해 기록하고 소설을 써서 역사적인 인물도 잊지 않는데, 또 안방으로 돌아와서는 강아지풀을 선물한 손녀의 조막손을 잊지 못해서 들판에 나가기만 하면 발에 채는 그 강아지풀을 벽에 못 박아 걸어 둔 영락없는 할아버지다. 은근슬쩍 박물관에 찾아가 직접 농사지은 우리 밀로 만든 빵을 내오는 그 투박한 손을 오래 쳐다보고 싶다. 아리랑이 꼭 아리아리 쓰리쓰리만을 향하는 노래가 아니듯이 그가 말하여 적고 기록한 것들이 퍼지는 모든 문장이 마을 곳곳의 아프고 외로운 노인들을 우리 가락에 맞춰 용솟음치게 하고 있다. 자발적으로 우리 토종 씨앗을 지켜 주는 든든한 청룡 같은 지킴이가 부르는 시산리의 아리랑이다. 중요한 것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서는 그 힘이다. 그는 청룡을 뒷배로 둔 사람인 걸까. 자못 궁금하다면 시산리로 향해도 좋을 법한 새해다.
  • 신원식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터무니없다”…SNS글 해명

    신원식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터무니없다”…SNS글 해명

    신원식 국방부 장관이 국회의원 시절 소셜미디어(SNS)에 “독도 영유권 분쟁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쓴 것과 관련해 “일본이 영토분쟁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미”라고 해명했다. 3일 국방부는 이날 오전 출입기자단에 보낸 입장문을 통해 “(신 장관이) 지난 국회의원 시절 SNS에 기록된 ‘독도 영유권 분쟁’에 대한 표현은 일본이 영토분쟁을 시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기술한 것”이라면서 “같은 SNS 기록(네 번째 질문)에 ‘일본의 과거사와 독도 영유권 등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라고도 언급한 것처럼 일본의 터무니없는 주장에 동의한 바 없다”고 밝혔다. 앞서 신 장관은 지난해 3월 23일 페이스북에 올린 ‘국방위 유감, 이재명 대표에게 드리는 5가지 공개 질문’ 제하 글에서 “지금 한일간에 과거사, 독도 영유권 분쟁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라고 주장했다. 당시는 북한이 단거리탄도미사일, 전략순항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연거푸 발사하던 시기였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의원이던 신 장관은 “(이런 상황에서도) 반일 선동과 친일몰이에 주력한 민주당과 이재명 대표”라고 규탄했다. 또 야당이 “이미 사라진 과거완료형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적개심에 기대어 저질적인 반일선동의 ‘죽창가’만 열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독도에 대한 영토분쟁이 진행 중이라는 주장은 독도는 대한민국의 고유 영토이며 독도와 관련한 영토분쟁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에 반한다. 언론 취재가 시작되자 신 장관의 해당 페이스북 글은 비공개로 전환됐다. 국방부는 “장관은 후보자 시절에도 인사청문회를 통해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해서는 강력히 항의해야 하고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라고 확고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며 “‘독도는 역사적, 지리적, 국제법적으로 명백한 우리 대한민국 고유의 영토이며, 독도에 대한 영유권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 군도 독도 수호의지가 확고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고 전했다. 한편 국방부는 일본 기상청이 독도를 자국 영토인 양 쓰나미(지진해일) 주의보 지역에 포함한 것에 대해 일본 측에 강력히 항의하고 시정조치를 촉구했다고 이날 밝혔다. 앞서 지난 1일 일본 기상청은 일본 이시카와현 노토 반도 지역에서 추정 규모 최대 7.6의 지진이 발생하자 이시카와현을 포함해 야마가타, 니가타, 도야마, 후쿠이, 효고현 등 동해 쪽을 접한 일본 북부 연안에 쓰나미 경보를 발령했다. 일본 기상청은 ‘쓰나미 경보·주의보’ 지도에 쓰나미 경보가 발령된 지역을 경보 수준에 따라 색을 달리해 표시했는데, 이 지도에 독도를 포함했다. 재난 중에도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 태극기 ‘태극’에 빨간 원 그린 佛 방송… 네티즌 “한일 역사를 안다면 큰 모욕”

    태극기 ‘태극’에 빨간 원 그린 佛 방송… 네티즌 “한일 역사를 안다면 큰 모욕”

    프랑스 국영방송 TF1의 한 자매회사 채널이 남북한 긴장 관계를 보도하면서 우리 태극기에 있는 태극 문양을 빨간 원으로 그린 그래픽을 내보내 네티즌들의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뉴스채널 LCI는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오후 2시 38분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노동당 전원회의 5일차 발언을 집중 소개하며 한반도 문제를 짚었다. “언제든 전쟁이 터질 수 있다”고 한 김 위원장의 언급과 위협에 대한 내용이다. 기자 리포트의 배경에 남북한 국기를 넣은 그래픽을 썼는데, 태극기 중앙 원을 파란색을 뺀 채 단색으로 써 언뜻 보면 일장기에 건곤감리를 그린 듯 보였다. LCI의 유튜브 채널에도 올라온 이 영상은 2일 오후 3시(한국시간) 현재 시청자 13만명을 넘어섰다. 영상에는 9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대부분 이런 문제를 비판하고 있다. 최소한 인터넷 검색만 거쳤어도 파악할 수 있는 사항을 너무 무성의하게 제작했다는 게 주를 이뤘다. 한 네티즌은 “태극기의 하얀 바탕은 밝음과 순수, 전통적으로 평화를 사랑하는 한국 국민의 민족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그 바탕에 한국을 침탈한 국가를 그려 놓는다는 게 무슨 의미인가”라고 따져 물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정말 불쾌하다. 한국의 역사를 안다면 이보다 모욕적인 ‘실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프랑스 국기에 나치 문양을 합성한 느낌”, “프랑스 언론의 수준 잘 봤다”, “무려 뉴스 방송사가 격 떨어지게 행동한다”는 등의 비판 댓글도 눈에 띄었다. 한국어 이외의 언어로 작성된 댓글들도 눈에 띈다. 한 네티즌은 프랑스어로 “한국과 일본의 역사를 알면 정말 큰 실수”라고 썼고, 영어 댓글에는 “한국의 국기는 빨간색과 파란색이 혼합돼야 한다”며 “영상 속 국기는 잘못됐고 외교적으로 무례하다”는 일침을 담은 내용도 보인다. LCI는 아직도 이 영상을 수정하지 않은 채 그대로 유튜브에 송출하고 있다.
  • 시진핑 가족사진 대거 새로 소개한 이유…아기 적 딸도 공개

    시진핑 가족사진 대거 새로 소개한 이유…아기 적 딸도 공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4년 신년 연설을 통해 미공개했던 가족사진 여러 장을 새로 소개했다. 시 주석은 2013년 취임 이후 매년 공산당 지도부가 집단 거주하는 베이징 중난하이 집무실에서 사전 촬영한 동영상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올해도 만리장성 그림과 중국 국기와 서가를 배경으로 시 주석은 11분 분량의 신년사를 발표했다. 서가에 배치된 20여장의 사진과 꽂힌 책들은 시 주석이 신년에 내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는 특히 아버지 시중쉰 전 부총리, 시 주석과 부인 펑리위안 여사, 어린 딸과 함께한 시 주석 부부 등 가족사진이 여러 장 새로 서가에 배치됐다.홍콩 명보는 2일 서가의 가족사진을 통해 전통적인 가족 가치를 강조했으며 또 경제 발전 의지와 역사적 3연임 달성의 의미를 담은 사진들도 전시됐다고 전했다. 명보는 “시 주석의 2023년 신년사 때는 서가에 놓인 가족사진이 4장뿐이었으나 올해는 전시된 사진 대부분이 가족사진이었다”고 밝혔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시 주석의 신년사 영상 속 사진들은 국가를 이끌 역량이 있고 인민과 직접 교류하는 지도자의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엄선된 것들”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신년사에 등장한 사진과 비교하면 올해 사진 중 일부는 코로나19 이후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석유회사 시노펙, 세계 최대 소형 제조품 수출 중심지가 된 이우 등 경제 현장 방문에 초점을 맞췄다.한편 CNN은 시 주석이 지난 10년간 신년사를 한 이래 처음으로 중국의 일부 기업과 구직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경기 침체를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시 주석은 신년사에서 “일부 기업은 운영 압박을 받고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고용과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경제 회복의 힘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시 주석이 연설하기 몇 시간 전 중국 국가통계국(NBS)은 월간 구매관리자지수(PMI) 조사를 발표했는데, 12월 공장 활동이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PMI 수치가 50을 넘으면 경기 확장, 50 이하는 위축을 나타내는데 제조업 PMI는 지난 11월 49.4에서 12월 49로 하락했다. 2023년 중국 경제는 장기간의 부동산 경기 침체, 기록적으로 높은 청년 실업률, 물가 하락, 지방 정부의 부채 증가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 순교자들의 피 묻은 돌 위에 세워진 성지, 전주 전동성당 [한ZOOM]

    순교자들의 피 묻은 돌 위에 세워진 성지, 전주 전동성당 [한ZOOM]

    1656년 교황 알렉산데르 7세(1599~1667)는 “동양의 전통의식인 제사는 우상숭배라고 볼 수 없다”라고 선언했다. 그런데 1715년 클레멘스 11세(1649~1721)가 기존 교황청의 입장을 뒤집고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선언하면서 엄청난 혼란이 일어났다. 이 혼란은 1939년 비오 12세(1876~1958)가 제사를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선언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1791년 전라북도 진산에 살고 있는 양반 윤지충(尹持忠, 1759~ 1791)이 어머니 제사를 천주교식으로 치르고, 신주(神主·죽은 사람의 위패)를 불태우는 사건이 일어났다. 종친들이 격렬히 반대했지만, 같은 천주교인이었던 외사촌 권상연(權尙然, 1751~1791)까지 윤지충의 편을 들면서 일은 점점 커져갔다. 결국 윤지충과 권상연은 구속되었고, 두 사람은 유교적 사회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죄로 참형에 처해졌다.  역사는 이 사건을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박해사건인 ‘신해박해(辛亥迫害)’로 기록하고 있다. 내가 왕이 될 상...아니 여기가 왕이 될 땅인가. 전주(全州)는 삼국시대부터 전라도의 중심도시였다. 특히 조선시대에는 왕의 성(姓)이 ‘전주 이씨’였기 때문에 전주는 그 어느 도시보다도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해방 후 남북의 초대 지도자였던 이승만(전주 이씨)과 김일성(전주 김씨) 모두 본관이 전주로 알려져 있으며, 견훤(甄萱, 867~936) 역시 전주를 수도로 후백제를 세웠으니,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의 기운이 영험하긴 한 것 같다.  전주 남부시장에서 콩나물국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이제 겨우 11살인 아들이 고개까지 박은 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역시 전주는 발 닿는 모든 곳이 맛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한옥마을 방향으로 걷다가 전주성 남문, ‘풍남문(豐南門)’을 만났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 전주성은 원래 한양 사대문을 모티브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전주성의 남문인 풍남문을 보면 한양의 남문 ‘숭례문(남대문)’의 동생처럼 보이기도 했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영조가 화재로 불탄 전주성 남문을 재건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풍남문이라는 이름은 ‘풍패(豊沛)의 남쪽(南)’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풍패는 한나라를 세운 고조 유방의 고향이다. 정리하면 조선 태조 이성계 선조의 고향 ‘전주’를 한나라 고조 유방의 고향 ‘풍패’로 비유한 것이다.  1900년대 초 일본 통감부는 조선의 문화유산을 파괴하고, 일본인들이 살 집을 짓기 위해 전국의 모든 성(城)을 허무는 ‘폐성령(廢城令)’을 내렸다. 이후 전국 수많은 성들이 허물어졌고, 성벽의 돌들은 집과 도로를 만드는데 쓰였다. 이때 전주성이 무너졌고 풍남문 역시 크게 훼손되었다. 다행히 1970년대 후반 복원공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순교자의 피 묻은 돌로 지어진 성당 풍남문을 지나 길을 건너면 전주 한옥마을 입구가 나온다. 한옥마을 입구 바로 오른쪽에는 전라도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전동성당(殿洞聖堂)’이 있다. 전동성당은 1791년 유교식 전통을 거부하고 천주교식 장례를 치른 윤지충과 권상연이 참형을 당한 바로 그 자리에 서있다.  두 사람이 참형을 당한 날로부터 100년이 지난 1891년, 프랑스인 보두네(Baudounet) 신부가 이 땅을 사들이고 성당을 지었다. 성당의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을 완공한 경험이 있는 프와넬(Poisnel) 신부가 맡았다. 당시 일제가 폐성령에 따라 전주성을 허물던 시기였기 때문에 전주성에서 나온 흙으로 벽돌을 굽고, 성벽에서 나온 돌로 주춧돌을 세웠다. 전주성의 흙과 돌로 성당을 지은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윤지충과 권상면 외에도 이 자리에서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참형을 당했다. 그들의 목은 백성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전주성 성벽에 매달렸고, 순교자들의 목에서 흘러내린 피가 성벽 안으로 새어 들어갔다. 그들의 희생으로 조선에서 천주교가 지켜졌으니, 그들의 피가 묻은 돌을 발판으로 이 땅에 천주교를 일으키기 위한 성전을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았던 것이다. 전동성당을 떠나며 전동성당 입구와 마당에는 평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행복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저 아래 순교자들의 피가 묻은 돌이 이 성당을 받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저렇게 웃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은 짧은 생각이었다. 순교자들도, 순교자들이 피를 뿌린 땅에 성당을 지은 신부들도 사람들이 이 곳에서 고통의 역사를 느끼기 보다는, 마음의 평화와 행복을 되찾기를 바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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