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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감 현장] 與 “朴정권 여론 조작” 野 “진상조사위 편향”

    [국감 현장] 與 “朴정권 여론 조작” 野 “진상조사위 편향”

    與 “공직사회 조직적으로 동원” 野 “집필 반대인사만 조사위에” 올해 교육부 국정감사의 핵심 쟁점은 ‘국정 역사교과서’였다. 박근혜 정부 때 추진되다 폐기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두고 여야 간 첨예한 공방이 벌어졌다. 여당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전임 정부가 공직사회를 전방위로 동원해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집중 제기했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때 교육부 학교정책실장 김모(퇴직)씨가 의견접수 마지막 날 공무원들에게 찬성 의견서가 상자로 도착할 것이라며 준비를 지시했다는 진상조사위 발표를 언급하며 “(학교정책실장급이) 청와대나 국정원 지시 없이 이런 일에 나설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또 같은 당 박경미 의원은 사전 보도자료를 통해 주오스트리아 대사관이 국정화에 비판적인 기사를 쓴 현지 언론인을 만나 해명하는 등 재외공관이 국정화 홍보에 동원됐다고 지적했다. 박 의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방침이 공식 발표되기 전부터 교육부가 청와대에 이와 관련된 일일보고를 했다고도 주장했다. 반면 당시 집권당이었던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진상조사위의 발표 결과를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전희경 의원은 “고석규 진상조사위원장은 국정교과서 집필거부와 폐기선언에 참여했고 다른 위원도 (국정화를) 적극적으로 반대한 사람들”이라면서 “진상조사위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구성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어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때) 반대의견이 32만여건 제출됐는데 이 가운데 13만 5000여건이 익명이나 이름·주소가 불명확한 것이었다”면서 “전날 진상조사위가 찬성 의견만 왜곡되고 조작된 것처럼 발표했다”고 했다. 같은 당 한선교 의원은 교육부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에 참여한 직원들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의원은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정책적으로 결정한 사안”이라면서 “책임이 있다면 박 전 대통령에게 있는데 (교육부가) 죄 없는 공무원들만 못살게 군다”고 비판했다. 한편 본격적인 질의에 앞서 야당 의원들은 교육부 운영지원과장이 산하기관 임원 퇴출 여부를 가려내는 ‘살생부’를 작성했다는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이종배 한국당 의원은 “교육부와 산하기관이 자료를 소홀히 제출했다”면서 “(살생부가) 통상적인 평판조회였다고 해명하길래 자료를 달라고 했더니 현황자료만 제출했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dynamic@seoul.co.kr
  • 전남경찰청 “5·18 계엄군 발포 전 시민 무장 기록은 조작”

    전남경찰청 “5·18 계엄군 발포 전 시민 무장 기록은 조작”

    “평화롭던 광주, 계엄군 집단 발포”신군부 “자위권 차원” 주장 거짓 시민군 교도소 습격설도 왜곡전남도경 상황일지 조작 확인5·18 당시 시민들이 총기를 탈취해 자위권 차원에서 군 발포가 이뤄졌다는 내용이 거짓이라는 보고서가 정부기관에서 처음으로 나왔다. 전남지방경찰청은 11일 경찰관 증언과 자료를 중심으로 한 5·18 민주화운동 과정을 설명하면서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30분 나주경찰서 남평지서에서 시민들의 첫 무기 실탄 피탈이 발생하기 30분 전인 낮 12시 59분쯤 이미 전남도청 앞에서는 시민들을 향한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자행됐다”고 밝혔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신군부 측이 “시민들이 남평지서를 습격, 총기 무장해 계엄군이 방어 차원에서 공격했다”는 주장을 공식 반박한 것이다. 그동안 군 당국은 보안사가 보존 중인 ‘전남도경 상황일지’를 근거로 21일 오전 8시 나주 반남지서, 오전 9시 남평지서에서 무기를 탈취했기 때문에 군이 자위권을 발동해 발포했다고 주장해 왔다. 이 상황일지 기록은 국회 5공 청문회 등에도 그대로 인용돼 왔으나 전남경찰청은 이 일지가 조작된 것으로 판단했다. 전남경찰청은 과거 내부 문건 작성 시 ‘전남경찰국’이라고 표기해 왔으나 이 문건은 ‘전남도경’이라고 돼 있고, 한자 역시 ‘경’(警) 대신 ‘경’(敬)으로 잘못 쓰여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당시 경찰이 보유하지도 않은 경찰 장갑차가 피탈됐다는 내용이 있고 문서 제목과 글꼴도 경찰이 사용하던 양식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시민군이 광주교도소를 여러 차례 습격했고 북한군 수백 명이 잠입, 시위를 주도하고 사라졌다는 설도 군이 의도적으로 조작했다고 했다. 전남경찰청은 이날 지난 4월부터 5개월간 ‘5·18 민주화운동 관련 경찰 사료 수집 및 활동조사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한 결과를 발표했다. 당시 근무했던 경찰관 137명의 증언도 확보했다. 강성복 전남경찰청장은 “당시 경찰 치안일지에 따르면 당시 광주 치안은 안정적이었고 경찰 요청이 아닌 군 자체 판단에 따라 1980년 5월 18일 오후 4시부터 계엄군의 광주 진압작전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강 청장은 “5·18 성격과 역사적 의미에 대한 정치적, 법률적 판단과 평가는 어느 정도 정리됐으나 민주화 항쟁을 폭도들의 난동으로 매도한 주장이 계속돼 광주시민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고 있다”면서 “더 늦기 전에 경찰관들의 증언과 자료를 수집해 역사 왜곡을 바로잡고 진실 규명에 도움이 되도록 이번 조사를 시행했다”고 말했다. 그는 “비상정국이라 계엄군의 과오나 잘못을 기록하는 것은 한계가 있고, 시위대와 시민의 부정적인 면은 과장, 부각되거나 왜곡돼 기록돼 있다”며 “관련 자료와 참여자들의 증언을 계속 확보해 미흡한 점을 보완하겠다”고 밝혔다. 무안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마지막 2차 합격자 55명…사법시험, 올해 끝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마지막 2차 합격자 55명…사법시험, 올해 끝으로 역사의 뒤편으로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이 출범하기 전까지 법조인의 유일한 등용문이었던 사법시험이 최후의 2차 합격자 55명을 남기고 곧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마지막 관문인 3차 면접시험이 남아있긴 하지만, 2차 합격자의 상당수가 통과한다는 점에서 사법시험은 이제 사실상 폐막을 앞두고 있다. 사법시험은 올해 12월 31일 폐지된다.법무부는 11일 제59회 사법시험 제2차 시험에서 186명의 응시자 중 55명이 합격했다고 발표했다. ‘희망의 사다리’라고 불린 사법시험은 1947년에 시행된 조선변호사시험을 시초로 지난 70년 동안 존속해 왔다. 각종 연고주의가 뿌리내린 한국 사회에서 ‘줄 없고 빽 없는’ 서민도 공정한 경쟁을 통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유지해 준 제도로 평가받아온 것이 사법시험이었다. 고(故) 노무현(사법연수원 7기) 전 대통령이 고졸 학력으로 사법시험을 통과해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가 대통령에까지 당선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성공 신화’ 못지않게 수많은 ‘고시 낭인’들을 만들어내며 사회적 비용을 키운다는 문제가 있었다. 또 알려진 것과 달리 사법시험은 공평한 제도가 아니라는 지적도 제기돼 왔다. 한 법조인은 “사법시험을 오랫동안 준비한 수험생들은 같은 기간에 다른 일을 준비하지 못한다. 똑같이 열심히 공부했는데 수십만명의 고시 낭인이 생기고 몇 명만 법조인이 되는 방식의 선발 제도는 진정한 의미의 기회 균등이 아니다”라면서 “수십만명의 고시 낭인이 생긴다는 것은 결국 법조인이 특권 계층으로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법조인은 특권층이 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 교육을 통해 전문 법조인을 양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2009년부터 전국 로스쿨이 문을 열었고, 이 영향으로 사법시험의 입지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하지만 사법시험의 폐지를 앞두고 사법시험 존폐를 둘러싼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법시험 폐지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로스쿨이 부유층·권력층 등 이른바 ‘금수저’ 자녀들에만 배움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비판한다. 여기에 평균 2000만원 안팎의 비싼 학비 때문에 수험 준비와 학업 기간을 감당할 경제력이 없는 저소득층이나 취약계층은 아예 입학이 어렵다는 지적도 많다. 결국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지닌 법조인을 선발해 교육을 통해 양성·배출한다는 설립 취지가 왜곡돼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로스쿨 체제가 새로운 법조인 양성의 대세로 자리 잡았다고 보면서도 사법시험 존속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로스쿨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로스쿨이 ‘다양한 경험과 소양을 지닌 법조인 양성’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실제 다수 재학생을 보면 ‘학점 좋은’ 젊은 대학 졸업생이거나 주요 대학 법대 출신이 많고, ‘구색 맞추기용’으로 일부 제한된 사회 취약계층이 있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앞서 박상기 법무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공정한 기회 제공과 ‘희망의 사다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귀를 기울여 로스쿨 문호를 경제적 약자에게 더 확대할 필요가 있다”면서 “사회 각계로부터 로스쿨 제도 개선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현행 로스쿨 및 변호사 시험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살펴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추석연휴 개천절·한글날 행사 시내서 즐기세요”

    “추석연휴 개천절·한글날 행사 시내서 즐기세요”

    서울 종로구는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시내에서 개천절과 한글날 기념 행사가 열린다고 2일 밝혔다.‘하늘이 열린 날’이란 의미의 개천절 당일인 3일에는 오전 10시 40분부터 종로구 사직단 내 단군성전에서 ‘단기 4350년 개천절 대제전’을 개최한다. 문화체육관광부·종로구가 후원하는 개천절 대제전은 고조선 건국을 기념하기 위해 종로구에서 매년 개최하는 행사다. 행사에서는 한국의 전통무예 택견과 인도네시아 전통무예 펜칵실랏의 국제교류 시연을 볼 수 있다. 이어 전통제례, 인문 정신문화 체험행사, 개천절 대제전 기념 인문학 학술대회가 열린다. 학술대회에서는 중국의 고대사 인식, 고대사 왜곡에 대한 대담 등에 대해 알아본다. 축하공연으로 배뱅이굿도 볼 수 있다. 또 한글의 날인 9일에는 ‘제571돌 한글날 기념 세종마을 세종주간 축제’가 열린다. 사단법인 세종마을가꾸기회가 주관하고 종로구가 후원한다.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세종마을의 역사·문화적 가치를 높여 주민의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취지로 마련했다. 행사는 경복궁 흥례문에서 시작해 세종마을 통인시장 앞 정자까지 이어지는 세종대왕 어가행렬을 볼 수 있다. 세종대왕 역할은 세종대왕 17대손이자 현재 세종마을에 거주중인 종로구민이 맡는다. 본행사는 세종마을 통인시장 앞 정자 옆 특설무대에서 이뤄진다. 조선 궁중 무용 음악 등으로 이뤄진 축하공연도 볼 수 있다. 관계자는 “연휴 기간인 1~8일에는 세종주간 축제의 일환으로 수성동 계곡에서 인왕산 그림도 전시하는 만큼 한가로운 연휴 속 작품 감상의 시간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주현진 기자 jhj@seoul.co.kr
  • 박유하, 2심도 징역 3년 구형 “제국의 위안부, 의도적 역사 왜곡”

    박유하, 2심도 징역 3년 구형 “제국의 위안부, 의도적 역사 왜곡”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한 혐의로 기소됐다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박유하(60) 세종대 교수에게 검찰이 항소심에서도 실형을 구형했다.검찰은 27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김문석) 심리로 열린 박 교수의 결심 공판에서 “무죄를 선고한 1심을 파기하고, 1심 구형량대로 선고해 달라”고 의견을 밝혔다. 앞서 검찰은 1심에서 “역사적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며 징역 3년을 구형했다. 박 교수는 최후진술에서 “과거 유신 독재 시절처럼 내가 하지 않은 말을 한 것처럼 꾸며서 범죄자 취급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또 “이번 일로 땅에 떨어진 저의 명예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며 울먹였다. 박 교수 변호인도 “제국의 위안부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읽어봤다면 이 책이 위안부 피해자를 자발적 매춘부 등으로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며 “이 책은 오히려 위안부가 성노예였으며 일본군에 의해 강제 동원됐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제국의 위안부에 일본군 위안부가 ‘매춘’이자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고, 일본 제국에 의한 강제 연행이 아니었다는 취지로 허위 사실을 기술해 피해자들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명예훼손)로 기소됐다. 제국의 위안부에는 ‘위안부들을 유괴하고 강제연행한 것은 최소한 조선 땅에서는 그리고 공적으로는 일본군이 아니었다’, ‘위안부가 일본군과 함께 전쟁을 수행한 이들이다’, ‘아편을 군인과 함께 사용한 경우는 오히려 즐기기 위한 것으로 봐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1심은 “박 교수가 책에서 개진한 견해에 비판과 반론이 제기될 수 있고 강제동원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악용될 부작용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가치 판단 문제이므로 형사 절차에서 법원이 수행할 수 있는 권한이나 능력에서 벗어난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항소심 선고 공판은 다음 달 27일 열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장제원 “노무현 전 대통령 상여에 한풀이 하는 것 중단해야”

    장제원 “노무현 전 대통령 상여에 한풀이 하는 것 중단해야”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은 25일 “노무현 전 대통령 상여를 부여잡고 한풀이 베이스 캠프로 삼는 것은 중단해야 한다”고 밝혔다.장제원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을 이제 편하게 보내드리자”며 이같은 글을 올렸다. 앞서 같은 당 정진석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두고 ‘부부 싸움으로 인한 자살’이라는 글을 올려 논란이 됐다. 이에 노 전 대통령의 장남 노건호씨와 노무현재단은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정 의원을 고발했다. 장 의원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빚을 갚으라고 영수증을 내밀지 말라. 이는 정부를 실패로 몰고 가는 나쁜 짓이다. 부질 없는 복수심은 이제 거두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 지난 24일에는 “(여권이) 노무현 대통령의 ‘노’ 자만 꺼내면 용서할 수 없는 역사의 죄를 지은 양 발끈하고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난리를 친다. 노무현 대통령은 성역인가”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참여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낸 조기숙 이화여대 교수는 “무조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막는 게 아니다. 허위 왜곡 마타도어에 시민들이 분개하는 것이다. 진영으로 국민을 가르면 지금보다는 보수 쪽에 유리할 것으로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고 반박했다. 조 교수는 “범죄의 증거를 없애려고 부관참시하는 사람들과 같이 행동한다면 범죄에 직접 가담한 적 없는 장 의원은 스스로의 무덤을 파는 꼴. 자당 대표나 설득해 청와대에 보내는 게 장 의원이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할 일”이라고 꼬집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심원택 여수MBC 사장, 항의하는 광주 5월단체에 사죄 거부

    심원택 여수MBC 사장, 항의하는 광주 5월단체에 사죄 거부

    광주 5월단체가 25일 여수MBC 심원택 사장을 항의 방문해 전두환 회고록과 5·18민주화운동과 관련한 ‘부적절한 발언’에 대한 사과를 촉구했다.5월 단체들은 “여수MBC 심원택 사장이 직원간담회 자리에서 ‘전두환 회고록 재미있게 읽었다’, ‘전두환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5·18에 대한 역사적 평가가 있지만 전두환의 입장에서 본 5·18의 기록도 있고, 그것도 인정 받아야 한다’, ‘5·18 북한군 개입설은 팩트’, ‘세간의 평가에 비해 이순자도 괜찮은 사람’이라는 발언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5·18유족회와 부상자회, 구속부상자회, 5·18 기념재단, 옛 전남도청 복원을 위한 범 시·도민대책위원회 등은 이날 여수MBC를 방문해 심원택 사장을 면담했다. 이들은 “전두환 노태우의 신군부가 광주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한 뒤 5·18은 30여 년 동안 ‘광주 폭도’와 ‘북한군 투입설’ 등 끊임없이 왜곡되고 폄하됐다”며 “함량미달 낙하산 인사로 지탄받던 사람이 이제는 전두환 대변인을 자처하고 있다. 심 사장은 언론적폐 청산과 공영방송을 위해, 5·18 왜곡와 폄하를 근절시키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지금 당장 사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심 사장은 “5·18 관련 공정성을 잃지 않고 있다고 자부한다. 회고록을 읽었다고 해서 전두환을 동정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5·18 북한군 개입설 발언이 사실이면 사퇴하겠다.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반박하며 항의하는 5월 단체 유족들에게 경찰을 부르겠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지역 MBC 사장 “전두환도 피해자…이순자, 괜찮은 사람 같아”

    지역 MBC 사장 “전두환도 피해자…이순자, 괜찮은 사람 같아”

    공영방송인 지역 MBC 사장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북한군 개입설은 팩트”라며 “전두환도 피해자”라고 발언했다는 주장이 나왔다.22일 5·18구속부상자회, 옛 전남도청 복원을 위한 범시도민대책위원회는 “지역의 MBC 대표이사인 A 사장이 올해 5월 하순쯤 회사 관계자와 식사 자리에서 ‘전두환 회고록을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도 피해자라고 생각한다. 전두환 입장에서 본 5·18 기록도 인정받아야 하고, 북한군 개입설은 팩트’라고 발언했다”고 주장했다. 단체에 따르면 A 사장은 “이순자 회고록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세간 평가에 비해 괜찮은 사람 같다”면서 회사 관계자들에게 전두환 부부 회고록을 읽을 것을 권유하기도 했다. A 사장의 이러한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5월 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겠다’고 밝힌 37주년 5·18기념식에서 1주일가량 지난 시기에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5·18 단체와 옛 도청 복원 대책위는 복수의 관계자를 통해 A 사장 발언을 전해 듣고 오는 25일 오전 10시 해당 MBC를 항의 방문할 계획이다. 양희승 5·18구속부상자회장은 “회고록을 재미있게 읽었다는 것은 5·18 역사책임을 회피하고 사실을 왜곡한 전두환 주장에 동조한다는 뜻”이라며 “A 사장은 공영방송 경영진은커녕 언론인 자격도 없다”고 지적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A 사장은 해당 발언 진위나 취지를 묻자 “어떤 언론 취재에도 응하지 않겠다”며 답변을 거부했다. 전두환 회고록은 올해 4월 출간됐다. 이 책에서 전두환은 ‘나는 광주사태 씻김굿의 제물’ 등의 표현으로 5·18 당사자 반발을 사고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5·18단체와 유가족은 회고록 3권 가운데 1권 혼돈의 시대에 등장하는 ‘북한군 개입’ 등 33곳의 내용이 역사를 왜곡하고 당사자 명예를 훼손했다며 법원에 출판·배포금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광주지방법원은 지난 8월 5·18단체와 유가족이 제기한 가처분을 받아들이고, 전두환 측이 이를 어기면 1회당 500만원씩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박성진 인사청문회…야당 “자진 사퇴하라”, 여당도 냉랭한 분위기

    박성진 인사청문회…야당 “자진 사퇴하라”, 여당도 냉랭한 분위기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11일 진행됐다. 야당 의원들은 박 후보자의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 등을 집중 추궁하면서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도 역사관·도덕성 검증에 나서면서 박 후보자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이철우 자유한국당 의원은 아파트 분양권의 다운계약서 거래 등을 거론하며 “박 후보자는 문재인 정부의 5대 원칙 가운데 언론에 난 것만 해도 3가지를 위배했다. 버티면 장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 자진해서 사퇴할 용의는 없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찬열 국민의당 의원은 포항공대 기계공학과 정기세미나와 포항공대 간담회 행사에 각각 뉴라이트의 이영훈 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와 ‘보수 논객’ 변희재 씨를 초청한 것을 물고 늘어졌다. 이 의원은 “뉴라이트 대부란 사람을 박 후보자가 다른 세미나도 아니고 기계공학과 세미나에 두 번이나 초청했다”며 “촛불정국으로 태어난 문재인 정부에서 장관을 해달라고 요청을 했을 때 이런 사관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거부를 못 하고 이 자리까지 나오게 됐느냐”고 꼬집었다. 박 후보자는 이에 “(두 사람을) 제가 연결한 것은 맞고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 사과를 드린다”면서도 “기본적으로 학교의 창업교육센터장이 모든 일정을 정하고 비용을 쓴 데 대해 전혀 관계가 없는 제가 책임을 제야 한다는 것은 약간 비약이 아닌가 한다”며 약간의 억울함도 호소했다. 이 의원은 이후 의사진행 발언을 통해 박 후보자의 법인카드 사용 내역도 문제 삼았다. 그는 “박 후보자가 제출한 법인카드 사용 내용을 보면 2013년 1월 6일 국내여비 명목에 강원랜드에서 60만원을 지출한 것이 있고, 2016년에 여러 차례 기술정보활동비 명목으로 다양한 곱창집을 방문한 것이 있다. 어떤 목적으로 누구와 사용한 것인지 구체적인 사용 내용을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조배숙 국민의당 의원은 역사관 논란과 관련해 박 후보가 자신의 ‘역사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한 데 대해 “박 후보자의 변명 때문에 공대 출신, 과학기술자들이 분노하고 있다”며 “과학기술자는 헌법도 모르고, 왜곡된 역사관을 갖고 있어도 도구적 유용성만 있으면 되나”라고 꼬집었다. 야당의 이러한 파상공세 속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박 후보자를 적극 엄호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특히 박 후보자의 역사관에 대해서는 민주당 의원들도 문제 삼았다. 김경수 의원은 “장관으로 지명된 것은 정책·업무 적합성을 높이 평가받아 지명이 됐을 텐데 역사관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며 “문재인 정부가 역사적으로 어떤 시기에 들어섰고, 국민이 요구하는 시대에 맞는 요구가 무엇인지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하고 장관직에 임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문제 제기가 된다는 것을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홍익표 의원은 박 후보자가 아파트 분양권의 다운계약서 거래로 탈세했다는 의혹과 관련, “국회 검증과정에서도 2006년 이후 다운계약서는 엄중하게 다루는데 이 문제를 가볍게 처리한 게 아닌가 싶다”고 꼬집었다. 이밖에 민주당 의원들은 “(뉴라이트 인사 초청 논란과 관련해) 인사 추천이든 사람 추천이든 공적 활동은 본인 책임하에서 하는 것이다”(이훈 의원), “총체적 여론이 지금 후보자에게 좋지 않다”(권칠승 의원) 등의 비판 목소리도 쏟아냈다. 박 후보자는 뉴라이트 역사관 논란 등과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에 조목조목 반박하는 등 대체로 수세적인 자세를 취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장병완(국민의당) 위원장으로부터 ‘부적절한’ 답변 태도라는 주의를 받기도 했다. 장 위원장은 “뉴라이트 사관 질의 과정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 한두 가지 사건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위원들을 훈계하는 조로 답변을 한다”며 “박 후보자에게 주의를 주겠다”고 밝혔다. 한편 국민의당 손금주 의원은 박 후보자가 전날 국회를 찾아 별도의 승인 없이 ‘청문회 리허설’을 한 것을 문제 삼았고, 이에 장 위원장이 박 후보자에게 경고하는 선에서 문제를 마무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때리시면 맞겠다. 학교는 포기 못 한다” 무릎 꿇은 장애인 학부모들

    “때리시면 맞겠다. 학교는 포기 못 한다” 무릎 꿇은 장애인 학부모들

    “지나가다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장애 아이들도 교육 받을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지난 5일 서울 강서구 탑산초등학교 강당 바닥에 울면서 무릎을 꿇은 이들에게 고성과 야유가 쏟아졌다. 무릎을 꿇은 이들은 장애인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었다. 이날 이곳에서는 ‘강서 지역 특수학교 설립을 위한 2차 주민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서울 강서구 가양동 옛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짓는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자리였다. 지난 7월에 예정됐던 첫 번째 토론회는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강서구 주민이 아닌 장애인 학부모 대표는 토론에 나설 자격이 없다”면서 무산시켰다. 이날도 고성과 야유로 토론회장이 가득 채워졌다. 서울시교육청이 공진초등학교 자리에 장애인 특수학교를 설립하겠다고 처음 행정예고한 것은 2013년이었다. 주민들이 격렬하게 반발하면서 계획은 일단 철회됐다. 이후 서울시교육청이 강서구 마곡지구 등에 대체부지를 알아봤지만 부지 면적, 절차상의 문제 등으로 다시 공진초등학교 터에 특수학교를 짓기로 확정했다. 서울시교육청은 2016년 8월 다시 행정예고를 했지만 주민들의 반발은 여전했다. 게다가 지역구 의원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20대 총선에서 공진초등학교 터에 국립한방의료원 건립을 공약으로 들고 나오면서 특수학교 설립 반대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이은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 부대표가 장애인 특수학교 설립 찬성 측 발언자로 나서 설립을 호소했다.“장애가 있든 없든 학교는 가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강서구에 있는 장애인 아이들은 10년 넘게 구로구에 있는 학교에 다녀왔습니다. 강서구에 있는 교남학교에는 100명밖에 수용할 수 없습니다. 장애인 인구 수가 가장 많은 강서구의 아이들을 다 수용할 수 없습니다.여러분의 자녀들은 가까운 학교에 가는데 저의 아이들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에서 2시간 전부터 학교를 가려고 나와야 합니다. 여러분들도 부모이시고 저도 부모입니다. 단지 장애가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이들의 학교를 여기에 지을 수 없다고 하시면…”반대 주민 측의 야유가 쏟아져 발언을 이어가기 힘들어졌다.“여러분들이 욕을 하시면 욕 듣겠습니다. 모욕을 주셔도 괜찮습니다. 지나가다가 때리셔도 맞겠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학교는 절대로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장애 아이들도 교육 받을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그러나 여전히 쏟아지는 건 야유였다. 반대 측 입장을 대변하러 온 김성태 의원은 중도에 토론회장을 빠져나갔다. 반대 측 주민들은 “우리 지역에 허준 테마 거리가 있고 허준 박물관이 있는데 어느 것이 효율성이 있겠나”라며 국립한방의료원 설립을 주장했다. 또 다른 주민은 “이 강서구에 주민 기피시설이라고 하는 것들은 죄다 모여 있다. 한번도 특수학교를 혐오시설이라고 한 적도 없고, 특수학교를 반대한 적도 없다. 다만 못 사는 지역을 위해 조금 더 생각해달라고 한 건데 언론사나 교육청은 저희가 님비라면서 집값 때문에 반대한다, 혐오시설이라고 반대한다고 왜곡 보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한 주민은 “그럼 거꾸로 한번 물어보겠다. (장애인 특수학교를) 당신들 집 앞에다 한번 세워 봐라”며 소리쳤고 반대 측 주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특수학교를 짓지 말고 한방병원을 짓자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해당 부지는 학교 용도로 돼 있고, 학교 용지는 그 외 목적으로 쓸 수가 없다. 당연히 장애인 특수학교가 들어서지 않는다고 해서 한방병원으로 사용할 수도 없다.토론이 접점을 찾지 못하고 고성과 야유만 오가자 장애인 학생 부모 10여명이 오열하며 강당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일부 반대 측 주민들은 “쇼하고 있다”면서 삿대질을 했다. 설립 반대 쪽 주민들도 무릎을 꿇었다. 오후 7시 30분에 시작한 토론회는 찬성과 반대의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밤 10시 10분쯤 끝났다. 서울 시내에 특수학교가 설립된 것은 2002년 종로구에 개교한 경운학교가 마지막이다. 서울시 29개 특수학교는 장애학생의 반도 수용하지 못 하고 있다. 2016년 4월 기준 서울시내 특수교육이 필요한 장애학생은 1만 2929명이지만 정작 특수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있는 학생은 4496명(34.7%)에 그쳤다. 이날 설립 찬성 측의 한 학부모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동병상련의 마음은 강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기본권, 학습권이라는 건 주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한방병원이 없어서 저희가 병원을 못 갑니까? 유네스코 멋진 거리 겉으로 봐야만 강서구가 멋진 구가 됩니까? 아닙니다.강서주민이 이런 님비 현상 없애고 이 학교를 수용했다, 이건 길이길이 역사에 남을 일입니다.“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서울광장] 비운의 역사학자 윤내현/오일만 논설위원

    [서울광장] 비운의 역사학자 윤내현/오일만 논설위원

    윤내현(78) 단국대 명예교수. 그는 원래 중국 고대사를 전공한 역사학자였다. 그가 한국 고대사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970년대 말 하버드대 옌칭(燕京)연구소에서 충격적 사실을 목도한 뒤부터다. 서고에 쌓여 있는 중국 사서 내용이 당시 남한에서 사실(史實)로 통용되던 것과 너무도 달랐다. 진실에 대한 갈구 때문에 한국 고대사로 영역을 넓혔고 이후 40년간 ‘기자조선고’를 시작으로 ‘고조선 연구’ 등 방대한 저술을 내놓았다.우리 역사학계에 윤 교수처럼 광범위한 중국 문헌과 고고학적 성과를 인용한 학자는 그리 많지 않다. 완벽한 중국어 덕분이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 고조선의 중심 영역이 지금의 베이징 동쪽에 흐르고 있는 난하(鸞河) 유역임을 밝혀냈다. 그 통치 영역도 만주와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했다. 한민족의 뿌리인 고조선이 중국의 요동과 만주 지역을 호령했던 자랑스러운 제국임을 복원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 고대사 연구를 주도한 이병도 박사와 그의 제자들, 이른바 ‘주류 사학계’로부터 거센 공격에 직면했다. 신화와 역사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이비 역사학의 추종자로 매도당했다. 북한 역사학자 리지린이 쓴 ‘고조선사’를 일부 인용한 것을 이유로 종북학자로 몰려 정보기관의 조사도 받아야 했다. 학자적 양심마저 색깔론으로 몰아가는 시대,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최근 ‘고조선 연구’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한국사에서 단군조선만큼 시련을 겪은 부분은 없다’고 술회했다. 그는 현재 파킨슨병과 싸우고 있다. 그가 겪은 시련은 고대사의 핵심 쟁점인 한사군(漢四郡) 위치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가 고증한 한사군의 위치는 남한 사학계에 통용되던 평양 일대, 한반도 북부가 아니라 난하 동쪽이었다. 이는 단채 신채호나 위당 정인보, 성호 이익 등이 제기했던 내용이지만 우리 사학계에서 참으로 ‘위험한 주장’으로 통했다. 주지하다시피 남한 사학계의 태두는 이병도·신석호 박사다. 이들은 조선총독부가 만든 조선사편수회에 참여한 인물들로 후에 학술원장과 문교부 장관을 지내며 사학계에 막강한 인맥을 만들었다. 식민사관이 해방 후에도 이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선사편수회가 날조한 식민사관은 우리 역사의 시간을 축소하기 위해 단군조선을 신화로 폄하했고 공간 축소를 위해 한사군의 위치를 이용했다. 조선총독부의 이마니시 류(今西龍)는 ‘낙랑군의 군치(郡治)는 지금의 평양’이라고 주장했고 이병도 박사 등이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는 낙랑군 수성현 위치와 관련해 “자세하지 아니하나 지금의 황해도 북단에 있는 수안(遂安)에 비정하고 싶다”는 유명한 28자의 말을 남겼다. 그 역시 정확한 사료를 제시하지 못했다. 낙랑군 유물과 관련해 점제현 신사비 등 다수가 일제 날조설에 휩싸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완용의 조카로 알려진 이병도 박사는 타계 3년 전인 1986년 조선일보에 기고문을 보냈다. ‘단군조선은 신화가 아닌 사실(史實)이며 고대사는 복원돼야 한다’며 기존의 입장을 번복했다. 식민사관에 기여한 학자로서 말년의 ‘양심선언’이었지만 이미 사학계의 중추 세력이 된 제자들은 그를 ‘노망’으로 몰았다. 30여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도종환 문체부 장관이 ‘역사의 검증’을 이야기했다가 사학계로부터 호된 비판을 당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물론 우리 사학계가 1960년대 이후 ‘내재적 발전론’을 통해 일제가 주장해 온 조선 사회의 후진성을 반박하는 등의 공로 등은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만 왜곡된 실증사학이 날조해 낸 타율성과 정체성이란 식민사관의 핵심 프레임 자체를 깨지 못했다. 해방 후 70여년이 지났어도 왜곡의 유산을 청산 못한 것이다. 단재 신채호의 말처럼 역사는 민족의 혼이자 뿌리인 까닭에 그 폐해는 너무도 크다. 잘못된 역사는 바로잡아야 하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해석과 견해 차이는 불가피하다. 역사의 해석을 독점하려는 풍토가 지속된다면 윤내현 교수의 비극은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당당한 토론과 논쟁을 통해 왜곡된 역사적 진실을 바로 세우는 작업, 이것이 역사를 사랑하는 국민들의 간절한 바람이다. oilman@seoul.co.kr
  • 일본 스미다구 구청장도 일본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비에 추도문 안보내

    다음달 1일로 예정된 간토대지진 조선인희생자 추도식에 추도비가 있는 도쿄 스미다구의 야마모토 도오루 구청장도 그동안 매년 보내던 추도문을 올해부터는 보내지 않겠다고 밝혔다. 30일 교도통신 등에 따르면 야마모토 구청장은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한 방침을 밝히면서, “3월과 9월에 열리는 도쿄도 위령협회 주최 추도 법회에서 희생자 모두에 대해 추도하는 만큼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별도의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국수적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가 지난 24일 추도문을 보내지 않기로 한 데 이은 조처로 간토대지진의 조선인 피해와 관련된 사실을 왜곡하려는 일본 우익의 움직임과 연관이 있어 보인다. 일본 극우들은 간토 대지진의 피해자 수가 부풀려졌고 조선인에 대한 학살은 당시 조선인들이 일으킨 폭동에 대한 정당방위였다고 주장해왔다. 우익 주도로 피해자 수 부풀리기 논란을 일으키더니, 이를 바탕으로 역사 부정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는 셈이다. 일·조협회 등 일본 시민단체들은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조선인들을 위로하기 위해 매년 9월 1일 스미다구 내 요코아미초 도쿄도립공원의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앞에서 추도식을 열어왔다. 1923년 9월 1일 도쿄 등 간토지방에서 규모 7.9로 발생한 간토대지진 때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조선인이 방화한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유포됐고 이 과정에서 현지의 자경단·경찰·군인 등이 재일 조선인들을 학살했다. 당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기관지인 독립신문 등에 따르면 당시 살해당한 조선인의 수는 6661명에 달한다. 앞서 일본 내각부는 지난 4월 간토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 내용이 담긴 전문가 보고서를 홈페이지에서 삭제하려다가 들통이 났다. 일본 정부는 그 다음달 각의(국무회의)에서 간토 대지진 당시의 조선인 학살사건과 관련해 유감의 뜻을 표명할 계획이 없다는 것을 정부 공식 입장으로 채택하기도 했다. 도쿄 이석우 특파원 jun88@seoul.co.kr
  • 대구 시민단체 “순종어가길 백지화하라”

    서울신문이 단독 보도한 대구 중구의 순종어가길 조성사업(5월 25일 12면)에 대해 시민단체들이 백지화할 것을 주장하고 나섰다. 민족문제연구소 대구지부 등 대구지역 22개 단체들은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대구 달성공원 앞에 세워진 순종동상을 철거하라고 주장했다. 순종동상은 순종어가길조성사업의 핵심이다. 시민단체들은 “순종은 당시 백성들이 일본에 저항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지방을 순행했다”면서 “순종의 이 같은 행동은 민족 존엄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굴욕과 굴종이며 역사적 고뇌가 없는 안일한 행태였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이어 “대구 중구가 역사의 비극적인 현장에서 교훈을 얻는 다크투어리즘 차원에서 순종어가길조성사업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순종 동상 어디를 보더라도 굴욕적인 느낌이 없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70억원의 예산이 들어간 이 사업을 시행한 공직자들은 정당한 비판과 지적에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면서 “당시 상황을 자신들의 입맛대로 해석함으로써 시민들과 청소년들의 역사의식을 왜곡·마비시키고 있다”고 비난했다. 순종어가길은 1909년 순종이 대구역에서 내려 북성로를 거쳐 달성공원으로 간 것을 기념해서 조성했다. 순종 동상 건립에만 2억 5000만원이나 들어갔다. 이 사업 추진 당시 역사학계 등에서 역사 왜곡이라며 반대 입장을 꾸준히 제기했으나 중구는 “백성에게 다리가 돼 주고 싶었을 황제 마음을 담아 굴욕의 역사를 되새기는 의미가 있다”며 강행했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열린세상] 역사 왜곡, 개방된 역사관으로 대응해야/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열린세상] 역사 왜곡, 개방된 역사관으로 대응해야/이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사무총장

    올해 광복절에도 일제의 만행과 피해의 서러운 역사가 되새겨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역사 문제를 매듭지을 때 한·일 간의 신뢰가 더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의 역사 왜곡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우리 역사에 대한 왜곡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겠지만, 피해 의식에 맺힌 민족주의 역사관으로는 어렵다. 일본이 19세기 말 유럽의 근대역사학을 선점하면서 한국과 중국의 역사를 왜곡해 침략을 합리화하는 데 이용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문제는 일본이 지금도 여전히 왜곡된 역사관을 고집해 역사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중국의 역사학자들은 1920년대부터 바로 그 일본 우월적 역사관을 모방한 중화민족사관으로 일본의 만주 역사 왜곡에 대항했다. 그것이 오늘날 중국 영토 내의 역사와 문화는 모두 중국의 것이라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의 기초가 되고, 동북공정의 뿌리가 됐다. 이 과정에서 한국의 역사는 일본에 의해 왜곡되고 중국에 의해 부정됐다. 한국에서 피해 의식에 기초한 민족주의 역사관이 뿌리내린 것은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일본과 중국은 최근 신민족주의적 행태로 역사 왜곡 논쟁을 악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동북아의 안보협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필자는 얼마 전 동북아역사재단을 방문한 폴란드 역사학자의 “폴란드는 피해자 역사 인식이 없다. 왜냐하면 폴란드인들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도 차르나 스탈린 폭정시대의 똑같은 희생자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듣고 한·일 간 역사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됐다. 우리가 일본에 역사 반성을 요구하는 것은 일본이 침략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일본에 대해 군대 위안부 문제나 군함도 탄광의 강제노동과 징용자에 대한 반성과 배상을 요구하면서 동시에 일본인 위안부나 일본인 탄광 노동자에 대한 인권유린, 반세기가 지난 후에야 겨우 소액을 보상받은 시베리아 억류자나 국채를 상환받지 못한 일본인들의 비슷한 고통도 함께 배려하고 연구한다면 일본 국민도 피해자로서 같은 역사 인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피해 의식에 갇힌 배타적인 민족주의 역사관으로는 중국이나 일본의 역사 왜곡을 이기지 못한다. “역사는 같은 지역에서 공존해 온 여러 민족 공동의 유산”이라는 생각이 서구 역사학계의 주류다. 2000여년 전의 단군이 ‘우리만의 할아버지’는 아니라는 개방된 역사 인식이 오히려 우리 역사의 무대를 확대하는 길이 아닐까. 광개토대왕의 광대한 영토만이 오늘날 한민족의 위대성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영국, 프랑스, 독일의 조상은 모두 야만족이었지만 지금은 선진국이다. “낙랑이 평양에 있었다면 고조선의 영토가 작았다는 것이 된다”고 낙랑의 위치 문제로 식민사관 논쟁을 하는 것도 실은 일본의 침략사관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반면 역사의 해석을 독점하려는 학문 권력은 과거 조선시대의 사문난적(斯文亂賊)론과 다름없다. 많은 사람의 공통된 기억은 가까운 과거의 사실을 입증한다. 기록은 더 오랜 과거의 사실을 전달해 준다. 과거 사실에 대한 기억과 기록이 융합돼 역사로 계승된다. 그러나 어떤 사실이나 역사 해석에 대한 반론이 허용되지 않거나 믿도록 강요된다면 그것은 신성불가침의 역사 신화로 굳어진다. 그런 신화는 북한, 일본과 중국, 한국에도 있고, 한·일 역사 논쟁에도 존재한다. 역사 신화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면 역사학도 개방적이고 민주주의적이어야 한다. 개방된 역사관은 역사 사료뿐 아니라 언어학, 인류학, 사회학, 문학 등 인문학을 아우르는 폭넓은 학제 간 연구를 요구한다. 그래야만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었다’라는 말을 들어도 흥분하지 않고 자신 있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역사학은 인간과 로봇이 공존하는 미래사회에서 역사가 어떤 의미가 될지에 대해서도 대답해야 한다. 나아가 역사학은 대중에게 좀더 친밀해지고 어린 학생들의 호기심과 꿈을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역사학은 인문학의 핵심이고, 역사학자들은 더 넓은 학문적 섭렵이 필요한 것이다. 역사 갈등 문제는 대통령이나 외교관에게 미룰 일이 아니다.
  • [오늘의 눈] 5·18 왜곡 넘어 모독… 이번엔 진상 규명되길/최치봉 사회2부 기자

    [오늘의 눈] 5·18 왜곡 넘어 모독… 이번엔 진상 규명되길/최치봉 사회2부 기자

    신록이 짙푸른 계절이었다. 광주 금남로 인근 도서관 창문 틈으로 매캐한 최루탄 연기가 퍼졌다. 눈물을 흘리며 책가방을 싸들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며칠 전으로 기억된다. 고교 2년 때 중간고사를 대비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마주한 5·18이었다. 이후 휴교령이 내려지고 시내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나는 거리의 대학생 형들을 따라 자연스레 시위대에 섞였다. 20일 저녁 불타는 방송사 앞길에서 온몸이 피로 물든 청년이 업혀가는 것을 봤다. 계엄군의 장갑차에 깔렸다고 했다.다음날인 21일 점심 무렵 내가 탄 트럭이 동구 지산동 법원 앞 사거리를 지날 때 몇몇 노인들이 길을 막아섰다. 당시 전남도청과 불과 1㎞쯤 떨어진 곳이었다. 돌이켜보니 도청 앞 집단발포가 있었던 시각이었다. 콩 볶는 듯한 총소리, 아우성, 울부짖음이 시내를 물들였다. 37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는 그때 입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영화 ‘택시운전사’는 그때의 아픈 기억을 소환해 냈다. 기자가 된 이후 5·18 관련 취재를 수도 없이 했다. 그러나 발포 명령자 등 핵심 사안은 여전히 미궁이다. 당시 실권자였던 전두환 전 대통령은 “나와는 무관하다”며 발뺌이고, 헬기 기총소사, 공군 전투기 출동 대기명령 등에 관한 증언과 반박이 난무하고 있다. 극우 보수단체의 5·18에 대한 폄훼와 왜곡은 도를 넘어섰다. 이들은 지금도 5·18에 빨갱이와 폭도의 이미지를 덧씌우며 광주 시민을 모독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국방부에 진상 규명을 지시한 것은 만시지탄이다. 시민들도 “이번만은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오길 바란다”며 기대를 걸고 있다. 지금껏 세상에 나온 진상규명 활동 가운데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보고서가 그나마 5·18의 실체에 가장 가까이 접근한 문건으로 꼽힌다. 이 보고서는 전군지휘관 회의와 5·17조치, 5월 21일 전남도청 앞 모습, 계엄군의 작전·상황일지 등 당시 광주의 속살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의 자위권 발동과 관련한 주요 지휘관 회의 내용 등도 들어 있다. 군이 작성한 ‘전투상보’ 등에서는 당시 상황을 왜곡하거나 축소·조작한 흔적도 일부 밝혀졌다. 그럼에도 발포 명령자는 특정되지 않았다. 이번에 국방부 특별조사단이 기밀로 분류한 존안자료 등을 정밀검토할 경우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공산은 크다. 가해자가 진심으로 고백·사죄하고 피해자가 용서하는 모습이 역사에 기록되는 날을 바랄 뿐이다. cbchoi@seoul.co.kr
  • 5·18 작전 주도 기무사 기밀문서 확인… 발포 명령자 밝혀지나

    5·18 작전 주도 기무사 기밀문서 확인… 발포 명령자 밝혀지나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 특별조사를 지시하면서 현대사의 판도라 상자가 열릴지 주목된다. 이번 지시는 광주민주화운동 학살의 주범으로 지목된 전두환 전 대통령을 직접 겨냥한 것이기도 하나, 더 큰 의미에선 민주주의의 온전한 복원과 연계돼 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한 번씩 5·18 광주민주화운동 조사는 지금까지 세 차례 이뤄졌다. 이번이 네 번째 조사다.문 대통령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37주년 기념사에서 “완전한 진상규명은 결코 진보와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상식과 정의의 문제”라며 “우리 국민 모두가 함께 가꿔 가야 할 민주주의의 가치를 보존하는 일”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별조사를 통해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군 전투기의 출격 대기 명령 의혹과 전일빌딩 헬기 기총소사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더라도 실제 처벌은 어렵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진상규명을 강조해 온 것은 정치적 기반을 둔 광주의 숙원을 해결하고 민주주의 이정표를 다시 세우는 동시에 ‘민주정부’의 정치적 뿌리를 굳건히 하려면 꼭 거쳐야 할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최근 전 전 대통령 측이 “당시 계엄군은 시민군을 조준 사격한 일이 없다”며 진실 공방에 뛰어들고, 재판부가 ‘허위’로 결론 내린 ‘북한군 광주 투입설’이 버젓이 나돌자 폄훼와 왜곡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하고 진상규명을 서두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광주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은 광주뿐만 아니라 새 정부의 명예와도 맞닿아 있다. 문 대통령은 새 정부의 성격을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 항쟁,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맥을 잇는 정부’로 규정했다.국방부의 특별조사는 대체로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당시 공군 전투기와 수송기, 육군의 헬기 이동과 관련된 문서 확보 및 확인이 최우선이다. 여기에는 당시 보안사(현 기무사) 존안 자료도 포함된다. 5·18 관련 작전을 사실상 기무사가 주도했기 때문에 남긴 작전서류 등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이 제기돼 왔다. 상당 부분 군사기밀로 분류돼 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시 광주 인근에 헬기를 출동시킨 육군 1항공여단의 전투상보와 부대사는 1차적인 조사 대상으로 꼽힌다. 공군 비행단의 5·18 당시 작전 및 상황일지도 포함된다. 기무사에 보관된 것으로 알려진 5·18 관련 자료 50여권 중 기밀로 분류된 10여권도 확인 대상이다. 군 측은 특별법이 아니더라도 기밀해제 등의 절차를 밟아 문서를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국방부 차관이 위원장을 맡고, 국방부 실·국장과 각 군 참모차장, 국방정보본부장 등이 참여하는 군사기밀보호심의위원회를 통해 적극적으로 관련 문서의 기밀해제 등을 의결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하나는 관계자 증언 확보다. 이미 수십년 전 일이기 때문에 많은 증언이 잇따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최초 발포 명령자 확인, 독립적 진상규명위원회 설치, 희생자에 대한 배·보상, 옛 전남도청 원형보존 사업 등에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은 일제히 환영 의사를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당에서도 특위 등 기구를 만들어 조사하겠다”고 약속했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도 “군을 누가 움직였는지 또 누가 국민을 향해 발포명령을 내렸는지가 조사의 핵심”이라고 밝혔다. 자유한국당의 강효상 대변인은 “더 밝혀져야 할 의혹이 있다면 더욱 철저하게 조사해 진상을 밝혀야 한다”면서 “제대로 된 역사의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데 좌우, 보수·진보 누구도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도 “(조사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현정 기자 hjlee@seoul.co.kr 박홍환 전문기자 stinger@seoul.co.kr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5·18 전투기 출격대기·헬기사격 특별조사 지시(종합)

    문재인 대통령, 5·18 전투기 출격대기·헬기사격 특별조사 지시(종합)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군 전투기의 출격대기 명령 여부와 전일빌딩 헬기 사격 사건에 대해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특별조사를 지시했다.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문 대통령은 오늘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군 전투기 부대에 광주를 향한 출격 대기 명령이 내려졌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 또 당시 전일빌딩을 향한 헬리콥터 기총 사격 사건 등 두 건과 관련한 특별조사를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헬기를 이용해 전일빌딩에 있던 시민군을 향해 무차별 기총소사를 했다는 주장이 지속적으로 제기됐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작년 말과 올해 초에 걸쳐 상당수의 탄흔이 발견됐다고 확인한 바 있다. 문 대통령은 대선 당시인 지난 3월 20일 전일빌딩을 직접 찾아 탄흔을 둘러봤다.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그간 ‘광주에서 헬기 기총소사는 없었다’는 입장을 밝혀왔던 군 당국이 사실 확인에 나서면서 실체적 진실 규명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1980년 공군 조종사였던 김모씨는 최근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5·18 사나흘 뒤 500파운드 폭탄 2발을 F5-E/F기에 싣고 광주로 출동할 준비를 했다. 고성능 기관포와 폭탄으로 무장하고 비상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한 바 있다. 전날 5·18민주화운동진실규명과 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정부와 군은 공군의 폭탄장착 광주 출동 대기와 전일빌딩 헬기사격 발포명령 등 5·18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1980년 공군 조종사였던 김모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5·18 사나흘 뒤 500파운드 폭탄 2발을 F5-E/F기에 싣고 광주로 출동할 준비를 했다. 고성능 기관포와 폭탄으로 무장하고 비상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나라 밖에서는 광주의 상황을 베트남전 최대 미군 민간인 학살에 비유했다”며 “‘이젠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할 때가 됐다’고 고백한 조종사의 말처럼 5월의 진실 규명은 더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재인 대통령, 5·18 전투기 출격대기·헬기사격 특별조사 지시

    문재인 대통령, 5·18 전투기 출격대기·헬기사격 특별조사 지시

    문재인 대통령이 23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군 전투기의 출격대기 명령 여부와 전일빌딩 헬기 사격 사건에 대해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특별조사를 지시했다.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이와 같은 문 대통령의 지시 내용을 밝혔다. 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오늘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공군 전투기 부대에 광주를 향한 출격 대기 명령이 내려졌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 또 당시 전일빌딩을 향한 헬리콥터 기총 사격 사건 등 두 건과 관련한 특별조사를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고 말했다. 전날 5·18민주화운동진실규명과 역사왜곡대책위원회는 이에 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대책위는 “정부와 군은 공군의 폭탄장착 광주 출동 대기와 전일빌딩 헬기사격 발포명령 등 5·18 진상규명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책위는 “1980년 공군 조종사였던 김모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5·18 사나흘 뒤 500파운드 폭탄 2발을 F5-E/F기에 싣고 광주로 출동할 준비를 했다. 고성능 기관포와 폭탄으로 무장하고 비상대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증언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나라 밖에서는 광주의 상황을 베트남전 최대 미군 민간인 학살에 비유했다”며 “‘이젠 옳고 그름을 가려야 할 때가 됐다’고 고백한 조종사의 말처럼 5월의 진실 규명은 더 늦출 수 없는 시대적 과제”라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열린세상] ‘택시운전사’와 ‘군함도’/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열린세상] ‘택시운전사’와 ‘군함도’/이대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겸임교수

    처음 기세는 단연 영화 ‘군함도’(감독 유승완)였다. 개봉 첫날 2000개가 넘는 스크린을 장악하며 100만명 가까운 관객 동원. 그야말로 언제 ‘1000만 관객을 돌파하느냐만 남은 듯했다. 그러나 개봉 4주를 맞이한 지금 ‘군함도’는 700만명도 채우지 못한 채 허덕이고 있으며, ‘택시운전사’(감독 장훈)가 개봉 3주 만에 ‘19번째 1000만 관객 영화’의 주인공이 되면서 흥행 가도를 씽씽 달리고 있다. 이 같은 결과가 스크린 독과점 논란 때문이라고 말할 수만은 없다. 물론 어느 때보다 ‘상생’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때문에 보고 싶은 영화를 포기하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다. 역대 ‘1000만 관객 영화’ 대부분도 비슷한 상황이었지만, ‘대박’에 성공한 것이 이를 말해 준다. ‘군함도’와 ‘택시운전사’의 희비 교차는 결국 영화에 있을 것이다. 특히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다룬, ‘사실’을 바탕으로 한 영화는 더욱 그렇다. 또 하나가 있다. 영화가 가진 사회적 관심도와 관객의 정서다. 지금까지의 전례에 비춰 하나만 가지고는 우리 영화시장에서 1000만 관객까지는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두 영화는 공통점을 가졌다. 국민적 공감과 관심을 가질 만한 근현대사의 한 부분, 비교적 탄탄한 연출력을 가진 감독, 연기파 배우들. 그러나 그 역사 속을 걸어가는 길이 달랐다. ‘군함도’는 제 기분껏, ‘택시운전사’는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어차피 둘 다 사실에 상상력을 섞었지만, 그 선택의 다름이야말로 영화의 완성도는 물론 사회적 공감의 높이와 크기를 가른 셈이다.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에는 두 가지 함정이 있다. 하나는 강박이고, 하나는 무시다. 사실만을 다뤄야 한다는 강박은 영화를 엉성한 역사책으로 만들고, 무시는 역사의 왜곡과 과장을 낳는다. 그럴듯하게 그때의 집을 짓고, 옷을 입고, 멋을 부린다고 역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을 발판 삼아 영화는 그 시대의 인간들과 대화하고 충돌하고 화해하면서 걸어가야만 한다. “이 영화에서 시대와 역사는 배경일 뿐”이라며 역사와 인간을 동떨어지게 만드는 것은 역사에 대한 불경이고 무책임한 태도다. 어떤 의도가 숨어 있든, 상업적 전략이든 허구와 과장으로 역사를 재단하는 것은 오만이다. 역사는 그곳을 지나온 사람들의 것이기에 그 진실이 누구 한 사람, 영화 한 편, 아니면 밀실의 합의로 바뀌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함도’의 치명적 실수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에 영감을 받은 창작’이라고 해도,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우겨도 군함도에서 관객들이 마주하고 싶었던 것은 일본이 저지른 만행의 진실이지 어설픈 자기 각성이나 온갖 허구와 익숙한 플롯을 동원한 대탈주 활극은 아니었을 것이다. ‘군함도’는 아직도 살아 있는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런 영화들이 있다. 영화를 비판하면 그 영화가 담은 소재와 인물, 사건까지도 부정적으로 본다는 오해를 받는. 이를테면 ‘1980년 5월의 광주’를 용기 있게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까지 꺼렸던 ‘화려한 휴가’가 그랬다. ‘택시운전사’도 비슷하다. 더구나 지금의 사회적 분위기나 정서를 감안하면. 이 영화 역시 사실과 실존 인물을 다루고 있지만 비현실도 있고, 과장도 있고, 상업적 계산의 쓸데없는 액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군함도’처럼 역사를 제멋대로 해석하고 활극을 만들지도, ‘화려한 휴가’처럼 격정에 사로잡혀 소리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치열하게 그날의 진실을 오롯이 드러내자는 것도 아니다. 할 수도 없고, 맞지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택시운전사’는 그날 광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고, 그곳 사람들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객관적 ‘사실’로 보여 주려고 했다. 그날의 광주를 취재한 한 외신기자와 그를 태워 준 서울의 택시운전사를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그들의 시선과 마음으로 영화는 진실에 조금이나마 다가가고, 젊은이들도 1980년 5월의 광주를 선입견 없는 가장 보편적인 인간적 정서로 만난다. 영화도 이렇게 역사 앞에서는 겸손하고, ‘인간’에게 진실해야 한다. ‘1000만 영화’는 결코 행운이나 얄팍한 계산으로는 얻지 못한다.
  • “5·18 때 훈련기에 폭탄 장착”…당시 공군 조종사의 증언

    “5·18 때 훈련기에 폭탄 장착”…당시 공군 조종사의 증언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공군이 전투기에 500파운드짜리 폭탄 2개를 장착하고 출격 대기했다는 공군 조종사의 증언이 지난 21일 방송을 통해 보도됐다. ‘5·18 진실규명과 역사왜곡대책위원회’ 및 ‘옛 전남도청 복원대책위원회’는 “1980년 5월 당시 선량한 시민을 향한 무차별적인 헬기사격에 이어,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고 폭격하려 했던 계획이 단순한 소문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오월영령 및 150만 광주 시민은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강하게 비판했다.그런데 광주 시민들을 향한 공군의 폭격 준비와 관련해서 또 다른 증언이 나왔다. 이 증언은 5·18 당시 경남 사천 훈련비행단 조종학생으로 있으면서 폭격에 대비했다는, 조종사 출신의 예비역 공군 장군 A씨으로부터 나왔다. 그는 익명으로 22일 JTBC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공개적으로 말하지 못했던 ‘그날’의 기억을 털어놨다. 그 때 상황을 구체적으로 말해달라는 손석희 앵커의 요청에 A씨는 아래와 같이 말했다. “당시 사천훈련기 A-37B는 베트남전에서 공대지 전투 공격기로 사용되었고요. 1970년대 중반에 우리 공군 조종사 충전 비행훈련용 겸 유사시 공격기로 활용하기 위해 헐값에 도입이 되었습니다. 그 항공기는 기관총과 500파운드 GP밤이 장착 가능한 기종으로 주임무가 훈련용이라서 폭탄도 달지 않고 비행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폭탄이 장착이 되었죠. 또한 당시 저희들이 알고 있었던 상황은 ‘광주에서 큰 소요가 있다고 하더라’는 정도의 풍문으로 광주의 일을 대충은 알고 있었습니다.” 이어 A씨는 “A-37 항공기는 공대공 미사일은 없다”면서 “그런데 공대지 GP밤 500파운드 짜리 폭탄과 12.5mm 기관총을 장착한 걸로 기억한다, 그날”이라고 덧붙였다. 손 앵커는 광주가 목적지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는지를 A씨에게 물었다. A씨는 “당시 계엄사령관(이희성 계엄사령관)의 대국민 담화 전후에 지금까지 무장 장착을 전혀 하지 않은 항공기에 무장을 했기 때문에 느낌으로 알았고, 지금은 ‘광주 민주화 운동’이라고 칭하지만 당시에는 ‘광주 사태’라고 해서 굉장히 뒤숭숭했다”면서 “그런데 교관과 학생들 모두 다 상부에서 실제 출격 명령이 떨어지면 전시도 아닌 상태에서 실제 밤에 드라이브를 시키면 저 민간인들은 어떻게 하나, 큰 자괴감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저희들은 소위고, 조종학생이었기 때문에 어디라고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마는, 누구라도. 하도 그 당시에 광주 사태라는 말이 많이 돌았기 때문에 소요사태가 크게 났다는 걸 들었기 때문에 느낌으로 (목적지가 광주라는 사실은) 다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광주에서 소요 사태가 일어났기 때문에 북한이 준동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북한의 공격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이라는 반론이 전두환씨 측으로부터 제기될 수 있다는 손 앵커의 질문에 A씨는 “A-37이라는 그 비행기로는, 그 무장으로, 그 항공기 사이즈로 연료 문제가 있기 때문에 전방으로 갈 수도 없으며 전시가 아닌 상태에서 그 항공기로 무장 운용을 하는 것은 난센스”라면서 “북한을 향해 대비하는 게 아니었다고 본다”고 밝혔다. A씨는 당시 항공기의 무장 상황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가 있는지를 묻는 손 앵커의 질문에 “그 자료가 남아 있을 개연성은 굉장히 적다”고 답했다. A씨는 “당시 계엄 하였기 때문에 ‘계엄일지’도 현재 전혀 없지 않나. 그것을 미뤄보건대 아마도 그런 자료가 있을 개연성은 없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A씨는 정부 차원의 광주 민주화 운동의 진상 규명 작업이 진행될 경우 직접 증언할 생각이라면서 “오늘 증언은 제가 군을 분열시키거나, 군을 폄훼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측면이기에 언제든지 증언할 용의가 있다. 그리고 화해와 관용은 진실의 바탕 위에서만 가능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밝혔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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