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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설]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민간인 학살 책임자 처벌해야

    5·18민주화운동이 오늘 4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9차례나 5·18 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됐지만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치권 안팎의 방해 때문에 민간인 학살에 대한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지 못한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광주MBC의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 “발포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에 대한 법적인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이런 부분들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집단 학살 피해자들을 찾아내는 일, 헬기 사격까지 하게 된 경위, 대대적으로 이뤄진 진실 은폐·왜곡 공작의 실상까지 모두 규명돼야 한다”고 밝혀 진실 규명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피력했다. 5·18의 진실은 1980년 5월 광주에서 국민을 보호하고 국가를 수호해야 할 군이 국가권력 찬탈에 동원돼 민주화와 신군부의 부당함을 외치는 광주 시민들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이 핵심이다. 그동안 권력의 조직적인 은폐와 사실 왜곡으로 진실규명에 이르지 못한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인도적 범죄에 대해 철저히 진실을 밝히고 역사의 교훈으로 삼아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유대인 집단 학살을 계기로 국제사회는 ‘인도에 반한 죄’로 규정해 강력하게 처벌해 왔다. 군이 체계적으로 또는 광범위하게 민간인을 학살한 행위 역시 이에 해당된다. 공소시효 자체가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추가적인 진실을 밝혀내야 한다. 광주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는 이유 중에 야당의 역사왜곡과 폄훼도 책임이 크다. 지난해 2월 미래통합당의 전신 한국당 의원들이 ‘5·18 진상 규명 대국민 공청회’를 통해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했고 지금도 유튜브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허위 가짜뉴스가 난무한다. 독일의 경우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홀로코스트) 등의 과거사를 부정하면 엄중 처벌을 받는다. 우리도 법·제도를 정비해 역사왜곡과 폄훼를 바로잡고 가짜뉴스의 홍수를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상태다. 5·18의 진실을 왜곡하거나 허위사실을 유포하면 이를 처벌하는 5·18왜곡처벌법이 여러 번 발의됐지만 한 번도 법사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5ㆍ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은 올해 21대 국회는 최우선적으로 관련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다행스런 것은 주호영 통합당 신임 원내대표가 지난 16일 “우리 당은 단 한순간도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폄훼하거나 가벼이 생각한 적 없다”고 밝히고 4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정치권이 앞장서 역사적 화해와 동서화합의 마중물이 돼야 한다.
  • “40년 지난 5월… 악의적 왜곡·폄훼로 유가족 상처 아물지 않아”

    “40년 지난 5월… 악의적 왜곡·폄훼로 유가족 상처 아물지 않아”

    5·18 민주묘지 전통 제례식 추모제 개최 유족회 “아픈 역사 되풀이되지 않아야” 오늘 ‘최후 항쟁지’ 옛 전남도청서 기념식 ‘달빛동맹’ 권영진 대구시장도 참석 예고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악의적 왜곡과 폄훼로 유가족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습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광주의 아픔을 간직한 금남로 거리는 예년과 달리 한산한 모습을 보였다. 코로나19 여파로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되면서 수만명의 시민이 거리에 모이지는 않았지만 각종 문화행사를 통해 5·18 희생자의 영령을 기리는 등 뜨거운 마음을 전했다. 이날 오전 광주 북구 민주로에 있는 국립5·18민주묘지에서는 ‘5·18민중항쟁 제40주년 추모제’가 유족과 시민·정치인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전통 제례로 치러진 추모제는 추모사와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참석자들의 헌화·분향 순으로 마무리됐다. 김영훈 유족회장은 “40년이 지난 오월이지만 그날의 고통과 슬픔은 여전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다시는 아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5·18묘지에는 유족, 청년, 외국인 등 참배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하얀 상복을 입고 5·18묘지를 찾은 5월 어머니들은 40년 전 허망하게 떠난 아들과 딸, 남편의 이름을 부르며 마르지 않은 눈물을 흘렸다. 말없이 소주를 잔에 따라 묘 주변에 뿌리는 아버지와 묘비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어머니 사이에 흐르는 정적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다른 유가족은 아들이 생전에 좋아하던 콜라를 가져와 뿌리거나 손으로 잡초를 하나하나 뽑는 등 각자의 방식으로 하늘나라로 떠난 가족을 기렸다. 전남대 학생 김미리(20)씨는 “1980년 5월 선배들의 대학 정문 앞 시위가 엄청난 비극의 도화선이 된 것으로 배웠다. 이곳에서 친구들과 함께 그 의미를 되새기려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7시 천주교 광주대교구는 임동성당에서 김희중 대주교의 집전으로 기념미사를 봉헌했다. ‘우리는 그날처럼 살고 있습니까? -대동사회를 살아가기 위한 나눔과 연대’라는 주제로 열린 미사에는 서울대교구장인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전국 교구 관계자 200명이 참석했다. 40주년 당일인 18일에는 처음으로 항쟁 중심지인 광주 동구 5·18민주광장(옛 전남도청 앞)에서 기념식이 열린다. 경찰은 이날 5·18민주광장~충장로1가 입구 구간을 오전 6시부터 전면 통제한다. 이날 극우단체의 시위는 이뤄지지 않을 예정이다. 당초 16~17일 열릴 예정이던 보수단체의 금남로 집회도 법원의 ‘불가’ 판정으로 불발된 바 있다. 한편 권영진 대구시장은 40주년 당일 5·18 기념식에 참석한다. 대구시와 광주시는 영호남을 대표하는 도시로 국민 통합을 위해 ‘달빛동맹’ 공동협력협약을 맺고 올해로 8년째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과 대구 2·28민주운동 기념식에 교차 참석하고 있다. 올해 대구 2·28민주운동 기념식은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열리지 않았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강제조사권 없어 5·18 규명 한계… 21대 국회 특별법 보완하나

    강제조사권 없어 5·18 규명 한계… 21대 국회 특별법 보완하나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문재인 대통령이 ‘5·18 당시 발포 명령자’를 포함한 진실 규명을 강조하면서 그간 역사 속에 가려져 있던 실상이 모두 밝혀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12일 관련 조사에 착수한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권한이 제한적인 만큼 21대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 등이 얼마나 보완되느냐에 따라 진상 규명의 성패가 갈릴 것으로 보인다.문 대통령은 17일 광주MBC의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발포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에 대한 법적인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이런 부분들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집단 학살 피해자들을 찾아내는 일, 헬기 사격까지 하게 된 경위, 대대적으로 이뤄진 진실 은폐·왜곡 공작의 실상까지 모두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수차례 5·18 관련 진실 규명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현행 특별법상 조사위는 출석을 거부하는 조사 대상에 대한 강제 구인 등 권한이 없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상황이다. 더불어민주당의 21대 총선 광주·전남 당선자 18명은 이날 조사위의 역할과 권한 확대, 5·18 역사 왜곡 처벌 강화 등을 골자로 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 5·18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등 8개 법의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광주시당위원장인 송갑석 의원은 통화에서 “조사위가 영장 발부권 등을 갖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 조사 불응 시 엄중 처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금고형 등으로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방안을 개정안에 담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5·18을 폄훼할 시 처벌하는 법안도 21대 국회에서 처리될지 주목된다. 지난해 2월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공청회에서 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전신)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이 5·18 관련 망언을 쏟아 냈지만 국회 차원의 징계는 없었고 당에서는 솜방망이 징계만 이뤄져 논란이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폄훼에 대해서까지 관용이 인정될 수는 없다”며 강력 대응을 강조했다. 민주당은 5·18 왜곡 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안을 준비 중이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관련 법을 적극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관건은 통합당의 협조다. 주호영 통합당 원내대표는 광주행에 앞서 지난 16일 입장문을 내고 “우리 당은 단 한 순간도 5·18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폄훼하거나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다”며 5·18 관련 단체를 법정단체화하는 내용의 5·18 민주유공자 예우법 개정안 처리를 약속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통합당은 조사위의 권한 강화, 왜곡 처벌 등에 대해선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주 원내대표는 이날 통화에서 조사위 권한 강화 등에 대해 “법안 내용을 더 살피고 논의를 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5·18 진상규명 강제조사권 국회 통과 가능성은…주호영 “법안 내용 더 살펴야”

    5·18 진상규명 강제조사권 국회 통과 가능성은…주호영 “법안 내용 더 살펴야”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5·18 당시 발포 명령자 등 그날의 진실을 모두 밝혀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지난 12일부터 조사 개시 명령과 함께 관련 조사에 착수했지만 한계가 있어 21대 국회에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7일 광주MBC의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발포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에 대한 법적인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이런 부분들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집단 학살 피해자들을 찾아내는 일, 헬기 사격까지 하게 된 경위, 대대적으로 이뤄진 진실 은폐·왜곡 공작의 실상까지 모두 규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그 규명의 목적은 책임자를 가려내 꼭 법적인 처벌을 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진실의 토대 위에서 진정으로 화해하고 통합의 길로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만이 아니라 매년 5월이 되면 5·18 당시의 상황에 대한 진실 규명을 강조해왔지만 현재 특별법상으로는 한계가 있다. 조사 대상자가 출석에 불응하면 강제 구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민주당 21대 총선 광주·전남 당선자 18명은 이날 진상조사위의 역할과 권한 확대, 5·18 역사 왜곡 처벌 강화, 헌정질서 파괴사범 행위자에 대한 국립묘지 안장 금지, 민주화운동 유공자 명예회복 및 실질적 보상 등을 위한 법 개정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핵심은 진상규명조사위의 강제조사권 강화다. 민주당 광주시당위원장인 송갑석 의원은 통화에서 “진상규명조사위가 영장 발부권 등을 갖는 건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 같아 조사에 불응할 시 엄중 처벌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며 “금고형 등으로 처벌 수위를 강화하는 방안을 개정안에 담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어 “특별법이 통과됐을 당시(2018년 2월) 일단 진상규명조사위부터 출범하는 게 중요했기 때문에 법안의 세부 내용이 미흡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부족한 점을 보완하려고 한다”고 밝혔다.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할 시 처벌하는 법안도 21대 국회에서 처리될지 주목된다. 지난해 2월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공청회에서 당시 자유한국당(현 미래통합당)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이 망언을 쏟아냈지만 당 차원의 솜방망이 징계만 이뤄지는 데 그쳤다. 이들에 대한 징계안이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출됐지만 심사 한 번 이뤄지지 못하고 20대 국회 종료와 함께 폐기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폄훼에 대해서까지 관용이 인정될 수 없다”며 강력 대응을 강조했고 민주당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왜곡하거나 비방하면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의 특별법 개정안 발의를 준비하고 있다. 민주당은 21대 국회에서 177석의 거대 여당이 된 만큼 관련 법을 적극 추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의 협조가 관건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광주행에 앞서 지난 16일 입장문을 내고 “우리 당은 단 한 순간도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폄훼하거나 가벼이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특히 소속 의원의 망언과 폄훼 시도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5·18 희생자와 유가족, 상심하셨던 모든 국민 여러분께 매우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을 전한다”고 사과했다. 주 원내대표는 5·18 민주화운동 관련 단체를 법정단체화하고 예산을 지원하는 5·18 민주화유공자 예우법 개정안 처리도 약속했다. 다만 통합당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진상조사위의 권한 강화, 왜곡처벌법에 대해서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주 원내대표는 17일 통화에서 진상조사위 권한 강화 등에 대해 “법안 내용을 더 살피고,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통합당 인사들의 광주행도 이어졌다. 유승민 의원, 유의동 의원, 김웅 당선자가 함께 광주를 찾았고, 장제원 의원도 홀로 광주를 찾아 참배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5·18 민주화운동을 특정지역이나 정치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라 대한민국 모두의 역사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대표는 전남 담양 천주교 묘역을 찾아 조비오 신부를 참배하고,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40주년 추모제에 참석했다. 김진아 기자 jin@seoul.co.kr 손지은 기자 sson@seoul.co.kr
  • 광주전남 21대 총선 당선자들 “5·18왜곡 처벌법 등 발의하겠다”

    21대 총선 더불어민주당 광주·전남 당선인 18명은 17일 보도자료를 내고 “21대 국회 개원 즉시 5·18 관련법 개정을 공동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공동 발의할 예정인 5·18 관련법은 일명 ‘5·18 역사 바로 세우기 8법’으로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의 역할과 권한 확대, 역사 왜곡 처벌 강화, 헌정질서 파괴 사범 행위자의 국립묘지 안장 금지, 유공자 명예회복과 보상 등을 담고 있다. 21대 국회가 개원하면 광주 당선인 8명이 각각 대표 발의하고 광주·전남 당선인 전원이 공동 발의한다. 민주당 전남도당 위원장인 서삼석 의원은 “5월 광주의 명예를 지키고 진실을 밝히는 것은 광주·전남 국회의원 공통의 책무이자 사명”이라며 “오월의 비극을 희망으로 바꾸기 위해 하나로 뭉쳐 5·18 관련법 통과에 온 힘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광주시당 위원장인 송갑석 의원도 “광주·전남의 제1과제는 5·18의 역사를 바로 세우는 것이며, 이로부터 5·18 정신의 세계화를 시작할 수 있다”며 “광주·전남 당선인이 한마음으로 5·18 관련법을 추진해 철저한 진상규명을 이루고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바로잡겠다”고 말했다. 5·18 40주년 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이형석 의원은 “법률·역사적 평가가 완료된 5·18을 왜곡하는 것은 헌법을 부정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일”이라며 “21대 국회에서 역사왜곡처벌법이 1호 법안으로 제정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문 대통령 “5·18 발포 명령자 누군지, 진실 은폐·왜곡 규명돼야”

    문 대통령 “5·18 발포 명령자 누군지, 진실 은폐·왜곡 규명돼야”

    “규명 목적은 책임자 법적 처벌 아닌 진실 위해 진정한 화해와 통합의 길 가야”문재인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40주년을 하루 앞둔 17일 “발포 명령자가 누구였는지, 발포에 대한 법적인 최종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 이런 부분들은 밝혀지지 않았다”며 5·18 당시 발포 명령자에 대한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문 대통령은 “5·18을 폄훼하고 왜곡하는 데 대해 단호히 대응할 것”이라면서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을 우리 헌법에 담아야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라며 의지를 보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광주MBC의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집단 학살 피해자들을 찾아내는 일, 헬기 사격까지 하게 된 경위, 대대적으로 이뤄진 진실 은폐·왜곡 공작의 실상까지 모두 규명돼야 한다”며 이렇게 밝혔다. 문 대통령은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도 (5·18에 대한) 폄훼나 왜곡을 더이상 없게 만드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2017년 5월 취임 직후 열린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헬기 사격을 포함해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히겠다”고 한 데 이어 해마다 5월 진상 규명을 강조해 왔다.문 대통령은 “그 규명의 목적은 책임자를 가려내 꼭 법적인 처벌을 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진실의 토대 위에서 진정으로 화해하고 통합의 길로 나가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5·18 당시 발포 명령자 등에 대한 진상 규명 의지를 거듭 밝힘에 따라 5·18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에 힘이 실릴 전망이다. 진상조사위는 지난 12일 활동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진상조사위 활동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뒷받침할 작정”이라고 했다.文 “5·18과 6월 항쟁, 헌법 전문에 담아야” 문 대통령은 향후 개헌 시 헌법 전문에 5·18이 담겨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의 이념만큼은 우리가 지향하고 계승해야 할 하나의 민주 이념으로, 우리 헌법에 담아야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개헌이 논의된다면 헌법 전문에서 그 취지가 반드시 되살아나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문 대통령이 2018년 3월 발의한 개헌안의 전문에는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이 담겼다. 이 개헌안은 같은 해 5월 국회에서 ‘투표 불성립’이 됐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취중생]힌츠페터 통역 도운 미국인들…“광주 정신, 늘 삶과 함께”

    [취중생]힌츠페터 통역 도운 미국인들…“광주 정신, 늘 삶과 함께”

    [편집자주] 1994년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한 기자가 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졌을 때도, 세월호 참사 때도 그랬습니다.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입니다. 시대가 변하고 세대는 바뀌었지만, 취재수첩에 묻은 꼬깃한 손때는 그대롭니다. 기사에 실리지 않은 취재수첩 뒷장을 공개합니다. ‘취중생’(취재 중 생긴 일)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사건팀 기자들의 생생한 뒷이야기를 담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영화 ‘택시운전사’에서 광주에 도착한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는 대학생 무리를 만납니다. 그 중 영어를 할 줄 알던 대학생 재식(류준열 분)이 얼떨결에 힌츠페터의 통역을 맡습니다. 역사 속에서도 힌츠페터의 번역을 맡은 학생이 있습니다. 그의 한국어 이름은 원덕기. 바로 미국에서 온 평화봉사단 팀 윈버그입니다. 그는 1979년 4월 한국에 파견돼 광주 전남대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처음부터 그가 기자들을 위해 통역을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와 단원들은 현장의 목격자가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학생들과 시민들의 피해는 커져만 갔고, 군대는 광주를 고립시켰습니다. 그는 1987년 ‘광주항쟁: 목격자의 견해’(최용주 5·18기념재단 자문위원 번역)에 그가 본 비극을 적었습니다. 최초의 영문으로 5·18민주화운동을 분석한 보고서였습니다. 일요일이던 5월 18일에는 시민들이 휴일을 즐기기 위해 시내를 찾았지만, 시민들은 곳곳에서 군인들에게 잔인하게 구타당했습니다. 팀은 “머리에 부상을 입고 오토바이에서 떨어진 중국집 배달원을 근처 병원으로 데려갔다”면서 “19일에도 부상당한 사람들을 의사와 함께 들것을 이용해 일하던 전남대병원으로 옮겼다”고 합니다.5월 22일. 팀은 영국과 네덜란드 출신 기자와 동행하며 통역을 했습니다. “우리는 어딜 가든 자신들이 무슨 일을 봤는지 알려주려는 인파에 휩싸였다. 특히 시민들은 지역 방송사가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며 크게 분노했고 자신들이 겪고 있는 상황이 제대로 세상에 알려지기를 원했다. 우리는 기독병원으로 가서 한 부상당한 학생과 얘기를 나눴다. 서울대학교 학생인 그는 담양에서 광주로 오다가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았고 함께 했던 30명 가량의 사람들 중 자신이 유일한 생존자라고 했다.” 팀은 5월 23일에는 타임지 기자 로빈 모이어, AP통신 기자 테리 엔더슨 등 외신 기자들과 인터뷰를 합니다. 그의 동료 폴 코트라이트도 호텔에서 팀이 독일 기자와 호텔에서 했던 인터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코트라이트는 그의 저서 ‘5·18 푸른 눈의 증인’에서 이렇게 적습니다. “팀은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는 학생을 군인들로부터 빼냈다고 한다. 그는 구타 당하고 있는 학생들이 잘못하면 죽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군인들 사이에 끼어들어 말렸고 그 학생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것을 도운 것이다. 말을 마친 팀은 기자에게 이름과 소속은 빼고 키가 큰 금발의 외국인이라고만 밝혀 달라고 당부했다.” 팀은 “26일 뉴욕타임즈 기자가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설득해 광주를 폭격하는 것을 저지시켰다고 말했다”지만 “(시민들 사이에서는) 그날 밤 군대가 다시 도시로 진격할 것이라는 소문이 만연했고, 사람들은 모두 매우 불안해했다”고 적었습니다. 팀의 동료 데이비드 돌린저도 “26일 도청에서 만난 시민들은 그날이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우리에게 도청에서 밤을 보내지 말라고 했다”면서 “몇몇은 내게 우리가 아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고 회상합니다. 27일 오전 3시. 그는 데이비드 돌린저 등 동료와 함께 포탄 소리에 잠에서 깹니다. 군대가 탱크를 앞세워 진압을 시작하자, 전남도청은 완전히 파괴됐습니다. 며칠 전 함께 그와 말을 나눈 한 학생은 2층 창가에 불에 탄채로 죽어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윈버그의 이야기는 그의 글과 동료들의 증언, 각종 사료로만 전해집니다. 1993년 2월 7일, 그는 39세의 나이로 사망했습니다. 윈버그는 이후 연세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팀이 부상당한 시민을 다른 시민들과 함께 이송하던 장면은 보안사가 채증을 위해 찍은 사진으로도 남아 있습니다.코트라이트는 팀에 대해 이렇게 회상합니다. “팀은 사려 깊고 결코 오만하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모로 그는 광주에서 평화봉사단의 영웅이자 리더였습니다. 그의 한국어는 모든 단원들 가운데 제일 뛰어났고, 우리 누구보다도 광주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평화봉사단에 허락된 일뿐만 아니라 광주 시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했습니다. 광주와 시민들을 사랑했고,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보호하고자 했습니다. 광주에 있던 미국인들에게도 그는 영웅이었습니다.” 또 다른 동료 데이비드 돌린저는 “불행히도 팀이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지만, 늘 팀과 이야기를 나누는 듯 하다”면서 “5월의 그날들이 제 인생에 큰 영향을 주었고, 광주 정신이 제 삶을 이끌고 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나와 팀은 광주에서 만나 친구가 됐고 불의와 기꺼이 싸우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 때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하루 하루를 살고자 늘 다짐한다”고 전했습니다. 김주연 기자 justina@seoul.co.kr
  • 서윤기 서울시의원, 한강종합개발 칭송 기념비 철거 강력 촉구

    서윤기 서울시의원, 한강종합개발 칭송 기념비 철거 강력 촉구

    서울시의회 서윤기 운영위원장(더불어민주당, 관악2)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일을 맞아 서울시에 있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한강종합개발 칭송 기념비의 철거를 강력히 촉구했다. 강남구 삼성동 청담도로공원에는 한강종합개발 준공을 기념하는 조형물이 높게 솟구쳐 있다. 이 조형물을 둘러싼 공적비에는 서정주 시인이 전두환 전 대통령을 칭송한 ‘한강종합개발’이라는 시문이 둘러져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60년대부터 발달해온 이나라 공업화의 후유증으로/ 당신(한강)이 병들어 가는 것을 유난히도 걱정하신 나머지/ 우리 대통령 전두환님께서 이 정화의 종합개발을 하게 하시어/ 1982년 9월 착공해 장장 4년 만에 오늘 그 준공 날에/ 우리 겨레 모두가 당신(한강)의 완케 되시고 더 번영하신 모습 환호해 뵈옵나니,/ 인제부터는 항상 맑고 밝고 꽃 다웁기만한 건강으로/ 우리 미래의 역사를 도와 길이 지켜 주시옵소서” 조형물 한가운데는 한강종합개발에 대해 당시 대통령인 전두환 명의로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살아온 영원한 이 한강을 세계적인 강으로 맑히고 개발하여 미래의 후손들에게 길이 물려주고자 합니다”라는 표지석 문구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이에 대해 서 위원장은 “이 나라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친 선배 영령들의 뜻을 새기고 추모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며 “독재정권에 의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도 있고, 살인마 전두환에게 그의 행적에 합당한 처벌을 부과하는 방법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우리 생활 속에 아직도 산재한 독재의 유물을 철거하는 일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서 위원장은 ”미당 서정주 시인의 전두환 칭송 공덕비가 아직도 버젓이 우리 생활 속에 남아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고 말하며 ”광주민주화운동을 비롯해 민주화에 헌신했던 선배동료들을 위해서나 지난 독재 시대의 역사를 배우고 민주주의의 미래를 개척할 아이들을 위해서나 전두환 공덕비는 하루빨리 철거해야 한다”며 전두환 공덕비 철거를 촉구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여야, 5·18 40주년 맞아 광주 총출동

    여야, 5·18 40주년 맞아 광주 총출동

    여야가 민주화운동 40주년을 맞아 오는 18일 광주에 총출동할 전망이다. 15일 민주당에 따르면 이해찬 대표 등 지도부는 18일 광주 금남로 전일빌딩245에서 현장 최고위원회의를 연다. 전일빌딩245는 5·18 당시 시민들이 몸을 숨겼던 역사적 장소인 전일빌딩을 리모델링해 만든 문화공간이다. 계엄군의 헬기사격 총탄 흔적 245개가 남아있어 숫자 ‘245’를 이름에 붙였다. 지도부는 최고위를 마친 뒤 21대 총선 당선자 전원과 함께 5·18 민주묘지를 참배한다. 민주당은 이번 광주행을 통해 5·18 진상규명과 역사왜곡처벌법 처리에 대한 의지도 재확인할 예정이다. 박광온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위에서 “여전히 5·18을 망언과 왜곡으로 거짓 선동하는 반민주적, 반역사적, 반헌법적 작태가 일어나고 있다”며 “5·18 역사왜곡처벌법이 반드시 필요하고 그건 우리 국회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5·18 정신을 포함시키기 위한 개헌 문제도 거론된다. 이형석 최고위원은 “21대 국회에서 철저한 진실규명, 5·18 역사왜곡처벌법 처리, 한국현대사에 큰 획을 그은 5·18 정신이 헌법 전문에 게재되도록 국회의 역할을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미래통합당 지도부도 대거 광주를 찾는다. 주호영 원내대표와 김성원 원내수석부대표는 18일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다. 주 원내대표는 취임 후 첫 현장 방문지로 광주를 택했다. 이로 인해 5·18 망언 논란 등에 대한 사죄 메시지를 낼 것인지 주목된다. 유승민 의원은 5·18 기념식 하루 전날인 17일 유의동 의원, 김웅 당선자와 함께 국립 5·18 묘지를 참배할 예정이다. 통합당 최고위원인 원희룡 제주지사은 기념식에 참석한다. 통합당의 비례대표 정당인 미래한국당도 광주를 찾는다. 원유철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5·18 민주화 정신을 이어받아 민주주의가 활짝 피어나는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근홍 기자 lkh2011@seoul.co.kr
  • “거기 우리가 있었다”… 5월의 서가, 그날을 증언하다

    “거기 우리가 있었다”… 5월의 서가, 그날을 증언하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이 40주년을 맞은 올해 출판가엔 더 많은 책들이 찾아와 광주를 이야기한다. 그동안 밝혀지지 않은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증언한 책을 비롯해 발포 명령을 거부한 경찰을 조명한 평전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참혹한 영상이나 기록물과 달리 소설 고유의 힘을 발휘하는 책도 손에 잡힌다. 책은 우리에게 말한다. 1980년 5월 18일 광주를 기억하라고.●알려지지 않은 진실 기록하다 1980년 5월 27일 새벽 3시 40분. 광주관광호텔 영업과장 홍성표씨는 당시 계엄군을 피해 숨었던 6층 620호에서 헬기사격을 목격한다. 11여단 특공대가 날이 채 밝기 전 전일빌딩 고층에 있는 시위대에게 총격을 받자 이를 제압하려고 헬기사격을 요청한 것으로 추측된다. 신간 ‘호텔리어의 노래´(빨간소금)는 5·18 당시 홍씨의 기억을 재구성했다. 전일빌딩 오른쪽 맞은편에 있던 8층 건물 광주관광호텔은 계엄군이 들이닥치자 폐점했고 열흘 동안 그 안에 있던 홍씨는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특히, 헬기사격에 관한 그의 증언은 전일빌딩 10층 기둥에 남은 흔적과도 정확히 일치한다.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씨의 “헬기사격은 없었다”는 주장에 대한 명백한 반박이기도 하다. 책은 지난 40년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공간에서 본 5·18의 모습이다.‘안병하 평전´(정한책방)은 5·18을 한 경찰을 통해 새롭게 조명했다. 집회가 시작되자 이희성 계엄군 사령관은 안병하 전남 경찰국장에게 “무기를 들고 시내로 진입하라”고 압박했다. 안 국장은 “경찰이 어떻게 시민들에게 무기를 사용할 수 있느냐”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국장은 곧바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로 압송돼 8일 동안 혹독한 고문을 받았고, 그 후유증으로 8년 동안 투병하다 1988년 60세 나이로 별세했다. 당시 전남 경찰은 상부의 거듭되는 강경진압 지시에도 시민을 향해 총을 쏘지 않았는데, 이 사실은 그동안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책은 5월 17일부터 전남도청 최종 진압작전 하루 전인 5월 26일까지 안 국장의 행적을 좇는다. 당시 시민군으로 전남도청 상황실에서 활동했던 이재의 작가가 안 국장의 유고인 ‘비망록’을 토대로 재구성했다.●다른 시각으로 5·18 풀어내다 독립운동사 및 친일 반민족사 연구가인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이 낸 ‘꺼지지 않는 오월의 불꽃’(두레)은 5·18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군부 쿠데타와 광주학살의 배경 등 광주항쟁이 벌어지기 전의 전주곡과 같은 역사, 그리고 광주항쟁 첫날부터 계엄군에게 진압되는 마지막 날까지 치열하고 끔찍했던 항쟁의 나날들, 마지막으로 광주학살의 주범과 공범, 광주항쟁 이후 남은 과제의 세 부분에 걸쳐 서술한다. 당시 항쟁을 왜곡보도하거나 신군부를 치켜세운 국내 언론들의 민낯도 고스란히 밝혀진다. 사료를 철저히 분석해 ‘피의 역사’를 생생하게 구성했다.‘5·18 광주 커뮤니타스’(사람의무늬)는 사회학에서 사용하는 ‘리미널리티(전이)·커뮤니타스·사회극’ 관점에서 5·18을 조명한다. 신성하고 종교적인 순간인 ‘리미널리티’ 단계, 그리고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나 그들이 모여 있는 상황이나 공간을 ‘커뮤니타스’라 부른다. 저자인 강인철 한신대 종교문화학과 교수는 항쟁 참여자들이 깊은 연대와 헌신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과정과 그 내면적 조건을 여러모로 분석하고 당시 민주화운동을 ‘사회적 행위의 정상적인 양식에서 벗어난 시간과 장소’로 풀이한다. 그러면서 10일간의 광주 시민들의 역사를 한 편의 사회드라마로 재현했다. 강 교수는 “5·18은 더이상 민주화의 퇴보를 용인하지 않는 역진방지장치”라며 “강력하게 역사의 전진과 진보를 추동하는 장치로 동시에 기능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누군가의 이야기로 빚어내다 문학 작품은 여러 시선으로 ‘그날’을 재조명한다. 작품마다 주목하는 주체나 시점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게 특징이다. 5월 14일부터 27일까지 14일간의 광주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그려 낸 정찬주 작가의 ‘광주 아리랑 1·2’(다연)는 집대성에 가깝다. ‘다큐 소설’을 표방하는 책은 식당 주방장, 요리사, 시장 상인, 운전수, 페인트공, 용접공, 가구공, 선반공, 비운동권 학생, 농사꾼 등 5·18을 둘러싼 다양한 주체들의 모습을 모자이크하듯 그려 냈다. 정찬주가 그린 ‘광주’가 갖는 가장 큰 특징은 운동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끝내 총을 들지 못한 주변인들의 고통도 같은 무게로 담아냈다는 데에 있다.33년 전, 공수부대원의 시점으로 5·18을 그린 소설 ‘십오방 이야기’로 데뷔했던 정도상 작가는 이번엔 시민군의 눈으로 광주를 좇았다. 그가 쓴 장편 소설 ‘꽃잎처럼’(다산책방)을 통해서다. 5·18의 마지막 밤, 스물한 살 노동자 명수가 겪은 전남도청에서의 마지막 결사 항전이 담겼다. 이와 달리 40주년을 맞아 양장 특별판으로 출간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창비)는 중학교 3학년 소년 동호의 시점이다.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된 동호의 자취가 다시 봐도 아릿하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문 대통령 “개헌 논의한다면…헌법 전문에 5·18 취지 담겨야”

    문 대통령 “개헌 논의한다면…헌법 전문에 5·18 취지 담겨야”

    “현재는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 설명하기엔 부족”문재인 대통령은 앞으로 헌법 개정 논의가 이뤄진다면 헌법 전문에 ‘5·18 광주민주화운동’ 정신이 반드시 담겨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광주MBC의 5·18 40주년 특별기획 ‘문재인 대통령의 오일팔’에 출연해 이같이 언급했다고 광주MBC가 14일 보도자료를 통해 전했다. 문 대통령은 5·18 정신의 헌법 전문 수록과 관련해 “다시 개헌이 논의된다면 반드시 그 취지가 되살아나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의 헌법 전문에 대해서는 “4·19 이후 장기간의 군사독재가 있었던 만큼 우리나라의 민주화운동을 설명하기에 부족한 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5·18 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이 헌법에 담겨야 우리 민주화운동의 역사가 제대로 표현되는 것이고, 국민적 통합도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1987년에 만들어진 현행 헌법 전문에는 3·1 운동과 4·19 혁명만 담고 있다. 문 대통령은 그동안 헌법 전문에 5·18 민주화운동 및 6·10 항쟁을 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문 대통령이 2018년 3월 26일 국회에 제출한 개헌안의 전문에는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혁명, 부마민주항쟁과 5·18 민주화운동, 6·10 항쟁의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대목이 포함됐다. 당시 개헌안은 같은 해 5월 24일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졌으나, 투표수가 의결정족수에 미치지 못하며 ‘투표 불성립’이 선언됐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이듬해 39주년 5·18 기념식에 참석해 “헌법 전문에 5·18 정신을 담겠다고 한 약속을 지금까지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 송구스럽다”고 밝히기도 했다.문 대통령은 40년 전 5·18을 처음 접한 사연도 소개했다. 당시 경희대 복학생 신분으로 학생운동을 이끌다 전두환 신군부의 예비검속으로 경찰에 구속된 상태에서 5·18 소식을 경찰로부터 들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경찰로부터 들었던 계엄군의 잔인한 진압과 시민군의 무장 저항 사실이 정작 언론을 통해 제대로 보도되지 않고, 왜곡됐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술회했다. 문 대통령은 5·18 40주년을 맞아 지난 12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광주MBC와 인터뷰를 했으며, 약 50분 분량의 인터뷰 내용은 오는 17일 광주MBC와 청와대 홈페이지 등을 통해 공개된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의 이번 출연은 5·18 40주년을 맞아 그 역사와 남은 과제를 되짚어 봄으로써 5·18의 의미를 드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민주 의원들 “윤미향, 작은 실수 있다 해도 성과 부정 안돼”

    민주 의원들 “윤미향, 작은 실수 있다 해도 성과 부정 안돼”

    민주 의원·당선인 16명 지지 성명서 발표“역사 진실 바로세우기 폄하하는 공세”“성노예 피해자 등에 업은 신친일파” 비난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당선인들이 14일 윤미향 당선인을 공개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여당 의원들의 단체 행동은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 후 처음이다. 성명에는 강창일·김상희·남인순·홍익표·송갑석·정춘숙·제윤경 의원, 고민정·양향자·이수진·임오경 당선인 등 16명이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빌미로 친일, 반인권, 반평화세력이 역사의 진실을 바로세우려는 운동을 폄하하는 공세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또 “역사의 진실을 왜곡하려는 세력은 국민과 역사 앞에 사죄해야 한다”며 “오랜 믿음에 기반한 피해자들과 윤 당선인 간 이간질을 멈추고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해 전심을 다 해온 단체와 개인의 삶을 모독하지 말라. 메신저를 공격해 메시지를 훼손하려는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밝혔다. 또 “우리 국회의원들과 당선인들은 지난 30년간 정의연이 해 온 노력을 존중하고 높이 평가한다. 정의연이 설혹 작은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이로 인해 활동의 의미와 성과가 부정돼선 안 된다”고 말했다. 홍익표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정의기억연대의 기금 모집, 운영과 관련해 논란이 있는데 공정하게 조사가 이뤄져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책임을 지고 제도적으로 개선할 부분이 있다면 개선될 것”이라고 말했다.그는 윤 당선인의 위안부 합의 사전인지 주장에 대해 “당시 일본군위안부대책소위원장이었던 나조차 몰랐다”며 “10억엔이라는 액수는 합의 발표 이전부터 여러 언론보도를 통해 나왔던 얘기”라고 강조했다. 홍 의원은 “이 문제로 당시 지나치게 잘못된 합의를 주도한 외교부 인사들이 면죄부를 받은 것처럼 다시 왜곡해 과거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은 적반하장이고 매우 후안무치한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소병훈 의원은 페이스북에 “일제강점기에는 친일파들이 기승을 부리더니 해방 후에는 그 자식들까지 나서고 군사독재시절에는 그 후예들이 못난 선대를 따랐다”며 “급기야 성노예 피해자를 등에 업은 신친일파의 등장인가. 이제 멸종할 날이 머지않았나보다”라고 적었다. 박범계 의원은 정의연이 외부 감사를 받겠다고 했다는 언론 보도를 트위터에 올리면서 “해결의 실마리인가. 이 다툼이 누구 좋은 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전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기부금 논란 속 1439번째 외침… 정의연 “외부 감사 받겠다”

    기부금 논란 속 1439번째 외침… 정의연 “외부 감사 받겠다”

    이나영 이사장 “투명성 입증 위해 재검증” 각종 의혹·논란 정면돌파 의지 거듭 강조 보수 성향 단체 “윤미향 사퇴” 맞불집회 물리적 충돌은 없었지만 고성 오가기도 시민단체, 윤 당선자 횡령·사기 檢 고발 기부금 사용 논란 등 정의기억연대(정의연)에 대한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439번째 수요집회가 13일 열렸다. 정의연은 “개인적 자금 횡령이나 불법 운용은 절대 없었다”는 기존 입장을 재차 강조하면서 “외부 전문가에게 기부금 사용 내역을 검증받겠다”고 밝혔다. 이날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시위에는 코로나19 확산 우려에도 평소보다 많은 100여명의 시민과 취재진이 몰렸다. 최근 정의연을 둘러싼 논란으로 여론의 관심이 뜨거웠다. 시위 참석자들은 ‘사랑합니다’ 등의 피켓을 들고 정의연 지지 의사를 표현했고 2500여명의 시민은 온라인 생중계를 통해 수요시위에 참석했다. 정의연을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는 나오지 않았다. 지난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정의연이 후원금을 피해자를 위해 쓰지 않는다. 수요집회도 도움이 되지 않으니 하지 말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불투명한 기부금 사용과 회계 관리 등 의혹이 집중 제기됐다. 이에 대해 이나영 정의연 이사장은 “매년 변호사와 공인회계사로부터 회계감사를 받고 매번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받았다”며 “다만 국세청의 공익법인 공시 입력 과정에서 아주 약간의 실수가 있었다. 국세청의 재공시 명령에 따라 바로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부금에 대한 검증 절차 계획도 밝혔다. 이 이사장은 “정의연의 투명성을 입증하고, 악의적인 왜곡 보도에 정면 대응하기 위해 다수의 공인회계사에게 기부금 사용 내역을 검증받겠다”면서 “할머니들의 가르침과 유지를 받들고 역사를 지키기 위해 더 꿋꿋하게 행동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의연은 각종 의혹과 논란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했다. 연대의 뜻을 표명한 시민단체와 국회의원도 시위에 참석해 정의연을 지지했다.보수 성향의 단체들은 수요시위 현장 인근에서 맞불 집회를 열었다. 고성이 몇 차례 오갔지만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이들은 윤 당선자의 의원직 사퇴와 정의연 해산을 촉구했다. 수요시위 10여분 전에는 한 참가자가 ‘윤 당선자는 사퇴하라’는 내용의 손팻말을 들고 소녀상 뒤편에서 항의해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한편 시민단체 ‘행동하는 자유시민’은 윤 당선자와 이 이사장을 횡령, 사기 등의 혐의로 이날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이근아 기자 leegeunah@seoul.co.kr
  • 극우의 가짜 5월 넘어… ‘하나 된 5월’을 향해 간다

    극우의 가짜 5월 넘어… ‘하나 된 5월’을 향해 간다

    5·18민주화운동은 성격이 복잡하지 않다. 당시 신군부가 정권을 장악하려는 음모를 꾸미며 민주주의를 압살하려 하자 광주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이를 반대했고, 신군부가 잔인하게 총과 칼로, 그리고 헬기 기총 소사로 시위 시민을 학살한 것이 시작과 끝이다. 그날은 1997년 이미 국가기념일로 지정됐고 세계적인 민주화운동의 모범 사례가 돼 유네스코에 기록물이 등재되고 있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폭동 vs 저항’이란 대립적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집단 기억’의 공유를 바탕으로 5·18의 정신인 자유, 민주, 평화, 평등이 온 세상에 구현되도록 5·18의 전국화와 세계화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지적이다.지난해 6월 홍콩 도심 집회에서 5·18 상징곡인 ‘님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 퍼지면서 세계에 중계됐다.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 반대 시위에서 홍콩 어머니 6000여명이 광둥(廣東)어로 번안된 이 곡을 합창했다. 이 장면은 전파를 타고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 노래는 현재 중국·필리핀·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각국의 민주화 투쟁 현장에서 으레 불리는 ‘민중 가요’로 자리잡았다. 이는 1994년 국민과 해외동포 성금으로 설립된 5·18기념재단의 국제 교류와 연대 사업이 이뤄 낸 성과로 꼽힌다. 기념재단은 1999년부터 매년 5월 ‘광주아시아포럼’과 5·18아카데미 등을 열고 있다. 올해는 코로나19의 확산에 따라 가을로 연기했다.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활동가들의 교류와 소통을 주도하는 프로그램이다. 재단은 2000년부터는 ‘광주인권상’을 제정, 매년 5월 수상자를 선정한다. 영어·중국어 등 외국어로 5·18의 진상을 알리는 각종 출판물과 음반 등의 발간·배포도 이어지고 있다. 5·18이 국제적 민주화의 모델로 위상을 굳혀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2011년 5월 5·18민주화운동 관련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 유산으로 등재됐다. 2007년 남아공 넬슨 만델라의 1963년 법원 판결 기록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적은 있지만 아시아 민주화·인권운동 측면에서 ‘1980년 광주 상황’을 등재했다는 점은 향후 국내 현대사 정립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5·18이 세계 민주화운동의 전형적인 사례로 공인받은 셈이다. ●코로나에도 집회 열겠다는 극우세력 국내 상황은 미완에 머물고 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5·18민주화운동이 1980년 5월 ‘광주’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치부되기 일쑤다. 5·18이 법적·정치적으로 이미 ‘민주화운동’으로 규정됐지만 평가는 제각각인 탓이다. 올 40주년 기념행사도 ‘5월 정신’의 전국화를 목표로 서울·부산·대구·경기 등 전국에서 14개 사업 80여개 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일부 보수단체는 5·18기념주간에 ‘5·18 폄훼’를 준비하고 있다. 실제로 자유연대 등 극우단체는 코로나19 확산 우려로 5·18 40주년 전야제마저 취소된 상황인데도 16~17일 금남로에서 3000여명이 참석한다는 내용의 집회 신고를 냈다. 이들은 앞서 지난 6일 광주시청 앞 등지에서 “5·18 유공자 명단과 공적 조서 등을 공개할 것”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명단 공개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영상매체 등을 통해 똑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또 광주시가 ‘감염병예방관리법’에 따라 집회를 금지했지만, 이들은 법원에 집회 금지 취소를 요구하는 행정소송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게릴라식 공격도 이어진다. 수년간 5·18민주화운동을 북한 특수군 소행이라 주장해 온 지만원(79)씨는 지난 2월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기소된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법정 구속은 되지 않았다. 지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인터넷 매체인 ‘시스템 클럽’(5월 8일)에 ‘무등산의 진달래’란 제목의 글을 통해 “북한 특수군 600여명은 김일성의 지령을 받아 1980년 5월 21일 밤중에 광주교도소를 5회 공격했다”고 밝혔다. 지씨의 글은 다른 극우단체의 인터넷 사이트에 퍼져 나가면서 ‘5·18 왜곡과 폄훼’의 진원지 중 하나로 지목된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5·18 학살의 주범인 신군부와 그를 추종하는 세력들은 이를 사실인 양 호도하고, ‘전라도 사람’을 비하하는 내용을 퍼뜨리거나 재생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해 ‘공동의 기억’을 형성하지 못했고, 이에 따라 5·18의 전국화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신군부의 왜곡된 자료 보수매체 타고 확산 5·18 왜곡은 최초 12·12 쿠데타를 통해 실권을 장악한 신군부가 주도했다. 신군부는 5·18을 불순세력의 선동에 의한 폭동으로 간주하고 담화문 등을 통해 이런 사실을 퍼뜨렸다. 2017년 국방부 특조위가 활동하는 과정에서 당시 군사정부의 조직적인 5·18 왜곡의 일부가 처음 드러났다. 1985년 국방부 주도로 설립된 ‘80위원회’는 ‘광주사태 백서’를 발간하기 위해 군 관련 자료를 모았다. 계엄군의 진압작전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관련 서류 곳곳에서 왜곡 흔적이 발견됐다. 1988년 광주청문회를 앞두고 설립된 ‘511연구위원회’도 광주에 투입된 각 군의 전투 상보 등을 첨삭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밖에 오인 사격에 따른 계엄군의 사인을 시민군 발포로 숨진 것으로 위장하거나 사망자 검시 보고서 등을 조작해 ‘지휘권 이원화’나 최초 발포 명령자를 숨기는 데 급급한 사례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같이 정부가 왜곡한 각종 자료는 2000년대 이후 인터넷 확산 바람을 타고 보수 매체 등에 그대로 노출돼 역사를 비틀었다. 이들 내부 집단에서는 이런 정보를 바탕으로 5·18을 ‘북한군이 일으킨 폭동’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터넷에는 아직도 이런 정보가 흘러 넘치고 있다. ●광주시 역사 왜곡 대응 전담팀 운영 광주의 광역·기초 의원 90여명은 최근 합동결의대회를 열고 극우 보수단체의 금남로 집회 금지와 5·18 왜곡·날조 금지를 촉구하는 특별법의 조속한 처리를 촉구했다. 이들은 “일부 극우 세력들은 5·18을 지속해서 비방·폄훼하면서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마저 왜곡하는 몰지각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주시는 역사 왜곡 대응 전담팀을 꾸려 운영하고 있다. 이 지역 4·15 총선 당선자들도 최근 21대 국회에서 ‘5·18 왜곡 처벌법’을 발의하기로 했다. 이기봉 5·18기념재단 사무처장은 “일부 인사들이 5·18을 막말 수준으로 폄훼하는 것은 언론 및 표현의 자유와 무관하다”며 “악의적 왜곡은 법으로 엄단하고 5·18의 조속한 진상 규명과 헌법 전문 반영을 통해 아무도 시비를 걸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기 전남대 5·18연구소장은 “5·18에 대한 기억의 공유가 선행되지 않는다면 그 정신의 전국화는 영원히 이뤄질 수 없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정의연 “각색·왜곡 보도…적폐세력의 인권운동 탄압”

    정의연 “각색·왜곡 보도…적폐세력의 인권운동 탄압”

    “결산서류 공시에 문제 없어” 해명후원금 회계 관련 논란에 휩싸인 ‘일본군성노예제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가 12일 추가 해명과 함께 의혹을 제기한 언론 매체를 비판했다. 정의연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회계 관련 의혹을 제기한 언론 매체를 거론하며 “기자회견에서 충분히 설명한 내용조차 맥락을 삭제한 채, 또다시 왜곡하거나 각색해 보도함으로써 정의연에 마치 심각한 도덕적 문제가 있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2015년 한·일 합의 당시 외교부 관료들을 인용한 일부 보도에 대해 “한일 합의 당시 정대협이 ‘진전 없다’는 (박근혜 정부의) 성의 없는 답변에 항의하고자 요청했던 면담을 ‘15회에 걸친 피해자 의견수렴’으로 호도하며 윤미향 전 정의연 대표를 거짓말쟁이로 몰고 있다”고도 주장했다. 앞서 한 매체는 정의연이 2018년 서울 종로구의 맥줏집에서 모금 행사를 열고 난 뒤 ‘모금사업’ 명목으로 사용한 3300여만원의 지급처를 맥줏집 운영회사로만 명시했다고 보도했다. 이에 대해 정의연은 “이는 50개 지급처에 140여건 지급한 모금사업비 지출 총액이고, 사업비 지출금액이 가장 큰 후원의 밤 사업비용 965만 4000원 지급처인 회사를 대표 지급처명으로 입력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기부금품의 지출명세서 구분 코드는 장학, 학술, 사회복지, 문화, 기타와 각종 경비로 지출되는 인건비, 임대료, 기타로 구분되는데, 정의연 사업 특성상 장학사업을 제외한 모든 사업비용 지출은 33번 ‘기타’로 구분된다”며 “수혜인원을 ‘9999명’으로 기재한 것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비를 입력할 때 사용되는 통상적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정의연은 끝으로 “피해자 증언을 흠집 내고 위안부의 역사적 진실을 부정하는 국내외 세력과 2015년 한일 합의 주역들인 적폐세력이 피해자의 말을 의도적으로 악용해 ‘진실공방’으로 사태 본질을 호도하는, 인권운동 전체에 대한 탄압으로 규정한다”고 강조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인터뷰]의혹에 입연 윤미향 “딸 유학비 말 바꾼적 없다”

    [인터뷰]의혹에 입연 윤미향 “딸 유학비 말 바꾼적 없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고 수요집회를 이끌었던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일본군 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 전 이사장)가 자신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윤 당선자는 1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의 한 카페에서 서울신문과 만나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할머니들에게 알리지 않았다는 주장은 사실무근이며 딸의 유학비와 관련해 한 번도 말을 바꾼 적이 없다고 해명했다. 이번 일에 책임지고 비례대표에서 물러나라는 일각의 요구에 대해 “사퇴는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일축했다. 다음은 윤 당선인과의 일문일답.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 내용에 대해 야당에선 윤 당선인이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의혹 제기했다. ‘당일 아침 알았다’에서 ‘합의 전날 알았다’로 말이 바뀌었다는 의혹도 있다. 이와 관련해 무엇이 사실인지 말씀해달라. 2015 한·일 합의 전체 내용은 2015년 12월 28일 당일에 기자회견을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총리로서 사죄, 국고 거출 세 가지가 미리 언론에서 보도되고 있었다. 그 내용을 그대로 통보받았다. 2015년은 해방 70주년으로 우리에게 굉장히 의미있는 해다. 이 해에 위안부 문제 꼭 해결하자는 중요한 결의를 다졌고, 한국정부에게도 “올해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피해자들도 여러차례 촉구했다. 그래서 그 해에 한일 국장급 협의가 서울과 도쿄에서 여러번 열렸다. 처음에는 외교부에게 주도권이 있었고, 그때 마다 우리가 외교부에 면담을 요청 했다. 일본과 접촉했다고 하는데, 국장급 협의를 열었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이 논의됐는지, 피해자가 전달했던 요구가 해결됐는지 등을 물어보고 촉구했다. 피해자들이 전달한 이야기는 2014년에 대만에서 열린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채택한 ‘일본정부에게 요구하는 제언’이라는 요구서 내용이다. 요구서에는 일본 정부가 해야할 일이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첫 번째, 역사적 사실 인정해야 한다. 그 사실 안에는 위안소 운영 등 이것이 범죄라는걸 인정하라는 내용이 있었다. 그 인정 위에 공식 사죄하라, 사죄하되 고노가 사과하고 아베가 번복하는 이런 방식이 아니라 다시 번복할 수 없는 방식으로 사죄하라고 얘기했다. 사죄 증거로 배상도 하라고 했다. 배상은 한국사회에서 헷갈리는 측면이 있는데 일본정부가 준 10억엔은 배상금이 아니다. 그건 위로금이다. 화해치유재단의 기부금이다. 배상은 법적책임을 인정하고 주는 금전을 말한다. 그 안에는 금전적인 배상도 있지만 비화폐적 배상도 있는 굉장히 포괄적 용어다. 그래서 배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역사교과서에 기록해야 한다는 요구도 같이 했다. 한국정부에도 숱하게 전달했고, 일본정부, UN에도 전달하고 미국정부에도 전달했다. 이 문제에 미국정부도 관련 있다고 우리가 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회에서 활동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내용이 반영됐는가를 계속 확인하고, 또 확인했어야 했다. 우리를 배제하고 우리 요구 없이 그냥 체결되면 또 다시 역사는 거꾸로갈 것이란 걸 알고 있었다. 그 때마다 외교부 담당 국장은 “일본정부가 전혀 변화가 없다”, “피해자의 요구에 진전이 없다”고 계속 답변했다. 그래서 ‘아, 이번에도 힘들구나’라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외교당국자 회의가 열리지 못 했고, 8월 아베담화가 나왔다. 위안부의 ‘위’자도 없고, 우리나라에 대한 식민지배 책임도 언급이 없었다. 오직 서구에 대한 반성과 사죄만 있었다. 그 때 당시 ‘아, 광복 70주년이지만 올해도 그냥 지나가나보다. 우리는 내년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이야기를 할머니들과 함께 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실시한 TF팀 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합의 주도권이 외교부에서 청와대로 넘어간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이병기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일본 총리 관저에서 합의를 긴밀하게 진행하기 시작한 시기다. 그 땐 외교부 당국자 회의가 안 열렸다. 우리는 몰랐다. TF 결과보고서에 나온 내용이다. 2015년 12월 24일 밤에 연내 타결을 목적으로 기시다 외무상이 방한한다는 일본발 뉴스가 떴다. 외교부에게 확인했는데 모른다고 하더라. 지금 생각해보면 모를 수밖에 없었다. 외교부가 아니라 청와대가 주도했을테니까. 그 후 뉴스에 일본 정부가 책임을 인정하고 사죄할 것이다, 국고 거출 등의 얘기들이 언론에 조금씩 보도가 됐다. 여기에 덧붙여 한일 국장급 협의가 12월 27일 열릴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27일 오후에 한일 국장회의가 열렸다. 그 때 계속해서 언제 끝나는지 물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다 끝난 밤에, 도저히 누군가와 물리적으로 의논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밤에 언론에 나온 통보 그대로, 엠바고 상태로 통보받았다. 일본 정부 책임 인정, 사죄, 국고 거출. 기밀유지 조건이었다. 저는 기밀유지 조건에 ‘네’라곤 했지만 그 내용을 기밀유지 할 순 없었다. 그래서 법률가에게 연락하고, 일본에도 연락하고, 내일 이런 내용이 발표될 것이라고 말했다. 아침 일찍부터 법률가들을 모아 놓고 통보받은 내용을 가지고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의논했는데 아무도 이것만으로는 결정할 수 없다는 말이 나왔다. 그 때 제가 이용수 할머니도 대구에서 올라와 달라 요청해서 이용수 할머니도 논의 자리에 같이 있었다. ‘아직 이것으로 판단할 수 없다. 기자회견을 보자’해서 다 같이 기자회견을 봤다. 그런데 윤병세 장관이 “이것으로 불가역적인 해결이다. 국제사회에 비난과 비판을 자제하겠다. 소녀상 철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발표했다. 그 때 ‘아, 국민도, 언론도, 우리도 다 속았구나’라고 생각해서 즉각적으로 성명을 발표했다. 협의하지 않았다. 11차례 만난 것? 15차례 피해자 접촉? 그건 우리들이 합의에 대해 요구하고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서 만난거지 그들이 어떻게 하겠다고 설명한 자리가 아니다. 그리고 피해자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채 2015 한·일합의가 채택되고 일방적으로 발표됐다. 그 자리는 어떻게 진행되나 확인하는 자리였지, 공유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외교부의 대답은 늘 “진전이 없다”는 대답이 전부였다. 어떻게 일본정부가 하고 있다든가 구체적인 건 우리랑 논의하지 않았다. 김복동 할머니가 살아계실 때 한 말이 무엇이냐면 “명절 때 인사 온다고 해서 오라고 했더니, 명절 방문한 것도 15차례에 포함돼 있었어? 그럼 거부했어야 됐네?”였다. 그 정도로 2015 한·일 합의 이후 그들의 변명은 형편이 없었다. 2015 한·일합의는 일본 시민사회에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굴욕적이었고, 피해자들에게도, 관련 단체에도, 인권을 위해 일해온 세계 시민사회에도 문제적인 합의였다. TF 결과에서 이면 합의까지 있었다는 것도 드러났다. 2015 한·일합의 때문에 화해치유재단 해산된 작년까지 제자리걸음이었다. 늘 일본정부는 “한·일합의로 다 끝났다. 왜 골대를 옮기냐”고 했고, 우리 정부는 합의 때문에 한 마디도 말 못했다. 우리나라는 세계 어딜가든 그 합의 때문에 소녀상 철거 움직임들, 위안부는 강제연행 아니다, 독도는 일본땅이라 하는 일본의 맹공격에 대응하지 못 했다. 이런 일들이 그 합의 때문에 있었는데 그걸 사전에 협의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정의기억연대 후원금 유용에 대해서도 야당이 몰아붙이고 있다. 호프집(옥토보훼스트) 맥주값 비용으로 3339만원 지출 처리됐는데, 그 호프집에선 430만원만 받았다고 한다. 차이가 많이 난다. 해명이 필요해 보인다. 금액을 입력하는건 회계 담당자가 한다. 제가 추후 확인해보니까 입력하는 칸이 하나밖에 없더라. 그럼 ‘옥토보훼스트 외’라 쓰고 총체적으로 입력하는 거다. 1년에 한번 후원회를 연다. 이건 다른 시민단체도 마찬가지다. 옥토보훼스트는 그날만큼은 자신들의 이익을 만드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맡기지만 모든 시스템은 그대로 옥토보훼스트가 그대로 제공한다. 요리사, 자원봉사자 등을 다 옥토보훼스트 측이 제공한다. 한 해만 한 것이 아니다. 위안부 문제를 내걸었을 때 후원이 어렵다. 보통 이렇게 장소를 잘 안 빌려준다. 그런데 옥토보훼스트가 빌려줘서 그동안 해왔다. 430만원 금액 포함해서 후원회 개최에 사용된 돈이 3339만원이다. 그 날 문화행사 진행비, 감사패와 현수막 제작비, 추가적 물품 구입비, 티켓비 등 행사 하나를 하기 위해 여러 비용이 든다. 그 총비용이 3339만원이다. 그런데 마치 술집에서 하루 밤에 쓴 것처럼 보도가 나갔다. -정의기억연대는 인력부족에 따른 회계 오류를 인정했다. 공격 많이 받는 만큼 더욱 철저히 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 남는다. 어떤 한계가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정의기억연대에서는 회계를 한 사람이 하고 있다. 총 인원이 8명밖에 없다. 한 사람이 영수증 발급부터, 기부금 신청하고 정부 보고하고 모든 일을 다 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입력을 세밀하게 하지 못했을까 싶다. 대부분 NGO가 그렇지만 사람을 인건비 문제로 사람을 많이 고용하지 못 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활동 중점은 운동을 하고, 이슈를 만들고 피해자를 지원하고 그런 일들을 계속 해야했기 때문에 회계에 부족함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보완해 나가면 된다. 횡령은 아니라는 것은 보면 알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몰아가는 것은 의도적이다. 혼자서 하기도 버거운 일을, 그렇게 철저하게 홈택스에 입력하고, 보고하고 홈페이지에도 전체 일년 회계 결산을 보고하고 과정을 거치는데 마치 횡령있는 것처럼 말하는 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이란 생각 가질 수밖에 없다. 활동가들에게 어떤 잘하라는 격려는 좋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이런 우려를 하지 않도록 보완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은 좋다. 그런데 활동가들의 활동까지도 폄훼하는 그런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 할머니들에게도, 활동가들에게도 상처를 주지않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정의연 전 이사장 월급이 최저임금보다 높은 점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도 있다. 제가 정대협 간사를할 때는 1992년도에 30만원을 받았다. 그 다음 50만원. 몇 년 지나고 80만원을 받고, 2002년도에 150만원을 받았다. 그리고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해서 270만원을 받다가, 300만원을 받았다. 이사회에서 350만원으로 작년에 올려줘서 거부했다. 그래서 300만원을 받았다. 그게 정대협 30년 일했던 제 활동비다. 그 외 교통비를 쓰거나 이런 비용들은 활동비에서 썼다. 교육하거나 연대활동 하러갈 때 그냥 가능하면 내 활동비로, 사비로 썼다. SNS에서 저는 유급활동가라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차례 공개했다. 여러분들 후원이기에 저는 이렇게 열심히 한다고 공개했고, 그리고 25년 간 수요일 책쓰고 그 돈은 박물관에 기부하기도 하고 나비기금에 기부하기도 했다. 가능하면 제 활동을 활동가로서 살고싶어서, 유급활동가긴 하지만, 그렇게 해왔다. -5년간 소득세 643만원 납부하신 걸로 나온다. 계산하면 부부 각자 연봉이 최대 2500만원대라는 계산이 나오는데, 축소 신고 한 것 아니냐는 비판 있다. 이에 반해 재산은 재산 8억원 신고했다. 시부모, 친정부모의 재산 합쳐 8억이라는데 원래 재산은 2억 정도인 것이 맞나? 맞다면, 일반적으로 이렇게 하지 않는데 왜 그렇게 신고했나. 국회의원 후보를 신청할 때 재산 신고하는 칸에는 부모님들까지 다 쓰게 돼 있었다. 그래서 저희 부보님 아파트, 평생을 해서 산 아파트와 지금 쓰는 차,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와 승용차, 시어머니가 사는 방 한 칸짜리 빌라가 다 포함된거다. 다 안 써도 되는줄은 몰랐어. 쓰라고 하니까 충실하게 다 쓴 거다. 당에도 어떤 내역인지 설명했다. 신고서를 쓸 때 당에서도, 선거관리위원회도 이 내용들을 안 써도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칸이 있어서 쓴 거다. 혹시 잘못될 수 있으니까 다 선관위에서 감수받았다. 소득세는 제가 정확하게 어떻게 산정되는지 모르겠는데, 세무서 가서 떼어온 그대로 제출한거다. 평소 소득세는 정의연에서 활동비 받는 것, 가끔 원고를 쓸 때 받은 것에 대한 세금 포함된 것이니까 어떻게 하는지는 모른다. 소득세를 직접 신고하는 건 아니지 않나. 소득세는 급여를 받을 때 사무실에서 처리한다. 급여를 받으면 세금이 이미 떼진 상태에서 오지 않나. 그렇게 받았지, 그게 어떻게 산정돼서 하는지는 모른다. -딸 UCLA 유학비용을 처음엔 전액 장학금이라 했다가, 나중엔 남편의 배상금으로 해명. 이를 번복했다고 비판하는 사람들 있다. 제가 한 번도 그렇게 번복한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말이 됐는지 모르겠다. 제 딸이 처음부터 UCLA에 간 건 아니다. UCLA에 가기 위해 언어도 해야 하고, 피아노 전공이라 그와 관련한 공부도 미리 해야 했다. 그 공부를 시카고에서 일년 간 전액 장학금을 받고 했다. 그래서 그걸 SNS에 올린적이 있다. 자랑하려고. 딸을 칭찬하려고. 딸이 시카고에서 일년 동안 공부하는데 전액 장학금 받게 됐다고 썼다. UCLA 논란 나왔을 때는 언급 필요성도 못 느꼈다. 왜 제 딸아이가 무슨 돈으로 공부하는지를 언급해야 하나. 이미 남편도, 저도 경제생활을 하고 있고, 저희 가족도 탄탄하다. 어제 소명한 것처럼 저희는 2018년에 큰 배상받은 것이 있다. 그 배상금은 제 아이가 남편이 감옥에 있을 때 태어났고, 그래서 이 배상금은 우리 것이 아니라 너의 것이라고 딸에게 말했다. 그 때 딸이 UCLA에서 공부하고 싶은데 장학금 제도가 어렵다고, 어떻게 할지 물었다. 그 때 이 돈이 있으니까 이 돈으로 공부했으면 좋겠다, 너의 꿈을 키워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대로 학비로 썼다. 딸이 이번 6월에 졸업인데 돈이 충분하다. 향간에 UCLA가 얼마다? 이런 얘기 도는데 그것도 다 소명했다. 기숙사비까지 다 합쳐도 8만 5000불이다. 딸이 2018년 9월부터 했는데 미국은 한국과 학기제가 달라서 올해 6학기를 다 마쳤다. 6학기가 총 석사학위 기간이다. 다 합쳐도 8만 5000불 정도다. UCLA와 시카고는 별도다. 일년 동안 준비하는 과정이 있고, 거기에서 장학금을 받아서 공부했다. 그 공부 중에 UCLA를 지원했는데 합격했다. 장학금으로 할 수 있냐고 물어보니 장학금은 어렵다고 하더라. 그래서 이 돈으로 학비를 하자고 해서 쓰고 있다. -오늘 아침에 페이스북 글을 봤는데 조선일보 기자가 딸 취재 들어 갔다고 썼더라. 조선일보 반박은 그런 기자가 없다고도 하던데 어떤 일이 있었나. 카카오톡 메시지 그대로 친구가 보내왔다. 친구가 보낸 메시지에 조선일보 기자라고 하는 이름 공개 했다. 그 기자가 음대생을 찾고 있다, 그래서 너를 소개를 했다라고 하더라. 그 친구에게 와서 내 딸이 어떤 차를 몰고 다니냐, 어디서 사느냐, 놀면서 다니느냐를 물어봤다고 하더라. 이 친구가 집은 기숙사라 학교 근처고, 차는 없고 걸어다닌다고 얘기했다 하니까 “그냥 그렇게 공부만 하고 다니는 친구군요”하고 끊었다고 하더라. 소개한 친구는 조선 기자라고 소개 했고, 그 메시지에도 그렇게 써있다. -지인통해서 취재가 들어온건가? 조선일보 측에서 딸 친구를 취재하고 다니는 거다. 그리고 채널A 기자는 오늘 세 명이 저희 집을 방문했더라. 문은 안 열렸지만 세 명이 들이닥쳤다. -집에 남편분이 있었나? 딸이 있었다. 딸이 “엄마 집에 오지마”라고 하더라. 친구 취재 사건 터졌을 때 딸이 “나 때문에 엄마에게 무슨 지장있어?”라며 걱정하더라. 굉장히 성실하게 공부하는 아이다. 내가 많이 도와주지 못 했고. 그렇게 스스로 자기가 개척해서 하고 있다. -보수진영의 프레임 공격이라고 생각하나. 정의연에서는 왜곡보도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하는데, 당선자 본인도 법적 대응할 계획있나. 정의연에서 하고 있으니까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를 처벌하고 그런 것보다는 그렇게 활동가와 NGO를 공격하는, 악의적으로 왜곡해서 보도하는 것에 대해서 재발 방지 차원에서 법적인 활동 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충분할 것이라 생각하고 저는 차분하게 어떻게 하면 국회활동을 잘 해나갈 것인가를 준비하고 공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퇴를 고려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던데 그러면 안 된다. 사퇴는 돌아가신 할머니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또 저를 지지해주는 수많은 세계 각지 동포들, 연대해주신 분들, 그 분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해외 동포들은 비례밖에 못 찍지 않나. 어떤 분은 윤미향을 당선되게 하려고 버스를 몇 시간씩 타고 가서 투표했고, 비행기를 타고 가서 투표했다. 그 분들의 뜻은 국회 가서 그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것을 해결해 달라는 취지로 느껴진다. -이용수 할머니와 무슨 오해있었나. 만나서 풀었나. 지금 할머니와 연락이 잘 안 되고 있다. 일요일에 만나려고 할머니가 계신다는 곳으로 갔는데 결국 못 만나고 올라왔다. 지금은 할머니가 왜 그런지 안다.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 때문인가?) 저는 누가 뒤에 있고 그런 것보다도, 이용수 할머니 신고 전화를 제가 받았다. 그 때 간사는 저 혼자였고, 수많은 활동가들이 함께 했다가 그만 두고 떠나는 그런 일을 겪었다. 그런데 끝까지 할머니 곁에서 함께한 사람은 나였다. 그런 내가 국회로 떠난다니까…. 처음에 “국회 가서 할머니랑 같이 할거에요”라고 할 땐 할머니가 굉장히 신나하셨다. 그런데 심경 변화가 생긴 것 같다. “이 문제 해결하고 가라”고 하시더라. 제가 할머니한테 웬만하면 “네, 할머니 알았습니다”라고 하는데 이 문제는 이미 비례도 당선됐고, 또 국회로 가는 것을 저는 떠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국회에 가서 이 문제를 계속 함께 한다고 생각했는데 할머니는 계속 “이 문제 해결하고 가” 이렇게 이야기 하셨다. 그래서 “할머니 아니에요, 봐주세요”라고 했는데… 할머니 입장에선 배신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문제는 내가 풀어야 하고, 앞으로 활동에서도 지속적으로 할머니랑 만나려고 시도할 것이다. -최용상 가자평화인권당 대표와 관련해서, 수요집회를 중단해야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펴는데 어떻게 대응하실 것인가. 수요시위를 계속 해야 한다. 왜냐면 그동안 돌아가신 분의 약속도 그렇고, 수요시위 시작할 때 이번 정부에게 우리의 이야기는 “해결될 때까지 수요시위는 계속 된다”였다. 그 약속지키기 위해서 포기하지 않고 해왔고, 오히려 이번 일로 수요시위 나오겠다는 분도 많다. 감사한 일이다. 최용상씨 발언은 일본정부가 원하는 발언이다. 왜 그렇게 스피커가 되려고 하는지 가슴이 아프다. -최용상 대표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은? 이미 그 분에 대해서 많은 말을 했다. 더 이상 피해자와 활동가를 분열하려는 어떤 활동, 언행을 중단하고 태평양 피해자 유족답게 일본정부에 강제동원의 피해를 해결하려는 노력에 함께 손잡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고 싶다. -김복동 할머니 장학금이 정의연 이사 자녀에게 지급된 것에 대한 입장은 무엇인가 이건 칭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할머니는 평소에 늘 약자들에게 관심이 있었다. “해고된 노동자 힘내라. 쨍하고 해뜰날 있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라란 이야기를 해고된 노동자에게도 하시고, 세월호 희생자들 앞에서도 힘내라 하시고, 평화운동, 통일운동, 여성운동 늘 지지하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재일조선학교 문제뿐만 아니라 할머니의 유지를 받드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할머니는 항상 나는 희망을 갖고 살았다고 말씀했기 때문에 희망을 받드는 일을 하자고 했다. 할머니가 남기신 기부금으로 한국의 시민사회 단체 자녀들, 사실 활동가들이 굉장히 어렵다. 그 활동가들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는 사업을 해서 희망을 주자고 생각했다. 김복동이 아이들의 학업 속에 살아 있다는 것, 죽었지만 죽지 않았다는 것 보여주자는 취지로 장학금을 줬다. -국회에서 어떤 활동 할 생각인가. 앞으로 위안부 운동의 방향은 무엇인가. 저는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 지금 한일간에도 분쟁이 있고 갈등이 있지 않나. 이것을 어떻게 해결 할까 고민하고 있다. 30년 동안 활동을 해온 만큼 국회의원 중에서 가장 일본과 일본정부, 일본시민사회를 잘 안다고 생각한다. 가장이라기엔 어폐가 있지만 그래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지혜로운 방법으로, 부드러운 방법으로 어떻게 분쟁을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저는 평화를 만들고 싶다. 국회는 입법기관이지 않나. 법을 활용해서 아직 완료되지 않은 진상규명, 교육 체계와 해외 각지에 이 문제 알리는 역사 인식의 확산, 그리고 일본정부가 계속 일본의 역사 인식을 홍보하는데 우리도 따로 한쪽에서 목소리를 내서 균형감 있게 인식하고 판단해서 알릴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노력 하고 싶다. 그 노력을 위해서 국회로 가겠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이번 일로 인해서 어느 누구도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이용수 할머니에게 상처를 주는 언행을 하거나 그런 인식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상처를 치유하는 노력을 함께 해줬으면 좋겠다. 국회에 가서도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하고 응원해 달라. 이성원 기자 lsw1469@seoul.co.kr 손지민 기자 sjm@seoul.co.kr
  • “동학농민혁명 발상지 고창, 국가적 차원서 성지화 작업 필요”

    “동학농민혁명 발상지 고창, 국가적 차원서 성지화 작업 필요”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인 고창 성지화 작업을 국가적인 차원에서 추진해 왜곡된 역사의 면모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유기상 전북 고창군수는 11일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무장봉기(무장기포)가 제7차 교육과정 한국사 교과서에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으로 수록돼 역사적 사실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무장은 고창의 옛 지명이고 기포는 동학의 조직인 포(교구 또는 집회소)를 중심으로 봉기한 것이다. “고창 동학농민혁명사 재조명 과업의 첫 번째 사명인 무장봉기 역사교과서 수록이 126년 만에 이뤄져 그 의미가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동학농민혁명 자긍심 찾기 노력이 이제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그는 “고창 동학농민혁명 성지화, 무장기포지·전봉준 장군 생가터 국가사적 등재, 동학농민혁명 역사벨트 조성을 적극 추진하겠다”면서 “동학선양사업을 의향정신을 살린 자랑스러운 군민운동으로 승화시키겠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유 군수와의 일문일답.-‘고창 무장봉기가 동학농민혁명의 시발점’이라는 내용이 새 학기 고교 한국사 교과서 8종에 모두 수록됐다. “동학농민혁명의 시작이 1894년 3월 20일 고창에서 발생한 무장봉기라는 사실이 역사학계에서는 이미 정설이었다. 한국사 교과서 수록으로 동학 전문연구자와 고창군민 등 소수만 알던 역사적 사실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는 획기적인 계기가 됐다. 이로써 그동안 전국 각지에서 빚어졌던 동학농민혁명 시발지 논란은 정리됐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달 25일 공음면 구암리 구수마을 동학농민혁명 기념탑에서 선열들에게 교과서를 봉정하는 행사를 가졌다.” ●‘보국안민’ 혁명의 목표 최초로 제시 -고창 무장봉기가 동학농민혁명에 미친 영향은. “조선 후기에는 지역적 한계를 넘지 못한 수많은 민란이 있었다. 무장봉기는 혁명의 이념이자 지표인 ‘무장포고문’과 농민군 행동강령인 ‘4대 강령’을 정립 발표함으로써 농민혁명의 틀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보국안민’이라는 혁명의 목표가 최초로 제시됐고 지역적 한계를 벗어나 전국적인 대규모 항쟁으로 커졌으며 봉건제도 개혁의 시발점이 됐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민족·민중항쟁의 근간으로 평가받고 있다.” -고창 무장봉기를 부각시키기 위한 과정과 지자체의 노력은. “자주와 평등의 위대한 동학농민혁명 정신을 고창군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 계승·발전시키기 위해 학술·연구·문화사업을 하고 있다. 동학기념사업회, 동학유족회 등 지역 단체와 울력해 매년 학술대회를 열고 무장기포기념제·무장읍성축제를 개최한다. 기념제와 축제는 ‘동학농민혁명은 무장기포지로부터, 3월 20일의 함성은 전국적인 봉기로’라는 주제로 개최된다. 이는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애국·애족 정신과 무장기포일의 참다운 의미를 널리 알리는 한편 전국적인 축제로 승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기념제에서는 동학농민혁명군들이 읽어 내려갔던 무장포고문을 낭독하고 농민군이 걸었던 진격로 걷기 체험행사를 한다. 축제 기간에는 무장현 관아·읍성 무혈입성 재현 등을 통해 역사적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전북 정읍시가 동학의 시발점은 무장봉기가 아니라 ‘고부봉기’라며 역사왜곡 바로잡기에 나서기로 했다. “역사에 대한 평가는 연구자들에게 맡겨야 한다. 이제 동학농민혁명은 지역을 넘어 한국사에 빛나는, 세계 속의 혁명으로 재평가돼야 한다. 지역주의가 발목을 잡는 것은 선열들이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이다.” -한국사 역사교과서에 ‘동학농민혁명’을 ‘동학농민운동’으로 기술했다. “동학농민혁명의 대의와 의미, 가치를 생각할 때 교과서에도 운동이 아닌 혁명이라고 기술해야 한다. ‘실패한 혁명’이라는 일부의 평가절하를 극복하고 혁명을 운동으로 표기한 현행 교과서를 개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대접주 손화중의 근거지… 혁명 기반으로 -고창에서 대규모 농민봉기가 발생할 수 있었던 배경은. “조선 말기 고창에는 판소리 사설로 사회적 모순과 봉건제도 타파를 꿈꾸는 민중들의 사상적 깨우침이 깔렸었다. 특히 고창은 동학농민혁명 당시 가장 강력하고 중심적인 활동을 했던 전봉준의 태생지이자 대접주 손화중의 근거지였다. 전봉준이 고창 출신이었기에 협력기반이 두텁고 호남에서 가장 세력이 컸던 손화중포의 인적·물적 동원능력이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도소(도접주들의 총집회 기관) 거소에는 주물공장, 대장간, 마방 등이 있고 보부상을 비롯한 장꾼들이 드나들며 정보 공유 및 조직이 활성화돼 혁명을 시작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무장봉기가 일어난 공음면 구수마을의 넓은 충적지는 수천의 동학군들이 집결해 훈련하기 쉬운 지형이었고 석교 세창과 장터 포구는 군수품과 군량미 조달이 쉬운 지리적 조건을 갖췄다.” -고창군과 동학농민군을 이끈 전봉준과의 관계는. “고창이 전봉준 장군의 출생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간 정읍 고부, 정읍 태인, 전주 등 여러 설이 분분했지만 많은 연구자가 전봉준의 출생지가 고창읍 죽림리 당촌마을임을 밝혀냈다. 현재 생가터를 사적으로 지정하고 전봉준 장군 동상을 세우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단체장으로서 동학농민혁명에 대한 의의와 평가는. “동학농민혁명은 아래로부터 민중혁명이라는 측면에서 1만년 민족사의 가장 빛나는 한 장면이다. 제대로 조명되면 세계 4대 혁명의 맨 앞자리에 평가될 역사다. 동학농민혁명은 자주와 평등, 민주적 절차를 확립하고자 했던 근대 민중운동의 효시로 참여자와 유족, 기념사업, 발상지 고창군의 상징성 등이 높이 평가돼야 하나 일제와 군사정권 등에 의해 심각하게 왜곡되고 평가절하됐다. 126년이 지난 이제라도 동학농민혁명 고창 성지화 작업이 국가적 차원에서 원활하게 진행돼 자주적인 우리 역사의 흐름을 계속 이어 가야 한다.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기리며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당당하게 지켜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창은 의향… 청소년 역사교육의 장 활용 -동학농민혁명이 고창군의 정체성에 미친 영향은. “고창은 의향이다. 정의로운 고창군민들은 불의를 보면 목숨을 걸고 싸웠다. 동학농민혁명의 발상지로서 항일의병 운동, 독립구국운동, 최근의 촛불시위에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임진왜란 3대 대첩에 고창·무장·흥덕 의병이 모두 참여했다. 임진·정유 왜란 때도 고창 흥덕 남당회맹단 등의 의병이 일어났다. 고창 성내 출신 근촌 백관수 선생은 당시 서른의 나이로 일본 유학생 400여명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서를 낭독하는 거사를 주도했다. 그 독립선언서의 초안이 국내로 전달돼 3·1운동을 촉발시켰다. 국가보훈처에 등록된 국가유공자도 90여명으로 전북에서 가장 많다.” -동학농민혁명 선양사업 과제는. “고창 동학농민혁명 성지화, 무장기포지·전봉준 장군 생가터 국가사적 등재, 동학농민혁명 역사벨트 조성을 적극 추진하겠다.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과 국가기념일을 제정하고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아쉽다. 혁명의 정신을 계승하고 위상을 바로 세우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동학농민혁명을 세계 혁명사의 한 축으로 알리기까지 아직 갈 길이 멀다.” -동학농민혁명을 지역발전과 연계 방안은. “전봉준 생가와 무장기포지를 역사문화유적지로 가꿔 청소년들의 역사교육과 체험의 장으로 활용할 예정이다. 세계문화유산인 고인돌과 선운사, 고창읍성 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 관광벨트로 육성하겠다. 강인한 생명력을 지닌 민초를 상징하는 녹두, 추운 겨울을 이겨 낸 청보리를 주제로 한 음식 등 동학농민혁명 콘텐츠를 개발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도모하겠다.” 고창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사설] 위안부 단체 내분 위기 조기 수습해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으로 촉발된 위안부 단체의 내분 양상이 곤혹스럽다. 이 할머니는 지난 7일 대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의기억연대(정의연·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기부금 사용이 투명하지 않다며 주한일본대사관 앞 수요집회 불참을 선언했다. 생존자가 18명에 불과한 피해 할머니 중 비교적 건강해 위안부 단체의 핵심으로 활동해 온 이 할머니가 제기한 회계 부정 의혹에 28년 역사의 수요집회 불참 선언이라 충격적이다. 정의연은 회계 부정은 있을 수 없다고 부인했다. 정의연은 “돈이 들어오면 할머니들에게 써야 하는데 쓴 적이 없다”는 이 할머니 주장에 대해 할머니에게 1억원을 건넨 영수증 사진을 공개하고 회계 내역은 국세청 홈텍스에 공시돼 있다고 밝혔다. 정의연 회계 내역을 보면 지난 4년간 정의연은 49억원의 기부금을 받았으며 18%를 피해자에게 지원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세상에 알려진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피해 할머니와 위안부 단체의 노력으로 93년 고노 요헤이 일본 관방장관이 위안부 존재를 인정하고 사과하면서 한일 간 현안이 됐다. 2011년 헌법재판소가 위안부 분쟁을 해결하려 노력하지 않는 한국 정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고 판결함으로써 양국 정부의 협상도 시작됐다. 그러나 2015년 12월 ‘위안부 합의’는 당사자인 할머니의 요구가 반영되지 않았다며 2018년 초 정부가 사실상 파기함으로써 위안부 문제는 여전히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 이 할머니의 주장이 위안부 문제 해결 노력을 후퇴시켜선 안 된다. 그렇다고 이 할머니의 기억이 왜곡됐다는 등의 비난도 적절치 않다. 정의연은 오늘 기자회견에서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로 당선된 윤미향 전 정의연 이사장의 위안부 합의 사전 인지 논란 등 정의연 운영 전반에 대해 의혹이 남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 5·18관련 시민제보 210건, 진상규명조사위에 이관 이관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가 5·18 핵심 쟁점과 관련한 제보 내용을 이관받아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다. 송선태 위원장은 8일 “5·18 참여자 등 시민들이 제보한 내용 210건을 넘겨 받아 조만간 본격적인 조사와 확인작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조사위는 확보한 제보 내용은 2017년부터 최근까지 5·18기념재단이 접수해 정리한 155건(녹취 포함)과 광주시 진상규명신고센터가 제보 받은 55건 등 모두 210건이다. 전두환 신군부의 권력 찬탈용 무력 진압에 따른 피해 사례가 주를 이루고, 가해 사례도 40여 건가량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형별로 보면 ▲행방불명 13건 ▲암매장 48건 ▲헬기 사격 및 발포 37건 ▲과잉 진압 8건 ▲성폭력 6건 ▲기타 98건 등이다. 조사위 전원위원회는 오는 11일 조사 착수 명령을 한다. 조사1·2·3과에 소속된 조사관들이 제보 내용을 분석할 방침이다. 조사1과는 최초·집단발포 경위와 책임자 규명, 사격 피해 현황, 민간인 학살, 암매장, 헬기 사격, 각종 인권 침해 사건 등을 조사해 종합 보고서를 작성한다. 필요할 경우 학살 책임자들에 대한 청문회 관련 업무도 맡는다. 조사 2과는 군 비밀 조직이 자행한 역사 왜곡·은폐·조작 경위, 집단 학살지·암매장지 유해 발굴과 조사에 주력한다. 조사 3과는 북한군 개입설 등을 규명한다. 조사위는 5·18 전후 일자별 상황 재구성을 마쳤고, 각 과별 조사 대상에 따른 계엄군 진압 경위를 구체적로 들여다 보고 있다. 특히 항쟁 전반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모든 부대를 특정한 뒤 광주에 투입된 장병 명단을 확보키 위해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송선태 위원장은 “진실을 고백하는 양심적 증언들은 5·18 진실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며 “마지막 기회인 만큼 당시의 진실이 낱낱이 드러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갖고 조사활동을 펴겠다”고 말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  광주시,5·18 왜곡·폄훼 보수단체 법적 대응 검토

    광주시가 집회금지 행정명령에도 불구하고 광주를 찾아 5·18민주화운동을 폄훼한 보수 유튜버들에 대해 법적 대응에 나선다. 8일 광주시에 따르면 최근 시청앞 등지에서 기자회견 형식을 빌려 집회를 강행한 보수 유튜버들이 5·18유공자에 대한 명예를 훼손한 것으로 보고 ‘5·18 역사왜곡 TF팀’을 통해 법적 대응을 검토한다. 보수 유튜버 10여명은 지난 6일 광주시청 앞 등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5·18민주유공자 명단과 공적조사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들은 회견 내내 고성과 욕설, 모독성 발언을 일삼으며 유공자를 ‘가짜 유공자’로 지칭하거나 ‘폭도’라고 매도하는 등 폄훼 발언을 했다. 5·18단체 회원들이 항의하는 과정에서 물리적인 충돌도 발생했다. 광주시는 집회 대신 기자회견 형식으로 대신한 이들의 행동이 행정명령 위반으로 볼 수는 없지만, 폄훼 발언은 5·18과 유공자에 대한 명예훼손에 해당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광주시 관계자는 “보수단체들에 긴급 행정명령 공문을 발송하자 집회 대신 기자회견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폭도’나 ‘가짜 유공자’ 등 수위가 높은 발언은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만큼 법적 대응을 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했다. 5·18단체 관계자는 “행정명령도 무시한 채 또다시 광주를 모독한 것도 모자라 근거도 없이 5·18유공자를 가짜라고 매도한 보수 유튜버들이 꼭 처벌받도록 조치해야 한다”며 “역사왜곡 처벌 특별법을 하루빨리 통과시켜 왜곡·폄훼 행위를 근절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수단체들이 집회때마다 단골 메뉴처럼 요구하는 5·18유공자 명단과 공적 조서 등 관련 내용은 공공기관 정보공개법과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비공개 대상이다. 광주시와 5월 단체 등은 이들 단체가 이를 알면서도 똑같은 요구를 반복하는 것은 5·18을 흠집내기 위한 것으로 보고있다. 광주 최치봉 기자 cbcho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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