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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허버트 콜 저 「우리는…」 교육·출판계 큰 관심(해외 출판)

    ◎“미 아동문학 왜곡된 역사로 얼룩” 30년간 교사로 재직하면서 「36명의 어린이」 등 20여권의 저서를 통해 어린이들이라도 사려깊고 진지한 토론이 가능하며 이를 통해 자치에 대한 인식을 배우게 된다고 주장해온 허버트 콜이 최근 펴낸 「우리는 바바(미국만화에 나오는 코끼리 주인공으로 어른의 가치기준을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 것을 상징함)를 태워야만 하는가­어린이 대상 문학에 관한 에세이」라는 책이 미교육자와 서적발행인들 사이에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는 이 책이 교육자와 서적발행인들이 미국의 과거를 있었던 사실 그대로 보여주지 않고 미국의 역사를 갈등없이 발전해온 자연적 산물로서 제시하려는 경향에 편승해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다고 비판,저자와 교육자·서적발행인과의 논쟁이 시작됐기 때문이다.저자는 이 책에서 이같은 역사의 왜곡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 1955년 몽고메리에서 발생한 「버스타기 거부」 사건이라고 밝히고 있다. 당시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는 흑인들은 버스에 타면 모두 뒤쪽에만 앉도록 백인과 흑인의자리가 구분돼 있었다.콜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몽고메리 사건은 로자 파크스라는 한 흑인여성이 뒷자리까지 갈 기운도 없을 만큼 너무 피곤해 뒷자리로 가기를 거부했고 경찰이 이를 이유로 그녀를 체포한데 따른 반발로 버스타기 거부 운동이 시작됐다는 것. 그러나 교사들이 이 사건에 대해 로자 파크스를 영웅으로 왜곡시켰을 뿐 아니라 잘못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흑인이나 백인 모두가 이같은 불의에 맞서 버스타기 거부에 동참한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었다.실제로 버스타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흑인 뿐이었다. 콜은 또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해서도 비폭력 투쟁의 이론과 전략을 신봉했던 사람이 아니라 개인적 꿈을 이룩하려 했던 사람으로 설명하면서 킹 목사가 영웅시되는 것도 잘못된 교육 탓이라며 정치적 편견 때문에 현실을 왜곡한 「자족적 수준의 신화」가 더이상 존재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 “한·일 경제마찰땐 정치적 긴장 초래”

    ◎제3차 한·일포럼 주요 논의내용/“왜곡된 민족주의 대두 공동대처/「월드컵 축구」 공동개최 검토할만” 제3차 한·일포럼은 ▲한·일 양국 국내정치·경제·사회 ▲아·태지역에서의 양국 안보 ▲아·태지역에서의 양국 경제 ▲범지구적 문제에 관한 협력 ▲학술·문화교류 등 모두 5개 섹션으로 분과를 나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이 논의는 비공개가 대원칙이다.이는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이 개진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그러나 발언은 무기명으로(한국·일본 등 국명만 표기) 빠짐없이 기록돼 추후 회의록으로 작성된다.특히 양측 회장은 토론된 안건 가운데 참석자들이 공감한 내용을 정부에 정책건의 형식으로 전달하게 된다. 각 섹션에서 다루는 주요 내용을 요약한다. ▷양국의 정치·경제·사회◁ 한·일 양국은 똑 같이 커다란 정치적 변혁기를 맞고 있다.한국에는 96년 총선거와 97년 대통령선거가 예정돼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가속화 되고 있다.일본도 중의원 소선거구제 도입에 따라 야당이 통합되고,혁신세력이 뭉치는 등 신당 창당 움직임이 활발하다.이런 상황은 불가피하게 양국에서의 정치적 불안정을 초래할 것이다.이 과정에서 주의할 것은 양국민이 정치인들에 의해 오도된 민족주의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일본의 과거 반성을 외면하는 일부세력은 왜곡된 민족주의를 표출하는 것이다.양 국민간·사회간 이해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역시 민간의 교류가 늘어야 한다.물론 지난 30년간 민간 교류는 양적으로 크게 늘었다.그러나 이제 이를 질적으로 심화시켜야 한다.이런 취지에서 청소년간의 교류를 위한 특별기금을 조성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지난 30년간 한·일 관계 증진을 반영한 한·일 우호협력조약의 체결도 검토할만 하다. ▷안보관계◁ 냉전이후 동북아 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한반도에 지속적이고 안정된 평화체제를 확립하는 일이다.북한이 동북아 질서에 편입하도록 일본을 비롯한 관계국은 협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핵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일간의 협조관계는 평가할만 하다.한·일 양국은 또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최근 긴장상태에 있는중국과 대만·미국과 중국 관계가 조속히 정상화되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경제관계◁ 무역을 중심으로 양국 경제관계는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그러나 수평적인 산업협력관계라는 차원에서 보면 아직 만족스럽지 못하다.특히 최근들어 한국의 대 일본 무역적자가 확산되고 있다.불균형적인 경제관계는 정치적 장애로 발전할 위험이 크다. ▷범지구적 문제 협력◁ 한국은 국제적인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전환한지 오래다.또 일본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조를 하는 국가다.한·일 양국은 이미 개발원조나 마약퇴치·환경분야에서는 상당한 협력 실적을 쌓고 있다.이제 인구·식량문제·테러·에너지 등에 대해서도 협력을 확대해 나가야 한다. ▷학술·문화교류◁ 편견과 오해가 남아있는 한·일관계에서 굴절된 민족주의는 상당한 긴장요인을 제공한다.따라서 객관적인 역사교육을 통해 전후세대에게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한·일간 역사연구위원회를 설치,공동으로 역사를 연구하는 작업을 해볼만 하다.또 양국이 유치경쟁을 벌이는 2002년 월드컵을 동시에 개최하는 것도 검토할만 하다.
  • 한·일 포럼 개회연설 요지

    ◎배재식 한국측 회장/우호조약 체결… 새관계 모색할때 한·일 양국은 정치적 변혁이 계속되고 있다.한국은 지자제 실시에 이어 각종 선거가 예정돼 있고 일본에는 정계재편이 진행중이다.이 과정에서 주목할 점은 민족주의의 대두다.편견과 오해가 남아있는 한·일관계에 있어 굴절된 민족주의는 늘 긴장의 요인을 제공한다. 종전 50년이 지났지만 일본에는 과거를 반성하지 않는 세력이 있다.따라서 민족주의의 에너지가 왜곡된 방향으로 발산될 위험이 있으므로 올바른 역사관을 심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두나라는 지난 30년간 인적,물적으로 비약적인 신장을 했다.그러나 앞으로는 양적인 팽창을 질적으로 심화시켜야 한다.이를 위해 새로운 한·일관계의 틀을 제공할 「한·일우호협력조약」의 체결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한·일관계는 경쟁관계가 아니라 「공동선」을 창출하는 동반자적 관계임을 알리고 「협조의 패러다임」을 구축해야 한다.이를 위해 2002년 월드컵 공동 걔최 방안을 진지하게 다뤄야 한다. 북한은 멀지 않은 장래에 현행 폐쇄·고립 체제에서 벗어나 일정한 변화를 꾀할 것이다.이같은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려면 북한을 동북아 질서의 일원으로 편입시킬 필요가 있다.동시에 도쿄나 워싱턴으로 가는 길은 반드시 서울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도 일깨워 줘야 한다. 향후 동북아의 탈냉전을 위해 한반도의 휴전체제를 평화제제로 전환하고 최근 긴장상태에 있는 중·미관계도 하루빨리 정상화되도록 한·일 두나라가 힘을 모아야 한다.또 아태지역내에 경제적인 역동성을 유지하면서 정치적·군사적 불확실성을 없애려면 열린 지역주의를 지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지난해 발족한 아세안지역포럼(ARF)이 역내 안보대화체로 자리잡도록 긴밀히 협조하고 한국이 제안한 동북아지역 안보대화(NEASED)도 조기 실현되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한·일 양국은 환경등 다양한 문제에 공동대처해야 한다. ◎오와다 히사시 일측 회장/과거 반성… 아태 큰틀서 협력을 올해는 2차대전 종전 50주년이면서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이다.이러한 시점은 우리가 과거를 되돌아보고,그 교훈을되새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1945년 이후 한·일관계는 그 직전 36년간의 역사가 결정지어 왔다고 말할 수 있다.36년간의 발자취를 우리들이 스스로의 책임아래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과거사를 명심하는 것은 바로 과거를 반성하는 데서부터 생겨나는 것이다.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리는 과거에만 얽매여서도 안될 것이다.올바른 역사인식을 통해 부의 유산을 극복하고,새차원의 관계를 여는 노력이 필요하다.지난 30년의 역사가 말하고 있는 교훈은 바로 이점이다. 이런 바탕 위에서 우리는 세번째 맞는 양국간 포럼의 목적과 성격,바람직한 방향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먼저 포럼의 목적은 냉전후 형성된 새로운 국제환경 안에서 양국이 어떤 관계를 구축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것이다.중요한 것은 양국 관계가 「제로 섬」관계가 아니라는 점이다.양국관계를 경쟁적인 관계로 보면 「마이너스 섬」관계이지만,반대로 양국국민이 경쟁적인 태도를 극복하면 「플러스 섬」의 관계가 될 것으로 믿는다.이제 양국관계는 아시아 태평양이라는,국제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 큰 지역의 틀 안에서 바라봐야 할 것이다. 또 포럼의 성격은 한·일 양국민,그리고 사회의 폭을 넓히고 이해를 심화하는 것이 돼야 한다.시한을 두고 보고서를 내는 것이 아니고,구체적인 사고의 교환을 그때그때 정리해나가는 것이 우리 포럼의 성격이 돼야 한다. 한·일포럼의 바람직한 모습을 위해서는 몇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참석자 각자가 양국 현실을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그리고 비판은 건설적인 방향성을 가져야 할 것이다. 양국은 관계를 넓혀가면서,한편으로는 심화해야 한다.확장과 심화라는 모순된 일을 조화해나가는 것이 바로 이번 포럼의 과제다.
  • 김영삼 정부 30개월/개혁정책 평가­2

    ◎금융·부동산 실명제/경제정의 실현위한 혁명적 조치/비실명 금융거래·부동산투기 쐐기/기업비자금 줄어 공명선거 큰 기여/검은 돈 은신처 「차명계좌」 줄이는게 과제 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 후세의 사가들은 문민정부의 양대 실명제를 「김영삼의 경제개혁」으로 정의할 지 모른다.금융실명제와 부동산실명제는 우리사회의 오랜 관행인 비실명 금융거래와 명의신탁을 이용한 부동산투기에 쐐기를 박고,경제정의를 한걸음 앞당긴 「혁명적 조치」로 평가된다. 경제개혁 1호,금융실명제는 문민정부 이전부터 첨예한 논쟁이 일었던 사안이다.그러나 기득권층의 반발과 반대논리에 밀려 번번이 무산됐다.자금이탈로 금융시장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질 것이란 게 우려섞인 반대논리였다. 그러나 「어느 날 갑자기」 단행된 금융실명제는 그같은 반론의 허상을 여지 없이 깨부셨다.금융실명제는 금융시장에 큰 충격을 주지 않고 연착륙 했다. 93년 8월 12일 대통령의 긴급 경제명령으로 전격 단행된 금융실명제로 30여년의 비실명 금융관행이 종지부를찍고,모든 돈에 꼬리표가 달리게 됐다.금융자산의 이동과 소득발생의 투명성이 한껏 높아지면서 금융소득 종합과세로 이어지는 「금융개혁의 대장정」이 시작됐다. 정부는 그 해 10월 12일까지 3개월간의 실명전환 유예기간을 주고 이후에 전환하는 계좌에 대해서는 예금액의 10%를 과징금으로 물렸다.1년 뒤마다 과징금을 10%씩 올려 98년 이후에는 증여세 최고세율인 60%까지 확대하고 실명전환 계좌 중 소득이 불분명한 거액계좌에 대해서는 자금출처 조사를 병행토록 했다. 이렇게 해서 그해 10월 12일까지 가명예금의 97%인 2조7천6백4억원과 3조4천7백억원의 차명예금이 실명으로 전환됐다.지난 6월말 현재로는 가명예금의 98.5%(2조7천9백12억원)와 차명예금 3조5천49억원이 실명으로 전환했다. 지금도 진행 중인 금융실명제는 무엇보다 금융소득 종합과세 등 공평과세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다.정치판,공무원 사회,기업에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음성적인 정치자금 조달이 어려워지면서 깨끗한 선거의 틀이 마련됐고 기업의 비자금이나사채 거래,무자료 거래도 한층 줄었다.공직자윤리법의 실효성을 보장,맑은 공직풍토를 만들고 신용카드 이용확대 등 신용거래도 활성화됐다. 문민정부는 금융실명제가 안착조짐을 보이자 개혁2호,부동산실명제를 단행했다. 95년 1월 6일 김영삼 대통령이 연두 기자회견에서 부동산실명제 실시방침을 밝혔고,이어 실명법안 마련과 공청회 등을 거쳐 3월 30일 「부동산 실권리자 명의등기에 관한 법률」이라는 이름의 개혁법안이 확정·공표됐다.시행일은 7월 1일. 신탁법에 의한 신탁등기,가등기와 같은 채무변제 목적의 양도 담보,종중 재산 등을 제외하고 일체의 명의신탁이 금지됐다.위반자에 대해선 형사처벌(5년 이하 징역)과 과징금(부동산가액의 30%)을 물리고 기존의 명의신탁은 내년 6월 30일까지 명의를 변경토록 했다.물론 이 과정에서 부동산 투기 등 과거의 법위반 사실이 드러나면 처벌케 했다. 부동산실명제는 사실 금융실명제의 후속개혁이다.금융실명제의 완결판이라 할 금융소득 종합과세가 96년부터 실시될 상황에서 부동산의 차명소유를 계속놔둘 경우 금융시장을 빠져 나온 비실명 자금들이 부동산으로 흘러들 수 있다는 정책적 판단이 도입배경이 됐다. 이 전에도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 등 부동산의 명의신탁을 규제하는 법률은 있었다.그러나 이들 법률은 명의신탁으로 부동산 투기를 한 경우 등에 대한 처벌위주였으며,명의신탁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부동산 명의신탁은 1912년에 제정된 「조선부동산등기령」에 종중명의로 등기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부득이 종중원 이름으로 등기하게 된 것이 시초다.이후 판례로도 그 유효성이 인정돼 투기수단으로 활용돼 왔다.외지인이 살 수 없는 농지를 현지인 이름으로 사둔 것들이 그것이다. 부동산실명제는 명의신탁의 법적효력을 무효화함으로써 부동산 투기 등 탈법과 탈세의 소지를 원천적으로 줄게 했다.금융실명제와 함께 경제의 흐름을 「합법적이고 아주 맑게」 만들었다. 그러나 양대 실명제의 성과이면에는 해결해야 할 과제도 있다. 아직도 검은 돈들이 차명계좌를 은신처로 삼아 실명화를 거부하고 있다.최근 4천억원 비자금설 파문도 차명계좌 때문에 증폭된 것에 다름아니다.93년 10월 이후 지금까지 차명예금 중 실명으로 전환된 돈은 2백74억원에 불과하다.가명예금의 미전환액은 4백30억원으로 드러나지만 차명예금은 그 규모가 얼마인지 추정조차 안된다. 물론 모든 계좌의 차명여부를 가려내기란 불가능하다.그러나 차명계좌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금융소득 종합과세 대상(연간 이자소득 4천만원 이상)을 확대,차명계좌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부동산실명제와 토지종합전산망의 가동으로 부동산 투기가 현저히 줄게 된만큼 투기시대에 만든 토지거래허가제도 등의 규제완화도 병행돼야 할 것이다. ◎사회·교육분야 개혁/성역없는 사정… 「권력형 비리」 척결/입시 자율권 폭 넓혀 열린교육 제시/쓰레기 종량제 실시… 환경의식 고취/「4·19」·「5·16」등 왜곡된 역사도 바로잡아 김영삼 대통령의 사회분야 개혁은 제도개혁에서 생활개혁에 이르기까지 집권 30개월동안 숨가쁘게 진행돼왔다.교육·법조개혁은 기존의 교육제도와 사법체계를 완전히 뛰어넘는 혁명적인 「제도개혁」으로 평가됐고 부실공사 근절·교통난 해결·민생치안 확립 등 「생활개혁」은 국민의 의식개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민정부 출범직후 개혁의 첫 단추는 공직남용 및 부정 부패자를 척결하는데 끼워졌다. 김대통령의 「성역 없는 사정」은 군인사 및 율곡사업비리,슬롯머신사건,상무대비리사건,국회노동위돈봉투사건,수서택지개발사건 등 굵직굵직한 권력형 비리관련자의 숙정으로 이어지면서 국민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유력 외지인들이 김대통령에게 「미스터 개혁」이라는 애칭을 붙일 정도였다. 김대통령은 또 취임과 동시에 『집권기간동안 한푼의 돈도 받지 않겠다』고 천명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정치자금의 투명화와 돈안드는 정치를 몸소 실천함으로써 「한국병」의 전형으로 지적되어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단호히 끊은 것이다. 「민생개혁」도 동시에 진행됐다.부동산투기,대학특혜입학,세무비리,교육계촌지 등 우리 사회 곳곳에 곰팡이처럼 번져 있던 온갖 비리 유형이 여지 없이 들추어지고 처벌됐다. 누구나 어디서나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열린교육을 내세운 5·31교육개혁조치는 시행에 들어가봐야 성패를 가늠할 수 있겠지만 일단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국·공립대의 본고사를 폐지하고 사립대에 입시자율권을 준 것은 학생들의 입시고통을 덜어주고 인성교육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지나친 입시위주의 교육으로 왜곡된 우리 교육의 현실을 바로 잡는 획기적인 개혁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에 들어가는 것을 최대의 과제로 삼고 암기·주입식 교육으로 치달아 왔던 초·중·고 교육의 뒤틀린 모습은 잘못된 입시제도에 가장 큰 원인이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이같은 입시제도의 개혁을 포함한 교육개혁은 문민정부의 최대의 과제로 떠올랐고 정부출범이후 발족한 교육개혁위원회의 오랜 연구끝에 교육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울만한 교육개혁 조치들이 지난 5월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정보화·세계화사회로 격변해 가고 있는 새로운 역사적 도전에 대응하는 교육체제인 「신교육」을 이념으로 하는 5·31 교육개혁안은 입시개혁말고도 중학교와 고교의 선택권 부여를 내용으로 하는 평준화 제도의 보완,대학의 다양화·특성화·정원 자율화 등 교육제도의 근본을 혁신할 수 있는 개선책들이 여럿 들어있다. 또한 열린 교육사회,평생 학습사회를 목표로 학점은행제와 시간제 등록제를 실시하고 학교의 전편입학을 확대해 교육의 문을 활짝 열어 놓았고 학교 운영에 학부모 등이 참석할 수 있게 해 학교운영을 자율화했다. 5·31 교육개혁의 성공여부는 개혁안의 취지에 따라서 얼마나 충실하게 시행에 옮기느냐 하는 것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제도적으로 시행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최근 교육개혁추진기획단을 발족시켜 개혁안의 추진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개혁안의 내용을 48개로 구분해 시행 목표시기와 세부 계획을 마련,여론 수렴작업에 나서고 있다. 여론 수렴은 시행에 옮기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여론과 배치된 제도는 반발만 살 것은 뻔하다.벌써 중·고교의 학교선택권 부여문제 등 학부모의 반발을 부르고 있는 사안들이나타나고 있다. GNP 5% 수준을 1차 목표로 하는 교육재정의 확보문제도 선결과제다. 이같은 문제점들을 해결하며 신교육의 참된 뜻을 실현하는 것이 문민정부의 남은 과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에 국민의 피부에 와닿은 「체감개혁」의 성공 사례로는 교통난해소를 위해 한시적으로 실시된 10부제와 버스전용차선제,시민의 환경의식을 고취시킨 쓰레기종량제 등이 꼽힌다. 청와대 앞길과 인왕산등산로의 개방,궁정동 안가해체와 같이 권위주의통치의 상징을 국민에게 되돌려 준 일은 「작지만 계산할 수 없는 변화」로 평가받았다. 민족사의 복원을 위해 왜곡됐던 역사를 바로 잡은 것도 김대통령의 치적.「4·19의거」를 「4·19혁명」으로 새로 자리매김시켰고 「5·16혁명」을 「5·16군사쿠데타」로 정리했다.또 「5·18광주사태」는 「5·18광주민주화운동」등으로 역사속의 사건이 국민의 역사 감정과 시대적 인식에 맞게 재정립시켰다. 교육개혁과 함께 김대통령의 사회개혁분야의 양축을 이루는 법조개혁 또한 오는 97년 실시를 목표로 세계화추진위원회와 대법원에 의해 최대공약수 도출작업이 한창이다. 법조개혁은 법조인 증원,법학교육제도 개선,그릇된 법조관행 철폐 등 3가지로 개혁방향이 요약된다. 특히 이른바 「전관예우」「정실재판」과 같은 법조관행은 법률서비스의 최대 수요자인 국민으로부터 오랫동안 원성을 사왔다는 점에서 김대통령이 임기중에 반드시 마무리지어야 할 숙제다.
  • 일본 총리의 「침략전쟁」론(사설)

    무라야마 도미이치(촌산부시)일본총리가 「종전50주년 기념일 총리담화」를 통해 일본이 일으킨 「대동아전쟁」을 「식민지배와 침략」이라 규정하고 그들의 침략에 의해 피해를 입은 아시아 각국인들에게 『통절한 반성의 뜻을 표하며 마음으로부터 사과』한 것은 진실을 인정하는 역사적 반성이란 점에서 평가할만하다.무라야마 총리는 16일 김영삼대통령에게도 담화내용을 친서로 보내왔다.일본총리가 과거사 사과문제로 한국의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온 것도 사상 처음 있는 일로 하나의 변화다. 이번 총리담화는 특히 일본내각의 의결을 거쳤기 때문에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따지고 보면 너무나 당연한 「침략전쟁」을 인정하는데 50년이 걸렸다는 일이 되레 우습고 공식적인 사과 한마디 듣는데 반세기가 걸렸다는 것이 쑥스럽기까지 하다.그러나 그동안 일본이 보여온 역사왜곡과 사실은폐 집념이 너무나 집요했기 때문에 비록 때는 늦었지만 그나마의 변화도 하나의 「진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무라야마 총리는 16일종군위안부문제에도 언급,사과했다.일본총리의 이런 발언은 분명히 과거에는 없었던 일로 진일보한 역사인식이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번 총리담화가 비록 내각의 의결을 거쳤다고는 하나 말만으로 끝나서는 안된다는 것이다.총리가 사과담화를 내놓은 날에도 다른 한편에서는 『대동아전쟁은 해방을 위한 전쟁』이었다는 우익단체들의 집회가 도쿄 곳곳에서 열렸다는 보도를 우리는 접하고 있다. 따라서 일본은 철저히 왜곡된 역사교과서의 개편에서부터 시작해서 대국민 교육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지 않으면 앞에서는 사과하고 뒤에서는 망언하는 일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우리는 확신한다.무라야마 총리담화의 구체화가 중요한 것이다.일본 국민 모두가 역사를 바로 알고 잘못된 과거를 바로 인식하지 않으면 일본은 아시아 이웃들과의 참다운 화해나 선린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 신세대 시각(21세기 한­일 새 지평:5·끝)

    ◎한일 공존을 위해 풀어야할 숙제들/우월의식·불신 제거로 과거치유를/상호신뢰 넓혀 「갈등 역사」 청산/청년층 격의없이 자주 만나야/김홍진 ▲75년생 ▲서울대사범대 국민윤리교육과 2년 1995년 8월15일.우리는 「광복」이라 하고,현해탄 건너 일본에서는 「패망」이라고 부르는 사건이 일어난 지 만 50년이 되는 날이다.하지만 일본의 식민지배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과거책임은 분명 우선 분단과 통일의 문제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식민지배가 낳은 분단이라는 고통은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근대적 민족국가 건설을 원천적으로 봉쇄당한 민족의 불행과 주권상실의 아픔을 하나의 유전형질로까지 간직하게 된 우리는 까닭도 모르는 채 분단이라는 비극도 떠맡아왔다. 그동안 각자의 길을 달려온 남과 북은 이제 민족의 동질성 회복마저 운운해야 하는 정도까지 이르렀다.36년간 이어진 일본 제국주의의 지배를 힘겹게 떨치고 난 후에도 아득한 절망과 끊임없는 도전 속에서 살아온 것이다. 참된 광복은 통일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타당성을 갖는다. 과거청산도 아직 풀리지 않는 역사적 과제로 남아 있다.한민족의 지난 50년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청산의 역사인 반면 우리에게 빚을 진 일본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만해져만 갔다.해방 이후 한·일 역사는 마뜩한 뒷풀이가 없었다는 것을 삼척동자도 알 것이다. 이처럼 식민지배와 분단으로 왜곡된 역사를 바르게 풀어나갈 주체와 방향은 어떤 것일까. 기나긴 역사에 비해 인간의 삶이 제한적인 만큼 식민지배의 고통을 직접 당한 기성세대가 일본의 죄값을 추궁하는 역사가 언제까지나 이어질 수는 없다.이제는 청년학생이 주축이 되어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어나가야 할 때다. 앞으로 한·일관계의 새로운 장을 열어나갈 청년은 「신세대」로 불린다.일본도 이미 80년대에 기존세대와 가치관의 단절을 고한 「신인류」의 출현을 맞이했다. 신세대 혹은 신인류가 오도된 역사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앞으로의 역사도 알력과 대립으로만 점철돼서는 안될 일이다.다가올 세기는 하나된 한반도의 젊은이와 국제사회의 중추로 자리잡은 섬나라 젊은이의 공존의 시대이어야 한다. ○젊은이 역할 중요 이를 위해서는 두 민족간의 오랜 원한과 그릇된 우월의식,상호신뢰를 허무는 어줍잖은 영웅의식,이를 기반으로 등장하는 극단적 민족주의,공동이익을 저버리는 일방적인 국가행위 등을 극복해야 한다. 한반도와 일본의 정황은 아직도 이같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한반도는 아직 불안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이고 일본도 이같은 긴장상태가 지속되기를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제국주의자의 망언은 최근까지 계속되면서 한·일관계를 이간질하고 있다.최근에는 자위대증강,핵물질보유 등 군사력 신장과 극우파의 창궐로 『일본에서 군국주의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마저 불러일으키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감정도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았다.일본에서는 얼마전 염한론이 한창 회자됐다.『얼마나 더 사과해야 되나』『이제 한국이라면 지긋지긋하다』는 소수 일본국민의 반한감정이 드러난 형태였다. 우리 국민도 대일감정을 묻는다면 열에 아홉은 싫다고 말한다.그것은 과거에 대한 혐오일 수도 있으나 일본이 보여주는 반성의 태도에 수긍할 수 없다는 불만 때문이기도 하다.그들이 보여주는 지나친 민족우월의식은 거부를 넘어 두려움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영웅의식 극복을 이같은 현실을 극복하고 한·일관계의 새 지평을 열기 위해 정부는 좀더 대범하고 적극적인 대일외교를 수행,한국과 일본 양국이 헌법에서 밝힌 바대로 인류공영에 이바지하는 역사적 대의에서 주도권을 쥐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제국주의의 꿈을 버리지 않은 채 지역패권을 추구,공존해야 할 이웃국가에게 수고를 끼친다면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방법이 아닐 것이다. 아울러 한·일 양국이 다가올 세기의 공존과 번영을 이끌어갈 청년학생에 대한 투자도 잊지 않았으면 한다.양국의 청년이 바른 역사관을 세우고 양국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꾸준한 만남의 장이 조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참 공영의 미래향한 선결과제/상대 바로알기가 선린우호 첫 걸음/무지·몰이해서 오해·마찰 비롯/교육·문화 등 교류확대 급선무/나카가와 도시히코 ▲71년생 ▲일 무사시대 사회학과 4년 「한국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런 나라다」라고 답할 수 있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어느 정도나 될까. 김치,치마저고리,메이드 인 코리아 운동화·T셔츠 등으로 밖에 이미지를 떠올리지 못하는 지식의 모자름.나 자신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가까운 나라이면서도 알려지지 않은 먼 나라.왜 그런가.그 답을 찾기 위해 올해 봄 한달 반동안 한국에 단기 유학했다. ○부정적 생각 깊어 솔직히 말해서 한국에 대해서는 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그저 누님 내외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관계밖에 없었다.좋은 인상을 갖고 있지 않았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알지 못한다」.이 한 마디로 집약되는 것이 아닐까. 역사 문화 그리고 말.고대 불교와 유교의 전래,고려청자와 이조백자가 일본의 도예에 기초를 제공했다는 것,도쿠가와 막부와 조선의 교류 등 일본에 문화적 영향을 주어왔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지고 있는 전쟁책임에 따른 부채를 의식하고 있기 때문일까,아무래도 한일관계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고 말았다. 종군위안부문제 등 전후처리에 관련된 일도 잘 이해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현실감을 갖지 못한 채 「전후책임」이라는 네글자가 눈 앞을 그냥 지나쳐 「부채」라는 프레셔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그래서 나는 한국에 대해서 막연한 혐오감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언어와 문법에 대해서는 상당한 정도로 닮았다는 것을 유학에 임해서 처음 알았다. 또 이러한 문제이전에 한국인을 잘 알지 못했고,한국인들이 속마음으로 일본인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도 몰랐다.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오에 겐자부로씨의 강연에 찾아가 볼 기회가 있었다.예상이상으로 관심이 높았기 때문에 나는 강연장에 들어갈 수 없어서 포기하고 돌아갈까 할 때,입장을 할 수 없었던 한국인은 대단히 사납게 주최자측에 따지고 들어 어떻게 해서든 강연장에 들어가려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고 있었다.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문을 향해서 밀려 들고 밀려나오면 또 나아갔다. ○서로의 고민토로 혼잡을 빚는 사람에 시달리면서 나는 한국인의 과격함에 압도당해 강연의 건은 아무렇게 돼도 좋게 됐다. 또 한국에 가기 전 내가 일본인이라는 이유로 혐오감을 받게 되지 않을까하고 내심 불안했지만 그것은 지나친 생각이었다.특히 같은 세대의 한국 젊은이들과 해외의 문화의 유입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서양문화를 모방하는데 지나친 것은 아닐까라고 서로 닮은 고민을 말할 수 있었던 것이 대단히 기뻤다. 그러나 지하철에서 일본어 책을 읽고 있을 때 나이 많은 남자가 일본어로 나에게 「일본과 한국의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물어와 나는 이 질문에 대해 명확한 생각을 말해 줄 수가 없었다.그 남자가 너무 유창한 일본어를 말하고 있어서 「일본은 한국에 대해 거듭 전쟁책임을 져야한다」등등 가볍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앞으로 서로 나라를 짊어지고 나아가는 것은 우리들 세대다.서로 알지 못하고 있는데도 알고 있는 듯이 하면서 전후 50년의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문화가 다르면 이런저런 부분은 받아들여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이 허용하기 어려운 부분을 줄여나가는 것부터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교육 문화교류 등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깊은 이해심 필요 다른 나라와의 오해와 마찰은 상대국에 대한 지식부족,무이해로부터 생긴다.일본인도 노력이 부족하지만 한국의 국민들도 일본이라는 나라를 다양한 각도에서 보아주기를 바란다. 한일 양국민은 감정적으로 의미도 없이 서로 혐오하기보다는 오히려 서로를 잘 안 뒤에 양자가 이르지 못한 부분을 서로 지적할 수 있도록 하는 편이 우호관계를 지속될 수 있도록 하게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부터 우선 한일관계에 무엇이 있었는가를 배우는 것부터 시작하고 싶다.
  • 러·일 포츠머스조약 체결 미호텔/한인교포들 매입 추진

    ◎4층건물 웬트워스… 경영악화로 폐업/“역사적 장소… 후세들에 산 교육장 활용” 일본의 한반도침략 신호탄이 됐던 한 조약체결장소를 미동부 한인사회가 광복 50주년을 맞아 후세를 위해 사적지로 보호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1905년 러·일전쟁이후 러시아가 한반도의 우월적 지배권을 일본에게 넘겨준 포츠머스조약 체결장소인 미 뉴햄프셔주 포츠머스의 웬트워스호텔을 한국교민이 구입하기 위해 발벗고 나선 것이다. 포츠머스조약은 1905년9월5일 러·일전쟁이 일본의 승리로 굳어져갈 무렵 미 루스벨트대통령의 주선으로 일본외상 고무라 쥬타로(소촌수대도)와 러시아 전권대사 비테가 사이에 체결한 15개 조항의 강화조약.일본은 이 조약으로 한반도점령의 우선권을 국제적으로 확약받은 셈이 됐다. 대서양이 내려다보이는 이 호텔은 1870년대 건립될 당시 미국내에서 최고급호텔의 하나였다.5천3백40여평 부지에 건평 2천2백40여평의 4층건물인 이 호텔은 지난 82년부터는 경영악화로 폐업상태.현재 경영을 담당하고 있는 그린 컴퍼니측은 비교적싼값인 1백만달러에 부동산시장에 내놓았다. 이 호텔이 매물로 나오자 부동산투자에 적극적인 일본인들이 일본계 변호사를 중개인으로 호텔을 구입하려고 했다.인근 보스턴지역을 중심으로 한 한인교포도 지난 11일 「포츠머스회담장소 사적보존추진위원회」(가칭)를 구성하고 호텔구입에 본격적으로 나섰다.한인교포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이 호텔이 일본인의 손에 넘어가 일본의 한반도침략에 대한 진실을 왜곡,자신들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장소로 사용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포츠머스회담장소 사적보존추진위」는 『웬트워스호텔은 미국에 몇군데 없는 일본의 한반도침략정책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라며 『한인이 이 호텔을 먼저 구입해 후세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줄 교육장으로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독립기념관(외언내언)

    충남 천안시 목천동 흑성산기슭 1백20만평의 부지에 독립기념관이 웅장한 모습으로 완공된 것은 87년 8월15일.광복42주년을 맞는 날이었다. 그전해인 86년 8월15일 완공할 예정이었으나 완공을 불과 열흘남겨 놓고 불이 나는 바람에 1년 늦추어졌다. 독립기념관은 처음부터 민족혼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지어진 곳이다.일본역사교과서가 지난날의 한일관계를 왜곡,기술한데 분노한 전국민이 한푼 두푼 내놓은 정성어린 성금으로 이룩된 「민족의 대성전」.코흘리개 꼬마에서부터 8순노인에 이르기까지 국내외 동포 모두가 벽돌 한장씩을 쌓아올린 민족정기의 요람이기도 하다. 독립기념관은 「겨레의 집」 「민족전통관」 「근대민족운동관」 「3·1운동관」 「독립전쟁관」 「임시정부관」 「대한민국관」등 7개동으로 이루어져 있고 수집된 자료는 4만3천2백90여점.우리선조들의 웅건했던 기개를 화폭에 담은 그림과 유물,일제때 선혈을 뿌렸던 독립운동가들의 살아 숨쉬는 유품들이 망라되어 있다. 문제는 이곳을 찾는 관람객들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완공 다음해인 88년 4백14만명이 다녀갔으나 지난해엔 1백60만명에 그쳤다.독립기념관을 찾은 관람객을 연도별로 보면 89년 2백67만명,90년 1백95만명,91년 1백79만명,92년 1백64만명,93년 1백62만명등.광복50주년을 맞은 올해도 사정은 비슷하다고 한다.안타까운 일이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일손이 모자라 전시유물들이 제때 제대로 교체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하고 주변에 연계 관광지가 없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그래서 독립기념관측은 일손을 대폭 늘려 입체적인 전시가 되도록 하고 주위의 동·서계곡에 「청소년수련장」 「민속박물관」 「첨단과학관」등을 세우는 방안을 마련했으나 예산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거의 포기한 상태. 독립기념관이 단조로운 유물전시관에서 종합역사공원으로 탈바꿈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 과거 청산(21세기 한­일 새 지평:1)

    ◎바람직한 이웃관계를 위한 제언 광복 50년은 한국과 일본간에 아직도 완결되지 않은 여러가지 문제들을 매듭짓고 바람직한 새로운 미래를 열어가는 계기가 돼야 할것이다.과거청산,외교·안보,경제협력,문화교류등 주요 분야별로 두나라 전문가들로부터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미래상을 연재로 들어본다. ◎“일은 수억 아시아인 고통 외면 말아야”/일의 과거사 인식 자세의 문제점/아직도 침략전쟁 책임 회피 급급/굴절된 역사 직시… 참된 자성 필요 지금으로부터 10년전인 85년5월 당시 서독의 바이츠제커 대통령은 독일 연방의회에서 『과거에 눈을 닫는 자는 현재도 볼 수 없게 된다.비인간적인 행위를 마음에 새겨두지 않는 자는 또다시 그러한 위험에 빠지기 쉽다』며 나치즘과 제2차대전의 교훈을 상기시켰다.같은해 8월 일본의 당시 나카소네총리는 A급 전범 7인의 위패가 모셔진 정국신사에 현직 총리로는 처음으로 참배를 감행하였다. ○독일과 인식 큰 차 일본 각료들의 참배는 해마다 계속되고 있다.금년 일본 각 지방자치단체 의회에서는제2차대전에 참전하였다가 죽은 일본군의 넋을 추모하는 결의가 무성하였다.과연 오늘의 독일에서 현직 각료가 나치 수뇌의 묘소를 참배하는 사태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똑같은 제2차대전의 추축국이었지만 일본과 독일의 이같은 차이는 과거사에 대한 양국 인식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증거이다. 일제의 침략주의에 대한 책임추궁제도로는 인적책임에 대한 전범재판과 물적책임에 대한 샌프란시스코조약체제로 요약될 수 있다.그러나 제2차대전 후의 냉전구도 속에서 일제의 과거사에 관하여는 인적 책임과 물적 책임 그 어느편도 철저히 규명되거나 추궁되지 못하였다.전후 국제질서를 주도한 미국은 전후처리 과정에서 일본의 과거사 책임을 단죄하기보다는 아시아에서의 대공방벽 구축에만 심혈을 기울였다.아시아 피해국에 대한 일본의 배상보다도 일본의 경제부흥과 재군비를 더욱 강조하였다.그 결과 일본에서는 침략전쟁의 책임자들이 전후의 집권세력으로 재등장하였으며 죄의식이 없는 이들에게 전후처리가 맡겨졌다. ○가해자 인식 부재 이러한과정속에서 진행된 일본의 전후처리 태도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적나라하게 부각되었다.첫째,일본의 가해자 의식의 부재이다.수억의 아시아인이 일본의 침략주의로 인하여 장기간 막대한 고통을 당한 사실은 외면되었고,오히려 일본은 세계 유일의 원자폭탄 피해국이라는 점만이 강조되었다.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한 것이다. 둘째,가해자 의식의 부재는 전쟁책임의식의 부재로 연결되었다.일본인 스스로가 피해자의 대열에 섬으로써 과거 침략행위의 진상이나 피해 파악을 외면하였고 역사에 대하여 특별히 책임질 일이 없다고 강변하였다.패전 50주년을 맞아 일본 국회차원에서 추진하던 사죄결의가 속빈 강정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배상의무도 회피 셋째,전쟁책임의식의 부재는 자연히 대외적 배상의무 회피를 조장하였다.전후 일본이 구군인 등 자국민 피해자에게 지불한 보상액의 누적합계가 근 40조엔에 육박하고 현재도 연간 2조엔에 상당하는 지불이 계속되고 있는데 반하여 일본이 25개국과 체결한 29개 전후처리조약을 통하여 대외적으로 지불한 금액의 합계는 1조엔을 약간 넘을 뿐이다.제2차대전의 희생자란 그릇된 나치즘의 피해자라는 성격 규명을 분명히 하고 있는 독일과 달리 일본에서의 전쟁희생자란 군국주의 정책수행에 앞장서다가 피해를 당한 자국민이 중심이 되고 있는 것이다.현재 일본 각지의 법원에서는 한국인을 비롯하여 필리핀인·중국인·네덜란드인·홍콩인 등 각국 외국인이 일본을 상대로 과거사 책임을 추궁하는 소송이 무려 30건 가까이 진행중이다.대부분이 70을 넘은 고령의 피해당사자가 그들 살아 생전에 끝나기나 할지조차 전망이 불투명한 소송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심정을 일본은 되새겨야 할 것이다. ○대일 소송 잇따라 금년 5월 유럽에서는 제2차대전 종전 50주년을 맞아 런던에서 모스크바까지 성대한 기념식이 거행되었다.파리에서는 독일군의 시가행진도 있었다.금년의 독일군이 50년전과 다른 점은 더 이상 침략자가 아닌 유럽 번영의 동반자로서 행진하였다는 점이다.일본은 현재 자신을 구적국으로 규정하고 출범한 유엔체제 내에서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그러나 8월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기념하여 서울이나 남경 아니면 마닐라에서 일본자위대가 시가행진을 하는 모습을 아무도 상상조차 하지 않는 가운데서는 일본이 국제사회에서 그에 합당한 지도력을 확보하기가 어렵다.과거사에 대한 인식 전환­이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일본 자신이 될 것이다. ▲정인섭 방송통신대 교수(41세) ▲서울 법대졸 ▲법학박사 ◎“왜곡된 역사 교과서 바로잡는 일부터”/과거청산과 한­일 미래를 위하여/위안부 보상문제 등 적극 나설때/「불전결의 불발」 같은 추태 없어야 지난 6월9일 채택된 전후50주년 결의를 둘러싸고 일본 국회(중의원)가 보인 추태는 「50년 결의」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이웃나라에의 국제공약이었던 만큼 대외적으로 전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었다. ○일 국민 기대 배신 그것은 또 전후50년 결의가 아시아 여러나라와 진실로 화해하고 미래지향의 관계 수립을 향해 나아가는 계기가 될 것을 마음으로부터 바란 많은 일본인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었다. 하타 쓰토무(우전자) 전총리(신진당 부당수)는 『전후50년이라는 고비를 살리지 못하고 결의를 끝내게 되면 세계 여러나라로부터 대단히 엄한 반발을 받을 것이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그 신진당은 「50년결의」 채택의 본회의를 보이콧했다.여당 3당으로부터도 다수의 결석자가 있어서 5백2명의 중의원중 채택에 참가한 것은 겨우 과반수인 2백52명으로 이례적인 사태였다. 가이후,미야자와,호소카와,무라야마등 역대 일본총리가 방한시 행한 불행한 과거에 대한 반성발언을 알고 있는 한국인으로서는 나라를 대표하는 역대 총리의 발언을 없었던 일과 마찬가지로 만들고 만 일본국회의 어처구니없는 전후결의의 결과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찬물 끼얹는 행위 그런 가운데 일본인을 구해 준 것은 『일본의 국회결의는 대단히 유감스럽다.새로운 불신으로 연결되는 것을 우려한다』면서도 『좋은 내용의 결의를 향하여 노력해온 사람들의 노력을 평가하고 싶다.그 사람들은 이 결의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앞으로의 노력에 주목하고 싶다』라고 말한 김태지주일대사의 적절한 발언이었다.(아시히신문·통일일보 인터뷰) 한일기본조약 체결 30주년에 즈음하여 일본의 유력지들은 나름대로 특별기사를 게재하였으나 국교30년의 양국의 현재위치를 가장 단적으로 표현한 것은 「깊어가는 상호의존」,「아직 두꺼운 마음의 벽」이라는 제목을 붙인 닛케이신문 6월 20일자였다.앞서 언급한 추태의 극을 보인 일본국회의 전후결의가 마음의 벽을 없애기 위한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었다는 사실은 더 말이 필요없다. 하지만 소걸음과 같지만 역사교과서 기술의 개선,종군위안부 문제의 구체적 해결등 불행한 과거의 청산을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한 사실을 여기에서 지적하고 싶다. 일본의 문부성이 6월28일 발표한 국민학교 6년생의 사회과 교과서에는 일본어의 강제,창씨개명,토지의 몰수,손기정선수의 일장기 사건등 식민지 지배에 관한 기술이 대폭 늘어나 국민학생도 잘 알수 있도록 됐다. 90년 5월 방일한 노태우전대통령은 일본 국회연설과 일본 기자클럽 회견을 통해 역사의 진실에 대한 인식의 공유를 호소했다.일본 문부성이 한일 신시대의 개막을 향해 양국간의 역사에 대해 국교·중학교의 수업중 꼭 다루도록 지도를 거듭 내린 것도 이 때부터였다. 미야자와총리의 방한 이래 3년 넘어 보상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종군위안부문제에 대해서도 보상사업을 추진하는 임의단체로서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설립돼 7월27일에는 전참의원의장 하라 분베에(원문병위)씨가 이사장으로 취임,한국 중국 필리핀등 1천명을 넘는 것으로 보이는 전 위안부에게 일시금을 보상함과 아울러 복지와 의료면의 지원사업에는 일본정부로서도 일부 책임을 지는 형태로 됐다. ○청산 움직임 일어 관계의 긴밀도를 재는 사람의 왕래는 30년전의 1백20배.지난해는 2백69만명을 헤아렸다.필요가 만들어낸 필연적인 사람의 왕래의 확대다. 미래지향의 관계도 따지고 보면 한일 쌍방이 필요로 하는 관계의 심화와 발전인 것이다.앞에서 말한 닛케이신문은 「깊어지는 상호의존」의 관계를 묶는 키워드를 「공통의 이익」이라고 하고 있다. 최근 현실화하려 하고 있는 한일간 수평분업체제는 또한 공통의 이익을 위해 상호 필요로 하는 관계 자체다.엔고현상으로 생산거점을 대폭 해외이전하지 않으면 안되게 된 일본기업의 움직임은 98년 생산개시를 목표로 하고 있는 삼성자동차 부산공장에의 닛산자동차의 전면적인 참가에서도 나타난다. ○협력관계 불가피 관련부품 메이커 1백15개사의 부산유치와 함께 삼성자동차를 중심으로 기타큐슈를 한국 남부와 결부,국경을 넘는 경제권의 성립이 예상되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한일 양국이 이인삼각으로 보여지는 것은 양국민의 뿌리깊은 감정마찰과는 별도로 세계의 외교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기존사실로 돼 있다」라는 닛케이신문의 지적은 한일 양국의 미래지향적 관계를 앞서 짚어보는 것으로서 매우 시사적인 것이다. ▲하야시 다케히코 일본 동해대 교수 61세 ▲나고야대 졸
  • “대일협력 하더라도 경계 필요” 81%

    ◎고대 신문방송연,2천명 의식조사 결과/관계개선 위한 일 과제,사과·보상·과거청산순/식민통치 “우리에게도 책임” 67%·“일 책임” 29% 한국 국민들은 과거청산에 소극적인 일본을 미워하지만,현실적인 필요에서 양국관계는 개선될 것으로 보고있다.또 일본과의 역사적 관계에서 우리도 반성해야 할 점이 있으며,진정한 과거청산을 이루기 위해서는 우리가 힘을 키워야 한다는 인식이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려대학교 신문방송연구소(소장 오택섭)가 광복50주년과 한일수교30주년을 맞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일본은 한국인이 가장 싫어하는 나라(64.6%),가장 경계해야할 나라(56.9%)로 지목돼 아직까지 반일감정이 여전함을 드러냈다. 그러나 「10년후 한일관계의 개선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는 응답자의 51%가 「가까이 해야 한다」고 답변,관계 개선의 필요성에 공감을 나타냈다.「현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도 43.1%에 이르렀지만,「멀리해야 한다」는 답변은 6% 에 불과했다. 이에 따라 한국이 앞으로 일본에 대해 취할 태도에 대해서는 81%가 「협력은 하더라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대답했으며,「과거를 잊고 협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16.5%였다. 한국민들이 반일감정을 갖고 있는 이유는 「일본이 과거의 식민통치에 대해 반성하지 않는다」(68.5%)고 판단하기 때문이다.일본이 반성하지 않았다고 보는 이유로는 형식적인 과거사 사과(28%),역사왜곡(19%),망언(14.3%),충분한 배상이 없다(13.3%)등을 들었다. 이에 따라 「한일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측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에 대해서는 진정한 사과(29.8%) 물질적 피해보상(14%) 과거청산(11.4%) 무역역조해결(9.4%) 올바른 역사교육(8.4%)등을 지목했다.또 한국측에서 해야 할 일로는 상호이해(43.4%) 과거청산 (19.4%) 당당하게 맞섬(9.7%) 국력강화(9.3%)를 들었다. 과거청산을 위해 충분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경우,한국이 취할 태도에 대해서는 「국력을 키워 일본을 앞질러야 한다」는 견해가 45.6%로 가장 많았고,「어쨌든 대일관계를 양호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32.6%에 이르렀다.일제 식민통치의 책임에 대해서는,「일본에 책임이 있지만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의견」이 55.6%로 가장 많았고,「힘없던 우리에게 전적인 책임이 있다」는 11.4%로 나타났다.이같은 자기반성론은 젊은 연령층,고학력일수록 높게 나타났다.「일본에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의견은 29.2%였다.전후 세대에게도 식민통치의 책임을 물어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57.7%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한국민들은 이와함께 일본에 대한 경계심도 여전해,앞으로 일본이 군사대국화(58%)하고 핵무기를 보유할 가능성(69.7%)이 높다고 보고 있으며,이에 따라 경제(39.7) 정치(19.8) 군사(17.1)적인 측면에서 일본으로부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반도 주변 4대 강국 가운데 한반도 통일을 원치 않는 나라로도 일본을 지목한 응답자가 64.8%로 가장 많았다.응답자의 절반이 『한반도가 통일되면 강대국이 돼 위협을 받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3월부터 4월10일까지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성별,지역별,연령별 인구 비례에 따라 2천명을 대상으로 선정,실시됐으며 신뢰수준은 95%이다.
  • 자유와 평화의 빛나는 승리(사설)

    전사자의 이름만을 검은 돌벽에 새겨 늪지처럼 낮게 조성한 베트남 기념공원에 비하면 그 맞은편에 새로 개장한 한국전 기념공원은 거의 눈부시다.죽은이의 이름이나마 탁본하려는 슬픈 행렬이 이어지는 베트남전 기념물 공원보다는 한국전 기념공원이 더 조형적 아름다움을 지녔기 때문만은 아니다.똑같이 젊은 미국 군인들의 산화일지라도 자유를 지켜낸 자부심과 그렇지못한 한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그 기념탑을 제막하면서,그 자유를 기초로 번영을 일궈낸 혈맹의 한국 대통령이 「역사의 진전에 자부심」을 나타내는 연설을 하게 된 것에 한국국민은 자긍심을 느낀다.김영삼 대통령은,자유세계가 「6·25전쟁에서 공산주의 팽창을 처음으로 단호하고 효과적으로 저지함으로써 역사의 흐름을 바꾸었던 사실」을 세계에 당당히 상기시키고 있다.「자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미국국민들로 하여금 깨닫게 한 한국전쟁의 의미를 육성으로 들려준 이 기회를 우리는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 전쟁에 참가하여 귀하게 희생한 미국의 젊은이들에게 고마움을 말할 수 있었던 일도 우리는 다행스럽게 생각한다.대통령의 말처럼 6·25는 「먼 훗날의 베를린 장벽 붕괴와 공산주의의 몰락을 예고한 전쟁」이었음을 오늘의 세계는 이미 알고 있다. 그와 함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우리의 젊은 영혼들에게도 다시 한번 옷깃을 여미고 경의를 표한다.그들의 희생이 아니었으면 지금쯤 우리는 이념의 억압과 빈곤만이 현재하는 삶에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미국 건국의 기념조형물이 즐비한 워싱턴 심장복판에 세워진 채 새 명물로 등장한 한국전 기념공원에는 백발이 성성한 노병들이 몰려들어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칭송한다.자유란 거저 수호되는 것이 아님을 그들에게 실감시킨 한국은 훌륭한 나라다. 오늘에 이르러 기념공원이 마련된 역사적 의미도 그런 것이다.한국전에 대한 다소 왜곡된 일부의 시각이나 관념의 유희도 이로써 정리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 김영삼 대통령의 방미등정(사설)

    김영삼 대통령이 22일 방미길에 오른다.김대통령의 이번 방미는 워싱턴에 세워진 「한국전 참전 기념공원」준공식에 참석하는 것이 계기가 됐다.27일엔 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종전 및 광복50주년의 새롭고 미래지향적인 한미관계를 다진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6·25 「한국전쟁」은 미국에서 한때 잊혀진 전쟁으로 남아 있었다.발발45년 및 정전42주년이 돼서야 「한국전」이 재평가되게 됐다는 것은 우리로서도 감개가 새롭거니와 한동안 잊혀졌고 또 부분적으로는 왜곡됐던 역사가 바로잡히게 됐다는 점에서 그것이 갖는 상징적 의미는 대단히 크다고 본다. 「한국전」은 전세계의 공산화를 기도했던 국제공산주의에 맞서 자유세계가 당당히 싸웠던 자유수호전쟁이었으며 종국에는 공산주의의 종말을 가져오게 한 승리의 전쟁이었다.오는 27일 있을 기념공원 준공식에는 양국 대통령을 비롯,전참전국 대표단,참전용사와 그 가족등 다수의 한·미관계 인사들이 참석하게 된다.이번 행사가 「한국전」의 역사적 평가를 바로잡아「한국전」이 후손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자유수호의 전쟁이었음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길 기대해 마지 않는다. 김영삼 대통령은 이번 방미로 취임후 벌써 네번째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만나게 된다.클린턴 대통령의 국빈자격 공식초청만도 두번째가 된다.매우 이례적인 일이다.그만큼 한·미관계가 긴밀해졌다는 반증일 것이다.대북경수로 지원문제,미·북한간 연락사무소 설치문제등 한·미간에는 현재도 협의하고 협력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다.이번 정상회담이 두나라간의 동반자적 관계발전에 기여하게 되길 기대한다. 지금 아시아에는 탈냉전 이후의 매우 역동적인 「신질서」가 모색되고 있다.이런때 두 정상이 만나 이 지역의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일도 뜻이 있다.청와대가 대통령의 이번 방미를 「21세기 아·태시대를 위한 한·미동맹관계의 재정립」이란 주제로 준비해 온 것도 이런 차원이었을 것이다.김영삼대통령의 이번 방미가 이러한 목적에 합당하고 유익한 여행이 되길 바라마지 않는다.
  • “아픈상처 묻어버리고 미래로 나아가자”/「5·18」수사 각계의반응

    3만여명이 넘는 고소·고발인에다가 10만쪽이 넘는 수사기록,1년2개월여를 끌어온 수사기간 등으로 초미의 관심을 모은 「5·18」 고소·고발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공소권 없음」으로 끝나버리자 고소·고발인과 시민·재야단체·야당정치권 등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며 강경하게 반발했다.반면 피고소·고발인 당사자와 여당 정치권등은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그러나 이번 사건 수사는 일단 매듭지어진 것으로 비춰짐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대정부 강경투쟁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어 앞으로 정치·사회적으로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시민/불법 쿠데타에 면죄부 준것… 모든 문제 법테두리서 △안상수(변호사)씨=군주정치시대의 산물인 통치행위의 개념으로 불법적인 쿠데타행위에 면죄부를 주는 것은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원칙에 어긋난다.헌법에 명시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통치행위를 인정해서는 안되며 이같은 법의 적용에는 어떤 예외도 있어서는 안된다.법은 행위의 결과뿐 아니라 동기부터 따져야 하며 민주정치의 확립과 법해석상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피고소·고발인들을 반드시 법정에 세워야 한다. △나은경(29·회사원)씨=당시 중학교를 다니던 광주시민으로서 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가 보고 겪은 모든 것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졌으면 했으나 다소 실망스러웠다.그러나 역사란 당장 평가될 수 없는 만큼 5·18의 진정한 평가는 후세에 맡겨두는 것이 옳다고 보며 이제는 아픈 상처는 묻어버리고 국론을 모을 때라고 본다. △허경(연세대 법학과교수)씨=법치국가에서는 모든 문제를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판단하는 것이 상식인데도 이번 수사가 통치권 차원이라는 정치적인 판단에 따라 마무리돼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본다.정치적인 결단을 위해 전제군주에게 주어지던 통치권을 민주국가에서 법적인 심사에 앞서 운운한 것 자체가 법치국가의 기본을 흔드는 것이다. △이남숙(38·주부)씨=이른바 신군부들이 처벌된 것은 아니지만 당시 상황이 어느 정도 밝혀져 다행스럽다.특히 일부 군인이 민간인을 사살한 게 밝혀진 것은 당시의 진실을 밝히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이제평가는 역사에 맡기는 것이 옳을 것 같다.과거를 파헤치는 것보다는 미래지향적인 사고를 가졌으면 싶다.이 기회에 아직도 비탄에 잠겨 있는 광주시민을 위한 대화합책도 나왔으면 좋겠다. △유종성(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연구실장)씨=검찰의 결정은 쿠데타와 시민학살의 주범들에게 면죄부를 준 것으로 검찰이 스스로 역사적인 책무를 포기한 처사다.특히 지난번 12·12 주동자들에 대한 기소유예처분보다도 후퇴한 이번 결정이 지방자치선거 패배 등 불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구여권세력 끌어안기라는 현정권의 정치적 목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혹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이천우(사업)씨=5·18 당시 광주에 있어서 상황을 잘 안다.군의 무리한 투입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어쨌든 국가에 대항한 것은 「반란」죄에 해당하므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본다.이번에 5·18 수사발표가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이것으로 끝내고 더 이상 문제삼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여,“검찰의 고유권한” 야,“진실외면” 비난 ▲민자당박범진 대변인=5·18에 대한 사법적 판단은 검찰의 고유권한으로 검찰의 결정을 존중하며 역사적 평가는 후세에 맡기는 것이 옳을 것이다.이번 검찰의 결정을 계기로 이제 과거 문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미래를 위해 국민적 힘을 모아가는 건설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지난 일을 가지고 끊임없이 논란을 계속하는 것은 국력만을 소모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다. 권위주의 정권이나 독재정권을 청산하는 방식에는 두가지의 길이 있다.남아공처럼 과거를 묻지않고 용서와 화해의 정신으로 국민 화합속에 새로운 국가를 건설해 나가는 방식이 하나다.6·25전쟁을 겪은 우리가 통일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남북간 용서와 화해의 정신없이는 불가능하다.그런 점에서 먼저 국내적으로 과거에 대한 용서와 화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신당창당모임 박지원 대변인=검찰의 「공소권 없음」결정은 사법적·정치적 혼란은 물론 사회교육적·도덕적·역사적 혼란도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검찰이 국민의 편이 아니라 범죄자의 편에 선 것을 우리는 규탄하며 이대로 넘어가지 않겠음을 정부에 경고한다. ▲민주당 이규택 대변인=진실규명을 바라는 국민 여망을 무시한 반역사적 폭거다.신군부일당을 사법처리하지 않은 것은 정의와 진실을 외면하고 군사쿠데타를 합법화·정당화하는 처사로 또다른 역사의 오욕으로 기록될 것이다. ▲자민련 안성렬 대변인=우리는 처벌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다.광주의 불행한 사건이 민족 화합을 위한 역사적 교훈이 되기를 바라며,진실을 밝힌뒤 대화합과 포용의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 ◎피고소인/“당연한 귀결” 분위기속 직접 언급 자제 ○…전두환·노태우씨 등 전직대통령측은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내심 『큰 줄거리는 우리의 주장대로 된 것 같다』는 분위기이면서도 조사과정에 대해서는 불만을 토로했다. 전 전대통령측의 한 측근은 이날 『전 전대통령과 광주문제는 관계가 없다고 진작부터 말해오지 않았느냐』면서 『이번 조사결과로 광주문제와 관련해 그동안 나돈 많은 얘기가 유언비어였음이 입증됐다』고 주장.이 측근은 또 검찰이 5공집권과정에 대해 「공소권 없음」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과 관련,『그런 어정쩡한 결정을 하려고 전직대통령을 조사했느냐』면서 『이런 식의 조사가 헌정사발전에 무슨 도움이 되느냐』고 조사자체가 불쾌했다는 반응. 측근은 『일부에서 이번 검찰의 결정뒤 현 정부와 5·6공세력과의 화해가 이뤄질거라는 전망이 나오는데 성급한 추측』이라고 말했다. 노 전대통령은 이날 검찰의 수사결과 발표에 대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한 측근이 전했다.이 인사는 『법률이론에서 볼때 80년의 일련의 정부조치가 사법적 판단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우리 주장이 큰 줄거리에 있어서는 수용된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이 인사는 『원 줄거리에 대해 공소권이 없다고 검찰이 결정을 내린 만큼 세세한 발표 내용을 놓고는 얘기를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고소·고발 상대측이 항고등을 하는 경우에도 대비하고 있으며 우리의 주장은 변함이 없다』고 설명.한편 이번 조사와 관련,검찰조사에 끝내 응하지 않았던 최규하 전대통령측은 검찰 수사발표에 대해서도 노코멘트로 일관. ○…민자당의 정호용·박준병·허삼수·허화평의원 등 핵심관련자들은 직접언급은 자제하면서도 『처음부터 사법적 심판대상이 아니었다』고 반기는 표정. 허화평의원은 지역구인 포항에서 검찰발표를 전해 듣고는 『15년이나 지난 역사적 일을 국가기관이 실정법의 잣대로 시비를 가리는 것은 불가능하고 무의미한 일』이라면서 『이렇게 종결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홀가분한 소감을 피력. 정 의원측의 이상범 보좌관은 『특히 관심이 대상이었던 발포경위와 광주파견부대의 지휘권 이원화여부등에 대해 합리적으로 조사된 것 같다』고 코멘트. 박준병·허삼수의원은 지역구인 옥천과 부산에 머무르며 비서진을 통해 검찰발표를 보고받았으며 비서진들은 『미묘한 사안이라 의원님께서 직접 발표문을 읽어보기 전에는 논평하기 곤란하다』고 조심스런 답변. ◎고소인/“상식 무시한 법집행은 역사왜곡 행위” △이해찬(서울시 정무부시장)씨=검찰의 발표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공소권 없음」이란 결론을 내려 놓고 목적없이 조사만 한게 아니냐하는 생각이 든다.검찰 스스로 반성해야 하며 부끄러운 결과라고 생각한다.이러한 결과를 내리려면 무엇하려고 수사를 했는가.수사를 말았어야 한다.이번 사건은 12·12사건보다 더 큰 사안이다.검찰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인한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이문영(경기대 대학원장)씨=문민정부에 배신감을 느낀다.당시 피해자들은 내란음모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는 등 법률적인 심판을 받은 반면 가해자들의 행위는 정치적 행위라는 이유로 법률적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송기원(문인)씨=검찰의 결정이 정치적 판단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다.최근의 정치상황으로 볼 때 검찰의 운신의 폭이 좁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이해가 가나 「공소권 없음」 결정은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조비오 신부(광주봉선동성당 주임신부)=사법부의 존재의미를 포기한 것이다.명백한 쿠데타를 통치권 행위로 규정한 것은 현정부가 5·18 진상을 규명하려는 의지가 전혀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동년(5·18 광주민중항쟁연합 상임의장)씨=김영삼대통령이 「현정부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연장선상에 있다」고 선언한 「5·13 특별담화」는 거짓으로 드러났다.5·18 책임자 처벌과 진상 규명은 결코 물러설 수 없는 역사적 과제인 만큼 항고·재항고·헌법소원 등의 방법으로 다시 5·18의 책임을 물을 것이다. △윤광장(5·18 광주민중항쟁동지회장)씨=검찰의 결정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사법권의 독단이다.5·18 책임자에 대한 엄정한 처벌을 바랐던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것이다.법의 운용은 상식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상식과 정의를 무시한 형식적인 법집행은 역사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광주권/검찰경정 납득못해… 「기소서명」 나설터 본다.정치적인 결단을 위해 전제군주에게 주어졌던 통치권을 민주국가에서 법적인 심사에 앞서 운운한 것 자체가 법치국가의 기본을 흔드는 것이다. ▲명노근씨(61·전남대 영문과교수)=국민의 일반 감정에 전혀 부합되지 않는 결정이다.한마디로 검찰의 직무유기행위다.5·18 당시 진압군의 살인행위가 인정됐음에도 검찰이 「공소권 없음」 결정을 내린 것은 검찰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을 저버린 처사다.특별검사제도 도입 등을 통해 시시비비를 명백히 가려야 한다. ▲김원희씨(34·은행원·광주시 광산구 월곡동)=현 정부가 「5·18문제」를 역사에 맡기자고 선언했듯이 큰 기대는 걸지 않았다.그러나 검찰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압을 정치적 행위에만 국한시킨 것은 형평성을 잃은 법적용이라고 생각한다.앞으로 가해자 기소를 위한 서명운동 등에 적극 참여해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를 관철토록 돕겠다. ▲박병모씨(37·전남일보 기자)=광주시민의 정서와 너무나 동떨어진 결정이다.학생과 재야·시민 등이 이미 「피고소·고발인에 대한 기소촉구」집회 등을 계획하고 있어 자칫 공권력과의 충돌 등 혼란이 예상된다.정부는 검찰의 이번 결정이 가해자에 대한 면죄부 부여라는 일반 시민의 격앙된 감정에 귀기울여야 한다. ▲정웅태씨(37·변호사)=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라 검찰의 입장을 이해 못하진 않는다.그러나 국민의 법감정과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결정이다.특별검사제 도입등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애초부터 5·18문제를 푸는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한다. ▲김대원씨(23·전남대 국문과 3년)=명백한 살인행위를 국가권력의 정당한 행사라고 규정한 검찰의 결정은 납득할 수 없다.민주화를 외치다 쓰러져 간 선배들의 고귀한 정신이 훼손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 대북 쌀추가지원은 국민합의로/통일·외교·안보분야 대정부 질문·답변

    ◎「문서변조」 선거이용 음모 속속 드러나/「경수로 건설」 우리 중심역할 고수할것 국회는 10일 본회의를 속개,통일·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대정부 질문을 통해 대북 쌀지원,외교문서 변조사건,한·미·일 관계,군전력증강 등 현안에 대한 정부의 대책을 따졌다. ▷대북 쌀지원◁ ○…북한의 씨 아펙스호에 대한 인공기 강제게양 사건과 관련,박명환 의원(민자당)과 김진영 의원(자민련)은 『주권이요 명예이자 자존심이고 생존권의 상징인 태극기를 하강당한채 인공기만을 게양하는 수모를 겪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장준익 의원(민주당)은 『태극기를 게양않는다는 합의는 누구의 훈령에 의해서인지,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배경은 무엇인지,북한 총리급 이상의 사과를 받아내지 못한 이유는 뭔지 밝혀라』고 요구했다. 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쌀 수송과정에서 국민에게 많은 걱정을 끼친 데 대해 주무장관으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사과하고 『초기에 여러 부처가 함께 관여하다 보니 혼선으로 인한 것』이라고 원인을 설명했다. 나부총리는『사건 뒤 북경회담에서 서명한 당국자 직함과 이름이 적힌 사과문을 전달받았다』면서 『북한이 사과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만큼 쌀 지원을 재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쌀지원 과정에서의 문제에 대해 박명환 의원과 김기도 의원(민자당)은 『지난 84년 수재 때 북한이 쌀 5만섬을 보내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표기했는데 우리는 22배나 많은 양을 얼굴도 없는 「민짜포대」로 보냈다』고 지적한 뒤 국회동의를 거치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김충조 의원(민주당)은 『지난해말 통일원이 국제선명회에게는 군량미로 전용될 가능성을 들어 쌀지원을 불허해 놓고 갑자기 바뀐 이유는 무엇이냐』고 따졌다. 이종찬 의원(민주당)은 『경수로 문제로 미국과 북한협상에 끌려다니더니 쌀제공문제마저 일본과 북한협상에 끌려다니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강두 의원(민자당)은 『44년전 인민군에게 쌀 등을 약탈당한 것이 부역이라며 거창양민 학살 사건을 아직도 방치하고 있다』면서 역사적 재조명을 요구했다.김사성 의원(민자당)은 『남북 쌀회담은 출발부터가 잘못됐다』며 통일원이 이를 주도할 것을 주문했다. 이홍구 국무총리는 『추가지원 여부는 상황에 따라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탄력적인 대응방침을 밝힌 뒤 『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해지면 국민적 합의를 바탕으로 외국쌀을 지원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나부총리는 『쌀회담 초기 남북한 접촉의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입장에서 북측의 비공개회담 요청을 받아들였다』고 설명하고 『앞으로는 보다 공개적으로 진행하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대북 경로지원◁ ○…박명환 의원은 『경수로 문제가 타결됨으로써 향후 10년간 해마다 3천억원의 자금을 염출해야 한다』면서 자금규모에 대한 면밀한 분석및 장단기 대책수립과 함께 국회의 사전동의를 거칠 것을 요구했다. 장준익 의원은 『경수로건설비용은 미국이 우리보다 더 많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 마땅한 데도 우리 정부가 전체 건설비의 75%인 30억달러 이상을 부담하는 것은 불공평하고 전략판단이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따졌다. 이강두 의원은 『정부는 우리의 중심적 역할이 확보됐다고 하지만 지난 6·13 북­미간 합의문의 표현은 애매하다』고 지적하고 『첫 단계인 건설부지 조사에서 과연 중심적 역할을 하게 되는지 분명히 밝혀라』고 요구했다. 이총리는 『우리의 중심적 역할을 고수할 것』이라고 강조했고 공외무부장관은 우리의 재정부담과 관련,『관계법령의 규정에 따라 국회에서 소정의 절차를 밟아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외교문서 변조사건◁ ○…김진영 의원과 김충조 의원은 『국제사회에서 명예실추를 초래하고 공직사회의 기강해이를 확인시켜 주었다』면서 『더욱이 외무부장관이 국회의원을 고발하는 등 삼류급의 행위를 연출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국가정보관리를 위한 상설기구 구성과 공노명 외무부장관의 해임을 촉구했다. 반면 이강두 의원은 『외교문서 조차 변조해 선거에 이용하려는 음모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고 지적하고 『우리 외교의 대외공신력 실추와 명예훼손사태를 어떻게 치유할 것이냐』고 대책을 물었다. 정몽준 의원(무소속)은 『외무부가 감정적인 대응으로 마치 정치적인 것처럼 여겨지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공외무부장관은 『외무부가 문서 원본의 파기와 대체를 해당공관에 지시하고 최승진씨를 회유했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일축한 뒤 『최승진씨의 귀국을 조속히 실현시켜 검찰의 철저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혀내면 외무부와 전체 외무부 직원의 명예가 회복될 것으로 믿는다』고 답변했다. ▷한·미·일관계◁ ○…대미관계에서 불평등문제와 관련,김진영 의원은 『지난 90년부터 92년 8월 사이에 주한미군 범죄자는 2천8백70명인데 재판권행사사례는 고작 30명』이라고 한미행정협정의 전면개정을 요구했다. 장준익 의원은 『북한은 30여기의 스커드미사일을 실천배치하고 있는 데도 미국은 한국의 장거리미사일 개발을 규제하고 미사일기술통제기구(MTCR)가입을 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총리는 『한미간의 특수한 협조관계는 앞으로도 계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고 전제한 뒤 『그러나 구속수사권,한국인 고용원 노사문제,환경관련조항 등은 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미국측에 제기했다』고 말했다. ○…대일관계에 대해 김기도 의원은 『일본은 과거사를 왜곡하고 있고 일본의 역사인식에 불만이 많은 중국조차도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고 있다』면서 정부측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정몽준 의원은 『일본은 최근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핵폭탄 투하에 대해 클린턴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라고 요구하고 일본 국회에서의 종전 50주년 결의는 흐지부지되고 말았다』고 일본의 핵무장 의혹과 일본 극우세력에 대한 대응책이 있는 지를 따졌다. 이총리는 『북한에 대한 일본의 쌀지원은 남북관계를 고려,한일간 긴밀한 협의하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히고 『그러나 현시점에서 한일협정을 재검토할 필요성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강택민,일 「역사왜곡」 경고/“중­일 관계 부정적 영향 미칠것”

    ◎방중 가이후 신진당수에 불만 표출 【북경 AFP 연합】 강택민 중국 국가주석은 24일 일본에 대해 역사왜곡은 그 국가적 이미지는 물론 중국과의 쌍무관계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강주석은 이날 전직 총리를 지낸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 신진당 당수가 이끄는 일본 사절단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이같이 말하고 『신세대들에게 올바른 역사인식을 부여하는 것이 양국 정치인들의 공동책무』임을 강조했다. 강주석은 이 자리에서 일본이 침략전쟁을 솔직히 반성하느냐 여부가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역사를 왜곡하려는 기도는 중·일 양국간의 장기적인 우호관계에 해로울 것이라고 밝혔다고 관영 신화통신은 전했다. 강주석의 이같은 언명은 최근 일본 의회가 채택한 종전 50주년 결의안에 대한 국 정부의 불만을 재삼 상기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 남·북·일 새 3각관계(한·일수교 30년)

    ◎일의 「남·북 줄타기 외교」 대비해야/대북 수교협상 자세따라 한·일갈등 소지/끊이지않는 「망언」… 선린의 앞날 불투명 국교가 정상화된지 30년,한일양국관계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지난 65년 6월22일 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에 서명한 이후 양국 관계는 발전과 퇴보를 되풀이하고 있다.지난 30년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모든 측면에서 양국 관계는 양적으로는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65년 2억 달러에 불과하던 양국간 무역액은 그동안 2백배 가까이 늘어 지난해에는 3백89억 달러를 기록했다.양국간 인적 교류도 65년 1만명에서 지난해 2백70만명을 넘어섰다. 그러나 양국이 이웃국가로서 결속력있는 동반자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한국쪽에선 「동반자」보다는 「반일감정」이나 「망언」이,일본쪽에선 「혐한」「추한 한국인」이란 단어가 언론에 더 많이 등장한다. 지난 연말 한국 외무부와 일본 외무성 당국자들이 여느해 보다 강하게 새해를 맞는 흥분을 느낀다고 털어 놓는 것을 본 일이 있다.광복 50년(일본에는 종전 50년이다),국교정상화 30년이라는 1995년의 역사성이 양국관계를 다루는 당국자들에게는 팔을 걷어붙일만한 의욕을 촉발하는 계기일 수 있을 것이다. 김영삼 대통령도 몇차례 천명했듯 95년을 과거를 극복,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구축하는 원년으로 만들어보자는 것이 당국자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양국 정부의 의욕은 국민감정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쳤다.일본과의 수교 30년을 기념하는 것 같은 공식행사를 용인할 수 없는 것이 아직도 엄연한 우리 국민의 평균적 정서이기 때문이다. 양국 정부는 기념행사를 아예 포기할 수는 없기 때문에,이를 반민간 단체로 볼 수 있는 한일의원연맹(회장 김윤환/다케시타 노보루·죽하등)으로 넘겼다.그러나 연맹측이 계획했던 행사조차 제대로 추진되지는 못했다.경북 예천 출신으로 「일본의 이미자」로 불리는 재일동포 가수 미야코 하루미의 서울,부산 공연은 문화체육부의 불허로 무산됐으며,한일청소년회관의 건립계획도 변경됐다.이달 일본에서,오는 12월 우리나라에서 기념우표가 발행되는 것 정도가 확실히결정됐을 뿐이다. 의원연맹측이 초대 조선총독을 지낸 데라우치(사내정의)가 한반도에서 수집해간 문화재를 반환하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 정도가 계속 기대를 걸만한 사업이다. 양국 관계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한국과 일본이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차원에서 시각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분석한다. 우선 한일 관계를 양자관계로만 볼 것이 아니라 다자간 관계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국제사회 내에서라면 한일 양국의 이익은 거의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양국은 자유무역체제를 지향하고 그 안에서 국가발전 전략을 꾀하고 있으며,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국가의 기본 이념도 같다. 일본 관계를 다루는 외무부의 한 당국자는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사무총장 선출과정에서 김철수후보를 적극 지원하거나,우리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진출을 지원하고 있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양국의 이해가 상당부분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처럼 국익이 일치하는 구조 속에서도 양국 국민들이 화합하지 못하는 것은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불충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 지적이다.일본인들 스스로의 지적처럼 『괴롭지만 과거를 바로 보지 않으면,미래는 없다』는 것이 한일관계의 현실이다. 한반도 및 동아시아 침략에 대한 사죄,군대 위안부문제,사할린동포 문제등은 양국이 해결해야 할 오랜 현안이지만,일본측은 어느것 하나 진심으로 반성하며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일의원연맹의 지철민 사무총장은 올해 사회당,자민당,신당 사키가케등 여당연합과 신진당이 추진하던 일본 국회의 과거사죄와 부전결의가 결국 신진당이 불참한 채 반성과 평화추구라는 용두사미로 끝나고,때를 맞춰 터져나온 와타나베(도변미지웅) 전외무장관의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이 아직 한일관계의 미래를 바라보기 어렵게 만드는 일본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의 대북 쌀 제공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일본 정부의 미묘한 자세는 우리 국민과 정부 당국자들이 안고 있는 일본에 대한 원초적 우려감을 다시 일깨우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의 한반도 전략은 무엇인가.일본은 과연 한반도의 통일을 원하는가.한국민은 일본이 북한과의 수교를 이끌어낸뒤 한반도의 남북 양쪽을 저울질하는 줄타기 외교를 전개하며 이문을 챙기려는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자연스레 갖게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 비추어 볼 때 올해가 광복 50년,국교정상화 30년이라서가 아니라,북한과 일본의 수교가 본격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에,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의 일본 태도에 따라 한일 관계는 또 한차례 갈등하며 후퇴의 시기를 맞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한국측 외교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지난 1월 고베 대지진 때 한국 국민들은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구호물자를 보낸 바 있다.전문가들은 광복후 50년이 지나고 양국을 움직이는 세력이 전전세대에서 전후세대로 교체되면서 보다 합리적인 방식으로 양국관계가 전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신세대들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청산한다는 인식을 전세대보다는 어렵지 않게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또 우리사회가 갖고 있는 「낮에는 반일,밤에는 친일」이라는 식의 일본에 대한 이중적 잣대에 대해서도 공개적인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베스트셀러가 된 「일본은 있다」의 저자 서현섭씨(외무부 외교정보관리관)는 『한일관계의 지난 50년은 두나라 국민이 무시(DISREGARD)→불신(DISTRUST)→혐오(DISLIKE)라는 3D를 만들어온 세월』이라고 말했다.그는 『앞으로의 50년은 세 단어에서 부정을 의미하는 「DIS」 세글자를 떼어버리고 상호인정(REGARD)→신뢰(TRUST)→선린(LIKE)의 관계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일관계 30년 일지 ▲1965년 6·22=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서명 ▲8·28=한일협정 반대 학생 데모 및 위수령 발동 ▲12·18=한일기본조약 및 부속협정 발효 및 주한·주일대사관 상호개설 ▲1966년 1·17=한일간의 일본에 거주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법적지위와 대우에 관한 협정 발효 ▲5·27=일본 문화재 2천3백28점 반환 ▲19 67년 6·30=사토 에이사쿠 일본총리 방한,박정희대통령 취임식 참석 ▲1970년 6·16=한일 정기여객선(부관페리호) 취항 ▲1971년 2·5=일·북 재일교포 북송합의서 조인 ▲1973년 8·8=김대중 납치사건 발생 ▲1974년 8·15=조총련계 문세광,육영수 여사 저격 ▲1975년 9·15=조총련계 동포 성묘단 모국 방문 ▲1982년 7·26=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외교 문제 비화 ▲1983년 1·11=나카소네 일총리 첫 공식 방한 ▲1984년 9·6=전두환 대통령 첫 공식 방일 ▲1986년 5·18=일,대한 2백해리 어업수역 선포 ▲7·24=후지오 문부상 교과서 왜곡관련 망언 ▲1990년 5·24=노태우대통령 방일 ▲9·24=가네마루 자민당부총재 등 3당 대표 방북,일북수교 원칙 합의 ▲1991년 1·9=가이후 총리 방한,한일 우호협력 3원칙 발표 ▲1992년 7·6=일본정부 종군위안부 조사결과 발표,정부관여 인정 ▲11·8=노태우 대통령 실무 방일 ▲1993년 10·4=사할린 동포 관련,한일 실무협의회 ▲11·6=호소카와총리 실무 방한 ▲1994년 3·24=김영삼대통령 방일 ▲7·23=무라야마 총리 방한 ▲1995년 1·19=한국정부,고베지진에 구호품 전달 ▲6·5=와타나베 전외상 한일합방 관련 망언 ▲6·14=일본의회 과거 반성,평화 추구 결의 ◎지표로 본 양국관계/교역규모 급속 증가… 1백85배 늘어/경기둔화·국민감정 악화… 90년초 주춤/대일 누적적자 1천억불 시정 과제로 국교정상화 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빠른 속도로 진행돼 왔다. 80년대 말까지 교역과 투자가 지속적으로 확대되다가 90년대 초 국내 경기둔화와 노사분규 여파로 잠시 주춤했다.그러다 엔고에 힘입어 지난 해부터 기계류와 부품을 중심으로 산업협력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그러나 30년간 누적돼 온 대일 무역적자는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65년 국교정상화 당시 대일 수출은 4천4백만달러였다.이것이 지난 해에는 1백35억2천만달러로 늘었고,대일 수입도 1억6천만달러에서 2백53억9천만달러로 커졌다.교역규모만 1백85배 신장한 셈이다. 반면 교역확대속에 65년 1억2천만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가 86년 50억달러를 넘은 데 이어 지난 해에는 1백억달러 돌파(1백18억6천만달러)라는 반갑지 않은 기록까지 남겼다.그간의 누적적자만 이미 1천억달러를 넘었다. 좀 더 자세히 보면 국교정상화 이후 계속 늘던 대일 수출은 89년 1백35억달러를 고비로 줄기 시작,92년 1백16억달러로 떨어졌다.수입도 91년 2백11억달러에서 92년 1백95억달러로 감소했다. 일본의 대한투자가 전체 외국인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 역시 92년 건수기준 30.5%,금액기준 17.3%로 82∼86년 평균(건수 47.7%,금액 49.6%)에 못미쳤다.고임금으로 한국의 투자매력이 떨어진 탓도 있지만 과거사 문제로 국민감정이 악화돼 소원한 상태가 지속됐기 때문이다. 93년 초 양국 모두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양국 경제관계에 새로운 돌파구가 마련됐다.국민감정과 정치논리보다 경제논리로 문제를 풀기로 양국 정상이 합의한 뒤 우리 정부가 먼저 수입선다변화 품목을 해제하는 등 관계를 개선해 나갔다. 교역액이 92년 3백11억달러에서 지난 해 3백89억달러로,일본의 한국투자는 92년 72건,1억5천달러에서 지난 해 1백32건,4억2천만달러로 각각 늘었다. 교역형태도 기계류와 부품·소재를 일본에서 들여다 경공업제품을 생산,제3국에 파는 「산업간 교역형태」에서 반도체와 철강 등 중화학제품을 서로 주고받는 「산업내 교역」으로 바뀌었다.일본으로서도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있는 한국산 부품과 소재를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일본기업들의 투자도 저임금을 겨냥한 해외 생산기지화 전략에서 전략적 제휴형태로,기술협력도 한국의 일방적 기술이전 요구가 아닌 경제논리에 기초한 교류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엔고 지속과 세계경제의 지역주의화,미국과의 협상실패에 따른 무역마찰로 일본은 우리와 산업협력의 끈을 단단히 할 가능성이 높다.따라서 일본기업을 적극 유치,대일역조를 개선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그렇게 되면 기술이전도 자연스럽게 이뤄져 양국관계가 호혜와 동반의 관계로 성숙돼 갈 것이다.
  • 여·야/도시권 표몰이 총력전(6·27선거/D­5일)

    ◎부동표 흡수에 당지도부 풀가동/“DJ·JP가 역사왜곡” 비난­민자/DJ 오늘부터 권역별 유세­민주 지방선거가 종반전으로 접어듦에 따라 여야는 이번 주말까지의 선거전이 대세를 가름할 것으로 판단,최대승부처인 서울 경기 인천등 수도권에 당력을 총동원해 대대적인 득표전을 전개할 방침이다. 여야는 특히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의 「정치재개」로 수도권 지역의 부동층이 서서히 마음을 정해가고 있다고 보고 당지도부를 총동원,대대적인 지원유세를 벌여 부동층을 흡수할 예정이다. 민자당은 오는 23일부터 수도권지역에 유세를 집중하는 한편 25일 서울 장충단공원에서 이춘구 대표,김덕룡 사무총장,이세기서울시지부장등 당지도부가 대거 참석한 가운데 정당연설회를 개최,민자당 지지 분위기를 고조시킬 계획이다. 민자당은 이와 함께 부동층이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된 경북 충북 대전 강원 제주지역을 전략지역으로 분류,22일 이대표가 원주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지역공약을 발표하는 등 이들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도 병행할 예정이다. 민주당도 김대중 이사장이 22일부터 선거 막판까지 수도권지역 지원유세를 벌이기로 했고 24∼25일 이틀동안 수도권을 5∼6개 권역으로 나눠 이기택 총재와 김이사장이 함께 참석하는 권역별 대규모 유세를 계획하고 있다. 한편 여야 수뇌부는 21일에도 전국 지원유세를 통해 선거 쟁점인 세대교체,지역감정 문제를 놓고 격렬한 공방을 계속했다. 민자당의 이춘구 대표는 경기도 의정부,동두천 정당연설회에서 『이제 우리나라 정치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길 국민은 원하고 있다』면서 『역사의 정상적인 흐름을 왜곡·방해하지 말 것을 그분들께 진심으로 부탁한다』고 김대중·김종필씨의 2선퇴진을 요구했다. 김대중 아태재단이사장은 이날 전북 부안과 김제 등지의 유세에서 『김영삼 대통령이 세대교체를 주장한 것은 내가 대통령을 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며 『그러나 세대교체는 국민이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는 인천,경기도 안산·광명 유세에서 『이번 선거는 현정부에 대한 중간평가이며 내년 총선과 내후년 대통령 선거를 결정하는 중대한 계기가 된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 가깝고도 먼 이웃(한·일수교 30년)

    ◎수교 19년뒤에야 한국정상 “공식 방일”/66년 무역협정 서명… 경제협력 “물꼬”/빈번한 교류속 일 지도층 잇단 망언 65년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 한일 양국간에는 모두 17차례의 정상간 왕래가 있었다. 우리나라 대통령의 첫 공식 방일이 추진된 것은 72년이다.박정희 대통령이 11월23일 공식 방일하기로 예정됐었으나,국내의 반일감정이 수그러들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취소됐다.박대통령은 18년에 이르는 재임기간동안 한번도 일본을 공식방문하지 않았다. 우리 대통령의 공식 방일이 성사된 것은 12년 뒤인 84년에 이르러서였다.이 해 9월6일 전두환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히로히토 국왕을 만났다.이후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대통령도 90년과 94년 각각 일본을 방문했다. 수교전에도 대통령의 방일은 있었다.이승만 대통령은 48년과 50·53년 등 세차례 일본을 비공식 방문,요시다 총리 등과 면담하기도 했다.또 61년에는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의장이 케네디 대통령의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는 경로에 일본을 비공식 방문,이케다 총리와 면담을 가졌다. 우리나라에 처음 온 일본 총리는 사토 총리로 67년 6월30일 박정희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했다.공식방한한 첫 일본 총리는 나카소네 총리로 83년 1월11일 서울에 와 전두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이후 88년 다케시타,91년 가이후,92년 미야자와,93년 호소카와 총리의 방한이 이어졌다. 비공식과 실무 방문을 포함하면,한국의 대통령은 모두 7차례 일본을 방문했으며,일본의 총리는 10차례 방한했다.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66년 3월 한일간의 무역협정이 서명,발표됨으로써 본격적인 경제 관계도 시작됐다. 이 해 9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장기영 전부총리와 후지야마 일 경제기획청장관이 참석하는 한일경제각료 간담회가 열렸다.이후 양국간 경제교류는 80년대 말까지 크게 확대되어 왔으나,90년대초에 들어 무역·투자·기술협력 등의 분야에서 감소세를 보이다 최근 회복세를 찾고 있다. 그 과정에서 무역불균형 심화가 지속적으로 양국간 현안이 됐는데,65년 1억 달러였던 대일 무역적자는 80년대 후반에 50억 달러를 초과하기 시작했으며,92년에는 79억 달러를 기록했다. 경제 관계가 밀접해지면서 67년 정기 각료회의가 시작된 뒤,양국 외무장관 회담,고위외교정책협의회,한·일 어업공동위원회,문화교류실무자회의 등의 한·일 정부간의 정기회담으로 자리잡았다. 또 한일의원연맹과 한일친선협회,한일협력위원회,한일경제협회,한일협회,한일여성친선협회,한일문화교류기금 등의 민간 친선단체가 발족되기도 했다. 65년 1만명에 불과하던 양국간 인적교류는 지난해 2백70만명으로 늘어났다.일본이 거주하는 재일 한국인은 68만8천명이다.최근에는 재일교포와 일본인과의 결혼이 늘어나는 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90년 통계에 따르면,재일교포의 총혼인건수 1만3천9백34건 가운데 동포간 혼인은 15.8%에 불과하며,일본여자와 결혼한 교포남성이 19.5%,일본남자와 결혼한 교포여성이 64.2%였다.일본에 귀한한 재일교포는 50년이래 17만명인 것으로 집계된다. 이러한 관계 발전의 한편에서는 일본측의 망언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일본의 고위각료급에서만도 해마다 일일이 기록할 수 없을 정도의 망언을 쏟아냈다.대표적인 것이 82년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그에 대한 86년 후지오 문부상의 망언으로 양국간의 외교문제로까지 비화됐다.정부는 이해 9월 예정된 한일 외무장관 회담을 연기하며 후지오의 망언에 엄중항의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또 올해 한일 국교정상화 30주년을 맞아서도 어김없이 와타나베 미치오(도변미지웅) 전 외상이 한일합방과 관련한 망언을 함으로써 양국간의 미래지향적인 관계 발전에 찬물을 끼얹었다. ◎도쿄의 평가와 과제/“국교정상화 한국발전에 크게 기여”/위안부 등 개인배상문제 불씨 잠복/재일동포3세 법적지위개선도 현안 한국과 일본은 22일로 한·일기본조약 서명 30주년을 맞는다. 국교가 정상화된 지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일본에는 한국에 대한 우월감이,한국은 일본에 대해 피해의식이 남아 있다.또 「김대중납치사건」 「문세광 사건」 망언파동 등으로 한일관계는 곡절도 많이 겪었다. 한일관계는 양국 정치에 있어 「늘 쉽게 구사할 수 있는 정략적 카드」로 악용당한 사례도 많이 있다. 하지만한일국교정상화가 냉전체제하에서 동아시아지역의 안정과 한국의 경제발전,일본의 이 지역에서의 영향력 행사를 위한 안정적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양국에 크게 공헌한 점이 있다는 데 대해 의견이 대체적으로 모아진다.특히 일본에서는 국교정상화가 한국에 보다 많은 플러스가 됐다고 말하는 학자,평론가들이 많다. 초대 주일대사를 지낸 김동조전외무장관은 한일국교정상화와 관련,『냉전구조하에서 정치적으로 아시아,넓게는 세계 평화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면서 『한국으로서도 피폐해진 경제를 발전시키는데 조약체결로 얻은 자금이 도움이 됐다』고 말한다(도쿄신문 20일자). 일본으로부터의 자금이 한국경제 발전에 대해 도움이 됐다는 점에 대해서는 재일사학자 강재언교수도 높이 평가한다.하지만 강교수는 강조하는 점이 조금 다르다.그는 우선 일본으로부터 무상공여 3억달러 등 모두 8억달러의 자금은 식민지 피해에 따라 당연히 받을 몫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강교수는 또 『동남아시아의 다른 나라들도 배상을 받았지만 많은 나라에서 특권층을살찌운 반면 한국은 깨끗하게 경제건설에 활용됐다』고 말해 자금이 들어온 일본보다는 활용한 한국의 노력에 비중을 두었다. 그는 반면 「식민지지배 책임문제」 등이 분명하게 밝혀진 위에 국교정상화가 됐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돈이 급하고 일본은 과거를 반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 부분이 애매하게 처리된채 기본조약이 체결됨으로써 여러가지 문제들이 남게 됐다고 말한다.남은 문제들 가운데는 일본의 진정한 과거반성,한일기본조약의 해석,재일동포 3세이하의 법적 지위 문제,식민지배 피해자에 대한 개인적 배상 등을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한·일기본조약 서명 이동원 전외무/“국력 길러 일 우월의식 극복을/과거에 매달려 역사흐름 놓치지 말길/패전 극복 일의 창조적 노력 본받을만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이동원 전외무장관(현 국제학술원이사장)은 21일 국교정상화 30주년에 즈음한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은 과거에 너무 집착하지말고 일본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한다고 강조했다.다음은 인터뷰 내용. ­한·일기본조약을 서명한 당사자로서 30주년을 맞는 감회와 기본조약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한·일 국교정상화회담은 거의 15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전후 세계사에서 가장 길었던 외교협상이었습니다.그만큼 양국간의 적대감과 갈등이 깊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조약에 서명한 것은 역사의 흐름에 뒤떨어지지 않기위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냉전이라는 국제정세를 배경으로 식민지지배에 대한 청산을 분명히 하지않고 경제협력을 우선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역사는 변화하는 것입니다.변화없이는 발전도 없습니다.한·일기본조약은 그 시대의 역사적 변화의 흐름을 활용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당시 미국의 지원하에 새로운 일본이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한국도 새로 태어나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과거의 역사는 물론 잊어서는 안되지만 과거에만 머물러 있을수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의 전후청산은 끝났다고 생각합니까. ▲어느정도 이루어졌다고 봅니다.그러나 중의원의 「전후50년국회결의」 채택과정에서 나타났듯이 과거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독일과 같은 자세가 부족합니다.일본은 국수주의적 환상에서 깨어나 이웃국가들과 함께 공존·번영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그러나 불행히도 아시아의 후진성을 이용,우월주의적인 입장을 견지하려는 움직임이 여전히 강합니다.공존의 시대에 배타주의적 우월의식을 고집한다면 일본의 미래는 어둡다고 봅니다.일본도 중국·한국·아세안등 아시아 이웃국가들의 역동적인 변화를 잘 인식하지않으면 안됩니다. ­국교정상화후에도 일본지도층의 망언이 되풀이 되고 있습니다.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주변국가를 멸시하는 일본의 배타주의적 우월의식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의 의식속에는 아시아를 깔보는 경향이 강하게 배어있습니다.그러나 우리들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일본인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하도록 하는 창조적 노력과 국력배양을 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2차대전후 일본은 전쟁폐허의 암울한 상황이었습니다.일본은 그러나 미국에 머리숙이며 열심히 기술을 배우고 경제부흥을 위해 많은 땀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특히 선진기술을 그대로 모방하지않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일본적인 알파」를 추가하려고 노력했습니다.그러한 「창조적」 노력이 오늘과 같은 경제대국을 이루는 원동력이 됐습니다.그러나 우리는 일본것을 그대로 모방하는데 그친 경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 결과 일본에 대한 경제적 예속이 점점 깊어져왔습니다.작은 것이라도 「한국적 알파」를 추가하려는 창조정신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한국을 보는 일본의 시각이 변했다고 봅니까. ▲한국에 대한 일본의 시각이 많이 좋아진 것은 사실입니다.그러나 한국을 얕보는 본질적인 인식은 크게 변하지않은 것 같습니다. ­식민지지배를 배경으로 한 한·일간의 특수관계에서 이제는 보통의 이웃국가관계로 바뀌어야한다는 지적이 있습니다만. ▲그렇습니다.과거가 미래를 구속하는 상황이 더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됩니다.광복 50주년이 됐습니다.일본에도 한국에도 식민지이후 세대가 중심이 되고 있기때문에 한국도 이제는 냉정한국제정치논리에 대비하여야합니다. ­앞으로의 한·일관계를 어떻게 전망합니까. ▲양국은 경제뿐만아니라 정치·문화등 각분야에서 더욱 밀접하고 복잡한 관계로 발전할 것입니다.그러나 한국은 반일감정을 극복하고 기술·정보등 경제분야의 발전을 통해 일본과의 격차를 줄여야합니다.물론 일본과는 경제규모에서 대등할수는 없습니다.그러나 질적인 대등함을 유지할수 있는 국력을 키워야합니다.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국력이 뒷받침되는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추방돼야 할 지역감정/반영환 논설고문(시론)

    지방자치선거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34년만에 처음으로 단체장까지를 뽑는 이번 선거는 전국 곳곳에서 합동유세와 정당연설회등으로 불뿜는 열전이 가열되고 있는 중이다. 이에따라 입후보자들의 수위를 모르는 「공약」이 끝도없이 이어져나와 이것이 지방선거가 아니라 대선이나 총선이 아닌가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이다. 그러나 정부수립 47년만에 지방자치의 완벽한 실시를 실현할수 있게 된것은 놀라운 「민주주의의 개화」라고 아니할수 없다. 자유당정권의 50년대말 부정과 독재의 한국정치현실을 돌아본 한 외국기자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찾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찾는 것과 같다』고 혹평한 일이 있다.그가 아니더라도 당시 한국에서의 선거이면을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그런데 지금 우리국민들은 「4대지방선거」라는 크고 아름다운 장미꽃을 쓰레기통에서 보기좋게 가꿔낸 것이다. 지나간 40여년간 우리의 헌정사를 돌아보면 선거란 권력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한 모양새좋은 장식품으로만 사용돼온 느낌이다.따라서 국민들은 수없이 기만당했고 국민의 주권은 번번이 약탈당하곤 했다.자유당시절에는 민의를 대신하는 「우의(오의)」나 「마의」까지도 등장해 부정선거를 연출하였다.3공·4공때는 통일주체대의원들이 대통령을 뽑는 이른바 「체육관 선거」도 치렀다.국민주권의 원천적 봉쇄였다.독재·군사정권시대의 왜곡되고 굴절된 선거 모습이다. 선거풍토의 개선을 위해 문민정부는 「깨끗한 선거」「공명선거」의 기치를 내걸고 통합선거법을 개정했다.「선거혁명」이라고 불릴 새 선거법에 의해 우리는 6·27 지방선거를 맞게된 것이다.『불법행위가 밝혀지면 몇번이라도 다시 선거를 치르겠다』는 김영삼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도 표명된 터이다.과거의 선거때와는 달리 후보자들의 금품공세나 선심관광,향응등 타락상은 사라졌다.선거때면 활개치던 유권자들의 금품요구등 혼탁선거 유발행위도 자제되고 있는 분위기다. 이러한 변화와 개혁의 물결속에서도 여전히 되살아나는 구시대의 망령에 당혹감을 금할수 없다.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정치지도자들의 목청높은 발언이 그것이다.당선되기 위해서라면 온국민이 지탄하고 혐오하는 지역감정이라도 들춰내 이용하겠다는 것인지,참으로 이해할수 없는 일이다.선거에서의 지역감정은 지나간 시대의 아픈 상처이며 고질이다.따라서 당연히 청산되었어야 할 멍에임을 국민이면 누구나 알고있다. 「지역등권주의」니 「핫바지론」은 지역감정을 유발하거나 여기에 호소하는 주장들이다.「지역등권주의」는 「지역할거주의」를 지향하고 있으며 「핫바지론」은 지역감정을 원색적으로 선동하는 표현이다. 일부 후보들은 『이번 선거에 지역도민들의 자존심과 명예가 걸려있다』고 공공연히 외치고 있다.특정당 후보가 당선되면 도민의 자존심이 살아나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민의 자존심과 명예가 실추된다는 것인지 납득할수 없는 억지논리다.지역감정의 심화는 국민들의 마음속에 대립과 반목의 골을 깊게 하고 무분별한 배타성을 증폭시켜준다.그 결과 국민통합을 깨뜨리고 맹목적인 지역이기주의의 갈등만을 조성하게 된다.지난 몇차례의 선거를 통해서 우리는 지역감정이 얼마나 많은폐단과 후유증을 남겨주는지 절실하게 체험한바 있다.이제 또다시 구시대의 망령에 시달려서야 되겠는가. 정치인들은 역사앞에서 부끄러움이 없어야한다.또한 역사의 먼 지평을 내다보는 거시적인 안목이 있어야 한다.눈앞의 현실적 작은 이해에만 급급한 그런 정치인을 국민들은 믿고 따르지 않을 것이다.민주주의를 확실하게 정착시키는 이번 지방자치선거를 계기로 지역감정은 이땅에서 영원히 추방돼야 할 것이다.이는 유세장의 정치인과 후보자,그리고 유권자들이 함께 이룩해야할 국가적 당위라고 생각한다.
  • 흑색선전 추방해야 한다(사설)

    인신공격성 흑색선전은 사실규명이 쉽지않고 시간이 걸리기때문에 선거때마다 재연되는 악습의 하나다.뒤에서 총을 쏘는 격의 비열함 뿐 아니라 정상적인 정치의사 표시를 왜곡하는 폐해와 지역사회를 분열시키는 파괴성때문에 공명선거실현을 위해 반드시 추방해야할 반민주적 범죄행위다. 4대지방선거의 후보등록도 시작되기전에 흑색선전이 난무,특정인의 치부 불륜 부정 등에 관한 출처불명의 비방선전물이 배달되고 악성루머가 나도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안타까운 보도다.민자당이 무소속 후보를 지원하고 있다는 민주당 대변인의 다른 후보에 대한 흠집내기는 터무니 없는 흑색선전으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않는 마키아벨리즘이 지배하는 것이 정치의 세계이고 선거판이라하더라도 한 주간지의 미완성원고를 가지고 다른 후보들에게 상처를 주려한 것은 책임있는 공당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행위다.최종보도되기 전까지는 내부자료에 불과한 남의 원고를 아무런 사실확인 노력이 없이 공당의 대변인이 사실인 것처럼 공식발표하는 기만적 정치에서 선거문화의 향상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민주당은 흑색선전식의 행태를 지양하고 정정당당한 정책대결의 모습을 보여야한다.그동안 민주당 대변인의 말은 정치수준의 향상보다는 정치언어의 저질화에 영향을 끼친 느낌이 크기때문에 대변인문제를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선거판을 혼탁케하는 흑색선전 인신공격의 불법행위는 금권사범과 똑같은 차원에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의법처리로 본때를 보여야한다.그러나 법적인 단속이 여의치않기때문에 여야가 조속히 공명선거추진위를 만들어 흑색선전을 않겠다는 공동선언을 포함,자정운동을 실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지역선관위나 시민단체등의 후보자들에대한 지도와 압력도 활성화되어야 할 것이다. 유권자들의 책임있는 행동은 공명선거와 정치문화향상의 관건이다.감정이 아닌 냉철한 이성만이 흑색선전과 지역주의를 막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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