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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부 유럽교과서 한국역사 왜곡

    스페인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유럽 3개국이 발간한 사회 교과서의 한국관련 내용 가운데 일부가 잘못 서술돼 있거나 한국에 대해 부정적 이미지를심어줄 우려가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24일 한국교육개발원이 최근 발간한 연구보고서 ‘스페인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캐나다 교과서에 나타난 한국 관련내용분석’에 따르면 스페인은 한국의 문자를 중국 문자로,한국민을 중국·몽골인종으로 잘못 표현한 것으로 나타났다.일부 스페인 교과서는 일본으로부터 한국의 독립연도를 1948년으로,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했다.朱炳喆 bcjoo@
  • 인터뷰-정년퇴임 앞두고 2권의 저서 출간 강만길교수

    姜萬吉 고려대교수(65)가 다음달 정년퇴임을 앞두고 2권의 책을 내놓는다.고려인 강제이주 길을 답사한 후 쓴 역사기행 ‘회상의 열차를 타고’(한길사)가 먼저 나왔고 20세기를 자신의 역사관으로 정리한 책 ‘20세기 우리 역사’(창작과 비평사)는 23일 나온다.진보적 사학자로 평가되는 姜교수는 우리의 20세기를 한마디로 ‘비극의 세기’라고 정의한다.18일 그의 호를 따최근 문을 연 서재 여사서실(黎史書室)에서 그를 만났다.▒새로 낸 책에 대하여. ‘회상열차를 타고’는 지난 97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타슈켄트까지 2만km에 이르는 고려인의 강제이주 경로를 따라가며 고려인들의 실상과 과거,그들의 항일 민족해방투쟁의 실체를 더듬어 본 역사현장의 기록이다. ‘20세기 우리 역사’는 97년 초부터 1년동안 유니텔의 ‘가상대학’에 올린 강의내용을 보완한 것이다.강의내용이라 경어체를 썼으며 단순히 실증적역사적 사실 뿐만아니라 나의 역사관에 따른 주관적 역사해석과 가정·전망도 했다.일제 식민통치부터 독립운동,분단과 6·25,독재와 민주화투쟁등 김영삼 정부까지를 26개 주제로 나누어 서술했다.▒우리의 20세기를 어떻게 평가하나. ‘비극’이라는 단어로 상징할수 있다.우리의 20세기는 비극의 역사였다.20세기 전반기는 일제식민지의 시대였고 후반기는 분단의 시대였다.분단의 시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불행의 시대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이다.우리는 식민지기간동안 민족자결과 역사창조 능력이 없는 민족으로 국내외에 선전된 일 등 역사왜곡을 냉철하게 인식해야 한다.특히 근대적 국가경영 경험에서 철저히 배제됐다.서양이 크게 발전한 20세기 전반에 우리는 스스로 선거 한번 해보지 못해 민주주의 경험을 전혀 할 수 없는 비참하고 억울한 시대를 살았다.▒역사를 공부하는 목적은. 역사공부는 지식을 축적해 가는 단순한 일이 아니다.역사를 영위해 가는 데 도움이 되기 위해 역사를 배운다.인간의 역사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더 자유로워지고 고루 풍요롭고 더 평등해 지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그러한 바람직한 역사관으로 보면 朴正熙 전대통령의 경제개발론도 재평가돼야한다. 朴 대통령의 경제개발 정책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온 게 사실이다.그러나 정치적으로는 독재체제를,사회적으로는 많은 갈등과 대립을,문화적으로는 군사문화라는 말이 당대를 지배할 만큼 부정적인 면이 많았다.경제적으로도 부의 편중을 가져왔다.경제성장은 사실 집권층 몇 사람의 능력이나 지도에 의해기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21세기 전망은. 비극의 세기였던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는 희망의 세기로 만들어야 한다.우리민족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통일이다.통일은 7천만 우리민족만의 통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한반도 통일은 동북아 평화질서의 중요한 축이다.한반도가 평화적으로 통일되어 중국과 일본사이에서 중요한 주체세력이 돼야 한다.주변 국가가 한반도통일을 반대한다면 그것은 제국주의적 사고라 할수 있다.
  • 李泳禧-姜萬吉교수 대한매일 새해 특별대담

    ●한양대 대우교수 ●평북 삭주·69세 ●한국해양대졸,미 노스웨스턴대신문대학원 수료 ●조선일보외신부장 ●한양대 신문방송학과교수 ●한겨레신문 논설고문 ●주요 저서‘전환시대의 논리’‘우상과 이성’‘10억인과의 대화’ 올 99년 한해는 우리 사회의 묵은 비리를 청산하고 개혁에 박차를 가해 새 로운 천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역사적 전환기다.대한매일은 새해 벽두 李泳禧(한양대 대우교수)·姜萬吉(고려대)교수의 특별 대담을 통해 분단 50 년사에 걸친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점과 향후 개혁 과제들을 짚어보고,나아가 21세기 우리가 지향해야할 좌표를 모색해 보았다. ●李泳禧교수 나는 프레스센터에는 종종 들어와 봤지만 옛 서울신문 건물에 들어오기는 오늘이 처음입니다.4·19때 기자를 하면서 학생들 대열에 오히려 앞장섰습니다.당시 경무대 근처에서 수도관을 굴려 올라가는 앞에 섰습니다 .경찰이 총을 쏴서 골목에 숨었다 내려오면서 보니까 서울신문이 불타고 있 습디다.오랫동안 체했던 것이 내려가는 통쾌함을 맛보았습니다.나는 권력의신문과는 인연이 없는 사람입니다.서울신문이 대한매일로 이름이 바뀐 것을 보니 뭔가 시대가,역사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것이 단순한 느낌이 아닌 사실이기를 바랍니다. ●姜萬吉교수 얼마전 서울신문이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꿀 때 글을 기고한 적 이 있습니다.한 신문이 제호를 바꿔 원래 이름을 되찾는 발상 자체가 이 시 대가 어떤 시대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 같습니다.저도 옛 서울신문 건 물을 찾기는 이번이 처음으로,시대가 바뀌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의 미가 있는 것 같군요. ●李교수 60년대 중반 모 신문의 정치부에 있었을 때 부장 이하 11명의 기자 가 있었습니다.그런데 朴正熙정권 초기 12∼13년 사이에 정치부 기자 9명이 장관,국회의원이 되거나 청와대 비서실에 들어갔습니다.한국의 신문인들은 평상시 한 눈은 직업에,한 눈은 청와대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우리 신문인들 은 조금만 위상이 올라가면 벌써 사팔뜨기가 됩니다.내가 이름을 말하지 않 아도 짐작이 가는 다른 신문도 마찬가지입니다.역대 군사정권에 간교한 사회 통제,언론 통제 탄압의 기법과 수법을 가르치고 앞잡이가 된 것이 한국신문 의 정치부 기자들입니다.흔히 요즘 일각에서 지난날 정치를 망친 것이 서울 법대 출신이라고 하지만,나는 실생활을 통해 바로 신문기자들,주로 정치부 출신이 이 나라를 망쳤다고 봅니다.65년까지는 언론인들도 절개를 지키고,사 회정의를 위해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언론의 정도를 가려고 하는 풍토가 있 었습니다.그러나 朴정권 들어서 3∼4년 뒤부터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정치군인들이란 일체의 윤리관념이 없는 집단입니다.오로지 목적의식만 있 고 동기,과정,윤리적 의식이라곤 없는 집단입니다.그것이 한국 사회 전체를 무질서,몰(沒)윤리 사회로 몰아가는 원리가 됐습니다.거기에 언론기관,신문 인이라는 사람들이 특혜와 입신영달과 권력과 출세를 위해 군과 일체화됐습 니다.정권은 곧 부패하기 시작하고 나라의 재부(財富)를 자기 것처럼 뜯어먹 기 시작합니다.이 때 자기 추태를 국민의 눈에서 변론해 줄 부패한 신문이 필요해집니다.이런 것이 되풀이돼 왔습니다.신문이 타락하면 무책임해집니다 .바로 우리 신문이 그렇습니다.함부로 쓰는 것이지요.요즘 모 신문이 역대 독재 정권 아래서 정권을 쥐고 놀던 작태를 되풀이하다가 들통이 나는 모양 입니다. 뉴욕타임스 경우는 미국의 대학 박사학위 논문에서 인용의 공식적 근거가 됩니다.뉴욕타임스가 100% 제 책임을 다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신문이 언론으로서 지켜야 할 수칙을 지키고자 했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한국의 신 문은 그렇게 인용할 가치가 없습니다. ●姜교수 내 전공이 역사학이기 때문에 언론에 대해 평소 하고 싶은 말이 많 았습니다.신문기사는 어떤 사실을 보도하는데 그치지 않고 가치관을 갖고 다 뤄야 합니다.현대사회에서 신문기사는 그 자체로 훌륭한 사료가 됩니다.신문 기자도 사람이기 때문에 시대적 상황에 얽매여 제약을 받지 않을 수 없겠지 만 사회가 더 나은 곳으로 가도록 하는 가치관을 제시해야 합니다.요컨대 인 류 역사 전체의 방향에 중점을 두고 기사를 쓰고 신문을 제작해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요즘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출입하는 곳을 춘추관이라고 하는데, 본 래 춘추관은 역사를 편찬하는 곳이라는 점에서도 신문의 사명은 자명해집니 다. ●李교수 이미 상식이 된 이야기지만 우리 사회는 모든 분야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일정한 숙정과 개혁의 아픔을 거칩니다.그러나 유독 언론계만 한번도 지난날의 적폐에 대해,지난날 저지른 과오와 국민을 오도한 죄과에 대해 반 성하고 스스로 비판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명시하는 일 없이 넘어가곤 했습니 다.몇 대에 걸친 군사정권을 거치는 동안 왜곡된 논설에 대한 책임을 지고 주필이나 논설위원 한 사람이 펜을 놓고 물러난 일이 없습니다.그 아래는 더 말할 것도 없지요.무책임성이 체질화된 것입니다.‘국민의 정부’ 5년은 다 시 과거로 돌아가느냐 안 돌아가느냐 하는 기틀을 만드는 분수령이 되는 기 간입니다.이번에 정말로 언론계 스스로 각성해서 내부적으로 개혁하거나,시 대적 사명과 요청에 합당하도록 탈바꿈해야 합니다.근래에는 언론이 나아가 야 할 방향이 제시되고 있는데도 언론기관 내부에서 일부 저항이 일어나고 냉소적 풍조가 있다는 말을 들으면 참으로 걱정이 앞섭니다. ●姜교수 조선 왕조 때 사관은 임금 옆에 앉아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했 습니다.태종 같은 왕은 제왕 수업을 제대로 받지 않고 재야에서 거칠게 자라 언행을 함부로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그래서 아예 사관을 옆에 두지 않으 려고 했으나,당시 사관은 무슨 일이 있어도 임금의 모든 언행을 기록하겠다 는 식으로 대단한 기개를 보여줬습니다.현대의 기자가 일개 직업인으로 과거 조선 왕조 때의 사관과 같을 수는 없지만 자기 직업의식이 투철하지 못하다 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이들은 권력 쪽만 쳐다보게 되는 경향이 있 습니다.기자나 교수 등 지식인사회에서 사명의식을 갖고 한 평생을 바치려는 직업의식이 부족한 것입니다.과거 조선시대의 경우 자질과 능력이 없으면 상공업에라도 종사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천민으로 전락한다고 생각한 게 큰 문제였습니다. 권력도 자기 개혁을 해야 하겠지만 국민의식도 너무 권력지향적인 역사적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해방 이후 일제시대 고등문관 시험에 합격했던 친 일파들이 고스란히 남아 높은 자리를 차지했습니다.군사정권에서는 군인들이 그 뒤를 이어 권력을 독차지했습니다.문민정권도 군사정권의 태(胎) 안에서 탄생,그들과 타협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그러나 ‘국민의 정부’는 친일파 들이 자연도태된 기반 위에서, 군인 중심의 권력에서도 벗어나 비로소 국민 이 처음으로 역사의 주인으로 참여하는 정부입니다.이 상황이 정착되어야 합 니다.다시 과거로 되돌아 가는 일이 생겨선 안됩니다. ●李교수 우리가 분단상태로 반세기를 지나면서 통일은 커녕 평화공존의 가 능성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남이나 북이나 큰 수치입니다.독일 민족 을 보더라도 그렇습니다.2차대전 후 대국 수뇌들은 자기들 이해관계 조절을 위해 많은 민족과 국토를 억지로 합치기도 하고 또는 억지로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다 해결이 이루어졌습니다.독일민족이 가장 어려울 것이라던 통일을 일궈냈습니다.독일은 지난날 침략과 평화 파괴의 행적 때문에 앞으로 상당한 기간 두 개의 국가로 존립한다는 공식 조약까지 맺었었습니다.4대국 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은 독일을 절대로 통일 시키지 않겠다고 했었습니다.그 런데 독일은 통일이 됐습니다.독일 통일은 외부세력의 균형 파괴에 의한 것 이 아니라 민족적 각성과 정치적 숙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새 대통령의 민 족관,통일관,남북관계에 대한 철학은 그 어느 시기의 정권이나 대통령보다 훨씬 성숙하고 길게 내다보는 면이 있습니다.나는 앞으로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전제하면서도 그래서 한결 희망을 갖습니다. ●姜교수 해방 이후 50여년이 지나면서 커다란 기득권 세력이었던 친일파들 은 거의 도태됐습니다.다시 형성된 기득권 세력은 군사정권하에서 성장한 군 부와 재벌 및 언론과 교수 등 지식인 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金泳三 전 대통령의 문민정권은 경제나 남북문제에서 큰 실책을 범했지만 그래도 군의 횡포를 약화시킨 점은 평가받을 만합니다.지금의 국민의 정부는 재벌문제와 씨름중인데 그 해체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반드시 그 방향은 바꿔 놓아야 합 니다.언론개혁도 자체 개혁에 맡긴다고하고 있으나,시민운동이 여기에 가세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재벌문제와 언론개혁문제에 시민운동 단체가 적극성을 발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교수,기자,심지어 의사 등 90년대 들어 사회개혁에 앞장선 지식인들의 (불 의에 대한)‘ 저항 자산’이 시민운동 확산의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지식사회가 사회에 산재한 수많은 문제들 뿐만 아니라 자기 개혁 노 력에도 힘을 기울여 사이비 지식인이 설 땅이 없어지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李교수 지난해 11월 특정 목적,즉 53년 전 헤어진 누님과 형님의 생사 여 부를 확인하러 북한에 갔습니다.고향에 갈 수 있느냐고 북에 정식으로 요청 했고,북에서 회답과 함께 초청장이 왔습니다.통일부에 허가를 신청했더니 허 가를 선선히 내줍디다.처음부터 특정 목적을 위해 북에 간 것은 鄭周永 현대 그룹 명예회장 이후 내가 처음인 것 같습니다.그러나 만나고자 했던 혈육들 이 4년 전 모두 돌아가셔서 서러운 귀향이 됐습니다.우리 정부는 방북 목적 이 반국가적이거나 하지만 않다면 거의 다 허가하는 것 같습니다.내가 북한 에 갈 수 있었던 것은 조그마한 사건입니다.앞으로 이같은 사례가 확대 발전 돼 교류와 접촉의 기회가 촉진돼야 합니다.동해안에서 북의 잠수정이 그물에 걸리고 하는 것은 대세를 돌릴 만큼 중대한 사건이라고 보지 않습니다.북한 은 金大中대통령의 햇볕정책에 알레르기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북한의 대외 정책 책임자 3명과 이야기를 했는데 ‘햇볕정책’이라는 말(표현)이 싫다는 겁니다.지금까지 주체적 존재로,그런 철학을 갖고 살아왔는데 “팬티를 벗 기겠다는 것이냐”는 겁니다. 올 99년 한해는 우리 사회의 묵은 비리를 청산하고 개혁에 박차를 가해 새 로운 천년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는 역사적 전환기다.대한매일은 새해 벽두 李泳禧(한양대 대우교수)·姜萬吉(고려대)교수의 특별 대담을 통해 분단 50 년사에 걸친 한국사회의 제반 문제점과 향후 개혁 과제들을 짚어보고,나아가 21세기 우리가 지향해야할 좌표를 모색해 보았다.
  • 올해의 인물-’색깔논쟁’ 회오리 崔章集교수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고려대 崔章集교수에 대한 사상논쟁이 ‘색 깔논쟁’으로 비화하면서 조선일보와 개혁성향의 시민사회단체,진보성향 학 계의 대리전으로까지 확산됐다. 이번 논쟁으로 崔교수는 물론 학계는 법원으로부터 학문의 폭넓은 자유를 확인하는 소득을 얻었다.또 언론의 공인검증은 사실성과 공정성에 근거를 두 어야 한다는 ‘법적인’ 기준도 마련됐다. 논쟁은 ‘崔章集교수의 충격적 6·25전쟁연구관-6·25는 金日成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월간조선 11월호의 기사에서 비롯됐다.이후에도 조선일보와 월 간조선은 崔교수의 사상을 좌파로 몰며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논리를 폈 다. 사상논쟁이 처음 제기됐을 때만 해도 金泳三정부 초창기에 있었던 韓完相 전 통일부총리와 金正男 전 교육문화수석에 대한 ‘색깔논쟁’처럼 새정부에 대한 ‘통과의례’ 정도로 인식됐다.그러나 보수진영에서 崔교수의 사상성 향과 국민정부의 중장기 정책을 연계시키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면서 파장 은 증폭됐다. 당사자인 崔교수는 “사상검증이라는 표현은 전체주의적인 발상”이라면서 “보수주의에서 조금 벗어난다고 ‘좌파다’ ‘불온하다’는 딱지를 붙이거 나 이지메로 한 사람이나 집단을 격리시키는 현상이 벌어지면 그 결과는 메 카시 광풍,획일주의의 강화”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그는 “획일주의가 강화되면 사회발전에 필요한 다원성·역동성·개발성· 창의성이 위협받게 된다”고 강조했다. 崔교수는 보도 직후인 지난 10월23일 자신의 논문을 왜곡보도했다며 조선 일보사를 상대로 월간조선 발행 및 판매,배포 금지 가처분신청과 함께 5억원 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지법에 냈다. 崔교수의 법적인 대응과는 별도로 학계와 시민단체들의 비판 및 옹호 성명 전은 계속됐다.세대간·이념간·정치세력간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불러일으키 는 양상으로까지 확전됐다. 그러다 법원이 지난 달 11일 崔교수측의 가처분신청을 전격적으로 받아들 여 월간조선이 판매·배포금지되는 사태가 초래됐다.중앙일간지가 발행하는 월간지에 대한 첫 판금조치였다. 崔교수에 대한 ‘색깔논쟁’은 언론의 ‘횡포’에 대한 법적 심판이라는 의미와 더불어 학문 영역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검⒂鬪? chungsik@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潘炳律 외국어대 교수 ‘誠齋일대기’ 펴내

    ◎독립운동사의 거인 李東輝 ‘제모습 찾기’/신민회 활동·상해臨政 초대총리 활약/사회주의 접목 독립운동 새바람 꾀해/이념의 족쇄벗고 균형잡힌 재평가 시도 한 시대나 인물에 대한 역사의 평가가 제때,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또 시대가 바뀌면서 역사의 평가가 엇갈리는 경우도 있다. 영웅이 쿠데타의 주역으로,또 반대로 반역자가 시대의 선각자로 등등.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우리 근현대사에서도 그런 예는 허다하다. 최근 한국외국어대 潘炳律 교수(한국사)가 출간한 ‘성재 이동휘 일대기’(범우사)는 이같은 ‘역사의 평가’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반 교수는 한·일·중·러·미 등에 산재한 관련자료를 수집,이동휘 선생의 ‘제모습찾기’를 본격적으로 시도한 것으로 평가된다. 성재(誠齋) 李東輝(1873∼1935) 선생은 한국독립운동사에서 결코 홀대할 수 없는 큰 별이다. 더러 백범 金九,우남 李承晩,도산 安昌浩 반열에 놓기도 한다. 구한국 정부에서 강화도 진위대장(鎭衛隊長)을 지낸 선생은 ‘을사조약’이 체결되자을사오적 처단후 자결할 것을 결심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일제에 의해 군대가 해산되자 신민회 핵심멤버로 활동하다가 나라가 망하자 1913년 만주로 망명,북간도와 러시아령(領)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지도하였다. 3·1만세의거 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초대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한편 이 무렵 선생은 당시 풍미하던 사회·공산주의 사상을 한국독립운동 선상에 접목시키는 한편,선생 자신이 ‘고려공산당’을 창당하여 독립운동 진영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했다. 그러나 선생의 이같은 사회주의 혁명노선은 선생을 해방후 반세기 동안이나 ‘이념의 창고’에 가둬두는 족쇄로 작용하였다. 한동안 학계에서조차 선생의 이름을 거명하는 자체가 금기시되던 시절이 있었다. 반공이데올로기가 지배하던 시절 역대 남한정권은 선생의 사상성향을 이유로 독립운동 공적마저 덮어버렸다. 극도의 왜곡과 폄하 그 자체였다. 정부는 1962년부터 독립운동가에 대해 포상을 실시해왔는데 ‘광복50주년’인 95년에야 겨우 선생에게 훈장을 추서하였다. 친일경력자·가짜독립운동가 목에도 훈장을 걸어준 우리 정부가 진짜 독립운동가인 선생 앞에서는 ‘이념타령’만한 셈이다. 반 교수는 선생을 두고 “독립운동 공적은 물론,조국광복을 향한 사심없는 열정·희생정신·혁명성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라며 ‘이동휘 예찬론’을 편다. 전기출판과 때맞춰 지난 21일 학계·종교계 인사 500여명을 주축으로 ‘이동휘기념사업회’가 조직됐다. 뒤늦었지만 선생에 대한 재평가 작업과 기념사업이 본격 시작될 모양이다. 선생의 자료집 ‘성재 이동휘 전서’(전2권·독립기념관 간행)을 곧 출간예정인 인하대 尹炳奭 명예교수(한국사)는 “민족운동사의 거인 이동휘를 균형잡힌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이해해야한다”고 밝혔다. 만주·연해주 일대를 제집 앞마당처럼 내달리며 항일운동을 하던 선생.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혁명 후 레닌정부가 약소민족 독립운동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자 멀리 인도양·지중해·알프스산맥을 넘어 모스크바로 레닌을 찾아가 만나기도 했던 선생. 저자의 서문 가운데한 귀절이 가슴을 친다. “‘2∼3년 내로 광복군을 이끌고 되돌아오겠다’며 압록강을 건넌 후 한시도 쉬지않고 뜨겁고 진실하게 살다간 선생의 삶과 꿈에 조금의 티라도 남기지 않았는지 죄책감마저 든다”. 어디 저자만의 ‘죄책감’일까. 선생 가신 후 60년이 지나도록 아직 유해조차 찾지 못한 우리 후손들인 것을. 범우사 20,000원.
  • 국론분열 충동질 중단 촉구/崔章集 정책자문위원장

    ◎‘민족해방전쟁 주장’ 북 성명서는 논지 왜곡 崔章集 대통령자문 정책자문기획위원장은 13일 북한 조선기자동맹의 12일자 성명서와 관련,“본인이 6·25전쟁을 남침이 아닌 민족해방전쟁으로 보았다고 주장한 문제의 성명서는 나의 논지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왜곡 변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崔위원장은 “월간조선의 왜곡사건에 이어 발표된 북측의 성명서는 남북한의 냉전기득세력이 적대적 의존관계에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고 주장했다. 崔위원장은 “북한의 성명서는 남북간의 화해협력을 거부하고 냉전적 긴장을 유지하려는 북한 강경세력의 음모로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북측은 우리 사회의 국론을 분열시키는 이같은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북한은 이날 기자동맹중앙위(위원장 서동범) 명의의 성명을 발표,“崔章集 교수의 논문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기초하여 지성과 양심을 가진 학자로서의 견해와 입장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라면서 “한 교수의 논문을 건 사상시비는 정의와 진리,남조선사회의 민주화에 대한 도전이며 낡은 냉전 시기 사고방식으로 군사파쇼 시기를 재연시키려는 극우보수세력의 발악”이라고 비난했다고 중앙방송이 13일 보도했다. 성명은 “이번 사건은 악랄한 반북 대결 입장에 바탕을 둔 것으로 조선일보가 민족대단결을 가로막는 암적 존재라는 것을 만천하에 여지없이 고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다양한 사상·주장 포용해야/姜珉 단국대 명예교수(특별기고)

    이분법적인 이데올로기가 냉전의 산물이라면 탈냉전 시대의 당연한 논리적 귀결은 사상의 다양성이다. 이미 탈냉전 속에서 염원했던 통일을 이룩한 독일의 석학 울리히 벡 교수는 『정치의 재발견』이라는 그의 근저(近著)에서 “냉전시대의 제도나 정치적 개념들을 가지고는 탈냉전 시대에 적절히 대응하기 어렵다.”고 설파하고 있다. 분명 이분법적 사상의 잣대로 현실을 분별하는 시대는 가고 있다. ○이분법적 논쟁 끝낼때 최근 崔章集 교수의 논문을 왜곡 보도함으로써 벌어졌던 일련의 ‘사상논쟁’에 우리가 크게 주목하는 까닭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시대의 흐름을 직시하며 사태를 올바르게 파악한 사법부의 판단과 판정으로 일단 자제하고 자중하는 태도로 돌아갈 계기를 맞은 이 시점에서,우리는 이번 사태가 주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올바르게 이해 할 필요가 있다. 벡 교수의 논지가 말해주듯 정치의 역사를 정치를 재발견하는 과정이라고 한다면 구 소련과 동구라파의 몰락으로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에 지나치게 도취되어 ‘승리의 위기(Victory crisis)’ 속으로 빠져들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민주화(Democratizing of democracy)’ 하는 새로운 작업에 다같이 나서야 한다. 이것은 민주주의가 ‘기성복’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반세기만에 야당이 이룩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지는 의미는 다시 이분법적인 사고(思考)로 회귀하거나 뒷걸음 칠 여유가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으며 다양한 사상과 사고의 자양분을 지금 우리의 민주주의는 절실히 갈구하고 있는 것이다. 崔章集 교수의 ‘사상논쟁’ 에 내려진 이번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이 주는 메시지의 첫 번째 의의를 우리는 이점에서 찾아야 한다. 이것은 소모적인 이분법적 사상논쟁이 이 땅에서도 사라질 때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기 때문이다. 둘째로,이번 사태에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과거와는 달리 국가의 공안기관이 아닌 사회의 한 언론기관이 ‘사상검증’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이것을 한국 민주주의의 다양성으로 보기에는 첫단추부터가 잘못 끼워진 느낌을 준다. 언론자유란 오보의 자유나 사실 왜곡의자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위태로운 논리의 비약 더욱이 이분법적인 사고를 극심하게 나타내는 한 당사자의 말대로 “이번 싸움은 崔章集 교수 대 월간조선의 싸움이 아니라 崔교수 대 대한민국의 싸움”이라면 그 논리의 비약은 실로 위태롭기까지 하다. 북한의 실권자였던 金日成도 흔들지 못 하였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崔교수 개인이 좌지우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참으로 ‘선정주의’의 단순논리치고도 정도가 지나쳤다. 다시,이 분야에 권위있는 영국의 한 석학의 말을 들어보자.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라는 최근의 저서 속에서 안소니 기든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 오늘날 극우세력은 과거의 향수에 매혹되어 더 과격해져 폭력의 잠재성에 의존하게 된다.” 그가 말하는 폭력에는 물리적 폭력뿐만 아니라,언론폭력(言論暴力) 및 지적폭력(知的暴力)도 포함된다고 하겠다. 적(敵) 아니면 동지라는 칼 슈미트적인 논리와 사고의 결과는 폭력의 재생산을 촉진할 뿐이다. 이러한 요지의 우려가 두 번째 메시지로 우리에게 전달됨을 부인 할 수 없다. 세번째 메시지는 지식인인 崔章集 교수와 공인(公人)인 崔章集 위원장에 관한 내용이다. ‘아는 것이 힘’ (베이컨) 이라는 명제가 말해주듯이,지식도 분명히 권력이다. 따라서,지식인의 목소리는 권력으로 작용한다. 더욱 공인일 경우(반드시 그렇지는 않지만)지식은 큰 권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崔교수가 대통령 자문위원회 위원장이니까 대통령에 대한 목소리가 클 것이고,때문에 문제가 된다는 논리 또한 단순한 이분법적인 주장이라 할 수 있다. ○특정인 사상검증 요구는 함정 대통령은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매일 떠들어대는 것이 누구인가,언론들이다. 그러면서도,사상의 다양성이나 주장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일부 언론의 주장은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까? 대한민국법의 보호를 받고 있는 민주적인 공인의 윤리와 그의 주장이 갖는 논리의 전제는 다양성에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공인 崔章集만은 사상검증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그 전제 자체가 허구이며,음해의 함정마저 내포한다. 탈냉전을 맞아 다양한 사상과 주장을 포용하는 관용이필요한 때이다.
  • ‘崔章集 교수 논문’ 월간조선 販禁결정 반응

    ◎“발췌왜곡은 언론자유 아닌 언론 폭력”/사회단체 “당연한 조치” 일제히 환영/대책위,조선일보 불매운동 강력 전개 崔章集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고려대 정외과 교수)의 논문을 보도한 월간조선에 대해 법원이 판매 및 배포금지 결정을 내리자 고려대와 시민단체는 당연한 조치라며 환영했다. 고려대 대책위원회는 ‘조선일보 왜곡보도 근절을 위한 고려대 연석회의’(회장 김준형·고대대학원 총학생회장)를 오는 16일 열기로 하는 등 앞으로의 활동 일정 마련에 분주했다. 대책위 소속 위원들은 지난 10월16일 대책위가 결성된 뒤 27일만에 내려진 결정을 환영하며 학내 뿐 아니라 시민단체와의 연대를 강화할 것을 결정했다. 대책위는 조선일보 불매운동을 강력히 전개하여 조선일보의 반성을 촉구할 계획이다. 조선일보사가 일제시대에 저질렀던 친일기사 등 과거 행적에 대한 고발형식의 전시회 등을 마련하기로 했다. 오는 30일에는 조선일보사를 추가 방문,항의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PC통신 동호인들로 구성된 ‘언론개혁 통신연대’(대표 김동필·29)도 동호인들간 연대를 강화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金씨는 “월간조선의 왜곡보도에 대한 법원의 결정은 정당하다고 본다”면서 “조선일보의 사과를 받아낼 때까지 여러 단체와 협의하여 유인물과 전단지를 배포하고 통신상에도 조선일보의 왜곡보도 자료를 폭로할 계획”임을 밝혔다. 시민단체도 대책마련에 분주하다. 13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 불교방송 7층에서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경실련,참여연대,전교조 등 20여개 단체가 대책활동 간담회를 갖기로 합의했다. 경실련 魏枰良 연구위원(38)은 “언론 자유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학문자유의 기본권을 보호해 줄 수 있는 판결이라 생각한다”면서 “우리 사회는 이제 좌·우 대립을 넘어 개혁·반개혁의 새로운 구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林崇澤 사무총장(48)은 “문제점을 여러번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뒤늦은 감은 있지만 일단 이번 조치를 환영한다”면서 “법원의 결정에도 불구,19개 문제항목 중 16개에서 이겼으니 자신들의 승리라고 아전인수(我田引水)적 해석을 하는 조선일보의 태도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행동”혹세 무민의 행동”이라고 비난했다. 柳初夏 민교협의장(50·충북대 철학과 교수)은 “이번 사건은 국민적 동력을 집중하고 합의해야 할 시점에 불필요한 논쟁을 종식시켜준데 의미가 있다”면서 “정치권,언론,정부는 자유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그 본질의 하나인 사상의 자유 원칙을 존중해야 하고 이에 반하는 수구세력을 청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金起式 사무국장(33)은 “언론이 검증한다는 명목으로 학문적 성과를 부분 발췌하여 왜곡하는 것은 일종의 언론 폭력이다”고 규정하면서 “이번 판결은 언론 자유의 범위를 벗어난 것임을 명확히 해준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민주노총 李敏壽 대외협력부국장(37)은 “법원의 결정이 정당하고 합리적인 것”이라면서 “조선일보사가 崔교수의 저작에 대해 필요에 따라 짜집기하는 등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을 적극적으로 바로 잡는 법원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소송 법적절차는/崔 교수측 ‘가처분’으로 정당성 확보/재판부 결정 번복 가능성 희박/명예훼손·사상검증 자유 맞서 조선일보사가 지난 11일 법원이 내린 ‘월간조선 11월호’ 발행·판매 및 배포 금지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제기키로 함에 따라 崔章集 교수의 논문해석을 둘러싼 법정공방이 2라운드로 접어들게 됐다. 이의신청은 잠정적인 조치를 취하는 가처분 결정에 불복,정식 재판을 통해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요구하는 절차다. 심리는 이번 결정을 내린 서울지법 민사합의51부(재판장 申暎澈 부장판사)가 맡는다. 다음달 초부터 열릴 이의신청 공판에서는 “공인에 대한 언론의 사상검증은 헌법도 보장한 자유”라는 조선일보측 주장과 “사실을 왜곡해 명예를 훼손한 행위까지 언론의 자유로 볼 수 없다”는 崔章集 교수측 주장이 맞설 것으로 보인다. 또 ‘6·25는 金日成의 역사적 결단’ 등 문제가 된 10군데에 대한 견해를 밝힐 정치학자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과정에서도 설전이 예상된다. 정치학자의 증언은 판결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증인의 중립성’ 여부가 논쟁거리로 부각될 수 있다. 그러나 이미 가처분 결정을 내린 재판부가 자신의 결정을 뒤집는 판결을 내릴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쨌든 양측은 이의신청 판결에 대해 서울고법에 항소할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崔교수측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같은 법원 민사합의25부(재판장 李性龍 부장판사)에서 따로 진행된다. 심리에서는 월간조선 기사로 인해 崔교수의 명예가 훼손됐는지와 훼손됐으면 그 위자료는 얼마인지를 결정한다. 崔교수가 승소할 경우 위자료 액수는 보도 경위,매체의 영향력,기사 분량,월간조선 11월호의 판매 정도 등을 감안해 결정된다. 이의신청과 손해배상 소송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예측할 수 없지만 현재까지는 가처분 결정을 얻어낸 崔교수측이 한층 유리한 고지를 선점한 상태다. ◎‘崔 교수논문’ 논쟁 전말/월간조선 ‘좌파적 시각’ 게재에 시민단체 등 “매카시즘” 강력 비난/崔교수측 손해배상 소송/국내 외 학자·단체들 조선일보 비난성명 봇물 崔章集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고려대 정외과 교수)의 논문에 대한 논쟁은 조선일보가 10월 18일 발간한 월간조선 11월호에 ‘崔章集 교수의 충격적 한국전쟁관’이라는 기사를 게재하면서 시작됐다. 월간조선은 96년 10월 출판된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이란 崔교수의 저서에 들어 있는 ‘한국전쟁에 대한 하나의 이해’란 논문을 문제삼았다. 이 논문은 崔교수가 90년 9월 ‘한국전쟁 연구’란 책에 발표한 것으로,월간조선은 ‘6·25는 金日成의 역사적 결단’ ‘南進은 민족해방전쟁,北進은 가공할 사태’라는 소제목 아래 崔교수의 논문이 좌파적 시각에서 쓰였다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은 또 93년 4월에 발간된 ‘한국민주주의의 이론’이란 崔교수의 책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崔교수가 “한국전쟁은 미국이 金日成으로 하여금 남침을 하도록 유도한 결과로 일어났다”는 내용의 브루스 커밍스가 쓴 ‘한국전쟁의 기원’을 “한국 정치학의 연구수준을 비약적으로 높이면서 커다란 영향을 미친,또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미치게 될 매우 복합적인책”이라고 칭찬했다는 것이다. 崔교수는 월간조선의 보도가 논문 가운데 일부 내용만을 발췌해 왜곡했다며 지난달 23일 서울지법에 월간조선 11월호의 배포금지 가처분신청과 5억원 상당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崔교수는 24일 모 일간지 인터뷰에서 “월간조선은 金日成의 6·25 개전 결정과 관련해 전후 맥락을 빼버린 채 ‘역사적 결단’이라고 인용함으로써 마치 내가 이를 찬양한 것처럼 표현하고,심지어 조선일보는 내가 쓰지도 않은 단어인 ‘위대한 결단’이라고까지 표현했다”고 반박했다. 조선일보는 연일 사설과 기고,우익단체들의 崔교수에 대한 비난 등에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에 비례해 국내외 학자와 시민단체들의 조선일보에 대한 비난도 강도가 점점 높아졌다. 정치학회는 성명을 통해 “월간조선의 기사는 공정한 인용에 바탕한 합리적 비판이 아니라 논지의 부당한 왜곡에 근거한 이념적 폭력”이라며 매카시즘적 마녀사냥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민주노총 등은 “월간조선이 崔교수의 논문을 왜곡보도해 사상논쟁을 유발하고 용공조작을 기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국정치연구회,민족예술인총연합,국민승리21,4월혁명회 등 조선일보를 비난하는 단체의 성명이 줄을 이었다. 특히 미국 UCLA의 신기욱 교수(사회학)와 존 던컨 교수(동아시아 언어문화사) 등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의 한국학 학자 22명이 성명을 통해 “(조선일보 보도는) 냉전시대에나 통할 단순 흑백논리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11월 3일에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성명을 냈고,국민승리21은 조선일보사 사옥 앞에서 규탄집회를 가졌다. 6일에는 경실련,흥사단,환경운동연합 등 50여개 시민단체가 가입한 한국시민단체협의회가 조선일보사의 사상검증 시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언론개혁통신연대,고려대대책위 등 4개 단체는 이날 조선일보 앞에서 규탄집회를 가졌다. 조선일보를 옹호하는 우익단체들의 성명도 잇따랐다. 대한민국 건국 50주년기념사업위원회는 지난달 26일 ‘국가 정통성을 부인하는 崔章集 규탄 성명서’를 발표했다. 崔교수의 논문 논쟁은 11일 법원이 월간조선 11월호의 일부 내용을 삭제하지 않는 한 배포할 수 없도록 판결을 내림에 따라 1라운드는 崔교수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논문 논쟁 일지 ▲10월18일 ­월간조선 11월호,‘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崔章集의 충격적 한국전쟁관’이라는 기사에서 崔교수의 사상문제 제기. ▲10월20일 ­崔교수,월간조선 보도에 대한 반박문 발표. ▲10월23일 ­崔교수,서울지법에 월간조선 11월호 배포 금지 가처분신청 및 약 5억원의 명예훼손 손해배상 소송 제기. ▲10월26일 ­민주언론운동협의회와 고려대 정외과교수,조선일보 비난성명 발표 ▲10월27일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조선일보의 과거 행적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는 성명 발표. ▲10월28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조선일보의 사상 시비중단을 촉구하는 성명 발표. ▲10월30일 ­미국 캐나다 일본 호주의 학자 22명,조선일보의냉전적 사고를 비판하는 성명 발표. ▲10월31일 ­예비역 영관 장교 모임인 대한청죽회,‘崔章集 건국사관 규탄 결의대회’ 개최. ▲11월2일 ­언론개혁시민연대,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참여연대,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학술단체협의회 등 5개 단체,‘崔章集 교수의 현대사 연구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태도­실태와 문제점’이라는 토론회 개최. ▲11월11일 ­서울지법,월간조선 11월호 배포 금지 결정.
  • ‘崔章集 파문’ 월간조선 販禁/법원,가처분신청 수용

    ◎“허위보도로 명예 침해”/조선일보선 “이의신청” 서울지법 민사합의 51부(재판장 申暎澈 부장판사)는 11일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교수(고려대 정외과)가 자신의 한국현대사 연구를 왜곡보도했다며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낸 ‘월간조선 11월호’의 판매 및 배포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김홍도 목사 보도’와 관련,방송사 프로그램 방영이 금지된 적은 있지만 중앙언론사가 발행하는 월간지의 판매 및 배포가 금지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조선일보측은 월간조선 11월호 가운데 문제가 된 부분을 삭제하지 않고는 발행,판매 또는 배포할 수 없다.또 이 부분을 담은 단행본 일간지 주간지 등 정기간행물은 물론 보도자료 광고지 등의 인쇄물을 배포할 수 없고 인터넷 등에도 관련 내용을 게시할 수 없다.그러나 이미 팔렸거나 서점에 배포된 월간조선 11월호는 회수하지 않아도 된다. 재판부가 월간조선 기사에서 명예훼손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한 부분은 ‘6·25는 金日成의 역사적 결단’ ‘개전 초기의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38도선 이북으로의 북진은 가공할 사태이며,중공군 개입을 정당화하였다’등 10군데이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앞뒤 문맥을 살펴볼 때 ‘역사적 결단’이라는 문구는 흔히 사용하는 ‘역사에 남을 훌륭한 결단’의 뜻이 아니라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줄 선택’ 정도의 가치 중립적 표현이 분명한 데도 월간조선은 이를 큰 제목으로 부각시켜 崔교수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부여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밝혔다. 이어 “崔교수는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용어를 ‘북한 당국자들이 생각했던 한국전쟁의 성격’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것이 명백함에도 월간조선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용어가 崔교수의 생각 그 자체인 것처럼 독자들에게 읽혀지도록 했다”고 지적했다. ‘가공할 사태’ 대목에 대해서는 “崔교수의 글에서 ‘가공할 사태’란 3차대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이며,설령 3차대전이 38도선 이상의 북진으로 인하여 야기될 수 있는 뜻으로 해석되더라도 기사에서처럼 북진 자체가 가공할 사태라는 의미가 아님이 분명하다”고 밝혔다.崔교수측의 소송대리인인 安相云 변호사는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할 계획은 없으나 이번주 안으로 언론중재위원회에 반론보도 심판청구와 정정보도 신청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는 “재판부가 명예훼손과 관련,가처분 범위를 너무 넓게 해석했다”면서 법원의 가처분 결정에 대해 이의신청을 내겠다고 밝혔다.
  • 월간조선 판매금지 가처분 결정문 요지

    법원이 11일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崔章集 고려대 교수가 조선일보사를 상대로 낸 ‘출판물 발행·판매·배포 등 금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이면서 내린 결정문을 간추린다. 언론·출판도 타인의 명예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아니되므로 고위 공직자의 신념에 대한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보도라고 하더라도 헌법과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를 벗어나 사실과 다른 허위 내용을 보도한다든지 사실을 보도하는 경우에도 대상 인물에 대한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명예훼손적 사실을 주장함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더구나 남북이 분단되어 대치하고 있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과 반국가 단체를 찬양하고 고무하는 경우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되는 우리 법체계를 감안하면 어떤 사람이 공산주의,사회주의 혹은 김일성주체사상을 신봉한다는 주장은 물론 단지 그에 동조한다거나 좌파적 또는 친북한적이라는 정도의 표현만으로도 인격권을 침해할 수 있다. 또 전체 저서의 일부를 발췌한 기사의 경우 전체를 읽어본 적이 없는 독자들은 그 흐름과 맥락을 알지 못하고 발췌된 부분만 읽음으로써 사실적 주장의 대상이 된 사람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가질 수도 있는 경우 역시 명예훼손도 가능하다고 할 것이다. 문제가 된 월간조선 11월호 기사 및 표지와 목차를 보면 목록 기재 부분은 신청인의 저서인 ‘한국민주주의의 조건과 전망’과 ‘한국민주주의의 이론’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기는 하나 앞뒤 문맥에 비추어 신청인의 의도를 왜곡하고 신청인을 더 좌파적 인물로 묘사해 명예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보여진다.“…김일성은… 그의 우세에 대한 지나친 과신이 그를 전쟁을 통한 총체적 승리라는 유혹에서 헤어날 수 없게 하였고”라고 돼 있고 그 뒤에는 “무엇보다도 김일성의 오판을 유도했던 요소는…”이라고 표현해 김일성의 전면전 결심이 잘못된 판단임을 밝히고 있다.그렇다면 ‘역사적 결단’이라는 문구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역사적으로 길이 남을 훌륭한 결단’의 뜻이 아니라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줄 선택’ 정도의 가치중립적 표현임에도 독자들에게 신청인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부여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했다. 월간지 목차에는 “남진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부분이 있고 기사에도 “최위원장은 그의 책에서 ‘개전 초기 한국전쟁은 민족해방전쟁이었으며…’라는 요지로 해석했다”는 부분이 있다.그러나 신청인은 한국전쟁을 네가지의 시기로 나누고 각 시기마다 고유의 성격을 부여하면서 “첫번째 시기에서의 전쟁은 전쟁을 유발한 북한 지도부가 기본적으로 믿었던 바의 ‘민족해방전쟁’이었던 반면…”이라고 논술하고 있다.따라서 신청인은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용어를 ‘북한 당국자들이 생각했던 한국전쟁의 성격’으로 사용한 것이 명백함에도 신청인의 생각인 양 그릇된 인상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북진의 가공할 사태’ 역시 ‘조건과 전망’에서 이 사건 기사와 정확하게 동일한 표현을 사용한 바는 없으며,저서를 통해 볼 때 문맥상 ‘3차 대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따라서 북진 자체가 가공할 사태라는 의미가 아님이 분명함에도 독자들로 하여금 신청인에 대한 그릇된 인상을 가지게 했다.
  • 대한매일 재탄생에 부쳐(사설)

    ◎개혁과 민족통합의 초석으로 대한매일이 오늘 다시 태어났다.이 찬란한 가을 아침에 우리는 거듭나는 생명의 환희와 기쁨 대신 자기반성의 아픔과 다시는 부끄럽지 않은 신문이 되려는 분연한 다짐으로 더없이 엄숙한첫발을 내디디고 있다. ○다시는 부끄럼 없이 우리는 지난 한달여에 걸친 각종특집을 통해 서울신문이 왜 대한매일로 거듭나려 하는가를 누누이 설명해왔다.서울신문이 걸어온 영욕의 53년 역사가 우리 사회에 어떤 누(累)를 끼쳤는지도 있는대로 적시하고 진심으로 참회했다.한국언론 사상 이토록 진솔한 자기반성을 한 신문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새 신문 대한매일이 어떤 원칙과 어떤 각오로 신문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도 이미 국민앞에 천명했다.그러나 새출발에 맞춰 여기 다시 공익정론지 대한매일이 추구하는 목표와 우리의 길을 재다짐해 두려 한다. 지금 세계는 세기말(世紀末)의 긴장과 거대한 변화의 물결속에 휘말려 있다.그 변화의 에너지는 가위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지금까지의 사고 방식이 무너지고 과거의 시스템이 통째로흔들리고 있다.실로 격랑의 세기말이다. 개인의 일상 생활에서부터 사회공동체의 존재 양식에 이르기까지 기존의 틀은 깨어지고 새로운 세계가 태동하고 있다.우리는 지금 그 변화를 확인할 수는 있으나 미래를 그려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런 변혁의 시대에 언론이 과연 무슨 일을 해내야 하는지 때로는 당혹하기까지 하다.그러나 대한매일은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을 주시하고 예측 가능한 방향을 제시하며,현상의 의미를 분석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미래의 신문은 단순한 보도기능만으로는 부족하다. 세기말적 격변속에 이나라에는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개혁은 잘못된 과거의 광정(匡正)을 의미한다.파행적 과거의 청산과 극복을 위한 개혁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적 과제다.오늘의 개혁은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의 현대사를 뒤틀어 놓았던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극복하려는 일종의 혁명이다.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잘못된 현실을 개선하려는 것은 언론의 초보적 사명에 속한다.우리는 개혁을 지지하고 적극 후원할 것이다. ○갈등·불신 해소 위해 격변의 시대는 필연적으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정치세력간의 대립,뿌리깊은 지역주의의 골,사회변동에서 오는 계층간의 갈등,이런 모든 것들이 판도라의 상자에서처럼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다. 지금 우리 공동체가 안고있는 위기의 본질이 바로 여기 있다.이러한 갈등과 사회적 불신을 줄이는 작업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절대적 명제(命題)가 아닐 수 없다.대한매일은 이러한 망국적 사회병리를 치유하는 데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바로 국민통합 작업이다. 우리는 민주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펴나갈 것이다.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민주화를 이미 성취한 것으로 믿고있다.물론이다.공정한 선거를 통해 대표를 선출하는 매우 결정적인 민주제도를 우리는 성취해 냈다.그러나 그것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볼수는 없다.우리의 의식구조,우리 사회의 구석구석에는 아직도 비민주적 요소들이 산적(山積)해 있다. 대한매일은 통일을 준비하는 신문이 되려 한다.분단 극복은 우리 민족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수 없다.통일은 남북화해와민족화합을 통해서만 가능한 일이다. 프랑스의 석학 에드가 모랭은 지구국가를 제창하고 있다.모랭의 제창이 아니더라도 이미 세계는 한 울타리 안에 있다.21세기에는 기존 국민국가의 잔해는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세계국가화할 것이다.대한매일은 이러한 세기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 한다. 대한매일은 이나라를 이끌어 가는 상층부의 생각과 움직임을 소상히 전할 것이나 소외된 곳에도 특별한 관심을 가질 것이다.우리는 사시인 ‘대한매일의 다짐’에서 국민복지에 앞장서는 신문이 될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서구복지국가에 과잉 복지의 폐해가 있다고 해서 복지를 외면하려 한다면 잘못이다.이나라의 복지는 이제 겨우 걸음마를 하고 있을 뿐이다. 무엇보다 대한매일은 상업지가 아님을 강조해 둔다.한국의 상당수 신문들은 지난 수년간에 걸친 과당경쟁의 결과로 천문학적인 부채더미 위에 올라 있다.살아남기 위한 자사(自社)이기주의가 언론의 본분을 뛰어넘고 있다.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신문이 이제 경영상의 압박속에 스스로 손발을 묶고있는 것이다.한국언론의 위기가 아닐수 없다. ○비상업적 공익 언론 국내 유일의 비(非)상업신문인 대한매일은 이런 척박한 언론환경 속에서 공익언론의 길을 굳건히 걸어 나갈 것이다.아울러 비상업 신문의 역할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 공영의 기반도 확대해 나갈 것이다. 대한매일은 선정주의(煽情主義)를 배격한다.선정주의는 황색신문만을 의미 하는게 아니다.1898년 미국과 스페인간의 전쟁이 미국신문들의 선정주의에서 비롯됐다는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한국언론의 선정주의 성향도 위험한 수위에 이르러 있다. 제호나 사명을 바꾼다고 오늘 우리의 다짐이 바로 실현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그러나 서울신문의 통렬한 자기반성 위에 환골탈태(換骨奪胎)하려는 대한매일의 각성과 의지를 국민 모두가 따뜻한 마음으로 지켜보아 주기 바란다.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편달을 거듭 거듭 당부한다.
  • 각계서 보내온 격려 메시지(대한매일에 바란다:Ⅰ)

    11일자로 서울신문에서 제호를 바꿔 대한매일로 재창간하는 본지에 각계에서 축하와 격려의 말씀을 전해 왔다.(가나다순) ◎金美蓮 이화여대 국문과 2년/소외된 사람들의 아픔 함께 대한매일로 재창간을 하면서 제호 뿐 아니라 신문내용도 더욱 참신해지기를 바란다. 소시민의 일상과 소외된 사람들의 어려움이나 아픔을 함께 해주는 신문이면 좋겠다. 요즘 신문들이 독자의 관심 사항을 고려하지 않고 자의적으로 기사의 가치를 정하는 경향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읽고 함께 대화를 만한 소재를 많이 싣기를 기대한다. 독자와 함께 하는 신문이 되기 위해 독자의 소리에 많은 신경을 써주기 바란다. 일부 신문은 광고가 너무 많다. 광고 게재를 절제있게 해서 독자 각 계층이 꼭 필요한 내용이 빠지지 않도록 해주면 좋겠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림이 없고,어느 정권이나 잘못했을 때는 비판할 수 있는 참 언론의 모습을 기대한다. 대한매일로 재창간을 하면서 제호 뿐 아니라 신문내용도 더욱 참신해지기를 바란다. 소시민의 일상과 소외된 사람들의어려움이나 아픔을 함께 해주는 신문이면 좋겠다. ◎金範鎰 행정자치부 기획관리실장/책임있는 비판과 대안 제시 그동안 대중적인 인기에 영합하지 않고 정부와 국민을 잇는 가교역할을 하며 사회적 공기(公器)로서의 역할에 충실해온 서울신문이 대한매일로 다시 탄생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어려운 때에 우리 민족에게 용기와 희망을 불어넣었던 대한매일신보처럼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국력을 결집하고 지혜를 모으는 구심체 역할을 다하리라 믿는다. 앞으로도 국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특히,정부와 공무원이 일하는 모습을 올곧게 알리는 한편,책임있는 비판과 대안제시로 하는 신문이 되기를 기원한다. ◎金宇中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대우그룹 회장)/위기극복 국민단합에 앞장 구한말 수난기에 정론을 통해 국난극복의 의지를 북돋웠던 ‘대한매일’이 경제위기 극복과 21세기 선도언론의 기치를 내걸고 재탄생하게 된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 옛 대한매일은 국채보상운동의 주도적 추진체로서 국민의 구국의지를 하나로 모은 바 있으며,일제 식민의 참상을 세계에 소상히 알리는 일에 앞장선 언론이었다. 올 초 우리 국민들은 제2의 국채보상운동으로 일컬어지는 금모으기 운동에 대대적으로 참여해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과시하고 세계인의 감동을 일으킨 바 있다. 대한매일의 재탄생이 위기극복을 위한 국민들의 이러한 열의와 단합을 이끌어내는 또 하나의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朴鍾雄 의원(한나라당)/독립언론으로 거듭 나기를 권력과 자본에게서 독립된 언론으로 거듭 태어나 21세기를 선도하는 신문이 되길 바란다. 그동안 언론이 과도한 양적·상업적 경쟁이나 소유의 집중으로 인해 여론을 독점·왜곡하고 국민 불신과 우려를 자아낸 점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언론사 소유와 경영의 분리,무가지(無價紙)살포 등 불공정거래행위 금지,과당경쟁중단 등 과감한 언론개혁 조치는 언론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언론계가 당면한 극심한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도 조속히 실천되어야 한다. 서울신문이 대한매일로 제호를 변경하면서 경영과 편집을 획기적으로 개선,언론개혁을선도하는 시대적 역할을 다해 주길 기대한다. ◎白京男 교수(동국대)/왜곡되지 않은 民意 전달을 수송과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혁명적 변화로 국경을 넘는 인간들의 상호작용과 상호의존이 증대되는 문명사적 대변혁 앞에서 서울신문의 거듭남을 축하한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세계화’의 거친 파고 앞에서 ‘이대로는 안된다’,‘변해야 산다’는 우리 사회의 요구에 대한 회답으로 보고 싶다. 왜곡되지 않는 민의를 모으고,올바른 여론 주도층을 고르게 형성하여 우리 사회의 막힌 곳을 뚫고,어두운 곳이 있으면 비추고,또 국민의 참다운 비판을 수용하여 사람이 대접받고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성숙하고 단단한 역할과 기능을 수행토록 해 우리 나라를 용기있고 성실한 사람들의 고향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 ◎辛格浩 롯데그룹 회장/21세기 문화 밝히는 횃불로 대한매일신보가 어려운 시절 민족의 기상을 바로 세우는 데 크게 기여했듯이 그 전통과 정신을 계승한 대한매일 또한 지금의 어려운 우리나라 현실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을 보탤 것이라고 확신한다. 특히 좋은 언론 하나가 나라를 살린다고 했다. 대한매일이 재탄생을 선언하는 것은 이러한 역할을 기꺼이 짊어지고 나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나라를 살리는 신문으로,21세기 문화를 밝히는 신문으로 거듭 태어나게 된 대한매일에 기대와 성원을 보낸다. ◎申東爀 한일은행장 직무대행/정보화시대 첨병 역할해야 서울신문이 뿌리를 찾아 대한매일로 재창간하신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서울신문의 전신이며 구한말 민족지로서 국권수호의 기치를 드높였던 ‘대한매일신보’의 구국정신을 계승하여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건국 이후의 최대 경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국민의 지혜를 모아 여론을 선도하기를 바란다. 특히 대한매일이 정보화시대의 첨병으로서 많은 분야의 정보를 신속·정확하게 전달하여 모든 국민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국가경쟁력을 드높이는 데 앞장서 줄 것을 기대한다. 나아가 독자들로부터 폭넓은 지지와 사랑을 받는 신문으로 크게 발전하기를 바란다. ◎安德均 태평양종합산업 해외영업팀 대리/경제난 풀고 평화통일 기여 IMF한파로 전국민이 고통받는 어려운 시기에 재창간을 하게 되는 대한매일은 경제난을 풀어 나가고 조국 통일에 기여하는 민족정론지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암울했던 일제치하에서 민족을 계몽하고 항일 구국운동에 앞장섰던 민족지의 역할을 이어받아 서민들의 고통을 대변하는 신문이 됐으면 한다. 제호를 바꾸는 것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만큼 과거 권력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구태에서 벗어나 독자적이고 신선한 목소리로 다가 올 줄 믿는다. 경제난 극복에 앞장서는 직장인 독자들에게 가장 올바른 시각에서 믿음을 주고 정보를 주는 가장 유익한 신문으로 다가왔으면 좋겠다. 대한매일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거듭나길 기원한다. ◎柳鍾星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구국항일 민족지 전통 계승 대한매일의 제2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구한말 암울했던 시기에 구국항일의 민족지로서 출범한 대한매일신보의 전통을 계승해 21세기 민주시민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통일된 민족의 앞날을 개척해 나갈 정론지로서 확고한 위상을 정립하기 바란다. 지금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개발독재의 유산을 청산하고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총체적 개혁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개혁에 성공하는냐의 여부에 따라 21세기 한국과 한반도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롭게 탄생하는 대한매일이 이러한 역사적 사명을 감당하는 언론매체로서 훌륭한 역할을 수행해주길 기대한다. 소외된 계층을 대변하고 시민단체와 연대하는 ‘개혁언론’으로 거듭나길 바라면서 다시한번 축하와 격려를 보낸다. ◎李浩哲 소설가/천편일률적 제작행태 쇄신 서울신문이 창간 때의 본래의 이름인 ‘대한매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그야말로 고육지책(苦肉之策)의 결단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이름을 바꾸는 것으로만 새 지평은 열리지 않는다. 명실공히 새로운 발상법과 새로운 창조성이 뒷받침됨으로써만 새길은 열릴 것이다. 오늘 우리 신문독자들은 천편일률적인 제작행태들에 대해 지겨워 하고 있고 거의 진저리를 치고 있다. 발상법의 대담한 전환,이 길 밖에는달리 없어 보인다. 고육지책 끝에 기왕에 이름도 바뀌었으니,한번 독자들이 왕창 놀라며 당황할 만한,우리 신문의 천편일률적인 구태에서 확 벗어난 그런 물건이 나와 보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趙東子 주부(서울 성동구 금호3가동)/증면보다 알찬내용이 중요 주부에게 가사,육아,여가 등 생활정보는 중요하다. 대한매일도 주부들을 위해 생활정보를 많이 실어 줬으면 한다. 다른 신문과 비교해 볼 때 과거 서울신문은 이런 면에서 부족했다. 일반적인 사고기사는 모든 신문이 비슷하다. 그러나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기사면에서는 차이가 나고 독자들은 이런 신문을 선택하게 된다. 또 선정적인 기사나 광고를 싣지 않았으면 한다. 자녀와 함께 신문을 보다 보면 낯뜨거울 때가 많다. 또 하나 지면의 증면보다는 내용을 알차게 담았으면 한다. ◎崔在昇 의원(국민회의)/정론지로 자리매김할 계기 21세기를 눈 앞에 둔 역사상 중요한 시기에 서울신문이 대한매일로 거듭 태어나는 것은 그 의의가 매우 크다. 93년전 암울했던 시기에 민족의 등불이 되고자 밀려오는 외세에 굴하지 않고 나라를 지키려 했던 梁起鐸 張志淵 선생 등 위대한 선열의 숭고한 정신과 대한매일신보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받아 새시대의 정론지로 자리매김할 계기를 마련했기 때문이다. 대한매일신보가 재창간하면서 밝힌 ‘공공이익을 위한,국리민복에 앞장서는,민족화합을 앞당기는,2000년대를 앞서가는 신문’이라는 다짐이 반드시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대한매일신보의 전통과 정신이 신문 곳곳에 살아 숨쉴 수 있도록 정론직필(正論直筆)의 사명을 다해 줄 것을 기원한다.
  • 대한매일의 성과와 과제 좌담회

    ◎구국언론의 혼 이어 국난극복 선도 기대/을사조약 고종 거부 보도·국채보상 주도/‘삼국공영’ 부당 지적… 자주적 사관 펼쳐/순한글판 발행… 국문학·여성계몽 큰 기여/관제 구각 깨고 민족지 위상 되찾아야/권력·자본에 예속된 언론 병폐 개혁주도를/‘벌떼 언론’ 악습벗고 냉철한 시각 가져야 □토론자 金泰昊 서울대 정치학과 석사과정 高濟奎 고려대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金旻貞 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대한매일신보사는 11일 재창간을 맞아 참신한 시각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언론사적 의의와 현대 한국언론의 문제점 등을 진단하고 새롭게 태어난 ‘대한매일’의 바람직한 언론상을 제시해보기 위해 한국정치와 언론학 등을 전공하는 대학원생 3명을 초청,좌담회를 가졌다. ‘대한매일신보의 역사적 의의와 한국 언론비판’을 주제로 열린 좌담회에는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金泰昊씨(28)와 고려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高濟奎씨(26),한국외국어대 대학원 신문방송학과 석사과정 金旻貞씨(24)가 참석했다. ▲金旻貞=대한매일신보는 영국인 배설(裵說)을 발행인으로 내세워 梁起鐸 등 우국지사들에 의해 1905년 창간된 뒤 1910년 폐간될 때까지 항일 구국운동에 앞장섰다. 특히 발행인이 영국인이어서 통감부의 탄압이나 검열 없이 자유로운 논조를 펼칠 수 있었다. 대한매일신보의 주요 활동을 보면 일본대사가 요청한 을사보호조약에 대한 고종의 조약거부 기사와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철폐요구 기사 등을 실었으며 국채보상운동 당시 의연금 모집의 중심 역할을 하기도 했다. ▲高濟奎=대한매일신보는 당시 최고의 발행 부수를 기록하는 등 민의(民意)를 가장 폭넓게 반영했던 신문이었다. 가장 독자가 많았던 것은 대한매일신보가 독립신문과 황성신문에 비해 세계사의 흐름을 자주적인 시각에서 정확하게 파악해 전달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시 독립신문 등은 ‘동양 삼국 공영론’과 ‘중립 외교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대한매일신보는 ‘동양 삼국 공영론’은 일본의 동양 침탈을 합리화하기 위한 구실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간파해 알렸다. 또 ‘중립외교론’보다는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힘을 키워야 한다는 ‘무비강병’(武備强兵) 등 자주적인 민족사관을 줄기차게 주장했다. 일제가 통감부를 통해 대한매일신보를 몰래 사들인 뒤 ‘매일신보’로 제호를 바꿔 친일 기관지로 만든 것은 당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신문에 대한 직접적이며 가장 강력한 탄압 조치였다. 이를 통해 당시 대한매일신보의 영향력이 얼마나 컸는지를 쉽게 집작해볼 수 있다. ▲金泰昊=독립신문에 비해 연구 사료가 거의 없어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대한매일신보는 항일투쟁과 반제국주의 입장에서 자유언론을 펼친 민족 정론지였다. 朴殷植 申采浩 張道斌 등 애국지사 논객들이 총결집해 총칼을 앞세운 일제의 침략과 관료의 무능 등에 맞선 자유언론의 표상이었다. 특히 다양한 독차층의 요구를 수용해 영문판,한글판,국한문 혼용판 등 다양한 형태의 신문을 펴냈다. 순한글판을 발행하며 국문학 발전과 여성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등 변화하는 시대의 요구에도 부응한 신문이었다. ▲高濟奎=신문의 제호를 바꾼 것은 상징적인 의미 이상이어야 한다. 서울신문이 본래의 뿌리를 찾아 대한매일로 제호를 바꾼 것은 해방후 군사독재정권을 거치면서 관제 언론으로 왜곡된 서울신문의 폐단을 극복하고 대한매일신보가 보여줬던 민족지로서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金泰昊=오늘의 한국언론은 대부분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또 신문마다 특징이 없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거의 같다. 비판의 논조와 대상도 비슷하다. 대한매일이 재창간과 더불어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서는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롭고 또 특징있는 신문이 돼야 한다. 독자들에게 대한매일의 강직하고 신선한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해서는 너나없이 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특색없는 비판에서 벗어나 나름대로 독특한 색채를 지녀야 한다. ▲金旻貞=한마디로 한국 언론은 ‘벌떼’근성을 지녔다. 모든 신문들은 자기만의 사고나 판단없이 사회적으로 부각된 이슈에 벌떼처럼 달려든다. 그리고 다른 언론의 비판 수위와 강도 등을 살피며 자기의 시각이나 기사의 밸류 등을 판단한다. 거듭나는 대한매일은 이같은 기존 언론의 행태를 떨쳐버려야 한다. 아울러 과거의 잘못에 대한 철저한 자기 반성을 토대로 기존의 틀을 깨치고 대한매일만의 눈으로 모든 사물을 보고 판단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과거 정권에 예속돼 언론으로서의 제 구실을 못했던 구태를 과감히 떨쳐내야 한다. ▲高濟奎=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리 문제점을 지적해도 개선이 되지 안는다는 점이다. 한국 언론의 문제를 다시 한번 지적하면 권력과 언론의 유착 문제다. 당근과 채찍 논리로 볼때 정권이 건네는 ‘당근’에 너무 길들여져 있다. 또 재벌과의 문제로 기업이 언론을 소유하고 언론은 기업을 보호하는 유착관계가 문제의 핵심이다. 대한매일신보는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국권수호에 나섰던 신문인 만큼 시대의 중심이 돼야 한다.IMF 사태라는 시대적인 어려움,지역감정,통일 등 여러 문제를 푸는데 선봉이 돼야 한다. ▲金泰昊=언론에 대한 시민의 감시가 언론을 건강하게 만든다. 잘못된 정치의 문제는 곧 언론의 문제이며 잘못된 언론의문제는 곧 한국 시민사회의 문제다. 신문이 건강해지려면 시민운동이 더욱 건강해지고 질적 수준도 높아져야 한다. 일제 치하 대한매일신보가 독자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당시 시대에 부응하는 항일운동과 교육계몽운동을 펼쳤기 때문이다. 새롭게 창간되는 대한매일은 이처럼 목표를 확실히 표방해야 한다. 또 과거의 전통을 이어 현재의 국난극복을 사시로 정해 놓고 이를 실현하하기 위해 힘을 쏟아야 한다. ▲金旻貞=한국언론은 소외된 계층의 목소리 보다는 지배계층의 목소리 만을 대변해왔다. 이로 인해 기사의 중립성과 공정성은 크게 결여됐다.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나 87년 6.10 민주화운동 당시 모든 신문이 그러했듯 거의 모든 기사가 강자의 편에서 작성됐다. 또 언론의 상업성은 위험수위를 넘어 큰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일부 신문들은 광고가 지면의 50%를 넘어 광고지인지 신문인지 구분이 안될 정도다. 신문별 발행 부수도 공개되어야 한다. ▲高濟奎=사실 보도와 의견은 구분되어야 한다. 자사의 이익을 위해 사실을 왜곡,의견을펴는 신문이 많다. 모 신문의 이승복 사건과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고려대교수(정치학과)에 대한 음해 보도 등 사회여론을 무시하고 자사의 이익에 따라 보도하는 행태을 많이 보았다. ▲金旻貞=10개의 중앙 일간지는 모두가 ‘우리는 국민의 여론을 반영한다’는 애매한 사시를 가지고 있는데 사시를 구체적화할 필요가 있다. 특정 정당이나 단체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는 당파성을 가져도 무방하다고 본다. ▲高濟奎=신문사간 비판도 허용되어야 한다. 최근 신문사간 서로 공방이 오가는 것도 오히려 언론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 ▲金泰昊=신문사 마다 뚜렷한 개성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어 서로 비판을 못하는 것 같다. 한 사건에 대해 각 신문이 서로 다른 시각과 입장을 갖고 다룰 수 있어야 한다. ▲高濟奎=50년만의 여야 정권교체후 서울신문은 ‘민주 열사에 대한 재조명’ 등 신선한 내용을 게재하는 등 많은 변화를 보였다. 변화를 위해 여기저기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이제 대한매일로 새롭게 뿌리를 찾은 만큼 흔들림 없는 굳건한 위상을 가져야 할 것이다. ▲金旻貞=과거에서 배우라는 말을 하고 싶다. 대한매일이 과거의 대한매일신보에서 배울 점은 역사를 바라보는 눈을 갖는 것이다. 과거의 대한매일신보가 반제국주의와 항일 등 뚜렷한 역사의식을 지녔던 것처럼 과거의 전통을 계승해 새로운 역사 의식을 가져야 한다.
  • 일제·독재로 비틀린 역사 새로쓰기(서울신문이렇게바뀌었습니다:上)

    ◎양심적 개혁인사 칼럼 대폭 늘려 서울신문은 11일 대한매일로 새로 태어난다. 이에 앞서 이미 서울신문은 내용면에서 크게 달라졌다. ‘행정뉴스’면 신설과 여러 특집보도는 그 변화를 뚜렷하게 보여 준다. 또한 외부 필진을 전면적으로 개편해 신념과 양식을 지닌 각계 인사를 폭넓게 포함시켰다. 이 모든 것은 새로이 출발하는 대한매일이 공익정론지로서 나아가는 데에 디딤돌이 될 것이다. ◎필진 다양화·논조 변화/양비론적 시각 탈피/임수경씨 글 호평 받아 공익정론지 대한매일로 재탄생하는 서울신문의 많은 변화 가운데 두드러진 것은 필진의 다양화와 논조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우선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하기 위해 칼럼을 비롯,각종 외부 기고를 대폭 늘렸다. 그리고 필진의 선정에 있어서도 그동안 제도권 언론에 의해 기회가 주어지지 않던 개혁인사들에게 과감히 문호를 개방하고 있다. 이들에 의해 꾸며지는 서울광장,굄돌 등 고정칼럼은 오피니언 리더들의 다양한 지적 욕구를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광장은참여연대의 박원순 변호사,동국대 황태연 교수 등 젊은 지성들을 포함한 각계각층 필진 16인이 꾸며나가고 있다. 특히 지난 8,9월에 굄돌 필진으로 참여했던 임수경씨의 경우 젊은 통일운동가로서 진솔한 삶의 얘기들을 들려줘 독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바 있다. 또한 회사의 입장을 나타내는 사설과 사내 필진들에 의한 칼럼들은 공공이익과 국민복지,민족화합을 앞세우고 2000년대를 앞서간다는 대한매일의 다짐하에 집필되고 있다. 그동안 상당부분 치우쳐 있던 기회주의적인 양비론적 시각을 탈피하여 민족정론의 입장에서 분명한 태도를 밝혀나가고자 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사내 기명칼럼으로는 김삼웅칼럼,림춘웅칼럼,장윤환칼럼,박갑천칼럼,박강문코너 등이 있으며 논설위원 등이 집필하는 ‘외언내언’과 ‘시론(時論)’,데스크의 ‘데스크시각’,일선기자의 ‘오늘의 눈’,독자들이 참여하는 ‘기고’와 ‘발언대’ 등 풍부한 오피니언 난을 꾸미고 있다. 한편 독자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특집 시리즈물도 기획되고 있다. 특히한국의 대표적 문학평론가인 임헌영 교수가 11일부터 주간 연재할 ‘문학과 사회와 역사’는 해방 이후 변혁기에 큰 역할을 해온 우리 문학의 알려지지 않은 얘기들을 밝히는 것으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대한매일신보 연구의 권위자인 정진석 교수가 연재할 ‘대한매일 비사’는 한말 구국항일의 숨은 일화들을 낱낱이 파헤쳐줄 것이다. 아울러 대한매일의 문화면은 ‘문화국가’를 제창한 선각자들의 뜻을 좇아 문학,출판,공연,미술,문화정책 등 전 분야에서 우리것의 특화에 역점을 둔 지면으로 꾸며나갈 것이다. 우리의 역사를 발전시키고 민주주의 건설에 보탬이 될 지면으로 특화를 이뤄나가고자 한다. ◎친일파·민주열사 연재/한국언론 새 지평 열어/금지문화·인생도 시리즈로 언론은 공정한 보도를 통해 정직한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 서울신문은 과거 일부 왜곡보도에 대한 반성 위에 정직한 역사를 기록하는 올바른 언론의 길을 가기 위해 ‘정직한 역사 되찾기’ 장기 시리즈를 연재하고 있다. ‘정직한 역사 되찾기’는 친일파와 독재권력에 의해 왜곡됐던 현대사를 바로잡아 ‘정의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로,서울신문의 변화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광주민중항쟁의 재조명을 시작으로 지난 5월 시작된 ‘정직한 역사 되찾기’는 친일파와 독재권력에 의해 폄하됐던 金九 선생의 재평가와 ‘악법의 문제’를 점검한 후 지금은 ‘민주열사 열전’과 ‘친일의 군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친일의 군상은 반민족적 친일행위를 했으면서도 해방 후 독재권력과 결탁하여 지배층을 형성했던 친일파의 실상을 고발하고 있다. 친일행위자들은 해방 후 당연히 단죄됐어야 했다. 그것이 역사의 정의다. 그러나 그들은 해방 후에도 지배층으로 군림했다. 그 결과 민족정기가 훼손되고 정의에 대한 가치관의 혼란과 기회주의·부정부패가 만연하는 구조적 모순의 사회가 만들어졌다. 총체적 사회문제의 원류는 친일파 청산의 실패임을 언론들은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실상을 외면해 왔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정직한 역사만이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는 신념으로 현대사의 가장 부끄러운 부분인 친일파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다른 언론들이 감히 할 수 없었던 친일파문제를 서울신문이 처음으로 파헤치는 것은 한국언론의 새 지평을 여는 획기적인 일이다. 서울신문은 또 친일세력과 손을 잡은 독재권력에 저항하며 인간다운 삶과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민주열사 열전을 연재하고 있다. 민주세력의 처절한 투쟁이 민주화의 불꽃이 되어 오늘의 밝은 세상을 밝히고 있으나 그들의 고귀한 희생은 독재권력에 의해 역사의 뒷무대에 묻혀 왔다. 독재권력에 의해 금지됐던 노래·공연·책 등을 소개하는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도 연재하고 있다. 서울신문이 시작한 ‘정직한 역사 되찾기’는 새로 태어나는 대한매일에 의해 더욱 알차게 꾸며질 것이다. 대한매일은 1900년대 초 절망적인 시대상황에서도 구국활동,민족·독립정신 고취 등 민족의 자주성과 긍지를 일깨운 ‘대한매일신보’의 정신을 이어받아 민족과 공익을 위한 정론지로서 21세기를 여는 참언론의 길을 갈 것이다.
  • 서울신문 영욕의 53년 나래 접으며

    ◎솔직한 참회 재탄생 초석으로 정론 벗어났던 일 냉혹히 자성/날카로운 시선·질책 겸허히 수용 서울신문이 지령 16851호,1998년 11월10일자를 마지막으로 영욕 53년의 나래를 접습니다. 11일자로 우리의 뿌리,자랑스런 항일 민족정론지 대한매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수십만 독자와 함께 해온 서울신문 반세기를 마감하며 지난날의 정도(正道)를 벗어났던 일들에 대해 냉혹한 자기반성을 하고자 합니다. 시대에 따라 국민과 독자의 애증(愛憎)이 교차되는 시선 속에 우리 서울신문 가족들은 땀과 눈물로 서울신문을 가꾸고 키워왔습니다. 53년의 연륜을 지닌 서울신문 제호를 새시대 역사의 흐름 속으로 띄워보내며 회한(悔恨)이 서리지 않을리 없습니다. 서울신문은 6·25전란(戰亂) 가운데서도 진중신문을 발행하여 국민들에게 전황을 알려주는 사명감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사회의 밝은 면을 부각시키고 약자를 부축하는 억강부약(抑强扶弱)에도 힘썼습니다. 환경지키기에 앞장서고 농촌경제 발전을 지원했습니다. 한글 전용신문 발행과학자·문필가·예술가 지원 등 민족문화 발전에도 기여했습니다. 그래서 강한 사회면,격조높은 문화면으로 언론계의 선두에 서기도 했습니다. 자본에 휘둘리거나 상업적 사익(社益)에 얽매이지 않고 국익을 우선하는 논조,센세이셔널리즘에 흐르지 않는 품위를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결코 스스로에게 관대(寬大)하려 하지 않습니다. 서울신문 구성원 개개인의 잘못은 아니었다거나 소유구조상 불가피한 일이었다는 등의 변명은 하지 않으려 합니다. 설령 열을 잘했다고 해도 하나의 잘못이 그대로 용서되는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성의 아픔이 클수록 재탄생하는 대한매일의 정론(正論)을 향하는 발걸음이 곧고 굳건한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자유당 정권의 나팔수로 검은 것을 희다고,흰 것을 검다고 한 부분에 대한 응징으로 4·19 민주혁명 당시 사옥이 불태워지기도 했습니다. 군사정권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며 언론의 본분을 벗어난 세월이 있었음을 솔직히 인정하며 참회하고자 합니다. 한 세기 한국언론사에 이토록 진솔하게 과거의 잘못을 고해(告解)한 언론사가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비극적 식민지 역사 속에,그리고 권력의 부침(浮沈)속에 교언영색(巧言令色)의 생존술과 상술로 견강부회(牽强附會)해오며 민주언론의 선봉을 자처하는 사례가 없지 않음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솔직한 참회를 재탄생하는 대한매일 앞날의 밑거름으로 삼고자 합니다. 언론의 본분을 지키는 데 피와 땀을 흘림으로써 과거의 잘못들을 속죄코자 합니다. 서울신문은 이미 공익정론지 대한매일로서의 변신을 시작했습니다. 재경부 포항제철 한국방송공사가 대주주인 소유구조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제작과 경영에 일절 간여치 않는다는 확고한 의지를 천명하고 이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편집권 독립에 관한 노사(勞使)합의라는 공정보도의 제도적 장치도 마련했습니다. 우리의 이같은 처절한 자성과 제도적 장치를 바탕으로 어느 편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공익(公益)정론지 대한매일로 재탄생할 것임을 국민과 독자앞에 다짐합니다. 날카로운 시선과 애정의 질책으로 대한매일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편집권 독립을 위한 대한매일 노사 공동선언문 노조와 회사는 편집권을 존중한다. 회사는 편집권의 독립성을 침해 하거나 훼손할 수 없다. 기자는 언론의 정도(正道)나 자신의 신념과 양심에 반(反)한 기사를 쓰도록 강요받지 않는다. 기자는 공정보도를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노사는 편집권 독립과 공정보도를 위해 다음과 같은 점에 합의한다. 1.편집권은 회사의 사시(社是)와 독자의 알 권리에 반하는 부당한 압력이나 간섭에 의해 침해받지 않는다. 2.노조와 회사는 외부로부터의 지면제작 개입을 배제한다. 3.회사는 객관성과 타당성이 없는 편파적인 취재와 보도를 지시할 수 없다. 4.취재기자는 자신이 취재해 보도한 내용이 왜곡되거나 잘못 전달 됐을 때에는 데스크,편집자,국장단에 시청을 요구할 수 있다. 5.언론 자유를 위협사는 사태가 생기면 노사는 합심해서 이에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응한다. 6.회사는 기자에 대해 회사의 영업 및 수익활동 등 본연의 업무와는 직접관련없는 일에 대해 압력을 행사할 수 없다. 영업 및 수익활동 등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줄 수도 없다. 7.노사는 이상의 내용을 성실하고도 적극적으로 지킨다. 1988년 10월19일 ◎남긴 功/재벌 비판·신문말 다듬기 성과/국가 성장기에 국민총의 결집/문화예술 활동 전폭 지원 서울신문이 진취적으로 남보다 앞서 계획하고 이루어낸 업적은 적지 않다. 특히 한글 전용과 신문말 다듬기를 연구하고 실천한 것은 한국 신문사상 선구적인 것이다. 1956년부터 60년까지 ‘한글판 서울신문’을 부분적으로 냈던 서울신문은 23돌 창간기념일인 68년 11월22일부터는 모든 기사와 제목을 한글로 썼다. 70년 2월14일 ‘신문말다듬기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신설했다. 위원회에는 국어학자와 문인 등 7명의 심의위원을 두어 신문말을 다듬거나 새로 만들었다. 심의위원은 정인승 허웅 한갑수 李應百 朴木月 柳周鉉 정재도씨였다. 신문 제작 방침이 수정돼 74년 1월4일 종전 체제로 돌아가고 말았지만 귀중한 성과를 남겼다. 위원회가 정리한 낱말은 1,600여개에이르며 71년 6월28일까지 33회에 걸쳐 지면에 연재됐다. 이때 만든 새 말 가운데 ‘사재기’처럼 널리 쓰이게 된 것이 많다. 요즘 신문들의 한글 전용 편집에도 긴요한 지침이 되고 있다. 한국신문협회가 낸 ‘韓國新聞協會二十年’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서울신문이 힘쓴 이 말다듬기의 성과는 모든 신문의 신문제작현장 종사자들에게 많은 준용과 새로운 대응어를 발굴,사용해 나가게 하는 기폭제 구실을 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울신문은 상업주의와 선정주의(煽情主義)에 휩쓸리지 않고 공익의 편에 서고자 노력했다. 예를 들면 재벌의 바람직하지 않은 행태를 비판하는 데 과감했다. 재벌에 약한 여느 신문과는 달랐다. 지난 10월9일과 10일 부산 동아대에서 열린 언론정보학회 정기 학술대회에서 박용원씨(동아대 신방과 석사과정)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서울신문은 재벌을 가장 많이 비판한 신문이다. 상업주의의 굴레에서 자유로운 서울신문은 과장,억지윤색,냄비열정의 폐풍을 벗어나 침착하게 보도하는 전통을 세웠다. 서울신문을 매개로해 수행된 공익사업은 헤아릴수 없을 정도다. 서울 세종로 한복판의 충무공 이순신장군 동상,덕수궁에 있는 세종대왕 동상은 서울신문이 애국선열조상건립워원회를 조직하여 성금을 모아 세웠다. 서울신문사 주도로 1966년부터 72년까지 세운 애국선열의 동상은 15기에 이른다. 서울신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보신각종도 서울신문의 노력으로 새해를 여는 울림을 계속하게 되었다. 금이 간 원래의 종을 대신할 새 종을 서울신문이 주도해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은 보도와 행사 개최를 통해 어느 신문보다도 문화예술활동 지원에 열성적이었으며 농어촌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무엇보다도,서울신문이 국가 성장기에 국민총의를 결집하고 국력을 집중하도록 하는 데에 큰 힘을 보탰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국가발전에 기여한 서울신문 53년의 공이 전적으로 무시될 수는 없다. ◎끼친 過/절대권력 정당화·비호로 점철/10월 유신 지지·군부정권 미화 급급/4·19혁명때 태평로 사옥 불타기도 대한매일로 새롭게 태어나는 서울신문은 지난 반세기에 걸쳐 뼈아픈 족적을 남겼다. 1960년 4월19일 오후 2시. 성난 데모대는 태평로 사옥 앞으로 물밀듯이 몰려왔다. 먼저 취재차량에 불을 질렀고 이어 윤전실로 들이닥쳐 다시 불을 질렀다. 불은 삽시간에 건물 전체에 번졌다. 곧바로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데모대원들이 물탱크차를 빼앗아 다른 곳으로 몰고 사라져 버렸다. 자유당 李承晩 독재권력을 비호한 관제언론에 대한 민중의 분노가 폭발했던 것이다. 최근 언론개혁시민연대가 선정한 한국언론의 대표적인 왜곡보도사례 50건 가운데는 서울신문의 보도내용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자유당 4捨5入 개헌 정당화(56년),10월 유신 지지(72년),全斗煥 권력 장악 정당화와 미화(81년),4·13 호헌(護憲)조치 옹호(87년) 등이다. 절대권력의 정당화에 앞장서고 민주화를 외면하거나 소극적이었던 언론의 선두로 꼽혀왔다. 일반 국민들에게 각인된 서울신문의 이미지는 항상 권력의 편에서 당시의 권력자를 옹호하는 전위대였다. 10월 유신때는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선거와 유신체제의 정당성을 위해 ‘해바라기 지식인’을 동원,유신대통령의 선출을 정당화하는 글로 지면을 가득 채웠다. 10·26사태후 80년 ‘서울의 봄’에 이르는 이른바 안개정국 시절엔 신군부 등장의 역사적 필연성을 예고하기도 했다. 5공의 全斗煥정권이 등장하자 “동천의 붉은 해가 불끈 솟았다.‥‥‥”며 그를 찬미하는 연재물을 게재했다.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도 “북괴방송,광주사태 집중적 선동” “광주시위 선동 남파간첩 검거” “공포의 유혈 무법천지” 등으로 ‘대공(對共)’문제와 ‘파괴성’을 권력의 편에 서서 부각시켰다. 해방후 53년에 걸쳐 점철되어온 서울신문 역사를 되돌아볼 때 일관된 허물은 ‘권력의 대변지’였다는 사실이다. 물론 지나온 시대는 역대 독재권력이 한국전쟁 이후 가열된 냉전시대의 안보논리를 그들의 체제유지논리로 위장한 시대이기도 했다. 어쩌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 시대를 같이 한 한국 제도권 언론의 곡필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울신문이 적어도 이같은 독재권력을 지지하는 선두에 섰다는 사실이다. 서울신문이 언론의 본분을 벗어났던 대목은 이밖에도 숱하게 많을 것이다.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한 정치문제에서 집권여당의 논리를 지나치게 앞세우고 상대적으로 야당의 입장을 폄하하는 지면을 제작함으로써 균형감각을 잃었다는 비판도 그 사례로 들 수 있을 것이다. 또 정부의 정책적 입장을 심도있게 보도한다는 취지를 왜곡하여 절대권력자의 일방적인 논리를 전파하는 데만 급급했던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제 대한매일은 서울신문의 지나온 역사를 깊이 자성하면서 철저한 자기비판을 토대로 새롭게 출발할 것이다.
  • 새로쓴 言官史官(金三雄 칼럼)

    언론인 출신의 사학자 千寬宇 선생은 ‘언관과 사관’이란 글에서 현대의 언론인은 왕조시대의 사관과 같다고 했다. 임금의 말 한마디로 생명이 좌우되기도 하는 시대,그 속에서도 할 말을 해야 하는 것이 언관의 책임이라는 것,그는 언관의 기개를 서거정(徐居正)의 말을 빌어 “항뇌정(抗雷霆) 도부월(蹈斧鉞) 이불사(而不辭)”(벼락이 떨어져도 목에 칼이 들어가도 서슴지 않는다)라고 썼다. 추상열일과 같은 언관의 기개다.조선왕조가 끊임없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면서도 500년 사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언관과 사관의 기개 때문이었다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들과 함께 역사를 쓰는 사가들의 기개 또한 대단하였다.단재 신채호 선생이 31세때인 1910년 국치 4개월 전에 안창호·이갑 등과 망명길을 떠나면서 가져간 책이 있다. 안정복(安鼎福)의 ‘동사강목(東史綱目)’필사본이다. 동사강목은 안정복이 22년간에 걸쳐 완성한 노작으로 단군조선부터 고려말까지를 다룬 실학기의 대표적 역사서다. 단재는 이 책을 짊어지고 고국을 떠나 만주·노령연해주·중국땅을 전전하면서 우리 고대유적과 유물,사서(史書)를 두루 섭렵했다. 단재는 이 책을 자료로 삼고 연구를 거듭하여 ‘조선상고사’와 ‘조선사연구초’등을 집필하였다. 안정복이 단재의 스승인 셈이다. 안정복은 ‘동사강목’에서 역사가의 중요한 원칙으로 ①계통을 밝힐 것 ②찬탄자와 반역자를 엄하게 평할 것 ③시비를 바르게 내릴 것 ④충절을 높이 평가할 것 ⑤법제를 상세히 살필 것을 들었다. 안정복의 다섯가지 원칙은 언론인이 지켜야 할 수칙이기도 하다. 오늘의 언론인은 어제의 언관이고 내일의 사관이기 때문이다. 언관이고 사관인 언론인은 모름지기 역사를 의식하면서 글을 쓰고 말을 해야 한다. 군사독재시절부터 길들여진 냉전논리와 수구세력과의 유착 커넥션에서 벗어나야 한다. ‘악어와 악어새’의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젖어온 안보상업주의 멘탈리티를 깨뜨려야 한다. 남북이 차츰 화해와 교류의 물꼬를 트고 서유럽국가들의 정치이념 지도가 바뀌는 터에 냉전의식과 매카시즘으로 중세기적 마녀사냥을 계속할 수는 없는 것이다. ○히틀러 피아노 건반 언론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앙그리프(Hangriff:공격)’란 신문을 창간하면서 “신문은 피아노 건반이다”고 썼다. 히틀러는 이를 받아서 “어떻게 치느냐에 따라 천국도 지옥으로 느끼게 하고 반대로 더없이 비참한 생활을 낙원으로 생각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은 나치즘적 언론관에서 진실을 왜곡하고 양심세력을 모해하는 글쓰기 행태를 지양해야 한다. 나치가 패망한 지 반세기도 더 지났는데 언제까지 ‘피아노 건반’식의 글쓰기를 한다면 언론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레이몽 아롱의 비판정신 ‘지식인의 아편’을 쓴 레이몽 아롱은 지식인의 비판활동의 유형으로 기술적 비판, 논리적 비판,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들면서, 어떤 유형의 비판활동이든 양심과 진실의 전제가 아니면 비판의 자격이 주어질 수 없다고 했다. 언론인과 지식인은 레이몽 아롱이 지적한 양비론의 기술적 비판이나 길들여진 냉전논리의 이데올로기적 비판을 지양하고 당당하게 시시비비를 가리는 논리적 비판정신을 따라야 한다. 개혁과 민족화해 ‘시대정신’으로 모아지는 때에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는 식의 언론활동은 이제 막을 내려야 한다.그리하여 선배 언관과 사관에 부끄럽지 않은 언론인으로 개혁과 민족화해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
  • 言改連,‘崔章集 교수’ 건국사관 관련 토론회 요지

    ◎“남북대결·보수세력 비판 ‘친북 좌익’ 운운은 어불성설”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崔章集 교수(고려대 정치외교학과)의 저술을 둘러싼 월간조선의 보도와 관련,언론개혁시민연대(언개연·이사장 金重培)는 2일 한국프레스센터 12층 한국언론연구원 회의실에서 열렸다. 계명대 사회학과 李鍾旿 교수의 ‘학문·사상의 자유와 崔章集 교수 현대사연구 왜곡보도사건­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도전’이라는 주제발표문을 간추린다. ‘6·25는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는 부제가 붙은 월간조선 11월호 기획기사로 한국사회는 다시한번 ‘사상논쟁’을 겪고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지식인에 대한 공안사건이 일정한 주기를 두고 발생하고 있다. 과거에는 지식인의 지적 작업에 대한 공안적 접근의 주체가 국가기관이었다면 이번에는 조선일보가 주체로 등장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현 정부는 대북,통일 정책에서 과거와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른바 ‘햇볕론’에 입각한 대북 포용정책이다. 이는 남북의 내부에 다같이 존재하는 냉전체제의 해체를 가져올 수 있다. 政周永 현대 명예회장의 ‘소떼몰이’와 금강산관광 역시 이런 변화를 예감케 한다. 남북의 수구세력은 이런 변화를 비판하며 분단체제를 고집하고 있다. 햇볕론에 대응하는 남북의 보수대연합이 형성돼 있다고 할 수 있다. 崔교수의 논저가 이른바 ‘친북 좌익’ 기조에 서 있지 않음은 일일이 해명할 필요조차 없다. 그의 논저는 남북의 냉전세력에 대한 비판과 극복을 기본정신으로 하고 있다. 본질은 남한의 보수세력이 한국 정부의 개혁정책과 탈냉전 평화주의에 대한 전면적 부정과 도전을 개시한 것이다. 냉전체제의 해체로 자신의 입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세력의 얼토당토않은 사상논쟁이며 기존의 냉전체제,남북대결 구조를 그대로 가지고 가겠다는 의도의 반영이다. 실제 崔교수는 논문에서 한국전쟁의 해석보다 훨씬 더 많은 면을 한국민주주의의 문제에 관해 할애했다. 문제가 된 저서명이 ‘한국민주주의의 이론’,‘한국 민주주의의 조건과 과제’라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조선일보는 그의 민주주의관이나 노동운동에 관한 부분은 차치하고 몇가지 어구와 문장을 차출해 보수 진영을 감정적으로 자극,선동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상논쟁이 그랬듯이 혀재의 사상논쟁도 토론이 아니라 선동으로 논리가 아니라 감정에 의거하고 있다. 한국 사회는 다원성이 허용된다. 진보와 보수가 다같이 시민권을 누리고 있다. 진보나 보수만의 배타적 시민권을 주장하는 것은 사회를 다시한번 이념적 독재 혹은 전체주의 사회로 이끌어가는 것이다. 崔교수 사건은 한국 사회가 문명으로 갈 것이냐 혹은 야만으로 남을 것이냐의 분수령을 이룰 것이다. 한국의 집권세력,지식인,시민사회는 이 문제를 진보와 보수의 대립으로만 보지 말고 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심각한 위협으로 상정,진지하게 대처해야 한다. 민주주의와 문명에 대한 위해를 가져오는 극단세력에 단호하게 대응 다수의 대중이 극우의 선동에 포로가 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
  • 장준하 영전에 금관문화훈장을(金三雄 칼럼)

    우리나라처럼 훈·포장이 원칙과 기준 없이 수여되는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독재정권 시절 채찍과 더불어‘당근’의 대용이 되고,김영삼 정권 때까지도 대통령이 국무위원이나 청와대비서실·경호실 요원들에게 나눠주는 선심용이었다. 원칙과 기준 없이 남발되다 보니 막상 받아야 할 사람이 제외되거나 수상하더라도 격에 맞지 않는 경우가 적지않았다. 張俊河 선생에게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하는 문제로 파문이 일고 있다.문화관광부는 고인이 생전에 사상계(思想界)를 발간하여 한국 잡지문화 발전에 끼친 공로를 높이 평가해 11월1일 잡지의 날에 은관문화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한다. 문화관광부는 당초 잡지협회의 추천을 받아 고인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줄 것을 추진했으나 청와대와 행정자치부의 협의 과정에서 은관문화훈장으로 훈격(勳格)이 한 단계 낮아졌다는 것이다. 어느 부처의 의견 때문인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훈장 격하는 크게 잘못된 결정이다.다른 상이면 몰라도‘잡지문화 발전’에 끼친 공로라면 장준하와 사상계에 금관문화훈장을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상계는 우리 잡지 역사에서 단연 선구적 정론지였다.6·25전란으로 폐허가 된 1950년대에 청년과 지식인들에게 자유민주주의 가치관과 폭넓은 교양을 심어준 복음서 역할을 하였다. 사상계의 정론과 비판정신은 4월혁명의 기폭제가 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5·16 후에는 박정희 독재에 대항하여 새로운 전위가 되었다.하나의 월간 잡지가 아닌 반독재 민주화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한 것이다.그렇다고 저항 일변도의 정치 잡지였던 것은 아니다. 동인문학상으로 상징되는 문학운동과 신인 발굴,지방순회 문화강연회 등 사상계 영역은 미치지 않은 데가 없었다.우리 잡지문화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했다. ○정론잡지의 선구자 사상계를 이끈 선구자는 장준하 선생이다.장준하가 누군가.식민지 시절에는 총을 들고 왜적과 싸우고,해방 후에는 金九 선생 비서로서 건국운동에 헌신하고,이승만과 박정희 독재시대에는 펜을 들고 자유민권 수호에 앞장서고,유신체제가 선포되면서 온몸을 던져 민주회복과 통일운동에 헌신하다가 암살 당한 민족 지도자다. 그는 박정희 정부가 북한특사와 통일원장관을 제의할 때 친일 전력과 쿠데타 정권을 이유로 이를 거부하고,군사정부의 훈장 제의도 같은 이유로 거절하였다.올곧게 산 지사적 지식인의 전형을 살피게 된다. ○왜곡 잡지계에 경종 계기를 고인에게는 노태우 정부가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고 1962년에는 필리핀에서 막사이사이 언론문학 부문상을 수여한 바 있다.때문에 새삼 문화훈장추서 문제로 논란이 생긴다면 고인에게 욕주는 일이 될지 모른다. 그렇지만 유족의 항의대로 고인이 생전에 추구하던 50년 만의 정권교체가 이뤄져 국민정부가 출범했는데,정부가 금관·은관·보관훈장 중 기껏 은관문화훈장이나 주겠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예우에도 미치지 못하고 사상계에 대한 모독이 아닌가 싶다. 정부는 엄격한 기준과 원칙에서 수상자와 훈격을 결정해야 한다.오늘 열리는 국무회의는 장준하 선생에게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여 업적이 평가되고 대접받는 질서를 보여줘야 한다. 그리하여 이를통해 왜곡과 모해로 지탄받는 잡지계 일각에 경종이 되고 장준하의 정론정신이 모든 언론인의 귀감이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親日의 군상:10/前 홍익대 총장 李恒寧씨(정직한 역사 되찾기)

    ◎“부일의 과오 민족앞에 눈물로 참회”/1939년 ‘고교’ 합격… 일제말 하동·창녕군수 4년 역임/군청 직원들 앞세워 죽창으로 농민 위협하며 쌀 공출/해방 후 35년간 교육계서 근신… 기회있을 때마다 사죄 “일제말 27세의 젊은 나이로 하동(河東)군수를 지내면서 저 자신의 출세와 보신(保身)에 눈이 어두워 (군민들을) 죽창(竹槍)으로 위협까지 했던 저를 너그럽고 따뜻하게 맞아주신 하동 군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謝罪)드립니다” ‘참회’는 아름답다.진솔한 참회는 숭고하기조차 하다.왜냐하면 보통사람들로서는 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일제하에서 고관대작을 지냈거나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소위 ‘친일파’로 불리는 사람 중에서도 더러는 자신의 친일전력을 참회한 바 있다.민족대표 33인중 1인으로 나중에 변절한 崔麟은 반민특위 재판에서 법정을 온통 울음바다로 만들었다.“민족의 이름으로 이 최린을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단해 주십시오”.그의 진실한 참회 한 마디가 사람들을 울린 것이다.파인 金東煥은 반민족행위를 뉘우치며 반민특위에 자수하였고,玄錫虎(일제때 충남 광공부장,2공화국에서 국방장관 지냄,88년 작고)는 회고록 ‘한 삶의 고백’을 통해 자신의 친일행적을 고백한 바 있다.친일행적을 한번만이 아니라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참회·사죄한 인사도 있다.홍익대 총장을 지낸 李恒寧(84·학술원 회원)씨가 그 주인공이다.그는 다소 껄끄러운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의외로 단번에 허락했다.가을빛이 완연한 정릉 자택으로 그를 찾아가 두어 시간 얘기를 나눴다. ­하동군민들에게 사죄한 것은 언제,어디서 하신 말씀입니까? ▲91년 7월10일 바르게살기운동 하동군협의회 초청 강연회에서 인사말로 한 것인데 여러 신문에 보도가 됐더군요. ­주최측에서 그런 얘기를 해달라고 주문을 하던가요? ▲아닙니다.제 스스로 한 얘깁니다.그 자리에 서니까 50년전의 일이 생각도 나고 군민들을 직접 뵈니까 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얘기가 저절로 나옵디다. ­처음 주최측으로부터 강연요청을 받고서 어떤 감회가 있었습니까? ▲‘하동’이라고 하니까 저로서는 감회가없을 수야 없지요.거기서 군수를 지냈으니까요.해방후에도 더러 하동을 지나친 적이 있었습니다만 ‘죄의식’때문에 (군민들을) 찾아볼 용기가 없었습니다. ○일제 앞잡이로 군민 괴롭혀 ­‘죄’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씀하십니까? ▲일제말기 하동·창녕군수로 재직하면서 일제의 앞잡이가 돼 군민들을 괴롭힌 행위를 말합니다. 李씨는 1934년 경성(京城)제국대학(서울대학교의 전신)에 입학한 후 예과 3년,본과 3년의 6년 과정을 마치고 40년 졸업했다.본과 3학년 때인 39년 고등문관시험 행정과에 합격한 李씨는 대학 졸업후 1년간 시보(試補)생활을 거쳐 1941년 6월 하동 군수로 첫 발령을 받았다.1년 뒤인 42년 7월 그는 창녕(昌寧)군수로 전보돼 그곳에서 3년간 근무하다가 해방을 맞았다. ­군수는 어떤 경로로 됐습니까? ▲당시 대학을 나와도 마땅한 취직자리도 없고 해서 재학중에 고시(考試)공부를 해서 (군수가)됐습니다. ­당시 고시공부는 주로 직장을 얻기 위한 방편이었습니까? ▲그런 면도 있지만 입신출세를 위해서 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시보 생활은 어디서 했습니까?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했습니다.국회 부의장을 지낸 尹吉重씨가 저와는 고시 동기생인데 尹씨는 총독부 농림국에서 시보생활을 했습니다. ­군수의 대우는 어땠습니까? ▲당시로선 비교적 많은 봉급을 받았습니다.일제말기에는 일본인에게만 주던 가봉(加俸)을 조선인들에게도 지급해 봉급차이도 없어졌습니다. ­하동군수 시절 식량공출(供出)문제로 고생을 하신 것 같은데… ▲제가 군수로 부임한 이듬해인 1942년부터 ‘공출제도’가 시행됐습니다.그런데 하동에선 생산량보다 할당량이 많아서 무리가 있었습니다. ○1942년부터 공출제 시행 ­공출미 할당은 어디서,누가 결정하였습니까? ▲당시 경상남도 산업부장으로 있던 金大羽씨가 군수회의를 소집한 후 각 군수에게 강제로 할당해 주었습니다. ­하동군에 할당된 공출량은 얼마나 됐습니까? ▲군 양곡담당 기수(技手)에게 물어보니 재고가 6,000석이라고 하더군요.그 내용을 金大羽씨에게 보고했더니 ‘기수 말은 못 믿겠다’며 재고량의 무려 5배인 3만석을 할당하더군요. ­최종 공출량은 얼마나 됐습니까? ▲할당량의 1할 정도인 3,000석 가량을 공출했습니다. ­다른 군의 사정은 어땠습니까? ▲대개 할당량의 절반 정도는 달성했었습니다.그 때 제가 있던 하동군이 꼴찌를 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죽창’ 얘기는 왜 나온 겁니까? ▲당시 군민들이 집안 곳곳에 쌀을 감추어 두니까 군청직원들이 죽창을 들고 다니며 창고나 벽 같은 쌀을 숨겨둘만한 곳을 쿡쿡 찔러본 것을 두고 한 얘깁니다. ­죽창으로 사람을 해친 사례도 있습니까? ▲그런 적은 없습니다.그러나 ‘공출독려반’들이 죽창을 들고다니니까 군민들에게 위협은 됐을 겁니다. ­하동군수에서 1년만에 창녕군수로 자리를 옮기셨는데 승진은 아니지요? ▲예,군세(郡勢)로 보면 오히려 좌천인 셈이지요.부진한 공출성적이 문제가 됐을 것으로 봅니다. ­본인의 ‘친일’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말합니까? ▲식량공출이나 노무자 징용,학병권유,징병제 독려 등에 대한 방침이 도의 군수회의에서 결정이 되면 군수는 다시 면장회의를 소집하여 그 내용을 하달,독려했습니다.결국 일제의 앞잡이 노릇을 한 셈이지요. ­그같은 일은 당시 군수의 기본적인 직무가 아닙니까? ▲그야 물론이지요.그러나 그같은 직무를 수행하는 군수자리를 직업으로 택했다는 자체가 ‘친일’입니다. ○고등관리 이상 관리는 친일파 ­항간에는 일제말기에 군수 노릇 몇 년 한 사람을 ‘친일파’로 보는 것은 지나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도덕적 평가 이전에 지식인의 민족의식 문제라고 봅니다.아무 생각없이 상부기관의 결정사항을 집행한 것도 그렇지만 더러는 출세목적으로 부풀려 집행한 사례도 있었습니다.당시 군수는 일선 행정기관의 실질적 책임자로 지금보다 훨씬 권한과 재량이 많았습니다.어려운 시험을 거쳐 자발적으로 그런 자리에 앉았다면 이는 재임기간이 문제가 아니라고 봅니다.적어도 고등관 이상의 관리는 친일파로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인 관리들과의 차별대우는 어땠습니까? ▲고급관리는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일제말기에는 임금차이도 거의 없었습니다.총독부 내에 ‘계림구락부’라는 고등문관시험 출신 고등관들의 모임이 있었는데 저도 시보 시절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해방후 그는 45년 10월까지 창녕군수로 계속 근무하다가 미 군정청으로부터 경남도청 사회과장으로 발령을 받고는 한 달만에 사표를 썼다.이유는 자신은 일제때 관리를 지낸 몸이라는 것.이후 그가 자리를 옮긴 곳은 부산 동래구 범어사 입구 청룡초등학교였다.“해방후 민족앞에 속죄해야겠다는 생각에 승려가 되려했습니다.그러나 이미 딸린 아이가 다섯이나 돼 혼자 이 문제를 결정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래서 낮에는 교사로 근무하면서 밤에는 범어사 河東山 스님 밑에서 수행생활을 했습니다”.지난 81년 홍익대 총장을 그만둘때까지 그는 35년간 교육계에만 몸담았었다.그 나름의 ‘근신’이었다. 60년대초 그는 수필과 신문에 연재한 자전적 소설을 통해 자신의 친일행적을 참회했었다.또 80년 봄에는 조선일보에 ‘나를 손가락질 해다오’라는 글을 발표,지식인 사회에 파문을 던졌다.거듭된 ‘참회’를 두고 일각에서는 ‘상습적 양심선언가’라고 비아냥거렸다.그러나그의 ‘참회’는 앞뒤,체면안가리고 솔직하다.사실왜곡이나 자신을 미화한 구석도 없다. “사죄를 하고나니 마음이 이렇게 후련할 수가 없습니다”. 인터뷰 내내 그는 밝은 모습이었다.묻는 말에 뭘 대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법도 없었다.그의 얼굴 가득히 ‘뉘우친 자’의 평화감과 여유가 넘쳐 흘렀다. ◎日帝下 군수는 어떤 자리였나/군행정 최고 실권 가진 실력자/고등 문관시험 합격자 임용/1년간 시보 거쳐 군수부인/면장·군청직원 인사권 가져/초임은 초등교사의 약 3배 일제하 공직자 관등(官等)은 네 종류였다.최상급은 일황이 ‘친히’ 임명하는 친임관(親任官)으로 조선내에서는 조선총독·정무총감 두 사람뿐.그 다음이 칙임관(勅任官)·주임관(奏任官)·판임관(判任官)순.주임관 이상을 고등관(高等官)으로 쳤는데 현 사무관(5급) 이상에 해당하는 직위다. 군수는 판임관에서 승진하거나 고등문관시험 행정과(현 행정고시)합격자가 임용됐다.고문(高文)출신자의 경우 1년간 시보 시절에는 판임관 6급(군청 과장급)대우를 받다가 군수로 정식 임용되면 주임관 7등급 대우를 받았다.초임 연봉은 1940년 7월1일 기준 1,650원.(당시 초등학교 교사 초봉은 월 45원) 군수는 면장 이하 군청직원에 대한 인사권을 가진 군행정의 최고책임자로 ‘영감(令監)님’으로 불렸고 부인은 ‘마님’소리를 들었다.‘각하(閣下)’라는 용어는 도지사급의 칙임관들에게 붙였다. 李恒寧씨는 “사법과 출신의 법관들은 판결문 작성 등 잡무가 많았으나 군수는 도장찍는 일 밖에 없어 편했다”고 회고했다.
  • 월간조선 ‘崔章集 교수 이념시비’ 파문 확산

    ◎“의도된 신매카니즘” 비판 봇물/쓸데없는 사상논쟁 국가적 손해 초래/기득권측 개혁 저항·상업적 이익 꾀해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인 고려대 崔章集 교수의 학술적 성과를 둘러싸고 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많은 정치학자들은 “崔교수에 대한 월간조선의 보도가 언론사의 ‘의도된’ 신(新)매카시즘적인 행태”라고 비판하고 있다.다른 정치학회 회원들도 崔교수가 대통령 자문기구의 위원장임을 문제삼아 현 정권의 사상문제를 쟁점화하려는 것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학계 일각에서는 “쓸데없는 사상논쟁에 휘말리는 것은 국가에 상처만 남기고 해당언론사에 대한 상업적 이익만 안겨줄 뿐”이라며 경계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각계의 성명도 이어지고 있다. 23일 한국정치학회(회장 백영철)는 “崔교수가 6·25를 ‘김일성의 역사적 결단’이라고 했다”는 월간조선 보도와 관련,성명서를 내는 등 지식층 각계에서 월간조선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성명이 계속되고 있다. 한국 정치학회는 22일 긴급 상임위원 회의를 23일자로 정리하면서 “월간조선 보도행태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는 강한 톤의 성명을 냈다.정치학회는 “학자의 학술연구를 특정 이데올로기적 잣대에 의해 견강부회식으로 왜곡,매도하는 것은 학자의 인권과 명예에 대한 침해”라면서 이같이 비판했다. 19개 시민단체 모임인 정치개혁시민연대(공동대표 孫鳳鎬)도 22일자 성명에서 “한국사회에서 기득권층의 반격은 항상 사상문제를 매개로 한 매카시즘 형태로 나타났다”면서 “기득권층이 개혁에 저항하는 수단으로 崔교수의 사상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라면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명지대 정외과 申律교수는 “월간조선 보도태도는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일뿐 아니라 특정 이데올로기를 강요·유도하려는 신매카시즘적 발상이며 과거 군사독재정권이 악용한 고전적 수법”이라고 주장했다. 월간조선은 문민정부 시절 당시 韓完相 통일원장관,金正男 교문수석에 대해서도 사상·이념을 문제삼아 ‘사상시비’를 제기·확대시킨 바 있다. ◎정치학회 성명 요지/“견강부회식 매도이며 이념적 폭력” 우리는 문제의 기사가 사실 및 논지의 중대한 왜곡이자 이데올로기적 인신공격이라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한다.학문적 성과를 전체 맥락과 관계없이 특정 문구를 작위적으로 재단해 문제삼고 최교수가 마치 친북적인 학자인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 학술연구를 특정 이데올로기적 잣대에 의해 견강부회식으로 왜곡하여 매도하는 것은 학자의 인권·명예에 대한 침해임은 물론 자유로운 창의에 바탕한 학문자유와 학문활동,그리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보인다.문제의 기사는 기본논지의 공정한 인용에 바탕한 합리적 비판이 아니라 논지의 부당한 왜곡에 바탕한 것이라는 점에서 중대한 지적·이념적 폭력이다.이는 학자들의 자유로운 의견제시를 막아 학문활동을 위축시키고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다. 한국정치학회는 학문의 자유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월간조선에 대해 사실및 논지 왜곡에 근거한 매카시즘적 마녀사냥을 중단할 것과 문제의 기사에 대한 적절한 정정과 사과를 촉구한다. 한국정치학회 회장 ◎崔章集 교수 인터뷰/“개혁 불이익 우려한 기득권 언론의 공격”/사회분위기 이제는 그같은 행태 용납 않을것 崔章集 고려대 교수(정치학)는 23일 현대사 연구 논문을 둘러싼 월간조선과의 이념 시비에 대해 “개혁이 가져올 불이익을 우려하는 기득권 언론의 공격”이라면서 “이제 사회 분위기는 그같은 왜곡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자문기구인 정책기획위원장을 맡고 있는 崔교수는 “이런 왜곡 시비가 통용되면 학문의 영역이 침해받고,정부의 개혁 의지도 흔들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념 시비에 대한 입장은. ▲한마디로 황당하다.개인적으로는 비판이 있으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그러나 이번 같은 일이 통용되면 개인적으로뿐만 아니라,공부하는 학자들의 학문 영역이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 ­월간조선에서 문제를 제기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정권이 교체되고 새 정부가 들어서자 기득권의 이익이 흔들리고 있다.그 때문에 일부 언론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돼 어떤 피해의식이 생긴 것 같다.개혁이 가져올지 모르는 불이익을 사전에 예방하자는 차원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왜 崔교수의 논문이 쟁점이 된 것으로 생각하나. ▲정부의 개혁적인 인사들을 선별 선택해서 집중 공략하는 것 같다.정부를 취약하게 만들려고 흔들고,개혁의 의지를 약화시키자는 생각일 것이다. 정의와 개혁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부패하지 않으니 이념밖에는 무기가 없을 것이다.우리사회의 취약한 부분이 이념인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는 것 아닌가. ­崔교수의 논문에 오해받을 대목이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것은 논문을 과장 해석한 것이 아니고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무슨 이념을 가진 진보와 보수의 대결 같은 게 아니다.일방적으로 말도 안되는 공격을 하는 것이다.언론으로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것이며,스스로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이다. ­문민정부 초에도 韓完相 부총리 겸 통일원장관과 金正男 청와대 교육문화 수석이 이념 시비로 물러난 바 있는데. ▲그 때와는 다르다.다른 언론 매체들도 그 때와 달리 신중한 것 아닌가. ­향후 대응 방향은. ▲소속해 있는 정치학회와 사회과학계,더 나아가 지식인 사회가 격분하고 있다.그들은 이번 논란을 언론의 횡포,폭력이라고 생각한다.사회 분위기를 보면,이미 승부는 난 것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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