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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티즌 리서치] 식을 줄 모르는 반일감정

    네티즌들이 ‘반일깃발’을 올렸다.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종군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역사왜곡에 정치인들의 잇따른 망언 때문이다. 특히 이번 모리총리의 “독도는 일본땅” 발언은 네티즌들을 더욱 화나게 만들었다.모리총리의 ‘독도발언’은 일본 행정수반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향해서 공식적으로 발언한 것이고,김대중 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있었다는 점 때문에 당분간 파문이 계속될 조짐이다. 한편 이번 모리 총리의 ‘독도망언’을 삭제,편집해 내보낸 KBS,외교통상부 등 인터넷 사이트에는 ‘사이버시위’가 확산되고 있다.특히 지난달 29일에는 주한 일본대사관 홈페이지가 가상연좌집회로 곤욕을 치렀다. Kdaily.com이 KBS의 ‘독도망언 삭제편집 방송’과 관련해 지난달 26일 진행한 네티즌 여론조사에서도 ‘비겁한 방송행태’,‘대일 저자세 외교’ 등 참여자의 93%가 압도적 비판의견을 나타냈다. 네티즌들의 ‘반일감정’은 역사적 뿌리가 워낙 깊은데다 최근까지일본 지도층의 무례하고 비양심적인 태도로 더욱 단단해질 것으로 전망된다.젊은 네티즌들의 ‘반일감정’이 계속되는 가운데 일본문화의 급속한 확산은 우리 국민의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대일관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점이다.
  • [사설] 남북화해와 新한일협력

    지난 22일 일본을 방문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는 한편 일본 경제인들을 상대로 활발한 ‘세일즈 외교’를 펼친 뒤 오늘 귀국한다.2박3일의 짧은 여정이었지만21세기를 앞두고 새로운 한·일 협력체제를 다지는 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6·15공동선언 이후 급진전된 한반도 화해시대를 맞아한·일간 외교적 보폭을 조율하고,경제협력 및 문화교류의 폭과 깊이를 한 차원 진전시켰다는 뜻이다. 동북아의 평화정착과 경제발전을 위해선 북한의 경제회복과 개혁·개방을 통한 한반도의 안정이 무엇보다 필요하다.그런 점에서 양국이남북관계와 북·일관계가 균형있게 발전하도록 긴밀한 공조를 유지하기로 의견을 모은 것은 높이 살 만하다.김대통령이 강조했듯이 “북한의 경제회복은 한국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북한이 과거의 어두운 이미지를 벗고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으로 자리잡는 데도 북한 스스로의 노력과 함께 미·일과 북한의 관계개선이 관건이다. 특히 우리는 일본이 김대통령의 대규모 대한 투자 요청 등에 화답한점을 퍽 다행스럽게 생각한다.장기적으로 한·일을 포함해 동북아 전체의 공동번영에 기여하리라는 믿음 때문이다.양국간 투자협정의 연내 체결,‘정보기술(IT)협력 이니셔티브 선언’ 채택 등에 합의한 것도 일본 아타미에서 열린 이번 정상회담의 실질적 수확이다. 그러나 양국이 종전의 ‘가깝고도 먼’ 관계에서 탈피하기 위해선몇가지 선행조치가 필요함을 이번 기회에 강조하고자 한다.우선 양국이 새로운 세기에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도 과거사에 대한정직한 인식이 필수불가결할 것이다.그런 맥락에서 일본은 문부성이앞장서 역사교과서 왜곡을 종용해왔다는 자국 시민단체들의 지적에대해 뼈아픈 성찰이 있기를 바란다. 그 연장선상에서 일본은 한국이 이번에 거듭 요청한 재일동포들의지방참정권 허용 등 법적 지위향상에 전향적 자세를 보여주기를 촉구한다.이같은 과거청산 작업이 경제협력이나 2002년 월드컵의 성공적인 공동개최 등 양국간 각종 협력을 증진하는 분위기 조성에 이바지할 수 있음은 말할 나위 없다.더 나아가 일본 방송개방 등 문화교류촉진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일본은 알아야 한다. 이처럼 과거사가 말끔히 정리되고 일본이 대한 투자를 더 늘릴 때일본이 요구하고 있는 한·일간 자유무역협정 체결도 장기적으로 가능할 것이다.당장 한·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경우 대일 경제종속이 우려된다는 우리 사회 일각의 목소리가 아니더라도 단기적으로 무역역조 심화 등 부작용이 예견된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 金대통령,”日교과서 역사 왜곡땐 어떤 형태로든 의사 표시”

    [도쿄 양승현특파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23일 일본 교과서문제와 관련,“교과서의 가치는 역사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는 데 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교과서의 공신력 자체가 크게 훼손된다”고밝혔다. 김 대통령은 이날 오전 도쿄 주재 한국특파원들과 가진 간담회에서“(역사를 왜곡한)그런 교과서는 일본에서 나타나지 않을 것으로 믿고 있으며 필요하면 어떤 형식으로든 의사 표시를 하겠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은 이어 “남북한 발전과 동북아시아의 안정을 위해서는일본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김 대통령은 일본의 보수화에대한 정부 입장을 묻는 질문에 “정부의 관심도 필요하지만 국민,문화,언론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yangbak@
  • [외언내언] 日문부성의 역사왜곡

    일본 문부성이 중학교용 역사교과서 근·현대사 부분을 왜곡하도록출판사에 강요하고 있다는 주장이 일본 시민단체들에 의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지난 8월 일본의 우익단체가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으로,일본침략군을 ‘아시아해방자’로 표현하는 역사교과서를 편찬한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우리는 역사왜곡의 부당성과 그 위험성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이번에 8개 출판사가 제작,검정 신청한 교과서들은 1997년도 검정판에 비해 우익성이 두드러지게 강화됐다.‘종군위안부’를 다룬 교과서는 1997년 7개에서 3개로 줄었고 그나마 ‘위안 시설’등으로 표현하고 있으며,종군위안부라는 용어를 쓴 교과서는 하나도 없다.‘중국·조선 침략’은 제목 자체를 없앴으며 ‘일본의 만주 침략’을 ‘만주사변과 국제연맹 탈퇴’로 바꾸고 ‘남경 대학살’도 ‘남경사건’으로 바꿨으며 희생자수도 97년 당시 30만명 이상을 ‘다수’로 은폐하고 있다. 지난 82년 일본 문부성이 사회·역사교과서를 검정하면서 ‘침략’을 ‘진출’로,‘국권 탈취’를 ‘양위(讓位)재촉’으로 변질시키는등 일본의 아시아침략사를 왜곡해서 주변국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이 문제가 외교분쟁으로 번지자 일본 정부는 “교과서의 외국관계 서술은 국제 이해와 국제 협조의 견지에서 배려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그럼에도 이같은 역사왜곡이 일본 정부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면 그냥 보고만 있을 사안이 아니다.이같은 일본의 움직임은 이미정치·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이 우경화에 박차를 가해 군사대국을 지향하겠음을 대내외에 천명하고,역사교과서 왜곡을 통해 2세국민을 군사대국에 걸맞는 국민으로 교육하겠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의 역사왜곡 기도에 대해 중국 외교부는 12일 “일본 군국주의가 저지른 엄중한 범죄는 교과서에서 뺀다고 없어지거나 희석되는 게 아니다”고 비판했고,북한의 조선중앙방송도 13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은 일제의 강점통치를 받았던 우리 민족에게 참을 수없는 모독 행위”라고 비난했다.그러나 우리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우려’를 표명했을 뿐이다.모리 이시로(森喜朗)총리는 21일 KBS와의 회견에서 일본 역사교과서 문제에 언급,“검정과정에서 한국 국민들의 뜻을 충분히 감안하겠다”고 말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모리총리와의 회담에서 이 문제에 대해서도 분명한 다짐을 받기 바란다.일본의 역사왜곡 기도를 확실하게 저지하기 위해서는 정부차원에서북한,중국 등 과거 일본 군국주의 피해국들과 공동전선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장윤환 논설고문 yhc@
  • [매체비평] 미확인 보도의 파괴력

    나라가 안팎으로 시끄럽다.국회 공전,국제유가 급등과 금융·기업구조조정의 부진,대우자동차 매각 불발,게다가 ‘블랙먼데이’라고불릴 정도의 주식시세 급락 등 주변상황이 몹시 어지럽다. 18일의 경의선 단절구간 복원공사 개시라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갖는 사건조차 대부분의 신문에서 톱기사를 차지하지 못할 정도이다. 역사적 의미로나 상식적인 뉴스밸류로 봐서 경의선 복원공사는 누가봐도 당연히 1면 톱에 올라야 할 기사거리다.그것이 옆으로 밀리고,심지어 1면 구석자리를 차지하기까지 했으니 우리 사회가 극단적인무질서 상태에 빠져 있거나 아니면 몇몇 신문사 편집국이 상식 이하의 왜곡된 뉴스밸류 판단기준을 갖고 신문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을아니할 수 없다. 요즈음 우리 사회를 시끄럽게 만들고 있는 사건중 하나가 한빛은행불법대출과 신용보증기금 대출압력 의혹사건이다.이 사건에 관한 언론보도는 총체적으로 난맥상을 드러내고 있다.먼저 많은 경우 취재보도의 기본규칙이 지켜지지 않았다.상당수 신문들이 이해 당사자 일방인 이운영씨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진실이나 사실로 인정하는 보도태도를 취하고 있다.두 차례에 걸친 이씨와 특정신문사 기자와의 인터뷰 내용은 여과없이 기사로 만들어졌으며,이씨의 탄원서나 일기도 원문이나 요약문 형태로 기사화되었다.상대방 당사자는 항변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언론매체는 이해관계가 엇갈릴 경우 쌍방을 다 확인 취재하여 보도해야만 한다.이 절차가 충실하지 못할 경우 보도는 편향성을 띠거나상황을 왜곡할 수 있다.이러한 보도는 초기 발설자에게 공신력과 사회적 정당성을 부여하고 그 대항자에게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줄 수있다.뿐만 아니라 보도 자체가 명예훼손이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가능성도 있다. 언론매체는 선정적인 주간지나 소설이 아닌 다음에야 ‘믿거나 말거나’ 하는 태도나 ‘아니면 그만이지’라는 태도로 보도해서는 안된다.매체 스스로 믿는 바에 따라,그리고 취재한 가치있는 사실에 따라 기사를 써야 한다.취재한 사실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객관적인 기준에 따라야 한다. 오래 전부터 지적된 것이지만 한국언론은 여전히 이른바 객관보도의 신화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어떤 발언이 있었다’라고 보도하면끝이다.그 발언의 진위를 파악하여 진실을 밝히는 언론의 기본적 기능은 흔히 무시되며,그것을 위한 노력이나 후속·보완절차는 무시된다. 이번 사건의 진행과정에서 나타난 이씨의 주장은 사실일 수도 있고,허위일 수도 있다.언론보도는 그것이 절반의 사실이라는 관점에서 시작해야 한다.박 장관이 직접이든 간접이든 어떤 방식으로 관련되어있는 듯하지만 그 개입의 수위나 방법과 관련해 명백히 밝혀진 증거는 아직 없다.그러나 이씨의 발언을 충실히 전달하는 일부 언론보도를 통해 박 장관은 금융기관 지점장에게 부당하게 폭력적 언어나 구사하는 인물 쯤으로 규정되고 말았다. 추후 이씨가 검거되고 엄정한 수사를 통해 그 관련의 양상과 수준이 명확하게 밝혀져서 이씨의 발언내용이 사실로 밝혀질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그러나 모두가 사실이라면 다행(?)이겠지만 사실이 아니라고 판명되었을 경우라도 박 장관에게 덧씌워진 이미지는 좀처럼회복되거나 수정되지 않는다.그때까지 시민들이 갖고 있어야 할 분노는 근거없는 대상에 대한 분노일 뿐이다. 일이 만약 이렇게 된다면 몇몇 언론매체는 전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셈이다.언론매체의 공신력을 이용하여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특정인 또는 세력의 노련한 언론플레이에 속절없이 놀아나는 언론,상업적 또는 다른 특정의 목적을 위해 지면을 사유화한 언론,그리고 선출되지 않은 난폭한 권력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류한호 광주대교수·언론정보학
  • 정부, 日에 교과서 왜곡 우려 입장 전달

    정부는 과거사를 왜곡하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위해 문부성에 제출된 데 대해 일본측에 우려를 전달했다고 외교통상부 당국자가 14일 밝혔다.이 당국자는 “지난달 말 일본 정부에 ‘과거사를 왜곡·축소하는 역사 교과서는 미래지향적 양국관계 발전은 물론 일본스스로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 日교과서 역사왜곡 망령‘부활’

    일본 문부성에 검정 신청된 2002년도판 중학역사교과서에서 구 일본군의 가해 행위에 대한 기술이 대폭 줄어들거나 거의 언급되지 않고있다고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 등 일본언론이 10일 지적했다. 특히 일부 역사, 공민교과서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거나핵무기 폐기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기도 해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구 일본군의 가해 행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종군위안부 문제’의 경우 현재 사용되고 있는 7개 교과서는 “조선 등지의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전쟁터에 연행했다”는 등의 표현으로 모두 다루고 있다. 그러나 새로운 교과서에서는 ‘위안부’라는 말을 사용한 것은 1개사뿐이고 3개사는 그나마도 아예 취급하지 않고있다.2개사는 현 교과서에서 일본정부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며 시위를 하던 전 종군위안부여성들의 사진을 게재했으나 새 교과서에서 삭제했다. 종군위안부 문제는 교과서 개정이 대폭적으로 이루어졌던 97년판부터 일제히 다뤄지기 시작,불과 5년 만에 일변한 것이며 최근 일본의급진 우경화와 궤를 같이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난징(南京)대학살사건에 대해 현 교과서들은 살해된 것으로 알려진 중국인의 숫자를 약 20만명으로 기술하고 있으나 새로운 교과서(4개사)는 사람수 부분이 ‘대량’으로 둔갑하고 있다.더욱이 2개사는‘난징 대학살’이라는 표현을 ‘난징사건’으로 고쳐 눈길을 끌었다. 한편 일부 역사교과서는 한·일합병에 대해 “동아시아를 안정시키는 정책으로 구미 열강으로부터 지지를 받았다”,“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권익을 방위하기 위해서는 필요했다”,“국제관계의 원칙에 따라 합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등으로 설명,강자의 논리로 일관하고있다. 도쿄 연합
  • [기고] 국치일 90년, 다시서는 민족정기

    올해는 새천년답게 국민의 가슴에 깊이 자리잡는 일들이 많았다.특히,김대중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한 뒤 이어지기 시작한 그 감동의 시간들,남북이산가족들이 뜨겁게 상봉하며 울던 장면이나 애써 흐르는눈물을 참는 일반 국민들도 많았다.이념과 체제는 달리하지만 아직도우리는 하나일 수밖에 없다는 확인의 시간들이 아니었나하는 생각과함께 통일을 향한 우리국민의 염원이 무르익어 이제 50년 분단사를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20세기 비운의 역사를 잉태한 한·일합방 국치일과 망국의한을 안고 조국의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희생을 생각함에아직도 지지부진한 한·일관계를 반세기 넘게 끌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 부끄럽기 짝이 없다는 생각 또한 드는 것이 사실이다. 1990년 5월 아키히토(明仁) 일본천황의 사과문 발표가 있다 하여 한때 국민 모두 큰 기대를 가졌으나 “한국국민이 겪었을 고통을 생각함에 통석(痛惜)의 염(念)을 금치 못한다”는 애매한 말로 문구(文句)에 대한 시비만을 낳았을 뿐 국민들가슴에 맺힌 한의 골은 채울 수가 없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일본은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야기시켰고 1998년 1월23일 구 한·일어업협정의 일방적인 통보와 일본학생들의 왜곡된역사교육 등으로 우리민족을 자극하는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해 왔다. 우리는 IMF경제환란 이후 ‘기본이 바로 선 나라’,‘제2의 건국’등 새로운 한국 만들기를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이 운동의 근본목표는 단순한 경제회복이 아니며 아직도 개운한 해결을 보지 못한 한일 관계처럼 왜곡되고 비뚫어진 역사를 재정립하고5,000년 역사를 면면이 이어 온 민족정기를 다시금 되살려 국가와 민족이 항구적인 번영과 발전을 이룰 수 있는 정신적 기반을 다지는데있다.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나라로 대변되는 일본도 한 ·일축구에서패배의 요인이 무엇이냐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정신력에서 졌다”고 할 만큼 정신적이 기초를 중시하는 나라임을 알아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 수천년 동안 그들에게 문화를 전수하고 가르쳐온 자긍심이 있다.90년 전 잠시 그 가치를 잃고 뼈아픈 35년의 고초를 겪어야 했으나 유구한 역사를 통해 볼 때 일본이 그 벽을 허물기엔 역부족이다. 이제라도 우리는 찬란한 문화를 일궈낸 선조의 우수한 정신을 본받고 선열들이 보여준 민족정기를 국민 하나하나의 가슴에 담아 어두웠던 지난 20세기의 양국관계를 정리하고 21세기 새로운 한·일관계를구축하여 동북아의 평화는 물론 세계무대에 길이 빛날 한민족의 역사를 창달하여 후손 대대로 튼튼한 국가를 이뤄갈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성한 의무이며 일제시대를 포함한 숱한 국난사를 극복하며 우리민족을 단일민족국가로지켜준 선조들에 대한 보답일 것이다. 21세기는 무한경쟁의 시대이며 치열한 힘의 논리가 전개되는 시대일것이다. 먹느냐 먹히느냐는 약육강식의 무대에서 우리를 지켜줄 절대적인 힘은 바로 우리민족을 자랑스런 한민족으로 뭉쳐주고 개혁과 발전의 원동력이 된 찬란한 민족정기임을 깨달아 국치일 90년,10년이지나면 100년의 한 세기를 채우게 되는 불운의 역사를 극복하고 새천년 세계무대의 주역으로 다시 서는 민족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정영웅 청주보훈지청장
  • [외언내언] 서울 황진이?

    미인(美人)을 일러 ‘해어화(解語花)’라고 한다.그 본뜻은 ‘말을이해하는 꽃’이다.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와 함께 연못에 활짝 핀 연꽃을 감상하다가 “내 해어화와 연꽃 중에서 어느 것이 더 아름답소?”라고 신하들에게 물은 데서 유래했다.물론 여기에서 해어화는 꽃은 꽃인데 말까지 할 줄 아는 양귀비를 두고 한 말이다.조선시대에는기생을 해어화라고 했다.기생은 가혹한 가르침 속에 예의법도와 전통 악기,소리를 익혀 ‘선비의 말을 알아듣는 꽃’이란 수식어를 얻었다. 황진이는 16세기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명기(名妓)다.그러면서도 탁월한 여류 시인이었다.우리나라 여류 시인을 가릴 때 여전히 그는 첫 손가락에 꼽힌다.그래서 서경덕,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3절(松都三絶)’로 불린다.‘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는 한국 사람치고 모르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그는 양반 유학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사랑을 대담하고 즉흥적으로,그리고 사실적으로 노래했다. 또 수많은 남성들이 그를 사모하던 것과 달리 당시 대학자이던 서경덕을지향하는 일편단심도 돋보인다.‘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춘풍 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어른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이렇듯 절묘한 감흥은 그의 애간장 녹이는 연심(戀心)만이 전할 수 있는 가사가 아니던가.북한 향토사학자 송경록은 ‘개성이야기’에서 황진이는 봉건적 윤리의 질곡과 멍에로부터벗어나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다고 적고 있다.비록 기생 신분이었지만 계급과 신분을 뛰어넘는 자유분방한 예술 혼으로 넘쳐났다는 얘기다.황진이가 지금까지 만인의 연인으로 사랑받는 것은 번득이는 문재(文才)와 시대를 뛰어넘는 자유혼 때문일 것이다.이것이 우리가 황진이를 육감적인 의미의 해어화로만 인식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아름다움을 그리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같아서인지 몰라도 요즈음서울에서는 ‘황진이신드롬’이 부쩍 거세지는 느낌이다.오페라 ‘황진이’가 24일 한국 작품으로 처음 중국 무대에 올랐다고 한다.이번공연이 양국 문화교류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하니 무척 반가운 일이다. 그런가 하면서울 한쪽에서는 룸살롱 등 유흥업소 여종업원만을 대상으로 하는 ‘미스 황진이 선발대회’란 자극적인 행사가 열린다는소식이다.상금 1억원이 걸린 행사에는 이미 106명의 20대 여성들이참가 신청을 한 것으로 알려진다.주최측은 “황진이를 ‘복원’해 유흥업소 여종업원의 역할을 바로잡아 룸살롱문화를 건전하게 바꾸겠다”고 하지만 왠지 뒷맛이 개운치 않다.돈을 내세워 사회 정화를 한다는 발상 자체가 순수하지 못할 뿐 아니라 어쩌면 역사와 황진이,여성상을 모두 왜곡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박건승 논설위원 ksp@
  • 전남대 총장 정석종씨 “산·학·연 협동 지역발전에 한몫”

    “변화의 시대에 중책을 맡게 돼 기쁨보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앞섭니다” 최근 취임한 정석종(鄭碩鍾·60) 전남대 신임총장은 “산·학·연협동체제를 구축,지역사회 발전을 앞당기는데 모든 행정력을 모으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 총장은 학생과 교직원 모두가 능동적으로 각자의 역량을 최대한발휘할 수 있도록 각종 제도와 대학기능을 시대변화에 맞게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교육과 연구기반 조성에 최선을 다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남대를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상아탑으로 가꿔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대학발전기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산·학 협동의 기회와 범위를 넓혀가겠다고 다짐했다. “우리 대학은 과거 민주화운동기에 다른 지역에 비해 활발했던 학생운동으로 실제적 위상에 비해 대외적 평판이 왜곡돼 왔다”고 밝힌 그는 “대학 본래의 기능인 학문·연구기능을 강화해 이미지 쇄신과함께 새로운 도약의 기틀을 다지겠다”고 말했다. 또 지역민과 함께 하는 대학으로 거듭나기 위해 대학의 모든 운영방식과 절차를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덧붙였다. 정 신임총장은 이 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자연과학대학장,학생처 부처장 등을 거쳐 이번 제16대 총장으로 선임됐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
  • [기고] 日은 55년전 교훈 잊었는가

    요즘,이웃 일본에서 우경화된 지식인과 정치인의 망언과 망동이 기승을 부려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다.종래에는 간헐적으로 소수의 우파 정치인에 의해 발설되던 헛소리가 이제는 문화인이나 지식인까지가담하여 대중적인 정치운동으로 발전하고 이들이 일본사회에서 애국자로서 추앙 받고 일본을 움직이는 거대한 힘이 되고 있다.대표적 우익 정치가인 이시하라 신타로가 도쿄 도지사에 당선되더니 줄곧 된망언 탓인지 그가 어떤 여론조사에서 차기 총리 감으로 최다 득표했다고 한다.우익단체인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침략전쟁을 정당화하고 미화하는 중학생용 역사교과서가 문부성의 검인과정을 통과하여 2002년부터는 교과서로 채택될 것이라고도 한다.일본사회의 총체적인 우경화 현상이라고 할만하다. 일본의 ‘우경화’라는 것은 과거로의 회귀이다.그런데 이것은 다름아니라 황도주의와 천황제 군국주의로의 회귀를 뜻한다.‘헛소리’(망언)하고 ‘헛질’(망동)하는 이들 우익적 인사들의 역사인식과 주장은 황도사관에 입각한 것이고 재무장과 군사대국화이며 궁극적으로는 아시아의 패권장악이다.황국사관에 의한 일본인의 정신무장과 경제대국에 걸맞은 군사대국으로의 발돋움을 획책하고자 하는 것이다. 일제가 패망하고 나서 현대 일본이 만들어질 때 침략과 전쟁행위 등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거 청산’ 작업이 있었어야 했다.그럼에도동서 냉전구조가 형성되면서 미국의 동아시아전략에 힘입어 흐지부지 되더니 최고의 전쟁책임자인 천황이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버젓이 일본 국민 위에 군림하게 되었다.군인과 일부 경찰관계자들에게만 책임을 물어 공직에서 추방시켰을 뿐 대부분의 황국관리들은 그대로 자리를 유지하며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다.자민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계·관계의 황국관리 출신들은 줄곧 황국사관과 일본인의 전체주의적인애국주의를 배양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그래서 이제는 결실을 맺어일본적 상식으로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일본사회의 총체적인 우경화는 경제적인 발전과 이를 토대로 한 국제적인 위상이 제고되면서 더욱 촉진되었다.일본은 이제 국력과 우경적인 사회분위기를 타고 전수 방위만을 규정하고 공격적 군사력 사용을 금지한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재무장과 군사대국화를 획책하고 있다.머지 않아 일본은 군사대국으로 무장하여 우리 앞에 다가설 것이다.이때 중국도 더욱 군사력 증강에 경주할 것이고 우리인들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현대의 군사력이란 핵무기를 첫째로 하기 때문에 다가오는 21세기의 아시아는 자칫 잘못하면 핵저장고가 되고 패권적인 군사력 경쟁의 도가니 속에 빠질 위험을 안고 있다. ‘과거청산’은 커녕 오히려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미화하여 강도의 자세를 아직도 견지하고 있는 일본나라의 됨됨이는 과거 희생당하였던 이웃나라에게 심각한 우려가 아닐 수 없다.뿐만이 아니라 일본 스스로를 위하여 바람직하지 않다.혹이나 그러한 패도적인 역사인식과존재방식이 또 다시 일본을 패망의 길로 인도할는지 모르기 때문이다.진정 일본을 사랑하고 정의롭고 평화를 애호하는 일본인은 역사왜곡과 날조를 통하여 일본을 거꾸로 이끌어 나가려고 하는 반동적인 세력이 더 이상 날뛰지 않도록 싸워나가야 한다. 적은 외부에 있지 않고 내부에 있다고 한다.험악하게 전개되는 동아시아 정세를 직시하면서 우리의 생존,더나아가 인류의 평화를 위한길을 모색하여야 한다.하루 빨리 성숙한 시민사회를 구축하고 민족의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 것은 대전제이다.그리고 일본식의 패도적 방식이 아니라 공생공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더불어 함께 잘 사는지구공동체 만들기에 앞장서서 나가야 하는 것이다. 강 창 일 배재대교수·일본학
  • 일본의 보수 우경화

    일본의 우경화 바람이 심상치 않다.일본 우익단체가 태평양 전쟁을철저히 미화한 중학교 역사교과서를 검정 신청하고 패전 55주년을 맞아 10명의 각료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등 우경화의 길을 걷고있는 것이다.일본은 지난해부터 국기·국가를 법제화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등 보수우경화를 가속화하고 있어 주변국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교과서 문제 일본 우파 학자들의 단체인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지난 4월 문부성에 검정을 신청한 중학교 역사교과서는 근·현대사를 철저히 왜곡하고 있다.핵심은 일본의 침략전쟁 미화. 문제의 교과서는 한일합방을 강점이 아닌 구미열강의 지지를 받은합법적 조치로 묘사하고 있다.또 태평양 전쟁을 대동아(大東亞)전쟁으로 기술하고 있으며,일제의 한반도 식민지화에 관해서만 간단히 언급할 뿐 한국인들에게 강제로 일본어 교육을 받게 하고 일황에게 충성을 바치도록 강요한 사실은 슬그머니 빼버렸다. 이 교과서는 일본의 동남아시아 침략과 관련,일본이 그곳에 진출한서방 강대국들에게 승리를 거둠으로써 동남아 국가들의 전후 독립 달성을 가능하게 했다며 침략을 정당화하고 있다. 또한 가미카제 공격으로 목숨을 바친 젊은이들의 편지를 인용하면서 수많은 젊은이들이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사참배 우익단체는 매년 8월15일이면 야스쿠니 신사를 일본군의‘위대함’을 알리는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패전 55주년을 맞은지난 15일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야스쿠니 신사는 일본 우익들로발디딜틈이 없었다.태평양 전쟁에 대한 향수와 일황 숭배주의,역사미화의 복고풍 구호가 신사 안팎에서 물결쳤던 것이다.그러나 이날의 신사참배는 일본 우익단체 회원들만의 잔치가 아니었다.야스오카 오키하루(保岡興治) 법무상을 비롯한 10명의 각료와 78명의 중·참의원이 참배하는 등 일본의 내로라하는 정치인들도 신사에서 머리를 숙였다.도지사로는 처음으로 신사를 참배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 도지사는 “도민의 80%가 참배에 찬성하고 있다”면서 “공인으로서 참배하는게 뭐가 잘못됐냐”고 반문했다. 우익단체들은 가미카제 특공대가 자폭하고 진주만이 불타는 그림들을 신사를 찾은 중고생들의 교육자료로 이용하고 있다.특히 이날 신사곳곳에서는 “야스쿠니 참배를 반대하는 자는 반일(反日) 조센징(朝鮮人)이다.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인을 몰아내자”라는 우익단체들의 구호가 울려퍼지기도 했다. 지난해 제정된 법률에 따라 공식 식순에 들어간 ‘기미가요’제창은 이날 행사의 하이라이트처럼 여겨졌다. ◆우익단체 활동 4년전 중국과 영유권 분쟁 중인 댜오위타이(釣魚台) 군도(일본명 尖閣列島)에 등대를 설치해 외교분쟁을 일으켰던 우익단체 청년사(靑年社)가 지난 4월 이곳에 다시 50㎝ 높이의 목재로 된 신사를 설치,양국간 갈등을 다시 재연시켰다.중국은 중·일관계를훼손하는 도발적인 행동이라고 성토했음은 물론이다. 홍콩의 댜오위타이군도 수호행동위원회는 이번 사건이 일본 군국주의의 도래를 상징하는 것이며 일본정부가 과거 침략행위에 조금도 반성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청년사 대변인은 이 조형물이 2차 대전 당시 무명의 작은 섬들에서 숨진 주민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세운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아키타(秋田)현 가나자와(金澤)시의 이시카와(石川) 호국신사에지난 4월 일제의 침략전쟁을 찬미하는 ‘대동아 성전대비(聖戰大碑)’가 건립됐다.높이 12m의 이 석비는 전 광동군 작전참모가 중심이돼 1억엔을 들여 설립했으며,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전 농수상도 기부금을 냈다는 후문이다. 이시하라 도쿄도 지사는 지난 4월9일 육상자위대 네리마(練馬) 주둔지의 부대창설 기념식에서 인사말을 통해 재일 한국인과 타이완출신중국인을 겨냥,“3국인,외국인의 흉악한 범죄가 계속되고 있어 지진이 일어날 경우 소요사건이 예상된다”면서 자위대의 대응을 강조,물의를 빚었다. 이처럼 일본 우익단체나 우익인사는 거침없는 언행을 일삼으며 우경화를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최근 2년 日 우경화 일지. ◆1999년 6월23일 가메이 시즈카 의원,“일본은 2차대전때 주변국 침략안했다”고 주장◆ 〃 8월9일 일장기와 기미가요를 국기와 국가로 하는 법 제정◆ 〃 8월15일 일본 정부가 주최한 ‘전국 전몰자추도식’에서 기미가요 공식 제창◆ 〃 11월 니시오 간지 전기통신대 교수,한반도 식민통치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부인하는 ‘국민의 역사’ 발간◆2000년 1월12일 보수-우익 성향의 잡지 ‘사피오’,일본의 핵무장론 거론◆ 〃 1월23일 일본 우익단체,‘20세기 최대 허구 난징 대학살 철저검증’ 집회 개최◆ 〃 4월 ▲우익단체 태평양전쟁 미화하는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신청 ▲우익단체 ‘청년사’,댜오위타이에 신사 설치 ▲아키타현에일본의 침략전쟁 미화하는 비석 건립◆ 〃 5월15일 모리 요시로 총리,‘신의 나라’ 발언 파문◆ 〃 6월 청년사 회원,일본 황실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한 월간지 사무실에서 난동◆ 〃 8월15일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와 야스오카 오키하루 법무상 등 일본 정치인 80여명 야스쿠니 신사 참배
  • [외언내언] 일본의 二重플레이

    여의도 63빌딩 특별전시관에서는 한국전쟁 50주년 기념 ‘피카소와게르니카’전이 열리고 있다.게르니카는 스페인의 도시 이름이다.1937년 파리 국제박람회 스페인관에 전시될 작품소재를 궁리하고 있던피카소에게 나치 독일이 고국의 소도시 게르니카를 무차별 폭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이 소식을 들은 피카소는 전율했다.그는 분노를화폭에 옮기기 시작해 3주 만에 작품을 완성했다.이렇게 해서 탄생한 작품이 전세계에 반향을 일으킨 걸작 ‘게르니카’다.그런데 피카소가 파리의 한 아파트에서 이 작품을 만들고 있을 때 일단의 게슈타포가 들이닥쳤다.그들은 ‘게르니카’ 밑그림들을 보더니 ‘이것은 당신이 그린 것이오?’라고 물었다.이에 피카소는 ‘아니오 당신들이그린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15일 서울과 평양에서 이산가족들이 보여준 눈물의 드라마는 세계를 울렸다.전세계 매스컴은 이를 경쟁적으로 전했고 장삿속에 강한 일본 언론들도 이 ‘좋은 볼거리’를 열심히 취재했다.그러나 어느 매스컴에도 비극의 단초,이 백성의 가슴에 한(恨)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보도는 없었다.프랑스 어느 TV가 심층보도를 하긴 했지만 그것도 겨우 6.25와 분단에 그치고 말았다. 한국의 20세기 100년은 피와 눈물로 점철된 비극의 역사였다.그렇다면 우리민족을 20세기 내내 불행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한 최초의 원인제공자는 누구일까.일본 하타 스토무(羽田孜) 전총리가 그 원죄는 일본에 있다고 자백했다.14일 스위스에서 열린 도덕재무장 국제회의에서 “불행한 상황이 한반도에 존재하는 것은 2차대전 이전과그 기간 중 일본의 행위라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실토한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전직 총리가 해외에서 사과발언을 한 바로 그날 일본의 현직 각료들은 2차대전 전범들의 위패가 안치된 야스쿠니(靖國)신사에 공식으로 참배를 했다.그런가 하면 아키히토(明仁)일왕과 모리 요시로(森喜朗)총리가 참석한 전몰 추도식에서 ‘천황의 성전’을 찬양하는 기미가요가 제창되고 아키타현에는 일제침략을 찬미하는 ‘대동아성전비’가 세워졌다.이 얼마나 얄미운 이중 플레이인가. 우리들에게는 망언 시리즈 주인공으로 기억되는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도쿄 도지사가 “공인도 신앙의 자유는 있다”고 주장했다지만 연이은 망언과 최근 교과서 역사왜곡 등을 보면 그들은 지금 군국주의 부활을 꿈꾸고 있음이 분명하다.다행히 ‘평화 유족회’ 등시민단체에서 항의시위가 있었다고 하나 일본에서 이들의 외침은 아직은 모기소리에 불과한 모양이다. 김재성 논설위원.
  • [오늘의 눈] 이념 녹여버린 혈육의 情

    하늘도 울고 땅도 울었다.15일 이산가족 상봉장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벤션 홀은 삽시간에 ‘눈물의 광장’으로 변했다. 북측 이산가족 방문단과 남측 혈육들이 흘린 눈물은 홀을 가득 채우고 한반도 산하로 흘러넘쳤다.평생의 한을 풀지 못하고 끝내 눈을 감은 실향민들,이제나 저네나 북녘 땅만 바라보는 1,000만 이산가족들의 보이지 않는 눈물까지 더한 까닭이다. 50여년 동안 차곡차곡 가슴속에 묻어야 했던 이들의 한(恨)은 이날차라리 통곡이 되어 전국에 메아리쳤고 분단 현실의 아픔을 어떤 필설보다 생생히 전달했다.이념과 냉전의 국제질서에 희생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새삼 확인했던 역사의 장(場)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이산가족 상봉이 며칠동안 안방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일회성 신파극’에 그쳐서는 안된다.역대 남북 정권들이 그랬듯 체제와 권력 유지를 위한 도구가 돼서도 더더욱 안될 것이다. 이들의 눈물은 단순한 눈물이 아니다.50여년간 분단의 고통이 농축된,민족의 슬픔이 고스란히 녹아든 역사적 결정체란 의미다. 눈물을 눈물로 그치지 않고 대승적으로 승화·발전시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다.반세기 전,남북한이 서로에게 겨눴던 분노와 증오가 우리 민족을 갈라놓았다면 상봉의 눈물과 그 감격은 분단의 벽을 허무는 역사적 추진력으로 활용해야 한다. 20여 전 혹독한 냉전기에도 서슬퍼런 이념의 굴레를 녹이며 독일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엔진이 된 것이 바로 동서독의 이산가족들이 아니었던가. 이날 TV를 지켜본 많은 국민들은 화면에 비친 것 이상을 온 가슴으로 느꼈을 것이다.이산가족들의 상봉이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진정한남북 화해와 통일로 이어가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것도 이런 연유일 것이다. 진정한 정치는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다.15년 전역사적 이산가족 상봉이 남북의 체제와 정권유지를 위해 왜곡됐던 사실을 국민들은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6·15 공동선언이라는 역사적 기념비를 세웠던 남북 정상들이 이산가족은 물론 분단으로 고통받는 7,000만 겨레의 눈물마저 닦아줄 날을 기대해본다.[오 일 만 정치팀 기자 oilman@]
  • [김삼웅 칼럼] 독립운동 정신으로 통일운동

    오늘 해방 55주년을 맞는 광복절의 의미는 무엇일까. 1945년 해방의 날과 3년 뒤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에 맞은 광복절의 의미를 뺀다면 2,000년대 첫 광복절의 의미처럼 각별하고 감회깊은 날도 없을 것같다. 그것은 6·15 남북정상선언과 함께 갈라졌던 겨레가 다시 왕래를 시작하고 하나로 되는 기대가 모아지기 때문이다. 남북 7,000만 겨레뿐만 아니라 세계 142개국에 흩어져 사는 560여만명의 한민족 핏줄이면 누구나 느끼게 되는 설렘이고 희망이다. 과거의 경우와는 크게 다르다. 7·4성명이나 남북기본합의서의 채택이 양측 권력의 막후 흥정의 산물이라면 이번의 ‘사변’은 시대정신에 따른 실사구시적인 접근이라 하겠다. 가장 큰 걸림돌인 주변4강의 역학(力學)관계를 ‘배타적 자주가 아닌 협력적 자주’를 통해 수용하면서 전개된다는 점에서도 큰 차이가 있다. 이와 더불어 주한미군의 존재가 “지역안정과 완충역할을 담당한다”(김대중), “통일된 후에도 평화유지를 위해 남는게 유리하다”(김정일)는 인식의 공유에는 “일본의 군비증강과 중국의군사강국화”를 지켜보는 두 정상의 우려가 작용했을 것이다. 더 이상 적대와 분단상태로는 경제의 국경선이 무너지고 있는 세계의 장터에서 살아남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결코 좌절이 있어서는 안되겠다. “한번의 좌절은 비극이지만 같은 이유로 발생한 좌절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어리석음이 연출한 희극이다”(칼 마르크스) 일제의 압제로부터 민족해방을 쟁취하기까지 수많은 애국선열과 지사들의 희생이 뒤따랐다. 해방조국은 그들의 희생을 담보로 독립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분단국가의 절름발이 국가였다. 거기에다 동족상쟁을 치르고 길고도 신물나는 냉전시대를 살아야 했다. 동족간의 전쟁이나 대결은 이긴 쪽이나 진 쪽이나 모두 피해자다. 우리가 민족내부 문제로 적대와 증오를 극대화할 때 일본과 중국은경제·군사적으로 거대해졌다. 특히 일본은 군사대국화에 이어 2차세계대전의 전범국인 자신을 피해자로, 연합군을 가해자로 진실을 뒤바꿔 놓으면서 자신들을 ‘아시아해방 지도국’이라 자처하기에 이르렀다.도쿄전범재판을 비난하고 2차대전 침략을 미화하는 역사왜곡의교과서를 만든다. 여전히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앙탈을 부리면서영토야욕을 숨기지 않는다. 모리 요시로 일본총리의 ‘신(神)의 나라’ 발언은 그들의 지향점을 한눈에 읽게 한다. 남북이 합쳐도 맞설까 말까한 처지에서 쪼개고 갈라져서 어찌 그들과 맞상대가 되겠는가. 세계시장을 누비면서 번 달러를 무역적자로해마다 일본에 100억달러씩 쏟아붓는다. 경제적 예속이 언제까지 이어질지,한반도 전체를 하나의 경제단위로 하는 경제공동체가 아니고는 벗어나기 어렵다. 또한 하루가 다르게 비대해지는 중국의 군사력과 경제력도 우리에게는 큰 위협이다. 이같은 주변상황을 직시한다면 우리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다. 시간의 유예도 기대하기 어렵다. “길은 외길/남도천리”의 시구를 차용하여 “길은 외길/남북협력”일 뿐이다. 6·15선언은 이러한 역사의 소명에서 이루어졌다. 오늘 서울과 평양에서 상봉하게 되는 저 이산가족들의 피눈물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이산가족이 만나도록 길을 넓혀야 한다. 그리고 경의선 연결,경제협력,군비통제와 군비축소를 포함한 군사문제,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전환 등 남북 사이의 모든 현안을하나씩 풀어나가야 한다. 혈육과 가족이 다시 만나고 남북이 서로 협력하면서 전쟁의 위협을제거해 나간다면 하나되는 일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모든 사람의 열망과 소망에 부합되는 사회, 그것이야말로 인류가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가 아닌가?”(에릭 홉스봄) 겨레의 화해와 협력을 못마땅해하는 세력은 일제로부터 해방을 두려워한 세력과 다를 바 없다. 분단체제에서 기득권을 누린 자들이나 왜정 치하에서 출세한 자들이나 정신적으로 한 통속이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해방둥이들이 50대 중반을 넘는 매정한 세월 속에서 우리는 민주화와 근대화의 현대국가 건설에 매진해왔다. 많은 사람의 피땀과 눈물이 배었다. 그 바탕에서 통일의 길을 연다. 8·15광복절 55주년,국민 모두가 반세기 묵은 녹슨 쟁기를 씻어 들고 통일의 황야로 나아가는,겸허하고 결연한 마음가짐이 필요하다.김삼웅 주필 kimsu@
  • 언론사 사장단 방북7박8일/ 김위원장 대화록-2

    ◆김 위원장 우리는 평화적 이용을 위해서 로켓을 개발 중에 있는데미국은 자꾸 자기들과 전쟁한다고 우리를 의심하고 있습니다.우리는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로켓을 연구하고 있습니다.로켓 한 발에 2∼3억달러가 들어가는데 미국이 우리 위성을 대신 쏴 주면 푸틴 대통령에게 우리가 개발을 안 하겠다고 얘기 했습니다.클린턴 정부가 얼마있으면 끝나는데 미국 새 정부가 들어서면 어떻게 할 지…. 과학기술과 첨단기술을 위해서 이런 얘기를 서로 웃으면서 그냥 웃는 얘기로 푸틴 대통령한테 한 것인데 푸틴 대통령이 아무 소리도 안하더니 내 얘기를 꽉 잡아 쥐고 그랬습니다. 농사 지어야 쌀을 먹는 것 아닙니까?로켓 연구해서 몇 억 달러씩 나오는데 그거 안 할 수 있습니까?위성 발사는 과학 목적으로 하는데 1년에 두세번 하면 한 9억 달러 들어갑니다.우리처럼 작은 나라에서 1년에 2발씩 쏘면 이건 비경제적입니다.수리남과 이란에 로켓을 판매하고 있습니다.로켓을 개발해서 대륙간 탄도탄을 만들어 2,3 발로 미국을 공격하면 우리가 미국을 이깁니까?그런데도 미국은 이것으로 트집을 잡고 있습니다.미국이 골머리 아프겠지.우리한테 돈 주기는 싫고,과학자 연구는 막아야 하겠고,골치 되게 아플 겁니다. ◆방북단 푸틴 대통령에 친서를 줘서 클린턴 대통령에게 전달해 달라고 한 것으로 워싱턴 포스트인가에서 보도를 했는데…. ◆김 위원장 왜곡 과장된 것입니다.나는 푸틴 대통령에게 친서 전달한 바 없습니다. ◆김 위원장 로켓 개발 조상은 소련입니다.러시아가 로켓 원조 국가인데 미국이 NMD다 뭐다 해서 소련을 제쳐놓고 우리만 미사일을 개발한다고 합니다.이게 말이 됩니까?푸틴 대통령은 당연히 반대지요.푸틴이 서울 가게 돼 있는데,서울 가면 잘 물어보세요. 남측 언론이 나를 정신분열증 환자라고까지 했지요.미사일 문제는내가 만든 것입니다.나라가 작을수록 자존심을 굳게 세우고 열강 대국에 맞서야 합니다.북남 합쳐봤자 인구가 1억도 안 되는데 그럴수록명예를 중히 해야지요.대국에 비굴하거나 아첨하면 절대 안됩니다.남쪽의 경제 기술과 북쪽의 정신을 합작하면 강대국이 됩니다. 일본을이기고 36년간의 못 받은 보상도 받을 것은 받아야 합니다. 내가 무엇 때문에 큰 나라들을 찾아 다니나요.내가 평양에 앉아 있어도 여러 열강에서 나를 찾아 오지요. ◆김 위원장 노동당 규약도 고정 불변의 것은 아닙니다.언제든 바꿀수 있습니다.김 대통령이 북조선에 와서 ‘당 대회를 언제 하느냐’고 물어 ‘가을쯤 할 생각’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김 대통령이 ‘당 대회를 열면 할 일이 많겠습니다’라고 얘기해서 그렇다고 답변했습니다.그런데 준비했던 당 대회가 남북정세가 급히 바뀌어 모든 걸다시 준비하게 됐습니다. ◆방북단 규약을 개정한다면 남쪽의 보안법 개정과 연계시켜 정상회담 때 말씀하셨습니까?◆김 위원장 아닙니다.보안법은 남조선 문제입니다.과거에도 규약은고쳤으나 45년도에 만들어진 강령은 안 바꿨습니다.그런데 이 강령은해방 직후 40년대 것이어서 과격적·전투적 표현이 많이 있습니다. 당 간부들 가운데는 주석님과 함께 일하신 분들도 많고 연로한 분들도 많습니다.그래서 쉽게 바꿀 수 없습니다.강령을 바꾸면 이 자리에있는 많은 사람들도 숱하게 물러나게 됩니다.그래서 강령을 바꾸면내가 숙청한다고 그럴 것입니다.남조선 국가보안법은 그건 남조선 법이고,우리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김 위원장 저마다 다들 간다고 야단입니다.남쪽에도 숨어있는 사람까지 치면 이산가족 숫자가 굉장할 것입니다.이곳에도 숨어있는 사람이 많았는데 위원장(본인)이 남쪽에 간다고 하니 이젠 너도나도 가겠다고 나타납니다.여러분들은 사장단으로 60명 정도 와서 오늘 이 자리에 우리는 30명을 참석시켰습니다.이것은 인구 비례로 한 것이오. 전금진 동지,와서 사장들한테 술을 권하시오.언론사가 잘 써 줘야지,상급회담 아무리 잘 해도 소용없어요. ◆전금진 잘 부탁합니다. ◆김 위원장 청탁하지 마시오.언론이 알아서 써야….이산가족 문제는준비없이 갑자기 하면,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비극적 역사로끝나거나 다른 방향으로 가 버릴 수 있습니다.우리는 50년 간 서로가지워 버릴 일이 있는 처지입니다.50년도에 6·25가 일어났고, 지워버릴 역사가 있습니다.너무 인간적이고 동포애만 가지고 강조하면 안됩니다. 올해는 9월,10월 매달 한 번씩 하고,내년에 종합 검토해서 사업을 해나갑시다. 내년에는 이산가족들이 집에까지 갈 수 있게 해 보겠습니다.
  • [대한광장] 日 우익 또 교과서 왜곡

    일본의 우익 국수주의 세력이 추진해온 ‘역사교과서에서 일본의 아시아침략사를 정당화하려는 시도’가 성공 단계에 이른 모양이다.보도에 의하면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한 역사교과서가 문부성 검정에 통과돼 2002년 새 학기부터 사용될 전망이라고 한다.일본의 침략 패전국인 아시아 각 나라들은 일찍부터 일본 수구세력의 역사교과서 왜곡에 대해 반대해 왔다.여기서다시 그 이유를 살펴보자. 1980년 대일관계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된 것은 일본 문부성 자체가 유도한 역사교과서 왜곡 시도였다.이에 대해 한국과 중국 등 당사국이 항의한 것은 말할 나위 없다.여기서 남의 나라 교과서 내용에 대해 왜곡을 문제삼은 이유는 무엇인가? 첫째,일제 침략의 피해 당사국으로서 침략사실을 정당화나 합리화하는 것을 가만 두고 볼 수 없다.일제의 침략적 정신구조를 그대로 놓아 둔다면 그 해독이 식민주의·군국주의·인종차별주의·패권주의 나아가 침략 만행에 대한 도덕적 불감증과 반인륜성 방임으로 자리잡아 새로운 악과 불행을 가져올수 있기때문이다. 일본 우익은 왜 그토록 침략을 정당화하는 역사왜곡을 시도해 왔는가? 이점을 있는 그대로 폭로해야 한다.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은 서양제국의 식민주의 정책을 모방 추종했지만 한편으로 일본의 독자적 정신과 방략으로 황국사관(皇國史觀)을 날조했다.황국사관이란 일본왕은 태양신의 자손이고 일본은이 신이 다스리는 세계의 중심 지배국이라는 내용으로,터무니없이 무지한 신화의 날조다.이 신화는 국가종교로 자리잡아 일본인을 하나로 묶어 전쟁을해왔다.나카소네가 총리 재임시에 호국영령을 합사했다는 군국주의 정신의성역인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한 것은 황국사관을 공식으로 인정하고 선양하는 의식이었다.현 총리 모리가 일본은 “천황(왕)중심의 신의 나라”라고 한것은 그러한 정신적 맥락을 공공연히 피력한 것이다. 지금 문제가 된 역사교과서는 일제침략이 아시아를 서양 제국주의에서 해방시키는 전쟁이었으며,일본군의 만행은 전쟁에서 으레 뒤따르는 부작용 정도로 자기 정당화를 공연히 한다.잘못된 것이 있다면 패전한 것이라는 논리다. 일본은 동일한 전쟁국가였던 독일과 왜 그토록 다른가? 여기에는 황국사관과 신권천황제(神權天皇制)의 신화가 있다.신의 자손이고 그 자체가 신이기도 한 천황(왕)의 명령으로 전쟁을 했기 때문에 전쟁의 침략성과 범죄성을사죄하면 신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더구나 패전후 전범재판에서조차 왕은면책을 해줬기 때문에 이 논리는 그럴 듯하게 먹힌다.사람이 아닌 신으로서절대 불가류(不可謬)의 신화를 고집하는 신앙과 사고방식이 일본 사람의 머리 속에 있는 한 침략을 마음으로부터 사죄할 수 없게 돼 있다. 어느 나라이건 원시 고대에는 왕을 신이나 신의 자손 등으로 맹종했다.그러한 정치신화의 시대는 서양에서는 시민혁명에서,왕권신수설의 타파로 청산됐다.그런데 일본의 1868년 명치유신이란 왕정복고는 왕 중심의 권력정비였고명치헌법의 1·4조는 신권주의 천황주권으로 왕을 절대화한 정치종교의 국가체제를 갖추게 했다.일본제국은 바로 제정(祭政)일치의 사이비 근대국가였던 것이다. 그런 일본제국이 2차대전에 패전함으로써 천황 신권주의는 ‘상징천황제’로 대체된 듯했다.그렇지만 일본인의 의식구조에 담긴 노예근성의 정치신앙은 뿌리뽑히지 않았다.일본의 지배세력은 바로 그 정치종교를 이용해 오고있다.민주와 평화의 가치관으로 정치적 리더십을 이끌어갈 능력도 없고 여건도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패전후 냉전시대로 접어들면서 우익은 일본적 정신,동양정신이란 간판으로 위장한 봉건적 종속관계의 윤리를 그대로 이끌어갔다.사회에서 ‘오야붕-꼬붕’관계,기업과 경영에서 가족주의 경영체제,정치에서 의리와 연고를 따지는 인간관계로 구시대의 봉건윤리를 교묘하게 유지해 오고 있다.그런 정신구조는 일본인이나 이웃나라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 역사 왜곡은 바로 역사를 통해 노예정신을 정당화하는 것이다.이같은 정신적 독약이 이웃의 평화와 공존에 치명타를 가하는 화약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 [외언내언]’아시아 해방자’라고

    [장윤환 논설고문 yhc@] 세계제2차대전 당시 일본의 아시아 침략을 ‘아시아 민족해방전쟁’으로 왜곡하고 일본을 피해자로 철저히 둔갑시키는 역사교과서가 일본에서 곧 나올모양이다.집권 자민당이 이 교과서에 대해 검정 합격판정을 내리도록 문부성에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문부성 또한 이견이 없다는 것이다. 일본 우파들이 편찬한 이 역사교과서는 ‘태평양전쟁’을 아예 ‘대동아전쟁’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그 침략전쟁에 희생됐던 아시아 민중들로서는 ‘대동아공영권‘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아 전율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없다. 일본이 도발한 태평양전쟁이 미국의 대일 적대정책에 맞서기 위한 ‘자위전쟁’이라는 주장도 그렇다.그 전쟁은 일본군부와 산업자본의 자기팽창논리가 불러온 인류사적 재앙이라는 게 통설이기 때문이다. 이 교과서는 군국주의 일본이 구미 열강의 식민지로 있던 동남아를 차지하기 위해 침략전쟁을 결행하면서 베트남·인도네시아·미얀마·인도 등지에서동원했던 현지 주민들을 ‘민족해방전사’로 묘사한다.그리고 일본 자신은그 ‘성전의 지원자’이자 ‘아시아민족의 해방자’를 자처한다.그러면서 아시아 전지역에서 전개됐던 토착 민중들의 대일 항쟁을 식민 지배하에서 이익을 얻고 있던 일부 세력의 ‘게릴라 활동’쯤으로 깎아내리고 있다.뿐만 아니다.전쟁 초기 일본군의 승리는 동남아시아인들과 인도인들은 물론이고 더나아가 아프리카인들에게도 ‘독립을 향한 꿈과 용기’를 불어 넣었다고 강변한다.일본이 반제국주의 전사이자 ‘아시아민중의 해방자’라니,‘일본 소’도 웃을 일이다. 이 교과서는 식민지 한반도에서 자행된 압제나 수탈은 어물쩡 넘기고 중국난징대학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가운데 “전쟁에서 선악을 가리기는 어렵다”며 전쟁책임을 비켜간다.그러나 미국 정부기관(IWG)이 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한 조사에 나선 마당이다.조사대상은 난징대학살,일본군 731부대 생체실험,일본군 위안부,강제노역 등 일본군이 자행한 전범행위 전반에 걸친다.조사결과에 대해 일본이 어떻게 둘러댈 지 미리부터 궁금하다. 어떤 나라의 2세 교육에 다른 나라가 간섭할 일은 아니다.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다르다.오늘날 세계 제2 경제대국이자 5대 군사강국인 일본은 군국주의로 회귀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시아민중의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을 원한다면 적어도 세계평화와 인류복지에 공헌하는쪽으로 2세를 교육해야 한다.
  • [기고] 남북 언론 서로를 존중해야

    냉전의 얼음이 두껍고 분단의 벽이 높던 64년 서독의 지성인 주간지 ‘디짜이트’는 저명한 언론인 테오 좀머를 팀장으로 한 3명의 취재팀을 동독으로 보낸다.서독 언론인으로서는 최초의 공식 동독취재였다.열흘동안 공산치하의 동독을 구석구석 돌아보고 공산당 지도자들을 만난 내용을 책으로 쓴‘또 하나의 독일로의 여행’은 나오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분단이후처음으로 서독언론이 동독의 현실을 제대로 소개한 보도였기 때문이다.짜이트는 22년이 지난 86년,이번에는 제1차팀 외에 세사람을 추가한 6명을 동독으로 보낸다.시간이 좀 걸리기는 했지만 동독의 국가원수인 에리히 호네커가직접 이 취재여행을 허가했다. 동독이 두번이나 ‘디 짜이트’의 취재를 허용한 것은 최초의 ‘동독 여행기’가 동독 정권이 보기에 만족스러웠기 때문인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테오 좀머는 서문에서 여행기에 소개한 동독의 현실은 동독의 현실‘전체’가 아니며 공산정권이 취재팀이 볼수 있도록 허용해준 범위의 현실에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제한된 상황에서 언론인의 양심에가책을 받지않고 동독의 현실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테오 좀머 팀은 이번엔 공산당 중앙위원 정치국원들은 물론 호네커까지 회견한다.고등학교 졸업반 학생,포병연대 군인,작가동맹 작가,수도 베를린을비롯해서 드레스덴,게라,예나 등 대도시 공산당 서기 등 수십명의 각계각층대표들을 만났다.큰 도시 시장들은 자기도시의 재건계획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기자들을 건설현장까지 안내해 주었다.이들이 쓴 두번째 ‘또 하나의 독일로의 여행’도 호평을 받았다.‘디 짜이트’와 같은 신문,테어 좀머와 같은 균형잡힌 언론인들의 노력으로 서독 사람들은 통일 이전에 이미 동독의현실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이런 일이 왜 가능하지 않는가? 여기에는 남북 양쪽에 책임이있다. 독일 나우만 재단의 서울 지부장이 지적한 대로 언론정책에 있어서 동독과 북한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또 남측 언론의 북한 보도는 반공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나머지 북한 실상을 부정적으로보도해 온 것을 부인하기어렵다.한국언론이 북한 지도층에 대해 그동안 균형잡힌 보도를 해왔더라면남북정상회담을 중계하는 텔레비전에 나타난 김정일 위원장 모습을 보고 우리 모두 그렇게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남북이 함께 그 언론정책을 되돌아 볼 때다.북한은 그 체제의 성격상 당국이,그리고 남측은 각 언론사나 언론인들이 자성해야 한다.그런데 역사적인 6.15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남북간에는 언론정책을 둘러싼 이견이 가신 것같지 않다.언론정책문제는 앞으로남북간의 화해와 원활한 교류를 위해 서둘러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중요한사안이다.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8월5일부터 한국의 언론사 사장단 50명을 북한에 초청한 것도 남북관계에서 언론이 차치하고 있는 역할의 중요성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언론문제를 다루기에 앞서 짚고 넘어 가야할 일이 있다.그것은 어느쪽도 상대방에게 자기 쪽의 언론관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금 남북은서로의 체제를 존중하고 그 전제하에서 화해와 교류를 촉진하기로 합의한 상태이다.언론정책은 정치체제와 불가불리의 관계에 있다. 물론 우리는 북한이 자유민주주의 언론관을 따라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북쪽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할 수 없다.동서 냉전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그렇다면 양측은 상대방의 언론정책을 존중할 수 밖에 없다.물론 남북 언론 모두 상대방의 정책에대해서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다. 다만 그 비판의 표현이 상식적으로 보아 상대방의 명예를 심하게 해치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틀린 사실이나 사실을 왜곡해서 보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물론이다. 남북언론의 보도는 앞으로의 남북관계를 원활히 발전시켜 나가는데 대단히 중요하다. 따라서 한국 언론사사장단의 북한 방문이 남북언론 간에 새로운 행동 기준을 마련하는 ‘또 하나의 역사적인’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싶다. ◆ 한양대 겸임교수 장 행 훈
  • [대한광장] 큰 민주주의 작은 민주주의

    누가 누구를 욕할 것인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폐업을 강행한 의사들을욕할 것인가,언론사를 습격한 퇴역군인들을 욕할 것인가,일상화된 노동조합의 파업을 욕할 것인가.아니면 여당의 날치기를 욕할 것인가.욕할 대상이 이렇게 많아서야 어떻게 이 땅에서 정을 붙이고 살아갈지 걱정스럽다. 최근 몇 년간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국민들이 불만을 참지 않는다는 사실이다.국민들은 자기가 속한 집단의 힘을 이용해 불만을 극단적인 방식으로 표출한다. 이 경우 옛날과 달리 공안기관이 전면에 나서지 않는다는 사실도 중요하다. 정부가 공권력 동원을 자제하는 편이다.공권력 동원이 자제되는 속에서 국민들의 불만이 쉽게 표출되니 사회적 혼란으로 비칠 수도 있다. 우리는 80년대 중반 이후 어려운 과정을 거쳐 민주화를 이루었다.이 민주화를 군사정권 퇴진과 연결시켜 탈군사화라 하기도 한다.지난 30년간 우리 사회를 지배했던 군부가 정치에서 퇴진하고 민간인에 의한 민주주의가 시작된것이다. 서구사회가 19세기 이후 봉건제 사회에서 자본주의로 이행하면서 민주주의를 이룩했다면 우리를 포함한 제3세계 국가들은 2차대전 후 군사정권에서 민간정권으로 이행하면서 민주주의를 회복하고 있다.이것을 ‘큰 민주주의’라하자. 바로 이 관점에서 최근의 상황을 해석해야 한다. 군사정권은 작동과정에서수많은 악폐들을 양산했다.폭력의 일상적 동원,국민의 자유로운 정치적 참여를 비롯한 모든 활동의 금지,교육과 언론의 왜곡,의회정치의 실종 등 그 악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대신 군사정권 유지를 사명으로 하는 공안적 국가기관과 군사정권의 결정을일방적으로 집행하는 행정적 국가기관이 이 자리를 대체했다. 자유가 말살되고 정치가 실종되는 반면 행정만능주의가 활개를 치게 된 것이다.그 결과 군사정권은 자유가 존재하는 사회의 미세한 숨구멍까지 틀어막고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를 말살했다. 군사정권의 퇴진은 막혔던 자유의 숨구멍이 트이고 억압됐던 활동이 허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그 결과 모든 영역에서 자기 이익과 민주주의를 위한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된다.최근 증가하고 있는이익집단의 등장과 이익정치의 시작은 이런 점에서 새롭거나 이상한 일이 아니라 군사정권에 의해 제약됐던 국민의 욕구와 권리가 분출되는 것일 뿐이다. 노동조합이나 이익집단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것,각급 학교의 현장에서 교육민주화의 열기가 솟구쳐 오르는 것,국민들이 행정개혁이나 정당민주화를요구하는 것,사회의 모든 조직에서 내부 민주주의가 활성화되는 것 등이 그것이다.이것을 ‘작은 민주주의’라 하자. 따라서 이 현상을 하등 불온시할 이유가 없다.이것은 억압됐던 국민의 권리가 회복되는 과정인 동시에 억눌렸던 사회가 역동성을 되찾아가는 과정이다.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본다면 ‘큰 민주주의’에서 ‘작은 민주주의’로 민주주의가 확산되면서 사회적으로 정착되고 공고화돼 가는 지극히 자연스럽고긍정적인 과정이라 할 수 있다.문제는 이 과정이 안정된 민주주의로 안착될수 있도록 갈등과 진통을 어떻게 슬기롭게 극복하느냐에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군사정권 시절에 형성된 권위주의적 질서와 편향된 기득권구조를 폐기하고 대화와타협을 근간으로 하는 새로운 민주적 질서를 창출해야 한다.이 시점에서 인내를 바탕으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는 민주적인 리더십이 요구된다.특히 다양한 사회적 갈등이 일거에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상황에서 민주적 리더십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상황에서 여당이 대화와 타협의 전당인 국회에서 명분없는 내용으로 날치기를 일삼는다면 민주적 리더십은커녕 민주주의의 앞날을 기대하기 어렵다. 날치기를 능사로 아는 여당이 어떻게 이익집단에게 파업과 폐업의 철회를 설득하겠는가. 정대화 상지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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