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역사 왜곡
    2026-02-18
    검색기록 지우기
  • 대학 축제
    2026-02-18
    검색기록 지우기
  • 리모델링
    2026-02-18
    검색기록 지우기
  • 서대문구
    2026-02-18
    검색기록 지우기
  • 동대문구
    2026-02-1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5,896
  • [사설] 광복 65주년… 한·일 새 100년을 생각한다

    내일은 8·15광복 65주년이다. 또 보름 뒤면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는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이라는 의미도 있어 올해 광복절은 여느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광복된 지 65년, 정부가 수립된 지 62년 동안 대한민국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위대한 나라로 거듭났다. 미국과 옛소련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된 데다 6·25전쟁까지 겹치면서 남쪽은 거의 폐허나 다를 게 없었지만 우리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기적을 일궈 냈다. 60여년 전 최빈국 중 하나였던 대한민국의 지난해 수출액은 전 세계에서 9위였다. 한때 해가 저물지 않는 나라라는 말을 듣기도 했던 영국까지 제쳤다. 내년의 무역규모는 1조달러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 세계에서 10번째로 1조달러 무역대국 대열에 합류하는 셈이다. 지난해 국내총생산(GDP)은 세계 15위로 아프리카 50여개국의 GDP를 합한 것보다도 많다.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에는 67달러에 불과했으나 2만달러가 됐다. 이러한 경제성장 신화를 일궈낸 것은 ‘하면 된다.’는 믿음과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자.’는 희망이 어우러져 열심히 앞을 보고 달린 결과다. 국민역량 결집해 선진화 이룩해야 할 시점 중동의 산유국 중에는 석유 하나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 3만달러를 쉽게 넘는 곳도 있지만 인구가 5000만명을 넘거나 육박하는 나라 중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는 곳은 미국,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10개국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다.”는 비아냥도 받고 일부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지만 우리는 민주화도 이뤄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독립한 나라 중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사실상 유일한 나라라는 찬사까지 받을 정도가 됐다. 빛나는 성공신화를 일궈 냈지만 우리는 아직 선진국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의 벽은 높기만 하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선진국과의 격차가 10년이 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압축적인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달성한 경험을 바탕으로 국민역량을 결집시켜 선진화를 이룩해야 할 시점이다. 선진화를 위해서는 지역·이념·계층 간 갈등을 줄이는 국민통합이 선결돼야 한다. 광복절을 맞아 자랑스러운 조국, 평화로운 한반도를 후손에게 물려주겠다는 다짐도 필요하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룬 성공한 나라로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해마다 특히 8월이 되면 마음이 편치 않다. 일본에 나라를 강탈당해 35년간 수탈당한 역사 때문이다. 특히 올해는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해여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과거에만 지나치게 얽매일 수는 없다. 일본도 변하고 있다. 지난 10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식민지 지배가 가져온 다대한 손해와 고통에 대해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표명한다.”면서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해 이뤄진 식민지 지배에 의해 국가와 문화를 빼앗기고 민족의 자긍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는 내용의 담화를 발표했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은 언급하지 않았고 일본군위안부 할머니,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보상문제도 밝히지 않아 유감스럽지만 과거 일본 총리의 사과와 반성보다는 진일보했다고 평가할 만하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일 새 100년 준비하자 한·일 관계가 불행한 과거를 딛고 새출발하려면 가해자인 일본의 진솔한 사죄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심심하면 터져 나오는 일본 우익인사의 망언, 독도 영유권 주장, 사실을 왜곡한 일본 교과서도 정리돼야 한다. 일본 스스로 변했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하지만 우리도 이제는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일본에 대한 피해의식을 떨쳐 버릴 때도 됐다. 광복 이후의 자랑스러운 우리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자. 우리의 젊은이들은 어디를 가도 주눅 들지 않는 우리의 희망이다. 1988년에는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올림픽을 개최했고 2002년에는 일본과 공동으로 아시아 첫 월드컵까지 개최한 나라가 아닌가. 11월에는 서울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도 열린다. G20 정상회의가 아시아에서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한·일 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일 관계는 역사의 새로운 페이지를 시작하는 출발선에 서 있다. 과거사의 짙은 그늘이 드리운 ‘아픈 100년’을 매듭짓고 미래를 위해 ‘새로운 100년’을 열어 가도록 하자. 아픈 과거를 잊지는 말되 과거에 얽힌 ‘악순환 고리’를 끊고 한·일 관계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있도록 하자. 일본을 감정적으로 몰아세우기보다는 이성적으로 대응하면서 과거사 바로 세우기의 ‘대의’와 관계개선의 ‘실리’를 확보하도록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21세기는 한국·일본·중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시대가 될 것이 분명하다. 급변하는 국제질서를 냉철히 바라보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일 새 100년을 준비하자.
  • 민족의 선구자였던 참보수주의자들

    3·1절 아침, 서울시청 앞 광장에 모여 성조기와 태극기를 함께 흔드는 종교인들이 있다. 기초생활 수급자들에게 돌아가는 최소한의 복지비용마저 축소하려는 관료들이 있다. 식량난에 시달리는 동족에게 보내는 쌀과 비료 등 인도적 지원조차 가로막는 정치인들이 있다. 또한 정치 사상의 자유는 나와 생각이 같을 때만 허용되는 것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 모두 공통점이 있다. 바로 ‘보수주의’ 이름 아래 스스로의 행위와 삶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보수주의자의 삶과 죽음’(동녘 펴냄)은 뒤틀리고 왜곡된 보수주의자가 아닌 ‘참된 보수주의자’의 구체적인 삶을 보여준다. 장준하, 김병로, 이회영, 황현, 유형원, 최영 등 6명의 삶을 다뤘다. ‘사람으로 읽는 한국사기획위원회’에서 공동 집필했다. 장준하(1918~1975)는 청년 시절 광복군에 참여한 항일독립운동가였고,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에 맞서 싸웠던 반독재 민주화 운동가였다. 하지만 그에 앞서 그는 반공산주의자이며 기독교 민족주의자였다. ‘모든 통일은 선하다.’고 ‘씨알의 소리’에 선언할 정도로 사상과 이념보다 민족의 가치를 앞세웠다.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인 김병로(1887~1964)는 철저한 반공주의 신념을 갖고 있음에도 독립운동을 펼친 이라면 좌우를 가리지 않고 변호했는가 하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뒤에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형법 대체를 주장하기도 했다. “정의를 위하다 굶어 죽으면 그것이 곧 영광”이라는 말을 직접 실천하며 청렴하고 강직한 삶을 살았다. 또한 현실 속에서 법 자체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지만 “국민은 악법의 폐지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며 법의 정신을 일깨운 귀감의 삶이었다. 부패한 정치인들에게 엄격했던 고려시대 최영 장군은 물론 조정을 등지면서까지 개혁을 추구했던 조선시대 실학파의 비조 유형원, 조선의 경술국치 앞에서 식음을 전폐했던 구한말 황현, 번듯한 반가 출신임에도 왜적 치하에서 구차하게 생명을 도모할 수 없다며 항일 무장투쟁을 벌인 이회영 등은 진정한 보수의 삶이 서양식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와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여섯 명의 역사 속 인물들은 ‘참된 보수’란 구태의연하게 시대의 정신에 뒤처지거나 안주하는 이들의 몫이 아님을 깨우쳐주고 있다. 1만 3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시론] 순리와 상생의 정치 복원해야/장성호 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론] 순리와 상생의 정치 복원해야/장성호 배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6·2지방선거와 7·28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여파로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저마다 자신의 처지에 따른 견강부회(牽强附會)가 한창이다. 말로는 통합과 국리민복을 위한 정치를 외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분열의 허상뿐이다. 한국정치의 역사가 언제나 그랬듯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지난 3년 동안, 정치권은 사방팔방 정쟁으로 서로의 불신과 적개심만 키워 왔다. 여당은 소통의 묘약이 필요한 곳에 참을성 없는 처방으로 불협화음만 키워왔고, 견제와 균형에 충실하여 국정의 동반자가 되어야 할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의, 대안 없는 구태를 반복함으로써 한국정치의 퇴행적인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권력의 속성상 제한된 권한의 헤게모니를 위해 필연적인 경쟁과 다툼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분열의 정쟁만을 일삼는 정치권을 계속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안타깝다. 우리 정치의 양보 없는 권력쟁투의 이면에는 보스·계보정치로 대표되는 권위주의 정치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과거의 잘못된 폐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선진정치를 실현하는 길은 민주정치의 원리를 원칙대로 실현하는 일이다. 여당이 여당다워야 야당도 야당다워질 수 있다. 집권당이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정치발전을 도모하면 야당도 정쟁을 지양하고 무조건적인 비판과 반대가 아닌, 대안을 가진 정책정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때마침 7·28 국회의원 재·보궐선거가 실시된다. 재·보궐선거의 원칙적 취지는 해당 지역발전을 위한 참신하고 능력 있는 지역일꾼을 뽑는 선거라는 것을 유권자들은 유념해야 한다. 이러한 지역 선거가 중앙정치의 다양한 돌출변수로 인한 여야 간의 치열한 정치공방과 변칙적인 양태로 민심을 왜곡해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바람정치로 변질돼 온 것이 우리 정치의 악습이었다. 민주주의의 힘은 통합 속에 견제와 균형, 권력분립, 다양성 등 각각의 원칙들이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연결되어 하나로 발휘될 때 나오는 법이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우리 정치의 살 길을 하루빨리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먼저 광범위한 인적 쇄신이 필요하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 반환점을 맞는 시점에서 국정의 일대 쇄신과 탕평인사를 통해 이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다양한 인사들을 중용할 것을 촉구한다.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인재 등용을 통해 우리사회의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의 정치를 이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다음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 실현이다. 민주정치의 근본원리인 권력분립을 위해 정당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야 한다. 여당 스스로가 좀더 자유로운 소통을 통해 국민의 소리를 잘 듣고 이해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거듭나야 한다. 정부와 여당의 엄격한 당정분리는 곧,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상처 입은 국민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해줄 수 있다. 이를 통해 수많은 다양성이 확보되고, 자유로운 여당의 활동으로 대통령의 상처가 최소화되면서 과거 정권의 불행했던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게 된다. 특히 통합 속의 견제와 균형의 논리로 계파·보스정치를 타파하여 개별 결사체의 정체성을 살리고, 당내 갈등을 없앰으로써 국민들에게 지지정당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시켜 자발적인 정치 참여의 길을 넓히게 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빠른 속도로 변하는 나노시대에 살고 있다. 21세기에 과거회귀형의 20세기 정치는 배격되어야 한다. 집권여당을 비롯한 정치권은 조속히 민주주의 원칙에 입각한 순리와 상생의 정치복원을 통해 갈택이어(竭澤而漁·연못의 물을 말려 고기를 잡는다는 뜻으로 일시적인 욕심 때문에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음)의 정치가 아닌, 내일을 위한 선진정치로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길 바란다.
  • “中 이 정도일 줄…” 화들짝…동북공정 본격대응 나선다

    “中 이 정도일 줄…” 화들짝…동북공정 본격대응 나선다

    여야 국회의원들이 9월 초 정기국회 개회와 함께 중국의 자의적 역사 재해석 프로젝트인 ‘동북공정’에 본격 대응해 나가기로 했다. 한나라당 이경재 의원을 비롯, 이달 초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회장 김을동 의원)’가 마련한 항일 역사탐방에 참여했던 29명의 여야 의원들은 26일 ‘중국 동북 3성 현지답사 활성화’ 등 구체적인 방안을 정기국회 중에 범당파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올 관련예산 15% 깎아 한나라당 안효대 의원은 “대한민국 역사에 대한 인식을 재조명하기 위해 더 많은 학생들이 동북 3성 현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제도적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민주당 김재윤 의원은 “지역구인 제주도 학생과 중국 조선족 학생들이 교류를 통해 한민족의 정체성을 더욱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의원들은 특히 천안함 사건 이후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 주변 4강이 한반도 현안에 깊숙이 개입하는 지금의 동북아 정세도 우리나라의 역사적 정체성을 세워야 하는 중요한 계기로 인식하고 있다. 한 의원은 “강대국과 국익이 맞서는 현장에서 우리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어렵기는 한·일 강제병합이 있었던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의원단 공식방문 한번도 안해 이에 앞서 이들 여야 의원 29명은 지난 4일부터 7일까지 중국으로 항일 역사 탐방에 나섰다. 당시 발해의 5개 수도(京) 가운데 하나였던 헤이룽장(黑龍江)성 닝안(寧安)현의 상경용천부 왕궁터에서 현판을 읽어 내려가던 의원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해는 중국의 일개 변방지방이었다. 주(周)·은(殷)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중원 문화가 많은 영향을 주었다.”는 설명 때문이었다. 시선이 그림판으로 옮겨진 뒤에는 “허, 참…” 하는 탄식이 새어 나왔다. 대조영을 비롯한 역대 발해 왕들이 모두 중국식 복장을 하고 있었다. ●정기국회서 본격 논의키로 헤이룽장성을 비롯, 지린(吉林)·랴오닝(遼寧) 등 동북 3성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들을 찾으며 의원들은 시종 무력감과 자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불거진 것은 2004년. 만 6년이 돼서야 찾은 의원들은 정쟁에 매몰돼 동북아 정세가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바라볼 여유가 없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한 ‘동북아 역사재단’의 예산도 설립 이듬해인 2007년의 196억원에서 올해 185억원으로 3년 만에 15% 가까이 깎았던 국회였다. 한나라당 김성수 의원은 “이 정도까지인 줄은 몰랐다.”고 자탄했다. 같은 당 이경재·이해봉 의원 등은 한참 동안 표지판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이것을 고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동행한 역사학자들에게 자문했다. 의원들은 기념관에 전시된 기와, 벽돌 등이 한민족 고유 형식의 유물들임을 확인하면서 “중국이 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역사를 왜곡했는지 몰랐다. 그동안 너무 무관심했다.”고 자책했다. 국회 관계자는 “국회의원들이 지금껏 공식적인 의원단의 이름으로 중국 동북지방을 방문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하얼빈·닝안·다롄·하이린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치밀한 역사왜곡… 후손인 우리가 수치심 느껴야”

    “치밀한 역사왜곡… 후손인 우리가 수치심 느껴야”

    “후손인 우리가 수치심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니냐.” 한나라당 노철래 의원은 동북공정의 현장과 마주한 기분을 이렇게 밝혔다. 노 의원뿐 아니라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은 처음이라고 29명의 국회의원들은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나온 반응은 “듣던 것보다 훨씬 치밀하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로 심각한 줄 몰랐다” 지난 4일 이른 오전, 의원들은 백두산 장백폭포의 멋진 경관에 한껏 들떴다가 일순 표정이 어두워졌다. 입구에 놓여진 간이지도 표지판 때문이었다. 백두산 봉우리들을 그려놓고 양 옆에 압록강과 투먼(圖們)강으로 영토 경계를 표시해 놓았다. 국사학을 전공한 한나라당 안형환 의원이 “간도 분쟁을 피하기 위해 우리 영토를 의도적으로 축소시킨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안 의원은 “1712년 조선과 청나라가 세운 백두산 정계비에는 우리 영토의 경계로 표시된 ‘토문강(土門江)’을 우리나라는 송화강의 발원지로 보고 있다.”면서 “그런데 중국은 이를 의도적으로 ‘투먼강’으로 해석해 간도 일대가 조선령이 된다는 역사적 해석을 미리 막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김동성 의원은 “그동안 동북공정이 진행된다는 것은 익히 들었지만, 이 정도로 심각한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이진복 의원은 “중국의 이토록 체계적인 접근에 더욱 경악했다.”면서 “이러한 상황이 더 오래가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고 후손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노 의원은 “우리가 역사적으로 남북이 분단되는 과정을 겪고 정치적으로 격동기를 경험하면서 동북 3성에 대한 관심을 가질 기회가 별로 없었다. 너무 소홀했다.”면서 “상황이 여기까지 오게 한 데 대해 후손으로서 부끄러움을 갖고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中, 독립운동사 부각 ‘부담’ 비단 고대 고구려나 발해의 역사에 국한된 일이 아니다. 중국은 큰 틀에서 우리의 민족성과 역사에 대한 흔적이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분위기다. 5일 청산리대첩 승전 90주년을 맞아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이린(海林)시 싼스(山市)진에 있는 김좌진 장군 순국지에 개관한 ‘백야광장’도 정작 중국 땅에서는 제 이름을 드러내지 못한다. 국가보훈처에서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에 예산을 지원해 조성했지만, 정작 중국 당국은 성역화 사업에 대해 거부감을 보였다. 그래서 ‘한·중 우의광장’이라고 이름을 짓고 마을에 광장을 조성해 주민들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역시 하이린시에 있는 김좌진장군 기념관(2001년 개관)도 중국에서는 ‘한·중우의공원’일 뿐이다. 이러한 기념 사업도 대부분 개인이 추진하는 수밖에 없었다. 김좌진장군 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김을동 의원은 “중국에서 대한민국의 국가유공자를 기리는 사업에 대해 시각 자체가 너무 날카로워 이를 이겨내는 데 한계점이 많았다.”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나마 뒷전이었다.”고 토로했다. 김 의원은 중국땅에서 기념사업들을 진행하기 위해 살던 집을 팔면서 사비를 털었다. 아들인 배우 송일국씨가 힘을 보태는 정도다. 이경재 의원은 “역사를 기리는 일을 이렇게 개인의 힘으로 힘겹게 할 수밖에 없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면서 “그러나 당분간은 기념사업회나 역사재단 등에 지원을 더 하면서 중국에 보다 유연하게 다가가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갈등 피하려 ‘대접’ 스스로 포기 6일 오전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에서 의원들은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가 당시 이토 히로부미 통감을 저격한 거사 현장을 직접 보기 위해 5시간 남짓 기차를 타고 도착한 현장이었다. 그런데 의원들의 등장에 중국 공안들은 당황하며 출입을 막았다. 의원들의 몸을 막으며 강하게 제지했다. 다시 역 밖으로 나가서 표를 사서 들어오라는 등 갖가지 핑계를 댔다. 한참의 승강이 끝에 결국 4~5명씩 짝을 지어 조용히 현장을 보기로 하고서야 의원들은 발을 뗄 수 있었다. 이번 일정이 국회의원 신분으로 방문한 게 아니라 철저히 민간인, 일반 해외 여행객의 신분이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지난 3월에도 김을동 의원이 주최해 15명의 의원이 하얼빈역을 방문했지만 그때에는 아예 역 안으로도 발을 들여놓을 수조차 없었다. 겨우 눈으로 보게 된 거사 현장이라고 해봤자 플랫폼 바닥 안 의사가 서 있던 곳에 삼각형, 이토 히로부미가 저격을 당한 곳에 사각형으로 각각 표시를 해둔 것이 전부였다. 어디에도 안중근과 이토 히로부미라는 글자는 없었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당초 표지판을 세울 계획이었으나 일본의 견제로 중국에서 부정적 의사를 밝혀 도형으로 표시만 할 수 있게 승인해 준 것”이라면서 “중국에서 우리의 역사현장을 보존하는 것에 계속 거부감을 갖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정치인이나 정부에서 외교적 채널을 통해 양국의 양해를 얻는 방법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한·중·일 3국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동북 3성이 현재는 외교적으로 첨예한 지역이 됐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애국지사 제대로 평가해야” 특히 일본이 얽혀 있는 일제시대를 비롯한 근대사의 현장은 더욱 민감한 부분이다. 그런 만큼 더욱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대응책이 필요하다는 게 의원들의 지적이다. 이진복 의원은 앞서 개인 일정으로 중국 연변(延邊) 용정(龍井)에 있는 시인 윤동주 선생의 생가와 그가 다녔던 용정중학교 등을 둘러보고 왔다. 이 의원은 “정부가 관리를 할 수 없는 상황인지, 하지 않는 건지 너무 심각하게 방치돼 있었다.”고 비판했다. 김광림 의원도 “그 당시 재산과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위인들을 우리 스스로가 너무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바탕으로 역사인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 사진 하얼빈·하이린 허백윤기자 baikyoon@seoul.co.kr
  • [고전톡톡 다시읽기] 김부식 ‘삼국사기’

    [고전톡톡 다시읽기] 김부식 ‘삼국사기’

    “삼국사기를 지을 때 김씨의 마음은 이를 독립의 조선사로 지은 것이 아니라 지나(중국) 역대사 가운데 동이열전의 주석으로 자처함이 명백하도다.”(신채호, ‘조선상고문화사’) “선유들이 말하되 3국의 문헌이 모두 병화에 없어져 김부식이 고거할 사료가 없어 부족하므로 그가 편찬한 ‘삼국사기’가 그렇게 소루함이라 하나, 기실은 김부식의 사대주의가 사료를 분멸한 것이다.”(신채호, ‘조선사연구초’) 단재 신채호는 ‘삼국사기’를 이렇게 맹렬하게 비난했다. 근대 제국주의의 광풍이 몰아치던 20세기 초, ‘삼국사기’는 폐기되어도 아쉬울 게 없는 책으로 전락했다. 근대 애국지사들은 ‘삼국사기’에 민족정신을 말살한 역적이요 사대주의 화신이란 낙인을 찍었다. 근대 사가들이 ‘삼국사기’에 새겨놓은 낙인은 아직까지 지워지지 않고 있다. 사람들은 여전히 ‘삼국사기’가 중국 역사서들을 그대로 모방하여 민족의 역사적 사실을 왜곡한다고 인식한다. 거기에 관찬 역사서에 대해 갖는 반감이 더해져 ‘삼국사기’는 읽지는 않지만 비난할 수 있는 역사서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삼국사기’를 그저 사대에 찌든 역사서로, 관변적인 역사서로 매도하는 것은 또 하나의 편견이다. 12세기 중세 보편 문화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삼국사기’에서 근대 사가들이 그토록 원했던 ‘민족정신’을 고취할 만한 요소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민족에 대한 개념도 없고, 민중 의식도 없고, 요동벌에 대한 영토 의식도 없다. 신라, 고구려, 백제의 관계는 수나라, 당나라, 돌궐, 왜국의 관계와 다르지 않다. 삼국은 모든 나라와 필요에 의해 연합하고 필요에 따라 전쟁한다. 신라, 고구려, 백제는 서로 적일 뿐이다. 이처럼 김부식에게 역사는 근대 사가들이 생각하는 역사와는 다른 것이었다. ‘삼국사기’는 근대인들의 역사 관념과는 다른 지점에서 역사를 구성한다. 동시에 그런 의미에서 ‘삼국사기’는 역사로 들어가는 또 하나의 새로운 출구이기도 하다. ●천재지변도 위대한(?) 역사적 사건이다 ‘우박이 내려 나는 새가 죽었다.’ ‘폭풍이 불어 나무를 뽑고 용이 금성 우물에 나타나고 서울에 누런 안개가 사방에 자욱하게 끼었다.’ ‘큰 별이 월성 서쪽에 떨어졌는데 그 소리가 우렛소리 같았다.’ ‘주력공의 집 소가 한 배에 송아지 세 마리를 낳았다.’ ‘뱀이 남쪽 고방에서 사흘 동안 울었다.’ ‘흰 무지개가 대궐 우물에 박히고 토성이 달을 범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와 같은 TV 프로그램에나 나올 법한 내용들이다. 그런데 ‘삼국사기’ <본기>는 이 천문현상과 천재지변에 관한 일을 정치적 사건만큼이나 비중있게 다룬다. ‘삼국사기’에서 천재지변은 전쟁이나 반란이나 왕의 죽음과 같은 사건을 경고하거나 예시하는 조짐이다. 그야말로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라 천하가 혼란스러울 때 나타난다. 천재지변은 인간의 행위에 대한 경고이자 재앙을 예고하는 징표다. 그렇기 때문에 통치자는 천재지변이 닥칠 때 늘 자신의 행위를 돌아봐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천재지변을 제대로 해석하여 자신을 바꾸는 능력이다. 만약 통치자가 천재지변의 경고를 받아들여 하늘의 해와 달처럼 투명하게 잘못을 드러내고, 그 잘못을 고치면 재앙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나 하늘의 조짐을 보고도 행동을 바꾸지 않으면 재앙을 피할 길이란 없다. 김부식에게 천재지변은 단순한 물리적 현상이 아니었다. 천재지변은 인간사에 감응하고 인간사에 개입하는 역동적 실체였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이자 사건으로 취급되었다. 김부식에게 역사는 자연과 인간의 연동 작용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현상을 역사적 사실로 절대 생각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비과학적이고 초자연적 미신으로 치부되어 역사 저편으로 추방될 뿐이다. 김부식의 시대와 우리 시대는 역사적 사실조차 그 함의가 달랐다. 따라서 역사는 사실에 입각해야 한다고 말하면 안 된다. 어떤 것을 사실로 인식하는가를 따져야 한다. 우리 시대 어떤 것이 역사적 사실인가? ●평강 공주와 온달, 또 다른 역사 김부식은 고려시대 최고의 문장가다. 대문장가로서의 면모를 ‘삼국사기’ <열전>에서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중 ‘온달전’은 문장의 백미다. 한 말의 문장가 창강 김택영은 박지원의 ‘야출고북구기’와 함께 ‘온달전’을 조선 5000년 이래 최고의 명문이라고 칭송했다. 삼국시대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은 무엇일까? ‘온달전’은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장으로 여기에 답한다. 평강왕의 공주는 궁중을 떠나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다. 공주가 울보가 된 것은 이 때문이다. 공주는 사대부의 처가 아니라 마음이 맞는 사람의 처로서 주체적으로 살고 싶었다. 가난하여 추레하지만 마음만은 올곧고 순수한 온달은 공주가 찾는 짝이었다. 공주가 온달을 만나 한 말도 바로 동심(同心)이다. 한 말의 곡식과 한 자의 베를 나눠 먹고 입더라도 마음이 맞으면 함께할 수 있다고. 마음이 맞는 자와 함께해야 한다는 믿음이 공주를 움직인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온달은 공주의 내조 덕에 장수로 성공한다. 온달은 신라에 빼앗긴 고구려의 땅을 찾기 위해 아단성 전투에 참여한다. 온달은 공주에게 땅을 되찾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는 굳은 맹세를 던지고 전투에 나아갔다. 온달은 싸우다 화살에 맞아 죽는다. 그는 공주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그 때문에 온달의 관은 움직이지 않았다. 공주가 ‘생사는 결정되었으니 돌아가시라.’고 마음을 풀어준 뒤에야 관이 움직였다. 자신을 믿어준 공주에게 약속을 지키고 싶었던 온달, 그 마음을 알아준 공주. ‘온달전’은 어리석고 미천한 남자가 아내를 잘 만나 성공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들은 부부이기 이전에 서로를 알아주고 믿어줬던 지기였다. ‘삼국사기’는 주로 국가의 역사를 기록한다. 즉 통치자의 역사를 기록한다. 그렇지만 ‘삼국사기’는 <열전>을 통해 이런 한계를 넘어선다. <열전>은 <본기>에서 담지 못한 삼국시대의 다양한 삶의 결들을 잡아낸다. 정사가 담지 못한 삶의 이야기를 <열전>에서 풀어내어 역사 너머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해준다. 길진숙 수유+너머 강원 연구원
  • [한·일 100년 대기획] (20) 젊은이가 보는 양국관계 해법

    [한·일 100년 대기획] (20) 젊은이가 보는 양국관계 해법

    ■韓-과거사 청산이 먼저 우리 대학생들은 한·일관계의 발전을 위한 최우선 과제로 ‘과거 청산’을 꼽았다. 양국의 뒤얽힌 과거사 문제가 정리되지 않고서는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 믿음의 관계로 발돋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김태경(25·여·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4학년)씨는 ‘일본통’을 자처한다. 어려서부터 일본문화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일본어를 독학으로 공부했고, 현지 여행도 자주 다녔다. 중학교 때부터는 일본 학생과 펜팔을 계속해 오면서 속을 다 털어놓을 정도로 친한 친구들도 많이 사귀었다. 김씨는 “민감한 문제이지만 ‘과거사 청산’이란 화두를 일본 친구들에게 꺼낸 적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그때마다 결론은 ‘일본에서는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시키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친구들은 과거에 우리나라와 다른 나라를 식민지로 삼고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아예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면서 “윗세대와 아랫세대 모두 과거에 대해 반성하는 의식 없이 무작정 덮어두고 넘어가려 한다거나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한·일관계를 계속 후퇴시키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일본 생각하면 늘 불편 송하원(24·성공회대 사회학과 4학년)씨는 “일본의 과오에 대한 충분한 반성과 보상이라는 역사의 수순이 완료되지 않아 우리가 일본을 생각하면 늘 불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송씨는 “매듭짓지 못한 과거 때문에 일본에 대한 정당한 평가도 내리지 못한다.”면서 “그 때문에 일본 문화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폄훼하는데 이는 한·일 양국의 손해”라고 덧붙였다. 정다혜(23·여·연세대 총학생회장·사학과 4학년)씨는 “한·일관계 문제의 근원에는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씨는 “서로를 믿기 위해선 역사적 사건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반성, 이를 극복하기 위한 국가·사회의 노력이 필요한데 이런 것이 없었다.”고 평가했다. ●친일파 잘살고 독립운동가 후손 시달려 젊은이들은 우리의 과거사 문제도 정리하고 넘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환(22·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경제학과 3학년)씨는 “일제 강점기 때 친일파에 대한 청산이 안 돼 지금도 문제가 되고 있다.”면서 “친일파 후손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받은 토지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대표적”이라고 말했다. 송씨도 “친일파들이 버젓이 국가적 위인으로 숭상받고 후손들이 떵떵거리고 잘사는데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잘못을 지은 것처럼 가난에 시달리면서 조국땅에도 못 들어오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일본의 진심 어린 사과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씨는 “양국의 상호 발전과 관계개선을 위해서라도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씨도 “제대로 평가되지 못한 갈등의 원인에 대해 그냥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서로 평가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나라와 연대해 日사과 받아야 아울러 일본의 사과를 받기 위해 다른 나라와의 연대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일본의 역사의식이 잘못됐다고 감정적으로 교역을 끊기보다는 일제 강점기의 만행이 우리나라는 물론 전 인류적으로도 참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에게 피해를 본 다른 나라들과 이념과 정치체제는 달라도 함께 연대해 일본의 죄과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조건 일본이나 일본인을 배척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씨는 “무조건 일본 사람이 싫다고 해서는 일본인을 설득할 수도 없고 우리땅을 불합리하게 불법적으로 강점한 일본인과 형식적으로 같은 모습을 띨 수 있다.”고 경계했다. ●양국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 부족 오히려 양국의 문화·사회적 교류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씨는 “양국에 대한 이해도 더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 친구들은 한국의 아이돌 가수, 영화배우 등 연예인에게만 관심이 있지 한국문화나 한국인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한국 연예인을 매우 좋아한다고 해서 한국을 좋아하는 것은 아닌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씨는 “우리 학생들도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다고는 하지만 실상은 일본 연예인, 만화를 좋아하는게 대부분”이라면서 “문화를 음악, 만화, 공연 같은 작은 범주가 아니라 생활습관과 생각하는 방식 등에까지 서로에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효섭·윤샘이나·김양진기자 newworld@seoul.co.kr ■日-서로를 인정해줘야 일본 젊은이들이 지난 18일 한국 상점들이 몰려 있는 도쿄 신주쿠구 신오쿠보 도리(거리)에 모였다. 직장인과 대학원생들인 이들은 평소에도 한국에 관심을 가진 터라 새로운 100년을 맞는 한·일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앞으로 일본을 짊어져 나갈 이들이 보는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해법을 들어봤다. 몇 달만에 신오쿠보 도리에 왔다는 다야 모리(27·일본어 예비학교 교사)는 “일본의 유명 번화가에서 한국 식당이 많아져 일본 사람들도 이곳을 많이 찾는다.”며 “해가 거듭될수록 가까워지는 한·일관계를 이곳에서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음 달 한국인 김주임(29)씨와 부산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고바야시 가즈토(27)는 “몇 년 새 일본 남성과 한국 여성 커플뿐만 아니라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이 결혼하는 사례를 주위에서 자주 보고 있다.”며 “한국이 그만큼 경제·문화적으로 일본과 대등해진 게 아니냐.”고 반문하며 최근 일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한국 기업의 선전을 꺼냈다. ●한국기업 장점 진지한 연구 시작 그는 “삼성전자의 지난해 매출액이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등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업체 5개사를 합친 매출액보다 많은 것에 일본 젊은이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며 “30년 전에 일본이 강했던 산업이 잇따라 한국에 넘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이 강한 게 결단력이 빠르고 국가적으로 함께 움직이는 관·민체제가 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며 일본에서도 한국의 장점을 각 분야에서 본격적으로 진지하게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소개했다. 일본 중·고등학교 예비교사 교사인 와타누키 아이미(26·여)는 “최근 외무성이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는데 제3세계에서의 눈부신 활약을 펼치고 있는 한국기업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며 “일본 기업도 좀 더 위기감을 갖고 대처해 나가야 한다는 의견들이 쏟아지는 것을 보고 한국기업의 최근 활약상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일본선 한국어, 한국선 일본어 교육을 그는 “앞으로 일본과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더욱 서로를 필요로 할 텐데 서로를 이해하는 데는 언어가 제일 중요하다.”며 “일본은 중학교 때부터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에서도 좀더 일본어 교육을 늘리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을 한번 다녀온 적이 있다는 후지마쓰 겐스케(24·도쿄외대 대학원생)는 양 국민 간의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한국 사람들을 잘 모를 때는 그들의 엄격한 상하관계에 무척 답답한 느낌을 가졌다.”면서 “하지만 같은 대학원에 재학 중인 한국 학생들과 같이 술도 마시면서 대화를 자주 하다 보니 유교문화의 장점이 한국의 비약적인 발전의 토대가 됐다는 점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공동 역사교과서 만드는 일 중요 물류회사에 다니는 미야타 다케히토(27)는 “일본인이 한·일 간의 역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어 서로를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며 “일본과 한국의 공동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기울여 서로를 객관적으로 아는 게 중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에 두 번 갔는데 정말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며 “거리는 가까운데 서로 동떨어진 교육을 통해 양국을 먼나라로 만드는 게 아니냐는 의문을 가진다.”고 전했다. 예비 교사로서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다야는 “얼마전에 NHK가 일본과 한국 간의 역사에 대해 방송했는데 과거처럼 일본이 한국보다 우수하다는 시각이 아닌 동등한 입장에서 방송해 일본 내에서도 많은 관심을 끌었다.”며 “한국에서도 그런 방송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류의 바탕은 한국의 도전정신 고바야시는 “두 나라 국민 간에 서로를 인정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서로를 인정하지 않으면 객관적인 사실도 안 보이고 역사적으로도 서로 겉돌 수밖에 없다.”며 양 국민 간의 진지한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본인이 한국을 이해하는 데 한류의 열풍이 큰 몫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동방신기, 빅뱅에 이어 최근에는 카라, 티아라, 소녀시대 등 여성 그룹의 활약이 두드러지고 있다.”고 평가한 그는 “일본 연예인들은 일본말만 하지만 한국 그룹은 한국말뿐만 아니라 일본어, 영어까지 배워 아시아를 비롯해 해외진출에 나서고 있다.”며 일본도 연예계까지 퍼진 한국의 도전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만선사관’ 식민사관이냐 아니냐

    딜레마다. 가령 광해군을 두고 벌어진 이덕일-오항녕 논쟁이 그랬다.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은 한국사를 왜곡한 식민사관의 뿌리를 조선 후기 노론사관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광해군을 끌어내린 인조반정을 그 시초로 꼽았다. 오항녕(수유너머 구로 연구원)은 광해군을 숭상하는 것이야말로 식민사관이라 되받았다. 광해군은 심각한 내치 실패로 인해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정권이었는데, 명·청 교체기에 중립외교를 폈다는 이유만으로 광해군을 재평가한 것은 바로 일제 식민사학자들이었다는 주장이다. 상반된 주장이지만 공통점은 있다. 비판의 근거를 양측 모두 식민사학에서 찾는다는 점이다. 이런 딜레마를 다룬 논문이 한국고대사학회 주최로 22~23일 충남 공주시 반포면 동학산장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식민주의적 한국고대사 인식의 비판과 과제’ 학술대회에서 발표된다. 고구려 별자리 연구자로 유명한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의 ‘일제 시기 고구려·발해사 연구 동향’이다. 김 교수는 일제시대 편찬된 ‘조선사(朝鮮史)’에 주목한다. 왕조가 교체된 뒤 뒷 왕조가 앞 왕조에 대한 기록을 남기듯, 삼국사기는 고려 때 지어졌고 고려사는 조선 때 지어졌다. 일제 역시 1925년 조선사편수회를 조직, 1932년부터 1938년까지 35권에 이르는 조선사를 펴냈다. 준비기간과 색인작업까지 합치면 편찬작업에 16년을 들였다. 그런데 이 과정을 들여다 보면 묘한 일이 있었다. 일단 초기에는 조선을 ‘깔아뭉개야’ 하는 일제의 입장이 반영돼 한국 고대사 깎아내리기에 열중했다. ‘조선반도사관’에 따라 고대사를 모두 조선반도 안에 구겨넣고 임나일본부를 지어냈다. ‘망인(亡人)의 관점’도 등장한다. 고조선은 중국에서 도망온 기자와 위만이 만들었고, 고구려는 부여에서, 발해는 거란에서, 청나라는 조선에서 도망간 사람들이 만든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다 일제가 만주를 점령하면서 변화가 생긴다. 이제 일본은 만주로 조선인들을 이주시켜야 했다. 조선에 이어 만주 진출도 합리화해야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만주와 조선은 역사적으로 하나였다는 만선사관(滿鮮史觀)이다. 일제가 조선을 먹었으니 원래 조선의 선조였던 고구려와 발해 영역은 당연히 일제에 귀속된다는 주장이다. 이는 중국, 일본의 역사왜곡에 맞서야 하는 우리에게 역설적인 상황을 준다. 김 교수는 “조선과 만주의 역사주권을 일본의 종주권 아래 두려 했던 만선사관이 식민사관의 극복이라는 점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통일적 다민족론에 따른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되레 만선사관과 비슷한 지점에 있어야 하는 역설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식민사관이냐 아니냐, 뜨거운 이분법이 만들어낸 역설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숫자로 본 해외입양

    [당신들과 우리들의 대한민국]숫자로 본 해외입양

    해외입양의 역사가 50년을 넘었다. 1980년대 ‘아동 수출국’ 1위라는 불명예는 벗었지만 지난해도 1125명의 한국 아이가 미국·캐나다·스웨덴 등 9개 나라로 떠났다. 195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이 해외로 보낸 아이는 16만 2683명. 전 세계 해외입양아의 3분의1에 해당한다. 20~30년 후 입양아는 되돌아와 ‘뿌리 찾기’에 도전한다. 보건복지부와 중앙입양정보원 통계를 토대로 해외입양인의 오늘을 조명한다. [3700명-작년 방한한 입양인] 5년 사이에 ‘뿌리’를 찾으려고 방한한 해외입양인이 4만 6000명이다. 지난해만 해도 3700명이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러나 실제로 부모를 확인한 경우는 극히 드물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1995~2005년 7만 6646명이 친부모를 찾아나섰지만, 2113명(2.7%)만 성공했다. 입양기관별로 기록을 따로 쥐고 있는데다 관리 미흡으로 손실되거나 왜곡·조작된 경우가 많다. 일부 기관은 친부모의 사생활 보호를 내세우며 입양기록의 공개를 거부한다. 1980년대 떠난 입양아 6만 5321명이 성인이 됨에 따라 귀환자는 늘어날 전망이다. [64.2%-해외 입양아중 남아비율] 지난해 해외입양아는 1125명으로 남아가 722명(64.2%), 여아가 403명(35.8%)이었다. 국내입양아 1760명 가운데 남아가 459명(34.9%), 여아가 855명(65.1%)인 것과 대조적이다. 국내 입양부모가 여아를 선호하기에 남아는 주로 해외로 입양된다. 친모의 나이는 20세 이상(823명), 학력은 고졸 이상(685명)이 대부분을 차지해 정부의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면 자녀를 키울 여성이 늘어날 것으로 전문가는 내다봤다. [2007년-국내입양 > 해외입양] 국내입양아동이 해외입양아동을 처음 앞지른 것은 2007년. 입양아 2652명 가운데 국내입양이 1388명(50.4%), 해외입양이 1264명(46.6%)이었다. 한국의 해외입양은 한국 전쟁 직후에 시작됐다. 50년대는 혼혈아동이 대다수를 차지했고, 1960~70년대에는 가난으로 아이를 떠나보냈다. 최고조는 한국 경제가 발전한 1980년대로 한해 평균 6532명이 해외로 떠났다.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아동수출국’이라고 외신이 비판하자 정부가 해외입양 쿼터제를 도입했다. 이때부터 18년간 매년 해외입양은 2200명 안팎을 유지했다. [3분의 1-전세계 입양중 한국비율] 195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입양 보낸 아동은 16만 2683명이다. 이 가운데 67%인 10만 9072명이 미국으로 보내졌다. 다음으로 프랑스(1만 1173명), 스웨덴(9381명), 덴마크(8723명) 순이다. 미국에서 한국 출신 해외입양인은 전체 24%로 1위다. 해외입양아가 줄고 있지만 지난해에도 과테말라, 중국, 러시아, 에티오피아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학자들은 한국 출신 입양인을 20만명으로 추정한다. 해외입양을 입양기관(4곳)이 주도해 한국 정부가 통계조차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입양기관은 민영이라 한국아이를 입양하기 위한 비용을 받는다. 홀트인터내셔널의 수수료는 1만 7215달러(약 2069만원)이다. 등록비, 서류작업 비용, 에스코트 비용 등은 별도다. 비용은 현지 입양기관과 한국 입양기관이 나눠 갖는다. 입양 특례법에 따르면 한국 입양기관은 최대 961만 6000원을 받아야 한다. 국내 입양수수료(220만원)보다 4.3배나 많다. 연간 1300만달러(약 156억원)가 넘는다. 미혼모가 아이를 낳을 때까지 보살피는 비용 등에 쓰인다. 정은주기자 ejung@seoul.co.kr
  • 스페인 현대미술 대표작 한눈에

    스페인 현대미술 대표작 한눈에

    세기의 거장 파블로 피카소(1881~1973)의 나라 스페인. 하지만 피카소 사후인 1970년대 이후 스페인 현대미술이 국내에 소개되는 자리는 드물었다.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의 ‘언어의 그늘-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 소장품’ 전은 안토니 타피에스, 마르셀 브루타에스, 호안 라바스칼 등 스페인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한·스페인 수교 60주년 기념 전시회 1995년 개관한 바르셀로나현대미술관(MACBA)은 실험적이고 개념적인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소장품을 수집하는 전략으로,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 프라도 미술관과 더불어 스페인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꼽힌다. 한·스페인 수교 60주년 기념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언어를 주제로 MACBA 소장품 가운데 미국 작가 리타 맥브라이드, 프랑스 작가 마린 위고니에 등 외국 작가까지 포함해 63명의 작품 138점을 선보이고 있다. ‘언어의 그늘’이란 타이틀 아래 언어가 지닌 다양한 형태와 층위의 소통 방식을 미술과 연관시킨 회화, 조각, 설치, 영상 등의 작품을 모았다. 언어와 미술의 관계는 시 쓰기, 기하학, 행동, 정치적 표현, 미디어, 연극과 영화 등 8개 소주제로 구분했다. 바르토메우 마리 MACBA 관장은 “언어가 예술작품을 통해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 주고자 한다.”고 말했다. 시인이자 미술가인 마르셀 브루타에스의 16㎜ 고전필름은 비 오는 야외에서 시를 쓰는 시인의 모습에서 시적 경험의 의미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동양사상의 영향을 받은 타피에스는 흙, 석고가루, 하드보드 등의 다채로운 재료를 통해 물질과 사유를 연결하는 독특한 작품세계를 드러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오랜 내전과 독재의 아픈 과거사를 다룬 비판적 미술작품들이다. 호안 라바스칼의 ‘스페인은 달라요’ 시리즈는 프랑코 독재 정권 시절 스페인의 정치와 문화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호안 라바스칼 등 63명 138점 선봬 TV 화면에 꽉 찬 축구공 아래 ‘Cultra(문화)’란 단어를 넣은 작품은 정치적 반발을 스포츠에 대한 관심으로 왜곡시키려 했던 권력의 속성을 노골적으로 보여 준다. 이번 월드컵 우승과 맞물려 묘한 감흥을 느끼게 한다. ‘스페인은 달라요’는 당시 스페인 관광사업을 위해 제작된 광고 문안이다. 다비드 라멜라스의 작품 ‘시간의 상황’은 전원이 켜져 있지만 화면에는 아무것도 등장하지 않는 수상기 12대를 통해 미디어에 대한 비판 의식을 드러낸다. 여성성의 왜곡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낸 조앤 조너스의 작품,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사뮈엘 베케트의 실험미술 필름, 이그나시 아발리의 영화 포스터 등도 전시된다. 전시장 중앙홀에 설치된 리타 맥브라이드의 ‘아레나’도 주목할 만하다. 투우장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나선형 계단 형태의 이 작품은 관람객이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소통할 수 있도록 마련된 공간이다. 이곳에서 매일 두 차례 전시 설명회가 개최된다. 10월3일까지. 관람료 5000원. (02)2188-6000.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막판 ‘피말린 20분’ 한국이 웃었다

    종료 휘슬이 울리자, 태극전사들은 두 손을 번쩍 들고 환호했다. 허정무 감독은 선수들을 껴안았고, 이영표(알 힐랄)는 감격해 눈물을 쏟았다. 23명의 선수들은 그라운드로 뛰쳐나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역사’를 만끽했다. 스타디움엔 ‘대~한민국’ 소리가 울려퍼졌고 태극기가 나부꼈다. 한국이 ‘약속의 땅’ 더반에서 월드컵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새 역사를 썼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 이은 한국 축구사의 한 페이지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서 혹독한 신고식을 치렀던 선배들의 한(恨)은 56년이 지나서야 풀렸다.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23일 더반의 모저스 마비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남아공월드컵 B조 최종전에서 나이지리아와 2-2로 비겼다. 칼루 우체에 선제골을 내줬지만 이정수(가시마), 박주영(AS모나코)의 연속골로 역전했다. 기쁨도 잠시, 후반 24분 야쿠부 아이예그베니에게 페널티킥 골을 헌납해 2-2 무승부가 됐다. 남은 20여분은 정말 길었다. 후반 34분엔 오바페미 마르틴스가 정성룡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만들었고, 후반 40분엔 교체로 들어간 빅터 오빈나에게 날카로운 중거리슛을 허용했다. 골이나 다름없는 장면들이 이어졌다. 한국은 비기기만 해도 16강에 진출하지만, 지면 그대로 탈락이었다. ‘캡틴’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시간이 정말 안 갔다. 16강이 힘들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고 할 만큼 끝까지 가슴 졸였다. 그래서 더욱 값졌다.최후의 승자는 한국이었다. 한국은 1승1무1패(승점4)로, 같은 시간 그리스를 2-0으로 누르고 3전 전승을 거둔 아르헨티나(승점9)에 이어 조 2위로 16강에 올랐다. 그리스는 1승2패(승점3), 나이지리아는 1무2패(승점1)로 탈락했다. 이번 대회까지 7회 연속(총 8회) 본선무대를 밟은 한국은 안방의 한·일월드컵을 빼고는 단 한 번도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한국은 2002년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을 물리치고 4강에 진출했지만, 세계 축구팬들은 홈 그라운드 이점이 너무 강했다고 깎아내렸다. 2006년 독일월드컵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이런 시선은 더욱 강해졌다. 2010년 허정무호가 이런 왜곡된 눈빛을 바로잡았다. 더반 최병규·서울 조은지기자 zone4@seoul.co.kr
  • 美 오보역사에 비친 오늘의 언론

    ‘○○호 폭발하다’ ‘○○호 폭발은 폭탄, 또는 어뢰 때문인가?’ ‘○○호, 적의 비밀 병기에 두 조각 나다’ ‘○○호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를 모독하다’ ‘○○호 병사들의 용맹에 대한 중상모략’ 많은 이들이 ‘○○’을 보고 ‘천안’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에 들어갈 단어는 ‘메인’이다. 1898년 2월 카리브해에서 의문의 사고로 폭발한 미국 해군 소속 ‘메인호’에 대한 당시 신문 기사의 제목들이다. 메인호 폭발의 정확한 원인은 지금까지도 베일에 싸여 있지만 당시 윌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은 해군 사문회(査問會)를 통해 선내 탄약고에서의 우발적인 폭발 때문이라고 확신하게 됐다. 하지만 그는 진실을 진실로 대할 수 없는 환경에 둘러싸여 있었다. 전쟁을 원하는 군부와 언론의 부추김 탓이었다. 당시 100만부 안팎의 부수를 자랑하던 ‘뉴욕 저널’ 발행인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는 스페인의 식민지 쿠바를 미국이 소유하기를 원했다. 마침 미국이 군사 개입의 단골 메뉴로 쓰는 인권 문제가 쿠바에서 제기되자 미국 정부는 자국민 보호 명분으로 6682t짜리 전함 메인호를 쿠바 아바나 앞으로 보낸다. 스페인으로서는 불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 한데 ‘뉴욕 저널’은 어찌어찌 워싱턴 주재 스페인 공사의 사신(私信)을 입수해 이를 대서특필했다. 매킨리 대통령을 비난하는 편지 내용을 꼬투리삼아 ‘미 합중국 역사상 최악의 모욕을 당하다’라고 제목을 달며 정부와 국민들을 자극했다. 폭발 이후에는 아예 ‘물 만난 고기’였다. ‘메인호를 기억하라’는 명제를 달고 온갖 거짓 기사를 쏟아냈다. 당시 해군부 차관이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대통령을 가리켜 “기골이 초콜릿 과자처럼 말랑말랑한 사람”이라고 비아냥댄 것도 한몫 거들었다. 결국 매킨리 대통령은 스페인에 선전 포고를 했다. 허스트는 뜻을 이뤘지만, ‘황색 저널리즘의 창시자’라는 후대의 오명을 감내해야 했다. 385명의 미군이 죽고, 1660명이 다친 미국과 스페인 간의 전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메인호를 기억하라’(에릭 번스 지음, 박중서 옮김, 책보세 펴냄)는 이 밖에도 날조와 왜곡으로 얼룩져 있는 미국 언론의 사례들을 하나씩 꼼꼼히 제시한다. 100년 훨씬 전의 미국에서 벌어진 언론과 기자들의 거짓말 사례들이건만, 오늘날의 한국 언론도 그다지 자유로워 보이진 않는다. 진실을 외면한 언론이 동서고금에 걸쳐 그려 낸 부끄러운 자화상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1만 7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한국 학자가 본 한국전쟁]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명예교수

    [한국 학자가 본 한국전쟁] 박종효 모스크바대 한국학센터 명예교수

    전 세계적으로 한국전쟁이란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6·25가 발생한 지도 어느덧 60년이 됐다. 그러나 지금도 잘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있다. 그 이유는 6·25와 직접 연관이 있는 옛 소련의 비밀문서가 완전히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천안함 침몰사건의 원인을 조사하면서 우방국 전문가는 물론 러시아와 중국 전문가도 초청했다. 공정하게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려는 태도때문에 국제적인 공신력을 높이고 한국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안함 사건 조사처럼 6·25도 이제 스탈린과 김일성에 관한 자료가 완전 공개돼야 한다. 그래야 천안함 사고원인 조사에서 보인 국제공조와 권위 있는 결론을 내릴수 있다. 이제까지 6·25에 관한 연구는 국내자료나 서방측의 자료에 의존해 왔다. 공정성이 결여돼 있다. 6·25는 공산진영의 종주국 소련과 스탈린이 직접 관련돼 무기를 지원하고, 공군과 군사고문관을 파견하여 작전을 총괄했다. 게다가 마오쩌둥의 해방군까지 끌어들였던 것이다. 러시아연방 외무성 문서 보관소 자료와 크렘린 문서보관소에 소장되어 있는 이들 문서가 빠짐없이 공개돼야 지금까지 한국이 주장해 왔던 북한의 남침설이 확정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와 다른 주장을 펴왔다. 그 주장이 무엇이든 한국은 참이냐 거짓이냐를 가리려 하지도 않고 무조건 거부해 왔다. 6·25는 스탈린의 승인과 마오쩌둥의 지원약속이 없었다면 발발이 불가능했었다는 것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사실을 확인한다는 차원에서 러시아 측 자료가 절대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현재도 1994년 러시아 초대 대통령 옐친이 한국정부에 전달한 6·25 스탈린 관련문서가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많은 진실이 일반인에게 투명하게 공개되지 못한 채 의문으로 남아있다. 천안함 조사의 핵심이 공정성에 있다면 6·25는 역사적 진실에 있다. 진실이 올바로 밝혀지지 않거나 왜곡될 때 혼란이 야기되고 분열이 생기는 것이다. 이번에 6·25 60주년을 맞아 서울신문을 통해 러시아 측 자료가 일반독자에게 공개되는 것은 큰 의미 있는 일이다. 광복 이후 일부 역사학자들은 민족주의 사관을 내세우면서 과거 식민지 사관에서 탈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작 자신들은 일본 측이나 미국 측 사료에 의존하는 한계를 보였다. 스스로의 연구역량을 저하시켜 민족사관을 정립하지 못한 모순을 반복했다. 그러므로 이제 6·25는 물론 해방 이후 미소 냉전시기 및 남북관계와 기타 국제관계를 밝히는데도 러시아 사료가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6·25 발생에 대한 책임이 북한 측에만 있다는 주장이 옳은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한국전쟁이 발생하게 되는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6·25가 단순히 김일성의 요구로 스탈린이 승인을 하고 모택동의 후원약속으로 발생하게 된 것은 아닌 것이다. 멀리는 일제가 1910년 한국을 합병하면서 항일독립운동을 시작하던 초기에 마침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면서 그 영향을 받았다. 특히 러시아 극동지방을 무대로 한 항일애국단체와 중국 상해 및 동북지방에서 활동하던 항일애국단체들이 서로 민족주의 진영과 공산주의진영으로 분열돼 투쟁하기 시작했다. 1945년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고 남북을 미소가 분할해 군정을 실시하면서 자연스럽게 민족주의 진영은 서울로, 공산주의 진영은 평양으로 집결했다. 미소 냉전이 시작되면서 서울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신탁통치문제를 놓고 충돌하기 시작한 뿌리가 있다. 결국 광복이 되면서 남북으로 귀국한 양대 세력이 각각 미소 군정의 비호 하에 정부를 구성하고 김일성은 스탈린의 공산주의 확장정책에 힘을 얻고 마오쩌둥이 중국 본토장악에 고무돼 미군이 한국에서 철군을 시작하자 통일의 기회로 보고 남침을 감행한 것이다. 러시아 측의 자료없이는 한국의 근현대사 연구는 물론 6·25에 대한 진실을 가려내기 어려운 까닭이다.
  • “침략사 성접대로 사죄” 日여배우 폭탄선언

    “침략사 성접대로 사죄” 日여배우 폭탄선언

    “몸으로라도 중국인들에게 보상하고 싶다.” 역사학을 전공한 일본의 포르노 배우 스즈키 안리(24)가 최근 “일제의 침략역사를 사죄하려고 중국인들과 조건 없이 잠자리를 하겠다.”고 폭탄선언을 해 파문이 일고 있다. 서구적인 얼굴과 몸매로 독자적인 팬층을 보유한 스즈키는 도쿄 출신으로, 그라비아 아이돌로 활동하다가 성인이 된 해인 2005년 AV배우로 정식 데뷔했다. 이후 다양한 성인영화와 TV쇼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면서도 대학에서 역사학을 전공했고 ‘일본의 중국 침략사’에 대한 연구로 학위를 땄다. 또 잇달아 소설 두 권을 출간하기도 했다. 그녀는 최근 “역사는 말살하거나 왜곡할 수 없으며 존중해야 한다.”고 소신을 밝힌 뒤 “기회가 닿으면 중국인들에게 내 몸을 바쳐 일본의 중국 침략에 대해 사과하고 싶다.”고 선언했다. 중국인과 성행위를 통해서 ‘개인적 사죄’를 하고 싶다는 것. 평소 일본에서 공부하는 중국인 유학생과 가깝게 지내온 스즈키는 이런 발언을 한 이유에 대해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 수 많은 악행을 저지른 것에 대한 마음의 보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솔직히 일본 남자들보다 중국인들이 훨씬 더 다정하기 때문에 나를 더 편안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와 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일본의 포털 사이트에는 스즈키를 “매국노”라는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사진=스즈키 안리 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오월정신의 현재와 미래는…

    오월정신의 현재와 미래는…

    1980년 5월의 광주(光州)는 비극, 그 자체였다. 거대한 국가의 폭력이 존재했고, 시민의 무장 저항이 뒤따랐으며, 그에 대한 무자비한 살육이 있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은 더욱 뜨거워졌고, 독재정권의 탄압 또한 거셌다. 하지만 이는 우리 문학에 있어서 분명한 변곡점을 그린 계기가 됐다. 학살은 지나갔고, 공포는 여전했다. 작가들은 폭풍우 거세게 몰아친 뒤 밭고랑에 흩날린 낟알을 거둬들이듯 시를, 소설을 하나씩 토해냈다. 김남주의 연작시 ‘학살’, 김준태의 장시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 백무산의 ‘오월은 어디에 있는가’, 곽재구의 ‘그리운 남쪽’ 등 시는 진실을 고발하며 피를 들끓게 하거나, 은유적 서정으로 시대 속 존재를 성찰하도록 했다. 문순태, 임철우, 정도상, 윤정모, 한승원, 박호재, 주인석 등은 소설로 광주의 기억을 재생시켰다. 특히 임철우의 장편소설 ‘봄날’은 독자들로 하여금 그날 그 거리의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로 직접 겪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정밀한 묘사와 꼼꼼한 기록을 앞세운 보고 문학 형식을 취하기도 했다. 이렇듯 2000년대 들어서며 울분의 기억이 조금씩 흐릿해져 가기 전까지 개인의 일상에서 더욱 분명한 역사의 편린을 읽어 내고, 공동체 속의 개인임을 자각하는 작품들이 쏟아지는 계기는 오롯이 1980년 5월 광주였다. 그러나 이제는 애써 광주를 노래하지도, 광주의 기억을 재생하지도 않는다. 한데 광주에 터를 잡고 글을 쓰는 중견 소설가 박혜강(56)이 불쑥 1980년의 광주를, 그 처절했던 기억을 고스란히 되살려 놓았다. ‘꽃잎처럼’(자음과모음 펴냄)은 무려 다섯 권짜리 장편소설이다. 소설의 첫 배경은 1980년이 아닌 1974년이고, 광주가 아닌 화순의 한 농촌마을이다. 고향 친구였던 세 청년은 공수부대원(준영), 도시 노동자(주호), 운동권 대학생(태훈)으로 커 나간다. 공수부대로 광주에 투입된 준영은 갈등과 번민으로 알코올 중독자로 전락하며, 주호는 5월 거리에서 아내를 잃는다. 태훈은 5월27일 도청에서 도망치고 만다. 실존 인물들 ‘들불야학’의 윤상원, 박관현 등의 이름이 이들의 삶 속에 교차되며 흘러간다. 소설은 1980년 5월18일부터 27일까지의 열흘 동안 벌어졌던 일들에 머무르지 않는다. 5월 광주항쟁이 일어나는 배경, 이것을 이끌어간 이름없는 주역들의 삶을 세밀한 필치로 그려낸다. 그리고 이후 대중의 힘으로 일궈낸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는 역사의 시간들까지를 큰 강물이 흘러가듯 보여 준다. ‘오월 정신’이 완료된 형태로서 1980년 광주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박혜강은 4일 “통일의 문이 활짝 열릴 때 그때 오월 광주도 비로소 일단락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5·18 전과 후 등 총체적으로 당시의 광주를 봐야 오월 정신의 지향점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혜강으로서는 험한 산봉우리 하나를 넘어선 셈이다. 그는 1980년 6월30일 중위로 제대했다. 이는 그가 1980년 5월 현장에 없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는 그가 갖고 있는 ‘오월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과 원죄의식이 아주 컸음을 의미한다. 1989년 등단한 이후 핵문제를 다룬 ‘검은 노을’, 우루과이 라운드로 황폐해진 농촌문제를 다룬 ‘안개산 바람들’ 등을 썼건만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은 결코 가시지 않았다. 박혜강은 “이 작업을 마쳐놓고 나니 이제 다른 소설도 조금은 홀가분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억은 늘 망각 또는 왜곡과 함께 등장하기 마련이다. 불편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그 당시로 묶어둔 채 몇 가지 사건의 편린, 몇몇의 인물로 전체인 듯 포장하고픈 유혹이 든다. 광주를 통째로 바라보는 박혜강의 작업이 더욱 의미있는 이유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5일 TV 하이라이트]

    ●그것이 알고싶다(SBS 오후 11시20분) 1998년 2월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지역에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지하 벙커에서 김훈 중위가 머리에 총을 맞은 채 죽어 있는 것을 소대원이 발견한다. 12년 전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김훈 중위 사망 사건의 진실을 추적하고, 12년간 진실이 왜곡되는 과정을 통해 군 수사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역사스페셜(KBS1 오후 8시) 1993년 중·소 신기전과 화차 복원을 시작으로 2008년 대신기전, 2009년 산화신기전이 부분적으로 복원됐다. 항공우주연구원(KARI) 채연석 박사팀과 함께 산화신기전이 2단 점화 후 폭발하는 실험, 중신기전의 발화통이 목표지점까지 비행 후 폭발하는 세종 당시의 신기전 모습 등을 그대로 복원하는 데 도전한다. ●찾아라! 맛있는TV(MBC 오전 11시) 면에 따라, 소스에 따라 부르는 이름과 종류, 맛 등이 천차만별인 파스타의 세계를 만나 본다. 배춧잎에 쇠고기를 돌돌말았다. 시원한 배춧잎과 가다랑어포 육수로 맛을 낸 감칠난 국물맛에 재미있는 아이디어까지, 박인규 셰프가 제안하는 우리가족 즐거운 점심식사. 국물이 끝내주는 배추말이 찌개를 맛본다. ●돌아온 판관 포청천(OBS 오후 10시30분) 전운은 이곤의 부하 단오가 경영하는 도박장을 방문한다. 전운의 도움을 받아 우죽이 계속 돈을 따자 단오는 속임수를 쓰려 하고 이를 눈치챈 전운과 충돌한다. 이때, 등주 관아의 포두 주강이 도박장으로 출동하고 이를 본 전운은 정원과 이곤의 결탁을 확신하게 된다. 한편 서겸은 정원이 초과 징수한 곡식을 발견하는데…. ●반달아, 사랑해(SBS 오전 8시45분) 환경의 날 특집 ‘반달아 사랑해’는 반달곰들이 서식하고 있는 지리산 현장을 찾는. ‘샤이니’, ‘린’ 등 인기 가수들의 축하무대와 함께 대대적인 ‘반달가슴곰 서포터스’ 발대식이 마련된다. 반달가슴곰 서포터스 가입은 무료이며, 자연환경국민신탁 및 싸이월드 미니홈피 등을 통하면 누구나 반달곰의 친구가 될 수 있다. ●수상한 삼형제(KBS2 오후 7시55분) 과자는 어영에게 빨리 애기를 가지라고 말하자 어영은 속상해한다. 이상은 어영이 임신 때문에 힘들어 하자 과자를 찾아가 애기를 못 가질 수도 있다고, 그리고 자신한테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어영은 솔이가 싸준 쑥 음식들이 임신에 좋은 것을 알고 마음 찡해진다. 한편 어영은 임신한 것 같아서 산부인과를 찾아가는데…. ●효도우미 0700(EBS 오후 5시10분) 어린 시절엔 부모를 여의고 돈을 벌며 살다가 혼기를 놓쳐 결혼을 해 본 적도, 그래서 슬하에 자식도 없는 허난이 할머니. 정부보조금 30만원으로 월세 17만원에 연료비, 의료비, 식비를 모두 충당하고 있는 할머니는 언제쯤 아픔과 가난과 외로움에서 벗어나 괴롭지 않은 삶을 살 수 있을까. 허난이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소개한다.
  • [열린세상] 중국, 하얀 고양이인가 검은 고양이인가/허증수 경북대 신소재공학 교수

    [열린세상] 중국, 하얀 고양이인가 검은 고양이인가/허증수 경북대 신소재공학 교수

    천안함 사건은 우리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던졌다. 안보체계를 다시 손질하고, 밖으로는 중국과의 좌표를 점검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한동안 중국과의 5000년 갈등의 과거를 망각한 채, 1992년 한·중 수교로 시작된 현대사의 실루엣에 젖어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과의 민족적 갈등과 외교적 마찰이 간헐적으로 반복되면서 상대적으로 중국이 우리에겐 ‘착한’ 이웃이 되어 있었다. 한국과 중국의 지리적 근접성은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계기로 양국 간의 무역과 교류를 폭발시켰다. 지난해 대 중국 수출액은 860억달러, 수입액은 540억달러였다. 수출 규모는 미국보다 2배나 많고, 일본보다는 4배가 많다. 수출로 얻은 외화 가운데 4분의1을 중국에서 벌어들였다. 한국이 중국에 직접 투자한 규모는 유럽연합(EU)이나 일본, 미국 등의 수준을 능가했다. 한국도 중국에서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존재임은 물론이다. 중국에 홍콩과 버진제도에 이어 세번째로 많은 재원을 투자하고 있다. 중국국가여유국(관광청)에 따르면 2000년엔 50만명을 넘지 못했던 중국 방문 한국 관광객이 2009년에는 300만명으로 폭증했고, 한국을 찾은 중국인 관광객 역시 100만명을 넘어섰다. 1990년대 초기만 해도 중국과 한국을 왕래하는 항공기가 일주일에 한 편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800편에 이르고 있다. 중국의 대학에 등록한 한국인 학생 수는 6만 5000명으로 중국의 외국인 학생 3명 중 1명이 한국 학생인 셈이다. 일본 유학생(1만 8572명)이나 미국 유학생(1만 4662명)을 훨씬 앞지른다. 한국에서 공부하는 중국의 젊은이도 많아 전체 유학생의 약 70%를 차지한다. 이렇게 두 국가 사이에 상호 이해가 괄목상대하게 증진되면서 한편으론 그만큼 깊은 골도 파였다. 교역의 증대는 마늘과 휴대전화 사건으로 적나라하게 노출되었듯이 크고 작은 무역마찰을 빚고 있다. 비정상적인 기술의 유출도 양국 간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대목이다. 더 큰 문제는 한국 경제의 중국 의존도 수위다. 지난해의 경우 중국과의 무역에서 320억달러의 흑자를 낼 만큼 중국에 경제적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국 경제의 급성장은 한국 경제의 위축을 우려하게 한다. 경제적인 관계의 양국 간 상호 의존성이 긴밀해졌지만 “새로운 전략적 제휴 관계”로 요약되는 한·중 간의 외교적인 틀은 한계를 갖고 있다. 최근 천안함 사건에서 다시 확인되었듯 북한과 관련된 쟁점에선 그대로 좌초되고 만다. 그뿐만이 아니다. 중국은 고구려의 역사를 왜곡하고 변질시키는 동북공정의 고삐를 한시도 늦추질 않고 있다. 그렇다고 중국을 경원시할 수는 없다. 경제적 관점에서는 물론 외교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 전략적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켜야 할 대상이다. 때로는 이웃사촌으로 유도하고, 때로는 따질 것은 따지는 관계를 적절히 구사하는 안목과 치밀한 시도가 필요하다. 남북마저 분단된 상황에서 중국과의 생산적인 긴장관계를 굴곡 없이 이어가려면 양국 간의 정서적인 이해와 신뢰가 받쳐주어야 비로소 가능하다. 궁극적으로 중국과의 농밀한 협력관계 구축은 차세대 젊은이들에게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정부의 의식이 변하고 발상이 달라져야 한다. 장기적인 비전과 과학적인 시나리오를 지금부터라도 만들어 이른바 중국통 인재그룹을 양성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국회, 해외 공관과 대학 그리고 유수한 우리 기업이 중국을 알고 중국을 헤쳐나갈 수 있는 두뇌들을 확보해야 한다. 우리 젊은이들이 중국 생활의 경험을 바탕으로 미래의 중국 지도자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중국의 명문 대학과 대학 간의 교류 프로그램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중국 경제 및 외교 분야 등에서 전문적인 식견을 터득한 전문가 그룹을 육성하도록 해야 한다. 한국 젊은 학생들도 의식을 바꿔 진정으로 중국을 배우고 알려는 자세를 추슬러야 한다. 이번 천안함 사건을 중국과의 장기적인 좌표를 다시 설정하는 소중한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국 젊은 학생들도 의식을 바꿔 진정으로 중국을 배우고 알려는 자세를 추슬러야 한다. 이번 천안함 사건을 중국과의 장기적인 좌표를 다시 설정하는 소중한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지방선거 D-15] 서울시교육감 후보 8인 인터뷰

    [지방선거 D-15] 서울시교육감 후보 8인 인터뷰

    서울시에는 1200개가 넘는 초·중·고교가 있다. 서울시교육감은 이 학교와 학생들을 돌보고 교육하며, 서울 교육의 방향을 설정한다. 한 해 주무르는 예산 규모만 6조원이 넘는다. 특수목적고·자율형사립고 지정부터 학부모 지원사업까지 모두 서울시교육청의 업무에 속한다. 학업성취도 평가를 모든 학교에서 일률적으로 실시할 것인지를 따지는 교육철학 문제에서부터 일선의 각급 학교에 영어교사를 몇 명 투입할 지 등 소소한 교육현장 문제까지 교육감이 모두 관장하는 셈이다. 이런 서울의 교육정책은 전국에서 이뤄지는 교육활동의 지침이 된다는 점 때문에 서울시교육감을 흔히 ‘교육대통령’으로 부르곤 한다. 서울시교육감 선거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떨어지지만 백년대계라는 교육의 수장을 가려낸다는 점에서 보면 어떤 선거보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번에 출마한 서울시교육감 후보들은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하나같이 교육에 대한 열정과 교육감 역할에 대한 강한 소신을 피력했다. 혼돈과 격변의 와중에 있는 서울 교육의 ‘개혁’과 ‘안정’을 이끌 후보들을 만나 소신과 포부, 정책 방향 등을 심도있게 점검했다. 인터뷰에서는 교육감의 성격과 후보 자신의 특징적 개념으로 빈 칸을 채우는 질문부터 시작했다. (인터뷰 게재 순서는 투표지 후보자 명기 순서를 따랐음.) ■ 이원희 후보 “부적격 교원 10% 퇴출할 것” “평생의 절반이 넘는 30년을 교실에서 살았습니다. 학부모의 불만, 교사의 고충,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전국 20만 교원의 지지로 첫 평교사 출신 한국교총 회장으로 뽑혔던 이원희 후보가 공약 선두에 ‘부적격교원 10% 퇴출’이란 고육지책을 들고 나왔다. 뿌리 깊은 교육계 비리를 잘라내고, 공교육을 살리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했다. 그는 “성적 조작·성추행 교사가 버젓이 강단에 서고, 능력 없는 교원이 측근을 통해 강남의 좋은 학교로 몰린다.”면서 “잘 가르치는 교사는 연봉 1억원을 주더라도 키워야지만, 무능력 교장·교감·교사는 스스로 나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총이 지난해 교육계의 ‘뜨거운 감자’로 불리던 교원 평가를 수용한 데 이어 교장 공모제, 비리 원스트라이크 아웃 같은 고강도 개혁방안을 제시한 것도 “교사들의 경쟁을 통해 공교육이 살아나야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올 수 있다.”는 그의 교육 소신 때문이다. 현 정부 교육정책의 개혁 필요성에 대해서는 ‘유아 교육의 공교육화’를 꼽은 뒤 “초등학교는 누구나 가듯이 유아 교육도 의무화시키면 젊은이들의 출산 기피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사교육에 따른 지역별, 소득별 교육격차 해소 방안에 대해서는 “60년대 섬마을 선생님은 교육자·의료인·법조인도 될 수 있었지만, 2010년 현재 타성에 젖은 교육자들이 서울 왕국이란 섬 안에 갇혀 있다.”면서 “사회와 동떨어져선 시대의 변화를 따라갈 수 없듯이 교사 스스로 경쟁을 통해 공교육 개혁을 이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우선 개혁 대상은 폭력과 음란물, 각종 사고와 불량먹을거리로부터 아이들을 지켜내겠다. 학교는 어떤 곳보다 안전해야 한다. 알몸 졸업식, 아동 성폭행 등 지난 3년간 학교 폭력 피해자만 4만명에 이른다. 지역사회와 함께 아동안전망 구축에 나서 스쿨존 사고, 급식사고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보호하겠다. ●교육비리 근절대책은 학부모 인사위원회 참여를 통한 교원 평가로 교육감에게 쏠려 있는 인사권을 통제해야 한다. 부적격 교사 퇴출 방안으로 밀실 속 라인 인사를 근절하겠다. ●교육감 선거 라이벌은 진보 단일화 대표 곽노현 후보. 세 번의 맞짱 토론을 통해 이념이 아닌 공약 대결로 유권자들도 충분히 수긍할만한 결과를 이뤄냈다. 30년 교육 경력의 현장 전문가와 법학자 출신의 인권운동 전문 교수 간의 대결이다. 글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사진 김태웅기자 tuu@seoul.co.kr ■ 남승희 후보 “특목고·자율고 확대 않겠다” 남승희 후보는 공교육 개혁 전도사인 미국 워싱턴DC 교육감 미셸 리와 비교되곤 한다. 교육부 초대 여성교육정책담당관을 거쳐 2006년부터 서울시 초대 교육기획관을 역임한 이력이 닮았다. 사무실에 걸린 ‘엄마의 마음을 압니다’라는 구호는 ‘학생이 최우선’이라는 미셸 리 원칙의 한국판일까. 남 후보는 “힘 없고 말 못하는 학부모의 힘이 되기 위해 정성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남 후보는 “미셸 리도 나중에 지지도가 많이 떨어졌지만, 개혁한 학교의 만족도는 올라갔다.”면서 “개인적으로 외로운 길이더라도 교육의 바른 방향을 위해 짐을 지겠다.”고 덧붙였다. 남 후보에게 학군별 교육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물었다. 남 후보는 “학력 격차는 지역 문제보다 복잡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노력을 격려해주는 여러 변인들이 종합적으로 모여서 만드는 것인데, 이를 단칼에 해결하겠다고 하면 교육이 점점 왜곡된다.”고 말했다. 비선호 학교의 학급당 학생수를 과감히 줄이고, 이 학교에 행정 보조교사를 배치해 교사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그는 “서울의 25개 구 가운데 재정자립도가 낮은 하위 30%를 우선 지원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가장 많은 학교를 중심으로 교육격차를 완화시키겠다.”고 말했다. 행정 경험이 많아서인지 남 후보는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진보 대 보수 선거구도에서는 약점이 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그는 “진보나 보수 세력에 업혀있지 않기 때문에 힘이 없어 보이는데, 사실은 어느 쪽에도 빚을 지지 않은 것”이라면서 “거침없이 불편부당하게 개혁할 수 있는 태생적인 힘이 있으니, 학부모발 교육혁명의 적임자가 아니겠느냐.”고 자신했다. ●최우선 개혁 대상은 평생 공부해야 하는 지식기반 사회에서 암기한 정도로 학력과 성적을 구분하는 과거지향적인 교육정책이 있다면 최우선적으로 개선하겠다. 특수목적고와 자율형사립고는 더 이상 확대하지 않겠다. ●교육비리 근절대책은 현재 4급인 감사담당관의 직급을 2~3급으로 조정하고, 비리가 적발될 경우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적용하겠다. ●교육감 선거 라이벌은 특별히 특정한 후보를 생각하지 않았다. 유권자들은 후보가 서울의 교육정책을 얼마나 경험했는지, 고민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 글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이상진 후보 “전교조 정치투쟁 사라지게 할 것” “공교육을 활성화하고 교육을 일으키려고 도로를 달리는데, 큰 돌이 하나 박혀 있습니다. 계속 가려면 돌을 치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상진 후보가 말하는 ‘큰 돌’ 가운데 하나는 전국교직원노조다. 그는 “평등주의를 주장하는 전교조는 학력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육감이 되면 전교조의 정치투쟁이 바로 사라지게 만들 것”이라면서 “교사가 교실에서 이상한 것을 가르친다는 제보가 오면 척결 방안을 만들어 시행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는 보수후보 단일화를 주도한 바른교육국민연합이 중도 교육감을 뽑는 쪽으로 변질됐기 때문에 예비후보 단계에서 단일화에 불참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바른교육국민연합을 시작한 장본인인 이 후보는 “중도는 보수와는 전혀 다른 형태”라면서 “보수의 정체성을 천명해 나가겠다.”고 했다. 그의 비판은 현 정부 정책에 대해서도 거침이 없었다. 이 후보는 “사교육비 절감 대책으로 국가에서 방과 후 교육 활성화를 들고 나왔는데, 학원을 방과 후 학교로 끌어 들인다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교육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공·사립 초중고 교장협의회 회장을 거쳐 서울시 교육위원으로 활동한 이 후보에게 서울의 학력격차를 해소하는 방안을 묻자, 교사 개혁에 초점을 맞춘 답을 내놨다. 그는 “과목별로 교사들이 도달할 수 있는 목표치를 설정해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강력한 퇴출 방안을 가동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학력 취약지구에 가급적 능력있는 교사를 배치하겠다.”면서 “현실적으로 강남에서 열심히 한 교사들이 취약지구로 가면 제대로 안 가르치는 경우도 생기는데, 이의 해결 방안도 찾겠다.”고 했다. 사교육을 완화시킬 방안과 관련해서는 IPTV에 교육 방송 채널을 여러 개 만들 계획이다. 그는 “전국 곳곳에서 이뤄지는 것을 모두 촬영해 실시간으로 전 학년 학생들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최우선 개혁 대상은 30만원짜리 사교육을 끌어들여 3만원으로 하는 방과 후 학교는 진정한 교육이 아니다. 방과 후 학교에서는 특기·적성 교육을 통해 학습 부진아들이 자기주도적인 공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비리 근절대책은 교육감과 분리된 독립기구로서의 감사관실을 운영하겠다. 교육위원회에 감사 평가기구를 설치해 감사 결과를 재감사하겠다. ●교육감 선거 라이벌은 선두를 달릴 것으로 보이는 진보 단일화 후보 곽노현 후보다. 글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사진 김태웅기자 tuu@seoul.co.kr ■ 박명기 후보 “경쟁 필요… 특목고 확대엔 반대” “교육감 후보를 진보와 보수로 가르지 맙시다. 교육자치 정신에 입각해서 좋은 정책이라면 정부 정책도 받아들이고, 학생에게 나쁘다면 무엇이든 수술하는 게 소임 아니겠습니까.” 박명기 후보는 보수 대 진보의 대결로 고착돼 가는 서울시교육감 선거구도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박 후보는 “굳이 따지자면 미래 서울시교육감에게 필요한 자질은 합리성”이라면서 스스로를 “민주개혁 후보”라고 규정했다. 그는 “12년 동안 교육위원을 하면서 상식적·합리적으로 일했다고 자부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박 후보는 경쟁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그는 “경쟁은 발전의 원동력이기 때문에 적정한 수준의 경쟁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경쟁이 한 쪽만을 향하고 오로지 학력 위주의 줄세우기식 경쟁 교육만 남은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박 후보는 “초등학생들이 캐리어책가방을 끌고 다니는 것은 해외토픽감”이라면서 “경쟁은 적절한 시기에, 일정한 방식으로, 공정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경쟁 위주의 교육정책은 학생들에게 자기 소모적인 상처만 낼 뿐 실질적인 학력향상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서 “학생들이 자기 소질과 적성을 찾고 기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의 교육철학은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글을 못 읽었지만 선생님에게 격려받던 경험, 1남1녀를 국내 일반계고에 보내며 터득한 상식, 3선 교육위원으로서 지켜본 정책에 대한 소회가 융합되어 생성됐다고 소개했다. 현 정부의 정책을 잘 알고, 정책별로 입장이 분명하다는 점은 박 후보의 강점으로 꼽힌다. 그는 초등학교 일제고사는 반대하지만, 중·고교 일제고사는 필요하다고 봤다. 고교다양화 300프로젝트와 관련해서는 마이스터고처럼 직업전문교육을 시키는 학교는 좋지만, 입시교육만 강화하는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의 확대는 매우 우려되는 일이라고 진단했다. ●최우선 개혁 대상은 특수목적고나 자율형사립고는 설립 취지에 맞지 않을 경우 일반계고로 전환하거나 폐지하는 게 옳다. 소질과 적성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으로 창의적인 인재를 기르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교육비리 근절대책은 투명성과 비리 불관용 등 2가지 원칙을 세우며, 감사관을 교육감으로부터 독립시키고 10년 임기를 보장해줘야 한다. ●교육감 선거 라이벌은 이원희 후보가 라이벌이다. 글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사진 이언탁기자 utl@seoul.co.kr ■ 김성동 후보 “문학·화학고 등 학교 다양화” 초등학교 교사, 교육청 국장, 교육과학기술부 실장, 대통령 교육비서관, 대학교 총장,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김성동 후보자의 교육 관련 약력을 소개받는데만도 한참의 시간이 걸린다. 폭넓은 현장 경험과 교육 행정력을 겸비했다는 평이 붙는 이유다. 김 후보는 교육감 재수생이기도 하다. 그는 “지금은 모든 후보가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2008년 선거 당시 청렴도 꼴찌인 서울시교육청의 개혁 문제를 주장한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나”라면서 “결국 진보와 보수, 편 가르기로 2년 동안 철저한 대가를 치른 만큼 이번에는 비리 타도, 교육 개혁을 위해 제대로 된 적임자가 나와야 된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입시 개혁 없이는 교육 개혁도 없다.”면서 대학 입시 위주의 철저한 경쟁 체제하에서 현재의 특목고, 자율(사)고 확대는 오히려 과거 입시 명문고 부활 같은 부작용이 커질 것으로 우려했다. 그는 “문학고, 수학고, 화학고처럼 모든 학교를 다양화해서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에 갈 수 있어야 ‘조앤 롤링’ 같은 창조적인 지식인이 나올 수 있다.”면서 “자율과 경쟁을 핑계로 학생을 성적 순서로 세울 것이 아니라, 독서력, 체력, 사고력 등을 갖춘 종합적인 인재를 만드는 데 교육이 투자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후보와의 차별성을 묻자 “후보 8명 가운데 가장 돈이 없다.”면서 “‘저비용 선거 선포식’을 통해 자원봉사자로 선거캠프를 꾸렸지만, 덜 쓴 만큼 당선 후에도 되돌려줄 빚이 적은 셈”이라고 말했다. ●최우선 개혁 대상은 자율(자립)형 사립고. 자율과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시대가 요구하는 창의적인 학생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대학입시에 뛰어난 기계적인 인간을 양산하고 있다. 등록금도 2배 이상 비싼데다, 자율적인 커리큘럼을 짠다는 핑계로 입시위주의 수업을 진행해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교육비리 근절대책은 교육감이나 교장 취임 때 전 직원 앞에서 청렴의무 선서를 시키겠다. 민간인을 고용해서 교육계 내부자가 감사관을 맡지 않도록 하겠다. 또 민간인이 수장인 고발 센터를 운영해 비리 제보를 상설화시키겠다. ●교육감 선거 라이벌은 이원희 후보. 평교사 출신으로 곧바로 교총 회장에 당선돼 다른 교육 행정 경험이 짧다. 반쪽 단일화로 대표성도 부족한데다가, 정치권 등 특정 세력과 야합하려는 행태를 보면 서울 교육의 CEO를 맡기기엔 부족하다. 글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김영숙 후보 “교육청을 학교 지원기관으로” 김영숙 후보 사무실 입구에 자전거 한 대가 있었다. 학교를 마음놓고 즐겁게 다닐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의미를 담아 놓았다고 했다. 김 후보의 구호는 ‘영숙아, 학교가자’이다. 덕성여중 교장 시절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만들어 유명해진 후보답게 그는 ‘공교육 강화’에 초점을 맞췄다. 김 후보도 젊은 교사 시절에는 자전거를 타고 다닌 적이 있다. 경기도 평택에 있는 고교에 근무하던 시절, 방과 후에 결석한 학생의 집까지 자전거를 타고 달려가서 기어코 학생을 학교로 데려왔다가 돌려 보냈다. 그렇게 하자 지각하거나 결석하는 학생이 사라졌다. 불가피하게 결석한 학생은 선생님이 넘어질세라 자전거가 오는 시골길을 미리 평평하게 닦아 놓기도 했다. 김 후보는 “학생들이 모두 같은 분야에서 1등을 하도록 입시 위주로 줄을 세울 게 아니라 진로와 적성을 개발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스스로를 “학교를 바꿔 성공해 본 경험이 있는 후보”라고 강조했다. 덕성여중 교장 시절, 방과 후 학교를 통해 사교육비를 3분의 1로 줄이고, 교사와 학부모 만족도를 95% 이상으로 높인 경험을 소개했다. 김 후보는 “서울의 학군별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열악한 지역에 우수교사를 배치할 수 있도록 교육감이 교사를 임의 배정하는 권한을 갖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비리 척결 방안으로는 “교육감 취임과 동시에 청렴서약을 하고, 교육청 안에 청렴TF팀을 만들겠으며, 교육청 최초로 학부모 감사관제를 도입하겠다.”고 제시했다. 33년 동안 교육 현장에 몸담은 점이 강점이라면 행정 경험이 부족하다는 점은 김 후보의 약점으로 꼽힌다. 이와 관련, 김 후보는 “누구보다 학생·학부모·교사의 입장을 잘 알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관료 조직과는 연과 빚이 없는 깨끗한 사람이 교육행정에 경쟁력을 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우선 개혁 대상은 서울시교육청과 11개 지역교육청을 학교 교육활동 지원기관으로 바꾸겠다. 교육청에 교사·학생·학부모를 위한 지원센터를 만들겠다. 교육청 고위직 공무원 30%를 개방형 직위로 임용하겠다. ●교육비리 근절대책은 촌지를 포함해 비리와 연루된 교직원과 교육청 명단을 공개하고 자격을 박탈하겠다. 교원의 자질을 5년 주기로 점검해 재교육과 연수를 시키겠다. ●교육감 선거 라이벌은 모든 공약에서 선명한 대척점에 서 있는 곽노현 후보다. 글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사진 김태웅기자 tuu@seoul.co.kr ■ 곽노현 후보 “점수 경쟁 반대·국제中 재검토” 곽노현 후보는 초·중·고교 교직 경력이 전무하다. 방송통신대 법학과 교수인 그는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을 지냈다. 이런 곽 후보가 교육감 선거에 나선데는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의 부탁을 받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제정 자문위원장으로 활동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런 인연으로 곽 후보는 지난 10일 경기도 김상곤 후보, 인천 이청연 후보와 ‘학생인권조례 제정 등 학생인권신장 정책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곽 후보는 “공부 잘하는 20%를 뺀 나머지 학생들을 모두 포기하는 교육은 공교육이 아니다.”라면서 “학생들이 교과서에서만 민주주의와 인권을 배우고, 몸으로는 인권 대신 폭력·통제·간섭·차별 등을 느끼며 ‘복지 없이 잇몸으로 사는 법’만 배운다면 우리 사회의 미래가 꽃필 수 없다.”고 했다. 곽 후보는 ▲경제력과 학력 대물림을 끊는 희망교육 ▲학생 누구도 포기하지 않는 책임교육 ▲21세기에 맞는 혁신교육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획일적인 기준을 맞추기 위한 무한 점수경쟁이 극한까지 갔다.”면서 “특수목적고와 같은 특권 교육 정책과 수능성적 공개에 따른 학교 줄세우기가 점수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지금 필요한 교육은 창의성 교육이며, 수업방식을 혁신하고 일제고사식 평가가 아닌 과정 중심의 서술형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진보 단일화 후보인 곽 후보는 현 정부와 대척점에 서 있음을 분명히 했다. 곽 후보는 “외국어고와 자율형사립고의 확대를 금지하고, 자율고의 경우 입학기준을 낮추겠다. 초등학교 사교육을 유발시키는 국제중은 전면재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대신 25개 구별로 12개씩 서울형 혁신학교 300개를 신설하겠다. 학생의 적성과 필요에 따른 맞춤형 책임교육을 실시하고, 토론·협력형 수업을 확대해 과정 중심의 질적 평가를 하게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최우선 개혁 대상은 현 정부의 경쟁만능교육, 특권교육 정책에 반대한다. 특목고·자율고·국제중 등 특권학교 확대 정책을 재검토하고, 일제고사·수능 성적 공개에 따른 줄세우기 정책을 없애겠다. ●교육비리 근절대책은 교육행정의 투명성과 개방성을 높이겠다. 교육청 내에 공익제보센터를 설치하는 등 조직의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겠다. ●교육감 선거 라이벌은 보수 단일화 후보인 이원희 후보와 정책적 경쟁이 필요하다. 글 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사진 김태웅기자 tuu@seoul.co.kr ■ 권영준 후보 “공립형아카데미로 사교육 해결” “사교육이 없으면 김연아도, 박태환도 없다.” 사교육 거품을 뺄 묘안이 있느냐는 질문에 권영준 후보는 오히려 역공을 취했다. 국제경영학 전공 교수로, 경실련 경제정의연구소 소장을 지낸 그는 사교육을 타도 대상이 아니라 공교육의 또 다른 대안으로 보고 있는 셈이다. 권후보는 “사교육의 50%가 거품이다. 임대료와 가맹점 비용을 빼면 학부모 부담은 40%가 줄고, 교사 연봉은 10%가 오른다.”면서 “군포 국제교육센터(GGC)처럼 지자체와 교육청이 나서 공립형 아카데미를 만들고, 사회혁신 기업을 들여와 교육의 질을 높인다면 공교육의 질 저하와 사교육비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감 교육’ 주창자인 그는 “위대한 헬렌 켈러 뒤에는 40여년간 그를 지켜봐준 셜리번 선생님이 있었다.”면서 “정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최근 문제가 되는 교원 단체 명단 공개에 대해서는 “일부 편향된 종북주의적 가치관을 가르치는 사람을 제외한다면,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전교조 교사들은 오히려 지원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대학교수 외에 일선 교육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과 관련해서는 “초중등 교육계에 오래 몸담은 사람만이 반드시 서울 교육의 수장이 될 필요는 없다.”면서 “경영 전문가로, NGO 출신 사회혁신 운동가로 교육 개혁의 신호탄을 이끌 수 있는 선구자가 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이어 자신의 교육 소신을 한마디로 정의해달라는 주문에 권 후보는 “250년 전, 한평생 일관된 신념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해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이뤄낸 윌버포스 같은 소신있는 교육개혁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최우선 개혁 대상은 포괄적 의미의 교육에서 인터넷 음란물과 폭력 게임에 중독된 청소년을 버려두는 게임산업진흥법을 총체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사교육의 노예로 놀거리가 없어진 아이들이 포르노물을 탐닉해 혜진, 예슬이 사건을 일으키고, 또 다른 조승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교육비리 근절대책은 부패방지본부를 설치해 검찰청의 부장검사를 파견·임용하겠다. 검찰청 안의 깨끗하고 소명 있는 사람을 뽑아서 교장·교사 등 교직원 비리척결 임무를 맡기겠다. 또 ‘학교 신문고’ 제도를 운용, 비공개 비리제보 제도를 상설화하겠다. ●교육감 선거 라이벌은 공정택 반사 효과를 보는 곽노현 후보다. 글 최재헌기자 goseoul@seoul.co.kr 사진 정연호기자 tpgod@seoul.co.kr
  • “마오기념관은 중국의 야스쿠니”

    │베이징 박홍환특파원│“‘마오쩌둥(毛澤東) 기념관’은 ‘학살 기념관’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 중국의 야스쿠니 신사다.” 타이완 급진 선동가의 발언이 아니다. 중국 수도 베이징의 역사교사 위안텅페이(袁騰飛·38)가 강의에서 쏟아내는 마오 및 중국 근현대사에 대한 독설이 중국을 들쑤셔 놓고 있다. 베이징 하이뎬(海淀)구에 위치한 징화(精華)학원의 교사 위안은 ‘문화대혁명’에 관한 110분짜리 온라인 강의에서 ‘신’처럼 떠받쳐지는 마오와 중국 역사교과서에 날선 비판을 퍼부었다. 위안은 “마오 기념관에 갈 수는 있지만 그곳이 국민들의 피를 손에 묻힌 학살자가 숭배받고 있는 중국의 야스쿠니 신사라는 것을 잊지 마라.”면서 “마오가 1949년(신중국 건국) 이후 유일하게 잘한 점은 죽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또 “중국 역사교과서에서 진실은 5% 정도밖에 안 될 것”이라면서 “오히려 일본의 역사교과서가 중국보다 덜 왜곡됐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수백만명에 이르는 강의 시청자는 대부분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들이다. 위안은 지난해 7월부터 한 달간 관영 중국중앙방송(CCTV)의 유명 강의 프로그램인 바이자장단(百家講壇)에서 북송과 남송시대의 역사강좌를 맡으면서 유명세를 탔다. ‘가장 화끈한 역사교사’라는 별명도 붙었다. 역사교과서 편찬 및 대입시험 출제위원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위안이 자신의 저서를 팔기 위한 홍보수단으로 독설을 쏟아내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위안의 최근 세 번째 저서 ‘중국 고대사’는 출판권 분쟁에 휘말렸다. 이미 출간한 두 권의 책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 티베트 관련 발언도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다. 위안은 “시짱(西藏·티베트)은 신중국 건국 이후 지금까지 반(半)독립 상태이고 국기도 있다.”면서 “달라이 라마가 노벨상은 탄 것은 중국의 침략에 대항했기 때문”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이에 따라 위안이 지금까지는 표현의 자유를 구가했지만 민감한 문제들을 건드려 논란이 된 이상 곧 중국 당국의 제재가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관측도 나오고 있다. stinger@seoul.co.kr
  • [지방시대] 창원에서도 이휘소 같은 천재가/민병기 창원대 국문학 교수

    [지방시대] 창원에서도 이휘소 같은 천재가/민병기 창원대 국문학 교수

    필자가 있는 곳은 창원이다. 동북아기계산업도시 간 공동발전과 교류협력을 위해 창원시가 결성을 주도한 움카(UMCA, 동북아기계산업도시연합) 본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움카는 현재 4개국 12개 도시가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창원 이외에 안산, 포항, 시흥시가 가입해 있다. 해외에서는 러시아의 콤소몰스크나아무레, 일본의 오가키·우베시, 중국의 웨이난·웨이하이시 등 5개 도시가 회원도시이다. 움카는 1년에 한 차례씩 번갈아가며 회의를 열고 있다. 지난해에는 안산에서 무역상담회를 가졌다. 서울공화국이라 불릴 정도로 수도권 집중현상이 심한 우리나라에서 기초지자체가 열성적으로 지역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국내 기초지자체의 경우, 해외에 비해 차별화된 지역발전 전략은 다소 부족해 보인다.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지역 특산물을 앞세워 축제를 개최하기 일쑤 아닌가. 모름지기 지역발전은 그 지역의 역사적 특성과 입지적 특징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모색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창원은 나름대로 성공하고 있다. 창원은 국내의 대표적인 산업도시다. 창원에는 GM대우를 비롯해 자동차, 기계제조, 전자, 철강 등 다양한 산업체들이 많다. 요즈음 청소년들의 장래희망은 과학자보다는 연예인, 스포츠선수 등이 많다고 한다. 과거와는 많이 다른 현상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실정에서 지자체마다 과학 꿈나무 교실 개최 등 다양한 과학 영재 발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다행이다. 얼마 전 교육과학기술부에서도 국가 과학자를 5명씩 선정, 예산을 한 사람당 연간 5억원에서 15억원씩 지원하며 과학기술계 격려에 나섰다. 올해뿐만 아니라 내년에도 이같은 국가 과학자 선정 및 지원제도가 이어졌으면 한다. 이 같은 지자체나 중앙정부차원의 노력과는 별개로 각 대학사회 및 언론기관에서도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고 이를 알리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지난 주말에 한국방송공사(KBS)가 과학의 달을 보내며 특집 다큐물로 ‘이휘소의 진실’을 방영했는데 시의적절했다고 본다. 1990년대 인기가 높았던 소설과 영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때문인지 그의 실체가 왜곡되었다. 동명의 이름을 가진 소설과 영화 속에 실명 인물들이 많이 나와서, 독자·관객들은 픽션의 내용을 사실로 착각할 가능성이 많다. 그런 픽션적 오류를 바로잡는 데 다큐 ‘이휘소의 진실’은 많은 도움이 됐다고 본다. 더욱이 우리나라의 많은 어린이들이 이휘소를 모델로 삼아 과학자를 꿈꾸고 동경하도록 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프로였다. 필자는 창원과 같은 지방도시에서도 이휘소 같은 천재 과학자가 배출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려면 과학교육 방송의 비중이 커져야 한다. 이와함께 지역의 대학들도 과학 영재 육성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창원대학에는 영재교육 센터가 개설되어 있다. 이 영재교육 센터를 더 활성화시켜 보다 더 많은 과학꿈나무를 대학이 육성할 수 있어야 한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