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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년만에 이승만 동상… 보·혁 갈등

    51년만에 이승만 동상… 보·혁 갈등

    51년만에 서울 남산에 다시 세워진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을 놓고 보수와 진보 단체가 갈등을 빚고 있다. 보수 진영은 “대한민국 역사를 바로 잡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진보 진영은 “역사를 왜곡하는 일”이라고 맞서는 형국이다. 한국자유총연맹은 25일 오전 서울 중구 장충동 자유총연맹 광장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 동상 제막식을 가졌다. 행사에는 박희태 국회의장과 이홍구 전 국무총리, 캐서린 스티븐스 주한미대사 등이 참석했다. 이 전 대통령의 동상은 남산 분수대 자리에 위치해 있다가 지난 1960년 4·19혁명으로 철거됐다. 이후 51년 만에 남산 자락에 있는 자유총연맹 광장에 건립된 것이다. 동상은 높이 3m, 폭 1.5m의 청동으로 제작됐고, 기단부는 2m 20㎝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박창달 자유총연맹 회장은 제막식에서 “이 전 대통령은 헌정질서를 만들고 북한의 침략에서 나라를 구했다.”면서 “이 전 대통령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진보단체들은 “이 전 대통령의 동상 건립은 역사를 왜곡하고 독재자를 비호하는 일”이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사월혁명회와 민족문제연구소 등 11개 단체회원 100여명은 자유총연맹 정문 앞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가진 뒤 스티로폼으로 만든 이 전 대통령 동상을 부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은 “단순한 동상 건립이 아닌 뉴라이트세력의 역사 왜곡”이라면서 “최근 일부 보수학자들이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 옹호와 같은 맥락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서중석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역사 재평가 작업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하는데 최근에 보수 쪽에서 밀어붙이는 경향이 있다.”면서 “나라의 근간을 만드는 작업인 만큼 시간을 두고 논의를 해야한다.”고 말했다. 김동현기자 moses@seoul.co.kr
  • [사설] 민심 새겨 복지를 새롭게 고민하라

    서울시의 무상급식 투표가 투표함을 열지도 못한 채 무산됐다. 개표 요건인 투표율 33.3%를 넘지 못해 개표 절차에 들어가지 않고 모든 상황이 종료됐다. 2011년 서울의 여름을 뜨겁게 달군 ‘식판전쟁’이 일단 막을 내렸다. 하지만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투표 정국이 걱정스러울 만큼 왜곡된 모습으로 전개된 데다 여야와 보수·진보단체 등으로 양분된 찬반 진영이 선거판을 엉뚱하게 키워 엄청난 후유증이 예상된다. 정치권이 이를 치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아전인수식 해석으로 정쟁을 확대 재생산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모두 서울 시민의 선택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복지를 새롭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번 투표는 서울시민을 대상으로 한 주민투표다. 한쪽이 얻고, 다른 쪽이 잃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바람직한 학교 급식 방식을 서울시민에게 물어서 결론을 얻기 위해 서울시가 발의한 것이다. 여러 복지 정책의 한 부분일 뿐이다. 이런 정책 투표이자 지역 투표가 정치 투표, 전국 투표 양상으로 왜곡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우선 오세훈 시장의 책임이 크다. 정책 투표에 시장직을 거는 정치적 승부수를 띄워 본질을 흐렸다. 서울 시민들은 이번 투표를 앞두고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서울시 살림이란 지역 문제에 국한된 것인지, 국가 재정이란 나랏일 차원으로 이해해야 하는 것인지 경계가 애매모호했다. 그 출발점은 오 시장과 곽노현 교육감의 소통 부재다. 양측은 결국 정답 없는 문제를 서울 시민에게 내던지고 답을 강요한 셈이다. 정치권은 정략적인 접근으로 왜곡을 더 키웠다. 주민투표에 중앙당이 개입한 것도, 총력전을 편 것도 방법론에서는 위험한 시도였다. 모두가 편 가르기를 반성하고, 복지 논쟁을 정상의 궤도로 되돌려 놓아야 할 때다. 한나라당은 지난 18대 총선의 경우 서울에서 전체 선거인의 18.1%를, 유효 투표 수의 39%를 얻어 압승했다. 이번 투표에 응한 유권자 대다수가 서울시안에 찬성 입장일 가능성이 높은 점을 감안하면 한나라당 지지는 결코 줄었다고 보기 어렵다. 여당은 패배로, 야당은 승리로 보는 이분법적 접근은 무리한 발상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나라당이 사실상 승리했다고 주장하는 것도, 민주당이 역사적 전환점이라고 부풀리는 것도 서울 시민의 민심을 꿰뚫어 보지는 못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깨끗이 결과에 승복해야 하고, 오 시장의 사퇴와 관련된 ‘꼼수’를 부리려 해서도 안 될 것이다. 민주당 등 야권 역시 서울시정과 정국 혼란을 최소화하는 데 적극 협조해야 한다. 이번 투표를 계기로 복지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화두로 굳어졌다. 과열된 투표 정국은 역설적으로 온 국민이 복지에 관심을 쏟게 만들었다. 정치권에는 내년 총선·대선 전략으로 포기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슈가 됐다. 국민의 뜻은 서울 시민의 표심을 통해 표출됐다. 국리민복이라는 국정의 큰 틀에서 복지정책을 펴라고 엄중히 주문했다. 한나라당이 반(反)복지를 하자는 것도 아니며, 민주당이 재정파탄 복지를 바라는 것도 아닐 것이다. 정쟁용 복지가 아니라 재정건전성 복지, 미래형 복지를 진지하고도 치열하게 모색하길 바란다.
  • [이대통령 8·15 경축사] 한일관계-“日 역사교육 똑바로 하라”… 독도 언급 없어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8·15 경축사에서 독도·동해 문제를 직접 언급하는 대신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강조하는 것으로 일본의 역사적 책무를 부각시켰다. 이 대통령은 “우리는 미래를 위해 불행했던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며 “하지만 지난 역사를 우리 국민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래로 가되 과거 잊지 않겠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와 관련, “이전의 경축사가 ‘불행한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데 방점이 놓여 있었다면, 이번 경축사는 ‘미래로 나아가되 과거를 잊지 않겠다’로 어순이 바뀌어 있다.”면서 “바로 이 대목이 이 대통령이 일본에 던지는 메시지”라고 설명했다. 한·일 관계가 과거에 얽매이면 미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독도·동해 문제 등 지난 역사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도 다시 한번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경축사에 ‘독도’를 직접 언급하지 않은 데 대해 김두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대통령이 그동안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충분히 의지를 밝혔고, 일본 측에 역사 교육을 바로 하라는 언급에 독도 얘기가 숨어 있는 것”이라며 “독도 문제는 일본 의원 몇 명, 일부 세력이 부추기는 것이고, 대통령이 독도 문제를 정면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김 수석은 이어 “그래도 우리 영토주권이 침해된다면 지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한다는 정부 방침에 변함이 없다.”며 “대한민국 대통령은 우리 영토 어디든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것이 원칙이고, 상황·시기·일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 언제든 독도 갈 수 있어” 한·일 관계의 미래와 관련, 이 대통령은 미래 세대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일본에 촉구했다. “일본은 미래 세대에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책임이 있다.”며 “그렇게 함으로써 한·일 양국의 젊은 세대는 밝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왜곡된 역사를 담은 교과서를 확산시키는 것은 일본의 미래 세대에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뿐 아니라 한·일의 젊은 세대가 함께 만들어 갈 양국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공생발전’ 시장경제 진화 강조, ‘균형재정’ 복지 포퓰리즘 제동

    ‘공생발전’ 시장경제 진화 강조, ‘균형재정’ 복지 포퓰리즘 제동

    이명박 대통령은 15일 “오늘 편하자고 만든 정책이 내일 우리 젊은이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짐이 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는 복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에 대한 정치권과 사회의 각성을 촉구했다. ●2013년까지 ‘균형재정’ 이 대통령은 오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66주년 광복절 기념식에 참석, 경축사를 통해 “정치권의 경쟁적인 복지 포퓰리즘이 국가부도 사태를 낳은 국가들의 전철을 밟아선 안 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2008년 금융위기 때 우리가 남들보다 잘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재정이 건전했기 때문”이라며 “제 임기가 끝나는 2013년까지 가능하다면 균형 재정을 달성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그러면서 “재정이 고갈되면 복지도 지속할 수 없다. 잘사는 사람들에게까지 복지를 제공하느라 어려운 이들에게 돌아갈 복지를 제대로 못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균형 재정을 추진하는 가운데서도 맞춤형 복지와 삶의 질과 관련된 예산만큼은 늘려나가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우리 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한 화두로 ‘공생발전’을 주창했다. 이 대통령은 “오늘 분명히 우리가 인식해야 할 것은 기존의 시장경제가 새로운 단계로 진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라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공생하기 위한 새로운 시장경제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본의 잇단 독도 도발로 악화된 한·일 관계에 대해 이 대통령은 “우리는 미래를 위해 불행했던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지난 역사를 우리 국민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특히 교과서 왜곡과 관련, “일본은 미래세대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칠 책임이 있다.”면서 “그렇게 함으로써 한·일의 젊은 세대는 밝은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中企 공생할 모델 필요 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대해서는 “‘평화와 협력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책임 있는 행동과 진정한 자세로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언급, 북한에 대해 조속히 전향적인 자세로 전환할 것을 주문했다. 이 대통령은 또 고교 졸업생의 취업 문호 확대를 위해 ‘선취업·후진학’의 기회를 더욱 넓히겠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위해서는 곧 종합적인 비정규직 개선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허남주칼럼] 어머니를 울리지 말라

    [허남주칼럼] 어머니를 울리지 말라

    아들을 군대에서 잃은 어머니가 말한다. “자살이라도 가혹행위 때문이라면 그것은 타살이다.” 더욱이 용렬(庸劣)이란 불명예까지 덧씌워진 것은 두번의 죽음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군대 내 자살을 몇몇의 허약한 이 시대 청년의 문제로 돌려선 안 된다는 사실은 통계가 말해준다. 2004년 이후 지난해까지 군대에서 사망한 병사는 884명, 평균 3일에 1명꼴이다. 그중 자살은 사망원인 1위로 절반을 차지한다. 군대 내 자살이나 총기사고는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2005년 여름에도 총기난사 사건으로 8명의 병사들이 죽었다. 당시 정부는 군대 내 폭력의 존재에 화들짝 놀란 듯 선진국 군을 벤치마킹할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오늘날도 똑같은 일이 되풀이됐다. 조사과정에서 적잖은 가혹행위의 증거를 찾아냈다 한다. 되풀이되는 일은 우연한 실수가 아니다. 이제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시점에서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군인의 지위에도 법정주의를 도입, 군인의 기본권도 침해돼선 안 된다는 사실을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국방의 의무로 징집된 병사의 경우 ‘군인복무규율’에 의무가 세세하게 규정되어 있지만 여기에 권리는 밝혀져 있지 않다. 상관의 포괄적이고 광범위한 권력을 정당화하고, 하급자에게는 의무만을 권장·강요하는 군대의 특수권력관계가 헌법에서 정한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국가안보를 위해 군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지만 그 수준을 정확하게 밝혀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 2005년 ‘국민인권의식조사’에 따르면 군대의 인권침해는 96%로 교도소 등 구금시설(94.1%)보다 더 높다는 사실은 차라리 끔찍하다. 또 구타와 가혹행위 등의 폭력은 언제, 어디서든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해야 한다. 남성들 간 성적인 가혹행위 역시 범죄라는 사실을 교육해야 하고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 더욱이 피해자가 오히려 경멸당하고 가해자가 남자다운 인물로 영웅시되는 군대의 왜곡된 문화를 바꿔야 한다. 이는 여성이 피해자가 되는 여느 성범죄와도 유사한데, 군대나 남자로 대별되는 폭력적인 문화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더 이상 ‘군대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과거 잣대로 청년들을 억누르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군내부의 문제는 그 폐쇄성이 원인이다. 폐쇄적이므로 숨겨졌던 문제는 사라지지 않은 채 팽창하다가 결국 폭발하고 만다. 타이완의 예처럼 외부 인권전문가로 구성된 인권위원회를 설치, 가혹행위가 있을 경우에는 반드시 전화상담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 독일식 국방옴부즈맨제도로 불리는, 선진국에서 활용하는 제도가 대안이 될 수도 있다. 병사는 직접 국방옴부즈맨에게 문제를 알릴 수 있어야 하고 절대로 불이익을 받지 않아야 한다. 이때 비밀보장을 지속적으로 병사들에게 알리는 것까지도 규정해야 한다. 분명하게 밝혀둘 것은 자살 역시 또 하나의 폭력이란 사실이다. 분노가 폭발할 때 칼끝이 자신을 향한 것, 그것이 바로 자살이다. 그러므로 군대 내 자살 예방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폭력을 없애는 것이 관건이다. 폭력이 폭력을 낳고, 폭력적 군대문화가 우리 사회의 폭력지수를 드높이고 있음을 이제는 더 이상 불편한 진실로 못 본 체하지 말아야 한다. 올여름 질리도록 비가 내렸다. 1980년 그해처럼 긴 장마였다는 올여름의 비는 그 어머니들의 눈물 같다. 나라를 위해 몸바친 아들은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으로 남지만 결코 분노는 남기지 않는다. 이 민족의 녹록지 않았던 역사를 누구 탓으로 돌릴 것이냐고 국립현충원을 찾은 백발의 어머니는 말한다. 하지만 억울한 죽음은 다르다. 구타와 가혹행위는 물론 성폭행까지 당한 굴욕감에 죽어간 아들을 어머니가 어떻게 잊을까. 더 이상 어머니를 울리지 말라. 이 땅에서 아들을 억울하게 잃고, 평생 분노의 삶을 사는 어머니는 없어야 한다. 더 이상 어머니를 울리지 말라. hhj@seoul.co.kr
  • 돈이 없어서… 무대 못오른 위안부 연극

    돈이 없어서… 무대 못오른 위안부 연극

    “제가 가난한 연극쟁이라서 공연을 계속 잇지 못하는 게 한스러울 뿐이죠.” 일본군 종군위안부의 분노와 상처를 담은 극단 나비의 연극 ‘나비-Comfort Women’은 2009년 8월 16일 대학로 소극장 공연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이 연극은 2005년 “일본이 (위안부에 대해) 공식 사과를 할 때까지 계속 공연하겠다.”며 초연에 들어갔지만 그 약속은 끝내 지키지 못했다. 제작비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일본 무대에도 올리겠다던 목표도 함께 접어야 했다. 연출을 맡은 극단 나비의 방은미(52) 대표는 연극을 새로 올릴 때마다 저작권을 가진 미국의 기획사와 저작권 관련 협의를 해야 했고, 회당 수백만원의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했다. 또 대학로 공연장에서 1개월 공연하는데 대관료, 연습진행비, 개런티, 무대제작비 등 최소 1억원 이상을 투입해야 했다. 그러나 ‘나비’가 대중성이 낮은 연극이었던 탓에 흥행에는 참패, 공연 수입만으로는 제작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결국 연극은 막을 내렸고, 그 후 2년의 세월이 흘렀다. 최근 방 대표는 이 연극을 되살릴 희망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나비처럼 일본 위안부 문제를 직접 다룬 새로운 작품을 자체적으로 제작하기로 하고 대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작품은 내년 8월쯤이면 무대에 올릴 수 있을 전망이다. 방 대표는 “제목이 ‘나비2’가 될 이번 작품도 위안부 할머니들의 분노와 한, 상처 등을 통해 일본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고, 그들이 저지른 전쟁범죄의 잔혹상을 고발하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앞으로도 이 시대에 필요한 연극을 계속 만들어 나가겠다.”고 포부를 밝힌 그는 “정부와 기업의 관심이 있으면 더 훌륭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을텐데….”라며 돈 때문에 문화가 위축되고 역사가 왜곡되는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이영준기자 apple@seoul.co.kr
  • [이제는 공공외교다] 유럽서 느낀 일본문화

    [이제는 공공외교다] 유럽서 느낀 일본문화

    독일 남부 하이델베르크 역사에 있는 서점에 들어가면 한쪽에 일본 망가 번역본이 별도 칸에 빼곡하게 진열돼 있는 걸 볼 수 있다. 독일어로 번역된 일본 망가를 펼쳐봤다. 책 자체도 일본식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도록 편집해 놓았다. 일본 문화 대표상품인 망가의 인기는 남미의 브라질 최남단 포르투알레그레에서도 느낄 수 있다. 시내 광장 곳곳에 있는 가판대에서 포르투갈어로 번역된 일본 망가를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지금도 여전히 ‘일본은 있다’. 언제부턴가 한국에서는 일본을 ‘지는 나라’ 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1990년대 ‘일본은 없다’가 도발적인 주장이었다면 2000년대엔 알게 모르게 상식처럼 돼 버렸다. 하지만 외국에서 조금만 지내 보면 그 ‘상식’이 사실은 ‘몰상식’이라는 것을 별로 힘들이지 않고 깨달을 수 있다. 문화적 자부심이 넘쳐나는 유럽에선 그것을 더욱 더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최근 들어 유럽에 상륙한 몇몇 아이돌그룹의 열풍에 온 나라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 있는 ‘한류’에 비해 이미 19세기부터 유럽 중심부에서 열풍을 일으켰던 ‘자포니즘’, 이른바 ‘일류’(日流)는 지금도 차분하게 유럽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에서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일본어 전공자 넘쳐 취업난 헝가리에는 일본어 가이드 자격증을 가진 헝가리인이 15명이 넘는다. 최근 들어 한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 한국어 가이드 자격증을 가진 헝가리인은 없다. 헝가리 최대 명문대인 엘테대 한국학과 초머 모세 교수가 “일본학과보다 한국학과가 취직에 유리하다.”면서 밝힌 이유는 중부유럽에서 일본과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본학과 졸업생은 취직하기가 힘듭니다. 1970년대 일본학과가 생겨서 지금은 일본어를 잘하는 사람이 이미 너무 많거든요. 한국학과는 2008년 처음 생겼고 올해 첫 졸업생을 배출합니다. 헝가리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올해 첫 한국학과 졸업생들을 스카우트하려고 경쟁할 정도로 수요가 많습니다.” 엘테대 동아시아 도서관은 한국어 장서를 약 3만권 보유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관련 소장도서 규모를 묻자 사서는 “각각 30만권가량”이라고 답했다.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 위치한 일본문화원에서 만난 다케우치 사와코 원장은 “이곳은 유럽과 아프리카 주재 일본문화원의 구심점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서도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일본문화원 전체 예산의 10%가량을 일본 재계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다케우치 원장은 “게이단렌은 회원기업들이 추렴한 돈으로 기금을 만들어 우리 문화원을 지원한다.”면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이라는 면도 있지만 문화외교가 결국 기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잘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일본 문화의 저력은 바다 건너 남미에서도 절감할 수 있다.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이성형 HK교수는 지난해 국회입법조사처 간담회 발표를 통해 “중남미 문인들은 일본풍에 대해 약간 경이로운 시선으로 접근한다.”며 일본 문학이 차지하는 위상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하이쿠(俳句·일본 전통시 양식)는 이곳 시인들이 즐겨 차용하는 시 양식이다.”면서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설국’의 모티브에 매료되어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을 쓰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럽에서 일본 문화가 유행한 것은 17세기 일본도자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867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2차 만국박람회를 전후로 유럽에선 일본 문화 열풍이 불었다. ‘자포니즘’이란 용어까지 등장했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인 클로드 모네, 에두아르 마네, 에드가 드가, 피에르 르누아르, 폴 고갱 등이 모두 일본 풍속화에 심취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친동생에게 “내 모든 작품은 일본 미술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 문화는 전세계에서 사랑받는다. 망가나 게임은 물론이고 스시, 사케 등 종류도 다양하다. 일본 문학계도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두 명이나 배출했다. 일본 문화청은 문화교류사 제도를 통해 해마다 분야별로 교류사를 뽑아 해외로 내보내거나 해외에서 활동하는 문화인사들을 교류사로 임명한다. 교류사들은 활동을 마치고 경험을 보고서로 작성해 발표하는데 이는 문화청 장관이 직접 주재하는 중요행사이다. ●‘자포니즘’ 한류보다 수백년 앞서 일본 문화가 유럽에서 아무 거부반응 없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건 아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중국학과 안나 발터(여)는 일본 문화에 대한 호감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대하는 것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일본이 왜 과거사 청산에 소극적이고 역사왜곡을 계속하는지 납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청산하지 못한 과거사는 아시아에선 더 예리하게 일본에 대한 근원적인 반감으로 작용한다. 1990년대 아무로 나미에 같은 아이돌이나 드라마가 아시아를 열광시키고 대형 기획사가 베트남과 베이징 등지에서 직접 오디션을 실시하는 등 한때 반짝했던 일본 대중문화가 빛을 잃어버리는 데 한 원인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 사진 부다페스트·하이델베르크 파리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사설] EBS 편향역사 강의 스스로 걸러내라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의 좌편향 서술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남북 분단의 책임이 남한에 있는 듯이 기술하는가 하면 김정일 권력 세습에 대해 ‘계승’ ‘후계’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올해 새교과서는 근현대사 비중이 전체의 80%에 이르는 만큼 북한에 대한 서술도 크게 늘었다. 그런데 이처럼 왜곡된 역사에 학생들이 무방비로 노출돼 있으니 차라리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소리가 나오는 것 아닌가. 이젠 근현대사 교육에 방송까지 가세해 왜곡을 부채질하는 수난까지 겪고 있다. EBS(한국교육방송공사)가 그 진원이다. “북한은 미국의 식민지인 남한을 해방시키기 위해 여전히 투쟁해야 한다는 식의 식민지 해방론의 입장에 계속 있거든요.” “군대가 빨갱이를 골라낸다는 명분으로 너무나도 많은 무고한 여수·순천 시민들을 죽여요.” EBS의 인터넷 수능특강 ‘한국근현대사’ 강의의 한 대목이다. 강사는 현직 사립고 교사로 방송에선 꽤 인기가 있다고 한다. 이런 ‘외눈박이’ 의식으로 교실에서, 또 방송에서 청소년에게 역사를 가르친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EBS는 이 강의를 홈페이지에 올리고 수능교육 전문채널인 EBS플러스1을 통해 방영하기도 했다. 우리는 엄중히 묻는다. 언필칭 공영방송을 강조하는 EBS는 과연 ‘공영’이란 말을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가. 지식채널 운운하며 차별화를 내세울 명분은 있는가. EBS가 진정 싸구려 인터넷 수능장사 방송이 아니라면 더 이상 균형감각을 잃은 저열한 내용을 강의라는 이름으로 내보내선 안 된다. 강사를 포함한 제작 관련 당사자에겐 응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최근엔 해군사관학교에서마저 김일성 주체사상을 가르쳤다는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위협하는 외골수 이념꾼들이 곳곳에서 판치고 있다는 얘기다. EBS는 이번 근현대사 왜곡 강의 파문을 일개 강사의 인기몰이 사건으로 가볍게 봐 넘겨선 안 된다. 강사진에 대한 전반적인 점검과 함께 부적절한 강의 내용을 속속들이 가려내야 한다. 조그만 개미 구멍 하나가 큰 둑을 무너뜨린다. 이 시점에서 EBS가 꼭 명심해야 할 말이다.
  • [김문이 만난사람] ‘한민족사 대학’ 추진 ‘라이파이’ 만화가 김산호 화백

    [김문이 만난사람] ‘한민족사 대학’ 추진 ‘라이파이’ 만화가 김산호 화백

    만화 ‘라이파이’를 아시나요. 검은 테의 안경을 쓰고 머리에 ‘ㄹ’자가 새겨진 반달 모양의 두건을 썼다. 날씬한 몸매에 멋진 옷을 입었다. 태백산맥의 깊은 산속 동굴에 비밀기지를 두고 윤박사가 설계한 멋진 비행선 제비호를 타고 아름다운 제비양과 세계 각국을 돌아 다닌다. 그러면서 세계 평화를 깨뜨리는 악당들과 용감하게 싸우고, 광선총과 긴 밧줄로 모험을 벌이는 장면은 단연 압권이다. 특히 ‘한국산 전사’였기에 대리만족의 통쾌함까지 느껴져 그 열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정의의 사자 라이파이’ ‘피너3세와 라이파이’ ‘녹의 여왕 라이파이’ ‘십자성의 신비와 라이파이’ 등 1959년부터 1962년까지 4부작 총 32권이나 발간됐으니 말이다. 이 만화는 한국 최초의 SF 만화라는 데 큰 의의를 담고 있으며 지금까지도 많은 팬들의 향수를 일으키는 대작으로 꼽힌다. 얼마 전에는 한 TV프로그램 ‘진품명품’에 잠시 소개돼 그 향수를 자극하기도 했다. ●SICAF 코믹어워드 수상자로 선정 ‘라이파이’의 작가 김산호(72) 화백. 지난달 20~24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국내 최대의 만화·애니메이션 축제 ‘제15회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의 코믹어워드 수상자로 선정돼 다시 한번 추억의 팬들과 반갑게 만났다. 수상 소식을 듣고 김 화백에게 축하 전화를 걸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해왔다.”면서 “그동안 벌였던 사업은 모두 접었으며 우리 한민족사를 알리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하여 경기 용인에 위치한 작업실로 찾아갔다. ‘아파트 몇동 몇호’라는 말을 듣고 작업실 앞에 서자 한옥의 대문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아니 아파트를 이렇게!’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아파트 한층을 개조해 마치 한옥같이 꾸며놓았던 것. 역시 상상력이 풍부한 만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크리트의 아파트에서도 속세를 잊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연출한 점이 특이해 자꾸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다. 작업실 겸 자택이었다. 안에는 ‘민족사학’과 관련된 많은 책들과 그림들이 진열돼 있었다. 인사를 하면서 김 화백의 명함을 슬쩍 봤더니 ‘만몽 김산호 주신대학교 총장’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만몽(卍夢)은 만가지 꿈을 꾼다는 뜻의 아호. 그렇다면 ‘주신대학교’는 은 무엇일까. 그는 이미 ‘대주신제국사’를 펴낸 바 있다. ‘주신’은 ‘고조선’에서 ‘조선’(朝鮮)의 이두음으로 풀이한다. 그는 ‘대주신제국사’에서 “바른 역사를 아는 것은 자긍심을 높이고, 밝은 미래를 보장하는 약속이다. 우리 역사는 그간 너무 많이 왜곡돼 왔다.”면서 “이제 올바른 역사를 통해 자존심을 회복하고, 조국과 민족, 이웃을 사랑해야 할 이유를 느껴보자.”고 말하고 있다. 주신대학교가 어떤 곳인지 조금은 이해가 됐다. 쉽게 설명을 덧붙인다. “예전부터 ‘한민족사’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려는 뜻을 갖고 있었습니다. 교포 사회에서도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일깨우는 일이라는 점에서 대부분 호의적으로 받아들였지요. 지난 4월 캘리포니아 주정부로부터 대학원 대학교 설립인가를 받아냈습니다. 현재 여러 학자와 임원들이 참여 준비를 하고 있으며 오는 10월 로스엔젤레스(LA) 에서 정식 출범하게 됩니다.” “우리 민족은 어디에 있든 같은 민족이다. 러시아, 일본, 미국 등에 있는 모든 한민족을 껴안아야 한다. 이제 그 역사를 가르칠 때가 왔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해 왔던 그다. 이런 노력이 이번에 결실을 맺게 된 셈이다. 국내외에서 ‘한민족사 대학교’를 설립하는 것 자체가 최초의 일이라는 점에서 일단 주목을 끈다. 내년 봄학기 개강을 앞두고 있다는 그는 “이제 남은 것은 한민족사관을 가르칠 교과서를 준비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교과서로 쓸 만한 것이 있는지 여러 차례 살폈으나 대부분 국사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데다 민족사학도 제각각으로 통일이 안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김 화백이 앞장서서 ‘민족사 편찬위원회’를 만들고 현재 교과서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범한민족사’(PAN KOREAN)란 제목으로 분량이 1500페이지에 달한다. 김 화백이 직접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미국에는 도서관이 4만 6000여 곳에 달하지만 한국에 관한 역사책이 없습니다. 적어도 미국의 각 주마다 한 권씩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원고가 완성되면 영문판을 먼저 발간할 예정입니다.” 또 그는 “30년 이상 우리 한민족에 관심을 두고 작품활동과 그 중요성을 이야기해 왔다. 그동안 갖고 있던 모든 역량을 이번 교과서 만드는 데 쏟아붓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국사를 가르치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민족사의 내용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란 글에서 ‘한’이 진정한 우리 민족을 상징하는 것을 아느냐고 반문한다. ‘한’은 애국가에서 ‘동해물과 백두산, 하느님’을 뜻한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한’은 곧 ‘천손족’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 범위를 신시(神市), 단군조선에 뿌리를 둔 모든 종족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 즉, 부여, 고구려, 예맥, 옥저, 동예, 말갈, 여진, 만주족은 물론 훈족, 몽골, 거란족 등 우랄·알타이어계 모든 종족을 포함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북만주와 몽골지역을 다녀보면 이런 역사가 보인다.”면서 “우리는 신의 자손들이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만큼 강력한 자긍심을 가진 나라는 없다. 중국을 올려다볼 것이 아니라 내려다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에서의 사업을 접고 한국에 다시 나올 때의 주목적은 우리 역사가 왜곡돼 있다는 것을 알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였습니다. 1978년 처음 중국에 갔을 때 중국 역사의 모든 비밀을 간직한 자금성에 걸려 있던 간판들을 보게 됐습니다. 왼쪽에는 한문표기로, 오른쪽에는 만주 글로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수년이 지나 다시 방문했을 때에는 정복자 만주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만주의 모든 역사와 문화를 중국으로 흡수하려는 것이지요. 동북공정도 이때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한민족사의 교육을 강조했다. 그런 까닭을 다시 물었더니 “우리 한민족사가 잊혀지고 있다. 누군가가 제자리에 갖다놔야 한다. 알고도 못하면 죄악이 아니냐.”고 단호하게 말했다. ●군사독재시절 창작의 자유 찾아 미국행 화제를 바꿨다. ‘라이파이’는 어떻게 해서 태어났으며 미국에는 왜 갔는지 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그는 6·25전쟁 때 부산 피란시절 대신동 인근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신문이나 잡지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만화에 빠졌다. 당시 일본만화 ‘밀림의 왕자’도 즐겨 보면서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 중학교 다닐 적에는 집안 형편이 어려워 극장에서 그림을 그려 학비를 벌었다. 이후 만화잡지 ‘만화세계’에 투고했고 게재되는 기쁨을 맛보았다. 1957년 독립군 이야기를 그린 ‘황혼에 빛난 별’로 정식 데뷔를 했다. 이듬해에는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로 그렸다. 무엇이든 소재가 되면 작품화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가 라이파이를 상상해냈다. 미국에는 슈퍼맨, 일본에는 아톰이 있는데 우리나라에는 이들과 비견되는 것이 왜 없을까 하는 점에서 출발했다. 또한 1950년대의 우울하고 처참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보면서 우리를 지키는 자랑스러운 수호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이후 라이파이는 전쟁의 실의에 빠진 독자들에게 희망과 꿈의 상징처럼 다가가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책이 나오는 날이면 독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였다. 당시 정확한 판매부수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성경책보다 더 많이 팔렸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1966년 김 화백은 일본에서 출판제의를 받게 되면서 해외진출을 생각했고 기왕이면 자유롭게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미국행을 택했다. 때마침 군사독재 정권의 서슬퍼런 ‘검열’ 또한 국내에서의 작품활동에 걸림돌로 작용했던 터였다. 이후 ‘산호’라는 필명을 김산호로 바꿨다. 만화작가 전문 출판사인 찰튼 코믹스의 전속작가로도 활동한 그는 미국에서 700여편의 작품을 그렸으며 특히 초기 서부활극을 그린 ‘샤이언 키드’는 많은 인기를 얻었다. ‘유령이야기’ ‘용녀’ 등 한국을 소재로 한 만화를 그려 해외에 내놓기도 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좋아지자 1988년부터 만주를 비롯한 고대사의 무대들을 직접 답사하며 한민족의 흔적을 찾기 시작했고 우리 민족의 중심에서 세계를 보는 역사관을 바탕으로 한민족사에 대해 만화와 회화를 넘나들었다. 그의 화실에 이런 소재의 그림이 많은 까닭이다. 2003년 ‘라이파이 동호회’와 팬카페가 생겨나면서 ‘라이파이’도 요즘 다시 살아나고 있다. 편집위원 km@seoul.co.kr [김산호 화백은…] 1939년 만주에서 태어나 1957년 ‘황혼에 빛난 별’로 데뷔했다. 이후 ‘전쟁과 평화’ ‘템페스트’ 등 세계 고전을 만화작품으로 내놓았으며 1959년부터 1962년까지 한국 최초의 장편 SF만화 ‘라이파이’ 전 4부작 32권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 핀 꽃’ ‘모비딕’ ‘유리천사’ ‘검은 박쥐’ ‘해뜨는 나라’ ‘청동마왕’ 등을 잇따라 발표했다. 1966년 미국으로 건너가 미국 만화계에 동양풍의 만화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뉴욕 ‘찰스 코믹스’ 만화출판사에서 전속작가 등으로 활동했다. 미국에서는 ‘샤이안 키드’ 등 700여편의 단행본을 출간했다. 1974년 산호그룹 CEO에 취임해 사업가로도 활동했다. 1993년 한민족 역사 다큐만화인 ‘대주신제국사’ 1~3권을 발간한 뒤 2년후 완결편(4~5권)을 펴냈다. 이후 회화극본 ‘두만강’(1996), ‘한국 105대 천왕존영집’(2002), ‘백제, 일본, 그리고 왜’(2003), ‘단군조선’(2005), ‘부여사’(2007) 등 수십 권을 발간했다. 현재 주신대학교 총장을 맡고 있으며 이 대학에서 교재로 쓰일 ‘범한민족사’(PAN KOREAN)를 집필하고 있다.
  • 日요코하마시 역사 왜곡교과서 채택

    일본 요코하마시의 중학생 약 10만명은 내년부터 4년간 역사왜곡 교과서를 배우게 된다. 요코하마시 교육위원회는 4일 공개 정례회의를 열고 교육위원 6명의 기명투표를 거쳐 시립 140여개 중학교 학생 약 10만명이 사용할 역사·공민교과서로 일본교육재생기구가 만든 이쿠호샤판을 채택했다. 올해 3월 30일에 검정을 통과한 이쿠호샤 교과서는 독도를 일본땅으로 표시한 것은 물론이고, 태평양전쟁을 ‘대동아전쟁’이라고 표현했다. 이쿠호샤는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의 책을 펴냈던 후소샤의 자회사다. 이에 따라 일본의 이른바 ‘왜곡교과서’ 채택률은 2001년 0.039%, 2005년 0.4%, 2009년 11월 1.7%로 꾸준히 높아졌고 올해는 요코하마시의 결정에 따라 최소 3%를 넘게 됐다. 시민단체는 이날 결정에 대해 “전쟁을 정당화하는 교과서를 수많은 학교 현장에 강요하는 것은 허용할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도쿄 이종락특파원 jrlee@seoul.co.kr
  • “일상속 문화의 뿌리 되살리고 싶어”

    “일상속 문화의 뿌리 되살리고 싶어”

    말·글은 역사와 문화를 담아 전하는 그릇이라 한다. 선대의 의식구조나 풍속은 물론 선조가 살아내며 형성한 문화의 과정과 가치관까지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 통용되는 말의 뿌리를 알려는 노력은 민족문화의 저변을 파고 드는 지름길로 여겨진다. 일상에서 쓰이는 상용어와 지명 가운데 불교에 뿌리를 둔 것만을 추려 정리한 사전이 처음 나와 불교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전 농협대 교수 박호석(62)씨가 4년간의 고생 끝에 세상에 내놓은 ‘불교에서 유래한 상용어 지명 사전’(불광출판사 펴냄). 상용어 630개와 지명 551종을 정병조 금강대 총장과 최명환 공주교대 명예교수의 꼼꼼한 감수를 거쳐 수록했다. “정년퇴직 후 기독교 관련 신문의 고정 칼럼을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심금’이니 ‘다반사’ 같은 말은 불교 용어이니 기독교인은 써서는 안 된다는 요지의 글이었지요.” 일상에서 종교와 관계없이 널리 통용되는 말을 굳이 집단의 차원에서 배제하려는 시각에 문제가 있다고 느꼈단다. 그래서 각방으로 수소문해 파악한 결과 불교에서 시작돼 흔히 쓰이는 말 중 공식적으로 정리된 게 고작 50여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이후 각종 사전과 사료, 지방자치단체의 문헌 등을 샅샅이 훑어 결과물을 내놓았다. “불교가 전래된 지 1600년이 흘렀다면 이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과 의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 합니다. 국가 문화재의 큰 부분을 불교가 차지하는 게 그 증거 아닐까요. 흔히 쓰는 상용어며 지명 역시 종교의 차원이 아닌 문화의 차원에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유형의 문화재만 보존 유지할 게 아니라 일상 속에 깊숙이 스민 문화의 뿌리를 먼저 찾아 되살려야 한다는 주문이다. “조선시대, 숭유억불 탓에 대중에 널리 퍼진 불교문화의 말살과 왜곡이 진행된 데다 일제시대의 민족혼 말살 차원의 불교문화, 아니 민족문화 정리가 전국적으로 있었지요. 최근만 해도 행정체계 정리 과정에서 빚어진 용어나 지명의 왜곡 또한 만만치 않은 수준입니다. 이런 과정을 보면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는 것만 같아 안타깝습니다.” 최근 시행과 관련해 물의를 빚은 새 도로명 주소에도 불만을 숨기지 않는다. “새 주소대로라면 그 지명에 담긴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실종된다고 봐야 합니다. 새 도로명 주소 체계가 경제·사회적 이점을 갖췄다고 하더라도 역사·문화적 고리와 중요성만큼은 충분히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루가 다르게 소멸되고 왜곡되는 중요한 정신문화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는 일반인 못지않게 불교계도 마찬가지라고 꼬집는다. “기독교에서 일상적으로 쓰는 장로며 예배는 불교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그런 말을 오히려 불교계가 노장이며 예불로 바꿔 쓰는 실정이니 안타깝지요.”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사설] 독도문제 차분·단호하게 대응한다지만…

    일본 외무성이 대한항공의 독도 항로 시험비행을 이유로 그 이용을 자제하라고 지시한 데 이어 자민당 의원 4명이 다음 달 2일 울릉도를 방문한다는 계획이 보도되면서 독도 문제가 또다시 불거지고 있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갈수록 노골화, 치밀화, 지능화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도 그동안의 대응책을 다각적인 측면에서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독도 대응책은 줄곧 ‘조용한 외교’ 전략을 유지해 오다가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차분하고 단호한’ 방식으로 전환했다. 이명박 정부는 독도와 관련된 구체적인 정책을 밝히지 않아 기존의 대응책이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런데 확실한 대응책이 제시되지 않다 보니 외교통상부 등 관련 부처에서 단호한 대응과 차분한 대응 간의 이견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부와는 별도로 정치권에서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할 때마다 즉각적이고, 강력한 대응을 해왔다. 자민당 의원들의 울릉도 방문 계획에 대해서도 “반드시 막아야 한다.”는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크다. 일본 측의 치졸한 계산을 모르지는 않지만, 이들을 물리적으로 저지하는 등 과격한 대응을 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유력지 월스트리트저널이 15일 독도 관련 기사에 처음으로 다케시마라는 명칭을 병기한 것은 여러 가지로 곱씹어봐야 할 대목이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대로 우리 정부의 대응이 국내와 일본에만 국한돼 미국 등 국제사회에서의 대응이 미흡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월스트리트저널의 이번 조치가 우리 민간 측의 뉴욕타임스 광고, 타임스스퀘어 광고 등에 대한 역작용이라는 지적도 경청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정말로 걱정되는 것은 10년 뒤에 나타날 현상이다. 현재 일본에는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라고 믿고, 말하는 양심적인 인사들도 많다. 그러나 일본의 10대들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왜곡된 역사 교과서로 교육을 받고 있다. 이들이 성인이 된 뒤에는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잘못된 신념을 머릿속에 새긴 채 독도 문제를 바라보게 될 것이다. 정부로서는 이런 문제까지 포함해 장기적이고 전반적인 독도 대응책을 마련하기 바란다.
  • [열린세상] 잘사는 나라의 조건/문흥술 서울여대 교수·국문과 문학평론가

    [열린세상] 잘사는 나라의 조건/문흥술 서울여대 교수·국문과 문학평론가

    한국 문학에서 소외 계층을 대표하는 두명의 난쟁이가 있다. 1970년대 조세희의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난쟁이는 ‘부익부 빈익빈’의 사회에서 억압받다 굴뚝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최수철의 ‘고래 뱃속에서’의 난쟁이는 진공에서 정상인과 함께 어울려 자유로운 삶을 영위한다. 두 난쟁이를 연속선상에 놓고 보면 한국 사회가 나아갈 올바른 방향성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고래뱃속’ 같은 닫힌 공간이 부자와 빈자, 정상인과 비정상인, 인간과 자연, 남성과 여성의 이항 대립에 기초해 전자가 후자를 억압하는 사회라면, ‘진공’ 같은 열린 공간은 양자가 조화롭게 공존하는 사회이다. 차별과 배제, 억압과 착취 없이 모두 하나가 되는 사회야말로 한국 사회의 올바른 지향점이 아니겠는가. 1970년대 열악한 노동 조건에 항거해 일어난 전태일 분신 사건 이후 한국은 이제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서고 있다. 그런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국제 스포츠 대회 4대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는 눈부신 성과를 올리고 있다. 더불어 K팝처럼 문화 분야에서도 세계적으로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물론 지금 이러한 성과를 부정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가치 척도가 편향되어서는 안 된다. 김재영의 소설 ‘코끼리’는 네팔에서 천문학을 전공하다 코리안 드림을 이루기 위해 한국에서 불법 체류 노동자가 된 가족의 고통스러운 삶을 다루고 있다. 그들은 돼지 축사를 개조한 집에 살면서 한국인들로부터 온갖 착취와 멸시를 당한다. 마치 1970년대 전태일이 당한 것처럼. 주인공의 그 비참한 모습에서 독일에 광부로 간 우리의 아버지와 일본 병원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하던 우리 어머니의 거친 손과 한숨이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 한국은 더 이상 원조 받는 나라가 아니다. 원조를 해 줄 만큼 잘사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계량화된 지표만으로 잘사는 나라를 판가름하는 것은 지극히 편향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코끼리’에 등장하는 까만 피부를 가진 아들은 백인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한국 사회의 속성을 알고 자신의 피부를 탈색하기 위해 표백제로 얼굴을 문지르다 얼굴 껍질이 벗겨진다. 이를 소설적 허구로만 치부할 수 없는 까닭은 현실이 이보다 더 처참하기 때문이다.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그들의 부를 창출하기 위해 가난한 한국을 비롯한 식민지 아시아인들을 소나 말과 같은 짐승으로 취급하였다. 전쟁의 폐허 더미에서 한국은 그런 멸시를 극복하기 위해 물질적 가치만을 최우선시하면서 쉬지 않고 달려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다. 그렇지만 중요한 것은 현재의 한국이 한국보다 경제력이 낮은 아시아 노동자들에 대해 서구의 물질 만능주의와 제국주의적 인종 차별 의식을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욕하면서 닮는다더니 우리가 꼭 그런 셈이다. 중국의 패권주의와 일본의 역사 왜곡을 보면서 그들이 ‘잘사는’ 나라는 될지언정 ‘존경받는’ 나라는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한국이 ‘잘살면서 존경받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물질적 풍요로움만이 아닌 정신적 풍요로움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 박범신의 ‘나마스테’를 보면 히말라야에서는 모두가 ‘나마스테’라는 인사를 나눈다. 여기에는 인종 차별 의식도, 서구 보편주의도, 제국주의적 우월성도 없다. 모두가 하나라는 인류애. 그것이 ‘나마스테’라는 인사에 담겨 있다. 중국에서 교사를 하던 조선족 어머니가 한국에서 식당일을 하면서 자식이 그리워 눈물짓고 차별 대우에 피눈물을 흘리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이들 모든 소외된 난쟁이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진공 같은 사회로 나아갈 때 한국은 잘살면서 존경받는 나라가 될 수 있다. 한국에서 일하던 외국인 노동자 중 대다수가 만신창이가 되어 고국으로 돌아가서 “삼년 겪은 일, 삼십년 동안 악몽으로 남아” 괴로운 삶을 살아간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이용철의 영화 만화경] ‘그을린 사랑’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날, 쌍둥이 남매 잔느와 시몽은 변호사로부터 유언을 전해 듣는다. 어머니 나왈 마르완은 유언 속에서 남매의 친아버지와 형제가 어딘가 살아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을 찾아 두 통의 편지를 직접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다. 잔느와 시몽은 그들을 만나러 낯선 중동으로 향하고, 남매의 여정과 어머니가 과거에 겪은 비극이 교차된다. 출생의 비밀을 모른 채 자란 두 사람은 충격적인 진실에 조금씩 접근한다. 나왈은 신화적인 인물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정의를 위해 투쟁하다 인간이 감내하기 어려운 수난을 몸소 받아들였고, 끝내 그것을 초월함으로써 영웅의 지위에 오른다. 이야기는 충분히 감동적이고, 그것에 못지않게 영화의 만듦새도 훌륭하다. 영화의 도입부는 ‘그을린 사랑’(원제: Incendies)의 이후 전개방식을 잘 보여준다. 선명한 이미지와 강렬한 연기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고, 영국 밴드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영화 바깥으로 벗어나는 걸 완벽하게 차단한다. ‘그을린 사랑’은 보기 드물게 인상적인 작품이다. 그러나 그만큼 감상하기가 피곤하고 갑갑하다. ‘그을린 사랑’은 와이디 무아와드가 쓴 희곡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그리스 비극을 연상시키는 원작은 연극 무대에 썩 어울렸을 것이며, 당연히 많은 나라에서 공연돼 호평을 들었다. 무아와드의 원작은 시공간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음으로써 ‘낯설게 하기’를 의도했고, 기실 연극의 관객이 현실과 무대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건 어렵지 않다. 이와 반대로 영화관은 몰입을 노린 공간이다. 불 꺼진 극장에서 영상과 사운드가 휘몰아치고 이야기가 클라이맥스로 내달리는 순간, 관객에게 ‘소격 효과’는 딴 세상 소리다. ‘그을린 사랑’처럼 재현성이 뛰어난 작품은 더욱 그러하다. 너무 엄숙하고 완벽해 보이기에 관객은 그것을 현실이자 진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알레고리가 현실에 침입하고, 그것이 ‘중동 지역과 그곳의 사람에 대한 선입견’ 같은 왜곡된 이미지와 결합하면 곤란하다. 문제는 이야기 자체가 아니라 이야기하는 방식에 있다. 전쟁, 폭력, 분노에 관한 보편적인 이야기는 어느새 특정 지역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진 슬픈 역사로 변질된다. 눈에 빤히 보이는 문자와 풍경에서 중동 지역이 자연스레 떠오르며, 그곳 사람들의 끔찍한 다툼에서 부당한 선입견이 한 번 더 확인된다. 그리고 마침내 그곳을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이라고 생각한다. 이슬람 문화를 다룬 예술영화가 소개될 때, 이러한 위험은 상존한다. 더욱이 ‘그을린 사랑’은 타자의 손을 거쳐 만들어진 영화다. 타자의 현실에 무지하면서도 무턱대고 자기 노선이 옳다고 판단하는 식이다. 더불어 예술영화를 감상하는 관객도 그 의견에 동조하기 마련이다. ‘그을린 사랑’은, 영화란 결국 조작된 현실이라고 말하는 선에서 멈춰야 했다. 이슬람 사회에 문제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인간이 해선 안 되는 일만 벌어지는 곳으로 항상 묘사되고, 덩달아 그렇게 믿는 게 더 터무니없다는 말이다. ‘그을린 사랑’은 쉬운 문제를 구태여 어려운 방정식으로 풀면서 잘난 척한다. 감동받기는 분명 쉬울 것이다. 그러나 그전에 다르게 볼 수 있는 눈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21일 개봉. 영화평론가
  • 불교계 ‘도로명 새주소’ 강력 반발

    오는 29일부터 도로명 새주소 체제가 도입되면서 사찰명을 딴 도로명이 일반 도로명으로 변경되는 것을 놓고 불교계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조계종은 특히 도로명 변경에 대해 “전통과 문화, 지명의 유래와 역사성, 지역 정서를 무시한 졸속 행정이자 종교 편향적 조치”라며 새 도로명 사용 중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11일 조계종 총무원과 불교계에 따르면 불교식 도로명이 일반 도로이름으로 변경된 곳은 ‘화계사로’가 ‘덕릉로’로 바뀌는 것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100여곳에 이른다. 서울 강북구 수유1동 화계사는 사찰 일대 도로명이 ‘화계사로’에서 ‘덕릉로’로 변경되자 역사 왜곡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화계사 측은 “1984년부터 써온 화계사로를 아무 근거 없이 폐기하고 덕릉로로 바꾼 것은 종교 편향적인 조치”라고 주장했다. 성북구 보문동 보문사도 ‘보문사길 14’가 ‘지봉로 19길’로 바뀐 데 대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보문사는 최근 호소문을 통해 “보문사에서 유래한 보문동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역사의 뿌리를 뒤흔드는 일이 아닐 수 없다.”며 도로명이 환원될 때까지 1인 릴레이 시위와 항의 집회를 열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계종 관계자는 “이의 신청 기간이 지난 탓에 사찰이 개별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종단에 설치된 ‘자성과 쇄신 결사본부’를 통해 전국 사찰에 공문을 보내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청계광장에 ‘칠석 행사’ 재현된다

    일제강점기 문화말살정책으로 인해 잊혀진 우리 고유의 축제 ‘칠석제’가 서울의 중심 청계광장에서 재현된다. 한국여성향토문화연구원은 ‘제8회 7·7 칠석 연인의 날’ 행사를 5일부터 7일까지 3일간 서울 청계광장일대에서 개최한다고 4일 밝혔다. 올해로 8회째를 맞은 이번 행사는 우리 고유의 축제인 칠석을 계승하자는 의미로 시작됐다. ‘견우와 직녀’의 눈물겨운 사랑이야기로 널리 알려져 있는 칠석은 원래 직녀에게 제를 올리던 날을 뜻하며 대표적인 우리 민족 고유의 행사다. 한국여성향토문화연구원은 행사기간동안 ‘칠석’의 의미를 알리는 한편 다양한 전통행사를 시민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매일 저녁에는 무형문화재가 ‘칠석굿판’을 선보이고 ‘물청소’(물속 쓰레기 줍기), ‘책말리기’, ‘연인식’(곶감은행알 나누기)도 열린다. 이와 함께 칠석제 삼행시 짓기, 소원 풍선 날리기, 풍물놀이, 판소리 공연 등의 다채로운 행사들도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칠석 연인의 날’ 행사는 칠석을 세계유네스코문화유산에 등록하기 위해 여성향토문화연구원이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민족 고유의 행사인 ‘칠석’에 대한 정부와 시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목표다. 여성향토문화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최근 중국이 우리의 문화유산인 ‘농악’을 먼저 유네스코에 등록하고 ‘아리랑’은 중국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등록하는 등 우리 문화재 보존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해서 국민들의 관심과 함께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한국여성향토문화연구원 차옥덕 원장은 “고등학생들이 한국사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대학생이 되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라며 “이번 행사를 통해 특히 젊은 사람들, 특히 학생들이 우리 전통 문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건형기자 kitsch@seoul.co.kr
  • “콜럼버스 ‘강리도’ 가졌다면 동쪽으로 항해 떠났을 것”

    “콜럼버스 ‘강리도’ 가졌다면 동쪽으로 항해 떠났을 것”

    올해는 고산자(古山子) 김정호(?~1866)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가 세상의 빛을 본 지 150년이 되는 해다. 지난 4월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에서 특별전시회와 학술대회를 시작했고 전국 곳곳에서 잇따라 전시, 강연행사를 가진 뒤 오는 10월 20~21일 서울대에서 종합학술대회를 연다. ‘대동여지도 150주년 기념학술사업준비위원회’가 마련한 150주년 기념행사의 결정판이다. 성대하면서도 꼼꼼히 김정호를 기념하고, 그의 손길이 깃든 성과의 현재적 의미를 따져 보는 자리다. ‘조선 후기까지 조정에 제대로 된 지도가 한 장도 없어 김정호는 10년 동안 조선팔도를 돌아다니고 백두산을 8번 오르내리며 대동여지도를 만들었다. 그러나 무지한 조정은 나라의 기밀을 적들에게 알려줬다며 김정호에게 억울한 죄명을 씌워 죽음에 이르게 하고 지도와 판목은 압수해 불살랐다.’ 이제껏 ‘청구도’, ‘대동여지도’ 등을 만든 김정호에 대한 보통의 인식이었다. 시대와 불화한 삶 속에 관련 문헌의 부족, 게다가 비극적 최후까지 더해졌다니 ‘전설’ 또는 ‘영웅’이 될 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춘 셈이다. 하지만 이는 1934년 일제 총독부가 만든 ‘조선어독본’에 실린 내용이 해방 이후 교과서에까지 이어지며 빚어진 오해와 편견이다. 일제는 김정호 이전에는 제대로 된 지도 한 장조차 없는 것으로 조선의 역사를 부정하며 왜곡하는 식민사관을 주입했다. 최근 몇 년 전부터 학계 일각에서 ‘김정호 바로세우기’를 진행하고 있지만 오랜 세월 이뤄져 온 인식의 벽은 여전히 두껍다. 최근 번역 출간된 ‘한국 고지도의 역사’(장상훈 옮김, 소나무 펴냄)가 반가운 이유다. 한국역사학의 권위자인 게리 레드야드(79)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학 석좌명예교수가 쓴 ‘한국 고지도의 역사’는 한국 지도학의 발달 과정을 체계적으로 정리, 세계 지도학계에 알린 노작(勞作)이다. 레드야드 교수는 책을 통해 자신을 ‘김정호의 열렬한 팬’이라고 소개하며 ‘김정호 이전의 성과’에 주목할 것을 주문한다. 지난 22~23일 두 차례에 걸쳐 레드야드 교수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사 전문가인 그는 한국말을 구사할 수 있지만 “고령으로 귀가 어두워 전화 인터뷰는 불가능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하게 한국사와 한국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이글이글했다. →한국사 전문인데 지도학에 관심을 두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 -저는 사실 평생에 걸쳐 한국사를 연구해왔고 한국의 지도학은 역사의 한 부분으로 공부했을 뿐입니다. 그러던 차에 1990년 위스콘신대 지리학부로부터 한국의 지도학에 대한 글을 청탁받았습니다. 바로 ‘세계 지도학 통사’(The History of Cartography)의 동아시아, 동남아시아편에 해당되는 원고였죠. 애초 60쪽 정도로 예상했으나 정리하다 보니 300쪽에 가까워졌습니다. ‘세계 지도학 통사’ 편집위 또한 한국 고지도의 중요성을 흔쾌히 인정했습니다. →‘세계 지도학 통사’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신다면.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세 권을 펴낸, 전 세계와 고금을 아우르는 세계 지도학의 종합연구서 시리즈입니다. ‘한국 고지도의 역사’는 제2권의 아시아 동남아시아편에 수록돼 있습니다. 모두 8권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앞으로 적어도 20년 더 걸려야 마칠 수 있는 현재진행형 작업이죠. 애초 위스콘신대에서 편집기획을 시작한 영국 출신 지리학자인 J B 할리 교수와 데이비드 우드워드 교수는 이미 돌아가셨고 새로운 편집기획위원을 선정해 계속하고 있습니다. 인공위성, 디지털 과학기술의 발달도 반영할 생각입니다. 전 세계 거의 모든 도서관이 이 책을 비치해 두고 있습니다. →김정호 팬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지도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전부터 고산자 김정호와 대동여지도의 열렬한 팬이었습니다. →대동여지도가 중요한 연결 고리였군요. 그런데 왜 대동여지도의 팬이 되신 겁니까. -한국 역사에 대해 잘 아는 세계의 학자들은 별로 없습니다. 설령 있다 해도 대동여지도와 같이 구체적인 성취에 대한 것은 잘 모르죠. 제가 ‘세계 지도학 통사’ 원고에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기도 합니다. 또 다른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地圖)-그는 이것을 ‘동아시아 최초의 진정한 세계지도’라고 일컬었다-에도 관심이 남다릅니다. 아시아편 표지 사진으로 ‘강리도’를 실은 이유이지요. 아마 콜럼버스가 1492년 이 지도를 갖고 있었다면 서쪽이 아니라 동쪽으로 항해를 떠났을 겁니다. 세계사도 많이 바뀌었을 테고요. →한국의 옛 지도를 연구하면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지. -글을 쓰는 데만 2년 반이 걸렸습니다. 한국의 많은 저작은 물론 일본, 중국, 유럽 학자들의 이론도 충분히 검토하고 종합했어요. 그 과정에서 김정호나 대동여지도 외에도 한국 지도학에 많은 성취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너무 대동여지도에만 관심을 쏟으며 다른 것에는 주목하지 않는 경향이 있어요. 김정호의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도록 앞서서 노력한 이들, 예컨대 양성지(梁誠之·1415~1482), 정척(鄭陟), 정상기(鄭尙驥·1678~1752) 등에 대해 좀 더 주목했으면 합니다. “지금도 날마다 한국 뉴스를 챙겨 본다.”는 레드야드 교수는 “김정호와 같은 천재를 둔 한국인 여러분에게 축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정겹게 말했다. 대동여지도 150주년 행사에 대해서도 축하의 말을 잊지 않았다. 국내판은 흑백 도판을 쓴 원서와 달리 컬러 도판으로 바꿨다. 번역을 맡은 장상훈 박사는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에서 학예연구관으로 일하고 있다. 3만 5000원.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역사드라마는 무죄?

    역사드라마는 무죄?

    동북아역사재단이 22일 오후 3시 서울 미근동 재단 회의실에서 ‘사극 재조명’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PD연합회와 공동 개최라는 점이 색다르다. 역사 드라마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두고 말들이 많은 가운데 양측이 직접 무릎을 맞대고 앉는 셈이다. 재단 측 연구위원들은 물론 ‘주몽’을 연출한 이주환 MBC PD와 ‘대장금’ 등 숱한 히트작을 만들어온 이병훈 PD가 토론자로 참가한다. 이런 취지로 볼 때 주창훈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가 발표하는 주제 ‘역사 드라마의 세 가지 상상력 : 강한 민족에서 탈민족으로’와 토론자로 나서는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의 토론문 ‘사극 전성시대는 역사학의 위기인가, 기회인가’가 눈길을 끈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주요 테마로 제시 주 교수는 주제 발표문을 통해 방송 사극이 ‘기록적 역사서술→개연적 역사서술→상상적 역사서술→허구적 역사서술’ 4단계로 발전해 왔다고 지적했다. ‘조선 왕조 500년’ 같은 초기 역사 드라마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기록 내용에 비교적 충실하려고 했다면, ‘용의 눈물’, ‘태조 왕건’ 같은 개연적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 위에 강력한 남성 영웅의 이미지를 덧대는 방식이었다. 이어 등장한 ‘허준’, ‘여인천하’, ‘대장금’, ‘이산’ 같은 드라마는 상상적 서술의 비중이 더 높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들은 대개 의사, 후궁, 궁녀처럼 정사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기 어려운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사료의 빈곤함을 고증에 기반한 상상력으로 메워 넣은 것이다. 주 교수가 이 부분을 “강한 민족주의에서 약한 민족주의로” 넘어갔다고 정리한 이유다. 허구적 역사 서술은 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 ‘대망’, ‘다모’, ‘추노’, ‘짝패’ 같은 드라마는 역사를 배경으로 내세웠을 뿐, 거의 모든 스토리가 창작이다. 상상적 역사 서술이 중인이나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이들 드라마는 아예 기록 자체를 찾기 어려운 노비나 왈짜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들은 우리 민족은 하나라고 하지 않고, 민족 안에도 다양한 이해 관계와 갈등이 있었다고 외친다. 주 교수는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민족보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주요 테마로 제시”하기 때문에 “가능태(Variation)로서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역사 드라마의 효용성이 극대화된다.”는 맥락에서다. ●“사실 여부보다 역사관에 더 관심을” 이주환 PD도 비슷한 맥락 위에 있다. 이 PD는 “정보전달과 대리만족의 측면에서 볼 때 역사 드라마는 대리만족을 위한 판타지를 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서 “대신 국적 불명의 오락물로 흐르지 않기 위해 역사관에 많은 신경을 쓰는 만큼 역사 드라마에 대한 비판이 특정 부분의 사실 왜곡보다 제작진들의 역사관, 드라마가 표방하는 주제에 집중됐으면 좋겠다.”고 주장한다. 이런 제작진의 조심스러운 입장을 더 크게 치고 나가는 김 교수의 주장도 흥미롭다. 그는 “사실만이 역사라는 것 자체가 근대역사학의 한계”라고 비판한다. 이어 “인간은 현실과 꿈의 두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과거 사실을 재현하는 역사뿐 아니라 ‘꿈꾸는 역사’를 욕망한다.”면서 “사극을 우리 시대의 ‘꿈꾸는 역사’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극의 인기란, 결국 역사가들이 사극처럼 꿈꿀 만한 역사를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다. 다시 말해 역사학이란 학문 자체가 다양한 상상력을 북돋우기보다는 문헌 해석과 기존 이론의 무비판적 답습에만 매몰됐던 것은 아니냐는 비판이다. ●“판타지 사극 더 발전시켜야” 그래서 김 교수는 한류를 계기로 사극의 변신이 더 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국민을 상대로 한 사극에서는 강한 민족주의가 들어가겠지만, 동아시아나 더 넓은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인간의 보편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조정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아예 ‘판타지 사극’을 더 발전시키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김 교수는 “소설가, 극작가, PD 모두가 사관인 시대에 역사학이 사느냐 죽느냐는 역사학자들이 이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결론지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영화따라 떠나는 아시아 역사여행

    영화 ‘콰이강의 다리’는 한때 ‘TV 주말의 명화’용 고전으로 유명했다. 2차 대전 중 태국의 밀림 속에서 영국군 공병대가 일본군 포로 수용소에 잡혀 오고 일본군은 이들을 이용해 콰이강에 다리를 건설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영국군 공병대장 니콜슨 중령(알렉 기네스)은 영웅적인 지도력으로 수용소장 사이토 대령(세슈 하야카와)을 심리적으로 누르고 콰이강의 다리 건설 공사를 독단으로 해낸다. 마침내 콰이강의 다리 건설은 급진전되고 영국군 유격대는 폭파 작전을 감행한다. 1957년에 만들어진 이 영화는 아카데미 7개부문을 수상하면서 국내 팬들에게도 인상적인 기억을 남기고 있다. 전쟁영화를 꼽으라면 단연 우선순위에 오를 정도였으니 말이다. 실제로 2차대전 때 일본군은 콰이강을 따라 태국과 미얀마를 연결하는 철도를 건설했으며 열대의 강으로는 보기 드물게 하상(河床)에 자갈이 가득 깔리고 물이 맑아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만약 영화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콰이강은 세상에 얼마나 알려졌을까. 영화는 진실성 여부를 떠나 역사의 배경을 한번쯤 더 돌아보게 하고 많은 사람들을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다. 콰이강 역시 영화 제작으로 유명해진 셈이다. 지난 20여년 동안 소설가로, 르포작가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제3세계 사람들의 삶과 정치의 현장을 전해 온 유재현씨가 ‘시네마 온더로드’(그린비 펴냄)를 통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베트남, 타이, 홍콩 등 아시아 14개국을 무대로 영화 이야기를 풀어냈다. 아시아의 영화 현실로 출발해 아시아의 근현대사라는 음화(陰畵)를 비추어내는 영화를 열심히 찾아나선다. 이런 탐색작업은 무심히 보고 지나치기 쉬운 영화의 배경 구석구석에 남긴 흔적, 그리고 그 흔적이야말로 이야기의 바탕이라는 것을 잘 알려주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콰이강의 다리’에서부터 영화의 변방 몽골에서 만들어진 ‘우르가’까지 아시아를 무대로 하는 다양한 영화를 흥미롭게 다루고 있다. 생소하거나 기존 영화 관련 도서에서 찾아보기 힘든 영화들이 많다는 것도 눈길을 잡아끈다. 아시아의 역사에 방점을 찍으면서 영화의 바깥, 혹은 스크린 건너편의 역사와 현실을 말하고 있다. 서구 영화들이 아시아를 어떻게 보여 주고 있는가에도 관심을 두면서 제2차 대전을 전후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현대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식민주의, 전쟁과 파시즘, 개발과 독재, 이념의 왜곡, 인종 간의 불화 등 갖가지 상흔으로 점철된 아시아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있다. 1만 79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중국은 왜 ‘황제의 나라’ 발해를 숨기나

    중국은 왜 ‘황제의 나라’ 발해를 숨기나

     지난 5월 발해 황후 무덤이 발굴된 중국 지린성(吉林省) 용두산 고분군을 KBS 역사스페셜 취재팀이 찾았다. 제작진이 다가서자 관계자는 날카로운 공구로 위협하며 막아섰다. 발해 유적지는 취재는 물론 사적인 촬영까지 차단하는 상황이다. 취재진과 함께 발해 수도 동경의 궁궐지였던 훈춘시 팔련성을 찾은 윤재운 대구대 역사교육과 교수는 “네 번째 방문인데, 표지판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KBS 역사스페셜은 16일 오후 10시 ‘추척! 발해 황후 묘는 왜 공개하지 못하나’를 통해 중국 당국이 발해 유적에 대한 접근을 차단하는 내막과 발해사 왜곡의 실태를 드러낸다.  한국 학자들이 중국 지린성의 발해 순목황후 묘 발굴을 접한 때는 지난 2009년.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가 발간하는 잡지 ‘고고’(考古)를 통해서다. 지극히 간략한 내용만을 담고 있어 발굴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발해의 정치체를 밝혀줄 중요한 정보를 담고 있다. ‘渤海国顺穆皇后, 即 简王皇后泰氏也’(발해국 순목황후는 간왕의 황후 태씨다). 주목해야 할 대목은 ‘황후’란 두 글자다. 발해가 황제의 나라였다는 얘기다. 발해를 당나라의 지방정권으로 보는 중국의 논리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증거다. 이는 비문에 새겨진 141자 중 극히 일부일 뿐, 중국은 전체 내용은 물론 묘비 사진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현재 중국은 외부 접근을 차단한 채 단독으로 발해 유적지 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상경성(上京城)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국은 지난 2006년 ‘헤이룽장성(黑龍江省) 당 발해국 상경 용천부 유적 보호 조례’를 통과시킨 뒤 유적 정비작업을 시작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상경성은 756년 발해 문왕 대흠무가 설계한 궁궐이다. 지금까지 상경성이 중국의 장안성을 모방했다는 것이 중국 학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지난 2009년 제 2궁전 발굴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발견됐다. 상경성 제 2궁전지가 전면 19칸에 달하는 큰 규모로 나타난 것. 당나라 장안성의 최대 건물인 함원전은 11칸에 불과하다. 발해가 당의 속국이었다면 일개 지방정권이 황제보다 더 큰 궁궐을 가진 셈이다.  중국은 발해를 당의 지방정권으로 교과서에 기술하고 있다. 고구려를 세계사에 포함한 것과 확연히 구분된다. 발해가 중국 역사책에 실린 건 무려 반세기 전이다. 이미 두 세대 이상이 발해를 중국사로 배워 온 것이다. 취재진은 현지 인터뷰를 통해 대부분의 젊은 세대가 발해를 당의 지방 정권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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