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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캐나다쇠고기 수입현안 연말까지 처리해야/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열린세상] 캐나다쇠고기 수입현안 연말까지 처리해야/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강행처리 여파로 공전 중이던 국회가 다시 열렸다. 그럼에도 통상 현안에 대한 여야 간 타협의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민주당은 한·미 FTA 비준동의안 무효화 결의문을 채택하고 수권 정당이 될 경우 FTA를 폐지하기로 당론까지 정했다. 북한 김정일 사망 등으로 한·미 협력관계의 강화가 절실한 시점에서, 진보정권에서 이미 수용하기로 한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를 빌미로 이제 와서 한·미 FTA를 전면 폐기하자는 것은 무책임하다. 이러한 야당의 극단적 반발 가능성을 알면서도 날치기 처리한 여당도 반성해야 한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국회에서의 극단적 대립으로 인해 시급히 연내에 처리해야 될 통상 현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한폭탄처럼 다가오는 캐나다 쇠고기 수입문제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2006년 이래 미국 쇠고기에 대한 수입 재개 조치를 취한 바 있으나, 캐나다 쇠고기에 대해서는 2003년 5월 이래 전면 수입금지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국제수역사무국(OIE)에 의해 미국과 동등한 광우병위험통제국 지위를 획득한 캐나다는 2009년 4월 우리나라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여 패널이 설치된 바가 있다. 우리의 패소 판정은 거의 확실시되었으며, 판정에 따른 악영향은 가히 치명적이라 예측되었다. 판정이 내려져 버리면, OIE 기준에 따라 캐나다 쇠고기를 전면 수입 재개해야 함은 물론 미국을 비롯한 여러 쇠고기 수출국이 앞으로 두고두고 압력을 행사할 국제법적 근거가 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부는 금년 6월 말 패널 판정이 내려지기 직전에 캐나다 측과 극적으로 양자협상을 타결시켜 광우병위험물질 범위, 검역주권 행사, 현지 실사에 관한 조건 등에서 미국과 맺은 수입위생조건보다도 우리 측에 더 유리하게 관철시킨 바가 있다. 합의의 골자는 금년 말까지 우리가 30개월령 미만 캐나다 쇠고기를 수입 재개하는 것을 조건으로 패널 절차를 잠정 중단한다는 것이었다. 캐나다 쇠고기 수입 재개를 위해서는 국회에서의 심의절차가 필수적인데, 정부 측은 모든 준비를 완료하고 국회가 제 구실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제 일주일 남짓한 기간에 수입 재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내년 초 캐나다 측이 합의 위반을 이유로 패널 절차 속개를 요청하게 되고, 곧 판정이 내려질 것이다. 8년을 기다려온 캐나다 입장에서는 이제 패널 판정에서 승리하면 그만이다. 주요 20개국(G20)에서 보호무역주의 배격을 주창하고 있는 통상대국인 한국이 WTO 패소 판정을 이행하지 않는 것은 자살행위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한폭탄은 우리 손에서 째깍거리고 있는데, 아무도 정치적 부담을 지려 하지 않기에 12월 말로 임박한 수입 재개 시점만을 바라보고 있는 형국이다. 이것이 우리 통상정책 결정체제의 초라한 모습이다. 서구의 선진 의회 정치에서도 통상 현안을 놓고 진보와 보수 간에 치열한 논쟁이 종종 벌어진다. 그러나 일정한 논쟁 과정을 통해 국익에 입각한 결정 방향이 정해지면 여야가 협력 모드로 돌변해 통상정책 추진 과정에 힘을 실어준다. 더구나 대외개방을 하는 것이 오히려 비교열위 국내 산업에 이익이 되는 현안에 대해서는 통상정책 결정이 신속히 내려짐은 물론이다. 폭탄돌리기 행정이 초래할 대폭발의 피해가 고스란히 국내 축산농가에 떨어질 텐데도 당장 정치적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결정을 외면하고 있는 우리 정치권 행태와는 사뭇 다르다. 물론 그 배후에 버티고 있는 일부 무책임한 시민의식부터 개선돼야 한다. 당장 캐나다 쇠고기를 수입 허용하게 되면 광우병 괴담이 재등장할 테고, 국민 건강을 무역 가치로 팔아먹으려 한다는 선동적이고 비과학적인 논리가 전파될 염려가 있다. 이제는 무분별한 정부 비판으로 일관하거나 무조건적 반개방을 주장하는 것이, 오히려 국내 열위산업에 해가 되는데도, 영웅시되는 풍토가 더 이상 용인돼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국회가 임시방편적 문제 해결 관행을 끊고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해 해결해 나갈 때 박수를 보내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발휘돼야 한다. 그래서 이제 대폭발을 막을 마지막 일주일은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 흥선대원군의 인간적 고뇌·갈등 재조명

    아들 고종의 즉위로 조선 역사상 유일하게 살아 있는 왕의 아버지로서 한때 최고의 권력을 휘둘렀던 흥선대원군 이하응. 그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한편에서는 그를 쇄국의 원흉, 천주교를 박해하고 아들의 권력을 탐한 희대의 정치가로 기억하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세도정치로 피폐한 국가를 재건한 개혁의 영웅으로 평가하고 있다. 주원규는 신작 ‘불의 궁전’(문학의문학 펴냄)에서 풍전등화와 같은 19세기 말 조선의 역사와 마주선 개혁가로서 흥선대원군을 재조명했다. 작가는 “그가 집권했던 격랑과도 같이 몰아치던 10년은 조선 말기 역사, 더 나아가 대한민국의 앞날을 결정짓던 매우 중요한 시대였다. 폭풍과도 같았던 시대의 중심에 선 한 인간의 고뇌는 오늘의 우리 모두가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할 주제라고 생각한다.”고 서문에서 밝혔다. 우리 시대 하류 인생들의 삶을 그린 ‘열외인종 잔혹사’로 주목받기 시작한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는 역사심리소설이라는 형식으로 대원군의 진면목을 제시하고 있다. 이하응은 인조의 셋째 아들 인평대군의 8세손으로 왕권과 그다지 가까운 왕족이 아니었다. 그의 아버지 남연군이 정조의 이복형제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가면서 영조에서 이어지는 왕가의 가계에 편입된다. 그러나 당시 세도가인 안동 김씨는 왕의 재목으로 보이는 왕족들을 끊임없이 견제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야심 없는 파락호를 자처하고 ‘상갓집 개’라는 치욕적인 별명까지 얻으며 세도가들의 눈을 피한 이하응은 조대비와 연줄을 대어 자신의 야망을 이룰 기반을 마련한다. 1863년 12월 초 철종이 사망하자 조대비는 이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을 철종의 후사로 지명한다. 열두 살 소년 왕을 대신해 전권을 쥐게 된 흥선대원군은 개혁 정책을 통해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해결하고 무너진 왕권의 회복에 나선다. 그러나 무소불위의 권력도 고종이 친정을 선포하면서 막을 내린다. 주인공의 복잡한 내면 심리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역사적 주요 사건을 촘촘히 엮어 나가면서 서사 빈곤의 함정을 피해 나가는 작가의 역량이 돋보인다. 심리적 통찰과 끈질긴 내면 추적이 작품 전반에 긴장감을 더 한다. 작가는 “소설이란 픽션의 도구를 빌려 결코 평범할 수 없는 비범한 한 인간의 영웅적 기개를 나타내고 싶었다. 또한 격랑의 풍상을 겪어 낸 대원군의 내면에 가혹하게 드리워져 있는 인간적 고뇌와 갈등, 숭고하기까지 한 집념을 그려 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함혜리 문화에디터 lotus@seoul.co.kr
  • [데스크 시각] 소통과 사람다움의 기원/박찬구 국제부 차장

    [데스크 시각] 소통과 사람다움의 기원/박찬구 국제부 차장

    이집트 시민혁명이 한창이던 지난 2월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역할 논쟁이 일었다. 구글의 중동·아프리카 마케팅 임원이었던 와엘 고님이 시위 도중 경찰에 붙잡혔다 풀려난 직후였다. 트위터와 페이스북으로 이집트의 혁명 열기를 고조시킨 고님이 반(反)무바라크 혁명의 영웅으로 추앙받자, SNS도 덩달아 재스민 혁명의 ‘주역’으로 부상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일부 ‘종이 신문’ 기자들은 반문했다. “SNS는 혁명의 수단(tool)일 뿐, 진정한 주역은 시민의 의지가 아닌가.”라는 게 요지였다. 하지만 SNS가 시민혁명의 수단이냐, 주역이냐라는 논쟁은 무의미할지 모른다. 수단이면 어떻고 주역이면 어떠냐, 어쨌든 시민에 의한 역사의 진보가 이뤄지지 않았느냐라는 결과적 명제에서다. 사실 지나온 역사의 변혁에는 종종 커뮤니케이션의 진화가 수반됐다. 19세기 말 조선에서는 동학혁명 주역들이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돌려 거사 결의와 계획을 전파했다. 1893년 전라도 고부에서 전봉준 등 주역 20여명이 주모자가 누군지 알 수 없도록 사발을 대고 서명한 통문이 그것이다. 사발통문은 보안 유지를 위해 혁명 가담자들만 수신자로 한다는 점에서, 전 세계로 일시에 전파되는 SNS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되지만, 당시로서는 변혁 의지를 담은 소통의 도구였다. 1966년 중국 문화혁명의 시발을 알린 베이징대의 대자보(大字報)는 10년 남짓 지난 뒤 서울의 대학가에도 등장한다. 1980년대 우리 대학가에서는 대자보와 유인물이 운동권 지도부와 ‘학우’를 잇는 커뮤니케이션의 통로 역할을 했다. SNS에 비한다면 공간성과 속보성에서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 ‘종이’의 속성이긴 하지만, ‘학우’를 결집시키기에 그만한 도구가 없었던 게 30년 전의 현실이다. 시대 변화와 기술 발달에 따라 효과와 파급력에는 차이가 뚜렷하지만 중동의 SNS와 조선의 사발통문, 서울의 대자보를 관통하는 일관된 흐름은 존재한다.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가치 욕구가 그것이다. 모반의 역사는 종종 실패의 전철로 남지만, 적어도 21세기의 중동과 19세기의 조선, 20세기의 서울에서는 SNS와 사발통문·대자보가 독재권력과 탐관오리를 몰아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고 그 키워드는 다름 아닌 ‘사람’으로 집약된다. 선사시대 각석(刻石·그림이 새겨진 돌)을 돌아봐도 마찬가지다. 울주군 천전리와 반구대 암각화(岩刻畵) 등에는 자연과 조화하고, 안정된 생활을 꾸릴 수 있는 삶의 방식과 체계를 후손에게 알리겠다는 당시 사람의 염원이 담겨 있다. 21세기도 10분의1이 지난 지금, 지구촌의 주인을 자임해온 인간은 묵은 중병을 앓고 있다. 이념의 동서, 빈부의 남북이라는 종전의 이분법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 보인다. 빈부 격차, 양극화, 부의 불균등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신자유주의 심장부인 월가에서부터, 유러피안 드림을 주창하던 유럽대륙, 제국주의 희생양이던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전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제 논에 물 대기 식으로 국제 금융자본을 끌어들이던 선진국의 논이 메말라가자, 그 독소가 먹이사슬의 역순으로 줄줄이 퍼져나가는 양상이다. 중동의 시민혁명도 시작은 ‘빵’에서 비롯되긴 했지만, 현재로선 누구도 위기의 종착점을 예단하지 못하고 있다. 유럽의 지성계 일부에서는 ‘인간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라는 절박한 물음이 나오기도 한다. 해법을 찾긴 쉽지 않겠지만, 논의의 출발점을 ‘사람’으로 대체하기엔 늦지 않아 보인다. 금융과 자본, 정치와 기업이 차지한 중심부를 그동안 소외된 ‘사람’에게 내주지 않고는 탐욕과 이윤의 사슬에서 지구촌이 살아남기 힘들지 모른다. 대표적으로 지구촌 차원의 금융규제 강화와 이윤의 독식 방지가 사람 사는 공동체를 구현할 수 있는 실천 방안의 단초일 수 있다. 어쨌든, 다시 시작은 ‘사람’이어야 한다. ckpark@seoul.co.kr
  • [지금&여기] 영웅을 위하여/이순녀 국제부 차장

    [지금&여기] 영웅을 위하여/이순녀 국제부 차장

    평소의 단정한 외모나 당당한 미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목 보호대와 휠체어에 의지한 그녀는 작고, 초라했다. 며칠 전 외신에 등장한 글로리아 아로요 전 필리핀 대통령 얘기다. 1년 전까지 최고 권력자였던 그녀는 신병치료를 위해 출국하려다 선거 조작 및 뇌물 수수 의혹과 관련한 출국금지 조치로 공항에서 제지됐다. 이 장면은 TV로 생중계돼 국제적 망신을 당했다. 그녀는 국민 영웅이었다. 전직 대통령 아버지에 미국 유학파 경제학 박사 출신으로 1998년 필리핀 최초 여성 부통령에 당선됐다. 2001년 에스트라다 대통령이 민중 봉기로 축출되자 대통령직을 승계해 코라손 아키노에 이어 두 번째 여성 대통령에 올랐고, 과감한 부패 척결과 빈곤 추방, 정치제도 개혁 등을 실시해 폭넓은 지지를 얻었다. 2004년 대선에서도 40%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하지만 선거 부정 의혹이 불거지고, 연달아 뇌물 사건이 터지면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그리고 지난해 10월 대통령에서 물러나자마자 수사 대상이 됐다. 영웅으로 출발해 역적으로 끝난 지도자는 세계 역사에서 한둘이 아니다. 가장 최근의 사례는 한달 전 사망한 무아마르 카다피 전 리비아 국가원수다. 왕정을 무너뜨린 혁명 영웅에서 42년간 권력을 독점한 악랄한 독재자로 전락한 그는 시민군의 손에 무참히 목숨을 잃었다. 아로요나 카다피나 이런 비참한 운명을 의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들 역시 누구나처럼 떠날 때 박수받는 지도자를 꿈꿨을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순수한 열정이 어느 순간 권력욕으로 변질돼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처럼 궤도를 이탈해 무한 질주하는 데도 이를 깨닫지 못한 결과는 이렇게 참혹하다. 영웅이었기에 스스로 장기집권을 합리화한 어리석음도 한몫했을 것이다. 내년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등 세계 주요국에서 지도자들이 교체된다. 시작은 조금 부족해도 아름다운 뒷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진정한 영웅의 등장을 기다린다. coral@seoul.co.kr
  • “정치·사회적 이슈로 시비 걸지 말고… 오직 문학으로 읽어주오”

    “정치·사회적 이슈로 시비 걸지 말고… 오직 문학으로 읽어주오”

    조용한 문단에서 최근 사건이라 할 만한 일은 1980년생인 ‘여우 같은 이야기꾼’ 김애란의 장편 ‘두근두근 내 인생’이 1940년대생인 황석영·최인호·박범신 작가의 신간과 경쟁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압도적 우위에 오른 것이었다. 한 출판사에서는 대책 회의까지 열었는데 결론은 소설을 읽는 독자층에 대한 재검토로 이어졌다. 역시 1940년대에 태어난 이문열(63) 작가의 신간 ‘리투아니아 여인’(민음사 펴냄)은 오랜만에 중장년층들에 소설 읽는 재미를 안겨줄 만한 작품이다. 18일 전화로 만난 작가는 “시비로 나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고 쓸데없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를 건드려서 자극할 것도 없다.”며 “예술가 소설이 그렇듯이 그야말로 순문학적이며 즐거운 책 읽기로 독자들한테 다가갔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리투아니아’는 이 작가가 오랫동안 다루어 온 주제인 예술가 소설로, 전작 ‘들소’ ‘시인’ 등의 계보를 잇는다. 하지만 ‘리투아니아’는 알려졌다시피 유명한 뮤지컬 예술 감독의 삶을 모델로 했고 신문에도 연재되었던 터라 대중에게 훨씬 쉽게 다가간다. 작가는 “몇 번의 해외 공연에서 그녀의 추억담을 들었을 때 소설화의 유혹을 느꼈는데 지난 10여년간 괴로운 시간을 보내느라 이야기가 의식 아래 묻혀 있었다.”며 “작품 연재를 시작하면서 그녀가 우리 사회의 문화적 아이콘으로 떠올라 묘한 부담이 됐으나 소설과 그녀의 실제 삶이 혼동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소설의 모델이 된 이는 “읽어보겠다.”는 답을 작가에게 들려줬다고 한다. 소설의 주인공 김혜련은 리투아니아계 미국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뮤지컬 음악 감독이다. 공연 연출가이자 아홉 살 연상의 남성인 ‘나’는 스치는 만남과 거듭된 재회를 통해 20여년에 걸친 긴 인연을 혜련과 이어나간다. 혜련은 불꽃 같은 사랑과 3년 만의 파경, 눈부신 성공과 그에 따르는 처절한 비난과 모욕 등을 감수하며 ‘피도 땅도 국적도 구분 없는’ 유목민과 같은 예술가의 삶을 살아낸다. “가스나들아, 또 그 소리가? 내가 왜 미국 년이고? 그라고 가기는 어디로 가? 우리 집이 여기고 어무이, 아버지 다 여기 있는데…. 가스나들, 잘 놀다가 뭐든지 저그 하자 카는 대로 안 하믄 미국 년, 양년 카며 사람 야코나 죽이고….” 부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혜련은 같이 놀던 동네 여자아이들의 짓궂은 왕따에 부산 사투리로 맞선다. 이 모습은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성인이 되어 뮤지컬 분야에서 성공을 거두고 유명해진 혜련은 인터넷에 외국인과 단둘이 와인을 마시는 사진이 실리면서 “어여 가거래이, 너그 양코배기 서방 찾아.”와 같은 악플에 시달리게 된다. 이문열 작가가 ‘10년의 괴로웠던 시간’이라고 표현한 것은 2001년 책 장례식을 비롯해 여러 발언이 사회적 논란을 낳은 일을 가리킨다. 혜련이 네티즌과 인터넷 논객으로부터 당해야 했던 모욕은 책에서 짤막하게 언급되는데 “나는 그런 대중의 속성, 특히 인터넷 시대의 소통 과정에서 더욱 증폭되고 제어하기 어려워진 집단 악의에 소름이 끼쳤다.”는 문장으로 표현된다. 소설의 재미를 더하는 것은 시인 임화의 딸로 추정되는 여인의 곡절 많은 삶 등 연극과 뮤지컬을 제작하는 이들의 곁가지로 드리워진 에피소드들이다. 작가는 “임화의 딸이나 간첩 김수임의 삶은 독립적으로 쓰고 싶었던 에피소드였으나 쓸 시간이 없을 것 같아 이번 소설에 넣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의 다음 작품은 3권 정도로 구상하고 있는 김유신의 내면을 다룬 역사 소설이다. 뮤지컬 ‘명성황후’ ‘영웅’ ‘원효’의 제작에 참여했던 이 작가는 뮤지컬 작업은 이제 흥이 빠졌다고 털어놓았다. 독자와 작가를 차단하는 사회적 시비에서 벗어나 문학 작품으로만 읽히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이 담긴 ‘리투아니아 여인’은 매력적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은퇴 NBA 스타 야오밍, 대학 입학해 새내기 생활

    지난 7월 공식 은퇴한 NBA 스타 야오밍(31)이 중국 상하이 교통대학에 입학해 새내기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현지매체들은 “야오밍이 지난 7일 대학에 정식으로 등록을 마치고 신입생 수업을 듣고 있으며 향후 경제학을 전공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대학측은 야오밍을 위해 1대 1 특별수업을 마련했으며 기숙사 생활을 하는 일반 학생들과는 달리 집에서 등하교를 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다양한 전공을 공부하고 싶다는 야오밍의 뜻에 따라 선택과목의 폭도 넓혀 준 것으로 알려졌다. 야오밍이 수업에 첫 출석한 지난 7일 교통대학은 ‘중국의 영웅’ 등장에 많은 학생들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현지언론들은 “야오밍의 등장에 취재진은 물론 사인요청과 사진촬영을 원하는 학생들이 대거 몰려들었다.”고 전했다. 야오밍은 “학교측이 기초가 없는 나를 위해 자세한 수업계획을 만들어주었다.” 며 “중학생 때 부터 역사과목을 좋아해 당장이라도 수업을 받고 싶다.”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기고] 바랴크호와 인천상륙작전/박상은 국회의원

    [기고] 바랴크호와 인천상륙작전/박상은 국회의원

    역사는 오늘이 있게 한 모태이고, 우리가 좋든 싫든 안고 가야 하는 소중한 자산이다. 최근 인천시는 연안부두에 작지 않은 광장을 조성하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으로 명명식을 가진 바 있다. 이 명명의 역사적 배경은 1904년 러·일전쟁 중 발생한 전함 바랴크호 사건에서 기인한다. 러시아는 당시 항복을 거부하고 바랴크호와 함께 끝까지 싸운 570명 승조원의 정신을 기려 이들에게 영웅칭호를 부여하고 국가의 가장 상징적인 애국의 표상으로 삼았다. 이후 오늘날까지도 러시아는 최고의 예우로서 교과서는 물론 기념우표를 발행하는가 하면, 전 장병에게 바랴크의 정신을 교육하면서 인천의 연안부두 여객터미널 인근에 기념비를 세우고 매년 기념일을 이곳에서 지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러시아는 인천시립미술관이 보관하고 있던 바랴크 함기에 대해 우리 정부에 끈질기게 반환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이 바랴크 함기는 지난해 인천시가 러시아에 임시로 임대해준 상태이나, 당시 이 임대에 대해 국민적인 동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상호 우호증진을 위하여 눈 감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이와는 대조적으로 인천시는 1950년 한국전쟁의 전세를 뒤바꾼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기 위한 인천상륙작전기념공원에 대해서는 애써 외면하고 있다. 인천시는 러시아의 애국운동에 대해서는 시민의 동의는 물론 문화재청의 승인도 없이 성 안드레이기를 “영구 임대하겠다.”는 둥 적극적인 협조의 자세를 취하면서 중앙정부와 합의한 인천상륙작전기념공원에 대해서는 그 합의마저 폐기하고 그 자리에 경제적 타당성도 모호한 해양박물관을 짓겠다고 우기고 있다. 바랴크호 사건과 인천상륙작전이 모두 우리 현대사에 중요한 전환점을 제공한 의미 있는 사건으로서 그 역사성과 가치를 가지지만, 인천상륙작전이 우리에게 갖는 역사적 비중은 러시아인들이 바랴크호를 러시아의 정신이라며 추앙하는 것에 비교할 바가 결코 아니다.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으로 대한민국의 존폐가 촌각에 달린 시기에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오늘의 모범적인 국가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물며 오늘날의 편리와 번영, 자유와 풍요는 더 말할 나위가 없을 만큼 인천상륙작전은 풍전등화의 위기로부터 국운을 되돌린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인천상륙작전은 나라의 존폐가 촌각에 달린 시기에 전세를 일거에 반전시켜 풍전등화의 위기로부터 국운을 되돌린 결정적인 사건이었다. 그들이 알지 못했던 나라, 생면부지 한국인들의 생명과 자유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바친 그 숭고하고 값진 희생에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천상륙작전기념공원을 만들고자 하는 이유는, 그 커다란 희생에 작게나마 보답하는 의미로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 월미도에 21개 참전국의 기념관과 기념비를 건립하고 기념광장을 조성해 대한민국이 결코 그 은혜를 망각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의 나라 애국운동에는 헌신적으로 협조해 바랴크호 사건의 현장에 상트페테르부르크 광장을 조성하는 인천시가 자국의 역사를 외면하는 역사인식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만화가 이현세 “필화사건 겪으며 더 겸손해져 인터넷 웹툰은 그리지 않을 것”

    만화가 이현세 “필화사건 겪으며 더 겸손해져 인터넷 웹툰은 그리지 않을 것”

    그는 초록색과 빨간색이 같이 있으면 구분하기 어려운 적록색약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을 즐기는, 대한민국 최고의 만화가다. 이현세(57)씨가 세계사 학습 만화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녹색지팡이 펴냄)를 전체 15권으로 완간하고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났다. “‘천국의 신화’ 때문에 6년을 재판하고 나머지를 그리느라 4년을 고생했더니 어린이와 멀어져서 사인회에 가면 내 이름도 모른다. 다른 만화가들 앞에는 줄이 쫙 있는데 내 앞에는 몇 명 오지도 않고, 와서는 둘리를 그려 달라고 하더라.” 그가 어린이를 위한 학습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다. 한국의 상고사를 복원하고자 했던 대작 만화 ‘천국의 신화’는 음란물 배포 혐의로 기소됐지만 결국 무죄로 끝났다. 이씨는 “역사를 보는 눈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게 됐다. 필화 사건을 겪으며 내 만화는 독이었나 아니면 세상에 작은 빛이라도 되었나 돌아보게 됐다. 잃어버린 세월 10년 때문에 겸손해졌고 덕분에 아이들을 위한 학습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됐다.”고 지난 사건을 돌이켰다. 학습 만화 ‘한국사 바로 보기’에 이어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까지 끝내자 그에게는 다시 어린이 팬이 생겨났다. 요즘 아이들과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고 자란 부모가 함께 까치, 엄지, 두산, 동탁 등 그가 창조한 캐릭터를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작가에게는 무척 행복한 일이다. 이번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를 그리면서 이씨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아프리카, 중동, 남미, 동남아의 역사였다. 과거 식민지의 아픔을 겪었던 나라들은 왜 국경선이 직선인가, 북미는 거대한 두 제국인데 남미는 왜 갈라졌나 등의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권력보다 백성들의 삶 생생히 묘사 특히 권력의 이동보다는 백성의 삶을 생생하게 살피고자 애썼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을 그릴 때도 권력에 눈이 먼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라, 정복한 나라의 백성에게 자유란 개념을 찾아줘서 환대를 받았다는 식의 재미있는 접근법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만화가는 외과의사와 비슷하다.”란 지론을 폈다. “안 보이고 손 떨리면 안 된다는 것과 작업은 본인이 하고 돈은 사모님이 쓴다.”는 게 같단다. 담배는 끊었지만 여전히 술은 많이 마신다는 이씨는 고혈압, 당뇨 같은 지병보다 눈과 손의 건강에 더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다음 목표는 ‘삼국지’다. 삼국지는 많은 작가가 재해석에 도전한 고전. 만화로는 고(故) 고우영의 삼국지가 유명하다. 이씨는 “삼국지에 수많은 영웅이 있는데 왜 유비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가로 접근할 것이다. 유비는 의로움으로, 관우는 신의로, 장비는 의리로 그릴 생각이다. 유비가 얼마나 어진 사람이었는지 살펴볼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작품은 ‘만화 삼국지’ 맥주, 금융회사 등의 광고 모델을 하기도 했던 이씨는 최근 캐주얼 브랜드 유니클로의 광고를 촬영했다.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라 젊은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뱃살을 빼고 오라는 조건을 받아들여 힘들게 사진을 찍었다며 껄껄 웃었다. 만화가로서의 자존심이 있다면 인터넷에 올라가는 웹툰은 그리지 않는다는 것. 세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씨는 “지금만큼 한국 만화 시장이 좋은 때는 없다. 나는 젊었을 때 내 책을 내 이름으로 내고 싶은 갈증을 겪었지만 요즘은 뜻이 있다면 누구나 자기 만화를 발표할 수 있다.”며 웹툰의 장점부터 먼저 꺼냈다. 하지만 인터넷의 특성상 한 작가에게 부와 명예가 쏠리는 현상이 있고, 작가들이 지나치게 소모된다는 단점도 들었다. 200~300명의 작가가 웹툰을 연재하지만 10~20명에게만 고액의 원고료가 지급된다는 것. 그리고 포털 사이트는 출판사처럼 작가의 내공을 키우는 게 아니라 작가의 감성이 떨어지면 언제든 버릴 수 있다고 씁쓸해했다. 만화가 드라마, 영화 등의 원천 소재로만 이용되는 듯해 자존심이 상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꿈은 70대가 되면 손자, 손녀에게 들려주는 동화를 그리는 것이다. 남은 60대는 아직 파도치는 바다 위에 던져두었단다. ‘아마겟돈’으로 뼈아픈 실패를 맛본 애니메이션에 다시 도전할 생각도 있고 게임이나 창작 만화를 해 볼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치열한 마감 뒤에도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열변을 토하는 이씨는 여전히 ‘젊은 작가’였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만화가 이현세 “필화사건 겪으며 더 겸손해져 인터넷 웹툰은 그리지 않을 것”

    만화가 이현세 “필화사건 겪으며 더 겸손해져 인터넷 웹툰은 그리지 않을 것”

    그는 초록색과 빨간색이 같이 있으면 구분하기 어려운 적록색약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을 즐기는, 대한민국 최고의 만화가다. 이현세(57)씨가 세계사 학습 만화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녹색지팡이 펴냄)를 전체 15권으로 완간하고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났다. “‘천국의 신화’ 때문에 6년을 재판하고 나머지를 그리느라 4년을 고생했더니 어린이와 멀어져서 사인회에 가면 내 이름도 모른다. 다른 만화가들 앞에는 줄이 쫙 있는데 내 앞에는 몇 명 오지도 않고, 와서는 둘리를 그려 달라고 하더라.” 그가 어린이를 위한 학습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다. 한국의 상고사를 복원하고자 했던 대작 만화 ‘천국의 신화’는 음란물 배포 혐의로 기소됐지만 결국 무죄로 끝났다. 이씨는 “역사를 보는 눈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게 됐다. 필화 사건을 겪으며 내 만화는 독이었나 아니면 세상에 작은 빛이라도 되었나 돌아보게 됐다. 잃어버린 세월 10년 때문에 겸손해졌고 덕분에 아이들을 위한 학습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됐다.”고 지난 사건을 돌이켰다. 학습 만화 ‘한국사 바로 보기’에 이어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까지 끝내자 그에게는 다시 어린이 팬이 생겨났다. 요즘 아이들과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고 자란 부모가 함께 까치, 엄지, 두산, 동탁 등 그가 창조한 캐릭터를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작가에게는 무척 행복한 일이다. 이번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를 그리면서 이씨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아프리카, 중동, 남미, 동남아의 역사였다. 과거 식민지의 아픔을 겪었던 나라들은 왜 국경선이 직선인가, 북미는 거대한 두 제국인데 남미는 왜 갈라졌나 등의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권력보다 백성들의 삶 생생히 묘사 특히 권력의 이동보다는 백성의 삶을 생생하게 살피고자 애썼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을 그릴 때도 권력에 눈이 먼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라, 정복한 나라의 백성에게 자유란 개념을 찾아줘서 환대를 받았다는 식의 재미있는 접근법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만화가는 외과의사와 비슷하다.”란 지론을 폈다. “안 보이고 손 떨리면 안 된다는 것과 작업은 본인이 하고 돈은 사모님이 쓴다.”는 게 같단다. 담배는 끊었지만 여전히 술은 많이 마신다는 이씨는 고혈압, 당뇨 같은 지병보다 눈과 손의 건강에 더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다음 목표는 ‘삼국지’다. 삼국지는 많은 작가가 재해석에 도전한 고전. 만화로는 고(故) 고우영의 삼국지가 유명하다. 이씨는 “삼국지에 수많은 영웅이 있는데 왜 유비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가로 접근할 것이다. 유비는 의로움으로, 관우는 신의로, 장비는 의리로 그릴 생각이다. 유비가 얼마나 어진 사람이었는지 살펴볼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작품은 ‘만화 삼국지’ 맥주, 금융회사 등의 광고 모델을 하기도 했던 이씨는 최근 캐주얼 브랜드 유니클로의 광고를 촬영했다.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라 젊은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뱃살을 빼고 오라는 조건을 받아들여 힘들게 사진을 찍었다며 껄껄 웃었다. 만화가로서의 자존심이 있다면 인터넷에 올라가는 웹툰은 그리지 않는다는 것. 세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씨는 “지금만큼 한국 만화 시장이 좋은 때는 없다. 나는 젊었을 때 내 책을 내 이름으로 내고 싶은 갈증을 겪었지만 요즘은 뜻이 있다면 누구나 자기 만화를 발표할 수 있다.”며 웹툰의 장점부터 먼저 꺼냈다. 하지만 인터넷의 특성상 한 작가에게 부와 명예가 쏠리는 현상이 있고, 작가들이 지나치게 소모된다는 단점도 들었다. 200~300명의 작가가 웹툰을 연재하지만 10~20명에게만 고액의 원고료가 지급된다는 것. 그리고 포털 사이트는 출판사처럼 작가의 내공을 키우는 게 아니라 작가의 감성이 떨어지면 언제든 버릴 수 있다고 씁쓸해했다. 만화가 드라마, 영화 등의 원천 소재로만 이용되는 듯해 자존심이 상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꿈은 70대가 되면 손자, 손녀에게 들려주는 동화를 그리는 것이다. 남은 60대는 아직 파도치는 바다 위에 던져두었단다. ‘아마겟돈’으로 뼈아픈 실패를 맛본 애니메이션에 다시 도전할 생각도 있고 게임이나 창작 만화를 해 볼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치열한 마감 뒤에도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열변을 토하는 이씨는 여전히 ‘젊은 작가’였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만화가 이현세가 절대로 웹툰을 안그리는 이유는?

    만화가 이현세가 절대로 웹툰을 안그리는 이유는?

    그는 초록색과 빨간색이 같이 있으면 구분하기 어려운 적록색약이다. 하지만 여전히 아이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을 즐기는, 대한민국 최고의 만화가다. 이현세(57)씨가 세계사 학습 만화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녹색지팡이 펴냄)를 전체 15권으로 완간하고 지난 24일 기자들과 만났다. “‘천국의 신화’ 때문에 6년을 재판하고 나머지를 그리느라 4년을 고생했더니 어린이와 멀어져서 사인회에 가면 내 이름도 모른다. 다른 만화가들 앞에는 줄이 쫙 있는데 내 앞에는 몇 명 오지도 않고, 와서는 둘리를 그려달라고 하더라.” 그가 어린이를 위한 학습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다. 한국의 상고사를 복원하고자 했던 대작 만화 ‘천국의 신화’는 음란물 배포 혐의로 기소됐지만 결국 무죄로 끝났다. 이씨는 “역사를 보는 눈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게 됐다. 필화 사건을 겪으며 내 만화는 독이었나 아니면 세상에 작은 빛이라도 되었나 돌아보게 됐다. 잃어버린 세월 10년 때문에 겸손해졌고 덕분에 아이들을 위한 학습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됐다.”고 지난 사건을 돌이켰다. 학습 만화 ‘한국사 바로 보기’에 이어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까지 끝내자 그에게는 다시 어린이 팬이 생겨났다. 요즘 아이들과 ‘공포의 외인구단’을 보고 자란 부모가 함께 까치, 엄지, 두산, 동탁 등 그가 창조한 캐릭터를 읽고 대화를 나누는 것도 작가에게는 무척 행복한 일이다. 이번 ‘만화 세계사 넓게 보기’를 그리면서 이씨가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아프리카, 중동, 남미, 동남아의 역사였다. 과거 식민지의 아픔을 겪었던 나라들은 왜 국경선이 직선인가, 북미는 거대한 두 제국인데 남미는 왜 갈라졌나 등의 부분에 초점을 맞췄다. 특히 권력의 이동보다는 백성의 삶을 생생하게 살피고자 애썼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나폴레옹을 그릴 때도 권력에 눈이 먼 영웅의 일대기가 아니라, 정복한 나라의 백성에게 자유란 개념을 찾아줘서 환대를 받았다는 식의 재미있는 접근법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만화가는 외과의사와 비슷하다.”란 지론을 폈다. “안 보이고 손 떨리면 안 된다는 것과 작업은 본인이 하고 돈은 사모님이 쓴다.”는 게 같단다. 담배는 끊었지만 여전히 술은 많이 마신다는 이씨는 고혈압, 당뇨 같은 지병보다 눈과 손의 건강에 더 신경을 쓴다고 말했다. 다음 목표는 ‘삼국지’다. 삼국지는 많은 작가가 재해석에 도전한 고전. 만화로는 고(故) 고우영의 삼국지가 유명하다. 이씨는 “삼국지에 수많은 영웅이 있는데 왜 유비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는가로 접근할 것이다. 유비는 의로움으로, 관우는 신의로, 장비는 의리로 그릴 생각이다. 유비가 얼마나 어진 사람이었는지 살펴볼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맥주, 금융회사 등의 광고 모델을 하기도 했던 이씨는 최근 캐주얼 브랜드 유니클로의 광고를 촬영했다. 대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라 젊은이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뱃살을 빼고 오라는 조건을 받아들여 힘들게 사진을 찍었다며 껄껄 웃었다. 만화가로서의 자존심이 있다면 인터넷에 올라가는 웹툰은 그리지 않는다는 것. 세종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이씨는 “지금만큼 한국 만화 시장이 좋은 때는 없다. 나는 젊었을 때 내 책을 내 이름으로 내고 싶은 갈증을 겪었지만 요즘은 뜻이 있다면 누구나 자기 만화를 발표할 수 있다.”며 웹툰의 장점부터 먼저 꺼냈다. 하지만 인터넷의 특성상 한 작가에게 부와 명예가 쏠리는 현상이 있고, 작가들이 지나치게 소모된다는 단점도 들었다. 200~300명의 작가가 웹툰을 연재하지만 10~20명에게만 고액의 원고료가 지급된다는 것. 그리고 포털 사이트는 출판사처럼 작가의 내공을 키우는 게 아니라 작가의 감성이 떨어지면 언제든 버릴 수 있다고 씁쓸해했다. 만화가 드라마, 영화 등의 원천 소재로만 이용되는 듯해 자존심이 상한다고 덧붙였다. 그의 꿈은 70대가 되면 손자, 손녀에게 들려주는 동화를 그리는 것이다. 남은 60대는 아직 파도 치는 바다 위에 던져두었단다. ‘아마겟돈’으로 뼈아픈 실패를 맛본 애니메이션에 다시 도전할 생각도 있고 게임이나 창작 만화를 해 볼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치열한 마감 뒤에도 형형하게 빛나는 눈빛으로 열변을 토하는 이씨는 여전히 ‘젊은 작가’였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씨줄날줄] 지안(集安)의 가을/이도운 논설위원

    425년 동안 고구려의 도읍이었던 국내성(현 지명 지안)은 동, 서, 북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였다. 대국의 수도가 대부분 사방 만리의 평지에 건설됐던 것에 비하면 다소 의외의 지형이었다. 지난 10월 18일 오전 10시. 지안의 가을은 봄처럼 따뜻하고 고향처럼 편안했다. 하루 전 백두산에서 살을 에는 듯한 강추위를 겪고 온 탓도 있었을 것이다. 광개토대왕비는 지안 동북부의 얕은 둔덕에 자리잡고 있었다. 장엄한 역사를 온몸에 새기고 1500년의 풍상을 견뎌낸 돌기둥은 이제 초라한 비각 속에 갇혀 있었다. 중국 정부에서 임명하는 별 다섯개짜리 가이드들이 관광객들을 상대로 중국이 해석하는 고구려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었다. 광개토대왕비에서 200m 떨어진 곳에 대왕의 능이 자리잡고 있다. 오랜 세월 방치돼 허물어져 가는 돌무덤에서 옛날 동북아를 호령하던 영웅의 기상을 짐짓 엿볼 수 있을 뿐이다. 광개토대왕비와 능에서 다시 동북 방향으로 1㎞쯤 떨어진 곳에 있는 장군총까지 관람한 뒤 기념품 센터로 들어갔다. 조선족 여인들이 광개토대왕비의 탁본과 모형품 등을 팔고 있었다. 고구려의 역사를 소개하는 책자도 10권이 넘었다. 함께 갔던 동북아역사재단의 홍면기 박사는 “저자들이 모두 동북공정의 주인공들”이라고 설명했다. 머지않아 동북공정의 결과가 중국 역사 교과서에 반영된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닐 것이다. 지안의 남쪽으로는 압록강이 흐르고 있다. 그 너머가 바로 북한이다. 모터 보트를 타고 압록강으로 들어갔다. 강은 북한과 중국의 공동관리지역이다. 북한 쪽으로 가까이 가도 문제가 없었다. 압록강과 잇닿은 중국 지역은 평지고, 북한 지역은 곧바로 산이다. 원래 그랬던 것이 아니다. 중국 측에서 댐을 쌓아 물길을 북한 쪽으로 돌렸다고 한다. 북한 쪽 산 중턱에 난 도로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주민들이 보였다. 손을 흔들었더니 똑같이 손을 흔들며 화답한다. 그들은 우리 일행이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도로 아래로는 50~100m마다 국경을 감시하는 북한군의 초소가 보였다. 북한 쪽 산은 예외 없이 민둥산이다. 더 이상 벗겨 먹을 산도 없는 듯하다. 산 하나에 거대한 굴뚝이 솟아 있었다. 구리 제련공장이었다. 중국에서 전기를 끌어와 공장을 가동하고, 생산된 구리는 중국으로 수출한단다. 지안에는 고구려의 역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동북아 정세의 현재와 미래도 그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인간 심연 들여다본 심리 서적 3권] 의심이 열어준 새세상

    [인간 심연 들여다본 심리 서적 3권] 의심이 열어준 새세상

    신이 없는 세계, 종교적 확실성을 잃은 이 혼란하고 불안한 세계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마음 둘 곳 없는 현대인 덕에 신경정신과 병원은 그 어느 때보다 호황이다. 남과 여가 짝을 맺듯 도시인들은 전담 슈링크(shrink·정신분석의)를 둔다. 심리학을 다룬 책들이 봇물 터지듯 하고 정신과 의사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 순위를 장악한다. 의심, 고독, 거짓말, 속임수 등 갈래는 다르지만 인간 심리의 바닥을 들여다본 책들을 모았다. ‘의심의 역사’(제니퍼 마이클 헥트 지음, 김태철·이강훈 옮김, 이마고 펴냄)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2600년 동안 동서양의 종교적 의심을 연대기적으로 살폈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과학사를 전공한 저자는 그리스신화에서부터 유대교,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기독교, 이슬람교 등 세계 각 지역종교의 발생과 변천과정을 추적하며 믿음의 역사 이면에 가려진 의심의 역사를 재구성한다. 모교에서 예술창작을 가르치고 있는 저자는 “역사상 최초의 의심은 2600년 전의 일로서 모든 신앙보다 오래되었다. 신앙은 멋진 것일 수는 있겠지만 유일한 멋진 것은 아니다. 의심은 신앙 못지않은 생동감으로 좋은 삶을, 열정으로 진리를 처방해 왔다. 많은 기준으로 판단하건대, 의심은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이 책은 그 성공의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방황하는 인간은 주로 신을 찾는다. 절망에 처했거나 환희에 빠진 자의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말도 ‘오, 신이시여’다. 프로타고라스의 책 ‘신에 관하여’는 오직 첫 문장만 남아있지만 그 위력은 대단하다. “나는 신이 존재한다, 안 한다 말할 수 없다. 어떤 모습인지도 말할 수 없다. 그 앎을 가로막는 요인들이 너무 많은데, 그중 논의 대상이 불분명하고 인간 삶이 너무 짧다는 사실도 포함된다.” 이 책 때문에 프로타고라스는 신성 모독으로 기소되었고 재판 전에 바다 건너 시칠리아로 도망가다가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의심의 역사는 종교 역사의 네거티브 상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실체 없는 역사의 그림자는 아니다. 종교적 거장들이 위대한 말로 세계를 영원히 바꿔 놓았다면, 의심도 성실하게 진리를 추구해 왔다. 믿음에 거룩한 성인과 순교자들이 있다면 의심에도 소크라테스에서 스티븐 호킹까지 당대의 권력과 사회통념에 도전함으로써 역사를 진전시켰던 위대한 ‘의심의 영웅’들이 있다. 우리의 삶은 불공정하다. 우리는 정의를 갈망하지만, 세상에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고통스러운 일들이 별 이유도 없이 벌어진다. 세상에 존재하는 불의의 문제는 많은 신앙인을 회의에 빠지게 한 민감한 주제였다. 근대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신이 악을 막아내고자 하지만 그럴 능력이 없다면 신은 무능하다. 능력은 있는데 그럴 의향이 없다면 신은 악하다. 능력도 있고 의향도 있다면? 그렇다면 악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라고 의심했다. 저자는 여기서 성서 가운데 ‘욥기’를 의심의 텍스트로 다시 읽는다. 욥은 선량한 사람으로 신에게 축복받았다. 그러나 어느 날 신은 그의 신실함을 놓고 사탄과 내기를 벌인다. 욥에게 갖은 박해를 가하던 신이 욥을 꾸짖고 다시 선물을 주어 화해하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난다. 인간에게는 정의가 있지만 신에게는 없다. ‘욥기’는 이런 정의 없는 세계에 대한 체념의 우화란 게 저자의 설명이다. 현대 작가 엘리 위젤은 홀로코스트 당시 죽음의 수용소에서 가장 사랑받던 어린아이를 게슈타포가 데리고 가 목매달아 죽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것을 보고 누군가가 “도대체 지금 신은 어디 있는가?”라고 말하자 위젤은 중얼거린다. “그는 지금 이곳에 목매달려 있다.” 저자는 우리가 정말로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의심뿐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지혜, 지식, 친구, 가족에 헌신하고 지역사회, 돈, 정치, 쾌락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지속적인 행복을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따라서 마음을 열고 정신을 맑게 유지해야 한다. 그러려면 의심하고 변화를 기대하고 죽음을 수용해야 인생을 즐길 수 있다. 애플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는 “항상 바보처럼 살라.”(Stay foolish)고 말했다. 그도 아인슈타인처럼 가장 위대한 의심가였다. 2만 8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쏘지마! 쏘지마! ‘42년 철권’ 목숨 구걸했다

    쏘지마! 쏘지마! ‘42년 철권’ 목숨 구걸했다

    독재자의 말로는 비참했다. 한때는 부패한 왕정을 무너뜨린 ‘젊은 영웅’이었으나 42년간의 철권통치로 악명을 날린 리비아의 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에서 과도정부군(NTC)의 총에 맞아 결국 숨을 거뒀다. 최후의 순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국가원수의 면모는 찾아볼 수 없었다. 콘크리트 배수로에 숨어 있다 발각된 그는 총을 겨누는 병사에게 “쏘지 마, 쏘지 마.”라며 목숨을 구걸했다. 지난 8월 트리폴리 함락 이후 도피 중이던 카다피 전 국가원수는 20일 최후의 은신처로 지목돼 온 고향 시르테에서 체포되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해 사망했다고 로이터와 알자지라 등 외신들이 NTC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이로써 지난 2월 ‘아랍의 봄’의 영향으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래 8개월에 걸친 리비아 사태는 막을 내렸다. 리바아 과도국가위원회(NTC)의 마무드 지브릴 총리는 이날 “오랫동안 이 순간을 기다렸다. 카다피가 사망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압델 하페즈 고카 NTC 대변인도 “폭정과 독재의 종말을 알리는 역사적인 순간”이라면서 “카다피는 독재자의 운명을 맞았다.”고 말했다. NTC 관계자에 따르면 카다피는 시르테 근처에서 생포될 당시에 양쪽 다리에 상처를 입었고, 앰뷸런스로 이송 도중에 부상이 심해 사망했다. 카다피는 머리에도 총상을 입은 것으로 전해졌다. NTC측은 카다피가 체포 당시 황금으로 만든 권총을 든 채 카키색 군복과 터번 차림을 하고 있었으며 두 다리에 총을 맞아 심하게 다친 상태였다고 밝혔다. 카다피는 배수관에 숨어있다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시민군을 향해 “쏘지마! 쏘지마!”라고 외쳤던 것으로 전해졌다. 카다피의 사망설에 대해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아직까지 이 같은 언론 보도가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NTC는 사실상 최종 승리를 선언했다. NTC 지휘관 유누스 알 압달리는 “시르테가 해방됐고 카다피군은 없다.”고 말했다. 카다피의 4남 무타심과 카다피의 군 최고책임자도 NTC군과의 총격전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NTC군 병사들과 시민들은 시내 중심부에 모여들어 ‘알라는 위대하다.’고 외치며 환호했고 승리를 자축하는 자동차 경적이 곳곳에서 울려 나왔다. 카다피는 지난 2월 15일 리비아 제2의 도시 벵가지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뒤 “결사항전”을 공언하며 퇴진을 거부해 왔다. 그러나 나토군이 벌인 5개월여간의 융단폭격과 반군의 대대적인 군사작전으로 지난 8월 수도 트리폴리가 무너지면서 카다피는 도망자 신세로 전락했다.  이후 카다피의 행방을 둘러싼 각종 추측이 무성했지만 실제 은신처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다만, 그가 여전히 리비아 내에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되면서 고향인 시르테와 바니 왈리드 등이 유력한 은신처로 거론돼 왔다. 그러나 NTC 내부에서는 최근 그가 남부 사막의 사브하에 은신했거나 인접 아프리카 국가에서 병력을 모집하고 있을 가능성이 제기돼 혼선을 빚기도 했다.  카다피 사망 소식은 시르테가 NTC군에 함락됐다는 소식이 알려진 뒤 얼마 안 돼 전해졌다. 이날 오전 8시 30분 나토군이 공습을 펼쳤고, 이어 NTC군이 최후의 공격을 감행해 90분 만에 시르테를 점령했다. 카다피는 나토군의 공습을 피해 달아나다 체포됐으며, 낮 12시 45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순녀·유대근기자 coral@seoul.co.kr
  • 이, 1차 477명 석방… 1대 1027 교환 착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 사이의 역사적인 포로 맞교환이 18일 오전(현지시간) 예정대로 진행됐다. 양쪽은 ‘1대1027’의 포로 맞교환 합의에 따라 이날 팔레스타인에 억류돼 있던 이스라엘인 길라드 샬리트(25) 하사가 5년 만에 집으로 돌아왔고 이스라엘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팔레스타인 포로 477명도 1차로 풀려났다. 나머지 팔레스타인 포로들은 2개월 뒤 풀려난다. 포로 맞교환 작업은 1000여명의 이스라엘 경찰이 팔레스타인 포로들의 이동로에 삼엄하게 배치되면서 시작됐다고 아랍권 위성방송 알자지라가 전했다. ‘귀환 영웅’이 된 샬리트 하사의 송환은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연결 통로인 케렘 샬롬 국경검문소를 통해 이뤄졌다. 샬리트는 이집트 국경 지역의 이스라엘 군기지로 이송된 뒤 헬리콥터로 텔노프 공군기지로 옮겨졌다. 그는 조금 피곤해 보였지만 이따금 미소를 지어 보이기도 했다. 샬리트는 이집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강하며 가족과 친구들이 그리웠고 집으로 돌아가게 돼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그는 1주일쯤 전부터 풀려날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혹시 계속 억류되거나 일이 잘못될까 봐 겁이 났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또 이번 맞교환이 양국 간 평화 증진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도 피력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도 이날 “샬리트가 텔노프 공군기지 내 사무실에서 가족과 상봉했다.”고 밝히며 “길라드, 이스라엘로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 당신이 집으로 돌아와 기쁘다.”며 환영했다.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샬리트는 진찰 결과 영양실조 증세를 보였으며 억류 기간 동안 햇빛을 자주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샬리트는 부모와 함께 고향인 이스라엘 북부 미츠페 힐라로 돌아갔다. 팔레스타인 포로들은 샬리트가 풀려난 뒤 하마스 쪽에 넘겨졌다. 이 가운데 300명은 가자지구로, 나머지는 요르단강 서안지구 등으로 이송됐다. 팔레스타인 석방자 명단에는 2002년 이스라엘 네타니아 호텔에서 30명을 숨지게 한 자살폭탄 테러 연루자 등 폭탄 테러범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이스라엘 대법원은 전날 이스라엘의 테러 희생자 가족들이 맞교환을 중지해 달라며 법원에 낸 청원에 대해 “맞교환은 정치적 결정”이라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한편 이스라엘 국민 10명 가운데 8명이 이번 포로 맞교환에 찬성했지만,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석방이 이스라엘 안보에 피해를 줄 것이라는 의견도 50%를 차지했다고 CNN이 보도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JAPAN TOKYO-도쿄 아주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같은

    JAPAN TOKYO-도쿄 아주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같은

    JAPAN TOKYO 도쿄 아주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같은 도쿄에서의 나흘은 조금 불편했다. 대지진의 후유증 때문은 아니었으며, 서울보다 평균 2도 높은 후덥지근한 날씨 때문도 아니었다. 그냥 그곳이 도쿄였기 때문이다. 삼성과 애플의 전쟁이 마치 국가대항전이라도 되는 듯 중계되고, 스마트폰 사용자 1,000만명이 넘는 나라에 사는 사람의 눈에, 이 도시는 깊이 들여다볼수록 불편함을 감수하는 아날로그의 세계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지킬 것을 지키는 ‘진득함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도쿄와 그곳 사람들의 차분한 일상에 잠시나마 깃들어 있었다. 조바심에 길들여진 서울의 디지털적 일상이 왠지 더 어색하게 느껴졌다. 글·사진 최승표 기자 취재협조 호텔스닷컴 kr.hotels.com 1, 3, 4, 일본 동북부 대지진으로 여행을 꺼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도쿄를 여행하는 데 큰 불편은 없었으며, 도쿄 사람들은 덤덤하고 의연하게 일상을 살고 있었다 2 서울 명동만큼 많은 인파가 몰리는 시부야의 밤거리는 여전히 복작복작했다. 전통 복장을 한 거리의 예술가가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웠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도쿄의 안부를 묻는 당신에게 하네다공항에 내려 모노레일을 탔다. 일본 전역에서는 전력 사용을 줄이기 위해 공공장소의 냉방시설 가동률을 80% 수준으로 낮췄다고 했지만 실내 공기는 견딜 만했다. 사람들은 차분히 책을 읽고 있었고, 더러는 조용히 담소를 나누고 있었으며, 빈자리가 있는데도 20분 가량을 서 있는 사람도 있었다. 긴팔옷을 끼어 입어야 할 정도로 싸늘한, 한여름의 서울 전철과는 사뭇 달랐다. 전철을 세 번 갈아타고 숙소가 있는 도쿄의 중심가, 아카사카로 향했다. 공항 리무진버스의 배차 간격이 너무 길어 기다릴 수 없어서 이용한 전철이었는데 무거운 여행가방을 들고 수차례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이 만만치 않았다. 나흘간 도쿄의 곳곳을 돌아다니는 동안, 역설적으로 도쿄의 촘촘한 전철망은 가장 큰 불편 요소 중 하나였다. 아무리 도쿄 메트로와 JR라인이 경쟁회사라지만 도무지 어느 역에서 어떻게 갈아타야 하는지 명확한 정보를 찾기란 어려웠다. 역무원들도 헷갈리는지 전화번호부만한 책을 꺼내 질문에 답해 주기도 했다. 그나마도 한참 돌아가는 길을 알려주었다는 사실을 나중에서야 스마트폰을 찾아보고 알았다. 세계 최대의 전자기술을 가진 나라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풍경이었다. 의외의 풍경을 나흘간 매일 마주쳤다. 직장인들이 많은 시오도메 지역에는 금권金券숍이 많았다. 겉모양은 우리의 복덕방과 흡사한데 신칸센 탑승권부터 공연 관람권, 야구경기 입장권, 맥도날드 할인권까지, ‘별의별’ 티켓이 다 있었다. 도쿄에는 온라인 쇼핑몰이며, 소셜커머스며, 할인 혜택 풍성한 카드며…, 이런 것들이 없는 세상인 것만 같았다. 아날로그 도쿄의 면모는 거리를 지나면서, 사소한 식사 한 끼를 하면서도 느낄 수 있었다. 외국인들이 많은 번화가를 제외하고는,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고, 무선인터넷이 잡히는 카페라고는 도통 찾아볼 수 없고, 웬만한 가게들은 신용카드를 내밀면 ‘No, Sorry’라고 답했다. 비영어권 국가에서 영어로 편하게 대화할 수 있고, 신용카드로 껌 하나까지 살 수 있는 것이 과연 ‘글로벌’한 것인지, 잠시나마 생각해 봤다. 한국에서는 일본이 지진의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할 것처럼 보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큰 재난을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단서라고는 무지MUJI 매장 1층에 비치된 재난 대비 구호용품 세트가 전부였다. 도쿄인들은 평범하고 담담하게 일상을 살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호들갑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에노 시장에서는 늘상 그러하듯 고소한 다코야키의 향이 풍겼고, 젊은 예술가는 기치조지의 이노카시라 공원에서 밝은 그림으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말 벼룩시장, 거기 사람이 있었네 토요일의 정오, 하네다공항에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서둘러 찾아간 곳은 센다가야역. 도쿄의 곳곳에서 열리는 주말 벼룩시장 중에서도 규모가 크기로 유명한 메이지공원이었다. 유행과 첨단의 도시보다는 사람냄새 나는 이면의 풍경을 만나고 싶어 오래 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곳이다. 야외에서 열리는 벼룩시장의 풍경은 얼핏 보기엔 우리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차이가 있다면 버려도 주워가지 않을 듯한 아이템부터 장인정신이 담긴 수공예품까지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목이 없는 기타가 있는가 하면, 고급 자기제품도 있었다. 아이템이 다양하다는 것은 천차만별의 상인들이 이곳에 운집해 있다는 증거다. 한국 아이돌 공연장에서 피켓을 들고 있으면 어울릴 만한 여대생들부터, 시내에서 번듯한 중고 전문 가게를 운영하다가 경제난으로 가게를 접고 주말마다 벼룩시장을 돌며 근근이 살고 있다는 영어를 잘하던 중년 사내, 자신이 직접 만든 안경은 명품 안경보다 좋다며 호기롭게 20만원짜리 안경테를 팔고 있는 30대 남성, ‘뼛속까지’ 장사꾼인 터키인도 케밥을 팔고 있었다. 이 얼마나 아날로그적인 사람 풍경인가. 굳이 주머니를 열지 않아도 정겨운 풍경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러나 조금만 발품을 팔고, 두 눈을 부릅뜨면 저렴한 가격으로 여행용 캐리어에 한 살림을 채울 수도 있다. 필름카메라, 자기 제품, 앤티크 장식품, 구제 가방 정도는 믿고 구매할 만하다. 개인적으로 80년대 초반 태생의 탐나는 필름카메라가 있어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가격이 떨어질 대로 떨어진 장 마감 시간을 기다려 상인과 약간의 실랑이 끝에 구매한 가격은 1,800엔(약 2만4,000원).나름대로 ‘득템’에 성공했다. 도쿄 재활용 운동 시민 모임은 1992년부터 메이지공원, 오이경마장, 세이부돔, 요코하마 등 수도권 근교 및 미야기현에서 벼룩 시장을 주최하고 있다. 입점비용 2,500~3,500엔을 내면 누구나 자신만의 제품을 들고 나와 ‘주말 장사꾼’이 될 수 있다. 시장 정보는 홈페이지(www.trx.jp)에 상세히 나와 있다. 구글 번역기를 이용하면 위치, 운영 시간 등 핵심 정보를 어렵지 않게 취할 수 있다. 1 도쿄에 여행을 간다면 반드시 주말에 벼룩시장을 들러 볼 것을 추천한다. 쓸 만한 제품을 헐값에 건질 수도 있으며, 정겨운 사람 풍경을 보면 마음까지 따뜻해진다 2 주말 벼룩시장에는 외국인도 적지 않다. 사전에 신청만 하면 누구나 자리를 깔고 생활용품을 판매할 수 있다 3, 4 벼룩시장에는 의외로 건질 만한 아이템이 많다. 반면 공짜로 줘도 쓰지 않을 것 같은 엉뚱한 물품들도 적지 않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골목길을 걷다가 느긋하게 커피 한 잔 일본인들이 도쿄에서 가장 살고 싶은 곳으로 손꼽는 기치조지와 지유가오카의 공통점은 느긋한 분위기의 아날로그적 매력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번화한 긴자, 신주쿠, 롯폰기 등 중심가에 있다가 이곳으로 오면 시간마저 절반의 속도로 흐르는 듯하다. 사실 기치조지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지브리 미술관’ 때문이었다. 헌데 그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것 또한 ‘아날로그적’인 미술관의 정책 탓이었다. 버젓이 인터넷이 있는데도 미술관은 지정 여행사와 로손Lawson이라는 편의점에서만 입장권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마저도 입장일이 가까워지면 구하는 것도 어렵다. 나의 정보 부재를 한탄하며, ‘지브리’가 없어도 충분히 매력적인 기치조지로 향했다. 기치조지 전철역과 이노카시라 공원 사이에는 수많은 앤티크 숍과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로 가득했다. 영화 <구구는 고양이다>의 주요 배경이 된 이노카시라 공원은 주말을 맞아 호수에서 보트를 타는 연인들과 수공예품을 들고 나온 예술가들로 활기가 넘쳤다. 폐품을 활용한 기괴한 모형의 장식품부터, 시중의 상점에서는 구할 수 없는 수공예품들로 가득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지유가오카로 향했다. 커피숍 2층에 앉아 전철역 앞 작은 광장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잠시나마 권태를 즐겼다. 갓 구워낸 빵 한 조각과 커피를 즐기고,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오밀조밀한 인테리어 소품들을 구경하며, 필름카메라를 전문으로 다루는 카메라 가게를 배회하는 시간 동안 나는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듯했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대우 재믹스’로 조악한 게임을 즐기던 시절. 내게는 ‘닌텐도 패밀리’가 있었으며, 일본 만화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는 물론 국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정교한 일제 학용품도 많았다. 도쿄에 살던 이모가 보내주는 선물 꾸러미가 도착할 때마다 나는 동네에서 영웅이 되었다. 지유가오카의 문구점과 장난감 가게, 낡은 건물 간판들까지…. 이 낯선 도시는 묘한 힘을 갖고 있었다. 나로 하여금 잊혀졌던 유년의 기억을 살포시 끄집어내 미소짓게 만들었으니 말이다. 5 지유가오카의 명소인 라비타는 작은 쇼핑거리로, 물의 도시 베니스를 연상케 한다 6, 7 기치조지의 이노카시라 공원은 주말마다 수공예품을 판매하는 장이 선다. 폐품을 활용한 예술품과 일본인들의 정교한 손기술을 보여주는 실용품들이 눈길을 끈다 8 지유가오카에 위치한 뽀빠이 카메라. 필름 카메라 사용자를 위한 제품을 전문적으로 다룬다 [people] 호텔스닷컴 피터 요시하라 한·일 마케팅 총괄이사 “도쿄 자유여행, 안심하고 오세요” 호텔스닷컴에서 한국과 일본의 마케팅을 담당하고 있는 피터 요시하라 이사는 한국 여행객들에게 안심하고 도쿄를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한국의 자유여행 인구가 놀라울 정도로 늘고 있다. 아시아에서 해외여행을 가장 많이 하고 있는 일본, 호주보다도 그 성장세가 빠르다” 세계 최대의 인터넷 여행사인 ‘익스피디아Expedia’의 계열사인 호텔스닷컴Hotels.com이 한국에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내 맘대로’ 호텔을 선택하는 자유여행객이 급증하고 있다는 증거다. 3월11일 일본 동북부 대지진으로 한국인 여행객의 발길이 뚝 끊겼지만 도쿄를 중심으로 서서히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과 일본의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는 피터 요시하라(한국이름 양성호) 이사를 만나 최근 동향을 들어 봤다. Q. 대지진으로 한국에서는 일본 여행이 급감했는데 얼마나 체감하고 있나. A. 호텔스닷컴 한국 사이트에서 도쿄는 부동의 1위를 점하고 있었으나 대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것이 사실이다. 일부 도쿄 호텔은 방문객 감소로 영업을 중지하기도 했으며, 많은 호텔들이 방문객이 줄면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도쿄는 여행에 전혀 지장이 없으며, 지진 이전과 비교했을 때 여행객이 느끼기에 위험하거나 불편한 요소는 없으니 한국인들이 안심하고 도쿄를 여행했으면 한다. 올여름 일본에서는 오사카, 후쿠오카, 규슈, 오키나와 등의 호텔 예약이 가장 활발했다. 오사카는 올 여름, 호텔스닷컴 한국사이트에서 예약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호황이었다. 호텔스닷컴이 전세계 여행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분의 2 이상이 일본 여행에 긍정적이라고 밝혔고, 일본은 3대 선호지역으로 꼽히기도 했다. 일본 관광산업이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는 증거다. Q. 여름 휴가철 한국인들의 인기 여행지역은? A. 오사카, 뉴욕, 상하이, 홍콩, 파리 등이 인기가 많았다. 한국에서는 필리핀의 예약률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다. 호텔스닷컴이 강점을 가진 미국 지역의 예약도 많은데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라스베이거스의 예약이 꾸준한 편이다. Q. 호텔스닷컴은 최근 3년간 한국에서 매우 공격적인 모습이다. A. 한국어 사이트(kr.hotels.com)를 개설한 2008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세자리 수 이상의 매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이에 기본적인 온라인 키워드 광고 외에도 케이블 및 공중파 TV 채널에도 광고를 진행했다.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단골 고객이 늘고 있다는 점은 한국인들이 그만큼 호텔스닷컴의 서비스에 만족하고 있다는 증거다. Q.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의 반응은 어떠한가. A. 호텔스닷컴은 지난 5월 새로운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을 선보였으며, 한국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서인지 예약이 꾸준히 늘고 있다. 아이폰을 통해 8~9건 예약될 때, 안드로이드를 통해 4~5건 예약되는 비율을 보이고 있다. 아이패드를 통한 예약도 적지 않다. Q. 최근 모회사인 익스피디아도 한국어 사이트를 오픈했는데. A. 호텔스닷컴의 강점은 ‘현지화된 서비스’다. 지금 익스피디아의 한국 사이트를 보면, 호텔스닷컴의 처음 모습처럼 어색하다. 호텔스닷컴은 ‘한국 웹사이트보다 더 한국스럽게’ 만든다는 목표로 변화를 이뤄 왔다. 현재는 웹사이트에 대한 고객불만이 거의 없을 정도로 고객들이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수준 높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콜센터 직원들도 호텔스닷컴의 큰 경쟁력이다. 이외에도 올해 내에는 고객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다양한 혜택을 줄 수 있는 항공사 마일리지 개념의 ‘보상 프로그램’을 준비 중에 있다. ‘호텔스닷컴 Hotels.com’은 세계 최대의 온라인 여행사인 익스피디아의 자회사로서, 전세계 13만5,000개의 호텔을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원스톱 쇼핑 사이트이다. 2~3일간 반짝 할인, 마감 임박 할인, 주요 도시 40~50% 할인 이벤트로 인기를 끌고 있다. 2008년부터 한국어로 된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콜센터에서는 한국어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place] 여전히 매력적인 도쿄, 고급 호텔을 노려라 도쿄의 주요 호텔 관계자들은 “해외여행객이 크게 줄어들어 가격이 저렴해진 지금이 여행의 호기”라며 한국인들의 방문을 당부했다. 최근 인터넷을 이용해 고급 호텔을 이용하는 수요가 늘면서 한국 시장에 관심을 갖는 호텔도 늘고 있다. 호텔스닷컴이 자신 있게 추천하는 도쿄의 5성급 호텔 두 곳을 들러 관계자들과 인터뷰를 나눴다. 일본 전통에 서양의 미를 가미하다 캐피톨 호텔 도큐 Capitol Hotel Tokyu 수수무 토가시 총지배인 일본의 명성 높은 호텔 그룹인 도큐Tokyu는 지금의 캐피톨호텔을 2010년 새롭게 공개했다. 4년간의 대공사는 ‘개보수Renovation’의 개념이 아닌 ‘재건축Rebuliding’에 가까운 수준으로 진행됐다. 관공서, 기업체가 많은 아카사카 중심 지역에 위치한 만큼 출장자들이 많고, 한국 기업들도 주변에 많아 한국인들의 방문도 많은 편이다. 캐피톨호텔도큐는 일본 전통의 미를 철저히 표방한다. 건물 외관은 서양식이지만 객실 내부나 레스토랑, 로비 등을 최대한 일본식으로 꾸몄다. 최근 리츠칼튼, 페닌슐라 등 해외의 특급 체인 호텔들이 일본에 속속 등장하고 있는데 이들과 비교해도 객실 넓이는 45m2 수준으로 매우 넓은 편이다. 음식과 차도 일본 최고의 맛을 자랑한다. 특히 식사 후에 일본식 다도를 경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돼 있다. 지난 3월 대지진의 영향으로 올해까지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한국에 적극적인 홍보활동을 통해 고객을 유치할 예정이다. 오히려 지금은 호텔 가격이 많이 내려간 만큼 출장 목적뿐 아니라 레저 여행객들도 캐피톨호텔도큐를 찾으면 좋을 것이다. www.capitolhoteltokyu.com 최고의 전망 자랑하는 디자인호텔 파크 호텔 도쿄 Park Hotel Tokyo 마코토 엔도 영업 이사 파크호텔은 전세계적 네트워크를 가진 디자인 호텔Design Hotels의 유일한 일본 회원 호텔로서 독특한 디자인과 편리한 접근성, 빼어난 전망이 강점이다. 시오도메 미디어 타워의 25층부터 34층까지 호텔로 사용하고 있으며, 독특한 디자인으로 유행에 관심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다. 익스피디아의 직원들이 우수 호텔로 선정한 바 있으며, 미슐랭 가이드가 선정한 레스토랑도 보유하고 있다. 긴자 지역까지 걸어갈 수 있는 시오도메역에 위치한 호텔은 오다이바로 갈 수 있는 유리카모메(전용열차)를 탑승하기에도 편리하다. 객실이 전부 고층에 자리한 만큼 전망도 좋다. 도쿄타워가 가까이 보일 뿐 아니라 맑은 날에는 후지산도 보인다. 친환경적인 객실 디자인은 물론 삼각형 모양으로 34층까지 천장이 뚫려 있는 로비 등은 독특한 디자인을 자랑한다. 일본 교토식 레스토랑, 도쿄에서 가장 유명한 바텐더가 있는 펍, 아로마 테라피 등도 파크호텔의 강점이다. 현재 한국인 직원도 1명 있어 한국인들에게 더욱 친밀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www.parkhoteltokyo.com 1 캐피톨호텔도큐는 일본 전통의 미를 철저히 표방한다. 건물 외관은 서양식이지만 객실 내부나 레스토랑, 로비 등을 일본 전통식으로 꾸몄다 2 파크호텔은 일본 유일의 디자인 호텔의 회원 호텔로서 독특한 디자인과 편리한 접근성, 빼어난 전망을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위 기사는 기사콘텐츠 교류 제휴매체인 여행신문의 기사입니다. 이 기사에 관한 모든 법적인 권한과 책임은 여행신문에 있습니다.
  • 中 신해혁명 100주년 “위대한 중화부흥” 제창

    중국 공산당이 쑨중산(孫中山·쑨원)을 강력하게 끌어안으며, 그의 계승자를 자처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9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대회 연설을 통해 ‘위대한 민족 영웅, 위대한 애국주의자, 중국 민주혁명의 위대한 선구자’로 치켜세우며 ‘쑨중산 선생’을 17차례나 언급했다. 인민대회당 무대에는 쑨중산의 대형 초상화가 내걸렸다. ●후 “쑨중산” 17차례 언급… 공적 치하 후 주석은 “100년 전 쑨중산 선생이 이끈 신해혁명은 중국의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변화를 이끌어냈다.”면서 “신해혁명의 폭발은 당시 중국 인민들의 민족독립과 중화 부흥의 소망을 집중 반영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쑨 선생의 서거 이후 공산당은 그의 바람을 이어받아 노력한 끝에 신민주주의 혁명의 승리를 거둬 인민이 주인이 되는 중화인민공화국을 성립하고 민족 독립과 인민국가 수립의 역사적 임무를 달성했다.”면서 “공산당은 쑨 선생의 사상을 발전시켜 현대국가화의 이상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후 주석은 신해혁명이 양안 동포의 공동 자산이라고 강조한 뒤 “함께 손잡고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힘을 보태자.”고 타이완을 향해 적극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7월 1일 공산당 창당 90주년 기념대회에서 마오쩌둥 전 주석을 6차례 언급한 것과 비교하면, 후 주석의 이날 쑨중산 집중 언급은 놀랄 만하다. 공산당의 외연을 신해혁명과 쑨중산으로까지 넓히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실제 후 주석은 중국 공산당이 ‘선구자’들의 포부를 실현하고 발전시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후 주석은 또 23차례나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언급함으로써 ‘중화부흥 공정’을 향후 중국 공산당의 최대 역점 과제로 삼을 것임을 시사했다. 중국은 신해혁명 100주년을 앞두고 수십편의 영화와 드라마, 다큐멘터리 등을 집중 상영하면서 신해혁명과 공산당 및 중국특색 사회주의의 ‘연결고리’ 전파에 온힘을 쏟아왔다. ●토론회 취소 등 저항정신 확산 경계 하지만 2009년 건국 60주년, 지난 7월의 창당 90주년 때와는 달리 주요 거리나 공항 등에 신해혁명 100주년을 알리는 현수막 등은 내걸리지 않았다. 주요 대학의 신해혁명 토론회와 ‘오페라 쑨중산’의 베이징 공연은 취소됐다. 쑨중산과 신해혁명으로 대표되는 ‘저항정신’의 확산을 경계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부 공산당 좌파들은 지난 1일 건국기념일 인민일보 사설에 마오쩌둥이 한 차례도 언급되지 않는 등 소홀히 취급되고, 대신 쑨중산이 부각되는 것에 대해 당내에서 강력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해혁명 100주년을 계기로 공산당 내부의 이념투쟁이 본격화할 수 있다는 전조로 읽힌다. 신해혁명은 청조 타파와 공화정 수립의 기치를 내걸고 진행된 민주혁명으로, 2000년 넘게 이어온 전제 왕정의 종식을 가져왔다. 1911년 10월 10일 우창(武昌) 봉기를 시작으로 한달여 만에 13개 성이 독립을 선언하는 등 파죽지세로 진행돼 이듬해 1월 1일 쑨중산이 중화민국 건국을 선언하고 임시 대총통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곧바로 군벌 위안스카이(袁世凱)가 권력을 장악해 신해혁명은 미완성인 채 1919년 5·4운동 때까지 극심한 혼란이 이어졌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진시황 폭군인가, 영웅인가

    중국은 왜 유럽처럼 다양한 민족과 언어와 국가로 나뉘지 않고 전제적이고 획일적인 통일국가를 유지할 수 있었을까. 다양하고 이질적인 민족과 문화가 산재해 있었던 드넓은 유라시아 대륙의 상당 부분이 어떻게 중화제국에 의해 통일성과 일관성을 갖고 굴러올 수 있었을까. ‘진시황 평전’은 이 같은 질문에 적지 않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이 책은 진시황 개인에 관한 단순한 전기가 아니다. 격동의 전국시대에 서쪽 변방의 작은 제후국이 어떻게 독립된 나라로 발전했으며 전통적인 강대국들을 꺾고 천하 통일을 이뤘는지, 어떻게 새 시대를 열었는지를 역사서에 근거해 기록했다. 저자는 역사학자인 장펀톈(張分田) 중국 난카이(南開)대학 중국사회사연구센터 교수. 한글판은 중국 런민(人民)출판사 ‘중국역대제왕전기’ 시리즈 중 하나인 ‘진시황전’(秦始皇傳) 2007년판을 완역한 것이다. 저자는 역사 문헌과 연구물들을 근거로 들며 “중국 문명의 틀을 만들었다는 한나라는 진나라의 여러 제도를 계승했다.”(漢承秦制)는 사실을 부각시킨다. 진나라의 역사상 지위가 한나라의 원형, 기본 틀임을 강조한 것이다. 그 뒤 2000년 동안 ‘진나라 제도’(秦制)의 기본 원칙과 제도가 중국 역사를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야별로 증명하려고 노력했다. 이와 함께 500년의 춘추전국시대는 진나라의 역사로 수렴되고, 진의 역사는 진시황과 그의 가족사라고 지적하면서 진시황을 비난의 대상이 아닌 새로운 질서의 창조자로 자리매김하고 재조명하려 했다. 또 진시황을 사회역사적인 의미를 포함해 다각도로 분석했다. “세계사에서 그는 최초로 진정한 국가와 법의 이론 체계를 현실화했다. 유라시아 대륙에서 제국을 세운 대표적인 인물이며 춘추전국의 사회적·역사적 변혁을 완성한 주인공이다.” 저자는 진시황을 법제사의 관점에서는 최초로 ‘법치’를 실천한 황제이지만 법가를 중심으로 각종 사상가들을 포용하고 수용한 ‘잡가(雜家)적인 황제’였다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그가 추진했던 모든 정책과 사업은 과거 춘추전국시대에 각 제후국에서 시행했던 각종 변법, 즉 주나라를 정통으로 삼는 사상 및 문화적 전통과 각 제후국들이 시도했던 각종 법률, 제도의 개혁을 계승·발전시킨 것이라고 지적했다. 저자는 또 진시황을 영웅과 폭군의 일면을 모두 지닌 야누스적인 인물이었다고 정의하면서도 그의 정치를 폭압으로만 해석하려는 경향에는 반대했다. 당시 선진국이었던 초나라, 제나라 등 6국의 연합 전선을 무너뜨리고 통일한 과정과 전략 등 통일을 위한 진시황의 정치·군사·외교 책략도 곁들였다. 4만 8000원. 이석우 편집위원 jun88@seoul.co.kr
  • [서울광장] 문제는 다시 안철수다/김종면 논설위원

    [서울광장] 문제는 다시 안철수다/김종면 논설위원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역사는 위대한 인물의 전기라는 말이 실감난다. 새삼스레 무슨 영웅사관을 이야기하자는 게 아니다. 한 달이 다 되도록 ‘안철수 현상’이 가시지 않고 있으니 이런저런 생각이 들 뿐이다. 어느날 갑자기 정치권에 모습을 보인 안철수 교수가 어떤 주인공 자질을 갖고 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위인의 전기가 됐든 민중의 기록이 됐든 역사는 그 자체로 소중하다. 분명한 것은 지금 안철수라는 인물에 의해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고, 우리는 그 거대한 흐름을 외면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안철수 현상으로 분출된 역사의 요구는 한마디로 변화다. 더 구체적으로는 이해다툼에 매몰된 정치권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들은 변화의 제스처도 보여주지 못했다. 자명한 현상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오독이 판쳤다. 자성은커녕 자신의 인격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실언’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유력 대권주자인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는 병 걸렸냐는 치명적인 말을 한 뒤 부적절했다며 직접 유감 표명을 했다. 철수가 나오니 영희도 나오겠다며 이죽거린 이는 집권 여당을 책임진 홍준표 대표다. 이명박 대통령마저 올 것이 왔다고 무심히 말해 실망을 안겨줬다. 당사자들로서는 난감한 일이겠지만 그 ‘말 아닌 말’들은 두고두고 곱씹을 필요가 있다. 변화라는 안철수 현상의 메시지를 한층 또렷이 기억하게 만드는 방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보다는 당, 당보다는 개인이 앞서니 민심을 거스르는 이상한 말들이 절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그리고 변해야 한다. 그 출발은 ‘버림’이다. 나무는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을 버린다. 정치권도 변하려면 뭔가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무슨 깊은 뜻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지지율 50%의 안철수는 5% 지지의 박원순에게 서울시장 후보 자리를 양보했다. 그런 버림과 비움의 정치문화를 이끌 책무가 정치지도자들에게 있다. 권력의 정상을 달리는 이들부터 변화의 역군이 돼야 한다. 가까운 것, 친한 것, 익숙한 것과 결별하라. 최소한 그런 자세로 장관을 고르고 국회의원을 공천하고 기관장을 임명하는 공의(公義)의 정치를 펼쳤다면 애초 안철수 현상은 생겨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정치 불신의 근원인 측근의 벽, 계파의 성채를 허물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만의 폐쇄회로형 소통이 아닌, 진정한 대중 소통의 길이 열린다. 안철수 현상을 잘 갈무리해야 한다. 정치판의 악성코드를 치유하는 데 안철수 백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염불보다 잿밥에만 마음이 있다. 정치권도, 언론도 안철수가 내년 대통령선거에 나오면 얼마만큼 표를 얻을 것이라는 여론조사 그래프 살피는 데 여념이 없다. 변화의 화두가 무색할 지경이다. 문제는 다시 안철수다. 정치를 안 하겠다며 학교로 돌아갔지만 그는 이미 부재로써 존재를 증명할 만큼 주목받는 인물이 됐다. 어떤 식으로든 정치의 자장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한편에선 우리는 임을 보내지 않았노라며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또 다른 한편에선 제발 학교에 남아달라고 한다. 대권주자 반열에 이름을 올리며 여전히 높은 지지율을 구가하고 있으니 고민이 없을 수 없다. “정치권으로 가는 건 인생의 낭비”라고 공언했지만 안철수는 결국 서울시장에 출마하려고 했다. 정치맛을 봤다. 혹시 구만리 장천을 훨훨 나는 대붕의 꿈을 꾸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결단을 내리기 바란다. 어떤 비전과 철학, 원칙을 가지고 새로운 대안세상을 만들어갈 것인지 밝히고 당당하게 검증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일년도 모자란다. 홀현홀몰(忽顯忽沒)하는 바람의 정치는 더 이상 보고싶지 않다. 정치문화의 안정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선 국면에서도 펜스에 걸터앉아 관망하는 자세를 보인다면 정말 진정성을 의심받는다. 한갓 폴리페서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학문을 하든 정치를 하든 오로지 한길로 내달려야 한다. 그게 안철수식 ‘영혼이 있는 승부’ 아닌가. 시간은 아무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jmkim@seoul.co.kr
  • [씨줄날줄] 장효조 타격상/이도운 논설위원

    지난 7일 간암으로 세상을 떠난 ‘타격의 달인’ 장효조 선수를 기리는 ‘장효조 타격상’ 제정 문제가 야구계에서 논의되고 있다. 장효조는 1983년부터 1992년 시즌까지 프로야구팀 삼성 라이온스와 롯데 자이언츠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평균타율 0.331이라는 깨지기 어려운 기록을 남겼다. 1983년과 1985~1987년 네 차례나 수위타자를 기록했고, 1997년에는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으며, 1983~1987년 골든 글러브를 수상했다. 이 밖에도 대구상고(현 상원고)와 한양대, 포항제철(현 포스코), 경리단 등 아마추어 야구 시절에도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타격 타이틀을 획득했다. 장효조가 고교 졸업후 곧바로 프로야구에서 활약할 수 있었다면, 훨씬 더 많은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우리 고교야구에는 지난 1958년 제정된 이영민 타격상이 있다. 이영민은 1928년 연희전문학교 재학시절 경성의전 주최 야구대회에서 한국 최초로 홈런을 날리고 타격왕까지 차지했던 인물이다. 이영민 타격상은 매년 9개의 전국 고교야구대회 가운데 5개 대회 이상, 15경기, 60타석 이상을 기록한 선수 가운데 가장 높은 타율을 기록한 선수에게 수여된다. 메이저 리그에도 타격왕에게 수여하는 상이 있다. 바로 야구 역사상 최다인 755개의 홈런을 날린 헨리 루이스 ‘행크’ 에런을 기리는 ‘행크 에런 상’이다. 1999년부터 아메리칸 리그와 내셔널 리그의 최고 타자에게 각각 수여한다. 메이저 리그에서는 최고의 활약을 보인 투수에게는 ‘사이 영 상’을 주고 있다. 덴턴 트루 ‘사이(클론)’ 영은 1890년부터 1911년까지 선수 생활을 하면서 906경기에 출전해 511경기 승리, 749경기 완투, 76경기 완봉이라는 불세출의 기록을 세웠다. 일본 프로야구에도 그해에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선발투수에게 사와무라 상을 수여한다. 미에 현 출신으로 일본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의 투수였던 사와무라 에이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47년 ‘열구’(熱球)라는 잡지가 제정했다. 장효조 타격상이 제정돼 성공적으로 운영된다면, 매년 최고의 활약을 보인 투수들에게 주는 상도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야구팬 가운데는 선동열이나 최동원의 이름을 딴 투수상을 줘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장효조 타격상이나 선동열·최동원 투수상 제정은 단순히 야구계나 스포츠계의 이벤트로만 볼 수 없다. 사람을 키우기보다 죽이는 데 몰두했던 한국사회에서 영웅 만들기라는 새로운 흐름을 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도운 논설위원 dawn@seoul.co.kr
  • ‘의로운 죽음’ 조민수 수경 추모비 동두천 미군기지에 건립

    지난 7월 수해 당시 물에 빠진 시민을 구하다 목숨을 잃은 조민수 수경의 추모비가 미군부대 안에 건립됐다. 주한미군 제1지역사령부는 경기 동두천시 미군기지인 캠프 모빌 안에 조 수경 추모비를 건립했다고 9일 밝혔다. 이는 조 수경이 근무 당시 미군부대 경비를 담당했기 때문이다. 추모비는 가로 60㎝, 세로 70㎝, 높이 30㎝ 크기로 제작됐다. 비문에는 ‘조 수경은 국가적인 영웅으로서 친절하고 사명감이 투철한 정의로운 청년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내용이 한글과 영문을 함께 표기됐다. 경기지방경찰청 기동11중대 소속으로 캠프 모빌 외곽 경비를 담당했던 조 수경은 전역을 한 달 남겨둔 지난 7월 27일 오후 9시 40분 기록적인 폭우로 범람 위기를 맞은 동두천 신천변에서 철조망에 매달린 채 구조를 요청하는 시민을 구하다가 급류에 휩쓸려 실종됐었다. 그러나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조 수경은 국립대전현충원 경찰관 묘역에 안장됐다. 장충식기자 j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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