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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스크 시각] 2019년 6월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김미경 국제부장

    [데스크 시각] 2019년 6월은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김미경 국제부장

    미국 오하이오주 출신 마음씨 좋은 90살 할아버지 헤즈키아 퍼킨스는 6·25전쟁 참전용사였다. 미국의 수많은 참전용사들처럼 그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자원 입대해 참전했다. 퍼킨스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지난달 말 CNN 등 미 언론을 통해서였다. 그가 결국 노환으로 숨을 거둔 뒤 마련된 장례식에 멀리 사는 유가족이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장례식장 측이 장례식을 불과 하루 앞두고 SNS에 “젊은 시절 한국을 위해 싸운 미군의 상주 역할을 해 달라”는 특별한 안내문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됐다. 지역 일부 주민들의 관심 정도를 기대했던 장례식장 측은 깜짝 놀랐다. 고인과 아무런 인연이 없는 시민 수천명과 제복을 차려입은 전현직 군인들이 몰려들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함께 추모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들 중에는 참전용사인 그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수백 마일을 운전해서 온 사람들도 있었다. 장례식장 측은 “참석자들에게 감사하고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사의를 표했다. 호국보훈의달인 6월을 보내며 퍼킨스의 장례식 사연이 떠오른 것은 나라를 위해 싸운 참전용사들에 대한 미국 사회의 예우에 부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미국우선주의’를 앞세우며 좌충우돌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참전용사 앞에서는 작아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5일 데이비드 벨라비아 예비역 육군 하사에게 생존한 이라크전 참전용사로는 처음으로 최고 무공훈장을 수여했다. 2016년 워싱턴 특파원 시절 만났던 미 보훈부 관계자는 “미국이 초강대국 자리를 지키며 하나로 뭉칠 수 있는 저력은 참전용사 등 애국자들에 대한 예우로부터 시작된다”며 “애국자들을 영원히 기리고 후손을 챙김으로써 애국심은 더 고취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어떠한가. 해마다 찾아오는 6월 6일 현충일과 6·25전쟁 기념식은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자리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좌우 이념 대립과 여야 정쟁의 장으로 얼룩지면서 그들에 대한 예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나라를 위해 몸바친 영웅들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지면서 과연 ‘애국’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애국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출신 학교 이름이 써진 깃발을 들고 매주 광화문에 모이는 60~70대 ‘태극기부대’들도, 그동안의 젊은이들과는 무엇인가 다르다는 평가를 받는 90년대생들도 말이다. 그리고 이들 사이에 ‘낀 세대’로 양쪽을 다 짊어지고 가는 듯한 30~50대들도 나라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나라를 위해 피 흘려 싸운 애국지사도, 참전용사도 잊혀지고 그들과 유족들에 대한 예우도 기념식에서나 빤짝 이뤄지는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쳐 일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만큼 올해로 100주년이 된 3·1운동과 6·25전쟁 등 희생의 역사를 분명히 기억하고, 제대로 기록하고, 그에 맞는 평가를 하는 것이 절실하다. 그래야 진정으로 나라를 위해 일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애국이 후손에게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인지 알게 될 테니 말이다. 마침 6월의 끝자락에 한반도 운명에 영향을 미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계기 한중, 한미 정상회담 등 각종 정상회담이 이어진다. ‘총성 없는 전쟁터’인 외교무대에서 문재인 정부는 북한 비핵화와 남북 화해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 역시 정쟁과 갈등의 대상이 되고 있다. 나라의 앞날을 위해 애국하는 마음으로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이 또한 역사로 기록돼 후손에게 물려질 것이기 때문이다.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만드는 것도, 기억하고 평가하는 것도, 후대에 물려주는 것도 결국 우리의 몫이다. chaplin7@seoul.co.kr
  • [제46회 서울보훈대상] 호국 정신으로 꽃피운 헌신… 당신이 영웅입니다

    [제46회 서울보훈대상] 호국 정신으로 꽃피운 헌신… 당신이 영웅입니다

    올해는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로서 올해 6월은 어느 해보다도 호국보훈의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국가보훈처는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 평화와 번영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범국민적 감사 분위기를 조성하는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46회를 맞은 ‘서울보훈대상’도 국가를 위한 공헌과 희생을 하신 분들이 대한민국의 자긍심이 되고 영예가 됨을 널리 알리는 사업입니다.올해에도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거나 가족을 잃는 등 커다란 아픔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국가와 지역사회에 헌신하고 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앞장서서 봉사하신 많은 분들이 신청했습니다. 그분들의 면면과 활동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순수한 시선과 따뜻한 마음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겉으로 잘 드러나지도 않는 특수임무를 수행하다 부상당했지만 환경정화 활동, 보훈 활동으로 국민 호국정신 함양에 기여했고 긴급재난 구조 활동에 적극 참여한 분이 있었습니다. 또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 부상을 입은 국가유공자로서 신체적 역경을 극복하고 자연환경보호, 청소년 선도, 치안질서 유지, 장애인 보호 등 지역사회의 발전에 적극 참여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베트남 참전 유공자로서 고엽제의 후유증 속에서도 국가유공자 선양활동, 일자리 제공 등을 통한 국가유공자 복리증진, 지역사회 캠페인 전개 등을 한 분도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발전 뒤에는 수많은 분의 땀과 희생이 있었습니다. 특히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국가유공자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합니다. 자신의 안위보다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이야말로 진정으로 예우받아야 하는 우리의 영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자 평생을 바친 독립유공자, 국토수호와 국민을 위해 상이를 입어 고통을 겪고 있거나 소중한 사람을 잃은 호국유공자, 민주주의를 쟁취하고자 헌신하신 민주유공자 등 수많은 보훈 가족이 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감사하며 유족들을 따뜻이 보살피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보훈이란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책임지고 또 존중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대한민국은 국민 모두가 하나 되어 새로운 시대를 열어 평화와 통일을 위해 한 걸음 내딛는 계기로 삼아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를 지킬 의지가 없는 민족이나 국가에는 평화와 안정이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하게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의 향기가 어디서 비롯됐는지를 되새겨 나라를 위해 희생·헌신한 분들의 숨결을 느끼고 숭고한 정신을 기리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보훈 가족들이 아픔을 씻어내고 당당하고 자랑스러운 주역으로 돌아올 수 있는 세상을 기대하며,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헌신하신 수많은 애국선열과 국가유공자분들께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박재광 학예실장 건국대박물관
  • BTN, 호국보훈의 달 특집 다큐드라마 ‘사명대사’ 방송

    BTN, 호국보훈의 달 특집 다큐드라마 ‘사명대사’ 방송

    호국보훈의 달 특집 UHD다큐드라마 ‘사명대사’가 BTN불교TV를 통해 방송한다. 다큐드라마 ‘사명대사’는 호국영웅 임진왜란 승병장인 사명대사의 일대기 및 승병들의 구국활동을 그렸다. 1, 2부로 제작됐으며 1부 ‘일어나라, 조선의 승병들이여’, 2부 ‘승복입은 외교관’을 주제로 이틀에 걸쳐 방영된다. 26일(수) 밤 10시30분에 방송되는 1부 ‘일어나라, 조선의 승병들이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동한 사명대사의 이야기와 이름 없이 죽어간 수 많은 승병들의 역사적 기록이 다큐 드라마 형식으로 제작됐다. 조선불교를 이끌고 갈 인물로 촉망 받음과 동시에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과 교류했던 지성인 사명대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7일(목) 밤 10시30분에 방송되는 2부 ‘승복입은 외교관’에서는 임진왜란 중 일본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하던 10만여 명의 조선 피로인을 구하기 위한 사명대사의 활약상을 일본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드라마 재연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연출을 맡은 윤정현 PD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했던 구국 영웅인 사명대사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름 없이 희생된 승병들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한다”고 밝혔다. 다큐드라마 ‘사명대사’는 경상북도와 김천시, 조계종제8교구본사 직지사의 제작지원으로 BTN불교TV가 기획 및 제작을 맡았다. 1년 여의 기간 동안 김천 직지사를 비롯해 동화사 금산사, 갑사, 흥국사 등 사명대사와 관련있는 사찰에서 촬영됐다. 또 승병들의 활약상과 시대적 상황을 담기 위해 문경새재, 평창, 창원해양드라마 세트장, 군산, 부안, 아산, 담양 등 국내 촬영과 더불어 교토, 구마모토, 우스키 등 일본 현지로케 촬영을 진행했다. UHD다큐드라마 ‘사명대사’는 전국 각 지역 케이블TV과 SkyLIfe, IPTV, BTN인터넷과 모바일 등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참전용사 한명씩 호명한 문 대통령 “나라 정체성 지켰다”

    참전용사 한명씩 호명한 문 대통령 “나라 정체성 지켰다”

    문재인 대통령은 24일 6·25 전쟁 참전유공자와 가족 182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전쟁 걱정 없는 평화로운 한반도를 만드는 게 참전용사의 희생·헌신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지금까지 6·25 전쟁 참전유공자들이 현역 장병들과 함께 청와대에 초청된 적은 있었지만, 대통령이 참전유공자들만 따로 청와대로 초청해 위로연을 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행사에는 정경두 국방부 장관,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박한기 합참의장 등 한미 양국의 정부·군 고위관계자도 함께했다. 문 대통령은 “6·25는 비통한 역사이지만 북한의 침략을 이겨냄으로써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켰다”며 “전쟁의 참화를 이겨내려는 노력이 대한민국의 발전을 이뤘다”고 평가했다. 아울러 “전쟁의 잿더미에서 수출 세계 6위, 국민소득 3만 불을 넘는 경제 강국으로 발전했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전쟁과 질병, 저개발과 가난의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는 원조공여국이 됐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여러분이 계셨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자유와 평화를 지키고 애국의 참된 가치를 일깨운 모든 참전용사께 존경의 마음을 전한다”며 “참전용사들이야말로 평화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낄 것이다. 늘 건강하게 평화의 길을 응원해달라”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참전용사는 대한민국의 자부심이며 헌신에 보답하는 일은 국가의 책무이자 후손의 의무”라며 “선양과 보훈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정부는 참전명예수당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인상했다. 마지막 가시는 길까지 존경받도록 대통령 근조기와 영구용 태극기를 정중히 전해 드리고 있다”며 “재가복지서비스도 확대했다”고 설명했다. 화살머리고지 유해발굴에 대해서도 “4월 1일부터 지금까지 유해 72구, 유품 3만 3000여 점을 발굴했다”며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도록 최고의 예우를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화살머리고지 전투 참여 유공자 박동하(94) 선생이 ‘전우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송하자 “화살머리고지에는 수많은 용사가 잠들어 계신다. 감동적 편지를 낭독해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소중한 아들딸, 자랑스러운 부모였던 사람들이 정든 고향을 떠나 전선으로 향했다”며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한명씩 언급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고등학생 유병추 님은 학도병으로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공헌했고, 박운욱 님을 비롯해 일본에서 살던 642명의 청년은 참전 의무가 없는데도 전장에 뛰어들었다. 이들을 재일학도의용군이라 부른다”고 소개했다. 이어 “고(故) 김영옥 대령님은 미국 최고의 전쟁영웅 16인 중 한 분으로, 전역 후임에도 다시 입대해 조국으로 달려왔다”며 “휴전선 중·동부를 60㎞나 북상시키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경찰도 전쟁의 참화에 맞섰다. 고 임진화 경사는 경찰 화랑부대 소속으로 미 해병 1사단과 함께 장진호 전투에 참전했다”며 “수류탄 파편 7개가 몸에 박히는 중상에도 전장으로 복귀해 조국을 지켰다”고 감사를 표했다. 문 대통령은 외국 참전용사도 언급하며 “6·25는 자유와 평화를 사랑하는 세계인이 함께 전쟁의 폭력에 맞선 정의로운 인류의 역사”라며 “22개국 195만명의 젊은이가 대한민국으로 달려왔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그 중심에 미국이 있었고 가장 많은 인원이 참전해 가장 많은 희생을 치렀다. 정부는 그 숭고한 희생을 기려 워싱턴에 ‘추모의 벽’을 건립할 예정이다. 한미 양국은 동맹의 위대함을 기억하며 누구도 가보지 못한 항구적 평화의 길을 함께 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참전유공자들에게 대통령의 서명이 들어간 시계와 건강식품을 선물했다. 또 감사의 마음과 함께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이뤄 참전용사의 용기와 애국에 보답하겠다는 메시지를 담은 카드를 참전용사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새겨 전했다. 다만 지난 4일 국가유공자·보훈가족 초청 오찬 당시 남북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함께 찍은 사진이 담긴 채 배포돼 천안함 희생자 유족 등 참석자들의 반발을 불렀던 소책자는 제공하지 않았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청년이 구국의 영웅이라고? 기득권 책임을 떠넘기지 마

    청년이 구국의 영웅이라고? 기득권 책임을 떠넘기지 마

    “뭘 보나. 경제를 살리자는데!”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성실한 나라 대한민국에 태어난 국민의 1990년대 시대정신은 역시나 ‘나라 살리기’였다. 그러나 국가는 세계에서 가장 부지런한 국민의 눈물 어린 노력에도 부도 위기에 내몰렸다. 애국심 넘치는 국민은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다. 어른들은 장롱 속 깊이 모셔뒀던 아이들 돌 반지와 금목걸이 등 몇 없는 귀금속을 꺼내 ‘구국 자금’에 보탰고, 학생들은 “나라가 어려운 마당에 외제를 쓰는 것은 매국”이라며 부끄러운 꼬부랑 글씨가 붙은 제품에 작은 태극기를 붙여 이를 가리고 다니며 ‘구국 염원’을 더했다. 국부가 빠져나간다는 이유로 할리우드 대작 ‘타이타닉’ 안 보기 운동까지 일었다. 대한민국은, 그 국민은 역시 위대했다. 나라의 큰 기업들이 문을 닫긴 했지만 빠르고 슬기롭게 국가부도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상처는 깊었다. TV 인기 방송에서는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청년실업이 40만명에 육박하는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대사가 반복됐다. IMF를 졸업하고, 두 번째 민주정부가 들어선 2004년 한국 사회 단면을 보여 주는 유행어다. 일련의 국가적 사태를 거치며 정치권은 늘 손 안에 있을 것만 같았던 권력이 언제든지 반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음을, 기업은 세계로 뻗어 나가다가도 하루아침에 문 닫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위기감이 고조된 정치권과 기업, 또 그들과 명운을 함께하는 언론은 구원자로 ‘청년세대’를 주목했다. ‘청년세대’는 정당에 표를 줄 유권자였고, 기업에 지갑을 열 고객이었다. 보수와 진보로 나뉜 언론은 저마다 목적을 위해 ‘청년담론’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저자는 ‘88만원 세대’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세대’ ‘세월호 세대’ ‘달관 세대’ ‘촛불 세대’ 등 쏟아지는 청년세대론을 두고 이렇게 지적한다. “많은 ‘청년’ 담론은 청년들을 위하는 척하지만 사실상 청년이라는 이름을 팔아 그 담론을 생산하는 본인의 가치를 높이고 이득을 도모한다”(15쪽). 또 “하늘 아래 같은 청년은 없고, 세대론은 무엇이든 주워 담는 마법의 상자로 활용된다”면서 ‘청년세대’ 담론 대부분이 실제 청년들의 현실을 왜곡·과장하고, 담론을 생산할 힘 또는 권력을 쥔 세력이 풀어야 할 사회 구조적 문제의 책임을 청년세대에 떠넘기고 있다고 진단한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이우진은 오대수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꾸 틀린 질문만 하니까 맞는 대답이 나올 리 없잖아.”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대량생산 대량살상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대량생산 대량살상

    폭격 흔적이 역력한 거리에 한 어린아이가 쓰러져 죽어 있다. 제1차 세계대전에 의무병으로 참전했던 네빈슨은 프랑스 북부에서 목격한 광경을 그림으로 옮겼다. 이 그림의 제목인 ‘타우베’는 독일 전투 비행기의 이름이다. 타우베는 독일어로 비둘기라는 뜻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살인 무기가 된 것이다. 화가는 죽은 아이를 날개 다쳐 추락한 새처럼 보이게 그림으로써 이 단어의 이중성을 드러낸다. 20세기의 대량생산 경제는 전쟁 양상을 이전 시대와 판이하게 만들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기술 전쟁이자 물량 전쟁이었다. 독일군은 잠수정으로 해안을 교란하고, 항공기를 공중전에 처음 사용했다. 장거리 미사일, 생화학 무기가 사용된 것도 이 전쟁이 처음이었다. 전쟁 물자의 대량생산을 위해 역사상 전례 없는 숫자의 민간인이 군수산업에 고용됐다. 항공기가 후방의 산업시설과 민간인을 폭격하면서 후방과 전선, 시민과 병사를 가르는 구분은 무의미해졌다. 지리적 거리만 붕괴된 것이 아니었다. 통신 수단의 발달과 값싼 신문의 보급으로 후방과 전선의 심리적 거리도 좁혀졌다. 전투 소식에 대한 갈증은 신문 판매량을 치솟게 했지만, 언론 규제와 검열로 인해 사람들은 과거보다 크게 나은 정보를 얻지도 못했다. 전쟁의 위협이 시시각각 조여 오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을 뿐이다. 전방과 후방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선전은 위력적인 신무기가 됐다. 영국은 각종 매체를 동원해 적을 피에 굶주린 악마로 만들었고, 자국 군대의 영웅적 행위를 찬양했다. 반면 독일은 전쟁에 반대하는 이탈자들을 가혹하게 처벌하는 방식으로 대응을 했다. 그 어느 쪽이 효율적이었는지는 역사가 말해 준다. 예술가들에게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였다. 역겹고 잔혹한 행위를 어느 정도까지 묘사해야 하는가? 현대전을 이전 시대의 화가들처럼 영웅적인 방식으로 묘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네빈슨은 무고한 어린아이의 죽음을 통해 전쟁의 비정함과 잔인함을 에둘러 고발하고 관객의 정서에 호소한다. 1916년의 관객들은 이 그림을 보고 적에 대한 증오를 다졌을까? 내게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전쟁에 반대한다.” 미술평론가
  • 김원웅 광복회장 “황교안, 백선엽 예방해 항일독립정신 외면”

    김원웅 광복회장은 16일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최근 ‘6·25 영웅’으로 불려온 백선엽 예비역 대장을 예방한 데 대해 “국가정체성을 부인하고 항일독립정신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김 회장은 성명에서 백 예비역 대장이 과거 일제 간도특설대에서 복무한 점 등을 거론하며 황 대표를 향해 “몰역사적 행위에 대해 국민 앞에 사과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1920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난 백 예비역 대장은 일제시대 만주군 소위로 임관하면서 군문에 들어온 뒤 6·25전쟁 때 1사단장, 1군단장, 휴전회담 한국대표 등을 역임했다. 1960년 대장으로 전역한 뒤 외교관과 교통부 장관 등을 지냈다. 하지만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친일반민족행위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고 일제 간도특설대 복무 경력이 부각되면서 논란이 됐다. 김 회장은 간도특설대에 대해 “독립군 말살의 주력부대였다”며 “중국 정부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일제 간도특설대의 활동무대였던 옌볜지역에서 목숨을 잃은 항일열사는 무려 3125명이나 되고 그중 85%가 조선인 독립군”이라고 했다. 1965년 창립된 광복회는 국가보훈처 산하 공법단체로 독립운동 선열들의 정신을 보존·계승하는 사업과 민족정기 선양사업 등을 목적으로 한다. 3선 국회의원 출신인 김 회장은 이달 7일 제21대 광복회장에 취임했다. 문경근 기자 mk5227@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인천상륙작전 영웅 ‘켈로부대’를 아시나요

    [밀리터리 인사이드] 인천상륙작전 영웅 ‘켈로부대’를 아시나요

    인천상륙·화천발전소 작전 등 기여했지만전후 ‘신병’ 재징집…기록 없어 서훈 불가학계에서 역사 재조명…보상법 제정 여론도인천에서 직선거리로 9㎞가량 떨어진 작은 섬 팔미도. 면적이 0.23㎢에 불과한 이 섬에는 국내 최초의 등대인 ‘팔미도 등대’가 있습니다. 팔미도 등대는 문화재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6·25 전쟁의 전세를 역전시키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등대의 불빛이 연합군의 길잡이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 중심엔 미군이 조직한 첩보부대 ‘켈로(KLO)부대’가 있었습니다. ‘KLO’는 ‘주한첩보연락처’(Korea Liaison Office)를 줄인 것으로, 미국 극동군 사령부가 운용한 한국인 특수부대 ‘8240부대’를 의미합니다. 6·25 전쟁 당시 팔미도 등대 점등 작전, 강원 화천발전소 탈환작전 등에서 큰 공을 세웠지만 비정규군에다 기록이 많지 않아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슬픈 역사이기도 합니다. 전후 대원 상당수가 정규군이 됐지만, 6·25 전쟁 당시의 활약상은 대부분 미군의 기밀로 취급돼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6일 켈로부대 규명을 주도한 남광규 고려대 교수가 최근 한국보훈학회에 제출한 ‘6·25참전 KLO한국유격군 보상법안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켈로부대는 6·25 전쟁 발발 직후부터 본격적인 임무를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미 8군에 소속됐다가 1950년 11월 중공군 개입 이후 미국 극동군 사령부에 배속됐습니다. ●군번 없는 부대…북한 출신 모집해 적지 투입 켈로부대는 주로 북한군 점령지역 항만을 봉쇄해 북한군과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하는 특수임무를 맡았다고 합니다. 북한군으로 위장해 적지로 침투하는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대부분 북한 출신으로 구성됐고 군번도 받지 못했습니다.일부는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이 지휘한 인천상륙작전 당시 팔미도 등대를 접수하는 임무를 맡았고 나머지는 서해한 백령도에 주둔한 ‘동키부대’, 강화도 교동의 ‘월팩부대’ 등에서 활약했습니다. 켈로부대와 비슷한 임무를 수행하던 ‘백골병단’은 미군이 아닌 우리 군에 배속돼 북한 침투 작전을 벌였습니다. 2013~2014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전문가가 미 특수전사령부를 직접 방문해 자료를 수집한 결과 미군 조종사 구출작전, 이른바 ‘블루 드래곤 작전’의 활약상도 밝혀졌습니다. 대외비로 지난 60여년간 공개되지 않았던 이 작전은 1952년 1월부터 시작됐습니다. 평양 북쪽에 불시착한 미군 조종사 5명을 찾는 임무였습니다. 생환 가능성이 희박했던 작전에 5월까지 켈로부대원 170여명이 투입됐고 안타깝게도 북한군, 중공군과의 교전 끝에 전원이 전사했습니다. 켈로부대는 ‘화천발전소 탈환작전’에도 투입됐습니다. 유엔군은 우리 정부의 요청을 받아 화천발전소를 탈환하려 했지만 중공군 진지와 포병부대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공습이 쉽지 않았습니다. ●중공군 진지 위장전술 파악해 화천발전소 탈환 이 때 켈로부대원이 투입돼 중공군의 대포와 전차가 실은 유엔군 정찰기를 속이기 위해 만든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곧바로 유엔군이 중공군 진지를 공습했고 화천발전소를 탈환할 수 있었습니다.이런 수많은 활약에도 불구하고 전후 ‘굴곡의 역사’가 시작됐습니다. 1953년 7월 휴전 당시 켈로부대는 30여개 소부대로 늘었습니다. 부대원 중 일부는 전사상자로 기록됐고, 또 일부는 1958년 현재의 제1공수여단인 ‘특전사 제1전투단’ 창설에 투입됐습니다. 간부 700여명은 장교로 임관했습니다. 그러나 일반 병사 1만 2000명은 한국군에 재입대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해산됐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중 상당수가 이등병, 일병 등으로 재입대해 명예를 인정받지 못한 것은 물론 ‘이중복무’를 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유격대원에 대한 아무런 기록이 없다보니 새 군번과 계급만 제공됐습니다. 간부들은 부대 내 계급에 따라 부사관이나 최고 ‘대위’인 위관급 계급을 받았지만, 병사 역할을 맡았던 대원들은 병역법에 따라 ‘신병’으로 재징집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남 교수는 “미 8군이 1954년 1월 뒤늦게 유격대원이 한국군에 배속된 사실을 알고 국방부에 항의하는 상황까지 발생했다”며 “그들이 미군에 배속돼 수행한 활동에 대한 보상은 일체 논의가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학계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보상법 제정해야” 남 교수에 따르면 현재 켈로부대원으로 활동한 참전용사에게 지급하는 보상은 매달 12만원을 주는 ‘6·25 전쟁 참전 명예수당’이 전부라고 합니다. 전공에 따른 무공훈장이나 참전수당은 지급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군에 배속됐었던 ‘백골병단’과 ‘특수임무자’들은 이들과 달리 각각 관련법 제정으로 보상이 이뤄졌습니다. 남 교수는 “형평성 차원에서라도 켈로부대원에 대한 보상은 당연한 일“이라며 “미군에 배속돼 활동한 3년여 기간도 군 복무 기간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남 교수에 따르면 국방부는 과거부터▲켈로부대원을 한국군에 배속시키면서 이미 급여를 지급했고 6·25 참전수당과 현충행사를 지원하고 있는 점 ▲개인 기록이 없어 보상과 서훈이 불가능한 점 ▲국가가 소집한 것이 아닌 자생적 미군 산하 단체로 국가가 보상할 책임이 없다는 점 등을 들어 추가 지원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막대한 예산도 걸림돌로 작용했습니다. 2016년 국회예산정책처 추산자료에 따르면 켈로부대원과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는데 5년간 683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관측됐습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보상법안이 어렵게 국회 국방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사위원회 문턱은 넘지 못하고 폐기됐습니다. 20대 국회에서도 보상법안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남 교수는 “6·25 전쟁 직후 시대적 환경과 당시 제도적 여건 미비로 이들의 희생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현재 생존자 대부분이 80세 이상 고령자임을 감안할 때 더 늦기 전에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정부와 정치권, 유격대 단체가 절충점을 찾아 보다 진전된 논의가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나폴레옹 손자의 롤러코스터 인생

    [칼럼니스트 박사의 사적인 서재] 나폴레옹 손자의 롤러코스터 인생

    괴제 나폴레옹 3세/가시마 시게루 지음/정선태 옮김/글항아리/560쪽/2만 8000원 나폴레옹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는 그의 말은 그의 작은 키, 한 손을 재킷 안에 넣은 특유의 포즈와 함께 다양한 방법으로 전해 내려온다. 프랑스와 별 관계도 없는 나라 국민들은 나폴레옹 양주를 마시고 나폴레옹 과자점에서 사온 간식을 먹으며 그 옛날의 영웅을 가끔 생각한다. 열정이 가득했던 젊은 날의 나폴레옹이라도 기대하거나 상상하기 어려웠을 광경이리라. 그러나 나폴레옹 3세를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선조의 덕을 본 능력 없는 손자쯤. 나폴레옹 3세와 제2제정에 대해서 조금 아는 이들이더라도 평은 후하지 않다. 바보이거나, 독재자이거나. 잘 봐준다고 해봐야 분에 넘치는 선대의 명예를 탐낸 평범한 남자를 넘어서지 못한다. 프랑스 역사에서 제2제정(1850~1880)은 뚜렷한 발전의 시기다. 이 시기는 새로운 프랑스의 태동기라 할 만하다. 경제가 윤택해지면서 생활방식도 변화했고, 대규모 산업이 발전하면서 금융조직도 덩달아 활발하게 돌아갔다. 대형백화점, 극장, 화려한 건축물들은 그러한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 주었다. 그렇다면 나폴레옹3세를 다시 평가해봐야 하지 않을까. 그 역할을 자처한 프랑스 전문가인 저자는 나폴레옹 3세의 이름 앞에 ‘괴제’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매력적인 인물, 그러나 미화할 수는 없는 독재자. 이 책의 결론이다. 나폴레옹의 첫 부인 조세핀이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 오르탕스와 나폴레옹 동생 루이 보나파르트가 낳은 아이. 나폴레옹의 조카이자 외손자라는 복잡한 관계 속에서 자신의 비범한 운명을 깨달은 남자. 그는 결코 잘생기진 않았지만, 상당히 매력적이어서 꽤 인기를 모았다고 한다. 젊었을 때부터 자신이 프랑스의 지배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던 그는 일찍부터 권력싸움에 뛰어들어 황제가 될 길을 닦는다. 저자는 54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으로 그의 고군분투를 상세히 보여 준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현재의 파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생하게 목격할 수 있다. 몰락은 급격했다. 흥청망청 방탕하게 즐기던 황제는 급기야 외교실패로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을 불러오고, 그가 포로로 잡히면서 제2제정은 막을 내리게 된다. 거의 말이 없고 글로 써서 남긴 것은 더욱 없는 탓에 업적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나폴레옹3세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삶이 다시 살아난다. 이제 나폴레옹이라는 이름을 듣는다면, 다른 남자가 생각나겠다.
  • [2030 세대] 1987년의 6월과 1989년의 6월/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2030 세대] 1987년의 6월과 1989년의 6월/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

    한국의 1987년 6월과 중국의 1989년 6월만큼 자국에서 역사적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달은 없을 것이다. 한국에서 1987년 6월은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를 끝내 성취해낸 영웅적인 달로, 2년 전에는 30주년 행사가 거행되기도 하였다. 그날은 오랜 독재와의 투쟁을 끝내고 마침내 대한민국이 참된 민주국가로 들어섰다는 민주화 세력의 승전기념일과도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하지만 중국의 1989년 6월은 전혀 달랐다. 그달은 톈안먼광장에서 인민해방군이 인민을 무참히 쏴죽인 그런 달이고, 중국 정부가 결코 인민에게 민주화의 기억을 소생시키지 않기 위해 기를 쓰고 은폐하려는 그런 달이다. 아마 이웃나라에서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비슷한 사건으로 이렇게까지 극명하게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기념(?)하는 일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무엇이 이런 차이를 빚었을까? 운동가들의 절실함이 차이점은 아니었을 것이다. 중국 현대사가 한국 현대사보다 더욱 비극적이면 비극적이었지 딱히 그 질곡의 크기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톈안먼에 핏자국을 남긴 학생들도 1980년 광주의 시민만큼 절실했다. ‘87년의 6월’과 ‘89년의 6월’을 가른 차이는 결국 두 가지로 종합될 수 있다. 첫 번째는 민주주의에 우호적인 외부세력, 즉 미국의 개입 여부였다. 당시 미국은 신군부를 억제할 수 있었지만, 중국공산당을 억제할 수는 없었다. 두 번째는 교육받은 광범위한 도시 중산층의 유무였다. 한국에서는 군부독재 시절을 거치며 팽창한 도시 중산층이 ‘넥타이 부대’로 뛰쳐나와 정권에 최종적 타격을 입혔지만, 중국은 여전히 대다수가 민주주의보다는 경제성장을 염원하는 극빈층 농민이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당대 중국은 민주주의 역량이 미약했고 권위주의 세력의 역량은 너무나 강력했다. 하지만 톈안먼 사건 이후 30년간 중국도 비슷한 변화를 겪으며 사정이 달라지고 있다. 폭발적 경제성장과 도시화, 대미 의존도의 증가 등이 최근 중국이 겪은 변화이다. 이는 본질적으로 박정희 시대부터 전두환 시대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일과 대동소이하다. 온전히 일대일로 등치할 수는 없겠지만, 어쩌면 지금 100만명씩이나 운집한 홍콩의 시위가 그런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한국이 가진 자산 중 하나가 갑작스럽게 각광받을 수도 있다. 바로 시민저항의 전통이다. 중국에서는 이미 노동쟁의 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몇몇 네티즌들은 불법으로 영화 ‘1987’을 내려받아 보는 상황이다. 물론 억압적 중국 국가 질서 아래에서 이 같은 움직임이 어느 정도 크기로 분포하고 있는지 알기란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무역전쟁이라는 외부 충격과 내부 반발이 중국을 거세게 압박하는 지금, 1987년 6월의 기억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중국인들에게 영향을 끼칠지,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시 아는가, 그리하여 1989년 6월의 기억도 살아날지.
  • 역사 원로 18명 “약산 김원봉, 당리당략 이용되는 현실 통탄”

    역사 원로 18명 “약산 김원봉, 당리당략 이용되는 현실 통탄”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 이후 불거진 ‘김원봉 논란’에 대해 임시정부기념사업회, 광복회,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지난 12일 성명을 내어 “약산 김원봉이 당리당략에 이용되는 현실을 통탄한다”고 보수진영을 비판하고 나섰다. 김원웅 광복회장과 김자동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장, 임헌영 민족문제연구소장, 함세웅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종찬(전 국정원장) 우당장학회 이사장, 이부영 여운형기념사업회 이사장, 김상웅 전 독립기념관장 등 원로 18인은 “김원봉은 일제강점기 누구보다 빛나는 항일 영웅이었다. 이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라며 “그를 역사의 양지로 불러내는 것이 평화의 한반도를 향한 도정에서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 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 약산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 역량이 집결했다’고 말했다”며 “문 대통령의 발언 내용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추진됐던 ‘국정 역사교과서’조차 기술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원로들은 “대통령의 발언은 여러 독립운동 세력이 이념과 관계없이 단일대오를 구축한 사실을 상기시켜 우리 사회 통합의 당위를 강조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정치권 일부와 보수 언론은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북의 전쟁 공로자에게 헌사를 보낸 대통령’이라고 반응을 보이며 ‘구태의연한 색깔론 프레임을 다시 등장시켰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광복 후 임시정부의 군무부장으로 고국으로 돌아왔던 약산 김원봉을 철지난 이념논쟁으로 외람되게 인구에 회자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오늘의 눈] 함께 돕고 슬퍼한 교민·헝가리인… 작은 영웅들 기억할게요/김지예 사회부 기자

    [오늘의 눈] 함께 돕고 슬퍼한 교민·헝가리인… 작은 영웅들 기억할게요/김지예 사회부 기자

    동유럽 내륙국가 헝가리는 ‘먼 나라’였다. 서울과 부다페스트는 직선거리로만 8164㎞ 떨어져 있고 직항편이 없어 20시간 가까이 비행기를 타야 겨우 도착한다. 동유럽 공산권 붕괴 직후인 1989년 수교해 올해 30주년이 됐지만 양국 사이에는 특별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었다. 그저 50여개의 유럽국 중 하나 정도였다.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우리 국민 33명과 헝가리 승무원 2명이 탄 유람선 허블레아니호가 침몰했을 때 눈앞이 더 캄캄했던 건 심리적·물리적 거리 탓이 컸다. 한시라도 빨리 실종자를 구조해야 하는데, 과연 그 먼 나라에서 순조롭게 진행될까 하는 걱정이었다. ‘다뉴브강의 비극’은 지난 11일 허블레아니호가 인양되면서 새 국면을 맞았다. 아직 실종자 3명을 찾지 못해 비상 상황이 끝나지 않았지만 수습의 한고비를 넘겼다. 현장 관계자들은 “내 일처럼 도운 평범한 사람들 덕분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우선 교민 사회가 움직였다. 헝가리의 우리 교민은 1400여명뿐이다. 그러나 이들은 봉사활동을 자원하고 필요한 물품을 기꺼이 내놓았다. 헝가리로 급파된 구조대원들을 위해 작업복 28벌 등 의류를 지원하고 간식과 한국 음식을 제공하며 마음을 보탰다. 2주 동안 대원들을 도운 선교사 박은영(49·여)씨는 “사고가 나던 날 구급차 소리를 들었고 소식을 알게 된 뒤 잔심부름이라도 거들자는 생각에 딸과 함께 나갔다”고 했다. 그는 “대원들은 몸도 지쳤지만 실종자를 찾아야 한다는 정신적 부담이 컸다”며 “그들에게 물이라도 챙겨 주고 격려의 말을 건네는 게 우리 역할이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합동 작전을 펼친 양국 수색대원들의 언어 장벽은 유학생, 교민 2세 등으로 구성된 통역 봉사단 덕에 뛰어넘었다. 20여명의 통역 봉사단원들은 사고 생존자와 실종자 가족들의 현지 소통도 도왔다. 부다페스트에 사는 한인 치과의사는 실종자 가족 심리 치료 등 의료 통역을 지원했다. 헝가리 시민들은 이번 사고를 자기 일처럼 슬퍼하며 애도의 마음을 전하려고 애썼다. 사고 현장 인근 머르기트 다리에는 추모의 꽃과 촛불이 매일 쌓였다. 수색 현장을 내려다보던 한 헝가리 할머니는 말이 통하지 않는 취재진의 팔을 잡아끌며 손짓으로 사고 모습을 표현하곤 자기 가슴을 쓸어내려 보였다. 햇볕 아래 땀을 뻘뻘 흘리는 한국 기자들에게 생수병을 건네는 이도 있었다. 추모 열기는 지난 3일 머르기트 다리 위에서 외국인 수백명이 눈물의 아리랑을 부르며 절정을 이뤘다. 이 행사를 주도한 토마시 치스마지아는 “사고 당사자들의 얼굴도, 역사도 모르지만 헝가리에서 사고를 당한 것에 가슴 아파 한다는 것을 꼭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인양 이후 사고 현장은 차차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남은 실종자를 찾을 때까지 돕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헝가리 정부도 끝까지 돕겠다는 뜻을 전했다. 헝가리 유람선 참사에 손을 더한 모든 이들이 영웅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 jiye@seoul.co.kr
  •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로맨티시스트 무왕의 정원… 1500년 만에 깨어나는 서동요

    ●서동요의 주인공으로 알려진 백제 무왕의 신수도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해두고 맛동도련님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이 유명한 신라 향가, 서동요의 주인공은 백제 30대왕 무왕(재위 600~641)으로 알려져 있다. 서동요가 실려 있는 삼국유사 기이편은 무왕의 남다른 출생부터 왕위에 오르는 과정까지 한편의 드라마를 전한다. 그의 모친은 과부로 궁의 남쪽 못에 사는 용과 정을 통해 무왕을 낳았고, 무왕은 어려서부터 마를 팔아 가족을 부양해서 서(맛)동이라 했다. 신라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경주로 가서 위와 같은 서동요를 유포시켜 결국 결혼에 성공한다. 백제로 돌아와 공주의 지참금과 그동안 모았던 큰 재력으로 민심을 얻어 왕이 되었다. 정사인 삼국사기는 다른 면모를 소개한다. 그는 법왕의 아들로 풍채와 거동이 빼어났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했다. 즉위 이후 십수차례에 걸쳐 신라와 전쟁을 벌였고, 중국 수와 당나라에 적극적인 조공 외교를 펼쳐 고구려를 치도록 공작했다. 국토 곳곳에 전쟁용 성곽을 쌓았고, 사비성의 궁궐을 수리했으며, 국가 사찰인 왕흥사를 중건하는 등 대대적인 토목 건설 사업을 일으켰다. 이름에 걸맞게 부국강병을 꾀해 쇠락하던 백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영웅적인 왕이었다. 우리가 가진 최고의 역사서들은 같은 인물의 모순된 양면을 그리고 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서동은 사랑을 위해 적국의 수도까지 잠행하는 희대의 낭만주의자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무왕은 조국을 위해서 처가 나라인 신라를 끈질기게 공격하는 냉철한 제왕이다. 어찌 장인인 진평왕을 공격할 수 있는가 등의 이유를 들어 삼국유사의 기록을 허구적 설화로 치부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정원을 만들고 절경에서 풍류를 즐겼다는 삼국사기의 말년 기사들은 철혈군주 무왕이 로맨티스트 서동으로 다시 회귀했음을 보여준다. 상충되는 두 역사서가 모두 사실이길 바란다면, 이 정도로 절충해서 이해하고 넘어가자. 서동의 고향으로 알려진 익산은 부여, 공주와 함께 백제역사유적지역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익산에는 왕궁리, 왕평뜰, 고도리, 궁성로 등 지명이 전하고, 무왕이 창건했다는 제석사와 미륵사 터, 왕궁 터, 그리고 무왕과 선화공주의 무덤이라는 쌍릉이 남아 있다. 남겨진 유적의 거대한 흔적들만 보아도 무왕의 호방한 뜻과 걸출한 기상이 보인다. 이를 토대로 익산이 일시적인 백제의 수도였다는 주장들이 힘을 얻었다. 입증할 기록도 남아 있다. 일본 교토의 사찰인 쇼오렌인에서 발견된 ‘관세음응험기’에 “백제의 무광왕(무왕)은 지모밀지(왕궁)로 천도하여 새로이 사찰을 경영했다”라고 적혀 있다.기록은 계속된다. “639년 큰 벼락이 치고 비가 내려 제석정사가 화를 입어 불당과 7층목탑, 회랑과 승방이 모두 불탔다.” 무왕이 새로이 경영했다는 사찰은 왕궁리 궁평마을에 위치한 제석정사(제석사)이다. 1993년부터 발굴 조사해서 ‘제석사’라는 명문이 쓰인 기와를 발견했고, 여러 건물 터도 찾아냈다. 가람 전체를 관통하는 남북 중심축 위에 정문-목탑-금당-강당 터들이 위치하고 그 외곽을 회랑과 승방들이 감싸는 모습이다. 모두 ‘관세음응험기’의 기록과 일치하는 유적이다. 제석사는 불타기 이전인 600~630년 사이에 창건됐고, 무왕의 익산 천도도 그 시절에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 정도 사찰이면 수백 승려들이 거주하고, 수천의 신도들이 출입하게 된다. 주변에는 시장이 형성되고 민가들이 들어선다. 목탑지의 아래층 기단은 2m가 넘는 높이다. 높은 기단 위에 우뚝 솟은 목탑은 당시 초고층 건물로, 신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것이다. 천도를 위해서는 인구를 유입할 수 있는 도시의 기반시설이 필요하다. 왕실이 운영하는 제석사는 익산 천도를 위한 중요한 선행 시설이었다.●제석사지·왕궁리유적… 455m 길이 운하형 연못 수도 익산의 중심은 왕궁이었다. 현재 ‘왕궁리유적’이라는 애매한 명칭으로 불리지만, 1989년부터 발굴 조사 결과 확실한 백제의 왕궁 터임을 확인했다. 일대는 넓은 평야지대지만, 남북으로 길게 솟은 언덕을 찾아 그 위에 터를 잡았다. 남북 490m, 동서 245m의 완벽한 직사각형 궁성을 쌓고 그 안에 여러 전각을 지었다. 조선시대 경복궁 면적의 4분의 1 정도로 일시적인 행궁으로 쓰기에는 충분한 규모다. 무왕 이후에 익산은 결국 수도의 지위를 잃어 왕궁은 폐지되고 사찰로 바뀌었다. 지상에 남아 있는 구조물은 ‘왕궁리5층석탑’이 유일한데, 사찰로 바뀐 백제 말 작품이라는 설과 고려 초라는 설이 팽팽하다. 왕궁 건물 터 위에 사찰 건물들을 세웠고, 그 시기 사찰에 필수적인 회랑이 없는 등 특별한 기능의 사찰이었다. 무왕이 사후에 익산쌍릉에 모셔짐에 따라 그의 명복을 비는 왕실 원찰이었다는 주장이 그럴싸하다. 뒤편의 볼록 솟은 언덕에 정원을 조성하고, 가운데 정상부에는 큰 정자를 세워 경치를 감상했다. 정원의 가장자리에는 말굽형 환수구를 파서 운하 형태의 기다란 연못을 만들었다. 폭은 3~7m, 전체 길이는 455m에 달한다. 정원에 물을 공급하는 집수시설인 동시에 자체로서 훌륭한 조경시설이 되었을 것이다. 지그재그 모양으로 판 곡수로는 더욱 창의적이다. 환수구에 연결된 지류로 조성된 물길이며, 전체 길이 685m에 달한다. 마치 커다란 물결과 같은 모양으로 조성한 곡수로는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도 발견하기 어려운 조경시설이다. 기이한 동식물을 키우고 독창적 정원을 만들어 경치를 즐겼다는 무왕의 풍류와 창의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대단한 정원유적이다. 삼국유사에 실린 미륵사의 창건 설화는 특별하다. 무왕 부부가 왕궁 인근의 사자사로 행차할 때 연못에서 미륵3존이 나타나 왕비의 청탁으로 미륵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늪을 메운 후 3곳에 각각 불당과 탑을 만들었다. 신라 진평왕이 공인을 보내 공사를 도왔다니 당연히 왕비는 선화공주일 것이고, 당탑을 3곳에 세웠다니 통상적인 사찰 3개가 연립된 초대형 규모였다.●20년간 보수한 미륵사지석탑 주인은 사택왕후 오랜 기간의 발굴조사를 통해 미륵사의 전모가 드러났다. 400만평에 달하는 거대한 면적의 절터는 동아시아 최대로 추정한다. 3개의 당-탑, 다시 말해 3개의 사찰이 나란히 놓여 동-중-서의 3원을 형성했고, 각원은 회랑으로 분리됐다. 중원에는 목탑을 세웠고 동원과 서원에는 각각 석탑을 세웠다. 중원의 목탑을 비롯해 목조 건물은 물론 동원의 석탑도 조선 후기에 이미 사라졌다. 다행히 서원의 석탑은 반파된 부분이나마 기적적으로 남았다. 6층 일부까지 남았음에도 현존 석탑 중 가장 오래되고 가장 커서 국보 중의 국보인 미륵사지석탑이다. 이 석탑은 기둥과 보 등 수천개의 부재들을 정교하게 깎아 조립한, 마치 목탑과도 같은 석탑으로 백제계 석탑의 원형이다. 일제기인 1915년, 붕괴 직전의 석탑에 185톤의 시멘트 덩이를 발라 흉측하나마 응급 보존공사를 했다. 거의 한 세기가 지난 1999년, 응급용 시멘트마저 수명을 다해 완전 해체 보수 정비를 결정하게 된다. 정교한 조사와 연구 끝에 드디어 2019년 5월 재조립 공사를 마쳤으니 꼬박 20년이 걸려 문화재 보수 정비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이 석탑의 원형이 7층인지 9층인지 아직 결론을 못 냈다. 1993년 확정된 결론 없이 동원에 높이 27.7m의 9층 석탑을 세웠다. 세부적인 모습도 어색하고, 전체 석재를 기계로 가공하여 정교한 백제건축의 미를 잃어버렸다. 20세기 최악의 문화재 복원이라는 오명까지 쓴 시행착오를 교훈 삼아 이번 보수정비에는 엄격한 원칙들을 세웠다. 추론 복원을 하지 않고, 직전 모습인 6층 일부까지만 복원 보수한다.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최대한 존중한 결과다. 총 1627개의 부재 가운데 원래의 것을 최대한 보강 활용하여 재사용률을 81%까지 높였다. 석탑의 해체 과정에서 사리봉안기가 출현했다. 여기에는 “우리 백제 왕후께서는 좌평 사택지적의 따님으로…가람을 세우시고…”라 새겨져 있다. 미륵사의 주인공이 선화공주가 아니라 사택왕후라는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다시 여러 가설이 등장했다. 왕비가 여럿이라는 설, 선화와 사택의 역할 분담설 등. 익산 쌍릉 중 대왕릉의 재발굴조사 결과 그 주인공이 무왕일 확률이 대단히 높아졌다. 현재 소왕릉 발굴 중인데, 제발 이 주인이 선화공주이기를 고대한다. 1500년 전, 무왕의 도시와 건축을 재구성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사료와 다소 황당한 설화뿐이다. 그러나 그것들이 사실은 아닐지라도 일말의 진실은 품고 있다. 미완성 복원된 미륵사지석탑이 아직은 부분적인 진실만을 이야기하는 것과 같이.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끝냈구나 싶다가… 끝이구나 했는데… 이젠, 끝까지 간다

    끝냈구나 싶다가… 끝이구나 했는데… 이젠, 끝까지 간다

    후반 종료 1분 전 동점골… 연장 역전골 승부차기서 GK 이광연 활약에 3-2 승 이강인, PK골·2도움… 모든 득점 관여 36년 묵은 꿈 넘어 새 축구 역사에 도전‘비엘스코의 기적’이었다. 정정용 감독이 이끄는 U20(20세 이하) 축구대표팀이 36년 묵은 4강 진출의 꿈을 다시 일궜다.대표팀은 9일 폴란드 비엘스코비아와 경기장에서 열린 세네갈과의 U20 월드컵 8강전에서 1골 2도움을 올린 ‘막내형’ 이강인(발렌시아)의 활약 속에 연장까지 가는 120분 동안의 접전 끝에 3-3 무승부 뒤 승부차기에서 3-2로 이겼다. 한국은 2-2로 맞선 승부차기에서 다섯 번째 키커로 나선 오세훈(아산)이 상대 골키퍼 파울로 다시 차 골망을 흔든 반면 세네갈의 마지막 키커의 공은 공중으로 뜨면서 극적인 승부차기 승리를 확정했다. 이로써 한국은 U20 월드컵의 전신인 1983년 세계청소년선수권대회에서 4강에 오른 이후 무려 36년 만이자 역대 두 번째로 4강 신화를 재현했다.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1차전 0-1 패배 뒤 2차전(남아공·1-0 승)부터 4연승 행진을 벌인 한국은 세네갈 U20 대표팀과의 상대 전적에서 1승1무의 우위를 점했다. 대표팀은 오는 12일 오전 3시 30분 루블린에서 미국을 2-1로 꺾은 에콰도르와 결승 티켓을 놓고 격돌한다. 한국은 최전방에 세 경기 연속골 도전에 나선 오세훈을 세우고, 전세진(수원)-이강인을 좌우에 포진시킨 ‘삼각편대’ 형태로 세네갈의 골문을 노렸다. 초반부터 공세를 퍼붓던 한국은 그러나 전반 37분 선제골을 내줬다. 후반 한국은 행운의 페널티킥으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지솔(대전)이 얻어낸 페널티킥을 이강인이 침착하게 왼발 인사이드 슈팅으로 자신의 대표팀 1호 골맛을 봤다. 그러나 한국은 후반 31분 이재익(강원)이 위험지역에서 유수프 바지의 오른발 슈팅을 막는 과정에서 공이 손에 맞는 바람에 페널티킥이 선언돼 한 골을 더 허용했다. 1-2 패로 끝날 것 같던 경기는 후반 추가시간 8분 이지솔의 극적인 동점골로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이강인이 올린 정교한 크로스를 이지솔이 달려 나오며 머리로 공의 방향을 틀어 천금 같은 골을 뽑아냈다. 이강인은 페널티골에 이지솔의 동점골을 배달하고 이지솔은 이강인의 페널티골을 유도한 데 이어 이강인의 도움으로 동점골을 사냥하는 등 승부에 중대한 역할을 했지만 이날 승리는 비단 둘의 활약만은 아니었다.대회 최다 출전 기록을 세운 조영욱(FC서울)은 두 번째 역전골을 엮어냈다. 그는 연장 전반 6분 역습 상황에서 이강인이 수비수 3명 사이로 날카롭게 찔러준 패스를 문전으로 쇄도하다 오른발로 대포알 같은 슈팅을 날려 세네갈의 골망을 출렁였다. 세네갈이 연장 후반 16분 아마두 시스가 멍군 동점골을 터뜨려 승부차기에 들어간 뒤에는 마지막 키커로 나선 오세훈(아산)이 상대 키커들의 실축 속에 2-2가 된 상황에서 골키퍼 반칙으로 재차 시도한 슈팅을 성공시켜 3-2로 이날 승부의 방점을 찍었다.그러나 ‘11m 룰렛’의 영웅은 주전 골키퍼 이광연(강원)이었다. 앞서 조별리그에서 포르투갈과 남아공, 아르헨티나를 2실점으로 막아내며 16강에 오를 수 있었던 건 그의 수훈 덕이었다. 특히 승부차기는 ‘이광연’이라는 이름 석 자의 존재감을 빛낼 만했다. 1, 2번 키커 김정민(리퍼링), 조영욱이 잇따라 실축해 압박감이 심했던 2-2 상황에서 세네갈의 4번째 키커 디아 은디아예의 슈팅 방향을 정확하게 예측한 뒤 몸을 날려 막아냈다. 다섯 번째 키커 오세훈이 상대 골키퍼의 반칙으로 날린 두 번째 슈팅을 성공시키고 상대 마지막 키커 카뱅 디아뉴가 공중볼을 날리면서 한국의 3-2 승리가 확정된 건 앞선 이광연의 선방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최병규 전문기자 cbk91065@seoul.co.kr
  • [밀리터리 인사이드] 당신이 몰랐던 ‘진짜 영웅’ 이야기

    [밀리터리 인사이드] 당신이 몰랐던 ‘진짜 영웅’ 이야기

    임부택 소장부터 딘 헤스 대령까지나라를 지킨 위대한 6·25 전쟁 영웅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의 남침으로 시작된 ‘동족상잔의 비극’ 6·25 전쟁은 3년간 이어지며 한반도를 잿더미로 만들었습니다. 9일 국방부와 국가기록원 등에 따르면 민간인 24만 4663명이 사망하고 학살당한 사람도 12만 8936명에 이르렀습니다. 부상자와 행방불명자 등을 모두 포함하면 99만명이 희생됐습니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섰던 군의 피해도 컸습니다. 전쟁 기간 한국군 13만 7899명, 유엔군 3만 7902명이 전사·사망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들이 흘린 피를 잊지 않기 위해 6월을 ‘호국보훈의 달’로 정했습니다. 보통 ‘영웅’이라고 하면 영화 속 전쟁 영웅, 스포츠 영웅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저는 6월을 맞아 여러분이 잘 모르는 전쟁 영웅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세월이 지나 잊혀졌지만, 우리가 잊어선 안 되는 그들의 영웅담을 전합니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매달 국가보훈처가 발표한 ‘이달의 6·25 전쟁 영웅’을 참고했습니다. ●6·25 전쟁 첫 승리 주역 ‘임부택 육군 소장’6·25 전쟁 영웅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 이가 바로 임부택(1919.9.24~2001.11.13) 육군 소장입니다. 그는 국군경비대 창설 멤버로, 중사 계급으로 교관을 맡아 사병(병사와 부사관) 군번 ‘1번’(110001)을 받았습니다. 이후 국방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1기로 소위 임관을 했습니다. 임 소장은 1950년 1월 6사단 7연대장으로 부임한 뒤 북한군의 남침 징후를 포착하고 강원 춘천 소양강변 인근에 방어진지를 구축해 준비태세를 갖췄습니다. 6월 25일 개전 당일, 그의 예측이 적중해 열세의 화력으로도 춘천으로 향하는 북한군을 3일간 막아냈습니다. 이는 개전 초기 큰 혼란에 빠졌던 국군이 전열을 가다듬어 한강방어선을 구축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북한군은 개전 당일 춘천을 점령하고 곧바로 수원으로 진격해 국군 증원부대와 한강 이북의 국군을 포위·섬멸할 계획이었지만, 임 소장을 포함한 장병들의 악착같은 방어로 계획은 물거품이 됐습니다. 그는 다음달인 7월 충북 음성 ‘동락리 전투’에서 북한군 15사단 48연대를 기습공격으로 섬멸해 6·25 전쟁 첫 승리를 기록했습니다. 당시 공로로 7연대 부대원 전원이 1계급 특진 영예를 안았다고 합니다. 1951년 4월 6사단 부사단장으로 있던 시기에는 경기 양평 용문산에서 중공군 3개 사단의 공격을 받고도 반격해 2만명을 사살하고 3500명을 포로로 잡아 전쟁 최대의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아울러 1953년 7월 11사단장으로 있었던 임 소장은 ‘휴전전투’로 불리는 ‘삼현지구 반격 작전’에서 중공군 4개 사단의 공세를 저지해 현재의 휴전선을 확보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래서 중공군 총사령관이었던 펑더화이(팽덕회)가 임 소장을 제거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그는 생전 최고 무공훈장인 ‘태극무공훈장’을 2차례 받는 등 모두 17개 훈장을 받았습니다.1961년 5·16 쿠데타 당시 1군단장으로 있었던 임 소장은 “반란군을 진압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내전에 대한 우려와 ‘국군끼리 충돌하지 말라’는 윤보선 대통령 공문이 상부에 전달되면서 나서지 못했고 얼마 뒤 군복을 벗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지난해 1월 11사단에는 그의 투혼을 기리는 뜻에서 ‘임부택 장군실’이 마련됐습니다. ●공군 역사를 새로 쓴 ‘김신 공군 중장’김신(1922.9.21~2016.5.19) 공군 중장은 우리 공군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는 분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의 차남으로, 대를 이어 나라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그는 6·25 전쟁이 발발하자 바로 다음날인 6월 26일 이근석 대령 등 10명의 공군 장교와 함께 미군으로부터 ‘F-51 머스탱’ 전투기를 인수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당시 미국은 F-51 전투기 인수 조건으로 ‘훈련 없이도 전투기를 탈 수 있는 조종사’를 원했습니다. 당시 중령이었던 김 중장은 10명 중 유일하게 미 공군에서 F-51로 훈련받은 경험이 있어 ‘국군 첫 전투기 인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일행과 쉬지 않고 훈련해 7월 2일 전투기를 이끌고 귀국했고, 휴식도 없이 바로 다음날인 3일부터 출격해 강원 묵호·삼척지구, 서울 영등포·노량진지구 전투 등에서 적 부대와 탄약저장소를 맹렬히 공습했습니다. 1951년 10월에는 한국 공군 단독출격 작전도 주도했습니다. 특히 대령으로 제10전투비행 전대장을 맡은 뒤에는 미 공군이 수차례 출격하고도 성공하지 못한 평양 근교 ‘승호리 철교’ 폭파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승호리 철교는 평양 동쪽 10㎞ 지점, 대동강 지류인 남강에 설치된 철교로 군수물자를 중·동부 전선으로 수송하는 적 후방보급로 요충지였습니다. 그는 “적의 극심한 대공포화 위협을 감수하고라도 고도를 낮춰 폭탄을 투하해야 한다”며 목숨을 건 공격전술을 도입했고, 1952년 1월 15일 3번째 출격에서 승호리 철교 폭파에 성공했습니다. 한국 공군의 새 역사를 쓴 김 중장은 1962년 공군참모총장을 마친 뒤 제9대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고 ‘을지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부모님의 나라를 지킨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김영옥(1919.1.29~2005.12.29) 미국 육군 대령은 재미교포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이탈리아와 프랑스 전선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는 제대 후 자영업을 하다 6·25 전쟁이 발발하자 ‘부모님의 나라를 구하겠다’며 자원입대해 대위로 군에 복귀했습니다. 김 대령은 주로 정보 수집 업무를 맡으며 한국인 유격대를 조직하다 1951년 ‘중공군 춘계공세’ 때 직접 부대를 지휘해 혁혁한 공로를 세웠습니다. 특히 1951년 5월 중공군 2차 춘계공세 때는 구만산·탑골 전투와 금병산 전투에서 참전해 사기가 떨어진 부대원을 독려해 승리로 이끌었고, 유엔군 부대 중 가장 빠른 진격으로 ‘캔자스선’(1951년 서울 탈환 뒤 38도선을 전술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마련한 전선)에 도달했다고 합니다. 같은 해 6월 ‘철의 삼각지대 전투’를 수행하다 중상을 입고 일본 오사카로 후송됐지만, 치료를 받고 다시 전선에 복귀하는 투혼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1952년 9월 미국으로 복귀할 때까지 수많은 전공을 세웠고,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2005년에는 우리 정부는 그에게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서울 수복 후 태극기 휘날린 ‘박정모 해병대 대령’‘인천상륙작전’에 참여한 박정모(1927.3.20~2010.5.6) 해병대 대령은 1950년 9월 27일 서울탈환 작전 당시 해병대 2대대 6중대 1소대장으로 최전선에 섰습니다. 그는 소대원들과 새벽에 공격을 감행해 치열한 교전 끝에 서울 중앙청(당시 정부청사)으로 들어가 옥상의 인공기를 걷어내고 태극기를 가장 먼저 게양했습니다. 이 역사적인 장면은 사진으로 남아 지금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립니다.이후 1951년 전쟁 최대 격적지였던 ‘가리산지구 전투’에서 최종 목표인 957고지를 야간 기습공격으로 탈취했고, 연합군 총반격 작전인 ‘리퍼 작전’에도 기여했다고 합니다. ‘도솔산지구 전투’에서는 24개 목표 중 적의 최후 방어선인 제9목표를 일주일 만에 탈환하는 공로도 세웠습니다. 정부는 박 대령에게 ‘을지무공훈장’과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습니다. ●한국 공군의 아버지 ‘딘 헤스 미국 공군 대령’딘 헤스(1917.12.6~2015.3.3) 미국 공군 대령은 6·25 전쟁 당시 우리 공군을 지원하기 위해 창설된 ‘제6146군사고문단’ 책임자로, 한국인 전투기 조종사 양성을 진두지휘한 인물입니다. 한국 공군이 최단 기간에 ‘싸울 수 있는 군대’로 거듭나게 된 것은 헤스 대령의 공로가 매우 컸습니다. 그는 F-51 전투기로 1951년 6월까지 1년간 무려 250회를 출격하는 초인적인 활동으로, 개전 초기 전세를 역전시키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또 ‘1·4 후퇴’ 직전 중공군 개입으로 전황이 악화됐을 당시 적이 눈앞까지 닥친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안고 수송기에 태워 950명의 전쟁 고아와 성인 80명을 제주도로 안전하게 대피시키기도 했습니다. 전후에도 그는 제주도를 찾아 전쟁고아들을 돌봤고 ‘전쟁고아의 아버지’로 불렸습니다.2017년 3월 제주항공우주박물관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건립됐습니다. 우리 공군은 그를 ‘6·25 전쟁 중 한국 공군의 아버지’로 기리고 있습니다. 그는 이런 공로로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무공훈장’을 받았습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아이언맨, 진짜 지구 구한다…기후변화와 싸우는 연합체 발표

    아이언맨, 진짜 지구 구한다…기후변화와 싸우는 연합체 발표

    영화 '아이언맨'으로 인류를 구원했던 '그'가 이번에 또다시 지구를 지키기 위해 나섰다. 지난 5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 현지 주요언론은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54)가 아마존이 개최한 ‘리:마스'(re:Mars) 콘퍼런스의 기조연설자로 깜짝 등장했다고 보도했다. 리마스는 세계적인 IT 기업 아마존이 매년 인공지능(AI), 우주탐사, 로봇공학 등 미래산업을 주제로 개최하는 콘퍼런스다. 지난 4일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콘퍼런스에 등장한 다우니는 특유의 입담으로 관객들의 큰 웃음과 관심을 받았다. 보도에 따르면 이날 그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arvel Cinematic Universe)의 역사와 아이언맨 수트의 진화 그리고 마약 중독으로 암울했던 자신의 과거를 농담을 섞어가며 연설해 큰 호응을 얻었다.다우니는 "나는 11년 동안 흥미롭고 상징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다"면서 "스타크 캐릭터가 마음에 든 것은 전쟁의 수익자에서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이 모여 미래 기술을 토론하는 자리에 다우니가 등장한 것은 뜬금없지만 그 이유는 연설 말미에 밝혀졌다. 바로 '풋프린트 연합'(Footprint Coalition)의 출범이다. 오는 2020년 4월 공식 출범할 예정인 풋프린트 연합은 새로운 '악당'인 기후변화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다우니는 "나는 '탄소발자국' 악몽의 거물로, 기후를 위기에 빠뜨리는데 남보다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했다"면서 "로봇과 나오 테크놀로지 기술로 10년 안에 지구를 완전히 청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역설했다. 탄소발자국은 사람의 활동이나 상품의 생산, 소비 과정을 통해 배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이산화탄소로 환산한 총량을 말한다.  현지언론은 "풋프린트 연합이 구체적인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아이언맨이 진짜 지구를 구하는 영웅이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 폼페이오 “中, 평화 시위 폭력 진압…사망·실종자 공개 규명해야”

    강제수용소 구금 등 인권 유린 강경 비난 中 “악랄하게 공격… 美 심각한 내정 간섭”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가 3일(현지시간) 6·4 중국 톈안먼 민주화 운동 30주년을 맞아 중국의 인권 유린 실태를 강하게 비판하며 인권 개선을 압박했다. 이에 중국 정부도 “내정 간섭”이라고 맞서 미중 간 톈안먼 사태를 둘러싸고 격하게 충돌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 명의로 발표된 톈안먼 민주화 운동 30주년 성명은 A4용지 1장에 가까운 분량으로, 지난해보다 3배 이상 길고 발언의 수위도 어느 때보다 강경했다. 일각에서는 무역전쟁 등으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중국의 ‘약한 고리’인 인권 문제를 매개로 압박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폼페이오 장관은 성명에서 “6월 4일을 맞아 중국 국민의 영웅적인 저항 운동을 기린다”고 운을 띠면서 “1989년 6월 4일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톈안먼 광장으로 탱크를 보내 민주주의와 인권 등을 요구하는 평화적인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베이징과 중국 전역의 다른 도시들에 집결한 수십만의 시위자들은 국가의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지독하게 고통받았으며, 사망자 수는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면서 “우리는 역사의 어두운 시기에 희생당한 많은 이들에 위안이 될 수 있도록 사망자와 실종자에 대해 공개적으로 규명할 것을 중국 정부에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또 “미국은 중국이 국제시스템으로 편입하면서 보다 개방적이고 관대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희망했지만 이러한 희망은 내동댕이쳐졌다”면서 “일당 체제의 중국은 반대를 용인하지 않으며 그 이익에 부합하기만 하면 언제든 인권을 유린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특히 2017년부터 중국 정부가 마구잡이로 잡아들여 최대 100만명을 강제수용소에 구금했다는 소식이 언론 보도 및 국제기구의 고발을 통해 알려진 신장위구르자치구 상황을 ‘신종 인권 유린 실태’로 꼽았다. 이에 겅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4일 정례 브리핑에서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중국의 정치체제를 “악랄하게 공격”했으며 인권과 종교 상황을 헐뜯었다고 비난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중국 내정에 심각한 간섭을 했으며 국제관계의 기본준칙을 짓밟았다”면서 “중국은 이에 단호히 반대하며 이미 미국에 강력히 항의했다”고 말했다. 워싱턴 한준규 특파원 hihi@seoul.co.kr베이징 윤창수 특파원 geo@seoul.co.kr
  • 봉준호 “송선배, 칸 남우주연상 강력 후보였다” 송강호 “봉테일, 본질은 따뜻한 시선과 통찰력”

    봉준호 “송선배, 칸 남우주연상 강력 후보였다” 송강호 “봉테일, 본질은 따뜻한 시선과 통찰력”

    프랑스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발표되자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는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봉 감독은 무대에 올라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저의 동반자”라며 송강호를 소개했다. 둘은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처음 만난 뒤 햇수로 17년 동안 4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서울신문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두 주역을 만났다.■‘봉테일’ 봉준호 프랑스 칸에서의 떨림은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허들을 넘는 기분이었다”는 봉준호(50) 감독은 이젠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기다리며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최초의 황금종려상’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아로새긴 봉 감독을 29일 만났다. 칸영화제 후일담부터 차기작 구상까지, 거장이 들려준 생생한 이야기에서 뿌듯함과 설렘이 동시에 묻어났다. 봉 감독은 황금종려상 수상 직후 열린 축하 리셉션에서 심사위원단에 둘러싸여 축하와 질문 공세를 받았다. 경쟁 부문에 초청 받은 감독은 영화제 기간 동안 심사위원들과 접촉할 수 없는 까닭에 그제서야 둑 터지듯 서로에게 묻고 싶은 말을 건넬 수 있었다고.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영화 속 그 완벽한 집은 어디에서 골랐냐’고 묻더라고요. 세트라고 했더니 신기해했어요. 심사위원인 배우 엘르 패닝은 배우들의 표정이나 리듬감이 탄복스러웠다고 하더라고요. 이냐리투 감독도 ‘송강호가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 중 한 명이었는데 황금종려상과 중복 시상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강호 선배에게 전했더니 ‘우리 영화를 남우주연상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두기에는 아깝지 않느냐’고 하셨어요.” 봉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그의 페르소나인 송강호와 네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봉 감독이 ‘살인의 추억’(2003)을 시작으로 ‘괴물’(2006), ‘설국열차’(2013)에 이어 ‘기생충’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그와 작업을 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봉 감독은 송강호가 지닌 특유의 ‘힘’을 높이 샀다. “사실 제 영화에 나오는 상황들이 기이하고 독특하잖아요. 범인을 못 잡고 끝낸다거나 한강에서 괴물이 날뛰는데 강호 형님은 그 상황을 관객들로 하여금 믿게 하는 설득력이 있어요. 공격적으로 표현하면 관객을 제압하는 힘이죠. 그런 부분은 제가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도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배우 송강호를 생각하고 지문과 대사를 쓸 땐 운신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제가 과감해질 수 있죠.” ‘기생충’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처지는 서로 크게 다르다. 어떤 가족은 하루에 단 몇 분만 햇살이 드는 반지하방에, 어떤 가족은 족구를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거실을 지닌 언덕 위 대저택에 산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주눅들거나 부자라고 늘 오만한 건 아니다. “서로 연대하는 착하고 정의로운 약자와 탐욕적이고 폭력적인 부자의 대결 구도는 우리에게 익숙하죠. 그보다는 우리가 살갗으로 느끼면서 보아온 사실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화 속 두 가족 모두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쁜 모습으로 뒤범벅 돼 있죠. 실제 우리 스스로도 가지고 있을 만큼의 적당히 비릿한 나쁨, 그게 중요하다고 봐요. 명백한 의도나 악당이 없는데도 파국이 생기는 건 우리 내면에 자리잡은 원초적인 불안감을 반영한 겁니다.” 봉 감독이 선보일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벌써부터 뜨겁다. “‘마더’나 ‘기생충’ 같은 규모의 영화가 제게 잘 맞는 것 같아요. 미국 제작비 기준으로 보면 200억~300억원 규모의 영화 한 편을 구상 중이고, 서울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을 다룬 영화도 준비하고 있어요. 제 영화가 늘 애매하듯 이 영화를 호러나 공포로 규정할 순 없을 것 같아요. 2000년대 중반부터 오랫동안 구상한 작품인데 제가 꼭 찍고 싶었던 영화입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믿보배’ 송강호 “지금이 최고의 순간 아닐까 싶습니다.” 프랑스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기생충’이 최고상을 받은 뒤 봉준호 감독과 함께 주연 배우 송강호에게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 최고의 배우로 살아온 송강호지만, 이번 영화가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송강호는 “세월이 지나도 ‘기생충’의 의미는 퇴색하지 않을 거 같다”면서 “배우로서, 한국 영화의 중요한 지점에서 볼 때 절대 사라지지 않을 중요한 업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칸영화제 당시 배우들과 함께 오기로 한 송강호는 일정을 바꿔 하루를 더 묵었다. 이를 두고 ‘미리 상 받을 줄 알고 있었나’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원래는 25일 시상식 당일 아침 출발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 시간을 따져보니 수상 결과를 10시간 뒤 한국에 도착한 뒤에나 알게 될 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후 일정이 없었고요. 그래서 하루 늦췄습니다. 봉준호 감독과도 폐막식을 함께 하고 싶었고요. 황금종려상을 받는다는 언질을 받았다든가, 아니면 ‘촉을 느꼈다’ 이런 거 없었습니다. 알다시피 칸은 시상식 끝날 때까지 수상작을 절대 공개하지 않습니다.” 당시 폐막식에서 ‘기생충’이 최고상으로 호명되고서도 화제였다. 봉 감독이 수상 소감을 밝히며 송강호를 가리켜 “동지이자 동반자”라며 마이크를 전달하고, 이후 트로피를 바치는 퍼포먼스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와 관련해 “평소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 더 놀랐다”며 웃었다. “봉 감독과는 ‘모텔 선인장’ 때 처음 만났어요. 봉 감독은 당시 연출부였어요. 까까머리 시절이었습니다.(웃음) 세간에 제가 모텔 선인장 오디션을 보러 가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 잘못 알려진 겁니다. 봉 감독이 ‘초록물고기’ 보시고 제게 전화해서 보자 하기에 봤습니다. 얼마 후 삐삐로 아주 장문의 음성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연이 안 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 당신과 영화를 함께 만들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아, 이 사람은 뭐가 돼도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년 동안 함께 일했으니 누구보다 봉 감독의 의중을 잘 알고 있을 터다. 송강호는 세세하게 연출에 공을 들이는 이른바 ‘봉테일’로 불리는 봉 감독의 연출법에 대해 “봉테일은 현상일 뿐이고, 그의 본질은 세상에 관한 따뜻한 시선과 통찰력”이라고 했다. 특히 이번 영화를 단순히 계급의 문제, 가진 자 못 가진 자로 나눠 보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인간에 대한 존엄이 바로 ‘기생충’의 핵심 아닐까 싶어요. 영화에 나오는 중요한 모티프인 ‘냄새’라든가 ‘선’, 이런 거는 눈에 보이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 스스로 관념 속에 선이 있다 생각하고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 거죠. 현상 밑에 자리한 가장 중요한 것, 즉 인간에 대한 존엄이 부족해 우리 스스로 계급, 계층을 만드는 건 아닐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년 영화사를 압축하면 송강호가 남는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기생충’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그의 어깨가 무거울 만하다. “많은 분이 격려해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저 스스로는 한국 영화의 대표라는 틀에 갇히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이 많이 쳐다볼 수밖에 없는 포지션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앞으로 작품을 선택할 때마다 후배, 그리고 팬들이 ‘상업적으로 고민하고, 예술가로서도 고민하는 배우구나’ 하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봉준호 “송선배, 칸 남우주연상 강력 후보였다” 송강호 “봉테일, 본질은 따뜻한 시선과 통찰력“

    봉준호 “송선배, 칸 남우주연상 강력 후보였다” 송강호 “봉테일, 본질은 따뜻한 시선과 통찰력“

    프랑스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영화 ‘기생충’이 황금종려상 수상작으로 발표되자 봉준호 감독과 배우 송강호는 부둥켜안고 기쁨을 나눴다. 봉 감독은 무대에 올라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저의 동반자”라며 송강호를 소개했다. 둘은 2003년 ‘살인의 추억’으로 처음 만난 뒤 햇수로 17년 동안 4편의 작품을 함께 했다. 서울신문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의 두 주역을 만났다.프랑스 칸에서의 떨림은 한국에서도 이어지고 있었다. 지난 25일 제72회 칸국제영화제 폐막식에서 수상자가 발표될 때마다 “허들을 넘는 기분이었다”는 봉준호(50) 감독은 이젠 한국 관객들의 반응을 기다리며 “가슴이 조마조마하다”고 했다. ‘한국 영화 100년 역사상 최초의 황금종려상’이라는 위대한 순간을 아로새긴 봉 감독을 29일 만났다. 칸영화제 후일담부터 차기작 구상까지, 거장이 들려준 생생한 이야기에서 뿌듯함과 설렘이 동시에 묻어났다. 봉 감독은 황금종려상 수상 직후 열린 축하 리셉션에서 심사위원단에 둘러싸여 축하와 질문 공세를 받았다. 경쟁 부문에 초청 받은 감독은 영화제 기간 동안 심사위원들과 접촉할 수 없는 까닭에 그제서야 둑 터지듯 서로에게 묻고 싶은 말을 건넬 수 있었다고. “심사위원장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영화 속 그 완벽한 집은 어디에서 골랐냐’고 묻더라고요. 세트라고 했더니 신기해했어요. 심사위원인 배우 엘르 패닝은 배우들의 표정이나 리듬감이 탄복스러웠다고 하더라고요. 이냐리투 감독도 ‘송강호가 강력한 남우주연상 후보 중 한 명이었는데 황금종려상과 중복 시상을 할 수 없어서 아쉬웠다’고 하더군요. 그 이야기를 강호 선배에게 전했더니 ‘우리 영화를 남우주연상이라는 카테고리에 가두기에는 아깝지 않느냐’고 하셨어요.” 봉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그의 페르소나인 송강호와 네 번째로 호흡을 맞췄다. 봉 감독이 ‘살인의 추억’(2003)을 시작으로 ‘괴물’(2006), ‘설국열차’(2013)에 이어 ‘기생충’까지 오랜 시간에 걸쳐 그와 작업을 한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봉 감독은 송강호가 지닌 특유의 ‘힘’을 높이 샀다. “사실 제 영화에 나오는 상황들이 기이하고 독특하잖아요. 범인을 못 잡고 끝낸다거나 한강에서 괴물이 날뛰는데 강호 형님은 그 상황을 관객들로 하여금 믿게 하는 설득력이 있어요. 공격적으로 표현하면 관객을 제압하는 힘이죠. 그런 부분은 제가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도 큰 영향을 미치거든요. 배우 송강호를 생각하고 지문과 대사를 쓸 땐 운신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제가 과감해질 수 있죠.” ‘기생충’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처지는 서로 크게 다르다. 어떤 가족은 하루에 단 몇 분만 햇살이 드는 반지하방에, 어떤 가족은 족구를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거실을 지닌 언덕 위 대저택에 산다. 하지만 가난하다고 주눅들거나 부자라고 늘 오만한 건 아니다. “서로 연대하는 착하고 정의로운 약자와 탐욕적이고 폭력적인 부자의 대결 구도는 우리에게 익숙하죠. 그보다는 우리가 살갗으로 느끼면서 보아온 사실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화 속 두 가족 모두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나쁜 모습으로 뒤범벅 돼 있죠. 실제 우리 스스로도 가지고 있을 만큼의 적당히 비릿한 나쁨, 그게 중요하다고 봐요. 명백한 의도나 악당이 없는데도 파국이 생기는 건 우리 내면에 자리잡은 원초적인 불안감을 반영한 겁니다.” 봉 감독이 선보일 차기작에 대한 관심이 벌써부터 뜨겁다. “‘마더’나 ‘기생충’ 같은 규모의 영화가 제게 잘 맞는 것 같아요. 미국 제작비 기준으로 보면 200억~300억원 규모의 영화 한 편을 구상 중이고, 서울에서 벌어지는 공포스러운 사건을 다룬 영화도 준비하고 있어요. 제 영화가 늘 애매하듯 이 영화를 호러나 공포로 규정할 순 없을 것 같아요. 2000년대 중반부터 오랫동안 구상한 작품인데 제가 꼭 찍고 싶었던 영화입니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지금이 최고의 순간 아닐까 싶습니다.” 프랑스 칸영화제 폐막식에서 ‘기생충’이 최고상을 받은 뒤 봉준호 감독과 함께 주연 배우 송강호에게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 최고의 배우로 살아온 송강호지만, 이번 영화가 지니는 의미는 남다르다. 송강호는 “세월이 지나도 ‘기생충’의 의미는 퇴색하지 않을 거 같다”면서 “배우로서, 한국 영화의 중요한 지점에서 볼 때 절대 사라지지 않을 중요한 업적”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칸영화제 당시 배우들과 함께 오기로 한 송강호는 일정을 바꿔 하루를 더 묵었다. 이를 두고 ‘미리 상 받을 줄 알고 있었나’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원래는 25일 시상식 당일 아침 출발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비행기 시간을 따져보니 수상 결과를 10시간 뒤 한국에 도착한 뒤에나 알게 될 판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후 일정이 없었고요. 그래서 하루 늦췄습니다. 봉준호 감독과도 폐막식을 함께 하고 싶었고요. 황금종려상을 받는다는 언질을 받았다든가, 아니면 ‘촉을 느꼈다’ 이런 거 없었습니다. 알다시피 칸은 시상식 끝날 때까지 수상작을 절대 공개하지 않습니다.” 당시 폐막식에서 ‘기생충’이 최고상으로 호명되고서도 화제였다. 봉 감독이 수상 소감을 밝히며 송강호를 가리켜 “동지이자 동반자”라며 마이크를 전달하고, 이후 트로피를 바치는 퍼포먼스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는 이와 관련해 “평소에는 그런 모습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 더 놀랐다”며 웃었다. “봉 감독과는 ‘모텔 선인장’ 때 처음 만났어요. 봉 감독은 당시 연출부였어요. 까까머리 시절이었습니다.(웃음) 세간에 제가 모텔 선인장 오디션을 보러 가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 잘못 알려진 겁니다. 봉 감독이 ‘초록물고기’ 보시고 제게 전화해서 보자 하기에 봤습니다. 얼마 후 삐삐로 아주 장문의 음성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연이 안 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 당신과 영화를 함께 만들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 ‘아, 이 사람은 뭐가 돼도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20년 동안 함께 일했으니 누구보다 봉 감독의 의중을 잘 알고 있을 터다. 송강호는 세세하게 연출에 공을 들이는 이른바 ‘봉테일’로 불리는 봉 감독의 연출법에 대해 “봉테일은 현상일 뿐이고, 그의 본질은 세상에 관한 따뜻한 시선과 통찰력”이라고 했다. 특히 이번 영화를 단순히 계급의 문제, 가진 자 못 가진 자로 나눠 보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인간에 대한 존엄이 바로 ‘기생충’의 핵심 아닐까 싶어요. 영화에 나오는 중요한 모티프인 ‘냄새’라든가 ‘선’, 이런 거는 눈에 보이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 스스로 관념 속에 선이 있다 생각하고 냄새가 난다고 생각하는 거죠. 현상 밑에 자리한 가장 중요한 것, 즉 인간에 대한 존엄이 부족해 우리 스스로 계급, 계층을 만드는 건 아닐까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년 영화사를 압축하면 송강호가 남는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기생충’으로 최고의 전성기를 맞은 그의 어깨가 무거울 만하다. “많은 분이 격려해주시는 것은 감사하지만, 저 스스로는 한국 영화의 대표라는 틀에 갇히지 않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후배들이 많이 쳐다볼 수밖에 없는 포지션에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제가 앞으로 작품을 선택할 때마다 후배, 그리고 팬들이 ‘상업적으로 고민하고, 예술가로서도 고민하는 배우구나’ 하는 느낌을 주고 싶어요.”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400억 대작 ‘아스달 연대기’ 한국 드라마 새 지평 여나

    400억 대작 ‘아스달 연대기’ 한국 드라마 새 지평 여나

    송중기·장동건 등 초호화 캐스팅 상고시대 가상의 역사 다뤄 눈길지금까지 없던 국내 드라마 한 편이 안방 시청자들을 찾아온다. 송중기·장동건 등 호화 캐스팅, 400억원 넘는 제작비 등으로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은 tvN ‘아스달 연대기’다. 오는 1일 첫 방송되는 ‘아스달 연대기’는 올해 최대 기대작으로 꼽힌다. 막대한 제작비 때문만은 아니다. 국내 드라마 최초로 상고시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이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가상의 대륙 ‘아스’에 사는 여러 부족 사람들이 최초의 도시와 국가를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한민족의 시원 설화인 단군설화를 재해석하고 판타지 설정을 첨가했다. ‘선덕여왕’, ‘뿌리깊은 나무’, ‘육룡이 나르샤’ 등을 쓴 김영현·박상연 작가와 ‘미생’, ‘시그널’, ‘나의 아저씨’ 등을 연출한 김원석 감독이 힘을 합쳤다. 28일 서울 강남구 임피리얼팰리스호텔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김 작가는 “7년 전 기획안을 써서 방송사에 드렸을 때 모두 화들짝 놀라면서 말렸다. 7년이 지나 오픈하게 돼 좋다”며 웃었다. ‘아스달 연대기’는 방대한 스케일과 처음 시도하는 세계관으로 한국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 거란 기대를 모은다. 6부작씩 세 파트, 모두 18부작으로 그중 12부작이 먼저 방송된다. ‘태양의 후예’ 이후 3년 만에 드라마에 복귀한 송중기가 사람족과 뇌안탈의 혼혈로 태어나 영웅으로 성장해가는 은섬 역을 맡았다. 장동건이 대칸부대의 수장 타곤을, 김지원이 예언능력을 갖고 있는 와한족 탄야를, 김옥빈이 해족 수장의 딸 태알하를 연기한다. 예고편 공개 후 고증에 대한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박 작가는 “그 시대에는 20살이 넘으면 이가 7개 이상 없어야 된다. 뽑을 수가 없지 않냐”라고 답해 좌중을 웃겼다. 이어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단계에서 기록에 없던 부분이 다른 문명에서는 발견되기도 한다”며 “(극의 흐름상 고증이) 안 맞는 부분도 있지만 발전단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진지한 대답을 보탰다. 이정수 기자 tinti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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