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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 대통령선거 막오르다(공화·민주서 누가 뛰나:3)

    ◎공화 2·민주 5명 “숨가쁜 레이스”/부캐넌,「보수깃발」 내세워 부시 맹추격/공화/클린턴·송가스·하킨등 “엎치락 뒤치락”/민주 지난 10일의 민주당 아이오와 코커스(주당원대회)를 기점으로 불이 붙은 미국 대통령선거전은 이제 오는 7월과 8월로 예정돼있는 민주·공화 양당의 전당대회에서 후보지명을 따내기 위한 각당 주자들의 숨가쁜 레이스로 열기를 더해가고 있다. 당초 공화당에서는 부시의 독주가 예상됐었으나 최근 그의 인기가 바닥세를 보이고 있고 민주당의 후보지망자들도 뚜렷한 선두주자 없이 엎치락뒤치락하는 혼전양상을 연출함으로써 유권자들의 관심은 양당 후보자의 윤곽이 드러날 오는 18일의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 쏠리고 있다. 뉴햄프셔주 예비선거에는 현재 공화당 26명,민주당 36명,자유당 1명등 총 63명이 등록,사상 최대숫자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선거운동조차 하지않는 이름뿐인 후보가 대부분으로 실제경합자는 공화당에서는 12일 출마를 공식선언한 현대통령인 조지 부시와 칼럼니스트인 패트릭 부캐넌,민주당에서는 빌 클린턴 아칸소주지사,보브 케리 상원의원,톰 하킨 상원의원,제리 브라운 전캘리포니아주지사,폴 송가스 전상원의원등 5명으로 압축된다.백악관을 향해 뛰고있는 이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공화당◁ ◆조지 부시(68)=현직 대통령(41대).예일대출신으로 일찍 텍사스에 내려가 석유사업으로 대성한 보기드문 행운아. 사업에서 성공을 거둔후 연방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진출,유엔대사·초대 북경연락사무소장·CIA(중앙정보국)국장을 거쳐 레이건대통령 밑에서 8년동안 부통령을 역임했다. 부통령출신으로 대통령이 된 미역사상 몇안되는 인물중 한사람이다.걸프전과 냉전의 최후승리자로 한때는 지지도가 90%를 넘어서기도 했으나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최근엔 인기도가 30%대까지 내려가 재선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 ◆패트릭 부캐넌(54)=신문기자출신 칼럼니스트.닉슨,포드,레이건등 공화당소속 대통령때는 백악관에 들어가 주로 연설문작성작업을 돕기도 했던 철저히 보수적인 인물이다. CNN­TV 해설가로 활약하면서 부시의 정책이 덜 보수적이란이유로 그를 맹비난해 왔으며 낙태,대외원조 반대등 고립주의정책을 내세우고 있다.비판은 하나 설득력있는 정책대안을 제시하지 못해 「말의 폭력자」란 평을 받고 있다. ▷민주당◁ ◆빌 클린턴(46)=현재 아칸소주지사.조지타운대,영국 옥스퍼드대,예일법대를 거쳐 변호사가 된후 아칸소주검찰총장,79∼81년 주지사,83년 지사에 재선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만고만한 후보들중 선두를 달려왔으나 섹스 스캔들,월남전 병역기피혐의 등이 드러나 고전중.정책은 비교적 보수성향. ◆제리 브라운(54)=75∼83년 캘리포니아주지사를 지냈으며 76년과 80년 연이어 대통령후보지명전에 나섰으나 그때마다 지미 카터후보에게 패배.버클리대와 예일대출신으로 주지사를 역임한 아버지의 후광으로 일찍 정계에 진출했으나 80년대들어 활동이 미미한 편. ◆톰 하킨(54)=아이오와주출신 상원의원.연방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에 진출했으며 현재 상원 민주당부총무. 탄광노동자인 아버지와 유고 이민1세인 어머니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릴때 소아마비증세로 불우한 젊은시절을 보냈다.이런 배경때문인지 성향이 진보적이며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다. ◆폴 송가스(51)=78∼84년 매사추세츠주출신 상원의원.현재는 주고등교육평의회 의장직을 맡고 있다.다트머트대·예일법대등 세칭 아이비리그출신 변호사로 검찰총장보를 역임했다. 교육·환경·사회문제등에 비교적 구체적 접근을 하고있는 점이 강점으로 지적되고 있으며 외부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데다 건강때문에 정계은퇴(84년)를 했던 경험이 약점이다. ◆보브 케리(49)=83∼87년 네브래스카주지사를 거쳐 현재는 연방 상원의원.베트남전때 해군으로 참전,오른쪽 다리를 잃었으며 82년까지 식당업을 하다 정계에 투신,오늘에 이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걸프전때 끝까지 미국의 무력개입을 반대할 만큼 진보적 성향이다.전쟁영웅,자전적 사업가,무명에서 일약 주지사당선등 너무나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으나 정책대안이 없다는게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 미 대통령선거 막오르다(92백악관 레이스 전망:1)

    ◎“민주후보 누가 될까” 최대 관심/송가스·클린턴등 주자 5명 경쟁치열/“스캔들 상관없다” 여론 61%… 새 변수로 작용/공화선 부시 확실… 경제난 해소가 관건 미국의 대통령선거전이 10일의 아이오와주 당원대회를 기점으로 막이 올랐다. 선거운동 시한이 없는 미국의 선거제도에서는 선거운동이 4년내내 계속된다고 볼수 있다. 공화 민주 양당후보 경선자들이 이미 몇달전부터 뉴 햄프셔에 가 실질선거운동을 해왔으므로 선거전은 벌써부터 시작된 셈이다.여론의 향방이 드러나는 뉴 햄프셔 예비선거를 치러봐야 경쟁권에 들 후보와 도중하차할 후보의 윤곽이 드러나고 유권자들도 어떤 후보에 관심을 가지게 될지가 가려지게 되기 때문에 18일 이후라야 본격적인 선거전이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이번 선거전의 초반 관심사는 아무래도 고만고만한 후보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는 민주당의 대통령후보가 누가 되느냐에 있다.공화당의 경우는 부시 현대통령의 본선진출이 확실시되기 때문에 관심은 자연히 민주당 쪽에 쏠리게 마련이다. 민주당 후보 5명중에서는 아칸소 주지사인 빌 클린턴후보가 아직은 선두를 달리고 있으나 섹스 스캔들에 휘말려 있는데다 최근에는 그가 월남전때 의도적으로 병역을 기피하지 않았느냐는 혐의까지 겹쳐 초반 선두가 계속 지켜질지 의문이다.이번 뉴 햄프셔 예비선거는 클린턴의 스캔들을 유권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느냐의 시금석이 될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시된다. 지금까지 미국의 대통령선거전에서는 후보의 도덕성이 대단히 중요시돼왔으나 그 결과 많은 정치인들이 희생되는 사례가 늘자 최근에는 『우리는 대통령을 뽑는 것이지 교황을 뽑는게 아니다』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아 이번 선거의 또 다른 관심사가 될것 같다.그 예로 클린턴후보의 섹스 스캔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한 여론조사에서 유권자의 62%가 스캔들에 상관치 않겠다는 반응을 보여주었다.이런 결과는 4년전만 해도 생각할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민주당후보들의 장·단점은 아직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으며 후보들의 지지도도 지역적으로나 시기적으로 차이가 있어 누가 클린턴의 가장 강력한 상대인지조차 분명치 않다. 오늘 7월 뉴욕시에서 열릴 민주당전국대회에서 민주당후보가 결정되고 나면 부시의 재집권 여부가 초미의 관심을 모을 것이다.다시 말하면 민주당이 과연 공화당시대에 종지부를 찍게 할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불과 반년전만 해도 부시의 재집권에 의문을 가진 사람은 미국내외에 없었다. 부시는 걸프전의 영웅이었고 냉전의 최후승리자였던 것이다.걸프전 직후 90%를 오르내리던 그의 인기도는 최근 30%대로 곤두박질했다. 부시의 재집권,공화당시대의 계속에 쐐기를 박고 있는 것은 물론 경제문제이다.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의 93%가 경제문제가 이번 선거전의 최대 이슈가 될것이라고 응답하고 있다.이번 여름을 고비로 호전될 것이라는 부시행정부의 거듭된 약속에도 불구하고 유권자의 71%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란 비관적 견해를 갖고 있다. 실업률이 7%를 넘어서고 미국의 상징적 대기업들이 곳곳에서 도산되고 있는 상황속에서 미국인들은 지금 『우리는 과연 슈퍼 스테이트(초강국)인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공화당의 보수우파인 패트릭 부캐넌이 「아메리카 베스트」(미국제일주의)를 외치며 한때나마 각광을 받고 있고 나치주의자인 데이비드 듀크같은 인물이 대통령후보로 나서는 형국이 모두 미국의 경제와 유관하다. 이번 선거는 1789년 제1차 대통령선거가 실시된 이래 61번째다.지난 2백여년동안 미국은 매4년마다 단 한번도 거르지 않고 대통령선거를 실시해 왔다.이러한 기록은 세계 역사상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빛나는 전통이다. 미국민들은 92년 그들의 「빛나는 전통」을 통해 일찍이 가져보지 못했던 「미국의 위대성」에 대한 의문마저 걸러보는 생소한 경험도 함께 하게 될 것같다.
  • 최대수산기지 신포/85년이후 어획량감소(새로쓰는 북녘지리지:20)

    ◎함경남도:하/함흥주변에 비날론·비료등 화학공장 밀집/장진·부전엔 임업기지… 함주는 벽돌 주산지 ○흥남비료 시설확장 함경남도에는 북한 최대의 화학비료공장인 흥남비료연합기업소를 비롯,함흥시 사포구역에 있는 2·8비날론연합기업소 성천강화학연합기업소 동흥산화학연합기업소 등 대규모 무기·유기화학 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와 버금가는 2·8비날론연합기업소는 대규모 화학섬유 기지로 이름나 있으며 직물만도 연간 3억m가량을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연합기업소의 주요 생산품은 비날론섬유 합성수지 염화비닐 가성소다 농약 각종 염료 기초의약품등. 함흥시 흥남구역에 위치한 흥남비료연합기업소는 지난해 12월1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설비의 대형화·현대화 공사를 끝낸 것으로 전해졌는데 이곳에서는 유안과 요소를 비롯한 각종 화학비료가 생산되고 있다. 이밖에 도내 북부 지역의 광산·탄광등지서 사용되는 각종 채굴장비와 설비를 생산하는 설비조립연합기업소와 마그네사이트 연 아연 구리 금 유화철 등을 생산하는 검덕광업연합기업소등 대규모 광산들이 있으며 여러 종류의 건축자재도 생산된다. 함주의 벽돌,정평의 내화물,고원의 시멘트,락원의 수지건재,리원의 석재등도 주산품으로 꼽힌다. 도내에는 또한 장진·부전 임산사업소를 비롯한 임업기지들이 있어 각종 목재는 물론 부산물을 이용한 가구류와 알코올 등이 생산된다. ○어선·어구공장 건설 4백55㎞에 달하는 긴 해안선을 끼고 있는 도시에 걸맞게 신포시는 북한 최대의 수산기지로 성장했으며 양화·홍원 수산사업소와 수산물의 냉동과 가공시설등의 규모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1946년에 창설된 신포수산연합기업소에는 각종 어선을 만드는 공장과 어구공장 통조립공장들이 건설되어 1백여종의 물고기를 잡아 처리하고 있다.어획량의50%이상이 명태이며 원양어업에도 한몫을 하고 있다.「수산물은 제2의 식량」이라며 물고기잡이에 전력해 왔으나 1985년이후 어획고는 오히려 줄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통일원 평가치에 따르면 1985년 2백42만t,1989년 2백19만t). ○「함흥차사」 발상지 도내에는 부전고원과 마전 속후 학사대 송단 동흥산 광포 구경대 등의 경승지가 있다. 유적·유물로는 함흥시에 있는 「함흥차사」의 고사가 담긴 함흥본궁(본궁)구천각 선화당 경흥전 만세교 함흥성 등이 있으며 고원의 양천사,영광의 룡흥사,리원의 복흥사7층탑등도 유명. 이밖에도 진흥왕순수비 창의사비 함관령비등 역사적인 비석과 백운산성 애수진성 가평옛성 북청읍성 청해토성등의 성터가 남아 있다. ◎함경남도 행정구역표 ▲단천시=단천읍 문호리 신호리 직절노동지구 영산리 두언노동자구 복평리 오몽리 용연리 장내리 악상리 연태리 달전리 양평리 송파리 가원리 신동리 쌍용리 정동리 석우리 삼거리 광천노동자구 검덕노동자구 돌산리 답동리 가응리 화장리 두연리 덕주리 문암리 동암노동자구 와동리 운천리 용음리 영평리 용덕리 환산리 이파리 신평리 신풍리 포거노동자구 용양노동자구 용대노동자구 송정리 이풍리 봉화리 대흥노동자구 무학리 ▲신포시=해안1·2동 어항동 포항동 해산동 광복동 신흥동 육태1·2동 동호동 영무동 마양동 신호리 부창리 양화리 신풍리 호남리 보주리 용중리 광천리 서흥리 중흥리 남흥리 강상리 금호리 오매리 호만포리 ▲함흥시( 동 운흥1·2동 지장동 반용동 해방동 서운1·2동 용마동 서흥리 송흥리 부민리 서상동 풍호동 유정동 구흥동 여위동 신상동 덕성동 ○성천강구역=서문동 동문동 중앙동 금사동 성천동 통남1·2동 삼일동 남문1·2동 광화동 상신흥동 신흥1·2동 하신흥동 용흥1·2동 연지동 ○회상구역=이화동 치마 1∼3동 회상1∼4동 회양동 평수동 경흥동 김사리 영봉리 덕산동 풍흥리 풍경리 쌍봉리 동흥리 수동리 중호리 대흥리 광덕리 성원리 하덕리 송흥리 금실리 ○사포구역=사포1∼3동 당보1·2동 궁서동 상수동 수변동 영호동 보전동 초운리 연흥리 용흥동 흥덕1∼4동 용신동 창흥리 본궁1∼3동 흥북동 흥서동 용연동 새거리1∼3동 영광동 ○용성구역=송흥동 운중1·2동 운성1·2동 구용1·2동 수도리 풍동리 덕풍리 용성1·2동 용암동 해안동 ○흥남구역=호남동 천기동 응봉1·2동 하덕동 내호동 서호1·2동 후농동 작도동 유정1∼3동 풍흥동 마전동 능동 송상동 덕동( 개 리·동 미상) ▲고원군=고원읍 남흥리 부래산노동자구 중평리 하평리 황송리 송천리 다천리 낙천리 상산리 덕지리 미둔리 신창리 군내리 문하리 수동노동자구 수산리 성남리 산곡노동자구 죽전리 운흥리 천을리 운곡노동자구 용평리 운산리 관평리 천성리 장망리 성내리노동자구 축전리 원거노동자구 삼평리 회평리 풍남리 전탄리 원봉리 송흥리 ▲김야군=김야읍 문하리 영풍리 용원리 사현리 상중리 중남리 평화리 갈전노동자구 솔밭리 긴재리 새동리 풍남리 덕산리 흥평리 봉흥리 구용리 해중리 성재리 진흥리 양탄리 봉산리 신성리 수원리 정동리 비단리 인흥노동자구 김풍리 청동리 풍동리 백산리 동흥리 지인리 작동리 온정리 송재리 범포리 삼봉리 대응리 왕장리 중동리 연동리 안동리 가진노동자구 청백리 신당리 진수리 용산리 광덕리 독구미리 원평리 호도리 ▲덕성군=덕성읍 수서리 주의동리 락원리 상(상)1·2리 송중리 삼기리 인동리 중동리 직동리 창성1·2동 보성리 동중리 장흥리 양승리신태리 상돌리 중돌리 엄동리 엄서리 덕우대리 입자동리 월근대리 신흥리 ▲낙원군=낙원읍 삼호노동자구 사동리 장흥리 흥서리 여호리 서중리 흥상리 상송리 신풍리 송해리 세포리 ▲이원군=이원읍 장축리 청산리 풍암리 대덕리 성곡리 곡구리 학사대리 구읍리 용북리 하전리 송동리 문앙리 원서리 곡창리 송정리 염성리 다보리 중평리 나흥노동자구 차호노동자구 유성리 기암리 ▲부전군=부전읍 백암리 문천리 이팔리 문암리 차일리 호반노동자구 광대리 서늪리 한대리 산수리 개화리 여운리 능구리 안기리 은하리 동늪리 ▲북청군=북청읍 서리 죽산리 중평리 장항리 청흥리 당우리 문동리 부동리 종산리 오평리 나흥리 용전리 신상리 안곡리 양가리 신북청노동자구 지만리 나하태리 봉의리 초리 중리 마산리 상세동리 양천동리 신창노동자구 건자리 반송리 상립석리 평리 하세동리 만춘리 보천리 양천서리 하호리 덕음리 예승리 동도리 경안태리 청해리 토성리 문화리 ▲신흥군=신흥읍 신흥노동자구 이전리 흥복리 원동리 중평리 서남리 우상리 창서리 대동리길봉리 동흥리 부연리 경흥리 발전노동자구 영고리 기린리 상원천리 서곡리 동곡리 반석리 하원천리 추상리 흥경리 부흥노동자구 영웅리 ▲영광군=영광읍 상중리 동양리 장흥리 후주리 흥봉리 기상리 동중리 삼흥리 신덕리 풍호리 인다리 봉흥리 용동리 쌍송리 신상리 상통리 신창리 수전노동자구 화장리 중상리 자동리 관수리 전동리 천불산리 풍상리 ▲요덕군=요덕읍 동산리 운흥리 평원리 천흥리 송도리 미삼리 입석리 대숙리 흥상리 인흥리 평전리 용평리 용남리 문암리 향봉리 용천리 인화리 성리 용상리 성천리 완산리 량수리 용암리 구읍리 관평리 ▲장진군=장진읍 추전리 신대리 황초노동자구 양지노동자구 신흥리 풍류리 청량리 양묘리 임산리 서목리 용호리 갈전리 속사리 도내리 백암리 늡수리 메물리 만풍노동자구 ▲정평군=정평읍 구창리 고양리 태양리 독산리 다호리 봉태리 호남리 구읍리 장흥리 신천리 율성리 장천리 장동리 문창리 부평리 서경리 호중리 남창리 창신리 선덕리 동호리 삼도리 향동리 신상노동자구 용흥리 중평리 관평리 사수리 초원리 풍양리 기산리 문흥리 내동리 신평리 하남리 동하리 광흥리 신풍리 신성리 조양리 화동리 복흥리 동천리 문봉리 ▲함주군=함주읍 상중리 흥보리 조양리 천원리 신성리 흥서리 용안리 고양리 지석리 동암 주서리 풍성리 원동리 구상리 신하리 동원리 신상리 수흥리 운동리 항수리 신덕리 신경리 포항리 송정리 포구리 운봉리 재안리 추상리 노동리 풍송리 흥봉리 상창리 수동리 부흥리 연지리 연포리 동봉리 ▲허천군=허천읍 중평리 용원노동자구 은흥리 만덕노동자구 하농리 수의리 황곡리 운승리 상농노동자구 김창리 통흥리 장평리 와포리 신흥노동자구 홍군리 슬암리 상남리 황명리 신평리 양음평리 사탑리 화장리 상산노동자구 ▲홍원군=홍원읍 방동리 운하리 동중리 남산리 고읍리 호남리 용운리 관흥리 용덕리 산양리 장풍리 남풍리 부상리 보현리 구용리 원덕리 동상리 방평리 광명리 학송리 경포리 신성리 경흥리 운상리 운포노동자구 용삼리 용신리 용포리 중은리 삼성리 중서리 봉화리
  • 권력승계 정지 한창/「김정일의 사람」은 누구

    ◎당·정·군의 핵심인물을 살펴보면/우리에 낯익은 얼굴… 남북교류 담당/연형묵/10년간 군참모장 역임… 김 왼팔 자처/오극렬/고위회담의 경제대표 정일과 동갑/김정우/영역없는 대남정책 분야의 2인자/전금철/대서방·유엔 관련업무 진두서 지휘/강석주/합영법 제정등 개혁주도… 한때 밀려/강성산 북한은 구랍 24일 당6기 제19차 전원회의에서 김정일을 군최고사령관에 추대한데 이어 김정일의 측근을 영전시키는 인사를 단행,김정일 권력승계를 위한 정지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이와 때를 같이해 김정일은 평양시 당책임비서실겸 인민위원장에 김일성의 외종제인 강현수를,양강도 당책겸 인민위원장에 자신과 만경대혁명 유자녀학원 동창생인 이길송을 임명하는 등 4개 시·도의 당책겸 인민위원장을 자신의 인물들로 교체했다. 남북간 「합의서」와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의 채택으로 남북한관계가 급진전되고 있는 가운데 이루어진 최근의 북한권력층의 자리이동을 계기로 향후 북한을 이끌어 나갈 각 분야 「김정일의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현재 북한에서 「김정일의 사람」으로 꼽히고 있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전문지식을 갖춘 테크너크랫이란 점이다. 북한의 테크너크랫은 정권수립 이후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교육과정을 통해 정책적 차원에서 양성돼 왔는데 통상 「민족 엘리트」로 불린다. 이들은 한결같이 만경대혁명 유자녀학원이나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소련 및 동구 유학이라는 엘리트코스를 밟고 귀국후 군·당정·산업기관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의 숫자는 대략 1백5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현재 북한의 변화를 주도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만경대혁명 유자녀학원은 47년 김일성과 함께 항일 빨치산 활동에 나섰던 혁명 1세대의 자녀들을 특별히 양성하기 위해 설립한 특수학교인데 김정일에 충성을 바치고 있는 측근들의 대부분이 이 학교 출신이란 점은 특히 주목을 끈다. ●군부 북한은 지난 80년 10월 6차 당대회 이후 혁명2세대 등 신진세력들로 세대교체를 했는데 김정일은 당군사위원회에 자신과 만경대학원 동창인 오극렬·김강환(부총참모장)·김일철(해군사령관)·최상욱(포병사령관)·이봉원(군정치국 부국장)을 충원시킴으로써 자신의 군지휘체계를 더욱 공고히 한바 있다. ○빨치산 오중흡의 아들 ▷오극렬(63)◁ 79년부터 88년까지 10년 동안 군총참모장으로 「장기집권」. 김일성과 항일빨치산 동료로 지금도 「충성심」의 대표적인 영웅으로 칭송되는 오중흡(32년 전사)의 아들이다. 만경대혁명학원을 1기로 졸업,김일성대학과 소련 공군대학에 유학한 대표적인 군엘리트. 64년 공군연대사령관(소장),67년 중장진급·최고인민회의(4기) 대의원,70년 당중앙위원,71년 공군사령관을 거쳐 79년 인민군 총참모장과 당정치국 후보위원이 되는 초고속 출세가도를 달린 오는 김정일의 「왼팔」을 자처하며 당시 총정치국장인 이용무,무력부 부부장 장정환 등을 반당·반혁명분자로 몰아 김정일세력을 탄탄히 굳히는데 큰 몫을 했다. 80년 상장진급 직후 6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정치국원,당군사위원으로 선출됐으며 85년 대장으로 진급. 차기 인민무력부장으로 점쳐지기도 했으나 이에 대한오진우의 견제로 88년 군총참모장 자리를 최광에게 내주고 쫓겨났다는 설도 있다. 그러나 30위 밖으로 밀려난 낮은 서열에도 불구,현재까지 그가 군부내 혁명2세대의 선두주자라는 점에서는 이견이 없다. 지난해 5월12일 발표된 허담의 장례위원 명단에 그의 이름이 3년4개월만에 처음으로 공식 거명됨으로써 그가 여전히 권력핵심권 안에 끼어 있음을 시사했다. 북한은 앞으로 오극렬·김두남(노동당 군사부장·대장)과 같은 김정일의 측근 군엘리트를 포진시켜 세습과도기의 불안과 남북관계의 전향적 변화에 따라 이뤄지게될 군축과 관련한 군부내 반김정일 움직임을 미연에 제어,내부정리를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정무원 ○혁명2세대 선두주자 ▷연형묵총리(67)◁ 지난해 12월 제5차 남북 고위급회담에서 역사적인 「합의서」를 이끌어낸 인물로 북한 행정실무를 총지휘하는 권력서열 4위의 대표적인 태크너크랫. 만경대혁명학원 출신으로 50년 6·25직전 소련 우랄공대에 유학,금속기계공학을 전공했으며 55년 귀국후 당중앙위 조직지도부 지도원으로 당정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후 조직지도부 책임지도원,중공업부장 등 경제 및 조직분야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급성장. 74년 김정일의 친위대인 3대혁명 소조를 지도감독하는 「혁명소조 중앙지도부 책임자」역을 맡아 김정일의 믿음직한 보좌역이자 혁명2세대 선두주자의 자리를 굳혔다. 85년 정무원 금속기계공업 위원장을 거쳐 제3차 7개년 경제계획 초기인 88년 12월 총리에 기용된 이래 온건·실용파로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대표의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만경대학원 수석졸업 ▷강성산(66)◁ 연형묵에 앞서 정무원총리(84∼88)를 지낸 강성산역시 만경대혁명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엘리트. 73년 권력의 핵심부인 당정치국 후보위원에 오른뒤 이종옥의 6차내각때 부총리로 기용됐다. 80년 6차 당대회에서 권력 18위의 정치국위원으로 선출됐고 84년 총리로 기용된후 합영법제정 등 만3년간 경제개혁을 주도했으나 개혁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총리직에서 도중하차. 오진우에 이어 권력서열 4위였던 강은 현재 14위로 밀려나 함북도당 책임비서겸 인민위원장에머물고 있긴 하나 노동당 정치국 정위원으로 여전히 김부자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 강은 특히 북한 경제개방의 상징인 두만강지구 개발과 관련,함북도 당위원장으로서 현지 실무책임을 맡게 될 것으로 관측된다. ○동독 유학한 학자출신 ▷김환(63)◁ 항일 빨치산활동시 일경에 포로가 된 김일성을 구하고 대신 죽은 것으로 전해져 북한에서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김혁의 아들. 만경대혁명학원을 졸업하고 61년 동독 카를마르크스공대에 유학,귀국후 중공업부 산하 화학공업연구소 부연구원으로 출발한 학자출신이다. 83년이후 부총리직을 맡고 있으며 87년 화학 및 경공업위원장 시절 김정일에 일종의 토지임대제도인 「가족책임제」를 건의했다가 직위박탈과 함께 권력서열 30위권 밖으로 떨어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에게 합작제의를 해오는 등 내부의 경제변화를 모색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김환처럼 경제를 아는 개혁지향적 테크너크랫의 재기용은 불가피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문선명교주초청 주역 ▷김달현(52)◁ 정무원 부총리이자 대외경제위원회 위원장과 무역부장을 겸임하고 있는 김달현은 88년 2월 국가계획위원장,89년 북한경제 대표단장 자격으로 소련과 스위스를 순방하는 등 명실공히 경제담당 부총리로서의 진면목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해 통일교의 문선명교주를 자신의 명의로 초청,윤기복 조평통 부위원장에 이어 연쇄회담을 갖고 문·김일성 면담때도 배석해 경원을 언급,그가 현재 북한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을 과시한 바 있다. ○고위급회담 4회 참가 ▷김정우(50)◁ 김정우 대외경제협력 부부장은 90년 9월,1차 고위급회담때부터 4차 남북고위급회담때까지 북한의 경제문제 전담대표로 참석한 경제통. 특히 지난 제4차 평양고위급회담때 남측 기자들과 스스럼없이 만나 남북경제교류 협력에 대한 전망을 피력함으로써 관심을 모았는데 경제교류가 활성화될 경우 큰 활동이 기대되는 인물이다. 김일성대 경제학부 출신으로 김정일과 동갑. ●대남분야 ○이론과 실무 모두 능통 ▷전금철(57)◁ 윤기복 조평통 부위원장과함께 17명의 부위원장 가운데 가장 실무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통일문제연구소장과 사회과학원 부위원장을 겸하고 있으며 72년 남북조절위 대변인으로 떠오른 이래 85·88년 국회회담 예비접촉 북측대표단장,90년 7월 범민족대회 예비회담 북측 대표단장으로 나선 이론과 실무를 겸한 대남통. 전은 북한이 내세우고 있는 대남접촉인사 가운데 윤기복에 이은 2인자이지만 「당국」 「국회」 「민간」 등 남북대화 성격에 관계없이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대남정책에서의 위상은 뚜렷하다. 지난해 3월 베를린 범민족 3자회담 참가와 관련,조용술목사 등 참가자 3명에 대한 공판에서 증인으로 채택되자 수락의사를 밝혀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외교분야 ○북한대표로 유엔연설 ▷강석주(53)◁ 지난해 9월17일 46차 유엔총회에서 북한대표로 유엔가입 연설을 한 강석주 외교부 제1부부장은 김영남 외교부장과 함께 북한의 외교정책 결정과 집행에 깊숙히 관여,내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인물. 6차 당대회 직전인 80년 7월 당중앙위 국제부 과장으로 선임됐으며 84년 정무원 외교부가 외교정책을 주도하기 시작한 시점에 부부장으로 승진·전보했다. 북한이 서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87년 4월부터 북한 외교부의 제1부부장으로 대서방,유엔관련 업무를 진두지휘해오고 있다. 유엔총회에서의 연설외에도 대미관계 개선과 관련,미아시아협회 대표단과 회담(91년 5월),로버트 스미스 미 상원의원과 「미군유해송환공동위」 구성에 합의(91년 6월)하는 등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방중때 김일성을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9월 유엔총회에서의 연설을 통해 북한관리로는 처음으로 『김일성주석이 남북정상회담을 희망하고 있다』고 발언,북한 내부에서 특별한 비중을 갖은 인물임을 시사한 바 있다. 급변하는 정세가운데 대서방관계 개선에 힘쓰고 있는 북한에서 향후 강석주의 활약은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 외언내언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저무는 20세기의 관계는 그 어떤 것이었을까.지구촌 변혁의 주역이었던 고르비는 적어도 역사 무대의 전면에서는 스러져 간다.◆역사가 그에게 안긴 소임이 그것이었던가.그는 자기에게 맡겨진 몫만을 책임완수 하고 물러나야 하게 되어 있었던 것인가.6년 남짓한 집권기간에 그는 세계사의 진로를 바꿔 놓았다.서기장에서 대통령으로 될 때만해도 그는 무소불위의 능력을 지닌 사람같이 비쳤다.그러나 70여년 공산당사가 금방 청산되는 건 아니다.쿠데타이후 힘을 회복 못한 채 마침내 퇴장한다.◆퇴장한다해서 그는 패배자가 아니다.그는 새 세계를 연 승리자이다.동양에는 공성신퇴라는 말이 있다.「사기」의 범수(범수)채택열전에 나온다.공을 이룬 사람은 물러나야 한다는 뜻으로 원문은 「성공자거」로 되어 있다.그는 대결의 논리를 종식시켰다.그는 공산주의에 조종을 울렸다.누가 뭐래도 지구촌의 평화에 공을 쌓은 사람.그 공을 이루었으니 물러나야 한다는 것인가.어쨌건 물러남이란 쓸쓸한 법이다.◆진심으로 나라와 겨레를 사랑하는 고르비.자신의 생각을 대세앞에 용해시킬 줄 아는 민주주의자이다.자신의 명분을 끝까지 합리화시키기 위해 발버둥치지 않은 현인이기도.『하루를 주신 신이니 하루의 양식도 주실테지』.러시아의 속담이다.그 속담의 나라 사람들에게 신은 무심했다.고르비의 퇴진이 이 양식(빵)과도 무관하지 않기 때문.그는 70여년 적폐의 멍에를 쓰고 물러난다고 할 수도 있겠다.◆「장사속」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에게 손짓한다.이러저렇게 대우할 테니 와달라고.그에대한 대답­『나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고 살아왔으며 앞으로 살아갈 것이다』.고르비는 그 퇴장도 위대하다.
  • 건전한 주간지를 생각하며(사설)

    한 저질 간행물이 우리사회를 강정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잡지언론이 그토록 무책임하게 타락된 상태로 제작되고 있다는 사실에 많은 시민은 아연했다. 이 사건이 우리에게 준 절망감은 이 사건이 어쩌다가 일어난 우연의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경쟁적으로 저질·음란화해가는 간행물들이 있고 그것이 극에 달해 마침내 파렴치한 「허위조작극」까지도 서슴지않고 저지르는 결과에까지 이른 것이다. 「책」이란 지적 양식의 대명사이고 독서는 미덕의 표상이다.그때문에 그안에 독이 담겼어도 겉보기에는 약으로 꾸밀 수가 있다.약봉지에 독을 넣어 공급하는 행위 그것이 음란 저질출판물의 악덕행위다. 검찰도 나서서 이 「악덕」을 단속하기로 했다고 한다.저질 여성 월간지나 주간지 대중오락지가 대상이고 출처를 알 수 없는 무등록 지하출판물 행정당국의 경고에도 시정되지않는 간행물을 중점 단속대상으로 하고있다. 서울신문은 20여년동안 발행해온 주간지 「선데이 서울」의 발행을 중지했다.이른바 「주간지시대」의 선두를 이끌어온 서울신문의자매지다.대중오락의 성격을 지닌 주간지가 자칫하면 몰입되기 쉬운 선정적 「황색저널」의 함정을 근원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결단으로 91년과 함께 고별을 하게 된 것이다. 대중매체로서 폭발적인 인기도 누렸고 축적된 역사와 함께 많은 독자도 확보하고 있는 잡지를 스스로 발행중지하는 일은 어려운 선택이다.무엇보다도 수많은 독자들과의 약속에 위배되고 재정적손실도 막대하다.그러나 언론의 품위와 금도를 위해 용단을 내린 것이다.서울신문의 이 결정에 많은 독자들도 긍정적 동의를 해주리라고 확신한다. 서울신문은 다시 주간 「피플」을 펴낸다.우리 시대는 사람은 지천으로 많지만 사람의 따뜻한 체온에는 점점 굶주려간다.문을 마주한 이웃에도 무심하고 이웃을 위해 공헌하는 일에도 무관심하다.영웅을 흠모하는 일에도 무신경하고 사람들의 불행에도 무감각하다. 그러나 모든 것은 「사람」에 달려있다.모든 발전은 사람이 주도하고 모든 정보도 사람에게서 비롯된다.사람이 없으면 절망해야 하고 희망은 사람에게서 창출된다.따뜻한 체온을 지닌사람끼리의 교류만이 신뢰를 낳고 세상을 구원한다. 「피플」지는 사람을 다루는 잡지다.사람을 중심으로 뉴스도 알아내고 사람을 통해 화제도 찾아내고 사람들을 통해 미래와 희망·가치들을 가꿔나갈 단서와 기미를 찾아낼 것이다. 질 낮고 타락한 활자매체가 끼치는 해악은 건강하고 건전하게 발행되는 매체를 좀먹는데도 그 심각함이 있다.사람들의 감각을 자극적이고 강도높은 음란성 정서로 중독시켜 건강한 매체를 향유할 능력과 호기심을 퇴행시키고 전체적인 독서의욕마저 황폐화시켜 마침내는 서로가 다 피해를 입는 지경에 이른다. 새로 태어나는 「피플」은 신선하고 건전한 내용과 정보를 찾아내어 불감지경에 이른 대중매체독자의 감수성을 자극하여 신선한 충격을 주고 따뜻한 인정을 회복하는 기능을 할 수 있기를 기원하며 출발한다.
  • 고르비의 부와 침/역사의 아이러니

    ◎「개혁」 외쳐 권좌 오르고 「개혁」 못해 밀릴판/전제통치 했더라면 연방해체 막았을것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16일 『나는 여전히 대통령』이라며 사임설을 일축했다.그러나 모스크바에는 『빠르면 이번주중에 그가 물러나게 될것』이라는 설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처럼 그가 물락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르바초프의 집권 7년동안 두가지 커다란 역설적인 사실을 꼽을 수 있다.그 하나는 그 자신이 추진한 「글라스노스트」(개방),「페레스트로이카」(개혁),「데모크라티자치야」(민주화)등 개혁조치에 의해 권력에서 물러나게 됐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그가 개혁을 거부하고 과거와 같이 전체주의 통치를 했더라면 소연방의 해체를 막고 자신도 권력을 계속 장악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고르바초프의 몰락은 그의 최대 업적일지 모른다.글라스노스트는 반정부인사를 허용했고 자유언론을 대두시켰다.한때 고르바초프는 소련지식인과 작가·예술가들의 영웅이었다.그러나 찬양의 합창소리는 너무 커진 나머지 지휘자를쫓아내 버리고 말았다. 지난 85년 고로바초프가 공산당 지도자가 되었을때 처음으로 그에 대한 비판이 신문과 라디오 TV에서 거론됐다.86년 당시만 해도 그에 대한 비판은 교묘한 암시에 불과했으나 금년에는 그의 서기장 재임기간중 공산당에 의한 김의 해외유출에 대해 노골적인 비난이 가해지기에 이르렀다. 페레스트로이카는 자유기업을 장려했고 그 결과 소련국민들은 손쉽게 수입상품을 접할 수 있게 됐다.그러나 불가피하게 국민들의 경제적 기대치가 개혁의 속도를 앞지르게 됐고 광범위한 불만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데모크라티자치야로 모든 선거는 공정하고 복수후보가 경쟁할 수 있게 됐는데 그결과 고르바초프의 정책과 권위에 도전하는 대중 정치인들이 무더기로 출현했다. 이들중에는 러시아공화국의 보리스 옐친과 같은 전 공산당원과 그루지야공화국의 즈비아드 감사후르디야나 체첸 잉그슈자치공화국의 조하르 두다예프장군과 같은 민족주의 지도자등이 포함됐다. 공산당의 권력독점을 종식시키고 KGB(국가보안위원회)활동에 제재를 가하고 정치범을 석방시킴으로써 고르바초프는 개방사회를 향해 거보를 내디뎠다.그러나 공포의 대상이 됐던 국가기관들에 대해 「휴업조치」를 내린 것은 동시에 자신의 권력에도 상처를 입혔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소련제국의 붕괴요인으로 작용했다.소수민족들은 글라스노스트를 틈타 수십년간 계속된 무자비한 러시아화 정책으로 부터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를 되살리려는 움직임을 보였다.여기에다 민족주의 대두까지 겹쳐 인종분쟁의 긴장이 야기됐고 경제적 불만과 선동주의적 지도자들에 의해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그 결과는 독립운동과 영토분쟁,분리주의,폭력이 뒤엉키는 혼란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고르바초프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국가정책에 자신의 의지를 부여하고 권력을 유지하는데 있어 무력사용을 거부한 것일지 모른다.
  • 노태우대통령 만찬사

    각하의 방한은 유구한 역사를 통해 가까운 이웃으로 깊은 인연을 맺어온 한국과 몽골 국민간 끊어졌던 우의의 회복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지난날 우리 두나라 관계를 갈라온 것은 전후 이 세계의 냉전체제였습니다. 이제 한국과 몽골은 우호협력의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 두 나라가 냉전의 벽을 뛰어 넘어 화해로운 하나의 세계를 향한 인류의 전진을 선도하고 있으며 아시아 대륙에도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두 나라 민주은 가깝습니다.인종과 언어,문화와 풍속 속에 많은 공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역사속에서도 우리 두 나라 국민은 많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우리 국민은 몽골 국민에 대해 남다른 친근감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유라시아 대륙에 걸쳐 대제국을 건설한 몽골의 역사,칭기즈칸 쿠빌라이칸과 같은 몽골의 영웅,웅장한 대평원과 몽골 국민의 진취적인 기상을 잘 알고 있습니다. 몽골 사람들이 일찍이 고려를 아름다운 무지개의 나라 「솔롱고스」라고 부른 것으로부터 그들도 한국민에 대해 호의를 가져왔음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는 각하께서 취임한 이후 지난 1년여동안 몽골에서 일어난 많은 발전적인 변화도 잘 알고 있습니다. 각하의 영도아래 몽골은 헌법을 개혁하고 복수정당제와 자유선거를 통해 민주주의를 힘차게 진전시키고 있습니다. 한국은 각하와 몽골 국민의 개혁 노력을 지지,성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급속한 발전의 경험과 기술을 몽골과 적극적으로 나눌 것입니다. 작년 3월 수교이래 우리 두 나라 관계는 정치·경제·문화·관광등 각 분야에서 급속히 진전되고 있습니다. 우리 두 나라는 교역과 협력을 확대하고 국민간의 우호와 이해를 증진하여 서로에게 소중한 우방이 될 것입니다.
  • 군사독재 종식투쟁의 선봉/노벨평화상 받은 아웅산 수키여사

    ◎독립영웅 아웅산장군의 딸/군사정권에 의해 2년째 가택연금 올해의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결정된 아웅산 수키여사(46)는 지난 62년부터 30년간 지속되고있는 미얀마(구버마)의 군부독재에 맞서 지난 88년부터 대정부투쟁을 주도해온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화신. 수키여사의 이번 노벨평화상 수상은 그녀의 개인적인 영광 차원을 넘어 민정이양을 거부하고 물리적으로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현군사정부의 정당성문제등 미얀마정국의 장래에 끼칠 파장에 더 큰 의미가 있을 것같다. 현재 2년이 넘도록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는 수키여사의 수상으로 야당과 국민의 민주화 투쟁의지가 크게 고무되는데 반해 미얀마의 군사정부는 더 거센 국제적 압력에 직면하게 될것이기 때문이다. 미얀마독립운동의 영웅 아웅산의 딸인 수키여사는 영국인 역사학자와 결혼,2명의 자녀를 두고 옥스퍼드에 거주하던 평범한 가정주부였으나 88년4월 병든 어머니를 간병하기 위해 귀국했다가 민주화투쟁에 뛰어들게 됐다. 그해 국민들의 반독재시위가 군부에 의해 잔혹하게 탄압받는 것을 목격하고는 대중앞에 서게됐고 부친의 후광에 힘입어 곧바로 반정부투쟁 지도자로 부상했다. 그러던중 그해 9월 군부가 권력을 장악하고 국가법질서위원회(군사평의회)를 설치함으로써 민주화운동은 대량학살의 비극으로 끝나 수키여사는 심한 좌절을 맛보기도 했으나 지속적인 투쟁으로 군부로부터 다당제선거실시라는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수키여사는 다음해인 89년7월 선거를 의식한 군사정권에 의해 내란선동혐의로 가택연금조치를 당했으나 그녀가 창설한 전국민주연맹(NLD)은 90년 5월의 총선에서 총의석의 80%를 차지하는 압승을 거두었다. 그러나 군사정부가 당초의 약속을 번복,NLD에의 권력이양을 거부하고 구금법을 개악,그녀에 대한 연금기간을 3년이나 연장함으로써 수키여사는 시련을 겪고 있다. 한편 집권 국가법질서위원회측은 원한다면 언제든 출국을 허용하겠다고 수차례 제의했으나 수키여사는 군사정부가 정치범을 전원 석방하고 NLD에 권력을 이양하지 않는한 절대 미얀마를 떠날 수 없다고 거부해 왔다. 수키여사의 수상 발표 직후NLD를 비롯,전버마학생민주전선(ABSDF)등 민주세력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으며 이를 계기로 미얀마인들에게 군사정부에 대한 투쟁을 강화토록 촉구했으나 미얀마 군사정부측은 이를 「내정간섭」으로 몰아붙이고 있으며 그녀의 석방은 커녕 군부탄압을 더욱 강화시킬 것으로 밝히고 있어 앞으로 정정이 더욱 혼미스러울 것으로 예측된다. 수키여사는 평화적 민중혁명지도자라는 점에서는 필리핀의 코라손 아키노여사와 부친의 후광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는 파키스탄의 베나지르 부토여사와 비유되고 있다. 수키여사는 부친이 암살당하기 1년전인 46년 수도 양곤에서 출생했으며 주인도대사인 어머니를 따라가 뉴델리에서 학교를 다녔다. 15세때 영국으로 건너가 옥스퍼드대에서 유학했으며 이때 영국인 티베트학교수와 결혼,18살과 14살인 두아들을 두고 있다.
  • 외언내언

    89년 첫 방미길의 한낮 공항 활주로에서 태연히 소변을 본 사람.방소 부시미대통령 초청 공식만찬에서 반쯤잘린 불구의 왼손인지 손가락에 묻은 버터를 혀로 핥은 사람.천상천하에 거칠것이 없는 낙천주의자.소쿠데타 저지로 영웅이 되기도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 보리스 옐친.최근의 미시사주간지 타임이 그를 소개한 글의 서두다.◆삼엄한 계엄령과 자신에 대한 체포령도 아랑곳없이 탱크위로 기어오르는 그의 용기와 그런 성품이 소련을 구했는지 모른다.러시아 민족주의자요 대중 선동가이기도한 그런 그를 러시아인들은 무척 좋아한단다.그것이 그의 최대무기라고 타임지는 지적하고 있다.그러나 그의 그런무기도 러시아밖에선 통하지 않는 모양.◆쿠데타 저지후 열린 최고회의에서 자신의 비상조치안을 시간없어 못읽었다는 고르바초프에게 삿대질하며 모욕하는 모습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실망했다.러시아최초의 민선대통령이자 민주주의를 지키기위해 생명을 건 정도이상의 인물은 아니지 않는가.그렇게 역사에 기록될 것이라고 타임지는 쓰고있다.◆최근의 타임과 CNN­TV공동 여론조사결과에 따르면 미국인 가운데 고르바초프의 계속 집권을 바라는 사람은 53%,옐친을 지지한 사람은 22%.그런 여론을 반영이라도 하듯 옐친을 특별히 못마땅해 하고있는 것은 부시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라고.이기주의적이고 권력욕에 미쳐 있으며 조급하고 오만방자해 지도자 자질이 의심스럽다는 것.◆러시아의 영웅이 세계의 영웅일수는 없는 것인가.미국에 뒤질세라 중국도 옐친을 경계하고 나섰다.보수파 원로 진운은 중국에 옐친같은 인물이 절대 등장하지 못하도록 막아야한다는 것.급진개혁에 대한 두려움의 표시다.옐친을 막자면 고르바초프가 잘해야하듯 중국도 그것이 겁나면 개혁을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막기만하면 많은 옐친을 기르는 결과가 된다는것을 중국의 보수파는 모른단 말인가.
  • 소 공산당 영욕의 74년사

    ◎노동자에 의해 무너진 「노동자천국」/억압과 부패의 철권통치… 인민불만 누적/고르비의 개방정책 이후 급속한 몰락의 길 지난 1917년부터 74년동안 소련 그 자체로 모든 것 위에 군림했던 소련공산당이 모든 것을 잃고 이름마저 없어질 신세로 전락했다. 소련공산당은 공포와 억압 정치로 소련을 이끌어왔다.소련공산당이 소련이란 국가를 창출해 낸 것은 누구나 부인하지 않는 1917년의 역사적 사실이다.마찬가지로 이후 70여년간 계속된 「소련공산당이 곧 소련이다」는 정치체제와 통치방식이 오늘날의 소련 위기와 소련공산당의 궤멸을 초래했다고 역사는 증명한다. 소련공산당은 이 명칭 그대로의 이름(CPSU)을 1952년에야 갖게 됐지만 그 연원은 93년전인 1898년에 발족된 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RSLDP)이다.1903년 제2차 당대회에서 블라디미르 레닌을 지도자로 하는 볼세비키(다수파)가 멘셰비키(소수파)를 누르고 당 주도권을 잡았다. 1905년 1월 20만여명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러시아 차르의 동궁앞에 몰려와 시위를 벌였으나 1천여명이 학살되는 데그쳤다.그러나 1917년 10월26일 레닌이 주도하는 노동자와 병사들이 페테르스부르크궁에 입성하면서 세계사 최초로 노동자농민의 소비에트연방 정권이 탄생했다.혁명의 성공과 함께 볼셰비키조직은 러시아사회민주당을 「전러시아공산당」으로 바꿨는데 이때 레닌은 이를 「이 시대의 지혜,명예,그리고 양심」이라고 불렀다. 1921년부터 28년까지 신경제정책(NEP)을 통해 일부 사기업제도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서 공산당은 산업과 문화,그리고 사고까지 통제·지배하는 중앙집권의 틀을 잡았고 이를 위해 「적색테러」를 일삼았다. 이같은 철권통치는 24년 레닌사망을 전후해서 당내부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막후 권력투쟁 과정에서 심화된 뒤 스탈린의 집권기간동안 최고에 달했다.스탈린은 집권후 당의 권한을 무한정 강화하면서 당의 이름으로 정적 뿐만 아니라 일반 「인민」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에 들어갔다. 2천만명이나 사형·유형·감금 당하는 암흑시대가 전개된 것이다. 53년 스탈린이 사망하자 흐루시초프 당제1서기가 발렌코프 총리와 집단지도체제를 구성했지만 당에 힘의 바탕을 둔 흐루시초프가 4년만에 전권을 장악,소련정치무대에서의 공산당의 위치를 분명히 했다.흐루시초프는 스탈린시대의 공포정치를 다소 완화하려고 했으나 64년 궁정쿠데타를 통해 권좌에서 쫓겨났다. 뒤를 이어 레오니드 브레즈네프 당서기장은 코시긴 총리,포드고르니 최고회의의장과 3두체제를 형성했으나 곧 당의 브레즈네프가 독주,통치권을 휘둘렀다. 소련공산당의 공인 당사는 『소련공산당의 역사는 영웅적 투쟁의 도정이며 노동계급과 사회주의,그리고 공산주의의 승리를 가리키고 있다』고 시작되지만 소련의 실상은 공산당 고위 특권계급에게만 무한한 혜택을 주는 「당주의」의 병폐가 만연했다.이를 위해 공산당은 전국의 어느 기관이나 단체를 불문하고 당세포를 무조건 배치시켜 개개인의 일상과 의식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82년 브레즈네프의 사망으로 KGB의장이었던 유리 안드로포프가 당서기장으로 선출됐고 개혁의지를 드러내긴 했으나 84년에 사망했다.후임자 체르넨코도 별다른 실적없이 병사했는데 85년3월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서기장에 선출된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이듬해 페레스트로이카(개혁)노선을 선언한 다음 개혁이념과 정책을 실천해갔다.소련식 사회주의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절박한 위기의식에 몰린 탓이었다. 강압적 중앙통제의 계획경제와 사유재산의 부정은 생산성의 저하만 가져왔다는 점이 확실해지면서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꾀했고 공산당의 권력독점이 갖고 있는 해악에서 벗어나고자 권력의 분산을 시도하기에 이른 것이다.90년2월 고르바초프는 1당독재의 포기를 선언했다. 그러나 공산당을 주축으로 개혁을 진행시키고자 했고 사회주의 이념을 고수한다고 되풀이 천명하다가 강경 공산주의자의 쿠데타란 역습을 당한 것이다.이 역습으로 고르바초프와 그의 개혁노선은 지금까지의 「공산당」이란 울타리를 뛰어넘도록 강요당했다. 역사는 진정한 소련의 개혁을 위해 탈공산당 및 초공산주의를 지시하고 있다. □소 공산당 약사 ▲1898년=러시아사회민주노동당 발족 ▲1903년=레닌볼셰비키당 창당 ▲1917=10월혁명,레닌 소비에트정부수립 ▲1922년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 수립 ▲1924년=레닌 사망,스탈린 당권장악 ▲1953년=스탈린 사망 ▲1956년=흐루시초프 당제1서기,스탈린격하연설 ▲1964년=흐루시초프 실각,브레즈네프·코시긴·포드고르니집단지도체제 시작 ▲1968년=「브레즈네프독트린」발표 ▲1982년=브레즈네프 사망 ▲1984년=안드로포프 사망 ▲1985년=체르넨코 사망,고르바초프 승계 ▲1986년=고르바초프,개혁 선언 ▲1990년=공산당일당독재 포기 ▲1991년=고르바초프 공산당서기장 사임 및 공산당해체 촉구
  • 걸프전 영웅 미 슈워츠코프대장 퇴임

    ◎각계서 스카우트 손길… 정계 진출여부 관심 【탬파(미플로리다주) 외신 종합 연합 특약】 걸프전의 영웅 노먼 슈워츠코프 미육군대장(56)이 이달말 공식 전역을 앞두고 9일 하오11시(한국시간) 미중부군사령관직에서 퇴임,35년간의 군생활을 화려하게 마감했다. 체니국방장관과 파월합참의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플로리다주 탬파의 맥딜공군기지에서 열린 이날 퇴임식에서 조셉 호어 해병대참모차장에게 지휘봉을 넘긴 슈워츠코프는 미군사상 가장 유명한 상태에서 퇴임하는 장군중의 하나로 기록될 것이다. 파월합참의장은 이날 축사를 통해 『세계는 사막과 하늘과 바다에 그가 새긴 승리와 용기의 이야기들때문에 슈워츠코프장군을 알고 있다』고 격찬했고 눈물을 머금은 슈워츠코프는 이임사에서 『역사를 새로 만든 병사 여러분을 나는 영원히 자랑스럽게 여길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슈워츠코프는 지난 4월 귀국당시 카퍼레이드를 벌이며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상하양원합동회의에서 기립박수를 받았으며 엘리자베스영국여왕으로부터 기사작위를 수여받는 등 영광을 한몸에 안았다.또 내년가을 출판예정으로 4백만달러(약30억원)에 계약을 맺었고 순회강연에 나설 때마다 5만달러 이상의 강연료를 받는 등 돈방석에도 올라앉았다. 걸프전 종전직후에는 체니국방장관 및 파월합참의장과 나란히 공화당 부시대통령의 러닝메이트 후보로 거론되고 민주당의 대통령후보영입설까지 나돌았으며 최근에는 플로리다주 상원의원 공화당후보로 나서달라는 요청을 받고있어 그의 퇴역후 정계진출 여부가 관심의 초점이 되고있다.이같이 각계의 스카우트손길이 쇄도함에 따라 직업선택과 정계진출 여부를 자문할 전담에이전트까지 고용해 놓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가하고 그라나다침공작전을 지휘한 영원한 보병으로 키 1백90㎝ 몸무게 1백4㎏의 거구인 슈워츠코프는 1남2녀를 둔 가장으로서 제2의 인생을 앞두고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는 셈이다.
  • 제목과 내용이 다른 나라­중국/이재근 논설위원(서울칼럼)

    중국 광동성 심수는 우리들에게 처음부터 조금 잘못 알려졌다.우선 「심천」이 아니라 「심수」이다.그러나 중국인들은 이를 「센첸」으로 발음한다. 경제특구로 지정된 심수를 흔히들 중국의 자본주의 실험창구라고 부르지만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다.광동성 저아래 변두리 한촌이었던 심수는 11년전에 중국 자본주의실험창구로서가 아니라 그냥 「자본주의 도시」로 지정,개발됐다.홍콩에서 기차로 20여분이면 훌쩍 넘어갈 수 있는 심수는 이제 홍콩보다 더 자본주의적인 도시가 돼있다. 그렇게 볼때 중국 자본주의 실험창구라면 오히려 그 수도 북경쪽이 더 가깝다. 어쨌거나 짧은 기간 중국대륙을 여행한 끝에 얻은 나름의 결론은 중국이란 참으로 크고 무섭고 이상한 나라라는 것이었다.사회주의 중국이 표방하는 제목과 그 사람들이 연출해내는 내용은 전혀 다르다.제목과 내용이 아주 다른 나라가 바로 중국이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의 거대한 세계사적인 실험을 지켜보고 있다.근1세기전 새로운 세계관으로 등장하여 혁명적변혁을 이룩했던 마르크시즘이 근본적으로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자본주의의 타락과 몰락을 예언하며 자기비판을 강요했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의 독화살이 이제 그 자신에 되돌아가 꽂히게 된 것이다. 『공산주의는 실패했다』는 역사적인 자아비판을 공식문서로 채택하고 소련공산당 중앙위 전체회의는 끝났다.그로써 동유럽공산주의와 사회주의 경제는 「제도적」으로,그리고 「사실적」으로 종막을 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이런 인식에 혼동을 주는 사회주의 국가가 있다.그게 바로 오늘의 중국이다.제목은 사회주의인데 내용은 무척 자본주의적이다.아니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데도 이것을 인정하는 공식문서는 한장도 없다.오히려 자본주의노선을 걷는 「주자파」는 아직도 공개적으로는 이단이 되고 있다. 최근에는 과거 주자파에 대해 모택동이 벌였던 지각변동과도 같았던 대량 말살운동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다시 등장했다.등력군 등 중국공산당내 극좌이론가들은 그 주자파로부터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제2의 문화혁명을 발동해야 할 때가 왔다는 식의 주장을 서슴지 않는다. 사회과학원의 미래학자 하신은 보다 더 보수적이다.하의이론에 따르면 세계의 자본주의 선진열강은 중국이 그 능력과 위상에 걸맞는 국제적 역할을 수행하려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앞으로 3년이내에 중국을 공격할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것이다.그래서 중국은 이 신제국주의세력과의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위」의 공식이론과 「아래」의 움직임이 전혀 딴판인게 중국이다.그들 극좌이론가들과는 달리 이붕을 비롯한 전기운 추가화등 당정고위층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손님들과 악수하고 8차 5개년계획을 직접 브리핑하며 중국에 투자하는 나라는 무조건 친구 나라라며 파안대소한다. 북경의 번화가나 천안문 광장은 밤낮없이 인산인해를 이룬다.왕부정 대가의 수없는 상점들에는 온갖 상품들이 지천으로 흘러넘치며 사람들 또한 물결친다.호텔·식당·백화점·극장들에다 자영상점들도 즐비하고 멋쟁이 아가씨들도 많다.저녁시간 북경 TV를 보노라면 한프로그램 앞뒤에 끼여드는 10여가지의 상품선전 광고에 눈이 부실지경이다.개방 중국 수도의한면이다.물론 상해는 더하다. 그런 점에서 경제특구 심수야말로 오늘날 중국의 이중구조­제목과 내용이 다른­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주는 곳이다.심수는 잠안자는 도시다.새벽1시에도 중심가 화문로일대는 대낮같이 밝다.줄지어 늘어선 「가랍OK」(가라오케),무도장·가무청(댄스홀)·야총회(나이트클럽)의 현란한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어우러져 불야성을 이룬다.뒷골목들도 이에 지지않는다. 주자의 도시 심수에는 시인민정부(시청)청사가 둘이 있다.제1청사는 정치·행정부서이고 제2청사는 경제개발 계획과 각종기획·투자유치와 집행부서가 들어있다.심수경제의 심장부이기도 한 곳이다. 경제발전과 개발의 모든것을 실무차원에서 지휘하는 「심수시 투자촉진중심」의 부처장인 여국추씨와 심수시 경제개발국 부국장인 이청삼씨는 그래서 그런지 외모부터가 퍽이나 「자본주의적」이다.그들은 모두 놀랍게도 명확한 어조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원칙과 효용성을 지지했고 제품가격결정의 자율성과 경쟁성을 강조한다. 우리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삼성이증자형식으로 참여한 화리전자유한공사의 사장 고래지씨도 마찬가지다.그 역시 경제의 시장성과 가격결정의 자율성및 경쟁성을 강조하는 한편으로 사회주의적 중앙통제에서 오는 기업의 비능률을 거리낌없이 비판한다.고씨는 그러면서 『세계가 사회주의 중국의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를 인식하고 이해하려면 오랜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현재의 고충을 말한다. 천안문광장 건너편 정면에 인민영웅기념비가 있고 그 바로 뒤쪽 일직선상에 모택동 기념당이 있다.화국봉이 2억원이나 되는 국비를 투자해 지은 이 건물 중앙의 넓은 홀에는 오성공기로 하반신이 둘러싸인 모택동의 유해가 안치,공개되고 있다.이 기념관을 참배코자 수십만의 중국인이 뙤약볕아래 도열해 있는 것이다.그들은 「주자」를 박해한 모의 과거를 알지도 못하고 알려하지도 않을 것이다.다만 무언가 달라지고 보다 잘살면 그것으로 족하고 그래서 「사회주의 중국」의 아버지인 모의 유해에 경배하고 숙연해지는 것이다.그들의 행태에 주자의 요소는 자리잡고 있는 듯했다.그것이 모순인가 아닌가는 시간이 해결할 것이다. 중국의 오늘과 우리의 위상등 지난 몇년의 흐름은 우리 북방정책의 당위,나아가 그 불가피성을 말해주고 있다.그러나 그것은 오늘의 중국에 대한 정확하고 냉철한 인식과 이해위에서 추진돼야 할 것이다.
  • 주목되는 일본의 변화(사설)

    일본의 변화가 현저해지고 있다.세계 제일의 경제대국에 걸맞는 정치·군사대국화의 포석을 착착 진행시키고 있다.자위대의 걸프해역파견과 유엔평화유지군 참여움직임 등으로 세계 특히 아시아제국의 경계심을 자극하고 있는 일본이 이번에는 국민학교 교과서의 애국심 고취를 강화하고 나섰다는 보도다. 「히노마루」는 일본의 국기이며,「기미가요」는 일본의 국가임을 명확히 표시하고 노일전쟁을 일제의 승리로 이끈 일본연합함대사령관 「도고 헤이하치로」(동향평팔낭)도 일본역사의 위인으로 기록되는 한편 일본국왕을 미화하는 내용도 등장하고 있다.내년 봄부터 일본 국민학교에서 사용할 사회과 교과서의 주목되는 변화내용이다.이들 내용은 전후 일본을 점령한 연합군사령부가 일본제국주의 경향의 방지를 위해 교과서에서 삭제하도록 했던 항목들이다.실로 46년만의 부활이요 변화인 것이다. 한 나라가 국가와 국기를 사용하고 교과서에 명확히 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위대한 영웅으로 생각하는 역사상의 인물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또한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일인지 모른다.국왕을 미화하고 애국심을 고취시키는 일 역시 너무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그러한 변화에 세계및 아시아의 우려와 경계의 눈길이 쏠리는 것은 일제가 세계와 아시아에 대해 강요했던 엄청난 희생의 기억 때문일 것이다. 일본은 다시 일제 때와 같은 일본국가리익지상주의로 나가려 하는 것은 아닌가.세계와 아시아 이웃들의 희생을 다시 강요하고 나서려는 것은 아닌가.당연한 의문이요 불안이다.정치·군사대국화 경향과 뒤이어 그것을 뒷받침할 다음세대 교육의 포석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심각하게 생각하고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일본의 변화인 것이다. 일본의 이러한 변화를 보면서 우리가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지난날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그러한 과오가 되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의 강조가 부족하다는 사실이다.일본의 변화는 어차피 한번 겪어야 할 역사의 한단계요 순서인지도 모른다.그런 의미에서 수긍할 만한 측면이 없는 것도 아니다.그러면서도 불만스럽고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나치즘의 과오에 대한 철저한 자기비판의 기초 위에서 유럽이웃들과의 새로운 출발을 다져가고 있는 독일의 경우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변화의 모습을 일본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은 일제에 대한 청산이 제대로 안된 상태에서 일제를 주도했던 지도자들의 손에 의해 경제대국으로 발전했다. 이런 분위기와 일제의 과오와 식민지지배의 죄악성도 제대로 교육되지 않은 상태에서 애국심만 강조되고 일제의 상징적 인물이 일본민족주의 영웅으로 소개된다면 그 결과가 어떤 것일지 궁금하고 두려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일본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다음 세대는 이웃과의 평화공존과 공영을 애국심보다 더 중요시하는 세대가 되어야 하며 모든 교육도 그런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일본의 지도자들은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 유고슬라비아의 비극(사설)

    동구 발칸반도의 유고슬라비아가 결국 내전사태돌입이라는 최악의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유고연방을 구성하는 6개공화국중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 양공화국이 마침내 일방적 독립선언을 하고 연방군이 저지에 나서 크로아티아에선 총격전이 벌어져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태까지 있었다. 유고사태는 소·동구공산권 국가들의 탈공산주의 진통의 일환이란 점에서 세계적인 주목거리가 되고 있다.탈냉전의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 진행되고 있는 유럽통합에도 역행되는 사태이며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그것은 유럽의 안정및 협력모색에 타격을 줄 수도 있으며 민주화개혁과 시장경제의 성공적 도입을 위해 미·서구의 경제적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는 다른 동구국들에게도 큰 부담이 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유고사태의 향방은 같은 민족주의분리 독립운동으로 갈등을 빚고 있는 소연과 체코슬로바키아·불가리아 등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를 갖는다. 유고슬라비아는 「6개의 공화국,5개의 민족,4개의 언어,3개의 종교,2개의 문자 그리고 하나의 국가」라는 설명이 말해주듯 한 나라를 이루기가 어려운 다민주복합의 모자이크 국가다.빨치산의 영웅 티토가 있었기에 만들어질 수 있었던 나라다.나라의 구심점 역할을 한 것이 티토였고 공산당이었다.티토가 사망했을 때 1차 붕괴의 위험이 있었고 이제 공산당의 몰락으로 와해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신사고 외교가 국제적으로는 대립과 갈등의 냉전체제를 무너뜨리는 화해와 공존의 탈냉전신질서를 조성하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 진원지인 소연과 동구에선 새로운 민족대립과 갈등의 불씨가 되고 있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른다.그것은 2차대전이후 공산독재의 강제와 불합리한 강압에 의한 부자연스런 국경선 획정과 불합리한 민족통합의 당연한 결과요 반발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부세계의 시각에선 대립갈등의 분열보다는 화합의 공존이 당사자들은 물론 새로운 세계질서의 순조로운 형성을 위해 도움이 되고 바람직한 것이다.그러나 공산주의에 대신해서 등장한 민족주의 감정이 합리주의적 사고를 초월하고 있다는 소연과 동구공산권 민족분열갈등의 어려운 문제성이 있기도 하다. 미·서구의 통일유고 유지의 희망에도 불구하고 사태가 희망적으로 진행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그런점에 있다.그리고 유고사태를 급속히 악화시키고 있는 직접적인 원인은 유고연방에 지배적인 영향을 미쳐온 세르비아공화국이 여전히 공산당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사실에 있다.해결책은 여기서부터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민주화된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는 공산주의 세르비아와는 함께 살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그리고 통일된 군대·통화·의회를 갖는 주권국가 연합에서 탈출구가 마련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유고는 협조와 공존을 기본정신으로 하는 비동맹의 기수였음을 세계는 잊지않고 있다.
  • 외언내언

    세상사 가운데는 쉽게 잊히는 일도 있고 좀체로 잊히지 않는 일도 있다. 잊어도 될 일이 있는가 하면 잊어선 안 될 일도 있고. 국가의 경우나 개인의 경우나 다를 게 없다. ◆잊어선 안 될 일의 원인이 자기에게 있을 때는 자책과 분발의 계기가 된다. 그런데 그것이 남에게 있을 때는 복수심으로 되기도. 서부활극에서 아비 죽인 원수를 찾아헤매는 경우나 월왕 구천의 와신상담 따위가 그것이다. 하지만 원인이 남에게 있는 경우도 곰곰 생각해보자면 내쪽에 또한 일반의 책임은 있는 법. 하건만 사람들은 내쪽의 책임은 눈감은 경향이다. ◆을사오조약으로 구체화하기 시작하여 5년 후 합병조약으로 국권을 뺏는 일제의 침략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잊어선 안 될 일이기도 하다. 소련제 탱크를 앞세워 동족상잔의 불집을 일으킨 북녘땅 지배자들의 죄업을 우리는 잊지 못한다. 잊어선 안 될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 해도 그렇게 된 책임이 내쪽에도 있었음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잊지 않아야 하고 잊어선 안 된다는 뜻을 오히려 거기서 찾는 것이 현명한 것 아닐까.◆지난 일에 얽매여 역사의 진운을 외면할 수는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날에 동족상잔을 부추기고 도운 나라들과도 길을 트고 있다. 북녘과도 공존공영에의 길을 모색하면서 통일에의 터전을 닦고 있고. 그날의 원혐이 가셔서가 아니다. 잊을 수 없고 잊어서도 안 되지만 용서할 줄을 알아야 하기 때문. 바람직스러운 새 관계의 적자는 거기서 태어난다 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 ◆6·25 41주년. 문득 한 달 전 별세한 베티고지의 영웅 김만술씨의 장례식에 「민주열사」의 장례식이 오버랩되어온다. 그 현격한 차이. 잊어선 안 될 일을 잊어가는 것만 같다.
  • 헝가리에 가로명 복원운동 활발(세계의 사회면)

    ◎“독재잔재 불식”… 「공산주의 영웅이름」 떼어내기/「레닌가」 등 옛 제국시대 명칭으로 환원/작년 부다페스트서만 1백30곳 고쳐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등 「공산주의 영웅」들의 이름이 헝가리의 거리명칭에서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민주화 가도를 달리고 있는 헝가리가 과거 공산당 일당독재시대의 부산물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있는 것이다. 거리명칭이 하루가 다르게 바뀌기 때문에 관광객뿐만 아니라 현지 주민과 택시운전사를 마저 헛갈릴 정도다. 수도 부다페스트에서는 지난 한햇동안 무려 1백30개 거리명이 변경됐다. 대부분 공산주의 영웅들의 이름을 빌려쓰다가 지난 48년 공산화되기 이전에 사용됐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시대의 명칭들로 「원위치」된 것. 부다페스트시내에서만 헝가리 공산주의 순교자인 벨라 소모기와 벨라 박소의 이름을 그대로 쓴 거리명이 각각 23개와 15개나 될 정도로 공산 정권에 의해 무성의하게 급조된 이들 거리명들은 멀지 않아 모두 역사 속으로 자취를 감출 운명에 처해 있다. 부다페스트 도심의 레닌가는오스트리아 황녀의 이름을 따서 엘리자베스가로 바뀌는 등 엘리자베스와 테레사가 다시 새로운 거리명의 주종을 이뤄가고 있다. 부다페스트시내에서 택시를 운전하는 벨라 코바치씨는 『거리 이름이 너무 빨리 바뀌어 일하기가 무척 힘들다』고 고충을 토로하면서도 『그러나 부적절한 공산주의자들의 이름은 우리들의 거리에서 뿌리뽑혀야 한다』고 말한다. 거리명칭 변경은 시내 유지들의 모임에서 결정되는데 이 모임의 자문역인 거리명 역사전문가인 기오르기 메차로스씨가 『내 생전에 거리명 변경이 완결되는 것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변화과정과 이에 따른 다소간의 혼란은 앞으로도 상당기간 더 계속될 것 같다. 시당국은 주민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예전의 거리명 표지판을 당분간 새것과 나란히 붙여두되 검열관의 삭제지시처럼 표지판에 붉은색 줄을 그어놓기로 결정했다. 이같은 거리명칭 변경의 열풍은 수도뿐 아니라 헝가리 방방곡곡을 휩쓸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명칭변경에 대한 반발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티보르 차뮤엘리에서 로냐이 메니예르트로 명칭이 바뀐 거리의 인근에 사는 일부 주민들은 차뮤엘리가 단명했던 1919년의 부다페스트 코뮨 당시 핏발을 세웠던 악독한 인물인 것 못지 않게 19세기의 귀족관료였던 메니예르트도 부패로 악명 높았다며 새로운 명칭을 거부하고 있다. 노동절을 기념해 명명됐던 매이원(5·1절) 거리를 합스부르크 왕가 여공작의 이름을 따 허미나거리로 변경한 것도 노동자들의 불만을 불러일으켜 올해 노동절 때 극렬 노조원들이 허미나거리라는 새로운 표지판에 예전의 매이원거리라는 팻말을 덧붙여놓기도 했었다. 러시아 문인들 가운데서도 막심 고리키 같은 이름은 그대로 유지되는 반면 볼셰비키파의 시인 겸 미래학자였던 블라디미르 마야코프스키 같은 이름은 거리명에서 아예 사라졌다. 지난 56년 부다페스트 봉기를 유혈진압했던 스탈린의 이름이 헝가리의 거리에서 자취를 감춘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다. 이제 공산주의 영웅들의 이름이 거리팻말에서 완전히 사라져 헝가리사회노동자당(옛공산당) 당사에 보존돼 있는 레닌의 흉상이 희귀한 역사의 유물이 될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
  • “우산 쓴채 운집” 유권자들 참여열기/광역표밭

    ◎공단지역 후보들,“공해추방” 한목소리/연예인 후보에 “사인받기” 어린이 물결/주지스님 후보,개사유행가 불러 폭소도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본격 합동유세가 열린 9일 각 유세장에는 비가 내리는데도 비교적 많은 청중이 모여 후보자들의 연설에 귀를 기울이는 등 뜨겁게 달아오른 선거 중반전의 열기를 반영했다. 이날 많은 비가 내린 경남·전남지역에서는 연설회가 대부분 연기됐으나 그밖의 지역은 예정대로 합동유세가 실시됐고 일부 지역에서는 장대비 속에서도 유권자들이 몰려 후보들의 공방전을 진지하게 하는 등 선거전의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날 하오 마포 신석국교에서 열린 마포갑 제3선거구 합동연설회는 인기가수 이선희씨가 민자당 후보로 출마한 탓인지 궂은 날씨에도 불구,어린 학생팬까지 포함된 1천5백여 명의 청중이 모여 고조된 분위기 속에서 진행. 특히 국회의원 유세에서도 보기 힘든 외신기자까지 취재경쟁에 나섰으며 민자·신민 후보간 「노래논쟁」 「나이논쟁」이 벌어져 이채. 5명의 후보중 4번째 연사로 나선 민자당의 이 후보는 신민당의 이남범 후보가 「노래하는 낭만을 즐기기엔 마포는 아직 할일이 많다」는 유인물을 돌린 데 대해 『노래 속에 서민의 슬픔·기쁨이 있으며 노래에서 번 돈을 이웃돕기에 써왔다』고 반박하자 청중들의 박수가 쏟아졌고 이 후보의 한마디 한마디에 일부 여성팬들은 환호와 울음이 범벅. 신민당의 이 후보는 호적등본 등을 제시하며 『민자당 이 후보의 생년월일은 67년 3월10일 생으로 피선거연령인 만 25세가 되지 못한다』고 주장. 이에 대해 민자당 이 후보측은 『원래 생년월일이 64년 11월1일인데 호적이 잘못 등재되어 있어 지난 5월31일자로 법원판결을 받아 정정했다』고 해명. 민주당의 박일석 후보는 깨끗하고 신선한 정치,무소속 오진근 후보는 정치공해·식수공해 등을 내세우며 한 표의 지지를 요청했으며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돼 옥중 출마한 무소속의 이장우 후보는 유세에 참가치 못해 부인이 소복을 입고 유세장을 돌며 지지를 호소. 한편 이날 유세장에는 가수 현철,탤런트 나한일씨 등이 나와 민자당 이 후보를 지원했으며 이 후보의 사인을 받으려는 꼬마팬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녀 혼잡. ○…이날 하오 1시 서울 종로구 대신중고교 운동장에서 열린 종로1선거구 합동연설회는 8백여 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여당 후보의 지역개발공약과 야당 후보들의 정치공세가 전개되는 가운데 1시간30여 분 동안 진행. 유세장에는 민자당에서 이 지역 출신인 이종찬 의원과 안찬희 의원,김명윤 고문,신민당의 이우정 수석최고위원,박영록 최고위원,민주당의 이부영 부총재 등 중량급이 참석,자당 후보의 득표활동을 간접지원. 첫 번째 등단한 이성호 후보(민주)는 『이번 선거는 민주 대 독재,구정치 대 신정치의 대결』이라고 규정짓고 3당 합당을 공격한 뒤 『이영호 민자후보는 해바라기성 정치인』이라고 공격. 이어 등단한 박명수 후보(신민)는 『강경대군 사건 같은 일이 민주주의국가에서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느냐』고 공세를 편 뒤 『민자당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는 민자당을 지지해서는 안 된다』면서 『야당만이 없는 자의 편에 서서 일할 수 있다』고 지지를 호소. 세 번째로등단한 이영호 후보(민자)는 『시의회는 정치싸움을 하는 곳이 아니라 살림살이를 다루는 곳이므로 앞의 두 후보와 달리 나는 정치연설을 하지 않겠다』며 야측의 정치공세를 피한 뒤 『대학교수·장관 등의 경력을 바탕으로 지역발전에 봉사하기 위해 출마했다』고 출마의 변을 설명. 이 후보의 연설이 끝나자 청중 3분의2가 유세장을 떠난 가운데 마지막으로 등단한 한상필 후보(무소속)는 현재를 정치불신시대로 규정하고 당본위가 아닌 인물·능력 본위로 뽑아 달라며 지지를 호소. ○…이날 상오 11시 서울 구로구 가리봉2동 영일국교에서 열린 구로5선거구 합동연설회에는 비가 내리는 데도 1천5백여 명의 청중이 참석,우산을 받쳐든 채 후보자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등 열띤 분위기. 이날 연설회에서는 구로공단이 위치한 지역특성을 의식한 듯 여야는 물론 무소속까지 모두 다섯 후보가 똑같이 근로자임대주책 건설,공해문제 해결 등을 공약으로 들고 나와 이채. 이날 연설회 도중 무소속 이현희 후보(30)의 선거원 20여 명은 교문 앞에서 노래와 무용을 해보이며 「노동자 후보」를 뽑아 달라고 부탁해 눈길. ○…이번 선거에서 가장 많은 8명의 후보자가 나온 서울 송파구 제2선거구의 합동연설회는 이날 하오 1시부터 잠실4동 잠실국민학교에서 3백여 명의 청중이 모인 가운데 시작. 신도현 후보(33·무소속)는 자신이 해공 신익희 선생의 손자임을 내세워 『할아버지와 아버지 신하균 의원(3·5·6대 의원)의 뒤를 이어 국민에게 봉사하겠다』면서 지지를 호소. 또 이재철 후보(39·무소속)는 『정치를 잘하면 우리 국민의 주소가 「행정도 편하군 이정도면 좋으리」가 되고 정치를 못 하면 「살기도 괴롭군 죽으면 편하리」가 된다』면서 행정경험이 많은 자신을 시의회로 보내야 한다고 주장해 이채. ○…서울 동대문구 청량중학교에서 열린 동대문갑 2선거구 합동연설회에서 김두한 전 의원의 딸인 민주당의 김을동 후보(46)가 『잃어버린 국권을 찾아 만주를 떠돌던 할아버지 김좌진 장군과 한 시대의 영웅으로 불리던 아버지 김두환 의원의 화려했던 영예를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게 물려주기 위해 출마했다』면서 지지를 호소. 유세장에는 강부자씨(49·여),윤승원씨(34) 등 인기탤런트 10여 명이 나와 김 후보의 유세를 간접지원. ○…서울 가락동 가락국교에서 열린 송포7선거구 합동연설회는 주민 3백여 명이 참석,시종일관 후보자들의 연설을 경청하는 열띤 분위기 속에서 진행. 전국에서 가장 높은 경쟁률(8 대 1)을 보이고 있는 이곳 유세장은 다른 곳과는 달리 후보자들 연설 중간중간 선거운동원 및 지지자들이 박수와 환호를 보내며 분위기를 고조시켜 치열한 유세전임을 다시 한 번 반영. 후보들은 대부분 정치색 짙은 발언보다는 가락시장 개발,교육환경시설 보완,환경오염 방지 등 지역개발성 공약을 중점적으로 제시하며 유권자들의 관심을 유도. 정당공천 후보 3명과 무소속 후보 5명이 나서 흡사 정당 후보 대 무소속 후보간의 경합장 같은 모습을 보인 이날 연설회에서 특히 무소속 후보들은 여야 정당을 맹공하며 「지역의 참일꾼」을 뽑아줄 것을 호소. 정광수 후보(무소속)는 『여야 정당이 그 동안 국민들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비판하며 『주민을무시하는 정당정치꾼들에게 주민들의 「분노」를 보여주자』고 주장했고 정대근 후보(무소속)는 여야 공천잡음을 집중거론하며 『기존정당의 하수인이 될 정치꾼을 뽑아서는 안 된다』고 강조. 각 후보들은 이 지역의 최대 현안이 가락시장 문제라는 점을 십분 인식한 듯 모두 가락시장의 환경오염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해 주목. 김경곤 후보(무소속)는 『가락시장을 패밀리아파트 후문 녹지로 이전하겠다』고 말했고 김선호 후보(민주)는 오염방지세를 받아 가락시장의 환경오염을 막겠다고 약속했으며 정치색 짙은 발언을 한 김상두 후보(신민)도 연설 말미에 가락시장 악취제거와 축협 도축장 이전을 공약으로 제시. 이날 유권자들은 후보자 가운데 민자당 후보와 신민당 후보의 연설내용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 한편 인근 용마사의 주지스님으로 눈길을 끈 무소속의 유용주 후보는 등단하자마자 자신을 「무공해 인간」임을 내세우며 현정치상황을 「개구리 행동 같은 난장판 정치」라고 빗댄 뒤 「썩어빠진 정치 난지도에 버리자」는 내용의 개사유행가를 부르는가 하면 오리발 그림을 펴보여 한때 지리했던 유세장에는 폭소가 터져나오기도. ○…정한주 전 노동부 장관이 민자당 공천을 받아 출마한 안산 제1선거구의 첫 합동연설회가 열린 9일 안산 본오국교에서는 굵은 빗발 속에서도 5백여 명의 청중들이 모여 후보자들의 연설을 경청하며 「입맛에 맞는」 말이 나올 때마다 환호하는 등 열띤 분위기. 첫번째로 등단한 정 후보는 『정관까지 한 경륜을 살려 지역사회에 봉사하겠다』며 『안산을 우리나라 최고의 문화,예술,산업도시로 발전시키겠다』고 다짐. 두 번째로 나온 신민당 김대영 후보는 자신의 공약보다는 정 후보와 민자당에 대한 비난으로 연설시간을 거의 때운 뒤 공약은 정 후보와 다름없는 지역개발 등을 제시. 민주당의 청문회 스타 등을 소개하며 참신성을 역설한 안상호 후보에 이어 마지막으로 등단한 민중당 이정형 후보는 『서민을 위한,서민에 의한 정치가 바로 진보정치』라고 전제하고 『개발이익이 소수 특권층에 돌아가는 개발사업을 막겠다』는 등 서민들을 겨냥한 공약을 제시. ○…이날 상오 11시 강릉국교 운동장에서 열린 강릉 1선거구 합동연설회에서 첫번째 등단한 노승현 후보(44·무소속)는 연설을 하기 전 선전을 약속한다며 미리 준비한 2개의 꽃을 두 상대방 후보의 가슴에 달아주어 눈길을 끌기도. 노 후보는 『지자제가 무슨 정치꾼들 노름이냐,주민 위해 헌신짝같이 일해보자고 나선 판에 정당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고 옆자리의 정당후보들을 은근히 겨냥. 또 이훈 후보(46·민주)는 『견제세력 없는 훌륭한 정치 없듯이 지자제도 멋대로 자기 갈 길만을 가는 여당 소속 의원들을 감독 지휘하기 위해 나같은 사람이 꼭 의회에 나가야 한다』며 한 표를 부탁. 마지막으로 나온 김명기 후보(54·민자)는 『현재 영동지방에 강원도청 분점형태로 운영중인 강원도 동해출장소가 이 지방사람들의 여망에 맞지 않게 기구가 작으므로 의회에 나가서 출장소 기구를 대폭 개편,강원도 동도역할을 톡톡히 해내도록 하겠다』면서,『강릉 남대천을 옛모습대로 깨끗한 시냇물이 흐르게 하고 헐어빠진 시청사를 새로지어 영동지방 주민에게 자부심을 심어주겠다』고 장담. ○…장대비에도 불구,10시30분부터 청주시 내덕동 청주농고 운동장에서 열린 청주 제2선거구 합동연설회에서 세 번째로 등단한 전면 후보(민주)가 주머니에서 흰 봉투를 꺼내 청중들에게 들어보이며 『어제 우리 선거운동원이 여당측으로부터 수표봉투를 하나 받았습니다』고 주장. 전 후보로부터 공격의 표적이 된 안상렬 후보(민자)는 전 후보에 앞서 첫번째로 연설을 마쳐 이에 대한 공개적인 반론기회를 얻지 못하자 합동연설이 끝난 뒤 기자들과 유권자들에게 『수표를 건네주는 멍청한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민주당 전 후보의 주장을 일축. 이에 대해 청중들은 『선관위가 전 후보로부터 문제의 수표를 넘겨받아 추적,금품제공인지 흑색선전인지를 분명히 가려야 할 것』이라고 주장. ○…이날 이리중앙국교 강당에서 열린 이리시 제2선거구 첫 합동연설회에서 첫번째로 등단한 최갑선 후보(민중)는 『수서비리·페놀오염·강군 치사사건으로 현정권의 모순과 비리가 드러났고 지자제 공천과정에서는 보수야당의 부도덕성이 낱낱이 밝혀졌다』고 민자·신민 양당을 싸잡아 공격한 다음 기층민중과 함께 호흡하는 민중당 후보인 자신의 지시를 호소. 이어 등단한 김학준 후보(민자)는 『신민당으로 출마하려 했으나 공천받을 돈이 없어 민자당으로 나섰다』고 신민당의 공천관련 금품수수설을 공박. 마지막으로 연단에 오른 소병기 후보(신민)는 신민계 후보들이 단골메뉴로 올리는 정부여당의 실정을 열거한 뒤 『도의원이 되면 이리시내 도로·주택 등 도시 기반시설과 복지시설을 확충,이리시를 전북에서 가장 앞서가는 도시로 만들겠다』고 장담. ○…9일 하오 2시 김해군 진예면 면사무소 2층 회의실에서 열린 김해군 제1선거구 합동연설회는 비 때문에 청중수가 기대에 못 미치자 3명의 후보 중 2명의 후보가 퇴장하거나 늦게 도착,민자당 김종한 후보의 개인 연설회장으로 돌변. 3명의 후보는 당초 진예중 운동장에서 개최키로 했던 합동연설회를 상오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 때문에 진예면사무소 2층 회의실로 옮겨 가졌으나 청중수가 2백여 명에 불과하자 한 후보는 연설을 포기하고 퇴장했으며 또 다른 후보는 10분이나 늦게 도착해 민자당의 김 후보만 10여 분간 연설하고 합동연설회를 마치게 된 것.
  • 일 국교 교과서에 전쟁영웅 재등장

    ◎노일전쟁 주역 도고제독등 42인 “미화” 내년부터 일본 국민학교 6학년 사회과 교과서에 2차대전 후 교과서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노일전쟁의 신화적인 인물 도고(동향평팔랑) 제독이 등장한 것을 비롯,42명의 역사적인 인물이 모든 교과서에 수록된 것으로 1일 밝혀졌다. 문부성의 검정을 통과할 것으로 알려진 8개 출판사들의 사회과 교과서에 의하면 모두 본문에 도고를 등장시켜 『러시아군을 격파한 도고 등의 군인은 일로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사람으로서 극구 찬양받고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전 출판사가 노일전쟁의 전장 지도를 싣고 있으며 2개 출판사는 도고의 얼굴사진을,1개사는 해전그림을 곁들이고 있다. 또 『일노전쟁의 승리는 일본의 국제적인 지위를 향상시켰다』,『아시아의 소국이 유럽의 대국과 싸워 처음으로 승리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오오에(대강지내부) 교수 (이바라키대·근대사)는 『국민학교 사회과 교과서의 적은 지면에 도대체 군인 도고를 가르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각 출판사가「국제적인 지위 향상」이라고 기술하고 있는 데 대해 『궁극적으로 한일합방 등 침략으로 이어졌다는 점을 덮어두고 있어 근대사를 가르치는데 있어서 균형을 잃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번에 개정된 각 사회과 교과서는 「하노마루」,「기미가요」를 국기·국가라고 명시하거나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 꾸짖을 수 있는 용기를 내시오/장석영 사회부장(데스크시각)

    K교수님! 지금 우리는 크나큰 시련과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하늘은 혼돈의 먹구름이 뒤덮힌 채 좀처럼 개일 줄을 모릅니다. 전국을 휩쓸고 있는 돌풍도 아직까지 잠을 자려들지 않고 있습니다. 교수님. 착잡하고 암울한 마음을 한동안 가눌 길이 없었습니다. 얼마전 교수님과 제가 만났을 때 우려했던 바대로 위기국면이 현실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병인진단 시급 교수님 그렇다고 이번 사태를 두고 교수님이나 제가 그대로 앉아서만 보고 있을 수는 없는 것이 아닙니까. 무언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을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교수님 우리가 오늘의 이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의사가 환자를 치료할 때 먼저 정확한 진단을 해야 하듯이 원인 분석을 빨리,그리고 정확하게 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 다시 말해서 먼저 왜 젊은이들이 죽음을 택했는가를 깊이 반추해 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병인을 알아냈다면 치료도 서둘러야 되겠습니다. 며칠전 강경대군의 죽음에 이어 젊은 대학생들의 분신이 잇따르자 교수님은 우리의 사회병리를 모두가 정치권의 잘못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옳은 말씁입니다. 그때 저는 교수님의 분석에 동감을 표하면서 그밖에도 많은 원인이 있다고 말했었습니다. 저는 당시 저의 시각이 옳다고 주장했습니다만 최근 독자들로부터 신문사 데스크로 걸려오는 우려의 목소리를 접하고 더욱 저의 시각이 맞는다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저에게 걸려온 전화내용을 몇 가지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먼저 큰 아들은 전경으로 근무하고 있고 둘째 아들은 대학 1학년에 다니고 있다고 밝힌 한 어머니는 눈물 머금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루도 잠을 편 히자는 날이 없습니다. 대학생과 전경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모두가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잘못이 있다고 봅니다. 정치지도자들이 대권에만 정신을 팔고 정쟁만 일삼아 왔기 때문에 오늘과 같은 불행을 가져온 것입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무슨 문제가 생겨 정치권에서 풀어야 할 일인데도 방관하거나 일부에선 문제를 더 부풀리고 있어요. 참으로 한심한 작태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또 다른 독자는 문제의원인을 대학자체에 있다고 했습니다. 『대학이 그동안 제기능을 다하지 못한 것이 사실 아닙니까. 대학은 지식교육만 했지 어디 지성교육을 했습니까. 더욱이 이번 학생들의 죽음이 몰고온 소용돌이가 전국을 진동시키자 일부이긴 합니다만 학생들의 눈치만 살피는 교수들이 있습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지요. 학생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이를 꾸짖고 옳은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이 교수들의 본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용기없는 교수들이 문제인 것입니다』 ○「소신있는 교수」 절실 교수님. 이 독자는 민교협에 가입되어 있는 교수들의 동조농성행위에 대해 격한 어조로 힐책했습니다. 『교수들이 학생들의 농성에 가담해서 어쩌자는 것입니까』 그 독자는 경찰의 시위과잉진압에 대해서도 힐책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째서 학내문제에 경찰이 학교안까지 들어가고 달아나는 시위학생을 끝까지 추적해서 폭력으로 진압하는지 도무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들의 시위양태도 문제입니다. 화염병은 무기입니다. 민주화를 위해 싸운다는 지성인들이 반민주 행위를 하면 되겠습니까.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고 따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발 대학생들은 이성을 갖춘 지성인의 자세로 돌아가야 합니다』 교수님. 마지막으로 전화내용을 하나 더 소개하겠습니다. 안타깝고 답답해서 도저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말씀을 드린다는 이 독자는 학생들의 자살행위를 영웅시하는 일부 사람들의 저의가 무엇인지 아느냐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자식을 잃은 부모만큼 마음 아파할 사람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강군이 사망한 지 벌써 열하루째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있습니다. 민주화를 부르짖다가 젊음이 죽어갔는데 이를 정치투쟁에 이용하다니 말이나 되는 일입니까. 그런 일은 마땅히 규탄 받아야 합니다. 언론은 또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물론 모두 잘못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학교수가 학생들의 잘못을 꾸짖자 학생들이 이를 야유하는 대자보를 붙였는 데 언론이 한낱 웃음거리로 취급했더군요』 교수님. 독자들의 전화내용은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습니다.그렇다고 또다른 병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물질만능주의의 팽배라든지 호화사치 풍조라든지 하는 망국병들은 우리사회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 사회에 정신세계를 도덕적으로 지탱해줄 지주가 없다는 점입니다.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가치규범이 붕괴된 지 오래됐습니다. 쓰러져 없어진 이 가치관을 다시 일으켜 세우지 않고서는 이 암담한 수렁 속에서 헤어날 수가 없습니다. 교수님.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모든 것을 알면서도 「예」와 「아니오」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들이 적다는 데 있는 것 같습니다. 당국자도 교수도 언론인도 학생도 이제는 침묵을 지켜서느 안됩니다. 역사의식을 갖고 난국을 풀어나가는 데 중지를 모아야 합니다. ○새 「정신지주」 세우자 토인비가 말했듯이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긴장된 역학입니다. 우리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역사는 제공합니다. 우리들이 풀어야 할 숙제는 지금 못풀면 다음 세대에서라도 풀어야 합니다. 민주화의 숙제,분배 정의의실천이라는 숙제,남북통일이란 숙제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 숙제는 목청을 높이거나 폭력을 써서 풀어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적인 수단과 방법으로 풀어나가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먹구름을 걷어내고 찬란한 5월의 태양을 맞이해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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