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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암각화 古代설화 그린것”

    울산 반구대의 천전리 암각화는 개별 그림의 집합이 아니라 일정한스토리를 담은 고대설화라는 주장이 나왔다.그것도 ‘나무꾼과 선녀’,‘원앙부인 본풀이’,‘구렁이 설화’ 등이 다양하게 담겨있다는것이다. 조철수 이스라엘 히브리대교수는 ‘정보의 발생과 그림문자,그리고울산암각화의 상징체계’라는 글에서 이같이 밝혔다.이 논문은 지난17∼18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암각화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됐다. 조교수의 전제는 울산 암각화가 ▲청동기 농경문화를 바탕으로 ▲집합그림이 큰 단위로 구분되어 있으며 ▲가장 일반적인 고대 문양인동심원과 마름모·물결무늬 등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메소소포타미아상징문자의 보편성과 맥락을 같이한다는 것이다. 한국 고대신화에 메소포타미아의 신화소가 있고,천전리 암각화에도메소포타미아가 기원인 네발 달린 용 그림이 나타나는 것은 메소포타미아 문화가 인도 및 동남아시아 해상로를 경유하여 전해졌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제주도의 돌하르방이 발리섬의 그것과 닮았고,인도의 드라비다어와고대국어 사이에 연관된 단어가 수백개가 넘는 것을 보면 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이 인도 동쪽 아유타왕국의 공주와 혼인한 이전에도 이미 잦은 왕래가 있었음을 증명한다고 덧붙인다. 이렇게 볼 때 천전리 암각화 오른쪽의 물결무늬와 사슴뿔위의 동심원을 연못에서 사슴이 태양신의 딸을 태우고 달아나는 장면이라고 본다면,사냥꾼에게 쫓기는 사슴을 살려준 나무꾼에게 연못가에서 선녀가내려오는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중심부에 가면과 큰 뱀 그림에 이어 뱀 옆의 여러 마름모 모양을연못이라고 본다면 구렁이 설화와도 통한다는 주장이다.연못가에서허물을 벗고 재생하는 뱀에 관한 이야기로 가장 잘알려진 신화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영웅담인 길가메쉬 서사시이다.같은 차원에서 사슴과 작은 동물들,꽃,남자 등이 나오는 중앙부의 그림은 원앙부인 신화와 연결한다.이 신화는 꽃감관(花監官)의 임무를 맡아 불려가는 남편을 임신한 아내가 따라가다가 발병이 나서 동네 부자에게 팔리고,태어난 아들은 장성하여 아버지를 찾은 뒤 사람을 살리는 꽃을 들고가 숨이 끊어진 어머니를 살리는 이야기이다. 조교수는 “울산 암각화에 표현된 동물들의 움직이는 방향과 사람의모습 등은 전체적으로 종교제의를 거행하는 장소에 그려진 파노라마라고 이해할 수 있다”고 밝혔다.그러면서 “아마도 정해진 계절에따라 종교제의를 행하는 집행자의 사설을 들으며 볼 수 있는 장면일것”이라면서 “구체적인 내용은 작은 단위의 집합 그림에서 상징무늬의 연결점을 구하고 이를 우리의 고대 문헌 혹은 전승에서 단서를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국제학술대회는 울산에서 암각화를 발견한지 30년이 되는 해를기념하여 열렸으며,암각화의 역사·예술·종교·민속·보존문제 등이망라된 13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문명대교수가 이끈 동국대박물관팀은 1970년 울산 천전리에서,다음해에는 이웃 대곡리에서 각각 암각화를 찾아 학계에 보고했다. 서동철기자 dcsuh@
  • 남북 화해·협력 5대현안 진척도 점검

    8·15 이산가족 상봉의 흥분이 아직 채 가시지 않았지만 앞으로도 남북간에 극적인 ‘사건’들이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9·10월에 예정돼 있는 큰 이벤트만 해도 6∼7건에 이른다.이들 행사들을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상봉 정례화,비전향장기수 송환,조총련 동포 조국방문,경의선 복구 등 경협,문화·예술·관광교류 등 5개 분야로 나눠 살펴본다. ◆이산가족 상봉.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를 앞으로는 1회적인 만남보다는 면회소 설치등 제도화에 목표를 두고 추진키로 했다. 다음달 2일쯤 열릴 남북 적십자회담에서 우리측은 면회소 설치 장소 및 시기,면회소 운영방안 등을 북측과 협의,확정한다는 방침이다. 면회소 장소와 관련,정부는 일단 판문점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쉽게 오갈 수 있는 위치이고 이미 어느 정도 시설을 갖추고 있다는점에서 무난하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금강산 등 이북 지역을 선호하는 북측을 어떻게 설득하고,동의를 얻어낼 지가 관건이다.장충식(張忠植)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20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철원’지역을 면회소 후보지로 거론한 것은 우리측 고민의 일단을 시사하는 대목이다.정부는 북한이 관광특구 지정을 거론한 개성도 후보지로 검토중이다. 정부는 면회소에서 상봉 뿐 아니라 서신교환,통화 등도 가능하도록할 계획이다.왕래의 번거로움을 피하고 가족과 혈육의 정을 이어갈수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지닌 방법이다.하지만 정부는 이산가족문제를 너무 급진적으로 밀고나가다가는 북측의 수용능력에 부담을줘 오히려 부작용이 일어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속도조절에도 신경을 쓰기로 했다. 김상연기자 carlos@. ◆비전향 장기수. 정부는 북한이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비전향 장기수 북송문제가 원만히 해결돼야 면회소 설치 등 이산가족 문제가 제대로 풀릴 수 것으로 보고 있다.따라서 9월초로 예정된 비전향장기수 송환을 가급적 북측이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줄 때 확실히 줘야 받을 때 확실히 받아낼 수 있다는 논리다.정부가 북송을 원하는 비전향장기수를 전부(62명) 보내기로 한 것도 이같은 방침의 일환이다. 그러나 이산 상봉확대등에 대해 북측의 약속을 끌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비전향장기수를 모두 송환해야 한다는 데 정부의 부담이 있다. 특히 납북자·국군포로는 거론조차 되지 않는데,남파간첩은 열렬한환영 속에 평양으로 돌아가는 불균형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명할 지도 고민거리다. 더욱이 북한은 지난 15일 내친 김에 이번 북송 때 장기수들의 가족동반 문제까지 제기해 정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정부는 이번에는 가족 동반은 불가하다는 입장이지만 가급적 마찰을 피하기 위해 북측을 설득하는 데 골몰하고 있다. 한편 장기수 송환은 판문점 육로 또는 항공로를 이용키로 적십자회담에서 합의했었지만 항공편이 유력하다.그밖의 세부절차는 93년 비전향장기수 송환 1호인 이인모(李仁模)씨의 전례를 따를 예정이다. 김상연기자. ◆조총련동포 방문. 이달 안에 이뤄지는 조총련 해외동포 방문단의 고향방문도 민족 화해를 위한 구체화 조치의 하나다.그동안 전향서 등 각종 복잡한 조치를 필요로 했던 조총련의 방문을 사실상 개방,해외동포들이 이념에상관없이 누구든지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준 것이다. 이번 방문단은 대략 100여명 정도로 구성되며 이들은 각자의 고향으로 내려가 성묘를 할 수 있게 된다.조총련 서만술(徐万述) 제1부의장은 지난 1일 “역사적인 남북 공동선언으로 빠른 시일 안에 고향방문이 실현될 것을 희망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현재 민간단체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조총련 동포의 고향방문을 정부 주도로 추진할 방침이다.따라서 75년 9월 해외동포 모국방문후원회가 시작한 ‘고국방문사업’과는 별개로 고향방문이 추진된다. 정부는 그러나 친북 단체인 ‘재중(在中) 조선인총연합회’의 고향방문은 추후에 논의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당분간은 일본 조총련에한해 고향방문이 이뤄지게 된다. 재일 조총련 동포는 25만명 정도로 거의 대부분이 남한 출신.이번고향방문에는 1∼2세대가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석우기자. ◆경제협력. 남북을 잇는 경의선 복원공사의 착공식이 다가오면서 남북경협이 탄력을 받게 됐다. 경의선이 복원되면 현재 남북간 물자교류의 60%를 차지하는 해상수송이 육상으로 가능해져 물류비용 절감효과가 커진다.특히 해상로를이용해 원·부자재와 생산품을 운반할 경우 10일 이상 걸리지만 육로는 5일 이내로 줄어든다. 또 경의선은 중국횡단철도(TCR),시베리아횡단철도(TSR),몽골횡단철도(TMGR)와 연계돼 한반도가 동북아의 교통·물류 중심지로 급부상하는 ‘철(鐵)의 실크로드’시대를 열 전망이다. 따라서 철도복원을 계기로 과중한 물류비용 때문에 북한에서의 사업을 망설여왔던 기업들의 대북 진출도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아울러 경의선을 따라 문산∼개성으로 이어지는 4차선 규모의 육로건설도 추진되고 있어 이 공사는 물론,북한 사회간접자본시설에 참여하기 위한 건설업체의 물밑 경쟁도 서서히 달아오르고 있다.경의선과 새 도로가 건설되면 현대가 개성지역에 추진하는 2,000만평의 서해안공단 조성사업도 한층 쉬워진다.장기적으로는 관광 등 인적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남북교류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류찬희기자 chani@. ◆문화분야. 문화분야는 이산가족 상봉으로 조성된 화해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할 것 같다. 무엇보다 북쪽의 이산가족이 돌아간 지난 18일 북한의 조선국립교향악단이 서울에 온 것은 남북화합의 분위기를 잇는데 결정적 역할을하고 있다.나아가 이번 합동 연주회는 남쪽 교향악단의 북한방문공연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하고,언론사 사장단의 방북에서 다시 확인한 백두산·한라산의 남북 교차관광 역시 이산가족 상봉에 못지않은이벤트가 될 것이다.금강산 관광이 남쪽 인사들만의 일방통행인데다,그것도 제한된 방북이었다면 교차관광은 남북관광 교류의 새로운 차원을 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남쪽을 방문한 북쪽 이산가족의 상당수가 문화예술계 인사였다는 것은 앞으로 교류의 문호를 넓히는 데 적지않은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비록 무산됐지만 북한의 인민화가 정창모씨의 전시회가 추진되고,‘계관인 노력영웅시인’ 오영재씨의 시가 남쪽 언론에 실리는 등 반향을 얻은 데다,북한방문단 대표인 류미영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이 우리쪽김광욱 천도교 중앙총무 교령과 만난 것 등은 이산가족 상봉이 문화·예술·종교의 남북교류에 가속도를 붙일 수 있음을 시사한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 같다. 서동철기자 dcsuh@
  • [해외항일전적지를찾아서](6)남만주 독립투사 양세봉 활동지 신빈

    ‘歷史名城 前淸故里’(역사명성 전청고리)라고 쓴 현판을 단 높다란 채색관문이 차창위로 휙 스쳐 지나갔다.현판은 이곳이 청태조 누루하치의 고향이어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고장이라는 뜻이었다.마침내남만주의 오지인 신빈현(新賓縣:항일전쟁 시기 지명은 興京縣)에 들어선 것이다.심양(審陽)에서부터 4시간 반동안 숨가쁘게 달려온 차가서서히 속도를 줄였다. 신빈은 요녕성의 동쪽 끝에 위치한 만주족 자치현으로 길림성의 통화현과 닿아 있다. 양세봉(梁世鳳·1896∼1932)장군은 유해가 평양의 애국열사릉에 모셔져 있는 탓으로 남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항일투쟁의 명장이다. 남한에서는 김좌진이,북간도에서는 홍범도가 항일영웅으로 인구에 회자되듯이 심양과 남만주 일대의 동포들에게는 양세봉의 이름이 전설속에 칭송되고 있다.조선혁명군은 공산주의 깃발아래 싸운 부대가 아닌가 생각하기 쉽다.양세봉이 소년시절의 김일성을 도와주었고 김일성이 막 항일투쟁을 시작한 무렵 교류한 적이 있다.그러나 양세봉은처음부터 반공성향이 강했고,조선혁명군도 1920년대말 국민부 산하의무장조직으로 창건되어 1937년 해체될 때까지 민족주의 이념을 굳게지킨 독립군이었다. 양세봉은 서봉(瑞鳳)이라는 이름도 썼다.평북 철산 출신으로 스무살이 넘어 만주땅으로 건너가 중국인 점산호(占産戶.지주)의 소작농이됐다.기미년 4월 만세시위가 남만주 일대까지 퍼져 왔다.그는 시위에앞장섰고 그때부터 독립투쟁에 투신하게 됐다. 천마산대에 입대해 경찰서를 습격하는 등 무명 소졸로 투쟁하다가,참의부 중대장을 거쳐 1926년에는 남만주의 새로운 독립운동 단체 정의부에 들어갔고,1929년말 국민부 산하조직으로 조선혁명군이 창건되자 부사령(副司令)을 맡았다. 1932년 봄, 국민부와 조선혁명군은 간부들이 대거 체포되어 위기를맞았다.양세봉은 총사령으로 추대되고 즉각 왕청문(旺淸門)에서 무장봉기를 단행,지휘부를 왕청문에 두고 500명의 대원을 이끌고 무순(撫順)까지 진공해 일본군을 격퇴했다. 당시에는 흥경현의 일부,지금은 신빈현의 일부로 행정상 현(縣)보다작은 진(鎭)에 해당된다.양세봉은 흥경현의 쌍협하(雙峽河)에서 또다시 적을 격퇴하고 이름을 드날렸다.그는 영릉가(永陵街)에서 중국 의용군과 합세해 대대적으로 진공해온 일본군을 패퇴시켰다.그리고 흥경성에서 일본군과 만주군의 연합 공격을 받아 혈전을 치르고 사수했다.그 뒤에도 2차 영릉가전투,청원(淸原)전투,영릉가의 석인구(石仁溝)전투에서 승리했다.중국인 의용군과 연합한 전투도 있지만 조선혁명군의 단독전투가 더 많았다.양세봉은 한편으로 끊임없이 소규모 인원을 보내 국내 진공을 펼쳤다.기록을 보면 1932년 16차례에 걸쳐 100여 명이,이듬해는 10차에 걸쳐 140여 명이 압록강을 건너가 일본군진지와 파출소,우체국 등을 기습했다. 일제는 남만주의 영웅 양세봉을 제거하기 위한 계략을 짰다.1934년9월,일제의 지령을 받은 밀정 박창해(朴昌海)는 중국인 지주 왕가(王哥)를 통해 마적 두목 아동양(亞東洋)을 매수했다.아동양은 양세봉에게 중국인 항일부대와의 연합을 협의하자고 속여 환인현(桓仁縣) 소황구(小荒溝) 골짜기로 유인해 저격했다.온 몸에 집중사격을 받은 양세봉은 동포들의 간호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숨을 거두었다.동포들은일제의 손길을 피하려고 가까운 고려성(高麗城)에 평장했으나 통화현(通化縣)의 일본 경찰은 이를 탐지해 시신을 꺼내 목을 잘라 성루에걸었다. 취재팀은 시내로 들어가 조선족 원로들을 찾다가 운좋게도 최선주(崔善柱)선생(66)과 조만선(趙萬善)·김순화(金順化)·김순자(金順子)선생 등 원로들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었다.현(縣) 인민위원회 부서기 등 고위 공직에서 은퇴한 이들은 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를 결성,조선족 사회의 발전과 모국과의 문화교류를 위해 애쓰고 있었다.1995년 조선혁명군의 주둔지 왕청문에 양세봉 장군 기념비를 세운 주인공들이다.숨이 턱턱 막히는 무더운 대낮이었으나 원로들은 취재팀을 안내하기 위해 앞장섰다.우리는 흥경성전투 현장부터 돌아보았다.네 분원로가 손을 들어 이곳 저곳을 가리켜 보였다. “일만(日滿)연합군은 서쪽에서 쳐들어오고 동쪽에서는 중국의용군이춘윤부대가 맞섰지요.양세봉이 이끄는 조선혁명군은 남쪽에서 협공했지요.대도회(大刀會)는 뒤에서 냅다 함성을 질렀구요.병력이야 이춘윤부대가 많았지만 적을 무너뜨린 건 양세봉부대였지요.참 대단했다 그래요.혼쭐나서 달아나는 왜놈들을 양장군은 무순까지 쫓아가며족쳤대요” 길목이나 구릉이 있어 실감은 났지만 이제는 모두가 시가지로 변해당시의 진지나 망루 따위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필자가 김순화 선생에게 물었다. “대도회는 뭡니까?” “2,000명쯤 되는 비무장 예비대였지요.배에다 부적을 뻘겋게 붙이고 죽창을 꼬나들고 함성을 올리며 돌진했지요.흥경성 2차전투에서많이들 죽었어요.이삼년 전까지만 해도 생존자 몇분이 있었는데 이젠안 계세요” 흥경성 2차전투는 양세봉이 조선혁명군의 주력을 이끌고 청원현에가 있을 때 적의 기습으로 시작되었다.혈전을 벌이던 중 일본군 비행기가 기총사격을 가했고 이춘윤부대는 속수무책으로 퇴각했다.대도회는 거의 모두 전사하고 말았다. 취재팀은 그분들과 함께 차를 타고 왕청문진으로 향했다. 남만주 항일전쟁의 영웅 양세봉은 조선혁명군의 지휘부가 있었던 화흥(化興)중학교 안에 장려한 화강암 흉상으로 우뚝 서 있었다.6미터쯤 되는 높은 기단에 흉상은 1m65㎝,전면에는 ‘抗日名將 梁瑞鳳 將軍(항일명장양서봉 장군)’이라고 쓰여 있었다. 조선혁명군의 사령부이자 간부 양성소로 썼던 화흥중학교는 옛 자취는 사라지고 1960년대에 지었다는 교사만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조선족 학생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했다. 양세봉의 죽음과 관련해 잊을 수 없는 사실이 있다.일본경찰은 그의무덤에서 시신을 파내 김도선(金道善)이라는 조선족 농부에게 작두로 목을 자르라고 윽박질렀다.김도선은 ‘양세봉은 우리 조선민족의사령이다.내가 조선사람으로서 어찌 우리민족 사령의 목을 자른단 말인가’라며 거부하자 일경은 그 자리에서 그를 총으로 쏴 죽였다.양세봉 암살계략을 짠 조선인 밀정 박창해와 그의 시신의 목을 자르기를 거부하고 총살당한 농부 김도선.충성과 배반의 양극이다. 양세봉의 아내와 아들은 1946년 김일성의 각별한 배려속에 평양으로귀국했다. 북한당국은 그의 유해를 1961년에 모셔가 일단 평양 교외에 안장했다가 1986년 애국열사릉에 이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양세봉이 두 차례 대승을 거둔 영릉가를 돌아보니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취재팀은 분단모순 때문에 우리에게 제대로 알려지 않은 항일전쟁의영웅을 취재했다는 보람에 가슴이 뿌듯해진 채로 심양을 향해 차를달렸다. 신빈(중국 요녕성) 이원규(소설가·동국대 겸임교수)
  • [발언대] ‘태극기 달기운동’에 적극 동참을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경기장.당당히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우승한황영조 선수가 마지막 남은 금메달을 목에 걸고 애국가가 장엄하게 울려퍼지는 가운데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감격해 하는 모습이 전세계로 방송될 때,우리는 무한한 감동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태극기,애국가 그리고 작은 영웅 황영조 선수가 우리 모두를 하나로 만들었던 것이다. 해마다 경축일이 다가오면 연례행사처럼 태극기 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행정자치부 의정관으로 부임한 이후 처음 맞이한 3·1절에도 어김없이 각기관과 전 가정에 태극기 달기를 권유했으나 호응도는 그렇게 높지 않았다. 우리는 왜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 달기를 소홀히 하는 것일까. 미국이 많은 민족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다민족 국가이면서도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지위를 더욱 굳건히 하고 있는 저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여러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성조기를 중심으로 뭉친 그들의 애국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그들은 성조기 앞에서 인종도,빈부도,언어도,피부색도 모두 녹여버리고 오직 하나된 USA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그들이 국익 앞에서 하나되고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있는 원천이며,세계 최강국 미국의 힘의 실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5,000년 유규한 역사를 가진 단일민족국가라고 자랑하곤 한다.그러나 우리는 국가가 어려울 때 과연 국익을 먼저 생각하면서 일해왔는지 새천년 광복절을 맞이하여 태극기 달기를 권유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최근 우리사회에서는 국익보다는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집단이기주의,지나친 개인주의 등 사회적 병폐가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후손들에게 자랑스럽고 아름다운 조국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국가의 상징인 태극기 앞에서 우리 모두가 하나되는 노력이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역사적인 6·15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분단의 벽을 뛰어넘어 화해와 협력의 새시대가 펼쳐진 새천년 광복절에는 우리 모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태극기 달기 운동’에 동참하여 우리 모두가 하나 될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김호길 행정자치부 의정관
  • 영화 ‘엑스맨’ 내일 개봉

    60년대에 처음 선보여 미국 역사상 가장 많이 팔렸다는 만화시리즈 ‘엑스맨’이 기어이 영화로 나왔다.‘엑스맨’을 연출한 건 그 만화에 감명받고 자란 34세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감독,브라이언 싱어.‘유주얼 서스펙트’(95년)로 오스카상을 따냈던 그가 다시 호기롭게 7,500만달러나 밀어넣어 찍은SF영화다. 흥행성적부터 귀띔하자면,지난달 미국 현지에서 개봉될 당시 첫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해 벌써부터 속편이 거론되고 있는 중이다. ‘배트맨’,‘슈퍼맨’,‘스파이더맨’이 그랬듯 ‘엑스맨’의 캐릭터 설정도 빤히 만화적이다.주인공은 비상한 능력을 소유한 반사회적인 영웅이며,그들은 극명하게 엇갈리는 선악구도 속에서 선(善)을 수호하며 버티고 서있다. 인간의 유전자 기술이 극점에 도달했을 때 초능력을 보유한 돌연변이 진화인간 ‘호모 수피리어’가 탄생한다.그들이 엑스맨이다.인간에게 경외와 공포의 대상인 엑스맨을 모아 인간사회에 유익한 일을 할 수 있도록 사비에 박사(패트릭 스튜어트)는 이들을 훈련시키려 한다.그러나 엑스맨의초능력을 두려워한 상원의원 켈리는 그들을 통제할 법안을 만들려 음모를 꾸미고,인간지배를 꿈꾸는 엑스맨 매그니토(이안 맥켈렌)와 결탁한다. 원작의 묘미를 흠뻑 맛본 관객들이 영화속에서 재미를 발견하려는 대목은 아무래도 특수효과나 컴퓨터그래픽 같은 기술적 부분들이다.400개가 넘는 특수효과 장면이 들어간 영화는 그런 기대를 저버리진 않는다.비늘달린 파란색피부에 붉은 머리카락의 돌연변이 ‘미스틱’의 경우. 메이크업할 때마다 10시간이 들었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보면 더 재미있겠다.12일 개봉. 황수정기자
  • 광복55주년 학술행사

    광복 55주년을 맞아 각계에서 마련한 항일독립운동 관련 학술심포지엄이 눈길을 끈다.문화관광부가 ‘8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한 백야 김좌진(金佐鎭)장군의 항일투쟁사를 재조명한 학술회의(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주최)를 비롯해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의 현장인 서대문형무소와 항일운동사 심포지엄(서대문구청 주최),그리고 개항 이후 ‘한국 민족주의의 변천과 향후 전망’주제의 학술행사(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 주최)가 그것.앞의 두 행사는 10일,마지막 행사는 11일 각각 마련됐다.각 학술행사마다 4건 정도의 학술논문 주제발표와 토론이 마련돼 있다.여러 논문 가운데 일부를 발췌,소개한다. 金佐鎭장군의 항일운동 노선과 정치이념 ‘청산리전투의 영웅’ 백야 김좌진 장군은 대종교(大倧敎)적 민족주의와대종교적 공화주의를 정치적 이념으로 추구하였으며,구체적으로는 단군(檀君)을 정점으로 한 ‘민주적 이상국가 건설’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아울러 김좌진은 대종교인으로 민족주의를 강조하여 국제성을 강조한 사회주의에는 반대했으며,그의 피살은 양대 세력의 분열을 책동한 일본의 계책에 의한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환(수원대) 교수는 10일 개최된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 주최 ‘김좌진 장군의 항일운동’ 주제의 학술회의에서 발표한 ‘북만주에서의 김좌진의 항일독립운동-투쟁노선과 정치이념을 중심으로’제하의 논문에서 이같은 주장을 폈다. 박 교수에 따르면,백야는 철저한 대종교주의자였다.1925년 그가 신민부(新民府)를 조직한 북만주지역은 대종교 신자가 많이 사는 곳으로 그는 대종교를 바탕을 두고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이같은 전통은 북로군정서 시절부터 계속 이어져온 것이었다.그러나 1917년 러시아혁명 이후 1926년 화요회파 중심의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이 북만지역 영안현(寧安縣)에 설치되자 민족주의 색채가 강했던 대종교 계열은 국제성을 강조한 공산주의 계열과 대결양상을 빚게 되었다. 한편 1925년 중국 군벌과 일본군간에 소위 ‘삼시(三矢)협정’이 체결된 후 대종교에 대한 포교금지령과 함께 대종교 세력이 약화되면서 이를 틈타 공산주의자들의 침투가 우려되자 대비책으로 무정부주의이념을 수용했다. 신민부의 후신으로 1929년 결성된 한족총연합회는 권력의 중앙집중을 부정하고 자주적 조직의 연합체를 지향하는 아나키즘 조직으로 공산주의를 반대했다.백야는 독립운동과 반공운동을 효과적으로 전개하기 위해 무정부주의사회를 건설한 것이다.결국 그는 대종교적 민족주의에서 대종교적 무정부주의로 이념과 체제를 전환하였다.그의 죽음은 이같은 ‘노선변화’에서 이미에고된 것이었다. 구한말부터 1930년 그가 피살될 때까지 일생을 항일투쟁에 바친 그를 암살한 사람은 조선인 공산주의자 박상실(朴尙實)이었다.박 교수는 그의 피살은“하얼빈 일본 총영사관의 한족총연합화의 대종교적 민족주의 세력과 무정부주의 세력간의 분열 및 한족총연합회와 공산주의 세력 간의 분열책”이라고추정했다.즉 일제는 북만주지역 한인독립세력을 전멸시키기 위해 화요파의간부 김봉환(金鳳煥)을 사주,하수인 박상실을 이용해 백야를 살해했다는 것. 이를 두고 박 교수는 “일제는 화요파를 이용,백야를 처단함으로써 화요파와 한족총연합회를 이간시키고 아울러 한족총연합회의 무정부주의자와 대종교적 민족주의자의 분열도 촉진시키는 ‘이중효과’를 노린 계책을 꾸몄는데화요파 공산당이 바로 여기에 넘어간 것 같다”고 주장했다. 정운현기자 jwh59@. *국제화시대 한국 민족주의. 국제화·세계화시대에서 자칫 편협한 국수주의 정도로 몰리기 십상인 ‘민족주의’.근대이후 우리역사에서 민족주의는 어떻게 변전(變轉)돼 왔고,또앞날은 어떤 모습일까.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는 11일 세종문화회관 컨벤션센터에서 ‘국제화시대 한국 민족주의의 성찰과 전망’이란 주제로 학술행사를 가진다. 이날 행사에서 첫 주제발표자인 김도형(연세대) 교수는 미리 배포한 논문(‘개항 이후 세계관의 변화와 민족문제’)에서 “우리 근대사에서 민족문제는 봉건체제를 극복하고 제국주의의 침략으로부터 나라의 자주권을 유지하는 과정,즉 한국근대사의 전개과정에서 싹텄다”고 밝혔다.김 교수는 민족문제 인식의 논리를 주로 대외적인 관점을 중심으로 검토하면서,지배층 내부에서 전개된 근대변혁론을 흔히 척사론(斥邪論),양무론(洋務論),문명개화론,변법론(變法論)으로 구분하였다. 김 교수는 이 가운데서 척사론자·개화론자는 민족문제 인식에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척사론자의 경우 세계화를 거부한 한계,개화론자의 경우 사회진화론의 패배주의에 흘러 외세 의존적인 형태를 띠거나 계몽운동에서 동양주의에 함몰되는 위험성을 가졌다고 지적했다.반면에 변법론적 민족주의는유교를 개혁하고 서양의 신학문을 수용,근대적 개혁을 추구한 점에서 가장바람직한 모델이었다고 주장하고 대표적 인물로 단재 신채호를 들었다. ‘일제 지배하 한국 민족주의의 형성과 분화’라는 논문에서 박찬승(목포대) 교수는 “한국 민족주의는 초기 사회진화론·근대주의 등과 결합,국권회복을 위한 실력양성론을 주된 담론으로 시작하였으며 1910년대 들어 민족평등주의 사상이 싹텄고,이는 3·1운동기 민족자결론과 연결돼 확산됐다”고 주장했다.이어 “20년대 자치운동론을 놓고 찬반론이 난무한 가운데 좌우로 분열된 후 결국은 제국주의의 식민주의 논리를 제대로 비판하지 못한채 변질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특히 박교수는 “식민지하의 한국의 근대민족주의는 자유주의·개인주의와 제대로 결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전체주의적 속성을강하게 띠었는데 이는 해방 이후 전제적인 정치권력에 의해 민족주의가 이용당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해방후 민족주의와 관련,서중석(성균관대)교수는 ‘냉전체제와 한국 민족주의의 위상’이란 논문에서 “일제하 민족주의의 과제가 반제민족해방이었다면,해방후 민족주의의 주된 과제는 민족국가 형성과 식민체제 청산,즉 탈식민화에 있었다”며 “국가주의라고도 불리는 분단국가 의식이나 냉전이데올로기에 매몰된 것은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주장했다.따라서 미국의 군사력에 전적으로 의존한 이승만정권의 반통일적 ‘통일론’은 민족주의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아울러 서 교수는 “민족 고유문화의 강조는 민족주의 현상으로 이해될수 있으나 1970년대 이후 유행된 대단군주의는 민족주의에서 일탈한 것”이라고 지적했다.한편 김영한(서강대) 교수는 ‘국제화시대 한국 민주주의의 진로’라는 논문에서 “한국의 민족주의가 나아갈 진로·방향은 ‘통일지향의 민족주의’가 돼야 한다”며 “통일은 민족과 국가가 하나됨과 동시에 냉전체제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는 해방을 의미하기 때문에 민족주의에 내포된 통합과 해방의 논리를 모두 실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운현기자. *한민족의 독립운동과 서대문형무소.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소재 구 서대문형무소(현 독립공원)는 한국감옥사의 대명사이자 한국 근현대사에서 우리 민족 수난사의 대명사이기도하다.일제 하에는 숱한 애국지사들이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으며,해방후에는반독재 민주투사들이 투혼을 삭여야했던 곳이기도 하다. 서대문구청(구청장 이정규)은 10일 오후 2시 독립공원내 독립관 지하강당에서 ‘한민족의 독립운동과 서대문형무소’라는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열었다.이번 학술행사는 서대문형무소의 역사적 의의에 대한 학술적 조명이 전무한 상황에서 처음 열린 행사로 의미있는 행사였다. 이날행사에서 남도영 동국대 명예교수는 ‘서대문형무소의 민족사적 의의’라는 기조발제 논문을 통해 “서대문형무소는 일제 식민지 지배에 대한 우리민족의 수난과 저항이 집약된 곳이자,일제의 잔학상을 세계만방에 고발한현장이며 민족정기를 보여준 성전,민족문화 수호의 생생한 현장”이라고 주장했다.남 교수는 1908년 서대문형무소가 이곳에 설치된 이후 1987년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되기까지 80년동안의 역사적 성격을 정리하면서 우리 근현대사에서 서대문형무소가 차지하는 의미를 재조명하였다. 순국선열유족회가 발행하는 월간지 ‘순국’에 ‘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를장기연재한 후 지난해 이를 단행본으로 묶어 출간한 바 있는 김삼웅 대한매일 주필은 ‘3·1독립운동과 서대문형무소’라는 논문에서 “3·1항쟁으로구속자만 1만8,000여명에 달했는데 이 가운데 서대문감옥에만 3,000여명이수감됐었다”고 밝혔다.김 주필은 3·1항쟁으로 체포돼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거나 이곳에서 순국한 애국선열들을 중심으로 살핀 뒤 “이곳이 일제하 항일운동의 성지”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김 주필은 3·1항쟁 직후 서대문감옥의 간수를 지낸 권영준의 회고록 ‘형정(刑政)반세기’를 비롯하여 손병희 등 수감 애국지사들의 자서전,서대문형무소 전옥(典獄,교도소장)을 지낸 일본인의 회고기 등을 참고로 당시 수형자들의 참담한 감옥생활을 생생히 복원하였다. 이어 성신여대 이현희 교수는 ‘임시정부 수립 이후의 독립투쟁과 서대문형무소’라는 논문을 통해 임시정부 이후 8·15 해방까지 이곳에 투옥돼 옥고를 치른 애국선열들을 집중 조명하였다.이 교수는 “임정요인을 비롯해 독립군,6·10만세의거 주동자,수원고농학생항일운동 주동자,신간회사건 관련자,수양동우회사건,조선어학회사건,단파방송사건 등 국내외에서 전개된 항일투쟁 관련인사들이 이곳에서 옥고를 치렀다”며 “서대문형무소는 비탄의 역사로 얼룩진 현장”이라고 말했다. 애국지사로서 이날 학술행사에 참가한 이규창 선생은 ‘나의 서대문형무소옥중체험기’를 통해 자신의 옥중체험을 생생히 증언하였다.우당 이회영 선생의 자제인 이 선생은 1935년 3월 상해에서 친일파 이용로를 총살,처단한뒤 일경에 피체,본국으로 압송돼 1936년 4월 징역 1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마포형무소로 이감돼 복역중 8·15해방으로 출옥했다.이 선생은미결수로 서대문형무소 복역중 벽을 사이에 두고 옆방의 애국지사와의 통방(通房)통신법 소개를 비롯해 감방내에서의 애국지사와의 교류,재판과정 등 수형생활 전반을 증언했다. 정운현기자
  • 全大 이틀째 이모저모

    이틀째로 접어든 1일 미 공화당 전당대회의 키워드는 단연 ‘국가안보’였다.클린턴 행정부의 우유부단한 군사정책을 성토하고,군사력 강화를 촉구하는 공화당 ‘전쟁 영웅’들의 목소리가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퍼스트유니언센터를 뒤덮었다. ■지난 봄 예비선거에서 조지 W 부시 텍사스 주지사에 패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이날 마지막 연사로 나서 ‘정적’이었던 부시 지사 지지를 호소하며 분위기를 주도.매케인 의원은 부시 지사를 “용기와 인격”을 갖춘 정치인으로 찬양하고 부시 지사를 위한 지원유세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혀 10여차례 박수를 받았다. ■부시 지사의 외교고문이자 핵심 브레인인 콘돌리자 라이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부시 지사는 미군이 세계 평화유지의 최강 방패이자 칼이라는 점을알며 ‘승리’가 더러운 가치가 아님을 믿고 있는 인물”이기에 “군사력을사용해야 할 경우 주저하지 않을것”이라고 ‘힘의 우위’에 바탕한 부시 지사 대외정책을 예고.부시 지사가 당선될 경우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여성 출신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이 될 가능성이 높은 그녀는 “부시 지사가장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려는 ‘불법국가’들의 위협을 그냥두지 않을것”이라며 “새로운 핵전략 및 가장 효율적 미사일방위체제 배치를 이끌어낼수 있는 대통령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 ■이에 앞서 부시 지사의 부친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 걸프전을 총지휘했던 노먼 슈워츠코프 예비역 대장은 화상연설을 통해 클린턴 행정부하의 군사기저하가 심각한 지경이라고 비판.퇴역한 미 전함 뉴저지호 함상에서 연설한 그는 10여년전 걸프전 당시와 현재의 급격히 악화된 육·해·공군 전력을조목조목 비교분석한 뒤 “조지 부시-딕 체니라는 이름의 사령탑을 다시 앉힌다면 군과 국가 모두에 위대한 일이 될것”이라 주장. ■이날 주최측은 공화당 출신 전직 대통령 제럴드 포드,로널드 레이건,조지부시의 안보분야 업적을 소개하는 비디오를 상영해 눈길.부시 지사는 비디오상영뒤 화상연설에서 “세분 대통령의 명예를 지켜나가겠다”고 다짐. 대회장에는 포드와 부시 전 대통령 부부는 물론,알츠하이머로 투병중인 레이건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여사가 남편 대신 참석,박수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날 필라델피아 시내 중심부 대회장 주변에서는 시위대와 경찰의 폭력충돌이 잇달아 최소한 90여명이 체포됐다.시위대는 대부분 사형제도,낙태관련등 공화당 보수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로 경찰의 곤봉에 주먹으로 맞서거나 경찰차량을 훼손하며 일부 정치인들의 대회장 입장을 방해. ■미국의 전례없는 호황을 반영하듯 전당대회 참석자들에 대한 물량지원이쇄도.AT&T,제네럴 모터스(GM) 등 대기업들을 필두로 약 2,000만 달러의 기업후원금이 쏟아져 참석 정치인과 대의원들의 숙식과 편의가 거의 공짜로 해결되고 있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필라델피아 최철호특파원
  • [해외 항일전적지를 찾아서](3)金佐鎭장군 피살지 흑룡강성 海林

    청산리전투를 지휘한 백야 김좌진(金佐鎭·1889∼1930) 장군은 독립운동 공적이나 고매한 인품에 비해 한동안 적절한 평가와 대우를 받지 못했다.기념사업회는 그의 탄생 100주년인 지난 89년에 뒤늦게 결성됐고,충남 홍성군에있는 그의 생가는 92년에야 겨우 복원작업이 이루어졌다.학계의 평가 역시한동안 공백상태로 유보돼 왔었다.1962년 지도자급 독립운동가에게 수여하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1등급)을 추서받은 그가 그동안 홀대받아온 이유는 무엇인가.한마디로 말하면 그의 피살을 둘러싼 ‘의혹’ 때문이었다고 할 수있다. 중국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남동쪽으로 12km 떨어진 곳에는 인구 43만의 해림(海林)이란 작은도시가 있다.취재팀은 이곳에서 백야 김좌진장군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원성희(元聖熙·61)씨의 안내로 백야 김좌진 장군의 흔적과‘최후’를 만날 수 있었다.원 회장은 해림 현장(縣長)과 시장·인민대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고 지난해 정년퇴직한 지역 유지출신으로 김좌진 장군의 기념사업·유적지 보호운동을 펴고 있는 중심인물이다.해림 시내를 빠져나와 비포장길을 1시간 정도를 달리면 우리나라의 면(面)에 해당하는 산시진(山市鎭)에 도착한다.이곳이 바로 김좌진장군이 암살자의 손에 최후를 마친 곳이다.그가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한동안 묻혀 있었듯이이곳 역시 한국인들에게 한동안 낯선 곳으로 남겨져 왔다.그러나 지난해말이곳에 그의 유적지가 조성되어 문을 연 이후 최근까지 500여명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취재팀은 김좌진장군이 1925년 독립군을 이끌고 들어와 개척한 대황구(大荒溝)를 지나 신흥촌(新興村)에서 잠시 차를 멈추었다.원 회장이 우리 일행을안내한 곳은 그가 1930년 1월 24일 피살당한 뒤 임시로 묻혔던 옛 무덤터였다.그의 유해는 1934년 본부인인 오숙근(吳淑根·작고)여사가 고향으로 모셔가 지금 이곳은 묘소 흔적만 남아있다.묘소터 일대는 주변의 밭들과는 달리공터로 남아 있었는데 원 회장은 “이 일대를 꽃동산으로 꾸며 한·중 양국청년들의 우호증진과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흥촌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도남촌(道南村)에는 그의 유적지인 ‘백야 김좌진장군 구지(舊址)’가 단장돼 있다.이 ‘구지’는 지난해 11월 26일 한국측 (사)백야 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와 중국측 백야 김좌진장군연구회가공동으로 단장해 개관한 것으로 대지는 500평 규모다.전통 한국식으로 만든대문을 들어서면 마당 한가운데에 대리석으로 만든 장군의 흉상이 나타나고그 뒤로 금성(金城)정미소를 복원한 건물이 보인다. 이 정미소는 그가 인근 농민들의 편의 제공과 한족총연합회의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동청철도회사의 창고를 빌려서 세운 것으로 처음에는 연자방아를사용하다가 1928년 여름 하얼빈에서 목탄 발동기 중고품을 구입해서 사용했다고 한다.금성정미소 자리가 바로 그가 좌익청년 박상실(朴尙實)에 의해 피살된 곳이다.현재 이곳에는 연구회측에서 세운 순국추념비가 그날의 비극의역사를 전해주고 있다.흉상 좌측에는 그가 순국 직전까지 거주하던 거처와‘팔노(八老)회의실’이 복원돼 있다.이곳 거처는 그가 1927년 7월 903명의독립군과 1,000여 명의 재향군인·가족을 거느리고 이곳에 진주한 후 이듬해 8월부터 피살될 때까지 머물던 곳이다.‘팔노회의실’은 신민부의 뒤를 이어 발족된 한족총연합회에서 그를 보필하던 8명의 원로들이 모여 독립운동을 논의하던 곳으로 1928년 10월 그가 자택 서쪽에 세웠던 것을 복원한 것이다.해림과 목단강 인근에는 ‘8노’의 후손들이 상당수 거주하고 있으나 근거자료 부족으로 한국정부로부터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구지’내 그의 옛 거처는 2m50㎝,팔노회의실은 2m70㎝,정미소는 2m90㎝로 높이가 제각각인데 거기엔 나름의 까닭이 있다.이는 그가 주도한 신민부(新民部)가 창설된 연도(1925년),신민부 본부가 이곳 산시로 옮겨온 연도(1927년),그리고 신민부의 후신인 한족총연합회가 결성된 연도(1929년)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그는 신민부의 군사부 위원장 및 총사령관,한족총연합회의 주석을 역임했다. 히 그는 항일독립운동의 명장 정도로만 알려져 있다.그러나 좀더 다각적인면모로 접근할 필요가 있는 인물이다.충남 홍성지방의 유지 집안에서 태어나 3세때 부친을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란 김좌진장군은 15세 되던 해인 1904년 대대로 내려오던 노복(奴僕) 30여명에게 논밭을 나누어주면서 풀어주고이듬해 서울로 올라가 육군무관학교에 입학했다.1907년 향리로 돌아와 호명(湖明)학교를 세워 90여칸의 자기집을 학교 교사로 활용하였으며,홍성에 대한협회지부와 기호흥학회를 조직,애국계몽운동에 앞장섰다.그리고 1911년 북간도에 독립군사관학교의 자금조달차 족질의 집을 찾아갔다가 붙잡혀 2년 6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는데 1918년 만주로 건너간 이후 무장항일투쟁의 대역정에 돌입했다. 이런 그를 두고 원성희씨는 “김 장군은 항일 명장이기 이전에 반봉건 선각자이자 민족개명의 위대한 교육자”라고 평가했다.특히 그가 서명한 ‘무오선언’에서 ▲한국독립 주장 ▲일본침략 폭로 ▲무력투쟁 선언 ▲독립후 공화국 건립 등을 주장한 것은 그가 “근대적 민주주의의 신봉자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덧붙였다.김좌진연구회 부회장 겸 도남촌 당서기를 맡고 있는한족출신의 차유행(車有行·51)씨는 “김 장군은 한국과 중국 양 민족 모두의 영웅”이라며 “자금사정이 어려워 기념관 건립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편 김좌진 장군에 대한 평가는 국내와 북한은 물론 중국 조선족 자치지역에서 조차도 한동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중국과 북한에서 그를 낮게 평가한 것은 그가 사회주의자가 아닌,공화주의자라는 점,그리고 그의 말기의‘변절의혹’ 때문이었다.그의 ‘변절의혹’은 국내에서도 한동안 유포됐었고,그의 아들 김두한이 반이승만 노선을 걸은 점 등도 한국사회가 그를 홀대한 요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물론 92년 그의 생가복원을 계기로 그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제자리를 찾았지만 그를 살해한 세력과 살해범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중이다. 만주 항일진영의 지도자였던 그를 살해한 사람은 조선인 박상실(朴尙實,본명 李福林)이었다.한때 신민부에서 활동한 이강훈(李康勳·98) 전 광복회장은 자서전에서 “일경에게 약점이 잡힌 김봉환(金奉煥)이 자기부하인 박상실을 시켜 김 장군을 살해했다”며 “당시 김 장군이 아나키스트들을 끌어들여공산주의자들로 부터 원망을 산 것은 사실이나 공산당측에서 김장군을 살해했다고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연변대 박창욱교수의 견해 역시 이와 비슷하다.서울대 신용하 교수는 한 논문에서 “김좌진이 ‘적화방지단’이란 비밀조직을 결성해 공산조직의 침투를 막자 이들 단체의 공산화를 추진하던 공산단체 적기단이 비밀단원 박상실을 시켜 암살했다”며 “적기단이 김좌진을 암살한 뒤 ‘김좌진이 변절했다’는 일제의 모략정보를 빌려 ‘김좌진이 친일파로 변절해 처단했다’고 암살동기를 퍼뜨린 것”이라고 주장했다.그의‘친일변절’ 의혹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자료로 입증된 바 없다. ‘청산리대첩’의 영웅이자 시대의 선각자로 치열한 삶을 살다간 백야 김좌진.그는 92년 생가복원을 계기로 국내는 물론 옛 활동무대인 중국 흑룡강성해림에서 찬란하게 부활하고 있었다. 해림(중국 흑룡강성)
  • 뇌물수수로 12일 퇴임 바이츠만 이스라엘 대통령

    [카이로 연합] “이 나이가 돼서야 사람은 떠날 때를 알아야하고 되돌아보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이스라엘의 건군 영웅이자 열렬한 평화주의자요,뛰어난 역량의 정치인으로 7년간이나 국가원수로 재직한 에제르 바이츠만 이스라엘 대통령(76)이 12일 숱한 영욕을 뒤로 하고 퇴임했다. 바이츠만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 관저를 떠나기전 비서실 직원들에게 “나는 일생동안 여러가지 일들을 떠나왔지만 대통령직이 내가 떠나야 하는 마지막 자리가 될 것”이라며 “모든 굴곡들에도 불구하고 과업을 완수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떠난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그는 간단한 송별식이 끝난 뒤 이스라엘 국기를 흔드는 어린이 수백명의 환송을 받으며 대통령 관저를 떠나 지중해 연안의 항구도시 카이자리아에 있는 자택으로 돌아갔다. 바이츠만 대통령은 앞서 지난 10일 대통령 사직서를 비서실장을 시켜 아브라함 부르그 국회의장에게 제출하는 시간에 자원봉사 대통령상 수상자들을만나,“나는 언제나 어떻게 떠날 것인가를 생각해왔다”며 “자원봉사정신같이 훌륭한 나라의 귀감을 지켜보는게 좋은 퇴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바이츠만은 이스라엘 공군을 창건한 건군영웅으로 공군사령관과 의원,장관,대통령을 잇따라 역임하며 이스라엘 역사상 국민들로부터 가장 많은 존경과사랑을 받아온 정치인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말 유대계 프랑스인 기업가 에두아르드 사루시로부터 45만여달러의 거액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경찰과 검찰의 조사를 받은 끝에 2003년까지인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이날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다.
  • 드라마 ‘태조 왕건’ 작가 이환경씨 인터뷰

    “지금은 후삼국의 정사(正史)위주로 드라마가 진행되고 있어 약간 답답하죠.궁예가 미쳐가고 왕건이 성장할 때 쯤이면 긴박감이 넘칠 겁니다” KBS1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작가 이환경(李煥慶·50)씨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1주일에 500매 이상의 원고를 써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12시간 이상 강행군을 하고 있다.이 드라마를 집필하기 시작한 뒤 과로로 벌써두번이나 병원 신세를 졌다.그렇지만 일생일대의 역작이니 만큼 손을 멈출수는 없다. ‘태조 왕건’의 출생은 순조롭지 못했다.KBS에서는 오래 전부터 고려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하드라마를 계획했지만 제작비,소품 고증,시청률 등의 문제로 방송이 늦어졌다. “‘용의 눈물’덕을 많이 봤습니다.이 드라마가 예상보다 훨씬 인기가 높아 비로소 ‘태조 왕건’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거죠”라고 이씨는말했다. ‘태조 왕건’을 집필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역사적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 점이다.“왕조실록 등 직접적인 기록은 조선시대와 비교해 20%도되지 않는다”면서 “부족한 자료를 보충하기 위해 후삼국과 관련된 석·박사 논문은 물론 일반 대학원생의 논문까지 모조리 찾아 읽었다”고 이씨는밝혔다.그렇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은 늘 불안하다.이씨는 “한참 쓰다보면 방향을 잘못 잡고 있는게 아닐까 걱정될 때가 있다.이럴 때 중심을 잡아줄 만한 사료가 없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인물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져 산만한 느낌을 주는 것도 문제라고 스스로 지적한다.“‘용의 눈물’은 이방원을 중심으로 끌고 나갔기 때문에 이야기 구조가 단순했고 주인공에 집중하기도 쉬웠다”면서 “반면 ‘태조 왕건’은왕건,궁예,견훤을 어느 정도 균형있게 다뤄야 하기 때문에 시청자 입장에서는 마치 여러 개의 방을 한꺼번에 보는 듯한 불편함이 있다”고 말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시청자들의 호응이 높은 것에 대해서는 “참 고마운 일”이라며 껄껄 웃었다. 사실 이씨는 궁예에게 애정이 많다.“왕족으로 태어나 버림받은 데다 한쪽눈까지 멀었다는 점에서는 제일 불쌍하고 기질로 볼 때는 제일 매력이 있다”고 이유를 밝혔다.그러나 ‘왕건’을 포기하지는 않는다.“앞으로는 점점왕건이 중심이 된다”면서 “옷에 스펀지를 넣고 얼굴에 콧수염을 붙여서라도 영웅의 이미지를 만들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라고 웃음 띤 얼굴로 얘기했다. 이씨의 소망은 “좀 쉬고 싶다”는 것이다.82년 KBS TV문학관 ‘갯바람’으로 방송작가로 데뷔한 뒤 10여년이 지나서야 ‘용의 눈물’과 ‘태조 왕건’을 썼고,요즘 비로소 제대로 ‘대접’을 받고 있다. 그만큼 두 작품에 심신을 모두 바쳤다.“‘태조 왕건’의 후속 편으로 광종시대의 이야기를 준비해야 하는데 체력이 따라줄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일단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자 금새 눈이 반짝인다. “요즘 작가들은 작품에 목숨을 걸지 않기 때문에 대개 단명하고 마는 것 같습니다”라면서 “글은 머리가 아니라 ‘신명’으로 쓰는 것”이라고 비판한다.이어 “앞으로 전투 장면이 펼쳐지고 궁예와 왕건의 명암이 교차할 때 쯤 되면 드라마도 신이 날 겁니다”라면서 “그렇게 되면 저도 덩달아 신나게글을 써 나갈 수 있겠죠”라고 활기차게 말했다. 장택동기자 taecks@
  • 여름 독서시장 겨냥 대중소설 출간 잇따라

    여름 더위를 식혀줄 재미있는 국내외 대중소설들이 줄을 잇고 있다.대부분재미라는 덕목을 위해서 재미롭지 못한 세계와 삶의 진정한 현실로부터 눈을 돌리고 있기는 하다.그래서 이 대중소설에서 느껴지는 재미의 서늘한 바람이 산곡간에서 우러나는 자연풍이 아니라 현실왜곡의 1백마력짜리 초대형 에어컨을 돌려 가공되는 찬바람임을 부지불식간에 깨닫고 소름이 돋곤 한다.그러나 대중들은 재미있는 대중소설들을 선호한다.올 여름 인기를 끌 비본격소설들을 모아본다. ■‘6번 염색체’(전2권·열림원)의학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해 지난20년간 세계적 인기를 누려온 로빈 쿡의 18번째 소설. 인간 복제의 실현을 눈앞에 둠에 따라 인간의 장기가 병에 걸리거나 노화됐을 경우 복제 인간의 장기를 이식,생명을 거듭 연장시키는 꿈을 꿀 수도 있게 됐다.작가는 장기를 채취하기 위해 복제 인간을 사육하고 필요시에 생명을 간단히 끊어버리는 미래를 상정한다. 어떤 거대 생물공학 기업이 비밀 프로젝트를 통해 인간의 6번째 염색체를 딴영장류에 옮겨심어염색체상으로 인간과 흡사한 새 동물을 만든다. ■‘엔더의 게임’ ‘사자의 대변인 ’(시공사)미국에서 인기있는 공상과학소설가 올슨 스콧 카드의 엔더 위긴 시리즈의 일부. 먼 미래의 지구가 무대로 외계종족과 싸우기 위해 어린 영웅 전사가 길러지고 그 후보로 뽑힌 소년 엔더는 가족과 격리되어 훈련을 받는다.가장 무서운 살상 병기로 키워진 그는 ‘게임’으로 알았으나 실제 상황이었던 어떤 전투를 통해 적 종족을 몰살한다. ‘엔더의 게임’은 의사소통의 부재를 그리고 있으며 3,000년 뒤의 이야기이나 주인공 엔더가 그때까지 죽은 자를 위해 말하는 통로로 존재해 있는 ‘사자의 대변인’(2권)은 그 가능성을 펼친다. ■‘악의 환영’(2권·문학세계사)러시아에서 93년부터 22권을 차례로 발표해 2,000만부가 팔렸다고 하는 베스트셀러 추리작가의 시리즈 일부.57년생인 여류작가 알렉산드라 마리니나는 경찰조직 심리분석가 출신이며 시리즈 또한 60년생의 여자 형사가 주인공이다.이번 작품은 유전자 조작 실험으로 태어난 아이들을 어머니는 괴물로,범죄조직은 횡재수단으로 여기는 데서 시작된다. ■‘코리아닷컴’(2권·해냄)500만부 가깝게 팔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의 작가 김진명이 인터넷에다 ‘민족주의’ 당의정을 입힌 소설.주인공은세계 문명의 이면에 공통된 수의 비밀이 숨겨져 있으며 이어 고도의 문명을갖추었던 어떤 대륙이 우성 인간만 살아남게 한 실험을 하다 벌로 지구상에서 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작가는 인터넷을 제2의 우성인간 실험으로 몰고가면서 인터넷 문명을 주도하는 것은 물론 해결하는 비결로 천부경이라는한민족의 옛 문건을 제시한다. ■‘소설 삼국지’(5권·동방미디어)‘소설 토정비결’의 작가 이재운이 기존의 삼국지를 다소 비틀어 자기 식으로 썼다.유비나 제갈 량 대신 조조을삼국지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는 유행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조조 동탁 여포 등을 한족이 아닌 동이족 티벳 몽골 여진족 등의 북방민족으로 치켜세우고 있다. ‘악한’ 조조가 동이족으로 영웅시될 뿐 아니라 기마유목의 북방민족이 거짓과 음모와 술수의 한족을 물리친다는 것이다.유비와 공명이 배신과 협잡을 일삼은 한족의 대표로 그려진다. ■‘강희대제’(3권·출판시대)중국 작가 얼위에허(二月河)의 ‘제왕삼부곡(帝王三部曲)’ 시리즈의 제1부.17,18세기 청나라 전성기의 강희,옹정,건륭황제를 차례로 다룬 이 역사소설 시리즈는 1억권이 팔렸다고 한다.만주족의청나라 기틀을 다진 강희제는 8세에 제위에 올라 61년간 통치했다. 김재영기자 kjykjy@
  • [2000 美 대선](4) 핫이슈 정책 대결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대통령선거 뿐 아니라 미국내 어느 선거에서든 후보들은 낙태와 총기 문제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노선을 정확히 밝혀야 한다.이 두가지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보였다가는 당선을 기대할 수 없다.그만큼 미 유권자들에 있어 이 두가지는 긴요한 이슈이다. 지난달 28일 연방대법원이 임신 말기 때는 낙태를 시킬 수 없다는 이른바‘부분낙태’의 금지를 규정한 네브래스카주 법을 위헌이라고 판결하면서 낙태 문제는 다시 미국 사회의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낙태논쟁은 연방대법원이 73년 헌법에 규정된 인권은 탄생과 함께 시작된다고 판결한 ‘로이 대(對)웨이드’ 사건 이후 시작됐다. 기독교인들의 국가인 미국에서 낙태는 금기시됐었지만 여성인권 신장에 힘입어 낙태 옹호론자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현재는 말기의 낙태만을 불법화하고 임신 초기와 청소년 임신 등의 경우 산모의 건강과 관련,현실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법적으로는 이같은 현실성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낙태를 위한 보건소(Parenthood Clinic)에서는 오늘도 이를 반대하는 집단의 농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반적으로 민주당은 현실을 고려해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고어 후보 역시 이에 긍정적이다.그는 “언제나 여성의 선택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는가 하면 “병원 접근의 자유법안을 지지한다”고 시술소로의 접근방해를 금지하는 법률에 찬성한다. 반면 부시 후보는 일관되게 낙태 반대 성향을 보인다.그는 “어린이는 태어났든 그렇지 않든 보호되야 한다”거나 “공화당 아무도 부분낙태에 찬성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미 수정헌법 제2조에 명시된 총기 휴대 권리로 대별되는 총기문화는 미국역사가 시작된 이래 계속된 논쟁이지만 어느 누구도 앞장서 지지하거나 반대하지 못하는 이슈이기도 하다. 1800년대말 캔자스주 다지시티에서 총기 휴대를 금지,이에 반발한 무리들과 대결해 물리친 뒤 영웅이 된 와이어트 어프라는 보안관도 있었지만 총기는언제나 미국민들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1939년 연방대법원이 총기 소지는 관리가능한 사람에 한해 허용되며,총기소지를 다른 사람에게과시할 수 없다고 판시,일부 제약을 가했지만 소지 자체가 금지되지 않는 한 문제는 계속 발생할 것이다. 현재 미국의 모든 가구 가운데 총을 지니고 있는 가구가 40%를 넘어섰다.한 해에 총기사고로 숨지는 어린이들만도 1,500명을 넘는다.여론조사 결과는미국인 81%가 총기 휴대에 최소한의 제약을 가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57%가총기 휴대를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공화당에만 지난해 30만달러,올해 로비자금으로 수백만달러를 쓰는전미총기협회(NRA)는 모든 영향력을 동원,총기 규제나 휴대 폐지를 적극 막아내고 있다. 부시는 “총기에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비용을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고 언급,자신의 입장을 잘 드러냈다. 한편 고어는 클린턴 정부의 총기규제법안에 적극 찬동하고 있다. hay@. *다시 불거진 ‘잠들지 않는 논쟁'. [워싱턴 최철호특파원] 낙태 반대론자들의 입장은 모든 임신말기 낙태까지금지돼야 한다는 것이다.“말기 낙태 역시 살인이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이들은 산모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라도 말기 낙태는 금지돼야 한다는 강경한 주장을 펴고 있다. 연방대법원이 5대 4의 비율로 말기낙태를 금지한 네브래스카주를 비롯한 30개주의 법률을 “임신을 중단시키려는 여성의 헌법적 권리를 침해했다”고판시했음에도 이들은 다시한번 반낙태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난 4월 연방하원도 287대 141로 부분낙태,즉 임신말기 낙태를 금지하는법안을 통과시켰지만 클린턴 대통령은 이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의회가 2차례나 입안한 법을 거부하면서 “산모의 건강을고려한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 한 계속 거부할 것”임을 밝히기도 했다. 반낙태론자들은 최근에는 저소득층 여성들이 말기 낙태를 위해 의료보장제도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총기관련 최근의 논쟁은 각종 기술적 장치로 총기 주인이 아니면 작동하지않는 이른바 ‘스마트 건’의 장치와 방아쇠 잠금장치를 의무사항으로 규정해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전미총기협회(NRA)는 이들을 의무사항으로 할 경우 총기 가격을 높여 소비자들에 불리할 것이란 주장이며,찬성론자들은 안전을 강조,반드시 의무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난해 콜롬바인 고교 학생 총기난동과 미시건주에서 한국인 유학생을 비롯한 6명이 사망하는 등 잇따른 총기사고 이후 클린턴 대통령은 1,000만달러의 기금을 충당,스마트건 개발에 앞장서왔다. 그 결과 현재 지문인식,손잡이 걸쇠,다이얼 잠금장치 등 여러 종류의 안전장치가 개발됐지만 비용 문제로 의무화하는데 어려움이 놓여 있다. 한편 총기에 대한 반대 여론은 최근 계속 높아져 메릴랜드주가 지난주 오는 2003년까지 모든 총기에 안전장치를 의무화하는 법을 채택했는가 하면 뉴욕주는 총기규제에 소홀한 혐의로 총기업자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 [김삼웅 칼럼] 하늘이 준 기회 놓치지 말자

    서기 7세기 초의 삼국정립기, 고구려·백제·신라는 끝없는 영토싸움과 보복전으로 바람잘 날이 없었다. 고구려가 백제를 치고, 백제가 신라를 치고,신라가 고구려를 치는, 물고 물리는 동족상쟁이었다. 서기 642년, 신라의 김춘추는 숙적인 고구려를 끌어들여 백제를 칠 방략을세우고 결사의 각오로 고구려 수도 평양을 방문, 연개소문과 담판을 벌였다. 양국간의 평화공존과 공동출병하여 백제를 치자는 협상이었다. 그러나 고구려는 신라가 점령한 옛 고구려 땅을 먼저 돌려줄 것을 요구하여 협상은 결렬되고 김춘추는 억류되었다. 간신히 탈출한 김춘추는 당나라로 달려가 충성을 맹세하고 당군을 끌어들여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역사에 가정이 부질없다지만, 만약 김춘추와연개소문의 협상이 잘 진척되어 양국 또는 삼국간의 평화공존이 이루어졌다면 당나라의 백제·고구려 침공은 어려웠을 것이고, 그랬다면 고구려의 광대한 영토와 백제의 우미한 예술문화는 오롯이 한민족의 역사로 이어졌을 것이다. 7세기의 두 영웅, 김춘추와 연개소문의 소아병적인 아집과 독선, 사대주의와 적개심으로 대륙을 빼앗기고 쪼그라진 반도국가로 전락하는 비극의 단초가 되었다. 역사에 우연은 몰라도 기적은 없다. 기회가 있을 뿐이다. 기회를 포착하고선용하는 것은 당대 지도자의 역할이요 국민의 몫이다. 주어진 기회를 선용하지 못하면 역사의 보복을 받는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치고 골육싸움과 공리공담으로 민족의 기상과 역량을 소진시켰던가. 김대중대통령과 김정일국방위원장의 평양회담은 한민족 현대사는 물론 동북아 질서를 바꾸게 될 일대 ‘사변’이다. 전쟁과 증오와 적개심으로 가득찬민족 성원간의 해원상생(解寃相生)의 씻김굿이요 평화헌장이며 통일의 장전이다. 아무리 냉전논리와 분단의식에 젖은 사람일지라도 정상회담의 성과와 평양에서 보여준 화해의 모습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쟁포기, 민족자주,이산가족 상봉, 통일방법 접근, 교류협력 등이 차질없이 진행되도록 내부개혁과 역량결집이 시급하다. ‘로마제국흥망사’를 쓴 E.기번은 “개혁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외부에서 오는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정상회담의 합의사항을 실천하고 한반도의 새질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내정개혁과 국민화합을 도모하는 내부정비가 서둘러져야 한다. 그동안 대통령의 관심이 정상회담에 집중되면서 경제문제 등 내정에 이완현상이 나타나고 개혁도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정부가 햇볕정책, IMF극복, 성공적인 4강외교 등 평가받을만한 일을 하고도 총선결과에서 보듯이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이들 성과를 뒷받침하는 내정의 취약성때문이다. 특히 옷사건과 언론문건사건등 집권층 일부 인사들의 절제되지 못한 언행으로 인해 민심의 이반현상을 가져왔다. 여기에는 물론 개혁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정치세력과 보수언론의 발목잡기도 책임이 따르지만 ‘원인제공’은 집권층의 몫이다. 민주화와 DJ집권에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무임승차’한고위직들이 문제다. 국난극복과 개혁에 열과 성을 다한 사람도 없지 않지만,개중에는 임명권자 눈치보기, 제사람 심기, 보신주의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개혁보다 현상유지, 자기희생보다 살아남기에 더 ‘능력’을 발휘한다. 이들 때문에 정권교체를 신앙처럼 기대했던 국민에게는 배신감이요,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이다. 개혁이 시급한 분야가 산적해 있다. 무역적자로 경제기조가 흔들리고 당장의 ‘의료대란’, 심화되는 빈부격차와 지역주의는 통일시대를 맞는 우리 정체성에 심각한 타격을 주게 된다. 사회지도층의 비리는 국민에게 허탈감과 배신감을 안겨준다. DJ정부에 참여한 고위직들은 ‘명리(名利)’를 탐해선 안된다. 명리라는 말이 붙어다니지만 명(名)과 이(利)가 붙는 것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공직은 명을 지키는자리이지 이를 탐하는 곳은 아니다. 대통령은 명리만을 추구하는 고위 공직자들을 퇴진시키고 개혁인사를 중용하여 남북화해시대 ‘새질서’의 기회를활용해야 할것이다. 언론·지식인들도 통일국가 건설을 위한 ‘남북대화’에 건전한 비판이 아닌 사사건건 딴죽걸기나 어깃장으로 하늘이 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 김삼웅 주필
  • 각국 언론 보도내용 “한반도 평화의 새시대 맞았다”

    [워싱턴 도쿄 파리 외신종합]각국 언론들은 남북공동선언 합의 소식을 일제히 긴급뉴스로 내보내며 이를 한반도 화해,통일을 향한 징표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향후 남북한간 이견의 소지가 남아있어 통일까지는 오랜 시일이걸릴 것으로 관측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남북 정상회담 소식을 14일로 이틀연속 1면 머리기사로 올리며 “민주주의 영웅적 투사로 지위를 굳힌 김 대통령이 남북한간 대화를 복원함으로써 한국 현대사에 거대한 변화의 힘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월스트리트저널은 그러나 한국측이 미국과 일본의 가장 큰 관심사인 북한 미사일 개발과 핵무기 프로그램 의혹에 대해 북한에 압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CNN,ABC 등 방송들도 반세기의 적대를 청산하고 통일로 가기위한 초석이 놓였다고 평가하면서도 주한미군 문제 및 북한 장거리 미사일,핵개발 등 두개의 전략적 관심사가 심도깊게 다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본 아사히(朝日),요미우리(讀賣)등 일본 주요신문들은 15일 5개항에 걸친 남북공동선언을일제히 1면 통단으로 보도,세계사적 뉴스로 평가했다.요미우리는 ‘김총서기, 방한을 수락’ 제목의 기사에서 “한반도는 긴장완화와 남북 평화공존,나아가 통일까지 전망하는 신시대를 맞이했다”고 논평했다. □중국 중국 언론은 환영과 지지를 표했다.신화통신은 합의문 서명 직후인 14일 오후 8시12분(현지시간)부터 ‘역사적 합의서’,‘원칙성 합의서' 등의표현으로 합의문의 역사성등을 강조했다. □유럽 프랑스 TF1-TV는 14일 남북 공동선언이 “화해의 조심스러운 시작”이라고 평가했다.르몽드 15일자는 정상회담의 가장 두드러진 결과로 ‘수수께끼 지도자’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이미지 변화를 꼽았으며 독일의 쥐트도이체 차이퉁,슈피겔 등은 “통일의 초석”이라는 점에 의미부여했다.영국 BBC도 공동선언 내용과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 합의 소식 등을 비중있게 전했다.
  • 홍성원 6·25대하장편「남과북」전6권으로 改作

    작가 홍성원이 23년전에 완간했던 ‘남과 북’(전 6권·문학과지성사)을 개작해 다시 내놓았다. 지난 77년초까지 월간 ‘세대’에 5년2개월동안 ‘6·25’란 제목으로 장기연재됐던 이 소설은 한국전쟁 발발 직전인 1950년 4월부터 휴전이 성립된 직후의 1953년 9월까지 3년 반 기간을 다룬 6·25 대하드라마다.작가는 1만 장이 넘는 원고의 보완과 개작을 위해 꼬박 1 년 간의 시간을 투자했다고 개정판 서문에서 밝힌다.묵은 문장을 손질하고 냉전 시대의 ‘사나운 표현’들을 교체하고(북괴를 북한,괴뢰군을 인민군 등으로),새로운 주인공을 등장시키고,중복된 일부 내용은 과감히 삭제했다는 것이다. 작가 말대로 ‘남과 북’은 냉전 체제의 이데올로기가 서슬 푸르게 살아 있던 1970년대에 씌어진 작품이다.이미 77년 2월의 초판 후기를 통해 작가는북한에 대한 표현의 상한선이 ‘감상적인 민족주의 언저리거나 당국에 의해철저히 도식화된 반공 가이드라인 내’로 제한된 사실을 적시했었다.그후 20여년이 지나 “‘한국 전쟁’을 소재로 다룬 작품에서 전쟁의 절반을 담당한 북한 쪽 이야기를 빼버린다는 것은,표현상의 불평등 못지않게 공평하지 못한 일” 이며, “작품 ‘남과 북’이 한국 전쟁을 제대로 그리는 데 한계가있었다” 고 고백하면서 개작에 나선 것이다.작가는 북한 쪽 주인공을 작품에 새롭게 등장시킨 점을 이번 개작의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새로운 등장인물은 ‘자본주의 압제로부터 인민을 해방하여 사회주의 조국 통일을완수한다’는 북한측 전쟁 목표와 관련해 원래의 꿈을 잃지 않으려고 혼신의노력을 다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주의자다. 그러나 이번 개정판의 이같은 보완은 말 그대로 보완일 따름이다.작가가 초판부터 언급한 ‘남과 북’의 본질적인 한계가 이 보완으로 극복되는 것은아니다.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장점과 매력은 이로 해서 훼손되지 않는다.변화의 급류가 굽이친 20여년이 흘렀지만 이 소설은 아직도 읽고 주목할 가치가 있다.비록 제목과는 달리 남한 쪽에 꽉 붙잡혀 있긴 하지만 홍성원은 6·25의 ‘전모’를 드러내고자 한다.작가라면 누구나 가질 것같은이같은 목적의식은 그러나 20년 전에도 드물었고 지금도 흔하지 않다. 6·25는 수많은 한국의 소설가에게 심연의 대광맥이지만 그 채광의 결과물을 보면 가치 이전에 너무 개인적이거나 이데올로기적인 편향성을 어쩌지 못한다.품위를 잃지 않아 온 최초의 전업작가라고 할 수 있는 작가 홍성원은이와 달리 요컨대 6·25를 휼륭한 이야기 소재로서 접근한다.물론 작가는 ‘남과 북’이 6·25를 졸업하기 위한 졸업 논문과 같다고 말하고 6·25는 하루속히 졸업해야 될 우리 모두의 고통스런 과제라고 덧붙이고 있다.그러나작가는 6·25를 우리의 역사적인 개별 사건으로서보다 폭력과 자기 파괴의극단적인 현장인 인간의 전쟁으로 보려고 노력한다.역사·이데올로기 우선시대에는 역사성이 부족하고 경박·통속적이라는 평을 면치 못해 왔지만 그런과잉시대가 지나간 지금 ‘전방위적 이야기꾼’이 하는 ‘남과 북’의 스토링텔링은 이번 개작을 맞아 다시 주목할 가치가 있다. 6·25에 대한 이 작품의 ‘총체적 조망’을 확신하는 작가는 “30여 명의주인공들이 등장하는데 국군·미군·중공군 등 각기 다른 국적의 여러 군인들을 비롯하여,한국 기자와 미국 기자·학자·상인·지주·의사·브로커·양공주·전쟁 고아·건달 등 온갖 계층의 사람들이 저마다 전쟁에서 살아남기위해 자기의 최선을 다한다”면서 “영웅도 없고 승자도 없이 오직 패자만을 다량으로 생산한 이 전쟁은,바로 그 패자들의 눈을 통해서만 황량한 전체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전자책(e-book) 동시출간. 김재영기자 kjykjy@
  • [각료 에세이] 열린 마음으로/ 부활하는 장보고

    학창시절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라는 주제를놓고 학우들과 토론을 벌인 일이 생각난다. 그런데 요즘 TV드라마 ‘허준’이나 ‘태조왕건’을 보고 있노라면 영웅은후세 사람들에 의하여 그 인물의 가치가 재조명·평가될 때 현세에서도 살아숨쉬는 영원한 영웅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든다. 장보고 대사는 신라인으로 전 세계 무대나 다름없는 당나라 일본 등 동북아시아 바다를 제패했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아라비아에 이르는 해상교역 항로를 개척하여 해상왕국을 건설하였다.그러나 신라조정과의 권력 다툼 와중에서 1170여년 전에 역사의 뒷길로 사라졌다. 최근 장보고에 대한 국내외적인 연구가 진행되면서 사회 각 영역에서 해상왕 장보고를 재조명·평가하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장보고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도처에서 장보고가 부활되고 있음을 목격하게 된다.군인의 상징으로서 장보고 함,경영의 상징으로서 장보고뮤추얼펀드,상업의 상징으로서 인터넷 장보고 쇼핑몰을 비롯하여 심지어 횟집이름까지 등장하고 있다.앞으로 장보고라는 이름이 점차 많이 회자될 것이다. 우리 학자도 많은 연구를 해왔으나 외국 학자로서 역사 속에서 묻혀져있던 장보고를 영웅의 반열에 끌어올린 이는 미국 하버드 대학 명예교수를역임한 라이샤워 박사다.그는 장보고 대사가 ‘동북아 상업제국의 무역왕’으로서 유럽과 중국 연안에 한정되어 오던 국제무역을 세계화한 역사적 인물로 평가하고 있다. “억울하게 죽었으되 서러워 하지 않는다.지워진 역사를 서러워하지도 않는다.다만 천년을 닫힌 바다를 서러워 하노라.내 바다 열었던 뜻 모름을 서러워 하노라.누가 바다를 다시 열랴.우리의 생명줄을 누가 당기랴,바다를 열고,바다로 나가자,바다를 열자,오대양을 열자” 뮤지컬 장보고의 마지막 대사 장면이다. 우리가 해상왕 장보고를 역사 속에서 찾아내어 그의 업적을 재조명·평가하는 것은 그가 건설했던 해상왕국의 업적을 현재에 되풀이 하거나 되돌아 보자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 우리의 영웅 장보고를 통해 1,200여년 전 바다를 무대로 정치와 경제를 분리하여 자유무역과 세계주의의 이상을 실현한영웅의 이상과 기상을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 WTO 신자유무역주의 시대의우리 민족의 사표로 부활시켜 5대양 6대주로 뻗어나가는 우리 민족의 해외개척 정신을 드높이자는 데 있다. 새천년에는 허준,태조왕건,장보고 뿐만 아니라 과거 역사상 위대한 우리의영웅들이 우리 민족의 진정한 사표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李恒圭 해양수산부장관
  • 이도학교수 신간 ‘궁예 견훤 왕건과 열정의 시대’서 강조

    궁예는 패륜아가 아니다.그는 도탄에 빠진 백성에게 미륵불의 도래를 예고하며 현세에 이상향을 이루려고 한 급진 개혁주의자이다. 진훤(견훤)은 역사의 패자(敗者)다.그렇다고 해서 용렬하거나 무능하지는 않았다.그도 왕건처럼 연호를 사용했고 대왕을 칭했다.다만 승부에서 졌을 뿐이다. 왕건은 물론 한반도 재통일을 이룰만큼 걸출한 위인이다.그렇지만 그를 성인(聖人)처럼 미화한 것은 역사가 이긴 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다. ‘백제 고대국가 연구’‘새로 쓰는 백제사’등 백제사 관련 역저들을 잇따라 발표해온 이도학교수(국립 한국전통문화학교 문화재관리학과)가 이번에는 후삼국사를 정리했다.최근 발간한 역사교양서 ‘궁예 진훤 왕건과 열정의시대’(김영사)가 그것. 후삼국시대는 우리 역사연구에서 가장 소외된 시기였다.그동안에는 통일신라의 종말 또는 고려의 탄생과 얽혀 부수적으로 언급될 뿐이었다.따라서 이교수의 이번 저서는,논문의 정밀한 틀을 벗어났다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 시대를 총체적으로 조망한 첫 역사서란 점에서 가치가 높다.게다가 TV드라마와 각종 소설류 발간으로 ‘왕건 붐’이 일어난 가운데 대중에게 그 시대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주목받을 만하다. 이교수는 후삼국 시기를 “우리나라 역사상 단연 박진감 넘치고 생기 가득찼던 시대”라고 꼽는다.그 까닭은 “천년왕국 신라를 지탱하던 골품제의 사슬이 끊겨 신분이나 혈통이 아닌 능력이 중시됐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따라서 “민족의 에너지와 개인의 역량을 유감없이 발산한,그래서 궁예 진훤 왕건이라는 걸출한 영웅 3명이 역사의 전면에 선 시대”라고 강조한다. 이교수는 세 영웅의 삶의 궤적을 섞어짜가며 후삼국사를 재구성한다. 신라 왕자로 태어난 궁예는 승려로 떠돌며 민초들의 곤궁한 삶을 체험한다. 그는 지방호족들의 수탈로부터 농민해방을 선포했고 기존 불교의 폐해를 통렬하게 비판했다.그는 하층 농민들에게서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궁예와자웅을 겨룬 진훤은 경북 문경의 농민 출신.군인의 길을 택한 그는 전남 순천만(灣)에서 근무하며 해적소탕에 발군의 공을 세워 기반을 닦았다.이 시기 그는 순천만을 통해 오가는 당나라 무역선,유학생·유학승에게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키운다. 한때 통일신라 영토의 3분지2를 차지한 궁예가 결국 왕건에게 쫓겨난 원인은 무엇일까?궁예는 처음 ‘고구려 부흥’을 내세웠으나 세력이 확대되자 백제와 신라계까지 포용하려고 했다.또 저항세력에게는 피의 숙청을 단행했는데 이같은 일들이 황해도와 경기도 북부의 옛 고구려 출신 호족들을 불안케 했다.이들이왕건을 중심으로 뭉쳐 반기를 들었다는 게 이교수의 해석이다. 이밖에 ▲왕건과 진훤이 황제(또는 대왕)를 칭했다▲통일신라는 알려진 것보다 통합이 덜 된 상태였다▲왕건은 신라에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등 새 주장이 많이 담겨 있다.아울러 이 시기와 관련한 갖가지 편견에 대해서도 예리한 칼날을 들이댔다. 딱딱한 논문 형식을 벗어나 때로는 소설처럼,역사기행처럼 자유롭게 풀어쓴이 글은 그러나 문헌과 고고학의 탄탄한 토대 위에서 서술됐다.지은이가 직접 찍어 수록한 현장사진들은 세련되지는 않되 그의 부지런함을 보여주는 증표이기도 하다. 이용원기자 ywyi@
  • 근대계몽기 학술·문예사상 집약

    1894년 갑오경장에서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기기까지 한국사회 지식인들은 나라를 되살리고자 온힘을 기울였다.이는 교육·출판·언론·문학·산업 등 여러 부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그 노력은 비록 큰성과를 거두지 못했지만 지금껏 학술사에 소중한 유산으로 남아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나온 주요 저서의 서문과 발문을 한데 모은 책‘근대계몽기의 학술·문예 사상’이 최근 나왔다(소명출판,값 2만원). 책 첫머리에 나오는 서문이나 맨뒤에 붙이는 발문에는 발간 취지가 집약돼있으므로 서발문만 보아도 편저자의 의식을 알 수 있다.따라서 ‘근대계몽기…’는 당시 한국사상을 원형 그대로 집약한 셈이다. 수록된 저서는 모두 77종으로 그 줄기는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하나는 ‘옛것을 몰아내고 새것을 널리 퍼뜨린다’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이었다.이는교육을 비롯해 여성·정치·법률·사회사상 등에 폭넓게 퍼졌다. “오늘날에는 여권이 해방되니 여자의 배움이 남자의 배움보다 시급하다”(이원긍의 ‘초등여학독본’)는 주장이나 “천자문과 동몽선습으로 자제들을가르치며 나아가서는 통감·사략 등에 이르니 이런 유의 책들은 천부의 자유를 포기하고 노예 습성을 양성하는 것”(현채의 ‘유년필독석의’)이라는 비판이 강력하게 제기됐다. 또 하나의 줄기는 우리 전통에서 부국강병의 방도를 찾는 것이었다.정약용의 ‘흠흠신서’‘목민심서’‘경세유표’와 박지원의 ‘연암집’등 실학자의 저작들이 이때 인쇄,유포됐다. 성균관 대사성을 역임한 민치헌이 ‘흠흠신서’ 발문에 쓴,“황제(고종)께서 권장함에 힘입어 (출판사인) 광문사를설치했는데 이 책이 가장 먼저 나왔다”는 구절은 대한제국이 실학서 발간에큰 관심을 가졌음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국내외 역사서와 영웅들의 전기를 국민에게 알려 흥망(興亡)의 교훈을 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일도 계몽운동의 큰 몫이었다.신채호가 지은 ‘을지문덕’ ‘이순신전’이라든지 번역서인 ‘서사(스위스)건국지’ ‘애급(이집트)근세사’‘월남망국사’들을 앞다투어 출간했다. 한시대 사상의 흐름을 알기 쉽게 전달하기란 그야말로 쉽지 않다.그러나 이책은 서발문을 통해 접근함으로써 무거움을 벗어버리는 데 성공한 것으로보인다.귀중본들을 한데 모아 자료로서의 가치도 뛰어나다. 어문,소설,역사,지리,정법(政法)·사회,과학·기술 등 6개 분야로 구분해수록했고 각 저서의 내용을 해제와 번역,원문 순으로 소개했다.원문은 대부분 한문 또는 국한문혼용체이다.이밖에 책자 77종 전부와 당시 대한매일신보등에 실린 신간서적 광고를 원색화보에 담았으며,부록으로 저자 및 서발문필자의 약력을 소개했다. 편역한 이는 임형택 성균관대 교수 등 민족문학사연구소 회원 4명이다.연구소는 여러차례 세미나를 열어 수록대상 저작을 선정했다. 이용원기자 ywyi@
  • 이진우, “차별화된 사극으로 ‘허준’과 대결

    “민중의 비참한 상황을 목격하며 다산이 마음 깊이 간직했던 이상사회에의꿈을 제대로 표현해 보려 합니다.” KBS 2TV가 5월1일부터 방송할 일일사극 ‘소설 목민심서’(밤9시20분)에서정약용을 연기하는 탤런트 이진우(32)를 18일 용인 한국민속촌 촬영장에서만났다.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점이나 구중궁궐을 벗어난 민중사극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허준’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는 대목.이날 촬영현장에서도 관람객들은 “허준이다”를 연발했다. 정작 이진우는 “교양 전문PD들이 만들고 극적 흥미보다는 역사적 교훈에 충실한 드라마인만큼 다르게 보아달라”고 주문한다.남성우 주간은 “가공인물인 비안을 넣어 극적 갈등을 보강하기는 했지만 ‘허준’처럼 삼각관계로 꼬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세상사에 담쌓은 영웅의 면모를 부각하는 데 치중한 ‘허준’과 달리 지식인 면모에 아들을 잃고 대성통곡하며 아내를 그리워하는 인간적인 정취를덧붙여 나가겠다고 했다. 다산을 탐구하는 현재의 작가로도 이중출연하는 이진우는 다큐와 드라마를‘퓨전’하는 다리 구실까지 하는 셈이다. 그에게는 이번이 세번째 사극이다.작가 정하연의 표현대로 귀골상이어서 ‘조광조’의 중종과 ‘왕과 비’의 성종으로 나왔으며 이번엔 개혁을 외치다유배당하는 지식인 역을 맡게 됐다.전작들에서 매번 호흡을 맞춘 김성령과도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연기한다. 그는 요즘 한창 정약용에 빠져 있다.소설 ‘목민심서’는 물론 정약용과 관련된 서적을 닥치는대로 읽고 틈날 때마다 인터넷에서 관련 사이트를 찾아신선한 정보를 퍼올리는 재미도 느낀다고 한다.서울대 국사학과 교수에게도자문을 받고 있다. “그분은 천재였던가 봐요.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18년동안 유배생활에 500여권의 책을 쓸 수 있겠어요. 한국판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나 할까요.” 지난 89년 MBC 19기 탤런트로 연기세계에 발을 들여놓아 탄탄한 연기경력을쌓아왔다.말수가 적고 진지한 눈빛까지 갖춰 고뇌하는 지식인상을 소화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귀공자풍의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공수부대 출신. 임병선기자 bsnim@.*'목민심서'만드는 사람들. ‘목민심서’를 만드는 사람들은 기존 드라마 제작진과 다르다. 기획은 ‘역사스페셜’로 다큐 프로그램의 전형을 보여준 남성우 TV1국 주간. “편성 아이디어 차원에서 나온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채택되는 바람에 준비하느라 거의 날밤을 새우다시피 했습니다.” 연출은 ‘신세대 보고-어른들은 몰라요’와 ‘학교Ⅱ’를 맡았던 신재국PD등 4명이 돌아가며 1주씩 담당한다.촬영이 없는 날에는 작가와 극 전개를 놓고 토론을 벌인다.그만큼 ‘연구의 내공’이 요구된다. 수원 화성의 거중기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다산이 마마를 치유하는 과정들을섬세하게 그려내 역사에 수놓아진 과장과 영웅화의 ‘덧칠’을 벗겨내겠다는의지다. 역시 ‘신세대…’와 ‘학교’에서 호흡을 맞춘 이향희 등 3명이 돌아가며집필한다. 작가 이씨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허준’과 달리 시대에 도움이 되는 드라마를 만든다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겁니다’라고 자신있게 한마디를 보탠다.
  • 도봉 ‘역사인물 알기운동’ 펼친다

    서울 도봉구가 도봉에서 살았거나 도봉과 직접 관계가 있는 역사인물을 찾아 그들의 사상과 철학,역사적 행적을 되짚는 ‘역사인물 바로 알기운동’을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임익근(林翼根) 구청장은 최근 “자치구 공무원은 지역의 역사적 인물을 바로 알 필요가 있으며,이를 통해 공복(公僕)으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함은물론 현실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며 이 운동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역사적 인물을 통해 지역의 정체성을 바로세우고 ‘도봉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하며 이들의 역사적 공과(功過)를 따져 올바른 평가근거를 제공하자는 취지에서다. 도봉구는 이에 따라 개별 인물에 정통한 사학계 인사를 초빙,공무원과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강좌를 월례화하기로 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 학계 원로 또는 저명인사의 추천을 의뢰했다. 3월에는 국사편찬위 이영춘(李迎春) 편사연구관을 초빙해 우암 송시열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이와 함께 관내 연고지나 공원 또는 공한지 등 적지를 찾아 학계의 평가와고증을 거친 인물의 상(像)을 세우는 등 20여곳에 쌈지형 역사테마공원도 조성할 계획이다. 연말에는 전문가의 강의내용과 공무원들의 역사인물 토론회 자료를 묶은 ‘도봉의 역사인물’ 책자를 발간,교육자료로 활용하고 주민과 학생들에게도실비로 제공하기로 했다. 도봉구는 앞서 지난해 12월부터 구 소식지에 신라의 고승인 의상대사와 도선국사를 비롯해 조선시대의 안맹담,연산군,조광조,남언경,유희경,송시열 등과 최근 인물인 김병로,홍명희,송진우,정인보,함석헌,계훈제씨와 노동운동가 전태일씨 등의 일대기를 게재했다. 임 구청장은 “도봉은 옛부터 수많은 시인묵객과 영웅호걸의 자취가 어린 곳”이라며 “역사인물을 통해 공직자는 물론 많은 주민들이 마음의 자양분을얻을 수 있도록 충실하게 강좌를 이끌어갈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심재억기자 j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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