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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평론가 이효인의 스크린나들이] 그리운 배우 허장강

    내게는 직업과 연관된 두 개의 추억 뭉치가 있다.하나는,내가 실제로 겪지 못했지만 훗날 나름대로 재조립한 과거의 한국 영화,‘1950,60년대 한국영화’이고,다른 하나는 1980년대 영화(운동)를 중심으로 맺었던 ‘인연’이다.50,60년대 한국 영화들은 누추함과 비루함,그리고 어설픔이 있지만 진실과 고뇌가 있다. 당시 한국 영화계의 주류에 속했던 원로 영화인들은 자주 이런 말을 한다.“요즘 영화들은 겉만 화려할 뿐 과거 한국 영화가 가졌던 혼이 없다.” 나 역시 부분적으로는 그 말에 동의한다.이야기가 정교하고,화면이 풍부한 90년대 이후 대부분의 영화들은 정작 보고 나면 잘 만든 이야기 한편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주제 의식도 뚜렷하고 화면도 매끄럽지만 지속적인 울림을 주지 못하는 80년대 이후의 유럽 영화들과 어떤 면에서는 닮은꼴이다.하지만 오해마시길.과거 영화가 현재의 영화보다 낫다는 말은 아니다.한 측면을 얘기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오히려 앞서 언급한 원로 영화인들의 발언의 근저에는 ‘당신들의 시대’를 살아버린 분들의 미련과 섭섭함,그리고 현재에 대한 시기와 질투의 감정 또한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배우 허장강을 떠올리노라면 50,60년대 한국 영화는 보다 선명해진다.‘돼지꿈’에서는 영어를 구사하는 사기꾼으로,‘김약국집의 딸들’에서는 아편쟁이로,‘서울의 지붕밑’에서는 엉큼한 점쟁이 노인으로,그리고 또다른 영화에서는 냉혹한 뒷골목 사나이로,그는 김승호만큼 아니 어쩌면 김승호보다 더 연기의 진수를 보여 준다.그 연기 속에는 정말 ‘혼’이 있다.그것은 요새 배우들이 아직은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지금 한국 영화계를 움직이는 사람들은,투자자 등을 제외하곤,거의가 80년대 산물이다.난세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을 과장되게 끌어들이지 않더라도,그들은 단지 나이만으로 현재의 한국 영화계를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충무로 영화계의 합리와 비합리,대화와 억지,개방성과 폐쇄성 사이를 비집고 개방적으로,대화하는 태도로,합리를 이끌어낸 것은 바로 그들이기 때문이다.하지만 80년대 그들은 충무로에서 점심 끼니를 걱정하던 사람들이었다.그것을 두고 “옛날에 걔 내 밑에 있을 때 이러저러했다.”라고 비아냥대는 사람들도 있지만,그런 말이야말로 패배자들의 뒤통수 때리기에 불과하다.그때 슬리퍼 끌고 삼류극장에서 영화를 본 후 더운 여름에 닭발 안주에 소주를 마시면서,그들 혹은 우리는 영화를 얘기했다.주로 영화의 힘과 영화와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말했던 것 같다.아버지의 영화들이 놓친 것들에 대해 말했던 것이다. 그 가운데에 장선우 그리고 박광수 등이 있다.그들 또한 사람인지라 작업 과정에서 적지 않은 뒷말을 남겼고,작품에 대한 평가 또한 고르지 않다.하지만 한국 영화 역사 전환기의 그 선명함과 영향력만은 평가해야 할 것이다.과거의 이데올로기를 감춘 채 던진 ‘너에게 나를 보낸다’와 ‘거짓말’,자신의 한계마저 고스란히 드러내면서 고집을 굽히지 않은 ‘그들도 우리처럼’ 등은 여전히 우리 영화의 보물이기 때문이다.그들이 그립다.영화로 행복해지고 싶다.
  • 진짜 ‘좌익신문’ 나왔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에 ‘진짜 좌익’ 신문이 등장했다. 네브래스카 브로큰보 지역에서 발행되는 주간지 ‘커스터 카운티 치프’는 8월 둘째주에서 셋째주 사이에 발행되는 지면을 완전 ‘좌경화’했다. 그러나 치프의 좌경화는 내용을 급진적으로 바꾼 것이 아니라 형식을 바꾼 것이다.기존에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넘기던 지면을 (한문책이나 80년대까지 한국의 신문처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넘겨보도록 인쇄한 것. 데브 매카슬린 발행인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13일)을 기념해 왼손잡이들이 편하게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봤다.”면서 “가끔씩 새롭고 재미있는 시도를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치프는 형식을 바꾼 것과 함께 역사적으로 유명한 왼손잡이들을 소개하는 기사도 실었다.아리스토텔레스,레오나르도 다빈치,아이작 뉴턴,괴테,베토벤,니체,안데르센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또 알렉산더,시저,나폴레옹,처칠,간디,잔다르크 같은 영웅들도 왼손잡이였다. dawn@seoul.co.kr
  • [이창구기자의 아테네 리포트] 인터뷰도 당당한 남남북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선수들은 시상식이 끝난 뒤 공식 기자회견을 갖는다.각국의 기자들은 통역을 사이에 두고 온갖 질문을 쏟아낸다. 미국이나 유럽 선수들은 인터뷰에 익숙해서인지 껄끄러운 질문을 유머러스하게 넘기는 여유를 보이기도 한다.이에 견줘 한국을 비롯한 동양 선수들은 “이겨서 기쁘다.”는 등의 판에 박힌 답변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17일 새벽(한국시간) 잇따라 공식기자회견을 가진 북한 처녀 계순희(25)와 남한 청년 이원희(23)는 솔직담백하고 당당한 답변으로 기자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아깝게 은메달에 그친 계순희의 얼굴은 수줍은 듯 빨갛게 달아올랐다.눈에는 이슬이 맺혔지만 꾹꾹 참는 것 같았다. “제가 무엇인가 부족했기 때문에 졌다고 생각합니다.뉘우침이 많습니다.응원해준 남녘 동포들에게 감사드립니다.우리는 꼭 하나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남쪽에 저의 팬클럽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계순희는 질문 하나하나를 빼놓지 않고 침착하게 답변했다.패배를 인정하고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모습은 무척 야무졌다.인터뷰를 마치고 코치와 함께 걸어가다 참았던 눈물을 주르르 흘려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원희는 평소 자신의 소신을 당당하게 말했다.“여자친구가 있느냐.”는 질문에 “시합에 나서면 절대 냉정해야 하는데 사랑을 하게 되면 흔들릴 것 같아 사귀지 않았다.”고 답했다.자신의 목표는 유도 역사에 길이 남을 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밝혔다.금메달을 따기까지 직면했던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고,어떤 훈련을 했는지도 설득력있는 어조로 잘 풀어나갔다. 자신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한 사람의 말은 횡설수설이 되기 일쑤고,진실되지 못한 말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운동을 하기에도 바빴을 텐데 어쩌면 그렇게 뚜렷한 가치관을 세웠을까.남과 북의 ‘유도 영웅’이 한반도의 젊은 기상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window2@seoul.co.kr
  • 뮤지컬로 되살아난 ‘평범한 청년’ 장준하

    뮤지컬로 되살아난 ‘평범한 청년’ 장준하

    1970년대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던 재야운동가 장준하(1918∼1975) 선생의 삶이 뮤지컬로 되살아난다. 사단법인 장준하기념사업회(회장 이부영)와 세종문화회관 공동 주최로 18∼2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창작뮤지컬 ‘청년 장준하’(조한신 작·연출)는 종합교양지 ‘사상계’의 발행인이자 지금도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선생의 파란만장한 일생 가운데 항일독립운동을 펼치던 20대 청년 시절에 초점을 맞춰 극화했다. 1938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소학교 교사로 일하던 선생이 1944년 일본군에 강제징집돼 중국 중동부 지역에 주둔해 있다가 33인의 젊은이들과 함께 부대를 탈출해 독립군이 되고자 충칭(重慶)으로 가는 6000리 대장정이 기둥 줄거리.중국 대륙을 가로지르며 꿈과 신념을 이루고자 했던 젊은이들의 도전이 로드무비 형식과 감성적인 터치로 그려진다.“위인전처럼 과장된 영웅담이 아닌 작은 등불을 가슴에 품은 평범한 젊은이의 삶을 통해 새로운 감성의 역사극을 만들고 싶다.”는 게 제작진의 의도다. 무엇보다 음악에 쏟은 열정이 도드라진다.가요 ‘꿈결같은 세상’으로 유명한 싱어송라이터이자 뮤지컬 작곡가로도 맹활약중인 송시현이 메인 작곡을 맡았고,여기에 국악의 현대화에 남다른 애착을 보여온 김대성이 가세했다.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과 13인조 오케스트라,그리고 6인조 밴드가 국악과 발라드,록 음악을 아우르는 총 27곡의 창작곡을 선보일 예정이다.창작뮤지컬 최초로 공연에 앞서 싱글앨범을 제작한 것도 이같은 음악적 자신감을 방증하고 있다. 타이틀롤인 장준하 역에는 가창력이 뛰어난 뮤지컬 배우 조승룡이 캐스팅됐고,결혼 2주 만에 사랑하는 남자를 전쟁터로 떠나보내야 하는 아내 김희숙 역에는 탤런트 겸 영화배우 임유진이 출연한다.극을 이끌어가는 해설자 역은 로커 박완규가 맡았다.독립운동 유공자와 가족들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1만∼8만원.(02)722-1467.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에듀 짱] 교과목·도서관 연계수업하는 오산고

    [에듀 짱] 교과목·도서관 연계수업하는 오산고

    “독서로 마음부터 살지우고 입시는 덤으로 준비하지요.” 서울 용산구 보광동 언덕배기에 자리잡은 오산고는 일반 교과목 수업도 도서관에서 실시하는 등 도서관 활용수업의 수범사례가 되고 있다. 지난 10일 화요일 오후 2시.여름 방학 중이라 교정은 한산했지만 100주년 기념관 2층 도서관 열람실에는 60여명의 학생들이 책을 읽고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열람실에서 만난 정일근(18·3년)군은 “영화와 관련된 역사,문화,과학 책을 일주일에 2∼3권 정도 빌려 본다.”며 “책을 읽다보니 다양한 배경지식이 쌓여 언어영역을 푸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것이 편하다는 지용호(18·3년)군은 “‘히딩크스토리’와 같이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을 주로 빌려보는 편”이라며 “그들의 이야기는 어려운 입시공부를 버텨내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며 웃었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책과 친해지고 바른 독서습관을 들일 수 있도록 도서관 연계수업을 실시하고 있다. 장래성(63) 교장은 이를 위해 3년 전부터 사서 담당 교사를 두어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을 돕고 지속적으로 시설을 개·보수하는 등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산고 도서관은 160평 규모로 2만 5000권의 장서를 보유한 서고와 공부할 수 있는 열람석 150석을 갖추고 있다.올 6월부터는 교실을 개조해 컴퓨터 40대와 시청각 수업이 가능한 시설을 갖춘 디지털도서관도 문을 열었다. 도서관 연계수업은 주로 1,2학년을 대상으로 진행된다.한 팀을 6∼7명으로 나누고 팀마다 각자 다른 문제를 준 뒤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한다. 이호승(31) 문학교사는 다양한 작품을 읽어볼 필요가 있을 때 도서관 연계수업을 진행한다.1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린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가르칠 때에는 작품에 대한 평론이나 작가 이문열과 관련된 최근 기사를 읽어보도록 과제를 내준다.수업시간 중 직접 책을 찾거나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등 주어진 과제를 마치면 팀별로 조사내용을 발표하게 한다. 이 교사는 “학생들이 처음엔 낯설어 했지만 2∼3번 수업을 진행하면 스스로 문제를 잘 해결한다.”며 “학생들이 혼자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이 수업의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오산고 도서관은 한울타리에 있는 오산중 학생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했다.오산중 강대경(31) 교사는 수학시간에 도서관 수업을 적극 활용한다.피타고라스의 정리나 유클리드 기하학을 가르쳐야 할 때 주로 도서관에서 수업을 한다.우선 피타고라스와 유클리드의 생에 관한 책을 읽게 하고 같은 수학적 원리를 교과서 외의 책에서는 어떻게 설명했는지를 비교하도록 한다. 강 교사는 “이런 수학 수업은 자연스럽게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책과 친숙해질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다.”면서 “효율적인 연계수업의 방법에 대해 항상 고민한다.”고 말했다. 사서담당 정동환(38) 교사는 “교사들이 언제든지 필요하면 도서관 연계수업을 할 수 있도록 교과관련 책을 우선 구입하는 데 애쓰고 있다.”며 “학생들이 쉽게 도서관을 찾을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효연기자 belle@seoul.co.kr
  • 서점가 올여름 화두는 ‘그리스’

    서점가 올여름 화두는 ‘그리스’

    2004 아테네 올림픽이 열리고 있는 올 여름,화두가 되고 있는 책은 단연 그리스 관련서다.신화에서부터 기행,역사,생활,문학,사전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올림픽을 몇달 앞두고 나온 새 책만도 10여종.이들 신간에다 기존 서적도 적지 않아 독자로선 골라 읽는 맛이 쏠쏠하다.그리스와 그리스인을 바로 이해하고 나아가 올림픽에 대한 감동도 더해줄 만한 책들을 소개한다. ●‘그리스 로마신화와 서양문화’(윤일권·김원익 지음,문예출판사) 신화에는 문명의 옷을 입기 이전의 순수하고 싱싱한 생명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그런가 하면 신화는 지식과 논리가 결여돼 무지와 편견과 왜곡으로 일그러진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폭력성과 영웅주의에 물든 강자의 이데올로기에 현혹될 위험성도 도사리고 있다.이 책은 바로 이런 점에 주목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새롭게 바라본다.기독교(헤브라이즘)와 함께 서양문화의 양대 뿌리로 평가받는 그리스 로마문명(헬레니즘)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자료다.1만5000원. ●‘신통기’(헤시오도스 지음,천병희 옮김,한길사 펴냄) 그리스 신들의 계보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그리스 신화에 관한 고전.우주와 신들의 탄생에 관한 가장 권위 있는 이야기로 꼽힌다.‘헬리콘산의 음유시인’ 헤시오도스가 말하는 신은 제우스나 아폴론 같은 인격신뿐만 아니라 대지,하늘,별,바람 같은 존재들과 승리,불화,거짓말 같은 삶의 요소들도 포함돼 있다.이때문에 신들의 탄생은 곧 ‘우주의 탄생’을 의미한다.2만 2000원. ●‘꿈꾸는 여유,그리스’(권삼윤 지음,푸른숲 펴냄) 그리스는 그리스 정교회의 나라다.국민의 95%가 그리스 정교를 믿는다.정교회 예배당은 일요일에 예배를 드리는 장소로만 머물지 않는다.세례식·결혼식·장례식 등의 통과의례는 물론,고민거리나 고백할 일이 있으면 평소에도 찾아가 기도를 하고 해결책을 묻는 소중한 일상 공간이다.메테오라와 아토스의 정교회 수도원 이야기가 흥미롭다.역사여행가인 저자는 이처럼 우리가 궁금해하는 현대 그리스인들의 모습을 생동감 있게 전해준다.1만 3000원. ●‘그리스,신화의 땅 인간의 나라’(유재원 지음,리수 펴냄) 20세기초 아테네에 머물던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는 “이 위대한 문명을 이룬 그리스인들은 어디로 가고 초라하고 역사의 무게에 찌든 저 농부들만 남았는가?”라고 했다.오늘날 그리스도 겉모습만 놓고 보면 콘크리트 건물로 뒤범벅된 도시와 돌더미가 나뒹구는 ‘폐허’에 지나지 않는다.하지만 이 유적들이 신화를 만나면 그리스는 이내 고대의 웅장한 면모를 드러내기 시작한다.그리스는 상상하는 자에게 즐거움 만점의 나라다.그리스 전문가인 저자(외국어대 교수)가 들려주는 고대 그리스 문명과 그리스 신화의 편린들.1만 4500원. ●‘고대 그리스의 일상생활’(로베르 플라실리에르 지음,심현정 옮김,우물이있는집 펴냄) 페리클레스가 다스리던 고대 그리스시대의 생활상을 복원했다.이 시기는 고대 그리스의 특징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최고 전성기.정치적으론 민주정이지만 사실은 1인지배라고 할 만큼 페리클레스는 강력한 정치력을 발휘하며 ‘지상의 제우스’로 군림했다.책은 ‘그리스 중의 그리스’라 불린 아테네 시민의 생활상을 중점적으로 다룬다.1만 7000원.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노동운동가 출신 안재성 ‘경성 트로이카’

    노동운동가 출신 안재성 ‘경성 트로이카’

    그것은 불행이었다.숨가쁘게 근·현대사의 격랑을 헤쳐온 우리가 일제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사회주의 혁명가들,우리를 위해 싸웠던 그들의 투쟁을 기억할 자료는 물론 관용조차도 갖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사실은 불행이었다. 그 불행한 역사를 복원한 노동운동가 출신 소설가 안재성의 ‘경성 트로이카’(사회평론 펴냄)는 이런 점에서 마치 깨어진 유리잔을 그럴듯하게 다시 맞춰낸 것 같은 작품이다.그는 우리 근대의 불행한 상실을 그렇게 복원해 냈다. 스스로를 ‘삼류 작가’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 문단의 현실,너무 관념적이고,너무 추상적이어서 오히려 비열해 보이기까지 하는 현실을 대체할 작가적 역량이 어떻게 축적되고,발현되는가를 작품으로 말해주고 있다.일제의 광기가 노도를 이루던 1930년대의 공간을 치열한 투쟁으로 채우다 간 사회주의 혁명가들,이재유와 김삼룡,이현상 등 3인의 행적을 통해 국내에서 일제에 맞선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섬광 같은 삶을 당대의 어투로 진지하게 재건해 내고 있다. 이재유.자신의 순수에 가해질 이념의 덫칠이 두려운 듯 사회주의 항일투쟁 외길에서 싸우다 광복 10개월을 남기고 홀연 죽음을 맞은 그의 삶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탓에 후대에 더 많은 부채의식을 남긴 당대의 몇 안 되는 ‘조선의 희망’이었다.무학력자,무산자로 일본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펴다가 3년 동안 무려 70회나 경찰에 연행당한 끝에 조선으로 강제 송환됐으며,악명 높은 서대문경찰서에서 2번이나 탈출한 그의 치열성은 “후일 그를 체포한 일경들이 너무 기쁜 나머지 그와 기념촬영을 할 정도였다.”는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그와 함께 트로이카를 이루는 김삼룡은 광복 후 남로당의 실질적인 리더로 활약했으며,지리산을 누빈 이현상은 지금까지도 ‘빨치산의 신화’로 남아 있다.또 이들에게 적잖은 힘이 됐던 박헌영의 모습도 소설이라는 허구 속에서나마 만나볼 수 있다. 작가 안재성은 그러나 이들의 삶을 마냥 허구로 분식하지 않는다.그런 점에서 그가 영웅담을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기왕의 영웅담,그러나 잊혀진 영웅담을 복원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지 모른다.그 자신 “일제시대에 자기희생적 삶을 살다 죽어간 혁명가들의 생애를 복구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고 적고 있다. 비록 “사회주의자들의 긍정적인 모습만 부각시킴으로써 그 이념이 가진 근원적 문제를 가려 버리는,내 스스로 원치 않는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우려를 덧붙이고 있지만,그는 1930년대에서 광복에 이르는 암흑기에 이들이 민족의 가냘픈 희망이었음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작품을 ‘진혼곡’이라며 “광복 후 찬탁운동으로 남한에서 대중적 기반을 상실하고,북한에서도 숙청당하는 등 남북한 모두에 버림받은 조선의 국내파 운동가들을 위해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80∼90년대를 ‘운동 현장’에서 보낸 작가의 치열한 삶이 이처럼 진지한 작품을 낳았다면,그가 새삼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고 부연하는 태도가 조금은 부자연스럽다.소설의 무게를 다는 작업에서 작가의 이념적 성향은 별로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사람들은 ‘고요한 돈강’의 미하일 솔로호프를 ‘위대한 작가’로 기억할 뿐 ‘위대한 사회주의 작가’라고 말하지 않는다.1만 2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본 아이덴티티’의 속편 ‘본 슈프리머시’

    ‘본 슈프리머시’(The Bourne Supremacy·20일 개봉)는 잃어버린 정체성을 찾아 떠났던 긴 여행인 전편 ‘본 아이덴티티’의 뒤를 이으면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잃어버린 기억을 찾으러 유럽 일대를 누비는 설정은 비슷하지만,‘정체성을 알았다고 해서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덧붙여졌다. 해독할 수 없는 기억의 조각들로 괴로워하는 제이슨 본(맷 데이먼).전편에서 본은 자신이 미국 비밀조직의 일원임을 알아낸 뒤 무거운 정체성의 짐을 벗고 잠적해버렸지만,여전히 악몽을 꾸는 그는 과거의 기억을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다.모든 것을 잊고 인도에서 연인인 마리(프랑카 포텐테)와 행복하게 살려던 본을 다시 이끄는 건 바로 “이건 실제상황이고,표적은 살아있는 인간이다.”라는 대사만 어렴풋이 떠오르는 이 기억의 조각들이다. 그래도 애써 외면하려 했지만 마리가 총을 맞고 죽자,본은 다시금 자신을 찾기 위한 여정에 나선다.하지만 전편이 아무 것도 모른 채 도망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속편에서 본은 자신의 행동이 갖는 의미를 탐색한다.“과거에서 못 벗어나.넌 살인자야.”라는 대사처럼 그는 선한 인물이 아니었다.누군가에 의해 조종된 채 악한 행동을 일삼았던 꼭두각시.그는 전편에서처럼 더 이상 비겁하게 과거로부터 도망치지 않는다.기억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며 진실에 접근해 나간다. 러시아 하원의원 네스키와 그 부인의 피살사건에 연루된 것을 알게 되는 본.그가 복수 대신 선택하는 마지막 행동은,잘못을 저지르고도 과거의 일이라며 책임지지 않는 수많은 역사 속 사례를 꼬집는 것이기도 하다. 고도로 훈련된 스파이지만 전형적인 액션영웅이 아닌 본을 묘사하는 방식도 독창적이다.리얼리티가 살아 있던 전편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로 뛰어난 본의 액션 실력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었지만,이번엔 또 다르다.암살단의 마지막 생존자를 찾아가 대결하는 액션 신에는,몸과 몸이 부딪쳐서 얼룩지는 피와 땀냄새로 가득하다.날렵하게 상대를 제압하는 것이 아니라 절뚝거리면서 도망치고,차 추격 신에서는 이리저리 부딪쳐 만신창이가 된다.보통의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와 다른 리얼리티.그것이 이 영화가 갖는 최고 미덕이다. 독보적인 리얼리티는 새롭게 메가폰을 잡은 영국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 덕이다.그는 얼마전 국내에서 개봉한 ‘블러디 선데이’의 감독.북아일랜드의 유혈사태를 사실적으로 그린 점을 높이 산 제작자에게 러브콜을 받았고,그의 연출력은 액션영화에서도 빛을 발했다.핸드 헬드,빠른 편집,거친 질감의 화면은 관객의 신경을 다소 거슬리게 하지만,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과 심리까지 그대로 포착해냈다. 김소연기자 purple@seoul.co.kr
  • [데스크 시각] 故 손기정옹에게 올림픽훈장을/곽영완 체육부 차장

    지난 9일은 고 손기정옹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을 제패한 지 68주년이 되는 날이었다.때마침 아테네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그의 업적을 기리는 각종 행사가 치러졌다.나라를 빼앗긴 암흑기에 국민적 자존심을 살려 준 쾌거는 앞으로도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베를린올림픽은 우리 민족에게만 의미가 있었던 건 아니다.나치정권 하의 독일에서 열린 베를린올림픽을 히틀러는 게르만족과 나치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무대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당시 손기정이 대회의 꽃인 마라톤에서 우승하고,미국의 흑인 제시 오언스가 100m 등 육상에서 4관왕에 오르는 등 유색인들의 선전으로 히틀러의 의도는 적지 않게 빗나가기도 했다.그런 점에서 손기정은 우리 민족뿐 아니라 그 시대 ‘마이너리티’의 희망으로서 더 큰 의미를 지닌 셈이다. 하지만 그의 사후 2년이 지난 지금,우리에게는 여전히 자랑스러운 인물이지만 국제 스포츠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당시만큼 크지 않은 것 같다.아마도 우리가 그의 의미를 너무 작게 취급한 탓일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의 의미를 높일 수 있는,가치있는 작업은 없을까.그 가운데 하나가 올림픽훈장 추서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과 관련해 주는 상으로는 메달과 올림픽컵,그리고 올림픽훈장이 있다. 메달의 역사는 승자에게 올리브나무 가지로 만든 관을 수여하던 고대올림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아테네에서 열린 제1회 근대올림픽에서는 1등에게 은메달과 올리브관 그리고 우승 증서,2등에게 은메달을 주었고,3등에게는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1904년 제3회 세인트루이스 올림픽부터 오늘날과 같이 1∼3등에 금,은,동메달을 수여했다. 올림픽컵과 올림픽훈장은 이같은 개인 시상 외에 수여하는 비경쟁 상패다.1906년 피에르 쿠베르탱 남작에 의해 제정된 올림픽컵은 공적과 성실성에 있어 호평을 얻고 있으며,아마추어스포츠 진흥과 올림픽 운동에 기여를 한 협회나 단체에 주어진다. 1974년에 제정된 올림픽훈장은 올림픽의 이상을 실현했거나,스포츠계에 괄목할 만한 공적을 쌓은 사람에게 수여된다.또 올림픽의 대의를 이루는 데 크게 공헌한 사람도 대상에 포함된다.최초의 훈장은 20년간 IOC 위원장직을 역임한 에이버리 브런디지에게 그가 죽은 뒤에 수여됐고,국내에서도 고 정주영 현대회장 등이 수상했다. 고 손기정옹에게 추서했으면 하는 것이 바로 이 올림픽훈장이다.그의 생애는 ‘개인적 달성을 통해서나 스포츠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올림픽의 대의를 이루는 데 탁월한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그런 그가 살아 생전 올림픽훈장을 받지 못했다는 건 어쩌면 후진들의 직무유기 탓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IOC도 거부할 이유보다는 받아들여야 할 이유가 더 많다.우선 IOC는 사자(死者)에 대해 많은 결례를 범했다. 최근에만 해도 IOC 홈페이지의 ‘올림픽 영웅들(Heroes)’ 코너에서 그의 국적을 북한으로 표시했다가 대한올림픽위원회(KOC)의 항의를 받고 정정하는 소란을 피웠다.여전히 역대 메달리스트 명단에는 ‘기테이 손’으로 방치돼 있다. 이 모든 잘못을 풀기 위해서라도 올림픽훈장 추서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그리고 그것은 한국 스포츠외교의 승리로 기록될 것이다. 곽영완 체육부 차장 kwyoung@seoul.co.kr
  • [2일 TV 하이라이트]

    ●영웅시대(MBC 오후 9시55분) 태산은 식당,기숙사,노동판 함바집,공장 등을 직접 찾아 쌀 판매망을 넓히고 매출도 늘려 나간다.태산의 성실성을 인정한 권 영감은 쌀가게를 무일푼인 태산에게 넘기겠다고 한다.태산은 주인집 딸 영희와 함께 밤길을 걷다 치한을 만난 강 영감 딸 혜영을 구해준다. ●사이언스+(YTN 오전 8시30분) 인쇄비용이 들지 않고,소리와 동영상을 함께 볼 수 있는 책이 존재할까? 바로 꿈의 도서출판시대라는 전자책 시대가 도래했다.출판사와 전문가들은 전자책 대중화에 노력을 다하고 있다.우리나라의 전자책 기술과 현황,대중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미래의 출판현장을 찾아가 본다. ●문화센터(EBS 오전 11시) 커피의 역사와 수많은 커피의 종류 그리고 커피의 종류에 따른 맛의 차이를 알아본다.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성분은 무엇이며,원두를 볶은 정도에 따라 각각 나뉘는 종류도 살펴본다.또 가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커피 메이커의 사용법과 주의점 등을 간략히 알아본다. ●경찰24시(iTV 오후 10시50분) 한 남자가 경찰서를 찾아와 어두운 밤 괴한에게 납치됐었다는 지난밤 이야기를 들려준다.피해자는 머나먼 이국땅에서 당한 지난밤의 기억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다.그는 3년 전 꿈을 안고 찾아온 조선족 청년.한국에서 겪은 상처를 떨쳐 버릴 수 없는 듯 분노를 보인다. ●야심만만 만명에게 물었습니다(SBS 오후 11시10분) ‘친구가 이런 행동이나 말을 할 때 정말 자존심 상한다’를 들어본다.물어봐도 대답 안해줄 때,나를 봉처럼 생각하고 부려먹을 때 등의 답변이 재미있다.이밖에 ‘사랑하는 애인에게 솔직히 난 이런 스토킹 행각을 해봤다’를 주제로 이야기한다. ●달래네 집(KBS2 오후 9시20분) 예령의 가슴 아픈 첫사랑을 알고 마음 아파하는 광기.기현과 국진에게 달려가 이야기를 들려주지만,기현과 국진은 광기의 말이 틀렸다며 자신들이 들었다는 이야기를 다시 전해 준다.서로 자신이 들은 이야기가 옳다며 옥신각신하는 세 사람.과연 예령의 과거는? ●금쪽같은 내 새끼(KBS1 오후 8시25분) 희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예쁜 옷으로 갈아입으려던 진수는 영실이 옷장에 숨겨둔 비밀 서류들을 망쳐 놓고,영실이 황급히 서류를 감추는 모습을 본 진국은 영실을 의심한다.상황을 오해한 덕배는 진국과 다툰다.민섭은 귀가하는 길에 울고 있는 어린 아이를 병원에 데려다 주고….
  • [CEO 칼럼] 遷都의 역사/류춘수 이공건축 대표건축가

    [CEO 칼럼] 遷都의 역사/류춘수 이공건축 대표건축가

    TV사극에서 얻은 상식으로 누구나 알고 있듯 송악(松岳),지금의 개성을 중심으로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3년 뒤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고치며 철원으로 수도를 옮겼다.그러나 그를 죽인 왕건에 의해 개국된 고려는 다시 송악을 수도로 정하여 500년 가까운 긴 왕조를 이었다.그 뒤 혁명에 성공한 이성계는 조선왕조를 열어 꼭 610년 전,1394년,태조3년에 지금의 서울로 수도를 옮겼다. 백제가 수도를 옮긴 역사를 보면 흥미로운 데가 있다.지금의 수도권인 한강 유역에서 수도를 정하여 위세를 떨쳤으나 결국은 고구려에 밀려 웅진,즉 지금의 공주 지방으로 밀려갔다.그러나 그 곳은 군사상으로 요충지이긴 하나 왕국의 수도로는 협소하여 60여년만 살다가,웅지를 품은 성왕에 의해 한반도 서남부의 광활한 평야를 장악하기에 편리한 사비성(부여)으로 천도했다.사비성은 나라가 멸망하기까지 400여년동안 흔들림 없는 백제의 중심이 되었다. 이처럼 새로운 왕조 탄생에 의한 권력기반의 이동이나 외세의 압박에 의한 천도가 아닌,국가 발전의 마스터플랜에 의해서 성공한 천도의 역사가 우리에게 있었다는 것은 여간 다행스러우며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역사에서 실행하지 못한 천도 운동이 있었으니,약 880년전 고려 인종 때의 유명한 묘청(妙淸)일파의 서경천도운동이다.수도 개경의 기득권 세력인 이자겸,척준경 등의 반란을 제압한 서경(평양) 신 세력인 정지상,묘청 등이 금(金)에 사대(事大)하지 말고 자주정신으로,중국과 대등하게 왕을 황제라 칭하며 독립적 연호를 쓰는 국가 쇄신의 명분을 내세웠다.실제로 서경에 대화궁이란 신궁(新宮)을 건설하기도 했다.그러나 결국은 뿌리깊은 수도 개경(개성)의 중심 세력인 김부식에 의해 대위(大爲)라는 나라까지 세운 묘청의 반란은 1년만에 진압되었다.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정사(正史)에 길이 빛나고,자주정신을 명분으로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던 묘청을 반역자로 기록했다. 그러나 훗날,100여년전 신채호 선생은 중국에 대한 사대와 굴종의 역사를 씻을 수도 있었을 가장 통절한 역사적 기회는 묘청의 자주적 서경천도 운동에 있었다고 원통해했다.천년이 흘러도 역사적 평가란 이렇게도 어려운 것인가.하기야 통일의 영웅 김춘추와 김유신을 민족반역자로 보는 시각도 있으니 역사학도가 아닌 건축가인 필자로선 무어라 할 말이 없다. 지금 우리나라 식자층의 화두는 근세의 ‘역사 바로잡기’와 천도에 있음을 피할 수 없기에,명색이 이 세대를 사는 문화적 지성인이어야 할 건축가의 한 사람으로 이 얘기를 안 하면 비겁할 듯하여 사실 이 글을 쓰는 것이다. 개성,평양,서울이 수도로서,모두 새 왕조(정권)의 탄생과 함께 기득권 세력의 기반을 붕괴하며 새로운 정치 세력의 중심을 구축하기 위한 역사적 당위가 있었다면,작금의 천도 운동 또한 뭔가 ‘새로운 국가의 틀’을 담기 위한 노력일 수밖에 없다. 그 새로운 틀을 믿고 따를 만한 구체적 비전을 듣고 싶다.결국 그 틀의 모습은 민족의 숙원인 통일시대를 위한 웅대한 마스터플랜에 의한 것이 아닌가? 사실 건축가에게 새 수도 건설은 신나는 일이다.올림픽과 월드컵 이상으로 내게 큰 일거리를 주는 행운을 기대할 수도 있기에…. 류춘수 이공건축 대표건축가
  • [이런 책 어때요]

    ●나는 매일 숲으로 출근한다/남효창 지음 중국 고전 ‘회남자’에는 “자연을 알되 인간을 알지 못하면 사회에서 살아가기가 힘들고,인간을 알되 자연을 알지 못하면 진리의 세계에서 노닐 수 없다.”는 말이 나온다.인간은 사회 속에서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숲 전문가’인 저자가 이 생태에세이집에서 강조하는 것 또한 그와 같다.상록수가 늘 푸르게 보이는 것은 잎이 떨어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돋아난 잎이 살아 있는 동안 다른 잎이 끊임없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흥미롭다.숲을 느끼라고 말하는 저자는 몸과 마음이 자연을 닮아가는 생태문화운동을 꿈꾼다.1만 3000원. ●한국 최고경영자 100인의 좌우명/이인석 지음 좌우명으로 본 기업경영자들의 성공비결.교보생명 신용호 창업주의 좌우명은 “맨손가락으로 생나무를 뚫는다.” 강한 도전정신을 엿보게 한다.경주 최부잣집 백산상회의 최준 창업주는 “사방 백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철학으로 12대에 걸쳐 만석꾼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미래에셋그룹 박현주 회장의 경우는 “독수리는 조는 듯이 앉아 있고,호랑이는 앓는 듯이 걷는다.” 투자전문회사의 성격을 알 수 있다.‘일근천하무난사(一勤天下無難事)’,즉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려울 게 없다는 말은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의 좌우명이다.1만 2000원. ●아프가니스탄, 잃어버린 문명/이주형 지음 아프가니스탄의 문명사를 다뤘다.아프가니스탄은 역사학자 아널드 토인비가 ‘문명사의 라운더바우트(roundabout,원형교차점)’라고 지적했듯이 사통팔달의 요충 역할을 했던 곳.메소포타미아·이란·그리스·로마·인도·중국 등은 실크로드의 핵심거점인 이곳에서 만나 서로의 문명을 주고받고 새로운 문명을 탄생시켰다.간다라미술 전문가인 저자(서울대 교수)는 특히 바미얀 대불의 파괴 후 아프가니스탄의 문화유산과 그 비극을 문명사적 관점에서 풀어간다.아프가니스탄의 대표적 선사유적지인 남부의 문디가크에서 고대 그리스의 원정도시였던 북부의 아이 하눔까지 직접 답사했다.2만원. ●소설 십팔사략/진순신 지음 중국 원나라의 증선지가 쓴 역사서 ‘십팔사략’이 소설로 다시 태어났다.‘십팔사략’은 중국 왕조의 흥망사와 세계를 호령한 영웅들의 전기,고사와 금언 등을 담은 중국의 고전.소설은 역사서인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치밀한 묘사와 극적인 진행,빠른 호흡으로 읽는 재미를 안겨준다.춘추전국시대를 배경으로 한 ‘열국지’의 지략과 천하패권의 승부수가 녹아 있는 ‘초한지’의 긴장감,영웅들의 이야기인 ‘삼국지’의 매력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평.관포지교의 관포와 포숙아,병법의 달인인 손무와 손빈,최초로 중국을 통일시킨 진시황제 등이 등장한다.전8권.각권 9000원. ●사치의 문화/질 리포베츠키 지음 사치의 역사와 가치,사회문화적 영향 등을 살폈다.책은 북아메리카 북서해안의 인디언들 사이에서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성찬을 베풀고 선물을 주고받던 의식인 포틀래치(Potlatch),집단과 집단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멜라네시아섬 사람들이 행하던 의례적 선물 교환행위인 쿨라(Kula),지도층의 솔선수범을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서 사치의 기원과 본질을 찾는다.사치에 대한 현대적 개념은 18세기 프랑스에서 있었던 사치논쟁에서 비롯됐다.18세기까지 사치란 행복과 양립할 수 없었으며,민중을 퇴폐로 이끄는 것으로 간주됐다.1만원.
  • 소설 ‘백범’ 6000권 北으로

    남한에서 발간된 ‘소설 白凡 金九’(전 2권·구사 펴냄) 3000질(6000권)이 지난 22일 인천-남포항을 통해 북송된 것으로 밝혀졌다.현대사의 한 획을 그은 백범 김구의 행적을 다룬 책이 북한에 제공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책은 김일성종합대학 도서관 등에 비치될 예정이다. ‘소설 白凡 金九’는 사단법인 백범정신실천연합 홍원식 사무처장이 2000년 펴낸 책으로 그동안 북한 민족화해협의회(민화협)와 도서 제공 협의를 계속해 왔다. 지난 6월 인천에서 열린 6·15공동선언 4주년 기념 ‘우리민족대회’에서 북측의 도서전달 요청서가 도착했고 곧바로 합의서가 체결됐다.책은 ‘소설’이란 제목을 달고 있지만 백범의 삶과 대한민국임시정부와 광복군의 활약상,광복 후 정국을 사실 그대로 담고 있는 역사서이다. ‘대 영웅의 위대한 역사와 못다한 사랑’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동학혁명 직후에 만난 첫사랑의 추억,그 뒤에 찾아 온 또 다른 연인과의 사별,거듭되는 이별과 운명적인 결혼 등 백범의 인간적인 모습을 풀어냈다. 또한 대북 반출 승인을 담당한 통일부의 관계자가 ‘북한이 정말 이 책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김일성 주석에 대한 ‘여과 없는’ 이야기도 다수 등장한다. 독립운동가 김일성이 실존인물이었다는 점,보천보 전투에 대한 증언,항일의용군의 대위였던 김 주석이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되기까지의 과정 등이 소상하게 실렸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 [씨줄날줄] 전역/ 우득정 논설위원

    군에 갔다온 사람이면 누구나 ‘개구리복’(예비군복)을 입던 순간을 평생의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사병 출신은 아마도 가장 기쁜 순간으로,직업군인 출신들은 영광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순간으로 뇌리에 남아 있을 것이다.그래서 퇴임식이나 이임식보다 전역식이 더 진한 감동으로 와닿는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1월에는 눈보라를 뚫고 36년의 군생활을 36㎞ 마라톤으로 마감한 장군이 나왔다.1994년에는 43년만에 사지에서 귀환한 첫 국군포로 조창호 중위의 전역식이 열렸다.그는 “나는 죽어도 항복하지 않는다.나는 포로가 되더라도 전력을 다해 탈출하겠다.”는 군인 수칙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전역사를 대신했다.올 1월에는 국군포로 전용일씨가 53년만에 전역 신고를 했다.얼마 전에는 두 차례 탈영 끝에 16년만에 제대한 한 전투경찰의 전역식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되돌린 전역식 몇 장면도 기억의 저편에 간직하고 있다.41년 전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생겨나지 않기를 바란다.”면서 비통한 심정을 토로했던 그는 곧바로 철권통치로 장기집권의 길로 접어들었다.1980년에는 1년만에 별 두개를 더 보탠 2명의 육군 대장이 전역과 동시에 권력을 차례로 움켜쥐던 모습도 지켜봤다.그리고 아직도 그 망령은 여전히 살아남아 위세를 떨치고 있다. ‘NLL 사태’와 관련,남북 함정간 교신내용과 북의 전화통지문 내용을 언론에 유출한 혐의로 조사를 받았던 박승춘 합참 정보본부장이 자진전역 신청을 했다고 한다.33년에 걸친 군 생활의 마감이다.말이 ‘자진전역’이지 사실은 불명예 제대다.군 통수권자에 대한 항명성 반발이었다는 점에서 징계 수위가 약한 게 아니냐는 논란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목청을 높이기에 앞서 미국 맥아더 장군의 사례를 참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쟁 확전 여부로 트루먼 대통령과 맞선 끝에 강제 전역조치됐지만 미국 귀환시 전쟁 영웅으로서 카 퍼레이드와 상·하원 합동 연설이라는 최상의 예우를 받았다.그래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다만 사라질 뿐이다.’라는 명 연설도 남길 수 있었다.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군에 대한 이러한 예우가 아닐까. 우득정 논설위원 djwootk@seoul.co.kr
  • 임진왜란 해전사/이민웅 지음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은 어떻게 싸워 이겼을까.’ 이 단순한 질문에 명쾌하게 답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주변에 이순신과 관련된 사료와 이를 가공한 텍스트가 넘치지만 이순신은 쉽게 읽히고 알려지기를 거부하고 있다.마치 당대의 왜적에게 그가 불가해했듯 우리에게도 여전히 미궁이다. 그는 확실히 전쟁 영웅이다.불퇴전의 기개와 무패의 기록,그러면서도 절대왕권의 위세에 눌려 끝내 좌절하고야 마는 굴곡진 삶의 궤적까지도 영웅적이다.여기에다 백의종군 끝에 지휘권을 되찾아 전선에 복귀하면서 ‘무능한 임금 선조’에게 올린 장계에 남겼으되,‘신에게는 아직도 열두척의 전선이 남아 있습니다.’란 기록은 차라리 비장해 그의 신성성(神聖性)을 확고하게 한 명문이 아닐 수 없다.그러나 냉정하게 돌이키면,찬사와 추앙으로 이어지는 끝모를 이순신의 신격화와 영웅시가 또한 그의 실체를 가리는 차단막이 됐음도 부인할 수 없다. 투철한 군인이자 가솔의 안위를 걱정한 인간이기도 했던 그의 실체를 한 걸음 다가가 보려는 이들에게 현역 해군 소령이자 해군사관학교 전사전략학 교수인 이민웅의 ‘임진왜란 해전사-7년 전쟁,바다에서 거둔 승리의 기록’은 눈여겨 볼 책이다.저자는 주저없이 ‘이순신 신화’의 허구성을 들춘다.“그의 전공이 일제하 민족의식 고취 필요성,박정희 시대의 반공독재 체제 구축 등에 이용되면서 미화와 영웅화,나아가 순국사관으로까지 발전,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를 차단하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 해전사를 영웅담의 범주에서 역사의 기록으로 자리매기기 위해 당대의 전쟁 조건,즉 직·간접적인 전력을 폭넓게 파악하고 있으며,이를 위해 방대한 주변 사료를 낱낱이 끌어들이고 있다.왕조실록은 물론 난중일기,임진장초,이충무공전서,난중잡록,새미록과 서애집,상촌집,백사집 등 이순신의 기록을 전하는 사료들을 종횡으로 아우르며 신빙성을 확보하고 있다. 이런 방대한 탐구는 우리가 사실로 믿었던 오류의 시정으로 이어진다.마산 앞바다에서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합포해전의 진상,그리고 명량해전에서 쓰였다는 철쇄(鐵鎖)의 실제 여부를 규명한 것이 그것.실인 즉,마산포를 말하는 합포가 진해만과 잇닿아 있어 논란의 여지가 없지는 않으나,그는 기록과 위치의 적정성으로 미뤄 이곳이 마산이 아닌 진해 연안이라고 주장한다.또 명량해협에 쇠줄을 엮어매 적선을 격침시켰다는 기록도 일본측 학자가 제시한 주장을 생각없이 끌어왔고,이 가설이 영웅담으로 확대재생산되는 과정에서 고착화된 허구라고 단정했다. 조일 양군의 무기와 군선체계,왜성 축조의 배경 등 이미 학계에서 고구(考究)돼 온 문제에 대한 일부 안일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서가 눈길을 끄는 것은 이순신을 신화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과감히,그리고 논리적으로 옮겨 앉히고 있다는 점이다.그는 우리 역사상 가장 크고 의미있었던 전쟁을 전쟁사로 정리하는 새 문을 이렇게 열고 있다.청어람미디어 펴냄.1만 8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아테네 화필기행] (7) 경희대 이종빈 교수와 ‘켄타우로스’

    [아테네 화필기행] (7) 경희대 이종빈 교수와 ‘켄타우로스’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나라 그리스.유럽에 관광을 가면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먼저 보고 그리스를 마지막에 보라는 말이 있다.그것은 고대의 유적과 유물이 도처에 널려 있는 그리스를 먼저 보면 다른 여행지들이 시시하게 느껴진다는 의미일 게다. 아테네 화필기행을 떠난 지난 4월,우기를 지나 봄을 맞은 그리스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올리브나무와 쪽빛 바다로 이루어진 해안은 ‘축복받은 땅’ 바로 그것이었다. 폐허가 되어 버린 유적지에는 수천년을 이어내려온 신화가 서리서리 얽혀 있고,느린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서정과 여유가 넘쳤다. 이탈리아 유학시절,동쪽에서 배를 타고 아드리아해를 건너기만 하면 그리스 땅이었지만 그때는 왜 그리 여유가 없었던지….그리스 기행은 훗날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대로 테오도라키스의 음악과 파란투리,아그네스발차가 부르는 그리스 음악만이 외롭고 힘든 유학생활에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리스는 터키의 침공과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내전의 역사를 경험하며 오랜 기간 암흑과도 같은 혼란기를 보냈다.테오도라키스는 이러한 시련의 시기에 음악으로 그리스 국민들의 설움과 아픔을 달래준 위대한 음악가였다.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에는 그리스 민족 특유의 분위기가 서려 있다.가사는 알 수 없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 멜로디는 나의 마음에 절절하게 와 닿았다. 그리스 기행은 곧 그리스 신화기행이다.신화의 싹이 트고 가지가 뻗어나간 신들의 땅,신들의 놀이터를 확인하는 작업이다.어린 시절 삽화가 조잡하게 그려진 그리스 신화를 읽으며 정신의 키를 키웠던 나로서 이번 아테네 화필기행의 화두는 단연 ‘신화’였다. 신화 속에는 기상천외한 신들의 이야기가 있고,영웅들의 전설이 살아 숨쉰다.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슈퍼맨이 있고 해리포터가 있으며 매트릭스가 있는 셈이다.그 중에서도 유달리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켄타우로스였다. 켄타우로스는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말의 형태를 한 괴물이다.제우스가 여신 헤라의 모습으로 만든 구름과 테살리아의 왕인 익시온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혹은 그 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산에서 암말과 교접하여 낳았다고도 한다. 고대인들은 말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말과 인간의 결합을 그다지 천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따라서 켄타우로스는 고대의 상상속 괴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특성을 부여받은 ‘유일한’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에 등장하는 켄타우로스는 영웅 헤라클레스와도 수 차례에 걸쳐 싸운다.어릴 적 나는 종종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에 빠지곤 했다. 아테네 신화 화필기행은 나의 잠들어 있던 신화적 상상력에 다시 한번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굳이 어디랄 것도 없이 그리스는 온통 신들의 거처이자 상상력의 곳간이다.화필기행의 출발은 파르테논이었다.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프로필라이아(입구)를 통과하면 바로 앞에 도리아식 돌기둥으로 둘러싸인 파르테논 신전이 펼쳐진다.파르테논 신전은 원래 전체가 조각상과 부조로 꾸며진 거대한 예술작품이었다.그러나 아쉽게도 모조품이 아닌 진품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조각상과 부조의 일부가 박물관 등에 보존되어 있을 뿐. 나의 시선은 이내 파르테논 신전 밖을 장식하고 있는 말과 그리스 신들을 조각한 석상에 꽂혔다. 신화 속의 기괴한 동물과 인물을 형상화한 조각상들은 화필기행 내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체와 짐승이 결합된 그로테스크한 형태는 현대 조각에서도 더러 원용된다.상반신은 게이고 하반신은 인체인 조각도 있고,스테판 발켄홀이라는 독일 조각가처럼 나무로 소,말,곰 등의 짐승머리를 만들고 아래는 인간 형태로 표현한 경우도 있다.켄타우로스 이외에도 신화에는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괴물이 여럿 등장한다.그리스 신화는 이렇듯 문화 예술 전반에 다양한 모티프를 제공해왔고,앞으로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예술적 상상의 불씨가 될 것이다. 이번 아테네 화필기행은 비록 8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작가로서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유적지 곳곳에 넘쳐나는 관광객들의 진지한 눈빛에서 나는 유럽사람들이 왜 그토록 그리스를 아끼고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영국 시인 셸리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라고 읊었다.그리스 문화 혹은 신화는 그만큼 서구인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이방(異邦)의 나그네인 필자로서도 그리스 신화는 그리 낯설지 않으니 그들은 오죽할까.아테네 화필기행은 조각가인 나에게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그 중에서도 신화적 상상력’임을 일깨워 줬다.
  • [아테네 화필기행] (7) 경희대 이종빈 교수와 ‘켄타우로스’

    유럽 남동부 발칸반도의 끝자락에 위치한 나라 그리스.유럽에 관광을 가면 프랑스나 이탈리아를 먼저 보고 그리스를 마지막에 보라는 말이 있다.그것은 고대의 유적과 유물이 도처에 널려 있는 그리스를 먼저 보면 다른 여행지들이 시시하게 느껴진다는 의미일 게다. 아테네 화필기행을 떠난 지난 4월,우기를 지나 봄을 맞은 그리스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올리브나무와 쪽빛 바다로 이루어진 해안은 ‘축복받은 땅’ 바로 그것이었다. 폐허가 되어 버린 유적지에는 수천년을 이어내려온 신화가 서리서리 얽혀 있고,느린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서정과 여유가 넘쳤다. 이탈리아 유학시절,동쪽에서 배를 타고 아드리아해를 건너기만 하면 그리스 땅이었지만 그때는 왜 그리 여유가 없었던지….그리스 기행은 훗날로 미루지 않을 수 없었다.그런대로 테오도라키스의 음악과 파란투리,아그네스발차가 부르는 그리스 음악만이 외롭고 힘든 유학생활에 위로가 되어 주었다. 그리스는 터키의 침공과 제2차세계대전 그리고 내전의 역사를 경험하며 오랜 기간 암흑과도 같은 혼란기를 보냈다.테오도라키스는 이러한 시련의 시기에 음악으로 그리스 국민들의 설움과 아픔을 달래준 위대한 음악가였다.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에는 그리스 민족 특유의 분위기가 서려 있다.가사는 알 수 없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 멜로디는 나의 마음에 절절하게 와 닿았다. 그리스 기행은 곧 그리스 신화기행이다.신화의 싹이 트고 가지가 뻗어나간 신들의 땅,신들의 놀이터를 확인하는 작업이다.어린 시절 삽화가 조잡하게 그려진 그리스 신화를 읽으며 정신의 키를 키웠던 나로서 이번 아테네 화필기행의 화두는 단연 ‘신화’였다. 신화 속에는 기상천외한 신들의 이야기가 있고,영웅들의 전설이 살아 숨쉰다.현대적으로 해석하자면 슈퍼맨이 있고 해리포터가 있으며 매트릭스가 있는 셈이다.그 중에서도 유달리 나의 관심을 끈 것은 반인반마(半人半馬)의 켄타우로스였다. 켄타우로스는 상체는 인간이고 하체는 말의 형태를 한 괴물이다.제우스가 여신 헤라의 모습으로 만든 구름과 테살리아의 왕인 익시온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혹은 그 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이 산에서 암말과 교접하여 낳았다고도 한다. 고대인들은 말을 매우 좋아했기 때문에 말과 인간의 결합을 그다지 천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따라서 켄타우로스는 고대의 상상속 괴물 중에서 가장 훌륭한 특성을 부여받은 ‘유일한’ 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신화에 등장하는 켄타우로스는 영웅 헤라클레스와도 수 차례에 걸쳐 싸운다.어릴 적 나는 종종 어떻게 그런 것이 가능할까 하는 의문에 빠지곤 했다. 아테네 신화 화필기행은 나의 잠들어 있던 신화적 상상력에 다시 한번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굳이 어디랄 것도 없이 그리스는 온통 신들의 거처이자 상상력의 곳간이다.화필기행의 출발은 파르테논이었다.아테네 아크로폴리스의 프로필라이아(입구)를 통과하면 바로 앞에 도리아식 돌기둥으로 둘러싸인 파르테논 신전이 펼쳐진다.파르테논 신전은 원래 전체가 조각상과 부조로 꾸며진 거대한 예술작품이었다.그러나 아쉽게도 모조품이 아닌 진품은 지금 남아 있는 것이 별로 없다.조각상과 부조의 일부가 박물관 등에 보존되어 있을 뿐. 나의 시선은 이내 파르테논 신전 밖을 장식하고 있는 말과 그리스 신들을 조각한 석상에 꽂혔다. 신화 속의 기괴한 동물과 인물을 형상화한 조각상들은 화필기행 내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인체와 짐승이 결합된 그로테스크한 형태는 현대 조각에서도 더러 원용된다.상반신은 게이고 하반신은 인체인 조각도 있고,스테판 발켄홀이라는 독일 조각가처럼 나무로 소,말,곰 등의 짐승머리를 만들고 아래는 인간 형태로 표현한 경우도 있다.켄타우로스 이외에도 신화에는 반인반수의 모습을 한 괴물이 여럿 등장한다.그리스 신화는 이렇듯 문화 예술 전반에 다양한 모티프를 제공해왔고,앞으로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예술적 상상의 불씨가 될 것이다. 이번 아테네 화필기행은 비록 8일간의 짧은 여정이었지만 작가로서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였다.유적지 곳곳에 넘쳐나는 관광객들의 진지한 눈빛에서 나는 유럽사람들이 왜 그토록 그리스를 아끼고 사랑하는가를 알 수 있었다.영국 시인 셸리는 “우리는 모두 그리스인”이라고 읊었다.그리스 문화 혹은 신화는 그만큼 서구인들의 삶에 깊이 뿌리내려 있다.이방(異邦)의 나그네인 필자로서도 그리스 신화는 그리 낯설지 않으니 그들은 오죽할까.아테네 화필기행은 조각가인 나에게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그 중에서도 신화적 상상력’임을 일깨워 줬다.
  • [시네마천국]할리우드에 돌아온 ‘킹아더’

    신화와 전설은 아무리 우려먹어도 질리지 않는 할리우드의 ‘밑반찬’인 모양이다.23일 개봉하는 ‘킹 아더’(King Arthur)는 중세 아더왕의 전설같은 무용담을 그린 할리우드 서사액션이다.그러나 ‘카멜롯의 전설’이나 ‘엑스칼리버’ 등 아더왕을 소재로 한 이전의 영화들과는 어법이 사뭇 다르다.결론부터 말하자면,전형적 할리우드 서사액션의 ‘규모’를 즐기려는 관객들에겐 흡족함을 안기진 못할 것 같다.반면,실존인물이 불멸의 영웅으로 남기까지의 진지한 드라마를 곱씹고 싶은 이들에겐 독특한 뒷맛을 선사할 작품이다. 영화는 역사적 진실에 좀더 가까이 접근하는 특화전략을 구사한다.아더왕 이야기를 다룬 여느 영화들과는 주목한 시점부터 다르다.5세기 암흑시대를 살았던 아더왕의 본명은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브리튼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장교 아더(클라이브 오웬)는 15년간의 복무기간을 채우고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에 부풀어 있다.그러나 귀향 하루전날 교황은 색슨족의 위협을 받고 있는 자신의 수제자를 구출해 오라는 특명을 내린다.아더는 랜슬럿(이오안 그루푸드) 등 휘하의 기사들을 다독여 천신만고끝에 구출작전에 성공하지만,결국 대군을 이끈 색슨족의 공격을 받는다. ‘영웅 이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는 아더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싸움터에 나가기 싫어하는 어린 아더의 모습을 부각시키며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웅변하기도 한다.아더왕을 전설속 인물로 착각하게 만드는 팬터지 요소는 최대한 절제됐다.예컨대 신검 엑스칼리버가 맥락없이 등장해 신통력을 자랑하는 설정 등은 보이지 않는다. 빙판 위에서의 아슬아슬한 대치전 등 몇차례 사실적인 전투장면이 펼쳐진다.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위용을 감지할 파괴력은 없다.오락성을 가미하는 데 동원된 가장 강렬한 조미료는 가슴을 질끈 동여매고 칼과 활을 놀리는 여전사 기네비어.아더,랜슬럿과 삼각관계를 이룬 여인으로 인용돼온 기네비어(키라 나이틀리)는 위상이 사뭇 달라진 셈이다.브리튼의 토착부족인 워드족 지도자의 딸로,액션물에 로맨틱 양념을 뿌리는 ‘얼굴마담’ 역할을 뛰어넘었다. 외신에 따르면 제작진은 “지금껏 한번도 접하지 못했을 아더왕을 구현했다.”고 장담했다.1인 영웅주의에 기대 얄팍한 감동을 부추기지 않는다는 점은 믿음직하다.그러나 그런 미덕이 관객들의 아쉬움을 보전해줄지는 의문이다.역사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를 찾지는 않기 때문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시네마천국]할리우드에 돌아온 ‘킹아더’

    신화와 전설은 아무리 우려먹어도 질리지 않는 할리우드의 ‘밑반찬’인 모양이다.23일 개봉하는 ‘킹 아더’(King Arthur)는 중세 아더왕의 전설같은 무용담을 그린 할리우드 서사액션이다.그러나 ‘카멜롯의 전설’이나 ‘엑스칼리버’ 등 아더왕을 소재로 한 이전의 영화들과는 어법이 사뭇 다르다.결론부터 말하자면,전형적 할리우드 서사액션의 ‘규모’를 즐기려는 관객들에겐 흡족함을 안기진 못할 것 같다.반면,실존인물이 불멸의 영웅으로 남기까지의 진지한 드라마를 곱씹고 싶은 이들에겐 독특한 뒷맛을 선사할 작품이다. 영화는 역사적 진실에 좀더 가까이 접근하는 특화전략을 구사한다.아더왕 이야기를 다룬 여느 영화들과는 주목한 시점부터 다르다.5세기 암흑시대를 살았던 아더왕의 본명은 루시우스 아토리우스 카스투스.브리튼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장교 아더(클라이브 오웬)는 15년간의 복무기간을 채우고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에 부풀어 있다.그러나 귀향 하루전날 교황은 색슨족의 위협을 받고 있는 자신의 수제자를 구출해 오라는 특명을 내린다.아더는 랜슬럿(이오안 그루푸드) 등 휘하의 기사들을 다독여 천신만고끝에 구출작전에 성공하지만,결국 대군을 이끈 색슨족의 공격을 받는다. ‘영웅 이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는 아더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싸움터에 나가기 싫어하는 어린 아더의 모습을 부각시키며 ‘영웅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웅변하기도 한다.아더왕을 전설속 인물로 착각하게 만드는 팬터지 요소는 최대한 절제됐다.예컨대 신검 엑스칼리버가 맥락없이 등장해 신통력을 자랑하는 설정 등은 보이지 않는다. 빙판 위에서의 아슬아슬한 대치전 등 몇차례 사실적인 전투장면이 펼쳐진다.하지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위용을 감지할 파괴력은 없다.오락성을 가미하는 데 동원된 가장 강렬한 조미료는 가슴을 질끈 동여매고 칼과 활을 놀리는 여전사 기네비어.아더,랜슬럿과 삼각관계를 이룬 여인으로 인용돼온 기네비어(키라 나이틀리)는 위상이 사뭇 달라진 셈이다.브리튼의 토착부족인 워드족 지도자의 딸로,액션물에 로맨틱 양념을 뿌리는 ‘얼굴마담’ 역할을 뛰어넘었다. 외신에 따르면 제작진은 “지금껏 한번도 접하지 못했을 아더왕을 구현했다.”고 장담했다.1인 영웅주의에 기대 얄팍한 감동을 부추기지 않는다는 점은 믿음직하다.그러나 그런 미덕이 관객들의 아쉬움을 보전해줄지는 의문이다.역사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여름 블록버스터 영화를 찾지는 않기 때문이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아테네 화필기행] (6) 화가 양대원씨가 본 올림피아 스타디움

    기원 전 776년부터 서기 395년까지 1000여년 동안 고대 그리스의 올림피아에선 4년마다 제우스신을 찬양하는 올림픽 축제가 열렸다.수많은 사람들은 무리를 지어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자그마한 마을 올림피아로 몰려갔다.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물론 멀리 스페인과 아프리카의 식민지에서도 이 스포츠 제전을 찾아 왔다.고대 올림피아는 올림픽의 발상지일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성소로도 유명하다.스포츠와 종교는 나의 작가적 관심의 양대 축.고대 올림피아는 내 아테네 화필기행의 종착점이었다.어떻게 이렇게 높고 외딴 곳에서 그처럼 성대한 축제가 열릴 수 있었을까.그러나 알고 보면 고대의 이 도시는 만만찮은 지리적 이점을 누렸다.인근 알페이오스 강으로 배가 다니고,사람들은 육지를 통해서건 바닷길을 통해서건 이곳으로 쉽게 들어올 수 있었다니 올림픽 개최지로선 최적의 장소였던 셈이다.더구나 올림피아 경기장 북쪽엔 제우스신의 아버지 크로노스의 이름을 딴 크로노스 언덕까지 있지 않은가. 올림피아엔 제우스 신전과 헤라 신전,제우스상이 만들어진 ‘페이디아스의 작업 장’등 유적이 많지만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 단연 올림피아 스타디움이었다.이 고대 올림픽 경기장은 지금의 눈으로 보면 무척이나 소박한 것이었다. ‘헬라노디카이’라 불린 심판관과 선수들만이 드나들 수 있었다는 아치형의 문을 지나니 탁트인 운동장이 나타났다.올림피아 스타디움의 역사는 기원 전 4세기 중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올림피아 경기장에 있던 트랙의 길이는 600 올림픽 피트,즉 192m가 조금 넘었다고 한다.힘이 장사인 영웅 헤라클레스가 숨을 다시 들이마시기 위해 멈칫거리지 않고 한달음에 달릴 수 있는 거리라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도 전해 내려온다. 나는 이 지점에서 신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림피아 스타디움에선 이런 경기들이 열렸다.달리기,높이뛰기,레슬링,권투,원반던지기,창던지기,5종경기,마술(馬術)….나의 생각의 화살은 왠지 달리기 경기로 향해서만 날아갔다.사실 달리기는 고대를 통틀어 각별히 중요한 것으로 간주됐다.고대 그리스의 시인철학자 크세노파네스는 “발의 민첩함이야말로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특질”이라고 읊기도 했다. 달리기 선수들은 언제나 맨발이었다.처음엔 간단한 속옷 정도는 입었지만 나중엔 그것마저 벗어 던졌다.전해 오는 말에 따르면 벌거벗고 달린 최초의 선수는 기원 전 720년 제15회 올림피아드 우승자인 ‘메가라의 오르시포스’였다고 한다. 이 원시적이고 우스꽝스럽고 소탈하고 외설스럽기까지 한 풍경을 화폭에 담으면 어떨까. 나는 신화 속의 영웅이나 거인족들과는 전혀 다른 아주 귀엽고 앙증맞은 선수들을 그리겠노라고 마음먹었다.마치 캘리포니아 레고랜드의 귀여운 인형 같은…. 저마다 최선을 다해 달리는 당당한 올림픽 전사들.나는 그들이 질주하는 트랙에 평화의 염원을 담아 줄무늬가 선명한 그리스 국기를 깔아 주련다.내가 이런 포스터 같은 그림을 그린 이유는 올림픽이란 한 줌도 안 되는 스타의 것이 아니라 성실하게 참여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의 것이라는 점을 일깨워 주고 싶어서다. 올림픽은 경쟁이다.그러나 그것은 세속적인 탐욕의 경쟁이 돼서는 안 된다.드높은 이상을 향한 경쟁,순수의 사냥을 위한 경쟁이 돼야 한다.자,이제 돌아가자! . 싱그러운 솔바람 가득 안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달리던 그 ‘원시 올림픽’의 시대로.나의 ‘아테네 신화 화필기행’은 바로 그런 염원의 실천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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