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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후 변화는 자연을 망가뜨린다… 다음은 인간이다

    기후 변화는 자연을 망가뜨린다… 다음은 인간이다

    제주를 시작으로 장마가 시작됐다. 옛날 같지 않은 장마다. 길게는 10여일 비만 주룩주룩 내리던 장마는 사라지고, 특정 지역에 시시때때로 폭우를 내리는 장마 같지 않은 장마가 몇 해째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장마를 포함한 날씨, 크게 보면 기후는, 굳이 오래 생각하지 않아도 부유한 사람들에게 너그럽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냉정하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여실히 보여주지 않았던가. 빗물이 천장까지 들이찬 반지하의 세상을. 국립기상과학원 초대 원장을 지낸 조천호의 ‘파란 하늘 빨간 지구’는, 장마를 비롯해 옛날과는 확연히 다른 오늘의 기후변화가 어떤 요인에 의한 것인지, 그 해결책은 무엇인지 성찰한 책이다. 굳이 성찰이라고 한 이유는, 인간의 탐욕이 부른 결과라는 단순한 인과관계가 아니라 과학자이자 공직자로서 가져야 했던 나름의 신념을 책 곳곳에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기후변화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그 원인은 지구온난화다. 작디작은 인간의 활동, 즉 우리가 먹고 마시는 그 모든 일이 기후변화에 영향을 준다. 문제는 곧 인류의 행동이 촉발한 지질시대인 ‘인류세’, 즉 “문명을 가능하게 했던 기후 조건에서 벗어나 단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상태로 진입”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류가 쌓아올린 것처럼 오만을 떨고 있지만 인류 문명은 “지구 역사를 보면 이 역시 좋은 기후 조건을 만난 덕에 일어난 우연한 사건일 뿐”이다. 산업혁명 전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화석연료들이 오늘날 산업 문명의 초석을 놓았지만, 그에 따른 무분별한 인간의 욕심은 곧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한 요인이 되었다. 인간 고유의 것이라 자랑했던 지성은 자신의 터전 하나 지키지 못하는, 어쩌면 지구 구성원 모두에게 민폐만 끼치는 편협한 생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장마가 시작되면서 미세먼지는 비교적 잦아들었다. 중국 때문이든 아니든, 그래서 중국이 공장을 멈춘다면? 전 세계인이 이제 중국산 없이는 하루도 생활을 영위할 수 없으니 또 다른 피해가 불을 보듯 뻔하다. 화력발전과 경유차도 그렇다. 생활 편익은 다 누리려고 하면서 불편은 참을 수 없는 우리 아닌가. 덩달아 정부와 정치권도 인공강우나 도심에 거대 공기청정기를 설치할 수 있다는 “과학적 검증도 제대로 되지 않은 땜질식 처방”만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 저자는 미세먼지 감축을 위한 기준과 규제 강화, 대중교통 인프라 개선 등 고비용에 이해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사안은 애써 감추고, 비상대책 운운하며 대중의 관심을 원인 외의 것으로 돌리려 한다고 비판한다. 미세먼지 해결을 위한 시도가 “우리 사회의 수준과 실력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될 것”이라는 저자는 말은 실로 적절하다.저자의 말마따나 “오늘날의 기후변화 문제는 지구적이라는 특징”을 갖는다. 2010년 가뭄이 닥치자 러시아 정부는 밀 생산량 부족을 염려해 수출을 제한했다. 덩달아 치솟은 밀 가격은 북아프리카와 중동 폭동의 원인이 되었다. 기후변화는 자연도 망가뜨릴 뿐 아니라 인간 지성이 만든 시스템마저 무너뜨릴 것이다. 책은 ‘국가과학기술의 연구개발은 어떠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개인의 문제이자 국가, 혹은 전 세계적 문제이기에 이 질문은 언제나 유효하다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곧 들이친 장맛비가 부디 올해는 무사히 지나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장동석 출판평론가·뉴필로소퍼 편집장
  • 틀에 박힌 미술·음악? 오감 톡톡 진짜 예술!

    틀에 박힌 미술·음악? 오감 톡톡 진짜 예술!

    국어 과목의 연극 수업 시간인데 학생들의 앞에는 무대도, 소품도 없다. 블랙박스처럼 새까만 바닥과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학생들은 흰 테이프를 쭉 늘려 여기저기 이어 붙이며 무대를 만들어 갔다. 어떤 학생들은 벽에 테이프 여러 줄을 붙여 책장에 책이 꽂혀 있는 모습을 만들었다. “여기는 도서관이에요.” 어떤 학생들은 천장에서 바닥까지 테이프를 죽죽 늘려 붙여 만들어진 공간 안에 들어가 옹기종기 앉았다. 머리를 맞대고 적어 내려가고 있는 시나리오의 제목은 냉장고 안에서 살고 있는 ‘냉장고 가족’이었다.지난 18일 찾아간 경기 용인시 경기학교예술창작소는 용인 제일초등학교 6학년 1, 2반 학생들이 발을 구르고 악기를 두드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경기학교예술창작소는 학생수 감소로 유휴공간이 된 용인 성지초등학교 별관 건물을 새롭게 단장해 지난달 8일 문을 연 곳으로, 용인 지역 학생들에게 학교 수업과 연계한 예술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학교예술’이라는 간판을 걸었지만 이곳에서는 무용 배우기나 미술작품 만들기, 능숙하게 악기 다루기 같은 수업을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의 예술교육은 ‘감각 깨우기’에서 시작한다. 보고 듣고 만지는 것과 몸의 움직임에 대한 생각을 일깨우는 것이다. “감각은 상상력을 촉발시키고 상상력은 창의력의 원동력이 됩니다. 감각 속에서 자신과 타인, 그 관계를 관찰하는 것이죠.” 김혜경 경기교육청 융합교육정책과 장학사는 “악기 다루기 같은 기능 중심의 예술교육에서 벗어나 학생들을 미적 체험으로 이끄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오감’에서 시작하는 예술교육이라는 철학을 토대로 만들어진 공간은 음악실, 미술실 같은 구분이 없다. 학생들은 맨바닥에 누워 바닥면의 질감을 느끼거나 개수대의 수도꼭지를 틀어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룻바닥이 펼쳐진 ‘몸으로 공간’에서는 제일초 6학년 학생들이 예술교육 전문가들과 함께 온몸으로 바닥 위를 뒹굴었다. 손과 발, 팔꿈치와 무릎으로 자신을 둘러싼 사방 곳곳에 점을 찍으며 움직이는 활동으로, 생소한 몸의 움직임에 학생들은 땀범벅이 됐다. ‘소리로 공간’에서는 학생 네 명이 각기 다른 음을 내는 실로폰 4개를 이리저리 배치하고 연주하며 조화로운 멜로디를 찾고 있었다. 이날 진행된 제일초 학생들의 연극 수업은 시각과 결합된 활동이었지만 학생들은 의도치 않은 곳에서 창의력을 번뜩였다. 공간 한가운데 자리잡은 학생들은 바닥 위에 흰 테이프로 ‘놀이터’라고 이름을 붙여 놓고는 쪼그려 앉거나 바닥에 엎드리며 놀이기구 흉내를 냈다. “놀이터에 아무도 없는 밤이 되면 놀이기구들이 깨어나요. 아침이 되면 다시 잠들고요. ‘놀이터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예요.”(노하영양) “저희 조가 자리잡은 곳은 테이프를 붙일 벽이 없어요. 그래서 테이프 대신 몸으로 무대를 만들고 있어요.”(윤서연양)모든 학생이 똑같은 그림을 그리고 점수를 받던 예술교육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학교가 ‘허브’가 돼 지역 사회에 예술의 기운을 불어넣고, 과제 평가가 아닌 예술 소양 기르기를 추구하는 예술교육이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 교육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학교 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중·장기 계획은 모든 학생들에게 양질의 예술교육을 제공하는 ‘보편교육’으로서의 예술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공교육이 학생 각각의 욕구에 맞는 예술교육을 지원하고 지역 사회로 확산시킨다는 구상이 담겨있다. 경기학교예술창작소는 학교와 지역 사회가 함께하는 예술교육을 구현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전문 강사로 나서고, 학생들은 물론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도 이곳의 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틀에 박힌 입시 미술에 염증을 느낀 예술 계열 학생들, 예술적 감각을 끌어내고 싶은 교사들도 이곳의 문을 두드린다. 경기교육청은 향후 고교학점제가 자리잡으면 지역 학생들의 예술교육을 책임지는 지역 내 예술학습장으로 이곳을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김 장학사는 “일선 교사와 교장, 교감에게도 연수를 제공해 학교의 예술교육을 바꿔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예술교육의 변화는 개별 학교 단위로도 이뤄지고 있다. 같은 날 방문한 경기 남양주시 광릉중학교에서는 5~7교시 동아리 활동 시간을 맞아 전교생이 음악실과 미술실 등 곳곳에 모였다. 교실 바닥에 삼삼오오 앉은 학생들은 기타와 드럼, 베이스를 연주하며 수준급의 실력을 뽐냈다. 난타와 사물놀이를 하며 북을 두드리는 소리에는 힘이 넘쳤다. ‘미술 중점반’ 학생들은 도자기를 빚는가 하면 종이컵을 조립해 조형물을 만드는 ‘어셈블리지’ 활동에 열심이었다. 광릉중은 ‘1인 1악기’와 다양한 예술 동아리 등 특화된 예술활동으로 주목받는 학교다. 전교생이 305명에 불과하지만 학교에 밴드부가 세 개나 있다. 광릉중이 예술활동에 주력한 건 2008년 개교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남양주시 진접읍과 포천의 경계 지역에 위치한 학교는 공장과 밭들로 둘러싸여 있다. 교통도 편리하지 않아 학생들이 문화생활을 즐기기 쉽지 않은 환경이다. 학교는 인근 지역의 중소기업인들의 모임인 남양주시 철마기업인회가 지원한 매달 200만원의 학교발전기금으로 지역 예술가들을 초청해 예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강숙 광릉중 교장은 “학생들에게 학교에 대한 자부심을 심어 주고자 시작한 예술활동이 지금은 학교의 특색이 됐다”고 말했다. 교육부는 예술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에게 심화된 예술교육을 제공하는 ‘예술중점학교’를 지정·운영하는 한편 학교와 지역 사회 간의 예술교육 선순환 모델을 만드는 ‘예술이음 연구학교’도 올해부터 운영하고 있다. 광릉중은 지난해 미술 중점학교로 지정된 데 이어 올해에는 예술이음 연구학교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예술이음 연구학교는 지역 사회의 예술 자원을 학교가 십분 활용해 예술교육을 제공하고 이를 지역 사회로 환원하는 모델을 구축하는 체계를 실험하고 있다. 광릉중은 지난달 진접읍에 위치한 경복대와 예술교육 협력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는 한편 인근 지역의 사회복지법인으로부터 후원을 받아 학교 곳곳을 단장하는 등 지역 사회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신나게 춤춰 봐~ 인생은 멋진 거야~” 뮤지컬 동아리 학생들이 뮤지컬 ‘맘마미아!’의 넘버를 목이 터져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박영애 교감은 “학생들이 학교에 늦게까지 남아서 연습하겠다고 해서 고민”이라면서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는 게 가장 큰 변화”라고 말했다. 이 학교에서 배운 노래와 악기 연주, 뮤지컬 등을 장기로 앞세워 ‘아이돌 사관학교’라 불리는 예술고등학교와 대학 실용음악과에 진학한 학생들도 더러 있다. 이 교장은 “학교가 단 한 명의 학생에게라도 진로 설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예술교육을 강화하려는 학교가 모두 광릉중처럼 순탄하게 진행되는 건 아니다. 교장과 교감 등 관리자부터 예술교육에 대한 인식 개선이 뒷받침돼야 한다. 학교가 의지를 갖고 추진하더라도 “1인 1악기보다 성적 향상”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을 설득하는 과정이 쉽지 않다. 교육부 관계자는 “학교에서의 예술교육은 단순히 악기 다루기 같은 기능을 습득하는 게 아니라 타인과 관계를 맺고 주변을 성찰하게 하는 기초 소양교육”이라면서 “장기적인 안목으로 학교와 지역 사회의 예술교육 체계를 구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김소라 기자 sora@seoul.co.kr
  • 亞 금서 55권 한자리… 출판의 자유를 묻다

    亞 금서 55권 한자리… 출판의 자유를 묻다

    전환시대의 논리·노동의 새벽 등 주목 냉전 세계관과 노동 착취 비판 서적부터 일본·태국·터키 등 부조리 고발 책까지 ‘현대판 금서 사건’ 블랙리스트 성찰도반공주의가 형형하던 군사독재 시절, 미국 중심 세계관에 맞서 비판적인 시각을 선보여 ‘불온서적’ 딱지를 받은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창작과비평사·1974). 나가사키 원폭 투하 직후 상황을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 내 출판 금지 조치를 당한 나가이 다카시의 ‘나가사키의 종’(히비야출판사·1949). 대한출판문화협회와 아트선재센터가 공동 기획한 금서 전시회 ‘금지된 책: 대나무 숲의 유령’에서 선보일 책들이다. 정치, 종교,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권력이 배포를 막거나 회수한 책 가운데 주목할 만한 아시아의 금서 실물본 55권이 19일부터 23일까지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관객을 맞는다. 한국 금서는 31권, 외국 금서는 24권으로, 이 가운데 중요도가 높은 금서 6권을 꼽아봤다. ‘전환시대의 논리’는 폭압적인 시대, 세계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 ‘지적 해방의 단비’로 불렸다. 1974년 6월 출간 직후 대학생들 사이에서 엄청난 화제가 됐고, 군사정부가 급기야 1979년 판매금지 조치했다. 저자인 리영희는 책을 썼다는 이유로 1970년대 후반 반공법 위반으로 옥고를 겪었다.박노해의 ‘노동의 새벽’(풀빛·1984)은 군자동 섬유 공장, 청량리 공사판, 성수동 영세 공장, 안양 버스회사 등에서 일하던 스물일곱 살 현장 노동자인 저자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혹한 노동 착취의 현장을 실감 나게 묘사한 시집이다. 시집 출간 당시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린 ‘박노해’는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말에서 따온 필명으로, 본명은 박기평이다. 금서 조치에도 책은 100만부 가까이 팔리며 대학생들의 필독서로 자리잡았다.이용악의 ‘낡은 집’(기민사·1986)은 일제 치하 처참한 민족사를 생생하게 그려 낸 시선집이다. 초판은 1938년 삼문사에서 발간됐다. 저자는 서정주, 오장환과 더불어 1940년대 문단의 3대 시인으로 불렸지만, 한국전쟁 도중 월북해 우리 문학사에서 지워졌다. 1987~88년에 걸친 월북문인에 대한 단계적인 해금 조치로 다시 빛을 볼 수 있었다.나가이 다카시의 ‘나가사키의 종’은 일본 원폭 투하 당시 나가사키의료대(현 나가사키대 의학부) 조교수였던 저자의 구호활동을 그린 에세이다. 원폭 투하 지점에서 700미터 정도 떨어진 나가사키의대 진료실에서 피폭을 당한 저자는 오른쪽 머리 쪽 동맥이 절단된 중상에도 붕대를 머리에 감은 채 구호활동을 벌였다. 책은 피폭 당시 파괴된 나가사키시, 화상을 입은 채로 죽어가는 동료와 시민들의 모습 등을 세세하게 그렸다. 1946년 8월 출간하려다 연합군최고사령부(GHQ) 검열로 출판금지당했다. GHQ가 일본군의 마닐라 대학살에 관한 기록집 ‘마닐라의 비극’을 합본하는 조건으로 책의 출간을 허가하면서 1949년 1월 세상에 나왔다.루앙 팟퐁 팍디의 ‘니라트 농 카이’(1868)는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태국의 금서다. 저자는 라마 5세 섭정왕 솜데트 차오프라야 보롬마하 스리수리야웡이 비효율적으로 군사작전을 진행한 것을 책으로 비판했다. 정부는 저자를 잡아 50번의 채찍형을 내리고 감옥에 가뒀다. 책은 모두 압수되고 나서 소각됐다. 이 책을 좌파 독립학자이자 공산주의 게릴라인 지트 푸미삭이 남은 판본을 편집해 출판했다. 그러나 1979년 10월 6일 쿠데타 이후 다시 금서로 지정됐다. 현존하는 판본은 태국 정부 예술국에서 1955년 편집, 출판한 것이다.카짐 카라베키르 ‘터키의 독립전쟁에 관한 사실들’(1933)은 터키 독립전쟁 지휘관이자 공화국 수립에 공을 세운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의 전우인 저자가 ‘민족투쟁에서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는 비난에 맞서 낸 책이다. 책은 1933년 인쇄 단계에서 몰수, 소각됐고 정부는 카라베키르의 집을 급습해 문서를 압수했다. 책이 온전히 출판된 것은 57년이 지난 뒤였다. 김해주 아트선재센터 부관장은 이번 전시회에 관해 “6권의 책은 역사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책들”이라고 설명했다. 이용희 대한출판문화협회 정책연구소 연구위원은 “박근혜 정권에서 세종도서 리스트를 좌지우지한 이른바 ‘블랙리스트’ 사건은 현대판 금서 사건이라 할 수 있다”면서 “전시회를 통해 지난 정권의 블랙리스트를 돌아보고 출판의 자유를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전시회를 기획했다”고 강조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배우는 즐거움 얼마나 큰지”… 인문학에 빠진 수원

    “배우는 즐거움 얼마나 큰지”… 인문학에 빠진 수원

    5060 중심 강의실 복도에도 ‘인산인해’ 임정 100주년 기념 독립운동 재조명도“이집트 문명을 공부하며 배우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경기 수원시 9개 도서관이 오는 11월까지 운영하는 각종 인문학 프로그램이 호평을 받고 있다. 13일 수원시에 따르면 북수원도서관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인문독서 아카데미’ 사업에 선정돼 지난달 21일부터 ‘세계 고대 문명, 그 시간과 공간 속으로’라는 제목의 강좌를 진행 중이다. 오는 10월 29일까지 황하 문명, 아스테카와 마야 문명, 그리스 문명을 주제로 한 강좌가 이어진다. 지난 9일 강좌에는 정원 120명을 훌쩍 넘긴 150명의 인파가 몰려 복도에서 강의를 듣는 풍경도 펼쳐졌다. 대부분 50~60대 중년층이다. 이봉화 북수원도서관 주무관은 “강당 책상을 밖으로 빼고 열람실·사무실 의자까지 가져오는데도 여전히 자리가 부족하다”고 열기를 전했다. 영국 리버풀대에서 이집트 상형문자 등을 전공한 강주현 작가가 강의를 맡고 있다. 앞으로 ‘영생을 위한 완벽한 아름다움의 추구, 고대 이집트 예술’, ‘신들의 언어, 거대 이집트 상형문자’ 등 주제의 강의가 이어진다. 광교홍재도서관은 지난달 30일부터 8월 9일까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한국근현대사 다시 읽기’를 주제로 ‘역사, 문학에 빠지다’, ‘역사, 사진에 빠지다’, ‘대한민국을 사랑한 백범 김구’ 강좌를 진행한다. ‘대한민국을 사랑한 백범 김구’는 청소년을 위한 강의다. 마지막 강의 때 성인, 청소년이 함께 참여하는 역사토크 콘서트를 진행한다. 화서다산도서관은 오는 10월 2일까지 ‘1919 외치고, 2019 새기다’를 주제로 ‘과학, 독립을 외치다’, ‘예술, 독립을 외치다’, ‘문학, 독립을 외치다’ 등의 강좌를 연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3·1운동의 정신을 되새기고 독립운동가를 재조명하는 내용이다. 장유정 단국대 교수, 유성호 한양대 교수가 강연한다. 대추골도서관은 오는 18일부터 9월 24일까지 ‘인문학, 삶의 의미를 더하다’(청년과 시니어를 위한 인생 재설계)를 주제로 ‘영화로 삶을 성찰하다’, ‘그림이 전해주는 삶의 모습’ 등의 강연을 연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 외로운 사나이가 찾아간 삼각지… 눈물의 비표 새긴 애창곡 되다

    외로운 사나이가 찾아간 삼각지… 눈물의 비표 새긴 애창곡 되다

    서울신문이 서울시, 사단법인 서울도시문화연구원과 함께하는 2019 서울미래유산-그랜드투어 ‘제7회 서울의 대중음악1(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편이 지난 8일 용산구 한강대로와 원효로 일대에서 진행됐다. 지하철 삼각지역 안 기타를 치는 배호(1942~1971) 좌상 앞에 모인 참가자 40여명은 서울의 5번째 노래비 ‘돌아가는 삼각지’를 둘러보고 배호길을 따라 왜고개 성지~아모레 퍼시픽 사옥~용산전자상가를 걸었다. 임진왜란 때 당사국 조선을 제쳐 두고 명나라 심유정과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화의를 맺은 심원정 터~유서 깊은 용산신학교와 예수성심성당~범죄심리학의 개척자 장병림 가옥~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된 원삼탕, 창성옥, 경의선숲길공원까지 2시간 30분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배호의 노래를 포함해 6건의 서울미래유산이 즐비했다. 1978년 타계할 때까지 원효로에 거주한 박목월 시인을 기리는 목월공원과 청노루힐 옛 자택 구경은 덤이었다. 이준섭 서울도시문화지도사는 차분하고 깊이 있는 해설을 들려줬다.대중가요 가사에 투영된 서울은 서울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노랫말은 특정 시대, 특정 장소, 특정 시각에 대한 경향성을 담았기 때문이다. 이영미 성공회대 초빙교수는 ‘대중가요에 나타난 서울의 길’에서 “대중의 경험과 욕망을 통해서 걸러진 서울을 보는 것”이라고 파악했다. 서울을 소재로 한 노래를 통해 서울에 대한 당대인의 꿈과 희망 혹은 불안과 좌절을 엿볼 수 있다. 서울은 선과 악의 이중성을 가진 야누스적 도시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대중가요의 소재로 활용되는 이유는 근대성이 가장 잘 체현된 공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장유정 단국대 교수는 ‘서울 노래를 통해 본 서울의 풍경’에서 대중가요는 “당대의 삶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대중가요의 가사를 통해 당대인의 시각과 정서를 헤아릴 수 있다.서울을 노래한 대중가요는 몇 곡이나 될까. 대중문화평론가 최규성의 ‘대중가요에 녹여낸 서울 100년’ 자료에 따르면 가수 710명이 1141곡의 서울 노래를 불렀다. 이 중 제목에 ‘서울’이 포함된 노래만 544곡이었다. ‘명동’이 85곡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한강 70곡, 서울역 55곡, 남산 40곡 등의 순이었다. 가수별로는 각각 14곡을 부른 나훈아와 이미자가 1위를 차지했다. 작사자로는 31곡을 지은 반야월이 돋보였다. 박춘석이 가장 많은 22곡을 작곡했다. 1930년대 대중가요의 3대 키워드는 ‘서울’, ‘한강’, ‘종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이라는 지명을 노래 제목에 처음 사용한 최초의 노래는 1929년 발표된 랑소희의 ‘서울마치’였으나, 1932년에 발표된 이애리수의 ‘자라메라’ 노랫말에 ‘종로네거리’가 등장하는 등 내용상 최초의 서울 노래로 평가받는다. 궁궐과 관청 그리고 지배계층과 상권이 몰려 있는 종로는 한양천도 이래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지만 일제강점기 들어 위상이 쇠락했다. 1950년대에 나온 현인의 ‘서울야곡’이나 나애심의 ‘미사의 종’이 그렇듯 해방 이전까지 새로운 시가지로 개발된 명동과 충무로 일대 남촌이 대중문화의 주 무대로 주목받았다. 대중가요 가사의 중심지가 1920년대 종로에서 1930~40년대 명동·충무로로 옮겨 갔다가 1950년대 해방과 한국전쟁 시기에 광화문, 종로, 남대문, 서울역 일대로 확장된 것을 알 수 있다.1960년대 대중가요에서 주목할 것은 노랫말이 서울 사대문을 벗어나 사대문 바깥으로 뻗어나갔다는 점이다. 서울의 양적 팽창이다. 1967~68년에 발표된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와 ‘안개 낀 장충단공원’,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이 대표작이다. 이른바 ‘미8군 무대’ 출신 가수들이 가요계에 진출하면서 과장되고 서구화된 서울의 모습이 판치던 시절이었다. 1970년대 명동과 무교동에 머물던 대중문화의 중심지가 종로로 중심 이동했으나 1979년 혜은이의 ‘제3한강교’를 시작으로 윤수일의 ‘아파트’,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 문희옥의 ‘사랑의 거리’ 등으로 흐르면서 1980년대 대중가요의 주 무대는 강남으로 강을 건넜다. 서울 노래는 1973년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 1982년 이용의 ‘서울’, 1988년 조용필의 ‘서울 서울 서울’ 등이 맥을 이었다.1968년 서울에서 전차가 사라진 뒤 건설된 입체교차로가 시민들의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새 서울’ 건설의 상징물이었다. 전차의 궤도와 전깃줄이 사라지면서 고가도로와 육교가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이 중 삼각지 입체교차로가 군계일학이었다. 장르는 트로트지만 세련된 재즈 스타일을 선보인 배호의 창법 때문에 유명해졌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지하 8층까지 내려가는 공포의 저음’과 ‘바닥까지 끌고 가서 밀어올리는 절절함’이 불후의 곡을 탄생시켰다. 이 노래는 1963년에 만들어졌지만 1967년 입체교차로가 들어선 뒤 창작한 노래라고 오해하는 사람이 많다. 작곡가 배상태는 노량진에서 전차를 타고 충무로로 가던 중 삼각지에서 한 사내가 비를 맞으며 걸어가는 뒷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 취입할 가수를 찾지 못해 애를 먹은 일화도 남겼다. 당대의 인기가수 남일해는 연습만 했고, 금호동은 퇴짜를 놓았다. 유망 신인가수 남진도 여의치 않자 무명가수 김호성이 녹음까지 했지만 음반을 내지 못했다. 배상태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배호의 허름한 전셋집을 찾았다. 건강이 악화돼 거동조차 힘들던 배호는 녹음을 사양하다가 쓸쓸한 분위기가 자기 처지를 대변하는 것 같다면서 가래를 뱉어 가면서 병상에서 녹음을 강행했다. 5년 묵은 곡이 배호를 만나서 빛을 본 셈이다. 서울에는 모두 9개의 노래비가 있다. 서울 노래비 1호는 패티김의 ‘서울의 찬가’이며 1995년 광화문 세종로공원에 세워졌다. 2호는 반야월 작사, 이해연 노래 ‘단장의 미아리고개’. 성북구 돈암동 미아리고개 예술극장에 서 있다. 3호는 은방울자매의 마포종점인데 1997년 마포구 도화동 마포근린공원에 세워졌다. 4호는 남인수의 ‘애수의 소야곡’이며, 강북구 번동 북서울꿈의 숲에 있다. 5호는 2001년 용산구 삼각지에 세워진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다. 6호는 2008년 대학로 학전블루 소극장 앞 벽면에 있다. 7호는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다. 2008년 대장암으로 세상을 등진 작곡가 이영훈 1주기를 맞아 정동길과 정동교회가 바라보이는 덕수궁 돌담길 앞에 세워졌다. 8호는 1965년 발표된 오기택의 ‘영등포의 밤’을 기려 2010년 영등포 타임스퀘어광장에 세워졌다. 9호는 의료사고로 숨진 신해철을 기리고자 2015년 북서울꿈의 숲에 벤치 형태로 건립됐다. 넥스트3집 수록곡 ‘세계의 문(유년의 끝)’이 새겨졌다.배호는 1981년 MBC특집 여론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로 선정됐고, 2005년 광복 60주년 기념 KBS 가요무대 여론조사에서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가수 10인’에 올랐다. 전국 방방곡곡에 배호의 노래비 7개 있다. 서울 삼각지(돌아가는 삼각지)를 비롯해 경기 양주(두메산골), 경북 경주(마지막 잎새), 강원 강릉(파도), 인천 중구(비 내리는 인천항 부두), 충남 보령(두메산골), 전북 정읍(잘 있거라 내장산아) 등이다. 전국에 배호사랑연합회가 활동 중이고, 올해도 제23회 배호가요제가 열려 언제 어디서나 배호의 노래가 애창되고 있다. 혹자는 그 이유를 ‘가난과 병마에 시달린 눈물의 비표(秘標)’가 노래에 새겨진 때문이라고 푼다. 삼각지를 품은 용산은 13세기 몽골군 침입 때 병참기지, 16세기 임진왜란 때 일본군 주둔지를 거쳐 19세기 임오군란 때 청군 주둔지였다. 20세기 들어 전승국 일본인 마을, 철도기지와 군사기지에 이어 해방 이후 미군기지였다. 한반도를 유린한 외세의 각축장이자 침략 통로였고, 150년간 외국 지배세력이 머문 특수한 곳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이 미치지 않는 단절과 망각의 도시다. 이처럼 용산에는 식민지 근대에 대한 불편함이 온존한다. 문학평론가 이광호는 에세이집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에서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간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라고 지적하면서 “참담하고 역동적인 모더니티의 장소로서 용산은 다시 성찰의 대상이 될 만하다”고 용산이 가진 과도한 산문성의 이면을 설명했다. 글 노주석 서울도시문화연구원장 사진 문희일·김학영 연구위원 ■다음 일정: 제8회 서울의 문학2(박완서의 나목) ■일시 및 집결장소: 6월 15일(토) 오전 10시 4호선 회현역 7번 출구 ■신청(무료): 서울미래유산 홈페이지(futureheritage.seoul.go.kr)
  • 해산 청원 33만 민주 “부끄럽다” 183만 한국 “정치선전 변질”

    해산 청원 33만 민주 “부끄럽다” 183만 한국 “정치선전 변질”

    청와대가 11일 자유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 해산 청구를 요구하는 국민청원에 “정당에 대한 평가는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라고 밝힌 데 대해 여야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33만여명이 해산을 청원한 민주당은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고 밝혔지만 역대 최다인 183만여명이 해산을 요구한 한국당은 “청와대가 국민청원 게시판을 편향된 정치선전 공론화장으로 변질시켰다”며 반발했다.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국민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공익을 최우선시 해야 하는 공당으로서 너무도 부끄럽고 면목이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의 뜻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나경원 원내대표는 일말의 반성은커녕, 정당에 대한 심판은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청와대 답변을 ‘선거운동과 다름없다’며 호도하고 나섰다”며 “국민의 권한을 국민께서 행사해 주시기 바란다는 말을 어떻게 선거운동으로 읽는가. 과연 모든 사안을 정쟁으로 끌고 가는 정당답다”고 비판했다. 또 “(한국당은) 국회로 돌아와 본연의 임무에 최선을 다하라. 그것이 정당해산을 요구한 국민 청원에 대한 응당한 답변이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박주현 민주평화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한국당은 일말의 반성도 성찰도 없이 적반하장 막무가내의 태도만 보일 뿐이니 이런 제1 야당을 둔 국민만 불쌍하다는 자조가 나올 수 밖에 없다”며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국민의 뜻에 따라 국회의원 국민소환제가 도입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최석 정의당 대변인은 구두 논평을 통해 “한국당이 대한민국 정치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 어떤 정치 세력도 하지 못한 참여하는 국민을 만들어 냈다. 183만명이라는 최다 청원동의는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며 “역사적인 한국당은 183만명의 바람대로 빠른 시간 내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기만 한다면 한국당의 평가는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민경욱 한국당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패스트트랙 강행 과정에서 반민주, 의회독재주의를 보여준 장본인은 청와대와 집권여당 아니었는가”라며 “그런데도 청와대는 홀로 고고한 양 ‘주권자의 뜻’ 운운하며 청원게시판을 정치선전 도구화 시켜버렸다”고 지적했다. 민 대변인은 “청원 답변을 편향된 정치 선전을 공론화하는 기회로 쓰는 청와대에게 애초부터 제1야당은 국정운영의 파트너가 아니었다”며 “청와대는 오늘 ‘주권자의 뜻’ 운운하며 답변했지만, 이미 정치 선동장으로 변질되어버린 청와대 국민게시판의 존재 이유를 묻는 국민 여론도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기 바란다”고 비판했다. 이종철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논평에서 “청와대의 답변에 ‘제왕적 권력’의 어두운 그림자가 어른거린다”며 “정당과 국회에 대한 평가는 신중하고 가급적 삼가야 함에도 주저함이 없다. 평소 청와대의 오만함을 다시 한 번 보는 것 같다”고 비난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자치광장] 서울책보고, 책·사람 보물이 되다/이정수 서울도서관장

    [자치광장] 서울책보고, 책·사람 보물이 되다/이정수 서울도서관장

    지난 3월 27일 ‘서울책보고’가 문을 열고, 첫 손님을 맞은 지 한 달이 됐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기업체 물류창고로 쓰이던 공간이 전국 최초의 공공 헌책방인 보물창고로 탈바꿈했다. 시민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셨고, 이곳을 찾는 시민들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서울시는 지난날의 개인적인 기억과 사회적 역사를 함께 담고 있는 ‘헌책’의 가치가 ‘서울형 도시재생’ 철학과 통한다는 점에 주목해 비어 있던 창고를 헌책의 보물섬으로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고, 서울책보고가 탄생했다. 서울책보고에 들어서면 우선 ‘책벌레’를 형상화한 비선형적인 32개의 철제서가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철제서가를 따라가면 마치 책 터널을 걷는 듯한 기분이 든다. 철제서가 하나가 한 개의 헌책방과 같은데, 이곳에는 청계천 헌책방 거리를 지켜온 동아서점, 동신서점 등 25개의 헌책방 책이 진열돼 있다. 서울책보고는 기업형 중고서점 등장으로 설 곳을 잃어가던 기존 헌책방을 돕고, 흔히 접할 수 없는 책을 시민들에게 노출시켜 헌책방 홍보·판매 플랫폼 역할을 톡톡히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곳에는 헌책 외에도 독립출판물과 명사의 기증도서도 있다. 독립출판이란 거대 자본의 논리에 구속되지 않고, 이윤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자유롭게 책을 쓰고 펴내며 파는 모든 활동을 말한다. 벽면서가 한편을 가득 채운, 기발한 내용과 아이디어를 담은 독립출판물 2130여권을 열람할 수 있다. 명사 기증도서 서가에서는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 심영희 한양대 석좌교수 부부가 기증한 여성학·사회문제·범죄학 등 전문서적 1만 600여권도 만나볼 수 있다. 이 서가에서는 두 학자의 연구 인생을 볼 수 있으며, 흔히 구하기 어려운 전문 서적도 열람할 수 있어 관련 분야 후학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울책보고는 책이 있는 공간 외에도 아카데미 공간과 카페도 있어 인문학 강연과 북콘서트, 시민참여형 마켓도 선보일 예정이다.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책을 보고, 쇼핑도 할 수 있는 원스톱 문화공간이 될 것이다. 서울책보고는 도시재생을 통한 문화재생의 좋은 사례이며, 책을 읽고, 사색하고 성찰해 마침내 스스로 보물과 같은 사람이 되는 ‘기적의 보물창고’로 거듭날 것을 확신한다.
  • [금요칼럼] 집과 가구/황두진 건축가

    [금요칼럼] 집과 가구/황두진 건축가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는 말이 있다. 집이란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의 가치관과 취향, 삶의 철학이 반영된 결과이므로 사람을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언뜻 들으면 맞는 이야기 같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비슷한 말들도 많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 ‘옷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 ‘차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 혹은 ‘책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 등이다. 식도락에 대한 관심이 커진 요즘 같으면 ‘뭘 먹고 마시는지 보면 그 사람을 안다’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말은 대부분 단정적으로 그리고 순식간에 타인을 평가하려는 의도에서 나온다. 과연 누가 만든 말일까. 아마도 해당 분야 종사자, 적어도 이런 것들이 자신에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따라서 역으로 ‘하는 말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도 성립한다고 하겠다. 집은 특별한 존재다. 자기 맘에 드는 집을 고를 수 있는 여건이 되는 사람은 정말 드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아파트는 닭장, 콘크리트 정글, 혹은 국민 기숙사라고 종종 비하되지만 여전히 절대 다수의 사람은 아파트에 산다. 누군가 나타나, ‘이곳에 살고 있는 걸 보니 당신은 이런 사람이군요’ 한다면 이에 동의할 사람은 많지 않다. ‘이 집으로 나를 평가하지 말라’고 하거나 ‘그냥 나에게 주어진 상황일 뿐’이라고 할 것이다. 즉 요즘 같은 세상에 어떤 집에 사느냐는 사람을 이해하는 유의미한 판단 기준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람들은 어떤 곳에 그냥 살고 있을 뿐이다. 다른 이야기들도 사실 마찬가지다. 마트에 서서 컵라면을 먹고 있는 사람이 알고 보니 삶의 성찰을 담은 심오한 책의 저자일 수 있다. 심지어 단지 그때 시간이 없었을 뿐인 진지한 식도락가일지도 모른다. 옷은 허름하게 입고 다니는데 음악에 대한 이해가 남다른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 반대로 취향도 좋거나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다른 면에 있어서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는 또 얼마나 흔한가. 그러니 ‘무엇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란 그 대상을 잘 알고 싶은 마음보다는 자기 관점을 내세우는 것과 다름없다. 정말 사람을 이해하는 데, 아니 그 이전에 삶을 잘 만들어 가는 데 필요한 이야기를 한 가지 하자면 바로 가구에 대한 것이다. 가능한 한 이른 나이부터 자기 가구를 하나씩 장만하고 모으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생기기를 바란다. 예를 들어 처음으로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에게 평생 쓸 수 있는 근사한 책상 위 스탠드 조명을 사 주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좋은 미감과 품질의 물건을 사용하는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었을 때 그 스탠드 조명은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귀중한 물건이면서, 동시에 부모님의 안목과 지혜에 대한 살아 있는 증언이 된다. 좋은 물건을 사서 오래 쓰는 것의 즐거움을 한번 알게 되면 세상의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훨씬 더 신중해진다. 자기의 손때가 묻은 물건만큼 사람에게 편안한 만족감을 주는 것은 없다. 젊은 시절에 조금 무리해서 어렵게 장만한 좋은 의자나 책상 등은 평생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이사를 하게 되는데, 집과 달리 가구는 가져갈 수 있다. 그래서 가구를 잘 갖추고 있으면 어디에서 살건 자기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정성껏 모은 가구들은 그다음 세대도 반가워하며 기꺼이 물려받을 것이다. 이렇게 취향은 문화로 이어지고 개인의 삶은 역사가 된다. ‘집을 보면 그 사람을 안다’에 대해서는 여전히 동의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가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안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집보다는 가구가 사람의 분신에 더 가깝다. 여전히 속단은 금물이지만 말이다.
  • [황규관의 고동소리] ‘노동자 인문학’은 왜 없는가

    [황규관의 고동소리] ‘노동자 인문학’은 왜 없는가

    노동절의 발생 기원이기도 한 1886년 5월 1일의 미국 노동자 파업에는 역사적 맥락이 꽤나 길게 그리고 복잡하게 드리워져 있다. 가까이는 1877년의 공황과 그에 따른 노동자들의 격렬한 파업이 있었다. 볼티모어에서 발생한 파업 노동자와 주 방위군의 무력 충돌에 이어 펜실베이니아의 피츠버그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이 잇따랐다. 특히 피츠버그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 때는 필라델피아 군대까지 개입해 충돌이 벌어졌는데, 군대에 의해 사망한 노동자가 10여명이나 됐다. 그런데 대부분 철도 노동자가 아니라 다른 공장의 노동자들이었다. 이는 한층 더 격렬하고 규모가 큰 저항과 봉기를 야기했다. 세인트루이스에서는 노동자당을 중심으로 총파업이 일어났다. 조선소 노동자 출신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인용한 데이비드 버뱅크에 따르면 세인트루이스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1877년 미국의 어떤 도시에서도,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만큼 오늘날의 표현대로 하자면 노동자 소비에트의 통치에 근접했던 경우는 없다.” 마르크스도 미국 노동자 파업을 예의주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는 ‘패배’를 예감했지만, 결코 비참을 자신이 말한 패배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하워드 진은 1877년을 “19세기의 나머지 기간을 알리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고 적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경제는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는데, 록펠러, J P 모건, 카네기 등등의 대자본가가 등장한 때가 대체로 이 시기와 맞물린다. 그러나 자본주의 경제 성장은 어디에서나 ‘핏빛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당시 미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도 사실은 노동자들의 철저한 희생 위에서 가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정부는 카를 마르크스가 묘사했던 자본주의 국가와 거의 똑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질서 유지라는 중립성을 가장하면서 부자들의 이해에 봉사했던 것이다”라고 하워드 진은 말했다(마르크스는 일찍이 자본주의 국가의 국가권력을 ‘부르주아 위원회’라고 부른 적이 있다). 이런 역사적, 사회적 배경 위에서 1886년 5월 1일 미국노동연맹은 8시간 노동을 요구하는 파업에 돌입했다. 물론 5월 1일이 전 세계 노동자들의 날로 의미화된 것은 5월 4일 헤이마켓 광장에서 있었던 평화 집회에서 경찰을 겨냥한 의문의 폭탄 사건으로 인해 엉뚱한 노동운동 지도자들이 체포돼 사형당한 일 때문이다. 체포된 8명 중 4명은 교수형에 처해지고 한 명은 입에 다이너마이트를 물고 자살했다. 1886년의 투쟁은 ‘진보와 빈곤’의 저자 헨리 조지를 뉴욕시장 선거에서 급부상시키는 정치적 힘으로 연결됐지만, 결국 뇌물과 강요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한국 노동운동이 역동성을 잃은 지는 꽤 됐다. 일차적으로는 역사적 조건이 그것을 강제했다. 여러 사회적 지표는 노동자의 생활이 나아진 것을 나타내지만, 자본주의 초기에 강제됐던 노동자의 희생이 자본주의가 고도화됐다고 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는 수탈과 착취가 멈추면 함께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도리어 그것을 은폐시키는 이데올로기와 문화를 경제와 함께 발전시켰다. 노동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현실은 그대로인데, 그것이 은폐되자 정신이 점점 황폐화되고 말았다. 은폐는 위장과 억압을 통해 가능한 것이고, 이것은 무의식을 비틀어 영혼을 병들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경제적, 정신적 자유의 정도에 비례한다고 한다면, 생존에 대한 불안이 불러들인 정신의 황폐화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협한다. 그렇게 되면 자유란 것도 단지 소비할 자유에 지나지 않게 되며 민주주의는 우리를 ‘무리’로 만들어 버린다. 우리는 그것을 선거 때마다 확인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경제적 차원의 ‘가치’ 문제든 아니면 철학적·생태적 차원의 ‘의미’ 문제든 우리에게 노동 문제는 더 좋은 그리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가장 현실적인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현재 ‘어떤’ 노동자인지 되물을 필요가 있다. 탐욕스러운 자본에 대한 저항과 자본이 노동자 사이에 쳐놓은 숱한 차별과 위계를 동시에 성찰하는 일은 그래서 시급해 보인다. 개인적으로 ‘노동자 인문학’을 강조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판에 박힌 노동절 ‘행사’는 그다음 다음 일이다. 오늘은 이미 그러고 난 이튿날이긴 하지만.
  • 문 대통령 “적폐수사 그만하자시는데…국정농단 사실이면 청산 뒤 협치”

    문 대통령 “적폐수사 그만하자시는데…국정농단 사실이면 청산 뒤 협치”

    “진보·보수 낡은 프레임, 이제 통하지 않고 의미 없다”“일본이 국내 정치에 한·일 관계 자꾸 이용해 문제 증폭시켜 아주 아쉬워”문재인 대통령은 2일 국정농단·사법농단 사태와 관련, “적폐수사를 그만하자고 하시는데 국정농단과 사법농단이 사실이면 반헌법적이라 규명하고 청산한 뒤에 협치할 수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사회원로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어떤 분들은 이제는 적폐수사는 그만하고 통합으로 나가야 하지 않겠냐는 말씀도 한다”면서 “살아 움직이는 수사에 대해서는 정부가 통제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이 사실이라면 아주 심각한 반헌법적인 것이고, 타협하기 쉽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빨리 진상을 규명하고 청산이 이뤄진 다음, 그 성찰 위에서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나가자는 데 공감한다면 얼마든지 협치하고 타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자유한국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지지자들의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형집행정지’ 요구 등의 발언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형집행정지 심의위원회는 지난달 25일 건강 악화를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이 신청한 형집행정지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밝혔었다. 문 대통령은 “국정농단이나 사법농단 그 자체를 바라보는 기본적인 입장이나 시각이 다르니까 어려움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고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이 브리핑에서 전했다. 문 대통령은 “가장 힘든 것은 정치권이 정파에 따라 대립이 격렬해지는 현상”이라며 “지지하는 국민 사이에서도 갈수록 적대감이 높아지는 현상이 가장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협치와 관련해 다방면으로 노력했음을 거듭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제가 약식 취임식 전 야당 당사를 전부 다 방문했다. 과거 어느 정부보다 야당 대표, 원내대표들을 자주 만났다고 생각하고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도 드디어 만들었다”면서 “협의체가 정치 상황에 따라 표류하지 않도록 분기별로 개최하는 것까지 합의했는데,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종북좌파에 대한 의견도 피력했다. 문 대통령은 “종북좌파라는 말이 어느 한 개인에 대해 위협적인 말이 되지 않고, 생각이 다른 정파에 대해 위협적인 프레임이 되지 않는 세상만 돼도 우리나라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되고 크게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 진보·보수의 낡은 프레임·이분법은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됐고, 진보·보수 이런 것은 거의 의미 없는 것”이라면서 “오히려 상식·실용 선에서 판단해야 한다. 이런 프레임을 없애는 데 제 나름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 관계와 관련해서도 “개인적으로 일본과 아주 좋은 외교 관계를 발전시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안보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경제, 미래발전 모든 것을 위해서도 일본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다만 “과거 불행한 역사가 있었기에 끊임없이 파생되는 문제가 있고 그 때문에 양국 관계가 때로는 불편해지는 게 사실”이라면서 “그 때문에 양국 관계 근간이 흔들리지 않게 서로 지혜를 모아야 하는데, 요즘 일본이 그런 문제를 자꾸 국내 정치에 이용하면서 문제를 증폭시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아주 아쉽다”고 지적했다.한편 이날 참석한 원로 가운데 환경부 장관 출신인 윤여준 윤여준정치연구원 원장은 최근 여야 대치 상황에 대해 언급했다. 윤 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 여당된 지 2년이 됐는데, (아직) 야당처럼 (행동을) 보이고 있다. 융통성을 보여야 한다”면서 “이런 국면에서는 대통령이 나서지 않으면, 문제를 풀기가 힘들다. 대통령께서 정국을 직접 풀려는 노력을 하셔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국회가 극한대결로 가면 대통령이 추진하려고 하는 것이 순조롭게 되지 않는다”면서 “야당은 초반에는 ‘선명야당’해야 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 극한투쟁을 하지만 대선이 다가오면 ‘대안정당’이 돼야 한다는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며 대통령의 인식 변화를 촉구했다. 전 청와대 비서실장인 김우식 창의공학연구원 이사장은 인사와 관련해 “한 계파의 대통령이 아니라 모두의 대통령”이라면서 “탕평과 통합, 널리 인재등용을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수차례 고위공직자 부실 검증 논란을 겪었던 청와대 인사시스템에 일침을 가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을지대 ‘길 위의 인문학’ 문체부 공모사업 3년 연속 선정

    을지대 ‘길 위의 인문학’ 문체부 공모사업 3년 연속 선정

    을지대학교가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공모사업에 3년 연속 선정됐다고 1일 밝혔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은 공공도서관 및 대학도서관을 거점으로 인문학 대중화를 위해 진행되는 사업이다. 지역주민들이 사회와 역사를 성찰하고 삶의 행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인문학적 체험 기회를 제공한다. 을지대학교 학술정보원은 5월 프로그램의 주제를 ‘음식과 사람을 EAT(잇)는, 맛있는 냄새 가득한 EAT(잇)문학’로 정하고, 한 달 동안 성남캠퍼스와 대전캠퍼스에서 강연과 탐방을 펼친다. 오는 21일에는 성남캠퍼스에서 바리스타와 함께 우리 삶 깊숙이 들어온 커피에 대해 알아보는 ‘커피향 가득한 인문학’ 강연이, 24일에는 남양주 커피 박물관을 방문해 한국과 세계 커피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아보고 커피 생산과정에 직접 참여해보는 체험 프로그램이 예정되어 있다. 학술정보원의 이한숙 원장은 “이번 행사에서는 이론뿐만 아니라 다양한 체험활동을 통해 음식을 직접 만들고 즐길 수 있다”며 “음식을 통해 인문학적 가치와 중요성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2000자 인터뷰 5-1] 김성경 “신한반도 체제, 철학적 성찰을 해보자는 것”

    [2000자 인터뷰 5-1] 김성경 “신한반도 체제, 철학적 성찰을 해보자는 것”

    “찍소리는 내고 죽어야 하는 것 아니냐.”(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신한반도 체제가 애매하다는데 원래 우리 사는 한반도가 애매하다.”(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난 22일 민족화해협력 범국민협의회 2019 통일정책포럼에 기조발제를 한 김동엽 교수와 조한범 연구위원이 김성경 북한대학원대학 교수의 패널 토론 내용에 대해 반박한 말이다. 거두절미하면 그렇다. 김성경 교수는 패널 토론을 통해 신한반도 체제란 개념이 주체들을 일으켜 세우려 하지 않고, 최고권력자가 던져 놓은 커다란 개념의 빈 여지를 전문가들이 채우려 애쓰고, 한국이 자율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 의심스러우며, 북한이나 아시아 다른 나라들을 배려하는 구석이 없거나 국가 권능이 해체되는 시대적 조류와도 역행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와 25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그날 포럼 때 반론 기회가 주어질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했다. -김동엽 교수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김 교수는 (비핵화와 평화체제, 한미동맹의) 트릴레마(세 가지 딜레마)를 다 이뤄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정책에 근간이다. 하노이 노딜은 세 가지 목표를 한꺼번에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이 명확히 했다고 생각한다. 신한반도 체제가 어떻게 채워지건 세 가지 목표를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할 때가 다가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한국 주도로 능동적 판을 짜려면 이 세 가지 딜레마에 마주서야 한다. 뭐든 해보자가 아니라 세 가지 딜레마에 대해 정부 차원의 면밀한 검토와 전략, 대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조한범 연구위원 말씀에 대해서는요. -한반도 상황이 모호하지만 대외 정책으로서 해외를 대상으로 한 정책을 상상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원칙적으로 공감한다. 그런데 극복하기 위한 대안 정책의 성격이나 성향이 우리가 지금까지 굉장히 불편해 했고 벗어나고자 했던 것과 닮아 있다는 것이고, 국가가 주도하는 평화, 역사 바로세우기, 경제 정책 등이 세계의 흐름과 역행하는 것 아니냐는 큰 질문이 있다. 문재인 정부는 외교를 중심으로 국가가 해외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협도 해내는 등 주도하겠다는 구상을 하는데 다른 국가들은 오히려 영향력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런 얘기를 꾸준히 해오셨을텐데. -본인들은 내용을 채워나가기 바쁜 상황에 문제제기를 하니까 생뚱맞네 그럴 수 있다. 정책을 만들어가는 분들에게는 별 공감이 안되는 얘기일 수 있다. 마음을 모아서 만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많으니까. 난 전체적인 방향에 대한 이견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의 시도에 근본적인 철학적 성찰을 하고 있나, 그런 의문을 갖고 있다. 그분들이 못 알아들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정부 “일본 지도자들 야스쿠니 참배에 깊은 실망과 유감“

    정부 “일본 지도자들 야스쿠니 참배에 깊은 실망과 유감“

    외교부 대변인 논평…“과거사 반성 통해 신뢰 회복하길”정부는 23일 일본 우익 성향 의원들이 A급 전범 14명이 합사(合祀)된 도쿄(東京)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집단 참배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명했다. 이 신사는 주로 주변국을 침략하다 숨진 일본 군사들의 영령들을 달래는 곳이다.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명의 논평을 발표하고 “일본 정부와 의회 지도자들이 침략전쟁을 미화하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또다시 참배하고 공물을 봉납한 데 대해 깊은 실망과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외교부 대변인은 “일본이 올바른 역사 인식을 토대로 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성찰과 반성을 통해 주변국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고 평화의 길을 걸어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교도통신에 따르면 ‘다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원들은 이날 오전 야스쿠니 신사의 춘계례대제(春季例大祭·봄철 큰제사)에 맞춰 이 신사를 참배했다. 아베 신조 총리는 지난 21일 직접 참배하는 대신 ‘마사카키’라는 공물을 야스쿠니 신사에 보냈다. 공물을 보낸 것은 참배와 마찬가지의 행위로 받아들여진다. 마사카키는 신사 제단의 좌우에 세우는 나무의 일종이다. 야스쿠니신사는 근대 일본이 일으킨 크고 작은 전쟁에서 숨진 사람의 영령을 떠받드는 시설로, 제국주의 일본의 상징으로 불린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해 246만 6000여명이 합사돼 있다. 실제로 위패와 유골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합사자 명부가 있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밥값은 했나… 목민관 10년 돌아본 용산구청장

    밥값은 했나… 목민관 10년 돌아본 용산구청장

    “구청장실에서 남산타워를 바라보면서 가끔 아버지께 물어요. ‘아버지, 나 밥값하고 있어요?’하고요. 목민관으로서 용산의 발전, 구민들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면 죄를 짓는 거니까요. 이 책은 결국 저와 직원들이 지난 10년간 용산을 위해 밥값을 제대로 해왔는지 성찰하고 어떻게 미래를 가꿀지 고민하려 쓴 겁니다.” 지난 15일 오후 서울 용산구청 10층 북카페에서 한 저자의 고백이 직원들에게 큰 울림을 전했다. 용산구에서 처음으로 ‘4선 구청장’이란 수식어를 단 성장현 구청장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바쁜 구정 활동을 쪼개 최근 저서 ‘밥 얻어먹고 살기가 어디 쉽다냐’를 펴낸 성 구청장은 이날 직원 독서토론 모임 ‘책마실’ 회원들과 얼굴을 맞댔다. 지난 10년간 구정 활동을 돌아보고 용산의 비전을 제시한 책인 만큼 직원들에겐 자신의 업무와도 바로 맞닿은 ‘저자와의 생생한 대화’인 셈이다. 한 직원이 “오늘 한 온라인 서점에 들어가 보니 책이 행정 분야 5위에 올라 있더라”고 하자 성 구청장은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며 “우리가 구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떻게 노력했고 의미 있는 역사를 만들었는지 점검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책은 구민들 삶의 질을 높여온 주요 구정 사업들을 살뜰히 기록했다. 성 구청장이 서울에서 유일하게 80병상 이상 요양원을 구립으로 두 곳이나 갖춘 점, 네덜란드 호그벡 마을을 벤치마킹한 치매안심마을을 경기 양주에 조성하는 것, 용산꿈나무종합타운·용산복지재단 건립, 100억원 규모의 청년 일자리 기금 조성, 용산역사박물관 건립, 당고개 성지 보존 등이다. 염수정 추기경이 “10년 세월, 그가 밥값하기 위해 흘렸던 땀의 결실이 오롯이 담긴 책”이라고,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이 “지방자치란 추상적인 슬로건의 반복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설득해가는 과정과 결과임을 보여준다”고 추천사를 쓴 이유다. 그는 또 책에서 온전한 용산공원 조성을 위한 7가지 제언을 펼치기도 했다. 이근원 자치행정과 주무관은 “용산에 살면서도 용산의 내력을 모르는 분이 많은데 지역 역사가 풍부하게 서술돼 있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성 구청장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등 아픈 역사로 점철된 용산구의 과거를 후손들이 되새길 수 있어야 미군기지 반환과 함께 평화, 통일을 상징하는 도시로 거듭날 용산의 미래를 그릴 수 있다”며 “앞으로도 용산을 ‘통일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만들어가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힘줘 말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김순례 “5·18 유족에 사과” 김진태 “행사 안 갔는데…”

    김순례 “5·18 유족에 사과” 김진태 “행사 안 갔는데…”

    ‘5·18 망언’과 관련해 ‘당원권 정지 3개월’ 징계를 받은 김순례 자유한국당 의원이 “당의 처분을 존중하며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마음의 상처를 받은 5·18 유공자, 유족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반면 ‘경고’ 처분을 받은 김진태 의원은 “특별한 발언을 한 것도 없는데 지금까지 고통 받아왔다”며 “민주주의가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자유한국당은 19일 영등포 당사에서 중앙윤리위 전체회의를 열어 ‘5·18 망언’ 논란을 일으킨 김순례 최고위원에 대해 당원권 정지 3개월, 김진태 의원에 대해서는 경고 처분을 내렸다. 이에 대해 김순례 의원은 입장자료에서 “저는 지난 2월 ‘5·18 진상규명 대국민 공청회’에 참석해 축사 도중 일부 부적절한 표현을 한 부분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사과한 바 있다”며 “당의 (징계) 처분을 존중하며 겸허히 수용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심사숙고해 더 정제되고 신중한 발언을 하겠다는 말씀을 드리며, 제 자신을 성찰하는 시간을 갖겠다”고 전했다. 그는 “당과 당원 동지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며 “마음의 상처를 받은 5·18 유공자, 유족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반면 김진태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입장문에서 “당 윤리위로부터 5·18 경고처분을 받았다. 그 행사에 참석한 적도 없고 특별한 발언을 한 것도 없는데 지금까지 고통을 받아왔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모든 것이 민주주의가 성숙해 가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김순례 의원은 지난 2월 8일 국회에서 열린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에서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칭하는 등 원색적인 발언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김진태 의원은 이 공청회를 공동 주최했고, 영상으로 환영사를 보냈다. 한편 자유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은 이날 징계가 ‘솜방망이’ 처벌에 그쳤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이해식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비운의 역사에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은 정당으로서 과거에 대한 반성도, 과거를 마주 대할 용기도 없는 정당임을 스스로 고백한 것”이라며 “한국당은 차라리 ‘자유망언당’으로 이름을 바꾸라”고 비꼬았다. 김종대 정의당 원내대변인은 서면 논평에서 “처벌보다는 오히려 격려에 가깝다”며 “국민이 목숨 걸고 지키려 한 민주주의의 출발이 59년 전 오늘이며, 5·18 광주는 그 연장선이다. 4·19 혁명 59주년을 자유한국당이 망쳤다”고 지적했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서울광장] 안중근 동양평화론과 한반도 평화체제/이두걸 논설위원

    [서울광장] 안중근 동양평화론과 한반도 평화체제/이두걸 논설위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 이틀 전인 지난 9일 안중근 의사 기념관이 자리한 중국 하얼빈 역사를 찾았다. 2년 전 역 확장 공사에 따라 조선민족예술관으로 임시 이전했다가 지난달 30일 다시 문을 열었다. 임정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국기자협회 주관으로 열린 ‘안중근을 만나다’ 연수 일정 중 하나였다. 기념관 입구로 들어서자 안 의사의 전신 동상이 관람객들을 맞았다. 기념관에는 안 의사의 일생 및 1909년 10월 26일 이토 히로부미 암살 의거와 관련한 기록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기념관 한쪽 끝 유리벽 너머로는 안 의사가 저격한 지점의 바닥 표지석 및 팻말도 확인할 수 있었다. 기록물들 사이로 ‘동양평화론’을 새긴 동판이 눈에 들어왔다. 자서전 격인 ‘안응칠 역사’(응칠은 안 의사의 아호)와 더불어 안 의사가 의거 직후 뤼순 감옥에 투옥됐을 당시에 저술했다. 동양평화론은 전체 5단계 중 서문 등 2단계만 쓰여진 미완성 논문이다. 히라이시 요시토 뤼순 고등법원장과의 면담 기록을 통해 주요 내용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동양평화론의 개요는 △일본은 뤼순을 중국에 돌려주고 중립화한 뒤 한ㆍ중ㆍ일이 공동 관리하는 군항 건설 △3국 동양평화회의 조직하고 재정 확보를 위해 회비 모금 △3국 공동 은행 설립 및 공용 화폐 발행 △3국 공동 군단 설립 △한중 두 나라는 일본의 지도 아래 상공업의 발전 도모 등이다. 동양평화론에는 우리가 알던 안 의사의 다른 면모가 드러난다. 일본과 일본 천황에 대한 우호적 인식이다. “대저 합하면 성공하고 흩어지면 패망한다”는 문구로 시작하는 동양평화론의 서론 등에서 안 의사는 동양평화회의나 공동 은행, 공동 군단 등을 일본이 주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회비 모금 등은 당시 청과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재정난을 겪던 일본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도 덧붙인다. 오영섭 연세대 연구교수는 논문 ‘안중근의 정치사상’에서 “안 의사는 일본 제국주의의 한국 침략을 비판하는 초점을 이토 히로부미 개인에게 맞추고 정작 침략 정책의 최고 책임자인 일본 천황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다. 안 의사의 사상적 한계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시아 중심주의 역시 동양평화론의 맹점으로 지적된다. 최봉룡 중국 다롄대 교수는 “동양평화론의 일본 중심 인식은 서구에 대한 대항 논리지만, 동북아를 제외한 다른 지역은 타자로 돌리는 또 다른 인종주의가 반영돼 있다. 동양평화론을 인류 평화와 연결할 때는 모순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이른바 ‘대항 민족주의’는 나 아닌 다른 것에 대한 극복과 배척을 내포하고 있다는 태생적 한계를 부인하기 어렵다. 20세기 초반까지 유대 민족의 대항 민족주의였던 시오니즘이 지금은 팔레스타인 등 중동 약소 민족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기능하는 까닭이다. 민중들이 경제적 불평등이라는 민족 내부의 모순에 눈멀게 하는 것도 민족주의의 냉혹한 현주소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안 의사가 살았던 20세기 초반이 아닌 21세기의 시선이라는 한계 역시 명확하다. 서양이 아시아를 침략하던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기에 안 의사를 포함한 당대 동북아의 개화사상가들은 서양을 몰아내는 데 주력했다.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한 데 대해 많은 이들이 반겼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시아의 맹주를 넘어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던 일본을 배제하고는 평화를 이룰 수 없다는 현실적인 요건들도 작용했다. 안 의사 인식의 한계는 인정하되 동양평화론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동양평화론은 최근 남북 화해구도 형성 등 한반도 평화체제의 대안으로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 3국 평화회의는 동북아 국제기구, 공동 은행과 공용 화폐는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논의하는 씨앗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안 의사는 남북 화해 구도 정착의 열쇠이기도 하다. “남북이 모두 존경하는 안 의사의 황해도 생가 복원 등의 사업은 교착 상태인 남북 관계를 완화하는 계기가 될 것”(정창현 평화경제연구소장)이라는 의견이 제기되는 까닭이다. 우리에게 평화는 생명이다.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지정학적 숙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데다 분단을 ‘강요’받았다는 특수성 때문이다. 영웅이 아닌 인간 안중근의 고뇌를 성찰하고, 한중일 3국의 공동 번영을 꿈꾼 그의 동양평화론을 다시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douzirl@seoul.co.kr
  • [강남순의 낮꿈꾸기] 장애를 지닌, 그 한 사람의 권리를 기억하라

    [강남순의 낮꿈꾸기] 장애를 지닌, 그 한 사람의 권리를 기억하라

    우리는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 있어도 동일한 것을 보지 않는다. 내게는 보이는 것을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이 보는 것을 내가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함께 TV를 보아도, 남편이 부인에게 반말을, 부인은 남편에게 존대하는 드라마가 어떤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그것이 심한 문제로 들린다. 신년토론에 나온 대담자들이 100% ‘남성·비장애인·중년층·이성애자’ 인 것이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장면이지만, 다른 어떤 사람에게는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한국사회의 중심부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들이 배제되어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생략에 의한 차별’의 장면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인식의 사각지대’를 지니고 있다.비장애인인 나에게 인식의 사각지대가 있음을 구체적으로 경험하게 된 것은, 장애를 지닌 나의 친구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였다. 그녀는 나의 미국 유학시절에 가장 친하게 지내던 친구였다. 그런데 그녀는 박사과정 공부를 하던 중,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한쪽 다리를 완전히 절단했어야 했다. 투병 생활을 하면서 그녀는 우여곡절 끝에 박사학위를 마치고, 캐나다의 한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게 되었고, 어느 해 한국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하고서 나와 함께 서울과 강원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의족을 하기도 하고, 목발을 짚고서 이동해야 하는 그녀와 함께 여러 곳을 다니면서 그동안 나의 눈에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비로소 내게 보이기 시작했다. 가파른 계단들을 올라가야 들어갈 수 있는 경사진 곳의 카페나 레스토랑들은 아무리 좋아 보여도 들어가지 않았다. 이전에 보이지 않던 계단들, 경사진 곳들, 엘리베이터가 없는 2~3층 건물들이 곳곳에 많다는 사실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나를 불편하게 느끼게 한 것은 내 친구와 함께 가는 곳마다 만나게 되는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백인의 몸을 지닌 그녀가 한쪽 다리가 없는 장애를 지닌 사람이라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신기한 존재’로 바라보는 그 시선들 속에서 나의 친구는 단지 호기심과 측은지심의 대상일 뿐이었다. 그녀를 구성하는 수많은 결들은 보이지 않고 오로지 그녀의 ‘육체적 장애’라는 ‘이슈’로만 규정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애를 가진 친구와 일주일을 함께하면서 나의 보기 방식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삶의 다양한 정황들 속에서 장애를 지닌 사람이 경험하는 차별과 배제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는 것, 동일한 자리에 있어도 장애를 지닌 사람과 아닌 사람이 경험하는 세계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나는 이론만이 아니라 함께하는 삶을 통해서 배우게 되었다.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개념은 장애를 지닌 사람의 문제가 얼마나 복잡한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서 장애를 지닌 여성과 장애를 지닌 남성이 경험하는 세계는 겹치는 부분만이 아니라 전혀 상이한 부분들이 있다. 장애를 지닌 여성은 장애를 지닌 남성들이 경험하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전통적인 가부장제적 사회에서 여성의 가치는 몸 그리고 그 몸의 기능과 연결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남성중심적 사회에서는 육체적 미(성적 어필)가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가치가 어릴 때부터 여자아이들에게 주입된다. 따라서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의력이 아니라, ‘육체적 외모와 그 성적 기능’이라는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남성은 물론 여성 자신도 내면화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장애를 지닌 여성은 그러한 두 역할, 즉 성적으로 어필하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 출산과 양육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장애를 지닌 남성과 참으로 다른 경험을 하며 살게 된다. 이렇게 가사, 출산, 육아의 담당 능력 여부에 따라서 여성으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고정되어 있을 경우, 돌봄노동의 전담자로서의 역할과 출산능력에 대한 기대에 맞지 않는 경우일 때, 장애를 지닌 여성들은 장애를 지닌 남성들의 경험과 다른 이중 삼중의 다층적 차별과 배제를 경험한다. 장애를 지닌 남성과 결혼하는 비장애 여성은 많지만, 거꾸로 비장애 남성이 장애를 지닌 여성과 결혼하여 그 여성에게 돌봄노동의 전담자로 살아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을 아는 사람들은 많다. 그런데 그가 지닌 질병을 넘어서는 학문적 업적을 이루는 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의 곁에서 그를 전적으로 돌보는 역할을 했던 배우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21세부터 루게릭병으로 휠체어에서 살아야 했던 중증의 장애를 지닌 스티븐 호킹 곁에는 30여년 동안 돌봄노동의 전담자로 함께 했던 비장애 여성이었던 그의 배우자 제인 호킹이 곁에 있었다. 그녀가 호킹이 필요한 모든 돌봄노동의 전담자 역할을 하였기에 호킹은 글을 쓰고 이론을 발전시키는 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호킹이 여성이었다면 어떠한 상황이 되었을까.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이 세계에 정신적 또는 육체적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세계 인구의 10%라고 한다. 장애인의 날, 여성의 날, 어린이날 등 이러한 ‘특별한 날’에 호명되는 존재들은 누구인가. 그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그들은 한 사회에서 ‘주변부적 존재’라는 점이다. ‘장애인의 날’은 그저 매년 한번 치르는 연례행사가 아니라, 여전히 그들이 인간으로서의 평등성이 제도화되지 못했다는 것을 자각하는 성찰과 연대의 날이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인식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 중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경험하는 차별과 배제는 제도적 차원만이 아니라, 개인적 차원에서도 심각하다. 장애를 지닌 사람들은 ‘장애인’이라는 표지만을 지닐 뿐, 한 ‘인간’임을 보지 않는 사실 자체가 심각한 문제이다. ‘장애인’은 ‘장애를 지닌 인간’일 뿐이다. 즉 개별인 ‘인간’으로서의 독특성과 유일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 따라서 다른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젠더, 나이, 성적 지향, 경제적 계층 등의 요소들이 어떻게 작동되고 교차하는가를 복합적으로 조명해야 한다.장애차별(ableism)이란 문자적으로 하면 육체적 또는 정신적 장애 여부에 따른 차별을 의미한다. 그 차별에는 눈에 보이는 제도적 차별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그러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차별도 있다. 장애가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열등한 존재’로 간주된다.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고정관념은 다양하게 그들을 ‘열등한 존재’로서 고착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장애 차별은 다층적 차별과 편견을 작동시키는 가치관과 제도를 말한다. 인류 역사에서 장애차별의 대표적인 경우는 나치 독일에서이다. 1939년에서 1941년까지 독일에서 약 7만명의 장애인 여성, 남성, 아동들이 학살되었으며, 1945년까지 20만명의 장애인이 더 학살되었다. 장애인에 대한 노골적 학살의 역사인 것이다. 나는 ‘장애인’ (a disabled person)이 아니라, ‘장애를 지닌 사람’(a person with disability)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쓴다. ‘장애인’이라는 표현은 ‘장애’만이 그 사람을 규정하는 고착된 장치가 되어 버린다. 그러나 장애를 지녔다고 해서 모두 동일한 경험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장애’만이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그 사람의 젠더, 계층, 나이, 인종, 종교, 학력, 개성 등 다양한 요소들이 그 사람의 삶을 구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애인’이라는 표지로만 한 사람을 고착시킬 때, 문제는 모든 장애인들이 마치 젠더, 계층, 나이, 인종, 학력 등에 상관없이 ‘단일한 집합체’라고 간주하게 되며, 결국 하나의 ‘이슈’로만 보게 한다.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라는 급진적 주장’이라는 모토는 장애 문제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장애인의 날’에 호명되는 장애인은 종종 하나의 ‘이슈’로만 간주된다. 그러나 갖가지 특별행사보다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별성을 지닌 ‘인간’임을 인식하는 것, 그래서 인간으로서의 자유로운 이동권, 평등권, 직업권, 교육권, 거주권 등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그들에 대한 ‘시혜’나 ‘특별대우’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권리’라는 인식이다. 장애인은 ‘이슈’가 아니라, 인간이다. 분명히 기억하자. 이 명료한 진실을. 글 텍사스 크리스천대, 브라이트 신학대학원 교수 그림 김혜주 서양화가
  • 軍 “제주 4·3 특별법 정신 존중”… 警 “무고한 희생자에 사죄”

    軍 “제주 4·3 특별법 정신 존중”… 警 “무고한 희생자에 사죄”

    국방부 “당시 지휘라인 서훈 취소 검토” 민갑룡 청장, 경찰 총수 첫 추념식 참석 ‘민간인 학살’ 경찰 관여 사실상 인정국방부와 경찰이 제주 4·3사건에 대해 71년 만에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검은색 양복과 검정 넥타이를 맨 국방부 관계자는 3일 서울 용산의 국방부 출입기자실을 방문해 “제주4·3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낭독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나 서주석 국방부 차관 명의가 아닌 ‘국방부’ 차원의 입장을 밝힌 것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방부의 제주 4·3사건에 대한 입장 표명은 제주 4·3사건을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 과정에서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의한 ‘제주 4·3사건 특별법’ 정신을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서 차관은 이날 광화문에 마련된 제주 4·3사건 희생자 추모공간을 방문해 유가족에게 “저희가 정말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앞으로 진상규명을 위한 정부의 노력에 최선을 다해서 적극 동참하고, 희생되신 분들의 명예회복과 함께 유가족분들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는 데 적극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서 차관은 ‘4·3 사건 당시 양민 살상의 지휘라인에 책임을 묻는 후속조치 혹은 서훈(취소) 조치를 검토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법적인 검토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 유족은 “여기까지 오시는 데 71년 걸렸다. 뒤로 가는 일이 없도록 진심으로 바라겠다”고 했고, 서 차관은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이날 오전 민갑룡 경찰청장도 4·3사건 추념식에 참석해 헌화하며 “무고하게 희생된 모든 분들의 영정에 머리 숙여 애도의 뜻을 표한다”고 밝혔다. 경찰 총수가 민간 주도 4·3 추념식을 찾아 애도의 뜻을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 청장은 ‘애도를 사과로 받아들여도 되나’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예”라고 답하며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께는 분명히 사죄를 드려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우리 경찰의 행위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오로지 국민만을 생각하며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말해 경찰이 군과 함께 당시 무고한 민간인 학살에 관여했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민갑룡 경찰청장 “무고한 제주 4·3 희생자에게 사죄”

    민갑룡 경찰청장 “무고한 제주 4·3 희생자에게 사죄”

    군과 경찰의 무력 진압으로 최대 약 3만명의 제주도민들이 학살당한 ‘제주 4·3’에 대해 민갑룡 경찰청장이 “무고하게 희생된 모든 분들의 영정에 머리 숙여 애도의 뜻을 표한다”면서 사죄의 뜻을 3일 밝혔다. 민 청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제주 4·3 범국민위원회 주최로 열린 ‘71주년 제주 4·3 항쟁 광화문 추념식’에 참석해 애도의 뜻을 표했다. 경찰청장이 민간에서 주도한 제주 4·3 추념식에 참석해 희생자에게 애도의 뜻을 전달한 것은 처음이다.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 미군정 경찰이 제주도민을 향해 발포한 사건을 시작으로 좌익 진영 무장대가 1948년 4월 3일 일으킨 소요 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무장대와 군·경 토벌대 간 무력 충돌, 그리고 토벌대의 진압 과정에서 적게는 1만 4000여명, 많게는 약 3만명의 도민들이 학살당한 사건이다. 민 청장은 이날 방명록을 통해 “하루 빨리 비극적 역사의 상처가 진실에 따라 치유되고 화해와 상생의 희망이 반성에 따라 돋아나기를 기원한다”면서 “이를 위해 헌신하고 계신 모든 분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경찰도 이에 동참해 지난 역사를 더욱 깊이 성찰하면서 오로지 국민을 위한 민주·인권·민생 경찰이 되겠다”고 덧붙였다. 민 청장은 또 “무고하게 희생된 분들께는 분명히 사죄를 드려야 하는 것”이라면서 “비극적인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던 우리 경찰의 행위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성찰하면서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민만을 생각하며 국민을 위해 헌신하는 경찰로 거듭나겠다”고 밝혔다. 내년 제주에서 열리는 4·3 추념식에 갈 계획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제주에는 지난해 경찰청을 대표해서 다녀왔다”면서 “제주 4·3 해결을 위한 어떤 전기가 마련되면 경찰도 기꺼이 참석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방부도 이날 “‘제주 4·3 특별법’의 정신을 존중하며 진압 과정에서 제주도민들이 희생된 것에 대해 깊은 유감과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동안 제주 4·3은 군·경이 투입돼 무장봉기를 진압한 사건이라면서 사과나 유감 표명을 하지 않았던 국방부가 제주 4·3 발발 71년 만에 처음으로 유감을 표명한 것이다.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100초 PR-우리 영화는요!] 김재희 감독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은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기억”

    [100초 PR-우리 영화는요!] 김재희 감독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은 보통 사람들의 특별한 기억”

    “‘노사모가 태극기부대처럼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켜 드렸다면, 이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 같다’며 눈물을 보이셨어요.” 다큐멘터리 영화 ‘노무현과 바보들’의 김재희(43) 감독은 촬영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인터뷰이에 대해 이렇게 회상했다. 인터뷰 주인공은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으로 참여한 김영부씨다. 김 감독은 “인터뷰 중간에 (김씨가) 눈물이 나니까 밖으로 나가셨다. 그때 그분의 따님이 ‘아빠, 울지 마…’하는 소리가 들렸다”며 그리움과 안타까움이 혼재된 많은 감정을 함께 느꼈음을 전했다. ‘노무현과 바보들’은 광주 시민군 출신의 김영부씨를 비롯해 일반 회사원, 자영업자, 대학교수, 가정주부 등 평범한 사람들의 기억을 통해 고 노무현 대통령을 회고하고 추억하는 작품이다. 제작 배경에 대해 김 감독은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역사의 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시작했다”라고 답했다.영화는 2018년 4월 말 촬영을 시작해 올 2월 말까지, 총 10개월간 진행됐다. 김 감독이 서울, 대전, 대구, 부산, 전주, 진주 등 전국 각지를 돌며 만난 사람만 총 84명이다. A4 3000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는 ‘노무현이라는 큰 바보와 그를 따랐던 작은 바보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김 감독은 작품의 서사구조에 대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이야기를 구성했다. 봄과 여름은 2002년 국민참여경선부터 16대 대통령 당선까지의 이야기이고, 가을과 겨울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담았다”며 “봄, 여름 전반부가 그리움에 관한 이야기라면, 후반부인 가을, 겨울은 성찰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영화에서는 노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언론 보도가 많이 등장한다. 이 지점에 최근 기사들의 인용이 눈에 띈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종합부동산세나 경제 관련 기사들의 경우, 현 정부를 비판하는 기사들을 가져다 썼다”며 “과거와 같은 공격 패턴을 보이고 있기에, 그런 것들을 빗대어 성찰의 의미로 후반부를 구성했다”고 밝혔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노 전 대통령의 2000년 부산 총선 과정을 중심에 둔 전인환 감독의 ‘무현, 두 도시 이야기’(2016년)에 이어 2002년 국민참여경선 과정을 중심에 둔 이창재 감독의 ‘노무현입니다’(2017년)가 있다. ‘노무현과 바보들’은 그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세 번째 영화다. 김 감독은 “기존 작품과 이야기 방향을 또 다르게 만들었다”며 새로운 시선으로 영화를 완성했음을 전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는 미공개 영상들이 공개될 예정이다. 여러 영상 중 김 감독은 최초로 공개될 노 전 대통령의 모습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시기 10분 전, 집 대문을 나오신 후 10여 미터를 걷다가 화단에 있는 풀을 뽑는 장면이 있다”며 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화면을 대표로 소개했다. 김 감독에게 영화 속 명대사를 묻자, 그는 “‘나는 봉화산이야. 산맥이 없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라고 답했다. 이어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이야기인지 몰랐다. 그런데 봉화마을에 가서 드론을 띄웠더니, 김해평야에 정말 산맥 없이 봉화산만 있었다. 외로운 처지가 그 말에 다 들어 있는 것 같았다”라고 설명했다.2009년 경남미디어영상위원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영화계와 인연을 맺은 김 감독은 ‘노무현과 바보들’이 스크린 데뷔작이다. 2019년 이 시점에, 이 작품을 세상에 내놓게 된 이유에 대해, 그는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며 기록하고 말을 거는 영화의 역사적 의미를 전했다. 이어 김 감독은 “기득권들이 문재인 정권도 과거와 같은 패턴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런데 또 방치할 건가, 이제는 우리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생활정치가 될 수 있고, 투표가 될 수도 있다. 각자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뭐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며 작품을 출발시킨 진짜 의미를 덧붙였다. 한편, 고 노무현 대통령 서거 10기 추모작 ‘노무현과 바보들’은 오는 4월 18일 개봉한다. 글 문성호 기자 sungho@seoul.co.kr 영상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gophk@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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