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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르비 방일 계기로 알아본 「북방4섬」

    ◎“주권회복”·“영토고수”… 일·소,팽팽한 줄다리기/황금어장·광산 많아 「천연자원 보고」/소 국내 반발 커 일괄 반환은 불투명/일 “1855년 국교수립 후 영토로 확정” 소 카이로선언등 근거,영유권 주장 이른바 「북방영토」 문제가 최근 일본뉴스의 초점이 되고 있다. 오는 16일부터 일본을 방문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일소 정상회담에서 이 문제에 관해 어떤 「정치적 결단」을 내려줄 것을 일본측은 기대하고 있으며 알렉산드르 베스메르트니흐 소련 외무장관의 방일,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자민당 간사장의 방소도 모두 북방영토문제와 관련지어 생각한다. 요즘 일본의 관심은 온통 이 문제에 쏠려 있다. 북방영토란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 현재 소련이 점유하고 있는 이들 영토는 과연 일본에 반환될 것인가. 소련에 거액의 경제원조까지 제의하며 일본이 반환에 열을 올리는 것은 북방4개 섬은 하보마이(치무)군도를 비롯,시코탄(색단)·구나시리(국후)·에토로후(택족) 등이다. 모두 일본 홋카이도 동부 네무로(근실) 동쪽 오호츠크 해역에 있는 섬들이다. 이들 섬의 귀속문제는 소위 일본의 「전후 처리문제」로서 남아 있는 최대의 현안이며 일소 평화조약교섭의 가장 큰 난관이다. ○일,소태도 변화 주목 ▷역사적 경위◁ 일소 양국의 국교가 개시된 1855년 이들 4개 섬이 일본의 영토로 확정되었으며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것이 일본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다. 따라서 반환은 둘째치고 우선 이들 섬에 대한 일본의 주권을 인정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소련측은 카이로선언,포츠담회담,얄타협정 등을 근거로 이들 4개 섬이 소련영토로서 「이미 해결된 사항」이라고 주장하며 현실적으로 현재 소련의 점유하에 있다는 사실이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영토 귀속의 문제는 일소 평화조약체결의 대전제가 되어 있다. 일본정부는 지난 81년 1월 일·로 통상수호조약이 체결(1855년)된 2월7일을 「북방영토의 날」로 제정했으며 그해 9월에는 스즈키 젠코(영목선재) 총리가 현직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이들 지역을 시찰했다. 이번 베스메르트니흐 소련 외무장관의 일본방문(3월29∼31일)과오자와 간사장의 방소(3월24∼27일)에서 소련측이 『일소간에는 「영토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소련측이 명확히 인정했다』(중산태랑 외상발언)는 점에 일본측은 큰 기대를 걸고 있다. ▷경제적 가치◁ 북방영토에 관해서는 『소련측이 반환해 주지 않는다면 돈을 주고 사들여도 좋지 않겠는가』라고 발언한 정치인도 있어 비난의 대상이 됐었다. 그것은 『소련측에 대한 모욕이며 일본의 주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행위』라는 의미에서이다. 북방영토 주변은 굴지의 어장이다. 따라서 소련 경비정에 의한 일본어선의 나포사건이 심심치 않게 발생,양국관계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이 지역의 현재의 경제적 가치는 정확히는 계산되지 않는다. 다만 전 전의 자료를 데이터로 물가상승률을 곱해 볼 때 연간 수백억엔의 총 생산액을 올릴 수 있다는 추정이 나온다. 94%가 어업이다. 네무로시 북양어업대책실의 추계에 따르면 1941년 어종별 어획량에 88년의 시세를 곱하면 대략 2백50억엔어치쯤 된다. 그러나 당시에는 태반이 연안어업이었다. 이 해역에서 꽃게를 잡는「특공대」 선장에 따르면 『일본어선이 자유로 어업행위를 할 수 있다면 당시의 10배쯤의 어획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수산업 이외에도 금·은 등 광산도 있다. 금은 구나시리섬의 천도광산에서 1t당 평균 품위 37g을 채취할 수 있는데 비록 소량이긴 하지만 채산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여기에 토지 자체의 가치도 무시할 수 없다. 홋카이도 북부 리시리조(이고정) 행정당국에 따르면 북방 4개 섬의 임야는 싼 곳이 평당 3백엔,비싼 곳은 2천엔이나 나간다. 총체적으로 임야만 5천억∼3조엔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리조트 개발업자들에 의하면 이곳은 활화산과 온천이 많으며 후미진 바다가 많아 관광지로 개발할 만한 곳이라는 것이다. 스키장 조성도 가능하다. 그러나 북방영토는 이 같은 산업과 숫자만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이곳에 묘지를 참배하러 가는 일본의 구도민들이 배 위에서 『돌아왔다』고 소리치는 모습은 금전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가치이다. 그 옛날 선조의 땅이었다는 정신적 가치를 지닌다. ○군사적 가치 떨어져 ▷군사적가치◁ 오호츠크해에는 미국본토를 겨냥하는 소련의 원자력 잠수함이 작전을 펴고 있다. 북방 4개도서는 이곳을 「성역」화하기 위한 중요한 지역이다. 일본 방위백서에 따르면 현재 구나시리·에토로후·시코탄섬에는 1개사단 규모의 지상부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에토로후의 천영비행장에는 미그23 후로가 전투기 약 40대가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지역의 군사적 가치에 대해서는 그렇게 높게 평가하지 않는 전문가들도 많다. 군사평론가 오가와 가즈히사씨(소천화구)에 따르면 『미소가 전략핵 삭감에 합의한 이상 잠수함전략으로서의 북방영토의 군사적 의미는 적다』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자 이와시마 히사오(암도구부) 교수(암수대)도 냉전구조의 종결과 더불어 소련의 잠수함 전략의 변화에 비춰볼 때 이곳의 군사적 가치는 적어졌다고 말한다. 그는 『소련은 잠수함의 소음을 줄이고 보다 고속화시켜 미국본토에 접근시킴으로써 순항미사일로 공격하는 방법으로 변했다』고 지적하고 『이곳의 성역화 의미는 희박해졌지만 소련으로서는 만일 이곳을 철수한 뒤 일본 자위대와 미군이 이곳에 잠수함 탐지부대를 배치한다면 곤란하기 때문에 반환에는 4개섬의 비군사화가 조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환 전망◁ 이번 일소 외무회담에서 소련측은 종전과는 달리 「영토문제」라는 표현을 『아무런 저항도 없이』(외무성 당국자) 사용했으며 이 문제에서 그 어떤 「정치적 결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한걸음 전진했다는 인상을 풍겼다. 그러나 소련측은 동시에 소련 국내여론 등을 지적,『쌍둥이 받아들일 수 있는 가능한 해결책의 모색』(소련 외무장관)을 강조함으로써 일본측의 4개도서 일괄 반환에는 차라리 부정적인 발언을 반복했다. 따라서 앞으로의 초점은 오는 16일 방일하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자세에 달려 있다. 베스메르트니흐 소련 외무장관은 이번 방일기간중 영토문제와 관련,『최근까지 소련측은 영토에 관한 그 어떤 문제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으나 이제는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며 양국의 입장 차이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며 평화조약의 합의에 도달했을 때 『명확히영토의 경계를 확정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방일 때 영토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정치결단을 내릴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일본의 많은 외교문제 전문가들은 이 문제가 쉽사리 해결될 것으로는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일소관계의 역사적 경위 및 현재의 상황 ▲양국 국민의 감정 ▲소련 국내의 경제상황과 여론 ▲소련연방최고회의내의 의견 및 다양한 입장 ▲유럽의 전반적 상황 등이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결단」을 주저케 할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방영토의 반환문제는 경제대국 일본이 안고 있는 최대의 「외교적 시금석」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시하고 있다.
  • 외언내언

    영운 모윤숙선생이 돌아갔다. 누린 나이 여든. 거목의 생애였다. 정객같은 궁량과 예술가다운 재능의 울창한 나무로 서서 한반도에 불어온 풍운을 수용하며 살아온 그의 생애는 찬사와 비난의 사이를 극단으로 오가야 하는 비범한 것이었다. ◆신생 대한민국이 유엔의 지원을 필요로 할때 「아름다운 여류시인」의 재능을 외교지략으로 헌납한 그. 인도대사 메논박사와의 로맨스로 남겨진 이 일화는 개화기를 식민지시대의 원한으로 보낸 우리 민족의 자학적 금욕주의에는 상찬을 받을 만한 것이 못될 수도 있었다. 항간의 범상한 입줄에 경칭없이 불리던 그 이름. ◆춘원에 대한 청순한 소녀 숭배자로,시에 입문하려는 거의 모든 한국인에게 서정의 세례를 준 「렌의 애가」로,동족 전쟁의 증오와 비극을 슬픈 감동으로 승화시켜주는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로,우리의 정서를 관류해온 그의 문학적 업적은 엄연한 봉우리가 되어 빛나고 있다. ◆한때,한국 문학인은 국제무대에 나가기만 하면 곤혹스럽고 난처한 처지에 번번이 몰리게 되는 불행한 시절이 있었다. 국내에서는 그런 우리 처지를 원망하고,그렇게 만드는 주체를 비난할 수도 있었지만 밖에 나가서는 그런 방법으로 위로를 받기 어렵다. 나라가 모욕의 대상이 되는 일은 괴롭고 속상하다. 그런 처지에 직면했을때 영운은 그 유창한 화술과,언제 어디서라도 즉석 번역으로 운을 살려 읊을 수 있는 자작시 낭송으로,그 껄끄러운 우리의 처지를 모면하게 해주었다. 그런 그의 능력이 세계 문인을 움직이기도 한듯,바로 그런 분위기 속의 국제펜대회에서 그는 종신 부회장에 피선되었다. ◆늠름하게 압도해오는 그 기운찬 인품은 정자나무 그늘처럼 사람을 모으고,갖가지 일을 하게 했지만 말련에 찾아온 병마만은 어쩔 수 없었던 듯하다. 고통속에서도 잊히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썼던 그도 이젠 영영 역사속으로 떠났다. 먼길,부디 잘 가시오.
  • “한ㆍ소 정상회담”미국의 시각

    ◎소ㆍ북한 마찰 표면화 미ㆍ북한 접근 가속화/시베리아개발에 한국기술 유치 겨냥/북한도 새로운국면 인정,개방 불가피/“외교사의 파격”ㆍ“분쟁지 긴장완화”… 세계 열망 반영 노태우­고르바초프 회담은 한국의 북방정책과 소련의 경제적요구가 맞아 떨어져서 빚어진 파격의 산물이라는 것이 미국 조야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40여년간 이념적 군사적으로 적대해온 국가간에 정상회담을 갖는 것도 외교사에 전례가 드물지만 중재자 없이 제3국에서 직접 대좌한다는 것은 더욱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파격으로 비춰지고 있다. 미국무부는 노­고르바초프 회담 환영 성명을 연 이틀에 걸쳐 발표했다. 소련에 대해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촉구해온 미국은 노­고르바초프 회담의 성사를 이같은 노력의 결실로 보고 기뻐하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이번 회담주선에 미국이 관여했다』고 주장하고 『이는 세계의 마지막 분쟁지역에서 긴장을 완화하려는 미국의 열망을 나타낸 것』이라고 풀이했다. 한소간 관계개선 노력의 절정을 이루게 될 이번 회담이 성사된데 대해 워싱턴 포스트와 워싱턴 타임스는 노대통령이 추진해온 「북방정책의 개가」라고 평가했으나 뉴욕타임스는 고르바초프의 이니셔티브로 보도했다. 서울은 모스크바에 대해 전면외교관계수립을 원하고 있고 모스크바는 서울에 대해 경제협력을 원하고 있다고 진단한 미국무부의 견해가 균형적일 것 같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남북한 문제 전문가인 셀릭 헤리슨은 『문제는 소련이 한국과의 관계를 신속히 전면 정상화시킬 것이냐,아니면 전면 외교관계 없이 과도기를 길게 가져 경제적 이익을 얻으려고 할 것이냐』고 지적하면서 『이번 회담은 관계정상화의 행보가 빨라졌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워싱턴 포스트는 『이번 회담에서 노­고르바초프는 한소간 전면외교관계 수립을 발표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모스크바는 경제난 타개를 위해 한국과의 무역 확대,한국 기업인의 투자 유치,그리고 한국의 시베리아 개발 참여에 관심이 크다는 것이 미국무부 분석이다. 소련이 대한관계를 개선하려는 주요 동기에 대해 학계의 전문가들도 대체로경제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존스 홉킨스대의 랄프 클라우교수는 『이번 회담이 보여 주는 것은 소련이 북한보다 한국을 중시하고 있다는 것,특히 경제면에서 중시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이런 점에서 이번 회담은 북한에 큰 충격과 타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국은 건설 부문에서 강한 기술력을 갖고 있고 중동에서 경험을 쌍은 근로자들을 소련의 건설계획에 투입시킬 수 있어 소련에는 시베리아 개발을 위해 아주 중요한 국가라고 그는 말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윌리엄 테일러 부소장은 『고르바초프는 한국의 자본 및 전문경영 관리능력을 도입하고 한반도 긴장을 완화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노대통령과 회담을 갖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다른 전문가들은 고르바초프가 대한관계 발전을 통해 좀 빠른 대일관계의 개선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셀릭 헤리슨은 『소련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한국과의 경제협력 증대를 노리는 한편 시베리아개발 참여를 외면해온 일본에 자극을 주려고 의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문제 전문가인 앨런 롬버그는 『고르바초프가 한소정상회담을 갖는 것은 한국에서 이익을 취하고 나아가 대소관계 개선에 미온적인 일본등에 압력을 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욕 타임스는 『김일성에게 외교적 모욕이 될 노­고르바초프회담은 북한을 격노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고 소련 언론이 김일성의 통치를 비난하고 있는 것과 때를 같이해 이번 회담이 열리는 사실에 주목했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소ㆍ북한관계는 마찰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보도하고 그 예로 ▲북한의 핵안정협정체결거부에 대한 소련의 불만 ▲북한의 타스통신 특파원 추방 ▲소련언론의 김일성우상화 비판 ▲소련 역사가들의 북한 남침 시인 및 김일성전력에 대한 의문등을 들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소련은 북한으로부터 서서히 손을 떼고 있으며 이번 회담은 서울의 모스크바 및 동구잠식에 화를 내온 평양을 격분시킬 것』이라고 예견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의 대응을 다른 관점에서 예측하고 잇다. 즉 이번 회담이 북한에 대해 남북대화나 대미접촉에서 전향적인 자세를 취하게 만들 것이라는 주장이다. 헤리티지 재단의 대릴 플렁크 객원 연구원은 『이번 회담이 북한에 대해 폭넓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북한은 세계에 변화가 일고 있음을 깨닫고 서울과 정직한 대화를 개시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셀릭 헤리슨은 『북한은 동구권에 이어 아시아에서도 지정학적 변화가 일고 있음을 인정하고 있어 노­고르바초프 회담은 그들의 대미접근 움직임에 박차를 가하게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이번 미소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는 부시 미대통령에게 미국의 대북한 관계개선 조치를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플렁크와 헤리슨은 『미국도 대북한 관계에서 융통성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노­고르바초프 회담은 동아시아 정세 변화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이렇게 전망했다.
  • “동북아에 새평화기류 형성”기대/“한ㆍ소 관계 개선”미ㆍ일의시각

    ◎북한에 충격… 무언의 개방압력 일언론/동구수교 이어 또 하나의 승리 WP지 노태우대통령이 오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사상 최초로 긴급 한소정상회담을 갖는다는 빅 뉴스는 도쿄(동경)외교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외교소식통들은 한반도문제가 앞으로 세계의 새로운 초점이 될 것으로 전망함과 동시에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연내 소련과 국교수립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의 언론들도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 비상한 관심을 표명하면서,이의 실현은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정세를 펼치려는 한국의 적극외교가 가져온 획기적인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당초 한소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오는 6월5일 미국방문을 끝내고 귀국하는 도중 극동의 캄차카에 들러 아시아ㆍ태평양 정책에 관한 중요연설을 할 것이라고 보도된 30일 하오부터 점쳐지기 시작했다. 지난 86년 블라디보스토크연설,88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에 이은 이번 캄차카연설은 고르바초프의 포괄적인 아시아 외교연설의 제3탄이 되는것으로,동북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과의 사전협의를 거쳐 극동아시아지역에의 안정과 평화,나아가 한반도통일문제에 관한 새로운 제안이 있지 않을까라고 외교 관측통들은 전망했었다.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도쿄(동경)신문은 『한소 양국의 국교수립과 경제협력,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정세를 중점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라고 분석하고 『정상회담의 실현은 사상 초유의 일일뿐만 아니라 제2차대전 이후 남북한으로 분단된 한반도정세에 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소련정부는 지난 3월 소련을 방문한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의 회담에서 한국과의 국교수립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으나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국교수립의 시기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신중한 자세를 보여왔다』고 말하고 『그러나 최근 소련매스컴에는 북한의 체제를 비판하고 개방ㆍ민주화를 요구하는 기사가 몇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등 현저한 변화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아사히(조일)신문도 해설기사를 통해 『소련의 대한수교수립은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크다』고 분석하고 『노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한반도 정세에의 영향력행사를 요청하는 한편 양국의 조기 국교수립을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한국정부가 이번 회담계획과 관련,이정빈 외무부 제1차관보를 미국에 긴급파견했으며 북방외교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박철언 전정무1장관이 최근 동구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미국에 들른 사실에도 주목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북한이 한소 정상회담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소련은 동맹국인 북한의 태도에 여전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어서 이번 회담결과의 성패는 소련측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노­고르바초프의 회담은 지금까지 소련의 개혁과 동구의 변혁에도 불구하고 외형상으로는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던 한반도의 냉전구조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워싱턴의 서방측 소식통의 말을 인용,『이번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노대통령은 양국 경제협력의 가일층확대 이외에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소련의 영향력 행사,사할린잔류 한국인의 모국방문등에 관해 소련측의 협력등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또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북방외교는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환경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 때문에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특히 북한의 개방화촉진이 초점이 될 것이며 미일을 비롯한 서방측이 우려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의 공포도 토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요미우리신문은 워싱턴의 소식통들이 이번 회담에서 『조기 국교수립등의 의제가 결실을 맺기에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담실현자체만으로도 획기적인 일이며 한국ㆍ북한에 대한 일ㆍ미ㆍ중ㆍ소의 크로스 승인에 한발 더 다가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이와 함께 노대통령은 워싱턴을 방문,이번 한소 수뇌회담의 결과를 포함,미국정부와 서방측의 대소ㆍ대중ㆍ대북한정책을 검토ㆍ재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방미중 노태우대통령과 회담을 갖기로 동의한 것은 소련의 주요 대한관계개선조치로서 북한의 김일성에겐 외교적 모욕이 될 것이라고 31일 뉴욕타임스지가 보도했다. 타임스지는 소련언론이 개방문제와 관련하여 김일성의 통치를 비난하고 있는것과 때를 같이해 노­고르바초프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소련에 대해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촉구해온 미국관리들은 노대통령을 미국에서 만나기로 한 고르바초프의 결정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임스지는 한국문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이번 회담은 ▲한소관계정상화의 행보가 빨라지고 ▲소련이 북한보다 한국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북한에게는 타격이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타임스지는 최근 소ㆍ북한관계는 마찰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지적하고 그 예로 북한의 핵무기 안전협정체결 지연에 대한 소련의 불만,북한의 소련특파원 추방,소련언론의 북한관,소련역사가의 남침설 및 김일성정체폭로등을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번 회담은 노대통령이 북한지지국들을 상대로 추진해온 문호개방정책의 승리』라고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소련은 북한으로부터 서서히 손을 떼고 있으며 이번 회담은 서울의 모스크바 동구 잠식에 화를 내 온 평양을 격분 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스트지는 이번 회담에서 노ㆍ고르바초프는 전면외교관계 수립방침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회담을 일괄적으로 지지할 것이나 보수주의자들은 소련과의 급속한 화해에 대해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워싱턴타임스지는 이번 회담은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의 극적인 성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 “보통사람 오신다” 차분한 대통령맞이/노대통령 방일 앞둔 일 표정

    ◎교포들,현수막등 내걸고 환영준비/궁중만찬선 「손에 손잡고」 연주 계획/한인 원폭희생자비 방화 등 일극렬파 극성 여전 ○…노태우대통령 방일을 맞는 일본에서는 전반적으로는 환영무드가 일고 있으나 좌ㆍ우익 과격파 단체등이 각각의 톤으로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어 경시청당국은 연일 2만여명의 경찰병력을 동원,노대통령 일행이 통과할 주요 간선도로변의 맨홀을 점검,봉인하고 교통규제를 실시하는 등 있을지도 모르는 좌ㆍ우익 과격파의 테러에 대비,24시간 비상경계체제를 펴고 있다. 당국은 아키히토(명인)국왕의 과거역사 사죄발언에 반대하는 우익과격파의 테러는 물론,천황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기독교단체 등 좌익단체들도 노대통령 방일이 자기들의 주장을 알리는 호기가 될것으로 판단,각종 테러를 자행할 우려가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노대통령 방일을 맞는 재일동포사회의 환영분위기도 전두환 전 대통령때와는 여러가지 의미에서 달라져 시대의 변화를 실감케 하고 있다.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는 한국국가원수의 첫 일본방문인데다 당시의 국내분위기가 재일동포 사회에까지 이어져 다소 긴장된 가운데 일견 요란한 듯한 환영행사가 많았으나 이번에는 『보통사람 대통령을 보통의 기분으로 따뜻이 맞이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뤄 전에 비해 차분해진 느낌. 도쿄(동경)도내에 있는 재일거류민단본부에는 며칠전부터 「대통령 방일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이 내걸렸고 민단 기관지 한국신문은 22일자 컬러판별쇄로 노대통령의 인물소개와 함께 「21세기의 한일관계 구축」「동포문제는 전후처리차원에서」등의 특집을 실었으나 전에 비해 절제된 분위기. ○…일본정부와 언론ㆍ재일동포사회의 이같은 환영분위기와는 달리 자칭 1백30개단체,1천6백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우익단체연합회 전애회의와 재일한국청년동맹 등 좌ㆍ우익단체들은 전국 각지의 전철역 등지에서 방일반대전단을 돌리는 등 노대통령 방일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전단에서 『언제까지나 과거에 집착,일본을 모욕한다면 한일기본조약을 폐기하라』고 요구하고 『한일합방은 역사의 추세였으며당시 한국정부에 통치ㆍ외교능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터무니없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일본경찰은 연일 2만명의 경찰병력을 동원,24시간 경비태세를 펴고 있는데 특히 과격 게릴라와 테러리스트들이 사정이 긴 화약류를 이용하거나 원격조정장치를 사용하는 등 활용범위가 넓어지고 있음을 고려,3백여군데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경비범위를 전두환 전대통령때의 주요 시설물로부터 1m이상에서 이번에는 3m이내로 확대했다. 또 10대의 헬기와 29대의 순시선을 노대통령의 방문여로에 배치. ○…일본 국내청은 노대통령을 맞아 아키히토(명인)일왕이 24일 저녁에 베푼 궁중만찬에서 노대통령내외를 위해 요리와 음악ㆍ여흥 등에서 이례적으로 여러가지 특별서비스를 할 것으로 알려졌다. 궁내청에 따르면 궁중만찬의 경우 국왕이 손님을 만찬장으로 맞아들일때 일본음악인 「친애」가 연주되는 것이 관례이지만 노대통령이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역임했음을 고려,이번에 한해 올림픽 주제가의 하나였던 「손에 손잡고」를 연주키로 했다는 것. 당국은 이밖에 궁중행사의 경우 보통 국왕 한사람에게만 붙이도록 돼있는 통역을 표현의 차이로 인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노대통령에게도 한국인 통역을 따로 두기로 했으며 보통 국빈에게 제공되는 국화문양의 국왕전용 승용차(닛산ㆍ프린스 로얄)대신 가까운 곳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져도 끄떡없는 외무성의 특별장비차를 제공키로 했다.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앞두고 나고야(명고실) 오사카(대판)등지에서 극우극력분자들의 소행으로 보이는 방화ㆍ테러사건이 빈발하고 있는 가운데 23일에는 히로시마(광도)평화공원부근에 세워진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의 대좌에 놓여있던 추모용 종이학이 방화로 불에 탔다. 이들 종이학은 수학여행온 학생들이 바친 것으로 이날 상오 1시20분쯤 불이 붙고있는 것을 통행중인 트럭운전사가 발견,소화기로 진화했다. 이날 방화로 위령비자체에는 피해가 없었다. 경찰은 이 사건이 노대통령의 방일을 반대하고 있는 극렬분자들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중이다.
  • 일본의 오만/임영숙 문화부차장(오늘의 눈)

    달포전 국내에서도 개봉된 「블랙 레인」(흑우)이란 영화가 지난해 여름 미국 뉴저지주의 한극장에서 상영됐을 때였다. 일본의 폭력조직 야쿠자를 쫓던 일본경찰과 미국의 수사관이 의견충돌을 일으켜 서로 다투던 끝에 미국의 수사관이 일본경찰을 때려 눕히자 객석에서 요란한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미국 보통사람들의 일본에 대한 감정을 그곳에서 읽고 약간은 의아한 느낌이었는데 그해 겨울 워싱턴에서는 일본의 저명한 기업가와 정치인이 쓴 한권의 책이 다시 말썽을 빚어냈다. 문제의 책은 「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이란 책으로 일본의 국제적 대기업 소니사의 사장 모리타 아키오와 일본정부의 장관을 역임한 바 있는 이시하라 신타로가 쓴 것이었다. 일본의 자신감을 과시하고 미국의 문제점을 지적한 내용의 이 책은 지은이들이 영어로 번역되기를 바라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무단번역」되어 「불법복제」판이 워싱턴정가와 기업인들 사이에서 무서운 속도로 읽혀졌다. 「일본이 미국을 꾸짖다」란 제목으로 이 사실을 보도한 미국의 한 신문은 미국의 자존심을 건드린 이 책이 『일본 지도자들이 이제는 자기주장을 해야할 때라고 믿는 일본의 여론을 반영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경제대국 일본의 지나친 자신감과 자기주장은 세계 곳곳에서 이제 마찰을 빚고 있다. 노태우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앞두고 일제의 한국 식민통치 36년에 대해 『무릎 꿇고 사죄할 필요 없다』는 식의 신경질적인 발언으로 한국 국민의 오랜 상처를 후벼파낸 일본 「지도자」들이 최근 또 프랑스를 발끈하게 만들었다는 소식이다. 일본 닛산자동차의 구메사장이 90년대 말까지 지탱해낼 수 있는 유럽의 자동차 메이커로 이탈리아의 피아트와 서독의 폴크스바겐 2개만 꼽아 프랑스인들에게 모욕감을 느끼게 했다는 것이다. 상냥한 미소와 깍듯한 예의,좋은 품질의 상품으로 세계를 지배하다시피 하게된 일본의 숨겨진 본래의 모습은 타민족을 인정하지 않는 이 오만한 태도가 아닐는지. 서울에 머물고 있는 영국인ㆍ일본인과 우연히 자리를 함께 한 후 일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그 영국인이 기자에게 물었다. 『당신은 어떻게 그 오만한 일본인에게 친절할 수 있느냐』고. 반공교육과 함께 반일교육을 받아온 세대로서 일본의 오만함은 끊임없이 묵은 역사의 상처를 덧나게 하지만 오늘 우리가 일본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일본에 대한 감정적 대응보다 차가운 지일의 태도에 있다고 믿는다.
  • 서구 곳곳 유태인묘 훼손행위의 충격파(특파원 코너)

    ◎「나치즘망령」에 시달리는 유럽/「거대독일」 출현ㆍ극우파준동에 주변국 공포/“반유태주의 경고”… 파리선 10만명 침묵시위 유럽에 인종차별을 앞세우는 극우세력의 확산과 함께 반유태주의의 부활징후가 나타나고 있어 깊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특히 최근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각국에서 잇따라 발생한 유태인묘지훼손사건은 동서독의 통일에 따른 거대 독일출현의 가능성에 대해 공포를 느끼고 있는 주변국들에게 다시 나치즘의 망령을 되새기게 하는 행위라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 지고 있다. 지난 14일 상오 파리근교 클리시 수 브와지역의 마을 공동묘지안에 있는 유태인 묘역에서 32개 무덤의 묘석이 깨지고 파헤쳐지거나 더럽혀진 채로 발견됐다. 쓰러지거나 파괴된 비석에는 예외없이 나치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같은날 역시 파리근교의 이시노지역의 공동묘지에서도 유태인 묘지만 10기가 파괴됐다. 이들 사건은 특히 지난 9일 프랑스남부 카르펑트라마을의 유태인 공동묘지에서 34기의 무덤이 훼손된 사실이 알려져 프랑스 사회가 발칵 뒤집히다 시피한 상황에서 대담히 저질러져 사람들을 더욱 아연케 했다. 카르펑트라마을에서는 봉분이나 묘석ㆍ비석 따위만을 파괴하는데 그치지 않고 장사지낸지 2주밖에 안되는 시신을 꺼내 쇠꼬챙이로 난자하는 등의 만행을 저질러 분노를 사게 했다. 이 사건이 있던날 프랑스남서부 바욘느시의 공동묘지에서도 유태인묘지 파괴사건이 일어났다. 유태인묘지 훼손행위는 프랑스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14일 이탈리아 베론시에서 40여개의 무덤이 파헤쳐 졌고 폴란드의 베이에 로보마을에서도 10개의 묘지가 파괴됐다. 또 스웨덴에서는 나치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의 묘지만을 골라내 10여기를 훼손했으며 유태인의 고향인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올리비에마을과 하이파마을에서는 무려 2백50기의 무덤이 파괴되거나 오손된 것으로 보도됐다. 누가 왜 이같은 짓을 저질렀는지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어느곳에서도 범인이 잡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반유태주의자들의 소행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또한 극우나치주의자들일 가능성이 많은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그들이 아니고서야 산사람에 대한 어떠한 못된 행위보다도 더욱 심한 모욕으로 받아들여지는 묘지 훼손행위를 유태인을 대상으로 저지를 부류들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프랑스에서는 매스컴을 비롯한 각계에서 일제히 반유태주의자들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집중됐으며 지난 14일 저녁에는 10만여명이 참가,유태인 배척행위와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대규모 침묵시위가 파리에서 벌어지기도 했다. 현직대통령부부가 데모에 앞장서기는 프랑스역사상 처음이라는 화제까지 낳은 이날 시위에는 프랑스의 거의 모든 정당 종교단체 인권단체들이 참가했다. 프랑스사회가 이번 사건을 얼마나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는가는 정치 지도자들의 거동으로 가늠해 볼 수 있다. 카르펑트라마을사건이 보도되자 프랑수아 미테랑대통령은 그날로 조셉시트뤼크 프랑스유태교회장 자택을 직접 방문,유감을 표시 했으며 카르펑트라 마을 유태교회목사에게는 따로 조문친서를 보내기도 했다. 로랑 파비우스국회의장,야당인 공화국연합의 자크 시라크당수,공산당의 조르지 마르세서기장,시몬 베이유 전유럽의회의장 등이 모두 시위대의 앞열에 섰으며 이들은 한결같이 『천인이 공노할 만행』『짐승같은 행동』또는 『야만인의 행위』라고 비난했다. 다만 정당중에서는 이번 사건으로 가장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국민전선당(FN)만이 불참했다. 장 마리 르 펭당수가 이끄는 국민전선당은 외국인의 국외추방,외국이민의 입국금지 등 인종차별적이며 국수적의적인 정강정책을 내세우고 있는 극우파 정당이다. 르 펭당수는 비난의 화살이 집중되자 『우리당을 음해 하려는 정치적 모략』이라고 맞서고 있지만 과거의 행적이나 반유태주의 반대데모 불참 등 이번 사건이후의 거동이 비난을 자초한 셈이 됐다. 프랑스유태교단체협의회의 장칸의장은 『국민전선당이 직접 저지르지는 않았더라도 그와같은 사건이 발생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온 책임은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유럽에서 유태인묘지 오손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프랑스에만도 80년대들어 한해 한 두건씩은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의 파문이 의외로 넓게 번지고 있는 것은 최근 극우파가 눈에 띄게 세력을 넓혀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사건이 여러나라에서 동시다발로 빚어진데다 나치즘의 악몽을 새롭게 부각시키는 계기가 됐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전문가들은 프랑스 이외의 사건들은 연대성 보다는 카르펑트라 사건의 모방성이 짙은 것으로 보고 있으나 유럽각국의 골칫거리인 스킨헤드족들로 대표되는 반유태주의의 극우파 행동대원들의 소행임이 거의 틀림없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유럽의 극우파 정당들은 오히려 정치적 목적으로 사건을 확대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지만 묘지파손 행위 자체의 부도덕성은 말 할 것도 없고 그와 같은 행위가 국가간 민족간 화해를 바탕으로 하여 추진되고 있는 유럽통합작업에 역행하는 처사일 뿐만아니라 앞으로 유럽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독소로 커나갈 것이 너무나 분명하다는데 유럽의 고민이 있는 것이다.
  • 증언자도 듣는자도 모두가 패배자/국회증언 방청석에서

    하지 말았어야 할 일을 했다. 명패가 날고 욕설이 난무해서만은 아니다. 31일 열린 전두환 전대통령의 「역사적인 증언」을 취재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 모두가 패배자라는 점이다. 증언대 앞에 선 전 전대통령의 모습은 당당했다. 흡사 현직대통령의 국회 국정연설을 연상시킬 만큼 그는 당당하고 또렷한 음성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에 답해나갔다. 그는 현직대통령에 버금가는 경호를 받았으며 많은 여당의원으로부터 충분한 보호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는 「증인 전두환」일 뿐이었다. 화려한 7년의 대통령 재직에도 불구하고 그는 증언대에 섬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승리자 아닌 패배자로 기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증인이 패배자로 기록된다면 그에게 증언을 요구하고 청취한 여나 야ㆍ국민 어느쪽은 승리자여야 한다. 하지만 어느쪽도 승리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국민이 알고자 했던 새로운 진실은 나타나지 않았고 국민들은 실망감을 더했을 뿐이다. 전 전대통령은 지난 1년반 동안 국회가 집요하게 추궁했던 사안들에 대해「아니다」와 「밝힐 수 없다」로 일관했다. 정치자금과 관련해 그는 『민정당 이외의 특정인에게 정치자금을 준 사실이 있었느냐는 질문이 있었으나 그러한 사실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는 바』라고 말해 12ㆍ16 대통령선거와 관련한 야당에의 정치자금제공설을 공식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나라의 경우 평화적으로 정권을 인계하고 나온 어떤 통치자도 정치자금의 내역을 공개해 왈가왈부하는 사례를 본적이 없다』면서 『이 문제에 대해 입을 열기 싫다기보다는 입을 열게 됨으로써 과거청산의 마무리가 아니라 청산의 새로운 시작이 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말해 여운을 남겼다. 6ㆍ29선언에 대해 전 전대통령의 답변은 더욱 모호하다. 『어느 시대 어느 정치사회를 막론하고 이면사는 있게 마련이지만 그때 그때 속속들이 알려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6ㆍ29선언에 대해서는 그것이 담고 있는 내용이 어떻게 실현되었으며 어떻게 국가이익에 기여하고 있는가가 중요하지 그 경위나 배경을 새삼스럽게 들추어내는 일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노태우 당시 민정당대표위원이 단안을 내렸다는 지금까지의 정설을 확인해주지도 않았고 6ㆍ29는 「전두환작품」이라는 후설을 부인하지도 않은 것이다. 청문회장에 앉아 있던 여야의원 모두가 정작 「증인 전두환」의 입을 통해 정치자금 모금과 배분이 상세히 밝혀지기를 원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원하기는 했더라도 밝혀질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은 의원도 있었을지 모른다. 6ㆍ29선언에 대한 이면사도 정치자금문제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이들 사안에 대해 전 전대통령이 「진실」을 밝혔다면 그것은 이름그대로 「폭탄선언」이 된다. 정치권에 「혁명적인 상황」이 발생할 것이란 게 정치권의 공동인식이다. 「폭탄선언」을 하지 않고도 유일하게 여야와 국민 모두를 만족시키는 일은 「새로운 거짓말」로 국민을 기만하거나 증인 자신을 스스로 모욕하는 일밖에는 없다. 그러나 전 전대통령은 진실을 밝히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새로운 거짓말로 자신과 국민을 기만하는 일을 거부했다. 일국의 대통령을 7년이나 역임한 사람으로서 자신을 더이상 능멸하기 싫었기 때문이든지 역사를 오도하기보다는 「공백」으로 메워두는 것이 낫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으로 여겨졌다. 「폭탄선언」을 해도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고 거짓말을 해도 역사를 잘못 기록하는 진퇴양난 속에서 전두환증인은 서 있었던 셈이다. 또한 그러리란 전망은 책임있는 여야정치인 모두가 공유하고 있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전 전대통령은 증언 모두에서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아직 한번의 선례도 없는 전직대통령의 국회출석증언이라는 오점을 우리 헌정사에 남기게 된 것은 저의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과오가 될 것』이라고 밝혔었다. 전 전대통령의 말대로 그것은 「과오」였다. 증언자와 증언청취자가 모두 패배자일 수밖에 없는 「하지 말아야 할」 증언을 한 것이다. 전직대통령의 증언에서 얻은 것이 있다면 유일하게도 그를 증언대로 끌어올려 그를 충분하게 모욕해준 것 뿐이었다. 혹자는 그것만으로 청문회의 의미가 있으며 역사적인 교훈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함이 아닌 밝혀낼것으로 기대되지도 않았던 전직대통령의 증언은 유치한 정치보복일 뿐이었다. 증인이 참석해야만 의사진행을 할 수 있다는 논리에서 증언대를 향해 명패를 날리고 「살인마」를 외쳐대는 야당의원들의 행동에서 청문회의 목적은 분명해졌다. 우리는 아직 하나의 사건을 놓고도 지역마다 쓰는 「역사」가 다르다. 더많은 세월이 흘러야만 「역사」는 지역성을 뛰어넘어 기술될 수 있을 것이고 그때쯤 비로소 증인이 필요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광주」걸려 몸싸움 난장판…“서면매듭”/“5공청산 대단원”증언안팎

    ◎민주의원 명패 던지고 평민의원 삿대질/“22일 자위권 발동” 답변에 분위기 험악/욕설ㆍ야유… 의원끼리 멱살잡고 육탄전/8차례 정회소동… 노 의원,서면사과 거부 ○실증언 1시간50분 ○…섣달 그믐날인 31일 전두환 전대통령의 증언을 듣기 위해 열린 국회 5공ㆍ광주특위 합동청문회는 상오 10시에 시작해 8차례나 정회사태가 벌어지는 진통속에 새해가 시작되는 자정을 넘겨 차수변경까지 해가며 마라톤 진행. 이날 전 전대통령의 국회증언은 80년대를 마감하고 새 정국을 열리라는 역사적 상징성과 국민 일반의 기대를 갖고 있었음에도 답변내용을 문제삼는 야당의원들의 거센 항의와 여야합의에 따른 회의진행을 요구하는 여당원들간의 실랑이 때문에 전 전대통령의 실질증언 시간은 1시간50분에 그쳤고 광주관련 뒷부분과 보충질의 등에 대한 답변을 듣지 못해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하고 종결. 회의벽두 전 전대통령이 질문사항에 대한 답변을 하기에 앞서 전직대통령으로 사상 처음 국회증언대에 선 감회를 피력하며 사과의 뜻을 밝혔을 때만 해도장내는 엄숙한 분위기.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 전 전대통령이 5공당시 여러 조치들이 불가피했던 점도 있다는 것을 강조하자 흥분한 야당의원들이 고함을 지르며 일어났고 이에 여당의원들도 맞고함으로 맞서 극도의 환란상을 연출. 특히 광주문제와 관련,군의 자위권 발동을 거론하는 순간 평민당의 일부 비특위의원들이 거친 욕설을 해대며 전 전대통령에게 달려들었고 민주당의 노무현의원은 증인석으로 명패를 집어던지는 「상식밖의」 행동을 하자 민정당과 전 전대통령측이 청문회에 불참,결국 회의가 「파탄」에 도달. 청문회가 파행으로 흐르자 야3당은 「위증」 및 「불출석」 등을 이유로 국회고발을 거론하는 등 증언이 새 불씨로 등장할 때에 대비했고 민정당측은 일부 야당의원들이 「의원답지 못한 폭력적 행위」로 인한 불상사라고 야당측을 비난. ○회의속개 합의 불발 ○…회의장 소란으로 31일 저녁 7시55분부터 정회가 시작된 뒤 여야는 간사회의를 통해 ▲명패를 던진 노무현의원의 서면사과 ▲소란행위를 유발했던 조홍규ㆍ정상용ㆍ이철용의원(평민)을 회의장에 출석시키지 않기로 합의,회의를 속개할 예정이었으나 노 의원이 구두사과 발언을 고집한 데다 조의원 등도 회의장 방청을 주장,결국 밤 11시 증인의 불출석 속에 야3당측 의원들만 자리를 한 가운데 회의를 속개. 회의 속개후 신상발언에 나선 노무현의원은 『명패를 던진 것은 사실이나 그같은 사태가 발생했던 당시는 이미 정회가 선포된 뒤였고 증인이 퇴장한 지 상당시간 지난 뒤였다』면서 『회의벽두부터 국민의 여망을 외면하는 방향으로 회의가 진행된 데 대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일어난 일』이라고 해명. ○자정무렵 기자회견 ○…전 전대통령은 이날 밤 11시55분쯤 증인대기실로 쓰던 국회 2층 국무위원대기실에서 이춘구총장ㆍ이한동총무 등 민정당의원 20여명과 백담사측 측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기자회견을 통해 미리 준비한 기자회견물을 10분간에 걸쳐 낭독. 전 전대통령은 『알고 한 일이건 모르고 안 일이건 제가 맡고 있던 그 시대의 일은 전적으로 최고책임자인 저의 책임』이라면서 『국민이 내리시는 것이라면 죽음의약사발도 받을 각오가 돼 있다』고 거듭 강조. 기자회견을 마친 전 전대통령은 『오는 백담사에서 새벽에 출발하느라 제대로 잠을 못잤는데 이제 다시 백담사로 돌아가야 한다』면서 『기자 여러분에게 할 말도 많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자』는 말을 남기고 국회를 출발. 전 전대통령이 낭독한 기자회견문은 당초 서면답변서 낭독을 마친 뒤 신상발언용으로 준비됐으나 청문회가 중단됨에 다라 기자회견문으로 대체됐다는 후문. ○“합의사항 파기” 비난 ○…전 전대통령이 1일 새벽 0시10분쯤 국회를 출발하자 민정당은 의원간담회를 갖고 해산할 것을 결정했으나 이춘구총장ㆍ이한동총무ㆍ박철언정무1장관 등은 따로 남아 구수회의를 계속하다 0시30분쯤 모두 귀가. 이날 의원간담회에서 이 총무는 『전 전대통령이 엄청난 수모와 온갖 굴욕을 감내하며 과거청산 마무리를 위해 증언대에 섰다』면서 『그러나 야당의원들은 자기들 총재의 합의사항도 파기하면서 모욕적인 행동을 자행했다』고 비난. 이에 앞서 이 총무는 31일 밤 11시40분쯤 증인대기실로 전 전대통령을 찾아 증언이 계속되기 어려움을 최종 통보. ○…이날 5차례 정회끝에 하오 7시51분 속개된 청문회에서 전 전대통령이 발언대에 나와 『5월22일 자위권 발동…』이라고 말하는 순간 1층 의원방청석에서 청문회를 지켜보던 평민당의 정상용의원을 선두로 이철용ㆍ조홍규의원 등 「구경꾼」들이 『살인마 전두환』 『사람을 죽여놓고 무슨 자위권이냐』 『발포책임자부터 밝혀라』고 고함치며 단상앞으로 뛰쳐나오자 이들을 육탄저지하려는 민정당의 강우혁ㆍ권해옥의원 등과 서로 멱살을 잡는 등 육탄전이 벌어져 한순간 아수라장. 몸싸움이 점점 격력해지면서 이철용의원이 전 전대통령의 바로 곁에까지 다가와 욕설을 퍼붓자 문 위원장은 7시55분 재빨리 정회를 선포. 이에 전 전대통령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 변호사와 정동성의원(민정)과 함께 청문회장을 나서자 갑자기 노무현의원(민주)이 자신의 책상위에 놓여있던 명패를 집어들어 전 전대통령이 서 있던 발언대를 향해 투척. 한편 1층 청문회장의 소란과는 별도로 2층 방청석에서도 평민당측방청객과 민정당측 방청객 사이에서 몸싸움이 벌어져 한때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 ○“속개 못한다” 흥분 ○…평민당 정상용 이철용의원들의 소란과 민주당 노무현의원이 자신의 명패를 집어던져 정회가 선포되자 민정당의원들은 의원실로 내려와 특위위원회의 및 당소속의원간담회를 잇달아 열고 긴급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 민정당의원들은 노 의원이 던진 명패를 들고와 『이런 짓을 하는 게 어떻게 국회의원이냐』 『회의를 계속할 수 없다』며 흥분된 모습이었는데 이춘구총장도 『노 의원의 명패를 돌려주지말라』고 지시하는 등 강경 발언. 백담사측의 이양우변호사도 울먹이는 표정으로 당지도부를 찾아 『이런 상태로 증언이 되겠느냐』고 하소연. ○…이날 상오 10시부터 시작된 청문회는 전 전대통령의 5공특위 질문사항에 대한 답변이 약 1시간에 불과했음에도 4차례의 정회와 의사진행발언,답변도중의 소란으로 하오 4시20분쯤에야 5공부분이 마무리되고 광주부분에 대한 답변이 시작. 황명수위원장은 이날 증언에 앞선 인사말에서 전 전대통령에 대해 『5공비리의 정점에서 초법적 통치권을 행사했던 증인은 5공정권 찬탈과정에서의 폭압과 집권기간동안 자행된 탈법ㆍ비리의 제도적 부정부패에 대해 성실하게 증언하라』며 증언을 듣기도 전에 미리부터 논죄. ○…이어 전 전대통령은 지금까지 국회청문회에 소환됐던 증인들이 위원장에게 오른손을 들고 선서문을 낭독했던 것과는 달리 발언대에 나와 선서문을 낭독한 뒤 서명날인하여 위원장에게 제출하는 것으로 선서를 대체. 전 전대통령은 특위의 질의에 대한 증언에 들어가기에 앞서 『전직 대통령의 국회증언이라는 오점을 남긴 것은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과오이며 모든 것이 저로 인해 문제된 업보임을 인식하고 깊은 죄책감을 느낀다』면서 증언대에 서게 된 소회를 피력하는 순간 곁에서 지켜보던 이 변호사는 끝내 안경을 벗고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기도. ○…이어 전 전대통령이 답변에서 『일해재단 성금 모금과정에 의혹이 없으며 이같은 연구소는 나라를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강조하자 평민당의 양성우의원이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한다,우리가 여기 강연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다』고 항변했으며 정동호ㆍ신재기ㆍ홍희표의원 등 민정당의원들이 『할 말이 있으면 보충질문때 해라』고 일제히 소리쳐 한차례 공방전. ○“답변 미진하다” 고함 ○…식사 정회후 하오 2시 속개된 회의는 각당 대표 1명씩의 의사진행발언후 증언을 계속 들을 예정이었으나 의사진행발언시간중 증인이 반드시 나와 있어야 한다는 평민당측의 항의소동 등으로 20분동안 여야간 고함만 오고간 채 또다시 정회소동을 연출. 황 위원장은 회의가 속개된 직후 『오전답변중 25∼26개 항목에 대한 답변이 빠져 있다』며 『이들 누락항목에 대한 답변은 광주부분에 대한 답변과 보충질의 답변이 끝난 뒤 듣기로 간사간 합의를 보았다』고 소개하며 각당 1명씩 나와 의사진행발언을 하도록 요구. 그러나 첫 의사진행발언자로 발언대에 나선 김영배의원(평민)은 『의사진행발언중에는 반드시 증인이 들어야 할 부분이 있다』며 전 전대통령의 출석을 요구하자 황 위원장은 『의사진행발언은 증인이 출석하지 않은 상태에서 하기로여야간 합의를 했다』며 간사회의 합의내용을 소개. ○“포괄적인 답변말라” ○…국회는 하오 4시5분 5공특위의 질의에 대한 증언을 마무리짓고 사회자를 문동환광주특위위원장으로 교체한 뒤 「광주」부분에 대한 증언을 청취. 문 위원장은 여당의원들의 항의와 반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면밀하게 연구된 질문들이 회피되고 적당하게 넘어가는가 하면 답변이 자기정당화로 일관하고 있다』며 전 전대통령을 비난한 뒤 『포괄적으로 답변하지 말고 질의 번호에 따라 하나하나씩 답변해달라』고 요구. 한편 평민당 김대중총재는 이날 상오 연석회의장에 들어가 증언을 경청한 뒤 하오부터는 국회총재실에서 TV를 통해 증언장면을 하나하나 주의깊게 지켜봤으며 민주당 김영삼총재도 아침 일찍부터 국회총재실에 나와 김동영사무총장ㆍ이기택총무ㆍ박관용통일특위위원장 등 당 소속의원들과 전씨의 증언내용에 관해 얘기를 나누면서 TV로 전씨의 증언장면을 계속 지켜보는 등 비상한 관심을 표시했으나 공화당 김종필총재는 청구동자택에서 혼자 TV를 시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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