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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부수립 초기의 문화교육정책(변혁으로서의 문학과 역사:3)

    ◎최남선·이광수 저서 학원서 축출/“친일파 작품 교과서 게재 안돼” 각도 학무국장 결의/중등 국사·문장독본 등 5권 교육부서도 판금처분 “해방이 도둑처럼 왔다”는 함석헌의 말은 일제 식민통치 아래 편안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맞는 말이겠으나 독립을 위해 각고의 투쟁을 했던 인사들에게는 모욕적인 비난일 수 있다. 감옥에서 광복절 이튿날 풀려난 김상훈(金尙勳)과 같은 시인이 맞았던 해방과,바로 그 시각 서울 근방 B29를 막는 방비공사용 자갈을 채취하는 양주군 진건면 사릉리앞 개울에 나갔다가 근로보국대에 동원됐던 사람 상당수가 안 나오고 감독하는 일군 병사도 보이지 않자 웬일이냐고 궁금해 하던중 어제 일본이 항복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던 춘원 이광수(李光洙)가 맞았던 해방은 다를 수 밖에 없다. 1945년 8월15일 해방이 김상훈에게는 역사적인 필연의 승리였지만 이광수에게는 도둑같이 몰래 찾아온 악몽이었을 것이다.이럴 때 보통사람 같으면 어떻게 했을까? 춘원과는 다른 입장이었으나,역시 낙향해 있던 철원에서 ‘상경하라’는 전보를 받고 해방 이튿날 서울로 달려왔던 이태준에게도 해방은 도둑처럼 왔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소가 열 필이 와서 끌어도 이광수는 이 자리를 안떠날 것이오”라며 해방의 충격을 낙향생활로 완충지대를 삼으려 했다.겉보기로는 농사꾼같은 은둔생활 이었으나 미구에 닥칠 환란을 예견코 그는 재산보호를 위해 아내와 협의 이혼(1946월 5월31일)했는데,반민법이 그렇게 허망하게 허물어질 줄은 아마 예측하지 못했던 것같다. 이 기간중 춘원은 끊임없이 글을 썼지만 친일에 대한 참회보다 자신이 관여했던 민족운동을 부각시키는데에 초점을 맞췄다.그 많은 글중 판매금지 논란으로 사회적인 쟁점이 된 소설이 바로 ‘꿈’과 ‘문장독본’이었다. 십여년 전에 쓰다가 버려두었던 것을 해방이후 뒤늦게 완성시킨 ‘꿈’은 낙산사의 승려 ‘조신’이 허혼자가 있는 태수의 딸 월례와 애정의 도피행각을 떠나 15년간 2남2녀를 두고 잘 살다가 그녀의 약혼자에게 잡혀 사형당하려는 찰라 깨고 보니 꿈이었다는 ‘삼국유사’의 설화를 풀어 쓴 이야기다.이 꿈으로 조신이 쾌락의 허망을 깨닫고 고승이 됐다는 사족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인데,춘원 자신이 아마 당시의 역사적 격변속에서 조신으로 둔갑하고 싶었을 것이다.친일의 악몽에서 깨어나 다시 고결한 민족지사로 되살아나고 싶었던 그의 ‘꿈’은 그러나 1947년 6월 발간 즉시 문학가동맹에 의해 판매금지 처분을 내려야 한다는 탄원서를 불러왔다. 그러나 이 소설은 정당한 비판이 되레 인기를 상승시킨다는 한국적인 저질의 문화풍토에 걸맞게 베스트셀러로 부각하고 만다.서글픈 해방이 되려는 역사적 다람쥐바퀴였다.그러나 정부수립후인 1948년 10월4일,각도 학무국장회의에서 최남선 이광수의 저서는 학원에서 축출할 것을 결의했고,이어 나흘뒤 안호상(安浩相) 문교장관은 이 사실을 거듭 확인했다.그 목록은 ●최남선의 ‘중등국사’ ‘국민조선역사’ ‘성인 교육국사독본’외 4권,이광수의 ‘문장독본’ 등이다. ‘문장독본’은 원래는 1937년 3월 홍지출판사에서 소품을 모아 낸 작품집인데,광복 직후 교재 빈곤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 사회적인 물의가 일어나자 교육부에서 판매금지처분을 내리게 된 것이다.이 사건은 한국정부 수립 직후 친일파의 저서는 교재나 교과서에 실릴 수 없다는 기본 입장을 밝혀준 사례로,관제금지가 아닌 국민의 여론에 의한 판금으로 기록될만 하다. 그러나 곧 정부의 문화교육정책이 바뀌어 1953년 3월20일 ‘문장독본’은 청록사에서 재출간됐으며 당시의 허기진 학생층에 파고 들어 문학관을 변질시키는 작용을 했다.
  • 英 해리 왕손 ‘작은 반란’

    ◎찰스 왕세자­카밀라의 공개데이트에 항의 삭발/“아무도 어머니 대신 못한다” 공언 아버지와 갈등 영국 왕실이 이번엔 ‘왕자의 삭발’로 회자되고 있다. 자동차 사고로 숨진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둘째아들 해리 왕자가 최근 ‘아버지에 대한 항의성 시위’로 머리를 빡빡 삭발해버린 것.영국에서 머리를 민다는 것은 곧바로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왕족이 ‘스킨헤드족’이 되기는 이번이 처음. 미국 글로브지는 최신호에서 해리 왕자와 아버지 찰스 왕세자의 갈등은 약 한 달전부터 시작됐다고 전하고 있다.찰스 왕세자가 지난 9월 카밀라 파커볼스라는 여인과 비밀스럽게 허니문 성격의 휴가여행을 다녀온 게 도화선이 됐다.여행지는 17년전 다이애나와 함께 신혼 여행을 갔던 에게해 부근의 바로 그 곳.당시의 허니문을 그대로 흉내냈다. 해리 왕자는 아버지의 이번 여행을 죽은지 14개월밖에 안된 어머니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음은 물론 아버지의 결정적 배신으로 생각했을 것이라고 글로브지는 분석했다.또 찰스 왕세자가 여행을 다녀온 후 카밀라와 자주 공개적인 데이트까지 갖자 강력한 항의를 표시하기로 했을 것이라는 풀이다. 해리 왕자는 최근 형 윌리엄 왕자와 함께 공공연히 “아무도 어머니를 대신할 수 없다”고 밝힘으로써 카밀라에 대한 반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영국 왕실 역사가인 헤롤드 브룩스 베커는 “찰스 왕세자가 지금까지와는 달리 여론을 두려워않고 카밀라를 왕세자비로 맞을 의사를 간접적으로 시사하고 있다”며 “요즘 잇따라 보여주고 있는 행동들은 중요한 의미를 띤다”고 밝혔다. 글로브지는 14세의 해리 왕자는 얌전하면서도 수줍음이 많은 것으로 소문나 있다고 전제,이번 ‘삭발사건’이 아버지 찰스 왕세자의 의도를 무산시키기 위한 ‘아들의 작은 반란’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 ‘인권선진국’ 제도적 기틀 마련/‘인권법 시안’ 내용과 의미

    ◎외국인­재외국민도 보호/국가가 입힌 피해 구제 25일 법무부가 발표한 인권법 시안은 국민의 인권침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대내외적으로 인권탄압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인권후진국’의 오명을 씻고 ‘인권존중국’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기틀을 다진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지향하는 ‘인권 침해와 차별이 없는 사회’로의 첫 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인권법 제정 추진은 金大中 대통령의 ‘대선 공약사항’이다. 새정부 출범이래 가시화된 신공안(新公安) 개념,전향제 폐지와 준법서약제 도입,양심수 석방 등 일련의 인권정책과도 궤를 같이한다. 인권법 시안은 인권교육·홍보에서부터 제도개선·조사·구제 등에 이르기까지 인권 전반을 총체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국가기관의 고문·협박 등 일반적인 인권침해행위 뿐만 아니라 인종모욕,성희롱 등의 차별행위도 적시해놓고 있다. 적용 범위도 인권의 탈(脫)국경화와 세계화 추세에 맞춰 국내 외국인과 재외국민에게까지 확대했다. 인권법의 제정에 따라 독립법인체로 설립될 ‘국민인권위원회(인권위)’는 인권보호를 위한 ‘첨병’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인권보호의 1차적 책임은 해당 국가기관이 맡고,인권위는 국가기관의 인권침해 및 국내외의 차별 행위에 대한 감시·구제 활동을 담당하게 된다. 인권위의 조사는 진정(陳情)과 직권에 의해 이뤄진다. 조사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특히 1년이 지난 사건에 대해서도 예외적으로 전체위원회 의결을 거치면 조사가 가능하도록 규정,의문사 등 과거사 청산을 위한 길도 열었다.
  • 이옥순씨 에세이 ‘인도여자에게 마침표는 없다’ 펴내

    ◎지구촌 여성의 20%… 그들 삶의 무게/1시간42분마다 한명꼴 지참금 관련 강요된 죽음/속박넘어 자유 얻을 날은… 인도의 ‘위대한 영혼’ 간디는 “힌두 여성은 신이 인류에게 준 선물”이라고 당당히 말했다.또 인도 고대의 법전인 마누법전은 “여성의 몸은 신성하기 때문에 꽃으로라도 때려서는 안된다”고 가르친다. 인도의 현실은 이러한 진리를 간단히 배반한다.죽은 남편의 화장더미에서 함께 타죽게 하는 ‘사티’의 전통이 아직도 숨쉬고 있고,지참금이 적다고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사리에 불을 붙이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인도에는 카레가 없다’의 저자로 잘 알려진 이옥순씨(숭실대 강사)가 펴낸 ‘인도여자에게 마침표는 없다’(사과나무)는 인도 여성들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문화에세이다. “얼마 전 인도 연방의회의 한 의원이 ‘단발머리를 한 여자들은 인도인이 아니다’라는 말을 해 말썽을 빚은 적이 있었습니다.인도에서는 단발머리여성들은 보통 부도덕하고 헤픈 여자로 간주됩니다.이 정도면 인도 남성들의 사고는 초(超)보수적이라고 할 만하죠.인도 벵골 지방에는 ‘여자와 말이 있어야 할 곳은 남자의 다리 밑’이라는 모욕적인 속담도 있어요” 그러나 그는 인도 여성들의 척박한 삶 속에서도 희망의 단서를 찾아낸다.‘바라트 마타’ 곧 ‘인도의 어머니’로 불린 인디라 간디 총리와 ‘작은것들의 신’으로 영국 최고의 문학상인 부커상을 거머쥔 아룬다티 로이가 그 예다. “1966년 인디라 간디가 48세의 나이로 총리직에 오르자 남성들은 몹시 못마땅해했습니다.그러나 지난 71년 파키스탄과의 전쟁에서 보여줬듯 그는 결단력과 단호한 성격을 지닌 지도자로 역사에 확실하게 자리매김돼 있어요.오늘날 인디라 간디는 힘의 여신인 ‘두르가’로 숭배받을 만큼 영향력 있는 인물로 통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인도를 실재하는 구체적인 나라가 아니라 하나의 추상으로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명상의 나라,굶주리고 헐벗은 몸으로 갠지스 강을 찾아와 행복하게 죽어가는 사람들,곳곳에서 신의 현현을 목도할 수 있는 영혼의 나라….인도는 과연 타락한 물질세계의 대안인가.‘정신주의’라는 알약을 내세워 인도를 과거에만 묶어두려 했던 영국 제국주의의 시선을 우리가 은연중 본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자신은 무한대의 세속적 욕망을 향해 줄달음치면서도 인도는 그저 심신이 고달플 때 잠시 쉴 만한 영혼의 땅으로 머물러 있기를 바라는 한,우리는 이기적인 이방인일 뿐이다.이 책은 바로 이러한 자성적 관점에서 씌어졌다. “이방인의 편견이 만들어낸 인도에 대한 허상을 깨고 인도의 명암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자는 게 이 책의 집필 의도입니다.문맹,결혼지참금,부정부패,저개발,부당 착취와 같은 사회문제에 몸살을 앓으며 요로운 삶을 꿈꾸는 보통사람들이 호흡하는 땅이 인도예요.인도에 성자가 넘치고 종교가 넘치는것은 그만큼 삶이 힘들고 고단하다는 반증이 아니겠어요” 97년 유엔의 세계인구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도 여자들은 1시간42분마다 한 명 꼴로 결혼지참금과 관련해 사망하는 것으로 돼있다.해마다 약 5,000건의 ‘강요된 죽음’이 발생하는 셈이다.인도에서 결혼은 한편으로는 ‘비즈니스’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바람처럼,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숫타니 경(經)에 나오는 이 구절처럼 인도의 여성들이 속박을 넘어 자유를 얻을 날은 언제쯤일까.전세계 여성인구의 5분의 1을 차지하는 인도여성,그들의 옹이진 삶은 이 세상 모든 여성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이 책 속의 인도여성들 이야기를 가볍게 읽되 결코 가볍지 않은 그들의 삶의 무게를 조금이나마 헤아렸으면 합니다” 인도 델리대학에서 ‘식민주의와 교육’이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씨는 현재 식민지시대 인도와 영국의 관계를 다룬 에세이집 “인도에 온 ‘영국신사’”(가제)를 구상중이다.그는 나이 밝히기를 한사코 꺼렸다.
  • 도쿄 국제기독대학 로저 버클리 교수 IHT 공동 기고(해외논단)

    ◎英·日 ‘역사적 장애’부터 해결을 영국 정부가 공식 방문중인 아키히토 일왕 부처를 크게 반기고 있지만 영국 국민들의 정서는 사뭇 다르다.2차 대전중 일본군의 포로였던 이들은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도쿄 국제기독대학의 역사 교수인 로저 버클리씨와 영국 BBC방송의 유럽전문가 윌리암 호슬레이씨는 최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과거청산이 있어야만 양국 미래를 위한 경제협력도 있을 수 있다는 내용의 글을 실었다.다음은 기고문의 요약이다.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는 최근 영국 경제에 대한 일본의 공헌도를 강조하며 두 나라가 미래를 향해 함께 공조해나갈 것을 역설했다. 하지만 영국에 일본의 공장들이 아무리 많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2차 세계대전 당시 태국과 버마(미얀마)를 잇는 살인적인 철도 공사현장이나 싱가포르의 창이 감옥에서 저질러진 일본의 만행을 잊게 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왕의 방문은 영국민들에게 어두운 과거사에 대한 기억과 함께 또다른 각성을 촉구하는 계기가 됐다. 실제로 재향군인회의 한 간부는 영국 왕실이 최고 명예작위를 아키히토 일왕에게 수여하는 것은 당시 참전용사들을 모욕하는 처사라고 비난했다. 일본군 포로수용소 출신의 영국군 참전용사그룹은 전쟁에서 입은 육체적·정신적 고통에 대한 보상을 일본 정부에게 요구하는 소송을 도쿄법원에 제기하기도 했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협정으로 일단락된 정부 차원의 보상책을 거부하며 가해국 일본 정부가 공식적으로 합당하게 보상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협정은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생존한 이들에게 일본 정부가 일시불로 76파운드(약 17만원)의 보상금을 지불함으로써 모든 책임을 마무리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이런 보상책은 악몽과도 같은 전쟁의 상처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이들과 유가족들에게 위로가 되기는 커녕 오히려 모욕으로 여겨지고 있다. 지금 아키히토 일왕의 영국 방문에 강도높게 항의하고 있는 영국의 재향군인회와 유가족,시민들은 일본 정부의 좀더 책임있는 태도를 원하고 있다. 일본은 이미 중국과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의 위안부 문제와 역사교과서 왜곡 문제 등에서 불성실하고도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 왔던 터다. 향후 다각도의 경제협력을 모색중인 일본과 영국 정부는 좀더 전체적인 협력체제의 모양새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정부간의 경제적 이해에 앞서 먼저 대다수 국민들의 감정을 막고 있는 ‘역사적 장애’부터 해결하고 넘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전쟁희생 당사자들에 대한 물질적 보상의 한 해결책으로 최근 독일과 체코 정부가 조성한 ‘화해기금’의 사례를 검토해 볼 수 있다.독일과 체코 정부는 이 기금으로 2차대전 당시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당한 체코 상이군인들의 노후생활을 지원키로 했다. 영국과 일본이 이같은 조치들을 함께 실행해 갈 수 있을 때 두 나라 역시 진정으로 아픈 과거사를 묻고 미래를 위한 관계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제갈량 문집 난세를 건너는 법/오수형 편역(화제의 책)

    ◎난세의 지략가 제갈공명 문집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정치가이자 전략가인 제갈량(181∼234).우리에게 공명(孔明)이란 자(字)로 잘 알려진 그는 후한 말의 전란을 피해 사관(仕官)하지 않았으나 와룡선생이라 불릴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제갈량은 207년 위의 조조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던 유비로부터 삼고초려의 예로써 초빙됐다.그는 이내 ‘천하삼분지계’를 진언하고 군신지교를 맺었다.221년 한(漢)이 멸망하고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그는 재상이 됐다.그러나 제갈량은 234년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지 못한 채 과로로 오장원에서 병사,정군산에 묻혔다.한자문화권의 동양인에게 특히 지혜의 상징이자 충성스런 신하의 표상으로 받아들여지는 인물이 바로 제갈량이다.이 책은 중국의 여러 역사서에 흩어져 있는 제갈량의 글들을 모은 문집이다.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인간으로서는 거의 완전무결한 경지에 이른 실질상의 주인공으로 묘사된다.그러나 이 책에 실린 산문들은 문학작품 속의 제갈량이 아닌 현실의 제갈량이 어떤 생각을 했으며 어떤 처세를 했는가를 보여준다.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이뤄졌다.1부 ‘제갈량의 난세경영’에는 제갈량의 작품으로 인정되는 ‘초려에서의 천하대계’‘형 제갈근에게 수양계곡의 길을 닦은 일을 알리는 글’‘도끼제작의 교령’ 등 50여편의 글이 실렸다.또 2부 ‘장군의 길’은 비록 위작(僞作)이기는 하나 제갈량의 이름을 빌려 세간에 크게 유행한 ‘장원(將苑)’으로 엮여져 있다.‘장원’은 장군의 덕목과 군대 운용에 관한 단편들을 모은 것이다.제갈량은 유가5경(五經) 가운데 하나인 ‘서경’의 한 대목을 인용해 장군의 바른 길을 일러준다.“군자를 모욕하면 그 진심을 다하게 할 수 없고,소인을 모욕하면 그 힘을 다하게 할 수 없다” 문학과지성사 8천원.
  • 뉴딜정책 기수 프랭클린 루즈벨트:하(미국의 대통령 문화:5)

    ◎2차대전 적극 개입… 1천만 실업자 구제/전후 평화 정착 기대속 4선 당선 영광/대통령 문화 요람 도서관 시스템 도입/부인 일리노어 적극적 사회 활동/헌신·박애정신 국민 마음속 각인/동상 선 세계 최초 퍼스트 레이디 【워싱턴〓나윤도 특파원】 대공황의 질곡에서 미 국민을 구출할 희망의 상징으로 32대 대통령에 취임한 프랭클린 루즈벨트(애칭 FDR)는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강력한 뉴딜정책을 추진했다.테네시강 개발사업,국가부흥청 설립,농업조정법 제정,사회보장제도 도입,노동조합 활성화 등 100일 입법을 통한 새행정부의 의욕적인 정책추진은 무기력과 절망에 빠졌던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는 신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뉴딜정책 평가를 위한 국민투표의 성격을 띤 1936년 대통령선거에서 FDR은 선거인단수 523대 8의 미 역사상 최대의 표차로 재선고지에 오를 수 있었다.그러나 활기찬 뉴딜정책의 추진에도 불구하고 대공황으로부터의 탈출은 요원했다.36년 다소 회복되는 듯 하던 경기는 37년 중반부터 다시 불경기로 돌아섰으며 38년에는 최악의 상태로 떨어져 실업자가 전체 노동력의 5분의 1인 1천만명에 달할 정도였다. 당초부터 실험적 성격이 강했던 뉴딜정책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사방에서 FDR에 대한 비난의 소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그러나 그는 천운을 타고난 듯,뜻하지 않은 방향에서의 해결책이 마련됐다. FDR의 대통령 취임과 같은 해인 33년 독일의 권력을 장악한 아돌프 히틀러가 국제연맹을 탈퇴,인접국들에게 과거 독일영토의 반환을 요구하며 전쟁준비에 광분하면서 유럽에는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마침내 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2차대전이 시작되었다. 미국은 마침내 전쟁에 개입하게 되었고,이로 인해 군수산업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루면서 미국의 경제상황은 대공황에서 탈피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전후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었다.전쟁이 미국을 구했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전쟁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던 40년,미 대통령선거의 최대쟁점은 참전문제였다.초기 FDR은 재선한 대통령으로서 명예로운퇴진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전쟁에 직면한 위기상황에서 민주당은 전폭적으로 그를 또 다시 대통령 후보로 선출했다.그는 참전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으나 미국이 전쟁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막강한 군대가 필요함을 역설했다.미 국민은 그를 미 역사상 최초의 3선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전쟁 초기 FDR은 곤경에 처한 영국을 도우려 했지만 고립주의자들로 가득찬 미 의회의 거부로 소규모 제한적인 원조밖에는 할 수 없었다.그러나 그는 “미국은 민주주의의 거대한 무기고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며 의회와 국민을 설득,마침내 ‘무기대여법’을 통과시켜 본격적인 지원에 나설 수 있었다.39년 10월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핵폭탄에 관한 서신에 접한 FDR이 즉시 비밀계획팀을 만들어 연구에 착수,마침내 원자탄을 만들어내게 한 것도 이같은 그의 의지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던 중 41년 12월 일본의 진주만 공격은 미국의 본격적인 참전 계기가 됐다.참전은 모든 미국 경제를 전시경제로 돌아서게 했고 미 전역의 공장들로부터 막대한 양의 군수물자들이 쏟아져 나왔다.1천만에 달하던 실업자가 방위산업 증강에 따른 구인수요와 군입대로 사라지게 됐다.또한 FDR의 활발한 전시외교는 그를 자연스레 국제지도자로 부상시켰다. 44년 11월,아이젠하워 장군 지휘하에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성공시킨 연합군이 최후의 승리를 위해 독일로 진격하고 있을 때 미국은 다음 대통령선거를 치렀는데,FDR은 공화당의 토머스 듀이를 물리치고 4선 대통령에 당선됐다.전쟁의 마무리 뿐 아니라 전후평화에 있어서도 미 국민은 그의 영도력에 큰기대를 걸었던 것이었다.그러나 격무에 시달리던 그는 취임 3개월도 못된 4월12일 조지아주 웜스프링 휴양지에서 뇌출혈로 숨졌다.그의 나이 63세. 라이딩스의 대통령 순위에 따르면 FDR은 지도력과 정치력에서 각각 1위,업적 및 위기관리와 용인술에서는 각각 2위,성격 및 집중도에서는 15위를 기록해 전체 순위에서는 링컨에 이어 2위로 나타나 있다. 당시 육군참모총장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과의 일화는 그의 지도력 및 용인술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첫대통령 취임 직후 FDR의 군예산 대폭 삭감계획에 불만을 품은 맥아더 육군참모총장이 조지 던 전쟁장관과 함께 백악관을 방문했다.대통령과 부딪히는 것을 꺼리고 있던 던 장관을 제치고 맥아더가 국가안보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FDR은 빈정거리는 투로 평화시에 많은 군대를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고 답했다.두사람 사이에는 다소 설전이 오갔다. 마침내 맥아더가 자제력을 잃고 “만일 다음 전쟁에서 미국이 져 미국 병사들이 적의 군화발에 짓밟힌다면 그들은 맥아더가 아닌 루즈벨트를 원망할 것입니다”라고 대들었다.그러자 FDR 역시 화를 버럭내며 “당신이 대통령 앞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라며 고함을 질렀다.잠시 침묵이 흘렀다.맥아더의 생명은 끝난 것과 다름 없었다.군통수권자에 대한 모욕은 군법회의 감이었다.그는 사과를 한 후 총장직 사의를 표하고 뒤돌아 나왔다. 맥아더가 막 집무실 문을 나서려는 순간 뒤에서 대통령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렸다.“더글라스,어리석은 짓 말게.여기 당신의 목과 예산안을 함께 가져 가게” FDR의 정치생애에서 가장 주목을 받아야할 사람은 부인일리노어 여사라는데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그녀는 남편의 투병중 세심한 간호는 물론 그가 주민들로부터 잊혀지지 않도록 정치활동을 대신,남편의 정치적 재기를 가능케 했다.또 퍼스트 레디가 된 후에도 신문에 ‘마이 데이’라는 칼럼을 정기적으로 썼으며 적극적인 사회활동으로 현대적 퍼스트 레디상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FDR이 죽은후 그녀는 남편 생가의 옆동네인 바킬의 고향집에서 17년을 더 살았으며 트루만 대통령의 요청으로 6년간 유엔총회 미국대표단장을 역임하는 등 공직생활을 하기도 했다.62년 78세로 생을 마감한 그녀는 국민들 마음에 헌신적이고도 박애적인 영원한 퍼스트 레디로 깊이 각인됐으며 지난 여름에는 워싱턴에 동상이 선 첫 퍼스트 레디가 됐다. FDR의 업적 가운데 주목받는 것으로는 대통령도서관 시스템의 도입이 있다.역사기록의 중요성과 대통령직 수행 자체가 국민의 위임에 의한 것임을 자각했던 그는 1기 임기가 끝났을 때 자신의 모든 자료들과 하이드파크의 생가를 국가에 기증,대통령도서관을 만들어 국민들이 언제라도 편하게 접할 수 있게 했다.현재 미국내 존재하는 대통령도서관은 모두 11개로 국립문서보관소(National Archives)의 관할 아래 제31대 후버 대통령부터 41대 부시 대통령까지 주로 생가에 건립돼 있으며 미 대통령문화의 요람이 되고 있다. ◎수잔 쿠퍼 미 국립문서보관소 대통령도서관 담당/“대통령직 관련 자료 보존·열람 FDR 투철한 역사의식서 시작” 미 국립문서보관소의 수잔 쿠퍼 대통령도서관 담당관은 “미 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대통령직 수행과 관련된 자료들을 한데 모아 보존하고 열람시키는 전통을 수립한 것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투철한 역사의식에 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도서관의 설립 동기는. ▲1939년 두번째 임기중이던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하이드파크의 생가일부와 소장하고 있던 모든 자료들을 연방정부에 기증하고 그 관리를 의뢰하면서부터 시작됐다.도서관 건물은 이듬해인 40년 후원회에서 건립후 국가에 헌납했다.1955년 ‘대통령도서관법’이 제정돼 도서관의 건립은 대통령후원회 등 개인이 맡고 관리만 국립문서보관소에서 하도록 돼 있다. ­이전에는 대통령문서가 어떻게 보존돼 왔나. ▲대통령마다 의회도서관 또는 출신대학,거주지 도서관 등에 기증하거나 혹은 후손에 남기는 등 가지각색이었다.그래서 팔려나간 경우도 있고,훼손·분실되는 일도 많았으며 여러군데 흩어져 있는 경우도 많았다. ­현재 대통령도서관 현황은. ▲최근 텍사스 A&M유니버시티 내에 개관한 부시도서관을 포함 모두 11개이다.루즈벨트에 이어 트루만(미주리 인디펜던스),후버(아이오와 웨스트브렌치),아이젠하워(캔자스 애빌린),케네디(매사추세츠 보스톤),존슨(텍사스 오스틴),포드(미시간 앤아버),카터(조지아 애틀란타),레이건(캘리포니아 시미 밸리)도서관 등이 있다.워터게이트로 물러난 닉슨의 도서관은 캘리포니아 요루바린다에 있으나 의회명령으로 방대한 양의 워터게이트사건 관련 문서들은 아직 국립문서보관소의 닉슨자료실에 보관돼 있다. ­대통령 도서관에 전시되는 자료들의 내용은. ▲대통령이나 비서진에 의해 공식적으로 만들어진문서,국내외로부터 받은 문서 및 서신,취임전후의 자료,사진·필름 등 각종 오디오 비디오 자료,유품 등 개인소장물품과 공식선물 등이다.
  • 실업대책·사교육비 절감 싸고 격돌/TV합동토론회­중계

    ◎이회창­‘일자리 확보’ 노사간 신협약 필요/김대중­비자금자료 입수·공표 모두 불법/이인제­문화 사전·사후 검열제 철폐 시급 대선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실시된 14일 합동TV토론회에서 3당 후보들은 실업대책과 사교육비 절감방안 등을 놓고 열띤 공방을 벌였다.후보들의 발언을 요약정리한다. ▷과학기술 예산 확보◁ ▲김대중=과학 예산은 최우선적으로 확보해야 한다.낭비되고 있는 국가예산을 절감해 과학기술분야에 최우선적으로 예산을 지원해야 한다. ▲이회창=IMF기간 이후 과학기술이 경제를 살리는 원동력인 만큼 이에 대한 투자는 아낄수 없다. ▲이인제=국가생존전략 차원에서 기초과학분야에 대한 투자는 2002년까지는 6%로 끌어올려야 한다.소프트웨어 인력을 양성,과학기술역량을 높여야 한다. ▷복지예산◁ ▲이인제=IMF 이행조건 때문에 내년 7조5천억원,약 10%의 예산삭감이 불가피하다.그러나 대형국책산업 부문은 다소 삭감하더라도 복지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김대중=중요한 것은 실업을 방지하고 직업이 없는 사람에게 직업을 주는 것이다.반년간 임금을 동결하고 해고도 하지 않는 복지정책이 필요하다. ▲이회창=일자리 확보가 중요하다.노사 신협약이 필요하다.급여를 줄여서라도 같이 가는 것이 필요하다.김대중후보의 IMF재협상론으로 국제신인도가 떨어져 난리가 났다. ▷비자금 폭로◁ ▲김대중=이회창 후보는 국가기관의 영장이 없으면 입수할 수 없는 내 친인척 계좌를 입수,우리를 공격하는데 썼다.자료의 입수 및 공표 모두 불법이다. ▲이회창=어마어마한 제보가 들어왔다.정확한 제보처럼 보여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이인제=5백50억원을 계약금조로 사채시장에 갖고 갔다고 했는데 그것을 살만한 기업은 없을 것이다. ▲김대중=이회창 후보께서 우연히 입수했다고 했는데 설사 그렇더라도 위법사실을 검찰에 갖다 줘야지 당에서 발표하는 것은 금융실명제 위반이다. ▷DJ 20억 수수문제◁ ▲이회창=김대중 후보는 20억원을 위문금으로 받았다는데 5.18 학살자로부터 받은 돈도 위문금인가. ▲이인제=김대중 후보가 노태우 대통령이 그 정도의 돈을 갖고 있어서20억원을 받았다는데 정말 놀랬다.김대중 후보의 경험으로 미루어 재벌의 정치자금 일부인 줄 알고 받았을 것이다. ▲김대중=이회창 후보는 3김중 하나인 김영삼 대통령 덕으로 감사원장,총리,여당대표 등 온갖 영전을 누려왔다.3김중 하나와 협력한 것을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 ▲이회창=야당이 여당 대통령으로부터 20억원을 받은 것도 민주주의인가. ▲이인제=이회창 후보가 ‘이인제를 찍으면 김대중이 된다’고 하는데 이것은 새로운 지역패권주의가 아닌가. ▲이회창=현실적으로 이후보가 대통령이 되기는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이인제=학생 젊은층 등 밑으로부터의 지지는 폭발적이다.반드시 위대한 선거혁명이 이뤄질 것으로 본다. ▲김대중=‘이인제 찍으면 김대중 된다’는 말은 이인제 후보와 나에 대한 모욕이다.대통령이 될 자격이 없다. ▲이회창=아직도 이후보를 남의 당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지금도 이후보와 손잡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다. ▲이인제=이회창 후보가 나를 같은 식구로 생각한다고 했는데 이를 빨리 거두어 들이는게 좋다고 생각한다. ▷통합방송법 처리◁ ▲김대중=통합방송법은 연내 또는 명년초에는 처리해야 한다.재벌의 위성참여는 막고 대신 중소기업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참여해야 한다. ▲이회창=경쟁력있는 기업의 참여를 반드시 백안시해서는 안된다.재벌은 참여하되 지분을 제한해 독과점을 막는 조치가 있으면 되지 않나 싶다. ▲이인제=상당한 부분은 중소기업이 컨소시엄을 만들어하되 일정부분은 대기업도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대중=대기업과 중소기업 컨소시엄은 완전히 다르다.대기업은 독과점의 부작용이 있다.언론의 독과점을 막는게 중요하다. ▷일본 대중문화 수입◁ ▲이회창=우리 청소년들은 자신있게 일본문화를 소화할 수 있다.저급한 문화를 제외하고는 들어와도 괜찮다. ▲이인제=일본문화의 개방에 대해 나는 전부터 적극적인 생각을 피력해 왔다.해방이후 여러 세대가 지났으니 이제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수출할것은 수출해서 극복해야 한다. ▲김대중=역사를 볼 때 ‘문화 쇄국주의’를 고수해서 잘된 나라는 없다.일본문화가 뭐가 그리 대단해서 받아들이면 안되는가.고급문화를 안받아들이니까 섹스.폭력 등 일본의 저급문화가 판을 치고 있다. ▲이회창=영화 등 영상산업의 경우는 예외다.우리 국내 영화산업 보호를 위한 장치가 먼저 마련돼야 한다. ▷정부의 문화간섭◁ ▲이인제=사전,사후검열 모두를 철폐해야 한다.문화는 간섭이 문제다. ▲김대중=문화검열은 사전이든 사후든 해서는 안된다.문화가 무책임하게 나가지 않도록 문화인의 자율적인 자기검열이 필요하다. ▲이회창=표현의 자유는 ‘사상의 시장’에 맡겨 시장경쟁으로 여과하면 된다.사전검열로 미리 선택한 것은 민주적인 방식이 아니다.
  • 러 강제이주 한인 복권시켜야/강상호(기고)

    ◎러·한국서 모두 소외… 부당한 처우 60년째 지속 ‘조선민주통일 구국전선’은 90년 이후 북한에서 탈출했거나 망명한 전북한 고위당·관료출신들이 만든 단체로 ‘반김일성·김정일’을 구호로 북한의 민주화를 촉구하고 남북통일에 도움이 되고자 만든 단체.강의장이 주장하는 ‘복권’은 러시아,중국에 강제이주된 한인 2,3세들이 이주되기 전의 옛터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하며 ‘강제이주’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대가가 지불되어야 함을 의미한다.〈편집자주〉 올해가 1937년 옛소련 원동지역에 살던 한인들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지 꼭 60주년이 되는 해이다.이 사건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민족 전부에 막대한 불행과 모욕을 심어준 사변이었다.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한민족 전체를 탄압한 사건이었다. 당시 일제는 소련에 대해 무력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소비에트정부는 한인들이 일본편에 가담하리라고 지레 짐작했다.1937년 봄.당시 비밀경찰측은 한인으로 구성된 일본스파이에 대한 공개재판을 실시하면서 한인이주공작에 들어갔다. 일본은 한국을 침략한 뒤 한인가운데 주구들을 매수,소련에 스파이로 보냈었다.소련은 그런 ‘주구’들을 한인 40만명과 한 횡렬에 세워 동일시 했다.소련정권을 세우기 위해 한인들은 러시아 빨치산들과 피를 흘린 적이 있지 않은가. 당시 나는 극동 포시에트구역 공청위원회 비서로 일하고 있었다.그해 7월.구역 당위원장,국경경비사령관등이 소련과 중국·한국 국경지역을 시찰하고 ‘국가의 원조에도 불구하고 한인들이 경제계획을 완수하지 못한다’고 억지를 부렸다.그리고 8월.당위원회 조직부 부부장이 한인을 ‘깊은 후방’으로 이주시킨다는 정부결정을 통고했다.일본의 무력침공이 있으면 일본스파이를 적발하고 그들과 한인들을 구별하기 힘들기 때문에 이주시킨다는 것이다. ○권리·자유 박탈상태로 이주 이주의 기본조건은 한인들의 권리를 제한하고 자유를 박탈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거주·이전의 자유를 빼앗았고 한인을 군대에서 제외시켰으며 한인 철도관련 종사자를 모두 내쫓았다.어쨌든 한인들은 정든 고향을 등지고원동지방을 떠났다.나와 가족들은 화물객차를 타고 8월에 출발,10월 중순에야 타슈켄트에 도착했다.물론 객차안은 방한장치,급수시설,화장실도 없었고 짐짝처럼 쭈구린채 실려 도착했다.아이들은 대부분 감기에 걸려 기력을 잃어갔다. 새로운 지방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았는가.카자흐스탄의 동카자흐주에서 아무라리야 하류 누쿠스에 이르기까지 한인들에게 주어진 땅들은 온통 황야나 진펄이었다.장마와 폭풍이 몰아닥친 가을과 겨울,이주는 시작됐다.모기떼가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전염병이 사납게 전파됐다.학질,이질,백일해,홍역이 수많은 한인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아동사망율이 무척 높았다.삼림이 없어 한인들은 주거시설을 갈탄으로 짓고 온돌을 놓아 추위를 막았다. ○평균주의 박해에 제2 이동 1938년 봄.한인들은 ‘죽고 사는 것도 여기뿐’이라면서 황야를 개간하기 시작했다.밀과 사탕무우를 심었고 나쁘지 않은 수확을 거두었다.이후 진펄에 배수로를 파서 땅을 건조하게 한 다음 벼도 심었다.1939년에는 높은 벼수확을 거둬 여기서 한인들이 살수있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1937년∼38년 소련 경찰들이 어렵게 뿌리내려 살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의 한인마을을 덥쳤다.많은 한인들을 스파이 혐의로 체포되어 갔다.수많은 과부들과 고아들이 생겨났다.업친데 덥친 격으로 한인들이 좋은 실적을 일궈내던 한인 콜호즈가 실적이 별로 없는 주변 러시아인이 운영하던 콜호즈와 강제 합병되기 시작했다.이른바 ‘평균주의’ 때문에 한인들은 자신들의 실적으로 다른 러시아인을 먹여 살리면서 쪼들리기 시작했다.한인들은 다시 자신의 노동으로만 살 수 있는 곳을 찾아 하나 둘 제2의 고향을 떠나기 시작했다. 우크라이나와 북카프카스로 많은 한인들이 소작인으로 팔려갔다.양파·수박농사에 일생을 바치기도 했다.강제이민이 유랑민이 되었고 다시 타향에 가서 계절노동을 하며 생계를 꾸려나갔다. ○체첸·칼리크인 오래전 복권 60년이 지난 오늘날.원동에서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한인들은 아직 복권되지 못하고 있다.한인과 비슷한 이유로 이주했던 체첸인,칼리크인들은 오래전에복권됐다.러시아 각처에 퍼져있는 한인들은 본국인 한국으로부터도,러시아로부터도 모두 기억의 저편으로 건너가고 있다.우리는 부당하게 역사적으로 처리된 이 문제를 잊지 않았으면 한다.죄없는 징병,모욕을 경험한 우리들은 정치,경제적으로 복권이 되어야만 한다.그리하여 민족문화,모국어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
  • 일제잔재/유만근 성균관대 교수(굄돌)

    일본이 조선을 지배한 기간은 불과 35년 미만이지만 그것이 우리 사회에 깊숙이 남긴 흔적은 여기저기서 좀처럼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그중 언어에 관련된 것만 보아도 한두가지가 아니다.일본이 학교교육을 통해 독일을 예찬하고 프랑스를 악평하는 편협성을 보인 바람에,우리나라 노인들은 아직도 그 두나라에 대해,어려서 배운대로,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그리고 외국어로서 불어보다 독어를 더 많이 배우는 나라를 이 세상에서 한국 말고 다시 찾기 어려운 것도 다 일본시대 유산과 광복후 우리의 무심 탓이다.지금은 일본조차 독어보다 불어를 더 배운다. ‘인왕산’이 일정시대에 ‘인왕산’으로 둔갑했다가 최근에 ‘인왕산’으로 회복되었는데,‘중량교’는 아직도 ‘중랑교’로 둔갑한 채 쓰이고 있다.서울 ‘다릿골’(교곡)은 한자로 획수가 많다고 획수 적은 ‘월곡’으로 바꾸고,“‘다릿골’이나 ‘달골’이나 그게 그것 아니냐”고 모욕적으로 나왔다 한다.1939년에는 조선총독부가 당시 경성방송국에 날벼락 명령을 내려,‘동경,이등박문…’을 전에 없이 일본한자음으로 읽으라 했다.그때 제2 방송과장 심우섭은 이것이 당치않고 불편하다고 거세게 항의하다가 여의치 않자,집에 와 사표를 써서 우송하고 방송국에 출근하지 않았다.그 해 9월10일에 결국 사표가 수리되었다.그때부터 방송에서 생긴 일본음 혼용관행이 ‘중낭교’처럼 내내 뻗쳐오는 중에,지난 9월 18일에는 KBS보도국이 ‘북경,강택민…’대신 중국한자음을 채택한다고 발표하기에 이르렀는데,참으로 어이없는 잘못이다. 이웃나라 간에 현지원음 사용은 식민지가 아닌 한,어느 나라에도 없는 것이다.현지원음주의라는 역사상 일찍이 문화교류가 없던 지구 반대편 나라끼리,편리한 딴 어형을 도저히 달리 찾을수 없을때,할 수 없이 채택하는 가장 불편한 방법이기 때문이다.이렇게 보이게,안 보이게 우리를 휩싸고 있는 일본 식민지 잔재를 우리는 언제나 다 벗을꼬? □굄돌 필진이 바뀝니다 10∼11월에는 곽배희·김종환·유만근·임정규씨가 맡습니다. ▲곽배희(51)=한국가정법률상담소 부소장.이화여대 법학과,동 대학원 사회학과 졸.기독교방송 PD 역임.저서 ‘남편은 적인가 동지인가’. ▲김종환(40)=한국과학기술원 전기 및 전자공학과 교수.서울대 전자공학과,동 대학원 박사.로보틱스 전공. ▲유만근(58)=성균관대 영문과 교수.국제음성학회(IPA)평생회원.서울대 영문과,동 대학원 석사.저서 ‘한글·로마자 대조표기 서울말 발음독본’ 등 다수. ▲임정규(55)=한국수자원공사 사장.중앙대 행정학과 졸,미국 뉴욕대 국제정치학 수료.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특별보좌역.동부산업단지관리공단 이사장 역임. 지난 8∼9월 수고하신 박경미·이승복·조남진·한만진씨께 감사드립니다.
  • 이란 “독일에 보복” 선언/「테러 판결」 대응

    ◎독,대규모 테러방지작전 돌입 【브뤼셀·테헤란 AP AFP 연합】 독일 법원이 지난 92년 국내에서 발생한 이란 반체제 인사들의 피살사건 배후로 이란 정부 수뇌들을 지목한데 대해 이란이 보복을 선언하고 나섰으며 다수의 유럽국가들이 대사를 소환함으로써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수천명의 이란인들은 11일 테헤란 주재 독일 대사관 앞에서 격렬한 항의시위를 벌였으며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은 독일 법원의 판결을 『서방역사상 가장 모욕적 사건』이라고 규탄하고 보복하겠다고 경고했다. 대사 소환 조치에는 그리스를 제외한 모든 유럽 국가들과 호주,캐나다 등이 가담했으며 그동안 이란을 테러국으로 지목,고립정책을 취해왔던 미국은 독일 법원의 판결을 옹호하면서 유럽 국가들에 이란 고립정책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 서울신문 창간51돌기념 제2회 국제포럼:Ⅱ­1

    ◎제2주제/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모색/「김정일의 북한」과 한국의 선택/미국의 입장/더글러스 팔 미 아태정책센터이사장/잠수함침투사건으로 북 군부 입지 약화/도발협박 과잉반응 금물… 4자회담 유도해야 북한은 지금 실패한 체제에 대한 구원의 열망을 안은채 회유와 협박을 번갈아 구사하며 미국과 일본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그러나 두가지중 북한이 주로 구사하는 수단은 협박이다.최근의 잠수함 좌초로 결말된 사건이 한국에 대해 도박을 시도하고 목적을 달성할 수단을 얻기위한 것인지 여부를 말하기는 곤란하다.그러나 미국과 그밖의 나라들에 경고를 발하기 위해 북한이 꾀할 새로운 소동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경솔한 일이다. 북한이 취하는 거친 책략에 대한 대응책은 무엇인가.우리는 우선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독립적이며 워싱턴시각에서 볼때 되도록이면 안보동맹으로서의 재통일된 한국을 추구한다.둘째 우리는 한국의 재통일이 가능한 한 평화적으로 이뤄지기를 갈망한다.평화를 깨뜨리려는 위협은 한국의 의도에 따른 재통일을막으면서 미국과 일본·한국사이에 불화의 씨를 뿌리는데 있어서 북한의 가장 강력한 카드로 활용돼왔다.세번째는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치러야 할 부담을 고려,가장 값싸고 적정한 비용으로 재통일을 성취하는 일이다. 본질적으로 북한은 미국과의 대화를 제의하고 있다.(미·북 회담 등)쌍무협정과 관련된 협상은 아마도 한국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누그러뜨린다는 점에서 이익을 가져올 것이다.그러나 북한이 그렇게 하려는 명백한 증거는 아직 없다.따라서 가장 주된 위험은 동북아시아의 안보구조가 개선되지 않은채,그리고 상충되는 주장들과 상호 의심에 의해 도전받는 상황에서의 미국과 북한이 화해하는 일이다.분명히 말하건대 쌍무적인 접근이 워싱턴과 평양이 아닌 서울과 평양사이에 존재한다면 그같은 상황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관리들은 개인적으로 4자회담이 북한에 남북한 군축문제를 다룰 대화의 길을 터주면서 한편으로는 북한에 확실한 경제적 이익을 주어야한다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그 목적은 당장 실현될 수는 없겠지만 새로운 긴장의 잠재적 가능성뿐 아니라 불가피한 재통일의 충격및 비용을 줄여줄 것이다.만약 4자회담이 합의의 기초를 이루는데 성공하게 되면 지역안보이익이 분명히 드러나게 된다.아시아의 뜨거운 지역에서도 가장 뜨거운 문제들이 식혀질 것이다.북한의 붕괴위험이 줄어들고 난민의 유입,한국의 심각한 경제적 부담도 줄어들게 된다.4자회담의 틀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한반도의 장기적 평화를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다.4자회담은 그 자체로서는 완벽하지 못한 탓에 일본과 러시아를 포함하는 6자회담으로 가는 중요한 중간역으로 간주돼야 한다. 최근의 잠수함사건은 역설적으로 북한이 4자회담을 받아들일 가능성을 높여주었다.민간지도자가 군부보다 한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평양은 또 스파이사건 등으로 한·미가 갈등을 빚고있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할지 모른다.그러나 4자회담이 빠르고 순조롭게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북한은 한국의 역할을 감소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할 것이다.정책입안자들은 협박과도발로 불안을 조성하려는 북한에 과잉반응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우리가 모든 카드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카드를 쥐고 있다는 점을 올바로 인식하는 가운데 북한이 2+2나 2+4회담에 참여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북한이 회담에 참여하도록 하기위해서는 소득 없는 회담을 계속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협력을 얻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러시아의 입장/블라디미르 루킨 러시아 하원 외무위원장/한반도문제해결 최상의 방법은 「2+4」/남북대화 양측 대응할때 유관국 협조로 성립 한국통일문제는 한국민 자신에 의해 해결돼야 한다.분명한 것은 통일문제가 국제적 양상도 가진다는 것이다.냉전종식이후에는 한반도상의 대결이나 공개적분쟁에 이익을 얻을 국가는 없다.한국문제는 사실상 2차대전 종식이후 유일하게 해결되지 않은 전후처리문제로 남아있다.유엔도 안보리도 적극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다.73년 유엔총회 28차회기는 남북한 공동성명(72.74)에 명시된 통일원칙을 환영했다.75년 30차회기는 한국정전협정의 항구적 평화로의 전환 및 자주평화적 통일촉진조건조성을 위한 결의안을 승인했다.이는 「유엔사령부」해체,모든 외국군(유엔군)철수,정전협정의 평화조약으로의 전환등을 검토하고 있다.중요한 사실은 이 결의안이 사회주의국가 및 일련의 개발도상국가(43개국)에 의해 도입되었다는 점이다. 한·미간의 「상호방위조약」은 53년 10월에 조인됐다.61년 7월 소련·북한간 우호·협력및 상호원조조약이 조인됐다.95년 여름 러·북한 쌍무협상에서 러시아측은 이 조약의 효력을 연장할 의사가 없음을 통보했다.5년간의 정례적 연장기간은 96년 9월 만료됐다.이상은 한국문제 처리의 대외적 양상이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있는지를 보여준다.서울측과 평양측은 상당히 다른 통일문제해결 주창을 제시해왔다.북한도,남한도 (자기측이)패배하여 각각의 정치제도의 기반을 훼손할 수 있는 양보조치를 하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남북대화는 양측이 대등하다고 느낄때,또한 한반도 유관국들이 협조할때 성립되고 발전한다.그것을 국제적으로 보장해주는 것도 필수적이다.96년 4월 남북한협정의 보장자는 미국과 중국이라고전제하는 2+2공식이 작성됐다.이 4자회담안은 미국과 양자평화를 체결하자는 평양측 요구의 대안으로서 제의됐다.그 주창자는 북핵을 둘러싼 논쟁이후의 서울이었다.서울측은 안보대화에 관한 평양측 입장에 4자협상이라는 미국과의 공동안을 대치시킨 것이다. 그러나 4자회담안은 이 지역에 있어서의 러시아 이익에 부합되지 않는다고 본다.우선 모스크바를 남북한 내부합의를 해결하거나 보장하는 수도들의 테두리밖에 세우고 있다.러시아의 정치적 소외는 궁극적으로 주요당사국인 한국과 중국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다.둘째로 4자회담이 실현될 경우 만약 북한이 협상참가국은 물론 불참가국의 이해관계를 위해서도 술수를 전개하면서 특권을 부여받은 지역열강과 모욕당한 열강간의 충돌을 책동한다면 중국 또한 러시아와 똑같은 상황에 처하게 될것이다.셋째로 러시아의 퇴조와 평양측의 전진이 동시에 이루어질 경우 위험을 내포한 상황­모스크바의 친북한세력의 활성화를 자극하고 (물론 주로 좌익이지만)구활동분자를 이용,러의 참여없이 형성되는 제세력간의 배분을 바꾸려는 희망을 불러일으킬지 모른다. 우리는 한반도문제의 종합적 해결을 위한 최상의 방법은 6개국 즉 러·미·중·일본 및 남북한이 참가하는 국제회의라고 본다.6자회담 소집전에 미·일은 북한을 외교적으로 인정할 수 있다.회의에선 지역강대국과의 관계(미·북,일·북)를 정상화하는 방법도 논의될 수 있다.의회간의 교류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러시아하원은 한국국회와 함께 동북아시아,주로 한국정세의 안정화 문제에 관한 전문가들이 참석하는 국제회의 소집을 주창할 준비가 되어있다.물론 그것이 6개국 정부수뇌급 회의를 대신하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입장/정태환 경남대 극동문제연 소장/4자회담 한반도평화해결 포괄적 방안/정전체제 준수·한­미서 회담 주도 역할을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에 대해 남북한은 서로 다른 접근을 하고 있다.한국은 정전협정을 대체하는 남북한 평화협정체결을 원한다.한국정부의 입장으로서 정전협정의 실질적 당사자는 남북한이기 때문이다.북한은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북·미간에만협상해야 하며 한국이 이 과정에서 배제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그리고 유엔사의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한다.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데 있어 협상당사자의 문제와 관련해서도 그러하다.한국은 오랫동안 남북이 직접 당사자로서 평화체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주요한 협상자로서 남북한 당사자원칙은 이미 남북기본합의서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다.반면 북한은 정전협정을 대체할 평화협정을 북·미간에만 협상해야 하며 한국이 이 과정에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북한의 주장은 한국은 1953년 정전협정의 서명자도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반도 4자회담의 제의는 정책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첫째,그동안 한국정부는 북·미관계개선을 남북대화와 연계시켜 왔다.그러나 4자회담의 제의에는 북·미관계개선을 위한 북·미협상을 4자회담과 별도로 허용하는데 이는 한국정부가 연계전략을 철회한다는 정책전환을 의미한다.둘째,4자회담이 성사되면 평화체제구축문제에 대해 4자가 한자리에 모여 토의할 의제와 회담형식을 결정할 것이다.이럴 경우 한국정부는 회담을 통해 북한의 의제에 대해 의견을 낼 수 있는 목소리를 확보할 수 있다.셋째,4자회담은 북한에 대해 「최고의 이익」이 될 수 있다.예를 들면 4자회담을 통해 4강의 교차승인이 완성되고 북한의 생존이 국제적으로 보장받고 남북대화로 관계개선을 통한 대북 경제적 지원이 적극적으로 추진될 수 있으며 남북한 군축실현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다.넷째,4자회담은 한반도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포괄적인 방안」을 만들 수 있는 협상의 장이 될 수 있다. 4자회담은 한반도 평화·안정 및 통일을 위한 수단임에는 틀림없지만 4자회담 그 자체가 곧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그렇다면 4자회담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새로운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무엇인가.첫째,새로운 평화체제구축까지 4자는 현정전체제를 준수해야 한다.둘째,남북한은 「당사자원칙」과 관련하여 타협하고 양보해야 한다.셋째,한국정부는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대북정책을 계속 추진해나갈필요가 있다.넷째,유엔과 중국이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하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남북한이 함께 수용할 수 있는 평화방안을 창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4강과 남북한은 한반도에서 새로운 전쟁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남북이 진실로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는 정치적 의지를 갖고 있다면 가까운 장래에 한반도 평화체제가 이루어질 수 있다.4자회담은 불안정한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가장 바람직하고 가장 우수한 장기적 대안이 될 수 있다.따라서 한·미 양정부는 빠른 시일내로 북한과 중국에게 4자회담에서 논의할 의제를 제의하는 주도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4자평화협정방안만이 항구적인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확신한다.그러므로 이 방안이 한반도 평화체제구축을 위한 이론적 틀로서 4자간 많은 협의와 토론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 한반도에서의 평화와 안정정착은 남북한 양국의 기본적인 이해일 뿐만 아니라 평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현세계에서의 역사적인 추세와도 일치하는 것이다.냉전체제가 끝남에 따라 43년전에 체결된 정전체제를 새로운 평화체제로 바꾸고자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국민이야말로 바로 한반도의 주인이다.한반도에서의 문제는 바로 이들 남북한 양쪽의 국민이 무엇을 바라고 있느냐에 따라 해결될 수 있다. 국제사회가 한반도에 장기적인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기 위해 우호적인 조건을 마련해주는 것 역시 중요하다.미국은 한국과 여전히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하려 노력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은 지난 94년 제네바에서 핵문제에 대한 합의가 이뤄진 이후 꾸준히 다양한 차원에서의 접촉과 대화를 계속해온 결과 상호 대표부 개설문제와 한국전쟁 당시 실종미군의 유해수색과 같은 문제에 진전을 이루기도 했다.몇가지 문제점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는 역시 결국은 정상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북·일관계는 최근 눈애 띄게 개선됐다.북·일 교역량은 연간 5억9천만달라에 달해 일본은 북한의 주요교역상대국으로 떠올랐다. 중국 역시 한반도와 바로 붙어 있는 이웃이다.중국은 항상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깊은 배려를 해왔는데 이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 중국의 안보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중국은 한반도에 한국과 북한이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존중하고 있다.중국과 북한은 오랜 역사를 통해 우호적인 관계를 맺어왔다.중국은 한국과도 최근 몇년간 우호관계를 발전시켜 왔다.중국은 평화적 통일달성이라는 남북한인의 열망을 존중하며 그것이 다름아닌 남북한인 스스로에 의해 이뤄져야 함을 지지한다.한반도에 대해 중국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서로간의 화해와 접근,그리고 평화와 안정을 촉구하는 것이다. 한반도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중국의 독립적인 평화외교정첵에서 비롯된 것이다.중국은 오랜 기간에 걸쳐 준식민지로서 고초를 겪었고 그런 만큼 지나치게 값비싼 희생을 치르고서야 되찾은 독립과 주권을 더욱 귀중히 여기고 있다.중국은 다른 나라의 독립과 주권을 존중하고 있다.또한 중국은 지속적인 평화가 유지되기 위한 국제환경조성에 노력해야만 한다.중국은 진심으로 모든 나라,특히 중국과 이웃하고 있는 나라와 선린우호관계를 희망하고 있다.국가와 국가간의 관계는 서로간의 주권과 영토존중,상호불가침,서로의 내정문제에 대한 상호불간섭,평등과 호혜,그리고 평화공존의 원칙을 바탕으로 해야만 한다고 중국은 언제나 믿어왔다. 그런 관점에서 남북한과 중국·미국을 포함하는 한국과 미국의 4자회담 제의에 대해서도 중국은 북한이 이 제의를 여전히 검토중에 있으며 미국에 대해 이 제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기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중국정부는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대신할 새로운 평화구조가 자리잡기를 희망하고 있으며 모든 이해 당사국이 그러한 평화구조의 형태에 의견의 일치를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믿고 있다.휴전협정의 서명국가로서 중국은 기꺼이 한반도에서의 평화구조구축에 기여하기를 바라고 있다.이같은 중국정부의 입장은 매우 합리적이고 분별있는 것이라고 본다. ◎ 지난 94년 10월 24일 발표된 미·북한 기본합의문(제네바합의)의 가장 큰 특징은 3개의 단계(최초의 6개월,약 5년후,2003년)를 거쳐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일시 동결」로부터 「완전 포기」로 전환된다는 것이다.흑연감속형원자로와 관련시설의 활동은 6개월 이내에 동결하고 과거의 의혹을 해명(특별사찰)하는데 약 5년의 유예기간을 둔 것이다.물론 제네바합의가 원활하게 이행될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5∼10년후의 북한정세등에 대해서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다만 폭력적인 사태를 피하고 핵무기 개발의 최종적인 로드맵(roadmap)을 마련한 의의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10년의 시간에 걸친 북한의 「살아남기」실험에 대해 단계적으로 대응함으로써 한·미·일은 북한의 앞날에 영향을 미칠 기회를 얻게됐다. 4자회담에는 북한으로서도 유엔군사령부의 해체 가능성을 포함하여 몇가지 이점이 있다.그러나 이제까지의 그들 기본방침(「새로운 평화체제」)에서 볼때 4자회담 제의는 당연히 즉각 거절해야 할것이었다.그러나 4자회담을 받아들일 것인지 아닌지 북한은 아직까지 명확한 태도를 밝히지 않는다.4자회담의 내용에 대해 미국에 설명을 요구하며 몇차례 회합을 가졌을 뿐이다. 북한의 앞날에는 두가지 장애물이 놓여있다.첫번재 장애물은,대외관계를 개선하고 외부의 자본과 기술을 도입하여 파탄상태에 놓인 경제를 재건하는데 이를 이용하기위해 「기본적인 합의의 틀」을 어떻게 이용하느냐는 문제이다.두번째 장애물은 북한이 중국모델을 본딴 개혁·개방을 도입할 수 있는 것이냐 하는데 있다.이 장애물 극복여부에 따라 북한의 장래는 세가지 시나리오로 예측할 수 있다.북한이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하는데 실패한다면 김정일의 위신은 떨어지고 국제적으로는 여전히 고립되며 심각한 경제·식량난으로 위기로 치닫게 될것이다.이것이 첫번째 시나리오이다.이때 북한이 외부에 대해 공격적인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결코 배제할 수 없다. 개혁·개방의 경우,정책을 들러싼 보수파와 개혁파간의 치열한 투쟁은 결국 권력투쟁으로 이어지고 이는 최고지도자와 정치체제,그리고 국가라는 삼위일체의 붕괴를 가져올 것이다.좋고 싫음에 관계없이 한국은 북한을 흡수 통일할 것이다.이것이 두번째 시나리오다.만일 북한이 두번째장애물(중국식 개혁·개방)을 극복하고 「살아남기」실험에서 성공한다면 남북한은 동서독이 그랬던 것처럼 10년이상 공존할 수 있다.이것이 세번째 시나리오이다.이 가운데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는 북한의 향후 행동에 달려있다. 특히 북한으로서 가장 어려운 일은 두번째 단계에서 개혁과 개방을 이루는 것이다.이같은 일이 성곡적으로 일어날 가능성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따라서 우리는 이 두번째 단계에서 1)경제교류를 통해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계속 촉진해 나가는 한편 2)북한의 갑작스런 내부붕괴에 대처하는 방안을 동시에 준비하는 완전히 상반된 정책들을 마련해야만 한다.특히 북한붕괴나 이에따른 한국으로의 흡수통일의 경우 통일비용 등과 관련해 일본의 역할은 적지 않을것이다.북·일관계가 정상화됐다고 했을때,비록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일본으로부터 북한에 이전될 대규모의 자본과 기술은 북한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남북한간의 공존이 이뤄지는 것을 촉진할 것이다. ◎ 한반도 평화는 역내안보와 안정에 결정적으로중요하다.한국정부는 민족화해와 평화공존을 협의하기 위한 대화에 노력해왔으나 북한은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고있다.대화부재에 더하여 북한은 지난 40년동안 비록 불안정하나마 한반도 평화유지에 유용했던 정전협정을 무력화시키겠다고 위협해 온 바 있다.놀랍게도 지난 9월 북한군의 잠수함 1척이 남한 해안에 좌초된채,26명의 무장군인이 우리 해안을 침투했다.이는 정전협정에 대한 분명하고 중대한 위반일뿐 아니라 한국에 대한 매우 심각한 군사적 도발행위인 것이다. 4자회담은 남북한간 신뢰구축을 통해서 평화공존과 통일을 위한 기반을 다지는데 있다.4자회담에서는 남북한이 한반도 평화에 책임있는 직접당사자로서 주도적 역할을 하는 반면,현 정전협정 형성에 관여한 미국과 중국은 보조적 역할을 하는 것을 상정하고 있다.따라서 북한의 평화협정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다는 점에서,한반도에서의 견실한 평화를 마련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이다.만약 북한이 4자회담에 동의한다면 현 정전협정의 새로운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신뢰구축및 긴장완화 조치등 항구적인 평화정착을 위한 광범위한 문제들이 깊이있게 논의될 수 있다. 남북한간에 지속되고 있는 상호불신과 적대감에 비추어,문제해결을 위한 돌파구가 남북한 두당사자의 노력만으로는 쉽게 마련될 수 없다.그런 맥락에서 한국전쟁과 정전협정에 관여한 미국과 중국의 지원이 필요하다.특히 북한문제에 관한 한·미간의 정책협조는 북한핵개발계획의 방지와 최근 인도적 차원의 식량원조 제공을 통해서 한반도 안전과 안정유지에 크게 성공했다.중국의 역할도 4자회담 성사에 중요하다.중국은 한반도 평화구축에 있어서 건설적인 역할을 할것이다.일본과 러시아는 4자회담에 포함되지 않았다.4자회담 제안은 남북한의 직접당사자와 정전협정에 관여돼있는 나라의 최소한의 수로 진행하는 가장 효율적이고 실행가능한 것으로 생각한다.일본과 러시아는 4자회담보다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동북아협력대화(NEACD)나 추진중인 동북아안보대화(NEASED)를 통해서 한반도문제에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남북한은 자유의사에 의한 평화적이고 실용적인 방법으로 상호간의 합의를 추구함으로써 한반도문제를 같이 해결해 나가야 한다.잠수함을 통한 북한공비들의 남한 침투는 한반도 상황의 어떠한 개선도 의미있는 남북한간의 대화없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남북한은 1991년 남북한기본합의서를 통해 평화적 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공동노력할 것임을 국제사회에 약속한 바 있다.이 약속은 가장 빠른 시일내에 이행돼야 한다.북한과의 대화와 교류를 촉진하기위해 한국정부는 작년에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에 15만t의 쌀을 제공했다.또한 국제기구의 호소에 따라 3백만달러 상당의 유아용 배합분말 및 분유를 제공하는등 지원을 계속했다. 미·북한 관계와 경수로 사업에 어떠한 진전이 이루어 지더라도 남북한간의 평화공존 없이는 한반도 정세는 실질적으로 개선될 수 없다.북한이 미·북 합의서에서 남한과의 대화재개를 약속했지만 남북한간의 대화는 여전히 중단돼 있다.우리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결정적인 요소인 남북한간의 대화가 재개되도록 돕는데 역점을 두기를 기대한다.
  • 「코린도」와 승은호 회장:4(테마가 있는 경제기행:42)

    ◎현지인이 되라/한국식 경영 고집않고 「현지화」로 승부/단기이익보다 문화·종교적 갈등 해소 우선순위/공장주변에 초·중·고교 설립 기부 “교육까지 책임” 코린도는 인도네시아에 관한 한 노하우가 가장 많은 한국기업이다. 얼마전 국내 S그룹은 코린도그룹의 현지화경영을 스터디했다.현지 주재원이 코린도에 관한 평가자료를 본사로 보내 이것이 해외경영의 분석모델로 사용됐다.이 그룹은 코린도 성공에 대한 벤치마킹을 현지화로 결론짓고 내부지침으로 활용중이다. 승은호 회장은 코린도의 성공을 「운」으로 돌린다.그러나 코린도 성장사를 들여다보면 운이 아니라 철저한 현지밀착경영의 결과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코린도는 현지어 구사능력을 승진에 반영한다.아침 저녁으로 인도네시아어 학습반을 운영하고 있다.코린도의 인력과 자금,원자재 조달,생산 등 모든 경영활동은 현지화라는 단어와 연결고리를 맺고 있다.정무웅전무는 『초창기부터 사회·문화·종교적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왔다』며 『최고 경영자가 현지에 상주하면서 경영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것이 장점이었다』고 말했다. 코린도 직원은 2만5천명,이중 한국인은 3백40명.코린도는 한국식 경영을 고집하지 않고 소수 한국직원을 현지화했다.투자자금 역시 현지 금융기관의 신용융자가 대부분이다. 승회장은 『해외경영의 요체는 현지화』라며 『사업 우선순위도 현지에 맞는 사업』이라고 했다.합판사업은 원목이라는 인도네시아산 원자재를 접목시킨 것이었고,아무런 노하우 없이 신발산업에 진출할 수 있었던 것은 현지 고용정책과 1억8천만명의 신발수요가 맞았기 때문이다.코린도는 값싼 임금이나 단기이익에 연연하지 않았다.인도네시아의 값싼 임금(월 1백50달러 내외)만 보고 진출했다가 문화·종교적 갈등끝에 보따리를 싸고 떠나는 업체들을 코린도는 수없이 보아왔다. 코린도에는 10년 이상된 한국인직원들이 많다.때문에 인도네시아 사회와 문화에 대한 이해도도 높다.물론 초기엔 어려움이 많았다.왼손으로 쓰다듬는 행위를 현지인들이 모욕(이슬람교에서는 왼손 행위를 터부시함)으로 인식한다는 사실과 하루에 네댓번씩 근무시간에도 기도하는 그들의 종교의식을 이해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칼리만탄의 바릭파판 합판공장.원시림에 싸여있는 이 공장의 12개 생산라인은 한국인 23명과 현지인 2천2백9명이 2교대로 24시간 쉴새없이 돌아간다.이 공장은 인근의 유일한 공장이자 소득원이며 주변은 「코린도 마을」이다.코린도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이어 지난달 고등학교까지 지어 기부했다.초등학생이 7백38명,중학생 1백70명,고등학생이 36명에 이른다.교사월급과 학교운영비도 코린도가 대고 있다.현지정부의 재정이 약한 탓이다.의무실 소비조합 직원숙소 교회 회교사원도 코린도가 지역사회에 헌납한 시설들이다. 입사 10년째인 이 공장의 와유다씨는 『코린도 없이는 지역경제는 물론,교육도 생각할 수 없다』고 했다.현지 밀착경영의 한 단면이다.
  • 「펜대굴리기 대 렌치 비틀기」/앤드류 토마스 해리티지재단 연구원

    ◎“기능인이 대접받는 사회 만들자”/학비 세금공제 추진… 「육체노동」 기피 부채질/「아메리칸 드림」 부활위해서도 차별대우 말길 한국보다는 덜하지만 미국도 비생산적인 학력중시 병폐에 시달리고 있다.앤드류 페이튼 토머스 아리조나주 검찰총장보 겸 해리티지재단 비상임 연구원은 보수적인 싱크탱크 미국공공정책연구소(AEI) 발행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최근호에서 대학졸업장이 아닌 기능교육의 중요성을 역설했다.한국사회를 연상시키는 그의 「펜대 굴리기 대 렌치 비틀기」를 소개한다. 손에 기름때가 묻는 것에 개의치 않고 그런 일을 소중한 직업으로 삼을 미국인이 지금도 남아 있을까.미국은 제손으로 모든 걸 일궈야 했던 개척자와 역사적인 철강근로자의 나라였건만 지금은 너무도 연약해졌다.우리의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어주는 장비들을 직업적으로 조립하고 수선해줄 시민마저 스스로 배출해내지 못하는 건 아닐까. 최근 대학 학자금으로 쓰일 땐 1천5백달러까지 세금공제 혜택을 주겠다는 안이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거론되고 있다.이는 우리의 「아메리칸 드림」이 이제는 근육노동 일자리로부터 탈출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같은 공약은 손으로 일해 먹고사는,실제 물건을 만들어내고 또 현대의 정보사회에서 천해보이나 핵심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근로자들에 대한 은근한 뽐냄과 경멸이다.대학에 가지 않았고 또 가고 싶지 않은 수백만의 미국인에겐 이 공약은 차별이며 모욕이기조차 하다. 또 이 대학교육 장려안은 경제적인 허점을 안고 있다.숙련 블루칼라들이 부족하다는 기사가 자주 보도된다.숙련 기능을 갖춘 블루칼라들은 손으로 일하지만 간신히 벌어먹고 사는 신세이기는 커녕 경제적 붐을 누리고 있다.많은 잠재적 경쟁자들이 대학으로 가버려 귀해진 덕분이기도 하다.위스콘신주의 한 기업체 사장은 『기술과정을 마친 용접공은 야구의 자유계약선수와 같은 처지』라고 말한다.숙련 기능공은 연봉이 3만5천에서 5만달러라는 것이다.오버타임을 해서 6만달러를 버는 기능공도 많다. 그러나 얼마 전까진 이런 숙련 기능직에 뜻을 품던 많은 젊은이들이 이제는대학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졸업해서 더 적은 연봉의 일자리를 얻을 따름이다.오늘날 미국의 고등학교 졸업생중 반 이상이 대학을 간다.전공과는 상관없이 대학 졸업장은 다 똑같다는 말에 학생들은 혹하고 대학 교과과정도 그렇게 짜여있으나 졸업한 뒤 취직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졸업장이 허다하다. 대학 졸업장을 요구하는 많은 일자리는 따지고 보면 꼭 4년이상의 고등교육이 본질적으로 필요해서라기보다는 전통과 기대에서 그런 요구를 한다.미국의 변호사가 아주 좋은 예다.변호사 기능의 대부분은 변호사 보조원 양성학원과 고등학교 토론훈련 교육을 통해 능히 습득할 수 있다.지금처럼 소송과 계약 서류를 이해하고 피변호인의 입장을 법정에서 논하는 그런 간단한 일을 하기 위해 무려 7년의 고등교육을 받아야 하는 것보다는 훨씬 비용이 절감될 것이다.그럼에도 변호사 인원을 적절한 소규모 선으로 유지하기 위해 변호사협회는 필요하지도 않은 학력요건 등 회원가입 장벽을 높이 세워 눈을 부라리고 독점체제를 지키고 있다.교육계,언론계,그리고 정부또한 상층 직업에 입문하는데는 대학졸업장이 필요하다는 자기에게 유리한 논지를 편다. 일반화되고 있는 근육노동과 기능교육에 대한 경시풍조는 여러 원인이 있다.그중 하나는 교수와 대학 직원들이 자기 보존책에서 대학졸업장은 성공에 필수적이다라는 말을 자꾸 퍼뜨린데서 연유한다.분명 통계로 보면 대졸 학력자가 대학졸업장이 없는 사람에 비해 수입이 좋으나 이를 곧이 곧대로 해석하면 안된다.노동시장이 대졸자로 넘쳐날 때 남보다 후한 급여를 주는 업주는 심상하게 대졸자를 채용하게 된다.그래서 이 대졸자는 높은 급여를 받을 것이나 대학학력이 꼭 필요한 결과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 또 많은 미국인들이 근육노동을 깔보아 대학교육을 근육노동의 수고와 계층적 암시에서 벗어나는 수단으로 여기는데서 비롯되고 있다.글자나 숫자 대신 연모와 함께 일한다는,창조성 대신 일상성이 요구되는 직업의 하인이라는 것과 결부되는 불명예가 무서워서 우리는 우리 애들을 대학에 보낸다.그러나 지루한 근로를 통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보다 「큰」활동을 할 시간을 낼 수 있도록 하는 이 명예롭고,영원한 직업에 입문하는 사람은 모두로부터 커다란 박수를 받아야 한다.대학졸업장을 꿈꾸지 않았다고 해서 경제적인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된다. 진정 사회를 개선하고자 한다면,변호사협회 회원권을 버리고 용접봉을 들기로 한 변호사에게 세금공제 혜택 등이 주어져야 할 것이 아닌가.
  • 일 관방 망언 배경과 정부 대응

    ◎일 보수층/남북통일에 부정시각 표출/“이미 사과했다” 정부선 일단락 움직임 『한반도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일본내에서도 남북간의 내분상태가 되어 시가전,게릴라전이 예상된다…』는 가지야마 세이로쿠(미산정육)일본 관방장관의 망언은 한반도와 한국인을 바라보는 일본 보수층의 시각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특히 지금까지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이 주로 과거사와 관련된 것이었던데 비해 가지야마 장관이 8일 야마나시 현에서 개최된 일경련 주최 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했다는 한반도 관련 망언은 양국의 현재,미래 상황에 대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일본정부는 지금까지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적 통일이 일본의 국익과 합치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계속 되뇌어 왔다.그러나 일본정부의 대변인인 가지야마 장관이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남북한이 함께되고(통일되고) 미국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으로서,한국은 확실히 피폐해질 것이며,그렇게 되면 식민지 시대의 배상을 재차 제기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고 발언한 점을 보면 한반도 통일에 대해일본 보수층은 상당히 부정적 시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일본육사 출신으로 자민당의 원로그룹인 가지야마 장관의 이같은 발언은 지금까지의 과거사 망언이 그렇듯 몇가지 노림수를 갖고 있다. 우선 실질적으로는 자민당이 추진하고 있는 이른바 「유사립법」을 강하게 뒷받침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자민당은 현재 한반도에서 분쟁이 발생할 경우,난민의 유입을 전제로 질서유지를 위한 자위대의 활동범위 등을 규정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가지야마의 발언은 지난해 종전 50주년을 계기로 급격히 보수화·국수화되어가는 일본사회의 흐름을 타고 있는 것이다.하시모토 류타로(교본용태낭)총리가 현직총리로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자민당은 늦어도 내년 2월 안에는 치러질 총선을 염두에 뒀다는 해석이다. 가지야마의 발언내용이 매우 충격적인데 비해서 우리 정부의 대응은 다소 미온적인 것으로 보인다.외무부는 9일 상오 가지야마 장관이 김태지주일대사에게 전화를 걸어 사과의 뜻을 표명하자 곧바로 이를 받아들인뒤 사태를 일단락지으려 하고 있다.한 당국자는 『가지야마 장관의 발언은 개인의 특수한 생각이 아니라 일본내에서 널리 거론되는 말들의 일단을 표출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일관방 망언 정치권의 반응/여­“일 당국자 국제감각 부재” 질타/야­“좌시못할 비이성적 발언” 비난 여야는 9일 「한반도 유사시 일본 국내에서 남북간 시가전이 예상된다」는 내용의 일본 가지야마 세이로쿠 관방장관의 망언에 대해 오랜만에 한목소리로 일제히 비난하고 나섰다.신한국당은 일본 당국자의 국제적 감각의 부재를 질타했고,국민회의와 자민련은 한걸음 더 나아가 사과를 요구했다. 신한국당 김철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유사시에 대한 일본인의 개별적 상상에 대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이면서도 『일본 내각의 대변인격인 관방장관이라면 당국자로서 예의를 갖춰야 하며 결과에 대해서도 책임있는 사과를 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대변인은 『일본 정치인들의 일견 무신경해 보이는 일련의 경박한 발언의 배경에는 최근의 복고적 분위기가 작용하고 있다고 본다』고 풀이했다. 국민회의 박홍엽 부대변인은 『일본이 이웃 국가의 국민감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비이성적인 발언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볼 때 과연 우리와 미래를 함께 할 동반자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괴상한 망상으로 우리민족에게 모욕을 주는 것은 도저히 좌시할 수 없는 망발』이라고 비난했다. 자민련 이규양 부대변인은 『일국의 각료로서 최소한의 양식과 과거 역사에 대한 죄의식도 없이 이처럼 서슴없는 망언을 일삼고 있는 것은 국민 모두의 지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 장세동 피고­국선변호인 「불협화음」/26차 공판 이모저모

    ◎방학 맞은 여고생들 재판 참관 “눈길” 12·12 및 5·18사건의 피고인과 증인들을 상대로 한 사실심리가 1일의 26차공판으로 사실상 막을 내렸다. ○…5개월에 걸친 「마라톤 재판」이 막바지에 접어든 이날 방청석에는 방학을 맞은 여고생 3∼4명이 나란히 앉아 재판과정을 지켜봐 눈길. 대원외국어고 김수현양(17)은 『역사적인 재판을 직접 보는 것이 살아있는 공부라고 생각해 반 친구들과 함께 방청하게 됐다』고 소감을 피력. 전남대 송기숙 교수 등 민족문학작가회의 소속 문인 10명도 공판시작 20여분 전부터 일찌감치 방청석에 자리잡고 재판과정을 유심히 지켜봤다. ○…박종규 피고인은 증인신문 말미에서 『검찰에서 조사받을 때 진술강요나 협박을 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검찰의 질문에 한참동안 뜸을 들이다 다분히 감정적인 목소리로 『그렇다』고 답변.박피고인은 『나이도 어린 검사가 「이 사람아,그게 아니잖아」,「당신,밤새워 조사받아도 좋아?」라는 등 반말조의 말을 해 모욕감을 느꼈다』며 『협박은 아니지만 검찰로부터 자백을 유도받은 사실이 있다』고 주장. ○…장세동피고인은 국선변호인의 신문내용이 헬기의 내부구조등 지엽적인 문제로 흐르자 『변호인께서 무엇을 물어보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퉁명스럽게 답변해 변호인과 「불협화음」을 내기도. ○…현역군인(육군 중령)으로 증언대에 선 김광택 전20사단 61연대 6중대장은 『당시 시위대를 진압하면서 검문에 불응했을 경우 경고­하퇴부 조준사격이라는 수칙은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고 진술,계엄군이 무차별 진압을 했다고 증언. ○…최규진 전11공수여단 62대대 4지역대장은 증언을 마친뒤 『계엄군으로 참가한 사실을 부끄럽게 생각한다』며 숙연한 표정. 최씨는 80년 5월24일 보병학교 병력이 철수중인 자신의 부대에 총격을 가한 사건과 관련,『사전에 아무런 신분확인 조치없이 중화기로 공격을 받아 많은 희생자가 났다』며 『육군장교로서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었으며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회고. ○…김영일재판장은 검찰이 증거로 제출한 12·12 국정조사 국방위원회 7차회의록 등 20여점과 12·12 사건당시사용된 38구경 권총탄환·M16 소총탄환 등 5점의 압수물을 증거로 채택. 특히 우국일 전보안사 참모장의 업무일지와 일기사본이 증거물에 포함됐으나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5공전사」는 피고인들이 모두 채택에 부동의,증거로 채택되지 않았다.〈박은호·김상연 기자〉
  • 「12·12」 「5·18」 17차공판­지상중계·이모저모

    ◎정 총장 연행 관련 대통령과 통화 못해­윤성민/신 총리엔 보고… “슬기롭게 수습하라” 지시받아­윤성민/유혈사태 우려… 장태완씨 병력출동 요청 거절­이건영/정승화·장태완씨 “전씨 불법행위 낱낱이 밝히겠다” 12·12 및 5·18사건 17차공판이 27일 상오10시 서울지방법원 417호 대법정에서 열려 당시 윤성민 육군참모차장,노재현 국방부장관,장태완 수경사령관,이건영 3군사령관,정승화 육군참모총장 등 12·12 관련증인 5명에 대한 검찰과 변호인측의 신문이 진행됐다. ▷윤성민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월12일 하오 8시30분쯤 육본 B­2벙커에서 참모들의 보고를 통해 합수부 소속 허삼수,우경윤대령 등이 정승화 총장을 10·26사건과 관련하여 강제로 연행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나요. ▲윤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 검사=전두환 합수본부장으로부터 위와 같은 연행에 대하여 사전이든 사후이든 보고를 받은 적 있습니까. ▲윤증인=없습니다. ▲김부장 검사=증인은 이 사실을 알고 최규하대통령과의 전화통화를 시도했나요. ▲윤증인=수차례시도했지만 대통령과는 통화를 못했고 최광수비서실장이 연결됐는데 최실장이 대통령과 통화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전화를 끊어 신현확 총리에게 정총장 연행사실을 보고하니 신총리가 알고 있다며 슬기롭게 수습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이양우 변호사=증인은 검찰측 신문과정에서 합수본부장으로부터 정총장 연행에 대해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했는데 모월간지의 「12·12 현장 육성녹음테이프」에는 증인이 이건영 3군사령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전사령관으로부터 정총장을 안전하게 모시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얘기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어느 것이 사실 입니까. ▲윤증인=녹음테이프가 맞습니다. ▲이변호사=10·26사건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합수부가 이 사건과 관련된 정총장을 연행했으니 적법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윤증인=계엄중에 계엄사령관을 연행하려면 국방부장관과 대통령의 재가가 있어야하는데 대통령의 재가가 없었기 때문에 불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변호사=최광수 비서실장과 신현확 총리는 12·12 이후 증인과 통화한사실이 없다는데요. ▲윤증인=확실히 통화했습니다. ▲이변호사=30경비단에 있던 황영시 장군과 전화통화에서 정총장 연행에 대해 대통령재가를 받는중이라는 얘기를 들었나요. ▲윤증인=못들었습니다. ▲정주교 변호사=정총장 연행사실을 알고 신현확 국무총리에게 전화를 했을 때 신총리가 증인에게 말한 내용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윤증인=최대한 피해없이 지혜롭게 사태를 수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변호사=당시 통화중에 전보안사령관으로부터 대통령에게 정식으로 보고를 드리고 재가를 받으려 한다는 해명이 없었습니까. ▲윤증인=전혀 없었습니다. ▲정변호사=증인이 12일 하오8시50분쯤 이건영 3군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정총장이 잘 보호돼있으니 진도개 비상발령을 취소하라』고 말했다는데 사실인가요. ▲윤증인=정확한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잠깐 주춤하다가 결국 발령을 내렸습니다. ▲정변호사=진도개 비상발령을 내린 이유는 계엄사령관이 연행됐기 때문입니까,아니면 북한의 남침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까. ▲윤증인=정총장 연행으로 북한의 남침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변호사=당시 증인은 박준병·백운택을 체포하라는 지시를 내렸는데 구체적인 체포이유는 뭡니까. ▲윤증인=반란에 가담했다는 첩보가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정변호사=12·12당일 변규수 육본 보안부대장을 체포한 이유는 뭡니까. ▲윤증인=당시 변규수가 사건의 진행 상황을 신군부측에 보고하고 있다는 것이 첩보로 접수되고 장태완 수경사령관이 체포를 건의해옴에 따라 육본 지휘부를 수경사로 이동하는 도중에 체포해 영창으로 입창시켰습니다. ▲이양우 변호사=『10·26사건에 관해 조사할 것이 있어 정총장을 연행 했다』는 전두환 사령관과의 전화통화 내용을 이건영 3군사령관 말고 장태완 수경사령관등 다른 사람에게도 전달했습니까. ▲윤증인=참모들에게 전달했고 장사령관에게는 전달하지 않았습니다. ▲김재판장=전피고인으로부터 전화로 정총장 연행사실을 들었다고 했는데 혹시 전전피고인의 지시로 합수부측 다른 사람이 전화한 것을 전피고인이 직접 전화한 것으로 잘못 기억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윤증인=테이프에 기록된 내용처럼 전사령관으로부터 직접 들었습니다. ▷이건영 증인◁ ▲김상희 부장검사=12월13일 상오1시50분쯤 장태완수경사령관이 증인에게 전화를 걸어 수기사와 26사단의 병력출동을 건의했지만 이를 거절한 것은 국방부장관의 지시와 병력이 출동되면 유혈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증인의 판단 때문이었습니까. ▲이증인=그렇습니다. ▲김부장검사=12월13일 상오6시쯤 김용휴 국방차관이 증인에게 전화를 해서 노장관이 국방부로 들어 오라고 한다고 해서 8시쯤 들어갔다가 미리 기다리고 있던 합수부측 수사관에 의해 연행됐습니까. ▲이증인=장관이 『제들이 물어볼께 있다고 하니 가서 답변좀 해주라』고 해서 장관실에서 나와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끌려갔습니다. ▲전상석 변호사=12·12 이후 국방부장관이 한·미연합사에서 육본으로,육본에서 국방부로,다시 국방부에서 육본으로 위치를 자주 옮겼는데 그때마다 국방부장관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나요. ▲이증인=장관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김재판장=12·12 당시 합수부측에서 정총장 연행등 12·12 경위에 대해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이증인=없습니다. ▷공판 스케치◁ 12·12사건에 대한 첫 증인신문이 열린 27일 증인으로 나온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장태완수경사령관,윤성민육참차장 등 육본측 장성들은 사건발생 17년여만에 무대를 법정으로 옮겨 신군부측 피고인들과 「총성 없는」 싸움을 했다. ○…윤육참차장은 검찰신문에서 『5공 때 국방부장관까지 지냈는데도 피고인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게 돼 인간적으로 몹시 괴롭지만 역사앞에 진실을 밝힌다는 심정』이라고 소회를 피력. 이어 『정승화 총장 연행은 대통령과 국방부장관의 재가를 얻지 못했으므로 명백한 불법행위』라고 주장한 뒤 『언젠가는 역사적 진실이 규명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어 79년 12월23일 법무부 군사감실에서 80분짜리 녹음테이프를 만들어뒀다』고 설명. ○…이양우·전상석 변호사 등 변호인단은 『증인들과 막역한 사이라서 신문하는 것이 괴롭다』,『증인들이 초급장교이던 50년대초에 법무관으로 군에 있었다』는 등의 유화적인 표현으로 신문을 시작. 그러나 정작 신문에 들어가서는 5공 때 국방부장관 등의 요직을 거친 증인들의 전력을 거론하며 『기회주의자』,『정치여건에 따라 변신했다』는 등 인신공격성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맹렬히 공박. 재판부는 『우격다짐식으로 증인에게 모욕감을 주는 신문은 자제해달라』고 제동. ○…정승화·장태완씨는 공판이 열리기전 기자실에 들러 『정치군인의 불법행위를 낱낱이 증언하겠다』는 「출정의 변」으로 기세를 올리기도. 정씨는 『당시 육참총장으로서 12·12사건을 예방하지 못한 도의적인 책임은 느끼나 10·26사건을 빌미로 신군부측이 나를 제거하려 한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주장.장씨도 당시 수경사령관의 임무 등을 설명하며 『변호인단이 군교범·예규 등 군사적인 지식도 없이 맹목적으로 피고인들을 변호하고 있다』고 비난. ○…재판 시작 전인 상오 9시쯤 법원 1층 로비에서 장태완 당시 수경사령관이 신군부측 멤버였던 김진영 당시 수경사 33경비단장에게 『이놈아,옛 상관에게인사도 안하느냐』고 호통. 장씨는 오랜만에 만난 김씨에게 먼저 눈웃음으로 인사했으나 김씨가 그냥 지나치자 소리를 지른 것. ○…재판진행을 둘러싼 변호인단의 끊임없는 불만토로가 급기야 재판부와 변호인단 간의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 전상석변호사가 형사소송법 규정을 들어 『지난 공판때 피고인의 신문조서 등을 증거로 채택한 재판부의 결정은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꼬집자 김영일재판장은 격앙된 목소리로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면 안된다』고 노골적인 불만을 표시. 김재판장은 변호인단과 몇번 더 설전을 벌이다 『재판장이 열을 낸 것은 피고인의 이해관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한뒤 서둘러 폐정을 선언. 한편 전변호사는 공판 직후 『편파적인 재판진행을 더이상 받아들일 수 없어 내일은 (전두환 피고인이 수감된) 안양교도소로 가서 변론을 그만두겠다고 말할 것』이라고 맞불을 놓았으나 진의 여부는 불분명. ○…변호인단은 검찰이 권정달 전 보안사 정보처장과 일부 피고인들을 서울시내 호텔 등 은밀한 장소에서 대질신문해진술조서의 신빙성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 변호인은 『5·18특별법이 제정된 후 검찰이 권씨를 비롯한 서너명을 하얏트 호텔 등지로 불러 대질신문,조서를 작성했다』며 『이를 증거로 채택한 재판부의 처사는 잘못된 것』이라고 강조.
  • 재판 일정까지 간섭해서야(사설)

    새정치국민회의를 비롯한 야당들이 사법부가 12·12,5·18재판을 정략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재판일정의 조정을 요구하고 있다.우리는 야당의 논리와 행태가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를 침해하는 중대한 문제임을 지적하면서 이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회의측이 발표한 대변인논평은 아무런 논리나 사실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채 사법부의 재판진행을 「정략적」으로 규정하고 부당성을 주장하고 있다.국민회의에 따르면,신한국당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12·12,5·18사건 재판은 총선전에 하고 불리하다고 판단되는 비자금사건은 총선후로 미룬 것은 신중한 재판진행의 태도가 아니라는 것이다.따라서 동시에 하든가,둘 다 함께 미루든가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같은 단정은 신한국당과 사법부가 결탁하여 재판일정을 정치적으로 짰다는 의미다.사실이라면 사법부의 신뢰와 독립이 붕괴될 일이며 사법부 전체가 발칵 뒤집힐 중대사안이다.재판일정이 선거에서 정당들에 꼭 유·불리의 영향을 갖느냐도 의문이지만,있다고 해도 결과적인 영향이지 재판부의 조작에 의한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수가 없는 것이다. 법관이 양심에 따른 공정한 재판을 하기 위해선 누구의 간섭이나 압력도 있어서는 안된다.민주국가는 3권분립하에서 사법부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다.그것을 수호해야 할 야당이 재판일정을 바꾸라는 것은 역사적인 재판을 정치재판으로 만드는 재판관여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더욱이 사법부와 재판부를 여당과 한통속으로 여겨서 난폭한 논리로 정략의 공모자로 공격한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처사다.담당재판부는 이미 일부의 의혹제기에 대해 『사법부를 모욕하는 처사』라고 불쾌해하며 『재판은 전적으로 재판부의 순수한 결정에 따라 진행할 것』임을 밝혔다고 한다.재판부가 그렇게 나올 정도면 야당은 즉각 정중한 사과와 재발방지의 다짐을 통해 사법부의 권위를 실추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것이 마땅하다. 이제 민주주의 근간까지 흔드는 진흙탕 선거운동은 자제해야 한다.사법부에 흠집을 내고 선관위의 말도 무시하는 정략 일변도의 구태는 청산해주기 바란다.
  • 이혼 사유(외언내언)

    며칠전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비의 「세기적 이혼」이 국내 신문에 일제히 보도됐다.남편은 대영제국의 왕위를 이을 황태자이고 부인은 금발의 맵시있는 미인이다.겉으로만 보면 누가 봐도 부러워할 이들 부부는 오랜동안의 불화와 별거로 온 세계의 관심을 끌어왔다.불화의 원인은 두 사람 모두의 불륜.남편이 먼저 외도를 했고 「나도 질세라」세자비도 외간남자의 품에 안겼다.그 사실을 국민앞에 고백한 뒤 다이애나는 오히려 국민들의 동정을 받기도 했다.『어떻게 그런 모욕을 참을 수 있느냐』는 거다. 남녀의 불륜은 인류역사의 시작부터 비롯된다.그리스 신화나 구약성서에서 간통은 끊임없이 이어진다.이스라엘의 다윗왕이 장군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것은 3천년전 간통사건.동양최고의 미인이라는 양귀비는 당현종의 총애를 뿌리치고 우직한 장군 안록산과의 밀애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으며 결국 당나라 멸망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7개도시의 지난해 이혼사례 6천여건을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배우자의 부정으로 인한 이혼사례가 2천1백62건이나 돼 아직도 33.6%를 차지한다.흥미있는 현상은 남편의 외도가 이혼사유가(47.9%)된 것보다 아내의 외도에 의한 파경(파경)이 더 높다는(52.1%)사실이다. 94년까지의 통계로는 남편의 외도에 따른 이혼이 60대 40정도로 높았다.그렇다면 최근들어 아내들의 불륜이 더 많이 저질러진다는 것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여성의 사회진출이 부쩍 늘고 경제자립이 이루어지면서 아내들의 발언권이 강해지고 있는 현실의 반영이 아닐는지.일본의 경우에도 기혼남녀 대상의 조사에서 「이혼할 수도 있다」는 공격적 응답이 남자 47%인데 비해 여성은 67%나 나왔다.이혼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어떤 난관이 있어도 이를 악물고 이혼만은 모면하려 했던 우리들 어머님 세대의 인종의 미덕은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여성의 경제권이 높아지면 따라서 이혼율도 올라간다.20∼30대 신세대 주부중에 3쌍중 1쌍이 이혼하고 있다니 큰일이다.
  • 서울신문에 비친 사회풍속도 세태 50년(서울신문50돌 특집:Ⅰ)

    ◎해방후 판·검사 한글공부 진풍경 「서울신문으로 매신이 갱생」.45년 11월22일 서울신문은 이같은 1면 제목을 통해 창간을 선언했다.일제의 오랜 질곡에서 해방된 조국의 대변기관이 되겠다는 의지와 함께 첫발을 내디딘 서울신문의 역사는 바로 해방 50년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서울신문과 더불어 온 그 50년동안 서울신문 지면에 비친 우리의 세태도 세월의 깊이 만큼이나 변화무쌍 했다.해방의 감격과 환희가 묻어났던 창간 당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세태 변화를 연대별로 묶어 본다. ◎해방이후 40년대/“엉터리 기생을 일소 풍기 향상시키고저…” 이색 시험광고 눈길 창간 당시는 해방 직후의 어지러운 사회상이 지면 곳곳에 반영되고 있다.창간호 만큼은 특성상 각계의 격려와 기대의 말들이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지만 다음 날인 23일자부터는 상해임정요인 귀국,미소공동회담,3·8선 긴장 등 해방직후인 당시 상황을 소개하고 있다. 1면 톱은 「중경의 김구선생 일행께서 개인자격으로 23일 오후 4시 김포에 환국하며­」라는 기사로 임시정부요인들의 환국을 알리고 있다. 이같은 어지러운 정국 분위기와 함께 한동안 지면을 장식한 것은 이를 틈타 정치테러와 집단강도가 성행한다는 내용들이다.심지어 강도들이 수류탄과 기관총으로 무장하고 있다는 기사도 눈에 띈다. 이처럼 한동안 살벌하던 지면은 점차 민생 분야로 그 관심을 옮겨가고 있다. 46년으로 접어들면서는 판검사들이 토요일 하오 법원에서 한글을 배우는 진풍경을 전하고 있기도 하다.일제통치 36년이라는 세월속에 우리말에 익숙지 않은 사람들도 없지 않았던 것이지만 무식쟁이나 농민 보다는 유식한 사람이 오히려 더 우리말을 소홀히 했던 세태의 반영이었던 것이다. 모자 광고가 어느 것보다 많이 광고지면을 차지하고 있는 것도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다.당시는 모자를 안쓰면 행세를 못하던 때라 모자광고가 지금의 패션광고 만큼이나 많았던 것이다. 「엉터리기생을 일소하여 풍기를 향상시키고저­」라는 기생자격시험 광고가 등장한 것도 이즈음이다. ◎50년대/연재소설 「자유부인」 장안의 화제/전쟁중 밍크·귀금속 걸치면 처벌/“갈아보자” “구관이 명관” 유행어로 50년대는 6·25의 발발로 인한 여파가 사회 모든 분야에 크고 깊은 영향을 미쳤던 시기였다. 6·25는 같은 겨레끼리 죽이고 죽는 민족상잔의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국민 모두를 피란민으로 만든 가난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전시체제하에서 나온 「배급쌀」이라는 말도 잊을 수 없는 말이다.50년 10월에는 양곡배급이 시작됐다는 기사들이 사회면을 채우고 있다. 6·25는 또 전술용어와 투쟁용어를 양산해 내기도 했다.「진충보국」 「빨간딱지」(병역 기피자 등을 일컫는 말) 등 생소한 용어들이 생겨났고 의지할 데 없는 월남민들을 별볼일 없는 빈털터리의 대명사로 「38따라지」라 부르기도 했다. 마카오에서 밀수해온 외제양복과 구두를 갖춘 「마카오신사」들이 등장한 것도 이때였다.시중에는 마카오복지 등 사치스런 옷감이 범람해 당시 신문에는 「당신의 옷차림은 전시생활에 알맞습니까」라는 글이 실리고 「전시생활 개선법」이 만들어져 밍크목도리와 귀금속을 착용하면 처벌까지 당하기도 했다. 이무렵에는 전쟁이 심어놓은 퇴패와 성문화도 한껏 고조되고 있었다.서울신문에 연재되던 소설 「자유부인」을 놓고 벌인 유명한 논쟁은 그 세태를 여실히 반영하고 있다. 소설가 정비석이 쓰고 김영주화백의 삽화를 곁들인 소설 「자유부인」은 54년 1월1일부터 그해 8월6일까지 2백15회에 걸쳐 6·25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며 장안의 화제를 모았다. 서울 수복 이후 여성들의 취업전선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계바람,댄스바람 등 만연한 퇴패적 분위기 속에 바람난 한 대학교수 부인의 이야기가 소설의 큰 틀이었다. 논쟁의 발단은 서울법대 황산덕교수가 3월1일자 대학신문에 『대학교수를 상대로 모욕을 하고 있다』는 내용의 「자유부인에게 드리는 말」이란 공개 비난문을 발표하면서 전개됐다. 이에 작가 정씨가 3월11일자 서울신문에 『황교수의 비난은 문학가에 대한 모욕과 감정적 흥분으로 일관돼 있다』는 반박문을 게재,반격을 가했고 여기에 홍순엽변호사가 3월21일자 지면을 통해 정씨의 입장을 지지하는 기고를 하면서 점입가경으로 빠져 들었다. 이같은 논쟁은 고정독자와 판매부수가 늘어나는데 크게 기여한 바가 있지만 당시 호사가들은 물론 국민들의 정서가 어디쯤에 있었는지를 가늠하는 척도이기도 했다. 혼란은 사회상에만 내비친 것이 아니었다.전쟁이 끝나자 자유당의 부패가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정치판은 그야말로 난장판으로 변해갔다.「막걸리선거」 「피아노선거」 온갖 부정을 저질러오던 자유당은 54년 11월29일 부결된 초대대통령의 중임제한 철폐 개헌안을 사사오입을 통해 가결시키는 망발도 서슴지 않았다. 이에 야권이 집결,민주당을 창당했고 56년 대통령선거에서 자유당과 맞붙었다. 이 선거에서 민주당은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를 들고나와 일반국민들의 정서를 파고 든 반면 이에 맞서 자유당은 「갈아봤자 별 수 없다.구관이 명관이다」라는 구호를 내세우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희극적인 이러한 정치형태는 일반 모임이나 가정에서도 유행을 탈 수 밖에 없었다. 55년에는 국산 자동차 1호인 시발자동차가 등장,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6·25의풍파로 시작된 50년대는 마지막까지 국민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주며 저물어 갔다.59년 9월16일 사라호 태풍이 영·호남지방을 휩쓸고 지나간 것이다.이 태풍으로 이 지역에서만 사망 8백30명,부상 2천2백여명,실종 3백4명,이재민 39만명이 발생했다. ◎60년대/“KS마크”는 출세보장… 과외열풍 불고 연탄가스·불발탄 사고 사회면 단골로 60년대는 전쟁의 상처로 인한 허무와 무력감속에 「빽」과 「와이로」가 난무해 「러키스트라이크」담배와 양주「조니 워커」가 민원인들에게 필수품이던 시절이다. 「조국근대화」를 내세우며 등장한 박정희의 혁명정부는 「우리가 살길은 수출이고 돈이 되면 무엇이든 판다」는 수출드라이브정책을 펴나갔다. 담배는 고급담배인 「신탄진」한갑에 50원,「아리랑」 한갑이 25원이었는데 당시 귀했던 쇠고기 한근이 1백58원이고 연탄 한장에 8원,소주 2홉들이 한병이 43원이고 보면 담배 권하는 인심을 마다하지 않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듯하다. 금 한돈쭝이 1천6백60원인데 결혼예물로 금반지 세돈쭝쌍가락지 끼고 「도고온천」이나 「경주」로 신혼여행을 가는게 보통이었다. 대학입시 열기도 대단해 대학생과외가 널리 유행처럼 번졌고 경기고(K)와 서울대(S)를 나오면 출세는 보장된다는 「KS마크」도 이때 등장 한다. 전후 서민들의 유일한 문화·오락 생활은 영화관에서 필름이 낡아 화면이 비가 내리는 듯한 영화속의 현실에 빠져 드는 것이다.이런 열기에 힘입어 60년대는 우리 영화사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는 중요한 시기가 된다. 최초의 컬러시네마스코프 「성춘향」을 비롯해 「빨간 마후라」「맨발의 청춘」「남과북」「저하늘에 슬픔이」등과 함께 68년「미워도 다시한번」은 장안의 돌풍을 일으켜 이후 속편이 4번이나 만들어진다. 당시 「한국의 제임스 딘」신성일은 뭇여성의 우상이었고 그가 빠진 영화는 흥행에 실패해 한해 50여편 이상의 영화에 겹치기출연이 보통이다.한편 문희·윤정희·엄앵란등의 「트로이카」여배우의 연기대결도 볼만해 그야말로 영화사에 꽃을 피운다. 그러나 전성기를 구가하던 영화는 61년 KBS-TV 개국에 이어 잇따라 등장하는 상업방송에 서서히 그 자리를 내주기 시작해 70년대 들어서는「아씨」「여로」등 TV연속극에 밀려 「안방극장시대」에 자리를 내준다. 겨울만 되면 연탄가스에 일가족이 몰사했다는 기사가 하루 걸러 지면을 메웠고 지방에서 한해 불발탄 폭발사고로 2백여명이 목숨을 잃었다.또 3월이면 보릿고개 때문에 「춘궁…농촌현장을 가다」등의 단골 시리즈도 있었다. 당시의 신문광고는 주로 약·영화·책 광고 등이 대부분인데 「원기소」「테라마이신」「개풍경옥고」등 요즘 세대들에겐 익숙지 않은 약이름과 「천지 캬바레 개업」「연말연시 선물엔 역시 신탄진」「벌꿀비누 애용자 사은 쇼 파티」「통신강의록 독학생모집」「경기중·이화중 학생 대모집」등도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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