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역사 고증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박경훈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미중 협력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드론 배송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 조정 운행
    2026-05-28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756
  • [데스크 시각] 패거리에 둘러싸인 주민투표/김경운 사회2부장

    [데스크 시각] 패거리에 둘러싸인 주민투표/김경운 사회2부장

    고대 삼국시대에 먼저 국력을 과시한 나라는 백제였다. 4세기 중반 근초고왕은 마한을 복속시키고 고구려 왕마저 목숨을 잃게 만들었으며, 또 바다를 건너온 왜군을 제 병사처럼 부리고 중국 요서지방을 분국으로 다스렸다. 대백제가 탄생한 순간이다. 이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5세기 초반 후연과 거란, 동부여, 백제, 가야, 왜 등을 차례로 격파하며 동아시아 무역로를 장악해 ‘팍스코리아나’ 시대를 연다. 마지막으로 신라의 태종무열왕은 7세기 중반 ‘외교전쟁’을 통해 한반도 통일의 기틀을 다진다. 이들 3명의 왕은 위대한 정복통일 군주라는 것 외에도 눈에 띄는 공통점을 지녔다. 화려한 위업을 쌓기 전에는 당시 지배권력층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던 약자였다는 사실이다. 근초고왕은 100년 이상 유지되던 비류계 왕가에서 간신히 온조계 왕통을 이어받은 몸이었다. 왕권은 잃었지만 여전히 강력했던 비류계 왕손과 이를 감싸고 도는 귀족층의 견제를 받았다. 반란 음모에도 시달려야 했다. 광개토대왕은 적통이 아니었던 탓에 위약했던 선왕처럼 기득권층의 끊임없는 도전에 맞서야 했다. 아울러 태종무열왕은 개인적인 잘못으로 왕위에서 쫓겨난 선대왕의 후손인 진골이었다. 힘없고 외로운 군주 앞에서 권력을 쥔 집단이 한꺼번에 달려들어 윽박지르는 모양새는 마치 힘센 패거리가 약자를 희롱하고 괴롭히는 꼴이다. 이런 약자가 패거리의 코를 납작하게 누르고 민심을 얻는 길은 힘든 도전에 운명을 거는 것밖에 없었을 것이다. 3명의 왕에게 그 길은 정복과 통일이었다. TV에서 역사드라마가 붐을 이루는 것 같다. 2000년대 이전에는 사극에서도 울고 짜며 답답한 한을 속으로 삭이는 장면이 많더니, 요즘에는 호쾌한 액션물이 넘쳐난다. 고대사에 대한 고증도 꽤 애쓴 흔적이 엿보여 볼 만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몹쓸 패거리가 약자를 괴롭히는 장면에는 부아가 치민다. 얼마 전 한 지방에서 장거리 승객을 기다리는 택시 기사들끼리 동네 불량배를 고용해 길목과 승객을 독점하다 적발된 일이 있었다. 담합 사실을 모르고 택시를 댄 순진한 기사가 패거리 기사들에게 둘러싸여 욕지거리를 듣고 발길질을 당하는 TV보도 장면을 보고 안타까웠다. 약자라고 모두가 사회적 소외계층이 아니다. 서울역 노숙자 중 몇몇 고참 노숙자들이 신참 노숙자들의 새 생활을 방해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저질 패거리 문화는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에서 무상급식을 놓고 오는 24일 주민투표를 하는데, 두 진영 가운데 한쪽에서 투표 불참운동을 한다는 것이다. 투표장에 나오는 유권자 모두를 한심한 사람으로 몰아갈 판이다. 주민투표를 주도하는 측에 반대할 요량이라면 정정당당하게 투표에서 지지를 얻어내면 된다. 불참을 촉구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민주주의는 참여가 기본정신 아닌가. 여기에 여야 정치권은 왜 난리인가. 주민투표가 앞으로 총선과 대선의 향방을 좌우한다며 이리저리 말을 바꾸고 시민들을 어지럽게 한다. 기왕에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투표를 하는 것이라면, 유권자들이 공익을 위한 바른 길을 잘 따져볼 수 있도록 조용히 지켜봐야 한다. 패거리는 아이들 밥상에서 뒤로 물러나라는 말이다. 지난 5월 스위스 취리히의 캔턴이라는 곳에서 색다른 안건의 주민투표가 진행됐다고 한다. 캔턴은 풍광이 아름답고 안락사가 허용돼 외국인들도 자살을 목적으로 찾는 관광지란다. 그러나 주민투표를 발의한 쪽에서는 이것이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라며 자살을 도와주는 ‘조력자살’과 ‘외국인 자살관광’을 제한하자는 안건을 표결에 부친 것이다. 그런데 주민(투표자 28만 8000명)들이 선택한 결과는 각각 85%, 78%의 반대표가 나왔다. 취리히 주민들은 대의보다 실리를 우선한 것이다. 주민투표란 이런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kkwoon@seoul.co.kr
  • 성경속 대제사장 계보 정리…박윤식 목사 ‘…대제사장’ 내

    구약시대 제사를 주관하던 ‘제사장’의 족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이 출간돼 기독교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보수) 증경 총회장인 박윤식 목사가 낸 ‘맹세 언약의 영원한 대제사장’(휘선 펴냄)이 그것으로 구속사(救贖史·인류를 속죄하고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의 관점에서 성경을 조망하는 작업에 천착해온 저자의 여섯번째 성과물이다.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일부 대제사장을 추적해 엮은 책이 나온 적이 있지만 성경 속 대제사장의 기록을 모두 추적해 계보를 통시적으로 완성하기는 처음이다. 박 목사가 정리한 대제사장은 기원전 1445년 초대 제사장 아론부터 예루살렘이 멸망한 서기 70년, 마지막 대제사장 파니아스까지 1500년에 걸친 77명.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아론부터 앗두아까지 29대, 오니아스 1세부터 안티고스까지 19대, 헤롯왕이 임명한 아니넬부터 예루살렘 멸망까지의 29대 등 세 시기에 걸친 제사장의 역사·업적과 과오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네로 황제 통치 말엽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 무장투쟁을 벌였던 제사장 집안 출신 요세프스를 비롯해 하스몬 왕가와 유대 통치자 헤롯 가문의 가계도를 붙여 세계사 변천 과정을 한눈에 볼수 있도록 도표로 정리한 것도 눈에 띈다. 특히 저자가 성경의 기록으로만 전해 오는 대제사장의 예복을 고증을 통해 그림으로 재현한 것은 흔치 않은 성과로 기록된다. 박 목사는 책 말미에 “에덴에서 쫓겨난 이후 인생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는 제사드리는 제단을 통한 구속운동이었다.“며 “잃어버린 자를 찾아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의 사명에 충성하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이라고 밝히고 있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이서진 “거친 계백에 끌려 출연… 실제도 거친 남자”

    이서진 “거친 계백에 끌려 출연… 실제도 거친 남자”

    배우 이서진(40)이 또다시 사극을 들고 2년 만에 안방극장에 돌아왔다. 이번엔 5000명의 결사대로 5만명의 대군에 맞서 싸운 황산벌 전투로 유명한 백제의 명장 계백이다. 25일 첫 방송하는 MBC 월화 드라마 ‘계백’의 주인공이다. 지난 21일 드라마 제작발표회가 열린 충남 논산시 건양대학교에서 이서진을 만났다. ‘다모’, ‘이산’에 이어 ‘사극 불패’를 달성할지 주목된다. →이러다 ‘사극 전문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겠다. -솔직히 ‘이산’ 이후로 사극을 멀리하려고 노력했다. 지난 2년간 정말 많은 대본을 받았는데, 썩 와닿는 역할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본이 재미없거나 억지스럽게 웃기려고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그중엔 성공한 것도 있지만(웃음). ‘계백’의 대본도 꽤 예전에 받았는데 무협에 가까워 처음엔 출연할 생각이 없었다.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는. -새로운 대본이 나오고 감독이 정해지면서부터다. 무엇보다 ‘이산’ 때와는 확연히 다른 면을 보여드릴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출연을 결심했다. 솔직히 전작의 이미지가 남아 있어서 새로운 인물을 연기해도 시청자들이 어색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대본 작업을 거치면서 극 전개도 빨라졌고 배우로서 계백의 거친 면모에 매력을 느꼈다. →전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산이 주로 궁 안에 머무르는 군주였다면, 계백은 전장의 야전사령관처럼 거친 인물이다. 전에는 언제나 깨끗한 의복을 갖췄지만, 이번에는 극 초반 노예 복장으로 나오기도 한다. 승산이 없는 전쟁을 이끄는 장군 역할이다 보니 흥하는 조선의 역사를 만드는 군주와는 다른 느낌이다. 어찌보면 더 외로운 인물인 것 같다. 계백은 실존 인물이지만, 역사적 고증이 많지 않아 드라마적인 요소를 더 넣을 수가 있어서 조선 시대보다 재밌게 연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많은 남자 배우들이 계백 역할을 탐냈다던데. -황산벌 전투를 앞두고 사랑하는 가족을 죽이면서까지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의 모습은 극적인 부분이 많다. 물론 연기적인 면에서는 의자왕이 더 보여줄 것이 많겠지만, 계백은 상당히 멋있는 인물이다. 목숨을 걸고 수십만 대군에 맞섰던 5000명의 결사대를 이끌 수 있는 사람이라면 모든 병사들에게 인간적인 매력으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극이지만, 동시대 사람들과의 소통도 중요하지 않겠나. -항상 역사가 반복되는 것처럼 역사 드라마도 그 시대의 상황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계백은 한 사람의 충신으로서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했고, 드라마에 그런 부분을 그려보고 싶다. 군주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라를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모습은 현대 사회에도 필요하지 않나. 한 사람의 장군으로서의 고뇌와 인간적인 모습을 잘 표현해 보고 싶다. 아울러 패전국의 이미지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은 백제의 역사도 많은 분들에게 전하고 싶다. →한여름의 사극 촬영은 상당한 고역이다. 게다가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SBS 사극 ‘무사 백동수’와의 정면 대결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첫 촬영 때 황산벌에서 갑옷을 입고 전투하는 장면을 찍었는데, 지금껏 입어본 갑옷 중에서 가장 무거웠다. 출연을 후회할 정도였다(웃음). 덥고 힘든 것은 지나면 그만이지만, 정작 힘든 것은 연기적인 부분이다. ‘무사 백동수’가 무사들끼리의 일대일 싸움에 힘을 기울인다면, ‘계백’은 나라 대 나라의 대규모 전투 장면이 많다. 말을 타고 하는 화려한 액션도 많고, 군사들도 많이 동원돼 촬영장도 실제 전쟁터를 방불케 한다. 말들도 지쳐 실려나갈 정도다. →‘이산’, ‘주몽’, ‘선덕여왕’ 등을 히트시킨 김근홍 감독과 ‘다모’의 정형수 작가가 손잡아 화제다. 흥행에 대한 기대가 클 것 같은데. -김 감독과는 비슷한 나이 또래라 통하는 면이 많고, ‘계백’ 출연을 결심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김 감독은 드라마도 잘 찍지만 현장 장악력이 뛰어나다. 잠시도 망설이거나 고민하는 부분이 없고, 머릿속에 모든 대본이 있다. 김 감독의 그런 스마트한 면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는 것도 장점이다. 정형수 작가는 자주 못 뵙지만, 보자마자 “살려달라.”고 하더라(웃음). 잘 해보자는 의미로 생각한다. ‘다모’의 좋은 느낌을 받아 잘됐으면 좋겠다. →올해 초 한 자산운용회사의 본부장(상무)으로 취임해 화제를 모았다. 한류 콘텐츠 발굴 및 투자 등의 업무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왕이나 장군 연기를 하다가 회사 생활하기 힘들지 않나. -남들처럼 정시에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일이 있을 때 나가는 편이다. 한류 콘텐츠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도 많이 다뤘다. 아직 큰 성과는 없지만 많이 배웠다. 단순히 ‘얼굴마담’ 역할은 아니다. 금융 쪽이 제 얼굴만 보고 투자해주는 그런 곳이 아니다. 냉정하다. 애초 드라마 촬영 편의를 봐주는 조건으로 회사와 계약했고, 일단 제가 없어도 큰 타격이 없다(웃음). →항간에 정치에 입문한다는 얘기도 나돈다. 결혼 계획은. -정치 입문 제의도 없었고, 앞으로 할 생각도 없다. 결혼 생각도 전혀 없다. 어머니도 독촉하지 않으신다. 너무 놀지 말고 좋은 작품 많이 하라고 하시더라. →앞으로의 계획은. -그동안 사극에서 정의롭고 바른 역할을 많이 맡았지만, 실제론 직설적이고 거친 성격이다. 코믹한 것도 잘 맞는다. 앞으로 다양한 연기를 보여줄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분간 사극은 멀리하려고 한다. 현대극에도 많이 출연할 생각이다. 그래도 사극에 많은 관심을 가져달라.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진품명품’서 석천한유도 감정가 사상 최고 15억··네티즌 “놀랍다”

    ‘진품명품’서 석천한유도 감정가 사상 최고 15억··네티즌 “놀랍다”

     방송 프로그램 ‘진품명품’에서 사상 최고인 15억원의 감정가가 탄생했다.  24일 방송된 KBS-1TV ‘TV쇼 진품명품’에서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감정품이 나왔다. 의뢰품은 조선시대 무신 ‘석천 전일상(石泉 田日祥·1700~1753년)’의 일상을 묘사한 풍속화로 풍속화 속의 인물 표현에 초상화 기법을 적용한 희귀한 작품 석천한유도(石泉閒遊圖).   전문 감정위원 진동만(그림 감정위원), 이상문(도자기 감정위원), 박성실(KBS의상고증자문위원)씨는 작품의 예술성과 희소성, 역사성의 가치를 인정해 감정가 15억원을 책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감정가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15억이라니···당분간 이 기록은 깨지기 힘들 것 같다” 며 놀라운 반응을 보였다.  ’진품명품’ 프로에서의 역대 최고가는 지난 2004년 6월 소개된 청자상감모란문 장구로 12억원이었다.  인터넷서울신문 event@seoul.co.kr
  • 연등축제 무형문화재 지정 심사 조계종 스님 배제… 불교계 발끈

    연등축제 무형문화재 지정 심사 조계종 스님 배제… 불교계 발끈

    불교 연등축제를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한 심사에서 해당 문화재위원인 조계종 스님이 배제된 사실이 확인돼 불교계가 발끈하고 있다. 12일 불교계에 따르면 문화재청 무형문화재분과위원회(위원장 임돈희 동국대 교수)는 지난 8일 서울 고궁박물관에서 회의를 열고 연등축제의 문화재 지정을 보류한 채 소위원회를 구성, 오는 9월 9일 지정 여부를 재심사키로 결의했다. 무형분과위원회는 심사 결과 ▲등 제작의 역사성 ▲제등행렬의 전통성 ▲현장조사 결과 기준 점수 미달을 지정 보류의 주 이유로 들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무형문화재분과위는 ‘조계종이 신청한 사안을 심의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라며 분과위 소속인 조계종 인묵 스님을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불교계는 “인묵 스님이 회의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친·인척 등의 제척사유에 해당하지 않고 불교어산작법 학교장을 맡는 등 불교무형문화재에 탁월한 식견을 가진 문화재 위원인데도 무형분과위가 스님을 배제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불교계 일각에선 특히 분과위가 이번 보류 이유로 삼은 내용들이 지난 2009년 지정 무산될 당시와 같은 맥락이라는 점을 들어 사실상 물 건너 간 사안이 아니냐며 연등축제의 문화재 지정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불교계는 연등축제를 불교계를 넘어선 의식·행사로 오래전부터 국가 대표브랜드화와 공인을 요구해 지난 2009년 문화재청에 중요문화재 지정 신청을 했지만 고증과 재현에 부족한 부분이 있다는 이유로 무산돼 불만이 적지 않았다. 특히 불교계에선 지난 부처님오신날 도심 연등축제에 참여한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에게 연등축제의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태스크포스팀 운영을 제안했던 터라 이번 회의에 대한 기대가 컸었다. 조계종 문화부장 진명 스님은 “지난 2009년 회의 이후 무형문화재분과위 위원이 전원 교체된 만큼 연등축제 지정을 위한 회의의 연속성과 불교문화재에 대한 인식에 문제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분과위가 인묵 스님을 배제하고 회의를 진행한 데 대해 문화재청에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김성호 편집위원 kimus@seoul.co.kr
  • 히틀러가 나치 병사들에게 바비 인형 준 까닭?

    나치 정권을 이끈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가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병사들의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바비 인형을 지급했다는 역사적 고증이 제기됐다. 미국의 뉴욕 데일리 뉴스와 영국의 대중지 더 선은 11일 히틀러 정권이 1940년 최전선의 독일병정들에게 일종의 성노리개로 바비 인형을 공급할 계획을 세워 일부 시행에 옮겼다고 보도했다. 프랑스 매춘부들의 접근으로 인한 병사들의 각종 성병 감염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였다. 이같은 역사적 뒷얘기는 바비 인형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는 저술가 그램 도널드의 연구에 의해 밝혀졌다. 도널드의 조사에 따르면 나치 정권은 이른바 ‘보르크힐트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유사성행위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섹스 인형’ 공급 계획을 비밀리에 추진했다. 그램이 입수한 비밀 문건에 따르면 SS, 즉 나치 친위대 책임자 하인리히 힘러는 “(점령지인) 파리에서 (나치병사들이 처한) 가장 큰 위험은 댄스홀이나 술집 등 어디에나 병사들을 유혹하려는 매춘부들이 득실거린다는 점”이라면서 “병사들이 한순간의 쾌락을 위해 건강을 해치는 모험을 감수하지 못하도록 차단하는 게 우리의 의무”라고 상부에 보고했다. SS 측의 이런 상황판단에 따라 나치 정권은 독일병정들에게 바비 인형 공급계획을 세웠고 한 점령지에서 시험적으로 용법 테스트까지 실시했다. 테스트 직후 성능(?)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은 힘러는 자신의 휘하 병사들을 위해 50개를 주문했다고 한다. 히틀러가 사용을 승인한 바비 인형은 금발에 푸른 눈을 가진, 병사들의 배낭에 넣을 수 있는 작은 사이즈였다고 한다. 그러나 ‘보르크힐트 프로젝트’는 1942년 전세가 기울면서 흐지부지됐다. 영국군에 체포됐을 때 당혹스러운 장면이 연출되는 것을 꺼린 독일병사들이 바비 인형의 휴대를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젝트를 폭로한 그램은 “나치의 이 비밀 계획이 흐지부지된 후 드레스덴 대폭격 당시 이 인형을 만든 장소와 생산된 인형들이 모두 파괴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역사드라마는 무죄?

    역사드라마는 무죄?

    동북아역사재단이 22일 오후 3시 서울 미근동 재단 회의실에서 ‘사극 재조명’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PD연합회와 공동 개최라는 점이 색다르다. 역사 드라마가 사실이냐 아니냐를 두고 말들이 많은 가운데 양측이 직접 무릎을 맞대고 앉는 셈이다. 재단 측 연구위원들은 물론 ‘주몽’을 연출한 이주환 MBC PD와 ‘대장금’ 등 숱한 히트작을 만들어온 이병훈 PD가 토론자로 참가한다. 이런 취지로 볼 때 주창훈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가 발표하는 주제 ‘역사 드라마의 세 가지 상상력 : 강한 민족에서 탈민족으로’와 토론자로 나서는 김기봉 경기대 사학과 교수의 토론문 ‘사극 전성시대는 역사학의 위기인가, 기회인가’가 눈길을 끈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주요 테마로 제시 주 교수는 주제 발표문을 통해 방송 사극이 ‘기록적 역사서술→개연적 역사서술→상상적 역사서술→허구적 역사서술’ 4단계로 발전해 왔다고 지적했다. ‘조선 왕조 500년’ 같은 초기 역사 드라마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기록 내용에 비교적 충실하려고 했다면, ‘용의 눈물’, ‘태조 왕건’ 같은 개연적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 위에 강력한 남성 영웅의 이미지를 덧대는 방식이었다. 이어 등장한 ‘허준’, ‘여인천하’, ‘대장금’, ‘이산’ 같은 드라마는 상상적 서술의 비중이 더 높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드라마들은 대개 의사, 후궁, 궁녀처럼 정사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기 어려운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이다. 사료의 빈곤함을 고증에 기반한 상상력으로 메워 넣은 것이다. 주 교수가 이 부분을 “강한 민족주의에서 약한 민족주의로” 넘어갔다고 정리한 이유다. 허구적 역사 서술은 이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다. ‘대망’, ‘다모’, ‘추노’, ‘짝패’ 같은 드라마는 역사를 배경으로 내세웠을 뿐, 거의 모든 스토리가 창작이다. 상상적 역사 서술이 중인이나 여성들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이들 드라마는 아예 기록 자체를 찾기 어려운 노비나 왈짜 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이다. 이들은 우리 민족은 하나라고 하지 않고, 민족 안에도 다양한 이해 관계와 갈등이 있었다고 외친다. 주 교수는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해석한다. 민족보다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주요 테마로 제시”하기 때문에 “가능태(Variation)로서의 역사라는 측면에서 역사 드라마의 효용성이 극대화된다.”는 맥락에서다. ●“사실 여부보다 역사관에 더 관심을” 이주환 PD도 비슷한 맥락 위에 있다. 이 PD는 “정보전달과 대리만족의 측면에서 볼 때 역사 드라마는 대리만족을 위한 판타지를 택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서 “대신 국적 불명의 오락물로 흐르지 않기 위해 역사관에 많은 신경을 쓰는 만큼 역사 드라마에 대한 비판이 특정 부분의 사실 왜곡보다 제작진들의 역사관, 드라마가 표방하는 주제에 집중됐으면 좋겠다.”고 주장한다. 이런 제작진의 조심스러운 입장을 더 크게 치고 나가는 김 교수의 주장도 흥미롭다. 그는 “사실만이 역사라는 것 자체가 근대역사학의 한계”라고 비판한다. 이어 “인간은 현실과 꿈의 두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과거 사실을 재현하는 역사뿐 아니라 ‘꿈꾸는 역사’를 욕망한다.”면서 “사극을 우리 시대의 ‘꿈꾸는 역사’로 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극의 인기란, 결국 역사가들이 사극처럼 꿈꿀 만한 역사를 생산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다. 다시 말해 역사학이란 학문 자체가 다양한 상상력을 북돋우기보다는 문헌 해석과 기존 이론의 무비판적 답습에만 매몰됐던 것은 아니냐는 비판이다. ●“판타지 사극 더 발전시켜야” 그래서 김 교수는 한류를 계기로 사극의 변신이 더 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국민을 상대로 한 사극에서는 강한 민족주의가 들어가겠지만, 동아시아나 더 넓은 세계로 뻗어 나가기 위해서는 조금 더 인간의 보편성에 호소하는 방식으로 조정돼야 한다는 조언이다. 아예 ‘판타지 사극’을 더 발전시키자는 제안도 내놓았다. 김 교수는 “소설가, 극작가, PD 모두가 사관인 시대에 역사학이 사느냐 죽느냐는 역사학자들이 이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결론지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궁중무악 재현 현장

    [이종원 선임기자 카메라 산책] 궁중무악 재현 현장

    145년 전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가 4차분까지 모두 돌아온 뒤 500년 조선왕조 역사와 예술의 중심축인 궁중문화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오는 7월 이들 도서의 일반 공개에 앞서 각종 공연과 기념행사가 진행 되고 있는 가운데 궁중문화의 핵심으로 기품이 넘치는 궁중무악(宮中舞樂)을 재현하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초여름의 성급한 무더위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던 지난달 29일. 경복궁 근정전 앞마당에서는 ‘세종조 회례연’(世宗朝 會禮宴)을 재현하기 위한 국립국악원 단원들의 준비가 한창이었다. 전통 궁중의상을 차려 입은 연주단원과 무용단원들의 이마에는 비지땀이 흘렀다. ‘회례연’은 정월 초하루와 동짓날, 임금과 문무백관이 모여 화목을 도모하기 위해 벌이는 잔치를 일컫는다. ●경복궁 ‘세종조 회례연’… 뙤약볕 1시간 공연 관객 기립박수 휴일 경복궁을 찾은 관람객들은 15세기의 품격 높은 궁중무악을 감상하기 위해 공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근정전 주변에 모여들었다. 뙤약볕 아래서 1시간 넘게 진행된 공연이었지만 도중에 자리를 뜨는 사람은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관객들은 수준 높은 공연에 기립 박수로 화답했다. “임금이 되는 상상을 하며 공연을 봤다.”는 김정길(53)씨는 “고궁에서 옛 왕조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공연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례·연향·조회·군례악 등 다양한 궁중 행사에 사용되었던 궁중음악은 오늘날 정악(正樂)의 한 장르로 분류된다. 아정하고 고상하며 속되지 않고 바른 음악이란 뜻의 ‘정악’. 국립국악원 이숙희 학예연구관은 “예로부터 유교 문화권에서 악(樂)은 인간의 심성을 바르게 하고 사회를 교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고 설명했다. ‘낙이불류(而不流) 애이불비(哀而不悲)’라 했던가. 신라의 우륵이 제자들의 연주를 듣고 던졌다는 찬사다. ‘즐겁되 넘치지 않고, 슬프되 비통하지 않은 감정의 절제’가 정악의 특징이다. 정악의 연주에는 민속악에서 느끼는 희로애락과 같은 감정이입은 없지만 그 담담하고 유유한 장단의 흐름 속에서 선현들의 고고한 정신을 읽을 수 있다. “정재(呈才)로 불리는 궁중무용은 장엄하고 화려하면서도 모든 것이 절제된 가운데 우아함과 품위를 잃지 않은 정중동(靜中動)의 고혹적인 춤사위입니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심숙경 안무자의 설명이다. 어우러진 아름다움의 극치다. 그녀의 표현처럼 무용단원의 춤가락은 마치 숨을 고르고 명상의 세계에 잦아드는 과정처럼 현실을 초월한 신비스러운 멋을 느끼게 했다. 실로 공연이 끝난 후 느끼는 상쾌함에 일상의 불필요한 잡념과 찌꺼기들이 씻겨 나간 기분이다. 선조들의 예술 수준이 이처럼 높았단 말인가. ●국내 유일 편종 장인 김현곤씨 “수백 년 전 소리 찾는 일 내 천직” 궁중무악에 사용되는 악기는 ‘악학궤범’(樂學軌範) ‘악기조성청의궤’(樂器造成廳儀軌) 등 고서에 전해지는 방식 그대로 제작된다. 충북 영동의 국립국악원 악기연구소는 과거로부터 전승되는 악기를 복원하고 오늘날의 무대 공연에 맞는 악기를 개발, 연구하는 곳이다. 김영희 학예연구관은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1587~1671) 선생이 직접 만들어 사용한 거문고 악기인 고산유금(孤山遺琴)과 세종조 편경(編磬)과 짝을 이루는 세종조 편종(編鐘)을 지난해 복원 제작했다.”며 성과를 설명했다. 김현곤(76)씨는 국내 유일의 편종 장인이다. 6·25 전쟁이 끝나고 고향인 전북에서 상경하여 서양 악기 만드는 일부터 시작한 김씨는 국립국악원에서 망가진 옛 악기를 만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수백 년 전의 정확한 소리를 찾는 일이 저의 천직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지난해 악기연구소에서 고증한 ‘악학궤범’에 따른 그림과 치수를 참고하여 세종조 편종을 제작했다. 주물 작업을 마친 종(鐘)의 조율을 하고 있는 그의 손놀림이 현란하다. 마치 옛 악기의 소리뿐 아니라 그 시대의 정신도 함께 되살리려는 듯했다. 진솔하고 고상한 궁중무악은 조선왕조가 성취한 최고급 문화의 결정체이다. 햇살이 풍요로운 6월, 싱그러운 자연과 더불어 선조들의 고고한 감성을 헤아리며 또 하나의 슬기를 배워보는 것도 좋겠다. 글 사진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거북선·판옥선 3층 구조 원형 복원

    거북선·판옥선 3층 구조 원형 복원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건조해 전투에 사용했던 거북선과 당시 주력 전함이었던 ‘판옥선’이 고증을 거쳐 원형에 가깝게 복원됐다. 경남도는 1일 거북선과 판옥선 각각 1척을 지난해 3월 입찰을 통해 충남 서천군 장항읍에 있는 금강중공업에 건조를 맡겨 완공했다고 밝혔다. 건조된 거북선과 판옥선은 모두 3층 구조이며 이 가운데 거북선은 길이 25.6m, 폭 8.67m, 높이 6.06m 크기다. 판옥선은 길이 41.80m, 폭 12.03m, 높이 9.51m로 거북선보다 다소 크다. 경남도는 역사고증자문위와 건조자문위 등의 회의와 토론을 거친 결과 임진왜란 때 건조된 거북선이 2층 구조라고 알려진 것과는 달리 3층 구조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거북선과 판옥선 건조에는 국비 5억원 등 모두 40억원이 들었다. 경남도는 특히 판옥선이 원형에 가깝게 복원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역사고증자문위원장인 나종우 원광대 교수는 “이미 건조됐던 거북선은 있지만 정확한 고증을 거쳐 가장 원형에 가까운 3층 구조로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말했다. 경남도는 3일 오후 충남 서천 금강중공업에서 임채호 경남도 행정부지사와 역사고증·건조 자문위원, 이순신연구회 회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거북선과 판옥선 진수식을 할 예정이다. 창원 강원식기자 kws@seoul.co.kr
  • “증조부 고종의 갑옷·투구 6월 日에 반환소송… 반드시 찾아오겠다”

    “증조부 고종의 갑옷·투구 6월 日에 반환소송… 반드시 찾아오겠다”

    “법정 소송을 통해 일본에 있는 증조할아버지(고종)의 투구와 갑옷을 반드시 찾아올 겁니다.” 대한제국의 상징적 적통을 이은 황사손(皇嗣孫·황실의 대를 잇는 후손) 이원(49)씨는 29일 조선왕실의궤 반환 소식이 전해지자 “다음 환수 목표는 왕실의 보물이 돼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총재이기도 한 그는 유행을 좇는 케이블TV 프로듀서(피디) 출신으로 2005년 황사손이 된 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6년째 전통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옛 문화 살리기에 노력해 왔다는 이씨는 “조선왕실의궤가 일본에서 돌아오면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는 고종의 유품을 돌려받기 위한 소송을 이르면 오는 6월 제기하겠다.”며 의지를 나타냈다. 영국 왕실의 결혼으로 세계가 떠들썩했던 이날 창덕궁이 내려다보이는 종약원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2005년 황사손이 된 뒤 6년간 어떤 일을 하고 지냈나. -제사를 계속 지냈다. 조선왕릉 40기의 제사와 황실의 5대 제향(조경단대제·종묘대제·사직대제·건원릉기신친향례·환구대제)에서 초헌관(제사 지낼 때 첫 잔을 올리는 사람)을 맡았다. 1년에 120여회 정도 된다. 600년 넘게 한 왕조의 후손이 애초 양식을 유지하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은 세계 어디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문화유산이다. 그 과정에서 (일제에 의해) 말살된 대한제국 때까지의 문화를 복원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문화를 이미지로 복원해 내고 싶다. →그동안 성과가 있었나. -대표적인 것이 2008년 환구대제를 복원한 일이다. 일본이 침략 후 지금의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 자리에 있던 환구단(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을 없애고 군 장교들이 머무는 철도호텔을 지었다. 일본이 박아 놓은 말뚝을 빼는 것처럼 우선 이 문화를 복원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고증을 거쳐 2008년 제례를 되살렸다. 그러나 원래 터에 건물이 들어선 탓에 환구단 시설을 복원할 수는 없었고, 서울광장에 환구단을 세우려고 했는데 서울시가 긍정적으로 검토하다가도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의 반대로 번번이 무산됐다.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오해를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특히 몇 해 전 언론에 ‘황실문화원’을 설립하겠다고 얘기했는데 반발이 컸다. 문화원 이상의 정치적 세력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다. 우리 종약원 회원이 500만명이다 보니 마음먹고 뭉치면 (정치 세력을) 얼마든지 만들어 갈 수 있다. 하지만 혼란스러울 수 있어 안 한다. 순수한 의미로 문화를 찾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황실의 무능함 탓에 나라를 빼앗겼다.”는 이유로 후손들에게 냉소적인 국민도 많다. -대한제국은 대비를 못 해서 망한 나라가 맞다. 그럼 무엇 때문에 망했는지 정확히 역사를 밝혀서 후대가 그 사실을 토대로 50년, 100년을 만들어 가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제국 역사는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는다. →왜 지금 대한제국의 문화·역사를 복원하고 기억해야 하나. -현재 상황이 나라를 빼앗겼던 100년 전과 닮아서다. 우리는 항상 주변 국가가 부강할 때 침략당했다. 이제 문화로 당할 수 있다. 성장하는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을 봐라. (대한제국의 역사가) 아픔의 역사이기 때문에 더 기억한다. 왜 나라를 빼앗길 수밖에 없었는지 다시 펼쳐놓고 알아봐야 한다. →정부도 문화 복원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부족한 점을 느끼나. -그렇다. 예컨대 문화재청은 ‘살아 있는 궁 만들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하지만 살아 있는 궁이 되려면 그 안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내가 창덕궁 낙선재에서 외국인과 학생들을 직접 만나 얘기하면 얼마나 생생하겠나. “내 할아버지가 나라를 제대로 못 지켜서 아들인 영친왕이 일본에 끌려 가셨다. 그분이 사셨을 때 왕자로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다시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얘기를 직접 한다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이런 내용 등을 담은 ‘낙선재 활용 방안’을 5년 전부터 문화재청과 청와대에 계속 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문화재 위원들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황사손이 들어와서 궁을 활용하느냐.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재산인데…” 하는 논리를 폈다. →피디 경험을 살려도 흥미로운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자료 속 역사를 드라마로도 직접 제작하고 다큐멘터리로도 만들 것이다. 아주 고급스러운 왕실 문화와 의복, 관습, 혼례, 제례 등 진짜 역사를 담아 만들기 위해 준비해 왔다. 이것을 해외로 수출하면 ‘대장금’처럼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것이다. 대한제국을 들여다보면 이야깃거리가 엄청나게 많다. 지난해 (고종의 고명딸의 삶을 다룬) 소설 ‘덕혜옹주’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왜 대한민국 국민은 여기에 감정이입을 할까. 우리도 자랑스러워하고 싶은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일본에 있던 조선왕실의궤가 국내로 돌아오게 됐는데, 문화재 반환 운동에도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지난해 10월쯤 혜문 스님이 찾아와 놀라운 얘기를 했다. 증조부인 고종의 투구와 갑옷 등이 도쿄국립박물관에 있다는 것이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누군가 황실에서 훔쳐 갔거나 도굴당한 물품이 (문화재 수집가인) 오구라 다케노스케에게 넘어갔고 이를 물려받은 오구라의 아들이 박물관에 기증했다는 얘기였다. 사무라이 문화가 남아 있는 일본이 제후국을 침략해 전리품으로 빼앗는 대표적인 것이 (그 나라 왕의) 투구와 갑옷이다. 그런 의미로 도쿄박물관에 보관된 것이다. 치욕적인 일이다. 나에겐 할아버지 얘기였기에 너무 화가 났다(침묵). 한 개인이나 스님 한분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문화재청이 나서면 더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 아닌가. -혜문 스님은 문화재청 관계자에게도 이 소식을 전했다고 하더라. 그러나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고 했다. 그래서 나를 찾아왔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고 스님께 물었더니 문화재 반환 운동을 하라면서 “나라가 안 움직이는데 직계손이니까 소송을 해 보라.”고 권했다. 할아버지의 투구와 갑옷을 찾아와서 환구단에 놓고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게 내가 할 일이다. →소송도 할 계획인가. -물론이다. (다음 달로 예상되는) 조선왕실의궤 환수 이후 도쿄 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려고 준비 중이다. 애초 3월 중순에 일본에 가 도쿄박물관장을 만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동일본 대지진이 터졌다. 어려움을 겪는 국민에게 가서 “내 할아버지의 투구와 갑옷을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직계손이 소송을 한다면 문제화·이슈화될 것 같다. 그 이후 혜문 스님이 본인이 쌓아온 노하우를 토대로 분위기를 일으킨다면 찾아올 수 있을 듯싶다. 일본이 바로 돌려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못 돌아온다는 것을 알면 국민이 어떻게 느낄까.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일본으로부터 조선왕실의궤가 반환된다. -왕실의궤가 돌아오는 건 좋은 일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의궤 안의 그림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다. 자료에서 어떤 가치를 끄집어내 지금 시대에 재현해 내느냐 하는 점을 고민해야 한다. 의궤에는 모든 왕실의 행사가 기록돼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 안에 들어 있는 행사는 매우 화려하고 세밀한 문화적 볼거리요, 예술이다. 궁에서 이런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복원해야 한다. 문화재를 가지고 와서 다시 책장이나 박물관에만 넣어 둬서는 안 된다. 글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30일 오전 7시와 오후 7시 케이블 채널 서울신문STV의 ‘TV 쏙 서울신문’ 방영 ■ 이원씨는 누구 196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고종의 다섯째 아들인 의친왕의 9남 이충길씨의 맏아들이다. 부모가 말하지 않은 탓에 어린 시절 출생에 대해 모르고 자랐다. 이름도 왕실 이름인 ‘원’ 대신 ‘상협’을 썼다.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가족들과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기 전 아버지가 이씨를 데리고 창덕궁 낙선재를 찾아 영친왕비인 이방자 여사에게 인사를 시켰고 이 자리에서 집안사에 대해 처음 들었다. 미국 뉴욕기술대(NYIT)에서 방송학을 전공한 뒤 유명 케이블방송사인 HBO에서 프로듀서(피디)로 일하다가 6년 만에 귀국했다. 광고회사인 금강기획에서 5년간 일했고, 케이블 채널인 뷰티TV 설립에 참여하기도 했으며, 케이블 채널인 현대방송 피디와 현대홈쇼핑 본부장 등을 지내며 직장인으로 나름의 꿈을 키워 갔다. 황실의 상징적 적통을 이을 수 있다고 직감한 것은 2002년부터다. 당시 한 출판 기념회에서 삼촌인 이구 황태손을 만났는데 영어에 능통하고 국제적 감각을 지닌 이씨에게 호감을 보였다고 한다. 이씨는 2005년 7월 후사가 없었던 황태손이 숨을 거두면서 자신을 양자로 들여 법통을 잇도록 부탁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의 삶은 이때부터 180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경교장 복원, 내년 광복절 이전 완료

    경교장 복원, 내년 광복절 이전 완료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인 경교장(조감도·사적 465호)에 대한 복원 공사는 내년 광복절 이전에 끝마칠 것으로 보인다. 서울시는 28일 사료와 지적도, 사진, 증언 등 고증을 거쳐 경교장을 원래 모습으로 복원하고 임시정부와 백범 김구 선생의 활동상 등을 보여 주는 전시공간으로 조성한다고 밝혔다. 1993년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청사 복원과 2001년 중칭, 2007년 항저우 청사 복원에 이은 마지막 복원 작업이다. 1939년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진 경교장은 백범이 광복 이후인 1945년 11월부터 암살당한 1949년 6월까지 집무실 겸 숙소로 쓰던 곳으로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사용됐다. 1967년 삼성재단에 팔려 강북삼성병원 건물로 사용된 뒤 2005년 2층의 백범 집무실이 기념실로 단장됐지만 1층 등 나머지 공간이 병원 약국이나 창고 등으로 쓰였다. 이 과정에서 건물의 많은 부분이 변형되거나 훼손되고 말았다. 서울시는 경교장의 원래 모습을 모형으로 제작, 효창동 백범기념관에 전시하기로 했다. ‘정부수반유적 블로그’(blog.daum.net/nationsuban)를 개설해 온라인으로 경교장에 대한 각종 문헌과 기사 등 자료를 검색하고 복원 과정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올해 광복절과 임시정부 환국일(11월 23일)에는 경교장 복원 현장을 시민들에게 공개하는 행사도 연다. 안건기 서울시 문화재과장은 “역사적 가치가 큰 소중한 문화자산을 살아 있는 역사교육의 장으로 만들겠다.”면서 “시민들의 다양한 제안을 복원 과정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세대공감] 당신에게 드라마는 □□다

    [세대공감] 당신에게 드라마는 □□다

    ‘주인공이 잃어버렸던 기억을 다시 찾으려는 순간!’, 협찬 광고와 함께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가며 드라마가 끝이 난다. 감질나게 보여주는 다음 회 예고편은 드라마가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킨다. 이런 게 바로 드라마의 묘미, 사람들을 빠져들게 하는 이유다. 때문에 드라마는 남녀노소 구별이 없다. 드라마를 딱히 기피하는 사람도 드물다. 남자는 ‘뉴스·스포츠’, 여자는 ‘드라마’, 이런 공식도 깨진 지 오래다. 하지만 드라마에 대한 취향은 ‘각양각색’이다. 불륜을 소재로 하는 드라마나 극단적 ‘막장 드라마’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애잔한 가족드라마를 선호하는 이도 있다. 반면 서울 중곡동 조수영(23·여)씨는 “가족드라마는 가부장적이어서 싫다.”고 딱 잘라 말했다. 한편만 볼 수 있는 동 시간대 드라마, 선택 기준은 각자 다르다. 특히 세대별로 드라마 선호도와 선택 기준이 극명하게 나뉘기도 한다. 어떻게 다를까. 세대별로 ‘나는 이 드라마 이래서 좋다. 이래서 싫다.’를 들어봤다. 이영준·안석기자 apple@seoul.co.kr●다른 이유 없다! 출연 배우가 멋있어서 대학생인 이나라(22·여)씨는 최근 종영된 ‘시크릿가든’에 한동안 푹 빠져 있었다. 이씨는 멋진 남자 주인공 역을 맡은 탤런트 ‘현빈’을 보는 맛에 드라마를 봤다고 했다. 주변에선 “너무 잘생긴 주인공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하기도 했지만, 이씨는 오히려 “드라마가 만화영화처럼 판타지를 경험하게 해줘서 더 좋았다.”고 했다. 또 이씨는 “드라마 속 주인공과 연령대가 비슷한 점도 이 드라마를 몰입해 보게 된 이유”라고 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사랑 이야기라면 빠져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잔인한 복수를 다룬 드라마는 싫다고 말하는 이씨. 몰입할 수 없을 뿐더러 이유 없이 시큰둥해지는 등 와닿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녀는 “드라마는 가볍게 즐기려고 보는 것이지, 무겁고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잖아요.”라며 그 이유를 밝혔다. 로스쿨에 다니는 남광진(27)씨는 젊은 세대답지 않게 역사드라마를 좋아한다. 사극이 다른 드라마에 비해 스토리 구성이 탄탄하다는 이유에서다. 또 높은 작품성과 훌륭한 연기력도 사극을 선택하게 되는 중요한 요소라고 했다. 그는 가깝게는 ‘선덕여왕’(2009년)이, 멀게는 ‘태조왕건’(2000~2002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반면 남씨는 최근 아이돌 위주로 캐스팅 된 드라마에 대해 혹평했다.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연기력 부족이 첫 번째 이유다. 또 내용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고 과대 포장되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꺼리는 이유 중 하나다. 남씨는 “요즘 드라마는 상업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아 아쉽다.”며 “시청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작품성 있고 출연 배우들의 연기력도 뛰어난 국민 드라마가 제작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어학 공부하다 대만 드라마에 빠져 중국어를 전공하는 대학생 박지민(24·여)씨는 국내 드라마보다 해외 드라마에 더 관심이 많다. 특히 그녀는 ‘대만 드라마’(대드)를 무척 좋아한다. 친구로부터 중국어 공부에 도움이 된다며 건네받은 드라마 DVD 한 편이 그녀를 ‘대드’ 마니아로 만들었다. 박씨에게 대만 드라마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대만 배우들이 국내 배우들보다 훨씬 촌스러운 헤어스타일을 하고 있었지만, 박씨는 오히려 그 수수한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됐다. 특히 대드엔 여자라면 누구나 꿈꾸는 ‘백마 탄 왕자’를 그리는 내용이 많아, 볼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박씨. 그녀는 최근 ‘장난스런 키스’ ‘화양소년소녀’ ‘종극일반’ ‘운명처럼 널 사랑해’ 등 인기 대만 드라마들을 모두 섭렵했다. 대드 덕분에 박씨의 중국어 실력도 날로 늘었다. 수준급 중국어 실력을 갖추게 된 박씨는 이제 대만 드라마의 한국어 자막을 만드는 작업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학원 강사 김유선(29·여)씨는 일본 드라마(일드) 마니아다. 국내 드라마는 소재가 다양하지 않고, 엿가락처럼 늘어지는 극 전개가 몰입도를 떨어뜨린다는 이유에서다. 김씨는 “일드는 10회 정도 짧게 방영하는 동안 이야기를 압축적으로 다루고, 소재도 다양하다는 점이 매력”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녀는 “탈세를 잡아내는 국세청 직원의 이야기를 다룬 ‘나사케의 여자’와 초능력을 가진 집단과의 사투를 그린 ‘게이조쿠 스펙’이 기억에 남는다.”면서 “이들 드라마는 남녀간의 사랑을 다루진 않았지만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내 드라마에 바라는 점 한 가지를 꼽았다. 바로 직업의 세계를 심도 있게 다루는 드라마가 나왔으면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의사나 변호사 등의 직업을 다룬 드라마가 많았는데, 대부분 사랑 이야기에 그쳤다는 점이 식상했다고 털어놓았다. ●직장·학교서 대화 끼려면 드라마 필수 중학교 3학년 딸과 1학년 아들을 둔 이정혜(44·여)씨는 아이들 때문에 드라마를 챙겨 본다고 했다. 드라마가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가 된다는 이유에서다. 최근 그녀는 드라마에 나오는 가수 ‘2PM’이 누군지 몰라 딸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고 했다. 딸한테서 “엄마는 그런 것도 몰라?”라는 말을 들을 때면 가슴이 아프고 아이들과의 관계조차 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아이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는 것. 이씨는 “최근 종영한 ‘내 여자친구는 구미호’ ‘성균관스캔들’ ‘시크릿가든’을 아이들과 함께 보며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후 이씨의 직장생활도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회사의 젊은 여직원들과도 드라마를 소재로 이야기꽃을 피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씨는 “드라마가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나치게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드라마처럼 아이들과 함께 보기 껄끄러운 드라마는 가급적 TV에 방영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자영업을 하는 강연심(56·여)씨는 “일이 없을 때 집에서 드라마를 보는 것이 낙”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드라마 소재를 특별히 가리진 않는다고 했다. 예전에는 따뜻한 가족애를 그린 주말연속극이나 아름다운 사랑을 그려낸 멜로드라마를 즐겨 봤다는 강씨는 “최근에는 정치드라마 ‘대물’을 재밌게 시청했다.”고 말했다. 주인공이 정의의 편에 서서 치열하게 싸우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강씨는 “여성을 전면에 내세워 따뜻한 어머니 같은 여성 대통령을 그려냈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매력 포인트”라고 분석했다. 드라마 속에서 대통령이 자국 국민의 생명을 지키려 애쓰는 모습에 어머니가 자식을 돌보는 모습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강씨는 한발 더 나아가 “드라마가 비현실적인 면은 있지만 우리나라 정치도 드라마처럼 정의가 살아 있고 좀 더 이상적인 모습으로 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내비쳤다. 자영업을 하는 김성일(58)씨는 사극 광팬이다. 역사 그대로의 사극은 아니지만, 그래도 과거 인물들의 묘사를 통해 당시 역사적 분위기 정도는 충분히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씨는 예전 사극에 비해 최근 사극이 지나치게 각색이 심해 불만이다. ‘용의 눈물’(1996~1998년) ‘왕과 비’(1998~2000년) 등의 사극은 역사적 고증도 탁월했고 배우들의 연기력도 캐릭터에 녹아들 만큼 훌륭했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김씨는 “최근 종영된 ‘동이’나 ‘천추태후’ 같은 사극이 주목받지 않은 역사적 인물들을 조명한다는 취지는 좋았지만, 왜곡이 심하고 억지 로맨스가 끼어들어 약간의 거부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다양한 소재의 ‘퓨전 사극’은 처음부터 허구를 표방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역사 드라마라면 철저한 역사 고증을 바탕으로 제작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왜곡과 과장이 넘치는 사극을 보고 아이들이 역사를 잘못 이해할까 봐 우려스럽다.”는 게 그 이유다. ●대학 전공 때문에 역사드라마가 좋아 공무원 김덕영(47)씨도 역사드라마를 좋아한다. 대학에서 사학을 전공했기 때문이다. 그에겐 각색된 드라마를 보며 실제 역사와 그 차이를 살펴보는 것이 흥미로운 일이다. 가장 즐겨 봤던 드라마로 태조 왕건을 꼽은 김씨는 “지나치게 역사를 비약한 게 아니라면 역사물이야말로 삶에 가장 많이 도움이 되는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김씨는 “실제로 역사물을 보다 보면,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삶의 지침을 얻을 수도 있고 실질적으로 교육 효과 또한 크다.”며 사극 칭찬을 늘어놓았다. 반면 김씨는 가벼운 로맨스는 현실성이 떨어져 싫어한다. “최근 드라마를 보면 젊은 층 위주로만 돼 있고 그들의 연애 방식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또 “주인공들의 연기력도 아쉬울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에겐 대충 결말을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인 여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를 만나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구성도 불만이다. ●“드라마는 어린 시절 아픈 추억” 송석근(58)씨는 “드라마는 어린 시절의 아픈 추억”이라고 말했다. 충북 청주의 한 시골에서 자란 송씨는 “어린 시절에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동네 사람들이 부잣집의 TV 앞에 옹기종기 모였지만, 주인집 할머니가 쉽게 보여주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특히 집주인이 가난한 집 아이와 부잣집 아이를 차별해 TV 드라마를 보여줬던 것이 너무 서러웠다고 했다. 그래도 송씨는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본 드라마의 줄거리를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탤런트 노주현씨가 출연했던 ‘아씨’, 배우 문희가 나왔던 ‘미워도 다시 한번’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전했다. 송씨는 “당시에는 아내 있는 남자가 처녀를 건드리는 일은 대사건이었다.”면서 “서로 사랑하지만 어쩔 수 없이 헤어지고 다시 만나 아이가 생기고, 뭐 이런 이야기들이 어린 저에겐 너무 신기했다.”고 말했다. 또 그는 “요즘 드라마에서 다루는 삼각관계는 예전 같은 애절함이 없고, 또 지나치게 자극적이어서 아쉽다.”고 덧붙였다. 주부 이정순(53·여)씨는 불륜드라마를 좋아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드라마는 불륜이라는 소재를 전문적으로 다룬 ‘사랑과 전쟁’. 좋아하는 이유는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부딪치게 되는 상황들을 그대로 담아 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이씨는 “주변 친구들과 수다를 떨면서 공유하게 되는 각종 결혼 생활의 어려움들이 드라마 잘 녹아날 뿐더러 드라마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한다.”고 전했다. 요즘에는 아침드라마를 즐긴다는 이씨. 아침드라마 역시 불륜이 소재인 경우가 많아서다. 이씨는 “특별히 거부감이 들기보다는 감정 이입을 통해 주인공의 심정을 이해하게 된다는 점이 즐겨 보는 이유”라고 말했다. 단, “불륜드라마도 지나치게 자극적이거나 막장으로 흐르면 거부감이 드는 건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사극과 같은 역사드라마는 싫어한다고 했다. 스토리가 진부하거나 뻔하다는 게 거부의 이유다.
  • [고전톡톡 다시읽기] 삼국유사 어떻게 완성했나

    일연은 우리 나이로 14살에 설악산 진전사로 출가하여 84살 경북 군위의 인각사에서 입적했다. 충렬왕의 총애를 받으며 국존의 지위에까지 올랐던 최상층 승려 일연. 그는 출가해서 입적하기까지의 60년 동안 설악산의 진전사, 광주의 무량사, 남해의 정림사, 개경의 선월사와 불일사, 현풍의 보당암, 문경의 무주암과 묘문암, 달성의 인홍사, 포항의 오어사, 청도의 운문사, 군위의 인각사 등 전국 각처를 떠돌았다. 일연은 경북 군위의 인각사에 머물던, 생애 마지막 5년(79~84세) 동안 ‘삼국유사’를 집필 했고 제자 무극이 편찬을 도왔다고 한다. 그러나 ‘삼국유사’의 발간이 단지 몇 년 동안에 이루어진 작업의 결과는 결코 아니었다. 일연이 승려 생활 60년 동안 전국을 떠돌며 읽고 듣고 수집한 그 방대한 ‘자료’들이 없었다면 ‘삼국유사’의 편찬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삼국유사’에는 수많은 자료가 인용되어 있는데, 국내의 역사서와 중국의 역사서만이 아니라 방대한 분량의 금석문, 고문서, 사적지, 설화 등 해당 지방에 머물거나 가보지 않고는 구할 수 없는 사료가 대부분이다. 일연은 현지를 방문하여 각종 문서, 유물과 유적, 설화 등을 조사·판독·채록하며 필요한 자료들을 수집했다. ‘삼국유사’에는 현지답사를 통해 직접 관찰한 유물유적의 상태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관찰만으로 미흡한 부분에 대해서는 현지 노인들에게 직접 조사한 이야기를 덧붙여 보완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사건들은 멋대로 가공한 이야기가 아니라 철저한 조사와 고증을 거친 결과물이다. 단 하나의 이야기도 일연은 허투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 일연은 부지런히 조사하고, 수집하고, 채록했다. 그리고 생의 막바지에 ‘삼국유사’를 편찬하고 죽었다. 일연의 ‘삼국유사’로부터 얻은 깨달음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이야기의 역사를 쓰기 위해 거의 평생을 길 위에 섰으며 관찰하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사실. 그 여정에서 얻은 수많은 이야기들이 ‘삼국유사’를 통해 살아 숨쉬고, 그 숨결은 천년을 넘어 우리에게까지 이어져왔다는 사실.
  • ‘孔子’ 천하의 그도 귀족 횡포는 못 견뎌냈다

    ‘孔子’ 천하의 그도 귀족 횡포는 못 견뎌냈다

    ‘공자 평전’(안핑 친 지음, 김기협 옮김, 이광호 감수, 돌베개 펴냄)은 ‘권위와 신화의 옷을 벗은 인간 공자를 찾아서’란 부제처럼 인간 공자의 삶을 집중 조명한다. 중국은 세계 54개국에 156곳의 공자학원을 개설할 정도로 공자를 정치적 아이콘으로 삼아 여러모로 활용하고 있다. 2500여년 전의 인물이 다시 부활할 정도로 힘을 가진 공자지만 “공자 왈, 맹자 왈”로 시작하는 경전의 낡은 구절들에 파묻혀 인간 공자 본연의 모습은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다. 저자인 안핑 친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는 시공을 거슬러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공자를 만나려고 시도했다. 미국의 대표적 중국 사학자 조너선 스펜스 예일대 교수의 부인이기도 한 안핑 친은 중국계 미국인으로 청대 고증학을 전공한 역사학자다. 그는 고증학 전공자답게 고대 문헌을 정독해가면서 가장 믿을 만한 인간 공자의 모습을 복원해냈다. 지금까지 공자의 삶에 대한 이해는 주로 사마천의 사기 ‘공자세가’를 통해 이뤄져 왔다. 하지만 저자는 사기보다 더 오래된 문헌인 ‘논어’ ‘춘추좌씨전’ 등을 바탕으로 공자의 삶, 특히 공자의 만년을 생생하게 되살려낸다. 게다가 곽점본(죽간 ‘노자’)이나 상하이박물관의 죽간 등 최근 발굴된 고고학 자료까지 활용했다. 책은 기원전 497년 공자가 돌연 관직에서 물러나 조국 노나라를 떠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마땅히 갈 곳도 분명치 않았던 공자는 54세의 적지 않은 나이에 왜 서둘러 관직에서 물러나 노나라를 떠났을까. ‘논어’에는 “제나라 사람들이 여인과 악대를 선물로 보내고 (노나라 실권자인) 계환자가 이것을 받고서 (공자는)사흘 동안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공자가 떠났다.”고 짧게 언급돼 있다. 사마천은 공자가 정치를 계속 맡으면 노나라가 패권을 쥐게 될 것을 걱정한 제나라가 노나라에 미인과 말을 선물로 보냈고, 공자는 임금이 제사 고기를 신하들에게 주지 않은 데 실망하여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고 기술하고 있다. 저자는 제나라가 여인과 악대를 선물로 보낸 것과 신하들이 제사 고기를 받지 못한 이야기 등은 사실이라기보다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고자 둘러댄 핑계일 뿐이라고 추정한다. 안핑 친은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기 1년 전인 기원전 498년에 노나라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등 귀족 가문의 횡포가 극심했고, 공자의 노력만으로는 이 상황을 돌이킬 수 없었기 때문에 공자가 떠난 것으로 본다. 저자는 공자가 노나라를 떠나 유랑 길에 나서게 된 사연을 비롯해 공자의 습관과 취향, 사람들과의 관계 등 공자의 인간적인 면모를 공자가 살았던 사회역사적 배경과 그와 연관된 수많은 인물을 통해 보여준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죽간(종이 이전의 종이로 글자가 쓰인 대나무 조각)으로부터 오래된 진흙을 제거하고자 세척 용액에 담그면 글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일부 글자들은 대나무 표면으로부터 말 그대로 튀어나와버리기도 한다는 것이다. 마치 생명과 함께 자유도 되찾으려는 것처럼”이라고 말했다. ‘공자 평전’은 대나무에서 튀어나온 글자처럼 공자의 삶을 살려냈다. 1만 5000원.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구절초 천국 전북 정읍·임실 ‘옥정호’의 가을 수채화

    구절초 천국 전북 정읍·임실 ‘옥정호’의 가을 수채화

    가을은 색(色)으로 우리 곁을 찾아 옵니다. 붉거나, 노랗거나, 혹은 그 가운데쯤의 빛깔로 세상을 물들입니다. 반면 수채화처럼 담담하고 차분하게 가을을 이야기하는 것도 있습니다. 구절초가 그렇습니다. 산과 들이 붉고 화려하게 물들어 갈 때, 소박하면서도 청초한 모습으로 피어나 가녀린 몸을 바람에 맡긴 채 하늘거립니다. 구절초가 무리지어 피어 여행자를 유혹하는 곳이 있습니다. 옥정호(玉井湖)입니다. 전북 정읍과 임실에 걸쳐 있는 호수로, 가을에 특히 아름답지요. 그 호수 끝자락, 그러니까 섬진강의 최상류쯤 되는 정읍시 산내면에 구절초 군락지가 있습니다. 요즘 아침나절이면 피어나는 물안개와 어우러지며 그야말로 선경을 펼쳐내고 있습니다. ●어린아이의 웃음을 닮은 꽃 구절초를 보고 있자면 깔깔대며 웃는 어린아이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노란 암술을 둘러싼 채 활짝 벌어진 꽃술이 가지런한 치열 드러내며 웃는 어린아이의 모습 그대로다. 구절초 꽃밭에 들면 어디선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쏟아지는 듯한 환청을 경험하는 것도 그런 까닭일 게다. 구절초(九節草)는 5월 단오에 줄기가 다섯 마디가 되고, 음력 9월 9일에는 아홉 마디가 된다고 해 이름 지어졌다. 꽃을 완상하며 무슨 의학적 효험을 따질까마는, 딸을 출가시킨 우리네 친정 어머니들은 예전부터 9월이 되면 갓 피어난 구절초를 정성껏 채집해 그늘에 말려 두었다가 시집간 딸이 해산을 하고 친정에 오면 달여 먹이곤 했단다. 구절초가 신선이 어머니들에게 준 약초라는 뜻의 선모초(仙母草)라 불리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구절초가 군락을 이룬 구절초테마공원은 산내면 매죽리 야산에 조성돼 있다. 그런데 오지 산골마을에서 구절초축제를 벌이게 된 사연이 애처롭다. 면사무소 관계자에 따르면 2004년께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에서 전국 1500여개 면의 소득수준을 조사했는데, 산내면이 ‘꼴찌’의 불명예를 안았다. 몰랐다면 그러려니 했겠으나, 막상 알고 나니 주민들 마음의 상처가 커졌을 터. 정읍시와 산내면, 그리고 주민들이 힘을 합쳐 소득 수준을 높이기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섰고, 대안으로 나온 것이 축제였다. 그 첫 작품이 2005년 열린 제1회 옥정호구절초축제. 하지만 겨우 4만명이 드는 참담한 실패를 맛봤다. 이듬해 축제를 치르지 않고 힘을 비축한 주민들은 2007년 현재의 장소로 옮겨 축제를 열었다. 이해 10만명, 그 이듬해부터는 35만여명이 찾으면서 유망한 지역축제 반열에 올랐다. ●아흔아홉 구절재 지나면 구절초꽃밭 예전엔 아흔아홉 구비를 돌아야 했다는 구절재를 지나면 곧바로 산내면 소재지다. 구절초테마공원은 여기서 옥정호를 끼고 우회전한 뒤 추령천을 따라 3㎞쯤 더 가야 한다. 추령천 돌아 나가는 품새가 예사롭지 않다. 가을걷이를 앞두고 노랗게 여문 벼들과 붉게 물들어 가는 주변 산세, 그리고 예천의 회룡포처럼 320도 굽이 돌아가는 물줄기가 어우러지며 넉넉한 가을 풍경을 펼쳐내고 있다. 추령천이 망경대를 돌아가는 초입, 그러니까 주민들이 노루목이라 부르는 여울을 지나면서 구절초 꽃동산이 시작된다. 산책로에 들면 구절초 향기가 먼저 알고 나와 여행자를 감싼다. 절로 기분이 상쾌해지는 향기다. 딱히 어디라 할 것 없이 구절초꽃들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벌과 나비들은 때 아닌 횡재를 만나 부산하게 날아 다닌다. 구절초테마공원 면적은 11만 8890㎡. 이중 구절초밭만 8만㎡(약 2만 5000평)에 달한다. 구절초 축제는 이미 막을 내렸다. 하지만 꽃은 이제야 절정을 이루기 시작했다. 필경 올해 전국의 여러 꽃축제 담당자들을 애타게 만들었던 온난화 현상 때문일 터다. 아직도 채 피지 않은 꽃봉오리들이 싱싱하게 남아 있어, 11월 첫 서리가 내릴 때까지는 꽃들의 축제가 계속될 것이란 게 현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구절초 꽃동산은 소나무 숲 사이에 펼쳐져 있다. 야트막한 산자락 능선을 따라 이어진 꽃들의 향연을 보자면 비밀의 정원에 들어선 듯한 환상에 빠진다. 특히 새벽녘 추령천이 피워 올린 물안개가 소나무 사이를 지나 구절초들을 어루만질 때, 혹은 늦은 오후의 햇살이 숲 전체를 포근하게 감싸안을 때, 그런 느낌은 더하다. 주변의 온갖 허물들을 가려주는 햇살과 물안개가 그래서 더욱 고맙다. 공원의 규모는 그리 넓지 않다. 솔숲에 난 산책길은 1㎞ 남짓. 사진전 행사장 등 공원을 둘러친 이벤트 코스까지 합치면 3㎞ 남짓 된다. 숲 가운데 마련된 벤치에서 다리쉼을 하거나, 꽃과 더불어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어도 두어 시간이면 족하다. 다만 꽃밭 사이사이에 반들반들할 정도로 ‘잘 닦인 길’이 나 있는 것은 눈엣가시다. 좀 더 나은 사진을 카메라에 담으려는 사진작가들이나, 꽃밭 사이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일부 여행객들의 욕심이 남긴 상처들이다. 아무리 조심해도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꽃밭은 꼭 그만큼의 상처를 입기 마련이다. 그런데 거리낌없이 꽃밭으로 ‘직진’하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눈에 띈다. 자신을 위한 공원에서조차 ‘천수’를 누리지 못한 채 목이 꺾인 구절초들의 모습이 애처롭다. 공원 아래 능교까지는 걸어 보는 게 좋겠다. KBS 드라마 ‘전우’의 마지막 전투 신과 예전 영화 ‘남부군’ 등의 촬영지였던 다리다. ●옥정호가 전해 온 가을의 서정 백일몽을 꾸듯 꽃과 더불어 한때를 보냈으니, 이제 가을을 닮은 호수, 옥정호를 둘러볼 차례. 해마다 이맘때면 더없이 서정적인 풍광을 선보이는 곳이다. 옥정호는 정읍과 임실 지역을 흐르는 섬진강 상류의 물줄기를 막아 댐을 만들면서 생긴 인공호수다. 운암호, 섬진호 등으로도 불리는데, 물만 가두고 있는 여느 저수지와는 풍경의 깊이가 다르다. 면적은 26㎢ 남짓. 물줄기가 넓게 퍼져 있지 않고, 물뱀이 유영하듯 산자락 구비구비를 에둘러 돌아간다. 구절초 테마공원을 나와 산내면사무소 앞 네 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옥정호와 나란히 달리는 강변도로다. 옥정호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7~8분을 달리면 수침동마을. 마을 아래 수변공원에서 다리쉼을 하며 구절초의 향기를 되새기는 것도 좋겠다. 수침동마을을 지나면 장금리다. TV드라마 ‘대장금’의 실제 주인공의 출생지로 추정되는 곳이다. 산내면사무소 관계자는 이에 대한 역사학계의 고증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있다고 전했다. 옥정호 최고의 전망대는 단연 국사봉이다. 국사봉전망대에서 다소 된비알의 등산로를 따라 20분 남짓 올라가면 믿을 수 없이 빼어난 옥정호의 모습이 한눈에 잡힌다. 옥정호 가을 풍경의 절반은 물안개의 몫. 새벽녘 물안개가 호수를 감쌀 때면 그야말로 선경이 따로 없다. 호수 가운데 떠 있는 섬은 ‘외안날’이다. 이름만큼이나 독특한 형태를 하고 있다. 박대서(90) 할아버지가 뭍과 섬을 오가며 이곳에 밭을 일구고 있다. 최근 외안날이 야생화 공원으로 조성된다는 등의 소문에 주민들이 반색하고 있다. 그러나 임실군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임실군청 섬진강개발팀 관계자는 “박 할아버지와 토지 보상 등을 끝낸 것은 사실이지만, 외안날을 개발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실무 부서의 생각”이라며 “필요할 경우에만 최소한의 정비작업에 그칠 것”이라고 못 박았다. 옳은 판단이다. 그 어떤 ‘개발’이 지금보다 더 자연스럽고 빼어난 외안날을 우리에게 선사할 수 있을까. 글 사진 정읍·임실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지역번호 063) ▲가는 길 서울에서 승용차로 갈 경우 호남고속도로→태인나들목→산내면 방면→능교리→매죽리 옥정호 구절초 테마공원. 산내면 주민센터 539-7600. ▲잘 곳 송참봉조선동네(www.folkvillage.co.kr)는 초가집으로만 조성된 전통 테마마을. 어른 1만원, 초등학생 5000원. 532-5004. 이평면 청량리에 있다. 운암대교 주변에도 숙박업소들이 몰려 있다. ▲맛집 백학관광농원은 유기농 식재료만으로 음식을 만드는 집. 화학조미료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도시인의 입맛에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1인 2만~3만원. 정읍시 신정동에 있다. 535-9032. 산외면 한우마을(www.산외자연한우마을.kr)에서는 한우를 싼 값에 맛볼 수 있다. 538-5544. ▲주변 볼거리 단풍 명산 내장산이 지척이다. 관촌면 덕천리 임실 치즈마을(www.임실치즈마을.com)에서는 모차렐라 치즈 만들기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643-3700.
  • 中 경제고전 ‘관자’로 푼 국부론

    요즘 세계 무대에서는 중국이 화두다. 최근 중국인 선원 석방을 위해 경제제재라는 무기로 일본을 굴복시켰다. 뿐만 아니다. 위안화 절상으로 세계 무역을 압박하고 아프리카 자원개발 확보를 위한 총력외교 등으로 세계질서를 압도하고 있다. 이래저래 세계 패권을 향한, 21세기 새로운 중화의 시대를 열려고 하는 중국의 행보에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부책’(자이위중 지음, 홍순도·홍광훈 옮김, 더숲 펴냄)은 중국 최고 지성집단인 베이징대학의 ‘중국 및 세계연구센터’ 핵심 프로젝트의 성과물이다. 자신들의 고전 경제사상을 연구해 서구경제학과 차별화한 그들만의 이론을 구축하고자 한 책이다. 중국 최고의 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자이위중이 중국 고전 경제사상의 핵심 경전인 ‘관자’를 흥미롭게 분석했다. 나라를 다스리고 경제적 난관을 타개하는 위대한 사상 ‘관자’에 대한 역사적 고증과 현대적 관점에서 중국의 경제학, 나아가 동양 경제학의 역사성과 정확성, 그리고 우수성을 입증하면서 중국 스스로가 서구 경제학에서 벗어나 자신의 실정을 기반으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관자’의 지혜와 가치를 설명하는 입문편과 좀 더 심층적인 경제적 통찰과 현대이론을 접목시켜 분석한 이론편, 국내 경제전략 및 국제 경제전쟁과 관련한 36가지 전략을 담은 실천편으로 구성돼 있다. 국가 개입과 국가 주도하의 시장경제를 주창하면서 국가가 시장을 자유방임 상태로 놔뒀을 경우 나타날 수 있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경고하는 부분도 있다. 특히 남는 것을 덜어 부족한 것을 보충하는 배분 방법으로 백성들의 이익 균형과 사회의 조화로운 발전을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서양경제학에 대한 동양경제학의 재정립’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중국 지성계의 반성이 녹아 있으며 중국의 힘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과 서구와 다른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사상과 체제를 준비해 가는 중국의 현재 전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2만 20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누드 브리핑] 사육신 vs 사칠신

    “사칠신(死七臣)이냐, 아니냐를 놓고 민원이 많아 골머리를 앓아요.” 문충실 동작구청장이 지난 6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쪽에서는 김문기(1399~1456) 선생을 묘역에서 빼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다른 쪽에선 넣는 게 맞다고 맞서기 때문이다. 김문기 선생의 후손인 김녕 김씨 충의공파 대종회는 “수양대군(세조)이 1455년 조카인 단종을 몰아내자 단종 복위를 꾀한 최고회의를 공조판서 겸 삼군도진무(군 최고위직)인 김문기 선생이 주재했고, 거사의 성패를 가름할 군대 동원까지 맡았기 때문에 당연히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량진 사육신묘 조성 과정은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원래 성삼문·박팽년·이개·유응부 선생만 모셨지만, 1977년 서울시가 묘역을 성역화하면서 하위지·유성원·김문기 선생의 묘도 들어섰다. 이 무렵 서울시는 문교부에 ‘김문기 선생의 사육신 묘역 봉안여부’에 대한 고증을 요청했다. 결국 국사편찬위원회 조사를 거쳐 사육신으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명칭과 달리 일곱 충신의 묘가 봉안된 것이다. ‘사칠신’ 후손들은 해마다 10월9일이면 이곳에 모여 추모제향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김문기 선생 묘역 봉안을 둘러싸고 한쪽에선 당시 김재규(1926~1980) 중앙정보부장이 권력을 등에 업고 선조를 모시도록 힘썼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동작구 관계자는 7일 “세조실록에는 유응부 대신 김문기가 소개되고, 생육신으로 꼽히는 남효온 선생의 육신전엔 김문기 아닌 유응부가 나오는 등 역사서 내용이 엇갈린 통에 이런 혼선을 빚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한수기자 onekor@seoul.co.kr
  • ‘적인걸:측천무후의 비밀’, 역사보다 ‘재미’를 탐했다

    ‘적인걸:측천무후의 비밀’, 역사보다 ‘재미’를 탐했다

    영화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이하 적인걸)을 보기 전에 알아둘 역사적 상식 몇 가지. 적인걸은 당나라, 중국 최초 여황제 측천무후 통치기에 재상을 지난 실존 인물이다. 측천무후는 당 태종의 후궁에서 태종의 아들 고종의 황후가 됐고, 아들 황제들의 모후에서 여황제로 등극했다. ‘적인걸’은 당나라 고종 사후, 측천무후가 황제로 등극하기 직전인 690년을 배경으로 한다. 여자 황제의 등극에 반발하는 무리를 공포정치로 다스리던 측천무후(유가령 분)는 황제 즉위식에 맞춰 건축 중이던 120m의 거대 불상에서 신하들이 불에 타 죽는 의문의 연쇄살인사건에 직면한다. 이에 측천무후는 8년 전 반역 혐의로 좌천시킨 천재수사관 적인걸(유덕화 분)를 불러들이고 측근 정아(이빙빙 분)와 범죄수사관청 대리사의 순검 배동래(등초 분) 함께 사건을 수사하도록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적인걸’은 잘 만들어진 오락영화다. 역사적 사실보다는 허구적 재미에 더 초점을 맞췄지만, 팩션(faction)에 가미된 액션과 추리, 부분적인 유머가 러닝타임 2시간을 꽉 채워 지루할 틈이 없다. 출연진과 제작진 역시 훌륭하다. ‘동양의 스필버그’로 불리는 서극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적인걸’에서는 월드스타 유덕화와 배우 양조위의 아내이자 배우인 유가령, 함께 중국 3대 천후로 꼽히는 이빙빙 등이 호흡을 맞췄다. 또 ‘연인’의 양가휘의 진중함과 떠오르는 스타 등초의 알비노(백색증) 캐릭터 역시 눈여겨볼 만하다. 중국 역사상 문화적으로 가장 로맨틱했고, 상업적으로 번성했던 당나라 시대의 재현 역시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영화의 주 배경인 낙양의 왕궁과 거대한 불상, 번화한 거리, 비밀스러운 지하 귀도시가 시선을 끈다. 또한 고증을 통해 되살려낸 웅장한 황실 의복과 화려한 장식들은 즐거운 눈요깃거리를 제공한다. 물론 중국영화 특유의 과장된 표현과 대부분의 캐릭터가 무술의 고수인 설정(무술감독이 무려 배우 홍금보이니 충분히 많은 무술장면을 넣을 수밖에)이 가끔씩 실소를 자아내기도 한다. 당나라 낙양의 조감도와 인체 자연발화에 사용된 CG는 자연스럽지 못한 부분도 눈에 띄지만 완성도를 떨어뜨릴 만큼은 아니다. 10월 7일 국내 개봉 예정. 사진 = 영화 ‘적인걸: 측천무후의 비밀’ 스틸이미지 서울신문NTN 박민경 기자 minkyung@seoulntn.com ▶ ’소심’ 산다라박 "문자 답장 안온 멤버번호 삭제" 깜짝 고백▶ 우은미 ‘슈퍼스타K’에 보내는 ‘부탁해’로 가수 데뷔▶ 김가연, 악플러에 일침 "내가 역겨워? 님은 깨끗한 인생?"▶ 김소연 ‘강심장’서 노안 굴욕담 공개…"10대 때 이미 30대"▶ ’타이타닉’ 할머니 배우 글로리아 스튜어트, 100세로 별세
  • “마오쩌둥 첫사랑役 ‘색계’ 탕웨이가 웬말”

    “마오쩌둥 첫사랑役 ‘색계’ 탕웨이가 웬말”

    중국이 마오쩌둥 전 주석의 첫사랑에 대한 논란으로 뜨겁다. 내년 중국 공산당 창당 90주년에 맞춰 개봉될 초대형 블록버스터 ‘건당위업(建黨偉業)’ 때문이다. 지난 1917년부터 1921년까지 중국 공산당의 창당 과정을 담게 될 영화에서는 마오와 첫 여인으로 알려진 ‘강남 제1의 재원’ 타오이(陶毅)의 애절한 사랑, 이념 탓에 갈라서는 이별 과정 등도 비중 있게 묘사될 예정이다. 무엇보다 논란은 타오이 역을 맡게 된 배우 탕웨이(湯唯)로 인해 불거졌다. 탕웨이는 2008년 개봉된 중국·타이완 합작영화 ‘색·계’에 출연, 관능적인 연기를 펼친 중국 출신 여배우다. ‘색·계’는 중국에서 친일파 미화 등을 이유로 ‘매국 영화’라는 낙인이 찍혀 상영금지됐고, 탕웨이 역시 연예 활동이 전면 금지됐다. 이런 상황에서 이달 초 탕웨이가 타오이 역으로 캐스팅되면서 ‘해금’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중국 사회는 들끓었다. “3류 애정영화 여배우가 어떻게 마오 전 주석의 연인 역을 맡을 수 있느냐.”는 등의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에 관영매체들이 “연기자가 배역 소화를 잘 못할 수는 있지만 못 맡을 배역은 있을 수 없다.”며 탕웨이를 적극 옹호하고 나서자 다시 진정되는 듯했다. 그러나 곧이어 역사 왜곡 시비에 휩싸였다. 마오 전 주석의 유일한 손자인 중국 인민해방군 마오신위(毛新宇) 소장은 지난 9일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인터넷 사이트에서 네티즌들과 대화하면서 “할아버지 주변에 그런 여인은 없었다.”며 영화 내용을 부정했다. 중국 공산당사를 연구하는 마오 소장은 “1921년 공산당 창당을 전후해 할아버지가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자 부인은 할머니 양카이후이(楊開慧) 한 사람뿐이었다.”고 쐐기를 박았다. 관영 신화통신은 지난 13일 이 소식을 전하면서 “마오 전 주석은 일반인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을 창당한 인물”이라면서 “당사 연구를 통해 이 문제를 신중하게 고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이징 박홍환특파원 stinger@seoul.co.kr
  • 사비성을 통해 본 기술강국 백제

    사비성을 통해 본 기술강국 백제

    13~15일 오후 9시50분 EBS 다큐프라임은 ‘역사복원 대기획 3부작-사비성 사라진 미래도시’ 편을 방영한다. 사비성(지금의 충남 부여) 천도를 둘러싼 기술적·정치사회적 변동을 완전히 복원하기 위해 EBS가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 다큐멘터리물이다. 사비성은 성왕이 백제 부흥을 내걸고 세 번째 도읍지로 정한 계획도시다. 당대로서는 최첨단 기술이 동원된 거대한 토목사업이자 기득권 세력에게는 혁명적 변화였을 것이다. 그래서 다큐의 초점은 패배한 국가 백제가 아니라 ‘기술·콘텐츠 강국 백제의 복원’이다. 최근 고고학계의 발굴작업이 진전되면서 사비성이 계획적인 신도시였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방어를 위한 외성, 신분에 따른 주거지역 구분, 바둑판처럼 정연하게 구획된 도로와 배수로 등을 검토해 보면 한반도뿐 아니라 동아시아 도성사에서도 특출한 존재라는 것이다. 여기다 ‘구드래’ 국제항까지 갖췄다. 원래 사비성 일대는 습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습지 위에다 이만한 계획도시를 들어앉히기 위해서는 최소한 15년에 걸쳐 200만명의 노동력이 동원됐을 것이라 학계는 보고 있다. 1400년 전에 그 작업을, 대체 어떻게 해냈을까. 다큐는 고고학자, 역사학자, 건축학자 등 전문가 13명의 고증을 받아 이 작업을 생생하게 복원한다. 1부는 무령왕에 이어 왕위에 올랐던 성왕이 사비 천도를 단행하는, 도시 건설 전반부를 다룬다. 어린 나이임에도 성왕은 당차게 천도를 추진하지만, 대다수의 보수 귀족들은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들어 반대에 나선다. 성왕은 개의치 않고 사비를 신도시로 낙점한다. 백마강 덕분에 이웃 나라들과의 교류가 쉽고, 곡창지대를 끼고 있어 경제적 기반도 탄탄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문제는 습지. 성왕은 습지라는 악조건을 역이용해 대형 연못을 만들어낸다. 질척한 물을 농수확보와 홍수조절에 쓸 물로 바꾼 것이다. 2부는 고구려의 남침과 홍수를 이겨내고 마침내 사비성을 완성시키는 단계를 다룬다. 외부 성곽 공사에 이어 내부 공사를 어떻게 하느냐가 핵심 관건인데, 이는 정치 개혁과 맞물려 있다. 성왕은 시가지를 조성하면서 5부 25항이라는 행정체계를 구축하고, 중앙 귀족의 권력 약화를 위해 22부사를 만든다. 1·2부가 보는 재미를 위해 드라마적인 요소를 많이 넣었다면, 3부는 본격적으로 사비성 건설의 비밀을 파헤친다. 사비 땅이 얼마나 습했는지, 시가지 구획이 얼마나 정교했는지, 지금으로선 금강 하류에 불과한 백마강에 어떻게 큰 배가 드나들 수 있었는지, 사비성 외곽에 크게 두른 나성이 어떻게 지형지물을 정교하게 이용해 쌓아졌는지 등을 전문가들의 분석과 실측을 통해 제시한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