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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승현의 취재수첩-역사와의 대화

    金大中대통령의 요즈음 화두(話頭)는 ‘역사와의 대화’다.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가 도전과 응전을 공식화한 저서 ‘역사의 연구’를 가장 감명깊게읽은 책으로 꼽고있는 金대통령의 자연스런 역사인식이다. “어차피 인생은 가는 것이지만 우리가 하는 일은 역사에 남는다.국민과 한민족 전체를 위해 보람된 일을 하자” “대통령도 영원한 게 아니고,수석들도 영원하지 않다.역사는 우리가 한일을 반드시 쓰게 돼 있는 만큼 청와대에서 함께 일한 일원으로서 역사의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일하자”-지난 3일 밤 서울 모처에서 부인 李姬鎬여사와 함께 金重權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수석비서관,경호실장을 부부동반으로 초청,‘외식’을 한 자리에서의 언급이다. 金대통령은 “국민과 국가,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얼마나 최선을 다했느냐가 중요하다”며 “이 시대에 일했던 게 우리 스스로 자랑스럽고,후손에게도부끄럽지 않은 평가를 받도록 하자”고 다짐했다.金대통령의 역사인식은 ‘권력의 속성’에 빠져들기 쉬운 집권 1년에 대한 경계이자 마음을다잡는 ‘채찍’인 셈이다. “언덕을 하나 넘으면 또 언덕이 기다리고 있고,국민의 기대는 더욱 커지고 있으니 또다른 언덕을 향해 나아가자”는 金대통령의 추스림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외환위기 극복,대북정책의 주도권 확보 등 현시점에서의 성과에 안주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이 없다는 지적이다. 모처럼 해방감을 만끽했을 첫 외식에서 金대통령의 ‘금언(金言)’은 현재의 파워엘리트와 공직사회를 겨냥한 집권 2차연도의 풍향계이자 방향타로 작용할 것 같다.
  • 李會昌총재 YS에 ‘직격탄’

    한나라당 李會昌총재와 金泳三전대통령 사이에 미묘한 기류가 표면화되고있다.金전대통령이 상도동 ‘만찬정치’를 통해 당내 ‘줄세우기’를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李총재가 19일 공식석상에서 “국가 원로로서 뒤에서 조용히 계시는 게 바람직하다”며 金전대통령의 행태를 비판했다. 특히 金전대통령의 텃밭인 부산에서의 발언이어서 李총재의 ‘작심(作心)’이 엿보인다.李총재가 향후 정국상황을 감안,‘李會昌식’ 정치의 정체성(正體性)과 차별성을 회복하려는 시도에 나섰다는 분석이다.金전대통령의 돌출행보로 인한 당내 동요를 차단하려는 속내도 담겼다.金전대통령이 최근 만찬에서 李총재의 지도 노선을 문제삼은 데 대한 반격으로도 해석된다. 李총재의 이날 발언은 부산시민회관에서 열린 ‘한·일어업협정 규탄 국정보고대회’ 직전 오찬 기자간담회 도중에 나왔다.“최근 활동을 시작한 金泳三 全斗煥전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李총재는 “특별히 관계 설정에 신경쓰지는 않는다”고 전제,“다만 국가 원로로서 뒤에서 조용히 계시면서 후배들에게 좋은 충언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때마침 간담회장에 있던 金전대통령의 측근 朴鍾雄의원은 기자들에게 “YS는 일관되게 한나라당이 잘되라고 얘기했는데 이럴 수 있느냐”며 “全전대통령과 YS를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역사인식의 문제”라고 발끈했다. 이에 李총재는 安澤秀대변인을 통해 “전직 대통령의 예우차원에서 한 발언으로 특별한 의도는 없다”며 ‘일과성 해프닝’이라고 해명했다.그러나 이날 신경전은 李총재와 金전대통령 사이의 긴장감이 이미 위험수위에 이르렀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반증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독자의 소리-在日 한국Y회관 경매처분 안될말

    언론을 통해 일본의 한국YMCA회관이 외환은행에 대한 부채로 경매에 부쳐졌다는 소식을 들었다.이곳은 3·1운동의 도화선인 2·8독립선언이 이루어진민족의 얼이 살아있는 민족문화유산이다.우리민족에게는 그 무엇과도 바꿀수없는 소중한 유산이다. 이런 회관을 외환은행이 이자채무를 이유로 경매처분하려고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본다.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민족문화유산을 처분한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다시한번 잃게 하는 제2의 매국행위라고 볼수 있기 때문이다.또 부실경영으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외환은행이 민족문화유산을 경매하려 한다는 점이 실로 유감이다. 올바른 역사인식을 다시 가다듬고 후세에게 물려줄 유산으로 지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민족의 얼은 돈으로 환산할 수없는 가치이므로 외환은행은 경매 절차를 즉시 중지해야 한다.또 국가는 부채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개입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허복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1동]
  • 한중일 외교관 바둑대회 20일 도쿄서 개최

    ┑도쿄 黃性淇 특파원┑ 한·중·일 3국 외교관 친선바둑대회가 20일 일본도쿄(東京)의 한 기원에서 열린다. 어업협정 교섭,역사인식 문제로 한때 어색하기도 했던 한·일,중·일간이‘반상(盤上)외교’를 통해 서로간의 이해를 높이는 기회가 될 것 같다.선수는 일본 외무성,주일 한국·중국대사관에 근무하는 바둑애호가.일본에선 16명,한국과 중국에서는 8명씩 출전할 예정이다. 모임은 외무성 바둑클럽의 단골인 한 기원이 한국과 중국대사관측에 3국 바둑대회를 제안해 이뤄졌다.독일·프랑스 대사관측에도 참가를 요청할 계획인데 기원측은 대회가 외교관의 미니 올림픽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한국대사관측은 지난해 8월 외무성 동호인과 가진 바둑대회에서 참패,이번에 반드시 설욕한다는 계획.
  • 금지문화 금지인생 이제야 말한다(17회)-’해방전후사의 인식’

    역사는 늘 권력을 잡은 자의 기록이 되기 쉽다.권력자는 때로 역사를 왜곡해 왔다.그 결과 세계사의 적지 않은 부분이 정직하지 못한 역사로 얼룩져있다.한국의 현대사도 독재권력에 의해 왜곡됐다.그러나 엄혹한 독재상황에서도 민족의 일그러진 역사현실을 극복해 보려는 의식있는 지식인들의 행동은 끊이지 않았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을 낸 것도 진실을 밝혀 역사의 시계가 제대로 돌아가게 하는데 작은 동력이 되고자 하는 시도였다.송건호 선생 등 12명이 쓴 이 책은 1979년 10월 15일 한길사에서 펴냈다.당시 시대상황에서 이러한 책을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독재권력은 해방후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했다.그러나 어려운 시대의 어둠을 논리적으로 밝히는 일이 필요했다.올바른 역사를 기록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라는 책을 내기로 했다”고 그 때의 상황을 설명했다. 송건호 선생은 ‘8·15의 민족사적 인식’이라는 글에서 분단의 비극을 안타까와 했다.민족의 비극이분단으로부터 왔다고 생각하는 그에게 분단의 현실은 극복의 대상이었다.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남북갈등과 막강한군사력의 대립으로 언제 또 6·25보다 더 파괴적인 동족상잔이 빚어질지 모르는 불안하고 긴장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민주주의는 시련을 겪고 민족의 에너지는 새로운 군사력을 위해 소모 되고 있는 암담한 상황이 이른바 해방된 이 민족의 현실이다”. 그는 친일파가 다시 권력의 전면에 등장하는 부끄러운 현실과 분단을 권력유지에 이용하는 독재권력을 비판했다.“친일파 사대주의자들이 득세하여 애국자를 짓밟고 일신의 영달을 위해 분단의 영구화를 획책하여 민족의 비극을 가중시키고 있다”. 그는 또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민족의 참된 자주성은 광범한 민중이 주체로서 역사에 참여할 때에만 실현되며 바로 이러한 여건하에서만 민주주의는 꽃피는 것”이라며 대중이 역사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송건호 선생의 글을 비롯한 이 책의 내용 대부분은 해방후 역사현실을 식민사관이나 독재권력의 ‘분단고착화’ 시각으로 보지 않고 분단을 악용하는독재권력,친일파 숙청작업의 좌절 등 해방전후의 역사적 사실과 그 전개과정을 사실적으로 썼다.그것은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역사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일이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이 세상에 나올 때는 유신독재가 말기현상으로 사회적 긴장과 불안을 고조시키며 비극적 몰락의 길을 재촉하고 있던 상황이었다.책이 나온 다음날 부마사태가 터졌다.유신정권의 억압이 한계상황에 도달한 것이다.불안한 긴장 속에 책은 빠르게 팔려나갔다.열흘만에 초판 5,000부중 4,500부가 팔렸다.사회과학서적이 그것도 500쪽이 넘는 책이 이처럼 폭발적으로 팔린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유신독재가 10월26일 궁정동의 총성으로 비극적인 막을 내리며 이책도 비운을 맞았다.계엄령이 선포되고 모든 출판물이 군의 검열을 받게됐다.당연히 군 당국은 이 책을 판매금지시켰다. 김언호 대표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회고한다.“79년 10월 28일 문공부로호출됐다.‘당신을 구속해야 하지만 처음이니까 관용을베풀겠소.다시는 이런 책 내지 마시오’라고 계엄사에서 파견된 한 문관이 말했다”. 판매금지 사유는 현실 왜곡·부정이었다.그러나 현실을 왜곡한 것은 책이아니라 독재권력이었다.역사를 제대로 보자는 책을 현실 왜곡·부정이라는억지 이유로 ‘금서’로 규정하는 현실은 일그러진 현대사의 부끄러운 한 단면이었다. 이 책은 80년 ‘서울의 봄’이라는 짧은 민주주의 실험때 판매금지에서 해제됐다.민주주의 실험은 강경 군부의 등장으로 광주민중항쟁이라는 또 하나의 비극의 역사를 만들어냈다.그러나 ‘광주의 비극’과 그 이후의 민주화투쟁은 민주주의라는 찬란한 결실을 맺었다.80년대 민주화투쟁 과정에서 이 책은 대학생들이 올바른 역사인식에 눈을 뜨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많은 대학생들이 이 책을 찾았다.베스트셀러가 됐다.80년대 30만부나 팔렸다”고 김언호 대표는 말한다. 한국 현대사에서 1970년대는 민족적 자각이 지식인 사회에서 크게 고양되는 시대였다.깨어있는 지식인들은 한반도의 모든 비극의 근원적 원인은 민족의 분단 때문이라고 인식했다. 분단현실은 남북의 군사대결로 우리 민족의 엄청난 에너지를 낭비하게 만들었다.친일파들은 반공이데올기라는 가면을 쓰고 다시 권력의 핵심으로 복귀했다.친일파와 기회주의자들이 활개치는 현상은 민족의 양심을 파괴하고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독재권력은 분단을 권력유지에 악용했다.독재로 민주주의는 꽃피지 못했다.의식있는 지식인들은 친일파와 독재권력이 이러한반역사적이고 반민족적인 것을 분단으로 합리화하려 했다고 비판했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은 올바른 역사인식을 확산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책이라고 할수 있다.독재정권은 집권동안 이러한 역사인식을 박제하여 낡은 역사의 창고에 강제로 묻어두려 했다. 그러나 독재권력도 무너지고 그들이 왜곡했던 역사의 진실도 하나씩 밝혀지고 있다.한 때 판매금지됐던 ‘해방전후사의 인식’도 해방전후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도움을 주었다. 한 시대를 올바르게 정리해야 그 이후의 역사도 정직하게 씌여진다.정직한역사를 통해 역사의 시계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게 해야 한다.
  • 기고-TV사극 무엇이 문제인가

    최근 KBS의 사극 ‘왕과 비’를 놓고 논란이 되고 있다.외견상 논란의 핵심은 ‘왕과 비’가 역사적 사실을 잘못 묘사하고 있는가 아닌가에 모아진다.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픽션으로서의 사극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될 수있는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의 문제와 관련되며,나아가서는 권력의 정통성과정당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비롯한 역사 해석 문제에까지 이어진다. ‘왕과 비’에서 묘사된 내용이 ‘단종실록’ 등의 기록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역사 기록에 나타나지 않는 공백 부분은 작가가 상상력으로 메워야 할 몫이므로,당시의 역사와 달리 묘사되지 않는 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문제는 ‘단종실록’ 등의 기록이 역사적 진실을 올바로 담고 있는가에 있다.역사적 진실을 가려내기 위해서는 단순한 고증이 아니라 사료 비판이 필요하며,이 작업은 전문 역사학자의 영역에 속한다.사극 제작진이 계유정난이 쿠데타인가 아닌가 등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까지 책임지려고 나서는 것은 과욕이다. 그동안 TV에서 방영된 사극은 꽤 많으나,같은소재가 몇 차례 다루어지기도 했다.장희빈,연산군과 함께 수양대군과 한명회도 단골 소재였다.이러한 현상은 사극이 대개 역사소설을 저본으로 하는 데서 발생한다.굳이 이를 탓할필요는 없겠으나,작가가 저본으로 삼은 역사소설의 문제의식과 역사적 상상력에서 얼마나 벗어났는 가가 중요할 수 있다. 단종과 수양대군을 다룬 역사소설로는 일제시대에 이광수가 쓴 ‘단종애사’와 김동인이 쓴 ‘대 수양’이 있는데,실제로 현재까지의 ‘왕과 비’는‘대 수양’과 비슷한 측면이 많다.그러나 김동인이 수양대군을 국난 극복을 이룬 영웅으로 잡은 것은 잘못된 선택이었다.세조는 권력의 정당성과 정통성에 큰 결함이 있었기 때문에 갖은 정치적 술수를 동원하여야 했고,거대한공신세력으로 울타리를 삼은 결과 정치 발전은 물론이고 사회경제적 발전에도 많은 문제를 초래했기 때문이다.앞으로 세조 통치를 묘사할 때 기존의 흐름에서 바뀌지 못할까 우려된다. ‘왕과 비’와 비교가 되는 것이 얼마 전에 역시 KBS에서 방영한 ‘용의 눈물’이다.이 사극은 종래의여인네들 치마폭에 휩싸여 진행되는 궁궐 내부의 암투를 그렸던 사극과 달리 커다란 정치적 사회적 변동을 역동적으로 그림으로써 남성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저본인 박종화의 ‘세종대왕’과는 다른 각도에서 작가의 상상력이 발휘되었다는 점에도 주목해야 한다.극중에서 거대한 역사적 변동이 전개되는 가운데 초점은 태종 이방원이 권력을 장악하고 강화시켜 가는 과정에서 겪은 인간으로서의 고뇌에 맞춰졌다.‘왕과 비’가 정치적 변화를 역동적으로 그리려는 의도는 ‘용의 눈물’과 흡사하나,새로운 내용의 역사적 상상력은 뚜렷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이 점에서 ‘왕과 비’의 분발이 요구된다. 과거의 사극 가운데에는 대중에게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의도가 드러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사극이 의도와 무관하게 시청자들의 역사인식에 영향을 미침으로써 역사 교육의 수단으로 기능하는 것은 분명하다.그러나 사극이 의도적으로 역사를 가르치겠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정당성과 정통성이결여된 강력한 권력의성립을 역사 발전의 한 단면으로 가르치려 한다는 것이 기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 나아갈 길-버려야 할 국민성, 세워야 할 참가치

    [姜 萬 吉]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경남 마산·65세 ●고려대 사학과졸·문학박사 ●고려대 중앙도서관장 ●월간 ‘사회평론’발행인 ●주요 저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한국민족운동사론’ ‘통일운동시대 의 역사인식’ 절충하고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나는 그것을 수렴이라고 부릅니다.우월성 으로 통일의 기반을 삼는 견해는 우려스럽고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姜교수 통일문제는 한반도에서만 유일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냉전구 도는 다 무너졌는데 한반도에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역사학도의 입장에서 보면 지정학적 위치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력통일이나 독일식 흡수통일이 지정학적 으로 어렵다는 점입니다.한마디로 남북이 대등한 위치에서 평화통일 방법론 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국민의 정부는 이 점에서 방향은 옳게 잡고 있습니 다.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서해안에 간첩선이 출몰하더라도 왜 동해안 에서 금강산 유람선이 뜰 수밖에 없는지,그리고 왜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통 일이 이뤄져야하는 지를 국민에게 분명하게 설명해 줘야 합니다. ●李교수 남한사회에서는 북한은 모든 것이 이질화됐다고 말합니다.남한의 거울에 비춰 같지 않은 것은 이질화라고 봅니다.그러면 남한은 이질화되지 않았는지 남한 자체를 객체화시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姜교수 지역대결 문제에도 역사적 원인이 있습니다.일제는 한반도 강점을 쉽게 하기 위해서 분열 요인이 별로 없는 우리를 두가지로 분열시켰습니다. 하나는 계급적 차이를 이용한 것이고,다른 하나가 지역갈등 문제였습니다.일 본이 지역갈등의 씨앗을 심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후 해방이 되면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분출되면서 지역문제는 그다지 불 거지지 않았지만,일본군 출신의 朴正熙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악용하기 시 작했습니다.정통성없는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역대립을 조장한 것입니다.그같은 지역대립조장의 결과가 절정에 이른 게 광주민주항쟁이었습 니다만,문민정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도 고질화돼 있는 형편입니다.최근에 겪은 하나의 어이없는 사례를 들겠습니다.제고향(마산)에서 한 관리가 부정 을 저질러 막상 사법처리되자,부정한 사실 그 자체는 간 곳 없어지면서 아무 개 정권이 우리 지역을 탄압하고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부패 관 리 징치보다 지역감정이 우선하는 이런 일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지역감정 문제 해결은 과거 피해를 입었던 쪽이 정권 차원에서 이것을 푸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과거 정권의 틀을 벗어나 모든 부문에서 공정하 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젊은 층이 지역감정이 희박하다는 점입니다.동서문제는 젊은 층이 민주사회의 주인으로 자리잡으면서 자연히 해소될 것으로 여겨집 니다.기성세대 중에서도 양심적 지식인들이 시민운동을 통해서 지역대립 문 제를 풀어가는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李교수 남한사회의 지역 대립은 근대사회 들어 사회에서 피해적 존재를 만 들어내기 위한 파쇼의 통치전략입니다.19세기 말과 20세기초 독일,폴란드 등 에서 이같은 일이 일어났는데,이 과정에서 600만여명의 유태인이 나치에 학 살당했습니다.유태인은 유럽에 동화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그러나 파쇼 집단은 백인 부르주아사회의 반인간성을 유태인에 투영시켰습니다.유태 인으로 하여금 사회적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하도록 강요한 것입니다.이같은 원리와 전략이 朴정권에 의해 호남에 적용됐습니다. 나는 철이 든 나이로 일제시대를 살아 잘 아는데,일제시대에는 지역 차별이 없었습니다.해방 뒤와 민주당 정권 때도 지역 차이 없이 정당을 구성했습니 다.지역 차별은 71년 대통선거를 계기로 구조화된 것이 분명합니다.유럽 파 시스트체제 생성과정의 유태인의 존재를 호남에서 찾은 것이지요.●姜교수 역사 교육 쪽으로 화제를 돌려보지요.현대사 교육을 제도교육 쪽에서 보더라 도 지금 2가지 문제가 잘못됐습니다.중·고 국사 교과서가 아직도 朴정권 때 결정했던 그대로 국정교과서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사실입니다. 이래선 일본에 역사교육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곤란할 지경입니다. 그중 국사교과서에서 현대사 부분이 대단히 약합니다.정권의 정당성 문제에 대한 서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북대립적 입장에서 주로 역사를 기술하다 보니 남북화해적 교과 내용이 없습니다.통일된 독일의 경우 옛날 서독 교과 서를 동독지역에서 그대로 쓰고 있어도 문제가 안될 정도입니다.그만큼 객관 적으로 썼다는 얘깁니다.남북의 역사 교과서가 해방 이후 천양지차로 서술돼 있습니다만 민족 화해적인 내용이 더 크게 부각되도록 방향을 잡아가야 합 니다. ●李교수 역사교육의 잘못은 원죄에 속하는 부분이 있습니다.그리고 원죄는 해방 직후 일제 잔재를 토대로 한 새 국가 건설에서 출발합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45∼48년 군사정부를 만들어 통치하면서 일제시대 독 립운동가,혁명가,애국지사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친일 반역행위를 한 개 인을 모아 요직에 배치했습니다.그리고 李承晩정부가 그것을 이어 12년간 통 치했습니다.李承晩 개인은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그 정권은 친일 반역자 에 업혀 새 국가를 건설하고 통치한 추악스러운 정권입니다.정부 수립 직후 반민특위법을 만들었지만 한 명도처단하지 못하고 거꾸로 애국지사가 처단 됐습니다.그래서 이같은 사실들이 국정교과서에 들어가지 못하고,또 ‘국정 ’으로 교과서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朴正熙는 제 발로 일본군에 입대해 천황에게 목숨을 바치겠다는 말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 나라의 국정교과서가 어떻게 진실을 기술할 수 있겠습니까.朴正熙는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지성의 요구를 반공(反共)이라는 적대적 긴장을 조성해서 무마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늦었지만 교육을 다시 해야 합니다. ●姜교수 역사교과서를 국사편찬위에서 국정교과서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민 주주의 국가에서 어불성설이고 창피한 일이지요. ●李교수 21세기는 스스로 승리했다는 자본주의 안에 사회적,도덕적,인간적 가치를 재생시켜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나는 자본주의는 절반만 승리 하고 절반은 패배했다고 생각합니다.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는 끝났다” 고 말했지만 나는 21세기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봅니다.IMF는 자본 주의의 발작이자 경련입니다. ●姜교수 20세기에서 자본주의가 살아남게 된 것은 이른바 ‘케인스 혁명’ 이후 사회주의에 약간의 양보를 했기 때문입니다.케인스의 신이론에 따라 자 본주의가 계획경제의 장점을 일부 받아들인 것입니다.반면 국가사회주의는 7 0년대를 지나면서 무너져갔습니다.이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신자유 주의가 풍미하면서 각종 비인간적인 측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신자 유주의 체제하에서 비인간적인 사회적 상황이 점점 확대되면서 새로운 (경제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도 더욱 적극화될 것으로 보입니다.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21세기에는 그런 새로운 것을 찾아낼 것입니다.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그런 일에 당연히 관심을 가져 야 하며,그렇게 되기 위해선 우리 정치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남다른 역사의 식을 가져야 합니다. ●李교수 여기서 올바른 언론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회는 종교,언론자유(Freedom of Speech),출판(Pres s),집회,청원권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고규정하고 있습니다.이 는 오늘날 세계의 모든 문명국가가 헌법 전문에 규정하고 있는 문명사회의 원칙으로,호치민의 북베트남 헌법에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서열에서 출판의 자유가 언론의 자유 다음이라는 것입니다.언론의 자유는 시민과 개인은 무엇이든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합니다.또 언론기관보다 개인의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존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것이 언론기관의 자유로 둔갑돼 있습니다. ●姜교수 崔章集교수 문제가 일어나는 과정을 보고 참 불쾌했습니다.한 학자 가 자기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연구,이론구성을 해놓은 것을 가지고 언론 이 즉흥적으로 평가,시비를 거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학술적 결과 물은 학계 내에서 소화하거나 비판해야 합니다.어떤 이유에서건 학자를 걸고 넘어져 학문을 어렵게 하는 것은 언론기관이 할 일이 아닙니다. ●李교수 우리는 역대 개발독재정권이 경제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그동안 쌓 아온,권력집단의 노획물 같이 수탈할 수 있었던 가치구조와 관습 등 모든 면 을 수술해야 합니다.毛澤東정권이 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鄧小平이 모든 체제를 바꿨던 예를 본받아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우리 국민은 타 락하고 부패한 지도자 밑에서도 뭔가를 이뤄냈습니다.하물며 새 지도자 밑에 서 혁명하는 마음가짐으로 해 나가면 무엇이든 이루어내지 않겠습니까. ●姜교수 12월31일과 1월1일의 24시간은 다를 게 없는데도 굳이 구분하는 것 은 마음을 새로이 하자는 뜻일 것입니다.(시간의 흐름 위에서)마디를 만들어 새롭게 다짐하면 그것이 역사를 바꿔나가는 일이기도 하겠죠.앞서 언급했듯 이 국민의 정부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정통성을 갖는 정권입니다.새 정부는 올해 역사적 전환점에서 서서 이 정권의 성립 기반을 다시 돌아보고 이를 확실히 정착시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가진 역사관을 젊은이들이 다시 이어가게 하면 그 민족 은 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젊은이들의 역사관이 기성세대와 달라야 그 민족사회가 전진할 수 있습니다.기성세대들은 이 점을 인식하면서 젊은 층과 부딪쳐야 조화가 서로 이뤄질 것입니다. 나는 통일을 과정으로 보지 결과로 보지 않습니다.열매를 따려면 나무에 올 라가야 하고,첫 발을 내디디면 두번째 발을 옮기고,그러다가 가시에 찔리기 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같은 통치체제,또는 이념이나 인민의 자유,권리,창의력을 당이 독점 하는 흘러간 공산주의식 체제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그렇다고 남한식으로 통 일의 기틀을 잡는 것도 찬동할 수 없습니다.남한도 해방 후 반세기 동안 친 일파,범죄,부패,타락,잔인성,비인간성,빈부 차이,자본주의가 가지는 주기적 경기변동으로 인한 인간의 재난과 불행 등을 청산하면서 새로운 국가를 지향 해야 한다고 봅니다.우리는 물신주의(物神主義)에 빠져서 인간 위에 돈이 있 고,모든 가치 위에 돈이 있다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돈을 소유하기 위해 인간의 이기심을 전면적·극단적으로 발동시켜 생산을 극대화시킨 것이 우리 사회의 우월성입니다.그런데 그것은 인간 파괴를 가져옵니다.
  • “햇볕정책 한반도 긴장완화 도움”/우다웨이 駐韓 中 대사

    ◎中 개혁20돌 특별인터뷰 “한국 국방장관의 중국 방문 등 국방 부문을 비롯,99년도의 한·중교류는 전면적인 방향에서 발전속도를 더해 나갈 것입니다” 우다웨이(武大偉·52) 주한 중국대사는 17일 중국 개혁개방 20주년을 맞아 본사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두나라의 협력관계가 최고지도자들의 상호방문 등 신뢰쌓기의 바탕 위에서 본격적인 발전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평가했다. “지난 11월 金大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은 21세기를 향한 두나라의 장기적인 협력의 틀과 구체적인 협력사항을 정한 계기였습니다”. 한반도문제에 대해서도 두나라는 같은 입장과 이해 위에서 협조해 나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햇볕정책을 기조로 하는 金大中 대통령의 유연하고 현실적인 대(對) 북한정책은 한반도 긴장완화에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중국도 한반도와 동북아지역의 평화·안정의 유지를 위해 적극적인 역할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우 대사는 또 “북한이 ‘조만간에’ 붕괴될 것이란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면서 “한반도 안정을 위해 냉전의 유산을 해소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북한과 미국의 핵의혹을 둘러싼 일련의 마찰에 대해선 “94년 제네바 핵합의원칙에 따라 처리하면 말썽이 없을 것”이라면서도 제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데 중국은 찬성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의 집안 장롱 속에 의심되는 물건이 있다면서 이를 뒤지려 한다면 공동체가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최근 불거져나온 일본과의 ‘역사인식’문제에 대해선 두나라 관계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을 촉구했다. “‘중일전쟁이 끝난지도 50년이 지났는데 이를 거론할 이유가 있느냐’는 일본의 일부 인사들의 태도는 과거사에 대한 불충분한 인식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 대사는 일부 일본인은 과거 침략전쟁과 식민통치에 대해 모호한 인식을 갖고 있고 또 극소수지만 이를 미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은 주변국들과의 장기적인 관계발전을 생각하고 역사에 올바른 견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역사문제의 인식차를 해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며 급하게 서둘러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 99년은 중국 국가수립 50주년. 이를 계기로 한국 내에서 중국 ‘붐’을 일으키기 위한 ‘중국주간’행사와 문화전시회 등 한국인들에게 문화를 알릴 각종 교류사업을 계획하고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두나라는 비약적인 관계발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면도 있습니다.” 활발한 문화교류를 통해 반세기 단절의 골을 메워 나가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각 기관에서도 중국 내에서 한국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는 각종 활동을 준비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밝혔다. 내년에는 한·중 지도자간의 상호방문도 속도를 더할 것으로 전망했다. “장쩌민(江澤民) 주석,리펑(李鵬) 전인대 상무위원장(국회의장격),주룽지(朱鎔基) 총리 등 3부요인과 리루이환(李瑞環) 정치협상회의 주석 등 주요 지도자들이 대부분 방한 초청을 받은 상태며 한 두분이 한국을 공식 방문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또 중국 경제도 아시아 경제위기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금융부문의 대대적인 개혁과 내수확대정책을 통해 고도 성장률을유지하면서 악영향을 극복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개혁개방정책의 성과에 대해선 “78년 이후 해마다 중국 경제는 9.8%씩 성장을 거듭하는 등 세계 7위의 경제규모를 갖게 됐다”면서 “개혁개방정책은 변함없이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9월 부임한 뒤 金大中 대통령의 중국 방문을 잘 치러낸 우 대사는 일본에서 15년을 근무한 중국외교부 내 일본전문가. 중국 최북단의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지역에서 태어나 베이징외국어대학에서 일본어를 전공했다. 일본통인 탕자쉬엔(唐家璇) 외교부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다는 게 주위의 평이다. “한국문제는 아직 낯설어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느낌입니다”라는 겸손과는 달리 92년부터 3년 동안 한반도문제를 다루는 아주국부국장을 지내 한반도문제에도 정통하다.
  • 中 “日은 더이상 일류 아니다”

    ◎내부문서 黨政 배포… “전략적 파트너로 부적절”/외교·안보 美에 종속… 역사 인식 對日 불신 늘어 【도쿄 연합】 “일본은 더이상 일류국가가 아니며,전략적 파트너로 삼는 것도 적절치 않다.” 일본의 국력과 향후 중일 관계에 대해 이같이 혹평한 내부문서가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일본 공식방문을 앞두고 중국 공산당과 정부 고위간부들에게 배포된 것으로 밝혀졌다. 1일 교도(共同)통신은 베이징발 기사에서 ‘21세기를 향한 중일관계에 관해’라는 문서를 소개했다. 국무원(행정부)직속 연구기관의 저명 학자가 집필한 이 문서는 일본의 국제적 지위와 관련,향상될 전망이 없다면서 대일정책의 수정 필요성을 강조했다.역사인식 문제에 대해서도 “중국인민의 대일 불신감이 증대되고 있어 일본의 태도여하에 따라 반발해야 한다”며 강력한 견제를 역설했다. 외교·안보면에서는 ‘여전히 미국에 종속돼’있으며 다극화로 향하는 국제정세의 와중에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 장쩌민 “日 올바른 역사인식 필요”

    ◎訪日 사흘째… 과거사문제 앞으로 계속 거론 시사 【도쿄 黃性淇 특파원】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26일 중·일양국의 우호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일본의 올바른 역사인식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고 앞으로 과거사 문제를 계속 거론할 것임을 시사했다. 장주석은 간 나오토(菅直人)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에서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대응에 만족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외상은 “(지난 10월)한국은 역사청산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지만 중국은 반드시 그렇지 않았다”며 과거사 사죄를 둘러싼 양국간 이견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이에 앞서 장주석은 26일 저녁 아키히토(明人)일황 주최로 열린 만찬에 인민복 차림으로 참석했다. 한편 이날 두 나라 정상은 핵무기 폐지와 확산 반대,정치 경제 및 지구적 차원의 협력 강화,하나의 중국 인정 등을 골자로 한 ‘중일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다.
  • IMF경제현안 심층진단·대안제시(서울신문 이렇게바뀌었습니다:中)

    ◎실직·노숙자 등 소외층 목소리 대변/탈북자 애환 시리즈 등 각종 특집기사 큰반향/환경·교육문제 진단/미담·화제기사 발굴도 신문의 사회면은 어떻게 만들어야 바람직스러운가. 몇몇 언론학자들에게 물었다. 상당부분 엇갈리는 견해가 많았다. 사회면의 정체성을 학문적으로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듯했다. 사회현상에 대한 진단과 우선순위 설정도 제각각이었다. 한 학자는 이렇게 주문했다. “사회면은 시의성 있는 사건·사고가 중심이 돼야 한다. 하지만 긴장감이 떨어지는 밋밋한 기사가 자주 실린다” 또다른 학자의 의견은 정반대였다. “사건기사가 너무 많다.일반 생활과 상관없는 일이 주요기사로 다루어진다” 학자들의 견해만 다른 것은 아니다. 신문을 만드는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본인은 톱기사감이라고 흥분하지만 한발짝 거리를 두고 살펴보면 함량미달일 때가 간혹 있다. 기사를 다룬다는 일 자체가 일률적일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신문을 만드는 처지에선 일상의 다양한 현상을 함축적으로 담도록 노력할 수밖에 없다. 사회면을 보면 우리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한다. 다수의 이해가 걸린 문제는 물론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도 반영해야 한다. 구조적 비리나 부정부패를 감시하기 위해 눈을 부릅떠야 한다. 판단의 기준은 상식과 도덕률 등이다. 그렇다면 서울신문 등 우리의 신문은 이같은 원칙에 충실했는가.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하기는 어렵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은 제쳐두고 시류를 따라가는데 급급한 경향이 짙었다. 기이한 현상이나 사건·사고에만 매달리려 한 것도 사실이다. 형평성 측면에서도 문제가 많았다. 이러저러한 지적을 전제로 서울신문 사회면은 그동안 구태의연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다. 무엇보다 소외계층의 편에서 우리사회의 건강상태를 진단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실직자나 노숙자 문제의 해결방법을 모색하기 위한 특집이나 심층취재 기사를 여러차례 내보냈다. 탈북자들이 겪는 애환을 시리즈로 소개하기도 했다. 오랜 세월 숨죽이며 살아온 체제의 희생자들의 목소리도 여과없이 게재했다. 우리의미래와 직결된 환경문제도 밀도있게 해부했다. 교육현장의 난맥상도 단순한 사실전달에 그치지 않고 원인과 대책까지 짚어내도록 노력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만한 화제나 미담기사 발굴에도 힘을 쏟았다. 앞으로는 우리사회가 경험한 잘못을 교훈삼아 구체적인 실천전략이 마련되도록 하는데 역점을 둘 생각이다. 우리사회의 건강지수를 한 단계 높이는 싱싱한 지면을 제공할 것을 거듭 다짐한다. ◎수출·실업 등 대형기획물 실천적 개선안 모색 주력/국가정책에 큰영향 끼쳐/중립적 재벌기사도 강점 ‘대한매일을 읽으면 정부정책이 보인다’­. 대한매일로 재탄생하는 서울신문은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뒤 줄곧 국가 경제정책의 심층보도에 주력해왔다. 지난해 12월 국제통화기금(IMF)체제가 시작된 이래 우리나라의 국운을 경제가 좌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신문은 그동안 우리 경제의 최대현안인 수출부진을 타개하기 위한 ‘수출 이렇게 풀자’라는 주제의 특집기사를 연재한 것을 비롯해 ‘실업대란 이렇게 풀자’ ‘주택경기 이렇게 살리자’ ‘자금난 어떻게 해소할까’ ‘외국인투자 이렇게 활성화하자’ ‘내수진작 이렇게 하자’ 등 주요 경제현안을 심층진단하는 대형 기획물들을 잇따라 보도했다. 또 최근에는 ‘긴급 경제현안 점검’이라는 주제로 ▲은행문을 열어라 ▲신3저 이렇게 활용하자 ▲장관들을 뛰게 하라는 내용의 시급한 경제문제들을 차례로 짚었다. 이 가운데 수출특집을 비롯한 여러 기획물들이 청와대와 경제부처들의 정책형성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고,언론계에서는 서울신문의 잇따른 대형 정책기사 특집을 언론사에 새 지평을 열 새로운 기획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 언론은 전통적으로 질책과 비난에는 익숙하지만 대안을 제시하는 일은 남의 몫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서울신문 경제면은 대안있는 비판과 건설적인 질정을 새로운 제작목표로 삼았다. 단지 문제점 지적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실태르포를 통해 진정한 현장의 목소리를 전했다. 또 전문가들의 지상토론과 인터뷰,기고들을 통해 핵심을 찌르는 지적과 함께 실천적인 개선대안을 제시,올바른 국가 경제정책 형성에 큰 기여를 해왔다고 자부한다. IMF시대를 맞아 경제정의의 실천이 어느 때보다도 강조되는 지금,서울신문이 지닌 최대의 강점 가운데 하나는 재벌기사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가치중립적(value­neutral)’이라는 것이다. 서울신문은 소유형태상 재벌과의 이해관계가 전혀 없다. 따라서 재벌관련 기사를 어느 매체보다도 자유롭고 공정하게 쓰고 비판할 수 있다. 우리 경제를 현재처럼 멍들게 한 상당한 책임이 재벌에 있다는 사실이 증명된 마당에 그들에 대한 건전한 비판과 독려는 서울신문만이 제대로 할 수 있는 독특한 영역인 것이다. 대한매일로 거듭나는 서울신문은 IMF시대를 조기에 극복하고 21세기의 희망찬 조국을 건설하는 책임이 우리의 두 어깨에 달려 있다는 새로운 역사인식과 투철한 사명감으로 앞으로도 ‘대안있는 비판’의 지면제작과 경제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 江澤民 새달 25일 방일때 공동문서에 사죄명기해야/中,日에 요구

    【도쿄=黃性淇 특파원】 중국은 내달 25일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이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할 때 양국 정부가 발표할 ‘공동문서’에 역사인식 문제와 관련,일본측의 사죄를 명기하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산케이(産經)신문이 26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양국관계 소식통의 말을 인용,천젠(陳健) 주일 중국대사는 과거문제에 대해 일본측의 강한 반성과 사죄의 표현을 공동문서에 포함시키도록 요구했다고 전했다.
  • 韓日 새 동반 협력시대로(사설)

    일본을 국빈방문중인 金大中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총리가 8일 정상회담후 발표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은 두나라간의 새로운 미래를 여는 하나의 장전(章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동안 두나라 간의 진정한 우호협력 관계를 가로 막아왔던 불행한 과거사를 일본측의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로 매듭짓고 미래지향적 동반·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갈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이로써 갈등과 협력이 혼재했던 20세기의 한일관계를 정리하고 선린우호의 21세기를 맞을 수 있게 됐다. 한일 공동선언의 가장 큰 성과는 한일관계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과거사문제를 풀었다는 것이다. 오부치 총리는 ‘일본이 식민지 지배로 한국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과 사죄를 했다. 金대통령도 일본측의 역사인식을 평가하고 양국이 불행했던 역사를 극복해서 미래의 협력관계 발전에 노력할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길고도 어려웠던 과거사문제에 사실상 종지부를 찍었다. 일본은 과거사에대한 반성과 사죄를 합의문서에 처음으로 명문화하여 종전과 다른 진지함을 보였다. 이번 공동선언에 대한 또하나의 평가는 새로운 동반협력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두 정상의 합의가 폭넓고 구체적이라는 점이다. 요란한 선언만 있고 실천은 적었던 과거의 정상회담과는 다른 점이다. 각 부문별 실천방안을 담은 행동계획까지 마련하여 공동선언의 실행을 담보하고 있다. 金대통령과 오부치 총리는 정치와 안보,경제,문화등 모든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의 확대를 약속했다. 연 1회이상의 정상회담을 갖고 동반·협력의 실천상황을 직접 챙기기로 했다.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일본수출입은행의 30억달러 추가융자,북한의 미사일 위협과 핵개발 공동대응,안보정책협의회의 연례화및 방위 교류의 확대,재일동포의 지위향상등은 이번 정상회담의 실질적인 성과들로 꼽을 수 있겠다. 특히 경제분야에서의 긴밀한 협력이 두나라는 물론 아시아 경제위기 해소에 필수적이라는데 인식을 같이 하고 경제인을 비롯하여 투자,산업기술 등의 교류를 확대키로 한 것은새로운 동반·협력시대를 가시화할 것으로 기대되는 부문이다. 진정한 동반자로서 새로운 협력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두나라 국민들의 상호이해와 신뢰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특히 양국관계의 미래를 담당할 청소년들의 인식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 청소년교류의 확대는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한일정상의 이번 공동선언이 양국의 번영과 아시아 및 세계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21세기의 새로운 韓·日 파트너십 공동선언 全文/金 대통령 訪日

    ◎과거 극복·우호협력 증진 시대적 요청/金 대통령 “日 국제평화·번영 기여 평가”/日 총리 “한국 경제발전·민주화 달성 경의”/유엔해양법 기초 새 어업질서 구축 기대/온실가스·산성비 등 환경문제 협력 강화 1.金大中 대한민국 대통령 내외분은 일본국 국빈으로서 1998년10월7일부터 10일까지 일본을 공식 방문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은 체재중 오부치 게이조 일본국 내각 총리대신과 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과거의 양국관계를 돌이켜 보고,현재의 우호협력관계를 재확인하는 동시에 미래의 바람직한 양국관계에 관하여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 회담의 결과,양국 정상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되어 온 양국간의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공통의 결의를 선언하였다. 2.양국 정상은 한·일 양국이 21세기의 확고한 선린 우호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기 위해서는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고 상호 이해와 신뢰에 기초한 관계를 발전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금세기의 한·일 양국관계를 돌이켜 보고 일본이 과거 한때 식민지 지배로 인하여 한국 국민에게 다대한 손해와 고통을 안겨주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이에 대하여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죄를 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은 이러한 오부치 총리대신의 역사인식 표명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평가하는 동시에 양국이 과거의 불행한 역사를 극복하고 화해와 선린 우호협력에 입각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서로 노력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라는 뜻을 표명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양국 국민,특히 젊은 세대가 역사에 대한 인식을 심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에 대하여 견해를 함께 하고 이를 위하여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젊은세대 역사인식 심화 중요 3.양국 정상은 과거 오랜 역사를 통하여 교류와 협력을 유지해 온 한·일 양국이 1965년 국교정상화이래 각 분야에서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발전시켜 왔으며 이러한 협력관계가 서로의발전에 기여하였다는데 인식을 같이 하였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한국이 국민들의 꾸준한 노력에 의하여 비약적인 발전과 민주화를 달성하고 번영되고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한데 대하여 경의를 표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은 전후 일본이 평화 헌법하에서 전수방위 및 비핵3원칙을 비롯한 안전보장정책과 세계경제 및 개발도상국에 대한 경제지원 등을 통하여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수행해 온 역할을 높이 평가하였다. 양국 정상은 한·일 양국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라는 보편적 이념에 입각한 협력관계를 양국 국민간의 광범위한 교류와 상호 이해에 기초하여 앞으로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는 결의를 표명하였다. 4.양국 정상은 양국간의 관계를 정치,안전보장,경제 및 인적·문화교류 등 폭넓은 분야에서 균형되고 보다 높은 차원의 협력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양국의 파트너십을 단순히 양자 차원에 그치지 않고 아시아·태평양지역,나아가 국제사회 전체의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또한 개인의 인권이 존중되는 풍요한 생활과 살기 좋은 지구환경을 지향하는 다양한 노력을 통해 진전시켜 나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이를 위하여 양국 정상은 20세기의 한·일관계를 마무리하고 진정한 상호 이해와 협력에 입각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공통의 목표로서 구축하고 발전시켜 나가는데 있어서 다음과 같이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며 이러한 파트너십을 구체적으로 실천해나가기 위하여 이 공동선언에 부속된 행동계획을 작성하였다. 양국 정상은 양국 정부가 앞으로 양국의 외무장관을 책임자로 하여 정기적으로 이 한·일 파트너십에 기초한 협력의 진척상황을 확인하고 필요에 따라 이를 더욱 강화해나가기로 하였다. 5.양국 정상은 현재의 한·일관계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양국간의 협의와 대화를 더욱 촉진시켜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양국 정상은 이러한 관점에서 정상간의 지금까지의 긴밀한 상호 방문·협의를 유지·강화하고 정례화해 나가기로 하는 동시에 외무장관을비롯한 각 분야의 각료급 협의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또한 양국 정상은 양국간 각료 간담회를 가능한 한 조기에 개최하여 정책실시의 책임을 갖는 관계 각료들의 자유로운 의견교환의 장을 설치하기로 하였다. 아울러 양국 정상은 지금까지의 한·일 양국 국회의원간 교류의 실적을 평가하고,한·일/일·한 의원연맹의 향후 활동 확충 방침을 환영하는 동시에 21세기를 담당할 차세대의 소장 의원간의 교류를 장려해 나가기로 하였다. 6.양국 정상은 냉전후의 세계에 있어서 보다 평화롭고 안전한 국제사회 질서를 구축하기 위한 국제적 노력에 대하여 한·일 양국이 서로 협력하면서 적극적으로 참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양국 정상은 21세기의 도전과 과제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처해 나가기 위해서는 국제연합의 역할이 강화되어야하며,이는 안전보장이사회의 기능강화,국제연합 사무국 조직의 효율화,안정적인 재정기반의 확보,국제연합 평화유지 활동의 강화,개발도상국의 경제사회개발에 대한 협력 등을 통해 이룩할 수있다는데 대해 의견이 일치하였다.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金大中 대통령은 국제연합을 비롯한 국제사회에 대한 일본의 기여와 역할을 평가하고 금후 일본의 그와 같은 기여와 역할이 증대되는데 대한 기대를 표명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군축 및 비확산의 중요성,특히 어떠한 종류의 대량파괴 무기일지라도 그 확산이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에 대한 위협이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동시에 이러한 분야에서의 양국간 협력을 더욱 강화하기로 하였다. 양국 정상은 양국간의 안보정책협의회 및 각급 차원의 방위교류를 환영하고 이를 더욱 강화해 나가기로 하였다. 아울러 양국 정상은 양국이 각각 미국과의 안전보장체제를 견지하는 동시에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다자간 대화 노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4자회담 순조로운 진전 바람직 7.양국 정상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는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지향하는 동시에 대화를 통한 보다 건설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하였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확고한 안보체제를 유지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金大中 대통령의 대북한 정책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양국 정상은 1992년 2월 발효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이행과 4자회담의 순조로운 진전이 바람직하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1994년 10월 미국과 북한간에 서명된 ‘제네바합의’ 및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북한의 핵 계획 추진을 저지하기 위한 가장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메커니즘으로서 유지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양국 정상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대하여,국제연합안전보장이사회 의장이 안보리를 대표하여 표명한 우려 및 유감의 뜻을 공유하는 동시에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중지되지 않는다면 한국,일본 및 동북아시아 지역 전체의 평화와 안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양국 정상은 양국이 북한에 관한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상호 긴밀히 연대해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재확인하고,각급 차원에서의 정책협의를 강화하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8.양국 정상은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 경제체제를 유지·발전시키고,또한 구조적 문제에 직면한 아시아 경제의 회복을 실현해 나감에 있어서 한·일 양국이 각각 안고있는 경제적 과제를 극복하면서,경제분야의 균형된 상호 협력관계를 보다 강화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합의하였다. 이를 위하여 양국 정상은 양자간의 경제정책협의를 더욱 강화하는 동시에, WTO,OECD,APEC 등 다자무대에서의 양국간 정책협조를 더욱 촉진해 나간다는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金大中 대통령은 금융,투자,기술이전 등 여러 분야에 걸친 지금까지의 일본의 대한국 경제지원을 평가하는 동시에,한국이 안고 있는 경제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설명하였다. 오부치 총리대신은 일본의 경제회복을 위한 각종 시책 및 아시아의 경제난 극복을 위하여 일본이 시행하고 있는 경제적 지원에 관해 설명하는 한편,한국의 경제난 극복을 위한 노력을 계속 지지한다는 의향을 표명하였다. 양국 정상은재정 투융자를 적절히 활용한 일본 수출입은행의 대한국 융자에 관하여 기본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을 환영하였다. 양국 정상은 양국간의 커다란 현안이었던 한·일 어업협정 교섭이 기본합의에 도달한 것을 마음으로부터 환영하는 동시에,국제연합 해양법 협약을 기초로 한 새로운 어업 질서하에 어업분야에 있어서의 양국관계의 원활한 진전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이번에 새로운 한·일 이중과세방지 협약이 서명되는 것을 환영하였다. 아울러 양국 정상은 무역·투자,산업기술,과학기술,정보통신 및 노·사·정 교류 등 각 분야에서의 협력·교류를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으며,한·일 사회보장협정을 염두에 두고,장래 적절한 시기에 서로의 사회보장제도에 대한 정보·의견 교환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9.양국 정상은 국제사회의 안전과 복지에 대한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는 국경을 초월한 각종 범세계적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양국 정부가 긴밀히 협력해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양국 정상은 지구환경문제,특히 온실가스 배출 제한,산성비 대책을 비롯한 제반 문제에 대한 대응에 있어서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하여,한·일 환경정책대화를 추진하기로 하였다. 또한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기위하여 원조분야에서의 양국간 협조를 더욱 발전시켜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아울러 양국 정상은 한·일 범죄인인도조약 체결을 위한 협의를 시작하는 동시에,마약각성제 대책을 비롯한 국제조직범죄 대책분야에서의 협력을 더욱 강화한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사증제도 간소화 지속 추진 10.양국 정상은 이상 각 분야의 양국간 협력을 효과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기초는 정부간 교류 뿐만 아니라 양국 국민간의 깊은 상호이해와 다양한 교류에 있다는 인식하에 양국간의 문화·인적교류를 확충해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양국 정상은 2002년 월드컵의 성공을 위한 양국 국민의 협력을 지원하고,2002년 월드컵 개최를 계기로 문화 및 스포츠 교류를 더욱 활발히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양국 정상은 연구원,교사,언론인,시민단체 등 다양한 계층의 국민 및 지역간교류의 진전을 촉진하기로 하였다. 양국 정상은 이러한 교류·상호이해 촉진의 토대를 조성하는 조치로서 이전부터 추진해 온 사증제도의 간소화를 계속 추진하기로 하였다. ­또한 양국 정상은 한·일간의 교류 확대와 상호이해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하여 중·고생 교류사업의 신설을 비롯하여 정부간의 유학생 및 청소년 교류사업의 내실화를 기하는 동시에,양국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취업관광사증 제도를 1999년 4월부터 도입하기로 합의하였다. 양국정상은 재일한국인이 한·일 양국 국민의 상호교류·상호이해를 위한 가교로서의 역할을 담당할 수 있다는 인식에 입각하여 그 지위의 향상을 위하여 양국간 협의를 계속해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양국 정상은 한·일포럼 및 역사공동연구의 촉진에 관한 한·일 공동위원회 등 관계자에 의한 한·일간 지적교류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는 동시에,이러한 노력을 계속 지지해 나간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金大中 대통령은 한국내에서 일본 문화를 개방해 나가겠다는방침을 전달하였으며,오부치 총리대신은 이러한 방침이 한·일 양국의 진정한 상호이해에 기여할 것으로 환영하였다. 11.金大中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대신은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이 양국 국민의 폭넓은 참여와 부단한 노력에 의하여 더욱 높은 차원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공통의 신념을 표명하는 동시에,양국 국민에 대하여 이 공동선언의 정신을 함께하고,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의 구축.발전을 위한 공동의 작업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하였다.
  • 金 대통령 訪日과 향후 韓·日 관계

    ◎과거 정리 ‘실천적 동반시대’로/일 사과­반성따라 국제적 역할 인정/경제·환경 등 협력차원 제고 새지평 7일부터 시작되는 金大中 대통령의 일본 국빈방문은 21세기를 목전에 둔 시점이라는 점에서 특별하다.한·일간의 과거에 연연하기보다는 미래를 향해 함께 박차고 나가는 특별한 전기가 될 것이라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동안 많은 대통령이 ‘미래지향적 관계’를 역설했지만 한·일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데는 여전히 미흡했다.전문가들은 ‘말의 성찬’으로는 결코 풀리지 않는 한·일 관계의 특수성에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다.미래로 가야 한다는 양국 국민의 공통인식 속에서도 과거에 대한 앙금의 뿌리가 깊고, 여기에 안보·경제적 측면에서 우호·협력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현재의 동반자적 관계가 복잡하게 뒤엉켜 있는 것이다. 金대통령은 이번 방문을 계기로 일본 국민들이 과거사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용기를 갖기를 바라고 있다.그 연장선상에서 우리도 전후 일본의 세계평화와 경제에 기여한 국제적 역할을 평가하겠다는 의지다.과거사에 대한 언급이 두 나라 정상회담의 공동선언문에 구체적으로 명문화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특히 ‘천황’이라는 명칭을 공식 사용하고,협력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제시하는 것은 두 나라간 확고한 실천의지의 반영으로 이해된다. 또 金대통령은 아시아 경제위기에 대한 일본의 역할과 금융·무역·투자부문의 두 나라간 협력관계가 도출되기를 기대하고 있다.우리에 대한 일본의 조건없는 30억달러 지원문제는 이 선상에서 이뤄지는 성과중 하나다.여기에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와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적 개방,북한의 미사일 위협 공동대처 문제도 어떤 형태로든 협력이 이뤄져야 할 현안들이다.이번 회담에서 양국 정상 및 각료간 대화창구는 물론 청소년·여성·비정부기구(NGO)·지방자치단체간 교류의 폭을 확대하는 것도 이를 감안한 새로운 틀로 볼 수 있다. 나아가 金대통령은 동북아시아와 범세계적인 협력문제를 논의,양국 관계를 한차원 높은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복안을 갖고 있다.林東源 외교안보수석도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WTO체제,인권,환경문제에서 양국이 기여할 수 있는 문제들도 협의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볼 때 이번 방문은 양국 관계가 새로운 지평을 여는 발판을 굳히는 계기가 될 게 분명하다.다만 양국 국민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21세기의 동반자적 관계를 인식하면서 이번 회담의 성과를 실천하느냐가 최대 관건이라고 할 수 있다. ◎양국 현안 점검/파트너십­협력원칙 등 문구 확정상태.과거사 사과­‘한국민·일제’ 표현 구체화.경제협력­경제각료모임 정례화 이견 金大中 대통령의 이번 일본 방문은 어느 역대 대통령의 방일(訪日)보다도 많은 결실을 예고하고 있다.독도를 제외한 한·일 양국 사이의 모든 문제가 총망라돼 새로운 시각과 접근법으로 해결이 시도되기 때문이다. 이번 방일의 현안들을 지금까지 드러난 진행상황을 토대로 재검검해 본다. ▷21세기 파트너십◁ 이번 방일의 결실은 양국 정상이 회담 뒤 공동발표할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에모두 담긴다.우리나라가 국가간 전반적인 협력원칙을 문서화하기는 이번이 처음.물론 법적 구속력은 없는 정치적 선언이다.하지만 양국 사이에 앙금처럼 남아 있는 금세기사(史)를 정리하고 다음 세기 양국간 교류의 큰 틀을 그렸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둘 만하다.양국은 ‘공동선언’에서 큰 줄기의 원칙을 천명하고 부속서인 ‘행동계획’에서는 구체적 실행계획을 명시한다.‘행동계획’은 양국간 마지막 문구 조정작업을 거쳐 이제 거의 확정 상태다. ▷한·일 어업협정◁ 2년4개월을 끌어온 한·일 어업협상이 지난달 25일 새벽 종지부를 찍었다.어업협상 타결로 다음 세기를 향한 양국의 발전적 관계 설정에 앞서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게 됐다.양국은 최대쟁점인 중간수역의 동쪽 한계선을 양국 주장의 중간선인 동경 135도 30분으로 매듭짓는 등 대부분의 사안을 정치적인 ‘주고 받기’로 타협했다.이번 방일 때 가서명할 예정이다. ▷과거사 사과◁ 林東源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지난달 30일 과거사 사과 문안을 가지고 온 노보루 세이이치로(登誠一郞)일본 내각 외정심의실장(차관급)과 의견 조정을 벌였다.그러나 이때 일본이 내놓은 안(案)은 우리 기대에 다소 못미쳤다는 후문이다.일본은 ‘식민지배’를 받은 ‘아시아제국’에 대해 사과했던 지난 95년 당시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의 담화 수준에다 대상과 시기를 ‘한국민’과 ‘일제’로 구체화할 것으로 전해졌다.일본은 파트너십 선언에 과거사 사과를 포함할 계획인데 이처럼 과거사 사과를 문서화한 것은 처음이다.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金대통령에게 직접 말로도 사과할 예정이지만 일황의 구두사과 수준은 아직 미확정이다.양국은 더 나아가 역사교과서 수정을 위한 기초단계로 이번 파트너십 선언에 “올바른 역사인식을 해나간다”는 내용도 담을 계획이다. ▷경제교류협력◁ 이번 방일에서 일본이 줄 가장 큰 ‘선물’은 무엇보다 대한(對韓)차관 30억달러의 제공이다.일본 수출입은행이 제공하는 이번 공공차관은 월드컵 주경기장 건설 등 각종 사업에 배정되는 ‘프로젝트 론’의 성격.특히 일본은 우리측 요구를받아들여 사용처를 우리 마음대로 지정하는 ‘언 타이드 론’ 위주로 차관을 편성한 것으로 알려졌다.이번 방일때 양국이 양해각서에 서명한다.이와 함께 70년 체결된 한·일 이중과세방지협정도 개정된다.일본의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주식양도차익의 면세범위를 비상장주식에 까지 확대하고 투자소득에 대한 제한세율을 2% 포인트 낮춘다.아울러 한·일 경제각료모임이 신설된다.일본은 정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우리는 이에 다소 부정적 입장.일본의 대한(對韓)첨단기술 이전의 한 방법으로 우리 고졸생 1,000명을 일본 공대에 유학시키는 제도도 마련됐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일본 대중문화의 단계적 개방도 파트너십 선언에 포함된다.그러나 원칙만 천명될 뿐 구체적 개방분야와 일정은 양국 문화정책 당국자들의 협의를 거쳐 추후 발표될 전망.당초 예상보다 전면적으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재일동포의 법적 지위◁ 일본은 “재일동포는 엄연히 외국인이기 때문에 내국인과 똑같이 대우할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따라서우리가 요구했던 재일동포의 지방참정권 부여는 이번에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 □김 대통령 방일 현안별 점검 ▲한·일파트너 공동선언 외국과의 교류협력 원칙을 포괄한 최초의 문서 ▲어업협정 9월25일 타결,방일때 가서명 ▲과서사 사과 ‘한반도’ ‘일본식민지배’ 명기,일본 총리 구두사과,올바른 역사인식 노력 합의 ▲경제협력 30억달러 대한공공차관 제공,양국경제각료 모임신설,이중과세방지협정 개정,대일투자설명회 개최 ▲인적교류 워킹홀리데이협정 체결,국내 고졸생 1,000명 일본공대 휴학 ▲국제사회협력 일본,우리의 대북포용론 지지 표명 한국,유엔 등 국제사회에서의 일본의 역할 증대기대 ▲일본대중문화개방 개방원칙 천명,세부일정은 양국실무진 협의후 발표 ▲재일동포 법적지위 향상 지방참정권 부여 등 구체적 합의는 추후 논의
  • 日,역사교과서 개정 천명할듯

    ◎金 대통령 방문때 기본원칙 공동선언 채택 내달 7일 金大中 대통령의 방일(訪日)때 양국이 채택할 공동선언에 일본 역사 교과서의 수정을 위한 기본원칙이 천명될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통상부 당국자는 29일 ‘21세기 새로운 파트너십 공동선언’에 “양국이 올바른 역사인식을 위해 노력한다”는 기본원칙이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사과는 역사교과서 수정으로 이어져야 하지만 이번 金대통령의 방일때 당장 수정 약속을 받아내기는 어렵다”면서 “다만 이의 전단계로서 ‘올바른 역사인식’ 정도의 개념은 언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앞서 洪淳瑛 외교통상부장관은 28일 기자간담회에서 “과거사 문제는 결국 교과서 문제로 결착된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이번 방일때 발표할 일본의 과거사 관련 사과는 지난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의 담화 수준을 기조로 ‘한반도’라는 지명과 ‘일제 강점’이란 시기가 구체적으로 명기되는 수준이며 이에 대해 정부는 ‘이전보다 진전된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 홍대 김민제 교수 3부작 12년만에 완성

    ◎英·佛·러 혁명을 보는 대립적 시각 분석/역사인식에 대한 새로운 지평 열어 영국혁명과 프랑스혁명,러시아혁명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영국혁명과 프랑스혁명은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가져왔고 러시아혁명은 무산계급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이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혁명은 불필요했으며 백해무익하고 국민들에게 고통만 안겨주었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만만치 않다. 서양 근대 3대 혁명에 대한 대립적인 시각을 3부작으로 다룬 역사서가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역민사에서 3권의 책으로 나온 ‘영국혁명의 꿈과 현실’,‘프랑스 혁명의 이상과 현실’,‘러시아혁명의 환상과 현실’이 그 것으로 서양사 전공인 홍익대 金民濟 교수가 12년가량 매달려 완성했다. 이 책은 서론,혁명의 긍정적 해석,부정적 해석 세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서론에서는 혁명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소개한뒤 이런 견해들이 나오게 된 학계와 사회적 배경을 설명한다. 혁명에 대한 긍정적 해석에서는 3대 혁명은 부패되고 비합리적인 체제를바꿀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으며 인류에게 물려준 위대한 유산이라는 입장을 소개한다. 영국혁명에 대한 휘그­마르크스주의적 해석,프랑스 혁명의 정통주의적 해석,러시아혁명의 소비에트­수정주의적 해석이 이에 해당된다. 마지막 장인 혁명에 대한 부정적 해석은 혁명을 바람직하지 않은 역사적 사건으로 본다. 이들은 혁명의 목표가 아무리 바람직하고 이상적이었다 해도 혁명은 현실적으로 인류에게 불행만을 초래했다고 본다. 영국과 프랑스혁명의 수정주의적 해석,러시아혁명에 대한 자유주의적 해석이 이에 해당되는 것으로 이러한 경향은 70년대에 대두되기 시작했다. 영국혁명에 대한 휘그­마르크스주의적 해석론자들은 부르조아들은 사회·경제적인 문제들을 의회에서 해결하려 했지만 왕이 이를 수용하지 않고 독재체제를 강화하는 바람에 의원들이 혁명을 일으켰다고 말한다. 또 혁명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 하원은 국민의 자유와 재산권을 지키려 노력했고 이를 위해 절대군주에 대한 전쟁을 일으켜 국민의 호응을 받아 승리했다고 본다. 그러나 수정주의학자들은 영국혁명을 영국·스코틀랜드·아일랜드간의 갈등에서 빚어진 내전이라고 본다. 이들은 영국내전은 사회·경제적인 모순 때문이 아니라 일련의 우연한 사건들이 계기가 돼 일어났으며 이런 원인을 제공한 당사자는 바로 찰스왕 자신이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내전은 결국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고 왕정복고로 마감될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인권옹호의 기원이 됐다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정통주의적 시각도 수정주의자들의 도전을 받고 있다. 수정주의자들은 당시의 상황은 혁명이 일어날 만큼 최악의 상태도 아니었으며 불필요한 혁명으로 역사의 발전과정은 왜곡됐으며 시민들만 고통을 당했다고 말한다. 이러한 해석이 나오게 된 것은 유명한 혁명가에서 보수적인 시민들 또는 혁명 당시에 따돌림을 당한 반혁명인사들에게 주목하는 등 연구대상에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혁명에 대한 상반된 견해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지는 않는다. 역사적 사건은 시대를 지배하는 분위기 및 이데올로기에 의해 새롭게 해석될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뭏튼 혁명에 대한 이러한 신조류는 옳고 그르고를 떠나 역사인식에 대한 지평을 넓히는데 도움을 줄 것으로 여겨진다.
  • 金 대통령 제2건국 선언­의미·국정과제

    ◎‘기본이 바로선 나라’ 만든다/민주·시장경제 병행 선진한국 건설/국민 자발적인 참여로 총체적 개혁/자유·정의·효율성이 실천 원리로 金大中 대통령이 제창한 ‘제2의 건국’정신은 한마디로 ‘기본이 바로 선 나라’를 구축하기 위한 총체적 국정개혁이자 국민운동을 의미한다.6·25이후 최대 국난인 IMF체제를 극복,민족재도약을 이뤄 세계속의 선진한국을 건설하자는 것이다.金대통령은 그 해법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기초로 둔 보편적 원칙과 규범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 나라의 기틀을 쇄신하는데서 찾고 있다. 따라서 제2의 건국의 지향점은 분명하다.민주주의의 원칙 아래 정치적인 절차와 법치로 발전시킨뒤 이를 시민운동으로 승화,경제분야의 효율성과 연계시킨다는 복안이다.제2의 건국이 과거와의 단절이 아닌 반성과 계승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즉 권위주의적 관치경제와 전근대적인 패러다임,정보화와 WTO체제 등 국제환경의 변화에 대한 대응부족이 오늘의 국난을 가져왔다는 판단이다.金대통령이 경축사에서 제2의건국을 “우리가 역사의 주인으로서 국난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그 운명을 새롭게 개척하려는 시대적 결단이자 선택”이라고 규정한 것도 이러한 인식의 결과다. 金대통령은 그 기본이념을 민주적 시장경제와 세계주의로 삼았다.李康來 정무수석은 이를 “공정한 시장경제원리의 작동을 기본으로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아시아적 가치’에서 국민전체의 역동성으로 국난을 극복해 나가자는 이념”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이념의 기본원리는 자유와 정의,그리고 효율 등 3가지이며,실질개혁·국민주체·솔선수범의 3대 원칙 속에서 추진된다.정의는 ‘분배적 평등’을,효율은 ‘자유로운 경쟁’의 원리로 서로 상충되는 듯 하지만,정책 결정 및 집행 과정에서 철저한 조화를 추구해 나가게 될 것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3대 원칙은 개혁 추진의 방향으로,金대통령의 역사인식이 배어있는 대목이다.즉 국민적 동참과 지도층의 솔선수범 속에서 국정개혁을 추진해 나가겠다는 의지이다.정권교체가 국민의 선택으로 이뤄진 만큼 개혁도 국민의 자발적참여에 따른 아래로부터의 지지를 통해 달성하겠다는 것이다.관주도가 아닌 지식인과 젊은층이 대거 참여하는 국민운동기구를 구성하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金대통령은 구체적인 개혁방향을 6대 국정과제로 요약했다.▲선진적 민주정치 ▲민주적 시장경제 ▲보편적인 세계주의 ▲창조적 지식국가 ▲공생적 시민사회 ▲협력적 남북관계 등이 그것이다.金대통령은 경축사에서 이를 위한 실천적 비전으로 부정부패의 척결에서부터 경제청문회 실시,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인사청문회,지방경찰제 실시,외국인 투자촉진법,언론개혁 등을 천명하고 있다.
  • “사도세자는 丈人이 죽게했다”

    ◎소장사학자 이덕일씨 ‘사도세자의 고백’서 이색 주장/“정변 꾸민다” 영조에 허위고변/혜경궁 홍씨 ‘한중록’ 집필이유는 친정몰락에 대한 한 풀기위한 것 사도세자를 뒤주에 넣어 죽인 사람은 부인 혜경궁 홍씨의 아버지인 홍봉한이며 그녀가 ‘한중록’을 쓴 이유도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한 친정을 변명하기 위해서였다는 주장이 나와 관심을 모은다. 독창적인 시각의 역사평설을 주로 써온 소장사학자 이덕일씨(38)는 최근 펴낸 ‘사도세자의 고백’(푸른역사)에서 각종 사료를 근거로 이같은 견해를 밝혔다. 이씨는 “사도세자는 정신병자이고 영조는 정신병자에 가까운 이상성격자로 두 성격이 부딪쳐 ‘뒤주의 비극’을 낳았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은 ‘한중록’에 대한 이성적인 비판 없이 이뤄진 역사의 오류”라고 주장한다. 그는 ‘영조실록’‘어제장헌대왕(사도세자) 지문’‘홍재전서’‘천의소감’ 등의 사료를 분석,사도세자를 죽이는데 앞장선 인물은 홍봉한이며 혜경궁 홍씨는 정조가 죽은 뒤 친정을 옹호할 목적으로 ‘한중록’을 썼을 뿐이라고 강조한다. 노론에 속한 홍봉한은 사도세자가 소론의 영수 조재호와 손잡고 정변을 꾀하는 것으로 꾸며 영조에게 고변한 뒤 뒤주로 세자를 죽이라는 아이디어를 그에게 제공했다는 게 이씨의 설명. 혜경궁 홍씨는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히기전 조재호를 부르자 이같은 사실을 아버지에게 바로 알리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도제자가 죽은 뒤 승승장구하던 혜경궁 홍씨의 친정세력은 영조가 승하하자 사도세자의 아들이자 세손인 정조를 폐하고 은전군을 추대하려다 실패했다. 이로 인해 그들은 정조 즉위와 동시에 멸문지화를 당했다. 이씨는 혜경궁 홍씨가 ‘한중록’을 쓴 것은 사도세자의 죽음이 아니라 친정이 몰락한데 대한 한을 풀기 위해서였다며 “이 노회한 정치인은 이같은 집필작업을 뒤주사건이 난 지 40년이 훨씬 지난 뒤에야 착수했다”고 말한다. 한편 이씨는 현재 방영중인 MBC TV의 사극 ‘대왕의 길’에 대해서도 비판의 말을 던진다. ‘대왕의 길’은 사도세자와 노론의 갈등,사도세자의 무인적 기질에 대한 조명 등 기존의 드라마와는 분명히 다른 세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기본적인 역사인식의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엄정한 사료해석없이 ‘한중록’에 의존함으로써 혜경궁 홍씨와 그 친정을 사도세자의 적이 아니라 세자의 편으로 형상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지도자 제1조건은 설득력과 철학(해외사설)

    일본의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외상,가지야마 세이로쿠(梶山靜六) 전 관방장관,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후생상 등 3명이 입후보를 표명했다. 이달 말이면 총리에 취임할 당 총재의 선출이기 때문에 ‘전환기’,‘성숙사회’,‘국제화’에 어울리는 지도자를 고르지 않으면 안된다. 개혁에는 기득권의 박탈을 동반하기 때문에 어느 시대도 권익을 잃게 되는 사람들로부터 강한 저항을 받게 마련이다. 과거 국민국가 사상이 통하던 시대에 국민은 내키지 않더라도 국가의 요청을 따르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 ‘적’이 눈앞에 보이지 않게 되면서 ‘국가의 요청’만으로는 국민들이 납득하지 않게 됐다. 이러한 시대에는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기가 매우 어렵다. 합의 형성을 위한 새로운 노력이 필요하다.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총리가 내건 6대 개혁은 방향이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외국의 이해와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데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없다. 영국의 대처 전 총리는 국회에서는 물론 기자회견,강연,인사말 등 모든 기회를 통해 스스로의 신념과 비전을 설명해 왔다. 자신을 노출시킴으로서 논점을 분명하게 부각시켜 국민을 설득해 왔다. 개혁기의 리더에게는 이러한 정열과 수법이 요청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어떠한 시대인식과 비전에 바탕을 두고 개혁하려 하는가라는 ‘철학’을 내외에 밝혀야 한다는 점이다. 올 2월 대표 질문에서 가토고이치(加藤紘一) 간사장이 ‘국가의 최고 정상이 역사인식을 명시함으로써 국민은 스스로 앞날을 그려갈 수 있게 되고 이웃 나라들도 일본이 나아가는 방향을 알고 일본과 협력해 나가는 방도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고 지적했지만 하시모토 총리는 개혁의 철학을 보여주지 못했다. 세계를 조망하는 철학이 제시됨으로써 국민과 외국의 예측 가능성이 높아지고 개혁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게 된다. 경제통,기개,젊음 등을 오늘날의 지도자 조건으로 드는 사람들이 많지만 대중민주주의 시대 개혁의 리더에게 요구되는 제1 조건은 설득력과 철학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말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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